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결국은 끝이 났다. 지난 일요일은 ‘아마도’ 대한민국 전례력에 의하면 평신도 주일이었던 모양이다. 분명히 이곳 나의 교민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은 아틀란타 대교구 소속이라서 머나먼 대한민국의 전례력에 좌지우지 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그런 것들은 흑백을 가리듯 분명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한마디로 grey area인 것이다. 따라서 이곳 순교자 성당도 그때 그때 ‘편리한 전례’의 관습을 따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은 대한민국 식으로 ‘완전한’ 평신도 주일의 전례를 따랐고, 신부님의 강론도 평신도가 대신 맡아서 하게 된 것이다. 나의 추측이지만 이것은 아마도 작년부터 실시가 된 듯한데, 작년 6월에 부임하신 서강대 예수회 소속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께서 지시하신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작년의 평신도 주일에도 평신도였던 서재욱 사목회장이 강론을 했던 것을 video를 보고 알았다.

1960년대에 있었던 바티칸 2차 공의회 (Vatican II) 이후 평신도의 역할은 그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이상으로 눈부시고 확장되어가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지독하게 보수적인 천주교회가 민주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정도일 것이다. 이것은 고도의 ‘정치적’ 기술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갈릴레오를 처단했던 커다란 오류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완전한 방종적 자유’를 갈구하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요구에 쉽게 부응하는 그것일 것이다. ‘완전한 평등’의 환상아래 너무도 많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들을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자행하고 있는 사실은 어떤가?

하지만 바티칸 2차 공의회의 덕분에 교회 내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눈부시게 향상한 것은 사실이고 이제는 여성들이 없으면 몇 시간도 교회가 움직일 수 없게 된 듯하게 되었다. 그런 시대의 흐름 때문일까.. 올해 평신도 주일의 신부님 대신하는 강론이 연숙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런 것들은 ‘나서기 좋아하는 남자’들 몫일 텐데 겨우 레지오 꾸리아의 부단장 정도의 명함으로 선택이 된 것을 보니 역시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들 앞에 서본 경험이 ‘소싯적’에 그렇게 많았던 연숙도 이번에 이런 ‘요청’을 받고는 완전히 긴장을 했던 것 같았다. 강론 대에 서서 신부님 강론 대신 한다는 것은 조금 stressful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을 했지만 하태수 신부님도 만만치 않았던지, 굴복하고 말았고 그것을 지난 일요일에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옆에서 보는 입장이었지만 수수방관할 입장만은 아니었던 것이, 그 강론의 주제가 바로 나였던 까닭이었다. 그저 ‘돌아온 탕자’ 에 비유하면 딱 맞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나’ 였다. 나의 ‘과거’가 적나라 하게 들어나게 되는 것에 거부감을 처음에 느끼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 줄 수도 있는 잠재력을 생각하고 가만히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평신도 강론은 반응도 좋았고, 본인도 앓던 이를 뺀 것 같은 들뜬 기분으로 다음날을 보내게 되었으니, 이것으로 하태수 신부님이 밀어부친 평신도 주일의 성과를 느끼게도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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