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kraine, American Monster, Young Rascals, Battery Powers…

아~ poor Ukraine,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는 수세로 몰렸다고?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지만 의외로 잘 싸우고 있었는데… 내막을 내가 잘 알 수는 없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Putin 개XX가 기뻐하게 하는 일은 막아야 하는데… 이것은 기도하는 것 외에 대대적인 무기공급과 경제적 원조밖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우리의 6.25를 생각하며 그들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는 심정,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침략자는 확실하게 응징을 받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말이 승리할 것으로 굳게 믿고 싶고, 믿는다.

Trump, American Monster  Trump Is Still a Threat 계속 보는 New York Times opinion headline들, 이런 표현을 들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나는 이들의 의견에 1,000% 이상 동감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정의의 승리를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고 싶다.

 

 

Groovin’, (Young) Rascals…  Ed Sullivan Show에 나온 모습, 이들이 한창 뛰던 시절은 우리에게는 흑백 TV 시절, 그것도 TV조차도 그러게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1960년대 후반 무렵의 추억 중에 이들의 노래는 너무나 익숙해도 그들의 실제 모습은 모르고 있었다. 이들이 Ed Sullivan 무대에서 공연하는 광경을 보니 의외로 깨끗한 모습들 [히피가 아닌 것, 수염도 없고 머리도 비교적 짧고], 노래도 멋지지만 청중석의 10대들의 괴성, 절규는 이미 Beatles 등으로 경험을 했던 것으로 이것은 아마도 Elvis Presley때부터 시작된 문화현상이 아닐까? 좌우지간 (Young) Rascals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 그 당시 pop song/singer박사 친구 용현이의 ‘말대가리’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이들에게 심취 하며 살았으니까… 그립다, 용현아, 그 젊었던 시절들이. 당시에 자주 들었던 이들의 Good Lovin’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Battery Power! 요새 이것을 재발견, 재실감을 한다. 무엇이 이렇게 battery technology, 즉 chemistry 에 힘을 주었을까? Electric Car가 먼저 떠오르지만, 다른 것들도 무수히 많은 application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의외로 backyard garden power tool에서 그 잠재력을 실감하고 있다.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가 자유를 맛보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한마디로 나에게는 game changer중의 하나인 것이다. 나의 의문은 이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chemistry 분야라서 그런지 발전 속도가 이렇게 거북이 같아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의 disruptive moment, 그러니까 Nobel상 수준의 대발명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laptop PC가 battery 만으로 1주일을 간다고 하면? 그렇게 되면 그 ‘과학자’는 분명히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인데… 아~ chemistry 가 갑자기 부러워진다. 

오늘 같은 날은,  예전 같았으면 바로 fast food 가 점심으로 완벽한 날이었을 것인데, 가급적 외식을 줄이자며 한 각오를 다지며 집으로 들어와서 손수 밥을 해 먹었다. 그것도 오랜만에 나의 ‘오로지 자신있는 요리’인 야채볶음을 먹었는데 이제 이것도 이력이 붙어서 조금 다른 조리법으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비록 가공된 음식재료는 포함되어 있지만 그래도, 집에서 cook을 해서 둘이서 푸짐히 먹는다는 것, 작은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주체할 수 없는 inflation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요즈음, 얼마나 적절한 식사방법인가? 앞으로 연숙의 텃밭에서 예상되는 각종  싱싱한 야채를 한동안 먹을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가슴까지 신선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deck옆에 있는 bush에 새로 부화한 새끼새들이 있었는데, 하마터면 bush를 자르다가 그들에게 큰 피해를 줄 뻔했던 것, 아찔한 노릇이었다. 아빠, 엄마 새가 주위를 항상 돌며 먹이를 주고 있었는데  사정없이 가지들을 자르며 보니, 속에 숨어있던 새집이 완전히 하늘로 노출이 되어서 우리가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는데, 설상가상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heat wave에다가 heat index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100도를 넘는데, 과연 이 아기 새들이 어떻게 견딜까 고민하다가 picnic bench에 있는 커다란 parasol을 새집 바로 옆에다 옮겨 놓으니 우선 뜨거운 직사광선, 태양열의 문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말 이것은 good idea였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이 났는지… 우연인지.. 새들에게도 조금은 이제 덜 미안하기도하고… 제발 아기 새들이 새집을 떠나기 전까지 문제가 없기를…

오늘부터 치솟는 heat index, 예전에 고국에서는 이것을 ‘불쾌지수’라고 재미있게 번역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습도와 온도가 혼합된 것인데 사실 이것이 높으면 피부의 땀이 증발을 제대로 못해서 괴롭다. 이 지역은 이즈음에서 이 지수가 치솟는 날이 자주 오는데, 관건은 이런 날 오후에 소낙비가 내릴 chance가 따라서 오른다는 반가운 기상과학적 사실에 있다. 열대성 오후 소낙비 정도라고 할까… 이것이 이 지역 여름의 즐거움에 속한다.  오늘, 내일 미국 거의 전역이 불볕더위와 높은 습도로 고생을 할 듯하다.

작년 여름에 backyard에서 모기 같은 벌레들을 zapping하는 DynaTrap, 결과는 아직도 알 수가 없지만 lamp, bulb가 망가져서 새로 order한 것으로 교체해서 오늘부터 vegetable garden에 달아놓았다. 나는 솔직히 그  효과에 회의적이지만 모기로 너무나 고생하는 당사자는 그래도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전기를 써 보았자 16W 정도여서 24시간 켜놓아도 문제는 없지만 과연 이것이 모기를 얼마나 control하는 것인지…

오늘 Home Depot에서 필요한 part들, 주로 PVC  pipe fitting으로 어제 물이 새던 곳을 고치는 마지막 작업을 하였다. PVC cement glue는 원칙적으로 cure 되는 시간이 몇 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몇 시간이고 기다린다. 혹시라도 물이 새는 모습이 지독히도 싫기 때문이다. 어제도 꽤 기다린 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물이 샌 것은 정말 실망이었다. 오늘 제2차 노력의 결과를 나는 또 하루를 기다리기로 했다. 급할 것 하나도 없으니까…

모든 잡스러운 일들이 다 끝난 후, 웃기는 일이 또 생겼으니… H-mart에서 sale을 한다고 해서 김치를 대량으로 사와서 담글 준비를 하는 연숙이 sink 아래에 물이 홍 거니 떨어진 흔적을 발견, 알고 보니 얼마 전 grinding tooth가 빠진 food disposer가 심한 진동으로 흔들리면서 물이 샌 것이었다. 그러니까.. 역시 이 disposer는 결국 교체를 해야만 하는 것, 와~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은 것인가, 끊임없이 나의 손을 기다리니…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는다. 내가 필요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기분이 나쁜 것 하나도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아직도 건재하고, 살아있다는 기회를 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Amazon Prime으로 order를 해서 내일 도착해서 큰 놀람이 없이 교체가 된다면 지체 없이 김치를 담글 수도 있을 듯… 

 

This Little Chicks, NYT Obituary, Jan 6 Hearing, Battery Powers…

Saving Chicks… 오늘 아침에 연숙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을 보며, 어제와 오늘은 조금 우연치고는 예외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어제는 YMCA locker padlock 자물쇠 도둑사건이었고 오늘 알게 된 것은 그제 손을 본 deck옆의 hedge trimming job으로 하마터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 그 bush속에 새집이 있었고 방금 태어난 아기들이 엄마의 먹이를 기다리는 상태로 오늘 발견 된 것인데 현재 bush 높이 제일 위에 있는 것을 보면, 그날 내가 조금만 더 깎았더라면… 아~ 상상하기도 싫구나. 오늘 우연히 발견했는데… 엄마 아빠 둘이 부지런히 새집을 지키며 먹이를 나르고 있었으니… 뜨거운 태양에 노출 된 것이 지금 너무 신경이 쓰이지만, 비교적 시원한 아침이어서 큰 걱정은 하고 싶지 않다. 최악의 사태가 되면 엄마,아빠기 분명히 무슨 수를 (나뭇잎을 더 가져와 덮는 등) 쓸 것이다. 아~ 정말 아슬아슬한 사건이었다… 감사합니다…성모님…

 

New York Times Obituaries… 어떤 오래 전 1940년대 미국흑백영화 [아마도 Bing Crosby 주연의 Going My Way였을 것] 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기억한다. 신문에서 아들의 결혼 공지는 못보고 ‘부고란’부터 열심히 보는 꼰대 아버지의 모습. 그 당시에 나도 의아했는데 왜 하필이면 그 아버지는 부고란 obituaries부터 보았을까?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나도 역시 꼰대의 나이로,  심리로… 친구, 친지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반갑지 않은 현실을… 실제로 오늘의 부고란을 보니 세상이 참 많이 변한 것을 실감: ‘송해의 부고’가 실린 것… 송해 선생도 감히 자기의 죽음이 New York Times부고에 실릴 줄을… 세상이 변한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general(사실은 economic) relevancy정도라고 할까? 이 부고를 쓴 사람은 물론 한국인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

좌우지간, 이런 것들 [한국인의 미국언론 진출 등]을 보며 나도 격세지감을 절감하는데 송해 선생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나보다 20년을 더 사셨으니.. 정말 산전수전을 모조리… 참 건강한 삶이었다. 그를 처음 기억한 것이 아마도 1963~4년 경이 아니었을까?  당시 송선생의 출현은 아마도 [나의 추측이지만] 한창 코미디계를 날리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씨가 갑자기 일본 TV로 나가면서 생긴 공백을 자연스레 채우신 것, 그것도 송해-박시명 이란 콤비로 영화계까지 진출한 것, 그 후는 물론 역사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이분의 유명한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로서의 명성은 내가 직접 경험을 못해서 할 말은 없지만, 솔직히 그 노래자랑의 모습이 나는 싫었다. 너무나 통속적, 원색적, 심지어 저속하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 시작된, Jan 6 Hearing.. 과연 이 청문회의 정치적 의미는 어떻게 나타날까? 미국 헌정사상 최악의 순간을 맞았던 2021년 1월 6일, 생각만 해도 악몽으로 떠오른다. 50년 동안 보아온 역사상 가장 보편적 자유민주주의 속의 삶을 너무나 당연시 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어떻게 이 주범 개XX를 지하감옥으로 50년만 쳐 넣을 방법은 없는가? 법치국가에서 법의 집행을 공평하지만 무섭게 하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이 개XX에게는 쩔쩔매는가? 스스로 나는 ‘법이 안 무서운 개XX’라는 것을 자랑하는 인간이 어떻게 그런 자리에 올라갔을까?  이 개XX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다른 쓰레기가 있다. 1930년대 미국을 주름잡던 Al Capone 이 바로 그 XX인데.. 그의 행적이 Donald 개XX와 처음이 비슷한가, 나를 잡으려면 잡아 봐라.. 했고 거의 끝까지 성공했는데, 결국은 마지막에 집념의 법이 그를 감방으로 쳐 넣었는데, 이 Donald 개XX도 그런 순간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말이 진리라는 사실을 증명 좀 할 수 없나?

 

Gas Price $5, national average..  이곳 local price는 현재 $4.19 (기억하기도 편하구나) 인데, 아마도 결국은 $5 가까이 올라갈 듯한 추세다. 값이 만약 내려가더라도 그 폭이 오르는 폭과는 비교가 되지를 않는다. 지난 Pandemic동안 정말 거짓말처럼 떨어졌던 이것이 결국은 ‘정상화’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우리들 그야말로 spoiled가 된 것일 것이다. 우리야 이제 차가 예전 같은 필수품은 아니지만 만약 $5 이 넘으면 조금 외출을 자제하면 된다. 음식값 inflation도 마찬가지, 우리가 먹어 보았자 얼마나 먹을까… 최악의 경우 쌀과 김치만 있어도 살 수는 있을 것이란 부질없는 생각도 든다.
이것보다 더 우려가 되는 것은 사실 9%에 가까운 inflation이 아닐까? Pandemic으로 경제가 쪼그라든 상태에서 모두들 일하는 것을 피하며 무절제하게 찍어내는 dollar에 의지하는 것, 이제는 완전히 중지해야 할 것인데, 역시 progressive policy 는 그 반대쪽의 것과 균형을 맞추어야 산다. 그래서 나는 정치적인 Independent를 선호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협상, 타협, 중용, 온건… 이 모든 덕목들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과거의 ‘온건파 정치인’들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Battery-powered tool의 매력에 이끌려 ‘묶인 줄이 없는’ string grass trimmer와 trimmer deck의 가벼움을 만끽하며 앞쪽의 잔디를 ‘손 보았다’. 비가 온 후 모르긴 몰라도 하루 밤새에 수풀로 변하게 되면 이 ‘장난감 수준’의 mowing은 너무나 힘든 일이 될 것을 알기에 신경을 써서 대강 다듬었다. 나의 목표는 동네 사람들 산책하다가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면 되는 것, 특히 앞집 Pro landscaper, Josh집의 ultra-clean perfect lawn을 마주보고 있는 점을 감안한 것도 있다. 그 친구 아무리 pro landscaper라고 해도 그렇게 ‘완벽한 잔디’를 유지하는 것일까? 잡초는커녕, 정말 빈틈이 현미경 수준으로 관리를 한 것은 놀랍기만 한 것이다. 나와 취향이 다른 것은 이 친구는 프로라서 그런지 소음투성이의 gas-powered lawn tools만 쓰는데 나는 정 반대로 ‘소리가 안 나는 쪽’, 그러니까 electric  tool 만 쓰고 있다는 것. 그 electric도 마침내 battery-powered 쪽으로 하나 둘 씩 바꾸고 있다. 공기오염, 소음공해는 절대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물이 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던 backyard pvc water pipe, 거의 2주 전이었나..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야 본격적인 수리작업이 일단 끝이 났다. 내일이면 pvc cement가 완전히 cure가 된 후 leak test를 하면 지하로 들어간 pipe를 흙으로 덮고… 아~ 그러면 backyard의 각종 garden들 물을 제대로 주는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deck쪽으로 automatic irrigation system, 우선은 single valve control로 각종 화초에게  drip watering 을 시험을 하고, 그 automatic watering이 성공을 하면 마지막 목표인 vegetable container system에 도전을 하면 올해의 backyard project는 끝이 난다. 과연 목표의 얼만큼이나 달성을 하게 될지… 경직된 목표달성보다는 즐기며, 재미로 일을 하고 싶다.

 

Echinopsis, 아~ 선인장, 선인장… 왕성한 에너지를 과시하는가, 벌써 몇 송이의 꽃으로 선을 보이더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꽃봉오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도대체 올해는 몇 송이를 보내줄 것인가? 이 선인장의 매력은 이 꽃들이 딱 하루 몇 시간 동안만 핀다는 사실, 그야말로 하루살이 신세인가, 그래서 이 꽃이 피는 모습은 신비로운 경지에 속한다. 하루를 피려고 일년을 기다리는 신비스런 이 선인장…

 

Pentecost Sunday, Glorious & Relaxed…

오늘이 내가 자주 말하는 glorious day 정도가 될지. 이제는 나의 몸도 80도 대의 온도에 적당히 적응이 되었는지 오늘 정도의 날씨면 너무나 편하다. 바로 이런 날씨가 glorious Sunday의 모습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원인이 될까.. 특히 오늘은 ‘성령강림 Pentecost‘ 대축일, 어찌 성령께서 가만히 계시겠는가? 
순교자 성당의 대축일미사 강론은, 분열되고 두려움에 가득 찬 부활 이후 예수님의 제자, 사도들이 성령의 강림으로 새로운 기운, 정신으로 무장된 교회의 탄생을 언급하였고, 집에 돌아 와서 보고 듣게 된 Bishop Robert Barron의 video 강론은 ‘물론, 역쉬~’ 조금 더 학구적인 접근으로: 성삼위의 위치에서 제3격인 성령의 모습 제3이란 숫자를 ‘기가 막히게도’ 풀이를 한다. 1격으로는 unity를,  2격으로는 diversity, 그것을 사랑으로 연결시키는 제3격 holy spirit… 결국은 역시 성령은 사랑이시다 라는 명제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은 역시 ‘사랑 선포의 날‘이라고 할 수밖에 없구나…

 

시간과 나… 며칠 전에 연숙이 더 이상 쓰지 않는 MINI CHEST rolling drawer 하나를 나에게 넘겨 주려고 drawer속의 내용물을 비우다가 색깔이 바랜 사진 한 장을 찾아서 나에게 건네 주었다. 눈에 익숙한 Kodak Instamatic 100 color print는 1977년 5월이라고 뒷면에 쓰여 있는 것, 물론 기억이 뚜렷이 남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장면… 학교를 떠나기 직전에 친하게 지냈던 Persian friend들과 정들었던 도서관에서 이별 기념으로 찍은 것..  깊은 생각 없이 desk lamp에 기대어 두며 보고 있다가 scan을 해 두었다.  오래 전 월간 신동아 에서 보던 ‘시간과 나‘라는 사진기사 생각이 난다. 유명인사들이 오래 전 모습의 사진을 보며 그 당시를 회상하는 글과 사진.. 이 사진을 보며 당시의 나의 모습이 한마디로 ‘젊다’라는 것, 당시에 이발도 제대로 못하며 [초 장발 超 長髮 시절이어서 깎을 필요가 없었지만…]  학교 공부에 심취하던 추억들이 그곳에 듬뿍 담겨 있었다. 아무리 밤을 새우고 식사를 거르던 생활이었지만 젊음의 힘은 그런 것들을 무색하게 한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1977년의 추억은 그렇게 그림만 같은 것은 아닌 dark side의 추억이 함께 있어서 피하고 싶은 때이기도 … 이제는 용서를 받았다는 조심스런 희망도 함께 하지만… 역사는 남는 것, 어찌하겠는가?

 

귀찮은 일, 왜 내가 이렇게 간단한 물건  order를 online으로 했었던가? 아예 drive를 하는 귀찮음이 있더라도 Home Depot에 가서 내 손으로 집어 들었으면 전혀 문제가 없었을 텐데…  Order를 했던 PVC pipe cement, 그것이 현재 Illinois의 UPS truck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을 어쩔 것인가. 나의 pipe repair work은 거의 준비가 되어있는데… 예감에.. 이것이 delivery되는 것을 기다리느니 직접 가서 사오는 것이 빠를 듯 싶다.

오늘 오후는 모처럼 마음껏 stress을 완전히 잊고 쉬는 때가 되었다. 물론 이것도 시한부라는 것은 알지만 상관없다. 몸은 비록 나른하고 또 Tylenol 두 알의 도움은 받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머리가 가볍고, 편한 것이 모든 통증 같은 것을 무색하게 만드니까…  모처럼 편하게 거의 오락을 즐기는 기분으로 Raspberry Pi, ESP32 등을 가지고 놀았고, 다가오는 여름의 즐거움, 일본판 납량물들을 계속 틀어놓고 지낸다. 이것이 내가 relax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최소한 지나간 열흘 이상,  연숙이는 sinus infection, 그러니까 지독한 코감기로 무척 아팠지만 나는 왜 이렇게 온몸이 피곤하고 쑤시는가? 연숙이 아픈 동안 간병, 그러니까 식사준비를 한 것이 이유나 될까, 아니다 지나간 일주일간 사흘이나 거의 갑자기 ‘근육운동’ 을 한 후유증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아픈 것은 머리로는 ‘쾌감’으로 느껴지는 법인데 이번에는 그것이 아픔으로 남는 것이다. 나이 때문이고, 지나친 운동이라면 이해는 할 수 밖에…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적당한 운동량’을 찾으며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Coffee Stand’s Back, Reminiscing Chongno Health Center…

아~ 비가 오늘까지 하루 더 내리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바랐는데… 아쉽게도 예보는 앞으로 최소한 열흘 동안은 비를 기대하지 말라고… 다시 잔디가 누렇게 마를 것을 상상하니 별로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우리가, 아니 내가 언제부터 화초들에 그렇게 관심을 가졌다고 응석을 부리는지 나도 이번에는 확실치 않구나.. 그저 조금 더 측은하게 그들이 보였다는 것 외에는..
하지만 비가 안 온다는 것에 안심을 하는 것은 오늘부터 우리와 사흘간 지내게 될 Ozzie때문일 것이다. 예전부터 그 녀석이 우리 집에 머물게 되면 신경 쓰이는 것이 바로 ‘주룩주룩 끊임없이’ 매일 내리는 비였기 때문이다. 그래, 마음 놓고 그 녀석과 같이 여름의 시작을 멋지게 동네를 걸으며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Sope Creek도 매일 가고 Spring Creek 쪽 사람들의 동정도  알 수 있고…나쁘지 않아~~

머리 속이 훨씬 맑게 된 지난 이틀 간의 시간들, 도움이 되었다. 몇 가지 ‘소식통’을 끊으면 그렇게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 은근한 놀람이다. 그런 선택, 결정을 하는 것은 물론 나의 ‘공로’라고 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된 것은 혹시 성령님의 도움은 아닐까? 그럴지도, 그럴지도, 항시 나를 도와 주시려는 성령님의 현존 느낌을 24시간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어제부터 거의 우연히 시작된 필사독서활동, ‘늙음은 하느님의 은총‘, 일본 신부님의 ‘거의 수필’에 가까운 책.. 가벼운 내용의 덕분으로 어제 벌써 책의 절반 정도를 읽고 있다. 나,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어서 그런지 흥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있는데, 거의 개인수필에 가까운 점이 읽기도 수월하고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과연 나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것. 늙음을 영성적으로 보려는 것, 색다른 접근방법이라서 호감이 가는 책이다.

아~ 기분 좋~다… 날라간다~ 가볍다~ 편하다~ 괜시리 웃고 싶다~  하! 이런 때도 나에게 있구나! 왜 그럴까? 별 것 아니다, 아니야~ YMCA 에 혼자 가서 운동을 하고 온 것 뿐이다. 그런데 왜 다른 때와 그렇게 느낌이 다른 것일까? 연숙이 완전히 감기몸살로 지난 며칠 고생할 때 사실은 나도 거의 몸살 증세가 있었다. 분명히 최근에 시작된 근육운동 때문임을 왜 모르랴? 하지만 바로 그 통증이 바로 나에게는 쾌감으로 다가온다.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이 잠에서 깨어난 듯 움직이며 ‘나는 살아 있다!’ 라는 외침을 느끼고 듣는다.
이것과 더불어 태고의 추억을 연관시키니… 그렇다, 그래~ 그 때도 지금의 나의 느낌처럼 밝고, 맑고, 뛰고, 날라가는 듯한 것이었지…  반세기 전이었구나… 반세기, 반세기.. 50년 전 대한민국 서울…  맞다! 1972년, 정확히 50년 전이구나.. 당시 유학시험 본답시고 세월을 보내던 때, 갈비씨 신세를 벗어나려 갓 유행하기 시작하던 health club이란 곳에 멋모르고 다니게 되었다. ‘종로서적센타’라는 이름의 서점 뒤쪽 골목 4~5층 건물의 제일 위층에 있었다. 목적은 딱 한가지… KBS로 불리던 ‘갈비씨’ 신세를 벗어나는 것. 결과적으로 그곳에 다닌 것은 두고두고 최고의 투자로 평가를 하게 되었다. 거의 일생을 통해서 육신적뿐만 아니라 심리적 위로와 안정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 때문에 그렇게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호신술, martial art’에 돈을 투자하는 것,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곳에 다닐 때 제일 기분이 좋았던 때는 바로 운동을 열심히 한 후에 shower를 마치고 종로거리로 나와 걸을 때였다. 지금 여기서는 shower를 마치고 나와서 차를 drive를 할 수 밖에 없어서  종로거리의 인파 사이를 유유히 걸을 때의 기분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비록 공해로 가득한 종로 2가였지만 근육 운동과 샤워 끝의 기분으로 걷는 것, 한마디로 행복과 즐거움의 극치였는데…  게다가 친구[남녀불문]와 종로거리의 멋진 다방에서 만날 약속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아~ 다시 가고 싶다, 그 거리로.. 이 거리를 잊지 마세요!

 

연숙의 몸살 감기 [정확하게는 sinus infection] 가 많이 나아진 이때 불현듯 ‘혹시 그것?’ 그러니까 코로나? 증상 중에 냄새 맡는 것에 계속 신경을 쓴 모양으로 결국은 전에 무료로 정부에서 받은 test kit를 써보았다. 귀찮은 것은, 만약에 positive면 어쩔 것이냐? 또 집에 있으라고? 절대로 사양하고 싶은데… 결국은 결과는 negative로 끝을 보았다. 일단은 안심인데… 감기 증상이 있을 때마다 이 kit를 또 쓸 것인가, 골치가 아프다. 문제는 이제 이곳 저곳에서 공포의 코로나 흔적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기에 이런 test 의 필요가 있는지 하는 것이다.

 


오늘 YMCA 에 가서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lobby를 살펴보니, 아~ 그 동안 없었던 coffee maker들이 등장한 것… 그곳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침부터 오순도순 모여서 커피와 가끔 등장하는 생일케이크 로 친교를 나누던 모습, Pandemic 동안 완전히 사라졌는데, 이제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음에 작은 감회를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이  service를 즐기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모두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새로니네 식구가 당일치기로 테네시로 떠나면서 Ozzie를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본 녀석, 얼마나 반가운지? 귀찮은 것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것은 매번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에는 2~3일 정도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녀석과 동네를 걷고 Sope Creek도 잠깐 들려보았다. 이제는 그곳도 정든 곳이 되었다.

 

Another First of May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이제는 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친구들아!  용현아, 창희야, 잘들 살아 있는가? 이제 다시 연락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들 혹시 못 알아 보는 것은 아닐까? 거울을 보기가 무서운 것,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닐까? 아~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친구들아,  작년 5월 1일 이후 또 일년이 흘렀구먼~ 일년? 허~ 하지만 일년이 세월의 축이 끼기라도 하는가?  하지만 그 짧은 일년 동안이었어도  꽤 일들이 모이고 쌓이고 해서 몇 가지는 알려주고 싶구나.

지난 해에는 둘째 손주를 보아서 이제는 명실공히 진짜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아버지 역할, 노릇을 하는 것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고, 제법 즐길 줄도 알게 되었고.. 역시 이런 인간사는 다 자연적으로 풀리는 것인 모양이야. 너희들은 지금 손주들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것은 아닐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작년 이후 제일 큰 세상의 변화는 역시 Pandemic이 거의 뉴스에서 사라지고 대신 Putin 괴물의 출현이 아닐까? 그것과 더불어 끊임없이 설치고 있는 다른 괴물 Trump의 정치변수 정도. 너희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을 듯 보이지만 만만치 않는 나이 탓으로 별수없이 정치동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정도껏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 잊지 마라. 나도 가끔 지나친 흥분을 하며 심장에 무리를 주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자제를 하며 살고 있으니까…
또 일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열심히 봉사를 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을 거의 10여 년 동안 주었던 순교자 성당 (특히 레지오 마리애), 여러 가지 사정 (역시 인간관계) 으로 하나 둘씩 역할을 내려놓게 되었지. 나이를 탓할 수도 있지만 역시 인간관계의 변수는 예측할 수가 없더군. 조금 참을성을 가졌다면 더 버틸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피곤하구먼… 피곤해..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이제 괴로움으로 남게 되고…

아~ 그래도 우리들의 시절만 생각하면 이런 현재의 관심사들은 다 사라진다. 그 시절은 무조건 살맛이 넘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 몇 년의 세월들을 잊을 수가 없으니, 이것도 나의 병인데, 너희들은 나와 다를지도 모르지. 그 시절의 절정은 1970년 4월부터 5월 사이가 아닐까? 그래서 5월 1일을 잊을 수도 없고… 봄이 한창 올라오던 그 해 4월 중순, 잔설이 깊이 쌓여있던 지리산 능선을 어찌 꿈속에서조차 잊겠니?  데모 덕분에 등산을 시작했던 그 시절, 요델 산악회 창희 덕분이었지. 나와 용현이는 그저 창희의 멋진 등산실력을 따라갔던 것 뿐이야.  아련하고 아름답던 1970년 봄, 봄, 봄… 

 

Sah-Il-Gooh! Student Phenomenon, RIDGID compressor

사일구, 사일구.. 아~ 그런데…  춥다, 아니 싸늘하다, 싸늘해~~ 4월 19일, 아하 ‘우리 들’의 사일구였지.. 1960년 4월 19일 아침도 이렇게 싸늘했을까? 그날 아침의 날씨는 분명히 해가 뜨는 전형적 4월 말 서울의 날씨였었다. 중앙중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당시는 4월 초에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등교를 하자마자 퇴교를 당했다. 물론 그보다 더 ‘신나는 달밤’을 없었고 곧바로 재동국민학교 앞 만화가게로 돌진을 해서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나 ‘철인 28호’에 심취했을 즈음에 근처의 종로경찰서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경무대 근처에서 총소리 [그것은 카빈소총]가 나기 시작하고… 생후 처음으로 방송극에서나 들었던 진짜 총소리를 들었던 신비하기도 했던 그 시간에 데모 형님들이 쓰러지며 부정선거를 규탄했던 때…  종로경찰서 쪽 신작로[비원 앞에서 안국동 쪽 길, 당시에는 길 이름이 없었음]에 나가보니 트럭에 가득 탄 대학생 형님들의 고함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고..  운집했던 어른들, 발을 동동 구르며 자녀들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날은 결국, 사일구라고 즉시 불리기 시작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고 나중에 미국의 LIFE magazine은 Student Phenomenon이란 논설로 그날을 보도하기도 했다. 

 

성당에서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순간적으로 아침 식사를 McDonalds에서 결정하고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특별히 아침 식사를 만드는 것이 귀찮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순간적인 생각이… 이런 것들, 선택, 결정, 자유의지 등등 과학적인 분석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유가 결여된 갖가지 선택과 결정들… 하지만, 오늘 억지로 만든 이유는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싫어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McCafe coffee의 향기도 있고, 다른 분위기에서 둘이 있고 싶었던 것, 그것이었다.

 

며칠 전에 fence screen을 고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Harbor Freight 의 cheap Chinese-made 4 gallon air compressor가 죽어 있었다는 것, 나에게는 첫 air compressor였기에 정이 들대로 들었던 pro tool이 아닌가? 2000년대에 산 것이니까 도대체 얼마나 쓴 것인가? 자주 쓴 것은 아니더라도 나에게 자부심을 주었던 tool이었다. 한번 pressure switch가 고장이 나서 교체를 하기도 한 것인데..  다시 이것을 서야 하는데, 이번에는 Harbor Freight로 가고 싶지 않았다. 잠재적으로 Chinese를 피하고 싶기도 했고, 처음으로 유명 name brand를, 그것도 Home Depot에서 사고 싶었다. 며칠 전, garage door sealer를 online으로, 그것도 free deliver service을 경험하고 보니 Amazon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고, 별도로 shipping charge가 없는 것이 아닌가? 값도 값이지만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오늘 $140 정도로 RIDGID 6 gallon 150 PSI compressor를 order해 버렸다. 무언가 큰일을 한 기분까지 든 것, 처음으로 non Harbor Freight product를 산 것이 어쩌면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오늘로서 며칠 동안 골머리를 쓰며 준비했던 PC system emergency recover & migration plan을 일단 끝내게 되었다. 계기는 우연히 ‘당했던’ ransomware-malware 의 추악한 모습에 질려서 시작된 것이다. 매일 쓰던 나의 필수품 desktop pc가 순간적으로 못쓰게 된다면, 제일 아쉬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Microsoft Office 2008 OneNote [with Korean Language Pack]과 open-source email client Thunderbird 두 가지였다. 비상사태 발생시 이것만 즉시 다시 쓰게 된다면 과도한 stress는 피할 수 있을 것인데…  하지만 critical personal data는? 일단 거의 매일 usb flash stick으로 manual backup이 되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Stop right here! 더 이상 이것에 신경을 쓰지 말자! 이것도 과분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모두 잃는다고 해도 어쩔 것이냐? 그것이 나의 생명과 관계라도 있단 말이냐? Ok, Ok, Forget it!

 

지난 성주간 동안 나는 ‘소죄 小罪’를 짓고 살았다. 제일 가까이 해야 했을 ‘영성적 서적’들은 물론이고 나를 흥분시키는 다른 책[주로 과학과 신앙]들을 더 멀리하며 산 듯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조용하게 명상을 할 침묵의 시간을 못 만들고, 심지어 신앙심이 해이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고 강변을 하고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말 책에 손이 가지를 않았다. 책상 오른쪽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책더미’ 사진을 찍은 후에 가만히 보니 모두 읽고 싶었던 것들인데 왜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지… 자세히 보기조차도 미안해서 흑백으로 바꾸어서 보니 조금은 덜 미안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도.

 

Red Monster Putin, Moonlight Sonata

UNICEF USA 에서 보내주는 newsletter를 유심히 본다. 얼마 전에 이곳에 Ukraine 난민들 그 중에서 어린이들을 특별히 돕는 곳에 small cash donation을 했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이 피난민들, 어찌 남 같으랴? 오늘 소식에서 우크라이나 Yuliya라는 어떤 임산부가 이틀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들판과 삼림’을 걸어서 수도 Kyiv 까지 와서 아기를 안전하게 무사히 낳았다는 것. 물론 UNICEF가 지원하는 어떤 open medical center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포탄과 폭격 속을 걸어온 이 임산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 진 빨갱이, Putin이란 놈은 도대체 어떤 놈인가? 비록 70여 년이지만 우리 가족들도 Monster Putin이 아닌 Monster Stalin의 꼬붕격 다른 빨갱이 새끼 Monster  김일성 개XX의 소련제 녹슨 중고 탱크에 짓밟히지 않았던가?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짱깨 빨갱이들에게까지…  이 빨갱이 집단들은 유전적으로 Dracula와 비슷해서 그런지, 아까이 빨강색, 피를 그렇게도 좋아하는가… 비록 Karl Marx는 그런 살인자들의 출현을 예상하지는 않았어도 결과적으로 그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살인, 파괴집단으로 20세기 역사를 장식했으니..  공산당 빨갱이들의 실패한 실험이 일단은 사라졌다고 안심하고 산 지도 몇 십 년이 되었지만, 결과는 Not So Fast~ 인가?  흡사 2차 대전 후, 냉전시작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참담한 느낌까지 드는데. 전쟁은 절대로 피하고 싶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무슨 수단을 가릴까? 이번에는 아주 실패한 공산집단을 지구상에서 멸종을 시킬 명분이 서지 않았는가? 결국,  유일한 희망은 역시 미국밖에 없는가?

 

 

Beethoven’s Moonlight Sonata, 월광곡 月光曲… (Beethoven’s Piano Sonata No. 14 in C-Sharp minor)  나의 눈을 ‘YouTube 쓰레기 급 video’ 에서 멀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ambient music, 그것도 조금은 알만한 classical 쪽을 찾아 GOM Audio player를 setup하며 우연히 듣게 된 곡이 바로 이것 ‘월광곡’, 그 중에서도 간판 격인 도입부, Adagio 의 은은한 흐름이었다. 월광곡으로 배우고 알던 이 곡, 어찌 추억이 없으랴~~ 중앙중학교 시절 (아마도 2학년 무렵, 그러니까 1961년 경) 당시 음악선생님, 솔직히 중학교 수준에는 걸맞지 않게 중후하고 나이도 젊지 않았던 김상을 선생님, 이 곡을 소개해주시고, 당시 흔치 않았던 멋진 ‘전축’으로 들려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 귀한 record 판을 소중한 가보를 다루듯이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우단으로 만든 dust cleaner 로 먼지를 닦던 모습이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생생한 기억은 그 ‘월광곡’인가 뭔가 하는 고전음악을 듣던 우리들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와~ 재미없다! 졸리다~ 당시 중학생이 그 베토벤의 소나타를 얼마나 알고 이해하며 감상 할 수 있겠으랴? 그 이후로 남은 생각은, ‘유명한 고전음악일수록 재미없고 괴롭다~’ 라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 세기적인 고전음악을 듣기에 우리는 너무나 어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김상을 선생님의 고전음악에 대한 열정은 지금 새삼 고마움은 느끼고 있지만… 타이밍이 맞지를 않았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며 다시 듣게 된 이 곡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같은 귀로 듣던 같은 선율이 이렇게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선율을 듣고 느끼던 ‘원자 분자’로 이루어진 두뇌세포의 차이란 말인가? 결국은 음악의 감상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경험적 사실, 비약적으로 말하면 영혼만이 들을 수 있는 느낌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도 해 본다.
Adagio 도입부, 이 곡의 간판 격, 이곳의 느낌이 과연 달빛 月光의 그것일까? 이런 명칭은 나중에 비평가의 느낌에서 생겨났으니까, 사실 베토벤이 작곡할 당시 그의 머리 속에는 ‘달빛’이란 것은 없었을 듯하다.  중학생일적 그렇게도 ‘멋대가리 없었던’ 것이 이렇게 가슴을 쥐어짜게 아련하고, 기쁘고, 눈물이 나도록 행복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 내재의 영혼의 능력임을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긴 여정에서 알게 된 것만해도 너무나 기쁜 것이다.

 

Dragging Daylight, Unreasonable Fear, Serony’s Night Out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은 문제가 없던 내가 이번에는 고전을 하고 있다. 한 시간이 바뀐 것, 첫날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3일간 계속? 이건 조금 재미있기도 하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깜깜한 때에서 일어나기가 싫어진 것, 바로 그것뿐인데…
오늘, 오늘, today.. 흐리고 오후에는 비의 가능성이 많은 날, 기온은 50도 대 비교적 편한 하늘의 모습이다. 오늘은: 아침에 동네성당 아침미사에 갈 예정이고, 새로니가 유나와 Ozzie를 맡기고 ‘둘만의 날’을 내일까지 보낼 예정이라서.. 조금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 되었다. 그래, 할 수 있을 때 하면 되는 거야…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내가 걱정하는 나의 문제점 중에는, 비이성적이 되는 경향, 바로 그것이다. Unreasonable Fear… 이미 2016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이것은 물론 Trump ‘a.k.a 개XX’가 주 원인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비슷하게 Putin ‘a.k.a. 개XX’ 로 이어진다. 이때의 나의 직감적 반응이 나를 겁나게 하는 것이다. 우선 ‘바보!’ 정도가 아닌 ‘이 개XX야!’ 로 시작되는 나의 모습, 예수님의 얼굴이 곧바로 떠오르지만 이것만은 별 방책이 없다.  어쩌면 2016년부터 6년에 걸쳐서 두 명의 ‘죽음의 사자 使者’가 거의 예고도 없이 출현을 했단 말인가? 첫째 놈은 미국 200여 년의 ‘보편적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인간이고, 다른 놈은 ‘지구를 한방에 날리려는 듯 보이는’ 그런 인간… 어떻게 거의 반세기 간의 ‘계몽적, 민주적, 진보적, 진화적’ 인류가 이렇게 ‘난데없는 독재자들에 의한 퇴보를 하고 있단 말인가? 테이야르 Teilhard de Chardin 신부님의 ‘보편적 진화론’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사순절의 분위기가 가득~한 우리 정든 동네성당, face mask가 완전히 사라진 곳에 정든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인다. 목표 주일 2회 아침미사참례는, 드문드문 예외는 생기지만 끈기 있는 노력의 성과는 서서히 보일 것이다. 오늘은 주임신부 Fr. Miguel 집전이어서 예의 강론은 여전히 같은 tone과 내용을 보고 듣는다. 변함없는 그의 사목 style은 지루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변치 않는 우리 신앙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런 곳이 우리에게 필요한 곳이다.  오늘도 그곳으로 drive하면서 생각하며 말을 한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동포 본당 순교자 성당에 drive해서 갈 수 있을까… 그런 여건이 안 된다면 분명히 다음 선택이 동네 본당이 우리의 유일한 본당이 될 것인데… 지금은 조금 상상하기 쉽지는 않지만 이제는 세월의 진실을 알기에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 언젠가 우리도 drive를 못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러면.. 깊이 생각하기는 싫지만…

오늘 그곳의 주보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보며 놀란 사실은… 지난 해부터 헌금의 액수가 상상외로 많다는 것, 우리는 Pandemic으로 교회가 재정난을 겪을 것으로 추측은 했지만 결과는 정 반대… 오래 전의 평상시에 비해서 적자는 물론 사라지고 이제는 상당한 흑자 재정! 허~ 이것은 놀랍고 반갑고, 우리 동네 성당에 자신감과 희망이 갖게 된다.  교우 신자들의 숫자가 분명히 많아졌다는 것, 특히 Hispanic 신자들이 더 많이 늘어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유나, Ozzie가 내일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려고 왔다. 새로니부부는 오랜만에 애기 없는 하룻밤 휴가를 갖게 된 것이다. Buckhead에 있는 upscale restaurant에서 멋진 저녁 식사를 하고, 근처의 Hilton Hotel에서 밤을 지내는 계획이다. 얼마나 힘든가, 갓난 아기를 기르는 것, 생활의 단조로움이 큰 문제가 아닌가? 그래도 돌봐주는 사람이 가까이 사는 것이 그 애들에게는 다행일 것이다. 같은 town에서 살기에 망정이지, 만약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이런 시간을 쉽게 가질 수 있을까?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아온 Ozzie와 오늘은 한 시간 정도 걸었다. 어제 점심식사를 같이 했던 자매님들 얘기에 산책은 한 시간 이하로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를 했던 것을 기억하며 한 시간 정도 걸었다. 하기야 너무 오래 걸으면 운동이 되는 것보다 무릎에 무리가 갈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래 앞으로는 최대한 1시간 정도로 … 하지만 가장 적당한 거리는 45분 정도의 산책이 아닐지..

 

정말 뜻밖으로 중앙동창 ‘차정호’가 email을 보내왔다. 요새 이런 류의 소식을 받은 적이 없어서 내용에 상관없이 반갑고 기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중앙동창회 소식이 끊어진 지 거의 10여 년이 넘어가고, 유일한 연락처 역할을 했던 건주가 중풍으로 쓰러진 후 솔직히 나는  중앙동창회 소식은 포기한 셈이었다. 그래도 정교성, 김원규 등의 소식은 지속적으로 접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아주 다른 쪽으로 차정호의 소식을 받은 것이다. 소식의 요지는 요새의 흐름에 따라 단체 카톡방으로 동창들이 소식을 전한다는 것, 나에게도 들어오라고…  100여 명이 현재 가입을 했다고… 어떤 동창들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은근히 나의 관심은 나 이경우란 이름을 대부분 기억을 못 할 것이라는 사실에 머문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Many Anniversaries, 우리들의 삼일절

‘우리의 삼일절’을 자축하기 위해서 원래는 중식 만천홍에서 조금 격조 있는 분위기를 가지려 했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쉰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조금 없었는데… 왜 화요일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금세 풀어졌다. 서 아녜스 자매의 사무실에 들린 것이 도와준 것이다. 바로 그 옆에 ‘강남 江南’이란 간판이 보이지 않는가? 비싼 듯 보이는 이곳, 자주오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오늘의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추억, 기억은 거의 10년 전의 전요셉 형제와 레지오 단원들의 생일 모임 등등이 있는데 둘 다 이제는 조금은 잊고 싶은 것들이 되었구나… 푸짐하게 생선회 점심을 두 병의 맥주와 함께 2022년 3월 1일을 지낸다. 감사합니다. Holy Family 성당 매일미사 10년, 정든 우리 집으로 이사 30년, 게다가 40년 전 1980년 3월 1일 마지막으로 본 김포공항… 아~ 정말 많은 추억의 사건들이 우리들의 삼일절에 있었다.

 

벌써 3개월째가 되는가? 11월 말에 시작된 본당 봉사자를 위한 요한복음 영성독서회.. 우리에게 화요일에 본당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아직도 감사한다. 요한복음을 깊이 공부를 할 수 있음도 그렇지만 정오 미사까지 할 수 있으니… 벌써 3권째로 접어든다. 아직도 저자의 ‘말투’에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내용은 최상의 수준이다. 신부님의 강론, 강해…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이 신부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자연스레 풍겨 나온다. 오랜 사목생활의 경험이 교재의 내용과 멋지게 어울린다고 할까?

오늘은 뜻밖에도 우리 함께 요한복음을 공부하는 은 자매가 두 권의 따끈따끈하게 새로 발간된 류해욱 신부님의 책을 건네 준다. 이것이 웬 떡이냐.. 했는데 조금은 사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예수수난을 묵상하는 기도회’ 비슷한 것에 연숙이를 praying member로 넣은 것이다. 하루도 빠짐 없이 기도를 해야 한다는데… 조금 어려운 것은 아닐지.. 이것도 역시 ‘수산나’라는 ‘맹렬자매’가 leader격으로 있었다. 이런 신심활동, 나쁠 것 하나도 없다. 조금만 ‘조심하면’ 이런 것들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도 참 많이 변했다.

 

Rechargeable Keyboard & Mouse Combo

어제 도착한 keyboard & mouse combo, 아무리 대량생산을 한 것이라도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정도로 인간의 감각은 특별한 것인가? 이 다른 감각, 불편하기도 한 것인데 역시 ‘이것도 지나가리라’의 하나다. 부지런히 쓰면 또 서서히 나도 모르게 적응이 될 것…  왜 사치를 부리며 이것을 $30이나 주고 샀는가, 후회를 안 할 수가 없구나. 유일한 이유는 지금 쓰고 있는 wireless mouse의 short battery life였는데. AA size battery 한 개의 값이 얼마나 하길래… 나의 한심한 우려, battery를 ‘자주 교체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는 후회를 안 할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생각을 했어도… 유일한 위로는, ‘이것을 연숙에게 주고 싶어서’ 라는 것 밖에 없지만 그것도 큰 기대는 안 한다. 분명히 ‘안 쓸 거야!’ 하는 대답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예측은 100% 틀린 것이었다. ‘고마워’하는 표정으로 받아 편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살아도 아직 서로 모르는 구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밤에도 첫잠이 드는데 그렇게 고생을 한 기억, 왜 그럴까?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언제부터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새벽 6시 반의 heating소리가 날 때까지 계속 꿈꾸듯이 잤으니 말이다. ‘살았다’ 하는 안도감이 어둠 속을 걸어 나오는 나를 기쁘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날인가… 아하~ 연숙의 치과, deep cleaning 하는 날이구나. 그리고 나는 어느새 다가온 요한복음 공부하는 화요일, 일주일을 쉬었기에 조금 서먹서먹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공부와 깨달음을 얻을까 기대를 한다. 가능하면 오늘 내로 ‘독후감’ 을 비롯한 글을 ‘순식간에 쓸 수 있는’ 기적을 바라기도 하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결국, 이런 것은 내 머리와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나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commercial’ TV 를 켠다. 아무래도 현재의 사태들에 조금은 둔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월 초 ‘짱깨 올림픽’을 피하려고 시작된 TV blackout이 Putin으로 이어지며, 그 기간이 거의 3주 이상이 되었으니… 나도 조금 지독한 인간인가? 이것은 솔직히 나도 괴롭다. 어떤 news를 피하며 사는 것이 현명하고 건강한 것인가… 이런 노력, ‘특정한 사건이나 인간’을 ‘안 보려는’ 노력은 비교적 근래에 생긴 정말 나도 싫은 해괴한 노력, 일이 되었는데… 이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변한 것인가, 세상이 변한 것인가?

내일 요한복음 공부에 대비한 독서를 ‘간신히’ 마쳤다. 이것 읽은 것 내용 자체는 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역시 나의 맹점, 책의 저자에 대한 반감,반발이라고나 할까? 나는 왜 이럴까? 그의 문체인가 그의 과감하지만 오만한 필체일까? 간단히 말하면 겸손하지 못한 듯, 지나치게 선교를 하려는 듯한 말투가 정말 거슬리는 것이다. 1권도 그랬고 2권도 그랬다. 이제는 나의 마음을 추스를 때가 온 것은 아닐까? 이제는 그가 말하는 의도에 더 신경을 쓰고 주목을 하면 어떨까?

매일미사, 미사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 하루가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어때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덕분에 편하게 간섭을 안 받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 좋았다. 지나치게 많은 듯 나의 옆에 쌓여있는 ‘사랑하는’ 책들, 그 중에 손이 가는 것을 잡아 좋아하는 부분을 읽는 것, 누가 그 즐거움을 짐작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이런 나의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사는 것이 좋을까? 현재의 ‘과학+신앙’ 이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아~ 거의 잊고 있었다! 내일이 3월 1일, 삼일운동, 유관순 누나도 생각해야겠지만 나, 우리에게는 특별한 날이 아닌가? 나로서는 1980년 3월 1일은 연숙과 다른 특별한 날이다. 그날 나는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마지막으로 떠난 날이다. 우선 ‘슬프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무에게도 나는 이날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고 살았다. 부끄럽다는 생각밖에… 어찌 나는 그렇게 살았는가? 마지막으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김포공항을 떠나던 날..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었던 날이 3월 1일, 1980년… 이것은 나에게는 인생의 드라마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을까? 그날 이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나름대로… 하지만 아직도 절대로 나는 미안한 날, 부끄러운 날로 남는다.

다음 3월 1일은… 1992년 3월 1일 즈음, 우리의 집,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온 날, 30년 전! 어떻게 이 집에서 우리는 30년을 살았는가? 30년! 코흘리개 아이들이 다 커서 손주들을 남기고…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는 직장생활은 비록 지속했지만 만족스러운 결말을 내지 못했던 어렵고 고통스런 암흑의 시절을 보낸 어두운 그림자들…

그 이후 3월 1일은… 2012년… 아~ Holy Family CC에서 매일미사를 시작 했던 날이었다. 이때부터는 비교적 은총의 세월이 시작된 것으로 보면 된다. 현재까지.. 현재까지… 은총으로 살아왔다.

이런 연유의 3월 1일, 유관순 누나와 성모님 엄마의 도움과 은총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고 가급적 이날 우리는 ‘때려먹자’라는 말로 기분을 돋군다. 내일도 마찬가지가 아닐지… 만천홍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까… 다른 때는 주로 동네의 Lemon Grass였었지… 그것도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긴다.

 

The Art of Loving by Eric Fromm

Erich Fromm의 고전 classic 인 ‘사랑의 기술 技術’, 종이 색깔이 그 동안 더 바래진 오래된 ‘볼품없이 초라한 paperback’ 을 부리나케 꺼내 펴놓았다. 몇 페이지를 펴보니 역시 책의 spine의 접착제가 완전히 말라서 그런지 그 부분이 완전히 떨어지고.. 할 수 없이 spray glue를 뿌려서 간신히 고정을 시켜 놓았다. 조금 불쌍하게 보이는 모습의 이 오래된 책이 더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아침에 왜 이 책을 부지런히 찾았는가? ‘사랑’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요사이 요즈음 나를 문자 그대로 ‘괴롭히는’ 말이 바로 이 ‘사랑’이란 단어였다.  순교자 성당의 ‘요한복음 산책’ 영성독서 강의, 갑자기 악마처럼 나를 괴롭히는 나쁜 생각들 등등의 등 뒤에는 ‘사랑이 결여된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고 상상일까?
이 책을 봐도, 저 책을 봐도, 이곳, 저곳을 가도 나에게는 ‘사랑’과 사랑의 결여, 를 본다. 그것도 나 자신의… 왜 이렇게 이 흔하디 흔한 말을 나는 다시 깜짝 놀라는 듯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일까?
심리학적인 사랑, 영성적인 사랑, 종교적인 사랑, 개인적인 사랑… 상관이 없다. 사랑은 사랑이다. 특히 인간적, 인간 대 인간의 사랑, 나의 주변과 나의 사랑…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나는 과연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인가? 내가 쉽게 생각했던, 나는 물론 ‘나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제는 의심이 든다.
나는 안다. 나는 감정적인 사랑만을 사랑으로 보며 살았을 것 같다. 의지적으로 사랑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에 거의 없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할 자신은 있다. 의지적 사랑? 생소한 개념이다. 아니 없다, 나에겐…
의지적인 사랑, 공부하며 연구하는 사랑의 방법,  그것을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이란 책에서 본 기억으로 그 책을 찾은 것이다. 이것으로 현재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그룹,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 책의 서문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사랑의 기술 技術에 대한 편리한 지침 指針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반대로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 成熟度와는 관계 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 感傷 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서낼리티 personality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한다.  <발췌: 사랑의 기술>

사랑과 관련된 source 중에 한동안 잊고 살았던 책들이 있다. 바로 예수회 Father Spitzer의 Quartet Series, 그 중에도 God So Loved the World 는 주제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거의 논문급인 그 책은 이런 때에 거의 오아시스와 같은 희망을 준다. 이런 때에 이것을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오늘도 남아도는 ‘꽤 많은’ pc box들과 씨름을 했다. 물론 Ubuntu Desktop OS 를 installation을 하는 것으로… 이것을 하면서 왜 내가 이것을 지금 꼭 해야 하는 것인가 묻는 나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우선 ‘재미와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용성보다는 engineer적 호기심, 재미,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이유로 몇 시간 머리씨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용성도 은근히 희망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요새 나의 심심풀이 시간선용의 제1 후보인 Raspberry PI가 Linux based라는 간단한 사실이다. 이것으로 조금이라도 Linux community에 가까이 가는 것, 나쁜 idea가 아니다.  두 대의 PC box 에 Ubuntu 20.4 LTS 를 설치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agony & ecstasy 의 연속이라고 할 듯… 그런 과정들이 내 engineer로서의 인생이었다. 고통과 희열의 반전, 연속…

 

Groundhog Day, Farewell Hemingway…

Groundhog Day, 2022… 올해는 잊지 않고 언급을 한다. 오늘 이 유명한 두더지가 자기 그림자를 보았을까? 작년에는 그의 기후예보가 거의 정확히 맞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이것 거의 ‘복권’추첨을 보는 듯 해서 이제는 재미도 있고.  Bill Murray 주연의 영화 The Groundhog Day가 암시하는 메시지,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듯한 우리의 ‘지겨운 매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극을 받는 위안도 받는다.  1993년 이 midwinter classic film은 이제 아련~ 한 추억거리로 남게 되어, 내가 살아 있는 한 이날은 재미있는 날로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오늘 이 유명한 두더지는 과연 보았을까?  아~  보았다, 자기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앞으로 6주 간은 겨울이 계속된다… 허~ 올해도 이것이 맞을 듯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구나.

거의 10도 정도가 올라간 비교적 포근한 날씨일 것이지만 역시 그 뒤에는 빗방울의 그림자가 없을 리가 없다. 구름이 있어야 포근함의 가능성이 있음을 안다. 거의 3한 4온, 그리고 정확한 주기로 찾아오는 비를 동반한 구름들… 그래, 최소한 이 지역 U.S. Southeast 는  Global Warming의 느낌이 없는, 거의 정상적 기후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감사, 감사… 하지만 한가지,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발을 다시 보는 행운은 있을까, 언제일까, 꿈은 버리고 싶지 않다.

TV news front…  나의 favorite & trustworthy channel은 전통적으로 NBC 인데 이유는 나에게 그들의morning show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음이 들고 news 보도도 비교적 이성적,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요새는 난항을 겪고 있는데 두 가지 ‘사건’ 때문이다. 하나는 최근에 들어,  “입만 열면 거짓말이 나오는“, ‘개XX DONALD’에 대한 보도를 지나치게 자세히 하고 있는 것[왜 그XX의 새빨간 거짓말을 cover하는지…]이고 다른 것은 ‘중공, 빨갱이 짱깨‘ 들의 다른 fake show, Olympic을 [상업적이 이유지만] 전면 cover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한 유일한 선택은… 그것들을 아예 ‘꺼버리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오늘 이른 아침 TV에서 우연히 잠깐 본 영화에 낯익은 얼굴이 나온다. Rock Hudson, 1957년 개봉된 이 Hollywood 영화, 한글 제목은  ‘무기여 잘 있거라‘, 귀에 익숙한 이 구절.  헤밍웨이의 유명한 소설영화의 제목 A Farewell To Arms..
이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61년 때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보게 된 영화[Rock Hudson, Jennifer Jones] 때문이었다. 중학교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생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그 나이 코흘리개들이 과연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인가? 물론 전쟁의 모습들은 흥미 있게 보았겠지만, 당시 우리의 화제는 한가지였다. 주인공Rock Hudson[ Frederic Henry역] 과 그의 연인 Jennifer Jones[Catherine Barkley역] 가 과연 ‘그것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고 아직도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원래 소설에는 그렇다고 나오지만 아마도 검열에서 삭제가 되었을 것이다. 좌우지간, 그 나이에 벌써 우리들의 hormone level은 왕성했던 것인가.

나중에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잠재의식, 기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 나왔다. 눈이 덮인 높은 알프스 산등성이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하는 군인들, 폭탄이 떨어지는 병원에 누워서 ‘마지막’ 기도를 합창하는 부상병들, 후퇴하는 민간인들의 처참한 모습들.. 길가에서 군법 즉결재판 후 총살 당하는 군인들,  그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에 맞서서 연합군 측에 가담한 이태리 군인들의 알프스 작전을 포함한  1차대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배우게 되었고 요새는 그것, 전쟁의 실제 모습’ 을 직접 경험했던 Hemingway의 생각과 기억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헤밍웨이의 행적을 묘사한 다른 책[실화]과 영화[실화에 근거한]가 있었던 것은 오늘에서야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가19살에 혈기왕성한 미국청년으로서 이태리 군대의 위생병, ambulance driver로 참전한 경험은 나중에 그가 쓴 각종  베스트셀러 걸작 소설의 배경이 되는데, 특히 그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까지 하기로 했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또 다른 미국출신 7년 연상의 간호원 Agnes는 위에 말한 영화의 여자 주인공의 model이 된다. ‘무기여 잘 있거라’ 같은 소설과는 달리 실제의 이 연애 스토리는 전쟁이 끝난 후 서로 헤어지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그가 나중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세계적 문인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전쟁중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한 것은 고사하고 진부하고 흔한 이야기 중의 하나였을 것인데, 헤밍웨이와 Agnes의 운명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평범한’ 사랑이야기는 1960년 이후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해서 1990년대에는 책과, Chris O’Donnell, Sandra Bullock 주연의 영화, “In Love and War“로 알려지기도 했다.

헤밍웨이의 운명, 아니 행운은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연합군 측으로 참전한 이태리에 외인부대 위생장교로 참전한 것으로, 그것은 그의 일생을 좌우하는 사건이었다.  위에 말한 Agnes라는 연상의 여인과 흠뻑 사랑에 빠진 것, 그 젊은 나이의 열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탁월한 문필가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이태리 무대가 모든 베스트셀러, 노벨상 등으로 이어지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을까? 그 이후에도 그는 각종 분쟁, 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아마도’ 이태리 때의 사랑의 경험을 다시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1차대전 말 이태리의 Alps campaign의 시작..

FredericCatherine의 우연한 첫 만남

알프스 산맥 정상으로 쳐들어오는 독일군을 향해 올라가는 이태리 군인들

독일군 spy로 오인되어 총살 위기에 몰린 Frederic 

구사일생으로 위기모면 후 중립 스위스로 탈출하는…

스위스 동네 경찰이 이민관 역할을.. 여권은 검사하지만 속 뜻은…

Catherine은 출산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결국 그는 전쟁과 사랑의 비극을 몸소 안은 채…

Ernest Hemingway

 

Goodwill Trip, Old Politics, K-POP Redux…

2주 만에 ‘동네성당’ 행이 재개된다. 희망에는 최소한 일주일에 2번으로 시작하려 했는데 역시 오래된 게으름의 관성인가, 그것조차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첫 번째의 목표 2회를 향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과 함께 Goodwill trip도 자주 할 수 있다는 좋은 동기까지 발견했으니 이런 노력은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특히 얼마 전부터 시작한 Goodwill donation은 우리에게는 거의 구세주와 같다. 현재 car garage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잡동사니’들, 버리기에는 아깝고 친지에게 주기도 망설여지는 것들인데 이렇게 편하게 기부를 할 수 있고, 그것들이 결국은 local community 를 도울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의 전형이 아닐까?

2주 만에 다시 돌아온 10년 지기 知己의 정든 고향,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역시 고향의 느낌이다. 그 동안 정든 얼굴들이 거의 그곳에 건강하게 미사를 보고 있었으니까… 마치 우리가 ‘탕자의 귀향’의 주인공인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미사 전 ‘묵주기도’를 하던 부부의 건강한 목소리에서 이 성당은 아주 건재함을 느꼈고, 앞으로 계속 우리는 단단한 영적 고향의 존재를 느끼며 살 것을 생각하니 정말 다행으로 여겨진다. 2012년 시작했던 매일미사의 10년 기념일이 올해 3월 1일,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우리는 다시 Lemon Grass[Thai Restaurant]에서 Broccoli Tofu, Shingha beer로 건배를 할 꿈을 가진다. 아~ 성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밤 늦게 교성이의 카톡의 내용은 나를 은근히, 아니 꽤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어제 김 다니엘 형제의 ‘예의’ 극우파 정치론을 교성이와 나누고 싶어서 보낸 데 대한 답신인데… 의외로 녀석은 흔히 말하는 진보파인 것이다. 나의 주위에 득실거리는 우리 또래의 대다수 의견이 아닌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극단적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글을 분석을 해야 알듯한데…  그러면 나의 의견은 과연 무엇인가? 그저 ‘나는 몰라’만 앵무새처럼 중얼거리기만 할 것인가? 문제의 핵심을 알아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넘어서 우리의 세계관, 가치관에 나는 더 관심을 가지고 싶다. 그것들이 결국은 우리의 사상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교성이 카톡을 다시 본다. ‘사회주의, 좌파’에 심취했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우리또래 친구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다른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교성이의 변모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모른다, 그것이 비극이다… 교성이의 얘기는:

 

나는 기본적으로 시회주의자,즉 좌퍄사상에 심취해 있다. 문재인이  정권 잡았을 때 박수 많이 쳤다. 그 후 2-3년간 기득권 세력과 소위 elite들의 결사항전에 문정부의 개혁시도가 지연, 무산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더욱이 네가 보낸 글쓴이와 같이 지식인들이 앞장서 소위 배웠다는 자들의 “무식한” 극한적 시각으로, 편향적인 시각으로 논평하는 학자들, 나는 그들을 혐오한다

이전부터 보수정권은 부패해서 몰락하여, 좌파정권은 무능해서 망하여 쳇바퀴 도는 것이 정치의 세계 가 아닌가,,,,부자들, 지식인들, 힘 가진 고위공직자들,,,,,좌파정부 앞으로, 5번 더 나와야, 그자들의 저항을 어느 정도 부술 것 같다

그래도 문정부는 무능하였으나, 기존 기득권세력의 큰 돌덩어리의 조그만 돌들을 부셔놓고, 처음으로  저항을 시도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의미가 있다면… 첫 부분의 말이 제일 놀랍고 또한 위협적이다. ‘사회주의[자], 좌파사상에 심취’… 참 우리세대로써 이런 말하는 것 자체부터가 파격적이 아닌가? 좌우의 구별조차 못하고 살았던 우리들의 교육, 환경 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어서 된 대화에서 나는 그가 우리 세대에서는 ‘극소수’층에 속한다고 했는데 반응은 그런 이야기 처음 듣는다는 말투였다. 나도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그 역시도 흡사 ‘동굴  속’에서 있다가 나온 사람의 반응처럼 들렸다. 최근 추세가 모두 extreme polarization의 추태를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나의 놀람도 크게 놀랄 것은 못 된다. 결국 이런 ‘화약고 같은’ 화제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건강과 우정을 지키는 길임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김다니엘 형제가 보내 준 어떤 ‘지식인의 고함소리’는 과연 어떤 것인가? 과격하고 비 이성적으로까지 들리는 이 내용 중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항들이 적지 않게 있어서, 나는 역시 현 대한민국의 정치판도를 거의 모르고 사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과연 그럴까? 나의 정치관, 색깔을 굳이 말하라고 하면 moderate progressive정도일 듯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가톨릭의 social justice  가르침에 궁극적인 판단을 맡길 수 밖에 없다.

 

2017년 겨울 한때 ‘신기하게’ 보았던 K-POP video들을 다시 본다. 이것도 거의 binge watching에 가깝다. 세월의 마력을 느끼려면 이것이 나에게는 최상급이기 때문일 거다. 참, 세월의 마력, 횡포, 매력… 50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여자 애들의 비명, 괴성들이 향하는 곳이 Cliff Richard, Tom Jones, Beatles, Elvis 였던 시대에서 이제는 그것이 아시아의 조그만 반도,  대한민국, 일명 ‘우리나라’의 국적불명 유행가수’들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것이 나는 너무나 신기한 것이고 아직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도 상품수출이긴 하지만 ‘무형문화 상품’이 아닌가? 우리의 세대, 시대는 이제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일까? 믿고 싶지 않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신 대한민국’의 저력, 국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우리 세대의 숙명의 적, 숙적 일본을 누르는 느낌도 드니… 이런 선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 그것이 반세기 세월의 선물이라고, 선물이라고…

Today While the Blossoms Still Cling…

거의 한달 만에 아가다 자매님 그룹과 ‘하얀풍차’ bakery에서 coffee, 도넛, 그리고 수다를 즐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따님 안나 자매가 지난 성탄절 다음날 큰 차 사고를 겪었다는 것, 잊고 살았다. 일요일 밤에 일을 하러 가다가 집 근처에서 어떤 다른 한국인 아줌마가 멀쩡하게 서 있는 차를 뒤에서 들이박아서 완전히 total이 되었다는 놀랍고 믿을 수 없는 사고였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라고나 할까…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지만 그래도 누가 알랴? 차가 없어진 것도 너무나 골치가 아프고, 변호사, 보험회사 등과 상담을 하는 것 등… 내가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최소한 큰 후유증은 없는 듯하지만 그래도 Chiropractor 에 매주 간다고 하니… 이래서 인생은 알 수가 없는 거다. 나도, 너도, 우리집도 다 마찬가지…. 내일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안심이 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오늘을 살자, 어제와 내일보다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Today while the blossoms still cling to the vine…

안나 자매의 남편이냐시오 형제가 전에 말했던 대로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알고 보니 역시 ‘주식 stock’에 관한 책이라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나보고 지금 주식을 하라고… 허~ 우리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책은 다행히도 만화였다. 주식의 고수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허영만이라는 사람이 만화를 그린 것이다. 아마도 주식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를 고려해서 가볍게 주식을 배우라는 뜻인지도… 그것이 맞을 듯하다.

 

Shrimp Cocktail의 추억~~~  오늘 집에 오는 길에 Kroger에 들려서 처방약 [콜레스테롤]과 몇 가지 ‘생필식품’을 사면서 우연히 조그만 shrimp cocktail package가 보여서 거의 생각도 없이 집어 들었는데… 흐르는 생각에 잠긴다. 이것에 얽힌 추억이 머리 속 깊은 곳에서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1989년 여름, 매디슨 위스컨신에서 아틀란타로 이사준비 차 방문할 당시, 비행장에서 이것을 사서 먹었던 기억이다. 두 명이 먹기에는 너무도 작은 양이어서 그랬는지 너무도 맛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후에 차를 타고 이사를 내려올 때는 아주 많은 양의 shrimp 를 사가지고 임시로 묵었던 hotel에서 전기 밥솥으로 ‘복수라도 하듯이’  원 없이 많이 만들어서 먹었던 것.. . 오늘도 Kroger에서 그것을 보면서도 사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집에 와서 많은 양의 새우를 먹으며 33년 전의 ‘가난했던 추억’을 나누며 웃는 시간을 가졌다. 아~ 30여 년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세월이여~~

찬란한 태양을 비웃듯이 바깥 공기는 놀랄 정도로 매섭다. 이런 날이 나는 제일 싫은데… 이런 날에 쓰레기 cart를 밖에 내 놓아야 하는 것은 더 싫었지만 놔두고 들어올 때는 완전히 기분이 바뀌었다. Mailbox에 조금 의외의 flat envelope 두 개가 있었다. 아하~ COVID-TEST-KIT가 벌써 왔구나~~ 하지만 너무나 가볍고 얇구나.. 하며 열어보니… 완전히 예상을 깨고 ‘아기다리고기다리’ 던 서류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는가?  기쁨과 놀라움…  성모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약속하신 거의 마지막 산봉우리를 넘고 있습니다!

올 겨울 들어서 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한겨울의 날씨.. 비록 찬란한 해는 떴지만 그것을 놀리는 듯 공기는 냉장고와 비슷하고, 싸늘한 바람은 더욱 괴롭기만 하다. 마지막 1월의 주일은 매일 이런 식, 하지만 섭섭할 것 하나도 없다. 이것이 정상적인 날씨니까… 이상기후 같은 것이 없는 것만 해도 얼마나 안심이 되는가?

 

39 Years, Scrambled Egg, 5 AM Wonder, Jan 6 SOBs

오늘은 새로니 39살 생일이로구나… 감상에 젖고 싶다. 내년 40살에는 더 그렇겠지만 상관없다. 1983년 1월 5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1983년… 아~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만 머리를 맴도니.. 첫 생명, 새로니 생각보다는 나와 우리부부의 만남부터 grandparents 까지의 인생역정이 더 먼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만남, 결혼은 시작이었지만 아이들의 그것들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완전 미지수였기에, 황혼의 인생도 반드시 밋밋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80년대와 2020년대의 차이는 계량조차 쉽지 않은 엄청나게 다른 세상인데…  새로운 두 가정이 우리로부터 시작 된 우리들의 인생역마차는 이제 서서히 다음의 정거장에서는 완전히 쉬어도 되는 것인가…

 

Leader of the Band – Dan Fogelberg – 1983

 

오늘 로난 모자 母子가 아침에 와서 같이 먹게 될 breakfast에 생각이 미치면서… 아~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든다. 매일 우리가 먹던 것에 신물이 났는가? 침이 나올만한 것은 없는가… 매주 금요일마다 먹는 pancake을 오늘? Pancake은 가급적 금육재 禁肉齋로 meat종류를 피하려는 노력인데, 그것을 수요일에 먹는 것도 괜찮을 듯. 또 다른 것은 없는가?  삶거나 fried한 eggs, 이것도 조금 지겹고… 아하~~ 그렇다, scrambled egg! 그것이 있었지! 재료는 같아도 맛과 기분이 전혀 다른 이것을 오늘 만들면… Googling에서 cooking website, LOVE & LEMONS 라는 곳에서 멋진 모습의 scrambled egg ‘recipe tip’을 찾았는데… 이것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이래도 맛이 있을까? 그것이 scrambled egg 의 매력이라는데.. 흉내를 내 보았지만 pro들이 만든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새벽 5시의 신비, 얼마만인가? 5시에 일어난 것이?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지면 대부분은 다시 자려고 애를 쓰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러기에는 머리가 너무나 맑았다. 사방이 깜깜하고 아주 싸늘한 공기를 헤치며 나오니 elderly cat,  Izzie조차 나 발아래 없다. 얼굴을 보니 자다가 나를 보고 깨어난 듯하다. 그러니 더욱 새벽이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승려들이 사는 절간은 새벽 3시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나는 5시에도 이렇게 죽은 듯하니… 그들이 부럽기조차 하구나… 하지만 부엌의 blind를 열어보니 일찍 일어나시는 B선생댁도 창문의 불빛이 희미하니… 아직 안 일어나셨나… 모처럼 이른 새벽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반갑기만 하다….

며칠 만인가, 다시 ‘독서 삼매경 기분’을 느끼는 것이…역시 좋아하는 주제의 글이나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때가 되었다. 이런 시간에는 로난이 나의 서재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것, 거의 방해나 구애를 안 받는 것도 또한 신기하다. 생각에 집중하는데 그런 잡음이 크게 방해를 못하는 때도 있음은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예외에 불과하고 나머지들의 경우는 대부분 잡념들과 싸울 때가 많다.  또한 나의 독서습관인 ‘잡독, 난독’으로 읽기에 언제 완독을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 또한 나를 편하게, 가볍게, 즐겁게 하는 습관이다. 아마 ‘정독’으로 시작하라면 시작조차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현재 나를 기쁘게 하는 책들: The Hours of the Universe, Life on the Edge, Living in a Mindful Universe, Learning to Pray, JESUS, The Jesuit Guide 등인데..  오늘 한가지가 첨가되었다. 오래 전 출판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신약성서[요한복음]주해집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서가에서 먼지를 털며 꺼냈다. 지난 12월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봉사자를 위한 성서 영적독서’ 에 늦게 참여를 한 바람에 교재 [송봉모 신부님 저 요한복음강해?] 1권을 거의 놓치고 말았기에 이 옛날 책이라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것으로 한번 ‘신비의 요한복음’에 도전을 해 보고 싶다. 게다가 이번 신부님의 독서강해는 예수회의 관점이 많이 도입이 되는 듯해서 나에게 더욱 흥미를 끈다.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론’에 도전하게 되는 것인지… 조금 흥분까지 된다.

예정대로 오늘 로난 일행이 baby-sitting 도움을 받으러 왔다. 다음 주부터는 Daycare Center가 개학을 하니까 애 보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 이제 이 녀석도 조금 컸다고 행동하는 것도 조금은 성숙해 보이고 천상 개구쟁이가 되어간다. 앞으로 우리와 어떠한 관계로 살아갈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bi-culture문제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어쩔 것인가? 그저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필요할 때마다 오늘처럼 도와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입장도 아니고.. 이것도 선택인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두 문화, 두 언어 교육에 개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내일은 그 악몽의 9/11 terror attack 에 버금가는 1/6 사태 1주년을 맞는 날이다. 물론 나는 내일 ‘조용히’ 모든 media에서 눈을 돌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연극’을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건강에도 좋고 평화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나 생생한 살기 殺氣[정말 그 DONALD 개XX  일당들을 ‘라이파이의 살인광선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것…]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다.

 

Catholic Sunday, Redux 2021

Catholic Sunday… 아~ 아련~ 하고, 아늑하며 감미로운 느낌이 든다. 오래~ 전 가끔 나는 이런 제목으로 블로그를 쓰며 주일 오후를 지내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오후가 되었다. 일요일, 주일은 주일이지만 가톨릭 천주교 주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일미사 후, Vatican Mass, Angelus를 시작으로 각종 전세계와 미국의 교계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진정한 휴식, 휴일을 보냈던 때, 그때가 지금은 정말 그리운 것이다. 이것이 Pandemic은 말할 것도 없고 2017년의 각종 ‘인재 人災’가 발생하기 전 모습이다. 이때가 내가 말하는 authentic Catholic Sunday였다. 이제 다시 그런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무리 그때가 그리워도 그때의 모습에 머무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 진보, 변화가 없는 인간은 하느님의 바램이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연중33주일, 다음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어서 새해 시작인 대림절이 시작된다. 결국은 전례력 한 해가 또 꼴깍~ 넘어가는구나.  빠른 것인가, 기다림에 지쳐 늦게 온 것인가.  그래 기다렸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세월이 느린 것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대림절 Advent 2021년, 그리고 2022년… 세속적 한 해도 한 달 뒤에 뒤따라 올 것이고. 그래 모두 모두 반갑게 맞아들이자.

순교자 성당엘 가보니 정문 주차장의 문이 닫혔다. 아~ 오늘 바로 그 garage sale을 하는 날이었구나… 우리도 조그만 것을 하나 이곳에 협조했지만 그 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조금은 미안하고 심지어 죄의식까지 들고… 예전에 비해 퇴색해지는 듯한 우리의 봉사정신에 민감한 것인지…  싸늘한 빙점에 머무는 이른 아침부터 수고하는 젊은 봉사자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즐거운 마음자세를 갖고 일하는 모습, 그리워지기도 한다.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우리세대는 이미 ‘주역’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오늘 미사 때 우리 바로 뒷자리에 한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곳으로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연숙이 그들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아니, 인사가 아니라 위로의 말을. 그들도 슬픈 표정으로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받는다. 뒤돌아 보는 것을 꺼리는 나도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아하~ 지난 화요일 연도, 장례미사의 그 가족들이 아닌가? 32세로 요절을 한 청년의 가족… 아무런 예고, 낌새도 없이 갑자기 선종을 한 외아들… 과연 이 가족은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 이후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전 가족이 첫 미사에… 마음 같아서는 다가가서 간절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미사 후 신부님이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모두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이럴 때 박수를 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위로의 표시가 될까? 그것보다는 그들을 소개하며 위로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하는 정도에게 끝났으면 얼마나 적절했을까…  이래서 이번 신임 신부님의 점수는 나에게서 또 1점은 깎인 셈이다. 

 

Bakery ‘하얀풍차’에서 안나, 아가다 자매님들과 ‘수다’를 떨며 아침 coffee와 doughnut으로 주일 ‘정기모임’을 마쳤다. 이 모임도 이제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요사이 우리에게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는 활력을 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외로운 시절을 보내는 현재 우리에게 또 이런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참 인연은 묘한 것인가. 누가 이런 것들을 예측이나 했으랴. 다음 주에는 우리 차례로 점심모임을 둘루스의 칼국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라니 Tucker 집에 잠깐 들러서 깍두기를 전해주고 왔다. 이런 때 나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다. 아픈 나라니를 위해서 신경을 써서 깍두기를 전해주자는 얘기에 역시 나는 ‘반가운 듯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태도를 나 자신도 분석하고 싶다. 왜 그렇게 그런 말을 거의 피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일은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면 간단히 끝날 터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분명히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전통적인 반응, ‘귀찮다’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just do it, it’s now or never의 정신이 이렇게 약해졌단 말인가?

Breakfast, 20 Years…

 

아침 식사, 내가 이것을 만들고 있는지도 거의 20년 가까이 된 것을 알고 나서 은근히 놀란다. 그렇게 오래 되었나? 불면증으로 인한 아침 늦잠으로 고생하는 연숙을 보고 사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조리하는 것을 보니 내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저 도와주고 싶어서 임시로 시작한 것이 이렇게 오늘까지 온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작은 기적’이 아닐까? 

전기밥솥과 라면 끓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밥과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한식이 아니니 사실 그렇게 복잡한 것도 없었다. 몇 가지 고정적인 것들: 달걀, 치즈가 녹은 식빵, 사과 같은 과일, 가끔 bacon이나 sausage.. 그리고 우유나 쥬스.. 이것, 할라치면 누가 못하겠는가? 이것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닌데 문제는 요리의 기초가 없는 것이니 자꾸 하면서 경험을 만들어 가는데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쉬워지고 가끔 메뉴를 늘리기도… 그 중에 제일 자신 있는 것은 pancake종류인데.. 이것은 하도 자주 만들어서 눈을 감고도 할 정도고, 맛도 꽤 있다는 칭찬까지 들었으니… 이런 노력의 부수입으로 혼자 있을 때 식사는 이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혼자 살아도 전혀 겁이 안 나는 것이다.

현재의 당면 문제는… 그 동안 20살이나 늘어난 나이에 음식을 맞추는 것, 장난이 아니었다. 각종 검사에서 각종 건강수치들이 춤을 추는데 거의 모두 음식에 상관된 것들… 나는 전혀 영양소의 지식이 없지만 연숙이 영양학전공학도여서 거의 pro에 가까운 처방으로 음식재료를 고르게 되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건강검진 때마다 확인이 되는 그야말로 ‘과학’이어서 음식이 ‘약이나 독’이 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Bye, Voyager 1999~2021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Voyager donation 의 status를 확인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훨씬 가벼운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제시간에 일어났다. 모든 것이 조금 기다리는 끈기와 지혜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긋이 기다리면 ‘될 것은 된다’. 잊지 말자… 이것으로 나의 머리 속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드디어 car donation 전문, towing service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중에 오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제는 드디어 1999년 가을부터 우리와 함께 20년 이상 살아온 효자 Voyager minivan이 심청이 처럼 떠나게 되었다. 좋은 목적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 보람도 있지만 다른 쪽으로는 정말 섭섭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같이 살았던 애완동물이 영구히 떠나는 듯한 기분도 느끼고… 하지만 세월과 삶은 항상 변하는 것, 우리도 다음 단계, Voyager가 차고 앞에 안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는 때가 오는 것 뿐이다. 잘 가거라, 수고 많~이 했다, 정말 정말…

결국 정든 Voyager는 우리로부터 영구히 떠났다. 기분이 이상할 것이라는 예측은 했지만 생각보다 그 정도가 더한 것 같다.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만.. 마지막 떠나 보내며 예상외로 우리의 손과 발로 그 덩치를 떠밀어서 towing truck까지 배웅한 것, 조금 뜻밖으로 귀찮게도 여겨졌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와 느린 작별을 한 것이 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잘 가거라~ 잘 가~~~~  우리 효자야~~

생각보다 철저히 차의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이 믿음직…

임당수로 가는 심청이 같은 느낌 밖에..

터~엉~ 빈 차고 앞 drive way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게…

 

비교적 상쾌한 아침을 맞는가 했지만 역시 이런 것이 지속되는 것은 어려운 것인가. 내가 문제인가, 아니면 세상이 문제인가. 우연히, 조금 심심해서, 세상의 소식에 접했다가 다시 ‘Donald 개XX’에 관한 뉴스 같지 않은 뉴스를 보고 [이XX는 정말 인류적 암적인 존재임을 재확인] , 나의 초 민감 超 敏感 함에 다시 실망, 놀라고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아~ 왜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 뉴스’에 그렇게 초 민감해야만 하는 것일까? 제일 확실한 방법은 나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쓰레기 냄새, 모습 같은 것들을 나는 자유롭게 피할 의지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더욱 ‘선과 악’을 식별하는 눈과 철학으로 무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 가급적, 가급적, 쓰레기 냄새에 조심하며 피하자, 하나도 겁날 것, 부끄러울 것 없다. 나의 여생은 그렇게 장구한 세월이 아닌 것이다. 절대적, 객관적, 궁극적 진리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Ecology is a branch of biology [that is, Science], Deep Ecology is an environmental philosophy…  그러니까 하나는 전자는 과학이고 후자는 철학… 이제 조금 감이 잡힌다.

Journey of the Universe, Pumpkin Spice

잠시 중단되었던 Coursera course, Yale University MOOCJourney of the Universe: 3rd course: The Worldview of Thomas Berry, Week 4의 끝부분에서 Berry의 essay  마지막 부분을 읽는다. 지금 읽고 있었던 것은 그의 사상, 논문을 요약한 책 Spiritual Master Series [Orbis Books, Maryknoll]중의 하나다.  이 course를 ‘청강audit’하면서 과연 나는 얼마나 배웠을까? 이것이 항상 궁금하기만 하다. 중요한 것은 ‘사실적 배움’ 보다는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배움이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Week 5를 시작한다. Week 6가 마지막이니까, 거의 다 마치고 있는 셈이다. 끝나면 이것을 나름대로 총정리를 해서 website에 남기고 싶은 과욕을 느낀다.

잔잔하고, 편하고, 흐르는 듯한 머리 속을 정리하며 Thomas Berry Writings 중에서 ‘드디어’ 그와 Teilhard de Chardin과 연결되는 관문 격인 Spirituality of Earth section을 침을 흘리며 읽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Teilhard사상이 Thomas Berry에게 전수해준 영적, 지적인 선물이라고 추측을 하게 되었다. 과학적, 물질적, 지질학 적인 우리의 보금자리 ‘지구’가 결국 영적, 신앙적, 종교적인 위상으로 ‘출세’를 하는 부분이었다.

 

추억의 McDonald’s, 모처럼 둘이서 동네 근처로 외출 drive를 하였다. 이런 일들이 이제는 그렇게 새삼스럽고 특별하게 느껴짐은 2020년 벽두 이후의 독특한 느낌을 것이다. 한 순간순간들이 보람과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오늘을 더욱 그런 것이 Home Depot는 그렇다 치고  Pandemic이후 새로 단장한 ‘정든 McDonald’s’가 우리에게 준 추억들이라고 할까… 이곳은 1992년 이 근처로 이사를 온 이후 우리에게는 친근한 동네 다방역할을 한 것을 안다. 추억에 읽힌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오늘은 특히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살았던 성당교우 크리스티나 자매의 추억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얼마 전 오랜 암 투병 끝에 선종 했던 구역교우라는 사실을 떠나서 우리와 한때 ‘아주’ 친근하게 지냈던 사람, 하지만 세상을 떠날 즈음에 예상외로 한번도 우리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이 놀랍고, 못내 아쉽기만 하다.

오늘 우리가 본 이 McDonald’s는 사실 Pandemic시작 직전에 remodeling을 시작하고 있었고, 새 단장을 한 후에 open을 하긴 했지만 drive-thru service로 시작해서 dine-in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실내의 모습을 오늘 처음 보게 된 것인데, 물론 훨씬 modern-look인 것과 깨끗한 것은 좋았지만 그래도 역시 예전의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젊어진 내부의 모습에 비해 우리는 반대로 더 늙어가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이곳에서 Big Mac을 마지막으로[Pandemic 이전] 먹었을 때 나는 지독한 치통으로 제대로 맛을 즐길 수 없었던, 괴로운 추억으로 남았지만 오늘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던 것과 함께,  편하게 Big Mac의 ‘변치 않는’ 그 독특한 sauce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에 처음 올 당시의 Big Mac 값, 아마도 $0.80?, 오늘의 것과 비교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Kroger에 들려서 조금은 seasonal 한 특별한 것을 사가지고 와서 기분을 내기도 했다. Starbucks’ Pumpkin Spice ground coffee, 아~ 오랜만에 특별한 기분을 느낀다. 거의 pumpkin을의 향기를 마시는 느낌. Halloween을 향한 10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는 이때 이런 순간은 살맛을 나게 한다. 그래, 음미하고 기뻐하고 즐기자~~~

 

건박사? 허~ 괴상한 이름이지만 아마도 建博士 정도는 아닐까? 요즈음 backyard의 (vegetable) garden을 ‘건강의 원천’으로 만들려는 열정으로 희망의 나날을 보내던 연숙이 Youtube 에서 찾아낸 ‘건강정보’ video의 이름이 건박사… 이 나이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각종 건강정보 중의 하나려니 짐작을 했지만 지금은 아주 심각하게 그 정보들을 소화하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주로 약초, 건강식물, 나아가 건강식품에 관한 것인데 아주 ‘과학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오늘의 정보에는 coffee (ground and whole bean) bag을 ‘절대로’ 냉장고나 냉동고에 저장하지 말라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정보와 정 반대가 아닌가? 그 건박사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발견을 했단 말인가? 과연 정보의 홍수요, fake news의 우려는 만만치 않다.

 

최근에 자주 경험하는 것,  아침에 침대에서 걸어나올 때 몹시 자제를 못할 정도로 balance를 못 잡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는데, 이것이 일시적인지 지속적인지 은근히 우려가 되기 시작한다. 이상한 것은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하나도 없는데 걷는 것만…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노인병 증상 중에 하나일까? 아~ 싫다, 싫어~~`

 

일기예보보다 더 흐리고 빗방울까지 간혹 뿌리던 낮이었지만 밤이 되면서 갑자기 구름이 걷힌 것을 알았다. 혹시나 해서 서쪽을 향한 집 앞문 쪽을 열고 하늘을 보니 깨끗이 맑고 검은 지평선 위로 반달이 멋지게 떠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에 금성, ‘목성과 그의 달들’을 보았지만 막상 친근한 달을 telescope로 본 적이 없었기에 오늘이 최적의 chance로 느껴졌다. 처음으로 x70 (70배율)로 본 반달[이때에 표면의 모습이 제일 잘 보이는]의 도움으로 갖가지 분화구들이 즐비한 달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모습들을 내가 직접 실시간, 지금 보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적인 느낌 밖에 없었다. 70배로 볼 수 있는 것들이 밤하늘에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연숙도 처음으로 이것을 본 표정이 감동스러운 모습이었다. 날씨만 좋으면 다음에 토성의 고리를 보게 하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No big news, Cherbourg, Barnes & Noble

머리맡에 있는 alarm clock의 가느다란 찌르르르~ 소리에 깨어났다. 이것은 아침 7시에 맞춘 것으로, 나보다는 늦게 일어나는 연숙을 위한 것인데, 내가 오늘 이 소리를 들은 사실은 나에게는 아주 드문 일이다.  나는 분명히 무슨 잡스러운 꿈으로 이른 새벽시간을 낭비한 것 같다. 지난 밤에는 며칠 만에 다시 ceiling fan을 밤새 켜놓고 잤다. 밤늦게까지 조금 더운 듯해서 그랬지만 사실은 필요가 없었던 지도 모르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밤과 낮의 길이가 비슷해지고, 시원하고 더욱 어두컴컴해 지는 밤… 아~ 좋다~~~

아침 7시부터 요란하게 시작하는 ‘network TV (over antenna)’ morning shows, 돌아가는 세상의 맥박과 온도를 거의 ‘즉시’에 감지할 수 있는 이곳, 며칠 만에 거짓말처럼 big news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정치적인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기후관련, Pandemic관련 뉴스도 여전같이 과장된 느낌이 없다. 비교적 평온한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물론 7시 첫 부문을 놓쳤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Barnes & Noble, 허~ 이곳이 아직도 있나? 뉴스에 그곳의 모습이, 그것도 요새의 것, 어찌된 일인가? 아직도 이곳이 business를 한단 말인가? 그리워진다. 어디에 있나? 이 지역에도 어디엔가 있는 모양? 다른 지역에, 특히 대도시에는 아직도 남아 있단 말인가? 한번 가보고 싶다, 그 많은 찬란한 모습의 책들 속에 묻히고, 서서, 앉아서 하루 종일 뒤져보며 읽고 싶다. 아~ bookstore의 추억이여~~ 그곳의 광경, 분위기를 잊은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나?

요란하게 ‘조중동’ 중에서 ‘조동’의 link 까지 애써서 만들어 놓고 잠시 나도 ‘한국 통’이 될 수도 있다는 달콤한 맛을 느끼기도 했는데 1주일 후에 결과는 어떤가…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그곳을 아직도 피하고 있고, 아예 생각을 피하기도 한다. 15년 ‘탈 고국 뉴스’ 세월의 관성을 어찌 며칠 만에 풀 수가 있겠냐 마는… 그래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고국 뉴스에 대한  ‘불안과 초조’  때문인가…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이다..기다려보자..

 

The Umbrellas of Cherbourg, 영화 셀부르그의 우산… NYT newsletter ‘부고 란obituaries’ 에 귀에 익은 말이 보였다. 아하~ 그 유명한 영화주제곡이었지… 남자 주인공, 이탈리아 출신 배우가 타계했다는 것, 1960년대의 프랑스 영화, 당시는 영화보다는 유행가에 더 관심이 있었던 때, 이 영화 주제곡 음악, I’ll wait for you는 독특하게 감미로운 것이었고…  Cherbourg라는 말이 ‘곳, 장소, 도시이름’이라는 사실과 1944년 6월의 D-Day이후에 이곳은 allied force의 전진기지로 모든 전쟁물자들이 이곳으로 집결되어 유럽, 특히 나치독일 쪽으로 운반되었던 것 등을 알고 나니, 그 romantic한 주제곡이 잔잔히 깔린 영화와 추억의 꿈에서 깨어나는 듯 하다.

 

오늘도 Ozzie와 집 주변을 무려 한 시간 반 이상을 큰 문제없이 거뜬히 걸었다. 비록 최고기온이 88도의 더운 날이지만 오전 중이라서 그런지 시원한 날씨였다. 지난번처럼 full course, 그러니까 Spring Creek subdivision과 Sope Creek Apartment  주위의 반 정도를 걸은 셈이다. 원래는 아예 더 나아가서 그 옆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Kroger 가 있는 shopping center 까지 가볼까 했지만 오늘은 Ozzie가 뒷발에 가시가 박혔는지 불편한 모습을 보여서 포기하고 말았다. 진작 이런 길들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부터 가을과 겨울의 멋진 날씨의 덕분으로 최소한 일주일 2번 정도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대가 된다.

 

옆 동네 Spring Creek 산책을 하고 tennis court옆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아~ 은혜로운 모습이여~ 조금 더워도 청명한 늦여름, 초가을 하늘의 느낌이…

 

갑자기 피곤한 듯 보이는 Ozzie를 달랠 겸 푹신한 풀밭 위에 앉았다가, 그래 하늘을 또 보자, 누워버렸다. 옆을 보니 Ozzie고 눕니다. 아~ 이곳이 중앙고 3학년 때 주왕산 선생님 고문, 국어시간에 들었던 ‘무릉도원 武陵桃源’ 이 아닐까…

우리의 Subdivision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길에 위치한 오랜 전통의 apartment complex, Sope Creek Apt. 뒷길은 우리 subdivision의 옆으로 나란히 뻗어있는 깊숙한 작은 골짜기와 creek이 원시림 속에 숨어있다. 이것을 얼마 전에 발견한 후 이곳을 잊지 못해 찾아와 둘이서 걷는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모처럼 김밥을 말아서 셋이서 ‘시원하게’ 즐겼다. ‘지지고 볶는’ 것이 없어서 시원한 것이고 먹는 데도 열을 느끼지 않으니 시원한 이것, 한식 snack의 비결이라고 할까… ‘간식’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정식 점심역할을 했다. 유나도 옆에서 방긋거리며 웃기도 하고, 세 명이 모처럼 한자리에 한가하게 환담을 나누는 이 시간, 너무나 아깝기도 하고 해서 오늘 밖의 일은 포기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날씨가 시원해진다고 하니 늦을 것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여유시간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사치를 부려도 되는 시점에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늘은 비교적 차분하게 desk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꽤 있었다. 주위에서 나를 간섭하거나 시간을 빼앗는 일들이 거의 없기도 하였지만 나의 의지도 있었다. 읽고 싶은 책들이나 web contents 을 시원하게 중단 없이 읽고 생각하고 싶었다. 특히 신선한 느낌을 주는 Francis CollinsThe Language of God은 앞으로 내가 제일 신뢰하고 좋아하는 apologetic classic이 될 것 같다. 그 외 대부분 James Martins의 글들도 현재 내가 직면하고 있는 ‘신앙생활에서의 방황’ 시기를 절도 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