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  Catechist, catechesis, catechistic, catechistical, catechistically, catechize, catechumen, catechetic, catechetical hew..

 가톨릭 교회의 매력 중에는 아주 풍부한 alphabet soup 같은 각종 용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이 alphabet soup은 라틴어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라틴어를 조금 이해하거나 좋아하면 이것도 매력 중에 하나다. 다만 조금 다른 종교보다 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문제일 수는 있다. 이 라틴어는 영어권에서 보면 동양권에서 한자를 쓰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 용어나 단어들은 조금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 긴 역사를 자랑하는 그득한 내용이 담긴 단어들이라 그 옛날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할 때, WORD POWER를 공부하던 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영어의 어원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들이 그 책에 그득했고 그것으로 단어를 배운 것이 ‘영원히’ 나의 머리에 남았고, 모르는 영어 단어를 보면 곧 바로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천주교 ‘영어’를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모조리 라틴어였다. 그것들이 이곳의 성당에서 영어처럼 쓰이는 것이다.

오늘은 Catechetical Sunday였다. 이 단어도 처음에 정말 괴상하게 느껴졌다. 발음도 그렇지만, 그것과 비슷한, 파생어는 수 없이 많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의미 ‘영세예비자 교리공부’ 에 대한 단어들이란 것만 알면 끝난다. 교리공부라고 했지만 이것은 ‘교실에서 말로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매년 이 ‘교리반 주일’이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이 지났는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우리가 한국본당에서 교리반 봉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본당은 거의 ‘봉사자’들이 교리반을 나누어 가르치는데 한국본당은 올해부터는 수녀님이 가르치신다. 그러니까 올해의 영세예비자들은 ‘행운아’들인 것이다. 열명 안팎의 알맞은 인원이라서 토론하기도 좋고, 모두들 진지한 태도와 열의를 보인다. 이들이 내년 부활절에는 ‘모두’ 영세식을 통해 하느님의 새 자녀들이 되기만 손꼽아 기다려 본다.

 

¶  아.. 인천..1950

오늘은 9월 15일 일요일, 하지만 1950년 9월 15일 금요일은 그 유명한 육이오 동란 (일명 한국전쟁)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유엔군 총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Gen. Douglas MacArthur] 장군의 걸작품인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그때는 63년 전.. 내가 2살 8개월 되던 때였다.

그 당시 우리식구는 아버지가 납북이 되시고 어머니가 누나와 나, 남매를 데리고 비원 옆 원서동에서 숨을 죽이고 사셨다. 물론 나는 전혀 기억할 수 없는 나이였지만 2년 정도 뒤부터는 그 원서동의 분위기를 또렷이 기억한다. 인천..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박경원씨의 구수하고도 경쾌한 노래를 들으면 인천의 냄새가 그대로 나는 듯하다. 서울 재동학교 5학년 때, 그러니까 1958년에는 5학년 전체가 인천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도 했다. 인천 부두와 월미도가 내려다 보이는 만국공원, 그곳에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장군의 동상 아래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1950년대의 인천은 참으로 멀었다. ‘증기, 화통’ 기차를 타고 ‘반나절’을 갔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인천을 번개와 같이 점령한 유엔군(사실은 미군과 국군)은 예상을 뒤엎고 서울을 탈환하는데 무려 2주가 결렸다. 그렇게 멀었을까? 빨갱이들이 6.25 발발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지나치게 서울에서 꾸물대다가 ‘부산 해방’을 놓쳤다는 해석이 있는데, 이것과 맞먹는 유엔군의 실수는 그렇게 느린 서울 탈환이 아니었을까? 서울탈환, 그러니까 구이팔, 9.28 수복이 되던 때까지 낙동강 전선에서 독 안의 쥐가 된 빨갱이들은 여유 있게 ‘양민학살과 38선 이북으로 도주’를 했을 것이다.

순전히 결과론이지만 맥아더 장군의 ‘오만과 아집’이 조금 덜 했더라면, 남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었더라면, 중공군의 개입을 미리 알아차리고 대비했을 것이고 흥남철수1.4 후퇴 같은 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 후에도 미국이 조금 더 ‘모험’을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만주를 폭격하거나 원자탄으로 위협을 하는 맥아더의 구상이 그렇게 무모했을까?

그때 통일이 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고 한민족 만고의 1급 역적, 원흉 김일성 일당을 처단 못한 그것이 이후 한반도, 한민족 비극의 씨앗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는가? 악의 씨는 그대로 남아 민족반역자 3대, 그 중에 마지막 인간은 새끼돼지 같은 젖먹이, 현대 역사 박물관 전시물 제1호가 될 만한 ‘북조선 김씨 왕조‘를 유지하며 장난감 핵무기로 장난을 하고 있으니..

 

 inchon-1
인천으로 상륙하는 미국 해병대, 1950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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