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양쪽 날개를 떼어 내고 텅 빈 운동장 복판에다 놓아 둘 것. 저물 녘 기어 다닌다는 외로움.

날개를 준비함. 장소는 꽃밭. 시간은 역시 저물 녘. 황혈염에 탄산칼륨을 가하여 가열한 다음 얻어 낸 백색의 고체, 청산가리. 그리고 승홍도 약간. 주사기를 사용함. 외로움을 느끼지 말 것. 기타.

 

삼촌은 단 한 번의 연애에는 비록 실패했었지만, 단 한 번의 자살에서 결국 성공한 사람이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아마 삼촌만큼 신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도 이 세상에는 드물 것이며, 삼촌만큼 신을 증오해 본 사람도 이 세상에는 드물 것이다.

삼촌은 말더듬이였다.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을 약 십 초 정도 목구멍에다 잔뜩 눌러 놓았다가 갑자기 퇴퇴퇴 뱉아 내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일단 뱉아 낸 뒤에도 순조롭게 말을 진행해 나가는 법이 없었다. 수시로 더듬거리곤 했다. 때문에 삼촌이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고, 아무리 슬픈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슬프게 들리지가 않았다. 마치 구충제 먹은 뒤의 민촌충처럼 토막이 나서 떠듬떠듬 삼촌의 입 밖으로 뱉아지는 삼촌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 진실의 반 이상이 이미 목구멍 속에서 삭감되어져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언젠가 삼촌의 아버지로부터 몽둥이로 심하게 매질을 당한 뒤로 생겨난 버릇이라는 거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비극적이 것은 삼촌이 다리를 전다는 사실이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모양이었다.

목발을 짚고 다닐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는 절름거리는 편이었다.

게다가 성장 과정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삼촌의 어머니는 삼촌이 어렸을 때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어디론가 도망쳐 버린 모양이었고, 삼촌은 줄곧 주정뱅이이자 폭군이었던 삼촌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모양이었다. 삼촌의 얼굴이 유난히 못생기고 키가 유난히 작았던 이유는 혹시 삼촌이 술과 몽둥이에 오래 찌들고 주눅들어 왔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삼촌의 아버지는 삼촌이 말을 더듬기 시작하면서부터 삼 년 뒤엔가에야 완전히 술잔과 몽둥이를 팽개쳤다. 개과천선을 한 것이 아니라 간경화증으로 죽어버린 것이다.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삼촌네를 도와주었던 친척들은 한편으로는 잘 죽었지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언제나 친척들이 자랑삼아 전통으로 간직해 왔던, 동기간으로서의 남다른 협동심을 끝까지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친척들은 다시 얼마간의 돈을 모아서 사석동 변두리에다 조그만 개인 화실 하나를 삼촌에게 꾸며 주었다.

삼촌의 소질을 살려주자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삼촌은 그림에만은 남다른 재질을 갖추고 있던 사람이었다. 혼자 공부해서 관전에도 몇 번 입상을 했던 적마저 있었다. 삼촌은 남들이 신에게서 찾으려 들었던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그림에서 찾아보려고 발버둥쳤던 사람이었다.

삼촌은 친척들이 사석동 변두리에다 꾸며 준 개인 화실에서 두문불출 그림에만 몰두해 있었다. 날마다 영혼의 즙을 짜내어 캔버스 속에다 적시면서 삼촌의 내부에 무겁게 누적되어 있던 어둠을 걷어 내려고 노력했었다.

그렇다. 신이 삼촌에게 내려 준 혜택은 단지 그림에 대한 재질과 정열 그것뿐이었다. 그외의 모든 것은 가혹한 형벌과 쓰라림뿐이었다. 아니다. 신은 또 하나의 혜택을 삼촌에게 내려 준 적이 있기는 있었다. 한 여자로 하여금 삼촌의 그림에 도취케 만들고, 삼촌으로 하여금 그 여자의 모든 것에 도취케 만들어, 마침내는 그 여자가 삼촌의 애를 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일–.

그러나 삼촌이 차라리 한 마리 날개 없는 파리로 태어나게 만들지 않고 다리를 저는 인간으로 태어나게 만든 것이 신의 첫 번 째 실수였다면, 그 여자로 하여금 삼촌의 그림에 도취케 만들고, 삼촌으로 하여금 그 여자의 모든 것에 도취케 만들어 마침내는 그 여자가 삼촌의 애를 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일은 신의 두 번 째 실수였음에 틀림없다.

그 여자가 삼촌의 화실을 방문한 것은 어느 여름 장마비가 개고 난 뒤의 해질녘이었다. T셔츠에 청바지 차림. 한 쪽 손에는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나른하고 염세적으로 생긴 여자였다.

그 여자의 나른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옳을까. 보는 사람의 세포까지 환각제가 스며든 듯 나른해져서, 차츰 그 여자를 한 번만 가만히 안아 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그 여자의 이상한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옳을까.

“그림– 좀 구경해도 되나요?”

그 여자는 그렇게 말해 놓고 나서도 잠시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목소리까지 나른한 여자였다. 기우는 서녘 햇빛이 창문으로 비쳐들어 그 여자의 한 쪽 어깨를 치자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비가 갠 뒤였으므로 그 햇빛은 맑고 깨끗해 보였으며, 그 여자는 그 햇빛 속에 금방 나른하게 녹아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구– 구경하십시오.”

한참만에야 삼촌이 대답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더욱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게 삼촌이었다.

그 여자는 삼촌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그만 이를 드러내고 역시 나른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벽에 걸린 그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삼촌은 주로 폐인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즐겨 그려 왔었다. 이를테면 행려병자, 아편장이, 알콜 중독자, 미치광이 같은 사람들이 작품의 주된 소재였다. 완성된 삼촌의 그런 작품들은 한결같이 만지면 화면 전체에서 썩은 곰팡이가 손가락 끝에 묻어 나거나, 간혹 그 폐인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의 늑골 사이로 어떤 고통의 신음소리 같은 것이 새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또 가끔 삼촌은 곤충들의 애벌레를 즐겨 작품소재로 삼아 보기도 했었다. 삼촌은 어둡고 습기 찬 바탕색 위에다 아주 꼼꼼한 필치로 그 곤충들의 애벌레를 한 마리 한 마리씩 그려 넣곤 했었는데, 완성된 후에 보면, 그 곤충들의 애벌레는 마치 부패한 동물들의 시체 속에 득시글거리는 구더기들처럼 화면 속에 가득 들어 차 스물스물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삼촌은 참혹한 자기 자신을 캠버스에다 옮겨 놓고 싶어했었던 것이다.

삼촌은 이제 그 여자가 그림 앞으로 옮겨 다닐 때마다 마치 실기 대회에 나온 중학생이 심사 광경을 엿보고 있을 때처럼 몹시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삼촌이 여자에게 자기 그림을 공개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림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한 번도 삼촌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그냥 오래도록 주의 깊게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어느 그림 앞에선가 현기증을 느낀 듯 이마를 짚으며 비로소 낮게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아! 그 그림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한 폐인의 시체를 그린 것이었다. 어두운 바다 밑, 한 사내가 모래 위에 누워 있었다. 늑골 속이 휑하니 비어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휑하니 비어 있는 늑골 속에 녹슨 칼 한 자루만 놓여 있었다. 머리말에는 시집이 한 권, 빈 술병도 몇 개 쓰러져 있었다. 사내의 야윈 팔이며 다리에는 바다풀이 감겨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고, 바다 밑 저 끝으로도 노을이 감빛 음악처럼 번져서 사내의 영혼을 헐어 주고 있었다.

그 여자는 실내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서도 다시 그 그림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다가, 천천히 삼촌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직도 어떤 환상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저기 저 그림 보러 가끔 여기 와도 괜찮겠어요?”

삼촌이 쾌히, 그러나 심하게 말을 더듬으면서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 후부터 정말로 가끔, 그 여자는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폐인을 보러 삼촌의 화실을 방문하곤 했었다. 차츰 삼촌은 그림보다 그 여자를 기다리는 데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되었고, 그 여자가 오지 않는 날은 아무 일도 못한 채 하루에도 몇 번씩 밖을 내다보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화실 안을 서성거리게 되었다.

가을이었다. 삼촌은 차츰 밤을 세우는 일이 많아져 갔다. 삼촌은 엉뚱하게도 그 여자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에 몰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촌의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이 과연 진실이라면 어떻게 삼촌이 그 진실을 편지 속에 충분히 표현해 넣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 여자에게 전달해 줄 수가 있었을 것인가. 본디 진실이란 가슴 안에만 존재하지 가슴 밖으로 나와 버리면 그 본질이 달라져 버리는 법이다. 그리고 그 가슴 안에 있던 진실의 빛깔이 짙으면 짙을수록 그것을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당연히 아침이 되면 삼촌이 밤을 세워 써 놓았던 그 진실의 껍질들은 잘게 찢겨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그 여자는 대게 사흘에 한 번 정도의 간격으로 삼촌의 화실을 방문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물어도 그 여자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시시하잖아요. 그런 거 묻지 마세요.” 라는 대답으로 곧잘 상대편의 입을 막았다. 삼촌이 알고 있는 그 여자의 신상에 대한 것을 단지 그 여자가 최근 몹시 삼촌의 속을 태우는 존재로 변해 버렸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삼촌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여자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여자는 삼촌 앞에 불쑥 끄집어 낸 말 한마디만으로도 대번에 짐작할 수가 있는 일이었다.

“삼촌. 내 몸을 가지고 싶으세요?”

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 말은 하지만 삼촌의 입장으로서는 생애 최초이자 최고의 충격이었고 현기증 나는 말이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삼촌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전신이 마비되어 버린 듯한 표정으로 뻣뻣이 굳어 있다가, 한참만에야 울상을 지으며 겨우, 화이트를 한 통 사야 할 텐데 하고 엉뚱한 소리로 얼버무려 버렸다.

하지만 그날 그 여자가 돌아가고 나서부터는 줄곧 이틀 동안 삼촌은 한잠도 못 잤다. 도대체 그런 말을 서슴치 않고 끄집어낸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여자는 난해하다. 그 어떤 현대 시인의 난해시보다도 난해하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볼 필요는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 여자는 다시 삼촌의 화실에 나타나 주었고, 그날 밤 그 여자는 정말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남자들은 나를 보면 첫 눈에 내 몸부터 가지고 싶어하죠. 하지만 난 내 몸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요. 누구든 가지면 되는 거죠. 그뿐이예요.”

삼촌과 그 여자의 사이는 이제 급격히 가까와져 있었다.

삼촌은 오직 그 여자를 기다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같았다. 하루만 못 보아도 안절 부절 못했다. 그 여자가 오지 않는 날, 삼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란 역시 그 창문을 내다보는 일과 화실 안을 서성거리는 일뿐이었다. 그 여자가 나타나 주어야만 비로소 삼촌은 붓을 잡을 수가 있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화실 벽에는 하나 둘 그 여자의 나른하고 염세적인 모습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옷을 입은 모습도 있고, 옷을 벗은 모습도 있었다.

“나도 옛날에는 그림을 무척 열심히 그렸었죠. 그런데 이젠 잘 안 되네요. 누군가가 죽고 나서부터예요. 그 사람 미치광이였어요. 자살 예찬론자.”

그러나 그 여자는 그 옛날이라는 것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눈치였다. 그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다가도 문득 입을 다물어 버리고 간단히 마무리를 지어 버리곤 했다.

“앞으로 삼촌을 좋아하려고 노력해 볼께요.”

그 여자는 극히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될 수 있는 대로 자신을 삼촌에게 완전히 맡겨 버리려고 애를 썼다. 삼촌이 원하는 대로 삼촌과 함께 화실에서 자고 가 주곤 했다.

“승홍이라는 게 있어요. 염화제이수은이죠. 조금만 혈관 속에 주사해 넣어도 죽을 수가 있어요.”

어느 날 그 여자는 삼촌과 마주 앉아 이렇게 말했다.

“삼촌도 한 번 자살해 보시지 않겠어요?”

그리고 정말 핸드백 속에서 약병 하나와 주사기를 꺼내 보였다.

“저기 책상 위에다 놓아 둘 테니까 필요할 땐 언제든지 사용하세요.”

그러나, 삼촌은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삼촌이 지금까지 경영해 온 그 많은 어둠의 시간들, 억울한 형벌들, 그것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겨우 자살이나 해 버리기에는 삼촌이 가진 한이 너무 많았다. 삼촌은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 놓은 사람이었다.

“나, 나도 언젠가는 나, 날개를 가지게 된다–.”

삼촌은 수시로 그렇게 중얼거려 왔었다. 그리고 캔버스 앞에 앉기만 하면 마치 치열한 전투에 임하듯 안간힘을 다했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거였다. 삼촌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곁에 없으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거였다. 삼촌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여자를 끝까지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것쯤은 삼촌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겠지만, 삼촌은 그 여자를 단념하기엔 너무 장래가 참담한 모양이었다. 삼촌은 한시라도 그 여자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그 여자와 함께 있는 시간을 연장하려고 노력했다.

“그림을 그리세요.”

그 여자는 그러한 삼촌이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듯 자주 그렇게 충언했었다. 어느새 밖에는 겨울이 당도해 있었다.

“좋아요. 최소한 일주일 동안만은 동거 생활을 해 드리죠. 그 이상은 안 되요. 난 알고보면 대단히 복잡한 여자예요.”

어느 날 그 여자는 삼촌에게 말했다. 며칠동안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있었으며, 아직 한번도 눈은 내리지 않았고, 화실은 몹시 썰렁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삼촌은 그 여자가 허락한 일주일 동안 단 한 점의 작품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다만 삼촌은 그 여자의 몸을 자기 몸의 일부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그 자기 몸의 일부 속에다 자기 영혼까지를 불어넣어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림을 그리세요. 삼촌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 한 절대로 나는 삼촌을 좋아할 수가 없어요. 삼촌은 충분히 나를 미치게 만들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어요. 자, 그림을 그리시라니까요.”

그 여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자기가 이 화실을 자주 찾아오는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삼촌이 혼신을 다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노라고.

그래도 삼촌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빈 스케치북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는지, 지금 내 심정이 어떠한지, 삼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요.”

마침내 그 여자는 맥빠진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 여자가 약속한 일주일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을 때, 삼촌은 그 여자에게 함께 죽어 버리자고 간신히 말을 꺼내 보았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반대였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린 하지도 말아요. 자살이 뭐 그런 시시한 감상이나 사치에 의해서 감행되어지는 건 줄 아세요. 초연한 상태로 죽을 수 있어야 해요.”

그건 삼촌도 마찬가지 생각일 거였다. 사실 삼촌은 자살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언제나 혐오하고 비웃어 왔으니까, 비겁한 놈들이라고 죽을 힘이 있으면 살 힘도 있는 법이라고.

“나, 나도 언젠가는 나, 날개를 가지게 된다–.”

그 날개의 상징적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삼촌은 가끔 야외로 곤충 채집을 나가는 버릇이 있었다. 포충망, 충관, 애벌레관, 삼각통, 핀셋, 수충망 따위의 채집 용구들을 꾸려 가지고 강이며 들이며 산 속을 절름절름 헤매면서 곤충이나 곤충의 알, 애벌레, 번데기들을 산채로 채집해 와서는 표본 할 것은 표본을 하고 기를 것은 길러서 우화시키는 버릇이 있었다. 우화란 번데기가 날개 있는 벌레로 변하는 것을 말함이었다.

삼촌의 화실 한 쪽에는 여러 개의 곤충 사육상자들이 형형색색으로 쌓여져 있었고, 그 속에는 바구미, 물땡땡이, 노린재, 장구애비, 사마귀, 게아재비, 박각지, 물장군, 방게, 소금쟁이, 풍뎅이, 송장메뚜기, 개미귀신– 따위들의 알이나 애벌레, 또는 번데기나 우화된 어른벌레들이 살고 있었다. 밤이 깊어서 고요해지면 그것들이 마치 모래알 사각거리는 소리처럼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으며, 그것들은 항시 무슨 일들엔가 열중해서, 그것들 대로 어떤 작고 새로운 세계로의 길을 틔우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졌었다.

삼촌의 말을 빌면, 곤충은 북극이나 남극 같은 한대 지방에서부터 열대의 정글이나 사막에 이르기까지, 하늘 위에도 땅 속에도 물밑에도 꿀벌들의 겨드랑이나 사람들의 사타구니나, 심지어는 다른 동물들의 썩은 시체에서부터 냄새나는 똥 속에 이르까지, 닥치는 대로 생활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환경 적응의 가장 뛰어난 성공자들인 모양이었다. 그 종류만도 약 백만 종, 지구상에 있는 전동물의 약 사분의 삼이 곤충이라는 거였다. 과연 삼촌의 말대로 곤충은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삼촌은 곤충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경해 주지는 않았다. 삼촌은 그 어떤 환경에 살든 그리고 그 어떤 모양을 가졌든 날개가 없는 곤충은 절대로 존경해 주지 않았다. 존경은 커녕 보는 대로 그 자리에서 잡아죽이곤 했다. 이를테면 좀 무리, 톡토기 무리, 쇠귀뚜라미의 암컷이나 이, 벼룩 등의 무리들은 삼촌을 또 하나의 천적으로 삼고 있는 셈이었다. 반면에 삼촌은 유지매미 따위들을 항상 존경해 마지않았었다. 유지매미는 굼벵이로 애벌레 생활을 하면서, 무려 칠 년 동안이나 기나긴 세월을 어둡고 습기찬 땅 속에서 고통스럽게 방황한 다음에라야만, 비로소 은혜의 날개를 얻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는 거였다.

말하자면 삼촌은 곤충에게서 삶의 한 방법적 교훈을 얻어 낸 셈이며, 날개가 있는 모든 곤충들의 생활이 날개를 가지게 되기 전에는 삼촌 자신과 아주 흡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어느 날 삼촌의 화실에 취미삼아 그림을 좀 배워 볼 수 없겠느냐고 한 남자가 찾아 왔었다. 그러나 삼촌은 그 남자의 ‘취미삼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 엉뚱하게도 곤충 사육 상자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그 남자를 데리고 가서는 모래가 담긴 상자 하나를 가리키며 이렇게 물어 보았었다.

“이 모, 모래상자 속에 무, 무엇이 사, 살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 모래 상자에 담긴 모래는 결이 곱고 깨끗해 보였으며, 그 결이 곱고 깨끗해 보이는 모래의 표면에는 마치 밑구멍이 없는 원뿔 모양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조그만 분화구들이 빠끔빠끔 파여져 있었다.

“개미귀신이 살고 있군요.”

그 남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었다.

“그, 그럼 개, 개미귀신이 무, 무얼 먹고 사는지 아시겠습니까?”

다시 삼촌이 그 남자에게 물어 보았었다.

“개미를 먹고 살지 않습니까?”

“마, 맞습니다.”

삼촌은 다시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더니 다시 그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그, 그럼 개미귀신이 크크, 커서는 무엇이 되는지 아십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었다. 삼촌은 그 다음부터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고, 그 남자가 개미귀신이 커서는 무엇이 되느냐고 물어 보아도 그냥 묵묵히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약간 무안한 표정으로 삼촌의 그림에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 원 별자식 다 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삼촌은 입을 열었다.

“그, 그림은 취 취미삼아 그리는 게 아니야–.”

하지만 개미귀신이 왜 거기에 끼어 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개미귀신이 크면 또 무엇이 된다는 것일까.

삼촌은 개미귀신이 모든 곤충들 중에서 가장 자기와 닮아 있다고 말했었다. 개미귀신의 다리는 다른 곤충들의 애벌레와는 달라 뒤로 아래로 향해서밖에는 움직일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거였다.

또 크면 날개를 가진다고도 했다.

삼촌은 그러나 더 이상은 말해 주지 않았었다. 그 곤충의 이름이 무엇인지 날개는 어떤 빛깔을 가지고 있으며, 생태는 어떠한지 전혀 말해 주지 않았었다. 개미귀신이 커서 날개를 가진 곤충으로 우화한다니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개미귀신이 커서 하늘을 날아다니게 된다구. 웃기는 소리 하지마라. 개미귀신이 무슨 피터팬이냐 하늘을 날아다니게. 개미귀신은 평생 개미귀신일 뿐이야. 다 커서 뭐가 돼냐구?”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삼촌은 개미귀신이 크면 틀림없이 날개를 가진 곤충이 된다고 우겼다. 그리고 날마다 개미지옥에다 개미를 잡아넣어 주곤 했었다. 그러나 개미지옥에서는 개미귀신이 개미를 잡아먹는 일 이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삼촌은 그 이유가 햇빛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음인지, 모래 상자를 창틀 위에다 올려놓고는 틈나는 대로 그것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삼촌은 하루 빨리 거기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 주기만을 간절히 빌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여름이었다.

역시 모래 상자 속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채 며칠동안 장마비만 계속되고 있었다. 창틀에 놓여 있던 그 모래 상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도 삼촌은 그림을 그리다 말고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자주 모래 상자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삼촌이 모래 상자 앞에서 어떤 비명 같은 탄성을 발했다.

“나, 나, 나–.”

삼촌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큰소리로 ‘나, 나, 나–.’ 만 되풀이하면서 한참 동안 제대로 말을 못하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나, 나, 날개다!”

삼촌이 겨우 그렇게 부르짖었을 때야 비로소 어떤 심상치 않은 일에 대한 궁금증이 그 형태를 확실하게 드러내 주었다.

모래 상자 속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곤충 한 마리가 지금 막 새로운 탄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던 것이다.

그 곤충의 날개는 아주 얇고 연약해 보였으며, 별로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생명체로서의 신비로움은 충분히 간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한참 동안 모래 위에 앉아 있다가 조금씩 몸을 움직여 보더니 그 얇고 연약해 보이는 날개를 몇 번 파르르 떨어 보였다.

“이, 이게 바로 명주잠자리다. 개미귀신의 어른벌레지.”

삼촌은 너무 감동해서 콧날이 다 시큰해진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 나도 어, 언젠가는 날개를 가진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삼촌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취미삼아가 아니라 바로 날개를 가지는 작업이며, 그 날개를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삼촌은 마치 유시형 곤충들의 애벌레처럼, 이를테면 명주잠자리의 애벌레인 개미귀신처럼 현재의 이 불행들을 감수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세요. 끝이 보일 때까지 그리세요. 삼촌은 나를 미치게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니까요. 이게 뭐예요. 겨우 구스타프 클림트 흉내나 내고 있잖아요. 나를 그리지 말고 삼촌을 그리세요. 아참, 답답도 해라.”

가끔 삼촌을 찾아서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그 여자는 삼촌으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려고 노력했다. 캔버스도 새로 사 주고 물감도 새로 사 주었다.

“날개를 가지는 작업을 하세요. 끝이 보이면 저기 저 주사기와 승홍을 사용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기꺼이 붓을 잡고 그림에 몰두했을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촌은 달랐다. 삼촌은 키도 작고 못생기고 말더듬이에다 절름발이 게다가 친척들에게 얹혀 그나마 화실이라도 가지고 있는 가난뱅이 처지였다.

항시 열등의식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안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 여자가 자기 곁을 떠나 버리리라는 불안, 그것 때문에 삼촌은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삼촌의 호적 속에 그 여자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해도, 그 불안은 가셔지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가 이 세상에 살아 있고 그 여자를 삼촌이 사랑하는 한, 삼촌은 결코 아무 일도 못할 것이다.

“이젠 못 오게 될지도 몰라요. 난 알고 보면 복잡한 여자라니까요.”

어느 날 그 여자는 마침내 진지한 표정으로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은 다만 고개를 깊이 떨군 채 캔버스 앞에 앉아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다시 못 오게 될는지도 몰라요.”

그 여자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했던 그림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서는 오래도록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 그림 볼수록 눈물나요.”

이윽고 여자는 돌아섰다. 문득 그 여자가 영원히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화실 가득 설레고 있었다. 그 때였다. 출입문 쪽으로 가고 있던 그 여자가 갑자기 입을 가린 채 급격히 허리를 숙이더니 무엇인가를 토하듯 윽 하고 어깨를 솟구쳐 올렸다. 그러나 잠시 뿐 그 여자는 자세를 가다듬고 도망치듯 화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사흘이 지나도 그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삼촌은 안절부절 못 한 채 불안과 초조의 기다림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때로는 하루 종일 이 도시 곳곳을 헤매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태평양에 떨어진 빗방울 한 개 찾아내기였다. 그 여자가 원채 자기 신상에 대한 것들을 신경써서 숨겨 왔으므로 도무지 그 여자를 찾아낼 만한 꼬투리가 생겨 주지 않았다. 겨우 다방을 전전긍긍해 보거나 남의 화실마다 찾아다니면서 이러이러한 여자가 혹시 왔다 가지 않았느냐고, 심하게 자존심까지 상해 가면서 묻고 돌아다녀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중 그 여자로부터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삼촌은 흥분 때문에 손까지 부들부들 떨어내면서 그 편지의 겉봉을 찢었다.

 

형편없이 초라해져 있습니다. 삼촌의 화실에 들렀을 때 보았던 그 그림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거기서 나는 다시 살아나고 싶습니다. 옛날에 한 남자를 사랑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던 남자였습니다. 치열했고, 삼촌같이 불행에 찌들려 있었고, 그림의 끝을 보고야 자살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누구든 사랑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여잡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삼촌의 화실을 찾아갔을 때 나는 약혼 중에 있었습니다. 돈밖에 모르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예술 따윈 시간 낭비로 아는 어느 건설 회사의 젊은 돼지하굽니다. 다음 달에 결혼합니다. 지금은 홀로 여행 중, 어제 삼촌의 아기를 병원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이젠 더 이상 붙잡아 볼 게 없습니다. 텅 비어 있습니다. 그 동안 삼촌에게 잘해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삼촌을 좋아해 보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삼촌이 옛날에 자살하면서 내 뇌까지 몽땅 뽑아 가버린 그 미친 사람보다 더 자신의 삶-그림 말입니다-에 미칠 수만 있었다면, 삼촌은 반드시 그 사람보다 더 나를 미치게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자신있게 나의 약혼자를 버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형편없이 초라해져 있다 하더라도, 아직 나는 자살할 수가 없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림을 그리시기를 빕니다. 끝이 보일 때까지 우리는 서로 이제 서로를 잊기로 합니다. 안녕을.

 

삼촌은 편지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막막한 절망감에 빠진 얼굴로 멍하니 창 밖만 내다보았다.

다음 날 삼촌은 친척들에게서 얼마간 돈을 얻어 그 여자를 찾아 나섰다. 가까스로 그 여자를 찾을 만한 건덕지가 털끝만큼 생겨난 것이다. 우체국 소인, 그 여자가 보낸 편지의 겉봉에는 동해안에 있는 어느 소읍의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여행중이라는데 아직도 거기 머물러 있을까?”

“그, 그래도.”

삼촌은 단지 ‘그래도’만 가지고 동해안으로 떠났다. 그리고 열흘만에 거지꼴이 되어 돌아왔다. 종적이 묘연하더라는 거였다.

삼촌은 이제 날마다 먹지도 못하고 잠들지도 못한 채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입술이 허옇게 부르트고 눈이 십 리나 움푹 들어가 있었다. 참혹해 보였다. 그러다 미쳐버리는게 아닐까 염려될 정도였다.

“그, 그래도 하, 한번은 와주겠지.”

그래도 삼촌은 한 가닥 미련만은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 잠을 좀 자고 싶다. 오, 오 분만이라도 벌써 여, 열흘째 한잠도 못 잤다. 미치겠어–.”

“수면제라도–.”

“소, 소용없다. 버 벌써 먹어봤어. 하, 한꺼번에 스무 개나 머, 먹어봤는데도 자, 잠은 안 오더라–.”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라는 거였다. 벽도 방바닥도 천정도 하얗게 타고 있다는 거였다.

“보이는 건 모, 모두 다 하얗다. 먼 산도 가까운 거리도 책상도, 잉크 병도, 모 모두 다 하얗다. 무, 무서워.”

삼촌은 가끔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보기도 했다. 안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만약 사람들의 신체에 잠샘이라고 하는 기관이 있어 그것을 이식 수술할 수만 있다면 삼촌에게 몇 개 더 이식해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또 만약 누군가 자기의 충치앓이와 삼촌의 불면증을 맞바꾸자고 싶다고 제의해 오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당장 무르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맞바꾸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해요?”

“있다.”

“어떻게 증명해요?”

“그, 그럼 누가 나를 절름발이로 태어나게 했냐?”

하늘은 카랑카랑했다. 별들이 양철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몹시 추웠다.

“봄이 오려나부지–.”

“봄이 온들 뭘 하냐.”

“내복을 갈아입죠.”

“바, 바람도 원–.”

싸르락싸르락 언 땅에 모래알 쓸려 다니는 소리, 어느 집 장독대에선가 양은 세숫대야 굴러 떨어지는 소리, 삼촌은 절름절름 다리를 절며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삼촌은 펄럭거리고 있었다. 외로운 사랑도 펄럭거리고 외로운 절망도 펄럭거리고–.

펄럭거리다가 외등 밑에 이르러 잠시 펄럭거림을 멈추었다. 삼촌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몰라보게 야위어 버린 그리고 탈진해 버린 삼촌의 얼굴은 무기수의 그것처럼 막막해 보였다.

맞은 편 담벼락에서 삼촌의 그림자가 배멀미를 하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전등갓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삼촌은 다시 절름거리며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평소 그토록 증오하던 하나님을 찾아서 절름거리며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골목 안의 모든 집들은 거의 불들이 꺼져 있었고 사방은 죽은 듯이 고요한데 바람 소리만 가슴을 자꾸 후벼 놓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야 이윽고 교회를 만났다. 교회는 불이 꺼져 있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어둠 속에서도 엄숙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서 완전히 삼촌을 압도하고 있었다.

삼촌은 교회를 오르는 가파르고 긴 계단 밑에서 철탑 위의 십자가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었는데, 삼촌의 모습은 실지보다 반 정도나 축소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피, 피뢰침을 서, 설치했을까?”

한참동안 십자가를 쳐다보고 있던 삼촌이 뚱단지 같은 소리로 말했다.

“했겠지요.”

아무리 교회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 교회에 떨어지는 벼락을 대신해서 맞아줄 만큼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교회에도 피, 피뢰침을 하냐?”

“하겠죠.”

“왜?”

“벼락에 맞지 않으려고.”

“아, 아니다. 교, 교회는 피뢰침을 하지 않는다.”

금시 초문인 얘기였다.

“하, 하나님은 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삼촌은 전도사 풍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수를 사, 사랑하라고 하신 하, 하나님이 자, 자기를 믿기 위해 지어 놓은 교회에다 벼, 벼락을 때릴 까닭이 없다.”

삼촌은 이제 완전히 하나님께 매달려 보기로 작정해 버린 것 같았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거머잡듯이. 삼촌은 절름절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몹시 가파르고 긴 편이었다. 이 교회를 나오는 신도들은 이 계단을 다 올라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교회를 다니는 신도들보다 생명수를 한 컵 정도는 더 얻어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여자를 어, 어떻게 했으면 조, 좋겠지.”

“나도 모르겠여요.”

“조, 좋은 여자 같지 않든?”

“모르겠어요.”

“나, 나를 좋아하고 있으면서 괘, 괜히 그렇게 튕기는지도 모르지.”

“–.”

“그런 거 같지 않든?”

“모르겠어요.”

“다시 만나면 아무도 어 없는 산 속에 가서 다, 단 둘이 살자고 말해 볼까. 아, 아무래도 남의 눈이 무, 무섭거든. 도대체 앞으로 어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하나님한테 물어 보세요. 이제 다 올라왔으니까.”

그러나 그 가파르고 긴 계단을 다 올라갔을 때, 삼촌은 뜻하지 않은 장애물과 맞부딪혔다. 높은 담벼락과 철대문이 삼촌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담벼락은 도저히 기어오를 엄두도 못 낼만큼 높았으며, 철대문은 감옥의 그거처럼 굵고 곧은 쇠막대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손을 넣고 더듬어 보니 빗장에는 커다란 자물쇠까지 매달려 있었다.

삼촌은 두 손으로 쇠막대를 잡고 힘껏 뒤흔들어 보았다. 마치 교회가 그 여자를 빼앗아다 감금해 놓기라도 했다는 듯이. 몸부림치며 몇 번이고 힘껏 뒤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삼촌은 그만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오래도록 웅크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내려가요.”

그러나 삼촌은 마침내 울고 있었다.

이윽고 삼촌은 구체적으로 그 여자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봄이 되어 있었다. 날씨는 연일 화창하고 꽃들은 눈부셨지만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것도 그 여자가 곁에 없는 지금의 삼촌에게는 더욱 증오만 끓어오르게 만드는 요소들일 뿐이었다. 그 아편같은 시간들, 그 몸부림의 결말. 삼촌은 화실 서쪽 벽에다 동자의 얼굴 하나를 그려 놓았다. 이상하게 생긴, 머리카락도 없고 눈동자도 없는, 어딘지 모르게 주술적인 분위기를 가진 동자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 밑에는 한문으로 무슨 주문 같은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동자의 한 쪽 눈에는 바늘 한 개가 깊이 꽃혀 있었다.

삼촌은 하루 종일 탈진한 모습으로 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그 동자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쪽 창에 호박꽃 같은 노을이 퍼져 들기만 하면 마치 최면술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슬그머니 일어나서 그 동자 앞으로 천천히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무슨 주문인가를 중얼중얼 되풀이했다. 그럴 때의 삼촌은 무슨 주술사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대단히 기분 나쁜 분위기였다. 마치 악령이라도 부르고 있는 것 같은 삼촌의 얼굴, 그러나 삼촌은 그 의식 하나 때문에 아직도 살아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단 하루도 그 의식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바늘이 꽃혀 있는 것은 비단 동자의 한 쪽 눈만이 아니었다. 실내에 있는 모든 인물화들이 한 쪽 눈에는 어김없이 바늘들이 꽃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바늘들이 차츰 녹슬어 가면서 그 인물들도 차츰 어떤 귀기가 서려 가는 것 같았다. 빠레트에는 먼지가 허옇게 앉아 있었고, 붓은 모두 바싹 말라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화실 구석마다 삼촌이 기르던 벌레들이 사육 상자의 보호망을 뜯고 나와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하다 죽어버린 듯, 날개가 떨어져 나가 있거나 다리가 부러진 채 널려 있었다. 그 벌레들은 겨울에도 살아갈 수 잇는 능력을 가진 벌레들이었다. 그러나 만지면 바스러질 정도로 그것들은 말라 죽어 있었다. 삼촌이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곤충 사육 상자 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를 뒤집고 죽어 있거나 다리를 오그린 채 죽어 있는 곤충들이 허다했다. 어항 속의 수서건충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면에 떠서 허옇게 곰팡이 같은 걸 뒤집어 쓴 채 죽어 있었다.

“그, 그냥 내, 내버려 둬라. 그래도 어, 어디선가, 고, 곤충들의 애벌레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하, 하다 못해 파, 파리의 애벌레라도 나타난다–. 곤충들은 안 죽어. 개미귀신은– 개, 개미를 먹고 커, 커서는 명주잠자리가 된다–. 그러나 주, 죽으면 그 시체를 다, 다시 개미에게 주지–.”

삼촌은 응얼응얼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삼촌의 말은 사실이었다. 봄이 다 지나 갈 무렵부터 또 어디선가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더러 화실 구석에 나타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삼촌은 점점 더 헤어날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표정이 백치 같아져 있었으며 가끔 이상한 소리들을 일삼곤 했다.

“어, 어젯밤에 아, 아버지의 유령이 다녀갔다. 나, 나보고 미안하다는 거였어. 둘이 끌어안고 우, 울었다–.”

처음엔 꿈 얘기이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꿈 얘기하냐고 물으면 화를 내면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아닌게 아니라 화실 분위기는 유령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유령 따윈 없는 게 분명하다. 대개 ‘납량 특별 보너스 북’ 어쩌구 해 가면서, 무슨 주간지나 학생 잡지 따위에 게제되는 미스테리물 속의 귀신이나 유령이나 또는 사차원적 인물들은 그 면을 담당한 편집자를 그 아버지로 삼고 있다는 설이 있다. 이를테면, 이것은 일본 혼고우구에 있는 하다 씨의 저택에서 아주 최근에 실지로 일어난 일이다로 시작해서 밖에는 비가 내리고 시계가 열 두 점을 친 다음 나타나는 십 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하다 씨의 외동딸 따위들은 그 편집자가 수음조차도 하지 않고 만들어낸 상상의 동정녀라는 얘기일 것이다.

“아, 아버지의 유, 유령이 말하더군. 바, 반드시 그 여자의 눈이 멀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라는 식의 삼촌 얘기는 그러니까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삼촌의 화실에 들어서기만 하면 느껴지는 음산함. 눈에는 바늘을 한 개씩 찔리운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그 인물화들의 귀기. 그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눈에까지 바늘이 박혀 거치적거리는 것 같았고 곧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조차 느껴지곤 했었다.

“아버지가 처녀 유령을 데 데리고 왔었지, 이, 이쁘더라. 나, 나하고 같이 자고 새, 새벽에 돌아갔다.”

고대 설화집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삼촌은 태연히 늘어놓기도 했다. 이제 삼촌의 외로움과 절망감은 극에 달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바늘들은 완전히 새빨갛게 녹이 슬어 있었다.

“어디든 떠 떠나야겠다. 화, 화실을 맡아서 그, 그림을 그리고 있거라. 아, 아무도 저 바늘들을 빼, 빼게 해서는 안 된다.”

가을이 되어서야 삼촌은 어느 정도 정신을 되차린 것 같았다.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며 삼촌은 유리 표박의 정처 없는 길을 떠났다.

짐승도 죽을 때는 고향 쪽에다 머리를 두고 죽는다. 수구초심이라고 했던가. 삼촌이 다리를 절며 절며 떠돌아 다니다가 다시 완벽한 걸인의 모습으로 되돌아 온 것은 그로부터 삼 년이 조금 못 되어서였다.

비록 차림새는 그렇다 하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삼촌은 많이 좋아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선 건강해 보였으며 옛날 여자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태도였다. 그림들이 인물 한 쪽 눈마다 박혀 있는 녹슨 바늘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뽑아 내면서 삼촌은 말했다.

“부, 부질 없다.”

삼촌은 다시 화실을 자기 분위기에 맞게 정리하고 도구들을 장만한 다음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더러는 야외로 나가 곤충들을 채집해 왔고, 옛날처럼 표본도 하고 우화도 시켰다. 그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그저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데서나 더 불행해져 보려고 노, 노력했지. 부, 불행한거나 해, 행복한거나 그게 그거야.”

삼촌은 이제 묵묵히 캔버스 앞에 앉아 낮이나 밤이나 물감을 자기 영혼 속에 녹여 부으며 마치 어떤 종교인이 죄를 사하듯 절실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그림에 몰두했다.

삼촌이 주로 그리는 것은 그 소재가 옛날과 마찬가지로 폐인이나 곤충의 애벌레들이었지만 그 방법만은 좀 달라져 있었다.

옛날에는 폐인은 폐인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각각 다른 화면에다 그려 넣었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같은 화면에다 처리해 보려고 노력했다.

“대작을 하나 만든다–.”

삼촌은 수시로 호언장담하곤 했다. 그러나 그게 뜻대로만은 잘 되어 주지 않는 모양으로, 같은 구상을 몇 번이나 다시 지우고 다시 그리고 다시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더러는 술에 곤죽이 되어 화실 바닥에 나뒹굴어 있기도 했고, 또 더러는 옛날 그림을 싸구려로 마구 팔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거지꼴이 되어 되돌아오기도 했다.

“내 맘에 드는 그, 그림을 평생에 단 하, 한 점으로 족하다–.”

무엇을 바쳐서라도 그 한 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친척 한 사람이 삼촌을 찾아 왔다. 마땅한 자리가 하나 있으니 장가를 가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어, 어떤 여잔데요.”

“곱상하게 생긴 여자다.”

친척은 우선 시각적인 측면에서부터 그 여자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곱상하게 새, 생긴 여자가 왜 나, 나한테 시집을 오나요.”

“팔자가 세다.”

약혼을 세 번 했는데 세 번 다 남자가 약혼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그 여자는 자기가 남자 셋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어느 날 용하다는 점장이에게 물어보니, 불구자한테 시집을 가면 그 남자들의 영혼을 달랠 수 있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신랑감을 물색 중이라는 거였다. 삼촌이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셈이었다.

“중학교밖엔 안 나왔지만 얼굴은 곱상하다.”

친척은 ‘얼굴은 곱상’에 대해 특히 매력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삼촌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무조건 싫다는 거였다.

“그래도 네 생각을 해서 여기까지 찾아 왔는데,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라.”

친척은 몹시 실망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화실을 나갔다. 나가고 나자 삼촌이 거절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그 여자의 단점을 혼자 중얼거렸다.

“주, 중학교밖에 아, 안 나온 여자가 내 평생 단 한 점의 자, 작품을 아껴 줄 수 있을까.”

삼촌은 지금까지 줄곧 그 평생의 단 한 점이 될 작품 그것과 대치되어 전에 없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오고 있었다. 자주 굶고 자주 밤을 새웠다. 자신의 건강 따윈 일체 돌보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그림과 곤충에 대한 정성만은 그 누구도 따를 수가 없었다.

“되, 될 것 같은데 자, 잘 안 되는구나.”

“구상을 한 번 바꿔 보시지 그래요.”

“더 이상 조, 좋은 구상은 없다.”

삼촌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겠다는 듯 캔버스 하나를 왕창 때려 부셔 버렸다. 그리고 스케치북에다 폐인들이며 곤충들의 애벌레를 정밀하게 연필로 묘사해 보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삼촌은 그 짓만 했다. 그 다음 작은 캔버스에다 그것들을 일일이 옮겨 보기 시작했다. 이른바 철저한 습작 과정을 거쳐 보겠다는 속셈 같았다.

“사, 사람과 버, 벌레 사이를 연결시켜 놓기가 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가끔 삼촌은 붓을 쉬며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 또 가끔 곤충 사육 상자 앞으로 걸어가서 마치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자기가 앞으로 그리고자 하는 그림에 대해 아주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삼촌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큰소리로 이렇게 소리질렀다.

“아, 바로 그거였다!”

삼촌은 다시 백 호 짜리 캔버스 하나를 새로 준비하고, 그날로 그 캔버스 앞에 주저앉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서서히 영혼을 헐어내기 시작했다.

삼촌이 그림을 그릴 때의 화실 분위기는 한마디로 정지 상태 그것이었다. 삼촌은 마치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완전히 침묵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무엇이든 삼촌의 붓 끝에 닿기만 하면 소리 없이 녹아서 기체로 화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삼촌은 확고부동한 무엇인가를 잡아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바꾸거나 지워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벌써 몇 달간의 시간이 무더기로 나가고 있었다. 삼촌은 아침마다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될 모양이다.”

삼촌은 코피를 흘릴 때마다 오히려 행복한 표정이었다.

 

나는 삼촌이 본격적으로 작품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전혀 붓을 잡지 못하고 있다. 삼촌만큼 진지해질 수가 없다. 오늘부터 삼촌은 완성될 때까지 단식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창자가 비어 있으면 의식이 맑아진다는 것은 정말일까. 밖에는 장마비가 내리고 있다. 새벽 세 시다. 삼촌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직도 손이 움직이고 있다. 저러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빗소리가 그쳐 있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삼촌의 붓이 캔버스에서 움직이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붓을 빠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삼촌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삼촌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직도 손이 움직이고 있다. 저러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좀처럼 감기가 낫지 않는다. 관절이 녹아들고 있다. 목구멍이 아프고 코가 막혀 숨을 쉬기가 곤란하다. 삼촌과 함께 굶어 보려 했지만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가 갈비탕을 한 그릇 사 먹었다. 새벽에 깨어보니 삼촌의 뒷모습이 보인다. 코피를 닦고 있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닷새 째다. 아직도 삼촌은 물밖엔 먹지 않았다. 저러다 언젠가는 쓰러지고 말 것이다.

입안에서 고구마 찌는 냄새가 난다. 열이 심하다. 몇 번의 혼수 상태, 감기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삼촌의 뒷모습.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

집에 가서 앓고 싶다.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모르겠다. 삼촌의 뒷모습. 움직이고 있다. 다시 혼수 상태–.

무엇인가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다. 잠결이다. 눈을 뜰 수가 없다. 다시 혼수 상태–.

늦잠에서 깨었다. 조금은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 현기증, 고요하다. 삼촌의 뒷모습.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화실은 텅 비어 있었다. 벽에 있던 그것들도 곤충 사육 상자들도 그리고 물감, 붓, 빠레트, 기름통, 기타 잡다하던 정물들도 간 곳이 없었다.

화실은 거짓말같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나는 마치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곳은 아니었다. 실내 한복판에 놓여 있는 이젤과 그 이젤에 놓여 있는 삼촌의 그림 한 폭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끝냈구나! 나는 홀린 듯이 캔버스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 옛날 어느 여자가 삼촌의 그림 하나를 보고 그러했듯이 현기증으로 앞이마를 짚으며 짧게 탄성을 발했다.

아! 그 탄성 이상으로 그 그림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했다. 그것은 도저히 사람의 손으로 그려놓은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물보다 더 사실적이었으며 현실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그 어떤 충격적인 인간의 종말도 그 그림의 감동을 따라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고뇌와 비원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 사내가 죽어있었다. 하늘을 향해 허옇게 눈을 뜬 채로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채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은 생생했다. 미간의 주름살, 옷소매의 실밥, 무엇이든지 실물보다 더 생생했다. 어떻게 처리했는가 만져서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시체는 썩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썩어가는 시체 위에 수없이 많은 벌레들이 달라붙어 살점들을 여기저기 헐어 놓고 있었다. 가슴이 헐리고 장단지가 헐리고 한 쪽 볼이 헐리고 헐린 살점 속을 파고들어 굼실굼실 움직이고 있는 벌레들– 긁어 내면 한 무더기씩 화실 바닥에 떨어져서 굼실굼실 기어다닐 것 같았다.

시체 위에는 하늘. 화창한 햇빛을 받고 눈부신 구름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시체와 대조적인, 그러면서도 시체를 더욱 시체답게 만들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득 구름 속으로 명주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가 숨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환시였다.

삼촌의 시체가 발견되어진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고, 생각보다 평온하고 깨끗한 얼굴이었으며, 삼촌의 시체 옆에는 주사기 한 대와 약 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염화제이수은이었다. 장소는 꽃밭, 마타리꽃 멧미나리 키 자라 퍼져 있는 산비탈. 나비들도 몇 마리 날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태운 듯 잿더미도 한 무더기 보였다.

삼촌의 유서대로 나는 그 여자의 집을 찾았다.

화실을 나가 몇 년 방황하면서 삼촌은 기어코 그 여자의 거처를 알아내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 좁은 대한민국 안에서 굳이 찾으려고 들자면 못 찾을 것도 없을 것이다. 그 복잡한 서울 명동에서도 똑같은 사람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하루에 다섯 번씩이나 우연히 만났었다는 사람도 있고, 아침에 동경 어느 음식점에서 보았던 사람을 저녁 때 무교동 어느 낙지집에서 만났었다는 사람도 있다니까.

그러나 이제 와서 삼촌은 또 그 여자에게 무슨 용무가 더 남아 있다는 것일까. 그냥 찾아가 보면 된다니 도무지 짐작조차 안 되는 일이었다.

유서에 적힌 대로 그 여자의 집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집은 예상보다 그리 크지는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의외로 그 여자가 직접 나와 주었다. 첫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옛날에 그 나른하고 염세적인 모습은 간 곳이 없었고, 다만 얼굴 윤곽만 그대로였다. 좀 뚱뚱하고 천박해진 모습이었다. 임신을 했는지 아랫배가 불룩 솟아나 있었다.

“삼촌이 죽었군요.”

나를 보자 그 여자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미리 어떤 얘기가 있었던 것일까.

“알았어요. 약속대로 그림을 보러 가죠. 그 화실에 있겠죠. 굉장한 그림이겠군요. 언젠가 만났을 때 벌써 삼촌은 끝을 보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잠시 망연해 그대로 서 있었다.

“알았어요. 가세요.”

그 여자는 돌아서려 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엄마.”

세 살쯤이나 되었을까. 그 여자의 딸인 듯 싶은 계집아이 하나가 팔짝팔짝 대문 밖으로 뛰어 나와 그 여자의 손목에 매달렸다. 그리고 나는 그 계집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만 둔기로 심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연해지고 말았다.

눈.

그 계집아이의 한 쪽 눈이 약간 찌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하얗게 백태까지 끼어 있었다.

“사, 삼촌도 옐 본 적이 이, 있습니까?”

“아뇨, 그런데 언제부터 말을 더듬으세요. 전엔 안 더듬으신 것 같은데.”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혼란해진 상태로 서 있는 내게 그 여자가 다시 말했다.

“이제 가세요.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