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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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ggy & Wet, then: 지나간 5월 중순부터 이곳은 Tropical Storm Alberto의 영향인지 완전한 ‘우기(雨期)’, 그것도 ‘열대성 熱帶性’ 대기가 완전히 이곳을 뒤덮어서 수시로 내래는 폭우, 폭풍은 이제 아주 익숙해졌고 며칠 전부터는 드디어 ‘끈끈한 밤’ pattern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이것은 air conditioner가 없으면 밤잠이 괴롭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느낌이 아주 달랐다. 공기 속에 물기가 하나도 없는 그런 것, 피부가 빠삭빠삭하게 느낌이 산뜻했다. 아침 6시 반 쯤 backyard엘 나가니 이건 다리가 추울 지경이 아닌가? 그렇구나, weather pattern이 결국 바뀌었구나… 하는 반가운 느낌으로 조금은 머리가 가벼운 새벽을 맞았다.

지난 2~3일 간 우리 집 Tobey가 토하고 설사를 하는 등 아주 아파서 나의 기분도 축~ 쳐지는 그런 날들이 되었다. 말 못하는 동물의 아픔은 그저 짐작으로 알 뿐이다. 하지만 병원엘 갈까 말까 하는 것은 고민 중의 고민이다. 최대한 머리를 써서 자가치료를 하지만 나이가 있어서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이 녀석 간호하며 희비쌍곡선이란 말이 어쩌면 그렇게 맞는 말인지..

피곤한 김에 어제 일요일, 예수성체성혈 대축일, 을 skip할까 하는 유혹이 강했지만 다른 이유로라도 가야 했다. 본당 구역장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신구임 구역장은 필수로 참석하라는 ‘지시’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비록 7월에 나의 임기가 시작되지만 이렇게 해서 나도 서서히 ‘구역 business’ 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별로 크게 생각할 것 없다. 순명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2명의 ‘만장일치’ forced holiday를 맞기로 했다. 마라톤을 하려면 이런 조치도 필요하다. Daily Mass, YMCA workout, eatout lunch모든 것에서 오늘 하루는 ‘해방’되고 나니 또 다른 느낌의 세상이 느껴진다. Tobey의 설사도 멎고 solid food를 조금씩 먹기 시작하고.. 감사합니다. 그렇다. This shall also pass… 이 모든 것 다 지나가리라..

이런 것들로써 올해의 ‘여름’은 시작되고, 나의 몸과 마음도 이런 기후 [끈끈함, a/c noise, 폭우]에 거의 적응을 하였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물론 ‘낙엽’을 떨어지는 사색의 가을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뜻, 이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자연이 변하는 것은 언제나 희망인 것이다.

 

¶  문인화 입선 자축@Miss Gogi: 다솔(연숙의 문인화 예명)이 몇 달 전에 ‘끙끙거리며’ 열심히 그려 출전했던 문인화 두 점이 입선이 되었다. 대한민국 전라북도 서도대전 이란 곳에서 입선통지가 왔고 며칠 전에는 그 작품들이 이곳에 무사히 도착을 해서 우리 집 ‘meeting room’에 걸어 놓았다. 다솔이 이 ‘것’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나… 최소한 7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오름과 내림새를 거치며 그려왔고 취미의 level을 고수해 왔는데 문인화 친구 ‘예랑’씨를 만나며 ‘대전 大展’ 을 꿈꾸게 되었다. 그 ‘예랑’씨는 거의 pro의 정신으로 그림을 그렸고 결국 대한민국 대전에서 특선을 받기도 했다. 그런 ‘친구’의 영향을 받아 다솔도 결국 작년에 한국미술협회 대전주최 미술대전에 1점, 올해는 서도대전에서 2점이 ‘입선’되는 기쁨을 얻게 된 것이다.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문인화 문화권의 변방에 있는 이곳에서 이것은 뜻 깊은 일이 아닐 수가 없고, 앞으로 골치 아픈 일들을 내려놓은 후에 전념을 할 것을 찾은 보람도 있을 듯 하다.

이런 것은 가족적으로 반드시 자축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나간 Memorial Day저녁에 온 가족 (나라니의 Lucas 포함) 이 도라빌 H-mart 옆에 있는 고기전문집 Korean BBQ Miss Gogi 란 곳에서 푸짐하게 오랜만에 고기요리를 즐겼다. 이런 식의 ‘신개념의 Korean BBQ steak house’는 아마도 재미 신세대 한국인들의 머리에서 나온 듯 싶은데 거의 fusion style, 그러니까 Americanized 된 ‘신세대 한국음식점’으로 보인다. Mom & Pop 의 구태의연한 수많은 한국인 상대의 전통 한국음식점도 우리 같은 세대에게 필요하겠지만 이런 새로운 idea는 역시 ‘우리의 세대는 이제 다~~ 갔구나’ 하는 자조감 自嘲感을 느끼게 한다.

Korean BBQ, Miss Gogi

 

¶  아틀란타 성체대회: 2018년 6월 2일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아틀란타 성체대회, 2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제는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진 전통적이고 유서 깊은 가톨릭 연례행사가 되었다. 2011년부터 우리는 참가했지만 2년 전 행사는 예외적으로 불참을 한 적도 있다. 그때 불참한 이유는 기대했던 어떤 speaker가 갑자기 못 오게 되었음을 마지막에 알고 너무나 실망을 해서 protest한다고 불참한 실수를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주최측의 scheduling 실수가 아니고 그 speaker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기도 했다.

Mother Olga

그 speaker의 이름은 요새 미국 가톨릭의 ‘떠오르는 별’ Bishop Robert Barron이고 그 유명한 주교님이 이번에 결국은 연사로 왔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기를 쓰고’ 참가를 해야 했다. 사실 이번에 오는 speaker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분들이었다. 또한 7년 전에 우리가 처음 참가했을 때 왔던 ‘아주 조그만 키’가 인상적인 Boston (Mass.) 에서 오신 Mother Olga를 또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우렁찬 노래의 기도로 시작하는 그 수녀님, 체구에 비해서 어쩌면 강론이 그렇게 힘있고 심금을 울릴까…

하지만 역시 이번 성체대회의 꽃은 역시 Bishop Robert Barron 이었다.  제일 마지막 차례로 그분이 등단했을 때 반응이 무슨 rock star라도 온 듯한 그런 열기였지만, 사실은 그분의 ‘지식적, 이론적’이지만 ‘신심이 담긴’ 강론은 정말 더 인상적이었다. Youtube로 보던, 매일 받아보는 daily reflection과 하나도 한치도 다름이 없는 일관된  message 바로 그것 이었다. 얼마 전에 끝낸 DVD ‘Mass‘를 의식하며 이날의 주제는 ‘천주교에서 제일 boring하게 느껴지는 미사’에 대한 것,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100% 200% 공감, 동감하는 주제요 강론이었다.

왜 이분이 그렇게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나의 추측이 맞는다면, ‘신세대가 수긍할 수 있는 이론적 강론’ 바로 그것이 아닐까? 특히 무신론자들과 ‘신사적 논쟁’하는 그의 이론은 정말 인상적인 것이다. 해박한 그의 디지탈 시대에 맞는 apologetic 은 아마도 현재 가톨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올해 성체대회는 이분을 직접 본 것으로 참가한 보람을 느낀 그런 기회가 되었다.

rising star, Robert Barron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전례부장, 교육부장 그리고 주임 이재욱 신부님 모두 morning procession에 참가 하였다

연인원 30,000명이 참가한 Georgia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

 

¶  5월 목요회: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여서 하루의 영업을 서서히 닫기 시작하는 시간에 식당을 찾아 3명의 오래된 지기의 남자들이 모여서 지나간 달의 이야기를 나눈다. 일명 목요회, 이것이야 말로 odd group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점이 독특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전혀 다른 세 사람… 정말로 전혀 닮은 것이 거의 없다.

이번 달에는 Pleasant Hill Road 한인 town 입구에 있는 깨끗한 느낌의  ‘명가원’에서 모였다. 막내격인 S 형제, 누가 모른다고 지난 달에 이어 얼굴이 펴질 줄을 모른다. 아마도 지난 몇 달을 그렇게 우울한 나날들을 보낸 듯 보인다. 그와 반대로 나의 동년배 연대동창 이 형제는 의외로 얼굴이 밝을 대로 밝다. 무슨 좋은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덕분에 대화가 활기에 찬 것으로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coming home’ 의 hint를 비추었는데 의외로 전과 다르게 open 된 모습을 보인다.

장구한 신앙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동문형제, 어쩌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지.. 올해 9월이 목요회 ‘연륜’ 1년이 되는데 그때까지 더 좋은 결과를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어린  S 형제’, 60대가 넘었으니 과히 어린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아직도 ‘세월의 교훈’을 느끼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 커다란 희망은 접었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 5월의 어머님과 수국 水菊:  2018년 어머니의 선물, 성모성월 5월이 서서히 우리로부터 떠나고 있다. 올해, Mother Nature는 자상하게도 하늘에서 단비를 지나칠 정도로, 땅이 거의 마를 새 없이 충분히 주시어, 온갖 초록색 생명들, 꽃과 나무들은 호사를 하고 있는 5월이었다.

작년 5월을 돌아보면 그때는 거의 ‘초록색의 향연’을 잊고 살았었다. 우리 집 뒤뜰에서 태어난 8마리의 kitten들 살려내어 입양시키려고 동분서주하였던 때, 봄의 싱그러움은 거의 놓쳤지만 잊을 수 없는 그 귀중한 생명들,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 얼굴은 영원히 우리의 뇌리에 각인 刻印 이 되었고, 두고 두고 맛난 술을 조금씩 마시듯 아직도 기쁨을 느낀다. 그런 생명의 5월이었다.

올해의 5월은 조금이나마 ‘역사의 짐1‘을 덜어보려고 1980년대의 5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지냈다.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나와 어느 정도 관계가 되었을까 물으면 사실 많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없던 것처럼 수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고, 나에게 과연 Motherland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더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5월의 찬란하게 화사하고 청초한 꽃들을 매주 성모님께 ‘계속’ 바칠 수 있었던 것, 두고 두고 2018년 5월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 회합 때마다  $4짜리 ‘상품화 된’ 꽃을 Kroger에서 사다가 성모님께 바치는 것, 돈도 돈이지만 미안하게 느껴진 것이, 화창한 5월에 우리 집에서 가꾸었던 꽃들을 바치는 것은 너무도 은총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한창 멋을 내는 수국과 옥잠화를 곁들인 homemade bouquet, 5월의 어머님 성모님, 너무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특히 왜 매년 피었을 수국의 싱그러움이 올해 특별히 나에게 그렇게 멋지게 다가 왔을까.. 생각한다. 아마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이 먹음의 멋일까?

성모님, 레지오, 수국, 옥잠화… 그리고 5월

 

¶  선생님의 방학:  ‘teacher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2주 정도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애들처럼 여름 방학을 그렇게 목이 매이도록 기다리더니 며칠 전 Memorial Day 저녁에 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Canada로 여행을 떠나며 Ozzie는 우리의 식구가 된 것이다. 이때마다 선생님이란 직업, 괜찮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긴 여름, 다 큰 사람이 아이들처럼 ‘놀고 먹는다’는 것, 나는 아직도 실감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나이에 그런 입장이었으면 아마도 지루하기도 할 것 같고 집구석에서 독서 정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조금은 자신이 있다. 더 멋지게 보낼 자신.. 근래 들어서 outdoor sports: deep sea diving, hiking, climbing 같은 데 푹 빠져 있는 새로니, 지금은 공기 좋을 듯한 Canada의 wilderness를 누비고 있을 것이지만 글쎄.. 요새 ‘아이들’ 참 어리게 산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가 그렇게 여행을 안 하고 사니 나는 나는 2주 동안 대리 만족이나 즐길까..

Ah, Canada.. I wish I..

 

¶  레지오 활동 재개:  최근에 들어서 우리 레지오 Pr.2 ‘자비의 모후’, 1조 (나와 연숙)는 오랫동안 침체했던3 때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레지오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소극적으로 기도에만 치중하는 ‘활동’이었지만 그것은 균형을 잃은,  바람직한 방법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상적으로는 신심활동(기도를 중심으로)과 corporal work (육체적 활동)의 비율이 적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해서도 ‘밖으로 나가 뛰는’ 활동처럼 나에게 돌아오는 보람과 활력소가 되는 것은 없었다.

나보다 덜 건강하신 ‘어르신’들을 찾아 조금이라도 사소한 도움이라도 주는 것, 그 정도도 못할까? 이분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만도 그분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런 도움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명심하며 더욱 더 뛸 수 있는 육신의 건강을 주시라고 기도한다.

 

¶  Unofficial Summer: 어제 Tobey와 Ozzie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몇 년 전만해도 거의 매일 Tobey를 데리고 걸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거의 산책을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진 Tobey를 너무 걱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것은 좋지 않다. 모든 ‘운동’ 중에서 나의 나이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빠르게 걷는’ 것이다. YMCA에서 나는 30분 정도 빠르게 indoor track을 걷기에 날씨의 영향을 받는 동네걷기에 등한했는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오랜 만에 걷다 보니 우리 subdivision의 ‘자산’인 swimming pool과 tennis court를 지나게 되었고, swimming pool이 ‘파~란’ 색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그렇다.. Memorial Day부터 모든 Summer facility가 open 하는 것, 잊고 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가던 ‘수영장’… 아~~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다. 그 수영장 아이들이 이제 30대가 되었으니.. 그렇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여름이다. 기껏해야 3~4개월 정도일까… 땀 흘리는 여름은 반갑지 않지만 이제는 드디어 갈색 낙엽의 가을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면… 작년에 재 발견한 classic oldie, ‘The Last Leaf‘를 다시 들고 부르게 될 것이다.

Swimming pool’s open for Summer!

  1. 거의 40년 동안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에 대한 후회
  2. 쁘레시디움 Praesidium의 약자로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최전방 분대로 실제적인 선교, 봉사 활동은 이곳에서 한다.
  3. 특히 지난해 ‘레지오 미친년 난동 사건’ 이후부터

Freedom, Never Free

 

¶  현충 顯忠 단상 斷想:  며칠 전 Gulf coast로부터 북상하는 Tropical storm Alberto 의 영향인지 시원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고요한 휴일 아침이다. 대기는 이제 완전히 여름의 냄새가 가득한 그런 것으로 바뀌었지만 대신 기온만은 늦봄의 그것, 이런 모습의 Memorial Day 를 우리는 ‘이곳’에 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맞았던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 대부분 군인들, 이들을 추모하는 날답게 고요한 느낌을 주어야 하는 날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교과적인 삶을 사는가.. 그 많은 사람들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반세기 전, ‘부선망 父先亡 단대독자 單代獨子’1라는 구세대적 병역조항으로 군대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당시에는 날듯이 기뻤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의 작은 trauma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과거지사 過去之事로 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요즈음 빈번히 주위에 등장하는 ‘월남전 veteran’ 들을 마주하면 사실 할말이 하나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미안하다’라는 심정 바로 그것이다.

자유, 인간의 자유를 유지, 보전하기 위한 악 惡 과의 투쟁, 공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자유, 이런 것들이 무료로 주어진 것인가? 우리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 상황도 마찬가지다. 당장 김일성 세습왕조의 역사상 유례없는 잔학성과 현재 서서히 몰락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사필귀정 事必歸正 이란 말을 새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 절대로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인 것이다.

한 나라의 모든 것, 그들만의 문화,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군대조직의 역할을 너무도 간과하며 살았던 것도 깊숙이 진행되는 나이의 혜택으로 하나 하나씩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며 놀랄 정도로 후회도 한다. 전쟁에 관한 책이나 영화들,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 ‘정말로 잔인하게 희생된 살과 피가 실제로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들이 ‘재미에 의해서 간과’가 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오늘 내가 느끼는 역사의 관성적 慣性的 교훈이다.

 

¶  Double Whammy! 구역모임:  2018년 비공식적 여름철의 시작을 알리는 Memorial Day weekend 우리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조용히 단출한 식구들 오랜만에 모여서 barbecue 와 beer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연상되는 때이지만 올해는 완전히 storyline이 바뀌어 버렸다. 거의 10년 만에 우리 집에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구역 마리에타 사랑반의 월례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10년 이상.. 그러니까 그 동안 우리는 너무도 소극적인 구역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성당공동체가 덩치가 커지면 사실 구역의 역할을 그와 비례해서 중요해진다. 한 곳에서 모두 친교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두 곳에 본당을2  가진, 사실상 ‘두 집 살림’을 이유로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꽤 오랫동안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로 구역을 대했지만 나 자신으로써는 ‘내 신앙 reversion 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외골수적인 생각으로 일부러 피한 것도 있었다. 경험적으로 보기에 즐겁지 않은 사람을 피하는 과정에서 많은 ‘냉담자’가 생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의 관계를 위한 노력은 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방관적 작은 역사도 나의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갑자기, 청천벽력의 느낌’으로 내가 이 작은 구역의 ‘장 長’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온 것이다. 자발적으로 이 자리를 맡는 어려움 때문인지 거의 ‘강제적, 임명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이 의무가 맡겨진 것이다. 이때 생각에, ‘결국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뿐이었고, 본능적으로 ‘도망가자’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는 ‘반사적 반응’이 아닌 진지한 묵상을 하게 되었다.

우선 현실적으로 ‘이제는 할 사람이 없다’라는 체념적인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이야 말로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도망가면 해결되는’ 경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도망가는 것 만은 피하고 싶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편할 것도 아니고 도리도 아님을 절감을 하게 되었다.

이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얼마 전에 ‘완독 完讀’ 한 책,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의 저자 안득수 형제님이 생각났다. 그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그날의 ‘성경말씀’을 보곤 했는데 그것이 결정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온 말씀 그 날의 제1독서는 ‘배반한 유다의 자리에 마티아 사도가 뽑힌‘ 것에 관한 것 (사도행전 1, 25-26) 이었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나의 사정과 비슷한 것인가.. 

이러한 배경에 이번 달의 구역모임까지 우리 집에서 있었으니.. 무언가 double whammy 라고 할까.. 최선을 다하자 라는 motto로 오랜 동안 손님이 별로 없었던 우리 집, 덕분에 며칠 동안 ‘중노동’의 결과로 무사히 많지는 않지만 ‘손님들’을 맞을 수가 있었다. 맞기에 편한 정도의 사람들이 왔기에 ‘작은 우리 집’도 앞으로 ‘작은 모임’ 을 하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생겼던 Memorial weekend.. ‘근육통이 만발하는 즐거운 고통과 기쁨’이 교차되는 순간들이었다.

 

  1. 외아들이 아닌 아버지가 사망한 집안의 외아들에게 주어지는 제한적 병역면제 규정.
  2. 집 근처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20+ mile 떨어진 도라빌 Doraville 소재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Mother’s Day 2018

¶  Mother’s Day 2018:  미국에서 유래된 오랜 전통의 Mother’s Day, 생명이 약동하는 포근한 5월의 둘째 일요일. 그 옛날에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도 ‘어머니 날’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이 어린이날에서 사흘이 지난 5월 8일이었다. 고국을 떠날 때까지 분명히 있었고 어머니 날의 선물을 나의 어머니께 드렸던 마지막 기억도 있다. 그것이 그 후에 없어졌고 ‘아버지가 꼽사리1 낀, 어버이 날’이라는 거북한 날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도 나는 이것은 honest mistake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바꾸어버린 ‘이유’는 분명히 있었을 것은 알지만 아직도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분명히 다른 존재인데…’ 라는 아쉬움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미국의 전통적 Mother’s Day와 더불어 따로 6월의 3째 일요일에 Father’s Day를 만든 것 ‘이곳 사람들’의 생각을 좋아한다. Motherhood와 Fatherhood를 구별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 나는 ‘고유한 의미의 가정’을 ‘지나치게’ 걱정한다. 말도 그럴듯한 LGBT 인간2들이 혹시라도 Mother와 Father라는 말도 없애자고 $$$을 억수로 써서 유명한 lawyer라도 매수하는 것은 아닐까… 와~ 2018년에 생각하는 Mother의 의미는 정말 해괴하게 복잡하기만 하다.

어머니 날은 미국 West Virginia에서 출발했다. 남북전쟁에서 봉사자로 일을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서 Anna Jarvis가 제안하고 기념을 하기 시작했고 1914년에 미국의 ‘공식 기념일’로 Wilson대통령이 선포를 하고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Mother’s Day로 제정한 것이다.  Anna Jarvis가 밝힌 이유는 간단하게 ‘a mother is the person who has done more for you than anyone in the world‘ 였다. 단순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이유였다.

그녀가 밝힌 이름은 Mother’s Day였고 결코 Mothers’ Day가 아닌데 이유는 ‘자기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기리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아이들의 엄마를 생각하기 전에 나의 어머니가 우선적이라는 것.. 조금 까칠한 논리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나를 낳아준 어머니’, 그녀 존재의 이유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100% 옳다고 본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5월 13일, Mother’s Day 일요일인데다 우리의 천상의 어머니 Virgin Mother (성모 마리아)가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 (Fatima, Portugal) 에서 3명의 ‘아이들’에게 발현한 날이기도 해서 더욱 Universal Motherhood의 의미가 돋보인다. 오늘은 거의 의도적으로 동네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엘 갔는데, 결과적으로 성모님에게는 조금 송구스럽게 되었다.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는 날이라 원래는 그곳엘 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례없는 파격적인 결정에 우리가 무리 없이 공감한 이유는, 그 월례회의에서 ‘성모님의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 을 미리 느낄 수 있었고, 오늘 Mother’s Day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우리들의 평화가 하수구로 빠져나갈 것 같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무는 의무, 불참은 불참, ‘총사령관’ 성모님께 죄송한 마음은 금할 수 없다.

오늘은 작년과 같이 ‘아이들’이 와서 엄마를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고 들어왔다. 오늘 그들이 갔던 식당의 분위기는 안 보아도 그림이 그려진다. 모두들 일년 간 ‘불효’ 했던 것을 만회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자식들이 엄마를 ‘끌고’ 나왔을 듯 하다. 그렇게 해서 잠시나마 나만의 안식일을 맞이했던 오늘, 잠깐이나마 나의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할 수 있었다. 효자건 불효자건 상관없이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후회 안 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지난 날에 비해서 조금 밝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 아니 곧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아니 희망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굳게 믿는 사실이 되었다. 올해 어머니 날에 다시 확인하고 싶은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1. 그 당시의 유행어로 슬그머니 모임에 끼어드는 얌체 같은 느낌의 말
  2. 이들은 인간본성을 포기한 subhuman이라고 나는 믿는다.

¶  First Taste of Summer:  사나흘 전부터 갑자기 치솟은 기온으로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a/c (air conditioner)의 잔잔한 소음을 듣는 날이 되었다. 5월의 ‘어느 날’에 이런 잔잔한 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되는가,  매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데 평균적으로 Mother’s Day의 전후가 됨이 흥미롭다. 이것은 그러니까 이곳 아틀란타 Atlanta지역 기후의 특성일 것이다.

오늘은 올 들어 처음으로 90도가 넘는 날이 되었다. 아마 섭씨로 31~32도 정도가 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평균기온을 ‘훨씬’ 넘는 것이다. 이때쯤의 평균 최고기온은 80도(섭씨 24도) 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진짜 한 여름의 느낌과는 조금 다른 것인데 그 이유는 습도가 그렇게 높지 않고 해가 지면서 기온은 비교적 빠르게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런 5월 초의 의식 儀式 May Ritual을 치르면서 다가올 3~4개월간의 여름과 그 이후 낙엽이 쌓일 가을의 이곳 Saybrook Court의 주변과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은가?

 

¶  A/C Checkups 2018: 내가 제일 싫어하는 job중에 하나가 우리 집의 ‘고물, 고철’, 여름의 필수품인 에어컨의 condition을 checkup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이 과연 켜질까..’ 하는 것이다. 이 a/c system을 하나의 기계로써 만지는 것은 나에게는 재미있는 소일 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만약에 내가 못 고치는 사태가 발생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고치는’ 것 보다는 ‘바꾸는’ 것이 현명하기에 $$$이 억수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죽기’ 전에는 그냥 쓰기로 했지만 만약에 그 때가 오면 새것으로 바꾸게 될 것인데 물론 $$$은 들지만 energy-efficient한 요새의 system은 사실 장점이 많이 있음도 안다. 내가 손을 볼 수 있는 것은 현재 다한 것 같기에 이제는 ‘심판’만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상태는 cautiously optimistic한 것인데 곧 그 결과는 알게 될 것이다.

PreSummer ritual

 

¶  남자가 만드는 라면: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는 것 중에 ‘라면은 남자가 더 맛있게 만든다’, 라는 말이다. 나도 물론 동감이다. 왜 그런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남자들이 배 고프면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 밖에 없기에 결사적으로 노력을 해서 만든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지만 자신은 없다. 여자들은 요리를 원래부터 자신이 있기에 라면 같은 것은 관심이 없고 노력도 안 하는 것은 아닐지.

나는 다른 라면은 모르지만 ‘너구리 라면‘은 확실하게 내가 더 맛있게 끓인다. 이것은 연숙도 인정하는 것이고, 그녀가 끓인 너구리 라면은 사실 내 것과 확연히 다르다. 이것과 더불어 얼마 전에 Youtube 에서 ‘너구리 라면’에 대한 video를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왜 그 라면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맛으로 인기를 끌었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 회사의  많은 연구, 노력의 결과였음은 말할 나위 없었다.

이 너구리 라면을 끓일 때 내가 신경을 쓰는 것 중에는: 물의 양과 온도, 그리고 불을 끈 후에 얼마 후에 먹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에서 맛의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연숙이 외식하러 나갔기에 오랜만에 너구리 라면을 끓였는데 이번에는 spam, mushroom을 잔뜩 넣고 끓여보았다. 그러니까 ‘spammed & mushroomed Neoguri ramen’ 인데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  HP Elite 8000:  며칠 전에 order했던 hp desktop pc, 2012년 vintage Elite 8000 가 오늘 집에 배달이 되었다. 현재 내가 수집하고 쓰고 있는  hp desktop pc가 3대나 있는데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직접 조립한 pc를 쓰다가 근래에 들어서 이렇게 ‘old’ business model desktop pc를 사들이는 것, 이제는 하나의 취미로 변하고 있는데,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 웬 이런 괴상한 수집을 하는지 나도 나에게 묻고 있다.

거의 모든 personal computing 이 smartphone으로 옮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desktop pc를 대체할 수는 없다.  특히 많은 시간을 ‘편안하고 널찍한’ desk 에서 보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조립해서 쓰던 나 자신 brand의 desktop pc에 제동이 걸린 것은 Microsoft 의 ‘activation tax’ 때문에 시작이 되었다. Windows XP 시대에는 그런 것이 없어서 ‘마음대로’ copy 해서 쓰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했지만 Windows Vista가 나오면서 그것을 사야 되는 한마디로 unthinkable 한 사태가 발생, 과연 이것을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free & openLinux 를 쓰면 되겠지만 그것과 Windows 는 너무나 다르기에 문제가 있다. 우선 ‘걸리는 것’이 Linux 에는 Microsoft OfficeAdobe Photoshop같은 것에 문제가 있기에, 바람직한 것은 두 system을  다 쓰면 좋은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고수하는 것 중에는: Blood-sucking Apple system은 절대로 안 쓰는 것, Microsoft Windows같은 Operating system software절대로 ‘안 사는 것’ 이 있다. Apple system (Mac, Iphone같은 것들)을 안 사는 것은 나의 경제력으로는 그림의 떡이니 문제가 없는데, Windows 가 문제였다. 이것은 실제로 매일 매일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결책이 우연히 생겼다. Windows software copy를 안 사고 아예 Windows PC를 사면 되다는 아주 간단한 방법.. 왜 이런 생각이 그 동안 안 들었을까? 그러면 어떤 pc box를 살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이다. 5~8년 정도 지난 ‘business class, refurbished or used hp pc’ 가 바로 정답이었다. 그 정도 pc 의 horsepower 면 현재 우리의 computing need를 완전히 만족시키고도 남는다. 물론 hard disk나 RAM 같은 것은 내가 junk box를 뒤져서 upgrade하면 된다. 100% genuine, legal Windows 7 or 10 system이 있으니 거의 모든 desktop software를 문제없이 쓸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정답중의 정답이었다.

¶  Stop! Smell the Roses!:  갑자기 포근한 봄 날씨로 돌아온 지난 며칠이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도 상쾌하고, 침대에서 ‘기어 나와’ 옷을 입는 느낌이 훨씬 편해진 것을 보니 정녕 봄 같은 봄이 온 것을 실감한다. 지나간 부활절 이후 4월은 사실 예년에 비해서 싸늘한 그것이었다. 새벽에 central heating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지난 며칠을 겪고 드디어 2층 thermostat를 OFF 로 바꾸었다. 이제부터는 crossover 기간이 시작되고 아마도 얼마 후에는 a/c 의 humming 소리를 간간히 듣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은 서서히 여름의 끈끈하고 텁텁한 냄새를 맡게 될 것이고, 이렇게 인생, 세월, 시간은 흐른다.

오늘 아침 YMCA gym으로 걸어 들어가며 문득 생각이 스친다. 왜, 이렇게 빨리 걸어가는 것일까?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무언가 쫓기듯 달려 들어가는 듯한 나의 모습에 갑자기 의문이 든 것이다. 칠십의 나이로 보아도 쫓기는 듯한 걸음, 갑자기 흉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내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것인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다는 것인가, 주위의 things (사람 포함)들이 보기도 싫다는 것인가?

나의 걸음에 비해 거의 거북이처럼 늦게 걷는 연숙을 본다. 물론 약해진 하체 下體 탓이라고는 하지만, 꼭 그것이 전부일까? 그것도 조금은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녀는 주위를 자세히 보기도 하고,  얘기하기도 하며 걷는다. 나에 비해서 ‘여유’가 있는 것이다. 특히 요새 같은 계절에는 더욱 그렇다. 온갖 만물이 다 화려하게 변하는 주위를 그냥 갈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저 ‘목적지’만 생각하며 주위에는 눈도 안 돌릴 때가 많기에 그저 빨리 걷는다.

오늘 유난히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 우연일까? 근래에 들어서 나는 ‘우연’보다는 ‘필연, 이유’를 더 믿게 되었기에 이것도 나를 일깨우는 무슨 higher message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오래~ 전 정확히 1974년 경 Mac Davis의 ‘기가 막힌 가사’의 ‘crossover’ oldie, ‘Stop and Smell the Roses‘ 가 생각난다. 당시의 나이에 ‘가사’를 알고 들었을 리가 없었지만 나이가 먹으며 계속 들으니 정말 ‘교훈 같은 가사’였다. 그 가사를 생각하니… 맞는 얘기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가.. 생각 좀 하고 만발한 꽃들의 향기를 사랑하며 하느님의 스치는 손길을 느끼면 누가 때리나..  바쁜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만든 여유’를 즐기는 것은 정말 ‘지혜서’ 급의 ‘유행가 가사’였다.

 

 

Stop and Smell the RosesMac Davis – 1974

 

¶  베로니카 3주기:  3년 전 이즈음 (정확히 5월 2일)을 되돌아 본다. 우연히 만났고 알게 되었던 나와 돼지띠 동갑 베로니카 자매님, 남편 타계 일 년 만에 두 젊은 아들 형제들을 뒤에 남기고 선종했던 그 해 찬란한 5월의 토요일 이른 아침, 큰아들의 새벽 전화로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 없이 hospice로 달려갔고, 싸늘한 엄마 옆에서 흐느끼는 다 큰 두 아들과 우리 둘은 연도 밖에는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옛 유행어로 ‘아, 무정 無情’ 이라고 했던가? 불과 2년 사이에 사랑하는 부모님을 모두 잃고 흐느끼는 모습은 내가 그들 대신 나의 부모님을 보내는 그런 슬픔이었다. 온 정성을 다해서 베로니카 자매님 세례를 받게 하여 떠나 보낸 것은 두고두고 보람을 느낀다. 연옥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연도라도 자주 바쳤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매년 가는 묘소, 올해는 큰 아들과 점심을 한 후에 갈 수가 있었다. 집에서 정성스레 꺾어간 예쁜 꽃다발, 바로 전에 레지오 주회합에서 성모님께 바쳤던 것을 자매님 묘소에 꽂아 주었다. 역시, 그 때와 같이 ‘찬란한 5월 2일의 태양’이 전 보다 더 커진 듯한 Winters Chapel cemetery 를 내려 쬐고 있었다.

 

베로니카 자매님, 올해도 저희들 다녀갑니다..

 

 

¶  Big Mac, Paraclete: Paraclete ‘파라클리토’ 라고 불리는 이 말은 그리스 어로 advocate, helper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가톨릭 교의에서는 Holy Spirit, 성령을 지칭하는 말이다. 2013/4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교리반에서 내가 맡았던 강의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성령이라고 하면 성삼위 성부 성자 성령 holy trinity 중의 하나다. 이것이 왜 McDonald hamburger 중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Big Mac과 연관이 되었나?

성령 세미나, 대회 같은 곳에서 흔히 보는 성령의 움직임을 나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삼위의 교의적인 것은 좋아하지만 사람의 움직임에서 보이는 성령은 때에 따라서 거부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분명히’ 나도, 내 안에서도 성령이 움직이고 있으리라는 확신인 것이다. 나의 느낌과는 상관이 없이..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그 ‘움직임’은 내가 확신이 없었을 뿐이지 많은 때에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변화다. 그것을 감지하기 시작한 바로 그것이.. 이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습관적으로 우리 둘은 아침미사가 끝나고 YMCA gym에 가기 전에 Sonata Cafe breakfast를 먹다가 아주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조금은 심각하게 발전을 하고 말았다. 지나고 보면 이런 일들, 참 사소한 것으로 판명이 되곤 하지만 그 당시는 사실 괴로운 시간이 아닌가? 오늘 하루 또 망쳤구나.. 하는 자괴감 뿐이었다.

그러다가 gym workout이 끝나가면서 불현듯, 정말 나도 상상, 예상치도 못한 때에 Big Mac의 모습이 떠올랐다. 때가 점심때니까 배가 조금 고파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웃기는 일이 아닌가? 결국은 Big Mac을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도 무언가 paraclete, helper의 도움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서 신앙, 신심은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  돌나물 비빔밥:  화창한 봄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의 냄새가 나는 음식이 등장했다. 우리는 점심을 제일 ‘크게’ 먹기에 제일 중요한 음식은 점심때 등장하곤 한다. 아침은 거의 내가 ‘고정식’으로 준비하지만 점심만은 ‘주부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기에, 예외는 있지만 연숙이 준비한다. 요새 한창 backyard에서 살다시피 하며 장차 ‘길러 먹을’ vegetable들에 온통 시간을 보내더니 오늘은 ‘돌나물’이란 것을 backyard에서 따왔다. 따온 것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기가 막히게’ 멋있고 맛있는 ‘돌나물 비빔밥’을 만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자연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맛도 아주 좋았다. 비록 Traders Joe brand이지만 wine까지 곁들이니… 이것이야 말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면..’ 이 아닌가?

Homemade 돌나물 비빔밥

 

¶  Ladder, gutter, roof:  정말 오랜만에, (extension) ladder 사다리를 움직이고, 오르내리게 되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는 일을 해도 주로 집안에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일이 2층의 laminate flooring job 이었다.

이후 기나긴 동면이 끝나고 날씨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니 주위에 만발한 화초들은 즐겁지만 우리 집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한마디로 집 자체가  tired, tired 한 느낌뿐이니… 주기적, 정기적으로 닦을 것은 닦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하면 문제가 없지만 우리 집은 ‘가훈 家訓’ 이 가급적 ‘남의 노동을 사지 말자’.. 비슷한 전통으로 있어 왔기에 원칙적으로 우선 내가 손을 보아야 했고, 사실 그렇게 수십 년을 버티어 왔다.

내 자신이 그런대로 weekend handy person이라고 생각하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문제가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바로 나의 ‘나이’다. 칠순이 지난 나이에 예전처럼 들고 뛸 수가 있을까?

2층 높이에 있는 roof rain gutter, 경치는 좋지만 수 많은 나무 잎들이 가을부터 떨어져 gutter가 완전히 막힐 정도, 올라가보니 완전히 ‘화분’이 되어 있었다. 이것을 청소하려면 사다리를 계속 옮기는 근육도 필요하지만 2층 꼭대기에서 절대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것 때문에 난 ‘치명적 사고’,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암만 Medicare가 있다고 해도 남들이 보면 바보짓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2층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아직 나의 몸에 문제가 없다는 조심스런 진단을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warming up을 계속하면 더 안전하게 roof/siding work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고, 아마도 siding 정도는 나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가을부터 떨어진 나뭇잎들로 gutter가 화분처럼 변한 모습

아무리 청소를 해도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별 수 없이 이정도의 모습일 듯

Garage 위의 roof는 경사가 아주 완만해서 안심하고 주위를 볼 수 있다

집의 정면 쪽을 향한 garage 위의 roof는 아주 급한 경사로 protective gear 없이는 접근 불가능

Main roof는 그런대로 보호 장비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

 

 

 

¶ 2018년 4월이 저문다. 올해 4월은 예년과 달리 옛날 옛적의 4월에 얽힌 것들을 별로 회상할 기회가 없었다. 예를 들면 ‘목련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박목월 님의 멋진 시와 가곡, 1960년 4월 19일의 광경들, 아니면 1970년 4월 용현이, 창희와 지리산 종주등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이런 저런 ‘옛날 것’들을 올해는 거의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거의 ‘현재’를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던 4월을 보낸 것 같고 그것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과거의 사나이에서 조금은 현재의 사나이로 돌아온 것인지.. 하지만 희망은 아름다운 지난날과 건강한 현재를 반 반 정도 섞어서 사는 매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2018년의 4월은 진정한 나의 ‘부활시기 4월 달’이 되었다.

 

¶ 목요회 Blues: 4월의 목요회 멤버들이 거의 5주 만에 다시 모였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조금은 별난 모임, 벌써 8번째다. 예상을 벗어나 한번도 거른 적 없이 성실하게 모여 지나간 ‘힘들었던’ 한 달의 이야기를 나누는 조금은 ‘청승맞게 보이는’ 우리 목요회, 어떨까, 언제까지 이 모임이 계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나간 7개월 동은 그런대로 서로의 지나간 이야기를 나눈 셈이지만 사실 아직도 궁금한 것들 투성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나간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써비스가 엉망인 어떤 Chinese buffet 에서 만난 자리에서  S 형제가 모임 줄곧 침묵으로 일관을 해서 우리의 신경을 쓰게 했는데, 이런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아마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인생이란 것, 특히 우리들의 삶, 결코 즐겁지만은, 쉽지만은 않은 것 알기에 이런 자리에서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더 걸려야 됨을 알게 되었다. 사실 S형제는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정도로 고민이 많은 듯하지만 현재로써는  ‘기도나 관심’ 이외에 별로 option이 없다. 다음 모임에는 조금은 웃는, 말을 다시 많이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 Days with Sherlock: 며칠 간 ‘탐정 미스테리’의 원조 격인 영국 코난 도일 Conan Doyle  원작의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영화를 찾아 (물론 Youtube) 보게 되었다. 대부분 1940년대의 흑백영화인데 download 한 결과 놀랍게도 아주 영상의 질이 요새말로 720p 정도의 ‘보물’들이었다. 어렸을 때 만화로 즐겨 보았던 탐정 미스테리 이야기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것들 역시 거의 모두 이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영국 문화의 영향인지, 모든 스토리나 scene들이 너무나 ‘고상하고 신사적’, 비록 범죄가 주제지만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안심하고’ 볼 수 있기에 Film Noir와 더불어 요새 즐겨서 보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된 Christian Writer의 대가인 C. S. Lewis 를 통해서 1940년대 영국의 여러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유명인, Sherlock Holms, 그리고 그의 sidekick 격인 Dr. Watson을  다시 찾게 되었다.

Sherlock Holms & Dr. Watson

 

¶ West Bank, again?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있나? 같은 달에, 그것도 2주일에 걸쳐서 같은 park로 두 번 picnic을 갔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희귀한 happening에 속한다. 첫 번째 picnic은 성당 등대회에서 간 것이고 다음 것은 역시 같은 성당의 레지오 야외행사로 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West Bank park 이었을까? 아마도 이 즈음에 이곳이 제일 경치도 좋고 가기도 좋은 곳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첫 번째 갔을 때는 날씨가 거의 비가 오락가락 하던 때였지만 두 번째는 날씨가 기가 막히게 화창해서 West Bank park의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다만, 레지오에서 간 것은 거의 ‘의무적’으로 간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모님께 드린 맹세가 있기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out of question이지만 세상사가 어찌 그렇게 예상대로만 되랴.. 그래도 이 화창한 날, 레지오 야회행사에는 장기유고 중인 ‘크리스’ 자매가 오랜 만에 모습을 들어내어 참석을 해서 반가웠다.

West Bank park under Spring Sun

 

4월, 四月, April.. 사월이 되었다. 4월은 나에게 어떤 것인가? 70년 동안 쌓인 기나긴 추억을 통해서 올해 4월은.. 태곳 太古 적의 원시적 온돌방에서 화롯불과  이불로 견디던 서울의 겨울을 벗어나 만나는 반가운 손님처럼 느껴졌던, 그것이 바로 4월이었다.

다시 골목으로 나와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던 찬란한 봄의 시작이 1950~60 년대의 가회동과 삼청동의 4월의 봄이었고, 자그마했던 ‘강북’ 서울이 10~20대의 함성과 카빈총소리로 요란 했던 찬란한 계절이기도 했다.

희미해져 가는 당시의 4월과 봄의 느낌들, 우연히 찾은 김남조 시인의 에세이 집 중의 ‘사월의 연가’ 가 현재 나의 심정과 어찌 그렇게 비슷한가. 어머님이 계시던 곳으로 이제는 편지를 보낼 수 없는 불효자의 심정과 공해 없이 맑던 당시의 ‘시원 始原 의 냇물’의 순수함.. 이제는 도저히 꿈 속에서조차 희미해지는 것들, 김남조 시인의 글 덕분에 조금은 되살아나는 것들.  느낌인가.. 아니면 바램인가.. . 아 사월이여, 사랑하는 사월이여..

 

 

사월의 연가 – 김남조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눈과 얼음이 얹히던 인동 忍冬 의 나무 살갗에 억 천만 만의 더운 손바닥들이 명주 피륙을 감아 훈훈히 속살마저 덥혀냄을 보러 나오세요.

봄을 맞는 나무 옆에 서서, 봄의 기운이 정수리까지 뻗치는 나무 옆에 서서 생명의 축복을 나누어 가지세요.

이슬을 보세요.

올해의 첫 이슬이 태초의 순수 그대로 영롱히 반짝임을 보세요. 다치지 않게 그 한두 방울을 손 안에 담아 보세요. 문득 새파란 하늘을 우러러 보세요. 옛날옛적 동심의 눈물 방울이 거짓말처럼 우리들 눈시울에 다시 치받아 어이없이 후두둑 떨어지는군요.

사월의 수분을 생각하세요.

겨우내 사람의 속 마음이 너무나 메말라 있었다고 여기던 터에 사월의 수증기를 생각하세요. 훈훈하게 축여질 알맞은 습도를 생각하세요.

사월의 아름다움을 누리세요.

단지 화사한 아름다움이 아니고 눈과 얼음에서 뽑아 올린 장한 아름다움을 누리세요. 광야의 기도사같이 인내와 신앙의 승리를 나누어 가지세요.

꽃을 보러 나오세요.

열 가지, 백 가지의 꽃을 보러 나오세요. 모든 꽃이 이 세상 유일한 꽃의 의미로 피어나는 절대의 숭고와 충실을 배우러 나오세요. 그 환희를 배우러 나오세요. 위로 위로 솟구치는 소망을 배우러 나오세요.

꽃을 보러 나오세요.

꽃의 언니들인 보리밭을 보러 나오세요. 삼월엔 땅 속에 벌여 놓던 초록빛 잔칫상을 오늘은 땅 위로 들고 나왔군요. 2월엔 어둠 속의 진통을 견뎌낸 그 갸륵한 것, 설한 雪寒 섣달엔 희미한 꿈이었던 그 눈물겨운 것.

보리밭을 보러 나오세요.

빛과 대기 속에 펼쳐지는 신록의 성찬식 聖餐式 에 참석하세요. 보리가 펴 놓게 될 순서들을 살펴보세요. 영글어서 곡식이 되고 타작마당을 거쳐 나와선 백설 같은 가루로 빻아져 떡과 술과 온갖 것이 되어서 많은 이를 먹이게 될 그 차례들을.

풀잎들을 보아 두세요.

얼음을 뚫어내고, 돌과 아스팔트마저 뚫어내고, 송곳처럼 디밀어 오르는 무시무시한 모가지들을. 어떻게 그 단단한 것을 뚫어내고 땅 위에까지 나올 수 있었나요.

당신은 믿고 계시겠지요.

도시의 봄 경치 속에서도 새싹들이 얼음과 돌과 아스팔트를 뚫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믿으시겠지요. 해빙의 낙수물이 기왓골을 타고 흐르며 그러한 몇 십 몇 백 년의 세월 사이에 마침내 동그맣게 섬돌이 패이고 있는 그 사실을.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꽃을 불러내는 바람을 만나러 나오세요. 피리 구멍으로 숨결을 디밀어 넣어 구슬 울리는 오묘한 가락을 뽑아내는 바람은 마술사랍니다. 사월의 바람을 만나러 나오세요.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외쳐 보세요.

자신의 내부에 굳게 닫아 두었던 문들을 열고 존재의 골짜기들을 향해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외쳐 보세요.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산울림 돌아 나오게 해 보세요.

사월의 함성을 들어 보세요.

눈 감고 귀 기울이면 영혼이 율연 慄然 해지도록 아름답고 장한 사월의 함성이 들릴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로 깨끗한 젊은이의 함성이 뜨겁고 끈적끈적한 피에 섞여 와아~ 와아~ 울려옴을 들을 거예요.

당신은 견뎌낼 수가 있을는지.

목청껏 울어 버리지 않고 참아낼 수가 있을는지. 이십 년 전의 우리 젊은이들이 외치던 4.19 의 함성, 3.1 만세처럼 폐부 속에서 터져 나왔던 정의의 함성, 인권의 함성이 펄펄 끓는 열탕으로 지금도 와아~ 와아~  울려옴을 들을 거예요.

사월의 강가에 나오세요.

아직도 위판은 살얼음인데 그 밑을 흐르는 물 소리를 들어 보세요.

졸, 졸, 졸, 실타래 풀리듯이 끊이지 않는 봄 시냇물 소리를 들어 보세요. 서럽게 허전하던 모든 날에 꼭 들리던 그 개울물 소리가 아닌가요.

물의 시원 始原 을 생각하세요. 삼국유사 때부터, 단군신화 때부터 흐르던 물 소리. 선사시대 때부터 흐르던 물 소리. 조상의 조상처럼 늙고 지혜로운 물을 생각하세요.

불을 생각하세요.

태초의 날, 처음으로 일궈지던 성화 聖火 를 생각하세요. 지존하신 여왕을 사모하여 그 몸을 불태운 지귀 至貴 의 불과, 불타서 새하얗게 잿가루가 되어 버린 열 아홉 살의 쟌다르크를 생각하세요.

불을 생각하세요.

불의 상징인 온갖 신성한 것, 온갖 진실한 것, 순애 殉愛 와 순국 殉國 을 생각하세요. 육체를 불사르어 영혼에 기름 따르던 이 나라의 순교사를 생각하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바위 살갗에 눈 트는 이끼, 진홍과 순백의 꽃들, 햇솜처럼 깔리는 봄 아지랑이, 꿈꾸는 연분홍의 조가비들을 생각하세요. 먼 데서 날아오는 새떼를 생각하세요. 훨 훨 훨 날아오는 빛부신 날개짓을 생각하세요.

땅 속에 뿌려지는 곡식들, 채소와 과일, 꽃씨며 갖가지 구근들…

사월엔 노동하세요.

심고 가꾸고 땀 흘리는 영광을 맛보세요.

나무 옆에 서세요. 주루룩 주루룩 속의 땀처럼 하얀 수액이 흘러 내리는 나무의 생리를 느껴 보세요. 사람의 몸 속에 피가 순환하듯이 나무들의 몸 속에도 수액이 돌아 퍼짐을 느껴 보세요.

거친 나무 등걸에 귀를 대면 똑딱 똑딱 시계 초침 소리를 내는 생명의 맥동, 생명의 울림을 들으세요.

사월엔 편지를 쓰세요.

두고 온 고향에도 편지를 날려 보내세요. 객지의 봄이 찬란하다 해도 어머니의 품과는 다른 점을 말해 보내세요.

사월에 편지를 쓰세요. 말할 기회를 미루기만 했던 사랑의 고백을 적어 보내세요.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이후에도 언제까지나 사랑하리라고 말하세요.

사랑만은 뉘우칠 수 없다고, 그 한 마디 말해 버리세요. 재회의 약속, 방문의 일정을 적어 보내세요. 아아 사월엔 사랑의 편지를 쓰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사월의 보석더미 옆에 서세요.

바라봄으로써만 기꺼운 일, 그렇게 욕심 없는 우리들의 꿈, 소박한 소유.

 

사월의 찬미가를 부르세요.

그리고 사월엔 교회를 찾으세요. 제단엔 성촉 聖燭 을 밝히고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으리니.

사월엔 교회에 나가세요.

하나님이 땅에 내려와 사람 손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다시 하늘에 오르시는 예수 부활에 참여하세요.

부활절의 기도를 드리세요. 복받치는 통곡으로 당신도 크게 한번 울음 우세요. 영생의 증거를 눈으로 보면서 주의 기적을 심령의 전부로 신앙하세요.

기뻐하세요. 기뻐하세요. 기뻐하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Windy March: 김민기 작사, 작곡, 노래의 70년대 oldie folk song ‘아름다운 사람‘ 2절 가사를 보면… “세찬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맞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40여 년 동안 잊지 않고 기타에 맞추어 읊조리는 노래, 오늘같이 세찬 바람 부는 날 실감나게 가사를 음미할 수 있다.

왜 3월 무렵 부는 바람은 그다지도 춥고 움츠리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찬란한 햇살에 깜빡 방향을 잃은 우리의 계절감각 때문은 아닐까? 봄의 시작이 일주일 가량 남았으니 아마도 우리의 의식은 분명히 봄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움츠려 드는 몸에 활력을 넣으려고 ‘일부러’ 동네 산책을 강행했다. Mexico에서 Spring break을 즐기는 새로니, 그 애의 home companion인 pet dog, Ozzie를 우리 집에 맡겨놓고 갔다. 이제는 하도 우리 집에서 자주 지냈기에 사실은 우리 식구같이 느껴진다. 주인인 우리 집 pet dog, Tobey도 이제는 체념한 듯, 그런대로 평화롭게 지낸다. 그 두마리 개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찬란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햇빛이 무색할 정도로 ‘움직이는 공기’는 무섭게 차가웠다. 3월의 바람은 역시..

반 세기 전 서울 거리를 걸을 때의 3월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복잡한 시내에서 맞는 강풍, 괴로울 때도 많았다. 머리 숱이 그렇게도 진했던 때, 날리는 머리가 흐트러질까 그것을 shop window에 비추어보며 가다듬던 어린 시절들, 하지만 여자들이 더 고생이었을 것이다. 한창 유행하던 mini-skirt를 입고 2층 높이의 ‘육교, overpass’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우리들이 보기에는 즐겁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고역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싸늘하고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온통 다리를 거의 다 노출시키고 활보하는 것..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것이 머리 속 깊이 남아있는 3월의 모습들..

그 이후에 이곳에 살 때 아이들 bedtime story로 책을 읽어 줄 때, Winnie-the-Pooh 의 추억이 또한 3월에 연관되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중의 한 그림..이 바로 바람에 날라가려고 하는 Piglet을 잡아주는 Winnie의 정다운 모습이다. 이것은 이제는 ‘미국적 추억’이 되었지만 이제는 하도 오래 전이라 미국적, 한국적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게 되었다.  바람을 동반한 3월의 추억,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3월을 맞게 될 것인지.. 아마도 그다지 ‘수많은 3월’은 아닐지도 모른다.

 

Darker Dawn again:  3월의 stupid ritual, 2째 주 일요일 오전 1시가 ‘갑자기, 강제로’ 2시로 변하는 해괴한 ‘법‘.. 나는 아직도 이 stupid하게 느껴지는 것 이해를 할 수가 없다. Daylight를 Save 하자고.. 이것 얼마나 귀찮고 번거롭고, 이제는 일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도 일깨워주는 고역이다. 벽시계 같은 것 바꾸는 것 이외는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바뀌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시간을 ‘법으로 강제로’ 바꾸는 것이 문제다.

 

 

그런대로 아침에 일어날 때 여명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깜깜해 졌다. 그것뿐인가.. 특히 봄에 바뀌는 시간은 아차 하면 내가 바보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일요일 아침, 목적지에 한 시간 늦게 도착하는 것, 충분히 가능하니까.. 수십 년 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TV, Radio) news를 완전히 잊고 살던 ‘공부하던 시절’, 나는 이 news를 놓치고 월요일 아침에 버젓이 수업시간에 1시간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시작할 시간에 모두 교실에서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을 보고.. 정말 바보, 바보.. 라는 웃음이 나왔던 그 시절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 Tax surprise:  예정보다 늦게 2017년도의 Federal Tax Return 을 끝냈다. 작년에는 2월 중에 했는데 올해는 분명히 tax를 ‘내야 할’ 것을 예상했기에 무의식적으로 게으름을 피었는지도 모른다. Tax를 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신나는 작업이 아니니까.. 그런데 놀란 것은 그 액수가 예상보다 많았던 것, 허~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나.. 의아하긴 했지만 알고 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연숙의 ObamaCare 때문이었다.

 

 

Medicare가 얼마 전에 시작되었기에 그 이전에 받았던 tax credit을 과도하게 받았던 것, 그것을 다시 ‘물어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조금 실망했지만 어찌하랴… Health insurance 를 큰 부담 없이 cover받은 것에 감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정당한 이유가 있는 tax는 정직하게 내야 하니까.. 사실 모든 것이 fair한 듯 하다.

 

¶ It’s Seventy, stupid! 어두운 새벽에 눈을 뜨고 멀리 있는 radio clock을 보니 6시 30분이 채 되지를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몸의 가벼움, 불현듯 일어나고 싶었다. 한 동안 (몇 주, 아니면 그 이상) 나는 아침에 일어날 적마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동반한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며 일어나기가 싫었다. 나의 기억에 이런 적이 없었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나는 그야말로 morning people, 이른 아침만이 주는 특유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람인데 거의 7시가 돼서야 간신히 일어나는 것, 한마디로 보통 때의 내 모습이 아닌데.. 이유를 생각해 본다… physical? mental? psychological? 아니면 혹시 spiritual? 

Physical한 것이라면.. 생각을 해보니 혹시 YMCA에서의 weight lifting 같은 운동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평소 때 하던 것들이 아닌가? 왜 갑자기 그것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적당히 자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그 이외에 무엇이 있나? 가족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대답은 ‘그 나이에 무거운 운동은 피하라’는 것인데.. 그 동안 문제가 없었던 것이 왜 갑자기 한참 동안 그렇게 ‘통증을 동반한 피로감’을 주었을까?

Mental한 것이라면.. 물론 있다. rage, rage.. controlled rage..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이 주었던 활화산에서 휴화산으로 잠든 잠자는 용암의 뜨거움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견딜 정도로 되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인가?

Psychological한 것이라면..  물론 있다. 그래서 찾은 것은 바로 70이란 숫자였다. 70세 생일을 전후로 ‘심리적 피로’를 겪은 적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안전하게 나는 그 담을 넘었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가? 70이 되면 이런 통증, 피로는 당연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저 심리적으로 stress를 받는 것이다.

Spiritual 한 것이라면… 이건 너무나 거창한 것 아닌가? 자비의 하느님이 이 나이까지 살았고, 근래에는 ‘우주창조의 진리’를 믿고 싶고 믿게 된 나를 이런 방식으로 일깨워 주실 것 같지 않다. 이건 아무래도 내 진단의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몸으로, physical 하게 느끼게 된 것은 역시 70의 나이란 숫자가 나에게 친절하게 충고, 경고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얼마 전 성당 60+ 친교단체 등대회 회원의 말: ’70은 역시 70이다!’ 그 자매 말의 뜻은 새겨들을 수 있었다. 70은 역시 70인 것이고… 요새 70은 예전의 60이다 라는 유행하는 말,  조심해서 새겨 들어야 할 달콤한 유혹일지도 모른다. 우선 단기적으로 나는  YMCA workout routine에서 weight (lifting) 의 무게를 하향조정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다.. 70은 70이지 60이 아닌 것이다.

 

¶ 우리들의 삼일절: 2018년 3월 1일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3.1절 이란 말, 아직도 생생하게 감정을 일게 하는 말, 유관순 누나와 서울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파고다 공원, 이날이면 각종 장식을 한 ‘3.1절 전차 電車’가 종로 2가를 오고 가던 날.. 먼 곳에서 회상의 파도가 몰려오기도 하는 날이 바로 3월 1일이다.

올해는 새로 만난 동갑내기들 덕분에 3.1절 ‘정치집회’1가 아틀란타에서 열린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아직도 젊은 애국자’들이다. 어쩌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사랑할까… 세상 돌아가는 것 잘 모르고 사는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잊고 살았던 3.1절을 그들은 새로운 사명으로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소시민인 우리부부에게 3.1절은 실질적으로 다른 기념일이다. 우리들만의 가족, 부부의 역사다. 1992년은 현재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사온 날, 2007년은 내가 레지오 협조단원이 되었고 부부가 같이 묵주기도를 시작한 때, 2012년 이때에 우리는 ‘평일미사’의 전통을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부터 우리는 이 우리들만의 3.1절을 자축하기로 하고 실행(외식)하고 있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 이목사님, Vincent Bakery & Cafe: 몇 개월 만에 이목사님 부부와  만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틀란타 한국학교에서 만난 (staff으로) 인연으로 한때 끊어졌던 연결의 고리가 몇 년 전부터 건강하게 다시 연결이 되었고, 착실하게 거의 정기적으로 이렇게 만난다. 오래 전에는 ‘목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던 나였지만 지금은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가급적 신.구교의 편견을 버리고 공통화제를 찾는다.

H-mart옆에 있는 Stone Grille에서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예의 ‘떡이네’ cafe 대신에 H-mart 근처에 있는 Vincent Bakery & Cafe엘 갔다. 몇 개월 전 목요회 친구들과 밤 늦게 이곳에서 coffee를 맛보고 인상이 아주 좋았던 기억으로 다시 찾은 것이다. ‘laptop으로 무장한 젊은 애들이 죽치는’ 그런 cafe가 아니고 쾌적하고, 시원하게 빈 공간이 있는 이곳, 제발 오래오래 business가 잘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우리 같은 oldie들도 이런 분위기를 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이날 이목사는 최근에 ‘개인적으로 하느님을 만난‘ 사적 체험간증을 들려 주었다. 요새 이런 얘기를 잘 안 하는 이목사였기에 예상치 못한 것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나도 그만큼 가슴이 열린 것이다. 몸의 건강이 제일 중요한 과제인 이 목사님, 부활절 지나고 귀국해서 건강진단을 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사목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는 듯 보이는 이목사, 건강상에 아무 문제가 없기를 기도하기로 했다.

 

Commonsense-Challenged Priests:  지나간 2주일(that is, two Sundays) 연속으로 가톨릭 신부라는 ‘직업 vocation, profession, job’을 다시 조명하게 되었다. 가톨릭 사제, 신부, 수사, 수녀 들도 우리들과 같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명심하며 다시 생각을 해 본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 그것이 사제들의 중요한 임무라고 하지만 그들의 행동거지는 어떤가?

두 가지 case를 지난 2주일에 걸쳐 보며, 비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평신도가 사제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대우, 대접’은 어떤 것인가?  만약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평생 겪어본 신부, 사제 수녀들 그런대로 꽤 있었지만 요새처럼 나를 생각하게 하고 괴로움까지 느끼게 한 적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정기적으로 보는 사제들은 거의 ‘이상적’인 분들이다. 이상적이 아니면 상식의 선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들이다. 문제는 가끔 보는 분들이나 처음 갑자기 보는 분들.. 전혀 예상치 못한 case들이다.

우선 가끔 보게 되는 사제의 case다. ‘윗동네 신부’, 가끔 보는 이분 나는 어떻게 생각 해야 할지를 모른다. 한 마디로 나에게는 ‘이상한 weird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그런 류의 사제다. 이번에 또 ‘겪으면서’.. 역시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엄숙한’ 미사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신자(노인들 포함)들이 기립한 상태에서 ‘rambling‘ social  comment (아니 이것은 lecturing이다)를 5분이 넘도록 하는 것, 이것은 한마디로 비상식중의 비상식이다. situation에 하나도 안 맞는 지나친 dry joke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 progressive한 것 (그런 것, 私的으로 하세요..)은 나에게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이 밖에도 예측하기 힘든 돌발적, 지뢰가 터져나올 지 모르는 사제의 언행, 한마디로 괴롭다.

그 다음의 case은 바로 지나간 주일, 강론에 나온 방문사제, snake oil salesman을 버금가는 이 사제, 완전히 common sense를 결여한 강론에서, 최소한 시간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1시간 30분의 강론도 사실 점심 후에 괴로운 것인데 break도 없이 2시간 30분을 끊날 듯 말듯 하며 싱글거리며 끌고 나가는 것을 보고, commonsense 101을 재수강하고 오시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우아… 피곤한 이 사제들이여!

 

  1. 근본적인 목적은 문재인 탄핵을 위한 것이라고 함

¶  싸늘한 2월의 마지막 날:  28일이 되었고, 결국은 2018년 2월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을씨년스럽게 싸늘한 가랑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 하던 날, 지난 며칠 동안은 이른 봄의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주더니 ‘아직 진정한 봄이 온 것이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라고 mother nature 는 일깨워 준다. 그래도, 그 동안 ‘갑자기’ 주위가 봄소식을 알리는 각종 식물들의 색깔로 채워져 가고 있었는데, 얼어 붓는 추위가 없는 한 그것들은 우리 둘에게 즐거운 화제가 될 것이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다.

얼마 전 이마위로 ‘재의 십자가’가 그어졌던 Ash Wednesday가 어느새  2주 전으로 멀어지고 있는가? 왜 이렇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는가? 지나간 2주 간의 사순절은 나에게 어떤 시간들이었는가? 새로 태어나는 삶을 향한 어렵고 고통스러워야 할 ‘광야의 40일’ 간의 시간을 나는 과연 올바르게 보내고 있는가? 나의 daily journal을 살펴보면 별로 큰 변화가 없는 비교적 ‘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싫다, 그런 나날들.. 하루하루 새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

 

¶  Cramming… 오래 전 학교에 다닐 때 심심치 않게 겪었던 습관들, 그야말로 ‘당일치기’ 비슷한 것.. 학교를 떠나며 이런 괴로운 ‘시험 보는 것과 당일치기’ 가 없어지는 줄로 알고 쾌재를 불렀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교시험과 비슷한 인생시험의 연속, 그곳에도 당일치기가 수없이 많았다. 당일치기 cramming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괴로운 것이다.

요사이 나는 잊고 살던 ‘당일치기’를 하고 있다. 2월 초에 우연히 찾아간 Coursera, 그곳에 나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았고 곧 ‘공부’가 시작 되었지만… 역시 제대로 매일의 study schedule을 따르지 않았기에 밀리기 시작하고, 오랜 만에 당일치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A Stanford online course,  ‘Understanding Einstein: The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였다. 두 달 정도 (8주) 계속되는 ‘미적분 이상의 수학이 필요 없는 특수 상대성 이론’, 목표는 다음과 같다.

Our goal will be to go behind the myth-making and beyond the popularized presentations of relativity in order to gain a deeper understanding of both Einstein the person and the concepts, predictions, and strange paradoxes of his theory.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미적분 이전의]이 필요한 이 course, 처음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의 ‘배경, 구조, 그리고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일 평생 거의 ‘만화, 상상과학 수준’ 정도의 매력에 빠지곤 했지만 (4차원의 신비), 이번에 그것의 ‘실체’를 접하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Harvard online course에서는 수학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편하기는 했지만 사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실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Stanford대학의  top-class Instructor Dr. Lagerstrom, 지나친 전문학술용어를 최대한 간결하게 사용하며,  ‘피부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론’으로 서서히 우리를 인도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어려운’ 과학이론을 가르치는 모범 case가 아닐까 나는 계속 놀라며 박수를 친다.

 

이 course를 통해서 내가 얻으려는 것은, 요사이 절제 없이 좁아진 인간관계를 보는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것이라는 ‘실체적 진리’, 바로 그것이다.

 

¶  레지오 간부교육:  지난 주말에 도라빌 순교자 성당, KMCC 꾸리아 주관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었다. 내가 레지오 간부[서기]가 된 것이 2012년 정도였으니 이제는 꽤 익숙한 경험이다. 모든 신심단체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사람들로 특정한 신심 조직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지만, 실제로 그런가? 물론 그것은 거의 이상에 불과하다.

그 동안 간부를 맡으며 지내온 동안 계속 느끼는 것은 나도 정말 부족하지만 어떻게 저런 자세로 단원 선서를 했을까.. 하는 놀라움이다. (성모님께 바치는) 선서란 것이 그렇게 형식적이었던 것일까? 실제로 하는 활동의 양도 중요하지만 단원으로써의 자세는 더욱 중요한데.. 암만 레지오 조직의 rule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토의를 해도, 왜 우리가 이런 것을 하고 있는지는 거의 잊고 사는 듯 하다.

레지오 간부교육 전 기도와 미사봉헌

 

기도와 활동이 균형적으로 적절히 강조되는 것에 대해서 레지오 간부들 조차 ‘해괴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왜 (묵주)기도하는 것을 발표를 하느냐.. (뛰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못해서 아예 레지오 교본을 완전히 잊고 열을 올리니..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사회봉사단체인 ‘한인봉사센터’에 가지 왜 레지오에 들어와 고생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미국 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주임신부 Fr. Miguel이 제일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지 않는 봉사활동의 허구성인데 바로 이런 꼴을 이곳에서 목격을 하니.. 이런 교본적인 것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는 곳, 이제는 거의 “무명무실 무감한 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르게 되었다.

 

¶  Cursing! 마귀 성토 聲討:   아녜스 자매님 부부와 오랜 만에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때 자주 보며 지냈던 이 부부, 이즈음 들어서 자주 못 보았기에 아주 반가운 모임이 되었다. 아녜스 자매님은 레지오를 통해서도 알았지만 형제님은  몇 년 전 내가 교리반 staff으로 있을 때 교리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자매님이 레지오를 떠나면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근래에 어떤 ‘성당 마귀’에게 잘못 걸려 지독히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동병상련 同病相憐’ 의 심정으로 이날 ‘마귀성토’를 속 시원히 하게 되었다.

예전에 우리 눈에 별로 안 띄던 ‘진짜 여자 마귀’들의 존재를 실제로 ‘당하고, 보고, 듣고’ 하면서… 이 세상은 역시 ‘불완전한, 악이 상존하는’ 그런 곳임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가 겪었던 ‘레지오 미친년 마귀’나 이 자매님이 겪었던 다른 ‘마귀’나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의 불쌍한 인간들임을 실감할 때, 분노 이전에 슬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 두 case모두 진정한 용서는 out of question이다. 하지만 형식적, 휴전적인 용서는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로 그것은 tall order…. 힘들겠지만 그저 잊고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등대회, Computer/Tech Talks: 매달 마지막 주일에 모이는 60+대 성당친교단체 등대회, 이곳에 참석한 것이 이제 몇 달째가 되어가나.. 지난 해 9월 무렵에 가입을 했지만 아직도 나는 ‘신입’에 속하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Regular 들(자주 참석하는) 대부분은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듯하지만 ‘안 보이는’ 사람들은 내가 알 길이 없다. 이 모임의 성격은 알듯 하기도 하고 확실치 않을 때도 없지 않다. 100% 친교? 그러면 교회 밖의 모임과는 무엇이 다른가? 설립목적, 아니면 mission statement같은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보통의 생각으로도 몇 가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사명과 목적’은 있을 것인데.. 그 중에 ‘간단한 봉사’ 같은 것도 있음직도 해서 어렵사리 제안을 했지만 ‘그런 것 이곳에서는 안 맞는다’ 라는 여론이다.

그러면 다음은 무엇인가? 성당 공동체 다음으로 모든 회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서로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자는 idea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무엇을 할 지는 문제일 것이다. 예전에 보험, 의학 정보 presentation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배우는 program’ 을 계속하자는 idea가 나왔고 스테파노 형제가 일반적인 computer technology 에 대한 것을 나에게 제안을 해서… 큰 생각 없이 ok 를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도 생각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Computer technology라면 덩치가 너무나 큰 것이라 접근하기에 따라 무척 복잡한 것 아닌가? 한 달이라는 시간은 있지만 아무래도 다음 달 말이면 ‘성주간’인데…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해 보자!’, Don’t think twice, it’s alright!

 

 

¶  Home Wi-Fi Infra Upgrade, Finally!

 

TP-Link AC1200 Wireless Wi-Fi Access Point – Supports 802.3AF PoE, Dual Band, 802.11AC, Ceiling Mount, 2×2 MIMO Technology (EAP225)

1200Mbps Wireless USB Wifi Adapter, FayTun USB Wifi Adapter,
AC1200 Dual Band 2.4GHz/300Mbps+5GHz/867Mbps,
802.11 ac/a/b/g/n High Gain Antenna

Wi-Fi, 아마도 이 말은 반세기전 home audio system의 표준이었던 HiFi (High Fidelity) audio  에서 유래되었을 듯 하다. 이제 이 말은 wireless Ethernet standard로서 ‘wired Ethernet’ 의 extension을 뜻하게 되었다. 처음  device들이 나왔을 때는 사실 거의 실용 불가능에 가까운, 느리고 연결이 끊어지곤 하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나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벽 속으로 Ethernet wire (CAT5,6 cabling)를 설치하는 것, 아마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작업일 것이지만 우리 집은 1990년대 말에 이미 coax cabling (before CAT5 cabling standard)을 설치해서 쓰고 있었고 나중에는 모두 CAT5/6 로 바꾸었다. 그러니까 3000 sf (square feet)크기의 우리 집은 아래 위층에 있는 desktop computer들이 모두 network이 되었던 셈이고 Wi-Fi infra의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그 이후에 Wi-Fi device들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바로 mobile device (laptop, mobile, Smartphone같은)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st generation Wi-Fi  (access point, router)를 설치해서 간간히 쓰고 있었는데… 문제는 mobile device들이 network speed가 점점 빨라지면서 (특히 요새 나오는 Smartphone들) 우리 집의 Wi-Fi system이 따라가지를 못했던 것,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Smartphone에서 streaming video가 거의 필수가 되었지 않은가?

우리는 집에서 smartphone으로 video를 안 보기에 몰랐는데… 큰딸 새로니가 가끔 집에 놀러 오면 불평이 대단했다. 자기의 iPhone에서 Internet video를 볼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Wi-Fi router를 설치한 것이 아마도 거의 7~8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예전의 Wi-Fi system, 느리고 문제가 많았기에 거들떠도 안 보았는데…

할 수 없이 요새의 system을 찾고 샀고 설치를 했고… 결과는… shocked! 완전히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 동안 wireless technology는 경이적인 발전.. 특히 MIMO (multiple antenna) technology의 효과는 놀랄 정도.. 우리 집의 모든 mobile device들 완벽하게 network에 연결되고 안정되고 표시된 최대의 speed, 게다가 device들의 값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reasonable 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놀란 것은 우리 wired network (file server, Internet access) 에 연결된 내가 매일 쓰고 있는 workhorse desktop pc (Windows 10 box)가 이제는 100% Wi-Fi로 쓰고 있는데, ‘한번도’ hiccup 조차 한 적이 없다는 사실.. 놀라고 놀라고 있다.

 

¶  우수 雨水: 그렇게 ‘한결같이’ 추웠던 올 겨울도 이제는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가? 지난 주부터 바깥 풍경들에 색깔들이 섞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수선화들, 얼마나 반가운 모습이었던가? 그런 soft object들이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 아니 이제는 그것들이 무엇들인가를 알게 되고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솔직히 반갑다. 나도 ‘목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나간 월요일 2월 19일, 이날의 ‘레지오 수첩‘을 보니 ‘우수‘라고 적혀 있었다.  무엇인가 푸근한 고향냄새가 풍겨 나옴을 느낀다. 우수… 우수수가 아니고 우수, 한자로는 분명히 雨水, 그러니까 빗물인가? 이날 하루 가느다란 가랑비가 왔다 갔다 하면서 ‘빗물’을 내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어렸을 때, 원서동 시절 비원 담 옆 개천가에 같이 살았던, 재동국민학교에 같이 다니던 한완수의 형 ‘한우수‘란 이름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나는 이 절기 이름인 우수란 단어를 보면 이 ‘한우수'(형兄)의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어린 마음의 유치함은 이런 것도 그렇게 재미가 있었고 연상을 통한 기억력에 감사하기도 했다. 재동학교 한완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그의 형 한우수 형은 어떤 인생들을 살았을까? 이날 하루 나는 ‘빗물의 날, 우수’ 란 단어에 의한 전설 같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  Sick Day: hump day 하루가 갑자기 sick day로 변해 버렸다. 이런 것, 예기치 못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것이 a day in the life, 지극히 정상적인 인생의 한 snapshot일 지도 모른다. 하루 일과의 시작인 아침미사가 갑자기 cancel 되었다. 이유는 역시 연숙의  insomnia일 수 밖에 없다. 왜 그렇게 수면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병적인 불면증’인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저 죽는 병이 아니라는 것에서만 위안을 얻는다. 다행히 꼭 나가야 할 절대적인 의무가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직장 같은 것이 있어서 ‘출근’같은 것을 해야 했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심각한 병으로 간주되어야만 했지 않았을까?

그날은 그것으로 얌전히 끝나지 않았다. ‘우리식구’ Tobey(pet dog)가 갑자기 조용한 것이다. 보니…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눈도 거의 감고 있고, 숨소리도 약하다. 이것은 무엇인가? 짐작에 전에 겪었던 ‘신경통’이 재발된 것으로 보였다. 전에도 ‘죽음을 준비했던’ 경험이 있었다. 알고 보니 신경통으로 몹시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전혀 움직이지를 못했다. ‘기적의 약’을 먹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도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정도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이 녀석의 ‘인간나이’가 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듯해서 ‘누가 먼저 이세상을 떠날까’ 하는 방정맞은 묵상을 하기도 한다. 들은 얘기로 죽음이 임박한 동물들이 자기가 ‘누울 곳’을 찾는다고 한다. 동물들은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물론 그들의 생각은 인간과 같은 ‘철학적’인 것은 아닐 것이지만 그들만의 본능적인 예감, 경험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개나 고양이와 가깝게 되면서 나는 오랜 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들만의 기쁨과 고통’을 실감하게 되었고 특히 그들의 고통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나만의 고통이 되었다. Narnia  book 저자로 유명한 C. S. Lewis의, 1940년 간행된 The Problem of Pain의 마지막 chapter는 Animal Pain 으로 할애되어 있어서 동물들의 고통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려고 했고, 나도 Lewis와 거의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마도 그 동안 나의 ‘동물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질타와 교훈이 아닐까… 이 뜻밖의 sick day에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고 갔다.

 

Billy Graham, 1966

¶  R.I.P: Billy Graham (1918~2018): 표준 한글표기법으로 어떻게 쓰나… 빌리 그래함? 빌리 그레이엄? 아무래도 좋다. 이분 한마디로 개신교의 거목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세상을 떠났다. 2월 21일에 돌아가셨는데, 오랜 동안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런 뉴스를 접하니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분은 나에게 어떤 분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 어머님보다 한 살이 많다는 것, 우리 부모 세대의 미국인 목사, 전도사, 부흥사.. 이런 표현들 모두 부족하다. 이분은 그런 표현을 모두 초월하는 위치를 가진, 사실은 ‘미국의 생각’에  막강한 영향력을 주었던, 종교인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아마도 믿음이 있건 없건, 직업에 상관 없이, 거의 모든 미국들을 포함한 전세계적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물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이분의 설교를 ‘들었던’ 것은 1950년대 서울에 있었던 ‘기독교방송국’에서 정기적으로 방송하던 Hour of Decision이란 영어 program이었을 것이다. 그때 사실 나는 그 방송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우렁차게 나오는 그 ‘영어’가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들렸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멋진 영어는 Billy Graham목사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멋진 영어’의 주인공은 각종 잡지, news매체를 통해서 익히 알게 되었고 1970년대 초에 내한, 여의도 광장에서는 거대한 집회가 열렸고, 그 이후 미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TV에서 보기도 했다. 당시 신앙이나 믿음이 없었던 관계를 그저 유명인사의 강연 정도로 들었지만 아마도 그런 설교가 전혀 나에게 영향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있다. 년 전에 YouTube에서 그분의 TV crusade를 다시 보니, 이제는 그 설교의 대부분이 이해가 된다. 천주교, 개신교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멋지고 공평한 설교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거의 scandal 없는 기적을 낳기도 한 이 거목의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을 이제는 들을 수 없다는 것, 무언가 허전하고 사실은 조금 불안해지기도 한다.

 

¶  Spring at Home Depot: 거의 80도의 ‘봄기운’이 예보된 날 목요일 아침, YMCA routine을 마치고 모처럼 Johnson Ferry Road쪽으로 차를 돌려서 Trader Joe’sHome Depot엘 들렸다. 나에게는 싸지만 그런대로 좋은 (white) wine 이 주목적이었고, 봄기운에 들떠있는 연숙에게는 composted cow manure 같은 ‘토양 영양제’ 가 목적이었다. 춥고 기나긴 겨울을 지낸 garden center, 이번에 가보니 완전히 봄이었다. 각종 꽃나무들, 화분 꽃들이 찬란하게 그곳에 있었다. 물론 다시 한번 빙점을 오르내리는 추위는 다시 올지라도 봄의 기운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할 듯하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어찌 이런 것들이 우연히 생겨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Thursday’s Friends: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3명의 남자들이 모이는 우리들의 ‘목요회’ 만남이 2월에는 거의 일주일이나 빠르게 왔다. 2월이 28일인데다가 마지막 날인 28일이 수요일인 관계로 그렇게 된 것이다. 1월에 만난 것이 엊그제 같아 지난 번 모임의 기억이 그렇게 희미하지는 않지만, 이번의 새로운 만남은 나중에 어떻게 기억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3명은 실제적으로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에 털어 놓을 것, 나눌 것 들이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다만, 그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상처를 건들이지 않고’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이 이 모임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이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의견이나 경험은 가급적 피하자는 나의 생각은 그런대로 현재까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날의 모임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화제인가를 보여주는 testy한 대화가 나오긴 했다. 요새 돌아가는 정국이나 세태가 양극화 polarization 되어가고 있어서 우리들도 이런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그 중에 제일 심각한 쟁점은 역시 ‘대한민국의 정세’에 관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우리 세대의 여론은 실감적으로 알고 있지만 문제는 대화가 거의 안 될 정도로 ‘비이성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우리 모임도 이것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임을 잘 알기에 가급적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허심탄회 虛心坦懷 하게 ‘자기 입장’을 나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전까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부드러운 사랑의 분위기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희망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으면 무엇이 문제랴… 늦은 밤 맛있는, 영양가 듬뿍한 알찌개와 소주 한 주전자가 있는 모임에서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달 모임은 성목요일 문제로 한 주일 앞당겨 ‘예외적’으로 우리 집에서 모일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된다.

 

봄의 소식, 다시 돌아온 수선화.. 황폐한 겨울의 낙엽 속에서

¶  아.. 수선화… 며칠 동안  backyard에서 갑자기 포근한 날씨를 맞아 부지런히 지난 겨울에 남은 낙엽을 치우며, 땅을 어루만지던 연숙, 나에게 올해 첫 수선화 daffodils 가 피었다고 알려주었다. 옆집 담장을 따라 조그맣게 줄을 서서 어렵사리 고개를 든 진한 노란 색의 꽃, 사순절 lent 의 백합 lily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수선화의 청초한 모습으로.. 사순절은 본격적으로 진행 될 수 있게 되었다. 2주 전 groundhog day에서 아주 추운 겨울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고를 받았던 올 2월의 남은 겨울, 결국은 mother nature에게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것인가.. 아니다. 오랜 세월의 기억에 의하면 20여 년 전, 3월 중순에 피부로 경험했던 (WINTER) storm of the century를 잊을 수 있으랴… 그래도.. 가끔 이렇게 진정한 봄을 느끼게 해 주는 자연의 자비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Welcome (back), daffodils!

 

동네를 걸으며 playground의 bench에 누워 보이는 하늘은..

¶  Walk around neighborhood:  얼마만인가? 이렇게 우리동네를 Tobey를 데리고 걷는 것이.. 지나가고 있는 겨울이 걷기에는 너무나 추웠고 얼마 전 13살이 된 pet dog Tobey도 예전과 같이 ‘신나게’ 걷는 것 같지 않은 것 같아서 그 동안 거의 걷지 못했다. 우리 neighborhood는 아주 커다란 circle 처럼 되어 있고 경치도 괜찮아서 걷기에 안전하고 적당한 운동도 된다.

2007년부터 거의 정기적으로 Tobey와 걷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YMCA의 indoor track에서 운동으로 거의 45분간 걷기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extra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따로 lower body workout(주로 weight training) 도 하기에 하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문제는 연숙이다. 하체 운동을 따로 하지도 않고 나와 같이 동네를 걷지도 않고 유일한 운동인 수영 만으로는 하체 운동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주위로 부터 나이가 진행되면 하체근육의 중요성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주로 ‘넘어지면서’ 생기는 사고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결국 따로 하체운동을 하는 것이 거의 ‘필수’라는 것을 뜻할 것이다. 유별나게 앉고 일어나는 것이 불편하게 보이는 연숙에게 하체운동을 권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나와 같이 동네를 걷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너무너무 오랜만에 Tobey와 우리 둘, 동네를 걸었다.

이제 문제는 이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 이것은 충분히 가능할 듯 하다. 본격적으로 봄이 오기 시작하면 동네 주변의 ‘앗찔한’ 경치를 마다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가느다란 빗소리에 깨어 오랜만에 7시 전에 일어났다. 요사이 들어서 나는 아침 일찍, 그러니까 6시 대 帶 에 일어나는 것이 갑자기 버겁고 힘듦을 느끼며, ‘억세게’ 싸늘한 공기에 질려서 따뜻한 곳에서 나오기가 싫었다. 이것도 70세가 된 증후군의 한 가지인가? 이러한 잠재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오늘은 용감하게 6시 대에 일어났다. 느껴지는 공기가 예전과 조금 다른데.. 아하.. 그렇게 싸늘한 느낌이 아닌 포근한 것, mild한 공기의 느낌.. 올 들어 자주 못 느끼는 그런 따뜻함이 나를 침대에서 나오게 한 것을 도와 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은 삼한사온 三寒四溫 의 자연스러운 날씨의 묘미가 거의 없었다. 강추위도 가끔 있었지만 그것보다 나를 은근히 놀라게 한 것은… 거의 매일 추웠다는 느낌.. 아마도 기후통계도 나의 느낌과 거의 일치할 것이다. 변함없이 거의 매일 ‘춥다’ 라는 것, 이것이 이번 겨울의 ‘이상 異常’ 일지도 모른다. 비록 global cooling까지는 아니더라도 뉴스에 의하면 이것도 global한 것이다. global warming 이 덜 느껴지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무언가 ‘수상’한 느낌은 떨칠 수 없다.

 

올 겨울 몇 년 전처럼 Midwest에 살 때 입었던 각종 ‘겨울 옷’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sweater들, 거의 매일 입게 되었다. coat류가 거의 필요 없던 이곳에서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춥고, 음산하고, 젖은 듯한 날씨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제는 조금은 포근한 (하지만 덥지 않은) 그런 느낌을 찾는 나를 보면 역시… 역시.. 70이라는 숫자가 다시 한번 나의 현주소를 일깨운다.

포근한 공기를 몰고 온 폭풍우가 아침 우리 집을 온통 때린다. 겨울 내내 쌓였던 roof gutter의 낙엽들 덕분에 빗물이 폭포수처럼 창문으로 흘러 내린다. 올 겨울에 나는 ‘정신적 피곤함’을 핑계로 gutter cleaning을 거른 탓에 정직한 빗물은 gutter를 넘치며 벽을 타고 흘러 내린 것,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하지만 그 물들, 덕분에 우리 집 벽돌담을 깨끗이 씻어주고 먼지 낀 창문들도 따라서 깨끗이 청소해 주고 있다. 언제나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기에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Thundering shower, Saybrook style

 

어젯밤 chronic insomnia로 고생하는,  또 잠을 설쳤을 연숙, 아침 제 시간에 아침 미사에 맞추어 일어나긴 했지만 거의 ‘인사불성 人事不省’의 얼굴이다. 우리는 sprinter가 아니고 marathoner라는 motto를 다시 한번 일깨우며 오늘 미사는 쉬기로 결정한다. 음산한 날씨와 불면증은 거의 toxic mix 이기에 이것이 현명한 결정인 것이다. 이런 ‘지혜’ 덕분에 우리는 지난 6 년 동안 ‘매일미사’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 것, 역시 advance 한 (지긋한) 나이 탓일 것이다. 아마도 (car) drive를 할 수 있는 한 이런 전통은 지속될 것이고 그렇게 희망하고 있다.

2nd cup (of coffee)가 끝나니 새카만 하늘에서는 드디어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Electrical energy가 가득한 하늘은 기온이 그 만큼 포근해 졌다는 뜻이다. 2월 초, 아주 짧은 (하기야 입춘이 지났으니..) 순간에 느끼는 봄기운이 상상되는 뒷마당.. 비록 모습은 아직도 황량하지만 거의 매일 연숙은 그곳을 거닐고 땅을 들추어내며 올해의 ‘텃밭’ 계획을 상상하는 모습을 요새 며칠 본다. 형체가 사라지고 있는 vegetable garden의 fence를 올해는 반드시 새로 만들려고 나도 생각을 하는데.. house work project가 너무나 많이 밀려 있어서 어떤 것부터 시작할지 난감하다.

우선 해야 할 것은 (income) tax return, 우리의 income structure가 조금씩 변하고 있어서 그 동안 ‘무미건조’했던 이 yearly paperwork이 조금씩 흥미로워 지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도 ‘치매, 망각증’ 방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의 financial 에도 도움이 될 것이니.. 이것도 win-win 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오늘 오후 편한 시간에 우리를 몇 년 동안 도와주던 (tax site) freetaxusa 를 찾아 매년 느려져 가는 머리를 굴려볼까…

 

 

Frozen land, Saybrook court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어두운 집 주변이 비교적 환하게 느껴진다. 잠결 속에서도 어제부터 예보된 대로 집 주변이 모두 눈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기예보의 timing은 거의 정확한 듯 보인다. 늦은 저녁에 차가운 비로 시작된 것이 시간이 가면서 눈으로 변했지만 그것이 진짜 news는 아니었다. 바로 wind chill 화씨 제로.. 기온이 수십 도 가 떨어지면서 불어오는 바람..

아침에 Tobey 를 밖으로 잠깐 내 보냈더니 pee pee 만 잠깐하고 곧바로 들어온다.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는, 햇빛은 찬란한.. 땅을 보니 이것이 바로 어떤 시인이 말했던, 凍土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정도면 오늘은 100% hunker-down day 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덕 길이 완전히 빙판이기 때문에 drive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이 빙판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일 아침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결국 오늘은.. 올 겨울 들어 2nd snow day가 된 셈이다.  비교적 따뜻하게 무장한 나의 보금자리에서 coffee를 마시며 relax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직업상, 사정상 꼭 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relax할 것 만은 아닐지 모른다.

 

이제 2017년도 4시간이 채 남지 않았고, 밖에서는 은은히 firework소리가 들려온다. 올해 3-2-1 Happy New Year! 는 연숙과 둘이서 하게 되었다. 새로니는 New York의 친구 baby의 baptism에서 ‘대모’을 맡게 되어서 없고 나라니는 아마도 boy friend와 함께 보낼 듯하다. 대부분 서울에 사시는 친척들, 지금쯤은 그곳은 벌써 2018년의 아침이 밝았으리라… 근래에 들어서 연락도 잘 못하고 사는 것, 항상 나의 어깨를 누르는 듯 죄스러운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연숙아, 애들아, 새해가 되면 더 부지런히 연락을 하며 살면 어떨까..

TV에서 New York city, Time Square의 ‘apple‘ countdown을 보려고 부지런히 TV setup을 했다. 이것, TV를 안 보고 산 지 몇 년이 되었는지.. 분명히 Internet에서 볼 수 있겠지만 큰 화면에서 보는,  수많은 인파가 지켜보는 ‘진짜’ countdown의 느낌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며칠 전부터 북쪽 (Northeast, Midwest) 서서히 ‘남하’하는 cold wave의 여파로 이곳 아틀란타 지역도 오늘 밤부터 기온이 계속 내려가서 New Year’s Day인 내일은 낮의 최고가 32도 (섭씨 0도)라고…  우아… 춥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귀찮아서’ 피해오던 3-2-1, boom!, happy new year! Champaign!  Auld Lang Sygnmidnight routine 을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부활을 시킨 것, 너무나 잘한 것 같다. 이런 것… 솔직히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하겠는가.. 새해가 되면 70으로 진입하는 내 나이를 생각해보니 더욱 그렇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2017년, 되돌아 보니 아주 힘들었던 때가 우선 떠오른다. 그것은 정말 잊고 싶은 기억들… 하지만, 그 어렵던 순간들을 나는 blog에 모두 역사로 남겨 두었다. 그 추악한 인간들을 죽기까지 다시 보기 싫지만 역사는 역사인 것이다. 그 추악한 기억들을 남은 삶의 교훈으로 삼으며 앞을 보고 나아 가면 된다.

 

** 저를 직접이나 간접으로 아시는 분들께 새해의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만사형통 萬事亨通 하시고 건강하세요! **

 

Herman’s HermitsI Understand – 1965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서 이곳 Atlanta Metro 지역의 날씨, 한마디로 1971년 Clint Eastwood의 첫 감독 영화, play misty for me.. 에 뽀얗게 흘러나오던 曲 Misty가 귓가에 흘러나오는 느낌으로 mist, misty & misting의 연속 편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 아침에 drive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날들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늑하고, 멋진’  winter holiday  냄새가 하늘에 가득한 날의 시작으로 느껴진다. 

 

어제 아침 ‘평일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것이 몇 년 만인가.. Sherlock (집 근처의 liquor store)에 들렸다. 물론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으러 왔지만 사실은 나도 오랜만에 whisky같은 hard liquor의 혀끝 맛을 보고 싶던 참이었다. wine, beer같은 것으로 술 맛의 기억의 명맥을 유지하는 근래 들어서 나는 ‘양주’의 맛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 주로 wine아니면 local microbrewery beer면 대 만족이었기 때문에 whisky, vodka같은 ‘쎈 술’ 은 사실 나와는 거리가 먼 술들이 되었다.

하지만 이날 Sherlock 술가게에 들어서면서 나의 눈에는 ‘쎈~술’들만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그 혀끝 맛의 추억이 되돌아오고 오랜만에 한번 맛을 볼까 하는 ‘충동구매’ 의 유혹을 느꼈다. 선물용으로는 본인들이 좋아한다는 bourbon 중에서 조금 비싼 것을 산 것으로 쉽게 해결이 되었는데, 문제는 나의 것이었다. 추억에 남는 것들, Johnnie Walker같은 Scotch whisky 중에서 고를까..하다가 아하 이것들 나의 수준에는 조금 비싼 것이 아닐까 망설였다. 그러다가 나의 눈을 끈 것이 있었다. Canadian Mist, 그러니까 Canada 에서 만든 whisky 였다.

 

 요즘 같은 misty day에 캐나다 mist란 이름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가? 값에 상관없이 그것을 들고 나왔다. 나중에 보니 값도 ‘나의 수준’에 딱 맞았다. 올 추운 겨울 기분이 쳐지거나,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반대로 너무 기분이 좋을 때에 이것을 조금씩 홀짝거리면 맥주나 wine같은 술과 달리 큰 배탈 걱정 없이 멋진 기분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런 종류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1970년대 초의 명동 cocktail house 호무랑 의 추억을 더듬으며, 당시의 가족, 친구, 연인들을 생각할 것이다.

 

Hitchin’ a RideVanity Fare – 1970  

 

¶  Saturday at Monastery: 지난 토요일 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 학생, 교사들과 함께 Conyers, Georgia (east Atlanta suburb) 에 있는 Monastery of the Holy Spirit (간단히 Conyers수도원이라고 부르는) 를 방문하게 되었다. 몇 년째 (아마도 4+  년?)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는 ‘짧은 전통’이 되었다. 전 주임신부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교리반 예비신자들이 세례 받기 전에 꼭 수도원을 방문하도록 권고를 하셨음에 이 짧은 전통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수도원의 역사는 2차대전 무렵으로 올라가는 비교적 긴 것이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과 그 유명한 영성가 Thomas Merton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있다. 이 수도원을 창립한 member들이 Thomas Merton 신부가 있었던 Kentucky 주의 Gethsemane Trappist  수도원 출신들이었던 것이다.

근래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 The Benedict Option 을 염두에 두며 생각하면, 이곳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낯선 곳이 아닌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절과 비슷한 수도원’으로 언제나 포근함과 위안을 주기도 하는 곳, 원하면 세속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2013년 겨울, 나도 교리반의 교사, staff의 일원으로 예비신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고 그 외에도 레지오 피정 당시 며칠 머물렀고,  몇 년 전에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과 ‘자비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현재 주임신부님은 예비신자들의 수도원 방문의 의미를 잘 이해를 못하는 듯 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신부님들마다 수도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왜 그럴까? 하지만, 편한 거리에 있지는 않지만 일단 가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신비스러운 곳’에서 ‘보편적이고 장구한 역사를 가진’ 천주교의 냄새를 맡게 한다는 것은 크나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도자들과 피정 온 평신도가 함께 바치는 ‘낮 기도’ 에 우리 모두 경건하게 앉아서 오랜 만에 ‘평화의 신비’를 경험했고, 나중에 Abbey Store (bookstore, gift shop, small dining)에 모여서 맛있는 Publix sandwich, gourmet coffee (정말 향기 좋은 coffee였다) 를 먹으며 교사들의 ‘수도원 역사’ small talk과 각자 느낀 것을 share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천주교가 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마음 속으로, 이들 예비신자들, 내년 부활 때 모두 세례를 받게 되기를 간구했다. 이번에 나는 100% volunteer로 ‘따라’ 간 것이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가 오면 또 가리라 마음을 먹었던, 진정으로 ‘평화스러운’ 대림 2주, 토요일 이었다.

 

 

¶  마리에타 사랑반: 나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사랑반의 구역모임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꽤 오랜 동안 나는 이곳 참석을 못하며 살았는데 이번은 조금 예외가 되었다. 평상시 처럼 개인 집에서 모인 것이 아니고 바로 성당 내, 조그만 방에서 모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때 거대한 monster처럼 커져버린 ‘전 마리에타 2구역’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공식적으로 breakup이 되어서 ‘자비반, 사랑반’ 등등 같은 이름의 smaller group으로 나뉜 것도 이제는 몇 년째가 되었나? 우리에게는 조금 한 집에서 모이기에 편한 새로운 group으로 되었지만 그래도 무슨 높은, 숨은 뜻이 있었는지, 이곳엘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정도의 느낌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 없이 기다리는 것은 무리, 무리… 우리의 ‘나이’를 잊고 살았는지.. old boy의 수준에서 이제는 ‘명퇴 한 나이’의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나이의 신비가 이런 것인가?

두 곳의 본당[마리에타 Holy Family, 도라빌 순교자 성당]을 가진 우리에게 100% 순교자 성당의 구역 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는 무리인 듯하다. 현재의 사는 방식, 그러니까 status quo의 지혜를 버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런 우리의 자세가 남들에게는 아마도 그렇게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현재로써는 어쩔 수가 없다. 당분간, 어느 정도 이 모임에 참여를 하며, 어떻게 ‘명퇴’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이것은 나에게 결정하기가 참 힘든 문제다.

이날 성당 내에 구역모임은 우리와 자주 만나며 사는  ‘크리스’ 자매가 host를 한 것으로 총무님과 같이 맵시 있게 차려놓은 champaign 이 포함된 snack table 주위에서 담소를 즐겼다. 아마도 자택에서의 모임이 힘든 것을 이렇게 지혜롭게 해결한 것, 아주   지혜로운 idea였고,  현 총무 자매님의 의욕과 사랑으로 임무 수행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  Cumberland Mall: Holiday mall shopping.. 이런 글자만 보아도 머리가 벌써 복잡해지고 피곤해짐은 근래에 들어서 그렇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아니 꽤 오래된 기억에도 사람 많은 곳에서 shopping한다는 것, 즐겁지 않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시간낭비’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더 들어가며 이제는 거의 이런 것들을 잊고 사는 기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일년 동안 두 번씩이나 겪었던 ‘레지오 2명의 미친년 사건들’ 로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싶었다. 아니 그런 kafkaesque 들을 잊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무리해서 그것도 월요일 날, 새로니와 셋이서 비교적 가깝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곳, Cumberland Mall에서 아주 ‘정상적이고 전통적’인 shopping routine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께 이런 곳에 온 것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이런 전통적인 shopping, 이제는 시간문제일까… 그러니까, brick & mortar shopping experience은 Amazon(online) shopping으로  해를 거듭할 수록 약세를 보이고 있으니..  이날 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Cumberland Mall에서 먼 쪽의 중앙에 Sears라는 글자를 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반 세기 전,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 그것 중에는 Sears라는 글자도 있었기에, 세월의 무상함을 안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상전벽해 桑田碧海 라는 말 그대로가 아닐까? 당시 시골사람들처럼 순수하게만 보였던 ‘主流 백인’들만 보이던 미국’,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이날 ‘해야만 했던’ holiday shopping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니 어찌 내가 즐겁기만 하겠는가? Good Ole Day란 말이 이래서 생겨났구나, 하지만 이런 느낌은 세대구분 없이 ‘영원히’ 계속되어 갈 것이고 progressive, conservative의 duality도 영원히 계속되어 나갈 것이다. 이래서, 영원히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아닌, ‘절대로 안 변하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중의 지혜가 아닐까?

 

 

¶  Full House, 자비의 모후:  한 때 ‘레지오 미친년 사건’ 으로 치명타를 입었던 우리의 성모님의 ‘분대’, 자비의 모후가 너무나 오랜만에 full house를 맞았다. 나는 이것을 ‘재를 털고 일어난 불사조’로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다. dirty vermin 들을 St. Michael의 용맹한 도움으로 ‘요사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형제님을 불시에 천국으로 보낸 아가다 자매님이 자식들이 주선한 극진한 효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서 돌아오셔서 합류를 한 것이다.

이제는 그런대로 안정권으로 돌입한 우리 레지오, 절대로 절대로 신 단원을 ‘바보같이 받아들이는’ 실책은 피할 것이다. 단원의 숫자 그 자체가 이렇게 의미가 없게 느껴졌던 적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  연도, 장례미사, 장지동행:  아침에 예상외로 심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리는 천수 90세를 넘기신 젬마 자매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에 참석을 하였다. 장례미사에서 작은 딸의 생생한 조사가 조금 길기는 했지만 의미 깊은 것이었고, 우리는 궂은 날씨지만 마리에타 공원묘지까지 장지 동행을 했다.

며칠 전에 노령과 폐렴으로 선종을 하신 이 할머님,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분이 아니었다. 항상 변함없이 성당 제일 앞줄에 walker에 의지해서 힘겹게 들어오셔서 경건하게 미사를 보시던 분, 전에 거동이 덜 불편하셨을 때는 화요일 정오미사에도 오셔서 우리 바로 앞자리에 앉아 계셨고 인사도 나누었던 자매님이셨다. 그러다가 낮 미사에서는 더 이상 안 보이셨고 주일 미사에서는 꼭 뵈었고 불과 몇 주일 전에도 나오셨었는데… 역시 90세라는 나이에 폐렴은 초현대의 의학도 큰 도움이 안 되었는지.. 그래도.. 그래도.. 90세를 넘기셨으면 ‘천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머님, 80중반 까지 사셨지만 짧은 생은 아니었으니까. 

이 자매님은 연숙과 더 깊은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 할머님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던   African American 자매님이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의 신자여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고 이번 장례식에도 어김없이 와 주었다. 1972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셔서 자식들을 다 키우신 부지런한 젬마 할머님, 각종 ‘사고’를 당하시며 고난을 겪으셨지만 그래도 굳건한 천주교 믿음을 지키시며 말년을 인근 꽃동네에서 천수를 하셨기에 자식들도 우리들도 이 영혼의 천국에서의 복락을 믿는다.

 

 

¶  싸리골 점심 모임:  12월 21일, 바로 동짓날이다. 어느새 겨울의 시작이 되었는가? 이제부터는 밤의 길이가 ‘조금씩 조금씩’ 짧아질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2개월 동안은 ‘각종 일기 뉴스’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동짓날 아는 부부와 같이 따뜻한 김이 나는 듯한 기분의 장소, 바로 마리에타 지역에서는 희귀한 한국식당 ‘싸리골’ (Tofu Village Korean BBQ) 이란 곳이다. 왜 이 집이 싸리골인지는 모르지만 ‘주인의 취향’이 아닐까.. 아마도 옛날 고국의 시골에서 보던 싸리나무, 싸리문, 싸리로 만든 담장.. 등등이 그리워서 그렇게 이름을 진 것은 아닐까.. 이 작지 않은 식당의 주변도 아예 싸리나무로 담장을 꾸며 놓았다.

크고 작은 Korea Town들이 거의 모두 아틀란타 동북쪽 (Gwinnett, Forsyth  counties) 으로 몰리게 되면서 정 반대쪽에 있는 마리에타 지역에는 한국식당이 거의 사라지고 이곳 ‘싸리골’과 ‘일미’라는 두 곳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 두 곳은 business model이 Korea Town의 그것과 다르게, 거의 모든 customer들이 ‘비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아마도 이 두 곳은 큰 실책을 하지 않는 한 계속 ‘성업’을 할 지도 모른다.

이날 우리 둘은 2주일 전에 우리를 집을 초대해서 맛있는 salmon steak요리를 즐기게 해준 ‘마리에타 토박이’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함께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는 마음이 바쁜 이 시점에서 무리일 듯 했기에 이렇게 외식을 한 것이다. 이곳은 몇 개월 전에 심장수술을 했던 구역 가밀로 형제를 문병(봉성체)한 후 이곳에서 구역장님과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 같은 구역의 ‘오 안젤라’ 자매님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관계로 그 자매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기도 했었다.

나이가 엇비슷한 이 교우형제, 자매님 근래에 자주 보게 되고 알게도 되었지만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들의 가슴을 쓸어 내린다. 하도 해괴하고 요상한 ‘교우 인간’들이 주변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살았던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감과 경험, 그리고 높은 곳에서 주는 지혜를 총 동원하면 앞으로 더 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1. 이 당시 단원 중에는 그 유명한 레지오 난동사건의 주범을 포함한 3명의 빠가 온나, three Stooges 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지금은 그때를 영원히 잊고 싶다.

¶  지난 주 금요일, 저녁부터 ‘폭포처럼’ 쏟아진 함박눈으로 이틀 정도의 뜻밖의 snow days,  애들 처럼 즐거운 ‘공짜 휴일’ 이후, 곧바로 다 녹아버릴 것 같은 예상을 뒤엎고, 계속되는 추위로 사실 아직까지 눈이 남아 있는 곳들이 꽤 있다.  그러니까… 요새는 ‘환상적인’ 12월의 느낌 으로 그러니까.. 매일매일 white Christmas의 기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추위로 녹지 않는 ‘잔설 殘雪’

 

¶  등대회 망년회:  12월의 3분의 1일 지나가는 때, surprise heavy snow로 holiday 의 기분과 광경이 온통 머리 속에 가득 찬 시점에서 소위 말하는 ‘망년회’ party같은 것들이 더 돋보이는데, 사실은 꽤 오랜 동안 우리는 이것들을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 한마디로 stress받고 피곤한 경험들도 있고 그저 귀찮기만 했던 너무나 ‘세속적’인 모임들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생각의 각도를 비틀어 보았다. why not..이라는 간단한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올해라는 세월이 너무나 ‘피곤하다’라는 자괴감도 들고, 이런 부정적이고 감상적인 생각에 대응하는 antidote는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절대 조건이 있다.  만에 일이라도, 올해 두 번씩이나 당했던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2명)’처럼 ‘경고 없이 순식간에 괴물 monster 로 돌변할’ 가능성이 거의 zero에 가까운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내가 보아온 성당 60 plus 친목단체인 등대회는 큰 문제가 없이 보였고 지난 가을의 West Bank park 야유회에 이어서 연말 모임, 망년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대학 동창회나 다른 단체의 연말 party 같은 곳에 안 가고 산 세월이 짧지 않았기에 이런 모임이 생소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무슨 정해진 program이 없이 informal한 분위기였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사실 그 사람들이 ‘노는 데’는 주역들이어서 결과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Duluth Korea Town에 있는 ‘초원부페‘라는 곳에서 정말 푸짐히 ‘마시고, 먹고’, 아싸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disco풍의 춤과 노래하는 것을  넋을 잃고 보며 즐겼다. 나는 예의 ‘옛 노래’ 몇 곡을 불렀지만, 그들의 폭넓은 (특히 요새 노래들) 노래실력에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요새 노래들을 배웠는지..

 

 

¶  Film Noir time again:  작년 11월 경,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즐기는 방법으로 film noir가 나에게 다가왔고 아마도 작년의 holiday을 많은 시간을 이것, film noir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기억이다. 아~~~ film noir, glorious ‘black & white’ 느낌들… HitlerTojoevil empire를 ‘하느님의 정의로 무찌른’ victorious America의 전후에 ‘대량생산’ 한 이 film noir 영화들.. 당시에 어떻게 이것들이 대중들에게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70여 년 후에 이렇게 YouTube라는 ‘해괴한 매체’를 통해서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런 것을 즐긴다는 사실이 사실은 surreal한 느낌인 것이다.

작년에 YouTube에서 download한 film noir 영화가 거의 5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이 low-budget class여서 정성스럽게 보는 것은 좀 그렇지만 신경을 써서 자세히 볼 시간이 없기도 했다. 이런 영화는 보는 분위기가 잘 맞아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blustery, chilly, windy afternoon인데… 요새가 바로 그런 날들이었다. 거기다가 달콤한 mini donuts 과 아주 진한 gourmet coffee가 있으면 몇 시간이고 즐길 수가 있다. 힘들었던 올해였지만 이런 짧은 순간들이 그런 괴로운 추억을 지워주는 역할을 하니.. 한마디로 it’s fair라고 할까..

이 특별했던 회색 빛의 오후에 보았던 glorious black & white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내에서 ‘원자탄 비밀’을 찾고 있었던 독일의 스파이 망을 FBI에서 일망타진 하는 내용의 1945년 영화 ‘The House on 92nd Street‘ 였다. FBI의 방대한 수사망의 위력을 ‘선전’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당시에 ‘적국의 스파이’들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활동을 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좋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사실은 연기와 각본 등도 뛰어난 느낌의 좋은 영화였다.

 

film noir afternoon, 2017

 

The House on 92nd Street – 1945

 

 

¶  Earlier Tree: 얼마 전에 Vatican Youtube를 보니 성 베드로 광장에 거대한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음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성탄구유도 설치가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 교회(천주교)는 ‘세속적인 장식’을 가급적 성탄 며칠 전까지 ‘참으라고’ 권고를 하고 있었고 나도 몇 년 전부터 용기를 내어서 그 권고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떠난 이후 이런 ‘장식’들을 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고 나도 그 ‘취지’에 동감을 하기에 큰 문제도 없었다. 나아가서 성탄절 이후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세속, 상업’적 풍습이 그렇게 싫었는데, 12 days of Christmas, Octave of Nativity (of the Lord) 등등을 따르며 신년이 훨씬 지난 후까지 성탄기분을 유지하는 그런 것이 더욱 새롭고 느낌이 달랐다.

 

’tis time again, 2017

 

그런데 올해는 조금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올해 어찌나 무언가 힘이 들었다는 쳐지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불현듯 성 베드로 광장의 성탄 트리를 보며..  what the heck… 이란 느낌으로 garage로 가서 일년 묵은 성탄장식들을 끌고 들어와서 순식간에 lighted treed, wreath 를 세워 놓았다. 며칠 뒤에는 올해 새로 나온 twinkling snow flake light까지 사다가 장식을 해 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carol 을 틀어 놓았다.. 그러니까 예년에 비해서 거의 열흘 정도 이르게 성탄의 기분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규칙, 규정, 법칙’도 중요하지만 어떨 때는 ‘직감, 느낌’도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피곤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런 것으로 위로를 받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느낌은 아주 좋았다.

 

나의 office, study로 바뀐 첫 해의 성탄 wreath

 

 

깜깜한 이른 새벽, 저 멀리 있는 digital clock radio의 clock이 잠결에서도 조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 현재 시각이… 오밤중의 그것이었다. 속으로.. 내가 불면증인가.. 나이 탓인가.. 이 오밤중에 정신이 말짱하니,  다시 자려면 고생하겠구나 하며 창 밖을 훔쳐 보니 아무래도 나의 body clock은 아침 7시 정도는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digital clock을 보니.. 아하, it’s blinking! 언뜻, 밤에 ‘전기가 나갔었구나’, 그러니까 그 radio clock 의 시간이 틀린 것이다.

부리나케 아래 층으로 내려오니, 나의 body clock이 거의 정확했다, 7시 10분이었다. Backyard  mother cat 다롱이가 분명히 배가 고플 것 같아 먹이를 들고 부지런히 나가려고 하니 porch door가 쌓인 눈에 걸릴 정도로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Deck guardrail 에 가지런히 쌓인 눈의 깊이가 족히 5~6 inch가 될 정도로 근래에 드물게 보는 ‘대설 大雪’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내린 눈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우리는 어제를 snow day 로서 푹 쉬었지만 장례미사를 못 갔던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2014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이 마당에 이러한 결정은 현명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Sugarloaf mansion의 최형이 전화로 우리가 혹시 어제 ‘외출’을 했었나 부터 물었다. 3년 전 19시간 동안 I-258 freeway에서 밤을 지샜던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3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집으로 drive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 듯했다.  어떤 사람은 5시간, 우리 작은 딸 나라니는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일찍 시작된 rush hour가 끝나면서 눈은 엄청난 기세로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내리고 오늘 아침에도 내리고… ‘자, ruler’로 재어보니 정확히 6 inch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두 번째 snow day가 된 것이다. 그러면 내일은… 흠…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설마 내일까지도 문제가… 있다면… 성당과 저녁 5시에 있는 성당 60 plus 대 모임, 등대회 연말 파티 모임도..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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