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December 2009

 

우연히 도서관에서 “삶을 아름답게 하는 100가지” 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행복어 사전>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이곳의 bookstore 에서는 아마도 SELF HELP section쯤에 속하는 책일까… 이 책이 왜 금방 눈에 띄었는가 하면 같은 제목의 책이 전에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이 옳다면 아마도 <이병주> 라는 저자의 소설 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제목이 조금 특이해서 읽게 되었음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non-fiction인줄 알고 읽고 보니 그야말로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행복어사전은 글자 그대로 행복어사전 이었다. 진짜 사전은 아니지만 행복으로 가게 하는 저자의 90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경험적 글들의 모음 정도라고 해야 할까. Subtitle에 의하면 100가지라고 분명히 개수까지 밝히고 있다.  오늘 아침 크리스마스 다음날 일찍이 도서관에 나와서 읽게 되었는데 이건 내가 생각해도 나답지 않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사실 그냥 나의 서재에 앉아서 진한 아침 커피를 즐기며 있었을 시간이 아닐까? 이래서 인생은 꼭 예측대로만 진행되지를 않기에 조금은 재미있는 게 아닐까?

최근 거의 3년간 ‘다시 알게 되는 일본’ 의 나만의 ‘공부’ 덕분에 조금은 일본인 저자가 생소하지 않고 일본의 이름들도 이제는 조금 친숙한 편이다.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사이토 시게타라는 90세의 일본인이다. 90세라는 나이의 느낌도 이제는 나에게는 30세라는 나이보다 덜 생소하다. 나의 나이가 60세를 넘어서 그런가..  30세라는 나이는 이미 내가 살아 본 나이라 덜 흥미롭지만 90세라는 나이는 내가 혹시라도 가보게 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나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이 책에 조금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저자가 60세 이후의 ‘막내 늙은이’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평균적으로 직장생활이 60세 전후에서 끝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경험상 그런 것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책을 더 깊이 읽게 되면 더 알게 되지를 않을까? 현재까지 읽은 것에서 공감이 바로 가는 것 중에는 “고민거리 도 마감날짜를 만들어 두자” 가 있다.

처음에는 조금 우습게도 들렸는데.. 가령 “여보시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된단 말이요?” 하고 곧바로 반문을 하면 뭐라고 저자는 말을 할까? 굳이 따지자면 시간을 질질 끌면서 고민하지 말자는 뜻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저자 자신이 아주 ‘효과’를 본 방법이라고. 아주 구체적인 방법으로 고민의 정도에 따라서 작은 고민은 10분에 고민을 끝내고 그 다음은 30분, 또는 최대 한 시간.. 등등.. 으로 개인에 맞게 시간을 정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너무나 현실적인 게 아닐까 생각을 하지만 이것도 도움이 되는 테크닉이 아닐까.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일’을 끝을 생각하며 일을 하라는 뜻일 듯하다. 나의 style과 아주 정반대라고 생각도 된다. 나는 그 과정을 더 즐기는 타입이라 그런 모양이다.

 

결국은, 결국은? 이 말이 웃긴다. 시간이야 다 결국은..이 아닌가, 이 병신아!  그래 결국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가 되었다. 이 말도 웃긴다. 이브의 이브라.. 처음 써 보는 말인데 그럴 듯 하구나. 분명히 나는 이제 61번째의 ‘이브’를 맞이하는 셈이다. 구정과 추석 다음으로 나는 이날이 좋았다. 예수와 나는 개인적인 관계가 없어도 그건 상관이 없었지 않은가?  춥기만 했던 그 한겨울 누나, 누나친구들과 그리던 크리스마스카드.. 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미제카드, 그것도 새것이 아닌 쓴 것을 그림만 잘라 가지고 다시 만든 카드를 보며 그 아름답고, 이국적인 눈 덮인 세계를 우리는 다시 옮겨서 그렸다.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크디큰 선물자루, 뉴욕의 야경에 찬란히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들…… 모두가 가난했던 우리들에겐 동경과 환상의 대상이었다. 그림을 좋아했던 (그다지 잘 그린 것은 아니라도), 나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좋았다. 비록 추웠어도 온돌은 따끈해서 화로 불을 옆에 놓고 우리들은 그곳에 누워서 만화도 즐기고 카드도 그리곤 했다. 특히 누나친구들과 같이 놀던 생각도 많이 난다. 누나야, 참 그때는 즐거웠지?

하지만 그때 우리나라는 분명히 성탄절의 나라는 아니었다. 비록 이승만대통령의 ‘희망’대로 휴일이었고 이브의 밤에는 ‘통행금지’가 없었다. 소위 통금이 없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완전히 풀어 버려서 1964년 (내가 고2때)에는 서울시내, 특히 명동의 거리는 완전히 밤새 동안 ‘광란’의 거리로 변해 버렸다. 그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였다. 최근에 일본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도 거의 같은 현상을 겪고 있었다. 그러니까 1964년의 겪은 것을 같은 때 일본이 앞서 가고 있었던 것이라서,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흥미롭기도 하다. 그러니까 1964년 성탄절은 기억이 또렷한 게, 나도 그 ‘소란’함에 조금 기여를 했던 것인데.. 그때 명성이와 동만이를 우리 집으로 불러서 밤을 새운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분위기가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고2 였던 우리들까지 합세를 하지 않았던가?  그 당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한창 외국 (거의가 미국이겠지)의 pop song들에 심취해 있었는데, Christmas carol도 예외가 아니었다. Living Stereo라고 label이 붙은 LP jacket에 그때의 유명했던 Pat Boone이 있었다.  그가 불렀던 Jingle Bells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TV가 그다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에 라디오가 왕 이었는데, 그곳에서도 완전히 Christmas special일색이었다. 그 당시에 왜 그렇게 까지 ‘과열’이 된 상태가 되었을까? 아직도 그게 나는 궁금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분위기가 그랬어도 그것은 역시 12월 24일 하루뿐이었다. 그 전이나 그 이후에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없었다. 그게 지금 내가 여기 살면서 얼마나 이곳이 그런 분위기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지 실감을 하게 된다. 요새는 거의 Thanksgiving이 끝나자마자 시작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는 한마디로 ‘지겹다’는 느낌도 든다. ‘소박’한 기분이 거의 들지를 않는다. 너무나 상업화 되어서 그런가? Holiday blues란 말이 실감이 간다. 분명 나는 오랜 전부터 내가 즐기는 게 아니고 아이들이 즐기는 것을 보며 위안을 삼을 그 정도가 되었다. 내가 확실히 ‘우울’한 인생의 후반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Cobb Central Library의 concourse 의 널찍한 desk에 앉아서 뽀얗게 안개가 자욱한 밖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묘지가 창문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그곳에는 내가 알기로 미국 남북전쟁의 dead veteran들이 묻혀 있을 듯하다. 경사가 심하게 진 언덕전체가 하얀 비석으로 조밀하게 채워져 있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그곳에 묻히게 되었을까? 무슨 사연들을 다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가족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고국과는 너무나 다른 묘지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세상에 나와서 다시 갈 곳으로 간 것은 틀림없지만 어쩔 수 없이 시대를 잘못 만나서 아마도 훨씬 평균수명의 몇 분의 일도 못 채우고 이 세상을 떠났으리라. 아마도 그것도 그들의 운명이 아닐까?

이제는 이곳 도서관이 익숙해져 가고 있다. 벌써 2달이 되어 가나보다. 10월19일 날 처음 ‘용감’하게 나의 closet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물론 전부터 계획을 세워서 나온 것은 아니다. 거의 ‘불현듯’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다. 전부터 식구들의 ‘충고’가 조금이라도 도움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역시 나는 그렇게 남의 말을 듣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그런 ‘쉬운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연숙이 나의 도서관행을 전적으로 찬성을 하고 동의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다. 내가 집에 없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권리’라도 찾은 것 같이 느껴진다. 어찌 아니랴? 내가 그렇게 집에 뿌리를 내리고 칩거한지가 거의 10년이 되어가지 않는가? 참,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나라니 에게 차를 뺏기고(?) 더 변명할 구실도 생기고, $$에 대한 거의 ‘공포감’도 한 몫을 하고..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내 차(?)도 생기고, 나의 used laptop도 나라니 의 도움으로 생기고, 조건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다시 12월이 되었고, 성탄과 연말을 향해 시간과 나의 머리가 줄달음을 치고 있다. 휴일느낌의 포근함과 무엇인가 ‘정리’가 되지 않고 무엇인가 또 했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나의 머리를 사로잡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필요한 ‘선물’에 대한 압력(?), 연말과 새해로 인한 나의 나이에 대한 착잡한 생각……참, 이런 느낌을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다 같이 겪는 것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그런 느낌을 나눌 수 있고 들어주고 들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나는 그립다. 아마도 그게 친구란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런 면에서 나는 최동환 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인간’중의 하나다. 그는 그 포근한 감정을 만끽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자랑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의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질 못하다. 그런 면에선 나는 참 불행한 남자다.

얼마 전부터 다시 오래 전의 기타를 손에 잡았다. 구역모임, 엄 형제 댁이 귀국할 때, 남 형제 집에서 모였을 때 거의 즉흥적으로 모두 노래를 불렀다. 그때 거의 또 우연히 그 집에 기타가 있었다. 그래서 연숙과 둘이서 우리들의 ‘영원한 듀엣’ 곡 드림드림을 부르게 되었다. 물론 나의 목청이 수십 년(?)동안 침으로 막혀있어서 결과는 뻔 했지만 기분은 무척이나 상쾌하고 즐거웠다. 그 후로 다시 나의 먼지가 소복이 쌓였던 ‘사랑하는 기타’를 꺼내게 되었다. 기타 줄이 낡아서 소리는 뻔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의 기타에 대한 모든 것을 진땀 나게 기억을 해야만 했다. 코드도 다 잊고, 손끝의 통증이 고통스러웠지만 역시 기분만은 즐거웠다. 

아주 싸늘하다. 아니 숫제 춥다. 이곳은 Cobb Central Library 이다. 조용한 토요일 아침, 비록 추워서 손에 입김을 불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interruption없이 ‘마음대로’ 책을 읽고, 집에서는 도저히 자주 중단이 되어서 하기가 힘들 것 같은 일들을 여기서는 할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않으랴.

오늘은 12월 12일이다. 이 날짜를 우리말로 읽은 음감이 항상 기억을 더듬게 한다. 그러니까 십이 십이가 아닌가? 이날 전두환이 박정희와 비슷한 무혈혁명을 한 날이 아닌가? 1979년 12월 12일이다. 그렇다. 정확하게 30년 전이다. 아…아…하는 신음소리가 안 날 수 없다.  30년이면 어떤가? 긴 건가, 별로인가. 이제는 세월 감각이 많이 ‘역사적’ 인 단위로 적응이 되어서 별로 긴 듯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60년의 반.. 이 아닌가.

요새는 돋보기 없이는 책을 읽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거의 1년 전 까지만 해도 크게 불편이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 이것을 쓰는 게 익숙해졌다. 이래서 다 살게 되어있는 모양이다. 돋보기로 보이는 나의 손등이.. 이제는 영락없이 늙었다. 그러니까 많이 쭈글쭈글해졌다. 슬프다. 하지만 이게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저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1979년 12월 12일에 우리, 그러니까 나와 연숙은 김포공항에 갔었다. 꽤 늦은 저녁시간이었는데 아마도 그날 밤에 전두환이가 일을 저질렀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날 전혀 그런 것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거의 결혼이 결정된 인생 최고의 기분으로 살던 때였으니까. 그날도 매섭게 바람이 불고 추웠던 기억인데 그게.. 아직도 생생하다. 연숙의 지도교수인 김숙희 교수가 미국으로 가게 되어서 공항으로 배웅을 가게 된 것인데, 아마도 그 교수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나와 같이 나간 듯 하다.

버스를 너무 일찍 내리는 바람에 공항 터미널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그때 내가 연숙의 손을 처음으로 잡고 갔던 기억이다. 나중에 연숙의 말이 손이 추워서 혼이 났다고 했다. 그저 춥다는 말을 하면 내가 미안 할까 봐 말을 못했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저 아름다운 추억이다. 30년 뒤에 이렇게 회상을 하니까 물론 아름답게 보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때는 구름 위를 걷는 듯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다. 그걸 많이 잊고 산다. 너무나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모든 걸 미리 가정해가며 건조하게 우린 살고 있다. 그렇게 살 필요가 없는데. 참 그게 현재 우리의 불행인지도 모른다. 그럴 능력이 모자람 없이 가득한 우리 두 ‘인간’인데.  신앙도 신앙적인 노력도 이것을 극복 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2000년대의 마지막 해, 마지막 달이 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별로 생각 없이 그저 또 ‘부담스러운’ 성탄의 달이 왔구나 생각을 하다가.. 생각해보니 2009년이 지나가려고 하고 있음을 알고 조금 더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2000년대가 그러니까 decade가 저물고 있음을 생각하고.. 2000년대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또 생각을 한다.

지금 이 entry는 사실 조금 ‘과장’된 system environment에서 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나에게 자만심을 줄 만큼 사실 convoluted 된 remote access 인 것이다.  지금 나는 Cobb Central Library에서 우리 집에 있는 VM-WINXP-EN-2라는 virtual machine 을 remote desktop으로 access하면서 거기에 있는 OneNote로 이 entry를 edit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실 조금 과장하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technique 이 아닐까? 최소한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하던 그런 쾌거이다. 정말 it’s a wonderful life가 아닐까?

물론 이것은 Hamachi VPN의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만 역시remote desktop mode는 정말 필요할 때만 쓸 것이, speed penalty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한다. 이 speed bottleneck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Hamachi VPN 자체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Cobb Central wireless에 있는 것일까.. 이것은 다른 곳에서 test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Panera에 laptop을 가지고 가서 test를 해 보면 조금 더 idea를 얻을 수 있겠지.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 예보처럼 ‘폭우’는 아니고 그냥 잔잔하게 꾸준히 내린다. 경우야, 너는 언젠가부터 rain person이었지 않니? 그냥 비가 좋았지. 환경 탓으로 눈은 포기한지 오래지만 비만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해 주었지. 하지만 올해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아늑한 실내가 있어야만 비를 즐길 수 있는 것인데, 그게 gutter가 주룩주룩 새는 바람에 꿈이 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나의 차 voyager가 비가 새고 있으니..조금 ‘아늑한’ 꿈은 깨어지고 말았다. 해결책은 모두 손을 쓰면 된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도 크게 필요하지 않으리라 희망을 한다. 다만 그 놈의 health insurance때문에 사다리를 타는 게 겁도 나고, 따라서 일을 하는데 신이 나지를 않는다.

올해 Thanksgiving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사랑하는 작은 가족이 같이 turkey를 먹을 수 있었다. 새로니가 큰 언니답게 부지런히 움직여 주어서 10시간 넘게 drive를 해서 모이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구해 주었던 Izzie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게 ‘인연’, ‘운명’, 아니면 ‘숙명’이 아닐까. Tobey & Izzie는 아마도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는 하느님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부디 행복한 삶을 우리와 살기를 기원한다. 나에게는 나의 오래 전의 끔찍한 ‘죄’를 보속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런 하느님의 배려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의 수중에는 Cash $450의 ‘거금’이 있다. 아마도 연숙도 짐작은 할지도 모르지만 그 액수는 확실히 모를지도. 그것은 상관이 없다. 유혹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VT-enabled CPU/PC를 살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인가..도 생각했지만 거의 포기를 한 상태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훨씬 더 많음을 실감한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떠난다면 제일 아쉬워할 것이 무엇일까? 가족이겠지. 그 다음은 … 아마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 중 에서도 우리 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 그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아니 그렇게 느끼고 싶다. 그렇다. 그 돈은 이번에 오는 성탄을 생각하면 써야 한다. 가족들의 선물과, 자선단체, 조금이라도 우리와 연관된 친지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쓰리라.. 다짐을 하는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러니까 역시 devils in the detail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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