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전 요셉, 황 프란치스코 형제님들.. 모두 듣기만 해도 가슴이 편안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름들이 되었다. 특히, 전 요셉 형제님의 이름은 요새같이 추운 날씨에는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전 요셉 형제님, 나와 같은 돼지띠 동갑으로 친구, 형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분명히 나보다 생일이 위였으니까, 형 뻘이 되겠지만 그런 것 서로 따지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가깝게 알고 지낸 것이 불과 1~2년도 채 되지를 않았다. 채 깊이 알게 되기도 전에 전 요셉 형제님은 ‘갑자기’ 조상의 땅,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을 해 버렸다.

그때 느낀 기습적인 쌀쌀한 가을바람과 같은 공허감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것이 벌써 1개월 도 지났나? 귀국 후 잠깐 온 소식에 시차 적응으로 매일 잠만 잔다고 하더니 드디어 카톡(카카오톡)으로 잇달아 소식이 날아왔다. 계속 시차 적응 중이고 눈이 내린 고국의 모습이 멋있다며 사진도 보내왔다. 온양으로 간다고 했으니 아마도 온양 교외의 어느 곳인가 짐작을 한다. 처음에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땅’을 보러 갔다가 찍은 곳이 아닌가 했던 나의 상상이 너무나 우습기만 했다.

전요셉, 황프란치스코

전요셉, 황프란치스코

그리고 며칠 전에는 드디어 ‘사람의 사진’이 왔다. 전요셉 형제님의 모습이 ‘대한민국화’가 되었는지.. 완전히 ‘때 빼고 광 낸’ 모습이어서 놀라고 반갑기도 했다. 역시 평생을 살아온 고향 물이 좋긴 좋은 모양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탁한 공기를 걱정하며 귀국을 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  그런데 이 사진을 누구와 같이 찍었는데.. 처음에는, 귀국하면 꼭 보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 그분을 만나서 같이 찍은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곧 이어서 사연인즉.. 그 분은 나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우리부부는 반가웠다. 황 형제..

우리 부부가 봉사자로 수녀님을 보조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교리 반에 2014년 부활절 영세를 목표로 가족 4명, 전원이 등록했던  황 형제였던 것이다. 그 사진은 황 형제가 대전 노은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전 형제와 같이 찍은 것이라고 했다. 영세명은 교황님과 같은 프란치스코.. 너무나 반가웠다. 황 형제님 부부 가족은 작년 가을 교리반에 등록 후에 사정이 생겨서 교리반 공부 도중에 올해 초에 ‘영구’ 귀국을 했는데.. 아마도 귀국 후에 교리공부를 계속해서 부부가 같이 영세를 받은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모두 영구 귀국을 했고 이렇게 다시 재회를 하며 찍은 사진.. 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4년여 전 레지오 활동단원을 갓 시작하며 나에게는 생소한 ‘병자기도’ 란  것이 있었고 그 대상 중에 레지오 단원이며 중병환자였던 전요셉 형제가 있었다. 멋도 모르고 나는 열심히 기도를 했다. 생전 처음 ‘남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속으로는 회의도 많이 있었지만 ‘성모님의 군단’의 규율을 따라 어린아이처럼 열심히 열심히.. 1~2년 후에 우리는 기적과도 같은 소식에 놀라기만 했다. 그 ‘중병’이 ‘완치’가 된 것이다. 본인도 놀라고 레지오 단원들도 놀라기만 했다. 겨우 신앙을 찾아가고 있었던 레지오 햇병아리였던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 커다란 ‘살아있는’ 신앙공부가 됐다. 그 이후 전 형제는 가끔 보는 정도였지만 만나면 최소한 얼굴을 익힌 정도가 되고 건강에 대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 우연히 인사를 하다가 나와 돼지띠 동갑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 near-perfect chemistry가 있음도 느끼게 되었다. 서로 가끔 식사를 같이 하며 서서히 조금씩 상대방을 알게 되어갔지만, 역시 나이 들어서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됨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이곳에 오래 산 이유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전요셉씨는 내가 오랜 전에 알았던 ‘그 옛날’ 기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는 너무나 그립고 신선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우리는 무언가 너무나 다른 인생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가깝게 하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너무나 서로 다른 개인 역사가 너무나 흥미롭지 않을까? 작년 말에는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를 준비하며 난타와 중창에서 가깝게 어울리기도 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고, 봉성체, 교구 성체대회 같은 곳에도 같이 참가를 하는 등 오랜 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느낌도 들었다. 전 형제님은 어르신들과 참 잘도 어울렸는데, 그때 받는 느낌은 한마디로 ‘사람이 좋다’라는 그런 것이었다. 순진하기도 하고, 우직하기도 한 세상을 약삭빠르게 사는 스타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 성품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는지 결국은 귀향을 결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한마디로 조금은 더 쓸쓸한 기분을 남기고 사라진 돼지띠 사나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우선 섭섭함을 달래는 수 밖에 없나.. 전 형, 그곳에서 하시는 일 순조로이 풀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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