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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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연 年 피정 避靜, annual ‘spiritual’ retreat… 이것이 우리에게 몇 년만인가 며칠 전부터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14년, Coyners Monastery 였고 그 전해인 2013년엔 Carmel Retreat Center였다. 그러니까 지나간 5년간 우리는 ‘집을 떠난 피정’엔 못간 것이다. 거의 매년 한번 정도는 경험해야 할 이 ‘영신적 휴가’를 왜 못했던 것일까?

우리의 연례 피정은 100% ‘레지오’ 주관일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우리의 레지오 (그러니까 꾸리아)에서 그 동안 주선을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Leadership, leadership & leadership의 부재라고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요새 대통령 같이 않은 인간들처럼 사람 잘못 뽑으면 어떤 결과, 특히 장기적인 여파가 생기는지..  두고두고 후세가 짊어질 폐해들, 무능력한 것뿐만 아니라, 숫제 퇴보하는 leadership, 요새 뉴스를 보아도 이제는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 leadership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고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심각한 피정’을 주선한 듯하다. 더욱 반가운 사실은 이번에 가는 곳이 6년 전에 갔었던 곳,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아직도 신선한 느낌이다. 솔직히 나는 참 많이 듣고 배운 곳이었다. 아직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닐 듯하다.

이제 몇 시간, 3시간 있으면 ‘짐을 싸 들고’ 60여 마일 떨어진 곳으로 출발을 하는데, 이번 피정은 현 주임신부님이신 ‘이재욱 요한’ 신부님 주관이라서 미리부터 기대가 적지 않다. 이 신부님의 영성적, 신학적 깊이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알지만 이번에 그것을 내가 경험하게 된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신부님의 마지막 피정지도가 되지 않을까…

Fort Yargo State Park picnic area

 

¶  지난 주일에는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우리 60~70대 성당모임인 등대회의 야유회 picnic 엘 갔었다. 2017년 가을에 입회한 이후 몇 번 이런 행사엘 갔기에 이제는 조금 익숙한 편이지만 나로써는 감회가 새로운 것이, 이런 ‘사람들 모임’ 그것도 ‘놀러 가는’ 것에 나는 거의 가질 않고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흐뭇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삶이 ‘정상적인 삶이 아닐까..

이번의 야유회가 조금 더 색다른 것은 우리 부부가 같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는 각종 임무로 너무나 바쁜 스케쥴에 얽매인 연숙이 마음 놓고 참여하기가 힘들었었는데 최근에 하나 둘 씩 ‘책임’을 내려 놓기 시작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도 지난 해에 맡았던 구역장 임무를 내려놓고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간 곳은 나도 한번 간 적이 있었던 Fort Yargo State Park으로 작년에 구역장 연수회를 그곳에서 한 관계로 나는 한번 간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는 cottage에서 하루를 묵었지만 이번에는 picnic area로 가서 몇 시간을 먹고 즐기다 돌아왔는데,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적당한 하루의 휴식, 여행을 한 셈이 되었다.

이 등대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우리와 나이가 아주 엇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고, 그 중에서도 나와 동갑인 형제, 자매들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렇게 ‘동류의식’을 느껴본 적은 아마도 없었을 듯 하다.  나이가 비슷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어떤 사람들은 상관을 안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정 반대다.  그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끼며 ‘좋아하는 것’을 연숙은 조금 이상하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나는 사실 그렇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이 어찌 큰 의미가 없겠는가? 이 그룹은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편한’ 느낌을 주기에 ‘큰 사고’가 없는 한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

 

¶  오늘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 후에 배해숙 (베로니카) 자매님 선종 4주기 (5월 2일)를 맞아 성당 근처에 있는 Winters Chapel  memorial park 엘  갔었다. 돌아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나.. 2014년 가을에 말기암 환자로 처음 만났고 2015년 5월 2일에 선종한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나와 동갑내기 자매님이었다. 남편 형제님은 그 전해에 먼저 타계를 하고 ‘철없이 보이는’  장성한 두 아들을 댕 그러니 남겨놓고 간 자매님이었다.  다행히 친 오빠, 친 여동생이 있어서 장례식 이후 가끔 소식을 주고 받지만, 이제는 4년의 세월 탓인지 당시의 강렬했던 느낌들도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듯 하다.

당시, 우리 둘은 ‘레지오 활동’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배 자매님을 천주교인으로 입교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고 성공을 한 셈이지만, 과연 자매님 우리가 배운 대로, 희망하는 대로 ‘좋은 곳’에 가셔서 평화로운 다른 삶을 ‘남편 형제님’과 같이 사시는 지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 그것이 신앙이고 희망이니까.. 자매님,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고 남아있는 두 사랑하는 아들들 그곳에서 잘 보호해 주소서…

올 들어 처음으로 느껴본 ‘후덕지근’ 한 어제 밤을 보낸 후 결국은 자연의 섭리는 다시 ‘통계적 평균’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조금 심했나… 극과 극의 맛을 자랑이라도 하듯 오늘 새벽은 완전한 겨울 같은 느낌이다. 3월 31일은 역시 이른 봄이라기 보다는 늦은 겨울이기도 한 것이다. 차가운 비와 더불어 시베리아 같은 느낌의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뒤 뜰에 잠깐 나가보니 어제 입던 옷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날씨로 변해 있었다. 지나간 해 이맘때쯤 남긴 ‘세찬바람 불어오면…’ 을 읊조린 글과 그림이 생각이 나는 아침이 되었다.

이런 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광경은 역시 ‘포근하고 따뜻한 늦잠’을 즐기는 나의 모습이지만 오늘은 그런 가능성이 제로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고, 한가하게 쉴 수 있는 여건도 아닌 것이 아쉽기만 하다. ‘주일은 쉬어라’.. 십계명.. 흠…. ‘노동’은 쉬겠지만 나의 七十 老軀 를 끌고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데..

주일 아침의 ‘십계명의 부담’ 넋두리의 유혹을 제치고 나머지 일요일 하루를 보낸 후에 느낌은 역시.. 이것이다. ‘할 것은 해야 하고, 뛸 데가 있으면 끝까지 뛰는..’ 바오로 성인의 가르침, 아니면 레지오 교본이 강조하는 ‘부지런함과 절제되고, 훈련된 삶 disciplined life’가 주는 기쁨,  기본적으로 ‘게으름의 죄악’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도 죄악임을 가끔 완전히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무상으로 받은’ 자유의 시간들, 정말 공짜가 아님을 잊으며 ‘나는 절대로 죄가 없다’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 가끔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오늘도 그런 유혹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그것을 물리친 안식일이 되었다.

 

3월의 마지막 주일날 (다섯째)에는 21차 레지오 아치에스 Acies1 행사가 열렸고 우리 ‘자비의 모후’, 연숙이 사회를 진행하게 되어서 한 명이 빠진 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 협조단원 2명, 그것도 모두 ‘형제님들’ 이 참석을 해서 ‘기본적인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2년 전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 이후부터 이런 행사가 오면 단원의 숫자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워낙 신입단원 모집이 어려운 요새의 실정에서 기도 이외에는 크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독을 뿜는 독사들’ 한두 명만 있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피해를 보며… 역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어머니’의 역할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군대 같은 질서로 우리들 모두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하며 의미 있고 보람된 ‘안식일’ 인 3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1. 총사령관이신 성모님께 대한 개인 및 단체 봉헌식, 3월 25일을 전후로 개최한다. 아치에스는 라틴어로 전투대형을 갖춘 군대’라는 뜻이다.

¶  물 건너 간 것, ‘첫눈’: 2019년 2월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28일 밖에 되지 않아서 더 빨리 지나가는 듯 하다. 목을 빼고 애처럼 기다리던 올 겨울  ‘첫, 하얀 시루떡, 눈 雪’,  은 결국 물 건너가는 듯 느껴진다.  왜 올해 내가 그렇게 ‘첫 눈’을 기다렸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지나간 몇 년간 매년 보고 즐기기도 했던 것이라 습관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나이답지 않게 ‘감상적 感傷的’ 인 기분에 빠졌는가.  비록 눈 구경은 못 했지만 대신 비 구경은 실컷 즐기며 살았던 주일을 보냈으니 그렇게까지 실망할 것은 아니다. 대신 YouTube의 video를 통해서 눈보라 치는 모습과 곁들인 멋진 영상음악은 Google ChromeCast의 도움으로 big screen TV를 통해서 실컷 보고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뒤뜰로 흩날리는 몇 송이의 눈발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는가?

 

¶  규칙적인 대장 운동:  지난 주에는 뜻하지 않게 regularity 문제로 며칠간 고생을 했다.  평소에 큰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가끔은 이것이 찾아온다. ‘변비, constipation’이라고 하면 당장 ‘냄새’가 나는 듯해서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 ‘규칙적인 대장 大腸 운동, regularity’ 지만 이것 역시 기분은 마찬가지다.  왜 이런 ‘불규칙 증상’이 찾아왔나 생각해 보니 주범은 역시 ‘달콤하고 편리한 stick instant coffee 중독’인 듯하다. 그것 말고는 혐의를 둘 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예방은 물론 이런 ‘편리,달콤함’에서 벗어나면 되는데 ‘처방, 치료’가 문제다.

Toilet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도 잘 몰랐으니까..  이 regularity문제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서 ‘Prep-H, hemorrhoid’ moment 까지 나가면 정말 골치를 썩게 된다.  나도 경미하게 Prep-H 증상을 몇 번 겪었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이틀 정도 이것으로 고생을 했지만, 증상자체도 신경을 심하게 건들이지만 그것보다 이것으로 기분이 축 쳐지고 우울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이런 며칠 간 고생의 경험으로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조심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Kroger drug counter에서 찾은 ‘stool softener’ 란 pill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고,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를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앞서가는 나이’와 상관이 있는 불편함인가…

 

¶  2월 마지막 주일:  거의 매일 비가 온 듯한 느낌을 주는 2월, 마지막 주일 미사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절대적인 이유’가 아니면 앞으로 주일미사는 동네 미국본당으로 가기로 달 전에 결심을 했지만 예외는 항상 예상 해야 한다.  이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이유는 도라빌 성당 60~70대 친교모임인 등대회 회식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으로,  미사 시작을 ‘쨍~하고 해 뜰 날’ 이란 말로 시작한 주임신부님도 주일에 보게 된 것도 반가웠고, 한달 만에 다시 만난 등대회원들도 새롭고 즐겁게 느껴진 것을 느끼고, 이곳도 조금은 정이 들었나..하는 포근함까지 느끼는 등,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이 주신 안식일’이 되었다.

오늘 ‘레지오 화요일’,  오늘도 우리 집 뒤뜰에서 계속 초봄의 소식을 전해주는 수선화를 꺾어가지고 가서 레지오 성모상 옆에 꽂았다.  성모님 (상)을 보면서, 현재 조금씩 안정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비의 모후’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는 듯한 모습을 그린다. 몇 주 전부터 ‘방문자’로 참관을 하는 ‘예비신자’ 자매를 보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자매도 ‘성모님 job’이었나 할 정도다. 또한 얼마 전 퇴단한 실망스런 자매들과 이 예비신자 자매와 비교를 하며,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다를 수가 있는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올해 2월은 우리로 하여금 지나간 6개월 여 ‘구역모임’으로 인한 ‘고통의 기억’들로부터 더욱 멀게 해 주는 그런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는 다시 제 정신을 차린 듯한 산뜻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들의 3.1절’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들의 3.1절’, 1919년의 기미년이 아니고, 우리 둘에게 3월 1일을 즈음해서 일어났던 각종 ‘좋은 추억’들, 예를 들면: ‘1992년 현재의 집으로 이사 왔던 날’, 부터 시작해서 2012년의 ‘매일 미사’ 전통의 시작까지 3.1절은 우리에게 소중한 날이 되었고 올해도 예외 없이 이날이 되면 추억과 더불어 ‘때려 먹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올들어 처음 피어나는 수선화 꽃망울

 

¶  돌아온 수선화여, 주일 전부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습, 올해 처음으로 피기 시작한 수선화,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아침미사 15분 drive하는 동안 우리는 오늘은 어떤 모습의 봄 소식을 찾을 수 있나 차창밖에 온통 신경을 쓴다. 이것은 우리 같은 ‘젊은 노인’ 부부에게는 논쟁의 여지를 줄 수 없는 거의 완벽한 대화 소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꽃 망울이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수선화가 작년에 하늘로 간 Tobey1의 무덤 주위에서 그 녀석의 영혼을 감싸듯이 정렬을 하고 있음을 매일 본다.  추위를 견디는 수선화의 안쓰러운 모습과 나의 손에 머리를 안겨 마지막 숨을 쉬던 그 녀석의 얼굴이 겹치며 나를 순간적으로 우울하게 한다. 역시 봄과는 거리가 있는 싸늘함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올해의 겨울과 봄의 사이는 유난스럽게 이상한 것이, 겨울이 정말 춥지를 않았다. 영하로 내려갔던 날이 며칠이나 될까? 덕분에 에너지는 많이 절약했겠지만 이런 상태로는 올 겨울 ‘눈 구경’은 물 건너 가고 있다.  대신 장마철을 연상하게 하는 ‘싸늘한 비’의 연속을 겪고 있다. 아마도 봄을 준비하는 초목들은 땅 속에서 잔치를 벌리고 있을 듯 하다.

 

기다리던 눈 대신 싸늘하게 내리는 줄기찬 비

 

거의 ‘악몽’ 처럼 느껴졌던 작년 후반기 6개월의, ‘구역’에 대한 기억, 이제는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2019년의 봄은 우리에게 조금 더 다른 의미를 주는 기회를 주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청순한 수선화여, 피어있는 동안 우리에게 모든 괴로웠던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 가게 해주길..

 

¶  수선화의 성모님:  모처럼, 나와 우리의 ‘등대’, ‘자비의 모후’  주회합 성모님 제대의 주위가 ‘꽉 찬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난 몇 개월간 생존의 위기를 거듭했던 ‘자비의 모후’,  몇 주 전에는 결국  ‘파산선고’ 까지 우려했지만 역시 성모님의 도움이신가.. 최소한의 간부구성이 갑자기 이루어졌다.

 

수선화의 성모님, ‘자비의 모후’를 도와주소서,,

 

게다가 신단원 모집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비신자 자매님이 부활 세례직후에 입단이 거의 확실하게 되는 듯하니, 어찌 수선화의 축복을 받는 성모님이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지나치게 큰 기대는 안 하지만, ‘독물 毒物 이 전부 빠져나간 듯한 ‘ 우리 ‘자비의 모후’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새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올 봄에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1. 작년 6월에 14살 천수를 다하고 떠난 나의 ‘영혼의 벗’ 개 Dachshund 의 이름

연중 시기에서 사순 시기로 가는 길목에서

 

Ordinary Time, 올해 연중시기도 벌써 6주째를 맞는 오늘로서  Extraordinary season, Lent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도 반달 정도 남았다. 싸늘한 비가 간간히 뿌리는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이런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을 맞아 본 것이 얼마만인가 생각한다.  오늘이 더욱 새로운 것은 우리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에서 둘이 미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렇게 오래 된 것도 아닌데 느낌에는 몇 년이라도 흐른 것 같다. 그 정도로 나는 이런 때를 무의식 중에 기다리고 살았던 모양이다.

나는 미사 후에 곧바로 집으로 가서 편하게 late morning coffee의 향기를 즐길 수 있지만 연숙은 다시 곧바로 ‘도라빌 본당’으로 가서 새로 시작되는 견진 교리반 director 일로 땀을 흘려야 한다. 미국본당에 가는 날의 일요일 일정은 이렇게 조금 복잡한 편이다.

두 본당을 가진 우리의 신앙생활은 조금 지혜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언제 도라빌 한국본당을 가며, 언제 동네 미국본당을 가느냐.. 이것을 결정하는 것, 몇 가지 이유는 분명하지만 아주 분명하지 않을 때는 더욱 심사숙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사실 어디를 가나 ‘성체성사’를 하는 것이기에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우리의 신잉생활에 도움을 ‘더’ 줄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영어권과 모국어 권, 언어 차이를 떠나서 문화권의 다름은 이제 오랜 이곳의 생활에서 익숙하게 아는 것이지만, 그래도 항상 새롭기만 하다. 아마도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때까지 이 ‘피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는 계속 새삼스럽게 느낄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색다른  교회공동체를 통한 신앙생활이 우리의 개인적, 가족적 영성생활에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때 깊숙이 관여했던 도라빌 ‘모국어 본당’에서 서서히 우리 둘은 물러나고 있다. 의도적인 면도 없지 않고,  피하고 싶은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는 것, 장기적으로 ‘영육간의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될 수가 없다는 ‘경험적 진리’에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특히 지난 주일에 ‘견진교리반’ 시간에 일어났던 또 다른 ‘trumpian, kafkaesque incident’ 1  해괴한 사건은 연숙으로 하여금 ‘완전히, 깨끗하게’ 교리반 director 임무를 떠나게 하는 마지막 ‘관 coffin 의 못 nail’ 역할을 했다.

연숙도 나와 발을 맞추어 하나, 둘 짐들을 거의 계획적으로 놓기 시작했는데, 제일 큰 것은 ’15년 간의 주보 편집’이 그것이고 지난 몇 년간의 ‘예비신자 교리반 director’가 그것으로,  그녀에게는 거의 ‘은퇴’와 같은 중대한 결정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남는 시간, 여유를 어떻게 더 ‘지혜롭게, 생산적으로’ 쓸 까 하는 것인데 그것을 나는 절대 걱정 안 한다. 벌써 앞으로 ‘신나게’ 할 것들의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1.   견진교리반에 들어온 한 ‘젊은’ 여자의 상식을 벗어나는 무례함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던 사건, 도대체 요새 젊은 아이들은 어떻게 가정교육을 받았고, 그런 ‘애’가 ‘견진’을 받는다는 사실의 모순은.. 

지난 달 말에  ‘프카’ 자매님1 과 카톡 대화를 하던 중에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내  ‘영적독서클럽’에 대한 소식을 물었는데 반응이 아주 ‘부정적’인 것이었다. 최근에 느낌도 그랬지만 역시 이 자매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으로 아예 ‘탈회 脫會’를 하였고 성당을 떠난 별도의 클럽을 만들어서 ‘영적독서’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사정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동안 성당내의 영적독서클럽은 아무래도 무언가 ‘구심점’  결여로  ‘흥미’를 유발하는 클럽의 운영상황이 아닌 듯 싶었다.  흔히 말하는 leadership의 부재 不在, 바로 그것은 아니었을까?

근래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면서 나보고도 읽어보지 않겠냐고 해서 ‘물론 ok’라고 해서 그 다음 주에 그 ‘프카’ 자매님2  손수 책을 갖다 주셨다. 이 동갑내기 자매님, 참 볼수록 정이 많은 분임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아주 특별한 순간‘ 이었는데, 영성적 번역서로 많은 친근감을 주는 ‘류해욱 요셉’ 신부님이 엮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류신부님의 글이 아니고 ‘안토니오 사지’ 라는 ‘유명한’ 인도출신 신부님이 한국에서 지도한 ‘치유피정’의 강의부분을 아주 매끈하고 유려한 한글로 정리한 것이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2013년에 첫 출판 후 2017년까지 18 쇄의 중판을 거듭한 것을 보면 아마도 ‘베스트셀러’ 급의 ‘좋은 책’이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모두 25회의 강의로 이루어진 이 책을 접하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25번의 피정 강의를 한꺼번에 읽는 대신 하루에 하나의 강의를 편안하게 소화를 하면 어떨까? 더 나아가서 2019년 사순절이 시작되는 3월 6일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까지 모두 (쓰고) 읽으며 올해의 사순절을 더 특별하게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5일까지 25회의 강의를 ‘들으려면’ 2월 9일부터 시작을 하면 될 것이고, 그것을 이곳 개인blog에 시한적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류해욱 요셉 신부님은 물론 오래 전 (거의 20년 전?)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셨던 분이라서 익숙하지만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성당엘 안 나갔기에 개인적인 느낌은 거의 없다. 애기로만 듣던 분이었지만 몇 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 직접 강론을 들었다. 그 후 이분이 저서나 번역서를 읽기도 했는데 그 읽은 경험들이 아주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한때 stroke로 쓰러지셨다고 해서 모두 걱정을 하고 기도를 했는데 그때 직접 보았을 때는 거의 완치가 된 듯 보였다.

이 책의 원저자격인 안토니오 사지 라는 분은 전혀 생소한 이름이지만 강의 내용을 읽고, 약력을 자세히 보니 류신부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충만한’ 분인 듯싶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런 피정을 지도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피정강의를 ‘강의록’ 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성경만 가지고 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책에 소개된 website를 가보니 그곳에 궁금했던 ‘모습’들이 나와 있었고 책보다 더 자세한 안토니오 신부님의 배경도 실려 있어서 이곳에 발췌 전재를 해 본다.

 

강단에 선 안토니오 사지 신부님

안토니오 신부와, 옮긴이 류해욱 요셉 신부님

 

Fr. Anthony Vadakkemury, V.C.

안토니오 신부는 1977년 5월1일 2남2녀 중 맏이로 인도에서 출생했다. 양친은 현재 인도의 케랄라에 살며, 그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그의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신학교 과정을 인도와 동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수료했으며, 2006년 12월 29일 인도 케랄라에서 빈첸시오회 수도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6일 첫 미사를 거행하였다.

인도의 방갈로에서 신학교 철학 과정을 마친 뒤, 1년간의 사목 수련을 위해 그는 2002년 케냐의 나이로비로 보내졌다. 이후에 그는 신학 과정을 마치기 위해 아프리카의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탄가자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77개의 서로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지내며, 서로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006년 5월 14일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부제품을 받았고, 이후 케냐의 사목 수련시기 동안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동료 사제들과 함께 중등부 학생들을 위한 3일간의 피정을 (예수선교피정) 지도하였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나이로비의 서로 다른 본당들에서 본당신부를 도와 강론을 하였으며,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많은 본당들에서 청소년 그룹을 지도하였다. 특히 그는 청소년들이 영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에 유의하였다. 또한 부제 생활 중에 수감자들을 위한 피정, 선교 등을 비롯한 많은 피정 프로그램을 지도하였다. 나이로비의 5년간 체류하면서 안토니오 신부는 동 아프리카의 빈첸시오 피정센터 중 하나인 빈첸시오 기도의 집에서도 봉사하였다.

안토니오 신부가 사제 서품 받은 직후, 그의 관구장으로부터 타자니아의 유빈자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그는 두 달 간의 성공적인 사목 임기를 마치고 우간다의 엔테베로 가서 두 가지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엔테베의 빈첸시오 피정의 집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며 재정을 관리하였는데, 故 요셉 빌 신부가 그가 속한 분원의 장상이었다. 또 하나의 임무는 우간다의 마사카에서 새로운 피정센터를 건립하는 것있었다. 그리하여 엔테베에서 180km 떨어진 마사카를 매일같이 오가며 사제들을 위한 피정센터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 건물은 2008년 2월 23일 故 요셉 빌 신부의 80세 생일에 완공식을 거행하였다.

안토니오 신부는 故 요셉 빌 신부의 마지막 몇 주간을 함께하며 임종을 지키신 분으로, 그의 관구장은 故 요셉 빌 신부의 침묵 치유 피정 사업을 이어받을 후임자로 안토니오 신부를 임명하였다.

  1. ‘프란체스카’ 란 세례명을 우리들이 줄여 부르는 말
  2.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지내던 친지의 누님이 되시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매주 레지오 화요일에 보기도 하는 동갑내기 전 음악대학 교수님.  2년 전에는 기타동호회에서 몇 개월 동안 보기도 했던.

¶  동지: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이틀 뒤인 21일이 책상 위의 달력에 ‘Winter begins‘라고 쓰여 있다. 아하.. 바로 Winter Solstice, the Longest Night, Midwinter.. 고추장 냄새가 나는 우리 말 ‘동지 冬至’.. 이제는 동지란 말이 왜 그리 생소하고 심지어 우습게까지 들리는지 조금은 슬퍼진다. 그렇다. 나는 ‘동지’란 말을 들으면 내가 본향 本鄕 으로부터 얼마나 오래, 멀리 떨어져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긴 밤 지새우고 나면 ‘진짜’ 겨울이 시작되는 날..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 공식적 겨울이 시작되는 날은 이틀, 성탄은 6일, 2018년의 마지막 날은 열 이틀 정도 앞둔 날..  2018년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의무행사는 등대회 망년회,  구역점심봉사, 본당 구역 송년잔치가 있지만 ‘등대회’를 제외하고는 글자 그대로 ‘의무적’인 것으로, 솔직히 ‘할 것을 해야 하는, It’s now or never의 심정’으로 별로 신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것들은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닌 것들이고 해야 되었어도 나는 ‘안 했을’ 그런 것들이다. 내가 변신을 한 것인지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래도 송년에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면 60~70대 성당친교단체인 ‘어둠을 비추는’ 등대회, 같은 세대를 살았다는 인연은 믿음의 색깔도 초월하는, 생각보다 진하고 포근하다는 나의 ‘지론 至論’ 에는 아직도 변화가 없다.

 

¶  망각의 나날들:  거의 한달 만에 내 마음의 위안처, 쉼터 ‘retro‘ blog posting 을 준비한다. Blog draft들은 그 동안 많이 남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posting할 시간과 에너지가 거의 없었다. 무언가 나를 지독하게 피곤하고 심지어 쳐지게 했던 그런 지나간 한 달..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주로 (Microsoft Office) OneNote에 남겨진 나의 단편적 기억과 사건들을 다시 모으고 엮으며 달 간의 역사를 재구성해는 작업, 쉽지 않지만 해를 보내며 꼭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제는 기억력이 예전과 조금 다른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  Sorry, Holy Family Catholic..  오늘 아침 9시 미사엘 가니 정말 모처럼 Father Dan Ketter 가 오셨다. 도대체 몇 개월만인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 만이다. 재능과 젊은 에너지가 철철 흐르는 이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를 하면 우리도 젊어지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신학’ 강의를 듣는 기분까지 든다. 게다가 ‘목소리’가 알아 듣기에 거의 완벽한 정도의 pitch를 가졌기에 강론이 나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지만 99.99%를 알아듣는 행운까지 얻는다.

이렇게 우리는 차로 15분 거리의 이 ‘동네 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거의 20여 년의 가족적 인연을 맺고, 6년이 넘는 매일미사의 은총을 주고 있다.  문제는 ‘미사의 꽃’인 주일미사를 이곳으로 못 가게 되어서 주일 헌금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나를 구해준 곳’의 은혜를 저버린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이다.

작년부터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로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 것은 나에게 주일날 그곳에 갈 일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급기야는 올 들어서 모든 주일에 무엇인가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안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내가 꼭 이런 것을 바라고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  Overnight at Big Canoe:  일년 만에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희네 그룹’,  윤형 ‘별장’ 이 있는 Big Canoe로 단풍여행을 갔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이 아니지만 이 별장은 고도가 1000m를 넘는 높은 산 정상에 있기에 그곳은 이미 단풍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였다.  Gate까지 있는 이곳은 높은 산 곳곳에 ‘별장들이 몰려있는’ 조그만 별천지다. 메트로 아틀란타에서 차로 2시간도 안 떨어진 이곳은 사실 ‘아틀란타 부유한 사람들의 투자용 부동산’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그런 첩첩산중 산등성이 곳곳,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같은 곳에 그렇게 큰 luxury house들을 지었는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경관이 좋은 집들 중에도 제일 높은 정상부근에 위친한 윤형의 별장에서,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이곳은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낙엽이 쌓였다

갑자기 산등성이로 구름이 몰려와 운해로 변하고 있다

별장은 완전히 구름에 덮혔다

 

이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경치가 너무나 영화처럼 강렬해서 거의 꿈 속을 거니는 기분이지만 다른 한편 이런 시야를 며칠 계속 보고 있으면.. 글쎄, 당장 ‘초라하지만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나의 집으로 오고 싶을 것이라는 ‘조금은 시기심’이 스며드는 생각에 당황하기도 한다. 이곳의 집들이 별장인 사람도 있지만 아예 이곳에서 항시 살고 있는 집도 많다고 하는데,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매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항상 아름답게 보일까 의구심이 든다.

산꼭대기에 있는 집이 어떻게 우리 집보다 엄청 큰 것일까?  어떻게 그런 큰 집을 거의 비워두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속으로 나는 항상 불편한 생각이 든다. 돈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느낌, 자본주의의 downside, 끝이 없는 인간의 ‘편해지려는 욕망’,  이런 것들 즉 과잉 된 편안함…  교차로에서 만나는 ‘구걸인’들, 집 없이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들.. 모든  장면이 겹치는 듯한 환상.. 

 

¶  (마리에타) 사랑구역 斷想: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마리에타 사랑구역 구역장 임무,  몇 달이 총알처럼 날라간 기분으로 가끔은 내가 그 동안 무엇하며 살았나 하는 혼미 속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7월부터 9월 말까지는 솔직히 다른 세계로 가서 사는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것이다.

군대의 분대장은커녕 학창시절 반장, 그룹의 장 長 같은 것 한번도 못하고(아니 안 하고, 피하고)  살았던 나에게 이런 일은 사실 저물어가는 나이에도 어색하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듦의 혜택도 없지 않은 것이 소싯적 보다는 ‘겁, 우려’ 같은 것이 훨씬 덜하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늦은 깡’이라고나 할까.. ‘배 째라’ 하는 유행어가 실감이 나는 것이다.

이 구역장 일을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나도 좋고 구역그룹도 좋은’ 그런 ‘황금법칙’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9월초부터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의 단장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timing이 어쩌면 이렇게도 재미있을까? 아마도 성모님이 ‘이제까지 피하며 살던 빚을 갚아라’ 고 호통을 치시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오래 연체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느님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나를 잡아준  이 성당 구역에서 나는 한번도 봉사를 못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온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 듯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의미’를 생각하며 임무를 맡고 있는데.. 글쎄, 의미를 두고 심각하게 일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갈등, 실망, 심지어 놀람’은 부터 평화는 커녕 숨어 있던 분노심까지 들추고 있으니..  이 일이 어려운 임무라는 희미한 예측은 항상 있었지만 실제로 겪는 ‘어려움’은 상상 밖 중의 밖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문득 문득,  ‘다 집어 치우자!’라는 ‘악마적’ 생각도 들 정도다.    

 구역을 이끄는 ‘일 자체’라고 하면 모호하지만 힘을 쓰는, 몸이 힘든 일보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실망감’ 은 정말 평화의 적 중의 적이라는 ‘주위로부터 많이 듣던’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구역 총무님 댁의 private marina, 개인 boat도 있다

 

구역 야유회를 가려고 한 것이 공원예약차질 문제로 호수 변에 있는 그림처럼 아담한 별장 같은 총무님 댁으로 옮겨서 했는데, 한마디로 near-disaster였다. 예약 담당자의 실수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총책임은 내가 져야 함을 절감했다. 마지막 확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모임에서 나는 정말 ugly 한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이제까지 우호적으로 생각해 왔던 어떤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사실, 그 장면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제까지 모였던 모습과 이번에 드러난 실제의 인간성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나는 놀라고 또 놀란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나는 ‘정치적’이라는 말의 뜻을 이 나이에야 어렴풋이 실감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가 이런 임무들을 맡은 결정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어렴풋이 이론적으로만 알던 사실을 체험하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수확으로 남기려 한다.

 

가라오케, Karaoke, ‘가라 오케스트라, 가짜 오케스트라’.. 참 준말의 귀재들, 일본아해들 말도 잘 만들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이라서 작지만 유용한 것들 잘도 만들었다. 밴드나 반주하는 악단 없이 노래와 율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sound system, 누가 마다하겠는가?  지나간 주일에는 이것과 연관된 일들이 두 번이나 겪었다.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었어야 하겠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첫 번째 case가 지난 23일 일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본당의 날과 추석잔치’ 행사 중에 있었던 audio system near-disaster 였다. 이날의 행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이 된 이후 제일 진을 빼고 신경을 썼던 것으로 ‘불참하자고 징징 우는’ mere mortal, member들의 등을 떠밀며 강행했던 ‘노래와 율동’의 공연이었다.

 

 

다른 구역들의 공연내용을 보면 거의 모두 ‘가라오케’ audio 로 100% 율동을 하는 것으로 이날 이들은 목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신나게 춤들을 추었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소수의 그룹은 ‘vocal’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microphone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에 속했다. 문제는 이날 sound system 을 맡은 ‘사목회’ (내가 보기에 ‘시로도’급)는 거창한 mixer를 포함한 wifi-youtube-karaoke 에는 시간을 썼지만 무대에 놓여진 몇 개의 microphone은 모두 ‘먹통’으로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미리 stage rehearsal을 했으면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때는 늦었다. 공연 무대에 올라가 악을 쓰고,  기타는 줄이 끊어질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라는 혹평, 결국 우리도 ‘율동’만 관객에게 전해진 셈이 되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 구역 총책임자인 나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미리 점검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구역조차 같은 문제로 고생을 했으니 결국은 무대 연출 총 책임자가 그야말로 책임을 질 노릇이 아닌가?

두 번째 가라오케 disaster는 3명이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목요회’에서 있었다. 이것은 사실 그 정도로 놀랄 일은 못되었다. 3명 중 한 명이 노래방에 앉아서 침묵으로 일관을 한 것인데..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가? 이날은 목요회가 모이기 시작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라 특별한 event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서 그 정도로 노력을 못 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날 비로소 나는 이 친구가 정말 심각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무슨 ‘파격적인 수’를 써야겠다는 자괴감에 빠진 그런 목요회 1주년을 보냈다.

 

9월 4일, 내가 8년 동안 몸담고, 나름대로는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레지오 쁘레시디움1 ‘자비의 모후’ 의 단장이 되었다. 2011년 초 입단선서 이후 거의 8년 동안 회계 2년, 서기 6년을 맡았는데 그것들의 임기가 모두 다 끝난 것이다. 그 동안 세월이 그렇게 흐른 것에 놀랐다.

물론 나의 다음 일은 ‘피할 수 없는 운명’, 단장직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고, 지난 8년 동안 ‘그저 하라는 것은 묻지도 말고 따르자’ 하는 순명의 자세로 임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며 이 시점을 맞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묘한 timing’ 이 아주 신경이 쓰였다. 예상치도 않게 지난 7월부터 성당 구역장이 된 것, 생각보다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거의 모두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그 동안 조용하게 살았던 생활방식이 송두리 채 바뀌고 있는 바로 그런 시점에 또 다른 ‘장 長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어떤 장 長 자리가 더 중요한 것인가? 왜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런 일들이 나에게 온 것인가? 하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 정도로 몸과 마음이 바빠진 것이다.

단장의 임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레지오의 운명, 발전과 성패는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는 말로 임무의 중요성은 알겠지만 문제는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서기직을 6년 동안 하면서 대강 단장의 일을 옆에서 보아 왔기에 익숙해 졌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단 맡고 시작을 해보니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일단 ‘성모님의 부탁’을 받았으니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3년을 마칠 각오는 되어있지만 우선 처리해야 할 중차대한 안건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분열시키려고 했던 ‘두 명의 독소 毒素 적 현, 전 단원’을 징계하고 탄핵하는 일, 바로 그것이다.

  1. 레지오 마리애 조직, 군대의 분대 격

 

Peaceful, serene Fort Yargo State Park

 

Workshop at Fort Yargo: 이런 색다른 workshop 에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언제였을까? 암만 머리를 굴려도 이런 모임에 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Workshop이니까 무엇을 배우러 간 것인데, 특색은 하룻밤을  Fort Yargo State Park resort cabin에 20여명 이상의 가톨릭 신자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놀고, 나누고, 배우는’ 그런 것으로 끝나고 난 지금도 사실  아직도 머리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이’구역장 workshop’ 은 2018년도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구역장들이 신부님, 사목회장단 들과 모여서 어떻게 성당을 구역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운영을 하는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좋은 기회인데, 특별히 나 같이 ‘경험이 전혀 없는 구역장’에게는 시기적으로 적절한 모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귀찮다’ 라는 외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 이 칠십의 나이에 전혀 모르는, 그것도 대부분 나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그것도 하루 밤을 자면서.. 그것도 신부님, 자매님들도 같이… 우아~ 싫다, 갑자기 귀찮아진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역시 ‘레지오 성모님에게 등을 떠밀려’ 각오를 단단히 한 자세로 이 모임을 받아들였다.

 

Cabins at Fort Yargo

Fully nicely furnished cabin interior

 

1박 2일 예정의 이 workshop의 첫 날(밤)은 사실 친교(나눔과 여흥)로 거의 밤잠을 설칠 정도였는데, 서로 잘 모르는 구역장들이 친숙해지려면 이 방법도 좋을 듯 했다. 이 친교가 끝나고 난 후에는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날 밤 여흥 순서는 예측대로 노래방에 간 듯한 느낌이었고 가끔 신부님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날 전에 듣던 대로 신부님의 기타 style을 목격할 수 있었다. Strumming이 상당한 수준급이었고 노래의 chord는 거의  암기한 듯 했다. 그러니까 혼자서 기타를 많이 치시는 듯 했다.  모든 사람들, 돌아가며 mic 를 잡고 신들린 듯 가라오케 노래, 춤을 추었다. 나의 차례가 오자 난감한 나에게는 역시 몇 곡의 익숙한 노래와, 통 guitar밖에 없었고, 신부님 기타를 빌려 70년대의  ‘젊은 연인들’을 불렀는데 갑자기 바뀐 70/80 style 노래의 느낌에 모두들 놀란 눈치였지만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칠순의 나이에 ‘젊은 연인들’을 부르는 것, 웃기는 것 아닌가 하는 어색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교회에서 구역의 의미와 운영에 대한 심도 있는 workshop이 진행되었고 나는 이때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많은 조언, 경험담, 해결책 등 을 접할 수 있었다. 나에게 당장 떨어진 우리구역 운영에 대한 것이라 실감나게 곧 써먹을 수 있는 각종 tip을 얻은 셈인데 이것으로 비록 밤잠을 거의 못 잔 피로감은 엄습했지만 참가하길 너무 잘했다는 안도감으로 위로를 받았다.

앞으로 나는 ‘경험이 전혀 없는’ 신 구역장으로 20명 내외의 구역식구들을 이끌고 본당의 날 행사에 참가해야 하는 ‘무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다.

¶  서서히 길어지는 밤:   7월, 그것도 30일.. 허~~ 벌써 7월이 다 갔다는 말인가? 언제나 세월의 ‘가속도’에 놀라지만 이번은 그 중에서도 제일 빠른 느낌이다. 한 달이 거의 일주일도 안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기야 이번 7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말 제일 바쁜 그런 나날들이었으니까 빠른 느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무언가 머릿속도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채 지나간 느낌,  점점 한가해져야 하는 이 나이에 나도 조금 이해하기가 힘 든다.

이른 아침에 밖을 쳐다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아침이 전보다 조금 어두워졌다. 낮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밤과 낮이 같아지면 또 가을이 시작되는가? 또한, 그림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인데 오랜 만에 보는 시야였던가.. 아하! 날씨가 흐렸구나. 작열하는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서늘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거의 매일 code Orange같은 경고가 나올 정도로 공기가 메말랐던 나날을 보낸 것이다. 한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조금 그리워지는 7월말 중복이 지나가고 말복을 향한 본격적인 늙은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 다시 계절은 바뀔 것이고..

올 여름은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비가 자주 와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새로 설치한’ 2대의 에어컨, 이제는 하루 아침에 고장 나는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두 다리 쭉 뻗고 찬 공기를 만끽하니 더욱 시원한 느낌이다.

 

¶  레지오 점심봉사:  지나간 주말(어제, 그제)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점심봉사로,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이틀을 보냈다. 일년에 한번씩 레지오가 하는 점심식사 봉사팀에 우리가 포함되었는데 3년에 한번씩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 사실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봉사팀의 구성은 인원수가 워낙 적어서 (참가 3 쁘레시디움이 모두 최소한의 적은 단원을 가졌음)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꾸리아에서 ‘전폭 지원‘을 해 주어서 무사히 성공리에 끝을 냈다. 또한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레지오에서 이번의 봉사팀에는 의외로 형제님들이 그런대로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점심은 지난 6월 우리 구역 점심봉사 때 했던 ‘모밀국수’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100% 활용을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모밀국수 menu idea는 연숙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협조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번의 일, 우리는 2일 거의 full-time으로 일을 한 셈인데, 역시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들의 나이도 그렇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Moderation, moderation을 motto로 살아왔던 우리들, 이런 것들이 시험 case인가.. 한마디로 take it to the limit이란 Eagles의 노래가 생각날 정도였다. 이날 모든 일들을 마치고 귀가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아픈 후유증을 달랬지만 역시 나이 탓인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  1년이 가까워 오는 목요회:  7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 8시 반에 어김없이 우리 목요회 멤버들이 ‘궁상맞게’ 모였다. 다 늙은 남자 3명이 목요일 그것도 밤 8시 넘어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암만 그림을 예쁘게 그려보아도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모임은 계절을 몇 번 거듭하면서 조금씩 덜 궁상맞게, 더 예쁘게 탈바꿈을 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 같이 느끼는 것 또한 경이로운 사실이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모였던 것이 시작이었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무언 無言 속의 표정들은 ‘아마도’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명 모두 너무나 다른 사연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도전이 만만치 않다. 이런 모임에서 그런 문제들을 정면으로 풀어나가는 것,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화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로 2시간 정도를 보낸다.

살기가 너무 힘든 때에는 아무 말 못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의 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되어가고 이 모임은 확실히 우리에게 어떤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전부터 오랜 냉담을 풀고 귀향을 한 형제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모였을 때는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그런 모임이 되었고, 1년이 되는 9월에는 모두들 ‘무언가 기념식’이라도 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늦은 밤 헤어졌다. “친구들이여 우리 그날까지 열심히 삽시다!

 

¶  장례 예배:  장례, 연도 같은 연령행사가 뜸했던 요즈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음 訃音 을 듣게 되었다. 연숙의 이대 梨大 선배 김경자씨의 남편이 타계한 것이다. 이분은 1990년대 아틀란타 부동산업계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지신 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식이 뜸해지고 우리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사는 마리에타 우리 집은 1992년 초에 이분의 소개로 사게 되었던 사연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집 구경을 처음 할 때 서로 만났던 McDonald’s,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인데 갈 때마다 가끔 이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이분들은 개신교 배경의 집안이라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장의사 chapel에서 해서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천주교 장례미사와 너무나 차원이 다른 ‘간단한 예식’이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인의 막내 동생이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 전에 교리반 교사로 연숙과 같이 일했었다는 원선시오 형제였다는 사실, 이날 얼굴을 보니 사실 고인과 얼굴이 닮긴 닮았다. 나는 이 형제님을 잘 모르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운’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Take it to the limitThe Eagles

 

¶  Jim Beam & Charlie Chan: 근래에 ‘공적인 활동’이 늘어난 이후 느끼는 것은 바쁘고 보람된 일들 뒤에 ‘꼭’ 찾아오는 선물 같은 ‘심도 깊은 평화, 망중한의 텅 빈 머리’ 이것들 중에도 망중한 忙中閑의 기쁨 중에도 이 두 단어가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 집에서 있었던 구역미사를 위해서 liquor store까지 가서 사온 ‘양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Bourbon의 명품, Jim Beam이었다. 그때 ‘몰래’ 사온  세 가치의 cigar도 나의 기대를 자극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양주는 신부님 접대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로 거의 없어지질 않아서 그 이후 cigar와 함께 망중한의 즐거움으로 쓰였다. 사실 혼자서 즐기는 것이 되었지만 이럴 때 먼 옛날의 친구들과 어울려 마실 때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 지나갔다. 모든 즐거움 들은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것, Charlie Chan..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TV를 보면 그 당시의 nostalgic channel 역할을 하던 channel에서 이런 류의 TV drama가 있었다. 평생에 이런 Charlie Chan이란 말 조차 못 들었는데 그 옛날 (1940년대)에 어떻게 ‘짱께’가 주인공을 나오는 TV program이 있었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그것을 요사이 Youtube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록 범죄추리극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순진한 장면들 투성이.. 그러니까.. 마음 놓고 마음 안 상하고 ‘즐길 수’있는 그런 것, 특히 편히 쉴 때 이것을 보면 마음 속 깊은 평화까지 느끼게 된다.

 

Peace and joy with Jim Beam & cigars..

Peace with Charlie Chan time

 

  ‘사상 史上 첫’ 구역미사, 지나간 2주일에 가까운 동안 나의 머리는 온통 한가지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구역미사… 오랫동안 별 큰 느낌이나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체험했던 구역미사라는 것, 그것이 이번에는 완전히 개인적인, 가족적인 ‘큰’ 행사로 우리 집에서 집전되는 구역미사가 나의 코 앞에 다가 왔던 것이다.

우선 제일 큰 의미는,  우리 집에서 봉헌된 미사라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 집에 ‘사상 처음’으로 사제가 방문을 했다는 것에 있었다. ‘자기 집에서 신부, 사제 모시고 식사를 같이 했다’ 라는 주변의 말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때는 그런 것 솔직히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올바른 생활의 사나이’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가 편히 될까.. 하는 유치한 생각으로 살았던 때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유치한 생각은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사라지고 한번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라는 쪽을 나의 가슴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한번 모시자.. 라는 희망사항으로 바뀌었다. 신부, 사제가 어떤 직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열린 가슴으로 정확히, 올바르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첫 case가 바로 전 주임신부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었다. 결과적으로 모시는 계획은 유산되었지만 그 이후 나는 활짝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세계관’의 소유자로 살수 있게 되었다.

 

구역미사를 기다리는 우리 집의 living room view, 협소한 공간이지만 just right size..

 

이번 우리 집에서 집전된 구역 미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을 7월 초부터 인수하고 난 후 처음의 ‘큰 구역 행사’가 되었는데 이런 사실이 우리 집에는 기쁘긴 하지만, 그만큼 나와 연숙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생소한 우리 구역식구들에게 미사참례를 독려하는 중요한 책임으로, 연숙은 hostess로 신부, 구역식구들의 음식준비로 정신이 거의 없었다. 구역식구의 반 이상이 오면 나는 우선 성공한 것이라 미리 점을 치기도 했다.

어려움은 이런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 뿐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최소한 20여 년) 별로 ‘찾아온 손님’이 거의 없었던 우리 집은 이런 ‘큰 행사’를 치르기에 너무나 피곤하고 깨끗하지 못함을 알기에 생각보다 힘든 ‘육체적 노동’을 피할 수가 없었다. 지난 5월 말에 일단 구역모임을 한 번 경험했고 그 당시에 일단 ‘대강의 청소’는 했지만 이번에는 신부님과 총구역장까지 오게 되어서 가급적 ‘때 빼고, 광 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 이것이 아무래도 나의 나이에 무리였을 것이다. 비록 기쁜 마음으로 노동은 했지만 후유증은 상당했다.

 

  현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은 부임초기부터 병자성사에 동행을 하면서 가깝게 느꼈고, 온화함, 배려심 등으로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본당신부님으로, 이임하기 전에 한번 집에 모시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이날 다른 계기로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고,  우연일까, 아주 우연만은 아닌 듯한 생각도 들었다. 

미사참례 출석률이 예상을 넘는 2/3 정도가 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이번의 우리 집 구역미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집은 이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mainstream parishioner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부차적으로 나의 첫 구역장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사실, 우리 구역식구들과의 mutual chemistry의 ‘냄새’를 조금은 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앞으로 2년간 약속된 나의 구역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그런 것 아닐까…

 

구역미사의 bonus, 찬란한 수국의 향기와 자태.. 어떤 자매님의 선물이었다

 

2018년의 6개월, 그러니까 정확히 절반을 벗어난 7월의 첫 주가 또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시간과 세월은 그렇게도 정직한 것일까? 어김이 없다. 절대로.. 절대로 시간과 세월을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우는 요즈음, 나는 경미 輕微한 우울감 憂鬱感을 떨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와 비례해서 마음속 깊은 곳 평화의 깊이도 함께 얕아진 것을 느낀다. 주원인은 물론 나의 분신 Tobey1가 거의 ‘갑자기’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간 것, ‘실존적 부재 不在’가 주는 공허, 고통이 어쩌면 그렇게도 괴로운 것인지.. 이렇게 세월은 공평한 것, 사람의 삶의 나날은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다.

그제부터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우리와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물론 새로니가 vacation차2 집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지만, 갑자기 조용해진 우리 집에 다시 개의 소리가 들리게 된 것, timing이 나쁘지 않았다. Tobey와 너무나 personality가 다른 Ozzie, 같이 머무는 것 나의 생각을 한 곳만 머물지 못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오늘도 한여름다운 여름 날씨에 그 녀석을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거의 10여 년간 Tobey와 같이 걷던 이 course를 이 녀석과 둘이 만 걸으니 다시 ‘없는’ Tobey가 그리워진다. 한 여름 날씨를 가슴으로 느끼며 불현듯, 갑자기.. 거의 20년 전 쯤 온 가족이 여름마다 갔었던 Florida Gulf coast,  Panama City Beach의 백사장이 떠오르고 며칠 동안 그곳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역시 ‘귀찮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덮쳐버린다.

 

나의 study에 언제나 앉아 있던 Tobey가 없어진 자리에 Ozzie가 졸고..

Tobey 없는 dog walk, 대신 Ozzie와 같이 걷고 playground에 눕기도..

 

어제는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 holiday.. just another holiday일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과연 미국이란 어떤 나라일까 새삼스러운 것은 무슨 조화일까? 거의 45년 가까운 동안 살면서 별로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이 없지 않다. 그저 하늘아래 그것도 대한민국과 반대편 쪽 바다에 걸친 거대한 대륙에 250년에 가까운 ‘자유 민주주의’ 전통.. 과연 이런 역사 기록을 가진 나라가 다른 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진다. 각종 문제와 싸우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곳은 이들이 금과옥조 金科玉條로 여기는 ‘헌법 constitution’에 목숨을 건, 용맹스러운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날 동네 본당인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에서는 Father Dan (Ketter)은 평상적인 homily대신 Declaration of Independence 전문 全文 을 읽었는데, 250년 전의 그 문장은 그리 옛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특히 첫 부분의 두 번째 문장은 정말 인상적이 아닐 수 없다. truth, equal, endowed, Creator, Rights, Life, Liberty, Happiness… 그 중에서도 Creator란 단어는 그저 장식용으로 쓴 것은 절대로 아닐 듯하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무언가 허전한 기분을 달래려 계획에 없는 barbecue 생각이 났고 거의 일년 만에 charcoal grille의 cover를 꺼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wood charcoal에 불을 부쳐서 barbecue보다 더 맛있는 ‘불고기’를 구웠다. 그래도 이렇게 7월 4일의 오후를 연숙, Ozzie와 같이 맥주, grille 로 보낸 것, 조금은 추억에 남지 않을까..

 

 

 

이날 밤은 다행히 비가 올 chance가 많지 않아서 불꽃놀이의 소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subdivision는 ‘전통적’으로 불꽃놀이 firework이 없었고 먼 곳에서 하는 것들의 소리만 듣곤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 앞집의 비교적 젊은 Josh가 주동해서 우리 집 바로 앞의 cul-de-sac 에서 firework을 했는데 비록 개인적으로 한 것이지만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우리 집의 개와 고양이들이 모두 겁에 질려 숨을 곳을 찾기도 했다. 매년 별 감흥 없이 이런 소리를 듣고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의미가 실린 ‘자유의 외침’ 같은 것으로 들린 것이, 나 역시 나이가 깊이 들었구나 실감을 한다. 앞으로 이런 ‘자유의 소음’을 몇 번이나 듣게 될까..

 지나간 주일(일요일)날은 예전 같았으면 한국성당에 아무 business가 없었기에 조금은 편한 일요일이었지만 이번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7월부터 2년간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을 맡게 되었고 첫 주일날에는 구역장회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직책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맡겨진 직분,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는 변함이 없다. 아마도 내가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내 인생의 후반에 더욱 깨닫는 것 중에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 있는데, 젊었을 때와는 사실 완전히 반대인 것이 재미있다. 2년 뒤 나의 임기가 무사히 끝나게 되면 나는 어떤 구역장으로 기록이나 기억에 남게 될 것이지 궁금하다. 

 

The United Stat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1. 우리와 14년 평생을 살아온 pet dog
  2. 이번에는 Mexico로 deep sea diving이라고… 허.. 듣기만 해도 으스스..

¶  Roller coaster week:  지금 지나가고 있는 하루하루는 글자 그대로 roller coaster week 라고 할 수 있다. 희비가 교차하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느낌이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주일,  때로는 정말 괴로운 순간들도 있었던 6월 초순을  보내고 있다.  주 원인은 우리 집 열네 살이 넘은 ‘나보다 늙은’  정든 개 Tobey의 건강문제 때문이었지만 우리가 바보같이 만든 ‘인재 人災’도 이럴 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결과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인생이다.. 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것이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구토, 설사로 시작된 것,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먹지를 못하니 평소에 ‘관절염’으로 먹는 약까지 끊게 되어 사태는 악화일로 였다. Good Old veterinarian (수의사) 에게 데려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꺼린다. 각종,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test로 시간을 다 보낼 것이 분명한 것이고 그러면 더 악화가 될지도..

이 녀석 기운이 빠지고 아파하는 모습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까지 느껴지고, 우리는 절망의 기분까지 들었다. 급할 때는 묵주를 무의식적으로 굴리고 있을 정도였지만, 성모님의 도움인지, 정성스런 간호 덕인지 다행히 설사도 멎고 서서히 먹기 시작하면서 죽음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회복이 예전에 비해서 너무나 느린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인가? 얼마 있으면 annual medical checkup이 있어서 (동물)병원엘 가니까 그때면 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moaning & limping.. sick Tobey

 

Pet 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은 이런 것 한두 번씩은 경험을 했을 것이지만 이렇게 거의 집안 식구가 된 pet animal을 영원히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큰 차이가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을 한다.  이런 것들 사실 자연의 법이기에 겸허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다. 세상에서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은 하느님 밖에 없다는 사실만 잊지 말자.

 

Climbing in Canada:  새로니가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떠난 2주간의 Canada trip을 마치고 돌아왔다. 학교 teacher가 되면서 2개월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모험적인 취미여행을 떠나곤 한다. 요새 ‘아이’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이런 즐거운 30대를 보낸다. 결혼과 가정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나이에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을 보며 세대가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새로니 친구들과 모두 3명이 갔던 Canada(Rockies, Vancouver)  여행 사진을 보며 나는 다른 생각에 빠진다. 나나 연숙, 이제 그런 여행들, 귀찮다는 인상을 받는다. 편한 집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유익하고 건강한  ‘휴가여행’인 것이다. 솔직히 돈을 주고 갔다 오라고 해도 별로 구미가 안 당기는 것이다. 단 한가지, 이번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중에 rock-climbing하는 것, 나의 오래된 추억이 샘물처럼 흘러 나왔다. 한때 나도 저런 것에 ‘미친 때’가 있었지.. 하는 감상적인 느낌들은 즐기고 싶었다. 그때가 1970년 경, 거의 일 년을 ‘바위 타기’에 많은 시간을 ‘허송’했던 대학 4학년 시절. 비록 ‘공부’는 손해를 보았을지라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이렇게 신명 나는 추억거리를 제공했으니 그깟 공부가 그렇게 대수인가.. 그것에 지금 나의 딸이 푹 빠져있으니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2주 동안 우리 집에서 다른 의미의  vacation을 가져야만 했던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새로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우리 집은 갑자기 고요 속을 빠진 듯한 느낌. 우리 집의 Tobey가 아직도 완쾌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더욱 고요하고 우리의 느낌은 쳐진다.

 

Curia Monthly Sunday: 머리 속이 안정이 되지 않은 채로 ‘꾸리아 월례회의’가 열리는 매달 2번째 주일을 맞아 ‘조심스럽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을 갔다. 조심스럽게 간 이유는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이기 보다는 주일미사를 누가 집전을 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둘루스 성당 (윗동네) 신부가 집전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미국성당으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그 신부’에 대한 ‘반감, 혐오감, 앨러지’가 특이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 수가 없어서 포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 본당 신부님 집전이 밝혀져서 ‘안심하고’ 그곳엘 가게 되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등대회 형제님들, 특히 요한 형제와 점심을 같이할 수 있었고, 꾸리아 월례회의도 그런대로 흡족한 느낌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생각한다. 전에 있던 간부진들에 비해서 아주 신선한 스타일로 회의를 진행하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레지오 조직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불과 몇 달전 前의 꾸리아  leadership을 싫지만 기억한다. 그 중에서 2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toxic, terrible, horrible한 기억으로,  앞으로 ‘연구 대상’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case study로 삼을 정도란 뜻이다. 그 결과 현재 이 조직은 거의 limping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꾸리아 평의원들, leadership을  잘못 뽑으면(Trump처럼) 이런 disaster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다음부터는 공과 사를 전혀 구별 못하는 ‘아줌마 tribalism‘ 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면 어떨까?

이렇게 결과적으로 밝은 기분으로 ‘주일 의무’가 끝났는데, 이날은 bonus까지 주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같이 성당근처에 있는 Mozart Bakery에 모여서 ‘수다’를 떠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작년 8월의 ‘레지오 괴물, 미친년 사건’ 덕분에 가까워진 이 부부, 나이가 비슷하고,  ‘사귈만한 부부’라는 인상을 받아서 가급적 관계를 ‘가꾸어 나가고’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대한민국 style 빙수와 붕어빵’을 즐긴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의 날’이 되었다.

Freedom, Never Free

 

¶  현충 顯忠 단상 斷想:  며칠 전 Gulf coast로부터 북상하는 Tropical storm Alberto 의 영향인지 시원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고요한 휴일 아침이다. 대기는 이제 완전히 여름의 냄새가 가득한 그런 것으로 바뀌었지만 대신 기온만은 늦봄의 그것, 이런 모습의 Memorial Day 를 우리는 ‘이곳’에 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맞았던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 대부분 군인들, 이들을 추모하는 날답게 고요한 느낌을 주어야 하는 날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교과적인 삶을 사는가.. 그 많은 사람들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반세기 전, ‘부선망 父先亡 단대독자 單代獨子’1라는 구세대적 병역조항으로 군대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당시에는 날듯이 기뻤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의 작은 trauma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과거지사 過去之事로 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요즈음 빈번히 주위에 등장하는 ‘월남전 veteran’ 들을 마주하면 사실 할말이 하나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미안하다’라는 심정 바로 그것이다.

자유, 인간의 자유를 유지, 보전하기 위한 악 惡 과의 투쟁, 공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자유, 이런 것들이 무료로 주어진 것인가? 우리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 상황도 마찬가지다. 당장 김일성 세습왕조의 역사상 유례없는 잔학성과 현재 서서히 몰락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사필귀정 事必歸正 이란 말을 새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 절대로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인 것이다.

한 나라의 모든 것, 그들만의 문화,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군대조직의 역할을 너무도 간과하며 살았던 것도 깊숙이 진행되는 나이의 혜택으로 하나 하나씩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며 놀랄 정도로 후회도 한다. 전쟁에 관한 책이나 영화들,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 ‘정말로 잔인하게 희생된 살과 피가 실제로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들이 ‘재미에 의해서 간과’가 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오늘 내가 느끼는 역사의 관성적 慣性的 교훈이다.

 

¶  Double Whammy! 구역모임:  2018년 비공식적 여름철의 시작을 알리는 Memorial Day weekend 우리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조용히 단출한 식구들 오랜만에 모여서 barbecue 와 beer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연상되는 때이지만 올해는 완전히 storyline이 바뀌어 버렸다. 거의 10년 만에 우리 집에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구역 마리에타 사랑반의 월례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10년 이상.. 그러니까 그 동안 우리는 너무도 소극적인 구역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성당공동체가 덩치가 커지면 사실 구역의 역할을 그와 비례해서 중요해진다. 한 곳에서 모두 친교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두 곳에 본당을2  가진, 사실상 ‘두 집 살림’을 이유로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꽤 오랫동안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로 구역을 대했지만 나 자신으로써는 ‘내 신앙 reversion 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외골수적인 생각으로 일부러 피한 것도 있었다. 경험적으로 보기에 즐겁지 않은 사람을 피하는 과정에서 많은 ‘냉담자’가 생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의 관계를 위한 노력은 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방관적 작은 역사도 나의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갑자기, 청천벽력의 느낌’으로 내가 이 작은 구역의 ‘장 長’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온 것이다. 자발적으로 이 자리를 맡는 어려움 때문인지 거의 ‘강제적, 임명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이 의무가 맡겨진 것이다. 이때 생각에, ‘결국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뿐이었고, 본능적으로 ‘도망가자’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는 ‘반사적 반응’이 아닌 진지한 묵상을 하게 되었다.

우선 현실적으로 ‘이제는 할 사람이 없다’라는 체념적인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이야 말로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도망가면 해결되는’ 경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도망가는 것 만은 피하고 싶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편할 것도 아니고 도리도 아님을 절감을 하게 되었다.

이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얼마 전에 ‘완독 完讀’ 한 책,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의 저자 안득수 형제님이 생각났다. 그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그날의 ‘성경말씀’을 보곤 했는데 그것이 결정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온 말씀 그 날의 제1독서는 ‘배반한 유다의 자리에 마티아 사도가 뽑힌‘ 것에 관한 것 (사도행전 1, 25-26) 이었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나의 사정과 비슷한 것인가.. 

이러한 배경에 이번 달의 구역모임까지 우리 집에서 있었으니.. 무언가 double whammy 라고 할까.. 최선을 다하자 라는 motto로 오랜 동안 손님이 별로 없었던 우리 집, 덕분에 며칠 동안 ‘중노동’의 결과로 무사히 많지는 않지만 ‘손님들’을 맞을 수가 있었다. 맞기에 편한 정도의 사람들이 왔기에 ‘작은 우리 집’도 앞으로 ‘작은 모임’ 을 하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생겼던 Memorial weekend.. ‘근육통이 만발하는 즐거운 고통과 기쁨’이 교차되는 순간들이었다.

 

  1. 외아들이 아닌 아버지가 사망한 집안의 외아들에게 주어지는 제한적 병역면제 규정.
  2. 집 근처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20+ mile 떨어진 도라빌 Doraville 소재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 성모성월: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어머니.. 이렇게 시작하는 가톨릭 냄새가 듬뿍 담긴 성가, ‘성모성월의 노래’가 은은히 귀에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5월의 시작이고, 성모성월이 된 것이다. 그것도 6일이나 지난 오늘 일요일(a.k.a., 주일)은 이 노래 가사 중의 ‘화창한 날에..’ 를 100% 닮은 그런 날이었다. 어쩌면 오늘의 날씨가 이렇게도 화창하고 멋있는 것일까?

5월은 가정적인 달, 옛날 옛적 어린이날부터 시작해서 어머니 날까지 있는 포근한 달이었다. 그런데다가 우리 가톨릭에서는 다른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달이기도 하니, 어찌 포근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나의 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일도 5월에 있고, 가톨릭 전례력에서는 부활시기의 절정에 도달하는 그것도 5월에 있어서 한마디로 ‘살 맛’이 다시 돋아나는 때를 맞았다.

오늘은 원래 Holy Family ‘동네’성당 주일미사에 가려고 예정을 했지만, ‘불행히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그곳의 ‘주차정리’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레지오에서 정 情 이 무척이나 떠나버린 이마당에, ‘그런 것’ 무시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발동했지만, ‘총사령관’ 성모님의 얼굴이 다시 떠오르며 유혹을 물리치고 주어진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이런 이유로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아침 8시 30분 주일미사엘 가게 되었는데, 나로써는 너무나 참신하고 깨끗한 느낌으로 미사를 보고 나서 점심식사까지 했다. 남대문시장처럼 복잡한 10시반 미사에 비해서 사람이 훨씬 적었던 것과 평소에 잘 안보이던 반가운 얼굴들도 보인 것들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더 좋았던 것은:  ‘보기만 해도 하루 종일 소화가 안 되는, 정말로  싫은 인간들’ 그 중에서도 레지오 미친년의 ‘가오’가 안 보이니 이건 한마디로 천국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앞으로 이 8시 30분 미사로 바꿀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이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에게는 한마디로 ‘백일몽’에 가까운 희망이었다.

 

Big Wedding: 어제 토요일은 장례미사가 아닌 혼인미사엘 갔다. 레지오 활동으로 장례식에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들, 이런 결혼식은 그야말로 생소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과 결혼식에 거의 관심이 없는 두 딸들이 있는 우리들이어서 가끔 이것을 잊고 살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들도 ‘겪어야 할’ 큰 일이라는 사실은 우리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항상 있어왔다.

어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혼인미사, 나는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끝까지 지켜 보았다. 현재의 ‘해괴한 추세’를 정면으로 맞서려는 듯한 한마디로 ‘거대한 행사’였다. 그 큰 대성전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 것, 나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성당 청년부 활동에서 만난 이 행복한 couple들, 부러운 만남으로 보였다. 부모님들이 그런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었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으리라 생각하니, 우리는 어떠했는가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혼인성사’는 부모님들의 정성과 사랑이 결집된 결과라고 나는 보았다.

신부측 가족이 우리 구역의 중요 멤버였기에 참석을 한 것이지만 신랑측은 그보다 더 잘 알려진 현직 사목회장이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혼인 미사와 피로연까지 모두 참여를 하였는데, 피로연에서 보니 성당 공동체의 ‘알만한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다 그곳에 모인 듯 했다. 미국식의 ‘조그마한 뒤뜰’에서 하는 결혼식에 익숙한 탓에 이런 ‘초대형 결혼식’은 아마도 당분간 인상적으로 머리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 2018년 4월이 저문다. 올해 4월은 예년과 달리 옛날 옛적의 4월에 얽힌 것들을 별로 회상할 기회가 없었다. 예를 들면 ‘목련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박목월 님의 멋진 시와 가곡, 1960년 4월 19일의 광경들, 아니면 1970년 4월 용현이, 창희와 지리산 종주등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이런 저런 ‘옛날 것’들을 올해는 거의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거의 ‘현재’를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던 4월을 보낸 것 같고 그것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과거의 사나이에서 조금은 현재의 사나이로 돌아온 것인지.. 하지만 희망은 아름다운 지난날과 건강한 현재를 반 반 정도 섞어서 사는 매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2018년의 4월은 진정한 나의 ‘부활시기 4월 달’이 되었다.

 

¶ 목요회 Blues: 4월의 목요회 멤버들이 거의 5주 만에 다시 모였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조금은 별난 모임, 벌써 8번째다. 예상을 벗어나 한번도 거른 적 없이 성실하게 모여 지나간 ‘힘들었던’ 한 달의 이야기를 나누는 조금은 ‘청승맞게 보이는’ 우리 목요회, 어떨까, 언제까지 이 모임이 계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나간 7개월 동은 그런대로 서로의 지나간 이야기를 나눈 셈이지만 사실 아직도 궁금한 것들 투성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나간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써비스가 엉망인 어떤 Chinese buffet 에서 만난 자리에서  S 형제가 모임 줄곧 침묵으로 일관을 해서 우리의 신경을 쓰게 했는데, 이런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아마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인생이란 것, 특히 우리들의 삶, 결코 즐겁지만은, 쉽지만은 않은 것 알기에 이런 자리에서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더 걸려야 됨을 알게 되었다. 사실 S형제는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정도로 고민이 많은 듯하지만 현재로써는  ‘기도나 관심’ 이외에 별로 option이 없다. 다음 모임에는 조금은 웃는, 말을 다시 많이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 Days with Sherlock: 며칠 간 ‘탐정 미스테리’의 원조 격인 영국 코난 도일 Conan Doyle  원작의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영화를 찾아 (물론 Youtube) 보게 되었다. 대부분 1940년대의 흑백영화인데 download 한 결과 놀랍게도 아주 영상의 질이 요새말로 720p 정도의 ‘보물’들이었다. 어렸을 때 만화로 즐겨 보았던 탐정 미스테리 이야기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것들 역시 거의 모두 이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영국 문화의 영향인지, 모든 스토리나 scene들이 너무나 ‘고상하고 신사적’, 비록 범죄가 주제지만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안심하고’ 볼 수 있기에 Film Noir와 더불어 요새 즐겨서 보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된 Christian Writer의 대가인 C. S. Lewis 를 통해서 1940년대 영국의 여러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유명인, Sherlock Holms, 그리고 그의 sidekick 격인 Dr. Watson을  다시 찾게 되었다.

 

Sherlock Holms & Dr. Watson

 

¶ West Bank, again?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있나? 같은 달에, 그것도 2주일에 걸쳐서 같은 park로 두 번 picnic을 갔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희귀한 happening에 속한다. 첫 번째 picnic은 성당 등대회에서 간 것이고 다음 것은 역시 같은 성당의 레지오 야외행사로 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West Bank park 이었을까? 아마도 이 즈음에 이곳이 제일 경치도 좋고 가기도 좋은 곳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첫 번째 갔을 때는 날씨가 거의 비가 오락가락 하던 때였지만 두 번째는 날씨가 기가 막히게 화창해서 West Bank park의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다만, 레지오에서 간 것은 거의 ‘의무적’으로 간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모님께 드린 맹세가 있기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out of question이지만 세상사가 어찌 그렇게 예상대로만 되랴.. 그래도 이 화창한 날, 레지오 야회행사에는 장기유고 중인 ‘크리스’ 자매가 오랜 만에 모습을 들어내어 참석을 해서 반가웠다.

 

West Bank park under Spring Sun

 

 

또 하나의 연도와 장례미사:  지난 26일에 선종하신 ‘어떤’ 형제님을 위한 성당연도와 장례미사가 28일 토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었다. 몇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선종하신 ‘야고보 James’ 형제님, 요새 세상에서는 ‘young’ senior에 속하는 60대 중반도 채 안 된 분이셔서 내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 성당 공동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어서 그런지 이날 조문객 弔問客 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서 정성이 더 실린 조용한 연도와 장례미사를 치를 수 있었다.

성당 사무실로부터 이런 ‘연령’ 행사가 ‘공지 公知’가 되면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는, 순교자 성당의 ‘연도와 장례미사’는 ‘가는 것을 원칙 原則’으로 했고, 또한 ‘쓸쓸한 영혼’일 수록 더 노력을 해서 참례하기로 했다. 물론 예외도 꽤 있었지만, 지나간 8년간1 우리의 이 원칙은 그런대로 잘 지켜졌고, 현재도 이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을 다시 해 보면, 이런 우리의 이 작은  봉사 service, 활동, 그러니까 사적인 연령활동이 우리의 신앙여정 중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높고 값진 활동임을 계속 깨닫고, 실제로 우리의 조그만 노력에 비해서 되돌려 받는 안 보이는 ‘그 무엇’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야고보 형제님, 비록 조문객은 많지 않았어도 신부님의 ‘각별한 관심’을 듬뿍 받으시며 편안히 귀천하셨으리라 믿는다. 이 형제님이 5년 전 교리반의 인연으로 알게 된 자매님의 아버님임을 알아서 더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레지오 단원의 제 역할을 했다는 것, 현재 더 많은 성모님의 관심이 필요한 우리 레지오 ‘자비의 모후’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1. 2010년 말, 우리가 레지오 활동을 같이 시작했던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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