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ck Day 5일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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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k Day 5일 째.. 결국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를 빠진다, 교회와 주님께 죄송한 것보다는 몸조심하고 싶은 심정이 더 크니까… 덜 죄송하고 싶은 것이다.

TheraFlu Night 를 자기 직전에 복용해서 그랬을까, 전혀 기침이 없는 밤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제는 목에 가래가 잔뜩 낀 듯 느껴지고 간질거리는 기침이 괴롭히는 정도, 몸의 통증과 오한 같은 것도 잔잔해지고 있는 듯한데.. 과연 거의 나은 것일까, 아니면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인가? 그런데 몸은 아직도 쉬고 싶다고 유혹을 한다. 본의 아닌 꾀병이 되지 않기만 바라는데…

비록  journal에 쓸 것이 별로 없었던 날이 되었지만 전처럼 초조, 불안 등은 별로 없다. 그래 이런 기회에 편하게 쉬자~~ 하는 배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거의 나아가는 감기는 나에게 쉬라는 신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덕분에 편하게 하루 종일 ‘독서 필사’를 하며 지냈다. 지금 읽고 책, The Power of Now (Eckhart Tolle) 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말로만 들었던 삶의 지혜라고 할까, 전통적 복음적, 신앙적 영성으로부터 조금 벗어난 것이지만 이것에도 다른 진리가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특히 현재까지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견디기 힘든 갖가지 심적인 고통의 해답이 이 다른 진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다시 정독을 하며 소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도 연숙이 나를 잘 챙겨주었다. 두 끼를 따뜻한 밥과 국으로 먹여주었다. 이런 덕분에 오늘도 감기의 그림자가 조금씩 물러가는 듯 느껴진다.  문제는 연숙이다. 저녁 무렵부터 열이 나기 시작한다고… 내일 경기동창 합창단 모임은 취소를 했는데 그 다음날 화요일 나라니 집에 가는 것이 문제다. 연숙이 정말로 아프기 시작하면 그것도…

모든 사순절 영성적인 일과들이 모두 정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연숙이 문제가 없으면)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과연 어떨지…

Sick Day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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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제 오후부터 완전히 까불어지는 듯이 피곤했던 것, 드디어 ‘감기 바이러스 님’께서 나의 몸에 완전히 들어온 것 같다. 목이 간질거리는 것이 심해진 것도 다른 증거다. ‘식도 역류성’ 기침으로 속단을 했지만 이번의 것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인 모양.. 하기야 오랜 동안 나는 앓아 누워볼 정신적 여유조차 없었고 지난 12월은 도라빌 순교자 성당  senior 친목단체의 어이없는 scandal사건으로 완전히 녹초가 되었으니, 이제 쉬라는 신호인가?  다행히 혈압전선 상태는 좋은데 이것과 감기는 상관이 없는 모양… 이제 며칠을 어떻게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살 것인가~~ 내일부터(Tucker)가 문제구나, 그때까지 견디어보고..

이제부터 우리의 매일 매일은 또 비정상의 상태로 접어드나.. 외출은 물론이고 내일 Tucker babysitting 에 가는 것도 힘들게 되고..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쉬게 된 것은 반갑지만 아픈 것과 후유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렸을 적 ‘아플 때의 행복’ 기억도 새롭다.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나를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나를 눕히고 약을 물론 흔히 구할 수 없는 진기한 ‘미제’  먹거리들 (미8군 암시장에서 나오는), 아픈 것은 괴롭지만 그럴 가족의 사랑을 받는 것이 너무도 행복해서 나중에는 은근히 아파 눕기를 바라는 상상까지 했으니.. 
오늘 그런 추억을 되살릴 정도로 나는 가족, 현재는 옆에 연숙밖에 없는,  사랑을 어렴풋하게나마 맛보는 날이 되었다. 다른 때보다 유난히 안 하던 일들도 하고 말도 더 부드럽게, 가급적 편히 쉬라고~~ 이제까지 그런 구체적인 말을 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기만 한데…
내일 Tucker에 못 가는 것이 신경이 쓰인다.  내가 느껴본 Knox녀석의 묵직한 체중, 이것 장난이 아닐진대 어떻게 연숙이 혼자서 그 애를 다룰지..  전에 혼자서 애를 보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위안이 되지를 않는다. 분명히 녹초가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한데…

결국 TheraFlu 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 감기 증상이 완화가 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 믿고 보는 거다. 이 정도라도 움직이고 PC desk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언제 ‘안전할 정도로’ 감기가 나을 것인가 하는 것인데… 

혹시 감기약의 영향은 아닐까? 놀랍게도 저녁 혈압이 110도 못 미치는 107이 아닌가? 약간씩 어지러운 것, 열대신 혈압 때문은 아닐지. 하지만 솔직히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높은 것보다 낮은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심리적인 스트레스? 나도 이것을 은근히 과소평가 했지만 그것이 아닐지도… 정말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이것을 정말 조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동안 봄처럼 포근했던 날씨는 결국 구름이 몰려오더니 요란한 폭우를 쏟으며 기온이 다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한다. 역시 아직 봄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올 겨울 제대로 된 눈 구경을 한번도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구나…

Goldilocks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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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대로 오늘은 모처럼 60도를 넘는 봄기운을 상상할 수도 있는 춥지 않은 날이 되었다. 2월 초에 반드시 이런 때가 오는 것을 이제는 체감, 경험으로 안다. 다시 영하로 내려 갈 것이지만 한때 이런 모습으로 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직도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편한 옷을 입고 차고나 밖에서 일할 그 때는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할 듯.

NYT opinion에 미국경제 의외로 잘 나간다는 논평에서 Goldilocks 란 표현이 눈에 뜨인다. 내가 알고 있던, 아니 보았던 이 말은 science & religion 책들 중에서 보았던 것이다. 내가 받았던 인상은 이 우주가 ‘생물, 생명’을 보호, 유지하는 적절한 조건, 특히 온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이론… 이것이 우연이기에는 너무나 확률적으로 낮다는 것.
이런 인연으로 왜 이런 적절한 조건을 Goldilocks라고 했는지 찾아보니 의외로 1920년대 미국 동화책에서 유래가 된 것. 곰 세 마리와 Goldilocks라는 소녀의 이야기. 이 말은 적절한 여건, 환경을 뜻하는 것 not too cold, not too hot… just in between~

YouTube에서 가끔 보는 documentary KBS ‘창’이라는 program에서 뜻밖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Ohio State 시절 Columbus한인 성당, 유학생이었던 경기고 출신 ‘이병남’ 씨… 1990년 대 아틀란타에서 마지막으로 본 이후 처음 보는 얼굴, 깊숙한 주름살 때문에 처음에는 혹시나 했지만 목소리를 듣고 100% 확신하게 되었다.   자기 소개로 69세라고, 24년 전에 혼자가 되었다고 했다. 현재 single을 뜻하는 것이었을 듯.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취재,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자기도 그 중의 하나라고 했다. 기업에서 9년 전쯤 은퇴, 현재는 책도 쓰고 신문에 평론도 한다고… 이병남 씨, 우리와 콜럼버스와 아틀란타 두 곳에서 모두 우연히 만난 사이여서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전부였다. 조금 더 기억을 해 보니.. 이병남씨의 wife (이름이 무엇인지… 가물거리는데)를 같은 과 유근호형과 Ohio State의 대학원 office을 같이 쓸 때 만났었고… 이후 콜럼버스 성당에서는 유학생의 부부로 다시… 이후 그들은 다른 학교로 transfer했는데… 글쎄  다시 아틀란타에서 다시 만났으니… 그 wife는 우리와 아틀란타 한국학교 선생도 같이 했던 추억도 있는데… 그러다가 또 그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한국의 윤주네를 통해서 간접적인 소식을 듣고 잊었는데, 이렇게 ‘공인’으로 나타난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원서동, 계동, 중앙고, 가회동이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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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은지가 최근에 찍은 듯한 이 camera shot을 보내주었다.

작년 10월 은지의 gift shop이 있던 계동골목을 갔었지만 그 당시 나는 시간이 없어서 이곳, 바로 이곳, 오랜 추억이 어린 ‘교차로’를 가지 못한 대실수를 저질렀다. 
1954년부터 1966년 초 까지 이곳을 정기적으로 지나다녔는데, 국민학교 시절 원서동에서 재동국민학교까지, 이후 가회동에서 중앙중고를 다녔던 길, 이곳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머리 속에 남은 예전의 모습은 ‘물론’ 개발의 힘으로 모두 깨끗하고 예쁘게 화장은 했지만, 사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추억을 되살리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으니…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나는 지난 밤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기억이 희미하다는 것은 나의 변명, 위로일 것이고 혹시 꼬박 샌 것은 아니었을까? 잠에서 깨어난 기억이 없으니 분명히 생각을 하며 지샌 것이라면… 아, 싫다, 왜 이렇게 잠까지 나를 괴롭히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침 혈압은 극히 정상이 아닌가? 혈압이란 것은 매번 이렇게 예상을 뒤엎는 것인가? 
아~ 다시 찾아온 괴로운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고 있다. 이 악귀 같은 ‘부정적 생각, 슬픈 생각, 우울한 생각들’ 또 나의 새벽시간을 좀먹고 있다. 도망가려고 거의 생각도 없이 electronics parts, breadboard 를 만지며 잊으려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나를 비하하는 듯한 나의 악마, 이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존재를 거의 부정하는 듯한 이 괴물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도망가려는 마음뿐이니..  정말 어렵고 괴롭고… 이것이 혹시 성녀 마더 데레사가 겪었다는 기나긴 어두운 밤의 경험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그 성녀의 고백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싶다.

44년 전 명동 YW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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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 조금 익숙한 느낌의 날자~  또 잊고 살았다. 오늘은 44년 전 1980년 명동 YWCA 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날이었다. 매년 맞는 이날,  이제는 숫자가 너무나 많다는 느낌뿐이다. 명동성당 앞쪽 언덕길, 포장마차 몇 군데, 약국, 그리고 즐겨 다녔던 Cosmopolitan 다방 등, 올해는 유난히도 명동 바로 그자리, 이제는 없어진 그곳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지난 10월 수십 년 만에 직접 그곳 주변의 ‘상전벽해 桑田碧海’, 변한 모습이나마 보았기 때문이다.

1980년과 작년 10월의  명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독특한 dynamic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에 놀랐을 뿐이다.  44년이라는 조금 으시시한 숫자에도 올해의 느낌은 예년과 조금 다르다. 결론적으로 그저 우리는 ‘감사하며’ 이날을 맞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

쩍쩍 달라붙는 그 ‘지독한’ 영하의 기온에서 거의 60도를 넘는 포근한 겨울, 하지만 느낌은 거의 마찬가지다. 어두운 가랑비가 소리 없이 지긋이 계속 내리고 있다. 이것이 사실 싸늘한 비의 느낌인데… 올해는 결국 ‘하얀 눈’의 모습은 물 건너 가는 것인가?

혈압이 ‘완전 정상’? 왜? 내가 알 수가 없다. 반짝했던 깊은 안심과 평화 때문일 거라고 추측은 하지만 정말 이 ‘놈’의 수치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반가운데~ 몇 알이 필요한가.. 에서 고민하는데 역시 ‘정상에선 안 먹는’ 대 원칙이 있으니까.. 오늘은 제로 ‘알’로 정한다. 130 이상부터는 1알을 기본으로 시작하고.. 이것도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나름대로의 방식이 형성될 것 아닐까? 의사의 말: 정상 혈압에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지만 매일 매일 혈압은 살펴보라.. 그것이 정답이 아닐까?

어제 밤부터 감기조심 차원에서 소금물 양치를 시작하고 일찍 잠자리에도 들고, 저녁기도도 생략하곤 했지만 역시 나는 그 정도로 조심할 필요가 없었음도 안다. 조금 꾀병을 하고 싶은 충동과 응석도 부리고 싶었다. 심하지만 말고 조금 아픈 증상을 느끼는 것을 은근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숨어있는 습관 중에 하나니까.. 그 정도로 며칠 만에 나, 우리는 거의 정상적 심리적 건강을 찾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기념일답게 색다른 아침 식사, ‘준 기피 식품’인 avocado와 salmon fillet on toast, 맛도 맛이지만 멋도 있는 것을 준비해준 cook에게 감사..

이곳 Macy에 가본 적이… 몇 년? 전혀 기억이 없으니… 정말 그 동안 shopping culture가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delivery truck만 기다리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I-75 의 어느 exit으로 나가는 것조차 생소하게 느껴졌으니… 연숙이 return 할 것 때문에 그곳엘 갔다가, 오는 길에 Thai 식당 Lemon Grass 에서 우리만의 전통으로 결혼 44주년 점심 식사를 그곳에서 했다. 속으로 물론 나는 그렇게 ‘자랑스럽지’ 못하다. 이럴 때, 멋진 곳에 멋지게 입고 가서 멋지게 폼을 내고 생소한 음식을 먹었어야 하는데~~~ , 하지만 그것이 나는 그렇게 맞지를 않는다. 별 수가 없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인데 어찌하겠는가, 연숙이 이해를 하며 살아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RAIN ALL DAY HEAVY AT TIMES, even thunder storm~~~ warming up to  near 70!  이런 멋진 날씨에, 이렇게 2층 침실에서 낮잠을 2시간가까이 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일 듯하다. 늦은 낮잠이었고 겨울에서 거의 여름으로 바뀌듯 한 착각에 빠질 정도의 남풍과 함께 계속 내리는 비.. 매일 매일 추웠던 30도 대에서 60도 대를 넘는 따뜻한 공기를 느끼니 갑자기 아~ 혹시 봄이 멀지 않은 것? 착각에 빠진다.  가슴을 펼 수가 있을 정도의 그런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제 나, 우리에게도 봄은 정녕 오고 있는 것일까? 희망의 속삭임이 귀속에 들리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 제발, 제발…

생일과 결혼 기념일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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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정월 24일은 21일과 25일 사이…  생일 76년,  결혼 44년 두 기념일 사이를 가고 있구나. 이제서야 또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을 실감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조금 제정신을 차리고 세월을 가늠하고 있단 말인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의미 충만한 날들, 기억과 추억들, 모든 것을 잊었단 말인가?

연숙의 진심 어린 말, ‘기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믿지 않는 것 아니냐’ 는 그 말이 아직도 귀에서 잔잔히 남아 울린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 건성으로 믿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바치는 각종 화살기도들, 무슨 기대를 할 수가 있는 것인가? 공포에 질린 자세로 앵무새처럼… 나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며 무언가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배우는 지식,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체험을 했다고 자신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다시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일까지 계속되는 ‘겨울 비의 향연’, 현재 나의 열린 마음에 이것은 선물이고 축복이다. 비록 눈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의 76세 시점에서 나의 모습을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교성아? 교성아~~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너를 다시 만나면 어떤 얼굴로 보아야 하니? 과연 Swedenborg의 희망이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까? 이것도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나의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과연 어떤 사람, 인간인가?

나의 생일과 내일의 결혼기념일을 어젯밤 조카 은지에게 알려 주었다. 오늘 아침에 답신에 자신의 store에 있는 동백꽃 Camellia 의 모습을 담아 축하를 해 주었다. 한 동안 재잘거리던 texting이 요즈음 조용했는데 이렇게 다시 겨울 꽃으로 다시 피게 되었으니 안심이 된다. 나보다 우리 어머님과 더 가깝게 살아온 우리 누님 조카들, 어떻게 이렇게 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가끔 머리 속이 하얗게 희미해지는 기분까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 못 살았을까…  이런 인생을 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은지가 나의 생일선물로 보내준 것, 예쁜 동백꽃을 보다가 나의 책상 옆을 보니 다른 꽃, African Violet이 작고 겸손하고 수줍은 모습으로 나를 보는 듯하다. 어제 연숙이 desk옆 side table에 조용히 갖다 놓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면서 아직도 꽃 이름을 추측조차 못하는 나로써는 요새 이렇게 꽃들이 다가오는 사실이 흐뭇하기만 하다. 아마도 나이 때문이 아닐까?

예정대로 연숙이는 full-time으로 Tucker엘 가서 사랑으로 손자를 돌보아주고 왔다. 나와 같이 다시 찾은 평화, 평정의 덕분으로 이전보다 조금 덜 힘들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drive를 거의 2시간씩 한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혼신적 에너지를 소모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거의 꿈꾸듯 평화 속의 게으름을 마음껏 마음껏 발산하고 즐기고, 만끽을 했다. 언제까지 이런 ‘평화의 기쁨’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상관없다. 이것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만족하니까…
은근히 기대했던 ‘시원하게 깨끗하게 세차게’ 내리는 겨울 비는 결국 ‘과대선전’ 격인 것이었다. 거의 이슬비 정도로 그것도 가끔… 참, 이런 날씨는 사실 정확한 예보가 힘든 그런 format인 듯하다. 그래도 실망스럽다.

또 하나의 중앙고 57회 동창회 단톡방이 생겼다. 왜 또 하나의 것이? 조금 이해는 안 가지만 이유가 없지 않겠지.  그런데 이것으로 목창수가 동창회 총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총무는 조한창.. 역시 일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 되지 그 사람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목창수가 간부가 되었기에 조금 동창회와 가까워진 듯한 기분.. 물론 나쁘지 않다. 이렇게라도 나는 이곳에 연결이 되어 있음이 좋다. 

오늘 이곳에서 알게 된  소식… 박택규 선생님의 ‘소천’, 아마도 목창수가 개인적인 관계로 이 소식을 들을 수 있던 것은 아닐까… 나머지 선생님들의 소식도 궁금하지만 아마도 개인적 관계가 별로 없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박택규 선생님은 나에게 유난히 적지 않은 추억을 남겨주신 소년 처럼 해맑은 모습의 화학 선생님이었다. 또 하나의 화학 선생님, 김후택 선생님은 그야말로 완전 반대형의 인물, 어깨, 깡패를 연상케 하는.. 얼굴. 하지만 이 두 선생님, 진정한 화학의 귀재들이었다. 아무런 note없이 줄줄 화학방정식으로 칠판을 가득 채우시던 모습이 상상의 모습으로나마 남아있으니…

Birthday, Funeral M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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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월 5일, 새로니 태어남…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 이제 마흔 한 살, 41세.. 결국은 우리 집 장녀가 40대로 들어섰구나. 하지만 나에게 나이 40의 감각이 금세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40세가 될 즈음을 기억해야 서서히 느낌이 온다. 1988년 1월 21일이 나의 40세 생일.. 물론 당시의 개인역사를 줄줄 말할 수 있고 따라서 그 나이의 사상, 느낌들이 조금은 되돌아 온다. 지금 느끼는 40은 물론 너무~ 젊었다.. 했지만 당시에는 거의 반대의 감정이었을 듯하다. 특히 죽을 ‘사’의 4까지 있어서 더욱..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던 것은 분명히 기억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늙어가는 세대’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거다.

NDE to Jesus… 나의 궁극적인 목표, 이유. 현재 나의 많은 관심과 독서 활동의 중심 화제, 화두인 NDE, near-death experience.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물론 가장 설득력이 있는 scientific approach의 입장에서 본 현상적 설명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희망과 안심, 여유를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중세기 이후 계몽주의의 도래 이후부터 학계로부터 서자 庶子 취급을 받던 (왕따란 표현이 더 적절)  이것에 대한 연구의 심각한 무게가 이제는 critical mass에 접근하고 있다는 발표, 보고도 오래 전처럼 희귀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Swedenborg와 더불어 NDE는 나와 같은 ‘이전의 materialist’ 에게는 새로운 세계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으로 이제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적인 해석은 의미가 점점 없어지기에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이 걸맞게 brave new world를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잔잔한 서광을 기대하는데…

동년배, 서울 재동/교동 국민학교 추억의 인연으로 몇 년 전에 만났다가 지난 늦가을 갑자기 떠난 세례자 요한 R형의 장례 미사가 드디어 끝났다. 너무나  놀라고 실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 영육간의 건강을 자랑하던 사람이 불과 몇 개월 만에 홀연히 세상을 떠난 것,   오늘의 ‘영결, 장례 미사’로 조금은 끝맺음 이 되었다. 실감 문제를 떠나서 이제는 분명한 한 인간, 영혼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떠났다는 기정사실을 무리 없이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끝맺음, closure.. 나는 이 단어가 나오면 쪼그라들며 도망치고 싶다. 우리 어머님, 우리 누님의 타계는 나에게는 아직도 끝맺음이 없이 아직도 열린 상태인 것이다. 언제 끝맺음이 있을까, 이제는 늦었다. 열린 상태로 나는 떠날 수밖에 없는 신세인 것이다.

오늘 ‘영결미사’는 대 성황이었고, 큰 무리 없이 진행된 행사이기도 했다. 우리 추측에 이 많은 조문객의 대부분이 아마도 R요안나 자매와 관련된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큰 딸의 조사를 통해서 우리, 아니 내가 모르던 R형의 많은 행적, 성향, 성격 등을 추측해 보기도 했다.  원래 머리가 특출하게 좋았다는 사실, 친구 관계가 원만했고, 가족을 나름대로 보호, 사랑했다는 사실 등등..  부럽기도 하고….
나는 몇 가지 긴 조사를 들으며 R형과 나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특히 딸 둘이 있고, 미국인 사위가 있다는 공통점을 통해서 나의 삶과 현재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급작스런 죽음을 앞둔 그의 초연한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이고 멋지고 훌륭하게 보일 수가 없었고, 내가 그의 입장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갖가지 가정과 상상을 하기에 바쁘고…  결국 간단히 말해서 ‘내가 오늘 죽으면’이라는 물음의 해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AFTER, NDE 같은 화제가 요새 나의 머리 속에 가득 차있어서 그런지.. 오늘 미사 중에도 육신을 떠난 R형의 영혼이 영결식장 위를 돌며 내려다 보는 상상,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나는 그런 것의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한 믿고 싶고,이제는 안심하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과학의 도움으로, 이성적으로 믿는 것이다. 저 너머 세상, 그러니까 영계 靈界를 믿으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수 있으며 살고 싶은지도 서서히 밝혀질 것 같다.

 

OMG… Izzie야~~ 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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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제 양양이가 나의 무릎에 앉은 사진 찍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모습이 이상하다. 며칠 째 걷는 것이 이상했는데 오늘은 걸으려 하지 않는 듯, 자기도 이상한 듯한 표정으로 움직이지를 않는다. 결국 때가 서서히 오고 있는 것인가? 이제는 밥을 먹으러 식탁위로 뛰지 못하나?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서서히 그곳, 저 세상을 향해서~~ 아~ 또 싫다, 싫어. 정말 싫습니다. 왜 이때입니까? 왜? 성모님, 조금 더 우리와 함께 눈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을 더 주십시오, 지금 이별하는 것, 무섭고 싫습니다~ 성모님~~~

오늘 나갈 일이 없었으면, 아니 나가지 않았으면 불안, 초조의 괴로움으로 고생했을 듯하다. 녀석으로부터 느꼈던 ‘저승사자의 그림자’를 생각에서 떨칠 수가 있었을까? 잊어야 하기에 더욱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닥친 빙점의 날씨에도 동네 성당에는 신심이 좋은 고정멤버 교우들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성체분배만 하는 공소예절로 끝났다. 그래도 영성체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끝나면 모두 합창하는 Immaculate Mary~ 도 하루를 사는 에너지를 줄 것이니까.. 월요일 아침에 동네 성당엘 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조금 자랑스런 쾌거이기도 하니까..

집에 와서 제일 먼저 녀석의 상태를 살펴본다. 오늘 아침의 모습으로 거의 절망적인 진단을 나는 내리고 있었다. 앞으로 ‘임종’과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2018년 6월 임종하던 Tobey때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며.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장례’를 할 것인가, 관을 어떻게 다시 짤 것이며 겨울에 얼어붙은 땅은 어느 곳에 팔 것인가.. 등등.. 열차처럼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것과 연관되어서 일반적인 죽음, 임종과정, 우리들에게도 다가올 운명의 날들..

가급적 편하게 해 주고 싶어서 안아주며 상태를 보는데…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눈가에 생기가 도는 것이 아닌가? 놀라고 기쁘지만 시간을 두며 보기도 했는데..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보니 조금씩이나마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동작도 조금씩 빨라지고.. 내가 오판을 한 것은 아닌가?  그래, 지켜보자, 아직 때가 아닐지도 모르지 않은가?

어제 은지가 보내준  1분 동영상,  지금 계동의 모습.. 10월 달 잠깐이지만 걸었던 그곳, 대강은 생각이 나지만 자세한 것은 아직도 모른다. 우선 예전 50여 년 전의 계동의 모습은 100% 사라진 것은 확인되었다. 그 외에 샛길의 위치는 거의 안 변한 듯, 중앙고의 모습도 아마도 그대로.. 동서로 계동길을 가로지르는 길들이 제일 궁금하다. 보이는 커다란 교회의 십자가, 혹시 그곳에 그 옛날 길가에 있던 바로 그 교회가 아닐까?  재동 친구 김천일이 성탄 때마다 가서 과자를 선물로 받았다는 그 교회? 그렇다면 그 옆길로 가면 재동학교 뒷문 쪽에 있던 우리 가회동 198번지 집? 구글맵을 보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아~  지난 10월 그곳에 갔을 때 왜 시간을 내어서 가보지 않았을까? 앞으로 언제 또 가볼지도 모르는데…

계동 1번지, 그리고 계동 ‘길’ 9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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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가 보낸 계동 ‘길’ 동영상, 크게 확대해서 자세히 천천히 본다. 추억의 극치 중에 하나, 그 중에서 바로 으뜸이구나… 당시 비가 온다는 그곳, 크게 자세히 보니~ 아~  골목 끝 위 먼~ 곳에,  ‘계동 1번지, 중앙고등학교 white castle‘이 ‘솟아 솟아 솟아서’, 솟은 것을 찾는다.  더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원래부터 문이 없던 ‘교문’ 기둥 둘이 보이고, 그 뒤는 김성수 ‘교장’이 손수 화강암 돌을 날라다 쌓아 만들었다는 본관 건물, 그곳으로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이 가려져 있다. 교문 왼쪽은 ‘사령관 모자를 쓴 수위’ 아저씨가 상주하던 수위실, 오른 쪽에는 당시에 그다지 싸지 않았던 통학용 자전거들을 두던 곳. 이 문짝 없는 교문, 언덕길을 6년이나 오르내렸으니.. 그것이 나의 뇌리에서 그리 쉽게 사라지겠는가?

교문에서 왼쪽은 가회동 으리으리한 한옥들 골목, 오른 쪽은 상대적으로 우중충했던 무허가 건물 처럼 초라한 집들이 도열한,  또 다른 언덕길은 나의 6.25이후의 고향, 원서동으로 이어진다. 추억의 계동 골목이 이제는 계동길 X번지로 바뀐들 , 너무나 깨끗하게 정리가 된 것 외에는 추억의 골목과 크게 다를 것이 있겠는가? 그곳은 그곳이고 그때는 그때다. 오늘따라 왜 나는 그곳에서 사는, 아니 살아온 사람이 된 착각에 빠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나는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까, 왜?  추억의 시대를 반세기 넘어서 세대도 두 번씩이나 바뀌어, 코흘리개였던 조카 은지가 계동길 98번지에서 희망에 찬 모습으로 ‘식물이 좋아서 because Ilove plants‘라는 이름도 거창한 plant gift shop, ‘창업’을 하며 나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으니까.. 고맙다, 은지야~  부디 그렇게 좋아하던 것, 크게 성공하기를…

날씨를 핑계로 편안하게 일요일 아침, 또, 집에 있고 싶었다. 아니 20마일이나 운전을 해서 한국본당에 가는 것이 싫었다. 그쪽에서 나를 잡아 끄는 그 무엇이 오늘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 하지만 오늘은 지난 일요일과 조금 다르게 미사를 완전히 빼먹기도 께름칙하고, 아침 식사를 끝내며 옆에 켜있던 TV를 보며 CPBC 평화방송 생각이 문득 난다. 아~ 코로나, 코로나 Pandemic 이것도 벌써 ‘향수鄕愁’ 깜이 되었나?  불과 2~3년 전에 거의 매일 찾던 곳, 평화방송의 인터넷 미사!

이것이라도 있어서 오늘 하루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조금 덜 미안하고 덜 죄스러웠으니까.. 오늘 YouTube에서 방영된 미사는 방송국 chapel이 아닌, 서울 시내 성당에 나가서 한 것이어서 더욱 실감이 있었다. 오늘 평화방송이 간 곳은 구로2동 성당, 1969년에 지어진 성당이라서 요새 지은 성당과 너무나 다르게 소박하기만 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1969년 나의 대학3학년 때를 돌아보는 친근함만 더해 주었다.

이제는 그곳 [고향 땅]에 있는 성당에 대해서 조금은 실감이 가기에 오늘 미사는 나에게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10월 달에 인연을 맺었던 경기도 군포시 금정성당, 그곳의 레지오 회합, 단원들 생각이 나고, 이어서~ 아~  역시 나의 ‘진짜’ 고향이 그립다라는 생각에서 비약.. 혹시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산다면? 나에게도 그곳에 가까운  가족, 친척,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이 비약적으로 그들을 이제는 가까이 옆에서 보고 살고 싶은 뜬금없는 가망성이 희박한 희망까지 생긴다.

김형석 [명예] 원로 ‘백세인’ 교수님의 아침 식사, 오늘 비로소 그 식단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의 지난 20여 년 간의 아침 식사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또한 매일 매일 심심할 정도로 큰 변화가 없다. 그러면~ 이것이 바로 건강식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백세인의 습관 중의 하나란 말인가? 그러면 우리도 백세를 살고 싶다고? 어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물어볼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아침 식단은 조금 격려를 받으며 계속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하루 두 끼 먹는 것은 어떤가? 그것은 김교수님의 습관에 보이질 않는다.

어제 저녁 연숙이 아슬아슬한 자세로 기우뚱거리며 의자에 올라가서 이 ‘포도 성탄 장식’을 설치했는데, 오늘 보니 너무나 예쁘고 귀엽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집 안팎이 쓸쓸하기만 한데 이 조그만 노력으로 당분간 우리 부엌  주변은 성탄과 새해를 조금 따뜻하게 보이게 할 것 같다. 고마워~ 고마워~

불고기 볶음밥과 두부 된장국, 갑자기 추워지는 늦은 오후의 늦점심.. 영양학적으로 봐도 완전 균형식이다. 감사, 감사…

즈음 우리 둘 모두 양양이에게 신경을 쓰고 산다. 나이도 그렇고, 최근 계속 ‘실수, 사고’ 를 연발하는 녀석이 걱정도 되고, 특히 먹는 것이 주춤해서 살이 더 빠지고 있어서 은근히 혹시~ 하는 상상까지 안 할 수가 없구나. 아~ 갈 때 가더라도 지금 안 된다, 안 되~~   이런 와중에서 녀석과 우리는 갑자기 가까워졌다. 전혀 화도 안 내고, 나의 곁을 안 떠나려고 하는 등,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예전의 Tobey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의 무릎에 앉는 것은 물론 아예 거기서 졸기도 하고, 오늘은 그와 함께 나도 졸았으니… 참, 꿈을 꾸는 듯하다. 이런 세상이 올 줄이야~~ 그래, 양양아, 편안하게 살다가 가자꾸나, 그곳으로, 그곳으로…

포근하던 며칠~ 새벽에 무섭게 폭풍이 지나가더니 일요일 하루 종일 세찬 바람에 컴컴한 비가 하루 종일… 게다가 오후로 들어서는 기온까지 급강하~~ 아마도 내일 새벽은 다시 빙점으로 돌아가는 완전 “겨울의 초상”인가… 하지만 나는 이런 날씨를 ‘지독히’ 사랑하니까.. 아무런 문제는커녕 기다리며  산다.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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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도 ‘벌써’ 나흘 째로 슬그머니 넘어온 즈음, 중앙고, 연세대 친구, ‘도사’ 양건주가 1999년 8월에 보내주었던 [외로움의 도사] 김재진의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를 다시 꺼내었다.  이 시집의 표지의 글,  건주의 속삭임을 듣는 듯하다.

그 당시 이미 상당한 세월을 훌쩍 넘기고 ‘가상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행운과 함께 힘든 시절, 고민과 고독을 호소하던 나를 위로하며 이 소책자를 보내 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이후 이 시집은 나의 영적 상담자가 되었다.

너무나 힘들었던 40대 말을 바로 뒤로했던 시절로 깊이 각인된 그때, 이 소책자는 나에게 시의 안 보이는 위로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는데.  올해 한달 전  서울 근교 일산시의 그의 보금자리에서의 기적적, 극적인 해후 이후 더욱 이 시집에 진하고 진한 남자의 우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때 그와의 ‘역사적 만남’은 나에게 ‘세월’이라는 간단한 말을 두고 두고 묵상하는 계기를 주었고, 밤 잠을 설칠 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악동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세월, 세월… 세월…

그런데 역시 이 김재진의 시집 속에도 이 ‘세월’은 유감없이 그의 생각을 타고 있었다. 100%는 아니더라도 나의 깊은 속을 유감없이 속삭이고 있었으니..  사 반세기만에 나를 찾아온 선물이라고 할까. 건주야, 고맙고 그립다. 잠을 설치는 밤에 다시 보고 싶구나. 조금 더 나은 건강을 빌며.. 우리의 긴 세월은…

 

세월

김재진

 

살아가다 한번씩 생각나는 사람으로나 살자.

먼길을 걸어 가 닿을 곳 아예 없어도

기다리는 사람 있는 듯 그렇게

마음의 젖은 자리 외면하며 살자.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지나갔던 세월.

먼바다의 끝이 선 자리로 이어지듯

아쉬운 이별 끝에 지겨운 만남이 있듯

모르는 척 그저 뭉개어진 마음으로 살자.

 

대림초 가 처음으로 켜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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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시간을 편하고 아늑한 집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 비록 성당제대에 켜진 대림초 는 코앞에서 못보고 있지만 의외로 마음은 가볍기만 하다.  대학시절 수업을 빼먹고 연대 입구 [사실은 신촌 로터리] 대지다방으로 클럽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던 그 가벼움과 비슷한가…  지금 50년 후의 그 연대입구, 신촌 로터리에는 꾀죄죄했던 2층 다방의 모습은 간데 없고 우람하고 번쩍이는 ‘명동, 강남 스타일’의 고층건물 아래의 ultra-modern cafe들.. 아~ 싫다, 싫어… 우리 마음의 고향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보너스로 생긴 일요일 아침, 성당 망치회의 김밥 대신에 left-over fried chicken, SPAM, 따끈한 밥이 곁들인 한 접시 요리는 나의 혀끝에는 천하일미였다.

중앙고 콜럼버스 인연의 채인돈 후배의 ‘서울역 선물’ 제주산 차茶.. 지난 한달 간 우리는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이 차의 향기에 취해 서울역 모임을 음미하며 살았다. 문제는… 이제 거의 이것이 떨어져간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나는 과연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며 사는 ‘장애자’인가?  그것도 특히 우려, 걱정, 부정적인, 나쁜, 해가 되는 그런 것들을 주로 하며…  왜 좋은 생각, 희망적인 것, 사랑스런 것들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생각하며 사는 재주가 없는가? 정말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를 지경인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자가진단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인가?

연숙이의 sinus infection과 심지어 기침까지 조금씩 나오는 것으로, 오늘 ‘쉬기로’ 정했기에 마음은 훨씬 편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이었다.  물론 미사엘 못 갔다는 미안함도 한 몫을 했겠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편한 새벽을 맞이하지는 못했다는 것, 아~ 그렇구나… 다가오는 시간, 날, 세월들에서 나를 즐겁게, 편하게 하는 ‘희망’이란 놈이 잘 안 보인다는 슬픈 사실이다… 왜 요새는 그렇게 앞날이 어둡게만 보이는 것일까?

어제 읽었던 NYT 논설, Is South Korea Disappearing? 생각보다 ‘비 과학적’ 분석인 것이 사실은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그의 ‘느낌’이 ‘과학’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내가 과연 조국의 출산율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는가? 절대로 절대로 한 적이 없다. 우리의 시대에는 이것[낮은 출산율]은 사실 ‘선진적’ 인 좋은 것에 속했기 때문이다. 잘사는 곳일 수록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출산율은 반비례해서 낮았으니까…  이 두 가지를 현재 모두 가지게 된, ‘자랑스런 조국’ 인데…  무엇을 걱정하랴?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미 시작된 대한민국의 출산율 걱정인 것이다. 세계적인 환경위기와 더불어 모국, 대한민국은 이것을 현명하게 해결할 것임을 물론 나는 신앙적으로 믿는다.

오늘 CBS Sunday Morning show에 이 ‘미국판 애국열사’의 침통한 얼굴이 나온다.  Elizabeth ‘Liz’ Cheney, 그녀는 누구인가? 오래 전 ‘추억의 부통령’ Dick Cheney의 딸, 정치집안의 산물, 모두 강경 보수파 매파 공화당 계열.. 한때 나는 이들을 싫어했고 때에 따라서 ‘증오’까지 했던 때도 있었다. 특히 선제공격 형 전쟁 광으로까지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좋은 놈과 나쁜 놈의 기준이 180도 바뀐 후.. 무엇이 변했나?

이 극우 대부격인 아버지와 그의 딸, 모두 지금은 거의 ‘성인 聖人 반열급’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양심을 몸으로 지키는 사람 중에 나는 이 ‘용기 충만한 여성’이 제일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썩을 대로 썩은 Republican 중에서 거의 홀로 DONALD ‘개XX’를 탄핵했던 용기와 양심의 소유자, 그녀가 이번에 ‘미국을 살리는 책’ “OATH and HONOR  A Memoir and a Warning” 펴냈다. Memoir는 그렇다 치고 Warning이란 글자가 무겁게 다가온다. Warning이란 것, 쉽게 말해서 Trump의 ‘다가올 제2 쿠데타 음모’ [사실은 음모가 아니고 공공연한 호언장담] 에 관한 것, 진정 미국의 ‘전통자유민주주의’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해독제’는 과연 무엇인가? 정치철학, 도덕률의 절대잣대가 사라진 이때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지하며 살 것인가? 

일요일 이른 아침을 (old fashioned) TV 와 함께 한다는 것, 전혀 추억조차 까마득한 것, 그야말로 surreal한 경험이다. 실감이 안 가는 것이다. 최소한 2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최적의 위치를 찾은 HDTV antenna 덕분이다. 이 작은 gadget으로 제일 보기 편한 local channel 들의 signal들, 특히 비록 HD format은 아니어도 KBS AMERICA가  ‘간신히 나마’, 30마일의 Atlanta Metro 를 횡단하며 Marietta에 비추이는 것, ‘공짜 programming’ 이라는 사실과 함께, 요새 나에게는 드문 ‘행복한’ 순간을 선사한다. 세 군데 major channel은 역시 아직도 ‘목사님’들이 설교로 침을 튀긴다. 예전에는 ‘성경유일주의’로 조금은 배울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Donald ‘개XX’에 목을 매는 것을 보며 오늘은 100% 완전 외면을 한다.  100% analog에서 99% digital로 변하던 그 동안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심지어 AI preacher의 등장까지 꿈속에 등장하니, 유일한 등대는 이곳이 아니고 저쪽이 아닐까?

아~ 골치 아프다~ 왜 올해는 이것까지 말썽을 부리는가? 근래 우리의 holiday lighting 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는 왜 이러는가? Strand중의 한 부분이 이빨 빠진 듯 감감소식..  이것을 내가 고쳐본 적이 있었던가? 물론 가끔 bulb하나가 ‘죽으면’, 교체를 하면 됐지만 지금은 모두 led여서 거의 불가능하니.. 문제는 어떤 led가 죽었는가 찾는 것인데, 아직까지 고전 중… 이것은 가만히 보니 고치는 것보다는 아예 새것을 사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듯, 역쉬~ 짱개의 얄팍한 발상인가?

오늘은 예전의 ‘보편적’ 주일, 일요일 같지 않은 새로운 일요일을 보냈다. 비록 대림1주 첫째 날 미사는 못 보았어도 큰 후회는 없다. 감기기운이 있는 연숙이 모처럼 아침잠을 깊이 잘 수 있었고, 나도 솔직히 오늘은 ‘순교자 성당’에 가는 것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갑자기[이상한 예감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monster로 돌변한 추한 모습의 어떤 ‘정서적으로 불안한’ 여자 얼굴을 다시 볼 기분도 아니었다.  한때는 대신 Holy Family 동네 성당에 가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뜻밖의 휴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긴장, 스트레스도 잠재울 수 있는 ‘하루’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휴식의 시간이 될 것이 아닌가? 이런 편안한 일요일, 모처럼 연숙이의 homemade 해물잡탕까지 해 먹을 수 있었으니~

저녁때 가슴이 써늘할 정도로 놀랄 뜻밖의 카톡 메시지~ 분명히 캐나다의 중앙고 동창 정교성이 보낸 것인데~~ 보니 딸이 쓴 것인 듯, 교성이가 11월 24일 심장마비로 입원했고,  이후 그곳에서 또 COVID까지 걸렸다는 요지의 메시지였다. 그것이 전부~~ 현재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었으면~~ 기도하겠다는 답을 보내긴 했지만… 아~ 요새, 아니 요즈음, 아니 가을부터 이것이 웬일들인가? 줄줄이 세상을 떠나고, 급기야는 교성이의 입원소식까지~~ 내가 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기도라도 열심히 할 것이지만 조금 어두운 예감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우리는 인생의 황혼을 더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을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Wet & Milder, Foggy & Mi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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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예보되었던 ‘비, 가을비, 초겨울 비’ 대신에 이슬비가 포근한 땅으로 잔잔히 내리는 아침이다. 잠시 앞문을 열고 눈에 익숙한 모습을 남기고, ‘수경이네’ 단톡방에 올려 놓았다. 수경이네가 이곳에 왔던 것이 거의 20년에 가까워온다는 사실을 믿을 수는 없지만 이것으로 우리 집 주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기억해 보라는 뜻도 있었다. 수경아~ 벌써 보고 싶다.. 하루 속히 이곳으로 날라 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새벽 6시 central heating 잔잔한 소음, 불과 20분 만에 꺼진다. 기온이 많이 올랐다는 뜻이다.  별로 가볍지 않은 머릿속, 아~ 또 왜 이러는 것일까? 보기 싫은 ‘쓰레기’ 급 단상斷想들이 분명히 나를 괴롭힌 것이다. 오늘은 참을 성을 가지고 아래층 전깃불이 켜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일어난다.

분명히 일기예보는 온통 비와 천둥이 치는 밤, 새벽을 예상하게 했는데~ 또 속은 느낌. 바깥을 보니 온통 어두운 안개.. 속을 자세히 보니 역시 땅은 젖어있었다. 나의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세찬 비바람을 원했지만, 어찌 세상이 나의 뜻대로 돌아갈까?

오늘은 정말 이상하게도 기분이 그렇게 가라앉을 수가 없었다. 어제 ‘마포 종수 후배’와의 45분 간의 긴 통화 이후부터 그런 것을 보면 분명히 지난 10월 콜럼버스 중앙 후배들과의 ‘서울역 재회’로 느끼게 된 새로운 깨달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11명의 ‘잘나가는’ 후배들, 모두 그곳에서 꾸준히 만나며 사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운 것, 반대로 나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외로운 기러기처럼 보이는 것, 지극히 ‘정상적’,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지,

진정한 행복의 길, 원칙에 ‘남과 비교하는 삶의 폐해’에 대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것,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삶은 단계가 낮은 거의 인간 본능에 가까운 것이어서 한눈만 잠깐 팔면 이 비교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문제다.  이런 ‘잡념, 유혹, 고민’에 대한 나의 돌파구 중에는 예수님의 진복팔단 眞福八端  Beatitudes , 행복의 대헌장이라고 할까, 그것을 묵상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 역시 얼마나 진지하게 복음말씀을 이해하는가에 달려있다. 오늘 내가 이것을 통해서 효과를 보았는지는 솔직히 말해서 아직 잘 모른다.

올해 성탄 lighting은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가? 문제는 작년에 쓰던 것의 일부분이 ‘망가져’서 그런 것이고, 새로 한쪽만 산 것의 색깔이 글쎄 전의 그것과 다른 cool color가 아닌가? 섞어도 될 것이라 희망을 했지만 실제로 켜보니 솔직히 별로인 것이다. 어쩔 것인가? 고장 난 것을 고치면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열의가 없다. 기를 쓰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lighting은 켜졌으니까 조금 시간을 두고 고치는 시도를 계속하면~~  연숙이 몇 년 전부터 이 장식에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아는데 나는 어찌 이렇게 항상 뒤쳐지고 시큰둥한 하고 있단 말이냐? 그래 조금이라도 신나게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지…

내일 주일미사는 ‘순간적 기지’를 발휘해서 조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듯하다. 아~ 우리 동네 Holy Family 성당 주일미사! 이것 도대체 얼마만인가?  마지막으로 그곳으로 주일미사를 보러 갔던 때가~~  달력을 찾으면 알 수 있을 듯한데 지금으로서는 전혀 idea가 없다. 그만큼 오래된 것 같으니까.. 처음엔 내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엘 가기가 싫어서 미사를 빼먹을 생각까지 하다가, 순간적으로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다. 감히 대림절 첫날을 어떻게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왜 순교자 성당엘 가기 싫었는지, 간단하다.  갑자기 monster처럼 출현한 그 ‘제3의 미친X’ (이제는 부부),  영성체 하러 줄 서서 나가는 뒷모습조차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Avocado on Toasts, Paris Baguette & T-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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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식사는 모처럼 연숙이 준비해 주었다. 아보카도 avocado를 얹은 토스트가 돋보이고 은지가 선물로 준 monster mug에 담긴, 새로 다시 만든 potato potage soup까지.. 아~ 이런 날도 있어야지.. 고마워 고마워…

‘산본시장 파리바게뜨’ 영수증, 그리고 지하철 충전 영수증 두 장이 지갑에서 떨어져 나온다. PARIS BAGUETTE 의 정확한 한글표기가 그러니까 파리바게뜨 였구나. 이것이 문제다. 정확한 한글 철자는 이런 것을 보아야만 알 수가 있으니. 주소가 경기 군포 산본동 216-22 인데 산본전통시장 옆에 있는 그곳이고, 동서형님댁으로 걸어가면서 래미안 아파트 앞의 이곳에 들러서 빵을 19,000원어치 사가지고 아파트에 갔던 바로 그 영수증이다.  이번에 고국방문에서 은근히 놀란 것 중에 하나는 ‘super high rise 아파트 공화국’ 이외에 ‘gourmet 커피 공화국’인 듯한 착각이다. 과장된 표현으로 한 가게 건너마다 커피숍이 즐비했던 것.  주체할 수 없는 부의 과시인가, 아니면… 그리고 충전 영수증, 이것은 수도권 전철 요금인데 이것도 나 혼자서 금정역에서 T-Money card로 두 정거장 떨어진 ‘어머니와 인연이 있는 상록수 역’에 갈 때의 것이다. 이것으로 다시 금정역 주변의 일들이 벌써 주마등처럼 나를 맴돈다. 좋은 추억이고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꿈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랄 정도로…

오늘도 떠오르는 부러운 것, 사람들 중에 ‘콜럼버스 중앙후배 그룹’ 이 유난히 떠오른다. 왜 그들이 그렇게 부러운 것일까? 우선 그들은 1980년 대 ‘젊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긴 세월 가끔이라도 서로 만나며 ‘함께’  같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그 사실, 내가 흉내를 낼 수 없는 사실들이라서 그렇게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콜럼버스 오하이오 시절부터 시작해서 ‘아마도’ 계속 계속 만날 수 있었지 않았던가?  도사 양건주 말대로, 친구나 친척도 ‘안 만나고 살면’ 관계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 다고 한 말, 아직도 나의 귀에 잔잔히 울린다. 이것만은 내 능력 밖이니 어쩔 수가 없기에 나는 그렇게 슬픈 것이다.

오늘로써 Verizon 5G Home 인터넷 service의 upgrade도 99% 해결이 되었다. 나머지 1% 는 $30 discount를 받는 것만 신청을 하면 된다. 그리고.. 아~ trash service도 완전히 GREEN으로 switch를 했지… 그런대로 현안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남은 것, 조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 연숙의 Humana insurance 문제,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누가 알랴?  그래, 이것도.. 고 차동엽 신부님 말대로 ‘희망으로 실망을 몰아내자’, 그 중에 하나다. 절대로 희망으로 살고 싶다.

문득 어제 전화가 잘 안 되었던 동서형님 생각이 난다. 걸까, 말까.. 카톡으로 걸어 보았다. 혹시나 어디 두 분이 가셨던 것은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고. 걸어보니 예상을 벗어나 곧바로 전화를 받으신다. 오늘은 카톡이지만 음성이 깨끗, latency도 없는 듯해서 밝은 심정으로 짧은 통화 성공! 아하~ 감기에 걸리셨다고 하신다. 그러면 그렇지.. 목소리가 잠긴 듯 들리고. 이 정도면 통화는 성공, 짧게 끊는다. 앞으로도 10년 인생선배님과 이렇게 연락을 하며 살고 싶다. 나도 못지않게 외롭기 때문일 거다.

찬란한 태양의 따뜻함과는 정반대의 대기권의 싸늘함, 게다가 바람까지.. 이런 날은 바깥에서 일하는 것은 매력적이 아니다. 오히려 집안에서 무엇인가 결과가 보이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다. 무조건 attic으로 기어올라간다. 엄청 쏟아져 나온  attic에 있던 것들, 거의 모든 것들이 WAN/LAN network wire, cabling 종류들, 엉키고 설킨 30여 년의 유물들, 시간이 걸리는 귀찮은 것들이다. 한가지 알 수 없는 것, old analog TV antenna 다. 이것은 조립식이 아니고,  전체 크기는 상당히 큰데, 이것을 어떻게 shipping delivery를 했을까? 도저히 할 수가 없는데..  쉽게 이해가 안 가지만 유일한 해답은 내가 ‘아마도’ 이곳의 어떤 retail store에서 산 것이 아닐지. 혹시 옛날 옛적  Radio Shack같은 곳은 아니었을까?

이곳 저곳 방에 있었던 cable, network outlet 들이 없어진 곳을 repair해야 한다. 벽을 고치는 작업은 나에게 비교적 쉬운 것이지만 지금은 귀찮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구멍이 뚫린 것을 안 고칠 수는 없는 일, 오늘 잘 하면 시작은 할 수 있지 않을지.

드디어 엉키고 설킨 heap of cables & wires, 정말 한 뭉치의 30년간의 networking workhorse가 분류, 정리가 되어서 밖의 shed옆으로 퇴출이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 이것을 재활용할 기회는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고물 analog 안테나도 결국 밖으로 쫓겨나고.. 아~ 미안하구나.. 하지만 세월을 탓해야지 어쩔 수가~~

역쉬~ 드디어~ 나는 지독한 시차 후유증에서 벗어났구나~  깨끗한 잠, 정확한 시간 6시 30분에 일어날 수 있었으니.. 감사, 감사..  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아~ ‘녀석’이 구석에 푸푸를 해 놓았으니~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최근에 갑자기 날뛰는 듯한 활발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것은 무엇인가? 왜 밖 porch로 나가지 않고, 실내인 이곳에?  참, 살기 힘들다, 왜 너까지 나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마도 litter box를 집안으로? 아~ 싫다, 싫어…

가벼운 우울함이 넘실거리며 나를 노려본다.  희망으로, 희망으로.. 이것을… 희망, 이 나이에 희망이란 것이 어떤 종류일 것인지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지 않을지. 있다 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것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생의 마지막을 향하는 마당에 속된 희망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고 차동엽 신부님 왈 희망으로 절망을 쫓아 내야 한다는데.. 어떤 희망이 남아 있단 말인가? 아~ 근래 나는 확실히 ‘영적 영역’에서 많이 벗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2010년대의 내가 빠져서 허우적대던 바로 그 ‘영역’, 도저히 지금은 그때처럼 ‘초월적 기쁨’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하느님이 ‘홀연히’ 사라진 듯한 환상에 빠지게 한단 말인가? 어떻게? 아~ 성모님이시여~

 

서예족자, 예기치 못한 죽음, 지미 카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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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건너온 선물, 오늘 드디어 동서형님이 신경을 쓰셔서 챙겨준 ‘서예족자 2점’ 을 펼쳐서 등 뒤에 걸어 보았다. 이제야 전체의 모습을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군포, 산본로, 래미안’ 등의 추억을 살리고 떠올리며 처형님 댁과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나 이 족자의 ‘멋진 글씨’가 따뜻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아~ 드디어 결국은 동갑내기 R형이 한국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최악의 예상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연숙이 처음으로 카톡 text를 보았다. 아직도 실감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제는 조금 다른 강도의 실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100% 실감을 못한다는 착각 속에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를 않는 걸 어쩐단 말인가? 이곳에서 내 눈을 보기 전까지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이제 그는 정녕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걸 어찌한단 말인가? 죽음이 나의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하다. 잘 살아야 한다. 잘~ 후회가 없도록~ 하지만 나는 근래 너무나 후회할 수 있는 상태로 고민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어쩔 것이냐?

오늘 또 다른 ‘선종’ 소식을 본다. 아~ Rosalynn Carter.. Dies at 96…

사실 96세 타계면 크게 놀랄 것은 거의 없겠지만 나에게는 다른 사실들로 가슴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이 사진 NYT에 Carters의 예전 모습들, 그것은 1977년 1월 새로이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Jimmy Carter와 그의 식구들이 취임식 때 Washington DC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 그곳에 카터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우선 1977년 1월 무렵, 그때의 나의 모습들을 기억해 보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인 것이다. 한창 호르몬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때, 나의 모습이 그립고, 시대를 뛰어넘는 카터의 인류박애적 인간성, 그것이 지금의 ‘최악 중의 최악 D. Trump’와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고민과 고통..  어떻게 카터는 이렇게 성인군자로 비교가 되는 것일까? 인생의 후반, 말년을 그와 같이 보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 참 세상이 어찌 이렇게도 타락해가고 있단 말인가?

오늘 S 헬레나 자매를 만나서 들은 얘기가 아주 희망적을 넘어서 기쁜 소식이었다. 며칠 전 우리가 목격한대로 설형제가 집에서도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집안에서 보고 느낀 것이 예전에 비해서 ‘좋은 가정적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처럼 보이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부심과 심지어 나의 노력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실망을 거듭했지만 이 형제가 드디어 가정 생활에 신경을 쓴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것 이외의 다른 행동들은 여전히 ‘자기만의 세상을 사는 모습’이긴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봐 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아~ 성모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아침미사에는 ‘류해욱’ 요셉 신부님이 오셨다. 확실히 류신부님은 오래 전 가벼운 stroke이후 발음과 바른쪽 손에 가벼운 후유증이 아직도 보인다. 목소리 조절이 잘 안 되어서 어떨 때는 너무나 큰 목소리일 때도 많고, 바른 손이 아직도 부자유스러워 미사 제대 집전과 성체분배에 곤란을 보인다. 이때마다 나는 친구 건주를 생각한다. 건주가 이 정도로만 회복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Server closet을 아예 없앤다고 너무나 빨리 기대를 한 것이 조금 성급한 결정이었다. Server PC 를 나의 lab room으로 옮겨 왔지만 소리도 시끄럽고 볼품도 없고 싫어서, 혹시나 하고 server closet의 wifi signal 을 check해 보니~ 와 이곳도 실내나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  예전처럼 이곳에 server를 두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모든 ethernet wire를 철거해도 wireless 로 이곳에 server가 있어도 되는 것이어서 다시 closet에는 예전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cabling은 attic이외에는 필요가 없게 되었다.

Thirty Eight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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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조금 특별한 날인 이유는 ‘물론’ 9월 17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작은딸 ‘콩콩이’ 나라니 ‘제2의 돼지엄마’가 38세가 되는 날… 이제는 38이라는 숫자의 제대로 된 느낌이 들어오지 않지만 ‘그래도’ 40 은 안 되었기에 조금 편안하구나.. 그래, 콩콩아 행복한 삶의 세월이 꽤 많이 남았으니 행복하게 살기를, 하지만 진정한 행복과 삶의 의미도 함께 찾는 여정이 되기를 성모님께 기도를 한다.

문득 떠오른 사실, 근래에 들어와서 나는 점점 심해지는 망각증을 경험하고 있고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데, 혹시 이것은 현재 내가 고통으로 느끼는 격심한 감정의 파도의 영향은 아닐까~ 전혀 엉뚱한 생각이 아니라는 느낌.. 그럴지도 모른다. 나의 현재 머리 속은 얼마 후에 경험하게 될 불확실한  불안 속을 살기에 그것이 바로 코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기억력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아주 나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격변적인 감정의 파도가 조금 잠잠해지면 다시 나의 망각적 현상이 수그러질지도 모르지 않을까?

성당 아침 주일미사, 마침 주임 신부님을 마주할 기회를 가졌다. 다행히도 연숙이과 함께 있었기에 나에게는 조금 쉬운 만남이 되었을지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요한 것, 등대회의 임원진 변경에 대한 것을 보고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주보 공지를 하게 되면서 신부님이 조금은 우리와 등대회 관계를 새로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전임 신부님에 비해서 어렵기만 하니..  활동이 저조해지고 있는 요셉회를 언급하며 등대회의 새 역할을 조금 더 주지할 수 있었으면 좋았는데… 앞으로 기회를 더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거다.

미사 직후 등대회 신임 총무 A자매 부부와 임원회의를 했고 나의 첫 월례모임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때 이 부부에 대한 새로운 느낌들이 적지 않았다. 그 중에 이 자매의 남편에 대한 태도가 의외였다. 남편의 발언을 일방적으로 묵살을 하는 극단적인 태도… 전에 못 보던 모습이어서 조금 의아했다고 할까..  이 자리에서 원로 회원 이요셉 형제가 와서 좋은 조언들도 해 주어서 사실 ‘생산적’인 경험이 되었고… 속으로~ 아… 이제는 돌아설 수 없는 나의 책임이 조금은 무겁게 다가옴을 느끼기도… 그래, 후퇴는 이제 불가능,, 앞으로 나아갈 길 밖에 없지 않은가?

Bakery ‘하얀풍차’에서 나라니 생일cake를 pickup해서 나라니 집엘 갔다. 오랜만에 보게 되는 Knox는 정말 예쁜 모습을 보여준다. 나라니의 임신, 출산의 심했던 고생도 이것으로 다 잊을 수 있지 않을지… 나중에 새로니 식구까지 합세해서 이날 생일축하 가족모임은 성공한 셈이다. 유나, 로난과도 다시 사귈 수 있는 시간도 되었고.. 그래, 이렇게 사는 거다, 이렇게… 별다른 것 있는가?

나라니가 조금 몸이 편해졌는가, 아니면 Luke가 더 일을 했던가… 오늘 본 그들의 ranch house는 유난히 깨끗한 모습이었다. 사람의 손이 자주 갔다는 뜻이 아닐지..

조금 더 커버린 로난 개구쟁이 표본, 이제는 우리들을 보면 장난을 칠 정도로 친근함을 보인다. 할머니와는 그 동안도 가까웠지만 나하고는 아직도 조금은 거리감을 보여주었는데, 오늘은 내가 달려가 안아 주어도 별로 도망치지를 않는데… 이것은 조금 나를 가까이 본다는 뜻이 아닐지… 문제는, 문제는, 녀석과 우리와의 ‘얼굴 생김새’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듯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 재미있기도 하고, 아니면…

NINE ELEVEN, NINE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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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의외로 바쁜 이른 아침의 이 경험~ 성모님 어머님들 감사합니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를 않는다. ‘근심, 걱정의 악마’에 짓눌리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나는 성모송 생각으로 이 괴로운 시간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고 오히려 이른 아침에 에너지까지 얻는 은총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너무나 성모님의 생각을 기도로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각종 유혹, 걱정, 근심 등을 왜 이렇게 의탁을 못하고 나 혼자의 힘으로 싸우려고만 했을까?
어제 성당 미사 외출 이후 나는 완전히 모든 일들을 잊고 지냈다. 이것이 진정한 휴식인가 아니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주는 것인가 솔직히 나는 모른다. 하지만 휴식이 필요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너무나 나는 ‘알만한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NINE ELEVEN 이란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세월의 무서움.. 어떻게 그런 처절한 기억이 이렇게나 희미해질 수가 있는가? 이즈음 이날의 기억은 모두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로써는 ‘어려운 세월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인류 역사 이후, 최악의 악 중의 악을 생전에 나의 눈으로 경험한 것,  이후 나 개인적인 우울한 세월의 시작이 된 그 시기… 잊고 싶은 향후 10여 년을 맞았고..  그날의 시작은 아마도 이 9/11의 ‘파랗디 파아란 초가을 하늘’의 모습에 아직도 남아 있는가… 하지만 오늘의 이른 아침의 하늘은 그때에 비하면 전혀 파랗지 않구나…

오늘 아침부터 나를 불안하게 했던 것, 성당 등대회 일, 카톡 공지를 하는 것, 어쩌면 내가 이렇게 겁을 냈을까? 갑자기 머리가 깜깜해지고 도망가고 싶었던 그 짧은 순간들.. 오늘은 한마디로 ‘성모송’의 무서운 힘을 이것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성모님의 도우심을 찾는 순간부터 나는 일사천리로 모든 일을 마친 것이니까.. 정말 이것은 작은 기적일지도… 성모 마리아 어머님, 고맙습니다!

일단 손에 익숙해진 일들의 행군이 계속되는 날, 오늘은 이미 끝난 under sink cabinet 에 이어서 역시 오랜 세월 방치되어가던 곳, 쓰지도 않는 Jacuzzi 의 deep cleaning을 단행하였다. 이것은 쉬웠지만 사실 이곳의 천장은 손을 보아야 하는데… 원래 이곳에 sky light가 있던 것을 roofing을 할 때 완전히 그것을 없앴는데.. 그 [sorry] ‘빠가’들이 시로도처럼 처리를 해서 조금 천장이 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내가 cover-up, repair를 할 수 있을 듯하다.

연로한 양양이의 식성 맞추기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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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간 (6시 반)에 일어나며 오늘은 유난히 ‘양양이 녀석’의 식성에 신경이 갔다. 마지막으로 ‘토했던’ 때가 언제였는가~ 기억이 확실치 않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또한 wet & dry food를 함께 놓고 문제없이 먹는다는 사실은 더욱 반갑던 것이다… 오늘도 주자마자 먹어 치웠는데… 하지만~ 역시… 조금 있더니 그 많은 것을 모두~~~ 실망, 실망…  그러니까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을까.. 조금씩 먹이면서 구토의 횟수가 줄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후에 생각해 보니, 기쁜 마음에 녀석을 porch에서 갑자기 안아 준 직후에 토한 것, 혹시 그것이 원인의 하나였는지도…  오늘은 토하자 마자 dry food를 더 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운 것, 최소한 식욕만큼은 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 하나는 기뻐하고 싶다. 과연 10월  한 달 긴 나날들, 이 녀석이 홀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는지 아무리 상상을 해도 알 수가 없으니… 아~ 어머님들, 이 ‘늙은’ 아이 좀 보살펴 주세요~~

올 여름을 보내는 마지막 광경 중의 하나, 두 송이의 선인장 꽃이 하얗게 이른 새벽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이것을 다시 보려면 내년 6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아득~ 하게 만든다. 이유는 자명하지 않을까? 자명? 무엇인데? 그때의 우리 모습을 미리 상상하는 것, 재미도 있고 걱정도 되고…  그때에는 우리는 ‘大長程’을 끝낸 오랜 후일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전혀 안 가는 것이기에…

무엇을 먼저 해야 오늘 하루 나의 다른 일들이 잘 풀릴까~ 이것 조금 해괴한 생각이 아닐까?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첫 매듭이 잘 풀리기 시작하면 나머지 것들도 쉽게 풀린다.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 오늘은 ‘작은 외출’이 이른 오후에 있으니까 우선 한가지 일은 확실히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웬 놈의 after-check이 그렇게나 많은지… 하기야 눈에 수술을 한 것이니 이해는 가지만…

서류-책 정리는 ‘아직도’ 미루고 있지만 자신은 있다. 한번 손에 걸리면 아마도 하루도 되지 않아서 끝날 수도 … Shed/Tool 정리도 일단 시작을 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 사실은 다음 것을 위한 나의 계략이라는 것도 잘 안다. 진짜 진짜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10월 대장정 준비, 물질적, 정신적’ 라는 것이 머리 속에 가득한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지내는 나의 ‘가식적’인 모습이 가소롭다. 순진한 연숙이는 분명 내가 정말 ‘흥분이나 긴장’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아~ 나의 가식 중의 가식이여~~ 봐 주라~~

10월의 ‘어느 멋진 날’ 이라지만, 나에게는 누구를 만나며,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안개 자욱한 나날들로 느껴진다. 그저 풀리는 대로 끌리는 대로 갈 뿐이다. 이것 조금 너무한 것 아닐까? 누나에게 어떻게 연락을 할 것인가? 과연 나는 누나와 마주할 자신이 있는가? 그리고 엄마의 잔영은 어떻게 찾고 대할 것인가? 이것들이 다른 모든 것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데… 왜 이다지도 마주, 맞대면, 정면돌파를 피하며 사는 것인가? 이것이 정말 나의 진짜 모습인가?

나의 화장실에서 며칠 만인가~ 일을 보다가 느낀 것, 아하~ 이곳이 바로 바퀴벌레의 소굴이었구나! Bug spray를 이곳 저곳에 뿌려보니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를 보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할 것인가? 일단 나의 화장실부터 대청소를 하고 싶구나… 이것이 제대로 끝나면 우리 집의 모든 under sink/cabinet들의 ‘쓰레기급’을 모조리 꺼내어 정리, 처리를 하면 어떨까? 떠나기 전에 이런 것이라도 하고 나면 조금 머리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아닌가?

오늘 예정된 연숙의 백내장 눈시술 준비 검안, 오늘은 예상 밖을 시간이 좀 걸렸다.  전에는 몇 분만에 끝난 듯 했는데 오늘은 한 시간 이상이 걸린 것이다. 이것으로 한쪽 눈에 대한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이다. 이런 3차례 방문이 다른 눈 수술에서 그대로 반복이 되니… 허~ 도대체 이런 지루한 절차, 아무에게서도 듣지를 못했으니..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연숙이의 시력이 월등 나아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무슨 문제랴?

갑자기 어지럽고 기운이 떨어진 연숙이의 모습에 나는 가차없이 실망, 불만, 화까지 참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인간인가? 조금 더 넓은 배려를 하며 위로를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현재 나름대로 열심히 가정과 그녀를 돕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 이것 혹시 지나친 자기도취는 아닌가? 사실상 나는 그렇게 믿고 사는데 이것은 사실일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현재 내가 불만을 갖는 것은 절대로 나도 싫은 것이다.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든 것일까?

올 때 McDonald’s에서 늦은 점심으로 QuarterPounder 을 정말 오랜만에 즐겼고, 특히 그 자리에서 나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큰 여행’의 스트레스를 잠깐 언급을 했다. 아~ 나는 요사이 아니 근래에 연숙이에게 나의 깊은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 나는 안다. 하지만 다시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는 현재 나의 삶에 너무나 익숙해진 것일까, 나도 어떻게 이것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지 전혀 idea가 없다. 다만, 다만, 이것은 나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이라는 것, 그것은 우리 두 어머님들의 사랑에 의지하는 것 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안다. 성모님, 성모님, 저의 어머님을 다시 찾으러 갑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그 강변으로…

Devil’s Masterpiece Red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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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기만 한 ‘세상의 소식’, 오늘은 나에게 안전한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기분까지 산뜻하고 유쾌하기까지… 무엇 때문인가? 물론 제일 큰 요인은 GEORGIA INDICTMENTS  [숫제 공개적으로 나에게 몇 표만 만들어 주라고 협박 전화질하는 현직 대통령, 세계사적 코믹의 극치] 에 관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상상만 하던 AL CAPONE, ATLANTA JAIL,  ALCATRAZ 등등의 그림들이 깊은 속의 체증까지 가볍게 해 주는 듯.. 

NYT 에서 보는 이 코믹의 극치, 이 개XX, ‘목의 힘줄,을 보라. Devil’s Masterpiece, 나에게 이XX의 가치는 minus Infinite지만 이XX를 따르는 XX들에게는 무한한 동정과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왜 또 나는 이런 함정에 빠졌는가, 잊자, 잊어… 성모님 도대체 2016년 이후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어제 먹다 남은 하아얀 쌀밥, 분량도 딱 2인분… 갑자기 시원한 물에 말아먹는 쌀밥, 감칠맛 나는 ‘먹다 남은’ 생선전, 달걀 후라이, 마늘 조림, 그리고 사과 쪽… 더운 여름의 아침 식단으로, 노력도 거의 없는 편안함과 함께 오늘 아침을 때운다.  지속되는 육체적인 근육의 스트레스로 드물게 밥맛이 저하되는 올해 여름에 바로 이것이 나를 살려주는 보물이 되었다.

유난히 산뜻한 몸과 마음을 느끼며 일어난 6시 30분,  ‘아침등불’을 향해서 걷는 복도에서 느끼는 공기는… 아하~  어제와 비슷한 것, 시원한 정도를 넘어서 싸늘함까지.. 광복절, 성모승천, 말복 등이 살짝 지나간 이 즈음의 모습들, 비록 매년 반복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계절의 행군은 매일 똑같은 세월의 느낌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은근히 반갑다…

 

오늘 드디어 1987년 경 콜럼버스 Ohio State 시절 중앙고 ‘새카만’ 후배 김종수가 만들어준 어린이  ‘2단 침대’의 마지막 유물을 찾아서 무슨 골동품, 유물을 다루듯이 사진까지 찍어 두었다. 이 부분은 침대의 옆 부분 판자인데, 다른 부분은 이미 사라진 후.. 이것으로 추억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증거물’을 기회가 되었다. Morse Road  Kings Hill apartment 지하실에서 둘이서 만들었던 이것, 이곳으로 이사올 때도 가져와서 아이들이 한동안 쓰던 것인데…  참 세월은 많이 흘렀구나~~

이것과 연관된 그 당시의 추억은 비교적 생생하다. 목공 carpentry에 지대한 관심과 재능이 있었던 후배 김종수의 ‘권유, 아니 거의 pushing’ 로 난데없이 집 근처에 새로 생긴 home center [아마도 Hechinger 현재의 Home Depot가 나오기 훨씬 전] 로 나를 ‘끌고 가서’ 필수 power tool과 lumber를 사다가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빨리 2단계 침대를 만든 것이다. 이 손끝 좋은 후배, 정말 그는 목공의 신, 귀재라고나 할까… 그의 Buckeye Village dorm에 가보니 그곳에는 거의 완전한 침대와 각종 가구들이 모두 그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 이 ‘사건’의 덕분에 이후 나도 power tool를 가지고 아주 초보적인 일들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후 살고 있는 집을 고치며 사는데 지대한 자신감까지 주었으니… 종수야~ 고맙다! 그 당시 샀던 power tool [주로 Black & Decker]들 중에 2개는 아직도 ‘생생하게’ 동작을 하고 있어서 사실 더욱 그 당시의 추억을 잊을 도리가 없구나…

처리 곤란했던 particle board들이 빠져나간 덕분에 우리 집 뒷마당의 모습은 서서히 옛모습을 찾기 시작하고 있다. 갑자기 넓어진 ‘그곳’은 이제 연숙의 화단이 옛모습으로 돌아올 것인데, 이제 남은 문제는 engine oil을 폐기하는 것, 목재 이외의 잡동사니들이 갈 곳을 찾는 것 등등…

물기에 젖은 후 더 무거워진 듯한 각종 particle board들이 드디어 우리 집 전 용 private dump로 하나 둘씩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작업은 도끼로 각종 크기의 board들을 작게 부수고 wheel barrow로 일일이 나르는 중노동, 그것도 작열하는 햇볕을 무차별로 받아가면서… 아~ 이 불쌍한 칠십 대 노인에게 아직도 이런 힘이 남아있었던가…

연숙이 나라니 집에 ‘산모’ 음식을 해서 배달하러 가는 바람에 나는 오랜만에 혼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이제는 이런 점심 준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내가 평소에 먹을 수 없었던 것을 맛볼 수 있으니까… 그 중에서 내 방식의 ‘너구리 라면’은 이럴 때 적격이다.

Ozzie Trail, Four M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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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른 때와 조금 다른 route을 골라 걸었다. 동네 tennis court에서 Ozzie Trail (Azalea Spring Apt.로 가는 길), 그리고 그곳에서 Fall Apt (East Side) 로 가서 거의 떨어져가는 poop bag을 3장 얻어서, 그곳에서 거꾸로 Ozzie Trail을 거쳐 집으로 오늘 길… 이렇게 해서 오늘은 YMCA indoor track과 함께 거의 4 mile을 걷게 되었다. 나의 하체는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노력이 아닐지…  lower body, 하체, 하체… 이 나이에 넘어지면 큰일, 아니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무섭게 습하고 더운 날씨, 다행히 구름으로 대부분 덮인 덕분에 산책을 하는데 오히려 편했다. 더욱이 가끔 빗방울도 뿌렸으니… 얼마나 멋진 7월 중순을 살고 있는가?  언제나 목이 빠지게 동네 산책을 기다리는 Ozzie, 우리와 정이 들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인데… 아~ 언젠가는 이별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Low 70s 와 low 90s 에 머무는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대표적, 전형적 7월 여름의 모습이 계속.. 습한 새벽은 까마득한 옛날 1960년대  서해 앞바다  영흥도 여름피서 민가 초가집 마룻바닥의 그때를 연상하게 한다. 모기에 밤새 뜯기며 옹기종기 모여서 새벽 잠을 자던 그 여름,, 한 여름… 아~ 이제 서서히 ‘복 날’이 시작되는 때가 되지 않았는지, 초복이 언제이던가?

새벽 6시 정각에 일어나 두 pet friends (Ozzie, Izzie)를 돌보고,  도리도리(목운동), 수난의 시간 매일기도가 끝나고, 며칠 째 고생하는 팔뚝의 가려움을 달래려 Pain Zero를 바르고… 오늘 연숙이 제대로 일어나면 ‘또 오랜만에’  우리 정든 동네성당과 운동을 하러 외출… 정말 우리 이런 하루 하루 삶, 보람이 있고 신나는 것은 아는 듯하지만, 사실은 남들도 거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상한 비교를 하는 것은 유혹에 불과하다. 모든 사람들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외로운 것도, 신나는 것도, 지루한 것도, 희망과 우울이 교차하는 것도… 아마도 거의 마찬가지 현상일 것, 어찌 또 잊으려 하는가?

지나간 해의 7월 일지를 보니.. 하나도 별로 달라진 삶의 모습이 아니다. 가족들과 가끔 어울리는 것, 특히 Ozzie와 함께 산책을 하는 기록이 예외 없이 매달 보이는 것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그야말로 현재 ‘정상적 삶’인 것이다.  이상한 기대를 상상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자!

불면의 후유증을 뒤로하고 오늘은 거의 일주일 만에 아침 매일 미사엘 갈 수 있었다. 일주일 3회 정도 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참 이것이 옛날처럼 되지 않으니… 무엇인 문제인지.. 아침미사가 주는 활력소는 사실 대단한 것임을 아는데… 옛날, 그러니까 레지오 시절, 아침미사는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저 좋은 것, 성스러운 것, 은총인 것…

 오늘은 Sonata Cafe대신 McDonald’s 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모처럼 먹는 No. 2 menu는 아직도 맛이 있었으니… 우리의 입맛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가… 다행이 아닌가, 우리의 입맛이 이 정도인 것이… YMCA도 그런대로 할 만큼 했고, 돌아오는 길에 Kroger에서 나의 콜레스테롤 약 refill을 받았고, sushi, 과일, croissant  등등을 샀다. Izzie의 wet can food를 다른 것을 시도하려고 2통을 사왔다. 이것은 현재의 것보다 양이 많은 큰 can이라서 값이 싼 셈인데… 이것을 어떻게 먹을지 궁금하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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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유난히도 나의 머리 속을 맴돌던 6.25 바로 그날, 그것도 일요일, 오늘은 유난히 더 생각하며 보내면 어떨지… ‘오늘의 성인’ 말씀은 우연히도 ‘기억보다는 망각, 용서’의 주제가 나오고… 그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침착하게 반성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여름철 같은 날씨로 돌아온 연중 12주 일요일이 공교롭게도 1950년 그때와 같은 일요일이 되었다. 73주년이고, 7월 27일의 정전 기념일은 70주년…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한국 예수회의 관할 하에 있어서 그런지 (공식적으로 이곳은 아틀란타 대교구의 한 본당이지만) 전례는 대한민국의 그것을 따르기에 오늘은 6.25 동란과 직접 연관이 된 ‘민족화해’가 주제다. 6.25에 대한 느낌이 우리세대보다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젊은 사제들’, 가끔 색다른 각도의 조국, 이념, 역사관을 만난다. 이런 부분이 사상 이념 차이 하나로 동족을 잔인하게 죽였던 6.25 , 그것의 끝 자락을 경험한 우리들에게는 항상 예기치 못한 ‘지뢰밭’ 같은 위험한 실망과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올해 6.25 동란과 나의 Landing 50년이 거의 같은 시기에 맞물려 좀 더 이성적, 아니 심지어 영성적으로 느끼려고 했지만 역부족인가, 큰 깨달음은 나에게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다. 각종 이산가족들, 특히 전쟁고아들의 삶을 다시 보며 그런대로 나는 비교적 덜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 울분, 안타까움, 절망감 등과 싸우던 내 생애의 늦은 한때도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의 앙금이 아닐까 추측도 한다.

비록 Landing 50년의 짧지 않은 diaspora의 삶, 만약 6.25라는 세 숫자가 없었다면 과연 현재의 나의 이런 ‘방랑’ 인생이 과연 있었을까?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쟁이 안 일어났다면 개인 역사를 제쳐두고라도 과연 대한민국, 남한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역사학자들은 이런 what if scenario에 대해서 연구해 보았을까?

오늘 아침 성당 가는 길은 예외적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제시간에 출발했지만 성당에 도착한 시간은 미사가 시작되어 독서가 시작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에 미사에 안 갔던 날은 있었지만 늦게 도착한 적은 근래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도 늦게 도착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나에게 오늘과 같은 이런 때는 괴로운 순간들이다. 차 사고, 차 사고, 어찌 I-258 N는 그렇게 사고가 많은 것인지… 그것도 traffic이 한산한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분명히 ‘병신XX’들의 speeding 탓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옛날 옛적 고국에서 시내 버스를 타면 운전사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그림글씨카드에 천사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 옆에 ‘오늘도 무사히’라고 쓰여있었던 기억, 그 모습이 요즈음 이런 교통 사고 현장을 지날 때마다 생각이 나곤 한다. 이런 차 사고는 우리와 그렇게 먼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우울해지곤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타고난 운명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지…

푸틴과 프리고진의 대결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는 모양인가… 역시 러시아는 알 수 없는 나라인가, 현재 그들은 어떤 이념으로 살아가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삶의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재 그들에게 종교 자유는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만 제외하고 다른 권리들은 다 보장되어 있는가?  모든 것이 법치, 합법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됨은 나치 히틀러 독일을 보면 알 수가 있으니… 결국 그런 파국이 다시 세계를 못살게 굴기 전에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좋으나 싫으나 현대인의 삶의 기준은 dollar나 마찬가지로 Pax Americana에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드디어 이재욱 전 주임신부님이 이곳에 오신다는 ‘예보’가 주보 공지가 되었다. 나는 물론 전에 신부님의 카톡으로 알고 있었지만 조금 더 자세한 소식인지… 7월 초에 오셔서 7월 중에 성당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신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닐 듯하다. 우리와 이재욱 신부는 우리 성당생활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던 case여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이 간다. 앞으로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과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울지…

오늘 아가다 자매님이 팔 골절 수술을 받으시고 따님 댁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매기가 심해지는 것 같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직접 찾아보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불만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자녀들의 고충, 그것은 거의 고문과 같은 것일진대.. 장래 우리가 주위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며, 우리들의 부모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우리들의 과오, 처지는 어떻게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떨 때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기도, 기도밖에 해결책이 없는 것일까?

오늘 아침 식사 메뉴는 결국 Sam’s Club의 pizza로 해결이 되었다. 내가 돌아본 곳은 역시 cat wet can food를 파는 곳, 그곳에서 big can, big box 그것도 60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가격도 현재 먹는 것보다 저렴하기에 앞으로는 이것도 섞어서 주면 어떨까…

밭에서 따온 고추, 오이가 곁들인 미역국 ‘동네방네’ 점심을 감사히 받는다. 유난히 많이 재잘거리는 연숙이, 무엇이 그렇게도 신나는가, 모든 생각을 다 말로 표현을 하는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섭게 작열하는 태양과 더불어 치솟던 90도 이상의 더위가 한 순간에 고개를 숙였으니, 바로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곳의 ‘여름 비’가 아닌가? 깜짝하고 내리 쏟아지는 이곳 특유의 여름 비, ‘천문학적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계절의 선을 보이니.. 하지만 앞으로 ‘무서운 더위’가 올 것 같은 예보와 느낌은 체질적으로 나를 긴장시키기는 하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이런 stress와 맞서서 싸우련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무섭고 듣고 싶지 않단 말인가? 네가 무엇이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