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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nin with family in 1938 – WikiMedia

 

천사의 선택

ADVENTURES IN TWO WORLDS

A. J. 크로닌 지음 /  최광성 옮김

춘원

 

 

천사의 선택

1989년 12월 21일 초판인쇄

1989년 12월 26일 초판발행

역자 최광성

발행처 춘원문화사

서울시 중구 쌍림동 21번지

값 3,300원

 

 

A. J. 크로닌

1896년 스코틀랜드 출생

1925년 의학박사 학위 받음

1931년 모자 帽子 집의 성 城 으로 문단에 데뷔

대표저서: ‘천국의 열쇠’, ‘성채 성채’, ‘청춘의 길’, ‘결혼조건’, ‘고독과 순결의 노래’, ‘별이 내려다본다 I, II’외 다수

 

 

 

 

차례

 

제1부

1. 임상 강당 臨床 講堂

2. 정신병원에서

3. 빈민가의 흰장미

4. 인도양의 성자 聖者

5. 첫 번째 수술

6. 성홍열 사건 猩紅熱 事件

7. 기침 멎는 약

8. 오진 誤診 에피소드

9. 운명의 도박 賭博

10. 노의사 老醫師의 죽음

 

제2부

1. 신혼 초야 新婚 初夜

2. 백의 白衣의 천사

3. 별에서 온 전화

4. 동맥류 動脈瘤의 역사

5. 서른 여덟의 관 棺

 

제3부

1. 개업의 開業醫 가 되다

2. 허영의 도시

3. 수녀원장과 밤의 여자

4. 대주교와 하인

5. 결혼과 가정

6. 의사 직업을 그만 두다

 

제4부

1. 처녀작 處女作의 탄생

2. 시골 의사

3. 종교

4. 산상 山上의 교회

5. 가난한 자의 촛불

6. 영혼의 도시

7. 폐허에 싹트는 것

8. 신 神과 그 존재

9. 나의 신조 信條

 

옮긴이의 말

 

 

 

 

제1부

 

 

1. 임상 강당 臨床 講堂

 

그 사월의 아침, 지붕 밑 다락방에서 눈을 뜬 나는 어젯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머리가 띵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자신의 경제상태를 생각해 보아야만 했다.

고맙게도 3개월 전 해군에서 제대할 때 하사금을 받았기 때문에 대학 의학부의 수업료 만큼은 금년치를 전부 지불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버지의 유품인 금시계줄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전당포에 맡기어 필요한 물건들과 헌 교과서 정도는 살 수가 있었다. 학우회비를 일 년치 선불할 수가 있어서 학교측으로 볼 때에 나는 참으로 지불능력이 있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장부의 다른 한쪽 면을 펴보면 그리 만족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학업을 재개하려는 각오로 분발한 나머지 생활 쪽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한 달 동안의 ‘나’라는 사람은 가끔 간이 식당에서 가벼운 요기를 했고, 저녁때는 가까운 시장에서 괴상한 것을 사서 봉지에 담아 들고 숙소로 돌아와 그나마 영양 보충이랍시고 했었다. 더구나 방세는 벌써 2주일이나 지불이 늦어져 있었는데 전 재산이라고 하면 – 나는 돈을 또 다시 세어 보았다 – 3실링 5펜스 뿐이었다. 아무리 장래를 낙천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 돈으로는 앞으로 8 개월간 먹고 입고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빨리. 갑자기 나는 미치광이같이 웃어대며, 울퉁불퉁 솜이 뭉친 매트리스 위로 뒹굴었다. 그것이 어떻다는 건가. 나는 혈관에, 앞뒤 가지 않는 아일랜드 인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넘치는 청년이 아닌가. 일을 하는 거다. 노동을 하는 거다. 일을 하면 되는 거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라도 하자.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위만은 따야 한다.

구축함 멜람프스 호를 타고 납 같은 동요가 그치지 않는 북해 수역을 감시, 경계하며 단함 單艦 을 미끼로 항해용 지도에도 없는 기뢰원 機雷原 과 잠수함이 출몰하는 바다를 얼음과 같은 물거품 속에 반쯤 언 몸으로 구두와 구명자켓을 그대로 신고 입은 채 자며, 배 멀미에 고통을 받고 온몸이 박살이 나서 날아가 버릴 것을 각오하면서 터첼링과, 제브류게와 유트랜드로 나아가던 그 지겹고 한없이 위험했던 몇 년의 일을 생각한다면, 아무튼 기적적으로 아직 살아서 자유의 몸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 고맙게도 전쟁은 끝난 것이다 – 다시는 전쟁 같은 것은 일어날 턱이 없지. 더구나 눈부신 봄은 지금 여기 찾아와 이 글라스고의 고을은 고도를 부드러운 봄빛과 뜻하지 않던 햇볕으로 감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구나 – 이것이 무엇보다도 첫째 문제지만 –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애를 할 타입은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날씬한 몸매, 다갈색 눈, 황색 머리, 태양에 데워진 것 같은 피부, 마음도 녹일 것 같은 가련하고 순진함을 지닌, 역시 글라스고 대학 의학부에 다니며 우간다 외지 전도회 소속 의사가 되려고 굳게 마음 먹은 열여덟 살의 아가씨였다. 몇 주일 전, 안개 짙은 2월의 어느 날, 나는 병리학 교실에서 내막염에 걸린 심장을 한눈도 팔지 않고 해부하고 있는 그녀를 우연히 보았던 것이다. 일을 마치고 얼굴을 든 그녀는 내 존재를 깨달았고, 그 눈부신 듯한 순간에 이성을 넘은 애정의 씨가 뿌려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최초의 말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멋쩍은 것이었다.

“무척 안개가 깊지 않습니까?”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 여학생이 메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외출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잇는 이 멋없는 도시에도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 불과 2펜스로 맛있는 홍차를 마시며 언제까지나 눌러 앉아 있을 수 있는 훌륭한 다방과, 주위 전원의 장려한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경제상태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2펜스를 써버리고 있었다 –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토요일에는 전차로 교외에 나가 가까운 숲과 산으로 돌아다니며 황무지의 차가운 바람을 쏘이면서 천천히 몇 마일씩 걷곤 했다.

진지하게 서로 이야기할 때면 우리 두 사람의 결합에는 전혀 희망이 없어 보였다. 성격적으로도 완전히 상반되어 있었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든 실제적인 면에서 보아 먼 장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에는 우리만큼 이 세상에서 동떨어진 인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메리 는 조용하고 온순하며 소극적인 처녀로서 엄격한 독립교회파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나, 지금 콩고의 원주민을 개종시키려고 하는 열렬한 희망에 불타고 있는 여성이었다. 나는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살아나가고 있고, 그런데도 불타는 야심은 있어서 태어나면서부터의 종고라고 하면 별로 영향은 받지 않았다고 할망정, 메리 네 집 사람들에게 자신을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친절하게도 우리 두 사람의 어울리지 않음을 지적해 주었고, 우리도 가끔 만나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괴로움과 싸우면서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집어 먹으면서 맥없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약속하고 용감하게도 영구한 이별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헤어졌다가도 벌써 이튿날 아침에는 뉴턴의 인력의 법칙보다도 강한 힘으로 두 사람은 만나, 서로 일생을 떠나지 않을 증인으로서 하느님의 이름을 꺼내는 상태였다.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창을 열고 어리석게도 제2의 산도우[주: 건장한 육체를 가진 독일태생의 직업적 체육가로서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장하였다] 가 되려는 듯 내 야윈 몸을 단련하는 격한 체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층 좁은 욕실로 가서 이를 갈며 얼음같이 찬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옷을 입으려니 옛날 그대로의 해군 군복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한스러워졌다. 뭐 좋아서 입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청년 제독 같은 모양으로 학교에 나가고 있었다 – 제대해 보니까 한 벌 있던 옷은 좀이 먹어 못 입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복이라도 훌륭하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뾰족한 모자를 조금 삐뚤어지게 쓰고 교과서를 끼고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런데 운수 나쁘게도 벌써 주인 아주머니가 빗자루와 물통 등을 들고 현관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아데노이드 를 않는, 부서진 고래뼈의 코르셋을 한, 안색이 나쁘고 몸집이 작으며, 일요일 오후면 응접실 오르간을 쳐서 이웃집 개들을 괴롭히는 여자다.

“굿모닝 미세스 그란트”

아주머니는 내 인사에 대답도 하지 않고 윤기 없는, 그리고 힐난하는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엊저녁에 방에서 청어 요리를 했지요?”

“그게 저…. 사실은…”

“온 집안이 그 냄새로 가득 차 있어요. 인도인 손님이 화를 내고 있어요. 더구나 개스를 마음대로 쓰고…”

“조금 밖에 쓰지 않았어요 미세스 그란트, 사실은 – 나는 일부러 명랑하게 웃어 보였다 – 절반은 날 것으로 먹었으니까요.”

주인 아주머니는 재미없다는 얼굴을 하고 은근히 비난섞인 듯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뭐 당신을 원수로 삼자는 것은 아니에요. 군대에 갔다 온 당신을 말이에요. 그렇지만 방세가 밀려 있으니까, 만약 계산해 줄 수 있다면… 나가 주어야 해요.”

침묵….

나는 주먹으로 낡은 오슬러의 ‘내과학’ 표지를 탁 때렸다.

“미세스 그란트” 하며 나는 말했다. “히포크라테스[주: 기원전 4-5세기 경의 희랍 의사로서 의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에 맹세코 방세는 지불합니다. 이제 운이 트이려 하고 있어요. 그것도 가까운 장래에 말이에요.”

밖에는 살랑살랑 상쾌한 미풍이 불고 있었다. 켈빙그로브 공원을 걸어가니까 꽃나무 숲속에서 개똥지빠귀가 지저귀고, 미술관 주위의 새싹이 돋아나는 풀밭에 크로카스가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이 미술관에는 내가 갈망해 마지 않는, 렘브란트의 ‘갑옷 입은 사나이’가 진열되어 있어서 나는 감격한 나머지 정신없이 가끔 ‘아아 언젠가는 이 그림을 가질 수 있는 신분이 되고 싶구나’하고 한숨을 짓기도 했다.

저 멀리 언덕 위에는, 대학의 나지막한 윤곽이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흡사 5백 년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듯 당당하게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가난하지만 향학심에 불타는 얼마나 많은 스코틀랜드의 시골 청년들이 이 회색 건물로 왔던 것일까.

그 옛날, 그들은 면학에 힘쓰며 보내야 할 몇 달 동안인가를 지탱할 오트밀을 만들기 위한 보리쌀 부대를 짊어지고 시골에서 올라왔던 것이다. 그것을 기념하여 ‘보리쌀 월요일’이라는 특별 학생의 휴일이 제정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야심에 찼던 청년들 중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아니 얼마나 적은 숫자의 청년들이, 겨우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가, 아아, 학업을 끝낸 청년들보다 얼마나 많은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거부당하여 지치고 좌절된 낙오자의 낙인이 찍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일까.

이것을 생각하면 나는 용기가 났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실패할 수는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아버지의 죽음 – 이 사건 때문에 그때까지의 내 태평스럽고 응석부리던 생활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고투로 바뀐 것이다 – 에 이은 10년 간의 믿을 수 없는 고통을 통해 내 가슴 속에 심어진 지배적은 정열, 생활의 주조, 살아있는 이유 그것이었던 것이다.

가난하여, 환경에 짓눌린 청년의 불행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눈으로 뿐만 아니라, 남의 눈에도 스스로의 힘을 실증하고 싶어하는 동경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한 청년의 가슴에는 ‘승리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냐’하는 좌우명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심장의 고동 하나하나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이 귀에 들려오는 것같이 느껴졌다.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부귀와 높은 자리와 명성을 향하여.’

대학 건물의 남쪽 조금 나지막한 곳에 서 西 부속병원이 있었는데 거리의 시계탑에서 아홉 시를 쳤을 때 나는 학생 회관 입구를 통해 들어갔다. 오늘 아침은 외과의 대수술 강의실에서 뇌종양의 수술이 행해질 것으로 되어 있었다 – 이것은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특별증례 特別症例 였다 – 그러나 그것보다도 내 희망은 수술이 끝나면 곧 실행에 옮기기로 되어 있는 어느 계획에 집중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이 작은 북국의 대학에 남아서 학생으로서 생활할 방편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을 나도 알만큼 알고 있었다. 사실 그 유일한 기회는 부속병원의 외과의사의 ‘수술 조수’ 내지는 ‘상근 숙직’에 임명되는 것으로서, 이 지위를 차지하면 무급이기는 하지만 병원에서 먹는 것과 거처할 곳을 무료로 받는 행운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담임인 외과조수 윌리엄 매큐엔 경의 조수가 되면 언젠가는 대학 기록관의 지위로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매큐엔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도 교수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었었고, 제대 후에 있었던 3회의 월례고사에서도 매번 나는 수석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나는 조수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강의실에는 이미 클래스의 학생이 거의 곽 차 있었고 우유 빛 유리의 천장에까지 닿아 있는 원형의 벤치도 꽉 차 있었으나 친구인 치셤이 맨 앞 중에 내 자리를 잡아 놓고 있었다. 그 곁으로 무례하게 뚫고 들어갔을 때에는, 기대에 찬 낮은 음성이 주위를 채우고 있었는데, 이미 마취를 끝낸 중년의 부인 환자가 손수레에 실려 들어오자 그 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나도 병고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편은 아니지만 축 늘어져서 위를 쳐다보고 누워 골골 숨을 몰아 쉬며 까까중으로 머리가 깍이운 채,  요듐을 발라 흡사 큰 당구공 같은 머리를 한 그 여자를 보자, 어쩐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추괴 醜怪한 것이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흔들려, 과학에 전념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거의 어울리지 않는 극적인 본능으로써 그 여자의 과거를 마음 속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시초는 저 여자가 집안 일을 돌보려고 했을 때, –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의 점심을 준비하고 – 먼 종소리인가, 연통에서 속삭이는 바람소리 같은 희미한 소리가 귓속에서 울리고 그것이 하도 신기한 소리여서 그녀는 혼자서 킥킥 웃어 버렸을 정도였다. 다음의 몇 주일인가는 그 소리가 사이를 두고 들리기 때문에 그녀는 귓속에 데운 긺을 넣었다. 그래도 별 반 효과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눈은 희미해지고 신문 활자가 몽롱해져서 잘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아, 물론 그랬을 것이다. 왜 안경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여자는 곧 안경가게로 갔다.

그러나 돗수 높은 안경을 써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다음으로는 묘하게 기운이 없어지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아프고, 식욕이 점점 없어지고, 때로는 터널을 지나는 기차소리가 나며 귀가 심하게 울리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일까. 걱정도 되고 기분도 나빠 그 여자는 늘상 가던 병원에 가 보았다.

의사는 동정을 하면서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청진기를 가슴에 대어보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피로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자기 몸을 너무 돌보지 않는군요.  너무 바쁘게 일하지 말고 더 신선한 야채를 먹고 가끔 주말에는 해변에라도 나가세요, 하고 의사는 말했다. 그리고 강장제를 부며 이것으로 곧 회복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귀 소제도 해 주었다.

안심하고 이 훌륭한 약에 큰 희망을 걸고 그 여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일어났을 때 어지럼증이 나서 비틀거리다가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아 침대에 쓰러졌다. 그 후 이 무서운 증세는 집요하게 더욱이 극히 은미한 중에 악화되어 갔다. 남편과 함께 새 의사에게서 새 의사한테로 진찰을 받으러 갔는데 그때마다 간장이 나쁘다든가 신경계통이 침범되어 있다는 등, 하나같이 다른 진단이 내려졌고 역시 그때마다 새로운 치료를 받았으나 도무지 효과는 없었다.

최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는 이 대학의 부속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와서, 여태까지의 돌팔이 의사, 엉터리 의사 아닌, 버젓한 의사의 손에 몸을 맡긴 것이다. 그는 샅샅이 과학적으로 진찰을 받고 – 온갖 검사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치명적인 선고가 내려졌다.

“뇌종양 .. 유일한 희망은, 그것도 별로 확실하지는 못하지만 곧 수술을 하는 것이다.” – 얼마나 무서운 고민, 얼마나 무서운 악몽 같은 공포로 그녀는 이 선고 앞에 직면했던 것일까?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 미지의 세계, 예리한 메스가 머리 속에 파고들어 두개골을 가르고 생명이 사는 자리를 잘라내는, 저 견딜 수 없는 곳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갑자기 교실 안이 조용해져서 정신을 차리고 문 쪽을 보니 교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으나 조용한 위엄이 주위를 에워쌌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위용은 그를 곧 이제부터 우리 눈앞에서 바야흐로 벌어지려는 극의 중심 인물로 만들었다.

당시의 윌리엄 매큐엔 경은 이미 70을 넘어 있었으나 그러한 창대같이 곧은 그 장신의 마른 몸, 균형 잡힌 깊은 눈과 우뚝한 코, 수려한 옆 얼굴, 잘생긴 관골 위에 강인한 탄력을 느낄 수 있는 피부, 그 경이적인 머리를 덮고 잇는 은발마저 억제할 수 없는 정력적인 젊음을 풍기고 있었다. 매큐엔은 얼핏 보아서도, 아직 정력이 감퇴하지 않는 위대한 인물인 것을 곧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30여 년에 걸쳐 그는 유럽에 있어서의 최고의 뇌수 외과의사로서 절대한 상찬 賞讚 으로써 인정받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 학생은 뻔뻔스럽고 만만찮은 패들이었지만 –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모두 ‘빌리’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그의 이름을 중심으로 하여 어느새 만들어졌을지 모르는 전설을 애정으로써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벌써 수술복을 입고 조용히 뢴트겐 사진을 조사한 후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음성은 조용하고 그러면서도 간결하며 태도는 친절, 정중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제군, 오늘의 우리들의 강의는’ – 그는 우리를 향해 말할 때 언제나 국왕처럼 복수를 썼다. – “틀림없이 두개골 내신경 종양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믿어지는 흥미 있는 환자에 대해서 입니다.”

그는 말을 끊고 학생들의 줄을 차례로 돌아보다가 이윽고 나에게 – 나는 맨 앞줄 맨 가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었다 – 눈을 멈추었다.

“이 병의 증세는 어떻습니까?”

“몹시 두통이 나고 아무런 뚜렷한 원인 없이 식사와는 관계없는 구토를 하고 심한 현기증이 나타납니다.”

“계속해서”

“보통 시반폐새 視盤閉塞 를 동반하는 시신경염이 나타납니다. 이 신경염의 정도를 비교함으로써 종양이 있는 쪽을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종양이 소뇌에 있을 경우에는?”

“발음이 지둔하고 그리고 경련적으로 되며, 머리가 아래로 수그러지게 됩니다. 환자는 종양과는 반대쪽으로 쓰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신불수증입니다.”

“그 다음은?”

“”희망은 거의 없습니다. 뇌저 腦底 의 종양은 보통 대체의 위치만은 알 수 있으나 거기에까지 이르기는 곤란합니다. 갑작스러운 출혈, 질식, 혹은 생명중추의 압박으로 죽음에 이릅니다.”

“좋아, 훌륭한 대답입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은, 그러나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이 순간에 자신의 열심과 실력을 빌리의 머리에 심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절호의 기회를 갖다 준 운명도 몹시 친절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코를 몹시 고는 듯한 환자의 호흡이 지금은 어느새 이빨 가는 듯한 소리로 되고, 간호원이 최후의 소독 거즈를 환자의 목에 끼우자 매큐엔은 잠깐 마취된 사람 쪽을 보고 나서 수술대 곁으로 다가갔다.

화가가 큰 그림의 윤곽을 잡는 것처럼 그는 란셋을 집어 들고 최초의 절개를 시작했다. 재빨리 머리의 피부를 걷고 반짝반짝 빛나는 두개골을 노출시켰다. 이윽고 그가 쟁반만큼이나 되어 보이는 뼈를 동그랗게 잘라내는 데 따라 톱질하는 소리가 실내를 메웠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기드릴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매큐엔에게 결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근대 의료기구를 멸시하고 자기의 우수한 기술에 완전히 의존해서 단순한 장치만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고등 재판소에 전문가의 증인으로 송환되어 나가, 재판장으로부터 “기구는 끓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재판장” 하고 빌리는 대답하면서 여자 손처럼 작고 섬세한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어떻게 끓일 수 있습니까?” 라고 하였다.

작은 톱을 옆에 놓고 나서 이번에는 색인기 索引器 를  집어 들고 잘라낸 뼈의 원반을 치운다. 그 밑에서 금장 터질 것 같은, 벌의 날개처럼 가느다란 혈관을 통한 분홍색 뇌막이 나타났다. 솜씨 있게 그는 그것을 쳐들었다. 그러나 절개구 切開口 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모양으로 그는 대담하게도 유유히 그것을 펼치기 시작했다. 금속의 집게를 두개골을 집어서 척추의 윗부분을 비틀어 올리는 것을 나는 생침을 삼키며 보고 있었다. 그것이 끝나고 뇌막이 열리자 거의 한숨에 가까운 나지막한 지껄임이 학생들 사이에 일어났다.

하얀 뇌 속에 염증을 일으킨 듯한 거무튀튀한 종양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교수의 반사경의 밝은 빛 아래 무서운, 고동하고 있는 구멍 속에서 집게에 잡혀, 그것은 독을 지닌 정글의 꽃이나, 물속의 광선에 흔들리고 있는 이상한 생물, 그 새빨간 촉수에 스치면 생명을 잃어 버리고 마는 말미잘 같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매큐엔은 천천히, 신중하고 종양이 달라붙어 있는 복잡한 소용돌이 같은 뇌수에서 그것을 잘라내려 하고 있다. 조금이라고 거기에 깊이 메스가 들어간다면 당장 환자는 죽어 버린다. 얼마만큼의 숙련과 지식, 얼마만큼의 판단력과 직관, 얼마만큼의 냉정과 용기가 이 가슴 속에 나타났던 것일까. 그가 생명의 금선 琴線을 만지고, 이것을 울리기 하고 있는 것을 홀린 듯 지켜보고 있으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부터 그를 그토록 유명하게 한 이러한 승리를 획득하고 싶다고 원했다. 아아, 그것은 참으로 승리의 순간이었다….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드디어 수술은 끝났다. – 석류만한 크기의 끈적끈적한 종양은 깨끗이 떼 내어져 간호원이 가지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믿을 수도 없을 만큼 훌륭한 솜씨로 교수는 혈관을 손보고 깨끗이 정리한 다음 막을 원래 대로 닫았다. 두개골을 꿰매어지고, 거의 쇼크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식염주사를 놓았다. 이윽고 매큐엔은 최후의 봉합을 했다.

“수고했습니다, 제군. 오늘은 그만 하겠습니다. 사흘 안으로 아마 엉킨 액을 훑어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밖에는 아무 탈없는 회복을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붕대로 커다란 터번처럼 머리를 감은 환자는 의사와 두 간호원에 의해서 손수레로 옮겨져 나갔다. 학생들은 교실을 떠나기 시작했지만, 여느 때 같으면 구두소리를 내며 떠들썩할 터인데 오늘은 흡사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 같이 정숙했다.

나중에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오후에 매큐엔이 강의에 들어오면 그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이 정숙함이 오히려 커다란 찬사로 되어 있었다.

나는 학생들이 나간 다음에도 자리에 남아, 노트를 정리하는 것 같은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제부터 벌일 계획에 정신이 없었다. 마취계원이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고 담배케이스에서 담배를 한 대 뽑아 물고 교실을 나갔다. 매큐엔은 간호원 한 사람만을 데리고 피로의 기색도 없이 조용히 손을 씻고 있었는지 그것을 보니까 그렇게 훌륭한 연기도 예사로운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이윽고 간호원도 나갔다 – 그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재빨리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앞으로 나갔다.

“실례합니다만 선생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는 천천히 세탁한 타월로 손을 씻으며 나를 돌아봤다.

“그러지…나는 항상 젊은 사람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까.”

그 태도와 눈동자 속의 관대함에 나는 용기를 얻었다. 다른 것은 그만 두고라도 나는 시험에서는 훌륭한 성적을 따고 있지 않은가. 병실에서는 그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에 관심을 가지는 듯 했고, 내 상상력의 대담한 비약에 그가 미소 지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 않았는가.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은 그의 부하 중에서 가장 낮은 지위인 것이다. 용기를 내어 나는 그것을 신청했다.

잠깐 동안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왜 내 조수가 되려는 거지?”

나는 온갖 성실을 다하여 대답했다.

“저는 외과를 전공하고 싶습니다.”

침묵…. 오랜 침묵이었다. 이윽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미 결정됐어.”

그의 날카로운 눈은 그래도 나한테 쏠려 있었으나, 그것은 자비스러운 아버지같이, 더욱이 그가 지니고 있는 틀려본 적이 없는 판단이 담겨져 있었다.

“내과나 다른 과면 자네는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단 한 가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지. 자네는 외과의는 될 수 없어.”

 

 

2. 정신병원에서

 

“로클리 정신병원, 임상 조수를 구함, 침식제공, 보소 100기니. 대학 재학생도 가능.”

 

매큐엔한테서 거절당하고 초조하고 우울한 2주일이 지났을 때, 외과강의, 산과과정, 시체해부 실지연습, 학년말 댄스파티 등 학우회의 게시판에 붙은 많은 게시 속에서 이 광고가 내 핏발 선 눈을 잡았다. 이 구원의 손길이 너무도 기적처럼 느껴져, 나는 만일의 요행을 바라는 기분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으나 다른 학우에게 빼앗겨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곧 길모아 힐을 뛰어내려 녹색 전차를 잡아 탔다 – 안락하고 훌륭한 전차로서, 그 당시 단 1 페니로 글라스고 시민을 실수 없이 먼 곳에까지 태워다 주는 시전 市電 이었다.

정신병원은 글라스고에서 서쪽으로 4마일. 깨끗한 나무들이 많이 들어선 전원 한가운데 있는 놀랄 만큼 당당한 건물이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곽 같은 집으로써, 잘 손질된 정원이 있고, 풀밭과 과수원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부지 전체에 높은 돌담이 둘러쳐져 있었다. 수위실로 들어가 취직하러 왔다는 뜻을 전하자, 안내원이 나를 안내하여 함께 긴 너도밤나무 길을 지나, 아치형의 현관에서 대리석 조각으로 장식된 방을 거쳐 원장실로 들어갔다.

당시 정신병학의 태두로 인정되고 있던 거빈튼 박사는 키가 크고 마른데다가 안색이 나쁜 백발의 노인으로써, 태도는 퍽 조용해 보였으니 섣불리 가까이 할 수 없는 초속 超俗 한 점이 있었다. 책상 너머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을 때의 꿰뚫는 듯한, 최면술이라도 걸려고 하는 것 같은, 이상하게 노란 눈알이 점점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스스로의 단점을 의식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생각하며, 슬프게도 동요되는 마음으로 나는 엄중하고 가혹한 질문을 각오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그는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3년 전, 스코틀랜드 실드 축구팀의 주장을 했던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네, 선생님.”

하고 나는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은 저 제가 그….”

그는 지금까지의 엄한 태도를 누그러뜨려 친근감이 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 시합을 보았지. 자네는 상당히 잘 싸웠어. 그라운드가 그렇게 진흙투성이가 아니었더라면 쉽게 자네네 팀이 이겼을 거야. 자, 앉게. 그 의자도 그리 불편하지는 않을 걸세.”

나는 지금 나에게 다가온 행운이 믿기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이것이 폭우 속에서 꼭 한 번, 상대방의 반칙 때문에 지고 나서 탈의실로 들어가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머금었던 저 처참했던 시합의 보수일까?

그러나 사실이었다. 프랑크 기빈튼은 축구의 굉장한 팬으로서, 옛날에는 국제 시합 선수였고,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클럽의 제1위, 퀸즈 파크의 정 正 선수로 함든 파크에서 두 번이나 국가 대표로서 시합에 출장한 사람이었다. 30분간이나 우리는 이 경기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는 동지의 친밀감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윽고 그는 별안간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이리로 오게. 자네라면 시간에 늦지 않겠지. 아 참.”

그는 나를 다시 불렀다.

“여기서는 급료는 선불이야, 이걸 가지고 가게…. 최초의 4반기분 급료라네.”

그는 펜을 집어 들고 무엇인가를 조금 쓰더니 내 쪽은 보지도 않고 25기니의 수표를 나한테 주었다. 나는 가슴이 뿌듯하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내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곤란해 하고 있는가를 그가 꿰뚫어 보지나 않았을까 싶었으나 –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것으로 미세스 그란트의 밀린 방세를 갚을 수 있고 시계를 찾을 수 있으며 트렁크도 찾을 수 있다. 나는 구원 받은 것이다.

이렇게 조건이 좋은 자리가 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부속병원에 어떤 자리가 있었다 치더라도 그런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다. 오전 중은 자유 시간이어서 학업을 계속할 수가 있다. 급료는 넉넉하다. 안락의자와 난로가 붙은 기분 좋은 방, 그밖에 빨간 융단을 깐 아담한 침실, 설비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욕실, 이것이 내 방이었지만, 지금까지 살고 있던 구질구질한 하숙집에 비한다면 흡사 왕궁 같은 것이다.

로클리에서는 모든 것이 호사스러웠다. 식사도 이제는 내 주머니 사정과 관계없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고 또 그 메뉴가 썩 좋았다. 아침은 오트밀에 크림 – 그것도 자가 농장에서 바로 가져온 진하고 신선한 것이다 – 베이콘 에그, 향기 높은 커피, 금장 구워낸 빵, 과일, 점심은 약간 형식을 갖추어 직원들에게 내는 것인데 수프와 야채를 곁들인 큼직한 고기, 혹은 통닭, 훌륭한 디저트, 거기에 치즈. 차는 4시에 방으로 날라다 주는데, 쟁반에는 날마다 밀크와 과자,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스코틀랜드에서는 ‘프랑스 케이크’라고 불리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올려져 있어서, 가정부의 과자 만드는 솜씨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저녁은 흡사 날마다 축제인 것같이, 찬 요리가 몇 접시하고 식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전기접시에 놓은 캐서리, 마카로니, 혹은 카레가 나온다.

이밖에 지하실의 큰 주방에는 언제나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으므로, 몇 주일 동안은 정체 모를 썩은 것 같은 빵이나 가금 차를 한 잔씩 마시는 것으로 겨우 목숨을 이어 온, 항상 배고프던 청년에게 있어서는 환경이나 장래의 희망이 아주 싹 달라졌다고 상상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원장 이외에 병원 의무담당 직원이 둘 있었다. 피터스 박사는 명랑한 얼굴을 한 푸둥푸둥 살찐 나이 든 남자로서, 그랜드 오페라에 대단한 열심을 가져, 그 때문에 회진 때도 베르디나 오펜바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젠 카마이클 박사는 아름다운 재기 넘치는 여성으로, 젊었을 때 실험 중에 사고를 일으켜 얼굴에 흉한 흉터가 있었으나 일생을 슬픔 속에 보낸다는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 후 감연히 정신병 환자의 시중드는 일에 생애를 바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호원장 미스 몽고메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주 약한 듯한 마른 모습의 백발 부인으로서, 말씨는 아주 조용하고 태도는 귀족적이며, 게다가 이 부인의 조용한 손길에 병원의 복잡한 경영사무 대부분이 맡겨져 있어, 이 부인의 단 한 마디의 달래는 말, 달 한 번의 온화한 눈길로써, 아무리 걷잡을 수 없는 환자도 조용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선량한 사람들이 모두 나한테 친절과 관용을 보였으므로 나도 이에 대하여 새로운 동료들 속에서 스스로의 직분에 알 맞는 일을 하는, 즉 자기의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써 답하려고 했던 것이다.

확실히 로클리에 있어서의 ‘임상’일은 흥미 면에 있어서나 변화에 있어서도 부족한 점은 없었다. 널리 진통제로도 쓰여지고 있는 취화 臭化 칼리움, 나트륨 취화암모늄, 포수 포수 클로랄, 패럴데히더, 그 밖에도 많은 약품의 용액을 큰 윈체스타 저장병에 조제해 두는 등 약국의 일은 모두 내 관리 아래 놓여졌다. 나는 세균학적인 일과 병리학상의 표본의 현미경 검사를 맡았다. 그리고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에게 식사를 먹이는 좀 이상한 일도 맡았다. 이것은 위 속으로 관을 집어넣는 작업인데 꽤 솜씨가 필요한 일이었으나 나는 금방 이 일의 명수가 되었다. 그밖에 병상일지를 쓰고 의사의 누군가가 휴가를 갔을 때는 저녁때 대신 회진을 하기도 하는, 요컨대 선배들을 도와 죽기도 하고 박자를 맞추어 주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가빈튼 박사가 이러한 처지에 비상한 치료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요구에 따라 나는 환자들 사이에 들어가, 그들 속에 경기단체를 편성하여 테니스와 크리켓이나 핸드볼을 함께 하고 그들을 위하여 오락으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음악회나 댄스파티에 가담하는 것을 요망받았다.

정신병원의 수용자에 대해서는 극히 나쁜 취미로 뿐만 아니라 질이 좋지 않은 우스갯소리가 많이 쓰여지고 있다. 한 예를 들지만, 가끔 자기를 나폴레옹이라든가, 줄리어스 시이저라든가, 고다이비아 부인 [11세기 영국의 마아샤 백작의 아내로서, 남편이 시민에게 과세한 중세 重稅 를 폐지시켜 준다는 약속을 받고 온 거리를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돌았다.] 이라든가, 역사상의 중요한 인물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그 결과로써 이러한 역할에 있어서의 상식 일탈을 대단한 위로감으로 삼고 있는 고민하는 사람들이 퍽 흥미있는 인물로 자주 쓰여진다. 사실과 동떨어진 점이 이보다 더한 것 없다. 로클리에 있는 동안 나는 한번도 그러한 어릿광대 같은 경향을 가진 환자를 만난 적은 없다. 정신병이란 항상 가엾은 것이라는 것이 엄연한 사실일 것이다. 더구나 그들을 연구하고 인간의 정신 신비를 탐구한다는, 어림없는 일을 시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들은 무한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로클리는 근대적인 스코틀랜드 제1의 시설의 하나로서, 불치의 환자를 적당히 할당받고는 있었으나, 특히 많은 쇠약환자, 즉 생활의 과중한 압박이나 긴장 때문에 신경이 돈 사람들도 수용하고 있었다 – 그들은 파산으로 인하여 자살을 꾀하려고 했던 실업가, 어린아이를 잃어버리고 슬프게도 정신착란이 된 가엾은 젊은 어머니, 가정의 불화나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지쳐버린 아내 따위들이었다…

이러한 환자를 치료하여 원래대로의 건강체로 돌이켜, 다시 자기 직업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인생의 싸움에 참가할 수 있는 적당한 모이 되어, 돌담에 둘러 쌓인 이 성곽에서 맑은 눈으로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빈튼과 로클리에 있어서의 가빈튼의 협력자들의 제1의 목적이기도 하고 참 보수이기도 했다. 그것은 모든 의미에 있어서 가슴 설레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또 위험도 없지는 않았다.

로클리의 환자들 중에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던 사람은 조지 블레어라는 사나이였다. 모두들에게서 ‘조디’라고 애칭되고 있는 이 청년은 애교있는 성격 때문에 한층 마음을 끌었는데, 특히 내 동정을 끈 그의 신상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5년 전에 그는 사촌을 죽였다 – 사실 목을 졸라 죽여 버린 것이다. 이 범죄가 행해진 사정은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우리 둘이서 이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 이 자기 표출 방법은 항상 장려되었다 – 조디가 고백한 바에 의하면 피해자인 청년이 그의 누이동생을 능욕했다는 것이다. 사실 – 되도록 불유쾌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한다면 – 자기의 애정을 무리하게 육체적으로 누이동생에게 떠맡기려고 했던 것이다. 일시적으로 블레어의 정신 균형을 잃어 버리게 한 것은 이 청년의 폭행이었다. 진지한 청년으로서는 그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법정에서의 판결은 ‘유죄, 단 정신착란 중의 범죄’였다. 이리하여 조디는 ‘무기한’ 구금을 선고받아, 주로 가족들의 신청에 의한 것이지만 로클리로 옮겨져 여기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가혹하고 부당하게만 느껴졌으나 이 펼ㅇ생 걸리는 형벌의 무거운 짐을 블레어는 용감하게도 받아들였다. 이 일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한층 강하게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 병원에서 그만큼 기운있고 정력적인 사람은 없었다. 음악회에서는 고운 바리톤으로 노래를 부르고, 일요일에는 반드시 성가대의 앞자리에 앉았다.  월례집회에는 스코틀랜드 고지인 고지인 옷을 입고 나타나고, 댄스파티에는 꼭 출석해서 앞장서고, 여덟 사람이 춤추는 리일 [스코틀랜드의 경쾌한 댄스] 에서는 훌륭한 춤 솜씨를 보였다. 약간 키가 작고 뭉실한 몸집이었으나 대단한 육체의 소유자로서 로클리에 조직된 모든 경기에 열심히 참가했다. 맨 처음 우리를 연결 지은 것은 이 경기에서였다.

나는 원래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는 특히 육체 단련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어서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찬물로 목욕을 하고 그리고 30분 간 등교하기 전에 뮬러식 가벼운 체조라든가, 운동장을 달린다든가, 무슨 모양의 경기를 한다든가 하는 따위로 굉장히 열심이었다.

이리하여 조디와 나는 기운차게 자주 테니스랑 온갖 운동들을 했다. 토요일 오전 나는 시간이 있을 때 볼을 들고 나가 운동장에서 같이 차곤 했다. 그는 명랑하고 발랄한, 참으로 호감이 가는 사나이였으므로 – 거기에다가 또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위해서 여러 가지로 걱정을 해주고 개인적인 볼 일까지 보아주기 때문에 – 나는 이 사나이에게 비상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원장에게조차 그의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다.

가빈튼은 하루 일이 끝난 다음 당구치는 것은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글고 피터스 박사가 하지 않기 때문에 자주 나를 자기 집으로 불렀다. 자택에는 훌륭한 당구대가 있어서 100점 게임에 20점 핸디를 나에게 주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이렇게 당구를 치고 있다가 나는 원장에게 말했다.

“선생님, 블레어가 일생을 로클리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 도니다는 것은 가엾더군요.”

“글쎄.” 원장은 큐에 초오크를 발랐다.

“그렇다면 자네는 우리 병원을 그토록 나쁜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셈이군.”

“아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천만에, 천만에 말씀이지요. 어느 모로 보든지 좋은 곳입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 높은 돌담으로 세상과 격리되어 있으니까요.”

“저 담은 그래도 훌륭한 구실을 하고 있지.”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지만 블레에에게 대해서는 그렇지도 않지요. 여간 좋은 친구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독한 대우를 받아 왔어요. 당숙에 소청을 낸다든가 탄원한다든가 그런 일은 되지 않을까요?”

가빈튼은 곧 대답은 하지 않고, 그 사이 항상 하는 버릇으로 윗입술을 만지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윽고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당수를 치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면서 말했다.

“우리의 친구 블레어 군은 로클리에 있는 편이 유쾌하게 사는걸 거야.”

물론 이것으로써 이야기는 끝났다. 그러나 나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디를 위해서 되도록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도록 갖가지 신경을 써 주었다.

이 이야기가 있고 나서 몇 주일인가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피터스 박사를 대신하여 근무를 하면서 – 그는 카를로 로자 일행의 ‘라보엠’ 공연을 보러 뛰어 나가고 없었던 것이다 – 남자 병실의 회진을 갔다.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때보다 늦어져서 벌써 11시 가까이 되었는데, 병실 부엌에 들어가 보았더니 야근하는 카리가 뜨거운 오보말친을 만들고 있었다.이것은 규칙으로서 별로 건강하지 못한 환자에게 주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카리는 70을 넘은, 뻣뻣한 백발의 하이랜드 인 [스코틀랜드 고지 지방의 사람] 으로써 나이를 먹어 허리는 구부러져 있었지만 아직 정정했다. 거의 50년 가까이 로클리 병원의 야근을 맡아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부드러운 인바네스 [스코틀랜드 북부지방] 사투리의 액센트로 자주 나한테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반세기 동안 별로 태양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항상 그가 만들어 주는 영양 많은 오보말친을 마시면서 나는 유쾌하게 지껄이고 있었는데 그날 밤은 그는 나를 흠칫 곁눈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조디가 오늘밤 행패를 부려서요. 모두들 붙잡아 7호실에 넣었지요.”

나는 깜짝 놀라 카리를 쳐다보았다.

‘블레어가 … 7호실에?”

“네” 카리는 끄덕였다. “아주 굉장했어요.”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병동의 7호실이라고 하면 광폭성 환자를 넣는 병실이다. 한 순간 나는 이 노인이 농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의 표정을 보자 그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여우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고 걱정이 되어 오보말친 컵을 든 채 나는 주방을 나왔다. 만약 정말 불레어가 나빠졌다면 이것을 마시게 하면 기뻐할지도 모른다. 병실을 지나가는 도중 카리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못들은 척하고 온 병원을 이것이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열쇠로 문을 열고 7호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실내의 어두움에 눈이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가슴에 맹렬한 일격을 받아, 그 때문에 뜨거운 오보말친이 눈 속으로 튀어 들어가는 것과 함께 쾅 하고 문에 몸을 부딪쳤기 때문에 그대로 문이 닫히고 말았다. 나는 거의 장님이나 마찬가지였지만 – 쇠창살을 끼운 높은 창으로부터는 겨우 조금 빛이 들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 자신의 위험을 느껴, 일부러 이러한 위험을 자초한 스스로의 바보 같은 짓에 놀았을 때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나한테 덤벼들어 빈 컵을 빼앗아 그것을 내 머리에 힘껏 내던지며 미쳐 날뛰는 블레어의 모습에는 말할 수 없는 위협이 나타나 있었다.

“조디…왜 이래…나를 모르겠어…친구가 아닌가…”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또다시 치고 덤벼들었다. 그때 나는 한 사람의 살인광과 함께 병원 안에서도 가장 위험한, 가장 무서운 장소, 고립되어 있고 절대로 말도 통하지 않는, 구원을 청하기 위해 소리를 질러도 복도까지도 들리지 않는 감방 속에 갇혀 있는 것을 깨닫고 모서리를 쳤다.

차가운 공포의 물결이 온몸에 흘렀다. 얼굴에 상처가 나고 피가 목으로 흘러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며 안 된다. 블레어는 한 발자국 다가온 순간 나는 온몸의 힘을 모아 그를 후려쳤다. 그 일격으로 그는 비틀비틀 했으나 결국 맹렬하게 덤벼드는 황소를 막으려고 하는 노력과 같았다. 나는 복싱 선수라고 자칭할 수는 없다.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 나의 일상의 주장이었고, 이것은 나중 이야기지만, 용기가 모자란다는 증거를 폭로하는 처지에 빠져서 그것을 생각해 내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호신술 정도는 배운 일이 있고, 해군 근무 중 영국의 라이트급 참피온으로 그 당시 구축함 멜람프스 호에서 전우였던 시망 홀과 몇 차례 시합을 했던 것이다.

홀에게서 배운 기술을 이때 나는 맹렬하게 필사적으로 다 사용했다. 되도록 블레어에게서 멀리 떨어져 연속적으로 레프트 스트레이트와 라이트 크로스로서 그의 턱을 노렸다. 상대는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이처럼 쉬운 싸움은 없었으나,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보통 때도 그는 나보다 훨씬 세지만 현재의 정신착란 상태에 있어서는 – 이 상태로서는, 한쪽은 신경계통이 고통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되어 있고 거기에다가 근육을 자극해서 최고한도의 활동을 시키는 것이다 – 확실히 나 따위가 상대한 만한 적이 아니었다. 거듭거듭 그는 도리깨처럼 팔을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그 무서운 스윙은 헛 맞을 때가 많았으나 그 공격의 중압은 압도적이었다. 거기에다가 그 우락부락한 얼굴,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흉악한 눈빛, 몸을 가까이 가져왔을 때의 쉰 듯한 헐떡거리는 호흡의 무서움, 최후의 힘을 다하여 그가 몸 전체로 나한테 부딪쳐 와서 나를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쳤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하고 머리가 띵해져 있었다. 현기증이 나고 늘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가 내 목줄기를 손가락으로 붙잡고 기관을 눌러, 아무리 발버둥쳐도 숨통을 막아 버리려고 하는 것을 나는 의식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나는 그가 그의 사촌을 죽인 것을 어렴풋이 생각해 냈다.

그 순간 (의식이 아직 희미해 있을 때) 도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꿈 속처럼 이웃 병동의 젊은 남자 간호원 둘을 데리고 카리가 감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블레어를 떠 밀치어 목구멍에 걸려 있던 괴로운 힘이 늦추어졌을 때, 나는 카리 노인이 자기 혼자 감방으로 달려오기보다도 우선 적절하게 도움을 청해 가지고 내 생명을 구해 준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대로 나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나중에 가빈튼 박사가 내 머리를 열 바늘 꿰매주었으나 –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다 – 그 후 며칠 동안은 목이 아파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음 달의 어느 날 아침, 서 부속 병원의 스토크맨 교수의 강의에 나가려고 가로수 밑을 걷고 있을 때, 명랑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돌아보았다. 그것은 조디였다 – 전처럼 기운이 좋아 보이고 웃는 얼굴로 호의에 넘쳐 있었다. 내가 멈추어 서자 그는 달려와서 친절하게 또 기쁜 듯이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또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정말이에요, 당신을 때려 눕히다니,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이 나쁘지요. 내 누이한테 그런 무서운 짓을 하다니.”

나는 벌어진 입이 닫혀지지 않아 멀뚱히 그를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기지를 살려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 미안해 조디..나는 정신이 없었단 말이야…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그 후 조디는 가끔 함께 테니스를 치자고 오기도 하고, 토요일의 경기를 부활시키려고 축구공을 들고 우울하게 서 있기도 했다. 그러나 로클리에 있는 동안 나는 그와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외아들이면서도 누이동생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내를 신용하지 말라, 하는 것을 배웠다고 할 것이다.

 

 

 

3. 빈민가의 흰 장미

 

단 레거이레에서 연락선을 내려, 경쾌한 이륜마차로 시내를 향해 달리노라니까, 봄이 찾아오는 느낌과,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탄 타는 냄새와, 아일랜드의 특징이고 매력이기도 한, 푸른 풀들이 성장하는 흐뭇한 느낌으로 꽉 찬, 부드러운 저녁때의 안개 속에서 내 가슴은 부풀었다. 더블린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리피 다리를 건너 오콘넬의 로턴다 쪽으로 갈수록 내 속에 있는 아일랜드 인의 피는 흥분했다.

동행자는 급우인 휴 디바즈로서, 6월의 최종 시험을 치르기 전에 둘이서 로턴다 병원에서 3개월 간 산과 실습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이 병원은 당시 핏비본 박사를 원장으로 모신 유럽에서도 산과로서는 최고의 수업 장소였다. 로클리에서 금방 나오는 참이라, 급료 중에서 40기니는 아직 주머니에 남아 있고 해서 나는 이 여행을 마음껏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디바즈는 아메리카 인으로, 텍사스에서 개업하고 있는 그의 아벚가 전에 랄프 스토크맨 교수와 함께 연구하였던 관계로 아들을 옛 친구의 교실에서 공부시킬 생각으로 글라스고 대학에 유학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휴의 성격 속에는 긴장한 신참자다움 점은 조금도 없었다. 키가 크고 다리가 멀쑥하게 긴, 튼튼해 보이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거리낌없이 웃는 제멋대로의 누그러진 성질이었으므로, 친구로서는 이 이상 가는 사나이는 없었다.

그러고부터의 매일, 대개 휴의 제안이었지만, 우리는 강의나 과중한 실습 시간표 속에서 시간을 훔쳤다. 레파즈 타운의 아베이 극장을 기기도 하고, 경마로 몇 실링씩 손해를 보기도 하고, 클럽을 빌려 유명한 포트마노크의 링크에서 골프를 한 라운드 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오후, 보잉 강까지 마차로 드라이브를 하고, 잘 되지는 않았지만 연어의 밀어를 시험해 본 일조차 있다.

그러나 우리가 대부분의 낮 시간과 가끔 밤 시간을 보낸 것은, 더블린의 고동치는 가련한 심장부에 있는 빈민가였다. 이것은 로턴다 학생의 담당 구역이었다. 일은 매우 힘들고 괴로웠다. 가끔 분만이 시간을 끌어 거의 철야로 일을 하고 극도로 피곤해져서 돌아와 막 침대에 들려고 하면, 또 다른 여자가 산기를 일으킨다고 알려와서, 온갖 욕을 다 지껄이며 우리는 그 검은 가방을 들고 가로등이 드문드문한 거리를 걸어, 지붕 하나로 줄지어 지어진 높고 깜깜한 돌계단을 올라 겨우 한 칸 뿐인 가난한 집으로 가서 또다시 피곤한 상태로 극히 서툴게, 그러나 진정 조심해서 출산이라는 대 신비에 대한 직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후 2주일간에 걸쳐, 하루 두 차례씩 환자를 왕진하여 갓난아이의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고, 산모와 갓난아이의 산후 치다꺼리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무서운 환경 속에서, 모성의 가엾은 현실에 이토록 가까이 접촉한 것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우리는 여태까지의 발랄한 힘을 잃어 버리고, 더욱 검소한 기분으로 환경에 맞추도록 되어 갔다. 사실 내가 처음으로 빈곤의 맨 밑바닥에 잠겨 있는 사람들의 숭고할 정도로 강한 인내를 안 것은 이 더블린 빈민가에서였다. 용기와 자기 희생의 감동할 만한 실례에 여러 번 부딪쳤지만 특히 그 중에 하나는 극히 비극적이었기 때문에 잊어 버릴 수 없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그 소녀를 만난 것은 로크랑 가 街 에서였는데, 소녀는 생후 9개월이 된 무거워 보이는 아기를 다 해어진 숄로 감싸 여린 몸에 묶어 업고는 공동수도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이름은 로즈 드네간이었고 빨간 머리털에 성숙해 보이는 작은 얼굴과 어딘가 너무 커 보이는 듯한 짙은 푸른 눈을 가진 열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또 아이가 셋, 나이는 다섯 살에서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그 소녀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있었으나, 눈과 코의 생김새가 닮은 것은 역시 빨간 머리카락인 것으로 보아 드네간 집안의 아이들인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겉의 더러움과 그 소녀의 사람을 겁내지 않는 밝은 눈길과의 대조가 우리의 호기심을 끌었다. 우리는 우선 맨 처음으로 그저 ‘안녕’하고 말을 걸었을 뿐이었지만 며칠인가 지나는 동안 그쪽에서 그럴싸하게 수줍은 듯한 웃는 얼굴로 이 이산에 대답하게 되었다. 조금씩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아이의 서먹함을 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친하게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이 로즈와, 세 명의 작은 아이들과 갓난 마이클은 8개월 진에 어머니를 잃어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그들은 아버지 다니 드네간과 함께 로크랑 가의 사람들이 우글대며 살고 있는 건물 지하실에 살고 있었다. 다니는 가끔 부두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몸이 약한 호인이었다 말씨는 조용하고 항상 선의가 넘치는데 시간과 돈을 거의 가까운 샨로크 술집에서 써 버리고 있었다. 이리하여 방 둘을 청소하고 정리한 다음 빈둥빈둥 놀고 있는 아버지를 보살펴, 그가 번 돈을 되도록 헤프게 쓰지 않도록 하면서, 식사 준비를 하고 동생들의 시중을 드는 등 집안 일의 무거운 집들이 모두 로즈의 차지였다. 로즈는 가족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였지만 누구보다도 갓난아기 마이클을 귀여워했다. 날씨가 좋은 오후 같은 때 자주 갓난아기를 안고 페닉스 공원 부근에 나가 있곤 했으나 너무 무거워 발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로즈는 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꺾을 수 없었다. 로즈가 햄조각을 살 때 고깃간 주인과 담판하기 위해서라든가, 빵집 주인을 설득해서 한 조각을 더 받기 위해서라든가, 무든 볼 일로 열심히 사람들 틈을 비집고 불결한 보도를 결연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확고한 정신에 우리는 눈을 둥그렇게 떴던 것이다. 그는 주위의 광경에 맹목적은 아니었다. 빈민가 아이들의 기본적인 지식 – 가혹한 인생의 신비에 대하여 절대로 얼굴을 돌리지 않는 이해와 숭고하기까지 한 순진함이 뒤섞인 것 – 을 가지고 있었다. 얼룩진 작은 얼굴에 커다란 사려 깊은 듯한 그 눈은 노인의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 깊은 사랑의 샘을 담고 있었다.

 이 아이에 대한 우리의 흥미는 점점 깊은 걱정으로 바뀌어져 갔다. 무엇인가 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마침 그녀의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콘늘 가의 양품점에서 선물을 배달시켰다. 꼭 맞는 따스한 새 옷을 입고 튼튼한 구두와 양말을 신은 로즈를 상상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2, 3일은 일부러 얼굴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고 있었는데, 예쁜 새 옷을 입고 자랑스럽게 일요일 미사에 당당히 구두소리를 내며 교회의 통로를 지나가는 로즈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우리는 속으로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월요일에 만나 보았더니 어떻게 된 셈인지 로즈는 여전히 다 해어진 옷을 입고 찢어진 숄로 갓난아기를 업고 있었다.

“새 옷은 어떻게 했니?” 하고 디바즈가 물었다.

로즈는 목까지 빨갛게 되더니 한참 만에 말했다.

“당신이었군요?” 한참이나 있다가 우리 쪽은 보지도 않고 그녀는 다만 이렇게만 말했다. “전당포에 넣었어요.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마이클한테 우유를 사주지 않으면 안 돼서요.”

나는 가만히 로즈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녀는 자기를 희생하여 자기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어린 남동생에게 주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막기만 하면 된다. 이튿날 나는 로크랑 가 교구를 담당하고 있는 월슈 신부를 찾아갔다.

내가 로즈 이야기를 하니까, 신부는 빛나는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잠깐 생각하다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얼마동안 그 아이를 시골에 보내는 것이 좋겠는데, 내 친구가 있어요…카롤이라고 하는… 좋은 사람들이지요…골웨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설득시키는 것이 큰일이군.” 문밖까지 나를 배웅하면서 신부는 익살스레 미소를 띄웠다. “그 아이는 완전히 어린 어머니니까. 그것이 그 아이의 생활을 채우고 있는 힘인데.”

일주일 후 편지가 오고 간 다음 나는 결연히 로크랑 가에 갔다. 아이들은 테이블을 싸고 둘러 앉아 있었고 로즈가 찌푸린 걱정스런 얼굴로 빵 부스러기를 얇게 썰고 있었다.

“로즈.” 하고 나는 말했다. “너는 여행을 하는 거야.” 그녀는 납득이 가지 않아 주름진 이마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면서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골웨이로 가는 거야.”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두 주일 동안이야. 그 집은 농사짓는 집인데 너는 닭 모이를 주거나, 들판을 뛰어다니며 마음대로 우유를 먹고 있으면 되는 거야.”

순간 기대하는 빛이 얼굴에 넘쳤으나, 곧 지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아이들을 돌봐 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아버지 시중도.”

“그런 건 다 준비가 돼 있어. 부인회 사람들이 와서 시중 들어주게 되어있어. 꼭 가야 해. 로즈, 그렇지 않으면 너는 쓰러지고 말아.”

“그렇지만 안 돼요. 갓난아기를 두고는 갈 수 없으니까.”

“좋도록 해. 그럼 데리고 가면 되지 않아?” 그의 눈이 빛났다. 이튿날 우리가 로즈의 짐을 기차 안에 실을 때, 그 아이 눈은 한층 더 밝게 빛났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갓난아기를 빼빼 마른 무릎 위에 놓고 이르면서 그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음매, 음매가 있어요, 마이클…”

캬롤 가에서 두 사람의 소식을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로즈는 농장 일을 거들면서 몸무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기 혼자서 쓴 철자법이 엉터리인 엽서에서는 그녀가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이 싹트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마이클에게는 시골이 아주 썩 잘 맞는다고 기뻐하는 말투로 매듭지어 있었다.

두 주일이 금방 지났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가서 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캬롤 가에서 마이클을 양자로 삼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은 중년 부부였는데 아이가 없었고 유복했다. 둘은 마이클이 점점 좋아져서 본인의 가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의 이익을 제공해도 좋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인 다니는 물론 이 좋은 기회를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즈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결정은 로즈에게 맡겨졌다. 우리들은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도, 그 결정을 하기 위해서 로즈가 얼마만한 희생을 치렀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결국 로즈는 돌아왔다 – 혼자서.

다른 동생들과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을 기뻐하고는 있었으나, 역에서 돌아오는 동안 계속 그녀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이클을 위한 것인데 뭐.’ 하고 그녀는 마침내 한숨을 쉬었다 “마이클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

로크랑 가에 돌아오자 그녀는 점점 기운을 내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이전보다도 더 성실해진 듯이 보였다. 그녀의 격려를 받아, 다니는 금주 禁酒 서약서에 서명했다. 그의 갱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런 보증도 없었으나 그래도 그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안에 로즈는 전당포에 넣었던 물건을 찾아올 수가 있었고 지하실의 방도 실제로 가정답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에는 벽난로 위의 물통에 몇 실링인가를 감추어 둘 수 있을 만큼 되었다.

아기의 성장에 대해서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마이클의 양부모는 그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마이클을 자기네 아이처럼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다른 편지가 날아들었다. 마이클이 폐렴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꼭 깨물고 로즈는 꼼짝 않고 편지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굳어진 표정으로 벽난로 위의 저금통 쪽으로 걸어가서 차비가 될 만큼의 돈을 세었다.

“마이클 있는 데를 다녀 오겠어.”

그녀는 일체의 반대를 물리쳤다. 마이클 일이라면 자기의 힘으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들 모르는 것일까 – 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영양 있는 음식을 먹이고, 보챌 때 약을 먹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마를 짚어 주는 것 만으로서 잠들 수 있게 조차 할 수 있지 않은가.

결연한 얼굴로 그녀는 길 떠날 준비를 하더니 마음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부탁한 다음, 전차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그날 밤부터 캬롤 농장에서는 그녀가 마이클의 간호부 자리에 앉았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을 우리는 월슈 신부에게서 들었다.

안심할 수 없는 증세였다. 기침이 제일 심했다. 자신이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마이클을 가슴에 끌어 안고 발작이 끝날 때까지 돌보아 주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이클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여 간호했다.

마침내 위기를 넘겼다. 마이클이 낫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로즈는 들었다. 그녀는 두 손을 이마를 짚으며 침대 곁에서 일어섰다.

“이제 나 좀 쉴래요.”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런지 골치가 빠개지도록 아파..”

그녀는 마이클의 병에 감염되어 있었다. 그러나 폐가 상한 것이 아니었다. 더욱 나쁜 일이 일어났다. 폐렴구근수막염 의 증상을 나타내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앞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그녀는 이제 만 열 네 살이었던 것이다.

그 후 몇 해가 지나서 나는 로즈의 묘를 찾아갔다. 쓸쓸한 황무지의 교회 뜰 안에는 조용한 서풍이 골웨이 만 쪽에서 불어와 근처의 흰색 칠한 농가에서 나오는 특유한 탄내를 – 아일랜드의 입김이고 정신 그것인 냄새를 – 실어왔다. 작은 파란 묘에는 꽃다발 하나 없었지만 풀 속에 절반은 가려진 가느다란 들장미의 여린 줄기가 있어 가득 침이 돋아난 가지에 새하얀 꽃이 한 송이 달려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회색 구름 사이에서 태양이 나와, 그 흰꽃과 로즈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흼 묘석을 빨갛게 비추기 시작했다.

 

 

4. 인도양의 성자 聖者

 

“잠깐, 저, 저런 이상하고 괴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리버풀에서 캘커타로 가는 긴 항해에, 이제 곧 출범하려는 라왈핀다 호의 일등 선객인 사치스러운 복장을 한 여자가, 날카롭고 높은 ‘세련된’ 목소리로 동행인 군인 같아 보이는, 여자처럼 모양낸 풍채의 젊은 남자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둘은 위 갑판의 바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쫓아가다가 다리는 짧고, 머리가 불균형하게 크고, 귀에서 귀 위에 걸쳐 흉터가 난, 두루뭉실한 극히 보기 흉한 토인 선원 위에 내 눈이 멈추었다. 그는 이 비에 있는 인도인의 수부장 水夫長 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는 옆으로 갔다 댄 마지 강의 작은 배에서 선창으로 짐을 옮기고 있는 인도인 수부들을 가만히 감독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같이는 안 보이는군.”하고 그 군인은 엷은 수염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거만한 미소를 짓고 그렇게 대답했다. “저것을 보면 다윈의 말도 전연 거짓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음, 뭐?”

나는 가만히 떠나 내 선실로 내려갔다. 3주일 전, 나로서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지만, 마침내 의학사의 학위를 획득했던 것이다. 조금 있던 저금도 마침내 다 써 버리고, 그만큼 노력을 – 밤마다 젖은 수건을 머리에 얹고, 해님이 높이 솟아오를 때가지 교과서와 씨름을 했던 것이다 – 그것을 또 되풀이할 만한 돈도 정력도 없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걱정과 불안에 가슴 설레면서 대학의 게시판에 핀으로 꽂아둔 합격자 명단을 바라보았을 때,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시험 위원회에서 우등상을 받게 된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숨막힐 듯한 순간은 평생 잊어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또 뜨거운 눈물 때문에 앞이 뿌옇게 되었던 것을 여기에 고백해도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역시 합격해서 곁에 서 있던 ‘스타일리스트’인 치셤이 내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비꼬았다.

“오늘 아침은 약간 누선이 활동하는 것 같군, 선생. 백분의 일의 아크로핀이라도 처방할까, 그렇지 않으면 맥주로 할까?

이 사나이에게는 농담을 할 여유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윈톤 시작이고 라프랑 제강회사의 사장이니까.

더구나 이것으로서는 아직 모자라기나 하다는 듯, 스토크맨 주임교수의 호의있는 주선으로, 다행하게도 나는 기선 라왈핀다 호의 임시 선의 船醫로 임명된 것이다. 내 구두시험을 하면서 스토크맨 교수는 내가 퍽 피로해 있는 것을 알고, 인도를 왕복하는 배 여행을 하면 틀림없이 회복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해는 평온하고 쾌청한 기후 아래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거친 파도에도 예상 외로 고통 받는 일없이 비스케 만을 건너 이윽고 지브랄탈 해협을 지나 감벽 빛 하늘 아래 거울 같은 지중해를 가로질러 갔다.

라왈핀다 호는 완장 阮丈 한 볼품없는 오래된 배로서, 고급 선원은 백인이지만, 석탄관의 기관을 최근 조금도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속력이 극히 느려 – 사실 겨우 10 노트밖에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나 같은 젊은 의사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고, 기분 좋은 미풍, 빛나는 태양, 황홀한 진기스러운 풍경에 – 화살처럼 지나는 흰 파도에 싸인 섬들, 신비로운 아프리카의 해안선, 멀리 흰 벽의 촌락, 크림 같은 지나온 뱃길 속에서 춤추는 돌고래 떼에 – 한층 흥이 돋구어질 뿐이었다.

배는 뱃머리로부터 끝까지 선객으로 꽉 차서 붐비고 있었다. 전쟁 중 4년 동안 수송이 되지 않았으므로, 평화 회복과 동시에 너도나도 여행길로 나서, 더구나 그것은 보통 여행자나 관광객에 그치지 않고, 국토방위조령에 의해서 오랫동안 본국에 발이 묶여져 있던 사업가, 캘커타나 봄베이를 목적지로 하는 면사상 綿絲商, 쥬트상, 세일론의 홍차 재비업자와 콘폴의 제분업자, 거기에 대부분 여자아이들을 동반한 주인군 駐印軍 장교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향해 첫날밤부터 배 안은 굉장한 법석이었다. 이것은 참호의 살인적인 대 희생, 학살과 진흙의 구렁과 비참과 초조와 좌절과 공포의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온 세계가 별안간 미치광이가 되어 소생한 시체같이 무섭게 광기 들린 난잡한 혼란으로 법석거리기 시작한 전후 시대의 시작이었다. 런치 파티에 칵테일 파티, 배의 항정 航程 의 노름, 경마, 그 밖의 모든 종류의 덱 스포츠, 즉흥 음악회와 가장 무도회 – 이 따위들은 평온한 나날과 열병적인 밤마다 개최되는 놀음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향연에는 항성 선의는 출석을 요청 받기 때문에 나는 극기 내성적인 편의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이 떠들썩한 법석통에 끌려 나가는 것이었다.

사교상의 선배 – 배 안에서 ‘무엇인가 연구해 내는’ 일에 능숙한 패 – 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미스 조프스미스로서, 출범하는 날 아침 갑판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그 여자였는데, 벵갈에 부임하는 기병장교인 그의 오빠 로날드와 그 여성이 재수없게 식당에서 나하고 같은 테이블이 되었다. 미스 조프스미스라는 여자는 그런대로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편이었으나 젊게 보이기 위해서 온갖 화려한 꾸밈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서른은 넘은 떠들기 좋아하는 여자였다.

식탁에 자리할 때마다 그는 자기가 페샤와나 더지링의 최고 사교계에서 얼마나 환영 받을까 하는 것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말했다. 인도 체재 중의 예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의 주제는 영국 상류사회게 훌륭하다는 것과, 이것을 예속 하에 있는 원주민들의 마음 속 깊이 새겨줄 필요가 있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으나 동작이 느린 파씨 족의 소년 급사를 계속 부리고 또 부려 완전히 당황하게까지 야단을 치고서는 거만한 시선을 식탁 가득히 던지는 것이었다.

“이 따위 녀석들은 마구 쥐어박아야 해요. 안 그래요, 토니?”

“그럼.” 아무 쓸모 없는 소리에도 그의 오빠는 언제나 동생의 말에 찬성했다. “네 맘대로야.”

“추켜주면 어떤 일을 생각해 낼는지 모르지.”

“아 그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튼 그 말이야…그 반란 때 놈들을 쏘아 죽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는 거야.”

“그럼요. 그야 나라도 자유사상쯤은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저 친구들은 기껏 굉장한 가난뱅이들 아니야? 요만큼의 기력도 없고 성실도 없어. 언제 배신할는지 모르고…그렇지만 니 벤틀리 대령한테 언젠가 들은 것이 생각나는데…”

배는 항구에 닿았다. 모두들 가슴을 울렁거리며 상륙해서 무슨 비단 따위, 숄, 담배, 향료, 보석 등을 시몬 알츠 상점에서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날 밤 닻을 올려 배가 드 레렙스 [프랑스의 대리공사로서 수에즈 운하의 개설책을 건의하여 스스로 그 공사감독을 맡아 이것을 완성시킨 사람]의 동상 곁을 지나 수에즈 운하의 길게 뻗은 수로에 들어가자. 오케스트라는 여느 때 보다도 높이 울려 퍼지고 댄스는 한층 빨리 광조적 狂躁的 으로 되었다. 이윽고 배는 홍해를 거쳐 아덴의 황량한 암산 岩山을 지나 널따란 아라비아 해로 나갔다.

이튿날, 선실에 잇닿은 진료실에서 진찰을 하고 있으려니까, 수부장 하산이 부하 인도인 수부를 두 명 데리고 왔다. 내가 들어오라고 하기까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윽고 그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음성은 바람과 파도의 포효 咆哮를 상대해 왔기 때문에 벌써 옛날에 찌부러진 것처럼 쉬어 있었으나 또랑또랑한 저음이었다.

“선생님, 이 녀석들이 아무래도 병인 것 같습니다만.”

수부들은 확실히 병든 것 같았다. 공연히 기분이 언짢고 몹시 두통이 심하며, 뼈마디가 잘려 나가는 듯 아프다는 것이다. 옷을 벗으라고 이른 다음 진찰을 시작하자 두 사람은 몹시 못마땅한 듯한 얼굴로 흰 눈을 빙빙 돌리며 겁을 내고 있었다.

둘 다 열이 있고 백티가 두껍고 피부는 버석버석 말라 손을 대도 타는 것 같았다. 이것은 자연이 주는 불길한 경고다. 폐질환 증세는 없다. 목구멍의 명증도 없다. 배에도 이상은 없다. 나는 직관적으로 말라리아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맥을 짚어보았을 때 둘 다 손목 피부 아래 흡사 납탄환 같은 단단한 작은 결절이 돌아나 있는 것이 내 손끝에 느껴졌다. 이것은 틀림없는 증세였다. 즉시 오금과 겨드랑이 밑을 잘 조사해 보았더니 둘 다 결정적인 구진성 발진 丘疹性 發疹이 나타나 있었다.

나는 아직 젊고 의사로서의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감정을 억제할 줄도 몰랐고, 죽음의 선고를 위로의 미소로 얼버무리는 방법도 익숙해 있지 않았다. 내 낯빛이 눈에 뜨일 정도로 변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수부장의 주름투성이인, 풍우에 시달려 온 얼굴이 한층 엄숙해졌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우리가 직면한 병의 성질을 나처럼 그도 알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부딪친 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충격과 같은 결의와 대담한 평온함을 띄우고 있는 그의 눈길뿐이었다. 의연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로 두 사람과 함께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일렀을 때도 그는 다만 다시 머리를 숙였을 뿐이었다.

가슴의 고통을 느끼며 나는 급히 브릿지로 올라갔다. 함블 선장은 해도실에 내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뛰어들자 선장은 얼굴을 들었다.

“선장님.” – 내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배 안에 천연두가 발생한 것을 보고합니다. 수부 두 사람입니다.”

선장이 입술을 깨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는 나이 쉰 다섯으로 머리는 짧게 깎고 모래빛 뿌굴뿌굴한 눈썹에 체격이 단단한 사나이로, 냉혹할 정도로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공명정대하고 편견을 잦지 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내 보고를 듣자 적동색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다.

“천연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확실한가?”

“틀림없습니다, 선장님.”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의료품 중에는 임파액이 없습니다.”

“천 오백 명 승객분의 임파액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아.” 그는 화가 난 듯 입술을 깨물고 더욱 얼굴을 찡그리고, 좁은 해도실 안을 여기저기 걷기 시작했다.

“자네” 하고 그는 이윽고 내 바로 곁으로 와서 말했는데 그 말에는 잘못들을 수 없는 엄숙함이 엉켜있었다. “지금 내가 한 말을 잊어 주게… 너무 놀라서. 그런 소리를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자네는 이 배에 있는 사람들의 건강을 맡고 있어. 완전히 자네에게 맡겨져 있어. 고급 선원은 한 사람도 자네를 도울 수는 없어. 선객이 많아 손이 모자라는 거야. 그러나 그 수부장만은 괜찮네. 그 친구는 수부의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다 알고 있으니까. 더구나 그 친구는 훌륭한 사내야. 자네들 사이에 이 말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해주게. 한 마디도 새 나가지 않도록 말이야. 그러지 않았다가는 저 선객들이 큰 소동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으니까.”

나는 해도실을 나왔으나 배에서 힘이 빠진 것 같았고 스스로의 책임있는 입장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덱 체어에 기대서 피엘 로치[프랑스 근대의 소설가로서 국화 아가씨의 작자]의 작품을 읽고, 낙조를 바라보며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소설을 쓰려는 염원을 로맨틱하게 꿈꾸기도 하고, 손가락을 상했다든가 가벼운 배멀미 정도 이상의 중환자를 진찰한 적도 없었던 지금까지의 태평스럽고 안일스러움은 날라가 버리고 말았다. 아라비아 해의 한가운데서 천 오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예방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데 항차 천연두라니… 이것은 의학사전 속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인 것이다.

진료실에 돌아와 보았더니 한 사람이 굉장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경련을 일으키는 그 사나이로부터 수부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속 모를 눈은 여전히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자네는 알고 있는 거지.” 하고 나는 물었다.

“네 선생님, 이건 내가 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것이어서.”

“이 사람들을 격리시키지 않으면 안 돼… 아무에게도 접촉되지 않도록…”

스스로는 그런 기분이 되지 않았지만 일부러 명랑함과 확신을 보이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하사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네, 선생님… 가능한 한 도와드리겠습니다.”

배 안에는 병실이 없었고 병실로 만들만한 선실의 여유는 1인치도 없었다. 가득 쑤셔 넣은 수부실을 한 번 보았을 뿐으로 이 전염병 환자를 승무원 방에 격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난처해진 나는, 소란도 피우지 않고 눈에 온몸의 힘을 담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수부장을 또 건너다봤다.

“갑판 뒤에 텐트를 칩시다 선생님, 거기는 여간 시원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잘 통하니까요.”

기중기와 보조 증기기관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배 뒤쪽에서 그는 일에 착수했다. 소리도 없이 움직이지만 뭉실한 몸과 큰 머리와 부드러운 긴 팔은, 정력과 냉정스러움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어 그것이 그의 평평한 흠집이 있는 얼굴에 반영되어 있었다. 한 시간 동안에 묵묵히 열심히 일하여 갑판에서부터 팽팽하게 줄을 끌어다가는 크고 튼튼한 텐트를 만들어냈다. 이불이 옮겨지고, 두 환자는 안전하게 수용되었다.

다음으로는 승무원들을 모아 철저한 검사를 해야 했다. 화부 중의 한 사람이 발열과 두통이 있었는데 전형적인 발진 초기에 보이는 전구증상 前驅 症狀 의 결절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사나이도 함께 격리되었다.

“그런데…이 친구들 간호를 누구한테 맡기면 좋을까?”

하산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조심해야 해. 이 병은 전염성이 강하니까.”

수부장이 나라는 인간을 좀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웃는 얼굴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는 그의 엄숙한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섭지 않습니다, 선생님.”

하산과 나는 과망간산염 용액으로 환자를 닦고, 강한 해열제를 먹인 다음 소독제에 담갔던 천을 가장 자리에 늘어뜨리고, 이 작은 비밀 격리 병사 속에서 물을 끓이고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잇는 요리 스토브를 비치했다. 최후로 승객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 있는 틈에 야근 수부를 앞 갑판 아래에서 내쫓고 하산이 배의 비품 중에서 찾아낸 유황초로 수부방을 구석구석까지 훈증소독했다. 이것을 끝내고 나자 나는 얼마간 차분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이 되자 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새벽녘에 전원을 모았더니 수부 속에서 또 세 사람의 환자가 나온 것이다. 이미 격리한 환자들은 훨씬 악화하여 이 병의 가장 위험한 증세인 더러운 화농성 발진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득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가 되자 또 네 명의 수부가 발병했다. 우리의 임시 격리 병원에는 열 명의 환자가 수용된 셈이다. 그것은 신경의 강약을 시험하기 좋은 정황이었다. 그러나 흉터가 있는 까만 얼굴의, 볼품없는 이마 밑의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있는 수부장을 보자 나는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그저 그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절망 같은 것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환자를 간호하는 데도 그는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물을 먹여주고, 내가 만들어 준 세척제로 그들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피부의 가려움을 덜어주기도 하고, 임지 취사장에서 식사준비를 해주고, 더욱이 내가 거의 의식 불명인 환자를 들어올려 해면으로 몸을 씻겨줄 때는 언제나 금방 달려오고 – 이런 일을 하는데 그는 스스로의 안전 같은 것은 완전히 그리고 경멸해 버린 모양으로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심해.”

내 쪽에서 그렇게 부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너무 가가이 가는 게 아냐.”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그는 빈랑자 열매 때문에 핑크빛으로 물든 튼튼한 이빨을 드러내고는 살짝 웃는 것이었다. – 그러나 그것은 아주 희미한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였고, 거기에 인도인 특유의 우수가 뭉쳐 있어서, 불과 한 순간 그의 심연과 같은 자연스러운 조용함을 깨트렸음에 지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주의하고 계십니까?”

“그럼, 주의하고 말고, 더구나 이건 내 일이니까.”

“걱정 없습니다 선생님. 나는 강하니까요. 그리고 나도 이것이 내 일입니다요.”

이 무렵 급환이라도 없는 한, 나는 대개 격리 병실에 있었다. 선장의 지시에 따라 의혹을 일으키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감기로 드러누워 있다고 사람들에게는 발표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 가지 않고 식사는 모두 쟁반으로 선실로 날라 오게 했다. 밤에 혼자 밥상을 향해 앉아 갑판의 현악단의 음악과 춤추는 사람들의 옷 스치는 소리와 발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괴상한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미친 듯이 춤추고 돌아가면서 그들은 위험이 가까이 있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 문득 나는 프랑스 왕이 아비뇽에서 개최한 ‘가장 무도회’의 일을 쓴 바르베 돌빌리 [19세기 프랑스 작가로서 ‘결혼한 파리에서’ ‘귀신들린 여자들’ 등의 작자]의 콩트를 생각했다. 파리에서 유행하는 페스트를 피하기 위하여 조정과 온 시민들이 아비뇽으로 피난했는데, 야단법석 놀이가 최고조에 달하여 모두들 마스크를 벗어 보았더니 빼빼 마른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무서운 형상의 얼굴로 페스트의 치명적인 낙인이 찍힌 채 여러 사람 가운데 서 있었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상태에 빠져서, 나는 이 병의 초기 증세가 나타나지나 않았나 하고 스스로의 몸을 조사해 봤다. 그러나 그런 공포에서가 아니고 –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책임의 중압에 자신의 일과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 이상하게 초연한 기분과 틀림없이 전염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어릴 때 종두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분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차츰 높아가는 이 긴장 상태 속에 있으면서 배의 속도가 늦는 것을, 전에는 오히려 만족으로 즐기고 있던 속력의 부족을 저주했던 것이다. 전속력으로 달려도 가장 가까운 기항지인 콜롬보까지는 아직 8일을 더 달려야 하는 것이다.

하루 두 번씩 나는 선장에게 보고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선장의 심적 고통은 나 이상이었으나, 연령과 명령하는 습관이 겨우 그것을 억제하는 구실을 하고 있었다. 내 보고를 듣고는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고 나서 내가 앞에 있는데도 멀리 떨어진 리버풀 배 회사의 중역들이라도 보고 있는 듯한, 어쩔 줄 몰라 하며 화가 난 듯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선장은 애써 격려의 말을 하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좋아, 훌륭한 처치다. 그대로 계속해 주게.”

그런데 지금까지 처럼 해도 좋은 것일까? 그 후 48시간 내에 첫 번째, 이어서 어젯밤부터 의심이 가던 세 사람의 수부가 또 뒷갑판 병실로 들어 갔다. 지금은 모두 열 네 명이다. 더구나 초기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은 혼수 상태에 빠져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러한 늘어난 무거운 책임 때문에 나는 잘 수가 없었고 낮에는 거의 격리 병실에서 지내면서 밤은 밤대로 역시 거기를 아무래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히 있을 줄로 알고 있었지만, 별빛 아래서 묵묵히 수부장이 역시 떠나지 않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조각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 난간을 배경으로 하여 생각에 잠겨 있는, 아니 오히려 우수에 잠겨 있는 그에게서 나한테로 흘러 오는 위로를 무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의 맡은 일의 상징인 은빛 호각이 융륭한 목에 긴 끈으로 매달려 있다. 비로도와 같은 하늘을 미끄러지는 열대의 달이, 정력을 감추어 둔 채로 조각한 흑단 黑檀 같은 움직일 줄 모르는 그의 얼굴의 깊은 주름을 뚜렷이 비추었다. 병인이 고문을 당하는 듯한 고통에서 정신의 아픔 때문에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면 그는 소리도 없이 다가가 시중을 든다. 그리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팔짱을 끼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육지를 떠난 한 미립자 같은, 대양 한가운데로 흘러가는 배는 조용히 움직여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불침번을 하고 있는 동안 떠듬떠듬 이지마는, 나는 조금씩 그의 신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판자브 태생으로, 거기에서 완전하고 방랑적인 파탄 [인도 서부국경에서 사는 아프가니스탄 인]이었던 양친은 남인도로 흘러갔다. 해안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가 그렇지만 그도 역시 어릴 때부터 배 타는 생활을 시작했다. 거의 40년 가까이 그는 전 세계의 대양을 돌아 다녔고, 그 중 15년을 이 라왈핀다 호에서 지낸 것이다. 그가 이 헌배를 자기 집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그에게는 따로 가정도 없고, 집도 없고, 저 인도의 광막한 지역 속에 가족도 없으며 친구도 없었다. 결혼한 적이 없는 것이다. 마스트 꼭대기에서 떨어져 얼굴에 큰 부상을 당한 이후, 여자에게 마음을 쓰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종교라고 하면 그는 자이나 교도였는데, 그에게는 그 종파의 교의를 훨씬 넘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승화하는 영원한 바람, 대해원의 미와 고요, 회색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야자수로 금 그어진 해안, 멀리 산꼭대기에 보이는 희푸른 눈, 열대의 낙조 속에 증기를 올리는 싱싱한 밀림, 몇 백 몇 천 번 헤아릴 수 없이 육지에 닿았다가는 또 떠나가는, 그것과 하나로 된 신비함에서 배워진 성실함이 있었다.

한평생 걸려서, 그는 아무것도, 재산도 돈도 싣지 않은 – 짐상자 속의 약간의 소지품은, 아마도 몇 루피 [인도의 화폐단위로서 1루피는 약 백원]의 가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자 나는 가슴이 아파, 그릇된 동정 끝에 소리질렀던 것이다.

“하산, 자네는 이번 사건으로 무척 열심히 일해 주었으니까 틀림없이 회사에서 특별 상여금이 나올 거야.”

그의 이마에 당황해 하는 듯한 주름이 잡혔다.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으나 그 딱딱한 침묵을 깨뜨린 것은 느릿한 추진기의 축 軸 의 소리와 환자들의 걸걸하는 호흡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대답했다.

“필요한 것을 무엇이라도 다 가진 사람에게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선생님, 지금 이대로도 훌륭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그는 확실히 진지하고, 보통의 보수에 대한 희망 따위에서는 완전히 초월하여 일체 개인적인 이익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돈은 그에게는 흥미의 대상이 아닌 경멸의 대상이었다. 돈과 떠날 수 없는 관계로 결합되어 있는 미치광이 같은 욕망 따위는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요기를, 극기심을, 성실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고, 가난하게 죽었다.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않는 것이 마음의 습관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물 같은 달빛을 받고 그의 곁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묘한 고통을 받았다. 그의 그 깨끗함과 단순함에 비하여 세상의 가치라는 것이 별안간 티끌처럼 생각되어진 것이다. 색 전등으로 화려하게 조명된 살롱에서는 대 연회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흥분한 목소리, 웃음의 폭발, 샴페인의 마개를 따는 소리, 끊임없이 역행하는 것 같은 재즈의 울림을 들으니까, 인류라는 것은 안온한 생활이라든가 황금으로 살 수 있는 부자의 자유 따위로써는 환경에서 고립될 수 없는 염려가 있기 때문에, 육체를 위해서 영혼을 희생시킨다든가, 모처럼 갖추어진 덕성을 서서히 잃어 버린다든가 한다는 느낌이 내 마음 속에 한층 강해져 오는 것이었다.

 사실 자신의 장래에 대한 생각, 성공과 부에의 타는 듯한 욕망을 돌이켜 보고, 나는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야단법석에 등을 돌리고, 젖빛처럼 하얀 해원에서 한숨을 쉬는 듯한 밤의 공허 속에서 저 불후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오오! 너의 믿음이 적은 자여. 무성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다음날 환자가 둘 죽었다. 그들의 수의를 만들고 이윽고 돛폭으로 싸서 발에 추를 달아 한밤중에 배 밖으로 내어 던져질 시체 앞에서 쉬고 얼빠진 소리로 ‘코란’의 일정을 높다랗게 읊은 것은 하산이었다.

새로운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1주일 후 새벽녘의 유황색 빛을 받고 배는 콜롬보 항에 도착, 세일론 인의 항의 港醫 와 관리가 올라와 모든 수속은 끝났다. 승객 중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사이에 노란 깃발 [선박이 입항해서 검역관이 임검을 할 때 내거는 기]이 내려지고 환자들은 병원으로 운반되었다. 환자 중 몇 사람은 위기를 넘겼으나, 나을 희망도 없고 인사불성으로 온몸이 발진투성이인 세 사람은 하산 팔에 어린애처럼 안겨서 란치로 옮겨졌다. 평평한 란치가 흔들리면서 뭍으로 나가는 것을 바라보니 하산의 검은 뺨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벤갈 만은 즉시 그리고 무사히 통과했다. 나는 평온을 되찾을 겨를도 없고, 천연두 환자가 격리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의식할 겨를도 ㅇ벗었으나 배는 후그리 강의 흙탕물을 항해해서, 칼카타 부두에 닿았다. 배가 닿았다고 해서 모두 온통 떠들썩했다-울리는 사이렌, 바람에 펄럭이는 환영하는 작은 기들, 최후의 건배, 갑판은 부두에 마중 나온 친구에게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인사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별안간 바로 곁에서 낯익은 미즈 조프스미스의 꽤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저기 저기를 봐요, 로니. 저기 또 그 괴상한 사내가 있어요.”

이번에도 또 나는 두 사람의 시선을 좇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배 뒤 쪽에서 그들의 얘기 감의 대상을 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게 보이지만, 긴 팔을 흔들며 짐을 들어 내리고 잇는 점보다도 더 볼 모양 없는 뭉실한 모습- 하산의 모습을.

첼트남의 여성 수렵가는 삥 돌아서며 그의 기지와 매력을 나한테 쏟아 왔다.

“항해 중 저 사내를 어디다 가두어 두셨어요, 선생님. 특별한 우리 같은데?”

침묵 – 수부장의 고귀한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네…어느 의미에서는…우리일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미스 조프스미스 – 동물들은 모두 우리 바깥에 있었으니 말예요.”

평정한 목소리를 내도록 애를 썼으나 내 목구멍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거기를 떠나 내 방으로 와서 주먹으로 힘껏 벽을 쳤다.

 

 

5. 첫 번째 수술

 

다시금 스코틀랜드에, 그리고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적 날씨에 – 열대 지방의 밝고 맑은 하늘과 향기로운 산들바람과의 슬픈 대조. 단드날드 간이 역의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작은 플랫폼.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빗속에 서서 나는 마차를 대절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은 안 된다고 하는데 체면은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 체면이라 해 보았자 내 자신의 체면이 아니라 새로운 지위에 대한 체면이었다.

 마침내 나는 녹색의 긴 외투를 입은 얼굴이 붉은 마부를 손짓해 불렀다.

“타노크브레 마을까지 가려면 얼마면 되지? 카마란 선생님 댁까진데.”

조디 노인은 조심조심 다가왔다.

“짐은 얼마 만큼 있죠?” 하고 그는 능청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짐은 이미 처음부터 얼마나 있는지 다 알고 있는 터였다 – 길가에 놓아 둔 여행가방이 하나, 오른손에 들고 있는 새로 산 작고 검은 그랏드스톤[가운데에서 열면 두 개로 열리는 여행가방]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카마란 선생님의 새 대진 代診 이시구먼.”

“그렇소!”

“그럼 2실링에 해 드리지요, 선생님.”

그는 선생님이라는 말에 교활스럽게 힘을 주었으나, 나는 태연하고도 엄함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난 지름길을 묻고 있는 걸세.” 타노크브레 같은 곳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였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다니. “먼 길로 일부러 빙빙 돌아가 달라고 말한 것은 아니오.”

“전 결코…” 조디가 항의했다.

활발한 의논이 전개되다가 마침내 타협이 – 1실링과 1파인트분[약 1파인트는 0.75L]의 술값이 – 쌍방의 양보로 성립되었다.

여행가방을 마차 위로 얹고, 조디가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마부석에 올라 앉았다. 나는 돌멩이뿐인 울퉁불퉁한 길을 덜컹덜컹 흔들리면서 갔다.

귀항 귀항이 거의 다가왔을 무렵 함블 선장은 라왈핀다 호에 남아 있도록 무리하게 권했으나, 그런 말과 함께 열심이고 야망에 불타는 청년을 태만하고 잘난 척하는 선의 船醫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눈앞에서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런 자극이 없는 일상생활에 빠지지 말도록 솔직하게 충고도 해주었다.

선장은 참으로 친절하게 해주었는데 캘커타에서는 몇 번이나 함께 상륙해서는 그랜드 호텔에서 점심을 사 주기도 했고, 명소를 – 큰 사원이라든가 금색 찬란한 궁전, 성우 성우가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상점의 물건을 뒤집어 엎어뜨리기도 하는 흥청거리는 시장과, 이국적인 새와 꽃으로 가득한 호화로운 식물원이라든가 후그리 강변을 에워싸고 있는 굉장한 불타는 듯한 승강계단 등을 안내해 주었다.

이런 것들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어 버려, 이렇게도 가슴 두근거리는 정경에 접한 인상을 기록해 두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이 우러나오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함블 선장의 충고에 깃들어 잇는 건전한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 동창생으로부터 타노크브레에 대진 자리가 있다는 소리를 듣자 – “별것 아니야. 아무래도… 보잘것없는 시골 구석이고… 카마란이란 작자는 꽤 까다로운 사람이야. 하기야 어쩌다 볼 수 있는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 뒤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나는 선실을 나온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지금 낡아빠진 사륜마차를 타고 서부 고원지방의 작은 마을 돌밭길 위를 덜컹덜컹 흔들리면서 가고 있는 것이다. 한참 만에 마차는 오른쪽으로 크게 빙 돌더니 아든 장 莊 의 마차 세워 두는 곳으로 들어갔다. 튼튼해 보이는 흰 석조건물로서 옆에는 마차간, 바깥에는 반원형으로 펼쳐진 잔디밭이 있었다.

현관 계단을 뛰어올라가 벨을 눌렀을 때는 비가 처량하게도 한층 세게 내리고 있었다. 좀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문이 열리며 까만 옷을 입은 깡마르고 나이 든 하녀가 나왔다. 머리를 뒤로 넘겨 따고 차림새도 아주 말쑥한 무서운 인상으로, 주저주저 나타내는 인간미가 섞인 권위의 각인이 찍혀 있었다. 사실 그 표정에는 웃는 얼굴을 보이고 싶어 못 견디겠는데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를 두려움 때문에 조그마한 경박감에 대해서도 몸을 지키려 드는 것이 있었다.

한참 동안 그녀는 나의 가방과 모자, 그리고 구두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약간 눈썹을 치켜 올리고, 말과 마차라는 호사스런 내 배경을 쳐다보았다.

“마차로 오셨군요.” 하고 그녀는 딱딱한 투로 말했지만, 그것은 마치 내가 크림색 칠이 된 의식용 사두마차라도 타고 오기나 한 것 같은 말투였다.

“자, 들어오세요. 신발을 문지르고 들어오시는 것을 잊어서는 안돼요.”

나는 그녀가 말한 대로 신발을 닦고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시작이 좋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외출 중이십니다.”하고 그녀가 말했다. “가엾게도 전번 대진 선생님이 그만 두시고 난 뒤로, 선생님은 마치 다리를 절구공이처럼 놀리고 계십니다. 아유, 먼젓번 그 사람은 정말 쓸모 없는 사람이었어요 –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마치 그녀의 신중한 판단에 의하면 어차피 나도 그 비슷한 사람일 것이라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나 혼자만 난로 앞의 깔개에 놓아둔 채 나가 버리고 말았다.

어쩐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이 큼직한 기분 좋은 방을 – 식당이었지만 – 돌아보았다. 따뜻해 보이는 빨간 커튼, 터키 산의 빨간 융단, 활활 타오르고 있는 석탄, 단단한 마호가니로 된 가구. 고맙게도 대왐풀 따위는 놓여 있지 않았다. 식기 찬장 위에는 사과를 넣어둔 커다란 쟁반, 비스켓이 가득 들어 있는 유리그릇, 네모난 컷글라스로 된 위스키 병. 그림이나 사진도 걸려 있지 않았다. 단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노란색 바이올린 3개가 벽에 걸려 있었다. 살기에는 꽤 좋은 – 아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방이다. 기분 좋게 불을 쬐고 있자니 문이 열리면서 카마란이 들어왔다.

“흥, 잘하고 있군.” 하고 카마란은 악수도 청하지 않고, 인사말 한 마디도 없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밖에서 바쁘게 일하고 잇는 동안 자넨 엉덩이나 덥히고 있었다니 도대체가 뭣 하는 짓인가? 자넨 분명히 아침에 온다고 스타록에서 연락을 했을 텐데. 자넷트, 자넷트.” – 힘껏 목청을 돋구어 – “빨리 식사를 가져와.”

그는 보통 체격의 약간 나이 든 남자로서, 스코틀랜드의 날씨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에 탄 새빨간 얼굴을 하고 지금은 빗방울이 맺혀 있는 꼿꼿하고 작은 하얀 카이젤 수염에 조금 등이 굽어 있어, 마치 싸움이라도 하고 있는 듯이 머리가 앞으로 튀어 나와 보였다.  각반을 매고 빗금 무늬의 바지를 입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초록색 같기도 한 헐렁헐렁한 커다란 트위이드 웃도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양쪽 주머니는 사과와 고무의 도뇨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들로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곳마다 항상 약과 석탄산, 강한 담배냄새가 따라다녔다.

“자넨, 강한가? 몸은 건강한가 말일세.”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마누라는?”

“아직 없습니다.”

“그런 잘된 일이군. 참, 바이올린을 켤 줄 아는가?”

“켤 줄 모릅니다.”

“나도 못 켜 – 하지만 만드는 것은 잘하지. 파이프를 피우나?”

“네.”

“흠! 그럼 위스키는 어떤가?”

이런 질문에 나는 울화가 치밀었다. 이런 묘한 의사답지도 않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나는 당신이 좋지도 않고 도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지 않군요, 하고 마음 속으로 비웃듯 지껄이고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전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마시고 싶을 때에 마십니다.”

카마란의 심술궂은 눈에 미소의 빛이 어렸다.

“그건 더 안될지도 모르겠군.” 하고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또다시 “자, 앉아서 식사나 하게.” 했다.

자넷트가 재빠르게 소리도 내지 않고 식사 준비를 했다. – 케이크 빵[건포도와 향료를 넣어 구운 케이크 빵], 당과 당과, 손으로 만든 스콘 [스코틀랜드 특유의 핫케이크], 바녹크 [스코틀랜드 특유의 케이크] – 그리고 커다란 밤색의 디포트와 함께 콜드 햄과 달걀을 담은 큰 접시를 들고 왔다.

“우리 집에는 별 게 없어.” 카마란은 홍차를 따르면서 말했다 – 나는 곧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의 피부는 단단하였지만 손은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아침, 점심, 저녁, 밤참 – 고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있다네. 대진을 두더라도 – 실례일지 모르나, 배고프게는 하지 않지.”

거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 자넷트는 또 뜨거운 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머뭇거리며 말했다.

“벌써 30분이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인바베그의 길로 올라가는 곳에 농장을 가지고 있는 라크란 마켄지입니다. 말을 들으니 아이가 아프데요.”

카마란은 입으로 가져가던 오트케익을 도중에서 멈추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몹쓸 놈들이 아닌가. 나는 오늘 아침도 인바베그에 가서, 녀석네 집 앞을 지나쳐 왔어. 어쩜, 그렇게 멍청하담. 나는 분명히 장담해. 아이는 그 전부터 아팠었을 거야. 녀석들, 내가 쇠뭉치로라도 만들어진 줄 아나?”

거기서 그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속이세 끓어 오르고 있는 증기를 한꺼번에 내뱉기라도 하듯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덧붙였다.

“좋아, 자넷트. 곧 여기로 데려가 주게.”

기다릴 틈도 없이 마켄지가 모자를 손데 들고 문에 나타났다 – 머리가 아주 둔해 보이는 농부로서, 방 안의 분위기에 눌려서는 뭔가 살피는 듯이 의사의 눈과 마주치자 벌벌 떨고 있었다.

“사내아이입니다, 선생님.” 하고 그는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우물우물 말했다. “마누라는 목을 상했을 거라고 합니다만.”

“언제부터 아팠지, 라크란?”

자기 이름이 정답게 불려지자 젊은이는 용기가 난 모양이었다.

“이틀째 됩니다. 선생님. 하지만 저희들은 목을 다쳤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었기 때문에.”

“음, 알겠네. 라크란. 목이라고? 그렇겠지, 그렇겠지.” 잠시 동안 침묵.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걸어왔습니다, 선생님. 그리 먼 길도 아니고 해서.”

먼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바베그에서 타노크브레까지는 7마일이나 되었다.

카마란은 조용히 얼굴을 쓸어 내리며 말했다.

“좋네 라크란. 걱정할 필요 없어. 마차를 꺼낼 동안 자넷트한테 가서 홍차라도 달라고 하여 마시고 있게.”

그가 나간 후 침묵이 계속되었다. 카마란은 생각에 잠긴 채 홍차를 젓고 있었다. 이윽고 거의 비는 듯이 그는 말했다.

“난, 저런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냉정하게 대할 수가 없네. 이 결점은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어. 저 남자는 마누라가 전번에 아기를 낳았을 때의 돈도 지불하지 않았네. 그런데도 나는 마차를 타고 7마일이나 되는 길을 달려 가서는 아기를 봐 주고, 다시 7마일 길을 되돌아오지. 그리고는 내가 장부에 뭐라고 적을 것 같은가? 1실링 6펜스라고 적지 – 그러나 잊어 버린다고 해서 얼마 만큼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저 남자는 반 페니조차 갚을 수가 없는데, 아아,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생활이 다 뭐람!”

다시 침묵. 이윽고 나는 불쑥 말했다.

“제가 왕진을 다녀올까요?”

카마란은 천천히 홍차를 마셨다. 그리고는 눈에 비꼬움을 담은 채 이렇게 말했다.

“그 깨끗하고 작은 검은 가방 말이지 – 음, 소파 위에 놓아 둔 것을 보았지 – 아주 새것이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청진기라든가 아름답고 완전한 신식 기구들이 뭐든지 들어 있겠지. 흠, 그래 그걸 쓰고 싶어 자네가 좀이 쑤셔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는 정면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좋아, 다녀오게. 하지만 한 마디만 해 둘 말이 있네. 나 같은 개업의에게는 중요한 것이란 가방이 아니야 – 인간이야.” 그는 일어섰다. “그럼, 다녀오게나. 나는 집에서 환자를 보기로 하지. 만약을 위해서 항진제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 걸세. 저 안쪽 방에 들어가면, 오른쪽 선반 위에 있네. 아니, 내가 내려다 주지. 목이라면 대개가 디프테리아인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일부러 그걸 알아보게 하기 위해 7마일이나 되는 곳에 보내고 싶지는 않지만.”

 마차가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라크란은 이미 뒷좌석에 타고 마부인 제미는 방수 외투를 입고 서 있었다. 우리들은 폭우 속을 달렸다.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만 해도 비는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지만, 다리를 건너 산기슭 부근에 이르렀을 때는 마치 폭포 같았다. 바람 또한 정면에서 세차게 불어 닥쳤다.

15분쯤 갔을 때 나는 흠뻑 젖고 말았다. 모자로 빗물이 스며들어와 목 줄기를 타고 흘러내렸고, 무릎 위에 소중하게 얹어 놓은 가방 또한 물에 젖은 바다표범처럼 흠뻑 젖었다. 나는 이런 날씨를, 의사란 직업을, 카마란을 저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차는 좀처럼 속력을 내지 못했다. 길은 어둡고 마차의 등불에는 흙탕물이 튀어 올라 어두웠기 때문에 제미는 말이 제대로 길을 걷게 하는데 무척 고생을 했다. 저 멀리 오른쪽 숲 속에서 무엇인가 뿌옇게 소름 끼치는 듯한 다로크의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연이어진 아드필란 산의 선명하지 않은 모습이 마치 커다란 야수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과 빗속을 돌격해 나갔다. 달리고 있는 사이 어딘지 보이지는 않지만 물가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호수랍니다.”하고 제미가 설명하듯 말했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그가 한 단 한 마디의 말이었다.

감감한 길을 이 포악하게 미친 듯한 보이지 않는 호수 때문에 빙 돌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3마일 정도 가서, 마차는 급하게 왼쪽으로 돌더니 마침내 작은 농가 앞에 멈췄다.  단 한 군데, 깜빡 거리는 불빛이 켜진 창이 비에 흠뻑 젖은 암흑의 커다란 밤하늘 속에 왠지 힘없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우리가 마차에서 내리자 라크란의 부인이 문을 열었다. 보기 흉한 삼베 앞치마를 두르고 거칠어 보이는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어린 처녀였다. 감아 올린 머리가 자연스럽게 목덜미에까지 드리워져 있었고, 걱정 때문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서도 커다란 눈이 검고 젊어 보였다. 내가 젖은 외투를 벗는 것을 말없이 도와 주더니, 그 다음에도 역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부엌에 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나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는데, 구두가 돌바닥 위에서 철벅철벅 소리를 냈다.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채 완전히 흙빛으로 변해서는 호흡하기가 무척이나 괴로운 듯 한 장밖에 안 되는 담요 밑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가져 오라고 시켰지만, 그것은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아이의 혀를 눌렀다. 틀림없다! 목구멍 전체가 두터운 녹백색의 막으로 싸여 있었다. 인후 디프테리아였다.

“죽을 끓여 먹였는데도, 선생님.” 그 아이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조금도…조금도 먹으려 하지 않아요.”

“삼킬 수가 없겠죠.”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내 쪽이 더 흥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정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같이 말소리가 거칠게 나왔다.

“그럼, 이 아이는 상태가 심한 건가요, 선생님?” 하고 그녀는 가슴에 손을 대고 속삭이듯 물었다.

심하다! 나는 맥에 손가락을 짚어 보면서 생각했다. 얼마 만큼 상태가 악화되어 있는지 이 어머니는 꿈에도 모르고 있다. 주저앉아 나는 철저하고도 면밀하게 진찰했다.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아이는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첫 환자라니, 세상에 어쩌다가 이런 무서운 입장에 서게 되었을까, 나는 또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가방을 열어 커다란 주사기에다 8천 단위의 디프테리아 항독소 혈청을 넣었다. 바늘이 엉덩이에 박혀서는 혈청이 들어가고 있는데도 아이는 거의 신음소리조차도 내지 못했다. 시간의 경과를 기다리기 위해서 나는 난로 옆으로 되돌아왔다. 온 집안에서 따뜻한 방이라고는 단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제미도 라크란도 함께 이 방에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문 옆에 서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기대에 찬 그들의 눈이 아이 어머니의 공포에 찬 눈과 함께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 가난한 방의 중심인 것이다. 내가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것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해주면 될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서웠다. 나는 다시 침대로 갔다. 아이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갔다. 30분 안에, 혈청의 효력이 나타나기 전에 기관지의 폐쇄 때문에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또 새로운 공포의 물결이 덮쳐 왔다. 나는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곧 – 그렇지 않으면 이미 때는 늦게 될 것이다.

기계적으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 안으로 흘러 들어온 이 커다란 자녀의 힘에 대해 나는 너무 젊고 너무 무능력하고 경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박력 없는 태도로 말했다.

“디프테리아와 의막 義膜 이 생겨서 이미 목이 막혀 있소. 방법은 단 한가지인데, 막혀 있는 아래쪽 기관지에 구멍을 뚫는 것이오.”

아이 어머니가 양손을 꼭 잡은 채 외쳤다.

“아니오, 안 됩니다, 선생님, 안 됩니다.”

나는 제미를 돌아보았다.

“이 아이를 안아다가, 테이블 위에 눕혀 주게.”

좀 주저하는 듯 했지만, 제미는 천천히 걸어와서 거의 의식이 없는 사내아이를 안아다 반들반들하게 윤을 내 놓은 송판 松板 테이블 위세 눕혔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던 라크란이 마침내 못 견뎌 하며 외쳤다.

“도저히 못 보겠군, 못 보겠어.” 그는 힘없이 말하더니 무엇인가 구실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나, 나가서 말을 마구간에 넣어 놓고 오겠습니다.”

울면서 그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때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유령처럼 파랗게 질려서 두 손을 꼭 쥐고는 나를 보았다.

“어떻게 하라고 말씀만 해주세요. 그대로 다 할 테니까요.”

“그곳에 서서, 아이 머리를 꽉 잡아 주세요!”

나는 아이의 목에다 요듐을 듬뿍 발랐다. 그리고는 깨끗한 수건으로 그 몽롱한 눈을 덮었다. 병의 상태로 보아 마취제 따위는 엄두도 못 낼 참이었다. 그런 것을 쓴다면 미친 짓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제미가 석유램프를 옆에서 들어 주었다. 이를 악물고 나는 란셋을 꺼냈다. 그리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절개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깊게 절개했는데도 아직 깊이가 모자랐다. 더 깊게 잘라야만 한다. 깊게 – 더 대담하게, 하지만 경동맥을 조심하면서, 만약 경동맥을 자르게 되면….! 나는 메스는 날이 없는 쪽으로 절개구를 넓혀서는, 열심히 기관지의 연골을 찾았다. 아픔 때문에 정신이 든 아이는 그물 속의 물고기처럼 버둥대었다. 아! 왜 안 나타나는 것일까? 나는 정신 없이 찾아 헤매었고, 자꾸만 만지작거리면서 – 자기 자신도 알고 있었다 – 아이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도 내가 죽였다고들 말하겠지. 나는 마음 속으로 저주했다. 갑자기 매큐엔 경의 “자년 외과의가 돌 수 없을 걸세.” 하던 치명적인 말이 떠오르자 이마에 구슬같이 땀이 솟구쳐 흘렀다.

아이의 숨소리는 이제 아주 심하게 흐트러져서 가늘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했다. 작은 가슴 전체가 무서운, 쓸데없는 호흡을 할 때마다 부풀어 올랐다가는 내려 앉곤 했다. 목 줄기의 혈관이 충혈되자 목구멍은 흙빛으로 변했으며, 얼굴은 거무스름해졌다. 이제는 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순간, 이제까지 보아온 수술이 환상처럼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 부속병원 교실의 차갑고도 청결한 정밀함, 그리고 이와는 무서운 대조를 이루며 문 밖에서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속에 석유램프 빛을 받으며 부엌 식탁 위에서, 내 메스 아래 죽어 가는 이 괴로움에 발버둥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오 신이시여, 살려 주시옵소서, 이제야말로 구원의 손길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고 나는 빌었다.

무엇인지 모르게 눈 앞이 흐릿해졌다. 커다란 공허감이 온몸을 확 감쌌다. 그러자 찾아 헤매던 메스 아래에서 가늘고 하얀 기관지가 눈에 보였다. 서둘러 나는 그것을 열어 젖혔다. 그 순간, 아이의 갈그랑거리던 호흡이 멈췄다. 그리고 그 대신에 길고 분명한 호흡으로 … 공기가 그 절개구로부터 발려 들어갔다. 두 번 – 세 번. 찌아노제는 사라지고, 맥박은 강해졌다. 심한 반동으로 인해 나는 흐늘흐늘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움직이는 것이 무서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두 눈에 넘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감추었다. 나는 생각했다. 해내었다. 아, 신이여. 어쨌든 나는 해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작은 은으로 된 기관절개관을 자른 부위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손에 묻은 피를 씻고 아이를 안아다가 침대에 다시 눕혔다. 체온이 1도 반쯤 내려가 있었다. 침대 옆에 주저앉아 지켜 보며 관의 점액을 제거하는 동안 이 아이에게 이상하고도 정감 어린 흥미로움이 피어 올랐다 – 이미 나에게 있어서 남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 그 얼굴을 나는 계속 쳐다보았다.

가끔 아이 어머니는 난로에 장작을 넣었다. 그 모든 행동이 너무 조용해 마치 그림자 같았다. 제미와 라크란은 2층에서 자고 있었다. 아침 5시에 다시 한 번 4천 단위의 혈청을 주사했다. 그러자 6시에 아이는 훨씬 안정된 듯 자고 있었다. 7시에 나는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는 염려 없어요.” 그리고 아이 어머니에게 관을 청소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10일쯤 지나면 원래대로 완전히 건강해질 겁니다.”

이제는 그녀의 눈에 서렸던 공포는 깨끗이 사라지고, 단지 감사 – 감동한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는 – 말 못하는 사람이 신에게 바치는 듯한 감사의 빛이 나타나 있을 뿐이었다.

마차가 준비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선 채로 홍차를 한 잔씩 마셨다. 비는 훨씬 전에 이미 그쳐 있었다. 그리고 7시 반에 나와 제미는 아침의 엷은 햇살 속을 출발했다. 이상하게도 제미의 입은 이제 무겁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 우정 어린 말로 그것은 내 귓가에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지필대로 지쳐서 수염이 자란 얼굴로 흙탕물 투성이의 가방을 들고 이든장의 식당에 비틀거리면서 들어선 것은 9시가 다 되어서였다. 식당에는 터질 것같이 건강해 보이는 카마란이 있었는데, 베이콘 에그 접시를 앞에 놓고 휘파람으로 조용히 괘 괜찮은 노래의 한 구절을 부르고 있었다 – 그는 아침부터 휘파람을 부는, 귀에 거슬리는 버릇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를 찬찬히 쳐다보더니, 무뚝뚝한 빛을 눈에 담은 채 내가 말도 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하여간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 게로군, 그래.  가방이 이제는 새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6. 성홍열 사건 猩紅熱 事件

 

봄이 찾아오니, 마을도 그 황량함이 점차 사라져 갔다. 부드러운 공기에 싸여 푸른 하늘에는 솜 덩어리 같은 구름이 뜨고, 농가의 마당에는 인동덩굴의 향기와 벌의 날개짓 소리가 가득 찼다. 산중턱에서는 어린 양들의 울음소리가 활기차게 들렸고, 타노크브레도 아름답고 즐거운 땅이 되었다. 계곡의 냇물에서는 송어가 펄떡 이고 있어, 나는 틈난 나면 싫증날 줄 모르는 낚시꾼의 가슴 설레는 열성으로 기 고기를 쫓아다녔다. 일은 즐거웠고, 깐깐한 카마란과도 이제는 친해졌으며, 가끔 돌아오는 휴일에는 자유롭게 글라스고에 가서 아직 대학 의학부에 다니고 있는 잊을 수 없는 아가씨를 찾아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간단하지 않은 실로 곤경에 처한 분쟁에 휘말려 들었을 때는 우리의 저 엄한 하녀에게서 받는 약간의 호의 어린 느낌조차도 획득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사건은 처음에는 5월부터 시작하여, 방심할 수 없는 종류의 성홍열[법정 급성 전염병의 하나] 이 이 지방에서 발생하여 주로 마을 아이들 사이에 만연해 보통 수단으로는 없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날이 지남에 따라 모든 노력을 치료와 격리에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잇달아 발생했으므로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것의 근원을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무엇인가 특별한 원인이 있어서 그것이 병균을 퍼뜨리고 있음에 틀림없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발견할 것을 맹세했던 것이다.

우선 나는 공중 보건 당국으로부터는 손톱만큼의 원조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이 지방의 보건 의무관의 지위는 녹스힐 가까이에 사는 거만한 개업의 스놋디 박사에게 맡겨져 있었다.

이 실력 있는 의사는 고지인 高地人이 아니었으며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지방의 태생으로서 – 자기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녹스힐의 부자 미망인과 결혼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이래 그는 최상류의 문벌가들과 사귀기 시작했다. 옷섶의 앞자락을 둥글게 재단한 윗도리를 입고, 사륜마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공직을 유급한직 有給閑職 이라고 해두었기 때문에 조금도 노력하지 않고도 1년에 50기니 나 되는 보수를 받는 데 만족하고 있었다.

내가 돌본 환자들에게는 모두에게 공통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우유 공급이었으며, 예외없이 어느 경우에나 쇼헤드라고 불리는 타노크브레에 인접한 농장에서 오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쇼헤드의 우유가 이번 유행병의 근원이라는 믿음이 강해졌다. 물론 확증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한 의혹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가 행동을 시작할 결심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다음 화요일 오전, 쇼헤드를 지나갈 일이 있어서 나는 마차를 타고 농장으로 갔다.

이미 꽃이 피기 시작한 덩쿨장미가 엉켜 있는 회색 건물이 있었는데 누구나가 가지고 싶어할 만큼 아담하고 훌륭한 농장이었다.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서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청결했으며, 정원은 잘 손질되어 있었다.

이 멋진 목장과 지방 품명회에서 자주 상품을 타는 순종인 에어샤 젖소를 소유하고 잇는 것에 대해 로브 헨드리가 자만하고 잇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성 싶었다. 흔히들 쇼헤드라고 부르고 있지만 – 옛부터 전해 오는 땅 이름에서 딴 것이었다 – 로브는 좀 색다른 인물로서, 회색 머리에 쉰 살 정도 된 건장한 남자였다. 쇼헤드의 생활 전체는 두 가지 점으로 이어져 있었다. 대대로 가업으로 전해 내려온 이 농장과, 젊은 부인 ‘진’이 그것이다. 그는 최근에 결혼했는데, 무뚝뚝한 성질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여자를 말할 나위 없이 사랑하고 있었다.

쇼헤드가 이 젊은 부인에게 얼마나 쏙 빠져 있는가 하는 비밀스런 공론이 타노브레 주변에 많이 떠돌고 있었다. 이 여자는 천한 집안 태생으로서, 로브가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기 전가지는 그의 집에서 우유를 짜고 있었다. 그리고’늙은 바보만큼 바보는 없다’는 속담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쇼헤드는 아주 만족했기 때문에 아무리 소문이 남발한다 해도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내어 보일 만큼의 여유조차도 있었다 – 이것이 또한 그의 버릇이기도 하지만.

밝은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농가의 현관문을 두드렸을 때 나온 사람은 진이었는데, 그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자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계시는데요.”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남편은 지금 외출 중이시랍니다. 송아지를 데리고 아드필란의 시장에 갔어요. 점심때 이후라야 돌아 오실 텐데요.”

쇼헤드의 젊은 여주인은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통통하고 발랄했으며, 빨간 두 뺨과 아름다운 구릿빛 머리를 하고 머리는 귀 뒤쪽으로 단정히 땋아 내리고 있었다.

겨우 해봐야 스물 세 살 정도밖에는 안 돼 보였으며 천진난만스럽고 쾌활했다. 순수한 스코틀랜드 농민 풍으로 주름 잡은 스커트 자락 밑으로 체크 무늬의 페티코트가 보였으며, 또 그 밑에는 손으로 짠 듯한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멋지고 단단해 보이는 복사뼈가 보였다.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는 아름답고 일을 잘 함직한 팔을 드러내고 있었다. 손질이 잘된 건물을 배경으로 그녀를 보고 있는 동안 내 의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럼, 쇼헤드 씨는 안 계시는군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무의미하게도 이런 말을 했다.

“네, 그렇지만 4시가 넘으면 돌아오실 거예요. 들어오셔서 기다리시겠어요? 아니면, 뭐 전할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나는 망설였다.

“사실은 부인, 좀 이상스런 볼 일이 있어 왔답니다. 최근 성홍열이 만연하고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점점 퍼져 가고 있습니다만, 내가 이제까지 본 환자들에게… 아니오, 거북한 말씀은 그만 두겠습니다 – 쇼헤드에서 우유가 배달되고 있지요. 솔직히 한 마디로 말씀드려서 이곳의 설비를 좀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혹시 병원균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걸 좀 조사해 보고 싶은 생각에서요.”

나는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말이 끝나자 그녀의 그 천진했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순간 얼굴빛이 변하더니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성홍열이라구요!”

그녀는 화가 나서 소리질렀다. “그것을 우리 우유와 연관지어 말씀하시다니! 그런 볼일이라면 선생님, 저의 남편을 만나서 말씀드리시지요.”

그리고는, 그대로 말을 끊고 그녀는 내 눈 앞에서 콰당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이 반격에 나는 그만 맥이 쏙 빠져 버렸으며, 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무엇인가 곤란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마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와서는 다시 아침 왕진을 계속했다. 결국 이 일은 이제 그만 둘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음 환자네 집에서 성홍열에 걸려 있던 견습 소년의 상태가 악화되고, 동생도 감염된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앞서 세운 목표는 아무래도 포기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점심때를 이용해서 나는 카마란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카마란은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더니, 마침내 결심이 선 듯한 모양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자네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하고 천천히 말했다. “우유가 원인인 것 같기도 하군. 하지만, 나는 도저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네그려. 쇼헤드 농장은 모범 농장이니까 말이야.”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 “뭐니 뭐니 해도 다시 한 번 가서 그 사나이를 만나 보는 것이 좋겠군. 하지만, 말을 꺼낼 때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네. 화를 잘 내기로는 분화구 같은 성질을 가진 사나이니까.”

그날 오후 나는 다시 쇼헤드 목장을 찾아가 그 밝은 초록색의 문을 두드렸다. 곧 아무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쇼헤드는 문득 착유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정원을 거쳐서 창고 앞을 지나 착유장에 들어가 보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소 외양간 쪽으로 가 보았다.

숨을 부드럽게 내쉬면서 우리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는 훌륭하고 반들반들한 소들을 나는 문에 기대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소 외양간을 담당하고 있는, 친한 사이에서는 다윗이라 불리고 있는 데이빗 오아가 세 발 의자를 꺼내다 놓고 가장 가까운 소 곁에 걸터앉아 얼룩무늬 배에 얼굴을 갖다 대고 우유를 짜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내 눈은 감전이라도 도니 사람처럼 다윗한테 가 멈추었다. 왜냐하면 다윗의 얼굴은 창백했고, 무엇인가 속이 안 좋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다 목에는 빨간 프란넬 천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다가가 말을 걸자 다윗은 과묵한 얼굴을 들었다.

“당신이셨군요, 의사 선생님.” 하고 다윗이 말했다.

“이런 곳에 계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유를 마시고 싶으세요?”

무표정한 얼굴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우유가 마시고 싶지 않네, 다윗.” 그렇게 말하고는 자연스럽게 빨간 프란넬을 가리키며 “그 목은 왜 그러지?” 하고 물었다.

다윗은 접을 짜던 손을 멈추고는 일부러인 듯 웃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 별일 없습니다. 전부터 목이 좀 아파서. 그리고 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 아무 일도 아닙니다.”

내 의혹의 눈초리는 더욱 강해졌다.

“목이 아프다구?” 나는 다시 그 말을 되풀이해 묻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목이 아픈 것과 함께 종기 같은 것이 돋지 않았는가?”

“종기라니요?” 하고 다윗은 무슨 영문이지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설명을 해주고는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다윗의 손을 보고는 입을 똑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이 이상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우유를 열심히 짜고 있는 다윗의 손이 이미 대답해 주고 있었다. 양손 모두 피부가 얇게 벗겨져 있는 것이었다.

증거는 역력했다 – 성홍열에 이어서 꼭 볼 수 있는 쌀겨 같은 섬세한 표피 탈락, 그리고 목이 아프다는 사실을 합쳐 생각해 보건대 다윗이 가벼운 성홍열에 걸려 있다는 것과 – 가볍지만 위험한 타입이다 – 우유를 감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소의 유방에도 병균을 옮겨 놓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소 외양간의 정적을 깨뜨렸다.

“역시 이런 곳에 와 있었군. 남의 흠이나 들춰 내려고 하질 않나, 남이 일하는 데 와서는 참견을 하지를 않나 워.”

쇼헤드가 빨갛게 흥분된 얼굴로 나타났다. 뒤에는 부인이 서 있었는데 원망스럽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긴 했지만 아무리 나라도 이러한 경우에 와서는 이것저것 승강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실례했습니다, 쇼헤드 씨. 하지만 나는 뭐 좋아서 온 것이 아니랍니다. 꼭 올 필요가 있어서 왔지요.”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다윗을 가리켰다. “다, 다윗이 성홍령에 걸려 있습니다. 아마 가변운 것이었던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을 쓰러지게 하는 데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답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말씨를 부드럽게 했다. “아무래도 일주일이나 이주일 쯤 우유 짜는 일을 중지하여야 될 것 같군요.”

“뭐라고?” 쇼헤드는 화를 왈칵 내며 소리쳤다.

“우유 짜는 일을 중지하라고? 무슨 엉터리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자, 그렇게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나쁜 게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전염병의 근원지는 이곳입니다.”

“전염병, 무슨 그 따위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목장에서 전염병 따위에 걸린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네네. 하지만 다윗이…”

“다윗도, 우리와 마찬가지야. 단지, 목이 좀 아플 뿐이야. 그것도 이제는 다 나았어. 그것 때문에 폐쇄를 하라니, 말도 안 되는 미치광이 짓이군.”

“잘 들으세요.” 나는 화가 나는 것을 겨우 억누르면서 다시 말했다. “다윗은 성홍열에 걸려 있습니다. 몸 전체의 피부가 벗겨지고 있지요. 당신에 우유에 병원균이 있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쇼헤드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불끈 솟았다.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제야 알겠군! 댁한테는 이진 아무것도 듣지 않겠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세상에 원. 우리 집의 이 깨끗한 우유가 오염되어 있다구?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맛있는 우유야. 그리고 이제까지도 그래 왔구. 우리들도 모두 이걸 마시고 있다는 걸 모르고 계신가?”

그리고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는 국자를 집어 들고 그것을 우유 속에 집어 넣어 도전하는 듯한 태도로 가득 퍼 올려서는, 자기가 반 마시고, 나머지는 진에게 마시도록 했다.

“자, 어떤가!” 그는 국자를 집어 던졌다. “이것으로 잘 알겠나? 다시 한 번 더 그 따위 소릴 해봐라, 혼을 내줄 테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명예가 손상 당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책임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말없이 그곳을 나왔다.

그날 오후 나는 녹스힐의 스놋디 박사의 집을 찾아가서는 이런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고 곧 수속을 밟아 보건관으로서의 선처를 해줄 것을 요망했다.

보건관은 책상 앞에 앉아서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금테 안경 너머로 흘끔흘끔 나를 쳐다 보았다. 그는 카마란 박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건관으로서의 그에게 내가 일부러 협력을 요청하러 온 것이 분명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물론 잘 조사해 보지요.” 하고 그는 무슨 은혜라도 베푸는 듯이 거드름을 피웠다. “하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자네 요구에는 어떤 확고한 근거가 없는 것 같군. 확실한 증거가 없어 – 발진도 없고, 열도 없어. 억측만으로 한 사람의 사업을 폐쇄시키게 된다면 이것은 실로 무서운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구먼.”

나는 화가 치밀었다.

“억측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 목장은 성홍열의 근원지입니다. 제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흐음!” 하고 스놋디 박사는 시큼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럼, 조사해 봅시다.” 이젠 돌아가 달라는 듯 말하는 것이었다. “하루나 이틀 후에 연락드리지요.”

이 관료 근성에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그것을 이용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만 하루 도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다음날 점심 식사를 하고 있자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를 심부름꾼이 가지고 왔다.

나는 먼저 그것을 일고 나서 카마란 박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쭉 훑어 보고는 조용히 내 쪽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저 스놋디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밖에 안돼. 하지만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나이가 폐쇄를 승인하지 않는다면 우린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야.”

“또 열 명이나 환자가 생겼습니다. 아니오, 이제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나는 갑자기 험한 기세로 대들었다. “당국에서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말이야, 조심해야 하네.”하고 카마란은 주의를 주었다. “쇼헤드는 꽤 위험한 사나이니까.”

“그 친구네 집 우유만큼은 위험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카마란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나는 방을 뛰쳐나왔다.

내 성격 속에 있는 모든 완고함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날도 또 그 다음날도, 나는 왕진하고 있는 동안 환자들에게 조심스레 그러면서도 강력하게 쇼헤드로부터 오는 우유를 먹지 말라고 말했다. 괜스레 화가 나 있었고 오해 받고 있었으며, 백안시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나는 신중히 이야기했다. 마치 바보처럼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또 현명한 선배가 여지없이 예측해 주던 말을 잃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경고는 비밀로 지켜지지 않고,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가 마을 전체에 내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서 나타난 폭동은 정말 나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작은 사회에 이 논의가 불러 일으킨 흥분의 소용돌이는 그야말로 무쇠 솥이 끓듯 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의견을 말하였으며, 소문을 퍼뜨렸고, 분쟁의 시비는 이 지방의 흥미의 중심거리가 되었다.

내 쪽이 정당하다는 확신도 별로 없기는 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집요하게 내 입장을 지켜 나갈 도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주 금요일에 한 통의 서류가 날아 들었는데, 그것이 나를 한층 동요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녹스힐의 변호사 로간의 손을 거쳐 쇼헤드로부터 제출된 명예훼손 고소장이었다. 이 지방의 말을 빌자면 쇼헤드는 ‘나으리의 재판을 받자’고 하는 것이었다.

곧 나는 이 재수없는 푸른색 서류를 카마란 박사에게 가지고 갔다. 그는 말없이 그것을 읽었다.

“저는 제 결백을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모두의 몸을 생각해서 한 말이니까요.”

“음.” 하고는 카마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걸 법정에서 말하게.”

카마란은 그 말밖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이것만이 아마 그의 격려의 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 노의사가 방패가 되어 주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날이 지남에 따라 나의 입장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으며, 공판정에 나가 자신에게 제기된 고소와 직면하고 또 거기에 대해 내려지는 판결에 의해 스스로의 평판이 좌우되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자신이고 뭐고 간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의 진단은 틀림이 없었을까? 내가 한 일은 잘한 일이었을까? 동기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정당하다는 것을 완고히 주장하고 싶어서 생겨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세차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천 번을 말하더라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스스로의 대답에 힘을 주어 봐도 불안과 초조로 괴로운 불면의 나날로부터는 구제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녹스힐 거리에서조차 나를 묘한 눈초리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놋디 박사는 사륜마차로 지나가면서 내 시선을 피했으나, 그것은 그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

또다시 하루가 지났지만, 식사 때의 카마란과 나 사이의 침묵에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오후 늦게 진찰실에서 우울하게 앉아 이제까지 있었던 일이라든가 앞으로 곧 일어날 일 등에 대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카마란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들었어?” 그는 낮고 억누르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가 그것에 걸렸어. 급성 성홍열에 말이야. 쇼헤드 마누라 말이야. 진 헨드리가.”

아연실색한 순간, ‘이것으로 입증되었다’라는 기분이 세차게 들었다. 우유 국자를 건네 줄 때의 쇼헤드의 도전하는 듯한 태도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된 바에는 그쪽도 일을 계속해 나갈 수는 없겠지.” 하고 카마란은 생각하면서 말했다. “쇼헤드는 너무 걱정된 나머지 머리가 좀 돌아버렸다고 하더군. 하느님의 심판이지.”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스스로의 안도의 깊음, 격렬함과 싸우면서 가만히 있었다.

이런 국면의 전환에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으며, 당연히 쇼헤드에게 동정을 하면서도 여론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의 풍향계처럼 일변했다. 곧 나는 타노크브레의 마을 사람들과 공주위생의 옹호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왕진하러 나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바치는 찬사 따위를 나는 받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 헨드리가 아주 중태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급성이어서 열이 급속히 올라가고, 의식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쇼헤드는 그녀를 녹스힐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것에 찬성했기 때문에 지금의 착유장은 사실상 폐쇄되고 농장 전체가 차단되어, 젖소들은 낮이고 밤이고 목장 밖에 나와 있었다. 스놋디 박사가 떨떠름하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밤낮으로 곁에 있었으며 전문의가 글라스고의 뉴칠 병원에서 초빙되었다.

이 정도로 손을 쓰는 데도 진 헨드리의 병세는 악화되어 가기만 했다. 일요일에는 이미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어, 평소 때의 안식일 이상의 정숙함이 타노크브레를 뒤덮고 있었다. 카마란과 나 사이에는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마침내 그 종용하기만 하던 날도 해질녘이 되어 해가 찬연히 빛에 싸여 윈튼 연산 連山 너머로 지녀 할 때에 하녀 자넷트가 거실로 들어왔다. 얼굴에는 무표정하게 주름이 져 있었고, 팔은 단단히 가슴 위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끝났어요. 지금 막 제미가 듣고 왔어요. 진 헨드리가 죽었답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얼굴을 돌려 버렸다. 밖에서는 교회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6주일 후, 소 외양간에서 만난 이래 처음으로 쇼헤드와 얼굴을 마주쳤다. 그는 부인의 죽음으로 갑자기 늙어 버린 것 같았고 힘도 없어 보였는데, 마침 마을 교회 저편의 산중턱에 있는 묘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가 길 한가운데서 어색하게 멈추어 서자 쇼헤드도 거의 기계적으로 멈추어 섰다. 마침내 서로는 상대방 얼굴에 나타나 있는 마음 속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진이 그렇게 좁은 무덤 속에서 차가운 시체로서가 아니라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쇼헤드의 창백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언제까지나 쥐고 있었다.

 

 

7. 기침 멎는 약

 

어느 날 저녁 무렵 집에서 진찰을 하고 있었는데, 하도 사람이 없어 ‘웨스트 하일랜드 애드버타이저’ 지 紙 를 멍하고 보고 있으려니까 이빨이 못 생기고 대머리에 모래빛 머리카락 몇 가닥을 빗어 올린 야위고 후리후리한 남자가 찾아왔다. 마을의 페인트장이 겸 목수 일을 하는 드갈 톳트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방해가 되지나 않았는지요, 선생님.” 하며 그는 음울하고도 아주 특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액센트나 말투야말로 이 지방 사투리 그대로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번역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나이 든 어머님 일로 선생님께 의논 좀 드릴 일이 있어서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어머님은 몸이 약하고, 게다가 나이까지 많이 들어서 – 거짓말이라고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곧 여든 살이 됩니다. 가끔씩은 의사 선생님께도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안 그러면 걱정이 돼서요. 게다가 한 두 군데 회사에 보험 가입도 되어 있어, 얼마 만큼이나마 책임도 있고 해서… 그런데 선생님, 며칠 전부터 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 그의 목소리가 환심을 사려는 듯이 친근한 어조로 되었다 – “어머니는 불쌍한 할머니이기도 하고, 제가 또한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좀 헤아리셔서, 어떻게 좀, 저의 어머니를 보통 요금의 반액으로 봐주실 수는 없는지요?”

나는 이 놀라운 부탁에 당황해서 음침한 얼굴의 그 손님을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지요.”

밤에라도 카마란과 이 일을 의논하기로 하고, 나는 겨우 그렇게 약속했다.

“네, 네”하고 톳드가 좋아했다. “한 가지만 잘 생각해 주십시오. 선생님, 나이 많은 불쌍한 할머니를 살려 주신다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그는 그러고 난 후에도 마치 내 기분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한참 얼쩡얼쩡대더니, 이윽고 추운 밤이라는 둥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들쑥날쑥한 이빨을 드러내 놓고 씩 웃더니 어느새 인가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저녁 식사 때 내 질문에 카마란은 아주 거칠게 대답했다.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안돼! 그 할머니가 류마치스염이 생겼다든가 기관지염에 걸렸다든가 해서, 자신이 온다면 그건 별 문제다. 그때는 1페니라도 돈을 안 받겠네. 진찰과 필요한 약은 공짜로 주겠어. 할머니는 그 가난한 지갑 속에서 돈을 내려 하니 말이야 – 그렇게 훌륭하고 솔직한 여자는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만날 수 없을 걸세. 하지만 드갈이 보험회사니 어쩌니 하며 데려 온다면 진찰비를 배로 받겠네. 녀석은 타노크브레 안에서도 가장 바보스럽고 뻔뻔스러운 구두쇠란 말이야.”

톳든는 큰 길가에 있는 만물상회 옆에 살고 있었다. 그는 구두쇠였기 때문에 제가 가게를 가지려고는 하지 않고 뒤뜰에, 그의 말을 빌자면 ‘건물’ – 항상 대패밥이라든가, 발판 재료들이 흐트러져 있는 커다란 양철 지붕의 허름한 집 – 을 지니고 있었다.

톳드의 욕심은 아마도 전염성이었을까. 빈틈없는 눈에다 건강해 보이며 몸집이 큰 마누라 제시는 고집쟁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고, 외동딸인 제시카는 사탕 한 알도 남에게 주어 본 적이 없다고들 수군거렸다. 학교 운동장에서 사탕을 먹고 있는 제시카를 보고 친구가 나도 한 알만 달라고 하면, 이 빨간 뺨을 가진 제시카의 대답인즉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어머, 어쩌지? 꼭 하나밖에 안 남았던 것을 지금 막 입 속에 넣어 버린걸.”

그래서 이런 말이 타노크브레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톳드네 집 식구들한테는 아무것도 달라고 해서는 안돼 – 항상 지금 막 입에 넣어 버렸으니까.”

톳드네 집 식구들한테는 아무것도 달라고 해서는 안돼 – 항상 지금 막 입에 넣어 버렸으니까.”

톳드네 집 식구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자존심 강하고 일 잘하고, 하느님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었다. 1주일 중 6일은 반나절만 일한다는 것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더러운 흰 겉옷을 입고는 페인트 붓과 사다리에만 붙어 잇는 드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7일째에는 검은 옷을 입고 딸과 부인을 데리고 교회에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가정에서 툿드 할머니는 살고 있었다. 주름투성이인 명랑한 얼굴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얌전하고 소심했으며, 마치 참새처럼 떠들썩하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이렇게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드갈과 같은 아들이 태어났는지 이것은 아직도 타노크브레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제까지의 생애 – 그녀는 열심히 일했고, 드갈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드갈이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드갈이 슬픈 듯이 말하는 것처럼 그 아들밖에는 그것을 증명할 만한 재산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그녀는 집의 가장 위쪽에 아주 작은 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 보물 – 기관지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낫게 하는 기침 멈추는 작은 시럽 병, 둥근 양철깡통에 넣은 강한 박하 -을 간직해 두고 있었다. 식사는 특별히 생각해서 손님이 없을 때는 가끔 아래층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기로 되어 있었지만, 대개는 지붕 밑 다락방의 반딧불처럼 약한 난로불 옆에서 부서진 의자에 앉아 지냈다 – 이 반딧불 같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데 그녀는 천재적 수완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다 날씨가 따뜻한 날에는 용기를 내어 그녀는 밖에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드갈은 가끔 이런 소풍삼아 나오는 일조차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님, 나이를 생각하셔야지요. 거리를 돌아다니시는 것보다 천국에 갈 일이라도 생각하고 계시는 게 좋잖아요.”

물론 그런 말은 친절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모에 대해 드갈이 친절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사실 저녁 식사 때 그녀가 두 개째의 스콘에 손을 내밀라치면 곤란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가만히 쏘아보는 것이었다.

“어머님, 나이 드신 분이 그렇게 많이 잡수시면 안돼요.”

그리고 어머니가 불을 피우려고 석탄통에 석탄 몇 알을 넣고는 비틀비틀 2층으로 가져 가려 하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겁에 질리곤 했다.  그것도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석탄을 계단에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토록 굉장한 구두쇠이면서도 드갈은 부자가 아니었다 – 장사는 두 가지 하고 있었지만 – 부자가 될 수 있는 희망은 있었다. 어머니 몫으로 ‘거액’의 보험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죽기만 하면 그 돈이 모두 드갈의 것이 된다. 단지 유일한 장애 요인은 절대 어머니가 죽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로 동정 어린 말투 – “어머니, 오늘은 편찮으신 것 같군요.” 라든가 “어머니, 침대에 누우셔서 목사님이라도 부르고 싶지 않으세요?” – 에도 불구하고 톳드 할머니는 1백 살까지라도 살려는 듯이 항상 얌전하게 음식과 홍차와 석탄을 소모하는 것이었다.

밤 늦도록 드갈 부부는 잠을 자지 않고 음식 걱정, 홍차 걱정, 석탄 걱정 따위를 – 그리고 매주마다 오르는 물가 때문에 부담스러운 보험의 불입금 걱정을 – 하면서 한 마디도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두 사람 다 폐렴에서 뇌졸증에 이르기까지 편리한 병에 걸려 할머니가 어서 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드갈이 찾아오고 나서 2, 3주일 후에 톳드 할머니가 몸소 병원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것은 할머니의 즐거움의 하나인 ‘동네 산책’ – 이것을 아주 즐거워했는데 좀처럼 맛볼 수 없었던 것 – 이었다. 할머니는 제니 마케크니 의 – 화장도구 등 자질구레한 것들과 부인용 모자를 파는 집에서 – 갖고 싶었던 테이프를 사고 또 제니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 가게에서 그녀는 검은 줄무늬가 쳐진 캔디를 2펜스어치를 샀다 – 맛은 박하보다는 못했으나, 실로 오래 놔둘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지붕 밑으로 돌아가던 도중 지치기는 했어도 의기양양하게 아든 장에 있는 나에게 온 터였다.

“너무들 칭찬을 하고 있어서요, 좀 만나 뵈러 왔지요. 기침을 멈추게 하는 약을 조금만 주실 수 없을까요? 밤이 되면 목 안이 근질근질해져서요.”

할머니는 참새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방글방글 웃었다 – 밝고 애교 있어 보이는 작은 체구였다 – 흡사 저장해 둔 사과처럼 시들기는 했지만 속은 멀쩡한 것이었다.

나는 그 할머니가 한눈에 좋아졌다.

“좋구말구요. 곧 만들어 드릴게요, ,잘 듣는 것으로 말이에요. 내가 직접 만들어 드릴게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이 좋은데요, 선생님.” 하며 할머니는 이제는 사양하지 않고 주문까지 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나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약속을 하고는 여왕에게 먹여도 될 것 같은 최고로 좋은 진통 마취제를 섞어 주었다.

“먹는 방법은 – 밤에 찻숟갈로 두 개예요.”

나는 약 봉투를 주면서 말했다.

“뭐라고 했지요, 선생님?” 하고 그녀가 물었는데, 곧 우스꽝스러우리 만큼의 단순함으로, “난 안경이 깨지고 나서부터 도무지 귀가 먹어서, 워.” 하며 혀를 찼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것이 전염이 되어, 톳드 할머니도 따라 웃었다.

“당신도 논담을 좀 아시는구려, 선생님.” 입구까지 배웅해 주자, 할머니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칭찬했다. “훌륭하셔. 난 농담을 아는 의사 선생님이 좋아요.”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는데, 톳드 일가는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 하고 있었다. 드갈도 부인도 제시카도, 아무 말없이 오트밀을 마시고 있었다. 톳드 할머니는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곧 홍차가 나오고, 또 껍질을 벗기고 컵에 드갈의 달걀이 오븐에서 꺼내어졌다. 그리고 나서 벽시계를 찡그린 얼굴로 쳐다보면서 제시가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님은 왜,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서 나오지도 못하나? 저 주름투성이 할머니한테는 아주 손을 들어 버렸어 – 그것도 너무 오래 기다리잖아요. 아유, 다 식어 버리잖아. 아마 분명히 나한테 쟁반에 담아 가지고 올라오라고 시키려는 참일 거예요.”

“아직 침대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분명히.” 하고 제시카가 어머니 말의 뒤를 이어 말했다.

“에잇, 저 늙은 게으름뱅이!”

드갈은 숟갈로 뜬 계란을 텁수룩한 수염 밑으로 기술 좋게 가져 갔다.

“가스가 아깝지, 아까워.” – 그는 미터기를 옆눈으로 쳐다보면서 우울한 듯이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 “할머니를 위해 식지 않도록 해두다니.”

“얘야, 제시카!” 하며 제시는 화풀이라도 하듯 제시카에게 소리쳤다. “2층에 올라가서 빨리 할머니 좀 깨워서 내려오렴.”

제시카는 곧 의자에서 일어나 버터를 바른 스콘을 손에 쥐고는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조용하게 – 2층에서도 아래층에서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울음소리, 그리고 우당탕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시카가 부엌으로 달려 왔다.

“앙 앙.” 하고 제시카가 울어댔다. “할머니가 죽어 있어요!”

드갈은 마시던 커피를 접시에 그만 토하고 말았다. 제시는 의자에 앉은 채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죽어 있다구?” 하며 그녀는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너 정말…..?”

“응.” 하고 제시카는 울면서 그러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똑똑하게 말했다. “죽어 있어. 부지깽이처럼 굳어져서 침대 밖으로 나와 있단 말이야.”

한숨 같은 긴 숨이 제시의 가슴에서 천천히 새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드갈이 의자를 밀어 젖혔다.

“따라와.”

그는 부인에게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 지붕 밑 다락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만 거기서 갑자기 서고 말았다.

노파는 입을 벌리고, 볼이 쑥 들어간 채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눈꺼풀은 붙어 있고 콧구멍은 오그라들어 있었다.

“어머니!”

하고 드갈은 소리지르면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 손은 그의 손에서 힘없이 빠져 굳은 모양으로 침대 위로 떨어졌다.

드갈과 부인이 침대 위에서 뻣뻣이 굳어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의 침묵은 꽤 함축성이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남편의 어깨너머로 제시가 경건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끝이에요, 드갈. 그렇구말구요. 이제는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났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점잔을 빼며 톳드 할머니의 창백한 얼굴에 이불자락을 갖다 덮었다.

드갈은 코를 훌쩍거리면서 부인을 쳐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우는 소리로 말했다.

“아, 불쌍하게도 어머니는 돌아가셨어.”

“하느님한테로 가신 거예요, 드갈.” 하고는 제시가 눈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의심하면 벌을 받아요.” 하며 남편의 팔을 잡고 부축해서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부엌에 들어오자 드갈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불쌍하다고 생각해 줘.” 하며 그는 통곡했다. “어머니가 마침내 돌아가셨단 말이야.”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드갈.” 하고 제시가 강하게 말했다. “어머니에게 당신을 좋은 아들이었어요. 게다가 나도 제가 할 수 잇는 일은 모두 해드렸어요. 어머니도 좋은 분이었어요.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알고 있긴 했지만. 하지만, 어쩌면 저렇게 편안히 돌아가셨을까요. 좀 기운을 내기 위해 한 잔 하시는 게 어떻겠어요, 여보.”

드갈은 아직도 울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구두쇠 노릇을 할 때가 아니었다. 제시카가 응접실에서 병을 가져 오자, 실은 듯한 얼굴을 하면서도 제법 몇 잔 들이켰다.

“이젠 됐어요.” 제시가 말했다. “당신은 기운을 차리지 않으면 안돼요. 일이 산더미처럼 생겼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에게 증명을 받으러도 가야 하고, 장의사에도 가야 하고, 그리고 보험도…”

드갈이 마침내 얼굴을 들었다.

“좋아, 빨리빨리 해치우자 – 하지만 꽤 괴로운 일이야.”

그는 일어나서 모자를 집어 들고는 나갔다.

그는 우선 아든 장으로 갔다. 자넷트가 나왔다.

“자넷트,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데.” 위스키 때문에 더 감정적이 되어 그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미님이 – 자고 있는 동안 돌아가시고 말았어.”

“쯧쯧, 안됐군요.” 하고 자넷트는 놀라서 소리질렀다. 그리고는 무서운 눈초리로 그를 흘끔흘끔 보았다. “지금은 안돼요. 두 분 모두 외출 중이시니까. 대진 선생님이 마크리에서 돌아오시면 가시도록 하지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그가 서 있는 데도 문을 꽝 닫아 버렸다.

도대체가 동정심이라곤 없군, 하고 드갈은 생각했다. 아, 불쌍한 어머니! 난 어린애처럼 울고 있어요, 어머니. 가까이에 있는 녹스힐 장의사한테 가는 도중에도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울면서 이야기했다.

장의사인 기브슨네 가게에서 관을 맞췄다 – 멋지고 아름다운 관으로서 값에 비해서 괘 괜찮았으며,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샘 기브슨은 선량한 젊은이여서, 동정을 해주며 현금이라면 5% 할인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저녁때까지는 가서 입관 준비를 해주겠노라고 말했다.

드갈이 돌아온 것은 점심때쯤 되어서였다. 제시는 바빴다. 불고기와  파이를 막 만들어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구운 커스터드가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었다. 위스키도 나왔다. 이때 제시가 성급하게 말했다.

“이럴 때야말로 잘 잡수셔야지요. 갑자기 생긴 일이라 놀랍기도 하고, 그리고 이것저것….”

그들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난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하고 드갈은 접시를 받으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커다란 고깃덩어리 하나를 수염 밑으로 집어 넣으면서 “하지만 힘을 내야 하니, 할 수 없지.” 했다.

제시가 이윽고 말했다.

“그런데 참, 보험은 어떻게 되었나요? 곧 준대요?”

“음, 500 폰드 준대.”

하고 드갈이 점잖게 말하고는 맛있어 보이는 감자를 포크로 찍었다.

“야유, 정말이에요? 대단한 돈이군요.”

“음, 큰 돈이야. 쉿, 현관 벨소리가 났어, 의사겠지.”

마크리에서 돌아왔을 때 자넷트가 소식을 전해주어서 나는 곧 집을 나섰지만, 어제 왔던 할머니가 이렇게 빨리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상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제시가 현관에서 맞이했다.

“함께 올라가 보지 않아도 되겠지요, 선생님. 우리 모두,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정신이 없어서요. 할머니 방에 들어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거든요. 계단을 올라가셔서 왼쪽 방이에요.”

나는 혼자 올라가서 방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맨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창가의 테이블 위에 있는 내가 준 진통 마취제였다. 나는 병을 조사해 보았다. 3분의 1이나 없어져 있었다.

급히 침대로 다가가서 할머니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 동공은 가느다랗다. 손목을 잡아 맥을 짚어 보았다. 엷은 미소가 내 얼굴에 떠올랐다. 가방에서 강한 암모니아 병을 꺼내 할머니의 코 밑에 갖다 대었다. 잠깐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죽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했던 할머니가 굉장히 세차게 재채기를 했다. 흔들었더니 졸리운 듯 할머니는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선생님, 당신이 여기서 도대체 뭘 하시고 계신 겁니까? 난 정말 푹 잘 잤어.”

몸을 숙여서 나는 할머니 귀에 대고 소리쳤다.

“내가 준 약을 얼마나 먹었지요?”

“응? 뭐라구? 큰 숟갈로 두 숟갈이야 – 당신이 말한 대루.”

“자는 것도 무리는 아니고.” 하고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일어나도 좋을 시간인데요.”

나는 크로로다인[진통마취제]의 뚜껑을 막아, 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내려왔다.

“위스키 한 잔 어떠신지요, 선생님?”

하고 드갈이 부엌에서 슬픈 얼굴로 권했다.

“어디 한 잔 마실까?”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자네가 남에게 술을 다 권하다니, 처음 듣는 소리로군, 드갈.”

어머니를 잃은 아들은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때가 때니까요, 선생님. 불쌍한 어머니!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우린 모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어요.”

하고 제시는 경건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자, 건강을 축하하면서 드갈.” 하고 내가 말했다.

“선생님의 건강을 축하하며.” 하고 드갈은 슬픈 듯이 말했다. “증명서는 네 통 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군데 회사에 보험을 들었으니까요, 불쌍한 어머니.”

이때 2층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곧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하고 제시가 새파랗게 되어 소리질렀다.

“좋은 위스키로군, 드갈.” 나는 칭찬했다.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들려요?” 하며 제시가 또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어요.”

문이 열리고 톳드 할머니가 들어왔다. 제시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건!”

하고 드갈은 외치며 아까운 위스키를 다 엎질러 버리고 말았다.

화석처럼 된 그들은, 할머니가 테이블에 의자를 끌어다가 앉고는 파이를 집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 하품을 하더니 킥킥 웃으면서 – 이윽고 파이, 카스타드, 위스키 따위를 휙 둘러보면서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굉장한 진수성찬이로구나. 그런데다가 지금 나는 배가 고파 죽겠어.”

할머니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식욕으로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방을 나섰다.

 

 

8. 오진 誤診 에피소드

 

섣달 그믐날의 전날이었는데, 대기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보이는 맑게 개인 날이었다. 나는 진찰실 옆의 작은 방에서 페링씨 실험 [오줌 속의 포도당 검출법]을 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구석방’이라고 불리웠으나, 너무나 과학에 몰두한 나머지 내가 ‘실험실’이라고 고쳐 부르고 있는 방이었다. 오늘 오후 카마란이 녹스힐의 어느 환자에게 왕진을 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기분 좋게 소리쳤었다.

“됐다. 실험실에서 실험을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파이프를 문 채 시험등 위에서 끓고 있는 시험관 속의 푸른 용액이 차츰 벽돌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 당분이다. 생각하고 있었던 대로다. 또 하나 좋은 진단의 자료가 생겼다.

문이 열려 내 실험은 중단되었다. 자넷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윌리엄 단칸이 카마란 선생님을 뵙소 싶다고 왔습니다.” 하고 그녀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종묘상을 하는 단칸입니다. 3년 전에 결혼해서 막킨치 로드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자넷트를 쳐다보았다. – 자넷트는 아직도 나에게 경의를 표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시험관에 정신을 팔고 있는 듯한 태도로 대답했다.

“가마란 선생님은 녹스힐에 가셨는데.”

“그건 이미 단칸에게 말했습니다.” 하고 자넷트는 새침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라도 좋다는 거예요.”

현관 옆의 방으로 건너가 보니 단칸은 굉장히 흥분한 모습이었다. 모자도 쓰지 않고 외투도 입지 않았으며 목도리를 아무렇게나 목에 두르고 걱정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아기가 아프다는 것이다. “심한가?” “네, 아주 심합니다. 아기는 숨도 못 쉬는 것 같고, 폐 안에서는 무서운 피리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갑작스런 일인 데다가, 다른 사람이라면 또 몰라도 니벤 아주머니가 폐렴이라고 하니 마누라는 반미치광이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산파이기도 하고 간호원이기도 하고, 또 시체의 ‘입관 준비장이’이기도 하며, 비틀비틀 걸어다니면서 무슨 일이든지 간섭하고, 전혀 자격도 없으면서 단지 총명하다는 불길한 평판의 덕을 보는 이 지방의 ‘마녀’ – 이것이 벨라 니벤이라는 여자인데, 이 지방의 의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여자를 진심으로 미워하고 있었다.

“곧 가지.” 하고 나는 말했다. “자네는 먼저 가서 내가 곧 갈 것이라고 말해 두게.”

카마란 박사가 마차를 타고 나갔기 때문에 나는 녹스힐 로드를 2마일 가량 자전거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사실은 좋아했지만, 가방을 핸들에 달고서 헉헉 페달을 밟으며 큰 길을 지나는 것은, 특히 이 마을의 높으신 분이 엉겅퀴 여관의 창가에 앉아 내가 지나는 것을 보고 있는 때 등은 별로 좋지 않은 풍경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집은 ‘로먼드 뷰’라고 해서, 새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달려 있는 호랑 가시나무 그늘에 있는 깔끔하고 아담한 집이었다. 급히 왔는데도 단칸 쪽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뛰어왔기 때문에 몹시 숨을 헉헉거리며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몹시 절망적인 것같이 말했다.

“니벤 아주머니와 지금 잠깐 얘기를 했는데요, 선생님. 전혀 좋아지지 않았어요,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어요.”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어둡게 해 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기 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피리 부는 듯한 소리여서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분명히 어딘가 나쁜 데가 있음이 틀림없었다. 새로 불을 피운 스토브 옆에서 거의 광란 상태에 빠져 있는 아기 어머니에게 나는 말했다.

“커튼을 젖히고 좀더 밝게 해주세요.”

터무니없이 큰 가슴을 아기 침대 가장자리에 갖다 붙이고서는 앉아 있던 벨라 니벤이 가로막았다.

“내가 커튼을 내리라고 했어요. 빛이 들어오면 아기가 보채니까요.”

“난 고양이가 아니어서.” 하고 나는 날카롭게 대꾸했다. “캄캄한 데서는 보이지가 않아.”

두 사람의 의견 한가운데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던 단칸 부인은 눈치를 살피며 창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반쯤 커튼을 걷었다.

나는 아기를 들여다 보았다. 아기는 분명 보채고 있었다. 뺨이 새빨갰으며, 몸을 뒤틀면서 슬픈 듯이 울다가는 이불과 자기 얼굴을, 그밖에 손에 닿는 것은 닥치는 대로 붙들었다. 게다가, 그러는 중에도 숨소리는 날카롭고 요란스럽게 들이쉬었다 뱉었다 하고 있는 것이다.

체온을 재어 보았다 – 화씨 100도. 그리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어 보았다. – 아기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으므로 여간 힘들지 않았다. 물 웅덩이 속의 피라미처럼 어두컴컴한 속에서 버둥버둥 몸을 뒤집기도 하고, 비비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숨소리에는 의문의 여지없이 그건 분명한 폐나 늑막이 아닌 무엇인가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 – 절망적이고 알 수 없는 것이 불길하고 바짝 메마른 소리로 피리소리처럼 울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마나 불가사의한 병에 직면하고 있는 실감했다. 자연기흉 [뉴우모스 소라크] 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책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아직 겪은 적은 없는 그 병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폐의 급성 부종 – 하지만 그렇다기 에는 너무나 숨소리가 건조하고 날카로운 것 같다. 어린아이들의 병이란 것은 참으로 다루기 힘든 것이다. 말만 할 수 있다면 – 증상을 얘기해 주면 좋으련만, 나는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완전히 난처해진 것이다.

천천히 청진기를 떼자 미세스 니벤이 눈을 가늘게 뜨고 비웃듯이 말했다.

“가슴을 두드리거나 청진할 필요는 없어요. 이 아이는 분명히 폐충혈일 테니까요.”

나는 나답지 않게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충혈은 아니오.” 하고 나는 말했다 – 그 말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반대하고 싶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더 지독한 병이란 말이에요?”

“아, 하느님.” 하고 단칸 부인이 울음을 터뜨렸다.

“충혈이 아니라면 무엇이냔 말이에요?” 하고 그녀는 시비조로 물었다.

나는 대답을 생각해 내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나에게는 나대로의 보는 방법이 있소.” 나는 겨우 말했다. “폐요!”

“폐라구요?” 하고 니벤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폐래요, 글쎄. 이 방에 들어 왔을 적부터 나는 그런 것쯤 충분히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폐가 원인이라고 안 이상, 무슨 치료를 해야 하지요? 이대로 가만히 서서, 이 아이가 피리를 불면서 무덤 속으로 들어 가는 것만을 보고 있으실 참인가요?” 아니면 가슴이나 등에 아마인유 亞麻仁油 찜질이라도 할까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난 1시간 전부터 찜질을 하려 했단 말이에요.”

“내가 찜질을 하라고 할 때까지 해서는 안돼요.”

나는 니벤과 이야기를 그만 두고 단칸 부인의 손을 잡았다.

“다른 의사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 봐야겠군요. 꽤 난처한 병인 것 같습니다. 자, 침착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카마란 박사님을 모시고 삼십 분 내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 방에 들어와서부터 이제까지 한 말 중에서 그게 가장 똑똑한 말이군.” 하고 니벤은 천장을 향해 뻔뻔스럽게 말했다.

방을 나올 때 내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아아, 그곳에서 도망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 하고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피리소리 같은 약한 숨소리는 아래층에까지 나를 쫓아왔다.

나는 자전거의 핸들에 바싹 붙어서, 체면도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이 볼 추태에도 아랑곳없이 서산으로 넘어가는 황혼 속으로 힘차게 달렸다. 그래서 갈 때 걸린 시간보다 절반이나 빨리 아든 장에 돌아왔다.

카마란은 세상 모르고 식당의 따뜻해 보이는 난로 곁에서 홍차를 마시면서 따끈한 오트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어서 오게, 어서.” 하고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케이크가 따끈할 때 마침 잘 왔군.”

나는 웃어 보이려고 애썼다. 그건 처량한 노력이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전 홍차가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환자기 있어요 – 아주 심한, 로먼드 뷰우의 단칸 씨네 아기입니다.”

“그래?” 카마란은 놀리는 듯한 시선을 힐끔 내게 던졌으나 곧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은 건강한 아이야. 1년 반 전에 내가 받았지. 자넷트가 만들어준 이 치즈는 아주 맛있다네. 겨울이 되면 나는 홍차를 마실 때 따뜻한 케이크와 치즈를 먹는 게 즐거움이지. 자, 어서 먹어 보게. 이 두 가지는 맛이 차주 잘 어울리거든.”

나는 침착성을 잃고 방 안을 왔다갔다 했다.

“저는 지금 이 환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어요.”

“이봐, 이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도무지 자네답지 않네. 환자한테 질 자네가 아니지 않은가. 정말이지 나는 태어나서 이제까지 자네처럼 환자한테 이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네. 참 그래그래, 자넨 혹시 그 단칸네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자, 앉게. 치즈라도 좀 먹어 보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비꼬는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이 마당에 치즈가 어쨌단 말입니까?”

나는 마침내 대꾸하고 말았다. “곧 단칸 씨네 집에 같이 좀 가 달라는 것을 선생님은 모르시겠습니까?”

카마란이 입을 삐죽거렸다. 장난스럽게 그는 도 치즈를 한 조각 작게 잘라, 나이프로 찍어서는 입으로 가져갔다.

“알았네, 알았어. 그런데 아이는 어디가 아픈 거지?”

“폐에서 피리소리 같은 소리가 납니다.”

“카마란이 눈을 치뜨고 말했다.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럼, 곧 듣게 되실 겁니다.” 하고 나는 화가 나서 대답했다.

“이것에는 완전히 저도 손들었습니다. 자연기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공기가 피리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흉막강에 들어가는 것이 들립니다.”

“자연기흉?” 하고 카마란이 되뇌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그 말을 즐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꽤 좋은 이름이군.” 하고 그는 조끼의 먼지를 털며 일어섰다.

“흐음, 하여간 가 보세!”

마차는 우리를 로먼드 휴우까지 데려다 주었다. 과민해진 내 신경은 이 집과의 사이를 하루 종일 왔다갔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마란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여어, 잘들 있었나?” 하고 카마라는 병실 입구에 서서 명랑하게 인사를 했다. “모두들 뭘 하고 있지?”

그가 모습을 나타낸 것만으로도 방안 전체의 공기가 부드러워졌다.

“아이에게 찜질을 해주고 있어요, 선생님.” 하고 니벤이 나에게 날카로운 눈초리를 던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카마란은 그녀 따위는 무시했다. 그리고는 아이 옆에서 숨소리를 들으며 오랫동안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카마란은 아이를 얼르다가, 이윽고 아주 익숙한 솜씨로 그 아이를 침대에서 들어올려서는 청진기 같은 것을 쓰지 않고 아이의 가슴에 자기의 귀를 갖다 대었다.

그의 고개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또다시 올라갔다. 얼굴에는 엷은 미소를 띄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것은 단순히 세상 풍파를 다 겪어 온 사람의 얼굴에 명멸하는 빛과 그림자의 장난이었을까? 그는 아이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는 깡마른 손가락으로 긴 아래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이윽고 단칸 부인 쪽을 보고는,

“저, 이 집에 머리핀 같은 거 없을까?”

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머리핀?”

그녀는 깜짝 놀라서 말했는데, 이 의사는 머리가 좀 돌지 않았나, 아니면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자기 머리 속이 이상하게 되어 버리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는 투였다.

“그래그래, 머리핀 말이야.”

하고 그는 또렷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머리를 더듬어 핀을 빼자, 고맙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부인.”하고 그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덧붙였다. “좀 자리를 비켜 주지 않겠나? 우리끼리만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반 쯤 겁에 질린 듯이, 반쯤 수상하다는 듯이 단칸 부인은 얌전히 방을 나갔다.

“당신도, 미세스 니벤.” 하고 카마란은 갑자기 목소리를 바꿔 말했다. “당신도 나가 줬으면 좋겠군!”

“저는 남아서 도와 드리겠어요.” 그녀는 도전하듯이 대답했다. “모처럼 이곳에 왔으니 남아 있겠어요.”

카마란은 마치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같이 몹시 기분 나쁘게, 지금 당장이라도 곧 벼락이 떨어질 것 같은 태세로 눈썹을 찡그렸다.

 “나가! 나가라니까! 이 할망구 안 나가면 – 그 커다란 엉덩이를 차 버릴꺼야!”

아무리 뻔뻔스러운 니벤도 이 말에는 졌다는 듯이 쩔쩔매며 방을 나갔다.

카마란이 빙글빙글 웃으며 나한테 말했다.

“부드럽게 말해 준다든가, 아니면 사임 노교수가 말하는 그 철저한 겸손으로 대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군 그래!” 그렇게 말하고는 이번에는 아주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새피리’라는 것을 알고 있나?”

“새피리요?” 여우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그래. 그것 말이야 – 새피리.”

무슨 영문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 나는 상대방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 – 카마란은 기분이 좋았다 – “모른다면 가르쳐 주지. 새피리란 말이야, 불면 삐이삐이 소리가 나는 단추 같은 작은 물건이야. 아이들 장난감이야. 파티 때 스는 폭죽 같은 것에 잘 들어 있지. 그런데 아이들 이야기로 돌아 가네만, 1년 반 정도가 되면 아주 장난꾸러기가 된다는 것을 자네는 알고 있나? 이 녀석들은 여러 것들을 입이나 눈에 – 참 그래, 코에도 수셔 넣어 버린단 말일세.”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머리핀을 들고 침대 옆에 꿇어 앉았다. 머리핀의 둥그런 쪽이 재빠르고 솜씨 있게 아이의 왼쪽 콧구멍에 들어갔다 했더니, 곧 다시 나왔다. 그러자 그 순간 피리소리 같은 소리가 딱 멈췄다.

“아니….원 세상에.” 나는 숨이 말길 것 같았다.

“이것이 자네의 자연기흉이라네.”

카마란은 새피리를 쥔 채 조용히 말했다.

아기는 카마란을 보며 예쁘게 웃더니, 몸을 둥그렇게 해서는 엄지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자신이 저지른 그 바보 같은 행동의 변명을 창피한 듯이 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그 피리라는 것을 집으려 했다. 그런데 카마란은 그것을 조끼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안되네, 자네.” 하고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건 내가 맡아 두지. 그리고 만일 자네가 조금이라도 잘난 체 할 때는 – 새피리가 곡 자네 앞에 나타날 걸세!”

 

 

9. 운명의 도박 賭博

 

타노크브레에 온 지 어느덧 1년 남짓 되어, 나는 이곳과 이곳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나의 고용주인 성미 급한 노인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친근감을 느끼고는 있었으니, 두 번째 봄이 찾아 들면서부터 왠지 가만히 있을 수만 없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내 생각은 미래를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야심은 아직도 강렬하게 내 가슴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나는 나의 가정을, 그리고 병원을 갖고 싶었다. 지금 나는 메리를 전보다 한층 사랑하게 되었으며, 이제까지 우리들의 결혼까지 이르는 길목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가로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어떤 물질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획득해서 어떻게든 이들 장애물들을 제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고 답답한 서부 고지지방의 한 촌에 묶여 있는다면 과연 그것이 성취될 수 있을까?

이런 불안과 의혹에 싸여 지내고 있을 때, 정말 이상하게도 비합리적인 형태로 나의 이 평범한 운명의 다음 국면을 결정하는 계기가 될 만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사건은 하나의 생선 가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생선가시는 조지 맥켈러 씨의 목구멍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서, 그 가시 때문에 4월 어느 날 밤 나는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별장으로 불려갔던 것이다. 가 보니, 맥켈러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꽤 아픈 것 같았다. 그는 과묵한 사람으로서, 과연 자기 혼자 힘으로 인생을 헤쳐 나온 남자답게 말도 못 붙여 볼 정도로 무뚝뚝하고 완고한 독신자였다. 그 지방의 상품 시장에서는 유능하고 세력 있는 중개인이었으며 만만찮은 재산가로도 꽤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본집도 글라스고에 있었지만, 한 가지 이유로는 그의 성벽 性癖 때문에, 또 한 가지는 근처 농민들과의 장사상의 인연도 있고 해서 봄부터 가을에 걸쳐 타노크브레의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훌륭한 식당의 밝은 전등 아래서 – 맥켈러는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제나처럼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 재난의 장소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었으므로, 집게를 재빠르게 움직여서는 곧 식도의 부드러운 곳에 깊게 박혀 있던 귀찮은 생선가시를 쉽게 뽑아낼 수 있었다.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맥켈러는 후하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한두 번 씁쓰름한 얼굴로 침을 삼키더니, 천천히 마지못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좀 아프셨지요?” 톱니 모양으로 생긴 생선가시를 보며 내가 말했다. “좀 까다로운 것이 되어서요.”

“그렇소.” 맥켈러는 다시금 그때 아픔이 생각났는지 그렇게 대답했다. “빠질 때까지는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 이렇게 빨리 와 주시다니 당신께 정말 감사드리오.” 그는 의미 있는 듯한 말을 머뭇거렸다.

“자, 그런데 – 나는 뭐든지 즉석에서 정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말이오. 선생, 얼마나 지불하면 되겠소?”

나는 미소로 그 질문에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별로 멀지도 않은 이곳까지 와서 당신을 위해 생선가시를 빼드린 것은 이웃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치료비는 필요 없습니다.”

 조지 맥켈러의 눈은 한층 날카롭고 평가적으로 되었다. 젊었을 때 수없이 많은 엄격한 거래를 해온 금전 계산에 밝은 남자의 그런 눈초리였다.

“당신, 진심으로 말하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우연히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된 것 뿐입니다. 아마 언젠가는 당신이 나를 위해 힘써 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맥켈러의 표정은 여전히 그 마음 속을 헤아릴 수 없었다. 한참 뭔가를 생각하듯 각진 턱을 쓰다듬던 그가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앉으시오. 식사는 이제 별로 생각이 없어졌소. 당신과 둘이서 스카치를 한 잔씩 나누면서 이야기나 합시다.” 그가 위스키를 따른 후, 둘은 파이프에 불을 붙였는데, 그때 맥켈러는 요점을 잘 알 수 없는 말투이긴 했지만, 어딘지 강요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백하듯 말했다.

“난 말이오 선생, 한두 가지 당신 얘기를 들었는데, 어느 것 하나도 나쁜 얘기는 없었다오.” 메마른 미소를 띄면서 “나는 남이 갑자기 내 마음에 든다든가 하는 그런 타입이 아니지만 – 음, 그런 패들과는 틀리지만 말이오 – 당신이 말한 대로 친절하게 해주면 친절하게 보답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천천히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선생, 롱 브레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소?”

흥미가 당겼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업는데요.”하고 나는 덧붙였다. “주식 株式 이름이겠지요. 왠지 그런 느낌이 드는데요.”

“그렇소.” 뭔가 기분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맥켈러는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주식 이름이오. 정확히 말하자면, 남아프리카의 금광 주식이오.”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마치 어느 비밀의 샘에서 지식을 꺼내듯  다문 입술 사이로 말을 밀어냈다. “이 남아프리카의 광산에 대해 우리 소수의 사람들은 내부로부터의 정보를 손에 넣고 있소. 이 주식은 값이 오를 것이오. 아주 많이 오를 것이오.” 다시 긴 침묵이 지나고 나서 “선생, 당신도 롱 브레이 주를 좀 사시오. 내가 권하는 것이니까.” 했다.

이 회의가 고마우면서도 나는 당황해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맥켈러 씨. 하지만 – 저, 저와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인 걸요.”

맥켈러는 호의 있는, 그러나 수수께끼 같은 시선을 내게서 떼지 않았다.

“내 예상을 믿으시오.” 열이 올라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그는 말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오. 내가 약속하오.”

그리고는 엄숙한 태도로 위스키병을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그날 밤 아든 장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카마란 박사에게 맥켈러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제 인상으로는 진지한 사람 같은데.”

“그렇지. 가장 좋은 녀석들 중 하나지, 그 맥켈러는.” 하고 카마란은 대답했다.

“좀 지나치게 돈을 좋아하는 편인지 모르지만, 곧고 정직한 사나이여서 약속은 꼭 지키지. 게다가 금전이라든가 농작물에 관해서 그 사나이는 상당한 실력자지.”

나답지 않게 나는 이 증언에 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나에게 제공된 권고에 따르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씨가 뿌려져, 내 마음 속에는 내 장래의 계획에 – 집을 사고, 개업하고, 또 결혼하기 위한 계획 – 꼭 필요한 자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여기 있다. 만약 이 기적적인 기회를 놓쳐 버린다면 이만저만 어리석은 짓이 아니다, 하는 유혹적인 생각이 점점 퍼져 갔다.

이 생각은 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망치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에게는 대진으로 일하기 시작해서부터 모아 온, 은행에 안전하게 맡겨 둔 100 파운드 정도의 돈이 있다. 그것을 2배로 늘리고, 또 3배로 늘리고, 아니 어쩌면 그것으로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큰 돈을 벌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누가 방해할 수 있을까?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온갖 금빛 망상들이 눈부시게 눈 앞에서 오락가락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나는 곧 전화를 걸었다. 아직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있던 맥켈러는 내 결심에 찬성의 뜻을 표했다.

“잘했소!”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사무적으로 덧붙였다. “선생님,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군요. 잉그람 가에 있는 내 중개인인 해밀튼에게 연락하시오. 그 남자가 도와줄 것이오. 내가 한 말을 잊지 마시오. 결코 후회는 하지 않을 테니까.”
 

맥켈러의 소개라고 해서 해밀튼은 특별히 친절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와의 계약은 쉽게 성립되었다. 투자에 쓸 수 있는 자기 돈의 금액이 많지 않은 데다가 롱 브레이의 주가는 좀 비쌌기 때문에 – 그날 아침 가격이 1파운드를 약간 밑돌고 있었다 – 중개인은 증거금 거래를 하면 어떤가 하고 내게 권했다. 이 방법에 의한다면 나는 100주가 아닌 500주를 살 수 있는 것이다. 5배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고마운 이야기를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전화로 이 중대한 거래는 완전히 끝났다.

그 후 며칠 동안은 긴장과 흥분 속에 지나갔다. 정말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긴 시간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일종의 고통 비슷한 기분으로 자신이 남을 너무 믿은 것이 아닐까 하고 자문해 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며, 조지 맥켈러로부터도 소식이 없었다. 주식 시장은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며, 내가 산 주식은 내가 샀을 때 보다도 2,3 펜스나 가격이 하락했다. 나는 초조해 하며 괴로워했다. 겨우겨우 내 자존심이 맥켈러네 집으로 달려가, 이 절망적인 부동의 의미를 캐묻고 싶은 것을 참게 해 주었다.

하지만, 마침내 2주일째가 되던 어느 날 아침, 계속 실망이 계속되는 불쾌한 기분으로 ‘윈튼 헤럴드’신문을 펼친 순간 내 심장은 마구 뛰었다.

롱 브레이 주식이 한꺼번에 4실링이나 폭등했다는 것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내 눈은 반짝반짝 빛났으며, 피는 혈관 속에서 세차게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서둘러 계산해 보았다. 단 하룻밤 사이에 100파운드나 번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아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굉장하다니! 나는 전화로 달려가 맥켈러 씨에게 전화를 했다. 상대방은 마침 글라스고로 떠나려는 참이었다.

“지금 막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내 목소리는 기쁨으로 더듬으면서 전화선을 따라 달렸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전…. 파는 편이 더 좋을까요?”

“뭐라고?” 맥켈러의 목소리는 침착하게 들렸지만, 아주 의외인 것 같았다. “당신 어떻게 된 것 아니오? 지금부터 시작인데 팔다니, 절대 안돼요. 내가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리시오. 그 순간에 파는 거요. 그전에는 안돼요?” 그 말뿐, 그쪽에서 찰칵하고 전화 끊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속에서 선풍이 일어나도록 흥분한 나는 진찰실로 가서 내 할 일을 시작하려 했다.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시킬 수가 없어, 그로부터 며칠간 나는 자신의 투기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를 볼 시간을 더 벌기 위해 서둘러 환자를 진료했다.

개업의의 단조로운 나날에 비한다면 얼마나 매력도 있고, 이익도 많은 일인가! 정말 굉장한 승부이다. 왜냐하면 지금 한 번 올라가기 시작한 롱브레이 주는 마치 로켓트처럼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르고, 또 오르고, 연일 몇 실링씩의 높은 가격을 기록하면서 그 주말에는 원금의 거의 2배 가까이 되었다. 이제까지 조용히 풍설로써 전해지던 소문은 이제는 공공연히 떠들어지게 되었다 – 이 금광에서 풍부한 광맥을 찾은 것일 것이다. 이렇게 되니 너나 할 것 없이 무두들 그 주식을 사기 위해 난리를 쳤다.

월요일에도 이 작은 붐은 다시 계속되었고, 다시금 새롭게 나를 열광시켰다. 나는 끊임없이 윈튼 주식 중매점에 전화를 걸었고, 매일 밤 맥켈러와 연락을 취하며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식을 팔아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이익을 얻자는 본래의 희망은 이미 잊어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맥켈러를 믿고 있었다. 그 남자의 슬기롭고 날쌘 태도가 ‘나는 틀림없는 인물의 지도를 따르고 있다’라는 기분을 강렬하게 심어 주었다. 나는 더 깊게 들어 갔다. 맥켈러의 조언에 따라서 행동하여 주식 수를 늘리고 롱 브레이 금광주를 증거금 거래로 1,200주 가까이 사들였다. 내 이익은 이미 700 파운드를 넘었고, 그리고 인생은 참으로 멋있었다.

이만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 게다가 이렇게 쉽게 벌었다는 사실이 술기운처럼 내 머리에 올랐다. 나는 여태까지 내가 노력해 온 정당한 목적만으로써 가 아니라 엉뚱한 돈벌이로 이룩되어지는 인생의 좋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일은 점점 귀찮게 느껴졌다. 주식 시장의 상황에 열중하고 있든지 전화를 바쁘게 주고받는 때 외에는 나는 자신의 이익금만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익금은 여름에 수은주 올라가듯이 올라갔다. 4일째 되는 날은 마침내 그것은 900 파운드 가까이 되었다. 900 파운드! 이만큼의 돈을 나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이나,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시간 걸리는 의사라는, 걷기를 필요로 하는 직업에 열심히 종사해서 2년간 걸려서 벌 수 있을지 말지 다. 돈에 정신이 빠져  긴장한 흥분은최고조에 달해 맥켈러의 마지막 신호가 오기만을 이젠가 저젠가 하고 나는 기다렸다.

  이렇게 해서 나의 희열이 점점 커가고 있는 반면 내 고용주 측의 불만이 증대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의식해 왔다. 한두 번 카마란은 말하려 했었지만 참았다. 하지만, 마침내 2주일째 목요일의 저녁 식사 때 마침 내가 맥켈러를 만나느라고 좀 늦게 돌아오자 노인은 나에게 험악한 시선을 던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또 늦지 않았나 응? 요즘 자넨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건가?” 불쾌한 듯한 비난의 눈초리로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곳에 서서 그렇게 서성대지 말게. 마치 고양이가 깨진 벽돌 위에 서 있는 것 같군 그래.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로군.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잠도 못 자는 모양이 아닌가?”

“차차 건강해지겠지요.” 식탁에 앉으면서 나는 변명했다.

“차차 있으면?” 하고 카마란이 외쳤다. “왜, 지금 곧 고치려 하지 않지?”

“그건….실은, 전 지금 좀 신경 쓰는 데가 있습니다.”

카마란이 갑자기 일어섰다. 질책의 빛이 얼굴의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고말고.” 그는 엄하게 말했다.

“나도 그건 잘 알고 있네. 그리고 그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지. 분명히 말하겠는데, 자넨 이전의 자네와 좀 달라졌어. 변했어…. 사물의 가치를 모르게 되어 버렸어. 그뿐만이 아니야. 자네 일하는 걸 보면 정말 엉망진창이더군. 나는 실망했고, 또 불만을 가지고 있네.”

그리고는 차갑게 돌아서더니 방에서 나가 버렸다.

카마란의 질책을 받아 완전히 기가 죽어 버린 나는 눈을 감으며 의자에 앉았지만, 외관으로는 감추고 있었으나 이 질책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날카로운 양심의 아픔이 나를 엄습했다. 정말 나는 일을 엉망진창으로 했던가? 부자가 되려는, 이 일에 몰두할 시간을 더 가지려는 욕심으로 꾀를 부리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던가? 나는 저녁 식사에 거의 손을 댈 수 없었다. 흥분에서 깬 어색한 기분으로 나는 식탁을 떠나 곧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6시경 이른 왕진 의뢰 때문에 나는 일어났다. 카마란이 한 말이 뼈에 사무쳤었으며 – 어젯밤의 질책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서 타고 있다 –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싶은 기분도 강했기 때문에 나는 이 의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는 옷을 갈아 입고 가방을 챙겨 마차를 타고 마클리까지의 먼 길을 떠났다.

강 위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나무들을 어렴풋하게 보이게 했다. 정말 상쾌하고 조용한 아침이어서 그것은 내 가슴에 찰싹 와 닿았다. 마부인 제미가 한두 번 말을 걸어왔지만 잡담을 한 만한 기분이 나지 않았다. 나는 묵묵히 의자에 웅크리고 있었다.

일을 소홀하게 하다니 – 분함과 후회스러움 사이에서 나는 처량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이전의 나와는 사림이 달라졌다니 – 좋아, 두고 봐라. 곧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기분으로 약 1시간 후 마클리 아래에 있는 외떨어진 늪지대의 계곡 바다 족에 면한 작은 집, 조지와 엘리사벳의 덜레스 부부네 집에 도착했다.

엘리사벳은 댄드럼 성의 하녀 일을 도맡아 한 적이 있는 훌륭하고 유능한 부인인데, 40세가 되어 같은 장원의 양치기를 하고 있던 덜레스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꽤 행복했고, 그리고 지금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엘리사벳은 아기를 갖고 있었다. 나는 요즈음 진료실에 어려 차례 왔던 그녀가 남편에게 사내아이를 선물해 줄 수 있음으로써 그녀 자신의 입장을 세우기를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나이 든 자기 어머니의 간호를 받으며, 아직 그렇게 절박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미 산기가 있었다. 집 바깥문 가까이에서 덜레스가 걱정이 되어 일하러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서성대고 있었다. 나는 윗도리를 벗고 와이셔츠 팔을 걷어 올리면서 작은 침실 창 너머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적어도 그곳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도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일도.

1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오전은 오후로 바뀌어 갔다. 산모의 고통은 처음에는 가벼웠지만 차츰 강해지고 길어졌다. 출산이 용이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확실해진 것 같았다. 엘리사벳의 나이, 그 밖의 외적 사정, 자신의 역할을 꼭 해내야만 한다는 그녀의 초조함과, 우리 아기는 건강해 주기를 바라는 희망 – 이런 것들이 모두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게다가 그녀의 심장도 강하지는 않았다.

오후도 한참 지나서야 마침내 수술할 때가 왔다. 마스크와 에텔로 나는 이 가엾은 여인을 잠들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수술의 시작에 불과했다. 곡 1시간 인공분만이 끝날 때까지 나는 곤란과 위험으로 가득 찬 캄캄한 길을 빠져 나오려고 필사적이 되었다. 그런데 끝내 나의 이런 노력도 헛되게 아기는 전혀 핏기가 없었으며, 움직이지 않은 채 이 세상에 나왔다. 곁이 있던 노파한테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아 선생님, 아기가 죽어 있어요.”

내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으며, 눈에는 깊은 불안이 깃들었다. 산모 쪽도 우려할 만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마스크를 떼어내고는 깨어나는 약을 주었더니 곧 제정신을 차렸다. 산모의 위험이 사라지자 나는 곧 아기 쪽으로 갔다. 아기는 침대 다리 아래에서 허름한 담요에 싸여 전혀 생명이 없는 것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다.

“쯧쯧, 불쌍한 것. 불쌍한 것.” 노파는 정신 없이 땅을 치며 통곡했다. “죽어서 태어나다니요, 선생님. 그것도 사내아이였는데. 딸년도 이제는 두 번 다시 아기를 가질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무서운 목소리로 그녀를 가로막았다.

“더운물 좀 가져다 주게. 그리고 찬물도.”

그렇게 말하고는 곧 나는 핏기 없는 아기에게 인공호흡을 시키기 시작했다. 두 개의 대야가 들어오자 나는 이 약하고 작은 육체를 안아서는 먼저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다음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냉수에 담갔다. 그 충격으로 아기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이런 일을 몇 번인가 반복하면서, 틈틈이 인공호흡을 시켰다 – 제 정신이 아닌 체 일했다. 일하고 또 일하고, 이제는 쓸 수 있는 방법도 모두 다 썼다고 생각되었을 때 가느다란 경련과 같은 헐떡임이 아기의 가슴을 움직였다.

한 가닥 부르짖음이 마치 그것에 답하는 것처럼 내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튀어 나왔다. 나는 더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또 한 번 약한 헐떡임, 그리고 또 한 번, 이번에는 약한 힘일 들어가 있는 헐떡임이 아기한테서 나왔다….한 번 작게 몸이 떨리더니, 이윽고 얕지만 규칙적인 호흡, 승리의 기쁨이 내 가슴 속에서 흘러 넘쳤고, 노파는 감사와 기쁨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숨쉬고 있어요, 선생님!” 그녀는 헐떡였다. “오, 하느님. 아기가 살아 났어요!”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무질서로부터 회복되고, 고뇌와 한탄으로부터 해방된 작은 침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침대도 깨끗이 치워지고 난로 안에서는 불이 밝게 타고 있었으며, 그리고 산모도 안색은 나쁘지만 기쁨에 넘쳐 새근새근 기분 좋은 듯이 자고 있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 어린 눈으로 내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 보았는데, 눈에는 감사의 뜻을 가득 담고 있었다.

노파도 이것에 지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배부르게 먹기 전에는 – 마침 나는 몹시 배가 고파 있었다 – 나를 돌려보내 주려고 하지 않았으며, 덜레스는 덜레스대로 양처럼 내 뒤를 따라다니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뜻으로 몇 번이고 내 손을 잡곤 했다.

해가 질 무렵 그 집을 나왔기 때문에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에는 저녁 7시가 넘었다.  심한 고투를 하는 동안에 시간은 어느새 이렇게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인가. 이것으로 나는 자신의 체면을 세울 수가 있게 되었다. 카마란의 구중에 대해 보답한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침착하고 편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차가 큰 거리를 지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으로 다가감에 따라 그런 기분은 어느덧 사라지고, 곧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면 자신의 롱 브레이 주가 오늘은 얼마나 값이 올랐을까 하는 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충동적으로 나는 마차를 세우고 뛰어내리며 제미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걸어가다가 마을 가게에서 나는 석간 신문을 샀다.

그러나 – 오늘은 어느 정도의 돈이 내 안주머니로 들어오는 기사가 났을까 하고 욕심 많은 마음으로 서둘러 경제면을 편 순간 내 눈은 하마터면 얼굴에서 튀어 나올 뻔했다. 경제면의 톱에 하나 가득 커다란 제목이 박혀 있었다 – ‘인기주 롱 브레이 폭락’

현기증을 느끼면서 나는 서둘러 읽어 갔다. 롱 브레이의 새 광맥 보도는 오보였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날 하루에 롱 브레이 주는 30실링쯤 폭락된 것이었다!

혼미와 비관 속에 압도당한 채 나는 한참 동안 이 믿을 수 없는 재난에 직면하여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조지 맥켈러의 집으로 달려갔다.

맥켈러는 곧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곡물 상인은 억지로 억누른 만족감에 얼굴이 상기된 채 현관 복도에서 서성대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어, 어서 오시오. 선생.” 평소답지 않게 기분이 좋아, 내 등도 두드리면서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말할 수 없이 훌륭하게 했지요. 어떻습니까?”

나는 깜짝 놀라 상대방을 쏘아보았다.

“잘했다구요?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맥켈러의 표정이 점점 변해가더니 마침내는 내 핏기 없는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가 외쳤다.

“팔았지요? 당신은 – 내가 가르쳐 준 대로 팔았지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만에 나는 겨우 중얼거렸다.

“아니오, 팔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맥켈러가 무섭게 소리쳤다. “팔지 않았다고? 왠 일이오! 왜! 당신, 내가 오늘 아침 전화를 걸어 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더구나 틀림없게 하기 위해서 전보까지 쳤는데. 난 가격이 최고로 올라갔을 때, 오보였다는 뉴스가 발표되기 전에 모두 팔라고 당신에게 알려준 것인데. 내가 말한 대로 했으면 당신은 분명히 2배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다시 잠깐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인가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기 있었습니다.” – 나는 눈을 돌렸다 – “마클리까지 갔었어요. 당신의 전언은 듣지 못했어요. 아시겠지요. – 하루 종일 병원에는 있지 않았으니까요.”

맥켈러는 격노와 혐오감이 뒤섞여 폭발했다.

“하루 종일 집에 없었다고! 나하고 연락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잘 말해두지 않았나?” 하고 그는 욕을 퍼부었다. “그것이 자네의 그런 보잘것없는 환자들보다 더 중요한 게 아니었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맥켈러는 자제하려고 괴로워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참, 당신이란 사람은 사서 고생하는데 뭐가 있는 사람이로군.” 화가 나 죽겠다는 듯이 외면한 채로 그가 말했다. “다시 한 번 당신에게 이익 되는 일을 가져다 줄 때가지는 꽤 시간이 걸릴 텐데.”

모든 계획,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커다란 꿈이 헌 기왓장처럼 되어 내 발 밑에서 깨어지고, 나는 음침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돌아와 보니, 카마란 박사는 식당의 난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 다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노의사의 시선은 의자에 주저앉아, 풀이 죽은 채 묵묵히 홍차를 따르고 있는 내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늘은 늦었군.”

카마란는 그리 차갑지 않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네.”

하고 대답하고서는, 나는 마클리에서의 처치에 대한 간단히 보고했다. “흐흠.” 하는 카마란의 어조에는 예전의 우정 어린 것이 들어 있었다. “하루 종일 힘써 주어 잘됐군.” 그리고 잠깐 말을 쉬고는, “그건 그렇고, 자네가 없는 동안 왠지 평소답지 않게 시끄러웠다네. 오전 중에는 계속 그라스고에서 전화가 걸려 왔었지. 무엇인가를 판다든가 산다든가 하는 이야기였는데.” 의미심장하게 여기까지 말하다가 잠깐 멈추고는, “그래서 난 할 수 없이, 자넨 일로 바쁘다고 대답을 해두었지.”

“네.” 나는 힘 없이 대답했다. “사실 바빴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엘리사벳 덜레스와 그녀의 남편, 그 어머니의 얼굴, 그보다도 어린아이의 얼굴, 시체 같은 안면에 약한 핏기가 돌며 그 작은 육체에 생명의 맥박이 뒤기 시작했던 때가 생각났는데, 그것으로 내 마음 속에는 한 줄기 빛이 비쳐왔다.

계산하는 날이 되어 중매점은 내 증거금이 고갈된 순간에 주식을 전부 팔았다는 것을 알았다. 중매점의 보고로는 내 종이 위의 이익이 모두 사라져 버렸을 뿐만 아니라, 처음 걸었던 100파운드도 마찬가지로 없어져 버린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 한 푼도 않은 것은 아니고, 나는 잘 모르는 전문적인 계산 8분의 1이라든가 16분의 1이라든가 하는 산술상의 마술 덕분으로 처음 투자액 중 7파운드 15실리이 실제로는 남았다. 이 금액에 상당하는 수표가 중매점으로부터 인사말과 함께 배달되어 왔다.

이 원망스러운 한 장의 길다란 종이쪽지를 쓴 침묵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날 오후에, 나는 녹스힐 거리에 가서 큰 길에 있는 젠킨즈라는 보석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젠킨즈와 의논했다. 내가 무엇보다도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수표는 내 손에서 남에게 건너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1주일 후 세례 기념 은배 하나가 그 강가에 있는 외딴 집에 배달되었다. 그 멋진 은잔은 엘리사벳 덜레스의 눈동자를 자랑스러움으로 빛나게 했고, 그녀는 그것을 정성스럽게 손에 들어서는 안고 있던 아이에게 사랑스럽게 보여 주었다.

그 잔에는 그녀의 어린 아들의 이름 ‘조지 덜레스’란 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그 밑에도 기묘한 말이 새겨져 있었다 – ‘황금으로 사기 어려운 것’ 이라고.

 

 

10. 노의사 老醫師의 죽음

 

스코틀랜드 사람은 – 지금까지도 나는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 감정적인 민족이며, 카마란 박사도 본질적으로는 감상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북방 민족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특이성 있었다. 즉, 그는 감정을 겉에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떤 감정의 표출도 그는 유약함의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거친 한 마디는 격정에 가득 찬 수십 마디의 연설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전장 前章에서 말했던 사건으로부터 몇 주일 지난 어느 일요일 아침까지 그는 자기 가슴 속에 있는 말을 조금도 나에게 하지 않았는데, 그날 아침 둘이서 식탁에 앉았을 때 그는 브리타니아 합금으로 된 커피포트 너머로 나를 쳐다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나는 이제 자네를 대진으로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네만.”

한참 동안 조용했다. 카마란과 헤어질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온통 내 자신의 이해를 중심으로 한 생각이었다. 해고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므로 나는 굴욕과 놀라움으로 얼굴색이 변했다. 그러자 내가 이 충격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엄숙했던 표정이 빙그레 웃는 미소로 바뀌었다.

“그 대신, 자네는 내 파트너로서라면 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반반씩 나눠서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떤가. 조건은 자네 마음에 들도록 좋게 할 참이네만.”

너무 힘차게 피가 얼굴로 몰려와서 나는 머리 속이 띵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저 2, 3주일 동안 천천히 생각해 보게. 친구와도 의논해 보고, 그리고.” – 식탁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가면서 그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 자네에게 관심을 가질 만큼 용감한 그 아가씨와도 말일세.”

그가 내게 준 이 선물은 혹시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절대적인 것으로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머리 좋고 고상한 시골 노의사로부터 이렇게까지 인정받은 성공을 자랑스러움으로 귀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정말 말수는 적지만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이 사람, 누구라도 그 예리하고 명철한 눈빛으로 한눈에 ‘꿰뚫어 보는’ 사람이 자신의 협력자로서 자기가 호감을 갖지 않는 무가치한 상대를 고를 리가 없는 것이다. 도 그가 이런 얘기를 한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자면, 그도 ‘이제는 그리 젊지 않으므로’ 자기의 사랑하는 병원의 경영과 책임을 자기와 같이 분담할 수 있는 사람, 언젠가는 자기 후계자가 될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쾌히 승낙하고 싶었지만, 카마란은 그가 권하는 대로 무엇보다도 우선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해 보라고 고집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옛날 스승이었던 스토크맨 교수를 찾아갔다. 나는 교수님의 의견을 지극히 존중하고 싶었다. 놀랍게도 스토크맨은 내가 타노크브레 머무는 일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이 지방이 내게는 결코 적당한 곳이 아니라고 하면서, 물론 지방에서 개업하는 것을 경시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네가 자네 자신과 – 그는 특별히 덧붙여 – 자네의 재능과 를 구태여 그 외진 서부 고지 지방의 협곡에 매몰시켜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강력한 말은 나를 딜레마에 빠뜨렸다. 내 마음은 카마란과 함께 머무는 것이 옳다고 하고 머리는 그와 헤어져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권했다.

이렇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로 있는 동안에 겨울은 최후의 발악을 하며 갑자기 무서운 날씨로 변했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또 눈이 오다가 비가 왔기 때문에 길은 온통 진창이 되어 거의 지나 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들에게 있어 왕진은 곤란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나의 외출할 때의 차림은 언제나 무겁고 긴 구두에 각반,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두터운 외투차림이었다. 잠자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늑막염, 폐렴, 그 밖의 모든 형태의 감기와 충혈이 농촌을 휩쓸었다.

겨울은 일 년 중에서도 가장 나쁜 계절로서,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환자네 집을 바쁘게 왕진 다닌다는 것은 최하등의 노예 대우와 별로 차이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괴로움조차도 오히려 내게 정착하려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이럴 때 어떻게 노인 호자 놔두고 갈 수 있단 말인가?

정월의 어느 날 밤 늦게,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를 끝내고 식당에 들어선 나는 긴 구두와 각반을 벗어 던지고는 부드러운 슬리퍼를 신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안도감과 함께 나는 훨훨 타오르고 있는 난로 앞에서 잠깐 쉬다가, 내가 돌아온 것을 알아차린 자넷트가 부엌에서 가져온 김이 무럭무럭 나는 고기국물 그릇을 말없이 받아 들었다. 문 밖에서는 바람이 어둠 속에서 울부짖으며 휘몰아쳤고, 우박이 마치 얼음탄환의 일제 사격처럼 유리창을 난타하고 있었다.

“제발, 하느님.” 하고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마음 속으로 빌었다.

“오늘 밤은 제발 저희를 밖으로 내보내지 말아 주시옵소서.” 그리고 아무 거리낌없이 난로 옆에 앉은 채 뜨거운 수프를 마시기 시작했다.

30분 후 카마란도 마찬가지로 지칠 대로 지쳐서 돌아왔는데 비바람을 맞으며 들어온 여윈 얼굴은 추위와 피로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허리도 약간 굽어서 그 모습은 정말 비참했다. 그는 느릿느릿 다가와 난로에 손을 녹이기 시작했는데, 젖은 그의 옷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공감이 깃든 이해와 침묵이, 함께 노력하고 함께 곤란과 고난을 견뎌내면서 일해 왔다는 기분이 우리들을 맺어 주었다. 이윽고 카마란은 긴 한숨을 쉬면서 내게 살짝 고갯짓하더니, 선반 있는 곳으로 가 위스키를 따르고 거기에 설탕을 조금 탄 다음 난로로 다가가 주전자에서 더운물을 따랐다. 이 작은 인생의 자비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눈빛으로 그는 가볍게 입맛을 다시며 익숙한 솜씨로 설탕주를 저었다. 하지만 아, 마침 카마란이 그 김이 피어 오르는 음료를 고마운 듯이 입술로 가져 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에잇, 도대체가 원!” 설탕주에는 입도 대지 않고 내려 놓으며 카마란은 혀를 찾다. 둘 다 그 지겨운 벨소리가 아마도 얼어 붙은 어둠 속으로 끌어 내려고 하는 호출이라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걱정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분 남짓 되었을 때 자넷트가 들어왔는데 그녀의 눈은 밤의 왕진을 원칙적으로 맡게 되어 있는 나에게로 가 아니라 카마란에게 향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넷트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비난하는 빛이 나타나 있었다.

“랑론의 카리 씨가 찾는 전화예요.” 안됐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그녀가 전했다. “저쪽에서 하루 종일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 침묵 – “그래서 선생님이 정말로 오실 건지 어떤지 알려 달라고 하는군요.” 가슴 언저리에 팔짱을 끼고 마치 여교사가 사랑하는 학생 때문에 화가 난 것처럼 자넷트는 노의사를 쏘아보았다.

카마란이 신음했다. 그리고 평소는 그처럼 지렛대로도 움직이지 않는 침착함을 지니고 있던 그가 다시금 뱃속 저 밑바닥에서 쥐어짜내는 듯한 욕을 내뱉었다.

“원,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난, 도대체가 닐 카리를 잊고 있었다니 뭘 생각하고 있었담? 더구나 나는 그 남자네 집 앞을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었는 데도 말이야!”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낮에 왕진을 나갔을 때 깜빡 한 집을 잊어 버려서, 그 때문에 같은 길을 다시 걸어가야만 하는 그런 비참함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급히 나는 수프그릇을 비우고 다시 한 번 긴 구두를 신으려 했는데, 그때 자넷트는 손짓으로 나를 막으면서 참견했다.

“선생님이 가셔도 안돼요. 랑론 쪽에서는 아주 화가 나 있으니까요. 카마란 선생님이 아니면 필요없다는 거예요.”

이 말이 자넷트의 입에서 혹독하게 나오자 카마란의 주름투성이 얼굴은 한층 깊은 그림자를 띄었다.

“에잇 제기랄! 내가 나빴어!” 하고 괴로움에 못 견디겠다는 듯이 그가 외쳤다. “닐은 내가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는 난로 선반 위에 컵을 놓더니 웃도리 단추를 채웠다.

“제가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내가 버티었다. “선생님은 너무나 지치셨어요.”

“피로하건 어쨌건.” 하고 카마란이 덧붙였다.

“난 가겠네. 아마 내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닐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거야.”

“제미와 마차를 부르지요.” 자넷트가 급히 말했다. “오 분도 안 걸려요.”

“필요없어.” 카마란이 소리쳤다. “제미는 지쳤어. 지칠 대로 지쳐있어.” 말도 곧 쓰러지기 직전이야. 랑론까지는 1마일도 채 안돼. 걸어가도 돼. 갔다가 곧 돌아오겠어.”

내가 설득시키려고 여러 가지로 이런 말 저런 말을 했지만 그는 끝내 혼자서 갔다. 닐 카리는 카마란과 가장 친한 옛 친구로서 낚시 골이 기도 하고 마을의 유력자 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지금 악성 황달로 앓고 있었다. 웃도리 깃을 세우고 찬바람을 맞으며 그는 집을 나섰다.

문 밖에서 불어닥치고 있는 굉장한 바람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그런데 역시 1시간 후 카마란이 돌아왔을 때 내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음이 확인되었다. 노인은 귀까지 새파랗게 되어 완전히 피로의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걸걸 숨을 쉬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것으로 사건은 끝난 것 같아. 난 닐에게 사정을 설명했어. 제발 내일 아침에는 그 사나이를 왕진할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로 옆에 서서 그는 심하게 기침을 하더니, 한참 후에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잠자리에 누워야겠군.”

그런데 문쪽으로 가던 도중에 그는 손을 옆구리에 갖다 대고 괴롭게 호흡을 했다.

“제기랄!” 그가 외쳤다. “이거 당했는데.”

무서운 현실에 직면하여 나는 자신을 저주하면서 뛰어가 그를 도왔다. 다짜고짜로 나는 카마란을 2층 침실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기고는 침대에 눕혔다.  자리에 눕자 그는 조금 기운을 차린 모양으로 진찰하려는 내 팔을 뿌리쳤다.

하지만 내가 따뜻한 설탕주와 키니네를 먹였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괴로워하며 어떻든 잠을 들 때까지 나는 그 방에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는 전처럼 기운을 내주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카마란은 기운을 차리기는커녕 6시에 내가 갔을 때 빨간 열띤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호흡도 빨랐고, 짧고 억압된 듯이 해대는 기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를 쫓아버리지 못했다. 나는 신중히 가슴을 청진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카마란은 폐렴에, 대엽성 大葉性 폐렴에 걸려 있었다. 그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었던 증거로는 괴로운 듯이, 그러면서도 놀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절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폐지?” 그래도 내가 가만히 있자, “아냐! 나도 이번만은 확실히 당한 모양이야.”

이런 비상사태에 직면하여 나는 전력을 대해 이에 대처하려 했다. 주저 없이 나는 글라스고의 약 도매상 링크레타 상회에 전화를 했다. 이 가게는 지방 의료 중개업도 겸하고 있어, 이곳을 통해 임시 대진 – 프레즈라는 인바네스 출신의 새파란 젊은 친구를 고요했는데, 그는 그날 오후 일찌감치 도착했다.

긴장한 나는 즉각 프레즈에게 명령하여 외래 환자를 진료하는 일과 왕진하는 일을 대행시켰다. 그리고 내 자신의 환자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진료하고는 나머지 시간을 카마란을 위해바쳤다.

금방 회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그 시대에는 슬폰아미드제라든가 페니실린이라든가, 그밖에 마치 기적처럼 최악의 상태의 폐렴을 단 한번에 제압해 왕년의 중환에 의한 사망을 85% 까지 감소시키기에 이른 대균성 약제는 아직 하나도 나오고 있지 않을 때였다. 당시 대엽성 폐렴은 9일간 내지 10일간 ‘일정한 경과를 거쳐’, 그러는 동안 매일매일의 병세는 용해되면서 시기는 늦었지만 바람직한 구원이 될 때까지 그런 증상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내게 주어진 임무, 전력을 다해 일심 불란하게 그것들과 맞붙은 내 임무는 이 운명의 며칠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카마란을 병에서 구해 내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이 성공할 것도 같았다. 왜냐하면 카마란은 병고와 불쾌감 속에서도 기운과 명랑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얼굴을 내게 보이지 말게.” 그는 유머를 섞으며 이런 말을 했다.

“이것은 자네가 병이라는 것이 세계 제일의 성미 급한 남자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 그것을 관찰한 절호의 기회야.”

나는 노의사의 베개를 두드리면서 자신의 기분과는 반대로 묵종의 미소를 띄어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줄 약의 분량을 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로에서는 불이 알맞은 온기를 내뿜으며 타고 있었고, 빈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세워 둔 칸막이의 위치도 좋았으며, 창문은 활짝 열려 있고 실내는 잘 정돈되어 있어서 공기가 상쾌하게 잘 통했다.

녹스힐에서 데리고 온 간호원도 아주 깔끔하고 야무진 사람이어서, 카마란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하기 전에 할 수 있도록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어지고, 앞으로도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나는 꼭 카마란을 회복시켜야 한다 –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아, 꼭!

이런 상태로 처음 사흘 도안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용태도 정상적인 경과를 보였다. 그런데 나흘째에 예상 밖의 우려할 사태가 생겨 환자는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환자의 체온을 조사하고 빨라진 맥을 짚어 보면서 나는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남모르게 내 심장은 돌연한 공포로 크게 고동치고 있었다. 나는 전보다 갑절로 세심한 처리를 취했다. 그날 밤도, 도 그 다음날 밤도 나는 카마란 곁에서 밤을 지새며 밀어닥치는 불길한 징조와 싸우면서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하지만 6일째 되었을 때 카마란의 병세는 결정적으로 악화되었다. 그는 기침과 함께 시커먼 복숭아즙 같은 점액을 토해 냈고, 그날 밤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래서 7일째에 나는 어두운 기분으로 글라스고의 그리아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 드릴 일이 있으니 좀 와 달라고 부탁했다. 스코틀랜드 서부에서 가장 저명한 내과의 중의 한 사람인 그리아는 폐질환의 권위자였다. 박사는 그날 오후 약속을 어기지 않고 와 주었는데, 이렇게 위급한 경우에도 내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하고 정연한 태도로 환자의 모든 양상을 진찰했다. 그런 뒤 박사는 친절하게 내 이야기를 들으며 진단과 처치에 동의해 주긴 했지만, 슬프게도 도저히 나를 안심시켜 주진 않았다. 억지로 그의 의견을 물었을 때 박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좀 큰 입을 오므리면서 막사는 말했다. 카마란은 이미 60세를 넘었고, 다년간의 격무에 시달려 쇠약해 있다. 폐렴구균이라는 독소 때문에 그의 체력은 굉장히 소모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이제는 병에 대한 저항력마저도 거의 없어져 버렸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혈액 세포의 분명한 쇠약이 인정되는 데다가 왼쪽의 폐에까지도 퍼져 있는 – 양쪽 폐렴이다. 박사로서는 내가 취해 온 처치를 – 스트리키니네 주사를 강행할 것, 필요에 따라 산소 호흡에 의지할 것과, 이 병의 무서운 진행을 막기 위해 환자의 체력을 자극할 것 등을 계속하도록 권하는 것 외에는 더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아 교수가 돌아간 다음, 나는 한참 동안 혼자서 방 안에 남아 전문가의 말이 옳다는 것을 확신했다. – 카마란에게는 이전과 같은 공격적 스테미너가 이제는 전혀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며 나는 손을 이마에 대고, 지탱하기 어려운 패배감을 맛보면서 동시에 내가 그에게 느끼고 있는 모든 은혜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의 친절, 호의, 그리고 선량함의 추억들이 일종의 고민과 함께 나를 덮쳐왔다.

회복의 징조는 보이지 않은 채 8일째가 되었다. 스트리키니네라든가 브란디라든가 산소, 도는 에틸까지도 써서 자극을 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환자가 쇠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나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투쟁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일찍이 있었던 카마란의 성격의 특색이라고도 할 수 있는 투쟁력은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얌전히 베개를 베고 깨끗한 산소가 흡입기의 금속 원통으로부터 거품이 되어 나오는 유리로 된 깔때기를 통해 절박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몸을 일으킬 수조차도 없게 되었다. 이미 의약에 반응할 힘을 잃었고, 작은 소리로 야단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는 내 말도 이제는 들리지 않아 귓가에 헛되게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이미 그 즈음에는 그들의 노 선생이 중태에 빠져 있다는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져 있었다. 하루 종일 문병 인사라든가 선물들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이 집에 쇄도했다. 정성 어린 호의의 표정과 함께 모든 형태의 시골다운 친절이 베풀어졌다.

  병원 앞 길은 짚으로 덮였다. 그리고 자넷트는 피곤하고 염려스러운 얼굴을 하고 발 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운명의 9일째가 되었다. 오후 내내 나는 쇠약해 가는 노인 옆에 앉아서 순간순간 카마란의 체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그날의 조용하고 몹시 추웠던 황혼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해가 지고 어두움이 덮여 오는 것과 함께 쇠약해진 침대 위의 환자에게도 죽음의 장막이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카마란은 그래도 완전히 의식이 있었으며 매우 평안해 보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그것은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신호였다.

“이젠 틀렸어.” 하고 그가 속삭였다. “이번엔, ….나도 마지막이야.”

어떻게 대답할 바를 몰라 나는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양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카마란의 눈은 이미 감겨져 있었다…. 그것이 곧 그의 임종이었다.

그 조용해진 방 안에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 있었는데 나도 모른다. 자네트가 왔다가 다시 나갔다. 촛불이 그곳에 켜져 있었다. 이윽고 밖에서 적연하게 얼어붙은 공기를 타고 교회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3일 후 노의사는 마을 묘지에 묻혀졌다. 나는 그가 그의 친척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지만, 장례식에는 먼 북쪽 마을에서 두 명의 조카가 저마다 부인을 데리고 참석했다. 그들은 겉은 슬픈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늑대처럼 양의 우리를 노렸다.

욕심 많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죽은 사람의 예금통장이라든가 침실 벽장에 걸린 옷에 이르기까지 신성한 것은 없었다. 뒤척여보고 찾아 헤매고, 구석구석까지 집안을 뒤졌기 때문에 자넷트와 충돌했고 호나자들과도 충돌했으며, 내가 치료비를 속이기나 하고 있는 것 같은 소리조차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물론 정당한 상속인이었다. 한 달도 되기 전에 병원은 팔리고 후계자가 들어왔다.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 지방에 남아서 새로 온 의사와 맞서 병원을 개업하고, 자넷트를 하녀로 쓰라고 종용받았지만 카마란이 막상 죽고 나니 타노크브레에 대한 매력은 마침내는 사라졌다.

나는 어느 겨울날 아침 말없이 이 지방을 떠났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플랫폼은 내가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황량했지만 내 마음 속만큼 황량하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숙연함은 부드러운 애정을 원하는, 울고 싶은 듯한 동경심과 더불어 갈팡질팡하는 기분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제는 내 마음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마지막 시험에 합격해서 글라스고에서 20마일 정도 들어간 유쾌한 시골 별장에 있는 메리를 찾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다짜고짜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메리.”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지위도 없어. 장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고 돈도 없어. 사실을 말하자면, 오히려 빚이 30파운드나 돼. 가정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조차도 나는 당시에게 줄 수가 없어. 당신이 알고 있는 대로 나는 가톨릭이야 – 그것도 유감스럽게 엉터리 신자지 – 그리고 당신은 아주 엄격한 프로테스탄트고. 나는 또 당신의 부모님들이 나를 믿음성 없는 불량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과 나는 사랑하고 있으니까 잘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일자리도 곧 얻을 자신이 있어. 그러니까 나와 결혼해 주지 않겠어? 성가시게 소동 따위는 일으키지 않고 내주 중에라도 곧 … 물론 꽤 오래 걸리는 도박을 하게 되겠지만, 여하간 해보는 게 어때?”

그녀는 아무 말도 –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잡은 그 손에 별안간 힘이 더해진 것과 사랑스럽고도 의지에 찬 눈동자에 번뜩이는 빛으로 보아 나는 그녀의 대답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2부

 

 

1. 신혼 초야 新婚 初夜

 

1월 어느 날 오후 늦게, 새로 맞춘 양복을 입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 청년과 비둘기색 드레스를 입고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손을 꼭 잡고 카디프에서 로잔 계곡을 올라가고 있는 열차에 정겹게 앉아 있었다. 열차는 거의 텅 비어 있었으며, 그들은 우중충한 이 3등칸의 한 좌석에서 꼼짝 않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결혼식을 올린 후 나와 내 아내는 스코틀랜드를 떠나 도중에 카라일과 슐즈베리에서 차를 바꿔 타고 멀고 먼 남 웨일즈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도착하기에 앞서 이 낯선 땅에서 앞으로 둘이 협력해서 시작할 새 생활을 생각하니 차츰 긴장이 되었다.

창 밖에는 양쪽에 우뚝 솟아 있는 산들 사이로 회색 안개가 끼어 있었다. 산허리는 채광 흔적투성이였으며, 삿갓 모양의 석탄더미 위로 있을 리 없는 푸른 풀을 찾아 지저분한 양떼들이 몇 마리 서성대고 있었다. 푸르른 것이라고는 풀 한 포기, 나뭇잎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저녁 노을 속에 보이는 나무들이 모두 말라 비틀어져 마치 유령 같았다.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제련소의 붉은 빛이 잠깐 보이며, 웃통을 벗은 노동자 무리들의 건장한 상반신이라든가 번쩍 들어올린 팔 등을 비추었다. 하지만 곧 이 충격적인 광경은 복잡하게 늘어선 광산의 높은 연동장치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렸다.

잠시 후 열차가 계곡 마지막 마을인 종점 트리게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되어 주위 경치는 한층 낯설게 느껴졌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여행가방을 집어 들고 나는 열차에서 뛰어내려서는 신부를 부축해 내려 주었다.

역의 출입구에 이르러 우리는 발길을 멈추었다. 탄광에서 누군가가 마중 나와 주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개와 연기의 장막이 드리워진 아래로 높이 솟아 있는 석탄더미 사이에 누워 있는 지저분하고 복잡한 마을이 보였다. 그곳에는 추하게 생긴 광부들의 집이 늘어서 있었고, 군데군데 교회와 술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것들을 보니 우리들의 마음은 깊게 가라앉고 말았다. 어쩌면 이런 풍경일까 하고 나는 실망했다. 타노크브레의 푸른 계곡이라든가 히이스로 뒤덮인 초원은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곳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려니까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교대시간이 된 광부들이 탄광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나오기 시작했다. 새까맣고 혈색이 나쁜 사람들 뿐이었다. 땀과 석탄가루 투성이였으며, 모자 위에는 작은 석유램프가 달려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의사네 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상대방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웨일즈 어로 좔좔 말하기 시작했으나 나는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다른 사나이에게 물었지만, 역시 마찬가지 식의 대답이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한 사람, 우리들의 질문의 요지를 알 수 있는 젊은이를 한 사람 발견했다. 그 남자가 친절하게도 우리를 그 집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놀랍게도 그곳은 보통 광부들이 사는 집과 마찬가지로 방 두 개 에 생활용품들을 조금 늘어 놓은 곳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처음 눈에 띈 것은 옆방과의 샛문으로 흘러 나오는 양철로 된 물통의 더러운 물이었다.

이 집의 관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몸집이 작고 내성적이었으며 머리칼이 까만 여자였는데 짙은 눈썹이 앞 머리카락과 맞닿아 있었으며, 윗입술 위에는 점이 하나 있었다. 여간 친절하지 않았지만, 굉장한 환영은 아니었다. 자신을 미세스 모간이라고 소개하고, 아내에게 2층의 침실과 부엌의 서너 가지 설비들을 가르쳐 준 후 물은 밖에 있는 우물에서 길어야 하며, 현재로서는 화장실은 뒷마당에 밖에 없다고 일러 주었다. 그 여자는 그것만 말해주고 나서 우리 둘만 남긴 채 나가 버렸다.

“햐아.” 나는 일부러 명랑한 척했다.

“별로 나쁘지는 않군.”

“그래요.”

“게다가, 적어도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럼요.”

“하지만 광고에 난 쾌적한 설비 따위는 조금도 없잖아.”

나는 갑자기 불만을 터뜨렸다.

‘란셋트’ [영국의 유명한 의학 잡지] 에 나와 있던 트리게니 탄광회사의 광고를 보고 우리는 망설일 여지없이 이런 벽촌에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 잡지에는 의무부원으로서 연 500파운드의 수입을 보장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쾌적한 설비의 주택’도 달려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기름종이로 뒤덮인 흔들흔들한 가구라든가 얇디얇은 다 닳아빠진 커튼, 속이 삐져 나온 소파, 노란 반점투성이인 선반 위의 화초 등, 우리가 화려하게 상상을 하고 있던 그림과는 – 그것은 정말 웨일즈의 새파랗게 우거진 초원이라든가, 아담하고 작은 집이 있는 땅, 즉 우리 두 사람에게 있어서 낙원 그 자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그런 상상의 그림과는 너무도 차이가 나는 4급의 하숙집처럼 형편없는 분위기에, 마음마저도 얼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다 닳아빠진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우리는 힘없이 억지 미소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다른 방으로 통하는 것 같은 문이 있길래 열러 보았다. 그와 동시에 와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식기장에서 굴러 떨어진 것은 해골이 아닌 – 그것이었더라면 재미있었겠지만 – 전 사람이 남기고 간 많은 빈 위스키 병들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에 살던 사람은 굉장한 주정뱅이였으며, 마침내 알코올 중독성 정신병에 걸렸다고 한다. 이 마지막 충격은 내 아내에게는 가엾게도 너무 강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만 그녀는 황당해 하며 슈트 케이스 위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돌발 사고의 경우 치료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 먹는 것이다. 아침부터 샌드위치를 약간 먹었을 뿐, 그밖에는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았다. 부엌에는 먹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 집 깊숙한 곳의 적막함이란 지옥과도 같았다 – 나는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트리게니 에는 음식점 따위는 없었으며, 그런 곳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역에서 오는 도중 가난한 학생시절 때 자주 가서 기쁨과 공덕을 입었던 천한 시골 여인숙, 즉 생선과 감자를 튀겨 파는 가게를 눈 여겨 봐 두었었다.

따뜻하고,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기름 튀기는 냄새라든가 지금 막 건져낸 생선 냄새가 풍기고, 탄광에서 막 나온 손님들이 새까맣게 곽 들어찬 이 가게에서 우리는 겨우 자리를 발견했다. 식탁보도 없는 식탁에 나온 우리들의 저녁 식사는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뜨거웠고, 맛있었으며 양도 많아 – 노동자들이 먹는 곳에서는 항상 맛있는 것들이 나온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 다 먹고 나자, 인생은 그리 복잡하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즐거운 것이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회사에 가서 보고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언제 그런 일을 해요? 우린 먼 길을 와서 지쳐 있잖아요. 이대로 집에 돌아가 자기로 해요.”

순전히 어머니가 아이에게 타이르는 듯한 투로 말했지만, 이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를 갑자기 알아차리고 그녀는 얼굴이 금새 새빨개졌다. 그래도 용감하게 곧 덧붙여 말했다.

“아무튼 이불도 부드러웠고, 시트도 금방 세탁한 것이었어요.”

“여보.” 하고 나는 카운터 뒤에 있는 튀김들 사이에서 머리핀으로 이를 쑤시며 이쪽을 보고 있는 뚱뚱한 웨일즈 인 요리사 따위는 무시한 채 로맨틱하게 속삭였다. “당신만큼 부드럽고 착하고 용감한 여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야. 좀 생각해 봐, 당신은 이제까지 안락과 사치에 싸여 … 몬테칼로 라든가 이탈리아의 호수라든가, 카프리 에로의 신혼여행을 시켜 줄 수 있는 남자와 결혼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결혼 할 수 있었지. 그런데 당신은 애정 때문에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면서까지 나 같은 가난뱅이와 결혼했어. 그리고 가족들 품과 사랑하는 가정과 자신이 계획하고 있던 생활과 이별하고 거의 거짓말 같은 구실을 만들어 이런 – 나 같은 녀석과 함께 살게 되었으니 말이야. 아, 용서해 줘. 이런 좋지 않은 말투는 쓰지 않기로 했었지 참. 하지만 기다려 줘. 꼭, 이 보상은 할 테니까. 당신을 위해 꼭 성공할게… 손을 놓으면 안 돼. 웨이트레스들이 들어도 상관없어… 난 부자가 되고 유명해져서 하리 가 [일류 의사들이 많이 사는 런던 거리의 이름] 에서도 최고의 의사가 될 테니까 말이야. 오늘밤은 프랑스에도 이탈리아에도 가지 못하지만 나의 사랑과 존경으로 그 보답을 하겠다고 약속할게. 여보, 오늘 밤이야말로…..”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오신 의사신가요?”

이렇게 서정적이고 하염없는 나의 광상곡은 갑자기 나타난, 단단해 보이고 코가 짜부러졌으며 문신을 새긴 것으로 혼돈할 만큼 작고 푸른 상처가 얼굴에 가득한 몸집이 작은 사나이 때문에 끝나고 말았다. 둥그런 빡빡 머리에 가죽모자를 쓰고 손에는 안전등을 들고 있었다.

“모시러 와서 죄송합니다만, 젊은 선생님.” 내가 의사라고 대답하자 그는 계속 말했다. ‘갱 안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해 받는 것이 귀찮기 짝이 없었으나 적어도 우리들의 부임해 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에 대해서는 만족했다. 그래서 아내를 집까지 데려다 준 후에 30분 정도면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는 이 새로운 친구와 함께 집을 나섰다.

이 사나이가 스스로 소개한 바에 의하면 이름은 리스 죤즈이며, 30년간 탄광에서 일해 왔는데, 말을 모는 아이부터 시작해 차츰 현재의 폭파계의 직위까지 승진해 왔다고 했다. 내가 불려가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오랜 동안의 고생이나 재난에 익숙해진 투로 광부가 한 사람 갱내에서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구조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탄광 구내에 도착하여 전등불 아래서 빛나고 있는 그물 같은 철로를 지나 구급실로 들어갔을 때, 죤즈가 아무 말없이 다 낡아 빠진 의료가방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갱구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는 감아 올리는 기계 밑에 쇠로 만든 우리[짐승을 가두어 두거나 가두어 기르는]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속으로 들어갔다. 문이 철컥 하고 닫히자 그가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곧 속이 메스꺼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저울의 추처럼 900피트 지하로 떨어져 갔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갱도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사실 탄광도 멀리서 보았을 뿐 석탄이 어떻게 캐어지는지도 몰랐으며, 난로에 집어 넣는 석탄덩어리를 본 것 외에는 석탄산업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둘러 걸어가는 죤즈 뒤에서 이 낮고 어둡고 물이 떨어지는 터널 속을 머리가 부딪치지 않도록 몸을 숙여 – 하지만 그렇게 했어도 두 번이나 나는 천장에서 튀어나온 바위에 목이 부러질 뻔했다 – 들어가면서 광부 생활이 힘들다는 사실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2, 3분마다 죤즈가 나를 약간 들어간 안전한 옆 구멍으로 끌어들였다. 그때마다 우르릉 소리를 내며, 허리까지 완전히 옷을 벗은 사나이가 조종하는 탄차가 정말 머리털 하나 차이로 느껴지는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직 멀었소?”

나는 경사가 전보다 심해진 곳에 이르렀을 때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했다.

“갱도의 종점은 2마일 더 가서 있으니까요. 40분은 걸릴 겁니다.”

지표 아래 900 피트, 자유스러운 공기의 유일한 출구로부터 2마일이나 떨어진 작은 구멍 속에서 – 나는 무서운 폐소 閉所 공포증에 휩싸여 가슴과 목이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혹시 머리가 이상해져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했다. 육체적인 건강에 대해서는 은근히 자신이 있었지만 이런 습기 많고 석탄가루투성이인 공기 속에서는 호흡 곤란에 허덕이며 억수 같은 땀이 흘러 내렸다. 무심코 내가 하는 불평 따위는 묵살한 채 본도 本道 에서 벗어나 딱딱한 바위를 파낸 지로 指路에 들어서자  죤즈는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어주었다. 그곳은 높이가 3피트도 안 되는 폭도 높이도 몹시 좁은 터널이었는데, 우리는 엎드려서 기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울퉁불퉁하고 컴컴한 도랑의 바위 바닥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서 –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트리게니는 ‘침수갱’ 侵水坑’ 이었던 것이다. – 익숙지 못한 나는 곧 허리까지 흠뻑 젖어 버리고 말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런 좁은 곳에서 광부들은 8시간이라는 긴 근무시간 동안 석탄을 캐내는 것이다. 매일매일 아이일 적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한창 나이일 때도, 그렇지, 나이가 들 때까지 – 이런 동굴 속에서 일생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무엇을 위해서냐 면 다만 입에 풀칠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다.

마침내 우리는 갱도 맨 끝에 이르렀는데, 가 보니 한 환자가 산더미 같은 낙반에 깔려있고 그 주위를 갱내 감독과 3명의 동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갱내 감독이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로 설명을 했다. 석탄을 캐내기 위해서 폭발물을 터뜨렸는데 탄층 때문에 폭풍이 아래로 불어 낙반 사고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래서 그 충격으로 불안정했던 커다란 암반이 공동 空洞 위에 매달려 있다고 했다. 이 희생자가 낙반에 깔렸을 뿐만 아니라, 몇 백톤 이나 되는 바위 천정 전체가 언제 떨어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갱내 감독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혹시 묘비가 될지도 모를 암반을 힐끔 쳐다보고는 나는 낙석 밑에 깔린 사람에게로 기어 갔다. 왼쪽 다리가 엉망 진창으로 흔적도 없이 – 마치 무슨 거대한 압력에 의해 분쇄된 것처럼 –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을 정도로 짓눌려져 있어서 1인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무릎 밑을 곧 절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넋이 나간 듯이 멍해졌다. 학생시절의 슬픈 무서움이 사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제까지도 외과의사로서의 기술부족을, 아니 적어도 두뇌와 마음과 손과의 특별한 협력을 요구하는 대답하고 미묘한 이 기술에 있어서, 그런 것들을 불행하게도 지닐 수 없었던 내 자신의 힘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자신이 없어도 도망칠 수는 없다. 나는 구급 가방을 열고는 너덜너덜해진 옷을 가위로 잘라내 다음, 짓이겨서 흐물흐물해진 다리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마스크에 흠뻑 에텔을 적셨다. 그때 아직 광부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곧 꺼내줄 테니까.” 하고 나는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확신 있는 듯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자, 조금만 숨을 쉬시오. 다른 일들을 모두 잊어 버리시오.”

마취제가 효력을 발생하자, 나는 그 병을 그의 옆구리에 맞추어 지혈기를 조이고 고무장갑을 낀 후 메스를 들어 긴장된 침묵 속에서 무릎에 요듐을 듬뿍 바르고 최초의 메스를 넣었다.

이것저것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직이 흔들흔들하고 있는 암반 밑에서 납작하게 엎드려 나는 신들린 사람처럼 절개한 부분을 벌려서는 하나하나 순서 있게 동맥에 지혈집게를 끼우고 뼈까지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톱을 집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삐그덕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바위조각이 천장에서 에텔병 위로 떨어져 병은 산산조각이 나고, 마취제는 바닥에 쏟아지고 말았다.

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하느님을 저주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만 둘 수도 없었다. 미치광이처럼 재빠르게 뼈를 잘라내고는 봉합하기 시작했다. 갱내 감독은 삐걱삐걱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계속 재촉했다. 나는 배농관 排膿管 을 두 개 집어 넣고는 마지막 내부 봉합을 끝낸 다음 바늘을 깊숙이 찔러 판상피부를 꿰매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한 바늘을 꿰매었을 때 비로소 주위를 돌아다보니 부상자의 크게 뜬 두 눈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굉장한 솜씨군요, 선생님.” 그는 이를 악문 채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하기야 저는 마지막 부분만을 보았지만 말입니다.”

그는 마취가 깨어 약 5분간 내가 하는 것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그를 암반 밑으로 끌어내어 들것에 실었을 때도 그의 눈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무너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사실 나도 거의 실신 상태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갱구 쪽으로 50보 가량 걸어 나왔을 때 뒤에서 최후의 무서운 소리와 함께 천장의 암반이 완전히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새벽 2시에 땅 위로 나왔는데, 나한테는 적어도 그날 밤만큼 별빛이 빛나 보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구급차는 없었다. 우리는 그를 들것으로 그의 집에까지 데리고 가 그곳에서 지구 간호원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쇼크 최악의 증상에서 회복하기 시작할 때까지 돌보았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밝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서면서 몽롱한 머리로 이렇게 생각했다. 신혼 첫날밤인데, 아 이게 무슨 꼴이나 하고.

 

 

2. 백의 白衣의 천사

 

어느 지방의 첫인상이라는 것은 훗날 되돌아 봤을 때 잘못 보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 그런데 이번에는 불쌍하게도 첫인상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탄광동네란 있을 리가 없겠지만, 트리게니는 이 지방의 말로 하자면 ‘빈털털이 마을’이었다.

마을의 생활 중심은 탄광이었는데, 트리게니 탄광회사는 청렴함과 공평한 분배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 했지만 별로 돈이 많은 회사가 아니었으며, 탄질도 낮고 채광에도 손이 많이 가는 물에 잠긴 좁은 탄층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 위에 그 즈음은 전반적으로 탄광업의 불황시대여서 사정이 좋지 못한 것도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문명국에서 보통 기대할 수 있는 그런 후생 시설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마을 안에는 병원도 없었으며, 구급차도 없었고, 렌트겐 설비도 없었다. 위생시설 같은 것은 조사해 볼 필요도 없었으며, 앞으로 전염병 같은 것이 발생할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집 안은 습기가 가득한데다 수선도 별로 하는 법이 없고, 대개는 수도시설도 없어서 빨래는 우물가나 부엌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의업도 그 로맨틱한 전통을 지켜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회사는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의사를 고용하여 가능한 의료 행위를 시키고는 있었으나, 이런 구미에 당겨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수준이란 당연하겠지만 정말 가엾을 정도로 낮은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최근 수 년 동안 크리게니에는 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라든가 약제사 면허와 준의사 자격을 지닌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알 수 없는 늙은 의사와, 모든 곳에서 실패만 거듭해 악평만을 듣다가 그 직업상의 행실이 나쁘다는 이유로 등록을 취소당한 것 같은 ‘돌팔이’ 등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해 왔던 것이다.

이 같은 낙오자들은 흔히 세상에서 제외된 한 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의 전임자는 음주 상습자로서, 마침내는 알코올 중독성 혼수상태가 되어 카디프의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부임해 왔어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냉정하고도 무감동하게 받아들였다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무식하고 고집이 세어 ‘첫인상’이 나빴던 것을 한꺼풀 벗기고 보니 사람들의 마음 속은 따뜻하고 친절했다. 웨일즈 사람이란 뿌리는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다른 지방 사람에 대한 불신이 일단 가시고 나면 아주 친절하게 되는 것이다. 맨 첫 번째 환자에 대한 내 행동 – 아시다시피 억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입장에 놓여졌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지 사실상 그 정도로 소문이 자자해질 가치는 없었지만 – 좋은 인상을 주게 되어 아직도 경계하듯 곁눈질로 봐 가면서도 겨우 좀 괜찮은 의사가 오지 않았나 하는 희망을 사람들은 조금씩 가지기 시작했다. 감독인 디 루이스는 정중하게도 일부러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그리고는 인사말과 함께 우리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장작과 석탄을 한 차 보내 주었다. 집 주인인 메세스 모간도 우리들의 방에 깔끔한 커튼을 새로 달아 줄 정도로 친해져 유명한 웨일즈 풍의 케익 – 건포도가 들어 있는 케익 굽는 법을 아내에게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까지 하게 되었다. 이 뚱뚱하고 살갗이 약간 검은 여자는 수년 전 탄광사고로 남편을 잃고 마음 속 깊이 우수를 품고 있었는데 – 그리 친해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카마란 의사 집에 있던 자넷트와는 전혀 달랐다. 자넷트는 말을 안 하는데도 비고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의연한 표면 뒤에는 항상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모습이 있었다.

나는 곧 바빠졌다. 탄광 가까이에 있는 만원 진료소에서 젖은 사람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수증기로 벽에서 홍건이 물이 흘러 내리고, 공기가 숨막힐 정도로 될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진료에 힘썼다. 무릎을 부딪친 사람, 눈병, 만성 관절염, 손발을 삔 사람, 부상당한 광부들, 기침, 감기, 간헐적 복통 등 – 인간의 모든 자질구레한 병에 걸린 광부의 부인과 이이들, 더욱 심한 환자는 왕진을 했는데 – 이 왕진에는 보통 매일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이 걸렸다.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이라든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랬기 때문에 더욱 이런 것들은 보람 있는 일들이었다. 다리를 절단했던 첫날의 그 환자는 놀랄 만큼 빨리 회복하고 있었다. 주변 몇 마일 이내에 의사라고는 나 혼자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내 어깨에 걸린 무거운 책임에 자랑스러움이 느껴지고 양양한 전도의 희망에 기쁨이 피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에서 말한다면 트리게니는 확실히 살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사교생활도, 오락기관도, 영화관조차도 없었다. 메리도 나도 전원을 좋아해, 가끔 숲이나 밭이나 초원을 오랫동안 돌아다니곤 했었다.

하지만 이 지방은 좁은 계곡 속에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새까맣고 더러워진 황무지에 둘러싸여 있어 초록색 풀밭으로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초록색이라는 색은 – 자연 특유의 아름다운 색은 – 갈색 일색인 트리게니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가끔 이런 느낌은 묘하게 짓눌림 당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젊고 건강했으며, 바보 같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들 생활에서 부족한 것이라든가 쓸데없는 것들을 웃겨 넘겨 버릴 정도의 유머 센스도 지니고 있었다. 즉, 우리는 행복했었다.

매일 오후가 되어 틈이 나면 둘이서 늙은 작은 말들을 보로 탄광 우리에 갔다. 이 작은 생물, 튼튼해 보이고 복슬복슬한 갈기를 지닌 순수한 웨일즈 황무지 산인 작은 말들은 거의 전부가 석탄을 실은 길고 무거운 탄차들을 갱도 곁에서 입구까지 끌어 오는 일로 일생을 지내 왔다. 이 지하생활의 암흑 속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 왔기 때문에 – 쓸 수 있는 동안은 결코 밖에 내놓지 않고 지하 우리에 묶어 둔다 – 이 인내심 강하고 얌전한 동물들은 모두가 거의 완전히 눈이 멀어 있었다. 지금은 이미 늙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일을 시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감독인 루이스는 정이 많은 남자여서 흔히 다른 탄광에서 볼 수 있는 증오할 만한 습관, 실컷 부려먹고 난 동물들을 벨기에나 오란다 등지로 보내어 그곳에서 팔아 버림으로써 폐마 도살업자들의 손에 죽게 하는 따위의 죄스러운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작은 말들에게는 마구간과 먹이가 주어졌으며, 맑게 개인 날에는 밖으로 내보내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자연히 그 작은 말들과 친해졌다 – 니가, 잔자스태프, 다파라는 말들이 그 중에서도 친했다. 그들은 우리가 꼭 가져다 주는 당근이라든가 각사탕을 얼마나 기쁘게 받아 먹었는지 모른다. 이런 ‘진수 성찬’을 먹은 작은 말들은 눈은 보이지 않지만, 머리를 마구간에서 내밀고는 광택이 없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축축한 고무 같은 혓바닥으로 우리의 몸을 핥으려고 했다.

가끔 마구간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살풍경한 탄광지에서 아주 친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이 지구의 간호원을 하고 있는 중년 부인이었는데 우리에게는 특히 헤어지기 어려운 친구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의 일생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있었던 만큼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여기에 그 모두를 밝히려고 한다.

병원의 훈련과정을 막 마치고 크리게니 지방의 순회 간호원으로 임명된 것은 올웬 디비스가 겨우 스물 다섯 살 때였다. 그녀의 숙소는 교회로 가는 길 쪽에 있었으며, 우리 집보다 춥고 가구도 극히 조금인 방으로써 역시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웬은 정열을 쏟아 일에 열중하여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에도 험한 산길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보고, 지방 위원회에 의해 설치된 아무런 설비도 없는 시약소 施藥 所 에 모습을 나타내는 환자들도 돌보아 왔다. 그 당시 회사의 노의사 가로우는 게으른데다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 간호원의 도움은 되지 못했다. 계속되는 절망감에 이 젊은 간호원은 사표를 제출하고 싶은 유혹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가 부임해 온 첫해 여름이 지나갈 무렵 장티프스가 굉장한 세력으로 트리게니에 유행했다. 올웬이 이 나쁜 병과 싸워 절멸시키기 위한 지시를 기대하면서 가로우 의사네 집에 가서 받은 것은 냉담하고 터무니없는 비난 뿐이었다. 이런 전염병의 유행은 이 마을에서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환자에게 약을 주고 문병을 하는 수밖에 무든 도리가 있단 말인가?

이 젊은 간호원은 이 병에 도전했다. 모든 곳의 우물에서 음료수 견본을 채취해 – 이 우물들 중 어느 것인가에 꼭 균이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 그것을 키디프 보건소로 가지고 갔다. 48시간 후 공용전보로 가우와 거리의 외딴 곳에 있는 우물에서 티프스균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왔다. 트리게니의 저지대에서는 이 우물물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각 현장감독의 명령에 의해 우물은 사용금지가 되었다.

젊은 간호원인 주제에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교회의 신부 중에서는 그녀가 자기의 권한 이상으로 나선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푸딩이 맛있는지 어떤지는 먹어 보아야 아는 것이다. 새로운 티프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유행병은 종식되었다. 다시 자기 일에 열중하게 된 올웬은 서서히 이기는 했지만 일반의 존경이 확실히 자기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녀는 무뚝뚝한 얼굴이라든가 적의에 가득 찬 침묵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대문을, 그리고 마음을 열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 학교로 하는 아이들이 일부러 길을 가로질러 와서 인사를 하고 갔고, 탄광에서 돌아가는 광부들이 웃는 얼굴을 보였으며, 노인들이 한 잔의 홍차와 갓 구어 낸 케익을 내놓고는 그녀를 난로 가까이 붙들어 앉히게 되었다.

이윽고 그 해도 저물어 갈 무렵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지방 위원회가 쾌속 자전거를 그녀에게 보내온 것이다. 그것은 마을의 마음씨 좋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여간 한 노력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지방은 경기가 나빠 많은 탄광에서 절반씩 절반씩 단축작업을 하고 있어서, 기부금도 절망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웬에게는 매일 10마일이나 걸어서 순회하는 그 고생에서 해방된 고마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당시 마흔 일곱 살이었는데,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았으며, 원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맑은 회색 눈에는 성실하고 진지한 마음을 나타내는 흔들림 없는 솔직함과 정열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자신의 경험을 초월한 사태에 직면해서 몇 번이나 – 그리고 하리 가의 전문의사라도 당황할 환자는 다만 운명을 하늘에 맡긴 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이런 일도 그리 드물지는 않았다 – 그녀가 곁에 있어 주어서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마 그것은 그녀가 침대 곁에 서 있거나, 격려의 말을 속삭여 주거나, 잘했을 때 칭찬하는 듯한 조용한 눈길을 보내 주거나 하는 그런 태도에 의한 것인 것 같았다.

깊은 밤에 다 쓰러져 가는 집의 좁은 지붕 밑 다락방에서 우리들이 힘을 합쳐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고 투쟁하고 있을 때에 가끔 나는 그녀의 불굴의 정신과 강한 인내심에 놀라곤 했었다. 갱 밖의 사고로 불려 갔을 때, 사무실에 가 보면 항상 그녀가 먼저 와서 – 냉정하고 명랑하고 부지런하게 – 그림자와도 같은 자전거 곁에 서 잇는 것을 보면 그지없이 고마웠다. 그녀의 하는 일 중에서도 가장 감탄할 만한 일은 자의로 아이들과 노인들의 진료소를 연 것이었는데, 자기 돈으로 빌린 방에서 매일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성격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 무의식적인 희생정신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항상 남에게 향해 있었다. 너무 바쁜 나머지 깜빡 위로의 말을 하지 못했다든가 피곤해서 밤에 급한 환자가 생겨도 못 같다든가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일컫는 성녀는 아니었다. 커피와 함께 담배를, 또 나중에는 흑맥주도 마셨다. 많은 교회들이 있는 거리에 살면서도 절대로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바빠서요.” 라는 것이 웃으면서 하는 그녀의 구실이었다. 그렇지만 교제를 계속하는 동안 그녀가 남의 욕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좋은 여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석보다도 더 귀한 상식과 임기응변에 능한 본능을 하기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는데 …, 어느 날 외딴 집에서 급성 맹장 수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어 암흑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불쑥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밝게 타오르는 등불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래서 무사히 수술을 마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전거 앞에 켜는 등불이었던 것이다.

그 낡고 까만 자전거는 정말 그녀의 한 부분 같았다. 둘이서 밤을 새고 난 뒤에 그녀는 정신이 퍼뜩 들 듯한 뜨겁고 진한 커피를 나에게 타 준 후, 약간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자기 진료소 옆에 있는 집으로 페달을 밟으며 돌아갔다. 농담 반으로 나는 가끔, 그녀는 이 비정한 자전거 톱니바퀴에 묶여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평생 묶인 채 지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왜 좀더 나은 지위를 찾지 않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녀와 함께 훈련을 받은 간호원들은 저마다 ‘출세’를 했다. 사실 그 중에 한 사람은 리버풀에 새로 생긴 큰 병원의 간호원장으로 최근 임명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의학 잡지에서 읽었을 때 나는 말해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곳에는 당신이 가야 했어. 극소이라면 당신한테 안성맞춤일 텐데.”

“아니에요.” 디비스 간호원은 눈을 들어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질투나 원한의 빛도 없이 관대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남을 쓰는 것을 잘 못해요. 게다가 외과기술도 이제는 좀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걸요. 이 오래된 동네를 뛰어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고 또 그쪽이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어느 날 아침 식사 전에 옷을 갈아 입고 있을 때 미세스 모간이 언제나 의 그 침착함을 잃은 채 당황하여 침실로 뛰어들어왔다.

“루이스 씨가 급히 와 달래요, 선생님…. 간호원인 디비스 씨 일로.”

현장감독은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못 들으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어젯밤에 자전거로 환자 집으로 갔어요. 디비스가….브렌스리 가도를 말이오.” 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신주가 쓰러져 있었는데 사방이 캄캄했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고 그것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답니다. 밤새 바람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쓰러져 있었는데 아침에 교대 광부가 지나가다가 발견했어요.”

한동안 말을 멈추었다가 그는 덧붙였다.

“아무래도 척추가 부러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깜짝 놀라 나는 모자와 웃도리를 집어 들고는 곧 그와 함께 뛰쳐나갔다. 나란히 걷고 있는 그의 옆 얼굴은 돌처럼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잘 모르시겠지만요, 선생님.” 하고 그는 앞만 쳐다본 채 급하게 말했다. “아주 옛날 일이지만 전 그 사람에게 프로포즈했었지요. 그러나 승낙해 주지 않았어요. 일에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네, 그녀는 정말 일에 혼신을 다 쏟고 있었으니까요.”

모두가 힘을 합쳐서 집에까지 데려다 놓은 그녀를 나는 정성 들여 진찰했다. 아래쪽 척추가 2개 부러졌고 다리는 감각도, 움직일 힘도 없이 전신 불수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후두부의 두통을 호소해 왔다. 요추의 액체를 뽑아내자 통증이 어느 정도 줄어 들었으므로 우리는 그녀를 역까지 옮겨가 카디프 행 오전 기차 차장실에 요를 두 장 깔고는 눕혔다. 루이스와 내가 따라가서 3시간 후에 그녀를 시립병원에 입원시켰다.

트리게니로 돌아온 우리들은 그 후의 소식을 기다렸다. 이윽고 수술결과에 대한 소식이 왔다. 길고 손이 많이 가는 수술에서 – 척추 수술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도 없다 – 몇 시간이나 그녀는 수술대 위에 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깁스, 맛사지, 전기요법등을 하기를 몇 주일, 그리고는 마침내 절망적인 결정 –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몇 주일이 지났다. 이젠 새로운 젊은 견습 간호원이 와서 담당구역에서 실수 없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간호원의 활동범위는 그뿐이었다 – 디비스 간호원의 근무 외의 활동이었던 진료소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진료소에서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쓸쓸했다.

어느 날 오후 교회 거리의, 지금은 폐쇄된 진료소 앞을 지나고 있을 때 나는 깜짝 놀라 발을 멈추었다. 잘못 들었을까? 아니며 단순한 과거의 기억 때문에 불쑥 튀어 나온 환청이었을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거기에서 나는 심장이 뒤집어지는 듯한 광경을 보았다.

휠체어를 타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했으며, 등도 약간 굽고, 전보다 훨씬 마른데다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담요로 감싸고는 있었으나 그전의 제복을 입은 옛 친구였던 그 간호원이 있는 것이 아닌가. 대개가 아이들이었지만, 환자들에 둘러싸여 익숙한 손놀림으로 휠체어 바퀴를 돌리면서 방안을 잘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꼼짝 않고 나는 기둥 뒤에 서 있었다. 마지막 환자가 돌아가자 나는 그녀에게 돌아볼 틈도 주지 않고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 – 오랫동안 남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 온 사람의 손이다.

“디비스 간호원….올웬! 이젠 완전히 좋아졌군요.”

그녀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전 이렇게 원래의 내 일로 돌아왔어요.” – 그녀는 더욱 활짝 웃었다 – “그리고 자전거는 아니지만, 역시 차를 타고 말이에요.”

 

 

3. 별에서 온 전화

 

12월의 어느 비 오는 밤이었다. 바람은 비스듬한 골짜기에 드문드문 늘어서 있는 집들 사이로 창문에 비를 뿌리면서 그림자 하나 없는 거리에 세차게 불고 있었다. 가게들은 일찍부터 모두들 문을 닫아 버렸고 ‘트리게니 정亭’의 창문 사이로 약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왕진을 모두 마친 나는 온몸이 완전히 젖은 채, 들개처럼 지쳐 기진맥진 해 돌아왔다. 이런 날에는 트리게니에 자신을 오게 한 운명을 저주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토해내는 듯한 기분으로 자주 생각하는 일이지만, 나는 박애주의자도 아닐 뿐더러 올웬 디비스와 같은 성인도 아니고 고뇌하는 인류의 이름아래 선 맹신적이고 열광적인 순교자도 아니다. 시커먼 카마젠 산들 사이에 파묻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진료소에서 혼자서 약을 조제하고, 마차도 쓸 형편이 못되어 아주 먼 거리를 걸어 다니며 이렇게 이 음울한 지방에 11개월이나 살고 보니 나는 아주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방 그 자체가 단조롭고 싫은 것보다도 묘하게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느낌 때문에 나에게는 도저히 맞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벽촌의 분위기 속에는 기분 나쁜 환영처럼 사람에게 조여 오는 비현실과 미신의 이상스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친하게 대해 주고 있지만 그래도 한 꺼풀 벗기고 보면 그 아래에 묘한 전류가 흐르고 있어서 그 밑바닥에는 나 같은 사람 따윈 상상도 못할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격의 없이 지내지를 못하고 무섭도록 종교적이었다. 일요일이 되면 시온,  베델, 에베네젤, 베데스다 등 각 파의 교회당에서 찬송가가 크고 정답게 울려 퍼져 산들조차도 그 노래 소리를 받아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는 것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공기마저도 속죄, 구원, 구세로 떨고 있는 그런 때에 비꼬는 말이라든가 차가운 비웃음으로 아무리 이것을 덮어보려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동으로 초자연적인 존재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내가 우울해 있는 것을 보고 아내 메리는 저녁을 권하였지만 나는 거의 식욕이 없었다. 뜨거운 코코아 한 잔과 치즈를 얹는 빵을 한 조각 먹고는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제발 방해물이 끼어들지 말기를 빌면서 침대로 들어가 세상 일들을 잊어 버리고 깊이 잠이 들었다.

희미한 벨소리에 나는 꿈결인가 싶게 눈을 떴다. 벨소리는 신경질이 날 정도로 집요하게 울려 도저히 자게 내버려둘 것 같지 않았다. 아직 잠이 덜 깬 나는 더듬더듬 침대 옆에 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자 목소리였는데 아주 감이 멀었다.

“곧 좀 와 주세요, 선생님. 아스트바드의 에반 에반즈네 집입니다.”

나는 신음했다.

“오늘밤은 아스트바드까지 갈 수 없는데요.”

“하지만 오늘밤 꼭 와 주시지 않으면, 선생님…”

“누구십니까, 당신은?”

“에반 에반즈의 처예요. 딸이 몹시 아파요.”

“날이 새면 가지요, 꼭.”

“아니에요. 제발 지금 곧 좀 와 주세요. 부탁입니다, 선생님. 제발 지금 좀 와 주세요.”

나는 소리 내어 욕을 해 주고 싶었다 – 과로로 인해 지쳐 있는 의사를 못살게 하는 모든 비참한 것들 중에서도 한밤중의 왕진만큼 싫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내 심정과는 아랑곳없이 가엾을 정도로 재촉하는 목소리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수화기를 놓고 잠시 누워서 뒤죽박죽이 된 머리 속을 정리한 후 일어나서는 젖은 옷을 다시 입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아까보다 더 세차게 불어 살을 에이는 듯 했으며, 얼어붙은 달 위로는 새까만 구름이 떠 있었다. 산들은 주위의 풍경을 압도하듯이 높이 치솟아 있었는데, 그 풍경이란 마치 황야와 같이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쳐 머플러를 잘 여몄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알고 있었다 – 적어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첩첩 산맥의 최고봉 펜펜타의 중턱에 있는 아스트바드 까지의 5마일의 길, 그리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넘어지면서 걸어가는 도중에 나는 나를 부른 그 부인의 남편인 에반 에반즈라는 남자에 대한 확실히 는 모르지만 일신상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내 귀에까지 들려온 것은 아주 조금 밖에 안 되었지만, 이런 인적 드문 마을에서는 상당히 많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에반즈는 전에 트리게니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작은 부락에선 상당히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고등교육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트리게니 제1호라고 불리워지던 꽤 큰 ‘노천 탄광’의 주인으로서 존경도 받고 사업도 성했었다. 그런데 어떤 불운한 기회로 트리게니 탄광회사와의 사이에 지하 통행권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문제는 별것 아니었지만 에반즈라는 남자가 좀 난폭한 사람이어서, 특히 ‘나의 권리’라는 문제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더 심했다. 논쟁은 싸움이 되었고, 또 더 나아가 소송으로까지 번졌다. 에반즈는 소송에서 졌다. 그는 곧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도 역시 졌다. 분노에 찬 그는 그 사건을 고등 재판소에까지 올렸다. 여기서도 졌다.

이런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 동안 마침내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고 돈도 탕진하게 되었으며, 탄광은 어느새 남의 손으로 넘어가 버리자 세상을 비관한 낙오자가 되어 옛날부터 사는 사람도 없이 버려져 있던 아스트바드 산중턱의 오막살이 집에 은둔해 버리고 말았다. 옛날의 동료들을 미워하고 피하다가 아마 너무 불행한 나머지 약간 정신마저도 이상해져 버리고, 오랫동안 그렇게 살고 있는 사이에 마침내 그는 거의 전설적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집을 지키면서 살고 있었는데, 가을날 저녁 무렵에는 가끔 산 아래에서 산새 사냥을 하고 있는 그의 희미하고, 여윈 몸을 볼 수 있었으며, 밤이 되면 가끔 달빛 비치는 산꼭대기를 마치 세상을 얕보는 듯이 말을 타고 달리는 적도 있었다.

 이것이 뜬소문으로 나의 주의를 끌게 된 에반즈의 경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던 길을 걸어 마침내 에반즈네 집에 도착했다. 복잡하게 사랑채들이 붙어 있는 덜렁하게 크기만 했으며, 번성했던 시대의 역사는 어떠했든 지금은 음침하고 황폐한 낡은 집에 불과했다. 좁은 길로 다가갔지만 가는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았고,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적막함을 깨뜨리는 것이라고는 멀리서 들리는 부엉이 울음소리 뿐이었다. 나는 벨을 눌렀다. 대답이 없었다.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멀리서 나를 놀리는 듯한 부엉이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주먹으로 그 무거운 문을 두드렸다. 곧 개가 시끄럽게 짖어대더니, 잠시 후 더러운 까만 옷에 숄을 걸친 나이 든 여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라아드 푸대같이 – 들고 있는 손등불의 빛으로 – 둔중하고 파랗게 보이는 공포에 떠는 듯한 숄로 싼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에 두 마리의 사냥개가 그 여자 발 밑에 숨어서는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대고 있었다. 이런 손님대접에 화가 난 나는 그 여자 곁을 지나 현관을 지나서 거의 가구도 없이 어두컴컴한 부엌인지 응접실인지 알 수 없는 큰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는 난로 옆에 있는 말털 소파에 담요를 뒤집어 쓰고 의식도 잃은 채 누워 있는 한 젊은 아가씨가 보였다. 그 옆에는 열심히 지켜 보고 있는 듯한 태도로, 야위었으나 늠름한 사나이가 약간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앉아 있었다. 그 체구는 정말 경탄할 만한 것이어서 – 거대한 야윈 몸을 똑바로 편다면 아마도 6피트 6인치는 될 것 같았다. 와이셔츠 한 장만 입고 거친 회색 니커복에다 신발도 신지 않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단정치 못한 풍채였는데, 엉켜 내리워져 있는 말갈기 같은 백발 때문에 그것이 참으로 이상한 모습으로 보였다. 나이가 아마 쉰 다섯 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틀림없는 에반즈인 것이다.

앓고 있는 딸을 너무나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내가 들어온 소리도 듣지 못했으나, 내가 가방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갑자기 깜짝 놀라 돌아다보았다. 까만 얼굴에 눈만이 너무나도 난폭하게 빛나고 있어서 나는 주춤했을 정도였다.

“무슨 볼 일로 왔지?”

탁한 목소리에 좀 갈라진 말투였기 때문에, 처음에 나는 이 사나이가 취한 줄 알았다. 그래서 도리 수 있는 대로 조심조심 말했다.

“나는 의사입니다. 좀 비켜 주셔야 환자를 진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으니까요.”

“의사!” 그는 그 말을 깊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곧 이마에 핏기가 올랐다. 언성은 높이지 않았지만 뭐라 말하기 어려운 협박감이 그 목소리에는 흐르고 있었다. “이 집에는 의사 따위는 필요 없어. 아무도 볼 일 같은 건 없단 말이야. 돌아가시오, 알았소? 돌아가라니까!”

그의 거동은 정말 무서웠는데, 나는 너무 화가 나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이 왕진을 위해 고생하며 온 일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 보답이 이런 예의 없는 대우라니,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도대체 당신 미쳤소? 따님의 병은 아주 중합니다. 당신도 잘 보고 계셨으니까 아시고 계시겠지요. 제 손으로 따님을 살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약간 망설이더니 흘끔 소파 쪽을 쳐다보았는데, 그 시선에는 거의 애처로움에 가까울 정도로 공포가 차 있었다.

“나는 의사 따위는 신용하지 않아!” 하고 그는 기분 나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딸아이 일에 한한 것이 아냐. 누구라도 신용하지 않아.”

이 묘한 텅 빈 방 안에 침묵이 덮쳤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양손을 힘없이 가슴에 끼고 떨면서 문 옆에 서 있는 여자를 잠깐 쳐다보았다. 이 여자가 남편의 의견을 거역하고 나를 부른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이상의 조력은 이미 기대할 수가 없었다. 성공할 것 같은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나는 테이블로 다가가 가방을 집어 들고는 나가려는 시늉을 했다.

“좋아요. 다님이 죽는 일이 있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오.”

한동안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렸다가 하며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에는 증오와 공포의 투쟁이 가득한 채 그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이윽고 내 손이 거의 문에 닿으려고 했을 때 그 우람한 가슴에서 억지로 짜내는 듯한 흐느낌 같은 한숨과 함께 그는 외쳤다.

“돌아가지 마시오. 정말 당신이 말한 대로 이 아이의 상태가 나쁘다면 진찰을 해주시오.”

나는 천천히 되돌아와서는 소파로 다가가 꿇어앉아서 환자를 진찰했다. 그의 딸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나이가 들었는데 열 여덟 살 정도 같았다.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숙하지 않은 어린 티 속에 이상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 문득 연민의 정이 솟아 나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렇게 무력한 부모 손에 맡겨져 있다니, 보기만 해도 전혀 의지가 되지 못할 것 같은 데 말이다. 살짝 흔들어 보니 그녀는 신음소리를 냈다. 피부에 손을 대어 보니 마치 타는 듯 했으나 발진 증상은 없었다. 폐도 깨끗했고, 심장에서도 아무런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 병의 원인에 당황했다. 하지만 곧 왼쪽 귀 뒤에 작고도 거무스름한 종기 – 급성 화농성 유양 돌기염 -을 발견했다. 나는 바로 그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자 곧 에반즈를 돌아보았다.

“조금 더 일찍 저를 불러 주시지 않고.”

“그 따위 아무 것도 아닌 걸.” 하고 그는 염증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거위기름이라도 바르고, 밀기울로 찜질하면 돼요. 내일 나는 펨페오 늪에 가서 거머리라도 잡아 오려고 해요. 그럼 곧 좋아질 것이오.”

“그때까지 목숨이 지탱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넋이 나간 것같이 멍하게 입을 벌리고는 살이 없는 볼이 흙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치 마비된 것처럼 내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여자는 내 얼굴에서 남편 얼굴로 흘끔 시선을 옮기더니, 양손을 비비 꼬는 듯이 하며 웨일즈 어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요, 에반즈 씨.”  – 나는 그를 납득시키려는 일념 때문에 나도 모르게 격한 말투가 되었다 – “꼭 들으셔야 합니다. 이 부풀어 오른 뼈 전체에 고름이 가득 차 있습니다. 터뜨려서 빼내지 않으면 두개골을 뚫고 뇌 속으로 흘러 들어가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당신도 아시겠죠? 곧 어떻게 하지 않으면 따님의 목숨은 앞으로 여섯 시간도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몸을 지탱하려는 듯 벽에 손을 댔다. 건장하고 거대한 몸이 작게 줄어들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은 내 얼굴을 쳐다보는 채로 였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었다.

“그것이 정말인가?”

“도대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제게 있겠습니까?”

짧은 침묵. 그 동안 그의 턱이 갑자기 괴로운 듯 경련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럼 해주게.”

그는 그 말 밖에는 하지 않았지만, 계속 나를 노려보는 눈빛은 여전했다. 나에게는 그의 집념이 느껴졌다 – 모든 사람들의 손이 자기를 향해 들어 올려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필요와 공포로 불가피하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일이지만 나한테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난 갑자기 불안에 휩싸였다. 수술을 하자고 내가 무리하게 요구를 했다. 만약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해서 꾸물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태다. 나는 가방을 열어 여러 가지 기구라든가 처치용품들을 꺼내 놓고, 그리고 세숫대야 두 개에 석탄산을 준비해 놓은 다음, 가벼운 환자를 둘이서 들어 테이블보도 없는 나무 테이블 위에 눕혔다. 코를 찌르는 듯한 마취제 냄새가 공기 속에 가득 퍼져 갔다.

에반즈가 들고 있는 석유램프의 빛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정도로 어두운, 상상할 수 없는 악조건이었다. 첫 번째 메스로 귀 뒤의 부어 오른 피부를 절개할 때 메스가 자칫 잘못 나가거나 판단이 조금만 잘못되어도 뇌의 측면동 側面洞을 치명적으로 찌르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는 느낌만으로 절개해 나갔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에반즈의 맹렬한 눈이 나를 쏘아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미 뼈에까지 도달했다. 델리케이트한 두개골이다. 작은 둥근 톱으로 나는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조직의 일부가 생활력을 잃어 버리는 병에 걸린 뼈치고는 조직도 생각했던 것보다 저항이 있었고, 화농의 흔적도 없었다. 결국 고름은 없는 것일까? 조심조심 나는 속으로 깊이 잘라 들어갔다. 마침내 틀림없이 경뇌막을 뚫고서 뇌수에 뻗어 들어갔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을 때 해면상 海綿狀 세포를 통해 짙은 고름이 흘러 나왔다.

서둘러 나는 스푼으로 그 안에 고인 고름을 떼어낸 후, 공동 空洞을 주의 깊게 잘라내고서 소독제로 씻고는 요듐의 가제를 가득 쑤셔 넣었다. 아주 신속하게 나는 일을 끝냈다. 5분 후에 환자는 침대에 눕혀져, 잠든 것처럼 조용하고 깊은 호흡을 하고 있었다. 맥박도 정상이었고, 피부색도 좋아 졌다. 병근을 긁어내 버렸기 때문에 곧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는 젊었으니까.

오랫동안 성공도 못한 채 이런 시골에만 있어 온 의사에게는 좀처럼 오지 않는 하나의 일을 끝냈다는 기분, 자기 자신을 정당화시키고 싶은 기분, 곤란한 일에 부딪쳐 멋지게 성공했다는 감정으로 꽉 차 나는 가방에 여러 기구들을 챙겨 넣으면서 에반즈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는 그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테이블 옆에 서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거무스름한 얼굴에는 무뚝뚝함이 사라지고, 이제는 뭐라 할까 묘한 망설임 같은 것이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간단하게, 그리고 심술궂은 승리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아무 걱정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예, 이젠 완전히 좋아진 것 같군요.”

그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감정 – 감사에 재촉 당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커다란 손과 당황한 듯한 눈썹을 보자 왠지 내 노여움도 풀렸다. 그는 딸이 회복된다는 사실에 그 정도로 깊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앞서 보다는 부드러운 말투로, 그때는 이미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이 집 여주인에게 고개를 꾸벅 하면서 나는 말했다.

“잊어서는 안 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부른 아주머니 덕분이니까요.”

그의 음침한 눈이 당황한 듯 내 눈을 보았다.

“나는 알 수 없군요. 저 여자는, 하녀 그이네스요.”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저 여자는 영어를 할 줄 몰라요 – 웨일즈 어밖에는.”

나는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뭐라고요?”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었어요. 꼭 좀 와 달라는 전화가 왔었어요.”

그는 이상스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 집에는 전화가 없어요. 이 근방 몇 마일 내에도 없어요.”

한눈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나는 뭐 뭔지 몰라 그를 보고 있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전 댁의 부인으로부터 왕진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오늘밤 바로 조금 전에 나에게 말했어요. 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당신의 부인이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그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덮칠 듯이 주먹을 움켜쥐고 내게 덤벼들었다. ‘이거 맞아 쓰러지는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스스로를 억제했다.

“당신은 우리 집사람에 대해 모르는 것 같군.” 그는 말을 끊고는 충혈된 눈으로 멍한 내 얼굴을 보고 있더니 마침내 우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왜 우리 집사람이 죽었는지 세상의 소문을 듣지 못하셨군요…내가 의사를 부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오…아내는 이 방에서 5년 전에 죽었소.”

 

나는 이 별나라에서 온 전화 사건을, 먼 곳에서 실로 극적으로 전해진 이 소식을 될 수만 있다면 신비적이고 불가사의한 채로 끝내고 싶다. 그렇게 하면 신령 연구가나, 수정 점쟁이들이나 접신론자의 단체들이나 그 밖의 초자연적인 힘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찬사의 편지를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성실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마음 저 밑에서 사실을 기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에반즈 의 딸에게는 단 한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에반즈 가정의 비극적 사건도, 에반즈의 딸이 죽을 고비에 이를 정도로 용태가 나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용기를 내어 한 일이었다. 에반즈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이름을 숨기려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결심해서 에반즈의 아내라고 하여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 여자는 트리게니 전화국의 교환수였다.

 

 

4. 동맥류 動脈瘤의 역사

 

세월은 유수처럼 – 날, 주, 달이 지나갔으나 나에게는 좀처럼 싹이 트이질 않았다.

나도 처음 정열에 불타고 있었을 때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약속하곤 했었다 – 하기는 이런 애정의 속삭임도 아내가 웨일즈 풍의 요리를 잘 못해 나로 하여금 중탄산 나트륨을 스스로 조제해 먹게 하고 나를 서서히 독살시키고 있다는 불평이 나오게끔 만들기에 이르러서부터는 한적이 없었지만 – 다시 말하자면 나는 아내에게 부와 지위와 하리 가에 있는 집과, 그리고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지중해안에 있는 별장을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변함없이 터벅터벅 걸어다니고 약간의 돈을 저축하려고 노력하고 – 이것은 어떤 환경에 있어서도 아주 우울한 일이긴 하지만 –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말하는 <재갈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은 채 이 비참한 산중에 생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초조해져서 거친 말을 함부로 썼으며, 여러 군데에다 취직 자리를 신청도 해 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아 쥐고는 마냥 들뜬 마음으로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어. 이 달 안에 말이야.”

나의 고생 상대인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 보았다.

“떠난다구요! 하지만 겨우 이제 여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대담하게도 이곳에 익숙해졌다며 나를 납득시키려 들다니, 이렇게 삐뚤어진 여자가 또 있을까? 나는 몹시 화가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앞으로 가게 될 곳을 더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편지를 봉투째 아내에게 건네 주었다. 그것은 트레디 가라는 이웃 협곡의 의료공제조합 서기로부터 온 편지로서, 조합 전속 의사로서의 지위를 제공한다고 씌어 있었다. 급료는 현재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지만, 내 눈을 끌고 심장을 뛰게 한 것은 집이 – 정말 집이 – 채용 조건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내의 대답 따위는 이 유혹 앞에서 봄볕에 눈 녹듯 녹아 버리고, 그날까지 거의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들떠 있었다.

회사에서 다른 의사를 고용할 동안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 디 루이스는 우리가 떠나는 것을 슬퍼했다 – 이윽고 보잘것없는 가재도구를 빌려온 트럭에 싣고 감독이라든가 올웬 디비스라든가 섭섭해 하는 미세스 모간과 이별을 고하면서 운전사 옆자리에 앉아 높은 산을 넘어 우리는 새로운 곳을 행해 출발했다.

트레디 가도 탄광동네이기는 했지만 괘 아담하고 청결했으며,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산지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커다랗고 멋진 가게도 몇 군데나 있었으며, 도서관도 있었고, 게다가 거의 믿어지지 않을 일이지만 – 공회당도 있어 일주일에 두 번씩 영화가 상영된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아내가 기다리고 있던 작은 집은 튼튼해 보이는 빨간 벽돌집이었다. 나무 다리가 있는 맑은 시냇물을 바라보면서 거친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집을 보니 ‘계곡장’이라는 이름이 실로 어울리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고 있던 방 두 칸짜리 집에 비하면 마치 이 집은 저택과 같았다. 그래서 짧지만 나와의 밀접한 관계가 이미 아내에게 성녀로서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게 만들어 버렸지만,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가정을 갖게 해준 하느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사하는 고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그녀는 물건들을 정리 정돈하는 일을 아주 즐거워했다.

도 나로서도 재미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일하게 된 의료공제조합이란 곳은 광부들 전체가 매주 조금씩의 돈을 그곳에 납부하는 대신 그것에 의해 본인과 그 가족들이 무료 진료를 받을 권리가 주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사실 이 제도는 결국 영국 정부가 채택한 진료의 사회 보장계획에 있어서 분명히 그 기초가 되었으리라 보여지는 것이었다. 국가 계획의 주요 책임자인 보건상 아뉴링 베반도 한때는 트레디 가에서 광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지방의 공제조합 조직의 지시 아래 노동자들이 신속하게 무료 진료를 받는 것을 보고 그 가치가 아주 인상 깊었다고 한다.

이 제도에는 분명히 장점도 있었지만 또한 단점도 없지는 않았는데 그 중에 주된 것으로 트레디 가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 진료에 관해서는 완전히 무료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밤낮의 구별 없이 의사에게 신세지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즉, 이 계획은 무엇인가를 – 안경이라든가 크레이프의 붕대라든가, 탈지면, 응급 처치용품, 세드리츠의 가루에 이르기 까지를 – 공짜로 얻으려고 진료실에 언제나 나타나는 심기증 환자라든가 꾀병 환자, 그밖에 꼴도 보기 싫은 ‘빈둥빈둥 아픈 환자’들을 키워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진짜 환자도 많았지만 도 다른 환자도 위급해야만 했다. 젊고 건강한데도 하루 종일 드러누워서는 자기는 폐병이라고 우겨, 왕진을 와 달라고 조르는 여자도 있었다 – 아무리 타일러도 퇴산할 줄 모르는 ‘집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광부들의 대부분은 안질과 무릎의 타박상 등 보상금을 탈 수 있는 직업병 증세가 있는데 ‘슬쩍한다’라고 칭하는 일에 숙달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나까지 당황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또 상상력이 육체의 조직이라든가 기능에 큰 지배력을 행사하는 환자도 있었다. 부임해 간 지 얼마 안되었을 즈음, 보기 드문 의학상의 상태 – 상상 임신의 현저한 실례에 부딪친 적이 있다. 마흔 살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퍽 존경할 만한 여자로, 15년 전에 결혼했는데 갑자기 임신했다고 혼자 생각하며, 그 때문에 임신의 모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입덧, 음식의 기호, 전형적인 유방의 변화, 하복부의 팽창, 그리고 월경 폐지까지도. 임신은 단순한 노이로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납득시키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나로서는 아스키스 경이 한 유명한 말 “부인 좀 두고 봅시다” 를 반복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9개월찌가 지나 그녀는 열심히 힘을 주었다. 나온 것은…. 가스뿐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환자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이윽고 참을 수 없게 되어 타노크브레에서 항상 “빌어먹을!” 을 연발하던 그 독설대가라도 기뻐할 만큼 나도 무뚝뚝함을 발휘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새벽 2시쯤 기진맥진해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왕진을 청해서 갔더니 할머니는 기분 좋은 듯이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구, 의사 선생님. 하품이 멈추질 않아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노파를 노려보다가는 문 쪽으로 걸어가서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대답해 주었다.

“그럼, 그런 밥통 같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될 것 아니야.”

 

10월이 되자 이내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왕진 건수가 부쩍 늘었다. 자동차 따위는 생각도 못할 형편이었고 나는 각반에다 방수복 차림을 하고, 무거운 까만 가방을 든 채 몇 마일이나 되는 눈길을 걸어 다녀야만 했다. 그래서 50파운드를 주고 중고 오토바이를 사게 되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어느 버밍햄의 신문에 난 차체의 아름다움과 속력이 바른 점을 모든 단어를 동원해 칭찬한 유혹적인 광고를 보고 산 것인데, 사고 보니까 커다란 배기관은 있으나 발로 밟은 시동기가 없는 2기통의 무거운 경주용이었다. 갑자기 발화해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 이 극악무정한 오토바이를 숨이 헐떡이고 땀을 흘리면서 길 도중에서 몇 번이나 밀고 갔었는가. 그래도 일단 움직이기만 하면 빠르기는 바람 같았다.

이 시절은 행복했다. 간단한 가구는 이곳의 상점에서 사들였고, 융단도 물론 페르샤 산은 아니었으며, 그림도 일류 화랑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작은 영토를 자랑으로 삼고 위로로 삼기도 했었다. 추운 겨울 밤에는 둘이서 활활 타고 있는 난로 앞에서 – 석탄은 풍부했으며 공짜였다 – 책을 읽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참 자주 토론했다. 게다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내는 요리를 잘하게 되었다. 더욱이 꽃 가꾸기에도 재능을 보이기 시작해 유리로 된 현관 안에 튜울립이라든가 멋진 히야신스를 키우곤 했다.

그 해 겨울은 따뜻한 날이 계속되어 우리는 틈이 있을 때면 자주 탐험을 나갔었는데 ‘계곡장’ 위에 올려다 볼 정도로 높다랗고 가리울 것 없이 자란 히드나무의 야성미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그곳에는 항상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으며, 그럴 때면 항상 어울리지도 않게 월트 휘트먼의 ‘히드나무에 바람이 일어 내 뺨을 어루만질 때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진다’ 고 한 시 구절이 생각나곤 했다. 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하늘 아래에, 겨우 몇 군데만 양들을 위한 통로로 나뉘어진 이 원시적인 황무지의 망막함에 우리는 서로를 잊고 멈추어 서서 바라본다 – 그러면 갑자기 저 멀리 눈 아래 산꼭대기를 껴안듯 탄광의 권양기 捲揚機 가 우뚝 솟은 작은 마을이 보였으며, 때로 언덕에 앉아 장난감 같은 우리들의 집을 자랑스런 눈빛으로 찾아내곤 했다.

우리가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곳이란 대개 이곳이었다. 두 사람은 괜히 돌아다니면서 여름에는 파이 재료로 쓰기 위해 ‘금작화 열매’를 땄고, 가을에는 탄광의 갱내 감독한테서 총을 빌어 어떤 때는 쏜살같이, 또 어떤 때는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총 끝에서 도망 다니는 오리를 잡으러 나가곤 했었다.

의식적 지식에 있어서는 나도 차츰 진보해 환자들 중에 친구도 생겼으며, 그러나 때로는 뭐든지 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적도 있었다. 이 지방 제일의 의사 디비즈 박사는 런던에서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손에 미치지도 못할 학위를 몇 가지씩이나 가지고 있는 아주 솜씨 좋은 내과의였으며, 외과의로서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까다롭거나, 혹은 위험한 환자를 둘이서 함께 진찰하게 되었을 때 나는 걸어가든가 아니면 그 엄청난 흙투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그는 운전사가 딸린 대형의 최신형 자동차를 타고 와서는 가끔 정중한 태도이긴 하지만 권위를 가지고 내 진단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는 이를 갈면서 밤새 이 우수한 선배에 대해 나는 독설을 퍼붓곤 했었다. 그리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외치는 것이었다.

“제기랄! 녀석이 맞았고, 내가 틀렸어. 분명히 그건 결핵성 뇌막염이었고, 그런 것쯤은 이미 며칠 전에 알았어야 했을 것을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완전히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꼭 알도록 할 거야!”

난로 저편에서 조용히 뜨개질을 하고 있는 나의 유일한 상대는 이런 것은 조금 있으면 잊혀져 버리고 마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재미없는 이야기처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심각했었다. 디비즈는 내 능력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그것을 뛰어넘지 않으면 자신에게 진보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공부하는 문제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지를 아내도 궁금해 한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내도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얼마 후 ‘계곡장’ 에는 커다란 나무 상자들이 몇 개나 계속 배달되었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는 새 요의 시트라든가 테이블보라든가, 도자기 식기 한 셋트라든가 (이것은 아내가 굉장히 갖고 싶어하던 것이었다) 하는 재미있는 여러 가지 물품들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망치로 힘껏 부수니 그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커다랗고 두껍고 크고 몹시 어려워 보이는 의학서적이었다. 책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런던의 황실협회 도서관에 가입했던 것으로 – 사실 협회의 장서 전부가 이곳에 모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부터 여덟 시에 진료를 끝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매일 밤 이 의학 서적들과 씨름을 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지쳐  있었기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을 때도 자주 있었다. 하지만 가차없는 결심으로 – 나의 부드럽고도 사랑스런 성격과는 묘하게 당착 撞着 하는 무서울 정도의 긴장감으로 무조건 공부하라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새벽 1시까지 책을 잃을 때도 가끔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생물화학의 실지 연구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가장 가기 쉬운 실험실이라면 50마일 이상 떨어져 있는 가디프 보건소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의료조합에도 목요일 오후에 4시간씩 휴가를 신청했는데, 허가가 나오자 나는 매주 오토바이로 그 먼 도시까지 다녀오곤 했다. 맹렬한 속력으로 달리면 저녁 진료를 위해 돌아올 때까지는 꼬박 2시간을 실험실에서 지낼 수가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 꾸불꾸불한 계곡에서 내가 죽지나 않을까 하는 기분 나쁜 예감에 떨고 있는 아내가 불쌍했다. 그런 날 오후는 아내에게 공포의 시간이었으며, 6시가 가까워짐에 따라 그녀는 가만히 시계에 시선을 둔 채 그 무서운 배기통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6시 15분…..6시 30분….. 그리고 마침내 자기가 과부로 – 그런 과부가 된 모습을 상상할 때 정도가 되면 겨우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와 후~ 하고 한숨을 몰아 쉬는 것이었다.

나는 먼지투성이가 되고, 메틸렌 블루와 캐나다 발삼의 기름투성이가 되었으면서도 씩씩하게 방 안으로 들어간다. 게다가 대개는 문면사회로부터 아내에게 꽤 괜찮은 선물 – 아내가 아주 좋아하는 커피, 케익이라든가, 또는 나도 커피나 케익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끔이기는 했지만, 제비꽃 꽃다발 같은 것을 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이 같은 마음 씀씀이를 아내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리고 이런 날 저녁의 재회는 얼마나 즐거웠던가!

물론 우리 둘 모두 내 계획의 미친 정도를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계획이란 이미 가지고 있는 내과, 외과의 의학사 학위에다 대학 졸업 후의 주요한 학위 세 가지를 – 의학박사, 영국 의학회 회원, 런던 공중 위생 보건의醫 자격을 – 얻는 것이었다. 큰 병원이라든가 대학에서 대학자의 수업이라든가, 고도의 기술적 설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업의에게도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었으며, 평균 불합격률 75% 이상이나 되었다. 참고서라고는 빌려 온 책들뿐이고 지방 도시의 실험실에 겨우 몇 번 황급히 다녔을 뿐인 만성 과로증의 탄광 의사에게 있어서는 정말 불가능한 일에 속하는 일이었다.

런던을 향해 출발하던 비바람치던 날이라든가, 그 후 1주일 동안에 아내에게 꼭 보내야만 되겠다고 해서 쓴, 그때마다 전보다 더 우울해지는 비관적인 보고는 일평생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공부하고 있던 몇 달간 나를 지탱해 주고 있던 자신과는 달리 공부의 결과를 실제로 테스트 받는다고 생각하자 의기소침해지고 절망하게 된다는 것은 내 성격상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었다.

모든 노력도, 미칠 듯이 했던 공부도,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신경질도 먼 옛날의 꿈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머리는 멍한 채 잘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못한 느낌이었다.

사실 트라팔가 스퀘어 의과 대학에서 필기시험을 볼 때 나는 마치 태엽 감긴 기계처럼 그저 답안만 쓰고 있었다. 시계도 보지 않고 계속 오로지 답안지를 메우는 데만 정신을 쏟았으며, 쓰고 또 쓰고 내 모든 지식을 쓸 수 있는 데까지 몽땅 다 썼던 것이다.

나는 대전 중 런던에 갔을 때 머무른 적이 있는 뮤지엄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곳은 몇 안 되는 검소한 곳이었다. 방값이 싼 때문인지 대신 음식은 너무 형편 없어서, 나의 망가진 소화기능에 더없이 타격을 주어 나는 지독한 소활불량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식사를 뜨거운 발효 밀크로 제한할 도리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의 ABC 다방에서 마시는 한 잔의 무해한 음료수만이 내 점심이었다. 시험기간 동안 나는 망연자실한 채 보냈다. 영화나 뮤직홀, 그 밖의 오락장소에 가는 것 따위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도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가끔 머리를 식히기 위해 2층 버스를 타는 것이 고작이었다.

필기시험이 끝나자 실기시험과 구두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본 시험보다 이번 시험이 내게는 훨씬 더 두려웠다. 수험생들은 30명 정도 되어 보였는데, 모두 나보다 나이도 위인 데다가 지위도 있었으며, 자신에 가득 찬 사람들뿐이었다. 예를 들면 내 옆에 있던 하롤드 보몬트 라는 수험생은 나와 한두 번 말을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옥스포드의 외과 의학사이자 성 발도로메오 병원의 외래 환자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브룩 가에 가장 최신식의 진료실도 가지고 있었다. 보몬트의 세련된 태도, 조금도 흠 잡을 데 없는 의사다운 풍채, 튼튼한 사회적 입장과 만사가 보기 흉한 자신의 촌스러움을 비교해 보고 나서 나는 시험관에게 좋은 인상을 줄 기회가 참으로 적다는 것을 알았다.

남 런던 병원에서의 임상 실험은 내 생각으로는 충분한 성적이 나올 것 같았다. 환자는 열 네 살 된 남자아이의 기관지 확장이었는데, 전에 이 병 증세를 본 적이 있어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결과 보고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구두시험에 이르러서는 나의 행운은 반대로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의과대학에서의 구두시험 방법은 좀 특수했다. 이틀에 걸쳐 각 수험생들은 두 사람의 각각 다른 시험관으로부터 차례로 질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첫째 날이 끝나고 나서 수험생이 불합격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다음 날은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정중한 통지를 받게 된다. 이 운명적인 통지의 위협을 눈 앞에 두고 내가 맨 처음 시험관으로서 맞아들이게 된 사람은 모리스 개즈비 박사라고 하는, 보몬트가 불안스럽게 이야기하던 사람이어서 나는 완전히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개즈비 박사는 불룩한 가슴을 한 체구가 빈약해 보이는 작은 남자로서 아주 잘난 체 하는 사람이었으며, 작고 날카로운 눈에는 리본이 달린 외눈 안경을 쓰고 있었다. 최근 학술 협회 회원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이 많은 시험관 같은 관용스러운 데는 없었으며, 수험생들을 고의로 당황하게 만들거나 고민하게 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주 뜻밖이었는데, 그는 인사를 하자 몇 번이나 내 이름을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자네는 리차드의 동생인가? 딕크는 케임브릿지에서 나와 동창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형제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자 그는 분명히 실망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외눈 안경을 통해 나를 반히 쳐다보았다.

“대학은 케임브릿지인가?”

“아닙니다.”

“그럼, 다른 한쪽인가?”

“다른 한쪽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옥스포드지 물론.”

“아닙니다.”

“그럼, 어느 대학인가?”

“글라스고 입니다.”

얼빠진, 세상의 종말 같은 침묵, 그는 변명의 여지도 주지 않은 채 거만한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내 앞에 6장의 슬라이드를 내놓았다. 그 중 5장은 정확하게 대답했지만, 6장째는 알 수가 없었다. 스코틀랜드의 대학 따위는 이름만 들어도 더럽다는 듯한 경멸스러움을 품은 개즈비 박사가 가장 주의하고 있던 것은 이 6번째 슬라이드였다. 5분간 그는 이 표본 – 그것은 잘 알 수 없지만, 서 아프리카의 기생충 알 같은 것이었다 – 으로 나를 괴롭혔지만, 이윽고 귀찮다는 듯이 냉정한 태도로 나를 다음 시험관에게 넘겼다. 그 사람은 국왕의 시의 侍醫 인 도스 경이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백해진 얼굴로 고동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그 방을 나왔다. 금주 초에 느끼던 피로나 무기력 등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합격하고자 하는 염원은 거의 필사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개즈비가 불합격시킬 것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 보니 도스 경이 친근하고도 약간 유머러스한 미소를 띄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가?” 그는 뜻밖의 질문을 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 나는 더듬거리며 겨우 말했다. “개즈비 박사님 족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아서요 – 그뿐입니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자, 여기 있는 표본을 보게.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게.”

도슨 경은 나를 격려해 주듯이 미소 지어 보였다. 단정하고 수려한 이마와 짧게 깎은 수염에 덮인 유머러스한 긴 입술을 가진 60세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유럽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의사이지만, 고향 야로에서 런던에 나왔을 무렵에는 편견이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고, 젊은 시절의 곤란했던 기억이라든가 심한 고전을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무심코 나를 쳐다보다가 내가 입은 볼품없는 옷과 소프트 칼라, 와이셔츠, 매듭이 헐렁해진 싸구려 넥타이, 특히 나의 진지한 얼굴에 떠오른 굉장히 긴장되어 있는 표정을 보고는 젊은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본능적으로 내게 동정을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로 앞에 있는 유리병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표본에 대한 설명을 정말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떠듬떠듬 늘어놓는 동안 그는 격려라도 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아.” 내가 설명을 끝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또 하나의 표본을 꺼내서 – 그것은 대동맥의 동맥류 動脈瘤 였다 – 친구 같은 태도로 질문을 시작했다.  그의 질문은 처음에는 간단한 것에서부터 점차 범위가 넓어지면서 연구적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천연두 접종에 의한 최근의 특수 요법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의 동정 어린 태도에 힘입어 나는 아주 잘 대답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리병을 내려 놓으면서 도스 경이 말했다.

“자넨 동맥류의 역사에 대해 뭔가 알고 있나?”

“암브로아즈 파레[16세기의 프랑스 의사로서, 프랑스 외과의 아버지라 불린다]가” 하고 내가 대답하려 하지 시험관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로 발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슨 경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나타났다.

“왜 ‘추정’ 되고 있는 거지? 파레가 동맥류를 발견하지 않았는가?”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곧 대답하기 시작했다.

‘네, 교과서에는 그렇게 씌어 있습니다. 어느 책에나 그렇게 씌어 있습니다 – 저 자신도 여섯 권의 책에 그렇게 씌어 있는 걸 직접 읽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라틴 어를 총 정리하기 위해서 – 총정리 할 필요가 있어서요 –  우연히 켓서스 [기원 1세기의 로마의 학자로서, 철학 전술 의학 등에 관한 저술이 있으며, 특히 의학에 관해서는 히포크라테스 다음 간다고들 일컬어지고 있다] 를 읽는데, 그때 동맥류라는 말에 부딪쳤습니다.  켓서스는 동맥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세하게 이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13세기 전 일인 것 입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 국왕의 시의로부터 부드럽게 비꼬임이나 당할 것이라고 각오하고는 얼굴을 들었다. 그런데 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 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자네.”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시험장에서 독창적인 것, 진실된 것,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을 말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일세. 난 자네에게 축하를 보내네.”

나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졌다.

“또 한 가지 대답해 주게 – 이건 내 개인의 호기심이긴 하지만, 자넨 어떤 주의를 가지고 살아 가는가 – 즉, 자네가 자신의 직업을 실제로 가질 때 품고 있는 기초적 관념 말일세.”

내가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이제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좋은 결과도 이것으로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전 – 전 어떤 일이든지 기정 사실로 생각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고맙네 – 아니, 대단히 고마워.”

조금 후 나는 다른 수험생들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밑에 있는 안쪽을 가죽으로 바른 수위실 옆에서 제복을 입은 수위가 봉투를 한아름 손에 쥐고 서 있었다. 수험생이 앞을 지나갈 때 수위는 각자에게 그 봉투를 건네 주었다. 나 다음으로 나온 보몬트는 급히 자기 봉투를 찢었다.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조용히 훌륭한 태도로 말했다.

“전 내일 오지 않아도 좋다는군요.”

그리고는 억지로 웃으면서 물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내 손가락은 떨렸다. 거의 봉투를 들고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보몬트가 축하를 하고 있는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아직 희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ABC 다방에 가서 우유를 두 잔 스스로에게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합격하지 못한다면 나는 버스에 정면으로 뛰어들어 깔려 죽어 버릴 거야’ 하고 초조히 생각했다.

이튿날도 우울하게 지나갔다. 남아 있는 사람은 처음 있던 수험생들의 절반도 안 되는 숫자였는데, 그 중에서도 도 절반은 떨어진다는 소문이었다. 나는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머리가 많이 아프다는 것과 발이 얼음처럼 차다는 것, 온몸이 텅 빈 것 같다는 것만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그것도 끝났다. 오후 4시,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우울한 기분으로 외투를 입고서 클로크 룸을 나왔다. 그러자 홀의 커다란 난로 앞에 도슨 경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 했다. 도슨 경은 의미심장하게 손을 내밀어 미소 지으면서 말을 걸어 왔는데, 내가 – 마침내 영국 의학회의 회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아, 합격했다! 합격했어! 나는 곧 기운이 솟아났다. 두통도 없어지고, 피로 따위도 다 잊은 채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가까운 우체국으로 달려가면서도 내 심장은 심하게,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합격했다.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가 아니라, 흙투성이의 탄광 마을에서 일약 합격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환희의 극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길던 방도, 미치광이처럼 카디프를 왕복하던 날들도, 고문을 받는 것처럼 공부한 것도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택시나 버스 타는 것도 잊은 채 사람 사이를 비집고, 눈에 생기가 돌아 이 기적을 한시라도 빨리 아내에게 전화로 알리려고 달려갔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장난기 때문에 나는 잠시 이 이야기를 묻어 두었다. 그리고 생각해 낸 대로 사실을 알리지 않고 다만 곧 런던으로 오라고 아내에게 전보를 쳤다….오라고, 이런 무뚝뚝한 명령만 했던 것이다. 그녀는 최악의 경우를 예상, 내가 병원에 입원했든지 아니면 자살 일보 직전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면서 이내 명령에 따랐다. 나는 긴장한 창백한 얼굴로 눈에만 광채를 띈 채 아내를 파딘튼 역까지 마중 나갔다. 그녀가 내려오자 나는 웃는 얼굴로 꼬옥 포옹했다. 그리고 꼭 끌어안은 채 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큰 뉴스를 전하고, 우리가 이미 하리 가로 한 걸음 내디딘 것을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인생이 얼마나 좋은 것으로 여겨졌던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쁨을 나눈다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멋진 일일까! 우리는 처음에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둘 다 얘기했다. 나는 아내를 택시에 태워 사보이로 갔다. 그리고 자신의 소화불량 같은 것은 잊은 채 일곱 가지 정식으로 앞뒤 생각하지 않고 축하연을 베풀었다. 다음은 조지 에드워즈의 음악 희극을 보러 갔고, 뒤이어서 카페 로얄의 샴페인이 나오는 만찬을 먹었는데, 그때 우리들은 발 밑의 보도블록조차도 춤추는 것 같은 숭고한 흥분상태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밤 늦게 산속 마을의 맑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저 멀리서 빛나고 있는 차분하고 힘찬 별을 쳐다보았다. 이때 우리 둘은 완전히 지쳐 있었다.

 

 

5. 서른 여덟의 관 棺

 

8주일 정도 지난 어느 맑게 개인 12월 아침, 나는 식사 전에 계곡장 谿谷莊 의 현관에 나와 있었다. 작은 마을이 조용히 눈 앞에 펼쳐져 있었는데, 그 정든 모습을 보면서 곧 이 마을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후회 비슷한 괴로움이 느껴졌다. 트레디 가에 산 지도 벌서 3년이나 되었다. 이 땅에서 우리들은 실제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고, 또 이 땅에서 우리들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내가 이제까지 해온 일들은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인 규모로 봐서는 높이 평가될 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풀록 코트도 입지 않았고 딱딱한 칼라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각반이나 징이 박힌 장화도 신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나는 대개 환자네 집에는 노크조차 하지 않은 채 들어갔다. 특별히 환자들의 기분을 맞추지 않았을 뿐더러, 꾀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아주 지독한 말로 혼내 준 일조차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이 지방의 탄광 광부나 직원들 중에 많은 친구가 생겼다. 물론 그들이 나에게 직접 의료비를 내는 것은 아니다 – 앞에서 설명한 대로 조합에서 일 년에 네 차례에 걸쳐 지불 받는 것이다 – 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그들의 존경의 표시로서 소박한 선물을 많이 받곤 했었다. 어떤 사람은 오리나 닭을, 또 어떤 사람은 금방 버터를, 또 어떤 사람은 손으로 짠 깔개를 … 그래서 나는 류마치스를 치료해 주었던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서 완전하게는 아니다) 그리피스 부인의 일을 여기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그믐날 밤에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우리에게 축복과 아주 살찐 거위를 주기 위해서 일부러 다리를 건너 멀리까지 왔던 것이다.

이런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들 중에는 나를 아주 감동시키는 것 – 생활의 저 밑바닥 깊이 뿌리 박고 있는 것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땅을 떠나려 하고 있는가. 대학 동창생의 대부분은 이미 착실한 지방의 개업으로서 기반을 잡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내 마음 속에도 출세하고자 하는 조바심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난 날 나는 사표를 제출해 두었다 – 앞으로 열흘만 있으면 이 마을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지나간 추억들을 아쉬워하며, 또 앞으로의 새로운 인생의 예상에 가슴 설레면서 그곳에 서 있을 때 나는 갑자기 등 뒤에서 마치 굵다란 하프의 줄을 큰 손으로 튀기는 듯한, 실제 폭음이라기보다는 공기의 진동에 가까운 어렴풋한 충격음을 들었다. 가까운 계곡에서 난 듯 아주 짧은 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많은 탄광에 둘러싸인 이 지방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불길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나는 걱정이 되어 자신의 공포를 확인하려는 듯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므로 한참 있다가 나는 아침 식사를 하러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 기적이 길게 여섯 차례 울려 위급을 알렸다. 그 소리를 들은 것과 거의 동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 전화는 의료공제조합의 서기인 조지 콘웨에게서 온 것이었다. 산 너머에 있는 펜게리의 아스트바드 탄광에서 돌발 사고가 일어나 관례에 따라 구원대를 파견해야 할 터인데, 곧 동행해 줄 수 있겠느냐는 의논을 해온 것이다.

황급히 나는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신 후, 오토바이로 산 저쪽을 향해 출발했다. 펜게리까지의 산길은 2마일 좀 안 되는 거리였으므로 5분도 채 안되어 도착했다. 그런데 이미 사건 소식은 좁은 마을에 쫙 퍼져 있었다. 높은 지대에 있는 집들의 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들 탄광으로 달려 내려갔다. 사람들이 달리는 틈 사이로 계속 그 행렬에 사람들이 가담했다. 그들은 마치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마치 탄광이 갑자기 자석으로 바뀐 듯 저항할 힘도 없이 끌려가는 듯이 달렸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500명 가량의 남녀가 갱구 坑口 주위의 광장에 앉아 있었고, 밖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자들은 대개 숄을 걸치고 있었고, 남자들은 외투도 입지 않는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지금은 멎었지만, 눈이 왔었으므로 그들의 모습은 하얀 눈 속에서 아주 검게 보였다. 맑게 개인 하늘 밑에 묵묵히 모여 마치 대 합창단처럼 서 있었다. 극중의 인물들은 아니지만, 결국 그런 비슷한 역할들을 맡고 있는 것이었다.

꼭 8시를 쳤을 때 나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헤치며 목조로 된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많은 갱외부 坑外夫 들이 모두 작업복을 입고 집합해 있었다.  나도 잘 알고 있는 광산 감독인 디 젠킨즈가 부감독인 톰 루이스와 함께 군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부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구내의 문을 닫으라고 할까요?”

“아니.” 감독이 대답했다. “구내에 불을 좀 피워 주시오. 계속 피우시오. 저런 곳에 서 있으면 모두들 춥겠지. 게다가 저들은 언제까지 서 있어야 할 지 모르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서 미침 이야기가 끊겼을 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났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젠킨즈는 안 들린다는 시늉을 하다가, 이윽고 긴장되고도 당혹스러운 눈길을 내게 보내더니 폐갱에서 갱내로 침수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주수갱 [수직으로 파 내려간 갱도]이 모두 물에 잠겨 버렸기 때문에ㅔ 모두 61명이나 되는 아침 당번 광부들이 생매장된 것이다. 그들은 길버크에 있는 구호 본부로부터 커다란 배수 장치를 지닌 선발 구원대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생매장된 사람들과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갱내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구원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 갱내 감독이 두 사람, 젊은 광산 검시관이 한 사람, 저 아래 계곡에 있는 다른 탄광의 감독, 가까이에 있는 탄광 유지들, 그곳에는 혼란도 없었고, 서로 얘기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 심각한 모습들을 보니 내 가슴은 왠지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찼다.

갑자기 이런 긴장된 기대 속에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 그것은 감독 책상 위에 있는 일반용 전화가 아니라, 지하 작업장에만 연결되어 있는 벽에 걸린 갱내의 전용 전화였다. 갑자기 그곳에는 죽음과 같은 적막이 엄습했다. 젠킨즈가 전화로 달려갔다. 그는 조그마한 핸들을 힘차게 돌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그렇게만 말한 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가지고 그는 모두를 쳐다보았다. “그래? …. 로버…트다.”

처음에 나는 몰랐었다. 그렇지만 곧 알아차리고는 마치 심장이 오므라드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아직 살아 있는 고아부의 목소리가 침수된 컴컴한 무덤 속 같은 갱내에서 2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지상의 우리들에게 물에 흠씩 젖은 전선을 타고 필사적인 희망을 전해 온 것이다.

“여보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젠킨즈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3분 정도 긴장된 얼굴을 듣고 있더니 마침내 빠른 말투로, 그러나 딱딱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로버트. 잘 들어야 한다. 페니그로즈의 구갱 舊坑 쪽으로 가라! 이쪽으로는 나올 수가 없다 –  탄광도 두 개 모두 물로 막혀 있어 배수를 시키려면 며칠이나 걸릴 것이다. 구갱 족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경사진 데를 똑바로 올라가라. 동쪽 끝에 있는 세탁댐을 부수는 거다. 그러면 구갱의 위쪽으로 나올 수가 있다. 절대 겁내지 말아라. 물은 바닥에만 있으니까. 길을 따라 나가라. 계속 똑바로만 가야 한다. 옆으로나 오른쪽으로 가서는 안 돼. 바로 동쪽을 향해 1,500 야드 정도 가면 옛날의 페니그로즈 수갱이 있다.”

방 전체에 다 들릴 만큼, 아주 크고 신음하는 듯한 소리가 전선을 따라갔다. 젠킨즈의 목소리가 열에 들뜬 사람처럼 차츰 절규로 변했다.

“들리는가? 그곳까지 구원대가 갈 것이다. 들리는가?” 그러나 흘러 넘치는 물 때문에 전선이 끊어져 그의 목소리는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수화기만 그의 손에 덜렁 남아 있었다. 그는 수화기를 놓았다 – 수화기는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 있다가, 마침내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로버트가 한 말을 모두에게 전했다.

1번 조는 보통 때처럼 석탄을 캐기 위해 착암을 하거나 발파작업을 하며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갱부장인 로버트가 마지막에 두 번 발파를 시켰을 때 탄층 한가운데에서 물이 조금 떨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은 배후에서 압력이 가해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유독가스의 악취가 났으므로 새로운 탄층의 물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그런 것이 마음에 걸렸다.

광부들은 이내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 지벽 支壁을 통해 운반로에 낮은 쪽으로 흘려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지도 支道를 200야드 정도 나간 곳에서 일하고 있던 23명의 2번 조에게 경고해 두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고 있던 도중에 거의 가까이까지 다가갔을 때 무서운 굉음이 들려왔다. 침수 侵水라고 생각되었다.  무슨 일이든 생길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급하고 무섭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10야드도 못 가서 물이 주 운반로를 천장까지 가득 채운 채 큰 소리를 내며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분류해 오는 물에 뒤 밀리는 가스로 램프가 꺼지고, 윙윙거리는 굉장한 소리로 가득 찬 암흑 속에서 10여 초 동안 그는 화석이 된 것처럼 서 있었다. 그때 1번 쪽 동료들이 이 물에서 허우적대고 있거나, 이미 죽어 버린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은 머리 위로 무서운 속도로 밀려 왔으며, 그것은 마치 해일과도 같았다. 물은 격류가 되어 수갱에 이르렀고, 마치 폭포처럼 떨어져 내렸다. 밀려 오는 물결 속에는 1번 쪽 광부들의 시체가 소용돌이 치고 있었으며, 수갱 바닥에서는 우리에 묶어 두었던 말들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물은 두 수갱까지 차 올라서 그곳을 완전히 막아 버렸고, 갱외로부터 작업장에 이르는 길을 완전히 차단시키고 말았다.

이 같은 사고가 일어난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간적이어서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으나, 그러는 동안에도 로버트와 2번 쪽 동료들은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경사진 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에 물이 발목만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어른이 22명, 14살짜리 어린아이가 1명이었는데, 모두가 아무 말없이 한 곳에 모여 서 있었다 – 눈앞에서 일어난 사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로버트는 이젠 침착성을 되찾고 있었다 – 탄갱에는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이곳에는 환기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곳으로 빠져 나가면 모드들 좀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가서는 그 환기구를 찾아냈다. 모두들 그의 뒤를 엉금엉금 기어 따라가고 있을 때였다. 30야드도 채 못 가서 속이 메스꺼워지고 졸음이 왔기 때문에 모두에게 다시금 되돌아가라고 황급히 명령했다. 환기구는 낡은 폐갱으로부터 물에 밀려 나온 일산화탄소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으로 이젠 도망칠 수 있는 막다른 곳에 갇혀 자기네들의 죽음이 30분 후로 다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절박한 때에 이르러 로버트가 전화를 생각해 낸 것이었다.

젠킨즈가 이 이야기를 다 마쳤을 때 – 그의 이야기는 짧고 기술적이었으며, 내가 지금 여기에서 쓴 설명보다 훨씬 간결했다 – 1분간 정도는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광산 검사관인 디킨 씨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갱으로 나간다면,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지.”

젠킨즈도 끄덕이더니 곧 부감독 족을 돌아보았다.

“10명을 데리고 페니그로즈 구갱으로 가 주게. 그리고 조사해 봐.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실수 없도록 수갱의 상태를 조사해 보란 말일세. 그리고는 곧 돌아와 주게.”

그러고 있는 동안에 배수 기계를 실은 3대의 트럭이 구내로 들어왔기 때문에 감독은 그 기계를 조립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갔다. 이 큰 일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릴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젠킨즈가 아마도 이것에는 별로 의지해 볼 마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희망은 이 주위에 개미집처럼 길게 파헤쳐져 있는 옛날의 갱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을 돌파할 수만 있다면 생매장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던 나는 트레디 가의 조지 콘웨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의 상황을 알리고, 여기에서 도와 주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서기는 남아 있고 싶다는 내 희망에 찬성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꼭 젠킨즈의 요구에 따라 움직여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그곳에서는 내 대신에 디비즈 박사가 환자를 봐 주기로 되었다.

사무실을 나와 모두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부감독이 페니그로즈 구갱으로부터 돌아왔다. 그가 젠킨즈에게 말한 바에 의하면 폐갱내에는 먼지와 유독가스가 가득 차 권양기 捲揚機 로 광부를 내려 보내 봤더니 비틀비틀 하면서 나왔는데, 이 먼지나 유독가스는 24시간이면 없앨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즉각 필요한 기계들이 모아지고, 권양기 옆에서 배수기 조림은 그대로 진행시켜 놓고, 감독과 부감독에게 인솔된 선발 광부들이 황무지를 지나 구갱으로 출발했다.  명령에 따라 나도 그들과 함께 갔다. 점점 기온이 낮아져서 눈이 조금씩 희뿌연 하늘에서 조용히 내리기 시작했다.

폐갱은 공유지로 되어 있는 아주 거친 황무지에 있었는데, 지하의 그물 같은 갱도 때문에 생긴 울퉁불퉁한 언덕과 웅덩이는 완전히 눈에 덮여서 살을 에이는 것 같은 바람에 얼어붙어 있었다. ‘골칫거리 땅’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갱구에 도착하자 그들은 권양기와 엔진, 송풍기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까이에 있는 탄광의 구내에는 불이 지펴져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 구내에 남아 있지 않고 무도 이 공유지로 모였다. 그들은 서둘러 열심히 권양기 조립을 하고 잇는 사람들을 멀리서 빙 둘러싸고 서 있었다.

3시간 후 권양기, 증기기완, 송풍기 준비가 끝나고 갱내 유독가스 제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가스가 모두 제거되자 대기하고 있던 선발대가 들어가 폐갱내로 통하는 길을 막고 있던 퇴적물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굉장한 스피드로 작업을 했는데, 1시간에 6피트의 비율로 주도로에 쌓여 있던 퇴적물들을 제거해 나갔다. 생각한 것보다 퇴적물은 많았다. 하지만 교대교대로 들어간 광부들에 의해서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그 공격하는 모양은 무엇인가 광기든 것 같은, 자포자기 같은 느낌조차 들었다. 그것은 인간의 힘 이상의 것이었으며,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가면 앞서 일하던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나왔다.

“이 길은 똑바로 서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하고 젠킨즈가 검사관에게 말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목적 지점 가까이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하고 상대방이 말했다. “게다가 이 지겨운 퇴적물들도 이젠 거의 다 없어졌을 만도 한데.”

하루 종일 이 작업은 계속 되었으며 밤중에는 구 주도로를 140피나나 파낼 수 있었다. 1시간 후에 구조대는 평탄한 길 폐갱의 넓은 부분에 돌입했다. 그 순간 함성이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아직도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귀에 수갱을 통해 전해졌다.

그러나 환성은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횃불을 비춰 보니 거기에서부터는 길리 푹 파였고 물이 가득 고여 있어 도저히 건널 수가 없게 되었다.

칼라도 넥타이도 하지 않은 채 석탄가루투성이가 된 감사관이 젠킨즈를 쳐다보았다.

“아아, 만사 끝장이오!” 하고 그는 절망적으로 말했다. “이렇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더라면…”

그러나 젠킨즈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곤란하리라는 것은 이미 각오한 바입니다. 발파작업을 해서 저 웅덩이 위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독의 말 속에는 강한 불굴의 정신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검사관 조차도 감동했다.

“좋소.” 하고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피곤했지만 감독을 격려했다. “그래야지. 그럼, 해치웁시다. 우선 저 천장을 날려 보내 버려야 하오.”

천장이 폭파되기 시작했다. 무쇠처럼 단단한 현무암을 폭파해 웅덩이를 메우고 물 위로 길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드릴에 공기를 넣기 위해 착암기를 들여갔으며, 제일 좋은 다이아몬드 드릴이 쓰여졌다. 작업은 흡사 살인적이었다. 그것은 암흑과 먼지와 땀과 폭약냄새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 작업은 정말 정신착란 상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침착하게 있는 사람은 젠킨즈 뿐이었다. 그는 중심인물로서, 총지휘자로서 그곳에 꿋꿋이 서 있었다. 그러기를 18시간 동안, 그는 페니그로즈 갱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휴식하라고 명령했다.

구급용 침대와 담요가 구내의 좁다랗고 긴 ‘램프실’에 준비되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검사관 이하 다른 직원들과 함께 나는 6시간 동안 잠을 잤다. 이 휴식으로 다시 기운을 차린 검사관은 젠킨즈에게 좀 쉬라고 말했다.

“부탁이니까, 제발 눈 좀 붙이게. 이대로 가다간 쓰러질 거야.”

하지만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날 하루 종일,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는 사무실에 있는 긴 의자에서 겨우 30분 정도 선잠을 잤을 뿐이었다.

현무암의 폭파는 예상 밖으로 곤란을 겪었으며,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작업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작업의 진전이 거의 없자 희망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지만 구원대들의 표정에는 짙어가는 절망의 빛이 역력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3일째 되는 날 저녁 때 젠킨즈가 오늘밤은 쉬라고 내게 말했다. 귀가 도중에 펜게리를 지날 때 보니 사람들은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으며 대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길에서 노는 아이들도 전혀 없었다. 가게도 대개는 문이 닫혀 있었다. 고지대 동네에는 조용한 고통이, 절망의 정막이 어려 있었다. 길 양쪽에서 두 명의 여자가 다가왔다. 그 두 사람은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두 여인은 서로들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지나갔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침묵뿐이었다. 두 여인의 발자국 소리조차도 내리는 눈 때문에 사라져 버렸다. 집안에도 마찬가지로 침묵만이 감돌았다. 생매장된 사람들네 집에서는 그들이 살아 돌아왔을 때를 위해 식탁에 아침 식사가 준비된 준비된 채로 놓여 있었다. 그것이 이곳의 관습이었다. 밤이 되어도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열어 두었다.

나는 이튿날 아침 일찍 탄갱으로 가 보았다. 주수갱 主竪坑 – 페니그로즈 수갱이 아닌 – 의 물은 낮아져 있었기 때문에 잠수부들을 내려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잠수부들은 갱도 안의 최고 수압 18피트의 물과 싸워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신 없이 낙반사고가 일어난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그들의 이런 조사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은 서른 여덟 구의 익사체를 발견했다.

잠수부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생존자는 한 사람도 없으며, 갱도 안의 물이 완전히 배수되기까지에는 적어도 앞으로 한 달은 걸릴 것이라고 보고 했다. 그런 후 시체 수습에 들어갔다. 익사자 들은 밧줄에 묶여 갱내에서, 마침내 살아서는 볼 수 없었던 태양 아래로 끌어 올려져서는 조용히 들것에 실려 갔다. 그리고는 눈 쌓인 구내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들에게 인도 되었다.

지금 모든 것은 페니그로즈의 구조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폐갱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8일이나 경과되었기 때문에 생매장된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으리라는 희망은 희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광열 같은 노력으로 웅덩이를 메꾸는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구원대들은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 마지막 힘을 짜냈다. 폭파가 시작된 지 6일 후, 마지막 발파 작업이 끝나자 웅덩이 저쪽에 있는 원래의 주도로에 다다를 수 있었다. 피로로 인해 몸이 젖은 솜덩이 같았지만 용기를 내서 구원대들은 전진했다. 그런데 서쪽을 향해 60보 가량 간 곳에서 현무암 천장이 완전히 내려 앉아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절망하고 멈추어 섰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검사관은 신음했다. “이건 어쩌면 반 마일이나 이어져 있을지도 몰라. 도저히 갈 수 없어.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어.”

그는 맥이 풀려 현무암 벽에 기대서서 얼굴을 팔 속에 묻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속해야 돼.” 하고 젠킨즈가 갑자기 크고 히스테릭 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속해!”

모든 수단이 절망에 달했다고 생각된 그 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주 작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망령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탁….탁, 탁탁, 탁…. 마치 토인들이 북을 치는 것 같은 아주 가늘고 약한 소리였다.

“쉿, 조용히….들리지 않나? ….두드리는 신호야.”

두드리는 신호라는 것은 암벽을 망치로 두드려 자신들이 있는 위치를 알리는 방법을 말한다 –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기들을 구하러 온 구원대에게 이 방법으로 신호하여 구조되었던 것이다. 모두가 장승처럼 서서 귀를 기울였다. 약하게 힘없이, 마치 오래 전부터 힘이 다 떨어진 사람이 두드리는 것처럼 그 소리는 반복되고 있었다.

“음, 당신이 말한 대로야!” 하고 검사관이 소리쳤다. “그 사람들이 있어… 우리 가까이에… 이 바위 바로 저편에. 저쪽에서도 우리들 소리가 들리는 거야.”

“뒤로 물러나라.” 젠킨즈가 손을 나팔 모양으로 하여 소리쳤다. 마지막 필사적인 노력이 불꽃을 튀겨, 이윽고 현무암 깨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마침내 갇힌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지도 支道의 벽에 기댄 채 갱내용 양초를 두세 자루 켜놓고 묵묵히 유령 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걱정하며 누워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살아 있었다. 그렇다. 아이도 살아 있어서 우리가 다가가자 훌쩍훌쩍 울었다.

모두들 쇠약해져서 자기 힘으로는 일어날 수도 없었지만, 또 나도 브랜디와 포도주를 섞은 짙은 수프를 먹이고 스트리키니네 주사 놓은 일이 끝날 때까지는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두 살아 날까요, 선생님?” 하고 젠킨즈가 숨죽여 물었다.

“모두 걱정 없습니다….한 사람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용히 우리는 그들을 옮겼다.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사람들에게 이미 전해져서 우리가 갱외로 나왔을 때는 공유지인 황무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노래를 시작했는데, 잠시 후에는 그 소리가 모여 하늘에라도 닿을 듯한 거대한 합창이 되어 엄숙하게 울려 퍼졌다. 자주 불리워지는 찬송가 ‘지나간 세상에도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도 주님은 나의 구원자, 나의 희망이시여’ 란 노래가.

그것은 금방이라도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무수히 난관을 돌파한 승리감이라든가 가족 재회의 기쁨 속에서도 100야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임마누엘 교회당에 안치되어 있는 서른 여덟 사람의 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잊을 수가 없었다. 합동 장례를 우리가 트레디 가를 떠나기 전날 행하여졌다. 나도 물론 참가했다. 남 웨일즈 계곡들과의 슬픈 고별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이미 익숙해져서 거의 신경도 쓰지 않고 무관심하게 되어 있는 나에게 이 용감한 사람들이 직면한 끊임없는 위험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것이었다.

 

수 년 후에, 런던의 어느 유명한 클럽에서 멋진 만찬과 브로고뉴 포도주를 한 잔 마신, 뚱뚱하고 혈색 좋은 손님 한 사람이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는 활활 타오르고 있는 난로 앞에 서서는 동료들에게 당시 마침 행해지고 있던 광부들의 파업사태란 용서할 수 없는 부정이라고 말했다.

“또 1시간 6펜스라는군.” 하고 바보스럽게 지껄였다. “그 아무 쓸모 없는 인간들, 욕망에는 도대체가 한계가 없단 말이야. 녀석들은 도대체 뭘 바라고 있는 거지?”

“다만, 사는 권리뿐이지요!” 하고 나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때는 신입회원이었으므로 말을 좀 사가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재해와 동료들이 요구하고 있는, 1시간 6펜스의 증급 增給 조차도 지금은 필요 없게 된 그 서른 여덟 사람에 대한 ‘쓸모 없는 인간’ 들의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이다.

 

 

 

제3부

 

 

1. 개업의 開業醫 가 되다

 

화사한 봄날의 런던 – 여태까지 이렇듯 아름다운 계절에 이 런던에 와 본 적이 없는 두 사람에게 이처럼 넋을 녹여 버릴 듯한 매혹스러운 것이 이밖에 또 있을까! 노르스름한 하늘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가지의 윤곽 – 상점, 주택, 교회, 탑, 그리고 엄숙한 센트 폴 성당의 지붕을 한 비슷비슷한 몇몇의 사원 등 – 이 향기로운 대기 속에 눈부시게 늘어서 있었다. 햇빛에 빛나고 있는 템즈 강의 흐름은 우아한 다리 밑을 흘러가고 있었다. 켄진튼 공원에서는 때때옷을 입은 아이들이 리본이나 깃털로 장식된 옷을 입은 보모 주위를 뛰어다니고 있었고, 피터팬의 조각 주위에는 라일락과 박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서펜타인 연못에서는 임대 보트들의 물보라를 일으키며 빙빙 돌고 있었다.

위스트 엔드 일대는 피카디리도 폰드가도, 메이피어도, 금은 보석, 사치스런 장신구, 실크 류나 고급 의류, 또 이국적인 과일이라든가 화분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부 부 들이 비좁게 진열되어 있었으며, 멋쟁이 남녀 군중들이 우아하게 활보하고 있었다. 센트젬스 자원 건너편에 있는 가장 귀족적인 클럽의 창가에는 한가한 사람들이 가득 얼굴을 내밀고, 최고급 코로나 담배를 입에 문 채 예쁜 여자들에게 윙크를 하기도 하고, 굿 우드라든가 아스코트의 경마, 또는 카드 한 장 뒤집는 것으로 몇 천 파운드 내기를 하거나 –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국왕은 왕궁에 계셨다. 버킹햄 궁전에서는 호위병들의 교대가 있었으며, 잉글랜드 은행에서는 화폐 교환이 있었고, 사람들은 겨울 내복을 얇은 메리야스로 바꾸어 입고 있었다. 곧 따스한 저녁 노을 속으로 작은 랜드형 자동차가 멋진 레스토랑을 향해서 부드러운 소리를 내더니, 발레나 오페라, 또는 온갖 극장으로 옅은 검은색 야회복 차림의 신사들이 어깨와 등을 드러낸 눈부신 옷을 입은 숙녀들과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다. 우리도 분명히 이런 호화롭게 찬란한 행진에 끼어 있었다.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초라한 프람 로드의 어느 여인숙 4층 뒷켠, 가스회사 공장과 지하철 역의 무표정한 벽돌담을 마주한 방에서 아내와 나는 창백한 비소를 주고 받았다. 싸구려 여행 가방, 뒤죽박죽된 옷들, 젖은 아기 기저귀들에 싸여 마땅한 병원 자리를 찾으려는 계획으로 고군분투하면서 우리의 첫 아기에게 줄 ‘우유’를 알코올 곤로에서 데우려고 고생하고 있었다. 식사 때 그렇게 보채는 아이도 없었으며, 단 한 가지 … 빵만을 먹는 알레르기성의 아이도 없었다. 아기는 빵을 아주 좋아해서, 식욕이 좋은 늙은 식인종이 선교사를 구워 그 맛있는 고기맛에 군침을 흘리면서 덤벼들어 먹는 것같이 물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빵조각에 이도 없는 잇몸을 박아 넣는 것이었다. 그 대신 고급의 달콤한 우유를 아기는 싫어했다 – 그것을 보기만 해도 귀가 멍멍해지도록 반항하는 것이었다.

가까스로 고생한 끝에 식사를 끝내며 아기는 휴대용 요람에 누워 엄지손가락을 빨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기 어머니와 나는 신문지로 덮은 가방 위에 놓여 있는 서딘과 클래커의 즉석 식사를 앞에 놓고는 아기가 깨지 않도록 속삭이면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이런 상태로 나간다면.” 하고 이제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곧 길거리에 나앉아 성냥팔이 노릇을 해야 될 거야.”

벌써 6주일. 하루하루 약간씩의 자금을 축내면서 이 큰 도시 안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성공에의 발판이 될 만한 적당한 병원은 없을까 하고 찾아 헤매었다. 그것은 우리가 낙천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병원 ‘간판’의 양도만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중개업자들은 팔려고 내놓은 병원들을 끈덕지게 우리한테 소개해 주었다. 그러면 전망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 보려고 가슴 설레이면서 함께 가 보았다. 하지만 초라한 대합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실망하고 말아, 무엇인가 구실을 둘러대면서 빨리 돌아와 버리고 했다.

“또 틀렸어!” 나는 투덜거렸다. “저 녀석 장부는 엉터리야. 게다가 진료실은 텅텅 비어있고, 당신, 그 녀석 입에서는 술 냄새 나는 것을 몰랐소?”

우리는 런던에 이렇게 많이 술에 중독된, 즉 타락한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라든가, 이렇게 지하실에서도 지붕 밑에도 쥐구멍 같은 그을음투성이의 축축한 집들만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물론 윔폴 가의 훌륭한 앤 여왕조 풍의 건물 같은 고급 건물에 우리가 수천 파운드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들의 자금에는 한도가 있었으며, 따라서 우리들의 선택 범위도 좁을 수밖에 없었다.

전번 주에는 운 좋게 첼쉬에 아주 분위기 좋은, 집이 딸린 병원이 발견되었었다. 그 의사도 인상이 좋은 사람으로서 약간 말수는 적었지만 그리 싫지 않은, 하리 가 풍의 어느 모로 보나 의사다운 태도의 신사였으며, 그가 요구한 가격도 그렇게 엉뚱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행운에 기뻐하며 달려들고 싶었으나, 원래가 경계심이 강안 나는 스스로를 우선 제지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타비스톡 스퀘어의 의사회 본부에 가서 그 의사에 대해 문의해 보았다. 나는 새파랗게 질려 아내에게 돌아왔다.

“정말 큰일날 뻔 했소! 그 차밍한 선생은 내일 낙태죄로 재판을 받는다지 뭐요. 환자는 한 사람도 오지 않을 것이고, 게다가 면허도 분명히 취소당할 거야. 징역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

이렇게 되고 보니 지금 내가 심각한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중개업자가 보내 온 최근의 통신을 주머니에서 꺼내 그것을 아내에게 건네 주었을 때도 기분은 침울하고 회의에 빠져 있었다.

“이건 낮에 온 것이오. 우리의 장미빛 꿈에 닥 맞지는 않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 남자를 신용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기대는 해도 괜찮을 것 같아.”

당당한 영국 외과의사회 특별회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노개업의 老開業醫 하버트 타나 박사는 이제는 은퇴하려고 하고 있었다. 박사의 진료소의 베이즈워타에 있었는데, 이곳은 하숙집 같은 곳만 있는 별로 좋은 동네는 아니었지만 시내에서 최고급인 주택 구역과 인접해 있었다. 한때는 수입도 굉장했었지만 박사가 노령이기 때문에 요즈음은 약간 저조했다. 의사네 집은 병원과 같이 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가 보았다. 건물은 마치 군함처럼 회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으며, 어느 쪽인가 하면 좀 어두운 느낌의 테라스가 딸린 집이었다. 하지만 마침 모퉁이 집이었고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 이것은 뜻밖의 손님을 부르기에는 절호의 지점이다 – 또 족보 구식이긴 했지만, 계단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타나 박사도 우리를 마음에 들어했다 – 병원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도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같았다.

불행하게도 이 선량한 의사가 요구하는 가격은 극히 정당한 것이긴 했지만, 우리에게는 귀중한 지난 4년 동안 고생하면서 조금씩 모아 온 적은 자금의 갑절 이상이나 되는 가격이었다. 우리는 낙심했다. 이 기회마저도 놓쳐야 되나 하고 생각하니 그것이 오히려 더 마음을 글리게 했다.

“저 정도의 것이라면 앞으로 몇 달이 지나도 좀처럼 나오지 않을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끝장이라는 기분으로 나는 신음하듯이 말했다. “이제까지 봐 온 것은 전부 형편없는 것들이었지만, 아아, 그것을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이 있었으면…”

로맨틱한 소설의 여주인공과는 달라 내 아내에게는 팔만한 보석 하나 없었고, 나의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는 그녀가 아무리 좋은 위로의 말을 해주어도 화만 벌컥 낼 뿐이었다.  그 시절 그녀는 얼마나 끈기 있게 내 신경질에 견뎌 주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는 실제로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총명한 계획을 제안했다.

“다시 한 번 가서 우리 사정을 잘 말씀드려 보면 어떨까요 – 타나 박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의논해 보세요. 만약 여유만 주신다면 곡 갚아 드리겠다구, 그렇게 말씀해 보세요.”

아내와 나는 아내의 무릎 위에서 작은 그릇에 담긴 빵죽을 먹으면서 그 죽으로 온 얼굴이 범벅이 된 우리들의 불쌍한 아기를 험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표정은 바뀌어, 나는 그녀를 현명한 한 사람의 아내로서, 온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기를 달래고 있는 아름다운 한 어머니로서 봐 주고 싶어졌다.

“당신이 말한 대로 하면 틀림없을 거야.” 나는 모자를 들고 나갔다.

하버트 타나 박사는 역시 인물이었다 – 구시대의 의사, 깡마른 붉은 얼굴의 수염을 깨끗이 면도하고 백발이 성성했으며, 약간 매서운 눈 위에는 짙은 하얀 눈썹이 있는 칠순 노인이었다. 그는 환자들에게 자신이 생각되는 대로 말을 했고 아무도 말참견을 못하게 했으며, 어느 때는 진찰실 밖에서 난폭한 역마차 마부가 말을 학대했다고 해서 이 사람과 격투를 벌인 일조차 있었다고 했다. 이런 인물에게 특별한 호의를 요청한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놀랄 만큼 쉬웠다. 타나 박사는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 아니, 어쩌면 그것은 우리들의 착각이었고, 실은 단순한 동정이었을지 모른다. 박사에게도 외아들이 있었는데, 역시 의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전 중에 전사했는데, 그 아들이 나하고 어딘가 닮은 것같이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갈피를 못 잡고 횡설수설하는 내 설명에 그는 아주 간단명료하게 우리를 신용하고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지불할 수 있는 돈만 받고, 나머지는 연 4회로 나누어 수입금 중에서 지불해도 된다고 했다.

이 소식을 아내에게 이야기하자 그녀는 지금 금방이라도 뛰어가서 노인의 목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인 것 같았다.

“세상에는 참 좋은 분도 있군요.” 하고 그녀는 기뻐했다. 이 하나의 친절한 행위, 거리낌없이 기분 좋게 우리에게 제공된 이 찬스야말로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이제까지 우리가 들어 온 어떤 설교보다도 확고부동한 선의였다.

한 달도 되기 전에 양도는 끝났고, 타나 박사는 코츠월즈라는 전원 도시로 이사했으며, 우리는 가슴 설레이면서 그 집으로 이사했다.

“자아, 이번에야말로 죽느냐 사느냐다!”

융단을 핀으로 고정시키기 위해 진료실 바닥에 엎으려서는 외쳤다.

“모든 걸 걸어 버렸어. 성공하는 길밖에는 이제는 도리가 없어. 안 그러면 우리는 모두 죽는 거야!”

어떤 일에 대해 강하게 느끼고, 또 아마도 너무 지나치게 표현하는 것은 내 결점인데, 그 당시 새롭게 느낀 책임감, 갑자기 최초의 환희와 뒤바뀐 긴장감, 눈 앞에 닥친 괴로운 투쟁을 놓고 본다면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돈을 있는 대로 다 써 버렸으며, 집 안에는 가구도 절반 정도 밖에 없었다. 요컨대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도 우리에게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환자가 한 사람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노박사의 환자들은 아예 우리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런데 3일 째 되는 날 저녁 무렵 병원의 벨이 울렸다. 새로 산 [아직 돈을 지불하지 않은] 회전의자에서 손톱을 깨물고 있던 나는 총알처럼 뛰어올라갔다. 반 시간 후 나는 창백한 얼굴로, 하지만 승리의 얼굴로 아내에게 달려가 땀에 흠뻑 젖은 손바닥에 쥐고 있던 3실링 6펜스를 의기양양하게 보여 주었다.

“런던에서의 최초의 수입입니다.” 그 애처로운, 하지만 귀중한 은화를 아내에게 주면서 내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거기에 한심하게도 나는 덧붙였다. “자, 여보. 어서 가서 고기를 사 와요. 우리 아기에게도 빵을 사다 주고요.”

악전고투는 몇 개월 동안 계속 되었다. 겨울이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까지 그런 추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리운 트레디 가의 고지에서는 그래도 깊숙이 싸인 눈 속에서 즐거운 꿈을 주고 받았고, 빛나는 하늘의 맑고 푸르름에 가슴 설레이곤 했었다. 여기 있는 것이라고는 우박과, 진흙탕과, 독기를 품은 노란 런던의 짙은 안개뿐이었다. 안개는 모든 곳에 침입하여 끊임없이 기침이 나오게 했고, 뼈마디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수도관이 얼어붙어 마침내는 파열되자 지하실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아내는 누구 한 사람 도와 주는 이 없는 모든 집안 일, 식사 준비, 아기 돌보기 등에서부터 외래 환자의 접대, 약조제, 필요한 용액 준비까지 맡아서 했다. 지하실에서 지붕 밑까지 끝없는 계단의 오르내림에 기진맥진하는 때도 가끔 있었다. 그녀는 옆구리에 손을 대고 도중에서 멈춰 서서는 내 입 버릇을 닮은 욕설을 뱉어 내곤 했다. 아아, 그 불평이 일찍이 이교도를 개종시키려고 생각하던 시절의 그녀의 그 경건했던 말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이란 말인가.

그토록 잔악한, 그토록 저주스러운 추위만 없었더라면! 진료실의 가스 스토브 외에는 우리 집에 불기라고는 없었다. 밤에 잘 적에 우리는 마치 극지 탐험이라도 가는 듯이 따뜻한 것이라면 있는 대로 다 껴입었다. 하지만 겉에는 남이 볼까 봐 잠옷을 입었다.

론저 협곡에서의 맨 처음의 대진 시절 때에도 우리들의 생활은 이보다 나았었다. 그때는 난로불과 뜨거운 음식만은 거리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그 어느 쪽도 없다. 우리들의 적은 수입은 약국에의 계산과 연4회 지불하는 타나 박사의 집값을 내는 데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식사는 회수 회수도 적었고, 가장 싸구려로 한정되어 있었다. 밖에서 돌아와 – 일보다도 걱정 때문에 지쳐 – 앉았을 때 식탁 위의 것이 구역질 날 것 같은 것이었을 때의 그 기분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또 이런 비료인가?” 하고 나는 중얼댄다. “난 도대체 어떤 의사지> 런던 근처에서는 아무도 아프지 않나?” 하지만 그래도 대개는 처음에 아내를 보고 “당신, 우유 마셨소?” 하고 물은 다음 조용히 먹기 시작했었다.

그렇다. 아내는 우유를 먹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애정은 여지껏보다 훨씬 더 깊어져, 그 때문에 아내는 이런 고생 위에 또 다시 돌려 말하자면 ‘주의해야 할 상태’에 있었다 – 사실 우리들의 두 번째 사내아이가 곧 이 세상에 출현할 예정이었으며,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에는 정말 태어났다.

 

 

2. 허영의 도시

 

지독한 고생과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목적을 이루려는 긴장 때문에 베이즈워타에서의 첫해는 초기 그리스도교들에게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을 순교의 해로써 기록되었다. 하지만, 유머 감각을 잊지 않고 시련이나 예기치 못했던 일들을 웃어 넘길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간신히 헤쳐 나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차차 운이 돌아 힘차게 우리가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는 우리 자신들도 참으로 놀랐다.

내가 미친 듯이 일한 것도 사실이다.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모든 것을 나눠 주고, 모든 능력을 아낌없이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 이 12개월 동안 나는 단 반나절도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행운이 결국 우리들이 우리게 된 성공에 어느 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나는 블레어 부장이라는 마음씨 좋은 스코틀랜드의 순경과 운 좋게도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덕택으로 사고를 맡아 처리하게 되어 많은 유리한 사례를 받았다. 또 근처 약국 주인과도 친해져, 좋은 의사를 ‘추천’해 달라는 단골 손님을 주선 받기도 했다. 베이즈워타에 많이 있는 싸구려 호텔에 나를 출입할 수 있게 해준 어떤 사람의 소박한 빈틈없는 배려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한밤중에 가난한 여급이라든가 요리사, 하녀 등이 인플루엔자로 고생하거나 또는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갑자기 진통을 일으켜 고용주를 놀라게 하거나 하는, 한 마디로 말해서 다른 의사들이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 종류의 환자들에게 불려져,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런 불행한 여자들을 공작 부인처럼 대해 주며 한 달 동안이나 날마다 왕진하고, 그리고 그 결과로 이 호텔 소님들 중 몇 명인가를 내 대합실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 불쌍한 사라 존즈를 위해 힘써 주셨다면서요? 제 위장병도 꼭 고쳐 주시리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는 손님들이 바라는 대로 잘해 주었다 – 내가 손대고 싶지 않은, 아니면 손댈 수 없는 일이라고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없었으며, 내가 계획한 것은 무슨 일이든지 잘 풀려 나갔다. 게다가 조금씩 좋아져가는 소문은 열심히 일하는 개업의에게 가슴 설레는 자극제였다. 신경질이나 내면서 의자에 앉아 찾아오는 환자를 기다리는 것과 달리 자기에게 주어진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하루 종일 일해도 시간이 짧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 자비로운 신의 뜻에 따라 미리 준비되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은 듯 자비로운 신의 뜻에 따라 미리 준비되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은 의연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11월 말의 어느 날 밤 늦게 템즈 강에서 안개가 피어 오르고, 요란하던 거리의 마차소리도 끊어졌을 무렵 야간용 벨이 울렸다. 나는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의학 잡지 최근호에 나온 당뇨병의 대사 작용에 관한 어려운 논문을 정복해 버릴 작정으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문을 열자 가로등에 비친 사람은 젊은 하녀였는데, 모자도 쓰지 않고 외투도 입지 않고,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인 아주머니인 파레스 가든즈 5번가에 사는 아버스낫트 부인이 독약을 마셨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주치의한테 갔었지만 오늘따라 그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발 빨리 좀 와줄 수 없겠느냐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는 개업의가 한눈에 가슴 속까지 환히 살피는 듯한 시선으로 의뢰자의 성질을 갈파해 내는 것은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경험에 불과한 것일까! 이 작은 소녀의 감추는 것 없는 시골 뜨기 같은 얼굴, 그녀의 성실함, 한눈에도 알아챌 수 있는 걱정, 또한 그 검소하고 깨끗한 복장조차도 ‘독약’이라는 말의 불길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선의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하지 않았다. 한 마디도 않고 나는 항상 현관 테이블에 놓아 두는 구급가방을 들고 마침 안개 속을 지나가던 택시를 불러 타고는 전속력으로 파레스 가든즈로 가자고 운전사에게 얘기했다.

4분도 걸리지 않아 우리는 도착했다. 5번가는 작지만 깨끗한 플랫이었으며, 따뜻한 융단하며 멋진 빌로드 커튼, 더러운 것 없는 깨끗하고 부드러운 소파하며, 모든 것이 한눈에 무게 있는 빅토리아 왕조 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침실의 고풍스러운 놋쇠 침대에는 레이스 잠옷을 입은 약하디 약해 보이는 노부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침대 옆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는 크기도 모양도 똑같은 약병이 있었는데 하나는 분명 ‘테이블 스푼 1 숟가락 씩 복용’이라고 씌어진 창연 蒼鉛 이 든 위산이고, 다른 또 하나는 암청색을 띄고 붉은 라벨에 ‘바르는 극약, 복용하지 말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정하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자던 노부인은 소화불량으로 위가 아파, 잠결에 손을 뻗어 – 다른 약병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잊은 채 – 진정제를 먹는다는 기분으로 치명적인 ‘바르는 극약(도포제)’ 을 잘못 먹은 것이었다.

나중에 안 바로는, 사실 이것은 정확한 설명이었지만, 생사의 기로에 있는 환자를 앞에 두고 있는 그 순간에는 이론에 어쩌고저쩌고 할 틈이 없었다. 노부인은 거의 죽은 상태였다. 그 가늘고 약한 팔목의 맥박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독약은 뭘까? 약국에 전화를 걸어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 처방전을 조사시킨다고 하는 것도 무리였다. 나는 즉시 결정해야만 했다. 움직이지 않고 열린 동공, 빨갛게 꺼칠꺼칠해진 피부, 핏발 선 눈, 그리고 심장의 약하고도 불규칙한 고동, 그 증상들은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 베라도나 – 이렇게 추측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도포제의 녹색 빛깔과, 불쾌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라도나는 개화기의 ‘아트로파 베라도나’ 라는 식물의 잎에서 정제된 것으로서 미주 迷走 신경에 작용, 뇌의 호흡중추를 마비시키는 강력한 진정제다. 이미 이 환자는 경련을 일으키듯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베라도나에 틀림없다…그런데…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적어도 이와 똑같은 효과를 내는 6종류의 섬망성 마취제가 있다. 그렇다. 나는 위험을 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둘러 나는 위 세척제를 집어 넣었다. 로클리 병원에서의 실습에서 이 곤란한 기술에 숙련될 수 있었던 기회가 주어졌던 것에 감사하면서 나는 노부인의 위를 식염수로 씻어냈다. 다음에 나는 15밀리그람의 염산 지아세틸모르핀을 그녀에게 주사했다.  이것은 베라도나에 함유되어 있는 독소의 아트로핀 알카로이드에 대한 완전한 해독제이지만, 그 자체로서는 어엿한 극약이어서 만약 내 진단이 틀렸다면 그녀를 아주 자연스럽게 저 세상으로 보내기에 충분했다. 결과를 기다리면서 나는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처음에 나는 이미 죽어 버렸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는 아까보다 호흡이 편해졌으며 맥박도 강해졌고, 그 뒤 15분 정도가 지나자 크게 한숨을 쉬며 눈을 뜨고는 나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젊은이.” 그녀가 중얼거렸다. “당신, 집에서 입는 옷 그대로 내 침실에서 뭘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나서 그녀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으려 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고 그녀가 잠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하녀와 나는 그녀가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집 안을 억지로 왔다갔다 하게 했다. 가끔 자극제를 잘 섞은 짙은 커피를 마시게 할 때 외에는 쉬지 못하게 했다. 아침이 되자 극약의 영향은 사라지고, 그리고 1주일 후에는 얼핏 보기에 노약한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 그녀는 70세를 훨씬 넘었었다 –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치의를 – 신랄하게, 그리고 아마도 부당하겠지만 – 평하여, 늙은 멍청이 같은 남자이며, 와 달라고 했을 때 와 본 적이 없고 또 틈만 있으면 자기 환자들에게 먹여야 할 – 그렇게 그녀는 단언했다 – 광천물을 마시러 밤낮 하라깃드에만 가 있다고 하며, 그녀를 주치의에게 돌려 보내려는 내 논리적인 노력을 완강히 거부하고 나를 주치의로 채용하겠으니 매일 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내가 알게 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특필할 만한 노부인과의 교제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급속히 깊은 우정으로까지 발전해 갔다.

그녀는 스페인 계로서 – 젊었을 때 이름은 미나 다 코스타 라고 했다 –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도 있었으련만 하필이면 스코틀랜드 사람과 결혼했다. 그 남자는 모험을 하기 위해 자기 나라를 떠난 사람이었다. 그녀는 생애의 대부분을 멕시코에서 보냈다. 멕시코에서 남편은 아슨소로 근방의 커다란 경영을 맡아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것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17년 멕시코 혁명 때에 그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폭도들에게 저항하다가 총격을 당했다. 그래서 이 부인은 여러 곳에서 살았고, 요즈음은 지구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다니며 인도와 브라질 같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라든가 페르시아와 페루의 서로 다른 풍토에도 그 발자취를 남겼다. 니스라든가 카이로에서 겨울을 지내고, 윈의 오페라, 바이로이트의 축제, 로샨의 경마를 관람했으며, 멕시코 시티라든가 마드리드의 투우를 구경했고, 세빌리아의 부활제 때에는 자신의 저택에도 들르는 것이었다. 어떤 해에는 안데스 산맥에서 봄을 지내고, 어떤 해에는 일본의 후지 산 아래 벚꽃 냄새 향기로운 곳에서 지냈다. 완전한 코스모폴리탄으로서 그녀는 사치스럽게 돈을 썼고, 그리고 오늘날 육체적으로도 또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도 자유롭게 못하게 되었지만, 작게 오그라들어 마르고 뾰족한 눈과 코, 약해진 뼈마디가 되었으면서도 아직까지 명랑하고 현실적인 사고 방식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밝고 작은 새 같은 눈에는 일종의 유머러스한 심술과 함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생활을 향락하면서 완전히 속세에 집착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편하게 무덤으로 들어가려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매일 아침에 그녀는 경마광들에게는 핑크색 신문으로 알려져 있는 ‘스포츠 타임즈’를 손에 들고 커피와 클로왓산[초승달 모양의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연기 속에서 옆 눈으로 지긋이 보면서 열심히 연구한다. 이윽고 라프의 ‘경마 안내’의 도움을 받아 ‘이것이다’ 하는 말이 정해지면 전화를 걸어 후원자인 마권상과 몇 실링인가 의 내기를 한다. 그 후로는 미용사와 시간을 약속하기도 하고 만약 날씨가 좋으면 옆에 있는 마차 집에서 이륜마차를 빌어 – 결코 택시는 타지 않고 – 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석간을 사 들고 하루 종일 즐겁게 끓어 오르던 흥분이 마침 절정에 이르렀을 때 경마 승부를 찬찬히 알아보곤 했다. 만약 자기의 말이 졌으면 무슨 말인가 별로 좋지 않은 말을 입 안에서 스페인 어로 중얼거린다. 이겼으면 만찬 때 한 잔의 샴페인을 기울인다. 만찬은 항상 굉장한 진수성찬이었는데, 근처의 호텔에서 금방 배달된 따뜻한 음식을 멋진 도자기라든가 고풍스런 은 식기에 담아 하녀가 차려 놓곤 했다.

가끔 초대되어 나는 이런 진수성찬을 그녀와 함께 했다. 식후에는 리큐르가 나오고,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는 옛날 이야기를 했다. 겉으로 봐 그녀에게는 조금의 감상도 없었다. 과장되게, 때로는 눈물까지 보이면서 언제나의 그 정해진 말을 늘어 놓다가는 치료비도 안 낸 채 이사 가버리는 그런 환자들과는 정반대로 그녀는 내가 분명히 그녀의 생명을 구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한테 감샇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한밤 중에 그녀의 침실에 단정치 못한 복장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 물로 ㄴ내가 괘씸한 의미를 품고 왔었다는 것을 빗대어서 – 나를 놀리기조차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내가 갔을 때 그녀는 말없는 작은 헝겊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것은 아주 고급스런 금으로 된 담배 케이스였는데, 그것에는 내 이름의 머리 글자와 ‘Recuerdo de Mina’ (미나의 기념으로) 라는 글귀와 함께 30-4-29의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을 꺼내 보며 기억을 또 새로이 되살리고 있지만 – 이 날짜는 내가 불려 가서 처음으로 그녀를 왕진한 날이다. 내가 기쁨의 말을 하려 하자 그녀는 나를 놀리듯이 내 더듬거리는 말을 막아 버렸다.

“인사말 따위는 하면 안돼요, 선생님. 말씀하시려면 ‘소녀의 기도’라는 이름의 말한테 하세요. 그 말은 내게 10배의 이익을 안겨 주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내 아들이 어제 유럽에서 돌아왔어요. 당신과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다음 주에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그 며칠 후 마뉴엘 어버스나트가 찾아왔다.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키가 작고 온유한 사람으로, 영리해 보이는 까만 눈, 매끄러운 올리브색 피부, 광택 나는 검은 머리, 그리고 분명히 앞으로 비만증이 되리라는 증후를 띄고 있었다 –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용모와 투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멋있는 검은색 계통의 브로드크로스복을 입고, 순백색의 와이셔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회색 넥타이에 진주 핀을 꽂은 모습이란 한 점 나무랄 데 없이 단정했고, 오히려 너무 세련된 것같이 보이기조차 했다. 그것은 정말 말할 나위 없이 좋은 감각에 의해서 통일되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태도에도 흠잡을 데라고는 거의 없었지만, 그 고상하고 품위 있는 모양에서 나는 일종의 쌀쌀한 비개성적인 민완 한 재능을 엿볼 수 있었다. 약간 눈꺼풀이 처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결투가’ 같은 눈이 내가 눈치채지 않도록 나를 관찰하고 있었으며, 내 성격에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그리고 진찰실 안을 계산해 보며 아마 내 책상 뒤에 쳐져 있는 커튼의 가격을 1 페니 까지도 판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어머니의 아들인 이 같은 인물이 무엇인가 기괴한 장사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을 할 수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그가 웨스트 엔드의 ‘브류넬’이라는 상점의 ‘구입과 과장’이라고 자기 소개를 했을 때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 즈음의 나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지만, 이른바 고급 의상의 놀라운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었으나 매일 신문을 보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소홀히 읽은 독자라도 – 그리고 나의 아침 식사 때의 한때란 극히 바쁜 경우가 많았지만 – 누구나가 이 ‘브류넬’이라는 단어를 보지 않았을 때가 없었으며, 또한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면 런던에서의 가장 멋쟁이인 많은 부인들에게 최신 유행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라도 이 점포의 제1급 명성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뉴엘은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의 방문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다. 그는 앞으로 돌아올 시즌의 모드를 위해서 견학 겸 구입하러 갔던 최근의 파리 여행에 대해서 얼마간 이야기하고, 어머니에 대한 나의 수고에 대해 정중히 감사를 하고는 곧 일어나 돌아가려고 했다. 돌아갈 때 현관문이 있는 곳에서 잠깐 고개를 숙이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적어도 한 순간만은 그것이 그의 명함이라고 상상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한 맞춤집 – 사빌 로우 12번가의 ‘산돈 상회’ 라는 이름이 씌어져 있었다. 그만 나는 웃어 버리고 말았지만 – 그것도 별로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 나는 그날의 방문자가 내 기호로 보아 너무 냉정한 것 같았으며, 그의 감사는 무엇인가 특수한 형식으로 표현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성급한 판단은 곧 후회해야만 할 이유가 생겼다. 그것은 얼마 후 내 진찰실에 국민건강 보험카드를 지참하고 앞으로는 건강보험으로 진찰해 달라는 한 무리의 ‘부류넬’ 점원들이 – 봉제사, 메신저 걸, 점원들이 나타났다. 이와 함께 이곳에서 마네킹으로 일하고 있는 글래머 걸들이 찾아왔는데, 이들의 역할은 물론 늘어진 피부라든가 뚱뚱해진 허리와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이미 젊지 않은 여성들에게 꿈 같은 고급 제품을 파는 일로서, 그런 제품들을 입음으로써 그녀들 자신이 황홀해져서 좋은 기분이 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이들 미인 마네킹들 중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 그녀들이 내게 해준 협력 덕택이라고만 해도 – 까만 광택이 나는 눈망울과 꽃잎 같은 아랫입술 사이로 이가 빛나던 에레나, 키가 크고 청초한, 물결치는 듯이 우아한 태도를 지녔던 쥬느뷔에브, 마노아 같이 맑은 눈과 새하얀 살결을 지녔던 애쉬 브론드의 에로이즈, 그리고 또 숲속의 요정처럼 작고 온화한 마드레느 등이었다. 이국적인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이 아가씨들 마음은 단순하고 자연 그대로였다. 정말 표면으로는 능란할 대로 능란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모두들 하나같이 진정한 열망에 – 비단이라든가 금붙이 장식의 레이스라든가 금빛 찬란한 헝겊들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 성실한 남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열망에 – 불타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물론 자기의 매력에 저항할 수 없는 여자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아가씨들에게 그 매력을 강요라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불량배 같은 타입의 남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괴롭힘과 박해를 받고 있는 여자들뿐이다. 그녀들에 대한 나의 관심이 기침이나 감기를 치료해 주는 데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그녀들이 발견했을 때 – 나는 가정 밖의 놀음에는 유혹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가정 생활에 안주하고 있었다 – 그녀들은 곧 나를 아무런 비밀 없는 상담의 상대로서 받아들였고, 자신들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이라면’ 이라고 생각되는 단골 손님들에게 나를 추천해 주게 된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이익이었다. 의사는 광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 환자를 모으는 것은 추천이라는 경로를 밟는 길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왕진 의뢰가 처음에는 서서히, 나중에는 급격히 늘어나서 내가 사는 지구 이외의, 게다가 사회적 지위가 훨씬 높은 런던의 여러 지역에서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사우스 켄싱턴으로 나이츠브릿지로, 메이페어로 나가 처음에는 아주 겁을 먹고 있었지만 점점 자신을 갖게 되어 마지막에는 자신의 성공에 대한 자각에서 생기는 확신을 품은 채 그런 거리의 당당한 저택에 출입하게 되었다.

이들 환자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으며, 또 그 대부분은 부유하고 게으르고 타락해 있어서 모드들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 스코틀랜드 사투리가 남아 있는, 몇 가지의 ‘상당한’ 학위를 지닌 젊은 의사가 마뉴엘의 젊은 미인들 중 한 사람의 열심한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어서,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신종 新種 강아지를 대하는 것 같은 호기심과 흥미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아니었으므로 이들 환자들을 상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극도의 엄격함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나는 엄격했고 성실했다. 나는 계속 위협을 했으며 명령했고, 그녀들을 위해 새로운 병을 발명하기조차 하였다 – 애스테닉 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허약이라든가 육체적 무기력이라는 뜻밖에는 지니지 않았지만, 나로 하여금 한층 당당한 대가네 현관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주문 呪文 같은 것이었다. 카드간 프레스라든가 벨그레브 스퀘어 같은 오후에 다과석에서 어떤 귀부인이 어떤 백작의 장녀가 되는 아가씨를 향해서 과장되게 늘어 놓는다.

“어머, 이봐요. 사실은 말이죠, 이 젊은 스코틀랜드 의사 선생님이 – 별로 세련되지 않았지만, 아주 현명하세요 – 이 의사 선생님이 제 병은 애스테닉에서 왔다는 것을 발견하셨지 뭐예요. 그래도… 애스테닉, 그런데 그 브라운 푸로제트 노선생님은 글쎄, 아무것도 아닌 신경성이라고 항상 말씀하시지 뭐예요.”

한 가지의 병을 창작해 낸 이상 그 요법을 생각해 내는 것 또한 중요했다. 마친 그때는 근육 주사에 의한 치료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 철제, 망간, 스트리키니네 등의 콜로이드 부유액, 그밖에 강장제를 입으로부터가 아니라 피하 주사기를 사용해서 환자의 혈관에 주사하는 방식이다. 훗날 이 기술은 원래 해오던 입으로부터의 투약과 비교해 볼 쌔 조금은 나은 것이 없다 하여 그 가치가 떨어지고 말았지만, 당시의 내게는 정말 안성맞춤의 것이었다.

애스테닉이란 진단을 내릴 때면 나는 푸로우스트의 소설 속에 나오는 듀라포아 박사가 임상에서는 독재적인 태도로 게르만트 공작마저도 압복시킨 것을 본따 그럴싸한 목소리로,

“부인, 아무래도 주사를 좀 맞으셔야 될 것 같군요.”

하고 말한다. 그러면 환자는 이 말에 대단한 스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 나타났다. 그녀는 대단한 흥미를 보이며,

“어머, 정말이에요, 선생님?”

“그렇습니다. 부인. 이 상태라면 큰 마음 먹고 치료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꼭 고쳐 주시겠지요?” 하고 약간 흥분하여 묻는다. “그건 보증해 드리지요, 부인. 하지만 주사는 두 번 맞아야 할 것입니다.”

애스테닉에 대한 주사는 바야흐로 유행이 되어 사람들이 다투어 찾아오게 되었다. 나의 날카롭게 빛나는 주사바늘은 최고급 린네르 시트 위에 드러낸 고상한 엉덩이에 꽂혔다. 나는 주사를 거의 고통 없이 놓는 기묘한 기술로써 상류사회 나부랭이들에게 아첨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수한 숙련가, 아니 제1인자가 되어 있었다 – 나의 정해진 말은 “부인 괜찮습니다. 결코 아프게는 해드리지 않을 테니까요” 였다 – 그리고 이것이 나의 명성을 한층 더 증대시켰던 것이다.

기묘한 일 같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이 엉터리 치료의 결과는 – 아마 많은 다른 동업자들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 당시의 나는 분명히 대악당이었다 – 놀라울 정도로 때로는 기가 막힐 정도로 성공이었다.

애스테닉은 이런 권태에 빠진 게으름뱅이 여성들에게 인생에의 흥미를 일으키게 해주었다. 나의 강장제는 활기를 잃은 신경을 다시 활발히 만들었다. 나는 환자들에게 적당한 운동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양생법을 강조했다. 나는 길을 잘못 디딘 두 사람의 유부녀에게 오랫동안 참고 있는 남편들 품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했다. 그 결과는 9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애스테닉 이외의 일에 그녀들을 몰두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중산계급 상대의 병원으로서 5실링 이라든가, 또 어떤 때는 반 크라운 정도의 소액 사례를 받기 위해 버둥대던 사나이에게 이 같은 사태의 돌변은 하늘의 은총, 목숨의 은인 – 간단히 말해서 – 절대적인 돈줄이었다. 나의 치료는 만약 그것에 대해 부당한 요금을 청구하지 안았더라면 결코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전에는 은화가 고작이던 것이 이제는 금화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 황금이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이런 경제적 승리가 내게 있어서 감사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는 따위의 위선적인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마음 즐거운 많은 것들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 곧 타나 박사에게 갚을 부채도 정리되고, 집에는 다시 페인트가 칠해졌으며, 적당한 장식들이 붙여졌다. 깔끔한 하녀를 두게 되어 그녀가 항상 문을 열어 주었고, 친절한 유모가 낮에는 아이들을 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마침내 마뉴엘이 소개한 맞춤집을 단골로 다니라는 권유를 받았고, 멋진 고급 클럽에도 가입하게 되어 가끔은 병원에서 빠져 나와 오후에는 골프를 치러 다녔으며, 새로운 오스틴 소형차로 왕진을 다니게 되었다.

때때로 나는 문득 내 자신으로 돌아와, 눈 앞이 휘청거리는 듯한 기분이 되어 이런 모든 것들에 … 또 흐릿하기는 했지만, 우리들에게 천국이라고 조차 생각되는 것들을 가져다 준 운명에 놀라 눈을 크게 띠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작은 노부인이 잘못해서 베라노나의 바르는 약을 실수로 마시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우연히 불려 간 내가 운 좋게 그녀의 생명을 건졌다. 그 다음은 하나의 돌멩이가 연못에 던져지면 수면 위 어디까지나 물결이 퍼져 나가듯이 잇따라 행운이 계속 되었던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 물결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만족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긴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일의 성질이 바뀌어감에 따라 때로 나는 희미하게나마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상류의’ 화자들 때문에 바쁜 일은 점점 늘어났으나, 옆 문으로 들어오는 보통의 노동자 환자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번영의 미주 美酒를 즐기고 야심의 성취에 도취되어 있는 동안 – 스코틀랜드 사람에게는 자신이 지금 ‘출세’ 해 가고 있다는 사실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 나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이제까지 해온 일을 비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것이 정점에 달한 것은 어느 날 오후, 마침 새로운 환자를 한 사람 – 적동색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체격 좋은 군인 같은 모습의 남자 – 현관까지 배웅해 주고 아주 만족해 하며 내가 홍차를 마시러 진찰실에서 나왔을 때였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아오?” 나는 의기양양하게 아내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X …. 겅이야. 바스 훈작사 勳爵士 로서, 인도 행정관이지.”

나는 당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을 댔다.

“요즈음은 여자들 뿐만이 아니라, 남자 환자들도 생겼어. 저 사람은 부인의 소개로 나한테 온 거야.”

“어디가 나빠서요?”

“별일 아니었어.” 나는 킥킥 웃었다.

“간장이 약간 나쁠 따름이었지. 요컨대 영국계 인도인이야. 앞으로 1회 5기니를 받고 주사를 계속하기로 했지. 생각해 봐. 여기서 개업했을 당시 겨우 3실링 6펜스를 벌기 위해 땀투성이가 되었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3분간 봐 주고 5기니란 말이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홍차를 한 잔 더 따랐다. 이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왠지 나를 화나게 했다.

“이봐, 왜 그러지? 당신은 내가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 신용 받아도 좋을 남자라고 생각지 않소?” 나는 스타일이 좋은 사빌 로우에서 맞춘 양복 깃을 어루만졌다. “어쨌든 나도 그 더러운 방수 외투를 입고 징 박힌 갱내화를 신고 광부들의 집을 걸어 다닐 때 일을 생각하면… 겨우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

그녀는 나를 반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 징 박힌 신발을 신고 있었던 시절의 당신이 좋았어요. 그때는 당신도 너무 환자에 신경을 쓴 나머지 돈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나는 귀 밑까지 빨개졌다. 나는 그녀를 방에서 내쫓고 싶은 심정이었다 – “뭐라구? 당신은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오?” 하고 – 하지만 나는 놀랍게도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긴 침묵이 흐른 다음에야 나는 중얼거렸다.

“아마 당신이 말한 대로겠지…. 그때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기억해 둘 만한 가치가 있는 시절이었지.”

 

 

3. 수녀원장과 밤의 여자

 

“원장 수녀님이 오셨습니다, 선생님.”

로스테아 태생의 눈이 검은 아일랜드 인인 하녀 케티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전했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웨스트본 그로브의 큰길에서 숙 들어간 곳에 회색 건물이 있는데, 그것이 본스쿨[프랑스 어로 ‘친절한 원조’라는 뜻] 수녀원이다. 가금 은은하게 안젤루스[삼종기도]의 종소리가 들려올 때 외에는 아주 고요했기 때문에 그 안에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이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특수 구역’, 즉 포트베로 로드와 놋팅힐 게트를 에워싼 거미줄 같은 빈민가의 거리라든가 또는 골목에서의 이야기는 달랐다. 본스쿨 교단은 원내에만 들어 앉아 잇는 교단이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수녀들은 수도회의 이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가난한 자, 못 가진 자, 불행한 자, 또 자신의 악행이나 남의 비행 때문에 사회에서 추방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맹세한 사람들이었다. 몇 번인가 나는 이들 선량한 수녀들이 항상 둘씩 찍 지어서 낮에도 안심할 수 없을 뿐더러, 밤에는 더욱더 위험한 이 더러운 동네를 얌전하게 무엇인가 자선을 위한 볼 일로 바쁘게 걸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포트베로 로드 – 이 거리 자체가 포장마차라든가 또는 여세 상인들의 리어카도 움직일 수조차 없게 좁은 길인데다, 밤이 되면 석유램프가 타고 하류층 주민들이 북적대며, 밀고 당기고 소리치고 있는 – 거리에서 갈라져 있는 이 구부러진 골목길은 소매치기, 도둑, 건달, 그밖에 그 이상의 악당들의 은닉처로서 경찰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대개의 집들은 범죄 소굴이었으며, 여러 가지의 나쁜 일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 방면으로 왕진을 다닐 때면 나도 항상 불안에 떨곤 했었다. 몇 번인가, 의사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화를 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선량한 수녀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보기에도 하나도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다니는 것 같았다.

대합실로 나가 보니 원장은 창가에 서 있었다. 훤칠하게 키가 큰 고상한 모습으로 까만 수녀복을 잘 어울리게 입고 새하얀 수건을 쓰고 있었는데, 실로 품위가 있어 보였다. 또한 의상은 조잡한 사지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은 한눈에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데 충분했다. 내가 들어서자 그녀는 창백하고 델리케이트한 얼굴로 뒤돌아 보았다. 코가 크고 콧날이 오똑했으며, 이마를 가리운 흰수건 밑으로 나와 있는 눈썹, 윤기 있는 눈, 게다가 그 눈 속에는 정력과 의지의 불꽃이 타고 있었다.

“전 원장인 세실 입니다, 선생님. 전부터 몇 번이나 선생님을 찾아 뵈려고 했었습니다. 때때로 교회에서 뵌 적이 있기에…. 정말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시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신앙심에 대한 이런 찬사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의 진짜 성격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당황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선생님, 단 한 분만이 가톨릭 신자 의사 선생님이시기 때문에.” 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 부탁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은 엘든 로드의 코린즈 선생님께 진찰을 부탁 드려왔습니다만, 그 분이 이제는 나이도 많이 드셨고, 길도 멀어서 아주 힘들어 하십니다. 그런 연유로 앞으로 선생님이 저희들 수녀원의 의사 선생님이 되어 주실 수는 없는가 해서요.”

“아니…저, 네에…” 나는 확실치 않게 말을 더듬었다.

“미리 말씀 드려 두겠습니다만, 이것은 꽤 힘들고 불쾌한 일들도 있을지 모를 일이어서 말입니다…아시는 바와 같이 저희들은 이 교구의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단 측은 아주 가난해서요, 별로 많은 사례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오, 사례 같은 것은 조금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대단한 고결함을 보이며 말했다.

그런데 나의 이 넓은 도량을 인정하며, 고개 숙여 감사할 줄 알았는데, 원장은 조용히 고개를 갸우뚱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약간 실망했다. 감사 대신 그녀는 짤 잘라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을 위해서 하시는 일입니다, 선생님. 그런데 오늘 오후에 시간이 있으시면 놋팅힐 골목까지 함께 가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릴리 하리스 라는 아가씨가 저희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골프 약속을 연기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는 복잡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네에…물론 좋습니다.”

그렇게 되어 3시에 나는 세실 원장과 함께 놋팅힐에 가서 어떤 단칸 방에서 릴리 하리스를 진찰했다. 그녀는 스무 살 남짓해 보였으며 검은 타이트 스커트와 싸구려 블라우스를 입었고, 머리는 갈색, 눈은 담갈색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얼굴색이 나쁘고, 지저분한 여드름 같은 것들이 조금 났으며, 입을 곡 다문 채 어딘지 기분 나쁜 것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찰하기 위해 윗도리를 벗으라고 하자 그녀는 험악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로부터 몇 분 후, 계단 무도장으로 나오면서 나는 원장에게 이런 입장에 끌려 들어간 귀찮음과, 무엇보다도 골프장에 가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냉정하고 솔직하게 이런 말을 했다.

“불쾌한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군요. 그 아가씨는 매독입니다. 게다가 임신 중입니다.”

세실 원장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장이 내게 말해 준 바에 의하면 릴리는 전에는 꽃집에서 얌전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이 근방에서도 가장 나쁜 남자로서 두 번이나 노상강도를 해 감옥에 갔었고 얼마 전부터는 소매치기와 경마 정보꾼 노릇을 하고 있는 시븐즈란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수 개월 동안 그녀와 동거하였으나, 마침내 이 남자는 이러한 생활이 싫증이 나자 그녀를 거리로 내보내 돈벌이를 시켰다.

그래도 여전히 시븐즈는 이런 타입의 남자들이 지니고 있는 위력을 그녀에게 휘둘렀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 자신이 엉망진창이 되고 업신여김을 당하면서고 그 천한 창부 노릇을 하면서 번 돈을 그 남자에게 바치는 것을 그만 두지 못했다.

방에 다시 들어가서 나는 자연스럽게 – 왜냐하면 이런 병으로 입원하는 것은 항상 주선하는데 힘들었기 때문에 – 곧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릴리에게 말했다. 그러나 나의 태도에 동정심이 없었다고 해도 세실 원장의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은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불행한 아가씨를 위로하며 그녀를 꼬옥 껴안고는 친절하게 눈물을 닦아 주는 원장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중세의 귀부인들이 신성한 겸허감에서 나병 혼자의 흐르는 고름을 닦아 주고 입맞춤까지 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날 밤 안으로 나는 유스튼 록크 병원에서 릴리를 위한 침대를 구하는데 성공했으며, 그리고 이건 큰 오산이지만, 두 번 다시 그녀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믿고는 이 책임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하면서 나는 곧 그녀의 일은 새까맣게 잊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세실 원장의 부드럽기는 하지만 집요한 요구로부터 그리 쉽게 도망칠 수는 없었다. 만약 우연하게도 나의 착한 아내가 세속의 명예와 이익에만 집착하는 나의 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었다면, 여기 있는 이 야윈 초로의 준엄한 프랑스 수녀에 의해 아내의 기도는 받아들여졌다는 말이 된다.

방황하는 양떼를 속으로 나를 불러들인 세실 원장은 용서 없이 완전히 무보수로, 즉 내가 약간 떫은 얼굴로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은 하느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으로서, 빈민들이라든가 수녀들을 위해 나를 불러내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알게 되면 될수록 차츰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교양있는 사람으로서의 위엄과 미를 겸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그 뛰어난 용모에서도, 크게 반짝이는 도라지꽃색 푸른 눈에서도 선천적인 고귀함이 나타났다. 체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결코 불평하지 않았으며, 피로로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도 일종의 마음 속에서 타고 있는 불꽃의 힘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행동을 했다.

우리들의 우정이 깊어감에 따라 그녀는 가끔 수녀원 응접실에서 나에게 차를 대접했다 – 그곳은 썰렁한 작은 방으로, 마룻바닥이 광택이 날 정도로 잘 닦여져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교단의 사무를 보는 것도 이 방에서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 눈길은 그녀의 책상 위에 세워져 있는 작은 액자 속의 사진에 가 멈추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군요.” 나는 환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그래요, 아름답지요?” 그녀의 눈도 내 시선을 따라 커다란 너도밤나무 숲을 배경으로 지어진 백아의 커다란 성곽과 그곳에서 호수 쪽으로 나 있는 넓디넓은 테라스, 잘 다듬어진 정원이 찍힌 사진에 주목되었다.

“양쥬의 성이랍니다.”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 됐겠죠. 잘 아십니까?”

“네, 네.” 하고 그녀는 조용히 대답하고는 곧 화제를 돌렸는데 나중에야 그 앙쥬 성이 그녀의 생가라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2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침, 나는 록크 병원에서 릴리 하리스의 퇴원 통지서를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또한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사산이었다. 그러나 릴리 자신을 이제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 그녀는 완치된 것이다.

나는 그 통지서를 잘 간수해 두었다가 그 주말에 언제나와 같이 홍차 대접을 받으러 수녀원 응접실에 들어갔을 때 원장에게 건네주었다.

“자아!” 하고 나는 말했다.

“하느님의 종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놀랍게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슬픈 듯이 미소 지었다. 그것은 인생의 온갖 슬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모든 연민과 동정어린 이해심으로 가득 찬 미소였다.

“선생님…릴리가 퇴원했을 때…가장 먼저 한 일은… 시븐즈한테 돌아간 일이랍니다…그리고 지금 릴리는 다시 거리로 나가고 있답니다.”

“안, 그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소!”

“저희들은 자주 겪는 일이랍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영혼은 그리 수비게 손에 넣을 수가 없답니다.”

“설마 그런 악당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 남자를 증오하고 있다고 조차 말해도 되겠지요. 그 애가 돌아왔을 때 남자는 그 애를 얼마나 때렸는지 몰라요…그래도 그만큼 굉장한 매력도 있는가 봐요…. 일종의 지배력이…”

“어떻게 하실 참이지요?”

“계속 시도해야 합니다….그리고, 희망과 기도를.”

다음 달 그믐이 가까운 어느 날 저녁이었다. 환자들도 대부분 돌아간 시간에 더러워진 작은 모자를 쓰고, 레인 코트의 단추를 채운 채 긴장하여 앉아 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릴리 하리스였다. 그녀는 들어와서는 묵묵히 블라우스를 벗더니 데인 부분이 등에까지 이르고 있는 2도의 커다란 화상을 내보였다. 기름과 네모난 헌 천이 멋대로 붙여져 있었다.

“언제 이렇게 됐어? 내가 보니 어젯밤 같은데.” 그녀가 겁제 질려 있는 것을 보고 나는 화가 나 혀를 찼다.

“좀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하지만 올 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 붉게 벗겨져 물집투성이가 된 피부를 붕대로 감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되었지?”

“끓고 있는 물주전자를 제가 엎질렀어요.”

“거짓말 하면 안 돼. 주전자의 물을 등에다 붓는 사람도 있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자존심 상한 눈으로 바닥만 쳐다보며 전보다 더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왜 헤어지지 않지 릴리?”

그녀는 감정도 없이 고개를 저었는데, 그 눈에는 공포의 빛이 엿보였다.

“안돼요. 결국 뒤쫓아와 잡아가니까.” 그녀는 덧붙였다. “병원에서 나왔을 때도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처음으로 나는 그녀가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연극이나 소설에서는 가끔 로맨틱하게 그려진 거리의 여자들을 보아왔다. 사실 창부를 미화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초상을 흥미있는 감동적 타입으로 그려내는 것은 현대의 특색이었다. 그러나 릴리는 … 나는 그녀를 우울한 기분으로 쳐다보았다.

“붕대를 갈아 줄 테니 또 와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알려줘요… 언제라도 좋으니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러나 그녀는 그 후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10일 후의 아침 5시경, 아직 날도 새기 전에 한 소년이 우리 집으로 뛰어왔다.

“릴리 하리스가 선생님 좀 와 주십사고 해요.” 이 말을 전하자마자 소년은 달아나 버렸다.

20분 후에 나는 놋팅힐에 도착했다. 릴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 안의 광경에 소름이 끼쳐 나는 우뚝 멈추어 섰다. 구석에 새파랗게 질린 릴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위험스런 계단 밑 깔개에는 코에서 흘러 나온 피가 말라 붙어 있었고, 양미간에 보라빛 상처를 입은 한 사나이가 큰 대자로 쓰러져 있었다. 얄밉도록 꼴사납게 나동그라져 있는 모습, 거무튀튀한 얼굴, 삐뚤어지게 벌어진 입 등 한눈에 보아 충분했다 – 남자는 죽어 있었다.

벌린 입에서 풍겨져 나오는 술 냄새에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참으면서 시체 옆에 꿇어앉아 두개골을 만져 보았다. 두개골 윗부분은 상하지 않았지만 후두부에서는 눌려서 생긴 것 같은 톱날 모양의 울퉁불퉁한 상처가 만져졌다. 나는 재빨리 생각했다 – 앞 이마를 얻어맞고 뒤로 넘어지면서 두개골 반대쪽에 골절이 생겼을 것이라고.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있었다. 릴리 곁에 커다랗고 둥근 손잡이가 달린 부지깽이가 있었다. 나는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이런 짓을 했지, 릴리?”

그녀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흠씬 두드려 맞고 늘어진 맹수처럼 윗입술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어깨에 손을 갖다 대고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겨우겨우 그녀는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헤어지려고 했어요….그런데 이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이 말뿐이었지만, 충분했다.

침묵.

나는 부지깽이를 집어 들고 가제로 잘 닦아서는 난로 위에다 올려 놓았다. 그리고 릴리를 향해 흐트러져 위축될 대로 위축된 마음 속에다 한 마디 한 마디 스며들도록 천천히 얘기했다.

“수녀원의 세실 원장님에게로 가요. 지금 곧 가는 거야. 그리고 아무 말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돼.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 밖에 없어.”

그녀가 나가자, 나는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로 가서 내 친구인 캄든힐 경찰의 블레어 부장을 불러냈다. 그가 왔을 때 나는 시체 옆에 앉아, 손을 시체의 심장에 대고 있었다.

“늦었네, 부장.” 하고 나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 손을 빌려고 생각했었는데 – 자네가 문을 연 순간 끊어졌어.”

“무슨 일입니까? 선생님.” 블레어가 물었다.

“발작이야.” 하고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술을 마시고 돌아와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에 넘어지면서 이마를 찧었어. 내가 왔을 땐 이런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지. ‘넘어졌다, 넘어졌다’라고 마지막까지 중얼대더군 – 불쌍하게.”

“불쌍한 녀석이에요.” 하고 블레어는 비꼬는 투고 말했다. “선생님, 녀석이 누군지 아세요? 잭크 시븐즈… 런던에 둘도 없는 딱지 붙은 악당이지요. 녀석이 죽었어도 우린 안 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런데 빨리도 오셨군요. 게다가 술까지 마시고 있었는데, 하지만 난 그전부터 녀석이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오늘 밤 6시에 증명서를 써 주지. 부장. 검시를 할 필요는 없겠지? 난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날 밤 진찰실에서 나는 명료한 필적으로 ‘뇌출혈’이란 사망 진단서를 썼다. 쓰면서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 나는 어느 범죄를 은닉해주고 허위 증명서를 쓰고 있다…. 이 행위에 의해 나는 나 자신을 범죄인으로 만들었다. 발견되면 의사등록도 취소되고 감옥에 갈 것이다. 나는 꼼꼼히 그 진단서에 흡수지를 대고 쓰고 나서 그것을 블레어 손에 건네 주었다.

“한 잔 하고 돌아가시오, 부장.”

“그럴까요, 선생님.”

함께 스카치가 담긴 글라스를 손에 들었다. 몸집이 큰 부장은 위스키 스트레이트를 마시고는 손등으로 수염을 닦고 나서 헬멧을 썼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 문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경찰서에서도 말이 있었지만, 마침 그때 현장에 선생님이 나타나신 것은 꽤 운이 좋았었군요. 왜 선생님이 그곳에 갔는지 저희들은 모릅니다만…” 갑자기 그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 “그것은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생님께 전해 달라고 총경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선생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 해 여름 릴리 하리스는 다른 많은 젊은 여자들과 함께 하녀로 일하기 위해 캐나다로 떠났다. 세실 원장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 대해 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는 틀렸다. 1년 반 정도 지난 뒤 그녀한테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예쁘게 그려진 그림엽서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어느 젊은 농부와 결혼하여, 사스카체완의 보리 농사 짓는 지방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림엽서를 원장에게 보여 주자 원장은 엄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로 하느님의 훌륭한 종이었다는 것을 아시게 되셨지요?”

이것에 대해 나는 약간 무례한 대답을 했다.

“언젠가 하느님이 치료비를 주시는 것을 잊어 버리시지 않을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만.”

 

 

4. 대주교와 하인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수녀원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이 작은 선행의 성채의 평화로운 모습을 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 혼잡한 대도시 한가운데에 자리잡고서 두 그루의 보리수가 그늘을 이루고 있고, 작은 뒤뜰에 화원이 있는 이 한적하고 질서정연하며 청정한 성채를, 그 문지방을 넘음으로써 사람들은 명상적이고 신비스런 정밀의 세계로 들어간다. 성당은 작지만 특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내부의 마룻바닥은 칠하지 않은 생나무 그대로이며, 제단은 장미 빛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고, 크고 별로 좋지 않은 십자가가 그 위에 놓여있다. 촛불이 껌벅대며 성함의 놋쇠 문이라든가 그 양 옆의 꽃들에게 부드러운 빛을 던지고 있다. 주위의 벽에는 십자가에의 길을 표시한 수난의 예수상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마찬가지로, 묵묵히 끓어 앉아 있는 검은 옷의 수녀들의 모습도 희미했다. 침묵이 수녀원의 성당 안만큼 깊게 느껴지는 곳은 없었으며, 그것은 깨끗한 자에게는 안심과 기쁨과 세상에 없는 법열을 넘치게 하였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항상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후회로 괴롭힘을 주는 침묵이었다.  그 즈음은 사실 불완전하기니 했겠지만 아마 자신의 생존에는 확고한 목적이 결여 되어 있다는 것, 5기니의 사례금을 차곡차곡 쌓는 것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을 의식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의 장래는 거의 생각하지 않은 채 일시적으로만 피하고 있는 어던 종류의 중요한 의문이라든가, 그리고 가슴 속에서 속삭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럴 때마다 내 마음은 자신에 대한 불만에 견딜 수 없게 되어져 굳게 생활의 개혁을 맹세하곤 하지만, 불행하게 이 결의도 한 번 바깥 세상의 여러 가지 오락과 접하게 된다든가 바쁜 일에 열중하다 보면 유감스럽게도 실행을 못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덕이 없는 나였지만 나는 수녀들과 곧 친하고 되었고, 수녀들은 나를 위해 그녀들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선물을 – 기도를 – 올리는 것으로써 최선을 대해 주었다. 수녀들 중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세실 원장은 물론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세피네 수녀도 역시 좋았다. 우람한 체격에 법의를 두르고 근시인 눈에 철 테 안경을 쓴, 견습 수녀들의 감독이다. 또한 주장 관리를 하고 있으며, 항상 생글생글 웃고 있고, 벚꽃 색깔의 볼을 지닌 벨기에 사람이인 마리 임마뉴엘 수녀도 좋았다. 안색이 워낙 좋지 않고 볼이 움푹 페인 젊은 브리젯트  수녀의 얘기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녀는 아일랜드의 리마리크 출신으로 불행하게도 폐결핵인 탓인지, 그 슬픈 듯한 그러면서도 조용한 푸른 눈은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선량한 수녀들이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면, 나를 정신적으로 붙든 채 놓지 않았던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수녀 카타리나였다. 검은 머리에 사프란 빛 피부를 가진 몽상적이고 그러면서도 지성적인 까만 눈동자의 카타리나는 순수한 로맨티스트로서 과거를 좋아해 그저 14세기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푹 빠져 있었다. 이 시대에 대한 그녀의 지식은 실로 백과사전적이었는데, 나와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그녀는 스칼라 왕조가 베로나로, 에스텐시 일족이 페라로 시작된 이야기라든가, 라벤다가 파도바와 싸웠고, 루치아가 피렌체를 물리친 이야기들을 해주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핀투리키오[15,6 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덕이 높은 프라 안젤리코[15세기 아틸리아의 종교 화가], 유감스럽게도 덕의 면에서는 약간 처지는 프라 발토로메오 [15세기 초의 이탈리아의 화가로서, 로프테이로에게 영향을 줌],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의 그림을 기리기 위해 7년간이나 위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던 미켈란젤로의 이야기, 나쁜 여자 라 포르나리나에게 홀린 불쌍한 남자였지만 요절하기 직전까지 바티칸 궁전에서 회랑의 장식에 종사했던 라파엘로의 이야기 등.

조각가의 이야기도 나왔고, 위대한 건축가들, 예들 들면 산타 마리앋데르 피오레의 대성당을 세운 도나텔로와 브르넬레스키 [전자는 이탈리아 15세기의 유명한 조각가, 후자는 같은 시대의 건축가], 판테온과 쿈스탄틴 황제의 대 회당을 연구하여 산 피에트로 대 성당보다도 훌륭한 설계를 한 브라만테 [이탈리아의 건축가로서, 16세기 클래식 양식의 확립자], 그리고 물론 카발칸티, 라포잔니, 단테 등의 시인들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그녀는 단체의 시를 자주 인용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화려한 이탈리아의 성인들까지에 이르고 – 그녀는 그 전부를 외우고 있었는데 그들이 한 모든 선행, 그들이 행한 모든 기적들을 알고 있었다. 중세기의 모든 전설을 많이 알고 있는 그녀는 보기에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상상력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가 재미없어진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 이야기들 중에 지금도 내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내가 그녀에 대하여 어떠한 묘사를 더하기보다도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독자들이 카타리나 수녀의 성품과 인품에 대해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Di un monaco che ando al servizio di Dio'(신께 봉사하러 가는 어느 한 신부에 대해서)란 이야기인데, 그녀가 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의 열심스러운, 더욱이 꿈꾸는 듯한 목소리를 나는 지금도 귓전에서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0여 년 전, 남 이탈리아의 한 벽촌에 아주 사이 좋은 두 소년이 살고 있었다. 마리오는 똑똑하고 자신감이 강했으며, 유목한 지주의 아들로 두 소년 중에서 형 격이었다. 그리고 충실한 동생 격인 안셀모는, 공부도 못하고 아버지는 마을의 구두 수선공이었다.

둘이서 시골길을 걷고 있을 때면 언제나 마리오는 심각하게 자신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신앙심 깊은 부모들은 그를 수도원에 넣기로 결정하고 있었는데, 마리오는 무엇인가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격으로서 교회 의식의 존엄함이라든가 훌륭함에 대해 감격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이러한 결정은 그에게 있어서 불유쾌하지는 않았다. 특히 그는 훌륭한 설교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양지바른 언덕에 있는 포도밭에 둘이서 벌렁 드러누워 있을 때 마리오가 외쳤다.

“나는 설교를 잘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어던 대가 代價 라도 치를 텐데.”

안셀모는 성실하고 애정이 깃든 눈으로 친구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마리오, 난 매일 네가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겠어.”

이 말이 안셀모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 왜냐하면 그는 그리 신앙 깊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마리오는 그만 깔깔 웃고 말았다. 그래도 우정을 표하기 위해 그는 상대방의 가늘고 약하게 생긴 어깨를 쥐었다.

“Amigo mio 내 친구여, 고맙다. 하지만 그건 그렇고, 나는 수사학 修辭學 을 공부하려고 해.”

무난하게 마리오는 프란치스코 회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안셀모는 몇 달인가 혼자서 쓸쓸히 마을에 남아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떨어져 있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 그는 친구의 뒤를 따라 같은 수도원에 가서 재속 在俗 수도사, 즉 교단의 심부름꾼이 되어 원내의 천한 일들을 맡아 하게 되었다. 신분의 차이는 두 사람을 갈라 놓기는 했지만 적어도 안셀모는 마리오와 한 지붕 밑에서 살게 되었고, 밭에서 일하거나 가축을 돌보거나 식당을 청소하거나 하면서 사랑하는 친구와 눈으로 말할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잠깐씩이나마 말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만기가 되어 마리오는 신부가 되었다. 부활제인 어느 일요일에 그는 취임 설교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전날 밤 회랑을 거닐고 있으려니 그림자 같은 사람의 모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해 주게, 마리오….! 나도 들을게…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

다음 날 아침 설교단에 올라설 때 마리오가 맨 처음 본 사람은 아래쪽 회중석 구석 기둥에 기댄 채 기대에 찬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안셀모였다.

이 침묵의 선물에 용기를 얻은 마리오는 그로서는 최상의 설교를 했다.

성령이 내린 듯한 설교였다. 이 역사 깊은 수도원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설교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마리오는 간간이 유창하고 힘찬 설교를 해서 많은 신부들을 감동시켰는데, 그것은 항상 남몰래 설교단 아래 기둥에 기대어 있는 안셀모의 눈에 자랑스러운 눈물을 머금게 하는 것이었다.

설교자로서의 마리오의 명성은 차츰 높아져 갔다. 같은 지방의 다른 교회에서 설교를 의뢰하는 초청이 들어오면 원장은 그에게 승낙하라고 했다. 그리고 수도원에서는 하인 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안셀모를 데리고 가겠다는 마리오의 요구를 원장은 기꺼이 받아주었다.

몇 년이 지나 두 사람은 함께 이탈리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마리오 신부에게 승진의 기회가 온 것은 당연했다. 그는 국왕의 상임 설교 신부로 임명되었으며, 마침내는 아브르초의 주교가 되었다. 이 지방의 장엄하고도 화려한 주교관의 주인이 되어, 마리오 주교는 마치 왕족과 같은 생활을 했다. 사교계에서는 아낌을 받았고, 로마 교회의 추기경들로부터 초대를 받았으며, 귀족들은 그를 받들어 모셔 이제 그는 대 권력자가 되었다. 몸은 뚱뚱해지고 풍채에도 위엄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실 그 겸손하고 무슨 일이라도 기꺼이 시중드는 그 하인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게 되었다. 안셀모는 허리가 굽고 쪼그라진 모습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마리오 주교에게 순종했는데, 그의 호화로운 옷들을 정성껏 손질하고 보석이 박힌 구두를 닦기도 하고, 주교의 아침 식사에 쓰이는 프랑스 풍의 초콜릿을 정성껏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설교를 하다가 마리오 주교는 주위에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묘하고 왠지 차분하지 못한 기분이었다는데, 내려다보니 언제나의 그 장소에 안셀모가 없는 것이었다. 놀란 주교는 순간 말문이 막혀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진땀을 뺐다. 다행히도 그때는 설교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것이 끝나자 그는 서둘러 성구실 聖具室로 가서 안셀모를 곧 불러 오라고 명령했다.

한참 동안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한 사람의 노 老 신부가 조용히 말씀 드렸다.

“안셀모는 십오 분쯤 전에 죽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교의 얼굴에는 너무 놀라워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빛이 나타났다.

“벌써 몇 달 전부터 안셀모는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이것을 주교님께 알려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슬픔의 파도가 마리오의 가슴에 밀려왔는데, 그 한탄스러움보다 더 절실했던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도둑 맞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주교는 신음하듯 말했다.

“그가 있는 곳으로 날 안내하게.”

묵묵히 마구간 뒤편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지푸라기로 덮인 침대 위에 낡은 옷을 걸친 죽마고우 안셀모의 유해가 있었다.

주교는 가만히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과연 그는 이 비참한 가난을 자기 방의 그 호사스러움과 비교하고 있었을까? 주교는 노신부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여기서 살고 있어나?”

“네. 주교님.”

“그래, 그런데… 뭘 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

“주교님;” 하고 노신부는 깜짝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주교님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주교님, 안셀모에게는 남은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날마다 정원에 나와서 자신의 밥그릇에다 새들에게 먹이를 주곤 했고, 이 성전 문 앞에 모여드는 아이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또 부엌에서 거지들을 보살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기도도 하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그 말을 마치 처음 들어보는 말이나 되는 것처럼 주교가 물었다.

“네, 주교님. 재속의 형제치고는 이상하리 만큼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제가 물어 보기라도 하면 항상 웃으면서 ‘제가 좀 뜻하는 바가 있어서’하고 작은 소리로 말하곤 했습니다.”

주교의 표정은 갑자기 변하였는데 다른 사람들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마치 심장에 비수가 꽂힌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안셀모의 진가를 정확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든지, 아니면 또 만약 그의 요즈음의 행동이 오만했든지 간에 그는 이대로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곧 로마로 가서 상 피에트로 대성당의 대주교들 집회자리에서 설교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그가 천천히 설교단 위로 발을 옮기고 있을 때 대 성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예로운 날이었으며 그의 자랑스러운 경력이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숨을 죽인 채 주목하고 있는 청중들 앞에 섰을 대 그의 입술에서는 너무 진부한 상투어만 흘러 나왔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그는 설교단 아래를 내려다 보았지만 그 열렬했던 눈동자들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갈팡질팡하면서 마리오는 설교를 간단히 끝마쳤다. 그리고는 너무 치욕스러워 상 피에트로 대성당을 뛰쳐나왔다.

이렇게 깊은 자존심의 상처를 입도록 자신을 당혹하게 한 그 어리석은 공상을 했던 것에 분노를 느끼며 그는 세심한 주의를 해가면 다음 설교 준비에 착수했다. 자신이 – 아브르초의 주교이자 이탈리아 제1의 설교자인 자신이 재능도 없고 이름도 없는 한 재속의 형제에게 달려 있었다는 일 … 아아, 이것은 미치광이 짓이다! 하지만 역시 설교를 하려고 나서면 자신의 말에는 정기가 없었다. 이 파멸적인 강박 관념은 계속되어 차츰 악화되어 갔으며, 마침내 어느 날 마리오 주교는 기력을 완전히 잃어 설교단에서 부축을 받아 내려오기에 이르렀다. 도와 준 사람들에게 그는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 진짜였어… 그 녀석이 실체였어…. 나는 공허한 껍질에 불과해…”

의사들은 너무 과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건강과 기력이 회복되도록 피레네 산지로의 전지요양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그가 맨 처음 신부직을 임명 받았던 그 수도원에 가는 일이었다. 거기야말로 살아 생전의 안셀모가 맨 처음 자기를 받들어 일했던 곳이고, 지금은 그 재속의 형재가 묻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마리오는 은둔 생활을 하며, 수도원 정원을 고독한 명상에 잠겨 거닐다가는 매일매일 올리브나무 그늘 밑에 있는 묘지를 찾았다. 그런 그의 마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었다 – 기름진 거만함은 사라지고 행동은 겸손해져 갔다. 어느 날 오후 수도원장은 뜻밖에 그가 안셀모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마리오가 일어 섰을 때 수도원장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떠시오…” 경의와 친애의 말투로 수도원장은 미소 지었다.

“당신은 그 멋진 설교를 다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나요?”

“아닙니다, 원장님.” 하고 마리오는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좀 더 큰 축복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겸허라는 것입니다.”

 

 

5. 결혼과 가정

 

의사들은 대도시에서 결혼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본다. 전에 내가 추운 농촌 지방이라든가 웨일즈의 탄광마을에서 의사를 하고 있었을 때에는 가족이란 조직은 비교도 할 수 없이 존중되고 있었다. 이런 변두리 지방에서는 가족들은 모두 힘을 합쳐 땅이나 탄광에서 생활의 밑천을 벌기 위해 일하고 가족은 사회의 본질적 단위로서 그것이 유일무이한 필수적인 구성요소라는 것에 의해 존재했으며 또한 존재해 왔다. 특히 타노크브레에서는 부모들도 아이들도 똑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저마다 맡은 일을 한다.

가축을 돌보고, 우유를 짜고, 또 밭을 일구고, 빵을 굽기도 하며, 요리를 해서는 깡통 안에 넣기도 했고, 매주 세탁일에는 춥고 더운 것을 가리지 않고 문지르고 헹구기도 했다. 이 지독하고 간소한 생활에는 의무란 관념이 있었으며, 또 한 가족이 함께 모여 드리는 저녁 기도에서 나타나듯이 강한 종교적 감정도 있었다.

쾌락은 도시 못지 않게 맛볼 수 있었지만 빈번하지 않았으며, 그 외견의 검소하고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각기 스스로의 그 자체로부터의 보상과 만족을 얻고 있어서 결코 무너지는 일이라곤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맺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런던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여기에서는 모든 쾌락과 편익과 또 놀음과 자극이 대도시에 있어서의 이른바 문명의 절대적인 집중에 의해 영위되었으며, 이런 것들 때문에 가정은 강력한 파괴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보다 원시적인 사회에서는 가족을 일치 단결시키는 결합력이 있었던 것에 비해 이곳에는 가엾게도 결여되어 있었으며, 그 결과로서 내가 접한 예로는 가족은 분명히 분열되어 있었다.

이 대도시에서는 이혼 재판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 많은 딱한 파혼 사례가 내 눈에 띄었다. 그 비참함, 갈 바를 몰라 환멸을 맛보는 아이들, 천박한 증오와 원한, 가끔 일어나는 손댈 수 없는 분쟁,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 사태는 너무나도 비참했으며, 몇 번이나 나는 백일하에 어째서 제 정신을 가진 인간들이 이렇게도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많은 결혼이 파경에 이르는 주된 원인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람들이 너무나도 가볍게, 너무나도 성급하게 결혼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에 대해 완전히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부부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혼인의 제1의 기초로서의 성적 매력의 관념은 구역질 날 것 같은 로맨티시즘에 젖어 영원한 밀월 운운하는 거짓된 희망으로 감미되어서 현대적인 꿈의 불가결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육체의 매력은 결혼에 있어서 경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성공한 결합의 경우는 결혼생활이 20년, 30년, 아니 4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에는 루비와 같은 입술이라든가 빛나는 눈동자, 흔히 광고에서 볼 수 있는 핑크빛이나 크림색 피부의 매력 같은 것과는 다른 더욱 무한히 중요한 요소가 있다. 인생의 험한 산길은 엷은 비단 네그리제보다는 질긴 옷을, 하이힐보다는 튼튼한 신발을 요구한다. 한눈에 반한 사랑은 위험한 착각이다. 성급히 결혼해서 천천히 후회한다는 옛 속담만큼 현명한 진리는 없다. 최초의 뻐꾸기 울음소리에 정신을 잃고 상대의 품안으로 뛰어드는 젊은 남녀들의 절반이라도 이 실상을 알 수 있도록 교육 받았다고 한다면 그 참혹한 결혼 후의 ‘실망과 낙담’ 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 직전 흥분하고 있는 청년에게 나는 꼭 키필링[현대 영국의 소설가로서 ‘키므’의 저자, 노벨상을 받음]이 여성에 대하여 쓴 ‘헝겊과 뼈와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라는 말을 인용했으며, 젊은 신부에게는 곡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영웅, 당신의 위대한 애인은 무수히 있는 평범한 남자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라고.

저 불후의 명작 속의 인물 웨크필드의 목사 [18세기 영국의 시인이며 작가인 골드 스미스가 쓴 소설 속의 주인공]는 처음 등장했을 때 대사에서 제대로 이 문제의 핵심을 찔렀다. 그는 말한다. “내 아내가 혼례 의상을 고른 것처럼 나는 내 아내를 골랐다. 즉, 언제까지나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하고. 신부가 아프로디테[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연애와 미의 여신 비너스를 가리킴]와 같은 미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는 자주 농담 섞인 악담의 ‘표적’이 되곤 하는데, 구매기간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남녀 한 쌍은 몇 년에 걸쳐서 함께 ‘나가 돌아다니고’ 끈임 없이 긴밀하게 교제하며, 서로 상대를 잘 알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서로 의논하고, 저금하며, 공동생활을 위한 실질적인 결정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이 유예기간이 지나 드디어 동거생활에 들어갔을 때 이해와 존경의 튼튼한 기초 위에서 생활할 수 있으므로, 결혼생활의 초기에 자주 생기는 여러 가지 위험과 만나는 일은 없게 된다.

확실히 누구에게나 결혼 초의 수 개월은 가장 중요하다. 결혼식의 흥분도 사라지고, 밀월의 황홀한 심신의 피로도 가라앉았을 무렵 신혼 부부가 예상하지 못했던 심한 동요와 함께 대지 위로 내려오는 일이란 그리 드물지 않다. 그들은 함께 산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며, 동거가 시작됨과 동시에 거친 솔로 거꾸로 쓰다듬는 듯한 다루기 어려운 생활의 여러 사실 – 경제상의 문제, 가사 처리, 성에 대한 의문과 곤란, 친척, 종교, 서로간의 개인적 습관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는 것들도 모두 포함하여 – 그런 여러 가지 일들에 부딪쳐서는 그것에 자기네들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 ‘결혼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많은 기대를 갖고 빛나는 누각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부엌 싱크대 위에는 산더미 같은 기름투성이의 접시, 정리되지 않은 침대, 젊은 남편이 의례적인 키스를 한 뒤 회사로 가는 버스에 늦을까 봐 정신 없이 뛰어갈 때의 아파트 문 닫히는 소리, 그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그럴 때 인생은 갑자기 으스스해지고 맥이 빠져 버리며, 견딜 수 없을 만큼 따분해진다. 방심할 수가 없는 생각이 결혼 당사자들의 의식 밑에서 싹트는 것은 그럴 때이다. 내가 이런 운명적인 길을 선택한 것은 과연 현명한 짓이었을까? 나는 자유로움을 지키고 있었던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베이즈워터 뒷거리에 있는 초라한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나는 마침 이런 한 쌍의 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6. 의사 직업을 그만 두다

 

 

 

제4부

 

 

1. 처녀작 處女作의 탄생

 

2. 시골 의사

 

3. 종교

 

4. 산상 山上의 교회

 

5. 가난한 자의 촛불

 

6. 영혼의 도시

 

7. 폐허에 싹트는 것

 

8. 신 神과 그 존재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정신의 나라는 우리에게 있어서 점점 더 중요성을 더해간다. 맹목적이고 얼뜬 바보가 아닌 이상 성숙한 나이에 이르면 인간은 가끔 이 세상의 복잡한 갈등 속에 서서 ‘왜 나는 이런 곳에 서 있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하고 자문해 볼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지나는 것이 빠르고, 또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서 이런 자기 분석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의학생이란 원래 별로 신앙심이 없는 법인데,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는 않았다. 해부실에서 포르말린으로 소독한 시체를 해부하고 있노라면 인간의 몸도 하나의 복잡한 기계 이상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떤 해부를 할 때든지 인간 영혼의 불멸을 증명할 것을 본 적이 없다. 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예의 진부한 신화에 대한 생물학적 경멸을 나타내는 우쭐한 미소를 띄우곤 했었다.

그러나 마침내 의사의 자격이 주어져, 세상에 나가 남 웨일즈의 탄광마을로 가서 진료에 종사하면서 놀랄만한 고난과 싸우고 있는 동포들의 용기와 명랑함을 관찰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정신의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갔던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기적을 돕고 있을 때, 깊은 밤에 위험에 빠진 환자의 옆에 앉아 약한 죽음의 어두운 날개짓의 무자비한 퍼덕거림을 듣고 있을 때 나의 사고방식은 점점 자신을 잃어 갔다.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경험의 고통스러움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내게도 분명해졌다. 나는 실제의 범위란 교과서가 가르쳐 준 것이라든가 전에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컨대 나는 자신의 우월감을 일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당시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신을 발견할 수 있는 제 일보였던 것이다.

나는 앞에서 올웬 디비스에 대해 독자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20년 이상에 걸쳐 견인불발의 인내력으로 그러면서도 온화함과 쾌활함을 잃지 않고 트리게니에 사는 사람들에게 봉사해 온 그 중년의 간호원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성격의 기조로 보이는 무의식 속의 무사 無私 정신은 너무도 보답되는 바 적었으므로 그것이 항상 내 마음을 괴롭혔다. 어느 날 밤 늦게 특별히 힘든 치료를 끝낸 후 나는 그녀와 함께 홍차를 마시면서 큰 마음 먹고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디비스 간호원.”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왜 봉급을 올려 달라고 하지 않소? 당신이 그렇게 싼 월급으로 일하고 있다니 너무 어리석어.”

그녀는 가볍게 눈썹을 치떴다. 그러나 곧 미소 지었다.

“살아가기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니까요.”

“아니, 정말이지.” 나는 그래도 지지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일 파운드씩은 더 받아야 돼. 하나님도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 거야.”

그녀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엷은 미소는 여전했지만, 시선에는 엄숙함이 가해졌으며 그 격한 눈빛은 나를 놀라게 했다.

“선생님.” 하고 그녀가 말했다. “만약 하느님이 알아만 주신다면, 그것만으로 저는 충분합니다.”

아주 적은 말수였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 깃들어 있는 의미는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그녀는 종교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녀의 전 생활, 그 봉사와 자기의 희생이 하나의 헌신, ‘지고 至高의 존재’에의 신앙에 대한 부단한 증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그녀의 생활의 풍요한 의의와 그에 비해 내 자신의 공허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신학 교수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기도를 인도하기 위해서 일어나 달라고 요구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또한 특정한 종파라든가 교의를 끄집어내서 다른 것을 배척하는 따위의 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신 神에게 신앙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부도덕한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이런 일에는 꽁무니를 빼는데, 이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오늘날에야말로 한층 주목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참으로 여태까지 이러한 문제가 이렇게 절실하고 또한 이렇게도 중대한 것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무신론적인 이데올로기로 맺어진 세계의 반은 종교에 대해 가차없는 공격을 가하고 있으며, 창조주에 대한 사상을 영원히 흙구덩이 속에 내팽개치려고 잔인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우리들 다른 절반의 사람들은 끝없이 마음 속에서는 괴로운 정신적 기아를 느끼면서 대다수는 신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극히 냉담하며, 지금 우리들을 협박하고 있는 정신생활에 대한 무서운 위험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생활의 진실한 의미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근대사조는 과학의 진보와 전통의 폐멸 廢滅을 강조한 나머지 신의 실재를 정면에서 의문시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의혹과 투쟁과 공포에 휩싸인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믿지 않게 되어 여러 가지 일시적인 안심으로 미래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

나의 신앙을 형성하기에 이른 정신과정을 여기에서 밝히려고 하는 것은 인류적인 문제에 있어서의 이런 절박한 위기위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처음에 이야기해야 할 것은 초자연적인 신앙을 초래하는 동력은 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점이다. 신은 수학의 방정식처럼 증명할 수도 없고 신의 존재는 유크릿드의 기하학 문제처럼 논증할 수도 없다. 역시 분명히 무한한 존재는 유한한 조건하에서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 우리들 인간의 능력으로는 신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신을 발견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두세 가지의 단순한 논점이 이기에 있다.

만약 우리들이 물리적 우주를 그 신비함과 경이스러움에 있어서, 그 질서와 착잡성에 있어서, 그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광대함에 있어서 고찰한다면 우리는 원초의 ‘창조주’란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용한 여름 밤하늘을 우러러 저 멀리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을 보면서 이 같은 우주가 맹목적의 불확정된 어떤 우연 이상의 무엇인가에 의해 존재하게끔 되었다는 압도적인 확신을 품지 않는 자들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 자신에 세계, 정해진 리듬에 따라 공간 속을 회전하며 변함없는 계절이 운행을 계속하고 있는 이 세계가, 태양으로부터 아주 우연하기 그지없는 사고에 의해 떨어져 나온 무의미한 물질인 구체 球體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품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를 하느님이 손 댄지 6일만에 만들었다고 하는 성서 속의 하느님에 대한 설명을 단순한 공상으로서 지나쳐 버리려고 한다면 그것도 좋으리라. 아담에게, 그의 손가락에서 생명의 불꽃을 전해 주는 시스틴 성당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턱수염을 길게 기른 장로 같은 모습 – 과거에 소박한 신앙을 지녔던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던, ‘창조주’, ‘하느님’의 원형 – 에 대해서도 만약 웃고 싶으면 웃어도 된다. 화석이나 원종 原種에 대한 진화론, 자연계의 여러 가지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학설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초보적이고, 그러면서도 심원한 똑같은 신비와 직면할 것이다. 우리들이 학창시절에 배웠던 라틴어 관용구에 있듯이 ‘Ex nihilonihil’ (어떤 것이든 무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이다.

몇 년 전에 나는 여가를 이용해 어느 근로 청소년들의 클럽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유명한 생물학자에게 회원들을 위한 야간 강연을 의뢰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약간 달랐지만, 그래도 역시 훌륭한 강연이었다. 분명하게 청년들은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는 의도에서 그 학자는 ‘우리들의 세계의 시작에 대해서’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솔직히 무신론자적 입장에서 그는 몇 백만 년 전인지도 모르는 옛날, 원시의 땅 위에서 출렁거리고 있던 태고의 바다가 물리화학적 반응에 의해 떠다니는 찌꺼기를 발생시켜 여기에서 동물의 최원시적인 형태, 원형질 세포가 –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출현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풍요롭게 자라나지 못한 소년들에게는 무엇인가 가슴에 와 닿는 듯한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예의 바른 갈채가 일어났다. 이에 이어서 어쩐지 숨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한 얌전하고 아주 평범한 소년이 조심조심 일어섰다.

“‘실례합니다만, 선생님.” 그는 더듬으면서 말을 했다.

“지금 하신 말씀 중에, 커, 커다란 파도가 해변에 부, 부딪쳤다고 하셨는데, 왜, 왜, 왜 그 전부터 물이 그곳에 있었습니까?” 강연의 과학적인 내용과는 정반대인 이 소박한 질문으로 장내는 아연해 졌다. 침묵이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강연자는 곤란해서 주저주저하며 점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클럽 전체가 폭소를 터뜨렸다. 이 시험관 속의 리얼리스트가 제공한 정묘한 논리 구조는 단순한 두뇌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소년의 단 한 마디로 인해 꼬깃꼬깃 구겨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사실 이 같은 절대적인 공포감을 솟구치게 하는 과정, 우리는 도어지 볼 수 없는 저 끝없는 시간의 심연 속으로 멀리멀리 뒷걸음질 쳐가는 이 과정에 대해서, 그 성질이나 목적을 아무리 과학적으로 연구한다 하더라도 신의 존재를 거부할 수 있는 증거는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원초적 창조에 있어서는 또한 우주의 운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법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있어서는 또한 우주의 운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법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있어서는 항상 ‘지고의 예지’가 가해져 있다는 것, 이제까지도 그래 왔고, 또 장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결론으로 우리는 이끌려 갈 것이다.

많은 성실하고 선량한 의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신념에 대한 장애의 돌은 현세의 생활에서 이렇게도 광범위하게 지배적으로 되어 있는 악과 고통이라는 것 속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묻는다. 이렇게 괴로운 현세 – 태풍이나 홍수, 기근, 악역 惡疫, 지진, 벼락, 무서운 그리고도 아주 고통스러운 질병, 또는 극히 잔학한 죽음 등에 의해 괴롭힘 당하고 있는 세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어떻게 이런 ‘신의 존재’란 것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신답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네가 말하는 ‘신’이란 무척 불완전한 창조자일 것임에 틀림없다고 그들은 외친다.

이런 난문에는 한 가지 대답이 있다. ‘욥기’ [신을 믿는 마음이 두터웠으며, 모든 고난에 이겨 이고의 생활을 보낸 히브리의 족장 욥의 생애를 그린 ‘구약성서’ 중의 한 대목] 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저 위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부르짖음만큼 간단하게, 또한 아름답게 이 대답이 표현되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정말 인간들의 지상에서의 순간적인 생활의 참의미와 목적을 이해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슬프게도 이 유물론적인 시대 속에 살며 쾌락의 추구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오락에의 싫증날 줄 모르는 욕망에 끌려 단순한 향락은 존재의 전부도 목적도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다. 만약 우리들이 신과 우리들 자신의 불멸을 인정한다면, 우리들의 인생은 단순히 이 세상 구경이나 하는 것이 아닌 준비의 – 너무나도 짧은 – 기간이라는 것, 영원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들이 이른바 미래의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시련과 인내를 경험하는 한 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다. 실로 우리는 괴로워하고 고민하도록 원래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고뇌에서 도망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고뇌할 것이다. 전에 이 세상에 살고 있었던 가장 현명한, 게다가 가장 겸허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토마스 아켐피스 [15세기 독일의 성직자이며 철학자로서 ‘그리스도를 본받다, 준주성범’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 ‘고뇌가 너희들에게 있어서 슬픈 것이라 생각되고 너희들이 그것에서 도망치려 하는 바 너희들은 괴로워할 것이며, 너희들이 도망치려 하는 가난은 어디까지라도 너희들을 쫓아올 것이다.’ 라고.

불만과 고통, 실망과 불안 과를 달게 받아들임으로써, 비애의 고배를 바닥이 드러나도록 마셔 버림으로써, 우리는 신의 의지에의 복종이라는 최고의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가 있다. 울들은 우리의 욕망의 허무함을, 우리들이 정신없이 소망하고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이 세상 재물의 허무함을 알게 될 것이다.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나서 비로소 우리는 복종하게 된다. 욥의 경우, 그가 그 숭고하고 그 위대한 신앙의 행실에 있어서 드높이 외친 것은 그 같은 태도였다.

“무슨 일이든지 내게 올 테면 오너라…하느님이 우리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하느님께 부탁 드리리라.”

그리고는 새로운 환상에 황홀해지고, 기쁨에 넘쳐서 계속 소리 질렀다.

“나 ‘하느님’을 귀로 들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을 눈으로 뵈었느니라.”

우리에게 신을 보여 주는 것은 이 ‘보아 받드는 눈’, 이 내적인 빛의 침투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약한 개미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내부에의 추구를 계속하면서, 어떻게 추리하더라도 마지막 분석에서 우리는 ‘무한이란 표면에 작은 흔적조차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의 계시는 마음 속에서만 오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나는 어느 맑게 개인 오후 피렌체에서 페에솔레 [피렌체에서 가까운 이탈리아의 요양지] 근방의 언덕 위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으로 차를 몰았다. 이때 나는 그 아름다운 14세기의 교회당을 찾아가 정교한 장식문자로 쓰인 수사본 手寫本 을 열람하고 ‘주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훌륭한 예술의 걸작들을 볼 수 있는 특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걸작들 중 최대의 보배를 발견한 것은 그 후 작은 수녀원의 뜰을 거닐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노인과 이야기했다. 고생과 류마치스 때문에 허리는 굽었지만 눈동자의 빛은 잃지 않은 이 따스한 영혼은 벌써 30년 이상이나 얼마 안 되는 토지를 경작하며 끊임없이 기도를 드려 왔는데, 내가 질문하자 그것에 대답하면서 자기가 특별히 돌보고 있는 과수원을 가리키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저 벚나무가 봉우리를 맺고, 그리고 꽃을 피운 후 열매를 맺는 것을 보아 왔지요. 그럴 때 전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들이 만약 이 같은 신앙, 이 같은 신뢰의 100분의 1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만약 이처럼 완전하게 자신을 포기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또한 하느님에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자기 포기이다. 그러나 발걸음이 이 길을 따라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우리들의 자신감은 점점 커지고, 우리들의 지혜는 늘어날 것이며, 마침내는 확신에까지 도달한다. 그리하여 설사 희미하게라도, 저 궁극적인 환영의 최초의 미광을 보았을 때 이곳에 이 환영이 없는 생활의 무서운 불모 不毛, 그리고 무가치함에 대한 엄청난 자각이 찾아오는 것이다.

전에 병원을 하고 있었을 때 나는 어느 북부 지방의 마을에서 어떤 저명한 인물의 병을 보아준 것이 있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서 자신의 무신론을 긍지로 여겨 온 사람이었다. 전에 자신의 외동딸이 아주 신앙심 깊은 교사와 결혼했다 하여 그 외동딸과 말다툼을 하고는 그녀를 내쫓아 버렸는데, 인생도 다 끝나갈 무렵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이상한 변화가 이 노老 회의주의자에게 찾아왔다.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가슴 아프게도 그들 에워싸고 있는 지금, 그는 마음의 변화보다도 딸과 사위에게는 자신이 정당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거의 광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몇 번인가 그는 사위와 말을 하기 위해 딸의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마음이 동요하고 있었다 해도 그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항상 마지막에는 이렇게 내뱉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속이면 안 돼. 난 후회하고 있지 않아. 난 지금도 아직 신을 믿고 있지 않거든.”

이에 대해 어느 날 딸은 선천적인 기지를 발휘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 하느님 쪽에서 아버지를 믿고 있어요.”라고.

이 단순한 말이 노인의 마지막 저항을 무너뜨렸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상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역시 하느님의 자식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 한 마디의 신앙만 있으면 족하다.

아브라함 링컨은 매일 밤 꿇어앉아 자신의 생각을 하늘에 전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현명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위대한 모범에 따를 수가 없는 것일까?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인간들이 진실한 고결함과 빛나는 모범을 보여 주었고, 그들의 생애를 하느님 위에 형성해 오고 있다.

하느님은 약한 자에게 용기를, 지친 자에게 힘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마음이 찢긴 자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셨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도, 주위에도, 바다에도, 하늘에도 모든 곳에 편재하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을 원하기만 한다면.

 

 

9. 나의 신조 信條

 

다시 봄이 되어 온화한 서풍으로 부드러워진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나날이 되었다. 서재에 들어가 내 책상 앞에 앉았으나 아침의 아름다움에 나는 일에서 해방되고 싶어진다. 창 밖의 파릇파릇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어느새 몽상에 잠긴다….내성적인 자기 분석의 기분이 되어 과거를 돌이켜 본다.

중년이 되어 과거를 되돌아볼 때 사람들은 분명히 그 지나온 세월이 도대체 자기한테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 하고 자문해 볼 것이다. 이 세월의 빠른 물살 속에서 내가 만약 무엇인가 배웠다면 – 캘빈그로브 숲을 지나 의과의 교실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세계를 정복하려고 분발하였던 그 발랄했던 20세의 젊은 시절도 바로 이제 같은 기분이지만 – 그것은 관용의 덕, 사상과 행동에 있어서의 중용의 덕, 이웃 사람에 대한 인내의 덕이다. 이것들은 슬프게도 앞뒤를 생각하지 않던 그 청년시절에는 나에게 결여되어 있던 성질이었다.

나는 또한 순수한 물질적인 목적의 추구 속에 가로놓여져 있는 많은 미몽 迷夢 도 알게 되었다. 일시적인 명예나 세상의 화려함에는 얼마나 조금 밖에 만족하지 못했던가. 인쇄된 작은 종이다발을 쥐고 결코 채워질 리 없는 식욕을 채우려 하고 있는 이 세상의 환전 상인들에게 달라붙은 이득에의 미치광이 같은 열망이란 얼마나 슬프고 허망한 것인가! 내가 그처럼 열심히 모아 왔던 모든 물질적인 재산은 지금의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사랑의 한 조각보다도 훨씬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나는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잠재하고 있는 움직일 수 없는 것, 또한 도망칠 수 없는 신에의 열망을 확신하고 있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그치지 않는 추구에 나 자신을 잊으려 해도 우리들은 자신의 신적 근원에서 자신을 떼어 놓을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신의 대용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신의 본질 속에 존재하고 있다. 신의 모습은 모든 인류 속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자신의 영원한 미래를 내다볼 수가 없어서 이 신과의 동일성의 감각을 묻어 버린 채, 인간의 생명이 의미없이 동물에서 발생하여 일체의 종말은 무에 불과하며, 내 자신이 환경에 좌우되는 장난감, 아무런 준비도 없는 우연한 희생에 불과한 것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결코 이런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언덕이나 계곡에서, 나는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서 자신을 형성해 가고 있는 내 생활의 양식을 본다. 이 목적은 내가 아이였을 적의 용모에도 새겨졌고, 도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씌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탄생과 함께 짊어지게 된 교의로부터는 아무래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변화를 겪어 온 지금, 지상의 그 어느 것도 나로 하여금 이 교의를 버리게 하지는 못한다. 나는 스스로를, 육체도 영혼도 이미 그 손에 맡겼다. 절대 이유를 묻지 말 것,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겸손에의 자기 포기,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참된 본질이다. 사도 토마스는 믿기 전에 부활하신 주의 상처를 만질 것을 주장했지만 그야말로 이성으로써 신앙을 부드럽게 하여 이 신성한 꾸짖음 ‘보지 않고 믿는 자는 행복하도다’라나 말의 내적인 의미를 잊어 버리고 개인적 도그마의 맨 끝에 집착하는 인간의 원형이다.

그리스도교를 근대의 일시적 풍조에 접합시키려고 하는 모든 계획, 그리스도를 한 사람의 예언자, 위인으로서 합리화하여 그의 기적을 통속 과학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계획 – 나자로 [‘요한 복음’에서 예수의 기적에 의해 죽음에서 되살아났다고 씌어있는 사람의 이름] 는 죽은 것이 아니라 혼수상태에 있었다든가, 눈이 보이게 된 사람은 단순히 일시적인 흑내장에 의한 히스테릭한 상태에 불과했었다는 등 – 이것들은 모두 우리들에게 가장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을 회피하려고 하는 불쌍한 얕은 꾀 이상의 그 아무것도 아니다. 나병환자가 다가와서 고쳐줄 것을 애원했을 때의 대답은 “그대의 신앙처럼 그대에게 이루어지리라”였다.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조차도 우리를 이같이 균형 있는 불안정한 상태로 두고, ‘주’의 신성을 믿으려면 아직도 더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구세주’의 목적이었다. 우리들이 적극적인 증거를 요구할 때, 우리는 저 조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하며 창 끝에 쓴 맛을 섞은 신 포도주에 적신 해면을 마른 입술에다 갖다 대며, “그대가 만약 하느님의 자식이라면 그대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려무나.”하고 신앙을 불필요로 하는 궁극의 기적을 구했던 로마 병사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여기에 마지막 선택이 가로 놓여진 – 전부냐? 전무냐? 우리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 중대한, 저 신비스러운 엠마오 [두 제자가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를 만났다고 하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마을 이름] 에의 길을 갈 때에 우리는 ‘낯선 나그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 와 함께 걷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알 수 없는 얼굴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신 주의 빛나는 모습을 찾아내어야 한다. 신앙을 숭고하게 하는 것은 이 스스로 나서서 행하는 인식의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한 확신의 굳셈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종을 권고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웃 사람들에게 자기네 교회에 나갈 것을 권하며 돌아다닌다거나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파멸이라고 하는 따위로 협박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만약 젊은 시절의 고생이 내게 무엇인가 가르쳐 주었으면 그것은 서로 다투는 종파들 사이에서 내가 목격한 탐욕스러운 고집과, 악의에 가득 찬 증오에 대한 혐오감이다.  교의는 우연한 출생에 의한 것이며, 인종과 조장과, 위도와 경도에 의해서조차 정해지는 것이므로 확실히 우리들의 구원에 대한 유일무이한 요인일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은 가톨릭이든지 칼빈파 이든지 간에 영원한 보수를 받을, 충분히 사라지지 않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인간들이 모두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저 몽상, 인류의 동포애는 교의와 교의와의 다툼이 협력으로 바뀌어지는 것에 의해서만 현실이 될 수가 있다. 그때야말로 인류는 구원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세계의 마음의 변화는 개인의 마음에 있어서만 시작될 수 있으며,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그 자신의 종파에 잘난 체 하고 나만 정당하다는 입술에 발린 봉사를 그만두고 인류적 요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가 있다. 만약 우리들이 ‘산상수훈 [예수가 어느 산 위에서 완전한 덕의 요소에 대해 하신 교훈, 그리스도 교의 중핵을 이루는 것, 마태오 복음 5장]’을 실행에 옮길 수만 있으면 우리의 가엾은, 고민하는 세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얼핏 보아 해결 불가능한 모든 어려운 문제도 떠오르는 아침 햇살 앞에서의 이슬처럼 사라질 것이다.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 무엇도, 어떠한 철학도, 어떤 지상의 권력도, 전 인류의 무거운 짐을 골고타 [예루살렘 부근의 언덕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로 지고 가신 ‘주’의 가르침 없이는 공포에 떨고 있고, 이 박살 난 세계를 재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세계가 혼미와 피폐 疲弊 의 장소로 보일 때, 이것이야말로 어두운 지평선상에 나타난 한 줄기 광명이며 비참과 투쟁으로부터의 해박을 제공해 주는 치료법이다. 이런 광명을 보고, 이런 치료법을 우리들의 영혼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게 있을까? 하여간 여유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며, 그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인류가 서로 더해가고 있는 잔학성, 무관심과 혼란, 전쟁의 위협과 공공연한 적대 감정, 여러 국민을 괴롭히고 있는 파괴와 분열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상의 주님들의 도덕적 갱생에 꺼지지 않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인류의 모든 고뇌는 회개하는 행위이다. 한 방울의 회오 悔悟 의 눈물과 마음 속 깊은 곳에서의 단 한 마디의 외침만으로 충분하다. 성전 입구의 어두컴컴한 곳에 꿇어앉은 세리 稅吏는 슬픔 속에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오, 주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기도이다….나의 기도…. 또한 분명히 우리 모두의 기도이다.

 

 

 

옮긴이의 말

 

크로닌의 자서전적 소설 <천사의 선택>

 

<천사의 선택 (원제목 ‘Adventures in Two Worlds’, 1952)> 은 A. J. 크로닌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글라스고 대학 의학부의 학생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대한 저자는 정신병원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어렵게 학업을 계속한다.

대학 졸업 후, 선의 船醫 가 되었다가 다시 어느 마을의 병원에서 대진 代診 의사로 부임하는 저자. 그것을 시작으로 남 웨일즈의 탄광에서 의무부원이 되어 의사의 본분을 다하다가 마침내는 런던에서 개업의 開業醫로서 대성공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게 되는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우리를 짜릿하게 감동시킨다.

이렇게 의사로써 훌륭하게 성공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처방전과 학술논문 밖에는 써 본적이 없는 펜으로 소설을 쓸 결심을 한다. 이러한 결심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사로서 가지고 있던 명예와 약속된 부 富를 팽개치고 낯선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고야 만다. 저자 자신도 그러한 결정을 ‘Adventures 모험’이라고 하였으니 그 용기는 가히 대단한 것이었다.

무모한 (?) 용기를 내어 처녀작을 쓰면서 저자는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성공이었다. 처녀작은 베스트셀러의 영광을 차지했다. 저자는 문학적 대성공에 따른 수많은 명예와 수입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겸손한 저자에게 허무감과 불안감만을 안겨 주었다.

이때부터 저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이 신 神에의 반역이었다고 자각하는 종교적 회심기를 맞아 종교적인 것들에 깊이 빠져 든다.

이상의 내용을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때로는 벅찬 감동을, 때로는 터지는 웃음을, 때로는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화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A. J. 크로닌 이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인간의 고민과 갈등을 보여 주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한 촌에서 태어나 갖은 역경을 다 겪으면서 의사와 소설가로서 그 명성을 온 세계에 떨치고 있는 A. J. 크로닌. 그만이 가진 리얼한 필치로 인생에 새로운 용기와 행복을 주는 이 작품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보아야 할 걸작인 것이다.

 

** 지금도 ‘필사 筆寫’ 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Disclaimer: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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