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October 2018

시월의 마지막 날들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결국은 그 바로 마지막 날 31일도 찬란한 석양을 등지고 나를 떠나려 하고 있다. 서재 work desk위에서 24시간 나를 응시하고 있는 life journal, monthly calendar를 본다. 9월에 못지 않게 무언가 많은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가득 차있다. 시월의 31일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가?

 

 

오늘은 10월 31일, Halloween.. 조금 후 해가 떨어지면 어둠 속에서 동네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올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날은 우리에게도 조금은 의미가 있던 ‘미국의 명절’이었지만 아이들이 머리가 커져서 집을 다 떠난 후 모든 것이 빛을 잃었다. 문 앞에 pumpkin light를 켜 놓고 각종 candy를 준비하는 행사가 사라지고 이제는 불을 다 꺼놓고 ‘숨을 죽이며’ trick or treat 행렬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참, 세월이란 이런 것이지.. 조금은 쓸쓸해지는 감정을 누를 수가 없다. 그것이 요새의 10월 31일이다.

 

¶  건주의 ‘잊혀진 계절’:  며칠 전에 정말 예기치도 않게 ‘그리운 벗’ 양건주에게서 email이 날라왔다. 어떻게 나의 email을 기억했는지.. 마지막으로 연락이 된 것이 아마도 10여 년 이상이 되었을 듯하다. 하지만 다른 ‘사라진 친구들’과 달리 이 친구 건주만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연락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예감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친구의 매력이다. 생일이 불과 나보다 며칠을 앞서고 있지만 건주의 ‘정신연령’은 나의 형 같이 편안하고 성숙하게 느껴진다.

거의 반세기 전 헤어진 이후 아마도 처음으로 ‘음성통화’가 kakaotalk voice call로  너무나 쉽게 해결이 되었다.  글자와 음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건주의 목소리와 아주 다르지 않았다. 목소리의 느낌은 반세기 전의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목소리는 아마도 건주의 기억과 아주 다른 듯한 반응이어서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것이 세월의 횡포가 아니겠는가? online 활동으로 아주 바쁘고 건강하게 사는 듯한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다. Internet의 덕분으로 곧바로 우리 클럽, 연호회의 멤버들 중에 윤기와 인송이 곧바로 kakaotalk  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상상의 나래를 편다. 건주와 달리 ‘표현력’이 떨어지는 그들과 얘기하는 것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계속 알게 된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한다.

어제는 건주가 kakaotalk으로 music video를 하나 보내왔다. 이런 곳으로 날라오는 video를 나는 ‘원칙적으로’ open을 안 한다. 우리 나이에 이런 것들 내용을 짐작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보낸 사람이 ‘도사 양건주’ 였으니까.. 설마 또 ‘극우파 선전’ 같은 것은 아닐 듯 하고.. 의외로 잔잔하고 감미로운 노래였다. 물론 내가 알 수 없는 곡이었지만 곡조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이용’이란 사람이 1980년대에 불렀다는 ‘잊혀진 계절’이란 classic oldie였다.  건주가 이런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며 좋아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설마 우리들 30대에 나온 노래를 나에게 보낸 것, 조금 의아하긴 했다. 그 비밀이 오늘 아침에 풀렸다. 연숙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 노래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 노래는 10월 31일에 부르는 노래라는 ‘웃기는’ 사연이었다. 왜? 가사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었고… 아하! 그래서 10월 말경에 나에게 이런 노래를 보냈구나.. 역시… ‘도사 건주’로구나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건주야 고맙다!

 

 

 

The Exorcist: 아 늦은 나이에도 아직도 무서운 것이 나에게 있다. 특히 Halloween이 다가오면 이것이 나를 더 자극하며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다. 1973년 12월에 미국을 경악하게 했던 것, 영화 The Exorcist… 이 글자만 봐도 나는 아직도 무서운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즈음이며 매년 겪는 이상한 현상이다. 올해는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아야지… 하지만 매번 이 영화를 20분 정도 보다가 포기하는 것이다. 20분의 대부분은 영화의 첫 부분, Iraq의 유적발굴에 관한 것이고 미국의 Washington D.C.의  Georgetown scene 이 시작될 무렵이다. 그러니까 진짜 무서운 것들이 시작되기 훨씬 전이다.

 

 

물론 강제로 나머지 부분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서운 ‘악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옛날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살아나는 바로 그것이다. 그 당시 영화를 보고1 한 동안은 ‘진짜로 무서운’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어두운 곳에서는 괴물로 변한 ‘아이 Regan‘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한마디로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 괴로운 추억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얼마나 그 당시의 충격이 심했던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영화로 부터 ‘가톨릭’ 신앙을 접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음에 감사를 하고 있다.

  1. 나는 이것을 Chicago에서 처음 보았다.

¶  Overnight at Big Canoe:  일년 만에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희네 그룹’,  윤형 ‘별장’ 이 있는 Big Canoe로 단풍여행을 갔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이 아니지만 이 별장은 고도가 1000m를 넘는 높은 산 정상에 있기에 그곳은 이미 단풍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였다.  Gate까지 있는 이곳은 높은 산 곳곳에 ‘별장들이 몰려있는’ 조그만 별천지다. 메트로 아틀란타에서 차로 2시간도 안 떨어진 이곳은 사실 ‘아틀란타 부유한 사람들의 투자용 부동산’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그런 첩첩산중 산등성이 곳곳,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같은 곳에 그렇게 큰 luxury house들을 지었는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경관이 좋은 집들 중에도 제일 높은 정상부근에 위친한 윤형의 별장에서,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이곳은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낙엽이 쌓였다

갑자기 산등성이로 구름이 몰려와 운해로 변하고 있다

별장은 완전히 구름에 덮혔다

 

이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경치가 너무나 영화처럼 강렬해서 거의 꿈 속을 거니는 기분이지만 다른 한편 이런 시야를 며칠 계속 보고 있으면.. 글쎄, 당장 ‘초라하지만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나의 집으로 오고 싶을 것이라는 ‘조금은 시기심’이 스며드는 생각에 당황하기도 한다. 이곳의 집들이 별장인 사람도 있지만 아예 이곳에서 항시 살고 있는 집도 많다고 하는데,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매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항상 아름답게 보일까 의구심이 든다.

산꼭대기에 있는 집이 어떻게 우리 집보다 엄청 큰 것일까?  어떻게 그런 큰 집을 거의 비워두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속으로 나는 항상 불편한 생각이 든다. 돈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느낌, 자본주의의 downside, 끝이 없는 인간의 ‘편해지려는 욕망’,  이런 것들 즉 과잉 된 편안함…  교차로에서 만나는 ‘구걸인’들, 집 없이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들.. 모든  장면이 겹치는 듯한 환상.. 

 

¶  (마리에타) 사랑구역 斷想: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마리에타 사랑구역 구역장 임무,  몇 달이 총알처럼 날라간 기분으로 가끔은 내가 그 동안 무엇하며 살았나 하는 혼미 속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7월부터 9월 말까지는 솔직히 다른 세계로 가서 사는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것이다.

군대의 분대장은커녕 학창시절 반장, 그룹의 장 長 같은 것 한번도 못하고(아니 안 하고, 피하고)  살았던 나에게 이런 일은 사실 저물어가는 나이에도 어색하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듦의 혜택도 없지 않은 것이 소싯적 보다는 ‘겁, 우려’ 같은 것이 훨씬 덜하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늦은 깡’이라고나 할까.. ‘배 째라’ 하는 유행어가 실감이 나는 것이다.

이 구역장 일을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나도 좋고 구역그룹도 좋은’ 그런 ‘황금법칙’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9월초부터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의 단장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timing이 어쩌면 이렇게도 재미있을까? 아마도 성모님이 ‘이제까지 피하며 살던 빚을 갚아라’ 고 호통을 치시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오래 연체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느님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나를 잡아준  이 성당 구역에서 나는 한번도 봉사를 못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온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 듯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의미’를 생각하며 임무를 맡고 있는데.. 글쎄, 의미를 두고 심각하게 일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갈등, 실망, 심지어 놀람’은 부터 평화는 커녕 숨어 있던 분노심까지 들추고 있으니..  이 일이 어려운 임무라는 희미한 예측은 항상 있었지만 실제로 겪는 ‘어려움’은 상상 밖 중의 밖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문득 문득,  ‘다 집어 치우자!’라는 ‘악마적’ 생각도 들 정도다.    

 구역을 이끄는 ‘일 자체’라고 하면 모호하지만 힘을 쓰는, 몸이 힘든 일보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실망감’ 은 정말 평화의 적 중의 적이라는 ‘주위로부터 많이 듣던’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구역 총무님 댁의 private marina, 개인 boat도 있다

 

구역 야유회를 가려고 한 것이 공원예약차질 문제로 호수 변에 있는 그림처럼 아담한 별장 같은 총무님 댁으로 옮겨서 했는데, 한마디로 near-disaster였다. 예약 담당자의 실수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총책임은 내가 져야 함을 절감했다. 마지막 확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모임에서 나는 정말 ugly 한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이제까지 우호적으로 생각해 왔던 어떤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사실, 그 장면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제까지 모였던 모습과 이번에 드러난 실제의 인간성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나는 놀라고 또 놀란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나는 ‘정치적’이라는 말의 뜻을 이 나이에야 어렴풋이 실감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가 이런 임무들을 맡은 결정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어렴풋이 이론적으로만 알던 사실을 체험하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수확으로 남기려 한다.

 

¶  Better Korean Festival?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근래 나의 관심사에서 제일 멀리 있던 것이 나에게 왔다가 갔다. 연숙의 문인화 전시가 올해의 한인축제, Korean Festival와 함께 열린 것이고 이것은 이제 우리 가족의 작은 가을행사도 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가족이 모여서 전시회, 한인축제 공연, 그리고 넓은 주차장에서 각종 booth를 구경하는 것인데, 나는 사실 큰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가족의 일원’이기에 피곤해도 와야 하는 그런 종류의 시간이다.

한인축제는 몇 년 전(2~3년?)에 가족과 왔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의 논평이 ‘재미없고, 촌스럽다’ 라는 것이고 나도 사실 동감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것은 ‘조용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고 ‘아이들’도 동감인 표정들이었다. 우선 ‘아마추어 같은 촌스러움’이 많이 걷힌 것이다. 각종 공연들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자신은 없지만 ‘event pro’ 그러니까 행사를 주관하는데 각종 프로 들이 등장한 듯 했다. 큰딸 새로니는 몇 년 전에 Greek Festival을 보고 우리의 축제와 비교를 하곤 했는데,  아마도 우리도 그런 것을 보고 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논평을 했다.

 

 

각종 공연들, 특히 Big Orchestra가 등장한 것, 비록 한인 오케스트라라고 했지만 많은 연주자들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축제자체가 community에  open된 것이다. 거대한 남성합창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이들과 같이 ‘나의 살던 고향은..’, ‘사랑으로..’ 등을 관객들과 열창한 것도 가슴이 저미는 뭉클한 순간들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 이제는 ‘초 국제화’가 되어서 아마도 바다건너의 대한민국의 재력과 K-POP을 중심의 최첨단 pop culture가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날 한인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동양화, ‘문인화’ 전시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성과 시간을 써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연숙이 이것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꽤 되었지만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그것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동양화, 묵향화, 문인화.. 조금씩 성격이 다른 것 임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어떤 그림이 더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지기도 했다. 우선 시간을 더 써서 자세히 묵상, 기도하는 심정으로 응시를 하였다. 이날 처음 그렇게 비슷하게 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도 알았다. 연숙의 ‘거대한 국화들’도 자세히 보게 되었고 왜 입선이 되었고 관람객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는지 알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대상물’은 ‘생물들’ 그러니까 새들, 다람쥐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느낌들이 좋았는지, 연숙에게도 꽃, 식물 다음에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그려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  레지오 사업보고:  나의 ‘정든’ 레지오 전초분대(Praesidium, Pr.) ‘자비의 모후’의 연례 사업보고가 일요일 꾸리아 월례회의 때 있었다. 단장이 된 이후 처음 하는 것이라 물론 내가 평의원들 앞에서 발표를 했지만 이번 발표에는 ‘고발성’ 글귀가 실려있어서 나는 그것을 가급적 dramatic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이 ‘고발’을 할 때 평의원들의 얼굴은 대부분 blank 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너무나 심각한 어조와 내용’이라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 unmotivated, uninterested 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 꾸리아, 레지오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주 관심사는 ‘고발 당한 2명’이 이런 글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 중 한 인간은 그 회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 알게 된 비밀이 공식화 되었기에 나는 그 두 ‘피고들’ 의 공식징계를 위한 다음 단계로 마침내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의 추이가 너무나 흥미롭게만 하다.  Watch out, you two’s!  Here I’m coming after you!

 

¶  BIG flat-screen TV Envy? 우리 집에는 누구나 모두 ‘자랑’ 하고 싶어하는 monster size flat-screen TV가 없다. 그러니까.. home theater 가 없는 것이다. Desk에서나 쓸 수 있는 아주 작은 digital TV가 있을 뿐이다. 가족들이 family room에 모여서 old tube analog  TV로 주로 VHS video를 보던 때가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커서 모두 집을 떠나면서 그 ‘고물’ TV는 완전히 방에서 물러나고 집에 남은 우리 둘은 거의 broadcast network TV를 안 보고 살게 되었다. Movie같은 Video를 보는 것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거의 각자의 desktop PC로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home theater같은 느낌의 즐거움이 없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도 거의 모든 시간을 desk앞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다른 집에 가보면 우리같이 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경쟁적’으로 엄청난 큰 screen TV가 있었다. 물론 극장 같은 경험을 집에서 즐기는 것, 누가 마다하랴.. 문제는 그만큼 $$$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인데.. 돈도 돈이지만, 우리 둘에게 아직까지도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닌 사치품에 속했다.

 

 

하지만 trickledown 현상이라고나 할까 결국은 caveman처럼 살려고 하던 우리에게 ‘공짜’ big screen TV가 흘러 왔다. 두 딸들이 쓰던 것, 새것을 산다면서 우리보고 가지라는 것.. 크기를 보니 사실 요새 기준으로는 큰 것이 아니지만 우리 집같이 traditional house에는 정말  적당한 size가 아닌가? 하나는 40″, 다른 것은 42″ 정도.. 40″는 kitchen area에 맞고 42″는 아마도 bedroom에 맞을 듯하다. 한가지 연구해야 할 것은 이것들은 1st generation TV로 한마디로 smart TV가 아니다. 그러니까 Internet streaming이 자동적으로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RokuChromeCast를 쓰면 간단히 해결 될 듯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도 HDMI digital TV 시대의 막이 올랐다.

 

어제 이 지역으로 내려온 찬 공기의 영향으로 오늘 아침에는 드디어 얇은 스웨터를 찾아 입을 정도가 되었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이곳까지 쳐들어 온 열대성 폭우 ‘마이클’로 대기는 온통 습기로 가득 차 있었고 가끔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하루 아침에 습기가 완전히 사라진 ‘추운 느낌’의 진짜 가을이 된 것이다. 올해의 환절과정을 보면서 ‘조금은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정상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혹시 이것도.. 그것.. global warming의 영향은 아닐까..

 

Time to ‘test’ fire up central heating..

 

오늘 아침에는 조금 마음을 졸이는 ‘첫 추위와 난방’ switch-over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난방 furnace system ‘점화’ 때문이었다. 올 여름에 모든 heating & air system 을 새것으로 바꾸었을 때, 에어컨은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실 그 더운 여름에 난방 system은 테스트 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기에 항상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드디어 그것을 test할 순간이 온 것이다. 예전에는 위층은 electronic, 아래층은 pilot lamp system이라서 아래 층은 그 ‘어두운 지하’로 들어가서 손으로 점화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래층도 electronic으로 바뀌어서, 예전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문제는 한번도 내 눈으로 test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위층의 furnace는 test에서 문제없이 fire가 되어서 한숨을 놓았고 아래층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Best time to reminisce, rainy autumn with hot coffee

 

며칠 간 계속되는 ‘추운 쪽의 가을’ 을 맞으며 겨울도 아주 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부지런히 가을/겨울 옷들을 찾아야 하는 귀찮음을 느낀다. 비록 황금색의 낙엽과 하얀색 눈의 자연은 나를 즐겁게 하겠지만 머리 속이 예년의 그것과 너무나 다른 ‘처음 경험하는 일’들로 가득 찬 요즈음, 과연 나는 예전처럼 ‘감상적 사치’ 를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기대는 있다. 차가운 가을 비 내리는 바람 부는 한가한 오후에 편한 의자에 기대어 향기로운 coffee를 마시는 기대.. 한번 기대해 보자…

¶  가을비를 보며:  오늘 아침, 10월 중순을 향하는 길목에서 나는 아직도 열대성 공기를 느끼며 깨어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지를 찾는다. 어제부터 처음으로 ‘긴 바지, 긴 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덥다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니.. 아 ‘긴 팔, 긴 바지’의 진정한 가을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습기 없는’ 시퍼런 하늘을 유난히도 올해는 내가 기다렸는데 야속하게도 이제는 지겨운 ‘열대성 대기’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갑자기 나타난 Michael이란  남자 이름을 받은 허리케인 hurricane이 열대성 습기와 강한 바람을 몰고 FloridaPanama City Beach 쪽을 강타하고 무서운 속도로 이 지역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메트로 아틀란타 지역은 ‘반가운 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영향이 없는 듯 하다.

 

아틀란타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tropical storm Michael

 

몇 주간 뜨겁게 마르고 있던 대지들이 오랜만에 단비의 맛을 보았던 어제 밤과 오늘 아침의 주변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는 느낌. 이번의 비와 바람이 올해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진정한 O. HenryThe Last Leaf 의 느낌을 한껏 주는 추위 속의 낙엽과 Halloween의 찬란한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어두운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바로 ‘피해 없이 내려오는’ 잔잔히 빗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last leaf clings to the bough, just one leaf..

 

¶  19차 레지오 사업보고: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업보고 business report’, 일년에 한번씩 지나간 일년간 레지오 단원으로 했던 활동 실적을 총집계해서 꾸리아 월례회의 때 발표를 하는 것으로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며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단원들이나 평의원들에게 별로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관행대로 하는 routine, 그저 해야 되는 것, 심지어는 귀찮은 것 정도로 생각되던 것이다.

이것이 올해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선 내가 발표를 하여야 하는 단장이 되었고, 어떻게 이것을 발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책임 소관’이 되었기에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들’이 ‘뛰었던’ 모습들이 서기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정해진 form’에 주로 ‘숫자’들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단장이 꾸리아 평의회에서 ‘보고 읽는’ 것이다. 읽은 후에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면 끝이 난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과정을 매월 겪는데, 어떨 때는 너무나 형식적으로 들려서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올해의 사업보고서 작성을 끝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전 해의 것과 비교해 보면 단원의 숫자가 반으로 감소했으니까 활동도 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보고에는 글로 쓰게 되어있는 ‘운영 상황’ 난을 통해 지난번 꾸리아 단장과 면담을 했던 ‘자비의 모후 명예회복을 위한 특단 조치’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실명을 쓸 수가 없지만 아마도 당사자 (2명의 미친X들) 들은 아마도 짐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흥미롭기까지 하다.

 

바로 전에 print된 ‘따끈따끈’한 레지오 사업보고서, 일요일에 발표될 예정.

 

이렇게 올해의 사업보고 작성을 매듭지으며 나에게 도대체 레지오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 보았다. 거의 8년 동안 뒤를 안 보고 달려왔던 것, 암만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기에 나는 나에게 매일 놀란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의미다.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오직 그분만이, 성모님만이 아실 것이다.

 

일요일에 제출, 발표할 레지오 연례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며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있는지 googling을 하던 중에 ‘보물’을 찾았다. 얼마 전 자비의 모후 Pr. 단장이 되면서 훈화를 준비하며 도움을 받고 있는 ‘레지오 훈화집’의 저자 ‘레지오 박사’ 최경용 신부님의 글을 발견한 것이다. 비록 2003년도에 발표된 것이지만 현재 나에게는 거의 모두 유효한 기사, 글이었다.

이 최신부가 쓴 ‘레지오 영성’이란 책도 언젠가 잠깐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이분이 로마에서 레지오 마리애 영성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레지오 마리애 박사 신부님인 것이다.

2003년이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가 처음 창설된 50주년을 즈음하여 당시의 대한민국 레지오의 현황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으로 지나친 신학적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설명한 것이 매우 인상적인데 이것을 읽으며 거의 모든 분석이 현재 내가 있는 ‘아틀란타 레지오’에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사업보고서의 특기사항이 거의 비어있다.”

올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 점을 보면 동감이 간다. 별로 ‘특기할 만한’ 활동이 없는 것이다.

 

 **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솔직히 간부는 고사하고 평단원들조차 입단 시키기 어려운 실정, 이것은 레지오 전체의 이미지나 단원들이 보여주는 ‘자질’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특정 지도 신부님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제도적 문제가 아닐까? 너무나 바쁜 사제들에게 레지오에 우선권을 두라고 강요할 사람이 없다. 다만 꾸리아 차원에서 지도사제의 관심을 유도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  “소 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대표적인 소 공동체는 ‘구역 모임’이 있는데 이들과 활동이 중복되는 것이 있을까?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특성을 활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 하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거의 전부인 현재의 우리들의 실정으로는 간부, 단원을 고사하고 신단원이 레지오의 정신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현재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꾸리아 차원에서 ‘시간과 돈’을 지속적, 제도적으로 투자하는 수 밖에 없다.

 

**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이런 ‘군대의 특성’이 무시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나는 일년 전부터 내 눈으로 보았고 그 여파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법에는 항상 예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법이 어겨지면 그 처리 결과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영적지도자, 꾸리아 밖에 없다.

 

**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신 단원 교육에서 제일 강조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레지오의 조직과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수없이 이런 사례를 목격했고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무너지고, 침체될’ 그런 것이었다. 현재도 나는 ‘주 회합 후 외식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을 매주 본다.

 

** “레지오 행동단원이 받는 혜택과 은총”

1. 개인 성화로 자신이 구원을 받고,

2. 주간 활동을 통하여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3.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며,

4.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 지고,

5. 군인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으며,

6. 따라서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되고,

7. 성모, 성령신심을 통해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고,

8. 활동을 통해서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게 되고,

9. 수많은 레지오 장례와 위령미사의 혜택과 은총을 받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위의 거의 모든 것들은 내가 받았던 것들이고 또한 창설자(프랭크 더프)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이하여

최경용 (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신부)

 

 

1. 시작하는 글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5월 31일에 아일랜드로부터 도입되어 올해(2003년) 50주년을 맞았다. 레지오 마리애는 외국에서 도입한 한국의 첫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레지오 마리애가 쌓은 공로와 업적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말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왜냐하면 레지오 마리애의 알맹이인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의 정신은 쇠퇴하고, 껍데기인 친목과 친교에 치중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이 얼마나 해이해졌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정신 회복에 지향을 두고 묵주기도 5억 단 봉헌운동을 펼쳤겠는가? 간부들과 단원들이 얼마나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에서 벗어나 있었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가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 회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까지 개최했겠는가?

지금은 레지오 마리애의 변화와 쇄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곧 창설자의 정신이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들을 짚어보면서 창설자의 정신에 비추어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오늘날 우리나라 레지오 마리애가 당면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크게 열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교육 문제, 규칙과 규율 문제, 지나친 친목,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단원 모집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각각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선교 실적이 낮아지고 있다. 이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주간 활동 의무를 다하지 않는 데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활동은 레지오 마리애의 본질이다. 레지오 마리애 주회합의 핵심은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이다. 주회합에서 묵주기도를 포함한 기도 시간보다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 

주회합의 3대 요소인 기도, 활동, 공부를 감안하여 주회합의 소요시간 기준을 한 시간 반으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쫓기듯이 주회합을 한 시간 이내에 해치우고, 곧바로 평일 미사에 참례하는 쁘레시디움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활동보고 내용과 활동배당이 빈약하다 보니 주회합을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내는 것이다.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연중 사업 보고서의 특기사항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특기사항란이 아예 공백인 쁘레시디움도 있다. 1년 동안 특기할 만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교본은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단원들이 모든 시간을 복무시간으로 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정신으로 복음화에 앞장서는 선교단체이므로 선교와 복음화 활동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본당마다 쉬는 교우와 거주 미상자가 수두룩하여 큰 문제가 되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는 이를 위한 사업을 점차적으로 연중 사업 계획에 넣어 본당과 교구 사목에 획기적인 업적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2)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저 평단원으로서 부담 없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장교가 되기는 싫고 사병으로만 머물겠다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 걸핏하면 레지오 마리애를 잘 모르는 신참 단원이 간부직을 떠맡게 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다. 모름지기 간부직은 성모님께서 직접 맡겼다고 여겨야 하는데도 그걸 모른다. 이를 순명 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잘못하면 쁘레시디움 전체가 잘못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의 운명은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장이 주회합에 자주 결석하거나 활동 계획서를 꼼꼼히 챙기지 않아 활동배당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든지, 단장 자신이 활동을 소홀히 하고 언행도 일치하지 않으면서 단원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든지,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사랑과 열성 없이 타성에 젖어있다면, 그 쁘레시디움은 얼마 안 가 존폐 위기를 맞게 된다. 단원들이 하나 둘씩 퇴단하기 때문이다. 단장의 결정적인 결함은 단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므로 그럴 경우 단장을 교체하여 물갈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땅에 묻지 말고 십분 활용해야 한다. 

 

3)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초창기부터 주회합에 사제를 영적 지도자로 모셨다. 레지오 마리애는 본당 사목의 협력기구이므로 대체로 영적 지도자들은 레지오 마리애를 사목적으로 적극 활용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제도와 규율에 따르면 영적 지도자도 쁘레시디움과 평의회의 당연직 간부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목자들은 자신이 간부임을 잘 모르고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 마리애의 간부라면 당연히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사목자가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따라주면 좋지만 그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의 지단과 평의회를 설립하고 해체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상급 평의회의 지시보다는, 주임신부가 직접적으로 지시한 사항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따라서 주임신부가 레지오의 간부가 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적 지도자는 주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여 묵주기도, 영적 독서, 까떼나, 선서 후 강복, 훈화, 회합의 마침 강복을 주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주임신부는 보좌신부, 수녀 등 대리자에게 영적 지도를 일임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참석한다. 쁘레시디움이 많은 레지오 마리애를 원활하게 관리하고 운영하려면 사목자가 꾸리아 간부 연석 월례회, 쁘레시디움 단장 연석 월례회를 개최하여 레지오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4)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레지오 마리애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활기를 잃고 침체되기 시작한 와중에 소공동체 운동이 일어났다. 물론 그 전부터 교회의 기반 조직인 구역, 반모임이 있었지만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조직이 더욱 강화되었다. 소공동체 교재를 통해 성서에 맛들이게 되고 구성원 간의 친목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본당 공동체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소공동체 운동은 모든 교구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소공동체가 없는 본당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전국 어느 본당이든 레지오 마리애가 존재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소공동체를 선호하는 본당 사목자들이 레지오 마리애가 소공동체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를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교회의 사명은 신자들의 성화와 선교활동이요,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도 개인 성화와 선교활동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마리애를 해체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 수행을 막는 것이며,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사목자는 본당의 소공동체 모임에 적극 참여하지 않거나 창설자의 정신에서 빗나가는 레지오 마리애를 바로잡아주고 본래의 정신을 되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협조를 통한 상생의 관계로 정립되어야 한다.

 

5) 교육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레지오 마리애의 일상적 교육에 해당된다. 교본공부를 위한 「교본 해설집」도 필요하고, 특히 「훈화집」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아무쪼록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의 노력으로 하루빨리 새 훈화집이 발간되어 영적 지도자와 단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주회합에서 하는 훈화와 짧은 교본공부만으로는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레지오의 양적 팽창에 질적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 실정에는 반드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단원들이 단장이나 간부직을 맡게 되는 실정에서 간부 양성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1990년에 접어들어 세나뚜스나 레지아 주관으로 ‘레지오 마리애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교육기간은 대개 매주 2시간씩 8-13주간이다(교구에 따라 명칭이나 기간이 다양함).

앞으로 세나뚜스 협의회에서 전국적인 레지오 마리애 교육 협의회를 결성하여 강사진을 폭넓게 활용한다면 레지오 교육에 획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6) 규칙과 규율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로써 군기를 확립하고 일사불란하게 운영된다.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의 힘으로 지탱하기 때문에 모든 단원은 선서를 할 때 “레지오 규율에 온전히 복종하겠나이다.”라고 서약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과 규칙은 교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각 지역마다 달라서도 안 되고 임의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교본에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규칙과 규율이 많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창설자의 의도와 관례를 감안하여 국가 평의회인 세나뚜스에서 결정을 하면 된다. 

규칙과 규율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법의 정신을 새롭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규율과 규칙에 집착하거나 문자에 얽매이기보다 탄력성, 융통성, 신축성을 갖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시대의 요청과 징표에 적응해야 한다. 마치 인터넷 시대에 인쇄매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레지오의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이고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중요시하셨지만 결코 율법주의자는 아니셨다. 그것이 바로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7) 지나친 친목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친목을 통한 단원들 간의 결속과 일치를 중요시한다. 창설자도 주회합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잠깐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단원들 간의 친목 도모를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끼리끼리’ 사귀지 않고 ‘고루고루’ 사귀기를 바란다. 그것이 창설자의 정신이다. 그런데 오늘날 끼리끼리의 사귐이 지나친 것 같다. 단원들에게 바라는 레지오의 이상은 신심과 활동, 친교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회합은 짧게, 친교는 길게’라는 구호가 생길 정도로 단원들이 회합과 활동을 소홀히 하고 친교를 더 중요시한다. 저녁에 주회(週會)를 마치고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뜻으로 형제들 간에 2차 주회(酒會)라는 말이 성행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자매들 간에도 비밀헌금 외에 친목을 위한 헌금을 별도로 갹출한다. 그리하여 레지오가 계모임처럼 끼리끼리 즐겁게 노는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있다.

단원들 간의 지나치게 끈끈한 정이 오히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을 좀먹고 공적인 일에 차질을 빚게 한다. 지나친 친목은 단원들이 공(公)과 사(私)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순명정신을 약화시킨다. 레지오 마리애는 결코 친교 위주의 오합지졸 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8)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레지오 마리애의 물질적 구제 금지 규정은 1921년 레지오 마리애 창설 주회합에서 결의된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자선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는 취지였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가 비록 빈첸시오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신적 자선활동 단체임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물질적인 자선보다도 영신적인 자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물론 레지오 마리애는 물질적 구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결코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레지오 마리애의 이름으로 비밀헌금을 사용하면서까지 직접적으로 물질 구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활동만 한다는 규정 때문에 단원들이 당장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때를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율법이므로 고쳐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모든 이에게 영신적인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므로 물질적인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며, 단원들이 레지오 안에서 사리사욕을 추구할 수 없다. 단원들끼리 계모임을 하거나 금전관계를 맺거나 다단계 판매 등의 상행위를 하는 것은 레지오의 순수성을 저해하므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레지오 마리애에 필요한 모든 경비와 자금은 오로지 단원들의 의무적인 비밀헌금에만 의존하며, 레지오 마리애의 기금은 성모님의 군자금이므로 레지오의 조직과 관리 운영, 사업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영적 지도자인 사목자는 레지오 마리애의 재정 문제만큼은 원래의 규정과 정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기를 바란다. 

 

9)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행동단원이란 사도직 활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단원을 말한다. 노인으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은 사도직 활동을 하지 못하고 기도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 부대가 아니고 기도 부대, 보급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활동할 수 없는 노인 행동단원은 협조단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목자와 협의하여 레지오 장례를 치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 장례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에서 통일된 규정과 기준을 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청소년에게도 매력이 있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미래 교회의 기둥이다. 그들의 단원생활은 공동체 의식 함양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귀중한 훈련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성인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는 청소년 쁘레시디움 운영과 육성을 조직 체계의 일부로 여겨야 하며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소년 레지오 마리애는 사제와 수도 성소의 못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본에서 창설자가 강조하듯이, 신학교에도 쁘레시디움이 있어야 한다. 한국 세나뚜스 협의회나 신학교가 있는 교구 평의회는 신학교 안에 쁘레시디움을 설립하도록 교섭하고 추진해야 한다. 과거에는 쁘레시디움이 있는 신학교도 있었다. 소년 쁘레시디움 출신 신학생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신학교 안에 레지오 마리애 지단이 있다면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양성소가 될 것이며, 교본공부 등의 학습활동을 통하여 레지오 마리애를 더 잘 알게 되고 기도와 봉사활동으로 성덕을 쌓고 영육의 건강도 유지하게 될 것이다. 

 

10) 단원 모집 문제

해가 갈수록 레지오 마리애 행동단원과 협조단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신자들도 입단을 꺼려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기존 단원들이 기쁨과 긍지를 가지지 못하고 마지못해 단원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단원이 됨으로써 좋은 점이 많고 은혜롭다면 레지오 마리애를 자신 있게 홍보할 수 있고 단원들을 더 많이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행동단원이 되면 과연 어떤 혜택과 은총을 받는지 알아보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개인 성화를 통하여 먼저 자신이 구원받고, 주간활동을 통하여 타인도 구원받게 함으로써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된다. 선교활동으로 한 명이라도 영세시키면 활동 대상자에게는 영신 생명의 은인이 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굳건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진다. 

그리고 투철한 군인 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역경도 극복할 수 있으며,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성모 신심이 깊어지고 성모님의 덕성을 본받게 된다. 또한 성령 신심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도록 인도된다. 단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면 할수록 신체적인 건강도 유지하게 된다. 레지오 마리애 생활을 통하여 선종하는 은혜를 입게 되고 레지오 장례와 수없이 많은 위령미사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며 은총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창설자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3. 맺는 글

지금까지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에 어긋나는 점을 짚어보며 해결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았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 대한 창설자의 소망은 첫째로, 단원들 자신이 먼저 성화하여 구원받는 삶을 사는 것이고 둘째로, 단원들이 성모님의 정신과 덕성을 본받아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는 삶을 살도록 이끎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이 목적과 소망을 달성하려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주회합을 통하여 기도와 공부로써 정신을 무장하고 활동을 배당받아 적극적으로 주간활동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창설자는 행동과 실천이 수반된 개인 성화와 성모 신심을 강조하였다. 그는 레지오 회합의 핵심인 사도직 활동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공부하며 친교를 나누도록 하였다. 따라서 행동단원(Active Member)이란 명칭을 활동단원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활동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런데 활동의 폭을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단원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먹고 즐기는 친교에 치중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창설자의 정신은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는 데 충성을 바치는 투철한 군인 정신이며, 또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성모님의 정신이다. 창설자의 정신은 참된 성모 신심의 정신이고 봉헌의 정신이다. 참된 성모 신심은 봉헌과 사도직 활동을 요구한다. 남미의 레지오 마리애 선교사 알피 램은 ‘레지오에 산다.’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말은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도 지키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은 창설자의 정신대로 사는 것이다. 단원들이 창설자의 정신대로 산다면 레지오 마리애는 다시 활성화되어 꾸준히 발전할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간부들과 단원들 모두가 자성하고 심기일전한다면 전성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75주년, 100주년도 기쁘게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목자료 –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2003년 10월호 (제 297호)

가라오케, Karaoke, ‘가라 오케스트라, 가짜 오케스트라’.. 참 준말의 귀재들, 일본아해들 말도 잘 만들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이라서 작지만 유용한 것들 잘도 만들었다. 밴드나 반주하는 악단 없이 노래와 율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sound system, 누가 마다하겠는가?  지나간 주일에는 이것과 연관된 일들이 두 번이나 겪었다.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었어야 하겠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첫 번째 case가 지난 23일 일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본당의 날과 추석잔치’ 행사 중에 있었던 audio system near-disaster 였다. 이날의 행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이 된 이후 제일 진을 빼고 신경을 썼던 것으로 ‘불참하자고 징징 우는’ mere mortal, member들의 등을 떠밀며 강행했던 ‘노래와 율동’의 공연이었다.

 

 

다른 구역들의 공연내용을 보면 거의 모두 ‘가라오케’ audio 로 100% 율동을 하는 것으로 이날 이들은 목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신나게 춤들을 추었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소수의 그룹은 ‘vocal’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microphone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에 속했다. 문제는 이날 sound system 을 맡은 ‘사목회’ (내가 보기에 ‘시로도’급)는 거창한 mixer를 포함한 wifi-youtube-karaoke 에는 시간을 썼지만 무대에 놓여진 몇 개의 microphone은 모두 ‘먹통’으로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미리 stage rehearsal을 했으면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때는 늦었다. 공연 무대에 올라가 악을 쓰고,  기타는 줄이 끊어질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라는 혹평, 결국 우리도 ‘율동’만 관객에게 전해진 셈이 되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 구역 총책임자인 나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미리 점검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구역조차 같은 문제로 고생을 했으니 결국은 무대 연출 총 책임자가 그야말로 책임을 질 노릇이 아닌가?

두 번째 가라오케 disaster는 3명이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목요회’에서 있었다. 이것은 사실 그 정도로 놀랄 일은 못되었다. 3명 중 한 명이 노래방에 앉아서 침묵으로 일관을 한 것인데..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가? 이날은 목요회가 모이기 시작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라 특별한 event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서 그 정도로 노력을 못 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날 비로소 나는 이 친구가 정말 심각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무슨 ‘파격적인 수’를 써야겠다는 자괴감에 빠진 그런 목요회 1주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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