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95도의 행진

기상시간 6시가 지난 시간의 바깥기온 78F, 이것이 ‘열대야’의 모습인가? 하지만 1도 차이로 간신히 a/c의 소음에서 벗어난 것은 감사할 일~~ 이번 주는 지난 월요일부터 거의 7일 동안 매일 매일 95도라는 무섭게 따가운 날들의 연속, 이렇게 더운 여름 지난 긴 세월 동안 잊고 살았기에 더 덥게 느껴지는데 이것 혹시 심각한 수준의 El Nino 의 영향이 아닐지~~

하루 하루 무섭게 어두워지는 이른 새벽,  그래도 어두움이 완전히 물러간 7시 15분 이후에 산책을 시작, 목표는 총 1시간, 최소한 1 마일 이상~~ 모든 여건이 OK지만 역시 오늘도 새벽은 끈끈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녀석은 이런 날씨를 전혀 개의치 않으니 얼마나 좋을까? 이 산책시간을 목 빠져라 기다리며 마음껏 짖으며 그 기분을 표현한다. 에너지로 충만한 녀석의 활기가, 조용하기만 한 우리 둘이 사는 집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산책의 거리보다도 산책 시간에 신경을 쓰며 가급적 천천히 녀석에게 ‘지나친 여유 시간’을 주는 것이 나의 바램이요 목표다. 나를 위한 것보다 녀석을 위한 산책으로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오늘은 ‘목요일’, 정기적인 연숙이의 ‘홀로 외출’날이다. 나에게도 ‘홀로의 날’, 이날은 먹고 싶은 점심을 혼자 알아서 먹는 날, 결국은 라면의 날인 거다. 영양가를 불문하고 혼자서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이상하게 자유의 느낌과 직결이 되는 것, 그것이 ‘외출 목요일’의 point다. 이 한때에 오랜만에 한 때를 같이 사는 Ozzie녀석과 함께, 아직도 Roku TV에는 80/90년대 미국 network TV ‘황금시간대’ 를 풍미하던 Angela Lansbury 주연의 Murder, She Wrote가 보이는데, 이제는 이 올 여름 내가 발견한 납량물도 한 물이 가고 있음을 안다. 한국식, 추억 속의 각종 시커먼 머리의 처녀귀신들 대신에 수많은 종류의 깨끗한 범죄, ‘살인추리사건’으로 머리 속을 채웠던 2026년의 지겹고 뜨거운 여름, 이것도 한 때, ‘지나가리라’의 한 철인가~  다음은 무엇인가?

계속 몇 번 했던 ‘제초작업’이 손에 익숙해지고 결과적으로 연숙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과 칭찬까지 받았던 때문인가~ 무섭게 화단을 뒤덮었던 grass (잡초라는 것)를 ‘총정리’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구나. 오늘도 그 여세를 몰아서 backyard 가운데 있는 화단도 제초작업을 말끔히 했다. 이제 조금씩 숨어있던 주인공, ‘진짜’ 화초들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앞으로도 계속 잡초는 나오겠지만 일단  잡초전성기는 무섭게 물러가고 있으니 OK~~ 앞으로는 운동 삼아서라도 내가 신속하게 처리할 각오~

올 여름의 제일 큰 뉴스는 바로 이 녀석~ Echinopsis라는 남미 안데스 출신,  ‘우리 선인장’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두 가지 종류의 선인장 중에 원래 우리가 키우던 것, 흙갈이를 한 이후 완전히 동면상태로 들어가 잠을 몇 년 동안 자더니 결국은 살아서 깨어나는 것을 목격하는 사실이 그렇게 신비스럽구나. 식물, plant 심리, 생리에 점점 관심과 친근감을 느끼며 사는 최근, 결국은 목석 같은 나에게도 plant가 ‘살아 있음’을 늦게나마 알게 해 주는 각종 작은 일들 또한 신기하기만 하다. 이것과 더불어 Michael Pollan의 책들과 접하게 된 것, 이것이야말로 Carl Jung의 ‘transcendental’ Synchronicity의 절묘한 한 예가 아닐까?

무섭게 작열하는 오후의 태양열이 급히 사라지는 것, 그 뒤에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구름이 몰려오는데~ 설마 했지만 이것이 무엇인가?  몇 시간 전에 깎았던 뜨거운 잔디 위로 빗방울까지~~ 잠깐 내린 ‘지나가는 빗방울’의 위력, 비록 deck만 적실 정도였지만 정말 이것은 위력이다. 95도를 넘어가던 기온이 무섭게 90도로 떨어진 것, 예상치 못한 이 자연현상, 갑자기 기분이 뛰어오름을 억제할 도리가 없구나. 그저 기쁘고 행복한 것, 모든 일들이 다시 ‘평화, 안심, 편안함’으로 바뀌는 이 간사한 나의 마음~~ 너무나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나의 자세는 싫지만 이것이 100% 나의 주관적, 자아의 느낌인 거다. 어쩔 수가 없구나.

Michael PollanA World Appears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익숙했던 문체들은 대부분 학문적 직설표현이었다면 이 새로 발견한 저자는 오랜만에 문학적, 문어체를 마구 구사하기에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지금은 매료되는 듯한 착각,  Pollan의 3권의 책들을 사실상 지나친 난독의 방식으로 읽는데, 이것이 나에게 제일 효과적인 독서방식일 듯하다. 내 나이에 나의 삶에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독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작은 사실들을 이곳 저곳에서 보고 느끼며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이 현재 나의 늦은 삶에는 적당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