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의 말

 

이 책은 독일 레겐스부르그(Regensburg) 대학교의 교의신학 교수 볼프강 바이너르트(Wolfgang Beinert)의 저서  <오늘날 마리아에 대해 논하다니? : 마리아론 소입문> (Heute von Maria redent? : Kleine Einfubrung in die Mariologie)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는 독일 뷔르쯔부르그(Wurzburg)교구가, 성인 신자들을 위한 ‘통신신학 과정’ (Theologie im Ferukurs)에 등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말연수회를 가졌을 때 ‘마리아론’ (Mariologie) 특별강의를 맡은 바 있다. 이 강의가 수강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게 되고, 여러 계층으로부터 강의내용을 그대로 살린 채 약간의 보완작업을 거쳐서 마리아론 에 관한 작은 입문서 용으로 1973년 11월에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은 예상 외로 호평을 받아 초판이 발간된 지 4개월 후에 재판이 나오게 되었다. 역자는 1975년 도에 인쇄된 제 3판을 대본 臺本으로 삼아 원저를 전역하였다.

 

저자 바이너르트 교수는 1933년 3월 4일 독일의 브레스라우Breslau 에서 출생하였으며 로마에서 철학 석사학위 및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독일 튜빙겐과 레겐스부르그 대학교에서 요셉 랏징거 교수의 지도 하에 작성한 연구논문으로 1972년 교수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는 이어서 독일 보쿰(Bochum)대학교의 교수로 초빙 받아 교의신학과 교의사(敎義史)를 강의 하였다. 1979년 이래 그는 스승 랏징거 교수가 뮌헨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자, 그의 후계자로서 레겐스부르그 대학교의 교의신학 및 교의사 담당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어 신학권내에서 특히 마리아론 분야에서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활약 또한 대단하다. 그는 본서 이외에도 <마리아와 오늘날의 교회>(Maria und die Kirche heute, 1974), <오늘날의 마리아 공경>(Maria heute ehren, 1977) 등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그 외에도 마리아에 관한 수많은 학술논문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역자는 가톨릭 대학 신학부에서 다른 교의신학 강의와 함께 마리아론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강의 도중 규정된 교과서 없이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 이 책을 일종의 준교재 용으로 번역 출판할 계획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이에 따르는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즉 ‘오늘날 마리아에 관해서 신학적으로 논하는 것이 타당한가?’ ‘마리아에 관해서 신학에서 논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마리아론 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물음이 신학 외부로부터 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신학대학 내에서마저 ‘마리아론 을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실정이다. 사실 주변에는 마리아론 보다 더 중요하고 절박한 신학문제들이 많이 있다. 하느님의 정체(正體)에 대한 물음, 세계평화내지 정의에 관한 문제, 인간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의미, 오늘날의 세계 안에서의 교회 및 그리스도인들의 사명 등, 신학에서 집중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취급하고 천착 [필사자 주: 穿鑿: 어떤 원인이나 내용 따위를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 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여인인 마리아에 관해서 신학적으로 논할 가치가 있을까? 저자가 이 책의 서문에서 제기한 물음과 비슷한 물음을 역자는 자주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마리아에 관한 신학적 사유는 타당할 뿐 아니라, 신앙인과 구도자 일반을 위해서 유익하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우리는 오늘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간생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환경오염 및 세계평화의 위협에 이르는 문제들이 현대인을 압박하고 있다. 초기 산업사회에서 보이던 낙관적인 미래 전망이 21세기를 향해서 급속도로 전진하는 오늘날에 와서는 미래의 처지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사회의 산업화 과정이 무한대의 발전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리라는 전망은 사회의 산업화와 함께 부수적으로 따라온 제반 부작용과 자원의 고갈, 그리고 과학기술의 의도적인 악용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위기에 직면하여 신빙성을 상실한 느낌이다. 오늘날은 발전된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보다 미지의 상태에 대한 공포가 더 진하게 현대인의 의식 속에 깔려 있는 듯 하다.

미래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현 시점에서 인간의 운명에 대한 물음은 더욱 새롭고 절박하게 제기되기 마련이다. 물론 인간의 운명,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비단 오늘에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면서부터 어디서나 인간의 현존재에 대한 물음은 제기되었고, 각양각색의 해답이 여러 종교와 세계관에 의해서 주어져 왔다. 그런데 인생의 의의에 대한 물음에 만족할 만한 해답을 발견하기가 오늘날처럼 어려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인간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주재자인 하느님의 존재마저 회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하느님은 죽었노라고 공공연하게 선포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기계기술이 지배하는 현대를 사는 인간은, 무력하거나 부재하는 듯한 신에 대한 물음을 명시적으로 제기하기보다는 자신의 인간존재에 더 관심을 두어 그 의미를 정립하고자 할 뿐 아니라, 이 현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복음선포의 대상은 대개의 경우 세속화된 세계에서 생활하는 이른바 세속인간이다. 그리고 이 현대의 세속인간들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이상에 따라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중적 세속인간은 대체적으로 현실 위주의 권력 및 물력 추구의 사회 경향을 따르며, 처신하는 데에서도 신앙적 진리의 이상에 따르기보다 유행과 대중의 우상을 따르는 삶을 영위한다고 볼 수 있겠다. 현대의 수많은 이데올로기가 이토록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이면 누구나 제기하기 마련인, 특히 전쟁과 천재지변, 질병과 죽음 등과 같은 한계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제기하기 마련인 궁극적 문제, 즉 인생의 절대적 의미에 대한 물음에는 확실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신앙의 진리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사유하는 신학은, 바로 오늘날에도 불가피하게, 아니 어느 때보다도 더 예리하게 제기되는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초점을 맞추고 고유한 그리스도교적 해답을 제시하고자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해답 제시과정에서 마리아론 의 신학적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기되는 인간완성, 인간구원에 대한 물음의 궁극적 해답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으로 하여금 의미 있는 삶의 성취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설하는 가운데 마리아의 구원적 기능내지 구세사적 기능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언어화할 수 있겠다.

인간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성부께 이르게 하는 데 복음의 목표가 있다.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의해서 인간이 구원되고 자신의 목표에 이르기 때문이다. 인간구원은 이러한 점에서 항상 그리스도의 구원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구원이 전구세사(全救世史)의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구세사, 아니 전 인류사에 획기적 의미를 가져다 준 존재,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人間이 된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진술이 그리스도 신앙의 기초진술이다. “하느님의 독생성자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이것이 그리스도 신앙의 기초진리요 제기되는 인간존재의 의미, 곧 인간구원에 대한 물음의 해답이다. 그리스도 신학은 이 해답이 주는 의미를 천착 穿鑿해야 한다.

인간의 구원자인 그리스도에 관해서 언급할 때 마리아에 대해서 침묵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신앙고백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고 고백한다. 물론 이 신경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고백이지만 주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고백까지 내포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의 전기傳記 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마리아에 관해서 신학적으로 거론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맺은 생물학적, 혈연적 관계보다도 마리아의 구세사적 의미가 더욱 중요한 관건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복음서에서 하느님 말씀의 모범적 청취자로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이루어지소서’ Fiat! 를 발하는 주의 시녀 Ancilla Domini 로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나, 은총으로 충만한 분이 되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를테면 마리아는 인류의 구원자인 그리스도를 출산한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가 이 세계에 가져온 하느님의 구원에 의해 온전히 구속 救贖 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리아는 신약 최초의 신앙인이자 구원된 새로운 인간인 것이다.

소외된 세계 속에서 구원을 갈구하는 우리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구속된 인간으로서, 은총이 충만한 인간으로서의 마리아에 관해 고찰해야 할 것이다. 마리아에게서 인간이면 누구나 필요로 하는 신앙의 기준내지 척도를 보게 되는 때문이다. 마리아에 관한 신학적 진술은 인간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목표로 삼을 뿐만 아니라, 이 목표의 도달에 기여할 때 고유한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는 데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요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여기에 바로 마리아론 의 신학적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저자 바이너르트 교수는 우리의 취지에 부합하는 마리아론 을 전개하고 있다. 그 역시 오늘날 신학적으로 마리아에 관해서 논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알고 있으며, 그 원인과 경위를 담담하고 정확하게 기술한다. 과장된 마리아론 이나 마리아 신심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제반 문제점을 지양하고, 건전한 마리아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 그는 우선적으로 성서, 신약성서에 나타난 마리아상을 교과서적으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교부시대와 중세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동안 형성 발전되어 온 마리아 교리 및 마리아 공경 형태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금세기의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종합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의 마리아 교리를 요약 해설하고 있다. 그리고 신학적 사유로서 마리아론 에서 인지되어야 할 인식수준과, 마리아론 을 규정하는 기본원리로서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구원된 인류의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의 원형이다’라는 명제를 정립한다. 다음에 마리아의 교의, 즉 마리아의 하느님 모성, 무염시태 無染始胎, 지속적 무죄성 持續的 無罪性, 몽소승천 蒙召昇天 교리 등의 신학적 의미를 개진하고자 시도한다. 이 책의 끝부분은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는 표제하 에서 취급되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한 부분이 된다. 이 장에서는 다른 주제를 취급하는 곳에서와는 달리 동정녀 출산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의 상황, 이 교리를 거슬러 제기되는 반론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분석 평가하고 있다. 이어서 교회의 가르침의 내용을 설명하고, 신학적 명상을 통하여 마리아 동정성이 하느님의 지극한 예지와 사랑의 표현이요,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전적으로 수용하는 마리아의 표징이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그리스도 신앙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이 아니고 역사 안에서 발생하는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 구원의 역사에서 우리의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에 마리아에 관해서 침묵할 수 없다고 진술하는 가운데 마리아론 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신앙생활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위치는 각별하다고 볼 수 있다. 마리아께 대한 기도며 신심행사 등이 1년을 통해서 거의 끊임없이 경건한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를 주보로 한 신심단체(성모회, 레지오 마리애, 푸른 군단 등)의 교회 내 활동상은 놀랄 만하다. 이같이 마리아 신심과 관심이 극진한 데 비해서 마리아에 관하여 학술적으로 체계 있게 기술된 신학 서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자는 신학을 학술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신학도뿐만 아니라, 사목자를 비롯한 수도자와 평신자 모두에게 올바른 마리아상을 파악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 출간할 것을 시도하였다.

 

끝으로, 이 역서 출간이 여러 고마운 분들의 성원과 협조를 힘입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 자리에서 밝혀야 하겠다. 우선 각별한 이해와 관심을 기울여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서울관구의 장상 수녀님들과, 특히 신학을 공부하게 된 첫해부터 초고정리에서 시작하여 원고교정에 이르는 작업과정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은 유 테레스쟌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역서의 정확한 출간을 위해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준 성바오로 출판사 측의 배려에 깊이 감사하며,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책을 만들기 위해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며 편집작업에 임하는 출판사 편집부의 수녀님들께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틈나는 대로 작업을 돕는 장 경혜양에게도 역시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1980년 삼일절에

역 자

 

 

 

 

차례

역자의 말

머리말

제1장 마리아론의 난점

제2장 성서 안에서의 마리아

1 바오로

2 마르코

3 마태오

4 루카

5 요한

6 요약

제3장 마리아론과 마리아 공경의 소사(소사)

1 교부시대

2 중세기

3 마리아와 종교개혁

4 근세

제4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 교리

1 생성경위

2 공의회의 진술

3 마리아론을 위한 의미

제5장 마리아론의 인식기준

1 신학적 이성

2 신자들의 신앙감각

제6장 마리아론의 기본원리

제7장 마리아 교의의 신학적 근거정립

1 마리아의 모성

2 무염시태

3 지속적 무죄성

4 몽소승천

제8장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1 문제 처지

2 반대논증 분석

자연과학적 반론

종교학적 반론

주석학적 반론

3 교회의 가르침

4 동정녀 출산의 신학

제9장 마리아론의 필요성

 

 

머리말

 

이 책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간하게 된 경위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1972년 초에, 뷔르쯔부르그에 있는 통신신학 과정의 한 책임자로부터 기초과정의 범위내에서 마리아론의 문제에 관하여 주말연수를 좀 맡아달라는 청탁이 왔다. ‘통신신학 과정’에 마리아론에 관한 교안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자측은 이러한 방법으로라도 참가자들이 이 주제와 가까이 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들은 망설이며 이러한 취지를 제안하였고, 나 역시 이를 망설이며 수락하였다.

그 이유는 이 취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현 상황에서 하느님의 어머니에 관한 언급이 나에게나 참가자들에게 적절한 일일까? 신학에서 취급해야 할 보다 더 절박한 문제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마리아론Mariologie 분야는 지난 수세기에 걸쳐 충분히 연구되었고 거기서부터 마리아에 대한 갖가지 기묘한 이론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면 얼마간은 이 분야를 그대로 덮어 두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출간을 결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내 강연은 놀랍게도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것으로 최소한 주말연수회의 참가자들이 마리아론에 대한 보강 補講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해 처음에는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참여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강사인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연을 듣고 난 다음, 그룹작업을 통하여 나눈 토론과 개인적인 대화 속에서 이 주제가 신학을 위해서도 현 상황을 위해서도 얼마나 중요하고 생산적인가 하는 점이 드러났다. 예를 들면 어떤 그룹작업에서는 해방의 문제를 이 주제에서부터 비추어 보려는 시도까지 하였다.

그 후 이 강연내용을 출판하라는 여러 곳의 요청이 있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다른 업무에 시달리느라 강연내용을 새로 충실히 작성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통신 신학 과정의 주말연수 때 그룹 작업을 통해 논의된 주제를 첨가 해 가면서 내용의 충실을 기하였다. 그럼에도 강연의 주제가 질량면 質量面 에서 평형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동정녀 출산문제는 그것이 지닌 현실적 논란 때문에 한 강연에서 따로 취급하였다. 이 문제는 그 동안에도 계속 현실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이 문제를 위해 비교적 넓은 공간을 할애한 것은 정당하다고 본다.

 

그 결과 이 책은 제목이 뜻하는 것 그 이상일 수 도 없으려니와 그 이상 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제목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책은 하나의 ‘입문’에 지나지 않는다. 마리아에 대한 모든 문제를 다루지도 않았으며, 처리된 문제들이 모든 방면으로 계발되고 있지도 않다. 이 책은 단지 한 가지 자극을 주고자 할 뿐이며 이치에 맞는 신학을 위해서 이 주제를 대화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입문이다. 마리아에 관한 방대한 저서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학문적인 필요에 의해서 이러한 방대한 저서를 꼭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 독자들은 시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방대한 서적을 읽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는 짤막한 정보가 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이 책의 주제는 ‘마리아론’, 즉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관한 신학적 사유 思惟 이다. 마리아론의 목표는 종교적 정감을 고취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고도 책임감이 있으며 신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신앙을 계발하려는 것이다.

 

통신신학 과정의 지도팀과 참가자들에게 감사하며 이 책을 헌정하는 바이다. 이 책의 출판은 이분들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1973년 부활절에 보쿰에서

볼프강 바이너르트

 

 

약어표

BZ
Biblische Zeischrift
Conc
Concilium
DS
Denzinger – A. Schoenmetzer, Enchiridion Symbolorum, Barcinone – Friburgi Brisg. Romae 1965
GuL
Geis und Leben
KuD
Kergyma und Dogma
NR
J.Neuner – H. Roos. Der Glaube der Kirche in den Urkunden der Lehrverkundigung, Rogensburg 1971
PG
– P. Migne, Patrologia Graeca, 161 Bde, Paris 1857 – 1866
PL
J.-P Migne, Patrologia Latina, 217 Bde, Paris 1844-1855
QD
Quaestiones Disputatac
SdZ
Stimmen der Zeit
ThQ
Theologische Quartalschrift
ZKTh
Zeitschrift fur katholishe Theologie
 

 

 

제1장 마리아론의 난점

 

지금으로부터 불과 20 여 년 전까지만 해도 주의 어머니에 관한 신학적 사유인 마리아론 Mariologie은 로마가톨릭 교회의 영역에서 적어도 양적으로는 가장 풍요한 신학의 한 부문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특수 도서 목록에는, 일반잡지에 실린 마리아에 관한 논문들은 제외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에 관한 수천 가지의 새로운 저서와 함께 학술지에 실린 여러 편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로랑땡 R. Laurentin 은 1959년에 이미 방대한 도서목록 안에 마리아에 관한 십여만의 저서명이 수록되어 있으리라고 추측한 바 있었다. 특히 비오 12세(Pius XII, 1939-1958)의 재위 말년에는 세계 도처에서 마리아에 관한 단체와 학부, 그리고 대회 등이 성행하였다. 비오 12세가 ‘마리아 성년'[聖母聖年]을 선포했던 1954년 한 해에만도 마리아에 관한 주제로 43개의 대회가 개최된 바 있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는 마리아에 관계되는 거의 모든 문제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상응하여 대회문서들도 또한 두툼하였다. 예컨대 국제적인 마리아대회가 1950년부터 시작하여 공의회가 끝날 때까지 진전되었었는데, 로마대회는 1950년에 다룬 작업내용을 13권의 방대한 전집으로 발간하였고 그 후 1954년엔 18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기록적 숫자에 이르는 후편을 발간하였으며 루르드 대회(1958)는 16권이라는 전집 속에 그 결과를 종합했다. 이에 비해 성 도밍고 대회(1965)는 6권의 책을 출판하였으나 이는 극히 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후 하느님의 어머니에 관한 신학적 작업은 예리한 관찰자가 아니라도 쉽사리 확인 할 수 있을 만큼 현저하게 감퇴되었다. 먼저 마리아론에 관한 출판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또한 신학자들도 50년대에 격정적으로 논의되었던 과잉면제 過剩免除 를 더 이상 내세우지 않았다. ‘마리아는 지상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느님을 직관하는 지복직관을 누렸는가?’ ‘마리아를 그리스도처럼 교회 신비체의 머리라고 지칭할 수 있는가?’ ‘부활한 그리스도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발현하였는가?’ 하는 물음은 50년대에 열정적을 논의되었던 명제였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가 오늘날 취급해야 하는 당면문제인 하느님, 평화의 정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 교회의 의미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자 극히 지엽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라아론의 영역에는 폭풍우 뒤의 정적이 찾아 들었다. 이런 경향은 그리스도의 어머니 공경에도 해당되었다. 물론 루르드 성지의 통계는 매년 여전히 증가하는 순례자의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라디오 가톨릭 강론의 고정적인 청취자였던 노년의 칼 바르트[Karl Barth, 1996-1968: 스위스 태생, 세계적 개신교 신학자 – 역자주]가 “요즘은 마리아에 관한 강론을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고 심술궂게 말할 정도로 확실히 마리아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이 사실은 바르트 로 하여금 마리아 없이도 가톨릭 교회의 일이 여전히 진행되는가 하는 의혹을 자아내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또 가톨릭 신자들이 무리 지어 성당으로 모여 들던 10월의 로사리오회 라든가 과거의 마리아 신심행사에 비해 마리아 공경행사가 교회 행사표에서 많이 삭제되었거나, 극히 간략하게 축소되었다.

그러면 마리아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급격하게 줄어든 사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물론 마리아론의 신학자들은 이 급격한 감소를 매우 유감스러워하며 그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의 열심 이 감퇴되었다고 신자들을 곧잘 비난하곤 했다. 이들은 또한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교회의 위기마저 전통 깊은 마리아 공경의 소멸과 직접 관련시켜서 보고 있다. 이들은 가장 훌륭한 가톨릭 교리자산 敎理資産 인 마리아 교리가 제2차 계몽주의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파멸되었노라고 개탄하면서 안전한 영역으로 물러나 소종파적 小宗派的 인 집단행동을 취하며 신앙에 관한 일체의 새로운 학설이나 견해를 마리아의 이름으로 맹렬하게 공박하고 했다.

 

물론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관찰자는 이들과는 다른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수세기 동안 마리아론 은 지나치게 정선되지 않아 시달림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 정선되지 않은 점만을 고찰하고자 한다.

 

(1) 마리아론의 기본방향은 반종교개혁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마리아에 관한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침묵이나 거부행위에 대해 반종교개혁적 입장에서는 마리아론적 진술로 대응하곤 했다. 그래서 마리아의 특전이 항상 새롭게 파악되었고, 또 마리아의 명예 칭호가 새로 생겨났으며 새로운 교의적 정식 敎義的 定式 이 교회 교도직으로부터 요청되곤 하였다. 간혹 교회일치 문제가 대두될 때에는 소위 진리문제를 앞세워 진리를 삭제하지 않고 선포하는 것이 교회 재일치에 가장 훌륭하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대응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일치를 원하고 이를 장려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맹목적 열심이 진리의 이름으로 앞장설 때 항상 해를 끼친다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전체 진리와 연관되어 있지 않고 고립될 때 특히 그러하며 지금의 이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2) 마리아론이 점차적으로 전문화함으로써 신학의 다른 부문으로부터 격리되기에 이르렀다. 이로 말미암아 마리아에 관한 교리가 자칫 그 자체의 근원이 되는 기반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였다. 사람들은 마리아의 모습에 사로잡혀 그들의 시선을 마리아에게 고정시킨 나머지 참으로 보아야 할, 품에 안겨 있는 예수의 모습을 못 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이 마리아를 신앙적인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신과 동일한 형체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3) 이렇게 마리아론이 다른 신학으로부터 고립되면서 마리아론 자체 내에서의 분석적 논증이 시작되었다. 이 분석적 논증은 주의 모친의 모든 탁월성을 관련사항으로부터 분리시켜 원자처럼 하나하나 따로 떼어 파악할 것을 지향하였다. 그 결과 경건하다고 선포되기는 했지만 결국 환상에 빠져버릴 위험이 생겼다. 그리고 알맹이 없는 군소리와 천박한 요설이 진정 사려 깊은 신학적 명상이 들어서야 할 자리를 차지하였다.

 

때로는 신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 민중의 신심 속에서는 더 조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탈리아에서 생긴 자그마한 일화는 그 대표적 예이다.

교회기관에 봉사하는 한 노동자에게 아주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이 공산주의자는 야학에서 배운 공산주의 이론에 매우 충실하여 하느님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노라는 이론을 제시하며, 교회 직무를 맡고 있는 자기 친구에게 공산당 교리를 주입시켰다. 시골 출신의 단순한 이 사나이는 자기 교리 실력으로는 친구의 노련한 공산주의 변증법에 도저히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상대방을 패배시키는 무기를 들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설령 하느님이 안 계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어머님은 여하한 경우에라도 존재하신다”는 무기였다. 이 공산주의자는 실제로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마리아에 관한 진지한 고찰을 흔히 그리 높지 않은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도 예화 한 가지를 들기로 하자. 물론 좋지 못한 의도로 많은 문헌 가운데서 이 예화를 가려 뽑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볼 때, 담담하게 기술된 저서를 숙고해서 선택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예화로 들고자 하는 이 저서의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뜻을 추려 말하고 있다. “이제 필자는 증명할 수 없거나 꾸며낸 것은 일체 배제하고 원전에 의거하여 마리아상의 묘사를 시도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적 이상에 불과했다. 그럼 사실은 어떠했는가? 이 저서의 본론의 한 장 章 에서 저자는 마리아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마리아는 우리가 생각한 당신 민족의 이상적 아름다움에 상응하였다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정말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이 저자에게 비친 마리아상은 어떠했는가? 그가 본 마리아는 이러했다. “맑고 푸른기氣 도는 빛나는 눈, 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백옥같이 깨끗한 치아, 분홍색 입술 그리고 사랑스러운 입, 그 위에 빨갛게 피어난 고운 뺨과 희고 고상한 목, 어머니다운 따뜻하고 고아한 가슴.”

또한 이 저자는 사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는 배제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길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조그만 보따리를 든 애 띤 여인 마리아가 나자렛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들꽃이 가득 핀 넓은 들길로 나아간다. 들에는 한창 봄기운이 넘치고 있다. 공중에 높이 떠 지저귀는 종달새며, 곳곳에서 재잘대는 참새떼, 그리고 숲 속에서 노래 부르는 들비둘기와 그 옆을 재빠르게 스쳐가는 도마뱀, 온 종일 웅웅거리는 풍뎅이와 늘 부지런한 벌들… 그것들을 지나 바쁘게 발길을 옮기는 마리아의 주위로는 하얀 나비떼가 가볍게 날고 있다. 만물이 이토록 생명의 환희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때 마리아 안에서도 고귀한 생명이 피어나고 있었으니, 곧 마리아 홀로 알고 있는 저 신비스럽고 기적으로 충만한 하느님이요 인간인 한 생명[신인적 생명]이 마리아 안에서 소중히 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예의 저자는 이러한 낭만에 젖어 내용의 모순에 대해선 별로 문제를 삼지 않는다. 이 저자는 마리아의 죽음에 관해서도 이렇게 단정하고 있다. “마리아의 사망시간이나 노쇠기에 관한 확실한 근거의 기록이라고는 없다.” 그러면서도 이 저자는 또 “하느님의 어머님은 질병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불붙는 가운데, 예수와 천국에 대한 동경에 가득 차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신 것이다. 마리아의 육신은 이 내적 갈망을 끝내는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토록 특이하고도 상세한 이 지식의 원천을 우리가 추적 한다면, 우리는 사상 事象 속에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서 그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로 하여금 이러한 표현을 하게 한 그 원인은 바로 신심적인 종교감흥 das religiose Gefuhl 에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많은 마리아 문헌에 나타난 과장된 표현이 바로 종교적 감흥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 정통신학에선 전통적으로 정감을 지나치게 무시해 왔었다. 그리고 이 점은 교회의 공식적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었다. 그래서 금세기 초반의 현대주의자들은 교회 생활영역의 핵심부위에 정감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추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단죄 받아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교회의 정통신학은 신 스콜라신학의 건조한 주리주의 主理主義, Rationalismus 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 신학의 주리주의는 인간의 정감적 힘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점차적으로 기술화되어 가는 세계 속의 인간에게서는 동료 인간성 Mitmenschlichkeit 에 대한 열망이 차츰 대두되고 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앞서 예수의 인간성 Menschlichkeit Jesu 을 발굴해낼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이 현대인의 열망을 진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전적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아주 장기적으로 강조하는 단성론 單性論, Monophysitismus 의 경향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이르는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하에서 인간으로선 가장 완성되고 온전한 인간인 하느님의  어머니 이외에 다른 어느 누가 이 문제의 해답으로 들어설 수 있었겠는가?

이제 사람들은 예수에게는 좀체로 허용하지 않던 면모에 대한 찬사를 마리아에게 점차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하여 머리로 생각해낼 수 있는 갖가지 찬사를 드리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마리아의 모습은 점차 자기 아드님의 모습과 더욱더 부합되어갔다. 어느 땐 오히려 마리아에게 가리워져, 아드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세계 심판자인 그리스도가 엄격하다면 바로 마리아에게로 갈지어다. 마리아가 곧 도와주리라.”

17세기의 한 저명한 마리아론 신학자는 이렇게 기록한 바 있다. “예수님은 저주를 내리려 하고, 마리아는 구원하시려 한다. 예수에게는 정의가 있고 마리아에게는 온유함이 있다.”

 

이처럼 마리아론 은 가장 팽창된 신학부문으로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가톨릭 신학의 다른 부문은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었고, 학문영역에서의 쇄신이 크게 불신과 혐의를 받아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마리아론 에서만은 항상 새롭고 대담한 생각이 아주 쉽게 정착되곤 했다. 사람들은 마리아론의 이러한 새로운 구조물 構造物, Konstruktionen이, 진실로 그 새로운 사상을 튼튼히 지탱해낼 수 있는 ;확고한 기반에 입각하여 있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그리 우려하지 않았다. 마리아의 영광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하느님은 그렇게 행하실 수 있으셨고, 그래야 마땅하였으며, 사실로 그렇게 행하셨다” Deus potuit, decuit, ergo fecit라고 하는 원리를 계발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전제였기에 마리아론의 내용을 제약하는 한계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조류가 얼마나 강력하게 감정을 강조했고, 그 대서니 얼마나 사리에 어긋나는 것인지는 다음 사실에서도 측정할 수 있겠다. 즉 “마리아에 관해서 충분히 말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De Maria numquam satis 고 주장하는 마리아론적 진보주의자들은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생활의 다른 영역에서는 매우 엄격하게 현상유지를 주창했던 사람들이었으며,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조그만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보수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신학적 노력이 결국은 잘못된 그리스도상으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올바른 마리아상을 묘사해낼 수 없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같은 유형의 존재라는 사실은 마리아의 인간성으로부터 출발되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같은 유형의 존재라고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마리아의 인간성이 지니는 구세사적 성격이 나타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마리아의 생애의 역사적 조건을 그리스도인,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위한 불멸의 척도로 선언했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절실하게 논의할 수 없도록 저지되었다. 이 문제가 바로 그리스도의 어머니로부터 생생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정황을 우리 시대의 마리아 신심 감퇴 원인이라고 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평범한 일반 사람이 아닌 바로 교황 바오로 6세(Paul VI, 1963 – 1978) 였다. 따라서 이 문제에 책임 있는 관계인사들은 이 바람직하지 못한 이상상태를 극복하도록 촉구되었다. “동정녀 마리아가 신자들에게 으뜸가는 모범으로 소개된 까닭은 마리아가 오늘날에 와서는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버린 사회 –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삶을 영위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삶의 상황에서 자신의 과업을 충실히 의식하면서 하느님의 뜻[성의]에 완전히 헌신하였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여러 곳에서 가장 활발한 경향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경향에 의해 이 특수한 신앙교리 영역에 찾아 든 오늘날의 정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금세기 중엽에 있었던 마리아론 적 과열상태는 더 이상 계속되어선 안될 것이었다. 신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로 이런 사실을 환영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열행위는 물론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교회기관의 건전화 작업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에 관해서 일체 침묵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극단의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생애와 구세사적 역할에 관해서 고찰하고 신학적으로 근거를 정립하는 일은, 그리스도 신학에서 배제될 수 없는 불가결한 과제로 여전히 남게 된다. 이를 행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에게도 합당치 않으며, 그의 교회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교는 이론적인 교리로부터 실천적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까닭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교적 실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면, 이 점은 물론 사리에 맞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냉철하고 선입견 없이’ Sine ira et studio 사건을 대하라는 사가들의 오랜 교훈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도 어디서나 처럼 담담한 가운데 신학을 전개하는 일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이 행한 위대한 행업의 영광이 우리에게 자신을 열어 보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복음사가 루카가 마리아의 입으로 읊은 저 노래를 함께 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루카 1, 46).

이러한 시도를 감행하는 첫 단계는 성서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성서는 모든 신학적 인식의 규범적 기반 normierendc Grundlge 이요, 따라서 마리아론 적 인식의 규범적 기반도 되기 때문이다.

 

 

 

제2장  성서 안에서의 마리아

 

16세기의 가톨릭 신자들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성서가 마리아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거의 일치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일치된 의견으로부터 서로 판이한 결론을 끌어냈다. 가톨릭 측에서는 이 사실을 마리아상을 더 장식하라는 계기로 삼았는가 하면,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마리아상을 어둠 속에 방치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한 근거로 가톨릭 신자들은 성서와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며 마리아론 에 충분하고 확고한 기반을 부여하는 성전 聖傳, Tradition을 지적하였고,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성서조차 마리아에 관하여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마리아에 관해서 도무지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성서를 피상적으로만 대한다면 이 견해는 매우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마리아에 관한 보도를 순전히 양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신약에 있어서의 마리아에 관한 보도는 빈약할 뿐이다. 마리아는 신약의 시초에 잠깐 등장하고, 예수의 공생활 중에는 매우 기묘한 상황에 단 한 번 나타나고는 마지막 십자가 밑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날 뿐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결정적인 활동시기인 세례자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그가 우리를 떠나 승천하게 되는 날까지 (사도 1, 22), 즉 예수의 결정적인 활동시기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초대교회로부터 마리아가 교회에 속한다고 언급되어 있기는 하나(사도 1, 14), 마리아에 관해서 커다란 침묵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전기를 기술할 가능성은 예수의 경우보다 더욱 희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리아에 대한 기술의 모든 시도 또한 다소간의 사변이나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리아에 관해 언급하는 신약성서 본문의 비중을 살펴보면 사정은 더욱 악화되는 것 같다. 갈라디아서(4,4)에서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마리아론 적이라 할 수 없는 극히 피상적인 언급을 제외하고는, 마리아에 관한 일차적 증언은 신약성서의 후기 저서에서 비로소 발견되기 때문이다. 서기 90년경 마태오와 루카 복음이 비로소 형성되었다. 이 두 복음서에는 오늘날 각기 제 1,2장을 형성하는 소위 유년기 역사가 일종의 머리말처럼 첨가되어 있다. 제 4 복음 사가 요한은 예수의 참된 인간성을 부인하는 가현론자(假現論者, Doketen)들과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마리아에 대해서 언급했다. 게다가 복음서 텍스트는 서로 온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일련의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텍스트는 한결같이 매우 담담할 뿐만 아니라 몇몇 텍스트는 마리아가 주의 어머니임을 강조하는 것조차 거스르는 듯한 외양까지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후에는 이러한 텍스트에 관해서는 언급하기 않았다. 교황의 교서들마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다른 신학자들은 성서 전체를 마리아론 적으로 변모시켜 기능화하려고 진력하였다. 성서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적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성서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 중 비투스 쉐퍼(Vitus Scheffer)가 가장 깊이 파고들어 갔던 것 같다. 그는 18세기에 성모무염시대(die Unbefleckte Empfangnis)에 대한 교리가 창세기에 나타나 있음을 제시하기 위하여 일곱 권이나  되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흔히 그렇듯이 올바른 길이란 중도에 있다. 때문에 성서의 어디서나 마리아를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점은 특히 구약성서에 더욱 해당한다. 물론 신약성서의 통찰에 입각하여 마리아의 개략적인 면모를 구약에서 소묘(素描)해낼 수는 있다(그리고 신약이 스스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저자들과 당 시대 사람들의 입장으로부터 이를 바라볼 때 만사는 짙은 안개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구약에서의 마리아는 아직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숨어 있었고, 신약에서도 겸양스럽게 뒷전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가 마리아에 관해 침묵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그르치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마리아에 대해서 듣게 되는 얼마 안 되는 구절에서 저자들은 마리아의 말[言]에 대단한 비중을 두고 있다. 저자들은 마리아가, 더 이상 추월하거나 능가할 수 없는 절정에 다다른 그리스도의 구원사건 속에서 극히 중요한 기능을 소유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성서구절로부터 ‘역사적 마리아’ (historische Maria)를 알아낼 도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적 복음선포의 본연의 대상인 하느님의 구원계획 속에서의 마리아의 위치, 즉 소위 복음선포 속에 등장하는 ‘케리그마 적 마리아’ (kerygmatische Maria)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을 우리는 추적하고자 한다. 이제 신약성서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만을 간략하게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1 바오로

예수의 어머니에 관해서 언급한 가장 오래된 성서 증언은 1세기 중엽에서부터 유래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오로는 율법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해서 극복된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어떤 오랜 정식을 이어받은 가운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었습니다.”(갈라 4, 4). 사람들은 즐겨 이 구절을 동정녀 출산을 위한 첫 증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면 이 구절을 확실히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마리아의 동정성 문제에 대해 언급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예수의 참된 인간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역사에 등장해서 율법으로써 상징되어 있는 인류의 모든 고난을 넘겨 받았다는 것, 그는 온전한 인간이었기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었고 또한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구원해내셨다(갈라 4,5)는 그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바오로가 여인으로부터의 탄생을 두드러지게 한 것은 유다문학에서 여인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인간’이라는 말을 적용하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바오로는 이 여인이 누구이고 이름이 무엇이며,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는가에 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2 마르코

마르코복음[네 복음서 가운데 시기적으로 제일 먼저 즉 서기 60년 대에 기록됨 – 역자주]은 단지 두 군데에서만 마리아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구절은 피상적으로 이를 대하는 독자에게는 부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마르코 6, 1-6은 예수가 자기 고향 나자렛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보도하고 있다. 예수는 회당에서 가르친다. 많은 청중이 몰려온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예수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6,3) 이와 같이 예수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거절을 당한다. 또 여기서 아버지는 아니고 어머니만이 지칭되고 있는 것은 이때 요셉은 이미 사망한 후라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그 이상의 결론을 이끌어 내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 예수의 형제 자매들이 언급되면서 제기되는 문제를 우리는 여기서 당장 고려하지 않아도 좋다. 이 점에 관해서는 우리가 마리아의 동정성을 다룰 때 언급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마르코는 이 구절에 앞서 예수와 그의 친척간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예수의 친척들마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저들(예수의 친척)은 말하였다. 그는 미쳤다”(3,22). 즉 예수는 즉시 미쳤다고 간주되었고, 그의 친척들은 예수로 하여금 공적 활동으로부터 물러서게 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서서 예수를 불러 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둘러앉았던 군중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 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고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3,2-35)라고 하였다. 얼핏 보면 이 구절은 도저히 마리아를 찬미하는 말로 알아듣긴 어려운 것 같다. 여기서는 한번도 마리아의 이름이 지칭되지 않고 있다. 마리아는 다른 모든 사람, 즉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안목 없이 몽매하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기서 복음사가의 반(反)마리아적 쟁론을 대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확실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마르코는 마리아나 예수의 제자들을 악평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복음사가의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었을 뿐이었다. 마르코는 평소에도 늘, 감추어져 있던 예수의 영광과 그가 메시아라는 것이 부활한 다음에 비로소 제자들에게 계시되리라는 것을 즐겨 강조했는데, 이러한 취지에 상응해서 마르코는 예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의 본연의 정체를 깨닫지 못하였음을 여기서 더욱 분명히 하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 가지 관심이 그를 이끌고 있었는데 그것은 ‘안과 밖’ (내부, drinnen :  외부, drauben)의 대비(對比, Gegensatz)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즉 혈연관계로써 예수와 유대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예수께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혈연의 유대관계 한 가지만으로는 여전히 밖에 머무는 자밖에 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예수의 발 밑에 앉아 있을 때에만, 또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을 때에만(20절) 하느님의 뜻을 채우려는 자세를 통해서 예수와 유대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예수와의 공동체(Gemeinschaft)는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 앞서 특전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 또한 예외 없이 하느님의 가정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 언급된 것이다. 물론 이들은 친척 명칭에 입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입각해서 그러한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언급한 성서구절은 이를테면 친(親, pro)마리아적도 아니요, 반(反, anti)마리아적도 아니다. 이 구절은 다만 신자들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 속해 있을 때에만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다는 것을 진술한 것 뿐이다.

 

3 마태오

제 1복음 마태오복음과 제 3복음 루카복음은 마리아론을 위한 가장 풍부한 원천이다. 특히 여기서는 이 두 복음의 제 1,2장을 다음 두 가지 유보 하에 분석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유보사항은 우리의 서술과 상관한다. 동정성에 대한 문제를 보다 상세하게 다루려는 우리의 의도에 따라, 우리는 해당되는 텍스트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루겠다. 두 번째 유보사항은 유년기 설화의 양식사(樣式史, Formgeschichte)와 전승사(傳承史, Traditionsgeschichte)에 상관하고 있다. 유년기 설화는 특별한 유형의 것이어서, 신학적 상념을 강조하기 위하여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마태오와 루카는 몇 가지 본질적인 자료, 즉 부모의 이름, 성령에 의한 잉태(Geistzeugung)와 동정녀 출산 그리고 출생지인 베들레헴에 관한 보도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세밀한 점에서는 그리 자주 일치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상이한 전승에서 유래했으며, 또한 확실한 사실(史實, Historie)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자태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마태오한테서 그가 예수를 새로운 모세와 새로운 야곱 – 이스라엘로 제시하고자 함으로써 우선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요셉의 꿈과 유아살해설화와 에집트에로의 피난 보도는 분명히 성서상의 모세설화나 성서 외의 모세전승 설화의 여운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함께 두 번째 중심 사상이 준비된다. 이 중심적 사상은 예수가 구약의 이스라엘과 온전한 지속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윗의 후손이며, 합법적인 메시아임을 밝힌다. 이 사실(史實)의 입증은 마태 1,1-17 에서 족보가 제시되면서 이루어진다. 이 족보는 루가 3,28-38에서의 다른 족보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적(사적, historisch)으로서가 아니라, 예형론적(豫型論的, typologisch)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제 1복음사가는 자신의 연보를 나눔에 있어서 14세대를 3등분하여 기술적으로 나누었으며, 또 매시기의 처음을 유다역사의 결정적인 신 기원(新紀元, Epoche)으로 시작해 놓고 있다(아브라함, 다윗, 유배 등), 또한 연보가 요셉으로 끝나게 되는 상황은 기묘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다”(16절). 이로써 제기되는 문제는 18-25절에서 해명된다. 그러나 동정녀 출산에 대한 증언 때문에 이 점은 후에 다루고자 한다. 이 자리에서는 마리아가 이 구절에서 본래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지 않다는 점만을 지적하기로 하자. 복음사가의 관심사는 우선적으로 예수의 탄생을 다윗의 후손이며 메시아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이 사실 외에 누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요셉이다. 요셉은 어떤 어려운 처지에서나 극도의 인격적인 곤경 속에서도 하느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알려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24절).

동방박사의 방문설화(2,1-12)에서는 요셉은 언급되지 않고 마리아만 지칭되고 있다(2,11). 같은 현상이 그 다음에 나오는 두 이야기 즉 에집트로의 피난과 귀환 이야기(2,13,19-23)에서도 나타난다. 이 이야기 속에서도 아기의 어머니에 대해서만 언급되고 있다(2,13.14.21).

마태오는 친척들이 예수를 찾는 설화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서 예수와 말씀을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 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예수께서는 말을 전해준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나?’ 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4, 46-50). 이 본문은 주로 예수를 배격하는 사건과 관련된 보다 커다란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다. 마태오는 마르코보다는 처지를 상당히 부드럽게 보았다. 마태오는 마르코의 날카로운 도입부(마르 3,20 이하)를 삭제했다. 마태오에게는 친척들이 예수와 이야기하기를 원할 뿐이지 마르코에게서처럼 예수로 하여금 그의 과업을 그만두도록 부추기지는 않는다. 그 대신 마태오는 누가 그리스도의 참된 친척인가를 보다 명료하게 지적해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참된 친척은 그저 모인 회중이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Junger)들이었다. 제자들이 예수께 가장 가까운 자들이었다. 마태오가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본문에 이어지는 13,11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태오에게서도 그들이 아무리 혈연으로 맺어진 친척들이라 해도 예수를 뒤따르지 않는 한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편에 세워졌다. 그렇다고 물론 친척들이 예수의 뒤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에 관해서도 그녀의 위치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고 있다. 복음사가의 관심사는 마리아가 아니라 제자들의 입장이었다.

 

마태오는 우리에게 고유한 마리아상을 중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오에게서는 마리아의 인격적인 면모를 조금도 체험하지 못한다. 다만 마리아의 과업에 대해서만 조금 체험할 뿐이다. 즉 마태오는 마리아의 아기 어머니로서의 기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리아는 이사야가 언급한 바 있는 (아사야 1,23) 메시아에게 생명을 선사하게 될 저 젊은 여인이었다. 하느님은 이 일을 위해서 모든 여인들 가운데에서 이 여인을 선택하셨다. 그녀는 이 역할을 맡고 난 다음 조용히 뒷전에 머문다. 그러면서도 마리아는 아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기는 하나 아들의 삶과 활동에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 이처럼 마리아는 요셉과 비슷하게 하느님께 순종하는 시녀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4 루카

제 3복음인 루카복음에서는 마리아의 모습을 둘러싼 어두움이 가장 많이 걷힌다. 그러므로 중세기는 루카를 주의 어머니가 친히 체험한 모든 것을 들려주었다는 뜻에서 ‘주의 어머니의 화가’라고 보았다. 우리를 깊은 진리로 이끌어 들이려는 전설의 의미에서 볼 때 중세기의 관점은 옳았다.

이 복음서에서 마리아는 우리에게 한 인격체(Personlichkeit)로 나타난다. 우리는 여기서 그녀의 사색에 관해서(2,19. 52). 그녀의 깊은 신앙에 관해서 (1,38 ; 2,52), 발생한 일을 겸손하게 관찰함에 곤해서(2,52) 듣게 된다. 하지만 이 제 3복음에서도 보다 큰 관건이 되는 문제는 마리아의 전기적 면모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구세사적 위치를 증언하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예수 탄생의 예고에서 또 언급된다. (1,26-38). 이 설화의 분석은 뒤로 미루겠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곧 루카가 이 보도의 핵심으로서 동정녀의 완전한 순명을 얼마나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이러한 순명 자세로 마리아는 참되고 거룩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자신을 세운다. 또한 구약의 축복받은 어머니들은 마리아로써 끝을 맺는다. (1 사무 1,11). 그리고 마리아는 모세나 여호수아와 다윗 그리고 성서 안에 나타나는 예언자들에게 부여된 동일한 칭호로 장식된다. 루카복음에는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부른 노 시므온의 이야기가 나온다(2, 23). 그리고 마리아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부른 그 순간,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부른 자들의 새로운 서열이 시작된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신앙으로부터 힘을 얻은 순명으로써 회중의 모범이 된다.

엘리사벳 방문설화(1, 39-56)가 예수 탄생의 예고에 이어진다. 이 이야기에서도 루카는 하나의 획기적인 신 기원의 시작을 강조한다. “엘리사벳의 뱃속에 든 아기가 기뻐 뒤놀았다”(1,41. 44). 하느님 백성의 종말론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한 가지 표현이 성서 언어에서는 이러한 기쁨으로 표출된다. 루카에 의하면 초대교회 공동체는 기쁨으로 충만하였다(사도 2, 46). 마리아가 지금 읊조리는 찬미가(Magnificat)에도 하느님의 자비와 위력에 대한 환희의 태도가 가득 차있다. 이제 종말이 도래한 것이다. 예수와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은 기쁨으로 가득 찬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하여(1,42) 이것을 알고는 마리아를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 분이라고 칭송한다. 이 영예의 근거는 마리아의 신앙이다. 그녀의 신앙은 여기서 엘리사벳의 남편 즈가리야의 회의와 상반되고 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1,45). 여기서 마리아는 한번 더 그리스도 신앙의 모범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거론되는 바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어야 할 것이다.

엘리사벳의 칭송에 마리아는 마니피캇으로 응답을 한다. 문학양식(litterarische Form)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행하신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이 찬미가는 한 편의 시(詩)이다. 이 송시(頌詩)는 구약성서로부터의 인용으로 깊이 채워져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특히 사무엘의 탄생을 기리는 한나의 감사 노래를 상기하게 된다(1 사무 2,1-10). 또한 이 시에서 마리아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지속관계에 선다. 하느님이 예부터 당신의 사람들에게 행하신 바가 지금 절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의 세계질서는 그대로 뒤바뀐다. “그는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다”(52절). 이 보잘것 없는 사람들(anawim)이야말로 본래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자들이다. 이 표현이 일차적으로 뜻하는 바는 물리적 곤경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가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던(마태 5,3)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만사를 하느님으로부터 기대하는 겸손한 사람들이며 믿는 사람들이고 희망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거슬러 행동할 때에도 이들은 충실히 간택된 백성으로 머문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 시간에 마리아에 의해 가장 밀도 짙게 요약되고 있다. 마리아는 바로 보잘것 없는 여인이기 때문에 구세주의 어머니로 간택되었다. 루카는 이렇게 하면서 동시에 마리아를 종말론적 교회 회중의 원형(原型, Urbild)으로 내세운다. 마리아는 당신을 복되다고 찬미하게 될 다가오는 세대를 성령 안에서 보고 있다. 마리아로 인해 이 세대는 축복받는 가난한 척도, 현양된 겸손의 척도를 지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탄사화에서(2,1-20),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한 아기를 출산하려고 하는데 (5절), 이 아기는 요셉에 의해서 잉태된 아기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잉태된 아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탄생 그 자체는 매우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다. “마리아는 첫아들을 낳았다.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2,7). 이 표현은 유다의 언어관습에 의하면 예수가 그 어머니의 첫아기임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이 말에서, 물론 첫 번째 아기의 뒤를 이어 다시 태어나는 아기들이 있다는 사실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그 이상의 아기들이 태어났다는 결론을 내를 수도 없다.

또 양치는 목동들이 와서 천사들이 발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장면은 그 소식을 들은 모두가 경탄하고 기묘하게 여긴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해서만은 유독 그녀가 경탄하거나 기묘하게 여긴 데서만 그치지 않고 조용히 숙고했음을 들려주고 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간직하였다”(2,19). 이 문장의 직접적인 병행구를 우리는 같은 장 마지막에서(2,52) 보게 된다. 그러나 이미 1,29에서 마리아는 깊이 숙고하는 여인, 그리고 경청하는 여인으로서 제시되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아 마리아의 성격의 한 면모가 확실히 제시되긴 했다. 그러나, 복음사가 루카는 이 점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마리아의 처신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요청되는 처신이기 때문이다. 악령에게 사로잡힌 젊은이가 치유된 뒤에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 두어라. 사람의 아들은 멀지 않아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될 거이다’ 하고 말씀하셨다”(9,43 이하). 여기서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 두어라’고 글자 그대로 진술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파고들어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해석을 이해하게 된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꾸준히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8,15). 이 비유에 이어 올바로 듣는 것과 관련되는 본문이 뒤따른다. (루카 8,16-18). 이 구절은 ‘내 말을 명심하여 들으라’는 경고로 절정에 이른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결정적인 일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의 올바른 청취가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에게서 모범적으로 보여진 것이다.

성탄설화에 이어 뒤따르는 두 개의 구절은 성전(성전)과 제물봉헌, 그리고 이스라엘 사제직에 대한 예수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다. 성탄설화가 이를테면 ‘여인으로부터 출생되었다’고 하는 갈라디아서(4,4)에서의 바오로의 말을 주석한 것이라면, 할례(Beschneidung)의 장면(2,21-40)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율법 밑에 예속되었음’이라는 문장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레위 12장과 출애 13장의 규정을 이행하면서, 이때에 규정된 제물, 가난한 자들의 제물을 봉헌한다. 이때, 성령의 영향으로 예언자의 면모를 지닌 시메온은 자신이 팔에 안고 있는 어린이의 운명과 중요한 의미를 예언한다. 이러한 말을 들은 그의 부모는 놀라움을 드러낸다. 시메온은 부모를 축복하고 나서 마리아를 향하여 한 번 더 이야기한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라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내게 할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진술하는 말로서는 매우 타당하다. 그러나 아들의 이 투쟁은 어머니에게도 처절한 결과를 빚어낸다.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날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2,32 이하).

마리아는 고통 당하는 어머니가 된다. 루카설화의 전체적인 성향에 따라 여기서도 루카는 마리아의 인격적인 면모에 대해서만 보도하려 하거나, 처형당하게 되는 아들을 가진 이 여인의 운명에 단순히 동참하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여기서도 교회를 생각한다는 점을 우리는 재차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역시 루카의 작품인 사도행전에는 초대교회 회중은 어디서나 ‘반대를 받고 있는’ (사도 28,22) 하나의 종파라는 논평이 실려 있다. 따라서 마리아는 박해 받고 고통 당하는 주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보이는 증오마저 그녀에게 관통되어 그 고통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든지 공동체 안에서 주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그만큼 더 많이 십자가도 참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어머니보다 더 많은 고통을 참아낸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유년기 역사의 마지막 사건으로 우리는 예수와 그의 가정을 한 번 더 성전에서 만나게 된다(2,41-50).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가 성부께 속해 있음을 강조하려는 복음사가의 의도를 본다. 이로써 자동적으로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간격이 생기게 된다. 이 거리감[간격 間隔]은 대략 앞에서 친척관계에 대해 언급한 진술내용에 상응한다. 루카가 파악한 혈연관계에 관한 이 구절에 대해서는 한 번 더 논할 것이다. 하지만 성전사화에서는 마리아가 두드러지게 강조되어 나타난다. 예수를 꾸지람 할 때에도 아버지가 하지 않고, 어머니가 대신한다.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48절). 이때 어린 예수가 대답한 말의 뜻도 부모가 똑같이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52절)라고 유독 어머니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 역시 일생을 신앙의 어두움 속에서 생활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마리아는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은 하느님의 계획을 투시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의 적대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그가 하는 말에 충실 하려고 겸손과 순명으로서 노력한다. 바로 이 점이 단순한 혈연관계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높은 경지로 마리아와 예수를 가깝게 한 요소이다. 마리아 역시 만사에서 성부의 뜻을 따르는 ‘그래야만 하는'(2,49) 하느님의 계명에 자신을 세운다. 이 점에서도 마리아는 온전히 자기 아들을 추종하는 여인이다.

참된 친척에 관한 이야기는 제 3복음사가도 언급하고 있다. (8,19-21). 이 이야기는 올바른 청종 聽從 에 대한 하나의 금언 金言, Logion 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에 상응해서 루카의 이야기는 마르코와  마태오에 비해 변형을 이룬다. 마태오 복음사가처럼 루카도 마르코복음의 가혹한 도입부를 삭제한다. 뿐만 아니라 루카는 밖에 있는 친척들이 순전히 실천적인 어려움만 지니고 있는 것으로 기록한다.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만날 수가 없었다”(8,19). 이들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고 예수는 대답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8,21). 여기서 우리는 다른 두 공관복음사가에게서 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의 형제가 된다는 것은 친척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께 유일하게 참가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올바른 청종에 의해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형제들 중에 친척들이 제외된다는 것은 아니다.

유년기설화의 결과는 확실히 다른 각도로부터 관찰된다. 여기서 마리아는 올바로 청종하는 자의 원형이 되며 올바로 청종하는 자들은 마리아적 인간으로 지칭된다.

마리아는 이 루카복음 안에서 간접적으로 한 번 더 나타난다. 예수의 설교를 듣던 군중 가운데에서 한 여인이 예수께 소리 높여 외친다.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대답하셨다(11,27 이하). 여기서 여인이란 말의 의미가 아주 분명하기는 않다. 그러나 확실히 이 말은 우선적으로 예수를 찬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로 써 그이 어머니 역시 복되다고 찬미 받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아들을 갖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예수는 일종의 지복찬미(至福讚美)를 읊고 있는 것이다. 희랍어 본문에는 mu-epsilon-xxxx이라는 자그마한 단어가 하나 더 첨부되어 있다. 이 말은 확인(確認, 그래, 그대 말이 옳아)으로도, 교정적 부정(矯正的 否定, 아니요, 그보다는..)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단어이다. 루카는 여기서 두 가지를 모두 종합명제(Synhese)에 합치시킨 듯하다. 마리아는 복된 분이나 단순히 어머니이기 때문이 아니라, 올바로 듣고 따르는 여인이기 때문에 복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묘사함에 있어서 아들을 뒤따르는 여인이면서도 또한 교회 회중의 원형이 되는 여인으로 동시에 기술하는 루카의 마리아론에 가장 잘 부합하고 있다. 동시에 루카는 ‘그녀가 찬미 받으리라’는 마니피캇의 예언이 마리아의 생존시에 이미 성취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루카는 마리아의 인격을 인상 깊이 묘사하고 있다. 루카에게는 그녀의 ‘직무’가 강조되기보다는 오히려 복되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운 그녀의 신앙의 처신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시간의 중심에서 하느님께 순명하는 여인이다. 마리아는 구약과 이스라엘의 가장 훌륭한 속성 屬性의 화신인 동시에 그녀는 교회 안에서 구현되는 신약의 대표자인 것이다.

 

5 요한

요한복음에서는 단지 두 군데에서만 마리아에 대해서 나온다. 그러나 자기 아들의 삶의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언급되고 있다.

첫째 본문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대해서 기록한 요한 2,11이다. 여기서는 주의 공적 활동이 묘사된다. 이 활동은 그의 위력과 영광(1,14 참조)을 계시하는 기적으로 시작한다. 이 본문은 기이한 일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을 역사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요한은 2,12의 이 사건을 실제로 발생한 사건인 듯 시사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마리아가 어느 잔칫집의 난처한 처지에서 아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녀는 기적을 기대했던가? 물론 그녀가 기적을 드러나게 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마리아가 기적을 청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여인이여, 당신이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

옛부터 마리아에 대한 경건한 관찰자들은 이 말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은 이 말의 거친 표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예수의 이 말이 비록 거절하는 말이기는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단절을 가져오는 의견 불일치의 표시는 분명 아니었다. 따라서 예수와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잔치 이후에도 함께 머문다(2,12). 그러면 이 “여인이여 ..”라는 표현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희랍문학에서는 남편이 자기 부인을 부를 때 흔히 “여인이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유딧 11,1에도 홀로페르네스가 유딧에게 같은 표현으로 경건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예수가 한 대답의 의미는 다른 복음 사가들도 전승한 바 있듯이 자기 어머니께 대한 예수의 태도와 부합한다. 즉 예수의 태도를 규정하는 것은 혈연관계가 아니라 오직 성부의 뜻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성부의 뜻을 따르고 있다. 성부가 명할 떼에만 ‘그의 때’가 오는 것이다. 그러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있었던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외견상으로는 결과 없이 끝난 것 같으나 결국에 가서는 두 사람 다 성부의 뜻대로 행동한 점에서 마리아와 예수가 함께 성공을 거둔 듯이 이 성서 본문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때가 도착한 것으로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때'(Stunde)란 무엇인가? 요한에게서 이 ‘때’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구속사업으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7,30; 8,20; 13, 1;17, 1;12,23-3 참조) 동시에 이 ‘때’는 그이 현양(顯揚, Verherrlichung)의 때이기도 하다. 그러면 여기서 가리킨 ‘때’라는 것은 마리아가 두 번째로 등장하면서 재차 ‘여인’ (Frau)이라고 지칭되는 골고타 사건을 시사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포도주 기적은 주의 죽음과 관련되는 성체성사의 기적을 전취한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단지 미래적인 관계만을 보는 데 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의 영광이 이미 – 보다 위대하고 보다 감추어진 가운데 나타난 십자가 위에서처럼 – 계시되는 한 (2,11) 그이 때가 당도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자들이 신앙이 일깨워진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에 관해서 다음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당신 아들과의 차이는 바로 신비에 가득 찬 보다 큰 일치 안에 위치하고 있다 전적으로 아들의 말에 청종하는 마리아는 자기 아들에게 거절당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아들이 어머니의 말을 따른 것이다. 이리하여 비록 그 후 함께 더 가까이 지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아들은 어머니에게 머문 것이다(2,12).

 

골고타 언덕에서 우리는 마리아를 다시 만난다(19,25-27). “예수께서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이제 예수가 영광에 오르게 되는 ‘때’가 궁극적으로 면모들을 구약성서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인용한 이 본문만은 구약성서와의 관련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 유일한 텍스트이다. 그렇다면 혹시 여기서 창세 3,15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짓누르게 될 바로 그 여인이란 말인가? 제 4복음 사가는 마리아를 제 2의 하와로, 죄의 계기가 되었던 첫째 여인의 반대상(像)으로 나타내 보인 것인가? 마리아는 당신 아들의 말을 통해서 사랑하는 제자로 묘사되고 있는, 즉 믿는 자들의 어머니가 되게 되었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예’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 이야기 속에서 그렇게 해야만 하리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점이 바로 요한복음의 정신에 온전히 부합하는 듯하다.

 

6 요약

우리는 지금까지 마리아에 대해 기술하면서 성서 안에서 분명하게 거론되는 모든 구절에 대해 언급하였다.그러나 구약성서의 본문을 다루지는 않았다. 이들은 기껏해야 주의 어머니를 애매하고 어렴풋이 알도록 지시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와 같은 이유에서 ‘태양으로 둘러싸인 여인’에 대해서 보도하는 요한 묵시록의 비밀 가득한 구절도 고찰하지 않았다(12,1-17). 12세기 이래 사람들은 이 구절을 마리아론 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해석을 대부분 포기하였으며, 묵시록에 등장하는 이 여인을 교회를 위한 상징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신약성서가 예수의 어머니에 대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을 회고 삼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단정할 수 있다.

 

1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대단히 늦게 서야’ 각성하게 되었다. 바오로 서간에서 가장 오래된 전승은 주의 어머니에 대해서 단 한 번 그리고 간결하게 언급되었을 뿐이다. 뒤 늦게 기술된 성서(대략 90년 이후)들이 비로소 마리아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2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그리스도적으로 정향(定向)되어’있다. 그리스도는 신약성서적 복음선포의 절대적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비교할 때 다른 모든 인물들은 주변인물일 뿐이다. 마리아에 대해서 보도되는 것이라도 이 보도는 그녀의 아들을 고려하는 가운데서만 이루어진다. 마리아는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그리고 아들 때문에 구세사적 기능을, 구세사적 ‘직무’를 소유한다. 물론 이와 함께 예수와 가까운 마리아의 인격적 접근은 독보적 성경을 지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마리아처럼 예수와 가까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교회론적으로 정립되어’ 있다. 전기를 집필하려는 호기심이 아니라 복음선포적(kerygmatische) 지향이 저들을 이끌었다.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의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하는 본질적 면모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교회에 부연되어야 할 것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룩된 하느님 가정의 탁월한 식구이다. 마리아는 특히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공동체에 이르게 하는 즉 구원을 이루는 신앙의 모범인 것이다.

 

4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담담하고 간략하게’ 진술된다. 어는 한 구절에서도 마리아의 과장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 이들이 물론 반(反) 마리아적은 아니지만 – 거친 표현 때문에 얼핏 보아  반마리아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일련의 본문도 있다. 바로 이 교과서적인 담담함이 성서 독자들로 하여금 마리아에게 주목을 끌게 한다. 마리아는 실제로 모든 세대의 사람들로부터 복되다고 찬미를 받는다. 그리고 이 찬미 경위가 이미 성서 안에서 시작된다. 그 이래 이 경위는 교회 안에서 현실적으로 머물렀다. 앞으로 이 점을 보게 될 것이다.

 

 

 

제 3장  마리아론과 마리아 공경의 소사(小史)

 

신약성서적 마리아론의 빈약함은 다채로운 노고의 산물인 금세기 중반부의 흘러 넘치는 신학 작품들과는 두드러지게 대조적이다. 그러나 성서에서의 이와 같이 얼마 안 되는 시사가 그리스도교 교리의 어떤 분야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이 마리아론에서는 증가 확대되었다. 물론 여기서 마리아론의 발전이 확고한 기초 위에서 정당하게 구축되었는가, 아니면 신약 저서들과는 더 이상 부합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몰고 온 혁명적 징표하의 역사 안에서 달리 이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이 절박하게 제기된다. 이 물음의 해답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리아에 관한 교리의 역사적 발전과 이 교리의 그리스도교 적 신심 속에서의 표현을 적어도 개괄적으로나마 기술해야 하겠다.

 

1 교부시대

교회 역사의 첫 8세기 동안은 신약성서에서 시사된 예수의어머니상의 면모가 계발되고, 따라서 새로운 상념들로 심화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초대 그리스도교가 유다 세계나 이교 세계와 벌였던 정신적 쟁론의 중심부에는 항상 그리스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이 마리아에 대해서 언급한 것도 이 여인이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 때문이었다. 그 예로 소아시아에 있는 안티오키아 의 주교 이냐시오 (Ignatius von Antiochia, 110년 경 사망)가 에페소 교회에 보낸 서한을 고전적 증언으로 손꼽을 수 있겠다.

“한 분이 의사이셨는데, 그분은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출생된 후나 출생되기 전이나 하느님이셨으며 육신을 갖추었으면서도 하느님이셨고, 죽음 속에서도 참 생명이셨으며, 마리아와 하느님으로부터 나셨다. 그리고 그분은 살아 계셨을 때 고통을 당하셨지만 부활하신 후에는 고통을 당하실 수 없었던 분이셨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

이 서한은 신약성서의 내용을 충실히 따른 칼케돈 공의회 (Konzils von Chalkedon, 451)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며 참 하느님이라고 선포한 이성론(二性論, Zweinaturenlehre)을 앞당겨 피력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참 인간임을 다른 근거와 함께 마리아로부터의 출생 증언을 통해서 시사되고 그가 하느님임은 하느님으로부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시사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모두 인간적 부친을 명시하는 가운데 진술된 것이 아니라 동정녀의 잉태를 통하여 인과율적 관계로 맺어진 것이다. 이냐시오가 사실상 마리아의 무구성(無垢性)을 알고 있음을 우리는 같은 서한의 다른 곳에서도 똑똑히 찾아낼 수 있다.2

 

교부들은 성서를 관찰하면서부터 마리아상이 지닌 보다 넓고 주요한 면모의 명증성을 즉시 발견해내었다.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에 평행선을 그은 바 있다(로마 5,12-21). 생명을 출산해야 할 원조는 죽음의 창시자가 되었고,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구해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아담의 경우엔 한 여인 즉 살아 있는 자들의 어머니인 하와가 연루 連累 되어 있고, 신약성서에는 동정녀 마리아가 역시 그리스도 사건 속에서 중요한 기능을 보유했다고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하와와 마리아 사이에도 역시 평행선을 그을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런 견해를 고대 그리스도교 호교가인 유스티노 (Justin 163년 경 사망)에게서 발견하게 된다.3 또 이런 견해는 리용의 이레네오 (Eirenaios von Lyon, 202년 경 사망)에 의해 수미일관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그의 신학에서 이 견해는 그리스도론의 중심적 위치에 세워지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창조사업의 완전한 재건으로 성취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야기된 역사의 요소들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에, 구원의 요소가 들어섰다. 아담 대신에 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원죄의 나무 대신에 십자가의 나무가 심어졌다. 이와 상응해서 마리아는 새로운 하와가 되었다. 첫째 하와는 순명하지 않았으나 새로운 하와인 마리아는 순종했다. 그리고 두 여인 모두가 각각 한 남자를 곁따랐으나 끝까지 동정녀로 머문 것은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대답한 그녀의 말 속에 이미 진술된 대로 (루카 1, 38),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따름으로써,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엉클어진 매듭을 다시 풀어낼 수 있게 했다.

이레네오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하와의 불순명의 매듭은 이렇게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서 풀어졌다. 하와가 자신의 불신앙을 통해서 얽어 맨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자신의 신앙을 통해서 풀어 낸 것이다.”4 여기서 언급된 반명제 反命題 는 마리아론에서 계속 생동적으로 머문다. 즉 하와를 통해선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해선 삶이 왔다는 것이 그것이다.

교부들의 저서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은, 우리가 대부분 합리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고의 동력은 인과율적 – 논리적 결론들이다. 물론 교회 교부들도 이것을 알고 있으며 적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부들은 이러한 결론을 넘어서, 개별적인 신앙 진술에서 정신적 – 인격적 관련과, 형이상학적 – 신학적 실재 實在 에 더 관심을 가진다. 교부들의 사고에 의하면 실재는 항상 지속적으로 신적 신비의 차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사고 도식에 따라서 적합하게 파악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실재에 관해서는 상징학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제한 받지 않는 개방된 비유를 필요로 한다. 이 비유는 허망한 비교가 아니라 신앙 증언을 직관적으로 관찰하는 가운데 파악된 시재의 표현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폐쇄되어 머무르게 될 신앙의 신비의 심오함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징론은 교부신학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상징론이 한낱 사고의 조력수단임을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유 자체들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밝혀진 실재 實在가 결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담과 그리스도의 반명제적 평행선은, 초대 그리스도교적 사상가들로 하여금 하와와 마리아의 관계를 평행선으로 확대하게 한 계기가 되게 한 것이 아니라, 하와와 교회 관계를 관찰하도록 이끈 계기가 되게 하였다. 하와가 첫째 아담의 반려자이듯이, 교회는 둘째 아담의 신부 新婦, 반려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위한 충분한 근거는 성서가 제공하였다(에페 5,23-32 참조).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함으로써, 인류의 원초 역사에까지 과거에로의 전망이나, 교회의 현재에로의 전망이 열릴 뿐만 아니라, 하와로 말미암아 야기된 비 구원 상태를 재건하는 여인으로서의 마리아의 구원의미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교회를 연관시켜서 바라보는 것은 논리정연한 듯이 보였던 것이다. 이 점을 최초로 인식한 것이 이레네오 였으며 이것은 그의 역사적 공적이 되고 있다. 그는 유다주의적 이단자들인 에비온파들 [Ebioniten: 67년 경 요르단 동쪽 지방에서 성행하기 시작한 유다주의적 그리스도교파로서 그리스도가 하느님임을 부인하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였음을 거부하여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5세기경 자취를 감춤 – 역자주] 과 벌인 쟁론 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원죄 상태에서 생활해야 하는 인간이, 동정녀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구원의 표징이 되도록 헤아릴 수 없이 기묘한 방법으로 선사하신 새로운 탄생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5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말하자면 마리아로부터의 탄생과 관련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레네오는 계속 에비온파에 반대되는 입장에 서서 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마리아의 품은 교회의 자모 慈母 의 품과 동일시된다.  “예수를 동정녀로부터 탄생한 임마누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당신 조물과의 합일을 지적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었고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느님을 위해 인간을 다시 출산하고 그분 스스로 순결하게 만든 저 순결한 모태를 스스로 순결한 분으로서 순수하게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6 마리아와 교회 사이의 이 유비 類比는 마리아론을 위해 극히 중요하다. 이 유비는 예수의 어머니를 교회의 원형으로 교회의 예형  豫型 Typus 으로 명시한다.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범례적이 되며, 따라서 마리아가 인간의 어머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은 하와 – 교회 평행선으로부터 계발된 가장 주요한 상념들이다. 우리는 이 생각을 더 기술하게 될 것이다.

또 제2 정전 Apokrypha이 언급되지 않은 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의 생애역사에 대한 소설 같은 기록들이 많이 나타났다. 이들은 보다 높은 권위를 위해서 성서저자들의 이름을 빌어 작품으로 등장하였다. 이들 속에는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스도교적 예술과 신심에 끼친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이름, 성전에서의 마리아 봉헌설화와 동정서약에 대한 설화 등은 확실치 않는 원천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성서적 마리아상의 과잉현상이 현저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정감적이고 감상적인 면모가 외부로부터 성서적 마리아상에 첨부된 것이다.

 

3세기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에 대한 지속적인 동정성의 교리를 형성함으로써 마리아론에 기여했다. 마리아가 동정녀라는 것은 초대교회의 신앙고백 속에 이미 증언되고 있다. 제1복음과 제3복음은 교회의 이 확신을 드러내는 웅변적 표현이다. 이 복음은 마리아가 인간인 남편이 없이 예수를 출산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마리아가 하느님께 바친 이 온전한 봉헌이 바로 그리스도의 어머니의 지속적인 표징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이데 대해 얼마간의 망설임이 있은 후에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녀’로 지칭된다는 견해가 관철되기에 이른다. 이미 4세기 초엽에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 [Petrus von Alexandreia, 311년 경 사망]가 마리아에게 이 칭호를 부여하였다. 동시에 출산하는 동안의 동정성이 또한 주장되었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고통이나 신체의 아무런 손상도 당하지 않고 출산했을 거라고 상상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아냐시오가 일찍이 이 방향으로 시사한 바 있었다.7 3세기 이래 이 노선이 세력을 널리 펴게 되었다. 이 일도 물론 투쟁 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예수 탄생의 비정상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예수가 온전한 인간이라는 점이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떼르툴리아노 [Tertulilian, 220년 경 사망] 와 오리게네스 [Origenes, 253년 경 사망], 그리고 예로니모 (Hieronymus, 347-419] 조차 ‘출생시의 동정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주저하였던 것이다. 이에 반하여 서방교회에서는 암브로시오 [Ambrosius, 397년경 사망] 와 아우구스티노 [Augustinus, 354-430]가, 동방교회에서는 요한 그리소스돔과 시리아의 에프램 [Ephram 373년경 사망] 등이 영원한 동정성을 관철시켰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출생 이후의 동정성’을 주장하는 것은 결혼을 평가절하하는 색채를 띤 것이라는 주장이 또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마니케이파 [페르샤에서 215년 경에 태어난 마니에 의해 창설된, 그리스도교, 불교, 조로아스터교의 복합적 종파로서 엄격한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다. – 역자 주]에 의해서 대변되었던 금욕주의적 이상을 따르고 있다. 떼르뚤리아노와 바실리오[Basillius, 330-379]는 예수의 형제와 자매들에 관하여 말하는 신약성서의 구절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지 말라는 강박적인 근거를 적어도 보지 못하고 있다. 헬비디오 Helvidius와의 투쟁에서 예로니모는 문제를 ‘영원한 동정성’ 에 유리하게 결정하는 데 성공하였다. 4세기 이래의 신앙고백들은 영원한 동정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8 그리고 7세기 이래 비로소 ‘출산 이전과 동안, 그리고 이후’의 세 가지 사이의 구별이 명백하게 되었다.9

 

4세기 초부터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 란 칭호를 받는다. 그런데 이 칭호는 마리아론적 관심에서부터가 아니고, 명백하게 그리스도론적 관심에서부터 부여된 것이다. 첫 5세기 동안에 가장 많이 논란되었던 신학적 문제는 주지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신학은 오랫동안 매우 고심하던 끝에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둘째 위격의 위격적 일치 位格的 一致 로서 합일되었다는 정식 定式을 결정적으로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식에 이들기 위해서 신학자들은 항상 새롭고 자질구레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질문 가운데 마리아로부터 탄생한 분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있었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일단 마리아가 예수의 인간적 본성을 그녀의 태중에 생산하였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런데 마리아가 참으로 어머니라면, 그녀와 아들 사이에는 인격적 관계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어떤 어머니든 어머니라면 전인 全人으로서의 어머니인 것이지, 육신만의 어머니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는 동시적이고 불가분적으로 하느님이며 인간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바로 그분의 어머니이므로 하느님의 모친으로 지칭되어야 하는 것이다. 5세기 전환기 무렵엔 ‘위격적 일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두 개의 위격이 순전히 관계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방향으로 이해하였다. 이때에 네스토리오 [Nestorius, 381-451: 콘스탄티노플시의 대주교로서 그리스도의 신인 神人 양성 兩性을 엄격히 구분하고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으로 부르기를 거절하여 에페소 공의회에서 단죄됨 – 역자주]의 측근자들이 이러한 입장을 내세웠으며 그 결과 사람들이 마리아를 단지 ‘그리스도의 모친’ 으로만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에페소 공의회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 의 영신적 지도하에 마리아가 하느님의 참된 어머니임을 확인하고 성대하게 신조 信條를 정의하였다. 10 이 사실은 마리아 신심에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였다. 이제 그리스도교 세계 어디서나 마리아를 주보로 하는 교회가 건립되게 되었다. 그 중 오늘날까지 아직 보전되어 있는 가장 의미 깊고 아름다운 교회는 아마 로마에 있는 마리아 교회인 ‘산타 마리아 마죠레’ (S. Maria Maggiore)일 것이다. 마리아 신심이 이때에 첫 융성기를 맞게 된 것이다.

 

초세기가 마리아교리에 기여한 또 하나의 중요한 실적을 지적해야겠다.  5세기까지 교부들은 마리아가 일련의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겼었다. 사람들은 노 예언자 시므온이 언급한 바 있는 칼[匕首]을 신앙의 회의 懷疑라고 이해하였다. 또한 사람들은 마리아가 가나의 혼인잔치 때에 경망스러운 질문을 제기했다 하여 못마땅히 생각했다. 키릴로는 이러한 견해에 동조한 바 있었다. 하지만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의 저서를 통해서 마리아의 전적인 성성 聖性과 무죄성 無罪性 에 대한 명제가 일차적으로 서방교회에서 관철되고, 오랜 발전을 거친 끝에 동방교회에서도 관철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영원한 동정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명제에 대해서도 이단이 있었다. 영원한 동정성에 대해서 마니케이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성성과 무죄성에 대해서는 뻴라지오파 사람들이 그러하였다. 이들 뻴라지오파 사람들은 인간이 은총을 받기 이전에도 이미 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마리아의 성성을 근거로 내세웠던 것이다. 정통적 사고는 자기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반대하여 그들의 모든 주장을 무분별하게 송두리째 배격하지 않았다. 이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올바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릇된 근거를 내 세웠다고 분명하게 제시한 것은, 이 정통적 사고의 명석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함께 하나의 성찰과정이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1854년 성모무염시태가 교의화되면서부터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4세기말경에 그리스도 모친의 임종에 관한 신학적 사유가 처음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장에는 그리 절박하지 않았다. 5세기에 들어와서는 새로 제정된 마리아 축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8월 15일이 예루살렘에서는 ‘하느님 모친의 날’ 이었는데 이는 벌써 5세기에 이루어졌다. 6세기에 이 축일을 ‘하느님 모친의 귀향’ 기념일로 바꿔 불렀다.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는 이 축일을 서방교회의 축일표로 포함시켰다. 이리하여 동방교회나 서방교회를 막론하고 마리아 축일이면 강론가들은 거의 일반적으로 마리아가 하늘에 올림을 받았노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로마는 8세기 이래 ‘승천 Assumptio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 말은 마리아의 육신이 하느님께 들어올려졌다는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교리는 1950년 비오 12세에 의하여 교의화될 때까지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었다. 9세기 초에 한 무명의 저자가 예로니모 성인의 이름으로, 마리아의 육신부활을 인정하는 것은 제2 정전 저자들의 망상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런데 이 저서가 예전 禮典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교리의 발전이 오랫동안 저지되었다.

교의사에 있어서 초세기는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때에 주요한 모든 마리아론적 인식 – 이 인식이 서로 다르게 해명된 처지였지만 – 도 이미 자리잡게 된 것이다.

 

 

2. 중세기

하느님의 제2위격의 육화라는 핵심 신비의 테두리 내에서 마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의미가 서서히 발견되었다는 점이 교부시대의 특징인 동시에 초세기의 전망은 구세사적인 방향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변화가 시작된다. 이제 사람들은 구원사업에서의 마리아의 역할에 점점 더 많은 주목을 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모친의 처지에서부터 그의 반려자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사람들은 마리아의 인격과 생애에 대하여 더 많이 알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마리아의 특별한 기능과 연결되어 있는 즉 마리아가 입은 은총의 탁월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자기 영혼의 구원을 열렬히 추구하던 중세인들은 마리아를 전구자 傳求者,  모친 그리고 조력자로 대하였다. 따라서 마리아 신심이 광범위하게 일깨워졌다. 마리아 신심은 중세기의 신앙의식 일반과 동일한 성격을 지녔다. 마리아 신심의 징표는 신앙의 진리를 강력히 개인화하고, 정감적으로 내면화하며 윤리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낌새가 지배적인 정황 하에서, 담담하기 이를 없는 신약성서적 마리아론이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리라는 것은 쉽사리 상상할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정신을 나타내는 한 가지 실례로 13세기 후반에 나타나면서도 대大 알베르토 (Alberts Magnus, 1200-1280)의 저서라고 명기되어 있는 작품 하나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알베르토의 저서라는 것 때문에 널리 보급되고 큰 영향을 미쳤다. 책 모양은 대백과사전 형으로 300 페이지가 넘는 큰 책이었으나 이것은 신약성서에서 한두 줄밖에 안 되는 예고복음을 확대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미지의 저자는 예수탄생 예고를 한 천사의 옷 빛깔이나 천사의 성 性과 같은 물음에 대하여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복되신 동정녀의 계시가 보다 품위 있는 성 소유자에 의해 일어났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즉 그 천사는 남성이라는 것이다. 이 저자는 마리아가 과학자 였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과학뿐 아니라 마리아는 물리학과 의학분야에도 전문가처럼 능통하였다는 것이다. 이 저자는 요한을 하느님 모친의 고해신부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마리아의 몸무게, 피부와 머리카락, 그리고 눈의 빛깔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마리아의 머리카락과 눈빛은 흑색이며, 피부색은 백적색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저자는 이처럼 마리아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확신했다.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일에 대해서 웃어 넘기고 말아야 할지 아니면 이러한 세부 ‘지식’에 직면해서 우리를 엄습하는 정감에 동의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착상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위의 저자는 머리를 짜서 철학적 이론과 신학적 사변을 그 근거로 동원해 낸다. 그래서 이 저자는 마리아의 피부색의 문제를 중세기 원소물리학에 의지하여 해결한다. 이러한 결과 마리아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추정해 볼 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며 (많은 교부들과는 대조적으로), 다음과 같은 고찰을 통해서도 당연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육신은 영혼을 향하여 정립되어 있다. 그런데 보다 고상한 영혼은 보다 고상한 육신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육신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에 좌우된다. 이에 따라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있는 곳엔 가장 아름다운 육신도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표출되어 있는 마리아를 둘러싼 분위기를 13세기 이후의 예술작품에서 분명히 보게 된다. 마리아 조상 彫像들은 한결같이 단아하고, 유행의 성장 盛裝을 한 아가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니면 골고타 언덕에서 기절하여 넘어지는 마리아와 같은 극적인 장면도 그려졌다. 강론가들은 마리아의 눈물, 한숨 그리고 고통에 대해서 긴 한숨을 섞어가며 묘사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지나친 행위로 마리아에 대해 보다 깊이 신학적으로 취급하려는 것을 저지하지는 못하였다. 12세기부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모친의 기능을 십자가 사건 발생에서 보기 시작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이 사건에서의 마리아의 협력작용을 인정해야 한다고 깨달은 것이다. 마리아가 골고타 언덕에서 참된 희생을 봉헌하였다는 것이다. ‘보라,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라는 요한 19, 26의 그리스도의 말씀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중세기저자들은 성금요일부터 부활 아침까지는 마리아 홀로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홀로 교회였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운데서 끄래보의 베르나르도 (Bernhard von Clairvaux, 1090-1153) 로부터 처음으로 구원사업 안에서의 마리아의 중재성 仲裁性의 생각이 계발되었다. 마리아는 교회의 여러 지체를 위해 하느님께 그치지 않고 전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은총을 전해주는 수도 水道와 같다는 것이다.

12,3세기의 스콜라신학은 마리아의 무원죄성 無原罪性의 주제를 다시 취급하였다. 저명한 신학자들,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von Aquin 1225-1274 같은 이는 무염시태를 부인하였다. 반대로 둔스 스코투스 Duns Skotus 1266-1308 는 무염시태를 열렬히 옹호하였다. 그러다가 15세기에 와서 사정은 일변하였다. 1439년에 바젤 공의회는 무염시태 명제를 신앙조항으로 선언하였다. 하지만 이 공의회는 당시 교황과 유대관계를 맺지 않아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조항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같은 15세기말에 가서 교황 식스또 4세 Sixtus IV 1471-1484 는 로마에서 무염시태에 상응한 축일을 정식으로 허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논쟁에서는 무염시태 반대자들의 입장이 더 우세하였다. 트렌트 공의회 1545-1563 는 교부들의 단합이 결여되어 있던 관계로 이 사건을 결정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위치에 서지 못하였다. 이 명제를 둘러 싼 쟁론들이 17세기에 이르러 더욱 날카롭게 진행되어, 1661년에 교황 알렉산더 7세 Alexander VII, 1655-1667는 이 명제를 유리하게 이끌도록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3. 마리아와 종교개혁

종교개혁 시대에는 마리아 신심이 많이 변질되어 있었다. 이 시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르네 로랑땡 Rene Laurentin은 ‘종교개혁의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마리아 신심은 토폐처지에 이르렀었다’고 말하며 그 예로 1496년 처음으로 등장한 베르날디노 부스띠 Bernardisno Busti의 성공적인 <마리아경, Mariale>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 <마리아경>에 우수한 상념이 전혀 내포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나타나는 우수한 상념들마저 너무도 잦은 궤도이탈과 무절제한 주장의 덤불 속에서 그만 질식되어 버렸다. 시대가 이렇게 조악 粗惡하게 편찬된 <마리아경>이 유명해지도록 한 것을 생각하면 마리아 신심에 대한 이 시대의 퇴락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 신심에 대한 정화운동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종교개혁자들도 마리아를 멀리해야 한다는 계기를 찾지 못하였다. 라인트아욷 쉼멜페닉 은 자신의 연구논문에서 ‘종교개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모친의 공경은 프로테스탄트의 지반 위에서도 역사적 사실이고, 이 면에서 전체 교회와의 연관성이 부드러워지기는 하였으나 해소되지는 않았다’ 는 결론에 다다른다. 루터 M. Luther 1483-1546 은 칼빈 J. V. Calvin 1509-1564 과는 반대로 마리아 공경을 아주 긍정적으로 고백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많은 동시대인들과 반대로 무염시태를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루터으 ‘마니피캇’ 주석은 진정한 마리아 신심의 뛰어난 증언이다.

그러나 루터도 물론 마리아의 이름으로 자행된 남용행위를 용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행위를 거슬러 처신했다. 그는 교회를 본질적인 것으로 되돌려 이끌고자 하였다. 이 문제 외에 다른 모든 것은 고려할 여지없이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취지에서 오직 성서로만, 은총으로만, 신앙으로만 강조하는 루터의 ‘…으로만’의 입장이 설명된다. 모든 것이 수렴되는 지점은 그리스도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그 시대의 마리아 공경이 종교개혁자들을 흥분시켰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아우수스부르그 신앙고백 [Confession Augustana, 1530년에 제정된 루터교의 가장 기초적 신앙고백서 – 역주]의 변호론에서 우리는 그 반향을 대하게 된다.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교회를 위해서 전구를 한다 할지라도 죽음을 물리쳐야 하고, 사탄의 어마어마한 힘과 대항하여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다. 마리아가 이를 행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마리아는 온갖 최고의 찬미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똑같이 간주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신앙과 겸손의 모범을 따를 것을 원하신다. 그런데 마리아에 대한 과장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서야 할 자리에 마리아가 대신 들어서게 된다.”

삼중적으로 ‘…으로만’ 내세우는 극단주의는 물론 종교개혁자들로 하여금 사실상 그리스도의 육화의 온전한 실재를 의문에 처하도록 이끌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상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것이 하느님 앞에서 더 이상 무가치하지 않고 구원과정에도 수용되었다. 이제 인간적인 것이 하느님의 수중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세계구원을 위해 함께 협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원과정 안에서의 인간적 가치에 대한 이상의 진술이 일반적을 타당하다면, 특별한 양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에 협력한 사람에겐 이 인간적 가치는 더 크게 적용될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교회일치의 대화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편에서의 몰지각한 태도로 말미암아 빠져든 진퇴유곡에서 성서에 의해 영감을 받은 그리스도교적 차원으로 헤어나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양편은 모두 원래의 마리아상에로 복귀될 것이다. 이 원래의 마리아상을 보전하는 것이 고금을 막론한 가톨릭의 취지이며 종교개혁 시대의 프로테스탄트의 취지 역시 이것이었다.

 

 

4. 근세

마리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거리감은 가톨릭 신자들과 쟁론을 벌이는 가운데 점점 더 반 반 마리아적 입장으로 경직되어 갔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측에서는 마리아 신심의 엄청난 확대를 불러일으켰다. 이 신심운동은 특히 종교개혁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던 몇몇 나라에서 더욱 강렬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오늘날도 가장 저명한 마리아론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진지한 자세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에서 배출되고 있다. 초기의 유명한 예수회 신학자들도 마리아 신심이 급속히 확장되도록 노력하였다.  살메론 과 수아레즈 는 스페인에서, 베드로 카니시오 는 독일에서, 로베르토 벨랄미노 는 이탈리아에서, 베루예 와 올리에 가 있는 소위 프랑스 학파는 프랑스에서 각기 마리아 신심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17세기말과 18세기 초에 우리는 쟌 오이드 (1680년경 사망), 루이 그리뇽드 몸포르뜨 (1716년경 사망)와 리고리오 알퐁소 (1787년경 사망)같은 유명한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리고이로의 알퐁소는 1750년 처음으로 그의 ‘마리아의 영광’을 발간했는데 이 저서는 가장 성공적인 마리아 저서 (100판 이상 인쇄)가 되었다.

신학영역에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특히 마리아의 무원죄성의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와 병행해서 열광주의적 운동이 멋대로 퍼져나갔다. 그 당시 ‘매괴 형제회의 유열 愉悅의 정원에서 나온 사랑의 점화 나무가지’라는 이름을 가진 책이 등장하였다. 그 당시 무염시태의 광신적 추종자들은 이 교리를 피로써 옹호하려는 내용의 ‘피의 서약’까지 하게 되었다. 이 무렵 스페인에서는 ‘마리아의 시종 형제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여신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마리아를 삼위일체에서 비롯된 넷째 위격이라고 지칭하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마리아를 둘러싼 신학적 사변이 조용히 가라앉게 되었다. 이 진정기는 대개 1831년경까지 지속되었다. 잇단 마리아의 발현보도는 세계적인 마리아 신심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켰다. 1830년 카타린 라부레 [Catherine Laboure]는 동정성모로부터 받았다는 기이한 메달을 세계에 건네주었다. 그리고 1846년에는 라 살레[La Salette]에서, 또 1858년에는 루르드에서 성모발현이 있었다. 1854년 비오 9세 [Pius IX 1846-1878]는 무염시태의 신앙조항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19세기의 주요한 주제인 성모의 중재성과 무염시태가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19세기는 소수의 예외를 제회하고는 마리아론을 신학적으로 천착할 만한 힘을 지니지 못하였다. 마리아 공경이 계몽주의 대두 이래 대단한 퇴조를 보였던 독일에서, ‘튀빙겐 신학 계간지’는 프랑스의 몇몇 저서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아, 철학적이거나 성서주석학적인 지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교의사적이며, 교의적 지식도 없는 한 프랑스인이 – 다른 모든 것에는 그렇게 품위있고 풍부한 자질을 가진 프랑스 민족이면서 – 되는 대로 멋대로 꾸며댄 이야기가 독일에 유포되는 것을 어떻게 기뻐해야 하며 어떻게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신학적으로 이처럼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섬광처럼 빛나는 작품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카를로 파싸글리아 [Carlo Passaglia, 1812-1887]와 존 헨리 뉴만 [John Henry Newman 1801-1890], 그리고 마티아스 요셉 쉐벤 [Matthias Joseph Schcebens, 1835-1888] 의 저서라 할 수 있겠다. 이 저자들은 교부신학적 기반에 입각하여 하느님 모친의 신비를 사변적으로 새로 두루 고찰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금세기에 들어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비로소 마리아 운동이라고 부를 만한 마리아론적 활동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주로 구원사업에서의 마리아 중재성, 마리아의 영적 모성, 그리고 공동 구속자성 등 세 가지 주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베르기의 추기경 메르씨에 Mercier는 1913년 하느님 모친의 중재성을 성대하게 믿을 교의로 선포하라는 요청을 처음으로 제출하였다. 그 이후 마리아론의 작업영역은 확대되었다. 이러한 착상의 근원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가져오는 중재는,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과 성부의 활동을 요청할 뿐 아니라 중재자와 그의 중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류의 활동도 아울러 요청한다는 데 있다. 마리아는 대표적으로 하느님께 ‘예’ 를 발함으로써 이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로써 본질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통합적으로 구속자를 위하여 함께 일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리아는 중재자이며, 공동 구속자 라고 지칭될 수 있다. 그리고 인류를 위한 마리아의 대표기능을 좀더 깊이 생각하면 마리아를 일컬어 인류의 영적 모친이라고 지칭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정당하며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쉽사리 오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 사실은 여러 마리아 신학자들이 이러한 오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데에서 이미 나타났다.

‘구속자’와 ‘중보자’ 라는 명칭은 완전한 의미로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된다. 그러므로 이 의미를 마리아에게 연관시키면, 이 의미를 단지 추출 抽出 된 의미로써만 적용한다고 보증을 한다 하더라도, 마리아를 완전히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내세우게 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 신비체인 교회에서 으뜸이신 그리스도 다음가는 으뜸이라고 과장해서 말하거나, 또는 마리아를 위한 특정한 으뜸가는 은총을 서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자세는 진지하게 성서의 뒷받침을 받을 수 없다. 물론 마리아가 인류를 대표한다는 기본사상을 마리아를 통해서 올바로 숙고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되었으며, 구원의 성사로써 세계에 파견된 인류의 원형이며 예형이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신약성서의 기초 위에 서게 된다.

 

비오 12세의 재위기간은 마리아론을 위해서는 특별하고도 풍요한 시기였다. 이 파르첼리 교황 (Parcelli papst)은 소년기부터 열렬한 마리아 공경자였으며 마리아 교리와 마리아 공경을 강력하게 촉진시키기 위해 가톨릭 계의 최고 스승으로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십분 발휘하였다.

 그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세계를 원죄에 물들지 않은 마리아의 성심께 봉헌하였다. 전쟁이 끝난 다음 그는 마리아 여왕 축일을 정하였다. 1954년에는 마리아 성년이 선포되었으며 이 교황의 주재 하에 마리아 아카데미 기관과 학부가 생겼다. 그렇게 되자 마리아 연구를 위한 연합기구가 결성되고, 마리아에 관한 저서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의 절정은 1950년 11월 1일에 선포된 성모승천의 교의화였다. 그러나 이처럼 여러 마리아론 신학자들이 일으킨 과장행위도 이 교황 재위 말기에 이르러서는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50년대가 끝날 무렵에는 마리아에 대해 이미 삼가 하는 자세를 느낄 정도였다.

요한 23세 (Johannes XXIII, 1958-1963)는 이 노선에 따라서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 동안 마리아론에서부터 요셉론이 계발된 바 있었다. 이 요셉론은 마리아에게 부여된 칭호를 그녀의 남편에게도 부여하려고 시도한 데서 비롯했다. 사람들은 ‘원죄에 물들지 않은 요셉 성심’을 기꺼이 공경하려 하였으며, 가능한 한 이에 걸 맞는 교의를 선포하고자 하였다. 교황은 요셉의 이름을 로마 전례의 마사 감사송에 넣도록 규정함으로써 이 계열의 성화에서 벗어났다.

그는 마리아 공경의 번잡함을 힘 자라는 한 조절하려고 노력했다. 파티마 성모상의 이탈리아 일주를 통해 이탈리아를 마리아께 봉헌하려고 운동을 벌이던 ‘기적의 순례단’을 맞이하여, 교황은 신자들이 생활하신 그리스도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명백하게 강조하면서도 계획된 봉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마리아에 대한 열심은 교황의 이 망설이는 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에 관한 보고서에 교황의 훈사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1917년 파티마에서의 성모발현시 세 명의 어린이들에게 밝혀져 1960년에 공개되리라고 기대되었던 ‘파티마의 비밀’이 공개되지 않자 해당 측근자들의 실망은 더욱 커졌다.

그러자 차츰 지금까지의 마리아 공경의 위기가 가라앉는 듯 하였다. 1959년 요한 23세가 공의회 소집을 선포하고 1962년에 개막되었을 때, 이 신학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은 이 거대한 교회의 교부들에게로 향하였다. 그리고 사실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이 결정의 중요한 의미 때문에 그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제4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 교리

 

지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의 마리아론은, 1964년 11월 24일자로 반포된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Lumen Gentium 제8장에 대체로 요약되어 있다. 우리가 이 문헌의 본문을 대하기 전에 먼저 이 문헌을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생성경위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을 해야겠다.

 

 

1. 생성경위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세계의 주교들과 가톨릭 학부들로 하여금, 공의회에서 처리되었으면 하는 주제를 제출하도록 요청하였다. 그 결과 대략 2천 여 건의 청원내용이 접수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전체의 30 퍼센트를 차지하는 6백 여건의 청원내용이 공의회가 마리아론에 관해 좀 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 줄 것을 요망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4백여 청원자들은 공의회가 마리아에 관한 교리 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는 교의적 결정을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또 3백여 청원자들은 마리아의 구속 중재성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학위원회는 이 제안의 방향에 따라 ‘하느님의 모친이며 인간의 모친,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관해서’라는 제목의 독자적인 공의회 예비초안을 작성하였으며, 1962년 11월 23일에 공의회 참가자들에게 배부하였다. 그러나 많은 청원자들이 공의회에서 이 초안을 다루어주기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기에는 토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듬해에 있었던 2차 회기에서는 이 마리아 안건을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 첨부시키자는, 말하자면 독자적인 마리아론의 문헌을 포기하자는 일단의 주교들의 청원을 둘러싼 날카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마리아의 위치에 관한 것으로서 즉 마리아가 예수 편에 더 치중해 있는 것으로 보아 특정한 의미로서 마리아의 위치를 교회 밖이나 혹은 교회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특별히 탁월하기는 하지만 마리아를 교회에 속한 한 지체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마침내 이 문헌의 소속에 관한 문제는 표결에 붙이기로 하였다. 그 결과 1963년 10월 29일,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들 중 1천 1백 14명의 교부들은 이 문헌이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 첨가되는 것을 동의하였고 1천 74명의 교부들은 이에 반대하였으며 다섯 표는 무효였다. 이 결과는, 다른 문제에서는 매우 분명한 노선을 보여주던 교부들의 계보가 여기선 얼마나 뒤엉켜 있는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많은 교부들에게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리아에 관해서는 결코 충분히 말할 수 없다’라는 관념이 골수에까지 파고들 만큼 강하게 물려받은 신심의 본질적인 요소가 관건이었다.

표결이 끝난 뒤에 네 사람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가 마리아론의 본문을 새로 작성하는 작업을 맡게 된 것이었다. 휴회 중에는 각기 다른 다섯 개의 문안이 또 작성되었고, 마지막 두 개 문안은 1964년 여름에 교회에 관한 다른 초안과 함께 공의회 교부들에게 배부되었다. 새로운 명칭은 이러하였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동정 마리아’ De Beata Maria Virgine Deipara in mysterio christi et Ecclsiae.

1964년 9월 16일에 시작된 3차 회기의 토의 가운데 전면에 대두되었던 문제는 마리아에게 ‘교회의 모친’ 이란 칭호를 부여해야 하는지의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편에서는 중재자 명칭을 공의회 본문에 수용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마침내 두 가지 문제에서 제공된 초안에 따라서 ‘중재자’ 명칭에는 찬성으로, ‘교회의 모친’ 칭호는 반대로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모든 분파가 만족해 할 수 있었다. 본문 자체에는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중보성이 충분하게 강조되었는가 하면, 교회에 앞선 하느님의 모친의 우위가 강조되어 교회의 모친 칭호의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바오로 6세가 제3회기의 종결사에서 하느님의 모친에게 ‘교회의 모친’이란 칭호를 인정하였을 때 교부들의 놀라움이 매우 컸었음에 틀림없다. 이로써 그는 마리아의 열성파 편에 서서 공의회 교부들의 다수를 반대하는 결단을 내린 것인가? 아니면 이로써 마리아가 교회 밖에 위치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인가? 교황의 언명이 교회일치 노력에 일격을 가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교황의 강연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분석하면 이러한 우려는 순전한 기우였음을 보여준다. 교황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먼저 많은 교부들이 극히 담담하고 ‘극소주의적 minimalistische라고 간주했던 공의회 본문이 가한 상처를 씻어주려는 것이었다. 그는 공의회 진술내용을 고수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공의회 진술에 그 선포내용의 기반이 놓여 있다. 그밖에 바오로 6세는 ‘교회의 모친’ 칭호를 선포함으로써 그리스도교적 신심을 강화하고자 한다는 것을 명백히 강조하였다. 이것은 지중해 지역에서의 마리아 공경의 한 표현이었다. 지중해 지역의 마리아 공경은 새로운 칭호로써 하느님의 모친을 공경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에 특별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역기서 교황의 연사 演辭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가장 근거 있는 생각이 대두하게 되었을 것이다.

 

 

2. 공의회의 진술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은 그 구성면에서 일반적인 것에서부터 특수한 것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교회의 신비가 관조되고 (제1장), 그 다음 전체를 볼 수 있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향한다 (제2장). 제3장부터는 교회의 개별적인 지체와 교계제도에 관해서, 다음은 평신도에 관해서 (제4장), 그리고 수도자에 관해서 거론된다 (제6장). 이에 앞서 수도자들의 성화성소 聖化聖召는 완덕에로 불림 받은 교회의 일반적 성소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진술된다 (제5장).  제7장은 독자들의 시선을 다시 교회 전체로 향하게 하여 교회 전체의 종말론적 성격과 ‘천상교회’ 와의 유대관계에 대하여 가르친다 (제7장). 제8장인 마리아에 관한 장은 이 헌장 전체의 종결부 요약이다. 7장의 종말론적 전망이 여기에서는 인격화된다. 곧 마리아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독특한 지체이시며 신앙과 사랑의 명백한 전형과 모범’으로 소개 된다. 교회가 무엇이고 교회의 지체로서 어떻게 살고 작용해야 하는가를 마리아한테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마리아에 관한 장은 5절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와 마리아의 관계를 요약기술한 서론 부분 (52-54항)에 이어 구세사 안에서의 마리아의 관제가 해설된다(55-59항). 제3절에서는 교회에 미치는 마리아의 작용적 作用的 effektiver이고 모범적인 영향을 주로 논한다 (60-65항). 이러한 내용에 이어서 공의회의 교부들은 실천적인 문제를 다룬다. 즉 마리아 신심의 본질과 기반 그리고 정신에 관해서 서술한다(66-67항). 이 문헌의 일반적 구성에 알맞게 마지막 장 역시 종말론적 전망으로 끝을 맺는다. ‘나그네길에 있는 하느님 백성의 확실한 희망이며 위로이신 마리아’, 이것이 마지막 절 (68-69항)의 제목이다.

 

서론에서 주교들은 마리아에 대해 말하는 신앙고백의 조항, 즉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였다’는 신앙조항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신앙고백은 말하자면 본문에서 즉시 인용되는 갈라디아서(4,4)의 명제를 주석하는 셈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뒤따르는 모든 내용을 위한 올바른 전망이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격이 된다. 교회가 그렇듯 마리아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사유로써 교회론과 마리아론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마리아에 대해 진술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에 대한 증언이 된다. 그리스도에 대한 마리아의 특별 위치는 교회 안에서의 그녀의 위치를 규정하고 있다. 마리아의 모성이 그리스도와의 유일무이한 관계의 근거가 된다면 이 모친은 교회 안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결코 마리아와 교회를 분리시킬 수 없는 요소이다. 마리아는 우리 모두와 같이 구속된 분이고, 바로 이 신자들과 뽑힌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 뿌리박고 있음이 천명되고 있다. 여기서부터 공의회의 과업이 결과적으로 규정된다. 이 과업이 한번 더 짧게 설명된다. 공의회가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전부 설명하거나 신학자들의 노력으로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다’ 라는 선언은 의미심장하다.

‘구원계획 안에서의 성모의 역할’에 관한 부분은 당초부터 성서적으로 정향 定向 되어 있다. 8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성서 인용은 이 부분에서 발견된다. 공의회의 교부들은 메시아의 모친과 관계되는 구약성서 본문을 매우 신중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초기의 문헌들은 교회 안에서 낭독되고 보다 상세하고 완전한 계시의 빛으로 이해되는 바와 같이’ 교부들도 같은 의미로 이를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약성서의 입장에서 마리아를 구약의 시온의 딸로 이해한다. 그리고 기다리는 자세로서 야훼로부터 구원을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들의 화신으로 보게 된다. 신약성서는 특히 마리아의 성성을 보여준다. 공의회는 이러한 관념의 근거를 교부저서의 인용으로 가득 채운다. 특히 공의회는 하와-마리아 평행선을 적용하였다.  구세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모친의 능동적이고 구세사적인 역할을 강조하고자 한다. 마리아는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 인류구원에 협력하셨다.’

여기서 사용된 예형론적 豫型論的 언어는 단지 역사적 유형의 인격적 진술만을 볼 것이 아니라, 여성 일반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입장표명을 보도록 암시하고 있다. 모든 해방의 기반이 되는 여성의 온전한 가치와 활동능력은 이러한 관점에서 인정되고 있다. 교회의 신앙생활 안에서 이러한 관상을 통하여 나온 귀결들이 점차적으로 의식화되기를 희망한다.

뒤따르는 두 개의 조항은 (57-58항) 성서증언에 의하면 모친과 아들의 삶이 함께 등장하는 처지를 개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구속사업에서 두 사람이 유대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진술되어야 한다. 이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신상에서 나오는 참여로 정의된다. 교회 전체가 이 신앙 안에서 자신의 모범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마리아의 신앙은 교회 전체를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마리아도 구속사건에 동일하게 참여한다. 마리아는 거룩한 성자들의 공동체에 통합되어 있다. 마리아가 배후에 나타나는 주석상의 어려움을 자아내는 성서 구절들을 공의회가 인지 認知 하는 정황은 유일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일이 교회의 공식적 반포문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끝으로 이 점은 마리아가 인간구원의 성사 즉 교회의 선포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포함되어 있는가를 제시하면서 다음 절로 넘어간다.

‘복되신 동정녀와 교회’가 논리에 맞게 제3절의 주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마리아의 이중역할이 기술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으로서 교회와 특정하게 대치하면서 교회의 예형으로서 교회 안에 위치하기도 한다. 우선 ‘마리아가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모친’ 이라고 언급된다. 교부들은 마리아의 중보성의 문제에 관해 표결하기에 앞서 행한 토의에서 쟁론을 벌인 바 있다. 종결부분은 중간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 본문은 그리스도의 중보성이 유일무이하고 고유하다는 것을 명료하게 강조한다. 동시에 이 본문은 수용된 은총은 타인을 위한 구원의 원천이 될 수 있음도 아울러 시사하고 있다. 마리아의 중보자적 작용은 이중적 특징을 갖는다. 마리아가 당신 아들과 맺은 객관적이며 실존적인 유대에 근거를 두고 있는, 그리스도께로의 반려성 伴侶性이 그 특징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의하여 포착된 모든 사람들을 위한 마리아의 배려가 또 다른 하나의 특징이다.

이 제3절의 두 번째 상념은 63항과 함께 시작한다. 마리아는 교회의 원형이다. 이 사실이 교부신학을 시사하는 가운데 설명되고 있다. 이 사실의 근거는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이라는 이중신비이다. 이 사실의 근거는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이라는 이중신비이다. 이 점에서 마리아는 교회를 앞서 간다. 교회가 하느님 말씀이 선포와 성세성사로써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나는 자녀를 낳아줌으로써 그들에게 불사의 새 생명을 줄’ 떼에는 자신도 생명을 선사하는 어머니가 된가 그러나 이 모성은 교회가 신앙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와 유대를 맺으며 따라서 전적으로 하느님을 위해 존재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교회 전체를 위해서, 그리고 개별적인 교회 지체를 위해서도 물론 같은 결론이 나온다. 교호가 지체 안에서 그리고 지체에서 마리아가 취했던 태도를 구현함으로써 교회는 그리스도와의 유대를 실현하고, 세계 안에서의 자기 과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만사에서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야 하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복되신 동정녀의 공경’에 관한 내용이 위의 고찰에 이어지는 것은 내적 논리의 귀결이다. 여기서 공의회는 대단히 명백하면서도 담담하게 말한다. 구원계획 안에서의 하느님 모친의 위치는 존경과 공경을 요청한다. 그러나 마리아의 모든 것이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힘입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 공경은 어느 것이나 상대적이다. 마리아 공경은 즉시 자신을 거쳐 성자와 성부를 지시한다. 공의회는 ‘마음의 협소함’에로 이끄는, 여하한 형태의 마리아 공경을 거부하는 극단행위와 ‘그릇된 과장’의 또 다른 극단행위를 아울러 경고한다. 공의회의 교회일치적인 정신이나 태도가 바로 이 미묘한 영역에서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신학자와 강론가들은 ‘말이나 행동으로 갈라진 형제나 다른 누구든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를 품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회피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 헌장은 ‘나그네길에 있는 하느님 백성의 희망이며 위로이신 마리아’를 전망하면서 8장을 끝맺는다. 교회일치의 영역과 세계정치 영역에서의 평화와 일치를 동경하는 교회의 염원이 한 번 더 나타난다.

 

 

3. 마리아론을 위한 의미

하느님의 모친에 관한 성서적 진술을 고찰한 결과 우리는 마리아론의 신학적 발전이 얼마나 충실하게 자신의 기초에 머물러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우리가 종합 검토한 결과는 마리아론의 역사가 이중적으로 흘러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마리아론적 성찰의 결정적 단계는 바로 신약성서의 토양 위에서 성취되어 왔다고 단정할 수 있었다. 다른 편으로는 이 발전이 모든 시기에 걸쳐 야생적 행동과 과장과 감상적 태도로 위협당하고 있었음을 확인해야 하였다. 마리아론의 교의사 도 문제가 없지 않다. 교회 전체가 항상 개혁을 필요로 한다고 고백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여기 마리아론에서는 다른 어느 부분에서보다 더 분명하게 제시된다. 마리아론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마리아론은 비판적으로밖에는 달리 처리될 수가 없다. 진실로 비판적인 신학이 가장 바람직하고 교회적이며 그리스도교적 신학이라는 점이 다른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니 보다 더 자명하게 마리아론에서 드러날 것이다. 신학의 진정한 사명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복음을 보다 분명하게 선포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관철하며 보다 명료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작업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공의회는 마리아신학이라는 영역에 있어 유익한 전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공의회는 과거의 이상적인 과정 행위에서 벗어나 보다 성서적이고 교부학적으로 주제를 방향 지어 놓았다. 공의회는 신앙의 원천으로 되돌아가 것이다. 공의회가 목표로 한 것은 마리아의 찬미 자체가 아니라 마리아의 구세사적 기능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 구세사적 기능을 수행한 것은 물론 마리아의 영예요 영광이다. 그러므로 장황한 찬미의 노래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따라서 항상 새로운 칭호를 부자연스럽게 찾아 다닐 필요가 없으며 도 새로운 특전을 생각해내기 위하여 애쓸 필요가 없다.  도한 마리아상을 그리스도 상에 따라서 점점 더 수정하는 것도 쓸모 없는 일이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의 행동에 흘러 넘칠 만큼 나타난다. 누구나 이 점을 깊이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구나 마리아 자신이 ‘마리피캇’에서 인식한 바 있는 하느님의 위업을 가능한 한 극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마리아론은 교회 전체를 위해서 생산적이며 긍정적이 된다. 마리아는 신앙고백에 드러나듯이 우리 인간을 위하고, 우리 구원 때문에 행하신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사업에 개입되어 있다. 이 구원사업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공의회는 다름과 같이 정당하게 말한다. “과연 마리아는 당신 생애를 통하여, 교회의 사도적 소명을 받아 사람들을 다시 태어나도록 하는 일에 협력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녀야 할 모성애의 모범이 되셨다.” 마리아와 성인들의 공동체 – 성서적 의미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된 사람들의 무리인  – 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마리아의 운명은 이 공동체의 운명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하느님이 마리아에게 행한 바가 우리 모두에게서 완성될 것이다. 이렇게 사리에 맞고 성서에 입각한 기본진술을 함으로써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은 긴 안목으로 볼 때 교회 일치 운동에 한 가지 기여를 한 셈이다.

공의회 문헌은 이 문제에 관한 궁극적인 입장 표명이 아님을 스스로 분명히 강조한다. 이 문헌이 생겨난 역사를 미루어 볼 때 타협으로 이루어진 정식 정식 이라는 점과 명료하지 않은 부분이 여기저기 발견되는 이유가 설명된다. 이러한 것은 주의 모친에 대한 가르침이 보다 완성되어 가도록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에 입각하여 이 가르침을 개방시킨 것이기도 하다.

 

 

 

제5장  마리아론적 인식기준

 

앞에서 우리는 성서로부터 시작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이르는 마리아에 대한 교리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주어진 사항에 대해 좀더 신학적인 깊이에까지 들어가 보고자 한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주어진 자료 및 사랑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를 인식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인식기준에 대해 묻고자 한다.

 

마리아에 관한 교리는 신앙교리의 일부이다. 이러한 신앙교리인 마리아론은 신학학내에서도 교의신학 부분에 속한다. 그러므로 마리아론에 해당하는 척도와 기준은 교의신학 자체에 해당하는 척도와 기준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이 척도와 기준은 무엇보다도 성서, 교회 교도직, 신학자들이 해석 (이기서 교부들은 특별한 권위를 향유한다), 신자들의 신앙감각 그리고 신학적 이성 등이다. 여기서는 마리아론의 기준을 그저 열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지칭된 ‘원천’의 가치성과 등급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교의사를 두루 살펴본 결과 마리아에 관한 진술이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라’ (루카 1,48)는 마니피캇의 예언 이래 그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본연의 의미에서의 ‘마리아론’에 대해, 즉 마리아에 관한 교의신학의 특수 부문에 대해서 거론할 수 있기까지는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야 했었다. 이렇게 지연된 이유는 출발했던 정황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 논의할 여지없이 확실한 기반과 규범은 성서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에 관해서나 하느님의 세 위격에 관해서는 성서에 상당히 많고 풍부하게 진술되어 있음에 비해 마리아론은 비교적 빈약한 기초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성서적으로 명백하게 증언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성과 탄생 이전의 동정성에 관한 것뿐이다. 여기서조차 이 진술들이 어떤 의미와 비중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문제 자체는 결정되지 않은 채 머문다.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의의 다른 모든 교리 진술들은, 근본적으로 이 두 자료에 포함되어 있는 것의 전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전개작업은 매우 일찍부터 착수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신학자들이 이용하는 수단은 다른 모든 기준에 앞서  소위 ‘신학적 이성’이었으며 후기 단계에 와서는 ‘신자들의 신앙감각’에서 취해진 논증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 두 가지가 탁월한 인식기준으로 된 것이다.

 

 

1. 신학적 이성

제1차 바티칸 공의회 (1869-1870)는 모든 비이성적 조류를 거슬러 신앙과 신학을 위한 이성의 의미를 옹호한 바 있다.

“신앙의 빛을 받은 이성이 열성적이고 경건하며, 순수하게 탐구할 때, 이성은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어느 정도 신비스런 일을 통찰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서 이성은 이때에 자연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유비 類比 analogy 를 통하여 나오는 통찰에 이르거나, 신비스런 일 상호간에 발생하는 유익한 통찰과 인간의 최후목적과 관련되어 나오는 유익한 통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교회 교도직의 이 명제는 모든 마리아론의 표어로 사용될 수 있겠다. 신학적 사유로서 마리아론이 시도하는 바가 바로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마리아와 관련된 신비스런 일을 통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론에서 성서에 주어져 있는 신앙의 신비의 깊은 뜻이 드러나며 마리아론에서 신앙의 신비사건의 신학적 함축성이 규명된다는 말이다. 특히 여기서 마리아의 신비스런 사건이 신앙의 다른 진리와 어따헌 유대관계를 맺으며 신앙의 다른 진리에서 마리아론을 위한 어떤 해명이 가능한가에 관해서 성찰하게 된다. 이러한 성찰을 통하여 신앙과 신학을 위한 생산적인 작업이 진전된다. 이 작업은 두 가지 면에서 성취된다.

일차적인 작업은 신학 – 역사적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예를 들면 ‘마리아는 나자렛 예수의 모친이다’ 라는 명제를 내 세울 수 있다. 여기서는 역사적으로 발생한 바 있는 한 가지 인과관계가 주장된다. 마리아라는 여인은 예수라고 하는 한 인간을 위한 원인이었다. 즉 그 여인은 원인 중의 한 원인이었다. 그 외에 또 다른 하나의 원인이 있었는가에 대해선 위의 명제에서 언급되지 안고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의 탄생에 있어 결코 한 여인만이 전적인 원인일 수는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원인을 용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단정한 바 있는 인과관계로부터 흥미있는 여러 사항이 역사적 평면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이 관계에서 예수는 자기 모친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모친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었으며 모친은 아들의 운명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었다. 더 나아가 자기 아들의 처형 증인으로서 엄청난 고통을 맛보았으리라는 추측이 결과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모두 그들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기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나자렛 예수는 임의로운 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그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사정은 달라진다. 이 순간 인과관계가 상대화되면서 심화된다. 예수가 세계의 구원자라면, 어머니와 아들의 긴밀한 관계로부터 마리아의 모성은 일반적인 척도를 훨씬 능가하는 정신적 – 인격적 차원을 가진다는 사실이 야기된다. 나자렛 예수의 어머니는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 구세주의 모친이다. 모성이란, 생명을 선사함을 뜻하는 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마리아는 그의 모성을 통해서 특정 양식으로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

이 말은 그녀의 아들이 ‘구원을 가져온다’고 말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명제는 정당하다는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명제를 내세우면서 우리는 이미 ‘신-존재론적 차원’이라고 볼 수 있는 차원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차원에서는 단순한 명제를 더 이상 내세울 수가 없고 비교 형식으로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명제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정식화되어야 할 것이다. 마리아가 역사적 평면에서 나자렛 예수의 모친이 것과 같이, 그녀는 또한 이 세상에 오직 한 분뿐이고 구세주인 자기 아들의 위치를 힘입어 모든 사람과도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이 관계를 모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은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모친으로써 인간의 모친이기 때문이다.

‘비교하다’ 를 나타내는 희랍어 단어는 symballein이다. 우리는 이 차원에서 하나의 상징적 언어를 말한다고 해도 좋다. 마리아가 모든 인간의 생물학적 모친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비유적으로 어머니라 해도 좋을 만한 관계를 모든 인간과 맺고 있다. 여기서 임의적으로 비교를 운위 云謂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매우 높은 것을, 한 거인이나 집의 크기와 비교하고는 ‘거인처럼 큰’ 아니면 ‘집처럼 높은’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해서 관련을 맺든 그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여기서 비교는 존재론적 성질을 기술하고 있다. 마리아가 참으로 하느님의 모친이기 때문에, 그녀는 구원사건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모성은 항상 인격적인 인과율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인간을 위한 구원 인과율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마리아는 실제적인 의미에서 만인의 모친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한 가지 위험에 대하여는 물론 유념하여야 하겠다. 우리가 든 실례의 진술은 논리적 추론의 도정을 거쳐 성립된 것이다. 이 진술은  세 개의 명제들로 이루어지는 결론인 것이다.

제 1 명제는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는 주장이다.

“마리아는 모든 인간의 구원자의 모친이다.”

제 2 명제는 인간적 모성의 본질에 관한 사유이다

“모성이란, 한 아기가 그 어머니의 아기인 한 그의 모든 존재 면모의 원인이 됨을 의미한다.”

우리가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이지 단순히 강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신의 태내를 제공한 것만이 아니다’ 고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을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정당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특정양식으로 모든 인간의 모친이다.”

 

이러한 결론은 논리학의 정확한 규범에 따라 나올 때에 비로소 정당한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이치에 맞는 학문이다. 명석한 사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열광이 대신 들어서면, 결과적으로 추론해 나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제1명제가 아주 동떨어진 새로운 결론으로 전개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마리아 신심이 모든 시기에 걸쳐서 신학적으로 이치에 맞는 사고를 따르기보다 자기 자신의 느낌 [感情]에 빠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 신심은 주주 이러한 유혹에 빠져들곤 하였다. 하느님의 모친에 관하여 말하는 저서에서 ‘그래야 한다’처럼 자주 발견되는 말은 없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이면, 하느님이 그녀를 위해 이것저것을 ‘해야만 하였고’, 그러면 마리아는 갖가지 장점을 ‘소유해야 하였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저서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명제에 의지하는 제2명제들의 지탱능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유의하지 않고 있다. 이 제2명제들은 과중한 부담 때문에 결국 붕괴되고 만다. 따라서 마리아론적 진술은 거짓이 된다. 한 가지 실례를 위 僞 알베르토 Pseudo Albert 의 ‘마리아경’에서 볼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이다.

하느님의 모친은 온갖 완전함을 소유한다.

완전한 앎 [知識]은 완전에 속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모든 학문을 전부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도식을 거쳐서 겸손하고 소박한 이스라엘의 한 처녀가 초교수 超敎授 가 되고 전격적 천재가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리는 신심은 스스로를 수상쩍게 만든다. 신학적 결론이 물론 정당한 인식기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신학적 결론이 비판적이고 면밀하게 적용되지 않을 때에는 위험천만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2. 신자들의 신앙감각

신자들의 신앙감각 역시 마리아론적 신학의 한 척도로서 공의회으이 한 선언문을 통하여 인정을 받았다. 이 문제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단정하고 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직에도 참여한다. 특히 신앙과 사랑의 생활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산 증거를 널리 전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입술의 열매를 찬미의 제물 삼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그 예언직에 참여한다(히브 13,15).  성령의 도유를 받은 신자들의 총체는 (1요한 2, 20. 27) 믿음에 있어서 오류 를 범할 수 없으니,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에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심에서 이 특성이 드러난다.”

오랜 동안 하나의 신앙확신을 하느님의 백성 전체 안에서 생동적이고 공적인 고백에 속하게 하는 상황이 있다. 위의 공의회 진술에 의하면 이 상황은 신앙고백의 정당성과 진리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이것이 실현될 수 잇는 근거는 교회 전체에 작용하는 성령의 약속이다. 교회는 교도직과 신학자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로 구성된다. 이 신자들은 모두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성령에 참여한다. 이 성령이 신자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 머물도록 보증하기 때문에 신자들의 총체는 신앙과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오류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확신은 매우 빠른 시기에 이미 교회 안에 굳어져 있었다. 위에 인용한 공의회 문헌의 마지막 구절은 성 아우구스티노로부터 직접 유래한다. 그러나 이 확신이 교회 안에 항상 그러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마리아에 관한 교리가 발전하는 도중에 교회는 공적으로 두 번에 걸쳐 이 기준을 취하였다. 최근의 두 가지 마리아 교리가 교의로 확정되던 1849년과 1946년에 교황들은 주교들에게, 교구 신자들이 논의의 대상이 되는 교리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자 사전에 문의한 바 있다. 확실히 교황들은 난처한 처지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신학적 인식원천은 별로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무염시태나 몽소승천과 관련된 일련의 비중있는 반대 의견이 신구약 성서학자들에게서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이 교리의 교의화 과정은 정당하였다. 교회 안에서 한 가지 신앙대상에 대하여 불변하는 견해가 주창되고 있다면, 이 사실은 그 신앙대상이 하느님의 계시내용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려도 좋다. 마리아 공경과 마리아론적 사유는 이렇게 해서 나름대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신앙인들의 ‘신앙감각’이라는 이 신학기준을 신중하게 적용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신앙인들의 신앙감각이 진정한 확신인지, 아니면 특정한 시대의 처지에 근거를 두고 있는 단순한 시대관의 표현애 지나지 않는지를 주도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성이 과소평가되었던 중세에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한 교리가 매우 장려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성을 불결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순결한 하느님의 모친이 성관계를 가졌어야 하리라는 것은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확신이 일반적으로 유신을 평가절하하는 데서 생겨난 사실로 볼 때, 이 확신은 시대의 특수 상황에 근거를 둔 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시대의 교회 전체가 이러한 견해를 지닌다고 해서 신학적으로 믿어야 하는 당위적 확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논란이 되는 교리가 이 기반에만 전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의거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교리가 구원의 교리로 머물고자 할 때, 이 기반 위에는 더 존속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확신을 고수하고자 한다면 이 확신의 근거를 달리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신앙감각에 의해 이르는 기준은 사려 깊고 주의 깊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그밖에 이 기준은 다른 기준에 의해 검토되어야 하고 전체 교리구조와 어떠한 조화를 이루는가에 대해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제6장 마리아론의 기본원리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의신학의 가장 중요한 정식은 다음과 같다.

 

1.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로 머물렀다.

2.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3.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

4. 마리아는 죄 없는 삶을 영위하였다.

5. 마리아는 사망 후 ‘승천하였다.’

 

신학자들은 특수한 원천기반과 이에 상응하는 인식기준에 입각하여 계발된 모든 마리아 교리에서, 배아 胚芽에 담겨 있는 것 같은 기본원리를 발견해내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원리가 있다면 이로부터 마리아론 전체의 단일성과 응집력은 가시적이 될 것이며, 마리아 신심은 번잡스러움과 과잉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되고 통제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에 관한 명제는 어느 것이든 그 기본원리에서부터 출발할 때 비로소 정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의 정당성 여부는 이 기본원리에 입각하여 실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명제는 하나의 일반적인 교의적 기능을 지니며, 신앙교리 전체구조의 범위 내에서 마리아론 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떠한가를 제시할 것이다. 또한 이 기본원리는 순전히 조직적인 근거에서만 중요할 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도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견해에 의하면 ‘신앙진리의 위계질서 位階秩序’가 있다. 이 점은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에서 단정되고 있다. 11 신앙의 진리는 모두 진리이지만 이것이 모두 동격은 아니다. 어떤 진리가 – 진리의 함축성은 손상되지 않은 채 – 가장 핵심적인 신앙의 진리이며 인생의 진리인지, 아니면 보다 주변적인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기본원리는 마리아 신심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신심인지, 아니면 이 신심이 특별히 정당하고 모범적이긴 하지만 열심한 교회 구성원의 특수영성일 뿐 모든 신자들에게 반드시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 신심인지의 여부에 관해서도 해답을 줄 것이다.

성 알로이시오 Aloysius (1568-1591), 사도 유다 타데오 Judas Taddaus, 빠두아의 성 안토니오 Antoius (1195-1231)와 같은 성인에 대한 공경이 극히 칭송할만하고 장려할 만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을 공경하는 것만으로 어느 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드러내는 척도를 삼을 수는 없다. 즉 이러한 성인공경이 신앙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어머니 마리아 공경 역시 이 범주에 해당되는지 어떤지 문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본원리는 얼핏 보아서는 발견하기 쉬운 것 같다. 마리아에 관해서 언명하고 탐색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라는 구세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이 사실을 도외시한다면 남는 것은 마리아가 아무리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 알로이시오와 사도 유다나, 빠두아의 성 안토니오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찬양 받을 만 하듯이, 마리아와 유대를 맺는 것 또한 찬양 받을 만 하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마리아론 이란 결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로이시오론 이나 안토니오론 을 정립하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론을 정립하려는 이 작업은 언어상의 난점을 도외시하더라도 착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인물은 교회 안의 다른 모든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과는 달리 독자적인 양식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로 이 점이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제만을 마리아론 전체의 기본원리로 선언하는 것이 불충분하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보다는 바로 이 모성의 가장 내밀한 본질을 규명해야 한다. 이 모성이 다른 모성과 어느 점에서 구별되는가? 이 모성이 어느 점에서 마리아의 다른 기본특성의 근거가 되는가? 여기서 의견들이 분분해진다. 하느님의 모성에 대해 상이한 일련의 형식규정들이 있다. 이것을 모두 나열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 같아 여기서는 다만 몇 가지 분석적인 고찰만을 시도하고자 한다.12

그리스도교적 계시의 기본진술은 “하느님이 인간의 구원을 이룩하신다”는 것이다. 이 진술은 바로 하느님이 인간의 절대적 완성을 원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절대완성이란 삼위일체인 하느님과의 복된 일치에서 이루어진다. 이 목표는 우리가 구세사 救世史라고 일컫는 과정 속에서 구현된다. 이를테면 인간에게 의미있는 중요한 일이란 구세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 한 사건이 구원을 구현하는 데 기여하는 만큼 그 사건은 그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다.

이 말은 구세사가 동일한 밀도로써 계속 진행하지 않음을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구세사 안에는 절정이 있는가 하면, 심연이 있다.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조용하게 사건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점은 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세계의 역사란 다른 것이 아니라, 구세사의 한 구성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이 진행되는 이 테두리 안에 하나의 중심사건이 있는가?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이 시간의 충만, 즉 모든 구세사건의 정점이요 핵심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출현하는 가운데 시간은 절대 중심에 이른다. 그러므로 모든 사건은 이 구세사의 사건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사건에 의해서 그 수준과 가치가 측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세사의 사건에 대한 이치에 맞는 척도를 얻어내기 위해서 그리스도 사건의 본질적 면모를 찾아내어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의 형식적 면모를 단정할 수 있다.

 

1.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의 ‘간선’이다. 육화,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 것은 창조에 내재하는 강박적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은총결의 恩寵決意에 서 나온 것이다. 육화, 강생이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했는지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아니면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발생했을는지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오늘날 믿고 있듯이)는 여기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가설이든 그리스도의 육화는 하느님의 절대의지에 의한 것이며, 인류의 입장에서 볼 때 어던 이유도 있을 수 없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 사건은 연대사건이다. 육화의 개념은 육화의 사건 전체에서 가려 뽑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우리의 형제가 되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되었다 (히브리서 2, 11-17 참조). 그러나 여기에 죄는 포함되지 않는다. 죄는 인간의 본질에 속하지 않고, 도착 倒錯되어 비정상적이 된 인간본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존재란 항상 공동체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귀결을 낳는다.

 

(1) 인간이면 누구든지 그에게 주어져 있는 한 공동체에 들어가게 된다. 누구나 특정한 가정에 태어나고, 특정한 집단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한다. 누구나 정치-문화적인 총체적 상황에서 생활하게 마련이다. 이 상황에 속한 구체적 집단은 각 개인의 활동보다 앞서 있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정치 문화적 총체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창조가 이미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구현을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이면 누구나 그에게 주어져 있는 특정한 구세사적 상황에 태어나기 마련이다. 이 구세사적 상황은 구체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체험된다. 그리스도교적 이해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간과 계약을 맺었다. 하느님은 바로 이러한 양식으로 인간역사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2)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만일 그 사람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달라질 것이다. 그가 그 공동체에 해독을 끼치는 사람일 경우라면 그가 없어지고 난 그 공동체는 아마 개선될 것이다. 또 유능한 한 사람의 활동이 없어진다면 그만큼 그 공동체는 가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공동체를 지연시키고 공동체에 부담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런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록 가장 보잘것없는 지체일망정 인간은 누구나 그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이 구원공동체에도 해당된다.

 

강생이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으로서 존재하는 구원공동체 안에 그리스도가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 계약은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계약에 포함된 인간이 그리스도를 순수한 하느님의 은총 자체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계약이 파기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흘린 피로써 새 계약[신약]이 묵은 계약[구약]에서 탄생하였다. 이 새 계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새로운 구원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육화는 ‘첫 의인이었던 아벨로부터 유래하는 교회’13로서 애당초부터 그를 향하여 정착되어 있었으며 머리인 그에 의하여 생활하는 교회인 ‘신약의 교회’에 들어섬으로써 성취된다.14

 

3. 그리스도 사건은 ‘구세사적인 효력’을 발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 은총의 충만이 우리 구원을 위해 세계에 현존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골로 1, 19이하). 그러므로 이 은총은 강생에 입각해서 인간적으로 세계에 분배된다. 또한 이 은총은 인간적 활동에 입각하여 세계에 선사된다. 우선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에 입각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지향하거나 또는 그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자신을 봉사에 내맡기는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이 은총은 세계에 선사된다. 선교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 (에페 1,23)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사건의 형식적 규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도 사건은 교회 안에서 완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선택,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와의 연대성과 구세사적 효력은 교회 실존의 근거이며,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되기 위한 전제이다. 여기서 이러한 구조 자체가 하느님이 역사하신 사실적 길[道程]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식을 신학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정식화하여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론은 교회론 안에서 성취된다. 그리스도론은 구세사적으로 볼 때 교회론의 전제이며 교회론은 그리스도론의 계속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구세사의 정점이요 중심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통찰에 이르게 되면서 우리는 구세사적 사건을 평가하기 위해 모색했던 척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척도는 한 인물이나 사건이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와 갖는 관계 속에 존속한다.

 

그러면 이 고찰이 우리의 마리아론적 기본원리를 위해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는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단정한다. 그리스도론이나 교회론에서 분리된 진정한 마리아론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그리스도께로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교회에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에 관해 지금까지 전개해 온 토론은 긍정적이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드러나게 된다. 여기에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오로지 종합명제가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구원을 이룩하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만 구원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난 독자적인 마리아론이 있다면, 이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사이에 있거나 아니면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에 각각 위치해야만 한다.

이제 주의 어머니의 인물 자체를 살펴보기로 하자. 마리아는 결국 자유로운 하느님의 은총행위를 통해서 주의 어머니가 되는 품위에로 불림받은 것이다. 그녀의 모성은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조물계에서 통용되는 인과율의 결과가 아니다. 이 단계에서 동정녀 출산의 신비에 대해 신학적으로 본질적인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말씀이 육화하는데 ‘예’를 발함으로써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실적 구원계획을 수락한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인간적으로 온전히 수락되고 수용된다. 하느님의 인류와의 연대성은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마리아를 통하여 작용한다. 마리아는 사람의 아들 [인자 = 그리스도]에게 그를 인류와 연결시키는 육신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사람의 아들을 인격적으로 연결 지어주는 지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와 관련된 개념의 의미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통하여 교회 안에 탄생하였으나 동시에 교회의 머리요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마리아로부터 그의 육신을 취하는 가운데 마리아  안에서 신약의 교회를 세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의 모성을 통하여 구세사적 작용능력도 아울러 받게 된다.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과 그리스도 안에서 맺는 하느님과의 연대감으로 인해 세계를 위한 구원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론이 교회론에서 성취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한 인물의 구세사적 가치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 속에서 측정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교회 안의 그리스도와도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밀접한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교회를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가 마리아에게 해당된다면 후자 역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체가 마리아에게서 가장 완전하고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다.15

이렇게 정식화함으로써 우리는 마리아의 모성의 규정을 넘어서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립할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예형 또는 원형이다.”

 

이 원리로부터 다른 모든 마리아론적 신앙진술이 유도되어 나와야 할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다른 모든 신앙진술은 이 원리와 부합되어야 한다. 이 점을 그리스도의 어머니에 관한 신앙 명제에서 극히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제7장 마리아 교의의 신학적 근거 정립

 

 

앞 장 서두에서 우리는 마리아론에 대한 다섯 가지의 주된 신앙명제를 열거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동안 얻은 지식에 의거하여 이 명제를 하나하나 고찰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에 부응하여 이 장에서는 마리아의 동정석에 대한 문제는 일단 덮어두기로 한다.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다룰 예정이다.

 

 

1. 마리아의 모성

 

오랜 그리스도교적 신앙고백문들은 한결같이 마리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라고 선포한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임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대하게 교의로 선포되었다. 이로써 복음서의 기본진술이 수용되었고 엄밀하게 규정되었다.

복음서의 진술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천사의 탄생예고설화는 두 가지 점을 아주 명백히 하고 있다.

첫째, 육화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행위이다. 첫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주도권을 잡고 이를 관철시키는 분은 하느님이다. 예수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친척에 대한 공관복음서의 설화나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의 12세 소년 예수에 대한 루가복음서 구절들이 예수에게서 작용하고 있는 하느님의 주도행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구세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활동은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확실히 하느님 손 안에 있는 도구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도구가 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마리아와 자유롭게 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신앙에서부터 나오는 그녀의 응답을 기다린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도 마리아의 모성이 단순히 생물학적 사건발생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고대신학은 이 사실을 오랜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기에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마리아는 몸으로보다 정신으로 먼저 잉태하였다.” [Maria prius concepit mente quam ventre].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그녀의 절대적인 신앙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었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으로 모친이 된 것이다. 그르므로 마리아의 ‘예’ 라는 응답은 구세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면 우리는 이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한 인간이 자신의 행동 하나로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거대한 의무를 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만일 마리아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물음은 논하지 않으려 한다. 마리아의 동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을 관철하였을 것이다. 구세사에서는 연대성을 지닌 ‘대표’ 의 법칙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 이 법칙은 각 개인의 행위가 집합적 내지 집단적 의미를 지님을 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오로가 비구원의 인간 아담에게 구원자 그리스도를 대치시킨 일이라든지, 한 사람의 임금이 자기 온 백성의 대리자가 되며, 노아라는 한 사람 때문에 세계가 구원되고 또한 아브라함이라는 한 개인의 신앙이 만인을 위한 것 같은 예이다. 이와 같이 마리아의 ‘예’ 라는 응답 역시 진정으로 이러한 보편적 연대적 의미를 지닌다.

결과적으로 마리아는 성령으로 가득 차게 된다. 성서언어인 이 말은 출산원리 이상의 것을 말하고자 한다. 즉 마리아는 아주 하느님 편으로 당겨져 거룩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말이다. 이로써 마리아는 우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구원의 교회적 구조에 부합하도록 은총을 입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이 은총을 입은 것은 자기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서 ‘예’라고 응답한 것이다. 여기에 바오로가 1고린 12, 26에서 정식화한 바 잇는 또 다른 하나의 구세사적 법칙이 들어서는 것이다. 즉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이다.

이로써 성자의 육화과정에 있었던 마리아의 행위는 교회의 행위이고 교회를 위한 행위이며 교회 안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마리아 안에서 신자들의 무리가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였고 마리아를 통하여 그녀에게 선사된 은총의 충만에 참여케 되었다. 이처럼 마리아는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구원을 받아들이는 지체이면서 또한 선사하는 지체인 것이다. 한번 더 우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임이 마리아 생애의 중심사건이었듯이 그녀가 교회의 원형이라는 근거 역시 여기에 있음을 보게 된다.

 

 

2. 무염시태

 

1854년 12월 8일 비오 9세는 교서 ‘무량 無量 하신 하느님 Ineffabilis Deus’ 에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전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하느님의 계시로 믿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이 교의는 마리아가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원죄와 그 과실에 빠져들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확신이 교회 안에서 하나의 명백한 진리로 인정되기까지엔 오랜 시기가 필요했음을 보았다. 이 확신을 오랫동안 가로막았던 핵심적인 반론은, 인류의 일반적인 죄악성에 예외를 둠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이 손상되는 난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한 사람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죄성과 구원필요성이 절대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모친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완전히 참여함을 의미한다. 교회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참여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으로, 즉 은총과 하느님과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교회는 거룩한 사람 [聖人]들의 공동체이다. 마리아가 교회의 원형으로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참여하고 있다면 은총 또한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한 분이다 (루가 1,28 참조). 그런데 이처럼 ‘은총을 입는다는 것’은 구체적 역사 안에서 항상 구원을 뜻한다. 마리아도 사실상 우리가 원죄라고 하는 과실의 관련성에 연루되어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속박에서 해방된 사람은 누구든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원이 한 인간이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생애의 특정한 순간에 생기는 것이지는 근본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여하간 우리는 마리아가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이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고수해야 한다. ‘구원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이러한 상황을 참작해 볼 때 마리아가 특정한 때인 영보 領報 시에 원죄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 성립될 수 있겠다. 이 가설은 형식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상 實狀을 그리치는 것이 될 것이다.

죄의 본질은 하느님의 의지를 거스르는 인간의 부정행위요, 하느님의 의지보다 자신의 의지를 앞세우는 것이며 인간의 성성이란 그 반대로 자기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의 의지와 온전히 부합시키는 것이다.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으로 간택한 것은 이 은총이 자유롭고 스스로 책임을 지며, 온전히 인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전제한다. 은총의 수용자가 하느님의 원의와 일치하려는 완전하면서도 망설임이 없는 자세를 갖추었을 때에만 은총의 수용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테면 이 수용자는 온전히 거룩해야 한다. 여하한 죄의 그림자도 없어야 한다. 이러한 고도의 자유는 인간의 현실적 상황에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인간이 처해있는 과실의 연루성을 분쇄하면서 친히 이 자유를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만 인간의 자유가 다시 계발되고 하느님의 모친이 될 것을 수락하는 행위와 같은, 인류사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행위가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마리아가 원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보전되어 있다는 것은 마리아의 중심 신비의 내적 귀결이다. 동시에 이 성모무염시태의 교리는 ‘한 분이고 유일한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의 핵심에서부터 나온 한 신앙조항’이리도 하다. 그리고 이 교리는 교회론적 조항이기도 하다. 신경에서 고백하는 교회의 거룩함은 모든 신자들의 원형이 되기도 한 마리아 안에서 완전히 실현된다. 이 모든 일 뒤에는 더 이상 파고들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거룩한 모든 것의 최종 근거인 것이다.

 

 

3. 지속적 무죄성

 

마리아의 지속적 무죄성은 교의로써 신조화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리아의 지속적 무죄성은 공식 교도권을 통하여 선포된다. 트렌트 공의회에서 인간의 일반적인 죄악성을 구론 究論 할 때 마리아는 제외했었다.공의회는 교회의 일반적인 확신을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비오 9세는 1854년 무염시태 교리를 교의화하는 교서에서 하느님의 모친이 ‘모든 죄의 오점에서 벗어나 있다’고 천명한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려는 모성에서 나오는 귀결이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우리 스스로의 일치는 은총으로 표출되고 또 우리를 성화로 이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리스도와의 가까운 일치는 은총을 가장 많이 입음을 의미한다. 은총의 충만이라 계속 죄 없이 완전하다는 또 하나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참여함으로써 마리아의 무죄성이 야기된다는 단정에 높은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즉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성성과 경쟁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와의 위격적 일치에 입각하여 거룩하고 무죄하다. 그리스도의 신적 위격이 그의 인간성을 절대적이고도 완벽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예수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사업을 위해서 은총을 받았다. 이 은총은 예수의 성성으로서 인간을 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고전적 신학은 예수의 은총은 머리로부터 다른 지체로 흘러가야 하기 때문에 이 은총을 ‘수석 은총’ Guade des Hauptes이라고 청하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느님이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은 인자 人子=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모든 인간에게 이 은총의 분배가 해당되듯이 그리스도의 모친에게도 역시 해당된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에게 분배되는 은총 중에 가장 충만한 은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은총을 입은 것이 된다.

바로 이 점에서 마리아는 또한 교회의 원형이 된다. 그리스도의 은총은 곧 교회의 은총이기 때문이다. (에페 1,22 이하 참조) 그러므로 마리아의 성성은 이를테면 교회의 성성이다. 교회는 마리아 안에서, 즉 은총이 충만한 분 안에서 자신의 목표에 이미 도달하고 있다. 이 목표에 이른 교회는 ‘티나 주름이나 그 밖의 어떤 추한 점도 없는’ 교회일 것이다. (에페 5, 27). 그러나 반면에 다음과 같은 사살이 이러한 사고과정 思考過程 의 결과로 생겨난다.  마리아가 교회 안에서 은총으로 충만한 분이라면 교회를 통하여 인간에게 분배되는 은총은 모두 조금씩은 마리아적인 성격을 띠게 되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 여인이 지닌 하느님 모성의 의미가 다시 한 번 제시된다. 하느님의 모성은 마리아의 성성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관련해서 결과적으로 야기되는 두 가지 문제점을 논해야 한다. 첫 번째 문제는 마리아가 은총으로 충만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은총이 그분 안에서 성장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신약성서는 우리에게 마리아의 신앙과 자각, 그리고 고통에 대해 보도한다. 마리아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동일한 법칙에 따라 생활한다. 이 법칙이란 하느님이 선물인 은총이 인간 안에서 심화되고 내면화되며 밀도가 짙어질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문한성은 어느 한 사람에게서도 고갈될 수 없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러하다. 하느님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에게 항상 가까이 갈 수 있다. 즉 하느님과의 일치는 내적으로 보다 깊어질 수 있다. 이 점은 하느님의 모친에게도 해당된다.

두 번째 문제는 소위 ‘사욕편정 邪慾偏情’ 과 관계된다. 오늘날 이 말은 그리 적절하지 못한 표현으로서 인간이 온갖 착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늘 되풀이되는 악에의 충동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바오로는 로마 7.14-23 에서 이 내적 충동을 극적으로 묘사한 바 있다. 이 충동은 원죄의 결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반적인 신학적 확신으로써 마리아는 이 충동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4. 몽소승천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제시된 신앙의 진리이다”

교회는 무염시태 교리와 같이 이 현양 顯揚 교리도 매우 뒤 늦게서야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6세기 이전까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전통도 없었고, 후대에 와서도 마리아의 현양 문제는 격렬한 쟁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이 교리를 계시진리라고 선포한 것은, 이 몽소승천의 교리가 성서에 근거를 둔 교리였기 때문이다. 일단 이 문제 자체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이 문제의 전문용어에 대해서 잠깐 언급해야 하겠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현양을 ‘마리아의 승천 Maria Himmelfahrt’ 이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승천과 같은 차원에 둔다. 사실 ‘마리아의 승천’이란 부정확할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 축일의 공적 명칭은 ‘마리아의 몽소승천’ 이다. 이러한 명칭으로 인해 마리아의 현양이 그리스도의 현양과 구별된다. 마리아의 현양은 순전히 하느님 은총의 덕이다. 흔히 마리아에게는 올림을 ‘받는다’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마저도 피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의 내용은 신화론적 사고에 입각한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혐의를 받기 쉬운 때문이다. 또한 현양에 대해서 말할 때엔, 장소화 場所化 하려는 모든 요소를 분명히 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현양’이란 표현은 하나의 장점도 가지고 있다. ‘성모현양’이란 표현은 성모승천이란 표현에 비해 한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에로 들어올림을 받은 것이 온전한 인간적 현양, 즉 영혼과 육신의 현양인지 아닌지 하는 물음을 일단 배제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이 현양이 영혼과 육신의 현양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리아의 현양교의 顯揚敎義 가 진술하는 바를 체험하게 될 것을 아울러 뜻하게 될 것이다.

마리아에 대한 현양교의를 올바로 이해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물음에 직접적인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이 교의 본연의 내용은 마리아가 그의 구세사적 목표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마리아는 삼위일체인 하느님의 공동체 안에서 생활한다. 이 점이 명백해지면 이로써 구원사 안에서의 예수의 모친의 특별한 의미가 한 번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힘 때문에 마리아는 완전히 거룩한 인간이 되었다. 마리아는 자기 안에서 하느님의 목표를 이룬 인간이다. 하느님의 목표란 곧 인간의 구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와 하느님과의 일치이다. 이 일치가 지상에서는 은총 가운데 이루어지고 지상 생애가 끝난 다음에는 하느님 직관의 복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부터 그녀의 천상적 현양이라는 종말론적 충만이 결정되는 것은 내적 논리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고 이러한 전망에서 볼 때 1950년에 선포된 마리아교의는 신약성서의 증언에 전적으로 부합된다.

마리아가 지향하는 목표는 개인만의 목표가 아니라 구원된 전인류의 목표요 교회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교회는 후에도 이 목표에서 빗나갈 수 없다. 마리아의 현양은 세상 종말에서의 교회 현양을 위한 보증이다. 이처럼 마리아는 기 관점에서도 교회의 원형이 된다. 마리아에게 일어나는 일은 온갖 외양과는 달리, 교회의 역사가 지향하는 바이다. 또한 마리아는 교회를 위한 표징이 된다. 따라서 교회는 마리아에게서 자신의 정체가 어떠해야 하며 또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를 측정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하느님 모친의 현양은 하나의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마리아는 종말론적 국면에서도 모든 인간과의 유대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유일회적 唯一回 的 인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유대관계의 결과로 생겨나는 마리아 현양양식 또한 유일회적이라 할 수 있겠다.

 

 

 

제8장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위에 인용한 사도신경의 이 짧은 한 구절에 대해서 많은 공간을 할애하여 기술하는 이유는 이 구절이 가톨릭의 마리아론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날 가장 많이 토론되고 가장 논란이 되는 조항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항은 하느님의 모친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의 동정성을 ‘마리아’란 이름과 동의어로 생각할 만큼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였다.

‘동정녀 Die Jungfrau’, 이것은 마리아 이외의 다른 사람일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마리아 즉 동정녀라는 이 동일화 同一化 가 오늘날 점점 더 가톨릭 교회 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도신경의 이 구절은 여러 신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단지 상징적으로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화란[네덜란드] 교리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복음서들은 예수의 인간적 출생과 함께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함도 보여주고 있다…예수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약속한 모든 아기들 가운데 으뜸가는 아기이다. 그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온 백성의 탄원의대상이었고, 역사를 통해서 이미 약속되었던 바로 그 아기였다! 그는 또한 전인류가 깊이 열망하던 아기였다! 복음사가 마태오와 루가가 예수는 한 남자의 뜻만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복음사가들은 예수의 탄생은 보통 인간의 탄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탄생이라고 선포한다. 이것이 바로 ‘동정녀로부터 탄생하였다’ 라는 신조의 깊은 의미인 것이다.”

화란[네덜란드] 교리서의 검열을 맡은 추기경 위원회는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앞으로 이 교리서는 성모의 평생 동정성을 공적으로 고백할 것이며, 예수의 동정녀 잉태 사실도 명백한 말로 가르쳐야 할 것이며 더 이상 동정녀 잉태의 사실성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이 사실을 특정한 상징적 의미로만 받아들이는 자세, 즉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교회의 전승에 위배되는 계기를 더 이상 제공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의 이 두 가지 입장표명에서 보이는 알력은 개혁교회 신학에서도 진술될 수 있다. 여러 신학자들 – 특히 에멜 브룬너 Emil Brunner, 1889-1966 가 단호히 부정하듯이 이 동정녀 출산을 부인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고대 교회 신조를 고백하는 신학자들의 수효도 적지 않다. 그 중 칼 바르트 Karl Barth, 1886-1968 가 아마 가장 열정적으로 동정녀 출산을 고백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과거에는 가장 아름다운 영예 칭호로 각광을 받던 마리아에 대한 명칭이 이제는 곳곳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토론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계몽주의가 이미 이 명칭에 이론을 제기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문제를 둘러 싼 토론은 아주 공개적이고 거리낌없이 진행되고 있다.

 

 

1. 문제 처지

 

왜 동정녀로부터의 예수의 탄생과 함께 그 모친의 동정성이 논란이 되고 있는가? 이에 대해 제기된 세 가지 입장의 이론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자연과학적 입장’ 에서 볼 때, 고등생명체의 단성출산 單性出産, 즉 동정녀 출산이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앙의 관심사는 자연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는 하나의 기적설화라는 것이다.

(2) ‘종교학자’들이 환기시키는 바에 의하면 고대세계에서는 기적적인 출산 관념이 상당히 퍼져 있었으며, 신약성서의 주변 세계와 이집트, 그리스 지역에서도 역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서가 기적적 출산 관념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에 맞게 변형하였음을 인정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구약성서가 위대한 인물 (야곱, 이사악, 삼손, 사무엘)의 출생시에 하느님의 개입을 보도했으며, 신약성서 또한 세례자 요한의 탄생설화에서 이미 이 도식을 따랐다. 그러므로 이 출생역사와 마리아 영보사건을 비교하면 평행선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루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한의 탄생시에도 하느님이 개입하였지만 예수탄생의 경우에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절대적이고도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의적 字義的[글자 그대로] – 생물학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신화론적 진술이다.

(3) 신약성서의 보도 자체의 ‘주석’에서도 어려운 질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동정녀로부터의 탄생과 같은 그 결정적인 사건이 단지 두 군데에만 보도될 뿐이라는 것이다. 바오로도 마르코도 이에 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요한 역시 증인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보다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은 마태오와 루가복음 안에 동정녀 출산을 증언하는 이전 역사 [前 歷史]에 언급된 전승 외에 또 다른 두 번째 전승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전승은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이고, 그와 마리아가 정상적인 의미에서 예수의 부모라고 아주 자명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 전승은 동정녀의 출산을 알고 있는 복음서에서까지 발견된다. 즉 마태 13, 55에서는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를 ‘목수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또 루가는 유년기설화의 여기저기에서 요셉과 마리아를 주석하는 바 없이 그저 ‘예수의 부모’라고 부른다(2, 27. 41. 43. 48). 그렇다면 루가는 자기 복음의 제1장을 잊었던 말인가? 요한도 필립보로 하여금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라고 말하게 한다 (1, 45). 또 유다인들은 요한 복음에서 다름과 같이 묻고 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6, 42)

예수의 동네 주민들은 예수의 기적적 탄생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루가 3,25에는 사람들이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간주하였다는 구절이 있는데 오늘의 주석학자들은 이 구절은 내용의 조화를 위해서 삽입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마리아가 요셉의 ‘약혼녀’로 등장하는 루가 2,5 도 주석학적으로는 역시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의 ‘약혼’이란 표현은 이미 결혼을 뜻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 문제의 대해서는 두 가지 전승이 있다. 그런데 동정녀의 출산을 받아들이는 전승은 신약성서의 전체적인 틀 안에서 볼 때 묘하게도 고립되어 있다. 마태오와 루가복음서를 제외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동정녀의 출산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 점이 동정녀 출산과 이를 증언하는 마태오와 루가의 보도를 의심쩍게 만든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것을 경솔하게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은 조건 없는 추종을 요하는 맹목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리스도 신학은 신앙 내용을 신중하게 숙고하고, 근거를 정립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부가물 附加物과 위조물 僞造物 로부터 해방시키기도 해야 하는 신앙학문이다. 그러므로 반대논증을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2. 반대논증 분석

 

자연과학적 반론

 

확고한 과학의 지반 위에서 자연과학적 반론이 엄격하게 제기된다면 물론 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연법칙의 범위 내에서 볼 때 동정녀 잉태 [단성생식 單性生殖]란 고등생물체에서는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동정녀 출산에 대한 신조는 자연 과학적 지반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조문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이나 화학, 또는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적 학문 영역에 적용되는 수단과는 다른 수단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신조는 세계가 ‘인격적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전제하에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경우에만 하느님이 세계를 능가하는 절대주 絶對主 가 된다. 하느님이 이 세상의 주라는 말은 하느님이 이 세계에 내재하는 질서의 창시자라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세계 역시 매순간 하느님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하느님은 세계 안에서 항시 활동하신다. 그러므로 자연 자체가 곧 개방된 체계인 것이다. 하느님은 어느 때라도 새로운 상황을 조성할 수 있으며, 이 상황을 자연 발생 안에 삽입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이룩함으로써 하느님은 당신에 의해 정돈된 자연법칙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수용되고 동화되는 새로운 원료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이 점에 대해 레뷔스[루이스 C. S. Lewis] 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기적을 행하는 하느님의 기술은 이 기적적인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기존하는 모형의 지양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이 모형을 새로운 사건 발생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법칙의 전제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A 다음에 B’라는 법칙이 있는데 이와는 달리 ‘그러나 이제 A 대신 A2’가 들어선다고 하면 자연은 자신의 법칙에 따라서 ‘그러면 B가 아니라 B2’가 들어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자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외부로부터 옮아 온 것을 동화시킨다.” 창조개념으로부터 기적의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연과학적 입장에서의 정당한 반론이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하시고자 하면 굳이 인간의 성행위를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한 처녀의 태내[자궁 子宮]를 열 수 있다. ‘동정 잉태’ 문제 외에 다른 것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임신기간은 9개월간 지속되고 9개월이 차자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기는 다른 모든 아기들처럼 정상적으로 성장한다.

 

 

종교학적 반론

 

초대 그리스도교에 미친 주변세계의 영향은 그리스도교계 곳곳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외 없이 ‘개종자’들이었다. 이들은 여러 해 동안 유다교나 이교 異敎 안에서 생활했으며, 따라서 당연히 그들의 입장과 인습을 이어받았다. 때문에 아무리 개종한 종교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쉽사리 이전의 것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유산은 사도행전을 통하여 유다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완강하게 유다 회당 會堂 Synagoge의 전례와 규정을 고수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물론 첫 세대들은 여러 후세대들과는 달리 타협할 용의가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화 할 수 있었던 부문은 그리스도교화 하였다. 이것은 다른 비슷한 일에도 해당되었다. 따라서 이교도의 여신들이 구세주의 모친과 함께 제시되었다.

초대교회는, 인간의 종교심리학적 기본태세를 여성적 – 모성적 요소를 경신생활에 끌어들이려는 경향을 지닌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 공경이 일찍부터 계발되었다. 따라서 마리아 공경이 다른 여성상에 관련되어 다른 종교에서 발견되는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요한 종교과학적 기본명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유비’가 바로 계보학 系譜學 genealogy 은 아니며 외현형식 外顯形式이 유사하다고 해서 원천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방세계에서는 여신 ‘Ischtar’을 공경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를 공경한다고 하여 마리아가 세례를 받은 Ischatar여신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모든 원천을 정확히 분석한 후에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두 개의 존재가 전혀 동일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이 기준에 따라서 동정녀 출산에 대한 종교사 宗敎史 에 관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교세계나 유다세계에서 특별한 정치적 지도자나 종교적 지도자가 탄생할 때에 하느님의 힘이 개입한다는 내용의 설화가  사실상 많이 있다. 이러한 설화를 살펴보면, 모든 경우에 관건이 되는 것은 한 인간이 여성과 신 神의 성적 결합이거나 (구약에서처럼), 인간인 한 남녀의 성 결합으로써 모든 자연적 조건을 거슬러 결실을 맺게 하는 신의 특별한 축복 등이다. 관건이 되는 것은 항상 ‘기적적인 탄생’ 이지 ‘동정녀의 출산’이 아니다. 마태오와 루가복음은 기적적 탄생에서처럼 성적 결합에 의한 하느님의 개입을 배제하고 있다. 예수는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심사숙고 하면서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자 한다. 여기서 논의의 대상이 되는 긴 종교사에 대한 불충분한 우리의 현 지식으로는 종교사에서 발견되는 기적설화가 마태오와 루가의 동정녀 출산설화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음은 우선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종교과학적인 시점에서 동정녀 출산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어떤 결과도 찾아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연구결과에서 두 복음사가들이 주위세계의 신화에서 발견되는 한 신학적 교리를 이용하였다고 입증한다손 치더라도 이로써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의 예수 탄생의 사실성 事實性에 관해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성서 저자들이 그리스도를 신적 구세주로 선포하기 위해서 주의 기적적 탄생에 대한 그리스도 신앙을 신학적 진술 명제의 언어로써 표현한 것은 상상할 만하다. 이들은 후대의 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시대 사람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당신의 언어양식을 사용했을 것이다. 12,3 세기의 스콜라 신학자들이 신앙을 아리스토텔레스 적 전문용어로써 형식화할 때에도 그와 같은 방식을 사용했었다. 우리 시대의 신학자들이 신앙의 사실을 보다 빠르게 이해시키고 용납시키기 위해 실존철학적이거나 마르크스적 용어로써 표현하는 것도 위와 같은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만일 지금 우리 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이해시키려 할 때 자기 시대의 언어 외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마태오와 루가 역시 그와 같은 방법을 취했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연과학이나 종교과학으로부터 동정녀 출산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어떤 요점도 제시할 수 없다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주석학적 반론

 

주석학적 반론의 비중이 가장 큰 듯하다. 이 반론은, 동정녀 출산을 단지 ‘신학적 교리 [역자 주: 교회 교도권으로부터 직접 증언되지 않아서 믿어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권위는 지니지 않으나 많은 다른 교회의 공적 교리의 의미를 밝혀주는 신학적 성격을 띤 교리라 할 수 있다] 로 선언하라고 주장하는 네덜란드 교리서가 정당한지 아니면 우리는 다른 모든 반론에도 불구하고 동정녀 출산의 사실성을 고수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이 질문은 그 자체가 설명을 필요로 한다. 위에서 우리는 이미 ‘신학적 교리’ 개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 개념은 종교적 실재에 대해 신학적으로 시도되는 진술을 의미한다. 이렇게 신학적 진술을 시도하는 가운데 계시의 신앙고백이 한 인간이나 특정시대의 체험과 세계관 그리고 지식으로써 표현되기에 이른다.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대개 신학적 의미를 지닌 진술이다. 창조설화는 하느님이 세계의 유일한 창조주이며 그가 무 無 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였고 모든 것이 선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실상은 추상적으로 기술되지 않고 (우리가 방금 서술하였듯이), 하나의 이야기 설화로 표현되고 있다. 이 설화의 개별적 요소는 자의적 字義的 이해가 아니라 신학적 진술을 해명하는 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성서적 증언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도 바로 유년기 역사, 이를테면 동정녀 출산에 대한 신조의 원천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해야 할 것이다. 성서저자들의 일차적 관심사가 사실 史實 이나 사실 事實 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여기서는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서보다 더욱 분명하게 된다. 성서저자들의 의도는 예수의 전기를 기록하는 데 있지 않고 그의 메시지를 선포하려는 데 있다. 저들은 단지 종교적 진리를 진술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한 남자의 관여 없이 발생한 예수탄생 설화가 ‘일차적으로 신학적 교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의 신학적 실재가 우리 앞에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체 설화가 ‘단지’ 하나의 신학적 교리일 따름인가 아니면 역사적 사실로도 드러나게 되는가 하는 것이 극히 중요한 물음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서 오늘날 견해의 차이가 생기고 있다.

 

 

(1) 마태오

 

마태오 복음 서두의 족보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1, 66). 이것은 그 앞에서 적용된 도식에서 벗어나는 예외이다. 족보에 등장한 다른 모든 인물에 대한 도식은 이러하다. A는 B를 낳고 B는 C를 낳고… 그러나 여기서는 갑자기 누가 예수의 아버지인가가 밝혀지지 않은 채 끝난다. 다만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으로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이 기묘한 처지는 해명을 요한다. 저자는 18-25절에서 해명하고 있다. 마리아가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아기는 그녀의 남편으로부터가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잉태된 아기이다. 천사는 이 사정을 요셉의 꿈속에서 해명하는데 이것은 이사 7,14과 관련된다. 즉 구약성서의 한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보라, 동정녀가 아기를 낳으리라.” 이것은 마태오복음의 전형적 논증양식이다. 구약이 예수 안에서 성취도고 또 어떻게 성취되는가가 거듭 제시된다. 예수가 사실 예고된 메시아라는 것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한, 마태오가 최초로 이사 7,14을 동정녀 잉태로 해석한 저자이다. 이 말이 히브리어 로는 ‘ha’almah’라고 적혀 있다. 즉 이 말은 ‘젊은 여인’을 의미하는 말로서 생물학적 측면에서의 여성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연령층을 표현하는 말이다. 히브리 성서의 희랍어 번역판인 70인역 판에서 사용된 Parthenos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마태오 이전에는 아무도 이 말에서 메시아를 위한 동정녀 출산을 촉구하려고 생각지 않았다. 물론 원문도 이 해석을 배제하지는 않으나 이러한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구절은 요셉이 천사의 지시에 따른다는 것을 시사함으로써 끝난다. 그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다’ (24절 이하). 다시 말하면 예수가 출생할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부부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후에는? 이에 관해서 마태오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주의 탄생시에 있던 개입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2) 루가

 

예수의 탄생 약속에 관한 유명하고 전례에 자주 사용되는 본문은 1,26-38이다. 여기서 마리아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한 젊은 처녀로 우리에게 소개된다. 이때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분이라고 인사한다. 그녀가 메시아의 모친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복음을 기록한 루가가 본래 염두에 두었던 독자들에게는 이 말에서 즉시 이사야서의 구절 7,14 이 연상되고 장차 이스마엘 Ismael의 어머니가 될 하갈 Hagar에게 한 천사의 약속이 또한 상기되었을 것이다. (창세 16,11). 루가 역시 구약성서를 예로 드는 데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천사의 인사에 마리아는 반문을 제기한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1,34)

이 질문은 그 동안 가지각색으로 해석되어 왔다. 전통적 마리아론에선 여기서 마리아가 이미 동정서약을 했거나 (아우구스티노), 아니면 적어도 정결하게 살려는 굳은 결의를 했음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명제의 주창자들은 아무도 믿을 만한 해명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금욕을 이상으로 하던 시대가 후대의 어느 한 시대와 주위세계 안에서 정착하게 되나, 그 당시는 아직 금욕적 이상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두 번째 해석에 의하면 마리아는 정상적 결혼을 하려고 결단을 내렸고 자기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녀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내가 아직 부부관계를 가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해석 역시 질문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만족한 답을 주지 못한다.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아기를 기다리는 일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리아가 비록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직접적으로 임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면 차라리 의미가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사의 말은 이 해석을 조금도 지지하지 않는다.

세 번째 가설은 마리아의 질문을 복음사가가 설화를 절정으로 이끌어가려는 문학적 형식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 가설은 복음서를 보도로서가 아니라, 신학서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서 심리학화하는 모든 해석은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이 더 의미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리아가 이미 요셉과의 결혼을 결심하였다면 왜 아기가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한번 더 질문해야 한다.

34절이 어떻게 이해되든 간에 어떠한 경우에도 탄생사건 발생 시점에서의 마리아의 동정성은 분명하게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는 질문이 천사의 해답을 선동한 셈이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사주실 것이다” (1, 35). 곧 인간인 한 남자가 아니라 하느님이 마리아의 태내에서 생명을 잉태시킨다는 것이다.

 

이상이 두 성서의 보도내용들이었다. 그러면 이것을 사실적 史實的 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신학적 교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마태 1, 18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고 읽는다. 이러한 표현으로서 한 사실에 대한 보도가 예측되고 있다. 설화 자체는 물론 구약성서의 영보도식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하느님이 꿈속에서 인간에게 계시한다는 민속적인 견해를 이용하고 있다. 마태오 자신은 그가 보도하는 내용의 사실성 史實性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확신이 사실 事實과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복음자체에서 명료한 판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루가복음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가 그리스도교 교리의 신빙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 있다”(1,3)고 한 머리말의 증언에서 사실성 事實性이 웅변적으로 드러나 있다. 물론 이러한 보장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보장행위는 많은 고대의 저술가들에게 틀에 박힌 듯이 발견된다. 따라서 이를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루가 역시 자유롭게 기록하였다고 이미 우리는 단정한 바 있지만 이 견해에 대응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루가가 주의 탄생을 기술하는 데 있어 단순히 전설만을 이야기하였으리라는 것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비판적 고찰은 예수탄생과 관련되는 성서내용들이 사실적 보도임을 믿도록 권유하는 근거 역시 동반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은 복음사가에게 있어 일차적으로 관건이 되었던 것이 신학적 교리였음을 시시 한다고도 우리는 시인해야 할 것이다. 앞서 논한 반론과 마찬가지로 역시 – 비판적 주석만으로는 동정녀 출산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명료한 결단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서 논의되는 학문들 – 자연과학, 종교학, 주석학 – 은 이 문제에 확신을 주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이 오로지 이 학문에만 의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신앙문제에 대한 최후 요점은 교회의 교리확신이다.

 

 

3.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가르침에 호소하는 것이 의혹을 자아내게 하는 입장으로 물러서게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학문으로서의 신학은 신앙증언의 총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신앙의 증언은 듣고 쉽사리 지나쳐버릴 수 없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신앙조문은 순수한 삼위일체적인 기본정식 기본정식 이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관한 진술로 부연되면서 즉시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는 조항을 인용하고 있다. 2세기 이래, 하느님의 아들이 한 동정녀로부터 육신을 취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생각하지는 않았을망정 가장 명백한 신앙자산 信仰資産 이었다. 이 전통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늘 반복해서 교리문헌에 진술되고 있다. 이 문헌의 내용은 너무 광범위하여 그 모두를 인용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조항이 공의회나 이와 비슷한 회의에 의해 공식적으로 성대하게 제시되었기 때문에 신앙으로써 응답해야 하는 계시조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동정녀 출산을 둘러싼 토론이 이러한 단정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은 물로 아니다. 이 신앙조항의 내용을 순전히 상징적으로, 즉 단순히 신학적 교리로 해석하여도 신앙고백을 고수할 수 있지 않은가? 신앙고백문에는 확실힌 자의적 字義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다른 신앙조항도 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가 고성소에 갔다는 것과 승천에 관한 조항이다.

이 문제는 성전 聖傳에서 동정녀 출산을 실제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시사함으로써 끝맺을 수도 없다. 이렇게 성전에 의거하는 일은 이미 말한 다른 구원사실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성전에서 동정녀 출산을 보는 관점이 변하였다. 이 물음은 교회 전통을 통해서도 확고한 결단을 내릴 수 없다. 이 물음은 신학적으로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되어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를 미리 밝히기로 하자. 제 3장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교리가 ‘평생 동정성’에 대한 명제로 확대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명제는 마리아가 출산 이전과 출산하는 동안, 그리고 출산 이후에도 동정녀로 머물렀음을 주장한다. ‘출산 이후의 동정성’에 반대하여 제기 되는 주도니 반론은 성서의 여러 구절, 즉 공관복음서의 친척 이야기에서 지칭되는 예수의 형제 자매들에 그 근거를 둔다. 불린즐러 J. Blinzler는 그의 신중한 연구서에서 히르리어에서는 이 명칭으로써 사촌들도 지칭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히브리어나 아라메아에에는 치 친척관계를 나타내는 고유한 단어가 없다. 성서 자체는 마리아와 요셉의 동침여부에 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보도를 하고 있다. 하나의 신학분야로서 성서주석학이 교회의공적 교리를 지지하거나 거슬러서 최종적인 증명을 제공할 수는 없다.

마리아의 ‘출산하는 동안의 동정성’은 설명하기 어렵다. 이 명제의 내용상의 표상이 제2정전의 영향을 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이 명제를 먼저 예수 탄생시에 고통이 없었다는 것과 연결시킨다. 첫째, 마리아가 육체에 손상을 입지 않고 고통 없이 예수를 분만하였다는 내용과 둘째, 출산시의 동정성 명제와 셋째, 출산시에 추함이 없었다는 명제를 연결시킨다. 아마 사람들은 여기서 후산 後産을 뜻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둘째 번 요소, 즉 출산시의 동정성 명제에 특별한 기치를 두었다. 마리아론의 여러 신학자는 처녀막의 손상이 없이도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처녀막론’을 계발하기까지 하였다. 이 문제는 기술하기 난처한 때가 종종 있었다. 세 번째 요소는 의문 투성이다. 여기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왜 출산 과정이 추하다는 말인가? 동정녀 출산을 둘러싸고 생겨난 전통이 임신의 표시나 임시 후의 진정 鎭靜에 대해서는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서도, 하필이면 출산과정만 추하다고 보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한 인간의 출산을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과정으로 본다. ‘출산시의 마리아 동정성’ 명제의 옹호자들이 생각했듯이 출산행위가 육체적 무구성 無垢性 의 손상이나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참 인간의 탄생인 예수의 탄생을 평가절하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할 것이다. 참된 인간존재는 정상적인 인간의 출산을 포함한다. 오늘날 의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동정녀 출산을 거부해야 한다고 해서, 출생시의 동정성 이면에 신학적으로 정당한 표상이 자리잡고 있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아직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신학적 분석을 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4. 동정녀 출산의 신학

 

우리는 신학적 명제를 일차적, 이차적 명제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일차적 명제란, 이에 선행하는 보다 근원적인 원리로부터 연역해 내는 명제가 아니라 계시 안에 주어져 잇는 실상을 표시하는 명제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인간이며 참 하느님이라는 교의는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 교의가 다른 어떤 일차적인 신학적 사실에서 오는 일종의 결론처럼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교의로부터 다른 사실이 결론이 나온다. 이 교의 사실이 일단 계시 안에서 전달되었으면, 하느님의 둘째 위격의 육화가 왜 좋고 유익하며 적절했는가 하는 일련의 근거를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육화가 꼭 그런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했고 다르게 되어서는 안 되었다는 근거는 하나도 제시할 수 없다.

이차적 명제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제5장) 신학적 결론이라고 규정지은 바 있는 명제이다. 이 명제는 일차적 명제와 내용에서 동일한 논리를 지니기에 일차적 명제에서 나오게 된다. 예수가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신앙조항을 실례로 들어보자. 이 조항은 다음의 추론과정에서 얻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인간이다.

참된 인간존재에는 인간적 영혼이 있다.

따라서 예수는 인간적 영혼을 소유한다.”

이 결론은 일차명제로부터의 논리적 귀결이고, 달리 지탱될 수 없도록 이 결론이 일차명제에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마리아론에서 이따금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진술을 이차적인 명제로 선언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즉 이 교회의 가르침이 다른 또 하나의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조항에서부터 나온 필연적인 귀결임이 명시되기만 한다면 확고부동한 논증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나의 현실성있는 견해가 이 결론에 속한다는 것을 제시할 수만 있다면, 마리아의 동정성의 사실성 史實性 도한 증명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제2명제로서 마리아의 동정성을 적합하게 제시할 수 있는 제1명제가 과연 있을까? 여기서 다음 내용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 하느님이 주도권을 친히 잡는 한 인간 아버지는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한다 – 이 명제는 지상의 부성과 천상의 신적 부성 父性 사이에 경쟁관계가 있다는 불행한 전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란 동일한 수준에 있는 두 인격 사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설로 볼 때 하느님을 성적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생각은 성서에 의해서 불가능한 것으로 제외된다.

(2) 성적 관계를 거친 하느님 아들의 육화란 하느님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 점잖은 체하는 명제는 매우 비그리스도 적이고 비성서적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조성하신 모든 것은 다 좋을 뿐만 아니라 신앙은 또한 하느님을 결혼의 창시자라고도 고백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음 문제를 명백히 진술해야 할 것이다. “예수가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설령 인간적 결혼을 통해 태어났다 하더라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3) 예수의 무원죄성 無原罪性 을 보증하기 위해서 동정녀로부터의 예수 출생은 필요하였다. 이 단정의 기반도 지탱될 수 없다. 여기서는 원죄가 아우구스티노 적 의미로서 출산을 통해서 계속 주어지는 무엇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성서나 트렌트 공의회는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 교회는 마리아의 무원죄성을 성적 개입이 없는 출산과 연결시켜 가르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동기를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계시 메시지의 일차적 진리이다. 이 진리의 유일한 근거는 인간의 구원을 다른 양식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양식으로 작용케 하는 만물의 창조주와 주재자인 하느님의 절대적인 의지에 있다. ‘하느님의 이 행위는 신앙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느님은 임의대로 행동하지 않고 지극히 높은 이성과 통찰로써 행동한다. 동정녀 출산을 위한 절대적이고도 논리적인 근거는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결정을 지극히 높은 예지와 사랑의 표현으로 나타내는 동기는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해해야 할 사실이 관건이 되는지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는다.

누군가가 예수의 동정녀로부터의 출생을 실제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와 함께 이에 관한 신학적 의미로 이 사실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신학적 의미는 성서의 보도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성서 메시지의 본 내용은 동정녀로부터의 출생이 구세사적으로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성 史實性 에 대한 물음은 이 구세사적 의미에 비하여 뒤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물음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정녀 출산의 사실성 史實性이 메시지의 내용과 결부되어, 이 메시지 내용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구세사적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는 우리 인간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이 육화는 다른 많은 사건처럼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임의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를 뒤바꾸는 의미를 지닌다. 육화는 역사를 종말론적 완성으로 이끌어간다. 우리는 이 육화를 ‘구세사적 사실 救世史的 事實’ 이라고 표현한다. 육화는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건이어서 역사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동반하고 있다. 역사가 구원의 전 표하에 흐르고 있는 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지향하여 역사적 차원을 초월하게 되며 바로 이러한 가운데 구세사적 사실의 본연의 의미가 현시되는 것이다.

여기서 뜻하는 바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서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은 하나의 사실, 즉 공문서 기록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또 기록되어야 하는 사실이다. 십자가 처형 사실은 역사 안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실임이 절대적으로 고수되어야 한다. 만일 나자렛 예수가 골고타 언덕에서 참으로 처형되지 않았더라면 십자가에서의 우리의 구속도 부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형 사실이 신앙자체를 위해서는 그리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 인간의 처형이란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사건 중의 하나에 불과하였고 또 그 당시의 처형은 대부분 공개적으로 집행되었던 까닭에 십자가 처형의 증인들은 아마도 대다수가 그와 같은 잔인한 사건발생을 이미 여러 번 목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나자렛 사람이 십자가 형틀에 못박혔다고 해서 쉽사리 신앙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범죄자로서 사형을 당한 이 사람이 하느님의 참 아들이고 세계의 구원자며 인간의 구원자였다는 것을 역사적 사건으로는 알아낼 도리가 없다. 다만 신앙의 눈 [眼目] 으로만 그 죽음에 담겨있는 구원의 뜻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십자가 처형의 의미는 사적 史的 인 것을 무한히 초월하는 것이다.

 

구세사적 사실은 또 다른 하나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구세사적 사실이 역사의 차원 안에 온전히 정착한 적은 결코 없다. 이 구세사적 사실들은 말하자면 역사의 지평에서 발생한다. 이들은 역사와 영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한계사건 限界事件 이다. 이들은 역사 안에서 발생하는 동시에 역사를 초월한다. 구세사적 사실의 본 창시자는 역사 안에서 작용한, 그 안에서 소멸하지 않는 무한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역사하는 분으로 내세울 때 비로소 역사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가 史家 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구세사적 사실은 결코 역사학의 도구에 의해 확인될 수 없으며 원칙적으로 부인될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합할 뿐이다.

 

동정녀로부터의 출생은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의심할 나위 없이 구세사적 사실이다. 우리가 방금 행한 통찰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동정녀 출산에 대한 문제는 성서가 생물학적인 사건을 보도하려는가, 아니면 상징적 사건을 보도하려는가 에로 환원될 수 없다. 이 양자택일은 실제로는 양자 택일이 아니다. 상징적 의미가 없는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이란 기껏해야 하나의 기적에 불과하다. 이 기적은 보고 경탄할 수는 있으나, 이에서 구원신앙을 위한 동기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상징이 아무리 의미가 있다 해도 역사적 실재에 근거를 두지 않은 단순한 상징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것은 하 농가의 외양간에 있는 이정표 里程標 정도의 의미밖에 지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정녀 출산은 사적 史的으로 명료하게 검증되지 않는다. 하느님이 말씀인 그리스도가 육화 하면서 역사 안에 들어서기는 하지만 역사 밖으로부터 오는 존재로서 역사의 지평 地平에 등장한다. 물론 역사에의 ‘입장 入場’ 그 자체가 역사 안에 ‘입장해 있음’ 과같이 역사에 속하기는 한다. 그러나 ‘입장해 있음’ 은 오로지 역사 안에서만 발생하고 역사를 안에서부터 넘어서는 데 비해, ‘입장’ 자체는 시간과 영원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다. ‘입장’은 시간과 영원의 동시에 속한다. ‘입장’은 시간과 영원 어느 것에도 명백하게 귀속되지 않는다. 이렇게 ‘입장하였음’ 은 역사적 도구를 사용하여 역사의 구성요소로 (그 전체 내용은 아니라 하더라도) 파악할 수 있다: 나자렛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었다. 그는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입장’은 그와 달리 역사의 범부에서 벗어난다. 역사의 범주가 한계영역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한계 자체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범주는 이미 역사의 한계를 넘어섰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에게서의 잉태는 부활절 아침의 부활사건과 같은 수준에 위치한다. 부활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부터의 소생이 아니라, 잉태 시에 하느님이 영원으로부터 역사에로 개입했듯이 ‘역사로부터 영원에로의 초극’을 의미한다. 부활사건의 사실성 史實性 역시 사적 史的으로 명백하게 제시되지는 않는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모두 오로지 신앙인만이 파악할 수 있다. 신앙인은 은총을 통한 빛을 받아 사가들이 보지 못하는 데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다. 만일 어떤 신앙인이 그에게 나타난 계시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는 그 계시를 논증하려 애쓰지 않고 증언할 것이며, 자기 신앙을 공포할 것이다. 도한 그는 오로지 신앙 안에서만 생활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신앙을 가지라고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이처럼 복음사가들이 주의 기적적인 잉태에 대해서 말할 때도 바로 이런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역사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예수의 동정녀로부터의 출생문제를 해결하려는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된다. 자연과학도 종교과학도 그리고 역사 – 비판적 주석학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신학적 명상만이 오로지 이 문제를 해결한다. 신학적 명상은 사실성 史實性 문제를 논함으로써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실성 문제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 문제의 중요성은 구원사건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본래의 질문의 중요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교의의 핵심은 예수가 현세 인간적 부친을 가지지 않았다는 정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생명과 존재의 창시자요 원천이신 성부께서 바로 예수의 인간적 실존의 유일한 기반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동정녀 출산을 거스르는 반론을 제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예수의 온전한 인간임이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간성을 성부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에 완전하고 충만하게 받았다. 예수 분만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다 그래야 될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창세 1,27) 때문이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이 모상 模像을 상실함으로써 인간은 이 충만한 인간성을 잃었다.그래서 인간은 항상 더 깊이 죄악에 빠져들 뿐 헤어날 길이 없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항상 죄 속에 살고 있던 부모와 그 세계에 태어났고 그렇게 태어난 새로운 우주시민은 즉시 악에 물들었다.

성령의 힘으로 가능하게 된 동정녀 출산은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시작에 대한 하나의 표징이다. 동정녀 출산은 새로운 창조행위로써, 첫 번째 창조와 유대를 맺고 있다. 오로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재로 현존하고 있다. 동정녀 출산의 신앙조항은 마리아론적 명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론적 명제임이 분명해진다. 이 조항은 어머니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진술하기 전에 아드님에 관해서 진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조항은 주변적 진리가 아니라 중심 위치에 자리하는 핵심적인 진리이다. 이 조항에서 우리는 구원의 차원을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 구원은 순전히 은총에서 오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역사 役事 이다. 성부가 성령을 통하여 동정녀의 태를 열어서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구현되도록 한 것이다.

 

이 조항은 또한 마리아론적 명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물론 구원이 하느님의 절대적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곧 인간에 대한 사랑의 증거이기에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고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은 인간의 자유로운 신앙의 결단을 전제로 한다. 이로써 인간이 하느님의 동반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선물의 책임 있는 수용자가 되는 것이다. 이 선물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작품이다. 하느님에 대한 이 진정한 인간적 자세를 구세주의 모친이 되어야 할 한 여인이 환전한 상태로써 보여준다. 이 여인은 단순하게 믿고 조건 없이 신뢰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내적 자세의 상징적 표현이 곧 동정성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출산했다고 해서 하느님과 함께 공동출산의 원리일 수는 없다. 만일 마리아가 하느님과의 공동출산 원리였다면 신화에서처럼 신출산 神出産 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마리아는 자유로이 받아들이는 분이다. 이렇게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동정녀로 머물고, 동정녀로서 어머니가 된다. 이는 성령의 힘으로 성취된다. 성령의 본질적인 선물은 성화이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마리아는 이 구원계획을 위하여 축성된다. 이것이 교회가 고수하는 평생 동정성의 핵심사상이다. 이 평생 동정성을 개별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는 거의 지엽적인 문제이다. 관건이 되는 것은 성 性이 아니라 마리아의 신앙이다. 그녀의 신앙은 가장 깊은 곳에 이른다. 마리아는 자신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선사한다. 그래서 마리아는 어머니가 되고 하느님은 마리아의 아들이 된다.

 

이 모든 것 안에서 교회를 위한 마리아 동정성의 의미가 두드러진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런데 신앙이란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임을 뜻한다. 하느님의 구원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몸의 지체가 된다. 이것은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마리아 안에서 신앙은 매우 투명하게 된다. 즉 그녀가 하느님께 행한 동정봉헌은 그녀가 그리스도와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근거 [基盤]이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육화를 가져온 것이다.  다라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할 인류와의 충만한 연대성을 맺도록 자신을 내어 놓는다. 이로써 인류는 육화로써 세상에 충만 히 주어진 구원을 받게 된다. 따라서 마리아는 신자들의 모친 그리고 교회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제9장 마리아론의 필요성

 

이 책에서는 마리아론의 가장 중요한 자료와 문제를 시사하고자 하였다. 이 작업은 가능한 한 이치에 맞고 담담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끝없이 마리아의 찬미가를 읊거나 또한 열광하게 될 뿐 거의 아무 내용도 없는 소위 ‘좋다’ 는 마리아에 관한 서적을 경계하게 된 것은 확실히 좋은 현상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서적이 마리아에 관한 교리내용을 더욱 소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를 주의 깊게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주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구세사적 의미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본래의 마리아상을 거의 덮어버리다시피 했다. 마리아 상을 볼 때 먼저 장식에서부터 조심스럽게 그 상을 분리시켜야 하겠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나타나는 마리아의 모습은 하느님 같은 자태, 기적의 아가씨 또는 초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한 한 인간, 한 여인 본연의 모습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집필 목적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 고대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스 Diogenes [BC 412-323년 경 – 역자 주] 처럼 한 사람의 참 인간을 만나기 위하여 등불을 켜 들고 도시의 큰 광장을 헤맨다. 더구나 오늘날 이 시대의 비인간성은 우리를 더 넓은 광장으로 휘몰아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 정황에서 마리아로부터 비로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는 한 사람의 참 인간상을 발견하게 된다. 마리아는 우리에게도 자기와 같은 충만한 인간성을 지니도록 책임을 지워주는 한 인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에 관한 우리의 신학문제 전체를 의문시하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은총을 힘입은 마리아의 충만한 인간성이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의하여 포상 褒賞 된 것이라면 충만한 인간성의 소유자인 마리아를 단 하나의 신학논고 神學論考에서만 고립시켜서 고찰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거론하는 신학 어디서나 고찰해야 할 것이다. 마리아론의 중대한 주제는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신학적 인간학의 모형이 된다. 즉 하느님의 모성에 대한 신앙 명제는 그리스도론에서 주의 인간성에 대해 거론하는 부문에 속하며, 무염시태 교의와 평생 무죄성에 대한 교리는 은총론과 종말론의 한 부분적 요소가 된다. 마리아의 동정성 교리는 종말론이나 창조론 또는 계약신학의 한 명제가 될 수도 있겠다. 또한 현양 [蒙召 昇天] 에 대한 신앙명제는 종말론 안에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슈마우스 M. Schmasu가 다음과 같이 단정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므로 마리아론에서는 거의 모든 신학적 노선, 즉 그리스도론적-교회론적-인간학적 이고 종말론적 노선들이 합류되고 있다. 현대의 거의 모든 신학적 토론은 마리아론에 집결된다. 이와 같이 마리아론은 극히 중대한 신학적 진술의 교차점으로 나타난다.”16

이러한 상황이 하나의 신학논고로서 고유한 마리아론에 있어서는 마치 하나의 장애물같이 두드러져 보이나 실은 마리아론을 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의 자세에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얼마나 찬란하며,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우리의 길이 어떠한 가를 항상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신학을 위해 대표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마리아론에서 비로소 교회의 모습과 구원의 성사를 세계에 선사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교회의 지체인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의식하게 된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존재와 당위 當爲 Sollen사이의 간격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며 또한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이 충실하게 향하고 있다는 하나의 보증이 된다. 이와 같이 마리아는 우리 희망의 표정이 된다.

신앙에 대해서 진정하고 포괄적인 성찰을 할 때는 마리아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현재와 무한한 미래 속에서, 그리스도 신앙을 신학적으로 생각하고 효과적으로 생활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 그리스도 신앙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은 이 구원사를 시야에게 떨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느 신학이나 구세사의 중심사건의 직접적인 참여자인 마리아에 관해서 말해야 하며 모든 영성이 마리아에 의해 각인되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적 실존은 마리아적 실종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업적 전체를 긍정하지 않을 때,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드높은 구원의 구현은 마리아 안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과 마리아론, 그리스도 신심과 마리아 신심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마리아 신심의 위축이 결코 그리스도 신심의 향상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두 가지 신심의 관계는 경쟁적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다.

신학적으로 마리아에 대해 논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결과적으로 마리아를 공경해야 한다는 요청이 따른다. 이렇게 해서 이론이 실천으로 넘어가고, 신앙의 규범과 기도의 규범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진다. 이 조화는 그리스도교적 실존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마리아 신심은 포기해도 신앙생활에 별로 해가 없는, 기껏해야 소극적으로 묵인되고 용납되는 특수 영성만은 결코 아니다. 바오로 6세는 올바른 마리아 공경은 그리스도교 경신행위의 본질에 속한다. 마리아 공경은 바로 마리아에 대한 성서 진술과 교회 가르침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타당하다면 마리아 공경이나 그 양식 역시 자의적 자의적이 아닌 타당한 것이 될 것이다.17

마리아에 관한 묵상이 사리에 맞는지를 가늠하는 한 가지 척도가 있다. 그것은 마리아에 관한 묵상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관상하고 찬미하도록 이끌어갈 때 비로소 신학과 그리스도인의 실존이 목표에 이르게 된다. 마리아에 관해서 언급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오로지 하느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마리아를 통해서 그 교회의 지체인 우리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우리를 부른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말씀대로 구원이 선사될 것이다.

 

** 지금도 ‘필사 筆寫’ 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Disclaimer: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 Ign. Eph. 7,2. 교부 저서로부터의 이 인용과 이하의 인용은 Bibliothek der Kirchenvater, Kempten-Munchen 1911, 본문에 따라 재 인용된다.
  2. Ign. Eph. 19,1: “그리고 마리아의 동정성과 그녀의 출산, 그리고 주의 죽음과 같이 하느님의 고요 속에서 성취도기는 하였지만, 세상을 움직였던 세 가지 신비는 세상의 군주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3. Dial. E. Tryphone 100, 4-6: “우리는 뱀으로 말미암아 죄가 야기되기 시작했던 같은 도에서, 죄를 자양 止揚하도록 그가 동정녀를 통하여 인간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 무결한 동정녀였던 하와는 뱀의 말을 받아들인 후에 죄와 죽음을 출산하였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는 그와 반대로 천사 가브리엘이 그녀에게 복음을 가져다 주었을 때에 신앙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스티노가 이러한 대조를 이끌어 낸 것이 창세기 3,15로 말미암은 것인지 로마 5,12 이하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A. Mueller는 Marias Stellung und Mitwirkung im Christusereignis. 398-400에서 첫째 견해를 지지한다. R. Laurentin은 Kurzer Traktat der Marianischen Theologie, 52-55에서 두 번째 견해로 기울고 있다. 실제로 이 두 성서 텍스트는 비교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 것 같다. Augustinus, Enarr. In Ps. 103,6 참조
  4. Adv. Haereseas III, 22,4.
  5. A.a.O. IV, 33,4.
  6. A.a.O. IV, 33,11.
  7. Ign. Eph. 19.1을 참고로 할 수 있겠다. 동정성과 출산이 여기서는 신비로 간주되고 있다.
  8. Epiphanius von Salamis로부터 전승된 장문의 고백형식이 이러하다(DS 44.).
  9. 693년의 제16차 뚤리도 공의회와 649년의 라떼란 교회회의 역시 그러하였다.
  10.   네스토리우스를 반박하는 키릴로의 ’12명제’ 중에서 첫째 명제는 다음과 같다. “엠마누엘이 진실로 하느님이라 고백하지 않는 사람과 거룩한 동정녀가 육화한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을 육체로 출산하였기 때문에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파문이다”(DS 252). DS 251도 참조
  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Unitatis Redintegratio 11항: “가톨릭 교회의 여러 진리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기초와의 관계는 서로 다른 것이므로 여러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그 진리들 사이에 질서와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 전체적으로 A. Mueller, Marias Stellung und Mitwirkungim Christusereignis 참조.
  13. 교부시대 이래 활발하였던 ‘아벨로부터의 교회 표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재차 포착하였다.
  14. 이 표상은 성바오로의 ‘그리스도의 몸 신학’과 ‘그리스도의 몸 신비학’에 그 성서적 기초를 두고 있다. 에페 4,15 참조.
  15.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교서 Marialis cultus 16-22, 32, 57항
  16. M. Schmasu, Katholishe Dogmatick V, 7.
  17. Marialis cultus 56항. 이 문헌에서 제시된 대략적인 방향노선에 의하면, 마리아 공경은 성서적이고 전례적이며 또한 교회 일치적인 성격을 띠어야 하며 인간학 인간학의 통찰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29-37항 참조).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