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ilocks Morning

예보대로 오늘은 모처럼 60도를 넘는 봄기운을 상상할 수도 있는 춥지 않은 날이 되었다. 2월 초에 반드시 이런 때가 오는 것을 이제는 체감, 경험으로 안다. 다시 영하로 내려 갈 것이지만 한때 이런 모습으로 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직도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편한 옷을 입고 차고나 밖에서 일할 그 때는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할 듯.

NYT opinion에 미국경제 의외로 잘 나간다는 논평에서 Goldilocks 란 표현이 눈에 뜨인다. 내가 알고 있던, 아니 보았던 이 말은 science & religion 책들 중에서 보았던 것이다. 내가 받았던 인상은 이 우주가 ‘생물, 생명’을 보호, 유지하는 적절한 조건, 특히 온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이론… 이것이 우연이기에는 너무나 확률적으로 낮다는 것.
이런 인연으로 왜 이런 적절한 조건을 Goldilocks라고 했는지 찾아보니 의외로 1920년대 미국 동화책에서 유래가 된 것. 곰 세 마리와 Goldilocks라는 소녀의 이야기. 이 말은 적절한 여건, 환경을 뜻하는 것 not too cold, not too hot… just in between~

YouTube에서 가끔 보는 documentary KBS ‘창’이라는 program에서 뜻밖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Ohio State 시절 Columbus한인 성당, 유학생이었던 경기고 출신 ‘이병남’ 씨… 1990년 대 아틀란타에서 마지막으로 본 이후 처음 보는 얼굴, 깊숙한 주름살 때문에 처음에는 혹시나 했지만 목소리를 듣고 100% 확신하게 되었다.   자기 소개로 69세라고, 24년 전에 혼자가 되었다고 했다. 현재 single을 뜻하는 것이었을 듯.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취재,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자기도 그 중의 하나라고 했다. 기업에서 9년 전쯤 은퇴, 현재는 책도 쓰고 신문에 평론도 한다고… 이병남 씨, 우리와 콜럼버스와 아틀란타 두 곳에서 모두 우연히 만난 사이여서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전부였다. 조금 더 기억을 해 보니.. 이병남씨의 wife (이름이 무엇인지… 가물거리는데)를 같은 과 유근호형과 Ohio State의 대학원 office을 같이 쓸 때 만났었고… 이후 콜럼버스 성당에서는 유학생의 부부로 다시… 이후 그들은 다른 학교로 transfer했는데… 글쎄  다시 아틀란타에서 다시 만났으니… 그 wife는 우리와 아틀란타 한국학교 선생도 같이 했던 추억도 있는데… 그러다가 또 그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한국의 윤주네를 통해서 간접적인 소식을 듣고 잊었는데, 이렇게 ‘공인’으로 나타난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원서동, 계동, 중앙고, 가회동이 만나는 곳

조카 은지가 최근에 찍은 듯한 이 camera shot을 보내주었다.

작년 10월 은지의 gift shop이 있던 계동골목을 갔었지만 그 당시 나는 시간이 없어서 이곳, 바로 이곳, 오랜 추억이 어린 ‘교차로’를 가지 못한 대실수를 저질렀다. 
1954년부터 1966년 초 까지 이곳을 정기적으로 지나다녔는데, 국민학교 시절 원서동에서 재동국민학교까지, 이후 가회동에서 중앙중고를 다녔던 길, 이곳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머리 속에 남은 예전의 모습은 ‘물론’ 개발의 힘으로 모두 깨끗하고 예쁘게 화장은 했지만, 사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추억을 되살리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으니…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나는 지난 밤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기억이 희미하다는 것은 나의 변명, 위로일 것이고 혹시 꼬박 샌 것은 아니었을까? 잠에서 깨어난 기억이 없으니 분명히 생각을 하며 지샌 것이라면… 아, 싫다, 왜 이렇게 잠까지 나를 괴롭히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침 혈압은 극히 정상이 아닌가? 혈압이란 것은 매번 이렇게 예상을 뒤엎는 것인가? 
아~ 다시 찾아온 괴로운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고 있다. 이 악귀 같은 ‘부정적 생각, 슬픈 생각, 우울한 생각들’ 또 나의 새벽시간을 좀먹고 있다. 도망가려고 거의 생각도 없이 electronics parts, breadboard 를 만지며 잊으려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나를 비하하는 듯한 나의 악마, 이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존재를 거의 부정하는 듯한 이 괴물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도망가려는 마음뿐이니..  정말 어렵고 괴롭고… 이것이 혹시 성녀 마더 데레사가 겪었다는 기나긴 어두운 밤의 경험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그 성녀의 고백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싶다.

일주일 만에 다시 겨울로

일주일 만에 다시 겨울로 돌아온 새벽, 제시간에 central heating이 아래 위층 모두 가동, 그러면 그렇지 벌써 수선화가 핀다고 하지만 그것은 며칠 동안의 포근함이었다. 진짜 추운 겨울은 사실 지금부터가 아닐지… 10년 전 바로 이즈음 와~ 그 폭설과 얼어붙는 추위로 완전히 빙판이 되었던 I-285N freeway 선상에서 완전히 발이 묶인 모든 차들과 함께 밤을 꼬박 지샜던 그 때… 2014년…  10년, 10년이 흘렀구나. 악몽이지만 지금은 모험소설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사순절, 재의 수요일이 사실상 거의 코앞으로 다가온다. 2주 이상이 지나가면 사순절.. 하지만 현재 우리, 아니 나는 거의 전혀 사순절에 대한 것이 머리 속에 없음을 안다. 아직도 쓰레기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간문제지만 100% 없어지는 것은 기대 안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기분으로 사순절을 맞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큰 변화가 있었던 지난 주일 미사후의 등대회 사임 ‘사건’ 이후, 첫 주일미사를 맞았다. 한마디로 어깨와 머리가 가벼워진 한 주일은 새롭고,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한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커다란 고민과 고통이 사라지고 서서히 다른 현실이 다가오는, 침착하지만 조금은 심심한 듯한 느낌도 감출 수가 없었던 시간들로 바뀌고 있긴 하다.  이제는 이것을 빨리 잊는 것이 나의 행복을 되찾는데 급선무가 아닐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그렇게 되기만 바라는데.. 과연..

아침미사가 끝나고 나서 솔직히 말해서 어디로 갈지 조금 당황스럽다.  한때는 적지 않은 교우친지들과 함께 Bakery ‘하얀풍차’의 커피 향을 찾아 갔었던 때가 있었지 않은가?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당연하다. 현재는 너무나 달라진 것이, 외롭고 쓸쓸함과 싸우는 듯한 착각까지.. 그것이 심지어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니… 웃기지 않은가? 우리가 무엇이 불쌍하단 말인가? 이 나이가 외로운 것, 당연한 것 아닌가?

성당을 빠져나오며 친교실를 거쳐나가면 분명히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날은 ‘괴물들’의 얼굴들이 보이는 듯했는지… 모처럼 구역점심 육개장을 신부님이 선전을 하는 것도 마다하고 빠져 나왔다. 이럴 필요가 없었는데… 아마도 잠깐의 ‘피해망상증’이었을 듯… 이것은 특히 우리를 기다린다는 유나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그랬을 것 같다. 똘망똘망한 유나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유나가 할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다시 확인, 보고 싶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지나치게 ‘손주들 자랑 타령’하던 할배, 할매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결국은 우리들도 별 수가 없구나..

시온 떡집에서 조금 떡을 사가지고 가서 유나와 ‘해후’를 즐겼고, 나의 ‘아들’ Ozzie와 잠깐이나마 걷기도 하고… 어찌나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지.. 오늘따라 장갑을 안 끼고 왔으니… 이렇게 우리를 반기는 새로니 모든 가족, 그래… 이것들이 현재 나,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보물인 것, 잊지 말자~~~

지난 주일 이후 커다란 쇳덩어리가 어깨에서 사라진 듯한 이 시간들, 특히 오늘 같은 일요일, 오늘은 ‘작정을 하고’ 늘어지게 쉬기로 한다. 이미 download된 300여 개가 넘는 YouTube video를 random으로 본다.  요사이 이런 ‘취미 활동’이 나에게는 최고의 피로회복제 역할을 한다. YouTube에 널려있는 수많은 ‘쓰레기’들이 아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진정한 보물이라도 찾듯이 찾고 보고… 과연 이런 휴식의 방법이 이상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이것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44년 전 명동 YWCA~

1월 25일~~ 조금 익숙한 느낌의 날자~  또 잊고 살았다. 오늘은 44년 전 1980년 명동 YWCA 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날이었다. 매년 맞는 이날,  이제는 숫자가 너무나 많다는 느낌뿐이다. 명동성당 앞쪽 언덕길, 포장마차 몇 군데, 약국, 그리고 즐겨 다녔던 Cosmopolitan 다방 등, 올해는 유난히도 명동 바로 그자리, 이제는 없어진 그곳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지난 10월 수십 년 만에 직접 그곳 주변의 ‘상전벽해 桑田碧海’, 변한 모습이나마 보았기 때문이다.

1980년과 작년 10월의  명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독특한 dynamic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에 놀랐을 뿐이다.  44년이라는 조금 으시시한 숫자에도 올해의 느낌은 예년과 조금 다르다. 결론적으로 그저 우리는 ‘감사하며’ 이날을 맞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

쩍쩍 달라붙는 그 ‘지독한’ 영하의 기온에서 거의 60도를 넘는 포근한 겨울, 하지만 느낌은 거의 마찬가지다. 어두운 가랑비가 소리 없이 지긋이 계속 내리고 있다. 이것이 사실 싸늘한 비의 느낌인데… 올해는 결국 ‘하얀 눈’의 모습은 물 건너 가는 것인가?

혈압이 ‘완전 정상’? 왜? 내가 알 수가 없다. 반짝했던 깊은 안심과 평화 때문일 거라고 추측은 하지만 정말 이 ‘놈’의 수치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반가운데~ 몇 알이 필요한가.. 에서 고민하는데 역시 ‘정상에선 안 먹는’ 대 원칙이 있으니까.. 오늘은 제로 ‘알’로 정한다. 130 이상부터는 1알을 기본으로 시작하고.. 이것도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나름대로의 방식이 형성될 것 아닐까? 의사의 말: 정상 혈압에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지만 매일 매일 혈압은 살펴보라.. 그것이 정답이 아닐까?

어제 밤부터 감기조심 차원에서 소금물 양치를 시작하고 일찍 잠자리에도 들고, 저녁기도도 생략하곤 했지만 역시 나는 그 정도로 조심할 필요가 없었음도 안다. 조금 꾀병을 하고 싶은 충동과 응석도 부리고 싶었다. 심하지만 말고 조금 아픈 증상을 느끼는 것을 은근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숨어있는 습관 중에 하나니까.. 그 정도로 며칠 만에 나, 우리는 거의 정상적 심리적 건강을 찾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기념일답게 색다른 아침 식사, ‘준 기피 식품’인 avocado와 salmon fillet on toast, 맛도 맛이지만 멋도 있는 것을 준비해준 cook에게 감사..

이곳 Macy에 가본 적이… 몇 년? 전혀 기억이 없으니… 정말 그 동안 shopping culture가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delivery truck만 기다리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I-75 의 어느 exit으로 나가는 것조차 생소하게 느껴졌으니… 연숙이 return 할 것 때문에 그곳엘 갔다가, 오는 길에 Thai 식당 Lemon Grass 에서 우리만의 전통으로 결혼 44주년 점심 식사를 그곳에서 했다. 속으로 물론 나는 그렇게 ‘자랑스럽지’ 못하다. 이럴 때, 멋진 곳에 멋지게 입고 가서 멋지게 폼을 내고 생소한 음식을 먹었어야 하는데~~~ , 하지만 그것이 나는 그렇게 맞지를 않는다. 별 수가 없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인데 어찌하겠는가, 연숙이 이해를 하며 살아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RAIN ALL DAY HEAVY AT TIMES, even thunder storm~~~ warming up to  near 70!  이런 멋진 날씨에, 이렇게 2층 침실에서 낮잠을 2시간가까이 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일 듯하다. 늦은 낮잠이었고 겨울에서 거의 여름으로 바뀌듯 한 착각에 빠질 정도의 남풍과 함께 계속 내리는 비.. 매일 매일 추웠던 30도 대에서 60도 대를 넘는 따뜻한 공기를 느끼니 갑자기 아~ 혹시 봄이 멀지 않은 것? 착각에 빠진다.  가슴을 펼 수가 있을 정도의 그런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제 나, 우리에게도 봄은 정녕 오고 있는 것일까? 희망의 속삭임이 귀속에 들리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 제발, 제발…

생일과 결혼 기념일 사이에서…

2024년 정월 24일은 21일과 25일 사이…  생일 76년,  결혼 44년 두 기념일 사이를 가고 있구나. 이제서야 또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을 실감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조금 제정신을 차리고 세월을 가늠하고 있단 말인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의미 충만한 날들, 기억과 추억들, 모든 것을 잊었단 말인가?

연숙의 진심 어린 말, ‘기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믿지 않는 것 아니냐’ 는 그 말이 아직도 귀에서 잔잔히 남아 울린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 건성으로 믿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바치는 각종 화살기도들, 무슨 기대를 할 수가 있는 것인가? 공포에 질린 자세로 앵무새처럼… 나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며 무언가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배우는 지식,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체험을 했다고 자신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다시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일까지 계속되는 ‘겨울 비의 향연’, 현재 나의 열린 마음에 이것은 선물이고 축복이다. 비록 눈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의 76세 시점에서 나의 모습을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교성아? 교성아~~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너를 다시 만나면 어떤 얼굴로 보아야 하니? 과연 Swedenborg의 희망이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까? 이것도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나의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과연 어떤 사람, 인간인가?

나의 생일과 내일의 결혼기념일을 어젯밤 조카 은지에게 알려 주었다. 오늘 아침에 답신에 자신의 store에 있는 동백꽃 Camellia 의 모습을 담아 축하를 해 주었다. 한 동안 재잘거리던 texting이 요즈음 조용했는데 이렇게 다시 겨울 꽃으로 다시 피게 되었으니 안심이 된다. 나보다 우리 어머님과 더 가깝게 살아온 우리 누님 조카들, 어떻게 이렇게 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가끔 머리 속이 하얗게 희미해지는 기분까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 못 살았을까…  이런 인생을 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은지가 나의 생일선물로 보내준 것, 예쁜 동백꽃을 보다가 나의 책상 옆을 보니 다른 꽃, African Violet이 작고 겸손하고 수줍은 모습으로 나를 보는 듯하다. 어제 연숙이 desk옆 side table에 조용히 갖다 놓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면서 아직도 꽃 이름을 추측조차 못하는 나로써는 요새 이렇게 꽃들이 다가오는 사실이 흐뭇하기만 하다. 아마도 나이 때문이 아닐까?

예정대로 연숙이는 full-time으로 Tucker엘 가서 사랑으로 손자를 돌보아주고 왔다. 나와 같이 다시 찾은 평화, 평정의 덕분으로 이전보다 조금 덜 힘들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drive를 거의 2시간씩 한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혼신적 에너지를 소모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거의 꿈꾸듯 평화 속의 게으름을 마음껏 마음껏 발산하고 즐기고, 만끽을 했다. 언제까지 이런 ‘평화의 기쁨’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상관없다. 이것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만족하니까…
은근히 기대했던 ‘시원하게 깨끗하게 세차게’ 내리는 겨울 비는 결국 ‘과대선전’ 격인 것이었다. 거의 이슬비 정도로 그것도 가끔… 참, 이런 날씨는 사실 정확한 예보가 힘든 그런 format인 듯하다. 그래도 실망스럽다.

또 하나의 중앙고 57회 동창회 단톡방이 생겼다. 왜 또 하나의 것이? 조금 이해는 안 가지만 이유가 없지 않겠지.  그런데 이것으로 목창수가 동창회 총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총무는 조한창.. 역시 일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 되지 그 사람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목창수가 간부가 되었기에 조금 동창회와 가까워진 듯한 기분.. 물론 나쁘지 않다. 이렇게라도 나는 이곳에 연결이 되어 있음이 좋다. 

오늘 이곳에서 알게 된  소식… 박택규 선생님의 ‘소천’, 아마도 목창수가 개인적인 관계로 이 소식을 들을 수 있던 것은 아닐까… 나머지 선생님들의 소식도 궁금하지만 아마도 개인적 관계가 별로 없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박택규 선생님은 나에게 유난히 적지 않은 추억을 남겨주신 소년 처럼 해맑은 모습의 화학 선생님이었다. 또 하나의 화학 선생님, 김후택 선생님은 그야말로 완전 반대형의 인물, 어깨, 깡패를 연상케 하는.. 얼굴. 하지만 이 두 선생님, 진정한 화학의 귀재들이었다. 아무런 note없이 줄줄 화학방정식으로 칠판을 가득 채우시던 모습이 상상의 모습으로나마 남아있으니…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오늘 연숙이 Tucker로 가지고 간 bouncer를 타며 신기해하는 Knox의 모습이 너무나 편하고 귀엽구나… 이 애는 조금 더 크면 어떤 모습일지… 분명한 것은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만 빼고 우리들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감이 있다는 조금 서운한 사실…나는 응석받이인가,  손주도 못보고 너무나 갑자기 저 세상으로 떠난 동갑내기 R형에게 미안하고, 그가 다시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추운 날씨에 drive를 20마일씩이나 해서 딸 냄이 손자들을 도와주러 군말 없이, 그것도 음식까지 정성 들여 만들어 갔다 주고 돌아 올 때는 Kroger까지 들러서 우리들의 처방약들까지 찾아 오고, 마지막에는 bank까지 갔던 연숙이, 오늘은 솔직히 미안하다 못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평소에 궁실거리던 귀찮고 말이 많은 모습은 난데없이 사라지고 ‘사랑과 능력을 겸비한’ 멋진 여성으로 나에게 다가오는데… 이것, 내가 변한 것인가, 아니면? 그래, 우리는 가정 건강을 위한 궁합에서 이제는 길지 않은 여생의 반려자로서 더욱 빛을 낸다고… 나는 상상과 희망의 나래를 편다.

요즈음 왜 이렇게 새벽 잠에서 일찍 눈이 떠지는지 귀찮구나. 대부분 5시 이전에 눈이 떠지면 완전히 머리 속에서 잠 기운이 완전히 빠져나간 듯해서 다시 잠이 들 가능성이 없다. 고민의 시작, 일어날까, 그래도 누가 알랴 누워있을까.. 이때 지겹고, 괴로운 생각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으면 ‘무조건’ 일어나는 것이 나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오늘이 또 그런 case가 되었는데 다른 문제는 ‘와~ 춥다’ 기온이 20도~~ 시간상으로 central heating시작 전이다. 오늘은 그래도 용감히 일어나와 어둠 속에서 일일이 전깃불을 키고…  어두운 계단 아래, 왼쪽에서 가냘픈 ‘야옹~~ 야~오~ㅇㅇㅇ’ 소리를 내며 머리를 내밀 것 같은 착각~ 아~ Izzie야, 그립다,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너를 사랑해~~ 지난 10월 쓸쓸히 한달 혼자 있게 했던 것… 미안하고, 미안해, 용서해주렴…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뽀뽀도 해 주고 싶은데, 그것은 이 이승에서는 늦었고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분명히 확실히 해 줄게…

New York Times, NICHOLAS KRISTOF의  NORTH KOREA에 대한 글, 이 ‘무시무시한 경고성’ 논설,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문제는 reader들의 comment를 읽느라고 몇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현재 미국 (나를 포함)의 ‘여론’의 흐름, 상태, 정도’를 가늠하는 적당한 source가 아닌가? 물론 NYT 지의 정치적 성향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임을 알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이다. 남한에 대한 언급, 관심의 정도로 보아서 역시 대한민국의 현재 국제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데, 문제는 가상 시나리오가 또 다른 전쟁, 파괴, 파멸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문제다. 최근에 전문가 중의 최고 전문가들이 ‘우려’를 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고. 나의 조국, 친척들이 살고 있는 나의 고향이 직접 전쟁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정말 가상적이긴 하지만, 세계사는 적지 않은 ‘악한 인간의 결함’에 의한 대재앙이 있었지 않았던가?

Flashing TASMOTA with RASPI3.X…
아~  일이 잘 풀리지 않는구나~~ fresh Flashing SONOFF, 이렇게 복잡했던가? 전에 어떻게 했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으니…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하지만 완전히 중단할 수는 없다.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아래층 나의 서재 옆에 서서히 mobile-lab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2년 전에 반짝했다가 이렇게 저렇게 한눈을 팔다가 완전히 손을 놓았던 것이 다시 서서히 돌아오는 느낌인데… 솔직히 자신은 없다. 언제 무슨 사정으로 완전히 또 이것을 잊고 살게 되는 것 같은 방정맞은 생각…  이번에는 어떻게 한눈을 팔지는 모르지만… 이런 작은 일도 나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은 있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일이 생각대로 진해되지 않을 때 stress는 받지 않고 싶다.

오늘 mobile-lab으로 쓰이는 plastic cart drawer을 찬찬히 살펴 보다가 Richard가 주었던  ADAFURUIT 제품, Raspberry PI  add-on module를 살펴 보니… 와~ 작은 보물, GPS board가 아닌가? Adafruit.com의 source를  찾아서 software를 run해 보니… 정말 live GPS data가 serial port로 홍수처럼 들어온다. 아~ 내가 손수 design한 것은 아니지만 상관없다. 이런 것이 바로 SparkFun! 이 아닌가?  이런 것으로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 최소한 몇 시간 계속된다. 

세찬 바람, 겨울 비 내리던 날

일기예보대로 새벽부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기온이 조금 올라서 비의 느낌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겨울, 그것도 한겨울 비가 아닌가?
바람을 동반한 세찬 비, porch 안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가며 들이친다. 다행히 젖을 물건들이 거의 없어서 이렇게 쓸쓸하고 멋진 비를 편하게 감상하는 것, 이것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듯하니.. 나는 지독한 구제불능의 감상주의자…

오늘 오후 예정이 된 신부님과의 면담의 주제는 무엇인가? ‘등대회 불미스런 사건’을 비롯해서 성당 공동체 신앙, 친교 활동의 scope 등등인데, 깊은 생각을 정리 못하며 만든 약속이라서 지금으로써는 뚜렷하게 정리를 할 수가 없다. 혼자가 아니고 우리 둘이 만나는 것이라 조금 덜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니까.. 일단 부딪히고 보는 거다.  나 혼자, 아니 우리 둘만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뒤에 ‘성령, 성모’님이 도와 주신다는 것도 잊지 말자….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NDE, NDE, NDENear Death Experience..  요즈음 나의 머리 속에 자리를 꽉 채우고 있다. 2018년 성탄시즌에 선물로 받은 책 Dean Radin’s MAGIC을 읽으며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는데 2023년 시즌에는 다른 책 Bruce Greyson’s  After, 이것으로 5년 전과 더 다른, 다 강한 과학의 위력을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지금의 추세는 과학이 영성, 신앙, 종교를 도와주고 있는 것, 얼마나 irony한 세계관의 변화인가?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신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이 현상이 서서히 주류 과학계에서 언급,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신기하고 신명 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선구적 과학자’들, 특히 quantum physicist들의 용기가 너무나 존경스러운 것, 숨길 수가 없다.

Birthday, Funeral Mass

1983년 1월 5일, 새로니 태어남…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 이제 마흔 한 살, 41세.. 결국은 우리 집 장녀가 40대로 들어섰구나. 하지만 나에게 나이 40의 감각이 금세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40세가 될 즈음을 기억해야 서서히 느낌이 온다. 1988년 1월 21일이 나의 40세 생일.. 물론 당시의 개인역사를 줄줄 말할 수 있고 따라서 그 나이의 사상, 느낌들이 조금은 되돌아 온다. 지금 느끼는 40은 물론 너무~ 젊었다.. 했지만 당시에는 거의 반대의 감정이었을 듯하다. 특히 죽을 ‘사’의 4까지 있어서 더욱..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던 것은 분명히 기억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늙어가는 세대’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거다.

NDE to Jesus… 나의 궁극적인 목표, 이유. 현재 나의 많은 관심과 독서 활동의 중심 화제, 화두인 NDE, near-death experience.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물론 가장 설득력이 있는 scientific approach의 입장에서 본 현상적 설명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희망과 안심, 여유를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중세기 이후 계몽주의의 도래 이후부터 학계로부터 서자 庶子 취급을 받던 (왕따란 표현이 더 적절)  이것에 대한 연구의 심각한 무게가 이제는 critical mass에 접근하고 있다는 발표, 보고도 오래 전처럼 희귀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Swedenborg와 더불어 NDE는 나와 같은 ‘이전의 materialist’ 에게는 새로운 세계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으로 이제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적인 해석은 의미가 점점 없어지기에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이 걸맞게 brave new world를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잔잔한 서광을 기대하는데…

동년배, 서울 재동/교동 국민학교 추억의 인연으로 몇 년 전에 만났다가 지난 늦가을 갑자기 떠난 세례자 요한 R형의 장례 미사가 드디어 끝났다. 너무나  놀라고 실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 영육간의 건강을 자랑하던 사람이 불과 몇 개월 만에 홀연히 세상을 떠난 것,   오늘의 ‘영결, 장례 미사’로 조금은 끝맺음 이 되었다. 실감 문제를 떠나서 이제는 분명한 한 인간, 영혼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떠났다는 기정사실을 무리 없이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끝맺음, closure.. 나는 이 단어가 나오면 쪼그라들며 도망치고 싶다. 우리 어머님, 우리 누님의 타계는 나에게는 아직도 끝맺음이 없이 아직도 열린 상태인 것이다. 언제 끝맺음이 있을까, 이제는 늦었다. 열린 상태로 나는 떠날 수밖에 없는 신세인 것이다.

오늘 ‘영결미사’는 대 성황이었고, 큰 무리 없이 진행된 행사이기도 했다. 우리 추측에 이 많은 조문객의 대부분이 아마도 R요안나 자매와 관련된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큰 딸의 조사를 통해서 우리, 아니 내가 모르던 R형의 많은 행적, 성향, 성격 등을 추측해 보기도 했다.  원래 머리가 특출하게 좋았다는 사실, 친구 관계가 원만했고, 가족을 나름대로 보호, 사랑했다는 사실 등등..  부럽기도 하고….
나는 몇 가지 긴 조사를 들으며 R형과 나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특히 딸 둘이 있고, 미국인 사위가 있다는 공통점을 통해서 나의 삶과 현재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급작스런 죽음을 앞둔 그의 초연한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이고 멋지고 훌륭하게 보일 수가 없었고, 내가 그의 입장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갖가지 가정과 상상을 하기에 바쁘고…  결국 간단히 말해서 ‘내가 오늘 죽으면’이라는 물음의 해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AFTER, NDE 같은 화제가 요새 나의 머리 속에 가득 차있어서 그런지.. 오늘 미사 중에도 육신을 떠난 R형의 영혼이 영결식장 위를 돌며 내려다 보는 상상,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나는 그런 것의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한 믿고 싶고,이제는 안심하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과학의 도움으로, 이성적으로 믿는 것이다. 저 너머 세상, 그러니까 영계 靈界를 믿으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수 있으며 살고 싶은지도 서서히 밝혀질 것 같다.

 

Normalcy Day

어제 재개된 저녁 묵주기도는 1개월 만에 한 것이고, 오늘의 다른 일들은 .. 12월 11일 이후 처음 매일 미사, 먹기 편한 곳 McDonald’s, 그리고 ‘삶의 느낌을 일깨워주는’ YMCA gym 등등. 그러니까 이런 것들도 거의 한 달에 가깝게 중단 된 것.. 어떻게 이렇게 살았을까? 다시 한번 darkest December의 느낌이 떠오른다. 오늘은 다른 normalcy를 찾으러 Sonata Cafe를 준비하고, ‘도리도리’까지 재개 되었다. 제발 그저 ‘보통, 평범한 날’이 되기를…

동네 성당, Holy Family parish, 아침미사, 긴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학교’는 물론 15분 drive의 동네 성당, 그곳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조금 산만한 듯한 그 ‘필리핀’ 자매님도 제자리에, 거꾸리 장다리 부부, 신심 좋은 교우들.. 거의 모두 제자리에 있는 듯 했다. 다른 것은 예년에 비해서 훨씬 화려한 성탄 장식들, 성탄 트리가 전부 4그루! 성탄 구유도 몇 군데 보이고… 올 성탄시즌의 봉사자들이 아마도 열성교우들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곳도, 순교자 성당도 모두 볼 수가 없었으니.. 후회는 하지만 우리의 ‘정신건강, 아니 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반가웠던 것은 역시 이곳의 성당 달력을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는 사실. 이제부터는 안심하고 나의 매일의 짧은 기록을 편하게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Sonata Cafe가 재개, 비록 jam & bread의 dry한 것이었지만 우리만의  십여 년 전통이 재개 된 것에 감사한다.

YMCA indoor track 걷기는 거의 50분 가까이 해서 거의 6,800 보를 걸을 수 있었고, 각종 strength machine도 보통 때만큼은 할 수 있었다. 나의 몸, 특히 근육은 아직도 예전에 비해서 큰 변화는 없는 듯 느껴진다.  각종 무거운 물건들을 다룰 때 느낌에서 알 수 있는 것, 다행 중 다행이 아니겠는가?

Tenth Day of Christmas, freezing

깨어날 무렵부터 나는 역시 얼마 전 12월 중순의 ‘등대회 악몽’을 향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나의 불쌍한 혈압을 극단으로 치솟게 했던 것이고, 이것이 바로 ‘악의 그림자’임을 어찌 모르랴… 성당 공동체를 떠나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악’의 소행이라는 상식적인 사실, 어찌 모르랴.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아무 것도 내가 할 것이 없음도 알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현재 내가 성모님께 간구하는 전부다. 그것이 전부다…

최근에 나의 연숙에 대한 신뢰성, 의지 성향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작년 1/2월, 10월의 큰 일들, 특히 여행을 비롯해서 최근의 등대회 사건 등등을 통해서 거의 절감을 하고 있다. 감사함, 고마움 등등 지나간 것을 포함해서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고 싶어진다. 더 늦기 전에…  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지만 솔직히 미안하기 그지없다. 혼자서 끙끙 앓으면 연숙이는 조금 더 편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이상적인 부부상일까? 그래, 나, 우리는 현재 깊이 기도생활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어찌할 것인가? 무조건 다시 성사생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1. 내일부터 동네성당 아침 매일 미사, YMCA gym 등의 regular routine부활!
  2. 아침, 저녁 묵주기도, 특히 저녁가족 묵주기도 재개
  3.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 재개 (토요일 특전미사로 시작)

아직도 (church) desktop calendar가 없다. 내일 Holy Family CC엘 가게 되면 아마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예년처럼 편하게 쓸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연숙이 Holy Spirit Monastery 달력을 건네 준다. 거의 size도 비슷한 것이라서 만약에 성당 것을 못 구하면 이것이라도 쓸 수 있는, backup으로 쓸 수 있다. 펼쳐보니 그 수도원 안에 있는 광경들이 펼쳐진다. 그곳에 가 본지도 이제 꽤 되지 않았는가?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하고…  특히 1월 달 사진, 약간 눈이 덮인  수도원 계단,  싸늘한 조지아 겨울의 느낌을 100% 느끼게 해 준다. 나도 이곳의 기후에 관해서는 거의 원주민이 된 기분… 참 오래 살았구나..

지난 며칠, 나는 연숙에게 이상할 정도로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아니 애정이나 존경심, 부러움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기억되는 얄미운, 싫은 느낌이 많이 사라진 듯한 것이다. 왜 그럴까?  비록 현재 겪고 있는 ‘미친X 사건’으로 시작된 것 같은데, 그래도 이번에는 예전처럼 나쁜, 얄미운, 싫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다. 내가 변했나, 아니면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갑자기 착한 사람으로 만들었는가?

상관없다. 지금 우리는 아주 편하고 가까운 관계를 갖게 된 것이라면, 제발 이 상태로 지속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던 바라던 여생을 살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그렇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진실한 성실한 관계인 것이다.

오늘도 너무나 싸늘하고 어두운 날씨에 우리는 편하게 걸었다. Ozzie Trail의 입구를 포함한 산책이었다. 이런 날씨는 거의 눈발이라도 날릴 듯한 그런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거의 꿈에 가까운 희망사항이 아닐까?

Bruce Greyson’s AFTER, 괴로웠던 지난 연말, 나에게 ‘삶의 의미’를 잊지 않게 해 주었던 책, 거의 2/3를 재빠르게 읽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지 1주일 안에 완독을 할 가능성도 있다. 처음의 정도를 넘는 희망이 갈 수록 지루함과 실망으로 변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수한 독서로 끝날 것은 분명하다. 이 독서로 나의 NDE에 대한 생각은 더욱 영성, 신심, 종교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해 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말 세상은 오래 살고 볼 거다.

이제는 나도 가끔 실감을 가지고 상상을 한다. NDE를 내가 경험하는 듯, 죽는 순간을 그린다. 그들처럼 나도 저 세상으로 가면 헤어진 가족, 친지, 그리고 pet animal들, 특히 얼마 전 떠난 Izzie를 다시 만나는 것까지…  정말이지 이것은 살맛 나는 상상인 것이다.

LEFTOVER DELIGHT, 설날, 이틀 전 새로니가 사왔던 Italian lunch 가 아직도 남아서 오늘까지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것들의 양이 사실 우리들이 먹기에는 많은 것이어서 이렇게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곁들인 salad는 연숙이 급히 만든 것이지만 정말 맛이 있었다.

마침내 저녁 가족 묵주기도가 재개 되었다. 둘이서 하던 저녁기도.. 오늘 저녁에 재개를 하는데.. 마지막으로 했던 때가 도대체 언제? 찾아보니.. 12월 2일 내가 고통의 신비를 했던 때가 마지막이었구나… 한 달도 넘은 것이다. 대신 그 당시 성당을 위한 묵주기도 5단을 혼자서 200단 정도를 했구나.. 하지만 가족기도는 아니었으니.. 오늘로 우리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는 셈인가? 성모님, 저희를 인도, 붙잡아 주소서…

Happy New Year, Solemnity of Mother of God

Unthinkable, 정월 초하루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사는 우리의 모습, 상상도 못하던 일이 2024년의 시작과 함께… 그래, 인생은 이런 것 아닌가? 변화, 변천, 진화, 흐름.. 시간과 세월의 느낌이 있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그래도 조금, 성모님께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구나… 죄송합니다, 곧 마음을 다시 추스르겠습니다~~

아~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desktop calendar, 없구나… 매년 편하게 쓰고 있는  Holy Family 동네성당 것, 그것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 못했으니.. 도대체  동네 성당엘 갔어야 말이지.. 이것이 있어야 나의 하루 삶의 조금은 정리가 되는데… 내일 아침 미사에라도 가게 되면 즉시 해결이 될 터이니, 너무 유념하지 말자…

오늘은 ‘먹는 날’로 연숙이 배려, 노력을 했기에 ‘양력 설’날의 기분을 느낄 것이고 의도적으로 즐겁게, 기쁘게, 하루 종일 먹으며 살고 싶다. 작은 기쁨, 작은 즐거움으로 일년을 살아보자는 NYT 기사에 보이는  권고, 오늘은 이 말이 그렇게 동감이 가는구나.. 아주 조그만 즐거움 들이 모이면 큰 행복이 되는 것 아닌가? 진리의 말씀이다.

일본 서해안 지진, 쓰나미… 새해 첫날…  오늘 새해 첫 뉴스는 어젯밤 자정 각 나라 특히 서울과 뉴욕의 3-2-1 countdown 행사에 대한 각종 YouTube video가 압도적일 것인데 갑자기 나타난 breaking news로 서 일본 지진에 대한 뉴스가 더 큰 관심을 끌었다. 2011년 동일본 지진과 원전사고의 기억이 생생하게 있어서 더욱 유심히 보게 되었다. 다행인지, 쓰나미 경보는 해제가 되었지만 지진의 피해는 적지 않은 듯 보인다. 일본이란 나라, 다 좋은데 이런 운명적 환경은 정말 숙명적인 불행은 아닐지…

설날 떡국, 김치 돼지고기 보쌈   김치를 담그는 것부터 시작해서 에너지와 정성을 들이더니 결국은 이렇게 맛있는 설날 음식을 준비해 준 것, 너무나 감사한다. 이제는 이런 나의 마음을 가급적 표현하며 살면 좋겠다. 아~ 오랜만의 떡국, 김치 보쌈…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의외로, ‘칩거 생활’이 지루했던지 연숙이 먼저 동네를 걷자고 제안한다. 우리에게 제일 알맞은 운동은 역시 적당한 산책, 산보임을 알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3,000보를 습관적으로 걷자는 의견에 나도 동감이기에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20분도 채 안 걸리는 가벼운 산책이지만 그래도 정신을 새롭게 하는데 분명히 도움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Izzie, Adios My Friend, 2006~2023

식구야, 친구야 잘 가시오~~ 부디 잘 가시오~~ 사랑하는 님이여~
사랑하는 친구여, 식구여~~ 부디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시게나~~

정신 없이, 머리 속이 텅 빈 상태로 ‘관’을 만들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전혀 idea가 없이 손이 가는 대로 몇 개월 만에 circular saw를 돌려 판자조각을 삐뚤게 자르고 못을 박고.. 거의 순식간에 조금 볼품이 없는, Izzie가 쉬어야 할 집을 만들고… 또한 한 겨울에 땅을 파는 것도 역시 쉽지 않았다. 결과는 깊지 않게  파인 곳이 되었지만 얇은 흙 위로 걸맞지 않게 커다란 flag stone 2개를 얹으니, 순식간에 아주 안정된 묘소가… 우리는 자주 이곳을 보며 남은 여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린 후 오늘 일을 되돌아 본다.

몇 가지 상상되는 광경을 미리 그려보며, 함께 머물던 새로니의 pet dog, Ozzie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일부러 전등불을 꺼놓은 dining room 구석, 어둠 속에 있을 ‘녀석’을 일부러 안 보고 Ozzie를 볼일을 보게 밖으로 내보내고… 조심스레 돌아와 전등을 손으로 켠다. 아무런 소리가 안 들린다. 움직임이 안 느껴진다. 그래도 자세히 얼굴을 보니 ‘잠 자는 듯’한 모습, 목덜미를 만져보니 어제처럼 따뜻하지 않구나. 그러면… 눈도 감고… 하지만 잔잔하게 숨쉬는 움직임은 보인다. 그러면.. 서서히 서서히… 가는 것인가? 아~ 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울고 싶다. 울고 싶다… 정녕 떠나는 것인가, 정녕 우리에게서, 나에게서… 식구의 또 한 생명이 이렇게 추운 겨울,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를 떠난단 말이냐?
…………
아~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의 야옹~ 소리는커녕 움직임이 아직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눈 감고 자는 듯한 잔잔하게 숨을 쉬는 모습…  한번 안아볼까… 밤에 잠을 자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되면 조금은 깨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반응에 변화가 없다면.. 아~ 이것은 지금 점점 의식을 잃는 중이 아닐까? 기다려보자, 기다려보자… 오늘 밝은 낮에 밖으로 안고 나가서 ‘네가 살았던  인간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다. To Dance with the White DogHume Cronyn 할아버지처럼..
…………
숨을 쉬는 모습.. 하지만 목덜미를 만져보니 어제처럼 따뜻하지 않다. 손과 발도 마찬가지, 눈도 잘 뜨지 않는다. 어제보다 더 저 세상으로 간 것인가? 지금 꿈꾸듯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잠을 자는 듯 가는 것일까? 아픈 곳은 없는 듯 보이는 것이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 절박한 순간들… 지나가라, 지나가라, 빨리 지나가면..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성모 마리아님, 이 불쌍한 것을 위해 빌어주소서… 부디 하느님 옆으로 가도록…
…………
결국 녀석은 우리를 떠났다. 아침 8시 15분 경부터 숨쉬는 느낌이 없어지고,  움직임조차 없어졌다. 몸이 더욱 차지고, 아~ 떠났구나… 떠났구나… 떠났구나… 잘 가시게, 우리의 벗이여~ 잘 가시게… 17년 잘 살다가 갔지? 마지막에 너와 이렇게 함께 한 것 두고두고 귀중한 기억, 추억으로 간직할 거야~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이제부터 성모님께 빌어 볼게, 잘 가~ Izzie야, 나의 친구야~~~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불편하고 조금 편하기도 하고, 이런 복합된 생각과 느낌이 머리 속을 빙빙 돈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돌보아 주는 일, 귀찮은 일도 많았다. 그런 것들이 일시에 사라진 것이 어깨를 가볍게 한다. 하지만 2006년 이후 거의 우리와 함께 있었던 ‘존재’가 없어진 것은 역시 슬픈 일이다. 저쪽 방 dining room에서 나를 보며 야옹거리던 녀석, 그 녀석이 안 보이는 첫 저녁.. 정말 이것은 참기 힘들게 슬픈 것이다. 시간이다, 시간… 시간이 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이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OMG… Izzie야~~ dying?

아~ 어제 양양이가 나의 무릎에 앉은 사진 찍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모습이 이상하다. 며칠 째 걷는 것이 이상했는데 오늘은 걸으려 하지 않는 듯, 자기도 이상한 듯한 표정으로 움직이지를 않는다. 결국 때가 서서히 오고 있는 것인가? 이제는 밥을 먹으러 식탁위로 뛰지 못하나?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서서히 그곳, 저 세상을 향해서~~ 아~ 또 싫다, 싫어. 정말 싫습니다. 왜 이때입니까? 왜? 성모님, 조금 더 우리와 함께 눈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을 더 주십시오, 지금 이별하는 것, 무섭고 싫습니다~ 성모님~~~

오늘 나갈 일이 없었으면, 아니 나가지 않았으면 불안, 초조의 괴로움으로 고생했을 듯하다. 녀석으로부터 느꼈던 ‘저승사자의 그림자’를 생각에서 떨칠 수가 있었을까? 잊어야 하기에 더욱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닥친 빙점의 날씨에도 동네 성당에는 신심이 좋은 고정멤버 교우들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성체분배만 하는 공소예절로 끝났다. 그래도 영성체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끝나면 모두 합창하는 Immaculate Mary~ 도 하루를 사는 에너지를 줄 것이니까.. 월요일 아침에 동네 성당엘 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조금 자랑스런 쾌거이기도 하니까..

집에 와서 제일 먼저 녀석의 상태를 살펴본다. 오늘 아침의 모습으로 거의 절망적인 진단을 나는 내리고 있었다. 앞으로 ‘임종’과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2018년 6월 임종하던 Tobey때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며.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장례’를 할 것인가, 관을 어떻게 다시 짤 것이며 겨울에 얼어붙은 땅은 어느 곳에 팔 것인가.. 등등.. 열차처럼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것과 연관되어서 일반적인 죽음, 임종과정, 우리들에게도 다가올 운명의 날들..

가급적 편하게 해 주고 싶어서 안아주며 상태를 보는데…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눈가에 생기가 도는 것이 아닌가? 놀라고 기쁘지만 시간을 두며 보기도 했는데..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보니 조금씩이나마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동작도 조금씩 빨라지고.. 내가 오판을 한 것은 아닌가?  그래, 지켜보자, 아직 때가 아닐지도 모르지 않은가?

어제 은지가 보내준  1분 동영상,  지금 계동의 모습.. 10월 달 잠깐이지만 걸었던 그곳, 대강은 생각이 나지만 자세한 것은 아직도 모른다. 우선 예전 50여 년 전의 계동의 모습은 100% 사라진 것은 확인되었다. 그 외에 샛길의 위치는 거의 안 변한 듯, 중앙고의 모습도 아마도 그대로.. 동서로 계동길을 가로지르는 길들이 제일 궁금하다. 보이는 커다란 교회의 십자가, 혹시 그곳에 그 옛날 길가에 있던 바로 그 교회가 아닐까?  재동 친구 김천일이 성탄 때마다 가서 과자를 선물로 받았다는 그 교회? 그렇다면 그 옆길로 가면 재동학교 뒷문 쪽에 있던 우리 가회동 198번지 집? 구글맵을 보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아~  지난 10월 그곳에 갔을 때 왜 시간을 내어서 가보지 않았을까? 앞으로 언제 또 가볼지도 모르는데…

계동 1번지, 그리고 계동 ‘길’ 98번지

은지가 보낸 계동 ‘길’ 동영상, 크게 확대해서 자세히 천천히 본다. 추억의 극치 중에 하나, 그 중에서 바로 으뜸이구나… 당시 비가 온다는 그곳, 크게 자세히 보니~ 아~  골목 끝 위 먼~ 곳에,  ‘계동 1번지, 중앙고등학교 white castle‘이 ‘솟아 솟아 솟아서’, 솟은 것을 찾는다.  더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원래부터 문이 없던 ‘교문’ 기둥 둘이 보이고, 그 뒤는 김성수 ‘교장’이 손수 화강암 돌을 날라다 쌓아 만들었다는 본관 건물, 그곳으로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이 가려져 있다. 교문 왼쪽은 ‘사령관 모자를 쓴 수위’ 아저씨가 상주하던 수위실, 오른 쪽에는 당시에 그다지 싸지 않았던 통학용 자전거들을 두던 곳. 이 문짝 없는 교문, 언덕길을 6년이나 오르내렸으니.. 그것이 나의 뇌리에서 그리 쉽게 사라지겠는가?

교문에서 왼쪽은 가회동 으리으리한 한옥들 골목, 오른 쪽은 상대적으로 우중충했던 무허가 건물 처럼 초라한 집들이 도열한,  또 다른 언덕길은 나의 6.25이후의 고향, 원서동으로 이어진다. 추억의 계동 골목이 이제는 계동길 X번지로 바뀐들 , 너무나 깨끗하게 정리가 된 것 외에는 추억의 골목과 크게 다를 것이 있겠는가? 그곳은 그곳이고 그때는 그때다. 오늘따라 왜 나는 그곳에서 사는, 아니 살아온 사람이 된 착각에 빠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나는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까, 왜?  추억의 시대를 반세기 넘어서 세대도 두 번씩이나 바뀌어, 코흘리개였던 조카 은지가 계동길 98번지에서 희망에 찬 모습으로 ‘식물이 좋아서 because Ilove plants‘라는 이름도 거창한 plant gift shop, ‘창업’을 하며 나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으니까.. 고맙다, 은지야~  부디 그렇게 좋아하던 것, 크게 성공하기를…

날씨를 핑계로 편안하게 일요일 아침, 또, 집에 있고 싶었다. 아니 20마일이나 운전을 해서 한국본당에 가는 것이 싫었다. 그쪽에서 나를 잡아 끄는 그 무엇이 오늘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 하지만 오늘은 지난 일요일과 조금 다르게 미사를 완전히 빼먹기도 께름칙하고, 아침 식사를 끝내며 옆에 켜있던 TV를 보며 CPBC 평화방송 생각이 문득 난다. 아~ 코로나, 코로나 Pandemic 이것도 벌써 ‘향수鄕愁’ 깜이 되었나?  불과 2~3년 전에 거의 매일 찾던 곳, 평화방송의 인터넷 미사!

이것이라도 있어서 오늘 하루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조금 덜 미안하고 덜 죄스러웠으니까.. 오늘 YouTube에서 방영된 미사는 방송국 chapel이 아닌, 서울 시내 성당에 나가서 한 것이어서 더욱 실감이 있었다. 오늘 평화방송이 간 곳은 구로2동 성당, 1969년에 지어진 성당이라서 요새 지은 성당과 너무나 다르게 소박하기만 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1969년 나의 대학3학년 때를 돌아보는 친근함만 더해 주었다.

이제는 그곳 [고향 땅]에 있는 성당에 대해서 조금은 실감이 가기에 오늘 미사는 나에게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10월 달에 인연을 맺었던 경기도 군포시 금정성당, 그곳의 레지오 회합, 단원들 생각이 나고, 이어서~ 아~  역시 나의 ‘진짜’ 고향이 그립다라는 생각에서 비약.. 혹시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산다면? 나에게도 그곳에 가까운  가족, 친척,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이 비약적으로 그들을 이제는 가까이 옆에서 보고 살고 싶은 뜬금없는 가망성이 희박한 희망까지 생긴다.

김형석 [명예] 원로 ‘백세인’ 교수님의 아침 식사, 오늘 비로소 그 식단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의 지난 20여 년 간의 아침 식사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또한 매일 매일 심심할 정도로 큰 변화가 없다. 그러면~ 이것이 바로 건강식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백세인의 습관 중의 하나란 말인가? 그러면 우리도 백세를 살고 싶다고? 어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물어볼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아침 식단은 조금 격려를 받으며 계속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하루 두 끼 먹는 것은 어떤가? 그것은 김교수님의 습관에 보이질 않는다.

어제 저녁 연숙이 아슬아슬한 자세로 기우뚱거리며 의자에 올라가서 이 ‘포도 성탄 장식’을 설치했는데, 오늘 보니 너무나 예쁘고 귀엽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집 안팎이 쓸쓸하기만 한데 이 조그만 노력으로 당분간 우리 부엌  주변은 성탄과 새해를 조금 따뜻하게 보이게 할 것 같다. 고마워~ 고마워~

불고기 볶음밥과 두부 된장국, 갑자기 추워지는 늦은 오후의 늦점심.. 영양학적으로 봐도 완전 균형식이다. 감사, 감사…

즈음 우리 둘 모두 양양이에게 신경을 쓰고 산다. 나이도 그렇고, 최근 계속 ‘실수, 사고’ 를 연발하는 녀석이 걱정도 되고, 특히 먹는 것이 주춤해서 살이 더 빠지고 있어서 은근히 혹시~ 하는 상상까지 안 할 수가 없구나. 아~ 갈 때 가더라도 지금 안 된다, 안 되~~   이런 와중에서 녀석과 우리는 갑자기 가까워졌다. 전혀 화도 안 내고, 나의 곁을 안 떠나려고 하는 등,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예전의 Tobey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의 무릎에 앉는 것은 물론 아예 거기서 졸기도 하고, 오늘은 그와 함께 나도 졸았으니… 참, 꿈을 꾸는 듯하다. 이런 세상이 올 줄이야~~ 그래, 양양아, 편안하게 살다가 가자꾸나, 그곳으로, 그곳으로…

포근하던 며칠~ 새벽에 무섭게 폭풍이 지나가더니 일요일 하루 종일 세찬 바람에 컴컴한 비가 하루 종일… 게다가 오후로 들어서는 기온까지 급강하~~ 아마도 내일 새벽은 다시 빙점으로 돌아가는 완전 “겨울의 초상”인가… 하지만 나는 이런 날씨를 ‘지독히’ 사랑하니까.. 아무런 문제는커녕 기다리며  산다.

불안, 두려움, 절망감의 정체와 해답은…

예전, 아니 오래~ 전에 스쳐갔던 생각 중에는 ‘현재가 힘들어도 나이가 들면 분명히 도사나 신선처럼 느끼는 잔잔한 평화, 불안이 없는 지혜와 함께 살 것’이라는 뜬구름 같은 희망이었다. 그것이 지금 눈을 떠보니, 어떻게 되었는가~ 별로 아니 전혀 나이와 편안함은 상관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이, 세대별로 그 성질이 달라진 차이뿐이다.  그 중에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은 끈질기게도 따라오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비록 육신의 건강은 점점 내리막 길을 걷게 되어도 머리 속에 펼쳐지는 세상은 점점 편해질 것이라는 희망, 바로 그 희망을 원하며 살았는데… 결과는 거의 참패에 가깝다.

얼마 전,  ‘강산이 99%  변해버린 고향’ 방문 시, 처조카 딸 수경가 선물이라며 수원근교 미리내 성지 내 성물방에서 건네 준 책에서 이 급한 명제에 대한 분석적인 essay를 읽게 되었다. ‘잊혀진 질문’ 중에 하나로 등장하는 이 질문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것과 더불어 ‘희망의 부재’까지 함께 다루었기를 바라기도 했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신부님이 제시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나에게는 50% 정도의 답은 주신 셈이니까, 이번 고국 방문의 성과 중에 하나라고 기억을 할 것이다.

불안, 초조, 두려움 이런 감정들을 ‘특권’이요 ‘에너지’로 승화하려는 신부님의 ‘성경해법’이 과연 나머지 50%의 해답을 줄 것인가?  모든 것, 아니 이 우주의 모든 것 (없는 것도 포함한)은 궁극적으로 내가 보는 세계관 안에서 내가 가진 생각의 눈으로 보는 나만의 실재,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분명히 해답은 있다. 쉽게 말하면 ‘세상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다.  코앞에 다가오는 물리적인 위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머리 속 consciousness 의식체계, 아니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일 뿐이 아닐까? 성경 속 예수님의 진복팔단 眞福八端 Beatitudes 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긍정적인 착각의 영역’인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

 

두려움에 대하여 독일 소설가 장 파울이 위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한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나간 다음부터 무서워한다.”

이 말은 그대로 진실입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걱정합니다. “어이쿠, 이러다가 뭔 일 터지는 것 아냐?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그러면서 나름 철저히 준비한답시고 우왕좌왕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공포에 짓눌립니다. “우와, 집채만한 호랑이잖아. 이제 나는 죽었다!” 벌벌 떨다가 그만 위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난 다음 사태를 인식합니다. “이거 뭐야? 돌이 굴러 떨어졌잖아! 하마터면 큰일 뻔했네.”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전율에 식은땀을 흘립니다.

결국 두려움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말인 셈입니다.

 

수천 년 철학사에서 근세기에 등장한 실존주의 사조는 철학적 고민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우주, 자연, 사회 등의 거창한 주제보다 더 시급한 주제가 인간의 실존이며 나아가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 안에도 여러 색깔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인간의 숙명적인 문젯거리가 있으니 바로 ‘불안’입니다. 약간씩 의미상 편차가 있습니다만 두려움, 공포, 염려, 걱정 등을 아우르는 ‘불안’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표층과 심층을 장악하고 있는 생존 인자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독심술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중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줄을 잇고 있는 통계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취업, 인사포털 인크루트가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2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5면 중 4명꼴인 82.1 퍼센트가 졸업을 앞두고 불안함,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일명 ‘4학년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24일 구직포털 HR KOREA 는 지사 회원 직장인 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장생활 스트레스’에 대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9.3퍼센트가 미래에 대한 (관한) 불안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편의상 젊은층의 ‘불안증후군’에 초점을 맞춰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이 습관화된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해지길 기대하는 것은 경험상 무리일 것입니다. 도리어 나름 탄탄하던 사람들조차 은퇴를 기점으로 불안의 늪에 빠지는 경우를 허다합니다. 불안이야말로 예측불허로 찾아오는 불청객이며, 수시로 변색하며 살아남는 카멜레온입니다.

 

그러면,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불안’이라는 것은 ‘공포’와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상태입니다. 눈앞에 주어진 자극이나 위협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생기는 감정을 ‘공포’라고 합니다. ‘공포’는 동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원초적인 본능’이거든요. 쥐는 눈앞에 고양이가 나타나면 공포에 떨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이것은 사고 작용이 없어도 생기는 일종의 반사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은 반드시 생각의 결과로써 생깁니다. 자신의 존재와 관련해서 어떤 위기나 피해를 미리 상상하거나 불길한 일을 예상할 때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불안’입니다. 동물은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동물이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불면증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동물이 느끼는 것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변화에 대한 반응, 즉 공포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은 인간 고유의 정서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버드대 정신과 교수인 필레이 박사는 수년간의 뇌 영상 연구를 통해 인간이 공포, 불안, 두려움에 반응하는 독특한 방식을 밝혀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아주 작은 위험도 재빠르게 감지하며 ‘원하는 것’보다 ‘피하고 싶은 것’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진화해왔다고 합니다. 이를 처리하느라 다른 일들을 뒤로 미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건 불가능해, 하지만 나는 이직을 하고 싶어”라고 생각한다면 뇌는 이 상충된 메시지를 받고 혼란스러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불가능해’라는 두려움을 먼저 처리하느라 진정 원하는 ‘이직’을 하려는 에너지를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필레이 박사는 그의 저서 <두려운,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에서 이것이 바로 뇌가 우리를 과잉보호하는 방식이라 설명합니다.

이 통찰은 우리가 두려움을 처리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르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불안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불안의 작동 방식을 확실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가까이 불안현상을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떤 것에 위협을 느낄 때, 우리 뇌는 0.01초 만에 두려움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고 합니다. 뇌의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1초에서 0.03초. 이후 의식적인 처리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상을 파악하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본래 인간이 진화하는 데 필수 요소였습니다. 두려움을 얼마나 빨리 감지하느냐가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뇌는 다른 감정들보다 위협을 먼저 처리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기능도 따랐습니다. 이 예민하고도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대한 자각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파악하고 위축된 반응을 유발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은 단지 이전에 기억된 정보일 뿐’이라는 자각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중 더러는 어른이 된 뒤에도 웅덩이의 물만 보면 반사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는 어린 시절 편도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반응일 뿐 실제가 아니지요. 다 큰 어른이 웅덩이의 물을 무서워할 이유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생각의 힘만으로도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불안의 작동방식을 잠깐 짚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불안은 없어도 문제고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제 불안의 순기능을 클로즈업해보겠습니다. 심리분석가 프리츠 리만은 ‘불안의 심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불안은 우리의 발전에 특별히 중요한 지점들에서 제일 먼저 의식 속으로 온다. 즉 친숙한 옛 궤도를 떠나는 곳에. 새로운 과제를 감당하거나 변화해야 하는 지점에 불안이 온다. 발전, 성장, 성숙은 그러니까 명백히 불안 극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느 연령에서든 그 나이에 상응하는 성숙을 위한 걸음이 있으며, 그 걸음은 있게 마련인 불안을 수반한다. 걸음을 내딛자면 그 불안을 다스려 이겨내야만 한다.”

프리츠 리만보다 앞서 불안의 긍정적 역할을 철학적으로 섬세하게 규명한 사람이 철학자 키르케고르입니다. ‘불안’을 일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던 그는 불안을 도약을 위한 계기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심미적 삶, 윤리적 삶, 종교적 삶의 3단계로 질적 성숙을 이루는데, 불안이 앞 단계에서 다름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본능적으로 심미적인 삶을 산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좇아 살거나 환상에 빠져서 삽니다. 삶을 기분풀이로 여기며 쾌락을 탐닉하면서 기분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이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국 권태와 싫증에 다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무기력한 자신의 눈에 비친 인생은 무상하며 미래는 불안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합니다. 이 절망은 새로운 삶을 찾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절망의 늪을 넘어 윤리적 삶으로 도약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불안으로 말미암아 이제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쾌락만을 좇아 무비판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에 따라 생활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제 내면의 양심에 호응하고 의무에 성실하려고 애씁니다. 이제 비로소 인간은 ‘되어야 할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 단계도 결국 벽에 부딪치고 맙니다. 높은 도덕에 이르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 그리고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무력함을 절감합니다.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고, 또 윤리적으로 산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 데다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이 망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서서 고뇌하는 인간은 마침내 죄의식과 불안에 빠지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 불안과 절망이 다시 도약을 만들어 사람을 신에게로 내몬다고 합니다. 이 현실의 모순을 심판해 줄 하느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불안은 종교적인 삶으로 옮겨가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줍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으로서 완전하고 참된 삶은 세 번째 단계인 ‘종교적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실현된다고 말합니다. 스스로의 결심에 따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따를 때에 인간으로서의 무력감과 허무함을 떨쳐버리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체적 결단과 도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무리 공부하라고 다그쳐도 정작 학생 자신이 공부하려고 하지 않으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불안의 역기능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로, 불안은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여 결국 도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공학기술자 헨리 포드의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활동을 제한 받아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라고 했거든요.

나는 해군 출신입니다. 해군 훈련 과정에서 “퇴함 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에서 물로 뛰어 내려야 할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내 수영장 10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입니다. 적음을 위하여 먼저 5미터에서 시작해 다음 7미터, 그 다음 10미터 순으로 진행합니다. 전원이 차례로 뛰어내려야 하기에 줄을 지어서 기다립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다이빙 대 끝에서 서서 오른손은 코를 쥐고 왼손은 낭심을 잡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000 사후생 퇴함준비 끝!”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지휘관이 “퇴함!” 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퇴함!” 이라고 복창하고 뛰어내려야 합니다.

사람은 10미터에서 가장 큰 고소공포를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높이에서 그냥 뛰어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위에는 구대장 몇 명이 지휘봉을 휘두르며 포진하고 있습니다. 훈련생들에게는 10미터 높이도 무섭지만 그 지휘봉도 만만찮게 무섭지요. 그런데 세 명이 끝내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구대장들이 격려를 하고, 협박을 하고, 떼밀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난간을 붙잡고 있는 힘은 여러 장정이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초인적으로 강했습니다. 결국 그 세 명은 석식 열외에다, 완전군장 차림으로 날이 저물도록 연병장을 ‘평화롭게’ 돌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두려워하는 마음을 먹으면 발이 땅에 딱 달라붙고,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요지부동하게 됩니다.

둘째로, 불안은 사람의 심신을 해칩니다. 제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에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 시민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총탄이 사람을 꿰뚫어 죽인 수보다 불안과 공포가 죽인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

지지 않으려면 정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리처드 바크는 그의 저서 <날개의 선물>에서 인간이 성취를 향하여 전진하는 과정을 수영장의 다이빙대를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다이빙대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우선, 며칠 동안 다이빙대를 올려다 만 봅니다. 이는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그는 드디어 젖은 계단을 조심조심 오릅니다. 어떤 일을 앞두고 결단을 내리는 단계에 해당하며, 아직 결심을 굳히지는 못한 채 불안 중에 조금씩 전진하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로, 그는 높은 다이빙 대 위에 섭니다. 결단 직전, 가장 불안한 단계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다이빙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길로 이는 “패배를 향한 계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과감하게 물속에 뛰어드는 길로 이는 “승리를 향한 다이빙”입니다. 다이빙대 끝에 선 그는 두려움에 소름이 끼쳐도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면, 후퇴는 이미 늦었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인생이라고 불리는 다이빙대가 정복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불안과 두려움의 다이빙대를 한 번 정복한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높은 데서 다이빙을 즐길 정도가 됩니다. 바크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천 번 올라가고 천 번 뛰어내리고, 그 다이빙 속으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가 비로소 인간이 된다.”

 

어떻게 하면 이 불안감을 덜 수 있을까요? 나는 인생의 위대한 멘토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 자체가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방법은 강력한 희망과 꿈으로 불안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은 꿈의 한 모습인 ‘긍정적인 착각’의 효과를 밝혀냈습니다. <인간의 두 얼굴: 착각> 편을 제작한 정성욱 PD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국내외 책과 논문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고는 인간의 착각과 행동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줄 실험을 구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도화지에 손가락 하나를 없는 손을 그리고, 다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묻습니다. “10년 후 이 손가락은 어떻게 될까요.” 일부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측을 뛰어넘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손가락이 자라나요!” 라고요. 실험 결과 손가락이 자란다고 대답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지능지수가 높았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 착각입니다. 이는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정 PD는 말합니다.

“긍정적 착각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발전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울증 환자들은 절대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정적 착각을 동반하는 희망과 꿈이야말로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방법은 불안을 신께 맡기는 것입니다.

토론토대학 심리학과 마이클 인즐릭트 교수 팀은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불안과 걱정에 덜 시달린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인즐릭트 교수는 “신앙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테스트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모르는 것이 나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팀은 그 내용을 2009년 <심리과학> 온라인 판에 발표했습니다.”

한마디로 기도가 불안감을 해소해준다는 얘기입니다. 나 자신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된 것을 보고 도대체 몇 번이나 씌어 있는가를 세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꼭 365번이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1년 365일 매일 한 번씩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그럴듯한 수치적 일치입니다. 우연이긴 하지만, 신은 불안에 떠는 우리를 최소한 매일 한 번씩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해줍니다.

 

뭐니 뭐니 해도 불안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그 불안을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이겠지요. 불안하니까 더 준비하고, 불안하니까 더 정진하고, 불안하니까 더 노력하자는 얘기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베로니카 웨지우드의 말을 기억해둘 것을 권합니다.

“불안과 무질서는 절망의 징후가 아니라 에너지와 희망의 징후다.”

체념한 사람에게는 불안이고 뭐고 가 없습니다. 불안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권, 곧 생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올해의 자랑스런 中央人, 김형석 교수님

이 사진에 대한 아래의 소개글은 중앙고 57회 동창 교우 이재영이 동창회 카톡방에 쓴 것이다. 이 동문이 쓴 것이면 나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무조건 믿는다.

김형석 교수님께서 중앙고 교사(사회과목 담당) 시절인 1953년 가을, [중앙고교]본관 앞에서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당시 고3이던 45회 선배님들은 모두 작고.  맨 오른쪽 학생은 전주교육대학교 미술 교수로 정년퇴직을 하시고 최근까지 작품 활동하셨는데 금년 봄에 소천.

103세이신 김형석 교수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김형석 명예 교수님이 중앙학교 교우회로부터 ‘자랑스러운 중앙인’으로 선정되어서 상패 증정식을 가졌다는 소식이 중앙고57회 동창회카톡 소식으로 알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김교수님을 연세대 시절의 인연으로 알고 만 있었지만 우리 중앙중학교 교감이셨고 고등학교 사회과목을 가르치신 선생님이셨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 중앙학교에는 주시경 선생님 등 민족계열의 선각자님들이 교편을 잡고 계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님보다 한 살 젊으신 103세의 향년을 누리고 계신 철학자, 석학, 교수, 교감.. 지금은 대한민국의 지성과 양심을 대표하는 ‘광야의 목소리’..  연세대 교양학부시절 교수님의 철학개론을 들었다. 딱딱하고 심오한 것들을 쉽고 유머러스하게 이끄셨던 기억, 교수님 댁에 일시 살았던 미국인 여성에 얽힌 일화를 나누어주시기도 했는데..  참, 대단하신 것, 현재도 정정하신 모습을 마주 대하기가 부끄럽다. 지금 우리들 나이를 두고 한탄조로  나이타령이나 하고 사니 말이다.

콜럼버스 중앙고 후배 단톡방에 위의 글을 올린 후에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우선 전주에 사는 김명환이와 사진 속 얼마 전에 타계하셨다는 45회 선배는 이미 아는 사이, 둘이 만났던 사진까지 올려 주었다. 성당에 그림을 남기셨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을지. 게다가 안동규 후배 아버님, 안병욱 교수와 김형석 교수는 절친한 사이였다고, 묘소 자리도 나란히 준비를 해 놓았다는 놀라운 사실도 함께. 하기야 당시 두 분은 거의 동등한 위치의 석학이셨음을 기억한다.

 

일찍 Tucker로 손자 Knox 녀석 babysitting  ‘출근’하는 연숙이, 그 집에서 푸짐하게 먹지 못하는 듯해서 신경이 쓰인다. 무조건 많이 먹어서 덜 배고프게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은 연숙이 좋아하는 bagel을 bread대신 했다. 양적으로 다른 것보다 조금 더 많으니까 분명히 소화되는 시간도 더 걸릴 테니까..

드디어 ‘인형의 집’에 성탄 불이 들어왔다. 일단 제자리를 잡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예쁘지 않은가? 그것도 뒤편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이 자상하고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계시지 않은가?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가? 절대로, 절대로 걱정, 근심은 하지 말자. 슬퍼하지도 말고..

 

어제 Sam’s Club 갔을 때 나의 유일한 관심은~~ 역시 ‘술 종류’, 그래 봤자 wine종류였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눈치를 보는데, 우선 지금은 12월 특별한 때니만큼 죄송스럽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12월과 1월은 예외적임을 아니까.. 특별히 1월 1일을 생각해서 champagne 에 신경을 써서 그것도 함께…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3 병 만큼의 양이라는 BLACK BOX.. 당분간 ‘머리가 복잡하거나’, 아니면 ‘너무 좋은 일이 생겨도’ 이것이 있으니 걱정이 없다. 하지만 조심조심 자제하며 즐길 수 있을 때 마시자…

후아~ 오늘 아침도 추운 정도가.. 아마도 빙점부근일 듯하다. 그렇구나 이곳은 34도! 거의 제일 두꺼운 옷을 향하고 있는 이 즈음이다. 이곳, 이 지역, 아니 제2고향의 기후적 위치는 흥미롭다. 경계선에 있는 위치, 기온도 날씨도 이곳으로부터 변화하는 것, 왜 그럴까? 대부분 기후대란도 이곳에서 완화가 되거나 기온도, 바람도.. 특히 더위도 아틀란타 중심과 꽤 차이가 나는 것 등등… 그러니 이제 나는 거의 느낌으로 이런 기후 특징을 알아가게 되고.. 진정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된 것인가?

원죄없으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SOLEMNITY, Holy Day of Obligation (의무 대축일)

대림절 첫주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의무대축일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 조금 위안은 되지만 과연 그럴까? 오늘은 갈 수도 있긴 한데.. 그러면 그 외에 내가 이것을 보속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특별히 바치는 환희의 신비 묵주기도, 성경읽기를 더 하는 것, 관계된 영화 루르드 발현 이야기 등등.. 물론 나를 ‘늪에서 이끌어 내신 성모님’의 2010년대의 은총 등등을 회고할 수도 있지 않을지..  성모님이시여, 저를..

세 명의 기피 인물들, three monsters….

2017년부터 현재까지 3명으로 불어난 것, 모두 한인 성당 본당 삶들, 이제 우리에게는 100% ‘기피 인물’, 어떻게 우리는 이런 불편한 신앙여정을 살고 있는가? 이 세 사람들의 공통점, 특징은 무엇인가? 제일 뚜렷한 것은 상황에 따라 보이는, 그들의 ‘정서적인 불안정’, ‘분노 조절의 어려움’  이 아닐까?  이 중에는 이런 것들이 거의 항상 몸에 배어있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이런 교우들과 우리가 관계가 되었는지, 그것이 문제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해는 간다. ‘성당 활동, 사업’은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니까.. 2017년 일년 동안 2명의 [레지오]기피인물이 생겼고 그 이후 조용했는데 결국 불과 몇 주 전에 [senior 친교단체]  ‘최악의 1명’이 추가 되는 사건이 생겼다.

이들 3명의 공통점, 모두 여자들… 허~ 왜 모두 여자들인가? 경험상 이런 부류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단연 많은데…  심리적 불안정과 분노 조절 장애 이외에 시기, 질투도 있다. 남이 자기보다 잘하는 것을 도저히 못 참는 부류들인 것이다. 이해는 가는데 피해 당사자는 교회 내 활동을 멀리하거나 최악의 경우 떠나게  할 수도 있기에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선과 악’을 구별하는 기준까지 되기도 한다.  의문은 왜 우리에게 그런 monster들이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이나 나타났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겠다. 이 나이에 맞게 가급적 고개를 숙이고 살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쉽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이것이 ‘우리의 운명, 심지어 숙명’이라고 체념하기로 했다.

세월

12월도 ‘벌써’ 나흘 째로 슬그머니 넘어온 즈음, 중앙고, 연세대 친구, ‘도사’ 양건주가 1999년 8월에 보내주었던 [외로움의 도사] 김재진의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를 다시 꺼내었다.  이 시집의 표지의 글,  건주의 속삭임을 듣는 듯하다.

그 당시 이미 상당한 세월을 훌쩍 넘기고 ‘가상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행운과 함께 힘든 시절, 고민과 고독을 호소하던 나를 위로하며 이 소책자를 보내 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이후 이 시집은 나의 영적 상담자가 되었다.

너무나 힘들었던 40대 말을 바로 뒤로했던 시절로 깊이 각인된 그때, 이 소책자는 나에게 시의 안 보이는 위로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는데.  올해 한달 전  서울 근교 일산시의 그의 보금자리에서의 기적적, 극적인 해후 이후 더욱 이 시집에 진하고 진한 남자의 우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때 그와의 ‘역사적 만남’은 나에게 ‘세월’이라는 간단한 말을 두고 두고 묵상하는 계기를 주었고, 밤 잠을 설칠 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악동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세월, 세월… 세월…

그런데 역시 이 김재진의 시집 속에도 이 ‘세월’은 유감없이 그의 생각을 타고 있었다. 100%는 아니더라도 나의 깊은 속을 유감없이 속삭이고 있었으니..  사 반세기만에 나를 찾아온 선물이라고 할까. 건주야, 고맙고 그립다. 잠을 설치는 밤에 다시 보고 싶구나. 조금 더 나은 건강을 빌며.. 우리의 긴 세월은…

 

세월

김재진

 

살아가다 한번씩 생각나는 사람으로나 살자.

먼길을 걸어 가 닿을 곳 아예 없어도

기다리는 사람 있는 듯 그렇게

마음의 젖은 자리 외면하며 살자.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지나갔던 세월.

먼바다의 끝이 선 자리로 이어지듯

아쉬운 이별 끝에 지겨운 만남이 있듯

모르는 척 그저 뭉개어진 마음으로 살자.

 

대림초 가 처음으로 켜지는 날…

일요일 아침시간을 편하고 아늑한 집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 비록 성당제대에 켜진 대림초 는 코앞에서 못보고 있지만 의외로 마음은 가볍기만 하다.  대학시절 수업을 빼먹고 연대 입구 [사실은 신촌 로터리] 대지다방으로 클럽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던 그 가벼움과 비슷한가…  지금 50년 후의 그 연대입구, 신촌 로터리에는 꾀죄죄했던 2층 다방의 모습은 간데 없고 우람하고 번쩍이는 ‘명동, 강남 스타일’의 고층건물 아래의 ultra-modern cafe들.. 아~ 싫다, 싫어… 우리 마음의 고향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보너스로 생긴 일요일 아침, 성당 망치회의 김밥 대신에 left-over fried chicken, SPAM, 따끈한 밥이 곁들인 한 접시 요리는 나의 혀끝에는 천하일미였다.

중앙고 콜럼버스 인연의 채인돈 후배의 ‘서울역 선물’ 제주산 차茶.. 지난 한달 간 우리는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이 차의 향기에 취해 서울역 모임을 음미하며 살았다. 문제는… 이제 거의 이것이 떨어져간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나는 과연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며 사는 ‘장애자’인가?  그것도 특히 우려, 걱정, 부정적인, 나쁜, 해가 되는 그런 것들을 주로 하며…  왜 좋은 생각, 희망적인 것, 사랑스런 것들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생각하며 사는 재주가 없는가? 정말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를 지경인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자가진단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인가?

연숙이의 sinus infection과 심지어 기침까지 조금씩 나오는 것으로, 오늘 ‘쉬기로’ 정했기에 마음은 훨씬 편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이었다.  물론 미사엘 못 갔다는 미안함도 한 몫을 했겠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편한 새벽을 맞이하지는 못했다는 것, 아~ 그렇구나… 다가오는 시간, 날, 세월들에서 나를 즐겁게, 편하게 하는 ‘희망’이란 놈이 잘 안 보인다는 슬픈 사실이다… 왜 요새는 그렇게 앞날이 어둡게만 보이는 것일까?

어제 읽었던 NYT 논설, Is South Korea Disappearing? 생각보다 ‘비 과학적’ 분석인 것이 사실은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그의 ‘느낌’이 ‘과학’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내가 과연 조국의 출산율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는가? 절대로 절대로 한 적이 없다. 우리의 시대에는 이것[낮은 출산율]은 사실 ‘선진적’ 인 좋은 것에 속했기 때문이다. 잘사는 곳일 수록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출산율은 반비례해서 낮았으니까…  이 두 가지를 현재 모두 가지게 된, ‘자랑스런 조국’ 인데…  무엇을 걱정하랴?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미 시작된 대한민국의 출산율 걱정인 것이다. 세계적인 환경위기와 더불어 모국, 대한민국은 이것을 현명하게 해결할 것임을 물론 나는 신앙적으로 믿는다.

오늘 CBS Sunday Morning show에 이 ‘미국판 애국열사’의 침통한 얼굴이 나온다.  Elizabeth ‘Liz’ Cheney, 그녀는 누구인가? 오래 전 ‘추억의 부통령’ Dick Cheney의 딸, 정치집안의 산물, 모두 강경 보수파 매파 공화당 계열.. 한때 나는 이들을 싫어했고 때에 따라서 ‘증오’까지 했던 때도 있었다. 특히 선제공격 형 전쟁 광으로까지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좋은 놈과 나쁜 놈의 기준이 180도 바뀐 후.. 무엇이 변했나?

이 극우 대부격인 아버지와 그의 딸, 모두 지금은 거의 ‘성인 聖人 반열급’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양심을 몸으로 지키는 사람 중에 나는 이 ‘용기 충만한 여성’이 제일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썩을 대로 썩은 Republican 중에서 거의 홀로 DONALD ‘개XX’를 탄핵했던 용기와 양심의 소유자, 그녀가 이번에 ‘미국을 살리는 책’ “OATH and HONOR  A Memoir and a Warning” 펴냈다. Memoir는 그렇다 치고 Warning이란 글자가 무겁게 다가온다. Warning이란 것, 쉽게 말해서 Trump의 ‘다가올 제2 쿠데타 음모’ [사실은 음모가 아니고 공공연한 호언장담] 에 관한 것, 진정 미국의 ‘전통자유민주주의’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해독제’는 과연 무엇인가? 정치철학, 도덕률의 절대잣대가 사라진 이때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지하며 살 것인가? 

일요일 이른 아침을 (old fashioned) TV 와 함께 한다는 것, 전혀 추억조차 까마득한 것, 그야말로 surreal한 경험이다. 실감이 안 가는 것이다. 최소한 2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최적의 위치를 찾은 HDTV antenna 덕분이다. 이 작은 gadget으로 제일 보기 편한 local channel 들의 signal들, 특히 비록 HD format은 아니어도 KBS AMERICA가  ‘간신히 나마’, 30마일의 Atlanta Metro 를 횡단하며 Marietta에 비추이는 것, ‘공짜 programming’ 이라는 사실과 함께, 요새 나에게는 드문 ‘행복한’ 순간을 선사한다. 세 군데 major channel은 역시 아직도 ‘목사님’들이 설교로 침을 튀긴다. 예전에는 ‘성경유일주의’로 조금은 배울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Donald ‘개XX’에 목을 매는 것을 보며 오늘은 100% 완전 외면을 한다.  100% analog에서 99% digital로 변하던 그 동안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심지어 AI preacher의 등장까지 꿈속에 등장하니, 유일한 등대는 이곳이 아니고 저쪽이 아닐까?

아~ 골치 아프다~ 왜 올해는 이것까지 말썽을 부리는가? 근래 우리의 holiday lighting 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는 왜 이러는가? Strand중의 한 부분이 이빨 빠진 듯 감감소식..  이것을 내가 고쳐본 적이 있었던가? 물론 가끔 bulb하나가 ‘죽으면’, 교체를 하면 됐지만 지금은 모두 led여서 거의 불가능하니.. 문제는 어떤 led가 죽었는가 찾는 것인데, 아직까지 고전 중… 이것은 가만히 보니 고치는 것보다는 아예 새것을 사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듯, 역쉬~ 짱개의 얄팍한 발상인가?

오늘은 예전의 ‘보편적’ 주일, 일요일 같지 않은 새로운 일요일을 보냈다. 비록 대림1주 첫째 날 미사는 못 보았어도 큰 후회는 없다. 감기기운이 있는 연숙이 모처럼 아침잠을 깊이 잘 수 있었고, 나도 솔직히 오늘은 ‘순교자 성당’에 가는 것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갑자기[이상한 예감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monster로 돌변한 추한 모습의 어떤 ‘정서적으로 불안한’ 여자 얼굴을 다시 볼 기분도 아니었다.  한때는 대신 Holy Family 동네 성당에 가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뜻밖의 휴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긴장, 스트레스도 잠재울 수 있는 ‘하루’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휴식의 시간이 될 것이 아닌가? 이런 편안한 일요일, 모처럼 연숙이의 homemade 해물잡탕까지 해 먹을 수 있었으니~

저녁때 가슴이 써늘할 정도로 놀랄 뜻밖의 카톡 메시지~ 분명히 캐나다의 중앙고 동창 정교성이 보낸 것인데~~ 보니 딸이 쓴 것인 듯, 교성이가 11월 24일 심장마비로 입원했고,  이후 그곳에서 또 COVID까지 걸렸다는 요지의 메시지였다. 그것이 전부~~ 현재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었으면~~ 기도하겠다는 답을 보내긴 했지만… 아~ 요새, 아니 요즈음, 아니 가을부터 이것이 웬일들인가? 줄줄이 세상을 떠나고, 급기야는 교성이의 입원소식까지~~ 내가 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기도라도 열심히 할 것이지만 조금 어두운 예감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우리는 인생의 황혼을 더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을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Is South Korea Disappering?

 

 NYT Opinion 난에 갑자기 South Korea란 글자가 보인다. 이것 또 무슨 안보나 정치에 관한 심각한 것은 아닐까 하고 보니… 맙소사, 어떻게 이런 것이 논설란에?

Ross Douthat의 ‘조금은 수박 겉핥는 정도의 생각’, 알고 보니 대한민국의 출산율, 그것의 심각성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미국의 입장에서 다가오는 위기로까지 비쳐졌을까?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위치가 그만큼 세계적으로 중요해졌다는 단적인 표현일 듯하니, mixed feeling 일지…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는 과학적(통계적) data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한마디로 인구 감소 정도가 아니라 인구 소멸, 국가 소멸로 향할 수도 있다는 ‘미래성’ 경고다.

이런 추세의 결과는 일본에서 이미 겪고 있지만 그 정도가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 나도 이제 조금 염려가 되기 시작한다. 전에는 그저 지나가는 ‘해외토픽’ 정도로 넘기곤 했던 것인데 지금은 아닌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이 논평은 현재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현재의 추세라면 2060년이 되면 3천5백만으로 인구 감소, 거의 국가 위기 수준이라는 것. 경제 성장에 심각한 타격은 불 보듯 뻔한 것, 빈집 속출, 대량 이민자 유입, 국방 문제 등등.. 이런 인구감소의 원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유명한’ 치열한 경쟁에 따른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시작된 가정의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인데,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물론 아니다.

급속도로 비정상적으로 급부상한 feminism, 여성들의 지위, power가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바꾸어 놓고 있다는 것.  결혼기피부터 시작해서 출산도 사실 여성들의 몫이었으니 결과는 뻔한 것 아닐까?  긴 세월 ‘억압받던’ 여성들은 이제 더욱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지난 10월 한달 동안의 고국 방문에서 느낀 것 중에 하나도 ’10~20대 젊은이들’의 초점을 잃은 듯한 눈을 보며, 급변화를 거듭하는 초고성장 시기에 정신을 잃은 듯한 진화, 변화, 아니 심지어 퇴화로 까지 보이는 정말 이상한 모습들을 가까이 피부로 느꼈다는 사실이다. 나의 지난 반세기를 되돌아보면 생각 없이 질주했던 ‘우리세대’들의 ‘애국’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앞으로 물질적인 초고성장과 쉽게 안 보이는 다른 여러 문제를 제대로 슬기롭게 풀어 갈 수 있는 능력이, 건강한 출산율과 함께,  대한민국에 있을까…  물론이다, 나는 물론 있다고 믿는다. 절대적으로 극복하며, 장래 아시아의 희망의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