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달력을 멍하니 보니 오늘은  6월 30일이다. 그러니까 2018년 6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6월의 나날을 생각하니 무언가 머리가  정리되지 못한 혼란스러움이 떠나질 않는다. Father’s Day가 있는 예년의 6월 추억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작년에는 온 가족이 gourmet hamburger 외식을 했던 기억도 있었다. 올해의 6월 달, 그것도 Father’s Day 전후는 아마도 최악이 아니었을까.. 올해의 이날은 나나 가족들이 거의 잊고 지나간 정도로 정신이 빠진 듯한 그런 것이었다. 물론 큰 이유는 가족같이 14년 가까이 우리와 살아온  Tobey가 거의 갑자기 우리를 영원히 떠났기 때문이다.   6월 달,  그것도 Father’s Day 후 며칠은 정말 잊고 싶기만 하다. 

이런 황량한 6월의 느낌은 오래 오래 나의 머리 속에 남아서 나를 우울하게 할 것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순간순간의 보람과 기쁨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것이 삶의 본질, 기본이 아닐까? 슬픔이 있으면 기쁨도 반드시 찾을 수 있는 것..

드디어 임명장을 받았다. 그것도 성당 미사 중에 받은 것, 형식적인 것이라도 나는 이제 신부님이 임명하는 20명 내외의 마리에타 사랑구역의 구역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도망 다니며 살아오더니 칠순의 나이에  많은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는 이 직무, 어떤 것일까? 그래.. 한번 해 보자.. 못할 것 하나도 없다.

비록 Father’s Day는 망쳤지만 의외로 6월 달 등대회 모임(60~70대 성당 친목회)은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잔잔한 기쁨도 있었다. 새로 사귄 교동학교 동갑내기가 회장으로 뽑혔는데 알고 보니 이곳에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자매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란 그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작은 보람이 있었다면 복잡한 머리를 싸매며 목요회 모임이 우리 집에서 모인 것이다. 전에 약속을 했었던 것이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매달 식당에서 모이던 것을 집에서 모이는 것은 사실 큰 변화를 주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별다른 ‘사고’없이 모임을 마쳤다. 내가 스파케티를 해 준다고 했지만 결국은 연숙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다. 나의 서재에서 편하게 wine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 것,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의 의도는 그들의 집에도 돌아가며 가보는 것인데…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그들의 얼굴을 읽는다. 시간이 걸리면 이것도 다 해결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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