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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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림 초가 켜지던 때가 3주 전, 오늘 마지막 초가 ‘귀여운 어린이 복사’에 의해서 점화되는 것을 본다. 아~ 이제 기다리던 때가 일주일 남았구나.  특별히 대림 시기 동안 준비하며 산 듯하지도 않고 특별한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영적으로 게으르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시기에 조금은 이르지만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시작했지 않았던가? 마지막 큰 일은 역시 판공성사, 고백성사인데 이번 수요일에 특별 판공성사가 준비되어서 그때 가서 하면 될 터인데, 근래에 이 ‘어려운 성사’에 거의 신경과 시간을 쓰지 못해서 솔직히 미리부터 겁이 난다.  유혹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C베로니카, 프카 자매까지 4명이 함께 판공성사엘 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은 한마디로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싸움’을 목격하며 간신히 일어났다. 갑자기 얼음장 같은 냉기가 이 지역으로 몰려온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인지, 오늘 아침 주일미사 차 외출하는 것,  갈까 말까, 끝까지 미루며 갖가지 유혹과 치열한 전쟁을 버린 것이다.  99% 포기를 해서 ‘오늘은 가기 싫다’ 로 정하는 순간, 1%의 기적의 은총이 나를 평소보다 30분 늦게나마 일어나게 했다.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왜 이런 유혹이 나에게 온 것일까? 영성적, 교리적으로는 분명히 ‘사탄’의 영향, 아니 아예 그가 나를 정복한 듯한 기세가 아니었을까? 어떤 종류의 유혹인가?  성당 미사엘 가서 보게 될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싫어진’ 듯한 느낌, 이것은 이성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고,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있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이 이런 생각을 부축인 것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1% 기적의 은총으로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일미사의 모든 일정을 가볍고 즐겁게 마친 것인데, 나중에 그 ‘잠재의식’이란 것을 더 깊이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줄줄이’ 생각들이 난다. 특히 최소한 지난 5년 동안 내가 성당공동체에서 겪었던 적지 않은 ‘인간에 의한 고통’들이 깊숙이 숨어있다가 일시에 살아나온 것인데, 그런 것들을 영원히 잠재울 수가 없기에 잊으려 애를 썼지만 오늘처럼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유혹이 올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로 영적상담을 사제들과 하면 분명히 ‘잊거나 용서하라’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나에게는 ‘잊는 것’이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오늘 미사에 뒷자리 고정석 교우 마리안나 자매가 처음에 안 보여서 궁금했는데, 조금 늦게 와서 자리를 뺏긴 것으로 그 옆자리에 모습이 보였다. 먼저 반갑게 와서 손까지 잡고 인사를 한다. 성탄 때는 알라바마 주에 간다고, 미리 인사까지… 그녀의 손은 연숙이처럼 따뜻했지만,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 자매의 조금 어두운 모습은 여전했다.

오늘 유혹을 완전히 누르고  미사참례에 성공한 것에 대한 은총인가, 오늘따라 오랜만에 보는 교우들이 미사 후에 눈에 뜨였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마디로 한 사람 한 사람들로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에너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online이나 virtual한 것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눈과 손이 닿는 이런 관계는 현재 우리와 같은 senior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듯하다. 오늘도 미사 후에 관심은 역시 아가다 자매의 모습이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아주 활달하고 건강했고, 하얀풍차의 모임도 C베로니카 자매의 참석으로 비교적 유쾌한 자리가 되었다.

오늘 오후는 이러한 ‘유혹에 대한 승리’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편히 쉬는 시간들이 되었다. 우연히 듣게 된 녹음된 나의 추억의 옛 노래, 오솔길을 다시 들으며 그 곡이 유행하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마도 1970대 초였을 것이어서 그 당시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옛 사진을 거의 안보고 살 정도로 바쁘게 지냈는데 오늘은 예외가 된 것이다. 대학 4학년 시절부터 미국에 오기 전까지의 ‘주옥 같은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사진들을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 현재 병중에 있는 친구들도 보인다. 가족들, 그리고 한때 깊이 사귀었던 여성들도 있는데, 솔직히 그 모습들을 보니 당황하고 거의 감추고 싶은 유혹까지 드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나의 심정일까… 그런 모든 감정, 느낌들이 당시의 hit folk song인 ‘오솔길’에 스며들어 있다. 이 recording과 나란히 어울리는 추억의 사진 collage 를 급하게 만들어서 ‘블로그’에 남기고 싶다.

이번 주의 특별 관심DEEP FREEZE란 것이 되고 있다. 특히 성탄 전후의 기온이 장난이 아니게 10~20도… 아마도 10여 년 만의 강추위가 아닐까? 기억에 2014년 11월 중에  polar vortex란 이름으로 정말 추웠던 때가 있었다. 그 이후로는 12월은 대충 견딜만한 따뜻한 때였는데…  조금 덜 춥고 대신 눈이라도 오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  이번 주에는 내일, 모레 로난 네가 오고, 수요일은 판공성사, 목요일은 순병원 등등이 있어서 더욱 날씨에 관심이 간다. 아차 하면 했던 성탄 직전의 눈발 예보는 이제 사라진 것이라, 그저 춥기만 한 모양이다. 그래~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오늘도 Guadalupe 를 향한 여정의 첫걸음을 천천히 계속 걷고 있다. Youtube에서 보았던 ‘성모님의 눈 속에 보이는 영상물’들이 포함된 것, Wikipedia의 길고 긴 백과사전적인 사실적 고찰 등등, 그리고 이곳에서 tilma에 새겨진 영상도 download해 두었다. 1988년 경,  Madison [Wisconsin] 에 살 때 김희선 방문사제신부님이 Mexico 성지순례에서 사오셔서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신 커다란 두루마리 발현 사진이 있었는데 하도 오래되어서 쓸 수가 없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우리가 순례를 가게 되면 조금 비싸더라도 질이 좋은 상본을 사와서 우리 집과, 가까운 주위에 나누어 주면 어떤가… 이런 것은 생각만 해도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Luisa Piccarreta의 ‘수난의 시간들’,  묵상 기도 벌써 13시, 13일째를 맞는다. 온통 ‘예수의 십자가 수난’의 고통, 고문의 연속인 이 수난의 여정을 매일 아침 꼬박꼬박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물론 괴롭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 묵상기도문의 십자가 고통에 대한 너무나 자세한 묘사는 읽는 것만으로도 가히 고문에 속한다. Mel Gibson의 Passion 이 혹시 이것에서 idea를 얻은 것이 아닌지 궁금할 정도다. 나는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희망의 결여’된 삶과 이 십자가 고통의 여정을 비교하며 예수님의 도움을 강하게, 열렬하게 간구하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 저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입니다…

샤브샤브… 이름도 해괴하게 들리는 이것, 일본아해들이 즐겨먹는 전골 비슷한 것, 우리도 가끔  점심으로 먹게 되었는데, 그것을 끓이는 electric cooker가 문제가 있어서 쓸 때마다 신경을 돋군다. 그것 외에는 먹는 것 자체는 문제도 없고, 육식을 거의 안하고 [고기 값, 장난이 아니다] 살기에 이런 요리는 거의 특별식에 속한다. 이번에는 electric이 아니고 open flame이 보이는 portable gas cooker를 쓰기에 전처럼 ‘끓나 안 끓나’ 하는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이 음식을 자세히 보니 한마디로 건강식에 속한다.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거의 균형식인 것이다. 고기 값만 너무 오르지 않으면 조금 더 자주 즐겨도 될 듯한데… 

 

Those Who Saw Her, Catherine M. Odell… 2012년 한창 불타오르기 시작하던 신앙의 르네상스를 맞을 당시에 샀던 책…  그 중에서 현재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이 책은 가톨릭 교회의 공인을 받은 유명한 발현 스토리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 관심사는 물론 Guadalupe 성모님 발현에 대한 것이다. 내년 달력에서 그것도 1월 말을 유심히 보며 예정된 Guadalupe 성지순례의 모습을 예상하며 상상을 한다. 과연 우리가 그곳, 인디언 모습으로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원주민 성 Juan Diego 앞에 나타나신 현장 Tepeyac 언덕엘 가볼 것인가? 예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각종 성모발현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읽고 보았지만 지금부터는 사실 Guadalupe에 관한 것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어떻게 이번 성지 순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지금부터 서서히 흥분이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이 신비중의 신비,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에 대해서 공부하고 묵상을 하며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The Apparitions at Guadalupe, Mexico, 1531

 

Excerpt from Chapter 4,  ‘Those Who Saw Her

 

For fifty-seven years, Juan Diego had lived near the shore of Lake Texcoco in a village hugging Tlateloco, the Aztec capital. As he walked toward that city on a chilly morning in 1531, his thoughts returned to the years of Aztec pagan rites and despicable human sacrifice. Later, the Spanish conquistadors had overwhelmed the Aztec chieftains, who had ruthlessly ruled the Indian tribes. For Juan and fifteen million Indians, a new time and spirit then began in his homeland.

In Juan’s own mind, only the last six of his years had been truly joyful. In 1525, he and his wife, Maria Lucia, had been baptized as Christians Juan, a farm worker and mat maker, had given up his Aztec name – Cuauhtlatoatzin, a word that meant “eagle that talks.” On most days, well before dawn, Juan was somewhere on this road, headed to or from Mass. His village was called Tolpetlac, near Cuauhtitlan. This day, December 9, 1531, was a Saturday, a day on which a special Mass was said in honor of the Virgin Mary.

For some time, his early morning walks had been solitary as he crossed the hill of Tepeyac and the Tepeyac causeway to Tlatelolco, the future Mexico City. Juan’s wife had died. There was only his uncle, Juan Bernardino. Juan Diego thought of his dead Maria Lucia many times as he made his way. There had been no children, and she had been precious to him.

As Juan approached the crest of Tepeyac Hill, he saw a cloud encircled with a rainbow of colors. Then he heard strange music coming from the hill as well. Could it be from some sort of rare bird? He wondered and stared up at the hill with the sun now rising behind it. A woman’s voice was calling above the music. He was fascinated but confused.

“Juanito Juan Dieguito…” the voice came, urging him. Since it seemed to be coming from behind the top of the hill, he ascended to the crest to look. A young woman, strikingly beautiful, stood there, beckoning him. She radiated such light and joy that Juan Diego could think of nothing more to do than drop to his knees and smile at her.

Everything around her seemed to catch the sweet fire she glowed with. The leaves of the plants surrounding her on the hill were aglow; the branches of the trees and bushes shone like polished gold. Around the whole hill, a rainbow of multicolored light seemed to have descended.

“Juanito [Little John], my sweet child, where are you going?” the woman asked him in Nahuatl, his own tongue.

“My Lady and my child,” he replied, in an Indian idiom of endearment, “I am on my way to the church at Tlatelolco to hear Mass.”

Then, with no further introduction, the shining young woman spoke very seriously and yet lovingly to Juan Diego. He listened with intensity born of instant devotion. The woman was so beautiful, so gracious. He could not ignore any request from her:

You must know and be very certain in your heart, my son, that I am truly the perpetual and perfect Virgin Mary, holy Mother of the True God through whom everything lives, the Creator and Master of Heaven and Earth.

I wish and intensely desire that in this place my sanctuary be erected so that in it I may show and make known and give all my love, my compassion, my help, and my protection to the people. I am your merciful Mother, the Mother of all of you who live united in this land, and of all mankind, of all those who love me, of those who cry to me, of those who seek me, of those who have confidence in me. Here I will hear their weeping, and sorrow, and will remedy and alleviate their suffering, necessities, and misfortunes.

And so that my intentions may be made known, you must go to the house of the bishop of Mexico and tell him that I sent you and that it is my desire to have a sanctuary built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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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성탄구유 점등식, 대림절 전야 특전미사 등등을 나는 특별한 이유도 깨닫지 못하고 기다린 셈이 되었다. 대림의 뜻처럼, 그저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바르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결과는 물론 기대한 그런 모습, 광경이었지만 약간 차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7시의 공식 시작시간보다 15분 일찍 시작한 것이어서 아차 했으면 시작 부분을 놓칠 뻔 했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니 그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될 리가 있겠는가?

먼 곳에서 구유를 자세히 볼 수가 없어서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구유에는 꼭 보여야 할 ‘아기 예수님’이 없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신부님의 간단명료한 강론에서 이것은 의도적인 것, 모두 모두 아직 안 보이는 아기예수를 성탄까지 기다리자는 취지, 의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의도도 기억에 남을 듯하다.

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보는 것도 반갑고 즐거운 것, 하지만 생각보다 교우들의 숫자가 적은 것도 그렇고, 특히 우리 또래의 교우, 친지들의 모습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역시 세월을 탓해야 할지… 이제는 이런 행사에서도 나는 동년배를 찾고 있으니… 이것, 조금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인지상정일까… 올해의 대림절을 이렇게 시작한 것, 이제는 조금씩 불편해지는, 어둠을 뚫고 집으로 drive를 하는 것 이외에는 몇 백 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Dr. Bernardo KastrupBigelow Prize Essay를 읽는다.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consciousness 주제에 대한 제일 학문적 논문급이라 더 흥미롭다. 예전에는 이 주제는 거의 금기사항이었고, 특히 (자연)과학계에서는 언급조차 못했고, 잘못하면 즉시로 학계에서 파문을 당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다른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양자역학의 도움으로, 고전적 물질주의가 완전히 수세에 몰리는 듯하기까지 보이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나는 솔직히 가톨릭 우주관 cosmology 교리부터 출발했기에 물론 이런 추세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만, 웃기는 것은 아직도 나 자신이 속으로 Consciousness, After Life 같은 것을 운운하는 것 자체를 피하고 싶은 심정… 이 정도면 현대가 얼마나 순수물질주의에 젖어 있는지 알만 하다. 하지만 나는 노력할 것이다. 의심을 가지고 열린 가슴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저 너머에 아롱거리는 다른 세상’에 대한 환상은 피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계속 진정한 진실을 향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어제 늦게 뜻밖에 ‘가정교사’ 인호 형의 카톡소식을 받았다. 소식의 문체에 잔뜩 에너지가 느껴지기에 우선 ‘아~ 형님 건강하시구나~’ 하는 포근한 안심, 안도의 숨이 느껴진다. 소식이 서로 없음을 개탄하는 듯한 느낌이 더욱 반가운 것이다. 몸은 느려져도 머리, 영혼만은 끝까지, 끝까지 건강 그 자체라고 나는 항상 믿었기에, 형님 나이 82세라는 것이 심각하게 다가오질 않는다. 간단히 지난 2년간 우리 가정의 변화 변천사를 알려드렸지만 그 이외는 앞을 기약할 수가 없다. 언제는 형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간단히 끝이 나곤 했으니까… 인호 형, 이번에는 조금 긴 대화를 하며 삽시다!

한국에 계시는 연숙이 쪽 친척들, 특히 형님과 동서형님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참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이 갈 수가 없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두 양반, 모두 현재 조금씩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하니… 형님은 얼굴자체가 너무나 초점을 잃은 듯하게 보인다고.. 동서형님은 다른 쪽, 그러니까 걷는데 문제가 있다고.. 아~ 80대가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도 곧 그렇게 될 것일까? 연숙이 ‘이순재’씨는 88세에도 연극 활동을 한다고 몇 번이나 칭찬 말을 하는데 결국은 나이 그 자체보다는 개인적 에너지 차이도 큰 몫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Our Lord Jesus Christ King of the Universe..  오늘 축일을 맞으며 다음 주부터 Advent, 대림절이 시작된다는 말에 솔직히 부끄럽게 놀랐다. 대림절… 아직도 몇 주는 남았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았으니… 그래, 다음 주 일요일이 대림절 Advent시작, 그 전날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성탄 구유에 점등식이 저녁에 있지 않았던가?  Pandemic 중이었던 2020년 때 마지막으로 갔었던 기억, 그것이 참 인상적이고 좋았다.  당시 혼신의 힘으로 성당을 지키시던 이영석 요한 신부님의 idea였던가, 성당 주차장에 멋진 성탄 구유를 만들고 점등식을 시작했던 것이… 아마도 지칠 대로 지친 신자들의 사기를 힘 실어 주려던 노력이었을 것이다. 2년 밖에 되지 않은 이것도 기억에서 가물거린다.

오늘 그리스도 왕에 대한 강론을 들으며 과연 예수는 누구인가, 우리 성당의 자랑인 ‘초대형 십자고상’을 뚫어지게 정면 가까이서 바라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현재의 ‘실재관’과 관련되어서, 새로운 각도로 본다. 한마디로 실재의 전부가 그리스도 예수라는 관점… 과연 그럴까? 그것이 Swedenborg 가 실제로 보고 느끼고 내린 결론임이 놀랍지 않은가? 이것은 또한 Teilhard  de Chardin의 사상, 신학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의 진화론적 그리스도 Omega Point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오늘은 예상대로 ‘프카’ 자매가 합석을 하지 않았던 하얀풍차 모임이 되었다.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일요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야 성당에 올 수 있다고 했던 프카 자매의 말이 생각이 나니… 이해는 간다. 그 자매의 ‘수다’가 빠져서 조금 심심할 거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C 베로니카도 화제가 적지 않은 사람이고, 대화를 하는 태도도 만족스러운 것이라서, 현재까지는, 그럴지도. 나도 마음 놓고 참여를 할 수 있으니 솔직히 일요일 이 모임이 우리의 고정된 스타일의 생활에 활력소를 주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지난 주 그 자매의 Swedenborg에 대한 추억담에서 비롯된 나의 새로운 탐구 여정을 중심으로 ‘더 가까워진 영계의 실상’에 대해서 열띤 대화를 나누게 된 것, 이것이 성당 주일강론보다 더 가깝게 다가오는 듯하다. 특히 그 자매의 ‘짧은 탈혼’ 경험담은 정말 흥미로운 것이었다. 나는 물론 많은 책이나 video를 통해서 NDE[Near Death Experience]-like episode를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 참, 내가 나를 생각 보아도 신기하고 가상하기까지 하다. 간단히 말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신비로움이 나에게 이렇게 늦은 나이에 다가오고 깨닫게 된 것, 속된 말로 우연인가, 아니면…
오늘의 날씨 덕분인지 나의 보금자리에서 편하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비디오도 보고 하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포근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게다가 ‘다음 세상’에 대한 믿음이 점점 깊어지는 것이 아직도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까지 ‘발전’을 했을까?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 그것을 이제 전보다 더 확신을 가지고 믿게 된 것, 누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 그래, C 베로니카 에게도 감사를… 

오늘로서 Robert Lanza의 Biocentrism trilogy의 1편 Biocentrism 을 다 읽게 되었다. 다음 편 Beyond Biocentrism으로 계속 넘어가게 되었다. 이것과 더불어 새로 읽기 시작한 Why Materialism is Baloney 또한 얼마나 현대의 사상이 위험할 정도로 흔히 언급하는 science, 사실은 scientism 이라는 ‘신흥종교’에 현혹되었는지 실감이 간다. 내가 그렇게 신봉하고 있던 science/engineering/technology는 분명 우리들의 몸을  편하게 해 주었지만 그것의 위력은 자기 밖의 영역까지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니.. 

뜻밖에 윤기로부터 반가운 카톡이 왔다. 윤기와 인송이 둘이서 건주네 집을 방문했다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 어찌 안 그렇겠는가? 이제 그 친구들이 가서 눈을 목격한 것이니까, 조금은 더 자세한 모습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에 5일씩이나 물리치료사가 집으로 온다는 것으로, 건주의 stroke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위험한 정도까지? 하지만 현재는 많이 나아지고, 자발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반응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이것은 윤기나 인송이로부터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두 친구, 갑자기 고맙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래, 그래도 우리들의 우정은 식지 않았구나~~ 고맙다, 친구들아~~

 

날씨가 놀라울 정도로 싸늘하다. 최고가 50도에도 못 미치고 바람까지 곁들이니 솔직히 이런 날은 집에서 편하게 ‘배를 따뜻한 장판에 대고’ 딩굴딩굴 게으름을 피우면 안성맞춤일 듯하다. 하지만 문득 문득 이틀 전에 선종을 한 C 로사 자매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지는 듯 답답해진다. 특히 일년 중 가장 가족이 그리운 holiday, Thanksgiving & Christmas & New Year..이런 때에 사랑하는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은 사람들, 도대체 무엇인가, 상상도 할 여력도 잃은 듯 느껴진다.

내일의 장례미사,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69세, 연숙이 보다 한살이 적다는 어떻게 보면 한창을 살아갈 수 있었던 나이에 왜 그런 엄청난 일을 당했을까… 꼭 그렇게 ‘가게’에 나가서 사람들을 상대해야만 했을까? 왜 일찍 retire를 안 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각종 local/online media에 보도까지 되었다는 것, 나는 그것도 너무나 싫은 것이다.

Afterlife, Near Death Experience, Swedenborg…  장례미사의 전례문구 중에서 ‘죽음이 끝이 아니요~’ 라는 고백이 이럴 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특히 과학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죽음을 본 경험’, 특히 Swedenborg의 ‘영의 세계’ 체험들이 역설적으로 과학철학의 도움을 받는 세상을 살기에 이제는 죽음이 예전처럼 무섭지 않다. 잠시 현세에서 볼 수 없는 ‘산 인간의 한계’만 극복하면 되는 것이니까… 이런 사실을 유족들이 믿기만 한다면 태어난 인생이 언젠가 끝난다는 것이 그렇게 아쉽고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내일 등대회 회원들 모두 연도, 장례미사에 참석하라는 R형의 카톡 메시지를 보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이럴 때 모두 동년배 교우들의 정을 보여주는 것, 최소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 찾은, 아니 우연히 발견한 science/philosophy/metaphysics 학계의 한 사람 Dutch  computer scientist, philosopher Bernardo Kastrup의 책이 오늘 늦게 도착했다. 이미 Youtube로 그의 논점을 듣고 보긴 했지만 책으로는 처음인 셈이다. 이 책은 metaphysics 적 관점의 책이지만 그의 background가 과학, 공학이기에 나에게는 많은 공감이 느껴지리라는 희망으로 이 책을 읽고 싶다. 그의 가설인 Analytical Idealism/Consciousness가 이곳에 흠뻑 담겨있는데, 과연 이중에서 몇 %나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철저히 배격, 심지어 무시하고 있는 ‘현세의 총아, materialism, realism’을 어떤 경험과학적 논리로 baloney라고까지 할 수 있는지 저자의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다.

Wind Chill 20s! 하도 날씨가 화창해서 바깥의 실상을 놓칠 정도, 바람을 동반 추위는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것이었지만 용감하게 도라빌 순교자 성당주일 미사엘 갔다. 지난 주일미사를 거른 탓에 오늘은 느낌조차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바로 뒷자리를 고정석으로 하는 ‘항상 혼자, 조용한’ 마리안나 자매님의 모습이 보일 질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일주일 전에 보았지만 오늘 다시 만나서 미사 후에 하얀풍차에서 만난 C 베로니카 자매가 오늘따라 그렇게 반갑게 느껴진 것은 왜 그랬을까? 이 모임도 이제 꽤 시간이 흐른 것인가? 그 자매의 우리에 대한 태도도 확실히 전보다는 부드러워진 것을 본다. 오늘은 프카 자매까지 참석을 해서 솔직히 나는 기분이 좋았다. 3명과 4명은 조금 다른 것이고, 프카 자매가 대화에 참여하는 태도, 모습도 아주 적절한 것, 아니 재미있고 흥미로는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앞으로 이 모임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잘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런대로 고무적이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따뜻해진 기분의 도움으로 집에 오자마자 Senate를 데리고 걸었다. 하나도 춥지 않을 정도로 나는 상기된 상태였는데, 요사이의 세상 뉴스, 특히 선거 소식과 우크라이나의 뉴스 등등이 도움으로 주일 오후는 정말 편한 relax된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나라니네가 1박 2일의 짧은 주말 여행을 마치고 오후 일찍 와서 Senate를 데리고 돌아갔다. 오늘도 추운 뒤뜰에서 로난을 쫓아가며 장난을 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이런 ‘짓’을 나는 너무나 쉽고 재미있게 하는데, 왜 다른 장난, 농담은 잘 못하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이런 장난을 많이 하며 놀곤 했는데…

오늘 Senate와 산책을 하며 그 집, 요란하게 바깥 장식을 하던,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decor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집 덕분에 Halloween 때도 멋진 구경을 했는데, 이번에도 우리 동네에서 제일 멋지고 요란한 light show를 보여줄 모양이다. 이렇게 가정적인 가족들이 더 많이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면 얼마나 좋을까?

Thanksgiving이 2주나 남았는데 벌써 성탄의 모습들이 이곳 저곳에 보이는 것, 조금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런 포근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걱정과 우려에서 조금은 벗어난 자세로 NYT의 headline news를 읽을 정도로 나에게는 세상이 조금은 밝아 보인다. 이제 US Senate는 완전히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Georgia의 결과에 상관없이… 결국, 결국 국민은 위대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위대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그들과 나 모두가 위대하다! 게다가 또 하나의 러시아 개XX, Russian SOB MF 에 맞선 Ukraine의 일련의 전술적인 승리, 이것도 오늘의 하루  들뜬 기분을 좌우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Georgia의 runoff의 중요성은 조금 줄었다. 이미 민주당이 Senate의 다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개XX 냄새가 풀풀나는 ‘DT SOB를 숭배하는, football외에 아는 것이 거의 없는’ Herschel Walker라는 ‘DT SOB junior’ 격인 이놈을 떨어뜨려야 하니까 말이다.

 

‘그날’ 새벽, 아침에 한 시간 덤으로 잠을 잘 수 있는 한 가을의 일요일 새벽… 기억으로 아마도 처음으로 시계를 손으로 바꾸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던 듯하다. 어젯밤에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 특전미사, 가을음악회 관람으로 모처럼 늦게 귀가를 한 탓도 있었지만, 솔직히 귀찮기도 했다. 이렇게 시계를 고치는 작업이 심지어 지겹게 느껴졌던 것일지.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 시계에 매어서 살아야 하나… 지루하기도 하고…

너무나 일찍 일어난 것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은 덤으로 얻는 한 시간이 아닌가? 마음껏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는 사치가 아닌가? 오늘은 어제 특전미사 덕분에 주일미사에 가지 않게 되어서 온통 우리의 시간이기도 하고… 조금은 relax하며 게으름도 피우고 싶은데, 솔직히 말해서 일부러 피우는 게으름은 나의 적성에 맞지를 않으니, 참 나도 피곤한 인간이다. 왜 그렇게 relax할 줄을 모르냐?

 

1962년에 내가 그린 자작만화, ‘민족의 비극’을 다시 꺼내 들어서 본다. 무려 태평양을 건너와 60년의 세월을 견디며 나의 곁에서 잠을 자고 있는 이것은 분명히 나의 보물1호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피곤한 모습, 내가 세상을 하직할 무렵에는 아마도 종이들이 삭아져 없어지지 않을지… 결국은 scan/digitize할 때가 온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낱장으로 해체를 해야 하는데 솔직히 망설여진다. 원형이 없어지는 사고가 겁나는 것. 하지만 결국은 결단을 내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

 

2년 전 처음 접했던 Robert Lanza, MD의 Biocentrism 3부작을 다시 잡아서 1편 격인 BIOCENTRISM을 순식간에 거의 반을 읽어내려 갔다. 요새 새삼 깨달은 사실은, 어느 책이건 한번 읽는 것으로는 거의 큰 효과가 없다는 것.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으며 새삼 느낀 것이다. 이제야 조금 ‘감’이 잡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난 100여 년 동안 서서히 축적되어온 실재관의 변화가 이제는 전통과학(특히 물리학)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이 책의 기본적인 주제는 생명, 의식이 물질의 원자, 분자를 앞선다는 가설이다. 쉽게 말하면 생명체가 없는 우주관은 허구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데, 이 저자는 quantum mechanics를 기초로 거의 완전한 이론체계까지 구성했는데, 이것도 String Theory처럼 ‘믿기에’ 따라서 성공의 여부가 달려있는 듯 보인다. 요즈음 세상은 이런 거의 혁명적인 idea들로 심심치 않다.

 

To Dance with the White Dog 1990년대 Hallmark Hall of Fame movie/video를 다시 본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일부러 찾아서 보게 된 것이다. 영화의 무대가 이곳 Georgia주인데다, 야외 location은 전 대통령 Jimmy Carter의 자택 근처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연로한 금실 좋은 노부부 [Hume Cronyn, Jessica Tandy] 인데, 금혼식 이후 부인이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 혼자 살게 된다. 근처에 아들 딸 내외들이 같이 살아서 매일 집에 와서 돌보아 주는데, 문제는 하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데 아버지는 그것이 좋기는 하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흰 색깔의 수려한 개가 난데 없이 나타나며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심지어는 같이 dance 흉내를 낼 정도가 되었다. 나중에 아버지까지 임종을 맞게 되는데, 아들 손주에게 유언으로 ‘그 흰 개는 wife’ 였고, 무덤에 묻힌 다음 날 묘소에 와 보라고 한다. 그 유언대로 그곳에 가보니 정말 무덤을 덮은 모래에 개 발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두 주인공 배우들은 실제로도 부부였고, 이 영화 이후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런지 이video를 계속 보면서, 부부로 평생을 산다는 사실이 누구 말대로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기적은 역시 사랑에 의한 것임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감나게 다가오는데, 오래 전과 다른 것이 있다. 이제는 다음에 올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100% 믿기에 죽는다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제 저녁 ‘가을 음악회’의 요란한 소리들이 귀에서 울리는 듯… 오랜만에 귀 청소를 했다는 진부한 느낌, 표현… 어제 순교자 성당 ‘가을 음악회’는 그런대로 성공적이었음은 분명하지만, 나의 취향에 맞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요새의 흐름이 그런가, 젊디 젊은 그런, 한바탕 풍악을 경험한 듯하기도 하니까.. 왜 그랬을까? 나의 편견인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들은 역시 mass media의 ‘개신교 style’이나 전혀 다른 것이 없는 ‘Hillsong‘ style의 그런 것들… 우리 동네본당의 주임 신부님이 봤다면 분명히 달갑게 보지는 않았을 듯하다. 한마디로 Catholic냄새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 아침 Holy Family 성당 위령미사엘 갔더니 예전에 보았던 광경이 보였다. 지나간 2년 동안, 그러니까 거의 Pandemic 중에 선종한 망자들의 사진이 뒤편에 촛불과 함께 진열되어 있고, 정면의 projector screen에 그 같은 모습들이 영상과 음악으로 나오고 있던 것, 이런 위령미사 아마도 2019년 이 때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것이다. 명단과 사진을 보니 꽤 많은 망자의 모습들이었다. 환자기도 명단에 있었던 이름들도 보이고, 특히 Al Gallagher 부제님의 모습까지… 거의 20명 정도였을까? 그 중에는 분명히 coronavirus 에 의한 것도 있었으리라.

Pandemic 중에 장례행사들이 제한을 많이 받았고, 이런 위령의 날 미사도 없었기에 올해의 위령의 달은 의미가 더 돋보이는가? 그러니까 2020년부터 올해까지 우리를 떠난 영혼들을 다시 기억하게 된 기회가 된 것이다.

저녁 가족 기도 때에는 부모님들을 위한 연도를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인 어른의 11월의 기일만 생각했지만 결국은 위령의 달을 맞아 우리 4명의 부모님들께 연도를 바치게 되었다. 이것으로 조금은 우리도 위안을 받는다. 이제는 영혼의 분명한 존재, 그 필연성을 알기에 더욱 연도에 힘이 실린다. 어머님, 아버님, 장인어른, 장모님~ 저희들 열심히 살다가 그곳에서는 못다한 효도를 할 것입니다, 기다려 주세요…

 

예정대로 Tucker의 Dr. S Heart Specialists 로 chest CT-scan을 하러 갔는데, 예상외로 거의 제시간에 모두 마치게 되었다. Scan 자체도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사실은 nodule 크기의 변화(증가) 결과가 주 관심사라는 것, 우리 둘 모두 무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속으로 기도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영화, 드라마에서나, 주위에서나 듣던 심리적 경험을 시작하는 것인가?  솔직히, 은근히, 겁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만약 나쁜 쪽이라면, 솔직히 어떻게 감당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이제 나의, 우리의 신앙이 시험대에 오른 기분 뿐이다.

이런 우울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을 미리 막으려 우리는 미리 얘기한 대로 강남일식에서 푸짐하게 점심을 먹고 들어왔다. 비록 비싼 점심이었지만 심리적으로 이런 것들이 우리를 조금은 위안했으리라~~

 

1999년 8월 고국에서 양건주가 보내줌…  작지만 단단한 느낌의 소책자, ‘김재진 시집’, 몇 권 안 되는 시집모음에서 꺼내 들었다. 요즈음 나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문장의 제목,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몇 십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된 동창 친구, 양건주가 수고를 해서 보내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시의 세계를 모르고 거친 삶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때여서, 이 짧은 시 조차 읽으며 전혀 느낌이 덤덤할 뿐이었다. 내가 혼자인지, 아닌지 조차 생각 못하며 살던 시절… 그때 이후 완전히 바뀌던 세상과 삶 속에서 결국 ‘시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은 나의 사랑하는 시집이 된 것. 최근부터 서서히 잠식해오는 ‘ 초 고령성’ 고독의 의미를 이 시로 재조명하고자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구나… 시처럼 아름답던 친구, 건주야~ 현재는 몸이 불편하지만 희망의 햇볕은 항상 우리를 쬐고 있음을 잊지 말자.

 

어제 Halloween의 잔재인가, 대체적으로 ‘기분 나쁘게 우울한’ 생각들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새벽부터 기를 쓴다, 노력한다. 10월의 멋진 날들과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멋진 holiday feeling 등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어제, 오늘 나는 깜깜한 듯한 느낌뿐이니… 누구의 잘못인가, 유혹인가, 나는 순간 순간 노력을 하며 산다고 굳게 믿는데… 심지어 오늘 일어날 때, ‘오늘 쉬고 싶다’라는 황당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ALL SAINTS DAY,  ‘의무대축일’이 나를 살려주고 있다. 나가야 한다, 외출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아니었으면 나는 유혹에 완전히 넘어갔을 것이다. 유혹의 악령이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역쉬~ ‘이곳 미국 천주교 신자들’ 그러니까 Holy Family 동네 성당 ‘의무  대축일’  All Saints  Day아침미사는 우리에게는 인상적, 파격적으로 많은 교우들이 참례를 했다. ‘모든 성인의 날’, 가톨릭만의 전통, 성인들을 기리는 날, 하지만 성인의 의미는 가톨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거의 보편적인 것이 아닐까? 성인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하나같이 출신성분이 특별한 것이 없었기에 오직 성스럽게 살려는 노력과 숨은 은총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에  3대의 미사가 있는 것도 놀랍다. ‘의무축일’을  어린 아이들처럼 충실하게 지키는 미국본당신자들에 비해서 한국본당은 아주 분위기가 다른 것을 우리는 때때로 놀란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다른 것일까?

 

어지러운 bookshelf, 언제나 정리를 할 것인가? 근처에 접근하기도 거추장스럽게 혼란스러운 모습, 빨리 빨리 이것들을 처리해야 할 텐데… 언제 시작할 것인가? 다른 문제는~ 나의 tech/computer books들에 관한 것이다. 정녕 나는 이 분야에서 관심이 멀어졌는가? 과연?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정말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나의 여생 주관심사는 아마도 이 분야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완전히 떠나고 싶지도 않고… 이곳에 보이는 책들이 아마도 10+년 전쯤 ‘마지막’으로 샀던 것들의 일부인데, 제목은 아직도 익숙하지만 이제는 그 내용들은 조금 생소하게까지 보인다. 세월은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가? 그 동안 나의 주관심사는 완전히 이곳을 떠난 것이다. 쉬운 표현으로… PHYSICS 에서 METAPHYSICS로 진화를 한 것일지도…

사실 어제 The Exorcist 를 책으로 반 정도 읽고 나서부터 기운도 빠지고 결국은 우울하게 되기 시작했는데~ 허, 이것 혹시 간접적으로 ‘무엇이’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까지 하게 되었는데… 참, 복잡하다, 어디까지 심각하게 믿어야 할지를.. 하지만 이제는 ‘원칙적인 현실, 사실’이라는 것을 믿는 것은 변함이 없다. 악령,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실제로 어떤 영향을 줄지는 회의적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 구세주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The Power of Christ Compels You! 우렁차게 외치던 예수회 신부님 두 분 exorcists 의 처절한 절규를 다시 머리 속으로 듣는다. 

영화/책 으로 악마의 존재를 다시 깨달으며 갑자기 든 생각, 현재 내가 읽고 있는 REAL MAGIC이란 책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악과 선을 막론하고 안 보이는 ‘영 SPIRIT’을 물리적,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인데, 만약 그들이 정면으로 악령을 연구, 조사, 탐구를 한다면 그들에게도 혹시 The Exorcist에 등장하는 ‘악령’,  Middle Eastern Pazuzu가 초래했던 것 같은 possession의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은 없을까? 아~ 내가 너무 깊이 생각, 비약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아마도 신부님의 도움이 필요한 분야일지도 모르겠다.

 

WHY MATERIALISM IS BALONEY – BERNARDO KASTRUP

‘물질주의의 허구성’을 향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머리 좋고 이성적인’ Dutch computer scientist, philosopher Bernardo Kastrup의 Youtube video를 보고, 어렵지 않게 이 책을 기꺼이 order를 해 버렸다. 가격도 $20 이하, 게다가 아예 shipping도 공짜 (Prime 없이도).. 그것이 전부인가? 물론 아니다. 이제는 십 년도 훨씬 넘어가는 나의 ‘영원한 진리를 향한 행군’, 현재의 상황, 과정, 진보 상황은 어떤 것인가? 이제는 과학/종교에서 조금 넓게 시야를 넓혀서 과학/철학/영성 으로 확대가 되고 있다. 과연 이런 방법이 ‘나의 가톨릭 영성’의 입장에서 볼 때 교의적 문제는 없는 것일까, 그것에 나는 신경이 쓰인다.

중앙 57회 동창 권인걸 10월 29일 토요일 오전에 심장마비로 LA에서 사망, 중앙고 57회 카톡방으로부터 부고를 받았다. 모두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나는 못하고 있다. 아직 나는 이곳에 한번도 글을 올린 적이 없기에… 왜 그런가? 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동창이 그저 많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 때문인가? 권인걸, 누구인가, 이름은 들은 듯 하기도 한데… 아마도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해답이 없을 듯…  결국은 album을 찾아 보았다. 아~ 3학년 2반! 나와 거리가 있는 반은 물론, 솔직히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것, 한번도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음이 아주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인가? 이렇게 해서 중앙교정 공간을 3년 동안 함께했던 또 한 명의 동창이 저 세상으로… 그는 종교적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니까, 큰 걱정은 안 하지만, 당장은 조금 더 외로워짐을 떨칠 수가 없다.

 

올 가을 들어서 처음으로 ‘정든 베이지색 골덴’ corduroy jacket을 입고 성당엘 갔다. 아~ 이제 서늘한 날들이 예외가 아닌 보통인 그런 season이 된 것인가? 가히 요새 같은 날씨는 너무나 보내기가 아까운 정말 ‘완전한 날씨’에 속한다.   아~ 이런 날씨가 다음에 오는 세상에도 있을까? 없다면 나는 죽는 것이 조금 싫어질 듯하다.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는 이런 날씨보다 훨씬 멋질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승의 사람들과 일단 작별하는 것, 그것이 섭섭할 뿐이다.

오늘 아침미사 싸늘했던 탓인지 참례 신자들의 조금 적은 듯했다. 하기야 거의가 우리와 비슷한 나이, 그래 senior라고 하자. 이런 날씨에도 빠짐없이  미사에 오는 regular들, 신부님도 언급했지만 인상적이고 고맙고 감사하는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크리스천의 본보기가 아닐지…  오늘은 모처럼 ‘동포’ R자매의 모습이 보여서 조금 반가웠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어쩌면 한 세대의 차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인사성도 없고 정다운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 나름이기도 하지만 참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재미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오늘 ‘본격적’으로 보게 된 video는 이미 download를 해 두었던 1983년 추억의 TV miniseries  The Winds of War (7부작), 추억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나에게 이것은 예외 없이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특히 1983년 2월 초에 방영된 것이어서 이때의 추억과 함께 보고 싶다. 새로니가 태어난 바로 직후가 아닌가? 나는 학교 Ohio State 에서 일생일대의 고전 苦戰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괴로운 경험도 많았지만 지금은 조금 다시 ‘좋은 쪽’으로 바꾸어 ‘수정된 역사’를 남기면 어떨까?
이제는 조금 넓어지고 높아진 세계관, 그리고 더욱 가까워진 미국이라는 커다란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이 나라를 super power로 만든 2차대전의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고 싶은 것, 멋진 것 아닐까?

오늘 Word On Fire email, Bishop Barron의 ‘성녀 소화 데레사 책 소개’는 나에게 신선하고 반가운 것이었다. 대부분이 좋다고 하는 것, 그것도 책을 나는 별로나 실망, 심지어 싫다고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솔직히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든다. 바로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이 좋은 예, 그리고 또 있다면 Thomas Merton의 자서전 ‘칠층산 Seven Storey Mountain‘이 아닐까? 나는 남들, 아니 아예 일반적으로 극찬을 얻은 명작들이 나는 정말 실망인 것이다. 위안이 있다면 첫 번의 시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다시 읽는다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 뿐이다.

I will confess that when I first read Story of a Soul, I was not particularly impressed. Like many others, I found it overly sentimental, and as a post-Freudian, I was only too willing to see in its girlish spiritual enthusiasms evidence of neuroses and repressions. But then I noticed that a number of great intellectuals loved Thérèse. Among her cultivated admirers were Dorothy Day, Edith Stein, Thomas Merton, John Paul II, and Hans Urs von Balthasar.

When I was a doctoral student in Paris, I attended a seminar conducted by my thesis director, Fr. Michel Corbin, a brilliant Jesuit specialist in medieval thought. Corbin commented that the French do not refer to Thérèse of Lisieux as “the Little Flower,” as Anglophones do, but rather as la petite Thérèse (the little Thérèse), in order to distinguish her from la grande Thérèse (the great Thérèse—that is, Teresa of Avila). But then he added, “After many years of reading both saints, I realize that Thérèse of Lisieux is really la grande Thérèse.” I knew then that I had to take a second look. 

– Bishop Robert Barron  10/14/2022

 

 

도라빌 순교자 성당 아침 미사는 김성현 라파엘 보좌신부님이 집전해서 이제는 이분의 얼굴도 조금은 더 익숙하게 되었다. 웃는 인상, 진솔한 전체 인상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어서 조금은 기대를 해 보기도 한다. 생각보다 사회적 경험을 많이 한 이후의 사제의 길, 이것도  사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희망을 하는데, 문제는 현장의 각각 personal chemistry에 달려 있으니… 큰 기대는 아직도 보류하고 싶다.  고해, 상담사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 보좌신부는 ‘젊은 세대 사목 담당’인 듯 보이니, 우리 같은 노년층은 거의 현재 관심권으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밀려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는데, 과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노년이라고 모두가 활동, 건강상태가 같은 것은 아닌데…  나이보다는 개개인의 사회적 역동적 능력으로 사목방침을 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텐데.. 조금 섭섭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지고 있는 거의 모든 성당소식은 한마디로 우리들 세대는 거의 잊혀져 가고 있고 나를 비롯한 누구도 이런 추세를 바꿀 용기가 없는 듯해서 더욱 서글픈 심정…

이런 쓸쓸한 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반짝거리는 소식이 있다면, 아마도 ‘과달루페 성지순례’ 가 아닐까? 내년 1월 말에 우리 성당단체순례가 있다는 작은 광고, 그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성모님 발현에 대한 많은 역사적 사실은 이미 대부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지나간 세월을 통해서 우리를 피해가기만 했던 ‘성지순례’, 설상가상으로 Pandemic으로 더욱 불투명하게 되었던 이것, 이제는 우리에게도 그때가 온 것인가. 이번의 기회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chance라는 데 둘이 모두 공감을 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한다. 가보고 싶은 첫 성지가 비교적 가까운 곳이어서 더욱 가능성이 높기에 이번에는 큰 기대를 하게 되었다.

주일미사 후 ‘하얀풍차 bakery’ regular 아가다 자매 팀이 오늘부터 함께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생각보다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주게 되었다. 거의 1년 이상의 일요일 전통이 깨어지게 된 것이니까.. 언젠가 이런 종류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지만 5명 그룹에서 2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섭섭한 정도를 넘는 것이었다. 이유는 일요일에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주식시장의 불안함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을 것으로 우리는 짐작을 한다. 한때 뜨겁게 오르던 주식 경제에 큰 희망을 걸고 살았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이런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는지, 사실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갑자기 쓸쓸하게 줄어든 하얀풍차 그룹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것을 내가 어찌할 수가 없으니, 그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레지오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했던 이 모녀 자매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제는 볼 수가 없을 것을 생각하니 싸늘해지는 초가을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해 주고, 치매기로 고생하시는 자매님의 앞날이 더욱 염려가 된다.

며칠 전까지 Black Day의 나날을 경험한 뒤라서 그런가, 가느다란 희망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해결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늘 나누게 된 대화를 통해서 얻게 되는 새로운 깨달음 비슷한 것들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자신만만한 신앙여정, 너무나 나는 자만심의 함정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겸손과는 거리가 있는 상태로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가야 할, 알아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여정을 앞서 가보았던 두 베로니카의 각종 경험담을 나는 너무나 쉽게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내가 걱정하고 피하고 싶던 ‘가상적인 외로움’도 이런 각도에서 보니 크게 비관할 정도는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에 의한 것들은 생각보다 훨씬 좁고 작은 것인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나를 괴롭히는 ‘다가오는 외로움’의 걱정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되었다.

Swing By Tucker, 모처럼 나라니, Ronan, Luke,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도 정든 개 Senate를 한꺼번에 모두 볼 수 있는 일요일이 되었다. 성당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딸, 사위, 손자가 살고 있는 장점을 우리는 별로 크게 활용을 못하고 산다는 자책감을 항상 느낀다. 그 동안의 이유는 너무나 더운 날씨지만 이제는 거의 완벽한 기회가 되어서 오늘은 거의 무조건 들렸다. 화장실 훈련 potty training이 거의 성공을 했다는 로난, 아~ 이것이 나는 너무나 신기한 것이다. 나이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로난이지만 엄마, 아빠는 크게 조급한 모습이 아니다. 무조건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들에 비하면 참 여유가 있는 것, 이것도 문화적인 차이가 아닐까?

오늘은 의도적으로 로난과 함께 놀려고 노력을 한 셈이어서 나도 아주 기분이 좋았다. 쫓아가며 잡으려는 나의 느려진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열심히 녀석을 잡으려 달리고 따라갔다. 갑자기 우리를 처음 보는 것처럼 서먹해하는 녀석의 모습이 아직도 역력했지만 Luke는 친가 시댁에 가도 마찬가지라고 위로를 한다. 비교적 ranch house 작은 집에서 개구쟁이 로난에게 전력투구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보기가 좋았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유일한 외손자, 겉 모습은 우리와 조금 달라도 이제는 우리의 혈육이라는 실감을 금할 수가 없으니..

오늘 모처럼 보게 된 Luke와 나눈 화제는 거의 우연한 것, 3주 후가 Halloween 이라서 그런 것이었을 것, scary movie에 관한 것. 나 자신에 못지않게 그런 무시무시한 영화를 좋아하기에 비록 가정적인 화제는 아니어도 우리 둘에게는 흔치 않은 언어장벽이 거의 없는  ‘편한’  순간이다. 아이들 어렸을 적 하도 내가 horror movie를 자주 보아서 아이들은 싫어했던 ‘귀신영화’들, 이제는 사위가 나를 대신하는 것이 세월의 장난으로 느껴진다. 오늘 나누게 된 얘기에는 오래 전 Wisconsin 살던시절 일어났던 끔찍한 ‘식인종 살인범 Milwaukee CannibalJeffrey Dahmer 에 관한 영화, 그것을 나라니와 둘이서 보았다고… 허~ 나라니도 이제는 공포영화를 본다는 말인가?

오랜만에 돌아오는 길에 도라빌 H-Mart엘 들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나에게도 그곳에서 할 일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 우선 금주 선언 이후 ‘술 종류’은 물 건너 간 것이고, 이곳에서의 food court의 외식도 ‘미친 듯한 inflation’덕분에 가급적 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유일하게 시간을 보내는 곳은 주방용 각종 물품들 정도… 이렇게 관심이 가는 일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게 되면 나중에는 무엇으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지 궁금해진다.

시월 구일, 한글날… 참 머리 속은 50년 이전으로 돌아가 ‘한글날’이란 세 글자가 100% 자동적으로 연관되는 것을 보면, 누구 말대로 오래된 기억들이 더 오래 동안 기억이 된다는 말이 맞는가..  하지만 그것이 전부, 한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연중 28주일, 다른 날과 크게 차이가 없는 ‘A Day in the Life, 인생의 하루’를 보낸다는 기대는 오늘 조금 차질이 있었다.

이렇게 보낸 일요일, 평균적으로 B+  정도가 될까? 그런대로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와 하늘 높은 곳에 떠있는 햇빛을 마음껏 감사할 수 있었던 것, 그런 주일 바로 하느님의 날이 아니었을까?

 

2주 만에 다시 도라빌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로 복귀를 하였다. 고향과 같은 곳, 하지만 점점 나는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잡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멀어진 듯한 성당주보도 자세히 보는 것을 피하며 지낸다. 이것을 자세히 보면 볼 수록 나, 아니 우리 세대는 밀려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사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음이 우울하다.
갑자기 시원한 날씨에 뜻밖의 빗방울까지… 잔뜩 흐려서 아마도 집안도 아주 써늘할 것이다. 물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요일의 모습… 2주 만에 보는 우리 coffee & bakery 하얀풍차 regular들, 반갑기 이를 데가 없다. 그만큼 어울린 역사도 1년이 훨씬 넘어가니까 자연적인 것이 아닐까? 게다가 오늘은 프카 자매가 뜻밖에 출현해서 합석을 하게 되었으니 조금은 group dynamic에 변화를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아예 여자 5명 남자 1명의 그룹의 모습이 되었으니.. 하기야 어색한 모습의 형제님보다는 이런 구성도 나에게 큰 문제는 없다. 지난 10여 년 레지오에서 나는 단단히 단련을 받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나도 사실 편하기도 하고..

모처럼 미사 후에 친교실을 거쳐서 나가며 R형 자매를 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형제님이 ‘탈장 수술’을 받았고 조금 우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탈장 수술이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놀랐을 것은 분명하기에 더욱 걱정을 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나면 전화를 한 번 걸어볼까… 육성으로 들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텐데, 왜 나는 이렇게 굼뜰까?
‘할 일이 없는 듯’한 한가로움을 맞은 일요일 오후는 낮잠을 자기에는 최고의 날이고, 게다가 old pops와 vintage Autumn music mix는 잠을 자면서도 아련한 자장가처럼 옛적의 추억을 보듬으니… 이것이 천국이 아닐지. 하지만 포근한 만큼 그 시절의 각종 후회와 슬픔들도 함께 묻어 나온다. 그래서 공평한 거다. 아~ 본격적인 황금색의 가을이여~ 조금 더 하느님의 사랑, 기쁨, 평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연숙의 absentee ballot application을 성공적으로 file하였다. 이것으로 올해 11월 8일 투표일에는 일부러 drive해서 임마뉴엘 교회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시간을 두고 연숙의 투표도 미리 확인을 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하지만 이것을 이용하는데 너무나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하게 만든 것, 거의 ‘공화당 XX’들의 농간이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이번에 내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다. 대다수 노약 minorities들이 피해자가 아닌가? 옛날의 Jim Crows law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의 극치였을 것이다.  이번 우리의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Walker라는 미개인처럼 생긴 ‘깜씨’, 절대로 떨어뜨려야 한다. 그 놈이 되면 정말 당분간 희망이 없다. 나머지 Governor는 KempAbrams 사이에서 솔직히 아직도 미정…

 

세상의 근심 걱정 등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때와 시대에 따라서 바뀌긴 하지만 요즈음에는 1940년대 흑백영화 Charlie Chan series 영화를 졸면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록 중국인 ‘처럼’ 생긴[사실은 백인 배우 Sydney Toler가 짱깨 Charlie Chan 역으로 분장] 주인공이지만 백인들 속에서 종횡무진 각종 추리력을 과시하며 범죄 case를 수사, 해결하는 것, 보기에 지루하지 않다.

 

오늘이 바로 이탈리아의 오상 五傷의 성 비오 성인 신부님 축일, 하~ 이 ‘귀신 잡는’ 신부님의 날이었구나!  악의 ‘현존재’를 현 시공간에서 몸소 체험하신 분, 나는 유난히 이분을 오늘 꼭 움켜 잡으려고 애를 쓴다. 나의 어수선한 세속 관심으로 또 다른 함정으로 빠져들어갈까 봐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다. 이 신부님이 경험하신 각종 문제들은 분명한 악령들 때문이었고, 나의 각종 문제도 비슷할 것이라는 확신도 변함이 없다.

일기예보를 한동안 안보며 사는 것, 가끔 당황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아침미사에 가려고 차를 탈 때, 짧은 shirts를 입고 나오는 나를 보고 연숙이 깜짝 놀라는 것에 내가 더 놀랐다. 밤새 하늘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거의 10도가 떨어진 기온과 반으로 떨어진 습도까지, 완전히 70도의 날씨가 된 것. 아~ 이제는 90도란 말은 당분간 없겠구나~ 일단 Indian Summer는 끝이 난 것이다. 그러면, 진짜 가을의 시작인가~~

 

KEURIG pod coffee  brewing의 편리함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동안 꽤 자주 이것으로 ‘수시로’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이것을 더 활용하려면 각종 다른 brand의 coffee를 box package로 사두면 되는데 오늘 Kroger에 간 김에 2가지 새로운 것을 찾아서 그 중에 한가지의 맛을 보았다. Paul Newman Organics인데 아주 새로운 맛이기도 했지만 sales profit을 모두 charity에 donation을 한다는 ‘놀라운’ 문구를 보게 되었다. 이런 제품들은 당연히, 무조건 사 주어야 할 듯하다.

오늘은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진 날, 그러니까 YMCA gym을 일주일에 3번을 간, 그런 날이 되었다. 매주 이렇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 나이에 조금 무리라는 것에 의견이 맞아, 한 달에 한 주정도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역시 피로 했는가, 운동 후에 늦은 달콤한 낮잠을 자게 되었다.
오늘은 집에서 본격적인 육체적인 일을 할 수 없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서운한 심정으로 HYUNDAI Sonata의 waxing은 할 수 있었다. 조그만 paint의 흠, scratch이외에는 거의 body는 waxing으로 새 차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오늘이 그 악몽의 nine-eleven [Patriot Day] 이란 것을 오늘 아침에야 새삼 깨달았다. 21세기가 진짜로 시작되었던 2001년… 나이 50을 얼마 전에 넘었던 그때, 어찌도 세월의 위력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시간의 마력, 매력, 허구성… 그때의 그 일들을 어떻게 잊고 살았단 말인가? 어제처럼, 아득한 태고처럼 동시에 느껴지는 이 신비스럽기까지 한 망각과 기억의 계곡을 살고 있구나…  Enya 의 hit tune, Only Time이 하루 종일 장송곡처럼 흘러나오던 이 순간순간 들은 역사적 교훈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모두 망각의 세상으로 흘려 보내고 싶은 것들이다.

 

이쪽 온 지역이 온통 구름으로 덮인 9월 11일… 청명하기 이를 데 없었던 2001년의 9월 11일과 대조적… 어쩌면 그날은 그곳이나 이곳이나 [아마도 전 지역이] 어쩌면 그렇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을까? 영화나 만화보다 더 잔인한 광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던 그 아침 무렵, 솔직히 다시  생각은 물론이고 추측, 회상하기도 진저리가 난다. 그런 세월은 나 개인 차원으로도 슬프고 고통스런 나날의 시작이 되었고… 뒤의 이야기는 한 권 소설의 한 장을 이루는 역사가 되었다.  다행히 20+ 년이란 세월의 도움으로 고통은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 어두움의 보상일지도 모르는 드높은 차원의 세계를 알게 되고 만날 수 있는 행운의 끝머리를 잡은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그렇게 Patriot Day는 기억을 하는데, 오늘이 Grandparents Day란 것은 조금 comic하게도 보인다. 이런 날이 있었던가?  그렇구나, 우리는 분명히 grandparents니까, 조금은 자축을 할까? 모든 grandparents 들… 누가 있나? 주위에… 많을 것이고, 참 힘든 humanity로써의 의무를 다하시느라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

오늘 주일 미사는 Patriot Day와는 전혀 역사가 다른 추석 미사를 맞았다. 전통적인 ‘추석상 차림’ 의례가 미사 전에 치러진 것이다. 비록 엎드리는 절은 아니어도 성묘의 느낌은 충분하다. 중국의 중추절을 언급하는 중국사목 이력의 ‘중국 통’ 신부님, 미국의 오랜 전의 국가적 고통인  9/11을 뉴스로 듣긴 했겠지만, 피부로 실감할 것은 무리인가? 전혀 2001년 오늘 일어난 일은 완전히 잊는 듯하니..  지역사목을 위해서 그래도 조금은 추억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을까? 한번 떨어진 ‘인기점수’가 만회되는 기회를 별로 기대할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오늘로서 Living in the Mindful Universe 책을 완독하게 되었다. 2018년 년 말에 사서 읽기 시작한 것, 그러니까.. 3년이 훨씬 넘은 뒤에야 다 읽은 셈이다. 저자의 생각이 비교적 잘 전달된 듯하고 대강 그의 주장을 일단은 알 수는 있다. 제일 나에게 다가오는 공감은,  ‘이성적 과학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성적 실재로 넘어가는 그 과정의 서술이다. 과감하게 반론을 제기할만한 지식이 나에게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아니 상식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의 주장이 ‘제발 제발 100%’ 맞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완독 후 나의 바램이라고 할까…

며칠 째인가YouTube video의 계절배경음악, Vintage Autumn Music을 아예 전부를 계속 듣는다. 비디오 그림은 1950년대 각종 잡지들에서 온 것이고 음악은 그 당시의 crooning style의 정겹게 느린 ‘가을 곡’들… 우연히 주제들이 모두 9월, 비, 낙엽 에 상관된 것들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심취했던 것들이 이제 고스란히 우리세대, 나에게까지 온 것인데, 놀란 것은 완전히 우리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사실… 결국 세대는 시대를 뛰어넘으며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늙음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아니 쉽게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완전히 초가을의 모습이 보이고 느껴지는 오늘 가만히 밖을 보니 그렇게 정돈된 잔디가 예전처럼 깨끗하게 보이지를 않는다. 자세히 보니.. 아하~~ 마른 나뭇잎들이 적지 않게 깔려 있구나~ 그 위를 보니 역시 dogwood 의 가지의 푸른 잎새들의 색깔이 주황색 쪽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낙엽 계절의 아주 시발점을 포착한 것이다. 조금 더 진행되면 이제 잔디 일을 하는 노고는 줄어들 것인데… 솔직히 섭섭하고 시원하다고 할 것인지..  이제 차가운 비바람만 한 번 불면 걷잡을 수 없는 낙엽의 장관이 펼쳐지며 9월은 시월로… 친구 양건주의 ‘잊혀진 계절’의 순간이 다가오는가~ 아~ 세월의 신비로구나.

아침 미사 후, Kroger에 들려보니 일년 만에 다시 등장한 ‘한정판’ STARBUCKS Pumpkin Spice ground coffee가 보여서 cart에 넣었고, 다른 쪽에는 색깔도 찬란한 황금색에 가까운 pumpkin들이 쌓여 있었다. 아~ 9월 초순, 가을이 재빨리 다가오고 있구나…  Warm September of My Year… 작년에 가끔 들었던 Life Magazine의 cover page를 연상케 하는 Vantage Autumn Music 을 다시 찾아 듣는다. 나의 나이가 일년 중 몇 월에 해당할까, 분명히 9월은 지났을 듯하다.  어렸을 적에 많이 보았던 멋진 가을,  ‘미국의 모습’들, 바로 그런 것이 이제는 나에게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왜 그렇게 그 당시에 상상했던 ‘미국의 가을모습’이 아직도 나를 편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도 당시에 우리 삶의 희망은 ‘저 멀리 있는 미국’이란 이상향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모처럼, 정해진 외출, 힘든 일, 모임 등이 예상되지 않는 며칠을 앞두고 있으니 분명히 나는 느긋하고 편안해야 할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  알고 보니 토요일은 추석과 Atlanta Korean Festival이란 것이 있긴 했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뿐이다. 이런 우리의 자세는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추석도 그렇지만 어제는 나라니가 우리들보고 Korean Festival에 안 가느냐고 했는데, 우리의 반응이 묵묵부답 이었으니… 그 애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한마디로 우리가 귀찮은 것 때문이 아닌가? 일년에 한번 오는 이런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참여 하는 적극성이 아쉽다. 이제 곧 자라나는 손주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The Nativity of the Blessed Virgin Mary, 가톨릭 전례력으로 오늘은 성모마리아 탄생일이다. ‘기념일’로 나와 있지만 나에게는 더 큰 의미를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2007년의 상기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성모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시작, 그것이 나의 인생 후기 역사의 시작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그날’까지도 계속될 것이다. 오늘 아침 미사는 주임신부님의 배려인가, 축일미사로 긴 전례양식을 따르는 멋진 성모님의 생일축하 미사가 되었다. 끝날 때에는 ‘꺼꾸리와 장다리’ 의 꺼꾸리 자매가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선창을 해서 이채로웠다.

 

최형 어머님 96세 선종, 장례미사, 과연 어떤 모습의 장례식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일부러 부르지 않는 복잡한 대가족의 내부 사정은 과연 무엇일까? 짐작은 하되 확실한 것은 없다. 결과적으로 조문객의 숫자는 상당했어도 가까운 친지들은 우리 눈에 띄지 않은 듯했다. 가족의 덩치가 크면 이럴 수도 있겠다는 것은 알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특히 진희 엄마를 통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로 오늘 장례식의 주인공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상상할 수도 있다. 선종직전에 이왕이면 못다 풀지 못한 매듭들 풀 수 있는 아량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성당에서 천주교 의식으로 연도를 포함한 정식 절차로 치러졌지만 막상 장본인은 거의 알려진 바도 없는 듯하고 우리 성당과 특별히 깊은 연관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 등이 고인을 추모하는 연도 등을 하면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0년 초의 최형 아버님 장례, 몇 년 전의 동생 James 의 때 이른 선종, 장례와 함께 오늘의 행사로 우리는 묘한 인연으로 이 ‘최씨 대가족’의 장례식과 무슨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고인들의 연옥에서의 빠른 벗어남을 위한 기도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일주일 만에 정든 본당 순교자 성당 대성전 제단 뒤의 대형 십자고상을 마주한다. 전에는 일주일 2~3번까지 볼 수 있었던 이 모습이 이즈음에는 일요일이 맞대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 되었다. 오늘은 새로 부임한 보좌신부님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측을 했지만 실현되질 않았다. 이유가 너무나 실망적인 것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했다. 어제 특전미사 후에 신자들과 bowling을 하고 뒤풀이까지 해서 아침에 깨울 수가 없었다고… 허~ 분명 이유는 이유인데, 납득하기가 힘든 이유로구나. 공식적 첫인상이 문제가 아닐까…

실망은 그것 뿐이 아니었다. 9월 초부터 재개될 예정으로 알고 있던 ‘봉사자를 위한 요한복음 공부’의 format이 완전히 바뀌는 것,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은 화요일 날의 강론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 목요일 저녁에 외출하라고… 그것은 사양을 할 수밖에 없구나. 문제는 이유도 밝힘이 없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결정을 한 것인데… 우리로써는 별 수가 없지 않은가? 현재로써는 이미 구입한 교재로 집에서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이렇게 오늘 주일미사, 실망, 실망… 그리고 실망스런 주일 미사를 맞았다.

 

Holy Family 동네 미국성당 9시 아침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한여름을 가는 대성전 후면 거대한 유리창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진하디 진한 초록색의 현란한 색상을 담고 싶었는데, 결과는 역시 ‘십자고상’이외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은 질책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시각적 유혹은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중복을 넘기며 본격적으로 휴가들을 떠났는지 미사에 사람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지만 아마도 이런 조용한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을까?

여름다운 여름… 이라고 부르고 싶은 올 여름, classic summer.. 그래 이런 여름이 30+ 년 전 이사올 당시에 느꼈던 그런 것 아닐지.. 여름은 사실 여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사실 조금 여름답지 않게 너무나 시원했던 몇 년을 보낸 듯하다. 일어나서 밖의 기온을 느껴보니 역쉬~ 76~77도, 와~ 정말 중복 복더위 여름이로구나… 지난 밤에 기온이 별로 떨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 여름다운 여름을 가급적 납량하는 기분으로 즐기자…

내가 세상 [정치] 뉴스를 피하며 사는 것이 벌써 12일째라고?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었다. 아침의 NYT newsletter email에서 한 줄의 소식만 재빨리 보는 것이 전부니까… 그것도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보고 있다. 최소한 그곳에는 사실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없으니까… 어제 저녁 순교자 성당의 한 친목단체에서 받은 카톡 메시지, 웃기지도 않는 아이들 장난이 분명한fake message를 바보처럼 그대로 마구잡이로 보낸 것을 보니 정말 한숨이 나온다. “영국 엘리자벳 여왕이 한국에서 은퇴여생을 보낸다..”고?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결국은 근래 각국의 정치판도에도 이런 바보천치들이 많이 투표자로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정말 한숨이 나온다.

오늘의 YMCA workout, summer camp가 끝나는 듯, 아이들의 talent show가 indoor track에서 한창이었다. 때문에 걷는 것은 복도에서 조금 흉내만 낸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muscle workout의 시간이 더 생겼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각종 근육에 생기가 느껴지지만 아직도 보기에는 별로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며칠 째 계속되는 ‘폭염’ 더위, 하지만 우리의 몸은 거의 완전히 적응이 된 상태가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가급적 몸을 쓰는 바깥일은 중단되었다는 사실뿐이다. 대신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납량물’ 역할을 하는 것들을 즐기는 편안함이 있으니 이것도 이런 때에 살맛이 나게 하는 것 아닐까?  납량물 역할을 하는 것 중에 ‘역사물’이 효자 노릇을 단단히 했고 지금은 자연과학 쪽을 기웃거린다. 오늘은 그것의 하나로 Brian Greene의 WSU lecture: Special Relativity 에 관한 것인데, 몇 년 전에는 완전히 수학에 의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것은 수학이 완전히 빠진 것이어서 조금 더 ‘느낌’에 의지한다고 할까…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수학이 빠진 것이 더 이해하는 것이 수월하다. 거의 현상론, 철학의 경지라고나 할까… 이것도 멋진 납량물 역할을 하니… ‘전설의 고향’에서 ‘상대성 원리’의 급격한 진화는 너무나 재미가 있다.

우리부부의 저녁기도, 환자명단 1번에 있는 중앙동창 김원규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 [교성이, 중앙57회 카톡방] 날아들었다. 그렇게 활발하고 친절하게 나의 카톡에 답신을 하던 원규, 김원규…  항암치료를 잘 받으며 아주 밝게 투병을 하는 그의 자세가 참으로 나도 배우고 싶었다. 그의 자세한 성격은 거의 다 잊고 살았지만 예전의 그와의 짧았던 인연도 아련히 떠오른다. 하지만 기도 중에 그렇게 완치를 기원했는데..  너무나 암담하고 슬프기만 하다. 특히 우리 동년배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타계, 선종하는 것이 상상외로 나를 외롭게 만든다. 원규는 크리스천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마도 우리들의 기도를 통해서 영생의 세상으로 갈 것을 그려본다. 어차피 우리들 그곳에서 다 재회할 것 아닌가? 가족들,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기를… 빌어본다. 편히 쉬게, 친구야~~

 

아~ 이 광경, 아마도 Pandemic 이후 처음 보게 되는 행운이 아닐까? 9시 아침 미사 참례 차 성당 주차장에서 성전으로 걸어 들어가며 목격한 것, 아~ 감사합니다. 너희 오리가족들 모두 살아있었고, 건강하구나! 반갑다.. 물론 전에 보았던 그 오리가족, 친지들이었다. 갑자기 비로 젖은 성당의 거대한 대지가 더욱 초록색으로 변하는 착각을 일으키는 현기증을 느낀다. 오리들아, 아무런 문제없이 건강한 삶을 살거라!

우산을 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세차게 쏟아지는 비의 모습을 Holy Family 대성전에서 제대를 넘어 보는 느낌은 한마디로 은혜로운 것 아니었던가? 이것이야말로 은총, 은혜로운 것이다. 게다가 일주일 만에 재개하는 YMCA 운동, 이것도 반갑다. 오늘은 의식적으로 bicep, triceps 쪽에 stress를 주었다. 요즈음 t-shirts를 입을 때의 느낌이 역시 그쪽 근육의 모습이 초라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오늘도 명심을 하고 쌀밥 도시락으로 Sonata Cafe을 준비했고, 비 쏟아지는 창 밖을 바라보며 차 속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 맛도 있었고 기분도 좋았으니… 언제까지 이런 기분이 지속될 것인지는 몰라도… 상관없다, 상관없어… 내일은 내일이고 모레는 모레에 마주하면 되니까…

지나간 밤 1~2시 쯤이었는가, 귀속을 울리는 소리가… 비록 earplug 을 했어도 들리는 똑똑~ 떨어지는 소리였다. 잠 속에서도 너무나 반가워 earplug을 빼보니, 역쉬~~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쏴~ 하는 잔잔한 빗소리가 아닌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고역이지만 효과는 그 반대다. 더욱 편안하게, 행복하게 잠을 청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똑똑~ 소리는 비가 조금씩 내린다는 것, gutter의 downspout로 물방울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한가지 사실, 왜 올해는 ‘천둥, 번개, 폭우’를 볼 수가 없을까? 비가 내리면 정말 감질나게 잔잔하게 조용하게 내리니…  그래도 이것이 웬 떡이냐? 하루를 감사하며 보내야지…

며칠 전부터 저녁 묵주기도 시작 전에 10~20분 정도의  ‘침묵의 시간’를 시도하고 있다. 목표는 진정한 의미의 묵상, 관상 기도 일 수도 있지만 우선은 ‘조용히 듣는 순간’을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현대의 기도의 대가들도 한결같이 침묵의 위력을 강조한다. 하기야, 세상의 ‘잡소리, 잡음’이 없는 곳에는 자연스레 초월적 존재의 느낌이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시도하는 나로서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 커다란 발전이 아닐까? 기도문기도에 100% 의자하며 앵무새처럼 기도를 하는 것에서 다음 단계로 발전한 것 아닐까? 듣는 시간, 조용히 있는 시간… 이것이 나의 신앙생활의 다음 단계의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오늘 처음으로 외출할 때에 운전을 하며 새로 산 ‘싼’ bodycam 을 써보았다. 결과적으로 video는 하나도 문제가 없었는데, 역시 이 video camera을 어떻게 몸에 고정을 시키는가 하는 것이 주관심사가 되었다. 허리의 belt가 제일 안정적이긴 한데 view area가 조금 아래로 쳐지는 것이 문제… 오늘 찍은 것으로 한번 연구를 하면 좋겠다. 조금씩 이것을 알게 되면서 용도가 꽤 많을 듯 보여서 투자가치는 꽤 있을 듯하다.
첫 시험 video, Hanover Woods subdivision 으로 들어가는 길의 모습인데 video자체는 괜찮았는데 time stamp가 틀렸다. 이것을 어떻게 reset을 하는 것인가? 아, 찾았다. 참 setting하는 것, 원시적이다. settime text file에 현재 시간을 넣고 ‘재빨리’ bodycam을 start하는 것. 글쎄 이렇게 해서 시간을 비슷하게 고쳤지만 참 귀찮은 것인데 일단 비슷하게 바꾸었으니 OK.

 

오늘은 예상을 뒤엎고 낮잠을 두 번이나 자는 게으름 절정의 날이 되었다. 하지만 멋지고 편한 낮잠이어서 후회는 없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반갑게 비가 내리는 주위의 모습과 오늘 조금 강하게 했던 근육운동이 어울려 이런 현상을 빚은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즐거운 피곤함의 결과였으니까 어찌 후회를 하겠는가?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면 왜 이런 때에 멋들어진 꿈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요즈음, 나는 꿈을 유별나게 기다리며 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의아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꿈은  내가 사는 제2의 인생일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상상까지 하니까… 기억에 두고 두고 남는 그런 꿈을 기다리며 사는 것도 재미있지 않은가?

의도한 만큼 집중하지는 못하고 노력하는 시간도 짧지만 현재 나의 곁에서 수시로 읽는 책들은: Proof of Heaven저자 Eben Alexander의 ‘Living in a Mindful Universe‘, 그리고 새로 산 Robert Barron의 ‘Redeeming The Time‘ 두 권뿐이다.  ‘… Mindful Universe‘는 예전 2018년 ‘세상이 어둡게 보이던’ 연말에 사서 읽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거의 3번째가 아닐지… 읽기 쉽고 흥미롭고 신기하기도 한 새로운 사실의 보물창고라고나 할까…  ‘과학자의 눈으로 본 초월적 세상의 모습들’의 대표적인 책이고 아마도 앞으로도 수시로 특히 신앙의 쉼표가 느껴질 때 더욱 더 손이 갈 것이다.

Barron주교의 Redeeming the Time, 근래, 특히 최근의 해괴하고 절망적인 각종 정치적 위기까지 포함해서 살맛을 잃게 하는 때에 등대 불 역할을 기대하는 책. 이미 저자가 발표한 각종 글들을 한 책으로 묶은 것이다. 짧은 각종 essay들, 어떤 것은 다른 source를 통해서 읽은 것도 있다. 짧지만 시사적인 주제들인데다가 학문적 깊이까지 가미된 글, 한마디로 나에게는 도전적인 것들 투성이다. 한두 군데 모르는 단어는 꼭 보이는 글이 이 주교의 글들이다. 절망적인 세상에 희망적인 글들, 그것도 믿을만한 머리 좋은 학자, 사제의 글, 어찌 이것을 놓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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