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 sarà moment..

¶  Che sarà 케 사라~ 케 사라~ 케 사라~아~.. 이 친근한 Italian melody를 오늘 43년 만에 다시 듣게 되었다. 그야말로 Che sarà moment를 예기치 않게 맞이한 것이다. 43년 만에.. 43년 만에..

 오래 살다 보니 ‘우연’이란 것을 심심치 않게 맞이하긴 하지만 오늘의 이 케사라 moment는 그야말로 우연이 되었다. 이 Che sarà는 1971년에 이탈리아 Sanremo 음악제에서 2위를 한 곡으로 아마도 미국만 제외하고 전세계에서도 2위의 영광을 누린 곡일 듯 하다. 왜냐하면 그 이후 미국에서 이 곡을 ‘한번도’ 들을 기회가 없이 그대로 잊혀지고 말았으니까..

 

Ricchi e PoveriChe Sarà – Sanremo 1971

하지만 1971년도에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알려진 이 곡은 그 melody의 특성상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런 것으로 두고두고 귓전에서 맴돌았던 것인데.. 40년이 지나가는 긴 인생의 여파로 그것도 많이 희석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몇 구절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니까.. 특히 amore mio.. 부분이 그러하다.

오늘 이 곡을 찾게 된 계기는 며칠 전에 연숙이 성당에서 ‘구입’한 류해욱 요셉 신부님의 신작 묵상 수필집 ‘영혼의 샘터’에 있었다. 받아 쓰기에 너무나 편한 신부님의 글이라 또 무료함을 달랠 겸 typing away를 즐기다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은 그렇게 되리니’ 라는 소제목의 글을 읽다가 1950년대의 미국 pop song  ‘Que sera sera’에서 신부님의 묵상주제가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케 세라 세라.. 어렸을 적 1950년대에 많이 듣던 Doris Day의 hit였고 신부님 말씀대로 모두들 ‘될 대로 되라’로 잘못 번역된 뜻으로 해석하고 살았다. 하지만 진정한 케세라 세라는 그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되어질 것은 그렇게 될 것’ 이라는 거의 묵상재료에 가까운 뜻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가 아니고 “우리 삶 안에서 때로 원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면 그것을 자기 인생에서 하느님의 계획표 안에 들어있던 그분의 뜻임을 알고 받아들이라는 의미” 로 해석을 하자는 류 신부님의 묵상은 참으로 좋았다. 동양사상으로 아마도 ‘순리’의 지혜가 아닐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는 것도 지혜라는 것.. 어떨 때는 그것이 그렇게도 힘들었음을 오랜 ‘힘든’ 인생의 삶에서 알고 있지만..

 

 José FelicianoChe SaràSanremo 1971

 

 문제는 신부님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Doris Day의 케세라 세라와 이태리 1971년 산레모 음악제 2위의 곡인 Che sarà (What will be) 케 사라.. 를 완전히 혼동, 그야말로 짬뽕을 해 버린 것이다. 나는 류 신부님을 탓할 수 없는 것이 이분의 나이가 나보다 적어도 10살은 밑일 듯하니까.. 1971년이면 아마도 중학생 정도였을 것이고 이런 노래들은 책을 통해서나 들었을 듯하니 어찌 그렇게 정확하게 알 수가 있으랴.. 하지만 Google과 Wikipedia의 세상에서 사실적인 것은 예전보다 비교적 값싸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신부님의 혼동의 덕택으로 나는 이 추억의 명곡을 기억할 수 있었고 하루 종일 1971년경 나와 우리 가족의 모습들을 회상할 수 있었다.

 1971년을 대한민국에서 살았으면 아마도 매년 열리는 이 이태리 산레모 음악제를 기억할 것이고 참 주옥 같은 명곡들도 많았다. ‘문제’의 이 Che sarà 케 사라 는 당시 두 팀이 같은 곡을 경연하였는데 그 중에 한 팀은 vocal solo였던 ‘미국 (사실은 Puerto Rico, 미국령)’에서 외국가수 자격으로 출전했던 Jose Feliciano(호세 휄리치아노)였고1 이 같은 곡을 부른 다른 팀은 이탈리아 출신 혼성 vocal group 인 Ricchi e Poveri(Rich & Poor) ‘리키이포베리’ 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큰 hit를 한 것은 혼성 팀 리키이포베리 팀이었고 나의 귓전에 아직도 생생한 melody도 이것이었다. 거의 같이 Jose Feliciano의 jazzy한 rendition도 큰 hit를 했지만 우리나라의 당시 정서로는 역시 열창가곡 스타일인 리키이포베리 팀이 더 사랑을 받았다. 오늘 이런 연유로 나는 1971년 당시 이 노래를 들을 당시를 회상하며 오랜만에 축 가라앉는 날씨와 더불어 그야말로 nostalgic & sentimental의 극치를 맛 보았다. 가라앉는 기분이지만 사실은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José FelicianoChe Sarà – Italian TV show

 

Ricchi e PoveriChe Sarà – Italian TV show

 

¶  오늘은 또 다른 의미의  Che sarà moment도 있었다. 오늘 이른 아침 정들었던 교우 전요셉 형제가 고국으로 향하는 귀국 비행기에 부인과 함께 피곤한 몸을 실었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조금은 가슴 아픈 경험이라고 할까.. 이별도 그렇지만 귀국을 하는 전 형제의 뒷모습이 더욱 추운 날씨와 겹쳐서 나를 춥게 만들었다. 소위 말하는 ‘금의환향’ 까지는 아니어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으면 하는 바람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년 여름이었나.. 정말 우연히 돼지띠 동갑 교우 형제님을 알게 되었고 그가 바로 전요셉 형제였다.

이미 몇 년 전에 레지오 단원으로 우리들은 이 형제님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를 한 적이 있었고 기적과도 같이 이 형제님은 전통적으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암’에서 회생을 하였다. 우리들은 물론 ‘묵주기도’의 힘을 더 믿게 된 계기도 되었다. 사실 그것이 전부였고 다른 자리에서 인사를 따로 할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돼지띠 동갑임을 서로 알게 되고 순간적으로 우리는 ‘형제’처럼 느끼게 되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very simple한 영혼이었고 우리는 그런 사실에 사실 모두 impress되었다. 작년 이맘때부터 시작된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의 program에서 이 형제님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우리는 신나는 ‘난타’ team에서 열심히 북을 쳐 댔다. 오랜 미국 생활에서 터득한 지혜 중에는 ‘한 사람에게 너무..’ 라는 것이 나에게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은 예외적으로 느껴졌고, 정말 정말 오랜만에 고향의 친구, 형제를 만난 기분으로 그 동안 조금은 거리감이 있었던 순교자성당에 더 가까움도 느끼게 되었다.

미국 생활이 10년이 넘는다고 했지만 나이 탓인지 ‘고국 냄새’가 확연히 났지만 그 냄새들이 다 ‘좋은 쪽’의 것이어서 이 형제님을 통해서 수십 년 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의 흔적과 풍습’을 배울 수도 있겠다는 나만의 희망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나에게 돼지띠 동갑은 사치였는지.. 10여 년의 미국생활을 청산하는 결심을 한 형제님의 ‘귀국선언’은 을씨년스럽게 변하는 날씨 못지않게 우리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10여 년 동안 이 형제님은 참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결과적으로 무리가.. 순리가 아니었는지.. 하느님의 뜻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것도 역시 ‘케 사라’ 인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흐름을 따르면.. 아직은 그럴 여유를 못 찾는다. 우선은 섭섭하고 쓸쓸한 늦 가을의 황량함만 느껴질 뿐이다. 형제님, 그 동안 돼지띠 동갑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더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한 아쉬움 오래 오래 남을 듯 합니다. 인연이 되며 어디선가 또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바랍니다.

  1. 류해욱 신부님, 사실적인 것이 틀리면 고치는 것이 좋을 듯하고.. 호세 는 Hose가 아니고 Jose일 듯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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