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계절

이제는 거의 만성적인 느낌이 되었는가, 새벽 특히 싸늘한 새벽에 꿈에서 벗어나면 거의 자동적으로 ‘느낄 듯 말 듯한 슬픔’을 느낀다. 거의 예외가 없이… 하지만 전 날 ‘쪼잔한 것, 잡동사니 stuffs 들 [예를 들면 repair tool work] 과 씨름을 했으면 이런 증상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무나 머리 속이 한가하면 이런 ‘야릇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이다. 처방책은 그러니까 비교적 간단한가, 머리 속을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닌 [생명이 없는] stuff들에 관한 것들로 채우면 되지 않을까…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나의 심리분석인지 나도 모른다, 그런 사실 조차 나를 슬프게 하는지도… 깊고 깊은 한 겨울의 curse인가…

일어나서 바깥을 보니, 내가 목타게 기다리고 싶은 ‘눈 雪’이 아니고 그것과 비슷한 ‘서리 霜’가 하얗게 보인다.  서리의 바로 위로 뽀얗게 오르는 하얀 입김 같은 것, 솔직히 이 모습이 더 나를 춥게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눈보다 서리가 더 몸을 움츠리게 한다는 사실…

왜 나는 올 겨울 이렇게도 추위를 타는 것일까? 우리 집의 heating system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insulation이 부족한가.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근래에 변한 것들이 아니어서 결국 내가 육체적으로 변했다는 결론인가. 이 설명이 제일 큰 설득력이 있다. 나이다, 나이…  이것은 기본적인 지식에 속하는 것이어서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 옷을 더 끼어 입으면 되고, 몸을 조금 더 움직이고 운동까지 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이런 ‘덤의 일’들이 귀찮다는 것, 싫은 것이다.  이곳의 친지 Y형이 요즈음 아예 ‘내복’을 입고 산다고 해서,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 ‘내복’이란 것, 어렸을 적 온돌방에서 살던 시절에 입던 것 아닌가?  당시의 온돌방, 겨울에는 방안까지 영하로 떨어져서 어항의 물위가 완전히 얼었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래서 그 당시는  겨울이 시작되어 그것을 입기 시작해서 봄이 될 때까지 거의 벗지 않고 살았던 재미있는 추억이 떠오른다. 그렇구나, 그것을 입으면 완전히 해결이 되는데, 문제는 그것을 쉽게 살 수가 없으니…

올해 장기 일기예보에서 이 지역에 ‘험한 날씨’를 예측했었다. 겨울에 험한 날씨란 분명히 얼어 붙는 눈, 진눈깨비 등이었을 것이고, 일월 말 정도가 제일 chance가 높은 때인데, 아직도 날씨는 얌전하기만 하다. 정히 나갈 일도 많지 않아서 상상으로 2014년 때의 snowmageddon, snow jam 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포근하고 얌전한 눈이 내리면 얼마나 멋질까…  백일몽을 꾸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날씨로 수입이 좌우되는 business에 촉각을 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 이기적인 어린 아이와도 비슷하니… 언제나 철이 들 것인가?

오늘은 연숙이 모처럼 혼자서 외출을 했다. 몸도 몰라보게 정상으로 보이니 전처럼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한때 ‘쓰러질 듯 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현 이대동창회장(성당교우 K자매)이 역대 회장님들을 대접한다고 모이는 것이라고 했고, 갔다 돌아 오더 만족스런 모습이었다. 연숙의 이대 동창들과는 나도 꽤 오래 전에는 가깝게 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정말 정말 까마득한 옛날 얘기로 회상이 되니… 아~ 세월이여, 나이여~~ 오늘 오랜만에 보게 된 동창들을 보고 와서 화제는 역시 나이와 건강에 대한 것들, 참 올 새해 들어서는 왜 이렇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지…

모레 아침부터 집을 5일간이나 떠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속으로나마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이런 때에 세월, 나이, 연륜의 도움을 받고 싶다. 분명히 예전과는 다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여행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얼마나 내가 심리적으로 감당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이것도 걱정은 안 하련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과달루페 성모님을 뵈러 가는 것이니까, 응석으로라도 어머님이 우리를 각별히 보호해주시지 않으실까?

 

올해는 유별나게 holiday music, 특히 carol류를 일찍부터 자주 듣게 되었는데 우연히 머리 속의 깊은 곳에서 불현듯 떠오른 기억의 도움으로, 오늘은 1964년 성탄절 [이브]를 회상하는 날이 되었다. 바로 이 모습, 그 당시 ‘잘나가던’  Pat Boone 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긴. 그의 Christmas album ‘White Christmas’ LP jacket… 그 시절 집에서 보고 듣던 바로 ‘판’이었다. 그 당시에 가지고 듣던 각종 LP record들은 물론 ‘해적판’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해적판이라도 없었으면  가끔 radio에나 매달려야 하는, 아마도 정말 심심한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 LP는 성탄시즌이 되어야 꺼내어 듣곤 했지만, 이후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오늘 그 모습과 음성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당시의 독특했던 유행인가,  고등학생의 감성적 나이인가, 아직도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불현듯 떠오른 Pat Boone의 감미로운 White Christmas 와 그의 젊디 젊고 깨끗한 모습의 도움으로 이 특별한 LP를 찾아보니… 역시,  특별히 할일 없는 우리 세대들이 이미 이 album의 전체를 YouTube에 album jacket과 함께 upload를 해두어서 오늘 거의 60년 만에 다시 보고 듣는 감격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의 기억력은 분명히 조금 희미해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나온다. 특히 track의 첫 곡이었던  White Christmas와 comic한  Jingle Bells, 교회 합창을 연상케 하는 O Holy Night 등등, 거의 당시의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 나온다.

1964년 성탄이브 때 크리스천도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도움1으로 통금이 해제가 된 덕분에 친구 몇 명 (아마도 안명성, 김동만이 포함된)과 이 carol을 마음껏 즐기며 남영동 금성극장 앞에 있던 집 근처를 배회했던 기억이 아물거린다. 그날 밤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명동거리가 사람들로 혼잡했었다2. 그런 현상은 아마도 그 당시에 아주 드문 것이었다. 통행금지가 없다는 그 사실이 ‘성탄절’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것은 그 당시 일본 도쿄도 같은 혼잡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은 통행금지가 없었기에 우리와는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자국의 종교와는 다른 서구의 유행, 그저 유행가 처럼 그날 성탄이브를 지냈을 것이다.

대림 2주가 벌써 금요일로? BiocentrismIdealism [심지어 Emmanuel Kant까지] 은 분명히 ‘시간[과 공간]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지난 달부터 이번 달로의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상상, 허구라고 할 수가 있는가? 12월도 1/3이 지나가려고 한다. 조금 조바심도 나고 초조함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럴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이것은 분명히 나의 상상에 불과하니, 경우야 조금은 얼굴을 펴고 살자, 건주의 말대로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Guadalupe St. Juan Diego,  아침미사엘 가서야 오늘이 과달루페 성모님 visionary  성 Juan Diego의 축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점점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관심이 가는 것을 실감한다.  내년 1월 말이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의 단체 과달루페 순례가 있을 것이고 우리의 눈으로 성모님의 발현 당시의 모습들을 볼 것을 생각하니 미리부터 조금은 긴장이 되기도 한다.

Distancing from Swedenborg! 결정을 했다.  역사적인 과학자, 저자, 신비가 로써의 Emanuel Swedenborg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떨치고 싶지 않지만, 역시 이것도 나의 가톨릭 신앙적인 면에서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진전이 되면 그만큼 포기하기도 힘들기에 오늘로서 이것에 대한 관심을 접기로 했다. 모든 online link들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이 단절 과정을 시작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마지막 관건은 역시 ‘성모님’에 관한 것임은 크게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성모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나의 ‘선지자’ 가 될 수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가급적 그를 제외한 다른 ‘철학/과학’적인 석학들의 책들에 전념을 할 것이다.

 

오늘 점심은 모처럼 ‘동네방네’ style의 ‘밥과 반찬’의 한식으로 먹게 되었다. 갑자기 몸이 산뜻한지 점심 메뉴에 신경을 쓴 연숙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식류’를 사진으로 다시 보니 우리가 근래에 얼마나 전통한식에서 멀어진 식생활을 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영양학적으로도 더 좋은 것이 없다는 두부찌개와 총각김치를 더 자주 먹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되었다.

거의 가을 장마의 모습으로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날이었다. 나의 신경은 온통 Ozzie의 산책 가능성으로 쏠렸지만 다행히 비가 수그러든  시간들이 있어서 backyard로 나가는 것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동네 전체를 산책 할  정도로 비는 멈추지를 않았다.

 

  1. 그 당시 왜 성탄절에 통행금지가 일시적으로 해제되었는지 궁금하다.
  2. 당시 명동은 지금의 이태원이었나, 하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아~ 멋지다, 멋지다~~  해가 거의 질 무렵에 설치한 집 앞의 Christmas bush lighting의 모습이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 보니 이런 감탄사가 나온다. 자질구레한 ‘오점, 흠’들이 거의 사라진 배경에 은은히 빛나는 ‘성탄의 빛’, 이것이 올해 우리의 대림절 4주간의 시작인가~

일주일 두 번 근육운동의 후유증인가, 솔직히 그것으로 포기할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고통과 짜릿한 희열이 교차하는 것, 이것이 운동 이후에도 계속이 되는 모양, 그것에 낮잠까지 뒤따른다면 거의 완벽한 휴식의 시작이다. 간혹 꿈까지 곁들이면 아~ 그것은 my blue heaven~~ 

이런 낮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일단 시작한 것, 집의 정면 bush lighting,  일년 만에 먼지를 털고 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들…   오늘 근육운동이 조금 무리가 되었는지, 점심 이후에는 그저 눕고만 싶었고, 결국은 낮잠을 자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 하려고 했던 일, 성탄장식, tree & lighting 을 조금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렇게 일찍 holiday decoration lighting을 하는 것은 근래에 드문 case가 아닐까…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은근히 이런 것들 가급적 늦게 하라고 권유한 것을 그 동안 충실히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가급적 즐겁게, 기쁨으로 이 시기를 맞이하고 보내고 싶은 것이다.

Thanksgiving, Christmas Lighting, Advent… 하루 하루가 모두 모두 의미심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날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하나도 건지지 못할 듯하다. 또 내가 ‘너무’ 심각한 것은 아닌지 조심하지만 ‘너무 조심하는 실수’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편하다. 조금은 relax한 편한 얼굴을 보이고 싶지만, 75년 동안 굳어진 나의 본성이 그렇게 쉽게 바뀔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를 보는 옆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하도록 노력 하는 것… 좋지 않을까?

이즈음 나의 생각, 의식, 머릿속은 ‘의식의 생존’,  ‘생물학적으로 소멸한 후의 의식의 행방’에 관한 것들로 꽉 차있다. 구체적으로 생명체의 의식consciousness 이 두뇌와 별개체라는 의미심장한 가설인데… 이것은 솔직히 ‘권위자의 가르침’에 의존할 수 밖에는 없지만 나에게도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이런 가설을 ‘믿고 싶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고, 그 다음은 이 ‘가설의 논리성, 철학, 과학’도 치명적인 문제가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인류의 진화’에 의한 끊임없는 새로운 깨달음 enlightenment 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놀람의 연속이다. 요새 이런 ‘깨달음’의 연속으로 나는 살맛이 100배, 1,000배로 늘어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시~ ‘감사합니다’~~

 

올해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성탄구유 점등식, 대림절 전야 특전미사 등등을 나는 특별한 이유도 깨닫지 못하고 기다린 셈이 되었다. 대림의 뜻처럼, 그저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바르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결과는 물론 기대한 그런 모습, 광경이었지만 약간 차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7시의 공식 시작시간보다 15분 일찍 시작한 것이어서 아차 했으면 시작 부분을 놓칠 뻔 했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니 그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될 리가 있겠는가?

먼 곳에서 구유를 자세히 볼 수가 없어서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구유에는 꼭 보여야 할 ‘아기 예수님’이 없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신부님의 간단명료한 강론에서 이것은 의도적인 것, 모두 모두 아직 안 보이는 아기예수를 성탄까지 기다리자는 취지, 의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의도도 기억에 남을 듯하다.

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보는 것도 반갑고 즐거운 것, 하지만 생각보다 교우들의 숫자가 적은 것도 그렇고, 특히 우리 또래의 교우, 친지들의 모습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역시 세월을 탓해야 할지… 이제는 이런 행사에서도 나는 동년배를 찾고 있으니… 이것, 조금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인지상정일까… 올해의 대림절을 이렇게 시작한 것, 이제는 조금씩 불편해지는, 어둠을 뚫고 집으로 drive를 하는 것 이외에는 몇 백 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Dr. Bernardo KastrupBigelow Prize Essay를 읽는다.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consciousness 주제에 대한 제일 학문적 논문급이라 더 흥미롭다. 예전에는 이 주제는 거의 금기사항이었고, 특히 (자연)과학계에서는 언급조차 못했고, 잘못하면 즉시로 학계에서 파문을 당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다른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양자역학의 도움으로, 고전적 물질주의가 완전히 수세에 몰리는 듯하기까지 보이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나는 솔직히 가톨릭 우주관 cosmology 교리부터 출발했기에 물론 이런 추세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만, 웃기는 것은 아직도 나 자신이 속으로 Consciousness, After Life 같은 것을 운운하는 것 자체를 피하고 싶은 심정… 이 정도면 현대가 얼마나 순수물질주의에 젖어 있는지 알만 하다. 하지만 나는 노력할 것이다. 의심을 가지고 열린 가슴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저 너머에 아롱거리는 다른 세상’에 대한 환상은 피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계속 진정한 진실을 향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어제 늦게 뜻밖에 ‘가정교사’ 인호 형의 카톡소식을 받았다. 소식의 문체에 잔뜩 에너지가 느껴지기에 우선 ‘아~ 형님 건강하시구나~’ 하는 포근한 안심, 안도의 숨이 느껴진다. 소식이 서로 없음을 개탄하는 듯한 느낌이 더욱 반가운 것이다. 몸은 느려져도 머리, 영혼만은 끝까지, 끝까지 건강 그 자체라고 나는 항상 믿었기에, 형님 나이 82세라는 것이 심각하게 다가오질 않는다. 간단히 지난 2년간 우리 가정의 변화 변천사를 알려드렸지만 그 이외는 앞을 기약할 수가 없다. 언제는 형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간단히 끝이 나곤 했으니까… 인호 형, 이번에는 조금 긴 대화를 하며 삽시다!

한국에 계시는 연숙이 쪽 친척들, 특히 형님과 동서형님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참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이 갈 수가 없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두 양반, 모두 현재 조금씩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하니… 형님은 얼굴자체가 너무나 초점을 잃은 듯하게 보인다고.. 동서형님은 다른 쪽, 그러니까 걷는데 문제가 있다고.. 아~ 80대가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도 곧 그렇게 될 것일까? 연숙이 ‘이순재’씨는 88세에도 연극 활동을 한다고 몇 번이나 칭찬 말을 하는데 결국은 나이 그 자체보다는 개인적 에너지 차이도 큰 몫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날씨는 seasonable 한 기온, 하지만 잔뜩 흐리고 빗방울이 곧 떨어질 듯 한 2022년 추수감사절을 맞는다. 모든 것, 모든 사람들, 하느님께 감사를 하고 싶다.  이렇게 비교적 조용한 한 해를 보냈다는 사실을 감사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을 할까,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 란 형식이 제일 적당한 것 아닌가? 기도는 마음 속으로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이런 날은 남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적당하니, ‘통성 기도’도 필요하다. 문제는 나는 그것이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니… 마음 속으로 하는  ‘모범, 전통, 영성적 기도’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정했다.  Thich Nhat Hanh, Joanna Fuchs의 기도를  online에서 찾아 함께 해보니…

 

This Food is the Gift

This food is the gift of the whole universe: the earth, the sky and much hard work. May we live in a way that makes us worthy to receive it. May we transform our own unskilled states of mind and learn to eat with moderation. May we take only foods that nourish us and prevent illness. We accept this food so that we may realize the path of understanding and love.

Thich Nhat Hanh

 

Abundant Blessing

We thank you for the turkey, the gravy, and the dressing.

Dear Lord, this table overflows with Thy abundant blessing.

Let us always be aware that all gifts come from You,

and may we serve Your heavenly will in everything we do. Amen.

Joanna Fuchs

 

감사절 전통 식탁기도, 아마도 처음 하는 것, 식사 전 감사기도를 준비하는데 놀랍게도 연숙이 올해는 ‘가장 家長으로’  나보고 하라고 권유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닌게아니라 올해는 ‘진짜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권유가 아마도 우연이 아닐지도… 그렇다면 어떤 기도를 할 것인가, 가톨릭의 기도문  ‘식사 전 기도’는 너무나 상투적이고, 속으로 했던 2가지 ‘영어 기도’도 조금은 분위기에 걸맞지 않고…  하지만 어떤 기도를 할 것인가의 물음은 자연히 해결이 되었다. 그래~ 제일 보편적인 기도가 최고가 아닐지…  하지만 아무리 보편적이라고 해도 우리는 ‘알파요 오메가이신 예수님’을 떠날 수는 없다. 비록 영어로 된 주의 기도였지만,  과연 40대로 접근하는 아이들이 이것을 아직도 기억을 할지도 궁금하지만, 누가 알랴, 이것이 추억의 촉매가 되어서 다시 신앙의 고향으로 돌아올지… 아이들은 조금 어색한 눈치였지만 의외로 사위 Luke는 ‘집에서 듣고 자랐다’라며 익숙하고 편안하게 따라 해서 올해의 특별한 식탁은 뜻 깊은 ‘온 가족 기도의 시작’과 함께 하게 되었다.

어제부터  음식 준비를 천천히 착실하게  시작해서 그런지 오늘은 여유롭게, 평화롭게, 천천히 turkey를 굽기 시작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맞는다. 거의 하루 종일 만찬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 wine의 맛을 보게 되었다. 주위에는 ‘술을 끊었다’고 했지만 이런 특별한 계절은 물론 예외다. 하지만 가급적 hard liquor류는 피하고 wine & beer 정도는 조금만 마시기로 했다. 가끔 예년에 ‘즐기던’ Canadian Mist 생각이 간절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추억으로 즐기기로 했다. 이것은 주치의의 권고도 참고를 했지만 꽤 가계부에도 도움을 주기에 못할 것도 없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제일 큰 동기는 물론 ‘건강하게 죽으려면 술도 조심하라’는 의학, 임상적 권고가 귀에 깊숙이 들어온 것이었다.

Thanksgiving Holiday를 맞으며 불현듯 올해는 12월의 진짜 holiday인 Christmas의 모습이 일찍도 다가온다. 조금씩 성탄 장식에 관심이 간다. 예년에는 가급적 성탄의 느낌은 가급적 늦게 미루려고 했는데, Pandemic이후로 조금씩 바뀌어, 가급적 일찍부터 즐기게 되었다. 가뜩이나 우울한 세상살이, 이렇게 하는 것이 조금은 더 현명하고 상식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정치적인 고통은 많이 완화기 되긴 했지만, 그래도 밝은 세상의 모습을 찾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모습이 아마도 그 익숙한 말 ‘만추 晩秋’의 모습이 될 것인가? 올 가을은 정말 천혜의 도움으로 사상 최고의 ‘단풍, 낙엽’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제는 서서히 겨울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고, 특히 올해는 ‘눈의 가능성’이 꽤 높이 예보가 되어서 벌써부터 지나친 기대를 조심하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오늘은 예정에도 없이다른 견공 犬公  Senate와 지내는 날이 되었다. 나라니 가족이Chattanooga, Tennessee 로 놀러 가면서 우리 집에 맡긴 것이다. 물론 오랜만에 보는 Senate는 반갑지만 사실 이것도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것 아닐까? 새로니 개 Ozzie에 못지 않게 Senate 이 녀석과도 이제는 은근히 정이 들었나 보다. 서로의 chemistry가 알맞게 맞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것도 ‘사랑’이라는 cosmic consciousness ,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녀석과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가 흠뻑 담겨가는, 벌써 Thanksgiving Holiday 의 모습이 보이는  우리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내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 간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전처럼 이번에도 가족, 특히 Luke가 보고 싶어서 밤새 끙끙대지 않을지…

날씨는 오늘 저녁부터 돌변을 해서 추위와 강풍이 몰아치며 내일까지 계속된다고… 아~ 내일 아침 주일미사로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15마일을 달려 성당엘 가야 하니… 하지만 주일미사 이후의 bakery & cafe 하얀풍차 그룹과의 담소와 donut & coffee가 그리워지기도 …

 

그야말로, poor Josh..라는 말이 나온다. 요새는 본격적으로 낙엽이 계속 떨어지면서 쌓이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집집마다 독특하게 다르다. 극단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각자의 취향이라고 할까… 우리는 일부러 자연스럽게 놔두며 산속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데, 어떤 집은 ‘결사적’으로 각종 power blower를 총동원해서 낙엽 한 입까지 모조리 치운다. 이런 사람들의 성격은 나와 정 반대로 ‘100% 도시형’, 그러니까 단풍잎을 거의 쓰레기로 보는 듯하다. 앞집 Josh는 극단적인 인물, 하기야 그의 직업이 landscape designer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문제는 낙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요란한 blower소리로 치우는 작업이 점점 힘들어지는 season인 것. 오늘 보니 꽤 많이 떨어졌는데 인기척이 없으니… 지친 것이다. 나는 blower 특히 gas powered의 소음이 딱 질색인데, 미안하지만 쾌재를 부른다.

뜻밖의 사과 선물이 차고 앞에 놓여있다는 연락이 왔다. 1992년 이곳으로 이사올 당시 이미 이곳의 터주대감으로 사시던 유일한 동포 B 선생 댁이 보낸 것이다. 가끔 이렇게 서로 아주 작은 것을 교환하며 사는데, 꾸준히 함께 뒷집 이웃으로 산 인연이 벌써 30년이 넘은 것이지만,  사는 것이 바빠선지 별로 가까이 할 기회가 없었다. 집은 뒷면으로 등을 대고 있지만 숲이 막고 있고 차로 가려면 빙 둘러서 가야 하는 아주 묘한 위치의 이웃관계다. 하지만 그런대로 만남의 기회를 준 것이 뒷마당 텃밭의 위치가 접하고 있어서 잊을 만 하면 그곳에서 잠깐 만날 수 있었던 것. 가끔 기르던 채소를 교환하기도 했지만 우리와 다른 것은 그 집은 vegetable 보다는 꽃나무에 관심이 더 있었다. 장성한 아드님도 함께 사는데, 이제까지 거의 한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는 것이 조금 특이하다고 할까.. 하기야 집집마다 다 독특한 사정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가끔 산책길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면 먼 곳에서 서로의 불빛을 확인하기도 하는, 한마디로 이분들과의 관계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정말 독특하고 신기한 장구한 세월의 인연이 되고 있는데… 이제 두 집의 인생여정의 연륜이 만만치 않으니.. 언제까지, 언제까지… 건강한 관계가 이어지기만…

대기만성 大器晩成…  이런 말 아직도 쓰나…  AeroGarden Sprout, 새로니가 연숙의 생일선물로 주었던 것, 집안에서 작은 식용작물을 키우는 이것, 이후 basil을 포함한 3 herb가 germinate 과정을 거쳐서 본격적으로 자라게 되었고 basil은 이미 prune과정으로 음식에 넣기도 했다. 하지만 한가지 herb가 2달이 지나도록 잠잠해서, 아마도 살지 못했나 했는데 그제 보니 이제 싹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아 돌아온 가족처럼 기쁜 것이다. 2주 정도면 싹이 트는데 2개월? 그래서 그런지 이 가운데 녀석에 특별히 관심과 정이 간다.

벌써 바뀐 시간에 적응이 되었는가, 새벽 6시 30분 직전에 눈이 떠진다, 아주 편하고 쾌적하게… 좋은 징조가 아닌가? 몸이 비교적 가뿐한 것이다. 침대에서 ‘기어나올 때’ 평상시에 괴로운 ‘어지러운 느낌’도 훨씬 덜하다. 혹시 요사이 안정적인 혈압의 좋은 영향은 아닐까?  시력, 특히 근시의 진행 이외에 나의 신체적 감각은 직감적으로 거의 정상이다. 다만 손끝의 감각은 조금 둔해지긴 했지만. 문제는 과연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인가 하는 것.  물론 서서히 약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 정도가 문제, 느끼지 못할 정도면 OK.

초가을처럼 따뜻한 새벽의 느낌, 편하다. 추위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즐거움이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은 별문제, 나이의 영향인지 그렇게 매력적이 아니다. 오늘은 이곳의 election day이지만 앞으로 최소한 일주일은 나에게 ‘정신적인 휴가’로 사는 전통을 고수할 것이다. ‘흙탕물, 비록 필요한 것이지만’, 그곳에다 나의 즐거운 시간을 빼앗길 마음은 추호도 없는 것이다. 대강 일주일 이후면 훨씬 그 ‘더러운 흙탕물’도 맑아지니까…

대신 현재 ‘다시 읽게 된’  Robert Lanza의 Biocentrism 을 무서운 속도로 섭렵涉獵 하게 되었다. 2020년 이즈음에 처음 읽었던 것, 거의 2년 만에 재독을 하는 셈인데… 이것이 깨달음인 것인가? 처음에 비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사실을 실제로 내가 느끼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좋다, 싫다, 모르겠다… 중간이다… 중간일 것이다. 좋은 것 반, 그렇지 않은 것 반. 하지만 좋은 것이 조금 더 많다고 하고 싶다. 이런 시간이 그렇게 자주 오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우선 내가 하고 있는 시간이 갑자기 중단되는 일어 없다는 사실이 제일 반갑다. 수시로, 아무 때고 응답을 해야 하는 것, 어떨 때는 화가 나기도 하니까. 혼자 산다고 가정하면 이렇게 간섭을 받는 것이 그리워질 것 같기도 하지만, 현재로써는 마음껏 나만의 시간을 ‘방종’하고 싶은 것이다. 전혀 그런 기분을 모르는 배우자의 존재, 어쩐 종류의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그날’ 새벽, 아침에 한 시간 덤으로 잠을 잘 수 있는 한 가을의 일요일 새벽… 기억으로 아마도 처음으로 시계를 손으로 바꾸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던 듯하다. 어젯밤에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 특전미사, 가을음악회 관람으로 모처럼 늦게 귀가를 한 탓도 있었지만, 솔직히 귀찮기도 했다. 이렇게 시계를 고치는 작업이 심지어 지겹게 느껴졌던 것일지.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 시계에 매어서 살아야 하나… 지루하기도 하고…

너무나 일찍 일어난 것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은 덤으로 얻는 한 시간이 아닌가? 마음껏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는 사치가 아닌가? 오늘은 어제 특전미사 덕분에 주일미사에 가지 않게 되어서 온통 우리의 시간이기도 하고… 조금은 relax하며 게으름도 피우고 싶은데, 솔직히 말해서 일부러 피우는 게으름은 나의 적성에 맞지를 않으니, 참 나도 피곤한 인간이다. 왜 그렇게 relax할 줄을 모르냐?

 

1962년에 내가 그린 자작만화, ‘민족의 비극’을 다시 꺼내 들어서 본다. 무려 태평양을 건너와 60년의 세월을 견디며 나의 곁에서 잠을 자고 있는 이것은 분명히 나의 보물1호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피곤한 모습, 내가 세상을 하직할 무렵에는 아마도 종이들이 삭아져 없어지지 않을지… 결국은 scan/digitize할 때가 온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낱장으로 해체를 해야 하는데 솔직히 망설여진다. 원형이 없어지는 사고가 겁나는 것. 하지만 결국은 결단을 내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

 

2년 전 처음 접했던 Robert Lanza, MD의 Biocentrism 3부작을 다시 잡아서 1편 격인 BIOCENTRISM을 순식간에 거의 반을 읽어내려 갔다. 요새 새삼 깨달은 사실은, 어느 책이건 한번 읽는 것으로는 거의 큰 효과가 없다는 것.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으며 새삼 느낀 것이다. 이제야 조금 ‘감’이 잡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난 100여 년 동안 서서히 축적되어온 실재관의 변화가 이제는 전통과학(특히 물리학)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이 책의 기본적인 주제는 생명, 의식이 물질의 원자, 분자를 앞선다는 가설이다. 쉽게 말하면 생명체가 없는 우주관은 허구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데, 이 저자는 quantum mechanics를 기초로 거의 완전한 이론체계까지 구성했는데, 이것도 String Theory처럼 ‘믿기에’ 따라서 성공의 여부가 달려있는 듯 보인다. 요즈음 세상은 이런 거의 혁명적인 idea들로 심심치 않다.

 

To Dance with the White Dog 1990년대 Hallmark Hall of Fame movie/video를 다시 본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일부러 찾아서 보게 된 것이다. 영화의 무대가 이곳 Georgia주인데다, 야외 location은 전 대통령 Jimmy Carter의 자택 근처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연로한 금실 좋은 노부부 [Hume Cronyn, Jessica Tandy] 인데, 금혼식 이후 부인이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 혼자 살게 된다. 근처에 아들 딸 내외들이 같이 살아서 매일 집에 와서 돌보아 주는데, 문제는 하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데 아버지는 그것이 좋기는 하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흰 색깔의 수려한 개가 난데 없이 나타나며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심지어는 같이 dance 흉내를 낼 정도가 되었다. 나중에 아버지까지 임종을 맞게 되는데, 아들 손주에게 유언으로 ‘그 흰 개는 wife’ 였고, 무덤에 묻힌 다음 날 묘소에 와 보라고 한다. 그 유언대로 그곳에 가보니 정말 무덤을 덮은 모래에 개 발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두 주인공 배우들은 실제로도 부부였고, 이 영화 이후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런지 이video를 계속 보면서, 부부로 평생을 산다는 사실이 누구 말대로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기적은 역시 사랑에 의한 것임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감나게 다가오는데, 오래 전과 다른 것이 있다. 이제는 다음에 올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100% 믿기에 죽는다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제 저녁 ‘가을 음악회’의 요란한 소리들이 귀에서 울리는 듯… 오랜만에 귀 청소를 했다는 진부한 느낌, 표현… 어제 순교자 성당 ‘가을 음악회’는 그런대로 성공적이었음은 분명하지만, 나의 취향에 맞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요새의 흐름이 그런가, 젊디 젊은 그런, 한바탕 풍악을 경험한 듯하기도 하니까.. 왜 그랬을까? 나의 편견인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들은 역시 mass media의 ‘개신교 style’이나 전혀 다른 것이 없는 ‘Hillsong‘ style의 그런 것들… 우리 동네본당의 주임 신부님이 봤다면 분명히 달갑게 보지는 않았을 듯하다. 한마디로 Catholic냄새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원병태,  몇 년 전에 타계? 중앙고 3학년 때 나의 짝꿍, 단짝이었던 원병태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신동훈으로부터 오늘에야 들었다. 소식이 없이 조용한 듯한 동창들, 사실은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오늘 원병태 소식을 들으며 깨닫는다.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조용한 거지. 살아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어디선가 표적, 표식이 난다는 것을 왜 일부러 부정을 하며 살았는지. 특히 우리의 나이에서는 더욱 그럴 지도 모른다. 원병태, 원병태, 중앙고 졸업 이후 1970년 대 초에  다시 만나서 그가 다녔던 고려대에서 테니스를 같이 치던 추억이 서로의 마지막이었지.. 곧 미국엘 가서 친척 집의 주유소 일을 돕게 될 것이라 했지.. 그러고 나서 소식이 끊겼다. 영어 회화 실력이 별로 없어서 일을 하는데 힘들 거라 걱정스런 말을 하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 한데… 네가 나보다 먼저 갔구나. 중앙고 3학년 큰 키에  맞지 않게 나와 짝꿍이었는데, 키 큰 애들을 조금 무서워하던 나도 그 녀석은 그렇게 편하고 친했는데…  대학 입학시험 이후 합격소식을 알려주었던 자상한 녀석… 고대 화학과에 ‘꽁지’로 합격했다고 자랑을 했던가~ 병태야, 고맙고,  편하게 쉬거라, 우리들도 곧 따라갈 터이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

 

얼마 전부터 나라니가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새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우리 때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둘이 벌어야 그런대로 사람처럼 사는 세상이 된 것인가? 2살을 지난 개구장이 남자아이와 씨름을 하는 것에 지친 것인지도. 그래서 새로니, 나라니 식구들 전부를 오늘 불러서 온 가족 pre Halloween Dinner 모임을 가졌다. 전에 이렇게 Halloween 을 계기로 가족이 모인 기억이 없어서 조금 새롭고 신선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Halloween costume 입혀서 오라고 했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는지 모두 그냥 왔기에 식사 후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거창하게 장식을 한 집을 모두 방문하기도 했다.

거창한 비바람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고 올해의 가을낙엽들은 순전히 자기들의 의지로 하나 둘 씩 내려오고 있고 이제는 풀잎들을 거의 모두 덮을 정도가 되었다. 더 있으면 발이 빠질 정도의 두께로 덮일 것이 분명하다. 거의 정확한 때에 이렇게 반복되는 ‘하강식’,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생애의 마지막 장을 보는 듯하다. 내년에도 반복될 것은 분명한데 세월이 갈 수록 내년의 모습이 점점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인간 원죄의 결과’일지…

거의 초음속으로 나르는 비행기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솔직히 말해서 은근히, 조용히 심지어 부끄럽게 경악 한다.  최근에 새로 알게 된 깨달음 중에 시간의 흐름에 관한 것도 있다. 흔히 시간은 지루할 때 보통 때보다 느리게 흐른다는데 공감을 한다. 다르게 말하면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 때 그 순간들은 지루한 것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 현상이 나에게도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묵상, 명상, 기도, 실내 track에서 걷기 등을 할 때다. 전에는 이런 시간이 정말 지루하기만 했다. 시계를 보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일까 할 정도인 것은 그 시간이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최근에 180도로 변한 것이다. 나도 놀랄 정도로. 한마디로 말하면 묵상, 명상, 걷기 등의 시간이 지루한 것으로부터 즐겁고 깊이가 생긴 것이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것이 나는 알고 싶은 것이다.

 

드디어 나의 서재에서 쓰던 fan heater를 아래층 bathroom의 문 뒤쪽에서 찾아내었다. 이것이 내가 줄곧 쓰던 것, 오늘 아침에 첫 시동을 하게 되었다. 이제 heating season이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아직도 whole house central heating은 1~2도의 차이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며칠 뒤에는 본격적으로 새벽에 소음을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벼운 스웨터를 하나 둘 씩 찾아내어서 입기 시작, 다음 차례는 jacket이 필요한 순서.. 오랜 세월의 연륜으로 이제는 그림처럼 다음 차례의 모습이 그려지니.. 이래서 하루 하루 생활이 흥미가 없어지는가, 아니면 기다리게 되는가, 모르겠다.

올 가을에는 나뭇잎, 특히 그 색깔의 변화를 매년 내가 좋아하는 우리 subdivision의 Guilford Circle 상에 있는 연로한  그 ‘가을 나무’ 대신에 기대치도 않게 옆집 Dave 네 앞뜰 나무에서 감상하게 되었다. 동네를 최근에 별로 산책을 하지를 못했던 것이 제일 큰 이유가 아닐지… 그 ‘가을 나무’는 노오란 색깔로 변하는 것이 멋졌는데 오늘 보게 된 것은 빨간 색깔 쪽에 가깝다. 이것도 멋지게 보이는구나…

어제 나의 desk 옆에 방치되어있는 책 더미 속에서 이 Satan에 관한 책을 끄집어 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왜 갑자기 ‘악마론’인가? 아주 timing이 절묘하다고나 할까.. 지난 주의 Black Days 경험도 그렇고 현재 Halloween을 향하는 시월 달도 그렇고 모두 이 ‘악마, 귀신’이 주제가 아니던가?  이 책 CHRIST versus SATAN (IN OUR DAILY LIVES)은 내가 좋아하는  예수회 사제저자,  Dr. Robert Spitzer의 최근 저서로 ‘현존하는 Satan’을 교회, 영성, 이론,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거의 미신적으로 즐기다시피 하는 초현대적 문화에서 이런 이론, 주장은 자칫하면 무시당할 수도 있지만 이 저자의 자질과 배경을 알면 훨씬 이성적으로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오해의 여지가 있는 주제는 영성적으로 열린 자세가 아니면 본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 The Exorcist (William Peter Blatty),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매년 10월마다 경험하는 추억의 여행이기도 하다. 매년 나에게 다가오는 이 영화의 추억, 이것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으려는, 찾으려는 것인지 이런 나의 모습에 나 자신도 웃는다. 하지만 이것이 이것의 마력, 매력이 아닐까? 올해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자세로 이 영화와 나의 인생여정의 관계를 찾아 보고 싶다.

오늘 달력을 보니 Canada의 Thanksgiving Day라고 보인다. 불현듯 중앙동창 6년 반장, 정교성이 얼굴이 떠올라 간단히 카톡을 보냈다. 그곳에서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만찬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올해는 식구가 모일 수가 없다는 소식이었다. 작은 딸애가 퇴원을 했다는 것은 안 좋은 소식이었고 사위는 군인인데 NATO일원으로 훈련 중이라고 하며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간단하고 쓸쓸한 사연… 아~ 나도 외로운 때를 보내고 있는데 이 녀석을 생각하니 비교를 할 수가 없구나. 이제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그래, 누구나 다 이 나이에서는 별 수 없이 외로운 것이니까…

 

아~ 올해의 추분 ‘Autumn begins’, 결국은 그렇게 지난 주일들 동안 머리 속에 담겨있는 말, 가을이 되었구나. 가을 가을 가을… 인생의 가을과 비교해서 그런지 이 계절이 제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직 나는 겨울은 아닐 것이고 조금은 준비할 시간이 있지 않을까? 무엇을 준비? 허~ 나도 잘 모르지만… 이대로 오늘 떠난다는 것은 조금 현실감이 들지 않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지 않을지.. 이것이야말로 횡설수설의 하나다.

가을의 첫날, 태양은 90도까지 치솟으며 작열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밖에서 여름 내내 초록색 생명의 향연을 보여주던 화분들과 초목들, 또 집안으로 들여 놓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싸늘하고 바람 부는 그런 날의 저녁을 은근히 기대하고 싶다.

오늘은 연숙이 이대동문 합창연습으로 아침에 나가야 하기에 자진해서 미사를 쉬자고 하였다. 무리하면 갈 수도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무리처럼 느껴지고, 솔직히 어제의 운동 때문인지 아침에 조금만 더 자고 싶기도 했다.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혈압수치’ 를 의식하고 있는지 머리는 가볍고 날라가는 기분이기도 하고 그런 생각들을 더 되풀이해서 음미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도 무시할 수 없으니, 왜 이렇게 날카롭게 나는 ‘시기심’의 함정에 빠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누가 잘 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나와 비교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면 나는 깊은 속으로부터 분노까지 느끼니 말이다.  이런 때도 있는 거지, 그리고 한때겠지…

낮 시간을 온통 혼자 보낼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이것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한 듯하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아마도 나에게서 ‘유기적 에너지’를 앗아간 모양이다. 일단 손에 잡히고 일을 시작하면 거의 저절로 결과를 보는 것인데, 그것을 피하며 살고 있다. 특히 tool time의 시작을 못 하고 사는 것이다. 오늘까지는 날씨가 덥다는 변명을 할 수 있겠지만 막상 일하기 좋은 시원한 때가 오면 어쩔 것인가? 아~ 누가 나를 좀 밀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누가? 누가? 나 이외에~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오늘이 그 악몽의 nine-eleven [Patriot Day] 이란 것을 오늘 아침에야 새삼 깨달았다. 21세기가 진짜로 시작되었던 2001년… 나이 50을 얼마 전에 넘었던 그때, 어찌도 세월의 위력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시간의 마력, 매력, 허구성… 그때의 그 일들을 어떻게 잊고 살았단 말인가? 어제처럼, 아득한 태고처럼 동시에 느껴지는 이 신비스럽기까지 한 망각과 기억의 계곡을 살고 있구나…  Enya 의 hit tune, Only Time이 하루 종일 장송곡처럼 흘러나오던 이 순간순간 들은 역사적 교훈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모두 망각의 세상으로 흘려 보내고 싶은 것들이다.

 

이쪽 온 지역이 온통 구름으로 덮인 9월 11일… 청명하기 이를 데 없었던 2001년의 9월 11일과 대조적… 어쩌면 그날은 그곳이나 이곳이나 [아마도 전 지역이] 어쩌면 그렇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을까? 영화나 만화보다 더 잔인한 광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던 그 아침 무렵, 솔직히 다시  생각은 물론이고 추측, 회상하기도 진저리가 난다. 그런 세월은 나 개인 차원으로도 슬프고 고통스런 나날의 시작이 되었고… 뒤의 이야기는 한 권 소설의 한 장을 이루는 역사가 되었다.  다행히 20+ 년이란 세월의 도움으로 고통은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 어두움의 보상일지도 모르는 드높은 차원의 세계를 알게 되고 만날 수 있는 행운의 끝머리를 잡은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그렇게 Patriot Day는 기억을 하는데, 오늘이 Grandparents Day란 것은 조금 comic하게도 보인다. 이런 날이 있었던가?  그렇구나, 우리는 분명히 grandparents니까, 조금은 자축을 할까? 모든 grandparents 들… 누가 있나? 주위에… 많을 것이고, 참 힘든 humanity로써의 의무를 다하시느라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

오늘 주일 미사는 Patriot Day와는 전혀 역사가 다른 추석 미사를 맞았다. 전통적인 ‘추석상 차림’ 의례가 미사 전에 치러진 것이다. 비록 엎드리는 절은 아니어도 성묘의 느낌은 충분하다. 중국의 중추절을 언급하는 중국사목 이력의 ‘중국 통’ 신부님, 미국의 오랜 전의 국가적 고통인  9/11을 뉴스로 듣긴 했겠지만, 피부로 실감할 것은 무리인가? 전혀 2001년 오늘 일어난 일은 완전히 잊는 듯하니..  지역사목을 위해서 그래도 조금은 추억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을까? 한번 떨어진 ‘인기점수’가 만회되는 기회를 별로 기대할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오늘로서 Living in the Mindful Universe 책을 완독하게 되었다. 2018년 년 말에 사서 읽기 시작한 것, 그러니까.. 3년이 훨씬 넘은 뒤에야 다 읽은 셈이다. 저자의 생각이 비교적 잘 전달된 듯하고 대강 그의 주장을 일단은 알 수는 있다. 제일 나에게 다가오는 공감은,  ‘이성적 과학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성적 실재로 넘어가는 그 과정의 서술이다. 과감하게 반론을 제기할만한 지식이 나에게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아니 상식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의 주장이 ‘제발 제발 100%’ 맞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완독 후 나의 바램이라고 할까…

며칠 째인가YouTube video의 계절배경음악, Vintage Autumn Music을 아예 전부를 계속 듣는다. 비디오 그림은 1950년대 각종 잡지들에서 온 것이고 음악은 그 당시의 crooning style의 정겹게 느린 ‘가을 곡’들… 우연히 주제들이 모두 9월, 비, 낙엽 에 상관된 것들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심취했던 것들이 이제 고스란히 우리세대, 나에게까지 온 것인데, 놀란 것은 완전히 우리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사실… 결국 세대는 시대를 뛰어넘으며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늙음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아니 쉽게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완전히 초가을의 모습이 보이고 느껴지는 오늘 가만히 밖을 보니 그렇게 정돈된 잔디가 예전처럼 깨끗하게 보이지를 않는다. 자세히 보니.. 아하~~ 마른 나뭇잎들이 적지 않게 깔려 있구나~ 그 위를 보니 역시 dogwood 의 가지의 푸른 잎새들의 색깔이 주황색 쪽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낙엽 계절의 아주 시발점을 포착한 것이다. 조금 더 진행되면 이제 잔디 일을 하는 노고는 줄어들 것인데… 솔직히 섭섭하고 시원하다고 할 것인지..  이제 차가운 비바람만 한 번 불면 걷잡을 수 없는 낙엽의 장관이 펼쳐지며 9월은 시월로… 친구 양건주의 ‘잊혀진 계절’의 순간이 다가오는가~ 아~ 세월의 신비로구나.

아침 미사 후, Kroger에 들려보니 일년 만에 다시 등장한 ‘한정판’ STARBUCKS Pumpkin Spice ground coffee가 보여서 cart에 넣었고, 다른 쪽에는 색깔도 찬란한 황금색에 가까운 pumpkin들이 쌓여 있었다. 아~ 9월 초순, 가을이 재빨리 다가오고 있구나…  Warm September of My Year… 작년에 가끔 들었던 Life Magazine의 cover page를 연상케 하는 Vantage Autumn Music 을 다시 찾아 듣는다. 나의 나이가 일년 중 몇 월에 해당할까, 분명히 9월은 지났을 듯하다.  어렸을 적에 많이 보았던 멋진 가을,  ‘미국의 모습’들, 바로 그런 것이 이제는 나에게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왜 그렇게 그 당시에 상상했던 ‘미국의 가을모습’이 아직도 나를 편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도 당시에 우리 삶의 희망은 ‘저 멀리 있는 미국’이란 이상향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모처럼, 정해진 외출, 힘든 일, 모임 등이 예상되지 않는 며칠을 앞두고 있으니 분명히 나는 느긋하고 편안해야 할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  알고 보니 토요일은 추석과 Atlanta Korean Festival이란 것이 있긴 했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뿐이다. 이런 우리의 자세는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추석도 그렇지만 어제는 나라니가 우리들보고 Korean Festival에 안 가느냐고 했는데, 우리의 반응이 묵묵부답 이었으니… 그 애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한마디로 우리가 귀찮은 것 때문이 아닌가? 일년에 한번 오는 이런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참여 하는 적극성이 아쉽다. 이제 곧 자라나는 손주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The Nativity of the Blessed Virgin Mary, 가톨릭 전례력으로 오늘은 성모마리아 탄생일이다. ‘기념일’로 나와 있지만 나에게는 더 큰 의미를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2007년의 상기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성모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시작, 그것이 나의 인생 후기 역사의 시작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그날’까지도 계속될 것이다. 오늘 아침 미사는 주임신부님의 배려인가, 축일미사로 긴 전례양식을 따르는 멋진 성모님의 생일축하 미사가 되었다. 끝날 때에는 ‘꺼꾸리와 장다리’ 의 꺼꾸리 자매가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선창을 해서 이채로웠다.

 

오늘은 연숙의 70세 생일, 그러니까 칠순이 되는 날이어서 조그만 기념으로 외식을 했다. 크게 이날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나 때도 그랬듯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숨길 필요는 없지만 생각하며 조용하게 보내고 싶은 심정, 누구나 같지 않을까? 그래도 60세 때와는 조금 다른지 ‘오래 살았다~’ 라고 몇 번이나 말하는 그녀를 보니, 사실 동감이다. 우리들 참 오래 살았다는 자축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그야말로 묘한 심정을 누를 수가 없다.  지난 3월 1일 우리들의 삼일절 때, 이곳 강남일식에서 식사를 했는데 생일까지 이곳을 찾게 되었다. 요즈음 하도 비싸고 맛없는 식당들 투성이여서 아예 일식이 안전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부터 우리 둘 모두 명실공히 나란히 70대의 늦은 인생을 살게 되었다. 내년 1월이면 나는 75세의 고개를 넘을 것이고 연숙은 그 뒤를 또 열심히 따라올 것이고…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떻게 언제 마감이 될 것인가, 이제는 사실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과연 생의 끝자락에 가면 더욱 저 세상의 모습이 다가옴을 느낄 것인가? 과연 죽음의 끝에는 새로운 저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믿음, 신앙의 최고 도전인 이 물음을 계속하며 우리는 성실하게 신앙의 삶을 살 것이다.

9월임은 알려주는 신호인가, 6시 반의 깜깜한 새벽이 불편할 정도로 싸늘한 것. 체감으로 분명히 60도대로 떨어졌을 것인데, 보니까 64도, 갑자기 10도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옷을 바꾸는 것, 귀찮기도 하고 참을까 했지만 역쉬~ 안 되겠다.. 고  짧은 팔이 달린 런닝셔츠를 찾고, 옷 더미 속에서 눈에 익숙했던 light green golden 긴바지를 입으니 훨씬 따뜻하구나~  이것이 9월 첫날에 어렴풋이 미리 보는 가을의 느낌일 것이다. 9월, 9월… 아~ 오래 된 구월을 어떻게 추억하며 어떻게 한 달을 살아갈까~

 지난 봄 이후 처음으로 long sleeves shirt를 입고 아침 미사엘 갔다. 이제부터는 옷들을 입으려면 조금 생각을 하며 입는 계절로 접어드는가. 그러니까 이것이 일교차라고 하던가? 정말 무더운 낮과 아주 써늘한 밤이 교대로 오는 멋진 초가을의 느낌, 모습들.. 어찌 이런 계절의 변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습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8월 마지막 날 작열하는 태양과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넋을 잃고 보았다. 기온만 조금 더 내려가면 이것이 바로 9월의 세상모습인 것이다. 아~ 구월, 구월, 더운 낮과 시원, 싸늘한 밤이 교차하고 하복에서 동복을 기다리는 하루하루… 런닝셔츠 바람으로 칼 싸움을 하며 놀다가 갑자기 싸늘해진 저녁을 맞아 당황했던 가회동 골목의 9월… 어찌 어찌 그 눈물 없던 시절을 잊으랴…
어제 늦은 오후에는 상당히 비가 많이 내렸다. 뒤쪽의 fence 위쪽이 다음날 아침까지 완전히 젖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초여름에는 사실 올해 혹시 가뭄이 오는 것을 조금 걱정했지만 역시 Mother Nature는 아직도 이 지역에 은총을 계속 내려 주시고 있는 듯하다. 물론 다른 곳에서의 재난은 항상 두렵고 미안하지만…  결국 이곳은 알맞은 비와 큰 문제 없는 기후의 은총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결국은 8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구나~ 경우야, 한 달을 어떻게 살았니? 나의 ‘친구, 친지’들은 어떻게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부디 건강하게,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건강을 되찾는 은총과 함께 하고 있기를… 그래, 나보다 약하고, 아픈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돌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데, 요새는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를 않던 것, 나에게는 사실 너무나 아쉬운 일이고, 심지어 불안, 조바심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의 은총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다. [나는 이런 류의 문장은 참 쓰기가 어렵구나, 자연스럽지 못하고, 나의 깊은 생각이 반영되지를 않으니…]

내일은 연숙의 70세 생일이다. 60세, 환갑이란 것이 10년 전, 이제는 소위 말하는 칠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둘에게 두 번씩이나…  하지만, 사실 지내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잖아?’ 라는 쓴웃음만 나온다. 그래, 요새 70이란 것이 그렇게 의미가 변하고 있으니… 심지어 70이란 사실을 잊고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것은 너무하고… 그래서 내일은 모처럼 둘이서 조금 맛있는 외식을 하기로, 편하게, 부담 없이, 우리 방식으로, 조용히 보내기로 의견을 모았으니 됐다, 됐어… 연숙아, 건강하고 행복한 칠십 대를 여행해보자. 갈 때까지, 갈 때가지… 나를 먼저 보내줄 수 있는 여유와 은총을 꿈꾸며…

작년에 자신 있게, 기세 좋게 구입한 책 Jordan Peterson, God, and Christianity  오늘도 계속 읽는다. 그가 Bishop Barron과 그의 Word On Fire Institute 의 주목을 받는 이유와 그의 종교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의 시작이다. 이런 최고 지성들의 상호 분석은 한 마디로 눈부시게 신비롭기까지 하다.

 

오늘은 Ozzie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  산책의 기쁨을 기다리면 사는 녀석을 데리고 걸었다. 짧은 코스로… 하지만 녀석의 행복한 모습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이 녀석과는 어떤 이별을 하게 될 것인가, 미리부터 눈물이 나온다.
새로니, 유나,  리처드가 와서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늘어지게 쉬고 갔다.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그들, 하지만 우리의 식구가 아닌가? 아쉬운 것은 이해를 하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타주로 이사를 가더라도, 이곳에 같이 사는 그날까지 나중에 후회가 없도록, 없도록…

 

모처럼 집 앞쪽 front door로 들어오는 walkway 의 pressure washing을 끝내 버렸다. 이것을 생각하면 2018년 7월 경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때 구역장을 ‘마지막 chance’라며 겁도 없이 맡아서, 모든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에 앞도 안 보고 달렸던 시절, 과정은 좋았지만 결말은 ‘참담하기 까지’ 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절대로 안 한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때 나는 구역모임을 준비한답시고 집 단장의 일환으로 오늘 한 것 같은 대청소를 한 것이다. 이재욱 신부님이 오시던 날이었지… 이제는 모든 것이 추억이고, 개인역사가 되었다. 2018년에는 구역장 연수회도 갔었지.. 그때의 추억도 어찌 잊겠는가?

 

오늘 드디어 shed tool group들이 garage로 ‘첫 입성’을 시작하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는 겨울이 되기 전에 소중한 각종 hardware, tool들이 차고로 들어오게 될 것, 이제는 자신이 있다. 일단 시작된 것, ‘유기적 원리’에 의지하면 된다. 이제는 저절로 알아서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제일 큰 도전은 역시 tool bench가 아닐까? 현재로써는 구체적인 idea은 없지만 이것도.. 저절로…

 

Echinopsis Summer!  또 3 송이가 피었다. 올 들어서 도대체 이것이 몇 번째인가? 이제는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닌 것인가? 아니다, 불과 하루 몇 시간 동안  피는 이것, 해가 뜨기 전에 나가서 이미 피어난 모습과, 주변의 초록색 절정을 무섭게 지나가는 올 여름 찰나의 역사로 남긴다.

 

입추도 어제로 지났고, 다음 주 월요일은 결국 말복이다. 이제 여름은 그렇게 무섭지 않게 보인다. 아무리 더워 봤자… 라는 배짱인가? 분명히 mercury 숫자로 보면 더운 것이지만 전처럼 더운 느낌이 다르다는 것, 우리의 몸, 특히 피부가 신기하게 적응을 한 것이리라…  앞으로 몇 주는 쏜살같이 지날 것이니까… 그러면 9월이… amber after amber… 허~~ 그렇게 되는가?

Google Voice에서 경고[권고]성 email이 날아들었다. GV No 2가 일주일 후에 expire가 된다고… 그때까지 쓰지 않으면… 곧바로 번호에 전화를 걸어서 voice mail을 남겼다. 이렇게 된 것은… 요사이 산책을 하면서 이곳에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7월 초, Spring Creeks 산책 중, 개XX 사건으로 완전히 이것을 잊었던 것인가… 하~ 그런지도.. 앞으로는 이것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산책을 하며 자주 voice mail을 남기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인데..

조용하고 평범한 월요일을 예상했지만 약간의 추가로 신경을 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성당 가는 길, 도착하는 길에 어떤 차가 쫓아오더니 주차장까지 따라 들어와서 우리 차 brake light 두 개[왼쪽과 가운데] 가 안 들어온다고… 물론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을 것인데 나는 불현듯  조금 지나친 간섭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결국은 그의 ‘좋은 이웃’의 모습에 충분히 나의 답례가 부족하게 보였을 것이 염려가 되었다. 누가 그런 수고를 해 주겠는가? 하지만 후에 작은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닌 것이 나중에 brake light bulb를 O’Reilly에서 사다가 교체를 하려고 보니… 글쎄 원래의 것이 멀쩡한 것이 아니던가? 도대체 어찌된 노릇인지.. 분명히 연숙이도 확인을 했다고 하니.. 누가 틀린 것인가? 순간적으로 조금 화가 나긴 했지만..  결국 brake light가 수명이 다 되어가는 것으로 ‘공식판정’을 내리고 말았다. 또 다른 사실은, 소위 말하는 3rd brake light교체하는 작업.. 특히 SONATA의 경우 거의 mechanic이 필요한 작업으로까지 보인다. 이것 3rd brake light를 design한 HYUNDAI engineer 인간들의 비상식적인 머리가 의심스럽다. 아니 light bulb 교체하는데 그렇게 고통스럽게, 어렵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R 형 부부와 모레 목요일 점심을 같이 하기로 약속이 간신히 잡혔다. 덕분에 며칠 전 안나 자매가 언급했던 예전의 초원뷔페 자리의 ‘새벽집’이란 묘한 이름의 식당을 가보게 되었다. ‘꼰대’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분위기가 대강 짐작은 간다.  그 자매부부가 그곳에 갔을 때, 그곳에서 경로잔치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왜 그곳에 그렇게 ‘꼰대’들이 많이 오는 것일까? 늙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메뉴 때문일까? R형 부부와 만난 것이, 5월 초에 만나고… 그러니까.. 거의 3개월이 흐른 것이다. 지난번 만난 후에는 자주 만나자고 기염을 통했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는데.. 이유는 무엇일까? 친분이나 우정이란 것, 인위적으로 희망대로만 되는 것이 이 나이에서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사람’들과의 사귐에는 노력을 하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듯 한데… 동갑, 동향이란 것만으로는 극복할 것이 적지 않다. 특히 개인적이 아닌 부부가 관계가 되면 더욱 복잡해지는 것은 분명하고.. 둘이서만 만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이 이제는 전처럼 쉽지가 않으니..

뉴스를 의도적으로 안 본지가 20여 일이 되었는데, 사실 그 동안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too big news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제 오늘 연숙이 언급하는 서울의 집중호우 소식은 조금 관심이 갔다. 시가지의 차들이 물에 잠기는 정도가 된 것은 예외적인 것 아닌가? 인명피해는 경미하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공포감은 상당할 것 같다. 1964년 중앙고 2학년 여름, 용산구 남영동에 살 때 나는 직접 피부로 눈으로 느끼고 목격을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밤새 쏟아지는 폭우, 그것이 집중호우일 것인데, 다행히 우리는 2층 집의 2층에 살고 있어서 길이 물에 잠기는 것을 내려다 보는 입장이었지만, 한마디로 자연의 무서움은 50 여 년이 지난 아직도 남아있다.  도로에 물이 넘치며 침수가 되고, 지하실을 완전히 물에 잠길 정도, 그 당시에는 한강이 범람하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그것의 최악의 사태는 서울시가[특히 용산 쪽]  물에 잠기는 형국이었다. 다행히 그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었다. 나는 특히 수영을 못하고 물에 대한 trauma가 많아서 그런지 물을 아주 싫어하는 편이라서 서정적인 느낌의 아름다운 비는 정말 사랑하지만 집중호우 같은 것은 정 반대로 지나치게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곳에도 오늘은 어제보다 더 확실하게 더 많은 비가 오후에 내렸다. 이 정도의 비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빗님이고, 갑자기 서울을 비롯한 세계도처에서 혹서, 폭우, 산불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생각하니 정말 미안해진다.

중앙57회 동기 카톡방, 처음에는 옛날 옛적의 중앙중고 캠퍼스의 추억에 젖어, 당시 졸업앨범의 애 띤 얼굴들을 연상하며 그들의 글을 보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니 이곳의 regular들이 한정된 숫자의 몇몇 동문들이었고 화제도 주로 정치 쪽이 압도적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상할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솔직히 내가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는 듯, 또다시 외톨이가 되어가는 서운함이 없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에 이곳을 통해서 알게 된 이재영 동문이 그곳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일까. 나와 거의 비슷한 것, ‘Donald 개XX MAGA’ 빠가 집단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일까. 아직도 그 개XX의 narcissistic 거짓말을 믿는 한심한 동문들이 이곳에 있음이 나는 더욱 놀랍기만 하고, 가끔 나도 한마디 이재영을 지원사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창들이 나의 의견은 고사하고 나의 존재조차 감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Holy Family 동네 미국성당 9시 아침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한여름을 가는 대성전 후면 거대한 유리창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진하디 진한 초록색의 현란한 색상을 담고 싶었는데, 결과는 역시 ‘십자고상’이외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은 질책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시각적 유혹은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중복을 넘기며 본격적으로 휴가들을 떠났는지 미사에 사람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지만 아마도 이런 조용한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을까?

여름다운 여름… 이라고 부르고 싶은 올 여름, classic summer.. 그래 이런 여름이 30+ 년 전 이사올 당시에 느꼈던 그런 것 아닐지.. 여름은 사실 여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사실 조금 여름답지 않게 너무나 시원했던 몇 년을 보낸 듯하다. 일어나서 밖의 기온을 느껴보니 역쉬~ 76~77도, 와~ 정말 중복 복더위 여름이로구나… 지난 밤에 기온이 별로 떨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 여름다운 여름을 가급적 납량하는 기분으로 즐기자…

내가 세상 [정치] 뉴스를 피하며 사는 것이 벌써 12일째라고?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었다. 아침의 NYT newsletter email에서 한 줄의 소식만 재빨리 보는 것이 전부니까… 그것도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보고 있다. 최소한 그곳에는 사실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없으니까… 어제 저녁 순교자 성당의 한 친목단체에서 받은 카톡 메시지, 웃기지도 않는 아이들 장난이 분명한fake message를 바보처럼 그대로 마구잡이로 보낸 것을 보니 정말 한숨이 나온다. “영국 엘리자벳 여왕이 한국에서 은퇴여생을 보낸다..”고?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결국은 근래 각국의 정치판도에도 이런 바보천치들이 많이 투표자로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정말 한숨이 나온다.

오늘의 YMCA workout, summer camp가 끝나는 듯, 아이들의 talent show가 indoor track에서 한창이었다. 때문에 걷는 것은 복도에서 조금 흉내만 낸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muscle workout의 시간이 더 생겼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각종 근육에 생기가 느껴지지만 아직도 보기에는 별로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며칠 째 계속되는 ‘폭염’ 더위, 하지만 우리의 몸은 거의 완전히 적응이 된 상태가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가급적 몸을 쓰는 바깥일은 중단되었다는 사실뿐이다. 대신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납량물’ 역할을 하는 것들을 즐기는 편안함이 있으니 이것도 이런 때에 살맛이 나게 하는 것 아닐까?  납량물 역할을 하는 것 중에 ‘역사물’이 효자 노릇을 단단히 했고 지금은 자연과학 쪽을 기웃거린다. 오늘은 그것의 하나로 Brian Greene의 WSU lecture: Special Relativity 에 관한 것인데, 몇 년 전에는 완전히 수학에 의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것은 수학이 완전히 빠진 것이어서 조금 더 ‘느낌’에 의지한다고 할까…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수학이 빠진 것이 더 이해하는 것이 수월하다. 거의 현상론, 철학의 경지라고나 할까… 이것도 멋진 납량물 역할을 하니… ‘전설의 고향’에서 ‘상대성 원리’의 급격한 진화는 너무나 재미가 있다.

우리부부의 저녁기도, 환자명단 1번에 있는 중앙동창 김원규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 [교성이, 중앙57회 카톡방] 날아들었다. 그렇게 활발하고 친절하게 나의 카톡에 답신을 하던 원규, 김원규…  항암치료를 잘 받으며 아주 밝게 투병을 하는 그의 자세가 참으로 나도 배우고 싶었다. 그의 자세한 성격은 거의 다 잊고 살았지만 예전의 그와의 짧았던 인연도 아련히 떠오른다. 하지만 기도 중에 그렇게 완치를 기원했는데..  너무나 암담하고 슬프기만 하다. 특히 우리 동년배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타계, 선종하는 것이 상상외로 나를 외롭게 만든다. 원규는 크리스천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마도 우리들의 기도를 통해서 영생의 세상으로 갈 것을 그려본다. 어차피 우리들 그곳에서 다 재회할 것 아닌가? 가족들,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기를… 빌어본다. 편히 쉬게, 친구야~~

 

ECHINOPSIS! 오늘 아침 일찍 나가보니 하얀 두 봉오리가 활짝 얼굴을 들어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아니 이 녀석은 주로 7월말에 보곤 했는데, 지금은 6월 초라면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 올해의 여름이 2달이나 일찍 시작이 된 것으로밖에 볼 수가 없지 않은가? 지나간 5월 달에 그렇게 가물고 덥던 것이 머리에 떠오른다. 식물이란 것, 이렇게 기후에 민감한 것이구나.. 이렇게 일찍 피었으니… 일찍 다시 사라지겠지… 관심은 과연 몇 봉오리나 얼마나 오랫동안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것… 매일 아침에 이렇게 사진을 찍어두면 좋겠다.

 

오늘은 그런대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을 시작하였다. 아침 미사, Goodwill,  Sam’s Club등을 돌아 다녔다. 이것처럼 보편적인 일상 생활은 없을 거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이다. 나는 한동안 ‘영적’ 독서, 아니 일반 독서 등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이것 또한 나를 조바심 나게 하는 것이다. 이번 화요일의 요한복음공부가 신부님의 감기로 cancel이 된 것도 나의 신앙생활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내가 너무나 민감한 것일까?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 이런 것들로 내가 너무 성당과 멀어지는 것을 고쳐주시는 것으로 이렇게 나를 괴롭히시는 것은 혹시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 작은 것들이 쌓이게 되면 그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니까..

어제 크리스티나 자매가 우리에게 우리가 가는 아침  8시반 주일미사의 독서를 맡지 않겠냐고  연락을 보내주었다. 이때처럼 나를 고민하게 한 적도 없지 않을까? 예전 같았으면 반사적,  기쁜 마음으로 ‘무조건 하자’라는 나의 지난 세월의 제1 motto를 떠올리지만 다른 쪽의 유혹의 속삭임은,  조금 귀찮은 것도 없지 않다. 우리 주변 상황 (특히 탈 레지오 이후)도 크게 변했지만 결국은 우리의 ‘나이에 대한 인식’에 달려있음을 안다. 우리 나이에서 의욕적인 봉사는 여건과 의지가 있어도 주위의 은근한 부정적(나이 차별, 시기질투 등)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짐을 져야 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으니…  레지오를 떠나면서 절감한 것은 극소수의 인물[주로 광신적인] 들의 치명적인 과오, 실수, 잘못들이 얼마나 하느님의 신비체인 성당공동체을 좀먹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고, 주임 사제가 결국은 현명하게 ‘가라지 치기’를 해야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며칠 전에 우연히 발견한 pvc water pipe에서 물이 새는 것,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고쳐야 하는 것인데, 이 더운 여름에 밖에서 그것도 땅에 누워서 일을 하는 것, 정말 괴롭기만 한 것이다. 일은 일단 시작은 했는데 공교롭게 pvc pipe glue가 너무나 오래 된 것이어서 그것을 다시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어서 부득이 home depot에 order를 하고 토요일까지 기다리게 되었으니… 정말 귀찮은 일이다. 그것이 새는 것은 물론 나의 설치 방법이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겨울에 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땅 속에 묻는 것으로 정해버렸다.

MicroPython,  오늘 많은 시간을 이것을 ‘배우는 것’에 할애를 하고 있다. 모처럼 ‘재미 있는 것’을 발견한 유쾌한 느낌이 든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각종 hardware들이 이런 것을 배우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오늘도 garage에서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는 ’round’ thermostat fan controller, 은근히 자랑스러운데 이것을 시작으로 해서 궁극적으로는 IoT 로 발전을 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cutting edge IoT trend를 배우는 재미를 얻게 되지 않을까? 미리 생각만 해도 피가 용솟음을 치는 것을 느끼는 것을 보면, 나는 할 수 없는, 구제불능 공돌이인 모양이다.

 

Memorial Day Monday, 또 이날이 우리에게 왔는가… ‘비공식적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해서 그런지 새벽에 뒤뜰의 모습은 한마디로 장관 壯觀 이었다. 세상이 모두 이렇게 새파란 색깔이면 얼마나 싱싱한 맛이 날까? 하지만 짧은 생각이다. 가을의 노랗게 변해가는 색과 쓸쓸하지만 포근~ 한 흰 눈은 어쩔 것인가? 그래서 다시 사계절의 오묘함에 감사를 한다. 비공식 여름의 시작은 3개월이 지나 9월 초의 Labor Day로 비공식 여름을 마감, 참 미국만의 독특한 계절 확인 방법인가…

사실상 올해 여름은 5월 중에 이미 시작되었다. 피부의 느낌도 그렇지만 눈으로 느껴지는 자연의 모습이 더 정확하게 ‘지금이 여름이다’를 말해 주고 있었다. 지난 10여 년은 그런대로 평년기후를 유지했는데, 올해는 조금 예외적으로 보인다. 이렇게 진초록의 모습은 사실 6월 말 정도의 것으로 나의 경험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인가, 아니면… 아하~ 자연히 몸살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집, 지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머리통 터지도록 싸워대는 쓰레기 정치인’들의 한심한 모습과 함께… 정신차려라, 이 인간들아, 더 늦기 전에…

 

연숙의 지독한 몸살 감기[사실은 sinus infection]가 오늘로 거의 일주일이 되어간다. 뜻밖에 오래 낫지 않은 것이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찌감치 의사의 진찰과 처방약을 생각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된다. 하지만 ‘감기 따위로’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에 조금 당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 전 새로니가 elementary school에 다닐 때, 사소한 감기가 악화되어서 혼수상태에 빠졌던 악몽을 생각하면, 혹시.. 하지만 그것은 비약, 비상식적은 우려다.

 

은총 가득한, 영광스런 그런 날씨의 도움은 신비한가, backyard의 잔디, 대부분이 잡초류지만, 모두 멋지게 깎고 보니 정말 멋진 모습이 되었다. 이사올 당시 송림숲이었던 이곳이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 송림도 좋았지만, 역시 진화는 이런 것인가…

Fan Heater가 다시 돌아가고 긴 팔 옷을 다시 입고, 모든 창문들이 활짝 열려있다 못해서 house fan까지 동원했던 지난 며칠이 무색하게도 오늘은 완전히 ‘겨울’로 돌아간 느낌이다. 40도대로 다시 떨어진 아침, 우울한 공기와 더불어 더욱 냉정하게 나를 맞는다. 더욱 더 싸늘한 것 같은…

어제 저녁부터 나를 찾아온 ‘깜짝 우울증’이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다. 희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듯한 어두움이 나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작고 안 보이는 이유들이야 몇 가지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나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들 수가 있단 말인가? 나의 성모님,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 느낌은 물론 생각하려고 해도 ‘그들’ 의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보이지 않는다. 깜깜한 모습만 보일 뿐… 지나간 십여 년 동안 나와 가까이 계시던 은총의 절대존재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잘못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이것이 악마의 정체라면 예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
오늘은 지금 같으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축 늘어지고 하루 종일 잠이나 자고 싶은 유혹이 너무나 강하지만, 그렇게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그 정도로 모질지 못한 ‘못난 인간’임을 내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사실 그것이 더 이상 굴러 떨어지지 못하게 하는 작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중간만 가라’ 라는 나의 좌우명, 그것으로 사는 것, 쉽지 않다. 조금 더 명랑하게, 즐겁게, 유머러스하게, 너무 심각하지 않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왜 그렇게 심각하게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느냐 말이다. 믿음, 영성 등이 그렇게 심각한 것인가? 결과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믿음, 종교, 영성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죽을 것 같은 각종 걱정, 근심들, 대부분 소소한 것들이 모인 것들, 벗어나려는 노력에 ‘안 보이는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무조건, 지체 없이’ 뒷마당으로 나갔다. 어제 저녁에 도착한 string trimmer cap으로 재무장을 하고 back yard를 ‘춘향이 얼굴’ 처럼 말끔하게 2시간 노동으로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조금 우울증 증세가 사라지는 것에, 이번에는 예정된 외출, CT-SCAN을 받으러 Tucker Heart Specialists Office에 다녀왔다. 이것으로 일단 이번 유혹은 막을 내릴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안다.  오는 길에 H-Mart에 들려서 어제 맛을 보았던 ‘쌀 라면’ 을 sale 가격으로 더 사왔다.  점심을 미루었기에 이제부터 콩나물 밥을 먹게 되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 이런 happy ending이 나에게는 가끔 필요한 것이다. 원인도 없는 이런 것들, 분명히 evil spirit의 장난일 것이다.
오늘 이렇게라도 빨리 우울증에서 벗어난 것, 아마도 ‘외출 효과’가 도움을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 가급적 외출과 귀가의 신기한 힘을 잊지 말자, 절대로… 앞으로도 우울함의 악신이 공격을 해오면 반드시 나의 방을 벗어나고, 뜰로 나가서 일을 하고, 더 나아가서 외출, 그것도 보람 있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일로 외출, 귀가를 하는 것, 그것을 잊지 말자!
귀가해서 먹었던 콩나물밥은 정말 기막힌 맛이었다. 이것도 나의 짧은 우울증을 빨리 잊게 하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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