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1. 올챙이 적 생각을 왜 해?

2.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

3. 무슨 복에 복처 福妻를

4. 숲 속의 야회장

5. 허영의 시장

6. 농장지대

7. 개천에서 용 나다

8. 세 개의 열쇠

 

 

1. 올챙이 적 생각을 왜 해?

 

버스 노선이 연장돼서 1년 전 종점이 구 舊 종점으로 불리는 곳 외엔 달라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사식당, 연탄가게, 세탁소, 약국, 잡화상, 문방구, 화장품 대리점, 복덕방이 1년 전 수서 그대로 자리잡은 골목 어귀에서 오히려 혜진은 낯가림을 하면서 같은 버스에서 내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길로 들어서던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까 그 정류장이 구 舊 종점 맞죠?”

아주머니는 고개만 끄덕이고 앞서갔다. 반 평이나 될까. 남의 집 추녀 끝을 물려내서 유리문을 닫고 복덕방이라고 써 붙인 속에 노인네가 서너 명 자기를 두고 있는 것도 1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어찌 1년 전 뿐일까. 혜진이가 그 동네에서 12년 동안을 줄창 봐온 광경이 있다. 아직도 겨울 점퍼를 입고 웅숭그리고 앉아 훈수를 하고 있는 김 노인은 특히 혜진이하고 인연이 깊었다. 뒷방 세를 줄 때마다 공교롭게도 그 노인이 중개를 했고, 그때마다 김 노인은 구전을 1부를 쳐 달라고 했고, 혜진은 5리 이상은 한 푼도 더 못 주겠다고 맞섰다. 물론 혜진은 5리 이상 한 푼도 더 주지 않았고, 김 노인은 다시는 이 집에 세를 놔주나 보라고 침까지 퉤퉤 뱉고 돌아섰지만, 혜진이네 뒷방이 비기가 무섭게 손님을 데려오는 건 항상 김 노인이었다.

혜진은 김 노인과 눈이 마주칠까 봐 얼른 외면을 하고 그 앞을 지나치면서 속으로 중얼댔다.

지금 때가 어느 때라고 아직도 복덕방일까. 귓결에라도 그 흔해빠진 XX 개발, 00 부동산 소리도 못 들어나, 원. 그러니까 맨날 저 모양 저 꼴들이지.

구질구질한 상가를 지나 주택가로 꼬부라지는 모퉁이 집에 처녀 전집 간판이 붙어있는 것도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혜진은 12년 동안이나 살다가 바로 1년 전에 떠난 동네가, 떠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게 도리어 낯선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더럽고 퇴락한 동네가 내가 살던 동네란 말인가? 그녀는 이 동네를 떠나고 나서 1년 동안에 이미 변화의 속도에 편안히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홀로 안 변하고 정지돼 있는 것이 급변 急變 이상으로 낯설었다.

처녀 점집에서 오르막길로 꼬부라지면서 골목은 좁아지고, 노면은 울퉁불퉁 고르지 못해졌다 지난 겨울, 수도 동파사고가 잦았다더니 길을 몇 번이나 파헤쳤길래 보도블록이 들쑥날쑥 엉망으로 곤두서 있기도 하고 숫제 시커먼 흙 바닥이 드러난 데도 있었다.

연탄 리어카의 한 쪽 바퀴가 웅덩이처럼 패인 데 빠져 끙끙대고 있었다. 혜진은 뒤를 밀어줄까 하다가 얼른 비켜서서 베이지색 투피스 자락이 더럽혀질까 조심하면서 리어카 옆을 빠져나갔다. 연탄 리어카를 밀어주다니… 그녀는 자신이 하마터면 할 뻔한 짓을 이해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연탄 리어카를 안 밀고도 예쁘고 섬세한 살롱구두는 고로지 못한 노면 때문에 심한 상처를 입고 망가지기 직전이었다.

한 떼의 국민학교 학생들이 재잘대면서 리어카를 밀기 시작했다. 리어카는 또다시 그녀의 투피스 자락을 스치고 앞질러갔다. 요새도 저런 아이들이 있나? 그녀는 묘한 감동을 맛보면서 그 시커먼 연탄 리어카가 한참 멀어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건 이 동네의 예사로운 풍습일 뿐 미담도 선행도 아니었다. 혜진이가 살 때도 그랬다. 평지가 아닌 비탈 동네라 연탄을 배달시킬 때마다 리어카꾼 눈치가 보이는 동네 사람들은 연타 리어카만 보면 고운 옷 돌볼 것 없이 밀어주기로 묵계같은 게 돼 있었다. 다만 혜진이 그걸 잊어버리고 있다 뿐이었다.

좁은 오르막길을 꼬불꼬불 휘돌면서 혜진은 집집마다 대문 앞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쓰레기통에 진저리를 쳤다. 쓰레기통마다 연탄재가 넘치다 못해 양쪽 집에서 넘친 연탄재가 길을 막고 있는 골목도 있었다. 싱그럽고 훈훈해야 할 봄바람 속에도 회색빛 연탄먼지가 난분분했고, 굴뚝마다 내뿜는 독한 가스로 목구멍이 아리도록 매캐했다. 길에서 말다툼을 하던 아이들이 뭐가 틀렸는지 서로 상스런 욕을 퍼붓다가 별안간 연탄재를 던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연탄재 던지기놀이에 금방 도취해서 욕 대신 희희낙락 킬킬대기 시작했다. 연탄재는 아이들 머리통에도 맞고 가슴팍에도 맞고 남의 집 유리창에도 맞았다. 혜진은 연탄재 던지기를 마치 눈싸움처럼 즐기는 아이들이 끔찍해서 오던 길을 되돌아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이 소삽한 동네가 흔히 그렇듯이 어디로 가나 결국은 통하게 돼 있었다.

혜진은 얽히고 설킨 골목들이 아직도 제 손바닥 위의 손금처럼 빤하건 만도 역시 이 동네가 낯선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연탄 때문이었다. 도처에 널린 시커멓고 싱싱한 연탄과 다 타서 희뿌옇고 삭막한 쓰레기로 변한 연탄재 때문이었다. 결혼하고부터 시작된 연탄과의 씨름은 장장 12년 동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고, 한겨울엔 하루에 20 여장의 연탄을 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12년을 같이 산 남편의 성미보다 연탄의 비위를 맞추기에 더 급급했었다. 비위 맞추기가 불가능한 고약한 저질탄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연탄이라면 몸서리가 나게 지겨웠다. 너무 지겨웠기 때문에 면하자마자 곧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연탄을 때며 사는 사람들이 서울장안에 남아 있다니. 혜진은 그 연탄을 때는 동네를 그녀가 살던 동네로서가 아니라 다만 딱하도록 후진 동네로서 바라보면서 경멸 섞인 연민을 느꼈다. 혜진의 아파트는 동부서울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있었다. 신경 써야 할 이웃은 아래 위층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뒤로도 바라보이는 건 그녀의 집과 똑같은 규모로 규격화된 이웃들뿐이었다.

그녀는 연탄을 안 갈고도 지난 겨울의 그 혹독한 추위를 전혀 모르고 지낼 수가 있었고, 기후에 대한 무관심은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만큼 서로 사는 사정이 빤했고, 야들야들하리만치 편리에 잘 길들여진 얼굴은 내 얼굴이자 이웃들의 얼굴이었고, 적어도 서울 사람들이라면 다 그만큼은 살고 있으려니 했다.

못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녀는 아직도 그 독한 살인가스를 구들장 밑에 깔고 쿨쿨 단잠을 잘 수 있는 그 동네 사람들이 경멸스럽다 못해 인종 人種이 다른 족속들인 양 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자기가 살던 동네에 대한 예기친 않은 그녀의 낯가림도 실은 그런 위화감의 표현일 뿐이었다.

악취가 코를 찌르면서 “비켜요 비켜” 하는 거친 외침이 그녀를 담벼락으로 밀어붙였다.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똥통이 그녀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암만해도 재수 나쁜 날이었다. 혜진은 하마터면 그 동네를 찾아온 중대한 용건을 잊고 되돌아갈 뻔하다 말았다.

오물을 치고 잇는 집은 하필이면 혜진이가 방문하려는 명희네 집이었다. 명희네 집과 나란히 붙은 60년대식 허름한 개량주택이 혜진이가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 거느리고 12년을 살던 집이었다.

명희는 고쟁이 같기도 하고 <몸뻬> 같기도 한 통 넓은 바지를 입고 대문간에 딱 버티고 섰는데, 손바닥엔 성냥개비 분지른 걸 소중하게 받쳐들고 있었다.

미리 전화를 걸고 온 방문이었지만 혜진을 맞는 명희의 태도는 지나치게 소탈했다.

“응, 왔구나. 먼저 들어가 있을래?”

“하필 손님 오는 시간에 똥을 칠 건 또 뭐니?”

“손님? 네가 손님이라고? 웃기고 있네. 서로 영감 코고는 소리까지 빤히 듣고 살던 게 엊그저껜데 손님은 무슨 손님이냐. 냄새 맡기 싫으면 어여 들어가. 참 커피 물이나 좀 연탄불 위에 놔줄래?”

명희는 혜진이 까마득히 잊고 있는, 서로 아래 윗집에 이웃해 살던 1년 전 일을 바로 엊그저께로 끌어당기면서 이렇게 스스럼없이 굴었다. 하긴 명희하고 혜진이처럼 인연이 끈질긴 친구도 없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이었고, 명희가 먼저 시집가서 남편 친구를 우연히 혜진이한테 소개한 게 당장 눈이 맞아 불과 석 달 만에 결혼을 했고, 시집에 들어와 살았기 때문에 내 집 걱정은 없는 혜진이가 결혼 5년 만에 처음으로 집 장만하려는 명희에게 팔려고 내놓은 바로 옆집을 흥정 붙여, 그 후 줄창 이웃으로 지냈다. 담 너머 훌훌 기름냄새가 넘어온다 싶으면 곧 이어 부침질 접시가 넘어왔고, 종알종알 바가지 긁는 소리가 들리면 남편이 먼저 참지 못하고 맥주병을 들고가 화해를 붙인답시고 주거니 받거니 밤새도록 마셔서 새로운 부부싸움을 유발하기도 했다.

 혜진이가 작년 이사철에 시험삼아 내놓은 집이 당장 팔려 허둥지둥 변두리의 미분양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됐을 때, 명희는 며칠밤씩 잠이 안 왔고, 그 전날 밤은 날갯죽지를 하나 잃은 것처럼 허전해서 눈물로 베개를 적시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달이 동창 곗날 만날 때마다 눈에 띄게 씀씀이와 옷차림이 달라지는 혜진을 보면서 우정은 어느 틈에 시샘하고 탐색하는 마음으로 변해갔다.

남편들의 월급은 서로 빤했다. 형편이 엇비슷한 회사의 총무부 과장 자리에 벌써 5년째 붙박이로 붙어있는 것도 양쪽 남편이 똑같았다. 군돈이 생기는 자리고 아니었고 설사 그럴만한 자리에 있대도 그럴 위인들이 못 되는 것까지 양쪽 집 남편은 서로 닮아 있었다. 다만 혜진이네가 식구가 좀 많아 더 쪼들리다가 이젠 명희네와 똑같은 다섯 식구였다.아이들이 커질수록 씀씀이도 늘어나 50만 원 안팎의 월급으로 살림 꾸리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걸 명희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혜진이의 별안간 헤퍼진 씀씀이는 안달이 나게 궁금한 불가사의였다. 명희는 혜진이가 아파트로 이사를 갈 때만 해도 그 빤한 월급에서 다달이 관리비 떼어내고 나면 속이 아려서라도 얼마 못살 걸 하는 마음으로 질투심을 달랬었다. 그러나 두고 볼수록 예상과는 정반대인 걸 보고 조바심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 오랜 수수께끼가 마침내 어제 풀려서 명희는 속이 다 후련했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어제 명희는 혜진이로부터 돈  있으면 2백만 원만 꿔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아파트 단지의 소비성향을 분수없이 따라가느라고 이젠 빚까지 지게 됐다 이거지. 명희는 그동안 안달이 나게 궁금하던 것의 정체가 겨우 빚이었다는 게 신바람이 나게 고소했다.

저러다 아파트 들어먹을 날도 멀지 않았다 싶으면서도, 계 타서 단자회사에 넣어둔 돈을 선뜻 해약해서 꿔줄 마음이 생겼다. 우정이라기보다는 이자돈이 탐나서였고, 이자돈보다도 더 탐나는 건 돈을 꾸어주면서 맛볼 우월감이었다. 이사 가고나서 달라진 혜진이로 하여 느낀 열등감이 얼마나 고약했던지 명희가 기대하는 우월감엔 복수감마저 포함돼 있었다.

혜진은 부엌을 한번 기웃거리고 나서 마루 끝에 을씨년스럽게 걸터앉았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명희네 살림살이가 혜진이 보기엔 영락 零落 한 것처럼 안돼 보여서 그러고 있는 거였다. 그러나 명희는 돈 꾸러 온 친구가 마땅히 그만큼은 주눅이 들었으려니 싶어 더욱 의기양양했다.

“아니, 이걸 한 지게라고 퍼가고 나오는 거예요? 통이 반도 안 찼잖아요. 이 아저씨가 정말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러실까. 안 돼요. 안 돼. 어서 마저 채워요.”

명희는 변소 뒷문이 난 뒤란에서 좁은 골목을 돌아나오는 인부를 가로막더니 거의 똥통에 코를 박듯이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호통을 쳤다. 인부도 지지 않고 거친 소리를 했다.

“아주머니, 이만한 집을 지니고 살면 좀 체통을 차리시우. 이게 참기름인 줄 아나, 채우긴 예서 더 어떻게 채워요. 찰찰 넘게 채웠다가 길에 찔끔찔끔 엎지르면 아주머니가 쳐줄 거요, 어쩔 거요. 비켜요, 비켜.”

“아니, 아저씨가 엎지른 걸 내가 왜 쳐요. 가다가 엎지르는 건 아저씨 자유고 내 집에선 한 지게 값을 제대로 쳐 받으려면 한 지게를 제대로 채우란 말예요. 안 그러면 반 지게 값밖에 못 받을 줄 알아요.”

그러면서 똥지게 막대기를 휘어잡으니까 인부도 못 이기는 척 비실비실 뒷걸음질 쳐 뒤란으로 돌아갔다.

“대강 해두렴. 나 보기엔 네가 너무한다 싶다. 그 사람이 그래도 착하니까 그만했지 못되게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쟤 좀 봐. 아파트로 이사가더니 아주 귀부인 같은 소리만 하네. 이 동네에서 똥 칠 때마다 제일 큰소리 나더너 집이 뉘집인데 그래. 너는 반 통이라거니 일꾼은 거진 다 채웠다거니 싸우다가 네가 막대기를 가지고 오물의 깊이를 잰다고 휘젔다가 일꿈한테 망신당하고 동네에서 구경꾼이 모여들던 생각 안 나?”

명희는 뭐가 그렇게 고소한지 입가에 사뭇 회심의 미소를 띠고 야죽댔다. 혜진은 그런 사실이 자신에게 있었나 없었나를 생각해내기보다는 “에이,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생각으로 못들은 척 딴청을 부렸다.

“너 아까부터 손바닥에 받쳐 든 건 뭐냐? 성냥개비에서 뭐 나온대? 귀중품처럼 떠받치고 있게.”

“쟤 좀 봐. 너 이걸 정말 몰라서 묻니?”

“그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너 정말 내 속 이렇게 뒤집을래?”

“거기 서 있으니까 변소 냄새에 속이 뒺비히지, 내가 왜 네 속을 뒤집는다고 그래.”

혜진은 염문을 모르는 채 될 수 있는 대로 점잖게 타일렀다. 확실하게 드러나 신분의 격차 같은 게 혜진의 우월감을 자신 있게 했고, 자신 있는 우월감은 힘 안 들이고 혜진을 우아하게 만들었다.

“이것아. 이것도 너한테 배운 버릇이야. 똥칠 때마다 행여 일꾼한테 똥지게 수효를 속을까 봐 너는 꼬박 지키고 섰으면서도 손바닥에다 이렇게 산을 놓고 했었잖아. 흉보고 배운다고 지독하다 싶으면서도 편리하기에 나도 써먹는 거야.”

명희는 혜진의 시침 딱 뗀 우아함이 아니꼽다 못해 기분이 나빠 거의 애걸하듯이 설명을 했다. 그러나 혜진의 우아함은 미동도 안 했다. 그렇게 지독하게 한푼에 치를 떨고 산 적이 있고 없고를 따져서 뭘 어쩌겠다는 걸까. 혜진은 그때 생각이 안 나니 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일꾼이 이번엔 오물을 넘치게 퍼가지고 뒤란에서 돌아나왔다. 심통이  난 일꾼은 오물을 함부로 엎지르면서 대문간으로 나갔다. 혜진은 구역질이 치밀었다. 사람의 뱃속에 그런 게 들었다는 건 너무나 모욕적이고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왕년에 똥지게 수효를 속지 않기 위해 손바닥에다 성냥개비로 산을 놓은 사실뿐 아니라 뱃속에 현제 그런 게 들어 있다는 사실까지도 부인하고 싶었다. 그런 게 들어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물도 식구들의 오물도 근래엔 본 적이 없었다. 보지 않았으니까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더러운 건, 그 더러운 걸 눈뜨고 보고 그걸로 흥정까지 하는 사람들의 뱃속에나 있어 마땅했다.

혜진은 코를 싸잡고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고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채광이 잘 안 되는 안방은 어둑시근하고 연탄내가 매캐했다. 혜진은 콜록콜록 헛기침을 하면서 방안을 휘둘러 보았다 이윽고 명희가 부엌으로 난 쪽문으로 끓는 물주전자를 먼저 들여놓고 나서 쟁반에다 커피니 프림이니 과일이니를 챙겨가지고 들어왔다.

“네가 돈을 다 꾸게, 뭔 일이 생겼어?”

명희는 사뭇 의논성스럽게 물었다. 돈을 꾸러온 주제에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시종 우아하기만한 혜진이가 신경에 거슬렸지만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선 서둘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 일이 있긴.”

혜진은 혜진대로 명희가 손이나 씻고 커피를 타고 과일을 깎는 것일까가 신경에 거슬려 건성으로 대답했다.

“2백만 원이면 큰 돈이야. 나한테는 말야.”

명희는 이렇게 말해놓고 나서 “나한테는 말야” 소리는 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꾸어주는 사람보다 꾸어가는 사람에게 보다 큰 돈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뒤늦게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알아, 동창계에서 두 머리 탄 거지? 월급장이가 2백만 원짜리 계 두 머리 붓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걸 내가 왜 몰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혜진은 너무 여유가 있어 보였다. 명희는 기어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야 말았다.

“얘, 나 기분 나쁘다. 넌 돈 꾸는 주제에 왜 그렇게 여유가 있냐? 꼬고 월급장이 면하고 경기 좋은 사업이라도 하는 것 같다.”

“경기 좋은 사업?”

혜진은 이렇게 반문해놓고 혼자서 쿡쿡 웃기 시작했다.

“왜 그래? 뭐라고 말 좀 해봐. 뭐 좋은 일 있으면 나한테도 좀 가르쳐 주면 안 되니?”

명희는 돈을 꿔주면서 우월감을 누려 보겠다는 당초의 의도와는 딴판으로 자기도 모르게 비굴하게 빌붙고 있었다.

“이 집 얼마나 나가니?”

“맨날 그 타령이지. 이 동네 집값 안 오르는 건 너도 알잖아.”

“우리 아파트는 6천에 팔라고 자꾸만 졸라서 귀찮아 죽겠어.”

“뭐, 6천? 너 그거 작년 이맘 때 3천 주고 산 거 아냐? 지지리도 안 팔리는 아파트라 분양가만 주고 층 수도 마음대로 골라서 산다더니 그게 그렇게 올랐어? 말도 안 돼. 그건 정말 말도 안 돼.”

명희는 세차게 도리머리를 흔들며 간신히 비명같은 소리를 냈다. 가슴이 무두질을 하듯이 아파왔다.

“글쎄 말야.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세세도 산 모양이야. 자꾸만 팔라는 걸 보면…”

“그럼 1년 사이에 가만히 앉아서 3천을 벌었단 말이지?”

“3천이 뭐 많니? 큰거 가진 사람들은 1년에 1억도 버는데.”

“1억은 그만두고 3천만 해도 한 달에 얼마씩이냐? 2백 50 아냐. 손끝 하나 까딱 안하고 2백 50씩을 벌었단 말이지, 네가?”

“꼭 그렇지도 않아. 우리 동네가 별안간 바람을 탈 때만 해도 한 달에 5백씩 오르더라. 요샌 뜸해서 한 백씩 오르나 봐. 이거 이자 2부씩 쳐주면 되지?”

혜진은 얼이 빠진 명희가 내놓은 1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손끝으로 가볍게 퉁겨 보이고 나서 핸드백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명희는 감히 그 돈의 용도를 묻지 못했다. 언제 갚을 거냐는 등 이자는 2부 5리는 받아야겠지만 2부로 해주는 대신 날짜는 꼬박꼬박 지켜야 한다는 등 마지막 다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쩨쩨하게 보일 것 같아서였다. 한 달에 가만히 앉아서 2,3백만 원을 거뜬히 버는 친구에게 2년 동안 덜 먹고 덜 입고 오물통을 5부로 채웠나 7부로 채웠나까지 일일이 감시를 해가며 겨우 2백만 원을 모은 자기가 얼마나 쩨쩨해 보일 것인가 생각만 해도 주눅이 들었다. 명희는 괜히 억울하고 서운한 걸 참고 2백만 원을 2,3 천원처럼 가볍게 내주는 걸로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했다고 생각했다.

혜진은 순전히 생활비의 적자를 메꾸기 위해 돈을 2백만 원씩이나 꾸고도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빚도 겁나지 않았고, 생활비에 못 미치는 남편의 월급도 짜증스럽기 않았다. 가만히 앉았어도 한 달에 2,3백만 원씩 재산이 불어난다는 건 전혀 새롭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매일매일 금달걀을 낳는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닭은 다름아닌 현재의 아파트였다. 혜진은 늘어난 수입에 알맞게, 그리고 이웃과도 보조를 맞춰가며 소비를 늘려갔다. 생활에 아둥바둥하지 않으니까 저절로 언행에 우아한 품위가 생기고 사는 게 한없이 즐거웠다. 생을 즐긴다는 게 무엇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2백만 원 수표를 챙긴 혜진은 점심 해먹고 가라는 명희의 만류를 가볍게 뿌리치고 친구의 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 구질구질하고 낯선 동네를 쫓기듯이 벗어났다. 얼른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싶었다. 연탄먼지와 오물냄새를 씻어내고 향기로운 로션을 온몸에 바르리라. 그녀의 아파트는 매달 2,3백만 원의 공돈을 벌게 해줄 뿐 아니라 그녀에게 온갖 편리와 안락을 제공해주는 즐거운 나의 집이기도 했다.

새로 생긴 단지인 그녀의 동네는 질서정연하고 정결했다. 단지 내에서 만나는 그만그만한 나이 또래의 젊은 부인들은 또 얼마나 정다운가. 그 여자들이야말로 혜진과 공돈의 비밀을 같이하는 미덥고 알뜰한 동업자들이었다. 만일 아파트의 오름세가 조금이라도 둔화되면 반상회에서 고운 목청을 높여 단결을 다짐함으로써 더욱 높은 수익을 보장할 수도 있었다. 녹지대가 알맞게 배치된 단지 내의 공기는 신선하고 감미로왔다. 혜진은 느긋하게 심호흡을 하며 개업을 내일 모레로 앞둔 쇼핑센터를 쳐다보았다. 거대한 건물이, 안에 구비된 상품선전이 적힌 오색의 현수막에 뒤덮여 펄럭이고 있었다. 런던포크, 위크엔드, 논노, 니나리, 샤롯데, 지방시, 신데렐라, 비컹검, 맨하탄, 벨라, 쁘랭땅, 모아, 그린에이지, 나이키, 프로스펙스, 월드컵…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거대한 건물이 유연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

 

혜진이 그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다 소파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깨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매우 작아 곤충의 날개짓 같기도 하고, 감이 먼 전화 목소리 같기도 하고, 그녀가 잠든 사이에 잠깐 들어와 잡담을 즐기던 귀신들 목소리의 여운 같기도 하고, 일시적인 환청 같기도 했다.

혜진은 괜히 무서운 생각이 나서 일부러 큰 기침을 하고 일어나서 거실을 서성거렸다. 환청이라면 정신만 번쩍 차리면 없어질 테고, 귀신들의 아우성이라 해도 인기척을 들으면 물러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가냘프면서도 확실하고, 확실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소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인 듯 창 밖으로 곧바로 보이는 아파트 진입로를 지나는 차들은 뜸하면서도 조급했다. 어디선지 술주정뱅이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직도 혜진의 귀에 들리는 그 소리는 그런 현실적인 소리하곤 판이했다. 바로 지척에서 나는데도 아득한 지난 시간 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희미하고 육성 肉聲으로서의 인간미가 걸러진 기분 나쁜 것이었다.

혜진은 용기를 내어 그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엉뚱스럽게도 벽 속에서 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벽 너머 옆집의 소리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벽 속에 갇힌 소리였다. 그 벽엔 인터폰이 달려 있었다. 그 후에도 혜진은 인터폰에서 새어 나와 벽을 타는 가냘픈 통화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녀는 벽 속에 갇힌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갇혀 사는 자신의 비명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벽 속엔 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동 棟과 동, 방과 방을 이어주는 인터폰의 선 말고도 얼마나 많은 선과 관이 얽혀있을 것인가. 전화선, 전기줄, 수도관, 온수관, 하수도관, 난방관, 안테나줄…. 그 많은 선과 관 중 하나만이라도 끊기거나 막혔을 경우를 가정하면 혜진은 지레 겁이 나고 멀미까지 났다.

혜진이 태어난 집은 수수깡으로 외를 엮고 그 위에 진흙으로 벽을 친 한옥이었다. 소녀시절 이사가서 산 곳은 대나무로 외를 엮고 회칠을 한 일본식 가옥이었고, 시집가서 산 곳은 시멘트블록을 쌓고 양회칠한 개량주택이었다. 지금 사는 곳은 철근에다 콘크리트를 입힌 아파트이니 점점 견고한 집으로 옮겨 사는 꼴이었다. 그만큼 우리 모두의 생활과 더불어 그녀의 생활이 향상됐다고도 볼 수 있었다.

보다 튼튼한 집이 보다 안전한 집이라면 혜진이 겁을 낼 까닭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안전과 함께 보장된 편리가 언제 고장을 일으킬지 몰라 두려웠고, 안전이 보장해주는 고립감 역시 멀미가 나게 싫었다. 일단 싫증이 나자 도저히 걷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집에 있을 땐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실평수 24평의 공간을 오락가락 지법을 못했고, 오락가락에 지치면 문을 잠그고 별볼일 없는  외출을 일삼았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수수깡으로 외를 엮고 진흙 바른 집에서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혜진은 이미 아파트의 편리라는 맛을 알고 있었다. 편리란 일단 한번 맛을 들이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뛰어난 마약이었다.

반상회가 끝나고 잡담을 하는 자리에서 혜진은 요즈음 그녀가 앓고 있는 그 이상한 증세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싶어졌다.

“영란 엄마, 아마 영란 엄마가 들으면 촌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요즈음 이상한 병을 앓고 있다우. 온종일 집에 있으면 꼭 차를 오래 탄 것처럼 미식미식 멀미가 나기도 하고, 우리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기도 해서 괜히 라도 한차례 나갔다 와야 해요. 그뿐인 줄 알아요? 벽 속에 숨어서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는 수많은 선이나 관 중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우린 어떤 혼란을 겪을까, 생각하면 끔찍해서 잠이 다 안 와요. 남편은 이런 내 노이로제를 동정해 주기는커녕, 날더러 한국사람이 아니라 기 杞 나라 사람이래요. 예전 중국의 기나라 사람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나 요.”

이런 혜진의 하소연을 듣고, 거기 모인 여자들은 너도나도 비슷한 증세를 앓은 경험을 얘기했다.

“철이 엄마, 처음 아파트에 살아 보는 거죠? 처음이 제일 그래요. 아파트 멀미가 극도에 달하는 게 아마 처음 살아본 지 1년쯤 될 무렵일 걸요. 그것도 맞죠? 감쪽같이 낫는 방법이 딱 하나 있어요. 이사를 가는 거예요. 조금 큰 아파트로요. 당장 이사 갈 수 없으면 새로 짓는 아파트 청약만 하러 다녀도 그 증 症이 감쪽같이 가신다니까요. 아파트에 3년 이상 사는 사람 별로 없는 게 다 그런 까닭이라구요.”

 “맞아요, 맞아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다 하나씩 주택청약 예금통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파트의 편의시설이 언제 고장날지도 모른단 근심, 그거 절대로 기우 杞憂가 아녜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얼마나 날림으로 지었다구요. 잘 지은 아파트도 10년을 못 간다는데 이 날림 아파트는 빨리 팔아 치우는 게 수예요. 1년 남짓한 사이에 배로 뛰었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어요. 아유 참, 이런 말 밖으로 샐라. 이런 말 밖으로 샜다간 우리가 일치단결해서 올려놓은 집값이 뚝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우리 피차 말조심합시다. 참, 여기 혹시 전세 든 분 없나 몰라?”

“걱정 말아요. 전세 든 사람은 반상회에 나오지도 않으니까.”

이렇게 해서 혜진도 주택청약 예금통장을 가지게 됐고 그걸 가지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깜쪽같이 멀미와 답답증이 가시고, 다시 사는 게 즐거워졌다. 날림공사한 벽 속에 들어있는 선과 관에 대한 공포도, 그것들이 막히거나 망가지기 전에 우린 떠날 거니까 라고 생각하면 두렵기는커녕 오히려 재미가 났다. 더욱 재미가 깨로 쏟아지는 건 1년 만에 분양가의 배가 된 집을 팔아 새로 지은 걸 분양가로 살 경우 40평도 넘는 걸 살 수도 있다는 거였다. 재산을 증식시키기란 얼마나 쉽고도 재미난 일인가? 억대의 부자가 꿈이 아니라 바로 손만 뻗으면 잡히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혜진의 통장이 9개월이 지나자마자 변경된 주택청약 방법은 채권입찰이라는 아리송한 관문이 신설돼 혜진을 약간 골치 아프게 했다. 그러나 0순위를 부지하세월 기다릴 때와는 달리 눈치와 재수만 통하면 단박에 당첨이 될 수도 있었다. 해가 바뀌고부터 유명한 아파트 분양공고가 잇달았다. 혜진은 노이로제 현상이 싹 가셨을 뿐 아니라, 보람있는 전문직에라도 종사하게 된 것처럼 생기와 의욕이 충만했고, 하루하루가 살맛이 났다.

혜진은 번번이 당첨이 될 뻔하다 말았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다음번엔 큰마음 먹고 채권가를 크게 올려서 써넣건만 역시 아슬아슬하게 떨어지긴 마찬가지였다. 분양이 거듭될수록 채권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때문이었다. 커트라인에 걸릴 듯 말 듯 떨어진다는 건 안타깝고도 스릴이 풍부한 경험이었다. 만약 커트라인에 간당간당 매달려 당첨이 된다면 그건 또 얼마나 스릴 넘치는 쾌감이 될 것인가. 혜진은 비로소 생의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오로지 그 일에만 전념했다.

그러는 사이에 젊고 유능하고 기동성이 뛰어난 부동산회사의 직원 -우리의 옛말로는 복덕방 – 과도 흉허물없이 농지거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의 자가용으로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지나 모델하우스를 보러 다니기도 하고 이마를 맞대고 채권입찰가를 상의하기도 했다. 젊고 잘생긴 사원을 자그만치 2,30명씩 거느린 대복덕방도 있었다. 떨어지고 나면 혜진은 홧김에 그들과 어울려 맥주를 닥 한 잔만 마시고 나서 은근슬쩍 술기운을 빌어 그들을 얕잡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니, 젊은 사람들이 뭘 못해 이 짓들을 해요? 유흥가에 기식하는 남녀를 독버섯이라고 하나본데 당신네들이야말로 백해무익한 독버섯이에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건 아무리 보잘 것 업는 직업도 남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인데 당신네들은 순전히 사회학에 이바지해서 먹고 사니, 당신네들에 비하면 공사장 인부나 청소부, 식당 종업원, 웨이터들이 얼마나 떳떳하고 좋아 보이는지 몰라요. 큰일이에요, 큰일. 당신네들같은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어야 우리가 정말 잘살게 됐다고 할 수 있는 건데…”

이렇게 듣기 거북한 소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과 그 동안 그만큼 친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모님. 우린 정말 억울해요. 사회 여론은 마치 우리 복덕방 업자들이 아파트 값을 올리는 줄 아닌데, 그게 아닌 건 사모님도 아시잖아요? 우리가 조작하며 왜 사모님 당첨을 못 시켜 드리겠수. 사모님은 우리가 쓰라는 것보다 매번 더 쓰는데도 꼭 떨어지잖아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쓰는 게 사모님들이라구. 우리도 발표 때마다 사모님들 통 큰데 정말 놀란다니까. 사모님들 다 미쳤어요. 미치지 않곤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러고도 욕은 우리가 다 얻어먹는데, 우리 고마운 줄 모르면 사모님 정말 섭해. 우리가 하는 일이 어디 그뿐인 줄 알아요. 우리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지 들어볼래요? 국가는 단시일 내에 채권수입을 1천억 이상이나 올렸는데 그게 다 뉘 덕이겠어요? 또 민족을 위해선, 우리 단골들 돈 벌게 해주니 좋은 일이고, 사모님도 당첨만 한번 돼 봐. 우리하고 손잡기 싫어도 잡게 될 테니. 이 세상에서 돈 싫다는 사람 봤어요? 가장 좋은 걸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직업이 뭐가 나빠요? 예로부터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살라고 했어요. 그 말은 돈 벌려고 하는 것은 어떤 짓이든 나쁜 일이 될 수 없다는 얘기도 돼요. 안 그래요, 사모님.”

그들 역시 마시지도 않은 술에 취한 척 이렇게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지껄였다.

이렇게 복덕방 젊은이들과 친해지고 발이 넓어지자 때때로 엉뚱한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수원, 판교, 대전, 청원, 안성, 반월 등 혜진이 감히 꿈도 못 꿔본, 앞으로 유망한 땅에 대한 투기를 부추기는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오는 걸 보면 그 바닥에선 혜진이 돈푼깨나 있는 사모님으로 알려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실상 혜진이 가진 거라곤 달랑 주택청약 예금통장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 돈 싫은 사람 없다는 건 진리여서 돈 벌 수 있다는 정보도 들으면 들을수록 구수해서 딱 잘라 돈 없단 소리를 안하고 솔깃하게 귀 기울이는 버릇이 어느 틈에 생겼다. 땅투기는 아파트투기에 비해 그 규모가 매우 크면서도 세금 등에 있어선 아파트보다 많이 어수룩하다고 했다.

“사모님, 아파트 그까짓 거 몇 푼 남는다고 아파트에 대한 미련을 못 보리고 좋은 기회 다 놓치고 말았잖아. 아파트 채권 살 돈만 한달 전에 내가 말한 땅에 투자했어 봐. 가만히 앉아서 고부라졌어도 두 번은 고부라졌을 걸.”

이렇게 약을 올렸다. 듣느니 이런 소리만 듣는 사이에 혜진은 통이 커지고 돈에 대한 혼란이 왔다. 몇 천만 원은 돈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몇 천만 원 소리를 할 때는 <그까짓> 소리를 붙이는 이상한 버릇까지 생겼다.

이 무렵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남의 K 동의 U  아파트 분양공고가 났다. K 동의 U 아파트는 입지적 조건도, 건설업체도 최고급으로 치는 데여서 투기를 일삼는 사람들이나 복덕방뿐 아니라 실수요자도 학수고대하건 거였다. 혜진은 그 동안 여러 군데 넣어봐서 경험을 쌓은 편이지만, 고지식한 실수요자 중엔 K 동의 U 아파트 아니면 해볼 필요도 없다는 일편단심파도 상당수여서 그 열기가 대단했다. 신청 날짜가 되자 복덕방 전화는 불이 나는데도, 직원들은 현장으로 뛰느라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분양신청을 받는 각 주택은행 창구는 마감시간이 임박하자 신청자가 쇄도해서 극심한 혼란을 빚었다. 마감시간에 사람이 몰리는 거나 각종 정보가 난무하는 거나, 눈치작전이 치열한 거나 영락없이 일류대학 원서접수 창구였다. 어떻게 하면 남의 채권 입찰액을 훔쳐볼 수 있을까, 사람마다 시선이 날렵하고 교활하게 번득이고, 손끝이나 뒤통수에 눈이 하나 더 달리지 않은 게 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양하는 동 수는 얼마 안 되는데 평 수와 층 수에 따라 다시 세분되어, 그 중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세대 수는 많아야 1백호 미만이었다. 서울에 있는 주택은행 지점이 70여 개라니 한 지점에서 같은 평 수의 당첨자가 하나도 나올까 말까 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모두가 적 敵이었다. 은행 마감시간까지 문 안에 발을 디딘 사람에겐 다 신청권을 주기로 하고 은행은 앞뒷문을 굳게 닫았다. 사람과 돈의 열기로 은행 안은 지글지글 달아올랐다.

“당신 뭐야? 뭔데 남의 것 엿봐.”

이러면서 멱살을 잡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이 중에는 복덕방쟁이는 제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애절하게 하소연하는 여자도 있었다.

“난 아들딸 7남매가 다 서울대학만 나왔다우. 중 고등학교는 물론 다 경기구. 중학교부터 입시가 있을 때였으니까 도합 스물한 번의 입시를 치렀는데 한번도 낙방이라는 걸 안 당해 봤는데 이 아파트 신청만은 벌써 일곱번째 떨어지고 이게 여덟번째니, 아파트 붙기가 서울대학 붙기보다 더 어렵다니 그게 말이나 되우?”

어떤 노부인이 이렇게 혜진에게 말을 시켰다. 혜진은 대꾸할 말이 없어서 웃기만 하는데 대신 어떤 청년이 나서서 대답을 해줬다.

“할머니, 그게 왜 말이 안 됩니까. 서울대학이 제아무리 들어가가기 어렵대 해도 경쟁이 10대 1을 넘긴 적은 아마 없을걸요. 그렇지만 두고 보세요. 이 U 아퍄트는 100대 1도 넘을 겁니다. 10대 1보다는 100대 1이 더 좁은 문인 거야 말하면 잔소리죠.”

들입다 사우는 부부도 있었다. 아내가 2천만 원이 넘는 채권입찰액을 써넣으려 하자 남편이 기겁을 해서 그만 큰소리를 지른 게 싸움의 시작이었다.

“당신 미쳤어?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디 있다고…”

“여보, 남부끄러워요, 다들 듣겠어요. 그까짓 2천만 원 갖고 뭘 그래요.”

“아니 그까짓 2천만 원이라니. 채권을 5백만 원어치만 사도 돈이 될까말까라고 했었잖아.”

“당신도 참, 창피하지도 않아요? 여기가 어디라고 5백만 원 소리를 또 해요? 5백만 원 써넣으면 안 되는 게 뻔한 걸 보면 몰라요?”

“그럼 안하고 가면 될 가 아냐. 지금 사는 우리집이 어때서…”

“당신은 그래서 발전성이 없다구요.”

“뭐 발전성? 내가 우리 식구 밥을 굶겼소, 아이들 공부를 못 시켰소?”

“아유 몰라요. 당신 목소리 좀 낮춰요. 난 누가 뭐래도 K 동의 U 아파트 한번 살아볼 테니까.”

” K 동 U 아파트에 살면 매일 앛미 어디서 금달걀이 떨어진답디까?”

“암 떨어지고 말굽쇼.”

옆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참견을 하자 일제히 웃음소리가 터졌다. 혜진도 덩달아 웃으면서 5백만 원에서 2천만 원이면 그까짓 1천 5백만 원 상관인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언성을 높이는 그 부부가 참으로 하찮게 보였다. 그들이 하찮아 보이는 것 못지않게 몇 천만 원도 하찮아 보이는 마음으로 그녀는 마침내 거의 분양가와 맞먹는 채권액을 써넣을 수 있었다.

당첨자를 발표하는 날, 모델하우스 근방의 혼란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서울의 모든 승용차와 택시가 그곳으로만 모이는 것처럼 그곳으로 통하는 널찍한 도로들은 일찍부터 장장한 차량의 홍수를 이루었고 모델하우스 안팎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혜진은 발표시간이 임박해서야 그곳에 도착했는데도 잠깐 동안에 받은 복덕방의 명함이 함 바가지는 됐고, 그녀의 뒤를 따라 그림자처럼 따르는 싹싹하고 미끈한 단골 복덕방 청년도 서너 명 되었다. 마침내 방 㭶이 붙기 시작했다. 방 앞으로 모이느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군중의 질서를 호소하는 마이크 소리가 더욱 긴장을 고조시켰다. 여기저기서 나붙은 방을 사진 찍고, 커트라인이 얼마라고 외치고, 붙었다고 환성을 지르고, 껴안고 펄쩍펄쩍 뛰고, 떨어지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그 자리를 떠나고, 영락없이 일류대학의 합격자 발표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모님 축하해요. 드디어 당첨됐어요. 당첨!”

혜진을 뒤쪽에 물러나 있게 하고 방을 보러 앞으로 갔던 복덕방 청년이 양손을 높이 쳐들고 V 자를 그려 보이면서 군중을 헤치고 나왔다. 혜진도 남들이 하는 대로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고 나서 그 동안 수고했다고 청년들에게 차 한 잔씩 사고 청년들의 차로 집까지 왔다. 뭐가 문지 모르게 머릿속이 멍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발이 땅에 붙지 않았다. 우선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그 기쁜 소식을 먼저 알렸다.

“당신 미쳤어?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디 있다고….”

펄쩍 뛰는 남편의 첫마디를 들으면서도 혜진은 돈이 없다는 게 별로 현실감으로 와 닿지 않았다. 저와 똑같은 소리를 어디서 들었더라? 아 참, 아파트 신청하던 날 은행에서 어떤 부부가 싸우는 소리였었지. 남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다들 똑같을까, 하면서 남편들 전체를 싸잡아 연민할 만한 마음의 여유까지 생겼다.

다음날 혜진은 아침부터 축하전화 받기에 바빴다. 그 동안 복덕방과 모델하우스를 드나들며 사귄 그 방면에 통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혜진은 축하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지금말야, 마침 돈이 다 나가있어서 말인데, 노는 돈 없어?” 라는 식으로 돈을 좀 융통할 수 있을까를 타진해 봤으나 다 헛수고였다. 혜진이 가지고 있는 건 당장 계약할 수 있는 주택청약 예금 3백만 원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혜진은 3백만 원밖에 없으면서 어쩌자고 3천만 원씩이나 채권 입찰액을 써넣었을까 하고 후회하는 마음보다는 있던 돈 3천만 원을 어디다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억울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어. 그녀는 소매치기 당하고 나서 빈 지갑과 빈 주머니를 다 뒤지면서 못 미더워하듯이 자신이 빈털터리라는 걸 믿을 수 없어 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실물감 失物感 때문에 하루를 어물쩡 보내고 당첨자가 계약을 끝내야 할 마감날이 되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복덕방에 부탁해서 계약 전에 팔아 치우는 방법이 생각났다. 그녀는 다시 생기가 나서 부랴부랴 복덕방에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 우선 계약은 하셔야지.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어떻게 당장 팔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이제 지난 얘기긴 하지만 사모님이 채권을 너무 많이 써넣어서 하마터면 최고입찰로 신문에 날 뻔했지 뭐유. 그렇다고 밑지고 팔 순 없고, 한동안 잊고 푹 묵혀야지 딴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사모님, 낙심하진 마슈. 부동산으로 밑지는 법은 절대로 없으니까. 다만 마음 느긋하게 잡숫고 때를 기다리란 얘기지. 알아 들으셨어요? 사모님.”

여기저기 몇 군데 전화를 더 걸어 봤지만 대답은 비슷했다. 드디어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허전하고 억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뛰쳐나가 무작정 길을 헤맸다. 계약을 포기했으니, 앞으로 3년간 아파트를 신청할 수 없다는 것 말고는 금전적인 손해는 한 푼도 안 본 셈이었다. 그런데도 계약을 손해 본 것만 같았다. 큰 부자에서 별안간 밑바닥 가난뱅이로 떨어진 것처럼 창피하고 비참해서 온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영동의 환락가는 뜨겁고 요염하게 무르익어갔다. 그녀는 미아처럼 울상을 하고 그 한가운데를 방황하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돈도 많지. 정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셈인가? 정승의 씀씀이가 이렇게 추악한 거라면 개처럼 버는 현장은 또 얼마나 부도덕할 것인가.

환락가는 개처럼 버는 모습을 어설프게 감추고 정승 같은 씀씀이만 드러내 보여주건만 결코 정승의 도시다운 품위는커녕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건 말도 안 돼. 개처럼 벌어서 짐승처럼 쓴다면 또 모를까. 개는 개일 뿐 골백번 죽었다 살아나도 인간이 될 순 없으니까. 혜진은 장구하게 우리의 경제생활을 지배해온 그 말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황급히 환락가를 벗어났다.

 

 

 

3. 무슨 복에 복처 福妻를

 

혜진이 어느 만큼 제정신이 들면서 바라다 본 영동의 환락가는 영락없이 소돔과 고모라의 성이었다. 그래서 벗어날 때도 뒤돌아볼 것 없이 총총히 벗어났다. 만약 뒤돌아 보았다간 소금기둥이 될까 봐 두려워하듯이.

그러나 같은 시간에 혜진이 남편 찬국이도 영동 환락가 한복판에 있었다. 혜진이 환락가를 겉에서 바라보았다면 찬국은 안에서 몸소 맛보고 있었다. 막상 안에서 맛본 환락가는 그렇게 말초적이고 퇴폐적인 풍요와 허영과 쾌락과 욕망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찬국의 마음이 매우 답답하고 울적하기 때문에 유난히 거 그런 면만 눈에 띄는지는 몰라고, 거기에도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의 온간 신산 辛酸과 쓸쓸함과 고르지 못함이 있었다.

몇 년째 꾸준히 한 달에 한번씩 모이기로 한 찬국의 고등학교 동창끼리의 모임을 강북의 한식집에서 영동의 왜식집으로 바꾼 지도 벌써 1년 가까이나 되었다. 여자들처럼 계돈을 거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얼굴이나 보고 얘, 쟤, 개 자식, 저 새끼, 말과 마음을 놓고 흉허물없이 세상 이야기도 하고 남의 흉도 보고 음담 패설도 할 수 있는 재미에 모이는 모임이었다. 헤어질 때마다 “역시 친구는 고등하교 친구라야” 라는 데에 아무도 이의가 없을 만큼 기다려지는 화기애애한 모임이었다.

그렇지만 워낙 바쁜 세상일, 조금이라도 강제성을 띠거나, 손톱만한 이권이 개입되거나 하지 않은, 순전히 정 情으로만 유지하는 모임에 출석률이 좋을 수많은 없었다. 문과 졸업생 3백여 명 중 고작 30여 명이 참석했고, 그 중에서도 10명 정도만이 다달이 출석하는 고정 멤버이고, 나머지는 몇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내미는 유동인구가 불규칙하게 교체되고 있었다. 그렇게 유지되던 30여 명이나마 근래엔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고정 멤버 중 두 명이 이민을 가고 한 명이 지방대학 조교수로 내려간 것도 그 모임을 한결 쓸쓸하게 했지만, 유동인구에도 변화가 많았다. 모임의 장소를 영동으로 옮긴 것도 그 동안 회원들의 거주지가 반 이상 강남으로 옮겨진 걸 감안해서 편의를 도모하기 위함이었으나 그렇다고 출석률이 좋아지진 않았다.

<강변>이란 왜식집은 5층의 네모난 건물이 온통 요란한 네온에 뒤덮여 있어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럽고 얼이 쑥 빠지면서도, 한편 환락에의 예감을 강렬하게 충동질하는 요상한 무엇이 있었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들어가 보면 요즈음 흔한 빌딩 내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신문, 잡지의 고발기사에서 본 것처럼 얼굴이 비치는 화려한 이태리산 대리석이 깔려 있지도 않았고, 몇 백, 몇 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샹들리에가 늘어져 있지도 않았으며 귀부인풍의 기품있는 호스테스가 마중 나오지도 않았다.

다만 문 안쪽의 노란 한복을 입은 아가씨가 서 있다가 까딱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찬국이 예약한 방은 3층에 있었다. 바닥이 다다미인 것은 물론 기둥, 천정, 들창문, 장지문, 등 燈, 액자까지 골고루 잘도 왜색을 갖추고 있었다. 찬국이 해외연수나 출장 등으로 서너 번 가본 일이 있는 일본 내의 일본식보다 훨씬 일본 냄새가 지독한 일본식이었다. 그런 간드러진 일본식의 무수한 방을 오가는 무수한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땅에 잘잘 끌리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순백의 하늘하늘한 옷감이 몸에 알맞게 감기고 문란하도록 깊이 패인 가슴에 늘어진 진홍빛 옷고름이 제 나라 고유의 옷을 매우 이국적으로 보이게 했다.

영화에서 본 라스베가스의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선정적인 외관, 일본 본토의 일본식보다 한술 더 뜬 일본식 내장, 범람하는 한복……, 보통 때 같으면 긴장을 풀기에 매우 적절한 트릭처럼 여겨졌을 <강변> 집이 지니고 있는 이런 외관과 내장과 인간의 부조화가 오늘은 이상스럽게도 찬국의 마음을 한층 쓸쓸하게 가라앉도록 했다.

“송부장님이 1등에세요.”

단골인 미스 지가 3층 죽 竹 실의 창호지문을 열어주면서 눈웃음쳤다.

회사에선 과장이건만 <강변> 집에선 언제부터인지 부장으로 통했다. 찬국은 시계를 보았다. 7시 10분 전이었다. 10분이나 일찍 오다니, 이게 무슨 꼴이람. 그는 오후 내내 이 모임을 염두에 두고 딴 일이 손에 안 잡혔던 자신의 처지에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송부장님 오늘 심기가 언짢아 보이세요. 건강 조심하여야지 요새 감기가 말도 못하게 독하대요.”

미시 지가 녹차와 따뜻한 물수건을 가지고 와서 권하며 필요 없는 말을 했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진홍색 옷고름은 툭 건드리기만 해도 풀어질 듯이 느슨하게 매어져 있고 그 안의 가슴은 아람이 번 밤송이처럼 반쯤 열린 채 곧 쏟아질 것 같았다. 찬국은 미스 지의 옷고름을 풀러 본 적은 없었지만 술시중 들 때마다 반달만큼씩 드러나는 맨 살의 겨드랑이를 간지럼 태운 일이나, 치맛자락 사이로 팔을 돌려 낭창낭창한 가는 허리를 죄어본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지금도 미스 지는 모처럼의 호젓한 시간을 타 그 정도의 서비스는 할 각오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눈가에 노련한 추파가 잔물결처럼 아롱졌다. 그러나 찬국은 통 그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만 예전의 그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그렇게도 정숙하고 금욕적으로 입던 단정한 한복을 저렇게 문란하고 선정적으로 입을 수도 있다는 데 대해 새삼스럽게 놀라움과 한탄을 금할 수 없을 뿐이었다.

“송부장님 오늘 너무 점잖으시다. 어디 아프신 거 아녜요?”

“아프긴 임마, 나도 이제 마흔 살이야. 장난할 기운도 슬슬 빠질 때 안 됐냐?”

찬국은 자기 입으로 마흔 살이라 해놓고도 마치 남의 말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정통으로 찔리운 것처럼 내심 흠칫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온종일 울적하고 쓸쓸했던 건 마흔 살이란 나이 때문이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마흔 살이 된 건 금년 정월이고 지금은 이미 유월인데….’

마흔 살이란 확실히 기분 나쁜 나이였다. 크고 작도 않은 회사의 끗발 없는 총무부 총무과 과장으로 5년씩 눌러 앉아있는 사이에 회사 내 여러 부서의 과장 중 흔치 않은 40대 과장이 된 것이다. 40대 초반까지도 승진이 안 되고 후배가 앞지르게 되면 회사를 그만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벌써 그를 앞지르는 후배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자연도태된 선배를 그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찬국은 아직 갓 마흔이었다. 어느새 전전긍긍할 것까지는 없었다.

“어머머…, 남자 마흔이면 얼마나 멋져요. 가장 매력있는 나이예요. 힘을 내세요. 송부장님.”

미스 지가 눈가에 추파를 새롭게 가다듬으면서 그에게 기대려고 했다. 이때 곽문호가 나타났다. 7시 정각이었다. 곽문호는 찬국을 보자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네 덕에 1등을 겨우 면했구나.”

반에서 줄창 1등만 하던 곽문호의 말이라 그런지 1등의 어감이 매우 복잡하고도 처량하게 들렸다.

“자식 1등 착살맞게도 좋아하더니 이제야 좀 신물이 나나 보구나.”

“아냐, 우리 여편네 가라사대 난 아직도 1등이라면 사족을 못쓴대. 그것도 별볼일 없는 것만 따라다니면서… .”

문호가 자조하듯이 말했다.

“동창회도 느이 마누라 눈에 별볼일없어 보였겠지?”

“두말하면 잔소리지 뭐. 실직생활도 3년째가 되고 보니 어디 오라는 데만 있으면 아침부터 설레는 거 있지? 때 빼고 광낼 것까지는 없어도 괜히 생기가 나서 아침부터 끼니 재촉도 하고 옷 타박도 좀 하면서 부푼 마음으로 시간을 기다릴라치면 방정맞은 여편네가 종알종알 입으로 김을 다 빼놓는 거야. 오죽 못났으면 그까짓 고등학교 동창회에 1등으로 가서 죽치고 앉았겠느냐는 둥….”

“야, 1등으로 온 사람 앞에서 그 말은 좀 뺄 수 없냐?”

“미안 미안. 그렇지만 우리 여편네 입초사에 오르면 1등이나 꼴지나 세임세임이니 신경 쓸 거 없어. 여편네 가라사대 도대체 40대의 남자가 얼마나 별볼일없이 한가하면 다달이 열리는 고등학교 동창회 따위에 꼬박꼬박 참석을 하냐는 거야. 보나마나 사회의 낙오자들이나 몰일 거라나. 여편네 또 가라사대 바고 그 점이 여고 동창회와 다른 점이라는군. 여고 동창은 남편이 출세를 하거나 돈을 왕창 번 친구가 주동이 되고 참석률도 높지만 남자는 그와 정반대일 거라는 거야.”

“자니 부인 가라사대가 공자나 맹자 가라사대보다 훨씬 일리 있게 들리는데…. “

찬국은 문호의 회색빛 귀밑머리를 바라보면서 쓸쓸하게 말했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쓸쓸하고 허전한지 몰랐다.

“참 이상하더라, 그 놈의 경제권이라는 게. 여편네가 경제권을 쥐고부터는 여편네 말은 다 옳은 소린 게라.”

“자아식, 너라도 좀 씩씩하게 살지.”

찬국은 문호가 어렵게 얻은 지방대학 전임자리를 이사장과의 의견충돌로 사뭇 호기있게 내놓던 3년 전 일을 생각했다. 그 당시만 해도 문호는 동창회의 작은 영웅이었다. 그가 무지무지하게 무식하고, 무지무지하게 약삭빠른 학원 장사꾼인 이사장을 얼마나 통쾌하게 면박 주고 사표를 내던졌나 하는 무용담은 바로 동창회의 고급 멤버인 평범한 월급장이들의 숨은 꿈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들 역시 사표를 내던지고 싶은 무수한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때 문호의 무용담에 박수를 치고, 속이 후련한 김에 기분좋은 통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만 해도 왕성하고 뜨거운 혈기가 남아있는 30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때만 해도 이 세상엔 낭만이라는 것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랐다. 세상도 달라졌고 그들도 40대였다. 문호가 한 짓은 참으로 어리석은 객기였다. 그는 자신이 한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걸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후 별볼일 없이 초라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찬국은 문호의 초로 初老가 웬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만일 여자들처럼 콤팩트라는 걸 가지고 다닌다면 당장 꺼내서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보고 싶을 만큼 문호의 회색빛 귀밑머리는 처량하면서도 섬뜩했다.

“3년 씩 놀면서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씩씩하냐, 씩씩하길.”

“암튼 놀고도 먹고 사니 용타, 부럽기도 하도.”

“놀고 먹다니 어림없는 소리 말아라. 이래봬도 바쁘다 바빠.”

“뭘 하는데?”

“번역 일도 하고 잡문도 쓰고 논문도 써주고…, 다 먹고 사는 방법이 있지.”

“그래? 거 참 대행이구나. 난 그 방면에 통 아는 게 없어 생판 노는 줄 알고 도와주진 못하나마 속으론 얼마나 걱정했다구. 월부책이라도 들고 오지 않나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구.”

“아직 그 정도는 아냐. 나만 부지런하면 집에 앉아서도 웬만한 월급쟁이만큼은 버니까.”

“자식, 근데 왜 마누라한테 쿠사리를 맞냐 맞길.”

찬국은 남의 일에 괜히 울컥 부아가 치밀어서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

“야, 요새 입에 풀칠이나 겨우 시켜준다고 남편을 남편 대접할 여자가 어딨냐”

“그렇지만 처음부터 네 녀석한테 호강하려고 시집올 여자는 또 어딨냐?”

“똑똑한 척 하기 좋아하는 여자가 호강보다 더 좋아하는 게 뭔 줄 아냐? 남편의 사회적 지위라는 거야.”

“사회적 지위? 녀석 제법 웃기고 있네. 네 녀석이 그런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왜 상관이 없어. 나 전임되고 나서 여편네가 얼마나 거드름을 피웠다고, 드나드는 장사치한테건 친척이나 친구한테건 우리 곽교수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말야. 여편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교수 자리를 참을성이 잠깐 모자라서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말았으니 구박맞아 싸지 싸.”

문호가 허전하고도 속물스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움츠렸다. 찬국은 문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초라하고 겉늙어 보이는 까닭이 참담한 후회 때문이라는 걸 알 것 같았다. 그들의 모임에서 모처럼의 통쾌한 사건이었던 그 일을 후회함으로써 문호는 소영웅의 탈을 벗고 자신의 적나라한 본색을 드러낸 것이었다.

7시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하나 둘 동창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회의가 있었다느니, 거래처에서 한턱 내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뿌리치느라 혼났다느니 제각기 바쁜 핑계를 하나씩 둘러댐으로써 늦게 온 변명을 했다. 그러나 곽문호로부터 그의 아내가 말했다는 해설을 미리 들어둔 찬국은 하나같이 별볼일없는 동창만 모여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8시가 지나자 올 만한 동창은 다 모인 것 같았다. 못 온다고 미리 전갈을 보낸 친구도 있고, 외국 나간 친구도 있고 해서 평소 보다 훨씬 적은 열댓 명밖에 모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도 찬국은 오늘따라 그게 몹시 섭섭했다. 그렇다고 안 나온 얼굴 중에 특별히 보고 싶은 얼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별볼일없는 모임에 안 나왔다는 건 별볼일없는 처지에서 벗어났다는 뜻도 될 것 같았다. 아아, 하나 둘 속속 별볼일없는 모임을 떠나는구나. 하긴 40대니까. 남자 40대면 사업에 한창 기름이 오르든지, 사회적 지위가 단단하게 기반 잡히든지 할 시기니까. 결국 찬국의 섭섭한 마음은 질투일 수도 있었다.

생선회, 모듬남비, 맥주 등이 들어왔다. <강변> 집의 특별메뉴라는 강변정식도 들어왔다.

“말이라는 게 참 묘하거든. 이 집이 강변집이 아니고 천변 川邊 집이어 봐. 제아무리 5층집이라도 대폿집 술값밖에 못 받을 걸. 강변이나 천변이나 뜻은 그게 그건데 어감은 이렇게 다르다니까.”

고등학교 국어선생으로 있는 친구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좋아했지만 아무도 귀담아 들은 것 같지 않았다. 유니폼처럼 똑같이 흰 치마저고리에 새빨간 옷고름을 늘인 아가씨들의 사이사이에 끼어 앉았다. 여자의 어디를 어떻게 주무르는지 비명에 가까운 교성이 들리는가 하면, 네가 무슨 요조숙녀라고 속바지씩이나 입었느냐는 호통소리도 들렸다. 이 집 음식값 비싸서 못 쓰겠다고 내달부턴 다시 강북의 단골집으로 옮기자는 실속파와 실속만 따지려면 집에서 돼지불고기나 구워먹으라고 윽박지르는 허세파가 옥신각신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들어도 들어도 싫증이 안 나면서고 가슴이 알싸하고 배가 살살 아프고 군침이 도는 얘기는 별안간 행운을 잡은 친구들 얘기였다. 무슨 줄을 어떻게 탔는지, 행운의 여신에게 어떻게 알랑을 떨었는지 느닷없이 떼돈을 벌었다거나 벼락출세를 한 소문이 모임 때마다 꼭 한두 건씩은 있었다. 물론 그런 친구는 이 모임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으로 그쳤다. 오늘은 특히 그런 소문이 풍성했다. 모두 어언 40대이기 때문일까?

찬국은 소문에 참견하는 일에 도무지 신명이 나지 않아 치맛자락 사이로 손을 넣어 보았더니 허리가 땀으로 끈끈히 젖어 있었다. 초여름에 화학섬유로 된 한복이 얼마나 더울까 싶으면서도 늘쩍지근하게 꿈틀대던 욕망이 싸늘하게 경직되는 걸 느꼈다. 그 여자는 참고 있는 시세한탄에 비하면 남자들이 함부로 배출하는 허세와 소문이란 얼마나 철딱서니없는 것들인가.

찬국은 모임이 파할 때까지 내내 아무것에도 신명이 나지 않아 한구석에 존재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우울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에게도 그런 여유와 아량이 없었다. 그래도 모임이 파하자 그는 임명된 것은 아니지만 습관적으로 수행해온 그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계산서를 가져오게 하고 거기다가 치마저고리들한테 줄, 좀 짜지만 낯뜨겁지는 않을 정도의 팁을 얹어서 합계한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부담시키는 일은 늘 그가 해온 일이었다. 형동에서는 중급이 될까말까한 실속위주의 집이건만 돌아가는 액수가 만만치 않았다. 허세파의 얼굴도 잠깐 일그러졌다. 이 노릇 하기 싫어서라도 다음달부터 나오지 말아야지, 찬국은 마치 여지껏 발을 밸 구실이 없어서 못 뺐던 것처럼 이렇게 별렀다.  그가 계산을 치르고 화장실까지 들렀다 나와보니 친구들이 삼삼오오 저만치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걷잡을 수 없이 허전해서 우두커니 <강변> 집의 휘황한 네온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그때였다. 불참했던 이기배가 허둥지둥 <강변> 집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어디서 무슨 술을 얼마나 퍼 마셨는지 고약한 술지게미 냄새를 함부로 뿜어대면서 말했다.

“벌써 파했어? 자식들 하나같이 마누라 시집살이를 하느라고 일찌감치 떴구나 떴어. 조금만 기다려주면 어때서, 고교동창끼리 정 情 아꼈다 뭣에 쓴다냐?”

이기배를 기다리기는커녕 오늘 한번도 화제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는 부득부득 한 잔 더 하자고 찬국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찬국은 주머니를 거의 턴 끝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비실댔다. 그러나 이기배가 찬국을 끌고 간 곳은 <강변> 집 뒤쪽에 즐비한 포장집이었다.

“이 동네에 이런 집도 있다는 걸 몰랐지롱?”

이기배는 몹시 취해 있었다. 계집애처럼 혀를 날름 내밀고 찬국을 놀렸다. 연탄화덕 위에서 지글지글 끓어 넘치는 갯조개 위에다 아줌마가 양념장을 찔끔 치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취했어? 전작이 있으면 안 오면 어때서…”

찬국은 홀로 그를 떠맡게 된 걸로 오늘의 재수 나쁨을 더욱 뼈저리게 확인하면서 점잖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오늘이 우리 학교 개교기념이 아니냐?”

이기배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위성도시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축하잔치가 질탕했던 모양이군?”

“축하잔치? 자식 누굴 약 올리고 있어. 아이들은 하루 놀리고 교직원은 모를 내러 갔단다.”

“농촌 돕기? 조오치”

“조오쿠 말구. 자네도 텔레비에서 풍격께나 감상했지?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 모 내러 가서 폼재는 거. 나는 적어도 그들하곤 다르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난 농촌 출신이니까 나는 그럴듯한 풍경으로 즐기지 않고도 정말 진지하게 노동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지. 오랜 만에 농주 맛을 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쁘지 않더군. 그런데 온종일 모를 내도 논 주인은 농주는커녕 내다도 안 보는 거야. 우리를 인솔한 교장이 점심에 짜장면을 사더군. 조금씩 소문이 도는데 우리는 부재지주의 땅에 모를 내주고 있었다는 거야. 지주는 우리가 비지땀을 흘려 모를 내는 동안 아마 영동 어디에선가 사우나를 즐기고 있으리란 소문까지 나돌잖아. 내 더러워서, 저녁땐 관리인이 맥주를 내더군. 새우깡이니 호콩이니 하는 마른안주를 곁들여서. 내, 아니꼬와서. 막걸리는 우리끼리 나중에 읍내 술집이란 술집은 다 뒤져서 가까스로 얻어먹었는데 맛이 고약하더군. 괜히 맥주하고 짬뽕이 되는 바람에 속만 버렸어.”

이기배는 소주병을 끌어당기더니, 병따개도 있는데 이빨로 우지끈 따서 병째 몇 모금 마셨다.

“실상 영동까지 온 건 동창회 때문이 아니라. 이 고장에 널렸다는 그 사우난가 한증막인가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그 부재지주를 찾아내서 살찐 멱살을 잡아보고 싶어서였는데…. 오는 사이에 슬며시 열없어지지 뭐야.”

“왜? 왜 열없어져나? 응 왜?”

찬국은 그가 열없어진 게 술기운이 부족 대문이다 싶었는지 소주병을 빼앗아 큰 컵에 따라 주면서 다그쳤다. 찬국이 다그칠수록 이기배는 점점 더 의기소침해지면서 가냘프게 속삭였다.

“그럴려면 사표 낼 각오까지 해야 되는데…. 아새끼는 줄줄이 달렸고 남처럼 처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처복이라니?”

“경제력이 있든지 복부인 노릇이라도 할 줄 알든지. 요샌 복처 福妻 처럼 큰 처복도 없다고들 하더구먼.”

찬국은 복처라는 소리에 한없이 낄낄거렸다. 자신이 왜 하루종일 쓸쓸하고 허전했던지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는 그의 아내가 아파트 투기에 손을 대는 걸 눈치채고도 모른 척 묵인했었다. 그게 뜻대로 안 돼가는 걸 알자 노발대발 누구 망신을 시키지 못해 복부인 노릇을 하려느냐고 야단을 쳤지만 실은 잘되길 얼마나 바랐던가. 잘못되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은 복부인이었지만 잘 되면 알토란 같은 복처였다.  세상이 지금처럼 영악해지기 전에 장가를 들어서 미처 처가덕 볼 계산까지는 못했던 것도 생각하면 억울했다. 고등학교 적부터 장래의 처가덕을 바라보면서 공부하는 요즘 세상에 조강지처의 처복쯤 기대했기로서니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찬국이 보기엔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위 출세라는 것들은 그게 사회적 지위이든 치부이든간에 모두 어떤 비정상적인 비결 같은 걸 뒤로 감추고 있었다. 그는 자기만이 그런 비결로부터 소외된 것 같아 마냥 초라하다가, 아내가 아파트 투기에 눈을 뜨는 낌새를 눈치채면서 마침내 그런 비결의 한가닥과 줄이 닿은 것 같아 얼마나 마음이 부풀렀었던가.

“우리가 무슨 복에 복처를 모시겠나.”

처복도 없는 두 남자는 주거니받거니 밤 깊은 줄 모르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들의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에 독한 소주가 불길처럼 뜨겁고 화려하게 번졌다.

 

 

 

4. 숲속의 야회장

 

“혜진이냐? 친정에 가끔가끔 안부전화 좀 하면 뭐 안 되는 일이라도 있냐? 오늘 나한테 좀 다녀가야겠다.”

아침에 걸려온 친정어머니의 전화는 처음부터 냉랭하고 시비조였다. 그런 어머니가 아니었건만, 혜진이가 당신 마음에 안 드는 남자와 연애결혼해서 어려운 시집살이 할 때부터 사사건건 못마땅해 하는 게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혜진이 역시 어머니가 두려웠다. 어머니 앞에서 괜히 기가 죽고 면목이 없었다. 맏이라 유난히 애지중지 기른 딸이 어머니의 기대와는 얼토당토않은, 겨우겨우 사는 집 맏며느리로 들어가 시부모 모시랴 시동생들 공부시켜 결혼시키랴 지지로 고생만 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픈 건 당연한 일이지만 어머니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딸이 이제야 시집살이 면하고 좀 살만해진 지금까지도 “에미 말 안 듣고 연애결혼 하더니 골 조오타”하는 악의에 찬 시선으로 딸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남남이 아닌 모녀지간이니만치 그 악의 속에 감추어진 절절한 연민의 정을 혜진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불쌍해 한다는 건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다.

혜진이가 미처 그 까닭을 묻기도 전에 어머니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 어머니의 일방적인 태도는 혜진으로 하여금 친정에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보다고 근심하게 하기보다는 내가 못사니까 무시한다는 고까운 생각부터 하게 했다.

요새 혜진은 계속 심기가 편지 못했다. 남처럼 한번 떼돈을 잡아볼 줄 알았던 아파트 투기가 그 모양으로 끝나 버리고 나서 그 충격으로부터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충격받을 만큼 손해가 난 것도 아니었다. 얼마간의 빚은 아파트 투기를 꿈꾸기 전부터 이미 진 거였고, 아파트는 당첨되고도 계약을 포기했으니까 그것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를 입은 건 한 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뜻대로 됐을 경우 적어도 2, 3천만 원은 벌 수 있으리라는 꿈에서 깨어나자 마치 2, 3천만 원의 돈을 실지로 잃어버린 것 같은 엉뚱한 실물감 失物感에 시달리고 있었다. 별안간 영락 零落 한 부자처럼, 남편의 얼마 안 되는 월급이 눈에 차지 않았고, 돈 아끼는 일이 피곤하고 짜증스러웠고, 알뜰하게 장만한 살림살이들이 보잘것없이 초라해 보여 도무지 닦고 훔치고 거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가끔가끔 자신을 반성 안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럴 때도 남편의 무능을 탓한다든가, 요지경 속 같은 세상 돌아가는 켯속을 한탄한다든가, 복덕방 청년들 욕을 한바탕하는 걸로 잘못을 자기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리고 말았다.

지금도 오래간만에 친정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나니 문득 모든 잘못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어머니 때문이야. 나도 이만큼 살면 그렇게 못사는 것도 아닌데 어머니가 나를 맨날 못산다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니까 나도 한번 여봐란 듯이 살아보려고 했던 것뿐이야. 나라면 결코 내 딸한테 우리 어머니처럼 못해. 암 못하고 말고. 어머니만큼만 돈이 있으면 딸한테도 한밑천 떼어주지 돈 뒀다 갖고 갈 건가. 안 줄려면 사람을 업신여기지나 말든지.”

이렇게 어머니에게 맺힌 원한이 많으면서도 혜진이는 어머니의 명령을 거역하진 못했다. 어머니에겐 일종의 위엄이 있었고 그 위엄엔 출가한 딸뿐 아니라 장성해 일가를 이룬 아들들도 감히 거스르지 못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어머니는 돈이 많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규모가 작아도 여지껏 불황을 모르고 키워와 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수입이 있었지만 이재 理財에 뛰어난 어머니는 그 정도의 수입은 새발의 피라고 깔볼 만큼 통이 큰지라 도대체 어머니가 얼마만한 큰 돈을 굴리고 있는지는 자식들도 몰랐다.  그러나 막연히 어머니가 큰 돈을 굴리고 있다고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은 다 어머니 말에 쩔쩔맸고 때로는 마음에 없는 비굴한 아양까지 떨었다. 돈을 빽으로 한 부모-자식 관계가 효도를 바탕으로 한 부모-자식 관계 못지않게 구순하고 화기애애했다.

“왜 얼굴이 그 모양이냐?”

성북동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대뜸 헤진이를 곱지 않게 흘겨보면서 말했다.

“제 얼굴이 어때서요?”

“관두자. 다 제 팔자지. 내가 그런 고생문이 훤한 데를 골라서 시집을 보낸 건 아니니까.”

“어머니 왜 또 그러세요? 처음엔 고생이 좀 됐지만 이젠 다 지난 일 아녜요? 어머니가 그렇게 성화하시던 연탄 때는 집 면하고 이제 우리 다섯 식구만 오붓하게 맨션아파트에서까지 살게 됐잖아요?”

“아이구 속 터진다. 그 코딱지 만한 아파트 소리 좀 작작해라. 네 나이가 지금 갓 스물이냐? 갓 스물 새색시라면 그 코딱지만한 아파트에서 신접살림 해도 재미가 옥시글옥시글 나겠지만 네 나이 서른여섯이야. 식구는 자그마치 다섯 식구 구. 난 창피해서 누구한테 내 딸이 실평수 스물다섯 평도 안 되는 아파트에 산다는 얘기도 못하겠더라.”

그렇게 창피하면 큰 걸로 하나 사주시구료. 그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참고 혜진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

“왜 부르셨어요? 급한 일처럼 그러시더니…”

“응 참, 네 솜씨 써먹을 일이 생겨서.”

“제 솜씨라뇨? 제가 무재주인 거 아시면서…”

“미대 생미과 生美科 나온 솜씨 좀 써먹자꾸나야. 혜숙이 방 좀 근사하게 꾸며주지 않을래?”

“혜숙이 방을요? 왜 혜숙이 지금 쓰는 방이 어때서요. 제가 보기엔 공주님 방 같던데.”

“소녀 취미만 물씬 나지 품위가 없지 않든. 돈을 좀 들여서라도 고상하고 품위있게 꾸며줘야겠더라.”

“느닷없이 그건 또 왜요?”

“혜숙이한테 중매를 댔단다. 근데 그 중매쟁이가 어찌나 까닭스러운지 지가 먼저 색시 선은 물론, 색시 집 방가지 선을 보고 나서야 합당한 신랑을 물색해다 준다지 뭐니?”

“혜숙인 아직 대학교 3학년이에요. 벌써 중매를 대요?”

“내가 연애결혼에 지레 겁이 나서 그런다. 하나 남은 혜숙이만은 중매로 내 마음껏 보내 볼란다.”

“저야 처음부터 어머니 마음에 안 드는 결혼을 했다치고 혜옥이 태수, 태진이는 연애했어도 다 신랑 색시 잘 만나 잘 살지 않우? 내 친구들은 다들 어머니가 어려 자식 힘 안들이고 결혼시킨다고 복 많은 분이라고 그러는데…”

“복도 끔찍이도 많겠다. 내 눈엔 하나도 안 차. 즈희끼리 좋다니까 말리진 못했지만 자식들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안목이 없는지…”

“어머니 정말 왜 그러세요. 김서방이야 처음부터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이니까 제쳐놓고서라도 혜옥이 신랑도 그만하면 됐고, 태수, 태진이 색시도 요새 그만큼 고분고분하고 싹싹한 며느리가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걔들이야 그렇다쳐도 걔들 집안이 뭐 볼게 있냐? 난 내 친구들 모인 자리에서 사돈들 얘기가 나오게 되면 창피해서 아예 입을 다물고 끽소리도 못한단다.”

“며느리 사위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돈 얘기까지 하나요? 노인네들도 주착이야.”

“모르는 소리 말아라. 요샛세상엔 사돈이 곧 가문이란다.”

“네?”

“어떤 집과 사돈을 맺었나에 따라서 그 집 가문을 알 수 있다, 이 말야.”

“어머니, 우리 가문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요.”

“그러니까 좋은 가문과 사돈을 맺어 보자는 거지.”

“그럼 우리 가문의 앞날이 혜숙이한테 달렸군요?”

혜진은 뭐가 뭔지 몰라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지만 비꼬는 투가 드러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복덕방 청년들과 신나게 어울려서 투기판의 언저리에서 신기루 같은 돈다발을 좇을 때보다 한층 더러운 세태의 한 자락을 친정집 안방에서 맞닥뜨리고 있었다.

“아무튼 혜숙이가 아직 연애를 안 하는 게 천만다행이다. 중매를 댈려면 대학 3학년이 딱맞는 시기라더라.”

“저도 중매장이들 얘기는 대강 알고 있지만, 색시 방까지 선을 본다는 중매쟁이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네요.”

“중매쟁이도 천층만층이지. 이젠 의대생, 법대생 명단이나 갖고 다니면서 아는 척하는 중매쟁이는 시로도 라더라. 상류사회의 인맥이 제 손바닥 손금보다 더 환한 진짜 꾼은 또 따로 있대.”

“진짜 꾼을 만나셨나요?”

“곧 만나게 될 게다 자식 넷을 다 중매로만 성공적으로 결혼시킨 내 친구가 소개해 준댔으니까.”

“혜숙이가 고분고분 말을 들을까요?”

“걘 느희들하곤 달라.”

“어떻게요?”

“우선 세대차가 있잖니?”

“세대차요? 우린 한 형제예요.”

“넌 어째 그렇게 소식이 어두우냐? 요샌 세대교체가 2, 3년 만다 된다는 것도 모르냐? 5년이 옛날이야.”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저보다 훨씬 더 세상을 앞서 가시는 것 같은가 하면 혜숙이는 거꾸로 옛날 여자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혜진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 위를 뱅뱅 돌리면서 어지럼타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맥빠진 웃음을 웃었지만 속은 개운치 않으면서도 허전했다.

마침 혜숙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혜숙은 “언니 왔어?” 하고는 2층 제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혜진이는 약간 아니꼬운 생각이 드는 걸 무릅쓰고 2층으로 따라 올라갔다.

“마실래?”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마시고 있던 혜숙이가 캔을 하나 더 꺼내어 내밀면서 말했다. 혜진은 캔을 받아만 놓고 따진 않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방을 휘둘러보았다.

“엄마한테 실내장식 청부 받았나 보군?”

혜숙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렇다. 넌 왜 네 방 하나 제대로 못 꾸미냐?”

“전망이 이렇게 좋은데 방은 뭣하러 꾸며?”

“하긴 그렇구나. 이 집에 와선 처음으로 쓸 만한 소리 듣는 것 같다.”

혜숙의 2층 방에선 아주 아름다운 숲이 바라보였다. 그러나 그건 자연 숲이 아니라 뉘댁 정원이라고 했다.

“언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왜 내가 못할 말 했니?”

“엄마가 또 언니 속을 긁었나 보지?”

“별로 그렇지도 않았어.”

“돈이 좋긴 좋은 건가 봐.”

“왜?”

“언니도 그렇고, 올케들이나 오빠들도 그렇고 엄마한테 한번도 좋은 소리 못 들으면서 그래도 엄마 말이라면 설설 기니 말야. 아무튼 효자, 효녀들이라니까.”

“그게 돈하고 무슨 상관이냐?”

“엄마한테 돈이 없었어도 언니 오빠들이 그렇게 고분고분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을걸.”

혜숙이 눈동자가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혜진을 빤히 바라보면서 생글댔다. 혜진은 자기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 속의 더러운 마음을 동생한테 들킬까 봐 얼른 눈길을 피했다.

“너 참 맹랑한 애로구나. 부모 자식간의 도리를 어쩌면 그런 눈으로 볼 수가 있니?”

“언니가 핏대 올릴 건 없수. 난 조금도 언니 오빠들을 비난할 마음은 없으니까. 다만 헛물들 켜는 게 안돼 보여서 해본 소리야.”

“헛물을 켜다니?”

“언니, 화제 바꿉시다. 내 방 꾸미는 데 얼마 받기로 했수? 이왕이면 왕창 뜯어내. 나도 힘닿는 데까지 협조할께.”

“내가 돈에 그렇게까지 열이 난 줄 아니?”

“돈에 열 좀 나면 또 어떠우? 별난 데다 다 자존심 세우려고 그러더라, 어른들은…”

“그런 넌 아이니?”

“솔직하다는 걸로…”

“내가 꼭 거짓말쟁이 같구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난 밸이 꼴린다. 걱정도 조금은 되고. 엄만 널 대단한 데로 시집을 보내고 싶은신 모양인데 요새 그렇게 혼인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시고서 그러나 ㅁ로라. 우리가 다 연애결혼한 걸 두고두고 못마땅해 하시지만 말이야 바른대로 말이지, 연애결혼 때문에 당신 돈이 얼마나 절약이 됐다는 걸 아시면 고마와하실 수도 있으련만. 보아하니 우리한테 안 쓰고 아낀 돈 너한테 다 들이밀어도 모자라겠더라.”

“결혼이야말로 부모의 소득을 분배받을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아닐까? 그 기회도 못 찾아먹은 건 언니 잘못이지 내 탓은 아뉴.”

“너 정말 맹랑한 애로구나.”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거꾸로 언니가 애로 보이네. 언니는 뭘 너무 몰라. 언니는 엄마가 몇 살까지 사실 것 같우? 내 생각으론 백살은 너끈이 사실걸. 이건 비꼬는 소리도 아니고 특별한 바램도 아니고, 의학의 발달, 건강에 대한 각자의 유별난 관심, 평균수명의 급격한 상승추세 등으로 미루어 본 과학적인 예상이야. 물론 우리 엄마, 아빠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고 4, 50대에 암의 위험을 넘기고 난 모든 노인에게 해당되는 얘기지. 앞으론 노인인구의 증가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부 富 의 노인 편중문젤걸. 우리 엄마가 당신 생전에 돈을 자식들한테 한푼이라도 내놓을 것 같아? 우리 엄마만 아냐. 지금 돈푼이나 쥔 중늙은이들이 일치단결해서 벼르는 게 생전에 자식들한테 재산 안 구기야. 근데 그 생전이라는 게 마냥 길 테니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식들한테는 못할 노릇이지. 아무튼 재미있는 세상이야.”

“나는 하나도 안 재미있다. 재미있기는커녕 무섭다 무서워.”

“공포도 재미야 언니. 공포영화를 사람들이 왜 보게?”

“엄마는 너를 이용해서 상류사회와 사돈을 맺고 싶으신 모양인데 너라면 해낼 것 같다.”

“잘 봐줘서 고마와 언니.”

“우리나라에 상류사회라는 게 있긴 있는 거니?”

“글쎄 말야. 그 사회는 돈만 많은 것하곤 다른 사횔 테지. 돈이 많다고 해도 우리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하곤 단위가 다르든지.”

“그러니까 너도 잘은 모르는구나.”

“잘은 모르지만 있긴, 있는 것만은 확실해. 언니, 저 숲을 좀 봐. 저 숲은 사시장철 저렇게 아름답다니까. 우리집 베란다에까지 희귀한 숲의 새들이 날아올 적도 있어. 가끔 밤에 숲 사이로 수많은 등불이 보석을 뿌려놓은 것처럼 반작거릴 적도 있구. 아마 마당에서 야회 夜會가 열리는 날일 거야. 그렇지만 그 속의 집은 숲에 싸여 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거든. 안 보인다고 숲속에 집이 있다는 걸 못 믿을 순 없잖아. 상류사회도 아마 그런 걸 거야. 나는 저린 집 야회엔 어떤 사람들이 모여 무슨 얘기를 할까 늘 안타깝도록 궁금했었는데 거기 초대받은 신분이 될 수도 잇는 기회를 마다할 것 없잖아?”

“넌 자존심도 없니? 중매장이라는 게 어떤 건지나 알구  자신을 거기다 내놓으려구 그래?
 

“우리 또래들이 거기 대해선 언니네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

“엄마가 하라는대로 할 거란 말이지?”

“그렇다니까. 재미있잖아? 밑져야 본전이구.”

“넌 그럼 여지껏 연대도 한번 못 해 봤구나.”

“언니도 참, 미리 안됐다는 얼굴 할 거 없수. 나도 그만한 장난질은 해볼 만큼 해봤으니까.”

“장난질이라고 하는 걸 보니 너도 연애와 결혼은 구별해서 생각하겠다, 이런 속셈이구나.”

“그게 뭐 내 잘못인가? 남자들이 하나같이 연애 할 만하면 결혼할 자격엔 미달이고, 결혼자격이 있다 싶으면 연애감정을 일으킬 요소가 전무하고, 둘 중 하나인 걸 낸들 어떡허우.”

“네 눈이 이상해서 그렇지. 사람됨이란 그렇게 딱 부러지게 둘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닌데.”

“네 눈엔 그게 정신과 물질의 대립만큼이나 극명하게 보이는 걸 어떡허우? 요새 남자들의 정신상태가 그만큼 분열돼 있는 게 아닐까?”

“남자들의 분열돼 있는 게 아니라 네가 분열 돼 있는 거야. 누구에게나 함께 있는 두 가지 면을 함께 조화시켜서 보지 못하고 따로 따로 대립시켜서 보는 건 네 쪽의 잘못이야.”

“한 개인 속에서건 한 사회 속에서건 그 두 가지는 결코 조화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 어차피 대립돼 있는 걸 조화시켜서 보려는 건 헛수고이고 피곤한 노릇이야. 난 피곤하게 살지 않을 거야. 대립돼 있는 걸 갖느니보다 양자택일이 제일 속 편해.”

“넌 젊은애가 어쩌는 그렇게 꿈이 없니?”

“내가 왜 꿈이 없어? 저 깊은 숲속에 가려진 집 속엔 도대체 어떤 사람들과 어떤 생활이 있을까 하는 꿈이 요새 날 얼마나 살맛나게 한다구.”

혜숙이 침대에 발랑 누웠다. 그리고 유리구슬처럼 정감없는 눈으로 혜진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 친정에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실내장식을 청부맡았달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는 손을 봐줘야 할 것 같아서 기초조사도 할 겸, 오랜만에 문화적인 입김이라도 쐬서 심미안에 낀 먼지도 씻어낼 겸해서 인사동 거리를 돌아 회랑이 즐비한 거리를 지날 때였다.

차종을 알 수 없는 미끈한 외제승용차가 차도에서 슬며시 인도로 올라오더니 로렌스 박 의상실 앞에 멎었다. 피부가 희고 부드러운 갈색 장발의 인상적인 기사가 먼저 내려서 차문을 열면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여자의 은빛 구두와 유연한 다리와 몸에 붙는 단순한 옷과 진주 목걸이와 깨끗하고 매끄러운 목과 단아한 얼굴과 가운데 가리마를 타서 어깨까지 늘어뜨린 퍼머기 없는 검은 머리가 차례로 나타났다. 그 여자 얼굴의 두드러진 특색은 기가 질리게 고상하면서도 나이를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스무 살이래도, 쉰 살이래도 고디 들을 만했다. 한마디로 미추 美醜와 연령을 초월한 얼굴이라고나 할까. 그 여자가 차에서 내려 로렌스 박 의상실 안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잠깐이었다. 그런데도 그 동안 그곳을 지나던 사람이 일제히 발길을 멈추거나 늦췄기 때문에 잠깐 사람들의 울타리가 생겼다 없어졌다. 사람들은 곧 흩어져서 제갈길을 갔지만 그 여자를 같이 구경한 사람들끼리는 강한 공감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건 매우 기분 나쁘다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묘한 느낌이었다. 그 기가 질리게 고상한 여자는 왜 사람들을 그렇게 한결같이 기분 나쁘게 했을까? 그건 본질적으로 질이 다른 것 같은, 보통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도달할 수 없는 딴 세상사람 같은, 분명한 이질감 때문이었다.

혜진이는 전에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돈이 많다고 소문난 재벌 이모씨의 부인, 김모씨의 부인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정식인사를 하고 만난 게 아닌 그냥 구경이었지만 그들의 인상 속엔 남편이 왕년에 운전수였다든가 쌀장수였다든가 하는 서민적인 경력을 연상시킬 만한 촌스러움과 순진함이 넉넉하게 남아 있어서 친근감과 함께, 사람팔자 시간문제란 안도감 비슷한 것까지 느끼게 했었다. 은빛 구두의 여자가 거느린 것 같은, 아무도 뛰어넘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걸 거느리고 있진 않았다.

혜진은 그 여자가 들어감으로써 한결 더 신비해진 로렌스 박 의상실의 쇼윈도우를 들여다 보았다. 거기인 화려한 노방 路傍의 여름 야회복을 입은 화려한 두 개의 마네킹이 춤추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충분하게 부풀리고, 갈피마다 들꽃을 수놓은 노방의 본견 야호복은 입으면 곧 하늘로 덩실 날아오른다는 선녀의 날개옷 같기도 했고, 퇴폐와 사치가 극에 달했다는 마리 앙트와네트 시대의 궁중의상 같기도 했다.

로렌스 박의 쇼윈도우는 늘 그랬다. 보면 즐거웠지만, 그런 옷을 실제로 입을 수 있는 귀부인이나 그런 옷을 입고 갈 만한 장소를 이 나라 안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옷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혜진은 방금 본 미추와 연령을 초월한 그 여자가 그런 옷을 입고 숲속의 야회에서 춤을 추는 것을 상상할 수가 있었다. 그런 곳이 소위 상류사회라는 곳인가? 자기는 못 들어가더라도 동기간이라도 들어가 그런 고장과 어떤 연관을 갖게 된다면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기는커녕 하루속히 그런 고장이 현실적으로 있다는 걸 인정하자마자 혜진은 그런 고장의 기가 질리게 고상한 외양이 은닉하고 있는 진짜 내막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5. 허영의 시장

 

“얘,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지만 절대로 벼락부자 티만은 안 나게 꾸며야 한다.”

어머니가 혜진이한테 혜숙이 방은 물론 안방, 거실 등 집안의 실내장식을 확 뜯어 고쳐줄 것을 청부맡기다시피 하면서 가장 주주 한 말이었다. 돈은 얼마든지 들이고도 벼락부자 티는 안 내야 된다는 어머니의 부문이 처음엔 가당치 않은 농담처럼 우습게만 들렸었다. 그러나 혜진이 직접 그 일을 맡아 가구점이란 회랑이란 골동품 가게랑 수입상품점이랑 인테리어 전문점 등을 드나들어 보니 어머니의 주문 이전에 세상풍조가 이미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는 걸 직접 보게 되어 그녀도 크게 놀랐다.

살림살이에 찌들고 녹슬은 그녀의 미적 감각에 화끈한 충격을 줄 만한 빼어난 가구나 실내장식품들이 생각보다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비쌌고 또한 천박한 벼락부자 티와는 거리가 먼 은은하고 수수한 일품 逸品들이었다.

어머니의 주문은 결코 가당치 않은 게 아니었다. 세상은 어머니보다 이미 한 발 앞서 그렇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세상이란 물론 우리사회의 극히 일부분 – 천분의 일이나 만분의 일 정도의 특수사회에 지나지 않았고 혜진이와는 상관도 없는 사회였다. 본 적도 없거니와 꿈꿀 것도 없는 그런 특수사회였다. 그렇지만 하나 남은 막내 딸을 미끼로 감히 그런 사회의 문지방을 넘어 보려는 어머니의 꿈을 통해 그런 사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 것만으로도 혜진이는 어떤 희망과 불행감을 동시에 느꼈다.

희망은 다분히 치사했다. 동생의 남편 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치사하면서도 감미로웠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다. 언덕 없이 비빈 깐으로 남편은 될 만큼 됐으니 앞으로 더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혜진은 알고 있었다. 새로운 친척에의 기대는 외계인의 초능력을 기대하는 어린이의 꿈처럼 허황되면서도 달콤했다.

한편 불행감이란, 존재하기는 존재하되 그녀의 위치에선 도저히 보이지 않는 그런 사회에 자기의 삶을 비쳐보게 됨으로써 비롯됐다. 자신과 남편의 노력으로 열심히 이룩해 놓은 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하는 열등감은 참으로 비참했다. 혜진이네가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해봤댔자 거북이 걸음에 불과했다. 상대방은 토끼였다. 현대판 토끼는 결코 낮잠 같은 거 자지 않고 정력적으로 달렸다. 거부기의 승산이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만약 혜진이가 거북이와 토끼 걸음의 차이를, 타고난 운명이나마 공정한 실력 차로 받아들일 수만 있었다면 훨씬 마음 편하게 거북이 걸음에 자족할 수 있었으련만, 그녀 역시 토끼걸음에는 반드시 속임수와 비리 非理가 감춰져 있다는 사회적 통념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가 못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이 세상에 억울한 것처럼 못 견딜 불행감이 또 있을까.

혜진이가 이런 복잡스러운 내심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친정집 집수리와 실내장식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잠재해 있던 배운 것과 미적 감각을 되살리고, 돈을 흥청거리고 써보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그런 즐거움은 목적을 가릴 것 없이 그녀를 살맛나게 했다. 남편조차 친정 일로 분주한 그녀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그녀가 예뻐지고 젊어진 것만은 인정을 했다.

드디어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그 실력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ㄱ 유명한 중매쟁이가 신부감과 신부네 사는 형편을 보로 온다는 통고가 왔다. 어머니는 그때도 혜진을 불렀다.

“네가 접대를 좀 맡아줘야지 어떡허니?”

“알았어요. 저도 가보긴 하겠지만 일류 마담뚜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구경가는 거지 접대하러 가는 건 아뉴.”

“아이고 얘야. 행여 마담뚜란 소리 입밖에 내지 마라. 그 여잔 그 소릴 제일 싫어한대, 천격스럽다고.”

“어머 꼴값하고 있네. 제까짓게 마담뚜 아니면 그럼 뭐래요?”

“넌 그 여잘 보기도 전에 왜 사사건건 트집만 잡으려고 그러냐?”

“아무튼 보통내기가 아닌 건 알아줘야겠어요. 요새 마담뚜들 마음 못 놓지 않우. 언제 또 단속을 당할지 모르니까. 그 여잔 자기가 마담뚜가 아닌 척 뭐같이 굴면서, 남이야 단속을 당하든 망신을 당하든 자기 혼자 짭짤한 재미를 보려는 고등수법이 뻔해요.”

“아무튼 그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말고 정중하게 대접을 하자.”

“알았어요. 저도 마담뚜란 돼먹지 않은 복합어보다는 아줌마란 수수한 호칭이 더 좋아요.”

“아줌마도 안 돼. 그 여자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댄다.”

“그럼 암호가 있군요? 어머 징그러워. 간첩인가 봐.”

“듣기 싫다. 호들갑은. 그 여잔 윤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걸 제일 좋아 한다더라. 윤선생님, 얼마나 듣기 좋으냐.”

“알았어요.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군요. 앞으로 뚜교수, 뚜박사도 나오겠네요.”

윤선생은 또 중매가 성사되기 전엔 신랑집에서건 색시집에서건 절대로 식사대접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음료만 준비하기로 했다. 여름이니 주스나 과일화채를 내면 될 것을 어머니는 굳이 오미자차에 보리수단을 띄워서 내자고 했다. 요새 보리수단 하는 집이 어디 잇느냐고 했더니 그럴수록 보여줘서 구습이 남아있는 법도 法度 있는 집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벼락부자가 아닌 걸로 보이려면 물건만 골동품을 갖춰야 하는 게 아니라 습관까지 구습을 갖춰야 하는 모양이었다.

혜진은 삶은 보리에 녹말을 묻혀서 끓는 물에 데쳐서 건지는 일을 서너 번이나 반복해야하는 까다로운 보리수단을 만들면서도 연신 불평을 터뜨렸다.

“요새 이런 걸 누가 먹어요?”

“먹으라고 하냐, 보라고 하지. 좀 귀물스러우냐? 잘사는 집 드나들며 별의별 것 다 얻어먹어본 그 여자도 아마 이 보리수단만은 처음 볼라.”

“혜숙이 보러오는 게 아니라 꼭 보리수단 보러오는 것 같수. 참 혜숙이랑 우리 사는 걸 쭉 훑어보고 나서 탐탁지 않으면 중매 안 설 수도 있다면서요? 참 웃기는 여자야. 제 눈에 먼저 들어야 한다 이거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대학시험에도 예비고사라는 게 있듯이.”

어머니가 하도 엄숙하게 말하는 바람에 혜진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닌게아니라 윤선생은 모시 치마저고리를 날아갈 듯이 차려입고, 퍼머기 없는 숱이 풍부한 머리를 뒤로 느슨하게 올린 게 기품이 철철 넘치는 중년부인이었다. 윤선생을 어머니한테 소개한 어머니의 친구인 한여사가 되레 쳐져 보였다.

“아유 어쩌면 따님들을 하나같이 저렇게 출중하게 두셨을까? 참말 부럽습니다.”

윤선생은 혜진과 혜숙을 날카롭게 훑어보고 나서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봐주셨다니 영광입니다.”

어머니의 응답에 혜진은 영광까지는 너무했다 싶어, 살짝 정작 당사자인 혜숙을 곁눈질해 봤더니, 혜숙은 외눈 하나 까닥 안 하고 상냥하고 우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혜진은 궁합 한번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이 편친 못했다. 수시로 그녀의 속을 편치 못하게 하는 건 때로는 질투심이기도 했다가 때로는 패배감이기도 했다. 그녀의 양식은 어머니와 혜숙이가 윤선생의 술수를 빌어 이룩해 보려는 새로운 형태의 결혼에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양식말고 욕심이나 허영 또한 남 못지않게 많았다.

“그럼, 이 집 자식들은 다 훌륭하구말구. 5남매가 하나같이 인물 좋구 학벌 좋구, 효성스럽구, 정말 남부러울 게 없는 모범가정이랍니다.”

한여사가 옆에서 이렇게 거들었다.

“그러니까 이 신부감이 5남매의 막내로군요? 위로 4남매는 다 결혼을 시키시구요?”

“그럼요, 아이들이 혼기 놓쳐 걱정해보진 않았답니다.”

“전 이 댁이 처음인데 딴 사람이 했나 보죠?”

“딴 사람이 하다뇨? 뭘 말씀입니까?”

“중매 말예요. 혹시 제가 알 만한 사람이 했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혹시 실례가 됐으면 용서하십시오. 우리도 이게 직업이나만치 직업의식이랄까 경쟁심리랄까 그런 게 있답니다. 호호호…”

윤선생이 간드러지게 웃었다. 슬슬 본색이 드러난다고 생각할 만큼 그 웃음은 닳고 닳은 웃음이었다. 어머니도 그 여자의 그런 웃음에 여지껏의 긴장이 좀 풀린 모양이었다.

“아, 네, 흉허물이 없으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위로 넷이 다 연애결혼을 했답니다. 죽고 못사니 어쩝니까. 즈이 좋다는 대로 시켰죠. 연애결혼해서 크게 잘못된 것도 없고, 남들은 또 그것도 복이라고들 위로를 해줍니다만 부모된 게 항상 유감이죠. 아이들은 아쉬운 것이라곤 모르게 귀엽게만 키웠더니 사람보는 눈이 도무지 영악하질 못하고 마음도 모질지를 못해서 한번 연애한 상대를 내일 줄 모르니 어쩝니까?”

“큰 서랑 壻郞은 뭘 하는데요?”

윤선생의 눈빛이 날카롭게 혜진을 훑고 지나갔다. 순간적인 일별이었지만 혜진은 벌거벗김을 당한 것 같은 모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 순간적으로 번뜩인 건 그 여자의 눈빛뿐 아니라 그 여자의 싸고 싼 천기 賤氣 도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소하기도 했다. 그것을 물을 때 그 여자는 그렇게 저속해 보였던 것이다.

“동화상사라고 꽤 큰 수출업체 부장이랍니다. 큰사위도 아주 잘 봤어요. 애가 욕심이 좀 많아서 더 잘 보려고 윤선생님 신세를 지려는 거지 큰사위, 둘째 사위 다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아요. 그럼요.”

한여사가 재빨리 옆에서 거들었다.

“아가씨는 언니들을 닮지 않았나보지?”

윤선생이 처음으로 혜숙이한테 말을 시켰다.

“네?”

“언니들처럼 연애를 안 해서 나 같은 사람한테 건수를 만들어 주었으니 말야. 연애를 안 한 건가? 못한 건가? 또는 연애하고 결혼하고를 따로따로 생각하나?”

윤여사는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물었으니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혜숙이 역시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저런 말버릇 봤나.”

“아녜요, 괜찮습니다. 요새 젊은이들 좀처럼 말꼬리를 잡히지 않습니다. 참 언니되시는 분은 생미과를 나오셨다구요?”

윤선생이 느닷없이 혜진이한테 말을 시켰다.

“네. 그렇지만 졸업만 했다뿐 전공을 살릴 기회가 있었어야 말이죠.”

혜진은 괜히 주눅이 들어서 이렇게 얼버무렸다.

“차차 오겠죠. 뭐든지 전문화돼가는 시대니까요. 중매만 해도 요샌 완전히 전문직이에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우리한테 맡기면 거의 불가능이 없으니까요. 요는 누가 정말 믿을 만한 전문인이냐가 문제죠. 가금 우리 전문직이 마치 사회악의 표본처럼 부상할 때가 있는데 참말 억울해요. 골동품이니 보석이니 하는 것도 전문적인 감정가가 있게 마련인데, 일생을 같이 살 배우자를 찾아내고 감정해줄 전문인이 있다는 게 뭐가 나쁩니까? 하긴 전문직도 처음 생겨날 땐 약간의 거부반응이 없을 수야 없겠죠. 여자들이 집에서 전적으로 밥하고 바느질하고 빨래하던 때 지금같이 기성옷, 양장점, 가공식품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여자들이 처음으로 옷을 삯바느질집에 맡기기 시작할 때만 애도 얼마나 말이 많았다구요. 부덕이 어떻구, 천직이 어떻구 하면서 말예요. 가장 큰 걱정은 여자들이 할 일이 없어지면 큰일난다는 거였죠. 그렇지만 보세요. 요새 주부들은 소위 가사라는 걸 어의 다 각종 전문직에 빼앗겼지만 그렇다고 놀고 먹습니까? 시간이 남아돕니까? 더 보람있고 재미있는 일에 바쁠 수 있잖아요. 중매도 그런 분업화와 전문화의 일종이건만 당해도 너무 심하게 당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한번 정착한 전문직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필요에 의해 생겨났고, 한번 전문인에게 맡겨보니 편하고 안심스럽거든요. 아야 내 정신 좀 봐. 여기사 이렇게 마냥 수다를 떨 시간이 없는데. H 실업 김회장 장손 백일에 가봐야 하거든요. 그 댁 맏아드님을 작년 봄에 제가 짝지워줬는데 깨가 쏟아지게 살더니 올봄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지 뭡니까. 그럴 게 없는데 단지 아들이 좀 귀한 댁이었어요. 김회장님이 딸 다섯에 막내로 외아드님을 두셨거든요. 근데 그 아들이 첫아들을 보았으니 경사도 이만저만 경산가요. 1년이면 여덟 달은 외국에서 사시는 김회장님이 아기 비리는다는 소리 듣자마자 단숨에 날아오셔갖고 그만 첫손자에 반해 여지껏 꼼짝 못하신다니까요.”

“어쩜 H 실업 김회장님댁 중매도 윤선생님이…”

어머니의 얼굴에 놀라움과 부러움이 치사하도록 선명하게 엇갈렸다.

“어디 김회장댁뿐인가요? B 병원 임원재 원장님 따님도 제가 중매섰고 00 당 국회의원 아드님하고 C 대 총장님 우민헌 박사 따님하고도 제가 맺어준 걸요. 그뿐인가요. E 그룹…., 아유 참 내가 이렇게 입이 사면 안 되는데. 아무튼 다 누구라면 알만한 댁들을 부지기수로 맺어줬죠. 그렇지만 전 많이 하는 편은 아녜요. 1년에 그저 두세 건이 고작이죠. 워낙 거물급들 집안끼리 맺어주다 보니 그 이상은 힘에 부쳐 못해요. 맺어줬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이성지합은 만복지원이라고 맺어주고 나면 곧 아기 낳고 백일이다 둘이다 경사가 그칠 날이 없어 그때마다 제가 빠지면 섭섭해서 난리들이니까요. 이왕 온 김에 집구경이나 하고 가야지.”

이러면서 윤선생이 일어섰다. 약간 구겨서 덩그러니 치켜올라간 치마 밑으로 외씨처럼 얌전한 버선발이 드러났다. 흩어지지도 않은 머리를 뒤로 끌어올리는 화사한 손에 비취반지가 그 여자의 품위를 더해줬다. 과연 색시감 방까지 본다는 소문이 맞는다는 말을 혜진은 어머니하고 눈으로 주고 받으면서 스스로 안내를 맡아 앞장섰다. 윤선생은 결코 아무데나 기웃대지 않고 혜진이가 보여주는 데만 살짝 들여다보면서 간단하고 적절한 칭찬을 했다. 혜숙의 방을 들여다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구경을 다하고 나서의 인사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 큰댁을 어쩌면 이렇게 골고루 깔끔하고 빈틈없이 거두고 사시는지요?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럼 일간 또 뵙죠.”

이렇게 하직인사를 할 때 한여사가 재빨리 어머니한테 눈짓을 했다. 어머니도 허둥대며, 괜히 딸들한테 비굴하게 웃어보이면서 미리 준비했던 흰 봉투를 꺼내 윤선생한테 내밀었다.

“이거, 선생님 약소하지만 교통비라 하시라고…, 부끄럽습니다. 꼭 다시 연락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이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윤선생은 비취반지 낀 손으로 봉투를 밀어내는 시늉을 하면서 눈 깜빡 할 새 핸드백 속으로 챙겼다. 그 손놀림이 전문인답게 아주 공교했다.

윤선생을 배웅하고 들어오자마자 혜숙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남의 얼굴만 구석구석 뜯어보고 왜 신랑자리에 대해선 아무런 언질이 없냐 말야. 어떤 신랑이 있다든지 어떤 신랑감을 원하나 내 의견을 묻든지 뭐가 있어야 할 게 아냐. 말재간 하나로 남의 돈을 순 거저먹으려고 그래. 순 사기꾼 같으니라구.”

“얘야, 내 얼굴을 봐서라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 여자 내가 소개한 여자야. 그것도 내가 하고싶어 한 게 아니라 느이 엄마가 애걸복걸 부탁해서 한 거다. 내가 아는 그 여자는 자기마음에 안 들면 절대로 봉투 안 챙긴다. 그 여자가 봉투 챙겼다는 건 네가 마음에 들었다는 표시요 마음에 들기만 하면 어떡하든 중매를 들어서 성사시켜놓고 마는 성미야. 그 여자가 뭐 시간이 남아돌아 느이 집에 놀러온 줄 아니? 여기 온 게 바로 비즈니스고, 돈 받았으니 그 값은 할 게다. 열며 말아라.”

“얘, 우리 애 성미 우물가 가서 숭늉 달라게 급해맞은 거 알면서 뭘 그까지 소리를 탄하고 그러니? 자아, 일이 일단 잘될 모양이니 우린 마음 푹 놓고 점심이나 먹자. 하여튼 그 여자 듣던 대로 보통내기가 아니더라.”

어머니는 괜히 신바람을 내면서 한편 불안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딸의 혼사에 돈을 아낌없이 들일 각오를 하고 있느니 만치 자기가 그 주도권을 쥐고 여러 사람을 휘두르고 싶었는데 사태는 어느 틈에 윤선생이 주도권을 쥐고 자기가 되레 부림을 당하는 입장이 돼버린 것 같아서였다. 이러다간 보잘것없는 코찡찡이라도 갖다 대면서 1등 신랑감이라고 우기면 그렇다고 동의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윤선생의 잘난 척 속엔 그런 최면술 같은 묘한 능력이 있었다는 게 윤선생의 영향권을 벗어나자마자 생각났던 것이다.

혜진도 어머니와 비슷한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만해도 한 치 건너 두 치라 일이 돼가는 걸 구경하고 즐기자는 속셈쪽으로 기울었다.

며칠 후 혜진은 어머니로부터 또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너 여름옷 좋은 거 있냐? 보통 나들이옷 말고 아주 좋은 파티복 말이다. 없지? 있을 리가 없지 파티에 갈 일이 생전에 있어야 말이지.”

어머니는 이렇게 혜진의 비위부터 긁어놓고 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윤선생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내일 혜숙이 선을 보란다는 것이었다. 근데 장소가 보통 호텔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이 아니고 그 여자가 중매를 선 모 호텔 재벌 아들과 돈 많은 모 구정치인 딸과의 결혼식장인  서울 근교 농장이라고 했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농장에서 초호화결혼식을 올리니 구경 삼아 오면, 자기가 점찍어놓은 신랑감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소개해줄 테니 그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도, 하루 즐기고 그만둘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자리면 제가 갈 필요없는 거 아녜요.”

“너도 꼭 같이 오라던데. 혜숙이 그 맹꽁이 사람 볼 줄 모르는 건 너도 알잖니. 친구처럼 어울릴 사람이 있어야 걔도 덜 어색하고…”

“그 여잔 제멋대로야. 처음보는 선을 하필 그런 이상한 장소에서 보게 할 게 뭐람.”

“이상한 장소라니? 좀 좋아. 실컷 구경도 하고, 잘 얻어도 먹고, 신랑감도 여럿 중에서 골라잡을 수 있고, 첫째 어색하지 않고… 그 여잔 절대로 다방이나 살롱 같은 데서 선 보게 하지 않는다더라. 어떡하든지 자연스러운 기회를 마련하지.”

“알았어요. 알았으니 초호화 결혼식에 어울리는 옷이나 한 벌 해주시구려.”

“알았다. 나도 그런 각오는 진작부터 하고 있었느니라.”

이렇게 해서 초여름에 로렌스 박의 쇼윈도우를 들여다만 보고 감히 가질 수 있으리라곤 꿈도 못 꾼 환상적인 드레스를 한 벌 얻어 입을 수가 있었다. 다시 한번 그 앞에서 만난 연령과 미추를 초월해서 다만 고상하기만 하던 귀부인 생각이 났다. 로렌스 박의 옷을 얻어 입었다고 해서 그 기가 질리게 고상한 여자에게서 느낀 이질감이 조금이라도 해소된 게 아니었다. 집에서 그 요란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니, 내일 있을 결혼식장에서의 맞선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보통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도달할 수 없는 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이질감이 한층 심각해졌다.

다음날 돈 많은 구정치인의 소유라는 농장에서의 결혼식은 정말 굉장한 것이었다. 손님들은 모두 고상하고 우아하고 화기애애했고, 농장은 광활하고 아름다웠고, 호텔 뷔페식당에서 날라오는 음식은 맛과 양이 무궁무진했다. 조화된 분위기에서 다만 자신의 의상만이 불청객의 표시인 양 수탉처럼 튄다고 혜진은 생각했다.

 

 

 

6. 농장지대

 

결혼식이 끝나고 가든파티가 벌어지자 윤선생은 혜숙이를 재빨리 한 떼의 젊은이들 사이로 밀어 넣었다. 파티에선 우선 아는 사람끼리 담소를 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도 소개받아 알게 되고, 그래서 사교범위를 넓혀가게 마련인데, 윤선생은 처음부터 생면부지의 남녀를 여남은 명이나 한자리에 모아놓고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보통 사람이 아닌 윤선생이 계획적으로 마련한 자리이니만큼 빨리 적응할수록 유리하다는 묵계 같은 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특별한 목적이 있는 모임이라는 걸 숨길 수 없었다. 남자들은 약간 불성실한 태도로 닳고닳은 농담을 해서 여자들을 웃기면서도 눈빛엔 절대로 밑지진 않는 물건을 골라잡아야 한다는 장사꾼 같은 교활함이 번득이고 있었고, 여자들 역시 천진하고 약간 수줍음 타는 듯이 굴면서도 문득문득 예리하고 타산적인 시선으로 남자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혜진은 윤선생이 일부러 못 본 척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먼발치로 그들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을 잔뜩 눈독을 들이고 관찰해도 겉만 보고 사람됨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다. 하물며 다섯 명이나 되는 청년 중 누가 혜숙이하고 연이 닿을까 조차 짐작할 수 없으니 눈독을 들이고 말고도 없었다.

혜진이의 솔직한 심정으론 다섯 청년이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집안이 각각 다른 집 자식들일 텐데도 마치 윤선생이 맞선용으로 기계에서 빼내온 것처럼 언동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하나같이 훤칠하고 반들반들하고 약아빠지게 생겼고, 다리 꼬고 앉아 발을 달달달 까부는 버릇까지 비슷했다. 뭐니뭐니해도 내 남편만큼 소탈하고 듬직한 남자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혜진은 열적게 웃었다. 그들 근처를 슬며시 떠났지만 달리 아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혜진은 자연히 외토리가 됐다. 끼리끼리 담소를 즐기는 한가운데서 갈팡거리며 외토리 노릇하기도 못할 노릇이어서 숫제 드러내 놓고 고독을 즐길 배짱으로 사람들로부터 좀 떨어진 등나무시렁 밑으로 갔다.

벽이 희고 지붕이 빨간 그림 같은 집 테라스에선 악사들이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고, 야외용 화덕에선 고기와 갈비를 굽는 푸른 연기와 감미로운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고, 순백의 식탁보가 늘어진 즐비한 테이블 위엔 빛깔과 모양이 꽃밭 같은 산해진미가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고 샘솟고 있었다.

“왜 혼자 있어요?”

윤선생이 잉크빛 모시치마를 날개처럼 가볍게 흩날리며 혜진이한테 로 왔다.

“별로 아는 사람도 없고, 멀찌감치서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어서요.”

“저런, 혜숙씨는 벌써 친구도 여럿 만나고, 새로 사귀기도 하고 썩 잘 아울리던데.”

“그 앤 좀 그래요. 걔 혼자 보내도 되는 건데 괜히 따라왔나 봐요.”

“그만해도 세대차인가 보지. 혜진씨도 슬슬 어울려 봐요. 오늘 이 결혼식 하객은 서울 장안에서 난다 긴다하는 명문 대가댁 사람들을 총망라한 거라고 봐도 틀림없을 텐데 아무려면 아무 사람 한두 사람 못 만날라구.”

“글쎄요, 전 워낙 명문 대가하곤 거리가 먼 서민층이라…”

혜진은 그렇게 말해놓고 곧 후회했다. 윤선생처럼 자기과시에 익숙한 사람 앞에서의 솔직성이란 경멸의 대상밖에 안 될 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윤선생의 얼굴에는 엷은 조소가 스쳤다.

“저한테 마음씨지 마시고 혜숙이한테나 신경 써 주세요. 우리가 오늘 여기 남의 호화판 결혼식 구경 온 게 아니잖아요?”

자존심이 상한 혜진은 재빨리 윤선생 역시 다만 중매장이에 불과하다는 걸 일깨워주려고 했다.

“염려 말아요. 나는 언제 어느 자리에서고 내 직업의식에만은 투철한 사람이니까.”

마침 그대,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잠시 모습을 감추었던 신랑 신부가 하얀 집으로부터 나왔다. 폐백을 드리고 난 듯 사모관대한 신랑과 원삼에 족두리 낭자한 색시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사뿐사뿐 잔디를 밝고 파티장을 돌기 시작했다. 하객들에게 인사도 할 겸, 우아한 고전 의상도 자랑할 겸 나온 것 같았다. 어느 틈에 곱게 빗어 쪽찐 머리엔 황금 용잠이 물려있고 화관엔 보석장식이 화려장중했지만 신부의 고개는 다소곳하지 않고 꼿꼿했고 시선은 자유로웠다.  테라스에서 경쾌한 음악이 울리자 신랑 신부의 걸음걸이도 패션쇼의 모델처럼 빠르고 가벼워졌다. 한눈에 빌려 입은 옷이 아닌 고급의 마춤옷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금박이 특이하게 섬세하고, 본견의 질감이 우아한 고전의상과 현대적인 매너와 분위기가 썩 잘 어울리는 신부와 신랑을 혜진은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상류사회라는 특수한 양지쪽에서 이어지고 있는 우리 전통은 마치 접붙여서 품종을 개량한 과실이나 화초처럼 정통성은 의심스러웠지만 볼품은 뀌어난 것이었다.

“저 사람들을 내가 중매섰답니다. 얼마나 어울리는 한 쌍인지…”

이미 알고 있는 일을 윤선생이 또 한번 강조했다. 윤선생은 마치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을 여러 사람 앞에 선보이는 예술가처럼 일방적으로 도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여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그 걸작품을 창조한 게 바로 나라고 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지 종종걸음으로 신랑 신부한테로 다가갔다. 윤선생이 신부의 끌리는 옷자락을 잡아주기도 하고, 신랑 귀에 귀엣말로 속삭이기도 하고, 신랑 신부가 미처 못 알아보고 인사를 소홀히 한 윗사람들한테 다시 공손한 인사를 시키기도 하는 모습은 혜진이에겐 신랑 신부보다 더 희한한 구경거리였다. 언제 어디서고 즉각 자기가 할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통해 자신을 그 자리에 없어선 안 될 사람으로 만드는 윤선생의 능력은 실로 경탄할 만 했다.

윤선생이 신랑 신부를 에스코트하면서부터 가든파티의 분위기가 한결 흥겨워졌다. 너무 현란한 고전의상에 질린 듯 멀리서 관망만 하고 있던 젊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신랑 신부를 에워싸고 칵테일 잔을 부딪치며 새롭게 축배를 들기도 했고, 박수를 치면서 큰소리로 야한 덕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선생은 살금살금 교묘하게 신랑 신부를 그 가운데서 빼내 다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윽고 신랑 신부 티가 조금도 안 나게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 입고 화장도 수수하게 지운 모습으로 나타난 그들은 현관에 대기하고 있던 은빛 승용차를 타고 농장을 빠져나갔다. 배웅하려고 그들을 따르는 차가 속속 빠져나가자 파티장의 흥겨움이 한물 가고, 해까지 설핏해지자 하객들은 저마다 급한 용무가 생각난 사람들처럼 서둘기 시작했다.

혜진은 혜숙을 찾지 않고 그냥 주차장쪽으로 갔다. 어느 틈에 스프링쿨러가 곳곳에서 그 넓은 잔디에 시원한 소나기를 골고루 뿌려대고 있었다. 한동안 시달린 잔디가 연연한 녹색으로 생기를 회복하는 게 눈에 보였다.

버스로는 절대로 갈 수 없는 데라고 해서 아버지가 특별히 내준 포니 2안엔 뜻밖에도 혜숙이 먼저 들어앉아 있었다.

“너 웬일이야?”

혜진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뭐가?”

혜숙이 다리를 꼬고 앉아 도전적으로 물었다. 심기가 편치 안아 보였다.

“너 딱지맞았구나, 그치?”

혜진은 혜숙이 앞으로 올라타며 이렇게 다그쳐 물었다.

“어느새 딱지맞고 말 게 뭐 있어. 상대도 분명치 않은데…”

“하긴 그렇더라. 윤선생도 소문보다는 별거 아니구. 누가 왕년에 그룹미팅 못해 봤을라구, 그게 뭐야?”

“그러잖아도 시내로 나가서 제비뽑기 해가지고 쌍쌍이 따로따로 놀라고들 하는 걸 싫다고 그러고 먼저 빠져 나왔어.”

“왜? 내친김에 끝까지 부딪쳐볼 일이지.”

“그럴 마음이 안 내키는 걸 어떡해? 언니 제발 꼬치꼬치 따지지 말아. 나도 속상하단 말야.”

“왜 그래? 그 젊은이들이 다 네 눈에 안 차든?”

“내가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하나같이 명문 대가집 자제들인 그 사람들이 내 눈에 차고말고 하겠어.”

“얘가 점점 이상하게 구네. 근데 왜 안 따라가고 혼자 쳐졌냐니까?”

“딱지맞을 게 뻔하니까, 미리 딱지 놔본 거지 뭐.”

혜숙이 망연히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풀이 죽어 보일 뿐 아니라 눈에 눈물까지 그렁한 게 아닌가.

“너 애 그러니? 숨기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봐, 어여.”

심상치 않은 걸 느낀 혜진이 별안간 운전기사한테 신경을 쓰면서 소리를 죽여 당조짐을 했다. 그러나 혜숙은 아랫입술을 자근자근 씹을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이 여러 형제 중 제일 정이 깊지 못할 뿐더러 입도 무거운 편이 못 된다는 걸 아는 혜진은 점점 궁금증만 더했다.

“내 친구 동생 중에 인물이나 학벌이나 집안이나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애가 있는데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갔지 뭐니. 올해 아마 서른둘일걸. 왜 그런 줄 아니? 처음 선 볼 때 아마 두서너 번 퇴짜를 맞았나봐. 그럴 수도 잇는 건데 워낙 마음이 여린 애라 그만 그걸로 기가 팍 죽어가지고 그 다음부턴 지레 겁을 먹고, 남자쪽에서 딱지놓을 새가 없이 제가 먼저 제시닥제시닥 딱지를 놓는 거야. 그러니 서른 아니라 마흔이 넘어도 혼인이 될 게 뭐니?”

“언니, 재수 나쁘게 그런 맹꽁이 같은 여자 얘기는 뭣하러 해.”

혜숙이 아직도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도끼눈을 뜨고 발끈 화를 냈다.

“네 입으로 그랬잖아? 딱지맞을 게 뻔하니까 미리 딱지 놓았다고. 그런 식으로 나가다간 그 애 짝 날 게 뻔해서 그런다. 너 어머니가 돈을 얼마나 들여서 윤선생을 댄 줄 알고 그런 철없는 장난을 치냐 치길?”

“언니, 제발 가뜩이나 속상한 남의 속 좀 작작 긁어. 언니 눈엔 내가 고작 장난이나 치고 있는 걸로 보여?”

“그럼 뭐야? 아니면 사실을 얘기해 봐. 나 너 집 잃어버릴까 봐 따라나선 거 아니니까.”

“나 오늘처럼 열등감 느낀 적 없어. 열등감이 이렇게 고약한 느낌이란 것도 오늘 처음 경험했구.”

혜숙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착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열등감? 네가? 얘 웃기지 말아. 네가 어디가 못나서 열등감씩이나 느낄 새가 있냐?”

혜진은 자기도 모르게 비꼬는 투로 나왔다. 그건 평소 그녀가 품고 있던, 콧대 높고 쌀쌀맞은 막내 동생에 대한 아니꼬운 감정의 발로이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가 아냐. 별볼일 없는 우리 집안에 대한 열등감이었을 뿐이야.”

혜숙이 발끈하면서 앙칼지게 말했다.

“우리 집안이 어때서? 부모님이 극성맞을 정도로 노력해서 남부럽지 않게 사시고 여러 남매 다 대학공부 시켰고, 막내인 너는 특히 공주처럼 키우셨어. 게서 뭘 어떻게 더 잘해 달라고, 뭐 별볼일 없는 집안? 말이면 다하는 줄 아니?”

혜진은 큰언니다운 위엄과 의분 같은 걸 함께 나타내고자 제법 엄숙하게 꾸짖었다.

“언닌 멀 너무 몰라. 자기가 고생고생하면서 살다보니 친정 사는 게 최고로 잘사는 걸로 보이겠지만 세상은 그게 아냐.”

“너 정말 날 이렇게 함부로 모욕해도 되는 거니?”

혜진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맏이와 막내란 나이 차이가 까마득한 세대차 같은 게 돼서 서로 경원하고 있을 뿐 원래 아기자기한 정이 별로 없는 사이이긴 했지만 오늘처럼 동생이 미워보이긴 처음이었다.

“언니 미안해. 나도 오늘처럼 기분 나쁜 열등감은 처음이어서 쇼크 받았나 봐. 나도 모르게 못할 소리를 했으니 신경쓰지 말아.”

혜숙이 뜻밖에도 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분고분 사과를 했다.

“얼마나 잘난 사람들을 만났기에 네가 그렇게 기가 죽었단 말이니? 나보기엔 그렇고 그런 흔해빠진 젊은이들이더구만…

“그래도 하나같이 이름만 대면 삼척동자도 누구라는 걸 알만한 집 아들들이야. 우리 집하곤 댈 게 아니지. 윤선생도 나를 소개할 때만은 아버지가 뭐 하신다는 걸 슬쩍 빼먹고 넘어가더군.”

“우리 아버지도 어엿한 사장님인데 뭐가 켕겨서.”

“요샌 포장마차 주인도 사장이고 구두닦이 통을 몇 년 메도 사장이야.”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알부자인건 너도 알잖아. 실속없이 사무실만 번드르르한 사장하곤 달라.”

“아무튼 오늘 그 자리는 우리 아버지 같은 조그만 하청공장 사장이 명함을 내밀 자리가 아니었어. 언니도 아마 그들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집 자제란 걸 알면 놀라 자빠질 거야.”

“자빠지긴 싫으니까 그걸 알 필요도 없어. 설사 그들의 배경이 우리와는 댈 게 아니게 어마어마하면 또 어떠냐? 너는 어쩌면 그렇게 네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냐 없길.”

“언니, 오늘의 만남은 순전히 집안이란 배경끼리의 만남이지 사람되의 만남이 아닌데 내가 무슨 수로 자신을 가지우. 그들이 내 배경을 알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게 뻔한다. 누가 나한테 만일 포장마차집 아들을 소개해 준다면 내가 그를 좋아할 수 있겠수?”

“좋아할 수도 있지. 사람만 훌륭하다면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는 문제구말구.”

“저렇다니까. 아무튼 언니하고 나하고는 세대차는 끔찍해. 무슨 말이 통해야 말이지.”

“그건 세대 차가 아니라 성격 차야. 우리 자랄 때만 해도 우리 집 살림이 지금만 훨씬 못했어서 그런지 돈 귀한 거, 물건 귀한 걸 알 만큼 알고 자랐는데, 너는 막내라고 응석을 있는 대로 다 받아주고, 아버지 사업이 잘되는 게 네 복처럼 공주 부럽지 않게 키우시더니 성격은 아주 버렸다. 아버지 어머니도 딱하시고 너도 딱하고…”

“나보기엔 언니가 더 딱해.”

“그만두자. 너하고 긴말 하다간 싸움밖에 할 게 없으니까. 네가 나를 우습게 보는 건 좋아. 그렇지만 오늘 맞선은 내가 주선한 게 아니라 중매장이 중에서도 슈퍼중매장인 윤선생이 한 거 아니냐? 생판 가망없는 상대를 갖다댔을 리가 없잖아. 윤선생 나름의 속셈이 있었을 테니 너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볼 걸 그랬어 이것아.”

“윤선생의 속셈은 뻔해.”

“또 아는 척.”

“중매장이들 성사가 되건 안 되건, 건수가 있을 때마다 수고비 받는 건 언니도 알잖아.?”

“그래 윤선생은 그 단가도 특히 높다더라. 그러니까 잘해봤어야 한다는 거 아니냐? 그리고 설마 수고비 때문에 일부러 안 될 자리를 갖다대기야 했을라구. 윤선생만치나 네임밸류가 있는 뚜장이가.”

“일석이조 一石二鳥 를 노렸겠지. 수고비도 수고비지만 계획적으로 자기과시를 한 것 같아. 자기가 얼마나 장안의 명문 대가와 골고루 줄이 닿아있나를 나한테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거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있지, 그만큼 자신의 신뢰감을 높일 수가 있잖아. 처음 잡은 손님한테 우선 신뢰감을 얻어 놓는다는 건 얼마나 지능적인 상술이야.”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집 자제들이길래 그 야단이니?”

“몰라. 몰도 하기 싫다니까.”

“하긴 나도 오늘 좀 질리기 질렸다.”

“언니는 왜?”

“그 농장말야. 나나 형부나 늘그막에 농장 하가 갖기가 소원이었거든. 시골엔 값싼 야산이나 1,2천 평 사놓았다가 작은 오두막을 짓고 젖소나 몇 마리 키우고 농약 안 뿌린 채소도 가꾸면서 살 수 있는 농장말야. 서울살이에  찌들은 월급장이치고 그런 꿈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걸. 물론 서울바닥에 내집 갖기 꿈을 이룬 다음에 오는 2차적인 꿈이긴 하지만. 그런데 오늘 가본 농장은 우리가 꿈꾼 농장하곤 너무나 격이 다르더라. 그런 별세계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 우리가 꿈꾼 농장은 어디까지나 시골에 속하는 거였는데 오늘 본 농장은 시골이라기보다는 외국 같았어.”

“외국?”

혜숙이 높은 소리로 깔깔댔다.

“내 표현이 좀 우습지? 아무튼 이 나라에서 못 보던 거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잖니. 나는 이 나라를 크게 도시와 시골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여러모로 뚜렷하게 대립되니까. 도시는 소비적이고 시골은 생산적이고, 한쪽은 편리하고 한쪽은 불편하고, 한쪽은 인공적이고 한쪽은 자연적이고…., 상반되는 건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지. 그런데 오늘 본 농장은 그 어느쪽에도 속할 수가 없지 않니. 도시적인 온갖 편의시설을 갖춘 자연, 비생산적인 자연, 빌딩 속처럼 구석구석 청결의 손길이 미친 자연,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이 그렇게 광활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니…”

“언니는 노후의 농장에 대한 꿈이 초라해지지 않아?”

“모르겠어. 그런 것도 같아.”

“그러 아마 오늘의 내 기분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 지도에 도시와 시골 외에 농장지대가 하나 더 생겼다 해서 그게 어쨌다는 거야?”

혜진은 항의하듯이 혜숙이한테 물었다. 혜숙이 딱한 듯이 혜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서로 빗나가기만 하던 자매의 우울이 잠깐 공감대를 얻은 것 같았다.

차소리가 나자 문밖까지 뛰어나온 어머니는 혜진이 혼자 타고 온 줄 아는지 역정부터 냈다.

“이것아, 아버지가 큰마음 잡숫고 차를 내주셨으면 얼른 돌려보낼 일이지, 누가 너더러 온종일 쓰랬냐? 갈 때는 할 수 없었지만 올 때야 아무 차에고 편승 못할라구, 쯧쯧….”

이렇게 구박을 하다가 혜숙이도 같이 온 걸 알고는 단박 눈빛이 달라졌다.

“일이 틀린 모양이로구나?”

“틀리긴 뭐가요?”

“맞선을 봤으면 일단 저희끼리 처질 것이지 너하고 붙어 들어왔으니 말이다.”

“어머니두. 처음 본 맞선에서 단박 일이 성사가 되면 억울해서 어떻게 하시려구요?
“억울하다니 뭔 소리냐?”

“실컷 골라잡는 재미에 중매결혼하는 거 아닌가요?”

“하긴 첫술에 배부르겠냐? 그래도 그렇지. 얼마간은 사귀어 봐야 골라잡든 말든 할 게 아니냐?”

“사귀어 볼 것도 없을 만큼 눈에 안 찬다니 전들 어쩌겠어요.”

“쟨 아직 어려서 사람을 외모밖에 볼 줄 모르지 않니. 그래서 널 딸려 보냈지 달래 딸려 보냈냐. 윤선생이 갖다댄 신랑인데 조건이야 어련할려구. 코찡찡이만 아니면 사귀어보지 않구.”

어머니는 혜숙이가 일찍 돌아온 게 암만해도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혜숙은 어머니와 언니가 주고받는 말에 한마디도 기어들지 않고 냉담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오는 도중 혜진에게 얼핏 드러내 보인 열등감인지 우울증인지를 어느새 감쪽같이 감추고 있었다.

“쟤야 워낙 콧대가 좀 높우.”

“우리 혜숙이쯤 되면 콧대 못 높을 것도 없지. 안 그러냐?”

어머니는 스스로 이렇게 기분을 회복했고, 나중에 윤선생한테서 전화가 걸려 오니까 경위도 묻기 전에 우선 “우리 혜숙이가 그 신랑 마음에 안 찬대요” 소리부터 하고 나서 워낙 콧대가 높은 애니 이해해 주시고 더 좋은 신랑감을 물색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눈치로 먹고사는 윤선생인지라 이런 어머니에게 장단을 잘 맞춰, 어머니로 하여금 딸이 얼마나 훌륭한 신랑감을 가볍게 퇴짜 놓았나를 마음껏 즐기게 했다.

 

 

 

 

7. 개천에서 용나다

 

그 후 윤선생은 평균 1주일에 한번씩은 신랑감을 물색해 왔다. 혜숙은 신랑 사진과 윤여사가 구전 口傳하는 신랑의 조건을 검토해 보고 맞선에 응하기도 하고 말기도 했다. 이쪽에서 맞선에 응하지 않을 때도 어머니는 윤여사에게 꼬박꼬박 봉투를 건넸다. 얼굴 한번 보이고, 말 몇 마디 하는 가운데 고명한 박사님의 120분 특강료만한 거마비를 받은, 과연 대단한 중매장이였다.

자기한테 돈이 많이 드는데 대해 추호의 의심이나 죄책감없이 자라온 혜숙이건만 윤여사한테 물 쓰듯 쓰는 돈에 대해선 아까워도 하고 가끔 그 액수를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그럴 때 어머니는 혜숙이를 이렇게 핀잔주었다.

“이것아. 그 돈이 아까우면 작작 배짱 튀기고 적당한 신랑을 골라 잡으면 될 게 아냐. 느이 언니, 오래비들은 어디가 살짝 모자라는 애들처럼 허겁지겁 아무나 골라잡아 에미 속을앵하게 하더니 넌 또 누굴 닮아 그렇게 눈이 높으냐. 그래도 눈은 높을수록 좋으니라. 다 높을만 하니까 높은 게니까.”

이렇게 핀잔을 주는 척 하면서도 부추기고 있었다. 어머니 보기에 사진만 보고 싫다고 했건 맞선까지 보고 성사 안 됐건 다 혜숙이 쪽에서 퇴짜를 놓은 줄 알지만, 정말 퇴짜를 놓은 게 어느 쪽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신랑편에 물어본다면 그쪽에서 먼저 퇴짜를 놓았다고 주장할 게 뻔했다. 서로 속으로 재보고 맞춰보고 눈치보다가 어쩐지 밑지는 것 같으면 허둥지둥 퇴짜 놓는 선수나 쳐보자는 식의 결과가 되풀이 됐다. 그걸 중간에서 윤선생이 교묘하게 잘 처리해서 서로 자기가 퇴짜 놓은 것처럼, 그러니까 다음엔 더 나은 혼처가 나설 것처럼 한껏 콧대를 높여 놓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혜숙은 서너 달 동안에 열 번 가까운 맞선을 보고 나사 저으기 지친 것 같았다. 사람의 얼굴이란 누가 자꾸 본다고 해서 닳는 게 아니라곤 하지만 맞선만은 안 그런 것 같았다. 서너 달 동안에 풋과일 같은 앳됨과 싱싱함을 잃고 폭삭 늙어 보였다. 약간 버르장머리 없을 정도로 자신에 차있던 똥그란 눈에서 반짝이는 정기가 가시고, 노숙하고 교활한 눈치만 남은 것 같았다.  성질도 후줄근하고 뻔뻔해진 것 같다가도 느닷없이 발칵 신경질을 부리는 등 종잡을 수가 없어졌다. 혜진이 보기에 맞선이란 게 할 것이 아니다 싶은데도 윤선생과 어머니는 이젠 한통속처럼 죽이 잘 맞아서 혜숙의 눈을 점점 높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엔 좋은 구경거리처럼 이런 것들을 방관만 하던 하던 혜진이도 차츰 안된 생각이 들었다. 자기라도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바른말을 해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날 것 같았다. 워낙 정없는 동생이건만도 동기간이란 어쩔 수 없는 거여서 혜숙이가 불쌍해서라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지 싶었다. 이렇게 당사자뿐 아니라 주위 사람까지 지쳐갈 무렵 마침내 혜숙이도 정직한 실토를 했다.

“언니가 부러워.”

맞대놓고 헤진이 사는 걸 경멸하던 혜숙이답지 않은 소리였다.

“네가 나를 부럽다고?”

“그래. 언니처럼 살고 싶진 않지만 연애결혼 한 것만은 부러워.”

“연애결혼 했기 때문에 요만큼밖에 못사는 걸로 네 눈에 보일 텐데 연애결혼이 부럽다니 말이 되니?”

“글쎄 말야. 나도 지쳤나 봐.”

“그렇게 힘이 드냐? 그 맞선이란 게.”

“말도 마, 언니. 언니 눈에도 요새 나 폭삭 늙어 보이지? 바른대로 말해.”

“폭삭이랄 것까진 없어도 좀 그래. 닳고 닳아 보인달까.”

“그럴 거야. 앞으로 연애 같은 건 다신 못하겠지?”

혜숙이 심란한 듯 쓸쓸하게 말했다.

“못하면 어떠니. 넌 연애하고 결혼하고를 철저하게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면서.”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 그렇지만 앞으로 다시는 연애를 못할 것 같은 예감이 얼마나 고약하다는 건 언니가 아마 모를 거야.”

“네가 아마 그 동안에 남성혐오증에 걸렸나보다. 하긴 그럴만도 하지. 아무리 좋은 음식도 줄창 먹으면 물리게 마련이니까.”

“남성혐오증보다 더 나쁜 게 걸렸어.”

“그게 뭔데?”

“자기혐오. 맞선이란 걸 나처럼 자주 볼 게 아니다 싶은 건 바로 이 자기혐오 때문이야. 자신이 그렇게 싫어질 수가 없어. 연애할 때하곤 정반대지. 연애할 때는 상대방을 사랑하고, 도 자신도 사랑받고 있다는 충족감 때문에 자신이 예뻐 보이잖아. 언니도 그 기분은 알지? 연애할 땐 남들이 다 예뻐졌다고 그러고, 거울을 봐도 실제로 자신의 장점들이 자신을 가지고 피어나 깜짝 놀라게 예뻐 보이는 거.  외모뿐 아니라 속에 있는 좋은 성품까지도 기죽을 펴고 살아나 자기가 괘 괜찮은 인간이 된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 거. 이제 생각해 보니 연애란 자애 自愛 까지도 겸한 거였어. 맞선은 그와 정반대야. 그놈의  맞선시장에 내 얼굴을 내걸고부터는 자신이 그렇게 싫어질 수가 없는 거 있지. 자신의 용모뿐 아니라 인간성 속의 좋은 것들이 오뉴월 볕에 내놓은 생선처럼 급하게 물이 가는 걸 스스로 느낀다는 건 비참한 노릇이야.”

혜숙이가 혜진이한테 그렇게 긴 말을 하기도, 그렇게 정직하기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네가 정말 그렇게 초조하다면 왜 그렇게 배짱을 튀기냐. 그저 웬만하면 사귀어 보다가 결혼할 것이지. 안 그래?”

“언니는 아직도 뭘 몰라. 내가 초조한 건 결혼을 못할까 봐서가 아니라니까. 내가 물이 가고 못쓰게 돼가는 걸 느끼는 게 초조한 거지.”

“무슨 소린지. 남이 널 고작 생선에 비유한다면 펄쩍 뛸 아이가 그게 무슨 당치도 않는 자학이냐?”

“그래서 자기혐오가 가장 큰 문제라는 거 아뉴. 언니는 맞선시장을 모르는 것만도 행복한 줄 알라니까. 그 시장에 일단 내걸렸다 하면 자신의 가치가 어느 틈에 그것밖에 안 돼있는 걸 어떡해?’

“그놈의 윤선생인지, 뚜장인지를 그저, 그저….”

혜진이가 별안간 윤선생한테 이를 가는 시늉을 했다. 그 신비로운 중매장이의 단수가 느닷없이 마녀의 간계처럼 징그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언니는 윤선생에 대해서도 뭘 너무 몰라. 엄마도 그렇고.”

“알아봤댔자야. 기껏 뚜장이지 제가 별걸라구.”

“엄마도 그렇구, 언니도 그렇구, 내가 눈이 높아 맞선을 보는 족족 퇴짜를 놓는 줄 알지?”

“그럼 안 그렇단 말이니?”

“다 윤선생의 계략이야.”

“윤선생이 널더러 그러라고 시키디? 오오라, 그렇게 해서 자꾸만 맞선을 보게 해야 엄마한테 마냥 거마비를 뜯어낼 테니까. 저런 못된 여편네가 있나. 그렇더라도 그렇지. 넌 무슨 허수아비냐? 그 여편네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좋은 신랑감 있으면 꽉 붙드는 건 네 마음에 달린거지.”

“엄마나 언니나 눈치없는 거 하나는 하여튼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여자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시킬 여자유? 다만 그렇게 되도록 조종한다 이거지.”

“무슨 소리야? 도대체.”

“가든파티 날도 잠깐 얘기했잖아. 그 후 쭉 그런 수법이야. 우리집하곤 도무지 걸맞지 않은 소위 명문 대가댁 아들하고만 맞선을 보게 하는 거야. 엄마는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런 집하고 맞선 보는 것만도 좋아하시지만, 연애가 아닌 맞선 시장에서 첫째 집안끼리 안 맞는 결혼이 성립된 이변은 절대 안 일어난다는 게 우리들의 상식이야.”

“난 네가 그런 소리 할 때가 제일 불쾌하더라. 우리집이 설사 명문대가까지는 못 간다 하더라도 명문 대가한테 그렇게까지 열등감 느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열등감 느낄 수밖에 없을 만큼 대단한 집안 아들만 끌어다 대는 걸 어떡해?”

“그래 좋다. 집안끼리는 격이 안 맞는다 치자. 네 자신을 가지고 격을 맞추면 되잖아. 그 높은 콧대 뒀다 뭐하냐. 딴 애도 아니고 네가 어쩜 그렇게 자신없는 소릴 할 수가 있냐.”

“하여튼 엄마하고 언니하고 무식한 건 못 말려. 학벌이 아니라 소위 명문 대가라는 걸 모른다는 소리유. 요새 명문 대가라는 집들이 얼마나 담 높이 쌓고 문단속 철저히 하고 사는지는 언니도 소문을 들어서 알지? 누가 들어와 훔쳐갈까 봐도 경계를 그렇게 철저히 하지만, 외부 사람이 안에 발을 들여놓거나 엿보는 것만도 싫은 거야. 그들은 또  그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높은 울타리를 쌓고 외부 사람한테는 그렇게 배타적일 수가 없어. 예전 양반들이 그랬듯이 즈네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굳게 결속해서 끼리끼리 다 해먹는 거지 뭐. 출세도, 장사도, 결혼도, 우린 그 울타리 밖의 부류야. 그 울타리를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야.”

“윤선생이라는 사다리를 타면 못 넘을 것도 없지 않을까?”

“윤선생 같은 족속은 사다리가 아니라 그 높은 울타리 위에 쳐진 가시철망이나 다름없어. 행여 울타리가 허술해질까 봐 당사자들보다 한술 더 더서 전전긍긍하는 게 그들이니까.”

“그렇지만 얘야, 여지껏 네가 본 신랑감이 정말 다 명문 대가집 자제라면 이야기가 틀리지 않니. 윤선생의 노력도 알아줘야겠지만, 그쪽도 거마비 내고 구태여 전혀 흥미없는 울타리 밖의 사람을 보러 나왔을라구?”

“아무리 순진해도 그 정도의 상상력도 없수?”

“어머 그런 가짜 신랑들이었단 말이지? 명문 대가댁 자제를 가장…. , 윤선생 그 여자 순 사기꾼이구나.”

“언니 진정해. 꾼은 군이라도 그런 사기꾼은 아냐. 그 여자 정말 그 바닥에선 유명한 여자야. 그런 저질의 사기를 칠 여잔 아냐. 진짜 명문 대가댁 자제를 동원할 실력이 그만큼 있는 여자지. 자기하고 연줄이 닿는 집 자제를 잠깐 끌어내는 거야. 남자들이야 장난삼아 심심풀이로 삼아, 잔뜩 치장하고 나간 나 같은 여자를 눈으로 핥아도 보고 혀로 얼러도 보고 좀 재미나겠어.”

“얘는 바쁜 사람들이 그까짓 재미를 보려고 뚜장이한테 그 비싼 거마비를 지불하겠니?”

“그쪽에선 거마비를 안 받는다고 생각해 봐. 여자쪽에서만 받는다면 그 이야긴 얼마든지 성립이 되지.”

“여자쪽에서만 받다니, 얘 그건 말도 안 돼.”

“말이 왜 안 돼. 여자가 흔하고, 나처럼 헛된 꿈을 꾸는 여자는 더구나 흔하고, 또 일반적으로 여자쪽이 약자고 저자세니까 얼마든지 가능한 문제야.”

“여자가 저자세라니? 지금 세상에 그런 진부한 소리가 어딨어. 결혼이란 어디까지나 서로를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여야 돼.”

“고맙수. 언니니까 그런 소리라도 해주지 누가 해주겠수. 언니도 연애결혼했으니까 그런 소리 할 수 있지 중매로 했으면 어림도 없을 걸. 맞선시장에서 여자의 위치가 얼마나 볼잘것없다는 건 아마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거야.”

“누가 너더러 그렇게 기죽을 못 펴라고 가르치든? 넌 우리집에서 공주처럼 기른 애야. 너 위엔 사람이 없는 줄 알아서 언니인 나도 아니꼬와서 상대하기도 싫던 애야.  그렇지만 밖에 나가서, 더구나 결혼이 성립될 가망도 없는 남자 앞에서 저자세로 굴었단 소리는 기분 나쁘다.”

“내딴엔 최선을 다 하느라고 했어. 나도 처음부터 윤선생이 갖다댄 신랑감이 나한테 그림의 덕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니까 얼마나 열심히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구. 아는 방법은 다 썼어.”

“잘 보이는 방법이 뭔데? 네가 그걸 알고 있었을 리가 없어.”

“왜 몰라. 요새 여성지엔 맨 그 방법뿐인데. 맞선 보는 자리에서 눈 뜨는 법, 차 마시는 법, 웃는 법, 앉는 법, 서는 법, 눈치 보는 법…. 그걸 마스터하고 나면 여자의 위치가 얼마나 형편없다는 걸 저절로 깨닫게 되지. 불평등 관계는 옛날얘기야. 불평등하다는 건 그래도 같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얘긴데 요새 신부감은 인간도 아냐. 순 상품이지. 맞선 볼 때 여자들이 지켜야 할 법은 매너이기보다는 상품을 포장하는 상술과 하나도 다를 게 없으니까.”

“그런 신부수업은 언니인 내가 시켜야 하는 건데 그만 무심했더니 네가 어디서 과장된 것만 주워들었나 보구나. 미안하게 됐다. 네가 좋은 데로 시집가기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을 했다니 측은하기도 하고. 이왕 내친 김에 끝까지 해보는 게 어떻겠니?”

“나만 노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상대방이 노력은커녕 최소한의 성의도 안 보이는걸.”

“상대방이 장난삼아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의 지나친 자기비하가 아닐까? 그건 분명히 오핼 거야.”

“여지껏 한번도 가족하고 같이 선보러 나온 남자를 본 적이 없어. 다 혼자서 달랑 나왔지.”

“혼자서 달랑 나가긴 너도 마찬가지였잖니? 나라도 따라나가려도 윤선생이 극구 말려서 한번도 못 가봤잖아.”

“그쪽에서 혼자 나오니까 우리도 못 나오게 한 거야. 그쪽은 아마 가족은 알지도 못할 거야.”

“당사자 마음에 우선 들고나서 알려도 되는 거 아니니?”

“그건 우리 같은 사람의 상식이고 소위 명문 대가의 결혼 풍습은 안 그래. 걸맞는 집안끼리 가망이 있는 맞선을 볼 때는 양가의 어른들이 다 참석을 해서 정작 당사자는 당분간 뒷전으로 밀려나 있게 돼. 그런 풍습을 알고부터 내가 윤선생의 계략에 의해 안 될게 뻔한 맞선에 말려들었단 심증을 굳히게 된 거야.”

“윤선생이 설마 그렇게까지 악질일까.”

“악질이 아냐. 유능한 장사꾼일 뿐이지. 두고 보구려. 앞으로 난 별수 없이 윤선생 덕에 시집갈 테니.”

혜진은 당장은 혜숙이 말귀를 못 알아들었지만 곧 알게 됐다. 규칙적으로 새로운 신랑감을 물색해 오던 윤선생의 발길이 뜸해져서 어머니가 은근히 애가 닳아 할 무렵 윤선생이 다시 나타났다. 어머니의 대접이 더욱 융숭하고 은근해질 밖에 없었다. 윤선생 역시 그 동안 독특한 기품으로 유지해 오던 간격을 허물고 고모나 이모처럼 소탈하고 무관하게 굴었다. 윤선생의 이런 변모에 어머니는 단박 체면을 허물고 주착없이 굴기 시작했다.

“우리 혜숙이 콧대 높은 데 선생님도 손 드셨죠? 그래서 아주 발길을 끊으시면 어쩌나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구요. 하여튼 그렇게 다시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본 건데요, 조금 정도를 낮추면 어떨까요.”

“정도를 낮추다니요? 농담이시겠죠.”

 “아이구 아녜요. 제가 윤선생님께 농담을 하다니요. 이제 한 식구처럼 흉허물이 없으니까 말씀인데 걔가 그 좋은 자리를 다 마다하는 게 암만해도 명문 대가댁에 들어가 살기가 켕겨서 그러는 것 같아요. 걔 나무래 뭘 합니까. 그저 막내라고 워낙 버르장머리 없이 오냐 오냐 키운 저희 불찰입죠.”

“어머님이 먼저 그 말씀을 해주시니 저도 말씀 드리기가 훨씬 편하군요. 저도 벌써부터 같은 걸 느껴왔으니까요.”

“어쩜 그게 정말이세요?”

“제가 눈치 하나로 그 드센 바닥에서 이만한 명성을 얻은 사람입니다.”

“암, 아무려면요.”

어머니는 괜히 신이 나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말씀인데, 실은 저도 상대방의 질을 좀 낮춰볼까 해서 그 의논을 드리러 이렇게 찾아봤답니다.”

“그래 주시면 오죽이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윤선생님 같은 분이 명문대가말고도 아시는 데가 있을는지 그게 또 걱정이 되지 뭡니까?”

“그 점은 염려마세요. 질을 좀 낮춘다고 해도 다만 명문 대가댁이 아니다 뿐 신랑의 인격의 질을 낮춘다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어떻게 된 게 요즈음은 명문 대가댁에서도 딸 가진 입장에선 같은 명문 대가보다는 가문은 좀 낮더라도 신랑 하나만 똑똑한 자리를 구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뭐니뭐니해도 딸은 좀 낮춰서 보내는 게 시집살이가 편하니까요. 딸 시집 보내기가 아들 장가 보내기보다 어려운 탓도 있구요. 그래 그런지 개천에서 용 난 신랑감이 오히려 명문 대가댁의 별볼일 없는 아들보다 더 구하기 힘든 게 요즈음 세태죠.”

“개천에서 용 나다니요?”

“왜 있잖습니까. 집안은 그저 그렇게 근근히 사는데 신랑이 머리 하나로 고등고시나 외무고시에 합격했다든지, 의과대학을 나오고 전문의를 땄다든지, 또는 일류대학을 장학금으로만 나와 외국의 일류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아놓고 출국날짜만 기다린다든지, 이런 신랑감을 흔히 그렇게 말하죠.”

“야유 그런 신랑감이 있다면 명문 대가집 아들보다 더 탐이 나는데요.”

“거 보세요. 다들 그러니까 그런 신랑감이 더 딸릴 밖에요. 하긴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렇지만 염려마세요. 제가 꼭 구해볼 테니까요.”

이렇게 해서 명문 대가댁과 사돈을 맺을 꿈이 개천에서 난 용쪽으로 낙착을 보게 되었다. 혜숙이도 거기 별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혜숙이는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윤선생의 계략에 의해 부모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돌아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런 저항감 없이 그렇게 소망하던 명문 대가댁 자제를 개천에서 용 난 신랑감으로 바꿀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윤선생은 윤선생대로 그 동안에 오붓한 소득을 올렸으니, 그 지겨운 맞선과정이 피차에 조금도 헛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혜숙은 거울을 볼 때나 안 볼 때나 자신이 닳고 닳았다는 걸 의식했고, 그 닳은 부분을 만회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데 대해 가슴 아픈 상실감을 느끼곤 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희귀한 일이건만 윤선생이 들어서니, 개천에서 용 난 신랑도 줄줄이 나타났다. 혜숙은 한동안 뜸하던  맞선을 다시 연달아 봐야만 했다. 전의 명문 대가댁 자제들 때와는 달리 양가의 가족까지 합석하는 경우도 있었고, 맞선 후 신랑감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렇다고 제꺽제꺽 성사가 될 낌새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혜숙이는 자신이 닳고 닳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만치 철이 나 있었다. 자주 혜진이한테 마음을 터놓고 이런 말을 했다.

“언니 난 무서워.”

“뭐가?”

“개천에서 난 용이.”

“용이 사람 해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안심해.”

“개천에서 용이 흔하게 날 리는 없고, 보나마나 거의가 사이비 용일 테고, 사이비 용일수록 자기가 난 개천을 창피해 할 거야.”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그러니까 난 그까짓 사이비 용보다 개천이 더 무섭단 말야. 사이비 용이 개천에 떳떳할 리가 없지. 곧 개천이 아닌 딴 걸로 승격시키려고 광분할 게 뻔해.”

“광분하라지.”

“우리 엄마, 아빠가 불쌍하잖아. 지금까지 나한테 들인 돈도 적지 않은데 개천을 큰 개울 만들려면 돈이 또 얼마나 들겠어.”

“설사 그 일까지 우리한테 떠맡길까.”

“워낙 성질이 급한 세상인걸. 급해맞은 김에 무슨 짓은 못하겠수. 세상풍조가 또 그렇게 요상하게 돌아가니까 그런다 해도 크게 흉될 것도 없구.”

“하긴 요새 들리느니 그거 비슷한 소리다만, 너처럼 속빈 신부감 때문에 저런 해괴한 짓거리들이 통하나보다 싶었는데 네가 그 정도나마 철나 소리 하니 반갑다.”

“맞선을 스무 번도 넘게 보는 동안 속은 속대로 빼주고 겉은 겉대로 닳아빠졌는데 그 정도라도 얻은 게 있어야지 어쩌겠수. 우리 엄마, 아빠 그만하면 노력해서 정당하게 돈 버신 거야. 그런 돈을 나 때문에 너무 헤프게 쓰시게 하고 싶지 않아.”

혜숙이 뒤늦게나마 그 정도의 확고한 줏대를 가지고 맞선에 임했던 지라 성사는 더디었지만 그래도 보통 정도는 사는 집의, 보통 정도의 의과대학을 나와 인턴 과정에 있는, 보통 정도로 건강하고 보통으로 생긴 신랑감과 약혼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혜숙의 현명한 결정에 식구들은 만족해 하고 윤선생의 공치사도 대단했다.

 

 

 

8. 세 개의 열쇠

 

혜숙이네선 약혼준비로 분망한 한편 신랑집에선 약혼선물로 뭘 해줄 것인가에 대해 차츰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그런 궁금증을 자주 들르는 윤선생한테 은근히 비쳐보일 때도 있었다.

“신랑 반지를 3부로 할까 하다가 5부로 했습니다. 저쪽에서 색시 반지를 5부로 하면 몰라도 행여 캐러트로 하면 3부가 약소할 것 같아서요, 호호호.”

어머니가 이쯤까지 노골적으로 궁금증을 내비쳤으면 그쪽 집에도 무시로 드나들 게 뻔한 윤선생이 뭐라고 한마디쯤 귀띔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한결같이 우아한 미소로 대신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당사자인 혜숙이가 신랑한테 뭘 좀 알아 오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약혼식을 며칠 안 남긴 신랑이건만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한창 바쁜 인턴 과정에 있는데다가 이번 달엔 응급실 근무라 어쩌다 잠깐씩 하는 데이트도 부속병원 구내식당 아니면 병원 뒤뜰이 고작이었다.

“그래 신랑자리 사람됨이 어떻든?”

혜진이가 은근히 떠보면 혜숙이는 귀찮은 듯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 됨됨이 알아볼 새가 어딨수? 대화가 있어야 말이지. 내가 그 사람한테 들은 얘기라곤 어유 피곤해 죽겠다. 아니면 왜 사는지 모르겠단 소리가 다라우.”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그 사람 철학을 할 걸 그랬나 보다. 도대체 의사인 건 확실하다던?”

“여지껏 데이트 장소를 대학 부속병원 구내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 본 적이 없으니까, 그 사람의 성별을 의심하면 했지 직업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거유.”

“성별을 의심하다니? 오오라 너한테 남자답게 굴지 않던가 보구나? 그치?”

“워낙 피곤하니까. 어제도 내쪽에서 전화해서 만났는데 한 시간이나 넘게 기다리게 해놓고, 여기저기 핏자국이 낭자한 가운을 입은 채로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더니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들어가야겠다나. 그러더니 글쎄 내 어깨에 기대서 콜콜 자지 뭐유. 밉살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속셈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약혼반지는 같이 맞추러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따지려는 거였는데, 그 사람이 부스스 개어나서 시간 다 됐다면 한다는 소리가 겨우, 요새처럼 피곤해서야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맨날하는 그 한탄이었어.”

“그것도 모르냐고, 죽을 틈이 없어서 살고있지 않으냐고 소아주지 그걸 그냥 놔뒀냐? 너두 이제 보니 성미가 다 죽었구나.”

‘선미가 죽은 게 아니라 피곤해서 그래. 피곤도 옮는지 그 사람한테로 혼처가 정해지고나서 나도 하는 일 없이 왜 그렇게 피곤한지 몰라. 따지기도 귀찮고 성깔 부릴 기분도 안 나고.”

“그래도 약혼반지는 맞춰야 게 아냐?”

“우리도 보통 남자 손가락 치수로 대강 짐작해서 마련했는데 그쪽에서도 그러겠지 뭐.”

“그래도 그렇지, 여자하고 남자하고 같니? 여자 반지는 치수도 치수지만 첫째 세팅이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그 댁 어머니는 뭐하신대? 아들이 시간이 없으면 당신이라도 나설 것이지.”

“그런 거 따지기도 귀찮아. 그 사람은 툭하면 약혼식 안 했으면 좋겠단 소리나 하는걸.”

“약혼식을 안 하다니 왜?”

“사간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나?”

“시간 때문에 그러는 거면 괜찮다. 난 또 신랑이 너를 그리 탐탐히 여기지 않아 그러는 줄 알고 가슴이 다 덜컥 내려앉았다.”

“약혼식 할 시간도 없는 건 괜찮구?”

“말이 그렇지 설마 약혼식 할 시간도 없지는 않을 테니 염려 마. 수련의 때는 다 그런가 보더라. 내 친구 중에 채숙이라고 있지? 계도 남편이 수련의 修鍊醫 때 결혼했는데 신혼재미라는 게 뭔지 모르고 사니 이런 억울한 데가 어딨냐고 우는 소리 해쌓더니 지금은 걔네가 동창 중에서 제일 잘 산단다. 박사부인에다 원장부인에다 남편 차 따로 제 차 따로 거들먹거리고 사니까 나같은 서민층하고 어울릴 새도 없나보더라. 너도 당장은 좀 고생되고 잔재미 모르고 살아도 장차 떵떵거리고 살라고 어머니가 고르고 고른 혼처야. 좀 속상하는 일이 있어도 부덕 婦德을 익히는 셈치고 참아야 하느니라.”

“꼭 증조할머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부덕이 별건 줄 알우. 체념이야 체념.”

신랑인 닥터 현 玄의 무관심과는 달리 현씨 댁에선 약혼식에 자그만치 70여 명이나 참석하리란 것을 윤선생을 통해 통고해 왔다. 숫적인 수세에 압도당한 어머니는 당장 이쪽의 참석 인원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아직 마련하지 않은 소품에 속하는 예물, 이를테면 라이터 만년필 커프스버튼 넥타이핀 등도 예산하고 있던 것보다 그 질을 한껏 높이기로 했다. 어머니는 약혼식에 드는 비용은 신부측 부담이라는 것도 별로 개의치 않은 채 보는 눈이 늘어났다는 것에 괜히 신명을 내면서 돈을 왕창왕창 썼다. 그러다가도 최소한도로 해 보낸 혜진이한테 눈치가 보이면 이렇게 변명을 하기도 했다.

“너 때하고 지금하곤 시대가 다른 걸 어떡하니? 시대가.”

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단풍이 절정기에 달한 숲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S호텔에서 거행된 혜숙의 약혼식은 성대하고 화려했다. 수를 채우기 위해 불러 모은 시골친척들은 자신의 모습이 거울처럼 투영된 대리석바닥을 엉금엉금 기기도 하고 부드럽고 현란한 카펫을 밝을 때는 신을 벗을까말까 남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면서 혜숙이네가 시골에 소문난 것보다 훨씬 더 큰 부자가 돼 있나보다고 무조건 압도당하고 있었다.

식순 중 예물교환 순서에서 신랑은 혜숙에게 순금 쌍가락지를 끼워 주었지만 헐렁해서 주먹을 쥐고 있지 않으면 빠질 것 같았다.

“우리 집안에 대대로 맏며느리한테 물려내려오는 게니 값어치는 따지지 말고 귀하게 여겨라. 요샌 금가락지 끼는 세상도 아니니 손가락에 맞고 안 맞고는 과히 신경 쓸 거 없느니라.”

장차 시할머님 될 노인이 노인네답지 않게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금가락지에 실망한 혜숙이도 대대로 맏며느리한테 물려내려오는 유서 깊은 가락지란 소리에 적이 흐뭇해졌다. 신랑한테 끼워준 5부 다이어반지가 되려 약소하고 품위없이 느껴져 혜숙은 꾸미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부끄럼을 다 탔다. 한껏 치장을 한 혜숙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신랑은 소탈하고 피곤해 보였지만 그것이 되레 의사라는 직업의 관록처럼 보여서 다들 어울리는 한 쌍이란 칭송이 자자했다. 약혼반지 이외의 예물교환 순서는 생략한다는 사회자의 말도 성대한 약혼식의 품위를 더했다.

그러나 교환한 예물상자를 가지고 와 끌러본 혜숙이네 식구는 안색이 변해 서로 쳐다볼 밖에 없었다. 상자 속엔 사주단자밖에 들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우릴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어머니는 입술을 떨면서 기함이라도 할 듯이 눈빛이 다 아득해졌다. 말이 없고 처음부터 이 혼사에 돈줄의 역할 이상을 안 하던 아버지도 허어, 허어, 연방 기침도 아니고 한숨도 아닌 불쾌한 신음을 토해냈다.

이때, 약혼식에 왔다가 혜숙이네까지 따라온 집안내의 가장 어른이신 종조모 從祖母가 점잖게 한마디 하시는 것이었다.

“그 집이 그래도 양반인가 보다.”

혜숙이네 식구들의 제각기 상하고 토라지고 짓밟힌 자존심은 본능적으로 치유받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조모의 이 말씀은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종조모는 친정이 서울 본토박이 양반 중에서도 뼈대 있는 소론 少論 집안이었는데 가세가 곤궁하여 밥술이나 먹는 중인 집안으로 시집왔다는 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지금이 어느 세상이라고 양반타령도 우스운데 노론, 소론 까지 따지니 망령 취급밖에 당할게 없었다. 정정했지만 80을 바라보니 망령노인 취급당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증조모의 다음 말을 모두 허겁지겁 기다렸다.

“그 집이 그래도 뼈대있는 양반집안이더구나. 사주 보낸 거 보니 단박 알겠더라. 사주 보낼 때 패물이니 옷감이니 보내는 것은, 거 다 상풍이니라. 내가 이 김씨 집으로 시집올 때만 해도 김씨 집이 우리 친정어른들한테 흉 많이 잡혔느니라. 사는 것만 조모 낫게 살면 뭘해. 뭔 법도를 알아야지. 사주가 왔는데 글쎄 상자에다 사주저고리를 넣어 왔지 뭐겠니? 신랑이 손수 제 글씨로 제 사주를 써 넣은 간지봉투에다 싸릿가지를 끼우고 다홍실로 감은 걸 백지로 싸고 다시 다홍 겹보자기에 싸서 사람 시켜 보내면 양반의 법도에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것을. 왜 그놈의 저고리감은 넣어 보내 망신을 당했는지. 우리 어르신네께선 행여 친척들이라도 알까 쉬쉬하시고, 나는 그때 겨우 열다섯이건 만도 중인 집으로 시집간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나면서 어찌나 만정이 떨어지던지 밤새도록 눈이 붓도록 울었느니라. 그런데 세상에 어떻게 된 게 법도 있는 양반 풍습은 맥을 못추고 사라지고 중인이나 상사람들 사이에서나 하던 짓거리가 차츰 득세를 해서 저고리 한 감 넣던 상자기 함이 되고 그 속에서 온갖 패물을 다 집어넣어 돈자랑들을 하는 꼴이라니, 차마 눈뜨고 못 보겠더니만 그 댁은 그래도 어른이 계셔 뼈대를 지켜오는 양반댁인 게야. 원 법도대로라면 금가락지도 사주를 끼워넣은 게 아니다만, 상투 자르고 하이칼라 머리한 지도 오래 됐으니 그 정도로 시속을 따르는 거야 어쩌겠지. 약혼식이라는 것부터도 내 마음에 안 들었어. 느이들 괜히 돈 쳐들이고 흉이나 안 잽혔나 모르겠다. 그 댁이 그만치 양반노릇 할 줄 알았으면 내가 미리미리 좀 가르쳐 주는 건데.”

그날부터 증조할머니는 며칠 안 남은 혜숙이 결혼준비를 위한 자문역으로 머물러 있게 되었다. 혜진이는 암만해도 그 집이 양반의 법도대로 하느라고 그랬을 것 같지가 않았지만 구태여 아니라고 나설 것도 없었다. 양반노릇을 보조 맞추려면 자연히 물량공세를 주춤할 수밖에 없을 테니 우선 다행스러울 밖에 없었다. 증조할머니는 이것저것 지시도 했고 예언도 했다.

“이제 두고보렴. 함에도 그 댁에선 청치마 홍치마 두 끝만 격식 갇춰 넣어 보낼 테니. 요샌 함뚜껑이 들썩하게 온갖 것을 다 넣다 못해 여벌로 가방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지, 아마. 천하에 배우지 못한 상건들 같으니라고. 혜숙이가 제법 끌끔한 양반댁으로 시집가는 게 내 흐뭇하고 대견하다만 워낙 마구 키워놔서 가서 흉이나 안 잡힐라나 모르겠다. 며칠 안 남은 동안이라도 이 할미 말 들어둬. 하긴 양반의 법도라는 게 그렇게 며칠 사이에 익혀지는 게 아니다만. 옛날에 딸년을 아무렇게나 놓아 기른 상것이 있었더란다. 그 딸이 시집가기 며칠 전에야, 딸을 너무 본데없이 기른 게 걸려서 급해맞게 가르친다는 게 시집가면 시집 식구한테 해당하는 것은 뭐든지 님자를 붙이는 거라고만 일렀단다. 시집살이 뭐 어려울 것도 없네, 라고 코방귀를 귀면서 선선히 시집을 간 이 배워먹지 못한 딸년이 시아버지 머리에 파리가 붙은 걸 보고, 아버님 대갈님에 파리님이 앉으셨다고 했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는데 혜숙이가 그짝 안 날라나 모르겠다. 참 혜숙 에미야, 행여 요새 식으로 시댁에 보낼 예단을 요란하게 장만하지 마라. 크게 흉 잡힌다. 효도버선이나 정성껏 넉넉히 장만하면 되느니라. 행여 돈 쳐들이고 집안망신 다 시키는 짓일랑 할 생각 말거라.”

“정말 그래도 될까요?”

“아, 사주 받아 보고도 몰라. 함 받아 보면 더더욱 알게될 테고. 그렇다고 웬만치 산다는 그 댁에서 청 홍 두 끝만 줄 거라는 소리가 아냐. 며느리한테 내리는 예물이란 시집살이 시키면서 한 가지 두 가지 구미구미 내리는 거란다. 생각해 봐라. 그게 옳은 일이지. 곧 즈이 집으로 다시 실어갈 것들을 여봐란 듯이 잔뜩 실어 보내는 짓이 도대체 언데 어디서 난데없이 들어온 천덕스러운 짓거리라던?”

종조모는 이렇게 흥분하고 뽐내기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숨겨둔 양반의 법도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사돈을 만나게 된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종조모의 이런 기세도 오래가지 못했다. 정말 효도버선만 해도 되는지 윤선생한테 한번 눈치를 떠보려고 하는 차에 윤선생이 먼저 명단을 가지고 왔다.

“이런 건 피차 분명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내가 그 댁에 가서 아주 탁 터놓고 말씀하시라고 했어요. 요샌 신혼시절의 불화의 원인이 거의 예단의 만족도에 달렸다고들 하지 않아요? 좀 우습고 치사한 얘기 같지만 엄연한 현실인 걸 전들 어쩝니까? 또 저처럼 주로 명문 대가댁 혼사에만 간여하다보면 보고 들은 것도 많거니와, 보통 중매장이처럼 양가를 맺어주는 것만 가지고 끝낼 수가 없거든요. 두 사람이 결혼하고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마음이 놓을 때가지는 돌봐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답니다. 그래서 예단 때문에 생기는 신혼 초의 미묘한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까지 이렇게 자청하고 나건 거죠.. 알아들으셨겠죠? 제 말씀 무슨 뜻인지.”

이러면서 윤선생이 건네준 예단 명세서는 1급, 2급, 3급으로 나뉘어져 50여 명의 가족과 친척관계의 서열이 나열돼 있었다. 1금은 물론 시부모님과 시동생 시누이들이었고, 2급은 삼촌, 사촌까지의 가까운 친척, 3급은 그밖에 촌수 가까운 친척과 촌수는 멀어도 가깝게 지내는 친척들이었다. 1급, 2급에 따라 예단의 종류를 어떻게 해야 된다는 자세한 주석은 윤선생이 붙였다.  시부모님은 한복과 양복을 다 갖추되 시아버님 한복엔 마고자와 조끼 단추를 금으로 하는 것이 상식이고, 시어머님한테도 패물과 밍크 목도리쯤은 생각해야되고, 명주 솜이불과 보료 일습은 말 안 해도 알고 있을 테고, 병풍은 수병풍보다는 암만해도 글씨 병풍이 품위가 있을 것 같고, 2급 예물은 옷 한 벌이면 족하겠지만 옷감만 보내는 것은 큰 실례이니 공전을 후하게 얹던가 티켓으로 보내도록 하고, 3급은 담요나 방석쯤이 어떻겠느냐는 명령조의 의논을 들으면서 어머니는 과히 놀라지 않았다. 중매를 대서 사윗감을 구할 때부터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던 터여서 차라리 마음이 놓였다.그건 증조모가 설치는 동안 그만큼 불안했단 얘기도 되었다.

그때부터 증조모의 양반타령은 조금씩 구박을 받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세상에 양반이 어디 있어요. 돈 있으면 양반이고 자식 잘 두면 양반이죠. 양반 법도도 그런 사람들이 만들면 곧장 법도구요.”

몇 번 이렇게 핀잔을 맞자 며느리한테 나 좀 데려가라고 전화를 걸어서 모시러 오게 했다. 며느리와 함께 떠나는 증조모의 단정하게 쪽찐 뒷모습을 보면서 혜숙은 마지막 양반 법도가 사라져가는 걸 보는 것처럼 잠시 쓸쓸한 감회에 젖었다.

종조모가 떠나자 어머니는 마음놓고 신식양반의 방식에 따른 혼수장만에 나섰다. 신식양반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의외로 신식양반 자신도, 윤선생 같은 고급중매장이만도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장사꾼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매일매일 새로운 법도를 만들어내고 퍼뜨렸다. 종로에 즐비한 주단가게들은 예단이라 하면 으레 안감까지도 본견을 고집했고 심지어 속치마 속바지 속적삼까지 갖추게 하면서 그런 것들이 다 본견 명주여야 한다고 우겼다. 물론 바깥사돈의 한복도 바지나 두루마기 안감까지 질이 좋은 명주여야 한다고 극구 주장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너무도 간단하고 확고했다.

“요샌 다들 그렇게 하신다니까요.”

다들 그렇게 한다는데 혼자서만 안 그럴 용기가 어머니 같은 보통여자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주제넘게 사위 도리 사람의 신분을 묻는 데도 있었다. 의사라고 대답하면 까무라치게 놀라면서 이미 꺼내놓은 안팎 본견을 주섬주섬 밀어놓고 한층 비싸고 질이 고급인 걸 꺼내놓으면서 깜짝 놀란 만한 값을 불렀다. 같은 본견이라도 값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런 고급옷감이 아무한테나 권하는 게 아니고 또 아무나 의사 사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장사꾼이 능청을 떨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값을 불러도, 애매하고 너그럽게 웃으면서 꼼짝없이 바가지를 쓰는 게 어머니의 어쩔 수 없는 허영이었다. 양복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단인 것만 알면 VIP라는 엄청나게 비싼 양복지를 권했고 그것 이하로 한다는 게 크게 예절에 어긋나는 양 엄포를 놓았다. 현대의 결혼법도는 이 도시의 요지를 차지하고 있는 장사꾼이 쥐고 있었고, 그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장사꾼의 무한정한 횡포에 한바탕 휘둘리고 들어오면 어머니도 흠뻑 얻어맞은 것처럼 삭신이 쑤시고, 마음은 허탈했다.

“흥, VIP 좋아하네. 자수성가해서 부자소리 듣는 내 남편도 비싸고 불편하다고 여지껏 VIP는커녕 순모 양복 한번 못 입어 보고 합섬만 입어 왔거늘…”

이렇게 크게 근검절약해서 여러 자식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는데 부족함이 없을 만큼 뒤를 댄 남편에게 고마움과 측은한 연민을 느끼기 까지 했다.

그러나 윤선생과 장사꾼 장단에 한번 놀아난 것이 잘못이었다. 예단을 그럭저럭 최고로 마련하다 보니, 딴 혼수라 그것보다 처지게 하게 되지를 않았다. 눈도 높아지고 내친 김에 조금만 더 쓴다는 게 눈덩이 불어나듯 했고, 가구점이고 그릇가게고 전기용품상이고 수예점이고, 예식장이고 하나같이 주단가게 못지않게 상술로 품질을 다락같이 높이고 가짓수를 끝도 없이 늘렸다. 신접 살림에 눠가 필요하나보다도, 당사자가 뭘 원하고 어떤 취미를 갖고 있나보다도 장사꾼이 말하는, 요새는 다들 그렇게 한다더라는 뜬소문을 쫓기에 어깨가 휘고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대충 혼수가 다 마련되어 한숨을 돌리는데 윤선생이 들렀다. 어머니는 그간에 들인 물심양면의 노력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서 윤선생에게 2층을 가득 메운 혼수를 일일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별로 경탄하는 기색없이, 그러나 적절히 치하하는 예절쯤 잊지 않고 대강 구경을 하던 윤선생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

“참 의사 사위 맞으려면 열쇠가 세 개 있어야 된다는 소리 들으셨겠죠?”

“열쇠 세 개라뇨? 무슨…”

“왜 있잖아요, 시중에 떠도는 소문이지만 요샌 소문이 나기가 무섭잖습니까? 아들 가진 쪽에서야 바랄 만하죠. 아파트 열쇠, 승용차 열쇠, 병원 열쇠, 이렇게 열쇠 세 개가 있어야 의사한테 시집간다고들 안 합니까? 왜 그렇게 놀라세요? 어머머, 처음 들으시나 봐. 벌써 파다하게 퍼진 소문인데. 그렇지만 그 댁에서야 점잖은 댁인데 설마 열쇠 셋을 다야 바라겠어요. 신랑이 아직 군복무도 안 치른 수련의니까 병원열쇠까진 안 바랄 테니 열쇠 둘 아니면 하나만 있으면 되겠네요, 뭐.”

“그 댁에서 아파트에 승용차까지 해가지고 시집을 오라고 그러던가요? 윤선생한테…”

어머니가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깬 사람처럼 멍청하지만 정신차려야겠다고 안간힘 쓰면서 물었다.

“아니에요. 그 점잖은 댁에서 대놓고 그런 물질적인 요구를 할 리가 있나요. 다만 세상 소문이 그렇단 얘기죠. 그야말로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겠습니까. 소문이 한번 쫙 돌면 내 자식은 어디가 못나서 남 다 받는 대접을 못 받나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닥터 현이 또 워낙 착해서 부모님 시키는 대로 마음 씀씀이가 돌아갈 타입이거든요. 이 다음에 돈 많이 벌 사람인데 꼭 돈 욕심 때문에 그런 걸 바란달 수 없죠. 형식을 갖추자 이거죠. 형식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겠어요? 남 다 갖추는 걸 자기만 못 갖추면 두고두고 서운한 거. 아무리 남녀동등이라지만 결혼에 있어서 여자쪽에서 남자쪽을 서운하게 해서 이로울 게 하나도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저야 그쯤 귀띔 하는 걸로 중매로서의 소임을 끝냈으니 뒷일은 알아서 하세요.”

그 후 며칠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밤마다 이마를 맞대고 열쇠를 장만해야 옳으냐 안 해야 옳으냐를 의논하고 또 의논했다. 혜숙이 보기에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며칠 새 살이 쭉 바지고 자포자기해 보였다.

그 의논이 아직 미정인 채 받아놓은 날짜만 버럭버럭 다가올 무렵 동부인해서 친정나들이를 온 혜진이 내외를 보자 아버지도 반색을 했다

“자네 나하고 술 한 잔 하세나.”

아버지가 사위를 그렇게 반가워하긴 처음이었다. 딸이 죽자사자 좋아하니까 마지못해 짝지워 준 사위였다. 그 후에도 딸을 고생만 시켜,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남보다 나을 게 없이 쓸쓸하게 대해오던 사위였던지라 혜진이도 어리둥절했지만 사위는 더구나 어쩔줄을 몰랐다. 전에 없이 쉬 취해버린 아버지는 큰 사위한테 훌쩍훌쩍 눈물을 다 짜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가 제일이야. 고맙네 고마워. 내 이렇게 큰 절이라도 할까?”

아버지가 정말 절을 하려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혜숙은 뒤에서 이런 아버지의 몰라보게 여윈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속을 부르짖었다.

“난 뭐냐 말야. 난 도대체 뭐냐 말야?”

시집은 자기가 가는데 모든 일이 자기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혜숙은 이제서야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처음에 주체성을 포기한 건 역시 혜숙이 자신이었다.

 

 

박완서 朴婉緖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

1950년 서울대 국문과 입학

1970년 장편 ‘裸木’이 ‘여성동아’에 당선

1976년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출간

1977년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출간

1979년 장편 ‘살아있는 날의 시작’ 출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0년 ‘도둑맞은 가난’ 출간,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

1982년 ‘엄마의 말뚝’, ‘오만과 몽상’, 수필집 ‘살아 있는 날의 소망’ 출간

1983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출간.

 

 

박완서

소설가.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 숙명여고를 거쳐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소설 ‘裸木’이 당선되어 데뷔한 이래 중산층의 소시민적 삶의 방식과 풍속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뛰어난 현실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을 써왔다.

작품집으로 장편 <裸木>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서있는 여자> <오만과 몽상>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목마른 계절> 등이 있고 단편집으로 <도둑맞은 가난> <엄마의 말뚝>

수필집에 <살아있는 날의 소망> <남자와 여자가 있는 풍경>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1980년에 한국문학작가상, 1981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완서 朴婉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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