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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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Vigil Mass, Holy Family CC.  May 16, 2020

 

며칠 전부터 간간히 들려오던 아틀란타 대교구의 ‘공식미사재개’ 소문이 현실화 되었다.  소문이라고 할 것도 없이 사실은 5월 말까지 대교구의 모든 성당 미사를 정지되었기에 6월 초까지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예정이었다.

만약 이 지역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심해서 모든 사회적 기능이 정지된 상태가 지속되었으면 문제는 아주 간단했을 것이다. 미사 정지를 무기한 연기를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예상만큼 피해가 심하지 않았고, 경제적 피해를 의식한 조지아 주지사는 미국에서 제일 먼저 경제활동 제한 조치를 풀어가기 시작했기에, 대교구도 이제는 중대한 선택을 할 순간이 온 것이었다.

지난 월요일 5월 18일에, 예상한 대로 대교구는 5월 31일 ‘그리스도교회가 탄생한’ 성령강림대축일 Pentecost Sunday를 기해서 일단 공적인 미사재개를  결정을 했고,  각 본당은 그런 방침에 따른 ‘자세한 행동수칙’을 정하여서 공고를 하게 되었다.

문제는, 어떤 절차와 과정으로 문을 여는 가, 어느 정도 여는가.. 이것은 ‘본당차원 단체’의 골칫거리일 듯하다. 위에서 내리는 결정이야  어떻게 보면 간단하지만 진짜 문제는 ‘자세한 행동 수칙 결정 사항’에 있지 않은가?

오늘 ‘갑자기’ 받은 아틀란타 순교자 (우리 한국본당) 성당의 공지사항에 의하면 대교구의 결정사항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자세한 절차나 과정은 본당 차원의 문제니까, 그것으로 주임 신부님을 비롯한 사목회에서 ‘골머리’ 를 썩었을 듯하다.

이 미사재개의 세부 수칙을 읽으면서, 우리는 당분간 이곳에 ‘물리적 참여’는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100명으로 제한 된 것 등을 비롯한 많은 수칙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자체가 거의 특권처럼 느껴진다. 정말로 영성체를 원하거나 교우들과 친교를 원한다면 위험부담을 무릅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현명하고 숙고된 결정일까?

우리가 코로나 Pandemic 전까지 평일에 가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website에 가보니 역시 이곳에서도 대교구의 방침에 따라 ‘제한적’으로 미사재개를 한다고 공지가 나와있다.  이곳에서도 한국본당처럼 대교구의 미사재개 절차가 공지가 되어있는데 물론 두 곳이 거의 비슷한 제한절차, 조건들이 자세히 나와있다.

이번 조치는 Phase One, 그러니까 제1단계인데, 제한 조건 중에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이 65세 이상은 당분간 ‘쉬시라’는 것, 참… 그렇구나.. 우리도 65세가 넘었지.. 한마디로 6월까지는 ‘푹 쉬시라’는 말이었다. 전에는 store나 restaurant에 가면 senior discount등으로 우대를 하더니, 이번엔 쉬시라는 우대(?) 를 받게 되니, 참 기분이 묘하다.

 

 

제일 나의 큰 관심사는 다름이 아닌 레지오 활동 재개 여부였다. 은근히 미사 재개와 함께 성당 중요 신심 소단체들은 모임이 가능할까 하는 희망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미사재개 방침에는 아주 확실하게, 미사 이외의 모든 활동은 계속해서 6월 말까지 정지, 라는 방침이었다. 미사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레지오 ‘봉사활동’도 중요한 것이었다. 이 활동은 사실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처럼 나에게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선물이었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참,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그렇게 항상 당연시 되던 것들이 이제는 특별한 것이 되었으니…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 ‘사회적 실험’기간, 사실 이제 조금은 익숙해 지긴 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이, 이것 언제까지.. 언제까지.. 하는 소리는 막을 수가 없다. 인간이 인간을 피하며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 보기 좋던 보기 싫던 간에,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에너지를 음양으로 받는다. 이것이 고갈되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제1단계 미사참례 행동 수칙

지난 2주일은 그야말로 화살이 나의 눈앞을 쌩! 하고 날라가는 듯한 느낌, 게다가 귀가 멍~할 정도로 외롭고 고립된 느낌들, 이것은 코로나사태의 영향일 듯하다. 둘이서 그렇게 규칙적인, 정상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했는데도 이것은 역시 ‘비 정상적’인 생활이 아닌가? 역시 물을 떠난 고기와 같은 그런 꼴일 것이다. 서서히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듯하니 지긋이 기다려 보자. 오늘부터는 명심하고, 미완성인 것들, 자질구레한 서류정리, 겨울 옷 정리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머리 청소도 되고 집도 깨끗해지고, 얼마나 좋은가?

 

우연히 손이 간 곳에 책 ‘탈무드 Talmud 의 지혜’가 있었다. 역시 오래된 아주 연약하게 정장이 낡은 책, ‘탈무드의 지혜’였다. 오래 전부터 나의 눈에 가끔 뜨이던 책이지만 한번도 심각하게 읽은 적이 없었다. 그것으로 나의 손이 간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요새 성경통독의 일환으로 모세 오경을 매일 읽으며 다시 나의 눈에 들어온 글들, 유태인들에 관한 것이다. 한번 필사를 시작해 보는 것은? 그래 책의 분량이 그렇게 무섭게 거창하지 않아서 우선 안심이다. 이것도 나의 online library에 큰 무게를 더할지도 모른다. 해보자!

 

이번 코로나 사태 중에 나에게 조금 마음의 여유와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 electronics, IoT, microcontroller etc etc, 지금까지 거의 완전히 손을 놓은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다시 시동을 걸 수는 없을까? 이것에 어느 정도 길들여지게 되면 앞으로 두고 두고 시간, 정신 활용에 도움이 될 것인데.

 

Agony & Ecstasy of Microcontrollers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부활 제 6주일 online 미사

강론중인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오늘,  순교자 성당 online 주일미사, 역시 좋았다. 이영석 신부님 어쩌면 그렇게 기억에 남을만한 그런 강론을 하는 것일까? 오늘 말씀도 참 좋았다. 비록 우리보다 한참 어린 것은 분명하지만 이 신부님도 나름대로의 연륜의 빛을 발하는 것일까? 불교철학을 통한 폭넓은 인생 안목이 더해져서 그런 것일까?  근래에 우리는 정말 ‘신부님 복’이 많다고 생각하며 산다. 이것도 우리의 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윗동네 형제성당의 볼품, 예의, 매력 없는 신부와 비교하여 생각하면 더 그렇다. 분명히 그 신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영석 주임신부님 복음, 미사 강론 – 2020년 5월 17일 online 미사 중

 

정말 오랜만에 비가, 그것도 늦은 저녁에 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이거 정말 오랜만이 아닌가, 거의 잊고 살았던 느낌이 든다. 맞다 지난 주 한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렇다. 5월이 들어서 처음 보는 비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비! 반갑다… 새로 단장한 tool shed에 비 챙, 이런 말도 있나… 그러니까… awning, 이제는 shed 근처에 조금 더 비를 피할 공간이 생긴 것이 흐뭇하다. 이제 더 정리를 하고 나면 밀렸던 tool shed를 정리하는 일들을 하자.

 

¶  부활 제4주일, 2020년 부활절 Easter은 벌써 3주가 지나고 있지만 부활 season은 아직도 3주가 남았다. 이 부활 시즌이 끝나는 날, 5월 24일부터는 무려 4 가지의 ‘대축일’이 계속 이어진다.   5월 24일 ‘주님승천대축일 THE ASCENSION OF THE LORD‘, 5월 31일  ‘성령강림대축일, PENTECOST SUNDAY‘, 6월 7일 ‘삼위일체 대축일 THE MOST HOLY TRINITY‘, 6월 14일 ‘성체성혈 대축일,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 

가톨릭 전례력에서 이렇게 무려 4번이나 대축일이 연속으로 나타나는 때가 끝나면 제일 중요한 시기가 끝나고,  비로소 ‘연중시기, ORDINARY TIME’가 시작된다. 따라서 아직도  ‘부활 축제 분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시기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완전히 중단된 것이다. 이것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제일 당혹스러웠던 곳은 바로 가톨릭의 정점, 중심인 로마 교황청 VATICAN, 그리고 교황님이었을 것이다. 신자들이 물리적으로 모이지 않으면 미사가 불가능하니, 차선책으로 가상적, 영상적, 원력적으로 미사를 해야 하는 것, 이천 년 역사의 교회에 이런 적이 있었을까? 미사와 친교가 중심인 교회생활이 없으면 사실 믿음의 생활에는 치명적인 영향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에 걱정도 되지만 물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된 YouTube 로 보는 주일미사, 오늘도 예외 없이 10분 전부터 기다리다가 참례를 하였다. 우리들이 본당내의 광경과 소리를 접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신부님은 사실 허공을 향해서 수많은 정든 교우들의 모습들을 머리로 그리면서 집전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찡~ 해진다.

얼마 전 뉴스에서 미국의 어느 본당에서는 성전 내 텅 빈 신자석에 일일이 교우들의 사진을 배열해 놓고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하는 미사는 집전 신부님에게는 조금 도움이 될 듯하다.

오늘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영상 미사, 계속되는 주일미사의 강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아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부님께는 조금 미안하지만 음성으로나마 남기고 싶어서 녹음을 해 보았다. 나중에 또 듣고 싶은 것이다.

이날의 강론은 신부님의 지난 시절에 대한 솔직하고 고백적인 회상이었다. 너무나 솔직한 개인적인 듯했지만 복음 주제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명 강론이었다. 계속 되는 즐거운 놀람이 이것이다. 어떻게 우리 성당은 이렇게 신부님 복이 많은가? 내가 겪은 3명의 예수회 신부님들, 정말 우리들에게 과분한 박학다식한  사제들이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 복음과 미사강론 – 이영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 – 2020년 5월 3일

 

 

거짓말 같이 평화로운 2020년 4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  구름과 해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살살 불더니 해가 떨어지면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눈치를 미리 채고 backyard의 picnic table의 파라솔을 접어 놓았는데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심하게 바람이 분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것이다. 다행히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아서 밖에서 걷거나 일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이런 ‘비상적’인 날씨를 무척 좋아하기에 속으로는 쾌재를 부를 정도다.

4월도 거의 저물어 간다. 벌써 마지막 토요일을 맞은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뉴스가 온통 우리의 머릿속을 맴돈 지도 2달에 가까운 것이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 이것이 new normal이 아니고 그냥 normal인 것처럼 느껴진다.

 

¶  코로나19, COVID-19, 이름도 부자연스러운 이것, 언제까지 우리의 주위에서 맴돌 것인가? 장기적인 여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 가족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모든 (사회) 공동체들, 특히 신앙공동체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지역, 나라 아니 나아가서 NOOSPHERE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우선 과학적으로 알고 싶고 다음은 영적인 눈으로…

 

나를 ‘살려준’ Tech Guy podcast, 과학적인 코로나 뉴스를…

 

이것에 관한, 요새 나의 안도감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은 바로 tech-guy style podcaster들이다. 코로나19 뉴스는 이들의 의견으로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데 이것이 (빠가, 또라이) 트럼프의 웃기는 발언들이나, major news outlet들의 조금은 과장된, dramatic한 style들보다 훨씬 믿음성이 있고 공감이 가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tech news podcast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로 코로나 사태의 모든 것을 가늠할 것이다.

 

Backyard에 있는 open shed를 tool, workshop shed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  어제 밖 backyard에서 일을 하며 라디오로 조지아 주의 코로나19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이발소 같은 곳이 문을 열기시작 했다는 소식이었다. 성급한 느낌은 떨칠 수는 없지만 다른 쪽으로는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평상으로 돌아 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과학적’으로 아직 business 를 열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이것도 이해는 된다. 먹고 사는 것, 그것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문제를 피부로 못 느껴도 머리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  오늘 우리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레지오의 꾸리아에서 한국 서울 세나뚜스 단장의 글을 forward 보내왔다. 레지오 마리애 잡지에 난 기사를 보낸 것인데,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레지오의 시련, 도전, 그리고 희망에 관한 메시지였다. 교회전체가 겪고 있는 시련과 도전에 못지 않게 레지오도 앞으로의 운영과 선교 방향이 미지수인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ing’ 와 레지오의 (대인 선교) 활동방식을 어떻게 지혜롭게 절충하느냐 하는 것인데, ‘쫄짜’ 단장인 나도 요새 이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다. 이것이야 말로 올해 우리들의 풀어나가야 할 제일 큰 도전인 듯하다.

 

¶ 故 최인호 (연세동문선배, 작가) 의 1990년대 말 자전적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 요새 신들린 듯이 필사를 하며 읽고 있고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읽으며 생각하는 것, ‘젊은 날의 약속’ 이 제목인 데.. 이것을 아마 언젠가 한번 읽었고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다. (서울)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던 이야기였다. 당시에 나는 ‘꿈속에서나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리운 동창회 광경이었다. 한마디로 슬프기만 했던 심정이었다.  이 글은 그가 50세가 넘으며 쓴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들 그 당시에 벌써 ‘늙음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  어제 일기예보는 거의 정확했다. 아침 9시경에 드디어 꾸르릉거리며 새카만 하늘로부터 빗물이 쏟아질 태세를 잔뜩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열대성 기후 같은 소리지만 밖에 나가보니… 이건 아주 싸늘한 공기였다. 오늘 하루 종일 온다고 하는 비, 내일이면 개일 듯…  갑자기 초록색의 농도가 진해지는 뒷마당을 보니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로 시작되는, 김대붕 선생님의 추억이 어린 ‘4월의 노래‘ 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제 4.19 학생혁명의 추억도 색깔이 바래지고, 모든 것들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Tobey Trail, 2년 전 떠난 나의 분신 dog, Tobey가 묻힌 곳으로..

 

¶  일요일마다 오랜만에 이영석 신부님 얼굴을 ‘화면’으로 ‘제 시간’에 보게 되는 것, 솔직히 즐거운 일이다. 가급적 주일미사 기분을 느끼게 해 주려는 ‘생방송’ 미사, 얼마나 멋있고 효과적인가? 신부님, 정말 정말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편한 곳에서 편하게 미사 봉헌하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국본당 도라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우리에게는 거의 순례자적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곳,  예의 주일 교중 미사 YouTube Live stream 으로 주일미사 참례를 마치며,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우리 신임 주임신부님, 정말 멋진 사제로구나 하는 것. 처음보다 더욱 이곳에 적응하며 잔잔한 빛을 발하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어떻게 그렇게 ‘양떼들, 전 신자들’의 고민과 관심에 공감, 동참하는 것일까… 그렇다. 진정한 목자라는 것은 이래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의 공지사항으로 알게 된 것, 궁금하던 것,  언제 아틀란타 대교구의 미사가 재개 되는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결국은 ‘무기한 미사 중단’이란 답을 듣게 되었다. 우선 당분간 우리의 적당히 적응된 daily routine에 변동이 없는 것은 마다할 것은 없으나, 이것 좀 이 지역의 코로나 사태가 이 정도인가 하는 의구심과 걱정되는 마음은 떨칠 수가 없다.

 

¶  요새 열심히 읽고 있는, 연세대 동문선배, 최인호 님의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흡사 나의 분신, 아니 다른 이상형이 쓰는 듯한 그런 감정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류의식’… 이것이야 말로 지금이라도 찾고 보는 보물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벌써 반 정도 독파를 하는데, 이 수필에 열거되는 각가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나의 추억과 생각을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야무진 생각까지 치솟는다. (또 다른 서울고교 출신) 인호(형), 고맙습니다!

 

¶  어둠 속에서 central heating의 저음 소리를 들으며 침대를 기어 나오면 또 습관적으로 ‘성모님, 하루 또 부탁합니다!’. 생각보다 싸늘한 날로 시작되는 모양, 비가 완전히 그치지 않은 모양으로 그래서 더 춥게 느껴지고 아래층에도 히터가 요란하게 나오고 있다. 그래, 4월에도 이렇게 추운 느낌이 있었어… 하지만, 곧 따뜻해질 거야…

곧이어 월요일 새벽을 알리는 trash truck 요란한 저음의 진동, 또 한 주일이 시작되는구나… 저 청소부 아저씨들, 가랑비를 맞으면서 거의 로봇처럼 일을 하는데,  저들이 요새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시켜주는 ‘천사’들이 아닐까?

 

¶  어제 어떤 자매님이나의 blog에서 성녀 파우스티나 Faustina 의 冊 ‘자비는 나의 사명‘을 smartphone에서 볼 때 글자를 더 크게 볼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이 분야는 나의 약점이다. 나의 브로그 는 사실 작은 화면을 의도적으로 염두에 안 두었다고나 할까… 커다란 screen위로 멋지게 design된 것으로부터 ‘초라하게 작은 창’으로 그것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이게 한단 말인가? 이런 추세가 시작되면서 이렇게 ‘싸가지 없게’ 걸어가며 webpage를 보는 것을 상상하며 ‘치를 떨었다’. 하지만 역쉬~~ 세상은 나의 뜻대로, 나의 마음대로 가만히 있어주지 않는가? 더 많은 사람들, 주로 ‘게으른?’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 어쩔 수가 없다.

부랴 부랴 나의 phone으로 나의 website를 보니, 요지부동, 전혀 글자나 화면의 모든 것들을 크게 작게 할 수가 없다. 다른 site들은 손가락 두 개로 pinch-zoom 자유자재로 크기가 control이 된다. 왜 그럴까? 나의site의 technology가 또 뒤쳐진 것인가? 그렇다. 나의 것도 기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여야 하고 (선교의 차원), 이 문제를 풀어보자.

오늘의 pop project, pinch & zoom function on touchscreen device… 결국은 한가지 방법을 찾았다. 문제는 나의 Artisteer theme 들의 <head> tag에 있는 viewport meta data 에 있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는 이 head meta tag을 바꿀 방법이 한마디로 더럽다는 것이다. 일일이 server에 이미 있는 theme folder에 가서 header.php 를 reedit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바꾸어서 test를 해보니 정말 와~  pinch & zoom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급할 때 글자나 모든 것들을 크게 볼 수 있을 것이다.

Code:

<meta name=”viewport” content=”initial-scale = 1.0, width = device-width” />

 

 

Omega Seamaster, ticking & live again!

 

¶  Omega ‘wrist’ watch: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shelter-in-place 의 결과로 수난을 겪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의 손목시계였다.  Pandemic 전의 ‘정상적인 생활’에서 나는 이 손목시계를 아침에 꼭 끼고 외출을 하였는데 외출이 거의 없어지니까 이것의 ‘죽어버린’ 것이다. 40년 전 결혼선물로 받았던 이 Omega Seamaster, 결혼 초에 쓰다가 값싼 Timex 같은 것 때문에 보석상자 속에 보관을 하였던 것을 몇 년 전부터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계는 automatic이라서 어느 정도 움직여 주지 않으면 서버리는 불편함이 있었기에 사실 실용성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때는 Electric motor를 사용해서 움직여주는 gadget을 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사치다.

요새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아하! 아침에 일과를 시작하면서 그것을 손목에 차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  그래서 집에서도 오전 8시에 꼭 차고 오후 5시에 벗는 습관이 지금의 코로나사태의 선물로 남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의 희생제물, 동네 성당의 sanctuary가 굳게 문을 닫았다

코로나 사태의 선물: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보이게 늘어났다

 

¶  그제의 열대성 stormy day 이후에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 바람이 그렇게 싸늘할 수가 없다.  이른봄에  흔히 보는  바람이 싸늘한, 하지만 찬란한 태양이 작열하는 날, 무엇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달래기 위해서 거의 한달 여 만에 동네본당 Holy Family성당으로 차를 몰았다. 차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 거의 10년 가깝게 정든 이 차길, traffic은 한산하였지만 계절의 신호는 현 사태와 전혀 상관없이 뚜렷하였다.

 

8여 년 동안 거의 매일 drive하면 다니던 Robinson Road, 한 달만에 주위의 초록색이 더욱 진해졌다

 

비록 공개적 모임은 없지만 그래도 성전 내부 자체는 open한 것으로 안 우리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신부님 차가 보이길래 반가웠지만 성당 입구는 굳게 닫혀있었다.  한 달에 한번씩 봉사단체에 food donation하려고 가지고 간 것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데 누가 나오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물건을 전해 주고 대성전 sanctuary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으니, 모두 close되었다고 알려준다.

 

14처, 십자가의 길로 들어가는 입구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은 성전의 문은 열어놓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곳은 닫았을까… 아쉽기만 하다.  대신 성당 뒤쪽의 수풀 속에 마련된 14처, 십자가의 길 station of cross 을 오랜만에 걷고 나왔다.  돌아오면서 다시 느낀다… 이런 상태로 더 오래가는 것, social distancing 은 흔히 아는 것같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사람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에 틀림이 없다는 엄숙한 사실을.

 

Thanks, Uncle Benjamin!

 

¶  Stimulus Gift: 평상시 오늘은 일년의 Tax Return을 하는 마감날이었는데, 그것이 코로나 사태로 7월 15일로 연기가 되었다.  IRS (Internal Revenue Service)에 세금보고를 하는 대신에, 오늘 Bank account를 보니 IRS에서, 예상하던 대로 deposit한 돈이 얌전히 들어와 있었다. 결국 지난 몇 주 동안 congress에서 그렇게 토론하던 것이 현실화 된 것이다. 완전히 정지된 경제활동으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Stimulus Package, 이것은 한글로 어떻게 표현하나… 요새는 이런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고등학교 수준의 한글단어가 머리에 맴돌고 있는데 이런 전문용어는 무리다. 좌우지간 ‘경제활동 촉진을 위한’ 그런 정부지원책이 하나다. 2 Trillion Dollars, 이것은 그러니까… 2000, 000,000,000 dollars! 20조 달러인가… 이번에 완전히 all stop된 경제활동을 그야말로 구원하기 위한 단기 대응책이다. 이것이 모자라면 같은 규모의 2차 지원을 할 모양이다. Dollar는 미국 돈이니까, 하기야 찍어내는 것은 우선 큰 문제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 모두 자가적 빚이 아닌가? 누가 갚을 것인가? 아마도 우리 딸들의 세대가 아닐까…

 

¶  Plateau, 코로나19의  최악 사태를 지나가며:  비록 어제부터 코로나에 대한 ‘난잡한 뉴스, 선동적인 것들’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지만 아주 믿을 만한 단편 소식은 접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블로그 source가 하나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retire한 대학교수 출신, computer scientist, engineer  Michael Covington 박사, 그의 블로그 로부터 나는 간접적으로 이 미국과 이 조지아 지역의 코로나 확산뉴스를 접하는데, 이번의 post 에서 그는 현재의 코로나 pandemic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었다.

 

1.  What is vital is to stay in touch with reality. Coronavirus is not a piece of political ideology that somebody made up. It is a real, physical enemy. Those deaths in hospital corridors are real. Dr. Fauci really does know more about viruses than you do. And so on.

Our enemy is speculation — people who can’t distinguish “it might be” from “it certainly is,” and who promote unconfirmed possibilities as if they were confirmed truth. See also (9) and (10) below.

현실을 직시하는 것,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상적, 정치적이 아니고 물리적인 적이다. 병원에서 수없이 죽어가는 것도 사실, Dr. Fauci (NIH 전염병, 바이러스 책임자) 가 우리보다 이 병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음도 사실이다. 우리의 적은 근거 없이 추측하는 것, 실증되지 않은 사실을 부추기는 것들이다.

2.  Ignoring the virus was never an option. We’ve had 22,000 deaths. Would you rather have had half a million? You could easily have had that, if there had been no restrictions.

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시하는 것, 언어도단이다. 22,000 명이 벌써 죽었다. 50만 명이 죽는 것, 사회적 제한 조처가 없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3.  Our restrictions have paid off. Quite possibly, hundreds of thousands of lives have been saved. The national new-case rate peaked a few days ago. State by state, some states are going to have much later and lower peaks, which is a good thing.

[Afterthought: Models may have been inaccurate, but there’s no denying that the virus spread a lot less with our lockdowns than it would have without them.]

이런 사회적 제한조치는 성과가 있었고 수십만의 생명을 보호했다. 확진자의 수가 이제 고비를 지나고, 각 주에 따라서 늦게 완만한 고비가 올 것인데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바이러스 확산 정도는 확실히 사회적 제한, 봉쇄조처와 비례하고 있다.

4. The virus would have damaged our economy no matter what we did (even if we had ignored it and just let a lot of people die). The reason you didn’t hear economists objecting to those stimulus payments is that knowledgable people recognized that a rise in the national debt would be better than sudden mass poverty.

어떤 조처를 취했든 간에 경제적 타격의 정도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감염자, 사망자의 숫자는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모든 시민들에게 보조금을 준 것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알만한 사람이면 모두 동의하듯이 ‘빚을 지는 것이 갑자기 모두가 가난해 지는 것보다 낫다’ 라는 논리 때문이다.

5.  Our economy can’t sustain forever what it sustained for a month. Damage to the economy itself causes deaths, not only here but (perhaps even more so) in poorer nations that rely on us for trade.

현재 몇 개월 지속되는 경제적 타격은 무기한 오래갈 수는 없다. 이런 피해는 다른 사망자를 유발하기 때문이고,  무역에 유지하는 빈곤국은 더욱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6.  We are going to have to do some kind of gradual, careful reopening of the economy, starting with businesses that don’t involve crowds of strangers.

이런 상태의 경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시 가동시켜야 한다. 특히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그런 사업, 가게 부터 제한을 풀어야 한다.

7.  With the wider availability of coronavirus tests, some experts are recommending a shift to a strategy of restricting only people who are known to be infected and their immediate contacts. I hope this proves feasible.

바이러스 테스트가 광범위하게 실시될 때, 관계자들은 감염자나 그와 접촉한 사람들만 골라서 거주제한을 하여야 한다고 권하고 있고, 이런 방법의 실행이 어렵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8.  The virus will linger. For a couple of years, we are going to have to behave as if we were in a bad flu season, continuing to take some precautions.

코로나 바이러스는 질질 끌며 계속될 것이다. 몇 년 후에는 이것도 보통 독감 같이 취급을 하며 살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 조심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9. I know you’ve heard that some people say the virus escaped from a lab in China. Please be assured that many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are looking at this, and that they know more about it than you do, and are going to pay attention. In the meantime, it doesn’t affect what we need to do going forward.

[Afterthought: The lab thing is a red herring. Even if it was just bad sanitation, it was an international hazard that came from China. Flu epidemics have been coming from China with some regularity. This can’t go on.

사람들은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의 어떤 연구소에서 새어 나온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보다는 이미 세계의 많은 정부기관들이 이것을 조사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들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알려질 때가지 우리들은 현재 하고 있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비록 이 중국 연구소 이야기는 확실한 것은 아니더라도, 중국으로 부터 출발한 많은 위험들, 특히 독감 역병 같은 것은 거의 정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는 것이다.

10. There is research on hydroxychloroquine and other drugs that might kill the virus. Please let medical research proceed, and don’t spend your time trumpeting one success story without knowing whether others have gotten the same results.

[빠가 또라이] 트럼프가 ‘자기의 직감으로’ 코로나 특효약처럼 볼 때마다 언급하던 이것 [읽기도 힘든 화학용어]은 그야말로 먹을 때 기도를 잘 하면 낫게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인데… ‘과학적’으로 확인이나 증명이 되기 전에는 선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 먹고 5년 후에 ‘확실히’ 사망에 이르면…  [이것은 나의 철저한 상상적 의역에 불과함]

 

동네를 걷다가 하늘을 보니.. 지난 밤의 폭우성 구름이 걷히며 청명한 하늘이…

 

봄바람이 시속 10+ 마일 정도로 불며,  갑자기 파래진 나무 이파리들이 계속 살랑거린다. 꽃, 나무, 송학가루가 진해지기 시작하기만 하면 시원한 바람과 빗물로 씻어 진다. 이것이야말로 천혜 天惠 라고 하던가… 거의 완벽한 날씨가…

2020년 부활절 바로 다음날, 그러니까 부활주일 월요일인 셈이다. 가톨릭 전례용어로,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영어로는 ‘Monday within the Octave of Easter‘ 인 셈이다. ‘그 망할 놈’의 pandemic 코로나 바이러스만 빼면 near perfect,  gorgeous day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날, 지나간 한 주일, 특히 성주간, 성삼일 을 되돌아본다.

 

성목요일 온라인 미사, 이날은 각자의 가정에서 ‘세족례, 발씻김’ 의식을 했다

 

제일 큰 관심사였던 성삼일 Triduum  미사와 부활절 낮 미사는 예정된 대로 online live YouTube stream 으로 각자 집에서 참례할 수 있었다. 매일 미사를 이미 online으로 하고 있어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모두 live라서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TV/Monitor앞에 있어야 한다. 매일미사 (대부분 cpbc, 평화방송) 는 사실 on demand format이라 우리에게 편한 시간에 했지만 Live Format은 모든 신자들이 같은 시간에 참례하는 것이라 더욱 큰 의미와 무게를 가진다.

이번에 아틀란타(나는 ‘애틀랜타’라는 ‘괴상한’ 이름을 지독히 싫어함, 언제 누가 왜 바꾸었나?)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주임신부님 (이영석 세례자요한 신부)을 비롯한 봉사자들이 4일 동안 정말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듯 보인다. 아마도 주임신부님의 의지였을 듯 하다. 또한 부활절 낮 미사의 강론은 정말 근래에 보기 드문,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명 강론으로 꼽고 싶다.

안방 TV screen 위로 4일 동안 계속 마주보게 되는 주임신부님의 얼굴은 ‘교우 여러분들, 그립습니다…’ 그 자체였고 그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 어려운 시기에 어떤 목자가 진정한 목자인가는 이런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코로나 사태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미사 자체는 순교자성당의 대성전에서 평소에 하던 그대로 집전이 되었지만 일반 신자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그저 ‘쓸쓸한’ 그런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부님을 보좌하는 사람들과 성가대의 보조를 최소한 인원으로라도 참여시켰으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현재의 Shelter In Place (Stay Home, 칩거?) life style도 거의 한 달에 가까워 온다. 지난 주일 날, 성지주일 Palm Sunday에는 ‘용단을 내려’,  새로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손자를 보러 20 마일 떨어진 곳까지 외출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 그야말로 ‘칩거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Social Distancing 같은 New Normal에 아주 적당하게 적응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너무나 평화스럽고 건강한 나날들이 된 듯하다. 

한때 ‘난무하는’ YouTube의 함정에 빠져 우울하기도 하고 기운도 빠지곤 했었다.  그곳에 잘못 빠져서 하루 종일 코로나19 뉴스를 보게 되면 정말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오늘부터는 ‘완전히’ 그곳에서 빠져 나오니, 정말 세상이 다르게 보이며 살 맛도 제자리로 오는 듯 하다. 그래… choice다, choice… 이제는 지긋지긋한 또라이 트럼프가 10대 깡패의 얼굴로 기자들을 위협하는 희귀하고 희한한 광경을 안 보게 될 희망이 생긴다.

 

우리 subdivision의 30분 walking course ‘trail’ roadway, Guilford Circle

 

이제는 연숙과 30분 걸리는 우리 동네 Hanover Wood trail (사실은 roadway)를 걷기 시작한지 한 달도 넘는다. 이번에 느낀 사실은 이 walking trail course가 정말로 우리 나이에 알맞은 코스 [거리나 경사] 라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나는 물론이고 연숙에게 나타나는 ‘건강의 신호’는 정말 놀랍기만 하다. 고질적인 불면증도 아주 안정이 되어 혈압수치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걷는 그 자체보다 그것에서 얻는 평화의 느낌 때문일 것이라고 우리는 진단한다. 게다가 그 동안 각종의 외출로 힘들었던 뒤뜰의 텃밭을 가꾸는 일은 이럴 때 정말 완벽한 소일거리가 되었다.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코로나19가 준 good side effect가 아닐까? 하지만 이런 모든 예상치 못했던 ‘좋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우울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Scientist correcting & teaching… whom, Stupid!

 

¶  March Madness:    3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지나간 한 달을 뒤돌아 본다. 이상하게도 빨리 지난 듯 하면서도 사실은 근래에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것은, 3월 달 이전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한가지 밖에 없다.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pandemic 그리고 pandemic …  한마디로 이것이 바로 March Madness가 된 것이다.

오늘 저녁 major network TV 로 pandemic news를 마지막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인재 人災 인가, 천재 天災 인가.. 그 중간인가.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나 처참할 정도로 심한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몸을 추스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대비할 시간이 그런대로 충분히 있었는데, ‘빠가’, ‘또라이’ 트럼프,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red button’을 누른 결과가 되었다. 부활절 이후 경제활동을 풀겠다고? 재선 再選의 유혹이 그렇게도 달콤했던가, 아니면 자기도취의 역병 疫病에서 아직도 못 깨어난 것인가?  결과론은 둘째치고,  몇 일전의 생각과 발언을 거의 발뺌으로 넘어가며,  비위에 거슬리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거의 깡패 수준의 발언을 서슴지 않으니.. 정말 우리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남미 나… 하나 같이 지도자 부재현상의 홍역을 겪고 있다.

결국 이 ‘또라이’는 4월 말까지 ‘금족령’을 발표한 모양인데, 어떻게 며칠 새에 마음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모든 과학적 자료를 듣거나 읽을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우니 아마도 밤에 자기 전에 ‘뺑뺑이’를 돌리는 것은 아닌지 우습기도 하다. 문제는 이제 정면으로 대처하기는 늦은 것 같고, 이 거대한 파도를 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인재에 가깝다. 240,000 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는 놀라운 예보는 이제 거의 실제로 다가오는 사실로 느껴진다.

 

 

 

¶  성경통독:     3월의 마지막 날,  이번 달 성경통독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올 들어서 아틀란타 순교자 본당 신자 전체가 일년에 걸쳐서 성경을 전부 읽는 것을 목표로  ‘성경통독’ 계획표를 배부하여 현재 우리도 매일 읽고 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읽는 것이 이제 거의 습관이 되었다.

오늘까지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기상 시간에 맞추어 이렇게 신약성경 전체를 읽고 있는 것이 나는 은근히 자랑스럽다. 조그만 습관이나마 내가 이렇게 습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특히 더 가슴이 뿌듯한 것이다.

‘매일 성경, 묵상글’에 꽤 오랜 동안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번에 ‘통째로’ 읽는 경험은 아주 새롭고 놀라운 것이었다. 매일 말씀, 묵상의 단편 단편의 말씀들이 앞뒤로 연결되어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살아나는 것,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점들이 하루 하루 연결이 되어서 새로운 뜻들이 너무나 편하게 이해가 되어온다.

또한 그렇게 한없이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지던 ‘성경’, 특히 신약이 어쩌면 이렇게도 짧을까 하는 오만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인류의 정신적인 역사를 만들어 왔던 ‘예수부활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짧았단 말인가 할 정도였다.

오늘로서 신약성경 마지막 ‘요한묵시록 the Apocalypse’, 그것도 마지막 부분을 끝으로 신약을 다 읽게 되었다. 묵시록에 등장하는 상징적이고 종말론 적인 이야기 중에서도  four horsemen, 그 중에서도 첫 번째의 white horse는 아마도 역병 plague 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오늘의 코로나바이러스 Pandemic 과 연관되어서 아주 실감나게 느껴진다.

내일부터는 그러니까 구약 성경을 읽게 되는 모양인데… 매일 밤 우리집의 저녁기도에서 이미 구약을 읽기 시작한 것이 꽤 되어서 조금은 덜 생소할 것이지만 미리부터 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같이 잔인하고, 반복적으로 지루한 부분들이 많을까… 아직도 의아해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뿐이다. 하지만 내일부터 다시 그것을 반복하며 읽게 되니, 이번에는 또 다른 깨달음을 기대해 본다.

 

 

¶   3월도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 3월, 특히 중순을 넘으면서 ‘전통적 기억의 단절감’을 절실히 실감했다. 흔하게 생각나던 나와 친숙하던 어휘, 단어 등등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기억력 감퇴일까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것들을 모두 가리는 또 다른 것들이 머리 속에 가득했기 때문일 것, 이라고 나는 희망적인 추측을 한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기억 상실증이라고 할까. 물론 이유는 한꺼번에 물결치듯 나를 덮친 정보의 홍수, 그것도 오랫동안 (또라이 트럼프 등장 이후) 피해오던 세속적 주류 미디어 mainstream media 로부터, 바로 그것의 위력이었다. 물론 ‘그 놈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것들이다.

 

 

작년 3, 4월의 일지 日誌달력을 본다. 올해의 것의 밑에 놓고 수시로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는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물론 1년 전의 일들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그 당시 만나거나 연락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 때 만났던 장소, 날자 등을 참고로 다시 연락하는 등 편리한 것,  탁상달력의 조그마한 일지, 메모는 이제 꽤 나의 개인전통이 되어 간다.

지금 이것을 다시 보며, 작년 3,4월의 일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건강하고, 그리운 것으로 느껴진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렇게 세상이 뒤숭숭한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Beatles의 Yesterday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작년 이 맘 때의 ‘보통, 정상, 지루한 하루하루’ 가 지금은 거의 천국처럼 느껴진다. ‘새 정상 new normal’이란 것이 작년에 비하면 거의 비상사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바로 눈 앞에서 ‘적군이 쳐들어 오는’, 실제적인 전쟁이 난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어렸을 적에는 당장 쳐들어올 것 같던 김일성 빨갱이들의 제2의 6.25의  공포에 떨었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에서도 거의 20년 전 9/11 사태도 등골이 오싹한 공포를 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먼 곳의 불’ 이라고 위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  Pandemic은 game의 scale이 완전히 바뀌어서 그렇게  간단하게 숨을 곳이 별로 없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공포다. 이렇게 ‘숨을 곳이 없다는’ 공포는 사실 아주 젊었을 때 한번 잠깐 느낀 적이 있었다. 1973년의 classic psychic horror movie였던 The Exorcist,  그 심령 귀신영화를 본 후 거의 일주일간 밤에 불을 끄지 못하고 잤다. 그때의 공포도 지금과 비슷하게… 숨을 곳이 없었던 그런 공포였다.

이번에 경험하게 된 이 ‘폐렴’ 류의 전염병, 나이와 크게 상관이 있다고 했고, 나의 나이는 이제 아주 위험한 쪽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심각하게 간주하게 되어서, ‘일부러, 자진해서’ 관심을 두고 걱정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와 모두를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급적 밖에 안 나가는 것, 그것이 알고 보면 최선의 방법이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YouTube 주일 미사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  오늘의 사순 5주 주일미사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Youtube Channel 을 통하여 ‘참례’를 하였다.  아틀란타 대교구 내의 모든 공적인 미사전례가 정지가 된 이후 대부분의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인터넷 비디오를 보며 하게 되었는데 우리 본당도 지난 주부터 시작을 해서 오늘이 두 번째가 되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 같으면 아주 힘들었을 것들이 가능해지고 교회의 전례까지 이렇게 혜택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문제는, 개신교와 비교해서, 전례의식의 중요성이다. 쉽게 말하면 개신교는 ‘강론’만 들으면 거의 다 끝이 나지만, 가톨릭에서는 ‘전례 의식’ 자체 특히 성체성사가 절정 絶頂이기에 이런 ‘virtual mass’는 교의적 사목적으로 결함이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몸을 ‘먹는’, 영성체가 문제다.  예수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  그것을 물리적으로 ‘영’하는 것이 빠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을 ‘신영성체’, Spiritual Communion이라는 기도를 통해서 보완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정식 미사라고 하기에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인가? 신부님을 big screen으로 보는 것만 해도 사실 성당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감지덕지가 아닌가?

또한 이렇게 YouTube Live로 주일미사를 가능하게 한 성당의 ‘전산팀’이 있었을 듯 한데 그들에게 뜨거운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도 현재 진행중인 코로나 사태에서 발견하게 되는 많은 ‘착한 영혼’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김형철 시메온 보좌 신부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20년 3월 22일 온라인 online 주일교중미사가 무사히 끝났다. 처음 독서부분을 놓쳤지만, 김형철 신부님 집전의 고별미사를 대부분 참례할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애석하게도 고별미사의 날짜가 대교구에서 공적미사 중단령이 나온 이후 첫 주일이 되어서 교우들과 직접 작별인사를 나눌 수 없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과 슬픈 마음이 교차되는 경험이 되었다.

첫인상이나 이임시의 인상에 전혀 차이 없이, 전형적인  ‘착한 목자’의 모습은 나, 우리들 모두에게 오랜 세월 동안 감동으로 남을 듯하다. 어린애, 청년, 장,중년, 그리고 나 같은 senior층, 모두에게 차이 없이 많지 않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인자하고 환한 모습을 보여준 것, 평화의 인사에서 가능한 한 많은 교우들과 따뜻한 악수를 나누고 싶어하던 모습 등 그런 것들이 김형철 시메온 신부님의 legacy가 될 것이다.

우리 부부와는 특별히 개인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짧은 일화는 남아있다. 물론 연숙은 예비자 교리반 관계로 사무적, 공식적인 만남의 인연이 있지만, 나는 아주 우연한 짧은 대화의 기억이 남는다. 테이야르 샤르댕 신부님의 ‘진화적 영성’에 심취할 때, 신부님과 마주친 기회에 의견을 나누었던 기억.  역시 신부님도 샤르댕신부의 ‘진보적, 예언적, 과학적 영성’에 예수회신부님 다운 열정을 보여 주었던 것, 그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 마주치면 나의 얼굴을 알아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고, 연숙과 나의 관계를 아시고, 나이답지 않게 우리를 격려해 주신 것 등등.. 모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주임신부와 보좌신부의 밀접하고 원만한 관계를 몇 번이나 언급하시던 주임신부님, 고별미사에서 그 심정을 일화와 더불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애석함을 보여 주셨다. 물론 그런 광경을 Youtube live로 보면서, 우리도 모든 기억들과 더불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 앉는다.  부디 건강하시고 큰 신부님이 되시길 기도하며..

 

 

 

¶  Social Distancing? Huh….  ‘社會적 距離 두기’?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새로운 시사 時事용어, 이것 한글 용어 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괴롭다.

사람들과 사이를 두라는 쉬운 그림은 그려지는데… 간단한 것이 아닌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갔을 때 어떻게 그들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어울리는 것, 그것일 것이다.

이유는 물론 공기로 전염되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몇 feet 사이를 두면 안전한 것인가? 말을 크게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런 것들이 귀찮으면 아예 사람들 근처에 가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도 역시 ‘사회적 거리’를 두는 지혜다. 당장 우리가 쌓아온 오랜 전통, 주일과 매일미사, 레지오 주회합, 봉성체, 양로원 봉사, 그리고 YMCA  gym 운동..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오랜 세월 동안 믿었는데, 이것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당분간 아니면 꽤 오랜 동안 이런 활동을 못할 듯한 예감인 것이다. 아틀란타 대교구의 본당을 위시한 한국성당의 평일, 주일미사와 레지오 주회합, 활동도 거의 마찬가지 위치에 있다. 어떻게 결정을 할 것인가? 어떻게?

신중하고 사려 깊고 지혜로운 결정의 순간들이 계속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아마 이런 사회적 곤란함은 계속될 듯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올바른 길인가? 내가 안 움직이고 안 나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임을 알면서도 그것의 ‘정도’가 문제인 것이다. 관건은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데 있다. 100명 이상인가? 10명 이상인가? 오늘 주일미사도 100명 이상일 것으로 예상하고 모처럼 online mass를 보고 가능하면 참례의식을 지키도록 노력했지만 그것이 실제 진정한 성당미사의 근처에나 갈 것인가?

 

 

¶  오늘 우리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를 빠지게 되었다. 점점 느낌이 안 좋은 이 시국의 그림자가 나의 머리를 짓누르는 가운데  싸늘하고 잔뜩 찌푸린 날씨와 연숙의 ‘급성 불면증’을 핑계로 그렇게 했는데, 솔직히 크게 후회는 안 한다.  대신 급히 찾은 online (English) mass [from USA] 에 혼자서 참례해서 조금은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오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일 교중미사에  평상의 1/3 정도가 참례했다고 조시몬 형제 용감하게도 보고를 해 주었다. 그 형제의 ‘올바른 신심’은 우리도 감탄하고 있지만 우리와 조금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60대와 나의 70대의 차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다음 주부터일 듯하다. 매일미사, 주일미사, gym, 레지오… 등이 관건이다.  아틀란타 대교구에서 공식 결정을 내리면 간단한 것을 어떻게 이렇게 꾸물거리는 것인가?

¶  Grandparents at last:   드디어 우리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지난 해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하기에 이번에 결국 손자가 태어났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느낄 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또 다른 느낌들을 정리하고 처리하느라 사실은 꼭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작은 딸애의 급작스런 ‘속도위반’성 결혼의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정리를 못하는 정말 ‘모든 것이 늦은’ 인생을 사는 한심한 늙은이라는 생각 뿐이다. 주위의 대강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찾아오는 ‘손주들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어느 분들은 지나칠 정도로 흥분을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미안할 정도로 묵묵히 응답을 했던 기억이다.

우리 부부의 출산경험은 사실 거의 40년 전에 가까운 태고 太古 적 때의 일이었고, 이번에 다시 가까이 이 출산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의 새로운 것을 보는 듯했다. 오래 전, 두 애 모두 (제왕절개)수술 경험이 있어서 이번의 예정된 수술은 크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지만,모든 기억이 사라진 후여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이 탓인지 정말 필요 없는 것들이 걱정거리로 둔갑을 하는 모양이다.

그 긴 세대차를 통해서 의학도 발전을 했을 것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이 있을까? 걱정을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한 나름대로의 근심은 떨쳐 버릴 수가 없어서 주위에 기도를 청하기도 했다.  한가지 다른 것은 그 옛날 우리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기억, 그래서 충분히 즐길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것은 비교적 생각을 할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들 즐겁고 기쁜 것이라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기도 했다.

아기엄마(작은 딸) 는 이미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음을 강조하느라 지난 성탄 때에는 MY GRANDFATHER’S BLESSINGS이란  DR. RACHEL REMEN의 Bestseller 책까지 선물로 주었으니, 별다른 거창한 생각을 안 하며 기다렸던 나도 이제는 조금 ‘책임감’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상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없다.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숙에게는 그런대로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6.25 발발초기 때 납북되셔서 기억에 남는 아버지가 없었기에 내가 아빠 노릇 하는 것도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할아버지 노릇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감하기만 하다.

태어난 파란 눈을 가진 건강한 남자아기를 계속해서 보니 시간이 가면서 나의 마음에도 평화와 기쁨이 찾아온다.  또한 주위의 친지들에게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보내주니 그렇게 함께 기뻐할 수가 없었다. 특히 반세기 떨어져 살아왔던 고국의 친구들도 제일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들은 ‘정상적, 모범적 인생’을 살았는지 벌써 중학생까지 된 손주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이번에 겪는 ‘인생사’는 지나간 오랜 세월 동안 내가 예상하며 살았던,  ‘인생에서 거쳐야 할 큰 사건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에 속할 것이라 생각이 되어서 조금은 의미를 두고 싶지만, 완전히 ‘세계화’된 여건에서 파란눈의 손자, 사돈들과 어울리는 새로운 모험이 시작됨은 우리 평창이씨 족보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  Yellow Perils:  Corona Virus, 코로나 바이러스로 주위가 시끄럽다. 이것이 시끄럽게 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야 별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도 피할 수 없게 관심을 안 둘 수가 없게 되었다. 당면 문제는 우리가 일 주일에 한두 번은 가야만 하는 ‘도라빌 한국 순교자 성당’이 ‘한국인들의 공동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한국사람들과 잠시나마 어울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조금 overacting이 아닌가. 본당에서 공식적으로 ‘자발적 모임 자제’는 물론이고 봉사활동의 첨단위치에 있는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모임도 단장재량으로 취소, 연기한다고.. 꾸리아 월례회의, 사순특강 취소… 사순절인데 어쩔 것인가?  이곳 아틀란타에 위치한 CDC에서도 별로 크게 공포감을 주는 발언이 없고, 다른 미국본당들은 전혀 개의치 않음을 알기에 성급한 한국인의 성질이 이곳에서도 역시..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웃기는 것은 역시 그 문제의 다른 쪽 한국인사제, 미사 때 신자들에게 ‘대꾸도 하지’ 말고, ‘기도도 말로 하지 말고’, ‘성가도 부르지 말고’.. 등등 예의 일장 훈시를 한 모양이다. 역시 그 신부의 해괴한 인상 그대로인 듯.

이번 ‘사건’을 통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Yellow Peril이란 말을 정말 오랜 만에 떠올렸다. 서양문화가 보는 황화론 黃禍論, 아마도 영국의 역사학 거장 universal historian,  Arnold J. Toynbee가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1 황화론의 현대적 해석은 다음 세계전쟁은 서방과 중국의 종말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중반의 일이었고 당시의 중국은 정말 전 인민이 굶어 죽어가는 한심한 공산독재의 표본이어서 쉽게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서방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50여 년 후에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제는 이 말이 장난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기본 도덕관념(서구적인)이 거의 ‘의도적’으로 결여된 ‘비정상적 공산주의자’들이 억수로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런 배경에서 이번의 코로나 전염병을 결과적으로, ‘비밀리에’ 퍼뜨리게 한 짱깨(정부 주도로)들의 행태를 다시 보면서 그들과 함께 춤추는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1. 1960년대 말 한국 시사영어주해 잡지, 월간 ‘시사영어연구’에서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2020년의 사순절 Lent가 시작되었다.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아침 9시 미사엘 가서 이마에 재 灰로 긋는 십자가를 엄숙하고 고맙게 받았다. 문득 ‘아, 또 새로운 사순절이…’ 하는 자괴감 비슷함을 잠깐 느꼈지만, 올해의 사순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생각을 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갑자기 다가온 ‘손자’의 출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걱정보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온통 머리 속을 맴돈다.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고?  증손주를 볼 가능성은 제로이므로 이것이 우리가 거쳐야 할 중대사의 거의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쁨, 후회, 걱정, 안도감들이 완전히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각종 개인적인 관문들, 국민학교입학,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 졸업, 대학교 입학 졸업, 유학출가, 결혼, 출산, 취직, 은퇴, 고아가 되는 슬픔, 자녀 출가, 출산… 70여 년에 걸쳐서 계속되는 이런 일들은 모두가 겪겠지만, 그래도 ‘해 냈다’ 라는 안도감이 앞선다. 전에는 이런 ‘과업’들이 우리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때 늦게나마 이런 모든 것이 ‘안 보이는 은총’의 덕이었음을 알고 가는 것이 제일 다행스럽다.

나를 근원적으로 일깨우고 변화시켰던 2014년 사순절을 사진처럼 기억한다. 워낙 거대했던 깨우침이라서 죽기 전까지는 다시 그런 경험을 못하리라고 거의 확신하지만, 그래도 사순절은 나에게는 신비로운 의미를 주는 40일이다. 또한 올해의 사순절은 이런 큰 가족적 진화과정을 겪으며 ‘사람을 사랑으로 구하시려는 사명’의 예수님의 의미를 다시금 차분히,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 사순절의 결론은 역시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건임을 잊지 않고, 사순 40일을 보낼 수 있도록 기도를 하고 싶다.

 

장례식, 장례미사, 연령회 연도..  이제 나에게는 너무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말들은 모두 죽음에 관련되는 말들이다. 불과 10여 년 이전만 해도 나는 이런 것들을 거의 모두 피해가며 살아왔었다.  ‘죽음의 진리’를 요리조리 피하며, 모래 밑으로 얼굴을 파묻고 살았다는 표현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이 ‘죽음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기리며 보내는 것이 거의 습관화가 될 정도로 많아졌고, 나름대로의 ‘망자 亡者와의 이별’ 하는 방법과 철학까지 생기게 되었다. 물론 기본적인 철학은 가톨릭적인 것이지만 이제는 내 생각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낀다.

각양 각색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보내는 모습도 모두 다르겠지만 그런대로 경건함을 지키는 가톨릭 장례미사는 그 나름대로의 ‘장엄 의식’이 있고 그에 따른 조문객들의 엄숙함이 보인다. 일반 장례식은 물론이고 개신교 의식 조차도 이에 비해서 나의 눈에는 너무도 ‘사회적 모임’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한마디로 고인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 목적, 가는 곳, 등등에 대한 것들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첫 장례미사에 가게 되었다. 작년에는 1월 초에 간 기억인데 올해는 조금 늦은 셈인가. 오늘의 주인공은 40여 년 전, 우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창립멤버로 활약을 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회봉사활동을 해서 이 지역에선 잘 알려진 분이었다.  지병으로 한국의 어떤 요양원에 계시다 며칠 전, 향년 80대 중반에 선종하시고 유골함이 다시 이곳으로 왔는데, 고인의 경력을 감안하셨는지 신임주임신부님, 최대한의 예우로 장례미사를 거행하셨다. 예를 들면 부활초가 켜지고 제대의 초의 숫자 등, 모두 평소의 장례미사와는 달랐던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전의 고인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이런 분의 영결식에 참여하는 것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의무로도 생각되어서 ‘갈까 말까’하다가 온 것이었고 신부님의 고별사도 다시 기억하고 싶은 ‘신학적 깊이’를 더해 주는 그런 것이어서 ‘오길 잘 했다’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성당을 떠날 즈음의 느낌은 그것이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에 있었던 장례미사의 ‘악몽’이 떠올랐고, 그 이전에도 간혹 겪었던 좋지 않던 기억도 되살아 난 경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지나간 두 가지의 비슷한 경험은 모두 ‘너무나 무리하게, 길고 길었던 미사’라는 것, 놀랍게도 그것이 오늘 다시 찾아온 것이다.

장례미사는 일반 장례식과 조금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별식’이란 것, 각종 지인들의 고인에 대한 고별사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짧지 않은 강연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말을 모르는 조문객들이 거의 없는데 모든 말을 영어로 번갈아 가며 하기도 한다.  제일 괴로웠던 경험은 ‘정말 보기 언짢은 태도’로 한 없이 계속되는 ‘우리 사상 최고의 영웅’ 아빠에 대한 추억들.. 정말 끝도 한도 없었다. 내가 죽었을 때 딸들이 그렇게 하는 것, 관속에 들어가 내가 듣게 된다면 아마도 관 뚜껑을 열고 나올 정도가 아닐까..  어제도 큰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번엔 ‘반세기 추억의 영화’까지 가미가 된 것이 이채로웠다. 일반 장례식장에 가면 예식 전후에 뒤 배경으로 계속 보여주던 video를 이번엔 성당 미사 중에, 그것도 ‘끝이 안 느껴질 정도로’ 무수한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앉았던 위치로 보아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나에게 이것은 완전한 show stopper로 느껴진 셈이고 앞으로 ‘장례미사 공포증’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생긴다.

이래서 크건 작건 성당의 연령 행사는 ‘상식을 가진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시작부터 끝까지 행사에 참여한 조문객들의 사정도 조금은 사려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이제까지 이런 것들에 대한 책임자의 존재여부는 정말 불확실한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 장례미사에 올 때는 끝나는 시간을 먼저 확인 받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뿌리칠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  세 번째 대림초가 켜졌다. 대림 제3주를 맞는 것이다. 또한 2010년대 마지막 해 2019년 마지막 달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공식적 겨울인 동지가 일주일 정도 남았고,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시기가 시작되는 25일을 열흘 앞두고 있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예년에 비해서 일찍 성탄장식의 불들 켜지기 시작했는데, 너무 일찍 시작되는 ‘축제분위기’를 자제하라는 교황의 권고 영향인지 몇 년 전부터는 확연히 ‘기다리는 분위기’로 바뀐 것을 느끼고 있다.

나 자신도 그런 것이 싫어서 가급적 성탄 전에 가깝게 조금씩 장식을 시작하려고 했고, 확연히 그것은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 것을 실감한다. 성탄절,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대림절, 그러니까 성탄절 전까지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고 축제 분위기는 성탄부터 시작이 되는 것, 거의 나의 모든 생애에 걸쳐서 나도 ‘세속적’으로 살았음을 알게 된다.

올해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사도 요한 주임신부님의 바람인지 올해는 성당의 장식들이 일찍 준비가 되었고, ‘사상 초유’로 성당건물 밖에 ‘사람이 살만한 크기’의 거대한 구유가 설치 되었다.  성탄의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실감나게 보여주려는 ‘선행 투자’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  ‘새’신자 안내:  12월 한달 동안 내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교중미사  (새)신자안내의 역할을 맡았기에 한달 동안 우리는 ‘의무적’으로 한국성당엘 와야 한다. 따라서 12월 모든 주에 우리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 미국성당의 교중미사는 모두 빠지게 되었다. 평일, 매일미사를 미국성당으로 가기에 큰 ‘심리적’인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허전한 것은 사실이다. 이럴 때 나는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내가 미국에서 사는가, 대한민국의 연장선에서 사는가… 장기간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것에서 나는 편치 않은 그 무언가 항상 느낀다. 그 무언가 확실치 않은 것, 그것이 나는 싫은 것이다.

신자 안내, 사실은 주보를 나누어 주며 인사를 하고, 혹시 새 신자가 소개되면 그들을 미사 후에 ‘접대, 신자등록’ 하는 것인데, 3주를 연속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 것이 되었다. 성당 정문 안에 서서 들어오는 교우에게 주보를 나누어 주며 따뜻한 인사를 하는 것, 이렇게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win-win’중의 극치, 인사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 그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흠… ‘웬수’의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온다면?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택의 여지는: (1) 공손히 인사하며 주보를 건네준다. (2) 얼굴은 안 보고 주보는 건네준다. (3) 얼굴을 똑바로 보며 전혀 모르는 사람취급을 한다. (4) 안 본 척하며 비켜선다. 여기서 나는 아마도 (2) 아니면 (3)을 선택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은근히 그 ‘레지오 미친X’ 의 얼굴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주친 교우들은 100% ‘천사’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3번씩이나 경험한 이 ‘교우신자안내’ 일은 즐거운 일로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 서서 안내하던 연숙은 그런 행운이 없었다. 바로 그쪽으로 ‘웬수’의 ‘가오’가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 ‘웬수’가 그렇게 당당하게 접근했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기에 놀랐던 모양이고, 결과적으로 신부님께 ‘성사’를 보게 되는 사태까지 갔다. 결과적으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겠지만 앞으로는 그 ‘웬수’가 다시는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  Rock-Bottoming Out: 지난 주 레지오 주회합을 기점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완전히 바닥까지 갔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제일 우리가 ‘차세대’을 지향하며 희망을 걸었던 두 자매, 모두 극복하기 힘든 복잡한 가정사정으로 물러나고 실제로 움직이는 단원이 기본적인 요건을 채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에는 단원의 숫자가 그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편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장의 입장이 되고 보니 이것이야 말로 기본적 요건 중의 제일 중요한 것, 왜 몰랐을까?

이렇게까지 된 제일 큰 원인은 2년 전에 그 ‘레지오 미친X’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미친X’은 개인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우리 레지오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  이 사실만은 내가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할 것이고 아니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을 하였다. 우리 둘의 결론은 그 ‘미친X’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뉘우칠 능력이 결여된 불구자’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새해에 과연 신단원 후보가 나타날까? 신부님의 적극적인 본당차원으로 홍보는 하고 있지만 암만 보아도 요새 교우들,  친교나 노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실망적이다.

 

¶  Tool Time’s Coming! 우리가 이사올 당시에 있었던 garage door opener 가 드디어 마지막 숨을 쉬었다. 몇 달 전부터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garage door가 움직이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늦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motor의 소음소리가 더욱 더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가 이사를 온 때가 1992년 봄이니까 최소한 이 garage door opener는 거의 40년에 가까워 온다. 이 정도면 훨씬 전에 retire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것은 ‘장수 長壽’를 한 셈이다.

새것을 찾아보니 완전히 wifi/internet까지 겸한 hi-tech model 들 투성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힘찬’ powerful motor 로  2개의 문짝을 문제없이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된다. Home Depot website 에서 찾아서 사온 것은 $200 짜리 Chamberlain model B750 , 3/4 hp인데 이것은 지금 것이 screw drive인데 비해 belt drive라서 noise level이 훨씬 낮을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좋겠지만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점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교체하는 ‘쉽지 않을 수 있는’ 일거리가 남았다. 한번도 내 자신이 이것을 설치, 교체해 본적이 없기에 불안한 점은 있지만 ‘만능 교실’ YouTube를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실제로 교체하기 까지는 차가 드나들 때마다 근육으로 문짝을 올리고 내리고 해야 하는데 소낙비가 오지 않는 한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닐 듯 싶다. 다만 절대로 젊어지지 않는 나이가 문제라면 문제다. 절대로 절대로 작년 Hyundai Sonata의 Fuel Pump 교체하던 때의 실수, 악몽을 잊으면 안 된다. 나의 지나간 시절의 기술적 감각에 연연하면 안 된다, 안 된다.

 

¶  스테파노: 정말로 오랜만에 박스테파노 형제님 부부와 마리에타 소재의 ‘싸리골’ 이란 한국음식점에서 주말의 밤 늦게까지 식사를 하며 즐겁고 보람 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이곳은 비록 우리동네인 마리에타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일들이 주로 도라빌에 가는 기회가 더 많아서 가끔은 이곳을 잊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한국사람보다는 이곳 사람(보통 미국사람이라고 칭하는)이 훨씬 더 많은 듯 보였다. 한국의 ‘고기요리’가 이곳에 많이 알려지면서 이곳도 business가 전 보다 더 활발한 것 같았다.

이 스테파노 형제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이 불과 2년이 조금 넘었지만 부부의 나이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고 관심사도 그렇게 서로 멀지 않음을 알았다.  현재 business를 모두 정리하려고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고생하는 것을 알기에 하루 빨리 모든 것이 해결되어 편하게 retire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대출신인 형제님의 관심사는 나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는 ‘양자 물리학 quantum physics’ 의 각도에서 본 신앙체계도 있는데 이 형제는 나보다 더 ‘동양사상’까지 가미가 되어서 요새 읽었던 Fritjof CapraTao of Physics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부부가 서로 다시 만나서 이런 흥미로운 화제로 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헤어졌다.

세월은 흘러 흘러 어느새 겨울이 되어가는가? 올해 날씨의 특징이 있다면 일단 일기 패턴이 자리를 잡으면 별로 변하려는 기운이 없다는 것,  그렇게 익숙하던 옛날의 三寒四溫 이란 말은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다행히도 그 pattern이란 것이 ‘늦가을 초겨울 같은’ 그런 것이라 다행이라고 할까..

지나간 11월 초라고 기억되는 때에 벌써 요란한 Christmas carol이 흘러나온 곳은 의외로 ‘대한민국 극동방송, FEBC streaming service’이었다. 역시 대한민국의 개신교회는 이곳과는 조금 다른가..  어떻게 이렇게 일찍이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가? 덕분에 추억의 캐럴을 편하게 즐기게는 되었지만 Thanksgiving holiday 전에는 그렇게 편한 느낌은 아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실 그런 세속적인 느낌의 성탄축제 보다는 ‘대림절, Advent‘의 엄숙하게 예수탄생을 기다리자는 전통이 있어서 매년 고민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전통’과 ‘현세적 문화’를 절충하는가 하는 문제다. 전에는 젊은 시절의 추억적인 크리스마스 기분을 100% 기억, 만끽하려고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교회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모든 holiday decoration을 성탄 10일 전 이내로 늦추고 있다. 한마디로 차분한 대림절이 되었고 대신 성탄의 기분을 1월 중순까지 지속시키려 노력을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림-성탄시기의 뜻일 것이다.

 

12월이 되자 YMCA에서 성탄느낌의 색깔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도 본격적으로 성탄 장식은 물론 주차장에는 Nativity scene 성탄구유 까지 만들어 놓았다. 우리 성당에서 이런 건물 밖의 구유는 처음 보는 듯하다.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신부님이 이런 것을 특별히 원하셨는지 올해는 조금 모든 것들이 더 일찍, 더 ‘요란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을 조금 더 배려한 것은 아닐지…

 

Christmas at YMCA,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2019

 

오늘은 예년에 비해서 1주일 뒤늦게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가 열렸다.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이 모임에 참석한 것이 딱 10년째가 됨을 알았다. 갑자기 ‘오래 되었다..’ 라는 自照감이 ‘엄습’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 많이 변했다.. 

나에게 처음 레지오 연총 (2010년대 초 연차 총친목회)의 적극적이고, 참신했던 느낌은 많이 희석된 듯 느껴지고 이제는 조금은 ‘수수방관자’적인 입장이 된 듯해서 조금은 쓸쓸하기까지 하다.  통기타반주로 70/80노래를 목청을 돋구어 부르며 연총 에서 어울렸던 여러 형제님들도 이제는 뿔뿔이 헤어지고, 결국은 ‘별로 쓸모 없는’ 자매님들만 주위에 남은 듯하다. 이것이 레지오의 生老病死인가 아니면 보통 있는 진화과정인가..

나이로 보아도 leading edge에 있는 우리들, 이제는 조금씩 후진, 후배 단원들의 ‘양과 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양과 질 모두 정체, 아니 퇴보인 듯 우려되고, 어제 있었던 신부, 단장 간담회에서는 정식으로 ‘신부님의 전폭 협조’ 요청이 있었다.  협조란 것은 다름이 아닌, 조금이라도 좋으니 ‘레지오 선전’을 해 달라는 것이었고, 오늘 교중미사에서 드디어 그 효과가 나왔다. 전 신자들에게 레지오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간곡한 언급’.. 얼마나 ‘멋진 신임 신부’인가!

오늘 연총에서 우리는 예상대로 ‘공연’을 포기한 상태로 끝났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올해 초에 우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의 구세주로 등장했던 ‘자매님 들’,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고 갑자기 떠난 상태에서 나는 모든 희망을 잃은 상태가 되었기에 사실 연총 같은 ‘축제’는 관심 밖에 있었다. 그 ‘기대주 자매님’은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었는지 동정심과 실망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인데.. 이런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지 역시 해답은 우리의 총사령관이신 성모님이 가지고 계실지…

하태수 신부님 미사 강론집: “추수 秋收 나누기“가 드디어 몇 개월여의 산고 産苦 끝에 대림절 주일부터 성당 내에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주임으로 계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주일, 평일미사에서 강론하신 원고가 모여지고 편집이 되어서 200여 페이지의 아담한 책으로 나온 것이고,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교우들에게 판매가 되는데 100% 수익금은 본당 발전기금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지난 여름에 이 책을 ‘편집’하는데 연숙이 참여를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거의 혼자서 ‘편집, 교정’을 한 셈이 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나도 교정과정에 참여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올 때는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판매’의 결과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강론집을 읽으며 나는 ‘추억의 강론’ 시절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2011년부터 2015년 까지 나의 교회 생활을 돌아보는 셈이 된다. 그 당시에는 주일미사를 대부분 미국성당으로 갔기에 한 신부님의 많은 주일강론을 못 들은 셈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잊지 못할,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그런 강론이 하나 있었다. 

2014년을 전후로 한 시절, 나에게 거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분으로 산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주로 절체절명의 심각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두려움과 희망, 의지와 나약함’이 교차하는 극과 극의 감정을 경험하던 때, 나는 2014년 부활절 강론을 듣게 되었다. 그때의 그 한 강론으로 나는 모든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을 떨칠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것이 그 이후로 두고두고 나의 희망적인 메시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나는 하태수 신부님을 잊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이 ‘추수 나누기’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나가는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동안 나의 머리 속을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 그것은 신부님, 더 나아가서 사제직, 수도자, 수녀들. 이들은 과연 나에게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조금 새삼스러운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한가해졌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분명히 있다. 지나간 4년간 우리들의 목자로 계셨던 주임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이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아틀란타를 떠나게 된 것, 그 뒤를 이어 부임 차 서울에서 오신 신임 주임 이영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맞게 된 것 등등.. 이 바로 그것이다.

두 목자의 세례명이 똑같이 세례자 요한인 것이 흥미롭다. 나는 간단히 JL재욱 [John Lee], JL2영석[John Lee 2]로 표기하는 이 ‘예수회 사제’들,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인 사제’라고 생각하며 이런 생각에는 충분한 이유가 많이 있다. 온화한 말씨와 배려하는 성품, 대부분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고방식, 비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 등등.

사실 이번 새 신부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 특히 나는 불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같은 Atlanta 지역의 ‘형제 성당’에 있는 ‘어떤 사제’와 같은 류의 주임신부가 만의 일이라도 오게 되면 나는 최악의 경우 향후 4년간 성당을 떠날 준비까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신부의 자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안 보거나 성당을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미래를 위해서, 나의 가정을 위해서 이곳, 성당 공동체에서 떠나는 것은 거의 실질적인 자살행위로까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서 현재 같은 높이의 건강, 건전한 여생, 삶을 사는 것, 자신이 없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오늘 신임 이영석 신부님을 모시고 병중에 있는 채 아오스딩 형제의  병자성사 동행을 했을 때, 우리는 신부님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환자교우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너무도 좋은 인상을 받았고, 안도감을 훨씬 넘은 기쁨을 맛 보았다.

이 인상 좋고 대하기 편하고 유머감각이 넘치는 새 신부님의 약력을 보니 더욱 안심이 된다. 인품을 떠나서 학자적 지식의 기반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보인다. 더욱이나 가톨릭의 장점인 ‘포용성’을 반영하듯, 인도철학박사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신부님 부임 직전에 서강대학 교수직 제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약속이 된 이 ‘험난한 교포사목’ 직을 수락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나의 좋은 인상은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 본 새 신부님, 완전 합격 정도가 아니라 향후 4년이 너무나 희망적으로 기대가 되기에 우리 둘은 너무나 기대가 크다.

 

어둡고 싸늘한 가을비가 살짝 물러가며, 며칠 만에 따가운 햇살이 울려 퍼지는 하루를 맞았다. 비록 햇살은 밝고 따뜻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산들바람은 차갑게 느껴지는, 한 마디로 near perfect Fall day에 감사하는 ‘레지오 화요일’이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cul-de-sac 입구에서 한창 가을채비를 하던 ‘낙엽송’의 모습이 며칠 만에 완연히 조금은 더 진한 황금색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변화는 앞으로 거의 한 달 이상 지속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뛴다.

예의 레지오 주회합, 아가다 부단장님의 따님이 오늘도 방문자로 합석을 하였다. 성모님의 뜻으로 그 따님에게 레지오 입단의 의향이 생기기를 기도하지만, 어찌 우리 같은 mere mortal 이 성모님의 깊은 뜻을 알겠는가? 단장으로서 조금이라도 레지오의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노력은 하지만 글쎄.. 근래에 들어서 ‘눈이 반짝거리는 레지오 단원을 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요한 신부님, 느낌이 아주 좋고 희망적이다. 게다가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이 신부님, 청년시절 레지오를 하셨다고 해서, 우리는 모처럼 앞으로 4년간 재임기간에 ‘레지오 재건’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현재까지 이 신부님의 ‘인상’, 아주 편하고 ‘대화가 편한’ 목자로 보인다는 주위의 의견에 나도 공감을 한다.  이임하신 이(재욱) 신부님, 신임 신부님이 정착을 하시는 대로 (봉성체)신자가정방문을 주선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와 어느 정도 ‘mutual chemistry’ 에 문제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두 곳에 성체를 모시고 갔다.  그 중에 오늘 오전, doctor visit를 하고 돌아온 C (어거스틴, 아오스딩) 형제, 예상외로 빨리 일정이 끝나서 이발까지 하고 왔는데 아무리 보아도 ‘말기암’ 환자로 보이질 않는, 흡사 바로 퇴근한 회사원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의 ‘시술’ 후에 체중이 더 불었다고.. 어찌된 일인가? 이 형제의 몸은 한마디로 단단한 steel 같은 그런 느낌, 거기에 거의 완전히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 상태… 고통 중에서도 깊은 평화 속을 산다고.. 나는 솔직히 이 형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다른 곳, 거의 한달 만에 방문한 ‘금술 좋은 80대 손(요한) 부부’, 오늘도 도우미가 마련한 점심식사를 기다리며 성체를 모신다. 이렇게 ‘성체신심’을 가지신 분들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은총이다.

조금은 늦은 점심, 비록 ‘한 접시 요리’지만 [설거지가 간단해서] 솔직히 맛은 진수성찬에 못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가… 문제는 피곤한 상태에서 늦은 점심은 거의 확실하게 ‘낮잠’으로 이어지는 것..  물론 ‘늦은 낮잠’은 내가 즐기는 것 중에 하나지만 대부분 30분을 넘지 못하는데 오늘 것은 완전한 예외였다. 2시간이 지난 것이다. 짧아진 해, 벌써 저녁의 어두움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30분의 낮잠과 오늘의 2시간 낮잠의 ‘후유증’의 차이는 완연하게 달랐다. 한마디로 꿈 속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저녁을 맞이한 것이다.

잠시 후에 나는 (Frank) Sinatra moment를 지나게 되었다. 너무 조용한 순간들이 싫어서 우연히 고른 background song album이 바로 Sinatra Hit Collection, 물론 오래 전에 어디에선가 download한 것들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먼지가 쌓였던 Sinatra의 classic hit였는데 이것을 오늘 낮잠 후 멍~한 기분에 ‘계속’ 듣고 있었다.  오래 오래 전, ‘우리들’은 이런 것, ‘꼰대’들이나 술을 마시며 즐기던 것으로 ‘일축’해 버렸던 것인데 오늘 나는 이것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를 어루만져주는 것일까. 아~ 나도 이제는 완전히 ‘늙었다’ 라는 조금은 슬프지만, 편하기도 한 느낌 속의 저녁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 인생의 황혼기를 간다는 사실은 ‘슬프기도 하면서도, 편하고 포근한 것’이라는 것. 그것이 나의 오늘 Sinatra Moment였다.  무엇이 편하고, 포근한 것인지는 솔직히 나의 짧은 ‘문학적 표현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고 진실이다.

 

 

 

 

¶  결국은 보고야 말았다. 우산위로 내리는 가을비를, 그것도 마음껏.. 마음껏.. 얼마나 오랜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씨의 즐거움인가.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 추억을 연상케 하는 날, 실제로 커다란 우산을 쓰고 가을비를 맞아 보았다. 싸늘하고 어두운 비, 그것도 거의 하루 종일. 지독히도 길었던 올 늦여름, 초가을의 잔인했던 더위와 가뭄도 거의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그런 날이었다. 어머니의 손길, Mother Nature의 투명한 자비하심은 역시 기다리는 끈기도 있어야…

지난 며칠 전부터 서서히 떨어지던 새벽기온 ‘덕분’에 그제 아침에 올 들어 첫 furnace fan의 은은한 소음을 듣게 되었고 나의 study에는 space (parabolic radiant) heater까지 꺼내 놓았다.  지난 해 선물로 받아서 쓰고 있는  ecobee Smart Thermostat에는 heat-cool auto (change) mode가 있어서 사실 cool mode (air conditioner)에서 heat mode (furnace)로 일부러 바꿀 필요는 없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자동적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을/겨울에도 가끔 더운 날이 있는데 그런 때는 창문을 열어 놓으면 되지만 그 때에 air conditioner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끈질기게 하루도 빠짐없이, 변함없는 ‘마른 뜨거움’를 유지하던 9월 말까지 사실 추위를 막는 옷, 그러니까 ‘춘추복’의 필요성은 거의 제로였는데 그것이 지난 주일부터 서서히 바뀌어서 어느 날 새벽에는 따뜻한 옷을 어둠 속에서 찾으라 애를 먹었다.  아~ 계절의 변화여..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 점점 짧아지는 듯한 ‘남은 인생’이여…

 

¶  오늘은 2년 만에 다시 열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레지오 간부 피정 (정식명칭: 레지오 평의회 의원 1일 교육)’엘 연숙과 같이 참가하게 되었다. 매년 이때쯤 실시되는 것인데 작년에는 처음 시도된  ‘레지오 토론대회’으로 말미암아 한 해를 거르게 되었다.  싸늘하고 궂은 날씨였지만 비교적 많은 ‘평의원’ (간부들) 참여 하에  오전에는 보좌 신부님(Fr. 김형철 시메온)의 특별강론 , 오후에는 서 토마스 형제의 ‘가톨릭 혼인에 대한 지침’, 꾸리아 단장님의 ‘특별 (호소} 훈화’ 등으로 아주 유익한 토요일을 보냈다.

레지오 활동 (거의 9년째) 초기에는 이런 것이 생소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세월의 연륜으로 아주 편해지고 나름대로의 추억, 생각, 아이디어 등이 머리를 맴돌곤 한다.  이제는 정이 든, 이곳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평의회)가 더 발전해서 더 큰 활동을 하면 하는 바람 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들대로 든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관건은 ‘세대 교체, 신선한 물결’.. 등.. 역시 세월을 얏 잡아 보면 불현듯 많은 것을 놓친다.

꾸리아 단장의 ‘훈화, 호소’, 나는 심각하고 심지어 숙연한 심정으로 공감하며 들었다. 100% 옳을 말씀, 어쩌면 그렇게 ‘순명과 충성’의 정신을 놓은 단원들이 대다수인 느낌이 드는 것일까? 어떻게 이들에게 ‘불을 붙일 수’ 있을까?  역시, 역시, 교육, 재교육… 재재교육..’ 뿐이다.

오늘 ‘피정, 교육program’ 중에는 ‘혼인 조당’에 관한 서(재욱) 토마스 단장의  ‘보고, 강의’가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틀란타 교구청에서 수 개월에 걸쳐 ‘연수’를 마친 후 certificate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교회 내에서 생기는 결혼법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첫 창구역할을 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결혼성사’가 정말 ‘성사’ 임을 간과하며 살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교회법상에는 ‘이혼’이란 말이 없음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나도 최근에서야 이 ‘혼인성사’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있는데,  우리 딸들의 결혼문제와 겹쳐서 고민을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세속적 쓰나미 tsunami’ 의 거대한 물결을 헤지고 나가는 우리 ‘불쌍한 교황님’, 절대로 굴복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이 세속적으로 무너지면 다음에는? 진실은 진실이고 진리는 진리이고 일 더하기 일은 죽어도 이(2) 입니다.

 

¶  오늘 일일 교육피정이 끝나고 점심 식사 때 우연히 오늘 미사, 피정 강론신부, 김 시메온 신부님과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비교적 젊은’ 경남 산청 출신 보좌신부님, 내가 연숙에게 ‘이 신부님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던 분.  소년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 얼마 전 마주쳤을 때 ‘불현듯’ 떼이야르 샤르댕 (예수회) 신부님에 대해서 짧은 대화를 했었다. 김 신부님, 샤르댕이 예수회출신임을 알기에 자신을 갖고 물었는데,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먼 앞날을 내다보는 선구자’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언급. 그런데 오늘 대화에서 그것을 잊지 않고 언급하시는 것이 아닌가?  기억력인가, 아니면 신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인가?

예수회의 역사적 ‘진보성, 개방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 그런 사실들(예수회원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셨다. ‘진보적 경향’은 요새 항상 아슬아슬한 말, 특히 정치적으로 더욱 그렇다. 한걸음 조금 더 나아가서 ‘신부님의 정치적 성향’을 살짝 듣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가 뻔하지 않던가? 그런 화제를 일부러 피하시는 듯한 모습이 나에게는 커다란 플러스로 여겨졌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윗동네’의 같은 예수회 출신 신부님들의 ‘행태’가 너무나 크게 비교가 됨을 알고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교회, 아니 ‘한국교회, 고국 성당,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엘 간다. 물론 ‘그곳’은 요사이 들어 더 자주 가는 곳이긴 하지만 ‘일요일, 주일’미사엘 가는 것은 좀 생소한 느낌이 들어서 달력을 보니.. 거의 한 달이나 되었다. 그것도 지난 달의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간 것이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것 때문에 가게 되는 것이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 작년에는 거의 매번 주일미사를 가야만 했던 때문이었다. 그것이 보람도 있었고 힘들 때도 많았다. ‘직무, 짐, 무거운 일들’ 이 중요한 이유여서 그렇게 피곤한 기억으로 남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열심히 했다’라는 것은 보람으로 남고, 그렇게 추억으로 남기고 싶기도 하다.

앞으로 나에게 과연 이 ‘성당’이란 것이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문득 문득 생각한다. 결론은 ‘이 곳을 떠나면’ 나는 분명히 ‘함정, 유혹’에 빠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자신을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이곳을 그곳을 떠나면 안 된다. 우선은… 레지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나를 지탱시키는 탯줄 역할을 하는 것, 나는 굳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가면 채 형제를 포함한, 주일과 상관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사실, 새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기만 할까? 우선 ‘레지오 미친년’의 ‘가오’가 시각으로 안 들어오기만 바랄 것이고.. 그 외에는 어떤가? 거의 2년 전부터 시작된 ‘새로운, 좋은 친구들 만들기’ 노력은 어떤가? 그런대로 노력은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 ‘사그러드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이것도 ‘남은 여생을 어떻게?’ 라는 나의 ‘태제 太題’이기에 그것과 연관시켜 생각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조금은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임 요한’ 형제도 그렇고.. 나는 그들과 어떤 형태의 친교를 가질 것일까?

부디 오늘 모처럼 가는 주일미사의 ‘주일’이 보람 있고, 생산적이고 ‘즐거운’것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2019년, 연 年 피정 避靜, annual ‘spiritual’ retreat… 이것이 우리에게 몇 년만인가 며칠 전부터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14년, Coyners Monastery 였고 그 전해인 2013년엔 Carmel Retreat Center였다. 그러니까 지나간 5년간 우리는 ‘집을 떠난 피정’엔 못간 것이다. 거의 매년 한번 정도는 경험해야 할 이 ‘영신적 휴가’를 왜 못했던 것일까?

우리의 연례 피정은 100% ‘레지오’ 주관일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우리의 레지오 (그러니까 꾸리아)에서 그 동안 주선을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Leadership, leadership & leadership의 부재라고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요새 대통령 같이 않은 인간들처럼 사람 잘못 뽑으면 어떤 결과, 특히 장기적인 여파가 생기는지..  두고두고 후세가 짊어질 폐해들, 무능력한 것뿐만 아니라, 숫제 퇴보하는 leadership, 요새 뉴스를 보아도 이제는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 leadership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고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심각한 피정’을 주선한 듯하다. 더욱 반가운 사실은 이번에 가는 곳이 6년 전에 갔었던 곳,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아직도 신선한 느낌이다. 솔직히 나는 참 많이 듣고 배운 곳이었다. 아직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닐 듯하다.

이제 몇 시간, 3시간 있으면 ‘짐을 싸 들고’ 60여 마일 떨어진 곳으로 출발을 하는데, 이번 피정은 현 주임신부님이신 ‘이재욱 요한’ 신부님 주관이라서 미리부터 기대가 적지 않다. 이 신부님의 영성적, 신학적 깊이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알지만 이번에 그것을 내가 경험하게 된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신부님의 마지막 피정지도가 되지 않을까…

Fort Yargo State Park picnic area

 

¶  지난 주일에는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우리 60~70대 성당모임인 등대회의 야유회 picnic 엘 갔었다. 2017년 가을에 입회한 이후 몇 번 이런 행사엘 갔기에 이제는 조금 익숙한 편이지만 나로써는 감회가 새로운 것이, 이런 ‘사람들 모임’ 그것도 ‘놀러 가는’ 것에 나는 거의 가질 않고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흐뭇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삶이 ‘정상적인 삶이 아닐까..

이번의 야유회가 조금 더 색다른 것은 우리 부부가 같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는 각종 임무로 너무나 바쁜 스케쥴에 얽매인 연숙이 마음 놓고 참여하기가 힘들었었는데 최근에 하나 둘 씩 ‘책임’을 내려 놓기 시작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도 지난 해에 맡았던 구역장 임무를 내려놓고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간 곳은 나도 한번 간 적이 있었던 Fort Yargo State Park으로 작년에 구역장 연수회를 그곳에서 한 관계로 나는 한번 간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는 cottage에서 하루를 묵었지만 이번에는 picnic area로 가서 몇 시간을 먹고 즐기다 돌아왔는데,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적당한 하루의 휴식, 여행을 한 셈이 되었다.

이 등대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우리와 나이가 아주 엇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고, 그 중에서도 나와 동갑인 형제, 자매들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렇게 ‘동류의식’을 느껴본 적은 아마도 없었을 듯 하다.  나이가 비슷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어떤 사람들은 상관을 안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정 반대다.  그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끼며 ‘좋아하는 것’을 연숙은 조금 이상하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나는 사실 그렇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이 어찌 큰 의미가 없겠는가? 이 그룹은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편한’ 느낌을 주기에 ‘큰 사고’가 없는 한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

 

¶  오늘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 후에 배해숙 (베로니카) 자매님 선종 4주기 (5월 2일)를 맞아 성당 근처에 있는 Winters Chapel  memorial park 엘  갔었다. 돌아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나.. 2014년 가을에 말기암 환자로 처음 만났고 2015년 5월 2일에 선종한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나와 동갑내기 자매님이었다. 남편 형제님은 그 전해에 먼저 타계를 하고 ‘철없이 보이는’  장성한 두 아들을 댕 그러니 남겨놓고 간 자매님이었다.  다행히 친 오빠, 친 여동생이 있어서 장례식 이후 가끔 소식을 주고 받지만, 이제는 4년의 세월 탓인지 당시의 강렬했던 느낌들도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듯 하다.

당시, 우리 둘은 ‘레지오 활동’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배 자매님을 천주교인으로 입교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고 성공을 한 셈이지만, 과연 자매님 우리가 배운 대로, 희망하는 대로 ‘좋은 곳’에 가셔서 평화로운 다른 삶을 ‘남편 형제님’과 같이 사시는 지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 그것이 신앙이고 희망이니까.. 자매님,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고 남아있는 두 사랑하는 아들들 그곳에서 잘 보호해 주소서…

올 들어 처음으로 느껴본 ‘후덕지근’ 한 어제 밤을 보낸 후 결국은 자연의 섭리는 다시 ‘통계적 평균’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조금 심했나… 극과 극의 맛을 자랑이라도 하듯 오늘 새벽은 완전한 겨울 같은 느낌이다. 3월 31일은 역시 이른 봄이라기 보다는 늦은 겨울이기도 한 것이다. 차가운 비와 더불어 시베리아 같은 느낌의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뒤 뜰에 잠깐 나가보니 어제 입던 옷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날씨로 변해 있었다. 지나간 해 이맘때쯤 남긴 ‘세찬바람 불어오면…’ 을 읊조린 글과 그림이 생각이 나는 아침이 되었다.

이런 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광경은 역시 ‘포근하고 따뜻한 늦잠’을 즐기는 나의 모습이지만 오늘은 그런 가능성이 제로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고, 한가하게 쉴 수 있는 여건도 아닌 것이 아쉽기만 하다. ‘주일은 쉬어라’.. 십계명.. 흠…. ‘노동’은 쉬겠지만 나의 七十 老軀 를 끌고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데..

주일 아침의 ‘십계명의 부담’ 넋두리의 유혹을 제치고 나머지 일요일 하루를 보낸 후에 느낌은 역시.. 이것이다. ‘할 것은 해야 하고, 뛸 데가 있으면 끝까지 뛰는..’ 바오로 성인의 가르침, 아니면 레지오 교본이 강조하는 ‘부지런함과 절제되고, 훈련된 삶 disciplined life’가 주는 기쁨,  기본적으로 ‘게으름의 죄악’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도 죄악임을 가끔 완전히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무상으로 받은’ 자유의 시간들, 정말 공짜가 아님을 잊으며 ‘나는 절대로 죄가 없다’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 가끔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오늘도 그런 유혹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그것을 물리친 안식일이 되었다.

 

3월의 마지막 주일날 (다섯째)에는 21차 레지오 아치에스 Acies1 행사가 열렸고 우리 ‘자비의 모후’, 연숙이 사회를 진행하게 되어서 한 명이 빠진 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 협조단원 2명, 그것도 모두 ‘형제님들’ 이 참석을 해서 ‘기본적인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2년 전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 이후부터 이런 행사가 오면 단원의 숫자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워낙 신입단원 모집이 어려운 요새의 실정에서 기도 이외에는 크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독을 뿜는 독사들’ 한두 명만 있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피해를 보며… 역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어머니’의 역할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군대 같은 질서로 우리들 모두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하며 의미 있고 보람된 ‘안식일’ 인 3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1. 총사령관이신 성모님께 대한 개인 및 단체 봉헌식, 3월 25일을 전후로 개최한다. 아치에스는 라틴어로 전투대형을 갖춘 군대’라는 뜻이다.

¶  물 건너 간 것, ‘첫눈’: 2019년 2월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28일 밖에 되지 않아서 더 빨리 지나가는 듯 하다. 목을 빼고 애처럼 기다리던 올 겨울  ‘첫, 하얀 시루떡, 눈 雪’,  은 결국 물 건너가는 듯 느껴진다.  왜 올해 내가 그렇게 ‘첫 눈’을 기다렸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지나간 몇 년간 매년 보고 즐기기도 했던 것이라 습관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나이답지 않게 ‘감상적 感傷的’ 인 기분에 빠졌는가.  비록 눈 구경은 못 했지만 대신 비 구경은 실컷 즐기며 살았던 주일을 보냈으니 그렇게까지 실망할 것은 아니다. 대신 YouTube의 video를 통해서 눈보라 치는 모습과 곁들인 멋진 영상음악은 Google ChromeCast의 도움으로 big screen TV를 통해서 실컷 보고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뒤뜰로 흩날리는 몇 송이의 눈발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는가?

 

¶  규칙적인 대장 운동:  지난 주에는 뜻하지 않게 regularity 문제로 며칠간 고생을 했다.  평소에 큰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가끔은 이것이 찾아온다. ‘변비, constipation’이라고 하면 당장 ‘냄새’가 나는 듯해서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 ‘규칙적인 대장 大腸 운동, regularity’ 지만 이것 역시 기분은 마찬가지다.  왜 이런 ‘불규칙 증상’이 찾아왔나 생각해 보니 주범은 역시 ‘달콤하고 편리한 stick instant coffee 중독’인 듯하다. 그것 말고는 혐의를 둘 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예방은 물론 이런 ‘편리,달콤함’에서 벗어나면 되는데 ‘처방, 치료’가 문제다.

Toilet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도 잘 몰랐으니까..  이 regularity문제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서 ‘Prep-H, hemorrhoid’ moment 까지 나가면 정말 골치를 썩게 된다.  나도 경미하게 Prep-H 증상을 몇 번 겪었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이틀 정도 이것으로 고생을 했지만, 증상자체도 신경을 심하게 건들이지만 그것보다 이것으로 기분이 축 쳐지고 우울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이런 며칠 간 고생의 경험으로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조심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Kroger drug counter에서 찾은 ‘stool softener’ 란 pill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고,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를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앞서가는 나이’와 상관이 있는 불편함인가…

 

¶  2월 마지막 주일:  거의 매일 비가 온 듯한 느낌을 주는 2월, 마지막 주일 미사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절대적인 이유’가 아니면 앞으로 주일미사는 동네 미국본당으로 가기로 달 전에 결심을 했지만 예외는 항상 예상 해야 한다.  이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이유는 도라빌 성당 60~70대 친교모임인 등대회 회식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으로,  미사 시작을 ‘쨍~하고 해 뜰 날’ 이란 말로 시작한 주임신부님도 주일에 보게 된 것도 반가웠고, 한달 만에 다시 만난 등대회원들도 새롭고 즐겁게 느껴진 것을 느끼고, 이곳도 조금은 정이 들었나..하는 포근함까지 느끼는 등,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이 주신 안식일’이 되었다.

오늘 ‘레지오 화요일’,  오늘도 우리 집 뒤뜰에서 계속 초봄의 소식을 전해주는 수선화를 꺾어가지고 가서 레지오 성모상 옆에 꽂았다.  성모님 (상)을 보면서, 현재 조금씩 안정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비의 모후’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는 듯한 모습을 그린다. 몇 주 전부터 ‘방문자’로 참관을 하는 ‘예비신자’ 자매를 보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자매도 ‘성모님 job’이었나 할 정도다. 또한 얼마 전 퇴단한 실망스런 자매들과 이 예비신자 자매와 비교를 하며,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다를 수가 있는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올해 2월은 우리로 하여금 지나간 6개월 여 ‘구역모임’으로 인한 ‘고통의 기억’들로부터 더욱 멀게 해 주는 그런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는 다시 제 정신을 차린 듯한 산뜻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들의 3.1절’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들의 3.1절’, 1919년의 기미년이 아니고, 우리 둘에게 3월 1일을 즈음해서 일어났던 각종 ‘좋은 추억’들, 예를 들면: ‘1992년 현재의 집으로 이사 왔던 날’, 부터 시작해서 2012년의 ‘매일 미사’ 전통의 시작까지 3.1절은 우리에게 소중한 날이 되었고 올해도 예외 없이 이날이 되면 추억과 더불어 ‘때려 먹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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