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hville, Vanderbilt, 김수근교수, Carpenters

어제는 새로니가 Nashville로 떠났다. 차로 이곳에서 4시간 정도의 거리여서 전에 있던 Washington DC 보다 너무 편하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내일은 새로니 이사 짐의 대부분을 우리의 mini-van에 싣고 우리가 다녀 올 차례가 되었다. 계획은 그곳에서 자지 않고 밤에 돌아올 생각이다. 우선 집에 있는 Tobey와 Izzie (dog & cat)가 조금 마음에 걸리고, 새로니가 살 곳이 studio apartment라서 분명히 방이 좁아서 자는 것이 조금 불편할 거 같아서이다. Google Map을 보니까 direction이 아주 간단했다. I-75 North로 90 마일 가면 Chattanooga, TN가 나오고 거기서 I-24W를 타고 135 마일 정도 가서 Nashville metro가 나오면 I-440 (toward Memphis) 로 갈아타고 6 마일 정도 가면 Vanderbilt University가 나온다. 새로니가 살 곳은 학교에 바로 옆에 있었다. 아마도 걸어서 다녀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새로니가 갈 곳은 Peabody College of Education인데 사립학교라 학비가 무척 비싸다. 하지만 1/3 정도는 각종 장학금으로 충당이 될 듯하고, 나머지는 거의 loan으로 될 듯. 이래서 요새 대학 졸업생들은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빚쟁이 신세가 되고 있다. 거의 그게 정상일 정도로. 우선 2년 course에 도전을 하고 여력이 있으면 더 공부할 생각도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본인 조차도.

김수근교수님댁 가족들과 1973년 Sherman, Texas
김수근교수님댁 가족들과 1973년 Sherman, Texas

Vanderbilt University..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김수근 교수(님).. 대구 계명대학출신으로 그곳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마도 지금은 한국의 어느 학교에서 가르치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내가 미국에 처음 온 1973년 여름에 Sherman, Texas에 사시던 김교수 가족을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Oklahoma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곳이 Texas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서 Dallas에 가끔 놀러 나가곤 했다. 그 가는 길 (US-75) 에 Sherman 이라는 조그만 town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Austin College라는 조그만 사립대학이 있었고 그곳에서 김교수는 강사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당시, 김교수의 박사학위과정이 아직 덜 끝난 상태였고. 다니던 학교가 바로 이 Vanderbilt University였다. 나는 사실 한국에서 그 대학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 와서야 사립명문대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김교수님 댁에 놀러 가면 우선 그 귀한 한국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김교수님 부인의 음식솜씨가 상당하였지만 그것 보다도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당시 어린 딸 두 명이 있었고 한국에서 아버님이 방문 중이셨다. 나는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를 않아서 모든 것이 불편한 때에 내가 차를 사는 것을 도와 주셨다. 그래서 김교수님의 도움으로 그 당시에 산 차가 69년 형 Volkswagon Beetle이었다. Semi-automatic의 그 차는 사실 그 당시 나에게 과분한 차였다.

Nashville하면 미국 country music의 수도나 다름이 없다. Grand Ole Opry 란 country music전당이 그곳에 있다. 일주일에 한번 country music stage concert가 그곳에서 열린다. 가장 기억이 나는 것 중에 하나가 The Carpenters가 그곳에 왔을 때다. 아마도 1973년 정도였을까.. 갑자기 인기절정에 오르면서 (Top of the world) 이곳으로 날라와서 공연을 했고 완전한 top country pop stardom에 오르게 되었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하면 한번 그 유명한 Grand Ole Opry공연을 보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Top of the World – The Carpenters

 

Goodbye, Washington…DC

제목을 달아놓고 보니 오래 전의 미국소설과 영화: “Goodbye, Columbus” 와 비슷해졌다. 사실 우리 집도 Goodbye Columbus의 경험이 1988년에 있었다. 그러니까 영화와 똑같은 Goodbye Columbus, Ohio였다. 그때 우리가족이 나의 새 직장을 찾아서 Madison, Wisconsin으로 이사를 갔다. 그게 1988년 여름, 서울올림픽이 있었던 해.. 와.. 벌써 22년이 되어가나.. 그 일년 뒤에 Goodbye Madison을 이어서 단행했고, 앞으로는 아마도 Goodbye Marietta정도가 기다리고 있을까?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물론 제로는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한 이사’가 아니면 더 이상 Goodbye Someplace..는 피하자고 결심을 했다.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완전한 이사”란 어릴 때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Driving along Shenandoah Valley to DC
Driving along Shenandoah Valley to DC

그러니까 이번의 Goodbye Washington, DC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집 큰딸 새로니의 이야기다. 새로니는 2006년에 용감하게 ‘분가’를 단행, 집을 떠나서 그곳으로 갔다. 나는 천성적으로 ‘이별’이란 걸 지독히 싫어한다. 가능하면 가족은 모여서 사는 걸 원한다. 나의 인생이 그런 것과 반대로 엮어졌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큰 곳’을 찾아가는 것을 막을 용기는 없었다. 처음에는 federal government의 job이 되어서 집을 떠날 구실을 주었다.

내가 보기에 그 position은 절대로 glamorous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젊은 나이에 말이다. long term job security가 가장 좋은 곳이니까,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젊은 나이에 맞는 곳은 아니란 뜻이다. 예상대로 얼마 못 가서 not-for-profit position을 찾아서 옮겼다. 물론 같은 town에서. 이곳보다 훨씬 liberal,, progressive하고 trendy한 그곳은 그 나이에 잘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career에는 불안정한 시기가 계속되고.. 그러니까 무엇이 새로니에게 perfect (or near perfect) career job인가 하는 그런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었다.

Mother & daughter reunion at DC
Mother & daughter reunion at DC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세대에서도 이런 문제는 적지 않았다. 대학교를 갈 때부터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럴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솔직한 바램보다는 장래성(돈과 지위)과 부모,선배의 의견을 따르는 것을 보았다. 이때 만약 잘못 고르면 여러 가지 문제가 그때부터 시작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집사람 연숙의 case가 그렇다. 부모님의 의견과 적성검사를 자기의 솔직한 바램보다 더 따른 것이다. 분명 연숙은 인문,사회 쪽이지 절대로 자연과학이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100% 가깝게 뚜렷했다. everything Electrical..(like Thomas Edison)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고민들이 나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새로니의 짐을 가득 싣고 Washington DC를 떠나기 전..
새로니의 짐을 가득 싣고 Washington DC를 떠나기 전..

새로니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대학엘 갔는데.. 조금은 심한 편이 아닐까? 사실 아직도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자신이 없는 듯하다. 나는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지만.. 들리는 말에 요사이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듣기는 했다. 이제는 그런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 예를 많이 보았으니까. 지금은 자신의 passion이 teaching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듯하고.. 결국은 다시 시도를, 그러니까 teaching degree에 도전을 하게 된 듯하다.

그래서 이 불경기에 그런대로 안정된 직장을 떠나서 학교에 간다는 것이 처음에는 그렇게 이해하기 힘 들었다. 하지만, 요새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은 이번 가을부터 Nashville, Tennessee에 있는 Vanderbilt University 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2 year Master’s course인데 우리는 잘 하리라 믿는다. 졸업 후의 진로는 아직 모른다. 현장에서 teaching을 할지 아니면 higher degree를 따라갈지.. 한가지 좋은 것은 우리가 사는 곳에서 5시간 미만 drive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주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 갈 수가 있게 되었다.

 

Whispering piano가

Whispering piano가 the Whispering Piano Internet channel에서 감미롭게 굴러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피아노 소리가 감미로울까. 하지만 이렇게 듣기 좋은 것도 오랫동안 들으면 영락없이 시끄러운 ‘소리’로 변하고 만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화창한 월요일 아침 또 Cobb Central로 drive해서 왔다. 이제는 아주 친숙해진 곳.. 어쩌면 그럴까.. 예전에 이곳을 오면 그렇게 ‘빌려온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가는 시간만 기다렸지 않은가. 그때는 누구와 같이 왔었고 분명히 내가 ride를 주었을 그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좋아하는 책을 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나의 마음가짐이 전혀 달랐다. 오죽하면 가족들이 나보고 왜 그 많은 시간을 좁은 나의 방에만 처박혀 있냐고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지 않았나. 이유는 없었다. 그냥 ‘결단’을 못 내렸던 것뿐이다. 나의 세상만사가 거의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렇게 된 것 투성이일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나의 차’가 없어졌다는 것일까? 교훈은 “남의 말을 진정으로 생각해 보자” 라는 것일 게다.

현재 나를 조금이라도 지탱해 주는 것 “dadpc-2: Compaq Presario X1300″ laptop이다. 비록 거의 6년이나 된 ‘고물’ 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쌩쌩’한 보물인 것이다. 다행히 이것을 나라니가 살 당시에 wide-screen으로 비교적 비싼 model이었기 때문에 현재도 거의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역시 문제가 있다. 다행히 external한 것이라 조금은 다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조금은 화가 난다. 이것은 거의 예측이 가능한 고질적인 laptop mechanical weakest link 라고 해야 할까? 바로 power (from charger) connection problem이다. 전번에 새로니가 쓰던 것도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charger를 쓸 때 이 connector에 아주 예기치 않게 stress가 가는 것을 mechanical designer들이 몰랐을 리가 없는데 어쩌면 아직도 이것을 더 잘 만들지 못했을까. 문제는 charger connector에 연결된 pc board에 damage가 간다는 것이다. 이곳에 monster-class strain-relief mechanism이 필요한 것을 왜 그들은 더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좌우지간 이것이 더 악화되기 전에 손을 보아야 할 듯 하다.

지난 주말에는 예정대로 새로니가 다녀갔다. Vanderbilt University에 campus tour에 참가를 했는데 갔다 온 인상이 아주 좋았던 것 같고 financial aid이 더 좋게 되면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히는 모양이다. Vanderbilt하면 물론 아주 오래 전 김수근 씨가 생각이 나곤 하는데.. Oklahoma에서 조금 신세도 지고 알고 지내던 그분은 거의 공부를 끝낸 상태의 유학생이었지만 그 당시 Sherman의 조그만 college에서 가르치던 아주 ‘우수’한 경제학도였다. 그가 바로 Vanderbilt에서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그때 그 이름을 알았다. 남부의 명문사립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학교자체는 나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금 이해하기 힘든 것은 현재의 job을 ‘버리고’ elementary school teacher가 되기 위해 Master’s degree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사실이다. 조금은 나의 머리로는 앞뒤가 맞지를 않아서.. 나의 희망은 그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더 ‘재미’가 붙게 되어서 higher degree에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은 우리부부의 ‘염원’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이런 논리는 이제 너무나 구식이 (여기나 고국이나) 되어서 남에게 말하는 것은 조금 치사한 일이다.

나의 지금은 어떠한가? 이게 무슨 해괴한 질문인가? 그래.. 나의 현재 건강상태는 A-minus정도는 될 것이다. 그냥 A라고 해도 되겠지만 조금은 자신이 없다. 아침에 일어난 후의 기분 나쁜 두통과 계속 느껴지는 얼굴의 경련 (연숙은 분명히 눈 주의의 경련이라고 하지만) 등등 그리고 계속 ‘악화’되는 시력.. 등등 때문이다. Physical checkup없이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나의 주위에 또 있을까? 조금은 창피해서 말을 못한다. 하지만 나나 연숙은 상식적인 건강보험을 규칙적으로 들고 있지 않은가?  거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life style또한 건강한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몸 안에 무언가 ‘자라고’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조금은 체념을 한 상태다. 우리의 경제력으로는 조금은 말이 안 되는 ‘사치’처럼 보인다. $1000씩 한 달에 지불하고 ‘안심’을 한다는 것 말이다. 이것도 사실 우리가 좋아하던 Obama때문에 얼마나 갈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