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ona List

 

평소에 독서의 [특히 양서良書 의] 기쁨과 효과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즐거움에 비례할 만큼 많은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은 언제나 힘들었다. 그것도 대충 읽은 것과 꼼꼼히 읽은 것, 더 나아가서 ‘공부하는 자세’로 읽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책 읽기를 시작하면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끈질긴 노력을 해야 끝을 내는데, 하루 하루가 뭔가 그렇게 바쁜 것인지 생각보다 힘들었다.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터득한 것 중에 하나는: ‘쓰면서 읽는 것’, 필살비법 必殺秘法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쓴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힘들고 typing을 하는 것이다.  편히 앉아서 편하게 눈으로 읽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겠지만, 조금 덜 편함을 택한 이 방법의 큰 장점은 ‘끝까지 다 읽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 그리고 끝이 나면 softcopy 하나가 거뜬히 남는다는 사실이다.

눈으로 읽는 것에 비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는 문제는, 시간을 좀 더 많이 쓰면 되는 것인데, 이번 코로나 사태가 바로 그것을 대폭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이 갑자기 ‘엄청’ 많아진 것이다. 이것으로 ‘실업자’인 내가 그 동안 그렇게 바쁘게 살았다는 즐거운 놀라움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으로 얼마간 이런 ‘한없이 긴 여유시간’이 계속될 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끝내지 못한 책들을 하나 하나 모두 읽을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이름도 웃기는, 코로나 독서목록,  Corona List를 만들었다.  현재 진행중인 shelter-in-place lifestyle 이 끝날 때까지 이것만으로도 나는 절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1. A BURST OF CONSCIOUS LIGHT (Dr. Andrew Silverman)
  2. THE TURNING POINT (Fritzof Capra)
  3. THE TAO OF PHYSICS (Fritzof Capra)
  4. The Systems View of Life (Fritzof Capra & Pier Luigi Luisi)
  5. GENIUS (James Gleick)
  6. MY GRANDFATHER’S BLESSINGS (Rachel Naomi Remen, M.D.)
  7.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Bishop Robert Barron)
  8. 꽃삽, 이해인 글 모음 (수녀 이해인)
  9.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대표 에세이 (화가 천경자)
  10.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수필집 (최인호)

 

冊, 추수 秋收 나누기

하태수 신부님 미사 강론집: “추수 秋收 나누기“가 드디어 몇 개월여의 산고 産苦 끝에 대림절 주일부터 성당 내에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주임으로 계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주일, 평일미사에서 강론하신 원고가 모여지고 편집이 되어서 200여 페이지의 아담한 책으로 나온 것이고,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는데 100% 수익금은 본당 발전기금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지난 여름에 이 책을 ‘편집’하는데 연숙이 참여를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거의 혼자서 ‘편집, 교정’을 한 셈이 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나도 교정과정에 참여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올 때는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판매’의 결과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강론집을 읽으며 나는 ‘추억의 강론’ 시절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2011년부터 2015년 까지 나의 교회 생활을 돌아보는 셈이 된다. 그 당시에는 주일미사를 대부분 미국성당으로 갔기에 한 신부님의 많은 주일강론을 못 들은 셈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잊지 못할,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그런 강론이 하나 있었다. 

2014년을 전후로 한 시절, 나에게 거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분으로 산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주로 절체절명의 심각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두려움과 희망, 의지와 나약함’이 교차하는 극과 극의 감정을 경험하던 때, 나는 2014년 부활절 강론을 듣게 되었다. 그때의 그 한 강론으로 나는 모든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을 떨칠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것이 그 이후로 두고두고 나의 희망적인 메시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나는 하태수 신부님을 잊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이 ‘추수 나누기’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冊, 108編 사랑의 詩

드디어 ‘108편 사랑의 시’의 모두 정독, 필사를 오늘 끝냈다. 조금 피곤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보람은 느낀다. 그렇게 ‘머나먼 다리’ 처럼 보이던 ‘알다가도 모를 그것, ‘시’의 초보단계를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이 시란 ‘문학’은 일생을 통해서 나에게는 생소했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아하! 이런 것이었구나..’ 하게 되었다.

오래 전에 가족들과 즐겨보던 almost classic, Robin Williams 주연의 The Dead Poet Society,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린 10대 나이의 학생들에게 지나친 ‘생각의 자유스러움’을 가르친 것이 비극적인 결말을 보게 되지만 이 영화의 message는 비교적 간단한 것이었다. 시를 가르치던 시간에 이 선생, 교과서의 첫 몇 이지를 찢어 버리라고 명령을 한다. 한마디로 시와 교과서는 양립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장면이었다. 그 첫 페이지는 ‘기하학적으로 분석한 시’를 다룬 것이어서 나도 그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했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그런 방법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사랑이란 주제의 시를 108편씩이나 모아서 ‘전문가의 느낌’을 곁들인 것, 나에게는 하나의 ‘시의 교과서’ 역할을 멋지게 했다. 아무리 시란 것이 읽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만 그래도 ‘교과서적’인 시의 의미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직도 필수적인 것이다.

이 책의 ‘사랑의 시’들을 여성 허영자 시인의 입장으로 다시 읽게 되면 내가 읽는 느낌과 비교를 하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108편의 사랑의 詩 중, 나에게 사랑의 느낌을 다시 일깨워준 것 하나를 다시 읽으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릴 적의 뚝섬의 추억과 그 이후 젊은 시절 사랑의 느낌과 환상이 교차하는 느낌.. 어쩔 수가 없다.

 

 

 

뚝섬에서

金容浩

 

 

江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마주 설

空簡이 流失된 地域

 

어쩌면 이처럼 싱싱히 돋아나는

아픔입니까

變貌없이 파아랗게 살고 있는

거울 속

거기, 포프라 한 그루 있고

주고 받은 會話가 자라

이제 新綠으로 紋彩한 江邊

 

산 너머 절에선가

鐘이 波紋하는 이 黃昏에

祈禱보다도 더 切實한

당신에의 追憶은

어느 또 하나 다른 거울 속에

소보옥히 담아 두어야만 합니까.

 

 

여름날 뚝섬엘 가면 푸른 강물이 흐르고 키 큰 포플라 나무들이 강변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뚝섬의 강물은 한강 상류의 강물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이 시인의 눈에는 당신과 마주설 공간이 유실된 지역인 것입니다. 이별의 이미지를 이 한 마디 말로 조형 造形 한 시인의 상상력과 솜씨는 놀라운 것입니다.

강물은 이렇게 해후의 공간이 유실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또 변함없이 맑은 거울로 됩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들이비치고 있는 푸른 녹음은 단순한 나무잎새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자란 것입니다.

사랑을 간직한 이의 마음과 감각은 이처럼 사물의 뜻을 놀랍게 파악할 수도 있는 법인가 봅니다.

冊, Rome Sweet Home

 

Scott & Kimberly Hahn 의 잘 알려진 이야기,  ‘개신교 골수분자’였던 이들 부부가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던 과정을 자세히 쓴 책의 제목이 바로 Rome Sweet Home이다. 이름부터 이채롭다. 그들에게는 ‘이단 종교의 아성’으로 증오의 상징이었던 로마 교황(청) Vatican 이 결국은 그들에게는 ‘오랜 방황 후에 돌아온 나의 고향’이 된 것이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지난 20년간 아주 조금씩 ‘귀동냥’ 정도로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주류 크리스천들이 개종하는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큰 이야깃거리는 아니지만 이 부부의 개종은 아주 의미심장, 지각변동적, 특별한 것이기에 ‘사회적, 세속적 뉴스’까지 된 것이 아닐까?

내가 그 동안 이 사실에 대해서 듣고 안 것들은 아주 피상적이고 ‘소문의 수준’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일주일 만에 두 번을  cover-to-cover 로 읽고 나서, 나는 놀랍기도 하고, ‘그러면 그렇지..’하는 안도감, 이제라도 이런 ‘천재 신학자’를 가톨릭으로 보내준 사실이 아주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일 인상적인 표현은 이것이다. 이 사람의 ‘역할, 위치’는  한마디로 Luther in reverse,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종교개혁 reformation의 반대 과정을 거친, ‘개신교에서 기독교의 원형인 가톨릭’으로 거슬러 올라간  장본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의 본향을 찾았다!’ 하고 외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니, 모든 독자들이) 제일 관심을 갖고 찾았던 부분은 물론…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본향’을 찾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부부의 깊은 학자적, 성경신학적인 배경을 알면 절대로 ‘간단한 결정’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이 책으로 느낀 점 중에 제일 나를 부끄럽게 했던 것이 있다면, 역시 Holy Bible, Scripture에 관한 것이다. 역시 가톨릭은 ‘소문’ 그대로 성경에 대한 열정만은 개신교에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가톨릭 신자들도 인정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부러움’이 결국은 개신교의 근본적인, 기본적인, 역사적인 문제중의 문제가 됨을 알면 놀라게 된다. 그러니까, 개신교의 근본 공리적 명제는 Sola Scriptura (성경 유일)와 Sola Fide (믿음으로만).. 이 아닌가? 이것에 ‘근본적, 신학적’ 문제가 있으면 어찌 되는 것인가?

Scott Hahn 은 젊은 시절부터 ‘광신적 성경, 믿음 유일주의자’였고 ‘광신적 가톨릭 혐오자’라고 자부를 하던 ‘유망한 젊은 신학도’였다. 그가 성경으로 깊숙이, 깊숙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의 ‘생애의 고민’은 시작된 것. 처음 그가 경험했던 고민은 ‘어디에 성경만이 모든 것’이라는 근거가 있는가를 ‘탐정적 열정’으로 찾은 것으로 비롯된다. 신학교 젊은 교수시절 한 ‘명석한 학생’의 순진하지만 심각한 질문, ‘성경의 어느 곳에 성경만이 전부’라는 구절이 있습니까?’ Martin Luther이후 누구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던가?  이 사실은 그를 너무나 놀라게 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거기서 끝 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성경에는 Sola Fide, Faith Only라는 것 이외에 교회초기의 교부들과 전통들도 같이 강조되는데 그것은 어떻게 타협을 하느냐?  허~~  문제는 성경만이 절대로 옳은 것이라면 이 두 문제는 ‘모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이런 ‘사태’에 직면한 Scott Hahn, 그의 모든 지적 능력을 통해서 그는 결국 전통적인 가톨릭 문헌, 교리를 철저히 파헤치기 시작하고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가톨릭의 교리, 전통, 성경 모두 그들이 공부한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는 놀라움이었다.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것은 ‘역시’ 성모신심, 교리였지만 이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한 묵주기도를 통해서 비교적 쉽게 극복이 되었다.

그의 영적 동반자 부인인 Kimberly는 5년 뒤에 그를 따라 개종을 했는데 그 과정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이혼’까지 각오를 한 Scott의 용기는 실로 극적인 것이었고 결국은 그들은 평화 속에서 다시 합류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교황청에서도 인정하는 ‘세계 정상급 신학자’의 대열에 서게 되었고 유명한 가톨릭 대학 Franciscan University의 유명한 교수로서 열정적인 교육, 전교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수 많은 강론 여행을 하며 ‘그릇된’ 개신교 기본교리를 알리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이 명석한 부부 가톨릭 신자를 어떠한 눈을 볼까…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그래도 ‘신학은 신학으로’ 대하고, 풀어야 하지 않을까?

 

轉換點 The Turning Point – 카프라

¶  얼마 전, 거의 40년 만에 ‘먼지 속에서’ 다시 찾게 된 책, 다시  읽게 된 , Fritjof Capra의 international bestseller, ‘名著’ The Tao of Physics (物理學의 道, 번역서: 現代物理學과 東洋思想)로 인해서 그 이후의 Capra의 ‘변모과정’을 다시 읽고 알게 되었다. 대강적인 그 과정은 물론 ‘무료’ Wikipedia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면서 ‘궁극적 진리를 향한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4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겪었겠지만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너무도 ‘쪼잔 하고, 미세한’ 영역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했다는 자책감을 금할 수가 없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도 보라’는 진부한 표현에 숨어있는 진정한 지혜를 왜 나는 그렇게 무시했던 것일까?

여기에 언급된 Capra의 두 번째 저서 The Turning Point를 다시 읽게 된 과정도 전에 발견했던 떼이야르 샤르댕 Teilhard Chardin의 때와 아주 흡사했다.  근래에 나를 ‘지혜중의 높은 지혜’의 방향으로 이끄는 나침반: ‘오늘의 思想 100인 100권1,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2‘ 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인류의 엄청나게 축적된 다양한 지혜에 다시 감사하며 나의 눈길을 끄는 것부터 읽는다. 세상에는 참 지혜롭고 명석하고 선지자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소화한 대한민국의 지성들을, 최소한 그들의 이름과 전문분야를 알게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여기 소개된 The Turning Point를 짧은 글로 소개하신 분 ‘이성범 李成範’은 놀랍게도 시인 詩人으로 나와있다. 이 ‘시인’은 Capra의 첫 bestseller 인 The Tao of Physics의 번역본 공동저자이기에 낯이 설지 않다. 하지만 시인이라는 사실은, 어쩐지 너무나 동떨어진 분야가 아닌가… 놀랍지만 이것도 즐거운 놀람의 하나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 최근 최소한 지난 50년간 진행되고 있는 trend가 아닐까.. 모든 분야를 총괄적으로 보려는 노력, 이 시인도 그런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현대과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시인’, 그 계기는 잘 모르지만 참신하고 희망적인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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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論考

전환점 轉換點(1982)

The Turning Point

카프라 (Fritjof Capra 1939~ ) 著

 

(琴谷 금곡)  이성범 李成範 (詩人)

 

카프라 박사는 1966년에 비엔나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의 박사학위를 받은 후 빠리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런던 대학 등에서 물리학 연구와 강의를 했으며, 1975년 이후 현재까지 캘리포니아 대학의 로렌스 버클리 실험실 Lawrence Berkeley Laboratory에서 소립자 연구를 계속하며 강의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론물리학 교수이다. 그는 또한 The Elmwood Institute를 창설하여 여러 학문분야에서 새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을 종합하고 상호 통신하며 조직화하는 야심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첫 저서인 <물리학의 道 The Tao of Physics, 拙譯 ‘現代物理學과 東洋思想’> 는 1975년에 출판되었는데, 그 후 각국어로 번역 출판돼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어 있다. 이 책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 등 현대물리학에서 밝혀진 새로운 물질관 또는 세계관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 세계관이 고대로부터의 동양의 사상들 (불교사상 음양사상 도교사상 힌두사상 등)에 담겨 있는 전일적 全一的이며 역동적인 신비사상과 어떻게 유사하며 부합하는가를 종합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은 물론 유럽 각국에서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세계적인 과학자 철학자들에 의해 그 내용이 많이 인용되고 토의되고 있다.

<전환점, The Turning Point, 拙譯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은 그의 두 번째 저서로서, 1982년에 뉴욕에서 출판된 것이다. 이 책은 발간 즉시 독일과 프랑스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독일에서는 출판 직후 35주 동안 계속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2

<전환점>은 네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위기와 변형>에서는 현대의 우리 사상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물질적 과학적 세계관의 유래를 밝히고, 인류 역사에 있어서의 여러 문명의 흥망에 따른 세계관의 변천을 서술한다. 이와 동시에 현대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 현상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실제의 일면만 보는 ‘데카르트-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과거 3백 년 간 너무나 오래 집착해 온 데서 기인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현대물리학에서 깨달은 새로운 세계관과 학문방법이 이제는 기타의 여러 학문 분야 (생물학 의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에 급속히 퍼져가고 있으며, 이것은 르네상스시대에 새로운 세계관과 문명의 전환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문명에 획기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2장 <두 개의 모형>에서는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와 새로운 물리학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중세의 유기체적 영적 세계관이 1500년과 1700년 사이에 어떻게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전환했는가를 ‘코페르니쿠스’를 위시하여 ‘케플러’ ‘갈릴레이’ ‘데카르트’ 등의 사상을 예시하면서 상세히 설명하고, 그 기계론적 세계관이 ‘뉴턴’에 이르러 완성되었으며 그 기계론적 세계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뉴턴’의 위대한 성공은 기타 과학의 발전을 급속히 촉진시켰고 모든 과학은 ‘뉴턴’의 수학적, 분석적, 환원주의적 방법을 답습했으며, 그 기계론적 세계관이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기타의 모든 학문분야의 기저에 깔려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물리학이 전자장의 현상을 다루어야 되고 생물학에서 진화의 현상을 다루어야 됨에 이르러, 우주는 기계론적으로 단순하게 다룰 수 없는 더 복잡하고 오묘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 물리학은 ‘플랑크’가 1900년에 양자를 발견한 데 뒤따른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Photoelectric effect 론 과 상대성원리 Principle of Relativity에서 시작된다. 상대성이론은 ‘뉴턴’ 역학의 기본 가정이 되는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틀린 개념임을 증명했다. 시간이란 ‘뉴턴’ 또는 고전물리학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과거로부터 미래로 일정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 따라 그 동시성과 흐름이 다른 것임을 ‘아인슈타인’은 보여주었다. 또 공간도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물체를 담고 잇는 빈 그릇과 같은 ‘유클리트’ 기하학적 균질 均質의 것이 아니라 그 담고 있는 물질의 질량에 따라 다른 곡률 曲率로 휘어져 있는 것이다.  또 우주는 질량을 가진 고체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뉴턴’은 생각했지만, 물질이란 에너지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으로서 물질의 질량은 E=mc2(E: 에너지, m: 질량, c: 광속)의 등식에 의해서 정의되는 에너지의 양인 것이다. 또한 우주는 시공 연속체의 4차원 속에서 부단히 변화하고 있으며, 이 우주 속에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도 ‘아인슈타인’은 보여주었다.

모든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체로 여겨진 원자를 찾아낸 물리학자들은 20세기 초반에 와서 원자의 많은 속성들을 발견하였으나, 그것은 우리들의 논리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절망에 가까운 혼란상태에 빠졌다. 드디어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에 불확정성원리 Uncertainty Principle를 완성시켜 원자현상을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게는 했으나 그것은 ‘뉴턴’이나 고전물리학의 철칙이었던 인과율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과학의 기반을 송두리째 소멸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불확정성원리가 핵심이 되는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하여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간에 유명한 논전이 벌어졌다.

‘아인슈타인’은 ‘국소원인 원리’ 局所原因 原理 Principle of local causes를 주장하면서 양자물리학이 더 발전하는 어느 날엔 인과율이 원자의 세계에도 다시 적용될 것이라고 했고, ‘보어’는 불확정성원리는 자연의 기술에 있어서 부동의 원칙이며 불확정성은 관찰의 미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 본연의 속성이라고 했고, 우리의 시스템은 ‘비非국소적 연결’ Non-local connection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후, 1964년에 ‘벨, G. S. Bell‘은 이른바 ‘벨의 정리 Bell’s Theorem‘를 발표하여 ‘보어’의 ‘비국소적 연결’을 뒷받침했다. 우리의 시스템이 ‘비국소적 연결’로 연결된 것이라면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는다는 것이 되며, 이것은 우리의 세계가 기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유기체와 같다는 것을 뜻한다. 우주는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의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유기체로 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물리학에서는 물질의 개념이 바뀌어졌고 실재 實在 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인간 사고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으며, ‘인간의식’을 떠난 과학의 완전한 객관성이 성립할 수 없게 되었고, 우주는 인과율에 의해 기계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으므로 고전과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받아질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새로운 시스템적 유기체적 우주관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제3장 <데카르트-뉴턴 사상의 영향>에서는 그 기계론적 세계관과 그 분석적 환원주의적 방법이 얼마나 뿌리 깊이 생의학 심리학 경제학 등 과학 전반에 박혀 있으며, 그 고정관념에의 수세기에 걸친 집착이 이제는 이들 학문의 발전을 얼마나 저해하게 되었으며 또 그것이 현대문명 전반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제4장 <새로운 실재관 實在觀> 에서는 새로 대두하는 시스템적 세계관을 상세히 상술한다.

우주를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것은 우주를 거대한 기계로 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계는 활성이 없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의 구조가 기계 전체의 기능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부분들을 가능한 한 최소의 구성단위까지 분석하고 분할하여 그 작동의 인과관계를 관찰하여야 한다. 반면 유기체는 생동하는 전체의 시스템으로서 전체와 부분이 상호작용하고 협력하면서 스스로의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창조적인 것이다. 기계에서는 부분의 합계가 기계 전체의 기능을 결정하지만, 유기체는 전체의 필요가 부분의 기능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주를 하나의 유기체라고 본다면, 그 안에는 무수한 수준의 유기체적 기관들이 있으며, 각 수준의 유기체들은 상호작용하고 부단한 창조활동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진 고전과학이 분석과 분할을 학문의 방법으로 한 데 반하여, 유기체적 세계관의 신 과학은 전일적 全一的 인 종합의 방법을 중요시 한다.

현대의 학문은 너무나 다기화되고 전문화되어서 학문 또는 문화 전체의 기반을 보지 못하기 쉽다. 이제 현대의 문화는 중요한 전환기에 와 있으며, 이와 같은 문화의 전환은 인류 역사상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다.

 

3

‘카프라’ 박사는 현대문명을 종합 진단하여 그것이 중병 상태에 있음을 지적하고, 새로운 문화의 대두에 의한 새로운 문명의 출현을 상세히 기술하여 문명의 획기적 전환을 예언한다. 그는 무수한 과학논문을 썼고, 많은 철학적 일반강연을 했으며, 이 책 다음에는 ‘녹색 정치, Green Politics‘라는 책을 ‘샬렌 스프레트나크 Charlene Spretnak와 공저로 1984년에 출판 한 바 있다.

인류의 장래는 결정론적으로 예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카프라’ 박사의 문명전환론은 세계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1. 1986년 신동아 1월호 별책부록, 동아일보사
  2. 1984년 신동아 1월호 별책부록, 동아일보사

위령의 달, 수녀 이해인

11월로 접어들며, 1일의 ‘모든 성인의 날 All Saints Day‘를 시작으로 2일에는 ‘위령의 날 All Souls Day‘ 를 맞는다. 이 두 날은 모두 ‘가톨릭 천주교 전례력’의 기념일이지만, 11월이라는 ‘깊어가는 가을’을 배경으로, 사실 제한된 시간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한번은 ‘죽음, 특히 자기의 죽음’에 대한 성찰, 묵상을 하고 싶은 때가 아닐까…

작년 이맘때 ‘그리운 친구, 양건주’가 고맙게 보내준, 당시로서는 신간에 속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수필집 <기다리는 행복>을 이제야 다 읽게 되었다. 비록 여백이 넉넉히 있는 각각의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전체는 무려 400쪽에 가까운 ‘두꺼운’ 책으로 ‘필사’는 물론 깊이 소화하는데 무려 일년이 걸린 것이다.

내용 중에 ‘순례자의 영성’ 章에서는 위령의 달, 위령의 날을 묵상하는 시와 글이 실려있다. 역시 수도자답게, 죽음은 끝이 아니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임을, 우리들 모두 인생의 순례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역시 작은 인간이기에 ‘죽음이 있는 곳’은 안 가보았기에 두려움은 인정을 한다. 얼마나 솔직한 표현인가.

이해인 수녀님의 ‘명성’은 사실 오래 전 연숙을 통해서 익히 듣고 짧은 수필을 읽어 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아주 heavy weight를 들어올리는 기분으로 책 전체를 읽게 되었고, 근래에 조금씩 ‘시詩의 눈 眼’이 열리는 덕인지 수녀님의 주옥 같은 시에서 영성적 차원의 시상 時相을 얻기도 한다.

수녀님의 이력 중에 나의 관심을 끈 것이 있다면 나이가 나의 누나와 동갑인 닭띠인 것과, 서울 가회동 성당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이 있었다. 상상으로 아마도 나와 같은 시절(1950년대) 같은 동네 (가회동)를 걸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참 놀랍고 즐겁기까지 하다. 혹시 재동국민학교 출신이 아닐까 하는 ‘희망’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수녀님은 조금 떨어진 ‘창경국민학교’ 를 다녔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가회동성당 주일학교 소풍 1955년, 아마도 수녀님은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아닐까..

안타까운 사실은 역시 수녀님의 건강상태, 몇 년 전 ‘타계’ 라는 오보를 접하고 놀랐던 사실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이 ‘누님’의 안녕을 잊을 수가 없다. 고통은 다른 쪽으로 은총이라는 ‘싫은 진리’도 있기 하지만 아마도 수녀님은 그런 진리를 모두에게 보여주시는 듯 보통 나약한 사람들보다도 더 건강하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니,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가 role model로 삼을 수 있는 case가 아닐까. 자주는 아니더라도 시와 글의 일부분이라도 머리에 떠오르면 반드시 화살기도를 바치리라.. 항상 생각한다.

 

 

순례자의 영성

 

저무는 11월에

한 장 낙엽이 바람에 업혀 가듯

그렇게 조용히 떠나가게 하소서

(……………….)

한 점 흰구름 하늘에 실려 가듯

그렇게 조용히

당신을 향해 흘러가게 하소서

 

죽은 이를 땅에 묻고 와서도

노래할 수 있는 계절

차가운 두 손으로

촛불을 켜게 하소서

 

해 저문 가을 들녘에

말없이 누워있는 볏단처럼

죽어서야 다시 사는

영원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소서

 

– 이해인, <순례자의 기도> 중에서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위령의 달, 위령의 날을 나는 좋아합니다.

우리 수녀님들이나 친지들이 긴 잠을 자고 있는 무덤가에 서면 마음이 절로 차분하고 온유해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떠난 분들에 대한 그리움에 잠시 슬퍼지다가도 그들이 보내오는 무언의 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들곤 합니다. 지난해와 올해만 해도 여러 명의 수녀님이 세상을 떠났는데 어떤 분은 매장하고, 어떤 분은 화장해서 수녀원 묘지에 모셔옵니다. 비록 육신은 떠났으나 그들이 너무도 생생히 꿈에 보이거나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기도 속에 떠오를 때면, 허무를 넘어선 사랑의 현존으로 행복을 맛보기도 합니다. 오래 전 수도공동체의 수련장이었던 노수녀님을 동료수녀와 같이 병간호하러 가서 환자 수녀님과 성가도 부르고 배도 깎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다음 날 새벽 수녀님은 갑자기 살짝 주무시듯이 고요하게 선종하셨습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함께 지켜보던 동료 수녀는 떠나는 수녀님을 향해 “아주 가시는 건가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그 인사말이 어찌나 간절하고 인상적이던지! 잠시 출장을 가거나 지상 소임을 마치고 저쪽 세상으로 이사 가는 이에게 건네는 이별 인사로 여겨져서 슬픔 중에도 빙긋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먼저 떠나가서 친숙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은 가보지 않은 세상이기에 두렵고 낯설기도 한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11월, 우리는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으로 순례자의 영성을 살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아직은 오지 않은 자신의 죽음을 잠시라도 묵상하는 것은 오늘의 삶을 더 충실하게 가꾸는 촉매제가 되어줍니다.

“주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매일 외우는 끝기도의 마무리 구절을 묵상해봅니다. 삶의 여정에서 자존심 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적마다 언젠가는 들어갈 ‘상상 속의 관’ 속에 잠깐 미리 들어가보는 것, 용서와 화해가 어려울 적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는 순례자의 영성을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을 극복하는 작은 죽음을 잘 연습하다 보면 어느 날 주님이 부르실 때, “네!” 하고 떠나는 큰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35th ‘Tao of Physics’, Teilhard de Chardin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The Tao of Physics‘, ‘떼이야르 샤르댕의 신학사상‘, ‘PIERRE TEILHARD DE CHARDIN‘..   이 무거운 느낌을 주는 이름을 가진 4권의 을 책상 위에 놓아두고 읽고, 쓰고, 추측하고 생각하며, 심지어 상상의 나래를 펴는 등,  머리 씨름을 하고 있는가.

 

  1. ‘現代物理學과 東洋 思想’: F. 카푸라 교수 저, 이성범 김용정 공역, 1979년
  2. ‘THE TAO OF PHYSICS’, 35TH ANNIVERY EDITION with a new preface by the author, 2010
  3. ‘PIERRE TEILHARD DE CHARDIN by Ursula King, 1999
  4.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신학사상’ 로버트 패리시 Robert Faricy 저, 이홍근 역, 1972년

 

이 네 권의 책이 나에게 주는 느낌, 내가 받는 느낌 모두 공통점이 있다. 본문을 읽고 있지 않아도 그 책 표지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너무나 심오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아주 가볍게 날라가는 나비처럼 상쾌하기도 한 ‘진실로 진실로’ (예수님의 표현에 빌리면) 묘하기만 한 것이다.

이 네 권의 책이 내 책상 위에 함께 놓이게 된 과정을 생각해보니 조금 흥미롭기까지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요사이 내 머리 속의 ‘사상, 생각’은 이 네 권의 책이 암시하는 깊은 내용으로 꽉 차있다는 사실이다. 내 일생의 주 관심 화제였던 sparkly electron 1들은 나의 머리에서 거의 종적을 감추어 숨어버렸고, 이렇게 ‘의식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형의 사물’들이 나의 favorite things들이 되어있는 나 자신을 보고 ‘never say never’라는 흔한 명언이 나를 비웃는 듯 하다.

우선 떼이야르 라고 불리는 (표준 한글로 쓰는)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 진화론적 철학 사상가, 고생물학자 가 나의 눈길은 끈 경위는 우연히 보게 된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에서 ‘오메가 점 이론 Omega Point Theory’이란 말을 보았을 때였다. 그 소고 小考 논설은 떼이야르의 대표작 ‘인간이란 현상 The Phenomenon of Man’ 이었고, 그곳에서 떼이야르는  ‘아득한 먼 앞으로 내다보는’ 그의 vision으로 Omega Point theory란 것을 언급하였다.  오메가 ‘점’이란 말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라고 말한 예수 그리스도로 비롯된 것이고 그는 우주의 진화 는 결국 예수님의 영역인 오메가 점으로 ‘수렴 convergence’ 한다는 지극히 그리스도교적 이론이다.

왜 이 Omega Point가 나의 ‘신비스런 흥미’를 자극했고 이 ‘이론’의 창시자 ‘떼이야르’와 그의 사상, 이론을 알고 싶어 했던가?  1992년 경, 내가 살고 있는 곳 East Cobb 지역에는 BookStar라는 Mega book store가 있었다. 인터넷 전, 그러니까 물론 결국,  ‘머리칼 숫자와 $$$ 의 반비례성을 증명하는, J.Bezos‘의 아마존 Amazon.com bookstore 이전에는 이렇게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책을 보고 살 수 있는 곳’들이 많았다. 심심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서 토요일을 한나절을 보내곤 했는데 그때 나의 눈을 번쩍하게 하는 책의 제목이 보였다.  Frank J. Tipler 저, Physics of Immortality 란 ‘두꺼운’ hardcover, 몇 페이지를 둘러 보는 것조차 숨이 찰 지경이었다.

수학 공식으로 가득 찬 그야말로 ‘이론 물리학’ 책이었지만 더 자세히 보면 그곳에 나오는 용어들이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책을 사가지고 왔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기도 했다. 당시 나의 결론은: ‘이 저자는 아마도 정신병자거나 몇 세기에나 나오는 천재’ 라는 것이었고 그 책을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쫓아버렸고 완전히 잊고 살았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그의 생각은: ‘이론적으로 수학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특히 인간들은 때가 오면 완벽하게 되 살아난다’는 것이고 기독교의 부활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그것을 ‘미적분과 비슷한 각종 수학, 방정식 등을 총 동원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말하는 ‘부활의 순간’을 그는 바로 Omega Point라고 했고 그것을 Omega Point Theory라고 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이 Omega란 말만 보거나 들어도 이 mad scientist의 헝클어진 머리 모습을 떠올리곤 하곤 했는데 이제야 왜 그 mad scientist가 오메가란 말을 쓴 사연을 알게 된 것이다. 바로 그는 ‘떼이야르’의 진화적 신학사상에서 이런 기가 막힌 idea을 얻었고 그의 특기인 ‘이론물리, 수학’을 총 동원해서 그 책 Physics of Immortality 을 썼던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떼이야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떼이야르의 저서를 접하면서 그 1992년 당시의  잊혀진 책을 회상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책, the Tao of Physics은 그보다 과거로 돌아가서 1980년경의 추억이다.  연숙과 결혼을 하고 모국을 먼저 떠나기 며칠 전날 둘이서 광화문의 어떤 서점에 들렸었고 책을 하나 샀는데, 그 책이 바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現代物理學과 東洋 思想’이란 번역서였다. 당시만 해도 ‘서로 상극적인 느낌’을 주는 이 책의 제목에 호기심을 느꼈을 것인데, 문제는 책의 내용보다는 ‘번역 수준’ 에 있었다. 옮긴이들이 모두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동양학자 들이어서 그 난해한 물리학 용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힘들었음은 이해가 가지만, 결과적으로 독자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 그 책은 그렇게 해서 잊혀지고 말았다.

 그 ‘역서 譯書’를 이번에 책을 정리하며 재발견을 했는데 감회는 새롭지만 읽기의 어려움은 예전보다 더 심했다. 모국어를 읽는 것이 어찌 이렇게 힘들어졌는가? 반세기 동안 ‘문화의 차이’가 준 영향인가? 이제는 거의 일반화된 ‘동서양 사상의 접근’의 덕분으로, 이 책이 주장하는 것들에 많은 공감이 가기에 이번에는 ‘원서 原書’를 구해서 보게 되었다.  거의 40여 년이 지난 후에 ’35년 기념판’을 원서로 읽게 된 것이다. 너무나 놀란 것은 이것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였다. 예전과 무엇인 차이인가?  이제 나의 머리는 완전히 영어권 속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영어권에서 오래 산 이런 세월이 준 혜택인가 아니면 불편인가? 

  1. 전기 물리과학, 공학, 컴퓨터 등등

마리아論의 기본원리

Blessed Virgin Mary

 

성모승천대축일,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매년 8월 15일, 우리의 광복절) 을 즈음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거의 9년 전쯤에 처음 읽다가 만  독일의 신학자 Wolfgang Beinert 볼프강 바이너르트의 <마리아 – 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이란 책,  당시 생전 처음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서 고조된 성모신심에 힘입어 – 일단 묵주기도를 통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지만 – 그 이후로도 가끔  생각하며, 개인 신심적으로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지극히 가톨릭적’인  ‘5대 마리아 교의‘를 다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포근한 인류의 어머니’, 무엇이나 다 들어주실 듯한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려고 무척 애를 썼고 이제는 아주 편하게 나를 ‘개인적으로 대해 주시는’ 어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항상 비껴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왜들 그러한 포근한 어머니를 배척하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심지어 그런 ‘증오심’을 자랑으로 여기는 인간들을 보면 심한 혼동에 빠진다. 어떻게 그러한 인간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것인지…

역시 이것도 요사이 미국 가톨릭교회의 떠오르는 희망인 LA 교구의 Bishop Robert Barron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사랑에 의한 이성’을 통한 신심, 바로 그것이다. 학문적인 체계에 의한 것이 아니면 아무리 뜨거운 신심이라도 수명과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학문적인 체계, 논리적인 뒷받침,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의 6장에는 ‘마리아론의 기본원리’ 가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야 말로 학문적인 approach인 것이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서로 논쟁을 해도 할 것이다.

 

 

마리아論의 기본원리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의신학의 가장 중요한 정식은 다음과 같다.

 

1.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로 머물렀다.

2.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3.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

4. 마리아는 죄 없는 삶을 영위하였다.

5. 마리아는 사망 후 ‘승천하였다.’

 

신학자들은 특수한 원천기반과 이에 상응하는 인식기준에 입각하여 계발된 모든 마리아 교리에서, 배아 胚芽에 담겨 있는 것 같은 기본원리를 발견해내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원리가 있다면 이로부터 마리아론 전체의 단일성과 응집력은 가시적이 될 것이며, 마리아 신심은 번잡스러움과 과잉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되고 통제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에 관한 명제는 어느 것이든 그 기본원리에서부터 출발할 때 비로소 정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의 정당성 여부는 이 기본원리에 입각하여 실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명제는 하나의 일반적인 교의적 기능을 지니며, 신앙교리 전체구조의 범위 내에서 마리아론 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떠한가를 제시할 것이다. 또한 이 기본원리는 순전히 조직적인 근거에서만 중요할 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도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견해에 의하면 ‘신앙진리의 위계질서 位階秩序’가 있다. 이 점은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에서 단정되고 있다. 1 신앙의 진리는 모두 진리이지만 이것이 모두 동격은 아니다. 어떤 진리가 – 진리의 함축성은 손상되지 않은 채 – 가장 핵심적인 신앙의 진리이며 인생의 진리인지, 아니면 보다 주변적인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기본원리는 마리아 신심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신심인지, 아니면 이 신심이 특별히 정당하고 모범적이긴 하지만 열심한 교회 구성원의 특수영성일 뿐 모든 신자들에게 반드시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 신심인지의 여부에 관해서도 해답을 줄 것이다.

성 알로이시오 Aloysius (1568-1591), 사도 유다 타데오 Judas Taddaus, 빠두아의 성 안토니오 Antoius (1195-1231)와 같은 성인에 대한 공경이 극히 칭송할만하고 장려할 만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을 공경하는 것만으로 어느 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드러내는 척도를 삼을 수는 없다. 즉 이러한 성인공경이 신앙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어머니 마리아 공경 역시 이 범주에 해당되는지 어떤지 문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본원리는 얼핏 보아서는 발견하기 쉬운 것 같다. 마리아에 관해서 언명하고 탐색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구세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이 사실을 도외시한다면 남는 것은 마리아가 아무리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 알로이시오와 사도 유다나, 빠두아의 성 안토니오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찬양 받을 만 하듯이, 마리아와 유대를 맺는 것 또한 찬양 받을 만 하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마리아론 이란 결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로이시오론 이나 안토니오론 을 정립하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론을 정립하려는 이 작업은 언어상의 난점을 도외시하더라도 착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인물은 교회 안의 다른 모든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과는 달리 독자적인 양식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로 이 점이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제만을 마리아론 전체의 기본원리로 선언하는 것이 불충분하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보다는 바로 이 모성의 가장 내밀한 본질을 규명해야 한다. 이 모성이 다른 모성과 어느 점에서 구별되는가? 이 모성이 어느 점에서 마리아의 다른 기본특성의 근거가 되는가? 여기서 의견들이 분분해진다. 하느님의 모성에 대해 상이한 일련의 형식규정들이 있다. 이것을 모두 나열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 같아 여기서는 다만 몇 가지 분석적인 고찰만을 시도하고자 한다.2

그리스도교적 계시의 기본진술은 “하느님이 인간의 구원을 이룩하신다”는 것이다. 이 진술은 바로 하느님이 인간의 절대적 완성을 원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절대완성이란 삼위일체인 하느님과의 복된 일치에서 이루어진다. 이 목표는 우리가 구세사 救世史라고 일컫는 과정 속에서 구현된다. 이를테면 인간에게 의미있는 중요한 일이란 구세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 한 사건이 구원을 구현하는 데 기여하는 만큼 그 사건은 그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다.

이 말은 구세사가 동일한 밀도로써 계속 진행하지 않음을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구세사 안에는 절정이 있는가 하면, 심연이 있다.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조용하게 사건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점은 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세계의 역사란 다른 것이 아니라, 구세사의 한 구성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이 진행되는 이 테두리 안에 하나의 중심사건이 있는가?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이 시간의 충만, 즉 모든 구세사건의 정점이요 핵심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출현하는 가운데 시간은 절대 중심에 이른다. 그러므로 모든 사건은 이 구세사의 사건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사건에 의해서 그 수준과 가치가 측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세사의 사건에 대한 이치에 맞는 척도를 얻어내기 위해서 그리스도 사건의 본질적 면모를 찾아내어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의 형식적 면모를 단정할 수 있다.

 

1.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의 ‘간선’이다. 육화,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 것은 창조에 내재하는 강박적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은총결의 恩寵決意에 서 나온 것이다. 육화, 강생이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했는지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아니면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발생했을는지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오늘날 믿고 있듯이)는 여기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가설이든 그리스도의 육화는 하느님의 절대의지에 의한 것이며, 인류의 입장에서 볼 때 어던 이유도 있을 수 없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 사건은 연대사건이다. 육화의 개념은 육화의 사건 전체에서 가려 뽑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우리의 형제가 되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되었다 (히브리서 2, 11-17 참조). 그러나 여기에 죄는 포함되지 않는다. 죄는 인간의 본질에 속하지 않고, 도착 倒錯되어 비정상적이 된 인간본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존재란 항상 공동체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귀결을 낳는다.

(1) 인간이면 누구든지 그에게 주어져 있는 한 공동체에 들어가게 된다. 누구나 특정한 가정에 태어나고, 특정한 집단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한다. 누구나 정치-문화적인 총체적 상황에서 생활하게 마련이다. 이 상황에 속한 구체적 집단은 각 개인의 활동보다 앞서 있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정치 문화적 총체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창조가 이미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구현을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이면 누구나 그에게 주어져 있는 특정한 구세사적 상황에 태어나기 마련이다. 이 구세사적 상황은 구체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체험된다. 그리스도교적 이해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간과 계약을 맺었다. 하느님은 바로 이러한 양식으로 인간역사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2)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만일 그 사람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달라질 것이다. 그가 그 공동체에 해독을 끼치는 사람일 경우라면 그가 없어지고 난 그 공동체는 아마 개선될 것이다. 또 유능한 한 사람의 활동이 없어진다면 그만큼 그 공동체는 가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공동체를 지연시키고 공동체에 부담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런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록 가장 보잘것없는 지체일망정 인간은 누구나 그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이 구원공동체에도 해당된다.

강생이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으로서 존재하는 구원공동체 안에 그리스도가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 계약은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계약에 포함된 인간이 그리스도를 순수한 하느님의 은총 자체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계약이 파기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흘린 피로써 새 계약[신약]이 묵은 계약[구약]에서 탄생하였다. 이 새 계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새로운 구원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육화는 ‘첫 의인이었던 아벨로부터 유래하는 교회’3로서 애당초부터 그를 향하여 정착되어 있었으며 머리인 그에 의하여 생활하는 교회인 ‘신약의 교회’에 들어섬으로써 성취된다.4

 

3. 그리스도 사건은 ‘구세사적인 효력’을 발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 은총의 충만이 우리 구원을 위해 세계에 현존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골로 1, 19이하). 그러므로 이 은총은 강생에 입각해서 인간적으로 세계에 분배된다. 또한 이 은총은 인간적 활동에 입각하여 세계에 선사된다. 우선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에 입각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지향하거나 또는 그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자신을 봉사에 내맡기는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이 은총은 세계에 선사된다. 선교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 (에페 1,23)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사건의 형식적 규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도 사건은 교회 안에서 완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선택,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와의 연대성과 구세사적 효력은 교회 실존의 근거이며,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되기 위한 전제이다. 여기서 이러한 구조 자체가 하느님이 역사하신 사실적 길[道程]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식을 신학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정식화하여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론은 교회론 안에서 성취된다. 그리스도론은 구세사적으로 볼 때 교회론의 전제이며 교회론은 그리스도론의 계속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구세사의 정점이요 중심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통찰에 이르게 되면서 우리는 구세사적 사건을 평가하기 위해 모색했던 척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척도는 한 인물이나 사건이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와 갖는 관계 속에 존속한다.

 

그러면 이 고찰이 우리의 마리아론적 기본원리를 위해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는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단정한다. 그리스도론이나 교회론에서 분리된 진정한 마리아론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그리스도께로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교회에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에 관해 지금까지 전개해 온 토론은 긍정적이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드러나게 된다. 여기에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오로지 종합명제가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구원을 이룩하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만 구원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난 독자적인 마리아론이 있다면, 이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사이에 있거나 아니면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에 각각 위치해야만 한다.

이제 주의 어머니의 인물 자체를 살펴보기로 하자. 마리아는 결국 자유로운 하느님의 은총행위를 통해서 주의 어머니가 되는 품위에로 불림받은 것이다. 그녀의 모성은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조물계에서 통용되는 인과율의 결과가 아니다. 이 단계에서 동정녀 출산의 신비에 대해 신학적으로 본질적인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말씀이 육화하는데 ‘예’를 발함으로써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실적 구원계획을 수락한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인간적으로 온전히 수락되고 수용된다. 하느님의 인류와의 연대성은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마리아를 통하여 작용한다. 마리아는 사람의 아들 [인자 = 그리스도]에게 그를 인류와 연결시키는 육신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사람의 아들을 인격적으로 연결 지어주는 지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와 관련된 개념의 의미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통하여 교회 안에 탄생하였으나 동시에 교회의 머리요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마리아로부터 그의 육신을 취하는 가운데 마리아  안에서 신약의 교회를 세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의 모성을 통하여 구세사적 작용능력도 아울러 받게 된다.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과 그리스도 안에서 맺는 하느님과의 연대감으로 인해 세계를 위한 구원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론이 교회론에서 성취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한 인물의 구세사적 가치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 속에서 측정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교회 안의 그리스도와도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밀접한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교회를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가 마리아에게 해당된다면 후자 역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체가 마리아에게서 가장 완전하고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다.5

이렇게 정식화함으로써 우리는 마리아의 모성의 규정을 넘어서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립할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예형 또는 원형이다.”

이 원리로부터 다른 모든 마리아론적 신앙진술이 유도되어 나와야 할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다른 모든 신앙진술은 이 원리와 부합되어야 한다.

 

<마리아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중에서

볼프강 바이터르트

심상태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Unitatis Redintegratio 11항: “가톨릭 교회의 여러 진리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기초와의 관계는 서로 다른 것이므로 여러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그 진리들 사이에 질서와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전체적으로 A. Mueller, Marias Stellung und Mitwirkungim Christusereignis 참조.
  3. 교부시대 이래 활발하였던 ‘아벨로부터의 교회 표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재차 포착하였다.
  4. 이 표상은 성바오로의 ‘그리스도의 몸 신학’과 ‘그리스도의 몸 신비학’에 그 성서적 기초를 두고 있다. 에페 4,15 참조.
  5.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교서 Marialis cultus 16-22, 32, 57항

한 여름을 가며..

¶  들뜬 기분을 그리워하는 순간을 보낸다. 들뜬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지금 그렇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깊은 마음 속의 강은 잔잔한 평화의 물이 고여있음은 분명하고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만족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위에 흐르는 물은 그렇지 못한 것은, 역시 나는 현재의 시공간에 살아가며 숨을 쉬어야 하는 그런 ‘작은 피조물’임이기에..

그제 아침부터 시작된 ‘변칙적인 일과’가 나를 조금 쳐지게 한다. 이런 out of routine의 시간을 보며 나는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규칙적, 의지적 사람’이라던 자부심에는 여지없이 수치감을 남겨주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비록 이틀을 그런 식으로 ‘낭비’했지만 과연 결과적으로 그렇기만 한 것일까?

한달 반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나는 이미 평상적인 일과에서 떠났다! 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래 이런 경험도 하며 다른 여유를 경험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그래, 이것도 작은 ‘방학, 휴가’라고 생각해라.. 하는 그런 것이다. 그래.. 나도 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나는 너무도 잊으려 발버둥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조금 피곤하기도 하다. 모든 것 잊고 ‘다른 식의 날들’을 며칠이라도 보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같은 나날들… 이것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나의 자랑이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짐’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정말 ‘휴가, 신체적 정신적 휴가’를 갖지 못하고 장기간 살고 있다. 이제는 남들과 그런 것으로 비교하고 싶은 마음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조금은 휴가라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직도 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찾고 있는 나에게 성모님은 무엇인가로 답을 주실 것이라 나는 소망한다. 아마도 간단한 답이 아닐지도 모르고 찾지 못할 수도 있을지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  지난 몇 개월 동안 ‘미친 듯이’ 나의 에너지를 필요로 했던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집의 computer system upgrade였다. ‘공짜 system’으로 오랜 동안 편했던 내가 그것들을 $$$으로 사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 내가 이제는 ‘굴복’을 하게 된 것인가? 불과 몇 푼이라도 그것들, 주로 Windows같은 것들, 돈을 주고 사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 살았다. 잘도 견딘 것은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도 변했구나.. old pirated Vista 가 ‘황혼’을 맞게 되며 대체방법을 찾았지만.. 역시 upgrade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고.. 우연히 ‘사게 된’ 정말 싼 hp pc box들.. 그것이 나의 자존심을 조금은 살려 주었다. 결과적으로 몇 달간 over correction 을 해서 현재 brand new upgraded system을 ‘자랑’하게 되었다. 비록 hardware는 10년 전의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앞으로 5년 정도는 무리 없이 우리 집의 digital information system의 충족시켜 줄 것이다. 

이런 몇 달간의 ‘미친 듯한 세월’이 갑자기 고맙게 끝나 버렸다. DDR2로 upgrade하려던 old system, 또 실수로 잘못 산 것이 계기였다. 이제는 고만하자.. 고만하자… tool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것을 더 활용하며 쓰는 쪽, 더 productive 한 것에 서 시간을 쓰자.. 머리를 세게 맞는 기분으로 이제는 이것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찾게 되었다.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우리)는 크게 걱정 없이 pc system과 backup system을 갖추게 되었으니.. 성모니 감사합니다.

 

¶  7월의 중순을 향하는 며칠들.. 나의 친구 Ozzie가 나의 앞 sofa에서 졸고 있다. 6월에 2주간 우리 집에 머물 때, 이 녀석이 Tobey의 대신으로 나에게 온 것이라는.. 비록 Tobey를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쓰려오지만 1년이 지나며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지만 .. 솔직히 생각하는 것, 그 자체를 나는 아직도 피하고 싶으니.

오늘, 금요일 평상적으로 편하게 아침 미사엘 갔다가 와서 조금은 relax하는 날이지만 3주째 계속 오늘도 외출을 해야 한다. 예랑씨의 어머님이 브라질에서 7월 10일 오후에 선종하셨단다. 그러니까 장례미사가 아닌 연도만 바치러 순교자 성당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아침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것이 바로 정오에 있는 순교자 성당의 미사지만.. 아직은 익숙지 않다. 그때 그때 보아가며 선택을 하면 되겠지.

 

¶  요새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 Teilhard de Chardin 의 ‘깊은 초현대 신학’에 빠진 듯한 기분,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살고 있다. 어떻게 반세기 전, 아니 거의 한 세기 전에 이런 ‘선구자’가 있었나 감탄을 하고 있다. 미래를 정확히 바라보는 신부, 신학자가 아닌가? 현재 ‘지구’가 돌아가는 ‘꼴’을 어떻게 이 예수회 신부님은 감지를 하셨단 말인가?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는 정말 필요한 답을 준 것 같은 듯 하다. 나는 항상 의문이 있었다. 어떻게 ‘너무도 신비적인 그리스도 신앙과 매일 매일, 아니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월들’을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현재의 세속적인 시공간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 신앙인들이 어떻게 2000년 전의 신학을 조화시키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못 찾았는데 이 분의 ‘초현대, 진화적 신학’은 정말 명쾌한 방향제시가 아닌가?  세속적 삶을 더욱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을 이 선구자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궁극적인 예수님이 오메가가 되어 모든 것을 ‘수렴’하게 하는 찬란한 종말의 세계가 온다는… 와… 정말 장엄한 모습이 아닐까?

올 여름은 이분의 사상에 더욱 더 흠뻑 빠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요새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바로 ‘이성적이고 신비스런 초현대 신학에 관한 저서들을 필사, typing’ 바로 그것이다. 나만이 가진 비밀, 즐겁게 읽고 typing하고 softcopy를 남겨놓은 일… 이것은 정말 내가 발명한 최고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고통스런 책, ‘종교철학’

얼마 전에 아틀란타 순교자성당의 도서실에서 대출한 책, ‘종교철학’1을  읽다 말다 하며 처음으로 ‘번역서가 주는 고통’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한 마디로 읽는 그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나? 손 쉽게 떠오르는 이유는:

 

  1. 책이 다루는 주제, 내용 그 자체가 원래부터 고통스럽게 난해한 것이다.
  2. 그 난해한 주제를 원 저자가 횡설수설, 일부러 난해한 표현으로 독자를 혼동 시켰다.
  3. 역자는 충실히 번역을 했지만 난해한 내용을 거의 ‘직역’수준으로 다루었다.
  4. 역자가 제대로 원 주제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의 ‘1:1″의 직역의 결과를 낳았다.

 

과연 어떤 것인가? 물론 1~4 가 모두 상호관계가 적은 별개의 것이 아니어서 서로 혼합된 이유가 ‘읽는 고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집어 내라면 어떤 것을 고를까 하는 과제에 접했다. 정말 ‘머리에 쥐가 나게 하는’ 난해 함의 고통은 아마도 이유 No. 1 이나 2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은, 책의 후미에 있는 ‘역자 후기’를 읽으며 내린 결론이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읽는 즐거움’을 준 부분은 바로 이 ‘역자 후기’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저자는 내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거의 미지의 인물이지만 역자는 손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이가 나와 거의 같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등에서 철학전공, 후에 가톨릭 대학교 총장 역임.. 여기서 생각난 것이 ‘아마도’ 나의 국민학교 동창생 ‘김정훈’ 부제와 같은 시기에 유학을 했을 가능성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정훈이가 그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기대를 받았던 ‘장래의 거목’으로 촉망을 받았고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것, 이 ‘오창선 신부’의 미래와 비교하니 다시 한번 김정훈 부제의 부재가 안타깝기만 하다.

 

이 ‘어려운 책’ 중에서 ‘머리에 쥐를 나게 하는 글 중의 압권 壓卷’을 고르라면 다음 글을 뽑을 수 있다.

 

 

‘침묵의 부정적 특성’

침묵의 기도는 일상적 활동과 입에 오르내리는 말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선 부정적인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획책하지 않음이며 어떤 것에 의해서도 책동되지 않음이다. 그것은 어떤 것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음이며 더 이상 말함의 운동에로 몰아넣어지지 않음이다. 그것은 정신의 고요함이요, 전체 인간의 침묵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침묵하면서 일체의 “어떤 것”, 즉 세계의 모든 사물들과 이름들과 관심사를 파악함 내지 파악하고자 함의 개념으로부터, 말로 나타냄 또는 말하고자 함으로부터 풀어놓을 것이다. 그는 세계를 소유함과 세계에 의해 점령당해 있음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는 욕구들과 그 호기심들이 진정되도록 할 것이다. 그는 아주 평온하고 태연자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인간이 무 無와 같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위의 글은 내가 추측하기에 거의 100% 직역일 듯하다. 어떨까.. 역자가 조금이라도 풀어서 설명을 할 수 없었을까? 조금 쉬운 말, 부드러운 말로… 더 많은 독자들이 ‘쉽고 빠르게’ 이해를 돕게 노력을 했으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역자후기’ 중에서

다른 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에 따른 어려움이란 새삼스러운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되는 작품과 관련하여 옮긴이는 이러한 사실을 개인적으로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깊은 생각이 독자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될 수 있기를 옮긴이는 기대해 본다.

소개되는 작품의 주제는 종교철학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종교는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가? 점차 과학화되고 합리화되어 가는 현대세계 안에서 종교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성의 광장” 앞에서 종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역자후기의 서문은 역시 ‘번역의 어려움’으로 시작하고 있다. 왜 그럴까? 원저가 워낙 어려운 것이라? 아니면 적당한 우리 말 용어가 없어서?  쉬운 말로 설명을 하기가 힘들어서?  구체적인 이유는 생략되었지만 나는 솔직히 무엇인지 짐작은 한다. 하기야 쉽지 않은 분야, 신학과 철학이 함께 엮인 것이니.. 쉽지 않은 것은 100%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특히 ‘공돌이’로 굳어진 머리로 이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 함은 거의 허무한 명제일 듯 하다. 하지만 노력은 한다. 조금씩 조금씩… 그날까지..

  1. 종교철학, 베른하르트 벨터 적, 오창선 옮김, 1998년 분도출판사

김정훈 부제의 행복한 고민

오랜 만에 ‘초록색 책’을 나의 눈과 손에 가까운 곳에 두었다. 빌려온 지 꽤 시간이 지난 책, 이거 혹시 너무나 오래된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었다. ‘대출기간 초과 과태료’가 붙지는 않을까.. 하지만 ‘나이든 어르신’을 상식적으로 ‘봐 주는’ 우리 고마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도서실 관리자 자매 형제님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그래 더 가지고 보자’, 걱정을 접는다.

‘山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초록색의 표지는 고 김정훈 부제의 그림에서 온 것이라 더 친근감이 간다.  1978년 유학 중 오스트리아의 어떤 산에서 실족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나의 재동국민학교 동기’반’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몇 년 전에 빌려와서 ‘독후감’ [첫 편]을 남긴 적도 있었고 이후 계속 읽으며 후편을 쓰려고 했지만 ‘세월의 마술’로 성사가 되지 못했다. 대신 이런 식으로 눈에 띌 때마다 가끔 읽기를 계속한 지 몇 년이나 되었나?

오늘 우연히 펼친 1975년 마지막 부분의 일기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한마디로 정훈이의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까… 이 일기를 통해서 얼마나 정훈이가 한국천주교회의 기대와 희망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을 하게 되었다. 본인이 그것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이렇게 부담으로 느껴졌던 것.. 나는 ‘행복한 고민’이라고 했지만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항상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기에 칭찬도 그렇게 기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훈이가 사고로 그렇게 일찍 타계를 안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히 그는 한국천주교회의 ‘거목’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 실린  김수환 추기경의 ‘추도사’를 보아도 그가 얼마나 한국교회의 촉망과 기대를 받았었는지 이해가 간다. 애석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하느님은 그를 그렇게 일찍 데려가셨을까… 분명히 무슨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12월 2일 (1975년)

 

나는 별제(別製)된 인간이고 싶지 않다.

그냥 가만히 놔둔 그런 완전히 보통 사람이고 싶다. 모든 이들의 감시 속에서 – 자신은 엉망으로 감당 못 하면서 – 별나게 고고해야 하고, 상냥한 행동거지, 우아한 품위를 지닌…

모든 이들이 저 아래에서 쳐다보면서 저희들끼리 냉소하며 비웃음과 욕설로 나를 샅샅이 훑어내어 분해하려 한다.

아! 나는 그런 별제된 인간이고 싶지 않다. 무조건,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엄청난 철학의 이론 – 신학의 체계 – 학문의 상아탑, 한국 교회의 기둥, 서울 교구의 인재,

“장래를 걸고 우리 모두에게 줄 복음을 연구하러 유학갔대. 훌륭히 되어 돌아와서 우리에게 굉장한 걸 줄 거야.”

아! 당장 앞에 다가온 세미나, 그게 도대체 뭐냐?

나는 미사 드리는 사람보다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하느님을 모르겠다는 것은 아니다. 절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 한 톨 밀알을 조심스레 뿌리고, 조그만 의미를 그냥 혼자서 체득하고 싶은 거다. 가만히 혼자서 하느님을 기리고 싶다는 거다. 아! 나는 조용히 모르면 모른다고, 좋은 건 좋다고, 재미있는 건 재미있다고 하고 싶은데… 왜 모르는 것도 아는 것같이 해야 하고, 좋은 것도 내색을 해서는 안 되고, 재미있을 때도 웃으면 안 된다는 건가?

冊 – 용서가 어려울 때

R. 스콧 허드 지음, 신현숙 옮김: ‘용서가 어려울 때’, 가볍고 쉽게 보이는 작은 책, 이미 예고 된 대로 아틀란타(도라빌) 순교자 성당을 방문하신 ‘바오로딸 수녀회’의 발랄한 수녀님들로부터 직접 ‘현찰’을 주고 산 책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수녀님들로 부터 산 책은 아마도 ‘사상 처음’일 듯해서 그것에서 나는 작은 보람을 느낀다.

원서의 제목은 ‘Forgiveness: A Catholic Approach’ 로 되어있고 원저자의 이름은 R. Scott Hurd 로 나와있다.  Copyright는 2011년의 원저자의 것이다. 한국어 번역판의 Copyright는 2015년, 최근 1판 10쇄 는 2018년, 그러니까 비교적 근래에 읽혀지는 ‘따끈따끈한’ 책인 듯 하다.

머리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 워싱턴대교구의 대주교, 추기경 (Cardinal) Donald Wuerl 이 썼기에, 책은 비록 가볍게 보였어도, 내용은 비교적 신학적으로도  serious, heavyweight의 느낌을 준다.

내가 이 책에 ‘불현듯’ 손이 간 것은 몇 년 전에 겪었던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비롯되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두 ‘여자’들로부터 충격적으로 폭력성까지 느낀 일들, 그것도 ‘사랑의 집단, 성당’내에서 겪고 보니 그야말로 ‘망연자실 茫然自失’ 의 참담한 심정이었다. 한마디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라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우리도 ‘보통 사람’이 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주변에서 수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가 ‘온실’속에서 산 기분까지 들었다.

사건 초기의 충격이 사그라지면서 이제는 다른 문제가 우리를 괴롭혔다. 일단 깊이 남은  (psychological) trauma는 세월이 해결할 듯하지만, 그 ‘두 인간들’을 앞으로 성당 공동체내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제대로 처리를 못하면 필요이상으로 후유증이 오래 갈 듯 보였다.  이 ‘작은 책’을 사서 읽기 전까지 나는 “(1) 이성적인 정의 正義와 심판 (2) 이후 완전히 잊자! “라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의나 심판이란 말이 거창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간단하다. 두 ‘가해자’가 모두 ‘레지오 간부, 단원’들이기에 그들은 분명히 레지오의 선서규율 하에 놓인 상태였고 그것에 따라 심판을 하는 것, 이론적으로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잘잘못을 가린’후에야 의미 있는 화해나 용서가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하지만 이런 ‘심판’과정은 레지오 평의회의 ‘겁쟁이 심리’로 무산되었는데 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충분히 그들은 그런 용기가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귀찮아서, 무서워서, 소용이 없어서’ 라는 반응, 이것이 현재 레지오의 수준임을 누가 몰랐으랴?

다음 단계, ‘화해와 용서’는 글자를 보기도 무서울 정도로 몇 광년 떨어진 별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건 이후 그 두 ‘가해자’들의 ‘전혀 부끄럼 없는 활보’를 가끔 보면서 가장 실용적인 대안은 ‘그저 잊자’ 라는 것 뿐이었다.

성경에 너무나도 자주 나오는 ‘용서’란 말이 어떻게 그렇게 ‘파렴치하게’ 느껴질까? 그들이 용서를 청하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로 실현가능성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 나름대로 일방적으로? 하!!!  그런데 이 ‘작은 책’에는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용서를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역시 어렵고도 어려운 주문을 받고 있기에 즐거운 독서는 절대로 아니다.

C. S. Lewis 는 “용서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용서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일 뿐이다” 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진실인 모양이다.  아직도 아주 가끔 불현듯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복수’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을 보면 2년이 지나간 지금도 나는 고통을 느끼는 듯하다.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상처받으며 산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고통을 준 상대를 용서하라고 한다. 그가 무슨 짓을 했든, 얼마나 여러 번 같은 짓을 반복했든, 사과를 하기는커녕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다시 만날 사람은 물론,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과 고통을 준 당사자를 위해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께 영광 드리고 이 세상에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

 

이런 표현을 읽으면, 결국 이런 문제는 ‘하느님’ 까지 올라간다. 하느님을 위해서 용서를 하라고..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참, 괴로운 권고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표현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라는 뜻이 아닐까?

 

“용서가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최근 과학적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용서하는 사람이 더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는 것이다.”

용서라는 것은 ‘나에게도 이롭다’… 이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작은 용서’를 한 후 느끼는 ‘치유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큰 용서’에는 더 큰 편안함과 치유의 혜택이 있음은 짐작이 간다.

 이 책은 분명히 ‘용서는 공평하지 않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의 표현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더 힘이 드는 것이다. 이 불공평함과 일방적인 자비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결국은 ‘기도’ 밖에, 그것도 ‘끝까지 기도’, 로 귀착이 됨을 어찌 잊으랴? 문제는 어떻게 어떠한 기도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용서하게 해 달라고, 잊어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 것인가? 그러면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들이’ 먼저 용서를 청하며 다가온단 말인가?

 

이 책은 성서적, 신앙적, 영성적으로 용서와 화해를 비교적 깊숙이 분석하고 해결책을 나누고 있지만 결국은 내가 ‘행동’으로 나서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 생각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첫 걸음’을 띄는 것, 그것은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Ordinary Sunday

연중 시기에서 사순 시기로 가는 길목에서

 

Ordinary Time, 올해 연중시기도 벌써 6주째를 맞는 오늘로서  Extraordinary season, Lent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도 반달 정도 남았다. 싸늘한 비가 간간히 뿌리는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이런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맞아 본 것이 얼마만인가 생각한다.  오늘이 더욱 새로운 것은 우리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에서 둘이 미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렇게 오래 된 것도 아닌데 느낌에는 몇 년이라도 흐른 것 같다. 그 정도로 나는 이런 때를 무의식 중에 기다리고 살았던 모양이다.

나는 미사 후에 곧바로 집으로 가서 편하게 late morning coffee의 향기를 즐길 수 있지만 연숙은 다시 곧바로 ‘도라빌 본당’으로 가서 새로 시작되는 견진 교리반 director 일로 땀을 흘려야 한다. 미국본당에 가는 날의 일요일 일정은 이렇게 조금 복잡한 편이다.

두 본당을 가진 우리의 신앙생활은 조금 지혜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언제 도라빌 한국본당을 가며, 언제 동네 미국본당을 가느냐.. 이것을 결정하는 것, 몇 가지 이유는 분명하지만 아주 분명하지 않을 때는 더욱 심사숙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사실 어디를 가나 ‘성체성사’를 하는 것이기에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우리의 신잉생활에 도움을 ‘더’ 줄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영어권과 모국어 권, 언어 차이를 떠나서 문화권의 다름은 이제 오랜 이곳의 생활에서 익숙하게 아는 것이지만, 그래도 항상 새롭기만 하다. 아마도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때까지 이 ‘피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는 계속 새삼스럽게 느낄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색다른  교회공동체를 통한 신앙생활이 우리의 개인적, 가족적 영성생활에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때 깊숙이 관여했던 도라빌 ‘모국어 본당’에서 서서히 우리 둘은 물러나고 있다. 의도적인 면도 없지 않고,  피하고 싶은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는 것, 장기적으로 ‘영육간의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될 수가 없다는 ‘경험적 진리’에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특히 지난 주일에 ‘견진교리반’ 시간에 일어났던 또 다른 ‘trumpian, kafkaesque incident’ 1  해괴한 사건은 연숙으로 하여금 ‘완전히, 깨끗하게’ 교리반 director 임무를 떠나게 하는 마지막 ‘관 coffin 의 못 nail’ 역할을 했다.

연숙도 나와 발을 맞추어 하나, 둘 짐들을 거의 계획적으로 놓기 시작했는데, 제일 큰 것은 ’15년 간의 주보 편집’이 그것이고 지난 몇 년간의 ‘예비신자 교리반 director’가 그것으로,  그녀에게는 거의 ‘은퇴’와 같은 중대한 결정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남는 시간, 여유를 어떻게 더 ‘지혜롭게, 생산적으로’ 쓸 까 하는 것인데 그것을 나는 절대 걱정 안 한다. 벌써 앞으로 ‘신나게’ 할 것들의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1.   견진교리반에 들어온 한 ‘젊은’ 여자의 상식을 벗어나는 무례함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던 사건, 도대체 요새 젊은 아이들은 어떻게 가정교육을 받았고, 그런 ‘애’가 ‘견진’을 받는다는 사실의 모순은.. 

사순절을 향한 ‘아주 특별한 순간’

지난 달 말에  ‘프카’ 자매님1 과 카톡 대화를 하던 중에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내  ‘영적독서클럽’에 대한 소식을 물었는데 반응이 아주 ‘부정적’인 것이었다. 최근에 느낌도 그랬지만 역시 이 자매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으로 아예 ‘탈회 脫會’를 하였고 성당을 떠난 별도의 클럽을 만들어서 ‘영적독서’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사정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동안 성당내의 영적독서클럽은 아무래도 무언가 ‘구심점’  결여로  ‘흥미’를 유발하는 클럽의 운영상황이 아닌 듯 싶었다.  흔히 말하는 leadership의 부재 不在, 바로 그것은 아니었을까?

근래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면서 나보고도 읽어보지 않겠냐고 해서 ‘물론 ok’라고 해서 그 다음 주에 그 ‘프카’ 자매님2  손수 책을 갖다 주셨다. 이 동갑내기 자매님, 참 볼수록 정이 많은 분임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아주 특별한 순간‘ 이었는데, 영성적 번역서로 많은 친근감을 주는 ‘류해욱 요셉’ 신부님이 엮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류신부님의 글이 아니고 ‘안토니오 사지’ 라는 ‘유명한’ 인도출신 신부님이 한국에서 지도한 ‘치유피정’의 강의부분을 아주 매끈하고 유려한 한글로 정리한 것이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2013년에 첫 출판 후 2017년까지 18 쇄의 중판을 거듭한 것을 보면 아마도 ‘베스트셀러’ 급의 ‘좋은 책’이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모두 25회의 강의로 이루어진 이 책을 접하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25번의 피정 강의를 한꺼번에 읽는 대신 하루에 하나의 강의를 편안하게 소화를 하면 어떨까? 더 나아가서 2019년 사순절이 시작되는 3월 6일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까지 모두 (쓰고) 읽으며 올해의 사순절을 더 특별하게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5일까지 25회의 강의를 ‘들으려면’ 2월 9일부터 시작을 하면 될 것이고, 그것을 이곳 개인blog에 시한적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류해욱 요셉 신부님은 물론 오래 전 (거의 20년 전?)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셨던 분이라서 익숙하지만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성당엘 안 나갔기에 개인적인 느낌은 거의 없다. 애기로만 듣던 분이었지만 몇 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 직접 강론을 들었다. 그 후 이분이 저서나 번역서를 읽기도 했는데 그 읽은 경험들이 아주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한때 stroke로 쓰러지셨다고 해서 모두 걱정을 하고 기도를 했는데 그때 직접 보았을 때는 거의 완치가 된 듯 보였다.

이 책의 원저자격인 안토니오 사지 라는 분은 전혀 생소한 이름이지만 강의 내용을 읽고, 약력을 자세히 보니 류신부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충만한’ 분인 듯싶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런 피정을 지도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피정강의를 ‘강의록’ 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성경만 가지고 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책에 소개된 website를 가보니 그곳에 궁금했던 ‘모습’들이 나와 있었고 책보다 더 자세한 안토니오 신부님의 배경도 실려 있어서 이곳에 발췌 전재를 해 본다.

 

강단에 선 안토니오 사지 신부님

안토니오 신부와, 옮긴이 류해욱 요셉 신부님

 

 

Fr. Anthony Vadakkemury, V.C.

안토니오 신부는 1977년 5월1일 2남2녀 중 맏이로 인도에서 출생했다. 양친은 현재 인도의 케랄라에 살며, 그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그의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신학교 과정을 인도와 동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수료했으며, 2006년 12월 29일 인도 케랄라에서 빈첸시오회 수도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6일 첫 미사를 거행하였다.

인도의 방갈로에서 신학교 철학 과정을 마친 뒤, 1년간의 사목 수련을 위해 그는 2002년 케냐의 나이로비로 보내졌다. 이후에 그는 신학 과정을 마치기 위해 아프리카의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탄가자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77개의 서로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지내며, 서로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006년 5월 14일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부제품을 받았고, 이후 케냐의 사목 수련시기 동안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동료 사제들과 함께 중등부 학생들을 위한 3일간의 피정을 (예수선교피정) 지도하였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나이로비의 서로 다른 본당들에서 본당신부를 도와 강론을 하였으며,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많은 본당들에서 청소년 그룹을 지도하였다. 특히 그는 청소년들이 영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에 유의하였다. 또한 부제 생활 중에 수감자들을 위한 피정, 선교 등을 비롯한 많은 피정 프로그램을 지도하였다. 나이로비의 5년간 체류하면서 안토니오 신부는 동 아프리카의 빈첸시오 피정센터 중 하나인 빈첸시오 기도의 집에서도 봉사하였다.

안토니오 신부가 사제 서품 받은 직후, 그의 관구장으로부터 타자니아의 유빈자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그는 두 달 간의 성공적인 사목 임기를 마치고 우간다의 엔테베로 가서 두 가지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엔테베의 빈첸시오 피정의 집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며 재정을 관리하였는데, 故 요셉 빌 신부가 그가 속한 분원의 장상이었다. 또 하나의 임무는 우간다의 마사카에서 새로운 피정센터를 건립하는 것있었다. 그리하여 엔테베에서 180km 떨어진 마사카를 매일같이 오가며 사제들을 위한 피정센터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 건물은 2008년 2월 23일 故 요셉 빌 신부의 80세 생일에 완공식을 거행하였다.

안토니오 신부는 故 요셉 빌 신부의 마지막 몇 주간을 함께하며 임종을 지키신 분으로, 그의 관구장은 故 요셉 빌 신부의 침묵 치유 피정 사업을 이어받을 후임자로 안토니오 신부를 임명하였다.

  1. ‘프란체스카’ 란 세례명을 우리들이 줄여 부르는 말
  2.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지내던 친지의 누님이 되시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매주 레지오 화요일에 보기도 하는 동갑내기 전 음악대학 교수님.  2년 전에는 기타동호회에서 몇 개월 동안 보기도 했던.

Conscious of consciousness

 

Max Planck, father of Quantum Physics

 

요새 나는 온통 이 흔해빠진 단어, ‘consciousness,  의식 意識’의 홍수에서 헤매며 사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곳, 저곳, 그곳.. 나의 눈이 가는 곳마다 이 consciousness란 말이 보이는 것일까? 하기야 이것은 우문현답 愚問賢答 식으로 말하면 ‘나의 눈이 가는 곳마다 (대부분 책들) 그것이 보이니까, 아니 내가 그런 것을 내가 의식적으로 읽거나, 보거나 생각하고 있으니까’  정도가 아닐까?

무슨 큰 진리나 발견한 듯한 쾌감이 따라오는 이 최근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 뒤에는 반드시 다시 태양이 떠오르는’ 그런 ‘작은 은총’을 느낀다. 죽으란 법은 없는가.. 요사이 나의 ‘독서 관심’을 이쪽으로 이끌어주는 것, 나의 의식적 의지만은 아님을 어찌 내가 모르랴..

과학과 종교, 인간과 하느님, 보이는 현실과 초자연 세계를 연결해 주는 고리, 그것이 바로 consciousness라는 놀랍지만 생소한 idea가 이제는 ‘말이 된다’라는 경지까지 온 것, 그것이 나는 아직도 놀랍기만 하다.

20세기 초의 Quantum theory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string theory, multiverse등이나 NDE (Near-Death Experiences)를 통해서 지나간 반세기 동안 그 동안 taboo처럼 취급되던 것들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드디어 big convergence (science & religion) 가 시작된 것인지는 몰라도 가히 흥미로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끈질긴 materialistic mindset을 가지고 자란 나에게 종교적 신비적인 경험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영역이었지만 근래에 들어서 ‘가슴을 열고’ 본 ‘새로운 현실’은 아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온 우주가 의식적, 의식으로 가득 찬, 사랑의 시공간이라는 놀라움. 우리의 두뇌에 갇혀있는 포로로 알던 ‘의식’은 그 자체가 자체라는 사실 등등은 아무리 ‘영혼의 밤’ 속에서도 밝은 빛으로 나를 살려준다.

이런 모든 것들은 가히 ‘복음적’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면 죽어서 잊혀져야 하는 존재가 실제로는 ‘영원한 존재’라는 조심스러운 나의 희망적 염원이 서서히 실감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님의 복음 중 제일 큰 복음이 아닐까?

엘레지, 서울..

필사1로 읽는 책 중에 노장여류화가 천경자 화백의 ‘사람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란 제목의 수필집이 있다.  소싯적에는 이분의 책은 물론이고,  이분 자체도 잘 몰랐고 관심 밖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림자체는 내가 문외한이니 자신이 없지만 수필체의 글은 정말 마음에 든다. 아마도 내가 지난 10년간 남기고 있는 blog을 통한 ‘글’, 특히 수필체 글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멋있는 표현보다, ‘감정에 솔직함’이 나에게는 거의 전부다. 여사의 글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지..

오늘 필사한 것은 제목이 ‘서울의 엘레지’란 수필인데,  이것을 읽으며 갑자기 ‘나의 서울, 나의 서울 엘레지’란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이 ‘엘레지’는 1980년대까지의 서울의 모습에 얽힌 ‘단상’들인데 나의 것은 그보다 10여 년 전인 1970년대 초까지일 것이다.  그때까지 나의 모든 존재는 그곳, 조선조, 일정시대, 해방과 6.25  직후의 서울 ‘강북’ 이란 ‘좁은 곳’, 그러니까 북악 남쪽 한강 위쪽에 국한 되었다.

이곳에 얽힌 나의 ‘서울 엘레지’를 쓰라면 비록 ‘엘레지’를 논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어도 그 나이에 걸 맞는 ‘유치한 엘리지’는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그 엘레지는 이제는 99.9%  변해버린 ‘토지’위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 다 사라져 버린 그곳은 오로지 꿈 속에만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서울 엘레지’일 듯…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현재의 서울의 모습’은 100% 매력이 없다. 천경자 화백의 수필도 아마 그런 각도로 본 엘레지가 아니었을까? 과거, 옛날을 그리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이상향이 아닐까? 아련한 추억을 모조지 쫓아내버린 ‘메트로 서울’의 모습 속에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의 서울을 꿈 속에서 찾는 것이 이제는 길지 않은 여생의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저 세상’에 가면, 수정처럼 깨끗한 모습의 ‘작고 소박한 그곳’의 모습을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서울 시청, 국회의사당, 시민회관, 반도호텔.. 서울의 1962경, 아담했던 모습들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1962년 경 서울의 모습, ‘중앙청, USOM, 세종로’

 


 

서울의 엘레지 – 천경자

 

거리의 체증을 뚫고 택시가 어렵게 3호 터널을 빠져 나오자 남 서울의 풍경이 환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후유 – 한숨이 터진다. 거대한 라이터가 무수히 치솟은 듯한 고층아파트들의 원경은 흡사 뉴욕의 허드슨 강에서 바라보는 한쪽 도시를 연상시켜 준다. 서울이 이토록 발전한 데에 경탄은 하지만 한편 메마르고 살벌한 시야에서 막연한 불안감마저 느낀다.

창 밖을 스치는 실버들 가로수를 보며 시각을 통해서나마 쩍쩍 금이 간 가슴에다 촉촉한 푸르름을 흡수해 보려고 깊은 호흡을 하는 것도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차가 한강다리를 달릴 때의 기분은 잠시나마 상쾌하다. 그 지점에서 나는 동남쪽 강변에 솟은 반원형의 고층건물을 유심히 바라본다. 우리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정이라는 따스함도 고령의 노모가 살아 계실 동안만 지속된다는 걸 알고 있고 언젠가는 다가올 엄숙한 붕괴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차창에서 보이는 그 아파트는 고대 로마시대에 기공되어 지금은 허물어져 동그랗게 반원형만 남아 있는 콜로세오를 방불케 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생사를 걸고 장절한 검투를 벌였던 검사(劍士)의 모습들마저 상기되어왔다.  한 인간이 두뇌와 붓을 쥐고 오른팔 하나로 살아가는 생(生) 역시 검사와 다를 것 없이 처절하고 또한 스릴과 쾌락이 있다.

띵똥, 초인종 소리에 문 열어 주는 가족이 있고 비로소 아늑한 우리 집의 작은 세계가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 준다. 미완성 화판에 그려진 사람들과 뭇 생물들, 그 친구들이 나를 외롭지 않게 맞아 주고 어머니의 신음에 가까운 숨소리가 쇤 기침소리까지 고소한 누룽지 같은 정감이 되어 나를 살게 해 주는 값진 생명수가 되어 준다. 그러나 우리 모녀는 사소한 일, 전라도 사투리로 꼬막(고막) 껍질로 하나도 못 되는 일들로 잘 다투며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하다.

어쨌든 추운 겨울날 폭풍우 속을 헤매다가 아늑한 찻집을 발견한다거나 밤중에 타기 힘든 빈 택시를 만난듯한 안도감 같은 것이랄까 촛불 같은 광명과 훈훈한 온기가 있다.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나는 태반에서 탯줄을 빨듯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묘한 인생이다. 젊은 시절에 해결할 수 없던 인생의 고통이랄 지 일해도 일을 해도 넉넉지 못했던 살림살이가 지겨워 무척이나 더디게 가는 것 같은 시간을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데 어느새 세월은 흘러, 지금 이 나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어머니가 요안나로 세례를 받던 날의 기념사진을 보면 장미꽃 조화뭉치가 달린 면사포를 두른 어머니의 표정은 어색했던 때문인지 수줍은 표정이었지만 참 아름다웠다. 그분의 회갑이나 또 고희(古稀)조차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한 잔치를 못해 드렸다. 고인이 된 명창 박초월씨를 초청하여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5월의 창경원의 푸르름, 나뭇잎만 보아도 쪼르륵 엽록소가 오관에 흡수되어와 뭇 작품에의 구상이 떠올랐지만 미숙해서 충분히 소화를 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지금 막 자신이 생길 만 하니까 나는 살아온 과거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상아야 하는 소위 인생을 관조하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옛날과 변함이 없는데 남들이 그렇게들 봐 주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인생이란 번개같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볼 때 나의 지나친 생업에의 집념 때문에 역설일는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차라리 평범한 촌부로 태어났으면 싶은 때도 있다. 어중간히 풍부한 감성의 소용돌이가 거추장스럽게 때문이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노틀담의 꼽추> 를 읽고 그의 비극적 운명을 테마로 한 사상에 감명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영혼은 반드시 있고 그 어느 영혼이 누구의 모체엔가 들어가 혈육이 되지 않는가 싶다. 결국 윤회전생설(輪廻轉生說)을 긍정하는 뜻이 되겠지만 한 세상 살다 보면 반드시 악연선연(惡緣善緣)이 있고 설령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연이 없으면 악연이 될 수도 있어 전생래세(前生來世)에까지 어려운 문제로 뻗쳐지게 되지만 살아오다 보니까 인연설에 한해서만은 인생에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환상이 아닌 실감으로 느끼게 될 때가 많았었다.

나는 둘째 딸을 참 아기자기 예쁘게 길렀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사는 그는 어려서부터 나의 그림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가 스무 살이 넘고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나는 공연히 안절부절 불안했고 스물다섯 살이 되자 비로소 마음이 놓이던 이유는 일란성 쌍동녀 같았던 여동생이 그 스물넷에 죽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생전에 다정했던 여동생의 외로운 영혼이 나의 모체에 들려 전생한 것이 아닐까 했던 부질없는 기우 때문이었다.

그 이전 나의 소위 세계일주 스케치 여행 때 나는 마지막으로 이태리의 피렌체에 들려 위지미술관에서 보티첼리의 <뷔너스의 탄생>등 작품을 보고 참 행복했었다.

또 그의 대표작인 <봄의 탄생>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였다. 맨 앞에 현세의 히피같이 꽃에 둘러싸인 모습의 신비로운 미소를 띄운 주인공 같은 여자에게 반했었다. 훗날 책에서 읽고 안 일이지만 그 모델의 주인공은 시모네타라는 이름의 당시 성주의 딸이었다는데 일찍 죽었다고 했다. 나는 또 전생의 여동생 문제가 해결되다 보니까 딸이 시모네타의 전생이 아닌가 하고 막연한 불안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지나친 사랑에서 해방된 그녀는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 딸과 나와의 인연이 끊기다시피 되어 어떤 동화에 나오는 마술사에게 어린 딸을 빼앗긴 것 같아 시모네타의 환상이 현실화 되었음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지금 이 순간 눈을 감지 않는데도 내 방에 있는 뭇 사물과 함께 노오란 기생(妓生) 코스모스라든가 썬세트(노을빛 코스모스), 라이락, 호박잎, 몇 그루의 상록수들 사이로 우리 개 꽃순이가 뛰어 놀던 서교동 집뜰 정경이 오버랩 해와 좁은 시야가 무척 번거롭기만 하다. 우리는 몇 달 전만 해도 그 집에서 살았고 결코 행복했다고 할 수 없는 그 시절이었지만 뜰이 있고 개도 있고 꽃도 피고 가족들도 많았던 그 시절엔 생활의 리듬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사랑의 대상들이 차례차례 나에게서 떨어져나갔고 나는 노모와 함께 이 아파트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둑후둑 맥박이 뛰듯한 희비극이 소용돌이치던 서교동 생활을 청산하고 보니 이곳은 외부의 냉냉하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너무나도 고요하기만 하다. 또 대인 공포증으로 사람이 싫어진 나로서는 안성맞춤의 환경 속에 들어앉아 버려 다행한 일인지 모르나 한편 서글퍼진다.

강변도로를 연해 솟은 도신의 현대식 건물들, 그리고 멀리 엷은 빛으로 펼쳐진 산들은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강변로에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의 행렬이 있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 버스요 승용차들일까. 그 사이에 또 어디서 오고 있는지 하얀 전동차가 평화롭게 지나간다. 유선형으로 된 머리부분과 까만 점 같은 차창들이 꼭 누에같이 생겼다.

윤회 전생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보이지는 않지만 각기 정해진 칸에 수용되어 저런 열차를 타고 언젠가는 종점에 닿아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닌지.

우등열차에 오른 인생, 그리고 정감서린 좋은 동승자들과 어울려 앉은 요행의 인생은 보다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신고(辛苦)끝에 좌절되고 더러는 이겨내서 그 체험 때문에 깊고 완숙된 정신적 승리자가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열차를 탔을까, 가슴에 손을 얹어 생각해본다. 전자도 후자도 아닌 퍽 어정쩡한 완행열차를 타고 있고 어느덧 종점이 다가오는 시간을 달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짧다면 아쉽고 길다면 어차피 지나가 버린 사연들은 다시 붙잡고 싶지도 않는 미련 없는 과거일 뿐 이상하게도 담담한 기분이다.

그러나 ‘나’ 어떡하란 말인가. 무척이나 보고 싶은 얼굴들을 많이 잃었었다. 나는 사람은 죽으면 저승에 머무르는 동안 사랑하는 혈육이나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학자 점술가의 말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에 쓰여 있는 구절인데  저승의 시간대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오백 년이 걸려도 만날까 말까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정말 어떡하란 말인가…

궂은 일, 때로는 좋은 일들로 수다한 사연들을 안고 후려치는 바람막이 하느라 정신 차릴 수 없던 사이에 세월은 흘러갔고 살아 있는 혈육들마저도 뿔뿔이 너무나 먼 곳으로 흩어져 나가 있는 고독을 새삼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저렇게 바라다 보이는 강 건너 수묵화같이 희미하게 보인 곳으로 말이다.

내가 타고 있는 인생열차의 칸에는 낯 설은 타인들로 꽉 차 있는 것만 같다. 그 속에서 내가 먼저 콜라나 담배를 권하며 친해 보려고 말 붙임 해 보려는 외로움…

그런데 어느 간이역에 열차가 잠시 멈췄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누군가 다른 칸에서 뭣을 들고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엄마, 도시락 먹어. 엄마가 이 기차에 탄줄 몰랐네. 나는 쩌어기 앞칸에 타고 있었는데..’

나는 운명적으로 함께 나란히 앉은 든든한 자식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비록 칸은 달라도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자식 하나가 꼭 있다고 믿고 있다.

창 밖 저어 아래서 강변의 버들가지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오늘따라 유난히 친근감이 더 느껴지는 버드나무, 내 친구.

아무튼 종착역까지 가는 시간까지 끈질기게 일하고 먼 후세에까지 평화롭게 누에 같은 자동차가 달리고 있을 수 있는 복된 세상이 무궁하게 지속되길 빈다.

요즈음 와서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금요일 다음엔 토요일이 오기 때문이다.

금요일엔 장에 가서 이것 저것 골라 찬거리를 사온다. 토요일에는 기다려지는 혈육이 오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손자놈을 데리고 오면 나는 그놈을 안고 강 위를 훨훨 나르는 하얀 물세를 보여 준다.

무척 신난다는 표정의 그를 볼 때마다 ‘대부’의 돈 클레오네가 만년에 뜰에서 손자와 놀고 있는 장면이 떠올라 한없이 애수에 잠기기도 한다.

토요일엔 또 군복무가 얼마 남지 않은 막내가 오는 날이다. 그리고 일요일엔 부대로 돌아가 버린다. 워낙 친구들을 좋아해 불려나가 버리니 무정하게도 나와 대화를 나눌 시간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기다린다.

노모는 아침을 들지 않고 나는 저녁을 먹지 않기 때문에 서로 시간대가 뒤틀려 우리 식구들이 함께 식탁에 앉아 보기는 거의 없는 생활이다. 결국 제각기 혼자서 밥상을 받게 된다. 우리 집의 가정적인 고독은 여기에 그 근원이 있는 것 같다.

일각일각, 목각에다 칼집을 하듯 시간은 깎여 내려가는데 나는 커튼을 걷어 창 밖 경치를 바라본다. 휘황찬란한 강북(江北) 불빛 그림자가 물에 비치지 않는 것은 추위에 한강이 꽁꽁 언 탓인가 보다.

멀리 줄이어 달리는 자동차 불빛은 호박넝쿨 위를 나르는 뽀얀 반딧불같이 아름답다. 나는 이곳에서 사는 동안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나름대로 느끼며 답답하면 춘하추동 변하는 강물, 눈 오고 비 오고 때때로 안개 자욱한 강변풍경을 바라보면서 생업에 미쳐 살  길밖에 없다.

칠흙 같은 하늘에서 눈보라가 휘날리기 시작한다.

나는 갑자기 에밀리 브론테처럼 의젓한 자세로  창 밖을 응시한다.

브론테의 시야엔 공동묘지와 멀리 은백색으로 펼쳐진 폭풍의 언덕이 보였을 것이다.

내 시야엔 역시 어둠과 하얀 눈이 엉켜 은회색 하늘과 닿아 버린듯한 강건너 도시의 뿌우연 불빛 띠가 그지없이 묘하게 보인다. 눈 아래 강변로를 끊임없이 달리는 자동차 불빛 띠 역시 희한하다.

이런 상황은 나를 에밀리 브론테로 만들고 어떤 시대가 돼도 상관없는 어느 성주의 미망인으로도 만들어 버린다.

환상은 꼬리를 물어 먼 태고와 미지의 미래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꿈같은 풍물이 보이는 듯해 앞으로의 작품을 위해 찰칵찰칵 가슴 속에 든 사진기 셔터를 눌러재킨다.

하염없는 환상을 깨듯, 어머니 방, 텔레비젼에서 흘러간 가수가 부르는 노래 ‘아, 아, 아 황혼의 엘~레~지…. ‘가 새어 나오고 있다.

 

  1. 나의 필사 筆寫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PC keyboardtyping하는 것을 뜻함.

사진을 통한 하느님은..

지나간 주, 주일날 대림특강이란 것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었다. 대림절 the Advent 이면 거의 예외 없이 있는 이 ‘특강’ 에서는 , 몇 년 전까지 이곳의 보좌신부님으로 수고하시고 귀국한  ‘애 같이 해맑은‘ 한민 토마스 신부님이 강론을 하셨는데 역시 ‘예의’ 강론 내용과 스타일은 전혀 전과 변함이 없었다. 일상에서, 특히 가족관계에서 몸소 겪었던 것들에서 어쩌면 그렇게 주옥 같은 영성 소재들을 찾고, 실감나게 전하는지, 이것은 이 신부님만의 ‘특기’인 듯 싶었다.

재미도 있지만 깊이 있는 강론 끝에 ‘예수회 후원회’ 간담회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우리도 참석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책 한 권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 제목이 너무도 평범한 느낌의 ‘하느님 나라 이야기’였다. 특강을 마치며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었는데 물론 ‘저자’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 ‘김우중’ 수사,  이것 또한 너무나 세속적 이름이 아닌가… 큰 관심을 가지기에 역부족인 듯 했지만 저자에 관한 ‘개인적인 사연’을 간단히 들었기에 관심을 갖고 그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대한민국 대학원 출신, 자동차회사 연구원 생활 이후에 길고도 험난한 사제의 길을 택한 수사님이라면 예사롭지 않은 경험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

책, book 이라기 보다는 ‘소책자’, booklet에 가까운 ‘사진과 글’이 적당히 얽힌, 편한 소파 에 누워 읽기에 안성맞춤인 책.. 이 ‘젊은 수사’가 과연 얼마나 오래 살았기에 이런 ‘경험적 영성’을 말할 수 있는지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거의 모두 나에게는 친근한 느낌으로 글과 사진들이 다가옴은, 나와 ‘파장, 화학’이 맞는다 고나 할까..  결국, 대림절과 대림 특강과 잘 어울리는 선물이 되었다.

예수회 한민 토마스 신부님,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우리 성당의 주임신부님으로 오시길 기도합니다.

 

이 소책자의 많은 글 중에서 다음의 사진과 글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김우중

 

 

빛과 어둠

 

빛이 강하면 어둠 또한 강합니다.

한 여름의 강한 태양빛은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지난 시간 유난히도 짙은 어둠 속에 사셨다면,

그만큼 강한 빛을 받으며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몰랐던 것은

빛을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빛을 향해 돌아서기만 하면 됩니다.

 

고통과 괴로움에 묶여있던 시선이 빛을 향하는 순간,

하느님의 은총이 매우 강렬한 빛처럼

늘 나에게 쏟아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태양은 늘 떠오릅니다.

이제는 빛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빛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욱 강한 빛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 글과 사진을 읽고 보며 생각에 잠긴다.

시각이 정상인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빛’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당연한 것일까? 빛을 물리적으로 보는 것과 그것을 ‘초월한 것’으로 보면 너무나 느낌이 다르다. 빛이 있음과 없음은 시각이 있으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영혼이 느끼는 빛이 없는 것은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다르다. 그야말로 ‘지옥’이 바로 그 빛이 없는 곳이 아닐까?

따라서 빛과 ‘절대적 존재, 하느님’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 인간이 그렇게 자랑하는 ‘물질적 과학주의 materialistic scientism‘에 의하면 빛과 ‘에너지’는 같은 종류이다. 한마디로 에너지가 있으면 ‘존재’이고 에너지가 없으면 ‘허공’ 그 자체인 것이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한때 ‘고립감, 허탈함, 고독,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던 시절에 나는 분명히 ‘빛’을 싫어한 경험을 했다. 보이는 것이 다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옥’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느끼는 것 역시 ‘빛의 존재’ 였다. 나는 분명히 주위를 밝히고 싶었다. 그것이 ‘악으로부터의 탈출’ 의 시작이었다. 밝음, 빛, 그것이 전부였다. 그 빛은 누가 시초에 생기고, 만든 것인가…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빛을 향해 돌아서는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C’ wire, monastery, 2 books

¶  Running ‘C’ wire Smart Home, Smartphone (now one word), Smart TV, 그리고 Smart ‘Stat (thermostat) ..

덧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를 스쳐 지나는 이런 단어들,   이것들 중에서 나와 역사적으로 제일 오래된 것이 smart home일 것이고,  다음이 Smartphone, 그리고 지금 나의 코앞에 다가온 것이 바로 Smart Thermostat 이다. 얼마 전에 두 ‘아이’들이 우리에게 준 2대의  ‘dumb’ 40+” TV는 Roku, ChromeCast gadget 덕분에 곧바로 Internet streaming를 하는 smart tv의 기능을 갖추게 되어서 그런대로 우리 집도 ‘현대화’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큰딸 boyfriend Richard가 최신형으로 upgrade 한다고 2개의 smart thermostat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이 EcoBee 라는 ‘웃기지 않게’ 비싼 사치품 thermostat였다. 집안의 heating & cooling system(HVAC) 을 control 하는 것이 thermostat인데 이것의 내부 구조는 간단한 electrical switch에 불과해서 예전까지 이것은 비쌀 수가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것이 복잡한, 그러니까 smart하게 보이는 기능을 잔뜩 넣어서 멋진 fashion을 만들어 고가로 파는 것, 나에게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추세다. 수백 년 전통의 coffee를 Starbucks로 비싸게 파는 것이나 맹물을 bottle에 넣어서 파는 것과 다를 것 하나도 없다. 하지만 비싼 것은 비싼 이유가 있을 것이다.

2 ‘given’ Ecobee smart thermostats

 

현재 우리 집에 있는 것은 기본적인 programmable thermostat로서 하루에 네 번 정도 시간에 따라 온도를 조절하는 model로서 사실 그렇게 불편한 것은 없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집에서는 더 복잡한 timing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retire한 상태에서는 복잡한 것이 더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이것을 program 하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 않다. 대부분 어두운 복도에 설치된 이것을 서있는 상태에서 그 작은 글씨를 보며 program하는 것 거의 torture에 가깝다. 그래서 한번 program해 놓으면 거의 바꾸지도 않고 그러기도 싫은 것이다.  그런 것이 지금은  Smartphone이나 PC의 보기 좋은 screen을 편한 곳에 누워서 program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나는 족하다.

이것을 나에게 주면서 Richard는 현재 우리 집 thermostat에  ‘C’ wire가 연결되어 있냐고 물어서..  속으로 이것이 무슨 말인가 궁금했지만 우선 ‘있다’고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없는 extra wire, 24V transformer의 ‘common’ (power return) 임을 알게 되었다.

왜 이 ‘놈’이 필요한가 보니, smart ‘stat(thermostat)는 Smartphone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small computer라서 power, 본격적인 전원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다.  작은 computer라고 했지만 기능적으로 보면 웬만한 예전의 desktop PC의 그것이고, 특히 WiFi 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보다 energy를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과 다르게, 오래 전에 쓰던 mechanical ‘stat는 전혀 power가 필요 없었고 요새 많이 쓰고 있는 programmable ‘stat는 거의 모두 battery를 쓰기에 따로 power supply wire가 필요 없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4 wires가 필요한데 (1) 24V hot side, (2) fan on, (3) heat request, (4) cool request 가 그것들이다. 예를 들면 heat가 필요하면 (1)과 (3)을 연결하면 된다.  그러니까 24V hot side가 return되는 ‘common’ 이 사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새로 나오는 smart ‘stat들을 ‘팔아 먹으려면’ 이 extra wire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해결책은 이 wire를 furnace control board로부터  thermostat가 있는 곳까지 끌어내야 한다. 이 작업을 과연 몇 명이나 ‘감히’ 할 수 있을까.. 물론 handy한 공돌이를 제외하고. 

다행히도 우리 집의 in-wall wiring은 home pc networking 시절부터 10base2, 그 후의 CAT5 cabling 까지 모두 내가 설치했기에 사실 이번의 ‘C’ wiring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정도로 쉬운 job이다. 다행히 남아도는 CAT5 cable이 많아서 그것으로 위층은 해결이 되었다. 아래층 것이 끝나면 드디어 EcoBee 를 연결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요새 아이들 자랑스럽게 말하는 ‘Smartphone으로 언제 어디서나 집의 온도를 맞출 수 있다’ 라는 것, 나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토요일을 수도원에서:  싸늘하지만 기가 막히게 화창한 ‘영광스러운’ 가을 하늘아래 일년 만에 다시 한 시간 정도의 drive로 Conyers, GA 의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은 사실 부끄럽지만 ‘자발적’으로 간 적은 없고 무슨 계기가 있으면 가는 그런 곳이다. 위치나 분위기를 보아서 이곳에 갔다 오면 다음에는 반드시 ‘자발적’으로 가보자, 문득 ‘평화로운 곳’ 생각이 들면 그곳을 차를 몰자.. 등등의 상상을 해 보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계기’가 생기만 거의 두 번 생각을 안 하고 OK를 하곤 했다. 올해도 그런 식으로 연숙을 포함한 교사들이 인솔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의 예비신자 교리반 일행을 따라서 가게 되었다.

 

a spectacular view of the pond at the monastery..

 

5~6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렇게 생소하던 곳이 이제는 연륜이 쌓여가는지 아주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 든다. 제일 기억에 남던 때가 레지오 피정을 이곳에서 했을 때가 아닐까? 밤늦게 어두운 대성전에 홀로 앉아서 묵상하던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아주 강렬한 것이었다. 사람은 역시 ‘주위 환경’에 철저히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오감의 피조물이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무엇을 이런 곳에서 느끼고 받을 수 있음을 경험한 곳이기도 하다.

교리반 학생들은 이런 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이날도 방문후의 소감들을 나누는 시간에서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너무나 생소한 것을 보았다는 나눔, 이해가 간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생소함과 더불어 ‘신비적 경건함’도 느꼈다는 나눔은 아주 고무적인 것이 아닌가?  이들의 앞으로의 신앙여정은 어떨까..  과연 얼마나 궁극적으로 ‘절대존재’를 알게 될까… 큰 유혹 없이 세례의 은총을 받게 되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이날 오랜 만에 gift shop에서 책을 한 권 샀다. 몇 년 전에 왔을 때 C. S. LewisThe Joyful Christian이란 책을 산 적이 있었고 그때 이곳은 Amazon.com 같은 discount가 없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list price대로 파는 것이다. 이것으로 수도원을 유지해야 함을 누가 모를까? 이날도 그것을 알고 샀는데, 메주고리예 발현에 관한 Janice T. ConnellThe Vision of the Children 이란 책으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주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비교적 읽기 쉬운 책으로 오자마자 거의 1/3을 읽었는데 ‘뜻밖의 보물’이란 느낌이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

 

¶  2권의 ‘반갑고 고마운’ 책들:  문밖에서 bell 소리가 들린다. 누가 온 것, 귀찮은 sales, 아니면 delivery? 조용히 밖을 보니 벌써 누가 무엇을 문 앞에 놔두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하~ FedEx van이 보이니 무엇이 배달된 것이었다. 익숙한 package이지만 나는 요새 아무것도 산 것이 없는데… 하고 shipping label을 읽으니.. 아니~ 대한민국에서 온 것, 누가?  아하~ ‘도사’ 양건주가 책을 보낸 것이었다.

 

FedEx package from Korea

 

얼마 전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되어서 너무나 반가웠는데, 이상하게 ‘주소’를 물어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책을 보내려고 그랬던 것이다. 다시 눈가가 찡~ 해 짐을 느꼈다. 친구야, 친구야… 고맙다, 친구야.. 어쩌면 너는 그렇게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은가? 나는 아무래도 못 따라가는데.. 이 친구에게 받았던 ‘책 선물’이 꽤 되는데.. 책 값도 그렇지만 이렇게 실제로 행동으로 귀찮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고물 우정’에 어떻게 응답을 한 것인가?  이해인 수녀님의 ‘기다리는 행복’ 이란 수필집과, 얼마 전에 출판된 ‘따끈따끈한’ 책 ‘글배우’라는 독특한 이름의 저자가 쓴 ‘오늘처럼 내가 싫었던 날은 없다’ 라는 제목을 가진 책, 모두 2권이었다. 책 값만큼 우송료가 대단했는데.. 그것도 FedEx로 속달이 된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은 사실 종파를 떠나서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분이지만 연숙이 특히 좋아하는 수녀님이다. 그 책은 연숙이 먼저 보기로 하고 나는 현재 ‘글배우’라는 저자가 쓴 ‘오늘처럼…’ 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잠깐 훑어 보니 대부분이 ‘상식적 수준의 조언’들이지만 어떤 것들은 나의 생각이 맞는다는 재확인을 하게 하는 것들도 보였다. 책의 부제가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줄 글배우의 마음 수업’으로 되어있으니 아마도 대부분 ‘무너진 자존감’에 대한 조언들일 것이다. 나의 자존감은 분명히 예전 보다는 많이 오른 상태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는 ‘벗’이 지구상 어디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하늘로 뜨게’ 만든다. 건주야.. 고맙다, 고마워. 행복하게 살아다오.

 

글 글, 글의 精粹

 

“이번에 글을 쓰면서 나는 이런 것을 생각해 봤읍니다. 즉 하나의 글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인격과 비슷하다는 것 말입니다. 나는 글의 내용을 글의 생명으로 보았고, 그 내용을 이루고 있는 사건들을 글의 몸에 비교해 보았읍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문장화하는 표현을 한 인간의 옷에 비유했었고, 또 그 표현의 테크닉을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삶의 멋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를 생각해 봤읍니다. 남에게 호감을 주고 또 존경 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격과 좋은 몸매와 단정한 옷차림과 명랑하되 고상한 삶의 멋을 적절하게 가져야만 하듯이, 글이란 것도 그래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2쪽

 

어젯밤 거의 우연히 나의 손에 ‘잡힌’ 책, ‘존경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장편 서사시적 실화소설 ‘영원의 방랑객’ 을 ‘난독’하며 나의 눈에 들어온 ‘글에 대한’ 글이다.

 

“트렁블레 신부가 술잔을 들자 나도 술잔을 들어 축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날 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나는 감격해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학교라고는 왜정 시대 소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내가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그것이 곧 책으로 출판된다니 도무지 꿈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실감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3쪽

 

국민학교 출신, 문학적 수업은 물론 국어교육조차 제대로 못 받았던 이 ‘전설적’인 고 (종옥)마태오 신부님이 한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로 책을 쓰시고 출판1하기 전에 밝힌 ‘글이란 무엇인가?’, 한 문단으로 집약된 신부님의 ‘글의 정수 精粹’ 론 論이다.

‘진짜 글’은 ‘한 인간의 인격’이다. 내용은 생명이고, 내용 중의 사건들은 몸, 문장화 된 표현은 옷, 표현의 기교는 삶의 멋..  이것이 신부님이 생각한 글의 모습이다. 간단히 말해서 글이 글다운 멋을 지니려면 그 저자도 함께 멋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것이 아닐까? ‘못된 인간’이 쓴 글은 어쩔 수 없이 ‘못된 글’이라는 비교적 자명한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데, 이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자세는 그가 쓴 글에도 100% 그대로 남아있어서 가끔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이것을 읽고 생각하며, ‘나의 글’을 되돌아 보게 된다. 지나간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적, 공적인 나의 글 (개인 일기 diary 와 블로그 public blog)을 가끔 읽게 되는데, 어떨 때는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하고 부끄러운 감탄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좀 더 솔직히, 자세히..’ 라는 아쉬움도 많다. 특히 ‘자기 도취, 자기 연민’이 대부분인데, 한마디로 ‘삶의 사연들, 그것도 감동적인..’ 이 절대로 결여되어 있다. 이래서 글의 본질에 내용을 이루는 ‘사건’들을 잘 창조하고 이끌어 나가는 저자의 삶이 절대로 중요함을 느끼고, 위의 고 마태오 신부님은 그런 면에서 거의 신화에 가까운 ‘감동적 삶의 연속’을 경험하셨기에 ‘글의 정수’의 표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

열대성 기후가 아직도 섞여있는 2018년 초가을, 날씨 탓도 있지만 이렇게 나의 머리가 정리되지 못한 혼탁한 상태에서 우연히 다시 손에 ‘걸린’ 이 책 속의 ‘인간애의 표본’ 고 마태오 신부님.. 아직도 살아 계셨으면 당장 비행기라도 타고 가서 뵙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말을 그대로 일생을 통해 실천하신 고 마태오 신부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글로 표현이 되지 못한 생각은 진정한 생각이 아니다’ 라는 명언을 생각하며, 나도 좀 더 솔직하고 꾸밈없고 용기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습기가 사라진 진정한 가을하늘을 기다려본다.

  1. 프랑스어 제목: ‘모든 길을 신에게로’, 후에 출판된 한국어판 제목: ‘예수 없는 십자가

민족과 문화 – 길현모

40년 만에 다시 읽는 명 논설, ‘민족과 문화’. 내가 이 논설을 읽었던 때가 1978-9 년 경이었을 듯하다. 당시 ‘월간중앙’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별책부록으로 ’10년간 게재 월간중앙 명논설집’이란 것이 나의 손에 들어왔다. 1978년 4월호의 부록이었다. 그 중에 인상 깊게 읽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는 논설이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 나이 30세에 읽었고 40년 후에 다시 읽은 것인데, 아직도 나는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변했나’ 하는 것에 주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을 비교하는 것이다.

고유한 문화와 그릇된 애국심의 허구성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는 글, 그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논설이 원래 발표된 것이 1974년이고 당시의 국내정세는 추측하기 힘들지 않다.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럴 때, 이 저자는 왜 고유문화, 국수주의적 애국심을 비판했을까? 그것이 유신체제를 간접적으로 공격한 것이라면 어떻게 이 글이 무사히 게재가 되었을까?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제약’을 멋지게 우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의 개방, 인류의 공통적 재산임을 주장하는 이 글은 결국 40년 뒤의 현 대한민국의 일반적 실상을 예언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100년 동안이나 서구문명을 수용했던 일본의 성장을 부러워하던 저자의 글대로 대한민국도 이제는 그에 못지 않은 개방적 문화를 자랑하지 않는가? 이런 문화적 발전이 정치적 발전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나는 아직도 단언은 못하지만, 아마도 방해는 안 되었을 것이다.

 

民族과 文化

길현모 吉玄謨 서강대교수 서양사

 

약력

1923년 평북 희천 熙川 生

1949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졸업

1963년 서강대 교수

 

文化方向의 倒錯

근래 강화되고 있는 문화의 국수주의적 경향을 경계해야 하며 민족정신론에 대한 비판을 서둘러야 한다.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이 문화정책이란 문화라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해서만 올바르게 수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란 결코 용이하게 이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여기서 오늘날의 우리의 문화방향이 올바른 방향을 지향해 나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물론 표제가 이미 말해주고 있듯이 필자의 문제에 대한 견해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필자는 자신의 비판적인 견해가 감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까닭에 다만 결론뿐만이 아니라 지면이 허용하는 한 자신의 논거를 윤곽이나마 제시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문화란 원래 인류의 공동의 재산이다. 거기에는 국적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적을 붙일 수도 없다. 설사 국적을 붙여 본다 한들, 기득권이 행사될 수도 없고 특허나 독점 등의 권리가 설정될 수도 없는 문화에 대해서는 그것은 완전히 무의미한 일이다. 다시 말해 문화는 군사력이나 정치권력에 의하여 一國民의 독점물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 기원이나 출처 여하를 막론하고 오직 그 힘을 필요로 하고 그 가치를 이해할 줄 아는 자들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개방된 寶庫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은 문화국민이라는 것을 말할 때에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문화의 국적이나 계보나 고유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국민복지에 이바지할 수 있는 문화적 총역량만이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명백한 사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전시대의 신화처럼 퇴색해 버린 문화의 고유성과 문화의 순수성에 대한 숭상이 새로운 활기를 얻어 팽배하고 있으며 외래문화를 국적 없는 문화로서 배척하는 국수주의적 경향이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배타성과 폐쇄성은 언제나 문화의 불모, 문화의 자살을 향한 첩경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은 근래에 와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 국수주의적 경향을 크게 경계해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은 도착된 문화방향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민족정신론과 고유문화론의 핵심에 대하여 검토와 비판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문화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또한 그것은 때늦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은 하나의 ‘터부’로 化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民族 文化論의 系譜

요즈음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표현을 빌린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도의는 땅에 떨어졌고 국적 없는 문화가 잡초처럼 무성한 가운데서 소비성 문화가 범람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문화 현황에 대한 이와 같은 진단은 우선 그 비관적인 색채에 있어서 안정과 번영을 구가해온 정치나 경제계의 진단과는 극히 대조적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이와 유사한 암담한 문화 진단은 수십 년을 두고 되풀이 되어왔을 뿐 그간에 아무런 進境을 보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핵심도 없고 두서도 없는 피상적인 문화 진단이 문화적 소양을 기본자질로 삼지 않는 일반 정치인이나 지적으로 미숙한 대학초년생 정도가 내려본 것이라면 구태여 문제 삼을 일은 못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수준의 문화 진단이 우리나라의 문화계의 제일선에서 지도적 지위를 독점해온 사람들의 입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어 왔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 문화위기에 대한 감상적인 개탄만을 토로해 왔을 뿐, 최소한도의 진지한 문화 분석의 결과를 제시한 일이 없으며 더구나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원인 규명의 노력을 제시해 본 일도 없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는 이직도 초보적인 문화론조차도 없이 문화위기의 단정만이 되풀이 되어온 셈이다. 물론 이러한 가운데서도 그들이 일치하여 내세운 한가지 논점은 있다. 즉 그것은 문화적 위기의 유일한 원인은 민족정신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지극히 당연하게도 이에 대한 유일한 대책은 민족정신을 진흥 고양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로서는 오늘날의 우리의 문화 상황이 민족정신의 저하 내지는 추락을 반영하는 것인지, 그 서서한 혹은 급격한 상승을 나타내는 것인지에 대해서 판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앞서서 필자에게 있어 우선 문제되는 것은 그들이 항상 자명한 것처럼 내세우는 민족정신이란 그 명확한 내용과 속성이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명한다는 일은 필자에게는 오랜 숙제의 하나이었던 것이다.

사실 오늘날 4,5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민족정신이란 말은 이미 오랜 세월을 두고 낯익어온 말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우리 주위에서 보급되는 민족정신론의 발상과 표현 상태와 선전 방식의 어느 것에 대해서나 거의 생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일제치하의 10대, 20대의 어린 시절부터 민족정신에 대한 무수한 강론을 들어왔고 이를 고취하기 위한 허다한 운동을 체험해 왔기 때문이다.

먼저 일제는 일본민족의 민족정신이 세계에 유례없는 가장 우수한 정신이라고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따라서 우리들은 그들의 지배하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의 지도자들은 한 민족에게는 오히려 일본의 민족정신보다도 더욱 우수한 고유의 민족정신이 있으니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서 독립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응수했다. 말하자면 우리들은 한국의 민족정신과 일본의 민족정신과의 싸움 속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민족정신론의 모방성

이상과 같은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들은 얼마 안 가서 자기 나름대로 이 문제를 졸업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많은 노력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대화혼 大和魂 즉 일본의 민족정신이라는 것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따라서 무엇이 고유하고 무엇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정신인지를 전연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일에 이르러서 필자는 다시 자신이 이 문제의 이해에 심히 미흡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유는 민족정신론의 기수로서 자처한 일본인들의 배후에는 이 분야의 대선배가 있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민족정신론의 계보에서의 시조로서 독일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줄리앙 방다’의 말에 의하면 국가간의 정치적인 싸움을 민족문화의 싸움으로 확대하고 민족정신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창안해 쓰기 시작한 것은 독일인들이며 그 정확한 시점은 1813년이라는 것이다. 또한 문화인들이 자기들의 문화활동의 소산을 민족정신의 발현이라고 의식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독일의 ‘레싱’과 ‘쉴레겔’ 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상의 사상적 배경이 개성숭배를 모태로 한 독일 낭만주의였다는 사실은 지적할 필요조차 없다.

이리하여 민족정신론의 조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는 이를 숭상, 고취한 수많은 문화인들을 배출하였는데 마침내 그 최고의 완성은 ‘프러시아’ 군국주의의 어용사가로서 유명한 ‘트라이츠케’에 이르러서 이루어졌다. 필자는 근래에 독일인들의 민족문화론 내지는 민족정신론과 일본인들의 그것과는 대비해 보기 위해서 일제 후기의 일본 문화계의 대표적 저작들을 읽어 보고 그들의 민족정신론이 독일의 선배들을 모방, 표절한 아류임을 다시 확인하면서 일종의 감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오늘의 우리나라의 민족문화론자들의 선의 善意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박한 심정의 소유자일 것이며 애국의 충정에 차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기필코 다짐해 두어야 할 일은, 만일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건설의 핵심적 토대를 민족정신론에 두고자 한다면 자신들의 논의 의 발상과 표현 방식을, 선전과 운동의 전개 형식을, 표어와 선언문과 내용 및 어조를 이상과 같은 민족정신론의 역사적 계보에 비추어서 대비 검토해 달라는 일이다.

만일 그들이 의식 못하는 가운데서 현대사상 전율할 만한 문화적 파괴와 민족적 죄악을 남긴 불길한 사상적 계보와 너무나도 놀라운 친연성 親緣性 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하루 속히 이를 청산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復古

문화 내용의 분석-검토를 위해서나 문화 건설의 효과 있는 계획을 위해서나 이에 앞서 이룩되어야 할 여건은 문화 형성의 기본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역사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고등한 문화는 반드시 고등한 종교를 토대로 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를 보완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등한 문화는 하나의 고등종교 내지는 신앙의 경지로까지 숭앙될 수 있는 하나의 이념 체계를 핵심으로 해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서 문화란 이상과 같은 핵심 이념을 향해 바쳐진 사회 구성원들의 헌신의 소산인 것이며, 그들의 순교적 신앙과 희열에 따라 찬란한 광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과거 역사 속에 나타난 불교문화나 유교문화의 문화 소산을 통해서 이상과 같은 이치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상과 같은 문화이념은 구체적으로는 해당 사회의 원대한 목표 즉 이상으로서 구현되며 이로부터 반드시 황금시대를 동경하는 지향성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의 문화가 이상사회를 실현할 황금시대를 미래 속에 설정하게 될 때에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지니게 되고, 과거역사의 특정시대 속에서 그 모형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復古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복고란 그것이 정당한 것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가피한 이유가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일정한 질서 즉 특정의 대상과 시기가 설정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현재에 지향할 이상적인 문화이념이 불교적인 것이어야만 한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불교문화의 최고의 황금시대가 복고 대상이 될 것이며 이 때에는 천여 년 전의 불교문화의 모든 유산들이 성스러운 후광을 지니고 우리들의 새로운 숭앙의 대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우리가 추구할 문화이념이 유교이념이어야만 한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숭앙은 유교문화의 황금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며 이때에는 유교문화가 남긴 단편적 유산조차도 우리들의 무한한 감동의 대상이 될 것이다. 복고시대의 문화창조의 정신적 ‘에너지’는 바로 이러한 성질의 것이다. 그런 까닭에 ‘크로체’의 이른바 ‘노스탤지어’의 역사서술도 그것에 수반되는 커다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에 한해서는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의 경우와 같은 무질서, 무한정한 ‘노스탤지어’는 도대체 어떠한 정당한 근거를 가진, 무엇을 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왜 우리들은 지난 시대의 모든 유물, 풍습의 보잘 것 없는 흔적에 까지도 그다지도 깊은 감동을 느껴야만 하는 것인가.

구석기시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조상들의 모든 행적과 유물에 무조건의 숭상과 애착을 강요하는 이와 같은 복고란 정신분열적인 지력과 감정의 낭비 이외의 것이 아니며 필경은 그릇된 복고, 맹목적인 복고의 통탄스러운 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의 사이비 似而非 문화인들은 정책적인 노선에 부화뇌동하면서 복고의 환상을 끈임 없이 확산하여 국민들의 맹목적인 好古 性向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원보다 중요한 변화와 발전

아마도 그들은 복고의 이념을 우리의 민족정신 그것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우리의 민족정신의 고유성은 예의와 정결성의 존중, 그리고 평화애호의 미덕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상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인 이상과 미덕들이 어찌하여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것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예의의 근본은 인가니 개개인의 인격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또한 정결의 근본은 비단 심미적 성향 뿐만 아니라 위생과 사회기풍의 정결성을 토대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만일 오늘날 이러한 점에서 우리를 앞지른 국민들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 민족의 고유정신을 앞질러 모방했다는 논리가 성립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한 학문적 근거 자체가 모호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천 수백 년 전의 중국의 사적史籍 중의 몇 구절, 논거가 극히 의심스러운 가설 수준의 몇 편의 신화해석 등이 모두 의심할 수 없는 확증적인 자료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자료의 타당성에 대한 올바른 비판도 없이 역사적 방법도 아니요 언어학적 방법도 아닌 애매모호한 방법을 통하여 계시적 啓示的 인 결론만이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근거 위에 민족의 제단 祭壇 을 설치할 수는 없다. 만일 그들이 내세우는 정신적 대상에 대한 민족의 귀의 歸依를 요구하려 한다면 이를 위한 하나의 신학 神學 내지는 철학 체계를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이리하여 민족정신이 딸에 떨어졌다, 이를 진흥하기 위해서는 자각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상투적인 사고방식부터가 청산되어야 한다. 도대체 민족정신이 영원히 우리 역사를 관철하는 지고 至高의 정신이라면, 왜 그렇게도 쉽사리 땅에 떨어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자기모순 내지는 자기모독적인 표현이 아니겠는가. 만일 우리의 민족정신이 땅에 떨어졌다면 그것은 어떤 원인으로 어떤 시기부터 그리 되었다는 것인가.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일제의 침략의 결과라고 한다면 우리의 민족정신은 그들에게도 대항할 수 없으리만큼 그렇게도 무력한 정신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그것이 우리들의 무자각의 결과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왜 자각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인가. ‘게르만’의 자연신이 전투에 효험이 없다고 해서 ‘그리스도’교에 개종했다고 하는 ‘클로비스’의 지력에도 못 미칠 이런 수준의 논리가 왜 우리들에게는 오늘날까지 방치되어만 왔단 말인가

민족정신론자들이 상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해당 민족이 이룩한 역사상의 두드러진 업적과 인물들을 모두 민족정신의 구현이라고 주장하는 방법이다. 이런 경우에는 민족정신의 내용은 더욱 모호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으며, 마침내는 각 국민 간의 민족정신의 경쟁적인 전시가 현출될 수 밖에 없다. 소련인들은 1930년대에 이런 경쟁에 비상한 열의를 발휘하여 근대과학의 주요 발명과 창안들은 물론, 심지어는 ‘스포츠’의 주요 종목도 모두 자 국민의 창안이라고 발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결과가 세계의 냉소를 초래했을 뿐이었음은 우리들의 기억에도 생생한바 있다.

가령 ‘플라톤’ 과 ‘아리스토텔레스’ 가 ‘그리스’인이었다고 해서 오늘날의 ‘그리스’인들의 철학적 자질이 특출하다고 보아주는 사람은 없는 것이며, ‘코페르니쿠스’가 ‘폴란드’ 인이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서 ‘폴란드’인의 탁월한 천문학적 자질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인류문명의 토대 자체를 타민족들에 앞서서 형성했던 ‘이집트’ 인조차도 오늘날에 와서는 문화민족의 대열에서 탈락된 지 이미 오래다. 역사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기원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과정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가 ‘마르크 불록’은 기원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역사가들의 병폐의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고유문화의 환상

위에서 우리들은 그릇된 민족정신론의 모순의 일단을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민족문화론이 낳아 놓은 쌍생아 雙生兒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는 다시 그들의 또 하나의 거점인 고유문화론에 대하여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원래 고유의 숭배는 개성적인 것에 대한 예술적인 영탄 映嘆 에서 비롯된다. 그런 까닭에 “개성적인 것은 형용을 초월한다”라는 유서 깊은 어구가 되풀이 인용되고 있다. 만일 그것이 개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예술적인 감흥으로만 시종되는 것이라면 거기에 하등의 문제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개성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을 고유의 것이라고 단정하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가장 우수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고유성의 기원을 판별하는 역사의 기능과 가치의 판별이라는 철학의 기능과 를 불가피하게 개입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의 문화가 가장 우수하다, 따라서 가장 가치가 있다는 단정은 타 문화와의 비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고유문화론자들이란 이성과 논리에 대한 기피성향을 본색으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귀착점은 논리를 포기한 무조건-절대절대라는 영역이다. 이로부터 그들이 신봉하는 표어로서 “내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절대 우수하다”라는 말이 탄생된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다음으로 고유성의 단정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길은 학문으로부터의 도피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역사적인 추적이 불가능한 환상의 세계나 신화의 세계, 혹은 이론적인 분석이 지난 至難 한 예술의 세계로의 도피습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서 ‘나치’ 독일의 민족이론의 귀착점이 ‘고대 게르만 영웅족’이라는 환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의 고유문화론자들의 중심 거점이 신화의 세계이었다는 사실만을 상기함으로써 족할 것이다.

원래 역사상 이름 붙일 수 있는 고급한 문화란 예외 없이 왕성한 문화교류의 소산인 것이며 반드시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만일 그 기원에 있어서 고유한 것을 찾으려고 한다면 사회생활의 완전한 폐쇄성을 상정할 수 있는 원시시대로까지 소급할 수 밖에는 없다. 문화의 고유성내지는 순수성이란 설사 그러한 것을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해당 문화의 저급성을 말하는 것일 뿐 결코 명예로운 표지가 될 수는 없다.

 

‘애국’이라는 이름의 문화적 폭력

물론 문화의 영역 내에는 지역적인 혹은 지리, 풍토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요인들은 고급한 문화에 있어서는 그 핵심 부분이 아닌, 다만 거기에 첨가되고 가미된 부분일 따름이며 전형적으로는 문화의 외곽산물일 따름이다. 즉 축제의 형식, 복장, 음식 등의 민속적 부분이 모두 그러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제 형식의 특수성이나 복장, 음식 등을 가지고 문화의 우열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여기서 우리들의 보다 신중한 검토를 요구할 만한 대상은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언어가 민족문화론에서 항상 큰 비중을 차지해 온 첫째의 이유는 그것이 민족을 구분하는 가장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흔히 사용되어 온 혈통이라든가 국토경계선 등의 기준에 비하여 민족의 구분기준으로서 언어가 지니는 개연적 蓋然的인 효용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고유한 언어이기 때문에 우수하다든가 언어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든가 하는 문제와 혼동될 수는 없다. 언어도 그 밖의 문화분야와 마찬가지로 교류와 상호 영향하에서만 풍부해질 수도 있고 발달할 수도 있다. 만일 우리 언어의 고유한 순수상태를 되찾는다고 말하면 과연 어느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경 그것은 언어의 원시화를 제창함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언어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의 한 작가는 ‘이탈리아’어를 자랑하면서 그 이유를 그것이 자기들만이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일이 있다. 이에 비하여 불어는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기 때문에 저급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날의 어리석은 웃음거리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는 반드시 하나의 웃음거리만은 아닌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도 같이 고유문화론 이란 문화와 역사의 본성을 무시한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고 고유성의 숭상 崇尙 이란 하나의  역리 逆理 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인 정확성을 숭상함에 있어서 그렇게도 지극한 이 나라의 일류학자들이 어찌하여 고유문화론 앞에서는 한결 같이 학문을 포기하고 공순 恭順 의 뜻만을 표시해 왔던 것일까. 이에 대하여 필자는 하나의 중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이들 고유문화론자들이 ‘애국’이라는 고지 고지를 이미 점령하고 그들에게 추종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비애국자’ 내지는 ‘반역자’ 의 낙인을 찍을 위협적인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안출 案出 한 성공적인 음모의 하나이었으며 그들은 이를 통하여 사실상 이 나라의 문화계를 위압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이러한 문화적 폭력을 이 이상 좌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권력층에 독점될 수 없는 애국심

이들은 진정한 애국심은 고유문화와 고유정신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신념을 토대로 해서만 비로소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래 애국심이란 고유문화 의식과는 무관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심정인 것이다. 그것은 향토와 동포에 대한 사랑의 자기 희생적인 발로 이외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립은 원시시대로부터 기본집단의 존립에 좌우되었기 때문에 집단의 존립과 방어를 위한 희생적인 헌신은 인간의 가장 본원적인 속성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들은 부모형제가 문학적으로 우수해야만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동포가 아무리 무식해도 우리의 국토가 아무리 빈약해도 그 수호를 위하여 우리의 애국심은 발동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애국심이란 소박한 부족애의 국민적 발현 이외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 발현은 자연적인 것이며 문화적 가치나 고유의식 등이 그 필수적 전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리를  허다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중국문화에 대한 지극한 존숭감 尊崇感 을 지니면서도 그들의 침략에 대해서는 항상 열렬한 애국심을 발휘하여 국토를 방어해 왔다. 우리들의 오늘날 있음은 민족정신이 무엇인지 고유문화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이름없는 조상들의 거룩한 애국심의 결과인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리스’문화를 높이 숭상하는 가운데서도 ‘그리스’인들을 능가하는 애국심을 발휘하여 그들을 정복하였다. 또한 영국인들의 문화를 이어받은 미국인들은 열렬한 애국심을 발휘하여 그들과 싸워 독립하였다. 아니 그보다도 ‘아메리카 인디언’ 의 부족애가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비해 참되지 못하다거나 강하지 못하다고 누가 감히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애국심을 고유문화론과 결부시킴으로써 이를 권력층들과 더불어 독점하려고 하는 일부 문화인들의 독선적, 배타적인 기도 企圖 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우리의 문화관을 보편적인 이성의 토대 위에 수립할 것인가 혹은 이기적인 감정의 토대 위에 수립할 것인가를 결정할 시점에 위치해 있다. 역사가 ‘크레블리언’은 ‘영국사’의 첫 대목에서 영국인들은 역사과정을 통해서 여러 민족들의 피를 섞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우수한 자질을 지니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한 개성숭배의 사상적 계보를 계승한 ‘마이네케’ 조차도 ‘민족정신의 우수성을 나타내려는 공허한 의도’를 비판하면서 이러한 의도는 ‘타민족들의 냉소’를 초래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민족의 자주성과 자긍은 문화의 고유성이라는 근원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다 확고한 기반, 즉 인류가 분유 分有 하는 존엄한 평등성 위에 확고히 수립하여야만 할 것이다.

 

‘호이징하’의 말 – 선택에 대한 책무

해방 후 수십 년간에 걸쳐서 우리들은 이 나라의 문화인임을 자처해 왔고 또한 학자임을 자처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회고해 보건대 그 동안 우리들은 하나의 뚜렷한 문화적 경륜조차도 제시해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우리의 족적은 지식의 빈곤, 철학의 빈곤, 역사적 안목의 빈곤을 나타내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이 땅의 일부 기성 문화인들은 지칠 줄도 모르고 단체를 결성하고 새로운 간판을 내걸고 당파싸움과 자리다툼에 몰두하고, 정치권력과 금력에 아부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들의 근래의 기치는 민족적인 것 다시 말해서 한국적인 것을 고취한다는 점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그리하여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문화’ ‘한국적 사고방식’ 등이 그들의 열렬한 숭상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이러한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국민학교로부터 대학과정에까지 이르는 교과서의 내용을 채워야만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이들은 국민문화와 국민교육 전반에 걸친 일대 변혁운동에 착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현하의 모든 부조리의 근원을 한국적 특수성을 가지고 합리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끝내 개별적인 가치가 보편적인 가치에 우선하고 개별적인 판단이 보편적인 판단에 우선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1935년에 ‘네델란드’의 사가 史家 ‘호이징하’는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암담한 역사적인 파국을 내다보면서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들이 체험하고 있는 무거운 정신적 압박의 시대는 젊은이들보다도 노인들에게 있어 견디어내기가 보다 쉽다. 노인들은 시대의 중압을 조금만 더 끌고 나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공포와 근심은 죽음의 접근으로 해서 경감된다. 그들의 희망과 신뢰, 그들의 행동에의 의욕과 용기는 앞으로 더 살아나가야 할 젊은이들의 손에 넘겨진다. 판다, 선택, 노력, 활동에 대한 중대한 책무를 맡게 되는 것은 이들 젊은이들이다.”

‘불크할트’를 이은 20세기 최대의 문화사가라고 불리어지는 ‘호이징하’의 이상과 같은 겸허한 자세에서 오늘날의 한국의 기성 문화세대들은 많은 것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자신들의 희망을 최소한도로 정리하여 앞날의 문화건설의 고귀한 책무를 다음 세대에 맡겨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자신의 지적인 빈곤과 무기력을 넘겨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앞길을 더 이상 흐려 놓아서는 안 될 것이며 오직 그들을 위한 한 주먹의 거름이 되고자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민족이 계속해서 지향해야 할 이상은 보다 많은 자유, 보다 많은 평등, 보다 많은 부 富의 실현이기 때문에 이러한 복지를 보다 앞서 실현한 선진 국민들의 문화이념을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고 당부해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일부 인사들은 필자의 이러한 심경을 국적 없는 사이비 문화인의 비애국적인 감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에게 오늘날 이미 세계적 강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경우를 허심탄회하게 관찰할 것을 권고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늘날 지니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역량은 일본민족의 고유문화의 힘이 아니라 그들이 백 년간을 숭상하며 섭취한 서구문명의 힘 이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백 년이 꼭 우리의 백 년이 되라는 법은 없다. 또한 백 년이라 한들 필경은 역사의 일순간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오늘날의 선진국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화적 제諸문제를 우리의 문제로서 앞질러 근심할 필요도 없다.

역사는 각시기에 따라 그에 해당한 과제들을 인류에 부과해 왔으며, 인류는 그들 나름대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왔기 때문이다.

 

 

– 월간중앙 1974년 1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