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olic Sunday, Redux 2021

Catholic Sunday… 아~ 아련~ 하고, 아늑하며 감미로운 느낌이 든다. 오래~ 전 가끔 나는 이런 제목으로 블로그를 쓰며 주일 오후를 지내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오후가 되었다. 일요일, 주일은 주일이지만 가톨릭 천주교 주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일미사 후, Vatican Mass, Angelus를 시작으로 각종 전세계와 미국의 교계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진정한 휴식, 휴일을 보냈던 때, 그때가 지금은 정말 그리운 것이다. 이것이 Pandemic은 말할 것도 없고 2017년의 각종 ‘인재 人災’가 발생하기 전 모습이다. 이때가 내가 말하는 authentic Catholic Sunday였다. 이제 다시 그런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무리 그때가 그리워도 그때의 모습에 머무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 진보, 변화가 없는 인간은 하느님의 바램이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연중33주일, 다음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어서 새해 시작인 대림절이 시작된다. 결국은 전례력 한 해가 또 꼴깍~ 넘어가는구나.  빠른 것인가, 기다림에 지쳐 늦게 온 것인가.  그래 기다렸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세월이 느린 것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대림절 Advent 2021년, 그리고 2022년… 세속적 한 해도 한 달 뒤에 뒤따라 올 것이고. 그래 모두 모두 반갑게 맞아들이자.

순교자 성당엘 가보니 정문 주차장의 문이 닫혔다. 아~ 오늘 바로 그 garage sale을 하는 날이었구나… 우리도 조그만 것을 하나 이곳에 협조했지만 그 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조금은 미안하고 심지어 죄의식까지 들고… 예전에 비해 퇴색해지는 듯한 우리의 봉사정신에 민감한 것인지…  싸늘한 빙점에 머무는 이른 아침부터 수고하는 젊은 봉사자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즐거운 마음자세를 갖고 일하는 모습, 그리워지기도 한다.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우리세대는 이미 ‘주역’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오늘 미사 때 우리 바로 뒷자리에 한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곳으로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연숙이 그들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아니, 인사가 아니라 위로의 말을. 그들도 슬픈 표정으로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받는다. 뒤돌아 보는 것을 꺼리는 나도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아하~ 지난 화요일 연도, 장례미사의 그 가족들이 아닌가? 32세로 요절을 한 청년의 가족… 아무런 예고, 낌새도 없이 갑자기 선종을 한 외아들… 과연 이 가족은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 이후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전 가족이 첫 미사에… 마음 같아서는 다가가서 간절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미사 후 신부님이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모두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이럴 때 박수를 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위로의 표시가 될까? 그것보다는 그들을 소개하며 위로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하는 정도에게 끝났으면 얼마나 적절했을까…  이래서 이번 신임 신부님의 점수는 나에게서 또 1점은 깎인 셈이다. 

 

Bakery ‘하얀풍차’에서 안나, 아가다 자매님들과 ‘수다’를 떨며 아침 coffee와 doughnut으로 주일 ‘정기모임’을 마쳤다. 이 모임도 이제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요사이 우리에게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는 활력을 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외로운 시절을 보내는 현재 우리에게 또 이런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참 인연은 묘한 것인가. 누가 이런 것들을 예측이나 했으랴. 다음 주에는 우리 차례로 점심모임을 둘루스의 칼국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라니 Tucker 집에 잠깐 들러서 깍두기를 전해주고 왔다. 이런 때 나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다. 아픈 나라니를 위해서 신경을 써서 깍두기를 전해주자는 얘기에 역시 나는 ‘반가운 듯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태도를 나 자신도 분석하고 싶다. 왜 그렇게 그런 말을 거의 피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일은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면 간단히 끝날 터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분명히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전통적인 반응, ‘귀찮다’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just do it, it’s now or never의 정신이 이렇게 약해졌단 말인가?

Breakfast, 20 Years…

 

아침 식사, 내가 이것을 만들고 있는지도 거의 20년 가까이 된 것을 알고 나서 은근히 놀란다. 그렇게 오래 되었나? 불면증으로 인한 아침 늦잠으로 고생하는 연숙을 보고 사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조리하는 것을 보니 내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저 도와주고 싶어서 임시로 시작한 것이 이렇게 오늘까지 온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작은 기적’이 아닐까? 

전기밥솥과 라면 끓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밥과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한식이 아니니 사실 그렇게 복잡한 것도 없었다. 몇 가지 고정적인 것들: 달걀, 치즈가 녹은 식빵, 사과 같은 과일, 가끔 bacon이나 sausage.. 그리고 우유나 쥬스.. 이것, 할라치면 누가 못하겠는가? 이것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닌데 문제는 요리의 기초가 없는 것이니 자꾸 하면서 경험을 만들어 가는데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쉬워지고 가끔 메뉴를 늘리기도… 그 중에 제일 자신 있는 것은 pancake종류인데.. 이것은 하도 자주 만들어서 눈을 감고도 할 정도고, 맛도 꽤 있다는 칭찬까지 들었으니… 이런 노력의 부수입으로 혼자 있을 때 식사는 이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혼자 살아도 전혀 겁이 안 나는 것이다.

현재의 당면 문제는… 그 동안 20살이나 늘어난 나이에 음식을 맞추는 것, 장난이 아니었다. 각종 검사에서 각종 건강수치들이 춤을 추는데 거의 모두 음식에 상관된 것들… 나는 전혀 영양소의 지식이 없지만 연숙이 영양학전공학도여서 거의 pro에 가까운 처방으로 음식재료를 고르게 되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건강검진 때마다 확인이 되는 그야말로 ‘과학’이어서 음식이 ‘약이나 독’이 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Bye, Voyager 1999~2021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Voyager donation 의 status를 확인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훨씬 가벼운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제시간에 일어났다. 모든 것이 조금 기다리는 끈기와 지혜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긋이 기다리면 ‘될 것은 된다’. 잊지 말자… 이것으로 나의 머리 속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드디어 car donation 전문, towing service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중에 오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제는 드디어 1999년 가을부터 우리와 함께 20년 이상 살아온 효자 Voyager minivan이 심청이 처럼 떠나게 되었다. 좋은 목적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 보람도 있지만 다른 쪽으로는 정말 섭섭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같이 살았던 애완동물이 영구히 떠나는 듯한 기분도 느끼고… 하지만 세월과 삶은 항상 변하는 것, 우리도 다음 단계, Voyager가 차고 앞에 안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는 때가 오는 것 뿐이다. 잘 가거라, 수고 많~이 했다, 정말 정말…

결국 정든 Voyager는 우리로부터 영구히 떠났다. 기분이 이상할 것이라는 예측은 했지만 생각보다 그 정도가 더한 것 같다.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만.. 마지막 떠나 보내며 예상외로 우리의 손과 발로 그 덩치를 떠밀어서 towing truck까지 배웅한 것, 조금 뜻밖으로 귀찮게도 여겨졌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와 느린 작별을 한 것이 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잘 가거라~ 잘 가~~~~  우리 효자야~~

생각보다 철저히 차의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이 믿음직…

임당수로 가는 심청이 같은 느낌 밖에..

터~엉~ 빈 차고 앞 drive way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게…

 

비교적 상쾌한 아침을 맞는가 했지만 역시 이런 것이 지속되는 것은 어려운 것인가. 내가 문제인가, 아니면 세상이 문제인가. 우연히, 조금 심심해서, 세상의 소식에 접했다가 다시 ‘Donald 개XX’에 관한 뉴스 같지 않은 뉴스를 보고 [이XX는 정말 인류적 암적인 존재임을 재확인] , 나의 초 민감 超 敏感 함에 다시 실망, 놀라고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아~ 왜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 뉴스’에 그렇게 초 민감해야만 하는 것일까? 제일 확실한 방법은 나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쓰레기 냄새, 모습 같은 것들을 나는 자유롭게 피할 의지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더욱 ‘선과 악’을 식별하는 눈과 철학으로 무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 가급적, 가급적, 쓰레기 냄새에 조심하며 피하자, 하나도 겁날 것, 부끄러울 것 없다. 나의 여생은 그렇게 장구한 세월이 아닌 것이다. 절대적, 객관적, 궁극적 진리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Ecology is a branch of biology [that is, Science], Deep Ecology is an environmental philosophy…  그러니까 하나는 전자는 과학이고 후자는 철학… 이제 조금 감이 잡힌다.

Journey of the Universe, Pumpkin Spice

잠시 중단되었던 Coursera course, Yale University MOOCJourney of the Universe: 3rd course: The Worldview of Thomas Berry, Week 4의 끝부분에서 Berry의 essay  마지막 부분을 읽는다. 지금 읽고 있었던 것은 그의 사상, 논문을 요약한 책 Spiritual Master Series [Orbis Books, Maryknoll]중의 하나다.  이 course를 ‘청강audit’하면서 과연 나는 얼마나 배웠을까? 이것이 항상 궁금하기만 하다. 중요한 것은 ‘사실적 배움’ 보다는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배움이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Week 5를 시작한다. Week 6가 마지막이니까, 거의 다 마치고 있는 셈이다. 끝나면 이것을 나름대로 총정리를 해서 website에 남기고 싶은 과욕을 느낀다.

잔잔하고, 편하고, 흐르는 듯한 머리 속을 정리하며 Thomas Berry Writings 중에서 ‘드디어’ 그와 Teilhard de Chardin과 연결되는 관문 격인 Spirituality of Earth section을 침을 흘리며 읽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Teilhard사상이 Thomas Berry에게 전수해준 영적, 지적인 선물이라고 추측을 하게 되었다. 과학적, 물질적, 지질학 적인 우리의 보금자리 ‘지구’가 결국 영적, 신앙적, 종교적인 위상으로 ‘출세’를 하는 부분이었다.

 

추억의 McDonald’s, 모처럼 둘이서 동네 근처로 외출 drive를 하였다. 이런 일들이 이제는 그렇게 새삼스럽고 특별하게 느껴짐은 2020년 벽두 이후의 독특한 느낌을 것이다. 한 순간순간들이 보람과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오늘을 더욱 그런 것이 Home Depot는 그렇다 치고  Pandemic이후 새로 단장한 ‘정든 McDonald’s’가 우리에게 준 추억들이라고 할까… 이곳은 1992년 이 근처로 이사를 온 이후 우리에게는 친근한 동네 다방역할을 한 것을 안다. 추억에 읽힌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오늘은 특히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살았던 성당교우 크리스티나 자매의 추억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얼마 전 오랜 암 투병 끝에 선종 했던 구역교우라는 사실을 떠나서 우리와 한때 ‘아주’ 친근하게 지냈던 사람, 하지만 세상을 떠날 즈음에 예상외로 한번도 우리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이 놀랍고, 못내 아쉽기만 하다.

오늘 우리가 본 이 McDonald’s는 사실 Pandemic시작 직전에 remodeling을 시작하고 있었고, 새 단장을 한 후에 open을 하긴 했지만 drive-thru service로 시작해서 dine-in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실내의 모습을 오늘 처음 보게 된 것인데, 물론 훨씬 modern-look인 것과 깨끗한 것은 좋았지만 그래도 역시 예전의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젊어진 내부의 모습에 비해 우리는 반대로 더 늙어가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이곳에서 Big Mac을 마지막으로[Pandemic 이전] 먹었을 때 나는 지독한 치통으로 제대로 맛을 즐길 수 없었던, 괴로운 추억으로 남았지만 오늘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던 것과 함께,  편하게 Big Mac의 ‘변치 않는’ 그 독특한 sauce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에 처음 올 당시의 Big Mac 값, 아마도 $0.80?, 오늘의 것과 비교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Kroger에 들려서 조금은 seasonal 한 특별한 것을 사가지고 와서 기분을 내기도 했다. Starbucks’ Pumpkin Spice ground coffee, 아~ 오랜만에 특별한 기분을 느낀다. 거의 pumpkin을의 향기를 마시는 느낌. Halloween을 향한 10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는 이때 이런 순간은 살맛을 나게 한다. 그래, 음미하고 기뻐하고 즐기자~~~

 

건박사? 허~ 괴상한 이름이지만 아마도 建博士 정도는 아닐까? 요즈음 backyard의 (vegetable) garden을 ‘건강의 원천’으로 만들려는 열정으로 희망의 나날을 보내던 연숙이 Youtube 에서 찾아낸 ‘건강정보’ video의 이름이 건박사… 이 나이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각종 건강정보 중의 하나려니 짐작을 했지만 지금은 아주 심각하게 그 정보들을 소화하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주로 약초, 건강식물, 나아가 건강식품에 관한 것인데 아주 ‘과학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오늘의 정보에는 coffee (ground and whole bean) bag을 ‘절대로’ 냉장고나 냉동고에 저장하지 말라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정보와 정 반대가 아닌가? 그 건박사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발견을 했단 말인가? 과연 정보의 홍수요, fake news의 우려는 만만치 않다.

 

최근에 자주 경험하는 것,  아침에 침대에서 걸어나올 때 몹시 자제를 못할 정도로 balance를 못 잡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는데, 이것이 일시적인지 지속적인지 은근히 우려가 되기 시작한다. 이상한 것은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하나도 없는데 걷는 것만…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노인병 증상 중에 하나일까? 아~ 싫다, 싫어~~`

 

일기예보보다 더 흐리고 빗방울까지 간혹 뿌리던 낮이었지만 밤이 되면서 갑자기 구름이 걷힌 것을 알았다. 혹시나 해서 서쪽을 향한 집 앞문 쪽을 열고 하늘을 보니 깨끗이 맑고 검은 지평선 위로 반달이 멋지게 떠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에 금성, ‘목성과 그의 달들’을 보았지만 막상 친근한 달을 telescope로 본 적이 없었기에 오늘이 최적의 chance로 느껴졌다. 처음으로 x70 (70배율)로 본 반달[이때에 표면의 모습이 제일 잘 보이는]의 도움으로 갖가지 분화구들이 즐비한 달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모습들을 내가 직접 실시간, 지금 보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적인 느낌 밖에 없었다. 70배로 볼 수 있는 것들이 밤하늘에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연숙도 처음으로 이것을 본 표정이 감동스러운 모습이었다. 날씨만 좋으면 다음에 토성의 고리를 보게 하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No big news, Cherbourg, Barnes & Noble

머리맡에 있는 alarm clock의 가느다란 찌르르르~ 소리에 깨어났다. 이것은 아침 7시에 맞춘 것으로, 나보다는 늦게 일어나는 연숙을 위한 것인데, 내가 오늘 이 소리를 들은 사실은 나에게는 아주 드문 일이다.  나는 분명히 무슨 잡스러운 꿈으로 이른 새벽시간을 낭비한 것 같다. 지난 밤에는 며칠 만에 다시 ceiling fan을 밤새 켜놓고 잤다. 밤늦게까지 조금 더운 듯해서 그랬지만 사실은 필요가 없었던 지도 모르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밤과 낮의 길이가 비슷해지고, 시원하고 더욱 어두컴컴해 지는 밤… 아~ 좋다~~~

아침 7시부터 요란하게 시작하는 ‘network TV (over antenna)’ morning shows, 돌아가는 세상의 맥박과 온도를 거의 ‘즉시’에 감지할 수 있는 이곳, 며칠 만에 거짓말처럼 big news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정치적인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기후관련, Pandemic관련 뉴스도 여전같이 과장된 느낌이 없다. 비교적 평온한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물론 7시 첫 부문을 놓쳤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Barnes & Noble, 허~ 이곳이 아직도 있나? 뉴스에 그곳의 모습이, 그것도 요새의 것, 어찌된 일인가? 아직도 이곳이 business를 한단 말인가? 그리워진다. 어디에 있나? 이 지역에도 어디엔가 있는 모양? 다른 지역에, 특히 대도시에는 아직도 남아 있단 말인가? 한번 가보고 싶다, 그 많은 찬란한 모습의 책들 속에 묻히고, 서서, 앉아서 하루 종일 뒤져보며 읽고 싶다. 아~ bookstore의 추억이여~~ 그곳의 광경, 분위기를 잊은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나?

요란하게 ‘조중동’ 중에서 ‘조동’의 link 까지 애써서 만들어 놓고 잠시 나도 ‘한국 통’이 될 수도 있다는 달콤한 맛을 느끼기도 했는데 1주일 후에 결과는 어떤가…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그곳을 아직도 피하고 있고, 아예 생각을 피하기도 한다. 15년 ‘탈 고국 뉴스’ 세월의 관성을 어찌 며칠 만에 풀 수가 있겠냐 마는… 그래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고국 뉴스에 대한  ‘불안과 초조’  때문인가…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이다..기다려보자..

 

The Umbrellas of Cherbourg, 영화 셀부르그의 우산… NYT newsletter ‘부고 란obituaries’ 에 귀에 익은 말이 보였다. 아하~ 그 유명한 영화주제곡이었지… 남자 주인공, 이탈리아 출신 배우가 타계했다는 것, 1960년대의 프랑스 영화, 당시는 영화보다는 유행가에 더 관심이 있었던 때, 이 영화 주제곡 음악, I’ll wait for you는 독특하게 감미로운 것이었고…  Cherbourg라는 말이 ‘곳, 장소, 도시이름’이라는 사실과 1944년 6월의 D-Day이후에 이곳은 allied force의 전진기지로 모든 전쟁물자들이 이곳으로 집결되어 유럽, 특히 나치독일 쪽으로 운반되었던 것 등을 알고 나니, 그 romantic한 주제곡이 잔잔히 깔린 영화와 추억의 꿈에서 깨어나는 듯 하다.

 

오늘도 Ozzie와 집 주변을 무려 한 시간 반 이상을 큰 문제없이 거뜬히 걸었다. 비록 최고기온이 88도의 더운 날이지만 오전 중이라서 그런지 시원한 날씨였다. 지난번처럼 full course, 그러니까 Spring Creek subdivision과 Sope Creek Apartment  주위의 반 정도를 걸은 셈이다. 원래는 아예 더 나아가서 그 옆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Kroger 가 있는 shopping center 까지 가볼까 했지만 오늘은 Ozzie가 뒷발에 가시가 박혔는지 불편한 모습을 보여서 포기하고 말았다. 진작 이런 길들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부터 가을과 겨울의 멋진 날씨의 덕분으로 최소한 일주일 2번 정도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대가 된다.

 

옆 동네 Spring Creek 산책을 하고 tennis court옆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아~ 은혜로운 모습이여~ 조금 더워도 청명한 늦여름, 초가을 하늘의 느낌이…

 

갑자기 피곤한 듯 보이는 Ozzie를 달랠 겸 푹신한 풀밭 위에 앉았다가, 그래 하늘을 또 보자, 누워버렸다. 옆을 보니 Ozzie고 눕니다. 아~ 이곳이 중앙고 3학년 때 주왕산 선생님 고문, 국어시간에 들었던 ‘무릉도원 武陵桃源’ 이 아닐까…

우리의 Subdivision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길에 위치한 오랜 전통의 apartment complex, Sope Creek Apt. 뒷길은 우리 subdivision의 옆으로 나란히 뻗어있는 깊숙한 작은 골짜기와 creek이 원시림 속에 숨어있다. 이것을 얼마 전에 발견한 후 이곳을 잊지 못해 찾아와 둘이서 걷는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모처럼 김밥을 말아서 셋이서 ‘시원하게’ 즐겼다. ‘지지고 볶는’ 것이 없어서 시원한 것이고 먹는 데도 열을 느끼지 않으니 시원한 이것, 한식 snack의 비결이라고 할까… ‘간식’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정식 점심역할을 했다. 유나도 옆에서 방긋거리며 웃기도 하고, 세 명이 모처럼 한자리에 한가하게 환담을 나누는 이 시간, 너무나 아깝기도 하고 해서 오늘 밖의 일은 포기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날씨가 시원해진다고 하니 늦을 것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여유시간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사치를 부려도 되는 시점에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늘은 비교적 차분하게 desk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꽤 있었다. 주위에서 나를 간섭하거나 시간을 빼앗는 일들이 거의 없기도 하였지만 나의 의지도 있었다. 읽고 싶은 책들이나 web contents 을 시원하게 중단 없이 읽고 생각하고 싶었다. 특히 신선한 느낌을 주는 Francis CollinsThe Language of God은 앞으로 내가 제일 신뢰하고 좋아하는 apologetic classic이 될 것 같다. 그 외 대부분 James Martins의 글들도 현재 내가 직면하고 있는 ‘신앙생활에서의 방황’ 시기를 절도 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

After Humanity, Art of Ignoring, VHS drama, James Martin

어젯밤에 일기예보를 못 본 탓에 침실 ceiling fan 을 켜고 잔 탓에 밤새 추위에 떨었던 불편한 기억이었다. 왜 이렇게 춥지… 하며 몸을 온통 오그리고 잔 것이다. 급기야 긴 팔, 긴 바지, 양말까지 신고 내려오는 나의 꼴이…. 죄값을 받은 셈인가? 어제 저녁 잠깐 office에서 눈을 붙인 것이 기도도 팽개치고 그대로 밤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은 정말 오랜만에 저지른 나의 ‘작은 쾌감’ 같은 것, 아주 후회는 안 한다. 하고 싶었기에…  덕분에 싸늘한 6월 말 아침의 ‘습격’을 받은 셈이다. 연숙에게 조금 미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어제는 저녁기도를 했어야 했는데….

 

AFTER HUMANITY: A Guide to C.S. Lewis’s  The Abolition of Man,  $30 well spent? I hope so!

아침에 온 WOF (Word on Fire, a catholic ministry) email, Bishop Barron의 promotional video를 보고 ‘그대로’ order를 해 버렸다. 이 책은 사실 Lewis의 ‘어렵게 보이는’ 책, The Abolition of Man의 깊고 자세한 주해서 격에 해당하는 듯 보인다. 보너스로 원저 The Abolition of Man도 포함되었다니… 너무나 매력적인 deal이 아닌가? 나의 Lewis에 대한 늦은 관심과 사랑을 떠나서 이 책의 외형적인 조건들이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현재의 Post-Truth 현실과, 미학적 관점을 가미한 Barron의 영향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이 책을 내가 깊이 이해하게 되리라는 막연하지만 멋진 희망도 빼놓을 수 없다. 희망을 걸어보자!

 

Art of Ignoring: 내가 필요한 ‘사회적 기술’이 바로 이것임을 왜 이렇게 인생의 후반부에 깨달아야만 했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안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 큰 것, 작은 것, 개인적인 것, 세계, 사회, 정치 상황 모두에 해당하는 ‘기술, 예술’이다. 무시하는 지혜,…  집에서부터 무한한 우주영역에까지… 해당이 안 되는 곳이 없다. 연숙의 ‘앙앙거리는’ 의미 없는 듯 들리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까지… 어떤 것들은 거의 무시하는 것이 안전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촉감을 초월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불교의 냄새를 풍겨야 할 것인가? 요새를 사는 나의 화두 중에 하나가 되었다.

 

80년대 VHS era, KBS [청소년 문학관] 시리즈: 비록 10편도 안 되는 것이지만 더운 초여름에 나를 너무나 아련~하고, 편하게 하는 영상과 이야기들이다.  어떤 것들은 아련한 사랑의 감정을 추억하게 해 주는 것이어서 정말 오랜만에 10대 당시 나의 모습을 그린다.  겁 많고 지나치게 수줍어 했지만 나만의 낭만적인 상상도 적지 않았던 시절들.  이 드라마들 중에는 ‘입시지옥’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꽤 있는데, 우리 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심각한 것들이라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해는 하고도 남는다.  지금은 ‘산사에서’ 라는 것을 보는데… 아늑한 산사, 절의 풍경과 입시지옥을 겪는 고교생, 재수생들의 이야기…  대학입시의 중요성이 극한으로 치솟은 고국의 10대들이 불쌍하기도 하다. 이것이 거의 반세기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요새 80년대의 여러 가지 종류의 고국의 TV 프로, 주로 드라마, 이것들을 보며 간혹 나는 고민에 빠진다. 좋아하는 것보다 거슬리는 것, 특히 연기자들과 그의 역할, 성품 등에 연관된 것이다.  역할이 악역이거나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역할은 물론 연기에 따라서 싫고 혐오하기까지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문제는 그 연기자 자신에 관한 것이다. ‘악역’을 너무나 실감나게 연기해서 그런 것이지만 그 사람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그 연기자의 ‘화학적’ 성품이다. 최근의 예로, 미안하지만 남자 연기자 둘 ‘주X’과 ‘백일X’ case다. 이들의 사생활을 알기 전부터도 별로 호감이 안 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싫은 것이다. 연기 속의 그들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보일 듯한 그들의 모습이다. 특히 주X이라는 사람, 정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정도로 그 ‘느글, 느물거리는 자태’는 물론이고, 그가 실제로 그런 인물일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백일X, 그도 역시 ‘기름기가 밴 폭력성’이 나를 도망가게 만든다. 그의 사생활도 나중에 연숙을 통해서 들었기에 나의 유감은 맞은 셈이다. 이 두 사람의 ‘냄새’ 를 나는 정말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우문[현답]인가?

고국의 VHS급의 영상물을 보다가 서서히 90년대 혹은 2000년대로 옮아오며 나는 주저하고 주저한다. 우선 배경 scene들이 너무나 나에게 생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거북한데… 사실 웃기는 것 아닌가? 나는 그 당시에 가끔 그런 것들에 이미 익숙해졌던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구나, 내가 우리 고향의 변화, 변천하던 모습을 거의 고의적으로 잊으며 살았던 것에 대한 죗값이라고 할까? 내가 너무나 이런 것에 민감한 것일까? 왜 남들처럼 무덤덤하게 못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노력할 것이다. 서서히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올라오며 공부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Reese’s,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나를 유혹하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에 이것은 예외가 아닐지? 어제 이것을 무려 6개나 입에 넣고 나서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낀다. 나이의 신호인 ‘당뇨병’이란 말이 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의 원인이 Reese’s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양적인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당 적당한 개수는 몇 개일까? 웃기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요즈음은 솔직히 말해서 사치적인 순간들이다. 즐기고 감사하면 된다. 아~ Reese’s야, 지금도 거의 손이 그곳으로 가며 2개를 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중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라고 쓰인 벨라뎃다 편을 신들리듯 읽고 쓴다. 내용은 거의 이미 아는 것들이지만 이 신부님의 묘사, 글은 정말 engaging한 것이어서 실감이 100 % 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그가 했던 성지순례일기였다. 아~ 이제 우리도 이곳을 가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실감은 아직 가지를 않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한다. 건강할 때, 걸을 수 있을 때,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신명 들린 듯, 마술에 빠진 듯 읽으며 필사를 ‘즐긴다’. James Martin신부의 문장, 글의 스타일 때문일까, 아니면 내용에 무엇이 있는가? 지금 루르드의 벨라뎃따, 순례기를 읽고 있는데, 생각한다. 이곳을 가게 되면서 혹시 우리들… 앞으로 꼭 봐야 할 유명한 곳 보다는 세계에 널려 있는 성지를 가급적 많이 가보고 싶다는 어린애 같은 소망이 떠오른다. 나답지 않은 것이, 예전에 나는 그렇게 성지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Martin신부의 글을 읽으며 서서히 그런 생각이,  ‘꼭 가보고 싶다’ 라는 희망적인 염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목표가 서서히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듯 느껴지는 날이 되었다.

기록적인 속도로 베르나데트 성녀 편을 끝냈다. 그러니까 하루 만에 거의 30 페이지를 질주한 것이다. 역시 내용이 큰 관건이다. 너무나 몰입하며 즐겁게 읽게 되니까 이렇게 빠르게 독파한 것이다. 다음 편은 여러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를 택했다. 이것은 Word on Fire Bishop Barron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신학대전 Summa…’, 신학의 정수를 정리한 분이니… 이것으로 나는  apologetic의 한 곳을 또 건드린다.

 

이슬비도 안 되는 물기가 가득 찬 하늘을 보며 로난을 데리고 걸었다. 햇살은 없지만 대신 습기가 땀을 배게 한다. 아직도 나는 로난과 가는 것이 힘들지 않다. 숨도 고르고 다리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연숙은 요새 걷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듯 보인다. 나와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야 할 텐데…  Toddler, 아이를 보는 것 baby-sitting, 힘든 것인가 아니면 할만한 것인가? 지금은 새로 찾은 Dave&Ava [3D animation, 최근의 video technology의 위력을 보여주는 예] 라는 아이들 video를 Youtube에서 보게 하는 것이 무척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그것 이외는 diaper 갈아주는 것, 많을 때는 3번씩이나 하고 나면 정말 나도 늘어진다. 책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정도가 되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힘은 들어도 이러면서 서로 skinship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경험이 아닐까. 아직도 손주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일들’, 그래 기왕 하게 된 것 편하고 즐겁게 하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노년에 최선을 다해 사는  한 방법이다.

 

하지가 지났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안 간다. 날씨 때문에 해의 동향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관심이 덜 했던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나의 방에 있는 wifi light controller에 문제가 생겨서 ‘일년 중 제일 늦게 저녁불이 들어오는’ 것을 목격을 못 했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이제부터는… 저녁때의 불이 조금씩 빨리 들어올 것만 알면 되고… 아~ 진짜 여름의 시작이고… 4개월만 지나면 ‘황금색’의 세상이 올 것을 기대하며…

6월의 하순, 24일의 요한세례자 ‘영명축일’과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 머리에 떠오른다. 6월 25일은 나의 아버님이 빨갱이들에 의해서 끌려가신 모습이 떠오르고… 이렇게 하면 6월도 저문다. 그리고… 그리고… 기다리는 것, 계속 기다리는 것…

요사이 너무나 시원한 초여름의 날씨, 특히 뒤뜰의 초록색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온다. 연숙이 참으로 애를 쓰며 만들고 있는 이것, 아마도 우리 집의 보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 열심히 사는 날까지 가꾸고 보살피고 사랑하자.

 

 President Biden의 사랑하는 pet dog Champ가 집에서 편하게 영원한 잠을 자게 되었다는 소식. 날짜가 6월 19일, 우리Tobey가 3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간  같은 날? 아~ 우연인가? 게다가 나이가 13살? 이것도 거의 비슷한가?  그렇구나… 비슷하다. 그래 우리 Tobey도 집에서 나의 손에 안겨서 떠났으니까…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이 뉴스가 national news에 날 정도니까, 얼마나 미국인들의 pet dog, cat 에 대한 사랑이 깊은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런지.. 바이든이 더 좋아진다 [모르긴 몰라도 Donald 개XX 는 pet dog이 있어다면 수시로 발로 걷어차며 열을 내고, 화를 풀었을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손에 들어온 고국의 시사 월간지들, 특히 신동아, 월간 조선, 중앙 등… 이제는 추억의 잡지로 곰팡이가 쓸고 있지만, 나에게는 기나긴 고향을 잊고 살았던 기간을 회복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유물이 될 수도 있다. 1970년대 2권, 1980년대 21권, 1990년대 7권, 2000년대 1권… 이것으로 얼마나 나는 과거의 대한민국을 공부할 수 있을까? 노력을 한번 해 보자!

 

올해 Father’s Day, 받는 것만큼  나도 협조를 한 셈인가?  조그만 가족들이 모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으로 이날의 의미는 살렸으니까… 하지만 조금은 피곤하기도 하다. 나는 사실 이런 날, 기념일, 방학, 휴가, 명절, 휴일 등등,  혼자 있고 싶은 때도 있지만 나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고, 나의 속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마도 나의 볼래야 볼 수도 없는 어머님밖에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인간이 아닌가?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나는 속으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존재가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Father’s Day 모임 자체는 솔직히 말하면 모이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행사이기도 했다. 나는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가 거의 전부일 수도 있지만 별 수가 없었다. 별로 즐겁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 그런 때도 있는 거지…

Father’s Day grill out by Father

 

이영석 신부와의 카톡 대화로 8월 경에 이임, 귀국을 하신다는 것은 짐작했다. 6월 말까지 떠난다는 소문으로 아마도 새로 오시는 주임신부님이 그날까지 못 오시는 듯하고 아마도 8월 경쯤 visa가 된 것은 아닐까? 좌우지간, 8월 전까지는 새로운 신부가? 와~ 아찔해진다. 물론 좋은 사제가 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윗동네’ 주임신부 같은 ‘피하고 싶은’ 사제가 오는 날이면? 와~ 이것도 조금은 도전이고 시련일 수도 있다. 이임 소식을 아직도 생각하고 정리를 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 성당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내년까지는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살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부담을 주는 것인지? 어떤 목자가 출현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생의 마지막 순례길을 크게 결정, 좌우할 듯하기 때문이다. 나의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신부님,  ‘몸이 아프신가..’ 하는 추측 성 말들을 하게 되었다. 아니면 가족 사정, 특히 그들의 건강상태.. 등으로 관심이 넘어가면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 듯 보인다. 그러면 나쁜 것 아닌가?  문제는 timing이다. 왜 지금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려질 터이지만 궁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더 좋은 신부님이 오신다는 hint를 주셨지만 그것이 전부다.

First of May, Ah… Marian Month…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오늘이 5월 1일 임을 안다. 뚜루루 뚜루루 뚜루루루루루~~  Bee Gees 의 추억 어린 화음이 용현이와 창희, 그리고 지리산 흑백영상과 겹친다. 1977년의 반세기 전의 모습과 풍물, 시대와 함께… 나는 또 ‘이제 우리의 세월은 다 흘러갔다’ 라고 또 중얼거린다. 언제까지 나는 이렇게 숨을 쉬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아침 평화방송 매일미사에서 “아차! 어떻게 이런 일이!” 의 moment를 맞는다. 5월1일 May Day의 이름이 떠오르면 곧바로 ‘창희와 용현이’  Friends Forever~ 의 생각만 했지 정작 ‘성모성월’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Marian Month of May! 성모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날만 생각했지 우리 성모님 생각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 찬란한 5월은 성모님의 달, 하기야 이것은 이제 완전한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기에 5월이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서 그랬을 것이라고 조금은 자위를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5월, 5월, 성모성월, 성모의 밤… 참 포근한 추억들이었지… 성모님, 감사합니다, 저의 [제2의] 어머니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Pandemic 이전 거의 매일 하던 ‘아침외출 drive’를 하게 되었다.  무너지고 있는 에어컨 condenser pad를 고치려고 [pouring new concrete]  Quickcrete 를 사러 Home Depot에 같이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에 아침을 밖에서 아마도 McDonald’s 에서 먹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더욱 2020년 이전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아침 동네성당에서 매일미사가 끝나면 fast foods를 가끔 즐기던 우리의 모습들이 그립다. 하지만 그 때는 나름대로 고통, 입안의 고통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었지, 지금은 최소한 그 독특한 아픔은 사라졌다. 음식의 독특한 맛을 조금 잃어버렸지만…

 

Two Husbands? 갑자기 잠에서 깬 느낌이 들었다. NBC weekend morning Show에 말쑥한 남자, Transportation Secretary Pete B.[Last Name조차 느낌이 이상한] 가 열차 안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그는 Biden의 ‘Ultra’ infrastructure spending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mega plan은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interview의 마지막 부분, 그의 ‘husband’ 의 모습이 왜 그곳에 나오는 것일까? 그 남자의 남편이라… Gay couple인 것인데 그렇다면 그는 wife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나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아~~아~~~신음소리’가 나옴을 느낀다. 어떻게 이런 Sodomy 세상이 ‘개화의 이름’으로 초현대에 왔을까?  하지만 잊지 말자, 그것이 세상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만… [나는 bible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의 깊숙한 신념에 의한 것만 기록하면 된다]

 

‘필사, 필사, 필사 [mechanical] typewriter 소리, typing keyboarding..’ 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지나간 수 년간은 나는 ‘심심하면’ 이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옛날 처음 mainframe computer가 나왔을 때 scientists, engineers들이 ‘심심하면’ 이것을 가지고 [typing이 아니고] toying하며 시간을 보낸 사실을 기억한다. 그것도 좋지만 typing그 자체는 나를 신선하게 하고 젊은 느낌을 준다. 나만의 독특한 생각일까? 타이핑하는 목적,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행위자체를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요새는 갑자기 그것을 할 상대가 하나하나씩 사라져간다. 무엇을 필사할까? 이럴 때마다 나는 대한민국의, 출판사 이름도 거창한 ‘바오로의 딸’들의 수녀들이 미워지고 싫어진다… 생각의 안목이 너무나 좁고, 짧은 ‘신앙적 출판인들’의 바보스러움을 한탄한다. 이 바보 수녀들아, 조금 더 높고 넓은 숲, 산, 하늘, 은하계를 보며 사세요!

 

거창하게 James Martin 의 ‘두꺼운’ 책과 reader [James Martin Essential Writings]를 구입했지만 희망대로 진전이 안 되고 있다. 아마도 이것도 Merton effect인가? 나는 지금 이 Merton의 이름으로 걱정에 빠진다. Merton의 first name이 가물거리는 것이다… 이것도 요새는 흔한 경험이다. 하지만 치매초기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 이름들이… Merton의 이름… 흔한 것인데..john, James, Steve, TOM TOM TOM TOM!!! 아~ 이것은 왜 이 모양인가? Thomas Merton!!  너무나 기대가 컸던가? 내가 그의 진면목을 잘 못 알았던가? 실망을 하는 자체가 금기여서 그랬나? 하지만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은 다행이다. James Martin도 같은 류가 아닐까? 조금 기대치를 낮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독서의 진전이 너무나 느리다. 조금 더 빨리 읽고, 좋은 글은 ‘부분 필사’를 하는 것도 좋은 idea일지도 모른다.

 

Normalcy in the air! 화창한 성모성월 5월, 그것도 첫날은 일년 만에 무엇인가 세상, 최소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제대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는 듯했다. 속으로는 ‘개XX’란 말이 다시 나오기도 하지만 이제는 앞을 보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염원이다. 십자가 경배 때의 놀라운 결심을 이곳에도 적용이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Home DepotTrader Joe, 그리고 Wendy’s를 찾았던 오늘 아침은 정말 ‘정상적 토요일’의 느낌이었다.

좋은 날씨와 일찍 먹은 Wendy’s Dave’s Single Combo 덕분에 용기를 내어서 front lawn 잔디를 깎았다 올해의 잔디는 확실히 예년에 비해서 잡초가 적어서 그런지 잔디의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그런지 힘든지 모르고 끝냈더니.. 거의 3시간이 걸렸다. 이 정도면 나의 체력에 큰 이상은 없는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집, 앞에서 보아도 평균 이상은 된 것 아닐까? 특히 ‘가짜 faux’ window  shutter들이 모두 없어진 것은 다른 집과 다르게 보여서 더 돋보인다고 나는 은근히 기쁘기도 하다.

April 19th, Seamless Gutters Up…

아차! 미안, 자괴自愧, 실망… 오늘이 사일구 4.19  61주년 기념일이었구나! 미안합니다, 선배님들, 형님, 누님들! 어떻게 이런 일이? 사일구를 어제 잠깐 생각은 했지만 바로 오늘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것 뿐이었다. 죄스러움, 나이와 세월의 횡포, 등등만 핑계거리만 생각하고 있으니… 1960년의 이날을 어찌 이렇게 잊었단 말인가?  요새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인가? 그 당시에 잘 모르고 경험했던 어린아이의 추억이 지금은 조금 역사적 조망을 할 나이가 되었으니… 한마디로 ‘순수함의 결정체’ 였던 민중, 아니 학생들의 염원이었다. 다른 생각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빨갱이가 싫긴 했지만 그렇다고 빨갱이로 모함을 받는 것도 마다한 정말 깨끗한 분노의 발로였다. 부정, 부정 그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형님, 누님들, 그들의 순수한 희생, 그날은 바로 바로 그런 날이었다.

 

지난 밤 3시가 지나서 깼지만 다시 자려고 노력을 하며 6시 반까지 굳세게 자리를 지켰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그 중에서도 성모님의 추억을 떠올렸다. 특히 2014년 경의 성모님, 나를 진흙탕 도랑에서 손을 잡고 이끌어 올려주시던 모습, 북망산을 닮은 먼~ 곳의 서너 개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나를 계속 잡고 이끌어 주셨다. 마지막 봉우리는 아마도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런 것이라고 짐작한다. 성모님, 저는 당신이 절대적으로 이제는 더 필요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2010년대 초 성모님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한다. ‘용서’를 선언했던 올해 성금요일, 나는 무엇을 했던가? 아직도 앙금이 깊이 남아 있는 자신을 보며 다시 생각하니 나는 ‘용서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였다. ‘용서를 했다’ 가 아닌 것이다. 그 전까지는 ‘용서를 절대로 안 하겠다’였고 지금은 ‘용서를 하도록 노력하겠다’ 인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작은 기적’인 것이다. 그래, 서서히 잊으며 다시 예전에 없었던 때로 돌아가는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다. 너무 너무 쪼잔한 신경에 목을 매지 말자.

 

Ozzie와 지내는 첫 아침이다. 계획에는 이 녀석을 데리고 이른 아침에 산택을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잘 하면 하루에 두 번 산책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일주일 편하게 사고 없이 서로 사랑하며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새로니 부부는 어제 Pensacola [Florida] beach hotel에서 Gulf [of Mexico] 의 저녁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내왔다. 갑자기, 숙연해 진다. 어~~ 우리가 이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거의 참을 수 없는 향수, 그것을 느낀다. 가보고 싶기도 하고… 오랜 만에 둘이서 편하게 푹 쉬다 오면 좋겠다.

7시 반에 Ozzie와 기다리던 이른 아침 산책을 하였다. 이 녀석 요사이 새로니가 늦게 일어나기에 아마도 처음 이런 산책을 할 듯하다. 너무나 기운이 넘치고 유유작작 온 동네를 섭렵하는 모습 나도 맑은 공기를 실컷 들어 마시며 즐긴 셈이다. 푸푸를 무려 세 번씩이나 하는 것, 이제는 나도 기대를 하기에 큰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토요일까지 걷는 것이 나의 목표다. 나의 허리운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날씨까지 협조적이니 얼마나 좋은가?

 

HISTORIC FIRST FLIGHT ON MARS!  화성의 표면에서 처음으로 뜬 헬리콥터 drone Ingenuity… 정말 재미있는 소식이 아닌가? 대기권이 거의 공허한 그곳에서 어떻게 ‘뜬’단 말인가? 무엇을 밀어 제칠 것이 있단 말인가? 무언가 있으니까 떴겠지만. 공기가 너무 희박한 것을 해결하려면 결국 이 drone의 무게를 가급적 가볍게 해야 하는데, 이것들을 가지고 ‘노는’ engineer들이 정말 부러워 진다. 분명히 여자, minority들이 섞어 있거나 그들이 주역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세상은 변하고 있고 변했다.

 

오늘로 일단 우리 집의 ‘대 공사’는 끝나게 되었다. 마지막이 gutter인데 오늘 예정된 시간에 Duckworth Gutters guys 들이seamless gutter extractor 차를 몰고 와서 2시간도 안 걸려서 말끔히 6″ seamless aluminum gutter를 설치해 좋고 갔다. 2 black guys까지 포함된 날렵한 teamwork도 그랬고 black/white가 어울린 team이 오늘의 George Floyd 공판의 뉴스와 함께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 생각보다 큼직하고 탄탄하게 보이는 gutter는 우리 집 전체를 돋보이게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소낙비가 오더라도 안심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이로써 total  $30,000 의 결산으로 tree, roofing, siding, gutter가 모두 끝나게 되었다. 분명히 집값도 영향을 받게 되리라….

Peaceful Frosty Easter Sunday…

 

아~ 드디어 부활절 아침이 밝았다. 비록 서리경보가 내린 싸늘한 새벽이지만 부활의 느낌을 주는 듯한 동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온다. 2021년의 사순절이 모두 지나고, 결국은 부활시기로… 자비주일로.. 이렇게 어김없이 세월은 흐르고 나의 모습도 흐른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도 다시 태어나는 시기를 맞이 했으면, 다른 더 나은 삶을 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비록 안식일, 부활절 주일 시작이지만 이것도 ‘쉬는 것’이라고 결정을 하고 자진해서 2시간 새로 넓어진 뒷마당에서 육체노동을 하였지만 머리 속은 완전히 쉬는 것이다. 시원한 기분으로 연숙이와 둘이서 차茶까지 마시는 것, 모습조차 귀중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부활 예수님,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행복을 주셔서…

마음이 편안하다 보니 자연히 2014년 9월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010년대에는 정말 중요한, 역사적인 날들이 줄줄이 있지만 어찌 그 해 9월의 그 대 장정 long march의 시작을 잊을 수가 있는가?  이제는 그  이전 세월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데.. 그것은 사실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어두움의 세월로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어찌 안 그런가?  그 2년 후에는 DONALD라는 ‘개XX’가 출현을 했으니… 그 해 9월의 대결단을 계속 연기를 했었다면? 생각, 상상하기도 싫고 심지어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정말 아찔한 세월’들을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아마도그렇기에 성모님의 도우심을 받은 것이지만… 어찌 그런 세월을, 우리의 암담한 처지를 잊고 살 수 있었을까?  2000년 대의 두 어머님들의 타계는 나에게 처음으로 삶의 유한함의 실체를 보여주었고, 2007년에는 우연한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서 2010년에는 과감하게 나는 나의 갈릴래아로 용감하게 뛰어들었던 것…  나의 갈릴래아, 맞는 말이다. 이번 성삼일 미사 강론에서 이영석 신부님은 ‘십자가에서 갈릴래아’로… 라는 주제를 일깨워주셨다. 맞는 말이다.

모처럼 마음이 평안한 진정한 휴일기분을 느끼고 싶다. 실제로 평안하기도 하다. 어제 집 공사가 거의 끝이 난 것을 보고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나의 기우와 불필요한 우려 등을 씻는 계기로 나는 나의 단점과 허점을 재 확인하는 기회도 되었다. 나는 지독히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가호가 필요한 인간인 것이다. 그것도 부활하실 수 있는 그 무한한 능력을 깨달으면서..

 

다음의 남은 일 rain gutter job,  전번에 estimate 가 $2,500 정도라는 것만 알고 다시 모험이 시작된다. 이번엔 어떤 ‘작자’를 만나게 될 것인가? 이 contractor, handyman service 등 각종 house service business, 나는 근본적으로 믿지 않는 자세로 출발을 하기에 더욱 괴롭기만 하다. 한마디로… 이것 운이 따르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지금 Sam group은 그런대로 운이 따르는 만남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하지만 gutter는 또 다른 문제다. 각종 review조차도 나는 신빙성이 별로인 것이니까… 기도밖에 없다. 기도…

 

Ah, Quarter Pounder Lunch…

비록 5시경에 눈은 떠졌지만 편한 마음으로 furnace소리가 들리는 6시 30분 이후에 일어났다. 왜 편한 마음? 어제 밤에 attic antenna job의 결과도 한 몫을 했지만, 로난을 돌보아준 하루의 보람도 있었고, 오늘 연숙이 혼자 errand 하러 나갔다 올 때 McDonald 그리운 햄버거를 사오겠다는 사실 때문이었나?  또 있다. 오후에는 싸늘~한 비가 내린다는 사실… 혹시 sleet, even snow flurry?  이것도 포근한 모습이 아닌가? 이렇게 나는 simple human이 되고 있구나.

드디어 2 big home ‘repair’ projects 의 첫걸음을 띤다. 역시 ‘밀려서’ 시작한 셈이지만 시작한 한 셈이다. 과연 결과가 어떨지는 전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 해 볼 것이다. 이제 $$$의 문제는 예전에 비해서 나아졌기에 조금은 가능성이 생긴다.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인가? 또 복잡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어진다. 간단히 생각하자.  우선은 contractor research를 해야 한다. 이제는 website가 잘 되어있으니까 구전 口傳 words of mouth는 전처럼 중요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그것도 염두에 두면서 찾아 보련다. 우선은 website를 통해서 2~3 군데를 찾아보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

약속대로 연숙이의 협조로, 오랜만에 McDonald’s Quarter Pounder Hamburger를 맛있게 ‘집에서 편하게’ 점심으로 먹었다. 긴 세월 동안 변치 않는 맛, 거의 기적에 가깝다. 맛 보다 왜 이곳 Roswell Road McDonald’s 라고 하면 추억 잠기게 되는 것일까?  1992년 이후 이사를 온 이후 각종 추억이 많이 얽힌 곳이었는데 big remodeling을 하면서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옛날의 모습이 사라진 것.  Holy Family 성당 매일 미사가 끝나고 그곳엘 참 많이 갔었지, YMCA 끝나고 들리기도 하고… 모두 모두 Pandemic 전, 그때가 꿈같은 시절로 영롱하게 남게 되었다. Mask를 안 쓰고 다니던 시절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으니…

KBS 80년대 드라마게임, ‘형제회의’라는 episode를 본다. 꿈같은 가족들의 이야기… 형제들이 많은 집, 돌아가며 어머님 모시기… 나에겐 역시 불가능한 꿈같은 스토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침을 질질 흘리며 부럽게 보고 또 본다. 다양한 형제들, 어머니 모시는 것의 방법도 가지가지… 진심도 있고 열성도 있지만 아예 효성이 없어 보이는 형제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해서 합쳐진 효성, 효도의 결과는 이즈음 세상에서는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느껴지니…

Pandemic Groundhog Day, COVID 1st Shot

Punxsutawney Phil saw his shadow this morning! Six more weeks of Winter! No crowd, just streamed live!

요즈음 잊고 있었다. 오늘은 2/2, 2월 2일! 바로 Groundhog Day! 이제는 추억이 조금씩 엮어진 날이 되었다. 거의 10년이 되었을까? 그 영화, The Groundhog Day를 보고 느낌을 나의 blog에 남긴 것이?  추운 겨울을 나려면 이 추억을 나는 꼭 집고 넘어가고 싶다. 주인공 Bill Murray의 얼굴도 그립고, 체감온도가 제일 낮은 2월 초의 정취를 나는 마음껏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은 얼마나 더 갈 것인가?  Pandemic 으로 운집한 군중이 거의 없이, 오늘 아침 이 ‘유명한’ 펑스토니 필’ 두더지는 자기의 그림자를 보았다고 한다. 역쉬~~ 6주 이상을 더 기다려야 봄이 오는가…

 

아침 먹은 것이 다시 거북해져서  Alka-Seltzer를 마시고 조금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 왜 자꾸 소화기에 문제가? 별것은 아니겠지… 그런 상태로 오늘 외출은 조금 아찔한 기분… 너무나 오랜만에 freeway에 올라선 기분. 하지만 모든 일들이 예정대로 끝났다. 부수입으로 성당에서 이영석 주임 신부님의 건강한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드렸다. 안식년으로 방문오신 어떤[이름을 잊었다] 신부님,  3주간 머무신다고, 인사까지 드리고 왔다. 1차 코로나 백신은 거의 정확한 시간에 맞긴 맞았지만 2차 접종은 한 달 뒤에 전화로 예약을 확인해야 한다고… 2차 접종 후에는 조금 몸이 아플지도 모른다고 신부님이나 간호사가 모두 말해준다. 우리가 맞은 것은 Moderna vaccine이었다. 이제는 한달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면 큰 문제는 없을 듯… 감사합니다.

요새 거의 매일 ABC, NBC, CBS channel을 자유자재로 오고 가며 보고 있는데, Super Bowl이란 단어도 정겹게 느껴지고, 각종 약 광고들도 반갑다. Get a Life! 의 구호에 조금은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가? 이것이 true reality인가? 그래, 조금씩 조금씩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며 살자… 상식적인  태도로…

Ugly Monster’s Out, Historic Hopes’ In…

Young Senator Biden, 1972

Congratulation & Celebration!!! 아마도 오늘의 Joe Biden  47th President 취임식은 내가 처음 보는 취임식일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대통령 취임식’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그것은 예외 중의 예외… 정말 예외다. 이것을 안 보면 나는 세상을 등진 자, 역사적인 무관심론자, 심지어 나쁜 놈일 수밖에 없다. 봐야 하고, 축하하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이 진리를 무시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살 자격이 없다 !!!

아침 7시부터 NBC-TV로 시작해서 12시의 취임식을 나는 지켜볼 것이다. 이것은 신성한 사회적, 국민적 의무요 권리이다. 또한 천하 역적 DONALD ‘개XX’가 쫓겨나는 것을 나는 기다릴 것이다. 그의 더러운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 개소리’가 서서히 소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정말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진실과 증거를 무시하는 ‘개XX’들과는 대화가 안 됨을 깨달아야 한다. 한계가 있다.

DONALD 개XX가 드디어 ‘하얀 집’에서 쫓겨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이 XX가 완전히 DC를 떠나는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이 XX는 미쳤었기 때문이다. TV에서는 마지막으로 이 XX가 speech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괴롭다. 나는 안 볼 것이다. 떠난 후의 모습들이 나올 때까지 TV를 안 보려고 한다. 그 정도로 나는 이 XX를 증오, 경멸한다. 히틀러와 지옥에서 말싸움이나 하며 ‘살아라’, 이 개XX야! Worst of worst, go to hell!

이제 나도 tone을 조금씩 낮출 때가 다가오고 있다. 오전 11시 59분이면 모든 고통들이 일단 끝난다. 12시에 Biden 의 Presidential oath가 시작되면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12시, 12시!  지금 아침부터 거의 계속 취임식을 보고 있다. Poor guy, Mike Pence의 모습이 보인 것, 조금 감동을 받았다. 역시 정의는 승리한다.  당신은 그런대로 제정신을 가진 인간이었다. 고맙다, Mike Pence!

이제 모든 식이 끝났다. 이제 우선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그 정도로 불안했던 내가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의 탓이 아니라 그 미친 XX의 불안정한 행동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인간의 얼굴을 안 볼 수 있게 되기만 기도한다.

Almost like a Church service… 흠~ commentator의 지적, 나도 그것을 느꼈다. ‘하느님’이란 말이 수없이 들리던 오늘의 취임식… 이런 시작, 아주 좋은 것이다. 바이든, 역시 경험이 풍부한 정치인이다. 그가 조금 중도적인 입장, 교회의 힘을 의식하는 정책을 취한다면 분명히 그는 성공한다. 나는 믿는다.

 

내가 생각하고 진단하고 해석한 많은 사실들은 요새 나오는 석학들의 논평과 거의 일치함을 보고 나도 놀란다. 다만 나에게는 그것을 정리해서 글로 옮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그것뿐이다. 나도 이번 기회에 나의 세계관을 조금 고칠 것은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single-issue view (a.k.a obsession) 의 위험함을 나는 알아야겠다. 이것은 나를 조금 우울하게 한다. 나도 실수를 한 듯 한 것이다…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생각을 해 보자.

USA DAY! 오늘은 하루 종일 바이든 바이든 미국 민주주의 상식적인 정치.. 등등을 생각하며 보냈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TV앞에 앉아 있었던 나에게는 드문 날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절대로 나에게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잊지 못할 감동적이고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나 보다..

Tom Hanks 가 MC를 하는 virtual party, 나답지 않게 거의 모두 보고 있다.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모두가 그 개XX 덕분이다. 상식과 이성이 통하는 나라, 절대로 거저 준 것이 아님을 절감하기에 더욱 나는 자축하는 기분으로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감사한다.

PROMISE ME, DAD by Joe Biden: 거의 발로 차 버렸던 이 책을 다시 꺼냈다. 한마디로 ‘미안합니다’ 라는 말 밖에 안 나온다. 나라니가 2017년 성탄 선물로 준 책이었다. 한가지 ‘문제’로 나는 다른 모든 것을 막아버렸던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동성결혼’의 한가지 issue로 나는 다른 모든 문제를 덮어버렸던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나는 서서히 ‘탈출’을 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른 각도로 보아야 한다는 진리를 찾기 시작한 것인가? 이것도 DONALD ‘개XX’ 덕분이라고나 할까? 바이든 대통령,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오랜만에 연호친구들과 모두 연결이 되었다. 취임식과 생일의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특히 인송이는 너무나 반가웠다. 아직도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정말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것이 얼마나 건강하기에… 그래 좋은 거야! 부럽고 그립다, 인송아!

Free Money ($600), 이번에는 나도 조금 과감하게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사고 싶었다. 그래, 경우야… 그 동안 참 많이 절약하며 살았지? 장하다. 이번에는 조금 사고 싶은 것을 사 보자… $100를 쓰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1. 4 more smart-plugs (현재 시작한 wifi-light-controller를 확장)
  2. Roku deluxe (나의 방에는 전에 쓰던 것을…)
  3. TV-antenna, with rotor (direction control 하는 것)

 

창포 菖蒲 필 무렵, 꿈같은 추억이여~

 

얼마 전에 우연히 보았던 1980년대의 TV 프로그램 KBS TV 문학관 중의 ‘창포 필 무렵’이란 드라마, 1987년 경에 방영된 것이다. 이 장수프로그램  “TV 문학관”으로 나는 1980년대 대한민국의 느낌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 ‘창포…’ 를 보면서 아득하고 아련한 어렸을 적을 추억과 맞물려 이렇게 두 번씩이나 보게 되는가.

시골이 배경이지만 우리 때보다 훨씬 기름진 부유함이 보여서 실감은 좀 떨어지지만 주인공 소년아이는 100% 내가 빨려 들어갈 듯한 동질감을 느낀다. 내가 그 녀석이 된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눈을 끈 한 scene, 주인공 녀석이 ‘상사병’이 나서 앓아 누워있는 방의 모습이다. 아마도 내가 살았던 서울 가회동의 방도 그와 비슷했지 않았을까? 엄마, 누나, 밥하는 누나 이렇게 셋이서 나를 둘러싸고 앉아서 따뜻한 간호를 했던 기억들.  아플 때면 그렇게 사랑을 흠뻑 받아서  나는 몸이 아픈 것이 그렇게 괴롭지 않았고 심지어 그리워할 때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여동생 가진 것이 인기였지만 그 전에는 이렇게 돌보아주는 누나가 더 인기가 있었다.

 

 

‘예쁜 누나’로 나오는 처녀, 어쩌면 나도 그 나이에서 꿈 속에서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동경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 녀석이 느끼는 아련한 연정이랄까…  이성 異姓적인 각도가 제외되었다는 것을 빼면 지금도 마찬가지 심정일 듯하다. 사춘기 전에도 그런 ‘동경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여자아이나 누나뻘, 심지어는 젊은 아줌마나 되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성에 완전히 눈이 뜨게 되면서 그런 순수한 것들은 퇴색되었지만, 완전히 모든 것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예전의 100% 순수한 사랑 같은 아련한 느낌은 지금도 건재하니… 이런 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여기에 나오는 묘령의 누나 아가씨의 이름은 ‘예명숙’으로 나온다. 이 TV 탤런트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 쯤은 아줌마 세대로 접어들지 않았을까? 아~ 멋지고 달콤했던 당시의 세월이여~

 

‘일본식’ 기마전을 하는 ‘국민학교’ 아이들

이 프로그램은 손소희 원작을 드라마화 한 것이지만 원작의 줄거리를 떠난 다른 영상들, 비교적 부유한 시골의 모습과 그곳의 ‘국민학교’ 교정, 거기서 ‘기마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들은 거의 100% 나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서울 재동 국민학교의 그것들이었기에 나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드라마를 만들어 준 제작자들이 너무나 고맙기도 했다.

가회동 嘉會洞 198번지

꿈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생생한 사진으로 나에게… 우리들의 소굴, 골목이 여전히..

거의 6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  20세기 1960년대 중반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집 골목, 그곳의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가까이서 보는 기적을 체험한다. 솔직히 이것은 거의 꿈, 기적 같은 느낌이다. 그야말로 time machine을 탄 기분인 것이, 머리 속에 각인된 기억의 사진과 지금 보는 사진이 거의 비슷한 것이다. 집의 위치들은 변함이 없지만 개량되고 말쑥해졌다. 우리들이 모여서 자치기, 다마[구슬]치기, 딱지치기, 골목야구, 다방구, 찐뽕, ‘왔다리 갔다리’, 말타기, 칼싸움, 술레잡기 등으로 시간을 소일하던 그 찻길과 골목길에는 흙이 전혀 안 보이지 않게 포장이 되어있다. 어쩌면 이런 기적이… 상전벽해 桑田碧海라고 그 자리들이 모조리 ‘도시계획’에 의해서 없어질 수도 있는 강산이 6번 변할 수도 있는 세월이 지났는데 거의 전의 모습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나의 추측에, 아마도 가회동 근처지역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특수구역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거의 60년 이상 같은 모습을…  또한 다른 기적을 바란다면, 죽기 전에 한번 다시 그 골목을 거닐며 나의 눈으로  보고, 나의 늙어가는 손으로 땅을 만져보고 싶은 것 뿐이다.

6.25 동란 발발 직후 아버지는 3살도 채 안된 나, 누나, 엄마 셋을 남겨놓고 납북, 영영 소식이 없었다. 원산이 고향이셨던 어머니는 거의 혈혈단신 서울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당시 우리는 원서동 ‘병세네 집’ 의 단칸방에 숨어서 휴전을 맞아야 했다. 그렇게 원서동의 추억으로 시작된 우리는 재동국민학교의 인연으로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 뒷문 쪽에 위치한 가회동 집으로 이사해서 중앙고등학교 1학년 초 때까지 살았다. 그러니까 제일 재미있는, 즐거운, 개구쟁이 시절을 이 집에서 보낸 셈이다.  따라서 그때의 추억은 생생하게 나를 오랜 세월 나를 포근하고 행복하게 했다.

 

땅과 흙에서 놀았던 골목이 완전히 돌덩어리로 포장이… 이곳의 애들은 어떻게…

가회동의 추억, 오래 전, 그러니까 거의 10년 전 내가 이곳에 남긴 블로그의 제목이었다. 그 당시 나의 기억력은 그런대로 평균이상으로 꽤 많은 어릴 적의 추억을 거의 사진처럼 그릴 수 있었고, 외롭거나 슬픈 감정이 들면 그 머릿속의 ‘추억의 사진’들을 꺼내 보며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기억력도 나이에 비례해서 급속히 쇠퇴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 가회동의 추억이라는 나의 기억은 지금 읽어봐도 아주 상세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결국은 이것은 남이 보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죽을 때 가지고 갈 것이었다.

가끔 ‘가회동’이라는 keyword로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나의 추억을 거의 같이 공유한 분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우리가 살던 집 ‘주인집 누나’의 현재 소재지까지 알고 있던 분도 있었다.  가회동과 재동학교를 나보다 더 자세히 기억하기도 했는데 특히 재동학교 지하실에서 달걀귀신이 나온다는 도시전설을 알려주던 어떤 형제님… 정말 꿈을 꾸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가회동 같은 골목 자락에 살았던, 재동학교, 중앙중고등학교 10년 후배, 이민우 후배가 연락을 주었다.  이번 case는 그야말로 grand slam격이어서 며칠 동안 나는 행복한 추억을 다시 즐기게 되었다. 내가 알고 지냈던 동네 꼬마들의 소식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야구꼬마 오자룡, 막다른 골목의 윤표네 집 등 이들과는 같은 시절에 놀았던 듯하다. 그러니까 내가 살던 시절보다 10년 정도 뒤에 그곳에서 추억을 만든 경우다. 오자룡은 자기 형과 친했다고 하고… 게다가 골목 막다른 집에 살던 ‘홍윤표’ 란 아이가 나를 따르던 애였는지, 아니면 그 동생인지.. 그 애가 머리가 좋아서 경기, 서울의대, 성형외과의사, 뜻하지 않게 타계를 했다는 소식들.. 정말 이건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느낌들이다.

나와 개인적인 연락이 되어, 지난 밤에 이 가회동 골목 후배의 답신을 받고 잠자리에서 한참을 뒤척거리며 그 동화 같은 시절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것도 향수 鄕愁의 마력 중의 하나다.  홍윤표, 준표 이름을 듣고 당시 그 애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들은 특히 엄마들은 그 골목에서 꽤 오래 남아 살았고 모두들 친하게 지낸 모양이다. 우리나 우리 어머니는 사실 그런 처지가 못되었음을 나는 당시에 실감을 못하며 산 거, 다행인가 아쉬움인가? 그러니까, 내가 알던 추억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을 것이다. 가정주부들, 말 그대로 일을 안 하는 엄마들, 그 당시에는 거의 모두 집에 있었으니까, 그들만의 그룹을 가지고 있었겠지. 우리는 그런 것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어찌 보면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일을 하러 하루 종일 밖에 계셨던 엄마를 다시 그려보면…  참, 우리도 너무 철이 없었고, 나이가 먹어서도 하나 나아진 것이 없었으니 울고 싶다…

 

골목 왼쪽 2층집, 198번지.. 이층 위로 거대한 전망대가 올라 섰구나…

이 활달한 느낌의 이민우 후배가 이번에는 사진과 짧은 video file을 보내 주었다. 사진은 high resolution 가회동 골목의 모습을 담았고, 비디오는 ‘북촌계동’ 으로 중앙중고가 있던 계동골목의 모습을 보여준다.  ‘북촌계동’ 비디오, 계동입구부터 중앙중고 교문근처까지 천천히 걸으며 찍은 것이다. 교문부근은 그런대로 알아 보았지만 계동입구는 100% 내가 기억한 모습이 아니었다. 100% 변한 것이다.

핵심은 역시 골목사진,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하나도 차이가 없었다. 너무나 고화질의 사진이라서 거의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자세하기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이민후 후배가 살았던 집, 195번지는 아마도 이희천 3형제가 살았던 그 집인 듯하다. 그 다음 집이 심술 맞은 수학선생 집 이원영이 살던 집을 것이다. 우리가 살던 집 198번지는 거대하게 2층 양옥으로 고급화 된 듯하고, 바로 앞의 한옥, 오자룡의 집은 전과 거의 같은 모습, 막다른 집의 홍윤표가 살던 집도 예전과 거의 비슷하고….. 와! 이런 기적이…

지난 밤에도 머리만 깨어있으면 가회동 골목의 사진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time machine을 탄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 골목이 그대로 건재해 있을까? 그곳에서 보내던 그 세월들이 그대로 살아나는 환상에 빠지고 깨어나고 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진의 size [high resolution]가 워낙 크기에 자세히 들여다 보니 골목 끝자락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 아~ 역시 세월의 흐름은… 그곳은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상가의 간판들이 보이고,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2층집은 거대한 구조물로 치솟아 있었다. 유일한 추억의 위안은 앞 쪽으로 남아있는 ‘전통한옥’들 뿐이었다.  궁금한 것 중에는 이곳에는 현재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혹시 옛날부터 계속 살았던 사람들은 없었을까…  이런 추억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나도 참 못 말리는 인간이 아닐까?

가회동 성당, Birdie Apartment

 

대한민국의 평화방송 online 매일미사에 낯익은 단어가 보인다. ‘가회동’이란 단어다. 이날 평일미사를 가회동 성당에서 하는 것이다. 물론 놀랍고 반갑고 흥분이 안 될 수가 없다. 이 성당의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거의 즉각적으로 추억의 물결이 밀려온다.  어린 시절의 가회동 성당의 입구에서 본 ‘서양인 성인상’들의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던 꿈도 있었던, 어린 시절의 고전적인 가회동 성당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값비싼 느낌’이 요란한 조화를 자랑하는 건물이 보인다. 그야말로 추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의 한옥은 무엇이고 오른 쪽의 갤러리, 화랑 같은 구조는 무엇인가? 내가 가서 직접 보기 전에 이런 원색적인 평가를 하는 것, 물론 의미가 없다. 그저, 그저 나는 1950년대의 베이지색 고딕성당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머릿속을 청소하러 work desk를 의식적으로 피하며 몸을 움직이는 일을 이곳 저곳에서 찾는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머리 속에 한가지가 머물지 않도록 정말 조심하고 싶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골머리를 썩히지 말자. 덕분에 Birdie nest 9개가 완성되어서 기둥 위 하늘로 높여지고 이제는 오래 전 우리 집을 떠난 Eastern Bluebird의 파아란 생명의 모습을 기다려 본다.

 

Eastern Bluebird Apartment

Under construction

오래 전에 카펫을 제거한 후 노출된 흉한 모습의 중앙계단 main stairway를 결국 현재 편리하게 계속 쓰고 있는 whiskey barrel 이라는 재미있는 색깔로 (이미 porch 와 birdie nest에서도 썼던)  paint하기로 했다. Stain을 하려고 생각도 했지만 너무나 일이 많고 비용도 그렇기에 오래 전에 준범이 엄마가 권한대로 ‘paint하면 되요’라는 말에 힘을 입어 페인트 칠을 하기로 했다. 하기 전에 squeaky nail 문제를 screw로 단단히 고정을 시켰더니 훨씬 나아졌다. 자…이제는.. 페인트를 칠하자… 부디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cable/wire 잡동사니들…  결국 오늘 wire/cable rack을 설치, 나의 참을성을 시험하던 그 수많은 비비 꼬인 wire/cable 들을 걸어 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무언가 되는가 봅니다.

 

조시몬 형제와 카톡을 주고 받다가 갑자기 레지오 협조단원 권면 생각이 들어서 거의 ‘장난 삼아’ 제안을 했더니 의외로 수락을 하니… 참, 세상이 이렇게 멋진 사람도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레지오 (봉사) 권면 얘기만 나오면 두드러기가 돋는 사람들이 거의 태반인데… 참, 예전에 나도 그랬지만…  이곳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이 형제님,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연락이 끊어지지 않게 되는 것도 매력적인 idea가 아닌가? 이 신심 좋고 성실한 형제가 레지오를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모님, 고맙습니다!

나의 가슴속 깊은 곳의 평화의 샘에 혼란이 올 때, 머리를 식히거나 다른 쪽으로 생각을 바꾸려고 할 때, 역쉬~~~ ‘classic’ TV drama 를 보는 것은 아주 효과적임을 경험한다. 3년 전 ‘레지오 미친년’ 사건 때, 일본드라마 ‘하늘을 나르는 타이어’가 나를 살려주었다. 현재 나는 계속 이 평화교란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때에 나는 ‘하나무라 다이스케 花村 大介’ 라는 변호사 TV 드라마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우선 가볍고, 유머러스하고, 끝 맛이 아주 희망적이다. 그래 이런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Yesteryear, July

 

Yesteryear…  요새는 가끔 지나간 해의 달력일지를 훔쳐본다. 지난해 이즈음에는 과연 나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이런 것도 요새처럼 시간이 넘칠 때는 time killer로 으뜸가는 것 중에 하나다.

이것들을 보며 예상보다 훨씬 격심한 변화가 있었음을 절감하며 한숨을 쉰다. 올해의 대부분이 너무나도 개인적이나 사회적, 국가적으로 변해버린 것, 물론 어두운 쪽으로 변해버린 것. 비록 현재의 시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조금 더 위에서 바라보니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의 일상을 보니, 비록 거의 고정적인 일상 routine이었지만 엄청 바쁜 세월들을 보냈음을 알게 된다. 일주일을 너무나 짧게, 바쁘게, 보람 있게 살았던 것, 그때가 그리워진다.

주일인 일요일에는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성당에서 ‘진짜 미사’를 보고, 우리들의  성당 친목 모임 ‘등대회’에서 동년배 형제, 자매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가끔 [레지오]특강도 있었고 모든 주일일정이 끝나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성당근처의 단골 집들, ‘동네방네 [한식점]’ 나 운동장처럼 널찍하고 시원한 Mozart Bakery에서 향기로운  coffee로  평화로운 일요일을 마감하기도 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고정된 스케줄이 있었다. 매일 아침 9시 동네성당 Holy Family CC의 아침미사,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은 Sonata CafeYMCA gym workout이 있었고, 화요일은 절대로 예외 없이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30분 드라이브, 레지오 주회합이 있었고 그날 정오에는 그곳에서 정오미사. 그 후에는 자주 채 형제님, 신 자매님댁, 손 형제님댁으로 봉성체 봉사를 했었다.  또한 시간이 나는 대로 Rosewell Nursing Center 방문을 해서 Parkinson 병으로 고생하시는 두 자매님들을 만나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제는 거의 꿈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시계처럼 돌아가는, 거의 정해진 ‘과제’들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 것,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은총의 시간’이다. 보람 있다고 생각되는 ‘봉사, 선교, 친교’의 시간들은 현재 우리 주임, 이영석 신부님이 주장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 인 것이다. 이것도 ‘중독성’이 있는데, 물론 세속적 의미의 중독과는 정 반대쪽의, 사실은 은총이다.

그것들이 지금 거의 5개월간 완전히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처음 3개월 정도는 ‘우리도 이 참에 좀 쉬자’ 라는 자세로, 심지어 즐기는 기분으로 지났지만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신경질이 나기 시작하고, 현재는 약간 우울감까지 느낄 정도가 되었다. 제일 관심사는, 내가 게을러졌다.. 라는 자책감이 과연 정확한 진단인가 하는 것이다. 제일 괴로운 것은, ‘언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하는 불확실성이다.  기도와 묵상, 의도적으로 규칙적인 일상생활, 그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참, 어쩌다가…

 

초복과 중복의 사이에서…

초복이 지난 습기찬 한여름… 뒷뜰의 모습은 너무나 평화스럽고 한가한가…

 

정교성 파스칼!  드디어 교성이와  5년 만에 통화가 되었다. 그 동안 왜 연락이 두절되었는지 추궁을 하려던 나는 그 녀석의 얘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너무나 놀라서 할 말을 잊었던 것이다. 얼마 전 사진으로 본 바에 의하면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사실을 알고 보니 몇 번의 수술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것, 게다가 현재도 근육무력증으로 거의 못 걷는다고… 20가지의 약을 매일 먹는다고…  설상가상으로  그 동안  이혼을 해서, 현재는 작은  딸 집에서 산다고… 이거, 드라마 연속극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이런 무시무시한 소식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교성이의 음성을 나는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망망하기만 했다. 동정을 하나, 놀라기만 하나, 위로를 해야 하나… 지난 5년 동안 그런 엄청난 일들을 겪었을 줄이야… 문제는 지금의 상황인 듯, 몸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듯하고, 더 나아질 가능성은 불투명하니…

지난 5년간 너무 힘들어서 주위 사람들과 연락을 안 하고 살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같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중앙고 동창 이희진과는 연락을 끊지 않았다고… 과연 이 녀석의 건강상태는 어떤 것인지 확실치 않다. 생활이 불편한 정도인지, 심각한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얘기에 의하면 후자인 듯한데.. 목소리와 사진모습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연락하는 것과 기도 밖에는 현재 없다.  이런 때, 오늘 성경통독은 시편 23편이었다. 이럴 때 이 구절은 조금 위안을 준다.  교성아, 힘내!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

 

초복 初伏이 지나고:  요즈음 나는 ‘의도적 게으름’을 즐긴다. 움직여서 땀이 나는 것을 나는 가급적 피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yardwork도 포기한 셈이다. 하지만 오늘 날씨는 양반 축에 속한다. 오후 2시 반에 90도가 안 된 것이 이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확실히 물기가 덜한 공기를 느낀다. 초복이 언제였나, ‘국산 달력’이 없으니… 아하, 레지오 수첩을 보면.. 그곳에도 없다. 어차피 순교자 성당 달력에나… 아니다 연세대 달력에 있다. 지난 16일이 초복이었고, 26일이 중복, 그리고 8월 7일 입추, 8월 15일이 말복이다. 이제 서서히 가을이 먼 곳에서 나를 기다린다.

 

초복과 중복 사이의 특유한 즐거움, 마가리타!

Overhead Lighting:  2017년 가을부터 나의 진지 陣地가 된 곳이 아래층의 family room, 지금은 나의 서재, study가 된 곳이다. 이곳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게다가 이제는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들이 쌓여간다. 특히 pet dog Tobey를 하늘로 보내던 것을 포함해서… 단, 이곳에 문제가 있다면 desk lighting이다. 지금 것은 원래의 ceiling light인데 desk을 잘 비추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필요한 것은 나의 머리 바로 위에서 비추는 것 hanging light다.  그러면 현재의 desk stand light를 치우고 그 자리를 내가 더 쓰면 좋은 것이다. 이런 idea를 몇 년이나 끌었던가… 드디어 지금 거의 그 일을 끝낼 준비가 되었다. 

 

KBS 문학관, Big Download: 지루하지만 기대감이 넘치는 작업, Big YouTube download! 그 중에서 지금은 얼마 전에 발견한 ‘거대한 시리즈, KBS 문학관’이란 프로그램을 탐색하고 있다. 이것은 문학이란 제목과 맞게 문학작품 그러니까 소설을 드라마화 한 것이다. 놀라움은 거의 10년 동안 매주마다 방영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나 그 이전의 한국문학작품이 소재이며, 80년대의 대표적인 TV 탤런트, 배우들이 총망라된 것이라 나에게는 다른 의미를 준다. 우선 80년대 당시, 이전의 한국문학의 얼굴을 보며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시의 연예계, 배우들을 다시 보거나 새로 보게 되는 등, 나에게는 체험하지 못했던 하나의 대한민국 80년대 문화사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거의 200여 편의 drama video file을 download하는 것, 과연 보람이 있을까?

 

 

A Day in Covid Summer

다시 습기가 돌아온 나날이 시작된다. 아침의 기온을 보면 알 수 있다. 70도 이상이면 습한 것이다. 따가운 햇볕대신 끈끈한 촉감과 계속되는 a/c 소음… 그것이 한 여름의 모습이다. 괜찮다… 이제는 몸이 잘 적응을 하였으니까…  한 여름의 즐거움, 아~ 이 빗소리.. 아무리 90도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평화의 천사가 있고 시원한 빗소리가 들리는 이런 순간 순간들이 나의 70대 인생을 이끌고 있다. 나의 인생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의외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맡기자, 맡기자 모든 것을 ‘절대’에게 맡기자.

After-Dentist-Visit Effect,  한 달 예정으로 매주 가는 치과, 그 이후 날라가는 새로운 느낌과 심지어 행복함을 맛 볼 수 있는 며칠이 또 계속된다. 이럴 때 밀린 일들을 해 치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나는 대신 1940s 시대의 Charlie Chan movie 나 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부터 해 치워야 하는 것인가? 하도 할 것들이 많은 듯 우려 속에서 헤매는 느낌 뿐이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끝을 내고 다음 것으로 가면 되는데…

요사이 본당 성경통독, 구약성경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당황함을 조금 풀어줄 길이 기적처럼 나타났다. 요사이 읽고 있는 Bishop Robert Barron의 책, 바로 그것이다. 그곳에 나의 궁금증들이 비교적 자세히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어쩌면 timing이 이렇게도… 하기야, 이제는 이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이래서, Barron’s ‘white’ book,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actually mostly by John Allen) 에 점점 빠져들어간다. 나의 독서 전통과 기호를 따라 결론 쪽으로부터 읽기 시작해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나오고 있다. 8장부터 시작해서 7장이 오늘 끝났고, 오늘 6장을 시작한다. 8장, 7장을 읽으며 놀랍게도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이 거의 자연히 풀려나가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우연이지만 놀라움이다. 언제 어디선가 이렇게 해답이 나오니까 말이다.  오늘부터는 prayer & supernatural에 관한 것, Barron의 이 주제에 대한 논평, 의견은 이제까지 조금 짐작은 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배우게 되었다.

이 책에서 Bishop Barron의 Bible 론 을 읽으며 조금 구약에 대한 시각에 변화를 주는 듯 하다. 이 머리 좋은 ‘젊은’1 주교의 말은 내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드릴 수 있다. 거의 언제나, 언제나… 그래서 내가 영성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주교님과 항상 가까이 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Water tank rain barrel, a/c condensate water recovery 등등이 갑자기 나에게 활기를, 기분은 좋게 한다. 이것도 역시 electronics, microcontroller 가 관련이 되어 나의 발은 잡는다. 어젯밤 a/c에서 흘러나온 ‘공기 중의 물’이 무려 full bucket이 된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요새의 날씨가 기온보다는 습도가 유별나게 높은 것을 느꼈는데 이 사실을 완전히 실제로 나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어제 한 ‘바깥일’은 ‘공기중의 물’을 ‘다시 쓰는’  재활용, 그것이 목표였다. 전에 쓰다가 남겨둔 water heater tank에다가 a/c 의 condensate water를 저장하는 일이다.  Water pressure가 걱정이 되었지만 water tank 의 높이까지는 안전한 듯하였고, test를 해서 거의 확인을 하였다. 그 hose를 그대로 water tank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기다리면 되고, water hose를 꽂아서 꽃밭에다 주면… 와~~ 이것 멋진 것이다! 더 나은 idea는 그 옆의 rain gutter의 빗물까지 그곳으로… 저장, 근사한 idea가 아닌가?

 

레지오 월례통보가 왔는데 8월  9일 단장만 참석하는 월례회의를 하고 부단장 선출을 한다고… 와~ 이런 이야기 듣든 것 ‘몇 년’ 만인가? 부단장이라… 그 벌써 3년이 되었단 말인가? 현재로서는 머리가 안 돈다. 레지오 월례회의는 물론이고 주회합 조차… 그 정도로 머리 속에서 멀어졌단 말인가?

 

 

7월 6일에 세상을 떠난 이태리 Spaghetti Western music composer였던 Ennio Morricone 의 이름을 본 후 곧바로 추억이 나를 사로 잡았다. 1968년 가을, 겨울을 가며 담배연기 자욱한 해양다방에 앉아서 듣던 The Good , the Bad, and the Ugly의 주제곡… 그것도 ‘이선화’씨와 같이 들었던 멋진 추억으로 남았던 것…

 

 

 

  1. 사실은 60세가 넘은

Father & Esperanto Friends

50년만에 다시 보는 아버지, 평창이씨 이정모. 제일 아랫줄 오른 쪽 끝에서 세 번째의 ‘작은 체구’

 

아버님, 아버지, 아빠 그리고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친구들,   Esperanto Esperanto Esperanto friends..  감사합니다!

아마도 50년도 넘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이 사진, 우리 아버님의 모습을 이 사진에서 보았을  때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보던 ‘조선 에스페란토 학회 단체사진’  한 장이 digital format으로 오늘 나의 Email InBox에 들어와 있었다. 그 한 장의 사진에 분명히,  나의 뇌리 속에서 ‘우리 아버지’라고 알고 살았던,  ‘앞 줄에 앉는 사람 중 제일 작은 남자’ 가 있었다.

이 사진은 연락이 두절된 우리 누님 집에는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세월이 이렇게 깊어지면서 아마도 나는 생전에 다시는 아버지 사진을 못 볼 듯이 살아왔다.  하지만 에스페란토가 인연이 되어서 이렇게 다시 ‘죽기 전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친구들…

올해 2020년은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창립 100주년이 되어서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한다고 작년부터 관계자 분들이 연락을 주셨었다. 6.25 전까지 에스페란토 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아버지, 내가 알고, 기억하고 있는 나의 아버지 ‘이정모’ 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나와 개인적으로 연락이 된 것은 나의 2011년 8월,  ‘회상’ 블로그 ‘아버지와 에스페란토’가 계기가 되었다. 그 블로그는 생전 한 번도 못 보았던 아버님의 그림자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의 사그라져가는 기억력과 싸우며 개인, 가족, 특히 아버지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지만 6.25 발발 후에 홀연히 납북이 되신 아버님은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가상적인 존재였다.

그러다가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들어오던,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그 당시 집에서 보았던 각종 자료 (주로 학회지)등과 어머님의 말씀 등을 시작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해서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을 찾을 수 있었다. 최소한 아버지의 이름이 이기 저기서 보인 것이다. 그곳에서 6.25때 납북 되신 분들의 이름들이 보였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을 나는 에스페란토 역사에 남기고 싶었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가 막막했는데, 하늘이 도와서 나의 블로그 가 인연이 되어서 연락이 되어 이렇게 아버님의 사진을 다시 ‘찾게’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사진에 앉아 계신 아버지, 그 당시는 서울 경기고등학교 영어 교사였을 것이다. 이 사진은 에스페란토 정사에도  있듯이 ‘8월에 KEI 제5회 강습회가 개최되었는데 약 30명이 참가하고 서병택, 석주명, 이정모가 지도하였다‘ 라는 구절의 바로 그 역사적 사진이었다. 1949년 8월이니까 일년 뒤에는 민족반역자 김일성 무리들에게 납북되실 운명을 짐작이나 했을 수가 있을까? 한 개인과 가족의 역사는 이렇게 산산이 조각이 났는데, 아직도 그 반역자 세습무리 들이 북녘에서 설쳐대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부조리의 극치’ 가 아닌가?

100주년 기념을 준비했던 관계자 분들, 역시 다른 ‘부조리’인 코로나바이러스로 실제적 기념대회는 무산이 되고 10월에 Online Conference로 대치하는 모양이다.  세계 전체가 불안하게 보이는 이 때에, 세계 평화를 갈망하던 에스페란토 창시자의 꿈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한가…

칠월로 향하는 길목에 서서..

오늘 우연히 나의 손이 간 곳에 Bishop Robert BarronTo Light a Fire on the Earth  책이 있었다. 한때는 하룻밤에 다 읽을 것 같았던 것이 몇 년이나 되었다. 내용이 Barron의 해박한 지식답지 않게 읽기에도 가볍고 쉬운데 그것은,  John Allen이란 유명한 Vatican 주재, 가톨릭 journalist가 Barron과 인터뷰를 하며 거의 쓴 것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 책을 읽으면 곧 바로 나는 Barron 주교의 ‘지성적, 영성적’ 깊이에 감탄을 연발한다. 어떻게 이런 ‘나보다 어린’ 사람이 이런 때, 세속화가 가속되는 때에 세상에 나왔을까?

나의 주관심사는 물론 그의 독특, 해박한 ‘깊은 지성에 바탕을 둔’  apologetics, 호교론 이다. 또한 어떻게 그렇게 어렵고 깊은 신학적 idea를 ‘호전적’인 무신론적 대중에게 전달하는 가 하는 것, 역시 주관심사다.  그가 Social Media를 종횡무진 오가며 일반대중과 ‘건설적인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이 주교님은 한 세기에 한번이나 나올까 하는 ‘가톨릭계의 거성’ 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이 ‘가볍게 보이는 책’을 다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입 속 ‘느낌의 천지개벽’, 하루도 못 가서 나의 혀는 그것을 익숙하다고 말을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모양새만 문제가 없다면 이렇게 살아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먹는 것,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실감이 가는 것일까? 우선 죽을 먹으니까 배고픈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 맛있는 것? 그런 것 나는 참을 수 있다. 우선 ‘통증’이 사라진 것에 나는 감사하고 감사한다.

어제, ‘치과 월요일’의 여파가 조금씩 지나가려 하고 있다. 머릿속에 이 이날에 일어날 일을 잠재적으로 알기에 조금은 stress로 느껴졌지만 예전에 비하면 ‘양반’이다. 물론 이빨을 뺀다는 사실이 나를 움츠리게 하지만 이것도 나의 생애에서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른다 . 이번에는 드디어 3개의 ‘흔들리고, 쑤시던’ 이를 뽑았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 진 듯 (빼는 과정)..  치과를 나올 때의 날라가는 즐거움, 누구에게 ‘발설’도 못하고 속으로 가벼운 심정을 토로한다. 집에 와서 Tylenol PM을 먹고 2시간 빠져들 듯 잤더니 또 다른 개운함과 편안함이 나를 반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시 새롭게 변한 ‘입안의 지도’로 나의 새로운 경험이 시작된다.  윗니가 없는 감각은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심한 변화는 아닌 듯 싶다. 물론 씹을 때는 다르겠지만 현재까지 100% 유동식을 넘기는 것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 ‘치통’이 거의 사라진 희열감을 또 다시 만끽하고 싶다. 며칠 내에 그것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겠지만.  이렇게 해서 나의 새로운 경험의 세월은 또 흐른다. 다음에 올 경험의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 제발 즐겁고 편한 것이 되기를…

 

이를 거의 모두 뽑은 첫날의 음식은 죽 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박기원 여사의 ‘이진섭 전기’인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 지라도: 이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이진섭’을  필사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속도가 붙었다. 옛날 20년 전쯤에 하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어제 읽은 듯 반갑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이진섭씨의 생각과 말을 내가 꽤 많이 ‘도용’했고 빌렸던 것도 재미있다. 65세 만세론 같은 것… 지금 내가 70세가 훌쩍 넘으니 이 ‘준재’ 님 아깝게도 나이 60에 일찍 가셨다는 생각이고, 이제부터 나는 누구를 ‘따르고, 모방’하며 살아야 할지 난감하다.

 

일주일 만에 순교자 성당 미사에 ‘참여’를 하였다. 오늘은 지난 주에 비해서 교우들 숫자가 확실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100명 한계에 도달했을까? 오늘 신부님의 강론은 예상을 벗어나 아주 훌륭한 것이었다. 지난 주에 조금 실망을 해서 아예 녹음을 하지 않더라니… 하지만 나중에 다시 녹화된 것을 보면서 녹음을 하였다. 중요한 복음중심의 메시지를 비교적 간단한 주제로 깊이, 하지만 쉽게 전달하는 스타일이 바로 이 신부님의 독특한 것이다. 신학적 깊이를 드러나지 않게 일상적 예를 들어 쉽게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 미사 끝에 구역장 임기를 마친 것에 대한 상패 수여가 있었다.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조금은 착잡하고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벌써 2년이 흘렀구나… 나는 도중하차 했지만 하늘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을 한다. 하나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신부님이 7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한국엘 간다고 (예수회 일로), 임시로 사목할 신부님이 이미 오셨다고 했다. 이래저래 우리의 성사,  레지오, 교회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불투명하게 되었다. 오늘 말씀이, 7월 중에도 성당 단체들의 활동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단체들은 ZOOM video 를 통해서 모임을 하라고 한다… 우리 레지오는 이런 가상적 모임은 상상할 수가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난감하다…

 

은비령, 드디어 ‘탈고’를 하고 ‘출판’을 했다. 아주 빨리 끝낸 듯 느끼고 있었지만 사실은 거의 2주 만에 끝난 것이었다. 하기야 그 동안 이것에 매일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느니 2주면 빠른 것이다.

이 소설의 느낌에서 내가 공감, 동감, 빠져드는 것들이 꽤 있었다. 산, 눈, 우주, 여자… 등등… 하지만 끝 부분에 나는 큰 사고를 겪었다. 이 작자의 1992년 소설 ‘압구정동..’ 어쩌구 가 있어서 잠시 훑어보다가 그만 shock를 받고 다시 서가로 쫓아 보냈다. 어쩌면 그렇게 ‘음란성 묘사’를 잘 해 놓았는지… 한마디로 은비령의 인상이 거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으로, 잊기로 했다. 이 작자가 그런 묘사를 했다는 것은 분명히 porno 음란성 매체에 가까이 했거나 심취 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것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잊자, 그저 잊고, 은비령의 ‘정수 精髓’ 만 나의 것으로 남기자.

 

요사이 무척 많은 ‘續, new’ 역사스페셜 video를 download하였다. 유인촌의 classic series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 후의 것은 적응하려면 시간이 조금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현재 까지 HD series ‘고두심’  진행은 별로인 느낌이다. 사회자, 진행자로서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역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실망이었고,  전원일기의 고두심이란 원래의 인상이 흐려지는 느낌으로 남게 되었다. 그 다음 것은 더 보아야 하겠지만, 역시 유인촌 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KBS 역사 스페셜  ‘삼국사기의 역사논쟁‘  video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삼국사기 책을 모두 해체하는  장면을 보고, 나도 나의 ‘古書’ 만화책: 내가 1962년에 그린 만화, ‘민족의 비극을 그렇게 해 보는 것… 그러니까 ‘해체’ 해서 scan하고 복원하는 것…. 이것도 시간이 났을 때 하는 것,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