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제1장 청강생

제2장 신학생

제3장 병신 도착

제4장 프랑스에서의 첫 방학

제5장 프랑스에서의 첫 학기

제6장 미니 아가씨가 맺어준 인연

제7장 코드 다쥬르의 이방인

제8장 주님! 어떠자고 나는

제9장 나는 거부한다

제10장 쟌느의 구원

제11장 주여, 한 말씀만 하소서!

제12장 이 한 몸을 바치며

제13장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제14장 프랑스를 떠나면서

 

 

 

제8장

주님! 어쩌자고 나는….

 

그렁꼴라 가족과 함께 15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제라르메르 별장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신학교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모든 것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잇는 것처럼 보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환경이 우리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짓누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절실히 체험했다. 쟌느의 사랑스러움에 대한 내 갈등은 이미 내 의지의 한계 선상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곳을 떠나, 내 의지를 차갑게 굳힐 수 잇는 신학교로 되돌아 가는 길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마침 나를 위해 다행한 일은 파리에서 살고 있는 마담 그렁꼴라의 부친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전보가 와 있었고, 그분은 또 파리로 급히 올라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리행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낭씨까지 가야만 하는 마담을 동행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 날 저녁 무렵, 쟌느는 서운한 표정으로, 같이 호숫가를 산책하자고 제의했다. 호숫가 수영장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는 한 동안 묵묵히 걸었다. 쟌느를 내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실은 나도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태오, 너 나를 피하려 하고 있지? 솔직히 말해 봐.”

항상 직선적이고 솔직하여 두려울 정도로 순진한 그녀는 또 한 번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도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래, 쟌느! 네 말대로 내가 너를 피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피하는 것보다는 후퇴 작전을 쓰기로 했어. 피한다는 말은 너를 완전히 떠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후퇴는 다시 만나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않아? 그래서 이 시점에서 내가 잠시 후퇴하는 것 만이 우선 나를 위해 좋고 또 너와의 우정을 위해서도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렇게 후퇴하고 싶어하는 너를 나는 추격하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그 후퇴가 어째서 우리 둘의 우정을 위하는 길이 되지?”

“그건 묻지 마! 그렇다고만 알아 둬.”

“그건 너무나 독선적인 말이야. 그리고 나는 무엇이든지 모호하거나, 애매하거나 선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주 질색이야.”

“그럼 솔직히 말하지. 나는 네 앞에서 신부가 되려는 내 의지가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어.”

“그럼 넌 내가 너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너를 친구로서 사랑했을 뿐이야.”

“유혹? 그렇게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 네가 우발적으로 나를 유혹할지 모른다고 얼마 쯤은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네 잘못이 아냐.”

“그것은 어쩌면 내 잘못인지도 몰라. 내가 너를, 특히 동양인들의 생활 습성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친구처럼 스스럼 없이 대한 게 잘못이었는지 몰라. 하지만 나는 너를 친구로서 사랑해.”

“아니야, 쟌느! 그것은 너와 내가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생활 환경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아온 결과 뿐이다. 그래서 나에 대한 너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순진한 태도를 내가 때로는 받아줄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남녀 간의 친구라는 개념과 우리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그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어. 우리 한국에서는 젊은 남녀 간에 친구라는 말도 잘 쓰지 않으며, 심지어 애인들 사이에도 공공연히 악수도 잘 안 하는 사회야. 남녀 교제가 개방적인 너희들의 생활 속에서 나는 너를 단순한 친구로 대하기가 때로는 힘이 들었어. 습관이라든가 생활 감정 같은 것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너희들의 생활 속에서, 또 너의 꾸밈 없는 태도 속에서 네가 친구로서보다는 한 젊고 아름다운 마드모아젤로 보일 때가 종종 있었어.”

“그래서?”

“그래서 나는 네 앞에서 후퇴하는 거야.”

“태오, 나를 미워해?”

쟌느는 쓸쓸한 기분으로 말했다.

“왜 내가 너를 미워하겠어. 나는 너를 친구로서 사랑해.”

“미워하지 않는다니까 고맙긴 하군. 그런데 태오, 이전에도 물어 본 말이지만, 너는 그렇게도 신부가 되고 싶니?”

쟌느는 내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되고 싶어.”

나는 내 마음 한 언저리에 쟌느의 부드러운 사랑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러나 내 말 속에는 힘이 없었다.

“신부라는 너의 장래 생활에 대해 두려운 감정 같은 것이 없니?”

“두려워….”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너로 하여금 신부 생활을 두렵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중에서도 제일 큰 원인은 뭐야?”

“지금 생각으로는 신부들의 독신생활에서 오는 고독감일 것 같아. 주님의 뒤를 이어 몸 바쳐온 수 많은 신부, 수도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분들이 홀로 살아가신 그 일생을 통하여 나도 그들처럼 홀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과 신념을 갖고는 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이 아니겠어? 때때로 느껴지는 내 고독의 한 구석에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는 가정에 대한 미련이 일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리고 신부로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도 어느 한 순간 애정을 느끼게 해 주는 여자들이 없지 않아 있겠지. 그럴 때마다 그 인간적인 애정을 죽이며 살아가야 되리라 생각하니 내 장래가 두렵기만 해.”

“오죽 했으면 쉰 살이 넘은 내 삼촌 신부가 다 결혼을 했겠니?…. 그러면서도 너는 신부가 되고 싶어하니?”

“그 무엇인가가 내 내면 속에서, 내 인간적 욕망과는 반대로 나를 사제직으로 이끌어 가고 있어. 내가 반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사명감이, 내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외치고 있어.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요즘 나는 이 외침에, 이 사명감과 귀와 눈을 닫고 돌아서려고도 해 보았어. 그러나 그렇게 할 힘도 내게는 없었어.”

“태오, 그럼 너는 강요 받은 성소(聖召)를 갖고 지금 신부가 되려고 하는구나?”

“강요 받은 성소라고?….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 조국에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전쟁 중에 그 숱한 민족적 비극을 내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신학생이 아니 되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요즘 나는 한국이라는 공간성과 시간성 속에서 태어난 것을 몹시 후회하기도 했어. 하지만 전쟁 중에 목격한 우리 민족의 고난, 그리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간 전우들의 고독한 죽음을 외면하고서 나만이 편안히 살아갈 수도 없어. 그리고 나는 전쟁 중에 포탄에 맞아 찢어진 전우의 몸에서, 그의 고통에서, 그의 갈증에서, 그의 죽음에서, 십자가 위에서 목말라하시며 죽어가신 주님을 만났어. 그때 주님은 그 전우의 고통 속에 함께 계셨고, 그와 함께 목말라 하셨고 그와 함께 죽으시며 나에게 그 어떤 사명을 주셨어. 나는 그 사명을 사제직으로 받아들였고, 지금 신부가 되려고 노력 중이야. 요즘 내가 갈등 속에서 이 사제직을 향한 노력을 포기하고자 몸부림 쳤더니 전쟁 중에 만난 그 주님이 또 내 가슴 속에 나타나셨어. 나는 이 주님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아.”

“네 말을 들어 보니 신부가 되려는 너의 동기가 아주 감동적이구나. 하지만 태오, 네가 불쌍해.”

“왜?”

“왜라니… 멀쩡하게 젊고 건강한 사람이 홀로 살아가니까 불쌍하게 여겨지지 않니? 너를 알게 된 이후, 신부들에게 독신제도를 제정한 교회의 처사가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일처럼 느껴지며, 이런 교회를 미워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너는 우리의 생활 환경과 풍습이 다른 나라에서 살아왔지만 너는 때로는 우리보다도 더 풍부한 생활 감정과 이 감정에 대한 멋을 알고 있어. 너는 인간의 삶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야. 이러한 감정과 멋과 뜻을 죽이며 살아가야 할 네가 정말이지 불쌍해!”

“그럼 너는 내가 신부가 안 되기를 바라니?”

“신부가 되고 안 되고는 너 자신의 문제야. 나는 너의 친구라는 입장에서 너를 동정하며 너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 뿐이야. 그러나 나는 네가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며, 네가 지니고 있는 그 풍성한 생활 감정 속에 멋이라는 삶의 향기를 꽃 피우며, 또 뜻이라는 삶의 보람을 충만 되게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도 솔직한 내 심정이야. 너는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또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가져야 할 천성적인 성품과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

“쟌느, 감사해. 나를 그렇게 훌륭하게 평가해 주니 정말 감사해. 그러나 나는 이런 문제데 대한 대화를 이제 끝내고 싶어. 내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들이니까….”

“태오, 너는 항상 피하는 입장에 늘 서려는 구나. 좋아! 후퇴하는 너를 숨가쁘게 추격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너…. 그만 말할래.”

무언가 나에게 말을 계속하려는 쟌느는 집 쪽을 향하여 갑자기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뒤따라 걸었다. 얼마를 뛰어가다가 쟌느는 모래 밭에 넘어졌다. 일어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다가 그녀는 다시 발목을 잡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쟌느, 웬일이야?”

소리치며 달려가 그녀를 일으켰을 때 그녀는 발목을 삐어 걸을 수가 없었다. 삔 발목에서 오는 고통 때문인지 쟌느는 입술을 깨물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것 봐, 쟌느. 예쁜 마드모아젤이 마치 말괄량이처럼 뛰니까 넘어지지. 오, 가엾은 나의 쟌느. 내가 안고 집에까지 가지.”

나는 쟌느를 안고 집 쪽으로 한참 걸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얼굴을 내 어깨 너머로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쟌느 너 왜 웃니? 너 지금 연극 중이구나?”

나는 그녀가 또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리고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목을 자기 두 팔로 힘 주어 감으며 말했다.

“그래, 태오 연극도 참 멋진 연극이지. 이만하면 성공적이야. 내가 발을 다쳐 있을 때 네가 나를 안아 주었듯이 너에게 한 번 더 안기고 싶었어.”

나는 쟌느를 내던지듯 모래밭 위에 내려 놓았다.

쟌느는,

“태오, 이것이 한국 신사들의 예의야? 아무리 장난쳤다 해도, 그래 품에 안긴 숙녀를 물건처럼 내던지는 법이 어디 있어. 이것은 나에 대한 사형감의 모욕이야.” 하고 말하며 일어섰다. 쟌느는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쟌느, 너는 정말 때려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고…. 때로는 천사 같고 때로는 사탄 같기도 하고…”

나는 이렇게 말하며 그녀의 뺨을 살짝 한 대 때려 주었다. 쟌느는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뛰어가는 데도 따라오지 않으니까 네가 갑자기 얄미워졌어. 그리고 너의 그 도도한 태도가 미비기도 했지. 그래서 장난을 해 본거야. 그런데 넌 이제 숙녀의 뺨까지 때리기야?”

“네가 미워서 때린 건 아냐. 그리고 아프라고 때린 것도 물론 아니야. 내가 때린 것이 아프니?”

“맞은 뺨이 아프기 이전에 나는 모욕감을 느껴 마음이 아파.”

쟌느는 정말 모욕감을 느끼고 분해하는 것 같았다. 절대 아프게 때린 것은 아닌데도  쟌느가 모욕감을 느꼈다니 나도 미안해졌다.

“쟌느, 그렇다면 내가 사과해 미안해.”

나는 쟌느의 뺨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숙녀가 느끼는 이런 모욕감은 미안하다는 간단한 사과 말로 해결할 수 없는 거야.”

쟌느는 아주 심각하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쟌느? 상한 너의 기분을 위로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숙녀에 대한 예의를 알고 있는 신사로서 하란 말야. 나는 네가 그 정도의 상식은 알고 있는 신사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알아서 사과하란 말이야.”

“사과의 뜻으로 너를 10미터만 안고 갈께. 그러면 되겠지?”

나는 이번에도 쟌느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하고 말했다. 쟌느는 사실 화난  것도 아니었다.

“10미터는 너무 인색해.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럼 20 미터?”

“그것도 부족해.”

“그럼 50미터?”

“아직 부족해.”

“그럼 백 미터?”

“좋아, 백 미터로서 관대하게 용서해 주지.”

“그럼 한 걸음을 50 센치로 잡고 2백 걸음만 걸으면 돼, 알겠지?”
나는 쟌느를 안고 하나, 둘, 셋을 세며 걸어갔다. 쟌느도 나를 따라 발걸음을 세었다. 나는 2백을 세는 순간 아까처럼 모래밭에 쟌느를 내던지듯 내려 놓았다.

“야, 이것은 너무 심하다. 하여튼 너희 나라 여자들은 불쌍하겠다.”

쟌느는 모래밭 위에 누운 채 말했다.

“왜?”

“남자들이 다 너 같으면 말이야. 숙녀에 대한 이러한 예의가 도대체 어디 있어?”

“우리나라 여자들은 너희들처럼 만나면 키스를 하거나 안아 주거나 쓰다듬어 주지 않아도 행복한 여자들이야. 은근한 정(정) 속에 눈짓으로 사랑하며 마음으로 이해하고 말 없이 지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부부가 다정하게,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거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희처럼 소란스럽고 영화배우 같지 않아도 잘들 사랑하며 오늘까지 살아 왔어.”

“그 답답한 소리 하지 말아. 표현 없는 사랑은 백 개가 있어도 소용 없는 거야.”

“너희들은 표현이라는 외부적인 감각을 통해서 사랑하지만 우리는 마음 속에 느끼는 정으로 사랑하거든. 이것이 너희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점이다.”

바로 그때 그렁꼴라 부부가 웃으며 우리들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무슈 그렁꼴라는 모래 사장 위에 누워 있는 쟌느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마담 그렁꼴라는 쟌느의 모리를 손질해 주며 말했다.

“쟌느, 태오 신학생님께 너무 장난치면 못 써요.”

“아냐 엄마, 나는 참 재미있어. 태오는 참으로 순진해. 내가 연극하면 곧잘 속아 넘어가거든. 그런데 고집은 황소 고집이야.”

우리는 쟌느의 말에 모두 웃었다.

우리는 별장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을 들었다. 마담 그렁꼴라는 내일 떠날 여행 준비에 수선을 피우고 있었으나 모두들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라 피곤해 일찍 잠자리로 들었다.

 

다음 날 예정대로 신학교에 돌아왔다. 텅 빈 그 커다란 건물, 학장 신부님은 계시지 않았고, 교수 신부님들도 한 분도 없었다. 다만 은퇴한 노인 교수 한 분만이 학교를 지키고 계실 뿐이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수녀님들도 피정신공 차 떠나시고 없었다. 식모 할머니가 주방을 맡고 계시면서, 방학 중에 왜 돌아왔냐고 말하며 달갑게 여기시지 않는 눈치였다. 아마도 나 때문에 주방 일이 많아질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별안간 한국 신학교에서 머슴살이하며 혼자 지내던 방학 생각이 나서 이 신학교도 싫어졌다. 내 마음은 이 텅 빈 신학교처럼 공허하기만 했다. 쟌느에게서 떠나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녀 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단 하룻밤도 이 텅 빈 신학교에서 지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학교 성당에 들러 기도하려 했으나 말 한 마디 내 마음 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멍청히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때 제대 위에서 반짝이고 잇는 성체 불이 내 시선을 끌기도 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외면하고 성당 문을 꽝 닫고 나가 버렸다.

나는 삭막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이 신학교도 방학 중에는 있을 곳이 못 되었다. 텅 빈 이 건물은 무든 괴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방학 중에 되돌아 온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나는 이 곳에서도 이방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내가 있을 곳은 이 세상에 아무데도 없는 것만 같았다.

 

쌍삐에르 드 귀브롱의 닥터 쿠에상 댁에는 이번 여름 방학 중에는 가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몇몇 친한 신학생 친구 집에 전화하고 찾아갈까도 생각했으나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 한 몸을 둘 곳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이방인의 신세였다.

짐도 풀지 않고, 침대에 누워 멍청히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쟌느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만이 천정을 가득 채웠다. 쟌느도 나를 비웃고 놀리는 것만 같았다.

<태오야, 넌 바보야. 너는 너 자신의 환상 속에 갇혀 있는 일종의 포로야. 아무도 너보고 신부가 되라고 한 일도 없는데 너 혼자서 영웅심으로 우쭐거리고 있는 거야. 그러한 망상 속에서 너는 너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는 거야. 그 환상의 잠에서 깨어나라. 나는 언제라도 너를 환영해 줄 테니.>

나를 비웃고 있는 듯한 쟌느의 음성이 내 귀를 때리고 있었다. 쟌느의 곁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학교 뒤 공원을 산책했다. 그 맑은 공기도, 그 푸른 나뭇잎들도 숲 속에서 울고 있는 새들의 노래도,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디를 가나 내가 있을 곳이 없었다. 그때 나는 <좋다! 이왕에 갈 곳이 없는 이 몸, 그리고 이방인의 이 신세,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이나 하자> 하고 결심하며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 방문을 여는 순간 책상 머리에 놓여 있던 <조국의 돌>이 눈에 크게 띄었다. 나는 내 두 눈 언저리가 뜨거워 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조국의 돌을 품에 안았다. <그래, 내 벗 조국의 돌아! 너와 함께 있는 한, 비록 지금 오늘 밤, 이 몸을 눕힐 곳이 없는 신세지만 나는 이방인이 아니야. 절대로 나는 이방인이 아니야.> 내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조국의 돌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같이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했다. 가방은 들고 낭씨 역으로 나오며 만나는 첫 기차를 타고 그것이 가는 끝까지 가 보기로 작정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첫 기차가 룩셈부르크 까지 가는 차였다. 나는 그 기차를 타고 무작정 룩셈부르크까지 가기로 했다. 낭씨에서 룩셈부르크 까지는 약 두 시간의 거리였다. 기차는 벌써 메쓰를 지나 북으로 북으로 치닫고 있었다.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룩셈부르크 공국(公國)에 있는 클레르보의 성 보누아 수도원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내가 갈 곳이 꼭 한 군데 있다면 그것은 수도원이다. 클레르보의 성 보누아 수도원을 찾아가자, 그 수도원은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곳, 누구도 사양하지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곳, 찾아 오는 손님을 주님의 방문처럼 환영해 주는 곳, 그래, 그곳에 가자.>

룩셈부르크 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시외로 나와 ‘오토스톱’으로 수도원에 도착하니 문이 닫히기 몇 분 전이었다. 언제 보아도 인자한 표정의 발테로메오 문지기 수사님이 우선 나를 환영해 주셨고,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나를 웃음으로 위안해 주셨다. 그분이 정해준 방에 짐을 놓고 나는 급히 만과기도에 참석했다.

역시 이곳으로 잘 왔다고 생각했다. 점심, 저녁도, 굶어 텅 빈 배에서는 시장기가 요동하고 있었으나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수사님들의 노래 기도 소리에 내 소리도 한데 어울렸다. 나는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날 밤 냉수 한 사발로 시장기를 씻고 나는 그런대로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 다음 날  아침부터 나는 전번 여름 방학 때처럼 오전에는 수사님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허락을 원장 신부님으로부터 받았다. 앙드레 수사 신부님은 로마로 떠나시고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엌 일을 도와 주기로 했다. 나는 주로 감자를 깎고 샐러드 용(用) 야채를 씻고 식탁 청소를 맡았다. 기숙사에 있는 손님들까지 합쳐 백여 명이나 되는 이 대 가족의 주식인 감자를 매일 아침, 삐에르 수사님, 죤 그로오드 수사님, 제라르 수사님과 함께 깎았다. 감자 물이 들어 손바닥이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오전 일하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았다. 금욕주의자들의 마른 몸매에 빛나는 두 눈을 가진 그 수사님들의 엄숙한 모습, 그런가 하면 인간적인 고독을 극복한 그 어떤 초월성의 의지와 신비성을 풍기고 있는, 그분들의 내적 평화로움, 이 평화로움을 충만 시키고 있는 그 수사님들의 겸손과 인자함과 다정스러운 태도, 이분들 곁에서 일할 때 내 마음도 함께 안정되고 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감자를 깎으면서 주님께 기도 드렸다.

“주님, 내가 이 감자를 깎듯, 주님께서도 쓸 데 없는 내 인간적 갈등의 껍질을 깎아 주소서.”

나는 샐러드용 야채를 씻으면서도 기도 드렸다.

“주님, 내가 이 야채를 씻으면서 쓸모 없는 잎사귀를 떼어 버리고 흙 가루를 털어내듯이 주님께서도 나의 쓸모 없는 이 세속에 대한 미련을 내 마음으로부터 떼어 내시고, 이 세속의 유혹으로 얼룩진 내 신앙을 맑게 씻어 주소서.”

나는 식탁을 닦으면서도 주님께 기도 드렸다.

“주님, 내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그분은 내 방을 청소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당신께 기도 드렸습니다. <주여 내 마음을 이처럼 깨끗하게 새 주소서. 내 마음을 닦아 주시고 흐트러진 이 마음에 질서를 주시며 내 영혼을 거룩하게 해 주소서.> 주님, 나로 하여금 내 어머님을 본받게 해 주시고, 내 어머니의 마음과 신앙을 닦아 주셨듯이 세속의 미련으로 상처받고 피 흘려 더럽혀진 내 마음과 당신을 향한 내 신앙을 닦아 주소서.”

 

갑자기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정말 어머니가 그리웠다. 어머니 품에 안겨 어린애처럼 실컷 울고 싶었다. 그러자 내 두 눈 언저리가 뜨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그때 마치 어머니의 음성이 조용히 들려오는 것 같았다.

“태오야!”

“네, 어머니, 지금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주님 곁으로 가기 위해 너를 떠나던 날,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나 항상 네 가슴 속에 너와 함께 살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어머니, 지금 나는 내 두 눈으로 살아 계신 어머니를 뵙소 싶고, 어머니 가슴에 안기고 싶어요.”

“내 사랑하는 아들, 태오야 외로우니?”

“예 외로워요. 어머니!”

“외로워하는 네 가엾은 마음 안에 나 역시 외롭구나.”

“지금 나는 어머니 품 안에서 실컷 울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태오야,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 두 번이나 우셨단다. 눈물은 인간 감정의 진실한 표현이란다. 지금 네가 흘리고 잇는 눈물을 주님도 축복 해 주실 게다. 태오야 <우는 자가 진복자로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네 안에 틀림 없이 실현되리라.”

“어머니, 나는 지금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어요. 주님으로 하여금 나를 어머니 곁으로 불러 주시기 기도해 주세요.”

“아니다. 태오야! 너의 외로움 속에서 나도 눈물을 흘릴 게고 너의 기쁨 안에 나도 주님께 찬미 드릴 것이다. 나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마, 태오야.”

 

 

오후에 나는 수도원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특히 공부에 온 힘을 쏟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책을 열심히 읽어도 무엇 하나 머리에 남는 게 없었다. 오전 중에 수도원 주방에서 수사님들과 함께 일할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으나 방 안에 호자 남아 있을 때는 그 어떤 불만과 공허가 내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쓸쓸한 내 마음과 몸을 몹시 괴롭혀 주고 지치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도원 뒤뜰에 있는 수도자들의 묘지를 찾아갔다. 몇 세기 동안의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수도원 묘지라 거기에는 수 백 개의 묘 비석이 질서 있게 세워져 있었다. 주님의 뒤를 이어 인류 구원을 위해 촛불처럼 몸을 바쳐, 순명과 순결과 겸손과 청빈의 복음적 길을 살다 간 신앙의 증인들이 바고 거기 있었다. 그들 중의 어떤 분들은 한 때 지금의 나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앞에 두고 떠나온 세상을 뒤돌아 보며 망설이고 괴로워하기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또 결혼과 가정 생활에 대한 끈질긴 미련 속에 자기들의 인간성을 아쉬워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끝까지 수도자로서의 절개와 신앙과 주님을 향한 사랑을 지키며 살다 간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 비석들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주님과 교회와 인류의 구속사업을 위해 그분들처럼 나도 훌륭히 일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에게 강력히 제시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훌륭한 증언이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모든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초극하고, 오직 순명과 순결과 청빈의 생활을 통해 인류의 구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 거라는 이 말 없는 가능성, 이러한 가능성과 증언은 나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매일같이 그 묘지를 찾았다. 나는 거기서 비석 아래 묻혀 있는 이름도 모르는 그 많은 수도자들과 깊은 동지 의식을 느꼈다. 그들은 이미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는 듯하였다. 이 지상에서 나그네 아니고 이방인 아닌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우리들에게 애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부모 형제가 있고, 가정이 있고, 벗들이 있고, 고향이 있고, 조국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이 나그네 길에서 어쩌다 만난 한 때의 동반자들이요, 또 잠시 몸을 쉬고 간 여관 같은 것에 불과했다. 지금 무성한 이 나뭇잎들이 언젠가는 한 줌의 낙엽으로 떨어지듯, 우리도 때가 되면 몇 줌의 흙으로 변해 없어질 낙엽과 같은 운명이 아닌가? 그러나 그 묘지들은 나에게 더욱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저 피안(彼岸)의 세계, 저 성부(聖父)의 나라를 위해 이 지상에서 잠시 살다 간 그들은 지금은 이 침묵 속에서도 고요히 주를 찬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 묘지를 좋아했다. 거기서 나는 진정으로 어머니 품 안의 따스함 같은, 내 고향의 다정함 같은, 내 조국의 어루만짐 같은 감정들을 짐짓 느낄 수 있었다. 이 묘지에서만은 나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어느 날 마담 그렁꼴라의 편지가 낭씨 신학대학을 거쳐 수도원으로 왔다. 병환 중에 계시던 아버지의 수술 결과가 좋아 이제는 완치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서두에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편지는 놀랍게도 쟌느의 교통사고를 알리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자로서의 외모를 크게 손상시킬 정도의 상처는 입지 않았으나, 병원에서 외롭게 나를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어머니로서 차마 볼 수 없노라고 마담은 썼다. 그리고 한 번 집에 다녀가라는 간곡한 부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9월 말 방학이 끝날 때까지 이 수도원을 단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인간적으로는 마담 그렁꼴라에게 미안했고 쟌느에게 대해서는 마음 아팠지만, 카드에 짧게 몇 마디 써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모성심상 앞에 있는 성초에 불을 붙이며 쟌느의 상처가 하루 속히 낫기만을 기도 드렸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이제 나는 신학과 2학년이 된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으나 작년과 같은 의욕과 열의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월말 시험에는 겨우 낙제점수를 면할 정도였고, 염려하는 표정으로 나를 살피는 지도 신부님을 대하기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세월은 빨리 흘렀다. 성탄절도 지났고, 성 주간에 들어선 초봄의 어느 날이었다. 내 일기장에서는 당시의 심정을 읊은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뜨인다.

 

 

 

주님 어쩌자고 나는…

 

주님 피곤에 지쳐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공부에 대한 의무감은 도리어 나를 괴롭게 만듭니다.

 

사방의 흰 벽엔 지난날의 추억이 영화화 되어,

나를 둘러싸고 과거의 세계로 몰아치고 있습니다.

주님, 어쩌자고 나는,

이 좋은 날씨에 방 안에 갇혀 있어야 하나요?

 

향수에 젖은 내 쓸쓸한 마음은 방향을 잃고

사랑에 굶주리고 기쁨에 목마른 나그네 되어

잊혀진 꿈을 찾아 정처 없이 방황합니다.

그리고 고독에 짓눌린 이 몸은 외롭기만 합니다.

주님, 어쩌자고 나는,

이 좋은 세상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야 하나요?

 

자연은 이처럼 아름답고 삶의 정열을 쏟고 있는데,

나무에는 꽃이 피고, 고달픈 우리를 반겨 주는데,

새들은 기쁨을 노래하며 사랑을 속삭이는데,

신학교의 이 골방에는 살 맛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 어쩌자고 나는

이 아름답고 활기 찬 자연 속에 홀로일까요?

 

창문을 닫고 커텐을 치며 외계를 막아 봅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주변의 일체를 잊어 봅니다.

그러나 내 상상은 제한 없이 허공을 날으며,

신학생이란 내 현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주님, 어쩌자고 나는

사랑과 가정을 거부하고, 이곳에 왔을까요?

 

주님, 당신의 뒤를 따르는 것 좋은 일이지요.

또 하나의 당신이 된다는 것, 장한 일이지요.

당신처럼 십자가를 진다는 것, 용감한 일이지요.

하지만 현실의 내 앞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주님, 어쩌자고 나는

이 험하고 쓸쓸한 인생을 택했을까요?

 

주님, 내 삶은 무겁고, 시간은 길기만 합니다.

나처럼 고독에 짓눌리고 피곤하기만 할 때,

삶의 기쁨과 사랑에서 쫓겨난 이방인이 될 때,

당신의 십자가는 나를 반항하게만 만듭니다.

주님, 어쩌자고 나는

이 고독하고 좁은 길을 가야만 할까요?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이 불쌍한 영혼에게,

당신이 지고 가신 십자가가 가볍다는 것을,

당신이 베푸신 사랑이 나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서만 세상의 구원이 있다는 것을,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이 불쌍한 영혼에게,

 

주님, 내 눈에서 흘러내린 이 두 줄기의 눈물 속에,

당신께 향한 내 사랑과 내 신앙을 굳혀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당신의 그 목마름 속에,

골고다 산마루에서 홀로 죽어가신 그 고독 속에,

인류를 위해 바치신 당신의 사랑을 본받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또 하나의 당신이 되게 하소서.

 

 

 

 

제9장

나는 거부한다

성 주간 예절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성 목요일이었다. 이날 신학교는 시내에 있는 성직자 양로원에 가서 대미사를 지내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 양로원에 계시는 신부님들은 대부분 미사를 지낼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이 날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성당에서나, 수도원에서나 미사 한 대만을 지내는 풍습이 또한 있었다.

성 목요일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 하신 말씀을 통하여 또한 사제직을 설정하셨다. 그래서 성 목요일은 전세계 사제들의 축일이기도 했다. 우리 신학생들도 양로원에 계시는 신부님들을 축하하기 위하여 미사 예절을 담당했었다. 이번에는 학장 신부님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시게 되었고, 나를 포함한 20여 명의 예정 요원과 성가대원 신학생들도 양로원으로 갔다.

아, 그러나 거기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이라고는…..! 그것은 신부로서의 내 일생 말로의 비참한 모습과 사랑을 설교하는 교회의 위선된 모순과 부정 그리고 그 부정에 대한 내 반항의식이었다.

 

4월이지만 날씨는 아직도 싸늘했다. 햇빛이 비치는 양지 쪽에 나와 앉아 있는 저 신부님들의 처량한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내 등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검은 수단에 비듬이 허옇게 떨어져 있는가 하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신부들도 있었다. 중풍으로 손발을 떨며 어정어정 걸어 나오는 모습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먼 산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실 없이 웃고 있는 얼빠진 모습은 내 가슴에 일종의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대로 성한 걸음으로 왔다갔다하며 묵주신공을 바치고 있는 늙은 신부들의 모습에서도 나는 조금도 존경심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신부님들은 낡아빠진 수단 가슴 앞자락에 애들의 장난감 같은 녹슨 훈장을 달고 있었다. 세계 제1차 대전에서 조국을 위해 공훈을 세운 분들이겠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경멸스럽게만 보였다. 이제는 다 늙어 무덤 앞에 나선 그들이 그것도 자랑거리라고 녹슨  훈장을 달고 있느냐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분개하고 있었다. 일생을 신부로서 겸손을 설교해 왔을 그들의 행위가 가소롭게만 여겨졌다. 그리고 낡아빠진 샤느완(교회의 참사위원, 일종의 명예직)의 카마이(양털로 된 샤느완의 예복)를 입고 거기에 샤느완의 상징인 십자훈장을 달고 있는 저 꼴들이란… 그것을 입고 그래도 남들보다는 낫다고 으시대는 저 늙은이들의 오만성! 그것도 하나의 명예라고…. 그나마도 저런 샤느완의 카마이 하나 얻어 입지 못한 이 늙은이들의 비굴한 표정은…. 이것도, 저것도, 모든 것이 꼴불견이었다.

 

나도 신부로서 어쩔 수 없이 저 꼴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완강한 저항심 같은 것이 내 마음 안에 생겼다.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분개할 정도로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일생을 몸바쳐 온 이 늙은 신부들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도라니, 나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늙어서 쓸모 없이 되었을 때 교회는 차마 그들을 길거리에 버릴 수 없어 포로 수용소 같은 이 양로원에 가두어 놓은 것은 아닐까? 일생을 헌신하고 봉사해 왔어도 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집 한 채, 방 한 칸 없는 이 늙은 신부들은 마치 하루 세 끼 밥만을 얻어 먹기 위해 시간만 기다리며 살고 있는 포로들 같았다. 인간적은 삶의 분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함만이 이 양로원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교회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악랄한 고용주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고용주에게 한 번도 반항해 보지 못하고 급기야는 이 양로원까지 밀려 들어온 이 늙은 신부들을 나는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이 양로원에 있는 신부 대부분이 일생을 본당 신부 한 번 못하고 살아온 부들이란다. 남들처럼 똑똑하지 못해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며 순명(順命)이 덕이라는 이름아래 그늘에서만 살아온 그들이었다. 말하자면 이 양로원은 신부 사회에서 낙오된 신부들의 집합 장소 같은 곳이었다. 교회 내에서도 일반 사회처럼 능률 위주의 행정과 그 속에서의 격심한 생존경쟁이 존재한다는 것도 배웠다. 이것이 정의와 평등과 사랑을 가르치는 교회의 숨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용솟음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반항한다. 이 부정스러운 교회를 나는 온 힘을 다해 거부한다. 나는 이런 위선적인 교회를 타도하기 위하여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겠다.> 나는 마음 속에서 소리쳤다.

그날 나는 신부로서의 내 인생 말로가 어떠리라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남들처럼 똑똑하지 못하고 약삭빠르지 못한 내가 늙어서 갈 곳은 바로 이러한 양로원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경멸하고 있는 이 늙은 신부들의 비굴한 모습 하나 하나가 이 다음 늙어서 갖게 될 내 모습 자체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러한 모습으로 전락되는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보고 싶은 진정한 욕구가 일어났다. 나는 자신에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거부한다. 내가 늙어서 저런 비굴한 꼴 외에 가질 게 없다면 나를 그렇게 만드는 이 삶의 길을 나는 단호히 거부한다. 그래, 나는 이제 결정적으로 신학교를 떠나고 싶다.>

 

 

착잡한 심정 속에서도 미사는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나는 미사 순서에 따라 맡은 예절을 집행하고 있었다. 영성체 시간이었다.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학장 신부님은 우리 신학생에게 걷기 어려운 신부님들을 도와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신부님들이 중풍으로, 또는 너무 노쇠해서 잘 걷지 못했다.

나는 그날 영성체를 하지 않았다. 내가 신학교를 떠나자고 결심은 했지만, 그것은 주님을 거부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성체축일인 동시에 사제들의 축일인 그 미사에서 나는 영성체를 할 수 없었다. 이 늙은 신부들에 대한 경멸감과 교회에 대한 반감 때문에 나는 도저히 주님의 몸 자체인 성체를 내 모음 안에 모실 수 없었다. 동료 신학생들의 놀라운 속에서 또한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학장 신부님의 그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내 자리에 서 있었다.

노인 신부님들의 영성체가 시작되었다. 저쪽에서 한 노인 신부가 중풍으로 다리를 절며 금세 넘어질 것 같은 자세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불쌍해 보였다. 그분에게 동정이 갔다. 나는 그분 앞으로 다가가 그분의 오른 팔을 부축하며,

“신부님 제가 도와 드리죠.”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전연 딴판이었다.

“이봐, 이 팔을 놓아! 네가 나를 도와 주어야 할 만큼 나는 병신이 아냐. 나 혼자 가게 내버려 둬!”

잡은 내 손을 뿌리치다가 그 신부님은 자기 힘에 몰려 마룻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하고 바둥바둥 팔 다리만 놀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에는 걷잡을 수 없는 경멸감과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뭐, 그 꼴에 병신이 아니라고…. 이 오만투성이의 늙인이야! 너 같은 것들은 인간의 따스한 정도, 사랑도 느껴 보지도 못하고 경험해 보지도 못한 병신들이다. 신부들의 독신생활을 지키려고 자녀들의 귀여움도 모르고 살아온 너희들이 어찌 손자 같은 나의 존경과 동정의 따스한 손길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무시와 조소로 뒤얽힌 복잡한 심정이 가슴 가득히 점점 불만의 덩어리를 키워 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나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지난 여름방학 이래 무언가 불만스럽고 짜증스럽던 것이 결국은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이 양로원에서 이유 없이 교회를 비난하고 반감을 가졌으며 또 부당하게 이 신부님들을 모욕했었다. 특히 내 도움을 거부하여 결국은 땅바닥에 넘어지고만 그 노인 신부의 고집을 신부들의 독신생활에 결부시킴으로써 독신제도를 지키고 있는 교회와, 이 제도를 지키며 살아온 신부들을 비웃고 비난했던 것이다. 그 노인 신부님의 고집이 동정(童貞)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모든 정을 외면하고 살아온 인간의 왜곡된 성격처럼 느껴졌었다. 그리하여 나는 인간의 정상적인 실리적 발전과 성격 형성을 저해하는 이 신부의 독신제도를 설정한 교회와 이 제도에 반항 한 번 못하고 병신처럼 살아온 신부들을 무시했던 것이다. 당시 나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은 언제나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내 반항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적적한 구실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미사가 끝났다. 주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큰 잔치가 양로원 식당에서 열렸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모르게 신학교로 되돌아 왔다. 신학교를 그만 두기로 결심한 이상, 이제 나는 신학교 규칙이나 학장 신부님에 대한 순명 등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또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임을 자신에게 설득시키고 싶었다.

 

신학교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 신학교를 떠나겠노라고, 그리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추구하고 싶노라 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조국의 돌>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나 자신은 그렇게 떳떳하지는 못했다.

저녁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학장 신부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자기 사무실로 나를 부르셨다. 학장 신부님은 공적으로는 찬바람이 느껴질 만큼 엄한 분이었으나, 개인적으로는 한없이 인자한 분이었다. 그분 앞에 마주 앉아 그분의 인자한 모습에 서려있는 고통의 빛을 목격했을 때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흐느끼며 울었다. 학장 신부님은 잠자코 계셨다. 한참 후 눈물을 거두고 말문을 열었다.

“학장 신부님, 오늘 나는 인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걷게 될 마지막 길을 나는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 신부로서 일생을 희생한 대가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나는 분명히 목격했습니다. 학장 신부님,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내 인생이 불쌍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나는 그러한 인생의 길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는 완전히 울음에 섞여 있었다.

“태오 신학생, 나는 학생의 그 인간적인 눈물을 충분히 이해하오. 지금까지 지켜온 성소(聖召)를 거부하려는 그 의지와 반항심을 나는 단죄하지는 않겠소. 나는 지금 학생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오. 학생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반대도, 비판도 하지 않겠소. 하지만 학생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 오늘까지 흐른 근 10년의 세월과 그 동안 학생이 경험한 이 귀중한 시간들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거요.”

학장 신부님은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것들이 인간의 모습이었습니까? 학장 신부님! 나도 역시 그런 모습을 장차 지니게 될 거라고 상상만 해도 두렵기만 합니다.”

“태오 신학생, 그 늙으신 신부님들의 모습이 그들이 신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 않소? 그런 모습은 늙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 아니겠소?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가 그렇게 되는 것이 이 자연의 법칙이 아니오? 태오 신학생이 만약 어느 날 신학교를 떠나 결혼한다  하더라도 그 신부들의 나이만큼 살면 당신의 모습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 거요?”

“하지만 학장 신부님! 생각해 보십시오. 그 늙어 삐뚤어진 골에 샤느완의 카마이를 입고 으시 대고 있던 그 오만스러운 모습들을…. 그런가 하면 녹슨 장난감 같은 훈장을 달고 우쭐대던 그 유치한 태도들을, 그리고 내 동정의 손길을 거부하고 결국은 쓰러지고야 만 그 고집들… 그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진정한 정과 사랑을 나눠 본 일이 없이 동정생활만을 고집해 온 인간들의 기형화 된 성격들이라고.”

“아, 태오 신학생은 그렇게 보고 있군요. 지금 나는 학생의 심정과 주장을 조금도 반박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니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 바대로 생각했소. 태오 학생, 오늘은 주님을 위한 크나큰 잔칫날이 아니었소? 그리고 우리들 신부들의 사제직을 위한 축일이 아니오? 그래서 그분들은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주님의 잔치에 참석한 분들이오. 낡았지만 깨끗한 수단에 샤느완의 캬마이를 삐딱히 입고 계시던 그분들에게서 나는 조소보다는 어린애 같은 단순함과 순진함을 발견했소. 샤느완의 캬마이 마저 얻어 입지 못한 다른 분들에게서는 비굴함보다는 정말이지 경건한 겸손의 덕을 보았소. 그리고 녹슨 훈장을 달고 계신 분들에게서 나는 교만보다는, 신부이지만 또한 한 국민으로서 조국에 바친 희생을 우러러보았소. 태오 학생, 우리 마음의 자세와 기분은 우리 생각의 눈이며 거울이오. 우리들의 심적 자세와 기분에 따라 사물은 객관성을 상실하기도 하오. 이 말은 절대로 학생을 무시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려 하는 말은 아니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에 대한 교회의 대우와 태도가 너무 비인간적으로 보입니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교회에도 제도상의 계급적 차별과 인간적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오늘 나는 양로원에서 목격했습니다. 말에 의하면, 양로원에 계신 분들 중에 대부분이 평생 본당 신부생활 한 번도 못해 보고 이리 몰리고 저리 쫓기며 살다가 결국은 양로원으로 밀려 왔다고 합니다. 똑똑한 신부님들은 제 능력껏 좋은 자리도 확보했고, 늙어서 살 생활비도 손수 마련했기 때문에 양로원 같은 데는 오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양로원은 허울좋은 이름 뿐이요, 사실은 신부 사회에서 낙오된 신부님들이 모이는 일종의 수용소가 아니겠습니까?”

“태오 학생, 교회도 하나의 사회가 아니오? 이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제도당의 계급이라는 질서가 있어야만 되지 않겠소? 주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셨듯이 10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5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있지 않았소?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축복은 다 한결 같았소. 이처럼 우리 신부들은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능력에 따라 교회에 봉사하고 이웃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있을 뿐이오. 그리고 교회는 바울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아니겠소? 우리 인간의 몸에 눈이 있어야 하고 코가 있어야 하며, 또 입, 귀, 머리, 손, 발 등등이 합쳐서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형성하듯이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로 각 지체(肢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했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신비체 안에서 주어진 위치에서 겸손 되이 일해야 하오. 바로 이것이 신앙이오. 오늘 나는 양로원에서 일생을 겸손되게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위해 살아 오신 분들의 성스러운 신앙을 보고 왔소. 태오 신학생이 비웃은 그분들의 비참한 인간적 모습 안에는 영원에로의 길을 밝히는 신앙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소. 성신(聖神)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교회이지만, 죄인인 인간들에 의해 운영되느니 만큼, 거기에는 당신이 비난하는 그러한 모순과, 당신이 배척하는 그러한 부정이 없지 않아 있을 거요. 우리는 주님께 기도 드리며, 우리의 양심에 비친 이 부정, 이 모순, 이 불의를 거슬러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보다 참된 주님의 교회 발전을 위해 투쟁해야만 하오. 그런데 우리는 어디서 이 투쟁을 계속할 수 있겠소? 전쟁 중 일선을 떠난 군인이 어디서 적과 싸울 수 있단 말이오?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적이 있는 일선에 남아 있어야만 하지 않겠소? 태오 학생,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소. 학생은 너무나도 많은 인생의 시련과 고통을 체험해온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용기를 우러러보며 당신의 성숙한 인간적 인품을 존경하오. 그리고 학생에게 아첨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나는 학생이 흘린 눈물 속에 담겨 잇는 그 인간적 고뇌와, 남이 따를 수 없는 노력하는 그 의지와, 삶의 주변에서 늘 주님의 뜻을 찾아 온 그 순박한 신앙심을 우러러보고 있소. 태오! 나는 당신의 그 투지력, 심지어는 교회에 대한 학생의 반항심까지도 한 편 부러워하고 있소. 나는 당신이 어느 길을 선택하든 당신을 축복해 주겠소. 하자만 나는 당신을 아끼는 학장 신부로서 한 마디만 더 하겠소. 오늘 밤 우리 서로 주님께 기도 드리며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반성해 봅시다. 나는 당신을 위해 오늘 밤 기도를 바치겠소.”

나는 아무 말 없이 학장 신부님의 강복을 받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멍청히 천정을 바라보며 꼬박 밤을 새웠다.

 

 

다음 날은 성 금요일이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십자가의 예절을 끝내고 나는 오랫동안 성당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별다른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양로원의 그 늙은 신부님들의 추한 모습들만 눈 앞에 어른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소름이 끼쳐 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상상마저 쫓아버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어 대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 속을 외쳤다. 나는 거부한다고, 그리고 결코 그런 추한 모습으로의 길을 걷지 않겠노라고 나는 속으로 거부의 소리를 지르며 성당을 나와 버렸다.

 

 

 

 

 

제10장

쟌느의 구원

 

내 마음은 계속 착잡했다. 신학교에서는 부활절 대미사를 장엄하게 지냈으나, 나는 내내 영성체를 하지 않았다. 미사 후 식당에서는 성대한 부활절 축제가 베풀어졌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었다. 동료 신학생들은 방학을 맞아 몹시 즐거워들 했으나 나는 그저 우울하고 고독하기만 했다. 나는 이번 부활절 방학 동안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신학교에 남아 있기로 작정했다.

점심식사를 끝내자마자 동료 신학생들은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나는 학교 뒤 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어떻게 결정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바로 그때 학장 신부님이 나를 찾고 계시다는 전갈이 왔다. 그분은 신학교 안뜰 분수대에 세워져 있는 예수 성심상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거기에 있는 돌로 된 벤치에 앉았다. 학장 신부님은 내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고서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태오 신학생, 방학 휴가를 안 떠나오?”

“신학교에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 학장 신부님.”

“지금 내가 학생을 부른 것은 당신의 성소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은 누가 당신을 찾아왔소.”

“나를 찾아올 만한 사람이 없는데요…. 그게 누구죠?”

“한 여학생이오. 쟌느라고 했소.”

학장 신부님은 나를 잔잔히 바라보시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쟌느가 나를 찾아왔다고요?”

나는 놀라며 반문했다. 지난 여름방학 이래 우리는 서로 편지 교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한 쟌느가 나를 찾아왔다니 반갑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쟌느는 지금 굉장히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젯밤 자살하려다가 당신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지금 면회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나는 학장 신부님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면회실로 급히 뛰어갔다. <쟌느가 자살을 하려 했다니…>

쟌느는 면회실 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자 뛰어와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쟌느는 계속 흐느껴 울고만 있었다. 내 수단 앞 가슴 쪽이 그녀의 눈물로 축축히 젖어 왔다.

“쟌느, 왜 울지? 말해 봐요. 쟌느! 무슨 일이 있었어?”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태오, 너 밖에는 없었어. 내가 결국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 하나 뿐이야. 정말이지 어젯밤 나는 죽고 싶었어.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져 죽어 버리려고 몇 번이나 마음 먹었으나 네 생각이 났어. 마치 네가 날더러 죽지 말라고 말리는 것 같았어. 그래,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 주고, 내가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 뿐이야. 신부가 되려는 너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야. 이 세상에는 신부가 있어야만 해. 슬픔과 절망에 빠진 불쌍한 인간이 결국 찾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은 신부 뿐이야. 그래서 나는 너를 찾아왔어. 태오, 이 세상에는 너 한 사람뿐이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말이야.”

쟌느는 두서 없는 말을 늘어 놓으며 계속 울기만 했다. 나는 쟌느의 신변에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귀엽고 순진하기만 하던 그녀를 회상하자 나도 모르게 슬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종의 분노 같은 것이 내 가슴 속에서도 서서히 일어났다. 한참 후 쟌느는 울음을 끝내고 내게 말했다.

“태오 미안해.”

“쟌느, 무슨 일이 있었어?”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물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일이 흔히 있는 줄 알았으나, 그러한 비극이 나에게도 일어날 줄은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 태오, 나는 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 버렸어.”

“뭐? 출생의 비밀이라고?”

나는 놀라며 쟌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응! 무슈 죤 뽈 그렁꼴라는 나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가 아니었어. 어머니는 나를 낳아주기는 했어도…”

“아니, 그럴 수가 있어?”

나는 더욱 놀라며 반문했다.

“그럴 수가 없다면 나는 지금 얼마나 행복하겠어? 태오, 정말이지 난 죽고만 싶어. 사생아라는 누명을 일생 지니고 살아가야 되지 않겠어. 이렇게 네 품 안에서 울다 숨이 끊어져 아주 죽어 버렸으면 정말 행복하겠어.”

그러더니 쟌느는 또 울기 시작했다. 이미 내 수단 앞자락은 쟌느의 눈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렁꼴라 부부만큼 그렇게 다정하고 행복하고 모범적인 부부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아내에 대한 무슈 그렁꼴라의 자상한 애정, 그런가 하면 남편에게 대한 마담 그렁꼴라의 헌신적인 사랑과 정숙한 태도, 그런데 그들 사이에 이렇게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니…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신 기분으로 내 마음은 쓸쓸해졌고, 쟌느가 한없이 불쌍하게 보였다. 나는 내 품 안에서 울고 있는 쟌느를 힘주어 안으며 말했다.

“쟌느, 그까짓 출생의 동기가 뭐가 문제야. 생각해 봐. 요즘의 애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돼. 그들은 산아제한이라는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온갖 살인적인 방법을 용케도 피해 태어난 이이들이라고…..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피임약을 먹어야 하고, 심지어는 임신 중인 태아를 죽여야 하는 이러한 현실에서 그 애들은 태어난 거야. 그러나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이 모든 살인극이 합법화되어 있지 않아? 그러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아이들은 당당한 사회인이 되고, 합법적인 결혼 밖에서지만 두 남녀의 성실한 사랑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사생아니, 불륜의 씨앗이니 하며 몰아붙이는 이 사회 자체가 나는 부정스럽다고 생각해. 우리 모두는 어쩌면 다 일종의 사생아인지도 몰라. 우리 부모님들이 정말로 우리의 출생을 원했는지 누가 알 수 있어? 우리들은 부모들의 심심풀이 애정 속에서, 혹은 순수한 욕정 속에서, 그야말로 그들이 원하지도 않았을 때에 어쩌다 우연히 태어났는지도 몰라.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일종의 사생아야. 그러한 합법적인 결혼 밖에 있는 두 남녀가 피할 수 없는 사랑 속에서 아기를 갖기 원했었다면,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오히려 더 떳떳한 출생의 동기를 갖고 있는지도 몰라. 안 그래, 쟌느?”

“태오, 감사해. 지금 너는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교회가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어. 하지만 태오, 너의 인간적인 그 성실한 감정과 나에 대한 우정이 한없이 고마워.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 뿐이야. 태오.”

“방금 내가 한 말을 되풀이 않겠지만… 쟌느,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는 출생의 동기보다는 우리를 길러 준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 우리를 길러 준 그 기나긴 과정 속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오고 간 그 고통과 애정이 더 순수하고 고귀하다고 나는 확신해. 그렇지 않겠어, 쟌느?”

“그래, 네 말이 옳아. 나를 오늘까지 키워 주고, 보살펴 주고, 사랑해 준 사람이 내 아버지야. 내 아버지는 나를 길러주고, 사랑해 준 무슈죤 뽈 그렁꼴라야. 그분만이 이 세상에 오직 한 분 계시는 내 아버지야.”

그리고 쟌느는 또 울기 시작했다. 내 두 눈시울도 뜨거워져 오는 것을 느꼈다. 한참 후 쟌느는 말을 계속했다.

“작년 여름방학 때였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야. 어느 날 어머니가 대학교 시절에 알던 친구라 하며 어떤 남자와 같니 나를 방문한 적이 있었어. 그때 그 사람은 나보고 ‘잔느야!’ 하고 부르며 다정하게 내 뺨에 키스를 하지 않겠어.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그에 대해 몸서리쳐지는 듯한 일종의 혐오감을 순간적으로 느꼈어. 왜 그랬는지 몰라. 몸매는 깨끗해 보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비굴해 보였고, 아편쟁이처럼 파리한 그 모습이 아주 싫었어.  불안해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지. 그 후부터 어머니는 식사도 잘 안 하시고 잠도 잘 자지 못하며 소화제와 수면제로 나날을 보낼 정도로 신경이 쇠약해지기 시작했어. 그러나 아무도 어머니를 의심할 사람은 없었고, 갱년기에 들어선 부인한테 흔히 있을 수 있는 증세라고만 우리는 말고 있었지.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어머니를 위로하고 의사를 부르려 했으나 어머니는 자기 병은 자기가 알고 있으니 염려 말라고 하며 의사의 진찰을 거부했어. 나는 개학이 되어 대학교로 다시 돌아가 공부하며 그저 철없이 명랑하게만 지내고 있었지. 그런데 성탄절도 지내고 학년 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요 며칠 전 일이야. 어느 날 나를 병원으로 찾아온 그 보기 싫은 남자가 기숙사로 나를 찾아왔어. 그때 그 사람은 병자처럼 보였고, 아침에 면도도 하지 않았는지 털이 꺼칠한 모습이 더 보기 싫었어.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되돌아 갔어. 그 다음 날 그 사람이 또 나를 찾아 왔어. 왜 나를 이유 없이 찾아와 성가시게 하느냐고 야단을 쳤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날더러 돈 좀 꾸어 달라는 거야.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 기숙사 문을 열고 나가라고 소리치며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호통을 쳤어. 나는 그를 정신병자로 밖에는 볼 수 없었지. 그날 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초조한 목소리로 혹시 그 남자가 나를 찾아간 일이 있느냐고 묻지 않겠어? 그렇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그 남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만나지 말고 조심하라는 거야. 왜냐고 어머니에게 물었으나 그냥 어머니는 전화를 끊어 버리시더군. 그때부터 어머니와 그 사람 사이에 뭔가 미심쩍은 것이 있다고 짐작했어. 그러나 그 사람이 설마 나를 낳아준 아버지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어. 부활절 방학에 들어갔으나 나는 시험 준비를 위해 조용히 기숙사에 그냥 남아 있기로 했지. 그런데 바로 어제 오후였어. 오빠 베르나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하면서 말하기를 자기는 당분간 여행을 떠나는데 나보고는 집에 올지 말라는 거야. 이유를 물었더니 하여튼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거야. 그리고 나보고 ‘쟌느, 너는 나의 영원한 누이동생이다. 우리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형제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어.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짐작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아무도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어. 뭐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집으로 가려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왔어. 이번에는 아주 거지꼴이었어. 우리 집안에 일어난 사건이 그와 무슨 관계가 있는 듯하여 그에게 방문의 이유를 떠졌지. 그랬더니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자기가 나를 낳아준 아버지라고 말하며, 배고프니 돈 좀 달라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기절했고, 밤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어. 세상에 이럴 수가 있겠어?….. 그것이 인간이야? 그 남자가 저주스러웠고 어머니가 한없이 미웠어. 그래서 내 자신이 더럽게 보여 죽기로 결심했었어. 이 세상에 남아 살기가 싫어졌었어. 어젯밤 어머니한테서 여러 번 전화가 왔으나 나는 받지 않았어. 어머니의 목소리만 들리면 전화를 끊곤 했지. 그러나 나를 길러준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 너도 알다시피 나를 극진히 사랑해 준 그가 보고 싶었고, 그분이 또 불쌍한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태오, 그분한테 달려가 울고 싶어도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 않아? 이미 내가 설 곳은 아무 데도 없었어. 그래서 죽기로 결심한 거야. 죽을 생각을 하자 내가 미워하고 있던 네가 갑자기 생각이 났어. 왜 네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어. 아마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었고 신부가 되겠다는 너였기에 그런 생각이 났는지도 모르겠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실컷 울고 눈을 감고 싶었어. 그래서 간단히 유서 한 장을 써 놓고 밤차로 네가 보고 싶어 낭씨에 왔어. 그리고 역전 호텔에서 잠 한숨 자지 못하며 밤을 새웠어. 이런 처지에서 너를 찾아온 것이 창피스럽기도 하여 우회하기도 했지. 그까짓 것 아무도 만나지 말고 죽어 버리자고 호텔 7층 발코니에서 몸을 던져 버리려고 했더니 이상하게 네가 나를 붙잡는 것만 같았어. 그래서 이왕 이곳까지 온 김에 너를 만나보고 일을 처리하자고 생각하며 마음을 돌렸지. 아마 지금쯤 내 유서를 발견한 기숙사에서는 집에다 전화를 했을 거고, 이미 내가 죽은 것으로들 알고 있을 거야. 태오, 나 정말 죽고 싶어. 이런 몸으로 살아서 무엇해?”

쟌느는 긴 얘기를 마치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눈물로 젖은 쟌느의 뺨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쟌느, 너는 참 훌륭했다. 이런 고통을 지금까지 참아온 너는 정말이지 장해. 그런데 쟌느, 이제는 죽는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해. 만일 내가 너의 입장에 있더라고 너처럼 생각했을 거야. 고통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쟌느에게는 쟌느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쟌느를 훌륭하게 길러 준 그 고마운 아버지, 그래도 쟌느를 사랑해 온 어머니, 무슨 일이 있더라고 우리는 영원히 사랑하는 형제라고 전화해 준 오빠 베르나르, 그리고 내가 있지 않아? 쟌느, 죽음은 너 개인의 비극과 고통에 종지부를 찍을지는 모르지만 너의 죽음과 함께 또 하나의 크나큰 고통을 일생 가슴에 지니고 슬프게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해 봐!  너를 사랑해 왔고,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느낄 고통을 말이야. 쟌느, 이제는 죽겠다는 생각도, 말도 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해 줘!”

나는 쟌느의 두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그러나 쟌느는

“태오, 눈물로 얼룩진 내 흉한 얼굴을 보지 마!” 하며 다시 얼굴을 내 품에 갖다 대었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아직도 흐트러진 자기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는 여심(女心)이 남아있었다. 그녀의 이런 마음의 여유를 발견하고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잠시 후 쟌느는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으로 나직이 말을 했다.

“태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정말 슬퍼할까? 너는 정말 내 죽음을 슬퍼하겠니?”

“슬퍼하다 뿐이겠어….. 이제는 다시 죽겠다는 말 않기로 약속해!”

“그래, 약속할게. 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실컷 울고 나니까 이제는 마음도 후련해졌어.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때 쟌느는 처음으로 미소지었다. 나는 그 웃음이 하도 고마워 그녀의 뺨에 키스를 해 주었다. 그리고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쟌느, 너와 나 사이에 부끄러워할 일이 어디 있니? 네가 이러한 곤경 속에서 나를 찾아 준 것을 나는 정말이지 고맙게 생각해. 너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유일한 사람으로 나를 믿어 준 너의 우정 속에서 나는 신부가 되고자 하는 내 결심이 보람스럽게 생각돼.”

나는 쟌느의 비극과 나에 대한 그녀의 신뢰감 속에 흔들리는 내 결의를 새롭게 굳힐 수 있었다.

“태오, 이 세상에는 신부가 있어야만 돼.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사람들이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바라게 되는 대상은 신부 뿐이야. 울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달려가서 울 수 있는 곳, 그곳도 신부가 있는 곳 뿐이야. 태오, 지금 나는 너에게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해.”

“왜 쟌느?”

“지난 여름방학 때 내가 너에게 지나칠 정도로 장난질을 해서 말이야. 네 말대로 나는 너에게 <귀여운 사탄>같은 존재였었지. 정말이지 나는 너에게 사탄이 되고 싶었어. 나를 귀여워하고 사랑하면서도 괴로워하는 네 모습을 나는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 네가 우리 집을 도망치듯 신학교로 되돌아간 것, 그리고 오늘까지 편지 한 장 없는 너를 나는 미워했으나 이해하고는 있었어. 너는 참 훌륭했어. 나는 이제 너를 존경해. 그렇지 않았던들 나는 이런 상태에서 너를 찾아오지 못했을 거야. 태오, 지난 날의 철없던 나를 용서해 줘.”

쟌느는 내 손에 키를 하며 애원하듯 말했다.

“쟌느, 지난 얘기는 우리 하지 않기로 해. 나는 지금 너의 고통 속에서, 죽고 싶어하는 너의 번민 속에서 내 수단에 흘린 그 많은 너의 눈물 속에서 이 세상에는 신부가 있어야 한다는 네 말대로 신부가 되자는 결심을 새롭게 굳혔어. 요즘 나는 쓸쓸한 기분 속에서 이 신학교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으나 바로 너의 비극과 고통이 나를 새롭게 깨우쳐 주었어. 이러한 의미에서 나에 대한 너의 우정은 나에게 구원을 주었지. 우리 서로의 우정을 주님께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우정을 주님께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해.”

“감사해, 태오. 우리 서로의 구원이 있게 한 우리의 이 우정을 나는 진정으로 고맙게 여기겠어. 이것이 다 훌륭한 너의 인격 때문이야. 그리고 말이야, 인간들의 내면생활을 들춰 보면 우리 집안에 잇는 이런 비극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 그러한 의미에서 이 사회의 마지막 양심으로서, 고통 받은 사람들이 피난처로서, 절망에 빠진 자들의 구원의 손길로서, 그리고 영원을 지향하는 신앙의 증인으로서 신부는 이 세상에 곡 있어야만 해. 태오, 네가 훌륭한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죄인인 나지만 열심히 기구할게.”

“감사해. 쟌느, 내가 신부가 되는 날 특별히 기억해야 할 몇몇 사람들 중에는 네가 꼭 있을 거야. 쟌느, 라옹에다쁘 집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너를 사랑해 주신 부모님들의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빨리 씻어 드리자. 네 유언대로 지금쯤 네가 죽었을 것으로 믿고 그분들이 얼마나 슬퍼하고 괴로워하겠니.”

“그래, 집으로 돌아갈게. 그런데 나를 집에까지 동반해 줄 수 있겠니? 도저히 혼자서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안 나.”

“물론 동반하고 말고! 그래 같이 가자.”

 

 

학장 신부님께 이 사건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 드렸다. 그리고,

“학장 신부님,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는 신부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나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분은 나에게 강복을 주시고 말씀하셨다.

“태오 신학생, 나에게도 강복을 줄 수 있겠소?”

그분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강복을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그러시는 그분의 행동에 놀랐다. 어떻게 학생의 신분으로 강복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니, 학장 신부님!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얼떨떨해서 그분 앞에 마주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무도 황송할 뿐이었다.

“아닙니다. 태오 학생, 사람은 누구나가 다 죄인이며 지금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한 당신의 강복을 받고 싶습니다.”

“학장 신부님, 학생의 신분으로써 어떻게 학장 신부님께 강복을 주 수 있겠습니까?”

“태오, 당신은 그 많은 시련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특별히, 그리고 충만이 받은 사람이오. 당신이 받은 그 은혜를 당신의 강복을 통하여 나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겠소? 그리고 어쩌면 나는 당신보다도 더 큰 죄인일지 모르오.  태오,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 좀 해 주시오.”

나는 학장 신부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다. 나는 학장 신부님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주의 기도문과 성모송과 영광송을 조용히 읊었다. 그리고 나는 학장 신부님의 두 눈에 서려있는 눈물을 바라보며 그분의 방을 나왔다.

 

 

낭씨에서 라옹에다쁘까지의 거리는 불과 백여 킬로미터에 불과했으나 기차가 지방선(地方線)이라 두 시간이나 걸렸다. 우리가 무슈 그렁꼴라 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집 안에는 보누아가 텔레비전 앞에 쭈그리고 있었고 무슈 그렁꼴라는 응접실에서 술병을 앞에 두고 넋 없이 앉아 있었다. 무슈 그렁꼴라는 술을 즐기기는 했으나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부르고뉴 술 병이 빈 채로 있었다.

쟌느는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무슈 그렁꼴라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한참 동안이나 꿈꾸는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가 자기 품 안에서 아버지, 아버지 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쟌느를 끌어안고는,

“네가 쟌느냐? 아, 내 딸 쟌느! 고맙다, 고마워. 네가 이직 살아 있었구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영원한 내 딸 쟌느다. 너는 내 딸이다. 내 딸이다! 너 없이는, 너 없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끝이야. 쟌느야, 우리는 과거를 말하지 말자! 우리는 과거를 잊자! 하여튼 고맙다, 고마워. 네가 살아 있다는 이 사실, 주님께 내 일생 잊지 않고 감사하련다. 쟌느야, 우리는 같이 산다. 너는 내 딸이다…” 하고 부르짖으며 그도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당신은 내 아버지에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나에게 단 한 분이신 유일한 아버지에요. 아빠! 나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빠의 사랑과 은혜를 잊을 수 없었어요. 유서에 써 놓은 대로 내가 죽더라도 아빠에게 <당신만이 오로지 내 아빠>라고 말해 드리고 싶었어요. 아빠, 아빠, 나는 당신의 영원한 딸, 쟌느에요, 아빠…”

“그래 쟌느야, 고맙다 고마워! 너는 내영원한 딸이다. 너 없는 세상을 내가 어떻게 살아가겠니? 쟌느, 이제는 죽는다는 말 다시는 하지 않기로 하자. 너는 내 영원한 딸 쟌느다.”

“다시는 죽는다는 말 안 할게요. 아빠! 이전처럼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 행복하게 살아요, 아빠!”

그때 마담 그렁꼴라는 침실이 있는 난간을 잡고 창백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마담을 부축했다. 그녀는 금방이라고 쓰러질 것 같은 자세였다. 마담 그렁꼴라의 몸은 정말 가엾을 정도로 뼈만 남아 있었다. 그 건강미가 흐르고 풍만스럽던 이전의 모습은 완전히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마담 그렁꼴라! 쟌느를 데리고 왔습니다. 보세요! 저기 당신의 딸 쟌느가 있지 않습니까?”

“무슈 태오, 당신이 내 딸을 살리셨군요! 그런데 무슈 태오, 나는 우리 온 가족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크나큰 죄인입니다. 당신이 지금 나를 붙잡고 안고 있는 것조차 죄스러울 정도입니다.”

꺼칠하게 메마른 그녀의 두 뺨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 내리고 있었다.

“마담 그렁꼴라, 나는 지금 당신을 심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마담,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아, 무슈 태오, 당신은 정말이지 선하신 분입니다. 내 입으로 저기 서 있는 내 딸의 이름조차 차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이 죄인인 나를 신뢰하시다니…”

나는 쟌느를 소리쳐 불렀다. 내 고함 소리에 쟌느는 자기 아버지 품에서 떨어져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쟌느는 계단을 두 개씩이나 뛰어 넘으며 이층으로 올라와 엄마 품에 안겼다. 오직 “쟌느야!” “엄마” 이 두 마디만이 들려왔다. 그들은 말 없이 서로 얼싸안고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여인은 서로 부축하며 침실로 들어갔다. 아마 거기서 둘이는 말 없이 실컷 울었으리라…

 

 

나는 무슈 그렁꼴라와 마주 앉았다. 그러나 우리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후 그분은 나에게 술 한잔을 권하며 고통스럽게는 보였지만 다소 진정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슈 태오, 우선 감사하오. 당신이 아니었던들 쟌느는 아마 죽었을 거요. 쟌느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쟌느가 작년 자동차 사고로 입원하고 있을 때 당신의 방문을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인 내 마음이 참으로 괴로웠소. 소식 없던 당신을 원망하고 있긴 했었지만 쟌느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그래서 어젯밤 쟌느의 유서를 전화로 연락 받고 스트라스부르크 경찰서에 의뢰해 놓고는 있었으나, 어쩌면 쟌느는 당신한테 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소.  왜냐하면 이런 경우를 당하면 여자는 자가기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무슈 태오, 당신이 쟌느를 살렸소. 감사하오. 그리고 당신도 이제는 우리 집의 비극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이것을 처음 알았을 때 아내를 죽이고 싶은 충격을 강하게 받았으나 참았소. 배신감 속에서 참으로 괴로웠소. 하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소. 전쟁의 난리 통에서 어느 여자라고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겠소…. 아내의 고백을 나는 믿고 있소. 나는 아내를 이전처럼 변함 없이 신뢰할 것이며 보다 새롭게 살아갈 각오요. 나는 내 아내를 사랑했고, 현재 이 시간에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함 없이 사랑할 거요. 나는 생각하오, 우리 가정의 비극은 아내 때문이 아니라 그 전쟁에 책임이 있소. 나는 전쟁을 미워하지 아내를 미워하지는 않소. 그 동안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받았던 아내의 심적 고통을 나는 이해하고 동정하오. 당신도 알다시피 내 아내 뽈린느 는 착하고 충실한 사람이었소. 무슈 태오, 이럴 수 있는 것이 인생이며 그래서 신부들은 이런 인간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 넓은 아량과 사랑으로 가득 찬 그 용기와 고결한 인격을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그의 성실한 인품에서 이 가정의 화해와 밝은 내일을 다시 확실할 수 있었다.

“무슈 그렁꼴라, 내가 무슨 말로 당신을 위로하거나 동정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 말을 들으면서 정말이지 천주님께 감사했고 당신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말씀한 그 신뢰만이, 그리고 그 따뜻한 사랑만이 이 가정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당신은 정말이지 훌륭합니다. 나는 기쁩니다. 나는 당신과 친분을 맺게 된 것을 크나큰 자랑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을 통해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당신 가정의 화해와, 새로운 내일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무슈 그렁꼴라, 당신의 말대로 신부는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신부 중 한 사람으로서 나도 살아가겠습니다.”

“무슈 태오, 나는 당신 앞에 감사와 존경과 우정이라는 이 세 마디 밖에 드릴 것이 없소.”

그분은 빈 내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런데 무슈 그렁꼴라, 마담과 쟌느는 며칠간 휴양을 필요로 할 것만 같은데요? 당신이 허락한다면 내가 이 두 분과 함께 제라르메르 별장에 가서 쉬었으면 합니다. 물론 당신도 휴식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있는 것보다는 당분간 떨어져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당신은 벌서 훌륭한 본당 신부요. 그렇게 하는 것만이 현재의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오. 그런데 이 집에서는 가정부가 살림을 돕고 있지만 별장에서는 어떻게 하겠소. 내 아내나 쟌느가, 어디 지금 상태로 살림을 할 수 있겠소?”

“할아버지 그렁꼴라를 보살피는 가정부가 있지 않습니까? 그분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요?”
“아, 참 내가 아직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가요? 내 부모님은 그 동안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고요? 그분들이 별세하셨다고요?”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연세는 많았지만 그렇게 정정하시던 두 분이…

“아버지는 지난 해 11월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갑자기 노쇠해지더니 지난 3월 초에 그만 돌아가셨소. 두 분은 참으로 다정한 부부였었소 만… 아버지의 장례식 날 어머니께서 <나도 곧 당신의 뒤를 따라 가리다> 하며 우시더니 3개월 반 만에 아버지의 뒤를 따라 돌아가셨소.”

“나는 그런 일들을 아직 모르고 있었군요……”

“아마 그때 우리가 고의적으로 당신에게 알리지 않았을 거요. 공부하고 있는 당신이 아니오? 게다가 당신은 신학생이 아니오. 그래서 우리가 알리지 않은 것 같소.”

“그랬군요….. 하지만 무슈 그렁꼴라, 염려 마세요. 내 요리 솜씨도 상당하니까요. 내가 살림을 해 보죠.”

“당신은 재간도 많구료. 여기 돈이 있으니 마음대로 쓰시오. 가끔 자동차로 부근을 여행도 하며 식당에서 식사하도록 해요. 부족하며 제라르메르 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돈이 있으니 상관 말고 마음대로 써요.”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회사 일이 허락하며 며칠 후에 당신도 보누아를 데리고 별장으로 오셨으면 하는데요.”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우리가 제라르메르 별장에 도착한 것은 밤 열한 시가 가까워서였다. 나는 수단을 벗고 작업복 차림으로 짐을 나르며 수선을 피웠다. 별장의 셔파져(난방장치)를 돌리고 페치카에 불을 부이며 우선 집안을 덥혔다. 그리고 페치카 옆에 긴 소파를 끌어다 놓고 마담과 쟌느를 쉬게 했다. 일을 마치자 나는 두 사람에게 엄숙히 말했다.

“지금부터 두 분은 내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두 분은 내 말을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두 분은 절대로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되며, 이 자리에서 쉬고 있어야만 합니다. 알겠지요? 내 사랑하는 자녀들!”

내 말에 두 여자는 웃으며 순종의 뜻을 표했다. 나는 이 두 사람에게 엉부라쓰를 하며 다시 한 번 더 다짐했다.

 

그날 저녁 나는 중국 식당에서 사 온 음식을 데우며 수프를 끓이고 즉석 불고기를 만들었다. 마담과 쟌느는 부엌에서 일하는 나를 바라보며 가끔 웃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식사를 했다. 마담과 쟌느는 주로 내가 만든 불고기를 먹었다. 맛있게 먹는 그들을 보며 나도 즐거웠고 보람도 느꼈다.

저녁식사 후 우리는 페치카 옆 소파에 앉았다. 페치카에서는 불꽃을 퉁기며 기분 좋게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나폴레옹 코냑을 마시고 있었고 마담과 쟌느는 알사쓰 백포도주 한 잔씩을 마셨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한참 후, 마담은 남편에게는 이미 고백한 쟌느의 출생의 비밀을 말하겠노라고 말문을 열었다. 쟌느는 그 말을 듣자 무엇인가 두려운 듯 내 곁으로 바싹 다가 와 앉으며 두 눈을 유난히 크게 뜨고 자기 어머니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쟌느, 집에서 네가 날더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고백을 요구했으나 나는 그때 말할 용기도 힘도 없었다. 이제 있었던 그대로의 사연을 숨김 없이 이야기하마.

너도 알다시피 나는 아빠 죤 뽈을 사랑했고 아내로서 충실했었다. 물론 너의 출생의 동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우리 둘은 다정한 약혼 기간을 거쳐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누려왔다. 그러다가 우리가 결혼한 2년 후인 1939년 여름, 독일군이 폴란드를 공격해 들어가자 세계 제2차대전의 기미가 프랑스에서도 떠돌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1940년에 독일은 프랑스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알사쓰 지방과 보죠 지방 그리고 로오렌 지방이 적에게 점령되고 말았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대 독일 투쟁을 위해 비점령 지역인 남쪽으로 피난 가지 않으면 지하 공작대인 빨치산이 되어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할아버지는 지금 아빠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가지고 계셨고, 아빠는 또 아빠대로 낭씨에서 조그만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아빠는 독일군에게 체포되었고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민간포로로 끌려갔다. 그 후부터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만 5년간 나는 아빠의 생사(生死)를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 당시 오빠 베르나르는 생후 11개월의 갓난애였고 나는 25세의 젊은 어머니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빠가 경영하던 회사들도 독일군이 차압 했고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문제될 때였다. 그 무렵 모든 사람이 다 식량난에 허덕였었고 나 또한 베르나르에게 먹일 우유 한 통을 구하기가 힘들 때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용케도 남쪽으로 피난하는데 성공하셨지만 나는 낭씨에 그대로 남아 적에게 차압 된 아빠 회사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베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알베르는 아빠가 나를 사랑하기 훨씬 전 나를 몹시도 사랑한 남자였다. 그이는 나를 정말로 사랑했었고 나도 그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의 결혼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알베르는 만나면 반갑고 나를 즐겁게 해 주기는 했으나 내가 생각하는 남편과 자녀들의 아버지 상(像)은 못 되었다. 대학교 교정에서 서로 만나 지내는 친구로서만 나는 그이를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이는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결혼을 정식으로 신청해 왔다. 알베르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여자들의 심리를 잘 알고 즐겁게 해 주는 재능까지 갖고 있었으나 남자로서의 무게라 할까, 남편으로서의 존경심을 갖게 해 주는 그런 사람은 못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아빠를 알게 되었고 우리 둘은 처음 만나는 날부터 마음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아빠는 지금도 그러하시지만 여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멋있는 분이었어. 아빠는 성격이 알베르보다는 다소 무뚝뚝한 편이었으나, 사귀면 사귈수록 나에게 신뢰감을 갖게 해 주었다. 아빠의 착한 인품과 지성적인 멋과 의지적인 인격 전체가 나를 완전히 매혹시켰다. 우리 둘은 진정으로 사랑했고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자 몇 개월 후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행복했다. 친구들이 우리의 결혼생활을 부러워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알베르는 몹시 고민했고 그를 대할 때마다 내 마음도 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로서 어떻게 하겠니?…… 내가 아빠와 결혼하자 알베르는 나에게 결혼 축하 카드 한 장을 보내고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한 알베르를 동정하며 한 편 고맙게도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알베르를 다신 만난 것은 방금 말한 것처럼, 아빠가 체포되어 행방불명이 된 지 3개월 후였다. 그때 알베르는 빼땅 장군이 세운 일종의 괴뢰정권인 비시 정권에 가담해 있었고 낭씨 지방 민정관의 한 사람으로 있었다. 그이는 나에게 여전히 친절했고 점잖았다. 식량도 마련해 주었고 압수당한 아빠의 회사도 되찾아 주었다. 그리고 그이가 직접 그 회사를 운영 감독하며 우리 살림을 돕고 있었다. 그이에 대한 감사함과 지난날 그에게서 느꼈던 동정심이 내 마음 안에 되살아나 아빠 없는 고독하고 불안한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에 대한 아내로서의 지조를 지켰고 그이도 나를 유혹하지는 않았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회사 일을 의논하고는 그이는 점잖게 되돌아 가곤 했다.

이렇게 우리는 4개월을 지냈다. 어느 날 우리 둘은 누가 먼저 유혹한 것도 아닌데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불안하기만 한 전시 하에 남편의 행방조차 알 길 없었던 한 여인의 고독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이에 대한 동정과 고마움 탓이었을까, 어쨌든 그날 밤 나는 후회도 가책도 없는 하루를 그와 함께 지냈다. 그리고 약 두 달 동안 우리는 동거생활을 계속했다. 그때 나는 너를 임신했고 아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낙태수술을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 무렵 나에게는 이상한 심리적 작용이 있었어. 저니 하의 사회는 어지럽고 불안했지만 나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아기를 갖고 싶은 본능이 나를 강력히 지배하고 있었다.

너를 임신한 것이 확실시 되자 나는 알베르에게 다시는 만나지 않겠노라고 말했다. 그이는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했으나 나는 내 의견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는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그 후 우리 둘은 어쩌다 서로 길거리에서 부딪치는 일은 있었어도 결코 밤을 같이 지낸 일은 없었다. 이것은 하느님께라도 맹세할 수 있다.

그이는 악한 사람이 아니야.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다. 내가 알베르에게 너의 임신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나는 네 출생의 비밀을 감추는 동시에 그것을 합법화시키기 위해 아빠의 회사도 버리고 그 부모님이 계시는 파리로 올라갔다. 내 부모님은 나를 이해해 주였고 오늘까지 이 비밀을 지켜 주셨다. 때가 되자 나는 너를 낳았다. 너는 참으로 귀여운 애기였어. 그리고 성장도 아주 빨랐고….. 전쟁이 끝난 해인 1945년 3월에 너는 비로소 영세를 받았다. 그때 나는 너의 생일을 일 년이나 앞당겨 너의 출생을 합법화시켰다. 즉 아빠가 너를 임신시키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신 것으로 너의 출생 날짜를 꾸며댔다.

전쟁이 완전히 끝났고 나는 즉시 낭씨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전쟁포로의 석방과 함께 아빠도 조국으로 되돌아왔다. 아빠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너를 자기 딸로 알았고, 귀엽기만 하던 너는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날 나는 전쟁이 일어난 이후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드리며, 너를 얼싸안고 기뻐 눈물을 흘리던 아빠를 생각하고 나도 울었다. 내 눈물은 남편을 다시 만난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고 아빠에 대한 죄책감에서 오는 그런 눈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너만의 행복을 위해 주일마다 영성체(領聖體)하기로 결심했고, 예수성심상과 성모성심상 앞에 매주일 초에 불을 붙이며 너의 행복을 기원해 왔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자 우리는 행복했었다. 아빠는 낭씨의 회사를 정리하고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우리는 라옹에다쁘 로 이사해 왔다.  회사 일은 그런대로 잘 되어 나갔고, 전쟁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우리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 동안 너는 집안의 웃음의 꽃이 되었고 기쁨이 되었다. 아빠가 너를 그렇게도 사랑하실 줄이야! 내가 너를 질투할 정도로 아빠는 모든 것이 너 중심이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말하자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아빠에게 너의 출생의 비밀을 고백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쟌느, 지난 날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었니?…..

그런데 불행은 나를 쫓고 있었다. 네가 자동차 사고로 입원 중이던 어느 날 행방을 전혀 알 길 없던 알베르가 돌연히 내 앞에 나타났다. 그날은 나에게 지옥과 같은 날이었다. 알베르는 독일군이 패망할 기미가 보이자 알제리아로 도망을 갔었다는 것이다. 알제리아 까지 무사히 탈출은 했으나 독일군에게 협조한 사실과 조국을 배반했다는 죄의식 때문에 떳떳한 일도 못하고 뒷골목에서만 살아왔대. 물론 이름도 바꾸고 지금까지 떠돌이로 살아왔다는 구먼. 알제리아가 독립이 되자 프랑스 사람들의 추방소동이 있었지 않니? 그대 알베르도 돈 몇 푼 쥐고 프랑스로 건너왔었다. 그러나 알베르는 이미 마약중독자가 되어 있었어. 그날 알베르는 그대로 자기가 너의 아버지라고 너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단다. 알베르는 이 전의 그 착하고 성실한 알베르가 이미 아니었어. 성격은 거칠어졌고 협박과 공갈을 아무런 수치심 없이 내게 해 왔단다. 할 수 없이 우리 둘은 병원으로 너를 방문했었지.

그것 뿐이겠니?…. 그날부터 나에게 생활비를 대 줄 것을 요구했단다. 만약 그것을 내가 거부하면 모든 비밀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아, 그때 나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내가 죽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죽었을 거야. 그러나 죽음이 일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어.

그때 약한 여자의 심정으로, 또 죄를 진 죄인의 자책감으로, 그에게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주며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약속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어. 그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마약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약속이 지켜지길 바랄 수가 있었겠니? ….. 그 후 알베르는 보름이 멀다 하고 나를 찾아와서는 생활비를 가져갔다.

이 문제로 말미암아 나는 신경쇠약이 걸렸고 우리 가정에서는 웃음과 행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착하고 선한 아빠를 속일 수 없어 며칠 전에 나는 이 사실을 아빠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그때 아빠의 얼굴에 나타난 그 고통의 그림자! 그것은 차마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나를 용서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알베르를 단호히 거절했다. 알베르 자신을 위해 아빠와 나는 당국을 통하여 그를 마약 중독자 수용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런데 알베르는 다음 날 병원에서 탈출했고 그 길로 너를 찾아갔던 것이다.

아, 쟌느! 이것이 네 어미다. 나는 너에게 말한 더 이상의 비밀도 없다. 나는 너에게 용서를 청할 자격도 없는 어미다. 하지만 쟌느, 이 죄스럽고 못난 어미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

마담 그렁꼴라는 진한 고통 속에 긴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자 쟌느는 자기 엄마 품에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쟌느의 머리카락 위로는 마담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여인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 눈물들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슬픔을 달랬던 것이다. 거기에는 용서할 권리도, 용서를 빌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 오직 모녀 간의 사랑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티산'(일종의 차)을 끓여 코냑을 한 스푼씩 섞어 그녀들에게 갖다 주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어디에선가 세 시를 알리는 벽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쟌느가 조용히 입을 열었으나 그것은 그녀의 선천적인 쾌활 성을, 그리고 착함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 셋이 오늘 밤 이 페치카 옆에서 자기로 해. 나는 내 방에서 오늘 밤 혼자 못 잘 것 같애. 그리고 태오, 너는 이미 신부나 다를 바 없으니까 나를 위해 오늘 밤만 십자가를 져 줄 수 없겠니?”

쟌느의 입가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밝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난날의 그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쟌느, 너를 위해 져야만 할 십자가라면 무엇이든지 다꼴(영어의 OK)”

나도 전처럼 웃었고 그리고 그녀를 다정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억양을 높일 필요는 없어. 너의 명예를 조금도 상하게 할 그런 십자가는 아닐 테니까. 다만 너의 인간적인 인내심을 기대하는 것 뿐이야.”

쟌느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좋아, 쟌느! 말해 봐.”

“그 십자가는 말이야 다름이 아니라,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자고 싶은데 네가 내 곁에 있어 주어야 하겠어. 즉 나는 네 무릎을 베고 네 곁에서 자고 싶어. 오늘 한 번만 십자가를 요구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엄마, 이렇게 태오한테 부탁해도 괜찮겠지?”

“쟌느, 십자가는 나에게 요구하면서 왜 엄마한테 허락을 구하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승낙만 하면 되지 않겠어?”

마담은 잠잠히 웃고만 있었다. 마담의 웃음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그럼 태오, 내가 요구한 십자가를 져 줄 수 있겠어?”

“물론! 기꺼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어 쟌느!”

 

우리가 페치카 옆의 소파 위에 모포를 깔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마담은 그저 소파에 편안히 기대고 모포로 몸을 덮고 있었다. 나는 페치카에 다시 통나무 서너 개를 집어넣고 쟌느의 잠자리를 보살펴 주었다. 쟌느는 내 무릎을 베개처럼 베고 눕자 이내 숨을 색색거리며 깊은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몸과 마음이 참으로 피곤했던 쟌느! 쟌느는 이불 밖으로 나온 왼손으로 내 손을 곡 쥐고 있었으나 잠시 후 그것도 사르르 풀리고 말았다. 나는 오직 상처받은 쟌느의 마음이 치 전처럼 회복되기만을 기도했다. 쟌느와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마담 그렁꼴라는 진정 감사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무슈 태오, 당신은 정말 고마운 분이에요. 감사해요. 사실 우리 집안의 은인이에요. 이런 말을 해서 될지 모르겠으나 구원 그 자체에요.

쟌느는 당신을 사랑해요. 작년 여름 휴가 때 나는 어머니라는 입장에서 쟌느와 당신 사이를 염려하면서도 기뻤어요. 아직 순진하고 철 없는 쟌느, 그리고 당신은 신학생. 쟌느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옷가지를 챙기며 그때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어요. 일종의 호기심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 엄마라는 입장에서 나는 그것을 대충 읽어 보았어요. 거기에 나타나 있는 당신에 대한 쟌느의 순정과 나까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 애의 짓궂은 장난, 그런가 하면 당신의 자상한 인간성과 쟌느가 본 당신의 고민! 하지만 당신은 훌륭했어요. 나는 당신이 쟌느를 사랑해 주기를 은근히 바랬어요.

파리 행 열차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던 날, 나는 당신과 쟌느를 관련시켜 생각했어요. 그때 참 이상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쟌느가 성장함에 따라 나는 그 애의 출생의 비밀을 두려워했어요. 언젠가는 그 비밀이 폭로될 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나는 무서웠어요. 그러나 여자는 출생의 동기가 어떻든, 또 과거가 설사 불행했다손 치더라도 자기를 폭 넓게 이해해 주는 성실한 사랑 속에서, 또 자기를 힘있게 안아 주는 남자의 품 속에서 일체를 잊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쟌느가 당신을 그처럼 사랑하고, 또 당신이 그 애를 아껴 주고 귀여워해 주는 것을 보고 나도 무척 기뻤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둘이서 결혼해 주기를 기대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신부가 되어야만 할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집안의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깨달았어요. 당신이 아니었던들 쟌느는 아마 자살해 버렸을 겁니다. 당신에 대한 쟌느의 사랑이 그 애로 하여금 당신을 찾게 했고 쟌느에 대한 당신의 참된 우정이 그 애를 살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년 여름방학 때 우리 집을 떠난 이후 편지 한 정 없는 당신을 미워할 정도로 섭섭히 여겼으나 이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당신의 입장을, 그리고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모두가 감사할 뿐입니다. 알베르가 내 앞에 나타난 이후 나는 천주님께 반항의 깃발을 들고 원망만 하며 살아 왔지요. 그러나 주님께 진정 감사할 뿐입니다. 모두가 은혜롭고 감사할 뿐입니다. 정말 모두가 은혜롭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미 죄인인 이 몸, 주님께 기도 드리는 것조차 죄스러운 이 몸이지만, 태오, 당신을 위해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겠어요.”

“마담, 감사합니다. 나도 한 때 쟌느의 귀엽고 사랑스러움에 고민도 했고 당신 집을 도망치다시피 신학교로 되돌아간 적도 있으나, 나는 신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당신들의 그 눈물과 당신들이 겪은 그 고통을 목격하며 나는 이 세상에 신부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마담, 기도해 주십시오.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기도를 나는 진정으로 필요로 합니다. 주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통회(痛悔)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페치카 속의 불꽃도 마치 그 침묵 속에 녹아 들어가 버린 것처럼 조용히 불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쟌느는 어린 소녀처럼 내 무릎 위에서 잠들어 있었고 마담은 열심히 묵주신공을 바치고 있었다. 나는 기도 드렸다. 우연히 부닥친 이 비극적 사건 속에서도 나로 하여금 새로운 자각을 하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깊이 깊이 감사 드렸다.

잠시 후 벽시계가 네 시를 두드릴 무렵 마담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묵주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그분도 잠이 들었다. 나는 앉은 채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 가정의 평화와 특히 이 두 여인의 마음의 평화를 간절히 기원했다.

 

우리 셋은 에삐날로, 디죵으로 또 스트라스부르크로 자동차 여행을 하며 나날을 보냈다. 식사는 주로 식당에서 했다. 마담 그렁꼴라도 쟌느도 명랑해졌고 지난 날의 고통도 어느 정도 잊은 듯 했다.

며칠 후 무슈 그렁꼴라가 보누아를 데리고 별장으로 왔다. 다소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런대로 서로 잘 어울렸다. 베르나르도도 자기 애인을 데리고 제라르메르를 찾아왔다. 온 가족이 모였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베르나르는 이 기회에 간단한 약혼식을 올렸다. 별장생활은 이 약혼식으로 축제 기분이었다. 예전과 같은 즐거움과 평화로움이 이들의 생활 속에 다시 깃들기 시작했다. 다만 쟌느만이 이전의 쟌느가 아니었다. 쟌느는 이번의 시련을 통해 놀라울 만큼 성숙되었고 그녀의 얼굴에서는 장난기가 사라졌다. 의젓해졌고 점잖아졌다. 고독하고 조용한 표정 속에 고요히 웃고 있는 쟌느는 한 편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열흘 간의 부활절 방학이 끝나자 나는 신학교로 돌아왔고 같은 시기에 쟌느도 스트라스부르크 대학교로 돌아갔다. 같은 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온 가족이 역에 나와 있었다. 쟌느는 나를 엉부라쓰 하며 쓸쓸히 말했다.

“태오, 어쩜 인생이란 이런 것인지도 몰라. 한 때 같이 만났다가 한 사람은 서쪽으로, 또 한 사람은 동쪽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헤어지고 마는 것이…. 마치 우리 둘이 타고 가는 기차의 방향처럼 말이야. 너는 서쪽으로, 나는 동쪽으로…”

내 가슴에 기대어 있는 쟌느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쓰다듬으며 나는 말했다

“쟌느, 너는 동쪽으로 직행하고 나는 서쪽으로 가고 가면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지 않겠어? 지구는 둥근 것이니까…”

“참, 그렇구나. 그래서 헤어짐이 곧 만남이라고 했던가?”

나는 쟌느의 두 눈에 서려 있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쟌느는 눈물 속에서 은은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을 태운 기차는 동과 서로 갈라져서 달리기 시작했다.

 

 

 

 

 

 

제11장

주여, 한 말씀만 하소서!

 

학년 말 시험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낙제한 과목은 물론 없었다. 그러나 전과목 구두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고된 시험을 끝내고 우리는 여름방학을 맞았다.

 

아직도 나는 그 동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 무렵 나는 도밍고 수도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언제부터 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많은 수도원 중에서도 하필이면 도밍고 수도회를 내가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른다. 어떻든 나는 도밍고 수도회를 좋아했고 도밍고 회 소속 신부님들도 여러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밍고 수도원을 좀 더 잘 알고 싶은 욕심으로 나는 그 해 7월 방학을 도밍고 회  파리 관구 수련원을 겸한 신학원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 수련원에는 철학부, 신학부 학생 수사님들이 70여 명이나 있었고 그 외에 교수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수사 신부님들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똑같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장차 내가 살아가야 할 이 수도생활에 깊은 애착을 가졌었다. 그리고 이들 학생 수사님들의 학구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8월 한 달은 쌍삐에르 드 키브렁에 있는 닥터 쿠에상 댁에서 쉬었다. 다정하게 환영해 주는 그들에게 한없이 감사하며 만족한 휴식을 즐겼다. 이번에도 비에브와는 다정한 말동무가 되었고 그 애도 잠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벌써 열네 살이 된 비에브는 인생문제와 신앙문제 등의 심각한 문제를 내세워 우리 둘은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스위스의 뽕드레지나에서 열흘 간의 휴식을 취하고 제라르메르 호숫가에 있는 무슈 그렁꼴라 별장에 왔다. 마담 그렁꼴라는 건강해 보이기는 했으나 아직도 몸은 수척해 있었다. 그러나 격심한 고통을 겪고 난 그분은 전보다 더욱 세련되고 우아하게 보였다. 무슈 그렁꼴라는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베르나르 는 약혼자와 함께 어디론가 여행 중이었고 보누아는 조용히 놀고 있었다. 가정 분위기는 이 전과 같이 다정하고 평화로웠으나 명랑함은 없어진 것 같았다. 늘 떠들썩하고 사람들을 곧잘 웃기던 쟌느가 말이 없고 보니 집안이 명랑해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조용한 생활이 가족 모두에게 어느 정도 습관화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쟌느는 내가 산보를 하자거나 혹은 수영을 하자고 먼저 권해야만 말 없이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늘 조용한 쟌느의 모습, 어느 정도 고독해 보이고 고뇌에 단련된 그녀의 성숙한 모습, 이러한 쟌느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내 마음을 아프게 두드렸다.

어느 날 쟌느는 나에게 처음으로 산보를 제의했다. 호숫가에서 떨어진 조용한 숲길을 우리는 말없이 한참 동안이나 걸었다.

“태오, 나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쟌느는 내 옆 얼굴을 잔잔히 바라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무슨 부탁? 말해 봐 쟌느.”

“나 말이야, 아버지 알베르를 한 번 보고 싶어, 그리고 지난 날 내가 거칠게 행동했던 데에 대해서도 용서를 빌고 싶고….”

호숫가 저 건너 먼 산을 바라보며 말하는 쟌느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쟌느의 부탁에 말문이 막혔다. 역시 핏줄은 어쩔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만을 간신히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쟌느의 우울한 표정 속에는 그래도 핏줄기의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이 서려 있었다. 쟌느는 이제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잠잠히 걷고만 있었다. 다만 갑자기 무슈 그렁꼴라가 생각났고 여러가지로 염려스럽게 상상되는 점들이 고통을 주고 있었다.

“왜, 잠자코 있지? 태오, 나를 낳게 해 준 아버지 알베르를 방문하면 안 된다고 지금 태오는 생각하고 있어?”

“아니야! 그런 건 아냐, 다만 방문하는 시기가 적당한지 하는 걸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야.”

“방문의 시기라나?”

쟌느는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반문했다.

“예컨대, 현지 쟌느의 심리 상태라든가 하는 걸 생각해 볼 때 말이야, 무슈 알베르를 만났을 때 받게 되는 심리적 충격 등을 고려해 보아야 할 거 아니야?”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나 이젠 어린애가 아냐. 어떠한 충격도 참고 견딜 것 같애. 그렇다 하더라도 나 혼자서는 못 가. 그래서 네가 같이 가 줄 수 있는가 하는 걸 알아 보려는 거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물론 동반해 주고 말고!”

“그럼 내일 오후에 우리 병원에 다녀오기로 해. 그리고 그것을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비밀로 해야 돼. 약속하지, 태오?”

“꼭 약속하지.”

“그런데 말이야 태오, 아버지 알베르를 몰래 방문하는 것이 아버지 그렁꼴라를 배신하는 행위가 될까? 나는 그 점이 제일 괴로워.”

“그분이 알면 얼마쯤은 섭섭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염려도 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그분에 대한 배신 행위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

 

다음 날 우리 둘은 친구네 집을 다녀온다고 말하고 마담 그렁꼴라의 차를 빌려 타고 집을 떠났다. 무슈 알베르는 쌍디에 정신과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쟌느는 별 말이 없었다. 가끔 눈물을 흘리며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입원자 명부에는 알베르는 집도 가족도 없는 주거부정자(住居不定者)처럼 기입되어 있었다. 무슈 알베르와 어떤 관계냐고 묻는 수부실 간호원에게 우리는 다만 막연히 아는 친지 사이라고만 대답했다. 우선 우리는 병원 지도 신부님을 찾아가 우리 방문의 사유를 말하고 무슈 알베르의 근황을 물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마약중독 증세는 거의 치료가 되었으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대로 맑은 정신으로 열심히 신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안내하는 간호원을 따라 무슈 알베르를 찾아갔을 때 그분은 병원 정원의 나무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묵주가 들리어져 있었다. 간호원은 돌아가고 쟌느, 나, 무슈 알베르 셋만 남았다. 무슈 알베르는 몸이 아주 수척했으나 두 눈만은 생생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쟌느를 보는 순간,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림 것 같았다. 아주 기쁜 표정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그분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쟌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옆으로 다가 앉으며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버지, 나 쟌느예요.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찾아 왔어요. 날 좀 보세요!”

쟌느의 음성은 몹시 떨고 있었다.

“마드모아젤,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뜻 밖의 말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아버지, 나 쟌느예요. 작년 이 맘 때쯤 아버지께서 나를 병원으로 찾아 주셨지요.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마드모아젤, 나는 당신과 같이 착하고 아름다운 딸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쟌느라는 마드모아젤을 모릅니다. 발리 내 곁을 떠나 주십시오.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의 아버지도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그러나 나는 당신의 딸이에요. 지난 부활절 전에는 그것을 모르고 아버지에게 너무 무례하게 대해 드렸어요. 용서해 주세요. 나, 아버지의 딸 쟌느예요.”

쟌느는 무슈 알베르의 팔을 잡아 흔들며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분은 나뭇가지처럼 메마른 두 손으로 쟌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기 품 안으로 쟌느를 끌어 안았다.

“내 딸 쟌느야, 이 애비를 용서해 다오. 이 천하에 못된 애비를 용서해 다오.” 하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쟌느이 어깨도 요란하게 들먹이고 있었다. 역시 핏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 두 눈시울도 뜨겁게 달아 올랐다. 한참 후 무슈 알베르가 말을 이었다.

“쟌느야! 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용서를 받고 싶었다. 요즘 내가 온종일 바치는 기도는 너를 한 번 보고, 너로부터 용서를 받고 주님 안에 편안히 죽게 해 달라는 것이 그 전부란다. 그런데 너 스스로 나를 찾아와 나를 용서해 주고 있구나. 쟌느야, 너는 참으로 착한 아이다. 나같은 사람을 다 아버지라고 불러 주다니…”

무슈 알베르는 감격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쟌느의 두 손을 잡은 채 흐느끼며 울고만 있었다.

쟌느는 자기의 손수건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잠시 후 무슈 알베르가 입을 열었다.

“쟌느야, 아까 너를 보는 순간 반가웠으나 죄책감 때문에 차마 너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못난 애비란다.”

“아버지, 우리 이젠 지난 이야기는 않기로 해요.”

“그래, 고맙다. 그런데 어머니는 안녕하시냐? 그리고 아버지 무슈 그렁꼴라도…”

“네, 두 분 다 안녕하세요.”

“네 어머니는 참으로 좋은 분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내 처지가 아니지만…. 네 어머니는 내 일생 단 한 번 사랑한 여인이다. 나는 나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네 어머니를 축복해 주었고 행복하기를 빌어 왔다. 전쟁이 시작되자 나도 처음엔 조국 해방을 위해 지하운동에 가담해 투쟁하고 있었다. 얼마 후 무슈 그렁꼴라가 민간포로로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를 돕기 위하여 나는 그 지하운동에서 탈퇴하고 빼당 장군이 세운 비시 정권에 가담했다. 그리고 낭씨 지역 민정관의 한 사람으로 일할 것을 자청했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순수한 마음으로 네 어머니를 돕고 있었으나, 역시 우리 둘은 이 전의 친구였었고 또 젊고 고독했었다. 서로 누가 먼저 유혹한 일도 없이 환경이 우리를 결합시켰다. 너를 임신하자 어머니는 파리로 올라갔고 나는 얼마 후 알제리아로 탈출했다. 그러나 알제리아에서도 독일군에 협조한 국가 반역자라는 죄명이 찍힌 나는 설 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알제리아 시내 뒷골목에서 살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했다. 그러나 마약만이 오직 나를 위로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나는 타락해 갔다. 알제리아가 독립된 후 우리가 쫓겨나자 나는 체면도 없이 비굴하게 네 어머니를 찾아갔다. 마음이 약하고 착한 네 어머니는 내 협박 공갈에 못 이겨 나에게 생활비를 대 주었다. 그리고 끝내 나는 너의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고, 어린 너에게 일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만을 남겨 주었구나. 쟌느야, 이 애비는 네가 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부당한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 너를 보니 기쁘기 한량 없구나. 이제 나는 속죄받은 기분으로 주님 안에 편안히 죽을 수 있다. 그리고 쟌느야, 다시는 나를 찾아 오지 말아다오! 너를 보기가 부끄러워 나는 얼굴조차 들 수가 없구나….”

쟌느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아버지 품에 안겨 있었다. 무슈 알베르는 쟌느의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쟌느야, 너만은 행복하게 살아 다오. 내 이 죄스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나의 모든 것을, 너의 행복만을 위해 주님께 바치련다. 내 딸 쟌느야, 너만은 진정 행복해 다오…. 자, 이제 돌아가 다오 쟌느야, 그리고 앞으로 는 다시 나를 찾아오지 말아라.”

무슈 알베르의 간곡하고 진정한 부탁이었다. 쟌느도 그 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 쟌느는 일어섰다. 무슈 알베르도 의자에서 일어섰다. 쟌느는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알베르는 잠자코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감사와 기쁨과 기도하는 정성만이 그분의 얼굴에 충만해 있었다. 쟌느는 무슈 알베르의 뺨에 키스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쟌느는 차 안에서 오래 오래 흐느끼며 울었다.

 

제라르메르 별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에서도 우리는 별로 말이 없었다. 쟌느가 집으로 돌아가서 어떤 표정으로 가족들을 대할지 그게 걱정스러웠다. 요즈음 몰라보게 성숙하긴 했지만 그래도 쟌느는 이러한 인간적 고통과 비극을 이겨 나가기에는 아직도 정신적으로 어렸다. 쟌느는 묵묵히 운전하고 있는 나를 잠잠히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태오, 지금 뭘 생각하고 있어?”

나는 쟌느의 시선을 피하며 역시 담담하게 대답했다.

“걱정이 돼?”

“왜,  무슨 걱정?”

“네 모습이 상당히 걱정스러워 보여서 그래.”

“사실 너를 위해 어느 정도는 염려하고 있긴 해…”

“나, 다 알고 있어. 네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너무 걱정 마. 나는 이미 짓궂게 장난치며 너를 못 살게 굴던 쟌느가 아냐.”

오늘 처음으로 쟌느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말 없이 웃으며 쟌느의 뺨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이 전과 같은 명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태오, 내일이 내 생일이야. 그래서 말야. 내일 너 나를 위해 우리 가족에게 식사대접 안 해줄래? 물론 식사 비용은 내가 미리 주는 조건으로 말이야. 나는 말이야, 내 기분도 그렇지만 우리 가족 분위기를 한 번 살려 보고 싶어서 그래.”

“쟌느, 우선 생일을 축하해. 그러나 나에게서도 그만한 돈은 있어. 염려 마. 내가 한 번 멋지게 식사 대접하지.”

“그건 싫어! 네 돈으로 하는 것은 싫어. 여기 돈 있으니 받아. 태오.”

쟌느는 돈 뭉치를 내 수단 주머니 속으로 넣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연극이 되지 않아? 내 돈으로 내가 식사대접 한 번 할게 염려 마. 난 그렇게 가난한 신학생은 아냐.”

“태오, 너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그랬지? 그럼 이제부터 겸손과 순명 정신을 배워가야 돼. 그 돈은 이미 네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이니까, 내 돈이 아니고 네 돈이야. 알겠지? 그러니까 겸손하게 받으며 내 뜻에 순종해요. 태오 수사님!”

쟌느는 사뭇 재미있다는 듯 떠들어대며 명랑하게 웃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만족했다.

우리는 제라르메르로 들어가자 꽃집에 들러 꽃을 한 아름 샀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렁꼴라 부부는 무슨 영문이지를 몰라 꽃을 보며 얼떨떨해 했다. 쟌느는 예전처럼 즐겁게 수선을 피웠다.

“아빠, 엄마, 글쎄 태오가 말이야, 내일 내 생일을 위해 이렇게 많은 꽃을 사 줬어. 그리고 내일 또 우리 가족에게 멋진 식사 대접을 하겠대. 아 신나! 이런 기분 좋은 생일은 내 일생 처음인 걸. 태오 감사해.”

쟌느는 어린 소녀처럼 내 뺨에 수 없이 키스하며 좋아했다. 그녀의 이러한 과장된 기쁨을 알고 나는 속으로 가슴이 아팠다. 오랜만에 밝고 명랑한 딸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렁꼴라 부부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쟌느도 속으로는 울고 있었겠지…. 나는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무슈, 마담 그렁꼴라! 내 아름다운 마드모아젤 쟌느의 생일 축하연에 두 분을 초대합니다. 내일 우리는 디죵으로 가서 점심을 할 것입니다. 두 분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옷으로 완전히 성장하셔야 하며, 특히 마담께서는 제일 멋진 보석과 가장 향기로운 향수로 우선 우리의 시각과 취각을 만족시켜 주셔야 합니다. 이것은 미래의 본당신부의 명령이며 두 분은 겸손하게 내 초대를 받아들이고 나에게 절대 순명 하셔야 합니다.”

나도 한바탕 떠들어댔다. 두 분은 우리가 마치 무슨 재미있는 연극을 하고 있는 것처럼 정겹게 바라보며 기뻐 웃고 있었다. 쟌느가 또 입을 열었다.

“아빠, 엄마, 우리는 태오의 성의를 받아 줘야 돼. 한국 신사의 체면과 인격을 우리는 높이 존중해 줘야 해. 태오가 내 생일 축하 파티를 해 준다니 이처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어! 오늘 밤을 난 어떻게 참으면 좋지! 그까짓 것 우리 오늘 저녁으로 내 생일을 당겨볼까? 아냐, 그럼 좋지 않아, 내일 일은 내일 해야 뜻이 있는 것이니까… 엄마, 오늘 밤에는 수면제를 먹고 자야 할 것 같애.”

쟌느의 이 말에 우리 모두는 웃었다. 그렁꼴라 부부는 쟌느와 내가 이렇게 떠들고 수선을 피우는 바람에 내 초대를 간단히 받아들였다.

그날 저녁식사 후 마담 그렁꼴라는 부엌으로 나를 부르더니 잠자코 있으라면서 돈 뭉치를 내 주머니 속으로 넣어 주었다. 그리고 쟌느를 위해 감사하다고 고마워하며 나를 엉부라쓰 했다. 나는 그 돈을 받기로 했다. 그날 밤에는 또 무슈 그렁꼴라가 내 방으로 조용히 나를 찾아와 내일 쟌느의 생일 식사비라고 하며 두툼한 봉투 하나를 책상 위에 놓고 나갔다. 내가 그 봉투를 돌려 주려고 하자 그분은 “쉬쉬” 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그 다음날 우리는 쟌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디죵으로 떠났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화려한 식당에서 멋진 식사를 했다. 쟌느도 즐거워했다. 내 돈 안 들이고 내가 초청인이 되어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베푸는 것은 내 일생 처음이며 또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았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그렁꼴라 부부의 다소 우울해 보이던 표정도 작년 코드 다쥬르의 바캉스 때처럼 행복한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이렇게 함으로써 쟌느는 아버지 알베르를 만난 슬픔과 마음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우리 둘이서 무슈 알베르를 만나고 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오후 늦게 우리는 제라르메르로 돌아왔다. 그러나 쟌느는 모처럼 예쁘게 차려 입은 옷을 벗기가 싫다며 자동차 드라이브를 하고 싶어했다. 그날 쟌느는 정말이자 아름다웠다. 화려하고 우아한 옷차림이 그녀의 천성적인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기에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즐겁게 노래 부르며 또 여러 재미있는 대화도 나누며 야산지대인 보죠 지방의 산길을 오르내렸다. 한참 후 쟌느는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태오, 나 또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말해 봐, 뭔데, 쟌느?”

“나 이번에 알베르 아버지를 만나고 오면서 무엇인가 한 가지 생각해 본 것이 있어. 그 생각의 방향을 아직 정확히는 정할 수 없으나, 무엇인가 나도 해야겠다는 것을 강력히 느꼈어. 그래서 말이야. 태오 영성체 할 때 우리는 <주여, 당신께서 쟌느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그녀에게 한 말씀만 해 주소서? 이렇게 말이야.”

나는 차를 천천히 몰며 대답하는 대신 쟌느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수녀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쟌느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나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너는 내 생각을 파고 들고 있지? 나를 보지 마. 태오, 운전 조심해요. 그리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묻지 마.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해 줄 거야 안 해 줄 거야?”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기도해 주지.”

나는 조용히 쟌느의 손 등에 키스를 해 주었다.

 

 

방학이 끝나 나는 다시 신학교로 되돌아 왔다. 이제 나는 신학과 3학년이 되었고, 이 학년을 마치는 동시에 부제품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학년 말 시험에도 좋은 성적으로 전과목 합격했다. 그리고 나는 내 지도 신부님을 통해 부제품 받을 의사를 학장 신부님에게 전달했다.

 

서품 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와야 할 곳에 도착한 안도감과 평화로움을 느꼈다. 서품 피정이 시작된 지 이틀째 되는 날 밤이었다. 밤 11시경 누군가가 내 방을 노크했다. 밤 10시 이후에는 대침묵 시간이었고 다라서 남의 방을 방문하기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방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자지는 않고 있었으나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방문을 여니 거기에는 뜻밖에도 이번에 같이 부제품을 받기로 된 동료인 쟈크 빈요롱이 사복 차림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나와 각별한 사이였으며 나에게 열심히 불어를 가르쳐 주기도 한 친구였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사복차림으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내 문 앞에 그가 서 있다니! 나는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쟈크, 어찌된 일이야?”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쟈크는 우리 동료 중에서도 남달리 열심한 신학생이었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기도 했다.

“태오, 놀라지 마. 나 신부 되는 것 자신이 없어. 자신을 달라고, 신념을 주십사 고 주님께 무던히도 기도 드렸으나, 그래도 나는 자신이 없어. 자신 없는 일을 하다가 오히려 천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평신자로서 교회에 봉사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어. 그래서 몇 달 동안 기도하며 고민하다가 결국 신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어.”

“그래?”

나는 그의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이고 모범적이던 신학생이…

“태오, 미안해. 너와의 우정을 배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우리 둘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꼭 신부가 되자고 얼마 전에 서로 약속했었지. 그런데 난 자신을 잃었어.”

그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쟈크, 우리 둘 사이에는 배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어. 다만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위한 봉사의 길을 달리할 따름이야.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러가지일 테니까…..”

“감사해, 너의 우정!”

“좋아. 쟈크, 앞으로는 신학교를 생각하지 말고 네가 가려는 길을 주님께서 원하셨고 또 축복해 주신 거라고 굳게 믿고 용감히 살아가. 주님께서는 너를 달리 필요로 하니까… 쟈크, 열심히 살아요, 그리고 행복해요.”

쟈크는 나를 엉부라쓰하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네 말대로 용감히 살아 갈게. 너도 변함 없이 꿋꿋하게 네게 스스로 택한 길을 걸어가. 우리 서로 기도하며….”

나는 잠옷에 나이트가운을 걸친 채 그의 가방을 들고 신학교 옆 문 현관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금발의 젊은 여인이 차 안에서 쟈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주일 날 오후 면회시간에 가끔 쟈크를 찾아오던 그의 대학 시절 여자 친구였다. 쟈크의 소개로 나도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엠마뉴엘이었다. 엠마뉴엘은 쟈크를 근 8년 동안이나 사랑해 왔었다. 쟈크는 낭씨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군대생활을 거쳐 신학교로 들어 왔었고, 그 당시 엠마뉴엘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으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쟈크를 일생의 벗으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순정파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신부가 되고 싶어하는 쟈크를 사랑하면서도 그에게 신학교를 나오라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달빛에 비친 엠마뉴엘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차 밖으로 나오며 그녀는 열렬히 쟈크를 엉부라쓰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봉 수와르 무슈 태오” 하고 인사하며 짙은 향수 나는 자기 얼굴을 내 뺨에다 대며 엉부라쓰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조용한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엔진 소리를 요란하게 뒤로 남기고 신학교에서 멀어져 갔다. 나는 넋 잃은 사람처럼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다. 마치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는 사람처럼…. 그날 밤 나는 결국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쟈크가 떠난 날 밤, 잠 한 숨 자지 못한 기나긴 밤에 내 가슴 속에도 수 없는 회의와 의문이 명멸했다. 나도 과연 사제생활이라는 것에 자신을 갖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말해 나도 자신이 없었다. 특히 신부로서 생명처럼 보존하고 지켜야 할 동정생활(童貞生活)에 나는 자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물론 예수님이 이후 그 2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 없는 사람들이 오직 주님을 위해 동정을 자치며 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였다. 나도 남들처럼 희로애락을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인 감정을 초월하고 홀로 살아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신부들의 독신 제도를 제정한 교회가 원망스럽게만 했다. 어쨌든 사제생활이 나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무척 괴로웠다. 신부 되기를 포기한 쟈크가 어쩌면 신부가 되려고 결심하면서도 이렇게 회의에 잠겨 있는 나보다 더 현명하고 인간적인 양심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보기도 했다.

물론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인간적인 노력 노력과 신념을 갖고 신부가 될 수는 없다. 설사 신부가 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신부는 아마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 신부생활을 올바르게 계속해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신부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약한 인간들이다. 그러므로 신부들은 겸손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그분의 은혜 안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신부들에게는 자기만의 인간적인 노력과 자신감은 일종이 교만이며 이 교만은 바로 사제생활을 파괴하는 암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사제생활은 이렇게 겸손한 생활이어야 하고 철저한 신앙생활이어야 한다. 그래서 신부들은 생활을 통해 신앙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즉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주님의 은혜 안에 가능화시켜 가는 사명을 신부는 생활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이런 등등의 생각을 나는 밤을 새웠다. 그러나 쟈크의 경정이 신부가 되려는 내 결심보다 더 현명하게만 여겨졌다. 괴로운 밤이었다.

그 다음 날 밤도 나는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밝혔다. 몸은 지쳐 있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혀 생가지도 않았던 엉뚱한 것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32년 간의 인생을 살아 오면서 나는 갖가지 시련을 겪어 왔으며 이 시련을 통해 나는 천주님의 존재성을 굳게 믿으며 살아 왔다. 이러한 신념 때문에 나는 신부가 되려고 결심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이 신념을 부정하고 포기하라는 강한 유혹을 받고 있었다. <천구다 어디 있어? 그것은 인간의 부조리가 자기의 비극과 고통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순수한 망상이다. 이러한 존재하지도 않는 허깨비를 위하여 너의 피 끓는 청춘과 하나 밖에 없는 생명마저 버리려 하느냐?> 나는 온 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혀 당치도 않은 이 유혹의 소리를 끊임 없이 듣고 있었다.

신의 존재성은 인간에게 문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비 자체이다. 신의 존재 여부가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인간은 그 탁월한 지능으로 그것을 넉넉히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성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신비의 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이름으로 신의 존재성을 믿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존재성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음도 신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증명되는 신을 믿는 데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역사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 한 때 우리들처럼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신 예수님을 통하여 확실한 신의 존재성을 믿고 있다.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신을 믿고 있을 뿐이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 가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결코 신이라는 하느님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믿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으로 나는 또 밤을 새웠다.

다음 날은 목요일이었다. 그날도 밤은 깊어 가고 있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설사 신이라는 하느님이 계신다 하더라도 너는 정말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느냐는 질문과 회의가 뒤따랐다. <주님이 너를 사제직으로 불렀다는 너의 신념은 전쟁 중의 인간의 비극과 고통과 이 사회의 불의와 부정에 대한 너의 남다른 예민한 감수성이 만들어 낸 너의 순수한 주관적 망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들리지 않는 유혹의 외침이 나를 짓이겨 놓을 듯 달려 들고 있었다.

사실 나는 주님의 부르심을 내 귀로 직접 들은 일은 없다. 그저 신부가 되고 싶어하는 끝 없는 이 갈망! 내 가슴 저 깊이에서 샘처럼 솟고 있는 이 갈망을 나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오늘까지 살아 왔다. 신의 존재성마저 회의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신부가 되고자 하는 이 의지와 갈망을 나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있었다.

 

밤은 벌써 자정을 넘어 서고 있었다. 그러나 잠은 나에게서 백 리 밖에 있었다. 괴롭기만 했다. 이번에는 “네가 무엇이 잘 났다고 신부가 되려느냐?” 는 자책이 나를 비웃고 조롱하고 있었다. 내가 남보다 탁월해서 신부가 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못난 사람이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도 제대로 못해 본 사람이다. 어쩌다 프랑스까지 유학 왔지만 그것은 내가 남보다 우월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보라, 쟈크 같은 사람을? 너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한 사람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들은 겸손하게 그 부르심을 사양했다. 그런데 너는 도대체 뭐냐? 만용과 고집과 무식과 자만심 이외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미련한 네가 감히 신부가 되려고 하느냐?”

자책과 유혹은 나의 체면과 자존심을 사정 없이 무시하며 상처내기 시작했다. 만약 주님께서 이처럼 못난 나를 사제직에 불러 주신다면 나는 일생 그분에게 감사하며 겸손되이 살아가련만…

 

밤은 계속 깊어 가고만 있었다. 밤 한시를 넘어서서 벌써 금요일이었다. 나는 오전 열 시 전으로 부제품을 받겠다는 청원서를 스스로 써서 학장 신부님께 제출해야 한다. 이 청원서는 라틴어로 이미 공식화되어 있는 양식을 내 손으로 직접 다시 써서 학장 신부님께 바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청원서를 몇 범이나 쓰려다 펜을 놓고 말았다. <사제생활이 이 연약한 나에게 정말로 가능할까?….>

나는 부제품을 받음으로써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나 역시 지기 위해 내 청춘과 내 생명을 일생 바친다는 서약을 하느님께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서약은 친구 사이에 맺은 약속 같은 것이 아니다. 사업상의 계약 같은 것도 물론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 맺어지는 정치적 조약 같은 것도 역시 아니다. 심지어는 두 몸이 합쳐 한 몸이 된다는 부부 간에 맺은 결혼 계약 같은 것도 아니다. 이 서약은 내 온 존재를 대변하는 깊은 양심과 하느님과의 약속이다. 한 번 맺으면 다시 무를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는 영원한 서약이다. 그런데 내일 일을 모르는 변화무쌍한 감정과 심리를 갖고 있는 한 연약한 인간인 내가 일생을 거는 이러한 서약을 하느님과 과연 맺을 수 있을까?

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심장만 뛰었다. 정신은 긴장으로 더욱 또렷해졌다.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나는 울며 주님께 간곡히 하소연했다.

“주님, 한 말씀난 하소서. 예전에 당신께서 <베드로야, 안드레아야, 요한아, 마태오야!> 이렇게 제자들을 직접 부르셨듯이 나에게도 이 귀로 들을 수 이도록 주님께서 직접 한 말씀만 하소서! 주님께서 직접 나를 사제직으로 부르셨다는 증명이 될 수 있도록 주여, 제발 한 말씀만 나에게 들려 주소서! 주님으니 영원히 살아 계신 분, 이 세상의 시작이요 끝이신 당신, 옛날에 제자들을 부르셨듯이 나도 한 번 불러 주소서. 그러하오면 주님, 나는 미련 없이 또 아낌 없이 이 한 몸을 당신께 오로지 바쳐 당신 뒤를 따르오리다. 주님, 그때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 사도를 당신께서 친히 부르셨듯이 이 불쌍한 마태오도 주님께서 친히 한 번만 불러 주소서…”

십자가만 내 가슴에 안겨 있을 뿐, 결코 아물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 병원 구급차가 울리는 사이렌 소리만 요란히 들려올 뿐이었다. 잠은 결국 오지 않았다. 벌써 밤 두 시가 다가 오고 있었다. 청원서를 쓰리라 또 펜을 들었으나 한 자 쓰지 못하고 다시 그 펜을 놓고 말았다.

<사제직이 정말 나에게 가능할까?…..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아, 그러나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으신 주님!………. 사제직이 요구하는 순결과 신심(信心)과 덕행(德行)의 생활이 인간에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주님은 정말 나를 사제직에 불러 주셨을까?….. 성소(聖召)라 함은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나에게 한 말씀만 해 주신다면…..>

나는 답답한 가슴을 안고 이번에는 성당으로 갔다.

 

성당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그래도 그냥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은 비가 올 듯이 잔뜩 흐려 있었고 달빛도 미처 들어오지 않는 성당 안은 저 멀리 빨간 성체불만 보일 뿐, 무섭도록 깜깜했다. 나는 이 어둠 속에 잠시 서서 주위가 어느 정도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바로 그때 사람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성체 불 밑 제대 쪽에서 들려 왔다. 갑자기 등에 소름이 끼치며 무서워졌다.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정말이지 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주님이 나타나시어 “태오야, 겁내지 마라. 내가 너를 사제직으로 불렀느니라”하고 말씀하신다 하더라도 나는 기쁨보다는 무서워 기절해 버릴 거라는 생각이 후딱 들었다. 기도도 하소연도 다 집어치우고 방으로 다시 돌아갈까 했으나 제대 쪽에서 여전히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에 나는 계속 호기심이 났다.

나는 그 사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신 차려 듣고 있었다. 그 동안 성당 안의 물체가 어렴풋이 보일 만큼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제대 계단에 누군가가 무릎을 꿇고 양팔을 십자가처럼 벌린 채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사람의 기도 소리도 똑똑히 들려 왔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은 바로 내 자신이 바치고 싶어하는 그것과 꼭 같은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갑자기 내 온 몸에서 긴장이 풀리며 그 기도 소리가 우습게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 신학생에게 한 번 장난을 치고 싶은 짓궂은 충동을 강력히 느꼈다. 신을 벗어 들고 나는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제대 앞으로 걸어가 의자 뒤에 숨었다.

그 신학생은 바로 나와 함께 부제품을 받게 되어 있는 앙뚜완 죤져그 였다. 앙뚜완은 기도에 도취도어 내가 바로 자기 뒤 의자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조차 알아 차리지 못하였다. 그는 <주님, 나에게 한 말씀만 하소서. 나 즐거이 이 한 몸을 당신께 바치리이다> 하는 기도를 소리 내며 수 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의 음성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엄숙하게 그를 향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내 사랑하는 아들 앙뜨완 죤져그야! 인류 구원을 위해 매맞아 죽은 내 뒤를 이어 사제가 되려는 너, 내가 너를 일찍이 사제직에 불렀고, 내 부름에 자유롭고 너그럽게 대답한 너와 함께 나 항상 있으리라…”

그때 앙뜨완 죤져그는 깜짝 놀라 일어서며 무서웠던 탓인지 성당문 쪽을 향하여 뛰다시피 걸어 나갔다. 나는 다시 음성을 높여 그에게 소리쳤다.

“앙뚜완! 내가 십자가 형틀에 묶여 죽어갈 때 내 제자들이 다 도망쳤듯이 너도 내 곁을 떠나려 하느냐?”

그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자코 서 있었다. 무서워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부드럽게 그에게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 앙뚜완 죠져그야! 너의 그 애절한 기도에 내가 대답했을 뿐인데 왜 너는 여기에서 도망치려 하느냐? 다시 제대 앞으로 돌아와 내 말을 들을지어다.”

“아니,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는 떨리는 소리로 겨우 이렇게 물었다.

“나는 제가 기도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찾고 있는 너의 주님이다. 다마스코 신자들을 잡아 죽이러 가던 사울의 눈을 멀게 하고 그를 말에서 떨어져 넘어지게 한 나자렛 예수다. 그리고,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를 피해 도망하던 베드로에게 나타난  <쿠오바디스>의 예수 그리스도다.”

“진정 주님이신 당신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까? 나는 도무지 그 어떤 환상 속에 잇는 것만 같습니다.”

“앙뚜완, 내 아들아! 나는 벌써 너에게 네가 애처롭게 찾고 있는 바로 그 주님이라고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나에게 말하고 있는 이 소리가 주님의 말씀이라고는 나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 어떤 환상의 소리를 듣는 것만 같습니다.”

그때 나는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반응을 보이나 조용히 살피고 있었다.

“주님, 한 번만 더 말씀해 보십시오. 당신의 음성을 한 번만 더 듣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당신을 의심하지 않고 이 한 몸을 당신께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앙뚜완은 제대 앞으로 걸어 나오며 애원하듯 말했다.

“내 아들 앙뚜완 죤져그야, 너의 불신(不信)이 있기 전에 토마의 불신이 이미 있었다. 네가 내 소리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토마도 상처 난 내 몸을 만져 보고서야 비로소 내 부활을 믿었다. 그때 나는 토마의 후예들에게 똑똑히 말한 바 있다. <나를 보지 않고 또 내 소리를 듣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진정 행복하다>고, 앙뚜완아, 안심하여라. 내가 너를 사제직에 불렀고 또 사제로서 내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갈 너에게 필요한 용기와 신심과 덕을 나는 주이라. 그리고 나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는 다시 제대 앞 제단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열심히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의자 너머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냥 소리 내어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일어섰다. 그때 앙뚜완은 “앗!”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일어나 자기 뒤에 서 있는 내 검은 모습을 보자 기겁을 하고 성당 문 쪽으로 나갔다. 나는 여전히 소리 내어 웃으며 그를 불렀다.

“앙뚜완, 나야 나 태오야. 너처럼 나도 이 밤중에 기도 드리려고 성당엘 왔더니 내가 주님께 하고 싶은 바로 그 말을 너 역시 하고 있지 않겠어. 그래서 갑자기 너에게 장난을 좀 치고 싶었어. 그렇게 요란스럽게 놀라 달아나지 마. 나 태오야.”

그는 성당 출입구에 서서 자기 앞으로 걸어 나오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라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화를 내며 말했다.

“태오야, 정말이지 너는 나쁜 사람이다. 넌 정말 나쁜 놈이야. 아니, 그래 사람을 이 밤중에 이렇게 놀라게 만들어? 나는 정말 놀라 숨이 막혀 죽을 뻔했어.”

그는 아직도 숨을 헐떡이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앙뚜완, 난 이제 깨달았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감당키 어려운 은혜를 달라고 주님께 기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침묵을 지키고 계시는 주님의 입장도 이제는 이해가 되네. 정말이지 이 캄캄한 밤에 주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고 한 번 상상해 봐.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느냐 말이야? 나도 아마 놀라 기절해 버렸을 거야. 그런데 너는 정말 용감했어. 일단 성당 문까지 도망을 갔었지만 끝내 대화를 계속하며 서 있던 자네는 내가 부러울 만치 용감했네.”

“처음엔 나도 무서워 혼이 났었어. 그래도 주님이라는 말씀에 차마 모른 척하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네. 그런데 자넨 이 밤중에 뭘 하려고 왔었나?”

“자네와 마찬가지네. 사흘째 잠 한 잠 못 자고 고민 중이었어. 그래서 자네처럼 주님께 한 말씀만 해 달라고 하소연하러 성당에 왔다네. 그런데 자네가 제대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내가 하고 싶어하던 바로 그 말을 중얼거리며 기도하고 있지 않겠나. 그때 내 몸의 긴장이 갑자기 풀리며 자네에게 장난치고 싶은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네.”

그러자 앙뚜완은 아무 말 없이 성당 바닥에 엎드려 내 발에 수 없이 입을 맞추며 말했다.

“주님, 진정 감사합니다. 태오의 말대로 당신께서 친히 나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더라면 나는 무서워 기절해 버렸을 겁니다. 이처럼 나의 신앙은 아직 약합니다. 그러기에 또 주님께서는 우리 앞에 나타나 주시지 않으심도 이제 잘 깨달았습니다. 주님 다시는 당신께서 친히 말씀해 달라고 기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씀을 내 친구 태오의 장난을 통하여 분명히 들었습니다. 태오를 통해 당신은 진정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기꺼이 만족하며 내일 아침 미련 없이 이 한 몸을 당신께 바치렵니다. 주님, 진정 감사합니다.”

 

앙뚜완의 신앙에서 우러나온 이 심각한 행동을 보며 나도 역시 심각해졌다. 그는 내 장난의 말을 주님의 진정한 말씀으로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옛날 예수님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추던 마리아 막달라처럼 마치 주님의 발인 양 내 발에 입을 맞추고 있는 앙뚜완의 행동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한 마음가짐과 행동이 바로 신앙이구나! 하고 직감하며 나도 엎드려 그의 두 발에 정성을 다하여 입을 맞추었다.

우리 둘은 기뻤다. 더 이상 주님께 요구할 것도, 바랄 것도, 의심할 것도 없었다. 앙뚜완은 나의 장난을 통하여, 또 나는 그의 단순하고 경건한 신앙을 통하여 우리 둘은 주님께서 우리 둘을 사제직으로 부르시는 말씀을 분명히 들었다.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던 고민과 눈물과 고독 속에, 심지어는 반항과 분노 속에 애원하던 기도의 대답을 우리는 확실히 들었던 것이다. 우리 둘은 오랜 동안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벅차 엉부라쓰 했다. 그리고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피 끓는 이 청춘과 이 한 몸을 정말로 미련 없이 주님께 바칠 것을 우리는 서로 결심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즉시 부제품 청원서를 써서 학장 신부님 방문 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사흘 간이나 못 잔 잠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후 3시였다. 아침과 점심을 굶었으나 허기를 느끼지 못했다. 목욕과 면도를 깨끗이 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었다. 도무지 기쁘기만 했다.

그날 오후 나는 신학교 뒷공원을 산책하며 ‘사랑의 지도’ 서장에 쓴 그러한 깊은 감회에 젖어 있었다. 여기에 다시 그 글을 소개한다.

 

 

노을이 물들었다.

그 노을의 아름다움.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황금의 실처럼 노을의 가는 빛살이 내 몸을 휘감는다.

싱그러운 잎새들의 내음!

그것은 생명의 호흡이요, 찬가(讚歌)다.

저만치 항구 밖으로 뱃머리를 돌린 두어 척의 돛배가 유유히 떠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건 모르지만 지향하는 곳으로 떠나가리라.

 

내 주변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하지만 조금도 외롭지도 않고 쓸쓸하지도 않다.

나는 굵다란 파이프를 입에 물고 연방 연기를 쉴 새 없이 내뿜는다.

보랏빛 연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신기한 흐름으로 내 주변을 돌다 가는 바람결에 따라 어디론가 흘러간다.

잔디밭은 포근하고 따뜻하고, 그래서 그럴까, 내 마음도 한결 고요하고 평화로움을 느낀다.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살고 있는 뭇 생명이 고동(鼓動)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이 고요 속에, 이 평화로움에 한 포기 풀도, 새도, 저 바다도 스스로의 생명의 노래를 높이 부르고 있는 듯 하다.

 

“드디어 예까지 왔구나!”

생각하면 할수록 무든 기적(奇蹟) 처럼 느껴진다. 불가능의 일이 불쑥 어디선가 부터 가능의 세계로 들어선 듯하다.

파이프의 연기는 바람결에 따라 날리는가 하면 때로는 원을 그리고 내 눈 앞에서 서성거린다.

두 눈을 감으면 갖가지 회상(回想)의 실마리가 하나 하나 풀려 나오려고 한다.

 

“드디어 예까지 왔구나!”

그렇다. 그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험한 산골짜기를 돌고 돌아온 시냇물이 이제 평탄한 물흐름이 되어 흐르듯이 내 생애도 이제 여기에 이르러 겨우 안정된 자리를 잡게끔 되었지만 여기에 도달하기까지에는 나도 꽤 험한 산골짜기를 돌고 돌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인간은 제 나름의 길을 가기 마련이다. 그 어떤 길을 가거나 원하는 것은 행복, 그것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귀착하는 곳은 ‘행복’이란 종착역이긴 하지만 과연 몇몇 사람이 이 종착역에 트렁크를 내려 놓을 수 있었을까.

그것보다도 도리어 인간은 불행이란 함정 속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방황하는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위치에서 오는 그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신(神)도 아니며 악마(惡魔)도 아니다. 이런 인간은 묘하게도 신과 악마의 중간 위치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만약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인간의 비극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악마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대로 행복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신도 될 수 없고 악마도 될 수 없는 데에 인간의 영원한 고뇌가 있는 것이며, 또한 그 고뇌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어차피 인간일 밖에 없다.”

이 명제(命題)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탈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이 갖는 신성(神性)과 수성(獸性), 이 양면을 갖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우리들은 이것을 윤리적인 의미로써 선과 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늘 신성과 수성, 선과 악의 중간 위치에서 고뇌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만이 갖는 고뇌이며 인간이 모순과 당착 속에서 방황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것이다.

비록 신은 될 수 없지만 신성적인 인간을 우리들은 볼 수 있으며, 악마는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수성적인 인간을 얼마든지 우리들은 불 수 잇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 어느 편일까.”

곰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돼지에게는 돼지의 사건만이 생긴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사건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이 신성과 수성의 양면성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면 나 역시, 내 생애의 역사도 이 틈바구니에서 고민한 싹이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튼 나는 이런 모순과 당착을, 괴로움과 슬픔을 극복하면서 용케 여기까지 온 것이다.

 

“드디어 예까지 왔구나!”

이 말은 내가 내 자신에게 주는 말인 동시에 내 자신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말이기도 하다.

내일은 차부제성품(次副祭聖品)의 날이다. 이것은 신부(神父)가 되기  위하여 받는 일곱 개의 계단 중 다섯 번째의 계단으로서 이 품을 받는 사람은 앞으로 동정(童貞)을 지킬 것과 성무일과(聖務日課)를 매일 읽는 두 가지 임무를 갖는 것을 뜻한다.

 

분수령(分水嶺)! 그것은 확실히 내 인생의 분수령이 아닐 수 없다. 나는 6년 동안 온 마음과 몸을 주 예수님의 영원한 영광과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고스란히 바쳐 왔다.

이제 내일이면 그 결실의 다섯 번째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나의 서른두 해 동안의 삶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하지만 지내 놓고 보면 비록 쓰라림과 슬픔에 꽉 차 있던 지난 일이긴 하지만 도리어 그립기도 하다.

 

빛나는 내일을 앞두고 노을은 저처럼 아름답고, 잎새는 푸르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 오는 지금 파이프의 연기는 여전히 내 주변에 원을 그린다.

 

“드디어 예까지 왔구나!”

이 말을 몇 번이고 입 속으로 되뇌면 지나온 일들이 눈앞에 지나온 일들이 눈앞에 하나 하나 영화 장면처럼 영상(映像)이 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이제 그것들을 하나 풀어 보기로 하자.

비록 그것이 평범한 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신성과 수성의 모순된, 당착된, 그리고 괴로움과 슬픔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겪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월(六月)의 싱싱한 공기!

나는 신학교 뒷동산에서 이처럼 황홀한 내일을 앞두고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제12장

이 한 몸을 바치며

 

토요일 아침, 날씨는 맑았다. 우리 신학생 전원은 버스로 낭씨 대주교좌 성당으로 갔다. 그 넓은 성당 안은 삭발례로부터 신품성사까지 받게 되는 신학생들의 가족과 친지들로 이미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내가 부제품을 받는다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쿠에상 댁도, 로마이에 댁도, 에그랑 장군 댁도, 그렁꼴라 댁도, 그 외 친지 몇 사람에게도 나는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축하 인사해 주는 사람은 한 분도 없었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오전 9시에 예정된 서품식 대미사가 시작되었다. 백여 명이나 되는 대성당 합창단의 그레고리안 성가가 장엄하게 성당 안을 채우고 있었다. 미사는 서품 예절에 따라 계속되었다.

신품성사와 부제품을 받게 되는 우리들은 학장 신부님의 호명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 제대 앞으로 불려 나갔다. 신부들의 사명과 부제들의 의무에 대한 주교님의 자상한 훈시가 있었다. 그리고 주교님께서는 이 사명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하느님께 맹세할 수 있겠는가를 우리에게 물으셨다. 우리 모두는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서며 ‘압숨’ 이라는 라틴어로 우리의 맹세를 서약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제대 앞에 몸을 눕히고 양팔을 겹쳐 머리를 거기에 얹었다. 우리는 이 예식을 통해 세속적 삶과 행복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께 이 한 몸을 바치며, 인류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우리도 지고 갈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으로서 우리는 영적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이 예절을 통해 주님의 영원한 사제직에 참여한 것이다. 그때 성가대의 장엄하고 구슬픈 성인열품도문과 주님께 각별한 은혜를 간청하는 기도송인 그레고리안 성가가 오래 오래 울려 퍼졌다.

 

제대 앞 붉은 주단 위에 엎드려 있는 우리들은 인류 구원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 우리 뒤에 앉아 이 예식을 참례하고 있는 서품자들의 부모, 형제, 친지, 어쩌면 애인들도 하느님과 인류 구원을 위한 사랑의 희생물로 우리를 바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부모님을 생각했다. 이미 주님 곁에 계시는 부모님들! 그들이 보고 싶었다. 그분들이 살아 계셨더라면 오늘 나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실까…. 천상 주님의 곁에서 그분들은 이 서품식 예절을 지켜 보고 계시며,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계실 것이다. 부모님께 한없이 감사했다. 그분들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이 없었던들 오늘 나는 부제로 서품 되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여! 내 부모님을 통해 당신께 찬미 바치나이다. 그리고 주님, 그분들의 영혼을 영화롭게 해 주소서.”

내 부모님들이 지금 살아 계셔서 저 뒤에서 나를 바라다보고 계신 듯 생각되어 두 눈에 눈물이 돌았다. 정말이지 그분들이 보고 싶었다.

“아버지, 내가 고향과 아버지 곁을 떠나던 날 아침,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세속적인 명예도, 지위도, 재산도 남겨 줄 것이 없다고 쓸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세속적인 영예나 재산 대신 나 자신 구원의 길잡이가 될 신앙을 나에게 유산처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세속적인 출세나 명예에 무능하셨던 아버지를 얼마쯤은 섭섭히 여기며 한편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지금 나는 신앙인으로서의 당신의 위대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빛인 신앙의 참뜻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내 사제의 길을 계속 밝혀 줄 것이며 아버지께 바치는 내 효행(孝行)으로 이 신앙의 빛을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지금 이 시간, 당신께 드려야 할 찬사로 내 마음은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정녕 내 구원의 길잡이였습니다. 내 어린 마음 안에 뿌려 놓고 가신 당신의 사랑의 씨앗은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넘기기는 했으나 오늘 부제품이라는 하나의 자그마한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태오야, 나 항상 너와 함께 있으마.>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에 나에게 하신 이 말씀은 아직도 생생하게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끊임 없이 변치 않을 당신의 사랑을 나에게 회상시켜 줄 것입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 됨을 나는 영원히 자랑과 보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의 나의 이 영광을 두 분에게 바칩니다.”

 

형님들, 누님들 생각도 났다. 북한 저 붉은 땅에서 살아 계시면서도 이 동생이 오늘 부제로 서품 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계시는 그분들! 그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아직도 살아 계실까, 혹은 돌아가셨을까? “주님, 영세성사를 통해 받은 그분들의 신앙을 보호해 주소서. 그리하여 신앙의 자유마저 빼앗겼을 저 북한 땅에서나마 당신을 향한 따뜻한 마음만이라도 간직하게 하소서. 그리고 사제생활을 통하여 당신께 바칠 내 희생이 그분들에게도 구원의 빛이 되게 하소서.”

자살해 버린 셋째 형님에 대한 회상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 때는 수재라고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형님! 정치와 혁명을 신앙처럼 섬기며 살다가 한국이라는 모순된 정치 상황과 현실 조건에 부딪쳐 결국 자살해 버리고 만 형님의 운명! 형님을 향한 눈물이 수 없이 흘러 내렸다.

“주님, 지금 흐르는 내 눈물을 당신께 바치오니 당신의 자비로운 은혜를 내 형님의 영혼에 베풀어 주소서. 당신께서 은혜롭게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어 버렸을지언정, 형님께서 생전에 행하신 선행(善行)을 살펴 보시와 최후 심판의 벌을 면하게 하소서.”

그 많은 조카들! 이제는 이름마저 모르는 조카들도 있으리라! 저 북녘 땅에서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신앙은? 내가 이 한 몸을 바치며 섬겨 오고 앞으로도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섬겨 갈 천주교라는 이 종교를 인류의 적으로 교육받고 또 이 종교를 거슬러 싸울 각오까지 되어있는 조카들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의 다른 6.25 전쟁이 별안간 상상되었다. 삼촌과 조카들의 맞서 총질하게 될 우리의 운명! “주님, 내 조카들이 설사 당신의 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해도 그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오니 저들의 행위를 용서해 주소서!”

 

저 멀리 두고 온 내 조국과 민족! 나는 전쟁 속에서 내 조국과 민족을 발견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폐허가 된 도시와 부락에서, 끊어진 철교에서, 포격을 맞아 멍들어 버린 산야(山野)에서, 또 전투를 하며 바라다보던 창백한 달빛으로 덮인 밤 하늘과 포연(砲煙) 속에 피어 있던 한 포기 들국화에서 나는 내 조국을 발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또 빗발치는 포탄 속에 수 없이 쓰러져 간 내 전우들과 북한 인민군들의 시체에서, 상처로 신음하던 내 전우들의 고통 속에서, 그들의 갈증에서, 그들의 고독에서, 그리고 꼬리를 물던 그 피난민들의 행렬에서, 그들의 추위와 배고픔에서, 미군부대 주위를 서성거리며 생활 밑천을 찾아 헤매는 우리 자매들의 모습에서, 수많은 전쟁 고아들과 전쟁 과부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 민족을 발견했고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주님, 전쟁 중에 바쳐진 그 수많은 남.북한 동포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남.북한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정치적 이념상의  견해 차이를 초월해 서로 이해하고 존경하며 공존하는 가운데 우리 남.북한 민족의 공동선인 조국 통일을 평화롭게 이룩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성과 양심을 진정 밝혀 주소서. 주님, 미약한 내 이 한 몸도 내 조국의 평화와 내 민족의 행복을 위해 바치나이다.”

“전쟁 중에 죽어 간 그 많은 전우들! 특히 우 수병, 오진 분대장, 진섭이, 윤소위…. <그래 진섭아, 지금 나는 주님께 이 한 몸을 바치고 있다. 나 대신 죽어간 너의 그 뜨거운 우정 속에 네가 말한 <대신>이라는 십자가의 사랑의 진리를 지금 나는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 있다. 나를 대신한 네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내 주님의 사도답게 성실히 살아가리라.”

 

숙! 한 때 나에게 인생의 끝 없는 꿈과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던 숙! 나의 사제 성소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주님께 제물처럼 바친 숙은 한 마디로 용감하고 훌륭했었다. 숙은 현명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멋있는 여자였다. 한 때 숙과 나를 합쳐 가정을 이루고 기다리고 기다림을 받으며 또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내 인생을 살고 싶어하던 나… 숙의 이해와 용기와 너그러운 희생의 신앙이 없었던들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숙이 한없이 고마웠다.

“주님, 숙의 가정을 당신의 사랑과 평화로 항상 보호해 주시고 가족 개개인의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보살펴 주소서. 그리고 주님, 나는 사제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나이다. 주님, 숙이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할 것이고, 그녀가 불행해진다면 나도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주여, 숙의 행복을 끝내 보호하시고 지켜 주소서.”

 

현! 전쟁 중 한때 불행했던 현….. 전쟁과 함께 고향과 부모 형제를 한꺼번에 잃은 그녀는 조국을 아주 떠나 버렸다. 미국에서 외롭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현도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여인이다. 현은 나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늘 지니고 있었다. 이 동정도, 이 존경과 감사도 일종의 사랑의 표현이었으리라.

“주님, 전쟁이 맺어 준 우리 서로의 인연 속에 싹이 튼 현의 신앙을 보살펴 주소서. 그리고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 주시고, 당신을 향한 신앙 속에서 삶의 의지와 행복을 찾게 하소서.”

 

한국에 있는 여러 친구들, 특히 상이군인 훈이… 오늘도 그는 명동 뒷골목 왕초로서 그 쇠갈고리 손을 유일한 생활 밑천으로 삼고 살아 가고 있겠지…. 영민이와 선희도 생각이 났다. 전쟁의 무덤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인간애의 꽃송이들!

“주님, 저들로 하여금 당신의 존재와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이 세상을 하직한 후 우리 모두 함께 당신 곁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소서.”

그리고 오늘의 나를 위해 수 없는 희생과 기도를 바쳐 준 한국의 여러 은인들, 나는 그 모두에게 진정 감사했다.

“주여, 그분들에게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크나큰 축복을 베풀어 주소서.”

프랑스의 여러 친구들과 신학교 교수 신부님들과 학장 신부님, 그리고 여러 은인 가족들, 특히 귀여운 비에브! 이 외로운 이국에서 내 부모 형제, 자매를 대신해 준 그들이었다.

“주님, 나그네인 나를 형제처럼 대접해 준 그들에게 당신께서 약속하신 천국의 복을 베풀어 주소서.”

그리고 쟌느! 순진하고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쟌느! 그러나 요즈음은 쓸쓸하고 외로이 마음의 고통을 지니고 있을 쟌느… 참으로 이상한 인연이었다. 우리 둘은 서로를 위해 한 때 고독했었지만 서로의 고독 속에 서로의 구원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와 섭리가 아니겠는가?…..

“주님, 쟌느로 하여금 인생을 밝게 바라보게 하시고 지혜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찾아 용기 있게 살아가게 하소서. 그리고 자기 출생의 비밀이 초래한 인간적 비애 속에 인생을 비관하며 수도성소(수도성소)를 생각하고 있는 쟌느에게 주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바를 그녀의 기도 안에 한 말씀만 속삭여 주소서.”

 

끝 없는 감사의 기도였다. 그 사이에 성인열품도문의 성가도 끝났다. 우리는 일어나 다음 예절 순서를 기다리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가족들의 좌석에서 흐느끼는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주님의 뒤를 이어 인류 구원을 위한 제물로 청춘과 이 한 몸을 바친 우리들의 이 영광을 위해 그들은 수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쳐 왔으리라….. 그러나 젊고 젊은 아들이, 형이, 동생이, 오빠가 어쩌면 애인이 인류 구원의 제물로 봉헌되는 이 예절 광경을 보고 그들은 신앙상의 감격과 기쁨도 느꼈겠지만 거기에는 인간적인 동정과 그 어떤 슬픔도 또한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 거센 세파에서 홀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신세를 걱정도 했으리라…… 울음 소리는 여기 저기서 계속 들려왔다.

 

내 동료들의 표정, 그것은 전쟁 중 수 없는 난관 속에 적의 고지를 점령했을 때 느끼던 허탈감과 흡사했다. 여러 동료들의 눈에도 눈물이 아직 흥건히 고여 있었다. 오늘 우리가 받은 이 감격도, 기쁨도 시간 속에 잠들고 며칠 후 우리의 생활은 이 전과 같이 평범해지리라… 하지만 오늘의 이 축복과 이 자리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쳐왔던가! 때로는 밤을 새우며 암흑 같은 회의 속에 빠져 방황하기도 했고 또 끈질기게 우리를 유혹하는 세속의 미련과도 치열한 영적 투쟁을 되풀이해 왔었다. 그런가 하면 사제직에 대한 두려움과 신부들의 독신제도를 제정한 교회에 대한 불만 속에 주님께 반항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우리는 부제품을 받게 될 오늘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면서 세월의 흐름이 두렵기도 했었다. 그래, 지내 놓고 보면 다 그렇고 그런 것… 감격 속에 얼굴은 상기되었으나 마음은 차분해졌다. 그리고 약간의 의로운 감정도 스며들었으나 그것은 무엇을 아쉬워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서품 예식은 오전 11시에 끝났다. 엄숙하고 숙연하던 성당 안은 그 순간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을 환영하는 역전 광장처럼 환성의 도가니로 변해 버렸다. 환호성과 포옹과 꽃다발이 뒤범벅이 되어 꼭 무슨 축제날 같은 들뜬 분위기였다. 아무도 기다릴 사람 없고 기다려 주는 사람 없는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몇 명의 동료 신학생 가족이 지나가는 길에 나를 환영해 주곤 했다. 혼잡한 군중 사이를 뚫고 나는 성당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태오!” 하고 나를 부르는 낯익은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은 쟌느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쟌느!” 하며 주위 사람들이 나를 돌아다 볼 정도의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쟌느는 내 품으로 뛰어 왔고 나는 힘껏 그녀를 포옹하였다. 오늘은 누구나 하고 포옹하고 축복받는 날이니까…

“쟌느, 너 어떻게 알고 왔지?”

쟌느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말 없이 내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녀는 부끄러워서인지 혹은 기쁨 때문인지 웃으며 한 번 다시 내 품에 안겼다. 잠시 후 쟌느가 입을 열었다.

“태오, 축하해! 진정 너의 부제품을 축하해.”

여전히 그녀의 두 눈에든 물기가 빛나고 있었다.

“감사해, 쟌느.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지?”

“네가 지난 부활절 방학 때 카드를 보내면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 이 학년 말에 부제품을 받게 될 거라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너에게 알리지 않았는데?”

“이제 나는 너의 성격을 충분히 알고 있어. 한 마디 소식 없는 너를 좀 섭섭하게 생각했지만 말이야 그래서 신학교에 전화해 보고 서품 일을 알아 두었지.”

“하여튼 너의 적극적인 성의에 진심으로 감사해. 사실 너에게만 연락을 보내고 싶었지만 네 대학졸업 관계 등 여러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그만 두었지. 참 쟌느, 너 이번에 대학 졸업했지?”

“졸업 시험도 다 끝내고 논문도 제출했고 이제는 학위 수여식만 남아 있어.”

“그럼 나도 너의 대학 졸업을 축하해.”

나는 쟌느를 엉부라쓰하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태오, 이제는 그렇게 살아 갈 필요가 없지 않아? 너는 기쁠 때도 혼자 있고 싶어하고, 혼자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별나게 살아 가려고 하지마. 물론 그것이 네 성격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 쟌느, 네 말을 앞으로 명심하지. 그런데 네 부모님에게도 내 부제품 소식을 알렸니?”

“아아니, 너 자신이 알리지도 않는 것을 내가 알릴 필요가 어디 있어. 친구 집에 다녀온다고 하고 있지.”

“이제 생각하니 좀 후회가 되는구나. 그분들의 아시면 좀 섭섭하게 여기시겠지?”

“물론이지.”

“바쁜 세상에 나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게 미안해서 그랬어.”

“너희들 신부들에게는 그러한 별난 고집이 있는 것 같애. 내 외삼촌 신부도 그 전에 그랬어. 그러나 생각해 봐! 서로의 기쁨을 이해하고 서로 돕고, 서로 웃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좋은 일을 축하해 주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사람들의 생활이 아니겠어?”

“쟌느, 네 말이 옳아. 내가 신부로 서품 되는 날 모두들 초청할게.”

“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태오, 아까 나는 참으로 감격했어. 주님께 바친 너희들의 서품자들의 의지적인 결단과 너그러운 용기를 다시 한 번 우러러 보았어. 그까짓 신부가 되는 것이 무엇이 자랑스러우며, 자기들이 좋아서 신부가 되려는 것이 뭐 그리 존경스러울까 하고 나는 이전에 생각했었어. 그런데 오늘 이 장엄한 예절을 통해 제물처럼 청춘과 몸을 아낌 없이 송두리째 바치는 너희들이 정말이지 훌륭하고 존경스러워 보였어. 아가 성인열품도문을 노래할 때 붉은 주단 위에 엎드려 있는 너희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주단에서 불길 같은 것이 활활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어. 그때 내 마음 속에 무엇인가 강력히 느껴지는 게 하나 있었어.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 차츰차츰 명확해지는 것을 깨달았어. 하여튼 나도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했어.”

“아, 참 쟌느, 작년 여름방학 때 네가 나에게 부탁한 기도 있지? 매일 그 기도를 잊지 않고 바쳐 왔지만 특히 오늘 서품식 예절 때 나는 주님께 쟌느의 행복을 위해 그분이 바라시는 바를 너의 기도 속에서 한 말씀만 속삭여 주소서 하고 기도했어.”

“감사해, 태오! 그런데 나 아직 잊고 있었네…. 태오, 잠깐만!”

쟌느는 누구를 찾는 듯 성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저만치 서 있는 한 젊은 여인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녀를 내게로 데리고 오면서 쟌느는 말했다.

“세실, 미안해. 그만 너를 잊고 있었구나. 세실은 나의 제일 친한 친구야. 이번에 같이 대학도 졸업했어. 그리고 세실도 너처럼 아주 크고 너그럽고 거룩한 뜻을 갖고 있는 애야. 얼마 있으면 세실도 주님께 자기의 청춘과 몸을 바치는 수녀가 될 거야. 태오, 세실, 서로 인사해요.”

쟌느는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세실은 보는 순간 한 여인의 순결한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내 마음 안에 느끼게 했다. 그녀의 밝고 깨끗한 표정과 맑은 눈이 퍽 인상적이었다. 조용한 모습에 깊이를 느끼게 하며 잔잔한 미소 속에 선한 마음과 강한 의지를 엿보이게 했다. 세실의 그러한 모습 전체가 벌써 오랜 세월 수도생활을 해온 한 수녀의 고결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세실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오 부제님, 오늘의 이 영광을 주님께 감사하며, 또한 부제님 자신의 기쁨과 감격을 축하해요.”

“마드모아젤 세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의 희고 고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때 쟌느가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오늘처럼 기쁘고 거룩한 날, 싱겁게 악수가 뭐야. 둘이서 엉부라쓰 해요! 태오와 세실은 같은 뜻을 갖고 같은 길을 걸어갈 동지가 아니에요? 빨리 다정하게 엉부라쓰 해요.”

쟌느의 이 말에 세실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우리 둘은 엉부라쓰 했다. 세실이 입을 열었다.

“쟌느가 태오 부제님에 대해 얼마나 얘기를 많이 했는지, 오늘 나는 부제님을 처음 뵙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래요? 쟌느가 나에 대해 나쁜 말 많이 했지요?”

나는 쟌느에게 웃어 보이며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쟌느는 마음이 워낙 착하고 예버 남에게 기분 상하게 말이나 혹은 나쁜 말은 한 마디도 못하는 애예요. 태오 부제님이 그걸 더 잘 알고 계실 텐데…”

세실은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때 학장 신부님이 우리 곁을 지나가시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분은 기쁜 얼굴로 웃으시며 쟌느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학장 신부님께 쟌느와 세실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미소 지으시면서,

“마드모아젤 쟌느, 우리 둘은 초면이 아니지요? 내가 태오 부제님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학장 신부님, 이전에 실례가 많았어요.”

쟌느는 작년 부활 주일날 있었던 그 일을 회상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마드모아젤 쟌느, 손이 들고 있는 그 장미꽃은 나를 위한 것입니까?”

정말 쟌느의 손에는 장미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학장 신부님의 농담에 쟌느는 더욱 얼굴을 붉히며,

“이 장미꽃 학장 신부님께 드리겠어요. 이전의 일에 보답하는 뜻으로…”

쟌느는 그 장미꽃을 그분 앞으로 내밀었다.

“아닙니다, 마드모아젤 쟌느! 농담했습니다. 이 꽃은 태오 부제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계속했다.

“태오 부제님,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오. 내가 부제품을 받을 때는 이런 아름다운 장미꽃 한 송이 없었소. 당신은 이 꽃이 표현하고 있는 마드모아젤 쟌느의 우정에 감사해야 할거요.”

그리고 그분은 다시 악수를 나누시고 우리를 떠났다. 쟌느는 좀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내게 그 장미꽃을 내밀었다. 나는 그 꽃을 받으며 감사의 뜻으로 쟌느의 뺨에 가볍게 엉부라쓰 했다.

 

우리 셋은 성당을 나왔다. 쟌느가 자기 자동차로 나를 신학교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후 1시에 있는 서품 축하 그랑 데져네(점심잔치)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았다. 잠시 후 쟌느가 말을 시작했다.

“태오, 이번 여름방학 계획은 어떻게 됐어?”

“아직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어. 내년에 신부로 서품되고 주교님께서 즉시 귀국하라면 순명 해야 할 내 입장 아냐? 그리고 아직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도밍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면 아마도 캐나다 도밍고회 관구로 갈 것 같애. 그래서 이번 방학이 이럭저럭 나에게는 프랑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이 될 것 같애. 그래서 이번 방학 중에 아르쓰의 성인 죤마리 비안네 신부의 고향과 루르드의 성모님을 찾아보고 싶어. 그리고 제라르메르와 쌍삐에르 드 키부렁에도 다녀와야겠고…”

“어머나! 그래? 어쩌면 네 생각과 우리 생각이 그처럼 똑같니?”

쟌느는 놀라며 무언지 모르지만 기뻐하는 눈치였다.

“왜 그래 쟌느? 뭐가 똑같단 말이야?”

“루르드 성지(聖地)를 순례하겠다는 것 말이야. 세실과 나도 이버 ㄴ여름방학 중에 루르드를 꼭 다녀오기로 했어. 부모님도 그렇게 하고 싶어하시고…. 그래서 부모님이 이번 7월 중 우리들이 원하는 시기에 루르드를 같이 다녀 보자고 약속하셨어. 태오, 우리 다 함께 같이 가! 7월 중에는 아무 때라도 좋으니 네가 원하는 시기에 같이 갈 수 있어.”

쟌느는 내 팔을 붙잡으며 어린애처럼 졸라댔다. 세실은 항상 조용한 그 표정으로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잔잔히 쟌느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도 무슈 그렁꼴라 부부와 함께 다같이 루르드 성지를 방문하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라 생각했다.

“좋아, 쟌느! 우리 같이 성지 순례를 하기로 해. 그럼 언제쯤이면 좋을까? 나는 7월 중 아무 때도 좋아. 다만 앞으로 약 1주일 간 신학교에 남아 해야 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

“야유, 좋아라! 그럼 1주일 후에 세실과 함께 신학교로 찾아 올께. 그리고 제라르메르에서 며칠 간 쉬고 부모님의 형편을 봐서 루르드로 떠나기로 해. 세실, 네 사정도 괜찮겠지?”

쟌느는 즐거운 얼굴로 세실 족을 보며 물었다.

“”나도 괜찮아! 7월 중에는 아무 일 없어.”

세실도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주님이 참 고맙기도 하시지! 세상 일이 이렇게 마음 맞게 착착 풀려 나간다면 걱정할 일이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을 텐데… 안 그래 태오?”

“쟌느, 너의 착한 마음씨를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도록 루르드의 성모님이 기구해 주신 덕이야.”

“그렇다면 더욱 감사한 일이고…. 그러나 그 축복은 나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자신을 제물로 바친 너에 대한 주님의 너그러우신 보답일 거야. 진정 너는 훌륭해. 주님께 너 자신을 제물처럼 바치고 제대에서 내려오는 네 모습을 모며 나는 감격해서 눈물이 나왔어. 네가 바친 그러한 너그럽고 용감한 희생만이 이 세상을 구제하는 힘이 될 거야. 그런데 그때 너는 왜 웃으면서 제대에서 내려왔지? 세실이 나보고 <저것 좀 봐, 쟌느, 무슈 태오의 저 모습을 좀 봐!> 하고 내 옆구리를 쿡 찌르기에  후딱 눈물을 닦고 너를 보니까 네 얼굴만 보름달처럼 환했고, 도 정말 싱글벙글 웃으면서 제대를 내려오지 않겠어. 다른 부제님들의 표정은 긴장되고 약간 우울해 보이는데… 네 마음 속에 뭔가 있었지?”

쟌느는 호기심 가득 찬 표정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피정신공 기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녀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늦은 밤중에 앙뚜완 죤져그와 있었던 일도 빠짐 없이 말해 주었다. 그녀들은 내 말을 들으며 너무 웃어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하여튼 태오, 넌 참으로 별나기도 해. 아니, 글쎄 예수님께 하소연하러 갔다가 주님의 입장이 되다니… 그것 또한 멋있는 일 아니겠어? 그런 일들도 신앙이 무엇인지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거야. 그리고 앙뚜완 죤져그 부제님과 너의 그 단순성과 순수성이 참 부럽다. 그러한 사람에게만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들려 주실 거야. 세실,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돌아서서 눈물을 닦고 있는 세실을 향해 쟌느가 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태오 부제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처음엔 너무 우스워서 눈물을 흘렸으나 나중에는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나왔어. 나도 두 분의 그 순수한 사건에서 신앙의 뜻을 발견했어요. 이론적으로 설명 안 되는 신앙의 의미를 한 번 다시 깨달았어요. 나도 내 성소 문제에 대해 주님께 한 말씀만 해 달라고 가끔 기도하여 왔으나 이제부터는 그 기도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진복자(眞福者)로다> 하고 토마 사도에게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진정 신앙이 아니겠어요? 하여튼 그 감동적인 체험담을 들려 주신 태오 부제님, 감사해요. 나도 쟌느처럼 부제님의 그 단순하고 순수한 신앙이 부러워요.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주님께 바치신 그 너그러운 스스로의 제헌 속에 나도 내 성소의 뜻을 굳혔어요. 여러분의 그런 희생적 행위는 주님의 부르심을 찾고 있는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어요. 감사해요, 태오 부제님!”

 

 

7월 중순, 그렁꼴라 부부와 쟌느와 세실,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는 루르드 성지 순례를 위해 제라르메르를 떠났다. 보누아는 라옹에다뿌 본당 소년단 캠핑에 참가하러 떠나고 없었다. 2일 간의 자동차 여행 끝에 우리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때마침 세계 환자 순례 주간이라 루르드는 세계 각처에서 온 환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성지 광장 입구에까지 줄지어 널려 있는 상점들과 지나가는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해 소리치고 있는 상인들의 광경에서 나는 언짢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넓은 성지 광장을 오고 가는 수만 명의 순례자들의 조용하고 건전한 모습에서 나는 크나큰 위안과 감명과 신앙의 뜻과 이 뜻 안에 살아 있는 기쁨과 평화를 느꼈다. 특히 훠터이 룰렁 (바퀴가 달린 환자 운반용 의자)에 앉아 있는 수천 명 환자들의 모습에서 나는 육체적인 병고와 불구된 몸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정신적 갈등을 초월하는 의지와 내적 평화의 힘을 볼 수 있었다. 기도하고 노래하는 그들의 맑은 음성, 조금도 비굴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밝은 표정, 주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로 충만 된 그들의 경건한 태도, 마치 그들은 수도자와도 같았다.

 

쟌느와 세실과 나는 즉시 환자들을 돌봐 주는 봉사대에 가입했다. 우리 봉사대원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환자들의 아침 화장과 식사를 보살펴 줬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있는 환자들을 위한 오락 시간에 우리는 노래를 불렀고, 춤도 추었으며, 또 즉흥적인 연극도 했다. 그리고 11시 미사에 맞도록 우리는 환자들을 훠터이 룰렁으로 호텔에서 루르드 광장까지 운반했다. 그들과 함께 미사 참례하고 오후 12시 30분에는 환자들의 점심 식사를 도왔다. 식사 후 환자들의 ‘씨에스드'(낮잠) 시간에 우리 봉사대원들은 친교를 겸한 회합을 가졌다. 오후 5시에 있는 성체 강복을 위해 우리는 환자들을 다시 루르드 광장으로 운반했다. 그리고 6시 30분에는 저녁 식사가 있었고, 밤 8시에 성모 마리아를 찬송하는 촛불 행렬 기도에 우리는 환자들과 함께 참례했다. 밤 11시에 고달픈 하루의 일이 끝난다.

봉사! <나는 봉사하러 왔지, 봉사함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봉사대원 각자는 체험했다. 봉사하되 사심(私心) 이 없음은 물로 그 어떤 계산이나 기대를 전혀 전제하지 않는 그저 주기만 하는, 순수한, 땀 흘리는 사랑을 우리는 체험했다. 사랑! 그것은 봉사하는 보람이기도 했고, 남의 기쁨을 아껴 주는 의지였으며, 남의 신경질을 참아 주는 너그러운 아량인 동시에 또한 남을 기쁘게 해 주려는 자상한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다정한 말이기도 했고, 위선이 없는 순수한 미소이기도 했다.

 

<환자들을 예수님처럼 대우하라>환자 순례 주간 지도 신부님의 이 말씀에 따라 우리 봉사대원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환자들을 예수님처럼 섬겼다. 마태오복음 25장에 있는 ,병들었을 때에 돌봐 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여러분의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실지로 이들 환자 안에 살아 계신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믿으며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우리가 보살펴 주고 있는 환자가 진정 예수님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사소한 일 하나 하나에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환자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마냥 보람되고 즐겁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동질화(同質化) 시켜 주신 예수님께 진정 감사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들 환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삶 주변에서 만나는 형제들을 통해 언제든지 또 어디에서나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을 섬기며 사랑할 수 있는 생활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임을 그때 나는 깊이 체험했다.

오랜 세월 동안 겪어온 육체적인 병고와 불구된 불편한 몸에서 오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얼룩진 그들의 모습이었으나 바로 거기에서 나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다시 발견했었다. 즉 인간의 사랑에 목말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병고로 시달리는 사람 곁에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받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 고통 그 자체는 악이지만 바로 이 악이 신앙상의 선이 될 수 있다는 고통의 신비성 안에 환자들에게 무한한 희망을 안겨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 사랑의 희생이며, 희생이 곧 사랑임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그런가 하면 <내 십자가는 달고 가벼우니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라고 사랑의 신비성과 자발성을 깨우쳐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 이처럼 다양한 예수님의 모습을 그때 거기서 나는 발견했었다.

 

어느 날 오후 성체 강복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그날 내가 담당하고 있던 환자인 가부리엘 부인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오 부제님, 고혈압 증세로 하반신이 마비된 지 벌써 5년이 됩니다. 남편과 자녀들에게 짐스러운 내 이 불구의 몸을 저주하고 한탄하며 천주님을 원망했었지요. 그리고 자살도 여러 번 시도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모든 것이 천주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이 은혜 안에 나는 이러한 불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와 교회와 이웃 형제들에게 내 나름대로 봉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불구의 몸으로 남에게 육체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으나 영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앙상의 신념 말입니다. 기도 안에서 천주님과의 일치를 통해 나는 내 가족과 이웃과 교회를 사랑합니다. 남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이 부자유스러운 몸을 통해 나는 종교적인 자유와, 정신적인 자유와 기타 인간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빼앗긴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며 그들을 위해 길고 지루한 내 시간 전체를 바칩니다. 반신불수가 된 이래 내가 겪고 있는 영육 간의 고독을 나는 신부 수녀님들을 위해 바칩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가 폐병으로 허약해진 몸으로 성당을 오고 가던 그 발걸음을, 외국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교 신부님들의 피곤한 발걸음을 위해 바치셨듯이 나도 당신의 손에 의해 내 몸을 실은 이 훠터이 룰렁이 앞으로 전진하듯 우리 교회가 주님의 뜻 안에 나날이 전진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는 또한 진정한 감사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보살펴 주는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 환자 주간을 설정하고 우리들 환자들로 하여금 이 성지를 방문하며 마음에 평화라는 이 크나큰 주님의 은혜를 받게 해 주는 교회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이마에 땀 흘리며 우리 환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여러분들에 대한 고마움, 이러한 감사로움이 내 마음에 충만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감사라는 감정이 남을 위해 기도하는 봉사를 즐겁게 바칠 수 있게 하며 내 마음 안에 평화를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비록 불구의 몸이지만 이웃 형제들의 영혼 구령과 교회의 발전을 위해 이 한 몸을 주님께 기꺼이 바치고 있습니다. 태오 부제님, 나는 진정 행복합니다.”

 

루르드! 루르드는 봉사라는 사랑의 성지요, 또한 감사라는 은혜의 성지이다. 그리고 이 사랑과 이 감사가 조화된 분위기 속에서 주님을 찬미하는 기도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루르드는 이곳을 순례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에 사랑과 감사와 찬미를 생활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한 형제 되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한 마음 한 뜻으로 찬송하게 하는 일치와 평화와 사랑과 행복의 성지이다. 오늘의 루르드의 기적! 그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사랑과 일체감과 평화와 행복감을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심어 주는 그러한 기적이다.

 

환자들을 위한 봉사 주간에 쟌느는 자기 성격대로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서로가 바빠 우리 둘이는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나, 가끔 그녀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나를 찾아와 일하며 느낀 감상을 몇 마디 말하고 돌아갔다. 쟌느는 오락 시간에 노래와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환자들을 곧잘 웃기기도 했다. 그녀는 환자들 뿐만 아니라 봉사대원들의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일하는 보람 속에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내 마음도 즐거웠다.

세실은 쟌느와는 아주 달랐다. 항상 조용한 자기 표정처럼 그녀는 봉사하는 태도도 마치 기도 드리듯 조용했다. 봉사대의 공동생활에 있어서 궂은 일을 혼자 도맡아 하면서도 자기 행동을 남의 눈에 띄게 하지 않는 신중성과 겸손이 그녀에게 있었다. 그러나 마치 향기처럼 그녀의 봉사하는 행동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의 사랑은 곳곳에 충만 되어 있었다. 그녀는 벌써 훌륭한 수도자였다. 밝고, 명랑하고, 정열적인 쟌느의 웃음에 비해 세실은 항상 조용하고, 은은하고 고운 미소로 환자들을 대하고 있었다.

우리 셋이 봉사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안 그렁꼴라 부부는 스페인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작년의 비극을 완전히 잊은 듯 그분들은 아주 명랑했고 행복해 보였다. 그분들도 환자주간의 마지막 날을 우리와 같이 봉사하며 지냈다.

 

환자 순례 주간 행사가 끝나는 날 밤, 이 행사를 주관한 본부에서 우리들 봉사대원을 위해 일종의 파티를 베풀어 주었다. 환자들이 세계 각처에서 모여왔듯이 봉사대원들의 국적도 다양했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피부의 색깔과 언어의 차이와 문화와 국경을 초월한 신앙 안에 우리는 한 형제 되어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때 나는 이러한 신앙만이, 이 신앙 안에 서로 공감하는 사람들만이 미움과 이기주의와 정치적 의견 차이로 갈라져 대립된 이 인류에게 평화라는 희망을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과 사랑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기를 서슴지 않으리라고 나는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다짐했다.

 

 

송별회를 겸한 파티가 끝나자 쟌느는 산보를 제의했다. 쟌느와 세실과 나, 이렇게 셋이 루르드에 온 이래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했다. 밤 12시가 가까웠으나 루르드 광장에는 아직도 많은 순례자들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 셋은 광장 변두리 잔디밭을 찾아서 앉았다. 그때 쟌느가 말을 시작했다.

“태오, 세실과 너와 함께 내 문제에 대해 신중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괜찮겠어?”

나는 쟌느가 말하는 신중한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괜찮아, 쟌느!”

“작년 알베르 아버지 사건 이후 나도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해 오고 있었어. 그래서 너에게 기도까지 부탁한 일이 있었지만…. 요즘 나는 환자들에게 봉사하며 그 생각의 답을 얼마쯤은 듣고 있었어. 즉 알베르 아버지처럼 마약 중독자가 아니면 정신병자가 되어 이 인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이 몸을 바칠 수 있는 수녀 간호원이 되기를 지금 생각 중이야. 아직 이 문제 대해 부모님에게 상의한 일은 없지만… 태오, 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쟌느의 성소 문제에 대해 나는 뭘고 말할 수가 없었다.

“”태오, 왜 잠자코 있지? 내 성소에 대한 너의 의견을 물었을 뿐인데….?”

쟌느는 나를 향해 돌아 앉으며 말했다.

“성소는 제 삼자가 판단할 수 없는 천주님과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야. 하지만 쟌느, 네 성소에 대한 내 의견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수녀가 되는 길만이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봉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난 생각해.”

“물론 봉사의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눔이 없는 완전한 봉사의 길을 나는 택하고 싶어. 너나 세실처럼 온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바치는 수도자의 길을 걷고 싶어. 이번 환자 주간을 통해서 나는 나눔이 없는 봉사의 뜻을 얼마쯤 깨닫고 체험했어. 나는 이 체험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듣는 듯했으며, 이 부르심의 방향을 지금 찾고 있는 중이야. 태오, 너와 나 사이에 있는 인간적은 감정을 초월해 예수님의 뒤를 이어 이웃 형제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같이 질 수 있는 한 동지의 입장에서 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자는 거야.”

그때 맑은 달빛에 비친 쟌느의 얼굴은 너무도 진지했다. 그러나 <나눔이 없는 완전한 봉사>를 말하는 그녀의 말 속에서 나는 그녀의 장래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쟌느는 나보고 인간적인 감정을 초월하라고 말했지만 이 인간적인 감정 없이 나는 쟌느를 대할 수는 없었다.

“쟌느, 나는 너의 신념을 존중해. 그리고 나눔이 없는 완전한 봉사를 지향하고 있는 너의 의도를 나는 축복해. 그러나 너의 벗으로서 또 신부가 될 내 현재의 입장이지만 너와 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네 문제에 대해 말할 수는 없어. 물론 인간적인 우정의 이름으로 네가 신중히 생각하고 있는 성소 문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으나 남의 일처럼 그 문제를 가볍게 취급할 수도 없어. 어떻든 성소 문제는 너 자신이 기구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확실히 듣고 너 홀로 결정지어야 하는 고독한 문제야. 너의 성소 문제를 위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너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위한 주님의 진정한 뜻이 어디 있는지를 너로 하여금 분명히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 뿐이야. 하지만 쟌느, 나는 네가 한 남자의 사랑스러운 아내로서 또 행복한 가정의 주부로서 이웃과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평범한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이 심정이 너를 위한 나의 진정한 소원이야.”

“나를 위한 너의 인간적인 성실한 우정 감사해. 결국 기구만이 내 성소 문제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이구나. 주님의 뜻 안에 우리 서로가 살아갈 수 있도록 기구하자는 뜻이구나. 너의 뜻 잘 알겠어. 하지만 태오, 수녀 성소를 생각하는 내 뜻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도록 너는 기구해 줘야 돼.”

“물론! 그러나 나는 네 뜻이 주님의 뜻에 맞도록 이 아니라, 저 영원으로부터 너를 위해 주님께서 바라고 계시는 뜻을 네가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구할 거야. 다시 말하면 너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자비롭게 바라시고 계시는 뜻을 네가 환영하고 겸손 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는 열심히 기구할 거야.”

“다시 한 번 감사해. 태오! 그런데 세실, 넌 이 성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마치 그 자리에 없는 듯이 조용히 앉아 있는 세실을 향해 돌아 앉으며 쟌느는 말했다. 그때 달빛에 비친 세실의 흰 얼굴은 더욱 희고 맑게 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쟌느, 나도 태오 부제님의 의견에 동감이야. 기도해! 기도만이 우리 서로의 성소의 길을 밝혀 줄 거야. 그리고 내가 갈멜 수녀원을 생각해 온지가 이미 5년이 되었고, 이제는 내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있으나,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내가 자유로이 택한 이러한 수도의 길을 너도 같이 가자고 는 말 못하겠어. 왜냐하면 천주님께서 너에게 바라시는 것과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 다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쟌느, 기도해! 네 성소 문제를 성급히 결정하지 말고 시간을 보내면서 계속 기도해. 나도 태오 부제님의 기도에 내 기도를 합쳐 너를 위해 바칠 거야.”

“그럼 태오, 세실, 오늘밤 나를 위해 루르드의 성모님께 기도 드려 줄 수 있겠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수녀 성소가 진정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인지를 나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도록 말이야.”

우리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동굴 앞으로 갔다. 밤 1시가 넘어 가고 있으나 거기에는 이직도 백여 명의 순례자들이 조용히 기도 드리고 있었다. 우리도 성모상 앞에 있는 초에 불을 붙이고 오래 오래 기도 드렸다. 그때 나는 차가운 밤 공기를 느꼈다. 소매 없는 옷을 입고 있는 쟌느의 어깨 위에 내 잠바를 걸쳐 줄 때 촛불에 비친 그녀의 두 눈에는 물기가 빛나고 있었다.

 

 

 

 

 

제13장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루르드 성지 순례를 끝낸 다음 나는 제라르메르를 떠나 쌍삐에르 드 키부렁에 왔다. 항상 나를 가족의 한 사람으로 환영해 주는 쿠에상 댁과 에그랑 장군댁! 그 동안 에그랑 장군은 파리에 있는 육군대학교 부교장으로 전임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러 아모 별장에는 쿠에상 부부의 친구 가족이 바캉스를 지내러 와 있었다. 친구와 사교를 좋아하는 마담 쿠에상은 여름철마다 여러 친구 가정을 별장에 초청해 즐겁고 부산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있는 수와레(밤놀이)에 참석하며 나는 이번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제로 서품 된 나를 이전보다 더 정중히 대해 주는 듯했다.

 

나를 제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은 역시 비에브였다. 이번에도 우리는 하루 한 번씩 같이 해안가를 산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전처럼 내가 비에브에게 동화를 들려 주며 프랑스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춘기에 들어선 그녀의 인생 문제와 신앙 문제 등에 관한 심각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자기 연령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비에브는 인간 존재가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를 벌써 느끼기 시작한 듯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소녀다운 순진성이 보이고 있으나, 그녀의 태도와 대화는 너무도 어른스러웠다. 남달리 총명하고 관찰력과 비판력을 갖고 있는 비에브의 마음과 사고에는 갈등과 고민 없이 살 수 없는 인간 삶의 숙명적인 조건이 이미 뿌리박고 있었다. 그러나 비에브가 겪어야 할 이 갈등과 고민이라는 ‘마음의 아픔’ 이 그녀에게 절대로 크지 않기를 나는 주님께 진정 기도 드렸다.

어느 날 대서양 저 수평선 너머로 지고 있는 황혼의 빛을 등에 받으며 우리 둘이는 해수욕장 변두리를 산보하고 있었다. 그때 비에브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태오, 그러니까 내년 학년 말에는 너는 신부로 서품 되겠지?”

“응, 그때 나는 신부가 될 거야.”

“나는 너를 통해서 신부님들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또 깊이 존경하게 되었어.”

“비에브, 신부에 대한 너의 이해와 존경, 그리고 나에 대한 너의 우정은 신부로 살아갈 나에게 크나큰 위안과 자랑과 힘이 될 거애. 감사해, 비에브!”

“나는 여태까지 주일미사를 빠진 일이 별로 없지만 신부님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었었어. 그런데 너를 알게 된 후부터 신부님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어. 아마도 그것은 네가 신부로서 걸어가야 할 생활이었기 때문인가 봐. 즉 너에 대한 내 관심과 우정이 너의 생활상의 동지인 신부들에게까지 내 마음을 쓰게 했는가 봐. 요즈음 빈번히 신문지상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이러 저러한 유명한 신부들이 사제직을 떠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으레 너를 생각하게 되고, 너에 대한 내 관심과 우정을 통해 천주님께 바칠 수 있는 최선의 기도를 나는 드리고 있어.”

비에브가 화제 중에 사용하는 단어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 그녀는 나에 대해 항상 ‘사랑’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나 이제는 관심과 우정이라는 말로 대치하고 있었다. 비에브가 사용하는 이 관심이라는 말에 나도 깊은 관심과 애착을 느꼈다. 사실 넓은 의미에 있어서 사랑은 관심의 표현이니까….

“비에브, 네가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그만큼 나도 너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보다 밝고 명랑하고 행복한 장래가 너에게 있기를 기도할 거야.”

“감사해, 태오! 그리고 말이야,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나의 눈에 비친 이 세상과 내 삶 안에 느낀 한 인간의 생활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보이는데, 인간 삶이 포함하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해 살아가는 너희들 신부들은 정말이지 훌륭해. 나도 이제는 한 인간으로서 삶의 주변에서 느끼는 <마음의 아픔>을 받게 될 때마다 나는 너를 내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어. 그리고 네 안에서 나는 그러한 아픔을 이해하고 또 초월하는 힘을 얻기도 해. 그런 뜻에서 너는 벌써 내 삶을 비치는 길인 동시에 안내자가 되고 있어.”

비에브는 정말이지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 속에는 흔히 어른들의 말 속에 있을 수 있는 예의적인 허식이 전혀 없는 순수함만이 있었다.

“비에브, 나를 신부로서 벌써 인정해 주는 너의 그러한 <구원의 감정>과 나에 대한 신뢰심, 신심으로 감사해.”

그때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이마에 이해와 우정과 감사의 표시로 키스를 해 줬다. 비에브는 아무 말 없이 내 손등에 키스를 하고 내 팔을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어둠이 갈려 오는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한참이나 우리는 말 없이 걸었다. 얼마 후 비에브는 또 말을 계속했다.

“태오 <여러분은 세상의 빛이며 소금입니다>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영세성사를 받은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복음이겠지. 그러나 내 생각에는 주님께서 신부님들을 위해 특별히 이 복음을 말씀하신 것 같다. 정말이지 썩기 쉬운 이 세상의 소금으로서 또 미움과 불의와 악의 어두움이 덮여 있는 이 세상의 구원의 빛으로서 신부님들은 주님의 제자답게 살아가야 할 거야.”

“물론이고 말고! 그러한 뜻에서 우리 신부들은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증명하는 증인이 되어야 할 거야. 증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사건의 목격자로서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 그래서 우리들 신부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 인간을 사랑하시고 가르쳐 주셨는가를 <목격>한 증인들이 되어야겠지! 그 뿐만 아니라 신부들은 생활을 통해 주님의 이 사랑과 이 진리를 증명하며 살아가야 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신부들은 네 말대로 주님의 제자다운 신부가 되어야 할 거야. 다시 말하면 또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의 사랑과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되겠지.”

“그래서 너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생명이 다하는 저 끝날까지 살아가는 영원한 사제가 되겠지. 이 과정에서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를 도와 주던 씨레네의 시몬처럼 나도 너에 대한 내 관심과 우정과 존경을 기도로 묶어 너의 사제직 십자가를 도와 주고 싶어.”

“감사해, 비에브! 물론 나는 주님의 영원한 사제로서 내 생명 다하는 그 날까지 살아갈 거야. 그래서 나는 신부로 서품 되는 날 <너는 멜키세댁의 예를 따라 영원한 사제로다> 라는 주교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을 거야. 그리고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도운 것처럼 우리도 영원을 향한 이 삶의 과정에서 서로의 십자가를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될 거야. 예수님의 십자가에 참여한 시몬의 행위, 그것은 바로 네가 말한 그 협조 정신에 대한 복음이었어. 서로의 구원을 위한 협조라는 이 복음은 가깝게는 너는 나를 위하고 나는 너를 위하고, 또 넓은 뜻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 형제들을 위해 우리가 져야 할 사랑이라는 십자가야.”

“태오, 그리고 말이야, 너를 통해서 모든 신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나의 진정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부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뿐이야. 그것은 바로 너야! <꼬마 왕자>(앙뚜완 드 쌍데취페리의 꼬마 왕자)에게는 단 한 포기의 장미꽃이 있듯이 말이야. 어느 날 꼬마 왕자가 이 지상에서 만난 그 많은 장미꽃이 자기가 두고 온 저 우주의 한 송이 장미꽃에 비교가 안 되던 것처럼, 이 세상에 신부님이 많이 계셔도 내가 관심을 갖는 신부는 너 한 사람 뿐이야.”

“비에브, 나도 너와 같은 심정이야. 내가 신부로 살아가는 도상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너>라고 부르는 비에브는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너 하나 뿐이야. 비에브라고 부르는 너에 대한 내 관심과 우정은 내 마음 안에 독자적인 영원한 존재로 남아 있을 거야.”

그때 삐에르가 저 멀리서 저녁 식사 하라고 우리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 후 8월 말에 나는 스위스에 있는 친구 쉴링과 렌너 가정을 방문하고 또 마담 비부아 집도 방문했다. 이분들의 가정도 내 프랑스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글레르보에 있는 성 보누아 수도원을 찾아가 남은 방학을 쉬었다.

 

 

개학과 함께 나는 신학과 4학년이 되었다.

 

그 해 성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세실은 예정대로 몽 뺄리에 있는 갈멜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때 그녀는 촛불이 그려져 있는 카드에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글을 써서 내게 보냈다. <주님의 영원한 사제가 되실 태오 부제님에게 이 촛불을 바치옵니다 세실 드림> 그날 나는 이 촛불의 카드를 내 <조국의 돌> 앞에 세워 놓고 세실을 위해 주님께 기도 드렸다. 세실이 보낸 이 촛불의 카드가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겠지만 그녀의 이 촛불을 나는 그녀의 수도생활을 위해 다시 바쳤다. 이 촛불처럼 스스로의 청춘을 태우며 기도와 희생을 통해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代贖)의 제물로서 이 한 몸을 바치는 세실 수녀님에게 주님의 축복 있기를 진정 기도 드렸다.

세실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자기의 수도 성소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어떠한 동기로서 그녀가 갈멜 수도원을 지망했는지 나는 모른다. 항상 조용하고 신비롭던 세실! 나는 그녀와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나 세실은 훌륭한 수녀가 되리라는 신념을 나는 갖고 있었다.

 

쟌느는 세실을 몽 뺄리에 갈멜 수녀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신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당시 쟌느는 스트라스부르크 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쟌느는 자기의 수녀 성소 문제를 이미 긍정적으로 결정짓고 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들의 반대 의사도 설득시켜 놓았지만 자기의 장래에 대해 염려하고 고민하고 슬퍼하는 부모님들의 표정이 단지 마음 아프다고 말하고 있었다. 수녀가 되려는 쟌느의 장래를 나도 늘 염려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성소를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 다음 해, 그러니까 1963년 2월 보죠 지방에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쟌느는 무슈 알베르가 아직 살아 있는 쌍 디에 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성 요셉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날 그녀는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고 계신 예수님 옆에 피와 땀으로 얼룩진 주님의 얼굴 모습이 박힌 수건을 들고 무릎 꿇고 있는 베로니카 성녀가 드려져 있는 카드와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 왔다.

 

<주님 안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태오 부제님께

태오 부제님, 이제 모든 것을 극복하고 결정했습니다. 또 하나의 베로니카가 되어 몸과 마음의 병으로 신음하는 이 인류의 얼굴 모습의 한 부분을 기도와 봉사와 희생을 통해 씻어 주려 합니다.

이 날을 맞이하기 전 태오 부제님을 한 번 다시 뵈옵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특히 오는 5월 6일로 결정된 부제님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태오 부제님, 당신을 위한 나의 이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수녀가 되려는 나로써 주님께 바칠 수 있는 첫 희생으로 바치옵니다. 나의 이 뜻을 부제님께서는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며, 또한 부제님께서도 그렇게 원하고 계시리라 생각되옵니다

태오 부제님, 우리 서로가 주님의 부르심에 자유로이 대답했고 선택한 이 성소의 길을 주님의 착실한 종답게 살아가며 이 인류를 위해 봉사합시다. 지난날 나에게 보여 주신 당신의 성실성과 우정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경솔했던 나의 모든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제님의 사제생활이 주님의 은혜 안에 충만 되기를 잊지 않고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님의 영원한 사제가 되실 태오 부제님을 주님 안에 사랑하는 쟌느가.>

 

쟌느는 처음으로 나에게 경칭을 썼다. 쟌느의 이 편지를 읽는 순간 어떠한 감정에서였는지 모르나 나는 울고 싶었다. 그렇게 되리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쟌느의 수녀원 입원 소식은 나에게 일종의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주님의 뜻으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나는 그녀가 이 세상에 남아 평범한 여성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의 도밍고 수도회 입회 문제도 결정지었다. 일본 전교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도밍고회 캐나다 관구의 입회 허가를 나는 받았다. 8월 4일 도밍고 성인 축일날 있을 착복식을 갖기 위해 수도회 지망자는 한 달 동안의 뽀스뒬라(수도회 지망자로서의 수련 기간)를 보내야 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6월 말까지 캐나다에 도착해야만 했다.

낭씨 신학대학교는 관례에 따라 신부 서품식을 매년 학년 말에 시행했다. 나는 수도회 입회 준비 관계로 예정보다 앞당겨 서품식을 가질 것을 신학교 당국에 요청했다. 학교 당국에서는 낭씨 신학교 출신이며 지난 19세기 중엽에 월남에서 전교하다가 순교한 복자(福者) 아오스딩 셔미에르 신부님의 축일인 5월 6일을 나의 서품식 날로 정해 주었다. 이 서품식 전에 치러야 할 학년 말 시험과 신부 자격 시험 등으로 나는 부활절 방학을 전폐하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

 

 

서품식을 위한 피정신공을 앞둔 전날이었다. 내 영적 지도 신부인 쏘바져 신부님이 당신의 영적 제자인 죤마리 삐에롱과 미셀 쇼멍과 나를 자기 서재로 불렀다. 그리고 그분은 신부 생활의 열다섯 가지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생활규범을 말씀하셨다.

 

 

 

“태오는 며칠 후 신품성사를 받을 거고, 죤마리와 미셀도 이 학년 말에 신부로 서품되기 때문에 나는 자네들에게 신부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점을 말해 주려고 불렀네. 지난 20년 간 신부로 살아오면서 내가 체험한 신부로서의 생활규범을 자네들에게 영적 선물로 전해 주려 하네. 물론 내가 말하려는 이 생활규범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지만 자네들이 신부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네. 우선 보좌신부로서 지켜야 할 사항부터 말하겠네. 

 

첫째로, 본당신부에게 순종할 것. 교만은 원죄와 함께 죽음을 낳았으나 주님의 순명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 왔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교회의 권위와 이 권위가 요구하는 질서에 대한 순명에 뿌리를 박고 있네. 그런데 보좌신부로서 자네들의 순명은 본당신부에게 순명 하는 것부터 시작되네. 즉 본당신부라는 교회의 질서에 순명 함을 말하네. 본당신부도 인간이니 만큼 때로는 그릇된 사목행정과 방침을 고집할 수도 있겠으나, 그 방침이 그릇 되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네. 자네들이 앞으로 겪을 이 순명은 경우에 따라 크나큰 희생을 요구하는 십자가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순명 하게. 바로 이 순명이 자네들의 신부생활에 절대로 필요한 겸손의 덕과 인내의 덕은 물론, 신부다운 인격을 수양시켜  줄 걸세.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는 순명은 의식적인 악의 공범을 말하는 비겁한 순명을 뜻하는 것은 아닐세.

 

둘째로, 본당신부의 사목방침을 비판 말 것.

자네들이 신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더라도 그 지식은 아직 체험화되지 않은 순수한 이론상의 원칙에 불과하네. 이러한 순수 이론의 원칙과 경험상의 진리와는 경우에 따라 상당한 거리가 있는 법이야. 자네들의 새 신부다운 그 순수한 지식과 의욕과 야심에 비친 본당신부의 사목방침과 행동이 때로는 유치하고 그릇되게 보일 수도 있을 걸세. 하지만 처음부터 비판적은 태도는 절대로 금물이야. 남의 의도와 그가 하는 일을 충분히 숙고하고 이해하지 않고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신부 이전에 한 인간의 인격에 관한 문제야. 자네들에게 유치하고 잘 못되어 보이는 이러 저러한 일들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며 또 거기에는 자네들이 아직 모르는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그래서 성급한 비판이나 경솔한 판단을 절대로 피하라는 말일세. 자네들이 어느 본당에 임명되면 그 본당에서 적어도 1년 이상 살며 그 본당의 사목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비판을 삼가 할 것을 부탁하네. 비판은 흔히 경솔한 판단이 되며 또 비인격적인 행위가 됨을 명심하게.

 

셋째로,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계속할 것.

본당에 부임되면 많은 일들이 자네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자네들의 새 신부다운 의욕은 자네들을 잠시도 쉬지 않게 만들 걸세. 그러나 분망한 일과 속에서도 기도하는 규칙적인 습관을 키워 나가게. 신학교에서 생활해 온 기도 규칙대로 생활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성무일과와 기도만은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갖고 바쳐야 되네. 신부라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주님께 대한 사랑 안에서 성무일과 기도를 바치라는 말일세. 이 기도 생활은 모든 신부들에게 공통된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특히 보좌신부 때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확립시켜 놓지 않으면 일생 올바른 기도생활을 할 수 없을 걸세. 기도는 우리 신부들의 신심생활의 생명과 같은 것이야.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거듭 자네들에게 말하지만 신부는 모든 일에 있어서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네. 본당 사목도 일종의 사업이지만, 신부는 사업가가 아니야. 신부로서의 자네들의 생활은 기도 안에서 체험한 <주님과의 만남>을 증명하는 신앙 생활임을 잊지 말게.

 

넷째로, 계속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나갈 것.

자네들은 신학교에서 6년 간 시험 때마다 고생하며 많은 지식을 배웠지만, 이 지식은 마치 수학의 공식 같은 학문상의 원칙에 불과하다네. 이 공부를 응용해야 할 자네들의 사목(司牧)의 세계는 무한정하다네. 이 무한정한 세계 안에서 자네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너무나도 미소한 것임을 깨닫고 실망도 할 거야. 그래서 나는 자네들에게 공부를 계속해야 된다고 말하는 바일세. 사목상 필요한 잡지는 물론, 일간 신문도 읽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하루 한 시간 이상 전문적인 신학 서적을 읽는 습관을 가져야 하네. 신부는 생활을 통해 신앙 안에 살며 주님을 증거해야 되지만 신자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네.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는 법이야. 이런 뜻에서 자네들에게 없는 지식을 신자들에게 준다는 것은 역설이야. 신부는 덕(德)과 지식을 겸비해야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네.

 

다섯째로, 몸과 마음으로 가난하게 살 것.

대부분의 경우, 새 신부들의 첫 번째 유혹은 물질적인 유혹일 거야. 본당신부의 텔레비전, 자동차, 스테레오 세트, 그 외에 여러 가지 물품들이 자네들에게 부럽게 보일 걸세. 그러나 그러한 물건들이 하루 아침에 그분들에게 생긴 것이 아니야. 그분들도 한 때 자네들처럼 보좌신부로 살아간 사람들이야. 정도를 지나치고 분수를 넘는 모든 행위는 지혜롭지 못한 것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걸세. 그래서 처지에 맞는 생활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말일세. 우리는 주님께서 살아가진 그 복음적 가난함을 항상 묵상하고 본받기로 해야 되네. <재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게 된다>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네. 그리고 돈과 여자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음도 경험상에 나타난 하나의 진리이니 만큼 거듭 돈이란 물욕에 조심할 것을 부탁하는 바일세. 그리고 자네들은 지난 6년 간 신학교 생활을 통해 사제직 동정생활(司祭的 童貞生活)의 순결성에 대해서는 정식 학과에서 많은 것을 듣고 또 많은 시련을 겪어 왔으리라고 나는 믿네. 이 점에 관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으나, 이 순결성은 <몸과 마음의 가난함>을 통해서 보존될 수 있음을 나는 자네들에게 다시 한 번 말해 두네. 그리고 여기에 곁들이지만 자네들은 자네들이 담당한 본당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으나, 그 본당에 인간적인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되네. 무엇에 애착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마음의 가난함>에 반대되는 행위야. 우리는 주교님의 뜻에 따라 언제라도 또 어디에나 떠나갈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하네.

 

이 다섯 가지 생활규범은 비단 보좌신부 뿐만 아니라 모든 신부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의 일부이겠으나 나는 보좌 신부가 될 자네들에게 각별히 말해 두는 바일세. 이 외에도 보좌신부로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이 또 있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자네들이 살아가며 체험하게 될 걸세. 그리고 어느 날 자네들은 본당신부가 될 거야. 자네들 중에는 태오처럼 수도자가 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또 교수나 어느 단체의 지도신부가 될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신부들의 일반적인 직분은 본당 사목일세. 그래서 이번에는 본당신부에게 필요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생활규범을 말하겠네.

 

첫째로, 주교님에게 순명 할 것.

순명의 원칙은 우리들 사제생활의 생명과 같은 것이야. 주교님께 대한 순명을 통해 본당신부는 보좌신부에게 순명 정신을 키워 줘야 하네. 웃어른에게 순명 하지 않으면서 아랫사람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도리를 벗어난 일이야.  주님께서 성부(聖父)에게 죽기까지 순명 하셨듯이 우리들 신부는 교회의 권위가 요구하는 질서에 순명 해야 되네. 그리고 순명 정신 없이는 겸손의 덕을 닦을 수 없음도 명심하게. 여기에서 다시 강조하지만, 인류의 타락의 원인이 바로 아담의 교만과 반항이라는 불순명(不順命)이었음을 명심하게. 그리고 인류의 구원은 주님의 십자가라는 겸손과 순명의 대가임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되네. 이처럼 불순명은 교만을 낳게 하고, 이 교만은 우리의 사제적 삶을 좀먹는 ‘타락’이라는 암적 요소가 됨을 명심하게.

 

둘째로, 전임자를 존중해 줄 것.

전임자를 존중해 준다는 것은 신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인격에 관한 문제일세. 자네들이 어느 본당에 임명되었을 때 전임자의 인간성이나 그의 사목 방침을 비난한다든지 혹은 그가 세운 본당 사목 기구를 일방적으로 개혁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야.  설사 전임자의 사목 방침이 자네들에게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방침을 이해해 보려는 선의와 노력과 또 존중해 주는 아량을 성실하게 가져야 하네. 자네들이 전임자를 존중해 줄 때 남들이 자네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할 걸세. 물론 남들의 존경을 받기 위해 전임자를 존중해 주라는 것은 아니야. 그런 행위는 위선이야.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선(선)을 아끼는 상식인(常識人)과 의리를 지키는 인격인이 되라는 걸세. 바로 이러한 상식과 인격이 신부를 서로 간에 있어야 하는데 사실은 불행히도 그렇지 않을 때가 빈번히 있다네. 신부들은 신자들에 대해서는 의리를 지키고 상식 있는 교양인이 되지만 동료 신부들에게는 무정하리만큼 불의(不義)하고 비인격적인 사람이 되는 수가 있어. 이 점을 조심하며 자네들은 ‘존중’ 이라는 너그러운 인격을 도야하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할 걸세.

 

셋째로, 보좌신부와의 관계.

보좌신부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사제직 신념이 투철하고 원만한 인간성과 성숙한 인격을 겸비한 본당신부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네. 이와 마찬가지로 본당신부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복 중의 하나가 사제로서 충실하고 인간으로서 성실하며 경솔하지 않고 겸손한 인격을 지닌 보좌신부와 일하는 것이라고 하네. 그런데 세상 일은 그렇지가 못할 때가 흔히 있다네. 그래서 본당신부와 보좌신부 사이에 반목(反目)이 생기고 신부답지 못한 불행한 일이 생기기도 하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흔하지 않은 반면, 그렇게 나쁜 사람도 별로 없는 법이야. 다만 서로의 성격과 일하는 방법이 달라 갈등이 생기고 분쟁이 있게 되는 것이야. 만일에 원만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보좌신부를 데리고 있게 될 때, 자네들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주님의 겸손을 본받아 그들을 인내와 사랑으로 대해야 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네. 하여튼 본당 운영을 위해 본당신부에게 주어진 직분상의 권위와 질서와 원칙을 엄격히 주장하고 지켜야 하겠지만, 먼저 보좌신부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너그러운 본당신부가 되어야 하네. 다만 말하면 공(公)에는 엄한데 사(私)에는 인자한 사람이 되라는 말일세.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네들은 인내와 관용과 겸손과 사랑을 배우게 되며 또한 자네들 자신이 성화(聖化)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하네. 그래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명심하고 자네들의 마음을 상해 주는 보좌신부들에게도 감사할 줄 아는 신부다운 신앙인이 도어야만 하네. 자네들의 사명, 그것은 사랑이며 이 사랑을 통해 이웃 형제의 구원의 길잡이가 되는 것임을 명심하게.

 

넷째로, 일반적인 대인관계에 관해서.

공의회와 함께 교회 안에도 민주화(민주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이 때에, 아마 자네들이 본당 신부가 될 무렵에는 상당한 변화가 교회 안에 있게 될 걸세. 그리고 본당 운영 방법도 많이 달라질 거야. 그러나 본당 운영상의 인사 문제와 사람들과의 관계상의 원칙은 그다지 변치 않는 것으로 나는 보고 있네. 자네들이 어느 본당에 임명되어 갈 때 전임자를 비난하며 자네들에게 충성을 약속하는 신자들이 아마도 있을 거야. 그 사람들을 조심하게. 특히 그러한 사람들을 본당 간부로 임명함은 현명치 못한 일이야. 왜냐하면 전임자에 대한 인격적인 도리도 아니지만, 교우들 사이에 파벌 구성의 위험이 있기 때문일세. 자네들 앞에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남들 앞에서 자네들을 또한 비난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게. 그리고 자네들에게 충성을 약속한 사람들이 아마도 자네들을 먼저 배반할 수 있다네. 이것은 인간 사회에 통용되는 평범한 상식이라네. 그 외에도 본당도 인간 사회이니만큼 거기에는 ‘끼리끼리’ 모이는 여러 그룹이 있게 마련이야. 그때 어느 한 그룹 중심으로 본당 사목을 실시해서도 안 되네. 그것은 본당의 일치성을 파괴하기 쉬운 위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세. 자네들 본당신부는 본당의 일치성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네. 따라서 자네들은 본당 신자 모두를 위한 목자임을 명심하게.

 

다섯째로, 성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 줄 것.

‘신부들은 인색한 고용주다.’ 이 말은 좀 지나친 표현이지만 전혀 그거 없는 말은 아닐세. 이웃 사람과 인간 서로의 평등과 사회 정의를 설교하는 신부들이 흔히 성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반대로 인정 없고 부정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때가 없지 않아 있네. 그 사람들은 자네들의 노예가 아니야. 그리고 신부들은 희생을 생활상의 생명처럼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에 은연 중 남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습성을 갖기가 쉽네. 이 점을 조심하게. 그래서 다시 말하면 남이 자네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기를 그만큼 자네들도 자네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성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게.

 

이 외에도 본당신부로서 지켜야 할 생활상의 규범이 또 있을 걸세. 예를 들면 재정 관리 문제나 행정상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으나 그것은 정식 학과에서 충분히 배웠으리라 나는 믿고 있네. 그 밖의 문제는 자네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할 걸세.

 

다음에는 신부생활 전반에 걸친 상식인 또 다른 다섯 가지 규범을 말하겠네.

 

첫째로, 일에 대한 순수한 동기를 가질 것.

우리들 신부들이 하는 사목도 일종의 사업이야. 그래서 이 사목 사업에 대한 우리들의 선의의 야심과 열성이 있어야겠지만, 일의 동기를 신부답게 순수한 마음의 자세로 가져야 하네. 불순한 생각을 갖고 사목 사업을 하는 신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반문하겠지만 사실은 그럴 수가 있다네. 즉 본당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세속적인 개인 명예를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것이 인간 심정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어느 큰 일의 결과인 성공 자체보다 그 일을 있게 한 동기 바로 그 자체다.> 이 말은 세계 정복을 시도했던 나폴레옹 황제가 죽기 며칠 전 예수님의 업적을 생각하며 한 말이네. 신자들을 도와 줄 때 또는 본당 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사업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순수하고 겸손해야 하며, 이 순수와 겸손 안에서 일의 동기를 찾도록 해야 하네. 그리고 우리의 사목 사업은 능률 위주의 사업이 아니야. 그것은 한 영혼의 성화와 구원의 사업이니 만큼 주님의 제자답게 기도하고 순수하고 겸손하게 일해야 될 걸세.

 

둘째로, 강론 준비를 철저히 할 것.

우리들 신부는 주님의 증인인 동시에 우리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가르치는 사명을 갖고 있네. 신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겠으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주일 강론이야. 그러나 이 주일 강론은 신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교리 강연회가 아닐세. 즉 주일 강론은 자네들의 지식을 자랑하는 웅변대회가 아니란 말일세. 주일 강론은 영혼의 회개를 일깨워 주는 신앙이라는 생명을 주는 주님의 말씀의 전달임을 명심하게. 그래서 자네들의 주일 강론은 주님의 복음 말씀을 체험한 자네의 자네들 자신의 삶과 신념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세. 이처럼 자네들이 해야 할 강론 준비는 자네들 자신이 사제 직분에 충실한 일상적인 생활임을 재삼 말하는 바네. 자네들이 믿지 않는 진리와 실천하지 않는 사랑과 겸손과 정의 등을 강론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적 행위인 동시에 위선임을 나는 자네들에게 말해 두는 바일세. 그리고 자네들이 책임진 본당 교우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 주님의 복음 말씀을 심고 키우는 강론이 되어야 하느니 만큼 그들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주의 있게 관찰해야 할 걸세.

 

셋째로, 기대하지 말 것, 즉 사심 없이 봉사할 것.

신부생활은 철저한 봉사생활이야. 봉사는 일한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희생적 행위일세. <나는 봉사하러 왔지, 봉사함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이 우리 신부들의 생활 지표가 되어야 하네. 그러나 생활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러저러한 사람들에게 기대를 갖게 되고, 거기에 인정(人情)이 오고 가는 일이 있을 거야. 그러나 인간에게 기대를 걸면 건 그만큼의 실망을 하게 되는 거도 생활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진리일세. 자네들은 사심 없이 봉사하고 도와 주고 사랑하되, 절대로 그 대가를 바라지 말게. 자네들이 남을 도와 준 일, 사랑해 준 일 등을 잊어버리게. 그리고 남에게 신세지지 말게. 자네들이 남을 도와 준 일, 사랑해 준 일 등을 잊어버리게. 그리고 남에게 신세지지 말게. 남에게 신세지면 신세 진 그만큼의 자유를 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는 법일세.

 

넷째로, 본당 운영이 원만하게 되지 않을 때.

세상 일은 항상 자네들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자네들이 기도하고 심사숙고 해서 계획한 일이라 해도 거기에는 결함이 있게 되고, 따라서 불완전함이 있을 수 있는 법이야. 그래서 때로는 교우들의 비난과 반대로 받게 될 때가 없지 않아 있을 걸세. 그럴 때 흔히 신부들은 화를 내며 신자들을 비난하지만, 잘 안 되는 일의 원인을 신자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자네들의 방법론에서 우선 그 원인을 찾아 보도록 하게. 달리 말하면 자네들의 판단과 계획이 그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말일세. 물론 진리는 대중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교우 대부분이 자네들의 사목방침을 따르지 않을 때는 먼저 자네들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말일세. 그리고 설사 자네들을 비난하고 반대하는 교우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또 겁내지도 말게. 이러한 교우들이 자네들을 따르고 협조하는 신자들보다 어쩌면 자네들에게 보다 성실한 사제다운 인격을 도야시켜 주는 고마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을 주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모두에게 감사해야 되리라고 나는 알고 있네. 그리고 다소의 반대자가 있을 때 자네들은 자네들 자신을 반성하며, 또 본당 운영도 실수 없이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여기에 말해두는 바일세.

 

다섯째로, 변명하지 말 것.

본당에서 일할 때 뜻하지 않은 억울한 오해와 참기 어려운 모략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이러한 고통스러운 시련이 자네들의 사제생활에 없기를 바라지만,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 자네들은 사제로서의 인격과 덕(德)이 또한 성숙해지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홍역>을 치르듯이 신부도 홍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련>을 한두 번 겪어야만 신부로서의 <영적 뼈대>가 굳어지는 법일세. 그러나 오해와 모략을 받게 되로 때 자네들은 절대로 변명하지 말게. 천주님께서 자네들을 인정해 주는 이상 해명을 통해 인간들의 공감과 이해를 받으려 애쓸 필요는 없네. 묵묵히 참아! 오해나 모략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니까. 변명을 절대로 하지 말게. 도리어 변명은 사건을 더욱 확대시킬 우려를 지니고 있네. 주님도 무수한 오해와 모략을 당하셨으나 그분은 죽기까지 참으셨네. 자네들도 참아! 이 과정에서 자네들은 인내심과 관용과 주님께 대한 신뢰심을 수련할 수 있는 복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본당에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교우들이 떠드는 말의 3분의 1 정도만 참작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잊도록 하게. 이 3분의 2는 근거 없이 과장된 낭설이 아니면 허위일 경우가 많네. 하여튼 자네들이 떳떳이 살았다고 생각하면 남의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참으며 살아가게. 주님 앞에 나무랄 데 없는 사제적 양심을 갖고 있다면 무엇을 겁내겠는가!

 

이상에서 말한 열 다섯 가지 생활규범은 우리 사제생활에 필요한 지극히 평범한 상식일세. 이 상식을 요약하면 두 가지 점으로 나눠지는데, 첫째로, 자네들은 신부이기 이전에 원만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성실한 인격 안에 사제상(司祭像)을 확립시켜야 되다는 말일세. 우리의 사제직 삶은 원만한 인간성과 성숙한 인격 안에서만 결실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바일세. 다시 말하면 신부는 덕스럽고 의롭고 겸손하고 자비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세. 자네들의 부족한 지식과 미숙한 사목 방법은 남이 보완해 줄 수는 있어도, 자네들 자신의 부족한 인격과 덕은 아무도 보충해 줄 수 없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네. 자네들의 인격적인 덕은 자네들 자신의 끊임없는 수양(수양)의 결심임을 명심하게. 이 수양은 다름 아닌 사람답고 또 신부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네들의 마음의 자세일세.

 

자네들은 이상의 열다섯 가지 생활규범 위에 사제생활의 기초를 쌓고 보람차게 살아가기 바라네. 물론 이 규범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신부로서 살아오면서 느끼고 경험한 삶의 일종의 지혜라고 나는 보고 있네. 그래서 자네들의 영적 지도신부로서 나는 이 상식과 지혜를 자네들에게 영적 선물로 주는 바일세.

 

끝으로 부탁할 것은 주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이 신념을 잊지 말라는 걸세.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한 기도 안에서 주님과의 <만남>을 가져야 할 걸세. <만사에 있어 주님과 함께>라는 이 신앙 안에 자네들이 주님처럼 가난하고, 겸손하고, 순명하고, 사랑하는 사제가 되기를 나는 기도하겠네. 그래서 자네들은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또 사제다운 사제로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답게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영원을 향한 이 과정에서 이웃 형제들의 구원의 길잡이가 되어 주기를 바라네.”

 

 

 

사제 서품을 위한 피정 신공이 시작되었다. 피정 지도신부 없는 나 혼자의 신공이었다. 나는 그날 그날 아침에 일어나 복음 성격을 눈에 띄는 대로 한 구절 읽고 그것을 묵상 재료로 삼기로 했다. 첫날 아침의 복음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어떤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그를 찾아가 먼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마태오 5장 23~24절)

이 성경 말씀을 읽는 순간, 내 마음에 번득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지난 4년 간 내가 내내 미워한 동료 신학생인 쟈크 맛송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쟈크는 나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 준 고마운 친구였으나 그는 동양인을 항상 무시했고 특히 나를 시기하고 경멸했었다. 그래서 나도 쟈크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그가 교통사고로 죽기를 바랄 정도로 그를 미워했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람을 설교하고 사람들 사이의 화해를 조정하고 이룩하기 위해 사제가 되려는 내가 쟈크와의 화해 없이 신품성사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와의 구체적인 화해 없이 고백성사를 받은 것은 위선 행위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쟈크와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인간적인 감정은 화해의 부정을 요구하는 미움으로 차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내 마음의 평화와 쟈크에게 용서를 청하는 용기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 드렸다.

쟈크와의 화해의 표시로 나는 그의 구두를 닦아 주기로 했다. 그날 오후 늦게 나는 구두약과 솔을 들고 그를 찾아갔다. 그때 그는 공부하고 있었다.

“쟈크, 지난 날 나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 준 너의 우정에 감사하기 위해 너의 구두를 닦아 주고 싶어 왔네. 나에게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주지 않겠나?”

나는 기도 드리듯 진심으로 말했다.

“신부가 된다고 이제는 제법 성인 같은 말을 하는구나.”

쟈크는 담배 연기를 천정으로 내뿜으며 나를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쟈크, 난 성인이 되고 싶어. 그리고 사실은 지난 4년 간 나는 자네를 마음으로 몹시 미워했네. 그래서 너에게 용서를 청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네의 구두를 닦아 주고 싶네. 쟈크, 나를 용서해 주게.”

이렇게 말하는 내 마음은 평화로웠다.

“흥, 거룩한 체하는구나…. 좋아! 내 구두를 닦아 주고 싶어하는 너를 나는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쟈크는 여전히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지적해 보이는 침대 밑에 있는 구두 세 켤레를 꺼내 들고 정성 들여 닦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며 열심히 닦았다.

“주님, 나를 용서해 주시고 쟈크도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내가 이 구두를 닦듯이 경멸과 미움이 잔물결 치는 내 마음도 닦아 주시며, 나의 이 행위가 위선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행위가 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쟈크와 나와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나는 구두를 닦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평화로운 마음으로 쟈크에게 순수한 미소를 보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우며 나를 바라보고 있던 쟈크가 일어나 구두약으로 얼룩진 내 손을 잡고 다정하게 내게 말했다.

“태오, 진정 미안해! 죄인인 나를 용서해 주게나. 지금 나는 너의 행동의 진실성 안에서 나 자 자신을 반성했네. 그 동안 내가 자네를 어떻게 괴롭혔고 얼마나 무시했는지를 깊이 깨달았네. 자네는 나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지 태오, 나를 용서해 줘!”

“쟈크, 나도 자네를 미워하고 증오한 죄인이야. 쟈크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하신 주님의 기도를 우리 둘이 바치며 서로 용서하기로 하세. 지금 나는 정말 기쁘네.”

우리 둘이는 무릎을 꿇고 천천히 주의 기도문을 외우며 서로를 진정 용서했다. 그리고 우리 둘이는 오랜 동안 엉부라쓰하며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때 쟈크의 눈과 내 눈에서 몇 줄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피정 신공 이틀째 아침, 나는 어제처럼 복음 성경을 펴 들고 되는 대로 손가락으로 한 구절을 짚었다. 그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는 상한 갈대로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드디어 그는 정의를 승리로 이끌어 가리니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마태오 12장 20~21절)

이 성경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하신 예언 말씀이다. 이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깊이 이해했다. 그분의 마음은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었으며(루가 15장 11~32절),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착한 목자의 사랑이었다. (루가 15장 3~7절) 그런가 하면 그분은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짓지 말라> 하시며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자비로우신 분이시었다. (요한 8장 1~11절)

인간 구원에 대한 주님의 철저한 사랑! 주님의 이 사랑을 복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복음의 뜻은 다름이 아니고 어떠한 인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겠는가! 이 희망은 또한 인간에 대한 주님의 철저한 신뢰(信賴)였다.

우리 인간 모두는 인간 조건이 지니고 있는 모순과 사회적 부조리와 온갖 악과 미움과 전쟁 등으로 상처받은 <상한 갈대>다. 이러한 상황 아래 때로는 무지와 무관심 속에, 혹은 회의와 반항 속에 우리의 사랑도 신앙도 일종의 <꺼져가는 심지>와 다름 없다. 그러나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꺼 버리지 않으시는 그러한 분이시다.

내 사제 직분,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주님의 자비하심과 신뢰심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는 직분이라고 나는 믿었다.

 

사흘째 아침, 내 눈에 띈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코 8장 27절)

“태오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성경 구절을 읽는 순간 위 질문이 내 마음 안에 빗발치듯 일어났다. 나는 내 인생 33년을 살아오면서 주님을 성부의 아들이며 인류의 구세주로 믿어 왔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7년 간 공부하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태오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신 주님의 이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고 널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주님은 살아 계신 성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 사도처럼 나도 고백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고백은 나의 신학적 지식이지 진정한 내 신앙의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왜? 나는 신앙도, 사랑처럼 삶을 통한 경험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삶을 통한 주님과의 내 경험>은 베드로의 이 고백을 되풀이할 만한 정도의 것이 못되었다. 내가 주님께 대한 내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수 없는 십자가”의 15장 “목마르다”와 이 책 11장 “주여,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경험 뿐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 삶의 어느 한 때에 주어질 주님의 이 질문! 이 질문은 또한 우리 모두의 구원의 갈림길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여하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리라! 그때 나는 바로 이 질문의 답을 이 세상에 주기 위해 사제가 된다고 생각했다.

 

나흘 째 아침, 나는 루가복음에서 묵상 자료를 찾기로 했다. 그때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읽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루가 1장 46~49절)

성모 마리아의 이 찬미의 노래! 이것은 또한 사제직에 오르는 내가 주님을 찬미하는 노래이기도 했다. 주님의 은혜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치 않은 감사의 노래였다. 나는 이 감사 속에 겸손하고 착실한 사제가 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다섯째 되는 날 아침,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이 눈에 띄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 밖에 없단 말이냐?”> (루가 17장 17~18절)

예수님께서 전교생활을 하시던 어느 날 나병환자 열 사람을 낫게 해 주셨다. 그런데 그 열 사람 중의 아홉 사람은 유태인이었고 그들은 예수님께 되돌아와 감사를 드리지 않았다. 다만 이방인이라고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되돌아와 병을 낫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했던 것이다.

나는 이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하는 순간 <기대하지 마라> 하신 내 지도 신부님의 말씀을 상기했다. 이 성경 말씀은 은혜를 알기에 인색한 이 세상 사람들의 인정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겠으나 신부가 되는 나에게 기대하지 말고 봉사하고 사랑하라 하시는 주님의 각별한 말씀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보수 없는 봉사와 기대 없는 사랑을 실천해야 할 앞으로의 내 사제생활이 겪을 섭섭함과 쓸쓸함이 한편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독을 초월하는 내 의지와 신앙 안에 내 이웃 형제의 구원이 결실되리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엿새째 되는 날 아침 읽은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장 32절)

<내가 사랑한 것과 똑같이 사랑하시오> 이렇게 말씀 안 하시고 <내가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시오> 하신 주님이 무한히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또 대성인이 된다 해도 우리는 예수님과 똑같이 될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간 조건을 잘 아시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이 사랑의 계명을 통해 당신을 모범 삼아 최선의 노력을 하라는, 사랑에 대한 분부로 나는 받아들였다.

우리 신부들은 주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는 증인들이다. 사제 서품과 함께 나는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명하는 사명을 받는다. 주님의 이 사랑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나는 주님의 사제다운 인격을 통해 이웃 형제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겸손하나 열정적으로 일할 것을 마음 속에 다짐했다.

피정 신공 마지막 날인 동시에 내 사제 서품일인 5월 6일 아침, 나는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을 읽었다.

<모두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당신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요한 21장 15절)

나는 이 성경 말씀을 묵상할 때 이 성경 말씀이 뜻하고 있는 베드로의 수위권(首位權)에 대한 교리보다 이 말씀 안에 풍기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에 나는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베드로를 잘 알고 있다. 불길 같은 그의 열정적인 성격! 그런가 하면 바보스러울 만치 단순한 그의 순진성! <남들은 주님을 배반할지언정 나만은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맹세까지 했으나 그는 주님을 세 번 배반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디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드셨다. 그때 주님을 뵙는 베드로의 심정은 얼마나 송구스러웠으랴!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그의 마음은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으로 차 있었으리라!  그런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꺼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께서는 배반으로 상처받은 베드로의 마음을 꺾지 않으셨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꺼져가는 그의 사랑과 믿음을 존중해 주셨다. 즉 주님께서는 그의 체면을 살려 주셨다. 인간의 체면을 아껴 주시는 주님의 사랑!

만일 주님께서 <베드로야, 배반하지 않겠다던 너의 용기와 신앙심이 어디 있었느냐?> 하고 책망하셨다면 베드로는 어찌 되었을까…. 아마 모르긴 하지만 그는 오늘 우리가 존경하는 그러한 베드로가 아니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처럼> 어떻게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지를 깊이 묵상했다. 그리고 나는 또한 “태오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네, 주님,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 대한 내 사랑의 증거로 나는 오늘 아침 이 몸을 바쳐 주님의 사제되어 주님이 지고 가신 구원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고백하고 피정 신공을 끝냈다.

 

이처럼 은혜로운 피정 신공을 마치고 나는 서품식에 임했다.

내가 사제로 탄생되는 1963년 5월 6일, 하늘은 맑았고 날씨는 따스했다. 이날은 화요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러페부로 학장 신부님은 이 날을 학교 축일로 정해 주셨다. 때마침 파리에서 회의 중이시던, 교황청에서 시무하시는 띠스렁 추기경께서도 내 서품식에 참석해 주셨다. 이분은 낭씨 신학교 출신인 나의 선배시었다.

비에브는 공부 사정으로 내 서품식에 참석할 수 없어 대단히 섭섭하다는 펴지를 보내 왔다. 그러나 5월 11일 나의 첫 장엄 미사에는 곡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몸 뻴리에 갈멜 수녀원에 있는 세실 수녀님을 대신한 원장 수녀님이 축하의 말과 함께 수도원을 방문해 달라는 초대 카드를 보내왔다. 쌍디에의 성 요셉 수녀원에서 수련 중인 쟌느 수녀님도 축하한다는 짤막한 편지와 함께 수녀원을 방문해 달라는 원장 수녀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거리와 직장 관계상 에그랑 장군댁, 쿠에상씨 가족, 로마이에씨 가족, 보오에씨 가족은 내 서품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첫 장엄 미사에는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 다만 낭씨 부근에 살고 있는 그렁꼴라 부부를 비롯한 많은 친지들이 내 서품식에 참석해 내 기쁨을 같이 나눴다.

내 서품식은 예정대로 신학교 성당에서 집전되었다. 그저 주님께 감사할 푼이었다. 나의 서품식 주례 주교님과 함께 드리는 나의 이 첫 미사를 나는 첫째로 돌아가신 내 부모님과 오늘의 내가 되게 도와 준 많은 은인들을 위해 바치기로 했다. 서품식 예절은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서품 주례 주교님께서 사제 직분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실 때였다. 그때 별안간 13년 전의 숙의 다음과 같은 말이 회상되었다.

<걸어가는 태오씨의 뒷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어. 태오씨가 불쌍해. 그리고 태오씨가 저만큼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눈을 감으니 갑자기 태오씨가 사람 없고 길 없는 험한 벌판을 지게에 짐을 잔뜩 지고 마냥 걷고 있지 않겠어. 태오씨가 불쌍해.> (“사랑의 지도” 17장 “달빛의 흰 얼굴” 참조)

그날 밤 숙의 상상 속에 나타난 나의 영상, 그것은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힘들고 외롭게 살아가야 할 내 사제생활을 뜻한 것이 아닐까… 13년 전 원산에서 숙과 헤어지던 날 밤 달빛에 비친 그녀의 흰 얼굴이 내 시야에 크게 클로즈업 되었다. 그리고 “태오씨는 불쌍해” 하는 그녀의 인간적인 마지막 애정을 느끼고 있을 때 주례 주교님은 “너는 멜키세댁의 예를 따라 영원한 사제로다” 라는 예절 경문을 일고 계셨다. 감격 속에 다소 흥분되었으나 나는 침착하게 서품 예절을 끝냈다. 주례주교님의 강복에 이어 나는 새 신부로서의 첫 강복을 참석자들에게 줬다. 그때 나는 복 바치는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참지 못했다. 왜냐하면 참석자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 부모님, 형제들, 조카들, 숙, 현, 훈, 진섭이, 비에브, 쟌느, 세실, 그 외 오늘의 나의 이 영광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쳐 준 많은 은인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날 진정 나와 함께 있었다. 그때 성가대의 “데떼움”의 장엄한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지 않았던들 내 울음 소리가 성당 안을 채웠으리라… 제의방에 돌아와서도 나의 감격과 감사의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 “태오 신부님, 오늘은 울 수 있는 복된 날입니다. 주님께서 그 눈물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 등을 정겹게 두들겨 주시는 띠스렁 추기경 소매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14장

프랑스를 떠나면서

 

 

축제의 계속이었다.

우선 내가 신부로 서품 되던 날, 신학교 당국에서 성대한 잔치를 마련해 줬다. 띠스렁 추기경님, 나의 서품 주례 주교 삐롤레 대주교님, 그 외 여러 은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나는 새 신부로서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그리고 5월 11일 나의 첫 장엄 미사에는 에드랑 장군, 닥터 쿠에상, 닥터 로마이에, 보오레시, 러샤르뽕디에르씨, 그렁꼴라씨, 스위스의 쉴링과 렌너씨 등 그리고 마담 비부아, 그 외 여러 프랑스 친지, 가족들이 참석했다. 물론 내 귀여운 공주 비에브도 참석했다. 그녀는 편지로 나의 장엄 미사 때 자기에게 첫 번째로 성체를 영해 줘야 된다는 말 까지 했었다. 나는 약속대로 그녀에게 첫 번째로 성체를 영해 주었다.

나는 이 장엄 미사를 이 모든 은인들을 위해 감사의 뜻으로 드렸다. 나는 이 날 <여러분 은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마태오 25장 35절) 이 성경 말씀을 강론 주제로 삼고 그들 모두에게 진정 감사 드렸다.

이 날에는 몇몇 은인들이 합동으로 잔치를 차려 주었다. 그리고 낭씨에서 발행되는 최대 신문인 <로오렌>의 기자와 인터뷰도 있었고, 그 기사가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여러 수도원에서 초청 미사도 드렸고 몇몇 고등학교에서는 강연 초청도 있었다. 축제의 계속이요, 기쁘고 감격스러운 나날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나는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끝냈다. 선편으로 짐을 부치고 나는 은인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며 감사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내가 낭씨를 떠나는 전 날, 그 동안 친히 지내온 몇몇 프랑스 가정이 합동으로 나를 위한 송별 저녁 파티를 마련했다. 즐겁게 식사를 끝내고 코냑을 마시며 환담하고 있을 때였다. 좌중의 한 젊은 부인이 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태오 신부님, 나는 당신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군요. 즉 프랑스를 다녀가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도 근 5년 간이나 이 곳에서 공부하셨으니까 이제는 신부님 나름대로 프랑스와 그 국민에 대해 그 어떤 관(觀)이 생겼을 것입니다. 우리 조국과 우리 국민성에 대해 당신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를 좀 듣고 싶군요.”

 

예기치 않았던 어려운 질문이었다. 내가 프랑스 역사나 민족성을 특별히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또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을 돌린 시간적 여유 없이 지내온 내가 답변하기에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코냑을 한 모금 입 안에 넣고 그 향기와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생각을 더듬어 봤다. 그때 한 가지 묘안(妙案)이 떠올랐다.

“마담, 당신은 참 아름다운 부인입니다. 그리고 깊이 있는 교양과 너그러운 인상을 주는 멋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까다로운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의 아름다운 용모를 감상하는 내 두 눈은 미적 감정으로 충만 되어 있는데 마담의 질문에 답변해야 할 내 지성(知性)은 당신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모두들 웃었다. 물론 나는 이 말을 농조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답변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신부님께서는 아름다움과 원망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의 방향을 잡고 있군요. 좋습니다. 신부님께서 보신 대로, 들으신 대로, 또 느끼신 대로 말씀해 주세요.”

그 부인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내 답변을 재촉했다.

“그럼 말씀 드리죠. 프랑스인의 국민성이란 거대한 명제는 내 지식을 초월하는 문제군요.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의 성격이랄까 혹은 인간성이랄까 그 점에 대해서 내 경험을 말씀해 드리죠.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내 표현이 좀 지나쳐도 참고 끝까지 들어 주셔야 합니다.”

“<원망>과 <지나친 표현>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와 같이 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혹평을 하실 모양이군요?”

좌중의 한 부인이 웃으며 성급하게 말했다.

“내 말에 대한 평은 내 말이 끝난 후에 하기로 합시다. 내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대로의 인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코냑을 한 잔 다시 마신 다음 시거에 불을 붙여 짙은 연기를 천장을 향해 내뿜었다. 나는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좋은 음식을 먹은 다음에 시거 한 대 피우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다.

“한 바디로 내가 경험한 프랑스인의 인간성은 <먼스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 그것은 너무하신 평입니다. 보아하니 그래 우리가 그 구린내 나는 후로마져(치즈) 정도 밖에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평이군요. 섭섭합니다.”

여러 사람의 항의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의 어떤 이는 정말 섭섭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내가 예측한 바 그대로였다.

“아닙니다 여러 숙녀 신사분들! 내 답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냄새와 맛이 완전히 대조적인 먼스델에 대한 설명이 먼저 있어야 하겠습니다. 계속 내 말을 들어 주세요.”

먼스델은 프랑스의 그 많은 후로마져 종류의 하나이며, 고급에 속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공부한 프랑스 동부 지방 사람들이 이 후로마져를 좋아한다.  그런데 맛은 최상급이지만 냄새는 정말 고약하다. 마치 며칠이나 씻지 않은 발에서 나는 그러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래서 흔히 친구들 사이에 <너는 마침 먼스델 같다> 하면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된다.

“내가 낭씨 신학교에 도착한 날이 어느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당시 신학교 관례는 금요일에는 육식을 전폐했고 대신 점심에서는 생선, 저녁에는 그 냄새 나는 먼스델을 먹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식당에 들어갔을 때, 아마도 여러분은 그 당신의 내 반응을 얼마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상상합니다. 숙녀들 앞에서 말의 표현이 점잖지 않아 죄송하지만, 6.25 전쟁 당시 한 달이나 군화를 벗지 않고 지내다가 그것을 벗었을 때 풍기던 그 고약한 냄새가 식당에 충만 돼 있었어요. 속이 메슥메슥해지고 역겨워지는 기분을 참아내기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냄새의 원인이 바로 먼스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그 후로마져를 미워했어요. 그런데 그 냄새 나는 먼스델을 로스 피이프 이상으로 맛있게 먹는 동료 신학생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나는 그 냄새 때문에 식사를 전혀 할 수가 없었어요. 그 후부터 매주일 금요일 저녁은 나에게 크나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때 먹다 남은 빵을 몰래 내 방에 갖다 두었다가 저녁 대신 그것만을 먹은 일이 여러 번 있었지요. 날이 갈수록 나는 먼스델을 미워하고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게 되었지요. 물론 캬몽베르(치즈 종류의 이름) 정도의 후로마져를 조금씩 맛들이기는 시작했으나 먼스델만은 도저히 먹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성 주간을 맞이했고 성 금요일 아침 묵상 신공이 끝난 후였습니다. 학장 신부님께서 우리 신학생들에게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뜻으로 “모르디피가시옹”(희생의 행위)을 각자 원하는 대로 하나씩 하라고 분부하셨어요. 나는 어떤 희생을 주님을 위해 바칠 수 있을까를 곰곰이 묵상하고 있을 때 희생의 뜻으로 먼스델을 먹자는 생각이 났어요. 희생의 행위란 우리의 취미와 성격에 맞지 않는 한 가지 영적 선행(善行)을 사랑을 갖고 의지적으로 해 내는 행위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는 먼스델을 먹기로 했던 것입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 오자 먼스델 냄새가 벌써 내 몸 안에 배어드는 듯했으며,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주님께 기도하며 용기를 내어 먼스델을 조금 빵에 발라 한 입 먹었습니다. 그때 밥상에 같이 있던 동료 신학생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더군요. 그런데 입 안에서는 그 어떤 야릇한 향기 나는 맛이 내 미각(味覺)을 자극시켰어요. 다시 용기를 내어 이번에는 먼스델을 많이 빵에 발라 크게 한 입 먹으며 여러 번 씹어 봤습니다. 아! 거기에는 내 미각을 매혹시키는 훌륭한 맛이 있었습니다. 그 후 나는 금요일을 기다리게 되었어요. 이제는 아주 성대한 잔치라 해도 먼스델이 없으면 섭섭할 정도로 그것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나는 일단 여기서 말을 마치고 주위 사람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분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내 <먼스델 경험론>에 대한 여러가지 재미있는 비판이 있었다. 나는 말을 또 계속했다.

“그날 밤 만과신공을 끝내고 나는 오랜 동안 성당에 남아 있었어요.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였죠. 주님께 바친 이 희생이 나에게 아주 심오한 인생철학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즉 겉모양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과 일방적인 남의 말만을 듣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고귀한 교훈이었어요. 그때 나는 먼스델에 대한 내 편견과 경솔했던 나 자신을 심히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신부로 살아가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절대로 편견을 갖고 대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이 철학이요, 예술인 여러분, 프랑스 사람들이 애호하는 먼스델은 이처럼 크나큰 철학적 교훈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말을 끝냈다. 그리고 코냑 한 잔을 다시 마시며 목을 적셨다. 그때,

“과연 신부님다운 멋진 경험담입니다. 그런데 먼스델과 프랑스인의 인간성과는 어떤 관련이 있죠?”

그 젊은 부인은 재미있다는 듯 호기심 가득 찬 표정으로 내 곁으로 다가 앉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 점에 대해서 말씀 드리죠. 하지만 마담, 여자가 남자에게 술을 따라 주는 동양인의 아름다운 풍속대로 나에게 술 한 잔 따라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모두들 다시 한 번 웃었다.

“물론이죠,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그 부인이 따라주는 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 나는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는 프랑스 말 한 마디 모르고 유학 왔습니다. 내가 겪은 고생이 어떠하였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고, 기후는 내 건강에 맞지 않고, 게다가 먼스델까지…

나는 동료 신학생들에게 많은 기대를 갖고 왔습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권이 다른 이방인이었으나 그래도 같은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 신자로서 동료들의 이해와 우정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한테서 느낀 처음의 내 감정은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프랑스인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이방인인 나에게 심각한 고독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 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서 <너>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발달한 여러분의 개인주의와 자기 사랑은 이방인에게 너무도 냉정했습니다. 내 자유를 남이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그 만큼  남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여러분의 교양은 남의 일에 지나치게 무관심했습니다. 매사에 예의는 정확했으나 그 이상의 것, 즉 정(情)이라는 마음을 남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예의는 정확했으나 그 이상의 것, 즉 정(情)이라는 마음을 남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의 이러한 무관심 속에 인간의 이해와 인정에 굶주린 나는 마치 내가 먼스델을 싫어하고 미워하듯 동료들을 싫어했고 미워도 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성 금요일 밤 나는 많은 것을 반성했고, 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동료들한테서 사랑만을 기대하고 있었지, 그들을 사랑하려는 자세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먼스델이 그 특별한 냄새로 나의 접근을 제시한 것처럼 나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은 그들과 나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넘어 설 수 없는 일종의 성벽이었었어요.

성 금요일 저녁, 자진해서 먼스델을 먹었듯이 이번에는 동료들에게 사랑을 기대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들을 사랑하자고 결심했어요.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으면 내가 먼저 그들에게 내 마음을 주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해고 우리들 사이에 가로 놓여 있던 이 <성벽>을 분쇄해 버렸습니다.

거기서 나는 내 마음대로 여러분 프랑스인의 인간성의 일면을 경험했습니다. 먼스델은 그 독특한 냄새로 이방인을 배척했으나 남을 매혹하는 멋진 맛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치 먼스델은 <나는 이처럼 좋은 맛을 갖고 있으니 나를 맛 보고자 하는 사람은 맛 보아라. 그러나 나 스스로 이 맛을 먼저 보여 주지는 않겠다> 라는 듯 도도한 태도였지요.  내 경험에 비친 프랑스인의 인간성도 그러했습니다. 내가 동료 신학생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에게 접근하자 그들은 이내 자기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나를 따뜻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들이 나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처음에 이방인인 나에게 비친 프랑스인의 인간성은 냉정과 무관심과 도도한 자존심이었지요. 그러나 이러한 간격과 장벽을 넘어선 거기에는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고귀한 휴머니즘이 또한 있었습니다.

나는 얼마 후 프랑스를 떠납니다. 캐나다에 가면 금요일 저녁마다 먼스델이 생각나겠지요. 그때마다 나는 나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와 기구와 우정을 잊지 않고 감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항상 은혜롭게 추억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깊이 사랑하며 그만큼 여러분의 휴머니즘을 부러워합니다.”

그때 모두들 술잔을 높이 들고 “먼스델 만세”를 소리 높이 불렀다. 그리고 나의 <프랑스인의 인간성>에 대한 평가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얼마 후 좌중이 조용해지자 그 젊은 부인이 또 내게 말했다.

“신부님의 말씀 흥미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술 한 잔 더 따라 드릴 테니까 말씀 하나 더 해 주세요. 물론 우리 프랑스인에 대해서…”

나는 그 부인이 따라 주는 술잔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말을 계속했다.

“그럼 이번에는 오만스러운 프랑스인의 긍지에 대해 내가 경험한 바를 말씀 드릴까요?”

“좋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의 화법은 재미 있어요. 한 대 슬쩍 때리고 그 아픔을 달게 감싸 주는 묘한 화법이에요. 말씀해 주세요. 오만스럽다는 <아픔> 뒤에는 긍지라는 달가움>이 있겠군요.”

그때 모두들 또 웃었다. 나는 술 몇 모금을 마시고 말을 계속했다.

“어느 성탄절 방할 때 일이었습니다. 파리에서 밤 늦게 메뜨로(지하철) 스따시옹(역)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건너편에 한 거지가 술에 만취되어 나를 보고 무엇인가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의자에 앉으려다가 손을 헛짚어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술에 취한 탓인지 혹은 힘이 없는 탓인지 의자 위로 일어나 앉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그럴 때마다 그는 땅바닥에 떨어져 앉곤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그에게 무관심했고… 그가 불쌍해서 나는 그를 도와 주려고 건너 편으로 갔습니다. <무슈, 당신이 이 의자 위에 앉도록 내가 도와 드리죠.>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여러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농, 메르씨 몸 빼르.(감사하지만 신부님, 사양하겠습니다.) 위대한 프랑스인은 당신 같은 중국 신부의 도움이 필요 없소.> 이렇게 말했어요. 그때 나는 마음 속으로 그의 오만성을 무시했습니다. <네까짓 거지꼴에, 뭐 위대한 프랑스인이라고..> 그러나 그는 여러 번 시도 끝에 드디어 의자 위에 앉았습니다. 그때 그는 <몽 빼르, 무 부왈라!> (신부님, 자 나를 보세요!) 얼굴 전면에 승리감 같은 웃음을 띠고 이렇게 소리쳤어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여러분의 프랑스인다운 오만성과 긍지를 봤습니다. 바로 이 오만성과 긍지가 프랑스인다운 여러분의 애국심이었지요. 여러분의 이러한 애국심은 세계 제2차 대전 중 그 유명한 “레지스탕스”(저항운동)에 관한 숱한 아름답고 용감한 이야기를 낳게 했고 또 오늘의 프랑스를 이끌어 왔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거지의 몸이었으나 그가 나에게 보여준 그 행위는 프랑스인의 애국심을 대표할 수 있는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긍지 속에, 또 이러한 애국심 속에 프랑스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리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여러분의 나라 사랑이었고 국민 된 보람인 긍지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이 오만성과 긍지와 애국심을 이 다음 내가 사랑하는 한국 민족에게 널리 알리고 본 받게 할 것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그 젊은 부인은 잠시의 여유도 없이 내 말을 이어 받았다.

“신부님, 하잘 것 없는 사소한 사건에서 당신이 발견한 프랑스인의 애국심도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그보다도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 주시는 당신의 마음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번에는 쎵빠아녀(샴페인)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신부님께서 보신 프랑스 문화에 대해 느끼신 대로 말씀해 주세요.”

“마담, 부인께서 사업을 하시면 크게 부자가 되겠습니다. 부인께서는 술 한 잔의 대가를 너무 많이 받아내는 훌륭한 <상술>을 갖고 있군요.”

나는 농담 삼아 이 말을 했다 그랬더니 모두가 박수를 보내며 웃고 있었다. 샴페인 한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신 다음 말을 계속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프랑스는 최강대국에서 2류 국가로 전락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으나 나는 프랑스 문화를 깊이 사랑합니다. 프랑스 문화를 특별히 공부한 내가 아니지만 나는 바로 이 샴페인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의 문화가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얕은 듯하면서도 깊이를 느끼게 하고 약간 씁쓸한 듯하면서도 상쾌한 맛을 주며, 또 맑은 색과 없는 듯하면서도 우리의 후각을 향기롭게 하는 향기를 풍기는 이 샴페인은 진정 프랑스 문화를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샴페인을 자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없었던 그만큼 나는 여러분의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다음 프랑스에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기를 나는 희망합니다. 그때 시간의 여유를 갖고 여러분의 문학과 문화를 충분히 접촉하면서 나는 이 샴페인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습니다.”

“역시 동양인과의 대화는 흥미 있습니다. 냉철한 이성적인 이론의 추리 없이는 사물을 관찰 못하는 우리들 프랑스 사람보다 어떤 비유를 매개물로 사물의 진상(眞像)을 파악하는 당신네들 동양인의 화법이 더 인상적이군요. 태오 신부님, 샴페인을 한 잔 더 따라 드리겠습니다. 이 대가로 한 말씀만 더…”

 그 젊은 부인의 관심은 적극적이었다. 나만 이야기하는 것이 미안스러워 좌중의 분위기를 살펴 봤다. 그러나 모두가 내 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또 말을 계속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죠. 프랑스라 하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치고 <예술>을 아니 생각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여러분의 조국은 예술의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저명한 예술가를 많이 산출하고, 또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수많은 박물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술의 나라라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술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과 이해와 사랑,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도 어느 날 파리에서 목격한 것입니다. 어느 길 모퉁이에 가난한 한 미술가가 예수 아기를 안고 계시는 성모님상을 멋지게 그려 놓고 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그림 위에 동전을 던지고 가더군요. 나도 동전 몇 푼을 던지고 그 옆에 있던 카페 테라스(노상 다방)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거지가 거기를 지나가다가 그 그림을 유심히 보더니 자기 주머니 속을 더듬더군요. 아마 돈을 찾는 모양이었어요. 그런데 돈이 없었는가 봐요. 상의 주머니, 바지 주머니를 뒤지다가 내게로 와서 동정을 청하더군요. 나는 아무 말 없이 5프랑을 그에게 줬습니다. (5프랑은 한화 약 6백 원에 해당된) 그랬더니 그 거지는 그 돈을 모두 그 그림 위에 놓고 가 버렸습니다. 거기서 나는 예술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발견했고, 또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가 안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지까지도 가난한 미술가를 아껴 주고 이해하고 협조하고 존경하는 이러한 풍토에서 좋은 미술가들이 나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때 나는 그 거지를 부러워했습니다. 여러분의 이러한 예술 애호 정신은 프랑스를 영원한 예술의 나라로 이 세계 안에 존속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프랑스는 예술과 문화의 나라로서, 자동화 및 기계화 문명 속에 생산적 능률을 위주로 하여 인간성의 상실(喪失)을 추구하는 이 세계 안에서, 정신적인 지도 역할을 해야 되리라 나는 생각합니다.”

그때 모두들 나에게 박수를 보냈고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우리는 자유 분위기 속에서 여러 말을 주고 받았다. 좌중이 좀 조용해지자 그 젊은 부인이 일어서며 조용해 주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숙녀 신사 여러분, 오늘 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태오 신부님을 송별하는 이 테아트러(극장 혹은 연극)는 아직 완전히 막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막이 남아 있으며, 곧 여러분에게 막을 올리겠습니다. 즉 우리는 태오 신부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들려 주신 여러가지 말씀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태오 신부님께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여러분을 대신해 엉부라쓰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뜻을 묻기 전에 내 사랑하는 남편에게 뜻을 묻겠습니다.”

그러자 저 한 쪽에서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던 한 신사가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안마리 (젊은 부인의 이름) 당신이 여기 계시는 여러분을 대신하는 그 영광을 당신의 남편으로서 나는 기쁘게 생각하오. 태오 신부님께 대한 당신의 엉부라쓰는 오늘 밤 나를 위한 <곱배기 사랑>이 되어야 하오.”

“몽마리 비앙 애메, (사랑하는 내 남편이여) 당신을 위한 아주 멋진 사랑을 내 마음 안에 간직하고 있어요.”

모두들 “부라보” 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나는 좀 민망스러워 얼굴을 붉혔다. 안마리 부인은 내 앞에서 여전히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태오 신부님, 내가 신부님께 엉부라쓰 하기에 부당하지 않겠죠?”

“마담, 영광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누군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우리 둘이 엉부라쓰 하기 전에 마담 소개를 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때까지 나는 그 부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모인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잘 알고 지내온 사람들이었으나 그 중의 몇 분은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아, 섭섭합니다. 식사 전에 우리는 서로 소개받고 인사했었는데… 그리고 신부님은 존 까다로우신 분이시군요. 하지만 좋습니다. 내 신분과 이름을 똑똑히 당신에게 알릴 수 있는 이 기회를 나는 더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존경하는 저기 계신 죤져 장군(내 친구 제라르 신부의 부친)의 둘째 딸이며 제라르 신부의 누님인 동시에 저분의 아내인 마담 러미어입니다. 신부님,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마담 러미어,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나를 엉부라쓰하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을 나는 제시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부인 앞에 서서 말했다. 모두가 나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말씀하시죠, 그 조건을! 하여튼 신부님은 무척 까다로운 분이시군요.”

마담 러미어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귀부인과 엉부라쓰 하는 것을 나는 절대로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교양과 신분에 맞는 멋있는 향수를 먼저 바르셔야 합니다. 나는 귀부인과 엉부라쓰 할 때 그분들의 귀 밑에 풍기는 그 향기로운 향수를 높이 평가합니다. 이것이 내가 제시하는 조건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모두들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에빠텅” (멋지다의 형용사)과 “걀렁”(부인에 대한 신사의 멋지고 예의 바른 태도) 이란 말이 여기 저기서 들려 왔다. 그때 마담 러미어는 서슴지 않고 핸드백에서 향수병을 꺼내 자기 귀 밑에 뿌렸다. 담배 연기로 탁하던 방안 공기가 금세 향기로워졌다.

“태오 신부님, 자 이제는…”

말하며 마담 러미어가 나를 엉부라쓰하려 할 때 내 친구 제라르 신부가 “잠깐만” 하고 손을 들며 일어섰다.

“이 멋진 기회를 우리는 영원한 순간으로 기념해 둬야 합니다. 두 분의 엉부라쓰 하는 것을 나는 사진 찍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사진기를 들었다. 그리고 자기 매형을 향해,

“몽 후레르, (형이라는 뜻) 너는 질투하지 않겠지?”

웃으며 농당조로 말했다. 그때 무류 러미어는

“사진 찍는 것은 허용하나, 그 사진을 태오 신부님에게는 주지 않을 테야. 약간 샘이 나는데…”

이 말에 모두들 또 웃었다. ‘샘’이라는 이 말도 물론 농담이다. 우리 둘이는 엉부라쓰 했고, 자라르 신부는 셔터를 눌렀다.

우리는 어처럼 즐겁게 수와레(밤놀이)를 끝냈고 이별의 아쉬움을 서로 나눴다.

 

 

그 다음 날 나는 낭씨를 떠났다. 학장 신부님과 동료들을 떠날 때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 말해 만 4년 9개월 간 내가 지내온 이 신학교! 그 뿐만 아니라 내가 신부로 서품 된 이곳! 그 동안 많은 고생이 있었으나 모두가 감회 깊게 회상되었다. 5년 전 프랑스로 오기 위해 서울을 떠나던 그 당시의 기분 비슷한 감정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신학대학교 교문을 나서며 나는 다시 한 번 뒤돌아봤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안녕>을 기원했다.

 

여러 은인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나는 인사를 드리고 감사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몽뺄리에 갈멜 수녀원으로 세실 수녀님을 찾아갔다.

내 생전 처음 보는 갈멜 수녀원이었다. 우선 외부 일 담당 수녀님으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고 목책(木柵)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나는 원장 수녀님과 인사를 나눴다. 그때 원장 수녀님은 세실 수녀님이 며칠 전부터 몸살로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갈멜 수녀원 내부에는 국가 원수나 소속 주교님을 제외하고는 여하한 남자도 들어갈 수 없지만, 내일 아침 미사 후 세실 수녀님을 위해 침실로 성체를 모셔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성사 집행자는 언제라도 수녀원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단다.

 

봉쇄 수도원인 갈멜 수녀원에서 수련 중인 세실 수녀님을 만나 같이 이야기를 나루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분을 방문하고 싶었고, 그분 앞에서 새 신부로서의 미사를 한 번 드리고 싶었다.

수녀원 주변은 너무도 조용했다. 마치 한국의 산간(山間) 절간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손님 신부님 방에서 혼자 그날 밤을 지냈다. 지도 신부님은 외부에서 미사만 지내러 오셨고 수녀원에는 신부님이 안 계셨다. 서품을 받은 이후 그날이 그날처럼 감격과 흥분과 기쁨 속에 부산스럽게 지내던 내 자신이 이 자연의 침묵 속에, 또 이 환경의 고요 속에서 조용히 묵상기도를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예정대로 미사를 지냈다. 너무도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의 미사였다. 미사가 끝나자 한 수녀님의 안내로 나는 성체를 모시고 세실 수녀님 방으로 갔다. 자그마한 방, 흰 벽에는 격에 맞지 않는 커다란 십자가상이 하나 걸려 있을 뿐, 그림 한 장 보이지 않았다. 방 한 구석에는 자그마한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성경 책과 한두 권의 신심 서적이 보였다. 침대도 역시 자그마했고, 목판 침대 위에는 모포 한 장이 깔려 있는 듯했다. 세실 수녀님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말라 있었고, 그녀의 흰 얼굴은 더 희게 보였다. 단정한 수도복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묵상하고 있다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영성체 예절을 진행했고 세실 수녀님에게 성체를 영해 드렸다. 그때 수련장 수녀님인 듯한, 나를 안내한 수녀님이 나직이 말했다.

“태오 신부님, 세실 수녀님에게 새 신부의 강복을 주세요.”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세실 수녀님에게 강복을 줬다. 그분의 머리 위에 내 두 손을 얹었을 때 내 손이 덜리는 것을 느꼈다. 안내 수녀님이 또 말했다.

“원장 수녀님의 사전 허가가 있었습니다. 세실 수녀님은 면회실에 갈 수 없는 몸이니, 이곳에서 잠깐 서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실 수녀님, 이번에는 태오 신부님에게 축하해 드려야죠.”

안내 수녀님은 세실 수녀님을 일으켜 침대에 앉혔다. 항상 조용하고 신비로운 그 미소로 세실 수녀님은 나에게 웃어 줬다.

“태오 신부님, 사제서품 진정 축하합니다.”

두 손을 수도복 옷자락 속에 넣고 고개만을 숙여 나에게 인사했다.

“수녀님이 보내 주신 그 <촛불> 감사합니다. 앞으로 사제로서 살아가는 나에게 그 촛불은 내 사제직 삶을 밝히는 안내자가 돌 것입니다. 그리고 불을 밝히고 있는 그 초처럼 주님의 구속사업을 위해 기구와 희생과 사랑으로 스스로의 몸을 태우고 있는 수녀님을 기구 중에 잊지 않고 있겠습니다.”

“신부님의 기구는 내 수도생활을 위해 귀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신부님을 위해 나도 늘 주님께 감사 드리겠습니다. 신부님의 그 왕성하신 사제적 의욕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건강에 조심하고고, 우리 서로 주님의 종답게 열심히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세실 수녀님. 우리 서로를 위한 서로의 기구 안에 서로를 도우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기로 합시다. 수녀님들이 바치시는 경건한 기구와 순결한 희생은 사목 전선(司牧戰線)에서 일하는 우리들 신부에게 크나큰 힘이 될 것입니다.”

“태오 신부님, 쟌느 수녀님을 만나시면 제 인사 전해 주세요. 그리고 쟌느 수녀님을 많이 많이 위로해 드리세요.”

세실 수녀님은 다시 한 번 그 맑고 순결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 그분이 맑은 두 시선과 순결한 모습은 내 마음에 뭐라고 이름할 수 없는 그 어떤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이분의 이 말을 우리 서로의 대화를 끝내자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안내 수녀님을 앞세우고 아무 말 없이 세실 수녀님 방을 나왔다.

세실 수녀님과는 우리 서로의 대화보다 그분의 맑은 시선에서, 또 순결한 표정에서 나는 보다 많은 것을 항상 듣고 있었다. 그분의 맑은 시선은 나에게 천상적 신비를 속삭여 주었고, 깨끗한 모습은 순결의 뜻을 말해 주었으며, 조용한 태도는 기도와 겸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는 쟌느 수녀님을 방문하러 몽뺄리를 떠나 쌍디에로 향했다.

 

 

쌍디에 역에는 수녀님 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녀원에 도착했을 때 원장 수녀님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분은 나에게 쟌느 수녀님이 모범적인 수련을 하고 있다는 희소식을 우선 전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면회실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쟌느 수녀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쟌느 수녀님!”

나는 반가워 수녀님 앞으로 다가서며 말하자 수녀님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어 주며 무릎을 꿇고 새 신부의 강복을 청했다. 강복을 준 다음 나는 쟌느 수녀님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때 수녀님은 “태오 신부님, 축하해요” 하고 간신히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수녀원에 들어온 지 벌서 4 개월. 아직도 웃음 속에는 지난날의 장난기 있는 순진한  일면이 보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훌륭한 수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쟌느 수녀님, 반갑습니다.”

수녀님의 손을 잡은 채 나는 말을 했다.

“태오 신부님!”

수녀님은 그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기쁨 탓인지 얼굴에는 흥분의 빛이 보였고, 음성은 떨고 있었다.

“쟌느 수녀님, 이제는 훌륭한 수녀님이 되셨군요. 아 참, 세실 수녀님의  안부를 갖고 왔습니다. 쟌느 수녀님께 각별한 인사를 전했습니다.”

“감사해요, 신부님.”

수녀님은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그때 우리 둘이 서 있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쟌느 수녀님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우리 둘이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가끔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고 미소할 뿐이었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에 우리 둘이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말이 많았는데…

“부모님, 안녕하세요?”

수녀원에서 수련 중인 사람에게 나는 엉뚱하게도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쟌느 부모님은 얼마 전 내 장엄 미사 때 만났는데 나는 그분들의 안부를 물었던 것이다. 이만큼 우리 둘이는 화제가 궁색했다. 이미 수녀가 된 옛 친구에게, 아니 솔직히 말해 부부가 될 수 있었던 우리 서로가 신부가 되고 수녀가 된 이 현실에서 나는 정말이지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때 나는 별안간 이상하게도 심한 고독감을 느꼈고 쟌느 수녀님과 나는 서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이방인! 이방인이 따로 있나! 피부색과 언어와 문화를 달리한 인종들 사이에만 이방인이 있게 되는 법은 아닐 것이다. 국경과 민족을 달리하고 또 문화권이 달라도 서로 말과 감정이 통하고 또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인정을 나누면 거기에는 이방인이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반면에 언어와 감정이 통하고 이해와 존경을 서로 나눌 수 있어도 마음 안에 끓어오르는 이 따스하고 다감(多感)한 인정을 서로 나누며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 수 없을 때, 거기에서는 서로가 이방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도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쟌느 수녀님과 나와는 이방인이 아니다.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 수 없어 우리 둘이는 이 세상의 이방인이 될 수는 있어도 쟌느 수녀님과 나는 이 세상의 차원을 달리한 동지다. 즉 <주님의 나라>를 위한 증인으로서 우리 둘이는 같은 십자가를 지고 같은 삶의 길을 걸으며, 지금 말이 없어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동지인 동시에 형제요, 자매였다.

사실 우리 둘이는 더 이상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영적인 대화를 구실로 삼고 서로 나눌 수 있었던 여러가지 인간적인 감정과 말도 내 마음 안에서 꺼져가는 불길처럼 사그라졌다. 말이 없어도 서로의 감정과 현재의 위치와 삶의 목적 의식을 서로 잘 알고 있는 우리 둘이는 서로 교차된 시선 속에서 모든 것을 말했다. 그리고 서로의 신뢰감을 교환했고 주님의 충실한 종이 도리 것을 다짐했다. 한참 후 쟌느 수녀님은 다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강복을 청했다. 내 강복을 받자 쟌느 수녀님은 조용히 다시 한 번 내게 웃어 주고 면회실을 나갔다.

 

나는 쌍디에 정신병원 지도 신부님을 대신해 1주일 동안 수녀원에 머물러 있게 예정되어 있었다. 병원 지도 신부님은 이 기회를 이용해 잠시 출장을 떠나셨다.

나는 수련 중인 쟌느 수녀님을 아침 미사 시간 외에 만난 일이 없었다. 내가 쌍디에에 온지 3일 째 되던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병자성사가 났다. 처음 당하는 병자성사라 나는 좀 긴장되어 간호원의 뒤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아, 그 환자는 다름 아닌 무슈 알베르였다. 나는 병자성사 예절 순서대로 환자의 고백성사를 듣고,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드렸다. 내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성사 예절이 끝나자 무슈 알베르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나에게 메마른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아 바로 당신이었군요? 참으로 기이한 인연입니다. 주님께서 이 얼마나 자비로우신고! 내가 당신의 축복 속에 이 세상을 떠나 주님 곁으로 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오묘하신 주님의 섭리이겠습니까….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무슈 알베르, 당신에게 첫 병자성사를 준 나로서 나는 당신을 일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한 신앙 안에 은혜롭게 받아들이고 있는 당신을 나는 부러워합니다.”

“나로 하여금 이처럼 복되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나는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나 주님의 은혜는 바로 내 사랑하는 쟌느 수녀님의 기구와 희생의 덕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무슈 알베르께서는 쟌느가 수녀님이 되신 것을 알고 계셨군요?”

나는 좀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기 얼마 전에 이곳을 잠깐 다녀가며 말했습니다.”

“무슈 알베르, 쟌느 수녀님을 잠시 모셔 올까요? 지금 수련 중에 계시긴 하지만….”

“아닙니다, 신부님! 그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 곁인 천당에서 떳떳한 낯으로 내 쟌느 수녀님을 만나 뵙겠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나의 병자성사 소식도 쟌느 수녀님에게 절대로 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내 제안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그때 눈물 몇 방울이 마치 눈 밖으로 밀려나듯 양쪽 뺨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나는 원장 수녀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쟌느 수녀님의 출생의 동기 등이 문제되어 말하기가 어려웠다. 여러가지 평범한 말 끝에 나는 무슈 알베르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줬다는 것을 보고했다. 그때 그분은 나를 잠잠히 바라보시다가,

“태오 신부님, 무슈 알베르와 쟌느 수녀님 간의 관계를 알고 계십니까?” 하며 조심스럽게 말씀했다.

“네, 원장 수녀님! 그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은 그 문제 때문에 나도 원장 수녀님에게 말씀 드리기가 거북했습니다.”

“그 문제는 나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쟌느 수녀님을 만나셔서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쟌느 수녀님이 원하신다면 무슈 알베르를 만날 수 있도록 그를 별실로 옮겨 놓을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원장 수녀님, 무슈 알베르가 자기 소식을 절대로 쟌느 수녀님에게 알리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는데요.”

“그분의 그러한 심정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간적 마음은 쟌느 수녀님을 지금 무척 모고 싶어 할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야 어떻든 현재는 참 열심하고 훌륭한 신앙인이며, 성인 같은 분이지요. 내가 무슈 알베르를 책임질 테니까 신부님이 쟌느 수녀님의 심적 안정을 책임지고 말씀해 주십시오. 이 시점에서 신부님 이외엔 아무도 쟌느 수녀님의 심정을 안정시켜 줄 사람이 없을 것으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

원장 수녀님은 쟌느 수녀님을 우리가 있는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잠시 후 쟌느 수녀님이 오시자,

“쟌느 수녀님, 태오 신부님께서 당신에게 하실 말씀이 있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신부님께 순명 하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사무실을 나가셨다. 그때 나는 원장 수녀님의 너그러운 인간성과 그분의 도량 깊은 지도력을 감탄하고 존경했다. 이러한 어버이다운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또 수도자를 수도자다운 인격으로 도야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소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쟌느 수녀님 곁으로 다가 앉으며 나는 나직이 말을 꺼냈다.

“쟌느 수녀님,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지금 신부님께서는 알베르 아버지의 때를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까?”

나는 놀랐다. 너무나도 침착한 쟌느 수녀님의 태도와 무슈 알베르의 때를 알고 있는 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수녀님! 그런데 수녀님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신부님의 표정에서 그것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기도 중에 알베르 아버지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그럼 말씀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무슈 알베르는 병자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을 넘기기가 어렵다는군요.  그런데 수녀님께서 무슈 알베르를 한 번 만나셔야겠는데…”

나는 쟌느 수녀님의 동정을 살폈다.

“지금 나는 수련 중에 있는 수녀의 몸입니다 신부님.”

쟌느 수녀님의 눈에는 물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바고 그 점에 대해서 방금 원장 수녀님과 상의 중이었습니다.”

“원장 수녀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알베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나 보고 싶습니다. 신부님, 아버지 알베르를 만나게 해 주세요.”

쟌느 수녀님은 바로 자기 곁에 있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 품에 자기 몸을 던지며 흐느껴 울다가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몸을 일으켜 저만치 간격을 두고 앉았다.

“좋습니다, 수녀님. 원장 수녀님께서 수녀님을 위해 무슈 알베르를 별실로 옮겨 놓으러 가셨습니다. 수녀님, 다만 그 감정을 진정해 주시고 주님께 같이 기도합시다. 수녀님이 받으시는 그 고통 나도 나눠 갖겠습니다.”

한참 후 원장 수녀님이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별실로 옮겨진 무슈 알베르 방으로 우리를 안내해 놓고 어디론지 가셨다. 그때 쟌느 수녀님은 “아버지” 하며 무슈 알베르 곁으로 달려가 그분의 메마른 손을 잡았다.

“쟌느 수녀님, 오셔서 감사해요. 사실은 수녀님을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부당한 나지만, 수녀님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죽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 주님께 감사하며, 이것은 바로 수녀님의 기구와 희생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슈 알베르는 쟌느 수녀님에게 경칭을 썼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이전처럼 나를 쟌느라고 불러 주세요.”

수녀님의 음성은 울음 속에 떨고 있었다.

“아닙니다, 수녀님! 당신은 주님께 바친 축성된 몸입니다.”

그리고 무슈 알베르는 눈을 감았다. 쟌느 수녀님은 무슈 알베르의 메마른 손을 자기 뺨에 비비며 차츰차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도 내 두 눈 언저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와 딸! 죽음 앞에 서 있는 아버지와 이를 지켜보고 있는 딸! ‘아버지’, ‘내 딸 쟌느야’ 이렇게 소리 내어 서로 부르며 울 수 있는 그들이었건만 그들은 더 이상 말이 없이 조용히 흐느껴 울고만 있었다. 그들 마음에는 여러가지 감회가 오고 갔으리라!

끝까지 죄인임을 고백하며 겸허한 자세로 은혜롭게 죽어가고 있는 이 아버지와, 인류 구원을 위해 제물처럼 자기 몸을 바쳐 수녀가 된 이 딸! 세상 사람들이 눈에는 이 아버지와 이 딸이 어쩌면 이방인처럼 보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처럼 살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처럼 보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버지와 이 딸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저 영원한 삶 안에서 진정 아버지와 딸로 새로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쟌느 수녀님은 수녀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때 무슈 알베르가 눈을 뜨고 나를 향해 보며 말했다.

“신부님, 이 죄인에게 한 번 더 강복해 주시고, 기도 속에 쟌느 수녀님을 내내 축복해 주십시오. 나는 두 문을 위해 저 영원에서 주님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신부님, 수녀님 돌아가 주세요.”

나는 무슈 알베르에게 주님의 강복을 기원하며 그분의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쟌느 수녀님이

“아버지.” 하며 그분의 뺨과 이마에 키스했다. 그러자 무슈 알베르는

“쟌느 수녀님.” 하며 수녀님의 손등에 키스했다.

 

나는 쟌느 수녀님을 데리고 내 임시 사무실인 병원 지도 신부 사무실로 왔다. 수녀님은 쓰러지듯 의자에 앉으며 소리 내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수녀님을 울게 내버려 뒀다. 그때 세실 수녀님이 <신부님, 쟌느 수녀님을 많이 많이 위로해 드리세요> 라고 한 말이 회상되었다. 세실 수녀님은 쟌느 수녀님이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슬픔과 고통을 예측하고 있었을까…. 얼마 후 쟌느 수녀님은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신부님, 죄송해요. 신부님에게 항상 눈물만 보여서…”
“신경 쓰지 마세요, 수녀님. 지금 수녀님이 당하시고 계시는 이 슬픔과 고통을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빕니다.”

“감사해요, 신부님. 신부님은 나를 위해 항상 구원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군요. 그런데 신부님, 나를 잠깐만 더 이곳에 있다 가게 해 주세요. 정신을 좀 더 차려야겠습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물 한 잔 갖다 드릴까요, 수녀님?”

“네, 신부님께서 주시는 물 한 잔 기쁘게 마시겠어요. 그 물은 나에게 맑은 정신과 힘을 줄 거예요.”

쟌느 수녀님은 내가 떠다 준 물 한 잔을 다 마시고 나에게 묵묵히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수녀원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6시 45분, 무슈 알베르는 평화롭게 주님 곁으로 떠났다. 그 시간에 나는 아침 미사를 드리고 있었고, 쟌느 수녀님은 미사에 참례하고 있었다.

 

무슈 알베르의 장례식은 엄숙했으나 아주 간소했다. 장례 미사에는 장의사 직원 몇 명과 원장 수녀님과 몇 명의 간호원이 참례했다. 물론 내가 장례예절을 집전했다. 원장 수녀님과 상의해 나는 쟌느 수녀님을 장례식에 참례시키지 않았다. 다만 무슈 알베르의 죽음을 수녀님께 알렸을 뿐이었다.

 

내가 쌍디에 성 요셉 수녀원을 떠나는 전날이 공교롭게도 이 수녀원이 창립된 기념일이었다. 저녁식사 후 간단한 축하연이 있었고 10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잠시 이용해 쟌느 수녀님과 같이 수녀원 뜰 안을 산보했다. 요 며칠 사이에 수녀님의 몸은 야위었다. 그 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6월 초의 밤공기는 시원스러웠고, 밤하늘은 너무도 맑았다.

“수녀님, 내가 뭐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수녀님께서 당하시고 계시는 고통이 헛되지 않기만을 주님께 빌 뿐입니다.”

나는 고개 숙여 걸어가는 발 끝을 바라보고 있는 쟌느 수녀님의 옆모습을 보며 말했다.

“감사해요, 신부님. 신부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내가 겪는 이 슬픔과 이 고통이 주님의 은혜로 무엇인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저도 기도하며 참아 받겠어요.”

“훌륭하십니다, 수녀님. 주님께서 항상 수녀님과 함께 하시기를 나는 빕니다.”

“저도 같은 기도를 신부님을 위해 드리고 있어요.”

우리는 한참이나 또 말이 없이 걸었다. 그때 하늘 저 쪽에서 유성(流星)이 불 꼬리를 길게 뿜으며 번개처럼 사라졌다.

“내일 신부님께서는 이 곳을 떠나시는군요…..”

그 유성을 바라보던 쟌느 수녀님이 쓸쓸히 말했다.

“내일 아침 미사 후 이곳을 떠나 파리로 갑니다. 그리고 내일 오후 5시에는 캐나다를 향해 이 정든 프랑스를 떠날 것입니다.”

“섭섭해요, 신부님. 하지만 우리는 항상 떨어져 살아야 할 몸들이지요.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신부님은 저 유성처럼 이 나라 저 나라로 전전하는 생활을 하시게 되겠죠.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또 하나의 베로니카가 되어 살아갈 것입니다.”

쟌느 수녀님은 쓸쓸히 말했다. 나도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다. 우리 둘이 신부로, 수녀로 일생을 살아가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는 것은 확실히 외로운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수녀님, 저 별 하늘을 바라보세요! 별들이 참 많죠? 나는 어릴 적부터 맑은 별 하늘을 바라보기를 여간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 광대한 하늘을 바라보면 내 마음이 후련해지고 무엇인가가 내 영혼을 맑게 또 기쁘게 해 주었어요. 그리고 저 별들 중의 하나가 이 다음 내가 부활해서 살게 될 고향이 될 것이라고 난 생각했어요.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이렇게 신앙고백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우주가 창조된 이래 오늘까지 살아 왔고 앞으로도 이 세상 끝날까지 살아갈 이 많은 인간들이 부활하면 그들이 다 어디서 살겠어요.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이 끝난 다음에는 저 수많은 별들이 인간들의 고향이 되리라고 생각했지요.

이 세상은 고통과 슬픔과 죽음과 에어짐이 있으며, 또 미움과 불화와 전쟁 등이 있는 불행한 곳이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천당’ 즉 우리의 죽음 다음에 있을 세상은 기쁨과 평화와 사랑만 있는 영원히 행복한 곳이라고 하지 않아요! 저 별들 중의 하나가 진짜 우리가 차지할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을 살펴 보면 어느 지방은 다른 지방보다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 있지 않아요. 이처럼 저 많은 별들도 다 똑 같은 별은 아닐 거예요. 어느 별은 더 살기 좋고 아름다운 반면 어느 별은 험악하고 살기 힘든 별들도 없지 않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곳에 가면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 거예요. 왜냐하면 <끼리끼리> 모여 살게 되니까 그렇죠. <여러분이 이 지상에서 행한 대로 이 다음 심판 받고 상과 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행적에 따라 <끼리끼리> 살게끔 해 주실 거예요. 그래야만 거기에 평화가 있게 될 것이에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행적에 따라 더 아름다운 별에, 도 덜 아름다운 별에 우리를 끼리끼리 배정하실 거예요.”

 사랑의 반대인 미움이, 평화의 반대인 불화가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취미와 성격이 다르고, 같이 생각하지 않고, 같이 공감하지 않고, 같이 참아 주지 않고, 같이 사랑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자연적인 부작용이 아니겠어요? 반면에 평화와 사랑이라는 것, 그것은 사람들의 성격과 취미가 설사 다르다 하더라도 같이 생각하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참아 주며 이해하고, 같이 존경하고, 협조하고, 사랑하는 데서 있게 되는 일종의 결실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천주님께서는 인간들의 이러한 고집과 모순 때문에 인간 서로의 평화를 위해 이 다음 우리의 부활 후에는 <끼리끼리> 모여 살게 하실 거예요. 그런데 쟌느 수녀님, 우리는 같은 별로 가야 해요. 저 별들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별로 가서 살아야 해요.

나는 친구를 좋아하고 많은 벗을 갖고 싶어요. 나에게는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좋은 벗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내 삶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기를 바래요. 물론 나도 남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신부가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이 다음 우리의 육신이 부활한 다음 이 지상에서 서로 돕고 이해하고 아껴 주고 사랑하던 벗들이 저기 같은 별에서 모여 함께 살게 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어요. 나는 이 지상의 삶 주변에서 만난 모든 좋은 벗들과 저 별에서 함께 영원히 살고 싶어요.

쟌느 수녀님, 우리 둘이, 우리 서로의 버들과 함께 살게 될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별이 저 하늘 어느 곳에 곡 있을 거예요.

이것은 내가 어렸을 적에 생각한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나는 이 동화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요. 그리고 천주님께서 나를 위해, 아니 쟌느 수녀님과 나의 삶 주변에서 만난 누리의 모든 버들을 위해 이 동화를 실현시켜 줄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어요. 쟌느 수녀님, 저 많은 별들 중에 어느 별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될까요? 수녀님, 별 하나 지적해 보세요! 그 별이 틀림 없이 우리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천주님께서 미리부터 부탁 드려 놓겠어요. 그리고 쟌느 수녀님이 지적하는 별은 저 많은 별들 중에서 수녀님의 마음과 모습처럼 제일 아름다울 거예요! 수녀님, 별 하나 지적해 보세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될 수 있는 별을요!”

나는 웃으며 쟌느 수녀님의 옆 얼굴을 바라다 보았다. 그때 수녀님은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나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신부님이 우리의 고향이 될 별을 지적하세요. 나야 신부님만을 따라가면 될 걸요 뭐. 동양인의 풍속은 여필종부(여필종부)라고 언젠가 신부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나 신부님만 따라갈래요.”

쟌느 수녀님은 별 하늘을 바라보며 명랑하게 말했다.

“그럼 내가 우리의 고향이 될 별을 지적해 드릴게요. 수녀님, 저쪽의 저 별을 보세요! 저 나무 위에서 제일 크게 보이며 가장 강한 빛을 발하고 있는 저 별을요. 나는 욕심이 많아 큰 별을 좋아해요. 한국이라는 자그마한 나라에 태어나서 그런지, 나는 무엇이나 크고 넓은 것을 좋아해요. 틀림 없이 저 별이 우리의 고향이 될 것이에요. 그리고 별들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별일 거예요. 쟌느 수녀님과 세실 수녀님 같은 아름답고 순결하고 착한 분들과 함께 살게 될 저 별이 틀림 없이 제일 크고 제일 아름다울 거예요! 나 천주님께 기도하겠어요. 저 별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되게 해 달라고요….”

그때 밤 10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쟌느 수녀님은 내가 손짓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쌍디에를 떠나 파리로 왔다. 그리고 예정대로 오후 5시에 캐나다를 향해 프랑스를 떠났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신부라는 새로운 내 삶의 과정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환희와 환멸이, 도 보람과 슬픔이 수없이 교차되는, 인간에의 재발견이라는 시련이었다. 그런가 하면 회의와 갈등과 반항이 엇갈리는 영적 암흑 속에 허덕이는 내 신앙의 고독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그것을 다음 기회에 <영원한 방랑객> 상,하권에서 다시 말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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