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行詩抄

– 예순일곱

姜 禹 植

 

마음도 텅비어 빈 절터와 같을 때

내 속셈까지라도 다 짚어 주시듯

항시 말갛게 떠 오르는 햇살을 지닌

부처님 같은 계집애를 모셔오리.

 

사람의 마음처럼 변화무쌍한 것은 다시 없습니다. 즐거운 적이 있는가 하면 슬픈 날도 있고 어두운 날이 있는가 하면 비온 뒤의 하늘처럼 말갛게 개이기도 합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이런 속담도 우리 마음의 그윽함을 이른 말이요 <하느님이 그 형상을 본 떠 인간을 만들었다>고 할 때도 그 형상은 곧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우리 마음이 아주 텅 비어 버린 날 – 그것은 허망되고 쓸쓸한 마음이거나 혹은 온갖 잡된 생각이 싹 가셔 버린 마음이거나 간에 – 바로 그러한 날, 그 마음 속속드리를 다 알아주는 애인을 지니고 싶다는 시입니다. 숨긴 낱낱의 속셈까지를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는 부처님같은 연인과 더불어서야 이심전심의 묘법으로 사랑은 절로 꽃피겠지요.

 

 

사랑 法

姜 恩 喬

 

떠나고 싶은 者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者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時間은

沈默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沈默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者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者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사랑을 하는 일도 결국은 신(神)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사람 그 자체가 미완성인 것처럼 항시 미흡하며 한계가 있으며 고뇌의 긴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더더구나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의 번뇌는 오랜 가물은 천지처럼 목마르고 애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어떤 길이 있을지… 젊고 총명한 이 여류시인은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고 하여 불변의 영원한 사랑의 원형을 두고 여타의 사소한 일은 실눈으로 보라고 하였습니다. 겸하여 속단하거나 서두르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떠나는 자는 떠나게 하고 잠드는 자는 잠들게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르면 비록 그것이 절실한 여심(女心)의 역설이라 하더라도 도통(道通)의 길에 든 사랑법(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生命의 白書

 高 遠

 

정녕 이것이었오.

당신만의 눈동자 속에

심장 소리가 들리는 하늘이오

더운 가슴에 꽃피는 나의 자랑을

당신은 그대로 소유하십시오

 

세상이 그처럼 불안한 까닭은

실상 당신에게 드리는 노래의

순결이 보증된 의식이었다는구려

 

온갖 정렬의

한결같은 동원이오

당신만을 호흡하는 내 진실을

당신이 (당신) 이라고 부르는

생명은 정녕 이것이었오

 

현대는 실연이 없는 시대라고 합니다. 진정한 연애가 없는 시대이니 어찌 실연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 말을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우리는 참으로 비참하고 비극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이런 비극적인 시대인 연고로 사랑의 값어치는 더욱 귀하고 높습니다.

사랑, 그것이 거짓 없는 생명의 백서일 때 우리는 거기에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 그것이 모든 정열을 쏟아붓는 완전 연소일 때 자기 생명이나 존재가 확인되기도 합니다. 진실된 사랑은 무구하고 순결하므로 여리고 유연한 듯 더할 수 없이 강할 수가 있습니다. 무쇠도 녹이고 돌도 뚫습니다. <오직 당신만을 호흡하는> 그 몰두의 사랑에는 불꽃과 같은 열과 빛이 함께 있습니다.

 

 

高 銀

 

열어 주소서

닫힌 것을.

一生을 다하여

겨우 노크 몇 點

닫혀서

그 안에서 기다리는 몇 點

 

비로소 열릴지라도 그 안에서 열어 주소서.

 

우리들이 사는 집에 문이 있듯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문이 있고 우리들 마음에도 마음 문이 있습니다. 문은 벽과는 달리 가로 막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리기 위하여 있습니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고 하는 이 자신 넘치는 음성은 성서의 말씀입니다만 문은 언제나 노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때라도 열릴 채비를 하고 두드려줄 손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신과의 문제에 있어서, 혹은 사람 저 혼자의 문제에 있어서,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일생 동안 과연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릴 수 있을는지… 두려운 일입니다.

일생을 다한 노크 몇 點, 그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이는 피 묻은, 전심전념을 다한 절규와 같은 것입니다. 진실로 이것이 힘이 있다면 안에서 문을 열어 주소서, 이 생명의 힘을 확인케 하소서, 사랑이여…..

 

 

焦土의 詩 13

– 우리 夫婦를 銀杏에 비유함 –

具 常

 

나 여기 서 있노라.

 

나를 바라고 틀림없이

거기 서 있는

너를 우러러

나 또한 여기 서 있노라.

 

이제사 달가운 꿈자리커녕

입맞춤도 간지러움도 모르는

 

이렇듯 넉넉한 사랑의 터진 속에다

크낙한 順命의 뿌리를 박고서

나 너와 마주 서 있노라

 

日月은 우리의 年輪을 묵혀 가고

철따라 잎새마다 꿈을 익혔다.

뿌리건만

오직 너와 나와의

열매를 맺고서

 

終身토록 이렇게

마주 서 있노라.

 

<결혼은 연애의 무덤>, 이런 말들을 흔히 씁니다. 어쩌면 옳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연애시절의 그 안타까움과 초조로움과 불면의 나날들은 어쩌면 감미로운 고통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진하고 격한 정열의 때입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이제는 그 꿈꾸는 세계에서 차츰 벗어나서 안정을 찾게 됩니다. 나무처럼 튼튼한 뿌리를 대지에 박고 잎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고 또 그늘에 안식의 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은행나무처럼 쌍나란히 사이 좋게 살아가고 늙어가는 부부의 사랑은 이제 저 젊은 날의 격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친구처럼, 형제처럼 혹은 곧 자기 자신의 분신처럼 없어서는 아니 될 남편과 아내, 야야말로 넉넉하고 원숙한 부부애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雪夜愁

具 滋 雲

 

눈 내리는 밤은

여자여 잠이 드렴.

 

이끼 슬은 팔 다리의 언저리를 묻어

사랑의 눈물의 눈이 내리면

 

새로운 맑은 숨은 살아 오리.

꿈을 꾸며 노래하는

후미진 조용한 물이랑에 실리어

애달픔은 연신 희살짓는다.

 

어루만지는 아늑한 팔뚝에서

나른히 쉬는 외로운 오롯한 목숨.

 

여자여 눈 내리는 밤은

가녈프레 풀잎이 싹터오는데

안겨서 잠이 드렴.

 

내 짙은 난초 앞은

어우러져 스며들어라.

눈이 사풋 사풋

아릿한 젖 언저리에 쌓인다.

 

은은한 복스러운 밤

비어 있는 해슬픈 맑은 항아린양

스스로이 소리 이루어

벌거숭이 몸뚱아리에 어리는 설움.

 

눈 내리는 밤은

여자여 잠이 드렴.

 

사랑하는 마음의 어느 한 모서리에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저 에덴의 동산으로부터 독사에 발꿈치를 물리고 쫓겨나오면서부터 아담과 이브가 서로 의지하면서 생긴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이란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게도 나약한 존재이며 외로운 존재이겠습니까. 이 망망한 천지에 여자는 남자를 의지하고 남자는 여자를 반려 삼아 서로 가엾이 여기면 살아가는 것이겠습니다.

눈이 내리는 밤 – 만상이 고요하고 정백한 밤, 품 속의 여인이여 -. 잠이 들라고 노래한 이 시심(詩心) 또한 이러한 연민(憐憫)의 마음이 승화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화가 곱게 피는 그런 밤에는 여인은 그 사랑하는 지아비의, 혹은 연인의 품에서 온갖 서러움도 흐느낌도 모두 잠재우고 숨소리도 고르게 쉴 수 있을 것입니다.

 

 

戀歌

金 光 林

 

그만 묻어 두고 싶다.

그 말씀을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듯이

 

바라는 것이 많아서

바램이 무엇인지도 모르듯이

 

조용히 일러 주리라

조금만 다가 오라고

 

우리가 자연경치를 구경할 때에도 너무 빼어난 절경을 대하거나 하면 말로는 다 못한다고 합니다. 또 감정이 너무 격하거나 지극할 때에도 역시 말로는 다 못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감정처럼 뜨거운 것은 있기 드뭅니다. 또 그것을 고백하는 말처럼 절실한 말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뜨겁고 뜨거운 사랑이오, 진실되고 진실된 사랑일진대는 무어라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어라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리석기도 한 노릇입니다. 그것은 빛나는 보배처럼 묻어 둘 수 밖에 없습니다. 묻어두는 침묵에서 사랑은 더욱 그윽한 깊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행여 또 사랑의 고백 말씀이 입 밖으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소박한 한 말씀 아주 조금만 다가오라는 한 말씀입니다.

 

 

가을이 서럽지 않게

金 珖 燮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벌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계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유년기를 봄이라고 한다면 여름은 활기에 찬 야망의 청년기일 것이요, 가을은 결실을 수확하며 무성하였던 젊음이 조락하는 장년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은발의 노년기는 적막한 겨울이 될 것입니다. 이 시는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나이에 새삼 눈뜨는 귀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온갖 퇴색해 가는 것에 새로운 빛을 주고 생명의 울림까지를 새롭게 해주는 불꽃, 그것은 젊은 날 물 불을 가리지 않고 타오르던 정열과는 다릅니다. 깊숙하고 무거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홀로 한쪽 가슴에 지녀도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미처 다 채울 수 없는 다른 한쪽 비인 가슴은 나를 비추어 보는 맑은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내 新婦

金 光 協

 

달빛 아래선 달빛으로

꽃나무 아래선 꽃 빛깔로

젖어 물들던 소녀,

내 新婦 그때엔

봄 우뢰에도 울었다.

初經 때처럼 우뢰는

내 신부의 작은 가슴을 흔들었다.

 

눈썹 아래엔 지혜,

허리 아래엔 건강으로

흘러 넘치던 소녀,

내 신부 그때엔

宇宙의 천사,

天使는 이제 내 新婦되어

내 영혼 끼어 안아

행복 안팎 기웃거린다.

 

씩씩하고 믿음직스러운 남편을 가진 아내는 행복합니다. 지혜롭고 건강한 아내를 얻은 남편은 행복합니다.

아름답되 지혜롭지 못하면 허수아비와 더불어 사는 것이 될 것이오, 지혜롭되 병약하면 이 또한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름답되 덕이 없으면 야차가 될 것이요, 덕이 있으되 건강하지 못하면 이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르노와르’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여인들을 보노라면 누구라도 마음이 환히 밝아지고 즐거워집니다.

그것은 그 여자들이 하나같이 맑은 살결과 탄탄한 몸매와 함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를 지녀 <허리 아래엔 건강, 눈썹 아래엔 지혜>를 간직한 연유 때문입니다.

 

 

그대의 마음

金 丘 庸

 

나는 눈물이 되어

노래하는 흐름이노라.

 

그대가 웃으면, 거울이 되어

붉은 입술 곱게 비치고

 

그대가 어두움 안에서 생각할 때

내 눈물은 금빛 별이었다.

 

청 너머 피는 장미가

나의 정열인지 알지 못하리

 

그대가 사랑으로 눈물짓는 날

나는 그대의 마음이노라.

 

이 시는 안타까운 사랑의 물음에 화답하는 격조 높은 사랑의 연서라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할 수가 없어요. 풀 수 없는 수수께기처럼 어렵기만 해요.

그래서 저는 때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해요.

또 깊이 깊이 생각에 잠기기도 해요.

안타까와요. 저는 어쩌면 좋은가요.>

이런 귀엽고도 어릿광스런 사랑의 고백을 받았다고 하십시다. 무어라 대답하시렵니까.

<뜨락에 타는 장미꽃은 나의 정열이요, 나의 마음은 곧 그대의 마음> 이라는 대답이라면 저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는 흡족한 대답이 될는지 요.

열 두 겹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주고 받은 우리 옛 어른들의 묵향(墨香) 그윽한 사랑의 봉서를 읽는 느낌입니다.

 

 

五月 에

金 南 祚

 

지금껏 내 정신이

방황의 한철

부끄럽고 고단했읍니다.

 

당신을 피해

당신 없는 따끝까지 내가 갔으나

어디서고 만나는

…….. 먼저 와 계시는 당신

 

진실은 마침내 시간이 알게 하거니

못잊을진대 이 不忘을 섬기리

어여쁘디 어여쁜 宿命이여

 

그늘을 이긴 오월

별과 풀잎들과 이 눈물

 

이제는

다시

迷惑 없으리니

 

막을 길 없이 열리는

두 영혼의

이리 환한 通路

 

사랑이란 한 기적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가슴에 샘물 흐르듯 고여오는 것, 그 무게 그 깊이 그 따사로움이 모두 기적입니다.

사랑이란 한 큰 숙명입니다. 허구 많은 세월에, 허구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그 찰나 그 사람들끼리에 일어난 섬광이라니…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밤 사이 피어난 꽃처럼 경이로운 것, 느닷없이 찾아온 손님처럼 당혹스러운 것. 이를 피하느라고 이를 부인해 보느라고 땅의 끝 아니라 하늘의 끝까지 가더러도 붉은 인주로 찍은 도장처럼 선명한 사실 – 사랑만을 오히려 확인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는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잊지 않을 것이며 회의치 않을 것이며 그 숙명을 숙명으로 감수하는 지혜로운 터득을 우리는 이 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은

金 東 鳴

 

내 마음은 湖水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最後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落葉이오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며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리라.

 

이 시에는 이미 가락이 붙여져서 많은 사람들이 널리 애창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과는 퍽 친숙한 시입니다.

우리가 이 시에 자주 접하면서도 변함없는 감동을 받은 것은 이것이 사랑의 자기희생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햇빛과 같고 사랑은 빗물과 같아서 무한히 주되 거두어 들이지는 않습니다. 베풀되 값을 바라지 않는 무상(무상)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값진 것이고 위대한 것입니다.

뱃전을 때리는 물결로, 자기 몸을 태우는 촛불로, 나그네로, 낙엽으로 사랑은 비유되고 있으나 거기 한결같은 환희는 스스로의 연소에 있는 것이지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감동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강이 풀리면

김동환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님도 탔겠지

 

님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가 가노라

 

님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

동지 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은 기다림의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를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만큼 애타는 시간도 없지만 기다리는 시간만큼 즐거운 시간도 없습니다. <욕망은 사람을 생 하게 하나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고 <마르셀 푸루스트> 같은 이는 말하였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아직 소유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얼어붙은 강물 때문에 배가 안 옵니다. 강물이 풀리면 재가 올 것이요, 배가 오면 님도 탔으리라는 기대, 님이 못 오시면 편지라도 보냈으리란 기대는 아름답습니다. 강물이 풀리고 배가 와도 님도 편지도 안 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이의 꿈 속에서는 강물이 풀리고 오는 첫 배의 손님으로 님도 편지도 타고 계신 것입니다.

 

 

路傍

金相沃

 

겉으로 외면해도 속으론 조바시고

못본체 지나와도 자로 돌아 뵈는 것을

그래도 그는 모르고 마음없이 가느니…

 

어디든 걷고싶어 옷을 털로 나왔다가

스치는 사람속에 그 뉘를 보았든지

멍하니 길섶에 서서 가도 오도 못하여라

 

동양사람들의 사랑의 표현은 수줍음과 역설 逆說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수시로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잘하는 서양사람들은 아마 잘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법이 될겝니다만

이것은 한 말로 동양인이 서양인처럼 적극적이 못되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인 탓만이 아니라 동양인이 타고나는 고요함과 진중함과 깊은 헤아림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감정, 속으로는 조바심쳐도 겉으로는 모르는 척 외면하고, 무심히 스치는 사람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혹은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멈춰 서서 발길 떼 놓을 줄 모르는 동양인의 사랑이 평이한 말로 실감나게 묘사된 이장 二章 의 시조입니다.

 

 

밤 小曲

金善英

 

櫓  없어도

흐르는 배

그리움

 

한 女人과

한 녹슨 窓이

촛불을 마주 켜들고

 

앉아 가고 있는

가을

 

오래 오래 머물고프던

밤汽車 같은 사랑이

지내버린 驛

 

당신은

야윈 손으로

繡나 놓아라

 

東洋은 여인이

착해서 좋단다

 

가슴은 活火 하다

재도 다 삭은 火刑이래도

 

조용히 슬픔에도

가려 앉아라.

 

사랑이 영원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그 영원성에서 사랑의 진실을 가려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도 성숙하고 변모하고 마침내는 꽃이 지듯이 눈을 감기도 합니다.

<유종 有終의 미 美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유종의 미는 지나가 버린 사랑이 남긴 상처를 어떻게 아물리고 수습하느냐는 것과 연결됩니다. 인내와 극기로 이를 다스려가는 여인의 모습을 우리는 이 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노 없어도/ 흐르는 배/ 그리움>

<오래 오래 머물고프던/ 밤기차 같은 사랑이> 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비유의 수사는 참신한 이미지를 독자의 가슴에 심어줍니다.

 

 

진달래 꽃

金素月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 마라난/ 선하면 아니 올셰라/ 설온님 보내압나니/ 가시난닷 도서오쇼셔>

이 고려가요 <가시리>에서 별리 別離의 한이 주제가 된 시입니다. 한 恨 이라는 것은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마치 친살붙이나처럼 친숙하고 가까운 감정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월의 <진달래 꽃>은 어떤 개인의 시라기보담 여러 대중의 마음과 말씀이 모여 이루어진 한국의 시라는 느낌이 더 큽니다.

체념과 자기억제로 실현하는 사랑의 모습이 그러하고 또 우리 한국어의 리듬을 잘 살려 노래하듯 이어지는 그 가락이 민중으로 하여금 이 시를 애송케 하는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 시를 오래 오래 잊지 않게 하는 요인도 됩니다.

 

 

웨딩 마아치

金松姬

 

흐뭇한 꿈이 서리네

조용한 마음속

물결은 금빛나네—-

 

살푸시 내딛는 발길이

幸福의 구슬을 굴리네

은방울을 굴리네.

 

오늘은 네 가까이서 다수운

신부.

 

하이얀 너울속에

곱게 웃음이 번지네—

사랑의 봉우리가 이제 피어나는

처음 時間.

 

꿈들이 맴돌아

나풀거린 江을 이루네

그 안에서 엔만큼 황홀스런 탓이여!

 

훌륭한 눈에 소리 나는 고동과

영원처럼 기대이고 싶은

시방이네.

 

한 신랑과 신부가 사랑을 약속하여 출범하는 날, 온갖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눌 것을 서약하며 하늘과 사람의 축복 속에 듣는 음악, 그것이 웨딩 마아치입니다. 그것은 행복의 보금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행진곡이며 일생을 함께 살아갈 반려자를이 나란히 발맞추는 화음 和音입니다.

저 먼 항로 이에 혹 두려운 폭풍우와 눈보라와 거센 파도가 기다라고 있다 하여도 출발의 시간은 감격의 시간이며 가슴 벅찬 자리입니다. 거기 무수한 꽃떨기처럼, 혹은 부서지는 별가루처럼 내리는 음악 – 웨딩 마아치. 사람이 평생을 통하여 듣는 음악 중에서도 웨딩 마아치의 선률처럼 감미롭고 복되고 감격스런 음악은 드물 것입니다.

화사롭고 행복한 혼례식장에서 곱게 흐르는 웨딩 마아치가 시인의 손을 통하여 여기 또 한번 잔잔히 연주됩니다.

 

 

사랑

金洙暎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종신징역형을 받고 수감 중인 한 죄수가 있었습니다. 실의와 고통의 나날은 그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난폭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 죄수는 볕 하나 들지 않는 감방의 돌바닥 틈새에서 가녀린 풀 한 포기가 싹튼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 앞에 죄수는 새로운 생에의 의지를 살리고 자기의 처지를 극복해 나갔다고 합니다.

<너>는 어떠면 이 죄수의 이름없는 풀포기처럼 하잘 것 없는 것, 아누 것도 아인 것, 가녀린 것일 수 있습니다. 찰나적인 것, 불안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불변의 영원한 사랑의 진수를 알았다면 <너>는 나에게 얼마나 큰 위력을 행사하는 존재이겠습니까.

 

 

家庭

金淑子

 

싱그럽게 검은 포도알 송이 송이

白瓷 항아리에 차근히 담겨

五臟을 발효한다.

 

비 지나간 뒤 햇빛도 있고

떠 가던 구름

다리 쉬며 흘리는

눈물도 더러 있다.

 

풍상이 잦아도

넓은 소매자락

있는대로 힘써 펴

사랑으로 세월을 익히는.

 

당신은 술빚은 항아리로

나는 영혼을 삭힐

포도주 한 잔을 기다려서,

 

어둡고 밝은 날을

帝室의 主日이듯

촛불이 탄다.

 

깃들일 보금자리를 잃은 새는 밖에서 떱니다. 가정이 없는 사람은 밖에서 떠는 새처럼 춥습니다.

가정은 각기 개성이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모여 이해와 사랑으로 협동생활을 해가는 곳입니다. 온갖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휴식시키는 곳입니다.

가정에는 튼튼한 지주와 같은 가장이 있고 그를 살뜰히 보필하는 주부가 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부모와 자녀와 형제, 친척, 친구들이 모입니다. 때문에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되고 핵이 되는 것이 가정입니다.

기쁘고 즐겁고 아름다운 일 뿐 아니라 슬프고 괴롭고 아픈 일에서도 항상 그 생사종망 生死存亡을 함께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오롯한 가정은 帝室의 불빛인양 은은하고 다사롭습니다.

 

 

봄바람

金億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 맞춥니다.

 

하늘나라

어디론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바람은

 

그대 잃은

이내 몸의 넋들이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사랑하다 임을 잃은 사람입니다. 견딜 수 없이 괴롭고 아픈 마음을 어디에다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임을 잃은 나의 마음은 의지 가지 없는 바람처럼 허공중을 떠다닙니다. 때로는 잎사귀와 춤을 춰보고 때로는 꽃송이와 입을 맞추어도 보지만 그 모두는 부질없는 짓들입니다. 그것은 아무 위로도 치유도 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때문에 나의 마음은 또 어디로인가 향방없이 떠나갑니다. 다시 임을 찾을 때까지 끝없는 이 마음의 방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김억(金億) 시인은 김소월의 스승이었습니다. 시어의 선택이라든가 음악적인 요소 등에서, 또 그 서정의 세계에서 그는 소월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를 더욱 탁월히 길러내었다는 점에서 그는 축복받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대 꿈꾸는 동안

金汝貞

 

그대 꿈꾸는 동안

밤새 비 내리고

꿈깨고 나면

빛나는 아침

 

꿈길로만 오는

달빛같은 그대

청청백일 대낮보다야

긴 밤을 기두리며 살아온 날

 

한번쯤

참말 한번쯤

새벽 첫 두레박 속 샘물같은

淨한 그대 앞에 앉아 보곺은 마음

 

봄버들에 매끄러이 물내리듯

칠칠한 검은 머리채 풀로 앉아

깊은 하늘 흔들어 보고 싶은 마음

 

그대 꿈꾸는 동안

밤새 개구리 울고

꿈 깨고 나면

나팔꽃 둔덕에 밝은 아침.

 

꿈길 밖에 길이 없는 그런 애달픈 사랑이 있다면 이 또한 무슨 업보이며 형벌이겠습니까.

그것이 은밀한 사랑이든 일방적인 사랑이든 가엾고 가슴저리는 사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사병 相思病>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간절히 간절히 사모하는 끝에, 말도 못하고 홀로 그리워만 한 끝에 마침내 혼을 잃고 몸져눕고 마는 병, 이를테면 이런 병이지요.

<칠칠한 검은 머리채 풀고 앉아 깊은 하늘 흔들어 보고 싶은 마음>을 싸서 감추고 긴 밤만을 기다리며 꿈꾸는 사랑, 그 사랑이 서러움이야 어떤 말로 다 풀어낼 수 있겠으며 어떤 빛깔로 다 색칠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인은 밤새 비 내리고, 밤새 개구리 운다는 함축있는 묘사로 그 가이 없는 오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金永郞

 

내 마음을 아실 이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밤 고히 맺는 이슬같은 보람을

보밴듯 감추었다 내여드리지

 

아! 그립다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은 어쩌면 자기를 실현하고 자기를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일지도 모릅니다. 이기적 利己的 사고라고만 볼 수 없는 사랑의 한 속성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유려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하여 기쁨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한계성을 느끼게 되어 한 줄기 비감 悲感 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참말 사랑의 힘에도 한계는 있는 것일까요.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이 귀절을 읽으면 사랑의 힘으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같이 차갑고 여문 인간의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이 바단같이 고운 서정시에서도 이 귀절은 특별히 빛나는 백미 白眉 이며 상식을 뛰어넘는 시인의 심안 心眼과 번뜩이는 자의식 自意識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운 이

金永鎭

 

바람이 건 듯해도

그 바람에 싸인 듯

구름만 둥실 떠도

저 구름에 타셨을 듯

 

여보오 소리 질러서

불러 보고 싶구려.

 

범신론자들은 신 神 은 만상에 깃들이어 무소부재 無所不在 하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범신론자들처럼 임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곳 속에도, 잎 속에도, 구름 속에서도 심지어는 바람 속에서도 임은 나타납니다. 그리워 하는 마음, 보고 싶어 하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이 지어내는 무수한 환상 幻像 과 환청 幻聽 은 사랑의 마술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다섯 줄의 단시 속에도 바로 이러한 사랑의 마술성이 풀어내어 쓴다면 다섯 권의 긴 이야기책으로도 쓸 수 있는 그런 마술성이 압축 묘사되어 있습니다.

 

 

花甁

金耀燮

 

그이를 향해 열린 채

비어 있는 마음

 

무거운 뉘우침이 고여 간다

 

마리아

가난한 화병 속에

그대의 눈물이라도 채워 주시오

 

환한 아침이 넘칠 듯 고여가는 화병

향기로운 이름은

기쁨처럼 활짝 피어난다

 

그이에게 바치는

숱한 이슬내 풍기는 울음

 

그이를 향하여 열린 채 그이가 와서 가득 채워 주기를 기다리며 비어있는 마음, 그것은 흡사 맑은 물을 가득 붓고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꽂아주기를 기다리는 빈 화병과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비어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고독하고 쓸쓸하다 하더라도 언제인가는 꽃이 꽂힐 그릇, 그 이름도 향기로운 화병.

화병에는 아무 것이나 담지를 않습니다. 오직 꽃만을 꽂는 그릇입니다. 역시 이처럼 나의 마음은 아무나 사랑하거나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꽃처럼 향기롭고 어여쁜 그대만을 사랑하고 그대만을 기다리며 지금은 비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의 사랑의 표현에는 일편단심 一片丹心 이라는 말이 쓰였었습니다. 시 <화병>은 이러한 일편단심의 현대적 표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메아리

金榕八

 

天地에

나를 지켜주는

넋이 하나

 

언제고 餘韻만을 되울리면서

저만치서 사랑하는

啓示

 

눈짓이나

느껴움

따위가 아닌…

 

어느 맑은 날

저 푸른 餘韻 향하여

鶴 같은 울음을 터뜨리고파

 

나는 이 좁다란 길을

올라야만 하는 것이다.

 

비록 가까이 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거나 손길 잡아볼 수는 없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에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안이 됩니다.

더욱이나 그 사람이 이쪽의 일거수 일투족 一擧手 一投足 을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보아 준다면 이쪽은 참으로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쪽을 버리지 않는 사람, 그림자처럼 따르는 사람, 그러면서도 메아리처럼 숨어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며 배반하지 않는 길은 이쪽이 가일층 이쪽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입니다. 오직 그 한 사람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서라도 가파롭고 험난한 길을 용감히 헤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깨끗한 한 마리의 학처럼 맑게 고고하게 비상하여야 하겠습니다.

 

 

뚝섬에서

金容浩

 

江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마주 설

空簡이 流失된 地域

 

어쩌면 이처럼 싱싱히 돋아나는

아픔입니까

變貌없이 파아랗게 살고 있는

거울 속

거기, 포프라 한 그루 있고

주고 받은 會話가 자라

이제 新綠으로 紋彩한 江邊

 

산 너머 절에선가

鐘이 波紋하는 이 黃昏에

祈禱보다도 더 切實한

당신에의 追憶은

어느 또 하나 다른 거울 속에

소보옥히 담아 두어야만 합니까.

 

여름날 뚝섬엘 가면 푸른 강물이 흐르고 키 큰 포플라 나무들이 강변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뚝섬의 강물은 한강 상류의 강물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이 시인의 눈에는 당신과 마주설 공간이 유실된 지역인 것입니다. 이별의 이미지를 이 한 마디 말로 조형 造形 한 시인의 상상력과 솜씨는 놀라운 것입니다.

강물은 이렇게 해후의 공간이 유실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또 변함없이 맑은 거울로 됩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들이비치고 있는 푸른 녹음은 단순한 나무잎새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자란 것입니다.

사랑을 간직한 이의 마음과 감각은 이처럼 사물의 뜻을 놀랍게 파악할 수도 있는 법인가 봅니다.

 

 

哀歌

金潤成

 

당신과 나는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넓은 냇가 햇살 속

우리들의 그림자가 물 속에 비치고 있었다.

나는 팔을 내밀어 당신을 붙잡아 주려하고

당신은 잡힐듯 잡힐듯 끝내 잡히지 않는 채

혼자서 다리를 건넜다.

 

우리들은 미류나무의 숲속에 누워

무수한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저 미류나무 잎사귀의 수효는 대체 얼마나 될까”

“사람들 수효만큼이나 많겠지요.”

그 중의 가장 싱싱하고 잘 생긴 잎사귀를 눈으로 찾아

나는 곳으로 그것을 당신이라 여겼다

 

캄캄한 어둠 속을 돌아오는 차속에서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당신이 하던 말

아니, 내가 찾아낸 그 미류나무 잎처럼

눈부시게 바르르 떨며 속삭이던 말이다.

 

훤한 하늘을 배경으로 지금도

바람에 흔들리는 내 머리 속의 미류나무 숲,

그 숲속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하나의 미류나무 잎.

 

어렵고 고단한 우리의 삶이면서도 그것이 지나고나면 지난것은 늘 아쉽고 그리운 것이 됩니다. 하물며 그러한 추억이 사랑의 일일진데 얼마나 아름다운 회상이 되겠습니까. 그것이 설사 슬픈 애가가 되다손 치더라도 사랑의 추억만큼 보배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무사히 산다는 것은 분별있는 삶이며 온건한 삶임에는 틀림없으니다만 그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생 生 의 무미 無味 함을 나타내는 말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요. 괴롭고 못견딜 일일지라도 사랑이 있는 삶이 진정한 삶이 되지 않을까요.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이런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 현실적으로는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람이 저 미류나무 잎새처럼 총총한 생명 가운데 가장 빛나는 반짝임으로 살아 있다면 이는 한 큰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대의 찬 손

金閏喜

 

無情한 겨울

날 저문 거리를

홀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말할 수 없는 苦惱

간직한 뜨거운 가슴의 囚人

 

말 못할 다만

한 마디 言語에

형벌받아

零下의 터널속을

英雄처럼 뚫고가는

靑裸의 두 손

 

아무도 열어 볼 수 없게

닫은 絶望의 가슴을

이 겨울

푸른 두 손에 옮겨

寒空에 몸 뺏기는

찬 손의 그대

 

그대 찬 손의

愛人이 되어

不遇의 이 겨울을

한 송이 불꽃으로

뚫어 건너리.

 

추운 겨울 날, 온 천지가 다 얼어 붙어 숨쉬는 공기조차도 고체 固體로 느껴지는 그러한 날은 우리의 육체 뿐 아니라 정신마저도 얼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삼십 육도의 체온을 가까스로 유지해 가며 혹은 냉한 냉한에 빼앗겨 가며 그 추위를 헤치고 나아가는 푸르게 언 두 손은 영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나 사회가 꼭 이 겨울과 같은 때도 있습니다. 정치가 잘못되거나 사회가 부패하거나 혹은 천지 사람들이 금수 禽獸처럼 속물화 俗物化 하였을 때가 바로 이런 사방이 얼음벽으로 꽉 막힌 겨울철일 것입니다. 이러한 겨울철을 뚫고 가는 청라의 두 손길은 말한 것도 없이 선지자나 선구자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의 정의와 그의 고독을 이해하는 이가 바로 곧 그의 애인일 것이며 이러한 뭉친 힘은 불의부당하고 어두운 시대나 사회를 힐책하고 개조하는 뜨거운 불꽃이 되지 않겠습니까.

 

 

作品 V

金宗文

 

女子의 손바닥은 넓적한 나무잎

 

바람을 일으킨다, 무더운 날에,

 

女子의 손바닥은 두터운 벽

 

열을 보태어 준다, 차거운 날에,

 

어둠 속에서도 더듬어 딛고 서는 女子의 손바닥은

 

男子가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男子의 점령지대

 

女子의 넋이 번지며, 고이는 哀歡, 움켜주며 이루는

 

人指 끝에, 걸리는 것은 항시 虛空 뿐이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후천적인 교육의 구별, 혹은 인습의 편견에 의하여 생겨난다고 보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러한 주장에는 분명히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데 여자와 남자는 선천적으로도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생김새부터가 서로 틀리며 따라서 제각기 틀리는 기능을 발휘합니다.

이로 미루어 만약에 여자와 남자의 영혼도 육체처럼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으리라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이 가진 영혼의 가장 큰 힘은 모성애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는 허공중을 집는 것 같은 허망만이 돌아 온다 하여도 여인은 사랑하고 기다리고 봉사하는 일을 그만 두지 않습니다. 여인의 손은 남자를 낳고 기르고 나아가서는 온 세계를 창조하는 터전입니다.

 

 

出血

金芝鄕

 

한 거짓 盟誓에서

나의 눈은

첫 눈물을 흘리고

 

어느 忘却地帶에서

긴 세월을 나의 眞實은

땀 흘리어

허황한 지점에 왔을 때

놀라 깬 나의 生涯는

무너졌네

 

그리고도 사랑은 마르지 않아,

왜 아직 自失期는 끝도 없이

가슴을 피 흘리게 하나

 

뼈속을 내리는 비를 보아도

오직 참이라 믿을 건

사람의 거짓 盟誓일 뿐.

 

우리의 첫사랑은 흔히 추상적이며 관념적이기 일쑤입니다. 세상에는 존재하지도 않을 이상적인 애인을 꿈꾸고 자칫 사람을 잘못 보아, 아니 스스로 지나치게 미화하여 또 스스로 배신 당하기 일쑤입니다. 청춘의 맹세나 고백은 순간적인 진실에 지날 적이 많습니다. 뜨겁고 격렬하나 은근한 끈기와 영속성 없는 헛맹세이기 쉽습니다.

자기관념, 혹은 믿을 수 없는 거짓맹세에 속아 괴로워 하며 그러나 점차 성숙해 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우리는 이 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처참한 출혈, 뼈 속까지 우는 슬픔을 겪어도 또다시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이 시의 끝 구절은 어떠한 궁지나 절망상태에서도 생을 긍정하는 따스한 인간애와 불사조처럼 되살아나는 의지와 다함 없는 사랑의 샘물을 그 가슴에 간직한 아름다운 여성상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金春洙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 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우리가 눈을 들어 산을 보면 산은 산입니다. 하늘은 하늘, 바다는 바다, 나무, 꽃, 돌멩이들은 모두 나무, 꽃, 돌멩이입니다.

한데 우리의 눈에 마술이 걸리면, 다시 말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눈으로 만물을 다시 한 번 보면 이들은 새로운 의미를 안고 다가섭니다. 저것들이 때로 수근대며 때로 몸짓하며 신비한 생명을 가지고 새로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미켈란젤로> 가 대리석 속에서 비너스를 탄생시켰듯이 미지, 미명의 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삶의 족적이, 또 그 죽음까지가 모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싶다는 큰 욕망은 바꾸어 말하면 사랑 받는 그 무엇이 되고 싶다는 뜨거운 몸부림입니다.

 

 

秋收가 끝난

金夏林

 

살의 냄새, 살의 맛

 

살의 빛깔, 살의 무게

 

秋收가 끝난 땅 위에

 

환히 드러난 영혼의 구멍

 

無 의 언저리

 

그 가없는 하늘 한 끝으로부터

 

짖어대며 나타나는 한 떼의 까마귀

 

十二月 의 나비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함께 지닌 존재입니다. 수성 獸性 과 신성 神性 이 공존하여 때로 갈등을 일으키며 때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미묘한 존재입니다.

사랑은 육체적인 욕구를 다 충족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으며 반대로 영혼적인 일에만 몰두하고 육체를 무시하거나 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와 영혼을 잘 조화시키는 데에서 아름다운 인격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사랑에서도 영육 靈肉이 함께 투영될 때에 그 사랑은 완성된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한족으로만 편중된다면 그것은 기형적인 사랑입니다.

이 시에서는 육체에 기운 사랑의 종말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허무와 비극성을 <추수가 끝난 땅>, <한 떼의 까마귀> 등으로 은유하여 생생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말함

金顯承

 

그것이 비록 병들어 죽고 썩어 버릴

肉體의 꽃일지언정,

 

主여, 우리가 당신을 향하여 때로는 對決의 姿勢를

지을 수도 있는, 우리가 가진 最善의 작은 武器는

사랑이외다!

 

그밖에 무엇으로서 人間을 노래하리이까?

彼岸 위에 터를 닦는 저를 富貴와 榮華이오리이까.

瞬間에 安息하는 英雄들의 城 이오리까.

 

그밖에 다른 恩惠는 아무런 하염도

당신은 우릴 위하여 아직 創造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들의 사랑조차 可變의 저를 가리켜

아침에 맺혔다 스러지는 이슬을 보라 하시리이다.

 

그런데 主여, 나는 다시 대답하여

이렇게 당신을 향해 노래하리이까!

처음은 이슬이요, 나머지는 曠野 니이다.

우리의 짧은 하루는….

 

인간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무엇입니까. 부귀입니까, 영화입니까, 권력입니까.

이들은 모두 <파편 위에 티를 닦고> <순간에 안식하는> 부질없는 것들이라고 이 시인은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을 위하여 무슨 보배로운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인간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아무래도 사랑 뿐입니다. 비록 그것이 가변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인간이 가진 최선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인간이 그 생명의 보람을 찾고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가난한 인간들이, 불쌍한 인간들이 다만 한 순간만을 빛나게 하는 불빛이라 하더라도 사랑이 있으므로 하여 우리는 희망을 가지며 사랑 안에서 인간은 승리자가 됩니다.

 

 

바람

金惠淑

 

머뭇거리며

처음엔 내 눈치만 살피더니

저만치서 조심스레

내 귀밑머리 날려 보더니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더니

날 사랑한다고

마침내 제 마음 풀어헤쳐

얼굴을 붉히더니

긴 사연의 이야기

내 귀에 속삭이더니

 

가슴 치며

내 무심을 발버둥치더니

여전한 내 무심을

더욱 더 발버둥치더니

오늘은

종일토록 사나운 바람으로

비까지 몰아다

온통 나를 때리네.

 

사랑의 처음 모습은 수줍은 머뭇거림입니다. 여인의 귀밑머리를 가만히 날려보는 가벼운 바람 같은 것입니다.

나무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 듯이 사랑의 부름에는 응답이 있어야 하겠거늘 짐짓 목석 木石 인양 무심한 님 앞에서라며 사랑은 발버둥치며 통곡을 터뜨릴 것이 분명합니다.

얼굴 붉혀 부끄럽다가, 한량없이 조르다가 마침내 사랑은 거센 폭풍우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강렬해지는 사랑의 정열을 점층적 수사법으로 이 시인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정복당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개치고 우뢰 울며 내려 쏟아 붓는 폭풍우 같은 사랑의 거센 힘 앞에 사로잡힌다면 일견 가련한 듯, 그러나 거기 피정복자의 야릇한 쾌감이 또한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근심

金后蘭

 

지금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그리운 情 쌓여서

근심 되오니

새벽녘 고요가

눈물을 줌에

아, 그때 그대에게 남기고 싶은 말

이토록 간절히 남기고 싶은 말

나에게 은혜로운

銀빛 날개 있다면

이 아침 맑은 눈으로

그대 찾아 나서리

그리운 情 쌓여서 근심되오니

나에게 빛 부신 날개를 주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보아라, 드디어 고백을 하고 나며는 말에는 거짓이 깃드는 것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드려야 할 마지막 한 마디, 그러나 말씀드리지 아니한 마지막 한 마디 <사랑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씀 못 드렸기에 아쉽고 원통하고 그러나 말씀드리지 않았기에 영원히 빛나는 말.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그립고 그리운 마음은 마침내 그분의 안위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변하였습니다. 빛나는 날개가 있다면 그대를 찾아 한 마디 말씀, 아껴둔 그 한마디 말씀을 드리고픕니다.

이 시에 쓰인 <근심>이라는 낱말 하나는 <사랑한다>는 말 열마디보다 더 무겁고 큰 사랑의 표현이 되며 어떤 화사한 언어로도 못 나타내는 진실되고 정성스런 마음을 우리는 거기서 알아내게 됩니다.

 

 

薔薇

盧天命

 

맘속 붉은 薔薇를 우지직끈 꺾어 보내놓고

그날부터 내 안에선 煩惱가 자라다

늬 水晶 같은 맘에

나.

 

한 點 티되어 무겁게 자리하면 어찌하랴

차라리 얼음같이 얼어 버리련다

 

하늘 보며 나무모양 우뚝 서버리련다

아니

落葉처럼 섧게 날러가 버리련다.

 

노천명은 칠십 년 한국현대시사에 빛나는 무수한 성좌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영채로운 별입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그는 불행하고 고독하였지만 그의 영혼의 꽃밭은 순열, 영롱하여서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불보다 뜨거운 정열을 안으로만 감추고 살던 여인, 펼쳐 쏟아놓기보다 가슴 속에 담아 참고 인내하던 이 시인의 면모가 <薔薇>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맘 속 붉은 薔薇를 우지직끈 꺾어 보내놓고…>, 다시 말하여 장미처럼 붉은 사랑은 바치고도 행여나 그 사랑이 그대에게 부담스런 짐이 된다면 어찌하나, 그 댁에서 괴로움을 드리면 어찌하나, 그렇게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얼음인 양 목석인 양 내 그리움을 감춰버리리. 멀리 떠나가 버리리라고 자기를 채찍질하는 여심 女心이 담겨 있습니다.

 

 

이 生命을

毛允淑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시라면 나는 가지요.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 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더미로 옘집 채찍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죽음으로 갚을 길이 있다면 죽지요.

빈 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니요

내 님의 원이라며 이 생명을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굴종 屈從은 비굴하지만 순종 順從은 미덕 美德입니다. 더우기나 그것이 사랑에의 순명 順命일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고귀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드는 일일지라도 님께서 원하시고 바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으며 생명마저도 달라시면 드리겠다는 결의, 어떠한 경우 어떠한 처지에서도 결코 님을 배반치 않겠다는 결의, 이것은 보통으로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의 큰 힘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강물처럼 도도히 넘치는 정열, 불꽃처럼 훨훨 타오르는 정열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사랑은 남의 눈치를 안 봅니다. 인습의 높은 담도 뛰어 넘습니다. 무얼 계산하거나 따지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윤리입니다. 이 시는 이러한 사랑의 윤리를 증언하는 직언 直言입니다.

 

 

실바람 같이

文德守

 

매달릴

상신의 빈 가지 枝를 찾아

 

헤매는

허공 속,

 

오직 당신에게만 올릴

내 영혼의

 

그 먼

 흐느낌…….

 

우리의 가슴 속에 숨기인 사랑, 이 사랑을 바칠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 억겁의 시간을 흘러 드디어 한 섬광 閃光으로 마주치는 그런 기적은 어느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사랑하올 님을 찾아 헤매이는 길은 끝없는 보헤미안의 유랑입니다. 그것은 드디어 님을 찾고 나서라야만 그쳐질 여정 旅程입니다. 매달릴 가지를 찾아 허공중을 나는 실바람은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이라는 나뭇가지를 찾아 그 가지에만 깃들이며 매달리며 당신에게만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

숨겨온 온갖 비밀도 다 당신께는 보여드릴 것입니다. 가장 큰 진실이며 약점인 내 영혼의 흐느낌마저 도 오직 당신께는 바치겠습니다. 저 가느다란 실바람은 바로 이러한 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바람의 아내

文貞 姬

 

‘먼지도 빛나게 하는 햇빛’ 한 줄기 잡아다

내 목에 눈물로 걸어 주려고

언 땅을 헤매이던 그대.

 

밤이 깊자 뜨락에 돌아와

순한 눈썹으로 잠이 들었네.

 

잠 속의 잠 속에도

무지개는 끝끝내 아름다워

날개의 파득임에

깊은 궁 宮에서는

또 싹이 트고

 

끈이 무거운 어깨로

울부짖는 소리를 하며 그대는

저 봄 언덕을 서성인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큰 사랑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고 여성이 남성을 이해하며 남편이 아내를 알아주고 아내가 남편을 아는 데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 화평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이 시에서는 남편을 바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할일 없이 그냥 돌아다니는 바람이 아니라 먼지도 빛나게 하는 햇빛을 얻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고자 애쓰고 다니는 남성의 모습을 바람에 비유한 것입니다.  무서운 생존경쟁의 전장 속을 분주히 움직이며 수고하는 남성, 그 이마에 맺히는 소중한 땀방울을 이해하는 아내의 사려 깊은 마음이 가득 실린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거기서 조그마하나마 알찬 행복감과 안식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를 위한 자장가

閔映

 

아내가 몸져 누운 머리맡에는

알루미늄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아내 아내 아내여, 가엾은 아내

나흘 밤 나흘 맞을 꼬박 새워서

나흘 낮 나흘 밤을 열에 들떠서

아파서 할딱이는 너의 숨결은

쉬임없이 끓어 넘는 주전자 같구나.

 

하지만 이 밤에는 잠이 들거라.

꽃밭 아닌 내 가슴에 머릴 묻고서

옛날도 그 옛날 먼 숲 속에

난쟁이 일곱이 사는 집에서

어붓어미 시샘에 꽃처럼 져 간

눈부시게 어여쁜 공주님처럼!

그러다 따뜻한 봄이 오거든

나뭇가지 가지마다 꽃이 피거든

아내여 아내 아내, 어여쁜 아내

꿈속에서 깨어나듯 피어나거라.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감동적인 시입니다.

조개껍질처럼 조그마한 시인의 방 안에 알미늄 물주전자가 팔팔 끓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 주전자의 물처럼 끓는 몸둥아리로 시인의 귀여운 아내가 밤낮 나흘 동안을 앓고 있습니다. 시인은 앓는 아내를 의사처럼 치료할 줄은 모릅니다. 시인은 그가 가진 능력을 다하여 앓는 아내를 가슴에 안고 자장가를 부릅니다.

한데 이 자장가의 마력은 어떠합니까. 우리들을 꿈과 동화의 나라로 이끌고 가서 행복한 공주님과 왕자님의 모습을 상면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에 어떤 금만가 金滿家의 아내나 제왕 帝王의 아내라 한들 이런 귀한 선물을 받아본 이가 있겠습니까. 이런 사랑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드는 아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부유한 여인이 아니겠습니까.

 

 

邂逅

朴南秀

 

허전히 무너져 내렸던 마음자리에

홍건히 넘칠 듯이

무언가 다시 담기고 있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빛을 뿜은 歡喜의 구슬 앞에서

나도 무언가 뿜어지는

눈빛으로 웃으며 있었다.

 

속으로 귀를 세우고

간지럽게 속삭이는

봄볕같은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듣고 있었다는 듯

취하여, 나도

가만한 한 마디를

그니의 가슴에

繡놓듯 금실로 새겨서 두자.

 

어쩌면 영영 어긋나 버릴지도 모르는 운명 앞에 체념하고 섰는 마음, 그 허전한 마음 자리가 가득 채워져 오는 것은 님과 해후에 연유합니다.

어쩌면 영영 남의 사람의 될 뻔했던 그니의 속삭임에 귀를 세우며 다시는 그니와 이별이 없도록 뜨거운 한마디를 그니의 가슴에 새겨둡니다.

사랑하는 이들끼리의 감격에 넘치는 해후의 장면이 눈에 보이듯 펼치인 시입니다. 사랑의 표현이 아주 노골적인 현대인들도 지극히 곡진 曲盡 한 마음일 때는 어눌한 표현을 하게 됩니다.

그런 어눌하고 서투름이 어떤 달변이나 부드러운 제스처보다는 더 진실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는 이러한 진실이 소박한 언어들로 그려져 있습니다.

 

 

祈願

朴德梅

 

다 타고 남은 이 불씨 자리에 나 혼자 남어 어둔 새벽.

새벽이다. 내가 바튼 기침, 기침마다 피를 쏟듯

그렇게 피 흘리며 오직

그 한 사람 촛불로 용서하며 새벽녘이다.

 

사랑은 때로 쓰라린 배반을 감수해야 할 적이 있습니다.

배반이란 참으로 쓰디쓰고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하물며 그것이 사랑의 배반인 데는 그 통분과 노여움이 어떠하겠습니까.

사랑의 불길은 그 온도를 잴 수 없는 백열 백열의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타고난 자리. 싸늘한 잿더미의 차가움 또한 잴 수 있는 온도계가 없습니다.

극 極에서 극 極 까지를, 천국에서 지옥까지를 한 눈에 보고, 끝없는 환희와 끝없는 절망을 한 몸으로 감내하는 눈물겨운 모습이 어리인 작품입니다.

하면서도 밝은 촛불 한 자루 켜듯 스스로를 사루어 용서하는 마음은 사랑의 큰 승리이며 되살아 죽지 않는 불사조의 영혼입니다.

 

 

너는

朴斗鎭

 

눈물이 글성대면

너는 물에 씻긴 흰 달.

달처럼 화안하게

내 앞에 떠서 오고,

 

마주 오며 웃음지면

너는 아침 뜰 모란꽃.

모란처럼 활짝 펴

내게로 다가 오고,

 

바닷가에 나가면,

너는 싸포오….

푸를듯이 맑은 눈 퍼져 내린 머리털

 

알빛같이 흰 몸이 나를 부르고,

달아나며 달아나며 나를 부르고,

푸른 숲을 걸으면

너는 하얀 깃 비둘기.

구구구 내가슴에 파고들어 안긴다.

아가처럼 볼을 묻고 구구 안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일까요. 또 그 마음에는 어떻게 새겨지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마음은 마술을 거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잠들어라, 잠들어라> 속삭이며는 잠이 들고 <눈 떠라 눈 떠라> 귓속말하면 눈을 뜹니다. 달이 되라, 모란이 되라, 외치면 임은 무궁변신, 달이 되고 모란이 됩니다. 이러한 마술에 걸려본 사람이나 이러한 마술을 걸어본 사람은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또 하나 위력이던 것을 알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이 되고 새가 되고 아침 이슬이 되고 여신이 되고… 모든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전부를 한 몸에 품고 있어 사랑의 눈짓에 대답하는 눈짓으로 하나씩 얼굴을 나타냅니다.

 

 

햇속의 해

朴明星

 

그대 입술에

매혹의 眞紅빛 술방울로 녹아들어

 

그대 눈동자에

피끓는 정열의 빛줄기로 새어들어

 

한 사람의 진실로 살다가

한 사람의 그리움으로 죽어가서

 

무엇이 되려는가?

햇속의 해, 심장의 꽃피

꽃중의 장미로

 

돌아 오고저!

돌아 오고저!

 

이 상기 上氣 되고 숨가쁜 연정을 보십시오. 십리사방 十里四方을 불길로 휩쓸고도 다시 내세 來世 에까지 펼쳐가는 뜨거운 숨결을 보십시오.

절대한 사랑에의 희구 希求가 주제로 된 시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몸 속에 술 방울로 녹아 들어 그 가슴에 그 핏줄에 스미어 들어 혼연일체로 한 몸이 되어 살다가 함께 죽어지면 일심동체의 사랑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빛과 열의 근원인 햇속의 해, 정열의 화신인 꽃 중의 꽃, 장미화가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끝없는 갈구와 소유의 집념을 높이 승화시킨 시입니다. 입술에 녹아 드는 술로부터 장미화로까지의 추이 推移 는 육감적, 육체적인 세계가 높은 정신의 사랑으로 드높아져 가는 변모과정을 알게 해 줍니다.

 

 

朴木月

 

이쯤에서 그만 하직 下直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 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포기 蘭 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꽃이 갓 피어날 때의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꽃이 만개한 순간의 황홀한 세계를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는 꽃을 다 안 건은 아닙니다. 저 꽃이 뚝뚝 떨어지는 주검 – 낙화의 비장한 최후까지를 통틀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꽃의 아름다움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도 항용 이 꽃과 같을 수 있습니다. 꽃이 영원히 지지 않는 것이 곧 그 꽃의 아름다움이나 생명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 듯이 사랑도 이별 않는 것이 영원한 사랑인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하직을 함으로써 그 미흡한 정이, 못다한 사연이 더욱 절절히 간직되어 사랑의 영토를 확대시키며 불망 불망의 별로 빛난 수 있습니다. 먼 곳에서 더욱 은은하고 향기로운 동양란 東洋蘭 처럼 깊고 그윽한 사랑만이 사랑하는 이를 이별하는 큰 시련을 이길 수 있습니다.

 

 

郊外 III

朴成龍

 

바람이어.

 

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

그 무형 無形한 것이어.

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와 흔들며 애무 愛㒇 했거니,

나의 그 풋풋한 것이어.

불어다오.

저 이름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

다시 한번 불어다오, 바람이어.

 

아, 사랑이어.

 

일생에 사랑이 없었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삭막하였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위대한 정신작용이 없었다면 인간은 수성 獸性에 사로잡힌 짐승에 지날 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목석과도 같은 물체에 지날 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장 타락한 인간은 비정한 인간이오, 비정한 인간에겐 구원도 없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랑의 깊이가 심화 深化됨은 축복이오, 반대로 무디어 둔화 鈍化함은 슬픔 일입니다. <돈 환>과는 달리 열 몇 번씩 사랑에 가슴 태운 <괴테>는 이런 의미에서 축복받은 영혼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랑, 그 무형한 것, 그러나 그 힘은 놀라운 일을 일으킵니다. 굳어있는 마음을 품고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우주만상을 빛나게 하고 천지 만물을 찬송하는 생의 한창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항상 이 사랑의 훈풍이 불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長距離電話

朴英 淑

 

가없는 텍사스 휴스톤에서 오늘밤도 건너오는 그의 목소리

안개비를 부르는 그 낮은 목소리

목소리에 안겨오는 우람한 정감 情感

현악 絃樂인 듯 감칠 듯한 잔잔한 울림

 

혀 끝에 와 머무는 한 올의 율조 律調.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 利器는 단순히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였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적이 많습니다.

여러 시간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거리에서 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를 건너서, 혹은 우주 공간에서까지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외로운 인간 사이의 유대를 강화시켜 주는 손길이 됩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걸려오는 장거리전화는 고운 파랑새의 내방처럼 반가운 것입니다. 어둠을 헤치고 들려오는 사랑하는 이의 음성, 그 음성에 스미인 따뜻한 정감은 얼마나 고맙고도 훈훈한 것이겠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음악보다도 감미롭고 가슴을 울리는 그런 율조가 아니겠습니까.

 

 

歲月이 가면

朴寅煥

 

지금 그 사람 이름을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무잎은 떨어지고

나무잎은 흙이 되고

나무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사랑을 <열병 熱病>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전 인격과 전심전령을 다 태우며 육체가 초췌해지기까지 하는 사랑의 심려 心慮를 진단한 말인가도 싶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홍역과도 같아서 일생에 한 번 이 열병을 앓아보지 못한 사람이 혹시 있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성인 成人일 수가 없다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의 힘은 놀랍도록 우리를 변모시킵니다. 사랑이 간 후에도 그 사랑이 남긴 옛 자취나 향기는 오래 오래 남습니다.

사랑은 나를 성숙케 하고 인간이나 인생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전 우주의 신비까지도 푸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님은 갔어도 님과 나와의 옛추억, 그 고뇌, 그 희열은 구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진실입니다.

 

 

朴在森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 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다헌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前生의 내 全 설움이요 全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의 소망은 서러운 소망입니다.

이 세상에서 맺지 못하는 사랑의 한 恨은 어디서 풀어야 합니까. 그것은 또 한번 저승땅에서나 기대를 걸어보는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이 짝이 없이 홀로 추는 춤이라면 그래서 그 사람의 반가운 응답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이 또한 얼마나 한스런 노릇입니까. 마음 속에 숨기인 이 상사 相思는 마냥 부끄러이 감추어져서 님의 등 뒤로 벋는 감나무나 되리라는 귀절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몸부림이 엿보입니다. 무슨 살 煞 이라도, 맞은듯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도 못한 채 아주 영영 헤어져버리는 서러운 연인들의 사연이 가슴을 찌르듯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自畵像

朴貞淑

 

내 밤낮은

마디마디 이어온 기다림이다.

 

맷돌에 밀갈듯

맷돌에 밀이나 갈듯

해겨운 나날을 갈 뿐.

 

바람 없어도

마음이야 늘 삐걱거리고.

 

바다에 설까…

찝찔한 내음

역하고 서룬 살내음

못버려.

 

오늘토록, 내

여닫는 장지문에

아픔은 절어….

 

여자가 지닌 속성 屬性 중에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가진 것은 큰 은총이라 생각됩니다. 오래 오래 조용히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은 여인의 능력입니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은 여인의 능력입니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은 사랑스럽고 유순한 것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성급하고 서두르는 것을 이기고야 맙니다.

여자의 밤낮은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며 그 일생 또한 긴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을 벗어나 기다림에서 해탈하면 슬픔도 번뇌도 없으련만 끝내 인간적인 체취를 저버릴 수 없어 마음은 바람 없어도 삐걱 이는 사립문처럼 기대를 버리지 못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끝내 인간의 영역을 못 벗어나는 고뇌가 아프게 부각되었으면서도 진정 그 고뇌로 하여 더욱 절실한 공감력을 불러 일으키는 시 입니다.

 

 

투도 거리

– 사이공 中心街 –

朴貞 姬

 

거기서 만났었지

 

門 닫힌

뜨거운 대낮에

 

홀로 마신 물맛을

함께 보이고 싶어

 

表情을 포개고 찾는

투도 거리엔

 

눈이 닮아

슬픔이 닮은

 

외로운 이들끼리

거기서 만났었지.

 

깊이 자연을 사랑하고 신의 사랑을 체험하였던 이탈리아의 신비가 프란체스코 성인은 나르는 새들과도 이야기하고 시냇물의 물고기들도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더 가까이는 ‘슈바이처’ 박사가 밤중에 잠 깨어 꿀꿀거리는 돼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자장가를 불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두 분의 행적의 근조를 이루는 것은 생명에의 경외심 敬畏心 말고도 더욱 깊은 사랑과 일체감과 연대의식이 함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동족상쟁의 비극적인 전란을 겪고 있는 월남 사이공 거리에서 만난 이들, 햇빛만이 끓어 내리는 고요한 대낮에 만난 이들, 눈이 닮고, 슬픔이 서로 닮고 같은 외로움,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끼리의 해후는, 그 순간의 이해와 동정은, 일체의 언어와 일체의 장애들 뛰어넘는 사랑의 만남입니다. 그 상대가 꽃이든지 새이든지 여자든지 혹은 남자이든지…

 

 

輓歌 II

朴賢玲

 

좀 더 가까이

와서

피부를

내게

비벼 보아라

 

우리 그간의

歷史를

親密을

밀착해 보자

 

택일할

겨를은

더욱 없나니

장마철 거센

빗줄기처럼

퍼부어 오는

充足感으로

 

우리 그간의

歷史를

배반을

다시 한번

밀착해 보자.

 

살뜰한 정을 서로 주고받던 사람들이 무언가 오해하여, 섭섭하여, 혹은 미워하여 돌아서는 자리에는 찬 서리가 내리고 가마귀가 웁니다. 구슬픈 만가만이 울리고 검은 깃발이 나부낍니다. 그 슬픔과 가슴 찢어지는 괴로움을, 비통한 오열을 달랠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 울고만 있어서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냥 한숨만 쉬고 있어서도 무위한 짓입니다.

애초에 사랑 그것이 지혜와 의지 위에 형성된 것이었다면 이 예기치 않았던 타격 앞에서도 우리는 다시 한번 자기 전부를 경주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약하고 사람의 감정이 더욱 가변적인 것을 이해하여 넓게 용서하고 용납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간의 역사와 배반을 다시 한번 밀착’ 시키는 이런 인고와 의지 앞에서는 불사조의 혼처럼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戀歌

朴喜璡

 

나는 네 안에 빠지고 싶다.

하늘이 못물 속에 잠기어 있듯이

 

눈은 눈 속으로, 살은 살 속으로

더불어 흐르면 목숨은 타는 불.

 

홀로 있을 때도 너는 나의

가장 깊은 안에 숨 쉬고 있고나.

 

뼈 속의 어둠에서 피어난 꽃이여,

나와 하나이면서 떨어져 있는 섬.

 

사랑은 서로 떨어져 있는 몸과 마음이 해후하는 것입니다. 유황과 유황이 부딪히듯이 서로 만나 일으키는 불꽃입니다. 하나로 합일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이러한 의지가 있음으로 하여 다른 동물의 세계와는 달리 인간의 사랑은 고귀한 것입니다.

조물주가 처음 ‘아담’을 만드신 후에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이브’를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이란 갈비뼈가 제자리를 찾아 드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남성의 뼈 속의 어둠에서 피어난 꽃, 그것이 곧 그의 영원한 반려인 여인이라면 그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인 관계가 아닙니까.

홀로 있을 때도 항상 가장 깊은 안에 숨쉬고 있는 님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분명히 알게 해 주는 동시에 인간의 높은 정신작용의 한 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봄비

卞榮魯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 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얼어붙은 겨울잠으로부터 만물을 깨워 일으키는 것이 봄비입니다. 깊이 깊이 스미어서 영혼에 속삭이는 것이 봄비입니다. 그래서 봄비는 그 어느 철의 비보다 다정하고 낭만적입니다.

봄비 오는 날 하염없이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상심하는 이의 시름이 담겨있는 시입니다.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라고 되풀이 되는 각 연의 첫 귀절은 음악적인 율조에서도 가절 佳節 일 뿐 아니라 의인 擬人 의 수사 修辭가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비유가 참신하면서도 유사성 類似性을 잘 찾아내었기 때문에 봄비의 은은한 정취를 한껏 만끽하게 합니다.

몇 번의 환희와 기대가 몇 번씩이나 거듭 무너지는 사랑의 축조 築造와 붕괴를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지은이와 함께 경험합니다.

 

 

無題

徐廷柱

 

마리아, 내 사랑은 이젠

네 後光을 彩色하는 물감이나 될 수 밖에 없네.

어둠을 뚫고 오는 여울과 같이

그대 처음 내 앞에 이르렀을 땐,

초파일 같은 새 보리꽃밭 같은 나의 舞臺에

숱한 男寺黨 굿도 놀기사 놀았네만,

피란 결국은 느글거리어 못견딜 노릇.

 

마리아.

이 춤추고 電氣 울 듯하는 피는 달여서

여름날의 祭酒 같은 燒酒나 짓거나,

燒酒로도 안되는 노릇이라면 또 그걸로 먹이나 만들어서,

자네 뒤를 마지막으로 따르는 –

허이옇고도 푸르스름한 後光을 彩色하는

물감이나 될 수 밖에 없네.

 

시커먼 숯덩이의 탄소가 다져지고 다져지면 희귀하고 찬란한 빛깔의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한 알의 다이아몬드가 이루어지기까지에는 햇빛 반짝이고 폭풍우 울부짖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합니다. 수많은 꽃이 피었다 지고 수많은 생명이 왔다 가야 합니다.

원시의 숲 위에 작열하는 태양처럼 불게 타던 사랑, 춤추고 전기 울 듯하던 피가 마침내 응혈되고 졸여져서 먹으로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통곡과 쑥덤불과 홍싸리 흑싸리의 고개를 넘어왔겠습니까.

한 마디 풋풋한 암노루같았던 여인을 정신과 구원의 여성 마리아로 구현하기까지 열번도 더 물구나무를 섰을 사랑, 사랑은 마침내 이렇게 도 道를 통합니다. ‘무제’라는 이 시의 제목부터가 그 과정의 한많은 말을 함축하고 잇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내

成春福

 

어쩌다가 지친 걸음에도

꽃가게를 들러

잎사귀도 없는

덩그런 꽃을 사 들면

곧장 버스를 타고

집을 향한다.

 

꽃을 피워 둔

混沌 속의 떨기,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않는

어깨 위를

흔들리며 달리는 꽃,

 

침침한 골목을 벗어나

선한 하늘 아래 들면

이내 넓은 웃음으로 덮쳐오는

巨大한 꽃 속의 얼굴,

 

아내는 헌거로운 꽃을 안고

꽃과 나란히

거울 앞에 서서

멋 모르는 삭정이의

나를 웃는다.

 

소시민의 작은 행복, 오롯한 살림의 조그만 위안을 우리는 이 시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날마다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뻐바뻐 뛰어 다니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고 조용히 생각해 본 적이 많습니다. 도무지 무엇 때문이지 모르지만 분주한 삶에서 한 묶음의 꽃을 사 들고 가는 남편과 그 꽃을 받아 안고 감사하는 눈길로 미소 짓는 착한 아내를 우리는 이 시에서 만납니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여 얻는 것은 어쩌면 저 잎사귀도 없는 꽃 묶음 처럼 어설픈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줍잖고 어설픈 이 노력의 댓가. 넓은 웃음으로 맞아주는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이 꽃 묶음은 어느 장원 장원의 화려한 꽃보다 값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편은 그 가정의 제왕이 되고 제왕을 둘러 앉아 오손도손 화목한 나라가 세워집니다.

 

 

랑데부

宋稶 송욱

 

마음에 꼭 들면

줌안을 벗어나고

줌안에 든 몸은

아득한 마음 구름

 

기다리는 一秒마다

붉으레 물들이며 뒤끓는 피여!

 

날개죽지가 부숴진 時代에도

순간마다 그대 품안이고저…

 

이 시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사랑할 그 분을 찾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분이 또 꼭 나처럼 나를 사모하여 마지않아 랑데부가 이루어지기란 더더구나 지난 至難 의 일입니다.

마음에 들면 손이 안 닿거나 손이 닿으면 가화 假花 이거나 한 신기루의 헛된 영상에 우리는 수백 번이라도 속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망하는 법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 뒤끓는 피로 님을 기다립니다.

천재지변 天災地變 이다, 전쟁이다, 학정이다 하여 인간적인 것이 모두 마멸되어 버리고 파괴되어 버리는 불행한 시대일수록 사랑은 그 폐허에서 되살아 일어나는 불사조가 됩니다. 그러한 시대일수록 뜨거운 사랑의 랑데부는 삶을 긍정하는 불씨가 됩니다.

 

 

흙의 말씀

愼達子

 

당신의 구두에

흙을 털어낸다.

 

진 땅을 밟아 온 세상 이야기

낱낱의 紀行을 털어 내고 있다.

 

空簡을 나르는 새의 날개

먹이를 물고 오는 어미 주둥이

 

씨앗을 껴안는

흙의 말씀

 

구슬이 떨어진다.

당신의 피로 물드는

絶頂의 흙

 

흙의 말씀 들린다.

진 땅을 가려 딛는 발자욱 소리

뼈가 패이는 굵은 빗줄기가

머릿속 깊이깊이 퍼붓고 있다.

 

흙을 털어낸다.

진흙 속에 빠져 온

당신의 하루

당신의 침묵이

비로소 열린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아내가 남편의 구두를 털고 있습니다. 구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그 흙에 담겨온 사연을 아내는 헤아려 봅니다.

구두는 신고 다니는 신발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거기 묻은 흙은 그 신발이 밟고 다닌 마른 길, 진 길에서 모두 묻어온 것입니다.

이 시에서 구두는 다시 남편을 대유 代喩하고 있습니다. 구두에 묻어온 흙은 남편이 온종일 애쓰고 다닌 형적이 됩니다. 기다리는 새끼새들에게 먹이를 날라오기 위하여 가이 없는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어미새처럼 애를 쓰는 남편의 수고에 감사하는 아내의 마음이 시로 엮어진 것입니다.

감상적인 어휘 하나 남용함이 없이 구두에 묻은 흙이라는 지극히 산문적인 소재로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엮은 시인의 솜씨는 놀랍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시는 사랑하는 마음에서만 울어나게 됩니다.

 

 

너에게

申東瞱 신동엽

 

나 돌아 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 가지 못한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 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 터

새눈 돋듯

 

허구 많은 자연중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사랑하는 이와 만나서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목숨 다하는 날까지 복된 삶을 누리고 싶다는 것이 일반 상식적인 소망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이런 상식적인 사고 思考가 전도 顚倒 됩니다. 내가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날 너는 그제서야 태어나 살라고 말하여 흡사 상사화 相思花 의 잎과 꽃처럼 만나지 않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은 사랑의 애끓는 역설 逆說 임을 독자는 이해하실 것입니다.

‘두고 가지 못할 / 차마 소중한 사람’, ‘허구많은 자연 중 /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라고 하는 구절 구절마다 주사 朱沙 같이 붉게 배어나는 사랑의 자취를 엿봅니다.

이승에서는 도무지 만나지지 않는 님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노래하는 사랑의 시도 있습니다.

 

 

잠 깨었을 때는

申東峻

 

난 당신이

좋아요

 

더욱이 당신이

성을

안 낼 때는.

 

당신이

잠 깨어

 

눈을 떴을 땐

제일 좋아요.

 

시는 언어예술 중 최고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에 쓰이는 언어는 언어 중의 언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을 얼핏 잘못 이해하며 시라는 것은 퍽이나 어려운 것, 시어 詩語는 특별한 말인 것으로 간주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지레 겁먹은 편견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평이한 일상어로 쓰인 읽어서 모를 곳이 하나도 없는 글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리땁고 호소력있는 아가 雅歌 입니다.

열 줄도 채 안 되는 이 글이 독자를 매료시키는 까닭은 특별한 언어 구사나 기교에서가 아니며 소박하고 정직한 연정이 시심 詩心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한 쉬운 언어들이 우리를 가까이 이끌기 때문입니다.

 

 

네게로 간다

申東春

 

더는 바랄 것 없는 오솔길에

푸짐히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셔라.

 

오랜 망설임과 이별하고

네게로 돌아서는 지금은

눈을 감아도 비최이는

대낮같은 빛을 따라

순종하는 새댁같이

걸음을 옮긴다.

돌아보면 돌이 된다.

소금기둥이 된다.

虎食이 된다.

 

아! 나는 灼熱하는 太陽을 이고

네게로 간다.

 

사랑의 선택은 한 결단 決斷 입니다. 선택하기 전에 생각하고 망설이고 할 수는 있으며 한번 취하여 선택하면 뒤돌아는 갈 수 없는 일방 一方의 길입니다.

사랑의 선택은 자기 전부를 경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랑에 대한 모든 권리와 책임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우리나라 옛 전설 중에 돌아보아서는 안 되는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돌이 되고 소금기둥이 되고 혹은 호랑이밥이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의 결단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랑의 길을 막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자잘한 미련이나 이기심이나 사회의 인습같은 것들이 사랑을 침노하여 상처나게 합니다. 현명한 선택, 자신있는 결단을 이런 쓸데없는 잡음에 귀를 막고, 속아 뒤돌아 봄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隕石처럼

辛夕汀

 

외로운 밤에는

자꾸만 별을 보았다.

 

더 외로운 밤에는

찬란한 유성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곱디 곱게 타다간

그렇게 낭자하게 타다간

 

네 심장 가까운 곳에

隕石처럼 묻히고 싶었다.

 

어두운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떼는 검은 비단에 수놓인 꽃 떨기들 같고 살아 움직이는 생령들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외롭고 쓸쓸할 때 우리 머리 위에 반짝이는 별들을 우러러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북극성을 찾고 북두칠성을 헤아리고 은하수를 건너며 별의 전설을 좇는 중에 우리 마음은 절로 너그러워지고 영원의 시간 속에 잦아듭니다.

또 그 밤하늘을 가로질러 혹은 세로의 긴 줄을 그으며 흘러내리는 유성 流星을 우리 전설에서는 땅 위의 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저 흘러 내리는 유성처럼 곱게, 황홀하게 살고 사랑하며 마침내 죽어가서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묻히는 운석이 되고 뜨거운 소원 – 후회 없는 삶과 후회 없는 사랑을 동경하는 생명의 지향을 우리는 이 시에서 봅니다.

 

 

雨水驚蟄

申石艸 신석초

 

임은 먼  涅槃 열반에 가 계시고

나는 외로히 이 밤을 우네

 

이 세상 風波에 떠밀리는 삶의 바다에

어느 蓮花가 피어 있으리요

메마른 江둑에 바람이 이네

 

어쩌자고 봄은 또 열리려 하는가

二月을 이미 깨고 三月이 오네

雨水 驚蟄에 대동강이 풀린다 한들

저 건너 꽃 꺾을 배도 없을라

 

내 이 밤을 울고 있네

 

저 세상으로 떠나가신 님을 그리는 그리움이 연연히 깔린 시입니다. 잔잔한 가운데 아픈 신음이 담긴 시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풍파에 떠밀리는 삶의 바다에 / 어느 연화가 피어 있으리요’ 라고 하여 가신 님은 연화꽃처럼 고귀하였음을 말하며 동시에 님처럼 고결한 이가 세상에 다시 없음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고 우수 경칩에 대동강물이 풀리지만 강 건너에 계신 님을 만나 볼 길은 묘연합니다. 생 生과 사 死를 가르는 저 강물을 건널 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이토록 한 번 가면 다시 오기가 어려운 주소인지, 가혹한 단절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인가 합니다. 그 어려운 주소로 님을 보내고 홀로 남은 이의 애수에 우리의 가슴도 함께 젖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梁柱東

 

산 넘고 물 건너

내 그대를 보려 길 떠났노라.

 

그대 있는 곳 산 밑이라기

내 산길을 톺아 멀리 오노라.

그대 있는 곳 바닷가라기

내 물결을 헤치고 멀리 오노라.

 

아아, 오늘도 잃어진 그대를 찾으려

이름 모를 이 마을에 헤매이노라.

 

무지개를 잡으러 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 개인 하늘에 일곱가지 현란한 빛깔로 무늬진 무지개에 홀려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멀고 먼 길을 무지개를 잡으러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맨 처음 길을 떠날 때에는 볼이 붉고 머리가 검은 소년배들이었으나 오랜 세월 헤매이는 동안에 이마와 볼에는 깊은 고랑이 패이고 머리에는 흰 눈이 내려 은발이 된 채 지쳐 돌아옵니다. 끝내 무지개는 못 잡은 채 돌아옵니다.

사랑을 찾아 헤매이는 것도 어쩌면 이 무지개를 잡는 이야기와 같은 지도 모릅니다. 끝내 못 찾을 지도 모르는 님을 찾아서 산과 물을 넘고 건너며 이름모를 마을을 헤매이는 마음, 그러나 이러한 사랑에의 꿈과 동경이 없다면 인생은 또 얼마나 삭막한 것이겠습니까.

 

 

處女

吳順鐸

 

진주 조개빛의 純潔이다.

꿀벌빛 음악이고

이따가 필 꽃이다.

방그란 돛이고

유순한 느릅나무 잎이다.

바람도 두어 번 흔들어 보는

 

여인 중에도 가장 싱싱하고 무구한 이는 처녀입니다.

처녀는 그 몸과 영혼이 한결같이 순결하여 그 순결함 하나만 하여도 귀하고 예찬받을 존재라 하겠습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긴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의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이렇게 노래한 구약의 아가서  雅歌書를 읽는 듯한 예찬의 시입니다.

 

 

내 少女

吳一島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놓고

내 少女 어디 갔느뇨

 

…………………..

 

薄紗의 아즈랑이

오늘도 가지 앞에 알른거린다.

 

두 눈이 샛별 같고 두 볼이 능금같으며 나풀대는 머리칼이 다박솔같은 소녀들을 우리는 압니다. 그들은 즐거웁기 종달새이며 어여쁘기 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녀들은 금방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마술사의 피리 소리에 이끌리어 이름 모를 숲 속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지 누가 데려가는지 소녀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며 그 자리에는 수다스런 아낙네나 늙은 노파가 남이 있습니다.

이 시는 멀리 어디로인지 가버린 소녀를 끝없이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시에 있어서의 가장 절묘한 구절은 말줄이표 하나만으로 나타낸 제 이련 입니다. 천만 마디의 말씀을 함축하고 억만의 그리움과 의혹과 원망과 근심과…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삼련으로의 비약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집니다.

 

 

滿月

王秀英

 

귀뚜라미 여물게 우는

가을밤이면

그리웁게 떠오르는 얼굴들

 

달빛 부서지는 냇가

정다운 바람이 스치면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

 

마음 가득히 계절의 속삭임

엽서에 사연을 적어 볼까

알알이 이 영글어 터질 듯한 가슴

 

가을밤

귀뚜라미 여물게 울면

자꾸만 동글게 솟아오르는 滿月

 

계절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가장 유정해지는 것은 가을이 아닌가 합니다. 섬돌 아래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긴 가을밤이면 우리는 잠을 설치고 전전반측 輾轉反側 하게 됩니다.

어느 계절보다 더 많이 외로움을 느끼고 인정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잊어버린 옛 추억이 되살아나며 잊어버린 옛 얼굴, 옛 이름들이 만월처럼 떠오릅니다. 잠깐 스쳐 지나간 일들도 새삼스런 의미를 안고 다가옵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듯 성숙한 인생의 눈으로 삼루에 접하며 새로운 사랑의 눈도 뜨입니다.

다정다감해지는 가을밤의 사념 思念과 정회 情懷를 곱게 정돈한 시입니다. 귀뚜라미의 울음을 야물게 표현한 것은 아주 감각적인 표현이며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는 그리움을 만월에 빙의 憑依 한 것도 세련된 솜씨입니다.

 

 

램프의 詩

– 아내 秋姙에게

柳呈 유정

 

하루해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는 남루한 마음 앞에

조심된 손길이

지켜서 밝혀놓는 램프

유리는 매끈하여 아랫배 불룩한 볼류움

시원한 석유에 심지를 담그고

기쁜 듯 타오르는 하얀 불빛!

— 쪼이고 있노라면

서렸던 어둠이

한 켜 한 켜 시름없는 듯 걷히어 간다

 

아내여 바지런히 밥그릇을 섬기는

그대 눈동자 속에도 등불이 영롱하거니

키 작은 그대는 오늘도

생활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얼빠진 내가

길 잃고 먼 거리에 서서 저물 때

저무는 그 하늘에

호호 그대는 입김을 모았는가

입김은 얼어서 뽀얗게 엉기던가

닦고 또 닦아서 티없는 등피!

 

세월은 덧없이 간다 하지만

우리들의 보람은 덧없다 말라

굶주려 그대는 구걸하지 않았고

배불러 나는

지나가는 동포를 넘보지 않았다

램프의 마음은 맑아서 스스롭다

거리에

동짓달 바람은 바늘같이 쌀쌀하나

우리들의 밤은

조용히 호동그라니 타는 램프!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란 만금 萬金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되고 값진 삶이 부귀영화와 직결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귀처럼 긁어모은 만큼 속에는 백성의 피와 땀이 배어 있기 십상이며 그 뒤꼭지에는 굶주림의 아우성이 따르고 있습니다. 권력은 항시 불안하고 고독하며 그 날카로운 칼날 앞에 묵묵한 침묵은 소리없는 반항이오, 원성입니다.

부귀영화가 자랑스런 일이 못되고 가난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 세상에서라면 조그만 램프의 불빛 같은 조촐하고 소박한 삶을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하늘 아래 부끄럼 없는 삶이 되겠습니다.

오른 편 뺨을 칠 때 왼편 뺨을 내미는 선량한 서민의 진실로 지복 至福 한 자부 自負와 안락을 우리는 이 시에서 읽으며 거지지 않는 희망을 지니게 됩니다.

 

 

雅歌

柳致環

 

어떻게 어떻게 당신 오시렵니까

 

거룩한 이가 걸어서 바다를 건너 오듯

그렇게 뜻하지 않은 길로

놀랍게도 이적 異蹟하여 오시렵니까

 

한밤중 천지가 잠든 사이

뜻밖에도 은밀히 문전에 와 부르셔

소스라 가슴 놀라 주는 그런 재미로

오시렵니까

 

아니면 산마루를 물들이는 새벽 첫빛모양

온 세상이 함께 기쁨에 나눠 젖는

그렇게 휘황스리 거동하여 오시렵니까

 

아아 진정 당신 어떻게 어떻게 오시렵니까

 

사랑을 할 때에 사랑을 하는 까닭을 물으면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 수가 있습니까. 그의 눈이 이뻐서 입술이 고와서 인품이 훌륭하여서… 하는 말들을 아무리 나열하여도 그것은 사랑하는 까닭이 못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구걸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돈으로 살 수도 힘으로 뺏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떻게 이룩되는 것일까요. 그 우연한 점화 點火를, 그 느닷없는 해후를, 이적 異蹟 처럼 일어나는 신묘한 계기를 청마 시인은 이 시 속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산수의 셈을 뛰어넘어 온갖 이해 利害와 타산 打算을 초월하는 것이 사랑이며 사랑하는 것이 오직 사랑의 까닭이요 율법인 연고로 사랑은 당연히 축복받을 인간정서입니다.

 

 

少年

尹東柱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람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 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

– 아름다운 순이 順伊의 얼골은 어린다.

 

소년의 영혼은 투명합니다. 그 맑고 투명한 영혼의 사랑 또한 비할 데 없이 순결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유년기의 아련한 추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에 새긴 문신 문신처럼 아직도 자국이 남아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생을 통하여 그토록 지순 지순한 사랑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수줍고도 순열한 그리움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순화시키던 것인가를 우리는 압니다.

시인 윤동주는 8.15 해방을 수개월 앞두고 일본 형무소에서 옥사한 저항시인입니다. 한 폭의 깨끗한 수채화런듯 펼쳐진 이 시에서 우리는 윤동주 시인의 지성과 인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위에 내성적이며 고독한 모습까지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을과 소년과 소녀, 지난날의 사진첩을 펼쳐보는 듯 우리에게도 익숙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아니겠습니까.

 

 

하늘

尹常奎

 

비어있는 하늘에

그리운 이의 얼굴을

새겨 넣는다

눈을 새겨 넣는다

여지껏 아무도 돌보지 않고

뒤란에 버려뒀던 하늘

그리운 이 앞에

펼쳐 널고

그 빛나는 얼굴을

새겨 넣는다.

 

넓고 푸르고 아득한 하늘을 우러러 복 있노라면 그 하늘 위에 세상에서도 제일로 귀한 것을 새겨 넣고 싶습니다. 가장 뜨거운 연서를 쓰거나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그려 넣고 싶습니다.

하늘 위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수천 번도 더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못 가졌을 때는 그냥 비어있는 하늘이겠으나 사랑하는 님을 가진 이가 바라보는 하늘은 그냥 비어있는 하늘이 아닙니다. 무수한 님의 얼굴이 가득 찬 하늘이 될 것입니다.

여기 비어있는 하늘, 버려뒸던 하늘은 사랑이 받아하기 이전의 마음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빈 마음 앞에 사랑의 씨앗이 던져졌습니다. 이제 이 비어 있었던 화폭에는 사랑하는 이의 빛나는 얼굴을 그려넣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사랑은 이 화폭 구석구석을 그득히 메우고 말 것입니다.

 

 

겨울의 불꽃

李嘉林

 

저문 저자에서 몇되의 석유와 배추를 사들고

太宰治 1 같이 시든 남자를 만나러 오는 그대여

하나님의 기침소리보다 더 적막한 눈발이

퍼부어내리는 이 백팔번뇌의 뜰에서 입 맞추자.

 

절망하는 남성에게 힘을 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상처입은 맹수처럼 처참히 패배하여 앓고 있는 남성을 다시 회복시키는 손길은 누구의 것입니까.

나자는 세계를 정복하지만 여자는 다시 그 남자를 정복한다는 의미깊은 말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위대한 위인이나 거장들에는 훌륭한 어머니와 혹은 어진 아내나 현명한 연인이 함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황막한 겨울날같이 모든 것이 닫히고 막혀있는 그러한 처지에 놓여있을 때라도 그 겨울을 사루는 불꽃처럼 밝고 따뜻한 여인의 사랑이 있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암굴 속에 비쳐드는 한 줄기 햇살처럼 서서히 그러나 끝끝내 그 사랑은 온갖 고뇌와 절망의 빙벽 氷壁을 녹여내고야 말 것입니다.

 

 

李健淸

 

붉은 피가 잔잔히 氣化해 가고

우리는 서서

메마른 낙엽을 보내고 있다.

숱한 탐색의 손으로 일하며

詩를 만든다고

 

굳고 캄캄한 흙을

피 흘리며 파들어 갔어.

지금은 가을이야,

포케트에 아픈 손을 찌르고

우리는 간다.

 

마지막 몇개 낱말을

어깨를 나란히 걸어가면서 네게 준다.

 

낙엽지는 밤길에서

가자, 사랑아

저 아득한 雪原 쪽

우리들의 의자가 비치된

불타는 숲속에서

뜨거운 커어피를 마시며

잃어버린 것들을 울자.

 

우리는 메마른 樹皮를 견디는

가난한 백성이다, 낙엽이다.

 

인간의 몸은 무수히 신비한 요소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검은 머리 털이며 부드러운 살결, 눈, 귀, 코, 입, 내장이며 핏돌기며 또 그 호흡이며 순환이며 사고 思考 며 놀랍고 오묘한 요소들이 기묘히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 神은 인간에게 이 모든 기관을 주면서 그 기능을 십분 발휘하라는 뜻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래서 눈은 많이, 잘 보고 귀는 옮고 옳지 못함을 가려들어라 하셨을 겝니다.

인간의 손은 인간의 지체 중에서도 노동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더듭고, 찾고, 헤매는 아픈 돈은 곧 탐색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손이 피 흘리며 파온 몇 알갱이의 낱말을 사랑하는 이에게 드립니다. 몇 개의 낱말밖에 지나지 못하여도 그것은 가장 정직하고 신성한 노동의 댓가이기에 무엇보다 빛나는 사랑의 헌납입니다.

 

 

噴水

李璟姬

 

가난하여 지닌 것이라고는 꿈 뿐인 것을

오라 그대

내 꿈 속으로

 

금잔디로 그대 자리 깔아 놓았오

풀벌레들의 연주

天地에 그득한 이 饗宴

그대 내 꿈 속으로 맞아드리리니

和合하는 弦을 튕겨주오

 

창공을 우러르고

잔디 위에 누우니

귓전에 울리는 한울림 숨결

 

땀을 쓰고 땀을 닦는 꿈 속으로

엉기어 얼싸안고 궁드르는 洪水

海峽의 내음

우주는 絢爛 한 꿈밭으로 덮이었오.

 

어데선가 뜨거운 拍手소리

내 바단 심줄이 그대 몸 감고

첼로의 弦이 떨고 있오.

 

세속적인 가난은 사랑의 나라에서는 이야깃거리가 안 됩니다. 그것은 입고 있던 헌털뱅이 옷과 같은 것이어서 벗어 내던지면 그만인 것입니다.

세속적인 부귀는 사랑의 나라에서는 오히려 무거운 부담이 되며 짐이 죕니다. 그것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정신을 혼몽케 하려 막고 바른 선택을 저해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가난하여 지닌 것이라고는 꿈 뿐이라는 이 시인의 고백은 일견 겸양의 뜻을 표현하는 듯하면서 무한의 부 富를 자부하는 것입니다.

궁궐같은 집이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고운 옷이 있다 한들 꿈이 없다면 이것 모두는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꿈이 없으면 미래도 희망도 예술도 사랑도 없습니다.

지금 아무 가진 것이 없다 하여도 아름다운 꿈을 가진 이에게 사랑은 귀한 손님으로 초대 받아 오실 것입니다.

 

 

玉峰 李氏에게 답함

李根培

 

그대의 一代記는 젖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울음으로

朝鮮王朝의 기인 낮밤으로

그대 목숨의 사철은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 올 바람에도 살을 베이고

낮은 빗소리에도 피가 잦아들던

그대 낭자히 풀어 놓은 꿈은

到處에 피흘림으로 살아나서

지금의 사내들까지를 씌운다

보내오지 말라

天地를 건너고 건넌

그대 어질머리의 女子를

마른 풀잎이거나

아지랑이 같은 것으로도

태어나지 말라

만남이 없는 꿈의 떠다님 속에

영혼의 氷裂 을 짜는

그대의 삶은 늘 깨어 있다.

 

옥봉 이씨는 조선시대의 여류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옥천 沃川 군수였던 이봉 李逢 의 서녀 庶女로 태어나서 조원 趙媛의 소실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의 한시 漢詩 삼십 이편이 수록된 <옥봉집>이 지금 전하고 있습니다. <임 가신 내일 밤은 짧고 짧을지라도 ㅇ미 계신 이 밤은 길고 길진저 무심한 닭은 새벽을 알리니 두 뺨에는 즈믄 줄기의 눈물만 흐르는구려>

이 것은 옥봉 이씨가 쓴 <별한 別恨> 입니다. 이 시에서도 알 수 있고 그의 출생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달리 서러운 일생을 겨울 얼음 눈밭 속의 푸른 팟종처럼 살다간 여인이었습니다.

이러한 한 여류의 일생에서 취재하여 온전히 자기를 몰두시키며 사는 삶, 소리 없는 통곡으로 이어진 삶, 그 피맺힌 극기가 주는 감동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너무나 깊은 슬픔과 한 恨 앞에 눈물짓지 아니할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새댁

李東柱

 

새댁은 고시란히 말을 잃었다

 

친정에 가서는 자랑이 꽃처럼 피다도,

돌아오면 입 封하고 나붓이 절만 하는 호접 蝴蝶.

 

눈물은 깨물어 옷고름에 접고,

웃음일랑 조용히 돌아서서 손등에

배앝는 것.

 

큰 기침 뜰에 오르면

拱手로 잘 잘 치마를 끌어

문설주 반만 그림이 되며

 

세차게 사박스런 작은아씨 앞에도

너그러움 늘 慈母였다.

 

愛情은 법을 묶고

이내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서

宮體로 얌전히 상장을 쓰는….

 

머리가 무룻같이 端하던 새댁

지금은 바늘귀를 헛보시는 어머니.

 

아들은 뜬 구름인데도

바라고 바람은 泰山이라

 

조용한 臨終처럼

기다리는 새댁

 

우리나라 옛법 중에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로 삼종지덕 三從之德 이 있음은 모두 주지 周知 하는 바입니다.

출가 전에는 아버님의 뜻을 따르는 혼인하여서는 지아비의 말에 따르며 또한 지아비가 타계 他界 한 연후에는 자식의 의사를 따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닙니까.

여자 된 이가 마땅히 지켜 수행치 아니하면 안 되는 규범과 내훈 內訓들에 따라 일생을 순종하는 새댁을 소재로 한 시입니다.

운명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항거와 개척이오, 그 둘은 긍정과 감수입니다.

애정을 법으로 묶고 시름과 한을 스스로 달래고 인내하면 살아온 한국의 어머니, 한국의 여인상을 그리어 그들의 눈물로 감수한 운명의 행로를 역력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諦念

李姓敎

 

손톱을

깎다가

눈물이 핑 도는,

흙담에 오가는

칠칠한 情理

 

추운 날에도

사시나무처럼

마냥 바람에 일어서는,

어느 가난한 머시매의

서투른 사랑.

 

햇볕 흘러드는

울타리 새로

石紋처럼 금이 쭉 가면,

 

山이 하얗도록

울고 싶은

어느 驛口 의 落書

<날 데려 가시오>

 

사람의 눈에 띄지도 않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도 않는 깊은 산 속에 이름없는 산유화가 피고 지듯이 우리 마음 속에서 남몰래 일어났다 스러지는 사랑이 있습니다.

노래의 가락이 제 흥에 겨워 넘어가듯이 열매의 무게에 나뭇가지가 절로 꺾어지듯이 한번 고백도 못해본 채로 기차게 홀로 안타까와만 하다가 제풀에 스러지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체념은 그러나 문득문득 눈물을 불러오고 걸핏하면 서러움을 불러옵니다. 당치도 않을 기대에 마음을 곤두세우고 상심합니다.

어쩔 수 없이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뼈아픈 고통은 <산이 하얗도록 울고 싶다>는 표현에서 역력히 나타납니다.

사랑에 자기 모두를 불태워 본 사람만이 산이 하얗도록 우는 울음을 울 수가 있습니다. <날 데려 가라>는 투정같은 절규를 뱉을 수 있습니다.

 

 

메아리 II

李星煥

 

그리샤의 맑은 하늘이 고이고 있었다.

멀리 호수에 비치는 노을아래

구름이 있었고 한떨기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그 누구의 시름으로도 사랑할 수 없었던

그리샤의 소년을 위하여 마침내

그의 목소리만이 아름답게 남아 있었다.

 

청초한 자태와 芳香의 수선화에 얽인 전설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스스로 자기의 용모에 도취하여 자기 이외의 그 누구도 사랑할 줄 몰랐던 나르시소스의 비극은 자신의 운명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고 사랑한 다른 이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취하여 마침내 물에 빠져 죽어버린 미소년 美少年을 사랑한 여인은 그 차거운 냉대와 불응 不應에도 굽히지 않고 끝내 그를 따라 마침내 메아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승리는 이런 것입니다. 비록 형체없는 목소리만이 남아있다 하여도 그에게는 환희가 있습니다. 나르시소스의 불감증은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비극이지만 에코의 자기 희생은 그 충실한 정열로 인하여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참된 승리입니다.

 

 

성냥개비

李秀翼

 

可燃性 유황분의 그 끝을

가볍게

그슷는다.

 

불이 될 潛在를

비위처럼 건드린다.

확 댕기는

점화의

始發.

 

이 순간은

아마

神도 바람을 모았을 것이다.

보다 머언 흐름을 위하여 江河는

파도를

되풀이해 보냈을 것이다.

나의 손이 아끼는

그 불꽃의 開眼을 위하여….

 

사랑이어,

우리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외길로 交流하는 피의 感電을

그대는 또한 느끼는가.

 

우리는 누구나 가슴 속에 사랑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오면 그대로 터뜨려질 잠재하는 정열을 품고 있습니다. 성냥개비의 끝에 묻은 유황처럼 불이 붙을 요소를 안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부딛쳐 점화될 상대를 못 찾았기 때문에 그냥 성냥개비의 유황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이가 억겁의 시간 만에 서로 만난 듯, 그 눈과 눈이, 손과 손이, 그 영혼과 영혼이 맞 부딛쳐 부르고 대답하는 순간은 바로 성냥개비가 점화되는 순간입니다. 천지를 꽃불로 사를 불씨가 마련되는 순간입니다.

아마 하늘도 숨을 죽이고 이 엄숙한 발화의 순간을 지켜볼 것입니다. 사랑의 순간은 전류의 충격이며 숙연한 점화의 순간입니다.

 

 

流星

이영도

 

밤마다 긴 세월을

뜬 눈으로 밝히더니

 

아득한 꿈길처럼

기약없는 그리움에

 

九萬里 蒼蒼한 속을

뿌리치고 내린다.

 

밤하늘에 깜박이는 무수한 별들은 흡사 검은 비단에 박히인 보석처럼 휘황합니다.

몇 억광년의 시간을 찬란히 빛나온 저 별들은 마치 그리움에 가슴 태우며 밤을 지새는 이의 등불과 방불합니다.

끝없는 기다림,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시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기약없는 그리움에 몸과 마음을 태우다 마침내는 기진 쇠약하여 불귀의 객이 되는 원혼처럼 유성 流星은 집니다. 진실로 찬란한 슬픔이오, 찬란한 연소입니다.

하늘에 지는 한낱 별똥별을 소재로 하여 이처럼 눈물겨운 노래를 지을 수 있음은 시인의 무한광대한 상상력의 힘입니다. 더구나 이 시는 우리나라의 정형시인 시조의 짜임새에 맞춘 자수율 字數律 을 갖추어 단아한 형식미 形式美까지 아울러 지닌 노래입니다.

 

 

李陸史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나리쟎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北쪽 쓷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자겨려

제비떼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約束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城에는

나비처럼 醉하는 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물 한 모금 없이 타는 열사 熱沙의 사막에도 샤보뎅의 꽃은 붉게 피고 만년설 萬年雪에 덮인 고산 高山의 눈 속에서도 에델바이스의 꽃잎은 열린다 합니다.

어떤 각박한 상황, 어떤 견딜 수 없는 처지에서도 사랑의 꽃은 개화합니다. 어떤 가혹한 율법이나 제도로 사랑을 규제한다 하여도 여린 풀싹이 저 딱딱한 지면을 뚫고 올라오듯이 절로 치밀어 오르는 사랑의 힘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 목숨을 쉬임없이 꾸미는 꽃이며 빛이며 저바리지 못할 약속같은 것입니다. 인생을 풍요케 하는 향유이며 신의 섭리 속에 자라나는 자연의 꽃나무입니다.

시 <청포도>로 우리가 잘 아는 이육사 시인은 차디찬 북경의 감방에서 돌아가신 애국지사이기도 합니다.

 

 

和音

李仁秀

 

한 女子만을

줄곧 생각한다는 것은

소슬한 하나의

宗敎와 같다.

 

그 아찔하고

총총한 順列에서

너와 나는

다시 또 헤어날 수 없는 것을,

 

消印없는 편지에

한 종일

때만 묻히는

和音 방식.

 

여기 무엇이든

뒷갈망하기란

거덜난 生活의

알뜰한 부담이 아닐 수 없는 것을.

 

<한 여자만을 / 줄곧 생각한다는 것은 / 소슬한 하나의 / 종교와 같다>

이 시의 첫 구절은 흡사 금언 金言처럼 우리의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흔히 사랑의 문제에 있어 남녀의 속성을 가림에는 여자가 어느 한 점에 집착 몰두하는 데 비하여 남성은 동시에 여럿을 취하는 점이라고 합니다. 여인에게는 한 남성이 우주 전체가 되지만 남성에게 한 여성은 세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가 누구를 탓할 수 없는 품성이요,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무한히 자리를 바꾸는 이전 移轉의 명수인 남성이 한 여인만을 변함없이 사모하고 잊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신을 우러르는 종교와 같은 것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그 궁극의 진신 眞身은 바로 이런 종교에의 귀의로 승화하는 것입니다.

 

 

雪夜

李祭夏

 

시집가서 늙어버린 계집애가 오거든

아주 처음 만난 듯이 오래오래

입을 맞추리

주름살 자리마다 입을 대이고

그 조그만 머리를 꽉 껴안고

희푸른 窓곁으로 웃으며 가리

 

비뚤어져 내리는 우리 검은 입술은

보리차을 끓여서 바고 적시고,

앞골목 뒷골목 심지에는 바알간

불을 올려 달면서

‘그립다’ 소근대는 少女 애들은

구들목에 불그우레 살찌게 하고

눈온다! 눈온다! 소리질러라, 늙은 사랑아

 

시집가서 쬐그매진 계집애가 오거든

품을 열어 죄다 집어 넣어버리고

 

발구락 모조리 움추러트리어…

눈그쳐 뜨는 새벽별같이

눈깔을 데룩 데룩 반짝거리리

 

인생무상 人生無常 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고 죽고 늙고 병들고 하니 인생이 덧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육신이 변하여 가듯 사람의 영혼도 변하여 갑니다. 어저께 옳던 것이 오늘 옳지 않고 어저께 아름답던 것이 오늘 추하게 보이며 모든 가치가 전도되기도 합니다.

이미 오래 전에 사랑하였던 사람, 다른 남에게로 시집간 사람, 옛날에는 어여쁜 소녀였던 사람, 그러나 이제는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잡힌 얼굴에 눈이 어두운 늙은이가 되어온 사람, 그 사람을 이전처럼 사랑할 수가 있는 일이겠습니까.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하여도 변하지 아니할 사랑, 늙어서도 뜨겁게 입 맞추는 사랑을 이 <설야>는 노래한 것입니다.

불변의 영속성이 사랑을 증거하는 증표라면 이 설야의 서러운, 그러면서도 끈질긴 집념과 소유의 의욕은 그 충분한 증표가 됩니다.

 

 

哀歌

李昌大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숨막히는 이별을 말하지 않으리

여기로 불어오는 바람

서러웁고

저기서 울리는 종소리

외로워도

가만히 견디며 들으리라

커다란 즐거움은 아픔 뒤에 오는 것.

흐르는 강가에 가슴은 설레어도

말하지 않으리라 이별의 뜻을.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나에게 잠들게 하라

너의 그림자를.

 

가을이 오면 온갖 꽃과 잎이 집니다. 지는 꽃과 잎을 무슨 수로 만류하며 무슨 힘으로 붙들겠습니까.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묵묵히 따를 뿐입니다.

사랑도 마침내 이울 날이 옵니다. 저 꽃이 지고 잎이 지듯이… 그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이별을 맞이해야 합니까. 통곡입니까, 원망입니까, 아니면 발버둥질 입니까.

이별에 즈음하여 그 통절한 별리의 슬픔을 순하게 견디는 지혜가 이 <애가>에는 담기어져 있습니다. 쓰디쓴 것이 다하면 달콤한 것이 오고 흥함이 다하면 슬픔이 오는 법칙, 아픔을 참고 견디면 다시 즐거우이 오리라는 자위 自慰로 스스로를 달래는 독백은 읽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湖水

李炯基

 

어길 수 없는 約束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茂盛하던 靑春이

어느덧 잎 지는 湖水 가에서

湖水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같이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는 神秘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湖水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언제나 고요히 고여있는 호수를 사랑하는 이 기다리는 마음에 비유하여 지은 시입니다.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는 구절에서 엿볼 수 있는 사랑의 확신과 자신은 쉽사리 생겨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시련과 많은 세월을 거치고서야 가다듬어질 수 있는 자세입니다.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고 조그만 충격에도 흐느끼던, 섬세하고 가련하고 불안한 사랑이 아니라 고요히 가라앉아 기다리는, 기다릴 줄 아는 철든 사랑입니다.

신뢰와 신념으로 표출되는 사랑이 있습니다. 믿는 것, 그것은 얼마나 크나큰 사랑입니까. 이런 믿음, 이런 사랑을 가진 이야말로 일혹의 회의나 의심이 없이 저 호수처럼 고즈넉히 님을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 고운 잠

林星淑

 

잠자는 그대 얼굴에

숨쉬는 平和가

영영 깨어나지 말기를

겁내면서 겁내면서

虛構의 알을 줍는

꿈밭의 손이여

잠자거라

내 손의 풍요로운

갈등을 더듬어

꽃피는 安息이여

잠자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는 깊은 잠이 드셨습니다.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 속에서 그대는 쉽니다. 그 평안한 휴식이 영원하기를 비는 것은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그대의 죽음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대가 눈감고 장난스러이 속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깜짝 놀래주려는 것이지요. 그대가 홀로 저 세상으로 아주 가버린다는 것은 허구 虛構 이지요. 꿈 속의 일이지요.

이 마음은 갈피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가 그 고운 잠을 계속 자기를, 아니, 깨어나기를 내 마음은 갈팡질팡 헛갈립니다.

사랑하는 분의 주검을 목전에 두고 믿을 수 없어하는, 도무지 그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는 기막힌 마음과 애통을 읊은 시입니다.

 

 

사랑

張萬榮

 

서울 어느 뒷 골목

번지없는 住所엔들 어떠랴.

조그만 방이나 하나 얻고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숨박꼭질하던

어린 적 그 때와 같이

아무도 모르게

꼬옹 꽁 숨어 산들 어떠랴,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단 한 사람

찾아 주는 이 없은들 어떠랴.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

가난한 우리 들창을 비워 줄게다.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깊은 산 바위 틈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의지하며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사랑을 한다는 최미 최미의 일이 불행하게도 장벽에 부딛치는 수가 있습니다. 인습과 윤리와 도덕률에 위배되는 슬픈 사랑이 있습니다. 밭둔덕에 잘못 뿌려진 씨앗같은 사랑! 이러한 사랑은 아예 싹트지 말고 불붙지 말았어야 하겠지만 사랑의 본질이 그렇지가 못합니다. 불행한 사랑일수록,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모든 장애물들이 오히려 사랑의 불길을 가열케 하는 촉매 觸媒가 됩니다.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고 사랑하는 순이를 불러 노래한 이 시에서도 모든 온건하고 정당한 것만이 용납되는 세상이 눈길을 피하여 숨어사는 애인들의 살림과 심경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소외된 쓸쓸함과 순수한 사랑이 명암 明暗을 이루어 다저녁 때의 으스름같은 애수를 띄우고 있습니다.

 

 

너에게

章 湖

 

내가 너를 생각할라치면

어느새 내 살갗에는 비늘이 돋히고

내 옆구리에는  유연 悠然 한 지느러미.

 

내가 너를 생각할라치면

너의 높이는 어느새 흘러 내려

망망대해 茫茫大海가 된다.

 

나는 네 안에서 빠져나지 못한다.

나는 너에게 갇힌 몸이 된다.

나는 너로 의해서밖에 살 수 없이 된다.

 

고기가 바다 밖으로 헤어나지 못하듯이,

고기가 바다에만 갇혀 있듯이,

고기가 바다 밖에서 살 수 없듯이.

 

회색은 회색 그 하나만으로 볼 때는 음울하고 숨어 있는 빛깔입니다. 그러나 빨강색을 그 옆에 갖다대면 회색의 아름다움이 놀라울 정도로 살아납니다. 이것은 회색과 빨강이 서로 조화 調和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사랑도 어느 면으로는 이러한 조화입니다. 혼자서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사람이 사랑에서는 파탄을 겪는 수가 있습니다. 혼자서는 별로 주목 받지 못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반려와 더불어 빛을 발하는 수가 있습니다. 전자 前者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경우이요, 후자는 조화가 잘 이루어진 경우이겠습니다.

바다와 바다고기의 관계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아니되는 절대적인 존재가 될 때에 어쩌면 사랑이라는 어휘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융합 그런 조화 속에서 완미 完美한 사랑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겠지요.

 

 

抒情

全鳳健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무에 걸린 바람도 비에 젖어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내 팔에 매달린 너.

비는 밤이 오는

그 골목에도 내리고

 

비에 젖어 부푸는 어둠 속에서

네 두 손이 내

얼굴을 감싸고 물었다.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장 뜨거운 목소리로.

 

바닷가 모래밭에 핀 해당화를 보면 어쩐지 가슴이 아프고 신묘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해풍이 몰아치는 바닷가 짜디짠 소금물 옆에서 저토록 붉고 여린 꽃잎이 피어난 것이 기이하기만 합니다. 짠 바닷물과 메마른 흰 모래와 붉은 꽃이라는 무엇인가 서로 어긋난 듯한 불협화 不協和 때문에 저 꽃이 더 애처롭고 곱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가 내리는 밤, 어둡고 젖어 있는 밤, 무언가 비극적인 냄새를 가실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나무에 걸린 바람도 비에 젖어 /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는 표현이 그러한 상황을 극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사랑의 고백, 가장 부드럽고 가장 뜨거운 그 목소리는 바로 저 바닷가의 해당화처럼 처절히 아름답고 절실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簡易驛

鄭孔釆 (정공변)

 

피어나는 꽃은 아무래도 簡易驛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道程에 꽃이 피어 있었던가.

 

잠깐만 멈추어서

그때 펼 것을, 設計

찬란한 그 햇빛을…

 

오랜 동안을 걸어온 뒤에

돌아다 보면

비뚤어진 鋪道에

아득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제 꽃은 지고

지는 그 꽃에 未練은 오래 머물지만

져버린 꽃은 다시 피지 않는 걸.

旅宿 에서

서로 즐긴 사랑의 手票처럼

記憶의 언덕 위에 잠깐 섰다가

흘러가 버린 바람이었는 걸….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道程에 작은

簡易驛 하나가 있었던가.

簡易驛 하나가

꽃과 같이 있었던가.

 

억새풀이 하얗게 흔들리는 가을 산등성이에 오른 듯 인생의 중년기나 노년기에 접어들어 지난 날을 회상할 때면 인생의 목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전 과정이 경로이며 동시에 목적이던 것을 깨닫게 된다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순간 한 순간을 뜨겁고 알차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사랑도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무심히 지나쳐 온 간이역에 피어난 붉은 꽃처럼 지나고 나서야 아아, 그랬던가! 하고 돌아보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되돌아 갈 수 없는 간이역의 꽃은 져버렸습니다. 철로를 달리는 기차처럼 앞으로 내빼기만 하는 인생에서, 그 먼 여정 旅程에서 애틋이 놓치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향수를 노래하였습니다.

 

 

꽃 沙汰

鄭鎭圭

 

어제밤

아내의 꿈은

꽃 沙汰, 라일락 꽃 沙汰.

 

딸이 갖고 싶은 나는

門 열림 가슴으로

無限의 가슴으로

하루가 즐거웠지.

 

저녁 무렵엔

종이봉지 가득가득

新鮮한 과일을 사다 주었지.

 

어제밤

아내의 꿈은

꽃 沙汰, 라일락 꽃 沙汰.

 

洞會事務所의

選擧人名簿 속의

내 이름 석자

그것의 무게도 생각했지.

의젓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지.

市民이 되고 싶었지.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잎이 무성하였던 나무에 가을이면 탐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우리의 사랑에도 사랑의 꽃과 향기와 꿀과 온갖 감미한 영양으로 마련한 사랑의 열매가 열립니다. 귀여운 아가들이 그들입니다.

태몽을 꾼 아내가 이야기를 듣고 가슴 부푼 기대를 가지는, 하루 종일 신바람이 나서 흥겨워하는 남편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보입니다. 종이봉지 가득히 과일을 사 들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휘파람소리도 높게 즐거운 행진곡을 불었을 것입니다.

한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과 경이가 잘 묘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그로 인한 자기존재의 확인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젓한 아버지, 의젓한 시민, 내 이름 석자 밑에 따라오는 내 가족의 무게를 생각하는 성숙한 남성으로서의 자기를 발견하는 시입니다.

 

 

表情

鄭漢模

 

그 맑은 눈에

슬픔이 고일 때

조용히 아래를 쳐다보고

 

그 맑은 눈에

기쁨이 넘칠 때

더욱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는

 

그 맑은 눈이

지금은 눈물에 젖는데

입가에 웃음짓는

조용한 사람아

 

그 맑은 우물이

말하며 마음하는

이 끝없는 부드러움 속에서

 

나의 遊泳은

금붕어의 꿈을 따라

황홀한 비늘빛을 반짝입니다.

 

사랑하는 분의 표정은 어떤 때 절대권 절대권을 행사합니다. 그 눈썹 한 오리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천국에 오르기도 하고 끝없는 절망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분의 슬픈 표정은 나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고 사랑하는 분의 기쁜 표정은 나의 가슴에도 화안한 불을 켭니다.

사랑하는 분의 눈물은 곧 나의 근심이며 사랑하는 분의 웃음은 나를 파랑새처럼 즐겁게 합니다.

참으로 아리따운 사람이라 느껴지는 여인은 격렬함을 고요 속에 감출 줄 알며 날카로움을 온유 속에 숨길 줄 알며 속으로 울면서도 곁으로는 방긋이 웃음짓는 그러한 여성입니다.

두 눈 가득히 눈물을 담그고 입가에 조용히 웃음짓는 그러한 여성을 사랑하는 분으로 가진 남성은 황홀한 비늘을 번뜩이는 금붕어처럼 그렇게 기쁜 인생의 유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王國에 있다

鄭玄宗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 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울음은 끝까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王國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그 여자의 울음을 듣는

내 귀를 사랑한다.

 

바다 속에 따로 떨어져 있는 외딴 섬들처럼 인간은 모두 저 혼자입니다. 안개 속의 나무나 돌멩이처럼 인간은 모두 고독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그 마음이나 정신이나 영혼까지를 온전히 소유, 지배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를 보십시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죽음을 대신할 수 없으며 또 함께 동행하여 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혼자 모든 것을 치루어 내어야 합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고독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부정함은 자기 기만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것은 고독의 해소가 아니라 두 개의 고독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독은 침해할 수 없는 황국처럼 제가끔의 것입니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고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정으로서 포옹하는 것입니다.

 

 

追憶

趙炳華

 

잊어버리자고

바다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사람이 무엇인가를 망각 忘却한다는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주신 은혜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어떤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고 잊어버린 그 모든 것으로 하여 입었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 치유됩니다.

사람이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많이 잊어버리기는 하여도 개중에는 아주 영영 잊혀질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하늘 위의 낮달처럼 색이 바래기는 하여도 지워질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는 추억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어버리려고, 바닷가를 거니는 시인이 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 이 년… 그러나 영 잊혀지지 않는 추억입니다.

여기 바다는 꼭 구체적인 바다가 아니어도 좋고 시간은 꼭 일 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잊을 수 없어 정녕 잊을 수 없어 몸부림치는 시인의 가슴속의 시간을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내 귀 기울임은

– 織女의 노래 –

朱正愛

 

冬至 날

우리들의 가장 먼 回路에도

당신은 선히 보입니다.

 

창이 닫쳤어도

오늘 부는 바람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내가 알듯이.

 

몸도 마음도

죽도록 죄여 온 긴 세월에

당신의 고뿔도 와서 지피는

生靈 같은 저가 되었읍니다.

 

내 귀 기울임은

사시장철 젊어 있는 당신의 음성이

내 中年의 게으른 가리마를 타고내려

마음의 군살을 푸는 소리를

지키려 해섭니다.

 

심령학자 心靈學者들의 설을 빌리면 사람이 정신수양을 많이 쌓아 영능 靈能 이 생기면 그 정신력으로 물건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합니다.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전생을 알아내며 사자 死者와도 통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이와 비슷한 신통력이 생깁니다. 오직 한 사람, 사랑하는 분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피며 그 마음의 청담 晴曇까지도 관상대의 측후기처럼 재고 있으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이 하나만을 뚜렷이 보게 하고 여타의 다른 사람, 다른 사건은 한 그림자에 불과하게 만듭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모하여온 그분의 가벼운 감기 기운까지도 짚어볼 줄 아는 마음, 누구라도 사랑을 하면 이런 신기한 능력이 생겨나나 봅니다.

 

 

音樂

千祥炳

 

이것은 무슨 음악이지요?

새벽녘 머리맡에 와서 속삭이는 그윽한 소리.

눈물 뿌리며 옛날에 듣던

이 곡의 작곡가는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하다 갔지요?

아마 그 여자의 이름은 클라라일 겝니다.

그의 스승의 아내였지요?

백 년 이백 년 세월은 흘러도

그의 사랑은 아직 다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녘 멀고 먼 나라

엉망진창인 이 파락호의 가슴에까지 와서 울고 있지요?

 

음악은 때로 파도처럼 우리의 가슴으로 밀려듭니다. 음악은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산과 강, 꿈나라의 신비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음악이 주는 유열과 감동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하여 극치의 미적 美的 쾌락을 향유합니다.

모든 예술은 그것을 창작한 예술인의 영혼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집니다. ‘미켈란젤로’며 ‘베토벤’이며’도스또엡스키’ 같은 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분신이 곧 그들의 예술이오, 그들의 생명이 곧 그들의 예술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승 ‘슈만’의 아내를 사랑하였던 음악가 ‘브람스’는 일생 독신으로 그 여자 ‘클라라’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행복하였고 훌륭한 음악을 많이 작곡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의 예술 속에 담겨 시공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감동은 준다는 그런 시입니다.

 

 

態 6

崔元

 

외투를 입을 때 시작하고

외투를 벗을 때 끝난

추녀 밑의 사랑아

 

어이할까,

내게는 추녀 밑의 사랑이 있어라,

혼자서 슬픈 사랑이 있어라,

피리처럼 울지도 못할 사랑이

끝났어라

 

설교도 억울한

기찬 사랑의 여운이

눈[眼] 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라라.

 

山 새처럼 날아간 자리

개나리 피고

추녀 밑의 사랑은 아직도 있어라

봄을 태우며 아직도 있어라

 

추녀 밑이란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러 들어서거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사랑에도 이렇게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하소연도 못하고 단념도 못하는 혼자서 슬퍼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람이 스무 살 무렵, 그 불안하고 들끓는 가슴을 어디에도 쏟아놓지 못하고 서성거리던 사춘기에 치르는 홍역 같은 열병이 대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외투를 입을 때 시작하고 / 외투를 벗을 때 끝난 / 추녀 밑의 사랑> 은 겨울철 사랑입니다. 눈 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는 그 사랑은 실체를 못 찾고 한 관념으로 시작되어 한 관념 속에 끝나버렸기에 그 관념의 사랑은 아직도 그 추녀 밑에 살아 있고 또 신인의 시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雅歌

秋英秀

 

나는

꿈을 가는

농부의 아낙

 

날빛다이 타오르는

이삭은

내일을 잉태하고

 

흙 묻어도 오히려 흰

앞치마에

손을 싸 안으면

 

나는 마음을 가는

따사로운 하늘.

 

성실한 삶이란 그냥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하다는 것은 퍽 값진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에 맞추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어 들이고 잘 갈무리하는 농부처럼 성실히 사는 삶을 예찬한 시입니다. 그러한 성실한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이의 반려로서 누리는 기쁨이 노래되고 있습니다. 진정 행복한 모습입니다.

행복은 고대광실 高臺廣室 만을 찾아 깃드는 것이 아니며 만금의 보석에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도처에 산재해 있으며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행복을 캐내는 지혜로움입니다.

소박하나 병들지 않은 행복을 얻은 이의 즐거운 꿈과 보람이 깃든 아가 雅歌 입니다.

 

 

戀歌

秋恩姬

 

흔들리는

소리마다

귀를 댄다고

 

가벼운

바람처럼

하늘댄다고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간다고

 

당신이

호되게

나무라시면

 

지금은

고개 숙여

조용할래요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종달새처럼 명랑한 한 소녀의 모습을 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이 무엇 하나 신기롭지 않은 것이 없고 즐거웁지 않은 일이 없어 마냥 발랄하게 뛰노는 소녀를 봅니다. 그의 살결은 희고 웃음소리는 맑고 이빨은 가지런하며 더우기 그 마음이 깨끗하여 흡사 싱그러운 과일을 깨물 듯 신선합니다.

그러한 소녀가 마침내 가슴에 싹튼 사랑으로 인하여 철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시련은 철없는 어린이를 성숙한 숙녀로 만듭니다. 사랑은 인생의 좌표를 바꾸어 놓고 어제까지도 까맣게 모르던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사랑은 심해 深海와 같은 깊이와 넓이와 고요를 알게 하며 사랑은 세상 껍데기를 벗기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합니다. 참말 사랑은 인간을 기르는 신묘한 비방 秘方입니다.

 

 

찬송

韓龍雲

 

님이여 당신은 百番 이나 단련한 金 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天國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義가 무거웁고 黃金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光明과 平和를 좋아하십니다

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바다에 봄바람이이여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씨니의 님은 이태리이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자유의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희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

기미 3.1 운동 때 불교계를 대표하여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서명한 지사시인 志士詩人 만해 萬海는 그의 시집 <님의 침묵> 서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님은 우리나라요, 우리 백성이었습니다. 열화 같은 애국충정과 사람이 불교적인 명상의 세계와 조화를 이루어 고즈넉히 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이 <찬송>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女人

韓何雲

 

눈여겨 낯익은 듯한 女人 하나

어깨넓직한 사나이와 함께 나란히 아가를 거나리고

내 앞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무리 보아도

나이가 스무살 남직한 저 女人은

뒷모양 걸음걸이 하며 몸맵시 틀림없는 저… 누구라 할까…

 

어쩌면 엷은 입술 혀 끝에 맴도는 이름이요!

어쩌면 아슬 아슬 눈감길듯 떠오르는 追憶이요!

 

옛날엔 아무렇게나 행복해 버렸나보지?

아니 아니 정말로 이제금 행복해 버렸나보지?

 

불치 不治, 혹은 난치의 병으로 알려진 나병을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천형 天刑이라는 가혹한 말로 불렀습니다.

그 가혹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시심 詩心을 달래어 한을 풀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자 애를 쓴 시인 한하운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눈썹도 다 빠져버리고 얼굴도 부풀어올라 옛날의 젊고 당당하던 모습이 다 뭉개어진 환자가 길을 가다가 옛 애인을 만났습니다. 옛날에 그와 더불어 행복하던 여인, 그러나 지금은 다른 건강한 남성과 결혼하여 아기를 데리고 외출한 여인을 이쪽에서는 잘 알아 보지만 저쪽에서는 그냥 무심히 지나갑니다. 아마 어쩌면 이쪽의 너무 험한 모습에 고개라도 돌렸을지 모릅니다.

죄도 없이 받는 형벌, 견딜 수 없는 비애를 쓰디쓴 쓸개를 삼키듯 억눌렸을 시인의 심정을 독자는 알 것입니다.

 

 

눈瞳子

咸允洙

 

숙아 나는 너의 눈이 좋아

언제나 봄이 깃들이는 눈

목마른 羊떼 부르는 샘이 흐른다

 

숙아 나는 너의 눈이 좋아

언제나 흐릴줄 모르는 눈

푸른 湖水 가에 춤추는

裸體의 넋을 본다

 

숙아 나는 너의 눈이 좋아

언제나 샛별처럼 빛나는 눈

삶에 지친 마음들이

宇宙의 휴식을 찾아 본다

 

숙아 나는 너의 눈이 좋아

언제나 不滅의 꿈이 감도는 눈

비둘기 한 쌍이 久遠의 꽃을 피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그윽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의 영혼을 만나보는 것 같습니다. 참말로 눈동자는 그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급한 일을 당하였을 때 <눈에 불이 난다>든지 <눈에 살기가 돈다>든지 하는 말은 바로 그 사람의 정신적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소녀의 눈동자는, 세상에도 진귀한 흑요석이요, 누구의 발도 미치지 않은 호수입니다. 그것은 소녀들의 생각하는 바가 그토록 맑고 깨끗한 까닭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을 꿈꾸며 동경하며 소녀들은 기뻐하고 애달파 하기도 합니다. 그 기쁨과 그 그리움과 그 애달픔을 비추는 거울 – 소녀들의 눈동자는 시인들이 영원히 갈구하여 마지않을 진선미의 세계입니다.

 

 

밤의 편지

咸惠蓮

 

오늘밤은 당신이 안 오십니다.

아이들과 쉬고 있는 적은 寢室로

당신으로부터 흐르는 강물이 달빛같습니다.

音聲이 없어도 적막치 않게

충만한 당신의 影像 아래로

아이들이 차례로 오늘밤을 몰고 왔읍니다.

‘蘭’은 빨간 리봉 맨 人形을 안고

‘亨’은 銃과 팽이를 두 손에 쥐고

사탕을 물고 자는 ‘꿀꿀이’ 옆으로

갈대밭 헤치고 숨가삐 왔읍니다.

珍奇한 이야기의 커텐이 내리고

밤은 가을을 속삭여 줍니다.

– 어느 깊은 숲속에서 엄마 잃은 ‘順’이가 색동 슬픔에 젖은 채로 落葉을 밟으며 밤을 지샌다고 –

童心에 나래 펴는 귀여운 부엉이

숲 속으로 ‘順’을 데리러 가자고 졸라댑니다.

상냥한 바람이 당신의 呼吸처럼 창문을 흔드는데,

밤과 아이들은 지금 즐거운 길을 떠났답니다.

어느 찬란한 숲 속의 슬픔을 향하여.

 

밤이 늦도록 남편은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진지 그릇은 아랫목에 따뜻히 묻혀있고 토장국은 몇 번이나 불 위에 놓였다 내려 왔습니다. 엄마와 함께 아빠를 기다리는 아가들이 엄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습니다.

드디어 뚜우가 울었습니다. 아가들도 하나 둘 잠이 들었습니다. 오늘 밤 남편은 못 돌아오나 봅니다. 이런 때 그 아내 되는 이들의 상식적인 태도는 규원가 閨怨歌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법이지요.

그러나 여기 밤의 편지를 쓰는 아내는 옹졸한 아낙이 아닙니다. 남편이 귀가 못한 그러한 밤에 오히려 남편과 자기를 객관화하여 보며 굳은 결속 結束을 확인하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온유하고 긍정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담뿍 실린 시라고 하겠으며 현대여성의 진일보한 애정관이 담겨 있다 하겠습니다.

 

 

再會

許演

 

우리는 가령

週末旅行에서 돌아온

가벼운 마음이라야 한다.

 

긴 歲月도 함께

유리 컵에 채워

透明한 祝盃라도 들어야 한다.

 

불타버린 자리에 다시 불이 일기 어렵듯이 이별한 님과의 재회란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의 사연은 길고 한없고 이별의 사연 또한 길고 한없습니다. 그 무수한 건너기 어려운 강물과 그 무수한 가파른 산봉우리를 넘어 새로 재회가 이루어졌다면 그 감격은 또 어떠하겠습니까.

미로 迷路 속을 방황한 듯 두렵고 고단했던 일이며 먼 세월의 서름은 어찌 다 풀 수 있겠습니까.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만나야 한다. 며칠간의 주말여행에서 돌아온 듯 심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그 오랜 세월간의 이별을 결코 만하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듯, 상대방에게 속닥이는 듯 산악같은 슬픔을 잠재우는 듯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떡살

許英子

 

고운 네 살결 위에

영혼 위에

이 신비한

사랑의 紋樣 찍고 싶다

 

<이것은 내 것이다>

 

땅 속에 묻혀서도

썩지를 않을

저승에 가서도

지워지지 않을

 

영원한 표적을 해두고싶다.

 

우리나라 살림살이의 찬방 속에는 가진 기물들이 많습니다. 놋쇠, 사기, 목기의 온갖 기명들을 위시하여 소쿠리, 소반, 키, 체, 국수방망이 등 쓰임새에 따르는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선반에 얹히기도 하고, 혹은 찬장 속에 혹은 벽에 걸려 있기도 합니다.

그 중에도 재미스러운 것은 절편을 만들 때에 쓰이는 떡살입니다. 흰 떡이나, 연유록 쑥물을, 또는 연분홍물을 살짝 들인 떡몸에 이 떡살을 곽 누르면 참으로 먹음직스러운 떡이 만들어집니다. 그 문양도 가지가지 신비롭기 짝이 없는 꽃판입니다.

이 꽃판을 나는 나의 인감도장으로 삼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장으로 나의 모든 소유물 위에, 그 중에도 무량겁을 되풀이하고픈 나의 사랑 위에 찍어두고 싶었습니다.

이 치사한 소유욕도 고운 떡살 무늬에 의지하니 조금은 승화되어 보이지 않습니까.

 

 

歡別

洪允淑

 

총대도 탄환도 없이 오르는 壯途에

주먹과 가슴팍과 그리고 불타는 젊음만이

하나의 武器라고 웃음짓던 너

 

落葉도 목숨처럼 쌓이고

목숨도 落葉처럼 쌓이는 높은 山마루엔

靑春이 한묶음 꽃처럼 뿌려지리

너 가거던…

옳은 것이 그리워 나 가거던

부디 사랑과 같은 것은 조그마한 이름으로

불러 두어라

 

…. 白雪이 휘날리고 얼음이 깔리련다

밤마다 하늘은 砲聲에 무너지고…..

 

아! 나는

얼어 붙은 窓 밑에 손끝을 녹이며

너 돌아 오는 날

凱旋의 새벽까지 살아야겠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되는 것을 우리는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일>과 <사랑>과 <종교>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특별히 남성에게 있어서는 필생의 사업으로서의 <일>은 그 사람의 능력, 혹은 전존재 全存在를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권력에의 의지이기도 하고 명성, 금력, 사상 등 어떤 것이든 간에 스스로 선택한 일에 전력투구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합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이 옳은 것이라는 신념으로 비장히 떠나가는 님을 <환별>하는 여인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깊은 슬픔, 더운 눈물을 감추고 부디 사랑에 구애받지 말라는 당부, 그리고 개선의 그날까지 기다리겠다는 다짐에서 우리는 맑게 다져진 지성적인 그리고 이지적인 사랑을 알게 됩니다.

 

 

바느질하는 손

黃錦燦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아내는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장난과 트집으로 때묻은 어린놈이

아내의 무릎 옆에서 잠자고 있다.

 

손마디가 굵은 아내의 손은

얼음처럼 차다.

한평생 살면서 위로를 모르는 내가

오늘따라 면경을 본다.

 

겹실을 꿴 긴 바늘이 아내의 손끝에선

사랑이 되고,

때꾸러기의 뚫어진 바지구멍을

아내는 그 사랑으로 메우고 있다.

 

아내의 사랑으로 어린놈은 크고

어린놈이 자라면 아내는 늙는다.

 

내일도 날인데 그만 자지,

아내는 대답 대신

쓸쓸히 웃는다.

 

밤이 깊어갈수록 촉광이 밝고

촉광이 밝을수록

아내의 눈가에 잔주름이

더 많아진다.

 

침선 針線에 몰두하는 여인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바느질 하는 손>의 아내는 손마디가 굵은 손으로 겹실을 꿰어 아기의 뚫어진 바지를 꿰매고 있습니다.

그 아내 옆에는 귀여운 개구장이가 잠을 자고 밤은 깊어 자정입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밝아지는 전등불빛 아래 아내의 주름살이 들어납니다.

이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남편의 눈이 있습니다.

한 번 호강을 시키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는 아내, 그러나 그러한 아내의 고생의 보람으로 아기들은 자라고 가정은 비록 부유하진 않아도 단란하게 꾸며지고… 아름다움 생활인의 반려를 우리는 이 시에서 만납니다.

바느질하는 아내를 중심으로 하여 사랑으로 맺어진 한 가족의 조용한 생활화를 마주 대하는 듯합니다.

 

 

즐거운 편지

黃東奎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사물 事物에의 인식은 어떤 예기치 않은 찰나에 문득 이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매일 보는 창 앞의 파초 그루를 매번 의식치 못하다가 어느 소낙비 오는 날 그 넓은 잎새에 뿌리는 빗방울 소리에서 문득 보아내었다면 그리하여 <오오, 너 파초여! 남국에의 향수여.> 라고 외쳤다면 조금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한 그루 푸른 파초가 여기 모습을 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즐거운 편지>는 <기다림의 연서>입니다.

매일 해가 뜨고 지듯이, 바람이 불듯이, 그렇게 일상적인 존재로, 사소한 존재로, 없는듯이 숨어 있다가 사랑하는 그대가 괴로움을 당할 때에 마침내 그대의 한 의미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변함없는 사랑, 깊고도 큰 애정세계를 우리는 이 시에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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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篇 사랑의 詩

여성동아 1974년 12월호 별책부록

 

詩選 감상 엮은이 許英子 (시인 誠信 女師大 전임강사)

 

 

설화분분 雪花紛紛 한 12월, 우리 주부를 비롯한 여성 여러분의 정다운 벗인 ‘여성동아’ 지에서 그 부록편으로 우리나라 현대시에서 가려 뽑은 시 백여 수로 사랑의 시가집을 꾸민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려 뽑는 일을 필자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이 ‘사랑’이라는 주제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적은 없습니다. 아무리 각박한 시기에도, 또 아무리 곤란한 처지에서도 결코 사랑은 망각되거나 상실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각박하면 할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랑은 고단한 삶의 등불이 되고 메마른 입술에 생명수가 되어 왔습니다.

여기 필자는 한국문단의 기라성 같은 시인 여러분의 시집들에서 백여 편 사랑의 주옥편들을 모아보았습니다. 필자의 협애 狹隘 한 안목 탓과 매수의 제한 등에 따라 더러 구애 받은 바 없지 않으나 되도록 많은 시인의 작품집을 두루 살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쪽에 몇 마디 부연한 것은 전혀 필자의 주관적인 군말인 것으로 혹 높은 시의 뜻을 저해하지나 않았을까 염려스러우나 독자들께서 시에 흥미를 느끼시며 즐기시는 일에 만에 하나라도 보탬이 된다면 필자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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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사자 주: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1909~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