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December 2019

¶  공식적 겨울이 시작된 동지 직후의 며칠은 올 겨울의 추위를 예고하듯이 뼈까지 저려오는 싸늘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이 깜깜하게만 느껴지는 초저녁은 과연 일년 중 제일 밤이 길었음을 실감하게 했다. 올 겨울을 맞으며 나는 작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하얀 눈이 ‘적당히’ 내리는 날 아틀란타 교외 Conyers 에 있는 Holy Spirit Monastery,  Trappists 수도원으로 연숙과 멋진 드라이브를 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곳의 gift shop의 coffee또한 일품이어서, 눈 나리는 수도원의 풍경과 함께 멋진 우리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역시 올해도 꿈으로 끝나는 듯하다.  아직까지도 전혀 눈이 올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이다.

작년에 비해서 성탄 트리, 장식은 조금 일찍이 끝났고 올해도 이것들은 새로니 생일 early January 즈음까지 성탄씨즌 동안 밤과 낮을 밝힐 것이다. 예년에 비해서 Hallmark holiday movie들을 훨씬 덜 보고 있다. 지난 2~3 년 동안 나는 이것을 정말 즐겨 보았지만 올해는 그렇게 마음의 한가함이 없었던 듯 하다. 갑자기 ‘망가진’ garage door opener  때문에, 성탄 바로 직전까지 tool time (replacing garage door opener) 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것도, 편하게 느긋하게 video를 볼 여유를 갖지 못하게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성탄 전야에 우리 extended family members 들이 모두 모일 수 있었다. 보통 4명이 모이던 가족행사가 올해는 6명으로 늘었다. 3월 초 출산예정인 작은 딸 부부,  내년 6월 결혼예정인 큰딸 새로니와 그의 약혼자까지 남녀의 비율이 1:1 이 되었다. 세월의 횡포인지 혜택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세월은 이렇게도 정직하게 흐른다는 것을 절감한다.

 

올해의 트리 장식은 연숙이 모두 했고, 가족들로부터 책을 포함한 선물도 받았다

 

¶  Smart Garage Door,   일년도 훨씬 지나간 작은 악몽의 추억이 아직도 머리 속에 삼삼하다. 2018년 새해 즈음에 갑자기 garage door가 오르내리는 모습이 이상하여 보니 extension spring 하나가 피곤한지 축 늘어져 있었다. 하나의 door 무게가 150 파운드가 넘는데, 2개의 door의 balance는 물론이고 그것이 오르는데 너무나 힘에 겨운 것이었다.  물론  늘어진 extension spring 탓이었음은 알았지만 다행히 opener motor자체는 아니어서 그대로 넘어갔지만 그때의 ‘작은 사고’는 악몽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점점 opener motor의 소리가 요란해지는 것을 알았고, 결국은 이번에 내가 보는 앞에서 door opener motor 에서 연기가 치솟으며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30여 년의 힘겨운 service를 마치고 ‘영면’한 것이다.  실망 전에 나는 이’놈’에게 감사를 드렸다. 참 오랫동안 정직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이것이 망가지면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 무거운 차고문을 차에서 내려서 손으로 열고 닫는 것, 못할 것은 없지만 비라도 오거나 하면 낭패지만 새것으로 바꿀 때까지 며칠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급하게 Home Depot에 가서 opener model을 살펴보고 Internet을 뒤지고 해서 찾은 것이 Chamberlain B750란 놈인데, Belt Drive라서 아주 조용하고 게다가 소위 말해서 Smart Model로 Smart Phone App으로 control이 되는 것인데 나는 이 사실 보다는, 전에 쓰던 screw drive보다 훨씬 ‘조용한’ belt drive라서 이것을 골랐다.

 이것을 고르고 산 것은 쉬운 일에 속하고, 이것을 손수  install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나의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Pro의 service도 있지만, $100이상임은 둘째치고 나에게 이런 option은 한마디로 ‘최후의 선택’에 속한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것은 나의 몫인 것이다.

나이의 영향인지 tool을 다루는 감촉도 예전과 같지 않아서 사실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전에 garage door spring 사고를 당한 경험도 별로 즐겁지 않아서 일을 선뜻 시작하기가 싫었지만 일단 시작이 되면서 거의 ‘자동적’으로 나의 머리는 ‘공돌이’의 그것으로 서서히 바뀌고 결과적으로 며칠 만에 우리는 최신형 smart garage door opener의 혜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설치 후 첫 번 가동시에 놀란 것이.. 너무도 조용하다는 사실이었다.  전에는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그것이 가냘픈 소음 정도로 변한 것이다. 또한 smart phone으로 control이 되면서 문이 열린 상태를 real-time으로 알 수가 있다는 것, 이것도 아주 편한 점이다. 가끔 집을 떠난 후에  ‘내가 문을 닫았는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 공정을 되돌아 정리하면 사실 괴로운 순간 순간들이 도처에 매복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또한 각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에 접해서 시간이 pro에 비해서 훨씬 오래 걸렸지만 이것은 나에겐 큰 문제가 안 된다. 시간이 넉~넉 하기 때문이다.

 

아주 매섭게 싸늘한, 빙점으로 향해 올라가려 애처롭게 안간힘을 쓰는 아침, 무섭게 새파란 하늘이 나를 더욱 움츠려 들게 만든다. 겨울 시작의 선을 긋는 동지를 이틀 앞둔 날 치고는 seasonable한 날씨일 듯하다. 하지만 조금 더 바란다면 조금 ‘덜 싸늘하고’,  조금 ‘더 흐린’ 그런 아침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떨칠 수가 없다. 나의 느낌은 조금 덜 싸늘하고 포근하게 되지 않았을까…

조금 쳐지는 기분을 뜨게 하는 것은 역시 coffee grinding 소리와 곧 이은 아늑하고 감미로운 향기가 있고 조금은 들뜨게 하는 소리, 음악이 있다. Big Screen TV로 kitchen에서 보게 된  YouTube는 2년 전 이맘때에 심취해서 보고 또 보고 듣고 했던 Handel’s Messiah 연주공연이 아닌가.  이 공연은 comment로 알게 되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이 합창단과 orchestra는 동구권인 Czech Republic, Prague였다. 이 공연을 보면서 비로소 conductor의 역할을 실감하게 되었다. 전 공연을 마치 마술에 이끌리듯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HD이 아닌 ‘조잡한’ video였지만 그런 문제는 생동감이 넘치는 audio가 모두 감싸주었다.

 

 

Collegium & Collegium Vocale 1704

Vàclav Luks, Director

Hana Blazikova, Soprano

Delphine Galou, Alt

Markus Brutscher, Tenor

Marián Krejcik, Bass

Recorded at l’Abbatiale Saint-Robert de La Chaise-Dieu, 21 August 2011

 

Classical music에 거의 문외한이었던 나는 뒤 늦게 이런 인류의 보물을 조금이라도 알려고 노력은 했지만 역시 역부족에 미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젊었던 시절의 이 분야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는 것이 치명타였다. 추억의 매력이 전혀 없이 ‘공부’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죽음의 강을 넘어가게 인도하는 길잡이인 가톨릭 신앙의 도움을 전적으로 받고 있고 이 Handel의 걸작품 역시 그런 시각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모두 이 ‘메시아’가 주인공이 아닌가?

 

¶  세 번째 대림초가 켜졌다. 대림 제3주를 맞는 것이다. 또한 2010년대 마지막 해 2019년 마지막 달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공식적 겨울인 동지가 일주일 정도 남았고,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시기가 시작되는 25일을 열흘 앞두고 있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예년에 비해서 일찍 성탄장식의 불들 켜지기 시작했는데, 너무 일찍 시작되는 ‘축제분위기’를 자제하라는 교황의 권고 영향인지 몇 년 전부터는 확연히 ‘기다리는 분위기’로 바뀐 것을 느끼고 있다.

나 자신도 그런 것이 싫어서 가급적 성탄 전에 가깝게 조금씩 장식을 시작하려고 했고, 확연히 그것은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 것을 실감한다. 성탄절,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대림절, 그러니까 성탄절 전까지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고 축제 분위기는 성탄부터 시작이 되는 것, 거의 나의 모든 생애에 걸쳐서 나도 ‘세속적’으로 살았음을 알게 된다.

올해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사도 요한 주임신부님의 바람인지 올해는 성당의 장식들이 일찍 준비가 되었고, ‘사상 초유’로 성당건물 밖에 ‘사람이 살만한 크기’의 거대한 구유가 설치 되었다.  성탄의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실감나게 보여주려는 ‘선행 투자’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  ‘새’신자 안내:  12월 한달 동안 내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교중미사  (새)신자안내의 역할을 맡았기에 한달 동안 우리는 ‘의무적’으로 한국성당엘 와야 한다. 따라서 12월 모든 주에 우리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 미국성당의 교중미사는 모두 빠지게 되었다. 평일, 매일미사를 미국성당으로 가기에 큰 ‘심리적’인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허전한 것은 사실이다. 이럴 때 나는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내가 미국에서 사는가, 대한민국의 연장선에서 사는가… 장기간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것에서 나는 편치 않은 그 무언가 항상 느낀다. 그 무언가 확실치 않은 것, 그것이 나는 싫은 것이다.

신자 안내, 사실은 주보를 나누어 주며 인사를 하고, 혹시 새 신자가 소개되면 그들을 미사 후에 ‘접대, 신자등록’ 하는 것인데, 3주를 연속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 것이 되었다. 성당 정문 안에 서서 들어오는 교우에게 주보를 나누어 주며 따뜻한 인사를 하는 것, 이렇게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win-win’중의 극치, 인사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 그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흠… ‘웬수’의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온다면?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택의 여지는: (1) 공손히 인사하며 주보를 건네준다. (2) 얼굴은 안 보고 주보는 건네준다. (3) 얼굴을 똑바로 보며 전혀 모르는 사람취급을 한다. (4) 안 본 척하며 비켜선다. 여기서 나는 아마도 (2) 아니면 (3)을 선택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은근히 그 ‘레지오 미친X’ 의 얼굴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주친 교우들은 100% ‘천사’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3번씩이나 경험한 이 ‘교우신자안내’ 일은 즐거운 일로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 서서 안내하던 연숙은 그런 행운이 없었다. 바로 그쪽으로 ‘웬수’의 ‘가오’가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 ‘웬수’가 그렇게 당당하게 접근했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기에 놀랐던 모양이고, 결과적으로 신부님께 ‘성사’를 보게 되는 사태까지 갔다. 결과적으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겠지만 앞으로는 그 ‘웬수’가 다시는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  Rock-Bottoming Out: 지난 주 레지오 주회합을 기점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완전히 바닥까지 갔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제일 우리가 ‘차세대’을 지향하며 희망을 걸었던 두 자매, 모두 극복하기 힘든 복잡한 가정사정으로 물러나고 실제로 움직이는 단원이 기본적인 요건을 채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에는 단원의 숫자가 그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편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장의 입장이 되고 보니 이것이야 말로 기본적 요건 중의 제일 중요한 것, 왜 몰랐을까?

이렇게까지 된 제일 큰 원인은 2년 전에 그 ‘레지오 미친X’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미친X’은 개인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우리 레지오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  이 사실만은 내가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할 것이고 아니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을 하였다. 우리 둘의 결론은 그 ‘미친X’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뉘우칠 능력이 결여된 불구자’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새해에 과연 신단원 후보가 나타날까? 신부님의 적극적인 본당차원으로 홍보는 하고 있지만 암만 보아도 요새 교우들,  친교나 노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실망적이다.

 

¶  Tool Time’s Coming! 우리가 이사올 당시에 있었던 garage door opener 가 드디어 마지막 숨을 쉬었다. 몇 달 전부터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garage door가 움직이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늦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motor의 소음소리가 더욱 더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가 이사를 온 때가 1992년 봄이니까 최소한 이 garage door opener는 거의 40년에 가까워 온다. 이 정도면 훨씬 전에 retire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것은 ‘장수 長壽’를 한 셈이다.

새것을 찾아보니 완전히 wifi/internet까지 겸한 hi-tech model 들 투성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힘찬’ powerful motor 로  2개의 문짝을 문제없이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된다. Home Depot website 에서 찾아서 사온 것은 $200 짜리 Chamberlain model B750 , 3/4 hp인데 이것은 지금 것이 screw drive인데 비해 belt drive라서 noise level이 훨씬 낮을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좋겠지만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점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교체하는 ‘쉽지 않을 수 있는’ 일거리가 남았다. 한번도 내 자신이 이것을 설치, 교체해 본적이 없기에 불안한 점은 있지만 ‘만능 교실’ YouTube를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실제로 교체하기 까지는 차가 드나들 때마다 근육으로 문짝을 올리고 내리고 해야 하는데 소낙비가 오지 않는 한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닐 듯 싶다. 다만 절대로 젊어지지 않는 나이가 문제라면 문제다. 절대로 절대로 작년 Hyundai Sonata의 Fuel Pump 교체하던 때의 실수, 악몽을 잊으면 안 된다. 나의 지나간 시절의 기술적 감각에 연연하면 안 된다, 안 된다.

 

¶  스테파노: 정말로 오랜만에 박스테파노 형제님 부부와 마리에타 소재의 ‘싸리골’ 이란 한국음식점에서 주말의 밤 늦게까지 식사를 하며 즐겁고 보람 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이곳은 비록 우리동네인 마리에타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일들이 주로 도라빌에 가는 기회가 더 많아서 가끔은 이곳을 잊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한국사람보다는 이곳 사람(보통 미국사람이라고 칭하는)이 훨씬 더 많은 듯 보였다. 한국의 ‘고기요리’가 이곳에 많이 알려지면서 이곳도 business가 전 보다 더 활발한 것 같았다.

이 스테파노 형제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이 불과 2년이 조금 넘었지만 부부의 나이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고 관심사도 그렇게 서로 멀지 않음을 알았다.  현재 business를 모두 정리하려고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고생하는 것을 알기에 하루 빨리 모든 것이 해결되어 편하게 retire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대출신인 형제님의 관심사는 나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는 ‘양자 물리학 quantum physics’ 의 각도에서 본 신앙체계도 있는데 이 형제는 나보다 더 ‘동양사상’까지 가미가 되어서 요새 읽었던 Fritjof CapraTao of Physics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부부가 서로 다시 만나서 이런 흥미로운 화제로 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헤어졌다.

세월은 흘러 흘러 어느새 겨울이 되어가는가? 올해 날씨의 특징이 있다면 일단 일기 패턴이 자리를 잡으면 별로 변하려는 기운이 없다는 것,  그렇게 익숙하던 옛날의 三寒四溫 이란 말은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다행히도 그 pattern이란 것이 ‘늦가을 초겨울 같은’ 그런 것이라 다행이라고 할까..

지나간 11월 초라고 기억되는 때에 벌써 요란한 Christmas carol이 흘러나온 곳은 의외로 ‘대한민국 극동방송, FEBC streaming service’이었다. 역시 대한민국의 개신교회는 이곳과는 조금 다른가..  어떻게 이렇게 일찍이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가? 덕분에 추억의 캐럴을 편하게 즐기게는 되었지만 Thanksgiving holiday 전에는 그렇게 편한 느낌은 아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실 그런 세속적인 느낌의 성탄축제 보다는 ‘대림절, Advent‘의 엄숙하게 예수탄생을 기다리자는 전통이 있어서 매년 고민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전통’과 ‘현세적 문화’를 절충하는가 하는 문제다. 전에는 젊은 시절의 추억적인 크리스마스 기분을 100% 기억, 만끽하려고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교회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모든 holiday decoration을 성탄 10일 전 이내로 늦추고 있다. 한마디로 차분한 대림절이 되었고 대신 성탄의 기분을 1월 중순까지 지속시키려 노력을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림-성탄시기의 뜻일 것이다.

 

12월이 되자 YMCA에서 성탄느낌의 색깔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도 본격적으로 성탄 장식은 물론 주차장에는 Nativity scene 성탄구유 까지 만들어 놓았다. 우리 성당에서 이런 건물 밖의 구유는 처음 보는 듯하다.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신부님이 이런 것을 특별히 원하셨는지 올해는 조금 모든 것들이 더 일찍, 더 ‘요란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을 조금 더 배려한 것은 아닐지…

 

Christmas at YMCA,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2019

 

오늘은 예년에 비해서 1주일 뒤늦게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가 열렸다.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이 모임에 참석한 것이 딱 10년째가 됨을 알았다. 갑자기 ‘오래 되었다..’ 라는 自照감이 ‘엄습’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 많이 변했다.. 

나에게 처음 레지오 연총 (2010년대 초 연차 총친목회)의 적극적이고, 참신했던 느낌은 많이 희석된 듯 느껴지고 이제는 조금은 ‘수수방관자’적인 입장이 된 듯해서 조금은 쓸쓸하기까지 하다.  통기타반주로 70/80노래를 목청을 돋구어 부르며 연총 에서 어울렸던 여러 형제님들도 이제는 뿔뿔이 헤어지고, 결국은 ‘별로 쓸모 없는’ 자매님들만 주위에 남은 듯하다. 이것이 레지오의 生老病死인가 아니면 보통 있는 진화과정인가..

나이로 보아도 leading edge에 있는 우리들, 이제는 조금씩 후진, 후배 단원들의 ‘양과 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양과 질 모두 정체, 아니 퇴보인 듯 우려되고, 어제 있었던 신부, 단장 간담회에서는 정식으로 ‘신부님의 전폭 협조’ 요청이 있었다.  협조란 것은 다름이 아닌, 조금이라도 좋으니 ‘레지오 선전’을 해 달라는 것이었고, 오늘 교중미사에서 드디어 그 효과가 나왔다. 전 신자들에게 레지오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간곡한 언급’.. 얼마나 ‘멋진 신임 신부’인가!

오늘 연총에서 우리는 예상대로 ‘공연’을 포기한 상태로 끝났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올해 초에 우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의 구세주로 등장했던 ‘자매님 들’,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고 갑자기 떠난 상태에서 나는 모든 희망을 잃은 상태가 되었기에 사실 연총 같은 ‘축제’는 관심 밖에 있었다. 그 ‘기대주 자매님’은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었는지 동정심과 실망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인데.. 이런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지 역시 해답은 우리의 총사령관이신 성모님이 가지고 계실지…

¶  제일 따뜻한 양말도 별로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겨울느낌의 늦가을이 서서히 계절상의 겨울로 향해 서서히 흘러간다. 더위보다는 추위가 낫다.. 라는 깊숙한 추억으로, 이런 쓸쓸한 싸늘함의 일초 일초를 즐기고 있다. 비교적 유순한 날씨의 차례가 끝나고 매서운 바람에 실려온 시베리아[이곳은 캐나다] 성 냉랭함은 달력의 넘김과 더불어 세월의 움직임을 다시 느낀다.

오늘은 예기치 못한 off day가 되었다. 얼마 전 나를 ‘가볍게 [flu-shot덕분인지..]’  스쳐간 감기가 이번에는 드디어 연숙에게 닥친 것. 이럴 때마다 우리가 공감하는 것 하나가 있다. ‘이른 아침에 (돈 벌러) 나가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다…’ 라는 안도감. 언제까지 우리가 현재의 pace로 뛸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살 날이 그런대로 남았다면 이럴 때는 조금 쉬면서, 천천히 가면 됨을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게 되었다.  그래… 하루 푹~ 쉬면 되는 것 아닌가?

근래에 자주 성당 공동체 주변에서 알게 된 나이가 엇비슷한  ‘친구’들을 통해서 그 동안 익숙지 않았던 ‘다른 삶’들을 알게 되면서, 아직도 꾸준히 매일 매일 일하는 형제, 자매님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최소한 육체적으로는 편안한 것이라는 사실. 특히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도 ‘새벽같이 집을 나간다는’ 사실을 자꾸 잊고, 실없고, 무심한듯한 comment를 하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일년 열두 달, 매주 ‘레지오 마리애 화요일’이 우리에게는 主日과 더불어  laborious week 의 절정이기에 수요일 아침에는 언제나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은 유혹이 오고 ‘감기’와 같은 사유가 생기게 되면 다음날을 ‘반가운’  off-day로 결정을 한다.  그래도 daily morning mass는 우리에게 변함없는 7년 째 전통과  rule 이기에 이것을 거르게 되면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하지만 매일 아침 보는 정다운 regular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것이 우리가 ‘우연히 시작한’ best ever life habit 임을 상기하면 절로 무한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  거의 두 달 만에 Ozzie[새로니 pet dog]가 우리 집으로 ‘휴가’를 와서 열흘 넘게 머물게 되었다. 거의 14년 동안 우리 가족이었던 가족, Tobey가 작년 여름에 영원히 잠을 든 이후로는 다행히 Ozzie가 가끔씩이지만 거의 정기적으로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있다. 가을이 되면서 동네를 개와 천천히 걸으며 단풍, 낙엽 등을 감상할 기회가 그리워지곤 했기에 은근히 Ozzie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집에 pet sitting을 하게 되면서 새로니 는 조금 자유스럽게 되니 얼마서 좋은 일인가?

 

¶  Topless Natalie : 요새 심심할 때면 소일거리로 75+년 전의 LIFE magazine을 본다. 내가 태어나기 전 것이지만 20세기 최대의 사건인 세계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미국의 눈’에 비친 세계상을 화보 중심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신기하기에 즐겁고 보람된 소일거리로 삼게 되었다. 오늘 우연히 본 것 중에는 topless Natalie (Wood)가 있었다. 비록 6살 짜리 아이의 천진스러운 모습이지만 사진의 주인공이 우리시절의 잘 나가던 여배우 Natalie Wood 인 것, 그것도 상체가 모두 드러난 모습… 이런 사진 배경을 전혀 모르고 인터넷으로 이 모습만을 유포를 하면 요사이 태어난 젊은 아이들 아마도 pedophile로 FBI에 고발이라도 하지 않을까.. 웃음이 난다. 그녀의 부모가 Russia출신이라는 것과 그녀가 매력적인 것 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주 우수한’ 여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창 시절에 사고로 익사한 것 등등으로,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난 The CarpentersKaren Carpenter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아~~ 모두 옛 이야기들…

하태수 신부님 미사 강론집: “추수 秋收 나누기“가 드디어 몇 개월여의 산고 産苦 끝에 대림절 주일부터 성당 내에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주임으로 계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주일, 평일미사에서 강론하신 원고가 모여지고 편집이 되어서 200여 페이지의 아담한 책으로 나온 것이고,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는데 100% 수익금은 본당 발전기금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지난 여름에 이 책을 ‘편집’하는데 연숙이 참여를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거의 혼자서 ‘편집, 교정’을 한 셈이 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나도 교정과정에 참여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올 때는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판매’의 결과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강론집을 읽으며 나는 ‘추억의 강론’ 시절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2011년부터 2015년 까지 나의 교회 생활을 돌아보는 셈이 된다. 그 당시에는 주일미사를 대부분 미국성당으로 갔기에 한 신부님의 많은 주일강론을 못 들은 셈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잊지 못할,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그런 강론이 하나 있었다. 

2014년을 전후로 한 시절, 나에게 거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분으로 산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주로 절체절명의 심각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두려움과 희망, 의지와 나약함’이 교차하는 극과 극의 감정을 경험하던 때, 나는 2014년 부활절 강론을 듣게 되었다. 그때의 그 한 강론으로 나는 모든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을 떨칠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것이 그 이후로 두고두고 나의 희망적인 메시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나는 하태수 신부님을 잊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이 ‘추수 나누기’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Dec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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