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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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의 만성적인 느낌이 되었는가, 새벽 특히 싸늘한 새벽에 꿈에서 벗어나면 거의 자동적으로 ‘느낄 듯 말 듯한 슬픔’을 느낀다. 거의 예외가 없이… 하지만 전 날 ‘쪼잔한 것, 잡동사니 stuffs 들 [예를 들면 repair tool work] 과 씨름을 했으면 이런 증상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무나 머리 속이 한가하면 이런 ‘야릇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이다. 처방책은 그러니까 비교적 간단한가, 머리 속을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닌 [생명이 없는] stuff들에 관한 것들로 채우면 되지 않을까…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나의 심리분석인지 나도 모른다, 그런 사실 조차 나를 슬프게 하는지도… 깊고 깊은 한 겨울의 curse인가…

일어나서 바깥을 보니, 내가 목타게 기다리고 싶은 ‘눈 雪’이 아니고 그것과 비슷한 ‘서리 霜’가 하얗게 보인다.  서리의 바로 위로 뽀얗게 오르는 하얀 입김 같은 것, 솔직히 이 모습이 더 나를 춥게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눈보다 서리가 더 몸을 움츠리게 한다는 사실…

왜 나는 올 겨울 이렇게도 추위를 타는 것일까? 우리 집의 heating system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insulation이 부족한가.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근래에 변한 것들이 아니어서 결국 내가 육체적으로 변했다는 결론인가. 이 설명이 제일 큰 설득력이 있다. 나이다, 나이…  이것은 기본적인 지식에 속하는 것이어서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 옷을 더 끼어 입으면 되고, 몸을 조금 더 움직이고 운동까지 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이런 ‘덤의 일’들이 귀찮다는 것, 싫은 것이다.  이곳의 친지 Y형이 요즈음 아예 ‘내복’을 입고 산다고 해서,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 ‘내복’이란 것, 어렸을 적 온돌방에서 살던 시절에 입던 것 아닌가?  당시의 온돌방, 겨울에는 방안까지 영하로 떨어져서 어항의 물위가 완전히 얼었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래서 그 당시는  겨울이 시작되어 그것을 입기 시작해서 봄이 될 때까지 거의 벗지 않고 살았던 재미있는 추억이 떠오른다. 그렇구나, 그것을 입으면 완전히 해결이 되는데, 문제는 그것을 쉽게 살 수가 없으니…

올해 장기 일기예보에서 이 지역에 ‘험한 날씨’를 예측했었다. 겨울에 험한 날씨란 분명히 얼어 붙는 눈, 진눈깨비 등이었을 것이고, 일월 말 정도가 제일 chance가 높은 때인데, 아직도 날씨는 얌전하기만 하다. 정히 나갈 일도 많지 않아서 상상으로 2014년 때의 snowmageddon, snow jam 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포근하고 얌전한 눈이 내리면 얼마나 멋질까…  백일몽을 꾸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날씨로 수입이 좌우되는 business에 촉각을 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 이기적인 어린 아이와도 비슷하니… 언제나 철이 들 것인가?

오늘은 연숙이 모처럼 혼자서 외출을 했다. 몸도 몰라보게 정상으로 보이니 전처럼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한때 ‘쓰러질 듯 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현 이대동창회장(성당교우 K자매)이 역대 회장님들을 대접한다고 모이는 것이라고 했고, 갔다 돌아 오더 만족스런 모습이었다. 연숙의 이대 동창들과는 나도 꽤 오래 전에는 가깝게 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정말 정말 까마득한 옛날 얘기로 회상이 되니… 아~ 세월이여, 나이여~~ 오늘 오랜만에 보게 된 동창들을 보고 와서 화제는 역시 나이와 건강에 대한 것들, 참 올 새해 들어서는 왜 이렇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지…

모레 아침부터 집을 5일간이나 떠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속으로나마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이런 때에 세월, 나이, 연륜의 도움을 받고 싶다. 분명히 예전과는 다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여행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얼마나 내가 심리적으로 감당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이것도 걱정은 안 하련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과달루페 성모님을 뵈러 가는 것이니까, 응석으로라도 어머님이 우리를 각별히 보호해주시지 않으실까?

 

어제 저녁 나의 블로그 site에 놀랍고, 반갑게도 1980년대 Ohio State U.시절, 서울 중앙고 67회 10년 후배동창  ‘안동규’의 comment가 보였다. 짧은 글을 남겼지만, 어떻게 우연히도 이곳을 찾은 모양이었다. 일단 생각과 추억은 그때, 그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또 다른 comment, 이것은 66회 하재주 가 쓴 것이었다. 조금 놀란 사실은 당시의 핵심멤버들 모두가 가입한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연락을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단톡방에는 정말 반가운 이름들이 줄줄.. ’62회 여운광, 64회 이명성, 이성철, 이춘환,  66회 김종수, 하재주, 67회 채인돈, 안동규,  68회 장경호’ 등이 있다고… 9명 씩이나… 그 당시로 추억의 여행을 하려니 확실히 전보다 기억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을 얼마나 잊었는지… 그것이 궁금하기만 하다.

이번에도 하재주가 주도를 한 것인가? 하재주.. 그래 이 친구에 대한 갖가지 추억들이 적지 않구나… 즐거운 것, 아쉬운 것, 섭섭한 것 등등.. 하지만 이 긴 세월 뒤에 무엇이 상관이랴? 결국 이번에도 이 친구가 나를 카톡방으로 인도를 하는구나. 들어가보니,  이들도 모두 60대에 진입한 젊음이랄까… 느껴지기도 하고 나와는 다른 세대 차이도 새삼 떠오르고…

단톡방에 가보니 남자 것과 부부 것이 따로 있으니, 왜 그랬을까?  당시 우리들 모일 때는 100% 부부, 가족들만 모였는데… 이제는 남자만 따로 모이는 이유가 있을지.  너무나 이 재회의 소식을 반가워하는 연숙이를 부부 단톡방으로 초대를 했다. 그곳의 멤버가 20명이나 되는데.. 과연 이곳에 누구누구가 있는지 아직은 살펴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빠진 후배들이 있다. 김문경, 이승명 등을 비롯해서… 아~ 참 오래 된 추억들이구나. 

이것을 계기로 나와 우리 가족의 1980년대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 당시의 각종 사진들, 근래에는 거의 안 보고 살았고, 다시 보려니 이상하게 피하게 되는데, 왜 그럴까? 그 당시 우리, 나의 삶이 행복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럴 수가, 그럴 리가 없는데… 처음 미국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아이들 둘을 보았고, 성당이나 동창들과도 잘 어울리며 살았지 않았는가? 그래, 그때는 행복했던 시기에 속한다.  제일 달콤한 추억의 시기였던 1960/70년대에서 이제는 조금씩 벗어나 Columbus , Ohio 시절의 1980년대로 나의 행복한 추억의 관심을 넓히는 것은 어떨지…

 

일이일, 일월이십일일, 1948~2023, 정확히 75년 전… 서울의 하늘 아래..

어머님, 엄마… 그리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님, 감사합니다, 좋건 싫건 저는 그렇게 이 인간 영육, 의식계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의지는 없었다고 해도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5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교적 건강, 무탈한 삶을 살았던 것, 하느님께 감사 드립니다….

나의 생일을 즈음한 소한 대한 사이의 정월은 우선 추웠던 것과 눈이 강산처럼 내렸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의 느낌도 그렇고,  나이 20세 무렵에는 김신조[무장공비출신 목사님]의 모습도 떠오르고 상도동의 우리 집에서 학교서클 연호 친구[남녀]들과 생일’파티’를 벌였던 것도 기억하고 싶지만, 이런 모든 기억들이 나이 탓인지 전처럼 깨끗한 그림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안타깝구나… 앞으로 더욱 더 이렇게 되겠지만.. 

칠순의 중간 고개에 도달하니, 만약 팔순의 세월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때까지는 심리적으로 내리막 길처럼 보인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지혜, 지식도 같이 내리막 길이 되는 것은 사실 예측하기가 힘들지 않으니… 갑자기 ‘나의 원래 가족’들이 가슴 안으로 다가온다. 모두들 모두들 어디로 갔는가. 다시 볼 수 있을까, 못 보고 다음 세상으로 가게 되지는 않을까… 왜 이렇게 가족들을 떠난 긴 인생이었어야만 하나..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늦기 전에 조금은 알고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연숙이 어지럼증의 악화로 ER까지 가게 된 것, 우리에게 심리적 육체적 충격을 주었지만 이제는 조금  정신과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생일 음식을 해 주었다.   특제 미역국[독특한 조리법]과 [나에게 최고 음식] 갈비찜~~ 아, 비록 두 가지의 간단한 상이었지만, 이것이  오늘 생일에는 나에게 편하고도 맛있는 생일선물이 되었다. 이런 것을 과소평가하며 살았던 적을 기억하기에 이런 기회에 나는 ‘행운의 남자’임을 깨닫고 싶다. 그래, 나는 lucky guy, husband라고 자부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그것을 많이 잊고 사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유나와 Richard 와 함께 새로니가 왔다. 며칠 전에 새로 산 Tesla electric car를 타고 왔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gas engine car와 다를 것이 없지만 속을 보니 정말 무슨 space ship의 속을 연상하게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오늘 나의 생일이라고 cake을 사오겠다고 해서 사양을 했더니.. 그러면 Krispy Kream doughnuts은 어떠냐고 나의 약한 곳을 찌른다. 오는 길에 Highway 41 까지 가서 바로 직전에 새로 만든 것을 사가지고 와서… 정말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doughnuts과 coffee를 모두 (유나까지) 맛있게 먹었다.

새로니에게 이번에 취직이 된 Federal government job (Dept. of Energy, remote work) 연수여행 (Washington DC) 관계를 물어 보았더니.. 아주 대 만족인 모습이었다. 거의 현재의 상황에서 perfect job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는 일 자체도 보람 있는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닌가? 이것도 부럽기만 하다. Clean Energy 를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는 연방정부의 일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흐뭇하게 느껴진다.

 

Bernardo Kastrup

Donald Trump [a.k.a. historic SOB] according to… Bernardo Kastrup

  1. Pathologically narcissistic,
  2. Dangerously manipulative,
  3. Clinically sociopathic
  4. Conspicuously unintelligent
  5. Sole priority is himself
  6. No scruples about lying through his teeth so to deceive and use millions of people for the sole sake of his own personal agenda.

와~~ 100년 묵은 체증이 1초도 안돼서 사라지는 기분이다.  어쩌면 내가 믿고, 느끼고, 외치고 싶은 생각을 ‘기차게도’  명확하게 요약을 해 주었는가? 미국 전직 대통령을 묘사한 이 문장이야말로 만고에 길이길이 남는 명언인 것이다.  책이나 video등을 통해서 이 사람 Bernardo Kastrup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부럽다 못해서 시기심까지 발동한다. 그의 해박한 metaphysical, 과학철학이 나의 주 관심사지만 그의 인간적 면모를 알게 되면서 더욱 나는 빠져든다. 이런 ‘빛나게 떠오르는 열린 석학’이 있는 한,  Donald Trump류 같이 ‘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 미친 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까지 든다.

Donald Trump is a pathologically narcissistic, dangerously manipulative, clinically sociopathic and conspicuously unintelligent individual whose sole priority is himself, and who has no scruples [moral or ethical consideration] about lying through his teeth so to deceive and use millions of people for the sole sake of his own personal agenda.

Bernardo Kastrup

 

이 불후의 명곡, 1969년 truly classic oldie가 오늘 아침부터 내 가슴에 와 닿는  하루의 주제곡이 되었다. 대학 3~4학년에 걸쳐서 조잡한 big box stereo LP player 를 통해서 속 시원하게 큰 소리로 듣고 들었던 것, 당시 나에게 troubled water는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지만 나름대로 느끼는 고통은 별 차이가 없었을 듯하다.

당시의 세계관이 기껏해야 발전적 공해 속, 최루탄 냄새의 서울거리에 불과했지만 머리 속은 항상 Life, Time magazine으로 보이는 세계, 특히 미국의 모습으로 살았기에 그곳으로부터 신기루 같은 희망으로,  20대에 갓 들어선 젊은 머리 속은 최소한 겉으로는 ‘언제나 행복하고 신나는’ 때였다. 그러니까…  보일 듯 말 듯한 희망으로 살았던 시절인데, 문제가 있다면 점점 코앞에 다가오는 졸업 후의  막막하고 깜깜한 허공이라고 할까… 그것이 당시의 troubled water라면 요새는 어떤가. 졸업은 몇 번이나 반복하며 했고, 심지어 지금은 인생의 졸업이 점점 다가오는 시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현재의 troubled water는 아마도 세상을 떠나는 과정, 고통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서 나의 Bridge와 Friend는 과연 무엇이고 누구인가?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 마지막 시간 24시,  십자가에서 숨진 후 묻히신 아들 예수를 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비탄…  이것과  현재 진행중인  나의 고통스런 생각들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하는 지난 밤…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 것일까,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이렇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착각 속에 이즈음을 살아가는 것일까? 무슨 큰 죄를 지었는가, 아니면 나의 정신 건강에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어제 저녁 C형 그룹과 만난 이후 나는 다시 예의 상상적, 비관적 상념에 빠진 것인가?  이들과의 만남은 왜 가끔 나에게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추억하게끔 하는 것일까?

Cancel & Cancel… 오늘도 또 다른 cancel day가 되었다. 도대체 이것이 몇 번째인가? 오늘로 연기된 가족 성탄모임이 또 무산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나라니가 감기에 걸려서 누워버린 것이다.  음식준비를 시작하려는 때에 이런 소식을 듣고 다시 손을 놓게 된 것인데, 이제는 이런 ‘행사 취소’에 익숙해져서 크게 이상할 것이 없고 다른 쪽으로는 ‘편한 시간’을 갖게 된 것 나쁘지 않다.

이런 연유로, 아직도 우리들은 가족 성탄 선물을 교환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하게 될 것인지 이제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내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Three’s Company… 오늘 정오에 5년 역사의 ‘목요 그룹’ 3명이 간신히 해가 가기 전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이즈음에 한일관에서 모였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늘은 그 전처럼 저녁의 쓸쓸한 시간의 한일관이 아니고 L형의 store에서 모인 것이 이채롭다. 이렇게 낮에 이곳에서 모이면 전처럼 밤에 drive할 필요도 없고, 비싼 식당에 갈 필요도 없으니까 좋은 점도 있다.

오늘도 역시 우리의 막내,  S형제가 수고를 했는데…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우리들 점심을 Chinese food 로 takeout 하고 게다가 선물이라고 Irish cream liqueur까지 우리에게 주었으니… 오늘 보니 점점 다른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나의 오랜 생각이 조금씩 흔들림을 느낀다.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혹시 이 친구와의 관계가 의외로 멋지게 끝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까지… 또한 현재 그의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도 없지 않은 것이니… 참 사람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McCORMICK IRISH CREAM LIQUEUR 의 맛이 의외로 포근하고 달콤하게 좋다.  작년에는 Canadian Mist 위스키를 준 것으로 즐거운 성탄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오늘 의외로 또 이런 달콤한 ‘약한 술’을 우리에게 준 S형제, 솔직히,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렇게 속이 따뜻한 사람인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를 인정을 못하고 살았던 것 때문이다.

 

첫 대림 초가 켜지던 때가 3주 전, 오늘 마지막 초가 ‘귀여운 어린이 복사’에 의해서 점화되는 것을 본다. 아~ 이제 기다리던 때가 일주일 남았구나.  특별히 대림 시기 동안 준비하며 산 듯하지도 않고 특별한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영적으로 게으르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시기에 조금은 이르지만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시작했지 않았던가? 마지막 큰 일은 역시 판공성사, 고백성사인데 이번 수요일에 특별 판공성사가 준비되어서 그때 가서 하면 될 터인데, 근래에 이 ‘어려운 성사’에 거의 신경과 시간을 쓰지 못해서 솔직히 미리부터 겁이 난다.  유혹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C베로니카, 프카 자매까지 4명이 함께 판공성사엘 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은 한마디로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싸움’을 목격하며 간신히 일어났다. 갑자기 얼음장 같은 냉기가 이 지역으로 몰려온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인지, 오늘 아침 주일미사 차 외출하는 것,  갈까 말까, 끝까지 미루며 갖가지 유혹과 치열한 전쟁을 버린 것이다.  99% 포기를 해서 ‘오늘은 가기 싫다’ 로 정하는 순간, 1%의 기적의 은총이 나를 평소보다 30분 늦게나마 일어나게 했다.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왜 이런 유혹이 나에게 온 것일까? 영성적, 교리적으로는 분명히 ‘사탄’의 영향, 아니 아예 그가 나를 정복한 듯한 기세가 아니었을까? 어떤 종류의 유혹인가?  성당 미사엘 가서 보게 될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싫어진’ 듯한 느낌, 이것은 이성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고,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있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이 이런 생각을 부축인 것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1% 기적의 은총으로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일미사의 모든 일정을 가볍고 즐겁게 마친 것인데, 나중에 그 ‘잠재의식’이란 것을 더 깊이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줄줄이’ 생각들이 난다. 특히 최소한 지난 5년 동안 내가 성당공동체에서 겪었던 적지 않은 ‘인간에 의한 고통’들이 깊숙이 숨어있다가 일시에 살아나온 것인데, 그런 것들을 영원히 잠재울 수가 없기에 잊으려 애를 썼지만 오늘처럼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유혹이 올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로 영적상담을 사제들과 하면 분명히 ‘잊거나 용서하라’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나에게는 ‘잊는 것’이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오늘 미사에 뒷자리 고정석 교우 마리안나 자매가 처음에 안 보여서 궁금했는데, 조금 늦게 와서 자리를 뺏긴 것으로 그 옆자리에 모습이 보였다. 먼저 반갑게 와서 손까지 잡고 인사를 한다. 성탄 때는 알라바마 주에 간다고, 미리 인사까지… 그녀의 손은 연숙이처럼 따뜻했지만,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 자매의 조금 어두운 모습은 여전했다.

오늘 유혹을 완전히 누르고  미사참례에 성공한 것에 대한 은총인가, 오늘따라 오랜만에 보는 교우들이 미사 후에 눈에 뜨였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마디로 한 사람 한 사람들로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에너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online이나 virtual한 것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눈과 손이 닿는 이런 관계는 현재 우리와 같은 senior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듯하다. 오늘도 미사 후에 관심은 역시 아가다 자매의 모습이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아주 활달하고 건강했고, 하얀풍차의 모임도 C베로니카 자매의 참석으로 비교적 유쾌한 자리가 되었다.

오늘 오후는 이러한 ‘유혹에 대한 승리’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편히 쉬는 시간들이 되었다. 우연히 듣게 된 녹음된 나의 추억의 옛 노래, 오솔길을 다시 들으며 그 곡이 유행하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마도 1970대 초였을 것이어서 그 당시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옛 사진을 거의 안보고 살 정도로 바쁘게 지냈는데 오늘은 예외가 된 것이다. 대학 4학년 시절부터 미국에 오기 전까지의 ‘주옥 같은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사진들을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 현재 병중에 있는 친구들도 보인다. 가족들, 그리고 한때 깊이 사귀었던 여성들도 있는데, 솔직히 그 모습들을 보니 당황하고 거의 감추고 싶은 유혹까지 드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나의 심정일까… 그런 모든 감정, 느낌들이 당시의 hit folk song인 ‘오솔길’에 스며들어 있다. 이 recording과 나란히 어울리는 추억의 사진 collage 를 급하게 만들어서 ‘블로그’에 남기고 싶다.

이번 주의 특별 관심DEEP FREEZE란 것이 되고 있다. 특히 성탄 전후의 기온이 장난이 아니게 10~20도… 아마도 10여 년 만의 강추위가 아닐까? 기억에 2014년 11월 중에  polar vortex란 이름으로 정말 추웠던 때가 있었다. 그 이후로는 12월은 대충 견딜만한 따뜻한 때였는데…  조금 덜 춥고 대신 눈이라도 오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  이번 주에는 내일, 모레 로난 네가 오고, 수요일은 판공성사, 목요일은 순병원 등등이 있어서 더욱 날씨에 관심이 간다. 아차 하면 했던 성탄 직전의 눈발 예보는 이제 사라진 것이라, 그저 춥기만 한 모양이다. 그래~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12/12… 십이십이… 1979… 이제는 이 단어들의 감각이 무디어지고 있는지, 오늘은 간신히 달력을 보며 12/12의 추억을 되살렸다.  그러니까.. 정확히 43년 전인가? 우리 부부에게는 ‘추웠던 추억의 날’로 머리에 깊이 각인이 된 날이지만 이후에는 ‘성모님’과 연관이 된 날로 조금 색깔이 변하기도 했다.

1979년 12월, 서울은 유난히 추웠지만 결혼을 한달 남짓 앞둔 우리에게는 반대로 따뜻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이날이 추억의 날이 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던 것 때문이었다. 십이십이.. 전두환의 쿠데타가 그날 밤에 일어났는데 우리는 그들이 한강을 넘어오기 직전에 김포공항을 나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귀가를 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아차 했으면 우리는 한강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밤거리를 방황하지 않았을까? 그날은 연숙의 지도교수 ‘김숙희’ 교수가 미국방문차 김포공항엘 갔고 우리는 ‘결혼 전 인사차’ 갔던 것이었다. 그날이 춥게 느꼈던 것은 공항버스 정류장을 잘못 알아서 꽤 긴 거리를 걸어 들어가는데 장갑이 없어서 추운 손을 녹이느라 처음으로 손을 잡은 것… 그것이 그렇게 추운 기억으로 남게 된 것… 웃기게 유치한 추억이 아닐까, 하지만 추운 만큼 따뜻한 손의 느낌이라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 추억을 떠올리면 얼음이 녹듯이 녹아 사라지니까…

이즈음 news TV를 꽤 많이 보게 되면서 계속 놀라는 것이 있다. 아~ 정말 세상이 많이 ‘좋건 싫건, 추하건’ 변하고 변했구나 하는 것이다. 여자가 갑자기 나의 wife를 언급하고 남자가 갑자기 my husband를 말한다1.  나는 깊은 가슴속으로부터 신음하고,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한참 웃는다. ‘이X, X’ 들이 갑자기 정신 이상이 되었나?’ ‘  이들이 모두 어린애들 소꿉장난을 하나, 도대체 세상이 그야말로 몇 십 년 만에  ‘소돔과 고모라’로 변한 것, 어떻게 남자인 너에게 ‘남편’이 있냐? 어떻게 여자인 너에게 마누라가 있냐?’ ‘솔직히 너 자신도 속으로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니?”… 참, 웃기는 세상을 살고 있다. 정치, 세계관의 차이로 세계대전을 겪을 수는 있을지라도 ‘남자의 남편, 여자의 마누라’의 ‘자연법 거부’ 세상은 절대로 아무리 많이 배우고 사랑이 그득해도,  ‘자연적, 정상적’인 인간으로 볼 수가 없다.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동물’인 것이다.

어제 일년 만에 어렵사리 모이게 된 도라빌 순교자 성당 senior그룹 등대회 연말 회식, 반가운 모임은 분명했지만 뒤 맛은 그렇게 밝은 것은 아니었다. 나이와 더불어 Pandemic 등으로 더욱 고립되고 외로움과 씨름을 하는 이 모임에서 가느다란 희망의 불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성당 공동체 모임이 Pandemic을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있는 추세와 거의 정반대의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솔직히 부끄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small off-shoot group idea를 굴리게까지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모임에서 모처럼 만난A 자매와 등대회의 방향에 대한 의견이 거의 일치함을 보면서 가느다란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에 그런대로 감사를 한다. 앞으로 이렇게 의견이 맞는 회원들과 작은 의견그룹을 만들어가면 이 전체 그룹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제 등대회 회식에 잠깐 얼굴만 보이신 주임사제 구 신부님의 언행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신부님의  첫 인상 탓으로 나는 아직도 거리감을 느끼고 있고, 갑자기 바뀐듯한 성당 분위기에 어색함을 느끼고, 우리 세대들이 밀려나가는 듯한 착각으로 우울하기도 했는데, 오늘 앞에서 보며 느낀 것은 그런 나의 우려와는 거리가 멀었고, 특히 등대회의 정체성에 대한 의미 깊은 권고의 말씀도 곁들였는데, 나의 의견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2을 알고 무척이나 반갑고 기뻤다. 이런 것과 거의 동떨어진 듯한  중진 회원들의 모습은 놀랍도록 이해할 수 없는 듯한 반응이었으니… 아~ 또 다른 나의 고민의 시작인가?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집안에서 머물러야만 했던 Ozzie녀석이 그렇게 가엽게 보여 오늘은 작심을 하고 아침 일찍 걸었다. Spring Creek 과 Hanover Woods의 combo는 거의 정확하게 1시간짜리 거리였다. 녀석도 너무 날뛰면서 기뻐하니 오늘 비록 미사는 쉬었지만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 모레가 되면 또 이별을 하니~~ 내년 어떤 때가 오면 ‘거의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오려나~ Ozzie, I Love You~~

결국 하늘에는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 얼마만인가? 이제 내일까지는 이렇게 맑고 그 다음날은 또다시 비~ 허~ 그때쯤이면 Ozzie는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니 비 걱정은 줄어들고… 하지만 오늘 밖에서 우연히 shed의 지붕이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했다. 비까지 floor로 샜으니.. 귀찮은 일이 되었다. 요새 거의 tool근처에도 가지 않는 나날을 보내서 그런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니, 다시 분발을 하고 정도껏 공구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다시 싸늘해진 탓인지 또 따뜻한 이불이 그리워지고, 결국 아예 침대로 들어가 거의 2시간 가까이 잤는데~ 와 Ozzie까지 나의 손 아래로 자고 있고, 이것이 천국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새로운 일이 생겼다면~  우리 교리반 학생출신, SWT 형제 집에서 12월 26일 날 ‘식사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예년에는 그 집 부부와 식당에서 만나곤 했는데 올해는 사실 그대로 넘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S 형제에게 올해도 만나자는 ‘카톡’ 메시지를 꽤 전에 보낸 것 덕분이었는지, 먼저 이렇게 멋진 제안이 온 듯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색다른 형식으로, 자기 집에서 아는 몇몇 가정이 pot luck 작은 요리를 가지고 온다는 것.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가 했더니 어제 등대회 연말식사모임에서 만났던 YJH 형제부부와 또 다른 부부, 오래 전 ME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는데… 우리 동네 근처에 산다는 부부다. 그 집 형제님은 태권도 관련 사업을 했다는데… 우리에게 ride를 준다는 것, 얼마나 신선한 소식인지~~ 게다가 아예 그날 ‘옛날’ 노래를 기타와 함께 부르며 놀자는 제안~ 허~ 이 그룹들 참 젊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 동안 이런 건강한 재미를 다 잊고 산 것인지, 이런 사실들로 모처럼 12월의 기분은 상쾌하기만 했다. 감사합니다~~

 

  1. 최근의 shock 중에는 PBS 의 black male commentator가 자기의 husband를 언급, 며칠 전 Russia에서 석방이 된 여자 농구선수가 그녀의 wife를 언급
  2. 새해부터 거의 정상적 활동이 시작되니, 등대회도 자신을 가지고 성당봉사 차원에서 더 노력을 하라는 것, 얼마나 유익한 권고인가?

올해는 유별나게 holiday music, 특히 carol류를 일찍부터 자주 듣게 되었는데 우연히 머리 속의 깊은 곳에서 불현듯 떠오른 기억의 도움으로, 오늘은 1964년 성탄절 [이브]를 회상하는 날이 되었다. 바로 이 모습, 그 당시 ‘잘나가던’  Pat Boone 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긴. 그의 Christmas album ‘White Christmas’ LP jacket… 그 시절 집에서 보고 듣던 바로 ‘판’이었다. 그 당시에 가지고 듣던 각종 LP record들은 물론 ‘해적판’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해적판이라도 없었으면  가끔 radio에나 매달려야 하는, 아마도 정말 심심한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 LP는 성탄시즌이 되어야 꺼내어 듣곤 했지만, 이후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오늘 그 모습과 음성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당시의 독특했던 유행인가,  고등학생의 감성적 나이인가, 아직도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불현듯 떠오른 Pat Boone의 감미로운 White Christmas 와 그의 젊디 젊고 깨끗한 모습의 도움으로 이 특별한 LP를 찾아보니… 역시,  특별히 할일 없는 우리 세대들이 이미 이 album의 전체를 YouTube에 album jacket과 함께 upload를 해두어서 오늘 거의 60년 만에 다시 보고 듣는 감격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의 기억력은 분명히 조금 희미해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나온다. 특히 track의 첫 곡이었던  White Christmas와 comic한  Jingle Bells, 교회 합창을 연상케 하는 O Holy Night 등등, 거의 당시의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 나온다.

1964년 성탄이브 때 크리스천도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도움1으로 통금이 해제가 된 덕분에 친구 몇 명 (아마도 안명성, 김동만이 포함된)과 이 carol을 마음껏 즐기며 남영동 금성극장 앞에 있던 집 근처를 배회했던 기억이 아물거린다. 그날 밤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명동거리가 사람들로 혼잡했었다2. 그런 현상은 아마도 그 당시에 아주 드문 것이었다. 통행금지가 없다는 그 사실이 ‘성탄절’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것은 그 당시 일본 도쿄도 같은 혼잡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은 통행금지가 없었기에 우리와는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자국의 종교와는 다른 서구의 유행, 그저 유행가 처럼 그날 성탄이브를 지냈을 것이다.

대림 2주가 벌써 금요일로? BiocentrismIdealism [심지어 Emmanuel Kant까지] 은 분명히 ‘시간[과 공간]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지난 달부터 이번 달로의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상상, 허구라고 할 수가 있는가? 12월도 1/3이 지나가려고 한다. 조금 조바심도 나고 초조함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럴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이것은 분명히 나의 상상에 불과하니, 경우야 조금은 얼굴을 펴고 살자, 건주의 말대로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Guadalupe St. Juan Diego,  아침미사엘 가서야 오늘이 과달루페 성모님 visionary  성 Juan Diego의 축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점점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관심이 가는 것을 실감한다.  내년 1월 말이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의 단체 과달루페 순례가 있을 것이고 우리의 눈으로 성모님의 발현 당시의 모습들을 볼 것을 생각하니 미리부터 조금은 긴장이 되기도 한다.

Distancing from Swedenborg! 결정을 했다.  역사적인 과학자, 저자, 신비가 로써의 Emanuel Swedenborg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떨치고 싶지 않지만, 역시 이것도 나의 가톨릭 신앙적인 면에서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진전이 되면 그만큼 포기하기도 힘들기에 오늘로서 이것에 대한 관심을 접기로 했다. 모든 online link들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이 단절 과정을 시작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마지막 관건은 역시 ‘성모님’에 관한 것임은 크게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성모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나의 ‘선지자’ 가 될 수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가급적 그를 제외한 다른 ‘철학/과학’적인 석학들의 책들에 전념을 할 것이다.

 

오늘 점심은 모처럼 ‘동네방네’ style의 ‘밥과 반찬’의 한식으로 먹게 되었다. 갑자기 몸이 산뜻한지 점심 메뉴에 신경을 쓴 연숙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식류’를 사진으로 다시 보니 우리가 근래에 얼마나 전통한식에서 멀어진 식생활을 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영양학적으로도 더 좋은 것이 없다는 두부찌개와 총각김치를 더 자주 먹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되었다.

거의 가을 장마의 모습으로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날이었다. 나의 신경은 온통 Ozzie의 산책 가능성으로 쏠렸지만 다행히 비가 수그러든  시간들이 있어서 backyard로 나가는 것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동네 전체를 산책 할  정도로 비는 멈추지를 않았다.

 

  1. 그 당시 왜 성탄절에 통행금지가 일시적으로 해제되었는지 궁금하다.
  2. 당시 명동은 지금의 이태원이었나, 하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Reading ‘The Exorcist‘, Frightful Night 

두 딸 ‘아이들’이 모두 커서 집을 완전히 떠난 후부터 매년 이날 저녁의 Halloween Trick or Treat에 대비한 candies 준비를 안 하게 되 것, 처음에는 편하기도 했지만 해가 갈수록 조금은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 옛날에는 pumpkin carving도 하고 문 뒤에 숨어있다가 candies를 나누어주며 각종 costume을 입은 아이들을 맞았고, 두 딸들을 연숙이 데리고 동네를 돌기도 했던 것들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이날 저녁에 우리 집 앞으로 보이는 모든 전등을 끈다.  최근에 들어서 우리 cul-de-sac의 이웃들, 그 중의 옆집 Dave조차 큰 딸이 집을 떠난 직후라서 그런지 올해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온 이웃들도 모조리 깜깜한 모습 투성이다.  속으로.. 아~ 세월이여,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이런 날 저녁에는 으스스한 영화나 책을 보는 것이 제일 적격인데, 나는 매년 지겹게 반복하는 것이 있다.  1972년 크리스마스 즈음의 blockbuster 공포 영화 The Exorcist에  아직도 무슨 미련이 있다고, 매년 조금씩 보다가 ‘무서워서’ 중단했던 사실을 올해는 제대로 풀어보려고 했으니, 과연 이것이 성숙한 행동이었을까?  제일 큰 동기는 역시 ‘아련~한 추억’, 그것 때문이었다.

오늘 조금 다시 볼[영화] 기회가 온 듯해서 시작했지만 역시 ‘반 쯤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부분]’ 중단했고, 내년으로 미룰 듯했다가, 우연히 얼마 전 download했던 ‘책’ pdf version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니가 몇 번이나 책으로 읽는 것이 영화보다 훨씬 무섭다고 했던 것도 읽는데 한 몫을 했을 거다.

의외로 빠르게 읽기 시작했는데, 물론 영화의 장면 장면과 비교하면서, 중간 쯤에서 불현듯, ‘I AM STUPID!’이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간과한 사실, 경우에 따라서 문장이 영상보다 훨씬 자세하게 상황을 묘사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이 책에서 자세하게 읽고 알게 된 BLACK MASS, 한마디로 솔직히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 것이다. 요새 읽게 된 신학적 악마 존재, 그것이 영상보다 훨씬 무섭게 사실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 그 실체, 존재를 더 믿게 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 옛날 영화를 보고 일주일 동안 불을 끄지 않고 자야 했던 것, 이후에 거의 희미해졌지만 오늘 자세한 것을 다시 읽게 되면서, 이제는 이런 ‘쓰레기’들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받은 것이다.  처참하게 능욕을 당한 성모님, 예수님의 모습들이 이제는 머리 속으로부터 상상, 영상화가 되어 나를 따라오는 느낌… 정말 무서운 Halloween Day가 되었는가…

오늘 ‘브라질 판 트럼프 개XX’로 자처, 아니 자랑하던 볼소나로 ‘강아지XX’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이 되었다는 것,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다. 어떻게 흉내 낼 것이 없어서 트럼프 개XX  흉내를 내며 자유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있는지…   근래 각종 선거들의 흐름, 결과들이 내가 희망한 것처럼 흐르고 있지 않은 것은 충격적인데 그래도 커다란 이슈는 ‘민주주의 vs. 경제’ 로 좁혀진 사실에 조금 안도감을 갖는다.  그만큼 유권자들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경제와 대등하게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싶다. 피곤하고, 나도 정치 쪽으로 할만큼 다 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원병태,  몇 년 전에 타계? 중앙고 3학년 때 나의 짝꿍, 단짝이었던 원병태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신동훈으로부터 오늘에야 들었다. 소식이 없이 조용한 듯한 동창들, 사실은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오늘 원병태 소식을 들으며 깨닫는다.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조용한 거지. 살아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어디선가 표적, 표식이 난다는 것을 왜 일부러 부정을 하며 살았는지. 특히 우리의 나이에서는 더욱 그럴 지도 모른다. 원병태, 원병태, 중앙고 졸업 이후 1970년 대 초에  다시 만나서 그가 다녔던 고려대에서 테니스를 같이 치던 추억이 서로의 마지막이었지.. 곧 미국엘 가서 친척 집의 주유소 일을 돕게 될 것이라 했지.. 그러고 나서 소식이 끊겼다. 영어 회화 실력이 별로 없어서 일을 하는데 힘들 거라 걱정스런 말을 하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 한데… 네가 나보다 먼저 갔구나. 중앙고 3학년 큰 키에  맞지 않게 나와 짝꿍이었는데, 키 큰 애들을 조금 무서워하던 나도 그 녀석은 그렇게 편하고 친했는데…  대학 입학시험 이후 합격소식을 알려주었던 자상한 녀석… 고대 화학과에 ‘꽁지’로 합격했다고 자랑을 했던가~ 병태야, 고맙고,  편하게 쉬거라, 우리들도 곧 따라갈 터이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

 

얼마 전부터 나라니가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새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우리 때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둘이 벌어야 그런대로 사람처럼 사는 세상이 된 것인가? 2살을 지난 개구장이 남자아이와 씨름을 하는 것에 지친 것인지도. 그래서 새로니, 나라니 식구들 전부를 오늘 불러서 온 가족 pre Halloween Dinner 모임을 가졌다. 전에 이렇게 Halloween 을 계기로 가족이 모인 기억이 없어서 조금 새롭고 신선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Halloween costume 입혀서 오라고 했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는지 모두 그냥 왔기에 식사 후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거창하게 장식을 한 집을 모두 방문하기도 했다.

거창한 비바람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고 올해의 가을낙엽들은 순전히 자기들의 의지로 하나 둘 씩 내려오고 있고 이제는 풀잎들을 거의 모두 덮을 정도가 되었다. 더 있으면 발이 빠질 정도의 두께로 덮일 것이 분명하다. 거의 정확한 때에 이렇게 반복되는 ‘하강식’,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생애의 마지막 장을 보는 듯하다. 내년에도 반복될 것은 분명한데 세월이 갈 수록 내년의 모습이 점점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인간 원죄의 결과’일지…

거의 초음속으로 나르는 비행기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솔직히 말해서 은근히, 조용히 심지어 부끄럽게 경악 한다.  최근에 새로 알게 된 깨달음 중에 시간의 흐름에 관한 것도 있다. 흔히 시간은 지루할 때 보통 때보다 느리게 흐른다는데 공감을 한다. 다르게 말하면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 때 그 순간들은 지루한 것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 현상이 나에게도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묵상, 명상, 기도, 실내 track에서 걷기 등을 할 때다. 전에는 이런 시간이 정말 지루하기만 했다. 시계를 보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일까 할 정도인 것은 그 시간이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최근에 180도로 변한 것이다. 나도 놀랄 정도로. 한마디로 말하면 묵상, 명상, 걷기 등의 시간이 지루한 것으로부터 즐겁고 깊이가 생긴 것이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것이 나는 알고 싶은 것이다.

 

 

1970년, 대학 4학년 시절, 한마디로 희비가 엇갈리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학교 공부보다는 등산과 미팅에 더 관심이 많았던 때, 하지만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울 중심가를 헤매기도 했던 낭만적, 황금기로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젊음의 대가를 후에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2학기가 되면서 졸업 이수학점 부족이 때늦게 발견이 되어서 과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떨어져서 부족 학점을 채워야 했던 괴로운 때도 있긴 했지만 역시 젊음의 힘이었던가, 별로 실망, 우울하지 않았다.  그 해 가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게 하는 것 중에 바로 Simon & Garfunkel의 hit album 중의 한 곡인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때문이었다.  당시 수많은 pop song들에 열광을 하던 때였지만 몇 곡은 아직도 가사를 외울 정도로 뇌리에 남아있고, 이 곡도 그 중에 하나다. 1970년 가을에 심취했던 이것,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가사 내용보다는 후반부의 chorus,  폭발적인 drum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곡이 실려있는  당시의 LP album [Bridge Over Troubled Water]을 이곳에서 다시 샀던 것과 또 다른 album을 꺼내서 보니, 완전히 1970년으로 돌아간 착각에 빠진다. ‘유행가’가 가진 시대성은 생각보다 큰 위력이 있는 듯하다. 이 노래에 심취할 당시의 추억들 중에는 이성들과 얽힌 것들도 있어서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막연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니…  

Georgia Governor,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 US Senator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두 번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간단한 것인데, governor는 조금 달랐다. 두 후보의 장단점의 점수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후보의 정당 정책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역시 Donald 개XX에 ‘굴복하지 않은’ 현 주지사’가 유임하게 하는 것이 나에게 더 큰 만족도를 주기에 그에게 2 표 (우리 둘)를 던지기로 했다. 현 주지사 Brian Kemp의 ‘폭군에 맞선 용기’도 가상하지만 Pandemic동안 아주 상식적인 판단으로 일관했던 것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첫 여성 흑인 주지사가 될 수도 있었던 상대 Stacey Abrams 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나의 point는 역시 ‘Donald 개XX’에 있기에 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앞으로도 기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요즈음 supermarket에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예외는 coffee 그것도 KEURIG coffee maker 에 맞고, 가을 색깔이 있는 것을 고르는 일이다. 금주선언 이전에는 주로 wine쪽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coffee쪽으로 바뀐 것이다. 오늘은 STARBUCKS 쪽에서 FALL BLEND, CARAMEL MOCHA를 골랐는데 기대가 크다.

오늘 점심은 특별한 것, 시간이 되었다. 청국장, 난생 처음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원래 식성이 약한 탓에 조금 냄새가 나거나 보기에 안 좋으면 식욕을 조절할 수가 없이 피해버리고, 청국장도 그 중에 하나였다. 냄새 때문이었는데, 얼마 전 성당에서 C 베로니카 자매가 냄새가 거의 없는 청국장을 찾았다고 조금 갖다 주어서 오늘 드디어 시식을 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pass였다. 이 정도면 겁을 낼 필요가 없고 오히려 밥맛도 나는 듯했다.

 

올 가을 들어서 처음으로 ‘정든 베이지색 골덴’ corduroy jacket을 입고 성당엘 갔다. 아~ 이제 서늘한 날들이 예외가 아닌 보통인 그런 season이 된 것인가? 가히 요새 같은 날씨는 너무나 보내기가 아까운 정말 ‘완전한 날씨’에 속한다.   아~ 이런 날씨가 다음에 오는 세상에도 있을까? 없다면 나는 죽는 것이 조금 싫어질 듯하다.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는 이런 날씨보다 훨씬 멋질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승의 사람들과 일단 작별하는 것, 그것이 섭섭할 뿐이다.

오늘 아침미사 싸늘했던 탓인지 참례 신자들의 조금 적은 듯했다. 하기야 거의가 우리와 비슷한 나이, 그래 senior라고 하자. 이런 날씨에도 빠짐없이  미사에 오는 regular들, 신부님도 언급했지만 인상적이고 고맙고 감사하는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크리스천의 본보기가 아닐지…  오늘은 모처럼 ‘동포’ R자매의 모습이 보여서 조금 반가웠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어쩌면 한 세대의 차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인사성도 없고 정다운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 나름이기도 하지만 참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재미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오늘 ‘본격적’으로 보게 된 video는 이미 download를 해 두었던 1983년 추억의 TV miniseries  The Winds of War (7부작), 추억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나에게 이것은 예외 없이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특히 1983년 2월 초에 방영된 것이어서 이때의 추억과 함께 보고 싶다. 새로니가 태어난 바로 직후가 아닌가? 나는 학교 Ohio State 에서 일생일대의 고전 苦戰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괴로운 경험도 많았지만 지금은 조금 다시 ‘좋은 쪽’으로 바꾸어 ‘수정된 역사’를 남기면 어떨까?
이제는 조금 넓어지고 높아진 세계관, 그리고 더욱 가까워진 미국이라는 커다란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이 나라를 super power로 만든 2차대전의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고 싶은 것, 멋진 것 아닐까?

오늘 Word On Fire email, Bishop Barron의 ‘성녀 소화 데레사 책 소개’는 나에게 신선하고 반가운 것이었다. 대부분이 좋다고 하는 것, 그것도 책을 나는 별로나 실망, 심지어 싫다고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솔직히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든다. 바로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이 좋은 예, 그리고 또 있다면 Thomas Merton의 자서전 ‘칠층산 Seven Storey Mountain‘이 아닐까? 나는 남들, 아니 아예 일반적으로 극찬을 얻은 명작들이 나는 정말 실망인 것이다. 위안이 있다면 첫 번의 시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다시 읽는다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 뿐이다.

I will confess that when I first read Story of a Soul, I was not particularly impressed. Like many others, I found it overly sentimental, and as a post-Freudian, I was only too willing to see in its girlish spiritual enthusiasms evidence of neuroses and repressions. But then I noticed that a number of great intellectuals loved Thérèse. Among her cultivated admirers were Dorothy Day, Edith Stein, Thomas Merton, John Paul II, and Hans Urs von Balthasar.

When I was a doctoral student in Paris, I attended a seminar conducted by my thesis director, Fr. Michel Corbin, a brilliant Jesuit specialist in medieval thought. Corbin commented that the French do not refer to Thérèse of Lisieux as “the Little Flower,” as Anglophones do, but rather as la petite Thérèse (the little Thérèse), in order to distinguish her from la grande Thérèse (the great Thérèse—that is, Teresa of Avila). But then he added, “After many years of reading both saints, I realize that Thérèse of Lisieux is really la grande Thérèse.” I knew then that I had to take a second look. 

– Bishop Robert Barron  10/14/2022

 

 

예보대로 날씨는 잔뜩 흐리고 포근한 것, 비가 예보되었지만 chance가 높지 않아서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오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잔잔한 가을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특히 바쁘지도 않고 졸음을 참는 때, 이 고요한 빗소리와 문 밖 cul-de-sac의 모습은 가슴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이런 시간이 가급적 짧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 본 비는 사실 정말 모처럼 보는 광경이어서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신경질적으로 피하고 싶은 새벽의 싸늘함 대신에 편안하게 포근한 새벽이 좋다. 덕분에 포근했던 이불을 박차고 6시 반이 지나자마자 일어나는 쾌거를 맛보았다. 근래에 나는 분명히 이 칠흑 같은 새벽을 못보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도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게으름의 행진’ 의 일부거나 결과일 것이다.

오늘은 모처럼 ‘정상 외출’하는 날, 아침미사와 YMCA의 일정이 잡혀있고 따라서 ‘제 시간’에 움직여야 하는 조금 귀찮게 느껴지는 날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를 ‘사회적’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기에 가급적 이런 routine은 고수해야 하지 않을까? 노력하는 거다, 노력, 마지막 그날까지…

아침미사, SONATA-CAFE, YMCA, KROGER의 daily routine을 끝내고 집에 와서 모처럼 Kroger fried chicken으로 점심을 채운다. 예전처럼 아주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어도 모처럼 먹는 것이니까 OK.

 

오늘은 비를 핑계로 완전히 ‘일없는 날’로 미리 계획을 했는지, 나도 완전히 손을 놓았다. 그래~ 오늘까지만 쉬자~ 라는 달콤한 유혹을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 그래, 편하고 싶다…

대신 어제부터 시작한 영화 The Exorcist 50주년 이라는 이름과 추억으로 오늘도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오늘은 영화 전에 documentary를 다시 보게 되었다. 비디오의 화질이 엉망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백과사전’격 정도의 자세한 정보와 역사가 그곳에 거의 전부 모여있었다. 과연 올해는 Halloween 전에 이것의 전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자신이 없긴 하지만, 누가 알랴?

이 추억의 영화가 나 개인에게 미친 효과, 영향은 사실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큰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아니 우리가 Roman Catholic 천주교인을 살아가는 인생도 이 영화가 조금은 도움을 준 것을 알면 조금 나조차 놀라는 것이다. 당시 처음으로 본 천주교, 신부 사제, 수녀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나중에 세례, 입교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50년 전의 이 blockbuster movie는 이렇게 해서 나에게는 아직도 관심의 대상이다.

또한 이 영화를 개봉 1년 후에야 실제로 극장에서 본 그 당시의 추억은 또 다른 개인역사의 일부로 남아있다. 그 추웠던 1974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시카고 downtown 의 극장으로 비롯된 나의 숨기고 싶은 escapade, 이 죄스러운 짧은 실수의 역사를 나는 어떻게 묻어두고 갈 것인가?

 

이제는 하늘의 구름이 조금 그리워진다. 정말 진짜 한 점의 하아얀 물기가 없는 ‘시퍼런’ 하늘이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착각, 더구나 그런 상태로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지나가는 나날들이 이제는 지겹게 느껴지는 것, 나의 응석인가? 그렇다, 삶은 변화, 그것이 없는 것은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고통일 수도 있고.. A day in the Life 일 수도 있고…

어제 오랜만에 읽게 된 David Brooks 의 NYT column piece: Liberal Nationalism, Ukrainian War에 관한 글을 계속 생각한다. 수박 겉 핥기 단계이지만 아마도 조금 나의 제한된 정치적 세계관으로 더 자세히 분석을 하고 싶기도 하다.  내가 과연 얼마나 Liberalism, Nationalism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피부로 느끼고 75년의 ‘장구한’ 세월의 세계사는 일단 보았기에 그것이 출발점이니까, 사실 큰 문제는 없다.

Liberalism과 Nationalism은 언뜻 보기에 정 반대의 개념으로 보인다. 한쪽은 progressive하고 다른 쪽은 conservative 개념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국수주의가 과연 타협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두 생각의 중간 단계를 절묘하게 밟고 있는 예가 바로 현재 Ukraine의 경우인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대조적인 사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 하는 것인데 지금 전쟁 중인 Ukraine의 case가 바로 그런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나라는 결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하는 한편 또한 같은 노력을 자국의 영토와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에 바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미국의 전통적 민주주의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 column은 이렇게 요약을 한다.

Liberal nationalism believes in what liberals believe, but it also believes that nations are moral communities and the borders that define them need to be secure. It believes that it’s sometimes OK to put Americans first – to adopt policies that give American workers an edge over workers elsewhere. It believes it’s important to celebrate diversity, but a country that doesn’t construct a shared moral culture will probably rip itself to shreds.

오늘은 아침미사, YMCA gym routine을 포기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무리.. 라는 사실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어제 맞은 5차 COVID 백신의 영향은 생각보다 경미한 것인지 어제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든 것으로 해결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오후에 gym routine은 도전해 볼 가능성을 남겨 두었는데  결국 오후에 홀로 gym으로 가게 되었다. 나의 ‘노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자극성 운동’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요즈음 항상 가지고 다니는 spycam으로 drive를 하며 Roswell Road의 정든 거리를 video에 담았다.  드물게 홀로 drive를 하게 되어서 모처럼 느끼는  기분은… 자유, 자유 바로 그것이었다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까? 왜 그렇게 나를 듯한 쾌감이 느껴졌을까? 간단히 말해서 좋고 나쁘고를 떠난,  ‘변화된 삶의 단면’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이 거리를 이렇게 달린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나… 1992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으니 40년이 넘어가는 엄청난 세월, 이 거리를 잊지 마세요~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곳, East Cobb이 40년 동안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던 것도 요새 세상에는 조금 예외적이고…  그래도 정치적으로 보면 이곳도 옛날보다 많이 젊어졌고, colorful해 것도 사실이다. 보수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던 곳이 지금은 이상적으로 많이 진보 쪽으로 변한 곳이긴 하지만, 아직도 이곳은 family에게는 안전한 곳이다.

 

내년도 Medicare handbook이 어제 배달이 되었다. 무심코 뒷전으로 밀어놓았다가 오늘 거의 무심코 열어본다. 현재의 plan, Humana PPO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려는 생각이 전혀 없지 않기에 그랬을 것이다. 이런 쪽으로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들이 자기의 plan에는 이것, 저것이 ‘무료’라고 거의 자랑을 하는 듯한 모습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혹시 내가 무엇을 손해보고 사는 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못지 않게 싫다. 조금 더 자세히 무엇이 우리 plan에 있으며, 다른 곳으로 바꾸면 무슨 득이 있는지 호기심도 나기에 올해는 조금 더 공부해 보자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역시 이상한 날인가? 거의 무의식 적으로 손과 눈이 가던 YouTube KBS Docu 대신에 Roku Channel에서 잊고 살았던 오래 전의 영화를 보았다. All the President’s Men.. Robert Redford, Dustin Hoffman.. 아~ 추억이여. 50년 전의 big news, Watergate.. 그 당시의 각종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영화 속의 전설적인 두 신문기자들의 hair style과 멋지게 줄담배를 피워대는 모습, 육중한 고철 typewrite를 두드리는 모습, 역시 70년대의 그것들이다. 물론 이 영화는 그보다 뒤에 나온 영화고, 내가 본 것은 또 그 이후지만 역시 기억은 Nixon의 모습이 어른거리던 1970년대 초, 중반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작된 Roku free movies에서 그 동안 한참 볼 수 없었던 영화 The Groundhog Day를 찾았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또 볼 수 없는 영화라고까지 하니… 불현듯 다시 보고 싶은데… 아~ 저녁기도 시간이 다가오니… 어쩔 것인가? 또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의 함정으로 빠진다. 결국은 오늘 저녁기도를 skip하기로 하니.. 오늘은 조금 이상한 날이 되었구나. 하지만 아주 후회는 안 한다. 이런 ‘깜짝 변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 모처럼 집 근처 Wendy’s 에 들러서 Dave’s Single을 drive-in order해서 집에 와 침을 흘리며 삼키려고 살펴보니 무엇인가 얇고, 가볍고 맛이 아주 예전과 다른데… 와~ 이럴 수가 있는가? Patty, 그러니까 beef가 빠진 것이다.  그야말로 몇 십 년 전, 정확하게 1984년경,  Wendy’s TV 광고에 보이던 조그마한 할머니의 외침, ‘Where is the beef?’ 바로 그 할머니가 오늘은 우리, 정확하게 연숙이, 가 된 것이다. 집에 왔으니 다시 그곳엘 가는 것 귀찮은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 연숙이는 즉각 튀듯이 되돌아가서 새로 hamburger를 받아 돌아왔다. 하지만 광고의 할머니처럼 Where is the beef?라고 외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고기가 빠진 hamburger를 보고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당황을 하더니, 실상을 알아차린 그들도 놀랐다고… 물론 이것은 local manager의 실수겠지만, 덕분에 그들도 한참 웃었을 것을 그려본다.

사실 이 comic하기도 한 episode로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그 유명한 광고에 대해서 Wikipedia를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것은 그야말로 megahit한 ‘역사적 광고’의 하나로 남아 있었다. 1984년경에 시작해서 아직도 보이는 것이고 그야말로 이 Where is the beef?  역사를 모르면 간첩으로 오인 될 수도 있을 정도… 

1984년 이 광고는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들 사이에서도 인용이 되었을 정도다. 구체적으로 Gary HartsWalter Mondale의 debate에서 Mondale 이 이 표현으로 상대방 Gary Harts의 선거공약의 quality를 비난했을 정도였으니까… 또한 이 광고에 등장하는 할머니들, 특히 소리를 지르던 작은 할머니는 이후로 유명인 되었고… 아~ 1984년의 기억들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그 당시 미국의 느낌, 정취가 되살아나는 듯…

 

나라니 생일, 과연 몇 살인가? 새로니는 내년 1월이 40세, 그러니까 나라니는 37살인가? 그래도 아직 40살이 안 되었구나. 요새의 40세와 우리 때의 그것은 분명히 또 다를 것이니까, 아직도 긴 행복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구나~

 모든 regular routine이 완전히 중지된 날, 나라니 37세 생일을 맞아서 우리는 대신 로난과 Senate와 잠을 자게 되었다. 이것도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피곤하고 무표정의 나라니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다. 그것과 더불어 나와 나라니의 사이를 다시 생각한다. 새로니와 다른 점이 있다. 무언가 서먹서먹한 것이다. 왜 그럴까? 나도 그렇게 나라니도 마찬가지..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는 것, 왜 그럴까? 어떻게 이것을 허물 수 있을까?

오늘 나라니 부부가 떠난 후 로난과 개 Senate, 세넷만 남았다. 당장은 물론 엄마, 아빠가 보고 싶겠지만 곧 잊고,  1년 전에 녀석이 자주 보던 Dave & Ava children’s video를 눈이 빠지게 본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흐르며 아이는 무섭게도 자란다…

Sam’s Club… 이곳에 오면 예전에는 wine, beer, margarita 같은 것을 고르는 것으로 주로 시간을 보냈는데 ‘제한적 단주 선언’ 이후에는 할 일이 없어졌다. 대신 책이나 잡지 등을 보는데 모든 시간을 쓰게 되었지만 예전의 Costco와 달리 이곳은 정말 볼 것이 없다. 그래도 LIFE같은 magazine special 은 표지로만 살피곤 했는데 오늘은 유별나게 두 issues 가 나란히 보였다. 하나는 St. Mother Teresa, 또 하나는 Dogs 에 관한 것.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주제[인간과 동물]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 아닐까?

Mother Teresa는 이제는 성녀가 되셨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계실 당시부터 이미 성녀이셨다. 자선을 하며 산 성인성녀’급’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냐 마는  마더 데레사는 무엇이 특별하기에 이렇게 아직도 ‘인기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요즈음 들어서 부쩍 이 성녀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이 성녀에 대한 책도 많이 있긴 했지만 이제야 조금씩 나의 눈과 귀를 열고 다가가는 것이다.

그 옆에 있는 ‘수려하게’ 생긴 개, 성녀 못지 않게 그들을 사랑한다. 특히 고양이와 더불어 그렇다. 왜 나는 젊었을 때부터 더 가까이 하며 살지 못했을까 후회까지 된다. 왜 내가 이렇게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솔직히 나는 그것이 신비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누가 나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 전에는… 분명히 나는 영성적이 차원에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생각, 그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까지 생각하게 되니… 예전에는 예쁘게 생긴 그 모습을 귀여워하고 좋아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절대 아니다.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들을, 따라서, 학대하거나 관심이 없는 부류의 인간은 정말 싫어하게 되었고 불쌍하기 조차 한 것이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변했는지, 나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결론은 분명하다, 죽는 그날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아~ Dr Pepper! 아~ 이 독특한 맛, 얼마만인가? Sam’s Club에 간 김에 점심을 pizza와 Dr Pepper로  이곳에서 해결하며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를 이곳에 살면서 크게 변한 것이 바로 이 pizza와 soft drink 습관의 변화가 아닐까?  반세기, 반세기… 일년에 한두 번 정도 갖는 이런 맛의 기억들, 역시 이것도 추억의 자취들이다. 특히 Dr Pepper는 더욱 그러하다. 50년 전 이 땅에 떨어졌을 당시 처음 경험했던 이 uncola soft drink는 그때의 ‘맛과 때’를 사진처럼 기억을 해서, 나의 기억박물관에 소장이 되었다. 그 당시 처음 우리에게는 ‘빈대약 맛’으로 불렸던 Dr Pepper는 아직도 건재한 모양, 덕분에 오늘 50년 전을 회고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주었다. Thanks, Dr Pepper!

YMCA gym indoor track, 30분 정도 걷고 나와  swimming pool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앉아서 ‘부러운 사람들,  그러니까… 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옆으로 내려다 보며 밖을 보니 건물입구 쪽으로 커다란 나무 하나가 보인다. 이것이 가을이 오는 색깔을 보여주는 편리한 신호 역할을 한다. 며칠 전부터 미묘하게 천천히 노랗고 빨갛게 변하기 시작하는 듯, 아~ 역시 자연의 신비다.

 

초가을 습기가 완전히 걷힌 후, 아~ 바로 이것이로구나.. 푸른 색보다 더 푸르다는 cobalt blue. 찬란한 태양이 떠 있는 공간은 정말 보기 드문 deepest blue 바다였다.

너무나 너무나 짙푸른 하늘에 취한 기분~ 어쩌면 하루 아침에 날씨가 완전한 가을로 돌변을 했을까? 아무리 더위를 찾으려 해도 무리 무리~  덕분에 시원하게 운동 삼아 front-side lawn trimming을 즐겼으니.. 이 작업에 최근에 나의 몸을 유지시켜주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걷는 것은 아니더라도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적당하게 근육도 쓰고 걷고 있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일기예보까지 세속뉴스와 더불어 안 보기 시작한 이후,  조금 불편한 것이 다음날 날씨의 동향인데, 특히 이즈음은 새벽의 기온이 궁금하긴 했다. 그래도 굳세게 안 보는 이유는 내면의 평정을 위한 웃기는 전략인가? 오늘이 그런 아침이 되었다. 바깥 기온을 보니 60도가 안 되는 것! 아하~ 이제야 말로 가을 새벽을 대비한 옷들을 조금씩 바꿀 때가~~~

Fall blends, Pumpkin Spice ground coffee의 package그림들이 그렇게 멋진데, 이제야 말로 그 그림에 걸맞은 맛과 멋들을 즐기게 되었다. 오늘 아침도 1 cup coffee brewer로 Fall Blend를 작고 귀여운 tea cup으로 마시는 즐거움을 맛본다, 감사합니다~~

얼마 전부터 가끔 눈에 뜨이는 YouTube video 중에 KOREAN DIASPORA 란 것이 있어서 몇 편을 보게 되었는데, 주로 ‘고려인’들 이야기였다. 처음엔 고려인의 뜻도 확실치 않았지만 이제는 물론 아주 친근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들의 역사, 개개인들의 사연을 보며, 기독교 성경, 특히 구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유민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전쟁, 패전 등을 겪은 후 강제로 이주된 그들이 Diaspora의 전형, 원형이라고 짐작을 하니까..  현대판 Diaspora는 그 옛날처럼 잔인한 것은 아니더라도 집단적으로 겪는 심리적인 고통은 비슷할 것 같다. 고향을 그리는 인간본성은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처럼 자진해서, 원해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도 사실은 예외가 아니다. 고향을 떠난 도미渡美50주년이 맞는 내년, 지나간 추석 등을 떠올리며 나도 사실 고려인의 한 사람이 된 환상에 빠진다. 어쩌다 내가 고향을 떠났고, 내가 사는 이곳은 과연 어디인가…  과연 고향, 고국, 조국, 민족, 동포란 나에게 무엇인가… 눈물을 참거나 닦는 괴로움도 있지만 사실 그것이 자연스런, 정상적 반응이 아닐지…

 

C 베로니카 자매의 100권 책 선물더미 중의 하나, Eckhart Tolle의 2000년대 초 best seller, The Power of Now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통상적, 전통적인 SELF-HELP 류의 심리학적인 책이라기 보다는 전통 종교의 공통분모를 절묘하게 경험에 의한 분석을 했다는 것이 나의 마음에 든다.  최소한 영성, 전통 종교에 바탕을 둔 것이 제일 호감이 가고, 더욱 특정한 교리, 종파, 종교에 국한되지 않은 그야말로 가톨릭이  Universal Church라고 하듯이 범 영성을 추구하는 듯하다. 게다가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어서 추상적, 초월적 느낌을 떠나 내가 지금이라도 실험해 볼 수 있는 실용성까지 제공하니 얼마나 신선한 방법인가? 기대를 하며 10월 내의 빠른 완독을 향해서 나아가고 싶다.

 오늘은 조금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려서 밀리고 밀린 일들 중에서 kitchen sink 밑으로 관심을 쏟았다. 이곳의 일, 제일 싫은 작업 중의 하나다. 몸의 위치가 아주 고약해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첫 번째 할 것이 power outlet의 위치를 바꾸는 것, circuit breaker를 열어야 하니,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늘의 성과는 그 첫 관문을 통과한 것, 결국은 power outlet의 위치를 아주 적당한 곳으로 옮기는데 성공을 했으니, 나머지 남은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연숙이 새로니, 유나 집에 갔다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아하! 그것이구나~ KEURIG coffee machine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은근히 예상은 하고 있었던 것이긴 했다. 그 집에 갈 때마다 손쉽게 맛있는 커피를 눈 깜빡 사이에 만들어 마시는 것이 은근히 부러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어서 나도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애가 더 비싼 model이나 카푸치노 machine을 새로 산다고 우리보고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새 것을 산 모양이어서 우리에게 오늘 온 것이었다.  이 machine이 상당히 오래 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리 쉽게 고장이 날지는 의문이지만, 커피가 제 맛을 낼 좋은 계절 가을을 시작하면서 아주 좋은 ‘고물’ 선물을 받은 셈이다.

 

오늘이 그 악몽의 nine-eleven [Patriot Day] 이란 것을 오늘 아침에야 새삼 깨달았다. 21세기가 진짜로 시작되었던 2001년… 나이 50을 얼마 전에 넘었던 그때, 어찌도 세월의 위력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시간의 마력, 매력, 허구성… 그때의 그 일들을 어떻게 잊고 살았단 말인가? 어제처럼, 아득한 태고처럼 동시에 느껴지는 이 신비스럽기까지 한 망각과 기억의 계곡을 살고 있구나…  Enya 의 hit tune, Only Time이 하루 종일 장송곡처럼 흘러나오던 이 순간순간 들은 역사적 교훈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모두 망각의 세상으로 흘려 보내고 싶은 것들이다.

 

이쪽 온 지역이 온통 구름으로 덮인 9월 11일… 청명하기 이를 데 없었던 2001년의 9월 11일과 대조적… 어쩌면 그날은 그곳이나 이곳이나 [아마도 전 지역이] 어쩌면 그렇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을까? 영화나 만화보다 더 잔인한 광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던 그 아침 무렵, 솔직히 다시  생각은 물론이고 추측, 회상하기도 진저리가 난다. 그런 세월은 나 개인 차원으로도 슬프고 고통스런 나날의 시작이 되었고… 뒤의 이야기는 한 권 소설의 한 장을 이루는 역사가 되었다.  다행히 20+ 년이란 세월의 도움으로 고통은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 어두움의 보상일지도 모르는 드높은 차원의 세계를 알게 되고 만날 수 있는 행운의 끝머리를 잡은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그렇게 Patriot Day는 기억을 하는데, 오늘이 Grandparents Day란 것은 조금 comic하게도 보인다. 이런 날이 있었던가?  그렇구나, 우리는 분명히 grandparents니까, 조금은 자축을 할까? 모든 grandparents 들… 누가 있나? 주위에… 많을 것이고, 참 힘든 humanity로써의 의무를 다하시느라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

오늘 주일 미사는 Patriot Day와는 전혀 역사가 다른 추석 미사를 맞았다. 전통적인 ‘추석상 차림’ 의례가 미사 전에 치러진 것이다. 비록 엎드리는 절은 아니어도 성묘의 느낌은 충분하다. 중국의 중추절을 언급하는 중국사목 이력의 ‘중국 통’ 신부님, 미국의 오랜 전의 국가적 고통인  9/11을 뉴스로 듣긴 했겠지만, 피부로 실감할 것은 무리인가? 전혀 2001년 오늘 일어난 일은 완전히 잊는 듯하니..  지역사목을 위해서 그래도 조금은 추억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을까? 한번 떨어진 ‘인기점수’가 만회되는 기회를 별로 기대할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오늘로서 Living in the Mindful Universe 책을 완독하게 되었다. 2018년 년 말에 사서 읽기 시작한 것, 그러니까.. 3년이 훨씬 넘은 뒤에야 다 읽은 셈이다. 저자의 생각이 비교적 잘 전달된 듯하고 대강 그의 주장을 일단은 알 수는 있다. 제일 나에게 다가오는 공감은,  ‘이성적 과학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성적 실재로 넘어가는 그 과정의 서술이다. 과감하게 반론을 제기할만한 지식이 나에게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아니 상식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의 주장이 ‘제발 제발 100%’ 맞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완독 후 나의 바램이라고 할까…

며칠 째인가YouTube video의 계절배경음악, Vintage Autumn Music을 아예 전부를 계속 듣는다. 비디오 그림은 1950년대 각종 잡지들에서 온 것이고 음악은 그 당시의 crooning style의 정겹게 느린 ‘가을 곡’들… 우연히 주제들이 모두 9월, 비, 낙엽 에 상관된 것들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심취했던 것들이 이제 고스란히 우리세대, 나에게까지 온 것인데, 놀란 것은 완전히 우리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사실… 결국 세대는 시대를 뛰어넘으며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늙음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아니 쉽게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완전히 초가을의 모습이 보이고 느껴지는 오늘 가만히 밖을 보니 그렇게 정돈된 잔디가 예전처럼 깨끗하게 보이지를 않는다. 자세히 보니.. 아하~~ 마른 나뭇잎들이 적지 않게 깔려 있구나~ 그 위를 보니 역시 dogwood 의 가지의 푸른 잎새들의 색깔이 주황색 쪽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낙엽 계절의 아주 시발점을 포착한 것이다. 조금 더 진행되면 이제 잔디 일을 하는 노고는 줄어들 것인데… 솔직히 섭섭하고 시원하다고 할 것인지..  이제 차가운 비바람만 한 번 불면 걷잡을 수 없는 낙엽의 장관이 펼쳐지며 9월은 시월로… 친구 양건주의 ‘잊혀진 계절’의 순간이 다가오는가~ 아~ 세월의 신비로구나.

Elizabeth, Queen, Elizabeth! 편안히 잠드소서.. 연옥을 안 거치는 천국 여정,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여왕이 타계한 때가 9월 8일, 그날은 성모님의 생일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모든 것이 다 우연이 아님을 이 나이에야 깨닫는다. 이 여왕은 나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나의 세계사에서는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여왕은 언제나, 항상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2/3년, 나의 기억력 한계점, 이후로 항상 나의 ‘막내 이모’같은 여왕의 모습이었다.  더욱이 그의 첫아들, 찰스는 나와 생년이 같은 1948년의 인연으로 항상 나와 함께 자라던 세대, 이후로 그의 결혼과 그의 가족사는 나의 그것과 함께 비교가 되곤 했다. 그가 이제 공식적으로 King Charles III로 불리는 명실공히 영연방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으니…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나와 동갑, 그의 건강상태는 잘 모르지만  보이는 자태로 분명히 우리 세대에 비해서 장수할 것 같고, 그렇기를 바란다.

 

오늘은 뜻밖에 로난과 나라니가 갑자기 놀러 왔다. 갑자기 심심해진 모양이라고 추측을 했지만 나중에 돌아간 다음에 알고 보니 로난과 우리가 조금 더 친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가끔 보고 살긴 했지만 아이의 기억에서 우리가 많이 멀어진 것을 우리도 알고 있기 했다. 역시 오늘 녀석을 보니 불편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랑비가 올 듯한 날씨에 녀석을 데리고 playground 에 갔다 왔는데, 1년 전의 그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 그 때는 걷지를 못했는데 지금은 문제가 없고, 대신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등, 사실 짧은 거리를 걸으며 나도 불안하고 힘이 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걷는 녀석과 지나가는 차를 같이 보니 정말 고역중의 고역.  이렇게 두어 시간 같이 보냈지만 그것이 다시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되었을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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