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푸르고나~

¶  어린이날 유감   달려라, 냇물아~ 오월은 푸르고나~ 반세기전 어린이날이면 목청이 터져라 신나게 부르던 어린이날 노래, 참으로 (19)50년대의 어린이날은 신바람 나던 하루였다. 실제로 그날 집안에서도 학교에서도 ‘물질적인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님께 마음 속으로 감사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이날이란 것도 역시 ‘표절’ 이었다. 일본 아해들 것을 그대로 날짜도 똑같이… . 서슬이 푸르게 벤또, 구루마, 도라무 깡 같은 일본 말을 금시 시키고, 화강암 중앙청(일제 강점 때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면서, 어떻게 날짜도 똑같은 일본의 어린이날은 그대로 두었을까? 혹시 아니면 방정환 선생의 5월 5일 어린이날을 우리가 먼저 만들고, 일본 아해들이 나중에 표절을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동양에서 제일먼저 개화를 한 그들이 먼저 만들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일년에 하루를 ‘어린이 전용’의 날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을지.

 

¶  푸르고, 따뜻한 어머님 같은 5월 인가, 온통 포근한 어머님의 손끝과 숨결을 느끼고 싶은 그런 달이 바로 5월이다. 날씨 또한 가족과 가정이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기에 어울리는 화창하고, 포근하고, 때로는 비에 젖는 잔잔함과 외로움까지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준다.

가톨릭의 삶을 다시 살게 되면서 5월은 또한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마리아)의 달, 그러니까 ‘성모성월’ 임을 느낀다. 또한 나의 그립고 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일도 5월이어서 불효자로서 감정적으로 거의 주체하기 힘들 때도 있다. 나는 ‘가장’ 아버지의 기억이 전혀 없고 (6.25때 납북) 따라서 어머니란 존재는 나의 생명, 가족의 생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쟁 후의 험난한 세상에서 만약에 어머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친척이 거의 없었던 우리 집 남매는 하루아침에 길거리의 고아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육이오 전쟁 후에 가장, 아버지를 잃은 집이 부지기수로 많았고, 그래서 아버지가 있던 집은 우선 행복한 가정이었다지만 그에 못지않게 절대다수 홀 어머니들의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은 지금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한, 전설적이고 초인적인 것이었다. 최소한 우리 세대는 ‘절대로’ 그 고귀한 사랑, 헌신, 희생의 역사를 잊지 못하고 또한 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조금 접으면 갑자기 싸늘한 현세의 현실로 돌아온다. 요새의 부모님들, 특히 ‘엄마’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또한 그들의 자식들은 어떤 인간들인가.. 부모들은 자식들을 예전처럼 별로 보살피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식들 역시 부모 세대를 우습게 보는 것이 거의 전염병같이 cool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도대체 요새의 이상적인 부모와 자식의 모습은 무엇인가? 돈 많은 부모, 돈 잘 버는 자식인가?

 

 
1950년대 ‘국민학교’시절의 동요, 어머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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