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여 안녕..

 

¶ 10월이여 안녕:  거의 70마일로 ‘질주’한다는 내가 느끼는 세월의 속도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다 지나간 10월 달에는 지나간 달들에 비해서 훨씬 느리게 40~50마일 정도로 느껴진다. 왜 그랬을까?  이번 달에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반대로 지루한 나날을 보내면 시간이 늦게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나가는 10월이 나에게 지루한 나날들이었다는 말인가?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그런대로 ‘성과’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이나마 어떤 ‘악’의 불 기습으로 near-death-experience, coma의 위기에 몰렸던 우리의 20년 역사의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서서히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던 한 달이었는데 그것이 나의 세월감각을 100%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St. Augustine, KantTime is subjective, 역시 이 ‘느껴지는 시간’은 알쏭달쏭 한 문제다.

 

 Darkest Halloween: 10월과 작별을 하려면 마지막 날인 Halloween, 그것도 어두운 저녁을 지내야 한다. 몇 년 전부터인가.. 아마도 거의 10년 전 쯤 부터가 아닐까?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완전히 떠난 후 였으니까.. 그 때부터 Halloween은 ‘아련한’ 추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Trick-or-treat 꼬마 손님들을 기다리며 저녁 시간을 보내던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집은 적막이 휩싸이고, 무언가 세월이 엄청 흘러가고 있다는 불안감까지 감돌았다. 우리 집도 이제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새까만 옛날, 1973년 가을 미국에서 맞은 첫 Halloween,  나누어 줄 candy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날이 어떤 날인지도 모르던 그날,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였다.  근래 우리 집의 10월 31일 저녁도 서서히 그렇게 변한 것이다. 올해도 그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작년부터 옆집 David  도 흉가처럼 깜깜해진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예전까지만 해도 우리 neighbor중에서 제일 ‘요란하게’ 이날 저녁을 ‘아이들처럼’ 즐겼던 집인데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역시 깜깜한 집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 동네를 돌며 trick-or-treating을 하던 시절, 이제 생각하니 아름답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는다. 비록 고국의 추석명절과 느낌은 다르겠지만 이것 역시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 당시의 아이들 이제 모두 성인이 되어가고, 우리들은 빠르게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드는.. 인생 윤회의 감상에 젖는다.

올해 Halloween 저녁때는, 물론 집의 불을 완전히 끄고, 무섭기는 하지만 추억의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것을 보고 싶었다. 바로 1973년 영화 The Exorcist다.  이 영화 이후 비슷한 것들이 무척 많이 나왔지만 ‘충격적인 느낌’에는 이것을 따르는 것이 없었다. 내가 느꼈던 ‘공포의 추억’은 사실 ’4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말하는 것도 무서운’ 그 정도다. 당시에 이 영화를 보고 1주일 정도는 밤에 불을 켜고 잔 기억도 난다. 그 이후 두세 번 정도 더 극장에서 보기는 했지만 집에서 혼자 보는 것은 아직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얼마 전 YouTube에서 full-version을 download했지만, 아직도 처음 30분 정도만 보고 더 진전이 없다. 그 정도로 나는 이 영화가 무서운 것이다. 단, 이 영화가 결국은 나에게 ‘가톨릭 신앙’을 주게 했던 사실은 지금 생각하니 전혀 우연만은 아닌 듯해서 불원간 조금 덜 무서운 자세로 끝까지 다 볼 각오를 다지고 있다.

Devils Exist! – The Exorcist, 1973

 

¶ 올 가을 첫 추위: 지난 며칠은 가을이 아니라 초겨울 같은 냉기서린 강풍과 첫 빙점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날이 되었다. 아래 위층 할 것 없이 요란한 central heating fan소음이 낮에도 은은히 들리는 그런 날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날들을 좋아하기에 불평은커녕 all are welcome이다. 결과적으로 엉뚱하게 나는 주일미사를 빼먹게 되었지만 미안한 마음보다는 그저 편하게 쉰다는 편안함만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날도 있는 것, 기나긴 신앙, 인생 여정에서 재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rare exception 인 것만 명심하면 되는 것이다.

 

올 가을들어 제일 춥고 을씨년스럽던 날, Tobey와 desk는 나의 피난처가 되었다

 

¶ 연총연습 시작: 올해 순교자 성당 레지오 행사를 결산하는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줄여서 ‘연총’이 12월 3일로 다가오고 있다. 한 달이 넘게 남아있지만 우리에게는 급한 준비로 다가왔다.  우선 단원의 숫자가 줄었고 시간이 예년에 비해서 줄어들었다. 이제부터 매주 연습을 한다 해도 5번 정도다. 매주 연습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올해 ‘사정상’ 모두 취소를 하자고 제안도 했지만 결국은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건재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인원이 너무 많은 호조건으로 ‘여유 있게’ 선택을 해서 guitar반주까지 곁들인 춤, 합창을 했지만 그런 호조건은 이제 물 건너 갔다. 결과적으로 선택된 것은, ‘의도적으로 짧은’ 것. YouTube로 알려진 ‘어떤 수녀님의 귀여운 노래와 율동’ ‘앗싸 좋아요!‘ 란 것이다. 나에게 ‘율동’은 안 맞는 것이지만 오늘 첫 연습을 하고 보니 사실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어떤 format으로 할 것인가.. ‘반주, 편곡’ 들의 기술적인 문제만 남았다.

 

Next stop 1969

1969 1969 1969 1969 ….

 

나는 지금 한창 ’20세기’, 1969년 경으로 돌아가 그때의 개인역사, 내 주변의 세계를 머리를 쥐어 짜며 기억하려고 각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나의 본격적 시대별 회고록 series blog: memoir 가 3년 전쯤 1968년경을 마지막으로 멈추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도에서 나이 20세가 되던 1968년경까지는 글로 남긴 셈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 이후에서 현재까지 것들, 세월로 보면 엄청 길었던 시절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다.

얼마 전부터 더 이상 1968년에서 멈추어 있을 수 없다는 우려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그 당시가 명료하게 기억이 나던 것들이 이제는 급속도로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위기의식을 갑자기 느낀다… 내일 아침을 내가 못 본다면.. ‘나, 平昌李氏,  이경우 李炅宇‘라는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만 아실 수 있는 영역에만 속하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1969년은 내가 연세대 3학년 시절인데, 오랫동안 머리 속에 그 당시의 기억을 조금씩 정리하고는 있었다. 문제는 얼마나 정리가 되고 정확한가 한 것이다. 당시의 개인 일기는 물론 남아 있을 리가 없고(사실 일기가 있었지만), 사진 몇 장 정도로 상상력을 동원하면 대부분 ‘희미한’ 회상이 가능하다. 게다가 당시의 신문들, 특히 국제적인 역사는 미국의 대표적 화보잡지 LIFE magazine 에 의지하면 된다. 하지만 이 작업은 거의 나 자신과의 싸움에 가깝다. 이것도 기적과 같은 높은 곳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떨까?

Neil Armstrong 의 잡음이 섞인 달착륙 당시의 육성, 소백산 연화봉 정상의 운해, 3선 개헌 반대 데모 때 최루탄이 나르던 연세대 굴다리, 기타귀재 鬼才 보성고 심재흥과 YMCA sing-along-Y 전석환, 미국 Woodstock  (rock) festival,  Pop, Folk & Rock music에 심취하던 시절 등등 거의 생생하게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비록 이 작업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간 그 자체는 즐거움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기쁜 우리 젊은 날’ 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니까.. 이것도 ‘세월의 선물: 늙음만이 주는 특혜’ 중에 하나일 것이다.

 

Galveston – Glen Campbell – 1969

 

Sweet Caroline – Neil Diamond – 1969

 

unending morning coffee 외..

¶  ‘Unending Coffee’ Morning: Instant ‘stick’ coffee  에 이어서 supersize Don Pablo gourmet ground coffee.. 나의 머리 속은 벌써 바삐 흘러가는 ‘혈관 속의 움직임’는 느낀다. 이것의 바로 joy of morning caffeine 일 것이다. ‘오래~ 전’ 직장생활 할 시절, 출근해서 그곳의 아침모습을 그리며 회상을 하기도 한다. 참.. 무언가.. ‘세상은 움직임이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시절들이었다.

Early Morning Coffee의 마력과 매력인 이런 추억과 의미와 깊은 연관이 있고 그것이 ‘중, 노년’ 에만 가능한 즐거움이다. 이것은 그 이전 시절에서는 ‘절대로 100%’ 느낄 수 없는 세월 흐름의 마력 魔力 이다. 오늘 이른 아침은 absolutely, positively perfect coffee experience를 주기에 ‘알맞은 추위’까지 선물로 주어졌다. 무언가 3박자가 맞는다고 나 할까?

이렇게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갖게 한 다른 이유는.. 예상치 않게 여유를 갖게 한 시간적 bonus, 아침 ‘평일, 매일미사’를 거르게 되었기 때문[she doesn’t feel well] 이다. 5년이 훨씬 넘어가는, 이제는 완전히 습관이 된 이 9시  매일미사는 이제 우리 둘 psyche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렇게 가끔 경험하는 exception의 즐거움이 이렇게 오래 ‘매일미사’를 지탱시켜주는 비밀 임도 우리는 잘 안다. 물론 exception은 가끔 있는 rule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exception 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  ‘Senior’ Fall  day trip: How could it be on..?: why, how come, 도대체, 도~시데.. 란 말을 되풀이한다. Mother Nature란 것, 대부분 겸허한 심정으로 받아드리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할까? 아마도 나에게 100% 직접 상관이 되는 것이라 그랬을 것이고 사람은 이렇게 ‘약한 이기적 동물’이다. 몇 주전부터 계획되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사회복지분과’ 주최의 ‘가을 경로 야유회’가 바로 그것이다. 가을이라는 말은 분명히 ‘단풍 관광’과 연관이 되었을 것이고 ‘경로’는 말 그대로 ‘어르신들을 모신다’는 뜻인데.. 야유회라 하지만 이것은 bus를 rent해서 Atlanta Metro를 완전히 떠나서 State Park로 가는 당일코스 여행이었다. 그것이 ‘갑자기’ cancel이 되었다. 범인은 역시 Mother Nature였다. 그렇게 날씨가 좋다가 왜 하필이면 그날 하룻동안만 ‘차가운 비가 옴’으로 예보가 나온 것일까? Timing이 너무나 절묘해서.. 이것도 혹시 무슨 숨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다.

‘경로 敬老’ 란 말이 우리에게 연관이 되는 것을 조금 피하고 싶지만 실제로 우리도 ‘경로’를 받으러 참가신청을 했는데… ‘지난 2개월 동안 우리를 괴롭혀 온 악마’의 그림자를 깨끗이 잊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과장 자매님’의 말씀에 동의해서 모처럼 하루를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것을 상상했는데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것도 무슨 높은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위로를 하며, 100여명 어르신들을 ‘babysitting’ 하려 불철주야 준비를 했을 그 ‘억척 volunteer’ 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  목요회 월례모임:  어제 밤에는 제2차 목요회 모임이 ‘한일관’에서 있었다. 지난 달 마지막 목요일에 모인 것을 ‘기념’해서 내가 목요회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생각하니 그런대로 멋진 이름이 아닌가? 1990년 5월에 연세대 동문 이WS 형제가 ‘처음 집’으로 이사 갈 때 모였었던 3명의 남자가 거의 30년 뒤에 다시 이렇게 모였고 계속 모인다는 사실은 정말 재미있기만 하다.

목요일날 밤에 모이는 것이 조금 색다르지만 그런대로 이점이 있다. 모두들 목요일날 밤은 그런대로 바쁘지 않다는 사실, 가족이나 가정에 큰 부담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low-key 로 만나는 것, 나는 이 그룹이 아주 오래 가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2시간 정도 먹고 얘기하는 것, 이번에는 1990년대를 중심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들 열심히들 살았겠지만 얼마나 그 세월들이 행복했는지는 서로가 추측할 할 수 밖에 없었다.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면서 더 많은 삶에 대한 고백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다음 달 마지막 목요일을 나는 Thanksgiving Day인 줄 알고 부득이 옮겨야 하는가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그날은 그 휴일의 다음 주였다. 이것도 우리 모임 장래의 청신호 같은 느낌을 주어서 흐뭇하기만 했다.

 

그래, 사는 거다!

돼지띠 동갑내기 ‘프카’ (Francesca) 자매님이 ‘약속을 잊지 않고’ 책 한 권을 내게 슬며시 건네주었다. 비교적 근간 近刊 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쾌한 장정과 비교적 ‘젊은’ 묵상, 명상이 간결한 수필로 엮어진 책, 책의 제목이 바로 ‘그래, 사는 거다!‘ 라는 조금은 low-key지만 대담히 선언적인 제목이다.

저자는 ‘전원’ 이라는 천주교사제 인데 가톨릭 세례명이 조금은 흔치 않은 예수님의 12사도 12 disciples  중의 하나인  ‘바르톨로메오, Bartholomew, Bartholomaeus‘ 다.  1995년에 서울 대교구에서 사제로 서품 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40대 정도의 ‘비교적 젊은 사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렇게 추측에 그치는 것, 사실은 내심 생각한다… 분명히 googling 한 번 정도면 ‘얼굴, 근황,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소리’ 등이 꽤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는 NO, HELL NO! 인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나 마찬 가지로 minimum, safe distance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니까…

이 책이 나의 손까지 ‘굴러들어온’ 사연은, 지난 여름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새로 생긴 ‘영적독서클럽’의 첫 번째 ‘선정 選定 도서’ 였는데 내가 늦게 그곳엘 갔던 join 관계로 이미 모두들 읽고 와서 의견을 나누고 있어서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어떤 신부의 고백록 같은 정도로 추측은 했었고 당시에 자매님들이 꽤 있었기에 아마도 여성취향의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이제 그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리게 된 것이다. 아주 경량급 light-weight 하고 짧은 chapter들, 이것이야 말로 ‘필사’하며 읽기에 거의 완전한 책이 아닌가?

지금까지 ‘필사’로 읽어 본 것들로 보아, 사실 은근히 호감이 가는 책으로 생각된다. 그 중에서 나에게 생각, 묵상거리를 준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C.S.Lewis character in Shadlowlands, BBC TV drama

첫 부분에 나오는 1993년 영국 영화 Shadowlands 를 통해서 본 ‘이론, 영성적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은 나에게 조금 익숙한 것이었다. 나는 작년에 1985년 Television film으로 나온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고 지난 몇 년간 C. S. Lewis에 심취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론적, 영성적 ‘추상적’인 사랑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사랑을 너무 늦게 발견한 Lewis, 그는 진정한 사랑을 배운 셈이다. 그것도 고통스러운(연인, 아내와 영원히 이별하는) 쪽으로… 결국 Lewis는 고통 속에서 이론적, 영성적으로 체득한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는 ‘위대한 영성, 문필가’로 남게 된 것은 아닐까?

성당 사목을 하면서 사람관계에 대한 저자의 괴로운 경험은 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의견이 다른 것으로 원수 관계로 치닫는 요새 세상에서 더욱 이해가 가는 것이다. 최근 2개월간의 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도 나는 안다. 저자의 결론이 나에게는 아직도 실천이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것,  ‘상상’하는 것은 아마도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은 ‘무리,무리!’ 라는 결론이고 상책은 ‘100% 잊는 것’ 이다.

‘욕망에 대하여’, 불륜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은 어떤 주부에 대한 이야기, 탕자의 비유로 ‘우리는 결국 모두 죄인’이고 죄인이 될 가능성이 항상 있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글이다. 그렇다, 항상 ‘죄인이 될 악마의 유혹’은 실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도 우리는 조금 나은 자세를 가진 것이다. 그렇게 조심하면 사는 것, 그것이 행복을 유지하는 첩경일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필사로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 돼지띠 ‘프카’ 자매님, 나는 언제나 먼저 좋은 책을 사거나 구해서 빌려 드릴 것인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필사본 post’는  이곳에 있음.

 

Days in the Life

¶  Roof Leaker:  어제 갑자기 남쪽으로부터 습기가 밀려오더니.. 역시 이른 새벽부터 세찬, 그리 차갑게 느껴지지 않은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 집 2층의 bonus room(2 car garage 위) 은 제일 크지만 침실로 쓰고 있는데 몇 달 전부터 창문가 쪽으로 비가 새고 있었다. 스며드는 정도로 천정에 물기가 보이더니 폭우가 오던 날에는 뚝뚝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을 목격하고 ‘내가 좋아하는 비’가 올 때마다 신경이 쓰여서.. 좋지 않았다. 비를 기다리다가도 이것을 생각하면 ‘조금만 내려라’ 하기도 했는데 어제는 드디어 지붕으로 올라가 내가 보기에 ‘범인’으로 보이는 곳을 처치해 놓고 내려왔다.

흔히 보는 asphalt shingle이 망가진 것이 아니고 ridge에 있는 ridge vent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응급처치를 하고 오늘 오전 중에 계속 쏟아진 비가 끝나고 또 새는가 보았다. 와~~~ 안 샜다! 물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진단한 그곳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비’를 계속 안심하고 기다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추측하는 leak scenario는 간단히 말해서: 비가 갑자기 쏟아질 때, ridge vent의 edge에 잠깐 고인 물이 채 빠지지 못하고 vent 의 완만한 slope를 타고 ‘올라가’ roof의 안 쪽으로 스며드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비가 심하게 ‘계속’ 내릴 때 물이 흘러 내려가기에 roof 의 slope가 너무나 완만한 한 것, 바로 그것이었다. 문제가 된 slope는 내가 바꿀 수는 없고 vent 자체를 조금 ‘개조’해서 물이 조금이라도 빨리 빠지게 하는 수 밖에 없었다.

 

 

¶  2층 hallway: 지난 주말 무렵 2층 hallway 주변의 flooring, painting, closet reshelving 등의 backbreaking job이 다 끝났다. 거의 반년이상 carpet이 벗겨진 벌거숭이 상태로 각종 traffic을 견디고 나의 마지막 손을 기다리고 있던 이곳, 끝나고 나니 정말 감회가 깊다. 제일 지저분하게 보이던 이곳이 어쩌면 그렇게 새 집처럼 보일까.. 특히 closet의 변화는 내가 보아도 놀랄 정도다. 꼭 벌레가 살았을 것 같은 흉하게 쳐진 particle board shelving의 흉한 모습들이 다 사라지고 ‘진짜 나무’의 깨끗하게 paint된 homemade shelving 이 그곳에 자리를 잡으니 새 집에 이사온 기분이 드는 것이다. 속으로 계속 ‘아마도 이 모습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되뇐다.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인가.. Stairway 주변의 tall wall의 painting, 그리고 바로 stairway그 자체.. 내가 제일 피하고 싶던 일들이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손과 몸이 적당히 handy가 되었기에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는다.

 

Before

After

 

¶  김 M.S. 프란치스코 선종: 우리의 ‘전 前’ 마리에타 2구역,에 살던 나이는 나보다 ‘한참’ 밑이지만 구역의 역사로는 고참에 속하는 김  M.S. 형제가 선종을 하였다. terminal illness 란 것이 다 그렇듯이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막상 이렇게 마지막 순간이 오면 착잡한 심정에 휩싸인다 . 췌장암으로 시작된 오랜 투병의 여정이었고 본인, 가족들 헌신적으로 투병을 하고, 주위에서 모두들 기도를 했지만 하느님의 뜻은 다른 곳에 있는지… 우리와의 인연은 역시 같은 마리에타 2구역도 있지만 우리 집 큰 딸 새로니가 10년도 전에 이 형제님 딸 ‘데보라’를 개인적으로 tutoring한 것도 있었다.

가끔 구역모임에서 볼 기회가 있었지만 가까이 어울리지는 못했다. 가톨릭 교리에 관심이 있는지 열띤 논쟁 성 토론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2000년대 말, subprime bubble 이 터지던 시기 투자에 의한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이후 terminal cancer로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우리 성당을 떠났기에 거의 볼 기회가 없었다. 몇 번 구역 모임에 ‘인사차’ 나온 것, 그것이 전부다.

왜 성당을 떠났는지 나중에 이유는 알았지만 나는 아직도 이해하기가 힘이 든다. 비록 교리논쟁을 했었던 기억도 있지만, 왜 타 종교, 그것도  ‘안식교’에 의탁을 했었는지.. 직접적인 이유는 치유에 필요한 식이요법에서 시작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 정도다. 거의 평생 가져온 신앙을 ‘다른 하느님’으로 바꾸어 귀의하는 것, 나는 참 ‘판단’하기가 힘이 든다. 결국 하느님은 같은 분이라는 생각,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믿음에도 최소한의 출발점 commitment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 출발점만은 절대로 인간의 마음대로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고인이나 가족들에게는 고향 같은 아틀란타 천주교를 마다하고 ‘조용하게’ 우리를 떠난 ‘프란치스코’ 형제, 알듯 모르듯 우리의 기억에서 오랫동안 가물 거릴 듯 하다. 부디 하느님의 영원한 평화가 이 형제님의 영혼과 함께 하기를…

 

¶  독서클럽, 등대회 2nd  Shot:  이번 바로 지난 주일(일요일), 한참을 망설였다. 미국 성당이냐, 도라빌 순교자 성당이냐.. 어디를 갈까.. 매 주일 나의 challenge 중에 하나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더욱 그렇다. 이번이 그런 case였다. ‘꼭 나가야 할 이유’ 를 못 찾을 때, 그러니까 공식적인 의무 같은 이유를 찾아야 한다. 포근한 느낌의 동네 Holy Family 성당의 유혹도 무시할 수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유가 없진 않았다. ‘영적 독서클럽’ 과 ‘등대회’ 같은 두 모임이 있는 것을 알았고 만에 일이라도 마주칠 수 있는 Nexus of Evils, 정말 그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고 20 mile의 I-285 drive를 택했고 나중에 정말 잘 갔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book club select: 개구리의 기도 2

무언가 나에게는 아직도 elusive한 것 같은 느낌이 바로 이 ‘독서클럽’이다. 이날 주제가 된 책은 ‘개구리의 기도 2‘란 책, 나는 이미 최 프란체스카 자매님으로부터 몇 주간이나 ‘대출’을 받아 읽고, ‘필사’를 한 후여서 내용은 환히 알고 있는 그런 책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마음에 드는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이 계속 나의 주 관심사였다. 왜 남들은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일까? 이것이 contrarian의 반응인가? 동양사상, 철학이 가톨릭 영성을 위압할 정도로 그것도 유머러스 하게.. 이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지?

이날 오랜만에 클럽에 참가를 했지만 몇 명밖에 모이지 않았고 시간이 없어서 나는 죄송하지만 나에게 급한 글럽 운영상에 대한 몇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반응을 듣고, 주제의 책에 대한 나의 ‘고민점’을 나누고 나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11월 12월은 모임이 쉰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옆 방에서 모이는 60대 주축 친교모임 등대회에 ‘혼자’ 참가를 했다. 9월 모임에 이어 2번째 참가한 셈이다. 9월 말 처음 이곳에서 모였을 때 있었던 멤버들은 거의 안 보이고 또 다른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부회장님은 그대로였지만 회장님이 안 보인다. 아하.. 이 그룹은 아주 informal하게 ‘자유롭게’ 모이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제약이 별로 없이 오고 싶으면 오고.. 하는 그런 곳인가? 하기야 이 나이에 제약을 느끼며 오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모임이라는 것이 유지되려면 ‘열성당원’은 꼭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로서는 이렇게 ‘남자가 꽤 있는’ 모임이 조금 생소하지만 너무나 refreshing하고 즐겁기만 했다. 내가 그 동안 너무나 모르고 살았던 세상이 있었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이곳의 자매님들, 레지오와 유심히 비교해 본다. 혹시 Nexus of Evils는 이곳에 없는가… 알 수가 없다. 우선은 full benefit of doubt를 줄 수 밖에 없다. 부부인 멤버가 많은 것도 좋았고, 아주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적극성도 좋았다. 이날의 주제는 11월 초에 있을 등대회 야유회에 관한 것인데,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것이어서 나는 그저 듣기만 했고 나 자신도 참가하기로 했다. It’s now or never는 여기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모임이 끝나고 오늘 회의를 주도한 부회장님이 ‘커피를 쏜다’고 해서 근처의 McDonald에 2차로 모였다. 이런 것도 나는 다시 배운다. 첫 번 성당에서 모였던 것은 조금 formal한 것이었고 2차는 완전히 informal한 그런 것이 아닐까? 이날은 우리를 등대회로 ‘인도’했던 박 스테파노 형제 부부도 있었고 낯이 익은 형제부부들도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Boston지역으로 1974년에 오셨다는 서울 용산고 출신 형제님, 알고 보니 나보다 나이가 꽤 위였는데 AT&T에서 오래 근무를 하셨다고 해서 나와 같은 technical 분야인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하지만 내가 더욱 반가웠던 사람은 다름 아닌 오늘 (임시) 사회를 보았던 부회장님, 알고 보니 나와 나이 생일이 거의 비슷했다. 나와 똑같이, 생일이 음력으로는 돼지띠, 양력으로는 쥐띠.. 이런 우연도 있는가? 그것뿐이 아니다. 서울 교동국민학교 출신이 아닌가? 나의 모교 재동국민학교 바로 아래 동네, 문화극장 앞, 덕성여대에 붙어있던 정겨운 느낌의 교동국민학교, 어렸을 적 같은 집에서 살았던 ‘시자 누나’, 나의 죽마고우 유지호가 졸업했던 역사 깊은 학교였다. 게다가 그는 경복중고교를 다녔다고 해서 사실 우리는 거의 같은 시절 같은 동네를 누비며 살았던 공통점이 있음을 알고 너무나 반가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이날은 너무나 즐거운 오후가 되었고 생각을 달리해서 도라빌 성당엘 안 갔더라면 이런 일들 아마도 물 건너 갔었을 것이다. 이제는 우연보다는 ‘필연’을 더욱 믿기에 나는 여기서도 일련의 ‘사건’들에서 의미를 찾고 목적을 다시 찾는다. 왜 그날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  Surviving another Weekly: 자비의 모후 또 다른 화요일 주회합이 ‘무사히’ 끝났다. 아직도 나는 surviving이란 말을 쓰고 있다. 나의 심리상태가 아직도 panic mode에 있음을 말하는 것인지 나도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아직도 나는 이 모임이 나의 실존이유와 직결되었다고 생각을 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일주일 Coma상태에서 벗어난 이후 착실하게 recover를 계속하는 모습, 모두들 흡족한 얼굴들이고 나도 마찬가지다. 확실히 자비의 모후는 현재 ‘총사령관 성모님’이 개인적으로 친히 이끌고 나가신다는 느낌도 든다.

이제 당면과제는 늦게 시작하게 되는 ‘연총 연습’이 있지만 오늘은 예외로 얼마 전 남편형제님 상을 당하신 이 아가다 자매님을 위해서 그룹 연도를 하였다. 모든 단원과 guest까지 포함해서 우리는 열심히 이요셉 형제님의 영혼을 위해서 연도를 바쳤다. 끝나고 자매님, 고맙다고 우리들을 만천홍으로 초청해서 즐거운 ‘자장면 점심’을 즐겼다. 이런 날 오후가 바로 Afternoon Delight의 ‘정수 精髓’가 아닐까?  

 

Nexus of Evils

The Shining

오늘 아침 성당 입구에서 그 ‘devilish face‘ 를 먼 곳에서 의식하고 성당 주보도 마다하고 그 ‘회벽 칠한듯한 얼굴’을 비웃으며 이미 묵주기도를 시작한 성당 안으로 곧바로 들어갔다. 성수를 찍으며 성스러운 이곳에서 이것이 도대체 무슨 짓인가 한숨을 지었다. 이런 해괴한 짓을 언제까지 하여야 하나.. 답답하기도 했지만 별 도리가 없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 나는 ‘회개 없는 악행’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고, 아무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만 그런 원수도 나중에 회개를 한 후에나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0.0001%라도 생긴다. 하지만 이 원수는 전혀 아니다. 아니.. 더 나아가 이 원수가 바로 nexus of evils 이라는 끔찍한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제까지 이 인간의 과거에 대해서 들은 것만 해도, 모든 문제(폭행, 협박, 이간, 분열, 조직 해산과 붕괴) 의 중심에는 이 인간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성당에 나와서 ‘성모님의 기도’를 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이제까지 그런 것들을 모르고 살았는지.. 정말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유일한 희망은 역시 ‘성모님의 손길’이다. 현재로써는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chilly morning.. finally

아침, 춥다는 것이 조금은 성가시게 느껴지는 이른 새벽, 아래층으로 비틀거리며 내려와 thermostat를 보니 정확히 69도를 가리키고 있다. 며칠 전 연숙이 아마도 곧 central heating season이 시작되지 않을까 언급을 한 기억인데 10월 중순이 지나자 마자 그것이 바로 오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8도에 맞추어진 아래층은 춥게만 느껴지고 ‘강제’로 heating system을 켜 볼까.. 하다가 다시 주춤해졌다. 우리 집의 고물 중의 고물이 바로 아래층 hvac[heating, ventilation, air conditioning]  system인데 매년 여름의 시작과 겨울철 시작이 되기만 하면 마음이 조마조마 해 지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Central heating system이 제대로 켜 질까, 잠잠할까.. 만약에 문제가 있으면 원인의 99%는 thermocouple 일 것이고 그것은 Home Depot에서 사다가 replace하면 끝나지만 역시 귀찮은 일이다. 만에 일,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며칠을 어두운 crawlspace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고, 최악에는 $$$$를 써서 몽땅 바꾸어야 하는 그런 것.. 그런 때가 온 것이다. 싫다.. 싫어.. 하지만 결과는 전혀 문제가 없이 잔잔한 소음 속에서 air register에서는 따끈따끈한 바람이 솔솔 나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BVM!

 

자비의 모후 Pr. 친목회, 사업보고

¶  Pr. 친목회: 지난 10월 10일 화요일 자비의 모후 Pr. (Praesidium 쁘레시디움) 전 단원은 주회합 후 정오 미사가 끝나고 Duluth에 있는 McDaniel Park로 차를 몰았다. 원래 9월 초 쯤에 갖기로 되어있는 ‘친목회’를 우리는 ‘간신히’ 한달 뒤에라도 이렇게 갖게 된 것, 그 이유는 다시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이렇게 다시 성공적으로 다시 모인 것만도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고 드린다.

이곳은 몇 년 전까지 친목회 때 몇 번 온 적이 있어서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그때와 이번의 느낌은 하늘과 땅 같은 차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그때는 그러니까.. 나는 어린애처럼 순진하였고 지금은 세상의 모든 것, 특히 더러운 것과 짓을 다 겪은 역전 노장 같은 그런 느낌.. 지난 몇 개월의 incredible ordeal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는.. 다 지나갈 것이다..

모두들 물론 자매님들이라 음식을 정성껏 잘도 준비하였나.. 우리는 밥만 준비했지만 새로 입단한 자매님이 준비하신, 군침이 도는 생선봇쌈 (이름이 맞나?) 비슷한 것, 참 맛있게 먹었다. 환자의 몸으로 참석한 단원 자매들, 어떻게 그렇게 큰 문제없이 준비를 하고 참석을 했는지.  먹고, 걷고, 얘기하며 주회합 화요일 오후를 보낸 것, 우리 자비의 모후에게는 너무나 의미 있는, 심각하게 중요한 행사 중에 하나였다.

McDaniel Farm Park

 

¶ 마지막 작은 방: 결국 이방의 flooring도 다 끝났다. 제일 작은 곳이라 비교적 빨리 끝이 났지만 역시 이곳도 closet과 door boundary 에서 골치를 썩고 시간을 끌긴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역시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저 시간만 가면 되는 느낌이지만 그 시간들이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라 밤에는 근육통으로 고생을 한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free labor이기에 $$$을 ‘엄청 save했다는 보람’ 하나로 위안을 삼는다.

Renovated, floored ‘smallest room’

 

¶ Walking Tobey: 이것이 얼마나 오랜 만인가? 전혀 알 수가 없다. 내가 우리 ‘늙은’ Tobey와 동네 주변을 걸었던 것이 진짜 언제였나..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이 정도로 기억이 없으면 아마도 3개월은 훨씬 넘었을 것이다. 아니 4~5개월? Tobey에게 관절신경통이 생긴 이후 걷는 횟수가 많이 줄었는데 지난 여름에는 더위로 더 못 걸었을 듯 하다. 신경통 약을 정기적으로 먹어서 집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지만 걷고 오면 먹은 것을 토하기도 하는 등 문제가 있다. 하지만 갑자기 다가온 시원한 가을의 냄새를 맡으니 나나 Tobey나 걷고 싶은 충동으로 무작정 leash를 챙기고 우선 playground로 가서 standard shot (picture)를 찍었다. 걷는 것 보다 이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몇 년째 같은 pose로 찍었던 이 사진, 나의 blog header picture로 쓰이기도 한 것이다. 구름이 잔뜩 있지만 시~원한 가을하늘아래, Tobey는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문제없이’ 걸을 수 있을까.. 아니 언제까지 나와 함께 살까… 갑자기 어두운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마자 그곳을 떠났다. 참으로 시원한 가을 날씨였다.

 

My favorite view & pose

 

¶ Kolbe 정신부님, 꾸리아 사업보고: 어제 주일(일요일)은 도라빌 순교자 성당엘 가야만 했다. 꾸리아 월례회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년에 한번 하는 자비의 모후 사업보고가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이 발표는 의미가 우리에게 중차대한 것이었다. Coma상태에서 간신히 살아난 것이 불과 한달 전, 거기에 일년 분 사업보고 준비하고 발표하는 것 사실 쉬운 장난이 아니다. 자비의 모후는 다행히 단장 서기가 부부라는 사정으로 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이 비교적 straightforward한 편이지만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 나보다 단장이 더욱 힘이 들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1000차를 바라보는 자비의 모후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었던 마당에 심리적인 stress는 나보다 더 했을 것이다. 일주일도 전에 이미 다 작성을 해서 지난 주회합에 모든 단원들에게 선을 보였지만 막상 발표하는 그 단계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accident, hiccups가 있는지, 아무도 예측을 못한다.

결과적으로 큰 ‘사고’는 없었는데 사실 실수나 사고가 날 여지가 거의 없이 우리 것은 완벽한 것이었다. 문제는 ‘문제를 위한 문제를 제기하는’ 웃기는 인간이 있었는데, 야빠리.. 그 인간이었다. 바로 그 인간.. 우리에게 순방 차 와서 순명 하라고 난동을 부렸던 그 인간.. 어째 안 그렇겠는가? 속으로 웃고 또 웃었다. 네가 어딜 가것냐?

이날 미사는 Duluth성당의 Kolbe 정만영신부님이 집전을 하셨는데.. 내가 그 동안 가졌던 이유가 있던, 이유가 없던 간에 사제를 부정적으로 본 나의 짧은 생각과 태도.. 반성을 하고 반성을 하며 식사시간에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공손히 하고 돌아섰다. 앞으로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는 사제들을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이것은 메주고리예 발현 성모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다.

 

Wikipedia: 눈에 익은 곳에서 email이 도착했다. Wikimedia에서 온 것이다. 이곳은 사실 nonprofit 이고 commercial 한 것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곳인데, 이것이 무엇인가.. 역시 fund raising성의 ‘친전’이었다. 마구잡이로 보낸 것이 아니고 이제까지 얼마라도 donation한 사람들에게 ‘호소’를 하는 편지였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아니 꽤 오랜 동안 나는 작은 액수나마 이곳을 돕고 있었는데.. 근래 뜸했었나.. 작년에 한 giver들에게만 보낸 것을 보니… 아마도 올해 내가 이것을 miss했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고 당장 예의 액수를 Paypal을 통해서 보냈는데… 이때의 나의 심정은 날라갈 듯한 것, 나도 조금 보탬이 되었으리라..

내가 Wikimedia 특히 Wikipedia의 도움을 얼마나 이제까지 받았는지 생각하면 보낸 액수가 부끄러울 정도다. 비록 non-political, neutrality를 고수하고 있지만 그것이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느껴지면 조금 버겁긴 하지만 이것 보다 더 fair한 deal을 아마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10월의 시작, flu shot etc…

10월이 되었나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1주일이 지났다. 8월 말 ‘사건’ 이후 세월과 시간 감각이 조금 느려진 듯하더니 다시 원래대로 69마일의 속도로 돌아감은 좋은 느낌인가..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  Upstairs Renovation continues:  위층 hardwood flooring, wall painting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70에 가까운 몸을 보아가며 ‘천천히’ 진행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시간이 반드시 돈이 아닌 우리에게는 ‘천천히’하는 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인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처음 예정에 whole job이 3개월 정도로 잡았지만 벌써 3개월이 지나가고 아직도 제일 큰 방 bonus bed room이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click-and-lock flooring의 technique도 많이 손에 잡히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tricky한 곳, door jamb, closet boundary 등은 아직도 case-by-case로 골치를 썩히며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 전에 있던 하얀 색의 carpet에서 갑자기 어두운 색의 shiny floor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특히 새벽 어두울 때는 마루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다. 비록 expense가 만만치 않지만 totally free labor cost의 위안을 받으며 모든 job이 끝났을 때의 새로 태어난 우리 집 2층의 모습을 상상하면 기쁨과 보람이 넘친다.

 

the last small room getting floored

 

¶  First-ever Flu Shot: 지나간 (레지오)화요일에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flu shot을 맞으러 Duluth Steve Reynolds Blvd에 있는 Kaiser-Permanente medical complex 를 찾았다. 정말 이런 것, voluntary basis로 ‘주사를 맞으러’ 간 것은 우리의 기억에 없는 것이다. 연숙의 Medicare가 얼마 전부터 cover가 되고, 작년에 연숙이 지독한 감기로 고생한 기억이 생생해서 올해는 우리도 한번 따끔한 flu shot을 맞기로 용기를 낸 것이다. 

우리 둘의 health insurance가 모두 Kaiser인 관계로 이럴 때는 편리하다. 같이 같은 곳으로 가면 되니까. 남들은 이런 것들, 잘도 benefit을 찾아서 ‘예방차원으로’ 잘도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과는 인연이 먼 듯하다. 아무리 ‘공짜에 가깝더라도’ 이런 시설을 가는 것 자체도 꺼리게 되니까.. 아직도 우리는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으로 알고 자위를 한다.

 

¶  Dual PC Monitor: 나의 office가 아래 층으로 이사를 내려 오면서 아직도 전에 쓰던 ‘편리한 것’들이 다 setup이 되지를 않았지만 아주 거북이 걸음으로 하나 둘 씩 원상복구를 하고 있다. 그 중에 내가 제일 편리하게 쓰고 있던 것은 pc dual-monitor setup이다.  하지만 아래 층 나의 desk 는 벽에 기댄 모습이 아니고 ‘사장실’ 같이 open setup이라서 사실 desk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제일 멋지다. 하지만 21세기 office desktop에 pc monitor가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인데, 문제는 1 대가 놓인 모습이 제일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일단 2대가 놓이면 흡사 무슨 warehouse office처럼 보이기도 하기에 이번부터 single monitor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왼쪽 monitor에서 거의 항상 보이던 video (mostly movie, streaming media etc)가 없어진 것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러면 One Big Widescreen monitor는 어떤가? 물론 새로 $$$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실제 widescreen monitor로 test를 해 보니 역시 따로 떨어진 2대의 것과 다르고 불편하기만 했다. 결과는 이제까지 위층에서 쓰던 대로 조금 보기는 그렇지만 conventional dual monitor desktop을 쓰기로 하니.. 사실 보기에도 그렇게 ‘흉하지’ 않았다. 당장 left monitor에는 즐겨보던 video(from home file server) 들 (쿠로베의 태양, 공중을 나르는 타이어 등등)이 나를 즐겁게 하기 시작했다.

 

 

¶  예랑씨 부부와 점심 외식: 연숙의 문인화 buddy 예랑씨 (문인화 예명) 부부와 같이 토요일 도라빌 순교자 성당 성모신심미사 후에 Duluth H-Mart plaza 내에 있는 Stone Grill Korean BBQ & Grill restaurant에서 편안한 점심 식사를 즐겼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편한 부부’와 함께 맛있는 음식과 시간을 즐긴 것, 아주 좋은 idea였다. $$$만 많으면 지나치게 자주라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피곤이 풀리는 느낌… 세상에는 이렇게 서로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이 나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준다.

새로 생긴 정말 깨끗하고 정갈한 fusion style 도 괜찮아서 나중에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나보다 2살 밑인 바오로 형제님, 말이 적은 편이지만 시간을 들여서 사귀어보고 싶은 사람이고 부부임을 느낀다. 편하고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다음에는 예랑씨 쪽에서 우리를 treat한다고 해서 쾌히 ok를 했는데, 그때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Korean BBQ & Grill

 

¶  Sonata Battery at CarConnex:  월요일 아침, YMCA workout이 있는 날이다. 우선 아침 미사엘 가려고 나서는데.. 차의 시동을 거는 소리가 조금은 ‘게으르게’ 느껴진다. 다른 말로, engine starter motor의 cranking 하는 소리가 평소보다 느린 것이다. 결국 시동은 걸렸지만.. 문제는 아하~~ car battery에 문제가 있고.. 결국은 분명히 replace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달려서 charge가 되더라도 일단 engine이 돌지 않으면 금새 discharge가 될 운명이다.

하지만 성당을 빠질 수는 없어서 조그만 gamble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미사 참례가 끝나고 다시 시동이 걸릴 수만 있다면 그대로 우리의 hope Mr. Won (차 박사)의 CarConnex 로 달리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gamble은 성공해서 다시 시동이 걸리고 곧 바로 CarConnex로 가서 battery를 갈았다. 50,000 mile에서 한번 replace를 했는데 거의 100,000 에 가까운 시점에서 또 갈아야 하는 것, 오래 전 나의 경험으로는 요새 battery들이 전 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Mr. Won에게 말했더니 그도 동감이다. 요새 차들이 예전 차에 비해서 standby battery power를 많이 쓰고 있어서 그런다고 분석했다. 아마도 heavily computerized 되어서 그럴 것이라고 더 분석도 했다.

우리 집 조카 수경이(연숙 언니의 딸)를 통해서 우리와 인연이 있는 Mr. Won, 나이도 젊은데 정말 성실함의 본보기 청년으로 역시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잘 이끌고 얼마 전에는 Lower Roswell Road근처의 $600,000 집도 샀다고 자랑을 하며 picture도 보여준다. 이 청년을 보면서.. 이 사람이야 말로 ‘근본, character’가 건전, 건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비록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도 그가 믿는 것, 올바르게 믿으면 족하지 않을까? 앞으로 이 청년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가을비를 기다리며..

가을, 가을, 이제야 조금씩 가을의 느낌이 나에게 느껴지고 보이기 시작한다. 8월 말부터 시작된 surreal한 깜깜한 밤, 폭발할 듯한 절제할 수 없는 분노의 나날들에도 계절의 변함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솔직히 좋은 느낌이다. ‘과학적’ 가을은 이미 2주전에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나에게 어떤 다른 느낌을 주질 못했다. 그저.. 아하.. 이제부터 이른 아침이 더욱 깜깜해지겠구나.. 새벽에 1층으로 내려올 때 조금 불편하겠구나.. 하는 정도랄까..

비가 내린 지 꽤 오랜 듯한 느낌인데 곧 바로 내릴 비를 다시 기대하게 되었다. 올해 가을은 ‘평범한 비’가 아니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hurricane에 의한 비를 계속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지난 비는 거의 한달 전의 ‘진짜 hurricane’,  Irma 때였고 이번은 ‘조금 작고 얌전한’ tropical storm Nate의 영향이다. 큰 피해 없이 잔잔하게 비만 내려주기만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을비 우산 속’의 가을비 느낌이 아니고 ‘열대성 폭우’라서 조금은 아쉽다. 꿈에 그리는 ‘진짜 가을비’는 과연 언제나 올지..

오늘의 Bishop Robert Barron의 ‘복음묵상’ 글에는 다음의 글이 눈에 뜨인다. ‘자신을 버려야.. 자신을 잊어야.. ‘ 어떻게 나를 잊고 살 것인가, 오늘 내자신의 묵상 제목이 되었다.

The best moments in life occur when we lose the ego, lose ourselves in the world and just are as God wants us to be. – Bishop Robert Barron

 

Fresh Trash

오늘은 시월 첫 월요일인데 조금은 색다른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이유는 오늘부터 우리 집의 curbside trash collection이 월요일 아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은 금요일 아침에 수거해가는 trash company, Cycleworks라는 진짜 trash같은 service를 자랑하던 곳으로 근래에 들어서는 제시간, 제날짜에 trash truck이 아예 오지를 않거나 와도 버젓이 trash를 가져 가지 않는 희한한, 해괴한 광경을 보여주었던 경험들… 이 terrible service때문에 얼마나 골치를 썩였는지 모른다. trash service를 다른 곳으로 바꾸면 되겠지만 그것도 솔직히 귀찮은 것..

그러던 것이 ‘하늘이 도와서’ 이 trash같은 trash company가 경영이 안 되었는지 (너무나 당연한 결과) ‘얌전하게’ 다른 곳으로 우리들을 service를 넘겨 주었다. 그것 하나만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부터 우리 집 쓰레기를 가져갈 service는 우리 subdivision 대부분 이웃들을 service하던  American Disposal service인데 전통적으로 월요일 아침에 truck이 온다. 내가 목격했던 이곳은 거의 ‘틀림없이’ 한번도 miss를 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첫 월요일 아침, 역시 새벽같이 truck 의 소음이 들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쓰레기가 치워졌다. 이것이야말로 나에게는 Santa Clause같은 올 가을의 예기치 않았던 선물이 아닌가… 게다가.. 수거비도 전과 같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가끔 이런 ‘좋은 일’들이 ‘저절로’ 생긴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