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기다렸다. 아직도 새벽일까. 부유스름한 미명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돋이를 기다렸을까. 하영이 호텔에 들 때 동해의  일출 같은 건 염두에 둔 바 없었다.  키를 받을 때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방이라고 프런트의 아가씨가 생색내듯이 말하는 걸 듣고도 고맙다든가 잘됐다든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동해의  일출이란 딱딱한 말은 하영에게 아무런 연상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눈뜨자마자 모로 누워 줄창 창밖을 보고 있었던 것은 그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흐린 물에 먹물을 풀어놓은 것 같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수평 선은 보이지 않았다. 수평선이 있음직한 데보다 훨씬 높은 곳의 하늘이 별안간 시뻘겋고 길게 찢어졌다. 그러나 그리로 빛이 새어나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금세 핏방울이  뚝뚝 떨어질 듯 싱싱한 생채기일 뿐이어서 희부연 새벽을 몰아내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로 인해서 하영은 비로소 아직 해가 안 뜬 게 아 니라 날씨가 몹시  흐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늙은이처럼 뭉그적대며 일어나 창가로 갔다. 완만한 해안선과 넓은 모래사장이 내려다보였다. 여름날 툭하면 텔레비전 화면이 비춰주던 이름난 해수욕장이었다. 아직도 한낮의 늦더위는 복중 못지않건만 바닷가는 씻은 듯 정결하고 고요했다. 인적 없는 쓸쓸함에 이끌려 그녀는 부랴부랴 옷을 주워입고 방을 나섰다.

  현관은 바다를 등지고 있었다. 유리문을 통해 울울한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만개한 백일홍나무가 보이자 하영은 가슴이 떨렸다.  침침한  날씨 때문일까, 키 작은 나뭇가지가 휘어질 듯 만개한 선홍 색이 그렇게 생급스러을 수가 없었다. 눈에  들어온 한 무더기의 빛깔은 그녀의 의식 속에서 곧장 계집애들의 철딱서니라곤 하나도 없는 자자한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녀의 중얼거림엔  호흡을 조절하는 것 이상의  뜻은 없었다. 그녀는 철딱서니 없음이 싫었다. 그 대책없음은 싫다기보다는 무섭다는 쪽이 맞았다. 

  바닷가까지는 휘어진 내리막길이었다. 양쪽으로 나무가 우거져 새벽 같기도 하고 황혼 같기도 한 눅눅한 어둠이 고여 있었다. 길이 유턴을 하면서 바다가 보였다. 여전히 인적  없는 바다였다. 즐비한 횟집 거리를 지나  해안선 쪽으로 나아갔다. 횟집마다  굳게 닫혀 있었다.

가게마다 수조 속에서 생선들이 살아움직이는 시늉을 하고 있는 걸 보면 폐업중은 아닌 듯했다. 펄펄 살아 날뛰는 바다를 눈앞에 빤히 보면서 수조  속에 갇힌 줄고기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 차가운 심장에도 마음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일까. 지금 몇 시쯤일까.  하영은 토막토막 생각하며 해안선을 천천히 걸었다. 파도가 핥고 지나간 자리를 피해 마른 모래 사장을 택했건만 푹푹 빠질 때마다 운동화 속으로 스며 든 모래는 눅눅하고 깔깔했다.

  저만치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선 게 보였다. 뭔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외지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관광객들은 으레 튀는  옷차림을 하고 있기 마련인데 그들은 안  그랬다. 마치 침침하고 눅눅하고 우울한 이곳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하영은 자기가 튀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호기심을 걷잡지 못했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다가가면서 심장이 옥죄는 듯한 느낌 때문에 한 손을 왼쪽 가슴에 얹었다. 그녀는 조금만 긴장해도 그러길 잘 했다.

  마침내 사람들이 뭘 그렇게 구경하고 있는지가 보였다. 한 가운데 사람이 누워 있었다. 사람이 죽어 있다는 것을 하영은 그냥 알아 차렸다. 상체를  신문지 조각 같은 것으로 엉성하게 덮어놓아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산 사람이라면 그런  취급을 당할 리가 없었다. 시체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하얀 운동화를 보자 그녀는 온몸으로 한번 진저리를 치고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시체의 발치에서 무릎을 꺾고 한 손에 하나씩 운동화 신은 박을 움켜쥐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하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운동화  신은 발은 차갑고 무겁고 눅눅했다. 단지 눅눅한 정도였건만 하영은 흠뻑 젖어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내부에 미세한 실핏줄처럼 분포돼 있던  두려움이 일제히 하얀 운동화를 향해 방향을 잡고 질주해오는 듯한 느낌을 그녀는 걷잡지 못했다. 그녀는 하얀 운동화를 움켜쥔 채 고꾸라지면서 가슴으로 안았다. 복받치는 울음에 자신을 맡겼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의 청승맞음 때문에 그녀는 점점 더 서럽고 무서워졌다. 그러면서도 둘러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가려내고 있었다.

  누굴까, 춘식이 아는 사람일까? 외지 사람인가본데 춘식일 어떻게 알겠어. 알아도 그렇지, 저렇게 통곡을 할 만큼 친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누가 알아, 편지질이라도 한 사인지. 저렇게 나이 많은 여자하고? 말도 안돼. 춘식이네가 오면 알게 되겠지. 그나저나 춘식 에미 불쌍해서 어떡하지. 못된 자식, 변변치 못한  줄은 알았지만 이런 독종인 줄은  몰랐네. 저 하나 믿고 사는 에미를 생각해서라도 어떻게 약을 처먹을 수가  있어. 처먹더라도 살아 날만큼만 먹든지. 변변치 못하려거든 미련하지나 말아야지 원. 워낙 되는 노릇이라곤 없으니까 비관도 됐겠지 뭐. 아니 제가 마흔이야 쉰이아?  이제 겨우 나이 스물에 되는  노릇 안되는 노릇을 겪어봤댔자 얼마 나 겪어봤겠어. 모르는 소리 말아요.

  하영의 통곡은 울음이라기보다는 발작 같은 것이었기에 태엽이 풀리듯이 시나브로 가라앉았다. 그동안에 여태껏 애도한 죽음이  익사가 아니라 음독자살이란 것을  충분히 알아차린 그녀는 계면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입 언저리가 모래로 범벅이 돼 있었지만 눈물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해맑고 건조한 얼굴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서 부르짖었다.

  아니 미친년 아냐? 그러면 그렇지. 겹겹이 둘러쳐진 동그란 원이  하영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일제히 길을 열었다. 마침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성통곡 달려오는 춘식 어미에 의해 하영은 곧 잊혀졌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구경꾼 중 몇명은 또 다른 미친 짓을 기대하며, 혹은 부추기며 그녀 뒤를 밟았을지도 모른다.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일까, 탁트인 바닷가 사람들답지 않게 따분하게 꽉 막힌 표정이 구경거리에 여간 츱츱해 보이지 않았다. 하영은 뒤돌아보지도 않았지만 서둘지도 않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천천히 그 장소로부터 멀어져 갔다. 요란한 차소리에 돌아다보니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거의 동시에 현장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빨리 걷기 위해 모레사장을  가로질러 횟집 앞 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아무런 위기의식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이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닿자마자 하영은 위기에서 벗어난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어디라도 좋으니 몸을 숨기고 싶었다.

  횟집 가게문은 스르르 열렸다. 깊숙한 안쪽에서 방문이 열리면서  티셔츠 가슴이 터질 듯이 풍만한 아줌마가 어서 오라고  하품 섞인 인사를 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다뿐 일부러 영업을 안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바깥공기 중에 가득 고여 있던 바다냄새하고는 또 다른 비린네가 하영의 빈속을 훑듯이 자극했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는 꼬르륵 소리는 흠험하고도 둔중했다. 한물간 생선과 와사비와 된장 간장 초고추장을 뒤범벅  해 놓은 것 같은 냄새는 환각인 듯 과장돼 있어 당장 입안에 침을 돌게  했다. 그러나 그게 허기인지 구역질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든지 참아내야 할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식사를 하시 게” 주인여자는 왠지 아무것도 팔고 싶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열린 방문을 통해 남자의 넙데데한 뒤통수와 텔레비전 화면이 보였다. 치고 받는 코미디언,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파리가 잔뜩 꾄 아프리카 아이, 늘씬하고  번들거리는 몸뚱이를 섞고 개처럼 핥고  있는 서양 남녀가 빠르게 지나가고 나서 마침내 송해가 사회를 보는 노래 자랑에서 화면이 질정됐다. 그 화면 속 배경도 통속적인 풍경화처럼 밝고 푸르게 칠해진 바다였다. “우선 마실 거라도 좀.” 하영은 미안해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는게 좋겠네요. 아직 점심시간은 이르고, 우린 아침은 안하거들랑요.” “저두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해놓고 나니 아침을 안한단 소리가 안 판단 소리지 안 먹는다는 소리는 아닌데 싶어서 비적비적 웃음이 났다. 주인여자의 태도도 덩달아서 친근해졌다. “이층으로 올라가실래요? 우리집 이층은 경치가 그만이에요. 한쪽으론 바다가  보이고 반대쪽으론 호수가 보이거든요 “

  하영은 때에 전 융단이 깔린 계단을 더듬듯이 밟아가며 주인여자의 뒤를 따랐다. 꽤 넓은 이층은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경치가 좋아서가 아니라 당분간 혼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여러가지 음료수가 가득 든 진열장이 전면에 보였다. 경치보다는  진열장을 골똘히 바라보는 하영에게 여자가 선심 쓰듯 말했다. “아무것도 안 마셔도 돼요. 곧 점심때가 될 텐데요 뭐. 참 커피 한잔 해드릴까요, 써비스루다요.”

“아아뇨, 소주를 한 병 주세요.”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부터 하영이 죽자구나 참아내야 할 것처럼 느낀 것은 허기도 구역질도 아니고, 소주에 대한 다급한 갈증이었다. 빈속에 마시는 소주야말로 그녀  내부에서 한그루의 꽃나무를 일으켜세을 수 있는 기적의 음료였다.  “소주요? 혼자서요.” 여자가 놀란 듯이 되물었다. “왜 혼자서 소주 마시면 안되나요?” 조바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비조로 나왔다. “안되긴요. 안주는요?” 주인여자의 태도도 도전적으로 바뀌었다.  “소수만 줘요 안주는 식사할 때 시킬게요.” 주인여자는 뭐라고 한마디 할 듯하더니 그냥 내려갔다. 이윽고 여자는 이홉들이 소주 한 병과 김치와 파래무침과 종류를 알 수 없는 젓갈을 두어 접시  가지고 올라와 하영이 앞에다 느릿느릿 그러나 공손치 못하게 내려놓고 나서 병마개까지 따주고 내려갔다. 하영은 그동안을 힘들게 참아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소주를 병째  들이켜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첫잔의 소주가 혀에 닿고 목 구멍을  넘어 식도를 거쳐 위에 이르는 곧은 길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무색 투명한 액체는 목구멍을 넘자마자 따뜻한 장밋빛으로 변하면서 곳곳에 길을 낸다. 그 느낌이 하도 자릿하고 황홀해 하영은 두르르 진저리를 친다. 둘째잔에서 화끈한 줄기는 가지를 뻗는다. 석잔째에서 가장귀는 더욱 섬세하게  갈라진다. 하영은 자신 안에서 물이 오른 아름다운 나무처럼 우뚝 선 피돌기를 그대로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을 것처럼 모세혈관까지 선명하게 느낀다. 그 나무는 당장 동백꽃처럼 붉은 꽃을 토해낼 듯이 잔뜩 충혈돼 있다.  거기까지가 살아 있다는 느낌의 절정이다. 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꽃을 피우려고 서둘지 말아야 한다.

  하영의 자제력이 아슬아슬해지려고 할 때 주인여자가 한떼의 손님을 몰고 올라왔다. 관광객들인 듯 이 이층집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치에 감탄하느라 우르르 바닷가 쪽 창으로 몰렸다가 호숫가 쪽 창으로 몰렸다가  한바탕 법석을 떤다. 하영은 마치  사람들의 무게에 따라 기우뚱대는 배에 탄 것처럼 어지럼증과 위기의식을 느꼈다. 역시 다음 잔은 흔들리는 배 안에서의 자작처럼 엎질러졌다.  더 나쁜 것은 관광객들이 하영 바로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거였다. 의자가 모자라는지 한 남자가 하영의 테이블에서  의자를 집어 가면서 탐색하는 듯 경멸하는 듯 묘한 눈길을 보냈다. 이미 아름다운 꽃나무는 없다. 하영은 일어서려고 하고 주인여자는 주문을 받으려고 한다. “식사는 아래층에서 할게요.” “그게 좋겠네요, 무드는  실컷 냈을 테니까.”

  그러면서 집어가버린 소주병을 주인여자는 다시 가져오지  않았다. 잗다란 밑반찬 접시와 조개탕과 생선찌개와 전기밥통에서 진이 빠진 밥이 나왔다. 그런 걸 주문한 것 같지 않았지만 별안간 심한 허기가 느껴져 허둥지둥 밥그릇을 비웠다.  주인남자도 방에서 나와 하영에게 묘한 눈길을 보내던 이층 손님과 함께 회 칠  생선을 흥정하고 있었다. 하영은 주인여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광언지 가자미인지  구별이 안되는 생선이 주인남자의  쇠꼬챙이에 달려나와 양회바닥 위에서 요동치는 걸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물속에 선 늘쩍지근하게 겨우 살아 있다는 시늉만 하던 놈이 물 밖에서는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이층에서 힘차게 내려온 주인여자를 놓칠 세라 하영은 계산을  부탁했다. “맛있게 드셨수?” 주인여자는 하영에게 거스름돈을 내밀면서 퉁명스럽게 말을 놓았다. 하영은 대답하지 않고 얼른 그 집을 벗어났다. 누가 붙든 것도 아닌데 살 것 같았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죽은 사람도, 둘러싼 구경꾼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곁눈질하듯 조금만 그쪽을 보다 가  그동안에 그 모든 것이 깨끗이 사라졌다는게 믿기지 않아 그쪽으로 몸을 돌리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사람들도 경찰차도 앰뷸런스도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떠들썩했던 불상사는 자취도 없었다.  모래사장에서 하다 못해 차바퀴의 흔적이라도 확인해야 할 것 같아  그쪽으로 가다 말고 돌아섰다. 내가 본 게 정말로 일어난 일이었을까?  따위의 부질없는 혐의를 자신에게 두게 될까봐  지레 겁이 났다.

  그 자리를 등지고 걷는 동안 줄창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모래사장에서 차의 지문을 지우기에 알맞은 바람이라고 하영은 생각했다. 어느만큼 걸었는지 횟집 거리와는 분위기가 다른 거리가 나타났다. 집집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간판이 붙은 동네였다.  거의가 초당두부 간판이었다. 원조, 옛날, 진짜, 무공해, 완전자연, 할머니 솜씨 등 각기  다른 말로 자기 집 두부야말로 진짜배기 초당두부라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서울에도 초당두부가 흔하게 나와 있지만 몇년 전 하영은 바로 여기 본바닥에서 초당두부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춥고 눈 오는 날이어서 뜨끈한 순두부가 속을 훈훈하게 데워준 생각은 나지만 그 맛이 그렇게 유별났던 것 같진  않았다. 하영에게 그곳이 반가운 것은 두부맛 때문이 아니라 초당마을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땐 남편과 함께였다. 남편이  차를 사고 난 후 첫번째 장거리 여행이었다. 전날 강릉 시내에서 자고 나서 물어 물어 거기까지 당도한 것도 초당두부에 대한 명성 때문이 아니라 초당마을 그 자체 때문이었다. 초당마을엔 허난설헌의 생가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은 그것도 어렴풋한 정보였고 그들의 여행계획에 처음부터 포함돼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전날 예정대로  오죽헌을 구경하면서 하영이 먼저 이왕 강릉까지 온  길에 허난설헌 생가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 오죽헌을 그렇게 잘 꾸며놓지만 않았어도 그런 생각이 안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오죽헌을 너무 잘 해놓은 게 오히려 하영이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남장은 그럼 다음날 그쪽으로 가서 회도 먹고 난설헌  생가도 찾아보자고 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초당마을이란 데는 허난설헌이 태어난 집이 있는 곳이라는 것만 알았지 초당두부에 대해선 들어 보지도 못했다. 강릉에서 자고 나니 눈이 무섭게 내리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목화송이처럼 탐스러운 눈이었다. 라디오로 대설주의보를 들으면서 차를 모는 느낌은 적당히 비극적이고 적당히 감미로운 멜로드라마의 화면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아찔했다. 그때도 초당마을을 바로 찾았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은 초당두부 간판 때문이었다.  마을은 괴괴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어 집 앞에 길을 내려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 남편이 초당두붓집 근처에 차를 세우며 말했다. 남의 집 문을  두드리려면 여염집보다는 가게가 편한 법이다. 정강이까지 빠지게 깊은 눈을  헤치며 걸어가는 남편의 됫모습이 늠름해 보여 하영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지켜보았다.  불과 몇미터 사이가 아득해 보일 만큼 눈은 계속해서 퍼붓고 있었다. 가게문이 열리지 않는지 남편이 문을 쾅쾅 두드리며 말씀 좀 여쭙시다, 하고 소리질렀다. 한참 만에  주인이 문을 따고 고개를 내밀었다. “저어, 이 동네에 허난설헌 생가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쯤일까요?” “몰라요, 그런 사람,”

“허균의 누님인데… 허균 모르세요? 홍길동전 쓴…” “글쎄 이 동네엔 허씨라곤 한 집도 없다니까요.”

남편이 기가 막힌지 하영 쪽으로  돌아서서 두 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반년쯤 미국물을 먹은 적이 있는 그에게 그런 폼은 썩 잘 어울렸다.

  하영은 두 사람의 대화가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차 안에서 허리를 잡고 경박하게  깔깔댔다. 그리고 장난삼아 말했다. “밥은 되냐고 물어봐요. 나 배고파요.”  그렇게 해서 그 집에서 순두부백반을 먹게 되었고, 딴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뜨뜻한  구들목에서 눈발이 성겨질 때까지 오붓하게 두런거리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나중엔 주인까지 슬그머니 끼여들었지만 하영도 남편도 허씨 집에 대해서 다시 묻지 않았다. 초당 허엽, 이미 허씨  집에 들어와 있지 않은 가, 주인도 그걸 알까?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눈이 멎은 후에도 라디오는 계속해서 눈 얘기만 했다. 오전중에 내린 눈이 70센티미터에 이르렀다는 것과,  대관령의 제설작업 상황과 굼벵이 같은 소요시간과, 차가 갖춰야 할  장비와 꼭 엄수해야 할 주의사항 같은 거였지만 70센티미터나 눈이 왔는데도 길이 막히지  않았다는 것만 고마웠다. 예고된 사고의 위험에 대해선 전혀 불안감을 못 느끼는 게 하영의 성미였다. 하영이 두려워하는 건 경고 없이 오는 불행이었다. 모든 불행은 경고 없이 오게  돼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무사안일한 시간이 계속될 때 그녀는 속에서 뭔가 차올라 숨통을 짓누르는 것 같아지곤 했다.

  남편은 불안해하지 않는 하영에게 신경을 쓰느라 더욱 신중하게 운전했건만 어둡기  전에 대관령을 넘을 수가 있었다. 하영이 충격을 받은 것은 오히려 대관령을 넘고 나서였다. 눈의 무게를 못이겨 쩍쩍 생솔가지가 찢어져내릴 정도의 엄청난 폭설이 대관령을 넘자마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들이 지나온 하루 전과 다름없는 한겨울의 풍경이 벌거벗은 채 펼쳐지고 있었다.

  그후에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강릉에  사는 동창이 한겨울에 결혼을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버스를 대절해 몰려간 적이 있 었다. 고교 동창 중에서 독신주의를 끝내 관철하고 말 것 같은 박사 두명을  제쳐놓고는 제일 늦은 결혼이어서 다들  조금씩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꺼이 하객 노릇을 하면서도 하도 그악스러운 추위에 한마디씩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신부에게 지청구를 먹이고 싶어했다.

  스물아홉이면 또 몰라, 서른여섯이나 일곱이나  그게 그건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춘삼월 호시절인데 뭐가 그렇게 급해맞아서 이 엄동설한에 면사포를 쓰나 그래.

  뭐가 급해맞은지 정말 몰라서 그러냐, 너. 네 배 부르다고 남의 배고픈 사정 모르면 죄 받는다 죄 받아.

  그때가 아마 음력으로는 해가 안  바뀐 동짓달이나 섣달쯤이었을 것이다.  어찌나 추위가 표독하던지 해가 높다래진 후에도 유리창에 두껍게 낀 성에가 녹지 않아 밖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답답해서 손톱으로 긁어내봤댔자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은 잠깐밖에 안됐다.  즉시즉시 다시 성에가 끼곤 했다. 그러나 대관령을 넘어 길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그 두껍고 완강하던 성에는 줄줄이 땀을 흘리며 녹아내렸다. 삽시간에  투명해진 유리창을 통해 동해 바다가 보이자 모두 환성을 질렀다.

  굽이굽이 험하다고는 하나 고개 하나 상관으로 전혀 다른 기후는 하영에게 달라지고 싶다든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과 곧잘 연결되곤 했다. 하영이 바라는 건 변화 따위가 아니었다. 변화처럼 점진적이지 않은 획기적인 달라짐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느라, 다시  한번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보리라는  생각도 없이 그냥 한눈에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어느  고가 앞에 와 있었다. 근처엔  두부간판도 보이지 않아 보통 시골과 다름 없어 보이는 초당마을 한가운데였다. 크기는  옛날 대가댁의 규모를 갖추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몹시 퇴락해서 완만하게 함몰된 용마루를 남색 비닐텐트 천으로 덮고 있었다. 고아하게 이낀 낀 기와와 비닐조각과의  부조화가 을씨년스러워 보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천격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비닐조각 따위가 넘볼 수 없는  기품 같은게 아직도 이 마을의 맥을 완강하게 틀어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 앞에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초당 허엽이 그 집에서  살던 연도와 그 집에서 허난설헌이 태어났다고 전해진다는, 그 집이 지방 문화재로 지정된  내력이 천박하게 번들거리는 금속판때기 속에 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살고 있으리란 생각이 든 것은 인기척 때문이 아니라 개들 때문이었다. 대문 안에도 대문  밖에도 개들이 늘쩍지근하게 누워서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물끄러미 사람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덩치는 큰데도 전혀 안 무서워 뵈는 개들이었다. 실제로 발밑에 거치적거리는 걸 툭 건드리고 지나가도 반기는 기색도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는 이상한 개들이었다. 아무튼 누가 먹이니까 살아 있겠거니 싶은 팔자 좋은 개들이었다.

  안마당에 들어서자 뜰아렛방 툇마루에 간단한 살림살이가 보였다. 살림살이도 그렇고,  양회를 처발라놓은 안마당 수돗가도 그렇고, 밥그릇, 바가지, 양동이, 멍석, 양념병,  신발짝 등 눈에 띄는 것 들이 온통 울긋불긋한 플라스틱이나 비닐로  된 것들이었다. 그런 일상용품들과 퇴락한 고가의 천격스러운 부조화가 바로 보기 민망해 총총히 돌아나온다는 게 길을 잘못 들어 뒤꼍으로 가게 되었다. 안채를 뒤로 한 바퀴 도니 또 하나의 마당이 나타났다. 사랑 마당이었다. 사랑 마당은 네모 반듯하고 외부와는 운치있는 돌담으로 차단돼 있어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처럼 보였다. 사랑채의 보존상태도 안채와는 댈 것도 아니게 좋았다. 흙바닥 그대로의 마당에 긴 푸른 이끼는 잔디보다 우아했고 한쪽에 꾸며놓은 조촐한 정원에는 백일홍꽃이 만개해 있었다. 호텔 마당에서  본 백일홍꽃과는 댈 것도 아니게 그 붉은빛이 처연했다. 몇 가닥이나 되는 줄기가 서로 꼬이면서 올라가 뻗은 가지들은, 꽃이 진 후에도 조금도 허전해할 것 같지 않게 자유롭고도 자기주장이 강해 보였다.  백일홍나무의 실제 수령이 얼마인지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난설헌도 그 나무 아래서 꿈을 꾸었다고 믿고 싶게 잔인하고 아름다운 고통의 흔적이 마디마디 배어 있는 것 같은 나무였다.

  하영은 사랑 마루에 비스듬히 앉았다. 마룻바닥과 등근 나무를  그대로 쓴 기등을 쓰다듬어보니 목질의 무른 부분이 먼저 닳은 대신 단단한 부분이 도드라져 우아한 나뭇결이 손바닥에 그대로 만져졌다. 한번도 칠을 입히지 않은 나무가  살아숨쉬는 듯하여 하영은 마루에 길게 누웠다. 발치에서 다홍고추가 수득수득 말라가고 있었다. 순한 개들보다 더 확실한  인기척이었다. 하영은 속속들이 마음이 놓여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여름옷을 통해  등으로도 마루의 나무 무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사백년 세월의 부피가 수렁처럼 그녀를 끌어당겼다.

  눈을 떴을 때 날씨는 활짝 개어 백일홍꽃이 이고 있는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렀다. 하영은 그런 하늘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가장귀가 무겁도록 흐드러지게 핀 선홍색 꽃도, 이끼 낀 마당도, 기와가 군데군데 벗겨져나간 돌담도 갓  태어나서 바라다본 풍경처럼 다만 경이로을 뿐이었다. 선입관이 개입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란 얼마나 낯설고도 투명한가. 그녀는 속속들이 평안했다. 그렇게 깊이 근심없이 자본 것도 얼마만인지 몰랐다. 

  발치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널어놓은  고추를 뒤척이고 있었다. 하영은  부스스 일어나 앉으면서 계면쩍게 웃었다.  “고추가 예쁘네요.”  “맏물이라우. 실컷  잤수?”  “예, 깨우시지 않구요?”   “깨워 뭣하게.”  “여기가 허씨 집 맞죠?”  “그렇다나봅디다.”  “전서부터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이 근처까지 왔다가도 못 찾았어요. 동네사람 말이 이 동네에 허씨라고는 안 산다지 뭐예요.”  “맞는 말이지. 역적질하면  삼족을 멸했으니까, 이 댁도 아마  그 때 손이 끊겼겠지. 안 그러우?”  노인이 하영을 빤히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할머닌 누, 누구세요?” 하영은 말씨가 느린 노인의 합죽한 입을 노려보며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노인은 하영의 돌변한 태도에 어리둥절해서 대답 대신 입만 조금 우물댔다.  하영은 자신의 표정에서 온화한 핏기가 가시고 핼쑥해지는 걸 느꼈다.  평화로운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노인에게 인사도 안하고 사랑 마당을 뛰쳐나왔다. 뒤껼으로 돌지 않았는데도 문밖이었다. 여전히 문밖에서 거치적대는 개들을 발로 밀어붙여도 누더기처럼 저항이 없었다. 하영은  누가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방향도 정하지 않고 걸음을 빨리했다. 그녀가 쫓기고 있는 것은 자신이 언제나 불행한 무엇과 연루돼 있다는 불안감으로 부터였다. 실로 오래간만에 취한 완벽한 휴식이 왜 하필 절손된 집 마루에서였을까.

  소나무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하늘이 안 보이게 울울하고도 정정한 숲을 하영은 제멋데로 사백년은 넘었을 거라고 단정했다. 소나무 향기는 진하고 싱싱했다.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불안감이 떨쳐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도저히 벗어날수 없다는 체념이 그녀의 도망을 멈추게 했다. 솔밭은 오랫동안 볕이 들지  않아 밑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하영은 소나무에 기대면서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영은 올해 마흔이다. 대학생이 된 건 스무살 때였다. 시골에서 서울의 원하는 대학에 재수도 안하고 들어간 건 큰  행운이었다. 부모도 오빠도 하영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영이네는 시골에 논밭과 과수원을 가지고 있는 농사꾼 집이었지만 발전하는 공업도시를 끼고  있어서 땅만 조금씩 팔더라도 서울에서 공부하는 자식들  뒷바라지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붙어주는 것만도 고마웠는데 아들에 이어 딸까지 서울에서도 일류로 쳐주는 학교에 붙어주었으니 가문의 영광이었다. 순박한 사람들이었지만  공부 잘하는 자식들로 인하여 빛나고자 하는 욕심은 도시의 극성스러운 부모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영이는 그렇지 않아도 아들 둘 사이에 낀 외딸이라 집안의 귀염둥이였다. 아버지는 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술이 거나하면 누구라도 내 딸 눈에서 눈물나게 하는 놈 있어면 내가 쏴죽일 거라고 무지막지하게 벼르곤 했다. 하영은 물론 그런 걱정 안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처녀답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안 좋아하는 일이 생기리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첫 여름방학처럼 근심없이 다만 사랑의 예감만으로 충만한 시기가 또 있을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영은 특히 더했다. 이미 점찍어놓은 남자가 있었다.  세준이라고, 오빠하고 같은 대학 친구였다. 순 서울내기라 여름방학 때면 날잡아 친구의  시골집에서 신세지고 싶어했기 때문에 식구들하고도 흉허물이 없었다. 하영이는 그를 세준이 오빠라고, 친오빠와 구별해 불렀지만 고3때부터 몰래 세준씨라고 불러보면서 가슴을 설레곤  했다.

응석받이였지만 세준이한테만은 어린애 취급당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붙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도 세준이하고 동등해졌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하영이 붙은 대학은 남자대학생들이 미팅이라도 한번 해보길 소망해 마지않는 대학이었다. 그러나  하영은 한 학기 동안 세준과 서울서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도 일부러 피했다.  몇달 안 만나는 동안에 여고생 티를 벗고 훌쩍 크고 싶었다. 목표는 여름방학이었다. 그동안에 훌쩍 크기 위해, 안 그런 척하기 위해 미팅은 열불이 나게 쫓아다녔지만 속으론 세준이밖에 없었다.

  그해 여름방학에도 세준이는 하영이네 시골로 내려왔지만, 너무 식구 같아서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오누이 같은 관계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하영이가 그것 때문에 조금 초조해질 무렵이었다. 각각 바람 쐬러 나갔다가 들길에서 마주쳤다. 처음으로 단둘이 있게 되었다. 시냇물을 따라 미루나무 길을 걸었다. 흐름이 급해지면서 여울진  곳 시냇가에 앉았다 시냇가는 선선하기 마련이지만 그 근처를 흐르는 공기에는 등물할 때 같은 으스스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여울목 웅덩이는 위에서 흘러드는 물말고도 밑에서  샘솟는 물이 있어서 차갑기가 얼음 같다고 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래도 하영이 그렇게 가까이에서  남자의 얼굴을 관찰해보긴 처음이다 싶었다. 두상을 옆에서 보니 앞뒤로 짱구였다.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리를 한팔로 안으면 남을까 모자랄까? 그게 궁금했다. 이마도 잘생기고, 코도 잘생겼다. 뒤에서 손으로 그의 두 눈을 감겨주면서 꿈꿀 때처럼 움직이는 눈동자를 손바닥으로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의 코밑과 턱은 약간 지저분한 편이었다. 지저분한 아름다움은 낯설어서  신선했다. 입술은 또 얼마나  단호하면서도 섬세한지.

지저분한 것까지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까닭은 아마도 잘생긴 입술 때문일 것이다. 하영은 꼼짝 안하고도 손끝으로 그의 입술선을 그리듯 더듬고 있었다.  남들은 그의 입술이 단호한줄만 알지 이렇게 섬세한줄은 모르리라 하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와 좀더 가까워지고 싶어 손 끝이 안타깝게 떨린다. 욕망에의 아렴풋한 예감이 그녀의 순결한 감성을 섬세하게 간지럽힌다. 뭔가 참을 수 없는 느낌으로 가쁜 숨결을 직접 그의 입술로 가져간다.  그의 입술근처는 지저분한 부분은 따갑고 아름다운 부분은 뜨겁다.

  “뭘 그렇게 보나?” 세준도 그녀의 강한 시선을 느꼈는지 자기  얼굴을 한번 쓰다듬으면서 덤덤하게 물었다. 하영은 자기 몸으로 남자의 몸을 더듬어  본 최초의 상상력이 수치스러워 화들짝 놀라면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  세준이 오빠, 수영할 줄 알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기본이지.” “여기 이 웅덩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 물귀신이 있대. 그래서 빠지면 아무도 못 살아나온대. 그래서 우리 동네 사람은 여기서 미역 안 감는다.” “바아보, 물귀신을 믿냐?” “다들 믿으니까. 다들 무서워하는게 믿는 거지 뭐.” “있지 않은 걸 무서워하는 건 바보짓이야.” “있으면 어쨀래?”  “싸워 이기지 어쩌긴 어쩌냐?” “그럼 싸워봐. 내 앞에서 싸워서 어디 한번 이겨봐.”

  이 무슨 유치한 수작인지. 그럴 작정은 아니었다. 대학생다운 지적인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은근히 벼르고 있었다. 아마 처음 해본 성인용 상상력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더욱 어린 양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그 다음에 일어났다. 세준이 신발도 안  벗고 그 자리에서 여울목으로 뛰어들었다. 언뜻 뛰어들 때의 멋진 폼과  하얀 운동화를 본 것 같았으나 멋지게 헤어나오진 않았다. 감감무소식이었다. 그후 어떻게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하게 됐으며 그 동안이 얼마나 걸렸는지 하영의 기억력은 거기서 끊어진다. 끊긴 필름은 물에 젖은 세준이 하얀 운동화를 신고 풀밭에 누워 있는 장면서부터 다시 이어진다. 말리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하영은 세준의 가슴을 두드리고, 배를 누르고, 그리고 입술을 빨았다. 실습해본 일도 남이 하는 걸 본 일도 없지만, 그녀 나름으로는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의 입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무리 열렬하게 빨아대도 새파랗게 질린 입술에 핏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과 동네사람들이 그녀를 현장에서 억지로 떼어낸  후에도 틈만 나면 달려가 그 짓을 되불이했다. 인공호흡의 효험이 지났다는걸 알았다  해도 사랑의 입맞춤이 행할 수 있는 기적엔 시한이 없다고 믿고 싶었다. 동화 속의 왕자들이 해낸 걸 나라고 못 하려구.

그건 발작 같은 거여서 아무도 못 말렸다. 요새도 하영은  그때 빨아들인 냉기가 자신의 내부에서 빙하가 되어 모세혈관까지 고루 분포돼 있는 것처럼 느낄 적이 종종 있다.

  그 짓을 더는 할 수 없게  된 것은 주검이 부란하기 쉬운 복중  날씨 때문만이 아니었다. 세준네 식구들이 도착해서 시신을 인계해 가기까지 세준이 어머니가 부린 애통과 난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가장 못 견딜 소리는 집안의 대가 끊겼다는 소리였다. 남의 집 대를 끊어놓은 년이란 소리가 애통의 주제였다. 그 소리가 왜 그렇게 소름이 끼치던지. 그녀는 그때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했다.

  그러나 나중에 겪은 일에다 대면 그건 오히려 약과였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며칠 안돼서 세준이 어머니가 다시 나타났다.  세준이 손위누님을 둘씩이나 대동하고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딴사람처럼 생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하영을 보는 시선도 핥듯이 부드럽고 집요했다. 악다구니보다 더 참기 어려운 친숙한 눈길이었다. 다짜고짜 하영이  손을 잡고 아들 하나만 낳아달라고 했다.

  너 홀몸이 아니지? 나도 다 안다. 괜찮다. 부끄러을거 하나도 없다. 우리집 대만 이어주고 나면 나 너 안붙든다. 원하면 비밀도 감쪽같이 지켜주마. 그렇지만 그전에 딴마음 먹으면 가만 안 둘 기다.

  대강 이런 소리를 조근조근 그러나  신들린 소리로 속삭였다. 누나들은  그렇게까지는 안 나왔다. 그렇지만 그런 헛된 희망을 불어 넣어준 건 누나들인 것 같았다. 절망하여 몸져  누운 어머니를 위해,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희망사항으로 비쳤을 뿐인데 그게 당장 어머니를 떨쳐일어나게  할 엄청난 힘이 될 줄은  정말 몰랐노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니 조금만 참으라는 말 속엔 누나들도 그런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그들은 하영이 몸을 마치 그들의 소유물처럼 지키고 놓아주려 들지 않았다. 자기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차마 못 당할 일까지 겪어야 했다. 내 딸 눈물 흘리게 하는 자는 쏴죽인 다고 장담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동안 끽소리 한마디 못하고 술만 퍼마셨다.

  하영에게는 송장과의 그 차가운 입맞춤이 남자하고 생전 처음 가져본 육체적 접촉이었다. 그 말을 차마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믿어주고 안 믿어주고는 둘째였다. 사자와의 입맞춤이 최초의 입맞춤이란 사실은 얼마나 참을 수 없는 비밀인가.

  세준이네 식구들은 그들의 희망이 헛된 희망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도 한바탕  분풀이를 하고야 말았다. 내 아들 잡아먹고, 남의 집 대 끊어놓고, 너 혼자 얼마나 잘사나, 어디 두고 보자, 재수 없는 년,  재수없는 년…이란 악담을 동네방네 고루  퍼뜨리고 나서야 하영을 놓아주었다.

  하영이네는 그해가 가기 전에 그 시골을 떠나 수도권  위성도시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란 데는 사람 살 데가 못 된다고 여기던 아버지도 익명으로 살기엔 그만이란 것 하나만은 인정을 했다. 아무도 쏴죽이지 못한 아버지다운 서글픈 양보였다. 하영은 일년을  휴학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지내다가 오빠의 간곡한  설득으로 조금씩 복학할 준비를 할 때였다. 한밤중에 괜히 가슴이 답답하여 베란다에 나가 바람을 쐬고 있었다. 식구들이 다 들 잠든 후였다 . 베란다에선 그 도시를 띠처럼 두른 강과 그 너머로 강을 낀 국도가 바라다보였다. 낮 동안 연락부절라던 국도도차의 통행이 뜸해져 있었다. 왜 그렇게 마냥  거기 서 있었을까. 잠이 안 오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게 평소의 습관이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기다린게 아니었을까. 아니 뭔가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음이 아닐까.

  하영이 눈앞에서 국도를 양쪽에서 질주해오던 두 대의 승용차가 엇갈리지 않고  정면으로 맞부딧쳤다. 어느 쪽이 차선을 어겼는지 식별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믿어지지 않아 눈을 씻고 다시 보았을 때 두 대의 승용차는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차가 붐 비는 시간도 아니었고, 추월할 앞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한 차의 운전자가 미쳤거나  자살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도 비현실적이어서  헛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불타는 차보다 자신을 더 근심하며 비틀비틀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을 때는 이미 그 일은 불꽃놀이의 기억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어찌어찌 잠이 좀 들었다 깨고 나니 더욱더 그 일이 생시에 일어난 일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신문은 그날 새벽의 참사를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었다. 두 차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그날이 마침 세준이가 죽은 지 일년 되는 날이었다. 그걸 깨닫자 비로소  가슴이 떨렸다. 자기가 그 시간에 국도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하영에겐 자신의 의지나 의식과는 상관없는, 남을  해코지하는 어떤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명확해진 것은.

  그렇다고 그전에는 그걸 못 느꼈을까. 그건 아니었다. 세준이 어머니가 그토록 열렬히  전한 불길한 소식들을 어찌 잊을까. 우연한 목격이, 어떻게든 모르는 척하려던 걸 에라 모르겠다 받아들일 계기가 됐을 뿐이다. 그렇다고 세준이 기일마다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꼬아다 붙이기 나름이었다. 세준의 기일과 차사고도 꽈다 붙이지 않았으면 서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세상에선 매일 매일 좋은 일과, 나쁜 일과,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일들이 인총 만큼이나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거야말로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숨결인 것을 문제는 자신이 항상 불행한 무엇과 연관돼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 불안감이 관계맺을 불행을 찾아 헤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럴 작정만 하면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좁디좁은가.  꽈다 붙이기로 마음먹으면 서로 친척이나 동향,  동창 중 한두 개 안 걸려드는 사이 없고, 아무리 밑바각  인생도 최고 권력자와 연줄이 찾아지는 좁아터진 세상이 아닌가.

  이사를 간 후 하영이네 식구들은 그 시골마을에 대해선 일절 함구하고 살았다. 그 기억을 이르집는 것은 하영이의 상처를 덧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  금기로 삼고 있었다. 하영이가 졸업하고 나서 딱 한번 어머니한테 그 마을 얘기를  들었다. 마치 싸고 싸두었던 흉한 상처를 이제는 아물었겠지 하고 들춰보듯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전에 내가 그 마을에 그냥  가봤지 뭐냐, 그냥. 어쩌면  변해도 그렇게 변한다냐. 우리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어, 야아. 그리고 참 그 여울목 말이다. 양회바닥이 돼버렸어.  시냇물을 다 복개 해버렸더라. 공단이 생기고 구정물이 돼버렸단 소리는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공단에서 복개를 해줬는지.”

  그리고 한참 뜸을 들였다가, 그나저나  그 물귀신은 시방 어디에  가 있을까? 혼잣말처럼 중얼대며 흘긋 하영이 눈치를 살폈다. 그 때도 하영이는  어머니가 자기한테서 물귀신을 찾고 있는 것처럼 여겨저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는 딸 시집가는거 보고 죽기를 소원하다가 못 보고 돌아 가셨다. 암이었다.  병원에서였는데 늘 병상을 지키던 어머니가 너무 탈진한  듯 보여 모처럼 하영이가 교대한 날 밤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졸지에 임종을 맞았다. 그 일도 하영은 그냥 보아 넘기질 못헌다.  그때 자기가 교대하지만 않았어도 훨씬 더 사셨을걸 하는 가책을 떨치지 못했다.

  지금의 남편하고 결혼한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시집갈 생각 같은 건 해보지도 않다가 별안간 맞선 전선에 나선 건, 하는 일도 없이 나이만 먹는 딸을 어머니가 아이고 애물단지, 아이고 우리 애물 단지 하고 한숨 섞인 소리로 부르는게  문득 고까워지면서였다. 되는 일 없이 오그라들기만 하는 집안 형편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는 뜻으로 알아들은 하영은 빨리 비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남자에게 쫓기듯이 간 시집이었다. 인물은 별로였지만 인품이 너그럽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재산도 늘고, 하영이한테는 좋은 일만 생기고 나쁜 일은 아이들의 고뿔 배탈 정도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게  대견해 느이 아버지 음덕인가보다고 고마워했다. 하영이는 그것도 싫었다. 왜 남들은 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걸  어머니는 마치 과람한 일처럼 감지 덕지하느냐 말이다.

  과람해하기는 하영이가 더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 이렇게 아무일도 안 일어날까하는 기다림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것이 속에서 차오르면 하영은 거의 숨이 막힐 것 같아지곤 했다. 기다리다 못해, 아니 참다 못해  차라리 선수를 치고 말지 싶어졌다.  발작적으로 안 살 거야. 이런 집에서 숨막혀 못 살아, 이렇게 주기적으로 생트집을 잡아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고 집을 나오는게 그녀의 상투적인 선수치기였다. 그런 짓을 남편은 우리 집사람의  봄소풍, 또는 가을소풍이라고 부르면서 따뜻이 맞아들이고 더 잘해주려고 애썼다.

  이번엔 달라. 달라져야 해. 하영은 솔밭을 휘청휘청 걸어나오면서 다짐을 했다 올해  마흔이 아닌가. 하영은 반듯한 색종이를 귀 맞춰 접듯이 자신의 생애를 반절로 접는다. 스무살에 인생이 바뀌었고 다시 스무살이 된다. 넘지도 처지지도 않고  딱 맞아떨어지는 건 색종이가 아니라 불행의 반복이었다. 선수를 쳐야 한다. 그게 최선의  예방책이다. 난 내 식구를 사랑하니까. 사랑의 감정으로 목이 멘다. 급히  호텔방으로 돌아온다.    지금쯤 집엔 어머니가 와 있을까? 시어머니가 와 있을까? 남편이 퇴근할 시간은 아직 이르다. 아이들 목소리도 듣고 싶다. 어머니나 시어머니리도 좋다. 이번 가출은 여느 때의 소풍하고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해둬야 한다. 그들한테 그렇게 해두는 게 남편한테 그렇게  해두는 것보다는 훤씬 효과적일 것 같다. 하영은 저녁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집 전화번호를 누른다. 신초가 두 번  울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전확드릴 테니 하실 말씀을 남겨주십시오.’ 생판 처음 들어보는 차갑고 기품있는 목소리다.  “뉘시유? 응  당신 누구요? 누가 남의 집에…“

  하영은 놀라 수확기를 떨어뜨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손끝 발끝이 차갑게 얼어들어온다. 모든 것이 아득하니 무감각해진다. 다만 심장으로부터 모세혈관까지 빙하처럼 차가운 피가 흐르는 걸, 마치 순환기 내과병원 같은데 걸려 있는  인체도의 파란 정맥 보듯 또렷하게 느낀다.

(창작과 비평 199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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