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Oldies

아~ poor Ukraine,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는 수세로 몰렸다고?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지만 의외로 잘 싸우고 있었는데… 내막을 내가 잘 알 수는 없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Putin 개XX가 기뻐하게 하는 일은 막아야 하는데… 이것은 기도하는 것 외에 대대적인 무기공급과 경제적 원조밖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우리의 6.25를 생각하며 그들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는 심정,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침략자는 확실하게 응징을 받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말이 승리할 것으로 굳게 믿고 싶고, 믿는다.

Trump, American Monster  Trump Is Still a Threat 계속 보는 New York Times opinion headline들, 이런 표현을 들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나는 이들의 의견에 1,000% 이상 동감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정의의 승리를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고 싶다.

 

 

Groovin’, (Young) Rascals…  Ed Sullivan Show에 나온 모습, 이들이 한창 뛰던 시절은 우리에게는 흑백 TV 시절, 그것도 TV조차도 그러게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1960년대 후반 무렵의 추억 중에 이들의 노래는 너무나 익숙해도 그들의 실제 모습은 모르고 있었다. 이들이 Ed Sullivan 무대에서 공연하는 광경을 보니 의외로 깨끗한 모습들 [히피가 아닌 것, 수염도 없고 머리도 비교적 짧고], 노래도 멋지지만 청중석의 10대들의 괴성, 절규는 이미 Beatles 등으로 경험을 했던 것으로 이것은 아마도 Elvis Presley때부터 시작된 문화현상이 아닐까? 좌우지간 (Young) Rascals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 그 당시 pop song/singer박사 친구 용현이의 ‘말대가리’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이들에게 심취 하며 살았으니까… 그립다, 용현아, 그 젊었던 시절들이. 당시에 자주 들었던 이들의 Good Lovin’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Battery Power! 요새 이것을 재발견, 재실감을 한다. 무엇이 이렇게 battery technology, 즉 chemistry 에 힘을 주었을까? Electric Car가 먼저 떠오르지만, 다른 것들도 무수히 많은 application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의외로 backyard garden power tool에서 그 잠재력을 실감하고 있다.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가 자유를 맛보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한마디로 나에게는 game changer중의 하나인 것이다. 나의 의문은 이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chemistry 분야라서 그런지 발전 속도가 이렇게 거북이 같아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의 disruptive moment, 그러니까 Nobel상 수준의 대발명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laptop PC가 battery 만으로 1주일을 간다고 하면? 그렇게 되면 그 ‘과학자’는 분명히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인데… 아~ chemistry 가 갑자기 부러워진다. 

오늘 같은 날은,  예전 같았으면 바로 fast food 가 점심으로 완벽한 날이었을 것인데, 가급적 외식을 줄이자며 한 각오를 다지며 집으로 들어와서 손수 밥을 해 먹었다. 그것도 오랜만에 나의 ‘오로지 자신있는 요리’인 야채볶음을 먹었는데 이제 이것도 이력이 붙어서 조금 다른 조리법으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비록 가공된 음식재료는 포함되어 있지만 그래도, 집에서 cook을 해서 둘이서 푸짐히 먹는다는 것, 작은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주체할 수 없는 inflation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요즈음, 얼마나 적절한 식사방법인가? 앞으로 연숙의 텃밭에서 예상되는 각종  싱싱한 야채를 한동안 먹을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가슴까지 신선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deck옆에 있는 bush에 새로 부화한 새끼새들이 있었는데, 하마터면 bush를 자르다가 그들에게 큰 피해를 줄 뻔했던 것, 아찔한 노릇이었다. 아빠, 엄마 새가 주위를 항상 돌며 먹이를 주고 있었는데  사정없이 가지들을 자르며 보니, 속에 숨어있던 새집이 완전히 하늘로 노출이 되어서 우리가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는데, 설상가상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heat wave에다가 heat index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100도를 넘는데, 과연 이 아기 새들이 어떻게 견딜까 고민하다가 picnic bench에 있는 커다란 parasol을 새집 바로 옆에다 옮겨 놓으니 우선 뜨거운 직사광선, 태양열의 문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말 이것은 good idea였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이 났는지… 우연인지.. 새들에게도 조금은 이제 덜 미안하기도하고… 제발 아기 새들이 새집을 떠나기 전까지 문제가 없기를…

오늘부터 치솟는 heat index, 예전에 고국에서는 이것을 ‘불쾌지수’라고 재미있게 번역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습도와 온도가 혼합된 것인데 사실 이것이 높으면 피부의 땀이 증발을 제대로 못해서 괴롭다. 이 지역은 이즈음에서 이 지수가 치솟는 날이 자주 오는데, 관건은 이런 날 오후에 소낙비가 내릴 chance가 따라서 오른다는 반가운 기상과학적 사실에 있다. 열대성 오후 소낙비 정도라고 할까… 이것이 이 지역 여름의 즐거움에 속한다.  오늘, 내일 미국 거의 전역이 불볕더위와 높은 습도로 고생을 할 듯하다.

작년 여름에 backyard에서 모기 같은 벌레들을 zapping하는 DynaTrap, 결과는 아직도 알 수가 없지만 lamp, bulb가 망가져서 새로 order한 것으로 교체해서 오늘부터 vegetable garden에 달아놓았다. 나는 솔직히 그  효과에 회의적이지만 모기로 너무나 고생하는 당사자는 그래도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전기를 써 보았자 16W 정도여서 24시간 켜놓아도 문제는 없지만 과연 이것이 모기를 얼마나 control하는 것인지…

오늘 Home Depot에서 필요한 part들, 주로 PVC  pipe fitting으로 어제 물이 새던 곳을 고치는 마지막 작업을 하였다. PVC cement glue는 원칙적으로 cure 되는 시간이 몇 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몇 시간이고 기다린다. 혹시라도 물이 새는 모습이 지독히도 싫기 때문이다. 어제도 꽤 기다린 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물이 샌 것은 정말 실망이었다. 오늘 제2차 노력의 결과를 나는 또 하루를 기다리기로 했다. 급할 것 하나도 없으니까…

모든 잡스러운 일들이 다 끝난 후, 웃기는 일이 또 생겼으니… H-mart에서 sale을 한다고 해서 김치를 대량으로 사와서 담글 준비를 하는 연숙이 sink 아래에 물이 홍 거니 떨어진 흔적을 발견, 알고 보니 얼마 전 grinding tooth가 빠진 food disposer가 심한 진동으로 흔들리면서 물이 샌 것이었다. 그러니까.. 역시 이 disposer는 결국 교체를 해야만 하는 것, 와~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은 것인가, 끊임없이 나의 손을 기다리니…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는다. 내가 필요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기분이 나쁜 것 하나도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아직도 건재하고, 살아있다는 기회를 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Amazon Prime으로 order를 해서 내일 도착해서 큰 놀람이 없이 교체가 된다면 지체 없이 김치를 담글 수도 있을 듯… 

 

 

Early Morning Rain – Peter, Paul & Mary – 1966  

새벽 꿈과 씨름하다가 후두둑~ 빗소리가 들렸다. 먼 곳에서 시계숫자를 보니 잘… 아니다… 깜박거린다, 계속… 계속… 아하~ 어젯밤에 소낙비와 함께 천둥소리가 요란했고 전깃불이 깜박거렸지~ 그때 우리의 dumb digital radio가 시간을 놓쳤구나, 하지만 기쁘고 기쁘다.. 이런 천둥, 소낙비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밖으로 뛰어나가서 느껴보고 싶을 정도다. 새벽의 빗소리에서 Folk Trio Peter Paul & MaryEarly Morning Rain의 잔잔하고 쓸쓸한 oldie folk tune이 귀속에서 맴돈다. 속으로.. 아~ 편하고 멋진 하루가 열리고 있구나… 기대했던 만큼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지만, 대지 위에 남겨져 있는 그 하늘로부터의 물은 향기 그 자체로 남는 착각에 빠진다.

 

아침 New York Times 를 보니 유별나게 피하고 싶은 news는 보이질 않는다. 아니 지난 며칠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Phobia 수준까지 되어버린 나의 매일뉴스의 기피증은 조금 지나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의 하루의 mentality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기에 고육책이지만 계속되고 있다. Ukraine의 뉴스도 이제는 거의 뉴스처럼 들리질 않는다. 이것, Putin에게 제2의 월남전화가 되는 것은 아닐까… 희망은 물론 빠른 평화의 회복이겠지만 은근히 속으로 ‘질질 끌어서 Putin에게 치명타를 주는’ 그런 scenario도 없진 않다. 다른 쪽으로 이것의 경제적 여파인데, 결국은 우리에게까지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그것이 문제다. 현재 $4가 훨씬 넘는 gas price가 그 중에 하나다. Food price는 크게 걱정까지는 안 한다. 먹는 것만큼은 우리가 잘 control할 수 있다고 자신하니까.

 

오랜만에 back porch에 앉아서 명상에 잠겨있는 우리 Izzie, 비록 털들이 뭉쳐서 보기가 그렇지만 이제는 이런 익숙해진 모습도 귀엽다. 이제는 할머니 중에 할머니 수준인데, 그렇게 초비상으로 방어하며 살아온 생애, 이제는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양순해졌다. 나이를 의식하며 언제고 이별을 할 수 있는 준비를 안 할 수가 없다. 제발 편안하게 평화롭게 잠자듯이 이별을 할 수 있는 은총을 위해 기도를 하자… Izzie야~…

좋아하는 날씨에 힘입어 멋진 하루를 기대했지만 지내고 보니 무언가 많이 놓친듯한 느낌이 대부분이다. 한가지 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 것이 원인일 것이다. 이것 저것 눈을 돌리며 한눈을 팔고 거의 편하게 지내려는 게으름의 결과일 것이다. 큰 이유도 없이 피곤하다고 아침에 잠을 늦게 잤던 연숙의 모습도 별로 반갑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아침 미사도 못간 것이 은근히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내와 입장이 바뀌었으면 이해는 간다. 피곤한데 제대로 미사 차 외출을 하는 것이 쉽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나의 입장에서는 ‘조금만 노력을 하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 것을 어찌하랴…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각종 IoT technology toy들과 가까이 하며 놀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세상이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초저가격의 각종 wifi enabled microcontroller들, 이것이 역시 game changer역할을 하는 것, 예전의 embedded system과는 차원이 한 단계가 올라간 것이다. Hardware/Software 가 적당히 섞인 이것들, 과연 나는 왜 이것에 심취하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재미, 흥미’가 그 이유다. 지금 무슨 발명을 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무리, 늦었다. 머리를 적당히 쓸 수 있는 이런 활동이 지금 나이에 그렇게 흔한 것인가? 정치적인 issue가지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는 것 보다 훨씬 치매 방지에도 좋을 것 같다.

 

아~ 싸늘하고 춥고 귀찮다… 귀찮다~ 하지만,  Just Do It! 을 외치던 시절이 그립고 부럽다. 하지만 일어났고 준비하고.. 다시 해가 떠오를 주일의 어두운 아침을 본다. 오늘부터 연중 5주일 시작, 3주 뒤 연중 8주일의 한가운데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 아~ 은근히 그립고도 기다려지는 우리의 사순절이 서서히 다고 오고 있구나… 올 사순절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우리에게 어떤 희망과 현실, 절망, 의미를 남겨줄 것인가? 가급적 부지런히 즐겁게 보내면 어떨까? 그래 유쾌하게, 행복하게, 들뜬 기분으로 상쾌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도 좋은 것이다. 침울하지 말고, 너무 사색에 빠지지 말고… 조금은 말도 많이 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지난 밤, 분명히 거의 생생한 꿈을 꾸었다. 깨어나기 직전까지 분명히 기억을 했고,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는데 역시 아침 routine을 마치고 나니 더욱 더 희석해지는구나… 나쁜, 기분 나쁜 꿈이 아니어서 더욱 생각을 하지만.. 대강은 생각도 나는 듯하지만 그것을 생각, 글로 옮길 수가 없으니 환장하는 것… 그래서 꿈도 나중에는 상상으로 바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꾸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이것마저 없으면….의미는 다르지만 이것이 오래 전 좋아했던  Glen Campbell (with Bobbie Gentry)의 country oldie My Elusive Dream과 제목이 잘 들어맞는 것이 재미있구나…

사기치는 날씨! 이것이야말로 사기를 친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느낌과 실제의 느낌이 정 반대인가. 놀랍도록 싸늘하고 바람이 부는 느낌인 것이다. 게다가 8시 반 아침의 성전내의 공기는 거의 누구 말대로 에어컨을 잘못 켰나.. 할 정도였다. 불현듯 ‘무능의 화신, 책임자’의 불쾌한 얼굴이 떠오르지만 참는다. 신부님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나이 든 교우들이 감기 걸리기에 안성맞춤인 냉방에서 편한 미사를 기대하는 것. 솔직히 나도 떨고 불편하기 그지 없었으니… 하지만 나의 특기인 ‘내숭, 연기’ 하며 무사히 버티긴 했다.
말 한마디의 인사가 얼마나 하루를 경쾌하게 만드는가를 오늘 경험했다. 미사 직후 나오는데 전에 레지오 간부로 안면이 있던 자매 [우리에게 빵까지 선물로 준]가 뒷모습이 보기가 좋다며 웃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세상에~ 이런 행복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그리 흔할까? 나도 이런 말을 주위에 하며 살고 싶었는데… 자매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를 하루 종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미사 후에 하얀풍차 대신에 지난 주에 말했던 대로 둘루스 일명 ‘꼰대다방’에 가서 수다도 떨고 옆에 있는 서울갈비에서 감자탕으로 포식을 한 후 귀가를 하였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아가다 자매의 또 다른 급변화를 목격하였다. 완전히 건강한 웃는 얼굴과 자태를 보게 된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니 뜻밖의 큰 선물들을 받은 느낌으로 주일 오전을 보낸 것, 나는 정말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 성모님, 감사 드려요~~~~

 

모처럼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오후를 마음껏 즐겼다. 이런 때가 있으면 또 서서히 긴장되고 불편한 때가 분명히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조금은 현명하게 대처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지혜를 찾고 싶다. 그런 방법을 배우고 싶다. 성령의 움직임을 찾고 싶다.  성령의 움직임은 성녀 소화데레사의 전기를 연숙으로 하여금 찾게 해서 읽기 시작하게 해 주었다.  영어로 된 ‘원서 傳記’는 영어 번역이 정말 읽기에 괴로운 것이어서 아예 화장실에서만 조금씩 읽곤 했는데 이제는 조금 더 빨리 진도가 나아가게 되었다. 이 성인을 통해서 ‘누구나 성인 될 수 있다‘라는 과장된 듯 들리는 교훈을 배운다.

 

 

¶  Memorial Day, No Barbecue… ‘비공식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5월 마지막 월요일 Memorial Day를 조용히 맞는다. 아직도 코로나 사태의 무게를 느끼며 맞는 여름시작의 휴일.  가족 이외의 그룹이 모이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태. 기억으로 이날은 가족끼리 아니면 우리 둘이라도 deck에서 barbecue grill을 하고 beer를 마시던 추억들이 남지만, 올해는 아무런 계획 없이 let it be 하는 심정으로 이날을 맞는다.

연숙이 조금 피곤한 듯, 오늘은 나 혼자서 걸었다. 코로나사태 이후로 이 산책 길에서 새로운 얼굴들, 특히 비교적 젊은 가족들을 많이 새로 보게 된다. 우리 동네가 훨씬 젊은 느낌을 주는 듯해서 반갑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해서 우리 같은 ’60/70/80 세대’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느낌, 그야말로 never die, just fade away..의 심정인 것이다.

 

¶  顯忠 斷想  성조기 Stars & Stripes 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subdivision 산책길을 가면서, ‘현충 顯忠’이란 의미를 생각한다.  현충, ‘두드러진 충렬 忠烈, 충렬을 높이 드러냄’. 구체적인 의미로 이것은  국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 사람들의 충렬을 기리는’것이다. 미국의 현충일이 바로 오늘 Memorial Day인데, 날짜가 5월 말에 있어서 더운 여름의 기후와 맞물린 휴일이고 보니, 바람직한 엄숙함보다는 휴일의 한가함이 더욱 드러나는 그런 날이기도 하다.

나라를 위해 싸운다면 전쟁을 겪은 군인들이 제일 먼저 손꼽힌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났지만 애석하게도 군대나 군인의 근처에도 못 가 보았다. 호적상의 이유로 그렇게 되긴 했고, 그 젊었던 시절에는 하나의 ‘공짜, 혜택’으로 받아 들였다. 당시의 사회적 여건으로 보아서 군대 안 가거나 못 가는 것, 그렇게 흠이 될 것이 아니어서 두 번 다시 생각을 안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주변에 흔히 보는 재향군인들을 보면 부끄러워진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들은 나라에 제일 중요한 충성을 한 것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되어서, 두 나라에 충성을 하는 것, 언제나 머릿속 깊은 곳에서 나의 의식을 건드린다. 이곳의 또래들이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데 너무 열을 올리다 보면 반드시 이 문제가 걸린다. 미국과 한국의 이해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장래에는 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럴 때 어떻게 ‘충성의 선택’을 할 것인가? 간단치 않다.

 

¶  주일미사 미사강론과 공지:  어제는 그리스도교회가 탄생된 ‘성령강림 대축일 Pentecost Sunday‘ 일주 전으로 ‘주님승천 대축일 The Ascension of the Lord‘이었다. 부활주간이 서서히 물러가며 4번의 대 축일이 이어진다. 교회 전례력에서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축일들이 시작된 것이다. 올해는 예외 중의 예외로 모든 것들이 비공식적 전례로 바뀐 것이다. 어떻게 그 놈의 ‘우한바이러스’는 이런 때에 이곳에 들어온 것인가? 우연일 듯도 하고 아닐 듯도 한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글자 그대로 보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갔다’ 고 나온다. 이것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가? 어떤 영화를 보면 글자 그대로 구름 속으로 둥둥 떠오르는 것을 묘사한 것도 있었다. 소위 깨었다는, 이성적, 과학적이라는 인간들은 그런 것들을 ‘고대적 신화’라고 재미있게 조롱하곤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과연 그럴까? 과연…  정말 확실히 그 묘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 ‘과학적 방법’으로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가? 의심의 여지는 없는가? 이것이 믿음의 관건이다.

이날 공지사항에서는 대교구의 ‘대교구 미사 제한적 재개’ 방침이 알려졌고 순교자 성당도 5월 30일 토요일 특전미사부터 공식 재개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제한조건이 꽤 심각한 것으로, 관건은 이 조치를 보조할 ‘(자원)봉사자’들이 확보되는 것이었다. 매 미사 때마다 봉사자가 점검이 되고 안 되면 미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미사 참례인원 100명 이내로, 모든 미사 외의 모든 활동 중지… 미사 중 신자들은 소리를 낼 수가 없다… 등등.. 이것이 소위 말하는 제1단계 미사재개의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할 때가 온 듯하다. 우선은 6월 달 동안은 온라인 미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고, 예외적으로 가끔 성당엘 가는 것은 OK, 정도로 의견을 모았다.

 

¶  HP P1102W: Saved by the bell:   얼마 전에 갑자기 ‘죽어버린’ 우리 집의 main laser printer HP P1102W, 근래에 들어서 hard copy print를 할 일이 거의 없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불편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Backup printer로 Color Inkjet printer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Ink값이 장난이 아니라서 또한 불편하다.  이런 기회에 종이의 양면을 자동적으로 print 할 수 있는 Automatic Duplexer가 있는 것을 장만하면 어떨까 하고 Brother Printer를 Amazon에서 사게 되었다. 값이 상당히 저렴해서 자세히 보니 역시 reconditioned 인 것, 그러니까 return된 것을 다시 test해서 파는 것이었다. 물론 나에게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printer를 받아보니… 이럴 수가? Toner cartridge를  printer에 넣으려니 들어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혹시나 맞지 않는 toner를 보냈나 하고 자세히 보았지만 그것은 맞는 toner였다. 그렇다면? Printer를 자세히 살펴보니… 와~ 해체를 했다가 다시 조립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한마디로, ‘찌그러진’ 상태로 조립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제는 대 大 Amazon의 quality control도 못 믿게 되었다. 이런 적은 아마도 나의 기억에 한 번도 없었다. Toner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엉망으로 재조립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놀랍기만 하다. 당장 return process를 시작하고 UPS에 갖다 주면 끝나지만 Amazon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버려지기 일보 직전에 구출된 정든 printer

 

다시 printer를 order하려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Not So Fast… 갑자기 죽어버린 printer가 왜 ‘갑자기, 조용히’ 죽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거의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전에 분해를 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것, 유난히도 어려워서 포기하였고, 마지막으로 한번 다시 전원을 켰는데…..  이 사실도 믿을 수가 없다. 그 printer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완전한 상태로… 내가 죽었다고 판정을 내린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그것은 ‘가사상태, 죽은 듯이 보인 것’ 뿐이었다. Power system도 요새는 많이 digital circuitry화 되어서 어느 정도 ‘기억’을 하기에 만의 일의 사태에 이렇게 완전히 power system이 lockup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불찰은, 그것을 좀 더 오래 두고 보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괜히 돈을 쓸 필요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던 Automatic Duplex printer는 물 건너가게 되었다. 또한 한때 죽은 것처럼 보였던 정든 printer가 생명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죽지도 않은 사람을 관속에 묻기 일보 직전에 살아있음을 알고 구해내는 것, 이것이 바로 Saved by the bell의 그림이 아닌가?

오래 전만 해도 의학기술의 미비로 사람이 죽었다고 판정을 내리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때, 가사 假死 comatose 상태의 사람을 생매장 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관을 열어보았을 때 어떤 관 속에는 나오려는 흔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관 안에서 밖으로 연결된 종을 달아놓고 의식이 돌아오면 그것으로 ‘살려줘!’ 하고 알렸다는 얘기, 그것이 바로 Saved by the bell… 이번에 나의 정든 오래된 printer가 바로 그런 case였다. 미안하다, 나의 정든 printer야!  너의 수명이 진정으로 다 할 때까지 사랑으로 돌보아 주고 마지막 예우를 다해 줄게… 

다른 한편으로,  이말 Saved by the bell 은 1969년 Bee Gees에서 solo가 되어 부른  Robin Gibbs의 single hit song이기도 했다.  잠시 그 당시 이 노래에 심취했던 ‘황금의 청춘’ 시절을 회상할 기회가 되었다.

 

 

Saved by the bell, Robin Gibbs, 1969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던 싸늘~한 가을비가 오늘 이른 아침부터 조금씩 잔잔해지는 느낌이더니 결국은 멈추었다. 하지만 빗물에 완전히 젖은 낙엽들이 내뿜는 냉기는  온통 나의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작년에 연숙이 Costco 에서 사준 실내용 warm pants 로 하체는 해결이 되었는데 shirt는 고르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올해 첫 winter storm, Avery 의 소식이 나오고 있다. 첫 눈의 소식, 물론 이 지역이 아니고 Midwest, Northeast 쪽이었지만 ‘눈 소식’을 들으니 벌써 ‘Holidays, the best time of year’ 란 숙어가 떠오른다.

작년 가을에 나의 work/study room을 아래층으로 옮긴 후 첫 겨울은 추위를 느끼며 살아야 했다. 위층에 비해서 훨씬 냉기가 대단한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올해 다시 맞는 큰 아래층 공간의  ‘냉기’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여름에 우리를 영원히 떠난 나의 Tobey가 없는 이 큰방, 그 사실이 추위의 냉기보다 나를 더 춥고 쓸쓸하게 만든다. Tobey대신 ‘양양이 Izzie‘ 가 나의 주변을 맴돌지만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인가? 하지만 ‘5개월이란 세월의 약’이 작용을 하며 all shall pass, all shall pass

이른 아침 ritual (stick coffee, today’s scripture, email, New York Times newsletter, blog counts etc)을 끝내고 우연히 (사실은 며칠 전에 잠깐 보았던) 1960년대 말의 미국 TV show였던The Glen Campbell Goodtime Hour (variety show format)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 감미로운 추억이여! 아무리 잇몸이 쑤셔도 이런 60년대 말의 추억은 모든  불편함을 한때나마 잊게 해 준다. 그의 음악에 심취했던 시절, 60년대 말은 나에게 절대로 잊을 수도 놓칠 수도 없는 보물중의 보물로 남아있다. 서울에 있던 ‘미8군 방송국’이었던 AFKN 에서 이 program을 정기적으로 방영을 했고 나도 기회가 되는 때에 보곤 했었다.  연세대 전기과 기타귀재 심재흥의 영향과 도움으로 한창 기타를 배우던 시절, 이 Glen Campbell의 folk, country, rock style은 거의 교과서적인 도전을 나에게 주곤 했다.

 

 

 

한때 Elvis Presley 의 guitarist였던 그가 어떻게 그런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 그의 vocal style은 기타 솜씨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다만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는지 ‘유명세’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으로 그의 말년이 기억되는 것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그 당시에 우리는 그의 노래 A Place in the Sun 을 ‘ 따라 부르며 guitar chord와 rhythm 을 연습했다. 특히 당시 Bobbie Gentry와 duet으로 부른 Let it be me 는 당시의 시내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면 항상 흘러나오던 hit song 이었고, 그 뒤로 듣던 Gentle on My Mind, By the Time I Get to Phoenix, Wichita Lineman, Galveston… 수많은 hit after hit..  훨씬 뒤에 미국에서 TV로 보고 들었던 그의 ‘대작’, big orchestra와 협연으로 부른 MacArthur Park은 정말 그만이 남겨준 영원한 classic이 되었다. 아~ 추억에 젖은 이른 아침이여…

 

 

MacArthur Park – Glen Campbell

 

Let it be me – Glen Campbell & Bobbie Gentry – 1969

 

 

¶  Stop! Smell the Roses!:  갑자기 포근한 봄 날씨로 돌아온 지난 며칠이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도 상쾌하고, 침대에서 ‘기어 나와’ 옷을 입는 느낌이 훨씬 편해진 것을 보니 정녕 봄 같은 봄이 온 것을 실감한다. 지나간 부활절 이후 4월은 사실 예년에 비해서 싸늘한 그것이었다. 새벽에 central heating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지난 며칠을 겪고 드디어 2층 thermostat를 OFF 로 바꾸었다. 이제부터는 crossover 기간이 시작되고 아마도 얼마 후에는 a/c 의 humming 소리를 간간히 듣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은 서서히 여름의 끈끈하고 텁텁한 냄새를 맡게 될 것이고, 이렇게 인생, 세월, 시간은 흐른다.

오늘 아침 YMCA gym으로 걸어 들어가며 문득 생각이 스친다. 왜, 이렇게 빨리 걸어가는 것일까?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무언가 쫓기듯 달려 들어가는 듯한 나의 모습에 갑자기 의문이 든 것이다. 칠십의 나이로 보아도 쫓기는 듯한 걸음, 갑자기 흉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내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것인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다는 것인가, 주위의 things (사람 포함)들이 보기도 싫다는 것인가?

나의 걸음에 비해 거의 거북이처럼 늦게 걷는 연숙을 본다. 물론 약해진 하체 下體 탓이라고는 하지만, 꼭 그것이 전부일까? 그것도 조금은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녀는 주위를 자세히 보기도 하고,  얘기하기도 하며 걷는다. 나에 비해서 ‘여유’가 있는 것이다. 특히 요새 같은 계절에는 더욱 그렇다. 온갖 만물이 다 화려하게 변하는 주위를 그냥 갈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저 ‘목적지’만 생각하며 주위에는 눈도 안 돌릴 때가 많기에 그저 빨리 걷는다.

오늘 유난히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 우연일까? 근래에 들어서 나는 ‘우연’보다는 ‘필연, 이유’를 더 믿게 되었기에 이것도 나를 일깨우는 무슨 higher message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오래~ 전 정확히 1974년 경 Mac Davis의 ‘기가 막힌 가사’의 ‘crossover’ oldie, ‘Stop and Smell the Roses‘ 가 생각난다. 당시의 나이에 ‘가사’를 알고 들었을 리가 없었지만 나이가 먹으며 계속 들으니 정말 ‘교훈 같은 가사’였다. 그 가사를 생각하니… 맞는 얘기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가.. 생각 좀 하고 만발한 꽃들의 향기를 사랑하며 하느님의 스치는 손길을 느끼면 누가 때리나..  바쁜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만든 여유’를 즐기는 것은 정말 ‘지혜서’ 급의 ‘유행가 가사’였다.

 

 

Stop and Smell the RosesMac Davis – 1974

 

¶  베로니카 3주기:  3년 전 이즈음 (정확히 5월 2일)을 되돌아 본다. 우연히 만났고 알게 되었던 나와 돼지띠 동갑 베로니카 자매님, 남편 타계 일 년 만에 두 젊은 아들 형제들을 뒤에 남기고 선종했던 그 해 찬란한 5월의 토요일 이른 아침, 큰아들의 새벽 전화로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 없이 hospice로 달려갔고, 싸늘한 엄마 옆에서 흐느끼는 다 큰 두 아들과 우리 둘은 연도 밖에는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옛 유행어로 ‘아, 무정 無情’ 이라고 했던가? 불과 2년 사이에 사랑하는 부모님을 모두 잃고 흐느끼는 모습은 내가 그들 대신 나의 부모님을 보내는 그런 슬픔이었다. 온 정성을 다해서 베로니카 자매님 세례를 받게 하여 떠나 보낸 것은 두고두고 보람을 느낀다. 연옥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연도라도 자주 바쳤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매년 가는 묘소, 올해는 큰 아들과 점심을 한 후에 갈 수가 있었다. 집에서 정성스레 꺾어간 예쁜 꽃다발, 바로 전에 레지오 주회합에서 성모님께 바쳤던 것을 자매님 묘소에 꽂아 주었다. 역시, 그 때와 같이 ‘찬란한 5월 2일의 태양’이 전 보다 더 커진 듯한 Winters Chapel cemetery 를 내려 쬐고 있었다.

 

베로니카 자매님, 올해도 저희들 다녀갑니다..

 

¶  Big Mac, Paraclete: Paraclete ‘파라클리토’ 라고 불리는 이 말은 그리스 어로 advocate, helper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가톨릭 교의에서는 Holy Spirit, 성령을 지칭하는 말이다. 2013/4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교리반에서 내가 맡았던 강의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성령이라고 하면 성삼위 성부 성자 성령 holy trinity 중의 하나다. 이것이 왜 McDonald hamburger 중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Big Mac과 연관이 되었나?

성령 세미나, 대회 같은 곳에서 흔히 보는 성령의 움직임을 나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삼위의 교의적인 것은 좋아하지만 사람의 움직임에서 보이는 성령은 때에 따라서 거부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분명히’ 나도, 내 안에서도 성령이 움직이고 있으리라는 확신인 것이다. 나의 느낌과는 상관이 없이..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그 ‘움직임’은 내가 확신이 없었을 뿐이지 많은 때에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변화다. 그것을 감지하기 시작한 바로 그것이.. 이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습관적으로 우리 둘은 아침미사가 끝나고 YMCA gym에 가기 전에 Sonata Cafe breakfast를 먹다가 아주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조금은 심각하게 발전을 하고 말았다. 지나고 보면 이런 일들, 참 사소한 것으로 판명이 되곤 하지만 그 당시는 사실 괴로운 시간이 아닌가? 오늘 하루 또 망쳤구나.. 하는 자괴감 뿐이었다.

그러다가 gym workout이 끝나가면서 불현듯, 정말 나도 상상, 예상치도 못한 때에 Big Mac의 모습이 떠올랐다. 때가 점심때니까 배가 조금 고파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웃기는 일이 아닌가? 결국은 Big Mac을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도 무언가 paraclete, helper의 도움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서 신앙, 신심은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  돌나물 비빔밥:  화창한 봄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의 냄새가 나는 음식이 등장했다. 우리는 점심을 제일 ‘크게’ 먹기에 제일 중요한 음식은 점심때 등장하곤 한다. 아침은 거의 내가 ‘고정식’으로 준비하지만 점심만은 ‘주부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기에, 예외는 있지만 연숙이 준비한다. 요새 한창 backyard에서 살다시피 하며 장차 ‘길러 먹을’ vegetable들에 온통 시간을 보내더니 오늘은 ‘돌나물’이란 것을 backyard에서 따왔다. 따온 것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기가 막히게’ 멋있고 맛있는 ‘돌나물 비빔밥’을 만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자연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맛도 아주 좋았다. 비록 Traders Joe brand이지만 wine까지 곁들이니… 이것이야 말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면..’ 이 아닌가?

 

Homemade 돌나물 비빔밥

 

¶  Ladder, gutter, roof:  정말 오랜만에, (extension) ladder 사다리를 움직이고, 오르내리게 되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는 일을 해도 주로 집안에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일이 2층의 laminate flooring job 이었다.

이후 기나긴 동면이 끝나고 날씨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니 주위에 만발한 화초들은 즐겁지만 우리 집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한마디로 집 자체가  tired, tired 한 느낌뿐이니… 주기적, 정기적으로 닦을 것은 닦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하면 문제가 없지만 우리 집은 ‘가훈 家訓’ 이 가급적 ‘남의 노동을 사지 말자’.. 비슷한 전통으로 있어 왔기에 원칙적으로 우선 내가 손을 보아야 했고, 사실 그렇게 수십 년을 버티어 왔다.

내 자신이 그런대로 weekend handy person이라고 생각하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문제가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바로 나의 ‘나이’다. 칠순이 지난 나이에 예전처럼 들고 뛸 수가 있을까?

2층 높이에 있는 roof rain gutter, 경치는 좋지만 수 많은 나무 잎들이 가을부터 떨어져 gutter가 완전히 막힐 정도, 올라가보니 완전히 ‘화분’이 되어 있었다. 이것을 청소하려면 사다리를 계속 옮기는 근육도 필요하지만 2층 꼭대기에서 절대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것 때문에 난 ‘치명적 사고’,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암만 Medicare가 있다고 해도 남들이 보면 바보짓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2층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아직 나의 몸에 문제가 없다는 조심스런 진단을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warming up을 계속하면 더 안전하게 roof/siding work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고, 아마도 siding 정도는 나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가을부터 떨어진 나뭇잎들로 gutter가 화분처럼 변한 모습

아무리 청소를 해도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별 수 없이 이정도의 모습일 듯

Garage 위의 roof는 경사가 아주 완만해서 안심하고 주위를 볼 수 있다

집의 정면 쪽을 향한 garage 위의 roof는 아주 급한 경사로 protective gear 없이는 접근 불가능

Main roof는 그런대로 보호 장비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

 

Thursday Friends: 처음 만난 지 4 반세기 (quarter century) 가 훨씬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실질적’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인 나이 지긋한 3명의 남자들,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갖는 ‘이상한’ 모임, 이름하여 ‘목요일 밤 친구들’, 하지만 이름은 짧게, 목요회가 되었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강렬한 향수를 동반한 그리움을 느끼며 3명이 처음으로 함께 모였고, 그 이후는 짧은 역사가 되었고 지금도 매달마다 작은 역사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만남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하나 둘씩 서로에 대한 느낌들이 쌓이고 어렴풋이  pattern 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one year anniversary가 되는 올해 9월의 모임이 되면 그 pattern이란 것이 어떤 것일지 미리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건강한 것, 희망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오랜 세월을 같은 지역에서 살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세 명의 ‘아빠 남자’들은 꽤 다른 인생을 살았던 듯 싶다. 서서히 나누기 시작한 옛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렇고, 아주 가끔씩 간접적으로 들었던 것들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두 old friends들과 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오랜 세월, 이들이 냉담을 고수했던 나를 성당에서 찾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내가 그들을 찾고 있다는 것, 참 긴 세월의 irony가 아닐까?  우리들의 등대였던 그곳, 성당 공동체가 어떻게 해서 나에게는 다가왔고 그들로부터는 떠난 것인지 나는 더 알고 싶기도 하고, 가급적 남은 여생에서 그들과 함께 머무는 공동체를 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지난 달 모임과 이번의 모임을 통해서 나는 조금 색다른 각도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세 명의 남자들이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스산하게 깜깜한 밤중에 coffee shop를 찾으러 old Korea Town (at Buford Hwy)을 걸으며.. 기억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무엇이 있었다. 70년대 초 친구들과 종로, 명동 거리를 걷던 추억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그 이후 수십 년(아니, 거의 반세기?) 동안 이렇게 ‘남자들끼리’ 밤 거리를 배회’했던 기억이 거의 없는 것과 갑자기 내가 이 ‘외딴 섬, 미국 내의 stranger’란 느낌과 Frank Sinatra 의 1966년 classic oldie, Strangers in the Night의 은은한 crooning 추억, 또한 남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형제애, fraternity’를 너무나 오랜 만에 느껴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색다른 이유로 나는 우리 목요회가 ‘장수 長壽’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Strangers in the Night – Frank Sinatra – 1966  

 

¶  Happy Anniversary, 38th!  결혼 38주년, ‘삼십 팔, thirty eight’ 이란 숫자가 주는 느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와~ 축하한다.. 축하해.. 하는 자축의 느낌은 어느 해 보다 강렬했다. 우리 세대에는 그렇게 이혼이 흔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38년 ‘무사히’ 가정을 지켰다는 것은 솔직히 자랑스럽다. 이혼이나 사별 같은 것, 가정적으로 얼마나 자녀들에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1980년 1월 25일에 시작된 결혼의 세월들, ‘남녀의 결혼’이란 말에 더 심각한 의미가 실린 초 현대의 해괴한 초 超 세속사회의 격동 속에 오늘을 38년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자연법을 거스르지 않고 두 생명이 하느님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간단한 Lemongrass 외식을 즐겼던 날이 되었다. 

 

September Morn – Neil Diamond – 1980  

 

¶  Serpents:  오늘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미국 본당  Holy Family church대신에 한국 본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정오미사엘 갔다. 이유는 그곳에서 지난 12월에 선종하신 어떤 자매님의 50일재 추모 연도 煉禱 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미사와 연도가 함께 있는 날은 요일에 상관없이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렇게 금요일의 추모연도에만 참석하는 것은 예외에 속한다. 지나간 12월 달에 있었던 장례미사, 연도에 ‘snow day 날씨 관계’ 로 불참했었기에 이번에는 특별히 신경을 쓴 셈이다. 

연도가 끝나고 단체 식사를 하는 곳에서 보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는 2017년  ‘레지오 난동사건 장본인’ 그 미친년의 얼굴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차.. 했지만 늦었다. 그 인간을 상상하거나 보기만 해도 나는 밥맛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한 동안 소화까지 안 되는 정도다. 아직도 아직도 나는 꿈 속에서 ‘죽이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었고, 그 인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하… 그 얼굴이 사람들이 말하던 serpent의 모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작년에 레지오에서 난동을 일으켰던  두 ( 왕마귀 포함) 미친 년들의 얼굴이 그러고 보니 완전한 (성모님의 발꿈치에 눌린듯한) serpent의 모습들이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완전한 뱀(그것도 독사들)의 얼굴이 아닌가? 1978년 supernatural horror  movie sequel, The Omen II 에서 본 (Damien) serpents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잊고 싶다, 잊고 싶다, 영원히 잊고 싶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서 이곳 Atlanta Metro 지역의 날씨, 한마디로 1971년 Clint Eastwood의 첫 감독 영화, play misty for me.. 에 뽀얗게 흘러나오던 曲 Misty가 귓가에 흘러나오는 느낌으로 mist, misty & misting의 연속 편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 아침에 drive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날들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늑하고, 멋진’  winter holiday  냄새가 하늘에 가득한 날의 시작으로 느껴진다. 

어제 아침 ‘평일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것이 몇 년 만인가.. Sherlock (집 근처의 liquor store)에 들렸다. 물론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으러 왔지만 사실은 나도 오랜만에 whisky같은 hard liquor의 혀끝 맛을 보고 싶던 참이었다. wine, beer같은 것으로 술 맛의 기억의 명맥을 유지하는 근래 들어서 나는 ‘양주’의 맛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 주로 wine아니면 local microbrewery beer면 대 만족이었기 때문에 whisky, vodka같은 ‘쎈 술’ 은 사실 나와는 거리가 먼 술들이 되었다.

하지만 이날 Sherlock 술가게에 들어서면서 나의 눈에는 ‘쎈~술’들만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그 혀끝 맛의 추억이 되돌아오고 오랜만에 한번 맛을 볼까 하는 ‘충동구매’ 의 유혹을 느꼈다. 선물용으로는 본인들이 좋아한다는 bourbon 중에서 조금 비싼 것을 산 것으로 쉽게 해결이 되었는데, 문제는 나의 것이었다. 추억에 남는 것들, Johnnie Walker같은 Scotch whisky 중에서 고를까..하다가 아하 이것들 나의 수준에는 조금 비싼 것이 아닐까 망설였다. 그러다가 나의 눈을 끈 것이 있었다. Canadian Mist, 그러니까 Canada 에서 만든 whisky 였다.

요즘 같은 misty day에 캐나다 mist란 이름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가? 값에 상관없이 그것을 들고 나왔다. 나중에 보니 값도 ‘나의 수준’에 딱 맞았다. 올 추운 겨울 기분이 쳐지거나,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반대로 너무 기분이 좋을 때에 이것을 조금씩 홀짝거리면 맥주나 wine같은 술과 달리 큰 배탈 걱정 없이 멋진 기분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런 종류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1970년대 초의 명동 cocktail house 호무랑 의 추억을 더듬으며, 당시의 가족, 친구, 연인들을 생각할 것이다.

 

Hitchin’ a RideVanity Fare – 1970  

 

Monday Monday..   7 일마다 찾아오는 월요일은.. 예전에 그렇게 싫기만 했던 요일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나 만의 전유물은 절대로 아닐 듯 하다. 특히 Monday morning 이란 것, disease라고까지 표현을 했으니 상당히 stressful한 날인 것임은 틀림 없는 모양이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나도 상당히 이 날 아침에 sick call을 남용했던 기억이 남고,  남은 여생 두고 두고 후회를 하고 있다. 그런 dreadful Monday가 인생후반기인 현재에 와서는 golden day로 바뀌어가고 있으니 내가 변한 것인지 환경이 변한 것인지, 나이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것들 모두가 나의 느낌을 바꾸어 놓고 있을 것 같다.  Monday Monday.. 하면 같은 제목의 1966년 Oldie 가 생각나고, 그 곡을 처음 들었던 연세대 앞 신촌 로타리에 있었던 ‘왕자다방‘이 생각나곤 한다. 그 때가 1967년 봄이었으니.. 정확히 50년, 반세기 전이었다. 정말 50년의 세월이란… 그 느낌을 글로는 묘사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The Mamas & the PapasMonday Monday – 1966  

 

Strange but refreshing Monday feeling… ahhha..  it’s over finally!  왜 이렇게 이번 월요일 ‘우리’의 어깨가 가볍게 느껴진 것인가? 2주 만에 처음으로 YMCA gym에 가서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이상한 느낌도 도움이 되었고, 어제 일요일에 일어난 (아니, 안 일어난?) 일들도 무척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제 일요일은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가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무대공연’은 cancel이 되었고 아예 그곳에 가지도 않았다.

6년 동안 빠짐없이 참가했던 이 행사가 우리로부터 떠난 것은 아마도 두고두고 우리의 앞날을 예측해주는 omen 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나 시원한’ 느낌을 받아서.. 솔직히 아직도 머리가 정리되지를 않았다.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이제 레지오가 지겹다…’하는 것은 아닐까? 연총 불참의 직접적인 이유는 한 두 단원이 갑자기 아팠던 것이었지만 행사 자체를 불참한 것은 더 심각한 이유가 있었음을 우리는 다 안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속한 ‘꾸리아 조직’의 암적인 문제인 것이다.

 

2017년 ‘우리들의 5월 1일’이 되었다. 친구들이여, 지난 한해 잘 살았던가? 아니.. 큰 변화는 없었던가? 창희는 물론 교회를 맴돌며 보람 있는 나날을 보냈을 것 같고, 용현이는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전혀 idea가 없구나. 나와 나의 가까운 사람들은 비교적 잘 살았던 듯하다.

우리들의 5월 1일은 어제였던가? 아마도 1970년부터 1973년 사이가 아니었을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적 경제발전의 서막이 시작되던 때에 우리들 모두 생의 진로를 놓고 방황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잊고자 발버둥 치지 않았던가?

당시에 느꼈던 우리들의 세상은 아무리 아무리 하늘이 어두웠어도 그 저쪽에는 밝은 태양이 맴돌고 있었지 않았던가? 젊음의 선물인 ‘이유 없는 희망’, 바로 그것을 우리들은 만끽하며 길게만 느껴지던 몇 해를 보냈지.

그 ‘어린’ 나이에 세계관이 변할만한 신앙을 찾았던 창희, 당시에 ‘우리 들’은 이해를 못할 수 밖에 없었다. ‘신나고 멋지게 오래 오래 살자’ 가 전부였던 나이였기에 ‘죽음’의 세계는 우주의 저~ 편으로 느끼던 20대 초.. 그런 느낌의 세월들이 우리들의 5월 1일,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거의’ 사라져 가고 있구나.

비록 3총사가 뿔뿔이 흩어져서 소식도 모르며 숨어 살고 있지만 이런 추억으로 인한 꿈속의 세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함이 없구나. 이런 pace로 세월이 흐른다면 이제는 서로 죽는 날도 모르고 뜨겠다는 자괴감에 젖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언제나 작은 기적이 있다는 경험을 가지며 살고 있으니까.. 내년 5월 1일, 다시 보자.. 멋진 친구들이여!

 

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  Dog Days afternoon, daydreaming:  와~ 7월도 되기 전에 언제 여름이 이렇게 무르익었나? 그야말로 relentless heat (stress) days after days..  머리가 조금은 몽~롱~ 해진 상태에서 아하.. 요새가 바로 dog days.. 라는 탄식이 나온다. hot & sultry.. days.. 이것이 바로 dog days가 아니고 무엇인가? 거기에다가 Dog Day Afternoon같은 Al Pacino 1975년 영화까지 머리에 겹치니까 아주 더 머리가 혼란하기까지 하다. 더운 것은 여름이니까 그런대로 참는다고 하지만 문제는 ‘물’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짜 물’, 그러니까 비가 안 오는 것이다. 예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backyard의 green field를 상상한 것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Hose water.. 의 무력함을 이렇게 실감하는 나날도 없는가? 암만 암만 홍수가 날 정도로 뿌려도 몇 분이면 땅이 완전히 다시 굳는다. 아.. Mother Nature여.. 오후에 딱 5분만 폭우를 보내 주어도 모든 문제가 일순간에 사라지는데.. 기우제라도 드려야 하는 것인가?

오래~전 오래~ 전.. 직장생활을 할 때를 가끔 기억에 떠올린다. 그때의 여름도 사실 요새와 그렇게 다를 것 없이 무더웠을 터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정 반대였다. 당시 corporate life (a.k.a salaried man)의 혜택.. ‘빵빵’ 사정없이 냉동이 된 건물 안에서 Nine to Five 를 견디고 집에 오면 몸이 녹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 한마디로 ‘푸근~’한 집이 그렇게 덥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훗날.. 연숙과 이야기를 하며 느낀 것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던 사람은 내가 요새 느끼는 것과 같이 항상 더웠던 것.. 가정 집에서 암만 에어컨이 나와 보았자 그것은 사실 별 것이 아니었던 것.. 그제야 나는 실감을 한 것이다. 아무리 여름에 78도 에 맞추어진 집이어도 그것은 그렇게 시원한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것을 안 후에는 조금 미안한 심정도 들었다.

 

¶  Greenfields are gone now, parched by the sun..  Yonsook Trail이라고 이름이 된 backyard의 깊숙한 곳 오솔길.. 초 여름까지 푸른 화초들이 길을 따라 ‘파~랗게’ 도열을 하며 맞아 주었지만 하늘에서 물기가 사라지고 대신 인정사정 없이 작열하는 태양열에 하나 하나씩 마르기 시작하며.. 이 1960년 초 folk classic Greenfields 의 가사 중 Greenfields are gone now parched by the sun.. 이란 구절이 떠오른다. Greenfields.. 어쩌면 그렇게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대학생 출신 quartet The Brothers Four의 이 노래는 중학생 때 귀따갑게 듣던 명곡인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quarter이었던 불루벨즈가 멋지게 ‘모창’을 한 기억도 난다. 나중에 가사를 음미해 보니 역시 이것도 ‘가버린 연인’을 그리는 노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때의 Greenfields가 가버린 연인을 따라 모두 황폐해진 것.. 잔잔하지만 격조 있게 은은하게 불린 멋진 4중창의 화음.. 역시 60년대 초만이 가질 수 있었던 멋진 추억이었다.

 

dried up, Yonsook Trail

parched, dried up, Yonsook Trail

 

Greenfields란 말은 그 이후에도 유행어가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하숙생들이 고기와 계란이 없는 순전히 야채 중심의 밥상을 꼬집을 때 하던 말.. 그것도 Greenfields였다. 세상이 많이도 변해서 당시에 야채중심의 식사는 ‘가난한’ 것이었다. 요새는 어떤가.. 돈이 없으면 야채를 많이 먹지 못하는 희한한 세상이 아닌가? 참 세상은 오래 살고 볼 것인가..

 

 

GreenfieldsThe Brothers Four – 1961

 

 

Scan10004-1오래~ 오랜 만에 이 ‘번쩍거리는 표지’를 가진 책의 먼지를 털고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 1990년경에 산 책이다. Atlanta 지역으로 이사온 즈음에 산 것인데, Internet 이 일반인들에게 ‘유행’하기 전이고, 그러니까 Amazon.com 같은 것은 물론 없었고, 집 근처에 있는 ‘정다운’ bookstore에서 산 것이다. 당시 나는 NorcorssDoraville 이 마주 닿는 곳, Pleasantdale road@I-85 (near Spaghetti junction) 에 직장, AmeriCom 이 있었고 그곳에서 5분 떨어진 Four Seasons Apartment에서 살 무렵이었으니까.. 거의 분명히 가장 가까운 Jimmy Carter Blvd에 있었던 Green’s Corner shopping center에 있던 Green’s Corner bookstore에서 샀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조그만 책방’은 다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big-name bookstore가 나오기 전이었고 비교적 작은 local bookstore 가  ‘동네 근처’에 많았다.

이 guitar에 대한 책을 왜 그때 샀을까.. 아직도 머리를 굴리지만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때에 나는 분명히 ‘머리를 식히려’ 가끔 ‘고물’ YAMAHA acoustic guitar를 만지작거리며 살았을 것이고, 1969년 부터 연세대 같은 과의 ‘기타 귀재 鬼才’ 심재흥에게 자극을 받아, 등 넘어 배우며 즐기기 시작해서 그런대로 중년 때까지 명맥을 이어온 나의 ‘알량한’ 기타솜씨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거나 잊지 않게 하려는 ‘처량한’ 희망에서 그 glossy한 책을 샀을 듯 하다.

당시에 나는 그 책의 ‘사진, 그림들’을 다 즐긴 후에 곧바로 책을 덮고 서재의 깊은 곳에 내동댕이를 쳤는데.. 이유는 기타 technique 을 다룬 ‘소위’ magic technique 들은, 암만 보고 읽어도 알 수가 없는 난해한 것들 투성이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콩나물 대가리’들로 각종 전문용어를 쓰며 해설을 했던 기타 가르침.. 나에게는 한마디로 무용지물 無用之物 이었다.

그리고.. fast forward해서 25년 뒤에 그 책의 먼지를 털고 다시 나의 시야에 들어오게 하였는데.. 이유는 25년 전과 같은 것, ‘혹시, 혹시, 혹시’ 이 책에 무슨 ‘하루아침에 기타 귀재가 되게 하는’ 그런 보물이 없을까 하는 가느다란 희망은 아니고.. 그럴만한 이유가 갑자기 생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성당에서 가밀라 자매님의 장례미사 후 식당, 본가설렁탕, 에서 만났던 레지오 은총의 모후 자매님 두 분이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말과 혹시 내가 시간이 될지를 물었었는데, 그 자리에는 진희아빠의 누님인 프란체스카 돼지띠 자매님도 있어서 일언지하 一言之下 로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이 ‘그룹’은 오래 전에 어떤 ‘기타 전문가’ 30대 청년으로부터 9개월 이상 강습을 받았다고 했고, ‘발표회’까지 했다는데 (이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진희아빠가 그 중에 하나였으니까) 아마도 그 이후에는 별로 활동이 없었고 실제로 ‘코드, guitar chord’도 많이 잊은 듯했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그 관심과 열의 (그들의 gesture나 face expression)를 나도 느낄 수가 있어서 나도 관심이 갔던 것이다.

우리부부의 레지오 ‘활동’도 이즈음에는 조금 덜 바빠졌고, 나도 자꾸만 rusty해지는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기도 했기에 이번에는 깊이 생각 안 하고 이것도 It’s Now or Never, Before it’s too late 의 하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2주 뒤에 그러니까 지난 화요일 레지오 회합이 있던 날 드디어 ‘동호인’ 2명과 만나서 잠깐 나의 guitar 치는 style (acoustic, picking) 을 보여 주었고 그들도 큰 하자가 없는지 계속해서 모임을 추진하자고 했다.

그날 그 자매들이 가지고 나온 ‘강습 Note, 악보’ 잠깐 훑어보니, 다행히 나에게도 친근한, 생소하지 않은 곡들이 실려 있었다. 그러니까 늦어야 80년대 folk-ballad style 대부분은 아마도 70년대 ‘젊은이들의 노래’가 아닌가 싶었다. 그 정도라면 내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인데, 문제는 과연 이들이 지난번에 어떤 format으로 배웠냐는 것인데.. 아무도 친절히, 자세히 설명하는 자세가 아니어서 조금 실망을 했다. 그러니까.. ‘무조건, 적당히..’ 해 달라는 것인가?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내가 조금 성급하게 승낙을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걱정이 든 것이.. 내가 반세기 전에 기타를 ‘치기’ 시작한 이후, 남에게 ‘정식으로’ 가르쳐본 적이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부분 ‘등 넘어 로’ 배웠으니 그들도 등 넘어 로 가르쳐 줄 수가 있는지..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기타 경험자’를 가르칠까 하는 것,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런 연유로 기타에 대한 개인적 추억과 역사를 더듬게 되었다. 사실, 앞으로 써야 할 memoir blog 중에는 연세대 3학년 시절, 1969년이 다음 차례인데 그 1969년 일년의 대부분이 guitar에 얽힌 것들이다.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들.. YMCA에서 하던 전석환 씨의 Sing-along-Y란 곳에도 갔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전석환씨가 가르치던 YMCA guitar class에서 한 달 강습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까 비록 등 넘어 배웠다고는 하지만 사실 나는 ‘정식으로 시작’은 한 셈이었다. 처음에는 통 acoustic기타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electric guitar로까지 발전을 했지만 결국은 통기타로 돌아와서 현재에 까지 이른 셈이다. 그러니까 나는 비록 intensive하게 배우고 멋지게 연주는 못 했어도 그 오랜 세월 한번도 이 것에서 멀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근래에는 즐기는 노래들의 chord를 악보를 안 보고 치는, 그러니까 완전히 ‘외우는’ 는 쪽으로 노력을 해서 많은 성과를 얻었다. 바로 이것이 끈기 있게 guitar를 ‘즐기는’ 비결이었음을 이제야, 황혼기에 깨달은 것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게다가 나에게 배우겠다는 ‘자매님’들이 생겼으니 이것도 내실 흐뭇한 일이 아닌가? 간바로!!

 

P.S., 아래에 보이는 video, The ventureswalk don’t run은 당시 electric guitar를 배우는 사람들의 standard였다.  이들이 rock-style instrumental guitar 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한 것이다.

 

 

Walk Don’t RunThe Ventures – early 60’s

 

¶  5월 13일.. 2016년 5월 13일 Friday.. 아하 ‘또’ Friday the 13th 인가.. 하였지만 곧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금요일 13일은 맞았지만 문제는 5월 13일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맞다 바로 Fatima.. Fatima.. Portugal, 1917년 5월 13일인 것이다. ‘묵주의 성모님’으로 일컬어지는 파티마 성모님 정확히 99년 전 5월 13일에 3명의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그리고 확고한 역사로도 자리를 잡았다. 당시 Lisbon의 유력 정부기관지였던 the Seculo에 보도가 되었을 정도로 큰 ‘사건’에 속했다.

기록(그러니까 역사)에 근거한 영화나 책들이 많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흥행성’을 의식한 영화들은 너무나 ‘색깔’들이 끼어있다. 근래에 발견한 ‘고서’ 중에 The True Story of Fatima 가 있는데 이 책은 주로 목격자 중 제일 오래 생존했던 Lucia수녀님의 증언에 의한 것이고 발현 당시 다른 일반인들의 증언에 의한 교회의 치밀한 발현승인 과정을 거친 것이라 거의 정확한 역사서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인 발현이었지만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일까? 발현 성모님의 모든 예언들이 역사적으로 다 실현이 된 것을 보면 ‘등골이 써늘해 짐’을 느낄 때도 있다. 일관되게 비교적 간단한 요구사항을 요구하시는 성모님의 message들, 과연 쉽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 message 의 중심에서 초 현대의 세속세계는 내가 보아도 ‘너무나 너무나’ 멀어져 있고 무섭게 멀어져 간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래도 성모님은 희망의 상징이다. 희망은 원하면 언제나 자비와 함께 우리가 받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닌가?

 

¶  마리에타 2구역 점심봉사: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구역미사에 이어서 곧바로 구역이 담당하는 ‘의무적’인 순교자 천주교회 본당 점심봉사 날이 다가왔다. 이것이 주는 stress로 구역장을 못하겠다는 의견도 많이 있을 정도로 사실 이것은 큰 일이다. 200여 개 이상의 serving을 예상하는 것으로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 한마디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서 각가지 knowhow가 축적이 되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공식’같은 것도 있음 직하다.

우리는 advanced age라는 이유로 봉사의 의무에서 excuse가 되고 있었지만(우리가 희망하기에), 이번에는 조금 사태가 다르게 되었다. 구역이 둘로 나뉘고 우리가 속한 ‘반’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특히 형제님의 숫자가 안심할 정도가 못되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이번에는 봉사하기로 하고 준비하는 날, 점심 봉사하는 날 full-time으로 일을 하였다. 솔직히, 기분 좋게 일을 해서 그런지 일은 비록 많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 동안 못 했던 미안한 심정도 어느 정도 위안을 받게 되고,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지만 ‘호사다마 好事多魔’라고 하던가.. 모든 것이 끝나고 하얀풍차에 몇 명이 모여서 뒷풀이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즐겁지 않은 뉴스, persona-non-grata 를 접하면서 조금은 흥이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었고 main event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이 나서, 이틀간의 service는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감사합니다, 예수님! 메주고리예:  매달 2일에 메주고리예에서 visionary Mirjana에게 ‘공개적으로 publicly’ 발현하시는 성모님, 이제는 게으르지만 않으면 Youtube를 통해서 주로 Italian pilgrim들과 함께하는 group이 찍은 video를 볼 수 있게 되었다. 5월 달은 초부터 무언가 바빠서 깜빡 하고 이것을 check하는 것을 잊었다. 이제야 보니.. 무언가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렸다. 바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하는 우리말 노래가 아니었던가. 비록 영어 accent가 섞였지만 아주 정확한 우리말 노래, 그것도 통역을 전담하는 형제가 유창하게도 불렀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말 노래가 불려지도록 주선이 되었을까? 추측에 대한민국도 ‘메주고리예 신심’이 상당해서 이곳 메주고리예에서도 인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완전한 나의 상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듯하다.

 

 
성모님 발현 – 메주고리예 2016년 5월 2일

 

¶  The Seekers: I’ll Never Find Another You 1967,  우연히 우연히 이 노래 video를 보게 되었다. 요새 비교적 잊고 살았단 나의 지난날의 추억이 나를 아득~하게 만든다. 나에게도 그런 꿈같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조금은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만의 추억들.. 추억의 얼굴들.. 이런 것들이 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것, 특히 ‘유행가’와 연관이 되어서,  뇌세포 깊숙한 곳에서 꺼떡없이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옛 유행가를 그렇게 아직도 좋아하나 보다.

오늘 본 것은 Australian vocal group, The Seekers의 경쾌한 country style ballad ‘I’ll Never Find Another You‘. 가사야 큰 의미가 없지만 이 노래의 lead singer의 목소리가 이 노래의 tone과 style을 그렇게 classic으로 만들었나 보다. Judith Durham, 바로 이 그룹의 간판 격 ‘청순한 tone’.. 몇 년 뒤에 미국의 The Carpenters의 Karen Carpenter 가 바로 이런 독특한 음성의 소유자였고 역시 그녀의 모든 노래들, 주옥같이 역사에 남는다.

이 모두 1960년대 말 경이었다. 그 시절, 그 시절, 어떻게 time travel을 꿈 속에서라도 할 수 있을까? The Seekers의 경우, 그 lead singer, Judith Durham의 얼굴과 자태가 내가 한때 ‘좋아했던’ 어떤 아가씨와 그렇게 닮았다. 키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그 때의 그 노래가 그래서 그렇게 그리운가 보다.

 

 
The SeekersI’ll Never Find Another You – 1967

 

몇 년 전 나는 꿈에 대한 추억을 회고한 적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한 거의 모든 꿈, 특히 악몽에 관한 것들을 남겨 놓았다. 근래에 특별한 악몽 같은 것은 없는 듯 하지만,  얼마 전에 문득 생각을 했다. 아~~ 요새 나는 꿈을 안 꾸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 그렇다. 별로 꿈을 꾸었던 기억이 나지를 않는 것이고 사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빠른 세월이라는 생각만 하고 산 듯한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전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꿈을 꾸며  살았고 가끔은 ‘기가 막히게 기억에 남는 꿈’을 자랑하기도 했었는데.. 혹시 이것도 나이 탓? 나이를 먹는다는 의식이 이미 잠재의식이 아닌 뒤로는 모든 것을 이렇게 나이 탓을 하는가? 그야말로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노래 제목 생각이 난다.

꿈을 ‘사랑’하는 나는 침대에 들어갈 때 꼭 ‘화살 기도’를 한다. 오늘 밤에 ‘근사한 꿈을 제게 주세요..’ 라는 애 같은 바람이다. 물론 그런 기도가 들어질 수는 없겠지만 그 정도로 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기가 막힌 꿈’의 잔영 殘影 과 느낌을 사랑한다. 어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가끔 ‘우연히’ 정말 멋들어진 ‘그림들’을 간직하고 깨어나면 하루 종일 그것을 요리하기도 한다. 그 꿈에 어떤 의미라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요새 별로 꿈을 못 꾸다가 며칠 전부터 빚이라도 갚을 양, 생생하게 펄펄 끓는 물처럼 가슴에 남는 꿈을 꾸게 되었다. 며칠 간이지만 나도 놀랄 지경.. 혹시 이렇게 변한 꿈의 pattern에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암시하시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비약적인 생각도 들 지경이다.

특히 지난 3일 간의 꿈의 천사의 활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너무나 생생한 것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꿈에서 깨었을 때 부터가 꿈의 시작이고 꿈의 상태가 현실 같이 느껴지는 완전히 꿈과 현실이 바뀔 정도로 느껴지는 너무나 너무나 생생하고 기억에 99.9% 오랫동안 남는 그런 것들.. 3일 연속으로 ‘즐긴’ 이런 꿈 뒤에 조금 걱정까지 들게 되었다. 기억에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들의 대부분은 거의 ‘사람들’에 관련 된 것들이다. 무슨 멋진 절경을 본 것도 아니고, 하느님이나 성모님을 본 것도 아닌 그저 mere mortal 들이다. 물론 그들은 내가 어디서 본 사람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특이한 것이 ‘절대로 보기 싫은 사람’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주변에 모두 보이고 말들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중에 제일 웃기는 것은 이것이다. Donald Trump를 꿈에 본 것이다. 이 인간의 ‘쌍판’을 안 보려고 TV나 Internet news까지 ‘완전히’ 끊고 산 지가 몇 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이 인간이 꿈에 ‘생생하게’ 보인단 말인가? 웃기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그 인간과 ‘어울려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 것이다. 꿈 속에서 나의 느낌이 ‘이 인간 내가 본 것 과는 조금 다른 인간이네.. ‘ 하는 것인데.. 내가 하도 이 인간을 love to hate 를 해서 성모님께서 조금 ‘자비심’을 가지라고 이렇게 나의 꿈에 보내주신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며 한참을 웃기도 했다.

개꿈인가? 아니다. 아 나이에 어떻게 애같이 개꿈을 꾼단 말인가? 내가 ‘좋게든 싫게든’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던 영혼들이 나에게 어떤 암시나 의미를 주려고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너무나 선명한 꿈들을 꾸고 나서 나의 두뇌세포가 그렇게 노화가 된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도 들 정도로 선명한 것들.. 이런 것들을 통해서 본 사람들.. 과 나의 관계를 재 점검해 볼 수 있는 우연히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는 그 ‘영혼들’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가.. 싫은 영혼들과의 관계는 고쳐질 수 있는 여지는 없을까.. 벼라 별 생각이 다 드는 며칠을 지내며.. 참.. 내가 바로 dream lover가 아닌가.. (1960년대 Bobby Darin의 oldie, Dream Lover란 것이 생각 나지만 이것은 꿈에서나 보고 사귀는 연인에 관한 것이다. 나의 dream lover는 내가 꿈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Dream Lover – Bobby Darin – 1958

 

내가 예전에 알았고 사귀었던 그 모두들 어디로 갔나?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특히 그들이 완전히 나에게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모두들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나에게 보이지 않게 된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 그들이 나의 옆에 없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이다. 이것은 Charles Dickens의 holiday classic, A Christmas Carol 에서 Scrooge가 Spirit of Christmas Past를 따라서 자기의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경험이라고나 할까?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사실 모두들 그런 경험을 조금씩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은 역사 고금을 통해서 짧지 않은 과거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라면 다들 겪을 듯 싶지만 나는 더 예민하게 느끼는 모양인데 이런 경험과 생각들이 때로는 아주 괴롭기까지 하다.

이런 생각과 비슷한 ‘내용,가사’를 가진 folk song이 있다. 그것이 바로 Pete Seeger의 1960년대 초 hit song인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이란 노래다. 처음에 2절이던 곡이 나중에 3절이 더해져서 무려 5절이나 되는 긴 노래이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구성’이다. 처음에 flowers로 시작되어 마지막도 flowers로 끝난다. 그 동안 이 flowers가 주인을 옮기는 과정이 5절에 걸쳐 나온다. 처음에 flowers가 young girls로, young girls가 husband(man)로, husband(man)이 soldiers로, soldiers가 grave yard로, grave yard가 결국 flower로 돌아온다는.. 불교의 윤회설을 연상시키는, 인생의 여정을 생각하게도 만드는 곡으로 1960년대에는 월남전과 어울려 반전 反戰 곡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던 불후의 classic이 되었다.

내가 이 곡을 알게 된 때도 바로 1960년대의 war protest song 시절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pop chart에 올려놓은 Kingston Trio의 경쾌한 곡으로 들었지만 나중에 이 곡의 원조인 Pete Seeger의 banjo 반주로 된 것을 듣고 역시 그의 것이 이 곡의 진정한 정신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수 많은 국제적인 가수들이 불렀고 record로 취입을 했다. 그 중에도 Johnny RiversSearchers 것은 완전히 Go go style로서 옆에 있으면 춤이라도 추어야 할 듯하게 경쾌하기만 하다. 나머지 것들은 그 가수 나름대로 ‘해석’을 잘 한 듯해서 모두 천천히 감상을 하면 이 곡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에 드는 것을 뽑으라면.. 글쎄 아마도 60년대 대표적 folk, rock stars 였던, Kingston TrioJohnny Rivers 가 아닐까..

 

 

 

 

 

 

 

out backyard daffodil

out backyard daffodil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봉숭아 꽃, 나팔꽃, 분꽃.. 어렸을 적에 나의 방 앞 뜰에 신나게 피어나던 꽃들을 잊고 산 지가 반세기가 훨씬 지나가며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그런 ‘신비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눈에 다시 보이게 되는 것일까?

기계적, 강제적으로 일년 사시사철 꽃을 보고 과일을 먹는 요상한 세상에 익숙해져서 더욱 봄의 꽃들은 의미가 심장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김없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것들, 아침미사 (car) drive길에 연숙의 ‘꽃에 대한 자세한 논평’을 들어야 했다. 특히 2월 달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꽃들은 그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나는 옆에서 안 들을 수도 없지만 과히 나쁘지 않은 자연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

봄을 알리는 1번 타자가 바로 수선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선화.. 그 이름부터 신비롭다. 수선.. 수선화.. 물에 관련되었나? 그렇다. Narcissus와 나르씨시즘(자기도취)의 유래도 이 꽃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1960년대 초, Brothers Four의  folk hit, Seven Daffodils 같은 추억의 folk song도 회상이 되고.. 을씨년스러운 2월의 겨울 날씨에도 봄의 모습을 선을 보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그렇게 그렇게.. 이런 삼라만상,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보존하고 가꾸어야 하는가는 Pope Francis의 2번째 encyclical 회칙, Laudato Si (부제: On Care For Our Common Home, 자연환경보호)  를 보면 얼마나 커다란 신학적인 명제가 곁들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연, 환경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이런 생각의 고리를 일깨워준 ‘가냘프지만, 강건하게 보이는’ 수선화.. 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년에도 나도 너도 같은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되기를..

 

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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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s Four – Seven Daffodils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Where have all my flowers gone?

 

꽃밭 속에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양희은, 김민기의 ‘젊은’ 목소리가 회상되는 노래 구절이다. 없는 꽃을 기다리는 이 곡은 분명히 정치적 angle을 내재한 것이겠지만 현재 나의 꽃밭에는 멋진 꽃들이 만발함을 있음을 느낀다. 내가 꽃밭 속에 앉아 있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 여자, 여성들, 그러니까 ‘자매님’들 속에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르며, 지나간 세월을 돌아다보니 과연 나의 집안이 꽃밭이었다. 나 자신의 family가 생기기 전부터도 나는 100% 꽃밭 속에서 자란 셈이다. 할아버지는 물론 삼촌이나 아버지가 안 계신, 외롭기만 한 외아들(父先亡 單代獨子), 남자 친척도 거의 없이 6.25 동란 와중에 자라난 세대.. 거리에 나가 앞뒤를 보아도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던 시절,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만고  萬古의 역적, 김일성 개xx 와 싸우다 죽고 불구자가 되고..

아버지 삼촌 오빠 등 남자가 없던 가정이 ‘거의’ 정상이던 그 시절에 자란 나의 주위는 모두 엄마, 아줌마, 누나, 게다가 가난에 시달려 시골에서 올라온 ‘무단 상경’ 식모 누나들.. 그러다 급기야는 훗날 내가 ‘만든’ 가족들 조차도 모두.. 여자들.. 와~~ 이러니 내가 꽃밭에 앉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이성 異性’으로 느끼는 어떠한 종류의 감정들도 많이 둔화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곳, 나의 가정의 이런 꽃밭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의 직장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남성적’인 engineers들의 환경들이었다. 지금은 많이 여성들에게 개방이 되어가고 1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여성을 찾을 수 없었던 그런 곳 중에 하나가 기술직이었다. 이런 대조적인 환경들을 무의식적으로 왔다갔다하며 살았지만 결국은 말년에 ‘별 수 없이’ 다시 ‘가족의 꽃밭’ 속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하지만, 거의 기적적으로, 비록 천천히 진행이 되긴 했지만, 나의 coming home (to church & faith), 신앙적인 귀향은 뜻밖으로 ‘다른 종류’의 꽃밭을 선사해 주었다. 건전한 신앙적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멋진’ 자매님들의 꽃밭이었고2 그것은 너무나 신선하게 내 인생 마지막으로 異性적 여성을 재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나의 꽃밭에 있는 꽃들은:

  1. 거의 다수가 나보다는 인생을 덜 살았지만 충분한 경험을 가진 나이이고..
  2. 대부분 그들의 신앙심의 깊이나 경험, 경륜은 훨씬 선배들이고..
  3. 절대 소수 minority인 나를 거의 차별하지 않은 듯 하고..
  4. 나를 opposite-gender 의 angle로 보는 듯 하지도 않는 듯..

 

결론적으로 그들, 꽃들은: 비슷한 세계관, 내세관, 가치관을 가진 ‘진정한 친구’로 나를 대한다는 사실을 5년 정도의 intensive한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게 되었다.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참 인생이란 것.. 예측하게 힘든 숨은 즐거움이, 찾으려고 노력만 하며 어디엔 가에 숨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 꽃들과의 스스럼없는 친교와 대화가 이렇게 쉽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놀라게 한다. ‘성숙한 나이’ 탓도 있겠지만 사실은 ‘비슷한 생각, 습관, 나아가 가치관’을 가졌고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믿고 싶다.

 

 
Best Rendition: Kingston Trio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1. 어떤 것들은 조금 웃기는 현상이지만..
  2. 이 post의 직접적인 동기는, 어제와 오늘 계속 함께했던 ‘꽃’들과 가졌던 impromptu dining 에 있었다.

내일 1월 5일은 우리 집 큰딸 새로니의 33번째 생일이다. 그 옛날, 한때 뻑적지근했던 아이들의 생일이 이제는 어쩌면 그렇게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는가..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거의 신비에 가깝다. 세월의 횡포인가 마술인가, 나이를 먹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는지 싱글벙글 생일 잔치를 받던 아이들, 20대에 이르러 한결같이 시들해진 표정들로 변했고 30대에 이르러 이제는 숫제 거의 관심도 없다.

출산 5일 전, 신정 미사 후에 박재승 부부, 김원백 부부와.. 콜럼버스 한인성당에서.. 1983년 1월 1일

출산 5일 전, 신정 미사 후에 박재승 부부, 김원백 부부와.. 콜럼버스 한인성당에서.. 1983년 1월 1일: 2명 가족으로 마지막 모습

 

우리세대는 가난하고 찌들은 전통인지 생일날에는 그저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먹던 것이 전부였고 더 나아가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께도 감사를 드리던 겸손한 전통이었는데, 그런 소박한 것들이 지금은 아주 신선하고 그립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그것들이 이제는 세계 보편적인지 서구적인지는 잘 몰라도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앵무새처럼Happy Birthday to You..’ 를 따라 부르며 자기가 100% 주인공인 된 조금은 ‘오만한’ 생일을 맞는다. 이것이 요새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생일은 100% 자기의 날인 것이다.

Well after delivery,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Jan 1983

Well after delivery,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Jan 1983

벌써 4년이나 된 나의 blog에서 당시를 피상적으로, 감상적으로 회상을 해 보았지만, 오늘은 ‘4년 동안 더 배운’ 것으로 1983년 1월 5일.. 을 회상해 본다. 그 날은.. 우리가 만든 첫 생일이었다. 지금은 반드시 우리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begotten, not made..], 신비롭기만 한 새 생명, 그것도 ‘우리가 만든’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본 그날이었다. 이런 표현은 사실 신앙의 눈이 뜬 지금에서야 차원이 높게 표현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도 과연 그랬을까? 우리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던 한 생명의 실존적 의미를 그 당시에 거의 실감을 못하며.. 그저 ‘한 인생의 자취’를 역사에 남기는 의무 정도로 생각하며 자질구레한 출산, 유아 쪽에 모든 신경과 노력이 쏟아지기 시작하던 겨울답지 않게 가랑비가 내리던 Columbus, Ohio의 1983년 1월 5일.. 이제는 조금은 더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태어날 당시 새로니는 참 많은 주위의 축복을 받았기에 그 애는 ‘잘 클 것’이라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씀대로 ‘자식은 나의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뼈저리기 절감을 할 정도로 놀라는 순간들도 많았다. 한 마디로.. 저 애가 과연 우리의 자식인가..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는 세월을 거치며 지금은 체념하는 심정이 되었고.. 아하.. 이것이 순리적인 인생의 법칙이로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것과 더불어, 나의 자식들은 ‘내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 것도 아니다‘ 라는 말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되었다. 고유한 영혼을 가진 인간을 우리가 ‘만든다는’ 것이 한마디로 어불성설 語不成說 인 것이다.

‘남아도는 풍부한 cash’가 없던 우리 집, 편안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거의 모든 것들을 자력으로 공부하고, 난관을 헤쳐나간 우리 큰 딸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런 사실이 우리들이 생각한 ‘간접적인 효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큰 걱정하지 않고 이 ‘애’를 두고 ‘보이는 세상’을 떠나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색다른 선물인가?

1월 3일 모두에게 편한 날을 잡아서 다시 한번 ‘미역국’을 나누며 33년 전에 일어난 이야기를 나누며 또 한번 가족의 생일을 축하한다. 이제는 ‘완전한 노처녀’가 되었다고 우리는 푸념하지만 주위 ‘선배’들의 말처럼 요새는 옛날 같은 노처녀는 아니라고 하니.. 조금은 덜 신경이 쓰일 정도다. 요새 ‘아이’들.. 그야말로 self-sufficient generation, 부족한 것이 없으니 ‘남편의 도움’이 크게 절실하지 않은 모양이다. ‘할 것 다하고’ 생각하겠다는 태도에 우리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져서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남은 인생은 그렇게 짧지도 않지만 그렇게 길지도 않다는 사실만 하루속히 깨닫는 순간이 오기만 바라고 있다.

 

Hold on Tight to Your Dreams – ELO – 1980년대 초 oldie

 
Rainy Night in GeorgiaBrook Benton – 1970

 

rainy-may

rain front over Georgia

¶ Rainy Night in Georgia: California의 기록적인 가뭄을 생각하면 이곳 지역 특히 Georgia는 정말 lucky하다고 할까.. ‘진짜’ 여름이 한 달이나 남은 5월 말에 이곳은 거의 매일 ‘장마’ 같은 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린다. 중년이 넘으며 비를 ‘기본적으로’ 좋아하게 된 나는 물론 대환영이다. 기온까지 시원해서 밤에 창문을 열고 잘 때 들리는 빗소리는 흡사 Brook Benton의 1970 hit oldie, Rainy Night in Georgia를 연상케 하는 짜릿하고, 아련한 감정까지 일게 한다. 이 oldie는 옛날부터 들을 때마다 ‘밤에 내리는 비에 젖은 한과 서글픔’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어머니, 성모님의 5월, 촉촉한 비에 젖어 다음날의 싱그러움을 예고하며 서서히 사라진다.

이곳도 사실은 얼마 전까지 가뭄으로 식수제한 까지는 아니어도 잔디나 garden등에 물을 주는 것을 격일제로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이후로 갑자기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가뭄을 사라지게 하는 충분한 비가 내려 주었다. 주로 겨울과 봄에 많이 내렸고 특히 봄비는 꽃가루 pollen를 적당히 control해 주어서 앨러지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해 주었다. 지금 이곳의 weather system은 사실 Texas 지역 에서 오는 것인데, 그곳은 완전히 홍수가 되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이곳은 이런 ‘기분 좋고, 혜택이 많은’ 늦봄 비를 누가 마다하랴..

 

Our 'master', Tobey cookie

Our ‘master’, Tobey cookie

 

¶ 어제는 Tobey의 annual ‘medical’ checkup 으로 5 mile 떨어진 animal medical clinic 에 일년 만에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씩 맞는 vaccine shot (rabbi 같은) 은 의무적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다른 문제가 있는지 general checkup을 받는다. 우리가 가는 곳은.. Tobey가 태어나고 몇 달 후부터 그러니까 2005년부터 다녔던 East Cobb Animal Medical Center인데 그러니까 10년째 다니고 있는 곳이다. 그곳의 Dr. Heard는 구수한 인상의 중년이 넘은 ‘전통적인 수의사’ 모습으로 참 pet 들을 잘 다룬다. 특히 Tobey는 이 수의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모두들 웃는다. 그러니까 Tobey는 주로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결론이다. 한번 visit에서 대강 $250 정도 charge를 예상하지만 가끔 예외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가 그런 예외로.. 무려 2배 이상을 예상하게 되었다.

대부분 Tobey는 건강하다고 진단을 받았는데, 피부의 이상과 귀의 이상.. 모두 bacterial skin & ear  infection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귀 속에 염증과 피부의 가려움, 염증.. 어쩐지 근래에 지독히도 scratch를 하더라니.. 나는 그저 flea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현미경으로 귀의 액체 fluid sample을 보니.. bacteria가 우글우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귀를 청소, 소독하고 항생제를 맞고.. 그러니까 vaccine shot은 하나도 못하고 급한 이것부터 치료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일주일 후에 recheck을 할 때 annual vaccine shot을 맞게 되었다.

이런 저런 것을 보며 생각한다. 주위 pet을 가진 사람들에서 정들었던 식구 같은 pet들이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의 모습들이다. Pet들을 거의 사람 식구들처럼 간호를 하고 슬퍼한다. 옛날에 내가 그런 사람들을 비웃었던 것 기억을 한다. 지금은 물론 그런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말 못하는 이런 pet들의 고통을 누가 알랴? 같이 오래 살았던 pet.. 사실 식구나 다를 것 하나도 없다, 아니 어떨 때는 사람보다 더 민감하고 자상하다. 10살을 넘은 우리 Tobey도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하는데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코가 찡~ 해진다.

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창희야, 용현아.. 친구여, 잊었는가? 1970년, 45년 전 우리의 시대를.. 박창희 손용현 그리고 나 이경우 비록 흔히 말하는 삼총사까지는 아니었어도 원서동 죽마고우 세 악동이었지… 재동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헤어진 우리들, 모두 개천이 고즈넉이 흐르던 비원 옆 담을 끼고 추우나 더우나 밤이 되도록 밖에서 뛰놀던 시절을 뒤로하고 의젓한 대학생으로 우리들 다시 만난 것이 1970년 이 시작되던 때였지. 비록 나와 박창희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이미 만나서 다시 ‘죽마고우’가 되었지만 너는 더 늦게 다시 만나게 된 것.. 거의 기적과 같은 ‘사건’이었어.

그래도 그때부터 우리들은 헤어진 시절을 만회라도 하듯이 열심히 도 자주 만났었지. 비록 우리들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당시에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청춘’을 공부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던가? 그런 우리들 뒤에 두고두고 그 ‘놀았던’ 값을 치르기 했지만 크게 후회는 안 하고 싶구나. 특히 1970년 4월의 우리들만의 1주일간의 지리산 등반, 나는 아마도 ‘죽어도’ 못 있을 것 같다. Pop song에 열광하던 우리들, 멋진 다방을 찾아 어둠 속에서 진을 치고 백일몽을 꾸었던 시절, 찌들었던 연간 소득 수백 불 밖에 안 되던 그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 별로 걱정한 적이 없었지.. 항상 우리는 무언가 희망이 있었으니까..

Bee Gee’s 의 ‘명곡’ First of May를 애창하던 그 시절의 화창한 봄날들, 비록 대학 졸업을 앞둔 불안한 시절, 정권연장에 골몰하던 박정희 정권의 하늘아래 있었지만.. 그런 것들 우리에게 그렇게 보였던가? 산과 노래와 멋진 다방들만 있으면 족하던 그 시절을 반세기가 지나가도 똑같은 심정으로 생각한다. 우리들 모두 ‘해외로 해외로..’를 외치면 헤어졌고 결국은 ‘완전히’ 헤어졌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머리 속만은 절대로 헤어짐을 못 느끼며 산다. 특히 나는.. 최소한 일년이 하루 오늘만은 절대로 못 잊는다.

작년 5월 1일 이후, 너희들은 어떤 인생의 변화가 있었는지? 창희는 물론 ‘든든한’ 신앙을 더욱 더 성장시켰으리라 짐작이 되지만 용현이, 너는 정말 알 수가 없구나. 혹시나 어떤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나는 최소한 나의 믿음이 아주 희망적이고, 날이 갈 수록 더욱 희망적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지난 일년 동안 그것이 조금은 더 성숙해 졌다고 자부한다. 나의 세계관은 180도 변하고 있으니까.. 다른 쪽에서 세상을 보는 것, 정말 신기하기만 하구나.

너희들 자식들 모두, ‘정규 코스’를 거치며 살아가는지 궁금한데.. 나의 두 딸들은 그렇지 못해서 우리의 나이 든 인생은 조금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 같구나. 하지만, 이제는 별로 큰 걱정을 안 한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우리 부부, 가족 모두 ‘영, 육’ 모두 건강한 편이니까.. 그것이면 족하지 않니? 너희들도 모두 영육간 모두 건강한 나날을 보내기 바란다. 내년 5월 1일에 또 ‘보고’를 하면 좋겠구나. Adios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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