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 관한 논문은 1842년에 발견된 이래로 가톨릭 교회 안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한 권의 책이 수없이 악용되는 일은 드물지 않으며, 또 한 권의 책이 교황청으로부터 열렬히 추천 받는 것도 흔치 않는 일이었다. 4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의 인기는 특히 마리아 시대라 할 수 있을 도래(到來)와 더불어 세월이 갈수록 수그러 들기는 커녕 오히려 높아만 가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인 프레드릭 윌리암 페이버 신부에 의해서 첫 영어 번역판이 출간된 이후부터 우리가 펴낸 가장 최근의 미국 판들에 이르기까지, 편집인들은 어떤 식으로도 교리를 약화시키거나 저자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사상을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하면서 그의 문체와 용어를 현대적 표현 방식에 맞게 번안하려는 관심을 꾸준히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 같은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인의 일부 말마디와 표현들이 신학적 정확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잘못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보다 폭넓고 쉬운 번역, 대중적이면서도 일반 평신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말마디와 문체로 저자의 사상을 쉽게 표현해 줄 번안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토록 힘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디 도허티보다 더 유능한 적임자는 없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탁월하고 인기 있는 가톨릭 작가들 중 한 명이며, 편집인이자 리포터이고 ‘예수.마리아의 종’회원이다. 도허티는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과제를 사랑의 과업으로 여기고 작업해 왔다. 그는 불어 원본의 완전하고 정확한 번역을 제공해 준 프랑소아 드 카스트로 박사의 도움을 받아 번안을 마련하여 이제 여러분이 원저자의 작품을 대할 수 있게 하였다.

마리아론 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완전에 표현된 성인의 사상을 직접 접하려는 사람들은 표준 판을 선호하겠지만 우리는 에디 도허티의 이 번안이 다른 방법으로는 성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많은 영혼들에게 길을 열어주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이 작품의 신선하고, 힘있는 문체가 수많은 영혼들이 성인의 생활 방식을 더 잘 이해하도록 이끌어 줄 것을 바란다.

 

 

차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 1 부

제 1 장  마리아를 통해 다스리시는 그리스도

제 2 장 하느님께 필요한 마리아

제 3 장 인간에게 필요한 마리아

제 4 장 우리의 궁극 목표이신 그리스도

제 5 장 우리의 중개자이신 마리아

제 6 장 거짓 신심

제 7 장 참된 신심

 

제 2 부

제 8 장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

제 9 장 완전한 봉사

제10장 완전한 길

제11장 완전한 자유

제12장 비유

제13장 비유에 대한 해설

제14장 놀라운 효과

제15장 외적 실행

제16장 완덕 추구를 위한 내적 실행

제17장 참된 신심의 응용

 

부록

I 마리아를 통해 강생하신 지혜인 그리스도께 봉헌

II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

III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

IV 성모 성심 신심회

 

 

 

 

제1부

 

제1장 
마리아를 통해 다스리시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

마리아는 생애 대부분을 눈에 띄지 않게 사셨다. 그분의 겸손은 다른 모든 피조물은 물론이고 그분 자신에게조차 드러나지 않기를 열망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하느님만이 그분을 알 수 있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자신을 숨겨 주시기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가난하고 겸손한 자가 되게 해주시기를 간청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잉태와 탄생 그리고 여러 신비들과 부활과 승천 안에서 기꺼이 그분을 숨겨주셨다.

마리아의 부모 역시도 그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천사들은 “마리아가 누구인가?” 하고 물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완덕에 관한 몇 가지 사항들을 천사들에게 알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항들은 그들에게 끝까지 알려주시지 않았다.

천주 성부께서는 마리아가 생애 중에 어떠한 기적, 적어도 두드러진 기적은 행하지 않기를 원하셨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천주 성자께서는 마리아가 겨우 몇 마디만을 말하시는데 만족하셨다. 그런데 성자께서는 당신 지혜를 마리아에게 선사하셨다.

천주 성령께서는 당신의 사도들과 복음서 작가들이 오로지 그리스도가 충분히 알려지도록 하기 위하여 마리아에 관해서는 조금만 말하도록 배려하셨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성령의 사랑스런 배필이셨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 유보해 두신 충만한 광채를 발하는 하느님의 걸작품이시다.

마리아는 천주 성자의 경탄할 만한 어머니이시다. 성자께서는 기꺼이 마리아를 낮추어 주시고 숨겨주시어 그분의 감미로운 겸손을 후원하셨다. 성자께서는 마리아를 마치 이분이 낯선 사람인 양 ‘여인’이라 부르셨지만 성자께 있어 마리아는 모든 사람들과 천사들보다 한결 더 소중한 분이셨다.

마리아는 봉인된 샘, 성령의 신실한 정배이시며, 성삼위의 쉼터이시고, 지성소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이 무리가 차지하고 있는 장소들을 포함하며, 우주의 어떠한 장소 안에서 보다도 기묘하게, 보다 신적인 방식으로 마리아 안에 거처하신다. 그리고 어떠한 피조물도 아무리 순수할 지라도 대단한 특권을 받지 않고서는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나는 모든 성인들과 더불어, 새 아담이 성모 마리아 안에서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육신을 취하시므로 마리아는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이룩하신 지상의 낙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리아는 위대하신 분,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것들과 보화들이 놓여져 있는 하느님의 신적 세계이시며 하느님의 가장 멋진 걸작품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 안에서 얼마나 위대하고 신비한 일들을 행하셨는지! 마리아 조차도 그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루가 1, 49). 세상은 이 기이한 일들을 알지 못하며 그것들을 알 자격이 없다. 그리고 세상은 그것들을 이해할 수도 없다.

성인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이신 마리아와 관련된 아름다운 일들에 관해 수없이 말해 왔다. 그리고 성인들의 말씀이 가장 웅변적일 때는 마리아에 대해 말할 때였다. 또한 성인들은 마리아가 쌓으신 공로의 높이가 하느님의 옥좌에까지 이르렀으므로 희미하게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들은 마리아가 실행하신 애덕의 넓이가 지구보다 더 넓기 때문에 측정될 수 없다는 사실도 간파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는 자신에 대한 권능을 지니셨으므로 그분의 능력에 한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마리아가 지니신 겸손 그리고 그분의 다른 덕행과 은총들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정도로 높은 공로여! 오,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애덕이여! 오, 도무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능력이여! 인간의 모든 생각이나 이해를 뛰어넘을 정도로 깊은 겸손이여!

전 세계의 모든 것, 가장 높은 하늘에 있는 것과 지하의 가장 낮은 구덩이 안에 있는 것까지 모든 것이 매일, 동정이시고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묘한 일들을 선전하고 선언한다.

하늘의 구품 천사들과 온 땅의 백성들 심지어 악마들까지도 마리아를 복된 분이라 불러야 한다. 진리의 힘은 그토록 위대하다.

성 보나벤투라에 따르면, 하늘의 천사들은 마리아를 향해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동정이신 마리아는 거룩하시도다!” 하고 쉬지 않고 외친다. 천사들은 매일 무수히 그분에게, “마리아님, 찬미 드립니다!”라는 칭송의 말로 정중히 인사 드리며 마리아 앞에 엎드린다. 또한 그들은 마리아에게 당신의 명령으로 자신들을 영예롭게 해주시기를 빈다. 천상 궁전의 왕자인 성 미카엘이 지극한 열성으로 마리아께 충성을 다하고 또한 마리아를 위하여 기꺼이 심부름 간다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온 땅은 마리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많은 마을들, 지방들, 교구들과 나라들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마리아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 맡겨져 있고 많은 대성전들이 마리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봉헌되었다. 마리아께 봉헌하여 세운 제단이 없는 성당은 하나도 없다. 기적의 성모상을 모시지 않은 특정 장소와 마리아가 모든 종류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고, 온갖 종류의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그런 일부 장소들을 갖지 않은 거리나 마을은 하나도 없다. 마리아의 영광을 위하여 조직된 수도회나 신심단체는 무수히 많으며 마리아의 이름을 취하고 그 모성적 사랑에 동참하는 수도단체들도 많다. 남녀 수도자들은 끊임없이 노래로써 마리아를 찬양하고 그분의 자비를 선포한다. 성모송을 갓 배운 어린 아이들도 마리아를 찬미하고 사랑한다. 마음이 아주 무딘 죄인들조차 마리아에게는 어느 정도의 신뢰심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성인들과 함께 “마리아에 대한 우리의 찬미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진솔하게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마리아에게 찬양, 영광, 명예, 사랑이나 봉사를 충분히 드리지 않았다. 마리아는 우리로부터 더 큰 영광, 더 위대한 찬미, 보다 나은 봉사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마땅히 받으셔야 한다.

땅은 하늘과 경쟁하면서 마리아께 영광 드려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과 더불어 “천상 임금님의 딸이 금실로 수놓은 옷에 싸여 안으로 들도다” (시편 44, 14 최민순 역) 라고 말해야 한다. 천사들과 사람들이 마리아에게 드리는 영광은 그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시는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비천한 피조물들은 이 영광을 알지 못한다. 누가 천상 임금님의 가장 심오한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는가?

마리아의 아름다움, 보화들, 기묘한 일들을 인간의 눈은 보지 못하였고, 인간의 귀는 듣지 못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은 알지 못하였다. 마리아는 온갖 은총과 자연과 영광이 이룩한 기적들 중 가장 기묘한 기적이다. 마리아는 합당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만일 여러분이 어머니를 이해하고자 원한다면, 그 아드님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여기서 모든 입이 다물 수밖에 없다!

나는 내 마음의 지시에 따라 솔직하게 이 글들을 썼다. 우리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는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계신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나름대로 느낀 바를 벅찬 기쁨으로 표현하려 했다. 우리가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데도 모르는 까닭은 마리아를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알려지실 것이고, 그분의 나라는 도래할 것이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알려지시고 다스리기 시작하신 후에야 비로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낳은 첫째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다시 우리에게 오실 때 마리아는 또 다시 그분을 낳으실 것이다.

 

 

 

 

제2장 
하느님께 필요한 마리아

 

 

지극히 높으신 분의 손에 의해 창조되신 마리아는 단순히 피조물 이시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시인한다. 하느님의 무한한 위엄에 비교하면 마리아는 한 원자(原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마리아가 무와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홀로 “있는 그분(야훼)”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해 있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으로 충분하시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전혀 마리아를 필요로 하지 않으셨고, 여전히 필요하지 않으신다. 모든 일을 행하기 위하여, 하느님은 그것들을 원하시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하느님은 마리아를 통하여 당신의 가장 위대한 일들을 시작하고 끝마치기를 원하셨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께서 변하지 않을 것임을 확고히 믿을 수 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므로 당신의 뜻과 당신의 계획을 바꾸시지 않는다.

 

강생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 아드님을 세상에 내어주신 것은 마리아를 통해서였다. 수천 년 동안 성조들은 이 보화를 그리워하였고 예언자들과 성인들은 간청하였다. 그렇지만 외 아드님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사람은 마리아 뿐이었다. 마리아는 당신의 기도에 힘입어, 또 당신 덕의 향기로움으로 하느님 앞에서 은총을 얻어 누리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세상은 성부로부터 직접 성자를 받기에 부당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부께서는 당신 성자이신 그리스도가 마리아에 의해 세상에 주어지기를 명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그분은 마리아 안에서 또 마리아를 통하여 그렇게 하셨다.

성령께서는 마리아의 완전한 승낙을 얻기 위하여 하늘의 주요한 사절들 중 하나를 파견하신 후 그녀 안에서 그리스도를 지으셨다.

성령께서는 일개 피조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마리아에게 당신의 생산력을 나누어 주셨다. 이리하여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그리고 아드님의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마리아에게 주셨다.

천주 성자께서는 당신의 지상 낙원에 계시는 새 아담으로서 마리아의 순결한 품으로 들어가셨다. 성자께서는 지극히 만족하시면서 마리아 안에 머무르셨으며, 마리아 안에서 아드님은 은총의 은밀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품에 당신 자신을 가두어 두시면서도 당신의 자유를 찾으셨다! 하느님은 성자를 한 비천한 소녀가 가는 대로 이끌려 가도록 허용하심으로써 당신의 힘을 보여 주셨다! 성자께서는 모든 지상의 피조물들에게 당신의 영광과 당신 아버지의 영광을 감추시고 오직 마리아에게만 그 영광을 드러내셨다. 성자께서는 당신의 잉태와 탄생, 성전에서의 봉헌 때 그리고 당신의 은둔생활 중에 기꺼이 마리아에게 예속되심으로써 당신의 자율성과 위엄을 빛나게 하셨다. 성자께서는 마리아와 더불어 단 하나의 똑같은 봉헌을 아버지께 드리기 위하여 죽음의 순간에 어머니가 당신 곁에 계셔 주기를 원하셨고, 그리고 이사악이 아브라함의 승낙 하에 희생물로 바쳐졌던 것처럼 성자께서도 어머니의 동의 하에 영원하신 아버지께 제물로 봉헌되기를 원하셨다.

마리아께서는 성자를 기르시고, 먹이시고, 돌보아 주시고, 키워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성자를 봉헌하셨다.

얼마나 놀랍고 경외로 운 전능하신 하느님의 예속인가!

강생하신 지혜께서 당신의 감추인 생활 중에 이루신 기묘한 일들 가운데 단지 몇 가지 일들만을 골라 성령께서 복음서에 기록되도록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예속을 계속 비밀에 부쳐 둘 수는 없으셨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 예속의 무한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셨다.

예수께서는 가장 뛰어난 기적들을 행하시고 온 세상을 회개시킴으로써 당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보다는 30여 년 동안 당신 어머니에게 예속되심으로써 아버지께 더 큰 영광을 드리셨다.

우리 역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우리의 최고 모델이신 예수님을 본받기 위하여 마리아에게 스스로를 종속시킬 때, 얼마나 큰 영광을 하느님께 드리게 되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에 의해서 당신의 기적을 시작하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말씀을 통하여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세례자 요한을 거룩하게 하셨다. 마리아가 말씀하시자 즉시 태중의 아이는 거룩하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은총계의 첫 번째 기적이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 때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겸허한 기도를 들으시고 물을 술로 변화시키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자연계의 첫 번째 기적이다.

천주 성령께서는 하느님 자신 안에서는 생산력을 지니지 않으신다. 말하자면 다른 신적 위격들이 성령으로부터 발 하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배필인 마리아에 의해 생산력을 갖게 되셨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당신의 걸작품이신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신 것은 마리아와 더불어,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로부터인 것이다. 또한 마리아와 함께,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부터 역시 성령께서는 당신의 뽑힌 이들, 즉 그리스도께서 흠숭하올 그 머리가 되시는 신비체의 지체들을 매일 탄생시키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당신의 뗄 수 없는 짝이신 마리아를 한 영혼 안에서 발견하면 할수록 한층 더 큰 놀라운 능력으로 그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분 안에서 그 영혼을 태어나도록 작용하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성령께 생산력을 갖게 해주신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이시므로 성부와 성자와 똑같이 무한한 생산력을 지니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령께서 엄격히 말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황송하옵게 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당신의 결실을 생산해 내시도록 활용하신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체들을 태어나게 하신다. 이것은 은총의 신비이다. 가장 박식한 사람, 영성적으로 가장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이를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성화를 위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 위격은 각기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첫 번째 오심과 같은 방식으로 활동하신다. 세 위격은 그런 방식으로 한결같이 거룩한 교회 안에서 매일 불가시적으로 활동하시고, 또 세상 마지막 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그러한 방법으로 일하신다.

천주 성부께서 모든 물을 한 데 모으고 그것을 바다(라틴어로 ‘mare’)라 부르셨고, 그리고 당신의 모든 은총을 한 데 모으고 그것을 마리아(라틴어로 ‘Maria’)라 부르셨다. 성부께서는 한 보고(寶庫), 보물로 가득 찬 창고를 하나 가지고 계신다. 이 창고 안에 성부께서는 성자를 포함하여 그분 자신이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고, 드물고 귀중한 것으로 여기시는 모든 것을 간직해 오셨다. 마리아야말로 이 무한한 보고(寶庫)이시다. 성인들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보고”라 칭하였다. 이 보고의 풍성함으로부터 모든 것이 값진 것으로 만들어진다.

천주 성자께서는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몸소 쌓으신 모든 무한한 공로와 덕을 당신의 어머니에게 나누어 주셨다. 성자께서는 어머니를, 그분 자신이 성부께로부터 물려받으신 모든 보화의 보관자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 당신 어머니를 통하여 당신의 모든 공로, 은총과 덕을 당신 신비체와 모든 지체들에게 부어주신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성자의 자비를 흘러 내리게 해주는 운하(運河), 온화하고 고결한 강, 우아한 수로(水路)이시다.

천주 성령께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선물들로 당신의 신실한 배필을 부유하게 만드셨다 그리고 마리아를 선택하시어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에 따라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만큼 마리아가 주고 싶어하시는 대상에게 나누어 주셨다. 천상의 어떠한 선물도 마리아의 순결한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이 땅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받는 모든 것은 마리아를 통하여 받게 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이와 같이 성삼위께서는 스스로를 가난한 자, 겸손한 자, 숨은 자가 되게 하신 마리아를 부유하게 만드시고 들어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신다.

이런 점들은 바로 교회와 교부들이 생각해 낸 사실들이다.

만일 내가 금세기의 당당한 사상가들을 상대해야 한다면 나는 여기서 아주 간략히 기술하는 모든 사실에 대해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나는 더 많은 성서 구절들을 나열하고 교부들의 증언을 더 많이 인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는 건전하고 논리적인 논증들을 많이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 이들은 대다수의 학자들보다 더 큰 신앙과 선의를 지니고 있기에 진리를 더 잘 이해한다.

은총은 자연을 완전케 하고 영광은 은총을 완성시킨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님께서 땅에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이제는 하늘에서 마리아의 아드님 이시라는 것은 확실하다. 주님은 아주 완벽한 자녀가 가장 훌륭한 어머니에 대해 가지는 순종의 자세를 견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마리아께 의존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거나, 또는 그것이 그리스도 자신 안에 있는 어떤 불완전함에서 기인되었다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 마리아는 당신 아들보다 한없이 낮은 위치에 계신다. 마리아의 아들은 하느님이시다. 마리아는 지상의 모친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하듯이 당신 아드님에게 명령하시지 않는다. 마리아는 은총에 의해서 그리고 거룩한 것을 변화시키는 영광에 의하여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변화되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절대로 하느님의 변함없는 영원한 뜨세 상반되는 것은 일체 요구하시지도, 원하시지도, 행사하시지도 않는다.

성인들이 우리에게 하느님 자신을 포함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예속되어 있다고 단언할 때, 그들은 하느님께서 마리아께 허락하신 권위가 너무나도 커 마친 그분이 성삼위께서 지니시는 똑같은 능력을 지니신 것처럼 나타난다는 것과, 그리고 그분의 기도와 응답들을 하느님이 명령처럼 받아들이실 정도로 그 기도와 응답이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마리아께서는 언제나 겸손하시고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시는 까닭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어머니의 기도를 절대 거절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모세는 그의 기도에 힘입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분노를 가라 앉혔다. 그 기도의 힘은 지극히 높으신 주님, 무한히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저항하실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강하였다. 주님께서는 이 반항하는 백성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시고 그들을 몸소 처벌하리라고 모세에게 단호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겸손한 예언자가 주님을 이겼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훌륭한 어머니가 바치시는 기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성모님의 기도는 무한한 권능을 지니신 분에 대해 천사들과, 하늘과 땅의 성인들이 바치는 모든 기도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마리아께서는 천사들과 천상 성인들을 지배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겸손에 보답하시려고, 교만에 빠진 천사들이 차지하였다가 비어있게 된 천상 자리들을 성인들이 차지하도록 해주는 권능과 권한을 마리아에게 맡겨주셨다. 겸손한 사람을 들어올리시는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다. 하느님은 비천한 처녀를 하늘과 땅의 여왕이 되게 하셨고, 그래서 하늘과 땅은 — 그리고 좋든 싫든 지옥 자체도 — 여왕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마리아는 하늘군대의 우두머리, 하느님의 보물 창고, 하느님 은총의 분배자, 하느님의 기묘한 일들의 기술자, 인류의 공동 구속자, 사람들의 중재자, 하느님의 원수들의 근절자, 하느님의 위업과 승리의 충실한 협조자이시다.

천주 성부께서는 세상 마지막까지 마리아를 통해 당신의 자녀들이 태어나기를 원하신다. 성부께서는 마리아에게 “야곱 안에 머물라” (집회 24, 8 참조)하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나의 자녀들, 뽑힌 이들, 야곱에 의해 대표되는 이들 안에 머물라”는 뜻이지 “세상의 자녀들, 악마의 자식들, 에사오 에 의해 대표되는 이들 안에 머물라”는 뜻이 아니다.

자연 질서 안에서 자녀는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다. 초자연적이며 영적 출생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분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고, 한 분 어머니 곧 성모 마리아가 계신다.

모든 참 자녀들, 천상의 뽑힌 이들은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신다. 성모님을 자신의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모시지 않는 자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악한 자, 이단자들과 그 밖에 성모님을 미워하거나 경멸하거나 무관심한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모시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일 그들이 성모님을 자신의 어머니로 모셨더라면 착하고 참된 자녀들이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자연스레 사랑하고 명예롭게 해드리는 것처럼 그들도 마리아에게 사랑과 영광을 드렸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단자인지, 거짓 가르침의 설교가 인지, 하느님의 원수인지, 또는 뽑힌 영혼인지 아니지를 알아낼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있다. 이단자와 하느님의 원수는 복되신 동정녀에 대한 자신의 분노 또는 무관심을 드러낸다. 아니면 그들은 말과 행동으로,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마리아 신심을 비난한다. 간혹 그들은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논증으로써 자신의 미움을 위장할 것이다.

천주 성부께서는 마리아에게 그들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으니, 그들이 에사오와 같은 자들인 까닭이다.

천주 성자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올 어머니에 의해서 매일 당신 신비체의 지체들 안에서 형성되시기를, 말하자면 육신을 취하기를 원하신다. 성자께서는 당신의 어머니께 “이스라엘에서 네 유산을 받아라(집회 24, 8)”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내게 모든 민족을 그리고 선인이건 악인이건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유산으로 넘겨주셨습니다. 내가 어떤 이들은 황금 지팡이로, 어떤 이들은 강철 지팡이로 인도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아버지가 되고 변호인이 될 것이며, 또 다른 이들을 정의로 처벌할 것입니다. 나는 모든 이들의 심판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올 어머님, 당신은 뽑힌 이들,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이들만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소유하시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어머니로서 그들을 낳으실 것이고, 그들을 먹이고 키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의 여왕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다스리고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이곳에서 태어났도다” (시편 87, 5) 고 성령께서는 시편 87장에서 노래하신다. 교회의 초기 몇 몇 교부들에 따르면, 마리아 안에서 태어난 첫 사람은 신인(神人) 예수이시고, 둘째 사람은 단순한 인간, 곧 하느님과 마리아의 입양 자녀이다. 인류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이래로 이 머리의 지체들인 뽑힌 이들 역시 반드시 마리아 안에서 탄생하여야 한다.

어머니는 지체들 없이 머리를 태어나게 하지도, 머리 없이 지체들을 태어나게 하지도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자연 질서 안에서 탄생시키는 것은 인간이라고 보다는 괴물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은총의 질서 안에서도 머리와 지체들은 동일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 만일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한 지체, 곧 뽑힌 이가 머리를 탄생시킨 마리아가 아닌 다른 어떤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었다면 그는 뽑힌 이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도 아닐 것이다. 그는 다만 은총의 질서 안에서 괴물일 뿐이다.

더욱이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이 계속 외치듯이 영원히 마리아의 아들이시다.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그러므로 사실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위하여 그러하신 것처럼 이에 못지 않게 진정으로 그분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 개개인을 위하여 마리아의 결실이고 업적이시다.  글 결과 만일 신앙인들 중 어느 누군가가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 안에 형성시키게 되었다면, 단호하게 “성모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은 성모님의 것이고, 성모님 없이는 제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어린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의 모습이 여러분 안에 갖추어 질 때까지 나는 여러분 때문에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는 바오로의 말씀은 실로 성모님께 한층 더 어울리는 말씀일 것이다. 곧 성모님은 이같이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나이가 찰 만큼 차서 하느님의 자녀들 안에서 형성될 때까지 매일 그들을 태어나게 한다.”

모든 뽑힌 이들은 현세 생활 동안에 하느님 아들의 모상으로 만들어지기 위하여 복되신 동정녀의 태중에 숨겨져 있다고 진술한 성 아우구스티노 의 말씀은 참으로 그 자신에게나 우리에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선하진 어머니는 교회가 의인의 죽음이라 칭하는 바와 같이 참 탄생일인 사후의 영광으로 뽑힌 이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시기까지 현세 생활 중에 그들을 보호하고, 먹이고, 귀여워해주고 성장하게 해준다.

이 사실은 참으로 뽑힌 이들에게는 조금 밖에 알려지지 않은 진리이고, 멸망할 이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은총의 신비이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뽑힌 이들을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하여 형성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실제로 성령께서는 마리아에게 이같이 말씀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이여, 나의 신부여, 나의 뽑힌 이들이 덕행과 은총에 있어서 거듭 성장할 수 있도록 그대의 모든 덕의 뿌리를 그들 안에 깊숙이 내리게 해주오. 나는 그대가 땅 위에서 가장 고귀한 덕을 실행할 때 대단히 만족하오. 그러므로 그대가 비록 하늘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여전히 지상에 붙들어 두고 싶다오. 나의 뽑힌 이들 안에 그대 자신을 다시 생산해 주오. 내가 그들에게서 만족하도록 해주오. 내가 그들 안에서 그대의 확고한 믿음, 그대의 깊은 겸손, 그대의 항구한 절제, 그대의 고귀한 기도 정신, 그대의 견고한 희망, 그대의 모든 덕의 뿌리를 볼 수 있게 해주오. 그대는 여전히 나의 신실하고 순수한 그리고 언제나 결실을 맺는 나의 배필이오. 그대의 믿음이 나에게 신실한 이들, 그대의 순결한 동정녀들을 지켜주고, 도한 그대의 결실을 나의 궁전과 나의 뽑힌 이에게 베풀어주오.”

마리아가 당신의 뿌리를 한 영혼 안에 심어 놓았다면 그분 홀로 일구어 낼 수 있는 은총의 놀라운 일을 실현해 내신다. 결실과 순수함에 있어서 마리아에 비길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고 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과 더불어, 마리아는 일찍이 없었고 또 없을 가장 위대한 ‘것’, 곧 신인(神人) 그리스도를 생산해 내셨다. 그 결과 마리아는 오래지 않아 가장 위대한 것들을, 세상 마지막에 즈음하여 나타날 위대한 성인들을 태어나게 하실 것이다. 성령과 결합하여 그토록 독특하고 기묘한 것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분은 유일하고 놀라운 이 동정 마리아 외에는 아무도 없다.

성령께서는 한 영혼 안에서 당신의 배필을 발견하실 때 그곳으로 달려가신다. 성령은 당신의 부요를 가지고 그곳으로 들어가신다. 성령께서는 그 영혼이 당신의 배필에게 공간을 마련해 드리면 그 영혼을 당신 부요로 온전히 채워주신다.  성령께서 영혼들 안에서 놀라운 일들을 성취하시지 않는 주된 이유들 중 하나는, 당신의 신실하고 뗄 수 없는 배필과 이루고 있는 완전한 일치를 그들 안에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보와 성자의 본체적 사랑이신 성령께서 마리아와 결합되신 이래로 결코 마리아에게서 떠나신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마리아를 “성령의 뗄 수 없는 신부”라 부르는 것이다. 실제로 마리아는 언제나 신실하고 풍요로운 분이신 까닭이다.

 

 

모든 마음의 여왕

 

내가 방금 기술한 내용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명백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 마리아는 선택된 이들의 영혼을 다스리는 막강한 지배권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셨다. 만일 마리아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특별한 은총을 통하여 이 영혼들에 대한 권리와 지배권을 갖지 않으셨다면, 성부께서 하시는 대로 그들 안에 머무실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들을 형성시키실 수도, 양육하실 수도,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실 수도 없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들을 당신의 몫으로 받으실 수 없을 것이고, 예수님 안에서 그들을, 또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형성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 속에 당신 덕의 뿌리들을 심어 놓으실 수 없을 것이고, 그러한 모든 은총의 업적들을 위한 성령의 떨 수 없는 짝이 되실 수도 없을 것이다.

마리아에게 당신의 본성적 외 아드님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하느님께서는 또한 – 하찮은 것일지도 모르는 – 육신 뿐 아니라 영혼에 있어서도 당신의 모든 입양 자녀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까지 마리아에게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본성에 의해서 또 정복에 의해서 왕이신 것처럼 마리아는 은총에 힘입어 하늘과 땅의 여왕이시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는 이미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루가 17, 21)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주로 인간의 마음으로 또는 내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왕국도 그와 같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주로 인간의 내면 안에서, 말하자면 인간의 영혼 안에서 다스리신다. 그리고 모든 가시적 피조물들 안에서 보다는 영혼들 안에서 마리아와 그 아드님은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신다. 그런 까닭에 성인들과 더불어 우리는 마리아를 모든 마음의 여왕이라 칭한다.

 

 

 

 

제3장 
인간에게 필요한 마리아

 

 

우리가 도출해 내야 할 두 번째 결론은, 바로 이 사실이다. 즉 마리아는 하느님께 반드시 필요한 분은 아니시지만 하느님의 의지의 결과로 하느님께 필요한 분이시므로 천국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층 더 필요한 분 이시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모 신심을 성인 신심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성모 신심은 없어도 그만인 그러한 것이 아니다. 열심하면서도 박식한 수많은 사람들이 확고한 논증들로써, 성모 신심이 구원에 필수적인 것임을, 그리고 마리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타락과 파멸의 표시임을 입증해 왔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신 분

 

참된 성모 신심이 사람들에게 천국을 확실히 보증해준다는 사실은 구약 및 신약성서의 예언과 가르침에 의해 입증되었고 성인들의 모범에 의해 확증되었으며 경험과 이성에 의해 증명되었다. 진리의 권능에 의해 추방당한 악마와 그 신봉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이 같은 사실을 고백하였다. 여러분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모든 본문들 가운데서, 나는 성 요한 다마스쿠스의 표현만을 인용하려 한다.. “오, 복되신 동정 마리아시여, 당신께 대한 신심은 하느님께서 몸소 구원하시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는 구원의 무기이나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에는 성인이 황홀경 중에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를 보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우리의 복되신 성모님께서 이 사다리의 꼭대기에 계셨다.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는 누구든 영원한 복락에도 들어가려면 마리아를 거쳐 가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성 도미니코의 전기에는, 성인이 언젠가 카르카손 시 근교에서 묵주기도에 관해 설교하고 있던 중 문득 무수한 마귀에 사로잡힌 한 이단자를 언급하였다. 이 악령들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명령에 따라 묵주기도에 관해, 또 천상여왕에 대한 신심에 관해 뜻있고 위안이 되는 많은 진리들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 악령들이 복되신 동정녀의 요구에 의해 혼란과 광분에 빠졌을지라도 성모 신심을 너무나도 진지하게 찬양한 결과 마리아를 사랑하는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성모 신심은 영원한 구원에 꼭 필요한 것이므로 특별한 완덕에로  불리움받은 자들에게는 한층 더 필수적이다. 그리고 나는 마리아와의 아주 친숙한 일치와 마리아께 대한 아주 심오한 의존에 이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우리 주님과 긴밀히 일치할 수 있다거나 성령께 완전히 충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단순한 피조물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하느님 앞에서 은총을 발견한 사람은 오로지 마리아 뿐이시다. 마리아를 통해서, 마리아를 따라 하느님 앞에서 은총을 발견한 모든 이들이 은총을 발견해 왔다. 앞으로도 계속 마리아를 통해서만 영혼들이 그 은총을 발견할 거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께 인사 드렸을 때 그분은 은총으로 충만하셨다. 성령께서 마리아를 그림자처럼 감싸주셨을 때 그분 안에 은총이 가득 넘쳤다. 그리고 날마다 매 순간, 마리아는 이 은총의 이중 충만을 증대시켜 나갔다.

이리하여 마리아께서는 인간의 모든 사유나 표현을 넘어서는 은총의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하셨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보화들을 보관하는 보고일 뿐 아니라 그것들을 나누어주는 유일한 분배자이시다. 마리아는 그 자신이 하고자 하시면 누구든 품위 있게 하고, 들어 높여주고, 풍요롭게 해 주실 수 있다. 마리아는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생명의 좁은 문을 통과하게 해주실 수 있으며 또한 마리아께서는 그들에게 왕좌와 왕홀과 왕관을 주실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마리아의 아들이시고 결실이시다. 마리아는 항상 어디서든 생명의 결실을 가져다 주는 나무, 즉 그 열매를 생산해 내는 진정한 어머니이사다.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마리아에게만 신적 사랑을 저장하는 창고의 열쇠를 맡기셨다. 오직 마리아에게만 하느님은 완덕의 가장 고귀하고 은밀한 길들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또한 하느님은 마리아에게만 그 길들을 따라 다른 이들이 가도록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셨다. 불복종한 하와의 가련한 자녀들은 지상 낙원으로 적극 맞아들일 수 있는 분은 다만 마리아 뿐이시다. 그 낙원에서 인간들은 충만한 즐거움을 맛보면서 하느님과 더불어 거닐 수 있으며, 적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생명의 나무와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그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풍성하고 아름다운 샘에서 길어 마실 수 있고 또 그곳에서 그들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리아는 이 지상 낙원, 곧 죄인들, 아담과 하와가 내쫓겨 빼앗기게 된 순결한 복된 땅이시다. 마리아는 그 자신이 원하는 이들만을 그 낙원으로 초대하여 성인이 되게 하실 수 있다.

세세 대대로 그리고 특히 세상 종말 무렵에 가장 뛰어난 성인들이 가장 열렬히 마리아를 찬양할 것이고, 본받아야 하는 귀감으로, 또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강력한 인도자로 항상 모시려 할 것이다.

나는 이 일이 특히, 곧 도래하게 될 세상 종말에 즈음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와 함께 당신 자신을 위하여 위대한 성인들을, 즉 레바논의 삼목이 어린 덤불들 위에 우뚝 솟아있는 것보다 휠씬 더 높이 성덕에 있어서 다른 성인들을 능가하게 될 성인들을 배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영혼에게 계시되어 온 것이다.

이 위대한 성인들은 온 사방에서 덤벼들 하느님의 원수들에 대적하여 사우는 전투에 선택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특별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헌신하고, 마리아의 빛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은 마리아의 음식으로 양육되고 마리아의 영으로부터 인도받을 것이며, 그들은 마리아의 팔에 의해 지탱될 것이다. 그들은 한 손으로는 싸우고 다른 한 손으로는 건설할 수 있도록 꾸준히 마리아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성인들은 한 손으로 온갖 이단, 분열, 우상숭배와 불신을 타파하고 분쇄할 것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참된 솔로몬 성전,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도시를 세울 것인데, 이 성전과 도시는 솔로몬 성전이고 동시에 하느님의 도시라 불리는 동정 마리아를 가리킨다.

이들 탁월한 성인들은 말과 표양으로, 세상이 참된 마리아 신심을 행해 나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이로 인해, 무수한 적들이 성인들을 대항하여 일어설 것이지만 반면에 성인들은 많은 승리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하여 더 큰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이는 당대의 뛰어난 사도인 빈첸시오 페레리오 성인에게 계시된 내용이다. 또한 성령께서 시편 59장에서 예고하신 점인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느님께서 야곱을 다스리심이 세상 끝까지 알려 지리이다. 또 그들은 저녁이면 돌아와 개처럼 짖어대며 성안을 돌아다니나이다” (시편 59, 14-15). 사람들이 회개하고 정의의 굶주림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세상 마지막에 둘러 모이게 될 도시는 마리아이시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도성” 이시기 때문이다.

 

 

세말 때 더 필요한 분

 

세상의 구원은 마리아에 의해 시작되었고 마리아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오셨을 때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조금밖에 알지 못한 사람들이 당신 자신에게 너무 가까이 또 아주 강하게 자신들을 붙들어 둠으로써 진리 자체이신 아드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뒷전에 계속 물러가 계셨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마리아에게 꾸며 놓으신 아름다움 때문에 실제로 이 같은 위험이 없지 않았다. 초기 작가들 중 한 사람은 우리의 복되신 성모님에 관해, 그분이 “마치 여신처럼!” 받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단언한 바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리스도가 두 번째 오실 때에는 그리스도가 더 잘 알려지고, 더 많이 사랑 받고 봉사 받을 수 있도록 더 훌륭히 형성되고 더 잘 알려지셔야 한다. 우리의 성모님을 더 이상 계속 뒷전에 물러나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걸작품이 훗날에 모든 이들에 의해 인식되고 이해되도록 배려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마리아가 그의 겸손을 통하여 자신을 먼저보다 더 비천한 자로 낮추셨으므로, 성령 자신도 그때 살아있는 모든 인류에 의해 마리아로 말미암아 영광 받고 찬양 받고자 훤하시므로 마리아를 그의 충만한 영광 안에 계시하시기를 원하신다.

마리아께서는 정의의 태양이신 우리의 주님, 그리스도를 앞서서 나타내 보이는 새벽이시다. 그리스도가 잘 보이시도록 마리아는 모든 이들에게 드러나셔야 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로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걸으신 길이며,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로 오시기 위해 걸으실 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방법은 첫 크리스마스 날 베들레헴에 오셨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마리아는 우리가 예수님을 찾기 위하여 다녀야 할 안전한 통로이며 지름길이시고 티없이 깨끗하고 빠른 길이시다. 마리아를 통해서, 성덕으로 빛나는 영혼들은 예수님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마리아를 발견하는 사람은 생명 자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 6)이신 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마리아를 찾지 않으면 발견해 내지 못한다. 이것은 어느 누군가가 찾고자 하는 물건을 알지 못하면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리아를 알지 못한다면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알려지셔야 한다. 그래야만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 더 잘 알려지시고, 더 널리 모든 사람들로부터 흠숭 받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자비와 권능과 은총 안에서 더 찬란한 빛을 발하셔야 한다. 마리아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비 안 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끔찍한 분노 속에서 일어설 하느님의 적들을 쫓아버리고 분쇄하시기 위하여 권능 안에서, 그리고 당신 편에 서서 싸우는 자녀들에게 영감과 힘을 줄 수 있도록 은총 안에서 더욱 밝은 빛을 발하셔야 한다.

마리아는 특히 세말의 마지막 날들에, 악마와 그 무리들을 대적하는 전투 중에 군대만큼 무서운 분으로 나타나셔야 한다. 왜냐하면 그때에 사탄은 그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영혼들을 지옥에 보내려고 더욱 광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의 포악한 박해를 증대시킬 것이다. 그리고 사탄은 마리아의 진정한 자녀들을 거꾸러뜨리기가 다른 모든 이들을 쳐부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이들에게는 가장 교활하고 가장 전율스런 유혹으로 더 맹렬하게 괴롭힐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뱀에게 하신 무서운 말씀을 상기하고 알아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 말씀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영광, 그 자녀들의 구원과 악마의 치욕과 혼란에 관한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창세 3,15).

하느님은 단 한 번의 전쟁을 선포하셨지만 그것은 영원한 전쟁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냉혹하게 조금도 봐주는 것 없이 싸우신다. 그 전쟁의 가혹성은 세상 종말이 가까울수록 더욱 증대될 것이다. 그것은 마리아와 악마 사이, 마리아의 자녀들과 루치펠의 자식들 및 부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친을 악마의 가장 맹렬한 적수가 되게 하셨다. 하느님이 에덴동상에서 뱀에게 저주하신 그 순간부터, 마리아가 비록 그때 육신으로 존재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느님은 당신의 잔인한 원수에 대한 증가하는 증오심을 마리아의 마음 속에서 일으키셨다. 하느님은 또한 지옥의 군주가 모든 사람들과 천사들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하느님 자신보다 마리아를 더 무서워할 정도로 마리아에게 악마와 그 악행에 대한 지식과 악마를 대적할 무시무시한 무기를 많이 주셨다.

물론 하느님의 분노, 증오와 권능은 마리아보다 비할 데 없이 더 크시다. 그러나 사탄은 마리아를 더 무서워한다. 악마는 아주 교만한 영이므로 그토록 겸손하고 비천한 하느님의 여종에 의해 패배 당하고 처벌받는 데 대해 참을 수 없는 수치를 느낀다. 마리아의 겸손은 악마에게 신적 권능보다도 더 큰 상처와 치욕을 안겨준다. 또한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타락한 천사에 대한 막중한 권능을 주셨으므로 마리아가 한 영혼을 애타게 찾으실 때 그분의 권능이 모든 성인들의 모든 기도보다 더 큰 영향력을 악마에게 발휘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단 한 번만 악마에게 위협을 가하시더라도 이 행위가 지옥의 어떠한 고통보다 더 쓰라린 아픔을 악마에게 안겨준다. 마귀 자신들은 이 영들에 ‘사로잡힌’ 영혼들의 고백을 통하여 이를 마지못해 거듭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치펠이 교만을 잃어버린 것을 마리아께서는 겸손을 통하여 획득하셨다. 하와가 불복종을 통해 잃고만 것을 마리아는 순종을 통하여 회복하셨다. 하와는 뱀에게 복종함으로써 그 자신과 자신의 모든 자녀들을 타락시켰으며 하와는 그의 자녀들을 악마의 권세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마리아께서는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심으로써 당신 자신과 더불어 당신의 자녀들과 추종자들을 구해내시고 그들을 하느님께 바치셨다.

진정, 하느님께서는 단 하나의 전쟁을 선포하셨다. 하느님은 마리아와 악마 사이에, 그리고 마리아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 사이에 적대 관계를 설정하셨다. 또한 하느님은 마리아의 추종자들과 악마의 부하들 사이에 은밀한 증오와 혐오감을 심어주셨다. 두 군대처럼 그들은 확연히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며 그들은 서로에게 어떠한 자연스런 매력이나 호의를 느끼지도 않는다.

사탄의 자식들, 세상의 후원자들은 – 이 두 진영은 같은 종족이다 – 카인이 동생 아벨을 그리고 에사오가 동생 야곱을 박해하였듯이 하늘의 여왕께 속한 이들을 항상 박해해왔다.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혹하게 박해할 것이다. 카인과 에사오는 바닥 없는 구덩이의 자식들을 대표한다. 아벨과 야곱은 선민, 뽑힌 이들을 대표한다. 마리아는 겸손한 분이시기에  교만의 천사를 언제나 정복하실 것이며 또 그 오만의 샘인 머리를 짓밟으실 것이다.

마리아는 악심을 품고 방심한 이들을 노리며 품 속에 숨어있는 뱀을 당신 자녀들에게 항상 알려 주실 것이며, 도한 마리아는 악마의 계략이 당신 자녀들에게 해를 끼칠 수 없도록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세상 마지막 때까지 마리아는 단신의 자녀들을 악마의 발톱과 마수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마리아의 권능은 특히 세상 마지막 날에, 사탄이 그분의 발 뒤꿈치를  물려 할 때 드러날 것이다. 마리아의 발뒤꿈치란 그분의 겸손한 종들, 즉 그분의 극악무도한 원수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군대에서 이용하시게 될 미소한 자녀들을 뜻한다. 그들은 작고 비천하고, 육체에 의해 짓밟히는 발뒤꿈치와 같이 세상 사람들 눈에 가난하고 미약한 자로 보일 것이며 겸손한 자들이다.

그렇지만 우리 성모님의 발뒤꿈치를 구성하고 있는 이 미소한 이들은 성모님이 그들에게 주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부유해질 것이다. 그들은 아주 거룩한 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열성 때문에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능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마리아와 일치하며, 발뒤꿈치의 겸손으로 악마의 머리를 깨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할 정도로 막강한 힘으로 무장될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알려지고, 더 많이 사랑 받고, 더 큰 영예를 누리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이 일은 만일, 뽑힌 이들이 성령의 은총과 빛으로 내가 다음 장에서 제시할 실천을 이해한다면 성취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그들이 신앙이 허락하는 만큼 선명하게 이 사랑스러운 바다의 별을 보게 될 것이며, 마리아는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지고하신 여왕의 위대함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은 마리아의 부하, 사랑의 종으로 자신들을 완전히 봉헌할 것이다. 그들은 마리아의 자애, 온유함과 모성적 보살핌을 즐기게 될 것이며, 그들은 자녀들이 자기의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소박하게 마리아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자신이 얼마나 많이 마리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깨달을 것이고 그들은 마리아의 자비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은 마리아를 자신들의 소중한 변호인으로 여겨 모든 일에 있어 그분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마리아가 예수님께 가는 가장 짧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쉬운 지름길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마리아의 아드님께 속할 수 있기 위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마리아께 내어 맡길 것이다.

누가 이러한 마리아의 추종자들, 자녀들, 부하들 및 종들이 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이가 될 것인가?

그들은 주님의 시종들로서 하느님 사랑의 불꽃을 곳곳에 점화시키는 횃불이 될 것이며 그들은 지극히 능하신 하느님의 엄니 손 안에 쥐어져 있는 화살처럼 그분의 적들을 관통할 날카로운 화살과 같을 것이다. 그들은 혹독한 환난의 불로 깨끗이 정화되고 하느님께 가까이 밀착되어 있는 레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사랑의 황금과 그들의 정신 안에 기도의 향료와 그들의 몸 안에 자아포기의 몰약을 지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는 곳마다 가난한 이들과 겸손한 이들에게 예수님의 향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가들, 부유한 이들, 교만한 이들과 세속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고약한 악취를 안겨줄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숨결에 의해 움직이는, 큰 천둥과 더불어 공기를 통해 떠도는 구름이 되어 지상의 어는 것에도 매여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으로 인해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전혀 걱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영원한 생명의 비를 쏟아 부어 줄 것이다. 그들은 죄에 대항하여 공격할 것이며 그들은 폭풍으로 세상을 꾸짖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번개로 악마와 그 군대들을 내려칠 것이다.

그들은 그날(來世)의 진정한 사도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실 것이며 그들을 통하여 기묘한 일들을 해내실 것이다. 주님은 당신의 원수들을 무력화시킬 힘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다른 봉사자들 한 가운데서 금이나 은 없이 그리고 근심 없이 살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구원사업을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비둘기의 은빛날개를 달게 될 것이며 그들의 발자국에는 애덕의 순금을 새겨 넣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애덕, 가난, 겸손과 세속에 대한 경멸의 발자취를 따를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께 이르는 오솔길을 보여줄 것이며 세속의 기준이나 두려움 또는 염려에 의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사람도, 그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든지 또는 얼마나 지독히 무서운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의 쌍날을 가진 칼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입 안에 지니고 다닐 것이며 그들의 어깨는 십자가의 피로 물들인 깃발을 휘날릴 것이다. 그들은 오른손에 십자가를 왼 손에는 묵주를 움켜질 것이다. 예수와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은 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절제와 자아포기가 몸에 배어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장차 나타날 위대한 사람들이다. 마리아께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태어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신자들, 우상 숭배자들과 이슬람교도들의 왕국을 거꾸러뜨리고 그곳에 하느님의 왕국을 확장시킬 수 있으며, 또 하느님의 원수들을 쳐부수어 하느님의 지배하에 둘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시편 40,1) 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침묵을 지키고, 기도하고, 열망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제4장 
우리의 궁극 목표이신 그리스도

 

 

지금까지 우리는 성모 신심의 필요성을 논의하였다. 이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모 신심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전에 먼저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탁월하고 견고한 신심을 비추어 줄 몇 가지 주요 원리들을 밝혀 보기로 한다.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참 하느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신심의 목표이고 목적이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거짓 신심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만물의 시작이시고 마침이시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와 마지막 자를 따서 표현하는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알파요 오메가이시다. 사도 바오로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준 대로, 우리의 유일한 사업은 모든 이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되게 해주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온전한 충만, 모든 은총, 모든 덕, 모든 완전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홀로 우리의 스승, 우리의 주인, 우리의 머리, 우리의 귀감, 우리의 의사, 우리의 목자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이고 우리가 믿어야 할 진리이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이시다. 그분은 만물 안에 계시는 우리의 모든 것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에 다른 어떠한 이름도 결코 우리 구원을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속량, 우리의 완성,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일체의 다른 근거를 마련해 주시지 않았다. 이 견고한 돌 위에 세워져 있지 않은 건물은 무엇이든 약한 모래 위에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기에 스스로 지탱할 수 없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 결합되어 있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든 시들고 잘려 나가며, 다만 불에 태워지기에 적합할 따름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우리는 단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늘과 땅, 또는 지옥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는 무든 일이든 해 낼 수 있다. 성령과 더불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해 낼 수 있다. 성령과의 일치 안에서 우리는 성부께 흠숭을 드리고, 우리 자신을 완전한 자로 만들며 우리 이웃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그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효과적이며 참다운 성모 신심을 정립한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마리아의 아들에 대한 완전한 신심을 더 잘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데에 확실하고 쉬운 길을 찾고자 할 따름이다. 만약 성모 신심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도 신심을 약화시킨다면 우리는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보여준 대로 또 앞으로 더 명확히 제시해 줄 것인데, 그 반대가 진실이다. 성모 신심이 활력이 넘치는 것이 되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알며, 사랑하고 충실히 섬겨야 할 것이다.

 

“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여기서 저는 잠시 당신께 기도를 드리고자 하나이다!”

제가 당신의 지극히 엄위 하신 대전에서 제 불만을 호소하게 하여 주소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또 이들 가운데 가장 박학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를 알지 못하나이다. 오,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 어머니와 영원히 함께 계시고 어머니는 당신과 함께 계시나이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 없이 존재하실 수 없나이다. 당신의 어머니는 은총을 통하여 당신 안에서 완전히 변화되셨으므로 더 이상 홀 몸이 아니시나이다. 저의 예수님, 당신께서는 홀로 당신의 어머니 안에서,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 안에서보다도  훨씬 더 완전하게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만일 당신께서 당신 어머니 안에서 받으시는 영광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인간이 알기만 한다면, 당신과 당신 어머니에 대해 온전히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옵니다. 당신 어머니는 빛이 태양과 그리고 열이 불과 결합되어 있는 것보다 더 친근하게 당신과 결합되어 계시나이다. 당신 어머니는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보다 더욱 당신과 친밀하시나이다. 당신 어머니는 다른 모든 피조물들이 당신께 드리는 사랑보다 더 큰 열정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더욱 완전히 영광을 당신께 드리시나이다.

저의 흠숭하올 스승님, 제 호소하는 소리, 불평에 계속 귀 기울이소서. 저는 진심에서 불평을 토로하나이다.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무지를 확인한다는 것,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의 영광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는 어둠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고 또 놀랄 일이 아니겠나이까? 저는 당신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마리아에 관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우상 숭배자들과 이교도들을 두고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옵니다. 저는 당신과 당신의 성교회를 떠났기에 당신의 것이면 무엇이든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이단자들과 설교자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저는 가톨릭신자들과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일부 학자들을 두고 당신께 불만을 토로하고 있나이다!

그들은 당신의 추종자, 당신의 제자, 당신의 교사라 스스로 자처하나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당신도, 당신의 어머니도 알지 못한 채 따분하고, 지루하고 빈약하고 영감이 없는 방법으로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에 관해 왈가왈부 하나이다. 그들은 교회의 진리들로부터 감동받지도 못하고 심지어 흥미조차 느끼지 않으면서도 그 진리들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체 하나이다! 그들은 많은 것을 가르치지만 마리아에 관해서 그리고 우리가 마리아에 대해 지녀야 하는 신심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나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성모 신심을 남용하지 않을까, 그 신심을 실행함으로써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하나이다!

주님, 이 사람들은 당신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성모 신심을 확산시키는 겸손한 자들을 거슬러 반대의 소리를 드높이나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리아를 사랑하는 이들을 침묵시키려 하나이다. 그들은 주님의 여종, 창조주의 가장 뛰어난 걸작품, 성령의 사랑스런 배필, 당신의 티없이 깨끗하신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관한 너무 많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반박하는 수천 가지의 이유들을 내세우나이다! 온 민족이 마리아를 사랑하고 공경해 드리라고 독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성모 신심은 근절 되어야 한다고 권유하나이다.

주님, 이 사람들은 당신의 사랑하올 어머니를 거스르면서도 당신의 천사인양 처신하나이다. 그들은 성모 신심이 당신께 대한 신심을 약화시킨다고 말하나이다. 결국 그들은 당신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나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 당신을 사랑하였다면, 당신의 어머니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그들은 거만스럽게도 묵주기도와 스카풀라 에 대한 신심까지도 배격하나이다.

상상력도 없고, 건방지고, 교만한 이 사람들은 이런 신심들이 오로지 나약하고 유약한 자들, 무식하고 미신을 좋아하는 자들에게만 적합한 신심이라고 말하나이다. 그들은 불행하게도 ‘이런 따위의 어리석은 짓’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나이다. 그들은 묵주기도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를 변화시키려 애쓰나이다. “묵주기도를 잊어버려라. 그대신 일곱 가지 참회 시편을 외우라” 고 그들은 말하나이다. 그들은 성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불쾌감을 표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기도하라고 명하나이다.

감미로우신 주님, 마리아의 사랑하올 아드님, 이 사람들이 어떻게 당신을 기쁘게 해줄 수 있나이까? 당신의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하지 않는 자가 당신의 마음에 들 수 있겠나이까?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실제로 당신께 대한 신심을 방해하나이까? 마리아께서 당신께 드려야 할 공경을 단 한 번이라도 당신에게서 빼앗아 가신 적이 있나이까? 마리아께서 당신 자신을 위한 한 파벌을 가지고 계시나이까? 마리아께서 당신께 있어 완전한 이방인이시옵나이까?  우리가 마리아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당신을 분노케 하는 일이옵나이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마리아께 내어 맡기고 또 마리아를 사랑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당신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옵나이까?

주님,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의 모친에 대한 신심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끝까지 방해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학자들의 생각과 편견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소서. 저를 보호하여 주소서. 또한 당신께서 당신의 어머니께 대해 가지시는 감사와 사랑의 감정들을 제게 조금 나누어 주시어, 제가 당신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당신을 본받는 정도에 따라 당신을 한층 더 사랑하고 현양 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제가 지금까지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께 공경을 드리며 한 마디 말도 드리지 아니한 것처럼 이제 제게 당신의 어머니를 합당하게 찬양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물론 당신의 원수이기도 한 당신 어머니의 모든 원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데 올라가 제가 ‘하느님의 어머니를 무시하거나 성나게 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입으리라는 희망을 갖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라고 외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제가 당신의 자애에 힘입어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 대한 참된 신심을 행할 수 있도록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도 당신을 열렬히 사랑할 수 있도록 온 세상이 성모 신심에 열중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이 같은 목적으로 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기도를 당신께 바쳐드리옵니다.”

 

“그리스도님, 당신은 저의 거룩하신 아버지, 저의 인자하신 하느님, 저의 위대하신 임금님, 저의 착하신 목자, 저의 유일하신 스승님, 저의 가장 좋으신 후원자, 저의 지극히 아름다우신 애인, 저의 살아계신 빵, 저의 영원하신 사제, 저의 본향으로 이끄시는 인도자, 저의 참다운 빛, 저의 성스러운 기쁨, 저의 곧은 길, 저의 찬란한 지혜, 저의 순수한 단순함, 저의 평화로운 조화, 저의 완전한 보호자, 저의 좋은 몫, 저의 영원한 구원이시나이다.

오, 예수 그리스도님, 사랑하올 주님, 왜 저는 당신을 사랑하였나이까? 왜 저는 일생 동안 오로지 당신만을 애타게 바라왔나이까? 예수님, 저의 하느님, 제가 당신과 함께 있지 아니한 곳이 어디였나이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외치고 싶나이다. ‘저의 온갖 열망이여, 뜨겁게 달아올라 주 예수님께로 흘러 들어 가거라. 달려 가거라! 너희는 너무나 오랫동안 머뭇거려 왔다. 이제는 너희가 찾고 있는 분을 직접 찾아 나서라! 지금 너희의 발걸음을 서두르라! 오,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단죄 받게 하여 주소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쓰라림을 충분히 겪게 하여 주소서!

오, 감미로운 예수님, 제가 당신의 찬양에 적절한 모든 좋은 느낌을 갖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 맛들이고, 당신을 찬양하게 하여 주소서.

제 마음의 하느님, 저의 몫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제 마음이 신실하여 당신께서 제 안에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당신 사랑이 살아있는 숯이 제 영혼 안에 불타올라 당신의 사랑을 밝히는 강한 횃불로 켜지도록 하여 주소서. 당신의 사랑이 제 마음의 제단 위에 끊임없이 불타게 하여 주소서. 당신 사랑의 열기가 제 존재 깊숙한 곳을 달구어 주소서. 당신 사랑이 제 영혼의 가장 은밀한 데서 타오르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제 목숨이 다하는 날, 제가 당신으로 인해 온전히 타버린 한 줌의 재로 발견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아멘.”

 

내가 여기에 이 놀라운 기도를 기술한 것은, 여러분이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가 찾아야 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간청하기 위한 기도를 매일 바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와 마리아의 종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량을 위하여 맡으신 역할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해있지 않고 온전히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당신의 ‘피’ 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차지한 당신의 지체 및 종들로서 그분께 속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세례 받기 전에 악마의 종으로 생활해 왔다.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종이 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얻은 이익을 그리스도께 바쳐드린다는 이 유일한 목적을 위하여 살고, 일하며 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서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전리품이고 쟁취된 백성이고 유산이므로 우리의 영혼 안에서 그분께서 다스리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놓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교회의 밭에 은총의 수로를 따라 심어지고 계절마다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에 비유하시고, 또 그리스도께서 그 줄기가 되시며 좋은 포도송이를 맺게 하는 포도나무의 가지에 비유하신다. 또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번식되고 양식을 장만해야 하는 양에 비유하시며, 또 그리스도가 그 경작자이시며 스스로 씨앗을 배가시켜 풍성한 열매를 내야 하는 기름진 농장에도 비유하신다. 그리스도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자신의 달란트 를 숨겨 두었거나 낭비한 쓸모 없는 종을 단죄하셨다. 이 비유들만 보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열매, 얼마간의 선업을 기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행은 오로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에페 2, 10) 창조되었다. 이 성서 말씀으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선행의 유일한 원리이자 궁극 목표이심은 물론이고 또한 우리가 고용인으로서 뿐 아니라 사랑의 종으로서도 그리스도를 섬겨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좀 더 설명해 보기로 하자. 이 세상에서는 섬기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어느 누군가에게 소속되는 방식이 있고 또 누군가의 권위에 예속되는 방식이 있다. 하나는 급료를 받는 고용인이 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종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는 어떤 한 사람이 잠시 동안, 보수나 이익 또는 다른 어떤 종류의 보상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종살이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한 주인에게 일생 동안 스스로를 옭아매거나 얽매이게 된다. 그는 전적으로 예속되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보수를 주장할 수도, 어떠한 보상도 추구할 수 없다. 그는 말이나 소처럼 재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종살이에는 세 가지 종류, 즉 본성의 노예, 힘의 노예, 의지의 노예 또는 자발적 노예가 있다. 첫 번째 의미에서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종들이다. “주님의 것이로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시편 24, 1) 이기 때문이다. 악마와 단죄 받은 이들은 두 번째 의미의 종들이다. 의인과 성인들은 세 번째 의미에서 하느님의 종들이다.

자발적 종살이는 가장 완전한 종류의 종속이고 하느님께 가장 큰 영광이 되는 종속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요구하신다. 하느님의 이름은 “마음의 하느님” 곧 사랑하는 의지의 하느님이시다. 이 종살이를 통하여 우리는 비록 본성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지 않을지라도 만유 위에 하느님과 하느님께 대한 섬김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고용인은 그 자신의 존재와 소유 및 획득 물 모두를 자기 고용주에게 주지 않는다. 그러나 헌신적인 종은 그 자신의 존재와 소유 그리고 모든 희망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넘겨준다. 고용인은 보수를 요구하지만, 헌신적 종은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수고하든,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든, 얼마나 큰 이득을 그의 주인에게 갖다 바치든 상관없이 요구하지 못한다. 고용인은 다른 고용주를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헌신적 종은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권리를 전혀 갖지 않는다. 고용주는 자기가 고용한 종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그를 죽일 권한을 결코 가질 수 없으나, 주인은 자신의 종을 팔거나 살해하는 일이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는 물론 여기서 노예와 관련한 이교도법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인은 잠시 동안만 일하지만 헌신적 종은 영원히 수고한다.

이 땅 위에서는 종살이가 다른 사람의 권력 하에 가장 완전하게 스스로를 예속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발적 종속에 스스로 참여하며 그리스도와 마리아에게 기쁜 마음으로 묶이기를 바란다. 이 점에 있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므로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표양을 보이셨다. 또한 마리아 역시 스스로 주님의 하녀, 여종으로 자처하심으로써 그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성 바오로는 자랑스럽게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 불렀다. 그리고 성서에서는 더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되고 있다.

라틴어 ‘servus’의 본래 뜻인 노예는 오늘날의 뜻과 정확히 같지 않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자발적 종들이 아무도 없었고, 노예들, 또는 봉사하는 자유인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리서> 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servi(복수) 또는 servus(단수) 단어 대신 mancipia (노예)를 사용하였다. mancipia는 단 하나의 뜻 곧 ‘노예들’ 이라는 의미만을 지닌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는 명예만을 간청하면서 고용된 종으로서 뿐 아니라 사랑하는 종으로서 그분께 속하고 또 그분을 섬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례가 악마의 노예였던 우리의 상태를 그리스도의 ‘노예살이’ 로 변화시켰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존속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악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절대적인 의미로 예수께 대하여 진술한 바를 상대적인 의미로 마리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당신의 삶과 죽음, 영광 그리고 하늘과 땅 위에서 누리는 권능의 뗄 수 없는 동반자로 선택하셨으므로 당신의 위엄과 당신 자신의 본성에 의해 누리시는 모든 권한과 특권을 은총에 의해 마리아에게 주셨다.

본성에 의해 하느님께 속하는 모든 것은 은총에 의해 마리아의 소유가 된다고 성인들은 설명한다. 따라서 하느님과 마리아, 두 분은 하나이며 같은 권능을 그리고 하나이며 같은 의지를 지니시므로 동일한 부하와 동일한 종과 동일한 노예를 가지신다고 성인들은 덧붙여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다 완전하게 예수님의 종이 되려면 우리 자신을 마리아의 종이 되게 해야 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기 위하여 활용하신 방편이시다. 마리아는 우리가 애착하게 될 때에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떨어지게 할 수 있을 여타의 피조물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분이시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 우리를 더욱 가까이 데려가실 것이다. 마리아의 가장 강렬한 바람은 우리를 당신의 아드님께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아드님께서 가장 열렬히 바라시는 바는 우리가 마리아를 통해 당신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주 성자를 기쁘게 해드리고 흠숭을 드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여왕의 종이 된다면 이 일이 위대한 왕에게 큰 기쁨과 명예가 되는 것과도 같다. 이런 까닭에 교부들과 성 보나벤투라 는 교부들을 따라서,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길은 곧 마리아와 더욱 친근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 안셀모, 성 베르나르도, 성 베르나르디노와 성 보나벤투라가 단언하듯이 거룩한 동정 마리아께서는 하늘과 땅의 높으신 여왕이시므로 지상의 피조물 만큼 많은 부하들과 종들을 거느리시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보라, 마리아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하느님의 권능에 종속되어 있도다. 다시금 보라. 하느님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동정 마리아의 권능에 속해 있도다!” 그렇다면, 강압에 의해 종이 된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사랑의 종들, 즉 마리아의 종이 되기로 선택하는 종들도 많지 않겠는가?

도대체 어떻다는 것인가? 사람들과 악마들은 자발적인 종들을 가지고 있는데, 마리아께서는 아무 종도 없다는 말인가? 보통 임금은 자기 명예를 위하여, 자기 여왕이 종들을 거느리고 그들에 대해 생사권을 행사하도록 조처하는데, 만왕의 왕이시며 모든 아들 중 가장 탁월한 아들이신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어머니가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사실을 후회하시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시는 것이 아하스에로스가 에스텔을, 다윗이 바쎄바를 사랑하고 존경하였던 것보다 덜하다는 말인가? 누가 감히 그렇게 생각하거나 또는 상상조차 하겠는가?

이제 내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왜 내가 그토록 명백한 사항을 입증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만일 몇몇 사람들이 마리아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의 처신에 대해 저항한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결실이고 영광이시므로 우리는 스스로 예수의 종으로 자처해야 할 것이다. 이 둘은 같은 사항이 아닌가?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앞으로 계속 논의하게 될 신심을 통하여 우리가 완벽하게 행하는 것이다.

 

 

 

 

제5장 
우리의 중개자이신 마리아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죽기 위하여 마리아가 필요하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행위들은 보통 우리의 인간다움을 타락시키는 악에 의해 더러워지고 부패된다. 우리가 불결하고 악취가 나는 그릇 안에 깨끗하고 맑은 물을 담거나 또는 포도 수확기에 의해 더러워져 있는 물통에 포도주를 담을 때, 좋은 물과 좋은 술은 오염되고 만다.

하느님께서 인간 영혼의 그릇 안에 하늘의 이슬, 맑은 생수 또는 하느님 사랑의 맛 좋은 술인 당신의 은총을 부어 주시더라도 하느님의 선물들은 가끔 원죄와 본죄가 그 안에 남아있는 나쁜 향기로 인해, 또는 죄의 그늘이나 악한 의향과 나쁜 찌꺼기로 인해 더러워진다. 우리의 행위들은 아주 고상한 덕으로부터 생겨난 행동일지라도 죄의 찌꺼기에 의해 오염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완덕에 도달하려면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나쁜 요소를 모두 비우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한히 순수하시고 우리 영혼 안에 있는 가장 미소한 더러움까지도 극히 싫어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일치하려 하시지도, 우리를 쳐다보려 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우리 자신을 비우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성령의 빛을 통하여 정확히 우리가 어떠한지를 충분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악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좋은 행동은 일체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점에 있어서 연약하고 변덕스럽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은총에든 부당하다.

우리의 최초 부모들이 범한 원죄는 나쁜 누룩이 반죽 덩어리를 신맛 나게 만들고 흉하게 부풀리고 더럽히듯이 우리 모두를 타락시켰고, 일그러뜨리고 부패시켰다. 우리가 범한 본죄이든 중죄이든 경미한 죄이든 용서받았을지라도 원죄는 우리의 탐욕, 연약함, 변덕, 자연적 악성을 증가시켰으며, 우리의 영혼 안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우리의 육신은 너무 썩어서 성령께서 “죄에 물든 육체” (로마 6, 6)라 부르신다. 우리의 육신은 죄 중에 잉태되고 죄 중에 양육되어졌기 때문에 무슨 죄든 키울 수 있다. 이것은 오로지 종기, 피부병, 해충과 부패만을 일으키는 무수한 병에 예속되어 있는 육체이다.

우리의 육신에 결합되어 있는 우리의 영혼은 “모든 육체가 자신의 길을 타락시켜 왔다”는 표현처럼 육체와 같다고 말할 정도로 육욕적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정신 안에 있는 자만과 맹목, 마음 속에 있는 허약함과 변덕스러움, 육체 안에 깃든 탐욕과 욕정과 질병들 뿐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공작새보다 더 우쭐대고, 두꺼비보다 더 야비하고, 염소보다 더 비열하고, 뱀보다 더 시기하고, 돼지보다 더 게걸스럽고, 호랑이보다 더 설쳐대고, 거북이보다 더 게으르고, 갈대보다 더 약하고, 바람개비보다 더 변덕스럽다. 우리 자신 안에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단지 허무와 죄 뿐이어서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은 오직 하느님의 분노와 영원한 지옥뿐이다.

이를 감안해 볼 때, 우리의 주님께서 주님의 제자라 자처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고 명하신 것과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요한 12, 25 참조)

아무런 이유 없이 명령을 내리시지 않는 무한한 지혜께서는 오직 우리가 당연히 미움 받아야 하는 이유 때문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라고 명하신다.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 홀로 사랑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당 받아야 할 것은 미움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을 비우기 위해서 날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능력과 우리 육신의 감각이 벌이는 활동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마치 보아도 보지 아니한 것처럼 하고, 들어도 듣지 아니한 것처럼 하고, 이 세상의 것들을 사용해도 사용하지 아니한 것처럼 해야 한다. 만일 땅에 떨어지는 낱알이 죽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죽지 않으면, 또 우리의 가장 거룩한 신심들이 이와 같은 필수적이며 결실 풍성한 죽음에로 우리를 이끌지 않으면, 우리는 가치 있는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우리의 신심은 쓸모가 없게 된다.

우리가 성덕을 쌓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적들은 이기심과 방임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감행할 수 있을 가장 위대한 희생과 행할 수 있는 최상의 행위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흡족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덕행도 없고 공로도 없는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죽어 왔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하느님 안에 묻었던 이들이 알고 있는 그 순수한 사랑의 불꽃을 지니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성모 신심들 가운데서, 이 같은 자아 포기에로 우리를 확실하게 이끌어 줄 신심을 택해야 한다. 그러한 신심은 우리를 위하여 가장 훌륭한 것이며 가장 효과적으로 거룩하게 해줄 것이다. 반짝인다고 해서 그 전부가 금이 아니고, 달콤하다고 해서 그 모두가 꿀이 아니며, 행하기 쉽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한다고 해서 그 전부가 우리의 존재에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자연 안에는 단 시간 내에, 많은 수고를 들이지 않고 적은 비용으로도 터득할 수 있는 비밀이 있고, 또 우리가 보기에 행하기 쉬운 일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총의 질서 안에도 별로 수고하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비결과 쉽게 행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예컨대, 자기 자신을 비우는 일, 우리 자신을 하느님으로 채우는 일, 완덕에 이르는 일 따위가 있다. 내가 밝히고자 하는 실행은 이 은총의 비결들 중 하나이다. 그것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극소수의 열심한 영혼들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극히 적은 사람들이 애호하고 실행하는 신심이다.

그러나 내가 그것에 관해 여러분에게 기술하기 전에, 여러분이 알아 두어야 할 또 다른 진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한 중개자를 통해서 하느님께 접근하는 것이 (이는 더 큰 겸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보다 더 완전하다는 진리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에만 의존하여 하느님께 도달하고자 한다면 – 우리가 부패되어 있는 까닭에 – 우리가 아무리 고상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와 일치시키시지 않고 또 우리의 기도에 응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중개자들을 보내주신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느님은 우리의 비천함과 무능을 익히 아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자비에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 있는 중개자들을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이 중개자들을 무시하는 것과, 그들 중 어느 한 분으로부터의 추천 없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은 겸손 없이 그리고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 대한 존경 없이 나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만왕의 왕을 세상의 보통 임금보다 덜 존경하는 처사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임금을 알현하기 위해 어떤 높은 분에게 요청하지 않고서 직접 세상의 보통 임금에게 감히 접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천주 성부와 더불어 우리의 변호인, 구속의 중개자이시다. 예수를 통해 우리는 기도한다. 우리를 포함하여 투쟁하는 지상 교회의 모든 이들과 승리한 천상 교회의 성인들은 예수를 통해 기도 드리며 우리는 예수를 통해 성보의 지엄하신 대전에 접근한다. 마치 동생 야곱이 부친의 축복을 받으려고 새끼 염소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었듯이 이 성자의 공로를 입지 않은 채 성부 대전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일한 중개자와 더불어 다른 한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순결은 우리가 직접 그리고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와 결합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가?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점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하신 하느님이 아니신가? 그분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또 당신의 성부와 같은 흠숭을 받아 마땅하지 않으신가? 예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당신 성부의 의노를 진정시키고 우리의 빚 문서를 무효화시키고자 원하셨으므로, 스스로 우리의 보석 보증인이 되시고 우리의 종이 되셨으며 그리고 성부와 더불어 계시는 우리의 중개자가 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의 위엄과 성스러움에 대해서도 성부의 그것에 못지 않는 흠숭을 드리고 경외심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성 베르나르도와 함께, 우리는 우리에게 유일한 중개자와 더불어 또 한 중개자가 필요하며 이 중개 직분을 가장 훌륭히 수행할 분은 마리아시라고 크게 외치자, 마리아를 통하여 유일한 중개자는 우리에게 오셨고, 따라서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는 유일한 중개자에게 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엄위 때문이든 혹은 우리 죄의 비열함 때문이든 그리스도께 직접 나아가기가 두렵다면, 우리의 어머니시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도움과 전구를 간청하자. 마리아는 선하시며 온유하시다. 마리아 안에는 준엄함도, 무서워할 것도, 엄청나게 고상한 것도 그리고 너무 눈부신 것도 전혀 없다.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순수한 본성을 본다. 마리아는 찬란한 빛으로 우리를 현혹시킬 수 있을 태양이 아니다. 마리아는 태양의 빛을 받아 조절하고 우리의 희미한 감지 능력에 적응시키는 달을 훨씬 더 닮으셨다.

마리아는 사랑이 충만하시므로 당신의 전구를 간구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아무리 악한 죄인일지라도 결코 내치지 않으신다. 모든 성인들이 증언하고 있듯이, 신뢰와 끈기를 갖고 마리아께 의지하는 사람들 중에 도움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부탁을 한 번도 거절하시지 않을 정도로 마리아는 하느님 대전에 능력이 있으시다. 마리아는 기도하면서 성자 앞에 나타나시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단숨에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느님은 당신을 잉태한 품, 당신을 키워낸 가슴, 당신을 기도로써 찬양한 입술과 눈에 의해 항상 굴복 당하신다.

이 모든 것은 성 베르나르도와 성 보나벤투라가 증언한 내용이다. 이 성인들에 따르면 우리는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하여 세 계단을 밟아야 한다. 우리의 미천함에 가장 친근하고 가장 적합한 첫째 계단은 마리아이시다. 둘째 계단은 성자이고 마지막 계단은 물론 천주 성부이시다. 성부께 나아가려면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중개자이고 우리의 구세주이신 성자께 먼저 가야 한다. 또한 성자께 나아가려면 우리의 중개자이고 우리의 전구자이신 마리아에게 먼저 가야 한다. 내가 이제 곧 기술하려는 신심을 통하여 이 질서는 완전히 보존된다.

우리의 나약함을 감안할 때,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들은 보존하기가 어렵다.

하늘과 땅보다 더 가치 있는 하느님의 보물들은 아주 빈약한 그릇, 즉 한숨으로도 동요되고 위축되는 변덕스런 영혼과 타락한 육체 안에 보관되어 있다. 교활한 도둑인 악마들은 우리가 공격에 대비하고 있지 않을 때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탈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노리면서 쉬지 않고 우리를 지켜본다. 그들은 우리 주변을 배회하며 우리를 먹어 삼키기 위하여 공격한다. 우리는 한 번의 범죄로 수십 년을 두고 쌓아온 모든 공로와 은총을 한 순간에 잃을 수 있다.

악마의 적의와 계략 및 그의 명령 하에 있는 무수한 악령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같은 끔찍한 상실을 겪지 않을까 두려워하도록 만든다. 우리보다 풍성한 은총을 누리는 사람들, 높은 성덕을 쌓은 사람들, 여신생활에서 보다 풍부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은 방심한 가운데 그같이 사로잡히고 약탈당해 왔다. 아, 얼마나 많은 레바논의 삼목들이 무너져 왔는가! 얼마나 수많은 강렬한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 찬란함을 잃어 버렸는가! 그 같은 재앙의 원인은 무엇인가? 은총의 부족이 아니라 겸손의 결핍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강하다고 자부하였고 더 자만하였다. 그들은 자신이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집이 하늘의 은총을 보호하기에는 충분히 튼튼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자신의 금고가 온갖 탈취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고 믿었으며, 그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너끈하게 보호할 수 있을 만큼 대담하다고 자처하였다. 그러므로 지극히 의로우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셨고 그들이 약탈당하도록 허용하셨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들이 참다운 성모 신심을 알았더라면 그 자신의 모든 보화들을 마리아께 내맡겼을 것이고, 능력 있고 신실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이 보화들을 당신 자신의 것처럼 보존해 주셨고 또 모든 원수를 거슬러 그것들을 지켜주셨을 것이다.

성덕 안에 항구히 머물기는 어렵다. 그것은 세상의 불가피한 타락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 모두를 더럽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불결하다. 수도자들의 마음조차 진흙이나 흙탕물은 아닐지 몰라도 먼지로 더럽혀져 있다.

만일 우리가 급류에 떠밀려가지 아니하고 견고하게 머물러 있다면 이는 기적과 다름 없다. 해적의 횡포로 뒤끓는 거센 바다를 난파당하거나 가라앉거나 해적들의 공격을 받지 아니한 채 항해라 수 있다면, 혹은 흑사병이 만연한 시골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면, 이것 역시 기적과 다름없다. 그런데 마리아야 말로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마리아께서는 당신을 올바로 섬기는 자녀들을 위하여 기적을 이루어 내신다.

이 점이 명백하므로, 이제 우리는 마리아께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 참다운 심심을 확실하게 선택해야 한다.

 

 

 

 

제6장 
거짓 신심

 

우리를 쉽게 바보로 만들 수 있을 거짓 신심은 예전보다 오늘날 훨씬 더 많다. 음흉한 사기꾼이며 위조자인 악마는 자신의 교활한 협잡으로 무수한 영혼들을 파멸시켜 왔다. 악마는 그의 꾀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부 그릇된 기도들과 그의 영향 하에 만들어진 일부 외적 신심들이 가장 좋은 ‘신심’이라 믿게 함으로써 그들을 속이고 서서히 죄로 유인한다.

보통 위조범은 위조화폐를 본뜨는 데에는 거의 수고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별 소득이 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는 금이나 은을 대신하여 통용될 수 있는 물건을 원한다. 악마는 좀체 가짜 신심에 대해 고심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와 마리아께 대한 금은과 같이 참되고 가치 있는 신심에 자신의 악한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거짓 신심들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하여 그것들을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일은, 모든 참된 성모 신심들 가운데 우리가 채택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완전한 것, 즉 성모님의 마음에 가장 흡족한 것, 하느님을 위해 가장 영광스러운 것, 우리자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성화시킬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성모 신심과 관련하여 일곱 가지의 거짓 신심과 신심가들이 있음을 찾아냈다. 나는 비방하는 신심, 소심한 신심, 외형적 신심, 가식적 신심, 변덕스런 신심, 위선적 신심, 이기적 신심 등 일곱 가지로 분류한다.

비방적 신심가들은 통상 거만한 학자들, 즉 강한 자존심과 자만심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자신의 마음에 푹 빠져 동정 마리아께 어느 정도의 신심을 가질 수 있으나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사랑을 보여주려고 이용하는 가장 겸손하고 단순한 방법들을 반대한다. 그들은 동정 마리아께 힘입어 일어난 모든 기적과 이야기들을, 심지어 수도회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는 그런 것들과 믿을 만한 작가들에 의해 기술되어 있는 그런 것들까지도 불신한다. 그들은 마리아의 그림이나 조각 앞에서 누군가가 무릎을 꿇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또 이런 행위를 우상숭배라 치부한다. 그들은 자신들에 관한 한 공적 시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공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이가 교회의 교부들이 마리아께 대해 진술한 내용들을 언급할 때면 비웃는다. 성인들은 허풍장이 거나 아니면 단순한 일장 연설가 라고 그들은 말한다. 또한 그들은 성인들의 진술을 사악한 뜻으로 가득 찬 말이라고 비꼬아 말한다.

이 거짓 신심가들, 교만하고, 비방적이고, 세속적인 이들은 대단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들은 성모 신심에 막대한 해를 입힌다. 또 그들은 자주 그 신심의 ‘남용’을 근절시킨다는 명분 하에, 다른 이들의 열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소심한 거짓 신심가들은 그 자신이 마리아를 공경함으로써 마리아의 아들을 모욕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마리아를 들어 높임으로써 그분의 아들을 비하시키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한다. 그들은 위대한 성인들이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찬양하였듯이 사람들이 찬양 드리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다. 그들은 성체 제단보다 성모 제단 앞에서 사람들이 무릎 꿇는 것을 목격하고는 두 제단이 상반되는 것처럼 그리고 마리아께 기도하는 이들은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머지 분노하며 폭언을 한다.

이들은 그의 친구들이 하늘의 여왕에 대해 많이 말하는 것도, 또 자주 도움을 청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외친다. “왜 그렇게 많이 묵주기도를 바치는가?” “성모 신심단체와 그 밖의 신심회가 왜 그렇게 많은가?” “이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그것은 종교를 겉치레로 만드는 처사이다.” “진실한 것을 갖기로 하자. 예수 그리스도께 신심을 갖도록 하자.” 그들은 자신의 모자를 벗지도 않고 그리고 머리를 굽히지도 않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 “오로지 예수님만을 설교하자. 이것이야 말고 견실한 신심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단 한 분 뿐인 중개자이시다.”

그들이 예수님께 관해 말하는 것들은 맞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더 큰 선을 육성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함으로써 예수님의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제지하려고 그것을 적응시키는 방식에서 우리는 악마에 의해 설정된 교활한 덫을 간파할 수 있다. 우리는 마리아께 공경을 드릴 때에 한해서 더 큰 공경과 흠숭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만 마리아에게 가는 것이다. 거룩한 교회는 성령과 더불어 먼저 마리아께 그리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 찬미를 드린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이는 성모님이 그리스도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도 아니고, 그리스도와 동등하시기 때문도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가장 야비한 이단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께 찬미 드리기 위하여 먼저 우리가 마리아를 찬양해야 함은 진실이다. 우리는 모든 참된 성모 신심가들과 함께 소심한 거짓 신심가들을 혼란 시키자.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외형적인 거짓 신심가들은 마리아 신심을 오직 외적인 전시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내면적 정신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이 같은 종류의 것을 즐긴다. 그들은 무수히 묵주기도를 드리지만 급히 서둘러 바칠 뿐이다. 그들은 아침에 몇 대의 미사에 참여하지만 성의를 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열정도 없이 종교행사에 곧잘 참가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개혁하지도 않고, 자신의 욕정을 억누르지도 않으며, 또는 마리아의 덕을 본받으려 하지 않고서 각종 성모 신심 단체에 가입한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본질을 맛들이지 않으면서 형식, 장관, 전시를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적 실행 동안 ‘느끼지’ 않았다면 그 자신은 어떤 일도 ‘행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혼란에 빠져 있고 모든 것을 놓쳐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이따금 생각난 듯이 기도를 건성으로 바친다.

세상은 이런 류의 사람들로 넘친다. 이런 사람들은 외적 실행을 전연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신심의 본질에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 진정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을 공박하는 데에는 재빠르다.

가식적인 거짓 신심가들은 자신의 악덕에 사로잡힌 죄인들이다. 혹은 그들은 그리스도인, 마리아의 자녀라는 이름만으로 그냥 살아가는 속물들이다. 마리아께 열심한 척하면서 그들은 교만, 탐욕, 부정, 취태, 분노, 불경, 비방과 온갖 종류의 불의를 숨긴다. 그들은 자신의 나쁜 습관에 빠져 안일한 삶을 산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수고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묻는다. 그들은 마리아께 열심하지 않는가? 그들은 열심 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을 용서해 주실 것인가? 그들은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각종 성사를 받지 않고 죽지 않을 것인가? 그들은 틀림없이 성사를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단죄 받지 않을 것인가? 그들은 단죄 받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생각날 때마다 묵주기도를 바치고 간혹, 주일마다 단식을 하며 그들은 성모 신심회에 가입되어 있지 않는가? 그들은 스카풀라 또는 그 자신이 마리아께 속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팔찌를 착용하고 있지 않는가? 어떤 이들은 이따금 성모소일도를 바치기까지 한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그들의 신심은 악마의 속임수 그리고 그들을 지옥에 처형시킬 수 있을 가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들은 곧이 듣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착하시고 또한 우리를 단죄하기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고 그들은 응답한다. 최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죄인일지라도 임종 때 참회의 선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들은 반박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집하고 자신의 위험에 스스로를 완전히 붙들어 둠으로써, 꾸민 이야기이든 실제 이야기든 상관하지 않고 – 그들에게는 이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이 보인다 – 중죄 중에 죽은 죄인들까지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기묘한 방법으로’ 구해 내신 사실에 대한 이야기로써 자신들의 흐트러진 자세를 변호한다.

이 가식적인 거짓 신심가들은 일부 죄인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켜져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죄 받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거나 들었다. 이 전설에 따르면, 성모님이 그렇게 해주신 까닭은 가련한 죄인들이 생전에 얼마 동안 당신에게 매일 기도 하였거나 특정 성모 신심을 실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가식적인 신심가들은 마리아께서 그 자신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일을 해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이 같은 가식보다 더 혐오스런 것은 전혀 없다. 그것은 악마적인 것이다. 거듭 범하는 자신의 죄로써 마리아의 아드님을 무자비하게 모욕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처형하는 자가 그분의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진실되이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우리 주님께 대한 신심 다음으로,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거룩하고, 또 가장 근본 되는 성모 신심을 그와 같이 남용하는 것은 끔찍스런 신성 모독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용서받기가 가장 어려운 최악의 신성 모독죄는 중죄 중에 성체를 영하는 것이다. 가식적인 신심가가 범하는 죄는 그 다음으로 중한 죄이다.

진정으로 마리아께 신실 하려면, 모든 죄를 피하는 일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할지라도 절대 필요한 것은 아님을 나는 인정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적어도 – 주의 깊게 나의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 – 모든 중죄를 멀리해야 하고 또 죄짓지 않도록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또는 우리는 일부 성모 신심회에 가입하고, 묵주기도를 매일 바쳐야 하며 다른 성모 신심을 이행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죄인들의 회개에, 가장 무딘 마음을 지닌 죄인까지도 회개시키는 데에 놀라운 도움이 된다. 만일 여러분이 그와 같은 죄인이라면, 만일 여러분이 한 발을 심연 속에 이미 빠뜨리고 있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이 모든 일을 해보라고 충고하는 비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한 유일한 단서가 있다. 즉 여러분의 죄를 참회하는 은총, 훌륭한 고백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은총, 그리고 여러분의 악습을 극복하게 해주는 은총을 얻으려는 지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변덕스런 거짓 신심가들은 이따금 또 자기 자신의 일시적 기분에 따라 성모님께 열심히 보이는 이들이다. 때때로 그들은 열정적이고 때로는 미지근하다. 하늘과 땅 위에서 가장 사랑 받으시는 성모님께 봉사하려고 무슨 일이든 하려고 덤비는가 하면, 때로는 성모님께 기도 하는 것조차 귀찮아 여기기도 한다.

그들은 단번에 모든 성모 신심을 다 받아들이고, 마리아와 관련한 모든 신심회에 가입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 단체나 신심회의 규칙과 기도를 소홀히 한다. 그들은 달과 같이 변한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들을 초생달처럼 밟고 서 계시는 것이다. 그들은 마리아의 신실하고 변함없는 종과 부하가 되기에는 변덕스럽고 부적합하다.

그토록 많은 기도, 아주 많은 신심 행위를 떠맡지 않은 것이 더 낫다. 성실과 사랑으로 신심행위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약간의 신심을 선택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위선적인 거짓 신심가들은 지극히 순결하신 동정녀의 깃발을 흔들어 댐으로써 다른 이들이 자기 영혼의 추함을 보지 못하도록 감추려고 애쓴다.

이기적인 거짓 신심가들은 성모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는 해도 성모님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더욱 열심인 자들이다. 그들은 성모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기를 원한다. 그들은 소송에 이기기를 바라며 어떤 위험이나 어떤 정당한 처벌을 피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질병에서 치유되기를 원한다. 그들에게는 요구 사항이 많은데, 이것들이 없으면 그들은 마리아에 대해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이런 사람들 및 다른 모든 거짓 신심가들은 하느님께도,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께도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 같은 사람들 대열에 속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모든 것을 비방하고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이들, 성모 신심이 많다고 두려워하는 이들, 본질이 아니라 껍데기에만 관심을 가진 이들, 자신의 죄 중에 썩어가고 있으면서도 성모님의 인자와 자비에 의지하고 있는 체 하는 이들, 자신의 취향과 기분에 따라 바람개비처럼 흔들거리는 이들, 마리아의 제복을 걸쳐 입거나 마리아의 찬란한 푸른 깃발을 휘날리면서 오로지 그 자신이 착하다고 남들이 어리석게 생각하도록 꾀하는 이들, 오직 하늘의 여왕께 무언가를 간청하거나 요청하기 위해서만 나아가는 이들 속에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제7장 
참된 신심

 

방금 거짓 신심가들을 밝혀내고 단죄하였으니 이제 참된 신심, 즉 내면적이고, 부드럽고, 거룩하고, 항구적이고, 이타적인 신심에 관해 기술할 차례이다.

참된 신심은 마음과 정신에서 우러나오므로 내면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동정 섬모님께 대해 가지는 공경심과 그분에 관련해 품어 왔던 고귀한 이상 그리고 그분에 대해 지니는 사랑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다.

참된 신심은 애정 넘치고 또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느끼는 것처럼 신뢰로 가득 찬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 육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성모님을 찾고, 또 언제 어디서든 만사에 있어서 마리아의 도움을 간청하도록 재촉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의심을 떨쳐버리고 잘못을 뜯어 고치며 우리가 올바른 길로 계속 나아가도록 성모님께 간절히 청하게 해준다. 그것은 온갖 유혹을 이겨내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성모님께 탄원하며 약해지려는 순간에 힘이 되어 주시기를 성모님께 빈다. 그것은 우리가 쓰러졌을 때 성모님이 당신 자녀처럼 우리를 들어 올려 주시도록 부르짖게 해준다. 그것은 우리가 절망에 부딪쳤을 때 성모님이 우리를 격려해 주시기를 빌며 또 망설임 에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고통과 비애 속에서 위로해 주시기를 독려한다. 참된 신심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영적 사정에 있어서 주저 없이 성모님께 달려가도록 해주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성모님을 성가시게 만들거나 성모님의 아들이신 하느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조금도 품지 않고 성모님께 달려가도록 북돋아 준다.

참된 신심은 우리를 마리아의 덕행을 본받고 죄를 피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마리아의 깊은 겸손, 활기찬 신앙, 완전한 순명, 꾸준한 자아 포기, 줄기찬 기도, 천상적 순결, 불타는 애덕, 영웅적인 인내, 천사적 온유, 초자연적 지혜 등 성모님의 열 가지 주요 덕을 본받을 수 있도록 촉구한다.

참된 신심은 우리가 우리의 신심을 유지시켜 주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도록 재촉하므로 항구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선행을 강화하며 그것은 세상의 유행과 여론, 육체의 욕망과 번민, 악마와 그 유혹에 맞서 극복해 내는 용기를 준다.

마리아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변덕스러운 자가 아니다. 그는 음울하지 않고, 소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가끔 실수도 한다. 간혹 다른 때보다 열의가 식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그의 어머니에게 손을 내뻗는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이 알았던 ‘맛’과 ‘감’을 간혹 잃기는 하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전혀 영향 받지 않는다. 그는 자기 육체의 느낌들이 아니라 예수와 마리아께 대한 신앙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이다.

참된 신심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추구하지 않고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만을 찾도록 촉구하므로 사심이 없는 것이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이득이나 획득의 정신으로써도 그리고 영혼이나 육신을 위해서도 자기 애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마리아가 봉사 받기에 가장 합당한 분이시기에 마리아를 섬기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고 딸이며 거룩한 배필이신 까닭이다. 하느님 홀로 유일한 근거이시며 하느님께서는 마리아 안에서 사랑 받으신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마리아가 자신에게 잘 해주시기 때문이거나 그 자신이 마리아로부터 어떤 좋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마리아를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뛰어나게 사랑스러운 분이신 까닭이다. 그는 무미건조함이나 싫증을 느낄 때든, 감미로움이나 열의를 느낄 때든, 언제나 충실히 마리아께 봉사한다. 그는 가나 혼인잔치 때와 마찬가지로 갈바리아에서도 한결같이 마리아를 사랑한다. 그와 같은 영혼은 마리아와 하느님께 얼마나 만족스러우며, 또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영혼은 얼마나 드문가!

그러한 영혼들, 즉 마리아와 예수님을 섬기는 중에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 영혼들이 오래지 않아서 무수히 늘어나리라는 것을 희망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사적 및 공적 자리에서 가르치고 설교해 왔던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성모님께 대하여 많은 사랑을 진술해 왔다. 그래도 나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무식이나 무능 또는 시간 부족 때문에, 마리아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자들을 양성시키기 위한 나의 이 같은 노력 중에 내가 생략해야 할 사항들도 많다.

그렇지만 이 소책자가 고귀하게 태어나는 한 사람의 손에 쥐어진다면 나의 노고는 훌륭히 보상받는 셈이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이 노고를 통해 사람들이 피로써가 아니라, 즉 육신의 뜻이나 인간의 의지로써가 아니라 하느님과 마리아로부터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나의 노작이 성령의 영감과 은총을 통해 내가 기술하고 있는 참되고 견실한 신심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게 된다면, 나는 진정으로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나의 피가 비록 죄에 물들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사랑하올 어머니시고 높으신 여왕이신 마리아에 관해 내가 지금 기술하고 있는 진리들을 마음 속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다면, 나는 성모님의 종들과 부하들 가운데 가장 미소하고 비천한 자로서 심혈을 기울여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충실히 성모 신심을 실행함으로써 마리아께서 나의 배은망덕과 불충실로 말미암아 겪으셨던 갖가지 상실에 대해 보상해 드릴 수 있는 영혼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강산 성향을 감지한다. 나의 마음 속 아주 깊이 새겨져 있고 아주 오랫동안 하느님으로부터 갈구해 왔던 모든 표징들, 성모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녀들과 종들 및 부하들을 지금보다도 더 많이 가지게 되리라는 것을 가리키고, 또한 그들을 통하여 나의 사랑하올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전보다도 훨씬 더 인간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시해주는 모든 표징들을 믿으려는 강렬한 경향을 느낀다.

또한 나는 광분하는 야수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덤벼들어 자신의 무시무시한 이빨로 이 소책자와, 성령께서 이 책의 저술을 위하여 이용하신 나를 물어뜯을 것이라 예견한다. 이 책이 읽혀지지 않도록 그들이 이 책을 갈기갈기 찢지 않는다면 어떤 낡은 지하실이나 견고한 궤짝의 어둠 속이나 침묵 속에 쳐 박아 두리라는 것도 내다본다. 더욱이 그들은 이 책을 읽고 실행하는 이들을 공격하고 박해하리라는 것도 예견한다.

어찌되든 상관없다. 오히려 그렇게 되는 것이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요기를 얻고 있다. 이 예견은 나에게 용기를 그리고 크나큰 성공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는다. 즉 다가오는 미구의 위험 속에서도 예수와 마리아에 대한 사랑 안에 합심하여 세속과 육체와 악마를 대항하여 싸울 용맹한 남 녀 군인들의 막강한 군대가 생겨날 것이다.

읽는 사람은 누구든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든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참된 성모 신심의 내면적 실행들이 몇 가지 있으니, 주요한 몇 가지를 간략히 제시해 본다.

 

마리아를 공경하올 하느님의 어머니로 모시고, 참 하느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다음 높은 분으로 그리고 은총의 걸작품으로 다른 모든 피조물 위에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
마리아의 덕, 특권과 행위들을 묵상하는 것.
마리아의 탁월함을 관상하는 것.
마리아를 사랑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
온 마음을 다해 마리아께 전구하는 것.
마리아께 자신을 바치고 마리아께 일치시키는 것.
마리아의 뜻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는 것.
우리가 우리의 궁극 목표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행위를 시작하고 계속하고 마칠 수 있도록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마리아를 통하여,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와 더불어, 마리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시작하고, 지속하고, 끝마치는 것.
 

 

참된 성모 신심에는 외적 실행들도 있다.

 

성모 신심회에 가입하는 것.
마리아 공경을 위해 설립된 수도단체에 입회하는 것.
마리아를 공공연하게 찬미하는 것.
마리아 공경의 취지로 단식하고, 희사하고, 극기하는 것.
스카풀라와 묵주 또는 마리아께 대한 충성의 표시로 메달을 착용하는 것.
주의 깊게, 열심히, 정성 들여 매일 묵주기도를 5단 또는 15단 전체를 바치는 것.
마리아께서 눈물의 골짜기에서 지내셨다고 여겨지는 나날들을 기리면서 6단 또는 7단의 묵주기도를 바칠 수도 있고, 혹은 마리아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열두 개 별의 화관 또는 마리아가 누리시는 열두 가지 특권을 기념하여 세 번의 주님의 기도와 열두 번의 성모송으로 짜여진 ‘작은 묵주기도’를 비칠 수 있다. 또한 성 보나벤투라가 마리아를 위해 작성한 것이고 다정다감한 느낌을 갖지 않고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인 ‘성모소일도’ 나 ‘작은 시편’을 바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기쁨과 슬픔을 기억하여 열네 번의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또는 다른 신심 기도를 바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를 찬미하며 성가를 부르는 것.
매일 아침에는 마리아에게 무릎을 꿇거나 절을 하면서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이 하루 종일 우리에게 주시려는 은총에 대한 성실한 마음을 갖게 해주기를 비는 뜻으로 “신실하신 동정 마리아님께 찬미 드립니다” 하고 인사 드리고, 밤에는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여왕이시고 어머니이신 마리아님께 찬양 드립니다” 하고 인사 드리며, 마리아를 통하여 하룻동안 범한 죄를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전구하는 것.
성모 신심회를 보살펴 주고, 가능한 때에 마리아의 제단을 장식하고 성모성화나 성모상이 잘 모셔져 있거나 청결을 유지하도록 보살피는 것.
악령을 대적하는 강력한 무리고 성모 상본이나 소품을 지니고 다니는 것.
마리아의 그림을 그리거나, 그리게 하고 또 그 그림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보여 마리아가 더 잘 알려지도록 하는 것.
특별하고 장엄한 방식으로 마리아께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
 

 

그 밖에도 우리를 거룩한 자 되게 해주는 성모 신심의 다른 실천들도 많다. 그런데 그것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우리를 그리스도께 결합시키고, 우리 이웃의 마음을 고양시키려는 순수한 지향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주의 깊게, 열심히, 정성을 들이며, 제멋대로의 방식을 일체 배제하고, 존경심과 절도 있는 몸가짐과 차분한 자세로 그러한 신심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성모 신심에 관한 모든 책을 거의 다 읽었고 또 오늘날의 가장 거룩하고 박식한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지금까지 알아 왔던 종래의 신심과는 다른 신심을 여러분에게 제시하고 싶다는 바람을 진심에서 표명하는 바이다. 하느님을 위해 이보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없다. 이보다 더 철저히 한 영혼이 자기 자신과 이기심을 비리게 해주고, 이보다 더 충실히 하느님의 은총 속에 머물게 해주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영혼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은 보다 더 완전하고 보다 더 쉽게 예수께 그 영혼을 결합시켜 준다. 그것은 하느님께는 더 큰 영광을, 영혼에게는 더 큰 성덕을, 이웃에게는 더 큰 이득을 가져다 준다.

이 신심의 핵심은 내면에 있고 또 내면을 형성시키는 것이므로, 모든 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바깥 문 앞에서 멈추고 안으로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 머물 것이며 소수의 사람들만이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첫 계단에만 겨우 올라설 것이다.

누가 둘째 계단에 오를 것인가? 셋째 계단에 오를 사람은 또 누구인가? 그리고 훨씬 더 높이 올라가서 이 신심을 자신의 영구적인 생활방식으로 만들 수 있을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영으로부터 이 비밀을 계시 받는 이들만이 이 신심의 깊은 핵심을 꿰뚫고 그 안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몸소 이토록 신실한 영혼들을 이끄시어 이들이 덕과, 은총과 빛 안에서 성장함으로써 마침내 그분 안에서 자기 자신들을 변화시키고 그리하여 그분이 지상에서 쌓은 인간성의 충만에 이르고, 또 그분이 하늘에서 누리시는 영광의 충만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2부

 

 

제8장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

 

우리의 모든 완덕이 그리스도께 순응하고 일치하고 봉헌되는 데에 있듯이 가장 완전한 신심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닮게 하고 결합시키고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가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예수를 가장 완전하게 닮은 분이시므로, 당연히 성모 신심은 영혼을 가장 훌륭하게 성자께 바치고 성자와 닮게 해주는 것이 된다. 따라서 영혼이 마리아에게 봉헌되면 될수록 더욱더 예수께 자신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께 대한 우리 자신의 완전한 봉헌은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인 것이다. 내가 가르치고 전파하는 신심이 곧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이며, 나는 이를 세례 서약 및 약속의 완전한 쇄신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 신심은 우리기가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 온전히 속할 수 있도록 마리아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마리아께 그 모든 감각과 지체와 더불어 우리 몸을, 그 모든 능력과 함께 우리의 영혼을, 우리의 선이나 보화 또는 우리가 획득할 모든 좋은 것을, 공로와 덕행과 같은 우리의 내적 자산들과 우리가 행했거나 행할 수 있을 선행을 드려야 한다. 우리는 자연의 질서와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가 가지게 되는 모든 것과, 영광의 질서 안에서조차 우리에게 주어질 모든 것을 마리아께 드려야 한다. 우리는 동전 한닢까지도, 즉 아무것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마리아를 통하여 또 마리아 안에서 예수께 소속되는 영예 이외의 다른 어떠한 보상을 바라거나 요구하지 말고, 영원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선업에는 상이한 가치들이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첫째로 보상, 속죄 또는 속량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통상 죄에 맞갖은 벌을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면제하거나 무효화시키거나 용서해주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기도의 가치로서, 어느 정도 은총의 새로운 척도를 획득하게 된다. 셋째로 공로의 가치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에는 은총을 그리고 미래에는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께 우리 자신을 바치는 이 행위는 우리의 모든 공로와 은총과 덕을 바쳐 드리는 것이 된다. 마리아는 이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줄 수 없는데, 이는 정확히 말해서 이것들은 전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 스스로 성부와 더불어 우리의 보증인이 되신 예수께서만 당신의 공로를 전해줄 능력이 있으시다.

마리아는 우리를 위하여 이들 공로와 은총과 덕을 천국의 튼튼한 궤 안에 보관하실 수 있고 보관하신다. 더욱이 마리아는 그것들을 증가시켜 주시고 그것들이 지니지 아니한 순수한 빛을 더해 주신다 (이 점에 대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다.)

그런데 마리아는 보상이나 속죄의 가치들 뿐 아니라 우리 선업의 기도 가치들까지 활용할 수 있고, 또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그것들을 당신 자신이 원하는 데에 적응시킴으로써 활용하신다.

이 봉헌의 결과는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예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쳐드리고 또 우리가 그분의 어머니를 통해 그것을 바치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으로 그것을 드릴 수 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신심에 의해 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바쳐드린다. 바로 이런 까닭에 성모 신심 이외의 다른 신심들을 통해서는 우리 시간, 우리 선업, 우리 공로와 속죄 행위의 일부만을 드릴 뿐이다. 참된 신심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즉 우리의 내적 보화와 선행으로 매일 쌓아가는 속죄의 보화들을 처분하는 권리까지도 내어 맡긴다. 이것은 수도회들 안에서 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수도생활 안에서 우리는 가난서원에 의해 우리의 지상적 재화들을, 정결서원으로써 우리의 육신을, 순명서원을 통해서 우리의 의지를 하느님께 바쳐드린다. 간혹 우리는 봉쇄서원으로써 신체적 자유를 맡겨드린다. 그러나 수도자는 자기 선업의 가치를 처분하는 권리를 하느님께 내맡기지는 않는다. 수도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귀중하고 소중한 것들, 자신의 공로와 자신의 속죄나 보상행위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

둘째,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 이처럼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봉헌해 온 사람은 더 이상 선업의 가치를 제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한다. 그가 기꺼이 겪든 또는 마지못해 겪든 모든 고통들, 그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마리아에게 속하게 된다. 그리고 마리아는 당신 아드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뜻대로 처분하실 수 있다.

그런데 이 의존은 우리의 생활 상태에서 부과되는 의무들… 예컨대 때로는 미사의 보속 및 기도의 가치를 어떤 특정인에게 양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제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 과 충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봉헌은 하느님의 명령과 각 사람의 상태에 따라 행해지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마리아와 예수께 동시에 우리 자신을 봉헌한다. 예수께서는 완전한 도구이신 마리아에 의해 당신 자신을 우리와 일치시키시고, 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존재를 우리의 궁극 목표이고 우리의 구세주이며 우리의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리아와 예수께 동시에 봉헌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이 신심이 우리에 의해 또는 우리를 위하여 거룩한 세례 중에 발해진 서약과 약속의 완전한 갱신이라 불릴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사를 받기 전에 악마의 노예였으므로 세례 때에 그 자신의 입을 통해서나 부모의 목소리를 통해서 사탄과 그의 모든 행적과 허례허식을 엄숙하게 끊어버리기로 서약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스승이며 유일한 주님으로 모셔왔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의 스승에게 예속되어 있는 사랑의 종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모 신심을 통하여 행하는 바이다.

우리는 악마와 세속과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온전히 예수께 바쳐드린다. 나아가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행하기도 한다. 세례 때에 통상 우리는 대리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바치는 데 반해 이 신심에서는 우리 자신의 인격 안에서 바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우리 자신을 봉헌한다. 우리는 지금 행하고 있는 바에 대한 충만한 의식을 갖고 바치는 것이다.

세례 때 우리는 적어도 명백하게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 우리 자신을 바치지도 않으며, 우리의 선업을 예수께 드리지도 않는다. 세례 후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이 우리의 선업, 기도의 가치를 보관하여, 예컨대 연옥 영혼을 구제하기 위하여, 또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혹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활용할 수 있다. 참된 신심 안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참된 신심 안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 신심에서 우리는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 모든 우리 행동의 가치와 함께 우리 자신을 봉헌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영적 보화들을 분배해주는 데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성 토마스가 말한 대로 세례 때 우리는 악마와 그 허례허식을 끊어버리겠다는 서약을 발한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에 의하면, 이 서약은 가장 훌륭하고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 가장 뛰어난 서약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살아가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신학자들도 똑같은 사실을 말한다. “중요한 서약은 우리가 세례 때 발하는 서약이다.”

그런데 누가 이 서약을 지켜 왔는가? 누가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만드는 이 사건 중에 이루어지는 약속들을 지키고 있는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약속들에 충실하지 아니함을 스스로 입증하지 않는가?

널리 만연된 이 무질서가 어디서 유래하는가? 이러한 약속들과 서약들을 계속 무시하고 망각하고 소홀히 하는 데서, 그리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후원자들을 통하여 맺어온 하느님과의 접촉을 거의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가?

그리스도교의 심각한 무질서를 바로 잡기 위하여 루이드 보네르의 명령에 의해 개최된 세느 공의회는 그같이 만연된 악의 주요 원인이 세례서약을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경시한 데 있다고 단언하였다. 그리고 공의회는 최선의 해결책은 세례서약의 갱신이라고 천명하였다.

세느 공의회의 선언을 충실히 해석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리서는 그같은 서약을 신자들에게 권장하도록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주님이신 분께 그분의 종들처럼 영원히” 얽매여 있음을 상기시키도록 사목자들에게 권장한다.

공의회들, 교회의 교부들과 경험 자체, 이 모든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의 무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최선책은 그들이 세례성사 때 약속한 의무들을 그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과, 그들이 자신의 약속을 실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처럼 완벽한 방법으로, 즉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함으로써 그 일을 실천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내가 “완벽한 방법으로” 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예수께 바치는 완전한 방법을 지적하려는 것이고, 또 그 방법이란 다름아닌 마리아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참다운 신심이 새로운 것이라든가, 또는 “대수롭지 아니한 것” 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없다. 공의회들과 교부들 및 많은 고대 저술가들이 우리 주님께 바치는 우리 자신의 봉헌에 대해, 세례서약의 이 쇄신에 대해,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오던 것이라고,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이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 즉 무관심해도 좋을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질서의 주요 원인과 그 결과로 그리스도인들의 단죄는 이 실천에 대한 소홀 및 무관심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참된 신심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선업, 기도, 사랑 실천과 속죄행위의 가치를 포기하게 해주므로,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도와주거나 우리의 부모, 친구와 은인들을 도와줄 수 없게 해준다고 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 대답해 보기로 하자.

우리와 가까운 이들이나 친한 이들이 우리가 그처럼 남김없이 우리 자신을 봉헌해 온 결과 어느 정도 상실의 아픔을 겪었으리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것을 믿는다면 이는, 우리 자신의 하찮은 영적 이득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익을 이용하시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시고자 그토록 애쓰시는 예수와 마리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모욕하는 짓일 것이다.

우리 선업의 현실적 적응이 마리아의 뜻에 달려 있을지라도, 참된 신심의 실행은 우리로 하여금 남들을 위하여, 죽은 이들이나 산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못하게 막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더 큰 신심을 가지고 기도하도록 독려해 준다. 가령 어떤 부자가 위대한 왕에게 존경을 표시하기 위하여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쳤다고 상상해 보자. 곤궁에 처한 몇몇 친구들을 도와달라고 확신을 갖고 그 왕에게 부탁드릴 수 없겠는가? 왕은 부탁 받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왕을 위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빈털털이가 된 그 사람에 대한 감사를 확실히 표현하는 것이 될 것이므로 기꺼이 그를 도와주지 않겠는가! 예수와 마리아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두 분은 자비를 베풂에 있어서 다른 이들보다 결코 못하시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만일 내가 내 선업의 모든 가치를 마리아에게 드리고 또 마리아가 그것들을 뜻대로 분배해 주신다면, 나는 연옥에서의 체류기간을 단축시킬 방도를 전혀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그곳에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기심으로부터 또 하느님의 자유와 마리아의 너그러운 자비에 대한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이런 반문은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 가령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 그리고 마리아를 통한 예수의 통치만을 염원하고 또 그 영광과 그 통치의 실현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한 영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러분은 그가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이들보다 더 사심 없고 더 관대했다는 이유로 사후 세계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큰 벌을 당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영혼들을 위하여, 성모님과 우리 주님은 이승에서나 저승에서, 다시 말해 자연의 질서에서든, 은총의 질서에서든, 영광의 질서에서든 가장 자비로운 분이시다.

 

 

 

 

제9장 
완전한 봉사

 

이제 우리는 이 신심을 실천해야 하는 동기들, 그것이 신실한 영혼들 안에서 내는 놀라운 효과들, 그것이 요구하는 실행들을 고찰해야 한다.

 

 

첫 번째 동기

 

우리는 이 지상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일보다 더 고귀한 일을 생각해 낼 수 없다. 이 땅 위의 모든 왕들과 황제들이 하느님의 종이 아니라면, 하느님의 가장 미소한 종이 그 통치자들보다 더 부유하고, 더 힘있고, 훨씬 더 고결하다. 그렇다면 최고의 것을 조건 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의 종은 얼마나 부유하고, 얼마나 막강하며, 얼마나 고귀하겠는가! 마리아를 통하여 왕 중의 왕께 자신을 봉헌한 영혼이 바로 그러하다. 지상의 온갖 황금이나 하늘의 온갖 아름다움도 그 영혼에게 다 보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설립되었고 많은 선행을 실행하는 다른 단체들, 신심회들, 형제회들 또는 기타 신자 단체들은 그 회원들에게 남김없이 모든 것을 바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단체는 일정한 실행을 명하고,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기는 하지만 회원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유로이 행할 수 있다. 그리고 단체의 목표를 위해 할애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한 다른 시간은 회원들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가 있다.

그러나 참된 신심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전혀 없다. 우리의 모든 말, 모든 행위, 모든 생각과 고난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깨어 있든 자고 있든, 먹든 마시든, 우리가 큰 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언제든 항상 – 우리는 시간에 구애 받지 말아야 한다 –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진실로 예수와 마리아에게 속해 있다 (만일 우리가 선물을 도로 거두어 간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자유로이 또 기꺼이 선물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하찮은 위로가 아니다.

더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참된 신심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가장 훌륭한 행적 안으로 교묘히 스며드는 일종의 미묘한 애착을 우리에게서 제거하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영웅적이고 이타적인 행위로써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 우리 선업의 모든 가치를 내어 맡기게 되는데, 예수께서는 그 같은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무한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만일 이 세상 안에서조차 예수께서 당신을 위한 사랑 때문에 물질적이며 썩어 없어질 재화들을 버리는 이들에게 수백 배로 보답해 주신다면, 자신의 영적 보화까지도 희생하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결실로 보상해 주시겠는가!

우리의 천상 벗인 예수께서는 아낌없이 당신 자신을, 즉 당신의 몸과 영혼 그리고 은총과 공로를 우리에게 주셨다. 성 보나벤투라가 표현하듯이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 전부로써 나를 몽땅 사들이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순수한 감사의 마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예수께 드려야 함이 당연하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너그러우시다. 우리도 예수께 아낌없이 드리도록 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께서 한층 더 관대하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가 죽을 때에 그리고 영원히 예수께서 죽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동기

 

그리스도인이 보다 완전히 그리스도께 봉헌된 자가 되도록 그 자신을 마리아께 온전히 바치는 일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타당한지 그리고 얼마나 큰 이득이 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또 다른 동기가 있다.

우리의 스승께서는 당신 자신을 포로로서, 살아있는 종으로서, 마리아의 태중에 갇히시는 것이 그리고 당신 생애의 30여 년간 마리아에게 예속되고 순명 하는 것이 더없이 좋은 일이라 판단하셨다. 우리가 이 사실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때 우리 인간의 마음은 어리둥절해 질 수밖에 없다. 강생하신 지혜께서 당신 자신을 직접 내어주실 수 있었을지라도,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지혜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주기를 원하셨다. 지혜는 다른 모든 이들로부터 독립되어 한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모든 것을 당신 어머니의 보살핌에 내어 맡기기 위하여 예속되신 채 한 갓난 아기가 되고자 하셨다.

무한하신 지혜께서는 성부를 영광스럽게 해드리고 인류를 구원하려는 열망에 불타, 이를 위해서 다른 자녀들이 하는 것처럼 생애의 첫 몇 년 동안은 물론이고 30여 년간 당신 어머니께 당신 자신을 예속시키는 것보다 더 좋거나 더 빠른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을 간파하셨다. 그리고 지혜께서는 설교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온 인류를 회개시키는 일에 있어 공생활로 시간을 보내면서 하신 것보다 의존과 종속의 기간 동안에 더 큰 영광을 성부께 드리셨다.

지혜께서는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데 다른 방법을 취하셨겠는가!

예수께서 몸소 실천하신 표양은 그르칠 수 없다. 또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리는 데 있어 마리아께 우리 자신을 예속시키는 것보다 더 훌륭하거나 더 쉬운 방법이 있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성삼위와 마리아께 대한 종속에 관하여 여러분이 읽은 내용을 상기해야 한다. 천주 성부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당신의 성자를 주셨고 지금도 여전히 주고 계신다. 그리고 성부께서는 마리아에 의해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태어나게 하신다. 천주 성자께서는 세상에 주어지시기 위하여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이 되셨다. 성자께서는 하느님과 성령과 결합되어 계시는 마리아를 통하여 여전히 형성 되시고 매일 태어나신다. 성자께서는 오로지 마리아를 통해서만 당신의 덕과 공로를 전달하신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오직 마리아를 거쳐서만 그리스도를 형성시키시고, 또한 마리아를 통해서만 신비체 의 지체들을 형성시키시며 당신의 선물들과 은혜들을 베푸신다.

천주 성삼위의 설득력 있는 표양 들은 많이 있다. 우리가 마리아를 무시하거나 또는 마리아 없이 행동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는 자녀의 도리에 완전히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과연 우리는 마리아에게 우리 자신을 봉헌하지도, 마리아를 통하여 희생제물로 우리 자신을 바치지도, 그리고 우리를 하느님께 내어 맡기기 위하여 마리아께 의지하지도 말아야 하는가?

몇 가지 예를 인용해 본다.

“마리아는 두 자녀를 가지시는데, 즉 하나는 신이시면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또 하나는 순수한 우리 인간이다. 하나는 육신으로 태어난 아들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으로 태어나는 자녀이다” (성 보나벤투라와 오리게네스).

“모든 좋은 것이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오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우리가 받는 것이 희망이든, 은총이든, 다른 천상 선물이든,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가 마리아께 신세지고 있음을 명심하자!” (성 베르나르도)

“성령의 모든 선물들, 덕과 은총들은 마리아의 손에 쥐어져 있다. 성령은 마리아께서 주시고 싶은 이들에게, 주시고 싶은 때에, 주시고 싶은 방식과 분량에 따라 베푸신다” (성 베르나르디노).

“그대는 받기에 부당한 자였다. 그래서 그대가 마리아를 통하여 받을 수 있을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도록 그대에게 마리아께서 주어지신 것이다” (성 베르나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으로부터 직접 당신의 은총을 받기에 부당한 자임을 아신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께서 주시려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도록 마리아에게 그 모든 은총을 주신다. 하느님은 또한 우리가 당신께로부터 받고 있는 사랑, 존경과 감사를 마리아의 손을 거쳐 받아들이는 일이 당신께 영광이 되는 것임을 아신다. 그러므로 성 베르나르도가 말한 바대로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똑같은 통로를 통하여 그 근원이신 분께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하느님을 본받아야 함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곧 우리가 참된 신심에서 실행하는 바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당신께 합당한 모든 감사와 영광을 마리아를 통하여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온 존재와 모든 소유를 봉헌해 드린다. 우리는 주님의 무한한 위엄에 가까이 나아가기에 우리 자신이 부당하다는 것과,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의지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위대한 겸손의 실행이며, 하느님께는 가장 소중한 덕이다. 자기 자신을 들어 높이는 영혼은 하느님을 비천하게 만들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영혼은 하느님을 들어 높인다. 지존하신 분은 거만한 자를 내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당신의 은총을 주신다.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를 낮춘다면, 여러분이 하느님 대전에 나타나기에, 또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에 부당한 자라고 믿는다면,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여러분에게로 오실 것이다. 하느님은 여러분에게서 기쁨을 누리실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도 모르게 하느님은 여러분을 들어올리실 것이다. 이와는 달리 여러분이 중개자 없이 감히 대담하게 하느님께로 나아가려 한다면 하느님은 달아나시고 여러분은 하느님께 이르지 못할 것이다.

겸손한 마음은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소중한가! 참된 신심은 성모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옥좌에 절대 접근하지 못한다고 가르치므로 이 신심이 이끄는 것은 그같이 귀중한 겸손이다. 주님은 자비가 넘치시고, 감미로우시다. 그렇지만 주님 앞에 나서거나, 주님께 말씀 드리거나, 또한 주님께 무언가를 드리려 할 때 주님께 우리 자신을 결합시키고 바쳐드리려면 우리는 성모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 번째 동기

 

성모님은 여러분이 자신을 온전히 당신께 드렸음을 아실 때에 당신 자신을 여러분에게 온전히 내어 주실 것이다. 얼마나 형용할 수 없는 황홀함인가!

마리아는 여러분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푸실 것이고 여러분은 당신의 공로로 단장하실 것이며, 여러분을 당신의 능력으로 지탱시키시고 당신 빛으로 비추실 것이다. 마리아는 당신 사람의 불로 여러분을 태우실 것이며 여러분 위에 당신의 모든 덕, 겸손, 믿음, 순결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주실 것이다. 마리아는 여러분에게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다. 마리아는 당신의 성자와 더불어 여러분과 온전히 하나 되실 것이며 그 결과 여러분은 더욱 소중한 자가 될 것이다.

봉헌된 자가 온전히 마리아의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그의 모든 것이 되신다. 그리고 우리는 성 요한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 바를 그에게 적용시켜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 27).

그 결과 진실한 영혼은 성모님께 대한 탁월한 신뢰와 성모님께 향한 뛰어난 위탁을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한 크나큰 불신과 경멸과 미움을 지니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지향, 의도, 공로, 덕 또는 행위 따위를 따로 가지지 않으므로 그것들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 그 모든 것을 바쳐드렸다. 그가 남겨 놓은 것은 그의 유일한 보화, 곧 마리아 뿐이다.

이제 그는 비굴한 두려움 없이 망설이지 않고 주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대단한 신뢰를 갖고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 또한 신심 깊은 루페르 수도원장이 한 말씀을 마리아께 아뢸 수 있다. 이 수도원장은 야곱이 천사와 겨루어 승리를 거둔 사실을 암시하면서 이같이 말하였다. “오, 마리아님, 저의 여왕님이시여,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더없이 깨끗하신 어머니시여, 저는 사람이시며 하느님의 말씀이신 당신의 아드님과 겨루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그러나 제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당신의 공로로 무장하여 겨루고자 하나이다.”

훌륭하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공로와 사랑으로 치장된 그 사람은 예수님 앞에서 얼마나 막강한 힘을 지니겠는가!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가 사랑으로 전능하신 분을 정복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선업을 하느님께 드렸을 때, 마리아는 그것들을 정화시키고 아름답게 만들며, 하느님의 뜻에 맞갖은 것으로 만드신다. 마리아는 그것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이기심의 모든 오점들과 우리 인간의 가장 고결한 행위들 안에까지 몰래 스며드는 온갖 흠들을 제거해 내신다. 성모님의 순결한 손은 그 자녀들이 봉헌하는 것들에 닿는 순간에 그것을 깨끗하게 하고 완전케 한다. 마리아는 당신 자신의 완덕으로 그것들을 치장하심으로써 한층 더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신다.

이는 마치 왕의 환심을 사기를 원하는 어떤 농부가 자기의 전 재신인 사과 한 개를 여왕에게 갖다 바쳐서 여왕이 그것을 왕에게 가져다 주는 것과 같다 하겠다. 감동적인 봉헌물을 은혜로 이 받아들인 여왕은 아름다운 황금 접시에 그것을 담아 다시 왕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사과는 정확히 왕에게 바쳐질 물건은 아닐지라도 그에게 바쳐지기에 합당한 선물이 되는 것이다. 그것 자체는 한 개의 사과일 따름이다. 그러나 황금 접시에 놓여지고 아름다운 여왕의 손에 들려짐으로써 충성을 표현하는 데에 적절한 물건이 되었다.

마리아는 당신에게 봉헌된 선물들을 당신 자신을 위하여 보관하지 않으시고 당신 아드님께 모든 것을 드리신다. 우리가 마리아께 바치는 것은 무엇이든 어김없이 예수께 드리신다. 우리가 마리아를 찬미하고 영광스럽게 한다면, 마리아는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신다. 엘리사벳 이 마리아를 찬양하였을 때 그분은 당신의 찬미가(마니피캇) 를 읊으셨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왕 중의 왕, 지극히 거룩하신 분게 바쳐진 것이 아무리 작고 또는 빈약할지라도 마리아는 모든 것을 각각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이 되게 하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만 매달린 채 주님께 선물을 드릴 경우, 즉 옛날에 하느님의 백성이 자만심에서 봉헌물을 바였을 때 하느님께서 그 봉헌물을 배척하셨듯이 그 선물을 거절하실 것이다. 그 렇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어머니의 순결한 손을 거쳐서 어떤 것을 바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여린 마음으로 바꾼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님께서는 당신 앞에 선물을 가져다 놓은 여인을 눈 여겨 보시지만 그 선물들은 유심히 보시지는 않는다. 주님은 봉헌물을 가져오는 분을 뚫어지게 보시는 만큼 선물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시지 않는다.

마리아는 당신의 아드님에게서 결코 무례하게 취급 당하시지도 않고 결코 질책 받으시지도 않으며, 결코 거절당하시지도 않기 때문에 당신이 바치시는 모든 것이 크든 작든 아드님의 마음에 의합한 것이 되게 하실 수 있다. 성모님이 그것을 아드님께 주신다면, 그 아드님은 기꺼이 그것을 취하신다. 성 베르나르도는 영혼들을 완덕에로 인도하면서 곧잘 이렇게 진술하였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하느님께 바쳐드리기를 원할 떼에 그것이 거절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성모 마리아의 가장 상냥하고 가장 적합한 손을 거쳐 그것을 바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미소한 이들은 위대한 분을 대할 때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중개자를 이용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은총의 질서 안에서 하느님을 대할 때 그와 같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느님은 우리를 무한히 초월해 계신다. 우리는 하느님의 면전에서 미미한 먼지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거절당해 보지 않을 정도로 하느님과 아주 친근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상당히 현명하고 거룩하고, 어느 누구도 결코 거절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시는 변호인을 모시고 있다. 성모님은 모든 것을, 그것이 얼마나 천박하고 얼마나 미소하든 개의치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신다.

 

 

 

네 번째 동기

 

우리가 참된 신심에 신실하다면, 우리의 모든 선업의 가치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이용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지라도 누가 이 같은 목적을 위하여 수고하는가? 왜 우리는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가? 그 까닭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이 어디서 나타나야 하는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거나 또는 우리가 그 영광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성모님은 알고 계신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만 일하신다. 그래서 성모님의 완전한 종과 성모님께 온전히 봉헌될 사람은 자신의 봉헌물을 도로 거두어 가지 않는다면 자신의 모든 생각, 말, 행위가 이 같은 목적을 위하여 이용됨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하고 이타적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관심을 자기 자신의 것들보다 훨씬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어찌 그 같은 확신보다 더 믿음직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제10장
완전한 길

 

다섯 번째 동기

 

참된 성모 신심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뜻하는 길이며, 덕 에로 나아가는 빠르고 완전하고 안전한 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완덕은 그러한 일치일 따름이다.

성모 신심은 쉬운 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셨을 때 여신 길이다. 우리가 예수께 나아가는 데에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다른 길로 하느님과의 일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수한 갈림길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을 위험에 직면할 것이고, 또 극복해야 할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어둔 밤들, 기이한 투쟁들, 가혹한 아픔들도 생겨날 것이며 넘어야 할 험준한 가시덤불들, 건너야 할 무서운 사막들도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마리아의 길은 평탄하고 한결 평화롭다. 실상 이 길에도 엄청난 어려움과 격렬한 전투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성모님은 항상 가까이 계셔서 어둠을 비추시고 의혹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두려움을 물리치시며 갖가지 방법으로 도와 주신다.

예수께 이르는 길이신 동정 마리아는 다른 이들과 비교해 본다면 야생꿀로 채워진 ‘꿀벌나무’와 ‘장미’의 길이시다. 이 길을 걸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성 에프렘, 성 요한 다마스코, 성 베르나르도, 성 베르나르디노, 성 보나벤투라 등 얼마 되지 않는다. 마리아의 신랑이신 성령께서 이 길을 그들에게 계시하셨다. 그러나 다른 성인들 대부분은 성모 신심을 지녔을지라도 다른 길을 걸었다. 바로 이런 연유로 그들은 무수한 위험과 힘든 시련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아의 충실한 종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마리아께 완전히 봉헌된 이 성인들이 그분을 덜 사랑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고 더 큰 시련들을 겪었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모순, 박해, 중상 모략과 증오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내면적 어둠 속을 걷고 한 방울의 천상 이슬로 목을 축일 수도 없는 채 끝없이 보이는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 참된 성모 신심이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을 더욱 쉽게 걸을 수 잇는 길이 되게 해준다면, 왜 성모 신심가들은 그토록 고행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가장 충실한 종들이 마리아의 총애 받는 이들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은혜와 호의를 천상으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더 많은 십자가가 그들의 어깨에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십자가들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용이하게, 더 많은 공로를 쌓으며, 더 큰 영광 속에서 짊어진다. 다른 이들이 쓰러지거나 쉬고 힘을 모으기 위하여 수천 번이고 멈출 때 그들은 멈추지도 않고, 넘어지지도 않는다.

그들이 먹어야 하는 쓰디쓴 약은 성모님의 달콤한 사랑으로 그리고 성령의 신적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들은 마치 그것들을 달콤한 사탕처럼 삼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한 삶을 살고 매일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애정 넘치는 성모 신심 없이는 무거운 십자가를 질 수도 없고, 또는 끝까지 기쁨으로 짊어질 수도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빠른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즐거이 자만과 자율의 기간 동안 보다도 더 큰 발전을 마리아께 대한 복종과 의존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룬다. 하느님의 어머니께 순종하고 순응하는 사람은 원수를 쳐 이기는 영광스런 승리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성모님께 충실한 이를 원수는 그 길에서 탈선하게 하거나 되돌아 가게 하려고 애쓸 것이며 그가 넘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지만 순종하는 사람은 마리아의 도움과 인도에 힘입어 비틀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기 위하여 거대한 발걸음으로 또 짧은 시간 안에 걸으신 똑같은 길 위에서 큰 걸음으로 그리스도를 향하여 전진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대답해 보십시오. 왜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서 그토록 짧은 기간을 보내셨는지? 그리고 어찌하여 이 짧은 기간 중에 그리스도께서 당신 어머니께 대한 순종의 기나긴 세월을 보내셨는지를 답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짧은 세월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긴 삶을 영위하셨다. 아담의 허물어진 집을 보수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삶은 아담의 생애보다 더 길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담은 900년 이상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께 복종하며, 어머니와 일치하여 당신의 천주 성부께 순종하며 사셨으므로 긴 생애를 사신 것이다.

성서는 우리에게 자기 어머니를 존경하는 사람은 보화를 쌓는 사람과 같다고 가르친다. 말하자면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종속시키고 또 모든 것 안에서 복종할 정도로 성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곧 부유한 자가 될 것이다. 그는 매일 보화를 쌓고 있는 것이다.

“짧은 세월 동안 완성에 도달한 그는 오래 산 것과 다름이 없다” (지혜 4, 13)는 성서 구절이 있다. 이에 대한 영적 해석에 의하면, 마리아의 태중에서 젊은 이들은 빛, 성덕, 경험과 지혜에 있어서 성숙해 나가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단시일 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삶의 충만에 도달하게 된다.

성모 신심은 그리스도께 이르고 그분과 결합되기 위하여 우리가 걸어야 할 완전한 길이다. 마리아는 가장 완전한 피조물, 가장 순수하고 거룩한 피조물이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완전하게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길을 택하셨다. 지극히 높으신 분, 모든 이해를 초월하시는 절대자, 감지될 수 없는 하느님, 존재하는 바로 그분께서 겸손한 마리아를 통하여 완전하고 신적인 방법으로 보잘것 없는 비천하고 벌레와 같은 우리에게 내려 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당신 신성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고 오셨다. 그러므로 미소한 우리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완전하고 신적인 방법으로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께로 올라가야 한다.

제한 받거나 한정될 수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스스로를 비천한 마리아에게 완전히 둘러싸이고 속박당하도록 허용하셨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당신 신성을 조금도 잃지 않으셨다.

이와 같이 우리도 미소한 마리아가 우리를 완전히 감싸 안으시고 형성시켜 주시도록 우리 자신을 남김없이 마리아께 바쳐야 할 것이다.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가까이에 오셨고, 친근하고, 완전하게 또 인격적으로도 당신 자신을 우리 인간성에 일치시키셨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의 위엄과 경외를 조금도 훼손당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완전하며, 친근하게, 두려움 없이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결합시켜야 한다.

존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허무에까지 내려오기를 원하시고, 또 이 허무가 존재하는 분이 되기를 원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젊은 처녀 마리아에게 온전히 내어주고 종속시킴으로써 그 같은 일을 해 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시간 안에서 영원으로의 존재를 상실하지 않으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마리아를 통해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은총과 영광에 힘입어 하느님과 같아질 수가 있다. 우리의 자아가 허무로 존속할 수 있을 정도로, 또 미혹 당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일체의 두려움 없이 마리아 안에서 모든 것이 될 정도로 온전히 또는 완전히 우리 자신을 마리아께 내어 드림으로써 하느님과 같아질 수 있다. 그리스도께 이르는 새로운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말하자면 복된 이들의 모든 공로로 포장되고 그들의 영웅적인 덕으로 꾸며져 있는 길, 천사들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길, 여행객들을 인도하고, 도와주고 보호해 줄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로 가득 찬 길, 그러한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만일 그렇더라도 나는 여전히 동정 마리아의 길을 택할 것이다. 거듭거듭 말하지만 나는 더없이 순결한 길, 추호의 결점도 없고 원죄나 본죄도 없으며, 어둠이나 그림자조차도 없는 그런 길을 택하겠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리고 나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당신 영광 중에 당신 뜻에 따라 이 땅에 다시금 오실 때에도, 첫 번째 완전한 방법으로 오셨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오로지 마리아의 길만을 택하실 것이다.

주님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의 차이는, 첫 번째는 드러나지 않고 은밀한 방법이었던 반면에 두 번째는 영광스럽고 찬란한 방법이 되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므로 완전한 방법일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신비가 있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참된 신심은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길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리키는 완덕에 이르는 길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실행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옛 것이지만 우리가 그 기원을 명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700년간 존재해 왔던 것이다. 11세기에 산 클뤼니 수도원장 성 이딜로는 프랑스에서 공적으로 그 신심을 실행한 최초의 인물이다. 베드로 다미아노 추기경은 형제인 복자 마리노가 1016년에 스스로 마리아의 종이 되었다고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는 자기 자신을 마리아께 봉헌한 사실을 드러내는 표지로 목에 끈을 둘렀고 자신에게 채찍질 하였으며, 일정량의 돌을 제단 위에 갖다 놓았다. 그는 그의 영적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그 같은 일을 실행하였다. 그는 그의 봉헌에 너무나도 충실한 결과, 성모님이 그의 임종 때에 그를 방문하셨고 천국에서의 보상을 그에게 약속하셨다고 전해진다.

체사르 볼란두스는 루뱅의 공작의 한 친척, 보티르 드빌라크라는 유명한 기사가 1300년 경에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였다고 전해준다.

성모 신심은 17세기에 공적 행사로 발전하였는데 그때까지 많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신심을 실천해 왔었다. 필립 3세 왕의 설교가 시몬 드 로야스 신부는 스페인과 독일에서 이 신심을 널리 보급하였다. 그는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으로부터 그 신심가들을 위한 광범위한 대사를 얻어 주었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사이고 드 로야스 신부의 친구인 드 로스 리오스 신부는 저술과 설교로써 이 신심의 확산을 도왔다. 그는 ‘히에라르카아 마리아나(Hierrarchia Mariana)’ 라는 두꺼운 책자를 만들어 마리아께 대한 종속의 출중함과 견실성과 역사성을 설명하는 데 놀라운 열심과 학식을 보여 주었다.

테아티노회 신부들은 17세기에 사보이와 시칠리아에서 가끔 이 신심을 퍼트렸다. 예수회의 스타니슬라우스 팔라치우스 신부는 폴란드에 이를 전파하였다. 드 로스 리오스 신부는 그의 저서에서 이 신심을 받아들인 왕들과 왕후들 그리고 추기경과 주교들의 이름들을 언급한다. 슬기와 깊은 성덕을 갖춘 코르넬리우스 아 라피데 신부와 다른 많은 저명인사들도 이 신심을 적극 권장하였다.

프랑스인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존경하고 있는 드베률 추기경은 이 신심을 알리는 데에 아주 열성적인 사람들 중의 한 분이었다. 그는 무수한 간난 고초를 겪었지만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그가 새로운 사상, 미신을 확산시킨다고 고발하였으며 프랑스에 이 신심을 보급하려는 그의 노력을 저지하려고 악마의 후원 하에 무수한 책략을 동원하였다. 그는 놀라운 인내로써 적들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그는 소책자를 출간하여 그들의 반론에 거세게 맞서면서, 성모 신심이 예수의 모범과 예수께 대한 우리의 의무, 그리고 우리가 세례 때에 발한 서약에 근거해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는 마리아께 대한 이 봉헌이 세례서약과 약속의 완전한 쇄신일 따름임을 명확히 밝혔다.

신학자 부동의 저서에서 우리는 성모 신심을 단죄하기는커녕 오히려 승인한 여러 교황들, 이 신심을 검토한 신학자들, 이 신심을 실행한 수많은 신자들의 명단을 보 수 있고 또 이 신심이 직면하고 극복해 낸 여러 박해들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우리는 이 신심이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결코 무너뜨리지 않았으므로 교회로부터 단절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신심은 새로운 거이 아님은 명백하다. 이 신심이 널리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이 신심이 모든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심이 그리스도께 이르는 안전한 길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를 영원한 하느님 아버지께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이 예수의 목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예수께 안전하게 데려가는 것이 마리아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데에 마리아가 혹시 장애가 되지 않을까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온 세상을 위하여 그리고 특별히 우리 각자를 위하여 하느님 대전에서 은총을 충만이 받으신 마리아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은총으로 넘칠 만큼 충만하시고, 또 어떤 의미로 하느님께서 그 안에서 강생되셔야만 했을 정도로 하느님과 온전히 결합되시고 하느님 안에서 변화되신 마리아가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께 완전히 일치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거이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다른 피조물들의 입장은 그들이 아무리 거룩할지라도 간혹 하느님과의 일치를 가로 막는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지치지 않고 거듭 반복하였듯이 마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극소수의 영혼들만이 예수께서 보내신 짧은 생애의 충만한 삶에 도달하게 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마리아가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 속에서 충분하게 잘 형성되시지 않기 때문이다. 멋지게 잘 익은 과일을 원하는 사람은 그런 열매를 내는 나무를 소유해야 한다. 생명의 결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원하는 사람은 그분을 자신 안에 모신 생명의 나무이신 마리아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자기 자신 안에서 성령께서 작용하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하여금 풍성하게 결실 맺게 하시는 분, 곧 성령의 영원한 배필이신 마리아를 가져야 한다.

여러분이 마리아를 응시하면 할수록 더욱더 확실하게 여러분이 마리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을 확고히 믿으시오. 하느님의 아드님은 항상 마리아와 함께 계신다. 여러분의 기도, 묵상, 행동과 고난 중에 마리아께 대해 품는 그와 같은 생각이 반드시 명확하고 뚜렷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생각, 말하자면 무의식적인 생각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천상의 어머니 마리아님, 당신은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잊혀지는 분이 시나이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데 우리를 마리아만큼 완벽하게 도와주는 피조물은 이제껏 하나도 없었으며 또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마리아를 거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리아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은총들을 부실 뿐만 아니라 또한 악마의 망상과 속임수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

어느 누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확고한 표지들 가운데 하나가 그가 성모 신심을 실행하고 있고, 마리아를 가끔 생각하고, 마리아에 관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떤 성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호흡이 육체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명인 것과 마찬가지로 마리아를 생각하는 것과 마리아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부르는 것은 그 영혼이 죽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표지라고 부연하였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는 마리아 홀로 모든 이단들을 퇴치하셨다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비난가들이 그것을 부인할지 몰라도, 마리아를 충실히 따르는 신심가들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한 명도 이단에 결코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속지는 않을지라도 거짓말을 진리로, 악한 영을 선한 영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고, 교정한다. 기도하는 영혼들이 쉽게 지닐 수 있는 착각의 두려움을 제거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로 하여금 온 마음을 다해 이 신심을 실천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는 이 탁월할 길, 강생하신 지혜에 의해 마련될 길로 들어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갈 경우에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은총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고 성령의 향유로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길이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지치지도 되돌아가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빠른 길이다. 그것은 우리를 단 시간 내 예수께로 이끌어 준다. 그것은 진흙이나 먼지가 없는 완전한 길이며 확실한 길이다. 그것은 우리를 곧장 그리고 안전하게 그리스도와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해주며 우리를 좌우로 돌아가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길로 들어서서 밤낮으로 걸어가 마침내 예수께서 이 땅에서 보내신 짧은 세월의 충만한 삶에 도달하기로 하자.

 

 

 

 

제11장
완전한 자유

 

여섯 번째 동기

 

신앙심 깊은 이들에게 참된 신심은 탁월한 내적 자유,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를 준다. 우리는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된다. 예수께서는 종이 되는 우리에게 보상으로, 온갖 비굴한 두려움과 온갖 망설임을 제거해 주신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라고 가르치시며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시고 채워주신다. 예수께서는 또한 우리의 영혼을 따뜻한 자애로 넘치게 해주신다.

나는 이 진리를 줄기차게 입증해 보이려는 열성에서, 1634년 오베르네의 랑제아그에 있는 도미니코 수녀원의 회원으로 성덕의 향기 속에 선종한 예수의 아녜스 수녀의 생애에 있었던 한 사건을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언젠가 아녜스 수녀는 큰 심적 번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가 만일 고통에서 벗어나고 모든 원수들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한다면 자발적으로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한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신심이 무엇인지에 관해 아무런 생각도 못했었지만 예수와 마리아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겼다. 그녀는 쇠사슬을 발견하고 그것을 허리에 감았다 (그것을 죽을 때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를 행하자 즉시 그녀의 모든 고통과 망설임은 멈추었고 평화를 누렸다.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이 신심을 가르쳤는데, 그 가운데는 성 술피스 신학교 창립자 M. 올리에와 그 밖의 몇몇 사제들과 신학생들도 포함되었다.

어느 날 성모님께서 아녜스 수녀에게 나타나 그녀의 목에 황금 목걸이를 걸어 주시고, 아녜스가 당신의 종이 된 것에 대해 얼마나 행복하신 지를 보여주셨다. 성모님은 이 발현 때 체칠리아 성녀를 동반하셨다. 그때에 성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천상 여왕의 충실한 종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참다운 자유를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을 섬기는 것은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일곱 번째 동기

 

참된 신심을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이웃에게 베푸는 선이다. 이 신심에 의해, 우리의 애덕실천으로 부터 또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선업의 보속 및 기도 가치를,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좋은 생각과 조그마한 고통의 그 같은 가치를 이웃에게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적 보화를 쌓는 길에서 얻었고 또 얻게 될 모든 것이 성모님의 원의에 따라 죄인들의 회개나 연옥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것이 곧 완전한 이웃 사랑이 아닌가? 이것이 애덕을 당신의 척도로 삼으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자가 되는 길이 아닌가? 이것이 자만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서도 또 우리의 생활 상태에 의해 마땅히 해야 할 것만을 겨우 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서도,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가련한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방법이 아닌가?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떻게 해서든 꼭 해야겠지만 이 방법을 거쳐서 더 잘 할 수 있다.

이 동기의 탁월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죄인 한 명을 회개시키는 것과 연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을 구출하여 천국에 보내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무한한 선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영혼이 하느님을 소유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천지창조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

우리가 일생 동안 참된 신심을 통하여 한 명의 영혼이라도 회개시키거나 우리 가운데 가련한 연옥 영혼을 한 명이라도 구출해 냈다면 이는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된 신심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도록 만드는 데 충분하지 않은가?

내가 다시금 반복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선업이 마리아의 손을 거침으로써 순수함을 늘이고 또한 공로의 가치를 증가하게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 결과 그 선행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구제하거나 죄인들을 하느님께 회개 시킬 수 있는 더 큰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심 없이 또 진실한 애덕으로 성모님께 드리는 것은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느님의 분노를 진정시키고 하느님의 자애를 얻어내는 데 충분한 힘을 지니게 된다.

아마도, 마리아의 신실한 종은 임종할 때, 참된 신심을 통하여 그 자신이 몇몇의 죄인들을 회개시켰다는 것과 몇몇의 영혼들을 연옥 불에서 구해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일상의 생활 안에서 아주 평범한 의무만을 이행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는 그의 심판의 날에 얼마나 큰 기쁨을 누리겠는가! 또 그가 영원히 누릴 영광은 얼마나 크겠는가!

 

 

 

여덟 번째 동기

 

참된 신심에 대한 가장 강한 매력은 이 신심이 덕에 꾸준히 정진하고, 성모님과 주님께 항구 히 충실할 수 있는 놀라운 길이라는 인식이다.

도대체 왜 그토록 많은 죄인들이 회개한 다음에 다시 죄에 떨어지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덕 있는 사람이 덕과 은총 안에서 꾸준히 성장하지 못하고 가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선마저 잃어버리고 마는가? 그것은 인간이 죄에 물들고, 연약하고 변덕스러운 데다가 자기 자신만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참된 신심 안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마리아를 신뢰한다. 우리는 마리아의 능력에 의존하며 마리아의 자비와 사랑에 기댄다. 우리는 마리아가 우리의 영적 보화들을 순수하게 지켜주실 뿐 아니라 그것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으려고 노리는 모든 원수들의 계략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증진시켜 주시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성모님께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 “성모님, 저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았음을 알고 있나이다. 저는 그 은총들이 당신을 통해 왔음을 알고 있나이다. 그리고 저는 그 모든 것을, 아니 그 부분조차도 받기에 부당함을 알고 있나이다. 그렇지만 제 말을 들어주소서. 저는 이 모든 보물들을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미소하고, 너무나 가련하고, 너무나 비열하고, 너무나 두렵사오니 성모님께서 저를 위하여 지켜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아무것도, 제 자신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겠나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이렇게 적고 있다. “성모님을 따르니 길 잃지 않고, 성모님께 의지하니 실망하지 않고, 성모님을 생각하니 헤매지 않네, 성모님이 붙드시니 떨어지지 않고, 성모님이 감싸주시니 두렵지 않고, 성모님이 이끌어 주시니 지치지 않고, 성모님이 도와주시니 목표에 이르나니.”

성 보나벤투라도 이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성모님은 성인들의 충만함 안에 계속 머무실 뿐 아니라 또한 성인들을 그들의 충만함 안에 계속 머물도록 하시고 지켜주심으로써 충만함이 기울지 않게 해주신다. 서모님은 성인들의 덕이 멀리 사라지지 않도록 그 덕을 보관하시며 성인들의 공로가 없어지지 않도록 그 공로를 지켜주신다. 성모님은 성인들의 은총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 은총을 보호해 주시며 악마들이 성인들에게 약간의 해도 끼치지 않도록 그 둘 사이의 일정 간격을 유지시켜 주신다. 성모님은 성인들이 죄를 지을 때 당신의 아드님이 그들을 내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신다.

마리아는 하와의 불충을 통해 상실된 것을 당신의 충실로써 회복시켜 주실 정도로 신실하신 동정녀이시다. 마리아는 당신께 충실한 이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대한 신실과, 항구 히 신실할 수 있도록 끈기를 얻어주신다. 마리아는 배가 세상의 거센 바다에 난파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견고한 닻에 비유되곤 한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그 같은 닻이 없어서 멸망하였는가!

그런 닻에 고정되어 있는 이들은 모두가 얼마나 행복하고 복되겠는가! 그들은 폭풍이나 난파 때문에 그들의 보화들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해변에 도착할 것이다.

마리아는 노아의 방주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방주의 덕에 신뢰하는 이들은 복되다. 그들은 수많은 목숨을 집어삼키는 죄의 홍수를 위험 없이 헤쳐나갈 것이다. 마리아께서는 “자신의 구원을 이루려고 나에게 오는 이들은 죄짓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상 지혜의 이 말씀을 마리아께 적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불복종한 하와의 불성실한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영원히 신실하신 동정 마리아께 내어 맡기는 이들은 복되다. 마리아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마리아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과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당신께 맡겨준 것을 결코 소홀히 하시지 않고 잃어 버리시지도 않을 것이다.

이토록 좋으신 성모님은 순수한 애덕에서 우리가 당신께 위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언제나 받아들이시고, 도 당신께서 수탁자로서 한번 받아들이신 것을 보관, 계약에 의하여 정의와 책임을 갖고 우리를 위하여 안전하게 지켜주신다. 이는 마치 내가 믿고 천 달라를 맡긴 그 사람이 나를 위하여 그것을 보관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이고 또한 그리하여 만일 그가 소홀한 탓으로 그 돈을 잃었을 경우 그데 대해 내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신실하신 마리아께서는 당신께 맡겨져 온 것이 당신의 소홀로 인해 상실되게 내버려 두실 리 만무하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 수 있으나 마리아는 당신께 신뢰하는 이들에게 소홀히 하거나 불성실하실 수는 없다.

마리아의 가련한 자녀들! 여러분은 지극히 나약하며 지독히도 변덕스럽다. 여러분의 속은 몹시 썩어 있어 아담과 하와의 다른 모든 자녀들처럼 똑같은 부패한 집단에 붙들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여러분을 실망시키거나 좌절시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눈물을 거두고 기뻐하시오. 내가 언급해 온 비밀,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져야 하지만 열심한 이들 가운데서 조차 극히 적은 이들에게만 알려져 있는 비결을 마음 속에 품으시오.

여러분의 보물들을 여러분 자신의 보관소에 맡겨두지 마시오. 그 금고들은 수없이 부서져서 열렸고 그 안에 간직 된 모든 것은 약탈당하였다. 그 금고들은 여러분이 모을 수 있을 보화들을 간수하기에는 너무나 허술하고 너무나 비좁다.

불결하고 악취 나는 그릇에 깨끗한 생수를 부어 담지 마시오. 그리고 나쁜 포도주로 가득 찼던 부대에 맛 좋은 새 술을 담아두지 마시오.

여러분은 나를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좀 더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사랑의 황금을, 순결의 은을, 천상 은총의 물을 또는 공로와 덕의 술을, 부적절하고, 흔하고, 집에서 만든 금고에, 즉 찢어진 부대, 개어진 궤짝, 부서진 병, 썩은 통에 보관해 두지 마시오. 여러분은 밤낮으로 여러분의 튼튼한 상자들을 깨트려서 열려고 기회를 노리는 악마들에게 약탈당할 것이 뻔하다. 아니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기심과 아집의 오염 때문에 하느님의 가장 순수한 선물들을 모조리 망쳐놓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을 마리아께 맡겨 드리시오. 마리아는 성령의 거처, 영과의 장막, 비할 데 없는 지성소이시다. 하느님께서 이 아름다운 그릇 안에 당신 자신을 가두셨으므로 그것은 온전히 영적인 것으로서 영성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영혼들의 영적 거처가 되었다. 그 그릇은 영광과 명예의 장소, 그리고 가장 위대한 성인들의 옥좌가 되었다. 마리아는 황금의 집, 다윗의 탑, 상아의 탑이시다.

마리아께 모든 것을 드리는 사람, 자기 자신을 마리아께 내맡기는 사람, 마리아 안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진정 행복하다! 그는 마리아의 전부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의 전부다!

다윗과 함께 우리는 힘차게 “마리아는 나의 몫이다” (시편 119, 57 참조)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제자 요한과 더불어 우리는 “나는 마리아를 내 집에 모셨다” (요한 19, 27 참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누군가가 내가 과장해서 격한 감정에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애석하게도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것을 전혀 맛들이지 못하는 육적 인간이거나, 성령을 받을 수 없는 속물이거나 또는 오만하고 비평적이고 영혼에 속하는 것을 단죄하거나 경멸하기에 적합한 인물인 까닭이다. 그렇지만 혈육으로나 인간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고 마리아와 예수로부터 태어난 이들은 내가 말해야 하는 진실을 곧잘 알아듣고 잘 소화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 주제로 돌아와 계속 말하지만, 마리아는 사랑이나 자유에 있어서 당신 자신이 남들보다 못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마리아는 달걀 대신에 한 마리의 황소를 (편집자 주: 프랑스어에서는 달걀 단어가 황소 단어와 운이 맞다) 주신다”고 어떤 성인이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만일 한 영혼이 자신을 남김없이 마리아께 내어주면,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고 덕을 실천하려고 애쓰면서 겸허하게 마리아께 신뢰한다면, 마리아는 아낌없이 당신을 그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신성한 종들은 성 요한 다마스코와 함께 이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오,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저는 당신께 신뢰하여 구원받고자 하나이다. 저는 당신의 보호를 받아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겠나이다. 저는 당신의 도우심으로 저의 원수들과 싸워 참패시키겠나이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이들에게 친히 주시는 무기인 까닭이외다.”

 

 

 

 

 

제12장
비유

 

내가 성모님과 그분의 자녀들 및 종들과 하인들에 관해 제시하는 모든 진리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진리를 성령께서는 야곱의 이야기에서 제공해 주신다. 그것은 곧 야곱이 어떻게 부친 이사악의 축복을 받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이사악의 장남 에사오는 자기의 장자 권을 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팔아 넘겼다. 두 형제의 어머니 리브가 는 에사오보다 야곱을 더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야곱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하여 나중에 이 장자 권의 판매를 이용하였다. 그녀는 비밀스럽고 거룩한 책략을 활용하였다.

이사악 은 아주 늙어서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장남 에사오에게 축복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야곱보다도 에사오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데 그는 에사오에게 축복해 주기 전에 맛깔진 식사를 즐기기를 원하였으므로, 큰 아들에게 밖에 나가 사냥으로 잡은 짐승으로 성찬을 마련하라고 명하였다.

리브가는 이 일을 야곱에게 알리고 새끼 염소 두 마리를 잡아 가져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녀는 이사악의 구미에 맞게 요리하였고 에사오의 가장 멋진 외투를 야곱에게 입히고 자신이 죽인 짐승의 가죽을 그의 목과 손에 감싸주었다. 눈먼 이사악은 에사오를 그의 목소리와 외투의 냄새로써 그리고 거칠고 털이 많은 그의 손을 만져봄으로써만 알아 볼 수 있었다.

이사악은 리브가의 계략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목소리가 야곱의 음성임을 알아 차렸지만 손은 에사오의 손이라 믿었다. 그는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 야곱의 외투에서 나는 냄새로 그가 에사오인 줄로 믿고 그에게 입맞추고 축복해 주면서 그에게 “하늘의 이슬과 땅의 풍요”를 빌어주고 그를 그의 형제들을 지배하고 통솔하는 주인으로 세웠다. “뭇 백성은 너를 섬기고 뭇 족속들은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야곱이 나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에사오가 이사악이 간절히 원한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와 아버지의 축복을 간청하였다. 이사악은 그 자신이 당한 책략을 알아차린 즉시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이 일에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였음을 알았으므로 그 자신이 야곱에게 한 축복의 말을 철회하기는 커녕 재확인하였다.

에사오는 분에 떨며 큰 소리로 동생을 욕하고,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축복이 단 하나 뿐인가 하고 부르짖었다(여기서, 교회의 거룩한 교부들에 따르면, 에사오는 하느님과 세상을 둘 다 섬기려 애쓰고 천상의 기쁨과 아울러 지상의 쾌락을 원하는 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이사악은 에사오의 절규에 못 이겨 마침내 그를 축복하였지만, 땅의 축복만을 내려 주었을 뿐이다. 그는 에사오를 야곱의 지배 하에 두었다. 이 일로 인해 털투성이의 에사오는 동생을 죽일 기회를 기다릴 겨를이 없을 정도로 격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야곱은 그의 모친이 충고와 기지(奇智)로 그를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살해당했을 것임이 확실하다(야곱은 장자 권 축복을 샀다. 그러나 에사오는 그가 자기 자신을 조잡하게 속여 축복을 훔쳤다고 생각하였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설하기 전에 우리는 여러분에게, 성서 해석 가들에 의하면 야곱은 선택된 이들, 뽑힌 영혼들과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에사오는 방탕한 아들이나 단죄 받은 이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 우리는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둘의 행위와 처심을 각기 검토할 수밖에 없다.

 

형 에사오는 힘이 세고 건장하고, 무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사람, 사냥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거의 집에 있지 않았다. 그는 대개 집 밖에 있었다. 그는 그 자신의 힘과 기술에만 의지하였다.
그는 어머니를 돕거나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녀를 위하여 한 일은 아주 작거나, 아니면 아예 없었다.
그는 탐식가로 음식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죽 한 그릇에 자기 장자 권을 팔아버렸다.
그는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동생을 시기하고 괴롭혔다.
 

 

다음의 면모들은 사악한 이들의 일상적인 처신이다.

 

그들은 현세사에 있어서 그 자신들의 재간이나 강한 힘을 신뢰한다. 그들은 세상사에 있어서 강하고, 총명하고 재치 있으나 천상의 것에 있어서는 허약하고 무지하다.
그들은 집에서, 즉 하느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거처이며 그들이 그 안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영혼 안에서는 거의 머물지 않는다. 하느님은 당신의 뽑힌 이들 안에 머무신다. 에사오와 같은 사람들은 영적인 것들을 보살피지 않고 내적 신심을 전혀 갖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인들을 소심하고 완고한 사람, 광적인 사람 또는 우둔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에사오의 후손들은 뽑힌 영혼들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별로 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정식으로 마리아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간혹 마리아를 칭송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마리아를 기념하여 일부 신심을 실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마리아를 사랑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마리아를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부 사람들이 마리아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애써 취하는 태도를 비난하고 그러한 신심이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마리아를 미워하지 않고 마리아를 사랑하는 이들을 공공연하게 경멸하고 반대하지 않음으로, 또는 어떠한 느낌도 갖지 않고 자신의 방식들을 고치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면서 마리아의 탁월한 은총 속에 머물러 있고 또 그리하여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사오의 후손들은 죽 한 그릇에, 즉 지상의 쾌락에 자신들의 장자권, 천상의 기쁨을 팔아 넘긴다. 그들은 마시고 , 포식하고, 흥겹게 놀고, 춤추고, 도박하고, 웃고 즐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을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 되게 하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로지 세상사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말하며 오직 현세적 재화, 보상과 명예만을 도모하려 한다.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덧없는 쾌락을 위하여, 연기처럼 사라지는 명성을 위하여, 또는 영속되지 않는 높은 지위를 위하여 그들은 그 자신의 천상적 유산, 세례성사의 은총, 무죄의 옷을 팔아 치운다.
에사오의 자손들은 대체로 야곱의 자손들을 미워하고, 경멸하고, 은밀히 또는 공공연하게 박해하고, 조롱하고, 약탈하고, 파괴하고, 유린하고 또 그 자신들이 현세 삶 안에서 가질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 즉 재화, 권력, 사치와 안락함 따위를 손아귀에 넣기 위하여 저들을 짓밟고 지나간다.
 

 

이제 야곱을 살펴 볼 차례이다.

 

동생 야곱은 에사오만큼 그리 억세지 못하다. 그는 평온하고 온유함의 성품을 지녔다. 그는 자녀의 온순함으로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와 함께 집에 즐겨 머물러 있었다. 그가 집에서 멀리 떠나가 있었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심부름 때문이었거나 어머니가 시킨 일을 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기 욕심을 채우러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그는 어머니와 함게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였다. 그는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을 일은 극구 피하였고 그 자신이 어머니를 돕고 위로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이 때문에 리브가는 그를 자연스레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복종하였고 매사에 있어서 민첩하게, 애정을 갖고 또 불평 없이 어머니의 뜻을 따랐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모든 말을 다 들었고 거기에 반박하지 않았다. 예컨대, 어머니가 그에게 아버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도록 밖으로 나가 두 마리 염소를 잡아 가져오라고 지시하였을 때, 그는 따지지 않고 어머니가 시킨 일을 정확히 이행하였다.
그는 어머니를 신뢰하였고 진정으로 의지하였다. 그는 무언가 필요할 때 어머니에게 가서 미심쩍은 일에 관해서 예컨대, 이사악이 그 자신을 축복하기 보다는 저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을 때 상의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가 그럴 경우에 저주를 스스로 뒤집어 쓸 것이라고 말했을 때 어머니를 믿고 신뢰하였다.
끝으로,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 자신이 어머니에게서 눈 여겨 본 덕들을 본받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가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 이유들 중 하나는, 그 덕들을 터득하고, 실천하고, 또 나쁜 친구들을 스스로 멀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에 진정 합당한 자로 자신을 형성시켰다.
 

 

 

다음의 면모들은 뽑힌 영혼들이 익힌 행동 방식이다.

 

그들은 집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쏟는다. 그들은 일생 동안 그 내면에 영광이 깃들어 있었고 마음의 기도를 무척 사랑하신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마음의 기도에 몰두한다.
물론 그들은 가끔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느님과 성모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리고 자신의 일상생활의 의무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나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외부 활동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자신의 내면적 업적들을 한층 더 귀중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들은 성모님을 따라서 그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는 진보들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완덕의 고귀한 과업에 증진한다. 그들은 다른 모든 과업들이 이 완덕의 과업에 비교해 볼 때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형제 자매들이 세상의 성공과 칭송과 부러움을 사기 위하여 강력한 힘, 놀라운 능력과 거만한 기술을 활용하면서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성령의 빛을 통하여 그들은 그들의 모범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마리아께 대한 완전하고 온전한 예속 안에서 그들의 은신처에 숨어 지내는 데에 더 큰 선, 더 찬란한 영광, 더 실제적인 기쁨이 있음을 간파한다. 그들은 이런 것이 그 자신들에 의해 기적을 일구어 내는 것보다 더 나은 것임을 분명히 안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으리라” (시편 112, 3). 하느님을 위한 영광, 인간들을 위한 보화들은 분명 마리아의 집 안에 있나이다. 주 예수님, 당신의 장막은 얼마나 사랑스럽나이까! “참새도 집을 장만하고, 제비도 제 둥지가 있어 거기에 제 새끼들을 치나이다”(시편 84, 4).

주님, 주님께서 먼저 사셨던 마리아의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나이까!

뽑힌 영혼들은 오로지 이 집 안에서만 주 예수님, 당신께로부터 힘을 얻게 되나이다. 오직 그 안에서만 우리는 이 눈물의 골짜기에서 완덕에로 높이 올라가나이다.

야곱의 후손들은 성모 마리아를 진정으로 공경하고 상냥하게 사랑한다. 말로써는 물론 행동으로도 그들은 마리아를 사랑한다. 그들은 외적으로 뿐 아니라 마음 깊은 데서도 마리아를 공경한다. 그들은 마리아의 마음을 상해 드리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피하고, 그 자신들이 마리아를 기쁘게 해 드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행한다. 그들은 두 마리 새끼 염소가 아니라 이 짐승이 상징하는 것, 곧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마리아께 가져다 드린다. 마리아는 그들이 죄에 대해 죽게 만드실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들이 맛있는 음식을 그리스도께 바쳐드리도록 장만하실 것이다.
마리아는 천상 아버지의 입맛을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더 잘 아시며 아버지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들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더 잘 아신다. 마리아께 바쳐진 그들의 육신과 영혼은 마리아의 보살핌과 전구를 통하여, 천상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봉헌물로 변화될 것이다. 배척 당한 이들은 가끔, 그 자신이 예수를 사랑하고 또 그분의 어머니를 칭송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제물로 봉헌할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야곱의 자손들은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라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시며 그분에게 복종하고 순종한다. 그들은 마리아의 충고를 어김없이 따른다. 야곱은 어머니가 충고하는 대로 따라 행함으로써 거의 기적처럼 축복을 얻어 누렸다.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은 또 다른 예가 된다. 술이 떨어지고 성모님이 예수님께 말씀 드린 후 곁에 있던 잔치 시중꾼들에게 “무엇이든지 이르시는 대로 하게” (요한 2, 5)라고 지시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마리아의 아드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 즉 물을 술로 변화시키는 기적으로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세상 마지막 때까지 마리아께 온전히 순종하는 이들만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또 하느님의 기적으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에사오의 자손들은 복종하지 못하여 축복을 잃어버릴 것이다.
야곱의 후손들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친절과 능력을 신뢰하며 끊임없이 도움을 구하러 마리아께 나아간다. 그들은 마리아를 자신의 인도자, 자신의 고유한 목적지에 데려다 줄 북극성으로 모신다. 그들은 슬픔 중에 자신의 마음을 마리아께로 열고, 마리아의 모성적 포근함으로부터 지치고 아플 때에 힘을 얻고, 또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자신의 죄가 사해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위안을 얻는다. 참으로 놀랍게도, 그들은 순결하고 사랑이 넘치는 마리아의 가슴 안에서 자기 자신들을 잃어버리고 순수한 사랑의 불로 뜨거워지며, 모든 흠에서 깨끗해져서 당신의 충만함을 누리시는 예수를 만나게 된다. 마리아의 가슴은 바로 예수의 영광스러운 옥좌이기 때문이다. 오, 비할 데 없는 행복이여!
에사오의 후손들은 자기 자신들을 신임할 뿐 마리아를 신뢰하지 않는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방탕한 아들처럼, 그들은 돼지의 먹이를 먹으며 두꺼비처럼 흙을 먹고 산다. 그들은 모든 속물들처럼 오로지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쾌락만을 갈구하고 마리아의 따스한 가슴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확실성, 즉 뽑힌 이들이 누리는 절대적 신뢰의 대상을 갖고 있지 않다. 성 그레고리오가 지적한 대로 비참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굶주림을 좋아하고 또 자신 안에 예수와 마리아 안에 깃들어 있는 감미로움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곱의 자손들, 뽑힌 이들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마리아를 본받는다. 이것이야 말로 그들을 진정 행복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곧 그들이 뽑힌 이들 대영에 있음을 나타내는 확고한 표지이다. “행복하여라, 나의 길을 지키는 이들!” (잠언 8, 32) 마리아의 덕을 실천하고 은총의 도움으로 일생 동안 마리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형세에 사는 동안 성모님이 그들에게 베푸실 은혜 덕분에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들은 동정 어머니를 아주 가까이에서 따라가지 않는 이들보다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는 순간에 더욱 행복할 것이다. 마리아는 그때에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으로 향한 달콤하고 평온한 여행길을 보장받는다. 마리아께서 그들을 천상 왕국으로 몸소 이끄실 것이다.
마리아께 충실한 이들이나 마리아를 본받고자 애쓴 이들 중에는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았다!

에사오의 후손들, 버림받은 이들, 오만한 자들은 살 때든 죽을 때든 그리고 영원히 비참을 겪는다. 그들은 마리아의 덕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 성모님, 당신의 신심을 남용하는 이들과 당신 아드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얼마나 불행하고 또 저주 받고 있는지요! ‘당신의 명령들을 떠나 헤매는 자들, 저주 받은 자들이니 이다.’ 그렇지만, 오 성모님, 당신께 대한 거짓 신심을 멀리하고 당신의 길, 당신의 제안, 당신의 명령에 계속 신실한 이들은 얼마나 행복한 지를 제가 온 마음을 다해 말하게 하소서!”

 

 

 

제13장
비유에 대한 해설

 

마리아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마리아는 진실로 그들의 어머니이시므로 그들을 사랑하신다. 그들은 뽑힌 이들이므로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마이라는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야곱을 나는 사랑하였지만, 에사오를 미워하였다.” 그리고 마리아가 그들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자신들을 온전히 마리아께 봉헌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리아의 몫이고, 유산이다. “이스라엘 안에서 상속을 받아라” (집회 24, 8).

마리아는 모든 어머니의 온화함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부드러움으로 그들을 사랑하신다. 여러분이 세상의 다른 모든 여인들의 모성애를 한 여인의 마음 속에서 발견한다면, 여러분의 자녀는 진정 사랑하는 여인을 찾은 셈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 상상 속의 여인이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신다.

마리아는 감정으로써는 물론이고 행동으로써도 그들을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사랑은 야곱에 대한 리브가의 사랑처럼 적극적이고, 능률적이며, 보다 효과적이고, 보다 능동적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성장시켜 주고, 그들을 부유하게 해주는 기회들을 활용하는 데 민첩하시다. 마리아는 하느님 안에서 장차 다가올 모든 선과 불행, 사람들에게 닥쳐 올 모든 축복과 저주를 꿰뚫어 보실 때에, 당신 자녀들을 악에서 지켜주시고 그들에게 선을 부어주시면서, 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배려해 주신다. 어떤 성인은 “마리아께서는 우리의 일들을 몸소 보살펴 주신다” 고 말한 적이 있다.

마리아는 당신 자녀들에게 탁월한 충고를 해주시고 그들이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당신께 봉헌하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신다. 마디라는 그들에게 당신의 성자를 사랑하고 복종하며 그분의 모범을 따르라고 가르치신다. 마리아는 친히 말씀하시지 않을 때에는 천사들을 사절로 보내시고, 이 사절들은 마리아께 순종하는 데서 가장 큰 기쁨을 누린다.

그들이 마리아께 자신들의 육체와 영혼을 그리고 그 자신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바쳐드렸을 때, 좋으신 어머니는 무엇을 하시겠는가? 옛날에 리브가가 야곱이 자기에게 가져온 두 마리의 새끼 염소를 가지고 행한 일들을 하실 것이다. 마리아는 자기 자녀를 ‘죽이고’, 옛 아담의 삶에 대해 죽게 만드신다. 마리아는 자녀의 ‘자연적 가죽’, 즉 그이 성향, 자애심, 억지와 피조물에 대한 애착을 벗겨 주신다. 마리아는 자녀의 ‘결함’ 즉 그의 야비함과 죄들을 깨끗이 해주신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입맛에 맞게 또 하느님의 가장 큰 영광을 위하여 자녀들에게 옷을 입혀주신다. 마리아 홀로 하느님의 기호가 어떤지를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가장 큰 영광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아신다. 마리아 홀로 실수를 일절 범하지 않고, 무한히 고귀한 하느님의 취향에 맞게, 또 무한히 감추어져 있는 신적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다듬고 꾸미실 수 있다.

우리가 일단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소유를 완전히 봉헌하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만, 이기심과 억지의 누더기를 벗어버렸다면, 우리가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앞에 나타날 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마리아는 우리에게 새 옷을 입혀주실 것이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새롭고, 아름답고 향기 나는 에사오의 옷들, 말하자면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의 옷을 입혀주신다. 마리아는 그 옷들을 영원히 가지고 계신다. 마리아는 언제나 그 옷들을 당신 뜻대로 처분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반복해서 말한 대로, 마리아는 당신 아드님이 쌓으신 모든 공로와 덕의 보관자이고 분배자이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식에 따라 그것들을 베풀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리브가가 야곱의 목과 손을 어린 염소의 가죽으로 감싸 주었던 것처럼, 마리아는 당신 자녀들을 당신 자신의 업적 가치와 고로로 덮어주신다. 마리아는 자녀들에게서 온갖 불완전함과 더러움을 씻어주시고, 은총이 그들 안에서 일구어 놓은 선을 지켜주신다. 마리아는 그 선을 향상시켜 그들의 목과 손의 장식과 힘이 되게 해주신다. 말하자면 주님의 멍에를 목에 맬 수 있는 더 큰 힘을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그들의 동료들의 구원을 위하여 수고하는 손에 더 능란한 기술을 주신다.

마리아는 당신 자신의 옷장, 즉 하늘로 영광스럽게 들어 높여지시기 전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바라셨던 덕과 공로로부터, 이 옷들과 장식물들에 새로운 향기, 새로운 은총을 주신다.(이 내용은 한 거룩한 수녀에게 계시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든 자녀들, 모든 하인들과 모든 종들은 성자의 옷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모든 가족들은 이중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은 ‘추위’, 즉 파멸된 자들이 심판관이신 예수 앞에서 벌거벗은 채 쐐야 할 매서운 바람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마리아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축복을 얻어주신다.그들은 야곱처럼 어린 자녀들로서 또는 입양된 아들 딸로서 그 축복을 누릴 천부적 권리나 자격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 각자에게 새로운 옷을 입히고, 우리의 얼굴을 빛나게 하여 아버지께로 데려다 주신다. 아버지께서는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것이 죄인의 음성임을 즉시 알아차리신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리아가 입혀준 가죽으로 감싸인 손을 만지고 느끼시며 외투의 향기를 들이 마시신다. 그리고 아버지는 마리아가 장만하신 음식을 기꺼이 받으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죄인 안에 있는 당신의 성자와 당신의 사랑하는 딸의 공로를 보시고, 그에게 이중 축복을 베푸신다.

이사악처럼 하느님은 천상에서 내리는 이슬의 축복과 땅에서 나는 비옥함의 축복, 즉 하느님 은총의 축복과 일상적 빵의 축복, 충분한 분량의 땅의 재화를 베푸신다. “그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도다.”

아버지는 이 축복받은 이들을, 버림받은 이들과 파멸된 이들 및 불행한 이들을 지배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 이 사실은 지나가는 현세 안에서 언제나 뚜렷한 일이 아니다.  “악한 이들이 언제까지나 무례한 말들을 지껄이며 뽐낼 것인가?” 그리고 “나는 악인들이 들여 높임을 받고 현양 되는 것을 보아 왔노라.” 이런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축복받은 이들의 지배는 사실이며 또 이는 내세에서 확실해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온 민족을 다스리리이다.”

하느님은 뽑힌 이들을 그들의 인격과 그들이 선 안에서 축복하실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을 축복하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을 저주하는 모든 이들을 저주하신다.

우리의 성모님이 당신의 사랑 받는 이들을 위하여 행하시는 두 번째 임무는 그들의 영적 및 물질적 요구를 돌보는 일이다. 마리아는 그들에게 이중 외투를 입혀주실 뿐 아니라 또한 하느님의 식탁에서 차려지는 가장 맛 좋은 음식을 그들에게 마련해 주신다. 마리아는 그들에게 생명의 빵을 주신다.

지혜의 옥좌이신 마리아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자녀들아, 나의 열매를 배불리 먹으로. 물론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맺은 예수, 곧 생명의 열매이다. 와서, 나의 빵, 곧 예수를 먹고 또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련한 예수의 사랑의 포도주를 마셔라.”

마리아는 당신 자녀들에게 너그러우시다. 마리아는 그들에게 살아있는 빵을 먹이시므로, 그들은 살찌며 성장한다. 그들은 마시고 또 처녀들을 흥겹게 해주는 술에 취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짊어질 때 그 무게를 거의 느끼지 않을 만큼 강한 자로 성장해 나간다.

성모님이 당신 자녀를 위하여 행하시는 세 번째 좋은 일은, 집으로 인도하시고 안전하게 데려다 주시는 것이다. 즉 그들이 성덕의 길을 지나갈 때 그들의 손을 잡고 안전한 길로 그들을 이끄시는 것이다. 마리아는 그들이 넘어지려 할 때 그들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이 쓰러졌다면 그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마리아는 그들이 올바른 방향에서 이탈할 때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그들에게 충고해 주시며 간혹 그들을 매질하신다. 어머니이시고, 간호사이시며, 현명한 지도자이신 마리아께 순종하는 자녀가 어떻게 영원한 생명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성 베르나르도는 우리에게 당부한다. 마리아를 따르라.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가 인도하시는 곳에 악마도, 망상도, 결코 있을 수 없다. 마리아의 진실한 자녀는 아무도 악한 사람에게 속지 않을 것이며 이단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단자들은 그들의 교활한 계략으로 마리아의 길에서 벗어난 자들이다.

리브가처럼 마리아는 당신의 섬세함과 꾸준한 보살핌으로 당신 자녀들을 보호하신다.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지혜로운 계략과 사랑이 없었다면 확실히 에사오는 그를 살해하였을 것이다. 하느님 자녀들의 어머니 마리아는 암탉이 제 병아리를 품 안에 숨기듯 당신 자녀들을 당신의 푸른 외투 안에 숨겨주신다. 마리아는 허리를 굽혀 자녀들에게 속삭여 주신다. 마리아는 자녀들을 독수리나 매에게서 구출 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온갖 허약함을 동정하시며 스스로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전장에 정렬해 있는 군대가 되어 주신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천상의 여왕께서는 자격은 있지만 가장 미소한 당신의 종이 그 원수들의 사악함과 드센 악행에 굴하지 않도록 도와 주기 위하여 무수한 천사들을 보내주실 것이다.

마리아께서 당신 종들에게 주시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전구이다. 마리아는 언제나 당신 성자를 흡족하게 하시어 당신의 사랑 받는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심판해 주시도록 하신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들을 당신 아드님과의 보다 친숙한 일체에로 꾸준히 인도하신다. 리브가는 야곱을 이사악의 침대로 데려갔다. 부친 이사악은 야곱을 자기 팔에 안고 입맞추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들의 외투 냄새를 맡으며 큰 소리로 말하였다. “아! 내 아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야훼께 복 받은 들 향기로구나” (창세 27, 27).

이 향기는 마리아의 것이다. 마리아는 풍요로운 들판, 은총이 충만한 정원으로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바고 그 안에 당신 외 아드님의 씨를 뿌리셨다.

장차 올 세계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향기를 지닌 자녀를 어떻게 맞아 들이시겠는가! 그리스도는 그 얼마나 신속하게 그 자녀에게 당신 자신을 일치시키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친밀하게 결합시키겠는가!

마리아께서 일단 당신 자녀들에게 선물들을 선사하셨고 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아버지의 축복을 마련해 주셨다면, 그리스도 안에 그들이 머물고 그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속 머물게 해주신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잃지 않고 악마의 손아귀에 다시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지켜주신다. 마리아는 성인들에게 끝까지 견디는 끈기를 주신다.

이것이 리브가와 그 자녀들의 이야기가 내포한 은밀하고 신비로운 뜻이다. 이것이 곧 뽑힌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의 아름다운 옛 비유이다.

 

 

 

제14장
놀라운 효과

 

나의 사랑하올 친구와 이웃들이여, 안심하시오! 여러분이 만일 참된 신심의 내, 외적 실행에 – 이 외적 실행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의하겠다 – 충실하다면 놀라운 일들이 여러분에게 발생하리라는 것을 확신하시오.

성령의 빛 – 성령의 배필이신 마리아가 여러분에게 이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다 -을 통하여 여러분은 스스로 여러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원죄로 인해 타락해 있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지 않고서는 어떠한 착한 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경멸할 것이며 두려움을 갖고 여러분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마치 진흙탕에 모든 것을 더럽히는 일종의 달팽이처럼, 또는 독 있는 뱀이나 해로운 두꺼비 같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겸손한 동정 마리아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겸손에 동참하게 만드실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멸시하고 즐겨 혐오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한 명도 경멸하지 않을 것이다.

성모님은 모든 성조들, 예언자들과 성인들의 신앙보다 훨씬 더 큰 당신의 신앙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실 것이다. 천국에서 성모님은 영광의 빛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보시므로 신앙이 필요하시지 않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성모님이 당신의 신앙을 ‘투쟁하는 교회’에 주실 수 있도록 당신의 신앙을 갖게 허락하셨다. 마리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면 하실수록 더욱더 확실히 여러분은 신앙에 따른 행동을 할 것이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간혹 베푸시는 특별한 호의, 예컨대 탈혼 상태에 관해 여러분이 거의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신상을 지니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신앙은 애덕에 의해 활력을 얻는 신앙이 될 것이며 오로지 순수한 사랑의 동기에 의해서만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다. 그것은 바위와 같이 견고하고 결코 동요되지 않는 신앙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 덕분에 여러분은 가장 무서운 폭풍 속에서도 확고하고 항구할 것이다.

그것은 아주 멀리 내다보는 적극적인 신앙일 것이며 교회의 모든 신비, 하느님의 마음을 여는 빗장, 열쇠가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용감한 신앙일 것이다. 여러분은 그것을 횃불처럼 높이 들어올릴 것이며, 그것은 여러분의 생명과 신적 지혜의 비밀스런 보물 및 전능한 무기가 될 것이다. 그 신앙으로써 여러분은 죽음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어두움 속에 있는 이들을 비추고, 냉담한 이들에게 새로운 열의를 일으키며 죄로 인해 죽은 영혼을 지닌 이들에게 생명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신앙으로써 여러분은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냉혹한 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레바논의 오만한 키다리 삼목들을 내던질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사랑의 어머니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온갖 망설임과 어리석은 두려움을 제거해 주실 것이다. 성모님은 여러분이 성자의 계명의 길을 따라 하느님 자녀의 거룩한 자유를 누리면서 달려갈 수 있도록 신앙을 넓혀 주실 것이다. 그리고 성모님은 당신의 보화인 순수한 사랑으로 그 신앙을 채워주실 것이며,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압도될 것이다. 성모님은 여러분이 하느님을 여러분의 아버지로 받들어 모시게 해주실 것이며 여러분은 어느 때든 항상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쓸 것이다. 여러분은 하느님께 신뢰를 가지고, 자녀다운 단순함으로 말씀 드리게 될 것이다. 만일 불행하게도 여러분이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다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다시금 잡고 또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과 더불어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은 겸허하게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고 하느님의 손에 여러분의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성모님은 하느님과 당신 자신에 대한 큰 신뢰심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불어 넣어 주실 것이다. 여러분은 더 이상 혼자 예수님께로 가지 않고 성모님을 통해 나아갈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성모님의 크신 공로로 둘러싸일 것이고, 따라서 하느님께 “보십시오, 당신의 여종이신 마리아를 보십시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아뢸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마리아께 온전히 내어 주었으므로 마리아께서 당신 자신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이라고 나는 거듭 말하고 싶다. 마리아께서는 여러분이 그분께 “저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또는 성 요한과 더불어 “저는 어머니, 당신을 제 집에 모셔 들였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신비롭지만 실제적인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실 것이다.

또한 성 보나벤투라와 함께 이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십시오. 저의 어머니시여, 저의 구원이시여! 당신은 저의 힘이시고 하느님 안에 있는 저의 찬양이시므로 저는 당신을 신뢰할 것이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겠나이다.”

성 보나벤투라는 또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당신의 것이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 것이옵니다. 오, 영광스러운 동정녀 이시여, 모든 것 위에 축복받으소서. 당신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이기에 저는 당신을 제 마음에 찍힌 인장으로 모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윗왕과 더불어 이같이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 저의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저의 두 눈은 높지 않나이다. 저는 거창한 것들을 따라 나서지도, 주제넘게 놀라운 것들을 찾아 나서지도 않나이다.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나이다. 어미 품에 안긴 젖뗀 아기 같나이다. 제 영혼은 저에게 젖뗀 아기 같나이다” (시편 131, 1-2).

여러분은 마리아께 대한 신뢰를 더욱 증가시켜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온전히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있는 좋은 모든 것을 마리아께 내어주어 마리아의 뜻에 전적으로 내맡김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을 덜 신뢰하게 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영혼이 하느님께 가장 소중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느님의 보화가 자신의 보물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그리고 마리아께서는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영혼을 여러분에게 전해주실 것이다. 여러분이 성모 신심을 계속 충실히 실행한다면 마리아의 정신은 그분의 구세주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정신을 차지할 것이다. “마리아의 영혼이 주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우리 각자의 영혼 안에 깃들이기를 바라나이다. 마리아의 정신이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기 위하여 우리 각자의 정신 안에 깃들이기를 바라나이다.”

마리아께 온전히 열중하였던 한 성인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마리아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유일한 여왕으로서 그 마음들을 당신의 아드님께 복종시킬 행복한 때가 언제 올 것인가? 육신이 공기를 들이 마시듯 인간의 영혼들이 마리아를 들이 마시게 될 때가 언제 오겠는가? 그때가 오면 놀라운 일들이 이 낮은 곳들에서 생겨날 것이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배필이 예전과 같이 모든 영혼들 안에서 재생되시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은총의 놀라운 일들을 초래하기 위하여 그 영혼들 안에 깊이 침투하시고 당신 선물들로 가득 채워주실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여, 언제 사람들이 이런 복된 때, 곧 이 같은 마리아 시대를 맞게 될 것인가? 마리아에 의해 뽑히고 하느님에 의해 마리아께 주어준 무수한 영혼들이 마리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들을 잃고,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과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다시 태어날 수 있을 이 시기가 언제 오겠는가?

내가 가르치는 신심을 사람들이 배우는 때에, 그들이 이 신심을 터득하고 실행할 때에 비로소 그 시기가 올 것이다.

주님, 당신 나라가 임하시도록 마리아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만일 생명의 나무이신 마리아께서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잘 가꾸어진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열매를 내실 것이다. 그리고 이 결실은 다름아닌 예수이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여러 방법을 통해서 예수를 찾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끝내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추구에만 많은 수고를 쏟지만 아마도 예수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한 길을 걸으시오. 내가 가르치는 성모 신심을 실행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를 찾아낼 것이다. 밤낮으로 여러분은 거룩한 장소 안에서 예수를 찾으시오. 그러면 예수를 뚜렷이 보게 될 것이다.

결코 마리아 안에서 죄는 아주 희미한 그림자조차도 없었으므로 그분 안에는 밤이 전연 없다. 마리아께서는 거룩한 처소이시며 그 안에서 성인들이 형성되고 양성되는 지성소 중의 성소이다. 내가 여러분께 청하건대, 성인들이 마리아 안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나의 말에 주목해주시오. 나무 또는 돌을 망치와 끌로 한 성상을 조각하는 것이나, 그것을 틀 안에 부어서 만드는 것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 첫 번째 방법에서 조각가는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 그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무수한 실수를 거듭할지도 모른다. 둘째 방법에서 조각가는 많은 노력을 기울지  않고 또 그 자신이 조형하는 대상을 망가뜨리지 않고서도 신속하게 작업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주형(틀)’ 이라 부른다. 이 틀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즉시 예수 그리스도로 형성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사람으로 형성된다. 적은 비용으로 또는 짧은 시간 내에 그는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그가 바로 하느님을 형성시킨 틀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는 일부 영적 지도자들을 자기 자신의 예술, 재주나 기술을 신임하는 조각가들에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 자신들이나 다른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형성하기를 원하기는 하되 참된 신심을 통해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예수의 형상을 새기려고 딱딱한 돌을 무수히 깎아내거나 또는 거친 조각용 나무를 부지런히 파 들어간다.종종 그들은 예수의 참 모습을 새기는 데에 실패한다. 무지나 무경험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니면 연장을 다루는 서툰 솜씨가 전 작업을 망치고 또 모든 수고를 수포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이 은총의 비결, 이 참된 신심, 마리아 안에서 예수의 종이 되는 이 길을 활용하는 이들은 적절하게도 조각의 틀을 이용하는 예술가에 비교될 수 있다.

이 예술가들은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를 극히 자연스럽게, 또 신적인 방법으로 형성시킨,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틀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기술이나 예술적 수완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주형 틀의 공적에 신뢰하고 그 자신이 본뜨기를 원하는 그것들과 함께 자기 자신들을 그 틀 안에 내어 던진다. 그들은 그 안에서 자기 자신들을 잃는다. 그들은 마리아 안에서 그 자신들을 잃음으로써 천주 성자의 참 모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실제 모형이다. 그렇지만 누가 그것을 알아보겠는가? 나는 여러분이 알아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이 점을 명심하시오. 녹는 것만이 틀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이오. 여러분은 마리아 안에 계시는 새 아담이 되고자 여러분 안에 있는 옛 아담을 녹여야 한다.

이 신심에 완전히 신뢰함으로써 여러분은 한 달 안에 여러분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아무리 열심한 노력을 기울여서 수 년간 할 수 없었던 일, 곧 그리스도께 더 큰 영광을 드리는 일을 해 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마리아를 통하여 모든 일을 행함으로써, 여러분은 아무리 좋은 지향일지라도 여러분 자신의 이 지향들을 포기하고 물론 여러분이 잘 모르더라도 마리아의 지향들 안에 여러분 자신을 잃게 된다. 이리하여 여러분은 바늘 귀에 실을 꿰는 일처럼 사소한 행동으로써, 화로에 불타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나 대단히 영웅적 행동을 보여준 성인들보다도 더 큰 영광을 마리아께서 하느님께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하고 고상한 의향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된다. 마리아는 지상에 계시는 동안 한없이 충만한 은총의 상태에 도달하였으니, 우리가 하늘의 별이나 사막과 해변의 모래알이나 바다의 물방울을 셀 수 있을 지 언정 마리아의 골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하다. 마리아께서는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이 지금까지 드린 것보다 또는 앞으로 드리게 될 영광보다 더 많은 영광을 하느님께 드리셨다.

마리아님, 당신은 하느님의 기묘한 업적이시나이다! 당신께서는 자기 자신을 당신 안에 잃기로 내맡기는 영혼들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해내지 않을 수 없겠나이다!

이 실행으로써 영혼은 그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리아의 의향들 – 물론 그분의 아드님께 통하는 그 의향들 – 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그 자신을 의지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깊은 겸덕에 도달하게 된다. 그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바쳐드릴 때 확실히, 그 영혼은 그 자신의 성향보다는 마리아께 대한 이 같은 의존에 더 큰 기쁨을 누린다. 따라서 그 영혼은 보다 높은 수준에서 하느님을 현양 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겸손이 깊어지면 깊어 질수록 더욱더 하느님의 영광은 찬란히 빛난다. 미소한 이들, 마음이 겸손한 이들만이 진정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린다.

마리아는 우리를 위한 당신의 위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 행동의 선물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마리아는 당신의 티없이 순결한 손으로 그것들을 예수께 드리신다. 우리의 죄 많은 손으로 선물을 바쳐드렸을 경우보다 더 큰 영광을 예수께서 받으시는 것이다.

여러분이 마리아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 마리아께서도 여러분을 대신하여 당신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당신 아드님 그리고 당신의 짝이신 성령을 생각하시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결코 마리아를 칭송하거나 공경하지 않는다면 마리아는 여러분과 함께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시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는 온전히 하느님과 결합되어 계시며 오로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시기 때문에 하느님과 맺으신 마리아의 관계에 내가 한계를 설정할 수도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 하느님!” 하고 계속 반복하시므로 지극히 높으신 분의 메아리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마리아’ 하고 부르면 마리아는 ‘하느님’ 하고 부르실 것이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기회에 그녀가 당신을 칭송하자, 몸소 찬미가를 읊으셨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리고 내 영이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반겨 신명 났거니 정녕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도다” (루가 1, 46-48).

마리아께서는 그때 하신 일을 지금도 행하신다. 우리가 마리아를 칭송하고, 사랑하고, 공경하고, 그분께 무언가를 드리고 사랑으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느님께서 찬양 받으시고, 사랑 받으시고, 흠숭을 받으시며, 또 이리하여 우리는 마리아를 통하여 또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께 바쳐 드리는 것이다.

 

 

 

 

제15장
외적 실행

 

참된 신심의 핵심이 마음에 있을지라도 우리가 등한시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외적 실행들을 지닌다. “이것은 행해야 하지만 저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고 말해서는 안 된다. 최적 실행들은 잘만 행해지면 내적 행위들을 완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외적 실행들은 언제나 감각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에게 그가 행한 것이나 행해야 하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한 경우에도 내적 신심의 이 외부 표지들은 내적 실행들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비방자가, 우리는 외적인 모든 것을 피해야 함과 외적인 것에는 허영이 있을 수 있으며 또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심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 감추어야 한다는 따위의 말로써 이 논제에 참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나의 스승님과 더불어 대답하고자 한다.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시오.” (마태 5, 16). 성 그레고리오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우리가 외적 행위들과 신심들을 행하는 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거나 어떤 칭송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허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구경꾼들의 칭찬이나 질책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영광스럽게 하려는 의도에서 공적으로 그 같은 행위와 신심을 거행한다.”

나는 이러한 외적 실행들을 몇 가지 언급하려 한다. 나는 그것들이 내적인 정신 없이 거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외적인 어떤 것을 시사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외적 실행이라 지칭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그것들과, 순전히 내면적인 실행들을 구별하는 것이다.

 

 

봉헌

 

아주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형제회로서 설립되지 않은(편집자 주: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바람은 실현되었다. 첫 성모 성심 형제회가 1899년에 창립되었다) 이 특별 신심을 실천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적어도 12일 동안 그리스도의 정신에 반대되는 세속의 정신을 자기 자신에게서 비워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지도록 3주간을 지내야 한다. 여기에 그들이 지켜야 할 순서가 있다.

첫 주간 동안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의 은혜를 간청하면서 하느님께 기도와 영성 수련을 봉헌해야 한다. 그들은 겸손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원한다면 내가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대해 기술한 바를 묵상할 수 있고 또 자기 자신을 달팽이, 두꺼비, 돼지, 독사 또는 역겨운 염소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그려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성 베르나르도의 이 세 가지 표현에 대해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즉 썩은 씨앗이었음을 생각하라.

그대가 무엇인지를, 즉 한 조각의 썩어가는 물질임을 생각하라.

그대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즉 벌레의 음식임을 생각하라.

그들은 성모님과 성령께 그 자신들을 비추어 주십사 하고 간구해야 한다.

“주님, 제가 볼 수 있게 하소서” 또는 “주님, 제가 제 자신을 알 수 있게 하소서” 또는 “오소서 성령님.”

 그들은 ‘성령 송가’를 그리고 이 소책자의 제1부에 실린 기도문을 외워야 한다. 그들은 성모님께 도움을 호소하고 또는 다른 모든 은총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이 위대한 은총을 간구해야 한다.

둘째 주간 동안 그들은 성모님을 알기 위하여 모든 기도와 매일의 과업에 증진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성령으로부터 이 인식을 얻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성모님에 대한 기술한 바를 읽고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첫 주간에 했던 것처럼 매일 ‘성령 송가’, ‘바다의 별’, 묵주기도 신비 전체를 바치거나 또는 이러한 지향을 가지고 적어도 묵주기도 5단을 바쳐야 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에 셋째 주간을 봉헌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해 진술한 바를 읽고 또 제2부의 초입 부분에 실려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기도문을 외울 수 있다. 그들은 성인과 더불어 하루에 백 번 가량 ‘주님, 제가 당신을 알게 하소서” 또는 “주님,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제가 알 수 있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또 반복할 수 있다. 그들은 앞 주간에 했던 것처럼 ‘성령 송가’와 ‘바다의 별’ 을 바치고 또 매일 ‘성령 기도문’을 첨가해야 한다.

3주간 후 그들은 성모님의 손을 거쳐 자기 자신을 예수님께 사랑의 종으로서 바치겠다는 지향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를 모셔야 할 것이다. 아래에 제시된 방법에 따라 성체를 영한 후 그들은 봉헌문 (부록에 실려있다)을 바쳐야 한다. 그 봉헌문이 인쇄되어 있지 않으면 그들은 그것을 직접 쓰거나 또는 남들을 시켜 쓰게 해야 하고 또 당일에 그것을 서명해야 한다. 그 날에 그들이 만일 자신의 세례 서약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뉘우침으로든, 예수와 마리아의 지배에 예속되어 있음을 선언하기 위해서든, 그리고 예수와 마리아께 약간의 예물을 바친다면 좋을 것이다.

이 예물은 각자의 신심과 능력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그들은 단식, 극기, 헌금, 봉헌초 따위를 예물로 바칠 수 있다. 그들이 기꺼운 마음에서 바친 것이라면 아무리 작은 예물이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예수께서는 오로지 마음만을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이 봉헌을 적어도 매년, 동일한 날에 그들은 3주가 동안 똑같은 신심행위를 실천하면서 갱신해야 한다. 그들은 아래의 간략한 기도문을 외움으로써 그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을 매월 또는 매일 한 번씩 갱신해야 한다.

“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저는 온전히 당신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도 당신 것이옵니다.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저를 바쳐드리나이다.”

 

 

작은 묵주기도

 

그들은 일생 동안 매일 자유로이 성모님의 12가지 특권과 영광을 기념하여 주님의 기도 3번, 성모송 12벚으로 구성된 작은 묵주기도를 바쳐야 한다. 이 실행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실시되어 온 것이다. 그것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도 성 요한은 12개의 별이 달린 월계관을 쓰고 태양을 입고 달을 밝고 있는 한 여인을 보았다. 성서 해석가들에 따르면 이 여인은 성모님이시다.

작은 묵주기도를 잘 바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으나 그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성령께서 성모 신심에 대단히 열심한 이들에게 그 방법들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 단순하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님, 제가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당신의 적들을 쳐부술 힘을 제게 주소서.” 그리고 나서 우리는 사도신경과 주님의 기도 1번, 성모송 4번, 영광송 1번씩 외우고 난 뒤, 다시금 주님의 기도 1번, 성모송 4번, 영광송 1번씩을 바친다. 마지막으로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겨드리나이다” 로 마친다.

 

 

 

작은 사슬

 

마리아 안에서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된 이들을 위하여 사랑의 노예임을 드러내는 표지로 작은 쇠줄 또는 축복된 사슬을 착용하는 것은 대단히 기특하고 유익하고 영광스런 일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런 외적 표지들은 근본적인 것이 아니며 또 우리는 이 신심을 받아들였을지라도 분명 그것들 없이도 신심을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악마의 노예 사살을 벗어 던진 후 예수의 노예 사살을 착용한 이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성 바오로와 더불어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작은 사슬에, 황제들과 왕후들의 그 어떠한 황금 목걸이보다 몇 배나 더 찬란하고 귀중한 사슬에 묶임으로써 자신들을 들어 높인다.

옛날에는 십자가보다 더 치욕적인 것은 없었으니, 이제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제일 영광스러운 것이 되었다. 우리는 노예의 쇠줄에 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고대인들에게 그 쇠줄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없었고, 현재에 이교인들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의 이 사슬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 이 족쇄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것은 악마에게 속박당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해주며 강압이 아니라 사랑으로 우리를 예수와 마리아에게 구속시켜 준다. 우리는 여생 동안 고된 노동에 얽매인 노예선의 노를 젓는 죄수들과 같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으로 묶어 이끌고” (호세 11, 4) 매여 있어야 하는 하느님의 자녀들과 같다.

하느님께서 한 예언자의 입을 빌어 말씀하신다. “나는 죽음만큼 강한 사랑의 사슬로 그들을 나에게 묶어두리라.” 사랑의 사슬은 어떤 의미에서 이 영광스러운 상징들을 충실히 착용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이다. 죽음은 그들의 육신을 파괴하고 타락시킬 수 있으나 그들의 속박의 끈은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슬은 철로 만들어져 쉽게 썩지 않는다. 그리고 육신이 부활하는 날 장엄하고 무시무시한 심판의 날에 그 사슬은 영광을 발할 것이다. 그때 자신의 사슬을 무덤에까지 지니고 가는, 예수와 마리아의 이 노예들은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릴 것이다.

이작은 사슬을 착용해야 하는 몇 가지 동기들을 제시해 보겠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그의 세례서약 및 약속 또는 그가 이 신심을 통하여 발한 서약들 그리고 이 신심에 충실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엄격한 의무들의 완전한 갱신을 일깨워준다. 순수한 신앙보다는 자신의 감각을 통하여 더 자주 자기 자신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를 망각할 때 이 사슬은 그에게 그러한 것들을 상기시켜 준다. 이 사슬은 또한 우리가 더 이상 사탄의 노예가 아님을 명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세례서약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 그리고 그들이 이교도들처럼 제멋대로 살아가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그들이 하느님께 발한 약속들을 상기시켜 주는 외적 상징을 전혀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슬은 우리가 예수의 노예가 된 데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세속과 육신 및 악마의 노예사리를 포기한 데 대해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사탄의 사슬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반드시 사악의 사슬이냐 구원의 사슬이냐, 이 둘 중의 하나를 착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죄와 죄인의 사슬, 세속과 세상의 사슬, 악마와 그 부하들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것이 좋다. 끊어진 멍에, 죽음의 이 사살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내던져 버리자. 그리고 나서 우리의 발에 성령의 영광스러운 족쇄를, 그리고 우리의 목에 성령의 목걸이를 걸자. “어깨를 낮추어 지혜를 짊어지고 지혜의 사슬을 귀찮게 여기지 말아라” (집회 6, 25). 우리의 어깨를 낮추어 이 지혜, 곧 예수를 어깨에 매자. 지혜의 사슬을 매었으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자.

“네 어깨에 지혜의 멍에를 매어라. 지혜의 끈을 벗기려 하지 말라(집회 6, 26).

여러분은 이 말씀들을 들을 때 영혼이 성령의 중요한 충고를 배척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영혼을 준비시키신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들아, 들어라. 내 의견을 받아들이고 내 충고를 거절하지 말아라” (집회 6, 23).

나의 지극히 사랑하올 벗들이여, 내가 성령과 합심하여 여러분에게 해주는 똑같은 충고를 기꺼이 들으시오. “이 차꼬에는 생명이 있고, 이 사슬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집회 6, 31).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좋든 싫든 모든 것을 당신 자신에게로 끌어 들이신 것처럼 악인들을 죄의 사슬로 그리고 당신의 영원한 분노와 보복하는 정의에 그들을 묶으실 것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때에 예수께서는 뽑힌 이들, 선택된 이들을 사랑의 사슬로 끌어 당기실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나에게 이끌 것이다.” 그들은 사랑의 이끄는 줄로 이끌릴 것이다.

예수의 이 사랑하는 종들, 주님의 이 사슬에 묶인 이들은 목에나 팔, 허리에나 발목에 사슬을 착용할 수 있다. 1649년 성덕의 향기를 풍기며 선종한 예수회 제7대 총장인 빈센트 카라파 신부는 종살이의 표시로 발목에 쇠줄을 착용하였다. 그는 그 자신이 그의 사슬을 공공연하게 끌고 다닐 수 없음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하곤 하였다.

앞서 언급되었던 예수의 아녜스 수녀는 허리에 쇠사슬을 착용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 자신이 세속생활을 할 때 진주 목걸이를 찼던 것에 대한 뉘우침으로 목에 사슬을 착용했다. 또 어떤 이들은 그 자신이 일하는 동안에도 그리스도의 종임을 잊지 않기 위하여 팔에 사슬을 착용하기도 한다.

 

 

강생에 대한 신심

 

마리아 안에서 예수의 종이 된 이들은 3월 25일에 강생하신 말씀의 위대한 신비를 경축하는 특별한 신심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는 성령에 의해 감도 된 것이기에 참된 신심에 속하는 신비이다.

우리가 천주 성자께서 당신 성부의 영광과 구원을 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온전히 종속되셨음을 우리가 이해하고 존경하고 본받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감도 하셨다.

이 종속은 특별히 이 신비 안에서 계시되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마리아의 태중에서 포로와 종이 되신다. 그리고 성자는 모든 것을 위하여 이 겸손한 여인에 예속되신다.

우리는 확실히 이 기회를 활용하여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당신의 어머니로 선택하시면서 그분께 베푸셨던 비할 데 없는 은총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 드려야 한다. 이 축일에 우리는 하느님에 의한 마리아의 선택을 경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 안에서 종이 되신 데에는 두 가지 주요 목적이 있다.

내가 통상 ‘마리아 안에서 노예가 된 예수의 종’ 이니, ‘마리아 안에서 사시는 예수의 종살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주목해 주기를 여러분에게 당부해 드린다. 또한 우리는 분명, ‘마리아의 종’ 이나 ‘성모님의 종살이’ 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리아 안에 노예가 된 예수의 종’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술피스 신학교의 학장인 트론손 신부는 언젠가 이 주제에 관한 견해를 요구한 한 성직자에게 충고해준 바 있다. 그가 말한 동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오만의 시대에 수많은 교만한 학자들, 아주 훌륭히 정립된 신심 관습들을 트집잡고 비난하는 교만한 자들 가운데 살고 있으므로 마리아의 종보다는 ‘마리아 안에서 노예가 된 예수의 종’ 이란 표현을 쓰고 예수의 종으로 자처하는 것이 더 낫다. 참된 신심의 궁극 목적은 마리아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최종 목적인 예수를 따르는 신심이고 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는 내가 늘 그렇게 하듯 주저함 없이 스스로 마리아의 종이라 자처할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부산에서 대구를 거쳐 서울로 가려는 사람은 대구에 간다고 말할 수 있고 또한 서울에 간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대구에도 가고 서울에도 가는 것이다. 대구는 서울로 가는 길의 한 도착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구에서 서울, 곧 여행길의 마지막 귀착지에 가는 길은 곧은 길이다.

이 신심에서 거행되는 주된 신비는 강생, 곧 마리아의 태중에서 ‘살’이 되신 예수의 신비이므로 우리가 ‘마리아 안에서 사시는 예수의 종살이’ 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 표현으로써 우리는 마리아 안에서 거주하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신비를 가리킨다. 그리고 수많은 훌륭한 영혼들이 바치는 기도가 있다. “오, 마리아 안에 계시는 예수님, 당신 거룩함의 영으로 저희 안에 오시어 사십시오.”
이런 식의 표현은 예수와 마리아 사이에 맺어져 있는 친숙한 일치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한 분이 다른 분 안에 온전히 계실 정도로 두 분은 너무나 긴밀히 일치되어 계신다. 예수께서는 온전히 마리아 안에 계시며, 마리아는 온전히 예수님 안에 계신다. 오히려 마리아는 더 이상 계시지 않고 예수님 홀로 마리아 안에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태양으로부터 빛을 분리시킬 수는 있어도 마리아를 예수님으로부터, 떼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마리아의 예수’ 또는 성모님을 “예수의 마리아’ 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 안에 사시고 다스리시는 예수의 신비 또는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가 발하는 찬란함을 다 설명하려면 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예수의 첫째가는 신비, 가장 숨겨져 있고, 가장 높고,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신비 안에서,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서 모든 뽑힌 이들을 택하신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성인들이 가끔 동정 마리아의 태중을 ‘하느님의 은밀한 방’ 이라 부르는 것이다. 또한 이 신비 안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생애의 모든 신비를 이룩하셨다. 예수님은 그 모든 신비들을 받아 들임으로써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이 신비는 모든 신비의 요약이고 그 의지와 은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강생의 신비는 하느님의 자비, 자유와 영광의 옥좌이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 자비의 옥좌이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서 우리는 예수님을 볼 수도, 예수님께 말씀드릴 수도, 예수님 가까이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당신 어머니께 항상 귀 기울이시는 예수님은 어머니를 통하여 당신의 은총과 자비를 죄인인 우리들에게 베푸신다.

“미쁨을 가지고 은총의 옥좌로 나아갑시다” (히브 4, 16).

강생의 신비는 마리아를 향한 하느님의 자유의 옥좌이다. 새로운 아담 그리스도께서 마리아 안에, 당신의 지상 낙원에 머무시는 동안 사람들이나 천사들도 헤아리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기적들을 은밀히 행하셨기 때문이다. 사랑들이나 천사들도 그것들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하느님께서 오로지 마리아 안에서만 당신의 위엄을 보여주신 것 인양 성인들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장엄’ 이라 부른다. “그 어느 곳에도 아니고, 오로지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 다스리신다” (이사 33, 21 참조).

이 신비는 성부를 위한 성자의 영광의 옥좌이다. 그것은 마리아 안에서 예수께서 인류에 대해 격노하신 성부를 완전히 진정시키신 까닭이다. 보로 마리아 안에서 예수께서는 죄가 성부로부터 약탈해 간 영광을 완벽히 되찾으셨다. 즉, 마리아 안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뜻을 희생함으로써, 옛 율법 아래에 바쳐진 모든 희생제사보다 더 큰 영광을 성부께 드리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마리아 안에서 인간이 당신 성부께 드리는 최초의 무한한 영광을 아버지께 드리셨던 것이다.

 

 

 

성모송

 

마리아 안에서 예수의 종이 된 이들은 천사의 인사말인 성모송 외우기를 대단히 좋아할 것이다. 많이 알든 적게 알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성모송의 탁월성, 장점과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들은 그 기도를 종종 바쳐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성모님은 이 기도의 풍요로운 가치를 보여 주시고자 성 도미니코, 성 요한 카피스트라스 및 복자 알랑 드 라 루페 등과 같은 위대한 성인들에게 간혹 나타나셔야 했다. 그들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데 성모송이 끼치는 영향력과 그 놀라운 일에 관해 많은 책을 썼다.

그들은, 세상의 구원이 성모송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므로 각 사람, 개인의 구원도 이 기도와 결부되어 있음을 큰 소리로 외치고 대중에게 설파하였다. 그들은 성모송을 메마른 불모의 땅이 생명의 결실을 내게 해주는 기도라고 단언하였다. 그들은 성모송을 잘 바치면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 안에 뿌리 내리고 자라서 생명의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모송이 땅, 곧 영혼을 적셔주고 땅이 제 때에 열매를 맺게 해주는 하늘의 이슬이며, 이 이슬에 적셔지지 아니한 영혼은 잡초만 낼 뿐이고 단죄의 위험에 처할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복자 알랑 드 라 루페는 묵주기도에 관한 그의 책에서, 성모님이 어느 날 그에게 나타나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적고 있다. “나의 아들아, 너는 성모송을 무서워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멸망의 표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고, 또 모든 이에게 알려다오. 그것은 곧 세상을 회복시킨 기도이다.”

이는 아주 무시무시한 말씀으로서 우리가 믿기 참으로 힘든 말씀이다. 그렇지만 거룩한 사람이 보증하고 또 그보다 앞서 성 도미니코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성인들, 나아가 수세기의 경험이 이 말씀의 진실성을 보증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멸망의 표적을 지니고 있는 이들, 사악한 자들, 거만한 자들, 속물적인 인간들, 이단자와 무신론자 들이 성모송과 묵주기도를 혐오하고 경멸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단자들은 주님의 기도는 바치지만 성모송은 바치지 않는다. 물론 묵주기도도 바치지 않는다. 그들은 묵주기도보다는 독이 있는 뱀을 몸에 지닌다. 가톨릭 신자일지라도 거만한 자들은 그들의 아비 루치펠 과 같다. 그들은 성모송을 얕보기도 하고 아예 무관심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묵주기도가 어리석은 여인들을 분주하게 만들거나, 또는 무지하고 무식한 이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해 주는 데에만 유익할 따름이라고 믿는다.

성덕의 기미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성모송을 사랑하고 열심히 바친다는 것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그들이 하느님께 분명히 속하면 속할수록 더욱더 천사의 인사말을 기도로 바치기를 좋아한다. 이 사실을 성모님은 복자 알랑 에게 ‘단죄의 표지’ 에 관해 말씀하신 후 천명하셨다.

이것이 왜 그러한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으로서, 그가 성모송과 묵주기도를 사랑하는 지를 알아보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는 것도 나는 안다. 물론 불가피하게 기도문을 소리 내어 바치지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여전히 성모송을 좋아할 수 있고, 남들이 그 기도를 바치도록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뽑힌 영혼들, 마리아 안에서 예수의 종이 된 이들은 성모송이 주님의 기도 다음으로 모든 기도들 중 가장 아름다운 기도임을 안다. 이 기도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대천사 를 통하여 마리아에게 보여준 찬사인 까닭에 우리가 마리아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찬미가이다. 하느님은 마리아의 마음을 사로 잡으시려고 으뜸가는 사절 가브리엘을 보내셨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인사말은 그것이 담고 있는 비밀을 통하여 너무 강하게 마리아의 아름다운 마음을 감동시켰으므로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로 승낙하셨다.

나의 사랑하는 벗들이여, 이 찬미로써 여러분도 마리아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잇다. 여러분이 제대로 성모송을 바칠 경우에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주의 깊게, 열심히 또 겸허하게 바친 성모송은 악마를 쳐부수는 무기이다. 그것은 지옥의 군주를 도망가게 하며 그를 분쇄하는 망치이다. 그것은 영혼의 성화, 천사들의 기쁨, 뽑힌 이들의 선율이 아름다운 노래, 신약성서의 아가서로써 마리아의 희열, 성삼위의 영광이다.

성모송은 영혼의 밭에 결실을 가져다 주는 천상의 이슬이다. 그것은 순결하고 사랑 가득 찬 입맞춤이다. 그것은 진 붉은 장미, 우리가 마리아께 봉헌하는 반짝이는 진주이다. 그것은 우리가 마리아께 마시라고 드리는 신성한 향료와 음료의 혼합이다. 이 모든 비유들은 성인들이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와 마리아 안에서 여러분에 대해 품은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성모송을 가급적으로 간단히 바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기를 당부 드린다. 성모님의 작은 묵주기도(5단)을 바치되 여러분의 묵주기도, 곧 15단도 바치도록 하시오. 매일 바치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임종 때 여러분이 내 충고를 받아들인 때를 축복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라는 기도로써 여러분의 영혼 안에 예수와 마리아의 축복을 씨 뿌려 왔다면 여러분은 천국의 영원한 축복을 거두어 들일 것이다. “복스럽게 뿌리는 이는 복스럽게 거두어 들이는 법입니다” (2고린 9, 6).

 

 

 

여섯 번째 실행

 

하느님께서 성모님께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 드리기 위하여, 성모님 안에서 예수의 종이 된 이들은 가끔 ‘마리아의 찬가’ (마니피캇)를 바쳐야 한다. 그것은 성모님이 지으신 유일한 기도이다. 그보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입술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므로 그분이 마리아 안에서 그것을 지으셨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은총의 질서에서 처음으로 받으신 가장 훌륭한 찬미의 봉헌이다. 그것은 가장 겸허하고 또 가장 감사하는 찬미가이고 모든 찬가 중 가장 고귀한 노래이다. 그 찬미가에는 천사들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위대하고 은밀한 수 많은 신비들이 담겨져 있다.

경건하고 박학한 교회 박사인 게르송은 가장 심오한 주제들에 관해 책을 저술하느라고 그이 생애 대부분을 보낸 다음 마니피캇을 해설하는 일에 착수하였으나 그에게는 이 작업이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그는 그의 다른 작품들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려는 의도로 그의 이력을 마감할 즈음에 그 일을 해냈다. 그는 이 사랑 넘치는 천상 찬미가에 관해 많은 놀라운 사실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성모님은 몸소 그 기도를 종종 바치셨는데 특히 영성체 후의 감사기도로 바쳤다고 그는 말한다.

벤조니오와 같은 현자는 마니피캇에 관한 해설 중에 그 능력에 힘입어 일어난 기적들을 기술한다.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쳐 보이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라는 말씀을 악마들이 들을 때 달아난다고 말한다.

 

 

 

일곱 번째 실행

 

마리아의 충실한 종들은 이 타락한 세상을 대단히 경멸하고 미워해야 하며 또 그 영향력에서 멀리 벗어나야 한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그들의 멸시를 강화하기 위하여 우리가 이 책의 제1부에서 기술한 실행들을 활용해야 한다.

 

 

 

 

제16장
완덕의 추구를 위한 내적 실행

 

 

소홀히 하거나 경멸함으로써 빠뜨려서는 안될, 앞에서의 외적 실행 외에, 성화에 가장 적절한 몇 가지 내적 실행들이 있다. 이 실행들은 성령의 부르심에 이끌려 높은 성덕에로 나아가는 이들을 위한 것들이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모든 행동을 마리아에 의해, 마리아와 더불어, 마리아 안에서 그리고 마리아를 위하여 행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예수에 의해, 예수와 함께,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위하여 더 완전하게 행하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에 의해

 

완덕에로 불리운 자들은 자신의 모든 행위를 마리아에 의해 행해야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모든 것 안에서 성모님께 순종해야 한고 모든 것 안에서 성모님의 영, 곧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 행동해야 한다. “하느님의 영에 인도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로마 8, 4). 마리아의 성령으로부터 인도받는 이들은 마리아의 자녀들이고 또 따라서 우리가 앞에서 보여준 대로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마리아를 열심히 공경하는 수많은 신자들 가운데 오로지 마리아의 영에 의해 행동하는 이들만이 그분의 진실하고 신실한 신심가들이다.

마리아가 결코 그분 자신의 정신에 따라 행동하시지 않고 언제나 하느님의 영에 의해 행동하셨으므로 나는 마리아의 정신은, 곧 하느님의 영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이 마리아 영이 되실 정도로 몸소 마리아를 지배하는 분이 되셨다. 바로 이런 까닭에 성 암프로시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리아의 영혼이 주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리도록 우리 각자 안에 머무시기를 빕니다. 또한 마리아의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놀기 위하여 각 사람 안에 깃들이기를 빕니다.”

예수회 수사인 성 알퐁소 로드리게즈의 표양을 따라 마리아의 영, 즉 온순하고 강하며, 열정적이고 현명하며, 겸손하고 용감하며, 순수하고 풍요로운 영에 사로 잡히고 지배당하는 영혼은 얼마나 행복한가! 영혼이 마리아의 영의 인도를 받도록 스스로를 내어 맡기려면, 우리는 아래의 몇 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첫째, 우리 각자의 정신, 야심과 사고들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다른 모든 행동에 앞서서 해야 한다. 즉 마음의 기도, 미사 참례, 영성체 전에 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각자의 성향을 따른다면 우리의 정신과 악한 의지가 마리아의 거룩한 정신(영)을 거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 속에 품은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마리아가 원하시는 길을 향해 움직이고 나아가기 위하여 마리아의 영에 우리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한다. 우리는 일꾼의 손에 쥐어진 연장이나 도구처럼, 또는 훌륭한 음악가의 손에 든 악기와 같이 마리아의 소유가 되도록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겨야 한다. 우리는 바다에 던져진 돌과 같이 마리아 안에 우리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 이것은 간단히, 한 순간에, 한 번의 마음 행동으로, 사소한 의지의 행사로써,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저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님, 당신께 제 자신을 드립니다” 는 몇 마디 말로써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 일치의 행위에 행복감을 별로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실제적 결합의 행위이다. 그것은 마치 얼토당토 않은 일이지만 만약 우리가 “나는 악마에게 내 자신을 내어 맡긴다” 고 말함으로써 그러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어떠한 내적  변화를 느끼지 않을지라도 실제로는 악마에게 속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때때로 봉헌의 행위와 일치의 행위를 갱신해야 한다. 우리가 이 행위를 자주하면 할수록 더 빨리 우리는 성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더 많이 반복하면 할수록 더 빨리 우리는 예수님과의 일치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마리아의 영은 예수님의 성령이신 까닭에 마리아와의 일치가 이루어지면 언제나 필연적으로 이어 예수님과의 결합이 실현되기 마련이다.

 

 

마리아와 더불어

 

우리는 마리아와 함께 모든 것을 행해야 한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모든 덕, 성령께서 마리아 안에서 이룩하신 완덕을 본받으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매 행위마다 마리아가 어떻게 이 일 또는 저 일을 행하셨는지를 그리고 우리의 환경 안에서 어떻게 행하실지를 고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가 실천하신 덕들을 살펴보고 그에 대해 묵상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마리아로 하여금 추호의 주저함 없이 천사의 말을 믿도록 해준 그분 자신의 생생한 신앙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마리아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숨기고, 침묵하고, 모든 것을 감수하고,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도록 해준 깊은 겸손을, 그리고 천하의 그 무엇과도 결코 비교될 수 없을 천상적 순결을 본받아야 한다.

여기서 나는 다시금, 마리아는 최소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하느님의 살아있는 모상들을 생산해 내는 데에 가장 적합하고, 하느님의 유일한 틀이라고 단언해야 하겠다! 이 틀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자기 자신을 잃는 영혼은, 즉시 그 틀이 완벽하게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이다.

 

 

 

마리아 안에서

 

우리는 마리아 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이를 이해하려면, 마리아가 새 아담의 진정한 낙원이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옛 아담이 쫓겨나 잃어버린 에덴은 마리아를 예시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낙원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보화들, 아름다움과 기쁨 그리고 새 아담이 그곳에 남겨두신 온갖 종류의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새 아담께서는 이 낙원을 9개월간 차지하셨고 이에 대단히 흡족해 하셨다. 새 아담은 그곳에서 친히 기적들을 행하셨으며, 거기서 하느님의 엄위 하심으로 당신의 보화들을 모소 보여주셨다.

이 에덴 안에서, 그 소작인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잡초 없이 비옥하게 된 이 정원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의해 심겨지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라는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는 예수님을 그 결실로 생산해 낸 생명의 나무가 있다. 그리고 세상의 빛, 강생하신 지혜를 결실로 생산해 낸, 선악과 나무가 있다. 이 가장 멋진 장소에는 다양한 종류의 꽃들, 짙은 향기로써 천사들조차 황홀케 하는 덕의 꽃들이 만발하다. 거기에는 꽃밭, 희망의 풀밭, 힘의 탑, 소박함과 신뢰의 대저택이 있다. 오로지 성령께서 이 표상들 이면에 있는 지리를 여러분이 이해하도록 해주실 수 있다.

공기는 깨끗하다. 그것은 순수의 공기이다. 여기서는 낮이 지배한다. 즉, 밤이 없는 낮이 다스린다. 그것은 아름다운 날, 거룩한 인간성의 날이다. 태양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그것은 천주성의 태양이다. 그것은 쇠를 녹여 황금으로 만드는 태양이다. 청명한 봄, 겸손이 여기서는 네 가지 흐름, 곧 사추덕(四樞德)으로 흘러내리고 온 낙원을 적신다.

성령께서는 고대 교회의 교부들을 통해 말씀하시면서 이 낙원을 동쪽 문으로 언급하시고, 이 동문을 통하여 대사제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들어오셨다고 단언하신다. 예수께서는 거기에 최초로 들어오신 분이다. 거기로 그분은 다시금 오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또한 마리아에 대해, 천주성의 성소, 성삼위의 쉼터, 하느님의 옥좌, 하느님의 도성, 하느님의 제단, 하느님의 성전, 하느님의 세계라 말씀하신다.

이 새로운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는 것,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당신 옥좌의 자리로 정하신 마리아 안에 머무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이고 얼마나 큰 영광이며, 얼마나 큰 기쁨이고 얼마나 풍성한 축복인가!

그렇지만 우리 같은 죄인들이 그토록 거룩한 장소로 감히 들어가는 권리를 얻어내는 것과 이 권리를 활용하기에 충분한 능력과 지력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이 낙원은 거룹이 아니라 성령께서 몸소 지키고 계신다. 성령은 그에 대한 절대 지배권을 행사하신다. 마리아는 성령의 닫힌 정원이시다. “그대는 닫혀진 정원,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는 닫혀진 정원 봉해진 우물” (아가 4, 12).

마리아께서는 닫혀져 있다. 마리아께서는 봉인되어 있다. 아담과 하와의 가련한 자녀들은 옛 낙원에서 쫓겨나 스스로 벌어 들여야 할 아주 특별한 은총이신 성령의 허락 없이는 이 새로운 낙원에 들어 갈 수 없다. 우리가 성실함으로써 이 허락, 곧 비할 데 없는 이 은총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다면 우리는 낙원에, 행복 중에, 평화 속에, 신뢰와 완전한 보증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자신을 아낌없이 버려야 한다.

마리아의 이 깨끗한 내면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그분의 은총과 자비의 우유를 마시게 될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자신의 모든 근심, 두려움과 망설임에서 헤어날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원수들, 세속과 악마 및 육신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적들은 우리의 영혼 안으로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마리아께서는 당신 안에서 일하는 이들을 범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집회 24, 30).  성모님 안에 자기 마음을 두고 있는 이들은 중대한 죄를 결코 범하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예수 안에서 형성되고, 예수께서는 그 영혼 안에서 형성되실 것이다. 옛 교회 교부들이 말한 바와 같이 마리아의 품은 하느님 성상의 방이므로 바로 이곳에서 그리스도와 모든 뽑힌 이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마리아를 위하여

 

또한 우리는 마리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마리아께 바쳐 드렸다면, 노예나 종처럼 마리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다. 물론 우리가 하는 모든 봉사의 궁극 목표는 그리스도이므로 우리는 마리아가 우리 봉사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그 궁극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라 여긴다. 우리는 훌륭한 종 및 노예가 되어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고귀하신 여왕의 보호에 의지해서 그분을 위하여 훌륭한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우리는 성모님의 특권이 논박 당할 때 그것을 변호해야 하고 성모님의 영광이 공박 당할 때 그것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온 세계가 성모님의 도움을 받도록 이끌어야 하며, 성모님을 능욕하고 그분의 성자를 모욕하는 이들을 질책하는 데에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온 힘을 쏟아 참된 신심을 확산시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룩하는 하찮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아주 적게라도 성모님께 청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대신 우리는 오로지 성모님께 예속되는 명예만을,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성모님에 의해 예수님과 결합되는 기쁨만을 청하여야 한다.

 

 

마리아님 안에서 예수님께 영광!

예수님 안에서 마리아께 영광!

오직 하느님께 영광이 있으소서!

 

 

 

 

 

 

제17장
참된 신심의 응용

 

 

영성체 때 참된 신심을 실행하는 방법

 

영성체 전에 여러분은 1) 하느님 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깊이 낮추고 2) 여러분의 이기심 때문에 좋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러분의 타락한 본성과 의향들을 포기하고 3) “주 예수님, 당신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저는 오로지 당신 것이고, 저의 모든 것이 당신 것이옵니다” 라고 말하면서 여러분의 봉헌을 갱신하고 4) 여러분은 성모님께, 당신의 의향과 더불어 당신의 마음 안에 예수님을 받아 모실 수 있도록 당신의 마음을 빌려주시기를 간청해야 한다. 그리고 마리아께 당신 아드님의 영광이 위태롭다고 아뢰시오. 성자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처럼 몹시 부패하고 변덕스러운 마음 안에 계셔서는 안 된다. 그러한 마음은 성자의 영광을 감소시키거나 심지어 파괴하기까지 할지 모른다.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권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 – 순결하지 못한 마음일지라도 – 안으로 들어 오실 수 있으며 거기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아뢰시오. 그러면 그곳에 성자께서 부당하게 영접되시는 위험은 모조리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성모님께, 당신께 드린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그리고 이제는 영성체를 통해 천주 성부께서 성모님께 주셨던 똑같은 선물을 여러분이 당신께 드리고 싶다는 원의 를 아뢰시오.

예수님이 갓 태어나 누우셨던 마구간이 보잘것 없고 형편없는 것이었지만 당신께서 그곳에 계셨으므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듯이 또한 당신을 천상 사랑, 유일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여러분의 영혼 안에 들어오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 안에 쉬시고 기쁨을 누리시기를 원하신다고 아뢰시오. 그리고 성모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빌면서 이 상냥한 말씀을 아뢰시오. “저는 당신을 저의 전부로 받아 들이고자 하오니 제게 당신의 마음을 주소서.”

 

 

영성체 때

 

여러분이 미사 중 주님의 기도를 바친 후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려 할 때 “주님, 저는 당신을 모시기에 부당합니다” 고 세 번 고백하시오.

성부께 여러분의 악한 생각과 배은망덕 때문에 여러분이 당신의 외 아드님을 모시기에 부당하다고 말씀 드리시오. 그렇지만 “보십시오, 주님의 여종을!” 하고 마리아를 성부께 상기시켜 드리시오. 마리아는 여러분을 대신하여 행동하시고 성부의 위엄 앞에서 여러분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실 것이다. “오, 주님, 제가 당신께 바라야 할 것은 오로지 제가 신뢰할 수 있는 것 뿐이외다.”

천주 성자께 “주님, 저는 부당하옵니다” 라고 아뢰시오. 여러분의 악과 부질없는 말 때문에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불충한 탓으로 여러분이 주님을 모시기에 부당하다고 말씀 드리시오. 여러분이 주님을 주님의 모친과 여러분의 ‘집 안으로’ 모셔 들일 수 있도록 주님의 자비를 청하시오.

천주 성자께서 당신 어머니 안에 머무시려 오실 때까지는 여러분이 당신께서 들어오시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성자께 아뢰시오. “애타게 그리던 임을 만났다네. 나는 놓칠세라 임을 붙잡고 기어이 어머니 집으로 끌고 왔다네.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던 바로 이 방으로 들어 왔다네” (아가 3, 4).

성자께 당신의 쉼터, 당신 영과의 궤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간청하시오. “주님, 일어나시어 당신의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께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 (시편 132, 8).

여러분은 에사오가 한 것처럼 여러분 자신의 공로에 절대 의지하지 않고, 야곱이 한 것과 같이 성모님의 덕에 의존한다고 성자께 말씀 드리시오. 여러분이 죄인인 까닭에 오로지 성자의 어머니 마리아의 공로 덕분으로만 성자의 지존하신 어좌 에 감히 접근할 수 있다고 성자께 아뢰시오.

성령께, “주님, 저는 부당하옵니다” 라고 말씀 드리시오. 여러분은 성령께, 여러분의 냉담함과 악한 처신, 그리고 당신의 영감에 대한 여러분의 거센 반대 때문에 여러분이 당신 사랑의 걸작품을 받아들이기에 부당하다고 고백하시오. 그러나 여러분은 당신의 신실한 배필이신 마리아를 온전히 신뢰한다고 말씀 드리시오. 성 베르나르도와 함께, “마리아께서는 저의 가장 탁월한 신뢰이시고, 제 희망의 굳건한 근거이옵니다” 라고 말하시오.  성령께, 마리아에게 다시금 와주십사고 간청하시오. 마리아의 품은 변함없이 순결하고 마리아의 마음은 한결같이 열정 가득하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가련한 영혼 안으로 들어 오시지 않으면 성모님도 예수님도 그 안에 합당한 거처를 발견하시지 못할 것이라고 아뢰시오.

 

 

영성체 후

 

여러분의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으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마리아의 마음 안으로 모셔 들이시오. 예수님께 마리아를 맡겨 드리시오. 마리아는 사랑과 흠숭으로 예수님께 인사 드리실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포옹하실 것이며 예수님께 영예로운 장소를 내어 드리실 것이고 여러분의 캄캄한 어둠 안에서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무수한 일들을 예수님을 위해 행하실 것이다.

마리아 안에서 살아계시는 예수님의 현존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취하시오. 여러분 자신을, 왕 중의 왕께서 여왕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왕궁의 문 앞에 기다리는 종이라 상상하시오.

두 분께서 여러분의 어떠한 도움도 없이 서로에게서 기쁨을 맛보시는 동안 모든 피조물이 여러분을 대신하여 마리아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흠숭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도록 “다들 와서 왕이신 그리스도님을 흠숭하자!” 고 요청하면서 마음으로 천상과 지상을 넘나드시오.

또는, 마리아와 일치하여 예수님께 기도하시오. 당신의 나라가 당신 어머니를 통하여 이 땅에 오기를 기도하시오. 하느님 지혜, 하느님 사랑 그리고 여러분의 죄에 대한 용서를, 아니면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특별한 은총을 간구하시오. 그렇지만 언제나 마리아에 의하여 또 마리아 안에서 간구하시오.

여러분 자신을 내려다 보고 “주님, 제 죄를 보지 마십시오… 당신 눈으로 마리아의 덕과 공로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보지 마십시오” 하고 아뢰시오.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면서 “원수가 이 짓을 했나이다” 라고 말씀 드리고 여러분 자신의 가장 악한 원수가 이런 죄들을 저질렀다고 말씀 드리시오. 또는 아래와 같이 아뢰시오. “거짓되고 불의한 자에게서 저를 구하소서” (시편 43, 1). “그분은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 30). “예수님, 당신은 제 마음 안에서 커지셔야 하고 저는 작아져야 합니다. 마리아님, 당신은 제 안에서 커지셔야 하고 저는 제 자신보다 더 작아져야 합니다” 또는 “자라고 많아져라”(창세 1, 22 참조). “오. 예수님, 마리아님, 제 안에서 커지시고, 다른 이들 안에서 당신 자신을 많게 하소서.”

성령께서 불어 넣으시는 다른 생각들은 무수히 많다. 여러분이 진실로 영적이고, 자신을 포기하고 이 훌륭한 참된 신심을 신실하게 실행한다면 성령께서는 그 좋은 생각들을 여러분 안에서 일으켜 주실 것이다.

여러분이 이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여러분이 영성체 할 때 마리아께서 활동하시도록 해드리면 드릴수록 더욱더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님을 위하여 활동케 하시고 또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리아 안에서 행동하시도록 해드리는 길은, 여러분이 감각으로써 보고 맛보고, 느끼려 애쓰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여러분 자신을 낮추는 일이다. 의로운 사람은 어디서든 신앙으로 살고 특히 영성체로써 살아간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히브 10, 38).

 

 

 


부록 1
마리아를 통해 강생하신 지혜인 그리스도께 봉헌

 

오 강생하신 영원한 지혜이시며,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주님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 시요,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아드님이시나이다. 저는 진심으로 영원히 주님과 당신 아버지의 찬란한 영광을 찬미하나이다. 강생 때,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품 안에 계실 때에도 찬미하나이다.

악마의 잔혹산 노예사리에서 저를 풀어주시려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태어나신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마리아를 통해서 저를 당신의 충실한 종으로 삼으시려 언제나 어머니 마리아께 기꺼이 순명 하신 주님께 쉼 없이 찬미와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러나 저는 얼마나 배은망덕했으며 불충했나이까? 제 의무를 아직도 이행하지 못했사옵고, 주님의 자녀로 불리우기는 커녕 종이 되기에도 부당하나이다. 주님의 진노와 배척을 막을 공로는 조금도 없사오니, 지극히 거룩하고 존엄하신 주님 어전에 나아갈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주님과 저 사이의 중개자로 제게 보내주신 주님의 거룩한 어머니의 전구에 모든 것을 맡기나이다 회개와 용서를 구하고 주님의 지혜를 얻어 보존할 수 있도록 마리아께 달려가 의탁하나이다.

찬미하나이다. 티없으신 마리아님, 하느님의 감실 이시여, 찬양 드리나이다. 영원한 지혜께서는 당신 안에서 천사들과 사람들의 찬미를 받기 원하시나이다. 찬미하나이다. 하늘과 땅의 여왕이시여, 주님의 만물이 모두 당신 왕국에 승복하나이다. 찬미하나이다. 죄인의 피난처시여, 당신은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기를 거절치 않으시니 천상 지혜를 구하려는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께 자신을 바치는 (                )은 당신 손 안에서 세례 때의 약속을 새롭게 하나이다. 영원히 사탄을 끊고 그 허례허식과 행실을 버리겠나이다. 강생하신 지혜께 저의 모든 것을 바치오니,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전보다 더욱더 충실케 하소서.

하늘과 땅의 모든 이들 앞에서 저는 오늘 저의 어머니이시며 주인이신 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나이다. 제 육신과 영혼, 내적, 외적 재산과 모든 행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선행을 바치나이다. 저를 다스릴 모든 권한과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치오니,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영원토록 기꺼이 받아주소서.

지극히 인자하신 동정 마리아님, 이 종의 봉헌을 받아주소서. 영원한 지혜께서 당신의 모성에 순종하셨음을 본받고자 하오며,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당신께 내리신 그 총애를 감사하고자 하나이다. 저는 이제 당신의 종으로서 당신의 영광만을 찾고 언제 어디서나 어머니께  순명 하겠나이다.

찬미하올 어머니시여, 사랑하올 당신 아드님의 영원한 종으로 저를 바쳐주소서. 당신을 통해 저희를 구원하셨듯이 당신을 통해 저를 받아들이게 해주소서. 지극히 자비로우신 어머니시여, 주님의 참된 지혜를 얻도록 도와주시고, 어머니께서 사랑하시고 가르치신 저희를 당신의 자녀요, 종으로 이끄시며, 저를 어머니의 자녀로 받아주소서.

성실한 동정녀시여, 저로 하여금 어떤 일에 있어서나, 강생하신 말씀이신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요, 후계자이며, 종이 되게 해주시어, 세상에서는 당신을 통하여 또 당신의 표양을 따라 그리스도를 충만이 닮게 하여 주시고, 천국에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해 주소서. 아멘.

 

 

 

부록 II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

 

저의 사랑하올 하느님이신 예수님, 제가 당신께 기도 드리게 하여 주소서. 온전한 봉헌을 통하여 제가 주님의 사랑하올 어머니께 의탁한 것에 대해 감사 드리게 하여 주소서. 주님은 성모님을 당신과 더불어 저의 변호인으로 또 저의 가련한 처지를 온전히 돌보아 주시는 분으로 내어주셨나 이다. 저는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나이다. 주님, 당신의 어지신 어머니가 아니고서는 저는 멸망할 것이 틀림없나이다.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은 물론이고 성모님도 제게 필요하나이다. 주님의 마음을 너무나 상해드리고, 또 매일 그렇게 상해 드린 까닭에 일어나는 주님의 의분을 달래기 위해서, 또 당연히 제가 당할 영벌을 모면하기 위해서도 저는 성모님이 필요하오며, 제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이야기하며, 간청하기 위해서나 주님을 가까이하여 의합하기 위해서도 성모님은 제게 필요하나이다.

 

부록 III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

 

찬미하나이다. 마리아님, 영원하신 성부의 사랑하올 딸이시여, 찬미 드리나이다. 성자의 경애하올 어머니시여, 찬미하나이다. 성령의 충실한 배필이시여, 찬미 드리나이다. 저의 사랑하올 어머니시며 주인이 시요 여왕이시여, 찬양 드리나이다. 제 기쁨, 제 영광, 제 마음, 제 영혼이시여, 당신은 자비하시니 저의 모든 것이 되어주시며, 저 역시도 당신의 것이옵니다. 아직도 당신의 것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사오나 이제 저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당신께 다 바쳐 드리나이다. 아직도 당신께 속하지 못한 그 무엇이 제 안에 남아있으나, 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주소서. 하느님께 부당한 것은 모두 쳐부수고 없애셔서 당신 당신 마음에 드는 것만 심고 가꾸소서.

당신의 굳은 신앙을 밝게 비추사 제 마음의 어두움을 거두시고, 당신의 깊은 겸손으로 제 오만을 누르소서. 당신의 빛으로 방황하는 저를 이끄시고, 당신의 맑은 눈으로 항상 보시어 제 마음이 주님의 현존으로 가득 차게 하여 주소서. 당신 마음의 불타는 사랑으로 저의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시고, 저의 죄 대신으로 당신 성덕의 꽃을 피우시고, 당신 공덕으로 제 부족을 채워주소서.

지극히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님, 예수님과 그분의 뜻을 알려는 당신의 정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게 하여 주시고, 주님을 찬미하고 기리려는 당신의 영혼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하게 해주소서. 당신처럼 순수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하느님만을 기리겠나이다.

저는 환시도 계시도 어떠한 종류의 영적 특혜도 바라지 않나이다. 하느님을 밝히 봄은 당신의 특전이요, 하늘의 환의화 당신 성자 오른편에 영광되이 승리함은 당신만의 특전이오니, 당신은 천사와 인류와 악마까지 지배하여, 당신 뜻대로 하느님의 선물을 부어줄 수 있음은 당신께만 합당한 은혜이나이다.

오!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님, 주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가장 좋은 몫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 제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하나이다. 제 몫으로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있사오니, 당신 것이 되기 소원이옵니다. 영신의 기쁨 없이도 믿을 수 있사옵고, 누구의 위로 없이도 견디어낼 수 있나이다. 꾸준히 제 자신을 멀리하겠으며, 죽을 때까지 당신의 미천한 종으로 욕심 없이 열심히 살아가겠나이다. 단 한 가지 은총만을 간절히 구하오니, 제가 언제 어디서나 “아멘” 만 발하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 당신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모든 일에, 지금 당신께서 천국에서 하시는 모든 일에, 지금 당신께서 제 영혼 안에서 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 제가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란 말만 아뢰도록 하시어, 당신만이 제 안에서 영원토록 예수님의 영광을 기리게 하여 주소서. 아멘.

 

 

 

부록 IV
성모 성심 신심회

 

기원

이 신심회는 1899년 3월 25일 최초로 캐나다, 오타와의 듀하멜 대주교에 의해 설립되었다. 1913년 4월 28일 교회의 승인을 받아 로마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많은 나라에서 이 신심회가 결성되었다.

 

목적

이 신심회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우리의 영혼 안에 더욱 완전하게 세우는 방편으로 마리아의 왕국을 우리 안에 설립하는 데 있다.

 

회원 조건

1. 여러분의 이름을 보내주시면 이 신심회의 관련 지도 신부에 의해 공적 기록부에 기록되고 여러분에게 회원증을 보내 드릴 것이다.

2. 특별한 날, 성모님 축일에 마리아의 손을 거쳐 예수님께 봉헌 되도록 여러분 자신을 준비시키실 것이다.

3. 봉헌의 날에 성모님께 대한 공경의 표시로 선행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4. 선택 사항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성모님의 메달인 신심회의 뺏지를 착용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가시적 방법으로 십자가를 착용하는 이들은 그것을 달지 않아도 된다.

 

실천사항

적어도 아래 기도문을 바침으로써 매일 아침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자신을 바치는 봉헌행위를 갱신해야 한다.

“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저는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온전히 당신께 속해 있고,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바쳐드리나이다.”

회원들은 언제나 마리아께 의존해서 살고, 또 마리아와 일치하여 모든 행동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사

(몽포르의 봉헌 기도문을 이용하여) 봉헌 첫날에, 또는 봉헌 갱신 날에 통상 조건 (고해성사와 영성체 및 교황을 위한 특별 기도를 바칠 경우)을 충족할 경우에 ‘전대사’가 베풀어진다.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축일은 1) 이 신심회에 등록, 가입하는 날 2) 성 목요일 3) 성탄절 4)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성모영보 축일, 3월 25일) 5)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대축일 (12월 8일) 6)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축일 (4월 28일) 7) 매월 첫 토요일 등이다.

 

 

 


번안자에 대하여

 

한 때 ‘미국의 인기 리포터’ 라 불린 에디 도허티는 30년 이상 신문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많은 일간지에 무수한 글을 실었고, <뉴욕 아메리카 신문> 의 지방 기사 편집장이었고 미국 대중잡지의 편집부원이었다. 1943년 ‘우정의 집’ 창설자인 바로네스 캐더린 드 후에크와 결혼하였다. 최근 수년간 에디는 종교 주제에 관한 집필에 거의 전념하였다. 1969년 8월 15일, 79세의 나이로 에디 도허티는 멜카이트(Melkite)예식으로 사제직에 성품되었다. 1975년 5월 4일에 선종하였다.

 

 

 

이 책에 대하여

 

한 권의 책이 그 저자가 죽은 후 계속 베스트 셀러가 될 경우에, 우리는 그 책이 그 고유한 영역에서 고전이 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 바로 그러한 책이다. 수백 개의 판을 거듭하면서 3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이 소책자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대단한 권위와 감동”의 작품이라 표현하였다. 이 책은 섭리에 의해 1842년 그 원고가 발견된 이래로 무수한 그리스도교인들의 마음과 삶에 파고 들었다. 아마도 1712년에) 프랑스어로 집필된 이 책은 1862년 박학한 시인이고 영성 작가인 프레드릭 윌리암 페이버 신부에 의해 최초로 영어로 번역되었다. 페이버는 “나는 혼자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 전체 논물을 번역하였고, 또 신중함과 성실을 다했다” 고 우리에게 말한다. 영어 첫 판이 출간된 이래로 한 세기 이상이 지나갔다. 최근 수 년 동안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수많은 추종자들 가운데서, 보다 광범위한 번역 – 우리의 현대 표현 양식을 고려한 번역 – 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요구가 급증하였다. 이 요구가 드디어 인기 있는 현대 작가 에디 도허티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소책자가 마리아를 교회의 모델이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소개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훌륭한 논제를 더 잘 이해하는 데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지음
에디 도허티 번안
최영철 옮김
아베마리아 출판사

 

 IMPRIMI POTEST
FRANK A. SETZER, S.M.M.,
Provincial Superior

 Nihil Obstat:
MARTINUS S. RUSHFORD, PH.D.,
Censor Librorum

 IMPRIMATUR:
THOMAS EDMUNDUS MOLLOY, S.T.D.,
Archiepiscopus-Episcopus Bruklyniensis.

 Bruklyni, die XXVI April 1956.
4th Printing – 1984

Saint Louis de Montfort
TRUE DEVOTION TO MARY
adapted by Eddie Doherty

 한국어판 저작권
(c)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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