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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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성당 요한복음 성서공부반에 갔다. 참가인원은 이제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톡중심의 참가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조용해서 신부님이 오늘은 ‘제발 좀 느낌 글들 좀 올리라’는 요청까지 하신다. 아마도 이것은 강의로 느끼는 참가자들의 반응이 현재의 여건 탓인지 너무나 조용한 것이고 신부님도 마찬가지로 느꼈을 듯하다. 문제는 카톡방의 적지 않은 member들을 ‘교통정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그때 그때 자연적인 대화의 흐름에 맡기는 것인데 심리적으로 반갑게 대화를 유도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먼저 lead를 하면 좋은데 실질적 지도자인 신부님이나 교육분과장이 우선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먼저 ‘총대’를 잡을 위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누구도 바보 같은 comment나 질문은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문제다.  현재까지는 나를 포함해서… 문제는 카톡이라는 극히 제한된 대화의 창 에서 그것을 어떻게 글로 보이는 것인가.. 그것이 우선의 문제다. 대답이 없는 메아리를 몇 번 경험하면 자신이 생길 수가 없다. 어떤 누가 조직적, 능동적으로 인도를 해야 효과적인 것이다.

아침에 Ozzie를 새로니 집에 데려다 줄 때 유난히도 흥분하던 녀석의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집이 그렇게 그리워서 그랬을까? 새로니가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나로서는 조금 섭섭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제 이 녀석 돌이킬 수 없는 우리 전체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지…  이로서 우리는 새로니 가족을 조금은 도와 주었던 지난 주말과 어제는 나라니 집을 도와 준 하루를 보낸 셈이다.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침 시간을 잠깐이나마 한눈을 팔았다. 며칠 째 계속 PC HDMI display의 후유증에 지나친 관심을 쓰는 나의 모습이 즐겁지 않다. 오늘은 갑자기 모든 글자들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또 무엇이 문제인가? HDMI와 VGA의 차이인가 아니면 VIZIO의 setting 문제인가… 이런 쪼잔한 것들에 빠지면 나는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필요한 것, 해야 할 것들이니 별 수가 없다. 최소한 시간낭비는 아닌 것만 알면 된다.

 

 

Mea Culpa~~오늘 대림2주일 주일미사를 빠지는 것, 결국은 미안함을 넘어서 죄의식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이성적인 판단일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미사 중이나, 자매님들과 coffee를 마시는 자리에서 기침하거나 콧물 흐르는 것을 보이는 것 보기가 좋을까?  하지만 나의 깊은 속의 목소리는 “웃기지 마라, 그래도 기어서라도 갈 수 있는 것 너도 잘 알지?” 하는 것이다. 그래, 그래… 모두 맞는 말이다.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책임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

아직도 기침, 콧물이 나오지만 목이 아픈 것은 많이 가라앉은 듯하다. 가래가 고이는 듯하고.. 이것은 거의 나아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번 감기에서는 열이 전혀 나지를 않았고 딴 때보다 심하지 않은 것을 보니 역시 flu shot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유일한 위로는: daycare에 다니는 손자녀석을 자주 보는 것, 그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사실… 피할 수가 없다.

 

Sea of Fallen Leaves… 어둠이 걷히는 backyard는 완전히 낙엽의 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90% 이상의 낙엽이 떨어진 듯하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제일 건강했던 것들이 마지막 폭풍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러면 올 가을은…

 

Curse of  Insomnia~~ 연숙 혼자서 미사에 갈 것이라고 미리 생각을 했지만 역시 또 다른 그녀의 고민, 불면증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나는 은근히 혼자라도 미사에 가기를 원했는데… 모처럼 일요일 아침 시간을 혼자서 ‘중단됨 없이’ 보내려는 나의 희망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설상가상으로, 며칠 못 보고 지나간 ‘성당 대림절 묵상집’을 보려고 하니 ‘왕마귀’의 냄새가 나는 ‘글 장난’을 보고 소책자를 덮어 버리고, 서고 깊숙이 넣어 놓았다. 아예 Bishop Barron의 대림 묵상글을 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은  성모님을 슬프게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 주일, 그것도 대림2주 주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미사까지 완전히 빠지면서, 조금 심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중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미루고 있었던 숙제 같은 것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을지도.. 이런 때,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미적거리는 나의 병신 같은 모습이 싫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나의 회의적인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나와 순교자 성당 공동체의 관계로 초점이 맞춰진다. 나에게 이 공동체는 무엇인가?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인가?

오늘 나를 찾아온 악마의 제자는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현재 공동체에서 멀어지고 있다. 왜 그렇게 연연하고 있는가. 다 때려치우고 나와 버려라…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는 것이 제일 상책이 아니냐… 너의 나이가 도대체 몇인데  밀리면서 살아야 한단 말이냐? 집에서 좋은 책을 보는 것이 훨씬 영성적 차원을 높이는 것 아니냐? 인터넷으로 미사를 보면 얼마나 편하냐? 왜 사람들에게 연연하느냐?”

복잡하고 스산한 느낌을 떨쳐버리려고 다시 올해 지나간 daily journal을 훑어본다. 올해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가.. 다시 회상하는 것, 이것의 효과는 대단하다. 거의 치료제역할을 하는 것이다. 머리를 잔잔하게 해주고 심지어 행복한 상상으로 편하게 된다. 그러면 됐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Canadian Mist, 요즈음 나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예상보다 빠르게 마시고 있다는 것. 다시 나가서 사올 용기는 없고,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을 Johnny Walker Black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지… 그래 그때까지는 Thanksgiving 때의 Box wine이 backup으로 있으니… 의지력을 시험해 볼 양으로 위스키 술병을 아예 dining room cabinet속에 넣어버렸다. 이제 가까이 손에 닿는 곳에 없으니 조금은 유혹을 덜 받으려나~~ 

 

드디어 2021년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절의 첫날이 밝아왔다. 대림절은 성탄의 기적을 기다리는 4주간이지만 세속적으로는 완전히 축제의 시간들이 그려지고 요즈음은 교회도 조금 ‘기를 피려는지’ 세속의 축제분위기를 예전보다 일찍 받아들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도 조금 발을 맞추어 축제분위기를 조금씩 지나치지 않게 느끼며 살고 싶다. 트리 장식부터 시작해서 carol, holiday movie같은 것에도 마음을 조금 더 열고 살면 어떨까… 그것이 사실은 어릴 적을 추억이기도 하니까…

성당 제대 아래는 대림환에 4개의 촛불이 세워지고 첫 번째 촛불에 불이 켜졌다. 기대 보다 훨씬 격조, 수준 높은 구동욱 미카엘 주임신부님의 대림절 주일 강론, 대림절 시작을 멋지게 장식을 한 셈이다. 거의 생각 없이 지낸 지난 며칠이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대림절의 진정한 의미를 신부님이 멋지게 정리해 주신 셈이어서 대림절 첫 주일날 아침이 훨씬 밝게 느껴진다.

2000여 년 전에 오신 구세주, 앞으로 ‘꼭’ 오실 구세주..  매일 매일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를 피부로 느끼며 살고 싶은 때가 바로 대림절이라면… 조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앞으로 4주를 보내야 할 지 그림이 그려진다. 순간 순간, 매일 매일, 매주 매주… 어떻게 그 구세주 초월적인 우주적 절대 존재와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나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과제다.

본격적으로 모든 소공동체와 활동들을 open하려는 신부님의 결정이 며칠 전부터 퍼지는COVID Omicron variant로 조금 찬물을 맞는 듯하다. 누가 결정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나이 든 신자들에게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이런 때에 ‘운’, ‘은총’의 도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도 우리만의 ‘성당 소그룹’이 ‘하얀풍차’에서 coffee, bakery & talk으로 값진 시간을 보냈다. 비록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social 이 일주일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는 사실, 다행이고 행운이다. 이런 때에 이렇게라도 작은 그룹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이것도 ‘脫 레지오’ 이후 성모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작은 길’ 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작은 사위 Luke의 40세 생일이다. 전부터 나의 40세 생일을 기억하며, big four oh~ 를 그에게 말하곤 했는데 오늘 집으로 찾아가서 보니 나와 40세의 느낌이 다른 듯 보였다. 별 감정이 없이 보인 것, 이것도 30년 세월의 세대차이가 아닐까? 나의 40세와 그의 40세는 정말 다른 모양이다. 나의 40세와 44세의 생일들은 사실 ‘죽을 사 자 死字’ 에 관심을 쏟은 운명적인 나이였지만 지금은 아마도 60세가 되어야 ‘조금 나이를 먹었다’ 정도가 아닐지. 

그들 부부는 오늘 생일을 맞아 외식을 하려고 계획을 했던 모양인데 나라니가 각종 감기 바이러스 탓으로 오늘 완전히 계획했던 것을 취소하고, Ronan을 우리가 오늘 하루 집으로 데려와서 봐 주기로 했다. 개구쟁이지만, 오늘은 조금 점잖은 모습의 그 녀석, 2살을 향한 시점이 이런 것인지… 녀석이 순순히 우리 차에 오르며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따라 온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제야 나는 점점 잔 정 情이 느껴지는 듯하니, 나도 지독한 목석의 심장 소유자인 모양이다.

우리의 작은 도움으로 나라니 부부는 편하게 Buford Hwy에 있는 한국식당[이름을 잊었다~, 나의 망각증.. 만천홍 옆에 있는 비싼 한국식당이름이… 알았다! ‘운암정’이다!  ] 에서 생일축하 외식을 했다고..  우리는 로난을 집까지 직접 데려다 주었다. 이것으로 Luke에게 작은 생일선물은 한 셈이라, 우리도 무척 기뻤다.

Dave & Ava를 좋아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기다리던 소식, 건주의 wife 황인희씨로부터의 카톡 text 다. 내용은 조금 아쉽게 간단한 것,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나에게 소식을 보내 주었다는 사실을 크게 값지게 생각을 하고 싶다. 1968년 한창 대학시절 친목클럽을 통해서 알게 되었던 여대생, 친구인 건주와 짝이 될 줄은 예기치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그들은 부부가 되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백년해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stroke,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 되었지만 우리는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중풍’, 결과는 신체의 마비 상태인 것을 누가 모르랴. 어떤 곳에 어는 정도인가가 문제다. 건주의 case, 아직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wheelchair,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상태가 아주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다. 갑자기 이 stroke 의 위험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장만 생각했지 두뇌의 혈관은 잊고 산 것이다. 혈관, 어떻게 피가 부드럽게 흐르게 할 수 있는가? 혈관의 건강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아~ 참 나이의 횡포는 이렇게도 괴로운 것인가.

 

대림절의 시작을 Catholic Sunday 전통을 지키려 나의 작은 등대 Bishop Robert Barron [Los Angeles Diocese] 주교의 주일강론을 보며 듣는다. 이 ‘머리 좋은’ 신부님은 현재 미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인터넷 신부님’이고 특히 젊은 세대를 교회로 인도하는 선구자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 같은 ‘꼰대’층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특히 no dumbed-down religion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으로 가톨릭의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본다. 우리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도 2021년 대림절 묵상집 소책자를 발간 배포를 해서 가지고 왔다. 이것으로 성탄을 향한 묵상의 한 걸음을 내디디는 오늘은 은총의First Sunday of Advent 가 되었다.

 

Bishop Barron on YouTube on Sunday

오늘도 2시간 산책을 했다. 이 제일 긴 코스는 보통 걸음으로 1시간 45분 정도 걸리고 천천히, Ozzie에게 끌려가면 2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2시간 짜리는 나도 천천히 걷는 것이라서 운동량은 떨어지지만 대신 더 밖의 맑은 공기를 마시게 되는 이점이 있다. 특히 요즈음 같은 멋진 가을 날씨에서는 이것이 최상의 운동 일 듯하다.

오늘 산책에서는 모처럼, 3년 전까지 Tobey과 같이 누워서 하늘을 보던 그 playground 의 놀이터에 올라가 Ozzie와 둘이서 누워보았다. 어찌 Tobey생각이 안 날 수가 있는가. 그 녀석 생각을 하면 필요이상으로 울적해져서 가급적 이곳에 올라가는 것을 피하곤 했는데, 오늘은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마음껏 추억하자는 뜻이다. Tobey도 정말 나와 같이 행복한 삶을 살고 천수했다고 나를 위로하기 바쁘다.

집 어귀에 있는 나무의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위쪽은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었고 아래 쪽에 조금 남아서 아마도 며칠 안에 다 떨어질 모양…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일찍 떨어진 것은 아닐지…

 

오늘도 다행히 제시간 6시 30분에 일어났다. 휴~ 이런 것도 이제는 조그만 은총으로 생각된다. 어제 이제는 귀국한 조시몬 형제의 카톡에 ‘건강 검진 잘 받고 건강 하라’는 충고가 이제는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진정한 도움말로 들린다. 어떻게 살면 건강하게 사는 것일까? 우리는 어느 정도 열심히 사는 것일까? 과학을 너무 신봉하는 것도 그렇게만 그것을 불신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과학은 믿음과 상관이 없는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을 믿고 따르자.

어제 송 아오스딩 형제가 카톡 초대를 보내왔다. 지난번 젊은이 장례미사에서 만났을 때 구역모임을 언급한 것 때문이 모양이다. 솔직히 아직도 무언가 ‘앙금’이 남은 듯하지만 이렇게 살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몇 사람과의 일시적 ‘사건’이었지 않은가? 그것도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마음을 열고 사는 것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 보고 싶지 않은 사람[그곳에는 우리가 레지오 탈단 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 한 사람도 있으니…]이 그곳에 있는 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이것도 맡기자, 맡기자… 상식적이고 평범하게 살자.

책, The Hours of the Universe 지금 필사, 독서하는 책이다. 이 책도 나의 주관심사인 과학과 종교의 핵심을 찌르는 지적 심도와 명상, 묵상이 멋지게 어울린 보기에 가벼운 책이다. 저자는 나에게 익숙한 과학자, 교수 수녀 Illa Delio.. 얼마나 멋진가? 그녀는 나의 다른 선생님 Teilhard Chardin 석학이기에 간접적으로 나는 Teilhard에 관한 공부도 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들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것을 분석하는 것도 큰 일이 되었다. 왜, 나는… 이런 주제에 매료가…

Catholic Sunday… 아~ 아련~ 하고, 아늑하며 감미로운 느낌이 든다. 오래~ 전 가끔 나는 이런 제목으로 블로그를 쓰며 주일 오후를 지내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오후가 되었다. 일요일, 주일은 주일이지만 가톨릭 천주교 주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일미사 후, Vatican Mass, Angelus를 시작으로 각종 전세계와 미국의 교계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진정한 휴식, 휴일을 보냈던 때, 그때가 지금은 정말 그리운 것이다. 이것이 Pandemic은 말할 것도 없고 2017년의 각종 ‘인재 人災’가 발생하기 전 모습이다. 이때가 내가 말하는 authentic Catholic Sunday였다. 이제 다시 그런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무리 그때가 그리워도 그때의 모습에 머무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 진보, 변화가 없는 인간은 하느님의 바램이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연중33주일, 다음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어서 새해 시작인 대림절이 시작된다. 결국은 전례력 한 해가 또 꼴깍~ 넘어가는구나.  빠른 것인가, 기다림에 지쳐 늦게 온 것인가.  그래 기다렸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세월이 느린 것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대림절 Advent 2021년, 그리고 2022년… 세속적 한 해도 한 달 뒤에 뒤따라 올 것이고. 그래 모두 모두 반갑게 맞아들이자.

순교자 성당엘 가보니 정문 주차장의 문이 닫혔다. 아~ 오늘 바로 그 garage sale을 하는 날이었구나… 우리도 조그만 것을 하나 이곳에 협조했지만 그 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조금은 미안하고 심지어 죄의식까지 들고… 예전에 비해 퇴색해지는 듯한 우리의 봉사정신에 민감한 것인지…  싸늘한 빙점에 머무는 이른 아침부터 수고하는 젊은 봉사자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즐거운 마음자세를 갖고 일하는 모습, 그리워지기도 한다.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우리세대는 이미 ‘주역’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오늘 미사 때 우리 바로 뒷자리에 한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곳으로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연숙이 그들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아니, 인사가 아니라 위로의 말을. 그들도 슬픈 표정으로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받는다. 뒤돌아 보는 것을 꺼리는 나도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아하~ 지난 화요일 연도, 장례미사의 그 가족들이 아닌가? 32세로 요절을 한 청년의 가족… 아무런 예고, 낌새도 없이 갑자기 선종을 한 외아들… 과연 이 가족은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 이후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전 가족이 첫 미사에… 마음 같아서는 다가가서 간절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미사 후 신부님이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모두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이럴 때 박수를 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위로의 표시가 될까? 그것보다는 그들을 소개하며 위로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하는 정도에게 끝났으면 얼마나 적절했을까…  이래서 이번 신임 신부님의 점수는 나에게서 또 1점은 깎인 셈이다. 

 

Bakery ‘하얀풍차’에서 안나, 아가다 자매님들과 ‘수다’를 떨며 아침 coffee와 doughnut으로 주일 ‘정기모임’을 마쳤다. 이 모임도 이제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요사이 우리에게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는 활력을 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외로운 시절을 보내는 현재 우리에게 또 이런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참 인연은 묘한 것인가. 누가 이런 것들을 예측이나 했으랴. 다음 주에는 우리 차례로 점심모임을 둘루스의 칼국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라니 Tucker 집에 잠깐 들러서 깍두기를 전해주고 왔다. 이런 때 나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다. 아픈 나라니를 위해서 신경을 써서 깍두기를 전해주자는 얘기에 역시 나는 ‘반가운 듯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태도를 나 자신도 분석하고 싶다. 왜 그렇게 그런 말을 거의 피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일은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면 간단히 끝날 터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분명히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전통적인 반응, ‘귀찮다’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just do it, it’s now or never의 정신이 이렇게 약해졌단 말인가?

Freeze Watch가 Freeze Warning으로 바뀌었다.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 사이…아마도 이곳은 upper 20s정도가 되지 않을까? 확실히 빙점을 밑도는 것, 하지만 바람의 상태는 어떤가? 그것이 더 큰 문제.. 화초들은 올해 신경을 미리 써서 모두 실내로 대피를 했지만 의외로 water supply 쪽 hose, pipe를 거의 잊었다. 연숙은 그대로 두자고 하지만, 최소한 물은 빼고 수도꼭지를 잠그기는 해야 할 듯… 이렇게 올해는 예년에 비해 조금 늦게 첫 얼음을 보게 되는구나…

 

스트레스, 그것도 쪼잔한 것들, 왜 그런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일까? 알고 보면 대부분, 너무 잘 하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도 일리가 있다. 조금 못해도 된다면, 조금 자유스러워진다면 스트레스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James Martin신부는 말한다.

영적 가난은 기쁨을 앗아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와 반대로 기쁨으로 가는 문입니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은 자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는 “전부 다 나한테 달려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려는 유혹은 매우 강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자칭 메시아주의Messianism’라고 부르겠습니다.

James Martin <冊: 성자처럼 즐겨라> p383

 

연숙의 산책 의지는 아직도 굳건한 모양이다. 오늘도 걸었다. 거의 full course로. 속도도 예전에 비하면 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언덕을 오르는 것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고, 특히 60개 정도의 급경사 계단 산책로도 열심히 오르고…  걷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으니 이제는 이것을 지속을 시켜 습관으로 만드는 노력은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좋다는 습관을 들이는 ‘성공한 경험’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기에 내가 도울 수 있다.

오늘 날씨는 걷는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런 청명하고 싸늘한 가을, 게다가 색깔이 거의 완전히 들어가는 가을나무의 모습은 왜 올해에 이렇게 나를 자극하는 것일까? 그야말로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은, 영적인 감동까지 느낀다. 감사합니다….

 

가을 산책을 시작하면서 낙엽 이외에 가끔 발에 채이고 것 중에 도토리 acorn이란 놈이 보인다. 이제야 이것, 흔하다면 흔한 것이 나의 눈에 들어오고 드디어 몇 개를 주웠고 급기야는 그것을 소중하게 가지고 왔다. 처음으로 자세히 본 것, 감상적이 안 될 수가 없다. 이제야 이것이 나의 눈에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는 급기야 연숙이 아주 깨끗한 놈 두 개를 주워서 나에게 주었다. 이것에 관심을 갖는 나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 대견스럽다는 모습도 보인다. 이것이 바로 도토리 묵의 재료? 그렇구나, 이것으로 그 맛있는 도토리 묵… Wikipedia에서 자세한 것을 읽기도 했다. 그곳에는 대부분 각지 원주민들의 음식재료로 소개되고 있지만 특별히 한국의 ‘도토리묵 DOTORI JELLY‘까지 따로 소개가 된 것을 보니 참 신기하기만 하다… 이것도 요사이 Thomas Berry 공부의 효과인가… 자연, 그것도 진화하는 자연세계가 너무나 새롭고 신기한 것이다. 아~ 역시 나이다, 나이.. 공짜 선물, 나이의 선물이다.

 

순간적으로 생각을 한 것이 현실로 바뀌었다. 이번 감사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idea, 우리 가족은 일년 내내 자주 본 셈이니까 우리 둘이 조용히 보내자는 것은 사실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둘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를 같이 볼 만한 공통 관심사도 없는데… 여기서 또 번쩍이는 생각지도 않았던 생각, 내가 요리를 해 보자는 것…. 한번도 감사절 미국식 요리를 내가 직접 해 본적이 없었기에 이것도 아주 멋진 idea가 되었다. 우선 연숙이 ‘감동적’으로 보였고, 나도 갑자기 신이 나는 것이다. 그래 몇 가지만 맛있게 만들어서 둘이서 ‘감사기도’하는 것이다. 와~ 성모님 감사합니다!

오늘 밤에 잠시 기온이 빙점을 맴돌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연숙이 부리나케 텃밭으로 가서 고추를 모조리 따가지고 들어왔다. 이런 첫추위 후에 고추농사는 완전히 끝이 난다고… 와~ 놀라고 놀라는 것, 올해 고추 농사, 어떻게 이런 풍년이 있을까? 원 없이 수시로 이것을 마음껏 즐겼다. 맵지 않은 것, 이름도 재미있는 ‘아삭이’ 종자라고… 도마도 농사는 재미를 못 보았지만 이것으로 만회를 한 셈이다. 100 % 연숙의 땀이 담긴 produce였다. 연숙, 성모님, 감사, 감사…

 

마지막으로 장례미사 전에 연도를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분명히 COVID-19 Pandemic이전이었다. 그 이후에는 연도를 하지 못하고 장례미사 가족들만이 모여서 한 것이 이제는 연도와 미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조금 세상이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연도, 장례미사 공지를 몇 군데서 받아보고 어리둥절했다. 32세의 청년? 지병도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 ‘프카’ 자매님이 보낸 소식에 자매님 아들과 축구를 했던 적이 있는 아는 청년이었다고 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몸이 안 좋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가보니 숨진 상태였다고… 가족들, 얼마나 놀랐을까? 심장마비인 것 같지만,  왜?

연도 전에 viewing에서 고인이 편안히 누워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고통스런 표정이 하나도 안 보이는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다.  32세의 새파란 Georgia Tech 대학원생 청년, 총각의 갑작스런 죽음, 이런 일이 가끔 있긴 했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지병도 없이 갑자기 밤새 시신으로 변한다는 것, 소설,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이 아닌가? 아직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연도,장례미사, 화장까지 하게 된 것, 우선 관심은 그 청년의 가족들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놀람과 슬픈 심경이었다. 어떻게 그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죽은 본인보다 가족들의 고통…  32세면 내가 결혼할 당시의 나이가 아닌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으로 결혼은 물론이고 애인도 없었던 듯 보이니, 얼마나 많은 인생을 놓친 것인가? 지병도 없이 그러니까 심장마비 가능성이 많은데, 정확한 사인은 무엇이었는지…

오늘 영결 현장은 오랜만에 슬픔을 나누는 장례식 같은 오열의 몸부림을 목격하는 자리가 되었다. 가족 모두들 혼이 나간 표정들, 이들은 어떻게 이 비극을 이겨낼 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일찍 한 젊은 생명을 거두어가신 것일까…

오늘 장례미사에서는 이제까지 듣던 강론과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인 사연,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personalized되지 않은 장례식은 아무래도 아쉽기만 한 것이었다. 유족들과 면담을 거치는 과정이 짧았거나 없었던 느낌이 든다. 지나간 3명의 주임신부님들의 장례미사 강론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인생과 죽음에 대한 교훈들이었지만 오늘은 거의 김이 빠진 듯한, 완전히 boiler plate격이라고나 할까…

오늘 미사에서 보여준 유족들의 모습들은 이즈음 보기 드문 ‘모범적’인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혼이 나간 듯 오열하는 모습은 조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고, 항상 지뢰밭처럼 느껴지는 ‘조사 弔詞’, 여동생이 나와서 짧지만 심도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었는데… 특히 오빠는 겁쟁이였다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대부분 장황하게 길고 긴 넋두리를 하는 것, 정말 나는 피하고 싶은 경험이었기 이번에는 휴~ 하고 가슴을 쓸기도 했다. 비록 우는 소리가 평소에 비해서 클 수밖에 없었지만, 울음소리가 없는 장례미사는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또한 가장 家長의 엄숙하지만 슬픔을 참는 듯한 괴로운 모습,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반갑지 않은 연례행사, 지난 밤에 이미 벽, 손목시계를 모조리 한 시간씩 늦추는 [새벽 2시가 1시로]  고역을 치렀지만 덕분에 아침잠 한 시간을 벌었다. 큰 생각 없이 맞이한 연중32주간 시작 본당 주일미사, 가보니 매년 이즈음 ‘평신도’ 주일이란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2010년대 초,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 재임시 연숙이 평신도 대표의 한 사람으로 강론대에 올랐던 추억까지는 좋았는데.. 글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뜻밖에  ‘W 마귀’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허~ 미리 알았더라면 거의 십중팔구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피했을 터였다. 이 Kafkaesque, hypocritical, lying, attacking 하는 인간과 우리는 왜, 무슨 악연으로 엮였는가? 듣기 싫은  narcissistic mumbo jumbo, 귀를 막는 용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들어야 하는 괴로운 자리였지만, 궁여지책으로 완전히 눈을 감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나의 모습,  죽도록 싫었다. 

오늘은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멋진 가을날’, 시간이 한 시간 늦추어진 것과 더불어 더욱 계절의 신비를 느낄 수 있은 날이 되었다. 오늘은 이전과 다르게 모처럼 Buford Highway의 전통적 명소, Farmer’s Market에 들려서 떨어진 쌀도 사고 식사용 스시, 비빔밥을 그곳의 food court에서 사왔다. H-Mart에 비해서 조금 낡은 내부였지만 이곳의 물건들, 특히 produce 류들은 이곳이 훨씬 싱싱한 듯 보였다. 하도 인상적이어서 다음 주부터는 이곳도 정기적으로 오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환하고 깨끗한 것은 H-Mart로 가고 싱싱한 것, 푸짐한 것을 찾으려면 이곳 Farmer’s Market… 허~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1989년경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와 비교하면 이건 완전히 천지개벽, 아니 천지창조 된 느낌까지 든다.

 

아침의 얼어붙는 듯한 스산함에서 갑자기 찬란한 태양에 힘입어 부드러워진 대기 속을 걷고자 새로 개발된 neighborhood trail을 45분 동안 걸었다. 걷는 것과 혈압조절의 관계를 의식한 것이 제일 큰 동기가 되었나, 연숙이 나보다 더 열심히 산책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 나도 싫지는 않다. 그렇게 오랜 세월 걷자고 했지만 이제야 정신이 나는 모양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년 봄까지는 모기 문제가 없으니 걷는 것 큰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이것으로 신체의 각종 의학적 수치들을 조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요새 계속되는 kitchen area paint, range hood쪽의 faux door 로 그곳이 한결 보기가 좋은 것에 힘을 입어 sink area의 paint job에 도전했다. 크게 힘든 일은 아니지만 귀찮게 자주 움직이는 것, 이제는 예전 같지 않고 지나친 결과에 대한 집착, 실수할 까봐 걱정하는 나의 모습이 싫다. 이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조금 실수해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다시 하면 되는데… 시간은 넘치는데…

 

며칠 전에 거의 충동구매에 가까운 2권의 책이 빠르게 도착했다. 두 권 모두 나를 흥분시킬 만한 제목과 review를 자랑하는 책들이다. 과연 어떤 내용들일지… 기대가 크다.  Ilia Delio, 그녀의 책은 이미 사서 본 적이 있는 수준 높은 scholarship을 지닌 저서들이어서 아마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책, 보기에도 웅장하게 보이는 hardback 멋진 장정으로 심각한 인상을 준다. 과연 Is God Dead? 에 걸맞은 Is Atheism Dead? 제목답게 21세기의 classic으로 남을 것인가? 

하느님 맙소사! 오늘은 정말 극과 극의 극단적 날로 끝이 나는가? 왕마귀에서부터 ‘IS ATHEISM DEAD?’의 저자 Eric Metaxas란 새로운 이름의 저자까지.. 정말 이상하고 싫은 날이 되었다. 왕마귀는 그렇다 치고, Metaxas 라는 발음하기도 괴로운 이름의 인간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의 최근 간행된 책의 저자가 바로 ‘DONALD 개XX’ 신봉자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쓴 저자의 배경에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 예를 들어서 ‘하느님의 존재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의 배경에 그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정치인을 전폭적으로 지지 한다는 것이 포함이 된다면? 이것 정말 예상치 못한 대형사고다. 앞으로는 책을 살 때 그 자자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인가? 책을 return하고 싶기도 하지만, 우선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고, 또한 책에다가 재빨리 나의 sign을 한 것, 등으로 return을 하는 것은 옳지 않는 듯 싶다. 아~ 괴롭다, 괴로워…

Amazon의 book review를 읽으면 이 책의 내용에는 저자의 ‘비이성적’인 정치관은 거의 없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니까 책의 저자를 의식하지 말고 책의 내용에 집착을 하면 이 책을 버리거나 돌려보낼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래도, 찜찜한 것은 역시 나의 ‘과민한 상태’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 냉정하게 판단하고, 읽자, 이 책을…

어제 저녁부터 오랜만에 보기 시작한 DVD 중, Back When We Were Grownups, 예전에 느낀 감정들이 그대로 완전히 살아나온다. 오늘 아침에도 이어서 repeat mode로 아예 계속 보이도록 열어놓았다. 이제야 이 Hallmark movie의 원래 소설 저자, Ann Tyler 에 대한 것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Wikipedia의 혜택이 없었지만 지금은 문제가 없으니, 또 세월이 흘렀나…

당시 이 영화의 자세한 plot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대강 이야기의 의도는 짐작을 하였다.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으며 살고 싶은  것이 인생이지만 가끔 의도와는 정 반대의 생을 살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최선을 하는 것도 다른 모습의 인생이라는 사실. 하지만 이 줄거리의 매력적인 50대초 여성[Ann Blyth]의 취향은 나를 철저히 실망시키는 것이어서 영화 뒤의 뒤끝 맛은 언제나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그 생각이 오늘 다시 보며 그대로 살아나온다. 결국은 그 동안 [지난 영화 이후]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 주인공이 정말 좋아하는 남성상은 한마디로, ‘유머러스하고, 웃으며, 항상 움직이지만 심각한 생각은 별로 없는 듯한’ 그런 type이 아닐까? 생의 의미와 깊이 보다는 현상적, 즉흥적인 행복을 찾는 스타일… 나의 type은 절대로 아니다. 그녀는 후자 type의 첫 사랑[Peter Fonda]을 버리고 전자 type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아이들이 주렁주렁 딸린 이혼 남,  결국 결혼을 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곧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에 ‘시집의 대 가족’과 함께 열심히 살다가 다시 재회한 첫 남자, 옛 추억의 환상은 있었지만 이미 굳어져버린 인생관은 다시 이별로 끝난다는. ..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두말 않고 첫사랑과 재결합을 하지 않았을까?  첫 남자의 type이 그렇게 싫었을까? 그 type이 나와 비슷하다고 하면 나는 더욱 우울해진다.

Blythe Danner as Rebecca, Peter Fonda as Will (her old sweatheart)

 

얼마 전에 발견하고 걷기 시작한 집 근처의 apartment nature trail에서 이 지역의 가을철 명소인  Amicalola Fall (in North Georgia mountain)  과 비슷한 stair structure를 보고 이곳을 Amicalola junior(or bab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trail 자체도 멋질 뿐 아니라 급경사로 이어지는 계단은 운동하는 데에도 알맞은 곳이 되었다. 오늘도 둘이서 그곳을 걸었다. 이제는 동네 산책 시간도 따라서 45분 가량으로 늘어나서 아주 적당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Kitchen range (fan) hood 설치, 교체 작업이 끝나면서 hood 위의 공간이 아주 눈에 거슬리게 되었다. 보통은 그 부분에는 small cabinet이 있는데 우리 집에는 원래부터 그것이 없었던 것, 이제는 조금은 자연스러운 미화 작업을 필요했다. 암만 생각해도 FAUX cabinet door가 제일 어울리는 곳이지만 어떻게 문짝만 달아놓을 것인가? 문짝만 따로 살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 비용이 드는 것은 질색이다. 골치를 쓰고 있는데 하늘이 도와서 마침 안 쓰고 버려둔 furniture에 크기가 거의 맞는 cabinet doors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이미 white paint가 되어 있었으니 이것은 우연인지. 그것을 오늘 마침내 설치를 하였다.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것, 그야말로 faux cabinet door 덕택이었다.

 

32살에 세상을 떠난다면? 32살에 대한 감각이 희미해졌다. 32살은 몇 년생인가? 1989년 생, 나라니보다 무려 4살 밑이 아닌가? 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디 젊은 성당 교우[박영찬 베드로, Johns Creek 구역] 의 연도, 장례미사 공지가 오늘 우리에게 왔다. 너무나 사연이 궁금하던 차에 다행히도 프카 자매가 소식을 주었다. 자매님의 둘째 아들과 축구로 아는 사이였다고… 놀라운 사실은 갑자기 세상을 뜬 사연이다. 배가 아프다며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놀랍고 슬픈 비보다. 그 부모는 지금 어떤 심경일까? 상상 조차 하기 힘들다. 화요일에 연도와 장례미사가 있다니 그날 가보면 조금 사정을 알게 되겠지..

 

Thomas Berry Coursera course의 마지막 주를 지나고 있다. 읽어야 할 것을 필사한 덕분에 Thomas Berry Writings 책의 대부분을 나의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책들을 읽으며 예전, 특히 2014년 전후에 열을 올리며 읽었던 책들을 꺼내어 그 당시를 회상하는 것, 나에게는 참으로 흐뭇한 시간이다. 그때가 나의 신앙의 차원이 급상승 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믿게 된’ 것, 아니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 그것이 현재까지 큰 무리 없이 지속된 것은 ‘지식적인 믿음’의 결과가 아닐까? 무조건 믿는 것, 나는 믿지 않는다.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것도 이성적, 과학적인 이유에 근거한 것들 이어야 한다.

Secular Media Blackout, 거의 즉흥적인 나의 반발적 행동이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나는 즐기고 있다. 아침에 무려 3시간 정도의 아주 평화스럽고 편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 이때 평소에 못하거나 미루어 놓았던 것을 하면 더욱 보람이 있지 않을까? 첫 번째 나의 손이 간 곳은 요즘 들어서 거의 지나치고 있는 아틀란타 대교구 신문인 Georgia Bulletin. 내가 오랜 전 다시 성당 community로 돌아올 무렵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것, 어떻게 된 일인지 Pandemic이후 거의 관심이 떨어지고 front page만 흘깃 볼 정도가 되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가, 왜 다른가,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연보다는 무엇인가 원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이 tabloid, 무엇에 홀린 듯 중요한 기사는 다 읽게 되었다. 현재 우리 대교구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어둠 속에서 차갑게 느껴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어둠이 걷히지 않은 아침, 오늘도 나는 가급적 media blackout 속을 지나갈 것이다. 대신 그 시간에 더 많은 글들을 읽을 것이다. 읽었어야 했을 여름목록 책들이 많이 밀려있다. 이제는 겨울목록으로 바뀌어야 할 판…  그렇지만 계속 조금씩이라도 읽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어내는 커다란 처방전인 것이다.

어제 순교자 성당, 신임 구 미카엘 신부님과 개인적 대화의 통로 channel을 만들려고 카톡 연결을 시도했다. 놀란 사실: 우선 주보에 연락처 전화번호 대신에 그의 email 연락처가 덩그러니 그곳에 적혀 있었다. 흠~~ 아직 전화가 없으신가.. 그럴 리가 없는데… 할 수 없이 email을 쓰는 수고까지 한 결과는 조금 의외였고 실망까지 하게 되었다. 이전 두 신부님의 활발한 texting 하던 모습과 대비가 되면서, 아~ 내가 완전히 다른 시대감각의 신부님을 대하고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다.  설마 지금 mobile phone에 texting (가급적 kakao) 을 안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나의 문의에 대한 답변의 느낌도 ‘차갑게 간단한’ 것, 허~ 내가 그 동안 spoil 된 것인가, 신부님을 잘못 보고 있었나… 이래저래 전임 이재욱, 이영석 신부님들의 자상한 text message들이 이 싸늘한 가을비 속에서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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