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Blog: 김인호의 조갑제 컬럼 4


대한민국 산업화 경험이 계발(啓發)시켜준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2014.06.23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은 지난 반(半)세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계 유일의 나라라고들 해외에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칭송한다. 그런데 민주화에 대해서는 대한민국과 태극기와 애국가를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광화문 한복판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만 참다운 민주화라 외치는 반국가무리들의 회괴한 주장으로 인해 민주화의 의미가 엄청 변질·왜곡되었다고 보는 이가 국내에 다수인 반면 산업화 성공에 대해서는 국내외 그 어느 누구든 이의(異意)를 달지 않는다.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는 산업화 성공과 관련하여 참으로 운(運)좋게도 지난 40여년 이상 산업체와 정부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아주 값진 연구기회와 산업연구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는데 이를 잠시 더듬어 보고자 한다.
 

  • 1969년 공군중위 제대를 두 달 앞둔 5월 어느 날 우연찮게 합류하게 된 KIST에서 전문성도 없으면서 당장 POSCO 건설타당성연구의 실무책임을 맡아 수행해야했던 연구경험이 바탕이 되어 필자는 철강에 뒤이어 1981년까지 10여 년간 KIST,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KNFC(한국핵연료개발공단), KAERI(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정부가 주도했던 정보통신, 자동차, 전자, 에너지, 교통, 핵연료 등 중화학관련투자 사업에 대한 타당성연구(feasibility study)를 주도적으로 심도 있게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 교직으로 옮긴 후 필자의 손을 거쳤던 투자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순항(順航)하고 있음에 대해 뿌듯하게 느끼며 그 성공원리를 이론적으로 구명(究明)하고픈 강렬한 연구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 1980년대 중반 KTA(현 KT의 전신) 장기발전전략연구 책임자로서 ATTACK 전략을 제시했던 필자의 연구경험에 비추어 후속으로 이어진 Harvard Business School의 Michael Porter 교수팀 Monitor Consulting사가 보여준 KTA 전략 연구결과에 대한 실망은 필자로 하여금 감히 Dynamic Management라는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을 독자적으로 계발하고픈 열망을 강력하게 촉발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ATTACK이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미·소 양극체제 붕괴가 전자통신에 줄 충격과 이에 대해 KTA가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의 관점에서 제시한 전략으로 이는 ‘Advanced Total Telecom AdvantageCreating KTA: 첨단의 유·무선통신을 통해 우위를 창출하는 KTA가 되라’는 뜻의 이니셜로 표현되는 전략슬로건인데 포터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아무리 뜯어봐도 이런 측면이 전혀 담겨져 있지 않았음에 필자는 대단한 실망감을 느꼈으며 나아가 독자적으로 연구하고픈 강한 의욕을 갖게 되었다.
  • 1990년대 초반 한국주택은행(현 국민은행과 합병이전의 국책은행) 장기발전전략 연구프로젝트 책임자로서 그리고 뒤이은 3여년 이상 주택은행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와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다소나마 눈뜨게 된 세계금융의 주도세력과 그들의 행보, 특히 1984년 신자유주의의 기치아래 추진된 레이건 정부의 규제완화(deregulation)가 금융업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필자는 궁금증이 컸었다. 왜냐하면 규제완화 이후 재무 분야에서 위험관리(risk management)라는 미명하에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이라는 신(新)용어를 들고 위험을 사고파는 희한한 돈놀이꾼들이 등장하여 금융파생상품(이는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제로섬zero-sum이므로 이 시장을 유지하는 비용만큼 사회에 부담을 주는 네거티브 섬 negative sum의 해악상품 임)을 통해 미국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월가(Wall Street)를 주도하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한편 1997년 IMF 금융위기로 대기업(재벌) 반(半)정도가 파산한 충격과 그 후 살아남은 기업들이 2008 미국발 경제위기에서 오히려 선방하며 한국경제를 업그레이드 시켜 온 산업화 성공경험은 필자로 하여금 한국 재벌구조(Chaebol Structure)의 진화논리와 기업의 지속번영원리를 보다 일반적으로 이해·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정립하고픈 강한 열망을 더해 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열망이 생길 때마다 참으로 공교롭고 다행스럽게도 필자에게 기업과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뒷받침 되어주어 필자는 산업·기업·사업연구에 대하여 폭넓고 심도 있는 연구를 그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으며 이런 연구경험을 토대로 세계 석학들과 학문적 교류를 가지며, 다이나믹 매니지먼트(Dynamic Management)라는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을 구축해 올 수 있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늘 감사하며 대한민국과 우리 기업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다.
 
물론 때론 기업인들 중에서 장사꾼 행태의 일탈을 저지르는 경우를 접할 땐 그래서 더 큰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국력의 원천과 양질의 일자리 진원지는 기업이다. 그런 우리의 기업들이 지난 40여 년간 발전해 온 경험을 토대로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를 구축할 수 있었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는 한마디로 니즈진화에 적응하는 혁신경영이며 이는 니즈맞춤혁신(needs-focused innovation)으로 대변될 정도로 고객니즈 밀착혁신을 강조한다.
 
고객맞춤혁신은 니즈진화가 거의 없는 경우에서건 니즈진화가 빈발(頻發)하는 상황에서건 기업은 언제나 구매력을 지닌 고객 중에서 자신의 니즈충족을 위해 구매/지불의향(willingness to purchase/pay: WTP)을 갖고 있는 바로 그 니즈(이를 현시니즈 explicit needs라 함)를 충족시켜줄 제품·서비스를 혁신을 통해 개발·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상식(常識)에 기초한다.
 
그래서 고객이 지불의향을 지니는 경우를 구명(究明)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거래조건과 최대의 지불의향수준(이를 이상적인 모범답안이라는 의미로 Norm이라고 부름)이 어느 정도일가를 탐색(seek norm)하고 기업에서 혁신을 통해 이를 달성하면(get to norm) 언제나 그 기업은 성공한다는 혁신논리를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는 제공해 준다.
 
‘Seek Norm & Get-to-Norm: 모범답안을 찾고 답안을 써라’는 혁신논리는 기업의 모든 활동은 모름지기 고객으로 하여금 우선 자사의 제품·서비스에 대해 지불의향을 갖게 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는 여타의 기업 활동들이 제 아무리 호소력 있고 사회적 명분과 사회적 공헌이 크다손 치더라도 자사의 제품·서비스를 고객이 사주지 않는다면 기업은 곧 끝장이라는 상식에 기초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경영학분야에서 그간 왜 크게 강조되지 않아왔던 걸까? 아무래도 그 연유는 경영학의 태동배경이었던 대량생산체제 탓이 아닌가 싶다.
 
개관컨대 20세기 초반 대량수요가 형성되어 있었던 미국의 산업현장에서 태동한 (정태)경영학의 주관심사는 대량생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운영하는데 있었다. 대량생산시스템에서 각 요소들이 제 기능을 잘 수행해 주기만 하면 전체가 잘 돌아가는 상황(이를 요소환원주의: reductionism라고 함)에서 투입과 산출 비율(input-output ratio) 곧 능률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핵심 관심사였다.
 
1970년대 후반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전기통신산업현장에서 대량생산체제가 유지되어 온 관계로 그때까지 경영학에서의 주된 이론/모델/방법/기법은 요소환원주의에 입각하여 생산성을 증대시키는데 집중되어 왔다.
그런데 1980년을 전후하여 디지털혁명이 일어나고,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초(超)경쟁상황이 심화되던 산업현장에서는 능률/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계속하되 생존하려면 우선 경쟁자보다 우위를 점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호소력을 지니면서 경쟁우위 달성을 강조하는 전략경영이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기존의 경영학에서 전략경영으로 진화했다고 해서 그간 강조되어 온 능률향상을 등한히 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능률향상만으로는 경쟁상황에서 생존이 불투명하므로 우선 경쟁자보다 상대적으로 경쟁우위를 점해야한다는 주장이 강조되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2000년대를 전후하여 인터넷시대가 글로벌 차원에서 보편화되고 스마트 혁명이 전개되면서, 더욱이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을 거쳐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으로 진행되어가면서 기업 및 산업시스템은 선형세계에서 비선형세계로 패러다임이동(paradigm shift)이 급전하고, 힘이 기업에서 고객으로 옮아가는 권력이동(power shift)이 심화되면서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이 요구되게 되었다.
 
그간 대량생산체제에서 산업·기업·사업시스템의 각 요소마다마다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 주면 족했던 선형세계에서와는 달리 인터넷/스마트혁명은 산업·기업·사업을 각각 하나의 전체로서(as a whole) 인식(이를 전일주의: holism라고 함)하고 요소와 요소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비선형세계에 부합하는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의 등장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으며 또한 고객이 힘을 쥐는 상황이 전개되자 고객이 구매력을 지니더라도 구매의향을 갖는 경우와 구매의향이 갖지 않는 경우를 구분해서 다룰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이 요구되게 되었는데 이를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다. 이런 의미에서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는 인터넷/스마트혁명시대에 부합하는 경영패러다임이다.
 
그런데 선형세계란 비선형세계에서의 특수한 한 경우이며, 또한 고객이 힘을 쥔 상황일지라도 고객이 그 힘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라면 이는 바로 기업이 힘을 쥐고 있는 경우와 같으므로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는 이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선형세계에서건 비선형세계에서건 또 기업이 힘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건 고객이 힘을 쥐고 있는 경우에서건 항상 통하는 이익추구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profit-seeking)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는 혁신의 성공논리로서 그리고 기업의 지속번영원리로서 기업 및 산업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다.
 
기업레벨에서 이익추구 일반이론을 기초로 다이나믹 매니지먼트가 구축된 것은 마치 경제레벨에서 케인즈(Keynes)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기초로 거시경제(macro economics)가 자리자게 된 경우와 비견(比肩)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자족하며 감히 그리 생각해 보기도 한다.
 
현재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는 중국 북경대 MBA 정규 이수과목으로 가르쳐지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중국 전역으로 확산 중에 있고, 한편 한국 재벌구조의 진화논리가 영국 Wiley-Blackwell 출판사 경영백과사전 3판(2014)에 실려 전 세계경영학계와 산업계 및 컨설팅업계로 보급되며 글로벌 촌으로 퍼지고 있다.
 


김인호 교수는 서울상대(1965)와 공군장교복무후(1969),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전원자력연료(KNFC),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등 정부출연기관에서 10여 년간의 연구경험을 갖고 1981년 한양대학교에 부임하여 27년간 연구소장·학장·대학원장을 역임하며 주로 기업·산업연구에 전념했다. 2008년부터는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경상대학 경영학부 명예교수로 재임 중이며 현재 다이내믹 매니지먼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사업과 기업, 기술전략 관련 서적을 수십 권 저술하였으며, 최근 저서로는 2008년에 출판된 ‘Dynamic Management Theory’와 2010년에 출판된 ‘Why Industrial Hegemony Shifts’ 그리고 2013년에 출판된 ‘Dynamic Enterprise Strategy (Chinese version)’가 있으며 이들은 현재 amazon.com에서 판매되고 있다.
(자료출처: 동태경영학회 Dynamic Management Society)

 

Do you know where..

Do you know where you’re going to.. 오래 오래 태고적의 미국 pop song, 아마도 Diana Ross의 hit song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 노래는 나도 좋아 했던 기억이다. 멜로디보다도 그 제목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고 현재도 그렇다. 내가 조금만 방황하는 기분이 들면 이 ‘누가’ 이 제목의 말로 나에게 속삭이는 느낌을 받곤 한다. 요사이.. 몇 달간은 더욱 이 속삭임이 나의 귀를 잔잔히 감싼다. ‘경우야.. 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니?’ 엄마의 자상한 목소리로 들릴 때도 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완전히’ 알고 있는 우리 엄마가 답답하게 느끼셨는가.. 경우야, 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니..

그렇다. 비록 최근에 나는 ‘이상하게 으시시한 평화’를 가끔 느끼곤 하지만 그 뒤쪽에는 항상 이 말이 숨겨져 있다.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일까? 하지만 가끔 만끽하는 ‘평화’는 정말 의외의 것이다. 한달 여 나를 괴롭히던 치통의 고통도 조금 완만해졌고, 익숙해져서 그런가? 아닐 것이다. 지난 3년 넘게 ‘노력’을 한 보람일까? 그것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 성령님의 선물일까? 내일 벼락이 떨어져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평화.. 그것의 맛을 조금 보여주시는 것일까?

 

지난 5월 말의 레지오 피정.. 지나간 해 보다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맞았지만, 역시 old wisdom은 맞는가.. 예상보다 양과 질에서 비교가 안 되는 기대 이하의 것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문제는 안 된다. 내가 그곳에 갔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제 모두 익숙해진 ‘자매님’들을 대하는 것도 조금은 즐거운 일이 되고 있음에 나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어떨 때는 청춘의 한창 시절 명동의 어떤 곳에서 ‘멋진 아가씨’들을 보고 우리들 끼리 즐거운 상상을 하던 때를 떠올리기도 해서.. 이런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지 혼동을 받는다. 나와 하신부님을 제외한 모두가 여성들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가벼운 즐거움이요, 놀람으로 느껴지는 것.. 어떨까..신경을 쓸 것은 많다지만 반드시 나는 솔직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을 ‘이성’으로 느낀다는 사실은 과연 ‘억제’해야만 하는 ‘죄’일까..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것은 100% 나의 ‘속마음’의 영역이다. 하느님만 아실 것이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순간순간의 감정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