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Leaf, Leaf Blower, Examen

새벽 4시반 맑은 머리로 시계를 본다. 너무 일찍 깨어서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깨끗하고 맑은 머리 속, 주위는 깜깜하지만 한 쪽 창 밖으로 가로등의 불빛이 새어 들어온다. 화장실 가야 하는 신호도 전혀 없다. 일어나 어둠 속을 서서히 몰래 걸어나오며, 오늘은 몸이 흔들리지도, 어지럽지도 않다. 너무나 산뜻하다. 조금 예외적인 것 아닌가, 물론 좋은 쪽으로… 오늘 하루는 어떤 날이 될까, 미리 좋은 날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한다. 오늘 새벽 덤으로 두어 시간을 벌었다. 감사, 감사…

아~ 드디어 왔다!  기다리던 또 다른 소식[차가 어제 11월 19일에 팔렸다는], car donation의 모든 과정이 끝이 난 결과의 tax deduction information인데, 나에게는 이것이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개월 여 걸친 나의 mild stress의 끝을 맺는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 기쁘게 한다. 보람과 기쁨, 그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어디 있을까? 그래, 조그만 돈이었다고 해도 그것들이 ‘방황하는 많은 버려진 dog, cat들의 생명’들을 구할 수 있다는[North Shore Animal Rescue League America] 생각은 정말 기쁘고 기쁘다. 올해 감사절 감사목록에 이것도 포함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더 소중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과거에 묶여 삽니다.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에 잘못 집착해서 오늘을 인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거를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를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면서 오늘을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약속된 미래가 오늘을 통해서 오기 때문에 미래를 희망하는 만큼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반영억 신부, 오늘 복음말씀에 대한 글[하느님은 산 사람들의 하느님이다..]이다. 오늘따라 이 글에 관심이 더 간다. ‘문 밖에서’ 라는 임동진, 황정아 출연의 드라마와 어울려 나를 생각게 한다. 내가 3개월 시한부 진단이 나왔다면… 흔한 듯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연상케도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만약, 만약… 그래도, 하지만, 설마, 할 수 없지…  올바르게 죽은 방법은 무엇일까? 과거는 자비로, 현재는 최선으로, 미래는 예수님께 맡기고…  나는 이런 적절한 분배가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미래, 나중이 현재…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는 것일까, 나는… 미래에 나는 과연 굳건한 믿음을 두고 있는가, 이것은 현재 내가 더욱 더 공부하며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일부인 것이다. 미래에 대해 공부하면 할 수록 현재를 더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MEN, The Examen pronounced ‘examine’ 발음하는 것 가지고 씨름을 한 후, 생각을 한다. 14년 전통의 rosary, 묵주기도와 병행할 기도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느낀다. 쉽게 말하면 묵주기도는 ‘기본 중의 기본’, 이제는 조금 색깔을 넣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James Martin 신부의 Learning to Pray를 읽으며 아~ 이것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것에 대한 나의 편견, 오해를 넘어서 진짜 의미를 공부하고 실천을 하면 어떨까? 새롭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제일 좋은 방법이 이것이라는 확신도 생긴다. Martin신부의 경험적 설명은 정말 일품인 모양, 정말 감이 잡히는 듯하다.

Examen에는 examination of CONSCIENCE 와 examination of CONSCIOUSNESS 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나는 전자만 알고 있었는데 후자는 뜻밖인 것이고 나에게 더 유용한 것이 아닐까? 나는 하느님의 존재, 현존을 거의 하루 종일 잊고 살 때가 대부분이 아닌가… 알 수가 없다.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Examen of conscience has narrow moralistic overtones. Its prime concern was with the good or bad actions we had done each day. Whereas in discernment the prime concern …  is with the way God is affecting and moving us … deep in our own affective consciousness.

Presence, Gratitude, Review, Sorrow, Grace…

Presence, 하느님이 나를 현재 바로 보고 있음을 느끼며 하루를 돌아본다

 

IS ATHEISM DEAD? 아직도 시작조차도 못하고 있다. 아직도 DONALD 개XX냄새가 나기 때문인가? 조금 감정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다. 그 정도로 나는 DONALD 개XX 냄새의 가능성조차도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와 내용 속에는 그 냄새가 안 날지도 모른다. 읽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으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늘어지게 편한 마음으로 푹~ 쉬고 싶은 날이지만 불행하게도 외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이것은 내가 고쳐야 할 것이다. 오늘 나가는 것은 ‘봉성체 재교육’이란 것 때문이지 않은가? 전 같았으면 ‘다시 생각 안 하는’ 그런 일이 아닌가? 지난  Pandemic의 여파도 있었고 레지오 탈퇴도 가세해서 이것의 중요성을 거의 잊고 산다. 이런 태도가 바람직할 리가 없다. 성당 성사 중에서 이것처럼 ‘잊혀진 중요한 봉사’가 어디 있겠는가? 레지오와의 연관성을 이제는 잊으며 생각하고 싶다.

오늘 외출 계획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 왜 연숙이 혼자 가면 안 되는가… 하는 간단한 것이었다. 문인화로 아침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를 태우고 다시 성당으로 간다는 것, 얼마나 낭비적인가? 어차피 봉성체를 연숙이 혼자 해 왔던 것인데 나에게 재교육은 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 나도 편하게 토요일 오후를 즐기고,  연숙도 편하고, 환경 지구에게도 덜 미안하고… 우리 모두 win win win!

 

Leaf Blower에 대한 NYT 기사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왜 leaf blower로 search를 하는데 내가 찾는 것만 안 나왔던 것인지. 그 기사는 내가 전적으로 동의, 동감을 하는 주장[Margaret Renkl from Nashville, TN]을 담은 것이었다. 소음과 공해를 떠나서 지구 생태과학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이유를 비교적 과학적으로 설명을 했는데, 그것을 나도 알아서 지식적 무장을 하고 싶었다.

 

We constantly pray to God to make order of our chaotic lives, but what if God is the very source of our chaos? What if chaos and disorder are not to be shunned and avoided but attended to and embraced? Nature shows us that life is not meant to be nice, neat, and controlled but lived on the edge between order and disorder. – [The Hours of the Universe, p9]

 

숨어있던 책들, 근래, 최근에 샀던 것들을 가급적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서 하나 둘씩 꺼내어 desk위에 쌓았다. 이것도 읽고 싶은 책들을 가까이 두고 보는 한 방법이다. 가까이, 가까이…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혼자’ 걸었다. 혼자 걸었던 적이 많지 않았기에… 하지만 오늘은 혼자라는 사실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날씨도 예상보다 쌀쌀해서 제일 짧고 빠르게 걸었다. 걸으면 Google Voice 2, 3로 연속으로 voice mail을 남기며 병신 같은 넋두리를 남겨놓았다. 이것도 나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연극처럼 느껴졌다. 오래 오래 전 서울 거리를 수많은 사람 속으로 걸으며 부자연스러운 마음을 달래려 무척 노력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에, 그 당시 mobile phone같은 것이 있었으면 그것은 마의 구세주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동네를 걸으며 차가 오거나 사람이 올 때 어색함을 잊으려 말하지도 않는 cell phone을 들고, 무언가 얘기하는 척 연극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이것은 완전한 희극중의 하나다. 그것이 나는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고…

계속 동네 산책 중에 집 근처에 오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나의 last leaf tree를 본다. 이제는 윗부분은 다 떨어지고 아랫부분만 엉성하게 남았다. 이 나무가 나에게는 마지막 잎새 역을 맡은 늙은 나무다. 이 나무가 병들고 쓰러지기 전에 나도 같이…

 

어제 교성이를 카톡 friend로 다시 넣어 놓았다. 다행히 녀석의 전화 번호로 카톡이 연결이 된 것, 나는 왜 그랬을까? 녀석이 나를 싫다고 연락을 끊자는 일방적 선고의 충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일까? 너무나 의외적인 일이 생기면 나도 이성적인 사고를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지나가고 있으니, 서서히 냉철하게 세상을 보아야 할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기분이 무척 나쁘다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녀석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정도의 충격이지만 이제는 다시 연락이 되어서 더욱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다. 녀석이 빠진 나의 과거의 일부를 원상복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은 몸의 상태가 어느 정도일까? 음성통화라도 하면… 하지만 용기가 없다. 용기가…용기가…

와~  결국은 교성이와 연락이 닿았다. 이것은 기적 같은 놀람이다. 솔직히 솔직히 교성이와 끝났다고 비관적인 결론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비록 기도 중에 그 녀석을 만나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이렇게 우리가 끊어졌을까 생각하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다. 어제 우연히 전화번호로 연결을 시켜놓고 초조히 기다리다가 오늘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인사말을 보냈는데… 기적처럼 금새 답이 왔다. ‘용서해 달라고…’ 나는 울고 싶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때 그 녀석의 ‘단절 선언’은 일시적인 행동임을 알게 되어서 날라갈 듯 기뻤다. 이것이 기쁜 것이다. 그래, 우리는 오래 전 순수할 때 만나고 헤어진 친구가 아니냐… 떨어질 수가 있냐?

 

Reminiscing Happy Days with Tobey…

오늘도 2시간 산책을 했다. 이 제일 긴 코스는 보통 걸음으로 1시간 45분 정도 걸리고 천천히, Ozzie에게 끌려가면 2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2시간 짜리는 나도 천천히 걷는 것이라서 운동량은 떨어지지만 대신 더 밖의 맑은 공기를 마시게 되는 이점이 있다. 특히 요즈음 같은 멋진 가을 날씨에서는 이것이 최상의 운동 일 듯하다.

오늘 산책에서는 모처럼, 3년 전까지 Tobey과 같이 누워서 하늘을 보던 그 playground 의 놀이터에 올라가 Ozzie와 둘이서 누워보았다. 어찌 Tobey생각이 안 날 수가 있는가. 그 녀석 생각을 하면 필요이상으로 울적해져서 가급적 이곳에 올라가는 것을 피하곤 했는데, 오늘은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마음껏 추억하자는 뜻이다. Tobey도 정말 나와 같이 행복한 삶을 살고 천수했다고 나를 위로하기 바쁘다.

집 어귀에 있는 나무의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위쪽은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었고 아래 쪽에 조금 남아서 아마도 며칠 안에 다 떨어질 모양…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일찍 떨어진 것은 아닐지…

 

오늘도 다행히 제시간 6시 30분에 일어났다. 휴~ 이런 것도 이제는 조그만 은총으로 생각된다. 어제 이제는 귀국한 조시몬 형제의 카톡에 ‘건강 검진 잘 받고 건강 하라’는 충고가 이제는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진정한 도움말로 들린다. 어떻게 살면 건강하게 사는 것일까? 우리는 어느 정도 열심히 사는 것일까? 과학을 너무 신봉하는 것도 그렇게만 그것을 불신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과학은 믿음과 상관이 없는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을 믿고 따르자.

어제 송 아오스딩 형제가 카톡 초대를 보내왔다. 지난번 젊은이 장례미사에서 만났을 때 구역모임을 언급한 것 때문이 모양이다. 솔직히 아직도 무언가 ‘앙금’이 남은 듯하지만 이렇게 살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몇 사람과의 일시적 ‘사건’이었지 않은가? 그것도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마음을 열고 사는 것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 보고 싶지 않은 사람[그곳에는 우리가 레지오 탈단 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 한 사람도 있으니…]이 그곳에 있는 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이것도 맡기자, 맡기자… 상식적이고 평범하게 살자.

책, The Hours of the Universe 지금 필사, 독서하는 책이다. 이 책도 나의 주관심사인 과학과 종교의 핵심을 찌르는 지적 심도와 명상, 묵상이 멋지게 어울린 보기에 가벼운 책이다. 저자는 나에게 익숙한 과학자, 교수 수녀 Illa Delio.. 얼마나 멋진가? 그녀는 나의 다른 선생님 Teilhard Chardin 석학이기에 간접적으로 나는 Teilhard에 관한 공부도 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들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것을 분석하는 것도 큰 일이 되었다. 왜, 나는… 이런 주제에 매료가…

COVID Booster Shot Fatigue

우려한대로 연숙에게 shot side effect가 왔다. [큰 사위] Richard가 경험했다는, 비정상적인 피로감, 바로 그것인 모양이다. 열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저 피로하다고.. 허~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이 같은 심리인가?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시간만 지나면 되는 것이니, 이것도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대신 ‘죽을 병’에서 조금 더 멀어진 것이니까… 이것으로 아침의 정상 routine이 바뀐다. 매일미사, 그리고 오늘 가려던 Sam’s Club shopping도 내일로 미룬다. 덕분에 조용한 아침시간은 나에게 거의 bonus와 같은 것이니까, 절대로 불평할 수가 없다. 아니 심지어 감사한다고 나 할까… 이것도 아동심리인가?

결과적으로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sick day가 된 것인가? 연숙은 완전히 반나절을 완전히 잠을 자고, 나는 별 증상이 없어서 허리가 조금 아픈 것을 낫게 한답시고 동네를 혼자서 걸었다[짧게]. 그러다가 오후에 들어서 나도 조금 그야말로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해서 연숙이 빠져 나온 침대로 들어가 2시간 이상을 자게 되었다. 이것으로 booster shot 후유증 행사가 끝나는 것인지…

 

어제로 끝난 daily typing, 그것이 없어지니까 조금 허전하다. 어제 끝난 것은 James MartinBetween Heaven and Mirth, ‘성자처럼 즐겨라‘ 인데, 다음 것은 무엇을 할까…. 이번에 새로 산 ‘따끈따끈’한 Ilia Delio의 신간 The Hours of the Universe로 정했다. 책의 두께는 비록 얄팍하게 보이지만 내용은 그 반대다… 아주 무겁고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Ilia Delio ‘수재 과학자, Teilhard expert’ 수녀의 글은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21세기 과학, 신앙’ 접목을 위한 걸작임을 알고 있기에 이것도 soft copy를 남겨두고 싶다.

Booster Shots at Publix, Finally…

오늘 저녁 늦게 Corona booster shot 예약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고 있었다. Pandemic이후 오랜 동안 근처에도 못 가보았던 YMCA,  그 바로 앞에 있는 이곳 Publix Supermarket에서 이것을 맞게 되었다. 3주를 기다릴 줄 알았다가 새로니의 예약 덕분에 일찍 맞게 되었지만 사실은 주변의 아는 사람들 거의 다 맞은 것을 알면 이것은 너무나 늦은 것이 아닌가?  최근에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 다시 감염률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정말 골치 아픈 세상을 살고 있다.

결국은 우리도 이렇게 해서 COVID booster shot 접종을 받았다. 이것으로 ‘당분간’ COVID 로 죽는 chance는 아주 낮아진다고 한다. 이것을 맞는 것,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인데 왜들 그렇게 앙앙거리는 것인가? 이번 Pandemic을 겪으며 새삼 깨달은 것, 이 세상에 정말 바보, 병신, 아니 거의 criminal급 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불쾌한 사실, 어쩌면 그렇게 무식하고 남을 배려 못하는 병신, 무지랭이들이 득실거리는 걸까… 솔직히 미안한 소리지만 그런 부류 인간들, 이 병에 감염되어서 죽지는 말고, 죽기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1+1=3 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은 인간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오늘 접종은 의외로 밤시간에 차를 drive해서 가는 기회가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접종의 느낌 대신에 밤시간에 drive해서 나갔다 온 느낌을 나누었다. 정말 오랜만인 것이다. 밤시간의 밖은 우리에게 조금은 불편한 모습들, 확실히 이것으로 우리는 활동적인 세대에서 이미 멀어지고 있음을 절감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착잡한 심정이다. 옛날 옛적, 오밤중에 장시간 drive하며 돌아다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딴 나라 세상 같기도 하고… 조금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요즈음 나를 매료시키는 Thomas Berry의 거시우주적 자연관이나 어제 읽었던 Avery Dulles [추기경]의 ‘자연’ 체험담 등이 나의 보는 눈을 더욱 활짝 열어주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Dulles 신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롭다. Dulles 집안은 미국에서 유명한 명문가문이다. 나도 어렸을 적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인 John Foster Dulles를 기억할 정도니까.. 그의 아들이 바로 Avery Dulles라는 것인데 집안의 후광과는 상관없이 이 추기경님은 미국 제일가는 가톨릭 신학의 거두인 것이다. 이분이 대학시절까지 무신론자에 가까운 agnostic였는데 한 순간에 하느님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내가 요사이 유달리 깊은 가을의 모습에 감동하는 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이 추기경도 어느 날 나무의 모습을 보다가 깊은 영감을 느끼고 곧바로 가톨릭에 입교를 했다고 한다. 비슷한  case로는 유명한 당대의 석학 Narnia Trilogy로 알려진 C.S. Lewis 의 천주교 개종 일화도 있다.

 

I walk therefore I am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 도 Ozzie와 둘이서 정처 없이 2시간을 걸었다. 그야말로 spectacular, gorgeous day, 깊어가는 가을의 모습, 이곳에 산 이후 제일 멋진 가을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니면 내가 자연을 보는 눈의 차원이 올라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눈으로 들어오는 물리적(광학적) 그림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뇌 능력이 발달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 이상의 형이상학, 초월적인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오늘 드디어James Martin신부의 걸작,  ‘성자처럼 즐겨라!’ 의 ‘필독서’ [필사, 독서의 약어]가 일단 완료되었다. 재독을 하며 교정을 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 책의 요점은 대강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즐겁고 명랑한 신자가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하는  마틴 신부의 경험적 논문 급의 정말 탁월한 솜씨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책의 주제를 나와 어떻게 연관을 지을까 하는 과제는 남는다.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긴 했다. 우선 나와는 거리가 먼 어려운 요구라는 것, 나는 어쩌면 너무 심각한 자세로 살고 있다는 것, 그런 나와 함께하는 나의 주변 가족, 지인들… 미안하기도 하다.

Catholic Sunday, Redux 2021

Catholic Sunday… 아~ 아련~ 하고, 아늑하며 감미로운 느낌이 든다. 오래~ 전 가끔 나는 이런 제목으로 블로그를 쓰며 주일 오후를 지내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오후가 되었다. 일요일, 주일은 주일이지만 가톨릭 천주교 주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일미사 후, Vatican Mass, Angelus를 시작으로 각종 전세계와 미국의 교계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진정한 휴식, 휴일을 보냈던 때, 그때가 지금은 정말 그리운 것이다. 이것이 Pandemic은 말할 것도 없고 2017년의 각종 ‘인재 人災’가 발생하기 전 모습이다. 이때가 내가 말하는 authentic Catholic Sunday였다. 이제 다시 그런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무리 그때가 그리워도 그때의 모습에 머무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 진보, 변화가 없는 인간은 하느님의 바램이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연중33주일, 다음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어서 새해 시작인 대림절이 시작된다. 결국은 전례력 한 해가 또 꼴깍~ 넘어가는구나.  빠른 것인가, 기다림에 지쳐 늦게 온 것인가.  그래 기다렸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세월이 느린 것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대림절 Advent 2021년, 그리고 2022년… 세속적 한 해도 한 달 뒤에 뒤따라 올 것이고. 그래 모두 모두 반갑게 맞아들이자.

순교자 성당엘 가보니 정문 주차장의 문이 닫혔다. 아~ 오늘 바로 그 garage sale을 하는 날이었구나… 우리도 조그만 것을 하나 이곳에 협조했지만 그 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조금은 미안하고 심지어 죄의식까지 들고… 예전에 비해 퇴색해지는 듯한 우리의 봉사정신에 민감한 것인지…  싸늘한 빙점에 머무는 이른 아침부터 수고하는 젊은 봉사자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즐거운 마음자세를 갖고 일하는 모습, 그리워지기도 한다.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우리세대는 이미 ‘주역’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오늘 미사 때 우리 바로 뒷자리에 한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곳으로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연숙이 그들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아니, 인사가 아니라 위로의 말을. 그들도 슬픈 표정으로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받는다. 뒤돌아 보는 것을 꺼리는 나도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아하~ 지난 화요일 연도, 장례미사의 그 가족들이 아닌가? 32세로 요절을 한 청년의 가족… 아무런 예고, 낌새도 없이 갑자기 선종을 한 외아들… 과연 이 가족은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 이후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전 가족이 첫 미사에… 마음 같아서는 다가가서 간절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미사 후 신부님이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모두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이럴 때 박수를 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위로의 표시가 될까? 그것보다는 그들을 소개하며 위로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하는 정도에게 끝났으면 얼마나 적절했을까…  이래서 이번 신임 신부님의 점수는 나에게서 또 1점은 깎인 셈이다. 

 

Bakery ‘하얀풍차’에서 안나, 아가다 자매님들과 ‘수다’를 떨며 아침 coffee와 doughnut으로 주일 ‘정기모임’을 마쳤다. 이 모임도 이제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요사이 우리에게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는 활력을 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외로운 시절을 보내는 현재 우리에게 또 이런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참 인연은 묘한 것인가. 누가 이런 것들을 예측이나 했으랴. 다음 주에는 우리 차례로 점심모임을 둘루스의 칼국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라니 Tucker 집에 잠깐 들러서 깍두기를 전해주고 왔다. 이런 때 나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다. 아픈 나라니를 위해서 신경을 써서 깍두기를 전해주자는 얘기에 역시 나는 ‘반가운 듯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태도를 나 자신도 분석하고 싶다. 왜 그렇게 그런 말을 거의 피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일은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면 간단히 끝날 터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분명히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전통적인 반응, ‘귀찮다’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just do it, it’s now or never의 정신이 이렇게 약해졌단 말인가?

Freeze Warning, Mid November

Freeze Watch가 Freeze Warning으로 바뀌었다.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 사이…아마도 이곳은 upper 20s정도가 되지 않을까? 확실히 빙점을 밑도는 것, 하지만 바람의 상태는 어떤가? 그것이 더 큰 문제.. 화초들은 올해 신경을 미리 써서 모두 실내로 대피를 했지만 의외로 water supply 쪽 hose, pipe를 거의 잊었다. 연숙은 그대로 두자고 하지만, 최소한 물은 빼고 수도꼭지를 잠그기는 해야 할 듯… 이렇게 올해는 예년에 비해 조금 늦게 첫 얼음을 보게 되는구나…

 

스트레스, 그것도 쪼잔한 것들, 왜 그런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일까? 알고 보면 대부분, 너무 잘 하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도 일리가 있다. 조금 못해도 된다면, 조금 자유스러워진다면 스트레스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James Martin신부는 말한다.

영적 가난은 기쁨을 앗아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와 반대로 기쁨으로 가는 문입니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은 자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는 “전부 다 나한테 달려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려는 유혹은 매우 강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자칭 메시아주의Messianism’라고 부르겠습니다.

James Martin <冊: 성자처럼 즐겨라> p383

 

연숙의 산책 의지는 아직도 굳건한 모양이다. 오늘도 걸었다. 거의 full course로. 속도도 예전에 비하면 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언덕을 오르는 것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고, 특히 60개 정도의 급경사 계단 산책로도 열심히 오르고…  걷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으니 이제는 이것을 지속을 시켜 습관으로 만드는 노력은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좋다는 습관을 들이는 ‘성공한 경험’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기에 내가 도울 수 있다.

오늘 날씨는 걷는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런 청명하고 싸늘한 가을, 게다가 색깔이 거의 완전히 들어가는 가을나무의 모습은 왜 올해에 이렇게 나를 자극하는 것일까? 그야말로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은, 영적인 감동까지 느낀다. 감사합니다….

 

가을 산책을 시작하면서 낙엽 이외에 가끔 발에 채이고 것 중에 도토리 acorn이란 놈이 보인다. 이제야 이것, 흔하다면 흔한 것이 나의 눈에 들어오고 드디어 몇 개를 주웠고 급기야는 그것을 소중하게 가지고 왔다. 처음으로 자세히 본 것, 감상적이 안 될 수가 없다. 이제야 이것이 나의 눈에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는 급기야 연숙이 아주 깨끗한 놈 두 개를 주워서 나에게 주었다. 이것에 관심을 갖는 나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 대견스럽다는 모습도 보인다. 이것이 바로 도토리 묵의 재료? 그렇구나, 이것으로 그 맛있는 도토리 묵… Wikipedia에서 자세한 것을 읽기도 했다. 그곳에는 대부분 각지 원주민들의 음식재료로 소개되고 있지만 특별히 한국의 ‘도토리묵 DOTORI JELLY‘까지 따로 소개가 된 것을 보니 참 신기하기만 하다… 이것도 요사이 Thomas Berry 공부의 효과인가… 자연, 그것도 진화하는 자연세계가 너무나 새롭고 신기한 것이다. 아~ 역시 나이다, 나이.. 공짜 선물, 나이의 선물이다.

 

순간적으로 생각을 한 것이 현실로 바뀌었다. 이번 감사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idea, 우리 가족은 일년 내내 자주 본 셈이니까 우리 둘이 조용히 보내자는 것은 사실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둘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를 같이 볼 만한 공통 관심사도 없는데… 여기서 또 번쩍이는 생각지도 않았던 생각, 내가 요리를 해 보자는 것…. 한번도 감사절 미국식 요리를 내가 직접 해 본적이 없었기에 이것도 아주 멋진 idea가 되었다. 우선 연숙이 ‘감동적’으로 보였고, 나도 갑자기 신이 나는 것이다. 그래 몇 가지만 맛있게 만들어서 둘이서 ‘감사기도’하는 것이다. 와~ 성모님 감사합니다!

오늘 밤에 잠시 기온이 빙점을 맴돌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연숙이 부리나케 텃밭으로 가서 고추를 모조리 따가지고 들어왔다. 이런 첫추위 후에 고추농사는 완전히 끝이 난다고… 와~ 놀라고 놀라는 것, 올해 고추 농사, 어떻게 이런 풍년이 있을까? 원 없이 수시로 이것을 마음껏 즐겼다. 맵지 않은 것, 이름도 재미있는 ‘아삭이’ 종자라고… 도마도 농사는 재미를 못 보았지만 이것으로 만회를 한 셈이다. 100 % 연숙의 땀이 담긴 produce였다. 연숙, 성모님, 감사, 감사…

 

Walking Gorgeous Foliage

오후에 예보된 비를 생각해서 오전 중에 Ozzie와  full course walk을 하였다. 거의 2시간의 산책, 정말 올해 낙엽풍경은 장관이었다. 특히 Spring Creek subdivision쪽의 집들은 낙엽을 거의 치우지 않아서 흡사 깊은 산속을 연상케 했는데 요란한 소음을 내며 CO2 gas까지 내뿜는 그 흉측한 [leaf] blower가 이곳에는 별로 보이지 않은 듯했다.  계절에 걸맞지도 않은 파란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낙엽을 치우는 것, 예전부터 나는 아주 싫어 했는데 얼마 전  NYT의 opinion에도 나와 같은 생각의 논평이 보였다. 아예 그 leaf blower 를 법으로 금지하자고… 와~ 멋진 idea가 아닌가? 자연 그대로, 자연 그대로… 삽시다.

요새 계속 지켜보고 있는 우리 집 어귀에 있는 나무의 낙엽, 단풍 상태가 오늘 갑자기 변했다. 색깔은 문제가 없는데 낙엽이 너무나 갑자기 많이 떨어진 것, 텅 빈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오늘 비가 오면 더 많이 떨어질 텐데…

새로니 일행이 떠날 무렵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보한 것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 5시에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내리는 비가 더욱 음산하게 느껴진다. 거의 2주 만에 내리는 이 어두운 비, 화창하던 날씨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가을비의 진수를 보인다. 이제는 지켜보던 각종 색깔의 나뭇잎들이 대거 다투어가며 떨어질 것이다. 비록 나무들은 옷을 벗게 되겠지만 대신 대지는 온통 낙엽들의 보호를 받아 다가올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날 것이다.  Thomas Berry의 ‘영적인 지구’를 이런 자연의 섭리와 함께 저녁 비를 바라보며 명상하는 것도 참으로 멋진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Too Young to Leave…

마지막으로 장례미사 전에 연도를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분명히 COVID-19 Pandemic이전이었다. 그 이후에는 연도를 하지 못하고 장례미사 가족들만이 모여서 한 것이 이제는 연도와 미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조금 세상이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연도, 장례미사 공지를 몇 군데서 받아보고 어리둥절했다. 32세의 청년? 지병도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 ‘프카’ 자매님이 보낸 소식에 자매님 아들과 축구를 했던 적이 있는 아는 청년이었다고 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몸이 안 좋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가보니 숨진 상태였다고… 가족들, 얼마나 놀랐을까? 심장마비인 것 같지만,  왜?

연도 전에 viewing에서 고인이 편안히 누워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고통스런 표정이 하나도 안 보이는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다.  32세의 새파란 Georgia Tech 대학원생 청년, 총각의 갑작스런 죽음, 이런 일이 가끔 있긴 했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지병도 없이 갑자기 밤새 시신으로 변한다는 것, 소설,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이 아닌가? 아직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연도,장례미사, 화장까지 하게 된 것, 우선 관심은 그 청년의 가족들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놀람과 슬픈 심경이었다. 어떻게 그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죽은 본인보다 가족들의 고통…  32세면 내가 결혼할 당시의 나이가 아닌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으로 결혼은 물론이고 애인도 없었던 듯 보이니, 얼마나 많은 인생을 놓친 것인가? 지병도 없이 그러니까 심장마비 가능성이 많은데, 정확한 사인은 무엇이었는지…

오늘 영결 현장은 오랜만에 슬픔을 나누는 장례식 같은 오열의 몸부림을 목격하는 자리가 되었다. 가족 모두들 혼이 나간 표정들, 이들은 어떻게 이 비극을 이겨낼 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일찍 한 젊은 생명을 거두어가신 것일까…

오늘 장례미사에서는 이제까지 듣던 강론과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인 사연,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personalized되지 않은 장례식은 아무래도 아쉽기만 한 것이었다. 유족들과 면담을 거치는 과정이 짧았거나 없었던 느낌이 든다. 지나간 3명의 주임신부님들의 장례미사 강론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인생과 죽음에 대한 교훈들이었지만 오늘은 거의 김이 빠진 듯한, 완전히 boiler plate격이라고나 할까…

오늘 미사에서 보여준 유족들의 모습들은 이즈음 보기 드문 ‘모범적’인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혼이 나간 듯 오열하는 모습은 조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고, 항상 지뢰밭처럼 느껴지는 ‘조사 弔詞’, 여동생이 나와서 짧지만 심도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었는데… 특히 오빠는 겁쟁이였다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대부분 장황하게 길고 긴 넋두리를 하는 것, 정말 나는 피하고 싶은 경험이었기 이번에는 휴~ 하고 가슴을 쓸기도 했다. 비록 우는 소리가 평소에 비해서 클 수밖에 없었지만, 울음소리가 없는 장례미사는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또한 가장 家長의 엄숙하지만 슬픔을 참는 듯한 괴로운 모습,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A Monday in Life

일주일 만에 ‘세상뉴스’의 창을 열었다. 그 동안 거의 모든 뉴스, 특히 정치적인 것[특히 DONALD 개XX와 연관된]은 완전히 닫고 살았지만 나의 삶에 불편함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시간을 더 건전하고 깨끗한 것들로 머리를 채운 셈이다. 이것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한 고육책 苦肉策이지만 앞으로도 물론, 아니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어제 밤부터 나의 관심과 우려는 온통 그 놈의 해괴한 이름들, ‘왕마귀와 METAXAS‘ 에 머물고 있다. 이 ‘괴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모두 예정에도 없이 튀어나온  이 ‘물건들’ 이 나를 조금 쳐지게 했던 순간들을 뒤로하고 나는 ‘실망, 우려, 분노’의 머리 속을 다시 common sense, reasonable & humble 한 것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나는 다시 평화, 평온, 평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현재 내가 살아가는 바람직한 길이다.

어제 연숙으로부터, 손쉽게 할 수 있는, 아니 지나칠 정도로 간단하고 보이는 맨손자세 체조법을 배웠다. 엎드려서, 움직이는 대신 가만히 엎드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인데, 효과가 보기보다 아주 좋다는 말에 나도 앞으로 해보기로 했다. 특히 ‘키가 작아지는 것’을 막아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전통적인 근육운동’이 필요하고, 반드시 다시 시작할 것이다..

지난 한 주일간 벌써 우리의 ‘신기한 몸’는 벌써 온도의 변화에 적응을 하는 것을 느낀다. 기묘한 우리의 몸, 이것이 진화의 결과임은 알지만 첫 진화과정은 누가 시작을 했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앞으로 기온은 ‘고국형, 고전적’인 삼한사온 三寒四溫  pattern으로 나온다. 이것이 정상이다. 지극히 평상적, 편안한 날씨의 연속이다, 감사, 감사…  이제는 과연 언제 first ‘hard’ freezing의 아침이 오는가 하는 것이다.  별로 기념할 것이 없는 이즈음 나는 그날 얼어붙는 아침에 특별히 더 따뜻한 coffee를 즐길 것이다.

 

FIT Colorectal Cancer Screening Test, 이것이 배달 된 것이 한 달도 훨씬 넘었을 것이다. Humana 에서 온 것, 저렴한 비용으로 직장암 검사를 하는 in-home testing kit 인데 작년에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검사를 했던 것이다.  FIT는 Fecal Immunochemical Test의 약자인데 어렸을 적 회충검사를 하던 것과 비슷한 ‘변 검사’다. 결국 이것은 ‘냄새가 나는’ 것이다. 나 자신이 stool 의 모습을 제대로 못보고 살았던 오랜 세월이었지만, 요사이 손주들의 diaper를 갈아줄 때 다시 느낌을 되찾았다. 물론 pet dog 들과 산책할 때는 아예 거의 손끝으로 그 ‘물컹한’ 느낌을 비닐 백을 통해서 느끼지만, 역시 그것과 나의 것은 다른 것인가. 이제는 나의 것을 나의 눈으로 보며 stool sample을 brush에 묻혀서  ‘안전한’ mailbag에 넣어서 보내야 한다. 이 작업이 그렇게도 힘든 것인가… 개들의 검사 때는 그런 작업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과연 이 비교적 간단한 test로 colorectal cancer 를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Insurance로 cover가 된다는 ‘진짜’ 장내시경 검사, 아직도 나는 미루며 살고 있지만 이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Fall Back Day, Kafka’s Shadow..

반갑지 않은 연례행사, 지난 밤에 이미 벽, 손목시계를 모조리 한 시간씩 늦추는 [새벽 2시가 1시로]  고역을 치렀지만 덕분에 아침잠 한 시간을 벌었다. 큰 생각 없이 맞이한 연중32주간 시작 본당 주일미사, 가보니 매년 이즈음 ‘평신도’ 주일이란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2010년대 초,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 재임시 연숙이 평신도 대표의 한 사람으로 강론대에 올랐던 추억까지는 좋았는데.. 글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뜻밖에  ‘W 마귀’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허~ 미리 알았더라면 거의 십중팔구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피했을 터였다. 이 Kafkaesque, hypocritical, lying, attacking 하는 인간과 우리는 왜, 무슨 악연으로 엮였는가? 듣기 싫은  narcissistic mumbo jumbo, 귀를 막는 용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들어야 하는 괴로운 자리였지만, 궁여지책으로 완전히 눈을 감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나의 모습,  죽도록 싫었다. 

오늘은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멋진 가을날’, 시간이 한 시간 늦추어진 것과 더불어 더욱 계절의 신비를 느낄 수 있은 날이 되었다. 오늘은 이전과 다르게 모처럼 Buford Highway의 전통적 명소, Farmer’s Market에 들려서 떨어진 쌀도 사고 식사용 스시, 비빔밥을 그곳의 food court에서 사왔다. H-Mart에 비해서 조금 낡은 내부였지만 이곳의 물건들, 특히 produce 류들은 이곳이 훨씬 싱싱한 듯 보였다. 하도 인상적이어서 다음 주부터는 이곳도 정기적으로 오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환하고 깨끗한 것은 H-Mart로 가고 싱싱한 것, 푸짐한 것을 찾으려면 이곳 Farmer’s Market… 허~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1989년경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와 비교하면 이건 완전히 천지개벽, 아니 천지창조 된 느낌까지 든다.

 

아침의 얼어붙는 듯한 스산함에서 갑자기 찬란한 태양에 힘입어 부드러워진 대기 속을 걷고자 새로 개발된 neighborhood trail을 45분 동안 걸었다. 걷는 것과 혈압조절의 관계를 의식한 것이 제일 큰 동기가 되었나, 연숙이 나보다 더 열심히 산책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 나도 싫지는 않다. 그렇게 오랜 세월 걷자고 했지만 이제야 정신이 나는 모양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년 봄까지는 모기 문제가 없으니 걷는 것 큰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이것으로 신체의 각종 의학적 수치들을 조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요새 계속되는 kitchen area paint, range hood쪽의 faux door 로 그곳이 한결 보기가 좋은 것에 힘을 입어 sink area의 paint job에 도전했다. 크게 힘든 일은 아니지만 귀찮게 자주 움직이는 것, 이제는 예전 같지 않고 지나친 결과에 대한 집착, 실수할 까봐 걱정하는 나의 모습이 싫다. 이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조금 실수해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다시 하면 되는데… 시간은 넘치는데…

 

며칠 전에 거의 충동구매에 가까운 2권의 책이 빠르게 도착했다. 두 권 모두 나를 흥분시킬 만한 제목과 review를 자랑하는 책들이다. 과연 어떤 내용들일지… 기대가 크다.  Ilia Delio, 그녀의 책은 이미 사서 본 적이 있는 수준 높은 scholarship을 지닌 저서들이어서 아마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책, 보기에도 웅장하게 보이는 hardback 멋진 장정으로 심각한 인상을 준다. 과연 Is God Dead? 에 걸맞은 Is Atheism Dead? 제목답게 21세기의 classic으로 남을 것인가? 

하느님 맙소사! 오늘은 정말 극과 극의 극단적 날로 끝이 나는가? 왕마귀에서부터 ‘IS ATHEISM DEAD?’의 저자 Eric Metaxas란 새로운 이름의 저자까지.. 정말 이상하고 싫은 날이 되었다. 왕마귀는 그렇다 치고, Metaxas 라는 발음하기도 괴로운 이름의 인간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의 최근 간행된 책의 저자가 바로 ‘DONALD 개XX’ 신봉자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쓴 저자의 배경에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 예를 들어서 ‘하느님의 존재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의 배경에 그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정치인을 전폭적으로 지지 한다는 것이 포함이 된다면? 이것 정말 예상치 못한 대형사고다. 앞으로는 책을 살 때 그 자자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인가? 책을 return하고 싶기도 하지만, 우선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고, 또한 책에다가 재빨리 나의 sign을 한 것, 등으로 return을 하는 것은 옳지 않는 듯 싶다. 아~ 괴롭다, 괴로워…

Amazon의 book review를 읽으면 이 책의 내용에는 저자의 ‘비이성적’인 정치관은 거의 없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니까 책의 저자를 의식하지 말고 책의 내용에 집착을 하면 이 책을 버리거나 돌려보낼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래도, 찜찜한 것은 역시 나의 ‘과민한 상태’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 냉정하게 판단하고, 읽자, 이 책을…

Back When We Were…

어제 저녁부터 오랜만에 보기 시작한 DVD 중, Back When We Were Grownups, 예전에 느낀 감정들이 그대로 완전히 살아나온다. 오늘 아침에도 이어서 repeat mode로 아예 계속 보이도록 열어놓았다. 이제야 이 Hallmark movie의 원래 소설 저자, Ann Tyler 에 대한 것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Wikipedia의 혜택이 없었지만 지금은 문제가 없으니, 또 세월이 흘렀나…

당시 이 영화의 자세한 plot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대강 이야기의 의도는 짐작을 하였다.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으며 살고 싶은  것이 인생이지만 가끔 의도와는 정 반대의 생을 살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최선을 하는 것도 다른 모습의 인생이라는 사실. 하지만 이 줄거리의 매력적인 50대초 여성[Ann Blyth]의 취향은 나를 철저히 실망시키는 것이어서 영화 뒤의 뒤끝 맛은 언제나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그 생각이 오늘 다시 보며 그대로 살아나온다. 결국은 그 동안 [지난 영화 이후]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 주인공이 정말 좋아하는 남성상은 한마디로, ‘유머러스하고, 웃으며, 항상 움직이지만 심각한 생각은 별로 없는 듯한’ 그런 type이 아닐까? 생의 의미와 깊이 보다는 현상적, 즉흥적인 행복을 찾는 스타일… 나의 type은 절대로 아니다. 그녀는 후자 type의 첫 사랑[Peter Fonda]을 버리고 전자 type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아이들이 주렁주렁 딸린 이혼 남,  결국 결혼을 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곧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에 ‘시집의 대 가족’과 함께 열심히 살다가 다시 재회한 첫 남자, 옛 추억의 환상은 있었지만 이미 굳어져버린 인생관은 다시 이별로 끝난다는. ..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두말 않고 첫사랑과 재결합을 하지 않았을까?  첫 남자의 type이 그렇게 싫었을까? 그 type이 나와 비슷하다고 하면 나는 더욱 우울해진다.

Blythe Danner as Rebecca, Peter Fonda as Will (her old sweatheart)

 

얼마 전에 발견하고 걷기 시작한 집 근처의 apartment nature trail에서 이 지역의 가을철 명소인  Amicalola Fall (in North Georgia mountain)  과 비슷한 stair structure를 보고 이곳을 Amicalola junior(or bab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trail 자체도 멋질 뿐 아니라 급경사로 이어지는 계단은 운동하는 데에도 알맞은 곳이 되었다. 오늘도 둘이서 그곳을 걸었다. 이제는 동네 산책 시간도 따라서 45분 가량으로 늘어나서 아주 적당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Kitchen range (fan) hood 설치, 교체 작업이 끝나면서 hood 위의 공간이 아주 눈에 거슬리게 되었다. 보통은 그 부분에는 small cabinet이 있는데 우리 집에는 원래부터 그것이 없었던 것, 이제는 조금은 자연스러운 미화 작업을 필요했다. 암만 생각해도 FAUX cabinet door가 제일 어울리는 곳이지만 어떻게 문짝만 달아놓을 것인가? 문짝만 따로 살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 비용이 드는 것은 질색이다. 골치를 쓰고 있는데 하늘이 도와서 마침 안 쓰고 버려둔 furniture에 크기가 거의 맞는 cabinet doors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이미 white paint가 되어 있었으니 이것은 우연인지. 그것을 오늘 마침내 설치를 하였다.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것, 그야말로 faux cabinet door 덕택이었다.

 

32살에 세상을 떠난다면? 32살에 대한 감각이 희미해졌다. 32살은 몇 년생인가? 1989년 생, 나라니보다 무려 4살 밑이 아닌가? 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디 젊은 성당 교우[박영찬 베드로, Johns Creek 구역] 의 연도, 장례미사 공지가 오늘 우리에게 왔다. 너무나 사연이 궁금하던 차에 다행히도 프카 자매가 소식을 주었다. 자매님의 둘째 아들과 축구로 아는 사이였다고… 놀라운 사실은 갑자기 세상을 뜬 사연이다. 배가 아프다며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놀랍고 슬픈 비보다. 그 부모는 지금 어떤 심경일까? 상상 조차 하기 힘들다. 화요일에 연도와 장례미사가 있다니 그날 가보면 조금 사정을 알게 되겠지..

 

DVD Movies, The Great Work

모처럼 DVD 시절의 classic movie들을 3편1이나 보았다.  거의 20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것들 DVD disc들…  이제 DVD player도 옛 것이 되어서 아예 ripped format으로 digitized가 되어 모조리 home server에서 stream format으로 볼 수 있어서 편하긴 하지만 역시 DVD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DVD disc를 들고 player에 손으로 넣어서 보던 것,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glass tube TV로 보던 그 시절들이…

 

Thomas Berry Writing essay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한 것, 감회가 새롭다. 오늘 내로 이 전체 course가 끝이 나면, 정리를 하고 싶다. 어떻게 정리, 아직은 idea가 없다. Capra의 사상과 조금 대비하며 공부하는 것도 흥미로운 도전이 아닐까?

결국 코스의 마지막을 넘어서 course survey로 끝맺음을 하였다. 비록 청강하는 것이었지만 중요한 essay와 video는 모두 읽고 보고 공부한 셈이다. 마지막 결론 부분의 video는 The Great Work에 연관된 실제적 결과인 UN 주도하의 Climate Change Conference, Paris Agreement같은 것이 언급되어서 요새 진행 중인 Glasgow COP26 Conference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오랜만에 로난이 왔다. 그 동안 크지는 않은 듯하지만 분명히 무엇이 변했을 것이다. 오늘 Atlanta Braves가 World Series에서 우승을 해서 많은 학교가 holiday가 되었다며 따라서 daycare center까지 놀게 되었다고, 웃긴다. 그래서 나라니가 별 수가 없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되었다. 그래~ 어쩔 것이냐, 이것도 한 때일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밖에 없으니…  개인 날씨덕분에 녀석을 데리고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나무들은 완전히 깊은 가을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1. To Dance with the White Dog, Back When We Were Grownups, 12 O’Clock High

Last Week with Coursera Thomas Berry

Thomas Berry Coursera course의 마지막 주를 지나고 있다. 읽어야 할 것을 필사한 덕분에 Thomas Berry Writings 책의 대부분을 나의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책들을 읽으며 예전, 특히 2014년 전후에 열을 올리며 읽었던 책들을 꺼내어 그 당시를 회상하는 것, 나에게는 참으로 흐뭇한 시간이다. 그때가 나의 신앙의 차원이 급상승 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믿게 된’ 것, 아니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 그것이 현재까지 큰 무리 없이 지속된 것은 ‘지식적인 믿음’의 결과가 아닐까? 무조건 믿는 것, 나는 믿지 않는다.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것도 이성적, 과학적인 이유에 근거한 것들 이어야 한다.

Secular Media Blackout, 거의 즉흥적인 나의 반발적 행동이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나는 즐기고 있다. 아침에 무려 3시간 정도의 아주 평화스럽고 편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 이때 평소에 못하거나 미루어 놓았던 것을 하면 더욱 보람이 있지 않을까? 첫 번째 나의 손이 간 곳은 요즘 들어서 거의 지나치고 있는 아틀란타 대교구 신문인 Georgia Bulletin. 내가 오랜 전 다시 성당 community로 돌아올 무렵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것, 어떻게 된 일인지 Pandemic이후 거의 관심이 떨어지고 front page만 흘깃 볼 정도가 되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가, 왜 다른가,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연보다는 무엇인가 원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이 tabloid, 무엇에 홀린 듯 중요한 기사는 다 읽게 되었다. 현재 우리 대교구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어둠 속에서 차갑게 느껴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어둠이 걷히지 않은 아침, 오늘도 나는 가급적 media blackout 속을 지나갈 것이다. 대신 그 시간에 더 많은 글들을 읽을 것이다. 읽었어야 했을 여름목록 책들이 많이 밀려있다. 이제는 겨울목록으로 바뀌어야 할 판…  그렇지만 계속 조금씩이라도 읽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어내는 커다란 처방전인 것이다.

어제 순교자 성당, 신임 구 미카엘 신부님과 개인적 대화의 통로 channel을 만들려고 카톡 연결을 시도했다. 놀란 사실: 우선 주보에 연락처 전화번호 대신에 그의 email 연락처가 덩그러니 그곳에 적혀 있었다. 흠~~ 아직 전화가 없으신가.. 그럴 리가 없는데… 할 수 없이 email을 쓰는 수고까지 한 결과는 조금 의외였고 실망까지 하게 되었다. 이전 두 신부님의 활발한 texting 하던 모습과 대비가 되면서, 아~ 내가 완전히 다른 시대감각의 신부님을 대하고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다.  설마 지금 mobile phone에 texting (가급적 kakao) 을 안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나의 문의에 대한 답변의 느낌도 ‘차갑게 간단한’ 것, 허~ 내가 그 동안 spoil 된 것인가, 신부님을 잘못 보고 있었나… 이래저래 전임 이재욱, 이영석 신부님들의 자상한 text message들이 이 싸늘한 가을비 속에서 더욱 그리워진다.

 

 

Acorns, acorns under Fallen Leaves…

오늘 머리 속은 마냥 맑은 편이었다. 요즈음 흔치 않던 평화로움까지 느끼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stress의 요인들이 별로 없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날씨까지 흡사 과장된 표현으로 눈이라도 내릴 듯한 표정, 사실은 싸늘한 바람이 낙엽을 사정없이 휩쓸고,  빗방울까지 간혹 뿌리는 어두운 그런 날씨가 몸을 움츠리게 했다. 나는 한마디로 이런 날이 좋다.

이렇게 싸늘한 날씨에 동네를 둘이서 걷는 것, 그것도 일년 중 제일 아름다운 모습의 자연경관을 바라보는 것은 거의 일초일초가 아까운 귀중한 순간들이었다. 우리 둘은 언제까지 이렇게 큰 문제없이 걸을 수 있을까?

이즈음 산책을 할 때, 전처럼 빠르고 무심하게 걷는 것보다 주위를 살펴보며 파란 하늘이 있으면 하늘을, 낙엽이 쌓인 곳에선 땅을, 그렇지 않으면 집과 그 주위를 보게 된다. 무슨 변화를 느끼고 싶은 걸까… 매일 매일 똑 같음도 지루하다. 아래를 볼 때 눈에 부쩍 뜨이는 것, 아, 이것이 그 다람쥐의 먹이 도토리… 실제로 이렇게 손을 만져서 주워보는 것이 난생 처음이 아닐까? 머리 투구처럼 생긴 것, 수사님을 연상하게도…

당분간, 최소한 일주일 간의 날씨를 보니… 거의 내가 그렇게 기다리며 살아온 거의 환상적인 가을의 모습, 바로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예보다. 살았다, 기쁘다, 즐겁다, 희망적이다, 평화의 낙엽이 흐른다… 이때 하느님의 존재를 마음껏 느껴보자.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인생의 황혼기에 느끼는 이런 감정, 조금 더 일찍 알았고 즐겼더라면…

 

한동안 ‘독서 활동’이 뜸했다. 갑자기 그립기조차 하다. 이렇게 편하기 그지없는 나의 보금자리 desk에 편히 앉아서 눈동자를 움직이고 머리로 생각하며 글을 읽는 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손쉽고 유일한 활동이 되었다. 몸을 움직이며 뛰는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재의 나, 우리의 처지가 나는 마냥 못마땅하지만, 지금의 여러 가자 상황들을 감안하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희망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번 주도 사실 다 지나간 듯 느껴진다. 내일과 모레, 모두 ‘예약’이 되었기 때문인가? 내일은 새로니, 모레는 나라니 교대로 baby, toddler를 데리고 오니… 어떻게 보면 이것도 큰 은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쉽거나 편한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이것도 한 때인 것이니 가급적 편한 이틀을 보내면 좋겠구나… 이렇게 해서 11월의 첫 주는 거의 다 가는가? 

오늘부터 최소한 다음 주초까지 나는 또 news blackout을 선언해버렸다. Virginia governor 선거결과를 흘깃 본 후 결정을 한 것이다. ‘DONALD 개XX’ 의 냄새가 조금이라도 예상되는 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그 다음은 물론 시간의 도움에 기대하면 된다. 그것의 희망의 첩경이다.

Breakfast, 20 Years…

 

아침 식사, 내가 이것을 만들고 있는지도 거의 20년 가까이 된 것을 알고 나서 은근히 놀란다. 그렇게 오래 되었나? 불면증으로 인한 아침 늦잠으로 고생하는 연숙을 보고 사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조리하는 것을 보니 내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저 도와주고 싶어서 임시로 시작한 것이 이렇게 오늘까지 온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작은 기적’이 아닐까? 

전기밥솥과 라면 끓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밥과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한식이 아니니 사실 그렇게 복잡한 것도 없었다. 몇 가지 고정적인 것들: 달걀, 치즈가 녹은 식빵, 사과 같은 과일, 가끔 bacon이나 sausage.. 그리고 우유나 쥬스.. 이것, 할라치면 누가 못하겠는가? 이것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닌데 문제는 요리의 기초가 없는 것이니 자꾸 하면서 경험을 만들어 가는데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쉬워지고 가끔 메뉴를 늘리기도… 그 중에 제일 자신 있는 것은 pancake종류인데.. 이것은 하도 자주 만들어서 눈을 감고도 할 정도고, 맛도 꽤 있다는 칭찬까지 들었으니… 이런 노력의 부수입으로 혼자 있을 때 식사는 이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혼자 살아도 전혀 겁이 안 나는 것이다.

현재의 당면 문제는… 그 동안 20살이나 늘어난 나이에 음식을 맞추는 것, 장난이 아니었다. 각종 검사에서 각종 건강수치들이 춤을 추는데 거의 모두 음식에 상관된 것들… 나는 전혀 영양소의 지식이 없지만 연숙이 영양학전공학도여서 거의 pro에 가까운 처방으로 음식재료를 고르게 되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건강검진 때마다 확인이 되는 그야말로 ‘과학’이어서 음식이 ‘약이나 독’이 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All Soul’s Day at Mass

All Souls Day, 위령의날,  본당 순교자성당 위령미사, 몇 년 만에 이곳엘 오늘 가는가? Pandemic 전까지만 해도 위령미사를 우리가 사는 마리에타의 공원묘지에서 하곤 했었다. 작년에는 본당으로 옮겨서 했는데, 그때만해도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여서 우리는 자제하고 있었다. 올해는 vaccine의 도움으로 위령미사에서 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특히 우리 가족 영혼들, “아버님, 어머님… 오늘은 조직적으로 절도 있게 영혼들을 생각하며 맞대면 할 수 있는 미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명심을 하며 참례를 했을 뿐만 아니라 모처럼 나의 기억 속으로 사라진 영혼들 모습들을 회상할 수 있는 경건한 기회가 되었다. 100% 위령미사엘 가기 잘했다는 생각, 게다가 연숙과 같은 생각으로 보낸 오늘 하루는 정말 보람을 느끼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Roswell Nursing Center의 형제, 자매들이 그렇게 생각이 날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유학남 형제님, 거의 형님처럼 여기고 싶었던 분, 오일순 여호와의 증인 자매님, 천의순 신의주출신 개신교 자매님, 그리고 성당 중앙고 후배의 어머님 김 엘리사벳 자매님… 아~ 불과 2~3년 전만 해도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Pandemic은 그렇게 잔인하게…

위령미사, 물론 공원묘지의 배경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위령을 하는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나에게도 우리 조상, 부모님들을 기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도 얼마 안 있어 그들의 대열엘 속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 하루하루 사는 것은 인간, 생물, 모든 피조물 존재의 신비가 아닐까?

어제 저녁가족기도, 그것을 안하고 잔 것은 나의 잘못이다. 할 것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시간 9시를 향한 나의 몸가짐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 때 잠깐 잡스러운 것에 눈을 돌리면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요사이 연숙의 기도 준비 자세는 오래 전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반가운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도 저녁기도에 더 에너지를 쏟으면 얼마나 좋을까? 깊이와 정성이 더해지는 우리의 ‘역사적 기도 전통’을 만들면…

 

도라빌 H-Mart에 들러서 간단한 grocery shopping을 하고 전번에 맛있게 먹었던 ‘그 집’ 우동으로 배를 채웠다. 그곳에서 우연히 윤형 부부를 만났던 것도 기분이 너무 좋았던 이유가 되었다. 내가 한번 모두 만나자는 제안을 고맙게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윤형의 모습이 정말 흐뭇했다. 그의 바쁜 일정이 끝나면 집 뒤뜰의 사과 나무 밑에서 고기를 구워먹자는 희한한 idea얘기도 들었다. 아~ 이들과도 알고 지낸 지가 꽤 오래 되었구나… 세월이…

H-Mart에 간 이유 중에 ‘술’ 생각을 뺄 수가 없다. 비록 진짜 liquor store의 술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제일 ‘도수가 높은’ 것을 사려는 것, 19% JOA라는 소주 흉내를 낸 술, 사실은 wine급, 을 2병 사와서 연숙이 급히 만들어준 고구마 튀김을 안주로 삼아 잔을 기울였다. 19% 라서 그런지 제법 취기가 빨리 돈다…. 아~ 이런 때도 나에게 있어야지… 나라고 매일 악마의 유혹에 시달리란 법이 있나? 그래, 이제 최소한 11월 달에 풀어야 할 커다란 난제는 없다. 편하게 한 달을 보낼 수 있을까?

 

요새 가끔 보는 한국산 80년대 드라마 중에 [청소년문학관]이란 것이 있다. 청소년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과 80년대라는 것으로 분명히 ‘깨끗, 정직, 순진’한 거의 교육적인 이야기들임을 직감적으로 안다. 어떻게 보면 내 나이에서 보면 유치함의 절정일 듯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 반대다. 절대적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들이 유치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들, 출연한 청소년들 시절을 분명히 보냈건만 어쩌면 그렇게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분명히 그렇게 순진한 세월을 경험했는데..  그 이후의 장구한 세월은 절대로 순진한 것이 아니라서 퇴색, 퇴폐를 했단 말인가? 하지만 돌아가보고 싶다. 다시 한번 그때를 살아보고 싶은 것, 아~ 내가 또 가끔 꾸는 꿈을 또 꾸고 있구나…

소식이 뜸~ 한 뒷집 동포이웃 B선생님 댁, 모처럼 카톡으로 안부를 물으려 하니… 허~ 카톡방에 이름이 안 보이고… 떠났다~ 고 나온다. 어찌된 일일까? 잘못해서 실수, 아니면 떠나고 싶어서… 알 수가 없다. 우리와 멀리해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누가 알랴? 이런 일에 나는 자신이 없다. 사람들이란 예외 외의 모습도 있는 것, 교성이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다시 연결시도를 하려니 전화번호를 알 수가…  이런 texting tool 덕분에 그래도 ‘동포 이웃’과 간접적인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았던가?  나의 희망은 언젠가 한번 이 가정과 우리 집에서 따뜻한 차라도 나누고 싶은 것, 그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인가..  알 수가 없다.

Halloween Sunday 2021

2021년 10월의 마지막 날, Halloween. 아침에 daily journal에 ‘도장’만 찍고 성당으로 떠난다. 역쉬~ 일요일 아침의 ‘작은 악마’의 존재를 느끼며… 성당 안에서 성체의 신비 속에 몇 시간 지내다 보니 ‘작은 악마’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이것은 물론 예상한 대로라지만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초월적인 존재성은 역시 미지의 세계에 속한다. 내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요일의 신비’인 것이다.

아가다, 안나 ‘모녀’ 자매님들 덕분에 오랜 동안 얘기만 들어왔던 둘루스 한인타운의 구이구이 샤브샤브 집에서 이른 점심을 4명 그룹으로 푸짐히 먹고 왔다. Buffet style 집을 아마도 우리 둘은 Pandemic이후 처음 간 것이 아닐까? 오늘 가본 인상은, 내부 시설이 거의 중상급 미국식당 수준의 청결, 고급 upscale 다운 것이었다. 오래 살다 보니 이제 한국인들의 식당 경영 수준도 참 많은 발전을 한 듯 싶다.  Mom & pop의 영세성을 벗어나는 모습이 역력한 것이다. 역시 $$$ 자본들이 제대로 전문적으로 활용되는 것, 역시 우리세대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구이구이 식당에 가기 전에 잠깐 나라니 집에 들렀다. 오늘은 ‘조금 더’  손자 로난과 pet dog 세넷  의 얼굴이 머리에 그려지고, 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조금씩 정에 약해지는 과정을 겪는 것인가? 특히 놀란 것은 세넷이 우리를 그렇게 반갑게 맞는 모습,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도 이제는 동물들과 감정을 쌓아가는 법을 알게 된 것일까? 이제는 자신이 생긴 것 같다.  어떤 ‘의식동물’들과 친해지고 싶은 것이다. 이것도 내가 지나친 것일까? 불쌍한 사람들도 주위에는 그렇게 많은데…동물에게… 그렇다, 그들도 정을 느끼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사실은 어쩔 것인가?

 

어제 20년 동안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비록 고물로 변했지만, 정든 Voyager를 보내며 세월의 흐름을 또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기회가 되었고 그것은 절대로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사람, 동물 등과 이별하는 것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는데.. 이것 혹시 내가 너무 지나치게 감상적인 기분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그것이 나란 인간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어찌..

오늘 오후, 연숙이 혼자서 저녁 늦게 걸었다. 미안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습관을 드려주고 싶은 의도도 없진 않았다. 나도 혼자 걷는데, 왜 자기는 못하는가. 더 걷게 만들려는 의도를 이해해 주면 얼마나 나도 편할까? 나는 내일 Ozzie가 오면 혼자서 2시간까지 걷게 될 터라서 오늘 내가 쉬는 이유가 없지 않은 것이다.

걷고 들어와서 Tennis Court 옆에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고… 아하~ 오늘이 Halloween, 아마도 동네 꼬마들을 안전하게 집집마다 보내며 어른 들도 함께 모인 것이다. 우리 ‘cul-de-sac 골목’도 매년 Dave가 입구에 아예 candy table을  차려 놓고  아이들에게 candy를 나누어 주곤 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 이 20년 지기의 이웃친구는 아직도 젊은 것인가?  하지만, 올해도 우리 골목의 모든 집들은 모두 깜깜, 우리 집을 포함해서… 이것은 이미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는 나이를 다 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이런 때면 ‘격세지감’을 느끼고 심지어 섭섭하고 슬프기까지…

 

내일은 11월의 시작이며 ‘모든 성인의 날’이기도 하다. 모레 화요일은 위령의 날, All Soul’s Day라서 순교자 성당에선 위령미사가 있다고… 작년엔 못 갔는데 올해는 가야 하지 않을까? 올해가 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 놀라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떻게 이렇게도 세월이… 11월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Thanksgiving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집에서 모두 모이자는 연숙의 제안, 나는 일단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역시 시큰둥한 나의 표정에 실망을 했을 것이다. 물론 일단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었지만 귀찮다는 직감을 떨칠 수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Bye, Voyager 1999~2021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Voyager donation 의 status를 확인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훨씬 가벼운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제시간에 일어났다. 모든 것이 조금 기다리는 끈기와 지혜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긋이 기다리면 ‘될 것은 된다’. 잊지 말자… 이것으로 나의 머리 속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드디어 car donation 전문, towing service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중에 오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제는 드디어 1999년 가을부터 우리와 함께 20년 이상 살아온 효자 Voyager minivan이 심청이 처럼 떠나게 되었다. 좋은 목적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 보람도 있지만 다른 쪽으로는 정말 섭섭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같이 살았던 애완동물이 영구히 떠나는 듯한 기분도 느끼고… 하지만 세월과 삶은 항상 변하는 것, 우리도 다음 단계, Voyager가 차고 앞에 안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는 때가 오는 것 뿐이다. 잘 가거라, 수고 많~이 했다, 정말 정말…

결국 정든 Voyager는 우리로부터 영구히 떠났다. 기분이 이상할 것이라는 예측은 했지만 생각보다 그 정도가 더한 것 같다.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만.. 마지막 떠나 보내며 예상외로 우리의 손과 발로 그 덩치를 떠밀어서 towing truck까지 배웅한 것, 조금 뜻밖으로 귀찮게도 여겨졌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와 느린 작별을 한 것이 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잘 가거라~ 잘 가~~~~  우리 효자야~~

생각보다 철저히 차의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이 믿음직…

임당수로 가는 심청이 같은 느낌 밖에..

터~엉~ 빈 차고 앞 drive way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게…

 

비교적 상쾌한 아침을 맞는가 했지만 역시 이런 것이 지속되는 것은 어려운 것인가. 내가 문제인가, 아니면 세상이 문제인가. 우연히, 조금 심심해서, 세상의 소식에 접했다가 다시 ‘Donald 개XX’에 관한 뉴스 같지 않은 뉴스를 보고 [이XX는 정말 인류적 암적인 존재임을 재확인] , 나의 초 민감 超 敏感 함에 다시 실망, 놀라고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아~ 왜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 뉴스’에 그렇게 초 민감해야만 하는 것일까? 제일 확실한 방법은 나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쓰레기 냄새, 모습 같은 것들을 나는 자유롭게 피할 의지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더욱 ‘선과 악’을 식별하는 눈과 철학으로 무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 가급적, 가급적, 쓰레기 냄새에 조심하며 피하자, 하나도 겁날 것, 부끄러울 것 없다. 나의 여생은 그렇게 장구한 세월이 아닌 것이다. 절대적, 객관적, 궁극적 진리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Ecology is a branch of biology [that is, Science], Deep Ecology is an environmental philosophy…  그러니까 하나는 전자는 과학이고 후자는 철학… 이제 조금 감이 잡힌다.

Another Dark, Chilly, Gloomy Day…

Lowest High.. 오늘이 그런 날인가? Not so low for Low… 최저기온이 아니고 최고기온이 문제인 것. 그러니까 낮의 느낌이 하루 종일 싸늘한 것이다. 다시 또 옷 더미를 뒤져서 따뜻한 옷을 찾아야 할 듯 하다. 귀찮지만 별수가 없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내가 하지 않고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전적으로 나의 몫이 되었다. 조금 서운하지만 이것을 문제 삼을 여력은 없다. 물 흐르듯이 살고 싶다.

칠흑같이 어두운 이른 아침, 일주일이 지나가면 갑자기 훨씬 환해질 것이다. 그날부터 아침의 한 시간을 되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 어쩌면 세월이 이렇게 잘도 흐르는 것일까? 이런 진부한 불평을 하는 내가 진부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나와 다른 느낌으로 인생의 뒷부분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군지 찾고 싶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알고 싶다. 전적으로 나이에 의한 외로움, 그것이 나에겐 문제다. 이것은 살아있는 사람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원초적인 외로움’, 하느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그런 본질적인 고독이다.  성녀 마더 데레사의 고백록을 나는 이제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무도 낫게, 고쳐줄 수 없는, 하느님 조차.. 그런 외로움이다.

 

시월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 날, Halloween을 지나면 11월 위령성월의 시작이다.  첫날, 모든 성인의 날 All Saints Day로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날 위령의 날 All Souls Day가 이어지는, 더욱 죽음과 연관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어떻게 11월을 보낼 수 있을까? 연숙에게 19일은 특별한 날이 될 것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의미를 줄 것이다.  2014년 9월에 서서히 시작된 ‘대장정, long march’ 에서 일단 결말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그날은 조금 다르게 축하를 하고 싶다. 따라서 올해 Thanksgiving Day도 더 밝은 tone으로 보내면 어떨까…

오늘도 아침부터 많은 시간을 Thomas Berry 를 읽는데 할애를 했다. 의외로 머리에 쉽게 들어오는 그의 선구자 적 사상에 깊숙이 매료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데 이것도 Thomas Berry course의 마지막 부분이라서 얼마 남지 않았다.  그의 중심사상이 제법 archive로 남게 되어서 이제는 천천히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Thomas Berry & pumpkin coffee

 

비가 오락가락하는 써늘한 날씨가 걷기에는 편한 것을 어찌 모르랴? 옷을 평소보다 두툼하게, 거의 겨울철 모습을 하고 걸었다. 아침에 혈압 수치가 거의 정상으로 떨어진 것에 힘을 입은 연숙, 거의 나와 같은 속도로 걸었다. 이렇게 나와 함께 정기적으로 걸을 수 있으면 건강에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 문제는 비교적 자주 찾아오는 불면증, 그것으로 아침에 걷기는 문제가 있고, 그것이 나와 함께 산책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지를 않으니… 참 우리는 궁합이 여러 가지로 잘 맞지를 않는구나…  오늘은 연숙에게는 처음으로 아파트  뒤쪽 냇물을 따르는 오솔길을 처음으로 같이 걷게 되었다. 앞으로 자주 더 이곳으로 같이 올 수 있으면 얼마나 건강에도 도움이 될지…

집으로 들어오는 길녘에 십 년도 넘게 우리에게 가을 낙엽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이제는 ‘나처럼 늙은’ 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드디어 fall foliage의 신비를 앞으로 한 달 이상 보여줄 것이다. 이곳에 이사올 당시만 해도 이 녀석도 중년층이었는데… 하지만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이런 service를 할 수 있을까? 나보다 더 오래 살기를 희망하지만…

Voyager auto title을 지난 주에 mail로 보냈는데, 거의 2주 동안 소식이 없어서… 조금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car donation 하는 곳에서 status를 check를 해 보니 오늘 title 이 처리가 되어서 이곳의 towing하는 곳에 연락이 갔다고 나온다. 오늘부터 48시간 안에 그들이 나와서 우리의 정든 Voyager를 ‘끌고’ 하는 것, 어쩐지 서운하다 못해서 슬프기까지.. 하지만 이번의 일은 animal rescue에 직접 도움을 주는 것이니까, 절대로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한 것이다. 특히 pet dog 과 cat들에게…

 

Dreary Rainy Fall Day, Restoring Range Hood…

지난밤 정말 깨끗이 잤다. 한번도, 한번도 깨지 않고… 귀찮은 pee, 악몽, 밖으로부터의 소음.. 등등이 하나도 없었던,  8시간 이상의 straight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이다. 이것이 또 하루를 살게 하는 ‘밥’인가? 그래, 이 정도면 건강한 모습이다.

예보대로 dreary, gloomy, dark, breezy, wetting… 모두 섞여있는 깜깜한 밖의 모습, 안전하고 아늑한 실내의 고마움을 잊고 싶지 않다. 집, 보금자리, 제2의 장구한 추억이 아롱진 집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예상대로 오늘은 대낮도 거의 초저녁 같이 어둠이 깔리고 소낙비는 아니더라고 꾸준히 비가 내린다. 가끔 바람이 불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런 창 밖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씩 작은 우산을 들고 tool shed로 뛰어가서 몇 가지 필요한 tool들을 가져왔던 그야말로 ‘가을비 우산 속’을 경험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잠시 range hood 위쪽의 duct를 cover하는 작업에 정신을 쏟았다. 일단 보이지 말아야 할, 가려야 할 ducting을 예전처럼 꾸며놓았다. 일단 이 작업은 끝났다고 보아도 되지만, 조금 더 그 주변의 미화작업을 하는 것은 필요할 듯…

 

Thomas Berry reading을 며칠 전에 이어서 읽는다.  오늘 것은 ‘지구 환경, 생태학의 영성’ 에 관한 것. 지구환경이나 생태학 등을 과학적인 눈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한 접근 방법이며 궁극적으로 영성, 영적인 차원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오늘은 잡스러운 소음, 주로 음악들이 없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읽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졌다. 읽을 수 있는 건강한 두 눈과,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기능적인 머리가 살아있는 이 나이가 귀중하게 느껴진다. 과연 언제까지 나는 이런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어제 연숙이 어디서 보았는지, 앉았다가 일어날 때 머리가 아뜩해지는 증상을 느낀 후 평균 10년 정도 더 생존했다는 통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허~ 그런 통계도 있나… 10년 씩이나 더 산다고? 짧지는 않지만 문제는 그렇게 ‘숫자로 정해진 기간’을 보니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누가 감히 죽은 날을, 하느님을 빼고, 알 수 있단 말인가?

날씨의 도움으로 차분해진 가슴과 머리를, 오랜만에 손에 잡히는 책들을 읽고 생각하는 쪽으로 관심을 쏟았다. 지나간 여름의 독서 목록에 있는 것들, 너무나 목표가 높았던지 꾸준히 매일매일 조금씩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중에 오늘 손에 잡힌 책들,  James Martin, SJ 의 저서들 중 (1) Jesus, a pilgrimage, (2) Essential Writings (3) Learning to Pray 세 권은 거의 우연한 선택이었고 책의 내용도 보기와는 달리 아주 가벼운, 경쾌한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