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새로니

오늘은 새로니 39살 생일이로구나… 감상에 젖고 싶다. 내년 40살에는 더 그렇겠지만 상관없다. 1983년 1월 5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1983년… 아~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만 머리를 맴도니.. 첫 생명, 새로니 생각보다는 나와 우리부부의 만남부터 grandparents 까지의 인생역정이 더 먼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만남, 결혼은 시작이었지만 아이들의 그것들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완전 미지수였기에, 황혼의 인생도 반드시 밋밋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80년대와 2020년대의 차이는 계량조차 쉽지 않은 엄청나게 다른 세상인데…  새로운 두 가정이 우리로부터 시작 된 우리들의 인생역마차는 이제 서서히 다음의 정거장에서는 완전히 쉬어도 되는 것인가…

 

Leader of the Band – Dan Fogelberg – 1983

 

오늘 로난 모자 母子가 아침에 와서 같이 먹게 될 breakfast에 생각이 미치면서… 아~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든다. 매일 우리가 먹던 것에 신물이 났는가? 침이 나올만한 것은 없는가… 매주 금요일마다 먹는 pancake을 오늘? Pancake은 가급적 금육재 禁肉齋로 meat종류를 피하려는 노력인데, 그것을 수요일에 먹는 것도 괜찮을 듯. 또 다른 것은 없는가?  삶거나 fried한 eggs, 이것도 조금 지겹고… 아하~~ 그렇다, scrambled egg! 그것이 있었지! 재료는 같아도 맛과 기분이 전혀 다른 이것을 오늘 만들면… Googling에서 cooking website, LOVE & LEMONS 라는 곳에서 멋진 모습의 scrambled egg ‘recipe tip’을 찾았는데… 이것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이래도 맛이 있을까? 그것이 scrambled egg 의 매력이라는데.. 흉내를 내 보았지만 pro들이 만든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새벽 5시의 신비, 얼마만인가? 5시에 일어난 것이?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지면 대부분은 다시 자려고 애를 쓰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러기에는 머리가 너무나 맑았다. 사방이 깜깜하고 아주 싸늘한 공기를 헤치며 나오니 elderly cat,  Izzie조차 나 발아래 없다. 얼굴을 보니 자다가 나를 보고 깨어난 듯하다. 그러니 더욱 새벽이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승려들이 사는 절간은 새벽 3시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나는 5시에도 이렇게 죽은 듯하니… 그들이 부럽기조차 하구나… 하지만 부엌의 blind를 열어보니 일찍 일어나시는 B선생댁도 창문의 불빛이 희미하니… 아직 안 일어나셨나… 모처럼 이른 새벽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반갑기만 하다….

며칠 만인가, 다시 ‘독서 삼매경 기분’을 느끼는 것이…역시 좋아하는 주제의 글이나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때가 되었다. 이런 시간에는 로난이 나의 서재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것, 거의 방해나 구애를 안 받는 것도 또한 신기하다. 생각에 집중하는데 그런 잡음이 크게 방해를 못하는 때도 있음은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예외에 불과하고 나머지들의 경우는 대부분 잡념들과 싸울 때가 많다.  또한 나의 독서습관인 ‘잡독, 난독’으로 읽기에 언제 완독을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 또한 나를 편하게, 가볍게, 즐겁게 하는 습관이다. 아마 ‘정독’으로 시작하라면 시작조차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현재 나를 기쁘게 하는 책들: The Hours of the Universe, Life on the Edge, Living in a Mindful Universe, Learning to Pray, JESUS, The Jesuit Guide 등인데..  오늘 한가지가 첨가되었다. 오래 전 출판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신약성서[요한복음]주해집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서가에서 먼지를 털며 꺼냈다. 지난 12월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봉사자를 위한 성서 영적독서’ 에 늦게 참여를 한 바람에 교재 [송봉모 신부님 저 요한복음강해?] 1권을 거의 놓치고 말았기에 이 옛날 책이라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것으로 한번 ‘신비의 요한복음’에 도전을 해 보고 싶다. 게다가 이번 신부님의 독서강해는 예수회의 관점이 많이 도입이 되는 듯해서 나에게 더욱 흥미를 끈다.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론’에 도전하게 되는 것인지… 조금 흥분까지 된다.

예정대로 오늘 로난 일행이 baby-sitting 도움을 받으러 왔다. 다음 주부터는 Daycare Center가 개학을 하니까 애 보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 이제 이 녀석도 조금 컸다고 행동하는 것도 조금은 성숙해 보이고 천상 개구쟁이가 되어간다. 앞으로 우리와 어떠한 관계로 살아갈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bi-culture문제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어쩔 것인가? 그저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필요할 때마다 오늘처럼 도와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입장도 아니고.. 이것도 선택인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두 문화, 두 언어 교육에 개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내일은 그 악몽의 9/11 terror attack 에 버금가는 1/6 사태 1주년을 맞는 날이다. 물론 나는 내일 ‘조용히’ 모든 media에서 눈을 돌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연극’을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건강에도 좋고 평화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나 생생한 살기 殺氣[정말 그 DONALD 개XX  일당들을 ‘라이파이의 살인광선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것…]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다.

 

오늘 84도? 허~ Indian Summer? 며칠간 조금 덥다는 느낌을 들었더니 오늘 절정이 되는 것인가? 하지만 또 잊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dry heat일 뿐이다. 예보에서 ‘아마도 올해 마지막 80s’라고… 그래도 어떤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할지 혼란이 오는 것은 조금 신경질이 난다. 결론은: 티셔츠(짧은팔)와 긴바지, 양말이 아침에 적당한 것이 되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본격적인 싸늘한 가을로 진행을 할 것이고, 특히 모레 일요일 아침은 40도 대, 이건 거의 겨울의 느낌이 아닐까…

일어나기 전까지 또 꿈을 꾸어서 아슬아슬하게 7시 전에 일어나게 되었다. 웬 놈의 개꿈을 이렇게 쉽고 많이 꾸는 것인지, 개꿈인지 아닌지는 조금 정리, 소화, 기억을 해 보아야겠지만, 전혀 없던 것보다 훨씬 살맛이 나니… 이것의 꿈의 매력인가?

 

오늘 아침 TV morning show Today show에 그 동안 자주 못 보았던 Asian personality, Vietnamese Vicky Nguyen의 얼굴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반가웠다. 나의 딸을 보는 듯한 느낌은 왜일까? 나이도 새로니 정도가 아닐지. 혹시 그녀의 부모가 1970년대 boat people은 아니었을까? 요사이 월남 이민자들의 사회진출은 한국계보다 훨씬 활발한 것처럼 보인다. 가톨릭은 말할 것도 없고. 이 Vicky란 여자는 표정부터 아주 자신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보기가 참 좋다. 작년의 이 지역의 Asian Hates 총격사건이 있었을 때 그녀가 이 show에서 보여준 동정, 정의, 동질감은 고맙기까지 했다.  그녀도 interracial family (white husband) 라서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나도 나 자신의 변화[interracial marriage에 관한]에 놀라고 있다.

 

일어나 복도를 걸으며 몸의 안정감에 신경을 쓰고 있는 나를 본다. 머리 속은 상쾌하고 편한데 왜 제대로 균형을 잡지를 못하는 것인가? 심하지는 않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것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연숙과 이것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면 우선 결론은… you’re getting older & older, stupid! 정도가 아닐까? ‘노화현상’이라면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분명히 ‘망할 놈’의 ‘빨갱이‘ 중국[현재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지구상 존재 중의 하나]에서 유발된  Pandemic, 그 이후, 정기적인 [YMCA] 근육운동을 거의 2년 가까이 중단한 것이 더욱 이런 것을 가속시켰으리라..

 

오늘 해야 할 ‘육체적 일’ 중에는 며칠 전 kitchen에서 퇴역되었던 green ceiling fan을 back porch ceiling으로 옮기는 작업이 있었다. 이 fan은 motor 30여 년 넘게 쓴 것이지만 motor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버리기 아까운 것이, 그것이 문제다. 버릴 수가 없으면 다시 써야 하지 않은가? 이것이 landfill에 묻힐 것을 생각하니 정말 아깝다. 이것이 문제다,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애꿎게 땅 속으로 생매장되는 것이다. 지구를 살려야 한다, 어떻게 하던지… 오늘 일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이 fan은 speed control switch에 문제가 생긴 것, 30년 전의 replacement part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할 수없이 직접 분해, 해체 후 망가진 speed controller를 drill로 뚫어서 우격다짐으로 ‘기능상 수리’에 성공했다.   물론 모양이 흉하지만 안 보이는  것이기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앞으로는 main motor가 살아 있는 한 ‘현역’으로 봉사를 할 것이다.

생매장 될 뻔했던 운명에서 다시 현역으로 새 위치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물론’ 50%는 더 걸렸을 듯하다. 예외적인 놀람은 오늘은 순전히 나의 실수, wire하나를 멀쩡히 연결시키지도 않고 일을 끝낸 것, 어떻게 이런 실수가.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이번의 job은 완전 성공으로 간주를 한다. 초록색의 color도 porch에 걸맞고 이제는 3 speed fan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보람을 느낀다. 멀쩡한 녀석, 생매장을 피한 것이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나의 passion이 담겨있었던 lab, MAKER room에서 정말 오랜만에 2000년대 쿠사나기 츠요시 주연의 ‘자폐증’ 일본드라마 걸작,  ‘내가 걷는 길, 僕の步く道’까지 다시 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감사합니다..

 

오늘 한 일은 사실 yard work정도의 심한 근육노동은 아니었지만 골머리를 꽤 쓴 모양이었다. 역시 다른 추억의 영상 ‘하늘을 나르는 타이어’를 틀어 놓고 음성만 들으며 쓰러져 누었다가 잠에 빠졌다. 이런 때의 나른하고 편한 느낌을 누가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거의 1시간 이상을 잔 모양, 기분은 나르는 듯 싶다.

혹시 목성, 토성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구름이 얇게 낀 것이 아주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 오늘만 날인가? 앞으로 청명한 날들이 더 자주 올 때 충분히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보면 볼 수록 나의 Newtonian Reflector가 거의  ‘장난감’ 수준임을 알게 되는 것, 하지만 나는 여기서 더 $$$을 소비할 마음은 아직 없다. 나의 천문학 수준이 조금 더 오르면 모를까…

오늘도 6시30분 아래층 불[scheduled room lights] 이 들어올 즈음,  2 犬公들이 짖는 것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하늘이 온통 습기로 가득 찬 텁텁한 공기를 느낀다. 세찬 빗소리는 안 들리지만 가랑비는 계속 뿌리는 모양. 나를 본 두 ‘아이’ 들이 어찌나 나를 환영하고 반기는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아~ 이 녀석들과 또 정이 들어가고 있구나~  nearly cosmic, 동물적 사랑의 힘인가?

두 견공, dog boarding하는 것 예정이 조금 바뀌어서 Senate만 내일  밤까지 자기로 했다. Ozzie는 내일 예정대로 새로니 집으로 돌아가지만… 새로니의 [뜻밖의]호의로 나라니네 식구들이[현재 임시로 묵고 있었던 Airbnb home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Tucker의 어느 hotel suite로 옮겨서 진행중인 집 공사 기간을 보낸다고… 새로니가 모처럼 동생을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나 흐뭇하였다. 그렇게 둘이서 도우며 살면 앞으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오늘 아침은 예외적으로 desk 정면 멀찌감치 홀로 외로이 잠자는 듯 졸고 있는 [2nd Gen] flat-screen TV[on ROKU stick]를 켰다. Kitchen dinette table에서 아침 식사 때 가끔 보던 [Youtube version] NBC TV Colbert late show를 지금 시간에 보는 것도 이른 아침의 느낌을 상쾌하게 한다. 작년 선거 이후의 목불인견의 ‘6살짜리 머리의 소유자’의 최후발악에 이어 1월 6일 Congress 난입사건 이후 나의 정신건강을 아슬아슬하게 지켜 준 이 Stephen Colbert 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고 심지어 나의 구세주처럼 느끼게 되었다. 정치관이 절대로 모호하지 않고, 상식적 수준 no-nonsense 의 이성적인 이 가톨릭 교우, 그의 가족 배경도 마음에 들고[특히 그의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런 wife] … 사실 매일 밤 이late show를 생방송으로 보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그 시간이면 나는 ‘절대로’ 잠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 다음 날 아침 조금 늦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구름이 아직도 2시간 안전 거리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하루 종일 thunderstorm에다가 flash flood watch까지 예보된 오늘, 어제 두 견공을 데리고 산책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늘을 유심히 보면서 우선 현재 비가 오는가, 오면 어느 정도인가, 걸을 수 있을 정도인가? 우산이 필요할까, 느낌에 폭우나 거센 비가 올 듯한가.. 예보[과학]와 순전히 감 感[거의 영적인] 에 의지를 하지만 불안함을 떨칠 수 없이 그렇게 즐겁지 못한 산책이 될 수도 있다. 전에 한번 그런 일[폭우를 만난]도 있었기에… 하지만 오늘은 머릿속에서 한가지 묘안이 나왔다. 바로 현재 local weather radar[near real-time] 를 보는 것이다. 현재 비구름의 위치와 움직임이 나오지 않는가? 그것에 의하면 최소한 2시간 이상 Atlanta Metro에는 비구름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아하! 왜 이 생각을 못했던 것인가? 이것으로 오늘은 거의 안심을 하고 편하게 우산 없이 산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왜 전에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2시간 가까운 산책,  OzzieSenate 어쩌면 이렇게 다정하게…

치통이 사라진 또 하루의 아침이 밝았다. 아직도 나는 경이로운 감정으로 이 ‘무 無 고통’의 일초일초를 만끽하고 있다. 밤잠도 거의 신경이 안 쓰이는 것, 나의 즐거움, ‘엎드려 자는 것’도 완전히 오랜 옛날의 그 기분이 돌아온 것…  감사합니다.

이래서 요새는 무통의 날을 즐기는 그런 날이 되었다. 조금씩 새로운 다른 감각에 적응은 하고 있지만 그 무섭게 아프던 나날이 쉽게 잊혀지는 것도 싫다. 현재를 더 즐기기 위해서…  이제는 앞으로 새로운 입안의 감각에 적응을 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하지만, 현재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 말로 ‘이 없으면 잇몸’라는 말, 너무나 실감이 간다.

꿈들을, 그것도 내가 그렇게 그리던 종류의 꿈들, 그것도 비교적 생생한 것들을 많이 꾸었던 밤, 너무 깊게 꿈에 잠겼는지 눈을 떠보니 7시도 훨씬 넘었다. 이런 꿈이 다시 돌아온 것은 분명히 입 속의 고통과 연관이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머리 속에도, 영육간으로, 잔잔함과 평화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거의 5일째 이런 평화와 편안함을 ‘축하’하며 살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다. 비록 이런 ‘고통의 재난’은 내가 자초한 탓도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더 이상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저, 그저, 현재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장마성 날씨가 시작되었나? 따가운 기운보다는 축축한 기운이 대기를 덮고 당장이라고 보슬비로 시작해서 폭우가 쏟아질 듯한 하늘이다. 100도가 넘는 불타는 대지보다는 이런 날씨가 얼마나 좋은가? 왜 사람들은 비를 그렇게 반가워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무조건 비가 좋은데…

비가 충분히 왔던 덕인지 올해는 작년에 하나도 피지 않았던 수국이 만발을 하였다. 꽃에 조금은 무식했던 나도 이 수국만은 잘 알았고 여름이 가까워오면 아예 기다리기도 했다. 작년에 찾아오지 않았을 때 그렇게 섭섭했는데 올해 다시 우리를 찾아와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어서 올 여름의 기분을 들뜨게 해준다.

 

 

오랜만에 새로니의 강아지, Ozzie가 온단다. 반갑기도 하고 나의 느긋한 일상생활이 조금은 변하겠다는 약간의 귀찮음도 없지는 않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미미하나마 작은 노력과 움직임의 기회가 필요하다. 이것도 나의 작은 ‘친구 동물들에 대한 봉사’라고 보면 지나친 것일까? 사람과 동물이 이렇게 가까이서 ‘무언으로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름다운 계기가 아닌가?

새로니도 방학이고,  Richard는 정상적으로 집에서 일을 하는데 이제 조금은 밖의 세계가 그리운 모양. 기분 전화 겸 해서 며칠 North Carolina mountain 쪽으로 여행한다고…  덕분에 오랜만에 나는 심심치 않게 되었다.

 

Welcome, It’s a Boy balloon, at Tucker mailbox post

 

우리의 첫 손자, 새 생명이 태어나는 작은 드라마의 순간들이 며칠 만에 지나가고,  10 파운드짜리  ‘건강한 남자아기’를 안고 아기의 부모가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 쪽인 우리 부부는 미리 집에 가서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It’s a Boy!‘ 를 외치는 풍선을 그들의 mailbox post에 달아 놓고서야, 큰 일이 끝났다~ 는 편안한 안도의 심정을 느꼈다. 갓난 아기가 신기하고 예쁘면서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엄마, 아빠를 보며 우리도 저랬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숙은 비교적 침착하게 첫 애를 다루었지만 나는 ‘어벙벙’ 그 자체였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산모의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했을까? 우리가 할 일이란 무엇인가?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외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댁은 전형적인 Caucasian 이어서 돕는 방식도 그들의 전통을 따르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다. 주위에서 듣는 소문에 의한 ‘한국식 도움 방식’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숫제 시설의 도움을 받는가 하면 아예 full-time으로 professional helper 흉내를 내는 case도 보았다. 다행히 산모와 애기 아빠가 충분한 출산휴가를 받았기에 큰 문제는 없을 듯하지만, 연숙은 언제라도 20 mile (car) drive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이번에 산모의 부부가 병원에 머물 때 그 집의 강아지 Senate 는 우리와 함께 큰 딸의 개 Ozzie와 함께 있게 되었는데, 둘의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어서 우리가 크게 보살 필 부담은 적었고 거꾸로 나는 그 둘과 동네를 걷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 아니었을까 희망해본다.

 

good friends, Senate & Ozzie at Saybrook Home

 

아득한 세월 전 우리들의 첫 생명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엇갈리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1983년 1월초, 새로니, 그 갓난 ‘어설픈’ 생명체를 꼭 가슴에 품어 안고  제왕절개 수술, 1주일 만에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추억이 안 떠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 딸애의 출산 드라마를 겪으며 우리 둘이 100% 공감한 것이 있다. ‘모조리 잊어 버렸다!’ 라는 탄성.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둘이서’ 그 생명의 드라마 느낌과 경험을 모조리 잊어 버린 것일까? 진화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는 바로 그  ‘세월의 횡포’일지도 모른다. 사실적 기억은 물론이고, 느낌조차 그렇게 희미해졌단 말인가?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며 물리적 기억인 ‘사진들’ 밖에 없다.  당시의 사진들 몇 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다. 조금은 그 신비로운 느낌들과 ‘어벙벙’ 하고 초라했던 나의 자화상들이 조금씩 떠 오른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더니, 정말 그 당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한 인생중대사였다. 그러니까 별로 큰 고통과 고민과 고생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 젊음이었다. 젊음이 주는 ‘무식의 용기’를 마음껏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들이었다.

 

첫 애 새로니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생후 11일 째, Buckeye Village Mahoning Court.

아무 것도 모르고 주위 도움 없이 키우기 시작했던 때, 1983년 2월 초

 

세대는 이렇게 흐르며 현 세대가 때를 마치고 떠나면 다음 세대가 등장,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지극히 순리적인 진리인 것을 잊고 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새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 드라마’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면, 다시금 모든 생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  Better Korean Festival?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근래 나의 관심사에서 제일 멀리 있던 것이 나에게 왔다가 갔다. 연숙의 문인화 전시가 올해의 한인축제, Korean Festival와 함께 열린 것이고 이것은 이제 우리 가족의 작은 가을행사도 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가족이 모여서 전시회, 한인축제 공연, 그리고 넓은 주차장에서 각종 booth를 구경하는 것인데, 나는 사실 큰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가족의 일원’이기에 피곤해도 와야 하는 그런 종류의 시간이다.

한인축제는 몇 년 전(2~3년?)에 가족과 왔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의 논평이 ‘재미없고, 촌스럽다’ 라는 것이고 나도 사실 동감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것은 ‘조용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고 ‘아이들’도 동감인 표정들이었다. 우선 ‘아마추어 같은 촌스러움’이 많이 걷힌 것이다. 각종 공연들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자신은 없지만 ‘event pro’ 그러니까 행사를 주관하는데 각종 프로 들이 등장한 듯 했다. 큰딸 새로니는 몇 년 전에 Greek Festival을 보고 우리의 축제와 비교를 하곤 했는데,  아마도 우리도 그런 것을 보고 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논평을 했다.

 

 

각종 공연들, 특히 Big Orchestra가 등장한 것, 비록 한인 오케스트라라고 했지만 많은 연주자들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축제자체가 community에  open된 것이다. 거대한 남성합창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이들과 같이 ‘나의 살던 고향은..’, ‘사랑으로..’ 등을 관객들과 열창한 것도 가슴이 저미는 뭉클한 순간들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 이제는 ‘초 국제화’가 되어서 아마도 바다건너의 대한민국의 재력과 K-POP을 중심의 최첨단 pop culture가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날 한인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동양화, ‘문인화’ 전시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성과 시간을 써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연숙이 이것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꽤 되었지만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그것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동양화, 묵향화, 문인화.. 조금씩 성격이 다른 것 임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어떤 그림이 더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지기도 했다. 우선 시간을 더 써서 자세히 묵상, 기도하는 심정으로 응시를 하였다. 이날 처음 그렇게 비슷하게 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도 알았다. 연숙의 ‘거대한 국화들’도 자세히 보게 되었고 왜 입선이 되었고 관람객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는지 알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대상물’은 ‘생물들’ 그러니까 새들, 다람쥐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느낌들이 좋았는지, 연숙에게도 꽃, 식물 다음에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그려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  레지오 사업보고:  나의 ‘정든’ 레지오 전초분대(Praesidium, Pr.) ‘자비의 모후’의 연례 사업보고가 일요일 꾸리아 월례회의 때 있었다. 단장이 된 이후 처음 하는 것이라 물론 내가 평의원들 앞에서 발표를 했지만 이번 발표에는 ‘고발성’ 글귀가 실려있어서 나는 그것을 가급적 dramatic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이 ‘고발’을 할 때 평의원들의 얼굴은 대부분 blank 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너무나 심각한 어조와 내용’이라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 unmotivated, uninterested 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 꾸리아, 레지오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주 관심사는 ‘고발 당한 2명’이 이런 글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 중 한 인간은 그 회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 알게 된 비밀이 공식화 되었기에 나는 그 두 ‘피고들’ 의 공식징계를 위한 다음 단계로 마침내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의 추이가 너무나 흥미롭게만 하다.  Watch out, you two’s!  Here I’m coming after you!

 

¶  BIG flat-screen TV Envy? 우리 집에는 누구나 모두 ‘자랑’ 하고 싶어하는 monster size flat-screen TV가 없다. 그러니까.. home theater 가 없는 것이다. Desk에서나 쓸 수 있는 아주 작은 digital TV가 있을 뿐이다. 가족들이 family room에 모여서 old tube analog  TV로 주로 VHS video를 보던 때가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커서 모두 집을 떠나면서 그 ‘고물’ TV는 완전히 방에서 물러나고 집에 남은 우리 둘은 거의 broadcast network TV를 안 보고 살게 되었다. Movie같은 Video를 보는 것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거의 각자의 desktop PC로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home theater같은 느낌의 즐거움이 없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도 거의 모든 시간을 desk앞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다른 집에 가보면 우리같이 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경쟁적’으로 엄청난 큰 screen TV가 있었다. 물론 극장 같은 경험을 집에서 즐기는 것, 누가 마다하랴.. 문제는 그만큼 $$$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인데.. 돈도 돈이지만, 우리 둘에게 아직까지도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닌 사치품에 속했다.

 

 

하지만 trickledown 현상이라고나 할까 결국은 caveman처럼 살려고 하던 우리에게 ‘공짜’ big screen TV가 흘러 왔다. 두 딸들이 쓰던 것, 새것을 산다면서 우리보고 가지라는 것.. 크기를 보니 사실 요새 기준으로는 큰 것이 아니지만 우리 집같이 traditional house에는 정말  적당한 size가 아닌가? 하나는 40″, 다른 것은 42″ 정도.. 40″는 kitchen area에 맞고 42″는 아마도 bedroom에 맞을 듯하다. 한가지 연구해야 할 것은 이것들은 1st generation TV로 한마디로 smart TV가 아니다. 그러니까 Internet streaming이 자동적으로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RokuChromeCast를 쓰면 간단히 해결 될 듯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도 HDMI digital TV 시대의 막이 올랐다.

 

¶  Roller coaster week:  지금 지나가고 있는 하루하루는 글자 그대로 roller coaster week 라고 할 수 있다. 희비가 교차하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느낌이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주일,  때로는 정말 괴로운 순간들도 있었던 6월 초순을  보내고 있다.  주 원인은 우리 집 열네 살이 넘은 ‘나보다 늙은’  정든 개 Tobey의 건강문제 때문이었지만 우리가 바보같이 만든 ‘인재 人災’도 이럴 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결과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인생이다.. 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것이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구토, 설사로 시작된 것,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먹지를 못하니 평소에 ‘관절염’으로 먹는 약까지 끊게 되어 사태는 악화일로 였다. Good Old veterinarian (수의사) 에게 데려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꺼린다. 각종,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test로 시간을 다 보낼 것이 분명한 것이고 그러면 더 악화가 될지도..

이 녀석 기운이 빠지고 아파하는 모습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까지 느껴지고, 우리는 절망의 기분까지 들었다. 급할 때는 묵주를 무의식적으로 굴리고 있을 정도였지만, 성모님의 도움인지, 정성스런 간호 덕인지 다행히 설사도 멎고 서서히 먹기 시작하면서 죽음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회복이 예전에 비해서 너무나 느린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인가? 얼마 있으면 annual medical checkup이 있어서 (동물)병원엘 가니까 그때면 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moaning & limping.. sick Tobey

 

Pet 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은 이런 것 한두 번씩은 경험을 했을 것이지만 이렇게 거의 집안 식구가 된 pet animal을 영원히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큰 차이가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을 한다.  이런 것들 사실 자연의 법이기에 겸허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다. 세상에서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은 하느님 밖에 없다는 사실만 잊지 말자.

 

Climbing in Canada:  새로니가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떠난 2주간의 Canada trip을 마치고 돌아왔다. 학교 teacher가 되면서 2개월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모험적인 취미여행을 떠나곤 한다. 요새 ‘아이’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이런 즐거운 30대를 보낸다. 결혼과 가정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나이에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을 보며 세대가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새로니 친구들과 모두 3명이 갔던 Canada(Rockies, Vancouver)  여행 사진을 보며 나는 다른 생각에 빠진다. 나나 연숙, 이제 그런 여행들, 귀찮다는 인상을 받는다. 편한 집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유익하고 건강한  ‘휴가여행’인 것이다. 솔직히 돈을 주고 갔다 오라고 해도 별로 구미가 안 당기는 것이다. 단 한가지, 이번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중에 rock-climbing하는 것, 나의 오래된 추억이 샘물처럼 흘러 나왔다. 한때 나도 저런 것에 ‘미친 때’가 있었지.. 하는 감상적인 느낌들은 즐기고 싶었다. 그때가 1970년 경, 거의 일 년을 ‘바위 타기’에 많은 시간을 ‘허송’했던 대학 4학년 시절. 비록 ‘공부’는 손해를 보았을지라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이렇게 신명 나는 추억거리를 제공했으니 그깟 공부가 그렇게 대수인가.. 그것에 지금 나의 딸이 푹 빠져있으니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2주 동안 우리 집에서 다른 의미의  vacation을 가져야만 했던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새로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우리 집은 갑자기 고요 속을 빠진 듯한 느낌. 우리 집의 Tobey가 아직도 완쾌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더욱 고요하고 우리의 느낌은 쳐진다.

 

Curia Monthly Sunday: 머리 속이 안정이 되지 않은 채로 ‘꾸리아 월례회의’가 열리는 매달 2번째 주일을 맞아 ‘조심스럽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을 갔다. 조심스럽게 간 이유는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이기 보다는 주일미사를 누가 집전을 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둘루스 성당 (윗동네) 신부가 집전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미국성당으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그 신부’에 대한 ‘반감, 혐오감, 앨러지’가 특이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 수가 없어서 포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 본당 신부님 집전이 밝혀져서 ‘안심하고’ 그곳엘 가게 되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등대회 형제님들, 특히 요한 형제와 점심을 같이할 수 있었고, 꾸리아 월례회의도 그런대로 흡족한 느낌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생각한다. 전에 있던 간부진들에 비해서 아주 신선한 스타일로 회의를 진행하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레지오 조직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불과 몇 달전 前의 꾸리아  leadership을 싫지만 기억한다. 그 중에서 2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toxic, terrible, horrible한 기억으로,  앞으로 ‘연구 대상’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case study로 삼을 정도란 뜻이다. 그 결과 현재 이 조직은 거의 limping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꾸리아 평의원들, leadership을  잘못 뽑으면(Trump처럼) 이런 disaster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다음부터는 공과 사를 전혀 구별 못하는 ‘아줌마 tribalism‘ 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면 어떨까?

이렇게 결과적으로 밝은 기분으로 ‘주일 의무’가 끝났는데, 이날은 bonus까지 주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같이 성당근처에 있는 Mozart Bakery에 모여서 ‘수다’를 떠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작년 8월의 ‘레지오 괴물, 미친년 사건’ 덕분에 가까워진 이 부부, 나이가 비슷하고,  ‘사귈만한 부부’라는 인상을 받아서 가급적 관계를 ‘가꾸어 나가고’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대한민국 style 빙수와 붕어빵’을 즐긴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의 날’이 되었다.

¶ 5월의 어머님과 수국 水菊:  2018년 어머니의 선물, 성모성월 5월이 서서히 우리로부터 떠나고 있다. 올해, Mother Nature는 자상하게도 하늘에서 단비를 지나칠 정도로, 땅이 거의 마를 새 없이 충분히 주시어, 온갖 초록색 생명들, 꽃과 나무들은 호사를 하고 있는 5월이었다.

작년 5월을 돌아보면 그때는 거의 ‘초록색의 향연’을 잊고 살았었다. 우리 집 뒤뜰에서 태어난 8마리의 kitten들 살려내어 입양시키려고 동분서주하였던 때, 봄의 싱그러움은 거의 놓쳤지만 잊을 수 없는 그 귀중한 생명들,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 얼굴은 영원히 우리의 뇌리에 각인 刻印 이 되었고, 두고 두고 맛난 술을 조금씩 마시듯 아직도 기쁨을 느낀다. 그런 생명의 5월이었다.

올해의 5월은 조금이나마 ‘역사의 짐1‘을 덜어보려고 1980년대의 5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지냈다.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나와 어느 정도 관계가 되었을까 물으면 사실 많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없던 것처럼 수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고, 나에게 과연 Motherland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더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5월의 찬란하게 화사하고 청초한 꽃들을 매주 성모님께 ‘계속’ 바칠 수 있었던 것, 두고 두고 2018년 5월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 회합 때마다  $4짜리 ‘상품화 된’ 꽃을 Kroger에서 사다가 성모님께 바치는 것, 돈도 돈이지만 미안하게 느껴진 것이, 화창한 5월에 우리 집에서 가꾸었던 꽃들을 바치는 것은 너무도 은총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한창 멋을 내는 수국과 옥잠화를 곁들인 homemade bouquet, 5월의 어머님 성모님, 너무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특히 왜 매년 피었을 수국의 싱그러움이 올해 특별히 나에게 그렇게 멋지게 다가 왔을까.. 생각한다. 아마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이 먹음의 멋일까?

 

성모님, 레지오, 수국, 옥잠화… 그리고 5월

 

¶  선생님의 방학:  ‘teacher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2주 정도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애들처럼 여름 방학을 그렇게 목이 매이도록 기다리더니 며칠 전 Memorial Day 저녁에 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Canada로 여행을 떠나며 Ozzie는 우리의 식구가 된 것이다. 이때마다 선생님이란 직업, 괜찮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긴 여름, 다 큰 사람이 아이들처럼 ‘놀고 먹는다’는 것, 나는 아직도 실감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나이에 그런 입장이었으면 아마도 지루하기도 할 것 같고 집구석에서 독서 정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조금은 자신이 있다. 더 멋지게 보낼 자신.. 근래 들어서 outdoor sports: deep sea diving, hiking, climbing 같은 데 푹 빠져 있는 새로니, 지금은 공기 좋을 듯한 Canada의 wilderness를 누비고 있을 것이지만 글쎄.. 요새 ‘아이들’ 참 어리게 산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가 그렇게 여행을 안 하고 사니 나는 나는 2주 동안 대리 만족이나 즐길까..

 

Ah, Canada.. I wish I..

 

¶  레지오 활동 재개:최근에 들어서 우리 레지오 Pr.2 ‘자비의 모후’, 1조 (나와 연숙)는 오랫동안 침체했던3 때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레지오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소극적으로 기도에만 치중하는 ‘활동’이었지만 그것은 균형을 잃은,  바람직한 방법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상적으로는 신심활동(기도를 중심으로)과 corporal work (육체적 활동)의 비율이 적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해서도 ‘밖으로 나가 뛰는’ 활동처럼 나에게 돌아오는 보람과 활력소가 되는 것은 없었다.

나보다 덜 건강하신 ‘어르신’들을 찾아 조금이라도 사소한 도움이라도 주는 것, 그 정도도 못할까? 이분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만도 그분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런 도움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명심하며 더욱 더 뛸 수 있는 육신의 건강을 주시라고 기도한다.

 

¶  Unofficial Summer: 어제 Tobey와 Ozzie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몇 년 전만해도 거의 매일 Tobey를 데리고 걸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거의 산책을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진 Tobey를 너무 걱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것은 좋지 않다. 모든 ‘운동’ 중에서 나의 나이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빠르게 걷는’ 것이다. YMCA에서 나는 30분 정도 빠르게 indoor track을 걷기에 날씨의 영향을 받는 동네걷기에 등한했는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오랜 만에 걷다 보니 우리 subdivision의 ‘자산’인 swimming pool과 tennis court를 지나게 되었고, swimming pool이 ‘파~란’ 색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그렇다.. Memorial Day부터 모든 Summer facility가 open 하는 것, 잊고 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가던 ‘수영장’… 아~~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다. 그 수영장 아이들이 이제 30대가 되었으니.. 그렇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여름이다. 기껏해야 3~4개월 정도일까… 땀 흘리는 여름은 반갑지 않지만 이제는 드디어 갈색 낙엽의 가을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면… 작년에 재 발견한 classic oldie, ‘The Last Leaf‘를 다시 들고 부르게 될 것이다.

 

Swimming pool’s open for Summer!

  1. 거의 40년 동안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에 대한 후회
  2. 쁘레시디움 Praesidium의 약자로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최전방 분대로 실제적인 선교, 봉사 활동은 이곳에서 한다.
  3. 특히 지난해 ‘레지오 미친년 난동 사건’ 이후부터

 

Windy March: 김민기 작사, 작곡, 노래의 70년대 oldie folk song ‘아름다운 사람‘ 2절 가사를 보면… “세찬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맞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40여 년 동안 잊지 않고 기타에 맞추어 읊조리는 노래, 오늘같이 세찬 바람 부는 날 실감나게 가사를 음미할 수 있다.

왜 3월 무렵 부는 바람은 그다지도 춥고 움츠리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찬란한 햇살에 깜빡 방향을 잃은 우리의 계절감각 때문은 아닐까? 봄의 시작이 일주일 가량 남았으니 아마도 우리의 의식은 분명히 봄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움츠려 드는 몸에 활력을 넣으려고 ‘일부러’ 동네 산책을 강행했다. Mexico에서 Spring break을 즐기는 새로니, 그 애의 home companion인 pet dog, Ozzie를 우리 집에 맡겨놓고 갔다. 이제는 하도 우리 집에서 자주 지냈기에 사실은 우리 식구같이 느껴진다. 주인인 우리 집 pet dog, Tobey도 이제는 체념한 듯, 그런대로 평화롭게 지낸다. 그 두마리 개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찬란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햇빛이 무색할 정도로 ‘움직이는 공기’는 무섭게 차가웠다. 3월의 바람은 역시..

반 세기 전 서울 거리를 걸을 때의 3월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복잡한 시내에서 맞는 강풍, 괴로울 때도 많았다. 머리 숱이 그렇게도 진했던 때, 날리는 머리가 흐트러질까 그것을 shop window에 비추어보며 가다듬던 어린 시절들, 하지만 여자들이 더 고생이었을 것이다. 한창 유행하던 mini-skirt를 입고 2층 높이의 ‘육교, overpass’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우리들이 보기에는 즐겁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고역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싸늘하고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온통 다리를 거의 다 노출시키고 활보하는 것..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것이 머리 속 깊이 남아있는 3월의 모습들..

그 이후에 이곳에 살 때 아이들 bedtime story로 책을 읽어 줄 때, Winnie-the-Pooh 의 추억이 또한 3월에 연관되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중의 한 그림..이 바로 바람에 날라가려고 하는 Piglet을 잡아주는 Winnie의 정다운 모습이다. 이것은 이제는 ‘미국적 추억’이 되었지만 이제는 하도 오래 전이라 미국적, 한국적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게 되었다.  바람을 동반한 3월의 추억,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3월을 맞게 될 것인지.. 아마도 그다지 ‘수많은 3월’은 아닐지도 모른다.

 

Darker Dawn again:  3월의 stupid ritual, 2째 주 일요일 오전 1시가 ‘갑자기, 강제로’ 2시로 변하는 해괴한 ‘법‘.. 나는 아직도 이 stupid하게 느껴지는 것 이해를 할 수가 없다. Daylight를 Save 하자고.. 이것 얼마나 귀찮고 번거롭고, 이제는 일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도 일깨워주는 고역이다. 벽시계 같은 것 바꾸는 것 이외는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바뀌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시간을 ‘법으로 강제로’ 바꾸는 것이 문제다.

 

 

그런대로 아침에 일어날 때 여명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깜깜해 졌다. 그것뿐인가.. 특히 봄에 바뀌는 시간은 아차 하면 내가 바보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일요일 아침, 목적지에 한 시간 늦게 도착하는 것, 충분히 가능하니까.. 수십 년 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TV, Radio) news를 완전히 잊고 살던 ‘공부하던 시절’, 나는 이 news를 놓치고 월요일 아침에 버젓이 수업시간에 1시간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시작할 시간에 모두 교실에서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을 보고.. 정말 바보, 바보.. 라는 웃음이 나왔던 그 시절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 Tax surprise:  예정보다 늦게 2017년도의 Federal Tax Return 을 끝냈다. 작년에는 2월 중에 했는데 올해는 분명히 tax를 ‘내야 할’ 것을 예상했기에 무의식적으로 게으름을 피었는지도 모른다. Tax를 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신나는 작업이 아니니까.. 그런데 놀란 것은 그 액수가 예상보다 많았던 것, 허~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나.. 의아하긴 했지만 알고 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연숙의 ObamaCare 때문이었다.

 

 

Medicare가 얼마 전에 시작되었기에 그 이전에 받았던 tax credit을 과도하게 받았던 것, 그것을 다시 ‘물어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조금 실망했지만 어찌하랴… Health insurance 를 큰 부담 없이 cover받은 것에 감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정당한 이유가 있는 tax는 정직하게 내야 하니까.. 사실 모든 것이 fair한 듯 하다.

 

¶  Tobey Scare: 12살 배기 male mixed Dachshund, Tobey, 이틀 전부터 거의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시간 나를 졸졸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그날 아침부터 나를 따라오지를 않았다. 아니.. 아예 움직이지를 않았다. 거의 죽은 듯이 엎디어 있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일순간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12살의 나이면.. 언제나 가능성이 있는 나이라고 서서히 우려를 하고 있던 차였다. 제 발로 계단을 못 내려가는 것이 뻔하기에 내가 앉고 나가서 bathroom처리를 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변했다. 조용해진 것은 물론이고.. 거의 초상집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처음으로 우리 Tobey와 이별할 수도 있다는 현실감도 들 정도..

주위에서 정든 pet dog을 보내며 보여준 각가지 반응들에 우리는 남의 일처럼 comment를 하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Veterinarian을 찾으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것도 꺼려지는 것, 이것 저것 test test.. 로 개를 잡을 것이고, $$$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그것 보다는 증세가 최소한 internal한 것이 아니기에 며칠을 두고 보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 최소한 먹는 것과 ‘싸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오늘 소식을 듣고 새로니가 부리나케 ‘병문안’을 왔고 이곳 저곳 연락을 해서 알아보니, 역시 ‘심한 신경통, 관절염‘ 계통의 증상인 듯 했다. 그렇게 잘 걷고 활발하던 애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부리나케 신경통증을 완화하는 약을 order하고 더 지켜 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 하긴 하다. 새로니의 이야기가 만약 관절염계통이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통증만 control할 정도라고..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던 애가.. 하지만 12살이 되는 나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항상 이별할 준비를 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괴롭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  2016년 ’33일 ‘대장정’ 의 첫날을 맞이했다. 이번이 3번째의 33일 봉헌이 되기에 조금은 경험이 있다고 할까.. 처음 두 번의 것보다 조금은 느긋한 심정으로 첫 날을 맞이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며칠 전부터 뒤적거리던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책의 첫 장을 열고 첫 12일의 목표: ‘세속 정신을 끊음‘ 의 제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을 읽고 묵상을 시도한다. 12일 동안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라’ 는 과제.. 이것이 과연 그렇게 쉬울지..

사실 이 33일 과정은 이 책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guide를 받으며 독서, 묵상, 기도를 할 수 있다. 이 ‘책’을 그대로 따라가면 큰 문제없이 33일 기간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독서 후에 깊은 묵상과 제시된 기도를 다 마쳐야 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33일의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것들이 이 책에 일목요연하게 제시가 되어 있어서 그것을 ‘가급적’ 지켜야 하는 부담도 있다.

한창 더운 복더위의 여름에 이것은 무엇인가.. 시원한 beach나 산 속의 summer vacation도 아니고.. 에어컨 소음이 요란한 자기 집 방구석에 앉아서 이렇게 33일 보낸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큰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아니.. 그렇게 ‘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의미가 있는 멋진 summer ‘spiritual’ retreat, vacation 일 수 있는 것이다.

33일 매일의 실천 사항 이란 list를 보면: 거의 모두 ‘상식적’인 것들이다. 이 기간 동안 ‘대죄’를 짓지 말라는 것도 그렇고, 1시간 이상 조용한 시간을 할애하라는 것, TV같은 ‘잡 雜 것’들 을 피하라는 것, 아니 요새 나온 실천사항에는 분명히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피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듯 하다. 아마도 제일 힘든 것이 ‘조용한 1시간 이상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정말 힘들게 된 요새세상, 참 많은 사람들 ‘로봇트’ 같은 정해진 일상을 보낸다는 사실에 경악을 한다.

이 중에는 가능하면 매일미사 참례하라는 것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것에서 ‘걸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것 같다. 요새 세상에 매일 미사를 한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인기 있는 활동이 아닐진대.. 하지만 나는 문제가 없다. 2012년 부활시기에 이 ‘인기 없는 활동’을 시작해서 아직까지 굳건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참 오묘한 것은, 2012년 부활시기에 연숙이 33일 봉헌을 시도하면서 ‘시험 삼아’ 평일미사를 같이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작은 기적들’의 시작이 되었으니 말이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은 이래서 우리에게는 거의 ‘신화적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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