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새로니

 

새로니가 보낸 family video를 보고 한참 웃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웃었다. Ozzie와 유나 Duo ‘Odd Band’ 의 ‘이중창’, 유나의 선창에 이어 Ozzie의 ‘화답송’이 네 번이나  계속되는 모습은 그야말로 hilarious의 극치라고나 할까… 이것은 역사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YouTube channel에 post를 해 볼까 하는 생각, 아니 할 것이다. 나의 channel은 현재 완전히 잠잠한 것이기에 이것도 shakeup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또한 이것이 ‘안전한 곳’ 에 save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어제 First of May 연례 posting을 하면서, 확실하게 Marian Month,  ‘성모성월 5월’의 시작을 실감한다. 그렇다, 5월인 것이다. 가정, 그것도 어머니의 달, 적당히 더운 듯한 나날들, 이때의 단비의 맛과 멋, 각종 꽃들이 하루하루 파랗게 일어나는 듯… 아~ 멋진 5월의 시작이 아닌가?  하지만 지나간 4월은, 김순애 ‘4월의 노래’ 조차 제대로 회상하지 못하고 지나갔고, 각종 크고 작은 근심걱정의 시간들… 그래, 잊자 잊고 앞을 보자.
교황님 Pope Francis,  전세계 신자들에게 희망사항, 아니 요청사항이 있었다. 5월 중에 Ukraine의 평화를 위한 ‘매일 묵주기도’ 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런대로 이미 매일 저녁기도에서 그것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조금 더 정성을 드리며 바치고, 화살기도를 추가하면… 아~ 성모님, 점점 멀리 느껴지는 당신의 모습.. 제발 가까이 오셔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저희들을 보호, 전구해 주소서, 성모성월에는 더욱 더 당신을 가까이 느끼고 싶습니다.

 

모처럼 ‘멋진, 마음에 드는‘ 월요일 아침을 보냈다. 아마도 최상, 최선의 월요일 아침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최상의 수준에서 한 가지가 결여된 것도 사실이다. 아~ 한 착한 영혼을 가진 따뜻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우리와 함께 어울렸으면… 하는 꿈같은 소리다. Holy Family 동네본당, Pandemic에서 잠을 깨면서 아주 전보다 더 활발하고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이 인상적, 평일 매일 아침미사 그것도 월요일 아침 상당한 교우들이 매일 기도그룹에 이어 에너지 넘치는 미사까지 이어지는 것을 오늘 목격한다.  성전제단 뒤편이 모두 유리창으로, 5월 초의 신록이 신자들의 눈을 현란하게 하는 것, 어찌 짧은 단어들로 표현을 할 수 있으랴, ‘감사합니다~’.
월요일 아침[식사]를 McDonald에서 하는 것, 가끔은 정말 효과적인 생각이다. 하루가 평소와 다르게 시작되는 효과는 실로 큰 것이다. 맛도 주변의 모습도 느낌도 모두..  Georgia Primaries에 제발 Asian 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라는 엽서, 5월 24일까지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지 결정을 하는 것, 이번에는 조금 쉬운 작업이 되었다. 우선 생명을 걸고서라도 뽑지 말아야 할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DONALD개XX가 흉측한 모습으로 침을 튀기며 ‘지지’한다는 ‘한심한 다른 개XX’를 말한다. 결과도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우리 2표의 능력권외의 일이기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다른 도움,  ‘기도’의 힘을 빌리면 된다.

지난밤 잠은 그야말로 disaster!  엉망이었다. 잠이 전혀 오지를 않는 것, 낮에 절제 없이 coffee를 비롯해서 각종 음료를 마셨던 것 때문인가? 아니다,  저녁 늦게 발견된 water heater문제로 잠시 동안 너무나 흥분을 했던 것, 바로 그것이 이유일 것 같다. 처음에는 HVAC pro를 불러야 할 듯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 보니 pilot flame 가 꺼진 것을 보니 분명히 thermocouple문제였다. 이것을 고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내가 할 수 있는 수리였다. 예전에 있던 ‘고물’ Furnace의 thermocouple을 내가 얼마나 교체했던가, 그것과 같은 것, 다만 조금 구조적으로 다른 것 뿐이었다. 하지만 water heater에서는 한번도 안 해본 것이기에 이렇게 불안한 것, 왜 나는 이렇게 나쁜 쪽으로만 생각을 하는 것일까? 최악의 경우만 먼저 생각을 하는 나의 모습이 지겹게도 싫다.
오늘 나의 머리 속은 거의 water heater, thermocouple등으로 차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나는 즐겁게 편하게 일을 하지 못했던 것, 그것이 나는 못내 아쉽다. 왜 유쾌한 심정으로 즐기면서 이런 일들을 하지 못하는가? 이유가 있다면, 나의 지나친 ‘최악의 시나리오’ trauma 가 아닐까? 특히 2011년 water heater를 설치할 때의 고생하던 나의 모습은 거의 공포로 남아 있다. 2011년 7월 이 water heater를 Amazon.com 에서 order해서 내가 직접 install한 것은 거의 ‘영웅적인 자랑거리’로 삼고 싶었지만, 당시에 고생을 한 것은 역시 trauma로 남은 것이 분명했다. 이것으로 인한 나의 비관적인 자세를 어떻게 바꿀 수 는 없을까? 그래, 역시 나는 또 또 또 너무 심각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아~ 조금 더 재미있게, 가볍게, 사태를 대할 수는 없을까? 너무나 나는 심각하다, 심각해…
결국  두 시간도 안 되어, thermocouple을 교체하고, 다시 더운물이 나오는 기쁜 결과는 내었지만, 그다지 즐겁지 못했다. 다음에 또 같은 것이 고장이 난다면 모를까… 이런 것 배워서 몇 번이나 더 써먹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위안은 있다. 이것, pro가 truck을 타고 나왔으면 기본적으로 최소한 $250 이상은 charge했을 것이라는 사실, 그것 하나 뿐이다.

 

갑자기 여름이 된 듯한 날을 맞았다. 오랜만에 놀러 온 유나 가족 중에 Ozzie가 따라와서 정말 오랜만에 옆 동네 Spring Creek neighborhood를 편하게 걸었다. 80도가 넘었던 날에 맞추어 완전히 여름 옷을 입고 걸었다. 성급히 찾아온 더운 낮 기온이 Ozzie에게 무리가 될 듯 보여서 Sope Creek 시냇물을 따라 걷는 산책은 사양하고 돌아왔다. 유나가 그 동안 꽤 많이 자라고 변한 것을 본다. 무뚝뚝하던 아기가 이제는 너무나 쉽게 미소와 웃음으로 주위를 즐겁게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은 문제가 없던 내가 이번에는 고전을 하고 있다. 한 시간이 바뀐 것, 첫날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3일간 계속? 이건 조금 재미있기도 하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깜깜한 때에서 일어나기가 싫어진 것, 바로 그것뿐인데…
오늘, 오늘, today.. 흐리고 오후에는 비의 가능성이 많은 날, 기온은 50도 대 비교적 편한 하늘의 모습이다. 오늘은: 아침에 동네성당 아침미사에 갈 예정이고, 새로니가 유나와 Ozzie를 맡기고 ‘둘만의 날’을 내일까지 보낼 예정이라서.. 조금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 되었다. 그래, 할 수 있을 때 하면 되는 거야…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내가 걱정하는 나의 문제점 중에는, 비이성적이 되는 경향, 바로 그것이다. Unreasonable Fear… 이미 2016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이것은 물론 Trump ‘a.k.a 개XX’가 주 원인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비슷하게 Putin ‘a.k.a. 개XX’ 로 이어진다. 이때의 나의 직감적 반응이 나를 겁나게 하는 것이다. 우선 ‘바보!’ 정도가 아닌 ‘이 개XX야!’ 로 시작되는 나의 모습, 예수님의 얼굴이 곧바로 떠오르지만 이것만은 별 방책이 없다.  어쩌면 2016년부터 6년에 걸쳐서 두 명의 ‘죽음의 사자 使者’가 거의 예고도 없이 출현을 했단 말인가? 첫째 놈은 미국 200여 년의 ‘보편적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인간이고, 다른 놈은 ‘지구를 한방에 날리려는 듯 보이는’ 그런 인간… 어떻게 거의 반세기 간의 ‘계몽적, 민주적, 진보적, 진화적’ 인류가 이렇게 ‘난데없는 독재자들에 의한 퇴보를 하고 있단 말인가? 테이야르 Teilhard de Chardin 신부님의 ‘보편적 진화론’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사순절의 분위기가 가득~한 우리 정든 동네성당, face mask가 완전히 사라진 곳에 정든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인다. 목표 주일 2회 아침미사참례는, 드문드문 예외는 생기지만 끈기 있는 노력의 성과는 서서히 보일 것이다. 오늘은 주임신부 Fr. Miguel 집전이어서 예의 강론은 여전히 같은 tone과 내용을 보고 듣는다. 변함없는 그의 사목 style은 지루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변치 않는 우리 신앙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런 곳이 우리에게 필요한 곳이다.  오늘도 그곳으로 drive하면서 생각하며 말을 한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동포 본당 순교자 성당에 drive해서 갈 수 있을까… 그런 여건이 안 된다면 분명히 다음 선택이 동네 본당이 우리의 유일한 본당이 될 것인데… 지금은 조금 상상하기 쉽지는 않지만 이제는 세월의 진실을 알기에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 언젠가 우리도 drive를 못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러면.. 깊이 생각하기는 싫지만…

오늘 그곳의 주보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보며 놀란 사실은… 지난 해부터 헌금의 액수가 상상외로 많다는 것, 우리는 Pandemic으로 교회가 재정난을 겪을 것으로 추측은 했지만 결과는 정 반대… 오래 전의 평상시에 비해서 적자는 물론 사라지고 이제는 상당한 흑자 재정! 허~ 이것은 놀랍고 반갑고, 우리 동네 성당에 자신감과 희망이 갖게 된다.  교우 신자들의 숫자가 분명히 많아졌다는 것, 특히 Hispanic 신자들이 더 많이 늘어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유나, Ozzie가 내일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려고 왔다. 새로니부부는 오랜만에 애기 없는 하룻밤 휴가를 갖게 된 것이다. Buckhead에 있는 upscale restaurant에서 멋진 저녁 식사를 하고, 근처의 Hilton Hotel에서 밤을 지내는 계획이다. 얼마나 힘든가, 갓난 아기를 기르는 것, 생활의 단조로움이 큰 문제가 아닌가? 그래도 돌봐주는 사람이 가까이 사는 것이 그 애들에게는 다행일 것이다. 같은 town에서 살기에 망정이지, 만약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이런 시간을 쉽게 가질 수 있을까?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아온 Ozzie와 오늘은 한 시간 정도 걸었다. 어제 점심식사를 같이 했던 자매님들 얘기에 산책은 한 시간 이하로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를 했던 것을 기억하며 한 시간 정도 걸었다. 하기야 너무 오래 걸으면 운동이 되는 것보다 무릎에 무리가 갈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래 앞으로는 최대한 1시간 정도로 … 하지만 가장 적당한 거리는 45분 정도의 산책이 아닐지..

 

정말 뜻밖으로 중앙동창 ‘차정호’가 email을 보내왔다. 요새 이런 류의 소식을 받은 적이 없어서 내용에 상관없이 반갑고 기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중앙동창회 소식이 끊어진 지 거의 10여 년이 넘어가고, 유일한 연락처 역할을 했던 건주가 중풍으로 쓰러진 후 솔직히 나는  중앙동창회 소식은 포기한 셈이었다. 그래도 정교성, 김원규 등의 소식은 지속적으로 접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아주 다른 쪽으로 차정호의 소식을 받은 것이다. 소식의 요지는 요새의 흐름에 따라 단체 카톡방으로 동창들이 소식을 전한다는 것, 나에게도 들어오라고…  100여 명이 현재 가입을 했다고… 어떤 동창들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은근히 나의 관심은 나 이경우란 이름을 대부분 기억을 못 할 것이라는 사실에 머문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오늘은 새로니 39살 생일이로구나… 감상에 젖고 싶다. 내년 40살에는 더 그렇겠지만 상관없다. 1983년 1월 5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1983년… 아~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만 머리를 맴도니.. 첫 생명, 새로니 생각보다는 나와 우리부부의 만남부터 grandparents 까지의 인생역정이 더 먼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만남, 결혼은 시작이었지만 아이들의 그것들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완전 미지수였기에, 황혼의 인생도 반드시 밋밋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80년대와 2020년대의 차이는 계량조차 쉽지 않은 엄청나게 다른 세상인데…  새로운 두 가정이 우리로부터 시작 된 우리들의 인생역마차는 이제 서서히 다음의 정거장에서는 완전히 쉬어도 되는 것인가…

 

Leader of the Band – Dan Fogelberg – 1983

 

오늘 로난 모자 母子가 아침에 와서 같이 먹게 될 breakfast에 생각이 미치면서… 아~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든다. 매일 우리가 먹던 것에 신물이 났는가? 침이 나올만한 것은 없는가… 매주 금요일마다 먹는 pancake을 오늘? Pancake은 가급적 금육재 禁肉齋로 meat종류를 피하려는 노력인데, 그것을 수요일에 먹는 것도 괜찮을 듯. 또 다른 것은 없는가?  삶거나 fried한 eggs, 이것도 조금 지겹고… 아하~~ 그렇다, scrambled egg! 그것이 있었지! 재료는 같아도 맛과 기분이 전혀 다른 이것을 오늘 만들면… Googling에서 cooking website, LOVE & LEMONS 라는 곳에서 멋진 모습의 scrambled egg ‘recipe tip’을 찾았는데… 이것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이래도 맛이 있을까? 그것이 scrambled egg 의 매력이라는데.. 흉내를 내 보았지만 pro들이 만든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새벽 5시의 신비, 얼마만인가? 5시에 일어난 것이?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지면 대부분은 다시 자려고 애를 쓰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러기에는 머리가 너무나 맑았다. 사방이 깜깜하고 아주 싸늘한 공기를 헤치며 나오니 elderly cat,  Izzie조차 나 발아래 없다. 얼굴을 보니 자다가 나를 보고 깨어난 듯하다. 그러니 더욱 새벽이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승려들이 사는 절간은 새벽 3시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나는 5시에도 이렇게 죽은 듯하니… 그들이 부럽기조차 하구나… 하지만 부엌의 blind를 열어보니 일찍 일어나시는 B선생댁도 창문의 불빛이 희미하니… 아직 안 일어나셨나… 모처럼 이른 새벽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반갑기만 하다….

며칠 만인가, 다시 ‘독서 삼매경 기분’을 느끼는 것이…역시 좋아하는 주제의 글이나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때가 되었다. 이런 시간에는 로난이 나의 서재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것, 거의 방해나 구애를 안 받는 것도 또한 신기하다. 생각에 집중하는데 그런 잡음이 크게 방해를 못하는 때도 있음은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예외에 불과하고 나머지들의 경우는 대부분 잡념들과 싸울 때가 많다.  또한 나의 독서습관인 ‘잡독, 난독’으로 읽기에 언제 완독을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 또한 나를 편하게, 가볍게, 즐겁게 하는 습관이다. 아마 ‘정독’으로 시작하라면 시작조차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현재 나를 기쁘게 하는 책들: The Hours of the Universe, Life on the Edge, Living in a Mindful Universe, Learning to Pray, JESUS, The Jesuit Guide 등인데..  오늘 한가지가 첨가되었다. 오래 전 출판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신약성서[요한복음]주해집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서가에서 먼지를 털며 꺼냈다. 지난 12월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봉사자를 위한 성서 영적독서’ 에 늦게 참여를 한 바람에 교재 [송봉모 신부님 저 요한복음강해?] 1권을 거의 놓치고 말았기에 이 옛날 책이라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것으로 한번 ‘신비의 요한복음’에 도전을 해 보고 싶다. 게다가 이번 신부님의 독서강해는 예수회의 관점이 많이 도입이 되는 듯해서 나에게 더욱 흥미를 끈다.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론’에 도전하게 되는 것인지… 조금 흥분까지 된다.

예정대로 오늘 로난 일행이 baby-sitting 도움을 받으러 왔다. 다음 주부터는 Daycare Center가 개학을 하니까 애 보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 이제 이 녀석도 조금 컸다고 행동하는 것도 조금은 성숙해 보이고 천상 개구쟁이가 되어간다. 앞으로 우리와 어떠한 관계로 살아갈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bi-culture문제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어쩔 것인가? 그저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필요할 때마다 오늘처럼 도와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입장도 아니고.. 이것도 선택인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두 문화, 두 언어 교육에 개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내일은 그 악몽의 9/11 terror attack 에 버금가는 1/6 사태 1주년을 맞는 날이다. 물론 나는 내일 ‘조용히’ 모든 media에서 눈을 돌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연극’을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건강에도 좋고 평화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나 생생한 살기 殺氣[정말 그 DONALD 개XX  일당들을 ‘라이파이의 살인광선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것…]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다.

 

오늘 84도? 허~ Indian Summer? 며칠간 조금 덥다는 느낌을 들었더니 오늘 절정이 되는 것인가? 하지만 또 잊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dry heat일 뿐이다. 예보에서 ‘아마도 올해 마지막 80s’라고… 그래도 어떤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할지 혼란이 오는 것은 조금 신경질이 난다. 결론은: 티셔츠(짧은팔)와 긴바지, 양말이 아침에 적당한 것이 되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본격적인 싸늘한 가을로 진행을 할 것이고, 특히 모레 일요일 아침은 40도 대, 이건 거의 겨울의 느낌이 아닐까…

일어나기 전까지 또 꿈을 꾸어서 아슬아슬하게 7시 전에 일어나게 되었다. 웬 놈의 개꿈을 이렇게 쉽고 많이 꾸는 것인지, 개꿈인지 아닌지는 조금 정리, 소화, 기억을 해 보아야겠지만, 전혀 없던 것보다 훨씬 살맛이 나니… 이것의 꿈의 매력인가?

 

오늘 아침 TV morning show Today show에 그 동안 자주 못 보았던 Asian personality, Vietnamese Vicky Nguyen의 얼굴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반가웠다. 나의 딸을 보는 듯한 느낌은 왜일까? 나이도 새로니 정도가 아닐지. 혹시 그녀의 부모가 1970년대 boat people은 아니었을까? 요사이 월남 이민자들의 사회진출은 한국계보다 훨씬 활발한 것처럼 보인다. 가톨릭은 말할 것도 없고. 이 Vicky란 여자는 표정부터 아주 자신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보기가 참 좋다. 작년의 이 지역의 Asian Hates 총격사건이 있었을 때 그녀가 이 show에서 보여준 동정, 정의, 동질감은 고맙기까지 했다.  그녀도 interracial family (white husband) 라서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나도 나 자신의 변화[interracial marriage에 관한]에 놀라고 있다.

 

일어나 복도를 걸으며 몸의 안정감에 신경을 쓰고 있는 나를 본다. 머리 속은 상쾌하고 편한데 왜 제대로 균형을 잡지를 못하는 것인가? 심하지는 않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것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연숙과 이것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면 우선 결론은… you’re getting older & older, stupid! 정도가 아닐까? ‘노화현상’이라면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분명히 ‘망할 놈’의 ‘빨갱이‘ 중국[현재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지구상 존재 중의 하나]에서 유발된  Pandemic, 그 이후, 정기적인 [YMCA] 근육운동을 거의 2년 가까이 중단한 것이 더욱 이런 것을 가속시켰으리라..

 

오늘 해야 할 ‘육체적 일’ 중에는 며칠 전 kitchen에서 퇴역되었던 green ceiling fan을 back porch ceiling으로 옮기는 작업이 있었다. 이 fan은 motor 30여 년 넘게 쓴 것이지만 motor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버리기 아까운 것이, 그것이 문제다. 버릴 수가 없으면 다시 써야 하지 않은가? 이것이 landfill에 묻힐 것을 생각하니 정말 아깝다. 이것이 문제다,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애꿎게 땅 속으로 생매장되는 것이다. 지구를 살려야 한다, 어떻게 하던지… 오늘 일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이 fan은 speed control switch에 문제가 생긴 것, 30년 전의 replacement part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할 수없이 직접 분해, 해체 후 망가진 speed controller를 drill로 뚫어서 우격다짐으로 ‘기능상 수리’에 성공했다.   물론 모양이 흉하지만 안 보이는  것이기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앞으로는 main motor가 살아 있는 한 ‘현역’으로 봉사를 할 것이다.

생매장 될 뻔했던 운명에서 다시 현역으로 새 위치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물론’ 50%는 더 걸렸을 듯하다. 예외적인 놀람은 오늘은 순전히 나의 실수, wire하나를 멀쩡히 연결시키지도 않고 일을 끝낸 것, 어떻게 이런 실수가.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이번의 job은 완전 성공으로 간주를 한다. 초록색의 color도 porch에 걸맞고 이제는 3 speed fan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보람을 느낀다. 멀쩡한 녀석, 생매장을 피한 것이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나의 passion이 담겨있었던 lab, MAKER room에서 정말 오랜만에 2000년대 쿠사나기 츠요시 주연의 ‘자폐증’ 일본드라마 걸작,  ‘내가 걷는 길, 僕の步く道’까지 다시 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감사합니다..

 

오늘 한 일은 사실 yard work정도의 심한 근육노동은 아니었지만 골머리를 꽤 쓴 모양이었다. 역시 다른 추억의 영상 ‘하늘을 나르는 타이어’를 틀어 놓고 음성만 들으며 쓰러져 누었다가 잠에 빠졌다. 이런 때의 나른하고 편한 느낌을 누가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거의 1시간 이상을 잔 모양, 기분은 나르는 듯 싶다.

혹시 목성, 토성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구름이 얇게 낀 것이 아주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 오늘만 날인가? 앞으로 청명한 날들이 더 자주 올 때 충분히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보면 볼 수록 나의 Newtonian Reflector가 거의  ‘장난감’ 수준임을 알게 되는 것, 하지만 나는 여기서 더 $$$을 소비할 마음은 아직 없다. 나의 천문학 수준이 조금 더 오르면 모를까…

오늘도 6시30분 아래층 불[scheduled room lights] 이 들어올 즈음,  2 犬公들이 짖는 것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하늘이 온통 습기로 가득 찬 텁텁한 공기를 느낀다. 세찬 빗소리는 안 들리지만 가랑비는 계속 뿌리는 모양. 나를 본 두 ‘아이’ 들이 어찌나 나를 환영하고 반기는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아~ 이 녀석들과 또 정이 들어가고 있구나~  nearly cosmic, 동물적 사랑의 힘인가?

두 견공, dog boarding하는 것 예정이 조금 바뀌어서 Senate만 내일  밤까지 자기로 했다. Ozzie는 내일 예정대로 새로니 집으로 돌아가지만… 새로니의 [뜻밖의]호의로 나라니네 식구들이[현재 임시로 묵고 있었던 Airbnb home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Tucker의 어느 hotel suite로 옮겨서 진행중인 집 공사 기간을 보낸다고… 새로니가 모처럼 동생을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나 흐뭇하였다. 그렇게 둘이서 도우며 살면 앞으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오늘 아침은 예외적으로 desk 정면 멀찌감치 홀로 외로이 잠자는 듯 졸고 있는 [2nd Gen] flat-screen TV[on ROKU stick]를 켰다. Kitchen dinette table에서 아침 식사 때 가끔 보던 [Youtube version] NBC TV Colbert late show를 지금 시간에 보는 것도 이른 아침의 느낌을 상쾌하게 한다. 작년 선거 이후의 목불인견의 ‘6살짜리 머리의 소유자’의 최후발악에 이어 1월 6일 Congress 난입사건 이후 나의 정신건강을 아슬아슬하게 지켜 준 이 Stephen Colbert 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고 심지어 나의 구세주처럼 느끼게 되었다. 정치관이 절대로 모호하지 않고, 상식적 수준 no-nonsense 의 이성적인 이 가톨릭 교우, 그의 가족 배경도 마음에 들고[특히 그의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런 wife] … 사실 매일 밤 이late show를 생방송으로 보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그 시간이면 나는 ‘절대로’ 잠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 다음 날 아침 조금 늦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구름이 아직도 2시간 안전 거리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하루 종일 thunderstorm에다가 flash flood watch까지 예보된 오늘, 어제 두 견공을 데리고 산책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늘을 유심히 보면서 우선 현재 비가 오는가, 오면 어느 정도인가, 걸을 수 있을 정도인가? 우산이 필요할까, 느낌에 폭우나 거센 비가 올 듯한가.. 예보[과학]와 순전히 감 感[거의 영적인] 에 의지를 하지만 불안함을 떨칠 수 없이 그렇게 즐겁지 못한 산책이 될 수도 있다. 전에 한번 그런 일[폭우를 만난]도 있었기에… 하지만 오늘은 머릿속에서 한가지 묘안이 나왔다. 바로 현재 local weather radar[near real-time] 를 보는 것이다. 현재 비구름의 위치와 움직임이 나오지 않는가? 그것에 의하면 최소한 2시간 이상 Atlanta Metro에는 비구름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아하! 왜 이 생각을 못했던 것인가? 이것으로 오늘은 거의 안심을 하고 편하게 우산 없이 산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왜 전에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2시간 가까운 산책,  OzzieSenate 어쩌면 이렇게 다정하게…

치통이 사라진 또 하루의 아침이 밝았다. 아직도 나는 경이로운 감정으로 이 ‘무 無 고통’의 일초일초를 만끽하고 있다. 밤잠도 거의 신경이 안 쓰이는 것, 나의 즐거움, ‘엎드려 자는 것’도 완전히 오랜 옛날의 그 기분이 돌아온 것…  감사합니다.

이래서 요새는 무통의 날을 즐기는 그런 날이 되었다. 조금씩 새로운 다른 감각에 적응은 하고 있지만 그 무섭게 아프던 나날이 쉽게 잊혀지는 것도 싫다. 현재를 더 즐기기 위해서…  이제는 앞으로 새로운 입안의 감각에 적응을 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하지만, 현재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 말로 ‘이 없으면 잇몸’라는 말, 너무나 실감이 간다.

꿈들을, 그것도 내가 그렇게 그리던 종류의 꿈들, 그것도 비교적 생생한 것들을 많이 꾸었던 밤, 너무 깊게 꿈에 잠겼는지 눈을 떠보니 7시도 훨씬 넘었다. 이런 꿈이 다시 돌아온 것은 분명히 입 속의 고통과 연관이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머리 속에도, 영육간으로, 잔잔함과 평화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거의 5일째 이런 평화와 편안함을 ‘축하’하며 살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다. 비록 이런 ‘고통의 재난’은 내가 자초한 탓도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더 이상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저, 그저, 현재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장마성 날씨가 시작되었나? 따가운 기운보다는 축축한 기운이 대기를 덮고 당장이라고 보슬비로 시작해서 폭우가 쏟아질 듯한 하늘이다. 100도가 넘는 불타는 대지보다는 이런 날씨가 얼마나 좋은가? 왜 사람들은 비를 그렇게 반가워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무조건 비가 좋은데…

비가 충분히 왔던 덕인지 올해는 작년에 하나도 피지 않았던 수국이 만발을 하였다. 꽃에 조금은 무식했던 나도 이 수국만은 잘 알았고 여름이 가까워오면 아예 기다리기도 했다. 작년에 찾아오지 않았을 때 그렇게 섭섭했는데 올해 다시 우리를 찾아와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어서 올 여름의 기분을 들뜨게 해준다.

 

 

오랜만에 새로니의 강아지, Ozzie가 온단다. 반갑기도 하고 나의 느긋한 일상생활이 조금은 변하겠다는 약간의 귀찮음도 없지는 않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미미하나마 작은 노력과 움직임의 기회가 필요하다. 이것도 나의 작은 ‘친구 동물들에 대한 봉사’라고 보면 지나친 것일까? 사람과 동물이 이렇게 가까이서 ‘무언으로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름다운 계기가 아닌가?

새로니도 방학이고,  Richard는 정상적으로 집에서 일을 하는데 이제 조금은 밖의 세계가 그리운 모양. 기분 전화 겸 해서 며칠 North Carolina mountain 쪽으로 여행한다고…  덕분에 오랜만에 나는 심심치 않게 되었다.

 

Welcome, It’s a Boy balloon, at Tucker mailbox post

 

우리의 첫 손자, 새 생명이 태어나는 작은 드라마의 순간들이 며칠 만에 지나가고,  10 파운드짜리  ‘건강한 남자아기’를 안고 아기의 부모가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 쪽인 우리 부부는 미리 집에 가서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It’s a Boy!‘ 를 외치는 풍선을 그들의 mailbox post에 달아 놓고서야, 큰 일이 끝났다~ 는 편안한 안도의 심정을 느꼈다. 갓난 아기가 신기하고 예쁘면서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엄마, 아빠를 보며 우리도 저랬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숙은 비교적 침착하게 첫 애를 다루었지만 나는 ‘어벙벙’ 그 자체였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산모의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했을까? 우리가 할 일이란 무엇인가?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외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댁은 전형적인 Caucasian 이어서 돕는 방식도 그들의 전통을 따르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다. 주위에서 듣는 소문에 의한 ‘한국식 도움 방식’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숫제 시설의 도움을 받는가 하면 아예 full-time으로 professional helper 흉내를 내는 case도 보았다. 다행히 산모와 애기 아빠가 충분한 출산휴가를 받았기에 큰 문제는 없을 듯하지만, 연숙은 언제라도 20 mile (car) drive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이번에 산모의 부부가 병원에 머물 때 그 집의 강아지 Senate 는 우리와 함께 큰 딸의 개 Ozzie와 함께 있게 되었는데, 둘의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어서 우리가 크게 보살 필 부담은 적었고 거꾸로 나는 그 둘과 동네를 걷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 아니었을까 희망해본다.

 

good friends, Senate & Ozzie at Saybrook Home

 

아득한 세월 전 우리들의 첫 생명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엇갈리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1983년 1월초, 새로니, 그 갓난 ‘어설픈’ 생명체를 꼭 가슴에 품어 안고  제왕절개 수술, 1주일 만에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추억이 안 떠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 딸애의 출산 드라마를 겪으며 우리 둘이 100% 공감한 것이 있다. ‘모조리 잊어 버렸다!’ 라는 탄성.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둘이서’ 그 생명의 드라마 느낌과 경험을 모조리 잊어 버린 것일까? 진화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는 바로 그  ‘세월의 횡포’일지도 모른다. 사실적 기억은 물론이고, 느낌조차 그렇게 희미해졌단 말인가?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며 물리적 기억인 ‘사진들’ 밖에 없다.  당시의 사진들 몇 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다. 조금은 그 신비로운 느낌들과 ‘어벙벙’ 하고 초라했던 나의 자화상들이 조금씩 떠 오른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더니, 정말 그 당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한 인생중대사였다. 그러니까 별로 큰 고통과 고민과 고생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 젊음이었다. 젊음이 주는 ‘무식의 용기’를 마음껏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들이었다.

 

첫 애 새로니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생후 11일 째, Buckeye Village Mahoning Court.

아무 것도 모르고 주위 도움 없이 키우기 시작했던 때, 1983년 2월 초

 

세대는 이렇게 흐르며 현 세대가 때를 마치고 떠나면 다음 세대가 등장,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지극히 순리적인 진리인 것을 잊고 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새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 드라마’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면, 다시금 모든 생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  Better Korean Festival?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근래 나의 관심사에서 제일 멀리 있던 것이 나에게 왔다가 갔다. 연숙의 문인화 전시가 올해의 한인축제, Korean Festival와 함께 열린 것이고 이것은 이제 우리 가족의 작은 가을행사도 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가족이 모여서 전시회, 한인축제 공연, 그리고 넓은 주차장에서 각종 booth를 구경하는 것인데, 나는 사실 큰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가족의 일원’이기에 피곤해도 와야 하는 그런 종류의 시간이다.

한인축제는 몇 년 전(2~3년?)에 가족과 왔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의 논평이 ‘재미없고, 촌스럽다’ 라는 것이고 나도 사실 동감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것은 ‘조용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고 ‘아이들’도 동감인 표정들이었다. 우선 ‘아마추어 같은 촌스러움’이 많이 걷힌 것이다. 각종 공연들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자신은 없지만 ‘event pro’ 그러니까 행사를 주관하는데 각종 프로 들이 등장한 듯 했다. 큰딸 새로니는 몇 년 전에 Greek Festival을 보고 우리의 축제와 비교를 하곤 했는데,  아마도 우리도 그런 것을 보고 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논평을 했다.

 

 

각종 공연들, 특히 Big Orchestra가 등장한 것, 비록 한인 오케스트라라고 했지만 많은 연주자들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축제자체가 community에  open된 것이다. 거대한 남성합창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이들과 같이 ‘나의 살던 고향은..’, ‘사랑으로..’ 등을 관객들과 열창한 것도 가슴이 저미는 뭉클한 순간들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 이제는 ‘초 국제화’가 되어서 아마도 바다건너의 대한민국의 재력과 K-POP을 중심의 최첨단 pop culture가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날 한인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동양화, ‘문인화’ 전시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성과 시간을 써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연숙이 이것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꽤 되었지만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그것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동양화, 묵향화, 문인화.. 조금씩 성격이 다른 것 임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어떤 그림이 더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지기도 했다. 우선 시간을 더 써서 자세히 묵상, 기도하는 심정으로 응시를 하였다. 이날 처음 그렇게 비슷하게 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도 알았다. 연숙의 ‘거대한 국화들’도 자세히 보게 되었고 왜 입선이 되었고 관람객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는지 알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대상물’은 ‘생물들’ 그러니까 새들, 다람쥐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느낌들이 좋았는지, 연숙에게도 꽃, 식물 다음에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그려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  레지오 사업보고:  나의 ‘정든’ 레지오 전초분대(Praesidium, Pr.) ‘자비의 모후’의 연례 사업보고가 일요일 꾸리아 월례회의 때 있었다. 단장이 된 이후 처음 하는 것이라 물론 내가 평의원들 앞에서 발표를 했지만 이번 발표에는 ‘고발성’ 글귀가 실려있어서 나는 그것을 가급적 dramatic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이 ‘고발’을 할 때 평의원들의 얼굴은 대부분 blank 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너무나 심각한 어조와 내용’이라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 unmotivated, uninterested 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 꾸리아, 레지오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주 관심사는 ‘고발 당한 2명’이 이런 글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 중 한 인간은 그 회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 알게 된 비밀이 공식화 되었기에 나는 그 두 ‘피고들’ 의 공식징계를 위한 다음 단계로 마침내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의 추이가 너무나 흥미롭게만 하다.  Watch out, you two’s!  Here I’m coming after you!

 

¶  BIG flat-screen TV Envy? 우리 집에는 누구나 모두 ‘자랑’ 하고 싶어하는 monster size flat-screen TV가 없다. 그러니까.. home theater 가 없는 것이다. Desk에서나 쓸 수 있는 아주 작은 digital TV가 있을 뿐이다. 가족들이 family room에 모여서 old tube analog  TV로 주로 VHS video를 보던 때가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커서 모두 집을 떠나면서 그 ‘고물’ TV는 완전히 방에서 물러나고 집에 남은 우리 둘은 거의 broadcast network TV를 안 보고 살게 되었다. Movie같은 Video를 보는 것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거의 각자의 desktop PC로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home theater같은 느낌의 즐거움이 없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도 거의 모든 시간을 desk앞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다른 집에 가보면 우리같이 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경쟁적’으로 엄청난 큰 screen TV가 있었다. 물론 극장 같은 경험을 집에서 즐기는 것, 누가 마다하랴.. 문제는 그만큼 $$$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인데.. 돈도 돈이지만, 우리 둘에게 아직까지도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닌 사치품에 속했다.

 

 

하지만 trickledown 현상이라고나 할까 결국은 caveman처럼 살려고 하던 우리에게 ‘공짜’ big screen TV가 흘러 왔다. 두 딸들이 쓰던 것, 새것을 산다면서 우리보고 가지라는 것.. 크기를 보니 사실 요새 기준으로는 큰 것이 아니지만 우리 집같이 traditional house에는 정말  적당한 size가 아닌가? 하나는 40″, 다른 것은 42″ 정도.. 40″는 kitchen area에 맞고 42″는 아마도 bedroom에 맞을 듯하다. 한가지 연구해야 할 것은 이것들은 1st generation TV로 한마디로 smart TV가 아니다. 그러니까 Internet streaming이 자동적으로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RokuChromeCast를 쓰면 간단히 해결 될 듯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도 HDMI digital TV 시대의 막이 올랐다.

 

¶  Roller coaster week:  지금 지나가고 있는 하루하루는 글자 그대로 roller coaster week 라고 할 수 있다. 희비가 교차하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느낌이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주일,  때로는 정말 괴로운 순간들도 있었던 6월 초순을  보내고 있다.  주 원인은 우리 집 열네 살이 넘은 ‘나보다 늙은’  정든 개 Tobey의 건강문제 때문이었지만 우리가 바보같이 만든 ‘인재 人災’도 이럴 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결과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인생이다.. 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것이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구토, 설사로 시작된 것,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먹지를 못하니 평소에 ‘관절염’으로 먹는 약까지 끊게 되어 사태는 악화일로 였다. Good Old veterinarian (수의사) 에게 데려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꺼린다. 각종,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test로 시간을 다 보낼 것이 분명한 것이고 그러면 더 악화가 될지도..

이 녀석 기운이 빠지고 아파하는 모습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까지 느껴지고, 우리는 절망의 기분까지 들었다. 급할 때는 묵주를 무의식적으로 굴리고 있을 정도였지만, 성모님의 도움인지, 정성스런 간호 덕인지 다행히 설사도 멎고 서서히 먹기 시작하면서 죽음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회복이 예전에 비해서 너무나 느린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인가? 얼마 있으면 annual medical checkup이 있어서 (동물)병원엘 가니까 그때면 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moaning & limping.. sick Tobey

 

Pet 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은 이런 것 한두 번씩은 경험을 했을 것이지만 이렇게 거의 집안 식구가 된 pet animal을 영원히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큰 차이가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을 한다.  이런 것들 사실 자연의 법이기에 겸허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다. 세상에서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은 하느님 밖에 없다는 사실만 잊지 말자.

 

Climbing in Canada:  새로니가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떠난 2주간의 Canada trip을 마치고 돌아왔다. 학교 teacher가 되면서 2개월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모험적인 취미여행을 떠나곤 한다. 요새 ‘아이’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이런 즐거운 30대를 보낸다. 결혼과 가정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나이에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을 보며 세대가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새로니 친구들과 모두 3명이 갔던 Canada(Rockies, Vancouver)  여행 사진을 보며 나는 다른 생각에 빠진다. 나나 연숙, 이제 그런 여행들, 귀찮다는 인상을 받는다. 편한 집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유익하고 건강한  ‘휴가여행’인 것이다. 솔직히 돈을 주고 갔다 오라고 해도 별로 구미가 안 당기는 것이다. 단 한가지, 이번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중에 rock-climbing하는 것, 나의 오래된 추억이 샘물처럼 흘러 나왔다. 한때 나도 저런 것에 ‘미친 때’가 있었지.. 하는 감상적인 느낌들은 즐기고 싶었다. 그때가 1970년 경, 거의 일 년을 ‘바위 타기’에 많은 시간을 ‘허송’했던 대학 4학년 시절. 비록 ‘공부’는 손해를 보았을지라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이렇게 신명 나는 추억거리를 제공했으니 그깟 공부가 그렇게 대수인가.. 그것에 지금 나의 딸이 푹 빠져있으니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2주 동안 우리 집에서 다른 의미의  vacation을 가져야만 했던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새로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우리 집은 갑자기 고요 속을 빠진 듯한 느낌. 우리 집의 Tobey가 아직도 완쾌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더욱 고요하고 우리의 느낌은 쳐진다.

 

Curia Monthly Sunday: 머리 속이 안정이 되지 않은 채로 ‘꾸리아 월례회의’가 열리는 매달 2번째 주일을 맞아 ‘조심스럽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을 갔다. 조심스럽게 간 이유는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이기 보다는 주일미사를 누가 집전을 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둘루스 성당 (윗동네) 신부가 집전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미국성당으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그 신부’에 대한 ‘반감, 혐오감, 앨러지’가 특이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 수가 없어서 포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 본당 신부님 집전이 밝혀져서 ‘안심하고’ 그곳엘 가게 되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등대회 형제님들, 특히 요한 형제와 점심을 같이할 수 있었고, 꾸리아 월례회의도 그런대로 흡족한 느낌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생각한다. 전에 있던 간부진들에 비해서 아주 신선한 스타일로 회의를 진행하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레지오 조직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불과 몇 달전 前의 꾸리아  leadership을 싫지만 기억한다. 그 중에서 2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toxic, terrible, horrible한 기억으로,  앞으로 ‘연구 대상’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case study로 삼을 정도란 뜻이다. 그 결과 현재 이 조직은 거의 limping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꾸리아 평의원들, leadership을  잘못 뽑으면(Trump처럼) 이런 disaster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다음부터는 공과 사를 전혀 구별 못하는 ‘아줌마 tribalism‘ 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면 어떨까?

이렇게 결과적으로 밝은 기분으로 ‘주일 의무’가 끝났는데, 이날은 bonus까지 주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같이 성당근처에 있는 Mozart Bakery에 모여서 ‘수다’를 떠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작년 8월의 ‘레지오 괴물, 미친년 사건’ 덕분에 가까워진 이 부부, 나이가 비슷하고,  ‘사귈만한 부부’라는 인상을 받아서 가급적 관계를 ‘가꾸어 나가고’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대한민국 style 빙수와 붕어빵’을 즐긴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의 날’이 되었다.

¶ 5월의 어머님과 수국 水菊:  2018년 어머니의 선물, 성모성월 5월이 서서히 우리로부터 떠나고 있다. 올해, Mother Nature는 자상하게도 하늘에서 단비를 지나칠 정도로, 땅이 거의 마를 새 없이 충분히 주시어, 온갖 초록색 생명들, 꽃과 나무들은 호사를 하고 있는 5월이었다.

작년 5월을 돌아보면 그때는 거의 ‘초록색의 향연’을 잊고 살았었다. 우리 집 뒤뜰에서 태어난 8마리의 kitten들 살려내어 입양시키려고 동분서주하였던 때, 봄의 싱그러움은 거의 놓쳤지만 잊을 수 없는 그 귀중한 생명들,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 얼굴은 영원히 우리의 뇌리에 각인 刻印 이 되었고, 두고 두고 맛난 술을 조금씩 마시듯 아직도 기쁨을 느낀다. 그런 생명의 5월이었다.

올해의 5월은 조금이나마 ‘역사의 짐1‘을 덜어보려고 1980년대의 5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지냈다.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나와 어느 정도 관계가 되었을까 물으면 사실 많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없던 것처럼 수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고, 나에게 과연 Motherland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더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5월의 찬란하게 화사하고 청초한 꽃들을 매주 성모님께 ‘계속’ 바칠 수 있었던 것, 두고 두고 2018년 5월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 회합 때마다  $4짜리 ‘상품화 된’ 꽃을 Kroger에서 사다가 성모님께 바치는 것, 돈도 돈이지만 미안하게 느껴진 것이, 화창한 5월에 우리 집에서 가꾸었던 꽃들을 바치는 것은 너무도 은총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한창 멋을 내는 수국과 옥잠화를 곁들인 homemade bouquet, 5월의 어머님 성모님, 너무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특히 왜 매년 피었을 수국의 싱그러움이 올해 특별히 나에게 그렇게 멋지게 다가 왔을까.. 생각한다. 아마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이 먹음의 멋일까?

 

성모님, 레지오, 수국, 옥잠화… 그리고 5월

 

¶  선생님의 방학:  ‘teacher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2주 정도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애들처럼 여름 방학을 그렇게 목이 매이도록 기다리더니 며칠 전 Memorial Day 저녁에 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Canada로 여행을 떠나며 Ozzie는 우리의 식구가 된 것이다. 이때마다 선생님이란 직업, 괜찮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긴 여름, 다 큰 사람이 아이들처럼 ‘놀고 먹는다’는 것, 나는 아직도 실감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나이에 그런 입장이었으면 아마도 지루하기도 할 것 같고 집구석에서 독서 정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조금은 자신이 있다. 더 멋지게 보낼 자신.. 근래 들어서 outdoor sports: deep sea diving, hiking, climbing 같은 데 푹 빠져 있는 새로니, 지금은 공기 좋을 듯한 Canada의 wilderness를 누비고 있을 것이지만 글쎄.. 요새 ‘아이들’ 참 어리게 산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가 그렇게 여행을 안 하고 사니 나는 나는 2주 동안 대리 만족이나 즐길까..

 

Ah, Canada.. I wish I..

 

¶  레지오 활동 재개:최근에 들어서 우리 레지오 Pr.2 ‘자비의 모후’, 1조 (나와 연숙)는 오랫동안 침체했던3 때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레지오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소극적으로 기도에만 치중하는 ‘활동’이었지만 그것은 균형을 잃은,  바람직한 방법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상적으로는 신심활동(기도를 중심으로)과 corporal work (육체적 활동)의 비율이 적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해서도 ‘밖으로 나가 뛰는’ 활동처럼 나에게 돌아오는 보람과 활력소가 되는 것은 없었다.

나보다 덜 건강하신 ‘어르신’들을 찾아 조금이라도 사소한 도움이라도 주는 것, 그 정도도 못할까? 이분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만도 그분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런 도움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명심하며 더욱 더 뛸 수 있는 육신의 건강을 주시라고 기도한다.

 

¶  Unofficial Summer: 어제 Tobey와 Ozzie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몇 년 전만해도 거의 매일 Tobey를 데리고 걸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거의 산책을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진 Tobey를 너무 걱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것은 좋지 않다. 모든 ‘운동’ 중에서 나의 나이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빠르게 걷는’ 것이다. YMCA에서 나는 30분 정도 빠르게 indoor track을 걷기에 날씨의 영향을 받는 동네걷기에 등한했는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오랜 만에 걷다 보니 우리 subdivision의 ‘자산’인 swimming pool과 tennis court를 지나게 되었고, swimming pool이 ‘파~란’ 색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그렇다.. Memorial Day부터 모든 Summer facility가 open 하는 것, 잊고 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가던 ‘수영장’… 아~~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다. 그 수영장 아이들이 이제 30대가 되었으니.. 그렇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여름이다. 기껏해야 3~4개월 정도일까… 땀 흘리는 여름은 반갑지 않지만 이제는 드디어 갈색 낙엽의 가을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면… 작년에 재 발견한 classic oldie, ‘The Last Leaf‘를 다시 들고 부르게 될 것이다.

 

Swimming pool’s open for Summer!

  1. 거의 40년 동안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에 대한 후회
  2. 쁘레시디움 Praesidium의 약자로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최전방 분대로 실제적인 선교, 봉사 활동은 이곳에서 한다.
  3. 특히 지난해 ‘레지오 미친년 난동 사건’ 이후부터

 

Windy March: 김민기 작사, 작곡, 노래의 70년대 oldie folk song ‘아름다운 사람‘ 2절 가사를 보면… “세찬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맞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40여 년 동안 잊지 않고 기타에 맞추어 읊조리는 노래, 오늘같이 세찬 바람 부는 날 실감나게 가사를 음미할 수 있다.

왜 3월 무렵 부는 바람은 그다지도 춥고 움츠리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찬란한 햇살에 깜빡 방향을 잃은 우리의 계절감각 때문은 아닐까? 봄의 시작이 일주일 가량 남았으니 아마도 우리의 의식은 분명히 봄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움츠려 드는 몸에 활력을 넣으려고 ‘일부러’ 동네 산책을 강행했다. Mexico에서 Spring break을 즐기는 새로니, 그 애의 home companion인 pet dog, Ozzie를 우리 집에 맡겨놓고 갔다. 이제는 하도 우리 집에서 자주 지냈기에 사실은 우리 식구같이 느껴진다. 주인인 우리 집 pet dog, Tobey도 이제는 체념한 듯, 그런대로 평화롭게 지낸다. 그 두마리 개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찬란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햇빛이 무색할 정도로 ‘움직이는 공기’는 무섭게 차가웠다. 3월의 바람은 역시..

반 세기 전 서울 거리를 걸을 때의 3월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복잡한 시내에서 맞는 강풍, 괴로울 때도 많았다. 머리 숱이 그렇게도 진했던 때, 날리는 머리가 흐트러질까 그것을 shop window에 비추어보며 가다듬던 어린 시절들, 하지만 여자들이 더 고생이었을 것이다. 한창 유행하던 mini-skirt를 입고 2층 높이의 ‘육교, overpass’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우리들이 보기에는 즐겁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고역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싸늘하고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온통 다리를 거의 다 노출시키고 활보하는 것..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것이 머리 속 깊이 남아있는 3월의 모습들..

그 이후에 이곳에 살 때 아이들 bedtime story로 책을 읽어 줄 때, Winnie-the-Pooh 의 추억이 또한 3월에 연관되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중의 한 그림..이 바로 바람에 날라가려고 하는 Piglet을 잡아주는 Winnie의 정다운 모습이다. 이것은 이제는 ‘미국적 추억’이 되었지만 이제는 하도 오래 전이라 미국적, 한국적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게 되었다.  바람을 동반한 3월의 추억,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3월을 맞게 될 것인지.. 아마도 그다지 ‘수많은 3월’은 아닐지도 모른다.

 

Darker Dawn again:  3월의 stupid ritual, 2째 주 일요일 오전 1시가 ‘갑자기, 강제로’ 2시로 변하는 해괴한 ‘법‘.. 나는 아직도 이 stupid하게 느껴지는 것 이해를 할 수가 없다. Daylight를 Save 하자고.. 이것 얼마나 귀찮고 번거롭고, 이제는 일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도 일깨워주는 고역이다. 벽시계 같은 것 바꾸는 것 이외는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바뀌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시간을 ‘법으로 강제로’ 바꾸는 것이 문제다.

 

 

그런대로 아침에 일어날 때 여명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깜깜해 졌다. 그것뿐인가.. 특히 봄에 바뀌는 시간은 아차 하면 내가 바보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일요일 아침, 목적지에 한 시간 늦게 도착하는 것, 충분히 가능하니까.. 수십 년 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TV, Radio) news를 완전히 잊고 살던 ‘공부하던 시절’, 나는 이 news를 놓치고 월요일 아침에 버젓이 수업시간에 1시간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시작할 시간에 모두 교실에서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을 보고.. 정말 바보, 바보.. 라는 웃음이 나왔던 그 시절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 Tax surprise:  예정보다 늦게 2017년도의 Federal Tax Return 을 끝냈다. 작년에는 2월 중에 했는데 올해는 분명히 tax를 ‘내야 할’ 것을 예상했기에 무의식적으로 게으름을 피었는지도 모른다. Tax를 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신나는 작업이 아니니까.. 그런데 놀란 것은 그 액수가 예상보다 많았던 것, 허~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나.. 의아하긴 했지만 알고 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연숙의 ObamaCare 때문이었다.

 

 

Medicare가 얼마 전에 시작되었기에 그 이전에 받았던 tax credit을 과도하게 받았던 것, 그것을 다시 ‘물어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조금 실망했지만 어찌하랴… Health insurance 를 큰 부담 없이 cover받은 것에 감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정당한 이유가 있는 tax는 정직하게 내야 하니까.. 사실 모든 것이 fair한 듯 하다.

 

¶  Tobey Scare: 12살 배기 male mixed Dachshund, Tobey, 이틀 전부터 거의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시간 나를 졸졸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그날 아침부터 나를 따라오지를 않았다. 아니.. 아예 움직이지를 않았다. 거의 죽은 듯이 엎디어 있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일순간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12살의 나이면.. 언제나 가능성이 있는 나이라고 서서히 우려를 하고 있던 차였다. 제 발로 계단을 못 내려가는 것이 뻔하기에 내가 앉고 나가서 bathroom처리를 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변했다. 조용해진 것은 물론이고.. 거의 초상집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처음으로 우리 Tobey와 이별할 수도 있다는 현실감도 들 정도..

주위에서 정든 pet dog을 보내며 보여준 각가지 반응들에 우리는 남의 일처럼 comment를 하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Veterinarian을 찾으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것도 꺼려지는 것, 이것 저것 test test.. 로 개를 잡을 것이고, $$$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그것 보다는 증세가 최소한 internal한 것이 아니기에 며칠을 두고 보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 최소한 먹는 것과 ‘싸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오늘 소식을 듣고 새로니가 부리나케 ‘병문안’을 왔고 이곳 저곳 연락을 해서 알아보니, 역시 ‘심한 신경통, 관절염‘ 계통의 증상인 듯 했다. 그렇게 잘 걷고 활발하던 애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부리나케 신경통증을 완화하는 약을 order하고 더 지켜 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 하긴 하다. 새로니의 이야기가 만약 관절염계통이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통증만 control할 정도라고..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던 애가.. 하지만 12살이 되는 나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항상 이별할 준비를 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괴롭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  2016년 ’33일 ‘대장정’ 의 첫날을 맞이했다. 이번이 3번째의 33일 봉헌이 되기에 조금은 경험이 있다고 할까.. 처음 두 번의 것보다 조금은 느긋한 심정으로 첫 날을 맞이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며칠 전부터 뒤적거리던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책의 첫 장을 열고 첫 12일의 목표: ‘세속 정신을 끊음‘ 의 제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을 읽고 묵상을 시도한다. 12일 동안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라’ 는 과제.. 이것이 과연 그렇게 쉬울지..

사실 이 33일 과정은 이 책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guide를 받으며 독서, 묵상, 기도를 할 수 있다. 이 ‘책’을 그대로 따라가면 큰 문제없이 33일 기간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독서 후에 깊은 묵상과 제시된 기도를 다 마쳐야 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33일의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것들이 이 책에 일목요연하게 제시가 되어 있어서 그것을 ‘가급적’ 지켜야 하는 부담도 있다.

한창 더운 복더위의 여름에 이것은 무엇인가.. 시원한 beach나 산 속의 summer vacation도 아니고.. 에어컨 소음이 요란한 자기 집 방구석에 앉아서 이렇게 33일 보낸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큰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아니.. 그렇게 ‘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의미가 있는 멋진 summer ‘spiritual’ retreat, vacation 일 수 있는 것이다.

33일 매일의 실천 사항 이란 list를 보면: 거의 모두 ‘상식적’인 것들이다. 이 기간 동안 ‘대죄’를 짓지 말라는 것도 그렇고, 1시간 이상 조용한 시간을 할애하라는 것, TV같은 ‘잡 雜 것’들 을 피하라는 것, 아니 요새 나온 실천사항에는 분명히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피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듯 하다. 아마도 제일 힘든 것이 ‘조용한 1시간 이상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정말 힘들게 된 요새세상, 참 많은 사람들 ‘로봇트’ 같은 정해진 일상을 보낸다는 사실에 경악을 한다.

이 중에는 가능하면 매일미사 참례하라는 것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것에서 ‘걸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것 같다. 요새 세상에 매일 미사를 한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인기 있는 활동이 아닐진대.. 하지만 나는 문제가 없다. 2012년 부활시기에 이 ‘인기 없는 활동’을 시작해서 아직까지 굳건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참 오묘한 것은, 2012년 부활시기에 연숙이 33일 봉헌을 시도하면서 ‘시험 삼아’ 평일미사를 같이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작은 기적들’의 시작이 되었으니 말이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은 이래서 우리에게는 거의 ‘신화적 역사’가 되었다.

 

¶ 아~~ 시원하다 언제부터 시작된 ‘여름 전의 한여름 더위’ 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갑자기 ‘당한’ 열대성 무더위에 머리조차 멍~ 해진 기분이다. 특히 새벽에 느끼던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듯한 머리 속.. 그것이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열흘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 그런 것.. 하지를 며칠 안 남겨두고 한차례 한여름을 치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조금 느낌이 달랐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부리나케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마셔보니.. 와~~ 이것이 웬 떡이냐.. 습기가 완전히 빠지고 산들바람까지 불어대는 초가을의 아침이 아닌가? 이것이야 말로 웬 떡이냐..란 탄성이 나온다. 띵~~ 하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듯한 날라가는 느낌.. 아~~ Mother Nature여.. 이래서 살게 되어 있나 보다.

지겨운 일기예보를 안 보고 산 것이 몇 주가 되었나? “Donald  Duck쌍통”을 비롯한 또 다른 해괴한 뉴스들, 같은 식으로 이런 것도 안 보는 이상한 세월을 보낸다. News TV, outlet을 거의 피하며 나의 sanity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몇 개월째 그런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다가는 나야 말로 cavemen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결론은, 요새 세상은 cavemen 쪽이 더 낫다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

6월도 훌쩍 반을 넘어간다. 새로니는 오랜만에 지루한 학교생활을 떠나  유럽여행으로 집을 완전히 잊은듯한 기분으로 3주 여행 중 2주째를 맞고 있다. 우리는 언제 온 가족이 여행을 같이 가보나.. 하는 바램이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지만.. 그래.. 다 때가 있는 거다.. 지긋이 기다리면 된다. 특히 ‘조직신앙’을 떠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 때가 우리가족 여행의 적기 適期 라는 생각도 한다. 과연 그날이 올까? 기다리자.. 기다리자..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 Ozzie Grounded 새로니의 ‘아들’ Ozzie, 3주간 여행 중 우리가 맡고 있다. Midtown condo에서 살던 기운이 왕성한 덩치가 큰 강아지, 다리가 유난히도 길어서 우리 집의 3′ 짜리 Tobey fence를 임시로 3′ 높여서 6′ Ozzie fence ‘사고로 뛰어 나가는 것’에 대비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Condo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mansion처럼 크게 느껴지는 우리 집에서 얼마나 뛰고 싶을까.. 오는 날부터 지겹게도 더운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루 종일 졸라대며 우리를 괴롭히더니.. 결국은 사고를 냈다. 우리가 없는 동안, Publix fried chicken, 먹고 버린 것, 쓰레기 통을 열고 모조리 먹은 것이다. 뼈 투성이의 그것을 흔적도 없이 다 먹은 것이다. 작은 뼈들을 잘못 먹으면 큰일이 난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혼비백산, 걱정을 했지만..  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은 strict하게 하는 것으로 정하고 완전히 하루 종일 ground를 시켜 버렸는데 이것이 아주 큰 효과를 내서 이제는 아주 얌전하게 우리 집 분위기에 적응을 하고 있다. 하기야 그 동안은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왔기에 너무나 ‘풀어 주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런 것 말고는 2주를 우리 집 개처럼 Tobey와도 잘 지내고 고양이 Izzie의 territory도 잘 지켜주고.. 문제가 거의 없다. 날씨가 시원해져서 이제는 grooming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새로니가 돌아오면 이 녀석이 자기 엄마도 몰라보고, 혹시 누군가.. 하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상상도 해 본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Happy Note, Central A/C humming again! 올 들어서 제일 더운 거의 5일간 아래층 에어컨이 없이 살았다. 아래층은 낮에 잠깐 에어컨이 나올 정도지만 그래도 음식을 하거나 하면 83F 까지 올라가고 그 여파로 위층의 에어컨이 overworking 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며칠을 살고 보니 예상보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order했던 condenser fan motor, run capacitors, 그리고 제일 필수적인 tool, Fan Blade Puller가 하나하나 씩 도착을 했고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땀을 폭포처럼 쏟으며 repair mode로 돌입, 천신 만고 끝에 결국은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이론적인 것이 거의 없는’ 거의 mechanical work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는 정말 surprise 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나는 더욱 stress를 받았다. 제일 나를 괴롭혔던 것은 망가진 fan motor에 완전히 녹으로 붙어버렸던 fan blade를 빼 내는 일이었다. 그것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 fan blade가 망가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만 ‘전문적’으로 빼 내는 tool이 ‘발명’이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써야 했는데.. 그것 역시 automatic이 아니고 완전히 ‘완력 腕力’이 필요한 것, 평소에 운동을 안 했으면 아마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천신만고 끝에 결국 그것이 빠져 나오고 새 motor에 끼운  후에는 간단하지 않은 electrical wiring까지.. 휴~~~ Power Switch를 킨 후,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찬 바람이 느껴질 무렵에는 나는 거의 완전히 쓰러지는 느낌이었는데, 피곤함 보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만약 pro service를 받았으면 얼마나 charge를 했을까? 아마도 최소$700~$800 정도였을 것이다. 나의 이 job의 total expense는 $100 정도였으니까.. 최소한 $600 정도는 save한 셈이다.  비록 두 식구가 사는 집의 가장이지만, 집안의 환경에 대한 책임감은 정말 무거운 것이었고 그것이 주는 stress역시 상당한 것.. 하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언제나 모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그것을 바라며 땀을 흘렸던 지난 주의 한가지 happy note가 되었다.

 

Brand new condenser fan motor

Brand new condenser fan motor

Magic tool, blade puller: 드디어 fan blade가 빠졌다

Magic tool, blade puller: 드디어 fan blade가 빠졌다

 

아~~ 4월도 20일이 되었는가.. 어제가 4.19 사일구 아~~ 내가 너무도 똑똑히 기억하는 그 때.. 가 이제 56년 전이었다니.. 너무하다 너무하다.

요새 습관이 된 듯한 ‘작년의 desk calendar’를 쉽게 보는 것.. Holy Family 성당 에서 준 조금은 ‘조잡하고 간단한’ 달력,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달력이고,  한반도에서 나온 달력이 오히려 이상하게 복잡하고 비싼 것이다. 좌우지간 그것을 나의 daily journal로 쓰기 시작한 것이 3년 째.. 몇 년 전에 일어난 중요한 일들은 레지오 수첩과 더불어 이것이 생명선이다.

‘고물’ Android Samsung smartphone의 camera record도 다른 중요한 나의 인생 기록을 남기고 있어서 calendar와 더불어 나는 근래 몇 년간의 삶의 모습은 그런대로 기억을 하며 살게 되었지만.. 과연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내가 조금은 ‘작은 것들’에 집착하는 쪼잔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모른다.

작년의 camera picture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비가 쏟아지는 날 front door에서 찍은 것.. Tobey가 밖을 보며 평화스럽게 누어있는 그 모습이 어쩌면 나를 그렇게 ‘천국’에 있게 하는 것인가. 4월의 모습이, 이상적인 4월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제발 잔잔한 비여.. 나를 다시금 즐겁게 만들어주라!

찐한 extreme peace를 가끔 경험하는 요새.. 비록 식사시간이 괴롭긴 하지만 (my tooth, my tooth!) 이것도 보속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리며 살게 되었다. 언제까지 견딜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평화를 지키고 싶다. 왜 평화가 우리 집에 왔을까? 우연일까? 물론 이제 생각에는 ‘아니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모든 곳에 내리는 절대자 주님, 하느님의 자비의 비를 나는 조금씩 맞으며 느끼게 된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내가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고 머리를 그곳으로 돌리니까 보이며 그 단비를 맞게 된 것이다.

3월 달의 보나 자매님을 보내던 과정은 참 역사적인 것이다. 주위의 ‘귀여운’ 자매님 천사들과 같이 기도하며 정성을 들여서 보나 자매님을 천국으로 보내는 그 과정.. 당시에는 바쁘고 슬프고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 잔잔해진 시간에 생각을 한다. 비록 하느님을 맞는다는 자세로 가진 않았지만 그것이 큰 상관이 있을까? 그 자매님 우리를 고마운 심정으로 받아들였고 우리도 정성을 다 했으니까.. 여한이 없는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작년 이맘때의 ‘사건’들.. 배 자매님을 보내던 과정들이 달력에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참 슬프고 기가 막힌 사연의 불쌍한 영혼들을 보았지만 그것도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한 심정을 억제할 수가 없다. 나와 연숙이는 최선을 다 했다는 것.. 어떨까.. 지나친 자부심일까?

그제, 새로니가 school break에 우리 집에 왔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나는 항상 걱정을 하는가.. 조금은 불안한 심정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나가 소심한 탓일 것이다. 어찌 우리 딸이 오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가? 조금은 성숙한 새로니.. 아직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를 계속하지만.. 그래도 그날 새로니는 나의 99점을 받는 시간을 보내 주었다. 우리 차도 ‘정성스레’ 닦아 주었고, Einstein Bros의 lunch 와 wine과 함께..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제사정’을 신중하게 들어주고 조언을 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엄마와 같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이성적이고, 솔직하게’ 했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질 않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 아니면.. 성모님.. 우리 어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1월 5일은 우리 집 큰딸 새로니의 33번째 생일이다. 그 옛날, 한때 뻑적지근했던 아이들의 생일이 이제는 어쩌면 그렇게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는가..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거의 신비에 가깝다. 세월의 횡포인가 마술인가, 나이를 먹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는지 싱글벙글 생일 잔치를 받던 아이들, 20대에 이르러 한결같이 시들해진 표정들로 변했고 30대에 이르러 이제는 숫제 거의 관심도 없다.

출산 5일 전, 신정 미사 후에 박재승 부부, 김원백 부부와.. 콜럼버스 한인성당에서.. 1983년 1월 1일

출산 5일 전, 신정 미사 후에 박재승 부부, 김원백 부부와.. 콜럼버스 한인성당에서.. 1983년 1월 1일: 2명 가족으로 마지막 모습

 

우리세대는 가난하고 찌들은 전통인지 생일날에는 그저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먹던 것이 전부였고 더 나아가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께도 감사를 드리던 겸손한 전통이었는데, 그런 소박한 것들이 지금은 아주 신선하고 그립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그것들이 이제는 세계 보편적인지 서구적인지는 잘 몰라도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앵무새처럼Happy Birthday to You..’ 를 따라 부르며 자기가 100% 주인공인 된 조금은 ‘오만한’ 생일을 맞는다. 이것이 요새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생일은 100% 자기의 날인 것이다.

Well after delivery,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Jan 1983

Well after delivery,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Jan 1983

벌써 4년이나 된 나의 blog에서 당시를 피상적으로, 감상적으로 회상을 해 보았지만, 오늘은 ‘4년 동안 더 배운’ 것으로 1983년 1월 5일.. 을 회상해 본다. 그 날은.. 우리가 만든 첫 생일이었다. 지금은 반드시 우리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begotten, not made..], 신비롭기만 한 새 생명, 그것도 ‘우리가 만든’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본 그날이었다. 이런 표현은 사실 신앙의 눈이 뜬 지금에서야 차원이 높게 표현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도 과연 그랬을까? 우리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던 한 생명의 실존적 의미를 그 당시에 거의 실감을 못하며.. 그저 ‘한 인생의 자취’를 역사에 남기는 의무 정도로 생각하며 자질구레한 출산, 유아 쪽에 모든 신경과 노력이 쏟아지기 시작하던 겨울답지 않게 가랑비가 내리던 Columbus, Ohio의 1983년 1월 5일.. 이제는 조금은 더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태어날 당시 새로니는 참 많은 주위의 축복을 받았기에 그 애는 ‘잘 클 것’이라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씀대로 ‘자식은 나의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뼈저리기 절감을 할 정도로 놀라는 순간들도 많았다. 한 마디로.. 저 애가 과연 우리의 자식인가..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는 세월을 거치며 지금은 체념하는 심정이 되었고.. 아하.. 이것이 순리적인 인생의 법칙이로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것과 더불어, 나의 자식들은 ‘내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 것도 아니다‘ 라는 말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되었다. 고유한 영혼을 가진 인간을 우리가 ‘만든다는’ 것이 한마디로 어불성설 語不成說 인 것이다.

‘남아도는 풍부한 cash’가 없던 우리 집, 편안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거의 모든 것들을 자력으로 공부하고, 난관을 헤쳐나간 우리 큰 딸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런 사실이 우리들이 생각한 ‘간접적인 효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큰 걱정하지 않고 이 ‘애’를 두고 ‘보이는 세상’을 떠나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색다른 선물인가?

1월 3일 모두에게 편한 날을 잡아서 다시 한번 ‘미역국’을 나누며 33년 전에 일어난 이야기를 나누며 또 한번 가족의 생일을 축하한다. 이제는 ‘완전한 노처녀’가 되었다고 우리는 푸념하지만 주위 ‘선배’들의 말처럼 요새는 옛날 같은 노처녀는 아니라고 하니.. 조금은 덜 신경이 쓰일 정도다. 요새 ‘아이’들.. 그야말로 self-sufficient generation, 부족한 것이 없으니 ‘남편의 도움’이 크게 절실하지 않은 모양이다. ‘할 것 다하고’ 생각하겠다는 태도에 우리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져서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남은 인생은 그렇게 짧지도 않지만 그렇게 길지도 않다는 사실만 하루속히 깨닫는 순간이 오기만 바라고 있다.

 

Hold on Tight to Your Dreams – ELO – 1980년대 초 oldie

Thebible33-1

Permission: GNU Free License

Rosary Relay..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꾸리아 (Curia)에서 드디어 ‘묵주고리기도’ 의 ‘지령’이 하달 되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끊임 없이’ 5분 간격으로 묵주기도rosary가 계속 바쳐지는 recite 것이다. 물론 이런 기도는 확실한 ‘지향 intention‘ 을 가진다. 2년 전쯤인가.. 본당 주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을 위한 ‘고리기도’를 경험했었다. 나에게는 처음이라서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진 경험이었다. 생각만 해도.. 멋진 idea가 아닌가? 한 영혼을 위해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어디선가 기도가 바쳐진다는 사실이..

이번에는 주임신부님 (이재욱 요한 신부님)은 물론이고 보좌신부님 (한민 토마스 신부님)까지 포함되어서 그분들의 ‘영유간의 건강’을 위한 묵주고리기도가 바쳐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특히 레지오)에게 가장 중요한 영혼들인 것이다. 6월 24일부터 12월 2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의 rosary relay, 우리 부부는 오후 9시를 넘은 slot인데.. 너무 편리한 시간을 차지했나 하는 미안한 심정도 든다. 이런 rosary relay같은 것이야 말로 우리 가톨릭만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빛나는 유산이요 영적인 무기임을 개신교 신자들은 알기나 할까..  

 

Near-death File Server.. 우리 집 computer system (networked) 에서 file server pc가 결국 하루 아침에 quit (a.k.a. dead) 하고 말았다. 이름도 역시 ‘FS’ (file server)인 10년이 넘은 ‘고물 clunker’ Windows PC가 4~5 hard drive로 우리 집 home network에 24시간 file을 serve하고 있는데.. 물론, 거의 99% 내가 쓰는 file들이지만 가끔 연숙과도 share하는 것들이 있어서 이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 이었다. 거의 5 TB의 ‘역사적’인 data들이 많고, 그 대부분은 video file들이 차지한다. 물론 local (pc) drive를 쓰면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home ‘cloud’ system의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 (안전함)에서 ‘항상’ data를 필요할 때마다 받아 쓸 수 있음은 역시 편리하고 안전하고 ‘멋진’ idea인 것이다. 이런 server system은 virtual machine을 remote desktop으로 desktop pc로 쓰게 되면 필수적이다. 

나는 현재 Proxmox VE (virtual environment)란 virtual server를 쓰고 있는데, 한때는 10 virtual machines (대부분 test machine, sandbox platform, internet PBX등으로) 까지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금 김이 빠진 상태로 현재는 4개의 virtual machines (Windows, Ubuntu, Asterisk pbx etc.)만 유지하고 있다. 이런 ‘headless‘ virtual machine들은 필수적으로 file server가 필요하기에 이번에 ‘죽은’ file server ‘FS’ 는 결사적으로 되 살려놓아야 할 입장이었다. ‘죽은 시체’를 열어 보니 10년이 넘은 motherboard가 제일 의심스러워서 완전 폐기하려는 순간.. not so fast moment인가.. 실제로 죽은 것은 motherboard가 아니었고 power supply (PS)였음을 알게 되었다. 버리기 직전에 발견한 것이다.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하여서 결국은 FS는 다시 작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의 computer (network) system은 거의 25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런 것들과 ‘장난하는 것’이 나의 시간을 죽이는 최고의 취미였지만.. 솔직히 이제는 조금 피곤한 기분이 든다. 멋진 system을 꿈꾸며 살기도 했지만.. 이제는.. 간단한 것, 단순한 것을 찾게 되니.. 역시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Nearer My God..  5월 초에 P 베로니카 자매님과, 개신교 신자였던 K 자매님을 연속으로 하늘나라로 보낸 지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것이 편리하게 예측을 할 수가 있을까? 지난 2개월 그런대로 편히 쉬는 기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사신 死神’들이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제일 급한 것은, 몇 년 전부터 열심히 기도하던 Y 막달레나 자매님.. 이 자매님, 참 외롭게 투병을 하시던 교우였지만 최근에 아주 상태가 악화되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내가 개인기도를 많이 바치던 자매님인데.. 성모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지경으로.. 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혼자’인 몸으로 투병을 하는 것으로.. 가족들과는 어떤 관계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도 외롭지만 나보다 더 외로운 영혼들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은근히 놀란다. 비록 하느님께 간다고 하지만 인간적인 마음으로 어찌 가족을 생각 안 할 수가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우리 레지오 단원 자매님의 부군께서 ‘중병’으로 고생을 하시게 되었고 결국 그 자매님은 간병을 위해 레지오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연세로 보아서 힘든 투병을 하시는 이 형제님.. 하느님께 더욱 의지하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라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Y 막달레나 자매님의 선종기도를 하고 있는 상태고 형제님은 환자기도를 하고 있지만.. 인간능력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기에 더 높은 곳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시간들이 온 듯하다. 

 

Ozzie, I Love You.. 지난 며칠간 우리 집에 어떤 guest가 며칠 묵고 갔다. 오래 전, 거의 6년 전에도 이맘때에도 (헉헉거리는 무더웠던 여름) 어떤 guest가 와서 몇 주일을 묵고 간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guest가 사람이었고 (오랜 전에 알았던 집의 젊은 아들) 이번에는 2발이 아닌 4발 달린 pet dog 이었다. 그 오래 전의, 사람이 손님이었을 때, 한마디로 짜증나는 더위 속에서  ‘서로’ 고생을 했던 기억만 남은 듯 했지만 이번의 4발 달린 ‘동물’ 손님은 비록 며칠 간이었지만 너무나 즐거운 기억을 남겼다.

이 ‘4발’ 손님은 다름이 아닌 새로니의 ‘adopted’ pet dog, Ozzie였다. 3살이 조금 넘었지만 덩치가, 10살이 넘은 우리 집의 Tobey보다 훨씬 큰 편이다. 동생 나라니와 같이 거의 2년 전쯤 어떤 animal shelter에 같이 가서 데려 왔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고른 사람이 나라니였다고 했다. 그 이후 가끔 우리 집에 데려온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미 주인인 Tobey와도 구면인 셈이다. Ozzie는 한 마디로 nice dog이라고 할까.. 어쩌면 그렇게 순~ 한지.. Tobey에 비해서 너무도 착한 아들 같다고 할까. Breed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긴 다리를 가지고 splinter같이 뛰는 모습을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Tennis ball로 fetch를 하면 어떨 때는 ball보다 더 빨리 뛰어가 기다릴 때도 있으니까..

새로니가 출장을 갈 때 이 Ozzie를 pet motel에 맡기고 갔었던 모양인데, 아무래도 Ozzie에게 미안 했던지 우리에게 ‘살살’ 부탁을 해서 이렇게 우리 집이 pet motel역할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귀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가족이 이럴 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순순히 3일 간의 pet sitting을 해 보았는데,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의외로 Ozzie가 잘 적응을 하며 아주 happy하게 보여서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돌보아 주게 되었다. 남자만 보면 짖어대던 그 녀석이 (전에 남자에 대한 trauma가 있었지 않았을까..) 이제는 나에게도 정답게 접근하고 심지어는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대곤 해서 아주 정이 흠뻑 들게 되었다. 다른 편으로는 이렇게 정이 들면… 곤란한데.. 하는 우려 아닌 우려까지 들었다. 그 만큼 정을 준다는 것.. 나중에 정을 거두어들일 때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으니까 너무 정을 주지 말자고 다짐을 하지만..

 

어제는 모처럼 우리 4식구가 함께 일주일 늦은 Mother’s Day를 조금은 특별한 곳에서 보냈다. 이제는 머리들이 다 커 질대로 커진 두 딸, 생각보다 바쁜 생활 일정에 정신 없이 ‘삶’을 사는 그 애들.. 어릴 때 퇴근 후에 집에 오면 그 애들을 침대 위에서 번쩍 들어서 ‘flying!’을 외치며 내 던지던 때가 조금 과장해서 엊그제 같은데.. 어릴 때부터 holiday나 Mother, Father day를 귀찮을 정도로 챙기던 애들.. 이제는 그런 good ole days 순진하고 포근했던 시절은 다 간 모양이다. 그런 애들.. 너무나 바빠서 올해는 제대로 제 날짜에 Mother’s Day 를 못 챙기고 지냈지만 그래도 일주일 연기해서 모인 것이다.

pretty but moderate home-made lunch

pretty but moderate home-made lunch

몇 년 전부터는 집에 모여서 특별한 음식을 자기들끼리 준비, 요리해서 먹곤 feast 했는데, 올해는 먹는 것만은 재미가 없다고 해서 나라니의 idea로 Atlanta Botanical Garden: the Garden 을 구경하고 Garden근처에 있는 새로니 midtown condo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서 먹게 되었다. 2009년 경에 우리는 그곳 the Garden 에 갈 기회가 있어서 사실 그곳은 생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저녁때 잠깐 본 정도라 기억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낮에 제대로 보게 되었고 시간이 충분해서 아주 찬찬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볼 것은 많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 중에는: Canopy Walk, Earth Goddess statue, Fuqua Conservatory & Orchid Center, 그리고 특별 전시 중인 Bruce Munro의 cool light show 가 있다. Canopy Walk, 이것은 Garden forest의 skywalk 라고나 할까.. 숲 위의 고가 보행로인데 이곳을 걸으며 Garden 숲 전체를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Canopy Walk는 몇 년 전 공사 중에 대형사고(structure collapsing)가 나서 수 명이 사망했던 뉴스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만큼 이것은 Garden전체에서 중요한 attraction이 되었는데, 사실 느낌은 전체 거리가 짧다는 것이고 ‘고가 도로’라고 하지만 그렇게 ‘고가’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 그것에 비해서 structure 자체는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것이었다

비록 일주일 늦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이렇게 저희들끼리 경제적으로 기억에 남는 날을 만들어 준 것 우리는 감사하게 느꼈고, 이런 날들이 앞으로 얼마나 우리들에게 남았을까를 생각하니 한시 한시가 귀중하고 기억과 추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들임을 절감하게 되기도 한 멋진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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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unro light art

Cornerstone Village Condo

돌아온 새로니.. 제목이 그럴 듯하다. 영화제목 ‘돌아온 장고‘ 처럼.. 우리 집의 큰딸, 새로니가 거의 6년 만에 ‘일단’ 정든 집으로 돌아와 우리와 같이 살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잠깐 머문 적은 많았지만 자기의 살림살이 짐을 ‘완전히’ 우리 집으로 옮기고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근래 지독한 경제불황의 여파로 Y 세대는 물론이고 심지어 비교적 젊은 축 X 세대들까지 자기가 자라던 집, 그러니까 부모의 집으로 ‘퇴각하는 것’이 요새 많이 보이는 현상중의 하나라는 보도도 심심치 않은 이때, 큰딸 새로니가 집으로 들어온 것은 그런 보도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듯 느껴진다.

젊은 ‘애’들이 ‘지독한 불경기’를 못 견디고 집으로 ‘퇴각’하는 것과 새로니는 조금 사정이 다르지만 ‘무섭게 예리한 경제감각을 가진 요새 애들, 특히 여자애들’ 중의 하나인 새로니에게도 경제적인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니에게는 그다지 신나는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로 career의 방향이 바뀐 후 처음으로 맞는 불경기 하의 job market에 대한 불안 감도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일단 우리의 혈육이 자기가 자란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조금은 경제적으로도 새로니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오랜만에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 압박감 없이 자유스럽게 ‘옛날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조금 비약적인 희망일 것이지만.

 

위의 메모는 작년, 그러니까 2012년 4월경에 남겨둔 것이고 ‘미완성’의 글로 남았었다. 그것을 오늘 다시 본다. 집을 떠난 지 6년 만에 같이 산 것이 이제 거의 1년이 되어간다. 6년 떨어져 산 돌아온 ‘아이’를 옆에서 보며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가 난 ‘아이’가 돌아온 것은 물론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긴 하지만, 당혹한 순간들도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괴로운 시간도 적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과연 ‘혈육, 가족’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 새삼스레, 아주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가장 놀란 것이 있다면 그 동안 내가 심각하게 가족관계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복어 사전>으로 번역이 된 일본에서 나온 수필집을 보면 역시 ‘머리가 큰’ 자식과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보여준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제일 좋은 방법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다른 지붕’ 아래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읽을 당시에는 정말 실감을 못했지만 요새는 그 책 저자의 의도와 생각에 150% 동감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왜 그럴까? 지난 일년 새로니와 같이 살면서 나는 그런 질문만 계속하며 살았다. 왜 그렇게 어려울까? 왜 어렸을 때와 같이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답은 간단할 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고 모두 그 동안 ‘변한’ 것이다. 부모인 우리도 ‘나이에 따른’ 고집과 경륜이 쌓였고, 성장한 아이도 혼자 살아도 되는 독립된 어엿한 사회인으로 그 애 만의 독특한 경험과 주관이 생긴 것이다. 예전 같으면 특별한 ‘배려 없이’ 의견이 모아지던 것이 이제는 ‘협상’이 필요한 때도 많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을 옛날의 ‘즐거운’ 때만 생각하며 ‘쉽게’ 생각하는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지 않았을까? 집을 떠난 6년 동안 그 애만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배운 습관들.. 역시 옛날의 것에 비교하면 무리가 있다. 나는 그저 그런 모든 ‘조그만 문제’들은 가족의 사랑으로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으로 ‘확신’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역시 모자랐다.

하느님은 공평하신가.. 괴로운 때와 즐거운 때의 비율이 반반 정도라고 하면 조금 과장 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즐거운 순간들이 기가 막히게도 괴로운 순간들을 ‘중화’시키며 살아가게 해 준다. 하지만 역시 결론은 각각 독립적으로 살려면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불경기 속에서 job을 용케 찾았고, 안정된 재정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자마자 새로니는 ‘결사적‘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게 되었다.

우리의 희망은 결혼을 하면 더 안정될 것 같지만,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요새 젊은 여성들의 생각은 우리의 희망과는 전혀 무관하게 흐르고 있었다. 인생에서 결혼의 우선순위는 과장된 표현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낮아지고 있다. 하물며 자식을 낳은 다는 것은 그 보다 더 낮은 곳에 있었다.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다지 급할 것도 없고 중요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남의 간섭을 덜 받고, 편하게 살려는 일종의 ‘쾌락주의‘라고나 할까. 간혹 행운적으로 예외는 있지만 조금 배웠다는 사람들일 수록 더 그런 경향이 심하다. 그런 것을 알면서 push한 다는 것은 더욱 큰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가 왜 모르겠는가?

결국, 옛날 우리의 즐거움이었던 큰 딸 새로니는 우리의 품을 ‘완전히’ 떠나기로 하고, 불경기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부동산 경기를 의식하며 혼자 몇 년은 살 수 있는 1 bed-room condo를 사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의 혼자서 직장시간을 쪼개어서 집을 찾고 보고 하더니 너무나 피곤한지 realtor를 구하게 되었다. 미국인 realtor만 상대하더니 나중에는 아무나 상관이 없는 듯해서 우리 한인성당에서 알게 된 Emily Kim 자매님을 연숙이 소개해 주었고, 조금 씩 오르기 시작하는 집값을 의식하며 거의 3개월 동안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다가 결국 Atlanta mid-town에 있는 condo를 찾게 되었다.

그 property는 비교적 싸게 나온 것으로 역시 지독한 불경기 속에 foreclosure된 것으로 bank소유였고 소위 말하는 short sale되는 그런 곳이었다. 한창 부동산 거품일 적 그곳은 아마도 $100,000이상에 거래 되던 곳이었을 것이 거품이 빠지면서 거의 $85,000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원래 주인은 아마도 mortgage를 낼 수가 없어서 그냥 집을 떠났던 그런.. 지난 5년 동안 이런 ‘비극’은 미국 전역에서 수없이 일어났는데, 지금 그런 곳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조금씩 팔리게 된 것이다. 그뿐이랴.. Mortgage interest rate가 옛날 우리가 듣고 보던 것의 반도 채 안 되는 저렴한 것과, 지역마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고 ‘정부 레벨’에서 각가지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까지 생겨서 그런 정보들만 잘 찾아내면 더 싸게 살 수도 있게 되었다.

악착같이 새로니는 그런 것을 찾아내어서 거의 $15,000을 절약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연방정부에서 주정부로 보조해 주는 것인 모양인데, 조건은 집을 처음으로 사는 것과, 그 집에서 5년은 살아야 하는 것, 지역도 Atlanta 시내 인 것 등으로 새로니에게는 아무 하자가 없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조건이고 역시 관건은 ‘구비 서류’에 있었는데 그것을 그 애는 정말 꼼꼼히도 챙기며 노력을 해서 결국은 그 혜택을 받아내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부부는 입만 벌리기만 했는데, 우리보고 하라면 ‘절대로’ 못할 서류들이었기 때문이다.

Bank loan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는 것이, 우리가 20년 전 집을 살 때와는 정말로 sea change였다. ‘무섭게, 까다롭게, 시간을 질질 끄는’ 그런 식.. 어찌 안 그렇겠는가? 지난 부동산 거품이 그런 것을 너무나 해이하게 하였기에 생겼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군소리를 못 할 것이 그렇게 해야 다시는 전과 같은 ‘거품’이 생기지 않기에 말이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2주 전에 드디어 closing이 성사가 되었는데, 그때 새로니의 기쁨은 우리가 옆에서 보아도 큰 듯 했다. 거의 ‘혼자서’ 한 것이다. 아니 100% 혼자서 한 것이다. 우리는 가끔 집을 같이 보았던 것.. 그것 뿐이니까. 그런 날이 우리 집에서는 Lemon Grass moment 라고 불려져서 모처럼 단출한 4식구가 ‘모두’ 모여서 외식을 하고 ‘꼬마’ 집주인이 된 새로니의 ‘독립’을 축하해 주었다.

그저께 드디어 moving truck이 와서 많지 않은 짐을 mid-town으로 날랐다. 동생 나라니 집에서 언니에게 주는 used couch도 날라와서 그런대로 살만한 환경으로 변하고, 새로 페인트를 칠하며 ‘혼자 사는’ 꿈을 꾸는 듯.. 옆에서 보는 우리의 심경은 조금 mixed라고나 할까.. 어찌 안 그렇겠는가.. 우리 가족의 변천사에 큰 획을 긋는 그런 시간들이 아닐까. 막상, 마지막 이삿짐이 나가면서 우리는 정말 착잡한 심경을 맛 보았다. 같이 있을 때, 조금 더 친절하게 해 줄 수는 없었을까.. 역시 우리는 후회를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이다. 속으로 계속, “새로니, 서로 섭섭하게 한 것들이 있으면 빨리 잊자, 우리는 가족이니까” 라고 되뇐다.

생각한다. 아주 오래 전,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 에서 보는 것처럼, 고향 서울 커다란 한옥 줄줄이 이어지는 사랑방에서 각자 기거하며 ‘오순도순’ 살던 대가족들, 비록 가난했지만 절대로 외롭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는 4명 밖에 안 되는 ‘형편’에 그것도 떨어져 살아야 마음이 편하게 느껴진다는 그런 사실이 슬프게 하는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시간은 흐르고, 사는 방식도 변한다. 이제는 절대로 옛날 식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역시 슬픈 심정을 떨칠 수 없는 시간들이다.

 

Blind가 아직 없는 창문으로 보이는 mid-town view

Blind가 아직 없는 창문으로 보이는 mid-town view, 정말 오랜만에
urban feeling을 회상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아틀란타 midtown, 기대 보다 훨씬 깨끗하고 젊게 느껴진다

아틀란타 midtown, 기대 보다 훨씬 깨끗하고 젊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 일본 TV 연속 드라마 ‘후리타 집을 사다(フリ-タ-、家を買う)‘라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후리타는 freeter의 일본식 표기 발음이고, ‘공짜로 부모 집에’ 얹혀 사는 young adult children을 말한다. 대부분 ‘바이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립할’ 날만 손꼽는 자녀들, 경제적인 이유로 그렇게 사는데,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그런 현상이 있는 모양. 하지만 그 드라마는 아주 ‘착실한 후리타’를 잘도 그려냈다.

열심하고 건실하게 사는 애 띤 청년이 삼류대학 출신이라 대기업 직장을 못 구하고 조그만 토목회사에 ‘아르바이트’ 로 들어가 일을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위해서 좀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일념으로 각가지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참 눈물겹게도 그려냈다. 끝이 정말로 흐뭇한 것으로 결국 집을 사게 되는 것이다. 가족관계가 경제성장으로 많이 해이해진 일본, 연로해가는 부모를, 자기 희생까지 하며 돕는 이런 드라마는 아마도 현재 일본의 개인적 사회 현상에 ‘경고, 충고’를 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 본다.

 

후리타 집을사다, 인기 일본 TV 연속 드라마

후리타 집을사다, 인기 일본 TV 연속 드라마

Freeter, 후리타 주연배우 들

후리타 집을사다, 주연배우, 왼쪽

 

Storm of the Century최근에 ‘요상한 기후’에   대해서 연숙과 얘기를 하다가 문득 storm of the century란 것을 기억했다. 일명 super storm이라고도 했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였나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치매 예방’ 기억력 test였다. 나에게 제일 알쏭달쏭한 것이 지나간 10년에서 20년 전 일들의 기억이다. 각가지 연상technique를 동원해서 아마도 1992년에서 1994년 사이일 것이라고 일단 결말을 지었다. 그 super storm이 온 것이 3월 이때 쯤인 것도 기억했다.

문제는 100% 자세한 것이 어떤 것일까.. 1992년은 우리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온 해였고, 장모님과 나의 절친한 친구, 지금은 타계해서 없는 김호룡 식구가 거의 같은 때에 우리 집에 온 해이기도 했다. 1992년 3월 1일에 이사를 왔는데, 곧 이어서 이 super storm이 온 것 같지는 않았다. 1994년을 생각해보니 여름에 누님의 아들, 준형이가 다녀갔던 것 이외에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결국은 1993년임을 알았다.

나의 제일 큰 문제는 이 1990년대의 기억이 제일 희미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기억해내기 싫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아닐까도 생각을 했다. 그만큼 큰 기쁨이나 즐거움, 그렇다고 특별한 괴로움도 없는 그런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세파’속에 휩쓸려 간 듯한 그런 10년간인 듯한 느낌인 것이다.

고국이나 이곳이나 그 나이쯤이면 ‘샐라리맨’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런 생활을 많이 보내니까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커다란 기후에 관한 사건들은 기억이 난다. 게다가 그때에는 VCR, video (cassette) recorder가 한창 유행할 때여서 그런 것들의 기록도 남아있어서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조금 더 알아보니 그것은 1993년 3월 13일, 토요일의 일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일기예보는 그렇게 ‘자신 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 미리 커다란 ‘경고, 경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생각도 없이 아침 10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얼어붙는 눈보라’ 에 그냥 당한 것이다. 다행히 토요일 아침이라 교통에 관한 문제는 별로 없었다. 그냥 퍼 붙는 눈보라를 집에 틀어 박혀서 ‘즐긴’ 것이다. 그 전날만 해도 봄 같은 포근한 날이 어떻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을까? 예보, 경보도 그렇게 없이..

하루 종일 강풍과 함께 쏟아진 얼어붙는 눈에 나무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고 전기도 나가기 시작하고.. 길은 완전히 얼어붙고.. 이곳 지역은 완전한 시베리아를 연상하는 광경으로 변했다. 다행히 우리 집의 전기는 나가지 않아서 하루 종일 TV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덩치가 큰 소나무가 쓰러지면서 우리 집 drive-way를 가로막았다. 그러니까 나중에 차가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오후가 되면서 무슨 요란한 소리가 나서 밖을 보니 남자 몇 명이 power chainsaw로 우리 집의 쓰러진 소나무를 잘라서 치워주고 있었다. 동네에 사는 ‘마음 좋은 아저씨’들이었다. 동네를 돌면서 우선 급한 것들을 치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TV 뉴스에서는 이번의 snow storm은 ‘아마도’ super storm, storm of the century정도로 monster 급이라고 했다. 멕시코 만에서 시작된 사상 최저기록의 저기압과 북쪽에서 하강한 cold front가 ‘완전히’ 결합이 된 그야말로 perfect storm이었다. 결국은 이 system은 우리가 사는 Georgia를 거쳐서 northeast의 덩치 큰 도시들로 갔고 그곳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것은 엄청난 것으로 느껴졌지만, 2000년대가 지나가면서 그때의 것은 별로 큰 것이 아니었다. 점점 더 큰 monster storm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때 찍어둔 video tape을 본다. 그러니까 정확히 20년 전 우리 집 주변이 남아있고, 그 눈 속에서 ‘신나게’ 놀던 우리 집 두 아이들.. Wisconsin에서 이사온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라 그 추운 곳에서 타던 ‘썰매’와 겨울 옷들을 다시 꺼내어서 아주 요긴하게 쓰기도 했다.

큰 애 새로니는 Ohio와 Wisconsin에 살 때 경험했던 눈과 얼음으로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았겠지만 작은 애 나라니는 거의 기억이 나지를 않는지 신기하게 눈과 얼음을 바라보며 썰매를 탔다.

그 당시 나는 비교적 젊었던 45세.. 와.. 정말 젊었다.. 피곤을 모르며 직장생활(‘embedded software’ engineer at Automated Logic Co)을 했고, 연숙은 home-based business, housewife, mom, PTA등으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신앙적으로는, 유일했던 한국본당에 ‘대 파란’이 나던 때여서 아마도 그 근처에 가지도 않던 ‘신앙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당시는 Internet이란 것이 아주 미미하게 보급이 되고는 있었지만 지금 보는 것 같은 graphical web browser가 없어서 일반인에게는 그런 것은 ‘학교에서만 쓰는’ 그림의 떡이었다. Email은 직장이나 학교 내에서만 쓸 정도고, PC 는 Microsoft Windows 95 전의, 조금은 원시적이었던 Windows 3.x이 전부였고, 지금 쓰는 cellular mobile phone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아틀란타 올림픽이 열리기 3년 전이었던 그 당시 이곳에 한인의 인구는 현재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편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동안 참 변한 것이 많았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이 내가 40대에서 60대가 되었다는 ‘자명한’ 사실.. 어떻게 그런 ‘자연스러운 변화’가 충격으로 느껴지는가.. 그것은 생생하게 뇌리에 남은 20년 전 1993년 3월 13일을 회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Jun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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