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31-208x300하루 한 순간을

홍윤숙 저

 

성바오로출판사

 

 

 

 

 

책 머리에

 

호도(胡桃)를 까는 마음

 

1960년 대를 휩쓸었던 로크 음악을 우리는 지금도 기억한다. 샌프란시스코우에서 기아에 허덕이던 불쌍한 어린이에게 바쳐졌던 한 무명 작곡가의 로크 <샌프란시스코우>가 전미국의 히피들을 열광케 했던 일도 어제 같다.

흑인음악에 반발하여 일어났던 미국의 현대 대중음악이 열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로크도 이젠 퇴색하고 다시 쏠과 싸이키의 시대로 전환한 지도 오래다.

물론 나는 음악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이지만 이 현상을 흑인음악에서 시작했던 미국의 현대 대중음악이 로크를 거쳐 다시 그 발상지인 흑인음악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표현한다면 터무니 없는 잘못일까.

한 때, 우리의 고유한 의상인 한복이 나일론 만능의 물결을 타고 버선에서 속옷에 이르기까지 나일론 일색의 가관을 이룬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뜻있는 이들의 의장 속에는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사랑하시던 주사, 고사, 갑사, 모시옷들이 또다시 장만되어 갔으며, 잃어버렸던 고전의 아쉬움을 되찾아 보려는 아름다운 정서가 소생하고 있다.

나는 왜 이런 부질 없는 이야기들을 열거하고 있는 걸까. 세계는 날로 변하고, 땅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크 이건 쏠이건 싸이키이건 또 나일론이건 모두가 지나가는 것들이다. 잠시 지나가는 물결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들을 우리의 전부인 양 매달릴 수는 없다. 지나가지 않는 것, 거기 머물러 있는 불변의 것, 그런 것을 찾아보고 싶다.

겨울이 오면 눈(雪)을 생각하고 여름이 오면 바다를 그리워하는 변함 없는 인정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 타는 촛불이 되고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기도를 잊지 않는 본연의 모습을.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회귀(回歸)의 순례 길을, 영원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하루 한 순간도 아껴, 주어진 시간에 순명(順命)하며 어떻게 생명을 쓸(使用) 것인가 생각하고 싶다.

신(神)은 우리에게 호도(胡桃)알을 주셨지만 그것을 깨뜨려 주시지는 않는다.

땅 위에 떨어져 굴러가는 호도알처럼 덧없이 흘러가는 하루, 어느 하루인들 우리는 진심으로 그 호도알의 껍질을 깨뜨리는 노고를 기울인 날이 있었던가.

그분은 우리에게 많은 행복의 기회를 주시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기쁨, 이용하는 자유를 우리를 위해 남겨 놓으신다.

손안의 호도알도 까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이니, 여기 그 한 알의 호도를 까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어 모았다.

끝으로 이 책을 펴내주신 성 바오로 출판사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차례

 

책 머리에

I 만남과 약속

  • 이 세상, 最良의 것
    모순과 背律의 혼돈
    그 이중의 얼굴, 선인가 악인가
    여자, 그 불변의 영원성
    사랑의 고전
    만남과 약속
    생명의 향연
    에로스와 프쉬케
    사랑의 조건
    사랑의 性과 成
    우리의 여름은 끝없이 긴가
    漁夫 王과 쿠마의 巫女
    빠져버리는가, 남는가
    젊음을 사는 지혜
    밟히고 잊혀지는 하나의 길
    이 세상에 행하여진 가장 용감한 싸움
    밟히고 잊혀지는 하나의 길
    오직 그 곁에 살아있어 주는 일뿐
    잃어가는 어머니, 잃어가는 자식

II 모든 길의 마지막에

  • 욕망을 걸러내는 체
    인생은 신이 쓴 동화
    그의 요람(搖籃)에 잠드는 욕망
    모든 길의 마지막에
    신은 잔인하였다
    십자가(십자가)에 못박은 신의 자비
    모든 길의 마지막에
    하늘의 저울대
    아나톨 프랑스의 사제와 목서초(木犀草)
    하강(下降)의 고뇌(苦惱) 없이는
    이 세상 먼지 하나도
    갈빗대 하나의 여자(女子)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바닷가에 버려진 아리아도네 공주
    물과 흙이 만나는 이 세상 인연
    우리가 걱정할 일
    행복과 사는 보람
    일상(日常)이라는 이름의 불행(不幸)
    행복과 불행의 차이
    황해를 건너는 욕망의 배
    여자의 행복 그 실체
    끊임 없는 감동과 의미 발견
    그 이름 없이 작은 행복의 조각들
    남편, 자식, 그리고 거울 속에
    슬픔을 이기는 약
    나의 평화(平和), 나의 기쁨
    아들의 대답
    어머니의 푸념과 딸의 엄살
    다섯을 주면 다섯만큼의 평화
    사랑과 죽음의 동의어(同義語)

III 일(一) 달란트의 우화(偶話)

  • 희망의 이름
    한 송이 장미
    내가 나의 기쁨을 만날 때
    자유에의 길
    란(蘭)의 외로움
    우리가 물을 마실 때
    인생(人生)의 고의(故意)
    두 개의 한국(韓國)
    이름 없는 피해자(被害者)들
    어린 의지(意志)
    득실(得失) 상반(相反)
    잃어버린 길
    일(일) 달란튼의 우화(偶話)
    착각(錯覺)의 공해(公害)
    정의(正義)의 행방(行方)
    인생(人生)의 수사학(修辭學)
    건망증(健忘症)
    이상(異常) 공항(空港)
    양식(良識)의 부재(不在)
    색안경(色眼鏡)
    사마천(司馬遷)의 기개(氣槪)
    눈과 귀
    본시오 빌라도의 이름
    달의 신비는 가고
    레저, 그 침묵(沈默)의 상실(喪失)

IV 잃어버린 겨울

  • 솜사탕의 정물(靜物)
    잃어버린 겨울
    세모(歲暮)의 거리에서
    배율(排律)의 가을
    내가 그린 그림
    서울 유감(有感)
    가을 나그네
    한복(韓服)의 멋
    세모시 옥색치마
    여자(女子)가 잃어버린 <여자>
    사라져가는 선물의 기쁨
    자수정(紫水晶) 후련한 보라 빛 속에
    한 줌의 흙, 한 켤레 바가지
    아주 작은 일
    여성(女性) 실격(失格)
    그 반신(半身)의 이름은
    남성(男性), 그 벼랑같은 위엄(威嚴)
    영웅 호걸, 아담이여

V 파밭에 울던 그날

  • 겨울과 불
    그 뒷산엔 지금
    잃어버린 고향(故鄕)의 추석(秋夕)
    미류나무 환상(幻想)
    찔레꽃 덤불 속의 유년(幼年)
    납량(納凉) 여행(旅行)
    고향(故鄕)의 겨울
    파밭에 울던 그날
    사랑과 시(詩)와 전란(戰亂)과 결혼
    한 군의 시집(詩集)
    내가 받은 빨간 털목도리
    한 폭의 그림
    생(生)의 후반(後半)에 서서
     

 

 

I 만남과 약속

 

 

이 세상 最良의 것

 

왜 왔는가

목숨의 來意를

물으십니까

 

…. 하면

다만 알길 없어

망연히 고개 숙여

웃을 수 밖에

 

먼 길 걸어오기

그만 바빠서

젊은 날은

바늘허리 실매 쓰듯

허둥댔을 뿐

 

….

….

 

서른이

꽃잎처럼 아쉬워지는

사십의 싸늘한

고갯길에서

 

늦지야 않았으리

十一月 찬 서리에 홀로 피는

염향의 菊花, 菊花꽃인양

조용히 하늘가에

서보는 마음

(問答)

 

 

 

矛盾과 背律의 혼돈

 오척 단신(五尺短身)의 작은 생명체 안에 삶과 죽음을, 긍정과 부정을, 영원과 찰나(刹那)를, 빛과 그림자처럼 지니고 태어난 인간. 인간이란 도시 무엇일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무엇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일까. 이러한 시원적(始原的)인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는 일이란 도시 벅차고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겨울날 밤, 따뜻한 방에 난로 불이 발갛게 불붙고 있었다. 잠시 더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눈보라 치는 찬 바람을 안고 한 마리 이름 모를 새가 어디선지 갑자기 날아들어 왔다. 새는 겁에 질린 듯 잠시 온 방을 푸드득거리다 이내 좁은 문틈으로 날아가 버렸다. 춥고 얼어붙은 겨울 하늘로. 신하들과 잔치를 베풀고 있던 임금님이 이것을 보고 말하였다.

 

그대들 말하라

저 새는 하나의 비유가 아니겠는가

어둠에서 와서 어둠으로 사라졌다

지극히 짧은 순간 빛 속에 있었다

그처럼 우리도 왔다가 자취 없이 떠나거니

빛 속에 있는 것을 지극히 짧은 순간인 것을.

 

이것은 헷세의 시, 전설(傳說)의 일부를 풀어본 이야기다. 한 마리 새가 잠시나마 따뜻한 불빛에 몸을 녹인 것은 불과 2, 3분, 다시 지척도 없는 세상으로 몸을 던졌다. 인간도 어쩌면 한 마리 새와 같은 것. 한 치의 앞길도 아는 사람이 없다.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발돋움하며 떨고 있다. 기실 이 어려운 해답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고금(古今)의 서적을 뒤적이고 종교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인간이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부터가 하나의 질문(質問)이었다. 때문에 인류역사가 시작한 그날부터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질문을 향해 끊임 없이 던져져 왔던 것이다.

불과 잠시 동안 빛을 누리다 어둠 속에 사라지고, 수유(須臾)의 생을 영원한 죽음으로 대치해야 하는 인간의 유한성, 그 슬픈 존재의 유한성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기원(祈願)을 걸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득 차기를 원하며 또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끝없는 충족을 희구하는 것이다.

희랍신화의 에뤼식톤 왕(王)은 텟살리 주(州)의 임금이었다. 테메테르 사당 둘레의 숲을 찍어내어 그 재목으로 자신의 궁전을 지었다. 그 숲속에는 특히 신성한,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왕은 신하들이 말리는 말을 듣지 않고 그 밤나무마저 찍어 내게 했다.

이에 노한 여신(女神)은 에뤼식톤 왕에게 벌을 내리어 기갈병(飢渴病)에 걸리게 했다. 왕은 기갈병으로 하여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고통에 시달린다. 대대로 내려온 곡창의 쌀을 죄다 풀어먹고, 집과 땅을 팔아먹고, 마지막 남은 딸 하나마저 팔아 먹는다. 그러나 배고픈 기갈병은 낫지 않는다. 고통에 시달리는 에뤼식톤 왕은 마침내 자신의 살을 베어 먹기 시작하고, 이윽고 는 죽어버리고 만다.

누가 말했던가. 인간은 스스로 만든 가스실(室)에 스스로 양연히 고개를 쳐들고 걸어 들어가는 배리(背理)의 모순체라고. 진실로 슬픈 인간의 실존(實存), 자신의 생명에 자신이 곡(哭)을 올려야 하는 운명의 조객(弔客)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 다시 말하여 사람의 생명을 몇 만 줄기의 불꽃이라 가상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불길을 한 가닥 한 가닥씩 꺼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마지막 불길마저 꺼져버리고 생명은 캄캄한 어둠 속, 다시는 문 열 수 없는 밀실(密室)로 사라질 것이다.

 

 

그 이중의 얼굴, 善인가 惡인가

 그러나 인간은 절망할 수 없는 실존이다. 아니 보다 더 절망할 수조차도 없이 약한 실존이다. 사르트르의 말대로 약하기 때문에 삶을 이어가고, 약하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미지(未知)의 내일을 기다리고, 희망에 매어 달려 가이 없는 꿈을 꾸는 것도 기실은 우리가 모두 약하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암담한 어둠 속에서도 때문에 우리는 터무니 없는 공상가가 되며, 안일한 향락자가 되며, 염치 없는 욕심장이가 된다.

나는 무엇일까?

한 마리 뱀의 유혹에 이끌려 그토록 지엄한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에와, 호기심 많고 유혹에 약한 ‘여자’인 ‘나’의 본성은 기실 악(惡)인가 선(善)인가. 어쩌면 근원부터 악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던가.

거리를 걷다가 또는 앉았다가 나는 문득 주위의 사람을 의식한다. 누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까닭 없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한편, 내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는 누구든 나를 보아주기 바라는 뱀 같은 얼굴도 숨어 있다. 이 이중의 얼굴을 가진 나는 무엇일까?

창 너머 바라 뵈는 남의 집 불빛은 유난히 밝고 따스해 보이며, 먼 곳의 불빛일수록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선망하는 나는 무엇일까?

때로 불 같은 사랑에 온 몸을 태우는가 하면, 죽음 같은 미움으로 가슴이 어는, 그 요사스런 변덕은 또 무엇일까?

모든 곳으로 나의 사닥다리는 걸려 있으며 그 중의 한 사닥다리를 나는 올라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비로소 잘못 선택한 길에 실망하고 후회한다. 항상 그것의 되풀이다. 우둔한 실패와 후회를 거듭하는 나는 무엇일까?

한 손에 황금을 다른 손에 명성을, 그리고 한 가슴에 사랑을 꽃피우며, 탄탄한 대지에 두 발을 디디고 백 세까지 젊음을 누리기 원하는 염치없는 탐욕의 나는 무엇일까?

엎지른 물을 주어 담듯이 밤은 나에게 소리 없는 태형으로 채찍질하고, 낮은 다시 갈피 없는 천(千)의 얼굴로 나를 위장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발 돋음 하며,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 기울여 탄식하는 환상의 악기(樂器), 창을 향해 서면 비상을 꿈꾸고, 먼 기적소리엔 번번이 출분(出奔)을 생각하는 정신의 가출아(家出兒).

때로 홀연히 독(毒)을 마시고, 온 몸에 퍼지는 감미로운 독기(毒氣)에 스스로 눈감는 위험한 유희에 황홀하고, 채워지지 않는 공복의 굶주림을 안고 가을의 마지막 시간까지 익기를 기다리며 섰는 사과나무의 고독한 대망(大望)도 내 안에 있다.

내일을 위한 도약(跳躍) 속에 있으면서 어제에 미련(未練)하고, 가을의 추수를 기다리면서 여름을 나태(懶怠)하는, 모순과 배율(排律)의 갈피 없는 의지(意志).

곧 나의 안은 온갖 부조리(不條理)와 미망(未亡)의 동굴인 것을, 나는 그 미망을 슬퍼하지도 않거니와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연민한다. 마치 독버섯 속에 취해 있는 한 마리 개미처럼 측은하고 민망한 나를.

나는 무엇일까?

 

 

女子, 그 不變의 永遠性

 모든 것이 가변적(可變的)이며 배율적인 내 안에서 그러나 나를 지주(支柱)하는 불변의 영원성을 나는 또 발견한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이렇게 에덴 동산 한복판 어디쯤엔가에 있었을 지혜의 사과나무 열매를 따먹은 인간은, 천상의 낙원을 쫓겨났다고는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인간이 지은 최초의 작죄(作罪)에 뜨거운 연민과 찬탄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일 지혜의 열매를 먹지 않았던들 인간은 ‘완전하고 천진난만하고 어리석고 성스럽고 그래서 바보같이 행복된 상태로 에덴 동산에서 벌거벗고’ 살았으리라. 지금도 그렇게 어리석게 살고 있으리라.

욕망도 희망도 사랑도 미움도 슬픔도 기쁨도 분명치 않은 인생, 그것은 무서운 공허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지혜와 인식이 없는 세계에서, 선과 악이 없는 세계에서, 신(神)에의 인지(認知)나 열망인들 또한 있을 수 있을까. 진실로 낙원을 잃고 얻은 지혜와 인식은 생명의 제 2의 탄생이며 기쁨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다 더 실락원(失樂園)에 이르러 여인에게 주어진 형벌, 분만(分娩)의 고통은 우리가 짊어진 무류(無類)의 형벌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은혜롭고 완미(完美)한 희열의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유대의 율법(律法)학자는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음’ (로마서 5.12)을 통탄하여, ‘죄가 시작한 것은 모성에서부터이며 우리가 모두 죽어야 하는 것도 여자 때문이다. 어떠한 악(惡)도 여자의 악의 깊이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집회서 25.13-24참조)고 가혹하고도 통렬한 매도(罵倒)를 퍼붓고는 있지만 그러나 어찌하랴, 그러는 그들 자신도 기실은 여자의 가랑이 밑으로 나온 자들임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을. 보다 더 그들이 ‘그 한사람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세상에 탄생하였고, 일월(日月)의 밝은 빛을 우러러 볼 수 있었던 것을 어찌 부인할 것인가.

참으로 여자에게 주어진 무류의 형벌, 그 고통과 환희의 어느 부분을 세상의 남자들은 안단 말인가. 작은 한 몸에 죽음과 부활을 잉태하여 지고지순(至高至順)한 모성의 완덕(完德)을 배우지 않고 터득해 가는 그 슬기로운 유혈의 고투(苦鬪)를.

모성은 신의 전능(全能)한 걸작이었다.

이 세상에 한 요람(搖籃)으로서 그는 가장 비옥하고 절묘하고 자비한 모성을 지상에 보내셨다.

그 위에는 신(神) 밖에 없고 그 아래엔 신 아닌 일체의 것이 있는 그래서 신과 신 아닌 것의 중간에서 우리를 용서하고 굽어보며 자애로 목욕시키는 생명의 요람. 그 안에 무수한 신성(神性)을 방불케 하는 완덕의 모상(母像).

하여 모든 모성은 스스로 어머니이며 또한 어머니일 수 있다는 인식 하나로 부릅뜬 눈과 돌같이 굳은 주먹을 유순히 풀고 무한한 사랑의 성(城)을 구축하는 기도와 인내를 알고 있다.

자신을 위해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끊임 없이 망설이는 방황도 어머니의 자리에 서면 결연한 빛으로 집중되고 응결되는 모성의 권위를.

나는 내 안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마련하면서부터 경건하고 줄기차고 신비스런 생명의 소유자가 된다.

인간을 초월한 신성(神性)의 모상.

여자이기 때문에 유독 불행했던 일도, 유독 행복했던 일도 없다. 그러나 어머니이기 때문에 나는 행복했고 또 슬펐다.

나는 나무 중에도 꽃나무, 꽃나무 중에도 열매를 익게 하는 과실나무다. 나의 흔들리지 않는 목숨의 뿌리는 모성이며 바람타는 가지와 잎은 연연한 여성이다.

이윽고 대지(大地)에 씨를 뿌리고 돌아가는 낙조(落照) 속의 여인, 그 적막한 영광도 우리 안에 있다.

‘이 세상 최량(最良)의 것은 여자의 무릎에서 만들어진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한 마리 새와 같은 삶일지라도 한 순간 한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복 위에서 누가 무어라 해도 우리는 이 세상 최량(最良)의 것을 빚어 만드는 생명의 도공(陶工)임에 스스로 자긍(自矜)하며 또 다짐한다.

거듭, 내가 온 것은 이 세상에 한 그루 사과나무가 되어 가지마다 아픈 열매를 맺는 기다림과 유열(愉悅)을 알기 위해서다.

나의 추수는 오직 그것 뿐이다.

 

 

 

사랑의 古典

 

뜨거운 것은 아니올시다

불붙는 것은 더욱 아니올시다

 

높고 막은 것

겨울날 두터운 얼음장 밑에 고이는

파란 옹달샘같은 그러한 것이

나의 태양이었읍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미움 바치지 않고

잊히워버린 작은 灌木 처럼

살아온 나날

 

나는 마음 착한 소녀처럼

인내라는 험준한 戀人을 섬겨 왔읍니다.

 

季節이 가고

빗발이 창문을 두드리는 밤엔

눈 먼 여인처럼 지척거리는

마음의 고삐를 채찍질하며

당신의 무서운 형벌 앞에

나 엎드려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풀을 길 없는

하나의 約束을

어찌할 수 없이 지켜야만 되는

무서운 約束을 주셨읍니까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죽어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그러한 懊惱스러운 約束을…

 

<하나의 約束을>

 

 

 

만남과 약속

 염열(熱)의 계절이 온다.

불같이 작열하는 태양 붉은 일년감처럼 익어서 터지는 태양이 도시를 태우고 바다를 태우고 젊음을 태운다.

벗은 살이 영근 석류알처럼 툭툭 벌어지고 무르익은 과실이 제 열에 못이겨 파열한다.

산에서,

바다에서,

전원(田園)에서,

밤과 낮, 새벽과 황혼을 가리지 않고 달려온 여름이 만삭의 몸으로 숨막히는 삼복(三伏)의 고개를 넘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아우성치는 생명의 소리, 그것은 불의 함성이요, 피의 용솟음이요, 터져 나오는 시원(始原)의 육성(肉聲)이다.

여름이 되면 나는 파도를 생각한다.

물결치는 파도 그 벌거벗은 나신(裸身)의 자유분방함을.

여름이 오면 나는 또 불을 생각한다.

불같이 발화(發火)하는 젊은이의 현란한 꿈을, 난숙한 육체를.

그리고 또 여름이 오면 나는 생각한다. 잃어버린 반신(半身)들이 짝을 찾아 헤매는 소리, 산과 바다에 넘치는 사랑의 메아리 소리를. 원시림의 사슴떼처럼 화려하고 날렵한 그들 사랑의 화음을.

여름은 젊은이의 계절이다.

혈기차고 성염(盛艶)한 젊은이들의 사랑의 계절. 그들은 분수 같은 자연의 화염(火焰)속에 기름처럼 스스로를 태운다. 밤을 새워 젊음을 태운다. 사랑의 진하고 아프고 감미로운 미약(媚藥)으로.

사랑!

그렇게 흔하고 그렇게 낡고, 그러면서도 항상 처음같이 신선하고 눈부신 사랑, 그것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의 박사’ 성(성) 아우구스띠누스 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선 사랑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에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할 수 없다.’ 고 말하고 있다. 기실 사랑을 설명하는 말은 오직 사랑 뿐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말도 사랑 뿐이다. 사랑을 다는 저울이 오직 저울 없이 사랑하는 일 뿐이듯.

‘최초에 관계가 있었다’ <부우버>

야훼와 아담, 아담과 에와, 다시 말하여 ‘너’와 ‘나’의 관계가 있었다. 이 ‘너’와 ‘나’의 관계는 바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야훼의 사랑에 의하여 아담이 태어났고 에와가 태어났다. 그 신의 모상(模像)인 아담과 에와의 관계는 곧 사랑의 관계였다. 하여 인류 최초의 관계는 사랑이었다. 바로 인간의 본질은 사랑인 것이다.

기실 사랑은 ‘너’와 ‘나’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이성이든 이웃이든 혈연이든 절대자이든 그것은 ‘나’에 대한 ‘너’의 관계다. 너를 떠난 나의 사랑이 성립될 수 없다. 그리고 그 모든 ‘너’는 ‘나’ 와의 사랑의 관계 속에 최초서부터 계약되어 온 것이다. 때문에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망설이며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인류 최초의 관계를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생명의 뿌리다. 그것 없이는 낳지도 자라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명의 뿌리다. 사람의 가슴에 사랑의 견고한 뿌리가 내릴 때, 그 줄기에선 아름다움 싹이 트고 고귀한 꽃이 피어난다. ‘사랑하라, 그러면 무엇을 해도 좋다’ 고 아우구스띠누스 는 말한다. 그것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면 어떠한 악(惡)도 저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시키는 모든 일은 선이며 진리이며 미덕이다. 사람들 마음속에 사랑이 숨쉴 때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즐겁게 일한다. 어린아이를 가진 어머니를 보라. 기저귀를 빨고, 우유를 끓이고, 밤을 새워 지킨다. 마치 어린아이의 노예처럼 일한다. 기실 사랑은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노예처럼 희생하고 봉사하며 자기를 바친다.

사랑은 너와 내가 서로 부르며 대답하는 영혼의 목소리다. 고독한 생의 광장에서 고독한 마음의 빈 자리를 서로에 의해 채워지기 원하는 너와 나의 관계다. 우리를 둘러 싼 말없는 침묵 속에서 생동하는 ‘말'(對話)을, 나의 부름에 대한 너의 분명한 응답을 듣는, 너와 나의 만남의 관계다. 때문에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다시 말하여 이기적인 자기 중심의 욕심에 의하여, ‘너’를 ‘나’의 내용이나 대상의 일부로 삼는 감정이 아니라, 나의 부름과 너의 응답에서 빛나는 화답(和答)을 얻고, 그 화답이 창조해 내는 새 생명을 얻는 기쁨이다. 기실 사랑은 창조의 행위인 것이다.

사랑의 기쁨은 고통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일은 내가 너를 내 마음속에 간직한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성격의 사람일까, 그의 장점은 무엇일까,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그의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계산하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와 이해(利害)를 초월해서 그대로 그의 전인간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 작은 가슴에 ‘너’의 전부를 싸 안는 사랑의 ‘무게’, 그것은 아픔이다. 너의 고통, 너의 짐이 나의 고통 나의 짐이 되는 일치의 아픔이며 곧 너에 대한 나의 책임의 탄생이다. 하여 사랑이 깊고 클수록 그 무게의 아픔도 깊고 크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 너와 나는 비로소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굳게 맺어진다. 기실 사랑의 가장 큰 기쁨은 그 아픔을 이기는 고통이며 서로가 짊어지는 책임의 일치다. 그것이 진실한 사랑(아가페)이며 영속하는 사랑이다.

그러나 욕망의 사랑(에로스)은 단명하여 계속이 없다. 그것은 처음 불꽃처럼 황홀하고 분수처럼 눈부시지만 이내 사라지는 빛이고 말라버리는 샘 이다. 거기엔 아픔이 없고 책임이 없다. 껍질처럼 적막한 후회가 남는다. 기실 욕망의 사랑은 사랑의 허상(虛像)이며 그림자다. 슬픈 사랑의 낙태아(落胎兒)다.

이 세상의 가장 무서운 지옥은 자신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는 괴로움이다. 스스로 사랑을 거부하는 영혼의 추운 상태다. 증오로 굳어버린 마음이다. 이 세상의 천국은 시들지 않는 사랑의 화원을 가꾸는 마음이다. 하면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 무엇으로 사랑을 살 수 있을까.

‘당신은 빵을 사고 싶을 때 동전을 지불한다. 가구를 사고 싶을 때 은전을 지불한다. 그리고 토지를 사고 싶을 때 금전을 지불한다. 그러나 사랑을 사고 싶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불해야 한다. 사랑의 값은 당신이다.’

아우구스띠누스 의 말이다.진실로 사랑의 기법은 이것 뿐이다. 처음에도 마지막에도 이 하나 뿐이다. 때문에 그리스도는 자신을 던져 불멸의 사랑을 샀던 것이다.

 

 

생명이 향연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리

기다리지 않아도 좋으리

 

우리는 地上에 떨어진 수만의 별들

제각기의 길을 가는 각각의 그림자

 

나와 더불어 이 세상 어느 한 구석에

살아 있다는

다만 살아 있다는 그것만으로

다행한 우리들

 

우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씨를 뿌려

가히 虛無의 열매를 거두며 살아 왔거니

서러워하지 말자 언제가 다시

邂逅의 약속 없음을

 

굳이 바래옵거니

時空을 넘어선 무상의 언덕 위에

무심히 마주 천 한 쌍의 銀杏이기를

 

久遠한 마음의 하늘, 수정의 바다를

머리에 이고

아득히 바라보는 바래움 없는 위치에서

묵묵 自盛하는 나무의 역사

 

살아 있음은 오직 하나의 榮光

우리 옆에 이웃 있음은 또 하나

다사한 기쁨

내 마음 줄 그 한 사람 있음에랴

크나큰 생명의 향연이어니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리

기다리지 않아도 좋으리

 

나와 더불어 이 세상 어느 한 구석에

살아 있다는

다만 살아 있다는 그것만으로

다행한 우리들

 

우리는 욕망의 밭에 핀 흰빛 허무를

거두며 살아온 무상의 園丁

서러워하지 말자 언젠가 다시

邂逅의 약속 없음을

 

(生命의 饗宴)

 

 

한 권의 양서(良書)를 얻음은 마음의 향연이요,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음은 인생의 불빛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하나의 그리움을 얻는다면 그것은 무엇이라 이를까. 어디에다 비길까.

타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는 그날이 그날같이 변함 없는 밤하늘의 별처럼 멀리 차단 히 소슬한 바람인양 가슴 속에 그 하나만의 소리를 울려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생명의 또 한 번의 탄생이 아닐까. 황홀한 목숨의 환희…. 그리움은 바로 이 새로운 목숨의 발굴이리라.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며 기다리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그저 나와 더불어 이 세상 어느 한 구석에 살아 있다는, 다만 살아 있다는 그것만으로 다행한 우리들.’

그렇다, 서로 만나지도 말고, 서로 말하지도 말고, 피아(彼我)의 거리는 언제든 건널 수 있는 가능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강물의 이편과 저 편 같은 그러한 위치에서 허심 무욕하게 바라다 보는 한 가닥 따스한 눈길만을 머리 위에 느낄 수 있다면, 그 눈길 또한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담담한 인정으로 가득히 넘치는 한 잘 술처럼 익은 사람이라면…

흐린 날, 비 오는 날, 또는 첫눈 내리는 날, 예고 없이 찾아가 그의 창변에 선다면, 그 또한 그런 날을 못내 기다린 듯 문을 열고 반겨 맞아주며, 격하지 않은 눈길로 잠시 시공을 넘어선 무아의 경지에서 태초의 정적 같은 충만 된 희열에 잠길 수 있다면….

 

 

먼 後日 … 내가

유리병의 물처럼 맑아질 때

눈부신 소복으로

찾아 가리다

 

문은

조금만

열러 놓아 주십시오

 

잘 아는 노래의

첫 귀절처럼

가벼운 망설임의

문을 열면

당신은 그때 어디쯤에서

환히 눈 시린

銀白 의 머리를

들어 주실까

 

알 듯 모를 듯

아슴한 눈길

비가 서리고

 

난로엔

곱게 세월 묻은

주전자 하나

숭숭 물이 끓게 하십시오

 

손수 茶 한 잔

따라 주시고

가만한 웃음

흘려 주십시오

 

창밖에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그런 날 오후에

찾아 가리다

 

(訪問 I)

 

 

만일 이 세상에 끊이지 않는 요원의 불꽃이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들 인간의 마음에 그칠 줄 모르고 타오르는 한 줄기 뜨거운 그리움을 두고 말함이리라. 자연에의 인간에의 또는 학문에의 지칠 줄 모르고 줄기차게 타고 또 타는 염원.

인간은 이 그리움으로 하여, 인간에의 학문에의 또는 신(神)에의 뜨겁고 연연한 그리움으로 하여 무수히 다치면서도 성장하고 원숙하고 또 슬기로와져 왔다.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하라.’ 누구의 말이던가. 주고 바치며 희생하는 사랑, 사랑이 시키는 일에 죄는 있을 수 없으니 원하는 모든 행위를 사랑의 이름으로 하라.

누구인지 알지 못할 그 한 분 창조주는 사랑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드셨다. 누구인지 알지 못할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누구인지 알지 못할 그 많은 여인들은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남자를 눈물로 섬기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이웃은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이 세상을 풍요로운 화원으로 가꾸려 했다.

우리는 잠시도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생명이다. 그 사랑이 비록 주고 받지 못하는 무상(無償)의 봉사이며 ‘언젠가 다시 해후(邂逅)의 약속 없는’ 비련일지라도 사랑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사랑을 심은 그 누구인지 알지 못할 한 분의 뜻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오직 사랑에 있어서만 완성되는 것이며, 한 알의 열매는 그것을 맺게 하는 사랑의 죽음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생명의 구체적인 표현은 사랑이며 사랑의 궁극적인 희망은 생명이다. 하여 우리는 ‘만날 수 없어도 좋고, 기다리지 않아도 좋으니 나와 더불어 이 세상 어느 한 구성에 다만 살아 주기를, 나를 위해 살아있어 주기를’ 빌고 또 바라는 것이다.

사랑은 기실 내 안에 그를 영원히 살게 하는 불망(不忘)의 기념비(紀念碑)이다.

 

 

오래 품어

사슴같이 길러 온

말 한 마디

 

꽃잎으로 에워 싼

노란 암술 하나

한 가슴에 받들 듯

그렇게 긴 세월

남몰래 키워온 말입니다.

 

해와 달이 바뀌어 가는

日月의 窓밖에

사철의 꽃 빛이 스며드니

달랠 길 없이 차오르는 가슴

머리채 검고 눈빛 젖은

나이 찬 계집애로 자랐읍니다.

 

어느날 내가 당신 앞에

그 말 한 마디를 드리고 나면

나는 그만 하늘 끝에 닿아버린

저녁 해

까맣게 타버린 꽃씨입니다.

 

그 말 한 마디만이

그 가슴에 남아

부리 고운 사슴으로 살아 주기를

오래오래 향기되어 피어 주기를

 

나야 검게 영근 씨방 하나

가지에 남기고

곱게 저버릴

어느 저문날의 꽃잎이어도 좋은

말 한 마디.

 

 

(말 한 마디)

 

 

 

에로스와 프쉬케

 

‘나의 음식은 밤이나 낮이나 눈물 뿐이었다’ 고 시편(詩篇)의 작가도 인간의 고독한 영혼을 노래하고 있다.

무한대한 생명의 고독을 한정된 명예나 부귀, 권세나 영화 따위로 채울 수는 없다. 그것들은 오히려 더 큰 영예, 더 큰 부귀를 위해 목숨을 저미며 질타하는 채찍이 될 뿐, 고독한 영혼의 평안도 기쁨도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상처투성이의 얼어붙은 생명의 내실(內室)은 자양(慈養)하고 뜨거운 햇빛, 사랑의 유약(油藥)으로 밖에는 아물 길이 없다. 무한대한 생명의 고독은 무한대한 사랑으로 밖에는 채울 길이 없다.

하여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안겼을 때 고향처럼 평안하고, 벗들의 우정에 잠길 때, 초원처럼 기쁘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묻힐 때 천국처럼 가슴 설레는 환희에 충만 한다.

참으로 사랑은 인생의 비밀이다.

모든 것을 수학의 공식처럼 풀어낼 수 있는 현대, 달나라의 비밀까지도 벗겨대고 만 현대이지만 사랑의 신비만은 아직 누구도 풀 수 없는 비밀의 성역(聖域)이 되고 있다. 어떠한 교과서도 철학서적도 사랑의 비의(秘義)를 가르친 글이 없다. 누구에게 배우거나 가르침을 받아서 깨닫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참으로 우연하고도 신비스런 만남에 의해 순간적으로 점화(點火)되는 불꽃이다. 그것은 또 서로가 자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지극히 순열한 신앙과도 같다.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의 신(神)이 되는 것이다. 그 없이는 살 수 없고 그 없이는 의미를 상실하는 절대적인 신앙.

사랑은 신성한 것도 추악한 것도 아니다. 고귀한 것도 비천한 것도 아니다. 그대로 한 인간의 잃어버린 자신의 짝을 만나는 운명이며 생(生)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가장 범속(凡俗)하면서도 비의(秘義)에 찬 새크라멘트(秘蹟)다.

어려서 들은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의 신화, 지금도 신선한 감동을 자아내는 그 동화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기실 사랑이 갖는 현실적인 속성을 얼마큼은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너무도 아름다왔기에 미(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미움과 질투를 샀던 프쉬케, 그러나 공교롭게도 여신의 아들 에로스는 프쉬케를 한 번 보자,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뜻을 어기고 그 아름다운 신간의 처녀를 사랑하게 된다.

머나먼 곳 아무도 모르는 궁궐 속에 어머니의 눈을 피해 엮은 사랑의 보금자리, 에로스와 프쉬케는 인간과 신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승리자들이었다.

다만 에로스는 프쉬케에게 ‘누가 무어라 해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고 하지 말고, 내 얼굴을 보아서도 안 된다. 만일 내 말을 어기고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마지막이 되리라’ 고 굳게 사랑의 다짐을 약속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언니들의 꼬임에 빠진 프쉬케는 마침내 에로스를 의심하게 되고, 기어이 어느 날 밤, 에로스와의 맹서를 스스로 깨뜨려, 등불을 밝혀 들고 잠든 에로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 순간 너무도 황홀한 에로스의 모습에 놀라는 프쉬케, 허나 그때, 한 방울의 뜨거운 기름이 에로스의 맨 살 위에 떨어지고, 소스라쳐 놀라 깨어난 에로스는 분연히 일어나 마침내 배신한 프쉬케의 곁을 떠나고 만다.

‘믿음이 없는 곳에 에로스(사랑)는 머물 수 없다’ 는 슬픈 한 마디를 남기고.

‘믿음이 없는 곳에 사랑은 머물 수 없다.’

진실로 사랑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심 없는 믿는 마음의 만남 속에 비로소 이루어지는 너와 나의 관계인 것이다.

에로스가 어머니인 여신 아프로디테의 말을 어기면서까지 지불한 희생에 대하여 프쉬케가 에로스와의 맹서를 파기하는 불신으로 대답했다면 이는 분명히 사랑의 배신이며 종말이 아닐 수 없다. 기실 에로스가 제의한 사랑의 조건 ‘결코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고도 하지 말고 내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말라’ 던 그 무조건의 믿음과 절대적인 신뢰 위에서만 사랑은 성립되는 것이다.

 

 

사랑의 조건

 스스로 에로스를 배신하여 사랑을 잃어버린 프쉬케는 다시 그 잃어버린 사랑의 회복을 위해 말할 수 없이 신산(辛酸)한 악전고투를 치러내는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보리, 조, 양귀비 씨앗들을 밤이 되기 전에 보리는 보리대로 조는 조대로 따로따로 가려 놓아야 했고, 맨땅 위에서 잠을 자고 마른 빵부스러기로 요기를 하며, 또다시 강뚝 숲속에 있는 황금털이 난 사나운 양털을 베러 떠나야 했다. 산꼭대기에서 떨어져 내리는 무서운 폭포수의 물을 길러 가고, 죽음의 망령(亡靈)세계로 천신만고 내려가서 아프로디테에게 바칠 미(美)의 상자를 얻어 가지고 와야만 했다.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와 시련을 겪는 프쉬케.

그리하여 마침내 에로스를 다시 만난 그들 사랑과 마음, 즉 에로스와 프쉬케는 비로소 뜨겁고 이별 없는 결합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쉬케가 치러내는 가지가지 곤욕과 시련은 무조건의 희생이며 사랑의 절대성을 말해 주고 있다.

절대적인 사랑, 그것은 신의 마음을 닮은 사랑이다. 어떠한 고난, 어떠한 시련 아래서도 굽히지 않고 변절하지 않는 사랑이다.

그런 절대적인 사랑을 위해서 몇몇 선인(先人)들이 죽어갔다. 인류를 사랑하여 그리스도가 죽어갔고, 진리를 사랑하여 소크라테스가 죽어갔다. 아배라아르 와 에로이즈, 트리스탄 과 이졸데, 모두가 사랑의 극치를 이룬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들이다.

노바리스는 ‘결혼은 죽음을 위해 계약된 결합이며, 연애는 죽음에 있어서 가장 감미로와진다’ 고 말하고도 있지만 사실, 진실로 아름다운 사랑, 지고지순한 사랑은 어쩌면 고뇌에 찬 비극적인 과정이나 결말에 있는지도 모른다. 절망에 눈물을 뿌리며 황금 양털을 베로 가는 고난 속에 더없이 아픈 사랑의 아름다움이 있고, 무서운 망령세계로 죽음을 각오하고 내려가는 처절한 결의 속에 지순한 사랑의 진실이 숨어있는 지도 모른다. 아니 보다 더 지순한 사랑은 노바리스의 말 그대로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갈망과 비탄, 죽음 속에서만 보석처럼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그러한 고난이 없는 현세의 젊은이들의 순간적이고도 향락적인 사랑의 행위는 어쩌면 그림자 같은 사랑의 허상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거론하고 아베라아르 와 에로이즈 같은 중세기적 플라토니즘 의 사랑에 비해 오늘이 사랑은 정신적인 것에서 육체적인 것, 성적인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조이스, 푸루우스트, 포렌스, 쟌 쥬네, 그들 누구의 작품도 사랑은 이미 성(性)으로 대치되어 있으며, 고갈해 가는 사랑(정신)의 불모지대에서 정신은 성으로 거무죽죽하게 더럽혀지고 썩어가는 것만 같다.

‘성은 정신을 자궁 속으로 즉 대상 속으로 풀어 넣으려 한다. 다시 말하여 정신을 끌어다 깊이 모를 암흑 속 무(無)로 용해시켜 버리려 한다.’

누구의 말이던가. 진정한 사랑이 왜곡된 성으로 인해 죽음과 허무 속으로 용해되어 가는 현대, 쾌락이 진실을 불모화 (不毛化)하고 있는 현대, 이런 순수부재(純粹不在)의 시대에 있어 우리는 좀더 성에 도전하고 스스로 견고해지지 않으면 안되지 않을까.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베라아르 와 에로이즈의 사랑, 에로스와 프쉬케 같은 사랑, 다시 말하여 지고지순한 사랑을 아직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사라져 가는 고전(古典) 속에 역시 버릴 수 없는 불변의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사랑의 신비, 사랑의 순결을 믿는 낡은 고전주의자임을 스스로 자처한다.

 

 

사랑의 性과 城

 인간의 현세적인 사랑의 형태는 역시 남녀의 사랑, 성(性)의 사랑일 것이다. 10여 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성에 눈뜨고 그리움을 깨닫는 인간의 불가사의한 생명의 신비, 자석처럼 서로 끌고 잡아당기는 알 수 없는 생명의 인력(引力)에 우선 놀라고 당혹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랑을 알기 이전의 생명이란 한낱 생명 이전의 무가치한 서식(棲息)일는지도 모른다. 평강 공주를 사랑한 바보 온달, 그가 만일 보석 같은 사랑에 눈뜨지 않았더라면 그는 고작 거리의 부랑배로 떠돌다 이름 없이 죽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형체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불세출의 조각가로 완성 시켰고, 아름다운 음률에의 사랑이 베토벤으로 하여금 음악의 대악성(大樂聖)으로 완성케 했던 것이다. 기실 인간이 철들면서 최초로 눈뜨는 감정은 사랑이며, 그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하여 한 생애가 지주(지주)되어지는 것이다. 잠자리에서까지 가지고 놀던 인형이나 장난감 총대를 놓지 않고 가슴에 품고 자는 어린이들이나, 까닭 없이 가슴 설레며 먼 곳을 동경하는 소년들, 그 모두가 이미 사라에 대한 막연한 눈뜸이며 무엇인가 사랑하고 싶은 갈망의 표현들이 아닌가.

무엇인가 사랑하고 싶은 갈망, 가슴 설레는 막연한 동경, 그것은 이미 사랑이며 사랑의 간절한 행위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감정은 어느덧 막연한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대상을 찾아 나서게 마련이다.

하여 반쪽의 성이 다른 반쪽의 성을 찾아 완전한 하나가 되고자 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때문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결합하는 결혼의 형태를 가장 신성한 것으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성(性)의 사랑은 처음 반짝이는 불씨처럼 가슴에 불붙고, 이내 활활 타는 불꽃으로 전신을 태우고, 이윽고 타버린 재의 시꺼먼 잔해만을 남기고 끝나 버린다.

또 성(性)의 사랑은 정신적인 것에보다, 물질적인 것에 더 많은 중량을 두고 있다. 밤하늘에 별처럼 멀고 요원한 것에 견디지 못하며, 바람이나 햇빛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거에 만족하지 못한다. 금시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빵, 아니면 빵에 바르는 버터나 잼이기를 원한다. 먹어서 금시 배가 부르고, 불러서 이내 물려버리는 한이 있어도 탐욕스럽게 먹기를 원한다.

성의 사랑은 또 육체적인 것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눈길이나 마음으로 교환하는 내면의 미진함을 견디지 못하며, 적극적이고 감각적인 육체의 소리에 더 많은 열망을 기울인다. 기실 그것이 얼마나 쉽게 다치고 허물어져 버릴 성벽인지도 모르고 마치 불꽃에 날아드는 불나비 처럼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성의 사랑은 또 곧잘 계산과 흥정으로 얼룩지게 한다. 입으로 영원한 사랑을 맹서하면서도 머리 속에선 더 좋은 조건의 남자, 또는 여자는 없을까 생각하고 계산한다. 상대의 능력(미모)과 학벌(두뇌)과 재산과 지참금 등을 남모르게 치부하며 흥정하는 것이다. 다섯을 주면 다섯만큼, 열을 주면 열만큼, 그 이상을 베풀거나 손해 보려 하지 않고 또 자존심을 굽히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건전한 사고(思考)이며 정신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나 그러한 사람들의 사랑이 제대로 성취한 예를 나는 일찍이 본 일이 없다. 어딘가 미흡하고 부족하지만 그 미흡하고 부족함을 탓하지 안는 무조건의 계산 없는 헌신 속에서만 진실한 사랑은 성취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어떠한 사랑이든 간에 그것이 완전히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일 수만은 없다. 또 처음부터 버터나 잼으로, 또는 계산이나 흥정으로 더럽혀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누구든 최소한 아침 한 때의 신선한 기쁨을 갖는 것처럼 사랑의 출발에도 순수하고 감동적인 기쁨의 한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기실 이른 새벽, 이슬 한 방울도 멎지 않은 풀 잎사귀가 어디 있겠는가. 모두가 시간이 지나고 때가 끼면서 어느덧 누렇게 퇴색하고 바삭바삭 말라서 떨어지는 것이지.

하면 그 슬픈 사랑의 조락을 막는 길은 무엇일까. 언제까지나 신선하고 감동적이며 기쁨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은 무엇일까. 무너지지 않고 퇴락하지 않는, 견고한 사랑의 성(城)은 어디 있는가. 성(性)으로 거무죽죽하게 더럽혀지지 않는 사랑, 버터나 잼으로 물려버리지 않는 사랑, 이기심이나 계산으로 흥정되지 않는 사랑, 그것이 고통이면서도 기쁨이 되고, 암흑이면서도 밤하늘의 별이 되고 희생이면서도 보람이 되는 그런 사랑의 성(城)은 어디 있을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 고린토 13.4-7).

이 얼마나 잘 아는 말들이며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말들이냐. 그러나 이처럼 실행하기 어렵고 지키기 어려운 말들도 다시 없을 것이다. 기실 사랑의 높은 성(城)은 바로 이 쉽고도 어려운 산봉우리 위에 세워지는 순금의 탑일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멀리 바라만 볼 뿐 감히 그 높은 성문을 열지 못하는 빛나는 순금의 성(城).

진실로 그 견고한 성문을 여는 열쇠는 인고와 믿음과 헌신과 겸손으로 무쇠처럼 굳어진 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높은 절벽에 거는 다리는 아낌 없이 주는 사랑의 무욕한 빈 마음이고.

항상 빼앗는 사랑의 손에는 무거운 쇠 저울이 들려 있지만 아낌 없이 주는 사랑의 손에는 하늘같이 빈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무한히 빈 마음이야말로 바로 어떠한 절벽이라도 오를 수 있는 견고한 사다리가 되며 날개가 되는 것임을 우리는 또한 숙지(熟知)하고 있다.

거듭 말하여 그 높은 사랑의 성문은 무욕한 희생으로 사다리를 놓고, 인고와 믿음의 길고 긴 세월로만 비로소 열리는 문이다. 그를 위한 끊임 없는 기도와 축원으로만 열리는 문이다. 기실 피 흘리는 십자가의 아픔 없이는 사랑을 여는 열쇠는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사랑의 성(性)은 말과 웃음으로 열리고, 그 성(城)은 침묵과 아픔으로 열린다.’

달나라를 정복하고 우주 비행장에서 밀회를 하게 될지언정 이 사랑의 고전(古典)만은 불변의 진리임을 나는 믿고 있다.

 

 

우리의 여름은 끝없이 긴가  – 젊음의 回歸 –

 

 

女子가

裝飾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은 무우 같다든가

뛰는 생선 같다든가

<진부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은 하나 만도

빛나는 裝飾이 아니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쇼우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裝飾들을

잃고 왔을까

이 피에로같은 生活의 衣裳들은

무엇일까

 

안개 같은 疲困으로

門을 연다

피하듯 숨어 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滿發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가

눈부신 裝飾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 손이

물기 없이 마른

한 장의 落葉처럼 쓸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紫水晶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裝飾論 I)

 

 

 

漁夫 王과 쿠마의 巫女

 뜰에 햇살이 금빛으로 눈부시다.

너무 부시어 차라리 손이 부끄러운 정오의 햇살.

때 끼지 않은 계절의 빛을 먹고, 방금 벌기 시작하는 모란은 왜 또 그리 찬란한가.

마치 성년(成年)한 여인의 풍만한 자태처럼 화려하고 전아(典雅)하다.

젊음!

그렇다, 속에는 뿜어내는 물줄기 같은 젊음이다.

농밀한 꿀의 밀도(密度)!

생명의 분수!

그 진하고 끈끈한 생명의 실제를 나는 지금 손 속에 쥔 보옥(寶玉)처럼 감촉한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

 

우리가 누리는 여름은 과연 얼마나 길 것인가. 모란은 그 풍만한 용자(容姿)를 몇 날이나 유지하는가. 그늘에 가리운 가지는 꽃도 맺어보지 못하고 지는 것이 아닌가. 그보다 더 저 뜰에 넘치는 햇살은 눈에 보이게 이미 기울고 있지 않는가.

항성(恒性) 없는 자연의 무상(無常) 속에 젊음도 그같이 잠시 비쳤다 스러지는 햇살인 것을.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난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禹倬)1의 글귀가 아닌들 저무는 일몰, 서리 같은 백발을 뉘라서 막을 수 있을까. 저리 휘척휘척 서발 막대 사려 짚고 저승의 사자(使者)처럼 다가오는 시간의 발자국을 …..

 

젊음!

도시 젊음이란 무엇인가. 녹의홍상(綠衣紅裳)에 칠보단장한 염려(艶麗)한 청춘을 말 함인가. 창공의 백운(白雲)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의 비상, 그 아득한 꿈을 이름인가.

항시 채워진 그릇이 아니라, 완성을 향하는 미완의 악곡(樂曲)이며 끊임 없이 발화(發火)하고 연소하는 심연의 불. 기실 젊음은 그 안에 빛과 어둠, 생(生)과 사(死), 희망과 절망을 밤과 낯처럼 교직(交織)하는 배율의 모순체다.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 때 쓰신 성배(聖杯)를 둘러싸고 재미있는 원시전설이 있다.

어부 왕(Fisher King)이라는 임금이 신의 저주를 받아 성(性)불구가 된다. 그러자 나라 안엔 질병이 돌고 곡식과 과실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며 모든 짐승들이 생산을 중단하고 만다. 국토가 삽시간에 불모의 땅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당시의 왕은 곧 신과 같은 존재이어서 왕의 병만 고치면 이 나라 안의 모든 질병도 사라지고 다시 풍요한 국토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그때 한 기사(騎士)가 나타나, 가진 고생 끝에 그리스도의 피가 담겨있는 성배를 찾아내어, 그 피를 어부 왕에게 발라 줌으로써 비로소 왕에게 내린 저주가 풀리고 불모의 국토는 다시 비옥하고 풍성한 나라로 되돌아 간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어부 왕이 성배에 의해, 다시 말하여 잃어 버렸던 신앙을 되찾음으로써 황폐한 생명을 구원받고 다시 부활한다는 뜻이다.

그러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런 기독교적인 의미론보다는 어부 왕이 성불구가 되자 나라 안이 황폐해졌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생산의 기능을 잃어버린 어부 왕은 이미 살아있으되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과 같은 상태다. 때문에 온갖 생물이 고갈하고 황폐해지는 불모의 땅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젊음을 일어버린 죽음과 같은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기실 우리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우리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우리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젊다는 뜻이고, 젊음이 없는 곳에 생산은 있을 수 없고 생산이 없는 곳에 삶 또한 있을 수 없다.

하여 자연은 철이 오면 한 송이 모란을 피우고,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하여 아기를 낳고 가정을 이룩한다. 그리고 남자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출항하여 고기를 잡고 풍랑과 싸우며 삶을 구축하고. 이 모든 행위가 다름 아닌 생산의 모습이며 곧 젊음의 표현이고 살아있는 증거다. 젊음은 곧 생산의 기능이며 창조의 힘이다.

T. S. 엘리어트의 <황무지(荒蕪地)> 첫 머리에 나오는 에피그라프(제사)가 있다.

 

‘쿠마에서 한 무녀가 독 안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때 아이들이 <무녀 당신은 무엇이 소원이요?> 하고 묻자 그는 <나는 죽고 싶다> 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李昌培 譯 엘리어트 選集에서).

 

한 무녀가 아폴로 신으로부터 장수(長壽)를 허락 받았으나 젊음을 받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무녀는 몸이 말라 항아리 속에 매달려 간신히 목숨만 붙이고 있을 뿐 완전히 생의 의미를 상실한 죽음의 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엘리어트 가 현대라는, 신을 잃어버린 황무지 속에 서식하는 인간의 무의식 상태를 상징하여 인용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여기서도 쿠마 의 무녀가 아폴로 신으로부터 허락 받기를 잊어버렸던 젊음이란 바로 앞에서 어부 황이 상실했던 생산의 능력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항아리 속에 매달려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며 죽지조차 못하는 쿠마의 무녀, 행위의 근원인 생산의 기능을 잃어버린 어부 왕, 그들은 꼭 같이 젊음을 상실한 죽음 같은 무의식 상태에 놓인 인간들이었다. 자신의 현주소도 행선지도 일어버린 정신의 미아(迷兒)들.

 

 

빠져버리는가, 남는가

 우리의 생활은 타성적이며 꼭 같은 일의 반복이다. 어느 날 모란이 피어날 때, 우리는 문득 신선한 감동에 눈 비빈다. 그러나 다음날 그 기쁨은 반으로 사라지고 이윽고 는 꽃의 모습조차도 잊어버린다. 그렇듯 변화 없는 일상의 반복 속에 감정은 녹슬고 의미는 희박해 진다. 매사에 감동을 잃고 방심과 무의식에 빠져들며 이윽고 자기를 상실해 간다.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길이건만 가로수의 잎사귀를 쳐다보는 일도, 그 잎새들의 변화를 느껴보는 일도 없다. 아침에 무엇을 먹고 저녁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는 일에도 힘겨웁고 기쁨이 없다. 모두가 권태로운 반수(半睡)의 가사(假死)상태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무기력과 무관심과 무의식 속에 잠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날이 아무런 생산 없이 황폐한 불모지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젊음은 날개 달린 금빛 독수리여서 아득히 먼 하늘, 미지의 세계에만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누구든 한 번쯤 시선을 바로잡고 자신의 쓸쓸한 동굴 속을 들여다 본다며 거기 버려진 불모의 황폐한 폐허를 볼 수 있을 것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놓은 평상복(平常服) 뒤에, 잡다하게 쌓여있는 일상의 일거리들 속에 모습도 없이 묻혀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그 비싸고도 값없는 젊음의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을.

기실 젊음이란 우리가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무의식의 상태를 허물고 끄집어 내는 자기 인식의 작업이 아닌가.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머리 위의 푸른 하늘을 어느 날 문득 발견하고 느끼는 그 신선한 감동,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막연히 세상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열어제친 창 너머로 햇살을 헤치며 달려 나가는 행위의 결단, 젊음의 회복은 바로 그런 인식과 결단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태한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만 있을 뿐, 실제로 결단하고 움직이지 못한다. 근면한 사람은 하고 싶다는 희망에 앞서 무엇이든 ‘한다’는 행동으로 나선다. 바로 이 ‘한다’와 ‘하지 않는다’의 차이가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며 젊음과 늙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안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악(惡)이라도 행하는 것이 좋다. 적어도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T. S. 엘리어트 의 말처럼 진실로 우리는 항아리 속에 매달려만 있지 막고 차라리 죽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아니 죽을 수 있을 만한 각오만 가졌다면 불가능한 일도 없을 것이다.

누구의 말이던가.

‘제일 나쁜 것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지면에 남는 일이라’ 고 한 것은. 선이 든 악이든 그것에 전신으로 빠져드는 열의(熱意),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와 정열, 그것이 젊음의 모습이며 정신이다. 엉거주춤 빠져들지도 못하는 무기력과 회의, 방심과 무의식이야말로 젊음을 좀먹는 병마다.

기실 전진하는 사람에겐 위험이 따른다. 바위에 부딪치고 파도에 휩쓸리고 하는 위험이.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도 형태는 다르지만 위험이 있다. 나태라는, 무의미라는 자기 붕괴의 위험이.

어는 것도 어려운 위험이다. 그러나 보다 더 무서운 위험은 그대로 지면에 남아있는 위험이다. 부딪쳐 쓰러진 후, 다시 한 번 일어서려는 의지 없이 그대로 지면에 남아버리는 좌절의 위험이다. 이것은 치명적인 패배의식의 위험이다. 젊음은 바로 이러한 좌절과 패배의식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재기(再起)의 힘이다.

하면 쓰러지는 것도 자신이지만 일으켜 세우는 것도 자신이다. 누구의 손도 빌릴 수 없는 자신의 손, 자신의 의지로 치러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 인간이며 살아있는 의무다. 어부 왕이 성배를 찾는 것도 쿠마의 무녀가 항아리 속에서 탈출하는 것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자신의 과업이다. 때문에 인간은 고독하며 그러한 일들을 짊어지고 있는 젊음이 또한 고독한 것이다.

 

 

젊음을 사는 지혜

 신이 인간에게 주신 많은 자산(資産) 가운데 가장 근원적이며 크고 빛나는 것이 젊음이다. 사실 모든 것이 불공평한 지상의 인간에게 오직 하나 공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누구나가 다 공유할 수 있고 행사할 수 있는 젊음이란 자산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유일무이한 자산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목적도 없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지는 않는가?

허망한 것에 마음을 쏟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순간의 쾌락을 위해 내일을 저버리는 혼미에 빠져 있지는 않는가.

나태와 회의와 무기력과 좌절에 빠져 있지는 않는가.

분명한 현주소와 행선지(行先地)를 잊고 있지는 않는가?

젊음은 여름 숲 속 같아서 그 속에 들어앉아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숲 속에 있는 향기로운 꽃, 살랑대는 바람, 우거진 나무들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한다. 수풀 바깥의 세상을 보려고 하지 않고, 뜨거운 여름날이 한없이 계속될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소유하는 젊음이 끝도 없이 긴 줄로만 착각한다.

 

 

그 나날은

배추 꽃,

노랑 나비,

이슬 진 햇살의 精을 섞은

꽃물처럼 달디단

아침이었다.

 

사방에 門

門마다 종이 달린

초여름의 집을

벌판처럼 열어 놓고

세상의 끝을

떠돌아 다녔다.

 

그때 우리의 가슴은

온통 부글대는 香水병이어서

언제나 향기에 취해 있었고

조금씩 안으로 지쳐 있었다

풀숲의 딸기처럼

혼자서 히히대며 익고 있었다

 

이따금

가랑비 스쳐가고

별들이 하얗게 사위어 갔지만

그 널은 벌판에

한낮은 변함 없이

타고 있었다

 

여름이

끝도 없이

긴 줄만 알았다

 

(그 나날은)

 

 

진실로 우리는 어리석게도 우리의 젊은 날이 끝도 없이 긴 줄로만 착각하고 있다. 무한한 영원을 놓고 영원 안에서 본다면 젊음이란 마치 일 순간의 광망(光茫)처럼 짧은 것을. 빛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인 것을. 숲 속에 저녁 해가 물들고, 무성한 일들이 바람에 떨어지기 시작하여 비로소 바깥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그때는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여름이 눈 앞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에 얼마간 눈이 떴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시간은 이미 반 이상 허비해 버린 뒤일 때가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회를 놓치고, 일을 그르치며, 실의에 빠져 후회하지 않는가.

역사적으로 세계를 움직이고 시대를 좌우한 위인이나 영웅들은, 그런 의미에서 누구보다도 젊음을 가장 유용하고 값있게 쓴 사람들이었다.

가비라성의 왕자, 싯다르타는 29세에 생사해탈의 법을 구하여 출가(出家)하였고, 35세에 이미 정각(正覺)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동양의 성인(聖人)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30에 섰으며, 불혹(不惑)과 이순(耳順)과 지천명(知天命)하는 40, 50, 60을 거쳐 마침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하는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보다 더 인류의 구세주, 그리스도는 불과 나이 12세에 공생활(公生活)에 들어가시어 33세에 골고타 산상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정사(釘死)되시기까지 불과 3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류가 몇 세기를 걸려도 하지 못할 사업을 이룩하셨던 것이다.

진실로 곰팡이가 슨 장수(長壽)보다는 있는 힘을 다 써버리고 일찍 꽃처럼 산화(散花)하는 편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아무려나 일찍 산화한 생명이나, 70, 80의 수를 누린 생명이나 그가 가진 젊음을 남김 없고 유감 없이 써버린 데는 다를 것이 없다. 그런 분들은 하나같이 사정 없이 자신을 혹사하였고,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정신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신의 안전을 위해 상식에 따르는 법이 없고, 수만 냥을 지불하여 불로장생의 보약을 구하는 일도 없었다. 평안히 생지안행(生知安行)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구(求)하여 행(行)하는 도(道)의 삶이었다.

젊음을 사는 지혜는 기실 이렇듯 두려움 없이 자신을 죄다 쏟아놓고 써버리는 전신투여(全身投與)의 정신이다. 마치 촛불의 양쪽 끝에 한꺼번에 불을 붙여 태우는 것과 같은 전신연소다. 어느 쪽으로도 물러설 수 없는 전진 뿐이다.

‘나는 나면서부터 그것을 아는 자가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며 민첩히 그것을 구한 자이다'(孔子).

기실 젊음을 사는 지혜는 바로 구(求)하는 정신이다. 끊임 없이 구하여 수학(修學)하고 실행하는 정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뒤돌아 보지 않으며 전진하는 정신.

‘나는 결코 자신의 뒤를 보지 않았다. 롯2의 아내는 뒤돌아다 봄으로써 멸망하였다. 달콤한 회상 뒤에는 파괴다.   … 40세까지는 당신들보다 나이 먹은 연장자들과 사위고 40세 이후엔 당신들보다 젊은 사람과 사귀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나는 매일같이 5시부터 6시까지 산책을 했지만 동행인은 언제나 젊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항상 희망이나 야심, 포부 같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노령(老齡)에 이른 말년까지도 늘 사상과 심정이 젊고 싱싱했던 가톨릭교의 기번스 추기경의 회고록의 한 대목이다.

진실로 롯의 아내는 뒤돌아다 봄으로써 멸망하였다.

감미로운 회상 뒤에는 나태한 무기력만이 찌끼처럼 남는다. 화려한 가상(假像)에 도취하면 심약한 감상만이 비대해 진다.

뜰의 햇살은 너무 눈부시어 가슴이 비고,

찬란한 모란은 정신의 가출(家出)을 유발한다.

하여, 나는 그 가환(假幻)의 것들에 흔들리지 말고 기우는 하오(下午)의 일광 속에 견고한 사념의 성(城)을 쌓아야 한다.

시간에 도괴(倒壞)되지 않는 원목(原木)같은 나의 젊음을 위해.

 

 

밝히고 잊혀지는 하나의 길

– 갚음 없는 사랑의 相續者 –

 

빨간 사과 한 봉지

캬라멜 한 갑

다시 못 볼 엄마의 따스한 얼굴처럼

안고 돌아서는 너,

자주빛 붉게 타는 뺨과 눈언저리는

西天을 물들인 노을의 탓만은 아니리

어린 딸이여,

 

올해 다섯 살

몽실한 어깨 까만 눈망울

영특한 말솜씨도 잊어버렸나

한 마디 어린 보챔도 없이 다시 오라 손짓도 없이

팔랑팔랑 조그만 그림자 사라져 가는

어스름 비탈길에 얼룩진 가을바람

 

자가가도 깜박 尿意 에 깨고

캄캄한 마당귀 잿간을 혼자서 찾아 간다는 너,

어미 없는 세상은 너로 하여금 새알같은 가슴에

숙성한 意志와 야무진 忍苦를 어느 사이 가르쳤던가

 

야속한 어른들의 모진 意思로 하여

몽매에도 그리운 어미 곁을 떠나

눈과 목청이 우악하신 시골 할머님 곁에

오늘도 너는 雜草처럼 쑥쑥 자라리

바람 속에 사과처럼 익으면서

짓밟아도 문질러도 다시 머리 솟쳐드는

草芽같은 의지를 닮으면서

 

이제는 누렇게 물들어

한불 落葉 졌을 뒷산 밤나무 밑

조약돌 주먹에 턱을 고이고

훤한 新作路며 그 너머 꼬불꼬불 숨어가는 까만 선로를

눈망울 시리도록 바라보리라

 

풀잎같은 손가락 폈다 곱았다

‘몇 밤이나 더 자면 엄마가 올까’

착한 것이여

빛나는 눈자위엔 구름이 흘렀을까 바람이 지났을까

 

가슴 멍멍히 오늘도 엄마는

먼 너를 생각하며

다가올 추위를 걱정하는

서울의 얇은 지붕 밑

 

어느새 작은 손등엔 龜裂 이 지고

아침 저녁 손끝은 빨갛게 얼었으리라

엄마처럼 따뜻하게 너를 감싸 줄 한 켤레 장갑

눈마다 정을 들여 짜서 보낸다

 

(母 情)

 

 

이 세상에 행하여진 가장 용감한 싸움

 이 세상에 온갖 생물을 살게 하시는 사랑과 생명의 신(神)이 계시다면 그 신의 마음을 닮은 인간의 마음은 곧 어머니의 마음이리라.

안델센 동화의 슬픈 어머니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잃어버린 아기의 행방을 찾기 위해 진주보다 아름다운 두 눈을 바치고 검은 윤 나는 머리칼을 백발과 바꿔 주고, 온 몸과 가슴을 가시덩굴에 찔리며 죽은 아기의 넋이나마 만나보고자 소원하는 어머니의 정을.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꼭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음독(飮毒)한 아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아들의 입을 빨아 독을 씻어내다 죽은 강원도 두메의 어머니.

아침 저녁 파도를 헤치고 나룻배를 저어 6년을 하루같이 어린 딸을 학교에 실어 나른 어느 섬마을의 어머니, 이들은 모두 자식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이며 자식의 괴로움이 곧 자신의 괴로움이었던 것이다.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엔 이성과 계산이 따르지 못한다. 두 아들을 가진 제베데오의 여인처럼. 그녀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이렇게 소청한다. “당신의 나라가 서면 저의 두 아들을 하나는 당신의 오른편에 하나는 당신의 왼편에 두어 주세요.”

이 염치 없이 욕심스런 어머니의 마음 또한 기실은 거짓 없는 세상의 어머니들의 정 임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한다.

이렇듯 자식 앞에 눈이 없는 어머니의 정은 먼 곳에 어린 것을 떼어 보내고는 더우면 땀흘릴가 걱정하고, 추우면 감기들까 걱정하며, 밤이면 혼자서 캄캄한 잿간(변소)을 불도 없이 찾아갈 것을 애처로와한다.

우악하신 할머니 곁에 엄마를 그리워하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남몰래 뒷곁에 돌아가 혼자 훌쩍거릴 것을 생각하고는 가슴 아파한다.

흙장난, 물장난에 얼마나 손이 트고 피가 맺혔을까 걱정하면서 잠 못 이루는 밤, 모정은 진실로 구비치는 여울 같은 기도와 눈물과 아픔으로 범벅이 되는 것이다.

 

 

아가야 업어 줄까

내 아기 엄마 등에

하얀 민들레 씨

바람개비 날릴까

 

옛날에 내 어머니 나에게 그랬듯이

지금 나 또

네게 주는 오직 하나의 情

母情의 아득한 무지개 다리

 

좀더 예쁘게, 좀더 슬기롭게

태어줄 것을

주고 주어도 준 것이 없는

아기에게 엄마는 슬픈 債務者

 

무우밭에 피어난

장다리꽃같은 걸까

주절이 꿈을 열은

葡萄園의 가을일까

 

모두다 가버린 빈 果園에

새벽바람 홀로 가슴에 불면

내 착한 아들의 손길이라 어루만지리

 

어느날 落魄 한 그 分身들

돌아와 곤히 내 곁에 누우면

아기야 다시 한 번 꿈길에

내 아기 엄마 등에

하얀 민들레씨 바람개비 날리자

 

세상은 너와 나 모두가

허망하게 날려 보낸

꽃씨 주머니

 

(하얀 민들레씨)

 

 

자식을 놓고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평생 갚을 길 없는 채무자의 마음이다. ‘주고 주어도 준 것이 없는 아기에게 엄마는 슬픈 채무자’

진실로 모정은 그 무상의 희생, 대가 없는 봉사, 끊임 없는 염려와 겸손한 기도, 바다 같은 자애(慈愛)로 범벅이 된 고단한 정(情)이다.

자식은 어머니 앞에 머리가 희어도 항상 물가에 선 어린아이처럼 위태롭고 조심스럽기만 한 애물이다.

못 생긴 자식, 못 사는 자식일수록 더욱 가슴 아픈 것이 모정이다.

시간과 거리를 초월하여 죄인처럼 빌고 섰는 마음이 모정이다

때가 오면 둥지를 떠나는 새처럼 자식을 떠나 보내는 아픔 속에 견디는 것이 모정이다.

그리고 새벽바람 저녁연기 속에 떠나 보낸 자식의 안부를 걱정하며 기다림에 지치는 것이 또한 모정이다.

실로 자식의 영광 앞에선 몸 둘 바 없이 송구스럽고, 인생에 낙백(落魄)하여 돌아온 자식 앞에선 또한 자신의 부덕인양 애타하며 자책하며 슬퍼하는 것이 모정이다.

기실 어머니 앞에  자식은 영원히 숙명적인 불효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시인 밀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행하여진 가장 용감한 싸움, 그것을 당신은 세계 역사 속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머니들에 의하여 행하여진 싸움이다.”

기실 세상의 어머니들은 그들 자식을 위해 남모르는 인내와 희생, 고난과 노고를 물심(物心) 양면으로 치러내는 것이다. 그 어떤 싸움과도 비길 수 없는 정신과 육체의 피나는 싸움을 헤내는 것이다. 참으로 이 세상 역사에 그들에 의하여 행하여진 싸움보다 더 용감한 싸움은 없었을 것이다.

 

 

밟히고 잊혀지는 하나의 길

 그러한 절대적인 어머니의 정에 비하여 자식의 정은 어떤 것일까. 실로 무심하리만치 탐욕스럽고 냉정하며 때로 터무니없이 반항적이지 않는가.

우주 사소한 일로 조금만 마음을 상하여도 밥상에 마주 안지 않고 그대로 나가 버린다. 싸 보낸 도시락을 고스란히 뚜껑도 열지 않고 들고 돌아온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도대체 자식들의 마음속엔 어떤 악(惡)이 숨어 있는 것일까.

D 유치원 보모로 있는 K 선생은 아침마다 원아(園兒)들에게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게 한다. 원아들이 그리는 어머니의 얼굴로 그날의 아이의 기분을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사실 원아들은 아침마다 제각기 신이 나서 둥글고 모든 어머니의 얼굴을 각양각색으로 도화지 가득히 그려놓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영이가 그런 엄마의 얼굴에는 커다란 가위표가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의아하여 묻는 선생님 말에 영이는 울상이 되어 ‘엄마 미워!’ 하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영이는 그날 아침 엄마에게 떼를 쓰다 매를 맞았던 것이다.

영이에게 매질을 하여 보낸 엄마는 하루 종일 가슴이 얼얼하게 아프고 측은하고 가엾었다. 자책하고 후회했다.

돌아오면 영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좋아하는 과자를 준비하고 깨끗하게 영이의 방을 치워놓고…

그러나 영이는 귀가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로 놀러 갔는지, 아니면 어디서 잘못하여 다쳤는지, 엄마의 가슴은 불안과 자책으로 범벅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유치원으로 영이의 친구집으로 사방 찾아 다닌다.

아이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불안과 자책에 떨며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을 알 만큼 커버린 나이에도 역시 그들은 어머니의 아픔을 모르는 척 외면하기 일쑤다.

조그만한 꾸중에도 이맛살을 찌푸리고 반발하고 투정하며 때로는 원망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나 커서 자기 생활을 갖게 되면 먼 곳으로 떠날 것을 생각하고, 떠나서는 아주 잊은 듯 소식조차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 과연 어버니 마음엔 부처가 살고 자식의 마음엔 악인이 산다는 속담이 있을 법도 한 일이다.

나에게도 지금 칠순이 다 되신 노모(老母)가 계시다. 그러데 40평생이 넘도록 그 어머니 마음 단 하루도 즐겁고 편안하게 해드린 일 손꼽으라면 열 손가락에도 꼽을 것이 없는 것 같다.

마치 마른 나무에 물말라 가듯 한 해 한 해 기력이 쇠진하여 가는 어머니, 그 어머니의 쓸쓸한 정경에 이따금 목메여 혼자 느껴도 보지만 기실 날이 새면 또 다른 생활의 핍박으로 그분의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인 것이다.

27년 시를 썼다고 하나 도시 그 어머니를 위해 몇 편의 시를 썼던가 생각하면 송구스럽기만 하다.

 

 

深深山川

외로운 골짜기에

홀로 앉아 사는

할미꽃처럼 살으셨네

나의 어머닌

 

달이

앞 江에

물먹은 菊花송이처럼

싱싱한 밤엔

서러운 情 붙일 데 없는

바람처럼 살으셨네

나의 어머닌

 

지금은

하얗게

사위어 가는

질화로의 재

한 生의 歷史가

불 속에 타버렸네

예순 다섯 해

 

(할미꽃처럼 살으셨네)

 

 

어느 어버이가 안 그러랴마는 이분 역시 자식을 위해 홀로 희생의 본보기처럼 살아오신 분이다. 그런데도 나는 거듭하는 말이지만 이분을 위해 별로 자상스럽지도 따뜻하지도 못한, 한 마디로 무심하기 그지 없는 딸이다.

마음속에서야 어떻든 간에 외적인 정의 표시에 지극히 인색하며 둔하다. 어머니는 중년이 넘는 딸을 아직도 어린애처럼 생각하시고 끼니 때면 많이 먹으라고 권하시고 외출하면 일찍 돌아오라고 당부하신다.

평생 한 번도 ‘내가 뭣이 좀 먹고 싶은데’ 하시는 희망을 말하신 적이 없고, 오직 ‘너 뭣 좀 먹어야 하지 않느냐’ 는 근심으로 가득 차 계시다.

평생을 다 주고도 잊지 못하시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에게 지극히 작은 기쁨 하나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자식, 이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란 도시 무엇일까.

기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정이 절대적이며 근원적인 것에 비해, 자식이 어머니에 대한 정이란 지극히 감상적이며 즉흥적인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어버이의 정을 무한히 주는 일광의 빛이라 하면 자식은 그 빛을 받아 피어나는 꽃처럼 오직 피어주는 것만으로 어머니의 기쁨이 되며 보답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하여 나의 어머니 앞에 나는 아직도 조심스런 어린아이이며 내 앞에 내 아이들은 또 한 영원히 염려스러운 애물인 것이다.

 

갚음 없는 사랑의 상속자, 우리의 어머니는 우리에게는 버림받고 우리는 또 우리의 자식들에게서 버림받으며 면면이 갚음 없는 사랑을 이어받는 이름 없는 사랑의 상속자들. 나로 인해 섭섭했던 어머니의 슬픔을 내가 이어받고, 또 그 슬픔을 내 자식들이 이어받음으로써 우리는 그 슬픈 ‘어머니’의 영혼에 속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수한 발길에 밟히고 언젠가는 잊혀져 버리는 하나의 길 어머니는 바로 그 밟히고 잊혀져 버리는 ‘길’인 것이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가슴엔 무수한 아픔의 발자국만이 훈장처럼 남는다. 그리고 자식은 때를 놓치고서야 비로소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아들이 모시려 하나 어버이 계시지 않는’ 뉘우침 속에 눈뜨는 것이다.

누구도 이 천리(天理)를 바꾸지도 고치지도 못하여 왔다.

그것은 신(神)이, 이 세상 어머니의 사랑을 더욱 더 영광되게 하시기 위해, 절대적이며 고독하신 당신의 사랑을 닮게 하신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그 속에 숨어계신 하느님을 엿보는 것이다. 늘 자식을 위해 울고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아니 하느님의 모습을.

 

 

어머니

당신은 이따금

신기하게 작은 人形이 되고

놀랍도록 가벼운 物體가 되십니다

그리고는 부서질 듯 꺼지는 한 줌의 體重이

무거운 탄환처럼 가슴에 와 박힙니다

짜고 辛酸한 한 生涯의 무게가…

 

우리가 흘러온 물의 근원을 잊어버리고

까맣게 한바다를 헤매 다닐 때

당신은 홀로 남은 山 골짝에서

텅텅 속을 태워 버리시고

아무도 모르게 태워 버리시고

이윽고는

南風에도 부서지는 마른 잎이 되십니다.

 

<아 저 山허리를 넘어가는 노을같은 뒷모습>

 

五月의 純金빛 햇살을 깔고

소꿉놀이 하시듯 반짇고리 뒤적이며

오색의 아롱진 조각보 모으시는

어머니,

당신은 오늘

이상하게 아름다운 少女가 되고

문득 눈부신 부처님이 되십니다

 

(어머니, 당신은)

 

 

오직 그 곁에 살아있어 주는 일뿐

고등학교 2학년의 딸이이가 있다.

이 아이가 항상 밤샘을 하고 아침이면 으례히 늦어서 번번이 나를 애먹이는 말썽꾸러기다.

자아가 강하고 비판이 신랄하며 기분이 내키면 위인들의 경구(警句)를 곧잘 주워대는 재치와 응변을 가지고도 있다.

사실 나는 이 아이뿐 아니라, 어느 아이하고도 마주 앉아 긴 시간 이야기할 겨를이 없다. 항상 내 일에 쫓기다 보니 아이들의 내면생활에 어둡고 멀다.

어느날 아이의 둔부에 생긴 약간 심한 조기에 고약을 갈아붙여 주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소리 없이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픔 때문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며칠이면 날 것을 커단 게 울기는…”

어쩌구 하며 위로삼아 눙치는데 아이는 별안간 홱 돌아 앉으며 말끔한 눈으로 꼿꼿이 얼굴을 들고 입을 떼기 시작하는 것이다.

“엄마, 내가 아파서 우는 줄 알아? 엄만 아무것도 몰라! 뭘 알아! 엄마가 내 뭣을 안단 말이지? 난 살기 싫단 말야! 내겐 아무것도 없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끝났어. 내 생활은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엉망진창이란 말야. 나같은 나쁜 애는 살 권리가 없어….”

마지막 말은 잘 들리지도 않는 반 독백이었다.

그야말로 엉만진창인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폭소를 했다.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이라니 그 과장된 표현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폭소를 하다가 점차 가슴이 뭉클하게 치미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무엇이 이 아이를 이처럼 괴롭히는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 많은 것들을 하고 싶었던만 단 한 가지도 못하고 말았다’ 면서 울먹이며 엎어지는 아이의 등 뒤에서 나는 한 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기쁨과 위안엔 한계가 있다. 이미 나는 그 한계에서 아이의 괴로움을 위로해 줄 수 없는 무력을 느낀다.

기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엄마의 힘이란 얼마나 작고 무력한 것이다. 우리가 그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잠자리와 옷가지와 먹을 것을 장만해 주는 그 정도의 힘밖에 없는 것이다.

이따금 그애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속을 살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기질 그것이 그애들에게 얼마만한 위안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몇해 전 어느 선배작가가 외동딸을 시집보내면서 하던 말이 새삼 생각난다.

“나는 더 이상 그 아이에게 줄 기쁨이 없어요. 그 아이는 이미 엄마의 사랑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만큼 자랐어요.”

결국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애들 곁에 살아있어 주는 일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자신이

‘내가 여러해 동안 소원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소원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배웠다.’ 고 독일의 시인 가이벨이 말했듯이 스스로 인생을 깨우쳐 가는 괴로운 과정을 지켜보아 주는 일 이외엔 없는 것이다.

 

 

잃어가는 어머니, 잃어가는 자식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엔 요리조리 밀어만 대다가 정작 코앞에 닥쳐야만 불을 끄듯 설쳐대는 칠칠치 못한 버릇이 항상 있다.

아이의 방과 아빠의 방을 바꾸고 나니 높은 서가(書架)로 가리워졌던 유리창이 썰렁한 맨살을 드러내게 되었다. 바늘 구멍에서 황소바람이라던가.

‘저 창에 커튼을 쳐 줘야지.’

생각하고 벼른 지가 열흘이 넘었건만 차일피일 밀어만 오다가, 갑자기 밀어닥친 한파의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고서야 더 이상 밀 수가 없어 무거운 궁둥이를 일으켰다.

오랜 만의 외출, 무슨 일이 그리 많은지 밀린 일들을 한꺼번에 몰아가지고 기왕 나온 길에 처리해 버리자고 몇 군데를 돌다 보니 어느새 저물고 말았다.

부랴부랴 시장에 들러 커튼지 몇 마를 사들고 돌아온 것이 여섯 시가 넘었다.

‘밤 안으로 박아서 고리를 달아 둘러쳐 줘야지, 내일 아침은 영하 9도로 내려간다는데…’ 하는 생각으로 저녁도 대강대강 치우고 바쁘게 서둘러 치수를 재고 잘르고 해서 재봉틀에 박기 시작했다.

그때 제 방에서 건너온 끝의 놈의 신기한 듯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야! 웬일이야, 엄마가 미싱을 다 할 줄 알아!’ 반은 놀리는 말투였지만 기쁨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아니 네 어민 미싱도 못하는 줄 알았더냐?’ 하시었다.

‘헤, 참 이상한데. 엄마 정말 괜찮은 거야? 나중에 뜯는 것(잘못해서) 아냐?’ 어쩌구 키득거리며 연신 놀려대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싶으셨던지, 원병(援兵)이라도 내시듯

‘이녀석아, 네 어미가 하질 않아서 그러지 하지만 해 봐라, 바느질을 얼마나 곱게 하는지 아냐. 옛날에 네 고모 시집갈 때도 엄마가 흰 치마 저고리 예복까지 지어 입혔어요. 누나들 양복이며 네 양복두 지어 입혔구. 털 스웨터 털 장갑 모두 짜 입혔구… 이녀석이 어미를 아주 바보로 아는구나.’ 감회에 잠기듯 띄엄띄엄 그런 말들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한 담화를 흥흥 코웃음으로 등 뒤에 흘리면서 나는 문득문득 야릇한 비애, 적이 미안하고 부끄러운 비애에 빠져 들어갔다.

아이의 눈에 비쳐진 엄마라는 여자, ‘엄마’ 하면 아이의 머리에 떠올랐을 나라는 여자의 모습, 그 너무도 쓸모 없이 초라하고 빈약한 영상이었던 것에 나는 갑자기 커다란 실물이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휑하니 비어버리는 것이었다.

일찌기 생각조차 못했던 실망과 자기 환명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 한테만은 남못지 않게 변변한 어미였기를 원하고 또 자부했던 마음이 여지 없이 부숴져 버리는 듯하였다. 아니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뿐인데 그것이 그처럼 서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나라는 여자는 그렇게 여성적이지도 가정적이지도 못하다. 조그마한 가사에도 힘이 들어 낑낑거리기 일쑤고, 매사를 어머니와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맡겨 버리고는 죽을 끓이는지 밥을 끓이는지 모르는 때가 부지기수다.

그야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러니까 내가 아직 젊었을 때, 나 역시 여자다움에 무심하지 않았고, 그런 일에 적지 않은 기쁨을 느끼기도 했었다.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는 재미나 도우넛을 굽는 소꿉놀이같은 즐거움에 부풀기도 했었다.

예쁜 꽃무늬의 포플린을 끊어다 아이들의 양복을 짓는 기쁨이나, 인두불을 피워놓고 저고리의 섶을 달고 깃을 붙이고 도련을 꺾어 안을 받치고, 솔기솔기 화서 뒤집어 바늘 끝으로 섶부리를 끌어내고 깃고대를 막아 시침을 뜨고, 동정과 고름으로 끝을 마물던 바느질의 삼매경을 헤맨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뭔지 그것만으로는 욕심을 채울 수 없었던 천성의 고(孤)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몰아갔고, 그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들다 보니 나는 어느듯 여자로서의 본분, 엄마로서의 의무를 저버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 끝의 아이가

‘난 엄마가 해준 것 먹어본 기억이 꼭 두 번 밖엔 없다. 한 번은 떡국, 한 번은 라면.. 참 맛있더라.’

무심결에 쏟아놓은 말을 들었을 때도 서글프다고 할까 한심하다고 할까 예리한 회초리로 호되게 얻어맞은 것같은 심정이 되어 대답할 바를 몰랐었다.

그때도 옆에 있던 대학에 다니는 큰 딸아이가 엄마의 붉어진 얼굴을 쳐다보며 안되었던지

‘네가 어려서 기억이 없어서 그렇지, 난 안 그래, 엄마가 얼마나 큰일을 많이 했다구, 제사 때나 할머니 할아버지 생신 때마다 엄마 혼자서 다 했단말야.’ 하고 거짓말 아닌 위로의 말로 나를 도와주었지만 허점을 찔린 내 심정을 달래주진 못했었다.

다 큰 아이들이라 가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엄마를 공격할 때가 있다.

‘대체 엄마는 뭐야, 부엌에도 안 나가고 바느질도 안하구, 빵이나 궈서 우유나 한잔씩 따라주는 게 엄만가, 맨날 원고뭉치나 신주단지처럼 붙잡구 앉아서…’

지당하고 지당한 말씀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 정도, 토우스터에 빵을 굽고, 우유나 따라주는 일. 내복이나 양말 켤레를 시장에서 사다주는 일, 감기 걸리면 약 먹으라고 잔소리나 하는 일 밖엔 없는 것이다.

옛날의 우리 어머니처럼 깎두기를 유난히 맛있게 담그시고 동태찌개를 별나게 시원하게 끓여 주시던 솜씨도 없고, 손수 물을 들여 다듬이질하시고 밤새워 지어 주시던 명주치마 저고리의 그 따습던 정성도 없다.

하루같이 새벽밥을 지으시느라 어두울 때 일어나시고, 곱은 손에 얼음을 깨시던 어머니의 기억이 내게는 있지만, 내 아이들의 머리 속엔 밤을 새우다 새벽잠에 떨어진 엄마의 미운 몰골 밖엔 없을 것이다.

오는 날도 오는 날도 부엌과 장독대를 맴도시고, 빨래나 바느질에 묻혀 사시던 어머니,

봄이면 쑥버무리, 가을이면 무우 시루떡을 맛있게 쪄주시던 어머니의 기억 대신, 밖에서 돌아와도 코빼기도 볼 수 없는 잦은 외출과, 고작 케이크집 빵조각이나 덜렁 들고 오는 엄마의 기억 밖엔 없을 것이다.

진실로 아이들 가슴 속에 오래오래 그림처럼 향기처럼 남아줄 엄마의 기억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엄마에 대한 향수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엄마에 대한 기억도 향수도 없는 아이들의 가슴은 불빛이 없는 오두막같이 쓸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가슴 속에 아무런 기억도 남겨주지 못한 엄마의 위치 또한 슬프고 민망하기 그지 없다.

면면한 정서의 유산을 물려주지 못하는 어머니와 자식, 빛깔도 향기도 없는 삭막한 유대, 그래서 아이들은 조금씩 어머니를 잃어가고 어머니 또한 자식을 일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현대화는 자식의 가슴에 적막을 키우고 어머니와의 사이에 벽을 쌓는 이별의 서곡인 것만 같다.

 

 

 

 

II 모든 길의 마지막에

 

 

慾望을 걸러내는 체

 

그 골목엔

사철 유리문 덜컹거리는

야채가게와

신기료 할아버지의

露店이 있었다.

 

테레지아 성당에선

주일마다 울리는 맑은 彌撤소리

목소리 우악하신 長身의 神父님이

이따금 巨木처럼 골목 밖을

내다 보셨다

 

세상은 완벽한 神의 風車

아침이면 삐걱대는 생활의 문소리

골목을 열고

한낮이면 셀로판紙에 싼

한 포기 꽃처럼 잠드는 골목

 

그 골목에

二十年 뿌리 내린

나도 변함 없이 生活을 쪼아 온

빛의 石手다

 

(골목 안 풍경)

 

 

인생은 神이 쓴 童話

‘모든 사람의 일생은 신의 손에 의하여 씌어진 동화에 지나지 않는다.’ 고 안델센은 말하고 있다. 사실 아무리 불행한 일생이건만 또는 행복한 일생이건 간에 신의 눈으로 본다면 그저 아름답고 귀엽고 대견한 한 토막의 이야기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아니 보다 더 신은 동화를 써내듯, 하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을 제멋대로 구상하고 짜내서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슬프게 그리고 때로는 유쾌하게 써 갈기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량 생산하신 신의 각본대로 한 평생을 달리고 웃고 울며 별의별 곡예를 다 부리다 마침내 끝나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러는 해피 엔딩으로, 더러는 눈물 콧물의 홍루물(紅淚物)로. 모두가 신이 진작 준비하신 연출대로 말이다.

아무튼 신에게 있어선 재미있는 동화이고, 기분 내키는 대로의 작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삶을 부채(負債) 처럼 등에 짊어지고 앉은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결코 꿈같은 동화일 수도 일시적인 장난일 수도 없는 일이다. 하기는

“이 세상에서의 한 주일은 죽은 뒤의 8백 년의 영광보다 낫다”

고 프랑스의 문학자 쌍 테브즈몽은 말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그 비슷한 속담이 있어

“죽은 정승이 산 개만도 못하다”

는 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누가 저 세상에 가보고 온 것도 아니다. 그저 지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레 짐작일 뿐 저승의 망자(亡者)의 대답은 아예 엉뚱할는지도 사실은 모른다.

“웃기지 말라. 지상의 8백 년의 영광인들 지하의 이 평화와 안식과는 바꿀 수 없다”고 반발할는지 누가 알 수 있는가.

신은 인간에게 참 많은 것을 주셨다. 지상에서 누릴 갖가지 영화와 권세를, 그리고 그것과 동량(同量)만큼의 비애와 불행도 고루 고루 주셨다. 그런데 이왕에 주실 바에야 빠짐 없이 주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중 하나를, 가장 요긴한 한 가지를 빼놓으셨던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릇을 채우는 마지막 ‘만족’이라는 이름의 잔 하나를 잊으셨던 것이다.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 한, 아무리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 한 구석을 인간은 운명처럼 지고 간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갖가지 욕망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우리가 먹고 살고 입고 가지고 하는 것은 당연한 생의 조건이다. 그런데 그 먹고 살고 가지고 입고란 글자 위에 ‘잘’이라는 부사가 붙는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그런데 그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로 끝나면 문제는 없는데 그것이 아니다. 그 ‘잘’ 위에 ‘더’라는 비교급이 붙는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고’… 그러다 얼마쯤 지나보면 또다시 ‘더’자 위에 ‘더’가 더 붙는다. ‘더’위에 ‘더’, 그 ‘더’ 위에 또 다른 ‘더’, 이렇게 한없이 더 가 붙어 올라간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마음은 기실 무한대한 공간이지도 모른다. 하면 어찌하여 신은 한정된 생명체인 인간에게 그처럼 무한대한 마음을 넣어 주셨을까. 어찌하여 그처럼 어이 없는 미스테이크를 저지르셨을까. 마지막 그 한 잔 ‘만족’이라는 잔 하나를 채워 주셨다면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배불리 젖을 먹은 어린아이처럼 만족하여, 유순하게 싸움도 시기도 하지 않고 태평세월을 누릴 수 있을 것을.

그러고 보니 누군가 뒤에서 그것이 바로 인간이 짊어진 원죄가 아니냐고 호통치는 것 같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에와의 작죄(作罪), 고 조그마한 불장난에 이처럼 엄청난 형벌을 내리신 야훼도 기실은 관대한 분이 못 되시는 것 같다. 아니 그분이 얼마나 지독한 분인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구약(舊約)에서 보아왔다. 하면 인간이 짊어진 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고통도 기실은 그분의 지독한 형벌 중의 하나인지 모른다.

번번이 맑은 정신과 밝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불길 같은 욕망.

자유로운 정신을 구속하는 전제군주 같은 욕망.

채워도 채워도 밑 빠진 그릇처럼 끝이 없는 탐욕스런 욕망.

벌레 먹은 나무등걸 같고, 악취를 풍기는 썩은 과실 같고, 감미로운 독약 같고 호랑이 같고 여우 같은 욕망. 이 욕망을 씻어내는 선약(仙藥)은 무엇일까. 곱고 순수한 것만을 걸러내는 체는 없을까. 하느님의 미스테이크를 다시 그분께로 돌리는 방법은 없을까.

 

 

그의 요람 搖籃 에 잠드는 욕망

어느 시인에게서 들은 우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외딴 섬, 무인고도에 홀로 바다를 지키는 등대지기가 있었다. 어느 날 그를 위로코자 일부러 육지에서 방문한 한 도시의 대학교수가 진심으로 그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외딴 섬에서 얼마나 외롭고 갑갑하시겠습니까. 어떻게든 당신을 돕고 싶은데 다행히 나에게 적지 않은 서적이 있으니 당신이 원하신다면 돌아가는 길로 즉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데 그 등대지기, 조용히 고개를 흔들면서 말하더라는 것이다.

“뜻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두 권의 희귀한 진서(珍書)가 있으니, 그 하나는 하늘이라는 이름의 책이요, 다른 하나는 바다라는 이름의 책입니다. 이 두 권의 책만 가지고도 평생을 못다 읽을 터인데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물론 이것은 하나의 우화다. 단지 사철로 변하는 하늘의 신비로움과 바다의 무궁무진한 조화를 비유한 이야기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한다. 바로 이 등대지기의 너무도 초연한 정신세계다.

허심 무욕하고 의연(毅然)하며 신념에 찬 자세, 스스로를 아는 분별과 양식의 지혜, 자신이 소유하는 영역(領域)밖의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기대도 욕망도 걸리 않으며 바라지도 않으며 결연히 거절할 수 있는 결백과 용기.

그는 참으로 자신이 위치하는 자리에 대해서 철저하게 인식하고 몰두하며, 아울러 긍지를 갖는 고고(孤高)하고도 투철한 자각정신의 소유자인 것이다.

하면 이토록 그를 초연하고 의연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평생을 읽어도 못다 읽을 하늘과 바다라는 두 권의 책’ 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 크고 큰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무한의 글자이며, 소리이며, 의미였을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마주 서는 영원(永遠)이었을 것이다. 영원의 크고 무한대한 요람으로 위로 받는 등대지기의 가슴엔 그 밖의 어떠한 물체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무한’으로 가득 찬 가슴에선 다른 욕망의 부스러기들이 죽은 표피(表皮) 처럼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신은 참으로 밉살스럽도록 오묘한 분이시다. 당신에게 작죄하여 낙원 밖으로 내쫓은 아담과 에와에게, 그러나 당신을 잊지 못하도록 가장 큰 자리 하나를 비어 놓으셨던 것이다. 당신이 아니고선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빈 자리 하나를 파놓으셨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향해 걸어오는 길에서만 완전한 만족과 충일(充溢)을 얻을 수 있도록, 당신을 위한 당신의 자리 하나를 마련해 놓으셨던 것이다.

기실 신은 인간에게 결코 미스테이크를 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교묘히 가장 치밀하게 당신의 계획을 실천하신 것이다.

인류가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지상 어느 곳에도 완전한 행복을 풀어주지 않으셨고 완전한 만족을 넣어주지 않으셨다.

어느 골목길 하나도 그의 설계에서 빠진 것이 없고, 어느 시간의 한 자락도 그의 계산에서 누락된 것이 없다.

누구의 말이던가,

“생명은 신을 찾기 위해 주어지고, 죽음은 그를 만나기 위해 주어졌으며, 영원은 그를 소유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참으로 얼마나 완벽한 그의 계획이냐. 한 치의 차질 없이 그의 무한한 요람 안에서만 잠들 수 있는 인간의 욕망.

기실 우리가 무수한 인간적 욕망의 고통을 치르어 가는 일도 종내는 그를 찾고 그를 만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그는 어디선가 우리가 종내는 찾아올 것을 기다리며 있는 것이다.

 

 

모든 길의 마지막에

 

主 여

지금은 十二月

氷壁 에 갇힌 계절

걸어온 때의 마지막 기슭에서

다시 한 해를 작별하는

깊고 쓸쓸한 시간입니다

얼어붙은 문고리 마다

성애 낀 설한 설한의 아침

 

당신 위한 祭臺 의 聖燭 도

차단히 빛나는데

하늘엔

겟세마니 동산의 그날의 모습 같은 겨울 太陽

아득한 날

갈릴리 海岸 을 걸으시던

말씀의 고독도 번져 옵니다.

 

2천 번 태어나시고

2천 번 못박히신

무한으로 오실 생명의 意味,

未明 을 일깨우신 당신의 말씀 속에

세상은 지금 한 포기 해바라기로 숨 쉬거늘

빛 속에 빛이신

光輝로운 분이시여

 

읽어버린 者

죄지은 者,

슬픔에 지친 者,

한결같은 땅 위에도

主 오시는 十二月 이 있으므로

얼었던 가슴 다시 풀리고

사랑의 새 잎 돋아 나옴을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날까지

당신을 기다리며 있는 날까지

무한으로 오실

분이여

당신의 사랑을

우리가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뜨겁게 믿습니다

氷原 의 새벽에

 

(크리스마스 頌歌)

 

 

神 은 잔인하였다

 

신(神)의 위대한 시인, 다윗이 어느 날 밤, 높은 다락에 올라 찬란한 별들이 수 놓인 밤하늘을 우러러 보며 경이와 찬탄의 비파를 뜯으며 노래한다.

 

“주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며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시편 8.2-5, 최민순 신부 번역 참조)

 

 

시원(시원)의 언덕에서 경이와 감동과 외경(畏敬)에 찬 가슴 설레며 노래했을 유대의 왕, 베들레헴 고을, 이새의 여덟째 아들, 그 소박하고 용맹스럽고 슬기로우며 경건한 사나이의 가슴에 얼마나 장엄하게 비쳐졌을 천체의 신비며 창조주의 엄위로움이었을까.

무엇을 꿈꾸며 무엇을 시험하려는지 짐작할 길도 없는 장엄하고 무변대한 공간에 서서 시시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 목소리같은 바람소리를 들으며, 찬란한 은하(銀河)의 섬광(閃光)에 몸을 떨며 어쩔 수 없이 비파에 담아냈을 흠숭(欽崇)과 찬탄의 절창(絶唱),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며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시고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만상을 그의 발 아래 두시었으니

당신 이름이 어이 이리 묘하신고

 

그렇게 송축(頌祝)하며 찬미하는 다윗의 노래가 시원의 밤하늘을 울렸으리라. 사실 그 밤의 다윗처럼 우리도 어느 날 밤, 높은 산마루에 올라 무변한 천체의 일각(一角)과 마주 선다면 그 밤의 신비, 그 밤의 외경이 다윗처럼 번져오지 않을까.

대자연의 경이 앞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신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까뮤의 페스트에 보면, 신에 대하여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그 하나는 신앙에 의해 해결을 찾으려는 파느루 신부이고, 다른 하나는 신의 배리(背理)에 반역하는 무신앙자이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헌신하는 의사 류다.

페스트에 전염된 수많은 어린이들이 무더기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류 의사는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비의 신이라면 왜 이 죄 없는 어린 생명들을 앗아가는가, 견딜 수 없는 의분을 느낀다. 그래서 페스트는 신이 내리신 벌이니 인간은 반성하고 속죄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파느루 신부에게

“하지만 적어도 저 애들은 죄가 없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아실 테죠!” 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어서

“죄 없는 어린이들까지도 주리를 트는 이 세상을 사랑하기란 죽어도 싫다” 고 항의한다. 그리고 계속하여 파느루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과 토론하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는 모독이니 기도니 하는 것을 초월해서 우리를 결합시켜 주고 있는 그 무엇을 위해서 함께 일하고 있어요. 그것만이 중요합니다.”

페스트의 발생으로 한 시가 온통 죽음에 직면한다. 그 무서운 상황 속에서 인간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면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신은 인간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죄 없는 많은 생명을 무더기로 앗아가고 사랑으로 희생하는 사람에게서 가장 아끼는 것들을 가차 없이 뺏어갔다. 이 참혹한 신의 배리를 무슨 말로 옹호할 수 있을까.

“전능하면서 악을 행하고, 자비로우면서 하나의 자비도 행하지 않는 신.” 까뮤는 이렇게 그의 신을 비평하고 있다.

기실 신은 무자비하시다. 창세기 어느 구석을 들춰 보아도 인간의 역사는 무수한 신의 박해 속에 불가항력으로 굴복하고 희생하며 견디어 온 형벌의 역사 아닌 것이 없다.

최초에 신은 이미 그의 뜻을 어겼다 하여 아담과 에와에게 원죄를 짊어 지워 지상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창세기 3.24). 그것은 그들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두려워 취한 조치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신이며 전능하신 신의 권위다. 결코 조그마한 죄도 용서하지 않고 몇 갑절의 형벌로 다스리는 신, 당신의 영역을 한 치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절대적인 권위, 그것이 신의 자비다.

신은 또 당신을 공경하지 않는 카인보다 정성으로 공경하는 아벨을 사랑하신다. 그 결과 카인은 동생을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고 마침내 불행한 혈육살생을 빚어내게 된다. 현물적(現物的)인 신의 사랑이 빚은 인간의 비극이라 하겠다.

또 신은 악한 인간들의 세상을 다스린다 하여 40일의 홍수를 풀어 지상을 멸망시켜 버린다. 단 한 갖고 노아의 식구만을 제외하고. 이는 신이 선택한 소수의 인간들만의 소유인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물론 원래 구약(舊約) 자체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세사인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긴 하지만 이분의 행적은 지나치게 편협하며 기분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인간의 조상 이사악의 아내 리브가가 두 아들을 잉태했을 때도 신은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창세기 25.23)고 예언했으며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오를 미워하였다'(말라기 1.2-3)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들어 바오로는 신이 인간의 ‘아들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또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이미 ‘당신 뜻대로 뽑으시는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하여 ‘인간의 선행을 보고 사람을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부르시는 거'(로마서 9.11-12)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것만을 보아도 신은 소수의 선택된 자만을 제외하고는 그지 없이 냉혹한 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또 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과 불로 멸망시키고,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외아들 이사악을 불에 태워 고양 으로 바칠 것을 명한다.

후스 땅의 욥을 시험하기 위해 양떼와 종들을 태워 죽이고, 아들과 딸들을 광풍으로 죽이고, 그리고도 모자라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지독한 종기로 앓아 눕게 한다.

이것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신의 자비며 전능이시다. 끊임 없는 고난과 시험으로 인간을 괴롭혀 온 신, 과연 신은 자비로운 분인가 냉혹한 분인가.

 

 

 

十字架에 못박은 神의 자비

 

희랍신화로 옮겨 보면 그 신의 잔혹성은 한층 더 치밀하고 치열해 진다. 인류의 은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생활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제우스 신전에서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준다. 그것을 안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사스 암벽 위에 매달아 놓고 독수리로 하여금 그의 심장을 파먹게 한다. 그리고도 고통을 영속시키기 위해 없어진 심장을 다시 돋아나게 하고 그것을 다시 독수리에게 파먹게 하고 그래서 영원히 그치지 않는 고통 속에 신음하게 하는 것이다. 실로 무서운 신의 보복과 질투와 광폭한 힘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신의 보복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영겁의 고통을 주는 것으로도 시원치 않아 인류 전체를 괴롭힐 것을 계획한다. 그것이 바로 판도라의 상자다. 아름다운 여인을 시켜 재앙과 화근을 담은 상자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다.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이 상자의 뚜껑을 몰래 열어 본다. 그러자 그 순간 상자 속에 숨어있던 갖가지 재앙과 불행이 이 세상에 연기처럼 퍼져나간다. 놀란 에피메테우스가 상자의 뚜껑을 닫아버리자 맨 나중까지 상자 밑에서 어물거리고 있던 ‘허망한 희망’만이 그대로 단지 속에 남아있게 된다. 결국 인간은 그 상자 속에 남아있는 허망한 희망을 찾아 온갖 불행을 한 평생 치러 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들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우화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기실 인간이 본 신의 모습을 그처럼 무자비하고 잔혹했던 것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신의 자비가 어떤 것인가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그리스도는 신이 이 세상에 보낸 당신의 외아들이며 구세주라고 한다. 그런데 신은 이 세상에 당신의 나라를 펴기 위해 불의와 맞선 그리스도를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한다. 골고타 의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호곡 하는 그리스도를 끝내 가장 무서운 시험으로 다스리신다. 여기 어디에 신의 자비로운 응답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 옆에서

“어리석은 소리 말아라. 신의 사랑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가장 뜨겁고 진실한 사랑은 채찍을 드는 엄부(嚴父)의 사랑이다. 그때 골고타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에 인류가 구원되지 않았는가” 하고 꾸짖을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도 수긍할 수가 없다.

사실 인류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형벌한 것이라 치자. 그리스도는 인류를 사랑했기에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리고.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역시 그것은 신이 한 인자 人子의 절대적인 신심을 이용하여 가장 극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에 의해 인류의 가슴에 당신의 존재를 기억하게 하시려는 치밀하고도 가혹한 계획이었던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목적을 위해선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의 무자비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그렇게 전무후무 한 비극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과연 인류는 얼마큼이나 구원되었단 말인가. 인류를 슬프게 하는 모든 불행과 비탄은 소멸했는가. 정의는 이기고 불의는 심판 받았는가. 가난과 질병은 사라지고 평등과 자유는 회복되었는가.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고 평화는 약속되었는가. 죄 없는 어린이들이 굶주려 죽는 일은 없는가. 이기심과 쾌락주의가 젊은이들을 파괴하는 일은 없는가.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박해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천시하는 일은 없는가. 어느 누구도 여기에 명확한 대답을 주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찾는 심은 어디에 있는지, 잠들었는지, 사라졌는지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든 것은 침묵 속에 잠겨 말이 없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세계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정 속에 있고, 인류는 그 미지의 목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구원도 멸망도 없는 현재를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 가나안 바깥을 헤매고 있는 이방인 異邦人이고.

 

 

 

모든 길의 마지막에

 

나는 이제까지 창세기 또는 희랍신화에 나타난 몇몇,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일들을 열거하여 피상적으로 신의 가혹함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올곧잖은 심사는 기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무한한 존재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신의 현존을 믿지 않는다면 그런 푸념도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세상은 지금 불행과 부조리에 차 있다. 옛날 그리스도의 시대처럼 배고픈 자에게 빵을 나누어 주고,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하는 기적도 없다. 죄지은 자가 부귀를 누리고 마음 착한 이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무력한 인간은 이러한 불행을 운명 – 곧 신의 대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는 – 으로 돌릴 수 밖에 없고, 나아가 신의 존재, 신의 섭리를 회의하게 되며 급기야는 신 부재 神 不在, 신 무용 神 無用  의 반기조차 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어느 막다른 순간에 다 달아 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고 죽어가는 환자가 회생 回生의 약을 구하듯이 절망의 순간에 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에게서부터 비롯하였으며 그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의 모체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우리의 존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주어진 것이며 그 생명 또한 잠정적으로 맡겨진 것 뿐, 우리의 임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그 한 분 절대자의 의지에 의해 잠정적으로 맡겨진 생명이 어느 위급한 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신을 생각하게 됨은 바로 생명이 그 고향을 찾는 본능이라고 하겠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일생 동안에 언젠가는 자신이 절망의 나락 속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완전한 실망과 낙담 속에 인간을 빠지게 하며 생명을 위협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라는 신의 목소리인 것이다”(베르나노스)

다시 말하면 빈사 瀕死의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희망의 목소리, 한없이 자비롭고 힘찬 위안의 목소리, 채찍의 목소리, 그것이 바로 신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하면 여기서 잠시 신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이란 시장에 가서 사고 싶은 물건을 보았을 때 지체 없이 값을 지불할 수 있도록 주머니 속에 항상 넣고 다니는 지폐 같은 것일까, 배고플 때 손을 내밀거나 눈물을 흘리면서 조르기만 하면 언제든 먹을 것을 주시는 어머니 같은 분인가.

나를 포함한 많은 세상 사람들은 사실상 신을 생각하기를 이처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지폐 아니면 어머니 같은 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신은 우리가 원할 때 우리 곁에 계신다. 그러나 은행의 보증수표 같은 현실적 인스턴트의 효용성을 지니고 번쩍이며 요란스럽게 오시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가장 은밀히 가장 낮은 발걸음으로 제일 남루한 곳 헐벗은 시간에 알지도 못하게 소리 없이 스며드신다.

조그마한 자리나마 교만으로 가리운 마음엔 신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재물로 가득 찬 곳간엔 무서운 파수병이 그 누구의 접근도 용서치 않는다.

하여 신은 당신의 거처를 사람의 마음속에 만들려고 할 때엔 반드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빈 자리 하나를 비워 놓으신다. 사람들은 그 공백의 텅 빈 자리에서 솟아나는 허무감 속에 비로소 신의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다친 가슴의 가장 아픈 자리에, 무거운 병상에 시달린 가슴에, 허물어진 악의 소굴에서 재생을 희구하는 참된 마음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비탄하는 가슴에, 말없이 고통을 견디는 버림받은 가슴에 신은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들어 서신다.

한 포기 이름 없는 꽃 속에 숨은 생명의 의미로, 하늘에 박힌 무수한 별들의 반짝이는 침묵의 빛으로 신은 예고 없이 지친 가슴에 숨어들어 오신다.

기실 신은 세상을 다스리는 채찍도 아니고 잠든 이를 깨워주는 종소리도 아니다. 때 맞추어 자비를 베푸는 자선가도 아니고, 심판을 내리는 법관도 아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한 오직 무한이며 영원이며 침묵이시다. 모든 길의 마지막에 서 계시며, 모든 문의 문밖에서 기다리는 마지막 나그네시다.

가장 큰 비탄 속에 만나는 얼굴이고 가장 큰 고통 끝에 다다르는 길이다.

그는 내게로 다가오는 발걸음도 아니고 스스로 부르는 목소리도 아니다.

내가 그를 향해 걸어가야 하는 멀고먼 길이며 아득한 목적이다.

도중에 가로막는 바윗돌이나 후미진 산길은 그에게로 가는 길에 넘어야 하는 도정 道程이며, 아름다운 꽃밭이나 춤추는 무도장도 그렇게 지나가는 한밤의 주막이다.

 어느 길도 목적이신 그리스도께서 미리 정해놓은 함정은 아니다. 그를 향해 걸어가는 인간이 스스로 택한 자신의 도정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도 스스로 택한 길이며, 그 길이 아니고선 목적이신 천주와의 만남을 이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택한 임의 任意의 길에서 마치 그것이 신의 잘못이기나 한 것처럼 원망하고 푸념한다.

목적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응원의 박수도 길잡이도 없는 고독한 길이다. 마차도 나귀도 없는 고난의 길이다. 때문에 그 길을 찾는 나그네는 적고 길은 더욱 외롭다.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의 일화가 있다. 그녀는 무너져가는 당시의 수도회를 개혁하여 깔멜 수도회를 설립하고, 타락한 시대의 풍속에 대항하여 무쇠처럼 병약한 몸을 이끌고 매진한 성녀다.

그녀가 심한 신경증으로 신체의 마비를 일으키고 실신하는 등 무서운 고통을 겪고 있었을 때, 고통에 못 이겨 그녀는 이렇게 그리스도에게 호소한다.

“주여, 이제까지의 그 많은 고통을 주신 뒤에 지금 또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그때 그리스도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데레사여, 나는 나의 친한 친구들을 그렇게 대접하노라.”

이에 데레사는

“오! 주여 그래서 당신의 친구가 왜 그리 적은 수인가를 내 이제 알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녀 데레사의 영적 체험의 고백이다.

실로 그리고 가는 길은 이렇게 십자가를 진 사람의 길이며, 때문에 그 수도 적고 외로운 고난의 길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며” (마르코 8.34) 또한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 (마르코 10.40) 이라고 천명하신 복음의 말씀대로 진실로 누구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면 거기 예비되어진 마지막 영과의 자리와 목적을 얻을 것이다. 지상에서든 천상에서든 그리스도가 도달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무한과 영원의 절대 미래를.

 

 

 

 

하늘의 저울대

 

 

 

아나톨 프랑스의 사제司祭와 목서초 木犀草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시시로 떨어진다.

모든 나날에 저녁이 있듯이, 한 해(年)의 끝에는 가을이 있다. 겨울에 앞서 때(시)의 사신 사신처럼 잠시 들러가는 가을의 우수 우수는 차라리 삶의 마지막 밤을 위안하는 정밀 靜謐[고요할 정, 고요할 밀] 한 신의 축연이 아닌가.

오늘은 들에 성염 盛艶을 토하고 내일은 초동의 손에 꺾이어 화로불에 던져질 풀꽃조차도 하늘은 온갖 아름다움으로 가꾸시거늘, 하물며 사람들이 저무는 이 가을 무엇을 근심하여 무엇을 괴로와하랴.

머리를 들고 저리 하늘을 날으는 새들을 보라. 장작도 벼낟가리도 곳간에 쌓아두지 않았건만 그들은 이 겨울 어디선가 따뜻한 둥지에 안식할 것이다. 하늘은 자연 속에 그들을 기르신다. 하물며 인간을 돌보지 않으시랴. 크고 무량한 섭리에 요람 속에.

한즉, 이 가을 먹고 입는 일에 크게 근심하지 말며, 가난하고 죄 罪 지음에 또한 깊이 번민하지 말자.

영원의 크고 큰 눈으로 볼 때, 인간의 허물은 한낱 꽃잎에 물든 노을 빛 얼룩에 불과한 것을. 선善도 악惡도 생각하면 이 세상을 다스리는 누군가 한 분의 면밀한 계획일 시 분명하다.

하여,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마지막 추수를 그 분께 맡기면 되는 것이다. 가을이 와서 큰 나무는 큰 잎사귀 지고, 병든 나무는 병든 잎 지듯.

세상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빛과 그림자 두 개의 화음 和音으로 이루어진다.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마을에서 성인이라고 불리우는 사제 한 분이 있었다. 그는 일체의 인간적인 욕망을 끊고 다만 희생의 법열 법열 이외에는 아무런 쾌락도 알지 못하였다. 때문에 사제의 정원에는 소채와 약초를 재배하는 것 이외에 꽃다운 꽃이라고는 그 어떤 것도 심지 않았었다. 다만 몇 포기의 볼품 없는 목서초 木犀草 가 정원 한 구석에 돋아나 있었고 그것만은 너무 초라하고 꽃 같지도 않았기에 무심히 버려 두었었다.

그런데 봄서부터 가을에 이르는 사이 이 초라한 목서초는 사제의 눈에 별로 띄지도 않게 자라서 가지 끝에 희뿌연 꽃을 달고 어느듯 마당 하나 가득히 퍼져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사제의 코를 찌른 짙은 꽃향기, 그 볼품 없는 목서초의 향기는 그만 엄격한 사제의 검은 법복 法服을 휩싸고 삽시간에 가슴에까지 스며 들었다.

그렇게 신성한 사제의 마음속에 스며든 목서초의 진한 꽃향기는 어느듯 허망한 색욕의 번뇌와 감각적인 행복의 향락을 갈망케 하며, 온갖 본능의 유혹을 불러 일으키는 듯 하였다. 그로부터 사제에겐 천국의 소리도 성모 마리아의 향기도 그전처럼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마침내 영혼은 나태해지고 어떠면 천국을 쫓겨날지도 모르는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신의 종으로 일체의 욕망을 단절한 성직자, 그도 인간적인 욕망 앞에선 지극히 약한 존재임을 부인하지 못하였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생명의 내부에 선과 악을, 카인과 아벨을, 영혼과 육신의 번민을 함께 지니고 태어난 모순체 다. 그래서 쾌락과 금욕을, 사랑과 미움을, 순결과 타락을 동시에 잉태하면서 밝은 세상과 어두운 세상을 빛과 그림자처럼 부유 浮游하는 것이다.

헬만 헷세는 그의 작품 ‘데미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고 있는 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신은 제멋대로 절단된 세계의 절반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공적인 허용된 밝은 세계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를 전체로서 숭배할 수 있어야 하며 때문에 세계의 나머지 반인 악마의 신을 동시에 갖거나 예배해야 한다” 고 데미안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있다.

기실 그는 신적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직적인 또 하나의 신을 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숭배하는 ‘공적 公的인, 허용된, 밝은 세계’의 절단된 반만을 나타내는 신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세계, 즉 악마까지도 포함되는 있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예배와 함께 악마에 대한 예배도 있어야 할 거라고 조심스레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이 그의 너무도 인간적인 고뇌의 표출이며, 때문에 고독한 종교는 아직 진리가 아니라고 일면 부정하고도 있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내면을 지배하는 두 개의 밝고 어두운 세계의 미스테리는 점점 불가사의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도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마치 백금으로 포장된 풀꽃 같은 연약함, 종교라는 신앙이라는 또는 지식이라는 교양이라는 금속의 장비 속에 감추어진 풀꽃처럼 연약한 감성, 눈을 감으면 코로, 코를 막으면 귀로, 바람처럼 공기처럼 스며드는 모습 없는 향기의 유혹, 그 유혹에 어쩔 수 없이 이끌려 가는 인간의 취약성, 바고 그것이 인간의 인간다운 본질이 아닌가. 항시 아래로 전락해 가는 지하 地下의 문소리에 쉽게 귀 기울이는 심약 心弱, 기실 약한 것은 악 惡이다 라는 말은 진리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엄격하기 이를 데 없던 사제의 내부에 파고든 하나의 위기, 꽃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모든 것을 외면하면서 부단히 도전하는 악마의 손길을 준엄히 물리쳐 오던 그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파괴하는 순간, 그것은 마치 견고한 성벽이 무너지는 순간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막혔던 물줄기에 무섭게 무너져 내리는 성벽, 그래서 이제껏 자제와 계율 계율이 극도로 엄하였던 만큼 더욱 크게 소리치고 범람하여, 쏟아지는 물살처럼 강뚝을 막는 마지막 분별까지도 무력하게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이다. 한없이 측은한 인간의 모습이다.

 

 

 

下降 의 苦惱 없이는

 

다행히 이 작품 속의 사제에게는 기적적인 구원의 손길이 나타남으로써 그의 성직자로서의 완덕의 길에 아무런 상처 없이 원만한 끝을 맺게 되지만, 그리고 또 사실로 가톨릭 2천 년의 역사가 이러한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무수한 성자와 뭇 별들에 의해 존속되어 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인간의 희망이나 의지 밖에서 엄연히 절단된 두 개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 선과 악 두 개의 세계를 끝도 없이 배회하는 나그네이고, 아니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희망이며 절대자의 의도인지도 모르지만.

기실 머리 위에 하늘이 있고 발 밑에 땅이 있듯이 높은 것과 낮은 것이,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성자와 범죄자가 각기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진실로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이 세상에 불행이 없다면 아무도 천국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신을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이 착하고 아름다운 것만으로 충만되어 있다면, 신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하면 세계의 반을 악마에게 양도한 것도 어쩌면 신의 뜻, 신의 계획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에게 당신의 존재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시키려는 치밀한 계획, 인간을 그 두 개의 세계 속에 낙하 落下 하면서 상승 上昇을 꿈꾸는 한 마리 세가 되게 하려는 가혹하고도 면밀계획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떠한 인간이든 두 개의 강렬한 욕망을 순간마다 느낀다. 그 하나는 신을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를 향한 것이다. 신을 향한 정신성은 위로 위로 오르려는 희망이고, 악마를 향한 동물성은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쾌락이다.’

‘악을 꽃’으로 일세를 풍미 風味했던 보오들레에르의 말이다. 그가 오욕 汚辱과 공허와 부패와 죽음의 현세적 고뇌에 몸부림치면서

‘우리들의 생의 줄을 조작하는 것은 악마다. 혐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우리는 마음을 빼앗겨 매일 매일 한 발자국씩 지옥으로 떨어져 간다’고 절망하였고, 이에 그의 친구 바르베 도르븨로부터

‘악의 꽃 이후의 당연지사로서 당신에게 남은 것은 피스톨의 총알이든가 십자가의 발밑이다’ 라고까지 준열한 촉구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십자가를 택한 보오들레에르, 인간의 미혹 미혹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고 일세의 스캔들로 이름을 날렸던 그가 올바른 생활과 기구와 노동의 기쁨 속에

‘진정한 문명은 가스나 증기나 영매 靈媒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죄의 발자취를 지워가는 데 있다’고까지 토로하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세계의 반을 어둠으로 갈라놓은 악마의 영토는 하나의 디딤돌, 도약대 跳躍臺 가 아니던가. 거기서부터 선을 향해 뛰어 오르게 하려는 정신의 도약대.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을수록 다른 쪽이 드높이 솟아오르는 저울대와 같은 것. 마치 한밤의 어둠이 깊고 괴로울수록 새벽빛이 찬란하듯이 가장 깊은 하강 下降 즉, 타락은 가장 높은 상승 上昇, 선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수평 水平은 완전히 정지 靜止 상태다. 정지엔 파동이 없고 변화가 없고 발견도 고뇌도 창조도 없다. 그것은 무의식의 꿈의 상태다. 자기를 잃어버린 방심의 상태다.

생명은 수평일 수가 없다. 그것은 어느 쪽으로든 움직이며 기울고 있다. 그리고 한쪽 발이 낮은 곳으로 떨어질 때마다 반사적으로 다른 발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뛰어 오르려는 무의식적인 갈망 속에 있다. 진실로 하강 下降이 없는 곳에 상승 上昇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 먼지 하나도

 

선과 악은 저울대와 같다. 그리고 이 오묘한 저울대를 만든 것은 인간도 아니고 이 세상의 율법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며 그 누군가 절대자의 의지에 의해 질서 지워진 천래 天來적 기능이다. 생각해 보라,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양심 良心은 기실 신의 목소리가 아니던가.

‘가장 나쁜 일은 빠지는 일이 아니라, 빠진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다.’

남을 괴롭히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쾌락에 젖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일,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자신의 맹목이다.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는 맹목.

선 善은 아픔이다. 자기 안의 온갖 악 惡을 태형 笞刑하는 아픔, 신이 우리에게 주는 사랑이 고뇌이듯이 선은 악을 태형하는 사랑의 고뇌다.

선은 끊임 없는 내부의 기도다. 기도를 동반하는 행위는 어떠한 악도 저지르지 못한다.

선은 자기 안에 발견하는 희망이며 빛이다. 그리고 어떠한 악으로도 그 빛을 덮을 수 없는 믿음이다. 하여 최고의 선은 믿음이며 사랑이다.

악의 본성은 쾌락에 빠지는 일이거나 노력의 기피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신을 기만하는 일이다. 지각한 어린이가 선생님 앞에서 구실을 찾듯이 자신에게 – 또는 신에게 – 적당한 구실로 죄를 은폐하고 합리화하며 알리바이를 세우려는 눈가림이다.

도둑질을 해선 안 된다,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나태해선 안 된다, 하는 것들은 모두 악과 대등한 수평에 있는 선이다. 우리는 대개 거기에 도달하고 그것으로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 악과 동등한 수평에 있는 선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빛이 아니기 때문이다.

빛은 보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게 마련이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잇는 것은 보다 높은 곳에 있는 절대의 선이다. 다시 말하여 진리라 부를 수도 있고 신이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그 절대의 선을 향해 뛰어 오르는 디딤돌은 세계의 반쪽인 악의 영토다. 악은 바로 선으로 가는 디딤돌, 도약대다. 어떠한 상승도 이 하강 下降의 고뇌 없이는 허망한 건축이다. 다시 말하여 악조차도 생명을 키우는 신의 음식인 것이다. 그것을 소화할 수 잇는 사람에게는.

‘신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죄악조차도 선을 이루는 길이 되게 하신다’ (로마서 8.28, ‘죄악’은 아우구스띠누스의 말씀)

진실로 그분이 만드신 먼지 하나도 이 세상엔 버릴 것이 없는 것 같다.

죽은 나뭇잎 한 잎 한 잎도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

가을은 그대로 축복된 추수의 시간이다.

 

 

 

 

갈빗대 하나의 여자

 

‘이 세상의 최량 最良의 것은 여자의 무릎 위에서 만들어진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는 아마도 지독히 장난스러운 분이었나 보다. 그는 어느 날 심심하여 동산에 앉아 흙장난을 하였다. 이것 저것 만들다 우연히 그 자신의 모상 模像을 딴 사내 하나를 빚었다. 콧구멍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니 아담이 되었다.

그러나 홀로 앉아있는 아담의 외로운 모습을 보자 측은하여 그의 배필을 만들 것을 생각했다. 하여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에와 – 여자 – 를 만들어 짝지어 주었다.

이것은 어쩌면 터무니 없는, 이야기군의 만들어 낸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 창세 創世의 신화 神話.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어찌하여 하필이면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 하나에서 취하였다고 지어 냈을까 하는 문제다.

하고 많은 곳을 다 제쳐놓고 하필이면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 하나에서 만들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여자에게서 남자의 갈빗대 하나만큼의 가치 밖에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물론 아담은 에와를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니’

하고 영탄하고는 있지만, 그리고 또 그들이 불가분의 운명 공동체임을 암시하고는 있지만 무언지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유대의 한 율법학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남자의 어느 부분에서 여자를 만들까, 야훼는 생각했다. 머리에서 만들까? 그러면 너무 자만할 것이다. 눈에서 만들까? 그러면 너무 호기심이 강해질 것이다. 그러면 귀에서? 아니 그러면 남의 말을 엿들을 것이다. 입에서 만들면 입이 헤퍼 말이 많을 것이며, 손에서 만들면 손이 헤퍼 돈을 낭비할 것이다. 야훼는 생각 끝에 여자를 눈에 띄지 않고 조심성있게 하기 위해 남자의 몸 중에서도 가장 깊이 숨겨진 곳, 갈빗대에서 만들어 냈던 것이다’ (탈무드).

이것은 참으로 어이 없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그 시대의 남자가 본 여성관이란 이렇게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또 이런 글도 있다.

‘여자란 죽음보다도 괴로운 것임을 나는 알았다. 여자는 함정이다. 그 마음은 투망 投網 이고 그 팔은 쇠사슬이다. 하느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 함정에 빠지지 않지만 죄인은 거기에 빠지고 만다. 나는 천 사람 속에 한 사람의 남자를 발견했지만 천 사람 속에 단 한 사람의 여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전도서 7.26-29).

‘죄가 시작한 것은 모성에서부터이며 우리가 모두 죽어야 하는 것도 여자 때문이다. 어떠한 악도 여자의 악의 깊이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집회서 25,13-24).

이 얼마나 통렬히 여자를 매도 罵倒 하고 있는 말들인가. 그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 여자란 존재가 있다는 사실마저도 저주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런 그들 자신도 기실은 여자의 가랑이 밑으로 나온 자들이련만.

아무러나, 여자는 여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남자의 갈빗대 하나에서 태어났고, 어쩌다 소꿉놀이 같은 장안으로 금단의 열매를 잠시 맛보았고, 그로 인해 엄청난 작죄 作罪 를 하였으며 (기실 이점이 율법학자들의 그처럼 여자를 저주하는 이유이겠지만) 본의 아니게 아담의 이마에 땀 흘리게 하고 스스로는 분만 分娩의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고 하자. 그것까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불공평한 야훼로부터 ‘너는 네가 지은 죄로 하여 평생토록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엄청난 형벌을 받는 대목에 이르러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함께 장남치고 놀다가 혼자서 야단맞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억울한 심정이 드는 것이다.

이렇듯 남자의 갈빗대 하나의 무게로 신의 은총 밖에서 태어난 여자, 생명의 근원인 남자를 평생토록 ‘사모하고’ 따라야 하는 여자, 생각하면 한없이 불공평한 처사로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러나 만일 여자가 남자의 신체의 일부분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랬더라면 반대로 남자가 여자의 신체의 일부분에서 태어났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서로 자신의 신체의 일부분이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것으로 믿고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결코 일심동체의 운명 공동체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자신의 몸에서 잘라낸 갈빗대 하나의 여자 또는 남자를 찾아서 운명적인 결합을 할 수 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기실 여자 아니면 남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갈빗대에서 만들어지지 않고서야 거기 혈연적인 화합과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사모하며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면, 그래서 남자나 여자가 서로 꼭 같이 독불장군이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지구엔 이념과 이념의 싸움 이외에 또 하나 남성과 여성의 성 性의 싸움이 가중될 것이다. 기실 갈빗대 하나의 여자 또는 남자의 섭리란 참으로 오묘한 신의 배려임을 우리는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여, 기왕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다스리고 또 따라야 하는 관계에 불가불 놓인다면 나는 아무래도 책임이 없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사모하는’ 남자의 보호 밑에 편안히 따르며 책임 없이 살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비겁하고 무책임하다는 힐난을 받는다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 아껴주고 보살펴 주고 지켜 준다면야, 그래서 그것이 여자에게 주어진 특혜라면야 나는 그 특혜를 십이분 이용해서 권리를 누리고 싶다. 남자의 사랑과 보호 속에 풍월을 완성하며 살고 싶다. 여자가 여자의 권리를 이용하며 누리는 일이 어찌 부끄러운 일인가.

물론 일부 여성 중에는 이와 같은 생각을 그 무슨 노예근성이냐고 비웃고 욕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의 관계는 항상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여권은 영원히 신장되지 않을 거라고 힐난할지도 모른다. 옳은 말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모든 면에서 남성에 뒤떨어지는 까닭은 여성들이 태곳적 부터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었고, 다양한 경험을 얻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경제적 자립도 없었고, 사색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도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디 모름지기 여성의 성장을 위해 년 년 500 파운드의 수입과 독방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쾌하게 진단하고 있지만 사실 능력 있고 지각 있는 여성들의 이러한 여권신장 운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또 찬성한다.

다만 힘이 없거나 게으른 여자 (예컨대 나 같은 여자)들은 강한 남자의 보호 속에 갈빗대 하나로 숨어 살면서 그를 의지하고 지키면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지혜롭게 남자를 조종함으로써 오히려 실질적인 여권신장을 꾀할 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자부하였기에 이제껏 주어진 위치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충실한 수행하여 왔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쉽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뿐더러 숱한 비극이 남자와 여자의 넘을 수 없는 숙명의 바다를 더욱 깊게 하여 왔다. 도처에 버려진 갈빗대 하나의 슬픈 여자들, 그 이름 없는 여자들의 비탄으로 하여 대하 大河 같은 여권원동의 기치 旗幟도 기실은 드높이 올라갔지만.

 

 

 

바닷가에 버려진 아리아도네 공주

 

사실, 하느님은 애초에 여자를 이 세상의 주인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12사도 중에 단 한 사람도 여자를 취하지 않았다. 유다와 같은 배신자를 두었을망정 막달라 마리아 같은 열녀를 사도로는 삼지 않으셨다.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 2천 년 사에 여자사제 司祭를 둔 일이 없고, 어떠한 성녀 聖女에게도 상사집전 聖事執典을 하락한 일이 없다.

여자는 언제나 심부름꾼이며 뒤에서 보살펴 주고 가꾸어 주는 유모에 불과했다. 말 안장을 준비하고 뒤 설거지를 도맡고, 빈 집을 지켜야 하는 가복 家僕 이며 충견 忠犬 으로서, 그들이 힘들고 괴로울 때 아름답고 부드러운 노래로 상처를 달래주는 위안에  불과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부엌과 술집에만 있으면 족했던 것이다.

이런 우화가 있다. 한 임금님이 율법학자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하느님이란 도둑이 아니냐. 아담이 잡들어 있는 동안 갈빗대를 훔쳤으니” 율법학자가 대답에 궁하여 난처해 있을 때 그의 딸이 말하였다.

“임금님, 저의 집에 도둑이 들어와서 은주전자를 훔쳐가고 대신 금주전자를 두고 갔습니다.” 임금님이 이에 대답하여

“그런 도둑이라면 나의 집에도 들어와 주었으면 좋겠구나.” 하고 웃었다. 그러자 율법학자의 딸은

“임금님, 바로 그것이 하느님이 해주신 일입니다. 하느님께선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도려냈습니다만 그 대신에 에와를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반 반 여성의 가치를 한껏 인정했다는 어느 율법학자의 우화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놓고 생각해 보아도 역시 여자의 위치가 그렇게 탐탁한 것이 못 된다. 여기서도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를 위해 주어진 것이며, 고작 은주전자 대신에 금주전자 정도의 가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 평론가 L씨의 ‘이것이 여성이다’ 라는 글 가운데서도 크게 언급되고 있었지만 희랍신화에 나오는 아리아도네 공주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한다.

크레타 섬에 나타나서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인신우두 人身牛頭 의 괴물 미노토로스 를 퇴치하러 가는 테세우스 황자에게 왕자를 사랑한 미노스의 딸, 아리아도네 공주는 길고도 긴 사랑의 실꾸리를 생명의 호신용으로 주는 것이다.

테세우스 왕자는 공주의 지극한 사랑과 지혜의 실꾸리를 받음으로써 괴물 미노토로스를 퇴치하고 무사히 미궁 미궁을 빠져 나와 개선한다. 왕자가 가는 길마다 풀려나간 실꾸리를 따라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준 실꾸리, 그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바치는 무한한 사랑과 정성이며 슬기로운 지혜의 협력이었다. 만일 아리아도네 공주의 그러한 사랑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테세우스는 괴물을 퇴치했다 하더라도 미궁 속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기실 이렇게 남자를 보완하며 협력하는 데에 여자의 의미, 여자의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L씨는 말하고 있다.

옳은 말이다. 사실 여자의 사랑은 이토록 간절하며 슬기로운 것이다. 그의 보완 없이는 남자는 존재하지 못한다. 그런데 남자는 어떤가, 어떻게 여자의 사랑에 대접하고 있는가.

아리아도네 공주의 사랑으로 승리의 개선을 한 테세우스 왕자는 크레타 섬을 떠날 때, 공주를 동반하고 떠난다. 물론 자신을 구해 주고 사랑하는 여인과 평생을 같이 하기 위해 굳은 맹서를 하고 떠났을 것이다.

그런데 테세우스 왕자는 도중, 나크소스 섬을 지나면서, 잠시 피곤하여 잠이 든 아리아도네 공주를 바닷가에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으로 괴물을 퇴치하고 살아서 생환할 수 있었던 생명의 은인 아리아도네 공주를 길바닥에 버리고 가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남자다, 남자의 사랑이며 신의 信義인 것이다.

낯선 바닷가에 버려진 아리아도네 공주, 잠이 깨어 둘러보니 이미 떠나가버린 남자 테세우스 왕자, 그것을 알았을 때의 여자의 절망은 어떠했을까.

사실 많은 여자가 이런 식으로 당하며 살아왔고 또 현재도 당하고 있다. 말하자면 여기에 여자가 남자의 갈빗대 하나의 무게로 태어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고 불행이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그렇게 불공평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묘한 因果應報 인과응보 라 할까, 신의 배려 配慮 라 할까, 알 수 없는 섭리가 있는 것이다. 아리아도네 공주의 후일담을 보면 무엇보다도 그것을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승리에 들떠 사랑하는 여자마저 버리고 떠났던 테세우스 왕자는 고향에 돌아가기도 전에 벌을 받는다. 즉, 그의 조그마한 실수로 부왕인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을 바다에 빠져 죽게 한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그 자신도 갖가지 불행을 겪은 후, 마침내 배신을 당하고 바다에 던져져 죽은 것이다. 아리아도네 공주를 배신하여 바닷가에 버렸던 그 자신도 결국은 배신을 당하고 바다에 던져져 죽고 마는 것이다.

하면 나크소스 섬 바닷가에 버림을 받고 절망했던 아리아도네 공주는 어떻게 되었던가.

공주는 때마침 그곳을 찾아왔던 디오니소스에게 깊은 위로를 받고, 이윽고 그를 따라 나섰으며 마침내는 제신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장엄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설명할 필요 없이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인생의 모습이다. 조금씩 모습은 다를지언정 대개는 이 궤도에 따라 벗어나지 않고 굴러 왔으며 또 굴러가고 있는 인생의 어떤 정형 定型이다.

하면 우리는 기어이 무엇을 슬퍼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배신한 남자쯤 두고두고 원망하며 미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해는 어디에도 떠 있고, 바람의 방향은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맑은 뒤에는 비가 오게 마련이고 비 온 뒤에는 다시 해가 솟는 법이다. 이 자연의 법칙을 믿으면 된다. 희망이란 바로 그 믿는 마음이다. 무엇이든 전심전령으로 믿는 마음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누군가가 뒤에서 정당한 판단을 내려줄 것이다. 이 세상에서가 아니면 저 세상에서라도. 진인사 盡人事 하고 대천명 待天命 한다는 말은 결코 낡은 말이 아니다. 나날이 떠오르는 창천의 해가 낡을 수 없듯이.

 

 

 

 

물과 흙이 만나는 이 세상 인연

 

중국 소설 홍루몽 紅樓夢 의 주인공인 귀공자, 가보옥 價寶玉 소년은 다정다감한 소년이다. 여자친구를 무척 좋아하는 마음 약한 이 소년에게는 아름다운 사촌누이들이 있었으며 그녀들에게 몹시 마음을 태우며 이런 말을 한다.

“여자라는 것은 물로 되어있고 남자는 흙으로 되어있나 보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소녀들은 모두 아름답고 청초하며 영리한데, 자기나 자기 친구인 남자들은 모두 못생기고, 둔하고, 성미도 까다롭고…”

이 이야기를 들어 임어당 林語堂 이 창세기 신화, 아담과 에와의 이야기를 다름과 같이 풀이하고 있어 흥미롭다.

신은 한 줌의 흙을 집에 들고서 사람의 형상으로 빚은 다음, 콧구멍으로부터 숨을 불어 넣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담이다. 그런데 아담은 조금 후 부서지기 시작한다. 물기가 없이 말라있기 때문에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신은 물을 길어다 흑을 이겼다. 그 아담의 몸 속으로 들어간 물이 바로 에와라고 불리는 것이며 그 물을 몸 안에 얻음으로써 아담은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여자는 물이며 남자는 흙. 그래서 물은 흙 속으로 스며들어 그 물질 속에서 움직이고 살므로 써 비로소 물의 물다운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며, 또 흙은 흙대로 자기 안에 물을 받아들여 동화함으로써 비로소 흙이 어떤 형태를 지니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여 흙 없이 물이 쓰일 곳 없고, 물 없이 흙이 또한 완전한 자기 모습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실 물과 흙, 즉 남자와 여자의 숙명적인 보완의 관계가 여기서도 성립되는 것이다.

사실 넓고 광대한 세상에서 일생을 같이 할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생각할수록 신비롭고 외경 畏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그의 갈빗대 하나의 여자, 운명이 짝지어 놓은 여자도 이 세상 어딘가에 태어나게끔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하면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만나게끔 운명 지워진 그 한 사람을 찾아 열심히 살며 서두르지 않고 기다린다는 일은 기실 얼마나 가슴 부풀며 보람찬 일이냐.

그런데 흙과 물의 만남이 사실은 그렇게 용이한 것이 아니다. 물은 그것이 어떠한 성질의 물이든 간에 흙 속에 흡수되어 저항 없이 동화되는 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흙은 그것이 아니다. 어떠한 물로도 엉겨지지 않는 모래흙이나 돌 흙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모든 흙의 종류는 아주 특수한 진흙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쉽게 엉겨지지 않는 모래와 돌의 성분을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는 법이다.

하여 여자는 그 엉겨지지 않는 남자를 어떻게든 엉기게 하기 위하여 무수한 노고를 기울이며 괴로움을 겪는 것이다. 모래를 가려내고 돌을 부수고 들어갈 여지 없는 대상의 견고한 아성을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조절하면서 한 남자를 섬겨가는 것이다. 진실로 그것은 물의 유연하고도 끈질긴 저력을 지니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여자의 슬기와 인내의 힘이라 하겠다.

 

 

 

 

우리가 걱정할 일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인내 끝에도 불행은 반드시 정복되는 것이 아니다. 20년을 산 부부도 어느 날 어이 없이 부서져 물과 흙이 따로따로 나뉘게 되는 수가 있고, 아주 영원히 사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자신이 처한 목전의 상황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당황하고 비통해 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근시안적이다. 마치 등잔 밑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듯 그 언저리만을 맴돌고 있기 때문에 한 발자국 앞의 것도 불명치가 않다. 작은 행복에 이내 도취하고 조그마한 비운에도 금시 절망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의 행, 불행을 즉석에서 결정지으려고 한다.

기실 인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이며 수단일 것을 우리는 알지도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가 지향하는 최종의 목적은 ‘영원’이며 영원 속에 도달해 보지 않고는 누구도 인생의 행, 불행, 성, 불성 成, 不成을 말할 수는 없는 것임을 잊어버리고 있다. 과정에 불과한 수단, 즉 잠시의 인생 안에서 영원불변한 행복, 최종의 목적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불행이 인생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한정된 목적물에 불과한 현세적 현상에다 전부를 걸고 집착하는 데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빈번이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 잠시의 허상 虛像에 불과한 순간적인 현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이 삶의 전부이며 절대적인 것인 양 착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있는가.

우리의 행복은 우선 인생의 한계를 깨닫고, 흙 한 줌의 남자, 갈빗대 하나인 여자의 한계를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계를 깨닫는 일이란 없는 것을 바라지 않고, 미치지 못하는 것에 마음을 달리지 않으며, 있는 것 속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타고나지 못한 미모와 재주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가꾸고 개발하는 지혜와 의지일 것이다.

기실 모든 것에 나 혼자의 힘으로만은 되지 않는 세상이다. 물론 운명이란 하늘의 명 命 만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이며, 노력 여하게 따라 인간의 운명도 좌우되는 것이긴 하겠지만 때로는 불가항력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는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어차피 안 되는 것을 아는 바에야 우리는 공연히 탓하고 미워하고 슬퍼하며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지 않는가. 차라리 모든 것을 시간과 추세에 맡기고 마음 편하게 낙천가가 되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위치 안에 유유자적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다. 눈을 들어 한 번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다와 하늘을, 시간과 애증을 넘어 머나먼 지구 바깥 영원으로 한 번 시선을 던져보는 것이다.

하면 거기, 커다란 교목 喬木 아래 서 있는 작은 관목 같은, 눈부신 해바라기 아래 조촐히 숨은 저녁 분꽃 같은 자신의 모습에 새삼 확인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자고 조촐하고 가난한 모습에 오히려 그 나름의 안도와 기쁨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실 이 세상의 주인인 아담이나 갈빗대 하나인 여자나, 제왕이나 촌부나 70년 살면 가는 것이다. 노자 路資 한 푼도 필요 없이 가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꿈같이 끝나버릴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야 할 저 세상의 일이며 거기에 대하여 우리는 좀더 마음 쓰고 걱정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이 나이 이 시간에 아직도 허둥거리며 있는 나와 또 내 주위의 몇몇 여인들을 본다. 40을 훨씬 넘은 내리막길에도 아직도 사춘기 같은 불장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여인, 20년 가까운 결혼생활을 휴지처럼 찢어버리고 나온 여인, 그리고 27년 글을 썼지만 남길 것 없는 허전함에 당황하며 조바심치고 잇는 나, 모두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세상시간에 조바심하며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이제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어떻게 가느냐 하는 문제에 더 많은 생각을 기울여야 할 터인데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들처럼 서성대고 있음이 못내 가슴 아파지는 것이다.

 

 

 

 

幸福과 사는 보람

 

 

……. 그러니까

가시밭 먼 길을

돌아 왔군요

……. 이로부턴

地上에 슬픔 없는

한 간 草屋을 세우렵니다.

 

뒤에는 밤나무 두어 그루 바람을 막고

앞에는 실개천 막은 똑에

버드나무 시원한 그늘을 치는

陽地바른

한 五十 坪

花崗石 돌집을 세우렵니다

 

흰 돌담엔

푸른 담쟁이 그물처럼 올리고

佛蘭西風 窓에는

落葉色 커어튼을 드리웁시다

큰딸 淑에게도

이제는 방 하나 주어야겠고

국민학교 新入生 막내놈에겐

솔냄새 향긋한 책상도 하나

 

당신을 위한

南향한 書齋 하나

마련한다면

나를 위한 窓 밖엔

四時節 붉게 타는 丹楓 한 그루

과묵한 紳士같은 銀杏과 함께

늙지 않는 마음으로 심겠읍니다.

 

이제 남은 소망은

아이를 자라

잘못 없이 보람되게

저마다의 旅程을 떠나는 길

 

때로 슬프고 지척이던 마음

겨울 나무처럼 고요해지면

남은 時間 잠잠히

먼 날을 기다려 살겠읍니다.

 

<초옥의 노래>

 

 

 

일상이라는 이름의 불행

 

‘인생이란 먹고 자고 친구들과 모였다 헤어졌다 하고, 친목회나 송별연을 베풀고, 눈물을 흘리고, 웃고, 2주일에 한번씩 이발을 하고, 화분의 화초에 물을 주고, 이웃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곤 하며 그런 일에 날을 보내는 것’ 이라고 중국의 지성 임어당 林語堂 [Lin Yu-Tang 린위탕 1895-1976] 은 말하고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2주일에 한번씩 이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번쯤 이발소 아니면 미장원에 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는 대동소이한 일상 속에 사는 것이다.

사실 인생이란 그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처음부터 별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인가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속으며 살았던 것도 젊은 시절 한 때 뿐이고, 어느덧 나이를 먹고 생활이 틀에 잡히고 나면, 그나마 속아 본다는 어리석은 기대마저도 사라지고, 그저 그 날이 그 날 같은 판에 박은 듯한 일의 되풀이 속에서 감각도 감정도 무디어지고, 희망도 없이 하루 또 하루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같은 꽃 향기를 한자리에서 오래 맡고 있으면 그 냄새에 어느덧 무감각해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꼭 같은 상태의 되풀이 속에 무디어진 우리의 감각은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나날의 생활이 무의미해 진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나면서부터 오늘날까지 하늘을 보지 않은 날이라고는 하루도 없건만 진실로 본 일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시인’휘트먼’의 말이다. 기실 우리가 사는 것도 그런 식이다. 하루도 머리 위에 널린 하늘을 보지 않은 날은 없었건만 진실로 그것을 본 날은 단 한 번도 없듯이, 하루도 살지 않은 날은 없건만 진실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산 날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기실 사는 것은 꼭 같은 일의 되풀이이기에 신선한 것도 경이로운 것도 느낄 수 없다. 언제나 찌뿌듯한 권태와 회의 뿐의 반 동면 동면 상태인 것이다. 만일 천 사람의 여자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하고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면 당신은 불행한가 하고 다시 묻는다면 역시 그들의 대답은 몇 사람을 제회하고는 선뜻 ‘그렇다 진실로 불행하다’고 단언하지도 못할 것이다.

무언가 불행한 것도 같고, 그렇다고 정말 불행하냐고 다그치면 엉거주춤 글쎄? 하는 식으로 머뭇거리는 애매모호한 감정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평온하고 변화 없는 무풍지대에서 할일 없이 발생하는 무료함과 권태로움은 이상하게도 우울한, 일말의 불행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가령 개나리 꽃밭에 묻혀 사는 사람은 개나리꽃 밖에는 보는 것이 없다. 냄새도 시들하고 빛깔에도 지쳐서 어떻게든 그 꽃을 벗어나기 원한다. 그리고 색다르고 신선한 것, 눈이 확 뜨일 것 같은 자극적인 것을 못내 그리워한다.

그런데 간혹 찾아 드는 나비, 스쳐가는 바람, 어디선지 흘러 들어오는 장미꽃 냄새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신기하고 새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새롭다고 생각하던 것들도 기실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무료하고 볼품 없는 일상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어떠한 사물도 일상이라는 뜨뜻미지근한 용기 容器 속에 던져지고 나면, 빛을 잃고 무의미해져 버린다. 이것은 참 애석한 일이다. 오늘의 새것이란 내일만 되면 헌것이 되고, 헌것 속에 묻혀 때가 끼게 마련이다. 결국 이 세상에 오래 간직하고 지닐 수 있는 새것이란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을 못내 탐내는 데에 우리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

 

따지고 보면 행복과 불행 사이엔 얼마큼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언젠가 ‘아폴로 15호’의 세 우주인은 불행하게도 세 번째의 달 착륙은 고사하고, 무사히 살아서 귀환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에서 몇 주야를 고투했었다.

하면, 이들이 당했을 불행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우주선의 확률과 안전도는 한 치의 틀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 우주인의 기능과 훈련 또한 먼저의 우주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우주선 머리에 부딪친 한 개의 운석이 동력선 머리를 엉망으로 부숴 놓았다는 우연한 사건이다.

그때 만일 우주선 머리를 때린 그 운석만 아니었더라면 ‘아폴로 13호’는 세 번째 달 착륙에 성공했을 것이며, 달 깊숙이 인류의 정복의 기 旗 를 또 하나 꽂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한 사건은 세 우주인에게 실패의 고배 苦杯를 마시게 했다.

그들은 자신의 실패를 불행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생환 生還 하지 못했더라면 하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불행 속에서도 다행함을 느꼈을 것이다.

‘밤길을 걷다가 진흙탕에 빠지면 재수가 없다고 말하고, 그것을 피할 수 있으면 운이 좋았다고들 한다. 행복과 불행은 사실 그 정도의 차이다’라고 말한 임어당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나보다 뛰어나게 아름다움 용모를 가진 사람, 재물을 가진 사람, 또는 명성을 가진 사람, 그래서 분명 나보다 더 완전한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또 그것을 부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재수가 나빠 진흙에 빠졌고, 그들은 재수 좋게 그것을 피해 간 차이 밖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결국 ‘아폴로 13호’에 부딪친 불길한 운성 한 개의 차이인 것이다. 다만 나는 내 그릇에 담긴 내 몫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남의 그릇과 비교할 것은 없다. 비교하는 데서 우리의 현실은 불만과 불행으로 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받은 내 몫을 어떻게 처리해 가느냐 하는 길에 있을 뿐이다.

 

 

 

황해를 건너는 욕망의 배

 

‘젊어서 나는 한 인간을 갈망해서 몹시 슬펐고, 다음 나는 명성을 얻기 위해 매우 열중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또한 불평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여류시인의 술회하는 말이다. 비단 이 시인 뿐이 아니라 인간은 참으로 끝이 없는 욕망의 화신이다. 말 타면 경마잡히고 싶다는 속담도 있듯이,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기에 중국 고담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건륭 황제 乾隆 皇帝 가 남중국 南中國 을 여행하면서, 황해 넓은 바다 위에 무수한 상선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옆의 시신 侍臣에게 도시 저 많은 배들이 무엇을 하는 배들이냐고 물었다. 한데 그 시신 읍하여 답하기를

‘많은 배들이라 하오나 소신의 눈에는 단 두 척의 배 밖에는 보이지 않사옵니다. 부귀와 명성이라는 두 척의 배올시다’ 라고 대답했단다.

부귀와 명성을 얻기 위한 단 두 척의 배, 아니 욕망이라는 이름의 배다. 사실 우리들의 욕망이 어찌 부귀와 명성 뿐이랴. 그 많은 욕망을 일일이 분류하기 힘들 바에야 차라리 단 한 척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배라 함이 옳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인간사회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 인간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보다 더 그로 인하여 다치고 파멸하는 경우도 허다함을 우리는 잘 안다.

인간에 대한, 명성에 대한, 도는 재물에 대한 끊임 없는 욕망은 불안과 슬픔일 뿐, 기쁨도 행복도 될 수는 없다.

거기엔 평화도 안식도 없다. 겸손도 충족도 없다. 오직 욕망을 순화시킨 마음의 평화 속에서만 행복은 비로소 남몰래 숨어서 피어 오르는 안개 같은 것이다.

뜬 세상을 버린 수도자나, 은자 隱者 의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용돌이치는 인간적 욕망의 심연에서 함 발자국 물러나와 청정 淸淨 하게 마음을 식힐 때, 보로고 우리는 한 가닥 맑은 평화의 빛을 볼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잔잔한 행복의 그림자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여자의 행복 그 실체

 

‘나는 잠자고 있었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기쁨이라고 꿈꾸고 있었다. 잠시 깨었을 때, 산다는 것은 봉사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게 봉사했다. 그리고 그 봉사란 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성 詩聖 타고르의 글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행복은 언제나 나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행복은 남과 더불어 교섭함으로써 생생해졌고 어떤 사물에 몰입함으로써 더욱 선명해졌다. 말하자면 한 남자를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우리는 충만 된 희열을 느꼈고, 또한 자식에게 바치는 희생과 정성 속에서 흐뭇한 충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의 행복은 언제나 주고 바치는 봉사와 헌신의 정신 속에서 싹터 나왔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곧 어머니의 사랑이며 정신이었던 것으로, 여자의 행복은 그 무한한 모정의 봉사 속에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낮부터 내리기 시작하는 봄비가 옷깃을 적시는 오후의 버스 정류장 앞에 말없이 서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우비와 우산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0분 20분 아니 몇 십 분이 될지도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 속에 지칠 줄 모르고 서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기다리는 조바심 속에서 쓸쓸했던 만큼 만나는 기쁨 속에 몇 갑절의 희열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며 치르는 봉사는 아니다. 그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천성과 사랑이 그녀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이 시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신은 이러한 순수한 봉사와 헌신의 대가로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충만 된 행복의 한 때를 그녀들에게 선사한다.

 

 

 

끊임 없는 感動과 의미 발견

 

새벽에 문득 잠이 깰 때가 있다. 사방은 아직도 어둠 속에 묻혀 있고, 세상은 조용하기 그지 없다.

각기 떨어진 방마다 깊이 잠들어 있는 가족들의 한없이 평화스런 숨소리가 이상하게 가슴을 울려온다. 모든 것을 내맡긴 듯 안심하고 곤히 잠들어 있는 가족들, 이불을 차버리고 자는 놈에, 베개에서 떨어져 자는 놈, 그런 아이들의 고르지 못한 잠자리를 바로 잡아 주면서 문득 나는 그 아이들의 몸에서 튀길 듯 토실한 중량을 느끼며, 미처 알지 못했던 성장에 눈 비빈다.

내가 미흡하고 소홀하여 미처 보살펴 주지 못하였건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저희끼리 쑥쑥 자라 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의 보챔 없이 그늘 없이 자라주는 푸른 나무들에 둘러싸인 작으나마 아늑한 성 城 같은 나의 집을 생각한다. 거기엔 그 어떤 미움이나 싸움도 없고, 거센 욕망이나 불의의 책략도 있을 수 없다.

그저 잔잔하게 엉긴 믿음과 평화가 땅 속의 뿌리들처럼 제 자리를 찾아 자유로이 사지를 펴고 잠들어 있을 뿐. 나는 마치 크나큰 수목에 휩싸인 작은 새처럼 평온하고 든든한 마음을 안고 다시 잠자리로 돌아온다.

착한 아이들의 건강과 숨결과, 어진 지아비의 유순한 체온 곁에 그림자처럼 다시 누울 때, 진실로 충만한 감사의 한 순간을 깊이 호흡한다.

우리에게 있어 행복은 화려한 비단옷 속에 번쩍이는 야광주는 아니었다. 오히려 소박한 시원적 시원적 정감 속에 비쳐 드는 희미한 촛불 같은 깜박거림이었다. 때문에 눈 깜박할 사이에 그런 순간들은 불 꺼지듯 사라져 버리고 말기도 한다.

그래서 시끄럽고 성가신 일상의 되풀이 속에 다시 번거롭고 힘겨웁고 서글픈 일들이 마냥 우리를 휩쓸어 간다. 앞서도 말하였지만 우리의 생활이란 영원히 헌 것 뿐이며 그 헌 [古] 것들을 다시 씻어내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재생 재생의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이다.

생활을 다시 재생한다는 것은 끊임 없이 의미를 발견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도 감동을 잃지 않는 일이다.

사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크고 요란스러운 일들이기보다는, 극히 작고 미미한 그리고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우연한 것들이다.

‘푹 잠을 자고 나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가슴과 근육에 기분 좋은 운동의 감각이 일어나며 일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 손에 파이프를 들고 발을 뻗고 의자에 앉아 흔들 흔들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흥겨운 정담을 주고 받을 때…’ 등등,

이렇게 임어당은 자신의 행복한 한 때를 피력하면서

‘이 세상에서 행복이란 것은 소극적인 경우일 때가 너무나도 많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행복도 그렇게 작고 가까운 곳에 숨어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작고 가까운 곳에 숨어있는 일상의 것들에서 끊임 없이 의미를 발견하고, 감동을 잃지 않음으로써 헌 것을 새롭게 재생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름 없이 작은 행복의 조각들

 

어느 날 생각지 않게, 남편으로부터 선물 하나를 받는다고 하자. 언제나 술에 취해 밤늦게 돌아오는 사람이 그날은 웬일인지 일찌감치 해가 아직 높을 때, 달랑달랑 꾸러미 한 개를 들고 싱글싱글 웃으며 들어선다.

우리는 들고 온 꾸러미보다도 우선 때없이 일찍 돌아온 그의 귀가에 신기하고 어리둥절하며, 마음이 즐거워지지라.

냉큼 받아든 꾸러미를 이리저리 굴려보며 우선 이것이 무엇일까 기대에 찬 상상에 또한 즐거워진다. 남편의 빙글거리는 웃음을 바라보며 서둘러 꾸러미를 끄른다. 속에서 나오는 물건이야 아무거면 어떠랴, 받은 물건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다만 그 기쁨과 즐거운 마음의 한 순간을 가히 행복한 한 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쁜 일손이 거의 끝날 때쯤 해서 잠이 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던 일을 마저 끝내야 하겠기에 잠시 우는 대로 내버려 둔다.

아이는 엄마를 찾아 구슬피 울어댄다. 간신히 일을 마치고 손을 닦으며 아이의 곁으로 달려간다. 아이의 양볼에는 맑은 눈물방울이 주렁주렁 맺히고, 두 팔과 다리를 바둥거리며 엄마를 반긴다.

젖은 기저귀를 갈아 대주고 젖을 물리면 금시 아이의 두 눈은 만족과 안도의 푸른 빛으로 영롱해 진다. 아이의 다부진 입 속으로 가슴 깊숙이까지 빨려들어 가는 듯한 쾌감, 토실한 아이의 손을 어루만지며 마냥 흐뭇해 지는 한 순간이 또한 행복한 한 때가 아닐 수 없다.

해산의 진통은 무서운 죽음을 목전에 보는 듯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 숨질 듯한 진통 끝에 별안간 터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꿈인지 생시인지 까마득히 들으며, 무한히 피곤하고 흔곤한 허탈 속에 빠져 들어간다.

얼마를 지나서 조용조용 일깨우는 친정어머니의 목소리에 눈을 뜨면, 손수 끓여 들고 오신, 김이 무럭무럭 나는 미역국이 옆에 놓여 있고, 빙글거리는 아기 아빠의 웃음이 가득 차 있다. 이 한 순간을 감히 행복한 한 때에서 빼놓을 수는 없으리라.

 

저녁나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과, 직장에 있는 남편에게 어떻게 우산을 전할까 걱정하며 들락날락 하고 있는데, 요행히 도 하나 둘 아이들이 차례로 가는 비에 축축히 젖은 머리들을 털면서 달려 들어온다. 뒤미처 신기하게도 약속이나 한 듯, 아이들의 아빠가 들어온다. 역시 실비에 젖어 축축한 모습으로….

부산히 한 동안 젖은 머리며 얼굴을 닦게 하고 옷을 갈아 입히고 하면서 이윽고 따뜻한 저녁밥상에 오붓이 둘러 앉는다. 그때 별안간 빗소리는 커지면 굵은 빗발이 우르릉거리며 퍼붓기 시작한다. 하마터면 저 굵은 비에 생쥐가 될 뻔했던 아슬아슬한 생각에 모두들 손뼉을 치며 웃고 떠든다.

한 사람의 식구도 젖지 않고, 또 한 사람도 따뜻한 저녁밥상 앞에 모여 앉게 하신 신의 가호에 깊은 감사와 기쁨을 드리고 싶은 심정, 이 어찌 또한 행복한 한 때가 아닐 수 있을까.

 

감기와 몸살로 2, 3일 몸 져 누울 때가 있다. 아이들은 전에 없이 의적하고 조용해져서 저마다 숭늉그릇이며 약그릇 시중을 들려고 한다. 허리를 주무르고 등을 두드리며 과일을 깎는다 법석이다. 남편은 주우스와 과일 등을 사 들고 전에 없이 일찍 돌아온다.

이런 때면 갑자기 귀한 신분의 어른이나 된 듯, 으쓱해지는 기분으로 슬그머니 응석도 부려 본다. 역시 행복한 한 때가 아닐 수 없다.

항상 봉사만으로 희생해 오던 위치에서 미미하기만 하던 자신의 존재가, 실은 그 누구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고 만족해 하는 것이다.

 

뜰에 모란이 이울고 작약이 핀다. 간밤에 늦게 만취해 돌아온 남편과의 말다툼이 아침까지도 불쾌한 여운을 만기며 우울하다.

날은 화창하고 꽃은 피건만 그런 울적한 심정으로는 누구를 찾아갈 생각도 나지 않는다. 우울하고 무료한 시간을 할일 없이 서성거리는데, 느닷 없이 먼 곳에 계신 친정 어머니가 쑥편과 조청을 한 항아리 담아들고 찾아 오신다. (어머니가 아니라도 무방하다, 친한 친구이거나 반가운 손이면 족하다.)

반가움과 기쁨이 갑절한다. 한바탕 남편의 흉을 보고, 욕을 퍼붓고, 눈물이 글썽해지고…, 그렇게 어머님께 응석을 피움으로써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개운해 진다. 나이 먹어도 어린 정은 한결 같아 어머니 앞에 응석과 보챔으로 투정하는 것, 이 역시 행복한 한 때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날, 불쑥 전날을 뉘우치고 일찍 돌아온 남편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래서 오래간 만에 사위와 장모가 흔연히 반가움을 나누며, 또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애쓰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남편, 자식, 그리고 거울 속에

 

생각해 보면 여자의 행복은 한 벌의 화려한 봄 새옷, 아니면 반짝이는 한 개의 보석 반지 정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여자의 소망은 지극히 단순하여 소박한 것들이다.

분에 넘치는 명성이나 지위, 세상을 흔드는 권력 같은 것이 거의 우리를 유혹하지 않고 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짓들이란 기실 겨자씨만큼이나 작고 천진한 것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뭐니뭐니 해도, 남편을 기다리던 밤과 자라나는 아이들을 키우던 때와, 거울 앞에 앉아서 자신을 매만지던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고 술회하는 한 노부인 老婦人 의 주름진 백발을 바라보면서 문득 저렇게 하얀 파뿌리처럼 시어버리면 여자란 개념도 사라져 버리겠지 싶은 쓸쓸한 감회에 사로잡힌 일이 있다.

거울을 잊어버린 여자, 그것은 어쩌면 여자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번거로운 아침일과를 마치고 나면 집안은 죽은 듯이 고요해진다. 비로소 나만의 시간, 나를 찾는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때로 피곤한 얼굴, 가끔은 행복한 얼굴, 그런 자신의 얼굴을 거울 속에 비쳐보며, 조금씩 시들고 변모해 가는 세월을 숨김 없이 거울 속에 읽으며, 까닭 없이 다감해 지는 시간, 그 방심한 듯 허탈하며, 쓸쓸하지만 평온한 휴식과 자애 自愛 의 시간을 또한 여자의 행복한 한 순간에서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여자가 여자인 것을 깨닫게 하는 감미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깨끗이 치워진 방, 정돈된 가구들, 오밀조밀한 장식품들이 낙원의 작은 증인들처럼 잔잔한 방에서 여자는 스스로 한 왕국의 여왕이 되는 것이다.

크건 작건 간에 자신이 만든 황국의 여왕, 그것이 여자의 전부이며 행복인 것이다. 그 왕국을 위해 바치는 시간이 또한 여자의 전부이며 행복인 것이다.

“남편과의 심한 불화로 젊은 나이에 참을 수 없어 헤어져 버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래도 그 속에서 참고 살았던 편이 행복했을 것이다” 라고, 술회하는 어느 저명한 여인의 서글픈 감회를 들으면서, 진실로 여자의 행복과 사는 보람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몇몇 혼기를 놓친 여인들이 한결같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더라도 여자의 사는 보람은 지위와 명성 또는 사업에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의 보람은 짝 맞는 지아비를 만나 한 가정을 꾸미고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평범하게 사는 것에 집약되는 것이다. 진실로 행복은 남모르는 평범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슬픔을 이기는 약

 

인생에 절망한 한 젊은 여인이 죽기를 결심한 날 마지막으로 신부님을 찾았다. 신부님은 말없이 그녀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죽기 전에 작은 보따리 하나를 거기 적힌 주소까지 찾아가 주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주소가 적힌 곳을 찾아갔다. 그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었으며, 그곳에서 불쌍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기 위해 현실과 싸우고 잇는 모습을 그녀는 보았다. 그리고 또 그 불쌍한 사람들이 그녀에게 깊이 감사하며 신부님이 보내신 짐을 마냥 즐거워하며 받는 모습을 보았다.

여인은 비로소 거기서 깨달았다. 슬픔을 이기는 약이 무엇인가를. 그 약은 화려한 슈우윈도우나 아름다운 장식품들 속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화려한 것들은 오히려 이 가난한 여인에게 슬픔과 더 큰 고독만을 안겨다 주었다. 그것은 그 화려한 것들이 가난한 여인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그녀는 세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또 할 것이 없는 불필요한 존재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줄 것이 없고 할 것이 없는 여자, 세상이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여자는 여자는 고독하고 불행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버려진 홀몸이었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들을 보았을 때, 더욱이 그녀의 아무것도 아닌 작은 봉사에 깊이 감사하는 그들을 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다시 말하여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보람 속에, 그녀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며 행복해질 수 있었다.

여자의 행복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힘을 아낌 없이 주고 바칠 때, 나는 충만해 지고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닌가.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에게 사랑과 헌신으로 봉사함으로써 비로소 충만 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몇 해인가 전 과정이 끝나면 그 동안 열심히 가르친 제자들은 훌훌히 떠나간다. 제자들은 스승에게 지난 날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스승 또한 그것을 믿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착각하고 있음을 모른다. 먼 미래를 향하는 젊은이들은 이미 그들의 어린 시절, 한 때의 생활을 끝내버린 것이고, 스승 역시 더 이상 그들에게 줄 것이 없어진다.

젊은이들은 먼 곳으로 떠나버리고, 스승은 옛집에 머물러 떠나간 젊은이들을 그리워한다. 여자의 보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주고 바쳐서 떠나 보내는 보람. 떠나간 그것들은 옛날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잊혀진 옛날에 남아서,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면서도 무엇인가 아쉽게 찾아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빈 둘레를…

“나는 남을 위해 이용되고 잊혀지는 하나의 길이고자 한다’

기실 이렇게 말한 누군가의 말에 여자의 보람은 집약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의 平和, 나의 기쁨

 

 

아들의 대답

어느 외국작가의 콩트였던가?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이 희미하게 밖에는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백발의 한 노인이 어느 날 힘없이 떨리는 손에 들었던 그릇을 떨어뜨려 깬다. 옆에 있던 젊은 며느리가 사정 없이 퍼붓는다.

“저 망령 좀 봐! 밤낮 일만 저지른다니까!”

그때 아들애가 묵묵히 테이블 밑에 기어들어가 깨진 그릇 조각을 주워 모은다.

“넌 뭘 하는 거니!”

서슬이 푸르게 묻는 엄마에게 아들은 태연히 대답한다.

“엄마가 이 다음 늙은이가 되었을 때를 위해 남겨두려는 거야.”

한낱 콩트라고 웃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다.

젊은이와 늙은이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도 여기엔 많은 문제가 암시되고 있다. 점차 복잡해 지는 사회구조에 따라 대가족주의에서 핵가족주의로 지향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가정에 있어서의 노인의 위치는 점과 같은 권위를 상실해 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점차 젊은이들에게 부담스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옛날의 경노사상의 풍습과 어른 중심의 생활윤리가 젊은이와 아이들 중심의 생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노인들은 자연 전과 달리 그들이 받은 대우의 섭섭함과 부당함에 못내 불만을 품게 되며 내심 괘씸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노인들의 불만과 우울이 결국은 집안의 평화를 깨뜨리는 커다란 원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작건 크건 간에 그들의 잔소리와 역정, 푸념 등은 젊은이들의 즐거워야 할 생활을 적지 아니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그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에 싸였을 때다”라고 누군가도 말하고 있지만 과연 모든 생활을 자식들에게 넘겨준 노인들은 자신의 생존의 의미를 상실하고 허탈과 불안 속에 남겨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짜증스럽고 우울한 심정은 자연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역정의 화살이 되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노인들에게 만일 어떤 일, 관심을 끌 만한 일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만족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며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생활을 잃어버린 노인들에게 그들 나름의 생활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푸념과 딸의 엄살

70을 바라보시는 나의 어머닌 아직도 우리 집에선 가장 큰 일군이시다. 봄철의 간장 담그시기 에서부터 비롯하여 가을철의 김장, 철철의 젖갈 등은 물론 나날의 살림까지 어머니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한 어머니는 예외 없이 한 가지 일을 끝낼 때마다 ‘이 나이에 아직도 내가 이 짓을 해야 한단 말이냐’ 고 푸념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매우 송구스럽고 민망해진다. 그러면서도 내가 어쩌다 재래식 아닌 색다른 방법으로 어머니 하시는 일을 거들려고 하면 어머니는 펄쩍 뛰시며 말리신다. ‘내 생전엔 나 하는 식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어머니에게 모든 일을 맡겨버리고 물러서야 한다.

이렇듯 푸념과 고집, 그 야릇한 반복을 거듭하시는 동안 나는 썩 좋은 처방법을 하나 나대로 습득하게 되었다.

“어머니! 어머니 돌아가시면 난 어떡하지! 간장도 김장도 못 담글 테니 말유! 아예 간장은 샘표 국간장이나 사다 먹구 김치는 통조림 김치나 사다 먹어야 할까 봐….” 어쩌구 과장스럽게 엄살을 부리면 되는 것이다. 그 엄살 한 마디가 어머니를 더없이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그 어떤 찬사나 치하보다도 어머니를 만족하고 흐뭇하게 할 수 있는 특효약인 것이다.

어머니는 나의 이 엄살 한 마디에 단번에 만면에 희색이 가득해 지시며 ‘망할 것, 나 죽으면 밥도 못해 먹을라…’ 핀잔 아닌 핀잔으로 내심의 기쁨을 얼버무리신다. 얼마나 천진난만하신 어머니의 심정이냐.

물론 내가 하는 그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닌 진실의 감사이긴 하지만, 보다 더 어머니의 푸념이나 역정이 그 정도의 말에도 만족하고 풀어질 수 있을 만큼 뿌리 없고 악의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가슴이 뭉클해 짐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한 어머니의 천진성에 비한다면 나는 얼마나 염치없고 교활한 딸인가. 하여 이따금 부끄럽고 죄스러운 생각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한 마디 덧붙여 ‘어머니 요다음 x 일에 극장구경 모시고 갈께요. 어머니 좋아하시는 최무룡, 김지미 나오는 영화 말예요’ 한다.

그때의 어머니의 당황하리만큼 즐거워하시는 모습… 그것이면 전부다. 어머니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으시다.

기실 한 주일에 한 번 성당에 나가시고, 한 달에 한두 번 나들이 가시는 일, 그래서 친구 마나님들과 어울려 즐기시는 생일잔치나 복 伏 놀이 단풍구경 등 고작 그 정도의 생활이지만 남은 남이 많지 않은 그분들에겐 그 정도의 생활이나마 주어지고, 자식들의 관심이 아직도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위안을 가질 때 결코 외롭지 않으며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기실 가정의 평화는 집안의 노인들의 평화에서부터 비롯한다고 생각함이 옳을 것이다.

 

 

 

다섯을 주면 다섯만큼의 평화

우리를 불화하게 하는 많은 것 가운데 일가친척들의 끊임 없는 불만과 질시 내지는 간섭 같은 것이 적지 않은 괴로움이 되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형제 간의 경제상태가 비슷하건 아니하건 간에 관계 없이 인간의 밑바닥엔 신이 주신 선의 善意의 경쟁의식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별로 쓸모 없는 임야 林野 기천 평을 물려받은 장남이 있었다.  20년 간 조상의 봉제사와 노부모들의 봉양, 아우들의 교육과 결혼은 물론, 주택과 직업까지 걱정해 주어야 했고 그밖에 일가친척 간의 의례적인 의무이해 등 집안 대소사를 혼자서 도맡아온 봉사의 대가로서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아우들은 형이 바친 희생의 대가로서 주어진 그 작은 유산을 탐내, 까닭 없이 집안을 뒤집어 놓는 것이었다. 한 주가 멀다 하고 술에 만취하여 소동을 피우고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자행했다.

까닭을 모르는 형은 여러 가지로 타이르고 설득했으나 별무효과였다.  온 가족들은 그의 출현에 덜덜 떨었다. 마침내 장남은 아버지에게서 아우들의 불만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것은 많지도 않은 당 대문에 빚어진 불행이었던 것이다.

장남은 그의 아내와 의논한 끝에 선선히 물려받은 땅 문서에 양도즘을 첨부해서 아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20년 간 시집 식구들의 부대낌 속에서 살아온 그 장남의 아내는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다섯을 주면 다섯만큼의 평화가 오고 열을 주면 열만큼의 평화가 오더라. 모든 것을 다 주니 이제 모든 평화가 바로 내 것이다. 주고 얻는 마음의 평화는 주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불화의 괴로움에 비길 것이 아니다”

일가친척 간의 부당한 잡음과 간섭은 그 성질에 있어서 천차만별이며 그 중에는 그리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도 있기 하겠지만, 최소한 그들의 원하는 바를 주고 내 가정의 평화를 살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는 주는 자의 위치에서 더욱 진복자일 수도 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내가 아는 P여사는 맏며느리여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이웃에 사는 작은 며느리 집에 갈 때마다 무엇이든 들고 가는 버릇이 있었다. 어린애 장난감에서부터 뜰의 꽃포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날 P여사는 동서네 집에 들렸다가 눈에 익은 유리 그릇 한 쌍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얼마 전 행방불명이 되었던 자기 집의 물건이었다.

다음날 그녀는 시장에서 비슷한 그릇 한 쌍을 사다가 노인 앞에 내놓으며 넌지시 말했다.

“어제 동서네 집에서 본 그 유리 그릇이 탐이 나서 아무리 시장을 둘러 보아도 없더군요. 어머니 수고스럽지만 이것을 동서네 것과 바꿔다 주시겠어요? 동서는 싫다고는 안 할 거예요.”

노인은 무안한 듯 우물쭈물하더니 얼른 그릇을 받아 들고 나갔고, 그 후부터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한다. 그녀의 기지 있는 술수가 꼼짝 없이 노인의 급소를 찌르면서도 모나지 않게 집안의 화목을 지켰던 것이다.

 

 

 

사랑과 죽음의 동의어

한 가정에 있어서의 주부의 위치란 마치 원의 중심처럼 그 집안의 중심이며 어둠을 밝히는 빛의 존재와도 같은 것이다. 주부의 말씨 하나, 행동 하나가 그 집안의 기운을 좌우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드럽고 밝은 웃음, 설득력 있는 조용한 말씨, 슬기롭고 기지 있는 행동, 모름지기 그러한 주부가 이내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집안엔 웃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한 가정을 이끄는 주부는 마치 노를 잡는 뱃사공과도 같아 자칫 피곤하여 만심 하다 보면 배는 제멋대로의 방향으로 밀려가게 마련이다.

 가족의 정신적인 안위와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주부의 책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것이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배려가 기울여져야 하는 것이다.

M여사는 남편이 학위를 위한 논문 준비 때문에 임시로 들어있는 하숙방에서 뜻밖에 매일같이 드나드는 묘령의 여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무척 고민하였다. 남편에게 따지기도 하였다. 물론 남편은 공연한 오해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적 고통은 점차 집안을 어둡고 무겁게 하였으며 그 여파는 철없는 아이들에게까지 미쳤다.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그녀는 마침내 어떤 결심을 하였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전에 없이 세심한 정성으로 아이들을 보살펴 학교에 보내고 그 길로 남편의 하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묘령의 여성과 남편을 위해 차를 끓이고 점심준비를 하고 과일을 깎았다. 그야말로 알뜰한 아내의 정성 어린 접대를 다하였다. 그러면서도 돌아오는 저녁, 문밖에서 그녀는 몇 번이나 까무러치도록 엄습하는 슬픔에 정신을 잃곤 하였다.

그러기를 몇 달, 마침내 남편의 하숙방에서 묘령의 여성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남편은 아내의 초인적인 인내와 봉사에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왔던 것이다. M여사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그 여자에게 확고부동한 아내의 위치를 인식시킴으로써 스스로 단념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 길 밖에는 내 어린 자식들을 바르게 키울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 때문에 흔들리는 주부의 불안은 곧 온 집안을 어둡게 만들며 아이들의 가슴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다.

누군가 말하기를 사랑이란 죽음과 동의어 동의어라고 하였다. 사랑은 진정한 의미에서 희생을 뜻하며, 그러한 희생적인 사랑이 태어나는 곳에 이기적인 자기는 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면 사랑의 가정은 곧 이기주의의 무덤이어야 한다. 이기주의야 말로 모든 불화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나의 평화, 나의 기쁨의 구축은 내 안에 끊임 없이 남을 위해 퍼내는 사랑의 샘을 파는 일이다. 목마른 이들이 무상으로 마실 수 있는 봉사의 샘을 개방하는 일이다.

 

III. 1 달란트의 우화

 

 

 

희망의 이름

 

새해가 온다.

새해란 말에 비애가 있다.

한 해라는 시간의 무게가 무겁게 가라앉는 중량감,

문턱도 없는 새 날의 막막한 설레임과 뿌듯한 아픔들.

새해에는 새 희망을 가지라고들 한다. 그러나 희망이 어디 꽃집의 꽃처럼 피어있는가. 아니면 그림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가.

그러나 희망엔 모습은 업지만 이름이 있다.

사람들에게 이름이 있듯이 희망에도 각기 분명한 이름이 있다.

기독교 신자에겐 그리스도라는 희망의 이름이 있고 영어 囹圄의 수인들에겐 자유라는 희망의 이름이 있듯이 우리의 희망에도 각기 분명한 이름이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이름 없는 희망은 허망 虛望이다.

안개 같고 구름 같고 환각 같은 신기루다.

그러나 희망은 실체다.

안개 속에 살아나는 미류나무고, 구름 속에 헤치고 나오는 태양이다.

하여 우리는 뚜렷한 희망의 이름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입으로는 부르지 않지만 가슴 속에 간직하여 언제나 우리의 길잡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졸업을 앞둔 몇몇 대학생들이 주변에 있다. 응당 그들에겐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부푼 희망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하나같이 암담한 얼굴이다.

“무엇을 하겠는가?”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글쎄요”다.

20대, 30대 1의 취직시험을 뚫을 자신도 없고, 자신의 무능을 감싸 줄 부모의 배경도 재산도 없고, 개척할 만한 땅뙈기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미 늙고 기진해 버린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자기의 희망에 분명한 이름을 명명 命名 하기도 전에 이미 실의부터 하고 있다. 스스로 걸어갈 희망의 주소를 잃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시대의 본질적인 문제는 원자 原子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하고 있다. 기실 고도의 물질화, 기술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길을 잃어버리게 했을 뿐더러 자신의 현주소마저 잃게 하고 있다.

진실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조, 새로운 방법의 발견이 아니라, 우선 맑고 풍성한 샘물을 파내는 일이다.

물이 없는 곳에 집을 지을 수는 없다.

인생이란 길고 긴 집터를 닦기 위해 희망이라는 샘물을 먼저 파야 한다.

희망을 갖는 일은 자신을 푸른 목장이나 언덕 위에 한가로이 눕혀 두는 일도 아니고 깊은 여름 숲 속을 배회하게 하는 일도 아니다.

희망을 갖는 일은 그 희망을 위해 사정 없이 자신을 혹사하는 일이다. 두려움 없이 맞서는 일이다.

마치 기름 심지의 양쪽 끝에 한꺼번에 불을 당겨 붙이듯, 전신을 연소하는 일이며, 항시 높은 벼랑에서 눈 딱 감고 뛰어내리는 용기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글을 읽고, 부러진 다리로 걸음을 걷는 노력이다.

오도 悟道 를 위해 왕위를 버린 성자도 있고 인류의 희망을 위해 십자가를 택한 인자 人子도 있다.

70여세의 노구로 재기하는 예술가, 20년의 탁류를 씻고 재생하는 인생, 모두가 역경과 싸워 이긴 희망의 승리자들이다. 가슴에 희망이라는 샘물을 끊임 없이 퍼 올린 사람들이다.

우리가 빛을 등질 때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앞을 가로 막는다.. 그러나 우리가 빛을 향해 마주설 때 그림자는 뒤로 물러간다.

어떠한 위인이나 성자도 우리와 같이 1달란트 이상의 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진 않았다.

다만 그들은 주어진 1달란트를 우리보다 잘 이용한 사람들일 뿐이다.

언제나 빛을 향해 그림자를 뒤로 거느리고 걸어간 사람들이다.

새해가 온다.

새해란 말엔 비애가 있다.

비애란 맑은 이슬처럼 스며드는 희망의 모습이다.

새해엔 바로 그 맑은 샘 하나를 가슴에 파자.

그리고 분명히 희망의 이름 하나씩을 새겨 두자.

 

 

 

한 송이 장미

서기 2천 년이 되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 불과 26년, 그때 우리는 꼬부랑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겠지, 지금의 젊은이들은 의젓한 중년이 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발전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미국의 어느 장군은 2천 년이 되면, 비행기는 시속 8천 킬로미터로 나르고,

대륙 간 수송은 특수 미사일로 운수되고,

인간의 평균수명은 백 살이 되고,

하루의 노동시간은 2시간으로 단축되고,

고장 난 심장이나 신장, 폐는 전자기관으로 바꿀 수 있고,

주부는 단추 하나로 가사를 끝내며,

건물마다 20년 사용할 광열과 냉방용 축전지를 부설하고 (그렇게 되면 연탄걱정 석유걱정 없으니 얼마나 좋을까),

인력으로 비를 마음대로 오게 하며,

폭풍의 방향을 대양으로 돌릴 수 있으며,

사막을 갈아 꽃을 피우게 되리라,

고 예언했다니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지상은 바로 낙원이 될 것이다.

누구든 아무리 지금 괴롭더라도 한 30년 더 살아서 그 지상의 천국을 누려 볼 일이다.

사실 고장난 심장이나 폐를 전자기관으로 바꾸고, 20년 간 쓸 연료를 걱정하지 않으며, 단추 하나로 가사를 끝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한가로이 누워서 공상을 즐기고 저녁길을 바쁘게 허둥대지 않아도 된다.

냉장고엔 한 달 분 식사가 준비되어 있고, 목욕탕엔 더운 물이 철철 넘치고, 스위치 하나로 열리는 식탁 위엔 가정부가 필요 없는 만찬이 준비된다.

나는 한 송이 장미를 식탁에 장식하고, 그렇다, 한 송이 장미를 식탁에 장식하고….

한 송이 장미!

나의 공상은 여기서 중단된다.

시속 8천 킬로미터의 비행기로 우주를 여행하고, 폭풍과 비를 마음대로 움직여도 인간은 변함 없는 인간이다.

고작 식탁 위에 한 송이 꽃을 장식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원하며, 더 먼 미래를 꿈꾸는 생명, 인간의 생명에 변화는 없다. 사막을 갈아 꽃을 피우고, 젊음을 30년 쯤 연장할 순 있어도 그 생명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보다 더 단추 하나로 준비되는 식탁 위엔 살아있는 꽃 한 송이가 더욱 갈망스럽고, 20년의 연료걱정이 없는 생활 속엔 더 큰 공허가 자리잡을지 모른다.

손에 닿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던 마이더스 왕의 가슴이 얼마나 무서운 기갈로 찼던가.

어떤 시대 어떤 세상이 와도 우리는 맨발로 풀밭을 달리고 싶고, 촛불 아래 경건한 기도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문명의 강에 작은 물고기처럼 행복한 것은 오직 강에서 바다에 이르는 사이 뿐이다.

어느 날, 문명의 강가엔 일몰이 깃들고 칠흙의 적막이 찾아 들리라. 그때 우리의 고독은 물처럼 무겁게 가슴을 채우리라.

누구도 그 마지막 시간에 편안하던 식탁의 단추를 회상하고, 바꿔 긴 전자심장을 생각하진 않으리라.

차라리 문명 뒤에 버려진 한 켤레 조롱박을 회상하고, 가스 불 아닌 태양의 햇빛을 그리워 할 것이다.

문명에서 얻어진 것을 문명으로 돌려주고 자연에서 얻은 것을 자연으로 돌려야 할 마지막 시간에 비로소 우리는 길을 잃은 문명의 미아 迷兒 임을 깨달으리라.

우리 안의 그 큰 강물 같은 비애가 기실은 한 송이 장미와 문명 밖의 영원을 향한 끊임 없는 설레임이었음을 곰곰이 생각하리라.

어떠한 원자 原子, 어떠한 핵 核으로도 열 수 없는 생명의 문, 그 비의 秘義의 열쇠를 생각하리라.

 

 

 

내가 나의 기쁨을 만날 때

기쁨을 찾아 길을 떠난 불행한 임금이 있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 입은 속옷을 얻을 수 있으면 기쁨이 온다는 말을 듣고 방방곡곡 찾아 다녔지만 끝내 속옷을 구하지는 못하였다.

기실 행복한 사람은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속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많았지만 그들이 모두 행복에 넘쳐있는 것같이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무도 입지 않은 행복의 속옷을 찾아 헤매는 임금님의 불행, 바로 인생의 불행은 거기에 있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빵과 왕위와 어떠한 영화로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비애, 그것 없이는 빈 듯 쓸쓸하고 그것 없이는 죽은 듯 어두운 생명의 기름, 기쁨의 실체를 찾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또 갔는가.

기실 숱한 사람들이 자신의 장래를 위해 보험에 든다. 생명과 재산과 안락과 안정을 약속 받기 위해 보험에 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끔을 약속하는 보험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보험국, 스칸디나비아에서도 기쁨을 의뢰할 보험만은 없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요람에서 장지에 이르는 일체의 보장이 완비되어 있고, 장례식 비용마저 지불되어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기쁨에 한해서만은 어떠한 보장도 보험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적인 행복의 조건만으로는 어떻게도 채울 수 없는 기쁨이란 그릇의 실체, 어쩌면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이 되고, 혼돈 속에서 질서,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기쁨의 실체는 무엇일까.

음악처럼 들리지도 않고, 수학처럼 풀리지도 않으며, 소설처럼 줄거리도 없는 기쁨,

때로 마른 풀더미 위에, 피어나는 아침 꽃포기에, 넘어가는 저녁노을 속에, 소리 없이 숨어있는 정결한 기쁨의 뒷모습을 눈부시게 발견할 때가 있다.

기실, 자연은 때 時 없이 맑고 청정한 기쁨을 만들어 주는 신기한 기쁨의 제조공장이기도 하다.

소리 없는 종소리처럼 대지를 울리며 떠오르는 아침 해,

안개처럼 피어나는 숲 속의 수증기, 그 진주 빛 아지랑이,

풀숲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 터질 듯 무르익은 과실의 무게,

그런 것 속에 부담 없이 느끼는 기쁨의 신기루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꽃 내음처럼 희미하고, 수증기처럼 사라지기 쉬운 기쁨의 허망함도 함께 알고 있다.

기실 이슬처럼 단명하고 촛불처럼 꺼지기 쉬운 기쁨은 기쁨이 아니라, 비애의 변형 變形이다.

우리가 원하는 기쁨은 대양처럼 깊고 산맥처럼 줄기찬 기쁨의 광맥이다. 마르지 않은 샘처럼 솟아나고, 꺼지지 않는 불길처럼 타오르는 활화산이다.

기쁨을 찾아 떠난 나그네들은 많지만 그것을 안고 돌아온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밭에 감춘 보물을 찾기 위해 가재를 팔아 밭을 사고, 고귀한 진주를 사들이기 위해 가산을 털지만 (마태오 13.46) 그 값은 항상 밭이나 진주의 값을 따르지 못하였다.

기쁨은 참으로 비싸고도 비산 지불을 요구한다.

라디오를 듣고, 텔레비전을 보며 스포츠나 경마를 즐기듯이 살 수는 없다.

맨발로 얼음을 깨는 오만한 고행 고행이나 가난한 소년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위선적인 자비로도 기쁨을 살 수는 없다.

진실로 내가 그 은밀하고도 풍요한 기쁨을 살 수 있었던 때는 내가 내 안에서 잘 익은 포도처럼 충만하여 겸손할 때였었다.

파랗게 서슬 푸른 오만 속에서 나는 살이 시린 고독과 영혼의 추위 밖엔 알지 못했었다.

또 내가 내 기쁨을 만날 수 있었을 때는 열을 원하는 사람에게 스물을 주고 스물을 원하는 사람에게 서른을 주었을 때였다.

다섯을 아끼고 열을 아낄 때 나는 아긴 것만큼의 기쁨을 샀다. 진실로 모든 것을 주었을 때 모든 평안과 기쁨이 내 것이었다.

또 내가 나의 기쁨을 만날 수 있었을 때는 내가 내 안의 불 꺼진 촛대에 다시 불을 켰을 때다.

방방이 잠긴 어둠을 몰아내고 먼지 긴 등피 燈皮를 조용히 닦으며 부러진 날개를 다시 이어 붙이는 희망의 수선을 홀로 할 때다.

그리고 또 내가 나의 기쁨을 만나는 때는 내가 나의 말을, 인간의 말을 잊어버릴 때였다.

스스로 다치고, 속이고, 더럽히는 그 추한 인간의 말, 헛된 약속과 부질 없는 선망, 사나운 질투, 그러한 일체의 인간의 말을 잊어버리고 꽃으로 땅을 덮고, 별로 하늘을 수놓은 영원자의 말에 귀기울여 들을 때였다.

또 내가 나의 기쁨을 만나는 시간은 한 편의 시 詩와 시를 찾는 고단한 작업 속에 파묻힐 때이다.

막막하던 대상의 침묵 속에서 불꽃 튀는 응답을 들었을 때, 나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기쁨에 생동한다.

나의 기쁨은 스스로는 침묵하며, 침묵하는 우주의 간절한 응답을 듣는 때였다.

참으로 기쁨을 위해선

“위안 없는 불행이 필요하며,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위안이 없을 때, 비로소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위안이 내려온다” 고,

프랑스 여류 사상가 시몬느 베이유는 말하고 있다.

기실 내가 내 생에 걸어온 숱한 집착들, 마치 병든 잎새들이 마른 가지에 매달려 있듯 수유 須臾의 생에 남루하게 걸린 슬픈 집착들을 하나씩 끊어가는 작업 속에, 끊임 없이 환상을 낳고 죄악을 낳고 비애를 낳는 가지가지 집착들을 끊어가는 순화 醇化의 작업 속에만 나의 기쁨은 실재할 것이다.

하여 나의 기쁨은 일체의 병든 집착을 수술하는 용단에 있고, 허실의 위안을 척결 剔抉 하는 결단에 있다.

내 안에 거미줄처럼 널린 욕망을 비우고 집착에서 탈출하여 결단 있는 포기 속에 스스로 진공 眞空이 되는 일, 무아 無我가 되는 일이다.

진공은 그때 다시 없는 충일 充溢이 될 것이며, 그 진공의 충일 속에 마침내 대양 大洋 같은 기쁨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악몽처럼 자기를 억압하는 생활을 원한다면 사제 司祭 가 되십시오. 그러나 적당히 어중간하게. 당신이 태양처럼 빛나는 생활을 원한다면 역시 사제가 되십시오. 그러나 전심전력으로.”

이 말은 독일에서 처음으로 신품 神品 을 받는 사제에게 주는 습관적인 기념사지만 어찌 이 말이 사제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생에 불성실할 때 생활은 악몽처럼 어둡고 무서워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생에 전심전력으로 다가설 때 우리의 생활은 기쁨의 밝은 빛으로 둘러싸일 것이다.

진실로 내가 나 자신임을 깨달을 때, 그리고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나는 나의 안에 참된 충만, 기쁨의 샘물에 목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쁨의 문 밖에서 서성대고 있는 나, 언듯언듯 그 눈부신 모습을 훔쳐볼 뿐이다.

 

 

 

자유에의 길

 

기 旗를 단다.

오늘도 산 하나가 가슴을 가로막는 듯 숨막히는 마음 벌판에 푸르게 나부끼는 기 旗 하나를 단다.

“창을 열어라, 빛을…”

임종의 자리에서 말했다는 시인도 기실 생 生의 마지막 순간에까지 비상 飛翔하는 정신의 자유를 갈구했던 것일까.

생명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이며 그것은 곧 자유의 법칙이다.

준마는 달리기 위해 태어나고 꽃은 피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사슬에 묶인 말은 뛰지 못하며 그늘에 갇힌 꽃은 봉오리지지 못한다.

하여 말은 기어이 사슬을 끊고 달려가려 하고 꽃은 목을 틀며 햇빛을 따라간다.

누가 떨어지는 나뭇잎을 막을 수 있으며 돌아오는 계절을 멈추게 할 수 있는가.

모든 사물엔 한계상황이 있다. 생명의 한계상황이 죽음이듯 억압에 한계상황은 반항이다.

자유는 혼자서 서지 못하는 쌍생아다.

오른팔이 왼팔에 의해 비로소 오른팔일 수 있듯이, 자유는 반드시 그 대립자인 ‘구속’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적절한 균형 속에 사회는 정의롭고 인류는 평화로워진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 진실로 자유와 구속의 원만한 균형이 이루어 졌던가.

언제나 무력한 자유는 폭력의 규제에 의해 억압되어 왔다. 자유라는 미명 아래.

진실로

“오 자유여! 그대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죄가 저질러 졌는가.”

단주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외친 프랑스 지론드 당의 영수, 로랑 부인의 절규는 영원히 가슴 아픈 비수 匕首다.

지상에서 길을 잃은 자유의 행방,

그러나 우리는 죽음의 전장에서도 영어 囹圄의 유형지에서도 하늘 높이 나부끼는 자유의 푸른 기가 있음을 안다.

3.1 운동, 6.25, 4.19, 자유의 수호신들은 그 기 旗아래 용약하여 죽어갔고, 사지 死地의 수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탈출을 기도했다.

새로운 국가, 거대한 마천루, 무적의 탱크가 아무리 강하단 한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는 연기와 같다.

남는 것은 오직 하나 자유를 향한 인간정신이다.

언제나 그들의 가슴에 꽂힌 자유의 깃발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젊은 유대인들을 대신하여 흔연히 죽어간 콜베 신부,

재산과 시민권을 빼앗기면서도 이스라엘로 돌아가기 원하는 수만 명의 소련 땅의 유대인들,

누가 그 불멸의 자유정신을 굴복시킬 수 있는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한 자유의 이름, 자유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실 인간은 욕망의 노예다.

인간에의 재불에의 권력에의 끊임없는 욕망으로 하여 자신을 묶고 또 남을 구속한다. 모든 자유의 불행은 바로 그로부터 시작한다.

하여 진실로 자유의 회복은 바로 부조리한 인간 욕망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이며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신을 믿고 따름으로써 자유를 얻고, 불타처럼 우주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자재 自在 에 이르고, 공자처럼 70에 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欲不踰矩 하는 자유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안에 스스로 해탈하는 자유의 푸른 기를 달아야 한다.

진실로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만이 자유에의 길이다.

 

 

 

난 蘭의 외로움

 

학생시절 어느 교양서적에서 공자의 난 蘭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아직 노 魯 나라 대신이 되기 이전, 자신의 학설이나 정견이 조정에 등용되지 않고 외면당하자, 크게 마음속에 실망하여 “지금은 바른 길이 막히고 옳은 것이 외면 당하는 난세이니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향리로 내려가 괭이라도 들고 밭을 가는 농부가 되리라.” 결심하고 길을 떠나 인적 없는 산길을 더듬어 가던 때였다.

문득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깊은 산, 길조차 없는 숲 속에서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고귀한 향기가 가득히 퍼져옴을 느꼈다.

향기를 쫓아 찾아가 보니 한 포기의 연연한 난 蘭이 수줍은 듯 미풍에 불리며 피어있더라는 것이다. 고귀한 향기를 소리도 없이 사위에 떨치며.

공자는 그 자리에 발을 멈추고 장탄식을 했다.

저런 초목에 불과한 난 蘭 조차도 길이 없는 깊은 산 속에 저 혼자 힘껏 피어 있거늘 하물며 사람인 내가 조그마한 난관에 부딪쳐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한다는 일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홀연 깨달은 공자는 다시 그 길로 오던 길을 돌아가 학문을 닦고 길을 가르쳐 마침내 나라의 중신이 되고 대정치가, 유교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글을 읽은 나는 그때 글이 갖는 교훈보다는 전연 다른 감회에 사로잡히고 말았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심산유곡, 길도 없는 풀숲에 홀로 피어있는 난 蘭의 외로움이 마치 손에 잡힐 듯이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피어야 한다는 일, 다시 말하여 살아야 한다는 일은 깊은 산의 난蘭처럼 외로운 일이다. 가족과 이웃과 사회 속에 있건만 산다는 일은 깊은 산의 난蘭처럼 혼자서 치러내야 하는 일이다.

심산의 난蘭처럼 외로운 인간.

많은 현세적인 사람들은 바로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한다.

재물과 가구와 아름다운 장식품과 처첮과 수만 권의 서적과 명예와 권세를.

외로운 심산의 난蘭이 자기 안의 고귀한 향기를 밖으로 쏟아 냄으로써, 다시 말하여 자기 안의 가장 귀한 것마저 남을 위해 희생함으로써 스스로의 외로움을 위안하고 있는데 비해,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것까지를 가지려는 소유로써 외로움의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다.

쌩떽쥐빼리는 인간이 마음을 가꾸는 일은 바로 스스로르 ㄹ바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으는 일이 아니라 주는 일, 갖는 일이 아니라 버리는 일. 기실 언젠가는 그 자신마저 존재의 마지막 길목에서 대자연으로 돌려 주어야 하는 인간의 생명이다.

하면 소유한다는 것이 얼마큼이나 우리의 외로움을 위안할 수 있는가. 그 마지막 길목에서…

난蘭은 어차피 외로운 것이다.

어디서건 피어야 하며, 피어서 향기를 주고 빛깔을 주고 의미를 주고 짧은 생애를 다 주어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고 가는 난蘭은 후회가 없다. 오직 충만이 있고 평안이 있을 뿐 간 뒤에도 길이 기억되고 더욱 추앙 받는다.

가질 수 있는 한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가는 이는 추한 미련이 남고 아쉬움이 엉긴다. 마음은 도둑처럼 설레며 걸음걸음 뒤돌아다 보아진다. 평화도 안식도 없고 의구 疑懼 만이 남는다.

외로움 위에 오뇌 懊惱 가 겹치는 것이다.

 

난蘭은 어차피 외로운 것이다.

외로울 바에야 심산에 홀로 피는 난蘭처럼 곱고 향기롭게 외롭고 싶다.

 

 

 

우리가 물을 마실 때

 

내가 첩첩이 문을 닫고 낮과 밤의 분간도 없는 곳에서 칩거하고 있을 동안, 나의 문밖에선 연일 연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변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 뜰 구석구석에 묵은 거미줄같이 끼었던 잿빛 겨울의 포장을 말끔히 걷어 내었고,

라일락, 철쭉, 홋잎나무 가지마다 푸른 색종이 부스럭지 같은 연녹색 움을 다닥다닥 피워내고 있었으며,

차갑고 투명하기만 하던 담장의 햇빛을 노오란 개나리꽃빛 같은 물감으로 색칠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몇 포기 진달래가 산골처녀같은 수줍음을 함빡 뿜어내며 기어이 부끄러운 고개들을 내뽑기 시작했다.

맑은 물과 눈부신 빛으로 다시 꾸미는 자연의 축연 祝宴, 누가 이 신선한 생명의 아침을 마련했을까.

타는 목에 물 한 모금 마시듯 나는 그 자연의 정결한 식탁 앞에 마주 앉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누가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를.

기실 아이들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 많다. 또한 그 필요가 충족되기를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아침마다 깨끗이 닦은 구두, 정결한 의복, 식탁 위에 준비된 풍족한 식사, 부족함이 없는 용돈, 그들이 원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또 간절하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 번도 어버이가 베푸는 무상의 사랑에 감사할 줄을 모른다. 당연히 주어지고 베풀어지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기실 인간도 자연 앞에 이처럼 철없는 어린이들이다. 누군가가 마련해 주는 생명의 식탁 앞에 당연한 권리인 양 희락 희락 하며 포식한다. 그리고 때로 투정하고 보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人生의 故意

 

“가엾어라 마틸드! 그런데 내 보석은 가짜였어, 잘해야 오백 프랑 밖엔 값이 없는…”

이것은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의 끝 구절이다. 하루 밤의 화려한 무도회를 위해 가난한 관리의 아내 마틸드 르와젤이 그의 친구로부터 빌렸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 버리고, 그것을 변상하기 위해 전 가산을 팔고, 파멸과도 같은 빚을 짊어지고 10년의 세월을 허덕였다. 물론 잃어버린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사실을 몰랐던 때문이다.

장미 빛 손톱은 기름 낀 접시와 냄비바닥에서 닳았고, 머리카락은 윤기 없이 흩어져 마치 빈민촌 아낙네처럼 거칠고 추해지고… 그 옛날 그렇게 아름답고 매혹적이던 마틸드는 이제 완전히 볼품 없는 늙은이 꼴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여자이기에 가졌던 너무도 철없는 허영, 단 하룻밤의 허황된 꿈을 위해 10년의 세월을 휴지처럼 써버리게 했던 그 가짜 목걸이, 그러나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도 늦어버렸던 것이다. 늙고 피로하고 상처받고 다시는 지울 수 없이 얼룩진 인생의 밤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같이 우연하게 일어난 한 작은 사건이 인간의 일생을 얼마나 암담하게 만들어 놓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다.

 

게오르규의 25시. 이 소설에서 요한 모리츠는 그의 아름다운 아내 스잔나와 함께 서로 사랑하며 지극히 행복했다. 순박하고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농부 요한은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내는 경찰서장의 간계 奸計 로 하여 유대인의 누명을 쓰고 강제노동에 징발되어 간다.

그것은 참으로 어이 없는 돌발사였다. 수용소에서의 강제노동, 탈출, 체포 다시 수용서, 그리고 억지 독일 나치스의 친위대원으로서의 꼭두각시 노릇 등, 이 모든 사건들은 순박한 농부 요한의 그 어떤 자유의사의 반영 없이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이윽고 그가 꿈에서 깬 것처럼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어느 틈에 독일 군복을 입히운 친위대원으로서 사형구형을 받는다. 그러나 장본인인 요한에게 있어서는 어느 것 하나도 분명한 것이라곤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왜 사형을 받아야 하는지 그 까닭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 스잔나에게 있어서도 자기가 원치도 않는 소련군의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만이 분명한 일이었다.

이윽고 전쟁이 끝나고 8년 만에 비로소 만나는 두 사람, 그러나 그들은 이제 너무도 소원하고 서먹했다. 이방인처럼 낯이 설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은 그들에게 한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웃으라고 강요한다. 이 얼마나 무심한 횡포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완전히 자기 의지를 상실한 이 희생자들, 국가라는 또는 권력이라는 전체 全體에 의해 희생된 한 개체, 무력한 자연인이 가랑잎처럼 휘말리며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곤욕과 모멸의 비인간의 시간 25시를 넘어 비로소 얻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늙음과 피로와 상처로 얼룩진 인생의 밤이었다. 이 역시 인생의 조그마한 고의 故意가 인간의 일생을 얼마나 암담하게 만들어 놓았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극동 북위 48도의 한 마리 집게벌레 같은 가늘고 기다란 섬을 볼 수 있다. 이름 지어 사할린 섬. 옛날 일본의 영토로 있을 때 이 섬을 우리는 가라후도 또는 화태 樺太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이 얼어붙은 형벌의 유형지 같은 곳에 얼마나 많은 우리들의 불쌍한 동포들이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日帝 의 손에 끌려 갔던가. 구주 九州, 북해도, 남양 등지로 젊음과 가족과 조국을 등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불귀의 객이 되어 떠났던 것이다.

그런 이들 가운데서 기적적으로 23년 만에 살아 돌아온 사할린 귀환교포 김정룡 金正龍 씨의 수기를 읽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잊었던 묵은 상처를 되씹게 해 주었다. 돌아갈 수 없는 망향에 지쳐 미쳐버린 젊은이, 이역 땅에 이름 없이 숨져간 수많은 넋들, 오늘 이 시간에도 한숨과 주름에 덮인 실향민들이 고국의 하늘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실 마틸드 르와젤의 경우는 개인의 조그마한 실수와 악의 없는 고의 故意가 빚어 낸 불행이라고 하겠지만 요한 모리츠나 스잔나, 그리고 사할린의 김정룡씨의 경우 그 엄청난 희생들은 기실 누구의 고의에 의한 불행이며 희생이었을까. 소수의 조작된 권력의 만행이나 무성의한 국가의 방관이 인간의 존엄한 권리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자의 아닌 타의에 의한 너무도 비참한 희생자들, 그들의 상실한 청춘과 시간은 그 무엇으로 보상되어야 할 것인가.

기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우리 자신이게 하여주는 것이다. 그 무엇에도 부당하게 예속되지 않고 희생되지 않는 우리 자신의 것으로 있게 하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란 말로 치워버리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하늘이 준 명 명 일 수가 없다. 아니 하늘의 명을 거역한 인간의 조작이며 비행이다. 인간의 집단인 권력의 무서운 횡포다. 언젠가는 심판되어야 할 가증한 악 惡이다.

 

 

 

두 개의 한국

 

“나는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차별대우에 한 때 체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격한 감정은 체념의 그늘 속에서도 조금씩 반항의 싹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저의 지은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민족문제를 끌어 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국을 가본 적도 없고 모국어 한 마디도 모르는 저입니다만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이라는 긍지는 살아 있었습니다…”

이상은 바로 지난 2월 20일 밤 8시, 일본 시즈오카 시내 나이트클럽에서 일본인 두 사람을 사살한 뒤, 다이너마이트와 인질로써 연 4일 간이나 일본경찰과 대치하여 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재일교포 2세, 김희로 金嬉老  가 옥중에서 고국에 보내온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의 합리화를 위해 민족문제를 끄집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어려서부터 ‘조센징’ 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대우에 어쩔 수 없이 체념하면서도 격한 감정은 남모르는 반항의 싹을 키워왔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결국 그의 의식내부에 자라온 반항과 민족적인 울분은 어느 찰나 걷잡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살인이라는 범죄에까지 그를 몰고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때 우리는 그의 극적인 행동에 흥분하여 잠시나마 야릇한 민족적인 통쾌감에 젖기까지 했었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지만 내게도 그 비슷한, 울분을 자아내던 몇몇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있다.

그것은 소학교 3학년이던가 4학년 때 일이었다. 나는 그 당시 전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소학교에 다녔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전차길까지의 길에는 일본인 상가 商街가 늘어서 있었고 나는 그 상가거리를 아침 저녁 지나다녀야 했다.

 그 중 한 가겟집에, 나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사내녀석이 있었다. 머리가 밤톨 같은 녀석이 저녁 때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번번이 지키고 섰다가 나를 놀려대는 것이다.

“센징! 센징!”

(그 말엔 조선인 朝鮮人 이란 뜻과 천인 賤人이라는 뜻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다음 말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웃듯 불러대는 녀석의 목소리를 등 뒤에 새기며 나는 몇 번인가 이를 악물고 도망치듯 피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은 갑자기 물총을 들이대며 가방이며 옷 위로 마구 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분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나도 모르게 녀석을 잡으려고 와락 달려드는 데 한 손에 든 가방 때문에 녀석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녀석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순간 가방을 길바닥에 팽개쳤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녀석의 뒤를 쫓았다. 물론 녀석도 있는 힘을 다해서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악에 바친 내 걸음을 당해내지는 못하였다. 마침내 나는 녀석을 후미진 석탄장 창고 앞에서 잡고 말았다.

“용서해 줘! 용서해 줘!”

손을 싹싹 비는 녀석의 등어리며 정수리를 얼마나 두들겨 패주었던지,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녀석의 멱살을 움켜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김희로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새삼 그때의 일이 어제처럼 되살아 났고, 그 밖에도 그 비슷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살아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기실 그는 비록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질렀고 또 불행하게도 한 마디의 모국어도 모르며 단 한 번도 모국의 국토를 밟아본 일이 없는 불쌍한 한국인이기는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한국인이라는 지울 수 없는 의식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제의 가지가지의 탄압과 차별에 대하여 유형무형의 항거를 해온 어엿한 한국인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실로 그는 버릴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자신의 피와 조상을 절감하는 상처투성이 한국의 한쪽 얼굴이었던 것이다.

헌데 여기 또 하나의 일그러진 한국의 얼굴이 있다. 바로 지미 P 가네시로. 영월 출신 박홍민이라는 가짜 국제첩보원 171호 그 사람이다. 그는 하와이, 일본, 중국, 싱가포르의 피가 섞인 외국인 암하드 2세라고 자신을 사칭하다, 다시 하와이에서 중국계 부친과 일본계 모친 사이에서 출생한 가네시로 라고 버티었지만 기실은 단 한번도 외국 땅을 밟아본 일이 없는 순 토박이 한국산 주거부정 무직의 박홍민이었던 것이다.

그의 철저한 한국인 기피의 안간힘은 실로 아연한 것이었으며, 그것을 실증하는 극단의 예로서 그를 찾아 달려온 그의 생부 생부가 목이 메어 아들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싸늘한 얼굴로 흡사 외국인 같은 손짓을 하며 “아이 돈 노우” 를 연발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끝끝내 그는 옛날의 박홍민은 죽어버렸고 제2의 인간 제임스 P. 암하드 만이 남아 있다고 철두철미 한국인이기를 기피하며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와 조상과 출생을 부정하며 자신의 양심을 외면하는 박홍민, 이 웃지 못할 희비극의 주인공은 도시 어찌된 일일까. 어쩌면 그는 가난하고 무력하고 상처투성이인 약소민족 한국의 일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짜로라도 미국의, 일본의 또는 중국의 출생을 믿고 싶도록 제 나라가 싫었고 제 조상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외국인이면 무조건 숭배하는 한국인의 사대적인 심정을 마음껏 이용했을 뿐이라고 거침 없이 내뱉는 박홍민, 그의 얼굴에서 우리는 분명히 일그러진 또 하나의 한국의 얼굴을, 피에로 같은 슬픈 한국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중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그 아들 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친다. 불란서는 스스로의 긍지를 위해 영어사용 기피를 불문율로 하고 있다. 유독 한국인만이 두 개의 얼굴을 가져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스스로를 높일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남의 추앙 推仰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좀더 우리 자신을 아낄 줄 아라야 하리라 믿는다.

 

 

 

이름 없는 피해자들

 

1년에 몇 번씩인가 돌아오는 중간고사 내지는 학기말 고사에 꾸준히 2, 3등을 유지하면서 여고 여고 2학년까지 올라간 어느 여학생의 이야기다. 아이의 양친은 아이의 총명함을 알고 있는지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능히 수석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아이에게 의욕과 분발을 주기 위해 약속을 하였다. “다음 학기말 시험에 수석을 하면 소원하던 풀루우트를 사주마”고…

헌데 아이는 별로 시원한 얼굴도 짓지 않으며 그저 한 마디 ‘죽어도 안될 거야’ 하고는 피식 웃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를 들고 온 아이는 약간 슬픈 듯 그러나 아예 체념해버린 덤덤한 표정으로 “총점 3점 차이로 또 빼앗겼어” 하더라는 것이다.

총점 3점 차라니 모두지 아이의 부모는 애석하기 그지 없이 어디에 아이의 결함이 있는지 따지기라도 하듯 살펴본 성적 중에 ‘선택 70점’ 이라는 과목을 발견했단다. 부모는 그 성적이 아무래도 마땅치 않아 이 과목이 도시 무슨 과목이며 실기시험이냐 필기시험이냐를 물어 보았단다.

헌데 아이의 대답이 엉뚱하였다. 그 과목은 서예 書藝 라는 과목이며 실기시험이지만 대개는 봐주는 과목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아이의 손으로 씌어진 붓글씨이건만 A의 점수는 90점이 되고 B의 점수는 70점이 된다는 것이다. 또 언젠가는 그 과목 점수가 항상 나쁜 한 학생이 그 과목에 늘 90점 이상을 받는 어떤 친구와 장남 삼아 붓글씨를 서로 바꾸어 이름을 써서 제출했더니 역시 마찬가지 결과였다는 것이다. 즉 시험지가 바뀐 것과는 상관 없이 여전히 90점의 아이는 90점이고 70점의 아이는 70점이더라는 것이다.

 

젊어서 한 때 고생을 한 그 아이의 아버지도 지금은 한 기관의 장으로 평온하게 지내는 중후한 신사지만, 젊어서는 한 때 절망적인 좌절과 회의에 빠진 일이 있다고 한다.

그에게는 같은 중학과 대학을 줄곧 수석을 다투며 함께 지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타고난 운이 좋았던지 천성의 처세술이 능했던지 중학교에선 여자처럼 삽삽하고 곱게 생긴 용모로 하여 항상 소녀의 아버지보다 더 귀염을 차지했고, 대학에 가서는 어느 틈에 외국인 교수들을 재빨리 사귀어 영어회화에 열을 올리더니, 졸업 후엔 나란히 취직시험에 합격하여 그런 대로 데스크를 마주하여 사회생활 초년병의 시련을 함께 나누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녀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그 친구와의 사이가 날이 갈수록 도무지 개운치 않더라는 것이다. 매사에 선수를 쓰는 그 민첩하고 날렵한 행동거지며 상사에게 대하는 적절한 요령이며 모두가 우직한 성격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적수였기에 그 앞에서면 공연히 마음이 위축되고 패배의식 같은 것을 느껴 우울해 지더라는 것이다.

얼마 후 그 친구는 운을 잡아 도미유학에 올랐고, 소녀의 아버지는 그 길로 야릇한 좌절의식에 빠져 직장마저 집어 치우고 한 때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기실 그런 경험을 지닌 소녀의 아버지의 걱정은 바로 소녀가 자기와 같은 좌절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체육이니 음악이니 또는 서예니 하는 과목으로 하여 항상 자기 성적에 자신이 없으며 일종의 의욕 상실에 빠져있는 소녀, 그는 작게는 학교에 대한 불신을, 크게는 사회에 대한 부조리를 이미 어린 가슴에 키우고 있는 것이다. 죽어도 수석은 못할 거라는 소녀의 말은 어쩌면 모른 것을 체념하고 있는 듯이 들리기도 하지만 실은 절망적인 여운을 울려주는 것이다. 이런 작은 문제가 언젠가는 인생에 대한 자신을 잃게 하고 좌절하게 하는 원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소녀의 아버지가 느꼈던 젊은 시절의 까닭 없는 열등의식, 그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같은 성질의 것이다. 한 친구의 무심한 행동에 위축되어 항상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생활의 안정을 잃고 쫓기듯 교란 당하던 내적 불안, 이 두 사람이 경우는 달라도 결과는 거의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문에 그런 과거의 쓰디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소녀의 일에 적지 않은 걱정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이 소녀가 학교에 대해 품고 있는 모순이나 불신, 또는 그 아버지가 그 옛날 친구로 인해 받았던 정신적 피해는 괴롭지만 긍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의 갈등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은 결국 체념이라는 무기력한 패배의식의 둥우리이거나 심약한 자기 위안의 도피처, 아니면 의욕상실의 무력한 포기상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이 소녀와 소녀의 아버지 같은 이름 없는 피해자들이 스스로 괴로움을 달래고 있으련만 그들을 위한 보상은 아마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정도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서로 다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더욱 굳게 다지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면 이렇듯 이름 없는 피해자들에게 베풀어지는 유일한 보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스스로 ‘투지와 분발’을 일깨우는 자기 확인의 길 밖에는 없을 것이다.

기실 운명의 미소란 그런 것을 되도록 일찍 깨닫고 실천하는 자에게 던져지는 행운의 주사위라고 생각함이 옳을지 모른다.

 

 

어린 意志

 

가난한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난 뉴턴은 국민학교 시절 몸이 허약하고 성적도 나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공부 잘하는 한 학우로부터 받은 심한 모욕이 자극이 되어 이를 악물고 “두고 보자, 언젠가 기어코 너를 능가하리라” 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분발하여 우수한 학생이 되었을 뿐 아니라 후에 지구의 인력을 발견 하기까지에 이른 대 학자가 되었던 것이다.

비단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고 어린이는 이미 그 나름의 자아와 의지와 판단을 지니고 있다. 그렇건만 엄연히 하나의 인격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 심신의 발달 변화에 대하여 어른들은 심히 둔하고 무관심하며 책임이 없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그들을 어리게만 보는 데서 오는 경시 輕視와 소홀, 몰이해와 강요, 속단 등에 빠져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태도는 너무도 일방적이며 경솔하고 때로 폭군적이라 하겠다.

그들은 과중한 학교 과업에 시달리고 적지 않은 잡부금 때문에 부모와 학교의 틈바구니에서 어린 가슴을 조이고 있다. 거리에선 살인차량 殺人車輛에 위협당하며 일상생활에선 유독소 有毒素 과자, 불건전한 만화, 위험한 장난감 등 실로 풍전등화 風前燈火 같은 위험 앞에 던져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유형 무형의 위협들은 바로 다름아닌 그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이 만들어 낸 함정이며 횡포라 하겠다.

5월 5일, 어린이 날이 지난 지 불과 10여일, 10세의 어린 소년이 도둑의 누명을 쓰고 죽었다.

스승의 날을 맞아 담임 선생님께 콜라와 빵을 선사하고자 어머니 주머니에서 말없이 꺼낸 돈 백30원이 천진한 소년을 도둑으로 몰게 했고 마침내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던 것이다.

하면, 소년은 왜 말없이 어머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야만 했었을까? 가난한 부모는 노동으로 생계를 이었고 그것을 잘 아는 소년은 차마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스승의 날은 다가오고, 학우들은 돈을 걷어 선생님께 선물을 하는데 소년만은 할 수 없었다.

자기만이 제외된 소외감, 나이 어린 소년은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 싶은 지순한 일념과 자기만이 소외되고 싶지 않았던 슬픈 안간힘으로 마침내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말없이 돈을 꺼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늘처럼 믿었던 스승의 무서운 의심과 학우들의 철없는 조롱, 겸하여 무지한 부모의 심한 매질과 몰이해, 소년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실 이 어린 소년을 죽인 것은 직접적으로는 부모의 가난과 무지, 스승의 사려 없는 언행이지만 간접적으로는 보다 깊은 곳에 뿌리박은 이 사회의 교육의 부재, 기성세대의 악 惡 이 그 원흉이다.

오늘날 이렇게 제물 祭物이 되어 희생되는 어린이들 앞에 어른들은 어떠한 다짐과 결의의 조화 弔花 를 바쳐야 할 것인가. 그것만이 그들의 가엾은 영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得失 相反

 

가끔 이런 경험은 없는지. 가령에 십 원을 아끼려다 백 원을 손해보는 따위의 일.

물건을 고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값이 비싸고, 값이 싼 것은 물건이 안 좋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닭 대신 꿩이라 우선 싼 것을 택하여 사고 보니 싼 게 비지떡이라던 속담 그대로 아예 본전까지 놓쳐버리는 입맛 씁쓸한 경험, 그런 실수를 아마도 누구든 한두 번은 경험했으리라.

이것도 그 비슷한 경우이지만 역시 웃지 못할 이야기다. 한 부인이 생선 가게에서 생선 값을 깎느라고 가게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생선 장사는 3백원에서 단 10원도 깎을 수 없다는 것이며 부인은 너무 비싸니 2백 50원만 하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거의 싸우다시피 언성을 놓이고 있다. 마침내 그들은 서로가 자기의 주장과 체면을 위해 물러설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얼마를 실랑이를 하다 흥정은 드디어 부인의 승리로 끝나, 부인은 5백원 짜리 지폐를 내고 생선꾸러미를 받아 든다. 그런데 2백 50원의 거스름을 받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서 버린다.  지나치게 열중하고 흥분했던 나머지 자신이 낸 돈이며 그 거스름에 대해서 잠시 기억이 벗는 것이다. 얼마를 걸어가다 깜박 생각이 나서, 그제서야 허둥지둥 돌아와 가게주인에게 거스름을 요청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었다. 가게주인은 펄쩍 뛰며 이 양반 아주 돌았나 보다고 오히려 큰 소리치며 핀잔하는 것이다. 물론 그 가게주인도 흥정에 열중했던 나머지 거스름을 주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꼼짝 없이 부인은 거스름을 손해보고 게다가 병신취급까지 당하여 체신이 말이 아니게 된다. 50원을 이 利 보려다 2백50원을 손해 본 부인은 기실 작은 이를 노리다 더 큰 손실과 망신을 당한 것이다. 말하자면 너무도 근시안적인 이해타산이 오히려 손해와 실수를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장자 莊子 의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밤나무 숲 속에서 사냥을 하고 있으려니까 이상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밤나무에 앉았다. 양쪽 날개의 길이는 칠 척에 가깝고 눈의 직경만도 한 치나 되었다. 장자 생각하기를 “저 굳센 날개로 도망칠 줄도 모르고, 그 큰 눈으로 보지도 못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새일까” 생각하며 장의 長衣 자락을 쳐들고 새를 쏘아 잡으려고 활을 겨누며 새 쪽으로 다가갔다.

바로 그때, 무심코 바라보니 한쪽에서 매미 한 마리가 녹음 속에 숨어서 세상만사를 잊어버리고 노래 부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또 한편에선 그 매미를 잡아 먹으려고 사마귀란 놈이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마귀는 그 일에 열중한 나머지 자신의 위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고. 그 틈을 타서 아까의 그 새는 사마귀에게로 달려들어 정신 없이 사마귀를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새는 그 짓을 하느라고 장자에게 노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장자 소리쳐

“아! 이것이 바로 짐승들이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실태로다. 득실 得失이 상반하도다.”

하여 장탄식하고 느낀 바 있어 활을 던지고 돌아오는데 또한 율림 栗林 지기가 장자를 밤도둑으로 몰아 크게 욕을 퍼부었다는 이야기다. 기실 장자 역시 새와 매미와 사마귀들 일에 열중한 나머지 자신이 율림지기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연 몰랐던 것이다.

참을 쫓은 자 뒤에 또 쫓는 자가 있고, 남잡이가 제잡이 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기실 삶에 쫓기다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는 시간이 허다하다. 더욱이 눈 앞에 작은 이익을 쫓거나 집착하다가 보다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생선 갑을 깎던 부인은 거스름의 손해를 보고 망신을 당한다.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는 새에게 잡혀 먹히고, 사마귀를 노리던 새는 장자의 노리는 활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마음을 빼앗긴 장자는 율림지기에게 욕을 당한다.

기실 이렇게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고, 작은 슬픔, 작은 불행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수없이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등잔은 높이 쳐들어야 먼 곳이 보인다. 턱 밑에 내려놓고 잃어버린 보석을 찾을 수는 없다.

 

 

 

잃어버린 길

 

어느 날 길을 찾아 헤맸다. 도무지 그 집이 그 집 같고 그 골목이 그 골목 같아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큰 길까지 되돌아 나와 처음부터 다시 찾기 시작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회 앞을 지나 구멍가게를 끼고 세 번째 골목을 오른쪽으로…. 하며, 속으로 그림을 그리듯 밟아 갔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로 엉뚱한 곳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기진맥진하여 우두커니 섰는데 문득 동회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군, 참 동회에 가서 부탁하면 될걸,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난 역시 머리가 나쁜가 봐!” 어쩌구 그런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직원이 앉은 채 말로만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문득 옆을 보니 난로 옆에 사환 같은 소년이 하나 서 있었다. 나는 그 소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수고스럽지만 길 좀 안내해 주지 않겠수?”

그러나 소년은 못들은 척 옆으로 고개를 쓱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아 추운데 무슨 소리냐” 하는 식으로.

나는 얼핏 백 원짜리 한 장을 쥐어줄까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뭔지 갑자기 울분 같은 것이 터져 나와 그대로 돌아서 나오고 말았다. 나오면서 문득 루나아르의 글 가운데 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한 신사가 큰 길가에서 돌을 깨고 있는 인부에게 길을 물었다.

 “여기서 산 레붸리언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그러나 그 인부는 아무 말 없이 잠잠히 신사를 바라만 보았다. 신사는 “아마도 이 사나이가 귀머거리거나 벙어리인가 보다” 싶어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백 미터 쯤 걸어왔을 때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 아까의 그 인부였다.

그는 헐레벌떡 달려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아까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은 선생님의 걸음걸이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뒤에서 선생님의 걸음을 보았으니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걸음으로 가면 두 시간은 걸릴 겁니다” 하더란다.

물론 지금 세상에 이같이 순박한 인정이나 양식을 찾는 것은 내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만일 아까의 그 소년에게 백 원짜리 한 장만 쥐어줬던들 아마도 그는 신이 나서 앞장을 섰을 생각을 하니 뭔가 자꾸만 서글퍼지는 것이다.

 

 

 

1 달란트의 寓話

 

마태오복음엔가에 이런 비유가 있다. 먼 곳으로 길을 떠나는 주인이 세 하인을 불러 놓고 각각 능력에 따라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씩을 주어 돌아오기까지 맡아 두도록 한다.

하인들은 각기 돈을 맡아 재주껏 장사를 한다. 그 중 5달란트를 맡은 하인과 2달란트를 맡은 하인은 어떤 일을 했는지 갑절의 이윤을 남겼다. 그러나 1달란트를 맡은 하인은 그것을 간직하기 위해 땅을 파고 깊이 묻었다.

먼 길에서 돌아온 주인은 세 하인을 불러놓고 각기 셈을 시켰다.  갑절의 이윤을 남기 하인에겐 크나큰 칭찬이 내려지고 1달란트만을 고이 간직한 하인에게는 준엄한 질책과 함께 그 1달란트마저 빼앗는 형벌이 내려졌다.

달란트란 원래 ‘저울’ 또는 ‘저울에 달 것’ 을 가리키는 희랍어로서 중량이나 통화의 단위로 사용되었다.

하면 이 이야기에 나오는 달란트란 신에게서 부여 받은 재능을 의미하며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즉 많은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며, 재능이 없는 사람, 즉 달란트가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흔히 인기 연예인의 대명사처럼 부르는 탤런트란 말도 기실은 그 어원이 여기에 있으며 “많은 돈을 받은 재능 있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어느덧 연예인 일반의 호칭이 되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서에서 말하는 이 우화의 진의 眞意 는 천부의 재능을 땅 속에 묻어 두어 녹슬게 하지 말고, 힘껏 키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 사람에 상응 相應하는 능력이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러나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노력하여 몇 갑절의 수확을 거둬들이는데 비하여, 게으른 사람은 타고 난 직분조차 제대로 다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여 노력하는 자에게 영광이 약속되며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니 여기에 이론 異論이 있을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잠시 이 이야기가 지닌 본 뜻과는 상관 없이 이상한 착각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이른바 주인은 하인에게 능력껏 재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인은 있는 힘을 다하여 이윤을 남겨야만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달란트를 맡은 하인은 원래 재능이 없었으며 고작 자기 몫이나 지킬 정도의 능력 밖에는 없는 위인이었다. 주인은 그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에 아예 제일 작은 몫을 그에게 분배했던 것이다.

사실 이 어리석고 무능한 1달란트의 하인은 자신의 무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하여 자기 몫의 1달란트마저 잃어버릴까 저어하여 고지식하게도 땅을 파고 깊이 묻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께선 심지 않는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지독한 분이신 것을 알기에 두려운 나머지 돈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고 심약하게 사죄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은 이 어리석은 하인에게 대노 大怒 하여

“저 자의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누구든 있는 사람은 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니라”고 질타하는 것이다.

하면 5달란트의 재주도 2달란트의 수완도 부릴 줄 모르는 불쌍한 하인은 1달란트의 양심이나마 땅에 묻어 간직할 수 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런데 주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면, 알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1달란트의 돈마저 빼앗아 10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 있는 자로 하여금 더욱 있게 하고 없는 자를 더욱 없게 하여 돌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이것은 성서의 진의와는 상관 없이 잠시 나의 머리를 스쳐간 환상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고의로 성서를 왜곡하여 전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우리가 이 세상에 타고난 재능이 크건 작건 간에 불평 없이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반하여, 때때로 현실사회는 성서를 착각하고 왜곡할 만큼 부조리에 빠져 있으며, 개개인에게 주어진 작은 보상이나 평화마저도 빼앗아 가는 불합리를 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속담에 몸이 편한 자는 입도 편하다 (먹을 것이 없다는 뜻이리라)는 말도 있듯이 사지를 놀리지 않고 불로소득 不勞所得 을 바란다는 생각이야 애시당초 상식 밖의 일이라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처세에 능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거두는 현세적 위인들에 비해, 남의 것이라면 곁불도 쬐지 못하는 올곧은 양심의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받으며 가혹한 부조리 속에 던져져 있는가를 볼 때, 엉뚱한 성서의 곡해마저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주인 – 비단 신 神 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우리를 이끌고 지도하는 광의의 주인 – 은 그럴 수도 없으며 도 그렇지 않으리라 믿는 바이지만.

 

 

 

錯覺의 公害

 

아주 중병이 아닌 이상, 어지간히 아파도 병원에 가서 기다리기 싫어 못 가는 사람은 아마도 나뿐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항상 지지한 일에 쫓기다 보니 누그러지게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나 차례를 기다리는 일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도무지 자신이 없다.

어느 날 부득이 종합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가야만 했다. 역시 기다리는 괴로움을 덜기 위해 미리 간호원을 통해 약속을 하고 갔건만 막상 가고 보니 벌써 7, 8명이나 내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별 수 없이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어느덧 한 시간이 넘었다. 나로선 참 대단한 인내였다. 그런데 진찰은 아직 반도 진척되지 않았다. 나는 차츰 그 병처럼 되어버린 초조증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렇다고 한 사간 이상을 기다리다 그냥 돌아서긴 너무 억울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간호원을 불렀다. 그리고 단숨에 말했다.

“물론 종합병원에 약속이 필요 없는 줄은 알아요. 하지만 난 오후 한 시에 방송이 있군요. 그래서 미리 전화로 약속을 하고 온 것이니 늦지 않게 부탁합니다.”

말을 끊고 나서 나는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한 신에 방송이라니 그건 참 궁여지책 치고는 얄미운 착상이었기에 말이다. 물론 아주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날 오후에 방송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후 느직이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그것도 생방송이 아닌 녹음이었으니 결코 바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여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런 거짓말을 하고 난 후부터 나는 어느덧 그것이 진실처럼 착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한시에 방송이 있고 그 방송시간에 늦을까 보아 자꾸만 조바심 쳐지는 것이다. 그러다간 문득 정신이 들어 아연하게 우스워지곤 하면서…..

왕녀의 명화 ‘가스등’ 도 그런 이야기였다고 기억한다. 보석을 뺏으려는 남편의 계획적인 음모가 아내를 정신병자로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아내는 어느 틈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정신병자라고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심리학상 어떤 현상인지는 모른다.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하다 어느덧 미쳤다고 믿어버리는 착각, 나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착각, 나 밖엔 아무도 없다는 독선적인 착각, 그 모든 착각이 자기 하나 안에 머물러 있을 때는 고독한 자존과 긍지 정도로 죄 될 것이 없겠지만 일단 자기밖에 나와 남에게 강요되고 집행될 때에는 감당키 어려운 공해를 초래한다.

나는 기다리지 못한다는 독선적인 이기심의 착각이 다른 많은 기다리는 환자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테니 나 역시 그런 식의 무수한 착각의 공해를 남에게 끼치며 살고 있음이 못내 부끄럽기만 하다.

 

 

 

正義의 行方

 

골목 안 어귀에 사시사철 신기료 할아버지가 앉아 있다. 헌신 몇 켤레와 신창, 못통, 그 밖의 연장들을 소꿉장난처럼 늘어놓고 이따금 교통순경에세 이리저리 쫓기는 봉변을 당하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신기료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좁은 골목 안에 정체불명의 살롱이 하나 생기고 저녁이면 고급 승용차들이 위세도 당당하게 클랙슨을 울리며 몇 대씩 들이닥친다. 있는 대로 할아버지에게 먼지를 끼얹으며…

그 신기료 할아버지와 고급 승용차, 두 개의 만화 같은 그림을 대조하면서 나는 가끔 이세상에 진실로 정의라는 것이 있는가 생각해 본다.

물론 승용차의 주인은 그만한 호강을 누릴 수 있는 위치와 신분일 테니 하등 정의에서 어긋남이 없다. 반대로 신기료 할아버지가 온갖 먼지를 있는 대로 뒤집어 쓰고 앉아있는 것도 그의 팔자소관이니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러나 같은 시민으로서 무엇이 그들 사이를 그처럼 갈라 놓았는지 생각할 때 새삼 ‘인간 속의 정의란 없다’ 고 말한 파스칼의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운명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잘 삭고, 못 살고, 검고, 희고, 예쁘고, 밉고, 그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인가 보다. 이건 참으로 어이 없는 말이다. 대체 누가 그런 불공평한 결정을 내린다는 말이다.

언젠가 어느 좌석에서 한 사제님이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어느 산골에 단지를 굽는 늙은이가 있다. 그가 단지를 구워낼 때는 꼭 같은 진흙으로 단지를 구워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팔려가서 어느 것은 임금님의 꿀단지가 되고 어느 것은 가난한 집의 요강단지가 된다. 하면 어찌 그것이 단지를 굽는 노인의 잘못이냐.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하느님을 나무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말인즉 그럴 법한 말이다. 어버이의 심정으로서야 어느 자식이 못나고 못 살기를 원하겠는가 다 같이 잘 살고 잘나기를 원한다는 말이겠다.

그러나 바울로의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감히 하느님께 말대꾸를 하는가. 옹기가 옹기장이한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옹기장이가 같은 진흙덩이를 가지고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어낼 권리가 없겠는가, …. 당장이라도 부숴버려야 할 진노의 그릇을 부수지 않고 오랜 동안 참아 준” (9.20-23) 것만도 고맙고 황공한 것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앞뒤의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그렇게 다른 것이 바로 현실이라고 말해 버린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물론 당면한 불행을 ‘나중의 더 큰 영광’으로 채워 주시려는 신의 속 깊은 배려 配慮 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 수 밖에 없지만 그것 역시 인간이 막다른 골목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궁여지책의 하나인 것임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어떻든 이 세상에 정의란 없다는 말은 살수록 뼈저리게 느껴지는 말이다. 도시 ‘위도 緯度 가 3도 다르면 정의는 바뀐다’고 말한 파스칼의 경구 驚句 역시 진수를 찌른 말이다.

남한과 북한, 동독과 서독, 남북 베트남, 모두가 몇 도의 차에서 정의의 양상은 전연 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골목 어귀의 신기료 할아버지의 정의와, 도시 미관상 그를 쫓는 교통순경의 정의 역시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같은 민족끼리의 살상도 그것이 남북이냐 남쪽끼리냐에 따라 살인이 되기도 하고 당연한 정의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살기 위한 기본적 인권에 있어선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쳐야 하고 남을 위해서 내가 다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흑과 백, 동과 서,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 포식하는 사람들과 굶주리는 사람들, 그 어느 쪽에 정의가 있고 불의가 있는 건가.

결국 인간 속에 정의는 없다고 하면 정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절대적인 정의, 우리를 평안 속에 안주케 하는 정의, 죽음 이외엔 있을 것 같지 않은 정의….

기실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도 그 영원한 정의의 행방을 찾기 위한 발돋움인지도 모른다.

 

 

 

人生의 修辭學

 

뉴욕의 부루클린 다리 위에서 한 장님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행인이 하루에 통행인에게서 얻는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걸인은 고개를 흔들며 불과 2달러가 안 된다고 슬픈 듯이 대답했다. 행인은 걸인의 가슴에 매달린 플래카드를 뒤집어 무엇인가 한 줄 써넣었다. 그리고 걸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마도 당신의 수입이 훨씬 늘 거시오. 내가 다른 글을 써놓았으니, 한 달 후 다시 올 때 그 결과를 알려 주시오.”

그리고 한 달 후 어느 날, 과연 걸인은 다시 나타난 그 행인에게 감격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으리 참으로 감사합니다. 요사인 하루에 10달러에서 15달러까지 수입이 오른답니다. 헌데 대체 나으리께서 써넣으신 그 귀신같은 글이란 어떤 것이나요?” 행인은 웃으며 말했다.

“썩 간단하죠.  행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썩 간단하죠. 원래 당신의 가슴에 써있던 글 <나는 나면서부터 장님>이란 말 대신에 <봄은 오건만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라고 썼을 뿐이죠.”

이것은 프랑스 현역시인 로제 카이유와가 문장에 있어서의 수사의 효과를 비유한 글이다. 분명 그것은 문장이 갖는 효과를 비유한 말이다.

“나는 나면서부터 장님”이라는 말만 가지고는 아무런 상상도 감동도 주지 않는 무미건조한 상표에 불과했다. 그런데 행인은 그 무미한 상표에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기실 우리는 그 모든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이란 상표에 아름다운 꿈의 옷을 입힌다. 아침이면 창을 열어 새 날의 태양을 우러르고, 어두운 저녁이면 붉은 포도주에 피곤을 씻는다. 먼 곳의 친구를 찾아 막혔던 회포를 밤새워 풀고 사랑하는 이와 따뜻한 노변에 차를 끓인다. 뜨거운 젊은 날을 사랑으로 불태우고 꺼져가는 노년을 추억으로 불 붙이며 검은 땅에 장미를 가꾸고 썩은 시체 위에 푸른 떼를 입혀 죽음을 장식한다. 정치도 문화도 온갖 예술도 생명을 장식하는 수사학이다. 기실 산다는 것 그 모두가 하나의 수사학이며 인생은 바로 아름다운 수사를 찾다 가는 꿈이라 하겠다.

어느 날 알지 못할 젊은이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주 중요한 일로 선생님을 꼭 찾아 뵙고 싶다”는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하지만, 생면부지의 청년을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집으로 오게 하랴 싶어서 전화로 말을 하라고 좀 뚝뚝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청년은 다급한 목소리로 “자기는 지금 제주도에서 올라와 있으며 선생님을 찾아 뵙고 어머니 일을 상의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며 자기 어머니는 몇 개월 전 7백만 원의 거액을 가지고 서울로 와서 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라는 여자가 떠날 대 내 이름을 대면서 서울에 가면 나를 만나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일이 일인지라 나는 석연치 않은 대로 그 젊은이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서재에 마주 앉은 그는 비교적 이목 耳目이 깨끗한 인상의 24, 5세 가량의 청년이었다. 몇 해 전 아버지를 여의고 남은 유산으로 양 羊을 기르고 밀감나무를 재배하면서 동생들과 열심히 살아왔는데, 수개 월 전 장사를 해보겠다고 남의 돈까지 얻어 가지고 상경한 어머니가 몇 달째 소식이 없어 올라와 보니 방을 세 들었던 집주인의 말이 어머니가 개가를 했다는 것이다. 너무 놀랍고 분하여 어머니가 친구라고 말하던 선생님을 만나면 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들을까 하여 이렇게 왔노라고 청년은 길고도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젊은이의 어머니라는 여자의 이름도 인상도 나는 전연 기억에 떠올릴 수가 없었고, 뿐더러 그 젊은이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 나를 한 번 본 적이 있다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슬그머니 이렇게 까맣게 모르다니 아마도 그 못된 건망증 탓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쨌거나 그 청년의 처지가 가여워서 이것 저것 노파심 같은 걱정과 조언을 해주었고, 낙심 말고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어머니가 돌아올 거라는 이야기로 위로까지 잊지 않았다.

 이윽고 돌아가겠다고 일어선 청년은 신을 신으면서 뭔지 쭈뼛쭈뼛 망설이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저 오늘 내려 가야겠는데 노자가 좀 모자라서…. 가지신 게 있으면 조금만…”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젊은이의 얼굴에 엷은 안개처럼 훅 지나가는 야릇하게 교활한 표정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머니를 찾아 여주 시골길을 어제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는 그의 흰 운동화가 너무도 말짱하게 깨끗한 것이 섬뜩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거절할 수 없을 만큼 깊이 그의 일에 관심을 표명했던 것이다. 만일 여기서 내가 거절한다면 이제껏 내가 말한 어떤 진지한 위안이나 조언도 기실을 거짓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알고 속으면서 그에게 몇 장의 지폐를 건네 주었다. 속으로 “이것은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스스로 한 말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중얼거리면서.

기실 이렇게 엄청난 수사의 효과를 노리는 그 교활한 젊은이나, 어이 없이 거기에 빠져버린 어지간한 나이의 어른인 나나, 어쩌면 모두다 하나같이 순박한 호인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수사학의 아름다움을 믿고 의심치 않는다는 어리석음에 있어서는.

 

 

 

健忘症

 

가끔 만화에서 안경을 이마에 걸쳐놓고 열심히 안경을 찾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깔깔대며 웃던 어릴 적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상황은 사뭇 우습고 장난스럽게만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웃을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어느 때부터인가 알기 시작했다.

책을 뒤적이다 자료가 필요하여 아래채로 간다. 이끼 핀 돌층계를 내리면서 문득 춘색이 짙은 뜰에 한창 피어난 목련을 바라보다 자료는 까맣게 잊고 빈 손으로 돌아온다. 돌아와 책상 앞에서야 비로소 자료생각이 떠올라 고소 苦笑 한다.

천연스럽게 사람과 약속을 해놓고 역시 잊어버린다. 상대가 친구나 손아래 사람일 경우 얼마간 변명의 여지도 있겠으나, 선배나 소홀할 수 없는 윗사람일 경우 참으로 난처해 진다.

시간이 바쁜 원고를 받으러 오겠다는 것을 그럴 것 없이 이왕에 나가는 길이니 전해주마 고 생색을 내며 들고 나간다. 몇 가지 일을 끝내고 해가 져서 돌아와 가방 속을 열어보면 곱다랗게 원고뭉치는 잠자고 있다. 남의 흉내를 내어 ‘메모. 북’을 사용해 보았으나 그 메모.북을 들쳐보는 일을 잊어버린다. 아무래도 처방할 길 없는 병인 것 같다.

영국의 평론가 새뮈엘.존슨이 어느 날 밤늦게 완성될 작품을 골똘히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자 2층에서 식모가 창을 열고 내다 보았다. 밖이 어두워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 식모가 “선생님은 외출 중이십니다” 하자 존슨은 낙심한 듯 “그럼 내일 다시 들르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하고는 오던 길을 다시 돌아서 갔다는 일화가 있다. 이쯤 되면 건망증도 선경 仙境에 이른 도인 道人의 느낌이어서 차라리 멋이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건망증은 돌이킬 수 없는 실례를 범하고 만다.

어느 날 바쁜 일로 저녁 때가 되어서 돌아와 보니 현관에 낯선 구두가 몇 켤레 놓여 있었다. 섬뜩한 마음으로 문을 열자 낯익은 손님들의 얼굴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제서야 나는 며칠 전 저녁초대를 약속했던 사실을 상기했다. 집에선 아침나절에 나가서 하루 종일 연락도 없는 나를 찾아 안절부절 애를 태우고 있었다. 다행히 허물 없는 분들이라 중국음식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아무래도 이쯤 되면 가히 패가망신할 망신증 亡身症 이 아닐 수 없다.

건망증 환자 가운데 많은 정치인이 있다. 기발한 착상과 공약을 만드는 데도 선수지만 적당히 잊어버리는 데 도 선수다. 다만 그 건망은 처음부터 계산에 넣었던 것이니 역시 그리 질이 좋은 건망증은 아닌 것 같다.

 

 

 

異常 空港

 

공항 空港은 한 나라의 국가적 품격을 느끼게 하는 나라의 대문이다. 세계의 공항 가운데 씁쓸한 기억을 남겨준 뉴욕의 케네디 공항이 있다. 매섭게 생긴 40대 미국인 여자직원이 숨겨둔 음식물이라도 없는가 하여 사정 없이 뒤지던 가방 속, 구질구질한 내의며 잠옷이며 헐어빠진 구두짝이 쑤셔져 나올 때마다 입을 딱딱 벌리며 멋 적게 웃던 그때의 나….

각설하고, 수일 전 문협 文協 의 지방 문학강연으로 강릉 속초지방에 간 일이 있었다. 바쁜 일정이라 비행기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인가 있었던 불행한 비행기 납북사건으로 하여 적지 아니 불안하던 나는 되도록 철저한 조사를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공항에 나갔다.

과연 검사는 철저하고 삼엄했다. 손에는 일체의 짐을 들지 못하게 하였고 핸드백은 속속들이 콤팩트까지 들쳐졌다. 남자들은 만년필에서 담배갑 라이터 휴지까지 쏟아놓고 신체검사를 받았고 여자들은 협실에서 전신을 훑어 내리는 손끝에 부래지어 속까지 수색되었다. 서너 살짜리 꼬마의 바자가랑이가 탐색되었고 신혼부부가 울상이 되어 두팔을 벌리고 벌을 서듯 검색을 받았다. 어떤 외국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온 몸을 내맡기고 서 있기도 했다. 그것은 참으로 잠자던 눈이 갑자기 번쩍 깨는 듯한 놀라움이며 당황스러움이었다.

과연 잘한다 싶었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한도 뒤따랐다. 용두사미가 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야 한다고 어줍잖은 노파심마저 들먹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세상,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니 이런 일쯤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면서 무언지 자꾸만 삭막해 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삭막함’ 그렇다, 바로 그 ‘삭막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행위의 살벌함, 눈길과 눈길이 마주치는 일도 없고 차가운 손길이 기계처럼 인간의 모든 감정을 차단해 버리는 그 살벌한 삭막함이다.

만일 거기에

“죄송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최소한의 인사와 예절이 담긴다면 어떨까. 남의 짐과 몸과 마음을 이 잡듯 뒤집어 놓고 무뚝뚝하게 “비키시오” “가시오” 하는 그 문신경한 명령 대신에 약간의 상냥한 눈길과 미소가 곁들여 진다면 어떨까.

어이 없이 전신을 당하고 나오면서 그래도 나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수고하는 그 여경 女警의 손길이 그지 없이 고마워 진심으로 “수고하셨습니다”하는 인사말을 남기고 나오는데 그녀는 대답도 없이 외면하고 돌아섰다.

씁쓸한 출발의 뒷맛을 씹으며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이러한 보안은 계속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다만 얼마 간의 예절과 미소와 위로의 마음씨가 서로 따른다면 조금은 밝은 내일이 되리라 싶었다.

 

 

 

良識의 不在

 

연전 年前, 런던 여행 중의 일이다.

호텔 근처에서 저녁을 마치고 산책을 하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가등 街燈도 없는 어두운 밤길을 한 시간 남짓 헤매다가 지쳐버린 나는 마침 골목 앞을 지나가는 택시를 급히 정거시켰다. 그리고 운전사에게

“길을 잃었다. 온스론가아든 xx 번지 xx호텔로 가자”

하니 그 운전사, 싱긋 웃으며

“바로 근처니 걸어갈 수 있다”

하고는 두말 없이 문을 닫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아연했다. 사실 그까짓 동양의 촌스런 여자 나그네, 한밤중에 길을 잃었다는데 아무렇게나 몇 바퀴쯤 거리와 골목을 맴돌다 적당히 내려놓고 부당한 요금을 청구한들 할말 없이 당할 처지가 아닌가. 그런데 그는 욕심 없이 가버렸다. 물론 나는 그의 말대로 곧 호텔을 찾을 수 있었고, 때문에 더욱 그 젊은 운전사의 모습이 마치 어느 서부영화의 멋장이 사나이처럼 떠올랐던 것이다.

조그마한 이익 때문에 양심을 팔지 않는 그 당당한 자세, 어쩌면 그러한 개인의 양식은 그 사회의 저변을 흐르는 사회윤리의 단적인 반영일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심은 지 10년이나 넘는 목련이 정원 한 구석에서 소담스런 가지들을 담 너머 옆집 마당에까지 펼치며 꽃을 피우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 해부터 나무 한쪽이 이가 빠진 듯 허전하게 이지러져 버렸다.

사연인즉 지난 해 옆집에서 나무를 전정하던 정원사들이 목련 가지가 담 너머로 너무 뻗치고 있으니 조금만 다스리자는 말에 무심코  “그러라” 고 대답하고, 얼마 후 나가본즉 아예 가지를 줄기에서부터 무참히 잘라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정원사란 도시 무엇 하는 인간인가, 나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원정도 원정인가, 일당 몇 천원의 보수에 팔려 자신의 본분 本分을 잊고 양심을 파는 돈의 노예 밖에 안 된다면 어찌 그 손에 나무의 생명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발명가 에디슨은 노후에 장미 가꾸기에 열중했었다 어느 날 정원에 나가보니 꽃밭은 엉망이고 장미 가지는 줄기에서부터 꺾어져 있었다. 마음이 상한 에디슨은 곧 커다란 꽃 가위를 장미 가지에 걸어놓고 옆에 흰 종이를 붙이고 이렇게 적어 놓았다.

“꽃 도둑이여! 부디 꽃을 자르는 데는 가위를 사용하여 주시오.”

짧은 말 속에 그의 기지 機智와 유우머와 예리한 힐난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나는 그런 못도 지니지 못한 범속한 여자지만 적은 이익 때문에 양심을 잊는 양식의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色眼鏡

 

4월 한 달을 병석에 누운 아이가 목련꽃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창밖에 활짝 핀 목련나무를 바라보다가 불쑥 ‘장례식 같은 꽃’ 이라고 중얼거린다.

가슴이 뭉클하든 아픔을 느끼면서 어쩌면 하얀 나전 螺鈿 같이 무거운 꽃잎이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에 장례식을 연상하는 아이의 감정이 그만큼 병적이며 비관적인 것을 본다.

기실 그것은 그 아이가 타인 아닌 자신의 눈으로 즉, 병석에 있는 심약한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느낀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남 아닌 나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한다. 따라서 내가 처해있는 입장이나 이해, 정신상태 여하에 따라서 각자의 견해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주인에겐 주인의 언어가 있고 머슴에겐 머슴의 주장이 있다. 남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사회도 동일할 수는 없다. 요는 검은 안경 속에서 보는 세상은 검게 마련이고 푸른 안경 속에서는 푸르게 마련이다.

결국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입장의 고집은 편견과 오류를 범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현실은 그들이 색안경 너머로 보는 세상처럼 검은 것도 푸른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코끼리의 다리를 더듬는 장님은 코끼리는 기둥 같다고 우기고, 몸뚱이를 만지는 장님은 벽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우화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을 범 하다. 요컨대 각자가 고집하는 아전인수격의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청천백일 하에 참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는 한 인간은 자기 아성의 독불장군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흔히 선거 때가 되면 이해가 상극하는 두 개의 정당이 가열된 선거전의 피크를 이루는 것을 본다. 그리고 예외 없이 거기서도 색안경을 쓴 각기의 주관이, 동일한 사회 현상을 놓고 별개의 것처럼 분석하고 논쟁하는 것을 보게 되니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 없다. 더욱이 한 발자국 앞에서 주시하고 있는 국민의 예리한 시선도 그 짙은 색안경 속에는 비치지 않는 것 같다.

“만일 사람의 진가를 알고자 하거든 모름지기 그에게 권력을 주어 보라. 가장 좋은 시험법이다.”

미국의 정치가 잉가솔의 말이다. 기실 권력은 영광이기에 앞서 고달픈 의무다. 거기엔 사랑에 근거를 둔 책임과 겸손이 따라야 하며, 국민의 신망을 저버리지 않는 인 忍과 덕 德이 수반되어야 한다. 공 公을 위해 사 私를 죽이는 헌신의 봉사, 그 길만이 진정한 권력으로 가는 길이다.

진실로 하루 빨리 같은 공동체 내에서 이해의 단절과 소외를 초래하는 이기적인 색안경의 독성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司馬遷 의 氣槪

 

중국의 전한 前漢 시대 사학자 司馬遷의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용장 이능 李陵이 흉노 匈奴 와의 싸움에서 포로가 되어 항복하여 적국의 중신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한 무제 武帝가 이능 일가를 중죄로 다스리려 할 때, 그 와 친분있는 모든 신하들이 한 마디 이의 異議 도 없이 무제의 비위를 맞추기에 주저하지 않았건만 오직 한 사람 젊은 사마천만은 머리를 꼿꼿이 들고 이능을 변호하여 말하였다.

“신 신은 나이 아직 어린 탓인지 모르오나 폐하의 어전에서 어의를 거스린 자 아직 본 일이 없습니다. 만일 모든 신하가 폐하의 분부를 흑을 백이라고 하여도 추종한다면 국가와 국민의 장래는 어찌 되겠습니까.”

젊은 의기 意氣의 사마천은 이렇듯 무제에게 유례 없는 직언을 함으로써 황제의 진노와 신하들의 미움을 한꺼번에 사고, 궁형 宮刑이라는 남자의 양기를 끊는 치욕적인 형을 받아 파직당하는 것이다.

기실 인간은 원래 저 잘난 맛에 산다. 코밑에 카이제르 수명을 기르거나 염소 수염을 기르는 것도 제멋이요, 조반석죽에도 커피를 마셔야 사는 것도 자기 자유다. 그것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며 권리다. 이러한 남의 자유에 잘못 간섭하다가는 얼빠진 친구되기 십상이고,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핀잔도 면치 못하리라. 그러나 이불 속에서 활개치는 개인의 자유도, 일단 보다 큰 집단이나 유기체가 될 때 그것은 결코 개인의 자유만으로 끝날 수는 없는 문제다.

스승이 제자 앞에, 어버이가 자식 앞에 개인일 수가 없는 뜻도 여기에 비롯한다. 더욱이 국회의원이란 카이제르 수염을 기르는 권위족도 장발의 비트족도 될 수는 없다. 수십 만의 민의를 거느린 대변자이며 민권을 구현하는 실천자인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하고자 하는 말을 정부에 직언하고 실행하는 사마천의 기개와 열혈이 있어야 하고, 옮은 일을 위한 용기와 절개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치욕적인 형벌을 당한 사마천이 명예와 체모를 생명으로 알던 그 당시 선비로서 의당 스스로 자결해야만 했건만 치욕을 깨물면서 헛되어 죽을 수 없었던 이유를 언젠가는 밝히리라 다짐하였고, 실상 그로부터 10여 년간 1백 30권의 사기 史記와 황제 皇帝로부터 한 漢의 무제 武帝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사실 史實을 엮는 기전체정사 紀傳體正史 를 완성하였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생애를 사기찬술에 바친 사마천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당대의 정치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난신적자 亂臣賊子 로 치욕 속에 죽을 수는 없었다. 오직 살아 있지 않으면 나의 격분을 호소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산 것이다.”

바르게 일하고 의지에 살며 일어설 때와 죽을 때를 가릴 줄 아는 인물, 오늘 우리가 바라는 인물은 바로 그런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눈과 귀

 

오래 전 이야기지만 미국 워싱턴에서 ‘고어 비달’ 이라는 사람이 쓴 ‘주말 週末’ 이라는 풍자극이 상연되었다. 이 연극 가운데 한 대통령 후보가 이렇게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링컨과 같은 현명함도 제퍼슨과 같은 지식도 케네디와 같은 매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린든 존슨에 비한다면 나는 태양이나 다름 없습니다.”

관객들이 모두 박장대소하는 가운데 어두운 표정으로 혼자 웃지 않는 한 여인이 있었다. 바로 구경나왔던 존슨 대통령의 큰딸, 린다 버드 로브 여사였다.

이 이야기를 어느 신문 해외소식난에서 읽은 지 며칠 후 나는 같은 지상에서 뜻밖의 존슨 대통령의 특별 연설문을 읽었다.

“미국의 아들들이 이역만리의 전선에 나가있고, 미국의 장래가 바로 국내에서 도전을 받고…” 운운하며 차기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고 어떠한 당의 지명도 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거리듯 최후 선언한 특별 연설문이었다.

물론 이 선언과 함께 세계는 잠시 숙연하게 침묵하였고 놀라움과 동정에 경건한 눈길을 보냈을 것이다. 기실 권력에 대한 집념이란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들기 쉽다. 더욱이 기라성 같은 최고의 자리에 앉아서 일체의 권위의식과 습관화된 오만과 자존심을 벗어 던지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명한다는 것은 실로 커다란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존슨 대통령의 특별 연설은 보다 인상적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세계의 평화, 미국의 힘의 한계, 최대 최악의 문제인 월남전 (이미 지금은 종전이 되었지만), 그 밖의 국내 당파의 알력과 자당 내의 분규 등 실로 난마처럼 엉킨 내외정세 속에 날로 국민의 신망과 지지를 잃어가는 고독한 대통령 존슨은 기실 이렇게 밖에는 자신의 태도를 처리할 길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그 결단은 미국인다운 양식과 정신의 발로였으며, 그의 현명한 판단을 곧 미국의 지성이라는 칭송의 말까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본다.

물론 그 당시 존슨 대통령의 후퇴가 극동에 있어서의 미국은 반공 방위라인의 후퇴냐 아니냐 하는 문제들을 제기하였고, 거기에 대한 각계의 논평도 내려지고 있었지만, 어떻든 그는 자신의 정치적 지위와 생명을 걸고 자국의 시국 수습을 위해 최종의 단안을 내리고 솔선하여 앞장섰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또 하나 자체 내 진통에 몸부림치게 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행되었으니 바로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피살사건이었던 것이다.

불가피하게 야기된 흑인폭동, 전 미국을 휩쓴 약탈과 방화와 살인, 실로 대통령 린든 존슨은 그의 임기의 마지막 시기를 최악, 최난 最難 의 문제들로 하여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무릇 경기에 열중한 자는 왕왕 올바른 눈과 귀를 상실하기 쉽다. 등잔 밑이 어둡듯이 권력이든 직위든 어떤 집념에 사로잡혔을 때 사람은 흔히 맹목적이 된다. 그래서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에 갇히게 되고 사물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존슨 대통령의 대통령 출마 포기 특별 선언 뒤에는 그 부인의 간곡한 권고와 종용이 있었다고 들었다. 기실 남편으로 하여금 현실을 올바르게 판단시키고 처신케 하는 그의 부인이나 가족들의 바른 파단은 바로 올바른 눈과 귀의 역할이라고 하겠다. 어떤 와중에도 휩쓸리지 않고 이성을 잃지 않는 냉정한 자기 비판의 눈.

그러나 한편 반대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암살한 또 하나의 눈과 귀는 열중한 광신자의 그릇된 판단으로 어두워진 눈과 귀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한 치 바깥도 내다보이지 못하는 아둔한 눈과 귀.

크나 작으나 우리는 인생의 경기자들이다. 항상 열중하기 쉽고 과격하기 쉬운,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올바른 판단을 잃어버리기 쉬운 장거리 주자 走者들, 그 속에서 항상 흐려진 시력을 닦아가며 슬기로운 눈과 귀를 지닌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본시오 빌라도의 이름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힌 지 2천 년. 그 2천 년 동안을 수억의 신도들에 의해 끊임 없이 불려지고 있는 슬픈 이름이 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하는 가톨릭 기도문 중의 하나인 사도신경에 나오는 ‘본시오 빌라도’라는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

본시오 빌라도란 대체 누굴까? 그는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던 예루살렘을 그 당시 통치하던 로미인 총독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대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불잡혀 온 그리스도에게 죄 없음을 알고 수차에 걸쳐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하노라”

고 거듭 말하여 그리스도를 놓아 주려고 하였지만 흥분한 유대의 대 제사장들과 군중의 뜻을 누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그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

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손을 씻으며 물러났던 것이다.

여기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는 본시오 빌라도의 아내가 그 전날 밤 이상한 계시와도 같은 꿈을 꾸고 그날 아침 재판석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급히 시종을 보내어 “그 의로운 사람, 그리스도를 해지지 말아달라”고 간청한 일이다.

본시오 빌라도의 아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알 바 없다. 그러나 신의 계시가 아닌들 사랑하는 남편의 이름이 세상 끝까지 슬픈 원망의 기호처럼 불려져야 할 순간에 어찌 아내가 그 무서운 비극의 전조를 예감하지 못하겠는가. 그녀는 어떻게든 남편을 위기에서 구하려 했었고, 또 남편은 웬만하면 사랑하는 아내의 간청을 들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너무도 이들의 의사와는 반대로 불가항력적이었다.

결국 그는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 알고 있으되 의 義를 행하지 못한 자, 본의 아니게 의로운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자가 되어 그로부터 2천 년의 인류 역사 속에 가장 미운 원망의 대명사처럼 입에서 입으로 세계의 구석에서 구석까지 끊임없이 쉬지 않고 불려지며 부끄럽게 들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자상에 가톨릭이 존재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하여 가는 한, 그 이름은 슬프고 원망스럽게 세계의 방방곡곡을 울려갈 것이다. 실로 그의 영혼은 지하에서나마 안주할 수 있는 평화를 빼앗기고 영겁의 채찍과 형벌을 받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본시오 빌라도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오한에 가슴이 섬찍해지며 이상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하나는, 왜 하필이면 그때 그리스도를 재판해야 할 총독의 자리에 본시오 빌라도가 앉아 있었을까 하는 안쓰러움이고, 또 하나는 누군들 그때 그 광분한 제사장들과 군중의 노호 怒號를 누를 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흔히 불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운이 없다든가 재수가 없다는 정도의 뜻이 되겠지만 이 불운이라는 것이 대개는 불가항력적인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을 띠고 육박해 오는 것이다.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라든가 또는 그때 그 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하는 식의 후회는 사실 나중에야 공연히 뉘우쳐 보는 말일 뿐, 처음 일을 시작할 때야 누구도 그것이 불행한 결과가 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실 우리는 틀림 없이 한다고 하면서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실수를 자주 저지르게 마련이고, 또 사실 그런 실수를 경험함으로써 보다 성장하고 발전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여튼 실수와 불운은 동질의 성격으로 때로는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일 때가 있음을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만일 그때 그 총독의 자리에 본시오 빌라도가 없었다면 또 다른 제 2의 본시오 빌라도가 그 일을 치렀어야 했을 것이며, 결국 누구든 그리스도를 재판할 불운의 사나이는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들 그와 꼭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면 바로 그 피할 수 없이 재수 없는 불운을 말하자면 공교롭게도 본시오 빌라도라는 사나이가 짊어지게 되었고 그로부터 2천 년 동안 더없이 슬픈 악명 惡名의 사나이가 되어 영원히 잠들 수 없는 망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 대하여, 그리스도에게 고난을 주고 극형을 내렸다는 사실만이 기억될 뿐, 왜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가 하는 상황이나 심정 같은 것은 기억될 수도 없고 또 기억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도는 예언대로 하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사흗날에 부활하게 되어 있었다니 어떠한 본시오 빌라도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리스도에게 십자가형을 내리게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며, 그런 점에서 본다면, 본시오 빌라도야말로 신의 계획에 의해 재물로 바쳐진 불운의 희생자가 아닐 수 없다.

역사는 언제나 결과만이 분명하게 기록되고 기억되는 법이다. 상황의 조건이 아무리 불가피하고 정신적 고뇌가 얼마큼 컸다 해도 그것은 이내 잊혀지고 사라지게 마련이다. 결국 불운한 인간은 불운하다는 불행 이외에 누구에게도 동정 받고 이해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불행, 고독을 안게 되는 것이다.

불운이란 기실 버림받은 고독의 비애다. 본시오 빌라도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거기 철저하게 버림받은 인간의 풀길 없는 고독의 아픔을 느낀다.

우리 누구나가 다 조금씩은 그 속에 빠지고 있는 그런 위안 없는 고독을.

 

 

 

달의 神秘는 가고

 

인간의 달여행!

그것은 어느 때부터 싹터온 꿈이었을까.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설을 발견하고 갈릴레오가 최초의 달 관측을 한 1천 6백 년 대 이후, 인간의 우주에 대한 끊임 없는 개척은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더우기 최근에 와서 미, 소 양국 간의 우주정복의 각축전은 마치 시소게임을 이루듯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긴박한 우주전을 벌이고 있다.

언젠가 미국의 세 불사신 不死身의 우주인을 태우고 케이프 케네디에서 발사된 아폴로 11호의 원정 遠征을 기억한다.

창세기 이래, 최초의 장엄한 달 정복, 실로 45억 년의 신비를 헤치고 38만 4천 4백 킬로미터의 허공에 떠도는 달 정면으로 돌입해 갔던 것이다.

왕복 8일 3시간 19분의 역사적 우주여행! 인류의 과학문명은 이제야 올 때까지 오고야 말았다는 일련의 숙연 肅然 감마저 자아내게 했던 것을.

옛날 우리는 달을 두고 무한한 꿈과 낭만을 노래로 불렀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아직도 귀에 쟁쟁한 노래를, 그 노래들이 자아내는 유연한 정감 속에 지금도 우리는 배회하고 있는데, 달은 이미 한꺼풀의 베일도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의 참혹한 곰보를 우리 앞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다. 신비야말로 모든 예술, 모든 과학의 원천이다”

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45억 년의 달의 신비는 이제 그토록 동경하던 인간의 손에 의해 말끔히 발가벗겨지고 말았다.

그리고, 소련의 우주비행사 가가린으로 하여금 어이 없게도

“나는 우주로 가는 도중에 신 神을 보지 못하였다” 라는 가련한 발언까지 거침 없이 내뱉게 한 것이다.

구둣발 밑을 기어가는 개미는 구두창 밖엔 볼 수 없다. 더 넓은 창공도 들의 핀 꽃 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시계 속을 분해한 어린아이가 시계 속 어디에서도 그것을 만든 기술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이제 인간은 달을 정복하고 그 자신의 꿈을 잃어버리려 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신비, 모든 예술 모든 과학의 원천인 신비를.

그러나 “우리가 물질이니 원자 같은 우주의 오의 奧義 를 연구하면 할수록 신을 더욱 가까이 느낀다”고 어느 물리학자는 말하고 있다. 또

“나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신을 눈 앞에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곤충학자 파브르도 말하고 있다.

기실 새로운 과학은 새로운 신비를 낳을 것이다. 이제 벌거벗은 달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신비와 꿈을 실어올지 모른다. 세계평화라는 인류의 꿈을…

진실로 인류가 달에 도착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인간정신의 승리일 뿐 아니라, 세계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고 故 케네디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최대의 이상인 자유와 평화를 위해 우주에 가야 한다.”

실로 우주개발은 신이 부여하신 인간 능력의 가장 큰 행사이니 만큼 기필코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위해서만 수행되어야 하는 신의 사업인 것이다.

 

 

 

레저, 그 沈默의 喪失

 

이마에 땀 흘려 일하는 노동 속에 생의 창조적인 모습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노동에서 잠시 풀려 나와 일손을 놓고 나무그늘에 앉아 이마의 땀을 씻는 여가의 한때란 기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잇는 것일까.

창세기를 보면 창조주 야훼는 첫째 날에 하늘과 땅을 가르시고,

둘째 날에 바다와 뭍을, 세째 날에 밤과 낮을 나누시고,

네째 날엔 하늘과 바다에 각기 물고기와 뭇새를 나누어 살게  하시고,

다섯째 날에 땅 위에 육축과 짐승을 종류대로 살게 하시고,

여섯째 말에 그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실 사람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마침내 그 창조하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고 되어 있다.’굳이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라 휴식이란 그렇게 태초에 하느님의 창조작업에서부터 마련되어진 창조적 작업 중의 하나였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일곱째 날 즉, 안식일에 ‘복을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 는 구절이다.

기실 인간이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긴 간에 노동을 하고 쉰다는 것은 이미 천래적 天來的 으로 하늘의 뜻에 의해 정해진 엄연한 사실로서 그 휴식은 노동 못지 않게 ‘복되고 거룩한’ 것임을 새삼 깨우쳐 주는 구절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인간이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밤이면 어김 없이 편안한 잠 속에 쉬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휴식의 의미와 가치가 인간생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노동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고, 심리학적으로는 끊임 없이 요구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이제 레저의 문제는 현대인의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가 되어 있다.

흔히들 레저를 단순히 노동에서 해방된 여백의 시간처럼 잘못 생각하기 쉽다. 사실 여가 餘暇 란 단순히 노동에서 벗어난 인생의 여백도 방심의 시간도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하루의 노동, 한 주일의 노동, 또는 계속되는 한 달의 노동에 지치게 되면 반사적으로 고달픈 일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그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속엔 자신이 하는 노동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가치를 재확인하고 그래서 보다 나은 내일을 가져 보려는 무의식적인 내성 內省이 대두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기 반성을 동반하는 자아에의 회귀이며 나아가 자기 완성에의 잠재적 욕구라고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여 여가는 일에서 해방되어 쉬는 일일 뿐더러 동시에 자기 작업에 대한 정리의 시간이며 자기 완성을 위한 마지막 손질의 시간으로서 어떤 의미에선 또 하나의 성스런 정신작업 (노동) 의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우주를 창조하신 야훼가 이렛날에 그 창조하신 당신의 작업을 돌아보시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축복된 안식을 가지심과 같이 어디까지나 자기 노동 – 창조 – 에 대한 반성과 정리와 완결을 위한 기념의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 성행하는 레지 붐 속에는 무언가 왜곡되고 회의를 자아내게 하는 상황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우선 레지 붐을 타고 오는 그 전염병 같은 유행성이다.

마치 경쟁이나 하듯 너, 나 할 것 없이 쌍쌍이 줄을 지어 뒤에 뒤를 잇는 레저의 물결, 이를테면 바다에 다녀오지 않으면, 그래서 얼굴을 구릿빛으로 태우고, 벗은 등에 수영복 자리를 선명하게 새기고, 아폴로 눈병에 걸리고 하지 않으면, 사람 축에 끼지 못하며 무취미하고 멋이 없는 촌맹 村氓 이 되고 만다는 왜곡된 레저관 觀.

이른바 그 문화적(?) 레지 행사에 남들처럼 끼기 위해 어려운 시간을 짜고 궁색한 살림을 쪼개어 꼭둑각시처럼 남의 흉내를 내는 그 허영성, 이 모두가 남에게 자신을 보이고, 남과의 사귐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무정견 無定見 하고 고독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 지나친 사치성과 낭비성이다.

바다나 산에 가기 위해 우선 식구 수대로 옷을 새로 맞춰야 한다. 외국제 수영복에다, 구두도 모자도 가방도 야외용 선글라스도 모조리 새로 준비해야 한다. 국산품은 초라하니 통조림이며 과자며 음료수는 외제라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본의 아니게 변돈을 내야 하고, 불여의 不如意 한 일에 마음을 상해야만 한다. 도시 이런 식의 분에 넘치는 사치와 낭비가 진정한 레저의 기쁨을 얼마나 알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또 있다. 산과 바다, 숲과 고궁, 엄숙해야 할 사찰과 왕릉 등지에서 몰지각하게 풀어헤친 일부 인사들의 이성을 잃은 추태며 젊은이들의 탈선, 그것에 물들어가는 10대의 오탁, 汚濁, 레저는 이제 그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하고 점차 불건전한 사회혼란을 조작하는 동인 動因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여름이었다.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기 위해 시끄러운 서울을 떠나 2, 3일 간 조용한 산촌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몇 해 전에도 한 번 찾아간 일이 있었던 곳이기에 기억을 더듬으며 숲 속의 오솔길을 조금씩 밟아 올라갔다.

이름 모를 여름 풀들이 우거진 풀숲에선 드릴락말락 한 작은 풀벌레 소리들이 바람소리처럼 귓가에 스쳐왔고, 계곡을 흐르는 잔잔한 물결소리가 거기에 어울려 가히 속세를 떠나온 감회를 한층 깊게 하였다.

사실 내가 시끄러운 서울을 떠나 그 산촌에 간 것도 그곳의 적막과 고요가 그리웠던 때문이고, 이름 모를 여름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신비로운 침묵 – 자연의 침묵 속에 파묻혀 보고 싶었던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숲 속을 얼마도 더 걸아 들어가기 전에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던 것이다. 거기엔 한 때의 젊은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그들이 들고 온 육중한 녹음기에서 소리소리 내지르는 외국가수의 괴성으로 숲 속은 터져나갈 듯이 왁자했던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그 소음 속에서 역시 전신을 흔들며 함께 고함치고 있었다. 그것은 발광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레저의 물결을 타고 현대인이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진정한 휴식, 근본적으로 심신을 쉬게 하고 다시 신선하게 하는 요소가 되는 침묵의 상실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 없는 소음 속에 교란되고 있다. 라디오, 텔레비전, 확성기, 자동차의 클랙슨 등등, 그것들이 쏟아내는 부단한 소음 속에 눈이 핑핑 돌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소음들이 사실 인간의 노동이나 일상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상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나날의 노동이나 일상 日常 에서 해방되는 여가 餘暇의 시간이란 바로 그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나는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여 소음으로부터의 행방이 곧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며 그것이 곧 여가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심신에 젖어 든 직장의, 거리의, 대인관계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래간만에 잊었던 자기 내부로, 침묵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여가의 목적이며 과제라고 생각한다.

“고독함이 없이 사회화의 참된 교섭을 가질 수 없으며”, 고독함이 없이 자기와의 내적 만남을 가질 수는 없다. 여가란 어느 의미에선 잊었던 고독, 다시 말하면 참된 자기, 참된 성실을 회복하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건만 많은 사람들은 그 반대로 그러한 고독과 성실을 던져버리고 완전한 무 無 로 전락하는 망각의 시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많은 레저의 인파들은 거리의 소음, 직장의 소음, 대인관계의 소음을 고스란히 산이나 바다로 옮겨 가지고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망각하고 마비시키기 위해 더 높이 볼륨을 올리고 더 크게 확대하여 도시에서 시골로, 바다나 산으로 장소를 바꿔 옮겨가는 것이다.

  기실 이제껏 갇혔던 우리 안의 소음은 넓은 자연으로 뛰어 나오고, 그렇게 풀려 나온 소음은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바뀌고 이성을 잃어버린 발작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결국 여가의 그 고요한 휴식이라던가 차분한 내성 內省, 새로운 설계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광적인 흥분 속에 사람들은 자기를 상실하고 숙취처럼 피곤만 겹쳐가는 것이다.

이렛날에 마치신 작업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안식하신 창조주의 그 복된 여가를 다시 한 번 음미하면서, 잘못 왜곡되어 가는 현대의 레저, 그 잃어버린 주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자기를 찾는 내성 內省과 침묵의 진정한 여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IV. 잃어버린 겨울

 

 

솜사탕과 정물

 

손을 들어 저으면 풀썩 방안으로 떨어져 올 것만 같은 뭉게구름이 추녀 끝에 걸려있다.

지천으로 피어나던 양 洋 해바라기도 지난 비에 말끔히 쓰러지고 이끼 덮인 돌길 위엔 늦여름의 햇살이 아직 꽃잎처럼 낭자하다.

여름에 지친 아이들은 지금 조용히 그늘 속에 숨어있고 내 마음도 마른 수수잎처럼 버석거린다.

하루 해는 짧고 하는 일은 너무도 더디다. 쏟아지는 새소리에 잠이 깨고, 2층과 아래층을 오르내리고, 드높이 아이들을 강가로 몰아내고, 부엌과 마당을 들락거리고 그러다 지쳐서 자리에 돌아온다. 돌아와 미완 未完의 원고를 마주한다.

글은 항시 미완인 채 나를 재촉하며 다음을 기다린다. 그러나 생각과 붓은 길이 막힌 나그네처럼 망연히 지척거리며 고개를 떨군다. 사는 일이 그처럼 수비고 빠르고 익숙해 가는데 쓰는 일은 왜 그리 무겁고 더디고 보다 점점 괴로와만 갈까.

하얗게 빈 원고지는 황량한 겨울 벌판처럼 삭막하고 두렵다. 눈 감으면 신기루처럼 떠오르던 영상도 가슴을 적시던 안개 같은 비애도 없다. 잠자듯 기척 없는 감동과 시정 詩情, 나는 지금 조금씩 시들어가는 햇볕 속의 정물 靜物이다.

바닥을 긁어낸 샘물처럼 한 줄의 글도 솟아나지 않을 때 별 수 없이 일어서 창가로 간다.

한 그루 청풍 靑楓의 자욱한 그늘을 짜내고 있는 창가, 철쭉이 지면 찔레가 피고, 찔레가 지면, 왼 여름 청음 淸陰이 고이는 한 장의 사진틀 같은 창가, 그곳엔 변함 없이 찾아와 머무는 자연의 질서와 무심한 적막이 있고, 잠잠히 나를 위로하며 십 년의 지기 知己 가 되어온 낯익은 얼굴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로 어느덧 먼지 낀 유리 속의 낡은 사진처럼 희뿌여니 퇴색해 가고 있다.

그 속에 서 있는 내 모습도 함께 정물처럼 퇴색하고 있다.

붕 ~~ 붕 ~~~ 갑자기 골목길을 울리는 진군의 나팔소리 같은 어쩌면 개척민이 울리던 광야의 북소리 같은 녹슬고 목쉰 그 소리가 골목길을 흔든다.

잠자듯 그늘 속에 쓰러져 있던 아이가 옥수수대처럼 껑충 뛰어 일어나 너풀거리며 달려나간다. 그리고 두 손 가득히 눈처럼 희고 탐스런 솜사탕을 한아름 안고 목화 木花 처럼 웃으며 돌아온다.

그것은 바로 30년도 더 전의 어느 날의 나다. 내 모습 그대로의 나의 딸이다. 아니 딸의 모습을 닮은 나의 그림자다.

희도 탐스럽고 달콤하고 눈처럼 혀끝에 녹는 솜사탕. 그것은 내가 어딜 적 먹던 꿈의 맛이다. 지금 내 아이도 그때의 나처럼 꿈을 먹는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의 껍질을 줍듯 향수를 먹는다. 천천히 천천히 혀끝에 음미하며.

눈같이 희고 탐스럽고 달콤하고 구름처럼 피어나던 그날의 솜사탕. 솜사탕 속에 내 유년 幼年 이 하얀 거품처럼 보글거리고 있다. 목화송이처럼 날으고 있다.

잠시…….

그리고 바람이 서걱이는 창가에 서서 나는 다시금 퇴색한 사진이 되고 햇볕에 시드는 정물이 된다.

시간이 곧 손가락마다 노을을 묻히며 창문을 닫을 것이다.

 

 

 

잃어버린 겨울

 

겨울은 밤이 길어서 좋다.

따뜻한 아랫목에 엎드려 낡은 잡지나 묵은 앨범을 뒤적이며 삭풍의 스산한 소리를 먼 바다의 해소 海嘯 처럼 덤덤히 들어 넘기는 우수가 있어 좋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발에 하얗게 묻혀가는 창 변의 불빛이 있어 좋다.

눈길에 젖어 돌아오는 사람의 나직한 발자국 소리가 있어 좋다.

잊어버렸던 옛날의 희미한 영상들이 날개 치듯 다가오는 회상의 감미로운 애상이 있어 좋다.

겨울은 우리 안에 갇힌 북국의 흰 곰 같은 향수가 있어 좋다.

그 옛날 나는 겨울을 사랑했다. 그리고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온갖 기억 속의 겨울의 정취를…

그런데 웬일일까. 지금 나는 겨울이 무섭고 두렵다. 힘에 겨웁고 고달프다. 나이 때문일까. 초가을부터 시작되는 온갖 겨우살이 걱정, 혹한에 대비할 아이들의 건강관리, 의식주 일체가 내습 來襲 하는 동장군을 대비하기 위해 중무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선두에서 지휘하는 고달픈 역군이 되어야 한다.

지난 겨울 간신히 암상인에게서 비싼 값으로 사들인 연탄이 그렇게 반도 타지 않고 꺼지고, 불길이 약하고, 헤프고, 어쩌고 하는 부엌사람의 잇달은 푸념과 신경질에 내 머리 속은 수세미처럼 어지럽다. 사실 그녀의 푸념이 아니더라도 불은 피우건만 방바닥은 냉골처럼 차기만 하다. 병약한 아이는 감기와 편도선명으로 고열을 내고 앓아 누었다. 하루 두 차례씩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드나들다 지쳐 넘어진 내 왼쪽 무릎에 이상한 통증이 엄습해 온다. 신경통의 둔중한 아픔이 피곤한 밤잠을 설치게 하는 것이다.

겨울이면 두세 차례씩 앓는 아이의 편도선 수술을 오래 전부터 별러 왔으면서도 항상 눈코 뜰 사이 없는 학업에 쫓겨 밀어만 왔었다. 이제 새 학기만 되면 6학년이 되는 입시 직전의 아이다. 혹독한 입시준비를 치러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이 겨울 추위 속에 만사를 제쳐놓고 결행해야만 했다.

 수술을 받은 아이가 간신히 일어나 앉아 죽 이나마 먹을 만하게 되자 계속하는 혹한에 수도관이 얼어 터져 물이 안 나온다. 언 땅을 곡괭이로 벌집처럼 쑤셔놓고 장작불을 지펴보아도 어느 지점이 어떻게 얼어 붙었는지 알 길이 묘연하다. 증기를 들이대어 연 이틀 김으로 뚫어본다. 암담한 바람이 어두운 가슴에 잿빛 치마자락처럼 펄럭인다.

그런데 별안간 부엌사람에게 한 장의 전보가 날아 들었다. 부친상을 알리는 지급전보였다. 그녀는 외마디 통곡을 남긴 채 황망히 새벽밥을 짓다 말고 짐을 꾸려 들고 떠나버렸다.

일군들은 추위에 떨고, 아픈 아이는 허기져 보채고, 시골서 올라오신 애들의 할아버지는 긴 병환으로 누워 계시고, 방학이라고 부산서 올라온 시누이네 어린 아이들은 코를 흘리며 마루 끝에 서 있다. 나는 열 두 식구의 밥을 짓기 위해 얼어붙은 펌프를 녹여 우물물을 퍼야 한다.

이것이 내가 사랑하던 겨울이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 어느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가 인사처럼 ‘좋아하시는 계절은?’ 하고 물을라치면 서슴없이 ‘겨울’ 하고 마치 철이 덜 난 문학소녀처럼 대답하던 그 겨울인 것이다.

먼 바다의 해소 海嘯 처럼 아득하던 바람도 이젠 사나운 폭군처럼 무섭기만 하다. 하얗게 눈발에 묻혀가는 창 변의 불빛도 고달픈 시름에 얼룩져 버렸다.

겨울! 겨울이 싫다. 신경이 끊어질 듯 힘에 겨울 추위가 싫다. 바람은 기승스럽고 눈길은 번질번질 유리처럼 미끄러워 고갯길에 어린 것이 넘어질까 조심스럽고, 얼어붙은 수도물, 피지 않는 구멍탄, 꺼실꺼실 트는 손, 둔중한 아픔의 신경통, 잿빛 하늘도 앙상한 나무도 모두 다 싫다. 겨울은 싫다.

어디만큼서 기다리는 봄은 아직 입김도 쏘이지 않은가.

 

 

 

歲暮의 거리에서

 

황금색으로 길들은 각장장판 위엔 꽃분홍과 연두빛으로 물들인 안팎의 명주 꽃이불이 따끈따끈하게 깔려 있었다. 나는 꽃이불 속에 묻혀 일 전짜리 동전만큼씩하게 구워낸 동그란 전병을 바삭바삭 씹으면서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콩쥐 팥쥐, 백설 공주, 효녀 심청이, 사근사근한 어머니의 옛말에 섞여 그 무릎 위에선 차고 반들반들하게 윤나며 아롱거리는 색색이 설빔들이 마치 파실파실 내리는 싸락눈 소리같이 연하게 들렸다.

어느덧 나는 그 비단소리와 옛말 소리 속에 잠이 들었다. 잠이 든 머리 맡의 놋화로에선 빨갛게 참숯불이 하얗게 사위어 가고, 국화잎을 따넣고 바른 하얀 쌍창엔 뉘엿뉘엿 저녁해가 기울고 있었을 게다. 그때 세상은 한껏 밝기만 했고 동화 속 그대로 신기하기만 했다. 고달픔도 서러움도 아직 거기엔 없었다.

기실 누구나 우리의 유년기는 그렇게 지나갔다. 어른들의 세계를 짐작도 할 수 없었던 우리에겐 세모의 바쁘고 황망한 발걸음도 그저 즐겁고 기대에 찬 시간이었고, 마치 축제에 들뜬 시골 장날 같은 흥겨움으로 마음 부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거처한 옛날의 내 어머니방 같은 나의 안방, 그 방도 그때처럼 아른대는 콩댐은 아니지만 노랗게 니스칠을 한 각장장판임엔 틀림이 없다. 아랫목엔 그때처럼 아롱아롱한 캐시미어 꽃이불도 폭신하게 깔려 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때의 그 새파랗게 젊으시던 나의 어머니가 지금은 하얗게 바랜 옥양목처럼 무수한 주름에 덮여 계시고, 그 어머니를 조르던 그때의 나만큼씩 한 내 아이들이 나 대신 꽃이불 속에 묻혀 옛날 이야기 아닌 동화책을 읽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스산해진다. 걷잡을 수 없이 스산해 지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때 내 어머니가 나를 위해 들려 주시던 콩쥐 팥쥐나 효녀 심청의 이야기처럼, 내 아이들에게도 내가 본 파리의 아름다운 공원 이야기나 알프스의 신비스런 천연설 이야기라도 들려줘야 하련만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안될 뿐 아니라 공연한 짜증에 소리를 높인다. “제방에들 가서 공부나 하라”고 내쫓는다.

옛날의 내 어머니의 그 사근사근한 옛날 이야기처럼 나를 즐겁게 해주던 것이 없었다. 하면 지금 내 아이들도 엄마의 그 싸락눈 내리듯 소근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얼마나 그리울 것인가. 그런 줄 알고 또 해주자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안될 뿐 아니라 까닭 없이 마음이 스산해지고 짜증스러워지는 것이다.

세모의 바쁜 걸음들이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붐비는 우체국 좁은 창구에서 피치 못할 몇 장의 우편물을 띠우고 인파를 헤치며 거리로 나선다. 아직도 남은 몇 가지 잡무,, 그러나 벌써 겨울해는 떨어져가고 있다.

지나가는 진열장에 걸어놓은 노오란 병아리색 털모자가 환한 해바라기꽃처럼 눈을 끈다. “아! 저 모자!” 문득 그 옛날 어머니가 더주신 새빨간 털목도리의 그 폭신폭신한 촉감이 내 목을 간지럽히는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힌다. 거의 40년 전의 아득한 기억이.

“나도 아이들에게 저런 모자를 떠 줘야지.”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일 뿐 나는 다시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세월이 파놓은 깊은 도랑 같은 어둠 속으로. 그 속에 떨며 섰는 나를 바라본다. 먼 길에 허덕이듯 지쳐있는 한 여자를 본다. 뜨거운 여름을 넘고 깊은 가을을 헤쳐 다시 한 해의 문턱에 선 여자의 적막한 감회를, 자욱한 눈길의 짙은 그림자를 본다.

기실 내가 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 그 편에서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것이다. 시간도 사람도 싸락눈 소리 같은 어머니의 옛이야기도, 꽃 이불 속의 오수 午睡도 나를 그 자리에 묶어둔 채 저희 편에서 멀리멀리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아직도 국화잎이 비치는 하얀 쌍창과 참숯불 이글거리는 백통화로 곁을 떠날 줄 모르고 있는데, 어느덧 나의 아이들이 나를 밀쳐내고 그 자리에 들어와 앉은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추운 세모의 거리를 이렇듯 낯선 나그네처럼 흘러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유년의 골목길을 노오란 병아리색 털모자를 쓴 내 아이들과 내 아이들만한 내가 빨간 털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함께 겹치어 걸어가고 있다. 그 몇 발자국 뒤에서 지금의 나는 후딱후딱 현실을 들락거리며 바쁜 세모의 거리를 쫓아가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붐비는 세모의 거리에서 이런 부질 없는 경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排律의 가을

 

어지간한 나이에 무슨 바람으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을까. 어느 세월에 차 한 대가 내 앞으로 올 거라고… 망설이다 나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말려들고 말았다. 어쩌면 신나게 거리를 달리는 젊은 여자 운전사의 뒷모습에서 밉도록 넘치는 생의 활기와 젊음의 과시를 선망했음인지도 모른다.

실습장은 영등포 신진, 처음 6주간은 한 주일에 두 번씩 나갔으나 시험을 앞둔 마지막 한 주일은 매일같이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의 3~4시간을 실습장과 왕복하는 거리에서 소비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해가 져서 돌아오는 귀로는 매양 바쁘고 스산하여 마음이 꺼질 것만 같다.

아이들의 허전한 눈길이 채찍처럼 기다리고 있을 집, 설상가상으로 수술을 하고 병원에 누워있는 딸아이, 집과 병원과 실습장을 뱅글뱅글 돌면서 겹치어 무슨 모임, 무슨 기념식 하다 보니 강의준비며 기일 지난 원고들은 손댈 염도 하지 못한다.

무엇이 이처럼 나를 몰고 가는 걸까, 브레이크를 잡는다는 것이 액설러레이터를 잘못 밟은 격으로 생활은 내 의사 밖에서 저 혼자 줄달음치며 나를 몰고 간다. 나는 아득한 가지 끝에 바람을 타는 나뭇잎처럼 시시로 어지럽다. 아슬아슬한 곡예 曲藝 를 보는 듯한 현기증, 가물가물 하늘로 잦아들 것만 같다. 아마도 이것이 피곤일까?

아침에 일어나 보면 놀랄 만큼 변하여 있는 뜰의 모습에 가슴 섬뜩해 진다. 피빛으로 처염 凄艶 을 떠는 붉은 단풍, 수만의 황금관을 쓴 귀공자같은 은행, 10년 전 늦가을 나는 저 나무들을 내 손으로 심었다. 적이 어린 나무라서 살아날까 어떨까 심히 걱정하며.

이제 그 나무들이 10년을 자라서 성목 成木이 되었다. 별로 자상한 손길을 기울임 없이 나무들은 저 혼자 자라서 성목이 되어 어느덧 주인의 창가에 그지 없이 조촐한 그늘과 빛을 던져주며 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옛 친구를 생각해 내듯 이따금 무량 無量한 마음으로 이 나무들과 마주 선다.

“당신을 위한 / 남향한 서재 하나 / 마련한다면 / 나를 위한 창밖엔 / 사시절 붉게 타는 단풍 한 그루 / 과묵한 신사 같은 은행과 함께 / 늙지 않는 마음으로 심겠노라” 염원하던 마음, 기실 이들 나무에 대한 나의 향념 向念 은 고작 그 정도의 싯귀 詩句처럼 소박한 것이었다. 언제까지나 늙지 않고 시들지 않는 청청한 젊음을 그 나무들처럼 내 안에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무를 심고 10년, 나는 그 나무들 앞에 아직도 젊고 청청한 정신의 여자일까 생각해 본다. 생각하다 쓸쓸해 진다.

어느 때부터일까, 나를 잊고 팽이 치던 시간에서 벗어나 잠시 창가에 서면 가을 속에 물든 나무들 앞에 잠잠히 낙일 같은 죽음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렇다고 죽음의 의미를 집요하게 추적해갈 만한 용기는 아직 갖지 못한다. 그저 느끼는 것 뿐이다. 큰 산 같고 깊은 벼랑 같고 잿빛 동굴 같은 침묵의 피안 彼岸을.

눈 앞의 나무들은 아직 신이 채색한 선연한 빛깔 속에 황홀한 치장을 하고 있건만 그것도 그저 삶을 기념하는 마지막 축연에 성장한 의상처럼 슬프고 정회 情懷 롭다.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은다. 흡사 군무 群舞 하는 무희 舞姬들처럼.

주섬주섬 잎새들을 거두어 돌아가는 길차비의 마지막 화려한 공중곡예 空中曲藝, 내가 부리는 기승도 바로 저런 것일까, 천 년을 살며 젊을 줄 아는 미욱함으로 페달을 밟고 핸들을 잡는다.

미련한 나,

하많은 일, 해야 할 일들을 제쳐놓고 부질 없는 외도 外道에 혼을 쏟고 있는 나도 어쩌면 마지막 떨어지는 잎의 난무 亂舞, 그런 것일까?

“사시절 붉게 타는 단풍이고저” 염원하며 심은 나의 나무는 저만치 시간과 침묵과 끝없는 죽음을 예고하고 섰는데 나는 나의 낙하 落下하는 모습을 내 안에서 바라보며 밖에서는 한없는 범속의 팽이질에 맴돌고 있다.

가을은 차디찬 겨울의 죽음을 예비하며 있는데.

 

 

 

내가 그린 그림

 

마을 공터에 봄 가을이면 곡마단이 섰다.

나는 그 곡마단의 줄타는 소녀가 한없이 부러웠다.

날개를 단 천사같이 보였고, 구름 속을 날으는 선녀처럼 생각되었다.

나도 이 다음에 크면 저렇게 아름다운 곡마단의 소녀가 되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이상한 소문이 마을을 돌았다. 줄타는 소녀는 식초를 한 사발씩 마시고, 가죽 회초리로 피가 맺히도록 매를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어렸을 대 짱골라에게 유괴되어 곡마단에 팔려왔기 때문에 집도 부모도 모르며 달아나지 못하게 문을 잠근 방안에 가두어 둔다는 말도 돌았다.

그런 소문을 듣고나서부터는 어쩐지 곡마단이 무섭고 싫어졌다. 꿈 속에서도 가끔 시커먼 남자에게 쫓겨 다니다 악을 쓰고 울어버리곤 했었다.

여섯 살 때 일이었다.

 

꼭 영화배우처럼 예쁘고 젊은 일본인 여선생이었다.

수업시간이 되어 그녀가 교실에 나타날 때마다 나는 술에 취한 듯 멍해지며 이상한 감동에 전율을 느끼곤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하면서도 그녀의 움직이는 붉은 입술에 자력처럼 빨려 들곤 했었다. 언제든 나도 저렇게 멋있는 선생님이 되리라 꿈을 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저분한 변소 문을 열고 그 안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았다.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신비스런 그녀가 뒷간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던 때문이다.

여덟 살 때 일이었다.

하나만 더 쓰자.

소독약 냄새가 구석구석 배어있는 길고 어두운 복도였다.

이따금 감색 빌로오도 케이프를 두른 간호원이 천사처럼 호젓이 지나갔다.

내 수술한 왼쪽 다리의 상처를 희고 보드라운 붕대로 찬찬히 감아주는 여인의 그 빳빳한, 천사의 날개 같은 모자의 눈처럼 흰 제목이 가슴을 조이도록 설레게 했다.

다시 돌아나오는 길고 어둑한 복도에서 나는 또다시 눈처럼 순박한 백의의 천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 어느 고풍한 병원, 긴 복도를 감색 빌로오도 케이프를 두르고 호젓이 천사처럼 걸어가는 꿈을.

그러던 어느 날 그 꿈꾸던 천사의 벗은 팔뚝에서 팥알만한 새까만 사마귀 한 개를 발견했다.

그날 이후 내 공상은 이상하게 썰물처럼 싹 가시고 말았다.

열 한 살 때 일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그 비슷한 환상과 실의를 계속하고 있다.

아침에 희망한 일이 저녁에 좌절되고, 떠날 때 빛나던 마음이 돌아올 때 캄캄해 진다. 내가 쓴 글에 내가 실망하며, 수 없이 붓을 들지만 이내 다시 던진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의 암담한 화폭을 바꾸지 못한다. 여섯 살 어린이가 모래 위에 그린 그림, 열 한 살 소녀가 종이 쪽지에 갈긴 낙서처럼 찢어버리지 못한다.

기실 그때, 내가 어렸을 땐 곡마단의 소녀가 무서워 선생님을 그렸고 선생님이 싫어졌을 때 백의의 천사를 그릴 수 있었다.

그때 내 앞엔 도처에 찬란한 금빛 테를 두른 빛나는 화폭들이 널려 있었고, 돌아서는 자리마다 새로운 화폭이 내 붓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그릴 여분의 종이를 작고 있지 못하다. 내가 가진 마지막 종이에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다시는 고칠 수 없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엔.

그렇다 다시는 고칠 수 없는 마지막 그림, 나머지 시간.

하여 나는 쓰러졌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고, 캄캄하던 마음에 불을 켜고, 던졌던 붓을 다시 든다.

기실 꽃이 빛을 뿜으며 만개의 절정 속에 환희로운 시간은 몇날이나 될 것인가.

내일을 향해 간절하게 문을 열던 소박한 기다림도 이젠 시들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눈부심에 다시 하루를 속아보던 어리석음도 지나갔다. 불행한 임금이 찾아 헤매던 행복한 속옷이란 도시 이 세상에 없는 것임을 깨달은 지도 이미 오래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모나고 둥글고 길쭉하고 희고 푸르고 어둡고 멀고, 그저 그럴 뿐, 긴 것이 둥글게도 흰 것이 푸르게도 변할 수 없는 현실, 환상 없는 현실 앞에 나는 돌아와 서 있다.

실상, 얼마나 많은 도화지에 제멋대로의 환상의 그림을 그려왔던가. 무색투명한 희망이란 이름의 도화지 위에 숱한 나무와 구름과 하늘과 꽃들을 그려 넣었던가.

보이지 않는 환상의 화폭 위에서 시든 꽃들은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꽃이 되기도 하고, 잿빛 하늘과 죽은 나무들은 푸르고 싱싱한 환희로 채색되기도 했었다.

그곳에선 바다의 폭풍우도 태산의 눈보라도 달콤한 솜사탕처럼 용해되어 갔었다. 구름도 한 송이 장미가 되고 어둠도 빛나는 일광이 되고 비애와 고독도 감미로운 음악이 되었었다.

진실로 나는 현실과 꿈의 두 틈바구니를 내왕하면서 희망이란 이름으로 몽환을 노래한 여름 풀벌레였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그 몽환의 구름다리에서 현실의 골짜기로 추락해 왔다. 문득 돌아다 보니 나는 다시 올라갈 수 없는 나락 奈落 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그리던 희망이란 이름의 환상의 도화지가 절판된 것이다. 더 그릴 한 장의 여분도 남김 없이 써버렸고 더 그릴 한 치의 여력도 없이 기진해 버린 것이다.

이제 환상 속에 떠돌던 물상들은 일제히 꿈을 깨고 확연히 현실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시든 것은 시든 대로, 잿빛은 잿빛대로 가현 假現의 의상들을 벗고 제 모습 제 빛깔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 모든 가변 可變의 것들을 떨어버린 나심 裸心 앞에서 비로소 찾는 물줄기 같은 생명감, 빛의 눈부신 평안과 침묵 속에, 남은 단 하나의 화폭을 본다. 고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화폭, 최후의 시간의 화폭을.

나는 그 나머지 한 장의 환히 끝이 내다보이는 마지막 그림을 위해 아직도 수 없이 쓰러지고 일어서며 튜으브 속에 남은 물감을 짜내고 있다.

생명의 붉고 진한 나머지 물감을.

 

 

 

서울 유감 有感

 

산에 오르면 아늑한 거리와 푸른 강이 굽이치고, 거리를 걸으면 수려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는 서울, 누가 서울을 사랑하지 않으랴.

 

바람부는 날에는

거리의 전선이 부엉이 울음 울고

소스라쳐 높이 솟은 가로수 가지엔

잿빛 작은 새들이 까맣게 모여오고

……………

 

이렇게 서울을 노래한 적도 있었지만 그 시절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롭던 서울의 모습은 이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어쩌면 간첩이 도약하고 무장공비에 술렁거리며 치안이 흔들리는 서울, 사상최대의 교통 폭주와 건설 도정에서 만신창의, 만삭의 임부처럼 산과의 진통을 치르고 있는 서울, 서울은 지금 만성질환처럼 앓고 있다.

열대지방의 정글처럼 총립한 고가도로의 그 육중한 기둥들,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들의 웅자, 터질 듯이 넘쳐나는 자동차의 물결, 그리고 산등성이마다 기어오르고 있는 성냥갑 같은 판자집들, 실로 극과 극이, 질서와 혼돈이 한데 범벅이 된 일대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진실로 의연히 솟은 북악의 기상과 유연히 부드러운 한강의 모습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옛 모습을 찾아볼 길 없이 나날이 변모해 가는 서울, 그러나 서울은 우리들의 면함 없는 요람히며 왕국이며 과거와 미래의 고향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우리들 마음 속에 깃든 갖가지 욕망과 기원 그리고 비애까지도 그 한 마디에 집약한 서울은 실로 우리의 영원한 마음의 수도이며, 불망의 도시가 아닐 수 없다.

참으로 우리는 서울을 사랑한다. 오늘의 모든 흔들리는 현상을, 어제의 지나간 일체의 옛 것을, 시대와 유행에 자침 磁針 처럼 민감한 그 바람개비의 거리 명동 충무로를, 힘의 상징 같은 세종로, 시청 앞 거리를, 지적인 풍모로 조촐히 다가오는 소공동 거리를, 북악의 끝에서 한라산의 아래까지 푸르게 널린 사철의 하늘과 그 아래 굽이치는 한강의 역사를, 올망졸망 둘러앉은 산등성이의 판자집에서부터 대도시 한복판에 위풍을 떨치는 고층빌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속에 운집하는 수백 만의 시민들까지, 그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연민한다. 마치 나와 나의 가족처럼, 기실 그것은 서울이란 커다란 지붕 아래 웅거하는 하나의 거대한 인간가족임에 틀림 없다.

근 40년의 세월을 서울에서 살다 보니 어느덧 서울의 체취는 내 피부처럼 동화되어, 서울의 성장은 나의 성장이고 서울의 진통은 나의 진통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기실 이러한 심정은 비단 나 혼자만의 간사스런 심정은 아닐 것이며 때문에 나는 이따금 그 성장해가는 아니 변모해가는 서울의 진통 앞에 사뭇 가슴을 앓으며 내 일처럼 발을 구르게 되는 것이다. 그야 각자 제 나름의 안목과 기호 또는 원대한 목적에 따라 세워지는 일이겠지만 요즘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는 그 서울의 기념비적일 건물이 하나이던 조선호텔이 헐리고 그 자리에 지상 18층 지하 2층의 초 현대식 건물이 수억 원의 경비를 들여 이미 완공도상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처다만 보아도 눈 앞이 아찔하도록 현기증을 자아내는 당당한 위용 偉容 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앞을 지날 적마다 마치 그 자리가 비어버린 것 같은 적막감을 느낀다. 18층 맘모스 빌딩의 위풍 威風 도 껍질만의 박제를 보는 듯한 삭막함을 자아내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기실 수십 년을 서울에서 살다 보니 그 많은 거리와 골목과 건물들 어느 것 하나도 낯설고 정들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들은 나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으나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풍정 風情 이라든가 영상 또는 역사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서 밀착된 자기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서울에서 유독 까닭 없이 정들고 때 따라 향수를 불러 일으켜 주는 건물들이 있으니 그 첫째가 바로 서울의 관문과도 같은 서울역 驛舍 의 그 엑조틱한 풍모다. 아무런 장식도 모양도 없는 붉은 벽돌의 색깔마저 퇴색해버린 반 세기가 넘은 그 낡은 역사에서 나는 나의 세계 밖으로 열린 무한한 꿈과 비애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높다란 시계탑과 둥근 지붕,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으로 붐비는 자욱한 대합실, 게시판에 적인 숱한 출발지와 미지의 목적지 그리고 시간표들, 그것은 참으로 내 마음속에 끊임 없는 동경과 애환을 불러 일으키는 출발의 문이며 귀환 歸還의 예정지 豫定地 였다. 때문에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아니 변해서는 안 되는 고향의 모습이어야 하며, 절대로 현대화의 미니 스커트 같은 차림으로 신축이나 개축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며, 언제까지나 어머니 같은 고전적인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나일론 만능시대에 준주사나 숙고사 모시다듬이를 생각하는 전세대적인 논리 이전의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서울역 역사에 대한 내 고집스런 집착은 낡은 그대로 퇴색한 그대로 좋으니 옛모습 그대로 변함 없는 자취를 지니고 있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가 이 민족의 수난사 같은 중앙처 청사의 그 육중한 석조전 바로 그것이다. 언젠가 들려오는 말에 식민지 총독정치의 표본 같은 중앙청 청사를 폭파라도 해서 없애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었다.

그야 일제 36년의 피 어린 역사를 부각한 너무도 생생한 민족의 상처를 그 화강석 석조전은 묵묵히 증언하고 있지만 그 아픔과 상처와 오욕된 역사를 씻어버리는 길이 어찌 부수고 파괴하고 없애버리는 일만으로 끝나는 것일까 보냐. 그보다는 차라리 이런 것들을 오래오래 보존하여 다음 후세에까지도 선대가 겪었던 수난과 치욕을 되살리고 실감케 하여 다시는 그런 오욕의 역사 없기를 다짐함이 보다 의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고 생각해 보는 것은 우둔한 고집일까.

끝으로 하나만 더 들자. 지금은 헐리어버린 옛 조선호텔 건물 바로 그것이다. 르네상스식 건물이나 어쩌니 하는 그 고풍 고풍 하고도 고색창연한 풍모에서 나는 옛 서울, 잃어져 가는 옛 서울의 정취를 만끽하며 때로 시대의 에뜨랑제 와도 같이 지나가버린 시절의 다감했던 향수에 젖어보기도 했던 것이다. 한 수도의 심장부에 심장처럼 앉아서 흘러간 시간과 역사의 자취를 말없이 풍겨주며 역사의 증인처럼 메말라가는 시민의 가슴에 소리 없는 향수를 심어주던 그 것은 분명 잊을 수 없는 옛 것의 하나였음이 틀림없었다.

한 덩이 둘에도 가치와 읨를 부여하며 무너져가는 폐허도 간수하여 보존하거늘 충분히 가치있는 기존건물을 허물리 않고도 그에 대신할 대안은 있을 법한데 적지 않은 재산을 파괴하고 막대한 국고를 지출하여 시민생활을 위협하면서까지 새 호텔 새 건물을 바로 그 자리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서울의 이창 裏窓 에는 물론 그만한 궁색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얼치기 초 미니 스커트 같은 도시계획이 아니라, 보다 중후하고 전통 있고, 유서 지닌, 그래서 고풍하고 전아 전아 한 수도 서울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의 이끼 낀 옛 것들을 마구 헐어제끼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노파심같은 염려이고…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들 할머니나 어머니가 입으시던 숙수항라 깨꺼저고리를 그리는 것 같은 다분히 회고적이고 보수적인 넋두리인지는 모르지만 자고 새면 무언가 자꾸만 잃어져 가는 것 같은 아쉬움에 가슴 적막함을 금할 수 없기에 말이다.

 

 

 

가을 나그네

 

“이성 理性 의 자유를 얻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나그네 이상의 아무런 존재로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최종 목적이란 없기 때문에…”

니이체의 말이었던가? 어찌 보면 허무하기만 한 그 비속 非俗과 초탈 超脫의 경지, 자유로운 이성의 해탈자 解脫者 만의 영역 領域 을 헤아릴 길 없으면서도 이따금 더듬어 보는 옛날의 글귀를 새삼 기억해내는 것은 이 역시 가을인 때문일까.

저토록 바람이 울고 나뭇잎이 스스로의 뿌리 밑으로 돌아가고 새벽서리가 가슴을 차게 식히는 그래서 온 세상이 빈 동굴처럼 허전하기만 한 시절인 때문이리라.

하여 지금 나는 먼 여로 旅路에 지친 나그네처럼 고달프고 우울하고 심한 향수에 젖고 철없이 고독하고 또 마냥 불안하고 힘겨웁기만 하다.

몇 날 며칠이 되었을까, 이처럼 끝없니 갈피 없이 서 있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겹겹이 닥쳐오는 일들일까. 아무런 기쁨도 의미도 없는 그저 번거롭기 그지 없는 범속 凡俗의 일들, 누구의 결혼식, 누구의 기념식, 누구의 환송식, 누구누구의 무슨무슨 식, 피할 수 없이 고단한 예절에 지쳐 쓰러질 듯 집으로 들어서면 거기엔 또 얼마나 많은 우울한 일들이 빚쟁이처럼 나를 쫓는가.

헐어진 담장, 칠 벗은 창살, 더러워진 벽, 찢어진 창호지, 구멍난 장판, 맞지 않는 문짝, 녹슬고 고장 난 난로와 아궁이 상 하수도의 보수공사 지하실의 방수,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들의 전정, 온실 없는 화분들의 겨울준비, 그리고 그 힘겨웁고 두려운 김장과 연탄걱정, 식구들의 겨운살이 의복의 마련과 수선 등, 실로 어기찬 일들에 묻혀 나는 삭여 朔餘 를 꼬박 노동해 왔다.

참으로 그것은 피곤한 노동이다. 종일을 마친 낯선 토지와 황량한 거리에서 노독 路毒에 지친 역마 驛馬 처럼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하루밤 쉬어야 할 내실로 돌아오면, 그곳은 왜 또 그리도 높고 굳게 닫혀진 성문 城門 처럼 암담하고 비정할까.

나는 그 캄캄하고 우람한 밤의 성채 城砦 바깥, 바람 드세고 풀잎 와삭거리는 가을 벌판에 당그마니 누워, 잠들지 못하는 긴 밤을 뜬 눈으로 새워야 한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하루의 금쪽같은 시간의 보상을 조바심과 회념 悔念 의 아픔으로 받아야 한다.

아는 이 없는 타관의 고독, 부칠 데 없는 소외자의 비애 같은 것에 시달리며 찌끼처럼 남은 회한과 끈질긴 집념의 자의식 속을 헤매 다녀야 한다.

낮은 힘겨운 노동판이고 밤은 또 괴로운 의식의 미로 迷路 다. 하여 나그네에게 허락된 가장 충만하고 황홀한 가을시간들은 가랑잎처럼 부서져가고 있다.

괴로운 것은 육신의 고달픔이 아니라 다시 없는 시간의 상실이다.

이제 그 전날 젊은 나그네에게 다양한 이국 異國처럼 신기롭게 황홀한 순례길이었던 가을은 지금 시골 방앗간에 돌아가는 둔탁하고 몰골 없는 맷돌처럼 가락 없이 단조롭고 삭막한 풍경에 불과한 것 같다.

때로 새벽의 차디찬 기류가 맑은 수증기처럼 투명 히 비쳐오는 박명 薄明 의 어스름 속에 언뜻 스쳐가는 한 줄기 샛별의 금속성 광채를 잡는다.

일체를 벗어버리는 그 순간의 허허로운 희열과 예지, 허나 그것은 옛 철인 哲人이 도달한 이성의 자유로운 해탈이 아니라 범인 凡人의 순간적인 감정의 허탈상태다. 그리고 보다 강한 희구와 갈망의 전초 前哨이고….

이를테면 아침의 청신 한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기대에 가슴 부푸는 나그네처럼, 무엇인가 오늘 하루 새로운 토지의 아름다운 풍물 風物과 신비스런 인연, 인정의 아름다움 같은 뜻밖의 행운이 비둘기떼처럼 둘러싸 줄지도 모른다는 아니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와 갈망으로 잠시 혈관을 압축하는 것 뿐이다.

기실 나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욕심 많은 나그네인지도 모른다. 평안한 안식처와 보다 충만한 내일을 원하면서 오늘의 신성한 노동을 기피하고 고달파하는 참을성 없는 나그네, 그러나 인생의 최종의 행선지는 죽음 뿐이라는 절대의 허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간절히 하루 하루의 살아있는 의미와 기쁨을 햇살처럼 누리고 싶은 것이다.

한 알의 씨 속에 온 세상이 숨어버리는 가을은, 어쩌면 최초의 원형으로 돌아가는 종점이며 또한 시점이 아닐까. 그리고 매양 그 종점과 시점을 배회하는 인생의 목적은 기실 그날 그날의 충만 된 생활과 희열 그것 뿐이고.

이 가을, 나는 나의 분명한 현주소를 잊지 말고 찾아야 하겠다.

 

 

 

韓服의 멋

 

해마다 12월이 오면 동대문 시장 2층 광장에 자리잡은 수천 평 주단 포목부에는 경향각지에서 모여든 인파 人波 로 성시 盛市를 이룬다. 부유층 마님네들이 모이는 고급 주단부, 서민층 아낙네들이 가난한 주머니를 속셈하며 서성대는 나일론부, 가난하고 부유함이 서로 다를지언정 그들의 소망과 꿈은 한결같다.

연옥색 바지 저고리에 남 藍 조끼 마고자쯤 곁들여 귀여운 아들에게 설날의 꿈을 안겨주고 싶고, 다홍치마 색동 저고리에 토끼털 배자를 받쳐 입은 딸의 앙증스런 맵시를 머리 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늙은 부모님을 위해서도 섭섭할 수 없는 그들은 매양 자신을 위해서는 한 해를 두고 벼르던 그 비취색 저고리며 양단치마 한 감을 기어이 뜨지 못한 채 쓸쓸히 돌아오고 만다.

명절이란 여인들에게 있어 소망과 슬픔을 한데 엮는 계절이기도 하다.

기실 언제나 먹을 수 있는 떡국이언만 정월 正月 초하룻날 먹는 떡국 맛이 다르듯, 한 해를 통해 하루같이 입는 치마 저고리이건만 설날 아침에 새로이 분단장하고 깨뜻한 속옷 위에 날아갈 듯 차려입은 설빔의 맵시는 역시 색다른 풍정 風情이 아닐 수 없다.

국화잎을 따넣고 설백의 한지로 발라내던 세공 細工의 만자창 卍字窓 이 유난히 밝은 설날 아침, 긴 세월의 향이 어린 화류 樺榴 문갑이나 산수화 병풍 앞에 조용히 앉은 우리들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의 그 옷차림을 보자.

명주 明紬 은회색 바지에 흰 저고리, 연옥색 조끼에 짙은 쑥빛 마고자, 살구알만큼씩한 황금빛 밀화 密花 단추가 더없이 풍취를 돋우는 그 의전한 한복 차림을…

서양의 몸을 조이는 듯한 옹색한 신사복 차림에 비해 얼마나 넉넉하고 풍성스런, 마치 왕가 王家의 후예 後裔다운 기품인가를…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여인들의 옷차림이다.

기실 한복은 그 구조의 소박함과 단순성 때문에 화려한 원색의 대담한 활용이 다른 어느나라 의상보다도 잘 아울리고 있다.

이를테면 순백 純白이나 엷은 미색들이 순결한 기품과 매란국죽 梅蘭菊竹 의 고담 枯淡한 청초감을 준다면, 원색의 적절한 조화는 난만한 꽃 처럼 황홀하고 생생한 생명감을 준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들 각가지 농담 濃淡의 색의 조화는 한복의 미의 기저 基底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명절일수록 색은 한껏 화려한 원색이 좋다. 치마는 되도록 무거운 빛깔과 감으로 무늬 [紋] 는 크지 않고 잔잔함이 요란스럽지 않아 좋다.  저고리는 치마에 받쳐 동색계통 아니면 이색 異色 지더라도 잘 조화되는, 될 수 있는 한 엷고 밝은 색이 반회장에 어울린다

이를테면 진 남 藍이나 자주 아니면 가지색 순색의 치마 위에 연분홍이나 옥색의 반회장 저고리를, 또는 진초록이나 녹두 綠豆 빛 치마 위에 백색이나 연 황국 黃菊 빛 저고리를 받쳐보라.

그리하여 치렁치렁 설백의 버선 등을 가릴 듯 말 듯 흐르는 스란치마 한 자락을 살며시 쥐고 섰다 하자.

그대로 마치 무성한 풀숲에 갑자기 피어난 한 포기 난 蘭이 아닐까. 그 무겁고 풍성한 치마는 푸른 잎과 줄기에 흡사하고 접혀진 나비 날개 같은 저고리는 잎과 줄기 위에 떠 받들 린 화사한 꽃 한 송이.

더욱이 그 가슴 한가운데서 화심 화심 같이 매듭지는 고름에 이르러선 우아하면서도 결연한 우리의 성정 성정 까지를 말해주는 듯하니, 이제 그 상큼히 목덜미를 감싸내리는 깃고대에서부터 발꿈치로 흐르는 직선의 유연함에서 비길 바 없이 풍기는 헌출한 기품까지를 합하여 가히 우리의 의상이 그대로 자연의 상징이며 조화의 일치임을 자랑함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아름다운 우리의 옷을 꾸미는 데는 적지 않은 노고가 따랐으니 지금은 거의 사라져가는 옛 풍속의 한 토막을 아쉬운 듯 한숨 섞어 말하는 우리네 할머니며 어머니들의 옛 이야기를 들어보자.

명주, 항라, 숙소, 갑사, 능라, 주단을 맑은 물에 옥같이 빨아 흰 쌀풀 먹여 알맞추 말리고 손질하여 다듬을 것을 가려내어 굵은 홍두깨에 층층이 감아놓고 긴긴 밤을 새워가며 다듬어 내던 이야기를.

그들의 손끝엔 누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스스로 익힌 장단고조의 음률이 있고, 그 구성진 다듬이 가락에 생활의 시름을 잊기도 했었단다.

그렇게 다듬어낸 갖가지 옷감들을 한겨울 기나긴 밤을 두고두고 화롯불에 손 녹이며 한 솔기씩 지어냈단다.

백통 화로에 참숯불 묻어놓고 알맞추 단 인두 끝으로 그림처럼 꺾어내던 것, 섶, 도련. 곱솔 상하침 上下針 에 마물리던 치맛단. 삶의 어려움과 생활의 시름도 스스로의 솜씨에 잠시나마 잊어보는 시간이기도 했단다.

그런데 이렇듯 향토 짙은 한복의 다듬는 멋이며 짓는 멋도 이젠 사라진 지 오래다. 다듬이 대신에 빨아서 다림질도 하지 않는 나일론의 출현과 긴긴 밤을 새워가며 짓던 노고 대신에 재봉틀과 재봉사에 의한 대량생산의 기업화, 어쩌면 이 무섭도록 바쁘고 빠른 세상에 그지 없이 다행하고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뭔지 잊을 수 없는 옛 풍속이 이따금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가. 한 뜸 한 뜸 올을 세듯 하는 상하침 대신에 재봉틀로 한달음에 박아 내린 치맛단, 드라이크리닝 냄새가 풍풍 코를 찌르는 양단저고리, 빨아서 풀 먹임도 다림질도 하지 않는 나일론 데트론의 범람, 나일론 속치마며 나일론 버선, 눈이 부시게 요란스러운 반짝이는 양단의 행렬, 이상한 수를 놓고 나일론 망사 안을 받쳐입은 세모시 치마 적삼…

어지럽다. 정녕 한복 고유의 멋은 지금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다.

어디 갔을까. 옛날의 그 조촐한 안동포 치마 적삼의 상큼한 여름 맛은, 항라, 숙고사, 준주사의 살랑한 물겹저고리 맛은.

은은한 남갑사 치마 밑에 비칠 듯 말 듯한 손누비 단속곳, 5월 보리밭에 지름길같이 하얀 가리마에 동백기름 향긋한 쪽머리, 비취비녀 다홍댕기 아른아른 불려들인 뒷모습 그림같은 여인은 이제 우리 앞에 없다.

기실 그런 것들은 다시 찾을 수 없는 고전적 가치의 유물로서, 오직 관광적 흥행을 위한 풍속도의 하나가 되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면서 언젠가는 까마득한 전설처럼 잊혀져 가버릴 것이다.

 

 

 

세모시 옥색치마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다홍댕기,

 

누구의 글귀처럼 그 옛날 한 폭의 풍속도를 그려내던 한국의 여름은 모시옷과 더불어 왔었다.

물에 담그면 한 줌의 부피로 줄어들고, 한 번 펴서 줄에 널면 창공을 가릴 듯 넓은 치마폭이 한낮의 뙤약볕 아래 눈부시게 펼쳐지던 여름의 서정! 모시의 아름다움을 옛 추억 속에서 빼놓을 수는 없다.

모시는 여름의 시 詩다.

눈이 부신 설백 설백이나 연옥색 치마에 흰 깨끼적삼, 아른아른 속살을 비쳐내며 와삭와삭 풀바람을 일으키는 그 투명한 청량감 청량감은 삼복염천의 더위 속에서도 땀을 씻게 하도록 시원스럽다.

모시는 발이 가늘고 고울수록 귀골스럽다. 꼭 잠자리 날개 같은 생모시의 운치는 더 한층 고귀해 보인다.

맑은 물에 빨아 쌀뜨물에 깨워서… 고운 치자물을 풀어 먹이는 노리끼한 생모시의 운치는 모시 중에도 으뜸이다.

모시옷에 감추어진 여인의 풍정 風情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하게 풀이 선 치마 적삼을 상큼하게 차려 입고 눈이 부신 진솔버선에 백옥 같은 고무신을 금방 물에서 건져 신은 그 옷차림의 정결함은 타는 불볕도 식힐 듯 청아 淸雅 하지 않았던가.

하얀 가리마 까맣게 윤나는 머리에 살짝 다홍댕기 물려 쪽지고, 푸른 비취나 맑은 옥잠을 잔털 하나 없이 다듬어 꽂은 뒷모습은 또 그대로 여름의 가인 佳人이며 그림이 아니던가.

모시엔 비취나 옥이 제격이었다. 투명하고 살랑한 저포 紵布 의 질감에 시원한 비취나 옥의 조화는 얼음에 채운 배맛처럼 담백하고도 기품 氣品스러웠다.

그리고 또 모시엔 태극선 太極扇이 따라야 했다.

푸른 대발이 물결치는 대청에 단정한 모시옷 차림의 여인이 태극선을 흔들고 앉아있는 모습, 그것은 바로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었으며 곧 한국여인의 모습이었다.

이제 세월은 바뀌어 나일론 만능시대가 되었건만 70이 넘으신 나의 어머니는 지금도 삼복의 여름이면 모시옷을 정갈스레 손질하신다.

 

 

 

女子가 잃어버린 ‘女子’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다.

40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 물감처럼 선명한 기억 속의 그림이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백통 화로에 참숯불이 하얗게 사위어가는 아랫목, 산수화가 그려진 곡병풍 曲屛風 앞에서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남치마에 옥색 반회장 저고리를 입으셨던가…..

무릎 위 인두판에서 하얀 바느질감이 사르륵거렸고 이따금 화로불에 꽂은 인두를 뽑아 인두질하는 소리가 사각거렸다.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어머니 곁에 앉아서 색색의 헝겊조각을 펴놓고 각시놀이를 벌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아랫목에 엎드려 물끄러미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모르고.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는 가끔가끔 화로불에서 인두를  꺼내 들었고 그때마다 그것을 살짝살짝 볼 언저리에 가져다 대보는 것이었다.

볼 가까이 끼치는 인두의 열기 열기로 바느질 감을 눌릴 정도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신기하게도 볼과 인두의 거리가 매번 귀신같이 일정한 것이다.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슬그머니 어머니 등 뒤로 돌아가 인두를 잡아 뽑았다. 그리고 오른쪽 볼로 가만가만 인두를 들이댔다.

철썩!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였다.

벌겋게 단 인두로 그대로 사정 없이 오른쪽 볼을 문질러버렸던 것이다.

악! 소리를 지르며 나는 뒹굴었다. 그리고 다음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내 기억이 거기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다섯 살 때 일이었다.

얼굴을 인두로 지진 계집애, 그러나 지금 꿈결처럼 만져보는 볼은 거짓말같이 말짱하다.

사실 그때 인두자국이라도 났더라면 시집도 가지 못하였겠지만 어떻든 아득한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그날 어머니가 당하셨을 놀라움이 짐작되어 가슴이 저절로 저려옴을 금할 수가 없다.

여자의 생활, 여자의 애환 哀歡이 바늘과 더불어 시작된 역사는 언제부터였을까. 적어도 고기를 잡고 사냥을 업 하던 유목시대에는 몰라도,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곡식을 얻던 농경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길쌈과 바느질은 아낙이 하는 일, 곧 여자의 직분이 되었던 것이다.

광활한 산야를 피의 피의 를 걸치고 반나체로 남자와 함께 달리던 여인들이 어느덧 담을 둘러친 좁은 울안에 갇히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집을 지키고, 자녀를 기르고, 먼 산야에 나간 남자를 기다리며 길쌈과 침선 針線에 골몰해갔을 것을 상상해 본다.

남아를 기르면 사해 사해에 그 이름을 떨칠 문장이나 영웅 호걸되기를 발원 發願 하고, 여아를 낳으면 국색 國色이 되기를 기원하며 침선과 방적 紡績을 가르침이 어버이의 의무였다.

신라시대의 적마 績麻를 위한 낭자 娘子의 모임도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육촌 六村을 둘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나누어 맡게 하고 매일 아침 일찍부터 대부 大部의 뜰에 모여 삼 삼기를 했다니 이는 곧 처녀가 한 사람 몫의 성인으로서 성숙되었음을 나타내는 성년식 成年式이며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입사식 入社式으로서 바로 다름아닌 여자의 성년의 삼 삼기 – 침선 – 라는 천부 天賦의 직분에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로 우리들 조상인 여자들은 귀밑 머리도 풀기 전부터 어머니 곁에서 자고 새면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길쌈과 침선이었다.

이조 李朝 의 사대부 士大夫 집 규수로서 기본적 여인상이 되는 네 가지 내훈 內訓도 바로 그 첫째가 부덕 婦德이요, 둘째가 부언 婦言 이며 세째가 부용 婦容 이고, 네째가 부공 婦功 으로서 전심방적 傳心紡績 하고 이봉빈객 以奉賓客 하는 일이었음을 보아도 여자에게 있어 침선은 4대 내훈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가 있다.

기실 여자의 본분, 여자의 의무는 바로 침선으로 직결되었고 그것은 곧 숙명적인 여인의 생활사로 형성되어 갔던 것이다.

“바느질도 못하는 여자”, 지금은 그런 칭호의 여자가 하나도 흉이 될 수 업고 오히려 당연지사 當然之事 처럼 생각도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것은 부끄럽고 송구스런 대명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지체 높은 명문가의 마님으로서 식모에 찬모 饌母, 침모 針母 까지 거느리고 살아도 그들은 스스로 손수 침선에 능하고 밝아야만 했다. 주인이 모르고서야 어찌 하인을 부리랴 는 윗사람으로서의 체통과 긍지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시집은 새 색시에게 사흘 만에 시어머니가 인사처럼 내어놓는 것은 한 묶음의 뚫어진 버선켤레와 무명 헝겊이 담긴 반짇고리였다.

알맞은 헝겊을 골라 버선볼을 대고 한 바늘 한 바늘 감치는 새 며느리의 바늘 끝을 보고 시어머니는 새 각시의 성품이며 솜씨를 짐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어느 부인은 구제 구제 여자 전문학교를 마치고 대갓댁에 시집을 갔는데 사흘 만에 명주 한 필을 꺼내 놓으며 시아버지의 바지 저고리를 말라 지으라는 분부를 받았다.

저고리쯤이야 지어도 보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보기도 하고 하여 어렵지 않았지만 바지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단다.

그 부인은 생각 끝에 친정 어머님이 지어 넣어주신 남편의 바지를 장 속에서 꺼내 북북 뜯어놓고 거기다 맞추어 간신히 말라서 지어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 시절의 여자들은 잘하건 못하건 간에 바느질이 그대로 여자의 생활이며 본분이었던 것이다.

사실로 그네들은

 

장장춘일 봄일기에 명주분부 짜내어서

앞냇물에 빨아다가 뒷냇물에 헹궈다가

담장물에 널어말려 옥같은 풀을 해서

홍두깨에 옷을 입혀 아당타당 두들겨서

임의 직령 지어낼 제 금가위로 베어내어

은바늘로 폭을 붙여 은다리미 다려내어

접첨접첨 곱게 개어 자개하롱 반닫이에

맵시있게 넣어놓고 대문밖에 내닫으며

저기가는 저 선비님 우리 선비 오시던가

오기야 오데마는 칠성판에 누워오데

웬말인가 웬말인가 칠성판이 웬말인가

 

(청주지방 민요 베틀노래)

 

하고 노래했듯이 그대로 길쌈과 침선에 여자의 기쁨, 여자의 한 限을 심으며 그것에 의지하여 살았던 것이다.

김홍도 金弘道의 풍속도에도 베 짜는 여인의 그림이 있다. 긴긴날 베를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의 굽은 등과 시름에 겨운 얼굴, 그것이 바로 한국 여성의 모습이다.

내 기억 속에도 외갓집 할머님이 추고 긴 겨울 한밤을 베틀에 올라앉아 달가닥 덜컹 하며 북을 지르시고 바디집을 밟으시던 모습이 있다. 중년에 외조부를 여의시고 혼자 손에 8남매를 기르며 살림을 꾸려가시던 적막한 모습이.

그리고 또 아버지를 서울로 떠나 보내고 혼자서 기나긴 밤을 스르릉스르릉 물레를 돌리던 어머님의 하염 없던 영상도 있다.

 

장안 일편월 長安 一片月

만호 도의성 萬戶 禱衣聲

 

의 시정 詩情까지는 미처 몰랐지만 옥같이 빨아 흰 쌀풀 먹여 홍두깨에 감아놓고 가락도 구성지게 다듬어대던 추야장 秋夜長 긴 밤의 다듬이 소리도 쟁쟁하게 남아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빨아서 풀을 먹여, 세우면 설 정도로 빳빳이 다림질을 해도 한 시간만 입으면 볼품 없이 구겨져 버리는 명주, 삼베, 저포 紵布 들, 그것들을 빨고 만지고 손질하는 일로 우리들 어머니와 할머니, 그 또 할머니들은 긴긴 여름날도 짧기만 했던 것이다.

누가 감히 그 옛날 상상이나 했었을까. 빨아서 툭툭 털어 물기만 빠지면 입고 나설 수 있는 나일론이며 데트론의 출현을. 그리고 오늘 또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손톱 발톱 자쳐가며 길쌈한 년, 사발옷만 입고 간다”

고 노래하듯이 삼을 삼아 손톱에 피가 맺히도록 길쌈을 하지만 죽을 때엔 고작 염습 殮襲 할 상포 喪布 하나 없이 음부만을 겨우 가리는 상사발 常沙鉢 을 덮고 가던 여인의 한을.

그러던 여인들이 언제부터인가 바늘을 던져버렸다. 맺히고 맺힌 한을 털어 버리듯 많은 여성이 다투어 망설임 없이 바늘을 던져버린 것이다. 여자가 던져버린 여자, 지금 내 주변을 둘러 모아도 바느질감을 담아놓는 반짇고리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옛날 내 어머님 곁에 떠나지 않던 수복 수복을 아로새긴 옻칠한 나무 만짇고리도 없고, 할머님 곁에 그림자처럼 따르던 고리버들가지로 짠 반짇고리도 없다. 고작 경대설합 한 구석에 달랑 알실패와 알바늘 몇 개가 녹이 슨 채 뒹굴고 있을 뿐.

세상은 그렇게 편해지고 문명해졌다. 화로에 숯불을 피울 필요도 없어지고 인두로 철없이 불을 지질 염려도 없어졌다. 전구알을 끼어들고 뚫어진 양말 뒤꿈치를 꿰 멜 필요도 없다.

블라우스와 스커트는 양장점에 맡기면 되고, 치마와 저고리는 바느질 집에 보내면 된다. 정히 급하면 백화점이나 시장으로 달려가 적당히 치수에 맞는 것을 골라 사 입을 수도 있다.

어느 세월에 버선볼을 대고 앉아서 강태공이 시절을 낚듯, 한 바늘 한 바늘 올을 뜨고 앉았겠는가. 후딱 나일론 버선이나 한 켤레 사 신으면 일 년을 신어도 헤지지 않을 것을.

지금 세상에 시집온 새 며느리에게 사흘 아니라 한 달 후에라도 버선감을 내놓는 시어머니가 있다면 아마도 그 마나님 어지간히 심통스럽거나 시대착오에 빠진 노인이라고 면박이나 받기 알맞을 것이다.

명주 한 필을 꺼내놓고 시아버님의 바지 저고리를 지어 바치라고 한다면 그 시집 못살겠다고 뛰쳐 나와도 지당하고 지당할 뿐 아무도 그 며느리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사실 시어머니가 더러워진 동정을 손수 갈아 달고 앉았어도 선뜻 그것을 받아 달아드릴 수 있는 새 각시가 몇이나 될까.

현대는 바쁘고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여성에게도 가사 뿐이 아니라 많은 사회적인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동창회, 자모회, 부인회, 계회, 교양 강습회, 취미생활….

어느 겨를에 서툰 바느질을 익혀 귀여운 아들 딸의 옷을 지어 입히며 시부모님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삯을 절약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을 이용해서 책이라도 한 페이지 더 읽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사실 그것은 일면 옳은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옳다고 믿으면서도 뭔지 가슴 한 구석이 비는 것을 느낀다. 어딘가 잘못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의 시아버님이 내가 장롱 밑에서 명주옷 한 벌을 꺼내 드렸더니 한쪽으로 밀어 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던 것을 기억한다.

“그건 네 어머니(돌아가신 시어머님)가 지어놓은 마지막 옷이다. 그냥 넣어 두어라.”

여자의 바느질은 바로 그 정 情이다. 가족의 가슴을 서로 이어주고,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추모로 서로의 마음을 읽어놓는 사랑의 가교 架橋다.

내 손이 가지 않는 곳에 마음이 갈 수 없고 내 정성이 닿지 않는 곳에 사랑이 미칠 수 없다.

시장에서 사다 입힌 치마 저고리와 엄마가 손수 지어 입힌 치마 저고리의 차는 눈으로는 잴 수 없는 정신의 무게, 사랑과 정의 무게의 차다.

요즘 세상에도 딸의 함 속에 반드시 서툰 솜씨나마 손수 지은 옷 한 벌을 넣어 보내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사랑의 표지 標識 일 뿐더러 살아가는 도정 道程의 무형의 빛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웠던 회상, 보이지 않는 그림처럼 다사로운 한 폭의 풍속도, 옥색 반회장 저고리에 남치마를 입으시고 백통 화로에 인두 꽂아놓고 바느질하시던 내 어머님의 기억은 지금도 메마른 내 마음을 단비처럼 적셔 준다.

오늘처럼 삭막한 기계문명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정서를 보호하며 스스로 실격되어가는 여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잇는 길은 여성이 스스로 던져버린 바늘을 다시 찾아잡는 재출발, 재발견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정밀 靜謐 한 침선 針線의 삼매경 三昧境 속에 잊었던 자기를 다시 찾는 재인식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물질화 해가는 사랑의 회복이며 곧 상실해가는 인간회복의 길이기도 하리라 믿는다.

 

 

 

사라져가는 선물의 기쁨

 

어느 의미에서건 선물이란 즐겁고 따스한 것이다. 한 켤레 장갑이나 한 장의 머플러 아니면 손수건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주는 이의 고운 정과 진심이 깃들인 것이고 보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보석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기실 한 켤레의 양말을 머리맡에 걸어놓고 밤사이 찾아올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은 비단 그들 분만의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말 속에 들어있는 장난감이나 과장봉지를 보고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아이들 못지 않게 어른들도 선물을 끄르는 그 순간만은 동심으로 돌아가 아낌 없는 환성을 올리는 것이다.

선물이란 언제 어디서나 가장 가까운 사랑의 가교이며 진심의 전달이다. 먼 곳에 있는 친구에게 또는 스승이나 선배에게 띠우는 정성어린 물건은 설명 없이 애정과 경의를 단적으로 표시하는 길이며, 따라서 서로의 이해와 친밀을 급속도로 배가하는 사랑의 전령이 아닐 수 없다.

기실 어린 날 받은 그 원색의 장난감 하나가 먼 훗날까지도 우리들 마음을 따스하게 불 붙여 주는 불망의 추억이 되는 것도 그 선물 속에 담겨진 아롱진 정의 메아리 때문이 아닌가.

이렇듯 아름다웠던 선물의 이미지가 요즘에 와서 뭔가 조금씩 흐려지고 잘못 인식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주는 이의 정성이나 애정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는 썰렁한 상품권, 거짓말같이 포장만 큰 빈 상자. 형식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물품들, 그런가 하며 받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지나친 허례허식으로 즐거워야 할 선물이 고통스런 일거리로 변하고 무거운 채무가 되어, 주고 받은 이의 심정을 즐거움이나 동심의 환희와는 거리가 먼 고통스런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선물을 받은 이의 마음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기왕이면 값진 것, 화려한 것을 바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으나 주는 이의 정을 물건값에 비례하여 측정하려고 한다. 그래서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정서적인 것보다는 현금적인 것을 좋아한다. 기실 우리 주변에서 선물은 어느덧 그 본래 지닌 아기자기한 재미나 꿈을 잃고 삭막한 황금만능의 현금주의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선물은 기실 주는 기쁨에 앞서 우선 무엇을 줄까 생각하고 장만하는 즐거움이 여간 큰 것이 아니다. 주고 싶은 사람에게 곡 알맞는 것, 특색있고 인상적인 것을 발견해 내는 일이 사실은 더 즐거운 일이다. 시간과 재주만 있으면 손수 만들어 보내는 기쁨 또한 적지 않으며 그런 경우 받는 사람의 감동은 한층 더 클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부인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예쁜 색 털실을 사들여 손수 작은 물건들을 뜨는 것이다. 장갑, 양말, 지갑, 덧버선, 꽃병받침, 심지어 도장집에 허리띠까지 각양각색의 것을 뜨는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은 이른 봄부터 시작하여 매실주, 두견주, 포도주, 국화주에 탱자 유자차 등을 준비하여 이맘 때면 고운 유리병이나 사기그릇에 담아 보내는 것을 보기도 했다.

기실 선물이란 크고 호사스런 것이라야 오래 기억되고 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고 소박한 것일망정 주는 이의 정성과 애정이 구석구석 느껴질 때 그것은 값비싼 보석에 비할 바 없이 커다란 감동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紫水晶 후련한 보라빛 속에

 

“…..또 그가 좋아하던 보라빛 수정 십자가, 흘러간 어느해 여름 그가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동안 저녁마다 목에 걸기도 하였던 그 보라빛 수정 십자가….”

“….. 제로옴! 여기 이 보라빛 수정 십자가, 이 조그마한 십자가를 언젠가는 제로옴의 어린 딸에게 내 기념으로 달아 주어요…. 오! 물론 그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게….”

이러한 글귀들이 지금도 가슴에 고여오는 지이드의 <좁은 문>.

외딴 곳 쓸쓸한 요양원에서 마지막 숨져가면서 그 보라빛 수정 십자가를 목에 걸어 주기 원했던 알리싸, 알리싸는 내 사춘기에 심어준 신비의 여인상이었다.

그 감정의 극치, 애련의 오묘 오묘 를 열 다섯 소녀가 어찌 헤아릴 길 있었으랴 만, 그때에 받았던 명작의 감명은 지금도 단편적이나마 색깔 짙게 떠오르곤 한다.

다이아, 진주, 비취, 옥, 자마노, 산호 등등, 허다한 보석들을 두고 하필 자수정이랴 하겠지만, 이 값없는 돌에 고인 내 연한 향수가 아직도 그 어린 시절에 흐느껴지던 신비스런 비련의 깊은 감동을 잠잠히 불러 일으켜 주어 나는 곧잘 그 진보라 자수정 반지로 내 가난한 장식의 으뜸을 삼곤 한다.

진주처럼 탁하지 않고 투명하되 다이아처럼 차지 않은, 마치 속에서 불붙어 오르는 듯한 신비스러움. 엷고 진한 보라빛의 수많은 면 面들이 서로 부딪치며 어울리며 눈부시게 반사하면서 피어 오르는 황홀함은 그대로 신비의 숲이라고나 할까…

가만히 들여다 보면 흡사 “어느 고귀한 부인의 남몰래 숨겨온 사랑의 결정 같기도 하고 밤마다 펼쳐지는 제왕의 영화로운 궁전 같기도 한” 진하고 비밀스러운 보라빛 속 바다. 그 깊고 화려하고 처염한 빛은 아무래도 슬픈 비련의 공주를 연상하게만 한다.

들에 핀 백합 百合은 너무 순결하여 멀기만 하고 장미의 요염은 지나치게 농밀하여 피곤하기만 한다. 차라리 이름 없는 초화 草花 에 정을 부치듯 나는 멀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자수정 후련한 보라빛 속에 마음을 달랜다.

내 인생의 흔하지 않은 축일 祝日, 그리고 이를 바 없이 허전한 날엔 아끼는 자수정 반지를 하얀 소복 아니면 엷은 보라빛 의상에만 한해서 받쳐 끼기로 한다.

 

 

 

한 줌의 흙, 한 켤레 바가지

 

어느 날 아파트에 사는 친구의 집에 들르게 되었다. 단 네 식구 뿐인 단출한 가족으로선 너무 클 정도로 넓직넓직한 공간들이 솜씨있게 잘 꾸며진 쾌적한 저택이었다.

나는 잠시 호기심과 선망에 차서 방과 거실, 부엌과 식당 등을 두루 살펴 보았다.

온갖 시설을 갖춘 부엌, 부엌에 잇단 깨끗한 식당, 식당에 인접한 넓직한 거실, 그리고 아늑하게 꾸며진 침실들, 그것은 주부라면 누구든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포근함과 편리함이 구석구석 깃든 최신 현대주택이었다.

적지 아니 재래식 생활의 부자유와 불편에 시달려 온 나로선 어쩐지 그 생활이 신선놀음같이 부럽기만 하여 언제까지나 일어날 줄을 모르고 앉아 있었다.

차를 마시고 사진첩을 뒤적이고 지껄이고 하는 사이 어느덧 해가 뉘엿거리는 저녁이 되었다.

그런데 그 사이 나는 두 번 세 번 배니션 블라인드 커튼이 내려쳐진 창을 나도 모르게 활짝 열어 젖히곤 하였다. 그리고 서너 시간쯤 지나자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는 답답함에 그만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바깥도 역시 좁다란 복도가 기다랗게 뻗어나간 단단한 시멘트 바닥이었다.

잿빛 시멘트 난간 아래로 가맣게 내려다 뵈는 수십 미터 밑으로 지상, 그 별천지 같은 지상을 내려다 보면서, 나는 왜 내가 좀 전에 그 방안에서 그처럼 두 번 세 번 나도 모르게 창을 열어 젖혔던가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것 같았다.

한 줌의 흙, 어디서도 한 줌의 흙을 밟아볼 수 없는 그 질식감이었다. 사방 콩크리이트로 다져진 완전한 단절,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는 절벽같은 숨막힘이 나도 모르게 두 번 세 번 창을 열어 젖히는 무의식적인 행위를 반복하게 했던 것이다.

나는 새삼 황폐하게 버려둔 채 돌보지 않는 몇 평의 뜰일망정 흙이 있는 내 집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밟을 수 있고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흙, 흙이 있어 언제나 넉넉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것을.

촉촉히 젖어 발에 묻을 듯 옮겨져 오는 흙의 다사로운 촉감, 향긋한 냄새 흙으로 하여, 내 좁은 누옥은 가슴이 틔는 듯 시원한 것을.

흙의 사멸은 비단 고층 빌딩 아파트에서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일반 개인의 저택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견고하고 우람한 철근 콘크리이트 집을 짓고 땅은 모조리 돌을 덮거나 시멘트로 포장해 버린다. 흙은 완전히 추방되고 콘크리이트 석판 밑에서 사멸되고 만다. 그것이 현대의 저택이다.

어느 구석에서도 잡초 한 뿌리 돋아날 수 없는 견고한 봉쇄, 완전히 계획된 화단, 그 규격품같이 정돈된 좁은 화단엔 세련되고 멋진 서양의 꽃들이 귀부인처럼 하늘거린다. 우리의 순박한 꽃, 봉선화며 맨드라미, 분꽃, 금잔화 같은 옛 꽃은 찾아볼 길이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도시에서 사라진 흙 뿐이 아니라 흙과 더불어 아름다웠던 우리의 동심이며, 동심에 수놓던 옛 풍속이다.

 여름 밤 손톱마다 봉선화 꽃물 들이던 유년의 꿈이며, 초가지붕에 하얗게 피어나던 저녁 박꽃, 주렁주렁 열리던 연녹색 박덩이리, 담장을 타고 오르던 수세미덩굴이며 나팔꽃 줄기, 모두다 사라진 한 폭의 그림이다.

명주 삼팔 고이 빨아 홍두깨에 올리던 어머님의 다듬이 소리도, 안동포치마 적삼 서걱이던 풀바람 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다. 깔깔이 블라우스에 코오롱 양단, 캐시미어 이불에 스폰지 베개, 누구도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기에는 쏟아지는 새 문명이 너무도 희한하고 황홀하여 정신을 잃고 있다.

알록달록 색깔도 영롱한 플라스틱 물바가지를 놓고 누가 그 옛날 무겁고 투박하던 박덩어리를 그리워하겠는가.

온 봄, 온 여름 햇빛 골라가며 키우고 따서 긁어내고, 삶고, 닥달하여 간신히 몇 켤레의 바가지를 얻던 그 힘들고 고달픈 작업을 누가 다시 되풀이하겠는가. 빨아서 풀 먹이고, 다듬어서 다려야 하는 모시, 베, 옥양목을 누가 이 바쁜 세상에 만지고 앉았겠는가.

사람들은 훌훌 모든 것을 던져버렸다. 바느질도 다듬이질도 던져버리고 비가 오면 질컥거리는 흙마당도 시멘트로 완전히 덮어버리고, 봉선화 꽃물 대신에 매니큐어를 했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스테인레스 밥그릇을 절렁거리며 미련 없이 전통과 풍속과 소박한 인정을 내던져 버렸다.

일년에 몇 번 축일이나 명절이면 함지박 하나 가득히 꺼내놓은 놋그릇, 기왓장을 빻아서 채에 치고 또 쳐서 곱게 만든 가루를 짚수세미에 묻혀 하나하나 정성 들여 닦아내고, 다시 간장으로 문질러 두 벌 세 벌 맑은 물에 헹구어내던 그 놋그릇의 찬란한 황금빛 광채를 지금 누가 기억하고 있을까.

또 그 새로 닦은 놋그릇에 담아 먹던 여주 이천 햅쌀밥 맛을, 황홀하던 밥맛을 누가 지금 기억하고 있을까.

한산 세모시, 쥐면 부서질 듯 잠자리 날개 같은 모시 한 필을 서리서리 풀먹여 만지시며 쟁치시던 우리네 어머님의 솜씨며, 옥새치마 흰 적삼, 손수 곱솔로 박아 지어 입으시고 날아갈 듯 나서시던 그분들의 모습을 또 누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가.

한 여름을 가꾸신 수세미며 바가지를 꾸러미꾸러미 엮어 주시던 할머님의 인정도 이젠 저승에 가서나 찾아볼 수 밖에 없다. 모두가 그분들, 지나간 옛 분들이 남겨주신 정신의 유산이며 아름다운 풍속이었다.

하면,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을까. 쓰다 남은 플라스틱 함지박에 스테인레스 밥그릇, 미싱자수로 수놓은 데트론 베갯잇에 스폰지 방석, 고작 그런 것 밖에는 줄 것이 없다.

전통도, 애정도, 풍속의 아름다움도 없는 것들, 죽은 사자 死者들처럼 누워있는 건조하고 획일적인 현대문명의 삭막한 상품들, 그 곳에 무슨 인정의 따사함이나 정성스런 수고가 깃들어 있는가.

그 전날 한 짝의 바가지를 깨지면 꿰매 쓰고 아껴썼던 것은, 그것을 가꾸기에 힘들었던 봄 여름의 고달픈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진 옷 한 벌을 버리지 못하고 아쉬워한 것도 손수 밤을 새워 곱솔로 박고 감치고 공글렀던 침선 針線 의 노고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물건들을 누가 그토록 꿰매 쓰고 아껴 쓰며 아쉬워한단 말인가.

기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자연이나 풍속이 아니라 그 속에 이어진 정신의 유산, 전통의 무게, 바로 그것이다.

몇 해를 사랑한 한 쌍의 아름다운 연인이 있었다. 그런데 한쪽 부모가 다른쪽 집이 가난하다 하여 결혼에 반대했다. 그리고 어느 부호의 집안과의 결혼을 종용했다.

본인인 당사자도 선선히 연인을 버리고 부호의 집안과 결혼해 버렸다.

사랑도 이왕이면 실용적이고 화려한 플라스틱 제품을 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자기 안에 메꿀 수 없는 구멍을 뚫어가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가스실 室 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부조리를 주저 없이 범하는 것이다.

진실로 현대가 잃어가는 것은 인간 그 자신이다.

 

 

 

아주 작은 일

 

수필가 L 여사가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지난 여름 한 때, 이상하게 비를 맞고 돌아다니는 것이 즐거웠어요. 마치 20년도 더 전의 여학생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말이에요. 아무래도 그런 기분의 변화가 이상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그랬더니 글쎄 아주 어이 없이 작은 일이었어요. 뭔 줄 아세요? 머리를 미장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비를 맞을 수 있었던 탓이에요….”

하며 깔깔 웃어대는 것이었다.

기실 마음 놓고 비를 맞을 수 있는 머리, 아무리 비에 젖어도 풀어질까 염려할 필요가 없었던 머리, 그 조그마한 일이 그처럼 천진한 기쁨을 자아내게 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 여인이 영화관에 갔었다. 슬픈 영화였었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연상되어 문득 마음껏 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울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을 손수건 끝으로 꼭꼭 찍어내면서 여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무엇이 이처럼 순수한 감정의 발로 發露를 가로막으며 불편하게 행동을 제약하는가, 자연스런 행위를 억제해야만 하는 거치장스런 방해물이 무엇일까 하고.

여자는 이내 자신의 눈에 생각이 미쳤다. 그녀의 눈은 푸른 아이새도우와 기다란 인조 속눈썹으로 꼼짝 없이 갇혀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마침내 인조 속눈썹을 와락 뜯어 버리고 아이새도우도 박박 지워버린 후 실컷 마음 놓고 울었다는 것이다.

기실 이런 이야기들을 어쩌면 과장된 비유나 희화 희화 정도로 웃어 버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일상생활에 차분한 눈길을 돌려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두 번은 이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에게 어떤 제약을 가하고는 그 제약 속에 괴로워하며 갈등한다. 미장원에 가서 곱게 빗은 머리, 아이새도우를 칠하고 긴 인조 속눈썹을 붙인 아름다운 눈, 이런 것들이 실은 자기 자신에게 짊어 지우고 있는 질곡이며 제약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세속적인 상식과 형식에 자신을 스스로 매어놓고 벗어나지 못하여 애쓴다. 갖가지 욕망의 노예가 되어 꼼짝 없이 갇히는 조롱 안의 새가 된다. 그리하여 내리는 비에 마음 놓고 머리를 젖게 할 수 있는 기쁨도, 슬플 때 거리낌 없이 울 수 있는 자유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기실 인간의 기쁨은 아무것도 아닌 지극히 작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뜻밖에 직장으로부터 얻은 며칠의 휴가, 아이들이 받아온 좋은 성적표, 먼 친구로부터 날아온 한 장의 엽서, 시장 길에서 사온 한 묶음의 꽃, 그리고 어쩌다 만나는 친구와 허물 없이 나누는 한 잔의 차와 담소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기실 하찮을 만큼 아주 작은 일들이건만 우리는 충분히 즐겁고 그것으로 인해 갑자기 마음 속에 불이 켜지는 듯한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 놓고 내리는 비에 머리를 젖게 할 수 잇는 그 조그마한 해방감이나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자유, 그런 것들이 모두 자신을 속박하는 것들에서 스스로 풀어낸 자유며 자기 해방의 기쁨인 것이다. 자신의 질곡에서 풀어내는 자유로운 초월, 그것은 어쩌면 자기가 자기 이외의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단지 자기 자신의 내면과 혼자서 마주 서보는 자기 발견 자기 인식의 기쁨이며 놀라움인지도 모른다.

진실로 내가 나로 돌아가는 행위, 그곳엔 아무런 속박도 구속도 있을 수 없다. 외계의 사상 事像도 타인의 시선도 미치지 못한다. 내가 나에게서 자유스러워질 때 나는 비로소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나는 마치 빈 고궁의 가을 뜰을 혼자서 걷는 하오의 정밀한 한 때와도 같은 충만한 적막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기쁨은 꽃씨 같은 것이어서 스스로를 죽여야만 꽃을 피우는 것이다.

 

 

 

女性 失格

 

에와의 나뭇잎에 서린 ‘여자’

‘태초에 말씀이 있었나니’

말씀은 이성 理性 이라던가,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며, 일월성신이 제자리를 돌아야 하는 우주의 질서.

바로 그 질서의 운동이 말씀의 이성이었다면 그러한 일련의 질서 속에서 이마에 땀 흘려야 했던 아담의 노동과, 생산의 아픔을 안아야 했던 에와의 고통은 또 하나 인간 질서의 구현이었으리라.

누구의 그림이던가, 나뭇잎으로 치부 恥部를 가리던 에와의 손길과, 실낙원을 쫓겨나는 아담의 이마의 구슬땀을 참으로 신선한 놀라움으로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나뭇잎, 에와가 치부를 가리던 최초의 나뭇잎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부끄러움을 깨닫는 여자의 몸짓, 그 순수한 몸짓 속에 스스로를 다스리며 남과 나를 분별하고 의식하는 빛나는 인식, 그것은 비로소 자기를 깨닫는 내적 질서의 발견이 아니었을까.

기실 에와가 가리던 치부의 나뭇잎은 최초로 여성을 질서 지워준 여성다움, 곧 수치심의 표현이었으리라. 아련하게 푸르른 사과잎 속에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본능적인 지혜의 아픔.

그 겸허하고 은밀하고 민감한 여자의 생태를 최초로 마련하시고 눈뜨게 하신 신 神 의 말씀 [理性], 오묘한 우주의 이성을 새삼 생각해 본다.

사실 요즘처럼 여성이 화려한 시대가 과거 어느 시대에 또 있었을까. 거리를 걷다 보면 진실로 현란한 의상 衣裳의 물결에 휩쓸리는 조각배처럼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 옛날, 발가벗고 뛰놀았다는 에덴의 동산인들 이보다 더 화려했으랴. 환히 속살이 내비치는 노슈미즈, 노브래지어, 초미니 스커트에 핫팬츠, 노슬리브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부분을 가리고 효과적으로 육체의 전시를 할 수 있을까 골몰하는 것 같은 물결의 대열.

어쩌면 이런 노출에의 충동은 태초로 향하는 회귀 回歸 를 꿈꾸는 원시향수 原始鄕愁의 발로 發露 일까.

그러나 최초의 여인 에와에게는 자신을 질서짓는 수치심이 있었다.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리던 그 지혜의 발견이.

헌데 오늘날의 에와들은 어떻게 하며 그 수치심을 벗어 던질 수 있는가 하는 일에 보다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고전적 古典的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여성은 모름지기 전원 일단 여성 실격자임을 자인해야 할 것 같다. 여성에게 술과 담배, 그 밖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는 이미 오래다. 또 사실 그러한 음주의 자유, 웅변의 자유, 이혼의 자유, 참정의 자유, 기타 등등의 행동을 제약함으로써 여성의 여성다움을 찾으려는 시대착오적 사고방식도 우리는 갖지 않는다.

하면 여성의 여성다움이란 오직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리던 에와의 그 신선한 몸짓와 감성에서 밖에는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매사에 신중하며 한 발 뒤에 처지는 겸손스러움, 멈칫 놀라듯 자신을 돌아보는 섬세한 눈길, 은근한 마음씨에 여성다움은 집약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의 유명한 발레리나 이사도라 단칸은 극작가 버나드 쇼오를 사랑했다는 말이 있다.

그녀는 쇼오에게 어느날,

“나의 육체와 당신의 두뇌를 물려받은 아기란 얼마나 굉장할까요”

라고 심히 유혹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사랑의 고백을 했다. 그러자 여기에 대한 쇼오의 대답이 매우 신랄했다.

“반대로 소생의 육체와 당신의 두뇌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불행할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실 예나 지금이나 여자의 부끄러움 없는 언사나 유들유들한 몸가짐은 매력을 상실할 뿐더러 보다 더 역겨운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간혹 그 실격 失格이란 단어가 이상하게 다정하고 친근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예컨대 한 점 흠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갖춘 마네킹 같은 여성 앞에 섰을 때 나는 차라리, 실격한 여성이 주는 그 느긋한 인간미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 역시 규격 미달의 실격자이기 때문에 완전무결한 여성 앞에 서면 까닭 없이 위축되고 숨이 막히고 초라해져서 못 견디기 때문인지 모른다.

진실로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평형 平衡 의 균형 속에 여성의 여성다움은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 앞에 눈물 글썽이며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모습 속에 여성다움이 있고, 세상 끝까지 맨발로 따라가고, 긴 밤을 기다려 뉘우침 없는 믿음 속에 또한 여성다움이 있다.

진실로 여성의 여성다움은 모성적 母性的 인 넓고 깊은 품위 品位 속에서만 가장 방순 芳醇 하게 꽃피는 것이다.

여자를 여자다웁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눈뜸과 희생의 헌신과 기다림의 침묵 그것 뿐이다.

 

 

 

그 半身의 이름은

 

아담,

태초에 야훼가 만든 세상의 주인, 그는 에와 없는 낙원 樂園보다 에와와 더불어 있는 실락원 失樂園을 택하였다.

하여 스스로 금단의 열매를 먹고 에와를 따랐다.

 

그로부터 분홍빛 꽃을 피우는 에와의 화원을 지키기 위해 푸른 가지 우람한 교목 喬木 이 되었고, 에와는 그 가지 안에 비를 긋는 화목 花木이 되었다.

– 에피그라프 –

 

남자의 희열은 정복하는데 있고 여자의 희열은 그것을 받아 음미하는데 있다.

하여 여자에게 선수를 빼앗겼을 때 남자는 모욕을 느낀다. 사랑의 고백을 먼저 하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 있던가.

 

남자는 성급하여 기다릴 줄 모르며 대체로 어리석고 기교에 둔하다.

하여 감상적인 여자를 번번이 실망시킨다.

 

남자는 순간에 더워지고 순간에 식는다. 여자보다 빨리 잊어버리고 수비게 용서한다.

그들이 여자보다 도량이 넓은 것은 관대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잊어버리고 마음속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는 본능적인 욕망에 있어선 여자보다 훨씬 약하지만 생각하는 사려 思慮에 있어선 훨씬 강하다. 하여 그들은 여자에게 마음속까지 주는 법이 없다.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여자보다 잘 감출 수 있으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비밀을 갖는다.

 

여자는 남자의 사상과 인격을 사랑[존경]하지만, 남자는 여자가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건 간에 여자 그 자체를 사랑한다.

여자에게 있어서 남자는 장식물이고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애완물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권태로울 때 옷을 갈아입고 머리모양을 바꾸지만, 남자는 권태로울 때 장난감을 사듯 여자를 산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획득하고 그것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항상 여자보다 잘나려고 애쓰고 또 잘난 척한다.

 

남자는 이따금 어린애처럼 약해지고 고아처럼 외로워진다.

그래서 여자 속에 모성을 찾고, 그 모성 안에 휴식하기 원한다. 그리고 양처럼 유순해 진다.

 

남자는 현실적이고 여자는 몽상적이다.

하여 남자는 선물을 살 때 여자의 의복을 사고, 여자는 남자의 장식품을 산다.

 

남자는 여자의 용모를 사랑한다. 그러나 결혼에 있어선 보다 많이 여자의 성격과 품행을 생각한다.

하여 상냥한 마음씨, 건강한 육체 단정한 품행, 그것은 모든 남자가 결혼을 원하는 여자에게 바라는 조건이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말로써 영원을 약속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침묵으로써 영원을 약속한다.

 

하여 남자는 여자에게 말 밖에 주는 것이 없고 여자는 말이 없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사랑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비롯한다.

 

남자가 배신했을 때 여자는 용서하면서도 잊어버리지 못한다.

여자가 배신했을 때 남자는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잊어버린다.

그것은 여자가 최초의 헌신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고 남자는 아무것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쉽게 쓰러지지만 또 수비게 일어서기도 한다. 그것은 여자가 대가 약한 초화 草花 인데 비해 남자는 줄기 굵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순응성이 약하며 난관에 직면하면 대처럼 휘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다. 그들은 전인격으로 저항하여 싸우기 때문이다.

 

여자를 지탱하는 지주 支柱는 사랑 뿐인데 비해 남자를 지탱하는 지주는 명예와 사랑 두 길이다.

 

명예는 그들을 사회적 영웅적인 행위로 몰아가고, 사랑은 그들을 정복으로 몰고 간다.

남자에게 있어 사랑이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양귀비는 당태종을 움직이었고, 클레오파트라는 시이저를 만들었다. 남자의 의욕, 남자의 창조력은 여자의 불길에 의해 타오른다.

 

여자의 신비스러움, 여자의 우아함은 샘물처럼 남자의 가슴에 생명을 솟게 한다.

하여 여자가 새벽별처럼 다정하고 상냥하게 빛나고 있는 한,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한 남자는 한 여자를 얻어 비로소 두 발로 서는 전인 全人이 된다.

 

아담,

그는 에와를 따라 스스로 실락원으로 온 지상의 미아 [迷兒-未兒] 다.

 

 

 

男性, 그 벼랑 같은 威嚴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의 사전학자 토머스 쿠퍼는 8年이나 걸쳐서 대사전 자료를 수집했다.

히스테리인 그의 아내는 그가 외출한 사이에 자료노트를 몽땅 난로 속에 던져 불태워버렸다.

돌아와 이것을 안 쿠퍼는 대경실색하여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

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내가 했어요. 당신이 이 일에 너무 지쳐서 죽어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요…..”

어쩌구 하면서 시치미를 뗐다.

쿠퍼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아마도 당장 아내를 두들겨 내쫓았거나 아니면 분이 풀리도록 욕을 퍼부었거나 했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남편이 하는 일을 이해하고 내조하지 못하는 아내에겐 그만한 형벌이나 제재쯤은 지당하고도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어 있으니 말이다.

허나 쿠퍼는 몇 번인가 긴 한숨을 내쉬고는 한 마디

“당신은 아주 완전히 나를 골탕 먹였구려!”

라고 했을 뿐이란다.

물론 그는 그 후 다시 8년이나 걸려서 마침내 3만 3천 어의 대사전을 편찬하기에 이르렀지만 실로 놀라운 것은 쿠퍼의 그 관용과 여유다.

기실 그것은 남편으로서의 아량이었을까? 아니면 그 인간이 지닌 지성적인 인격이었을까?

하여간 한국의 학자 남편들은 그런 걱정까지는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그의 아내들은 남편의 귀중한 연구자료를 불태워버릴 만큼 용맹스럽지도 못할 뿐더러 남편의 애정, 아니 관용에 대해 자신만만하지도 못하니 말이다.

좀 극단의 예이긴 하지만 심야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있다 하자.

직장을 가진 아내에게 은근히 호의를 품은 어떤 남자로부터의 전화였다.

수화기를 들고 있던 남편은 말없이 옆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건네준다.

수화기를 받아 든 아내는 좀 당황하고 남편은 잠잠히 돌아 눕는다.

이것은 마치 무슨 영화 장면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이럴 때의 남편의 등은 아마도 높은 벼랑처럼 위엄으로 가득 차 볼일 것이다.

기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꿈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남편이 한 인간으로서 추하게 발가벗은 모습을 보기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은 웬만큼 오만하고 고고함이 좋다. 좀 이상주의자이고 매사에 초연해 줄 것이며…

대체로 남편에게서 남자답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몇 가지 근사한 경우….

우선 아침에 집을 나갈 때 하숙비 치르듯 쌀값, 연탄값, 콩나물값, 어쩌구 하는 식으로 주판 놓 듯 깐죽깐죽 계산해서 지불하고 나가는 남편 – 지금 세상에 그런 남편이 어디 있느냐고 호통칠 것 같아 송구스럽긴 하지만 세상은 넓은 것이어서 우리가 모르는 구석에 아직도 이런 전세대적 남편들의 잔재가 남아 있을지 누가 아는가–.

이것은 확실히 남편이 남자로서의 위력을 과시하는 순간이라 하겠다. 이런 남편일수록 밤이면 코로 밭을 갈며 돌아와 풀어진 눈으로 천하를 혼자 경륜하듯 기고만장한다.

또 있다. 평소엔 큰 기침 한 마디 없던 사람이 월급날이면 일부러 느지막이 아내의 애를 태우며 걸음걸이도 사납게 이마에 필자를 그리며 들어서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아내도 이날만은 고양이만큼 민감해져서 눈치에 빠르고, 싹싹하니 연한배처럼 ‘서비스’ 정신도 앙양된다.

이것은 남편이 남자다움을(?) 과시할 때 아내는 별 수 없이 여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남자답다는 것은 오직 황금의 위력을 빌릴 때 뿐이라고 야유한것 같아 심히 미안하다.

하면 이런 경우는 또 어떨까? 즉 어쩌다 부부는 싸우게 마련이다. 싸우는데 여자는 빠르고 청산유수같이 쏟아낸다. 남자는 두 마디에 한 마디도 받아 넘길 재간이 없다.

마침내 울컥 터지며 폭력이 나온다. 거울조각이 나르고 재떨이가 던져지고 유리가 깨지고…. 이쯤 되면 남편으로서의 남성을 유감 없이 십 이분으로 발휘한 셈이다.

또 한 가지 이렇게 싸우고 나서 몇 날이건 몇 밤이건 술에 만취하고 집을 비우고 하면서 절대로 먼저 아내에게 화해의 말을 붙이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완전한 승리자일 것이다.

적어도 아내에게 먼저 피곤하고 기진맥진하여 슬픈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한 점에서 그는 제왕보다 위대한 남성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남성을 영웅처럼 숭배할 것이다. 남자의 자존심이 여자를 굴복시키는데 최대의 가치와 희열을 발견하는 남편들 만세!

객담은 그만하고 끝으로 영국왕 헨리 4세의 일화 한 토막을 들어보자. 헨리 4세는 당시 사회의 부인들이 점점 사치에 물들어감을 걱정하여 이를 막기 위해 의복에 일체의 장신구 황금과 보석을 다는 것을 금하는 절검령 節儉令 을 공포했다.

그러나 좀체로 잘 실행되지 않아 부칙으로 단서 하나를 덧붙였다. 즉 매춘부나 소매치기만은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효과는 단번에 나타나 다음날부터 런던거리에서 모든 화려한 장식과 보석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맞이한 왕비가 어느 날 마치 쇼윈도처럼 요란하게 보석을 장식하고 궁정에 나타났다.

이튿날로 그 법령은 즉각 폐지되고 말았다니 헨리 4세는 어지간히 여자에게 약하고 어리석은(?) 왕이었나 보다.

 

 

 

영웅 호걸, 아담이여

 

옛날의 신화학자는 아담을 흙으로 빚어 놓았었다. 얼마큼 근원적인 남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다시 신화를 쓴다면 결코 남자를 흙으로 빚어놓지는 않으리라. 아마도 그는 바람이나 구름 같은 것으로 남성을 빚어야 하리라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처럼 바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니 바람같이 뜨는 것을 좋아한다. 주머니 안에 가득히 바람을 잡아넣고, 있는 대로 부풀리어 둥둥 하늘에 떠오르는 허풍선 – 가볍고 화려하고 허황되고 그러면서 만천하의 눈길을 끄는 허세 虛勢의 애드벌룬, 그 애드벌룬이 좋아 그들은 자신이 서슴없이 허풍선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확천금의 기염을 토하고 일국을 경륜하는 대정치가가 되고, 당대의 문장이 되고, 일세를 풍미 風味하는 영웅호걸이 된다. 모르는 것 빼놓곤 다 알며, 안 한 것 제회하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허풍을 떤다.

명성과 부귀와 권세를 꿈꾸며 항상 얼마큼씩 미쳐 있고 매사에 환상적이며 자기 도취에 빠져있다. 그러한 몽환에 빠져들기 위해 가장 편리한 것이 술이며 그래서 그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술을 마신다. 그리고 술에 젖어 술에 묻힌다. 그 속에서 고루거각을 짓고 영웅호걸이 되고 천군만마를 질타한다. 실로 죄 없고 철 없는 동화 속의 왕자가 되는 것이다.

또 그들의 욕망은 불기둥 같고 산줄기 같아 그 관철을 위해선 불도우저 같이 완강하고 비둘기같이 세심하며 네로 같이 잔인하다.

한 여자를 정복하는데 있어서도 뱀같이 집요하고 고양이같이 날렵하며 독수리같이 표한 剽悍 하다. 그래서 지칠 줄 모르는 공격과 애소 哀訴 와 계략을 시도한다. 그것은 사랑이기보다는 정복이고 진실이기보다는 욕망이다. 하여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그들은 사랑의 기쁨보다는 정복의 기쁨, 승리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태도는 표변하여 충직하던 기사도 정신도 지성스럽던 사랑의 표시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성급한 신경질과 심통스런 오만이 그림자처럼 얼굴을 내민다. 그들은 현금처럼 시세 時勢에 밝은 상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약속은 금고가 빈 도산 도산 은행의 수표처럼 허전하다. 대개는 언제 지불될지 모르는 어음이며 쓸모 없는 부도수표다. 그들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미끼를 삼기 위해 남발하는 것이다. 약속을 하고 있는 동안만은 자신의 위치를 안전하고 의젓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약속이 마음 약한 여자에게 주는 기막힌 효과를 적절히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지극히 이기적이며 오만하고 난폭하다. 여자의 조그마한 잘못에도 인색할 만큼 옹졸하고 격분하면서, 자시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잘못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것인 양 합리화한다. 아니 합리화하기를 강요한다.

하여 여자가 그것을 수긍하지 않고 반발할 때 그들은 주저 없이 실력을 행사한다. 주먹을 휘두르고 폭행을 한다. 폭음과 욕설로 위협한다. 심통을 부리고 게정을 떨며 괴롭힌다. 실로 어린애보다도 처리하기 힘든 아집과 강압, 오만과 편견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다.

때로 그들은 또 입신출세를 위해선 염치도 의로도 없는 소인이 된다. 그런 때 그들은 상후하박 上厚下薄 하는 졸장부로 전락하여 강자 앞에서 비굴하고 약자 앞에선 까닭 없이 도도하고 위압적이 된다.

그들의 기분은 한난계보다 변덕스럽다. 조그마한 일에도 갑자기 흥분하고, 심히 충동적이어서 감정을 폭발함이 여자보다 더 격하고 단순하다. 또한 그들의 분별력은 그들의 충동적인 폭발을 억제할 만큼 든든하지 못하다. 때문에 감정적인 여자에 비해 충동적인 남자가 더 자제력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또 때로 염치도 경우도 없는 짓을 태연히 해치운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타이프라이터를 사러 나갔다. 2만 5천원이지만 2만 3천 원만 내라는 중고품 소형 하나를 3천 원마저 없애고 2만 원만 하자고 흥정을 하고 있는데 웬, 이마가 번듯하게 생긴 신사 하나가 다가오더니 가게주인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얼마 후 나온 주인은 태도가 돌변하여 2만 3천 원에도 안 팔테니 더 말 말고 가라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하여 이유를 따지고 드니 다른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이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도덕도 모르는 가게주인도 주인이지만, 그를 불러내던 좀 전의 그 번듯하게 생긴 사이비 신사의 염치도 경우도 없는 무교양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까짓 아녀자쯤 안중에도 없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에도 기실 남자란 형편 없이 어리석고 작은 소인으로 비치고 있는 것을 그들 남자들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염치 없는 신사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 체면 하나를 신주처럼 받드는 군자(?)들도 있다. 굶어 죽은들 남의 외밭이야 넘볼 수 있으며 얼어 죽은들 곁불이야 쬘 수 있을까 보냐고 꼿꼿이 머리 치받는 서슬 푸른 고슴도치 같은 군자들, 그들은 또 가족을 위해서 기천 원의 지출에도 주저하고 인색하지만, 남을 위해선 – 특히 요리집, 주점 같은 데서 – 장자 長者 처럼 아까움 없이 뿌리는 호기를 지니고 있다. 아내의 앙칼진 일갈 一喝 이나 매서운 눈총에 슬금슬금 기면서도 단골집 아가씨 손목에 손주 쥐어주는 팁의 의미를 음미하는 풍류도 있다.

때로 장난감처럼 사랑을 흥정하지만 언제든 돌아서 36계 줄행랑을 칠 만반의 준비도 갖추고 있고, 가정이라는 안전지대에 반석 같은 아내를 모셔놓고 꼼짝 없이 고삐를 매이고서도 입으로는 “한시라도 너를 위해선…” 운운하며 호언장담하는 돈키호테식 유희를 즐기기도 한다. 아니 이제 그럴 정도의 순수한? 남성도 사실은 없지만.

이쯤 두서 없이 열거하다 보니, 어디선가 남성의 호통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송구스럽다. 사실 남성을 발가벗겨 놓고 보면 감추어진 현금이 액수일 뿐 그 밖의 것은 모들 것이 없다는 오만한 생각도 가끔 가져본다.

그라나 때로 그 얄팍한 생각이 무너질 때도 있다. 그것은 그들 역시 ‘여성만큼’ 신비로운 자질과 생명을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짝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이다.

생명, 그것은 성 – 남성, 여성 – 을 초월해서 그대로 불가해한 신비체이기 때문이다. 하여 내가 남성에게 경의를 느끼는 것은 그들이 신비로운 생명체로서 다가설 때이다. 남성을 초월하여 인간이 될 때이다.

 

 

 

 

V. 파밭에 울던 그날

 

 

겨울과 불

 

고향으로 가는 경의선 京義線 3등 열차 차창마다 엔 하얗게 성애가 끼어 있었다. 성애 낀 사이로 의사 ‘지바고’처럼 내다보는 먼 산, 가까운 들은 눈부신 백설에 묻혀 차라리 한없이 평화스러웠다.

그 고향 북녘의 겨울, 까마득한 세월의 밑바닥에 깔려 이따금 가슴에 불을 켜듯, 되살아나는 겨울의 기억은 천지를 덮는 백설과 그 백설의 한 귀퉁이에서 빨갛게 불타고 있는 불의 기억이다. 쓸쓸한 시골 장거리의 허술한 주막집 화덕에서 소리도 없이 벌겋게 타고 있는 그 토탄 土炭 불, 처음으로 나에게 안식의 의미를 알게 해주던 불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산골 간이역 같은 촌 역에 내려서면 사나운 북풍이 온 몸을 삼킬 듯이 후려 갈겼다. 털목도리에 깊이 깊이 얼굴을 파묻고 얼어붙은 털신을 탈탈거리며 바람에 등을 떠밀리듯이 낡고 조그마한 목조 집 시골 역사 驛舍 를 빠져 나오면 보이는 한의 넓은 천지가 온통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백마 白魔 처럼 앞을 가로 막았다.

어디가 길이며 어디가 논인지 분간도 할 수 없었다. 집까지의 거리는 15리가 넘었다. 몰아치는 북풍과 백은 白銀 의 원야 原野 와 까마득한 노정 路程이 순간 막막한 무한처럼 가슴을 누른다. 온 몸의 힘이 빠지며 울고 싶도록 허청거려 진다.

한 고개를 넘어가는 사람의 그림자는 볼 수 없었다. 돌아가는 빈 달구지를 만나는 일이란 꿈같은 요행이다. 그러나 만나는 것은 때없이 푸득푸득 내리기 시작하는 굵은 눈발이고, 나는 그 눈발에 쌓여 어느덧 몸도 마음도 눈사람같이 꽁꽁 얼어버리는 것이다.

새[新] 장거리는 바로 그렇게 내가 얼어버린 눈사람같이 되어버릴 무렵에야 간신히 도착하는 작은 장거리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저렇게 사돈의 팔촌쯤으로는 모두 얽혀있는 인근 隣近 마을이다. 새 장거리의 주막집도 그런 이웃 사촌격의 집이었나 보다. 어떻게 얽히는 아주머니인지는 모르지만 이 주막집 아주머니가 용케도 내 모습을 놓치지 않고 기다렸던 듯이 가게문을 열고 달려 나오는 것이다. 사실 그 아주머니가 달려 나오지 않더라도 나는 이 새 장거리의 주막집을 처음서부터 줄곧 머리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주막이지 손님도 없는 쓸쓸한 객청 옆으로 부뚜막을 높이 쌓아 올린 화덕이 있고 그 화덕에서 흙빛 토탄이 벌겋게 이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토탄의 성분을 잘 알지 못한다. 논에서 캐어 낸다는 거무튀튀한 흙빛의 목침만큼씩 한 흙덩어리, 탄이라기엔 너무 푸석해 보여 믿어지지 않는 그것이 눈두렁에나 헛간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것을 어디서나 보았던 것이다.

그 토탄이 주막집 화덕에서 벌겋게 타고 있는 것이다. 시원스런 불꽃은 없지만 커다란 덩어리들이 함께 얽혀서 벌겋게 불길을 뿜으며 타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불길의 아늑함, 불이 있는 곳에 사람의 정이 있고 정이 있는 곳에 안식이 있는 것을 나는 그때 얼마큼이나 알고 있었을까. 남은 5리가 저승처럼 아득해서 마냥 화덕 앞을 떠날 줄 몰라 하던 아쉬움만이 지금도 선하다.

불이 타는 난로의 모양은 무엇이든 상관 없다. 베치카, 화이어 플레이스, 그런 멋장이 서구식 벽난로에서부터 시골 면사무소의 둥근 쇠난로, 객청 옆의 진흙으로 쌓아 올린 주막집 화덕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은 다름 없는 불이다. 그 새빨간 불꽃,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이야말로 인간생활에 따뜻한 안식과 너그러운 인정을 풀어 놓게 하는 마술사임에야.

지금 내 가난한 추억 속에도 고향의 주막집 객청 옆에 토탄불 이글거리던 진흙 화덕이 있고, 소학교 교실에서 피식거리며 타던 둥근 다루마 쇠난로가 있다. 점심 때면 젊은 담임 여선생님이 도시락을 하나 하나 난로에 얹어서 데워 주시던 따스한 사랑의 기억이 있고, 사무실 한 옆에서 사위어 가는 난로를 둘러싸고 오징어 다리에 고구마알을 구우면서 퇴근시간의 한 때를 속없이 떠들며 지껄이던 동료들과의 훈훈한 우정의 기억이 있다.

보다 더 까마득히 거슬러 올라가, 할머니 무릎에 앉아 옛 이야기를 조르는 어린 손녀에게 질화로에 묻어둔 밤알을 찾아주며 밤새워 이야기해 주시던 할머님의 지극한 사랑의 기억도 있다.

그렇게 불이 타는 난로가엔 불처럼 따스한 사랑과 정이 있었고, 미움과 불신을 몰아내는 밝은 평화가 있었다. 그것들은 지금도 내 피 속에 지울 수 없는 한 색소를 따로 이루면서 이따금 잿빛같은 현실에 불을 부치는 기름이 되기도 한다.

진실로 백설에 덮인 깊은 산촌, 또는 어느 외단 촌가의 그슬린 화덕 앞에서 통나무 장작의 이글거리는 불꽃을 바라보며 여숙의 쓸쓸한 정을 한 잔 술이나 차[茶]에 풀어 본 기억을 가졌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다정한 친구와 밤을 새워 노변 爐邊의 정담 情談 을 가져본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지복 至福 한 한 순간을 가진 정복 淨福 한 사람임을 자랑해도 될 것이다.

불은 장작불일수록 좋다. 솔가리나 삭정이라면 더욱 운치가 있어 좋다. 한 개피를 집어넣을 때마다 바지직바지직 나무껍질 튀기는 청음 淸音이 감미롭게 가슴을 조인다. 장작불은 맑고 향기롭고 빛이 더욱 선연하다. 창밖에 함박눈이 내리면 풍취는 더더욱 한 폭의 그림이다. 친구가 있으면 흐뭇해서 좋고 없으면 그런 대로 호젓해서 좋다.

좋은 싯귀나 묵은 편지들, 아니면 옛 사진첩들을 뒤적이면서 골똘히 한 사람을 생각해 보고, 그러다 창가에 기대어 잠시 잠이 들어도 무방할 것이다. 험상궂은 삭풍은 이 불붙는 난로까지는 얼씬하지 못할 것이니 마냥 창이나 흔들다 가게 하면 된다.

그 아득한 태고 太古 인류의 은인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에 올라가 제우스 왕궁의 부엌에서 茴香 나무가지에 불을 붙여 훔쳐다가 인간에게 준 이후, 인간은 불을 얻어 갖가지 불쓰는 법을 배우고, 어두운 밤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기실 인간의 역사는 불을 쓰는 지혜와 더불어 발달해 왔고 한 순간도 불이 없는 생활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건만 지금 우리는 그 불 때문에 나날이 골치를 앓으며 고심하고 있다. 장작불의 시대는 무연탄의 시대로 바뀌고 그것은 또 석유와 경유, 방카시유 같은 오일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인류가 쓸 수 있을 절대량을 지구가 보유하고 잇는 것이 아니다. 전기의 시대, 가스의 시대인들 또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그러나 인간은 살기 위해, 그리고 살아있는 한 끊임 없이 불을 만들고 불 앞에 모일 것이다. 그것이 설사 우리들 마음을 그처럼 도연하고 나긋하게 풀어놓던 장작불이 아니고 기름냄새 가스냄새 풍기는 오일스토우브일지라도 우리는 추운 가슴에 불을 켜기 위해 발갛게 타오르는 불꽃을 찾아 한 걸음씩 불 앞으로 모여 앉을 것이다. 거기엔 따뜻한 인정의 대화가 있고, 가버린 유년의 은밀한 그림자가 있다. 우리들은 그것들을 찾아 겨울불이 주는 호사스런 마력에 탐닉해 가는 것이다.

얼어붙은 눈 속에서도 불이 있어 인간의 생활은 마냥 풍요로운 것을….

 

 

 

그 뒷산엔 지금

 

온 나무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거리는 꽃송이들, 배틋한 젖냄새 같은 향기를 뿜어대며 산야를 덮던 아카시아꽃도 이미 진 지 오래다.

그렇게 희고 소담스럽던 찔레꽃 무더기도 시들시들 말라가더니 어느덧 누렇게 변색하여 햇빛에 그을은 종이 부스럭지같이 오그라져 붙었다가 그나마 한두 번 찔금거리던 봄비에 흔적도 없이 떨어져 버렸다.

이제 푸른 잎사귀들만이 제철을 만나 기승스레 설치는 계절 —-

그러나 아직도 창을 열면 어디선지 모르게 숨어드는 그 산야의 꽃냄새들이 내 약한 후각을 자극하며 그렇지 않아도 거센 일광에 나른한 심신을 지체 없이 몽환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런 산야의 꽃냄새 속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내 오관을 뒤흔들어 놓는 냄새가 있다. 짙은 향수 냄새같은, 때로는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취하는 몰약 沒藥 같은 냄새…. 머리 속까지 파고들어 전신을 풀어 헤지고 메슥메슥 헛구역이 날 만큼 진하고 강한 냄새.

밤꽃! 그렇다. 밤꽃 냄새다.

낮은 돌담으로 둘리운 해묵은 초가집 깊은 장지문 안에서도 그 냄새는 향을 피우듯 훈훈히 맴돌고 있었다. 한밤중 곤히 쓰러져 잠든 꿈결 속에서도 몇 번인가 그 냄새에 숨이 막혀 잠이 깨곤 했었다.

온 산과 집과 마을을 뒤덮고 요란한 향내를 뿜어대던 밤나무들, 그 밤나무의 꽃향기 속에서 나의 어린날은 헤엄치듯 허우적거렸고 새는 줄 모르게 날을 지냈다.

기실 나의 유년 幼年 은 밤꽃 향기 속에 눈뜨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밤나무들의 오백여 주, 하늘을 가리듯 빽빽이 들어선 뒷산, 가지마다 어른의 손가락만큼씩 기다랗고 파르스럼한 연녹색의 화수 花鬚 가 다닥다닥 붙은 꽃답지 않는 꽃의 모습은 어찌 보면 꼭 배추벌레에 털을 입혀놓은 것 같은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털복숭이 배추벌레같은 징그러운 꽃에서 뿜어내는 강렬하고도 달콤한 향기는 도무지 그 꽃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아 왠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확인이라도 하듯 떨어진 꽃잎들을 줏어 코밑에 바짝 들이대고 흑흑 멋모르고 들이 마시다가는 그만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져서 헛구역질을 하곤 했던 것이다.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금도 나는 그때의 밤꽃 냄새를, 내 오관의 어느 구석엔가에 배어있을 그 꽃냄새를 꿈처럼 맡고 있다. 아니 이만 때면 어김 없이 누군가가 깊은 기억의 밑바닥에서 그 진한 꽃향기를 들추어 내주는 것이다. 그것은 먼 산과 들의 푸른 물결을 실어다 주는 바람의 손길이기도 하고 때로는 바로 창 앞에 우거진 찔레덤불의 설렁대는 속삭임이기도 하다.

그렇게 설렁거리며 속삭이듯 출렁거려 오는 바람의 몸에서 나는 잊어버렸던 그 뒷동산과 뒷동산의 밤나무숲과, 밤나무 가지마다에 주렁거리던 밤꽃 냄새를 어김 없이 되살려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의 재생은 지체 없이 움츠렸던 환상의 날개를 고향의 산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잠자던 망향의 정이 일렁이는 바람 속에서 고향의 밤꽃 냄새를 찾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 남쪽에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 방학 때나 휴가 때 귀성하는 모습을 본다. 건중건중 서두르면서 기쁨과 설레임에 차서 허둥거리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불현듯 잃어버린 실향자의 비애를 느낀다. 속절없이 아득한 북녘하늘 끝으로 마음을 달려보며…

 기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무쇠벽처럼 닫힌 남과 북, 스물 여섯 해란 세월, 사분의 일 세기를 삼켜버린 마의 장벽은 언제 열릴 것인가.

 

끊어진 京義線

北으로 八 백리

한 밤도 한 낮인 양

더운 地熱

사과나무 익어가던

고향의 八월

 

北行의 歸省列車

고동이 울고

열 다섯 ‘에미나’ 차창에 서성이며

새파랗게 잎이 피던

여름은 갔네

 

풀 냄새 사과 냄새

살 속에 젖던

비오는 天柱山 두메 산길

墓碑 없는 산소 하나

풀밭 됐겠지

……..

 

기실 그 낯익은 옛 산과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밤나무 동산은 평지가 되고 천주산 기슭에 두고 온 선조의 묘 墓들은 평토가 되었겠지. 앞밭에 푸르던 사과나무는 또 몇 해나 주인 없는 옛 터에서 소식을 기다리다 죽어갔을까.

자연의 풀포기 하나 돌조각 하나도 제대로 제 모습을 지닐 수 없었던 우리의 슬픈 역사, 개인의 소망이나 기원 따위는 국가의 안위 安危 라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해 바랄 수 없었던 어두운 일월 日月 을 우리는 기억한다.

역사를 뒤져보면 우리보다 더 큰 불행을 지닌 나라들은 얼마든지 있다. 나라를 잃었던 유대 민족, 민족 자체가 멸망해 버린 타스마니아 민족, 그 밖에도 현재 동서와 남북이 분단된 독일이며 베트남, 영원히 본토를 잃어버린 자유중국이며 비아프라, 이러한 불행한 나라와 민족들 속에 섞여 어찌됐던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는 그래도 끊임 없는 국난에 시달리며 오늘까지 연면 連綿 히 그 핏줄과 문화를 이어온 것이 아닌가. 단일민족이라는 긍지와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그런데 우리는 지금 분단되어 있다. 스물 여섯 해, 아무런 통일의 서광도 없이 눈먼 장님처럼 애태우고 있다. 누군가 말하기를 “독일은 비록 양단되어 있지만 그들의 정신만은 분단하지 못한다. 누가 감히 ‘칸트’와 ‘괴에테’ 의 허리를 자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은 그런 정신의 유대도 없는 나라이다” 라고 슬퍼하던 것을 기억한다. 기실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런 정신의 유대도 없는 나라, 이념 理念이라는 정체불명의 칼날에 잘린 채 신음하는 핏줄, 도시 지상에 괴물처럼 군림하고 있는 그 이념의 불가시 不可視 한 암담한 정체란 무엇인가. 기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쇠고랑에 스스로를 꼼짝 없이 묶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한 생애의 조촐한 기억들을 깨뜨리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작은 평화다. 어려서 뛰어 놀던 뒷동산의 푸른 숲, 앞 개울의 맑은 물, 다정한 이웃의 고운 정을 새기며 내 어린것들을 옛 동산에 뛰놀게 하고, 조상의 유영 遺影을 되새겨 주며 어느 날 내 묻힌 무덤에 한 포기 꽃을 심어 변함 없는 사랑을 기념해 줄 그저 그 정도의 작은 소망을 위해 생애를 바치는 것이다. 이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인간의 정, 누가 뭐라 해도 막을 수 없는 그 정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살며 또 기다리는 것이다.

 

……………

머리 풀어 흩날리며

北鄕 에 가자

八月 그 山野의

숲으로 가자

 

나이 먹어 이제는

기막힌 그리움도 설움도

바람같네만

 

풀 냄새 사과 냄새

가슴에 저린

노을빛 찬란하던

八月 北鄕의 숲으로 가자

 

 

 

잃어버린 고향의 추석

 

 

가랑잎 타는 냄새가 나는

어머니 굽은 등에서

빨간 열매가 한소끔 떨어진다

 

어머니는

열매를 익히고 타버리는

껍질인가 보다

 

풋콩까는 냄새가 나는

아이들 몸에서

이따금 바람에 튕기는

알밤소리가 난다

 

아이들은

햇볕에 타서

영그는 열맨가 보다

 

나도 지금은

여름에 타서 키만 남은 수수깡

꽃가루같은 달빛을 묻히며

불주히 장지를 여는 바람이 된다

 

어디서

솔잎 찌는 향기

밤이 익는데

 

 

– 秋夕

 

 

 

갈라졌던 남 북한의 이산가족을 찾자는 적십자 회담은, 한 마디로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을 남기고 일단 폐막했다.

이제 눈으로 27년의 단절과 정치체제의 차이가 빚어내는 인간희극의 실체를 보았으니 오직 삭막하고 추연할 뿐이다.

다만 분명히 안 것은, 이 회담이 결코 순조롭지 않으리라는 사실 뿐. 그러나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사민들은, 찬물을 끼얹힌 듯한 이번 회담에 더없이 실망하면서도 한편 은연한 새 희망에 부푼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캄캄한 밤에 문득 반딧불 하나를 발견한 듯한 기대라고나 할까. 그 반딧불이 언제 별빛이나 촛불만큼 밝아지고, 다시 달빛처럼 환해져서 주위를 밝혀줄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깜박이다 꺼져버릴 것인지 극서조차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길고 긴 암야 暗夜 에 그나마 반짝이는 불빛 하나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가슴은 마냥 설레는 것이다.

기실 추석이라고는 하지만, 찾아가고 싶은 친지도 가족도 고향도 없다. 진종일 머루송이만큼씩 한 빨간 산목련 열매가, 푸른잎 사이로 지천으로 매달려서 대롱거니는 모습을 꿈결처럼 바라보거나, 아니면 며칠 전 지나가는 구루마에서 헐값으로 집어들인 몇 개의 국화분이 낯선 손님처럼 마루 끝에 옹송크리고 서 있는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그러다가 후딱 현실로 돌아와, 그 모든 변화에, 너무도 빠른 계절의 추이 推移에 후닥닥 놀라기도 하는 것이다.

 송편 속을 넣다 남은 풋콩가지가 마당가에 딩굴고 있다. 그 누릇누릇한 풋콩가지를 들고 잠시 유년의 어느 가을날로 돌아가 본다.

늦강냉이가 드믄드믄 이빠진 듯 밭 가장자리에 서 있는 수수밭 속이었다. 실한 수수이삭들이 검은 자주빛으로 무겁게 영글고 늦늦한 수수잎이 바람에 넘실대고 있었다.

어머니 몰래 수수밭 속에서 벌이는 콩청대.

꺾어온 풋콩가지를 재놓고 마른 옥수수짚을 쌓아 올렸다. 당성나-성냥-한 개피를 그어댔다. 푸스슥푸스슥 뽀얀 연기를 자욱히 피어 올리면서 타들어가는 옥수수짚을 쑤져가며 나는 연신 신나게 푸푸 풍구처럼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러다 그만 홀깍 연기를 들이마시고 말았다. 캑캑 기침과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온 몸을 뒤틀고 있는데 누군지 뽀얀 연기 너머 풀석 비치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내 사나운 싸리빗자루가 내 등을 사정 없이 후려쳤다.

소스라쳐 놀라 보니 무섭게 성이 난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란 것은 하늘같이 치솟는 마른 옥수수짚의 불꽃이었다. 금시라도 수수밭에 불이 번질 것만 같은 무서운 불꽃의 기세였다.

하마터면 수수밭에 불을 낼 뻔했던 그날의 철없는 장난, 그 무섭게 성이 난 어머니의 얼굴, 곰을 잡을 듯이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푸드득거리면서 타오르던 마른 옥수수짚의 불꽃, 그런 속에서도 구수하게 감돌던 풋콩가지의 노릇노릇하게 익은 냄새…

갑자기 그 배틋한 콩청대의 구수한 미각이 아물아물 되살아난다. 나도 모르게 콩가지 한 개피를 연탄 위에 얹어본다. 이윽고 푸시식거리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매캐한 연기, 그러나 그것은 옛날의 그 냄새도 그 연기빛도 아니다.

“뭣 타는 냄새냐!” 방에서 늘어지게 물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그 서슬어린 그날의 목소리는 아니다. 기실 그 아닌 것을 깨닫는 마음, 거기에 메울 수 없는 세월이 있고 변화가 있고 비애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추석이라고 며칠을 두고 붐비던 시장도 오늘은 물빠진 갯벌처럼 조용하겠지. 거리나마 좌판에 넘치던 푸성귀와 햇과실들, 임임이 이고 져나르던 추석 장바구니, 청솔잎에 햇깨, 햇콩가루까지 빻아서 팔던 촌부의 검게 탄 얼굴들, 그 모든 노고와 가난의 손길로 오늘 하루만은 푸짐하고 넉넉한 장자 長者 의 마음이 되리라.

무언지 눈에 보이지 않는 각박한 세태 속에 이제는 우리들 어머니가 밤새워 지어 주시던 본견 숙고사 치마 저고리의 매끄럽고 사각거리는 추석빔도 없고, 싸전마다 산더미처럼 쏟아지던 여주 이천의 기름진 정백미 精白米 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비록 나일론 데트론이 자아내는 섬뜩하고 차가운 촉감의 화학성 직물일망정 또는 윤기 없이 푸석한 정부미가 맷방석 한 구석에 까만 뉘를 뒤집어 쓰고 덜렁 몇 말쯤 부어져 있는 삭막한 정경일망정 추석을 그리는 우리의 심정은 한결같이 간절하고, 소망스럽고 애틋하기만 하다.

그것은 추석이라는 이름을 빌어, 쌓인 회향의 정과 재회의 기쁨을 풀어보려는 소망 때문이다. 기실 추석이란 헤어졌던 가족과 친지, 저버렸던 고향에의 회포가 그날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기다림에 부풀어 만월처럼 가득 차서 마침내 쌓인 정을 구김 없이 마음껏 풀어보는 날이 아니냐.

이제 그 회향의 기쁨을 뺏긴 지 27년, 고향의 땅은 예대로 푸르르며 그날의 수수밭도 변함이 없을까. 뒷산 밤나무 숲은? 밤나무 숲 뒤의 선조의 묘 墓 들은? 잔별 처럼 쏟아지던 들국화 덩굴은?

어머니의 손그릇에 담긴 고향의 사진은 낡고 닳아서 사람의 얼굴도 분간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희미한 옛모습엔 27년의 세월도 단절도 찾아볼 수 없다. 아직도 그날 그대로의 순박한 눈매며 다정한 웃음일 뿐.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굳이 믿어보고 싶은 거다.

 

 

 

미류나무 환상

 

 

산산이 헤어진 流離 의 길머리

허물어진 비탈길 옛 둔덕에

너는 이름 없는 戰士

먼 그리움에 눈망울 젖어

하늘 우러러 목 느리는

白馬이기도 하다

 

높푸름이사

하늘을 가르는 저 세찬

높푸름이사

千年 향수에 젖어온

순결의 標的 이어니

 

까마득히 하늘 부르는

잎이며 가지며

모두다 장엄한 明日에의

出發을 指標 하누나

서러울리 없는 손길을

하늘 높이 날리며

 

– 白楊에 부치는 노래

 

 

그게 언제던가, 25년도 더 전, 피난지 부산에서 이렇게 미류나무를 노래했던 적도 있다. 내일을 모르는 불안과 낯선 객지의 설움 속에 마음 부지할 곳 없던 젊음을 그 헌칠하고 늠름한 미류나무에 의지해 보던 것이다.

말갛게 비쳐오는 비취색 하늘 아래 후련히 솟아나듯 땅에서 뻗어오른 나무, 늠름하고 헌칠하게 굽힐 줄 모르고 위로만 발돋음하여 오른 나무, 숙성한 나무, 나는 그 나무를 사랑한다.

미류 美柳 나무, 달리 이름하여 버드나무, 은백양, 양버들 등등으로 불리워지는 그 흔하고 소박한 나무의 자태를.

시골길 신작로에, 강가 높은 뚝에, 실개천 밭 언저리에, 가난한 마을 동구밖에,

마치 원로 遠路 의 나그네를 위한 무언의 표적같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잇는 나무, 그 나무의 가이 없이 높고 푸른 향수의 표정을 나는 사랑한다. 이맘 때면 하늘 높이 날개짓하는 수많은 작은 잎새들의 윤나는 녹색의 파도와 함께….

누구나 어린 시절의 애틋한 기억을 몇 가지씩은 가슴에 지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대개 선명한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서로 비슷비슷하게 닮은 하늘과 나무, 꽃과 수풀, 실개천 맑은 뚝, 무너진 밭두렁, 울타리 없는 초가집들, 그런 비슷하고 평범한 풍경들이 어디서나 예외 없이 기억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내 고향의 기억 속에도 곡 그 같은 한 폭의 그림이 빛 고운 민화 民畵 처럼 간직되어 있다.

흔한 말이지만 그림엽서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천연색 촌락, 북국 특유의 청명한 하늘과 맑은 시냇물, 그 중에서도 이른 봄부터 초겨울 냇물이 얼기까지 시냇물에 드리워지는 헌칠하게 숙성한 두세 그루의 미류나무 그림자를 잊지 못한다.

나무의 그림자는 길고 외로와 보였다. 나그네의 발걸음을 쉬어가게 하는 여유도 그늘도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고고 孤高 하고 맑은 이지 理智 가 있었다. 깔끔한 성정 性情의 사나이처럼 의연 毅然한 기품이 있었고, 먼 장도 壯途에 오르는 병사처럼 고독해 보였다.

나의 부모는 순박한 농부의 아들 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찍 타관에 유랑하였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곁에보다 외갓집에 머무는 날이 더 많았다.

어른들의 들에 일을 나간 뒤, 빈 집에 혼자 남은 어린 계집애는 수수깡 울타리에 암탉을 쫓고, 멍멍개와 벗하다 싫증이 나면 앞밭에 하얗게 피어 흐트러진 파꽃을 따들고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미류나무가 선 물가로 내려간다.

물에 비치는 다박머리 투박하고 미운 계집애, 계집애는 물에 비치는 미류나무의 키를 재보고 싶어진다. 발을 벗고 성큼성큼 물 속으로 들어간다. 다섯 살짜리 코 흘리는 계집애의 키의 몇 배나 되었을까, 그때 그 나무는.

시냇물은 여름에도 발이 저렸다. 첨벙첨벙 개울물에 옷을 적시며 물 위에 길게 누워있는 미류나무 그림자의 끝닿은 곳까지 걸어가 본다. 그리고 나무의 가지 끝을 올려다 본다.

나무의 그림자는 몇 발자국도 안 되는 키였건만 거기서 올려다 보는 나무의 높이는 까마득하여 어지럽기만 했다.

아득한 나무 끝을 올려다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저 나무 끝까지 올라가면 아버지가 계시다는 서울이 보일까, 서울은 저 하늘 끝 어디 만큼에 있을까.

꽃분홍색 양복과 나비 리본, 빨간 꽃신에 무지개 빛 사탕을 사가지고 “서울 가신 아버지는 언제나 동구 밖을 걸어 오실까.” 코 흘리는 시골 계집애가 그렇게 아름다운 동요를 알았을 리 없지만 그러나 그때 계집애의 가슴엔 꼭 그런 노래 같은 꿈이 있었다. 그리고 외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하얗게 흐트러진 파꽃 대궁이를 개울 물에 띄워 보내고 다시 껑충껑충 뛰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해는 한낮을 넘었을 뿐이고, 빈 집은 교교 皎皎히 햇빛 홀로 큰 문을 지키며 딩굴고 있다.

들에 나간 어른들이 돌아오기엔 아직도 까마득한 대낮, 계집애는 외로움에 지쳐 봉당에 누어 잠이 든다.

가끔 어린 딸들을 데리고 이름 모를 시골 시냇가에 혹은 강뚝에 가서 그때의 나처럼 그 애들을 미류나무 아래 세워본다.

그 애들의 가슴에 내 기억 속의 미류나무를 심어주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잃어버린 유년의 나를 거기서 찾아보고 싶어서일까.

그러나 아이들은 꿈이 없는 것 같다. 그때의 나 같은 외로움도 없는 것 같다. 그 대신 말이 많다. 말로써 미류나무를 깎고 저미며 벗겨 버린다. 옷을 벗기듯 표현해 버리는 것이다.

“이 꺾다리나무시 뭣에 쓰이는지 알어! 성냥개비 만든단 말야 성냥개비! 아하하하…”

여지 없이 후려갈기는 것이다.

하긴 우습기도 할 거다. 이렇게 큰 나무가, 늠름하고 헌칠한 나무가 그 작고 가냘픈 성냥개비로 둔갑을 하다니…

그러나 그렇게 속없이 웃는 아이들, 거리낌 없이 사물을 파헤치는 건강한 아이들의 생리를 바라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미류나무의 숨은, 여리고 겸손한 천성의 일면을 보는 듯하여 측은하고 민망스러움을 누르지 못한다.

기실 어디서나 그 시원스런 미류나무가 서 있는 곳에 안개처럼 자욱한 나의 유년이 있고, 돌아갈 수 없는 북녘의 고향이 있고, 바람같이 설레는 꿈이 있다.

어디에나 심어진 곳에는 유순히 뿌리를 박고 숙성히 자라며, 잎새마다 가지마다 위로위로 태양을 우러러 가이 없는 하늘에 꿈을 뿌리고 섰는 나무,

그 나무 아래 서면 나는 언제든 투명한 향수와 맑은 이지와 경건한 기도를 회복한다.

때묻은 나를 씻어내고 가출 家出한 나를 찾아온다.

나는 내 마음속에 한 그루 죽지 않는 미류나무를 심으며 산다.

 

 

 

찔레꽃 덤불 속의 유년

 

찔레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어쩌면 온 가지에 무수히 돋아난 잔가지 바늘처럼 사정 없이 찔러대는 고 야무진 생태 때문에 찔레라는 이름이 생겨났을까?

같은 장미과에 속하면서도 많은 장미꽃 가운데 유독 찔레라는 순 우리말 이름을 갖고 있는 이 꽃은 그래서인지 이름부터가 고향의 냄새를 자아내는 여운이 있어 주저 없이 마음을 끌게 한다.

후미진 산모퉁이나 허물어진 시골길 비탈, 또는 초가집 울타리 가에 무더기로 덤불져 떼를 이루고 있는 찔레꽃은 때문에 그 사나운 가시와는 상관 없이 더없이 순박하고 천진하게만 여겨진다.

찔레는 지방에 딸 ‘지뤼’니 ‘황소나물’이니 하는 등의 방언으로 불리우기도 하지만 흔히 들장미라고도 불리운다.

이른 본 새로 돋아나는 연한 순을 마을 아이들이 즐겨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지만, 울타리에 매어놓은 황소가 잔가지에 머리를 비비며 질근질근, 가지며 잎사귀를 씹어대는 모습에서 황소나물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을까? 사실 울타리 가에 심어진 찔레꽃 덤불의 새 순은 황소들의 좋은 군것질감이 될 수도 있으리라.

10월쯤 되면 푸른잎 사이사이로 빨긋빨긋 열리는 새빨간 열매들을 볼 수 있다. 이 열매들은 잎이 진 뒤에도 잘만 간수하며 꽃이 없는 겨울의 적막을 알뜰히 장식해 주건만, 미처 손질할 사이 없이 야조 野鳥 들의 밥이 되고 만다. 한약의 약재로도 사용된다니 여러 가지로 우리의 향토와는 아주 깊은 연분과 애정을 맺어온 꽃이라 하겠다.

꽃에 얽힌 전설 한 토막을 더듬어 보자. 옛날 고려에서는 해마다 이웃 오랑캐 나라에 공녀 貢女를 몇 백 명씩 바치게끔 되어 있었단다. 이때 어떤 한 마을에 억울하게 공녀로 끌려가게 된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다.

공녀라고는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의 주인은 모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랑캐 땅에 있어서는 그들의 생활은 대개 편안하고 자유로워서 한 번 끌려간 소녀들은 다시 돌아올 줄을 몰랐었다.

그러나 찔레만은 이러한 호사스런 생활보다는 떠나오 ㄴ고향색가에 언제나 눈물로 살았었다. 찔레는 고향에 동생을 두고 왔던 것이다.

세월은 흘러 10여 년이 넘었고 그러는 동안 마음씨 착한 찔레의 주인은 슬퍼하는 찔레를 위로하기 위해 사람을 멀리 고려땅에 보내 고향에 홀로 두고 온 동생을 찾아오게 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후였으므로 고향사람들은 아무도 찔레가 떠난 이후의 일을 알지 못하였으며 동생의 행방도 찾을 길이 없었다. 마침내 찔레는 주인에게 말미를 얻어 스스로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났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수천 리 길을 찾아 헤매었으나 동생의 모습은 찾을 길 없었고 마침내 산속을 헤매다가 찔레는 죽고 말았다. 이렇게 죽어간 찔레의 무덤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찔레꽃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동아방송 편성부장인 조동화 趙東華 (무용평론가) 씨가 엮은 ‘세계의 꽃과 전설’ 속에서 읽은 이야기다. 전설 역시 이 땅에 뿌리박은 토박이 한국의 이야기여서 구수하고 정답다.

내가 찔레꽃을 처음 안 것이 언제였을까. 정확히 말해서 처음으로 눈 여겨 보게 된 것이,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해서 그 꽃이 어떤 의미를 갖고 나에게 확대되고 접근해 온 것이 언제였을까.

아홉 살이던가 열 살이던가? 집 뒤가 온통 복숭아밭이었다. 그것도 크고 말랑하여 스믈스믈 단물이 흐를 것같은 털복숭이 수밀도밭이 아니라, 몸이 단단하고 익으면 살이 쩍쩍 갈라지는, 껍질이 푸르고 반들반들한 승두 僧頭 복숭아밭이 끝도 없이 널려있었다.

이 복숭아밭은 집 앞 언덕길을 고불고불 올라간 끝에 키 작은 회양목과 전나무 등의 상록수로 울타리를 친 붉은 벽돌집 예배당을 넘어 그 아래 일대까지 뻗혀 있었다.

봄이면 언덕 이쪽 저쪽으로 끝도 없이 널린 복숭아밭에 자잘한 연분홍 복사꽃이 수백 수천의 가지에 수만의 꽃송이를 달기 시작한다.

꽃은 피기도 전에 지기 먼저 하는 것일까, 아니 어디선가 꽃은 계속 피고 있으련만 그 피어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직 지고 있는 낙화의 모습만이 눈에 분분했다.

복사밭에 화려한 꽃사태가 끝나고 이윽고 푸른 잎사귀가 느실느실 자라서 야들야들한 기름끼를 반지르르하게 바르고 가지마다 서걱일 때쯤이면 우리는 어느덧 복사밭을 버리고 붉은 벽돌집 예배당으로 돌아 언덕 위로 올라간다.

언덕 위엔 이쪽 저쪽으로 갈라져 비스듬히 경사져 내려간 복사밭 사이로 한 줄기 좁고 고불고불한 모래밭 길이 남으로 남으로 열려 있었고, 그 좁은 모래밭 길 양쪽으로는 내 키보다 작은 찔레나무가 길을 따라 두 줄로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나무는 야무지게 서로 엉켜 덤불을 이루고 있었고 이 사나운 찔레덤불은 복사밭이 끝나는 데까지 이어져 있었으니 아마도 복사밭을 지키는 울타리였음에 틀림 없었다.

그 좁고 기다란 길 양쪽에 끝도 없이 행렬을 짓고 있는 – 적어도 그때의 내 어린 생각엔 그렇게 그 길이 멀어 보였다 – 찔레덤불에 꽃이 피는 것이다. 뽀얀 우유를 금방 짜다 부어놓은 것 같은 신선한 꽃 무더기, 그 모양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하얀 옥양목을 두 가닥으로 펴놓은 것같이 눈부시었다. 겸하여 수만 개의 꽃이 짜내는 향기로 하여 언덕은 술청처럼 술렁거렸다.

그 얼굴, 모습도 이름도 잊어버린 마을 조무래기들, 나의 어린 동료들은 그때 넷이었던가, 다섯이었던가? 우리는 한데 어울려 찔레꽃 덤불의 양쪽으로 줄지어 선 좁다란 언덕길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술래는 바로 내 차례였다. 나는 찔레나무 등걸 밑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두 무릎 사이 치마폭에 파묻고, 눈을 감고 아이들이 사라져가는 소리를 귀속으로 헤아리며 어디쯤에선가 이제 곧 “떴-다-” 하고 술래를 부르는 맑고 카랑한 목소리들이 바람에 실려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1분, 2분, 3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주 긴 시간이 지난 것 같건만 어느 쪽에서도 술래를 부르는 “떴~다~”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만 머리를 처박고 쭈그리고 앉았기에 지쳐버렸고 보다 더 들려오지 않은 “떴~다~” 소리에 화가 나기 시간했다.

“요것들이 얼마나 멀리 숨었담…” 하는 생각에 후닥닥 일어나 앞뒤 쪽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참으로 귀신 곡하게도 그 애들의 그림자는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았었다. 하늘로 솟았을까? 땅으로 꺼졌을까? 소리 높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보았으나 그 목소리는 메아리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만 했다.

나는 달리던 길 위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단번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허전함이 울컥 눈시울을 적시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문득 나를 달래듯 말끄럼히 내려다 보는 하얀 얼굴이 있었다.

하얀 얼굴!

그렇다. 그것은 분명 웃을 듯 말 듯 입술을 쫑긋거리며 섰는 내 또래 계집애의 하얀 얼굴이었다. 뽀얀 우유로 입술을 적시며 해죽해죽 웃고 섰는 계집애였다.

왜, 나는 그때 그 하얗게 흐트러져 피어있는 찔레꽃 덤불을 하얀 계집애의 얼굴로 보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 수 없는 대로 나는 와락 계집애의 하얀 얼굴 하나를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 뜯었다. 그러자 다음 또 다른 계집애의 얼굴이 웃는 듯 솟아 올랐다. 도 뜯었다. 또 솟아 올랐다. 내 손을 무수히 가시에 찔려 살가죽이 헤졌고 빨간 피가 여기저기 배어났다. 발 아래 수북이 뜯어진 계집애의 하얀 얼굴들, 그러나 그 얼굴들은 여전히 웃는 듯 입을 방싯대며 하늘거렸다. 마치 “골내지 마라, 내가 네 친구다, 나하구 놀자.” 꼭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내가 발견한 찔레꽃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 철부지 어린 친구들의 이유 없는 작은 모반 – 적어도 그 당시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며 모반이라고 생각했었다 – 누가 꾸몄는지 알 수 없는 음모로 하여 나는 혼자 언덕길에 술래가 되어 남겨 졌었고 거기서 처음으로 눈 여겨 본 하얀 찔레꽃의 의미는 어쩌면 막연한 비애와 외로움의 첫 발견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 방 들창 앞엔 한 무더기의 찔레가 어린 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분주히 꽃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 곧 눈부신 흰빛의 소박한 꽃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아득한 언덕길에 반짝이는 그 유년의 애 띤 얼굴들을 하나씩 데리고….

 

……………

잎사귀 마다 管絃을 타고 오는

鉉樂 같은 날들

나는 잊었던 어린날의

풀벌레가 되어

그날의 풀숲을 헤쳐간다

 

명아주 키를 넘고

달개비 꽃덤불 지는

먼 草原 에

빛나며 흘러 간

幼年 의 여름

지금도 한낮인 양 글썽대며 섰네

 

(幼年의 여름)

 

 

 

 

納凉 旅行

 

삼복의 더위를 이겨내는 나의 납량법 納凉法 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하면 이런 것도 納凉法이 될 수 있을까.

무덥고 답답하고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여름날, 그 여름날 중에도 참을 수 없이 힘에 겨운 날, 나는 남몰래 훌쩍 서울역으로 간다. 여행용 가방도 기차표도 없는 환상의 여행이 거기 기다린다. 그리고 그 야릇한 마음의 여행은 염열 炎熱 에 시달린 우울하고 혼미한 나의 머리 속에 신기한 납량제가 되어준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역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못내 가슴 설레는 애환의 집, 그 이국적인 향수에 어린 고풍 한 건물 한 구석에서 수많은 인파에 밀리며 나는 아득히 먼 20여 년 전 가락머리 제복의 어린 소녀가 된다.

소녀는 지금 그 다정한 친구 같은 높다란 시계탑 앞에 가슴을 조이며 서성거린다. 기대와 초조에 눈물 글썽댄다.한없이 긴 기다림. 이윽고 개찰이 시작되고, 숨차게 플랫포옴을 달려나가고, 밀리고 밀치며 열차에 오른다. 이리 저리 헤매다 간신히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짐을 푼다, 한숨을 돌린다, 아~ 그 피곤한 안도! 고단한 기쁨! 숨가쁜 소녀는 마치 축제에 나가는 작은 아씨처럼 흥분과 기대에 빛나는 눈으로 얌전히 차창에 기대 앉는다. 이윽고 길고 구성지게 울려 퍼지는 출발의 기적소리에 가슴 설레며 울먹인다. 참으로 어제일같이 눈에 선한 20여 년 전의 원색의 화첩 같은 서울역두 驛頭의 장면들이다.

북으로 8백 리,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경의선 평북 정주, 바로 그 정주의 한 정거장 앞인 작은 고을 고읍 고읍, 그렇다 지금의 통일호나 맹호 호號 쯤으로 달려간다면 불과 대여섯 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는 지척이건만 지금은 그리도 먼 땅 아득한 이국처럼 낯선 고향이고 보니 그 산천 그 마을 그 인정 무엇으로 측량할 길이 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의 2곱인 20년도 더 넘는 세월이고 보면 그 집, 그 얼굴, 그 마을 어느 것 하나도 옛 모습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없건만 내 마음은 이상하게 지금도 변함 없는 그날 그대로의 고갯길, 개울물 그리고 다리목을 건너가고 있다.

누군가 세차게 내 등을 밀치고 지나간다. 나는 인파에 밀려 어느덧 잡답 雜沓 을 헤치고 출입이 한산한 2등 개찰구 옆 쇠난간에 기대선다. 눈 앞에 내려다 뵈는 구름다린 층층계, 그 아래 살아있는 물체처럼 연기를 뿜고 있는 길고 검은 열차, 어디로 가는 걸까? 남천? 사리원? 황주? 평양? 그리고 정주? 아니 고읍? 고읍으로 가는 걸까? 아, 갔으면 갈 수 있으면… , 나는 다시금 차창에 기대앉는 그 옛날 그 어린 소녀로 되돌아간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 개성, 남천, 사리원, 황주, 둔하고 더딘 소처럼 지지하기만 한 완행열차의 속력은 마치 북만주 어느 벌판을 한없이 지척거리며 걸어가는 것만 같은 안타까움에 그만 눈물짓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평양을 지나면서부터는 다시금 오색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그 즐거움 – 그래 참 그때 그 아낙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북만주 어딘가로 집 떠난 남편을 찾아간다며 새빨간 고추장에 황조밥을 비비면서 서글퍼하던 젊은 아낙은? 남도 사투리가 사뭇 구수하던 긴 곰방대에 갓 쓴 할아버지는? 팔뚝 같은 강냉이(옥수수)를 하모니카 불듯 훑고 있던 온 몸이 구릿빛으로 탄 아낙의 아들은? 지금은 아마도 한 줌의 흙이 아니면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었겠지, 그리고 그 어린 아들에는 몇 아이의 건장한 아버지가 되었겠지, 나처럼, 지금의 나처럼 몇 아이의 어버이가 되어 어쩌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도 평북 정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바로 그 한 정거장 못 미처 에 있는 고읍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지금 소녀는 바로 그 이름도 없는 작은 막사 같은 촌 간이역에 피곤한 몸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두어 발자국 쓸쓸한 촌 역을 벗어나자 마자 별안간 전신에 끼쳐오는 진한 향수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지며 숨이 막힌다. 그것은 풀 냄새다. 북국 특유의 강렬한 태양의 열기에 찌는 듯 뿜어내는 식물들의 가장 진한 ‘에센스’의 냄새다. 아니 태양의 냄새인지도 모른다. 기실 그것은 바로 내 고향의 냄새며 어린 날의 꿈의 냄새이기도 하다.

숨이 막힌다. 코끝에 아니 온 몸에 지금도 저리도록 스며오는 고향의 풀 냄새, 숲 냄새, 나무 냄새, 거기 광활하고 인적 없는 원야 原野 그대로의 풀숲이 보인다.

무슨 노래일까? 저 하늘에 울려 퍼지는 구성진 노래 소리는? 아니 노래가 아니라 기적소리다. 지금 막 떠나는 기차인지 아니면 도착한 기차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기적소리가 길고 구성지게 외치듯 애소하듯 적막한 원야의 풀숲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긴 가락을 따라 나의 발은 갈 길을 재촉한다.

북국의 한낮, 뜨거운 열기에 메뚜기 개구리가 못견디어 튀어 나오는 논바닥에선 푸르다 못해 시커멓게 자란 벼포기들의 북녘다운 실차고 거센 선파 線波를 일렁이고 있다. 저만치 드문드문 높다랗게 울려 지은 시원한 원두막들은 마치 밀림에 지어놓은 토인들의 정글집같은 정취를 자아낸다.

어느덧 벌써 다정하게 귀를 울리는 외할머니, 외삼촌, 온 동네 일가들의 정겨운 사투리, 나는 마치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의기양양해 진다.

키를 넘는 수수밭, 강냉이밭, 땅을 덮는 오이, 가지, 콩들의 텃밭을 지나 오랜 풍우에 낡아 버린 그러나 육중하고 무거운 옛 고가 古家의 토담 앞에 서면 철없이 작은 가슴에도 인생과 세월과 가문의 역사가 아득한 전설처럼 메아리 쳐 온다. 여기서 나서 여기서 자라고 그리고 여기서 죽어간 그 오랜 조상들, 그리고 그 후손들, 길고 긴 역사의 피진 발자국을 말없는 고가는 말하고 있다.

나는 한 달음에 달려간다. 뜰 아래 박우물로, 찰랑찰랑 넘칠 듯 고여있는 얼음같이 찬 박우물을 퍼서 우선 장장 열 시간의 석탄먼지를 씻어내야 한다. 흑흑 느끼도록 목물을 얹어 주시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길이 등에 깔끄럽다. 깔끄러워 등을 움찔거리는데 누군가 슬그머니 내 옆구리를 툭 치며 빠져 나간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아까부터 이상한 눈초리로 힐끗힐끗 쳐다보던 역원 驛員이다.

드디어 그 역원은 수상하다는 듯한 따가운 눈초리를 염치 없이 들이대 온다. 하지만 그까짓 내친 걸음인데 기왕에 떠난 여행, 다음은 어디로 갈까, 그렇지 그 뒷산 밤나무 숲으로 올라가자.

울창한 밤나무 숲, 가을이면 4, 5백 주를 헤아리는 그 밤나무 산에선 수십 섬의 밤을 거둬들이지만 아직도 돋아나기 시작한 푸른 가시구슬 같은 밤송이들, 나는 그 밤나무 밑에 누워서 가시구슬 같은 새끼 밤송이들을 세어본다. 한 50개쯤 세다 보면 어느 가지가 어느 가지인지 분간을 못하고 잊어버린다. 가시송이 밑에 누운 내 몸이 가시에 찔리는 듯 따끔거린다. 어쩌면 바람에 저 가시송이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내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려올지도 모른다. 밤나무 숲 속은 그처럼 바람이 드세니 말이다.

나는 화다닥 일어나 길아래 터밭으로 달려간다. 넓죽넓죽한 잎사귀 사이사이로 노오란 오이꽃이 간난이 웃음처럼 발쭉거린다. 거무죽죽 시들어 꾸부러진 오이꽃 밑에선 연녹색 기다란 애오이가 솜털이 까실한 채 숨어 있다. 꼭지째 도려 따서 치마폭에 쓱쓱 문질러 아삭아삭 깨문다. 그것은 그대로 태양과 흙이 빚어낸 천연 그대로의 열매 맛이다. 아니 맛이라기보다 짜릿하게 입안을 적시는 향기, 바로 그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 까지도 나는 그 오이밭의 오이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강냉이! 키를 넘는 만주 원산이라는 그 강냉이 밭의 기억을… 팔뚝만큼씩 크고 실한 강냉이, 그것은 내 고향 여름 한철의 훌륭한 대용식이 되는 것이다. 강냉이 묵, 강냉이 떡, 저녁이면 커다란 쇠솥으로 하나 가득 삶아놓고 말만한 바가지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것을 그대로 퍼다가 오이나 가지 찬국을 곁들여 와드득 와드득 뜯는 맛, 그 맛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마당 한가운데 깔아놓은 멍석 위에 선 온 식구들의 소박하고 꾸밈 없는 자연의 잔치가 열리는 것이다. 중천에 둥근 달이 황금 쟁반같이 걸리는 밤에 있어서랴, 더 말해 무엇 하리오.

모닥불을 피운다. 몰려드는 모기떼를 쫓기 위해 마른 쑥이나 조목 (조이삭을 떨고 남는 북새기) 또는 강냉이 속들을 말려서 피우는 것이다. 연기는 한밤중 어둠 속에서도 선연히 뽀얀 진주 빛으로 퍼져 오른다. 그 매큼하고 쌉쌀한 냄새, 나는 누워서 문득 먼 서울을 생각한다. 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며 지금쯤 나선형 고리 같은 모기향을 피워놓고 비좁은 마루에서 부채질에 손이 아플 서울의 집 생각을.

옆에서 무엇인가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그것은 할머니의 물레질 소리다. 단조롭고 변화 없는 외줄, 비오롱의 낮은 가락처럼 앵앵 울려오는 물레질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어느덧 나는 잠이 든다. 북국의 밤은 삼복에도 바람이 차다. 얇은 무명 누비포대기로 어깨를 가리워도 스며드는 바람은 냉냉하게 시렵다.

어느덧 나는 먼 꿈나라로 간다. – 그러데 여기가 어딜까? 아, 서울역! 바로 서울역 2등 대합실 앞 쇠난간이다. 아까부터 노려보던 붉은 테 모자의 우악스런 역원 아저씨의 눈초리가 사납게 빛난다.

안녕! 미안합니다.

나의 기차표 없는 환상여행, 나의 유일한 피서법, 납량제, 이제 그만 두렵니다. 어느덧 온 몸에 마음에 줄줄이 흐르던 물같은 땀도 말끔히 가셨으니,

 

이제 그만 안녕!

서울역이여!

시계탑이여!

나만의 즐거운 여름 피서지여!

 

 

 

 

故鄕의 겨울

 

북으로 가는 경의선 京義線 완행열차, 귀성 歸省하는 제복의 학생으로 때아닌 성시 盛市를 이룬 열차 안에는, 언제나 지치고 때묻은 내 조국의 슬픈 얼굴들이 가슴을 메이게 했다.

한 해에, 두 번,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돌아가는 하향 下鄕 길에서, 아직 어린 소녀이던 나는 이따금 어둡고 슬픈 영상들로 하여, 즐거워야 할 시간을 자주 얼룩지게 하였다.

놓여난 수탉처럼 귀향의 기쁨으로 들뜬 학생들 틈에 끼어, 올망졸망한 짐 꾸러미들을 이리저리 승무원에게 걷어 채이면서 멍하니 혼 빠진 듯 앉아있는 젊은 아낙의 부황 든 얼굴이며, 늙은 촌부의 고목 같은 얼굴들, 만주 북간도를 바람처럼 드나든다는 이상한 남정네들의 상스러운 말씨, 일인 순사에게 꾸벅꾸벅 비굴한 웃음을 짓는 금테 안경의 신사, 이런 것들이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게 수치와 불행과 가난의 상징처럼 가슴을 치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 잘못 끼어든 듯 싶은 ‘하오리 하까마’에 ‘조오리’를 끄는 말끔한 일본인의 차디찬 눈길 앞에 마치 내 어머니의 허물이나 보인 것처럼 부끄럽고 서글프며 화가 나던 일들이 지금도 가슴 아프게 기억난다.

30년 전 귀성열차의 그 아득한 기억들은 지나온 내 생애의 첫 장을 들치는 듯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북으로 가는 길은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치욕과 불행의 길이었는지 모른다. 돌아갈 수도 다시 만날 수도 없는 비운의 끊어진 국토, 해방 25년 그날부터 분단과 이별로 얼룩진 산천을 마지막 다녀온 지도 어언 27년이 되었다. 이제 내 머리 속에는 희미한 바람소리만큼이나 고향의 기억도 엷어져 가고 있다.

 정주 고읍 古邑 ‘달운리’ 라 했다. 비옥한 땅에 근면한 천성, 부지런한 일손에 마을은 항시 활기 있고 유족했다. 어느 한 집인들 끼니를 거르는 집이 없었고 노오란 황조 밥에 토장 시래깃국일망정 배불리 먹고 살았다.

앞으로는 10리밖에 서해를 끼고 뒤로는 천주산 울창한 숲이 병풍을 두른, 그래서 사시절 펄펄 뛰는 생선에 주리지 않았고 깊은 산 우거진 숲이 주는 자연의 혜택으로 겨울 땔감에 걱정이 없었다.

5리 밖 ‘새당거리’ (새장거리임, 새로 선 장거리를 뜻함)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내 온 마을에 불이 켜지고 남북으로 열리는 철도가 불과 시오리 밖에 달리고 있는 한가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가리켜 작은 서울이라 애칭 했다.

어머니의 집은 대대로 내려오는 문중 門中의 산, 밤나무 동산으로 둘리운 초가삼간, 가을비, 겨울눈을 못 가릴 누옥 陋屋은 아니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를 이어주는 소슬한 중문도 없고 추녀가 덩그런 청기와집도 아니었다.

사방 흙벽에 장지문을 열면 굵은 갈자리를 깔아놓은 아래 윗방, 빨간 쌍농짝 위엔 언제나 노오란 강낭떡(옥수수떡)이 당직(나무껍질로 짠 소쿠리같은 것) 속에 딩굴고 있었다. 짤짤 끓는 아랫목에 파묻은 단술 항아리에선 솔솔 – 엿기름에 니밥(입쌀밥) 삭는 냄새가 풍겨 나오고….

강낭떡은 코에 배어 보기도 싫고 단술은 삭히고 끓여서 제사에 쓰고 나야 내 몫에 오고… 나는 몰래 뒷곁으로 돌아간다. 잿잔 (불 때고 남은 재를 비료로 쓰기 위해 쳐 넣어 두는 곳) 한 구석에 파놓은 밤 구덩이, 그 밤 구덩이를 틀어막은 볏짚을 뽑아낸다. 둥그런 구멍으로 작은 손을 밀어 넣어 힘껏 잡히는 대로 쥐어내지만 번번이 세 알을 넘지 못한다. 밤알은 갓난이 주먹만큼한  밤알들이었다.

긴긴 겨울밤에 물레를 켜시는 외할머니 곁에서 윙윙 돌아가는 물레소리를 들으며 비올롱의 선율같은 애수를 느끼고 밤늦게 야학당에서 돌아오는 삼촌을 위해 마련하는 얼음국 같은 김치말이(김치국에 국수나 밥을 만 것) 밤참에 입을 다시기도 했다. 27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김치맛을 잊을 수가 없다. 통무우와 통배추를 소금국에 담근 별것 없는 국물김치건만 그렇게 입속이 씽하도록 시원하고 청정한 미각을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북국의 겨울은 길고 사나웠다. 한겨울 다섯 달을 눈에 싸여 산다. 들과 산과 마을은 온통 눈 속에 묻혀 은백으로 눈부시다. 휘몰아치는 북풍에 닫아걸은 문소리도 덜컹거리고 그럴 때면 삽살이도 덩달아 몸이 달아 짖어 댄다. 뒷동산 밤나무 숲도 눈에 싸이고 천주산으로 오르는 후미진 산길은 첩첩한 얼음에 덮여 다름 해 늦은 봄이 되어 마을에 진달래나 개나리가 피기 시작할 때에야 해빙이 된다.

고향의 겨울은 눈에 덮인 한 폭의 산수화였다. 그러나 이젠

 

풀냄새 사과냄새

살속에 젖던

비오는 천주산 두메 산길

묘비 없는 산소 하나

풀밭됐겠지

 

누가 무엇 때문에 막는 우리의 정일까, 잘라진 국토의 스물 다섯 해 이것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부모를 두고 아내를 남기고 자식을 떼어놓고 혈혈단신 넘어온 수 많은 동포들, 부르면 대답할 듯 가까운 하늘 아래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애끓는 사람들, 진실로 그들이 흘린 눈물보다 또한 헛되게 흘려버린 스물 다섯 해의 보석 같은 세월보다 귀중한 것이 또 있을까.

열국이 다투어 연구실에 들어앉아 연구에 몰두할 때 우리는 산야에 엎드려 살육에 바빴고 열국이 증강의 기치를 들고 공장을 세울 때 우리는 남부여대 하여 천리 피난길을 눈물로 오르내렸다. 이제 병든 얼굴에 분을 바르듯 잘라진 국토에 재건의 삽을 넣었다. 하지만 남북을 이어주는 민족의 동맥은 여전히 끊어져 있다. 인간의 생명이 사상과 이념의 제물이 되어온 스물 다섯 해, 어디쯤 통일의 길은 열릴 법도 하건만, 그래서 잃어버린 고향과 부모들 찾을 날도 있어야 하련만.

 

 

 

파밭에 울던 그날

 

그게 몇 살 때였을까. 아리숭한 기억 속의 그 한 장면이 마치 인화지에 찍힌 천연색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앞뒤의 머리와 꼬리가 잘린 무우 밑둥 같은 그 한 대목이 아무런 여관도 없이 내 기억의 벌판에 이따금 신기루처럼 떠오른다.

하얀 파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파밭이었다. 그 파밭에서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울고 있었다. 손에는 파꽃대궁이가 들려 있었다. 나늘 업고 선 그 여인의 손에서도 파꽃대궁이가 바람개비처럼 배배 돌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그 여인의 등에 비비며 여전히 나는 훌쩍거리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울면서 귀밑머리를 잡아 뜯었다. 누군가 새로 땋아준 귀밑머리가 도무지 편편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를 업고 파밭에 섰던 그분이 누구였을까. 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어머니만큼 젊은, 그러나 어머니보다 훨씬 부드럽고 다정스러웠다는 기억으로 나는 그분을 고모님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단 한 분 뿐인 고모님.

그때 그 흡사 클로바꽃 같은 파꽃이 하얗게 흐드러지도록 피어 있던 파밭의 기억, 그 기억이 30수년을 지난 어느 날 한 구절 의 시로 되살아 났다.

 

더러는

외할머니 머리쪽같은

파꽃 대궁이

더러는

큰 이모 옥비녀 만큼한

파꽃 대궁이

 

갓난이 아린 꿈이

꽃술처럼 피어나던

파밭 이랑에서

긴 날을 심심하던

어머니 봄나들이

 

외갓집

잔칫날은

길기만 했다

 

– 파밭에서

 

 

짐작컨대 나는 낮잠을 잤을 게다. 낮잠을 자다 깨어보니 어머니가 없었다. 어머니 없는 빈 방에서 쿨쩍거리는 나를 고모는 등에 없고 뒷곁 파밭으로 갔을 게다. 하얀 파꽃 대궁이를 따서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그치지 않는 내 울음을 달랬을 게다. 하얀 파꽃 대궁이를 따서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그치지 않는 내 울음을 달랬을 게다. 그런데 그러한 앞뒤의 사연같은 것을 까맣게 잘라먹고 그 한 대목만이 마치 끊어진 필름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살아있는 것이다.

나의 어린날은 언제나 그 파밭에서부터 시작한다. 때문에 나의 고향의 이야기도 그 파밭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파밭의 기억이 단절된 토막 사진이듯이 나의 고향의 얘기들도 그렇게 단절된 토막토막의 그림들이다.

내 아버지의  고향은 평북 정주군 갈산면 오봉산 기슭이었다. 어머니는 거기서 한 30리쯤 떨이진 고덕면 월운동, 속칭 달운리라 불리우는 작은 마을이고.

조부님은 결기가 대단하신데다 방랑벽이 심하시던 시골 선비였다. 3.1 운동 당시 온 고을이 통틀어 나선 만세사건에 어물어물 한 몫을 드셨다가 톡특히 고을 경창서 신세를 지고 거의 기동을 못하실 만큼 되어 업혀서 풀려나오신 후로는 더더욱 가사건 농사건 간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몸이 추슬자, 이내 타관으로 떠돌아 다니는 김삿갓이 되셨다 한다. 그러다 몇 해 만엔가 바람처럼 돌아오셨을 때엔 이미 신병이 깊었고 마침내 54세로 불귀의 객이 되셨다고 한다.

조부님의 거센 바람을 이어받은 독자인 아버지는 그때 이미 천리 밖 서울에서 객수를 씹으며 풍운의 꿈을 꾸고 계셨다. 조부님이 돌아가시자 조모님은 죽어도 외아들을 따라 가리라 결심하ㄱ시고 논밭전지 팔고 가산을 정리하여 마침내 선조의 땅을 떠나셨던 것이다. 내 나이 불과 네 살 때 가을이었다. 나는 철없이 좋아라 어머니 등에 업혀 서울로 올라왔을 것이며, 파밭의 기억도 아마 그 무렵의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나의 고향의 기억은 고작 토막난 필름같은 그 파밭의 기억 밖엔, 고모님의 등에 업혀 외갓집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며 쿨쩍거리던 파밭의 기억 밖엔 있을 턱이 없다. 다만 어려서부터 장성하여 38선이 막히기까지 숱하게 어머니 따라 또는 혼자서 내왕하던 외갓집의 기억들을 제외하고는… 기실 나의 고향의 기억은 곧 외갓집의 기억이며 그 외갓집의 기억은 30리밖에 떨어진 오봉산 기슭으로 직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외조모님은 인자하시면서도 걸찬 분이셨다. 외조부님을 일찍 여의시고 혼자서 가계를 맡아 8남매를 기르시며 큰 농사를 지어내신 분이시니 음성부터 어딘가 기골스럽고 남정네 같은 데가 있었다. 조백 早白 한 흰 머리에 겨울이면 언제나 그 고장 풍습대로 하얀 명주 삼팔수건에 햇솜을 놓아 머리에 척 두르고 계시던 모습이 지금도 인상화처럼 또렷하다.

전주 이씨만 모여 사는 달운리 아래 윗 마을에서 서울댁 홍씨집 외동딸인 나는 이름도 소용 없이 그저 홀례로 통했다. 홍씨집 딸이라는 뜻이다. 어머니 치마꼬리에 묻혀 다닐 때부터, 커서 장성하여 어엿한 서울 여학생으로 제복을 입고 방학 때 내려갈라치면 아무개네 집에 서울 홍례가 왔느니 라고 조용하고 심심한 마을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하곤 했었다.

온 마을이 따지고 보면 모두가 얽히고 설킨 일가친척 문중 문중 이니, 사돈의 팔촌까지도 조반이다. 점심이다 또는 저녁 한 끼를 마음먹고 차려 먹여야만 마음이 편하고 도리를 다 했다는, 그런 의리 깊고 순박한 혈연의식과 유대의식이 강한 마을이었다.

 빈 병들이 하나 가득 철철 넘게 담은 미역과 닭고기, 마른 복아지를 밥솥에 쪄서 졸깃졸깃하게 마치 쇠고기 장조림처럼 감칠 맛이 나게 한 복아지 찜, 손바닥만큼씩 크게 썰어 고물에 묻힌 찰떡과 배틋한 길금 냄새가 구미를 돋구는 구수하고 달콤한 감주, 이런 것이 모두 대륙적 기질을 받은 후덕한 인심을 말해 주듯 투박하고 소담스럽게 담겨진 그 자주빛 윤이 찰찰 흐르는 옻나무칠 밥소반을 나는 잊지 못한다.

‘디과’ 라는 것을 처음 먹어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 디과 란 지과 地果 의 된소리이며 땅 속에 열리는 과실이라는 뜻으로 고구마를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그것을 나는 한 입 비어 물다가 이내 내려놓고 말았다. 좀 들척지근하고 물렁물렁한 것이 입 안에서 확 풀어져버리는 게 도무지 그 미각이 입에 생소했다. 비위에 맞지 않아 더 이상 손대기가 싫었다. 지금도 내가 고구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아마도 그 어린날에 생소하던 미각에 연유하는 건지도 모른다.

만주산 강냉이가 해마다 풍작이었다. 어린애 팔뚝만큼씩한 늦늦하고 실한 이삭들 – 금시 줄기에서 떠사 단물이 뚝뚝지는 – 이삭들을 커다란 쇠솥에 푹푹 삶아서 먹던 구수하고도 달던 강냉이 맛을 나는 아직 다른 어디서도 맛보지 못하였다. 겨울이면 노란 황국 황국 빛 강냉이덕이 언제나 고리당직 (고리로 잔 조그만 소쿠리) 안에서 굴러 다녔다.

겨울은 참 길고도 첩첩했다. 짧은 가을의 추수가 끝나고 집집마다 벼낟가리가 채 쌓이기도 전에 푸뜩푸뜩 날리기 시작하는 눈은 하룻밤 사이에 온 마을과 산을 하얗게 뒤덮어 버린다. 눈 위에 또 눈이 쌓이고, 온 겨울 녹은 일없이 쌓이기만 하는 눈은 이듬해 3-4월이나 가야만 녹기 시작한다.

눈이 온 다음날이면 외삼촌은 곧잘 집 뒤 천주산 골짜기에서 산꿩을 한두 마리 씩 꿰차고 돌아왔다. 그런 날 밤이면 연한 꿩고기가 비적하게 뜬 국수쟁반이 날아왔다. 머리가 찡하도록 시원한 동치미국엔 쫄깃쫄깃한 배추포기가 손으로 쭉쭉 찢어져 얹혀있었다. 외삼촌들이 야학당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어두운 석유등 밑에서 할일 없이 무료하고 긴 밤을 꾸벅꾸벅 졸거나, 윗칸에 채려 놓은 베틀에서 달가닥 달가닥 외할머니의 베짜는 소리를 듣다가 어렴풋이 잠들어버리던 나는 이 한밤중의 꿩국수말이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잔칫날을 기다리는 만큼이나 눈 오는 날을 기다리기도 했다.

야학당은 밭과 길과 개울을 건너는 마을 맞은편 언덕같은 산 아래에 있었다. 야학당 학생들은 나보다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말만큼씩 한 처녀와 총각들이었다. 교실 하나에서 1학년부터 4, 5학년까지를 동시에 지도하고 있었다. 선생은 오산고보 五山 高普 를 졸업하고 잠시 일본에까지 갔다 돌아왔다는 사과밭 집 아들이었다.

나는 마을에서 몇 사람 안 되는 오산고보 출신에 일본에까지 갔다 왔다는 그 사과 밭 집 외아들 – 시체(신식)청년을 보기 위해 가끔 어른들 몰래 야학당 교실 뒤에 숨어 들어가곤 했었다. 어두운 석유등 밑에 얼굴 모습도 분명치 않은 하이칼라 머리에 검은 색 세루 양복을 입은 암담한 표정의 남자였다. 토탄 불이 이글이글 타는 다루마 (둥근 앉은뱅이 꼴의) 스토오브의 빨간 불빛에 비춰진 그의 묵화 같은 전신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동경 동경 같은 것을 자주 감득했다. 그것은 무척 감수성 빠른 소녀의 꿈을 자극하기에 족할 만큼 신비스런 분위기였다.

큰 마을의 창화는 나보다 두 살 위인 친구였다. 여자로선 마을에서 단 둘 밖에 없는, 고을 보통학교 졸업생이었다. 30리 길을 하루같이 달구지를 타고 통학한 창화는 서울에서 고등여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를 무척 부러워하면서도 엄한 어른들의 낡은 생각에 묶여 별 수 없이 신랑을 구해 시집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중매장이 매파가 몇 십리 밖에서까지 드나들었다.

창화는 소슬대문에 중문까지 달린, 마을에서도 몇 채 안 되는 기와집에 돌담벽을 둘러친 이 참봉 李參奉 댁의 유일한 손녀였다. 아버지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전실 소생의 오라버니와 단 오누이였다.

그 옛날 창화 어머니가 이 참봉댁 창화 아버지에게 어엿한 처녀의 몸으로 후실 시집을 올 때 그 예장 禮裝 바리가 새 장거리에서 달운리까지 10리 길에 줄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부잣집 외동딸이 팔자땜을 하기 위해 부잣집 귀공자의 후실살이로 들어오면서 아까울 것 없이 뿌린 돈, 그러나 창화 어머니는 창화 하나를 낳고 웬일인지 더 낳지 못했고 이윽고 창화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손 孫이 귀한 데다 그늘지기 시작하는 사양의 명문가엔 언제나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끼어있는 듯했다. 어둡고 음습한 망령의 그림자 같은 것이.

보기에는 무섭기만 한 참봉 영감님, 창화 할아버지는 그의 소유지인 마을 앞산 정자에서 여름 한 철을 지나곤 했었다. 정자는 천주산을 제외하고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여서 약수와 송뢰와 풀향기로 가득 차 잇는 명당자리였다. 창화와 내가 산에서 놀다가 명당 같은 정자를 찾아가면 상투에 탕건을 쓰신 참봉 영감님은 언제나 필묵을 앞에 놓고 장지에 한시 한시 를 쓰고 계셨다. 한번도 웃고 말씀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 어린 시절을 슬프게 물들였던 몇 가지 사건 중에 이 마을에 얽힌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아랫마을에 살고 있던 먼 촌 관근 오빠네 이야기다. 관근 오빠와 인근 오빠는 형제가 다 서울 유학생으로 형은 고공 고공을 나와 직장에 있었고, 아우는 경성의전 경성의전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때는 서울 우리 집에도 얼마간 기숙하고 있었고 또 이웃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슬픈 사건이 일어날 무렵엔 둘은 관근 오빠의 직장을 따라 인천에서 살고 있었다.

불행이란 참 이상하게 싹트는 것인가 보다. 남달리 우애가 깊고 서로 착하여 말씨름 한 번 없이 조용하기만 하던 그들 형제였는데, 어느 날 뜻밖에 아우 인근 오빠가 원인도 모를 철도 자살을 해버렸던 것이다. 부모에게나 형에게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죽어버린 것이다. 부유한 지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부러울 것 없이 자라났건만 그에게는 남모르는 고민이 있었다. 어려서 우연치 않게 앓은 병 끝에 한 쪽 다리를 절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 시체말로 소아마비였었나 보다.

그런 일로 해서 평소에 늘 어둡고 우울한 얼굴이었지만 그런 대로 형의 뒤받침과 격려로 의사가 될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첫 해에 시험에 떨어지고 나자 그는 더없이 비관했었고, 더욱이 그것이 성치 못한 다리 때문일 거라는 주위 사람들의 은연 중의 뒷공론이 있으면서부터는 별로 공부도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늘 알지 못할 서적들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한다.

아무튼 그렇게 갑작스레 자살해버리고 만 인근 오빠의 유품 가운데서 몇 권의 허무주의 철학서적이 나왔다고 전해졌을 뿐 다시는 그들 중의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였다. 아우를 잃은 후, 실신한 나머지 관근 오빠는 자청하여 중국 상해 상해로 건너갔고, 이내 거기서 병을 얻어 역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그 아득한 이야기들을 주섬거리면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린 날들이 역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천주산 골짜기에 묻혀 아득히 흐느끼고 있음을 생각할 때, 기실 고향의 의미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랑과 시詩와 전란戰亂과 결혼

 

가만히 눈을 감는다.

어디에 나의 스무 살은, 스무 살의 빛나던 태양과 뜨겁던 바람은 가버렸을까.

아득히 감은 눈망울 속에 기라성처럼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 그 진하고 연하고 아슴하고 또렷한 빛과 색과 무늬, 잡힐 듯 떠오르다 사라지고, 사라질 듯 숨다 다시 떠오르는 무지개같은 그림들, 그림 속의 웃음, 그림 속의 눈물, 그림 속의 기쁨과 슬픔, 그 온갖 소리들이, 바람같은 소리들이 아득한 공중에서 나를 에워싼다.

나의 20대, 도시 그 출발역은 어딜까,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달려간 급행열차일까. 지금 생각하면 참 너무도 초특급으로 달려가버린 번개같은 열차였다.

나도 모르게 출발해서 나도 모르게 달려가버린 무서운 속력의 급행열차, 정신 없이 흔들리며 달려가다 어느 날 문득 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떠보니 나는 황량한 벌판, 이름도 모를 간이역 簡易驛 에 홀로 떨어져 내려 눈물을 글썽대고 있었다.

나를 태우고 질풍처럼 달리던 스무 살의 기차는 어디로 갔을까. 그처럼 뜨겁고 그처럼 무모하게 나를 불태우던 스무 살의 바람은 지금 어디서 저 혼자 표표히 떠돌고 있을까.

나의 20대는 아무래도 종전 [終戰]과 더불어 시작한 것 같다. 일제 日帝의 패망과 광복의 가슴 벅찬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 낮과 밤을 거리와 골목으로 쏘다니던 감격시대, 나는 아직 여학생의 티를 벗지 못한 가랑머리의 소녀였다.

그런 몽환 속에서도 나는 잃었던 모국어를 찾기 위해 우선 말부터 배우기 시작해야 했다. 소학교 6년, 여학교 4년을 일본어를 국어로 배워야 했던 치욕의 역사를 씻어내고 올바른 우리말 우리글을 배우는 슬프고도 기쁜 충만 속에 날이 갔다.

이윽고 마비됐던 치안이 차츰 회복되고 모든 기구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돌기 시작할 무렵, 나는 대학의 제복 아닌 제복을 입은 영광된 여대생이 되었다. 마치 온 천하가 내 가슴 하나에 있는 야, 자랑스럽고 보람 겨웠다.

그러나 그런 감격과 기쁨, 희망과 포부를 만끽하기엔 사회는 너무도 난마같이 어지럽고 무질서 했다.

대학은 문만 열어 놓았을 뿐, 휴강이 예사로웠고 학생들은 소아병 小兒病 적인 정치열에 들떠 학원을 정치장화 政治場化 하려 했다.

뜻있는 소수의 학생들은 갈 곳이 없었다. 휴강으로 텅 빈 강의실, 학생들로 와글와글 끓는 강당, 그 어느 쪽도 그들의 빈 가슴을 채워 주지는 못하였다.

그런 공허 속에서 몇몇의 남녀 학생들이 모여 연극부를 창설했다. 학교 뒤뜰의 조그마한 헛간 같은 건물 하나를 빌려 연극부 간판을 걸었다. 그리고 우선 명작을 선정해서 읽은 독서회부터 시작했다.

처음 10여 명이 시작했던 연극부는 한 달이 못 가 50여 명의 회원으로 불어났다. 모두가 우락부락한 남학생들로 와글거리는 속에 소수의 여학생들도 의젓이 자기 위치를 지키며 부드럽고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연극부 창설자의 한 사람이었던 나는 그때 무엇이었나. 50명의 대회원을 이끄는 연극부 부장, 그렇다 그때의 내 직함(?)은 사범대학 연극부 부장이었다.

생기기는 가느다란 풋오이 같고 가무잡잡한 깨떡 같았던 여학생에게 그 우락부락한 40여명의 남학생들은 무슨 속셈에서인지 연극부 부장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감투를 씌워 놓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색적인 여자부장을 하나 허수아비처럼 세워둠으로써, 저마다 한 번쯤은 넘볼 수 있고 욕심 낼 수 있는 그 자리에 대한 피차의 경쟁이나 암투를 미연에 방지하고 친목을 도우려는 슬기로운 지혜의 고심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나는 그 거칠고 시꺼먼 산사람같은 남자들 수풀 속에서 홀로 연한 풀잎처럼 앉아 어마어마한 연극부 부장이라는 영광된(?) 감투를 쓰고 그들의 암류 暗流 하는 세력의 완충지대가 되어 한 마리 어린 고양 羔羊 처럼 희생(?)과 봉사(?)의 미덕을 발휘하면서 그들에게 이용되긴 하였지만, 그러나 내 생애에 있어서 그것은 진실로 화려하고 꿈같고 보람스러웠던 나날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몰리에르의 수전노 수전노, 상민 귀족 등, 국내외 작품들을 발표하는 화려한 교내 연극제의 막을 올렸고 더욱이 서울 중앙 방송국에서의 최초의 학생극 방송의 테이프를 끊기도 했다. 홍 아무개 작에 홍 아무개 주연이라는 웃지 못할 독무대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연출해 냈던 것이다. 실로 그 만용과 대담과 의욕, 그것은 오직 젊음이 갖는 특권이며 재산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듯 화려하고 의욕적이고 분망한 나날 중에서도 내 가슴은 언제나 비어있는 듯 허전했고, 가시지 않는 목마름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갖는 젊음이란 그릇이 하늘처럼 무한하고 땅처럼 넓어서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때문이지도 몰랐다.

생명이란 불붙는 기름같은 것이다.

무엇으로도 태우지 않고는 꺼져버리는 불… 하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태울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랑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기실은 생명의 불을 찬란하게 불태우기 위한 기름인 것이다. 때문에 그것들이 없을 때 불은 깜박거리고, 꺼질 듯 어두워지며 인간은 실의와 고독에 빠지는 것이다.

생명은 본능적으로 연소의 대상을 찾게 마련이다.

내 젊음 안에서도 어느덧 사랑에 대한 갈망은 자랐고 그것은 결국 또 하나의 구체화된 번민, 구체화된 비애로 나를 끌어 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구체화된 내부의 갈등은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유출되어 나가는 것이었다. 마치 샘물이 가득 차면 어쩔 수 없이 넘쳐 흐르듯이….

나의 처녀작 ‘가을’은 바로 그러한 내적 고뇌와 횡일 橫溢 의 불가피한 토로이며 표현이었다.

 

 

초라히 코스모스 한다발 안고

어두운 밤을 돌아가는

내야 가난한 소녀올시다

삼단같은 머리도

머리에 드릴 다홍댕기 한감도

지난바 없는

다만 숙이 – 숙이란 이름만을 가진

이렇게 작은 몸이 낙엽을 밟고 돌아갑니다

보십시오

달도 별도 없는 이밤 하늘을

스스로히 지나가는 바람고

바람 속에 살아나는 그리운 사람들의 숨소리

얼마나 먼 길이기에

한여름 따사한 햇볕도 못 쬐이고

이 바람 드센 가을 밤길을

옷자락 여미며 가야 합니까

( 中略 )

가야 할 길

가야 할 길

가난한 소녀가 살아야 하겠기에

이 밤도 이 어둠도 역겨움 없이

항시 꽃 한다발 가슴에 안고

그리움 속에 부르는

서리찬 十月 이 있읍니다

 

(가을)

 

 

이렇게 치졸하게 토로해 낸 처녀시 ‘가을’이 1947년 11월 문예신보 文藝新報 에 게재되면서부터 나는 또 하나의 과제 앞에 마주 서게 되었다.

묵직하지도 희망하지도 않았던 시작 詩作이라는 또 하나의 엄청난 과제 앞에.

이렇듯 한꺼번에 닥쳐온 사랑과 시에의 눈뜸이 비할 바 없이 내 생명을 뜨겁게 연소하면서 갈피 없는 열병 속으로 나를 몰아갔다.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던 젊은 생명의 혼돈 속에서 단 하나 분명한 것은, 타면 탈수록 타고 남은 빈 자리에 더욱 큰 공허와 더욱 큰 허무가 입을 벌리며 다가서는 고독의 기갈이었다.

기실 인간의 생명은 한편에선 타면서 다른 한편에선 하얗게 재가 되어 죽어가는 숯불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나무에 달린 풋과실이 태양의 열을 흡수하며 할수록 빨리 익어 떨어지는 그 배율 背律 의 모순같이.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또 생각할 만큼 어른스럽지도 못하였다. 때문에 그저 포식을 원했고, 포식 뒤에 오는 공허에 가슴을 앓으며 슬프던 나날, 나는 또다시 무서운 전란, 6.25라는 전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실로 그 처절한 국난을 당해 놓고 누가 개인적인 번민이나 비애, 사랑이나 문학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있었을까.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미뤄놓고,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살아 남기 위해, 우선 목숨을 살아 보전하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피난의 길을 떠나야만 했다.

이국 異國처럼 낯선 땅, 부산에서의 가난하고 외롭던 피난살이, 많지 않은 재산과 가족을 잃고, 또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나를 가눌 수 없었던 불행한 연실은 불가피하게 대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또 하나의 원아지도 않았던 인생의 계단에 발을 올려 놓았던 것이다.

기실 이제껏 꿈속에서 헤매던 가랑머리 소녀는 문득 잠이 깨어 한달음에 껑충 현실의 여자로 뛰어 올랐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사랑과 문학에 눈 뜬 안개 속의 소녀는 전란과 현실에 휘말리면서 어느덧 차갑고 메마른 생활의 여자로 바뀌어 갔던 것이다.

나의 20대, 지금 어느 대양 大洋 의 한복판을 홀로 떠다니고 있을, 다시는 재회의 길 없는 가출아 家出兒 인 아득한 20대.

그 혼돈과 방황과 번민과 비애로 얼룩졌던 20대를 영결 永決하고, 감기지 않는 눈을 뜬 채로 버려두고, 묘비명 墓碑銘 하나 없이 돌아서게 한 시간의 잔인한 채찍, 그 채찍을 지금도 나는 등 뒤에 느끼고 있다. 얼마나 더 그 사나운 시간의 채찍에 몰려갈 것인지 알 수 없으면서.

기실 나의 20대는 한 세대 안에 소녀와 여자, 두 시대가 공존한 파란과 질풍의 시대였다.

 

 

 

한 권의 시집 詩集

 

다박솔이 드문드문 웅크리듯 앉아 있고, 눈 아래 푸른 바다가 망망하게 구비치고 있는 언덕 위였다.

넓고 탄탄한 길을 돌아 끝나는 곳에, 소나무 떡갈나무 전나무들의 우거진 숲이 있고, 그 숲 속에 천체의 신비를 탐지하는 마술의 궁전 같은 관상대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우울한 잿빛 건물의 관상대는 이상하게도 내 어린 마음을 항상 설레게 했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 전체로 통하는 마법의 오솔길처럼…

그러나 그보다 더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그 언덕 위 중앙에 솟아 오르듯 군림하고 있는 한 시대의 증인 같은 고성 古城이었다. 아니 고성 같은 18세기 풍 風의 대 저택이었다.

그것이 누구의 집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별로 가꾸는 이 없이 버려진 건물과, 옛날엔 무척 아름다웠었을 정원이 언제나 비어있는 듯 적막하게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고성과 같은 저택의 빈 정원과 그리로부터 뻗어나간 길고 곧은 언덕길 위에선 어디서나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바다 위엔 멀고 가까이 몇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었고, 축항엔 상선과 어선들이 흰 깃발을 날리며 기항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시절, 거의 날마다 걷던 인천 그 서공원 西公園 주위는 기실 이렇듯 감동적인 이국 정취에 쌓여 있었고, 때문에 그런 것들이 빚어내는 꿈같은 분위기는 내 어린 감성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었다.

나는 허락하는 한 거의 온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런 때의 유일한 벗이 바로 그 한 권의 시집이었다. 조그마한 문고판의 일본어로 된 ‘헷세 시집’.

지금, 그 책도 책의 모습도 잊었지만 그 시집과 더불어 생각나는 사람의 기억도 기실 까마득하지만 하다.

그때 아마도 19세의 홍안의 소년, 아니 소년기를 막 벗어나려는 청년 R은 전쟁징집 徵集 을 피해, 시골 소학교에 숨어있는 촉탁교사였다.

나는 지금 분명 ‘헷세 시집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왜 ‘헷세 시집’을 준 사람이라고 잘라서 말할 수 없을까? 그것은 언제 어떻게 그 책을 R에게서 받았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받은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 ‘헷세 시집’하면 그 바다의 고성과 관상대와 그리고 R을 연상하던 것이 어느 틈엔가 R에게서 그 책을 받은 것이라고 확신해 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헷세 시집’은 내가 처음으로 소년 – 이성 – 을 의식하면서 손에 쥔 최초의 시집이었다.

1945년 2차대전의 말기, 절망적인 불안이 온 땅을 덮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전란 속에 끌려갈지 모르는 죽음의 검은 절망이 아직 젊은 피의 소년 같은 R을 미칠 듯이 괴롭혔던 것 같다.

 

슬퍼하지마라, 이제 밤이 온다.

그러면 창백한 산과 들에

차가운 달이 남몰래 웃는 것을 보며

두 손 마주잡고 조용히 쉬리라

슬퍼하지마라, 이제 때가 온다

그러면 쉬자,우리들의 작은 십자가가

하연 길섶에 두 개 나란히 서리라

그리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또 오고 가리라

 

– 방랑 放浪의 길에서

 

그런 헷세의 싯귀를 조용히 외우는 R의 눈은 바다를 향해 항상 젖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시의 뜻도 또 R의 심중도 분명히 헤아리지 못하면서 그런 대로 곧잘 이상한 비애에 빠져 망망한 바다밖으로 갈피 없는 시선을 던지기도 했었다.

그저 막연하고도 뽀오얀 안개 속의 영상들, 그 불분명한 명암 明暗 속에서 나는 어느듯 헷세의 신선한 시정에 감전되어 갔다.

 

숲속의 작은 새는

귀엽기도 하지

예쁜 소리로 노래 부르고

조르륵 둥지 속에 미끌어져 간다.

 

천성의 시인 헷세는 이미 네 살 때부터 노래 같은 것을 지어, 곧잘 혼자 곡을 붙여서 불렀다고 한다. 앞의 노래도 바로 그의 어머니의 일기 속에 적혀있는 헷세 네 살 때의 노래라고 한다.

방랑과 고독을 사랑하고 노래한 영원한 나그네 헷세의 시는 청춘과 고독과 방랑과 죽음을 끊임 없이 읊어내고 있다.

그의 시에선 어떤 불행과 비애도, 깊은 사색 –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깊은 정신의 샘으로 닦아낸 투명한 구슬처럼 빛나고 있다.

그 시어 詩語들은 신선한 감각과 반짝이는 슬기로 촉촉히 젖어 있어 전신을 씻어 내는 묘약 妙藥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아직 눈뜨기에 멀었던 내 어린 날은 R의 우울한 눈빛과 헷세의 투명한 사색의 숲 속에서 곧잘 눈 비비며 신선한 기지개를 펴곤 했었다.

 

피로한 여름이 고개를 숙여

호수에 비친 색낡은 자기 모습을 본다.

나는 피로하여 먼지 투성이로 걷는다

내 뒤엔 청춘이 머뭇거리며 서서

아름다운 머리를 숙여

더 이상 나와 같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

 

– 덧없는 청춘 靑春

 

이런 시들이 갖는 헷세의 시 세계는 지금도 앞으로도 내 시의 고향, 마음의 영주지 永住地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 권의 시집과 한 소년의 어두운 눈빛으로 잠 깬 나의 어린 날, 나는 가끔 그 한 시절을 이상한 감동으로 회상한다.

참 R은 종전 후 바다로 갔다던가.

해양대학을 나와 지금은 어느 먼 이국의 외항선을 타고 세계의 바다를 돌고 있으리라.

 

 

 

내가 받은 빨간 털목도리

 

그것은 타는 듯 선명한 단풍색의 서리서리 긴 털목도리였다.

그러니까 내가 만 네 살 되던 해 겨울, 어머니에게 설빔이란 이름으로 받은 첫 선물이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선물이란 낱말과 의미를 깨닫고 받은 최초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바쁜 일 틈틈이 며칠을 두고 어머니는 털목도리를 짜고 계셨다. 그리고 나는 목이 타게 그 완성을 기다리고 있었고. 잠깐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는 얼마큼이나 불어났는지 손가락으로 재보고, 할머니한테 옛날 얘기를 조르다가는 또 건너와서 재보고…

그러던 어느 날 깜빡 낮잠에서 깨어보니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 곁에 지키고 계셔야 할 할머니가 안 계셨던 것이다. 사실 그 무렵 뿐 아니라 그 후에도 나는 노상 할머니 치마꼬리에 매달려 뒷간에까지 쫓아다니는 아이였기 때문에 잠든 사이 할머니가 나를 버리고 혼자서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은 내게 있어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온 집안을 찾아 다니다 마침내 목을 놓고 울어버린 나에겐, 집안식구의 어떠한 달램도 소용이 없었다. 쉽게 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어지간히 울음 끝이 질긴 아이였다.

그때도 좀체 그치지 않는 내 울음에 식구들이 골치를 앓고 있는데, 마침 그때 어머니가 부랴부랴 서둘러 바늘을 뽑은, 완성된 목도리를 들고 건너 오셨던 것이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도리였던가. 나는 얼떨결에 그 질긴 울음을 거짓말같이 뚝 그치고 말았다. 그 서리서리 길고 빨간 털목도리는 놀라운 힘으로 내 질긴 울음을 걷어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여전히 편안치가 않았다. 푹신하고 보드라운 털목도리의 촉감에 젖으면 젖을수록 견딜 수 없이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기다리던 목도리를 두르고 어디든 할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으로 더욱 안타까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대문을 열고 살며시 밖으로 빠져 나갔다. 사나운 바람이 한달음에 몰아치며 벗은 나무 그림자가 길게 누워서 도깨비처럼 흔들리고 잇는 스산한 저녁이었다.

나는 어느덧 굴다리를 지나고 큰 거리를 건너서 서울역 앞을 타달타달 걷고 있었다. 그리고 염천교 다리를 건너 공사장 자갈밭을 따각따각 기어 넘어서 마침내 한 식경이나 걸려 서소문통에 있는 그 집 앞에 다다랐다. 그 집 – 몇 번인가 할머니 등에 업혀서 드나들었던 그 할머니 고향친구의 집, 그 집에 할머니는 분명히 계셨던 것이다. 내 짐작대로.

사실 그것은 네 살 난 계집애로선 당돌한 첫 나들이였었다. 그러나 만일 그때 그 빨간 털목도리가 아니었던들 과연 나는 그 멀고 추운 겨울 길을 혼자서 감히 걸어갈 용기를 가졌었을까.

그날 아이를 잃었다고 벌인 집안의 소동이며 “애가 아니라 발간 목도리가 하나 걸어가는 것 같더라”는 동리 사람의 말에 울며 쓰러지셨다는 어머니의 이야기 등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또 그 빨간 목도리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기억이 없다. 그저 선물하면 그 빨간 털목도리가 앞뒤 없이 떠오르며 이상하게 변함 없이 싱싱한 감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기실 선물이란 그 선물 자체보다도 거기에 얽힌 잊지 못할 사연으로 하여 오래오래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폭의 그림

 

잊혀지지 않는 사람,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다.

색이 짙고 번질번질 기름이 도는 유화가 아니라 엷은 색의 시냇물처럼 가물가물한 수채화다.

수채화 중에도 세월에 바래고 빛이 낡은, 군데군데 희미하게 칠이 벗겨진 고화 古畵다.

어디서나 지켜섰다 와랑와랑 달겨드는 얼굴이 아니라, 한 구석에 몰래 숨어 섰다가 이따금 바람결에 실려오듯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다.

새봄에 움터 나오는 새싹 같은 얼굴이 아니라 늦가을 땅 위에 깔린 낙엽 같은 얼굴이다.

만당을 울리는 교항악 같은 얼굴이 아니라 겨울밤 문풍지를 스쳐가는 샛바람 같은 얼굴이다.

잊혀지지 않는 얼굴은, 그 사람이 그 사람 마음속 영토 안에서만 빛깔이 있고 소리가 있고 의미가 있는 얼굴이지 햇빛 아래 끌어내면 무색하게 빛을 잃어버리는 어둠 속의 얼굴이다.

사실 나는 그 몇몇의 숨은 얼굴들을 거침 없이 들추어 낼 만큼 솔직하지도 대담하지도 못하다. 그런 이야기의 근처에만 가도 공연히 쑥스럽고 더듬거려지며 붓이 기어드는 것 같은 주저감을 느낀다.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이야기들이건만 이런 사사로운 일의 공개 公開 앞에선 빈번이 당황하며 망설이는 것이다.

지금도 나의 그런 생각의 주변에서 빠꼼이 내다보고 있는 몇몇의 얼굴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내 꽁무니를 빼며 뒷걸음쳐서 달아나 버린다. 어느 하나도 내가 쳐놓은 생각의 그물에 순순히 걸려 들려고 하지 않는다.

별 수 없이 나는 가장 어린 얼굴 하나를 낚아 올린 수 밖에 없다. 까마득히 짙은 기억의 안개 속에서 끌려 나와 눈이 부신 듯 어리둥절하고 있는 얼굴, 가장 희미한 얼굴 하나를 끌어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함이 타당할 것 같다. 사실 그때 그 아이에게 사람이라는 인칭을 붙이기엔 너무도 어리고 너무도 희미하여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기실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거나 생각나는 사람이거나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말 뜻이 되겠지만 ‘잊혀지지 않는다’ 에는 뭔지 계속적인 기억의 상태라고나 할까, 좀 더 절실하고 짙은 여운이 느껴지는데 비해 ‘생각난다’ 에는 그저 그만 그만한 덤덤스러움이 있는 것 같아 굳이 이런 주석을 붙여보는 것이다.

기실 누구나 그 비슷한 기억들을 한둘은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러한 기억들은 대개는 가마득히 생활의 밑바닥에 깔려 잊어버리고 살지만 이따금 아무런 연관도 예고도 없이 문득 기억의 표면에 생생하게 떠올라와서는 이상하게 향수의 불씨를 지피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억 속의 영상들은 굳이 생각하려고 해서 계속 생각되어지는 것도 아니고, 도 잊으려고 해서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릴 수 잇는 것도 못 되는, 그대로 우리의 전 생활이며 살아온 그림자들이다. 이제 내가 끌어낼 그 기억 속의 가장 어린 얼굴 하나도 바로 내가 살아온 나의 분신이며 그림자의 하나다.

그때, 내 나이는 일곱이었는지 여덟이었는지 분명치 않다. 그리고 그 계집아이는 열한 살 아니면 열 두 살쯤이었을까. 이름도 잊었고 모습도 희미하다. 그저 키가 후리후리하고 눈매가 길었다는 생각만 날 뿐.

내 또래의 계집애들이 모두 귀밑머리를 땋아 길게 머리채를 느린데 반해, 그 애는 깡뚱하니 짧은, 그 시절로서는 아주 드문 단발머리였다. 게다가 누구도 입어보지 못한 내리다지(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고무신 아닌 편리화 便利靴-운동화 를 신고 있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우리의 우상, 절대적인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족했다.

그녀 곁에는 언제나 3, 4명의 그 또래 계집애들이 시녀처럼 옹립하고 있었고, 그 중에는 사내애 녀석들도 섞여 있었다.

우리가 모여 노는 골목 안 작은 공지 空地는 어느 틈엔가 그녀의 황국이 되었다. 누구도 그녀의 허락 없이는 그 공지에 얼씬도 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다른 놀이터를 찾을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녀가 있는 공지로 마음이 끌려갔고 말타기 놀이나 고무줄 놀이보다는 그녀의 환심을 사고 그녀의 눈에 들어 그녀 곁에서 그녀들 따라다니는 일이 그저 즐거워 무엇이든 그녀의 마음을 끌 만한 것을 생각해 내기에 바빴다.

그녀는 대단히 영리한 여왕이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 오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빛이나 손짓은 그때 그때 무엇이 필요한가를 우리에게 충분히 눈치채게 하는 교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중 누구든 재빨리 그것을 알아차린 아이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어떻게든 그것을 얻어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바치는 물건은 때로 연필, 공책, 성냥갑, 색색의 험겊, 소꿉그릇, 일 전짜리 왕사탕 등 가지각색이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여왕의 기질을 타고 난 듯 어떠한 물건을 받았을 때도 좀체로 기쁜 내색을 짓거나 웃는 낯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언제나 그 길고 쌀쌀한 눈으로 슬쩍 훑어볼 뿐, 한 번도 소리 내어 웃거나 떠드는 법이 없었다. 뭔지 비고는 듯한 냉랭한 눈꼬리에 거만한 몸짓,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무관심한 표정, 그런 것들이 그녀를 이상하게 고고고하게 만들었고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그녀에게 오히려 자석처럼 이끌려 갔었다.

풍성하던 여름도 짧은 가을도 지나고 어느덧 공지엔 초겨울이 찾아 들었다. 추위에 눌린 듯 공지의 아이들은 하나 둘 줄기 시작했고, 그녀의 모습도 차츰 보이지 않았다.

그럴 무렵 나는 여러 날을 감기로 앓아 누웠고, 병석에서도 이상하게 그녀의 꿈을 몇 번이나 꾸면서 그 골목과 그녀의 일을 못 잊어 하고 있었다.

몇 번인가 눈발이 푸득이고 겨울이 깊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일도 거의 잊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크리스마스 날 저녁이 왔다. 나는 일가 집 언니를 따라 마을 교회당에 구경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에도 몰라보게 어른스러워닞 그녀가 이상하게 반짝거리는 웃음을 띠고 어떤 키가 큰 사내아이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나는 이상한 요술이나 본 것처럼 전신의 기운이 쏙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 확실히는 말할 수 없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그 반짝이는 웃음이나 화려한 모습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고, 뭔가 속은 것 같은 꼭이 집어 말할 수 없는 실망감 같은 것에 어리둥절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튼 훨씬 나중까지도 그녀의 여러 가지 일들은 낱낱이 강한 영상으로 내 안에 잠재해 있었고, 이따금 문득 문득 기억의 표면에 떠올라와 이상한 현실감을 띠며 다가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무의식 중에 현실을 인식해가는 최초의 촉발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생의 후반에 서서

 

내 세상에 있는 한은 반드시 은혜와 연민이 나를 따라오리

– 시편 22, 6

 

“이렇게 내 그대 낙원을 떠나야 하단 말인가, 이렇게 그대 향토를 떠나야 하는가, 저 행복의 오솔길을 녹음이며 신들의 좋은 놀이터를… 내 어이 그대를 이별하여 어디를 헤매일 건가, 그 어둡고 살벌한 낮은 세계로, 불멸의 열매에 맛들인 우리를 어이 또 다른 더러운 공기를 호흡해야 하는가…”

이것은 밀턴의 실낙원 失樂園의 몇 구절이다. 사탄의 유혹으로 신의 계율을 어기고 작죄 作罪한 인간의 시조 始祖, 에와는 천사 미카엘이 낙원을 떠날 것을 선고하자 이렇게 소리내어 한탄하는 것이다.

기실 실낙원에 선 인간의 비애는 이렇듯 신을 배반한 데서부터 비롯한 인간 최초의 원죄 때문이었을까?

하여튼 여기에 미카엘은 대답하여 말한다.

“한탄하지 말라, 에와여, 그저 체념하라, 그대 정당히 잃은 바를 또 마음 두지 말라, 내 소유도 아닌 것을 지나치게 즐겨 하지 말라, 그대 가도 외롭지 않으리, 그대 따라 남편 가리라, 그대 그이를 따르도록 작정되어 있으니, 그이 사는 곳이 그대 고향인 줄 생각하라…”

“그대 그이를 따르도록 작정되어 있으니 그이 사는 곳이 그대 고향인 줄 생각하라…”

이것은 한 남자에게 이미 한 여자가 운명 지워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같은 운명 속에 고락을 함께 해야 함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한 인간에게 또 다른 인간을 짝지어 주심은 신의 무한한 은총이다. 인간은 그 섭리에 따라 멸망을 눈 앞에 보이면서도 서로를 버리지 못하고 사랑하며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기실, 사탄의 간계는 에와로 하여금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하였고, 아담은 이에 에와의 멸망을 깨달았으면서도 사랑의 진실로 에와와 함께 멸망할 것을 각오하고 그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것이리라.

그렇게 하여 실낙원의 주인이 된 그들, 에와를 위하여 함께 낙원을 등진 아담과, 아담을 위하여 일체를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에와의 관계는 이미 한 인간의 부부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그토록 남편의 입교에 대한 권유와 설득은 간절하였다. 그러나 나는 처음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때로는 짜증스럽고 귀찮기까지 했다. 종교는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움직였을까? 결국 남편의 설득 공세가 성공했단 말인가? 아니면 이것이 곧 신비스런 섭리라는 것일까?

물론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다. 보다 더 어떤 절대자의 섭리를 절감하는 운명론에 기울고 있었다. 한 포기 풀, 한 송이의 꽃을 보면서도 거기에 무한한 신의 손길을 느끼며, 더욱이 우주와 인간의 오묘한 생성에 이르러서는 내 지각은 모든 판단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누가 이 우주를 다스리며, 누가 지구 위에 최초의 그 한 사람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누가 그 한 사람에게 생각과 사고의 능력을 부여했을까? 삶은 괴롭고 죽음은 허망하다. 사후의 인생은 어찌되는 것일까? 이러한 가이 없는 의문들은 나에게 몇 번인가 창세기를 펼쳐 보게도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신화적인 이야기들은 완전히 납득할 수 없는 회의를 내 안에 만들었을 뿐이다.

나는 불교에도 얼마간 마음을 기울여 보았다 무명 無明 의 흐린 빛을 어렴풋이 바라보며 윤회 輪廻 와 인연 因緣의 신비를 깨닫고 인생의 허무를 극복해 보려고 적잖이 심취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궁극적인 해결은 내 안에 없었다.

 나는 점점 우울하고 허망해지기만 하였다. 그것은 갈피 없는 방황이었다. 마치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아와 같은 허전함이라 할까, 마음 부칠 데 없는 공허가 무수히 나를 엄습하였고 그럴 때마다 무엇인가 내 안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실의 失意를 느꼈다.

 나는 조만간 누구든 어버이 [信仰]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것이 인도의 가비라성의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 그 사람이건, 이스라엘의 한 고을 말구유에서 태어난 그리스도 그 사람이건…. 그러나 내게는 불행하게도 일종의 서구 기피증 같은 것이 고집스럽게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네들에 대한 열등의식이 무의식 중에 자라내는 일종의 배타심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자비하시고 차별 없으며 만인 공동의 신이라면 어찌해서 그처럼 엄청난 장난, 황색이니 백색이니 흑색이니 하는 어이 없는 장난을 저질렀단 말인가. “전능하면서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고 자비하면서 단 하나의 자비도 행하지 않는 신” 이라고 까뮤도 말하고 있지만 사실로 이 지구 상의 그 숱한 비극과 불행을 나날이 목격하는 사람으로서 신의 불합리 불공평을 절감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 신은 선택된 민족, 선택된 인간만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회의조차 나를 사로잡았다. 아직 그 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이렇듯 많은 불평과 불신의 날을 허송하기만 하였다.

사실 그리스도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가 인간생활의 근원인 ‘사랑’을 설교한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무수한 박해 속에 많은 기적을 남기고 간, 한 멋진 사나이였다는 정도 밖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남편의 방에 걸린 고상 苦像을 바라볼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 섬뜩해지는 오한을 느끼며, 똑바로 정시할 수 없는 무거운 중압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떨어뜨리곤 했었다. 고상의 주위는 늘 그늘이 진 것처럼 어둡고 신산했으며, 그 방은 고상 하나 때문에 항상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고상을 피했으며, 그 방에 들어갈 일이 있어도 고상에 등을 돌리고 앉곤 했었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이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눈길을 돌리게 되었을까.

어느 날 나는 황량한 겨울 산길을 걸으면서 문득 잎이 진 나목 裸木 들 사이로 잠잠히 붉은 빛을 드리우고 섰는 겨울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오랜 인고 忍苦를 이겨온 어떤 성자 聖者의 얼굴처럼 슬프고도 엄숙해 보였다.

순간 나는 그 인고의 겨울 태양에서 무한히 고독해 보이는 그리스도의 고상 苦像을 연상하였다.

왜 그러한 연상을 하였을까? 쓸쓸한 겨울 태양이 마치 끝없이 고독해 보이는 그리스도의 고상과 흡사했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뇌리 腦裡에 그리스도의 고상이 그처럼 나도 모르게 깊이 뿌리 박혀 있었던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날 이후 그리스도의 그 어둡고 신산하기만 하던 고상이 슬프고 측은하게 비치기 시작했으며, 그를 바로 정시 正視 하기를 피하던 눈길이 조금씩 내 안에서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차츰 그 슬프도록 엄숙한 인고의 모습이 알 수 없는 파문을 가슴에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어찌하여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최대 최극 最極 의 상황 속에 자신을 던졌을까? 어찌하여 능히 피할 수도 있었음직한 극한의 상황에 스스로 자신을 던져 인간으로서 가장 큰 고통과 슬픔과 고뇌를 그 한 몸에 구현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었을까?

그는 인류의 죄를 보속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인류에게 최초로 사랑을 설하고 사랑을 행하고 그리고 사랑을 위해 죽어갔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사랑이 지불할 수 있는 최고의 희생을 자신의 몸으로써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피상적으로나마 듣고 알고 있던 그분의 이러한 절대적인 사랑의 고뇌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씩 실감을 동반하여 내 가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나는 내 안에 도사린 너무도 많은 인간적인 고뇌들이 조금씩 위로를 받으며 지극히 작은 부분이나마 출구 出口 를 찾아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침묵의 의미, 기도의 위안이 무엇인가도 어렴풋이 알아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마른 땅에서 뜻밖에 조금씩 솟아나는 샘물을 보는 듯한 발견이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치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스럽게 하려고 왔다고 생각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한 가정에 다섯 식구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며 갈라질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루카 12, 49-53)

결국 그의 말대로 그는 내 마음 속에 불을 질렀단 말인가, 분열의 불, 싸움의 불을. 이제까지 내 안에서 그를 거부하여 오던 예전의 나와 새로운 내가 서로 다투며 분열하여 어느덧 잠자던 마음에 소리 없는 불을 질렀단 말인가.

어쩌면 남편의 집요한 설득 공세가 나를 함락시켰는지도 모른다. 아니 보다 더 ‘그대 그이를 따르도록 작정되어 있으니, 그이 사는 곳이 그대 고향인 줄 생각하라…’ 하던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아담과 에와의 운명 공동의 섭리가 내게도 예외 없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더없이 미흡하고 약한 나를 계속 이끌어 주시도 힘이 되어 주신 정 바오로 신부님이시다. 이분의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한, 그러면서 강요함이 없이 인내성 있는 지혜와 인도로 나를 내 안의 고집에서 완전히 해체시키는 데 막차를 가하였다.

이제 나는 마치 유순한 어린 아기처럼 일체의 아집에서 벗어나 나신 裸身 그대로를 그리스도 앞에 내던지고 만 셈이다. 그러나 그 길이 요원하고 힘들 것만 같다. 외람되고 송구스럽기만 하다. 실로 ‘내 안의 주를 모시기에 당치 못하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하는 간절한 심정 뿐이다.

 

 

 

길고 어두운 밤에

나는 한 장의 편지를 쓴다.

 

문은 잠기고

별은 침묵하고

꽃들은 南으로 떠나버렸지만.

 

빈 땅에서

바람은 헛되이 포도밭을 지키고

시간은 허무의 언덕을 내려갔지만,

 

나는 끝낼 수 없는

한 장의 편지를 이 밤에 쓴다.

 

누군가

칠흑의 어둠 속에

광야를 걸어오는

구름 같은 발자국이 있어

 

하늘같은 눈매에

가을만한 슬픔을 담고

眞紅의 장미로

찬 손을 녹이시는 분이 있어

 

길이 없는 길

문이 없는 문에서

쓰러진 육신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어둠 속에 오시어

침묵 속에 계시며

비탄을 익혀 기쁨으로 빚으시는

분이 있어

 

나는 이 밤도

길고 뜨거운 편지를 쓴다

 

별을 보기 위해 밤을 기다리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해

침묵 속에 떠난다

 

내가 돌아갈 나의 마지막 住所

약속의 땅,

빛의 港口,

침묵의 나그네이며

내 마지막 同行이신 분

 

나는 오늘도 그분께

길고 뜨거운 언약의 편지를

쓰고 또 쓴다.

 

– 마지막 住所

 

 

 

 

 

 

 * transcribing in progress…

 

 

** 지금도 ‘필사 筆寫’ 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Disclaimer: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원전의 ‘탁’ 자 한자는 사람인 변이 아닌 듯…
  2. 롯의 아내 – 창세기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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