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tecost Novena 성령강림 9일기도

오늘 아침미사에 가니 반갑게도 devout Irish couple,  ‘거꾸리, 장다리’부부가 비로소 제자리로 복귀를 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 불규칙한 미사참례로 걱정을 했는데, 아마도 몸이 정상으로 회복이 된 것 같다. 그 거꾸리[키가 작은] 자매님, 특유의 미소를 지며 반갑게 우리에게 다가와서 printout된 기도문을 주며 기도하라고 한다. 처음 보는 것, 그것이 ‘성령강림 전 9일기도’ 영어로 된 것이었다. 아하~ 이런 것도 있구나~  가톨릭 문화가 한국 공동체와 조금 다른 것 중에 이들은 9일기도 Novena라는 것을 때가 되면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예의상 받기는 했지만 의외로 연숙이 적극적으로 그 어려운 ‘영어기도문’을 심각하게 9일 동안 하겠다고… 나는 당연히 영어로 된 것이라 기대를 안 했는데…

집에 와서 website를 찾아보니 물론 ‘한글 version’도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영어판과 맞먹는 printout version을 아직 찾지를 못해서 그대로 영어로 된 것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요즈음 머리가 하도 복잡하고 바빠서 이런 쪽을 잊고 살았는데… 아마도 성모님이 이렇게 우리를 일깨워주시는 지도 모른다… 그래, 할 수 있는 대로 노력, 최선을 다해서 성령님께 관심을 더 갖도록 하면… 이렇게 해서 9일 뒤로 다가온, 교회가 탄생하는 날, Pentecost 성령강림 대축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말이 벌써 Memorial Day weekend라고? 믿을 수가 없다. 믿을 수가 없다… 5월이 또 저물어 간다는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없어… 이제는 더 미룰 수가 없다. 어질러질 대로 엉망인 주변의 모습들, 나의 책, 서류, 잡동사니, 가구, 환경… 아~ 어쩌다 이렇게까지 게으르게 놔 두며 살고 있을까? Mea Culpa, 내 탓이요~~ 바로 내 탓이다.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인 것이다. 내 탓, 남의 탓을 절대로 하지 말라, 모두 모두 다 내 탓이라니까~~~

지난 며칠간의 Ozzie와의 산책은 아주 흥미롭고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다. 무슨 비밀 통로라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Ozzie덕분에 발견한 ‘커다란 개구멍’ 덕분이라서 더 재미있기도 하다. 이렇게 새로 발견한 Azalea Spring course와 다른 곳을 연결시키면 재미있는 trail route를 만들며 걸을 수가 있게 되었으니…  최소한 1 mile의 bonus까지 얻게 되어서 더욱 유익한 코스가 되었다. 오늘은 두 apartment complex를 모두 ‘섭렵涉獵’을 한 ‘대장정’을 하는 날이 되었다.

A Busy Sunday In Late Life

거북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기온이 오르는 5월 초, 이제는 새벽도 그렇게 싸늘하지 않고 낮 기온도 가벼운 옷이면 알맞을 그런 나날, 그야말로 성모성월, 어머니, 가족들의 계절의 모습이다.

오늘 ‘주일’도 일어나며 조금씩 나를 유혹하는 생각들과 싸운다. 아~ 오늘 일요일 아침시간 집에서 편하게 보냈으면~~ 이것이 유혹이라는 것, 어찌 내가 모르랴~ 하지만 이런 유혹 자체가 이렇게 쉽게 자주 나에게 왔다는 그 사실이 실망스럽고, 나의 행복을 빼앗는 듯 해서 싫구나. 왜 이렇게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나의 지나친 자학일까?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앞날에 대한 희망 등등.. 그런 것들이 요새는 그렇게 멀게 느껴지고 그리운 것일까? 하지만 ‘일거’에 유혹을 뿌리친다, 나는 그래야 산다… 나가자, 나가자, 일어나자…

아침에 잠깐 우려했던 것만큼 오늘의 외출이 외롭거나 재미없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은 정 반대의 결과라고나 할까. 이래서 삶은 예측불허, 아니 재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3~4시간 이후조차 이렇게 예상을 못할 수 있을까?

오늘부터 성모성월을 맞아 미사 직전에 묵주기도가 시작되었고, 미사 자체는 언제나 값진 것이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부님들, 특히 주임 구 미카엘 신부님의 일관성 있는, 복음의 핵심에 근거한 메시지 덕분이라고 할까. 강론자체가 ‘재미 있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생각하게 만드는’ 자료,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신부님의 강론은 우리 동네 Holy Family 성당 주임 Father Miguel 신부님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이런 모든 것,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은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사 직후 ‘이제는 활기찬’  친교실을 지나게 되면서 그곳에서 가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것, 성당 미사에 온 보람을 느끼는 기쁜 순간이 아닐까? 요즈음은 아가다 자매님의 밝고 명랑한 얼굴을 보는 것을 기다리는데 오늘은 모습이 안 보인다. 함께 성당버스를 타고 오시는 어르신들 [사실은 내 또래일 듯 하지만] 에게 물으니, 오늘은 전화연락 자체가 안 되었다고… 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안 한다. 가끔 이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때면 점점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떨칠 수는 없구나… 그저, 그저 이 증상이 천천히 진행되거나 초자연적, 기적적으로 치유가 되기를 기도한다.

망치회 [성당 시설관리 봉사자 그룹]에서 꽈배기 도넛 판매를 하는 것을 보고 하얀풍차로 가는 대신에 돈도 절약하는 셈치고 친교실에 머무르며 ‘공짜’ coffee와 [이 coffee맛, 이 성당 역사상 최고인 듯] 함께 간단히 요기를 했는데, 오늘은 그곳에서 오랜만에 C가밀로 형제를 만나서 그 동안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랍게도 몇 개월 전에 stroke을 두 번이나 당했고 병원신세를 졌다고 한다. 한때 [사실은 지금도] 같은 구역 교우였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모른 채로 사는 것, 역시 나에게는 그림자 중에서 제일 어두운 것이 되었으니….  또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있던 낯 익은 얼굴, H그레고리오 형제,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10여 년 전에 우연히 레지오 행사를 통해서 만난 인연으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이가 한참 위인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하니 그도 같은 예의를 표하는 표정으로 나는 오늘 얻을 수 있는 모든 ‘성당의 혜택’을 본 것이다.

이런 만남을 통한 교훈이 있다면 좋건 싫건 ‘이웃들’,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런 노력이 필요한 것. 어쩔 수가 없음을 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간단한 복음의 가르침은 이런 것들로 시작되는 것 아닐지… 복잡한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나는 더 그 사실을 민감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옛날에는 혼자서라도 오래 오래 살 수 있다고 자신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 반대가 되었으니… 문제는 연숙이, 나와 방향이 거꾸로 된 듯, 나이가 들면서 홀로 있고 싶어하는 듯 보이니… 이것으로 나는 우리의 궁합이 잘 안 맞는다는 의심을 하는 거다. 어쩔 수가 없다, 이 문제는, 그대로 서로 인정하며 살 수밖에…

오늘 새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갑자기 ‘잠수’한 C베로니카 자매가 놀랍게도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큰 상처를 입었다고… 그 집은 듣기에 단층집이어서 아마도 큰 상처는 아닐 듯 했다. 하지만 어떻게 연락은 두절하는 중에 다른 사람과는 연락이 되었을까? 또 나는 그 자매로부터 ‘점수를 대폭 깎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솔직히 동정심보다는 실망감만 느끼게 되니… 괴로운 사실이 아닌가?

이렇게 갑자기 들뜬 마음으로 다시 보는 반가운 얼굴,  10여 년 전 레지오 ‘전우’ C실비아 자매를 성당 문 앞에서 만났으니… 오늘은 왜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반갑고 사랑스럽게 보이는지… 이 자매도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너무나 반가워하는 모습에 속으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것으로 오늘 성당 외출은 끝났지만 아주 행복한 발걸음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주일 행사가 된, 주차장 야채판매, 아마도 안식교인들, 싱싱한 야채를 그곳에서 사는 것도 즐거움이 되었는데 오늘은 30분 늦게 갔더니 거의 모든 것이 팔린 상태… 나는 요새 그 곳에서 산 풋배추로 만든 ‘겉절이’ 너무나 입맛을 돋구는 것을 알기에 관심이 그곳에 많이 간다. 다음 주에는 더 일찍 오기로…

모든 ‘만남들’이 끝난 후, 가볍고 들뜬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P해숙 베로니카 자매 부부의 성당근처 부부 묘소를 방문했다. 5월 2일이 기일인데 올해는 조금 늦었구나… 2015년 5월 2일 선종, 5월 5일 장례미사… 아 꽤 세월이 흘렀구나…  우연한 인연으로 이 자매님의 병자성사, 세례, 선종, 마지막으로 장례식까지 성심껏 봉사를 했던 참 보람을 주었던 경험, 추억이 되었다. 일 년 만에 이곳엘 오니, 비교적 한산했던 Winters Chapel Cemetery가 이제는 ‘망자’들로 점점 만원이 되는 듯 보인다. 많은 Asian들의 이름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느 곳에 안주, 안치가 될 것인가, 전혀 실감이 안 가지만 그렇게 긴 세월을 요할 것 같지 않음은 최소한 머리로 계산을 하기도 한다.

오늘도 편한 자세로 computer scientist, philosopher Bernardo Kastrup의 ANALYTIC IDEALISM COURSE를 열심히, 몰입하듯이 ‘청강’을 한다. 벌써 전 COURSE를 두 번 반복을 하는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심지어 황홀하기도 하다. 왜? 이 새로운 세계관과 실재관이야 말로 예수님을 향하는 궁극적인 인간의 노력일 수도 있다는 나만의 극단적 해석 때문이다. 이것이 하느님을 향한 ‘마지막 접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재미도 있고 공상만화 같기도 하고… 최근 50여 년 동안의 ‘문명의 진화’의 결과일지도 모르지 않을까? 정말 철학, 아니 모든 인간의 학문의 총 합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3번 째 ‘청강’에 도전을 할 것이다.

부활 3주 일요일, 동년배들과 함께…

Old Fort Yargo

일요일 하루가 다 지나가는 지금, 아~ 뻑쩍지근~ 피곤은 하지만 머리는 반대로 맑고 조금은 들떠있는 느낌.. 어떻게? 간단하다, 모처럼 많은 사람들, 그것도 같은 가톨릭을 믿는, 그 중에서도 나이가 거의 엇비슷한 동년배들 과 일상의 주변 환경에서 멀리 떠나 시원하고 멋진 호숫가에서 신나게 떠들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틀란타 메트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Fort Yargo State Park, 이곳은 Pandemic 직전 2019년에 4월과 10월 두 번이나 갔던 곳,  그때와 같은 shelter로 다시 갔던 것도 그렇고 알맞게 포근하고 맑은 날씨에 써늘한 호수의 정경들.. 우리 같은 동년배 Senior들에게는 거의 치명적이었던 Pandemic을 모두들 견뎌내고, 4년 만에 거의 같은 교우 회원들과 같은 야외에서 어울린 것, 이제는 이들과도 정이 들었는지 하나도 어색함이 없고 농담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한마디로 기쁘고 감사할 일 아닌가?

우리의 성당 장년 그룹의 단체, 등대회의 모임으로 60~7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2017년 가을에 묘한 인연으로 알게 된 곳, 출신성분이 각각이지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장년층 그룹이라는 한가지 공통점은 의외로 끈끈하게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큰 재미라고는 별로 없지만 꾸준히 세월을 견디어 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더 멋진 그룹’이 될 여건을 가진 것에 비하면 현실은 거의 반대인 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동년배를 만나면 왜 그렇게 여건에 상관없이 마음이 편한 것일까? 정치적 성향, 출신 성분, 성격의 다양함, 살아온 인생의 색깔들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것이 더 많지만 제일 중요한 ‘세계관을 좌우하는 신앙’이 이 모든 다양함을 평준화하는 힘을 주는 것 같다. 또한 같은 역사적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수많은 거리감을 좁혀 주기도 한다.

이런 사실로 사실 이런 단체는 성당 사목적이 차원에서 ‘공식적인 지원’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은 거의 정반대로 흐르는 듯해서 나는 근래에 ‘맥아더의 고별사, old soldier never…’를 되뇌며 살게 되었다.

Ozzie‘s Coming for 3 weeks!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새로니 집에 들러서 Ozzie를 데리고 왔다. 이번에는 Izzie로 인한 걱정, 근심과 더불어 Ozzie까지 3주 동안이나 봐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데리고 와서 편히 쉬게 되니 그런 것들은 슬그머니 다 사라진다. 쓸데없이 미리 겁을 먹은 것인지도..  Izzie와 Ozzie가 사이가 좋지도 않는 것, Izzie의 건강문제 등등이 모두 신경을 쓰게 할 것이지만, 그래… 이런 것들 다 큰 문제 없이 지나가리라~~

오늘 아침 미사엘 가니 즐거운 놀람이라고나 할까… 매주마다 우리 바로 뒷자리에 홀로 앉는 마리안나 자매님이 우리 두 자리를 ‘예약’을 해 놓은 것, 우리 자리에 성가집과 주보를 미리 놓았던 것이다. 지난 주에 우리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던 것을 보고 그 자매님이 신경을 써 준 것이다. 이런 작은 일이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이래서 삶은 그렇게 각박한 것만은 아니구나~~ 고마워요, 마리안나 자매님!

Palm Sunday 2023, Passion Week

오늘은 Palm Sunday 성지주일이어서 성지 가지를 하나씩 받고, 예수님 수난을 묘사한 길고 긴 복음 말씀을 3명이 나누어 봉독을 하는 등… 아 이제 수난의 성주간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오늘 받아온 성지聖枝 2가지, 이제 이것은 소중히 성상 聖像 액자 뒤에 걸려서 일년을 기다리며 ‘재의 수요일’을 맞아 재로 변하고 우리들의 이마 위의 십자가로 바뀌어 부활을 할 것도 머리 속에 그려진다.  2천여 년 전 오늘로서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는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렇게 호산나를 외치던 수 많은 ‘보통’ 사람들, 어떻게 며칠 만에 그렇게 ‘살인’ 폭도로 변했을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의 일부인 것이다. 본시의 인간본성, 그것을 원죄라고 부르는 것 하나도 이제는 이상할 것도 없다. 왜 그렇게 ‘정말 나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은 것이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일까? 왜? 왜 DONALD 개XX 같은 ‘아직도 날뛰는 악의 무리’들이 대접을 받기도 하는 것일까, 그것이 원죄라고 하니 내가 할 말은 없다만…

무려 3주 만에 다시 찾은 8시반 주일 아침 첫미사, 오늘 미사엘 갔을 때 우리의 앞 자리 고정석의 C베로니카 자매의 익숙한 ‘지나치게 새카만 머리’ 뒷모습이 안 보였다. 예감이 조금 야릇했는데, 뒷자리의 마리안나씨의 말을 듣고 더욱 놀랐다. 우리가 없었던 동안 그 자매, 한번도 미사에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 어떻게 timing이 그렇게 되었는지 조금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평소 주일 미사를  절대로 빠지지 않을 뿐더러 특히 오늘은 성주간의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더 이상한 기분까지. 몇 주 전에 이해할 수 없는 서운한 hint로 놀라기도 하고 실망을 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조금 성급한 판단을 한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더욱이 혹시 몸에 이상이 생겼을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다. 아마도 나는 조금 생각을 바꾸어 이 부부에 대해서 긍정적,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기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도록…

아주 오랜만에 찾은 정든 cafe bakery  ‘하얀풍차’, 어쩌면 그렇게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던지…  심지어 Pandemic동안에도 우리와 coffee, 빵, doughnut 등을 나누며 친교를 하던 꽤 많은 사람들, 모두 이제 어디로 갔단 말인가? 둘이서 팥 도넛을 먹긴 했지만 예전의 그 활기찬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앞으로 그곳에 갈 기회는 많지 않겠다는 우울하고 외로운 생각을 남겨두고 도망가듯이Dunwoody 새로니네 집에 들러서 유나를 잠깐 안아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니 집은 remodeling을 서서히 시작을 해서 어수선했지만 이곳도 봄의 소식은 우리 동네나 다를 것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늘처럼 ‘오래 된’ 우리 집 그렇게 따뜻하고 환영하는 듯한 느낌,  home sweet home을 느낀 것도 오랜만이었을지… 

오늘도 WordPress ‘dream’ theme hunting, 이것은 솔직히 무슨 보물찾기 같은 흥미까지 느끼게 하는데, 오늘도 한가지를 찾아서 test를 시작, 계속, 쾌재, 흥분, 희망까지 모조리 경험을 한다. 거의 모든 WP theme들은 free와 premium 의 두 종류가 있는데 물론 나의 최고의 희망은 free version에서 best version을 발견하는 것이다. 오늘 찾은 것은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희망적인 것이다. 과연 이것의 나의 final 이 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Early Covering, A Certain Smile..

5일만에 아침미사엘 가니… 조금 의아하고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 보였다. 예수님 십자고상을 포함한 모든 성상, 성물들이 violet linen shroud로 덮여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은 이제까지 경험적으로 성 목요일 때부터 부활성야까지가 아닌가? 왜 이곳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일주일 전에 하는 것인가? 누가 이런 것들을 정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성삼일의 느낌, 그러니까 수난의 절정의 의미를 미리 보여주는 것, 괜찮지 않을까…

간단한 Sonata Cafe [차 속에서 먹는]로 아침 요기를 하고 YMCA에 가서 건물로 걸어 들어갈 때, 어떤 수려한 모습의 중년 lady와 마주치며 good morning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lady의 모습이 한마디로 graceful한 것이고 표정도 못지 않게 천사처럼 보였다. 이런 1~2초도 되지 않는 순간이 오늘 하루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상상도 해 보았다. 진실하게 나누는 간단한 인사의 위력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
오늘은 연숙이 pool 예약을 하지 않아서 수영은 안 하고 함께 걷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나머지 모든 strength routine을 빼놓지 않고 했다. 걷는 것도 그렇고 machine exercise도 그렇고, 나의 몸은 아무런 이상 없이 잘 75세를 견디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오랜만에 Sam’s Club엘 가서 거의 $360 어치 shopping을 했다. 나는 물론 술은 안 샀지만 대신 Size-C battery를 ‘뭉치’로 사왔다. 우리 아기들의 장난감에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조금 아깝기는 했다. 이런 size는 요새 별로 쓰지 않기에… 하지만 현재 이것이 필요한 것이 있으니 별 수가 없구나…
이곳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WiFi Security Camera pair, 가격이 $70 정도였는데… 가만히 보니 이것은 babycam과 거의 기능이 같은 것이었다. 이것의 매력은 역시 Internet으로 아무 곳에서나 집안을 볼 수 있다는 것, two-way voice talk도 가능하니… 만약 우리 집을 장기간 비울 때, 이것으로 집안의 상태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은 이곳에서 Lasagna 를 사와서 집에서 푸짐하게 먹었다. 아~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wine류였는데… 조금 아쉽긴 하구나..

오늘은 원래 봉성체를 두 군데나 갈 예정이었는데, K 세례자 요한 형제님이 아직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어서 따라서 C 아오스딩 형제의 것도 금요일로 바꾸었다. K 형제님의 봉성체는 다음 차례인 2주 뒤에나 가게 되었다. 그 형제님의 상태가 솔직히 불안한 것은 사실인데… 우리로써는 기도 이외에 할 것이 없으니… 아마도 그 자매님은 장지준비 생각까지도 하는 것 같아서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할 일들이 분명히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우리도 기운을 차리고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겠는가?

내일도 우리는 외출, 그것도 순병원으로 regular check을 하러 9시 30분까지 가야 한다. 몇 번의 놀란 경험들을 생각하며 신경이 안 쓰이는 것도 아니지만 어찌 하겠는가? 모든 검사 결과를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준비는 하고 있어야… 그것은 우리 몫이다.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은.  내일은 standard test외에 아마도 Shingle 대상포진 예방주사를 맞게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것은 Biden이 Medicare 무료로 하는 법에 sign을 했다고 들었기에 이번에 맞게 된 것이다.
그것보다 내가 조금 더 관심을 두는 것은 다름이 아닌 ‘기억력 test’, 그러니까 ‘치매test’… 요즈음 나는 정말 기억력의 변화를 느끼는 것, 그것에 주목을 하며 걱정까지 한다. 그렇게 문제가 없던 기억력이 요새 들어서 간단한 것들부터 기억하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드니… 언제부터 어떤 때부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요새 각종 사람 이름들, 일단 잊은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과 씨름을 하는 내가 불쌍하기도 하다. 오늘은 우연히 ‘김흥기’라는 배우의 이름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하기도 했다. 또한 자주 ‘바로 전에 생각하던 것’을 잊는 경험을 자주 한다. 이것도 ‘큰 문제’의 전조 현상인가… 아~ 정말 나이 드는 것 생각보다 골치가 아프구나… 몸이 괜찮아도 두뇌의 상태는 잊고 살았으니… 아~~ 과달루페, 성모님이시여, 연숙이를 도와 주신 것처럼 저의 기억력 감소, 감퇴에도 어머니 전구의 은총을 주소서…

8th Straight, Daily Morning Mass…

8일째 연속으로 계속해서 동네 본당 Holy Family  parish 아침미사엘 가는 것, 그것도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는 행복한 순간들을 경험한다. 8일째 연속 매일 아침미사… 이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듯한데, 조금 너무 자만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우리의 노력도 그렇지만 이런 것이 가능하게 하는 현재 우리의 하루 하루의 life style, 상황, 여건에 감사하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영육 간의 적절한, 아니 거의 완전한 조화,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은총의 삶이 이런 것인가?

이 동네 성당에서 ‘사순절 선물’로  받은 ‘the WORD among US, Praying with Jesus This Lent’ Mass Readings & Daily Meditation 사순절 매일 미사, 묵상’,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닌 소책자인 것을 보면, 올해는 이곳 성당 재정상태가 양호한 듯 보인다. 하지만 역시 ‘매일 매일’  미안한 것이, 현재 이곳에서 주일미사를 Pandemic이후 전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재정적 봉헌을 못하고  있다는 것..  솔직히 ‘반쪽’ 짜리 신자라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기까지 하다.

A BURST OF CONSCIOUS LIGHT, 제목이 조금은 의외적으로 해괴한 이 책, 오늘 나의 손에 잡힌 바로 이 책,  전체적인 내용주제와 구성이 심도가 없이 산만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세가지 주제 [Near-Death Experience, Shroud of Turin, Universal Consciousness] 들은 모두 내가 항상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저자, Dr (physician) Andrew Silverman은 이것을 ‘빛’으로 연관을 시키는 노력을 하는데 그것이 이 책의 제목: CONSCIOUS LIGHT인 것이다. 3가지 주제 중에서 현재 나에게 다시 다가오는 것이 The Shroud of Turin… 이것과 요새 재개된 ‘성체’에 대한 활동과 관심이 엮이고 있어서 당분간 나는 이 ‘세기적 호기심’으로 다시 다가갈 것이다.

오랜만에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덕분에 기온까지 상승 하니 추위에 움츠리기만 하는 나를 결국 backyard로 내 보낸다. 지난 주일 동안 연숙의 모습이 그곳에 자주 보이긴 했지만 나는 역시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결국 나도 잠깐 나가서 손에 잡히는 몇 가지 ‘육체 노동’을 한 셈이다. 햇빛의 효과도 있을 것을 안다.  지난 겨울 동안 shed에서 잠자고 있었던 피크닉 테이블 umbrella를 꺼내서 설치해 놓았고, 각종 water hose들을 다시 설치를 하기도 했다. 이것으로 연숙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기도 하고, 나도 조금 자신감이 생긴다… 아~ 드디어 3월, 봄기운이 정녕 오고 있는 것인가?

어제 Kroger에 갔을 때, 작정을 하고 dirt cheap wine한 병을 사왔다. 얼마 전부터 술 종류는 안 사기로 선언을 하고 잘 살았는데 예외가 없는 것이 조금 걸리기도 했다. 밖에 나가서 얻어 마실 거라면 필요할 때 조심스럽게 조금 마시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특히  Teriyaki chicken pasta salad에 wine의 맛이 필요함을 알기에 그렇게 결정을 한 것이다. 결국 오늘 그런 계획이 실현이 되어서 정말 오랜만에 둘이서 wine과 Teriyaki chicken pasta 점심을 즐기게 되었다.

어제 첫 손자 로난 3살 생일 모임에 가서 사위 Luke에게서 선물로 받아온 책.. 이 저자는 그의 직장 boss인데 물리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집(열역학에 관한) 의 건강’에 미친 사람이라고…  이것이 올해 우리 집의 건강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제일 관심 있는 것이 airtight house의 효과에 관한 것이라서 한번 자세히 읽어보고 싶구나… 그리고whole house  insulation도 마찬가지.. 조금 더 경제적으로 따뜻하고, 시원하게 살고 싶다.

올해 사순절에 뜻하지 않은 목표가 생겼다. 그렇게 ‘무서워서 피하던’ 것, Mel Gibson의 2004년 super hit The Passion of the Christ.. 처음 보다가 너무나 식상을 해서 잊고 살았던 것인데 다른 영화 The Exorcist와 비슷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자세로 유연하게 공부하며 묵상하는 기회로 삼고 싶은 것이다. 과연 이 목표가 성취가 될 것인가?  최근 뉴스에 의하면 이 영화의 속편 (역시 Mel Gibson제작)  Resurrection이 조금 있으면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주연배우도 전과 같은데, 이렇게 뉴스로 나에게 다가 온 것, 우연만은 아닐 거라는 상상도 하고 싶구나…

Ash Wednesday 2023, Lent Begins…

매일 참례하는 우리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아침미사가 오늘은 ‘재의 수요일 미사’가 되었다. 물론 전례가 특별하고, 다른 것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교우들도 꽤 많았다. 우리가 이곳의 주일미사에 오지 않아서 이들 대부분이 아마도 ‘주일미사 교우’들일 듯하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40일 간의 Lent 사순절, 교우 신자들의 이마에 그어진 재의 십자가,  Remember that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Miguel 주임신부님, 이 두 가지 말씀을 곁들이며 이마에 재의 십자가를 그었다.  이어진 강론도 이 두 말씀에 관한 것,  인간 존재의 무상함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 antidote는 다름이 아닌 ‘복음 Gospel’이라는 간단한 진리… 아~ 이것을 잊고 살았던 것, 오늘은 진정한 사순절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Lent, 사순절 시작, 오늘과 40일간 매주 금요일은 ‘절제, 금육’이라는 교회의 지침을 나는 왜 이렇게 가볍게 알고 있었던 것인가?  절제 abstinence 는 음식을 절제, 단식하는 것이지만 우리 같은 ‘고령’은 제외되지만 [사실은 60세 미만]  금육재 禁肉齋는 예외 없이 지켜야 한다. 그래, 오늘과 금요일은 절대로, ‘한때 의식을 가졌던 생명의 살’을 취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절대로..  오늘은 비록 나이조항으로 면제는 되지만 가급적 단식을 지향한 하루가 되도록, 가급적, 될 수 있는 한…

 

오늘 뉴스를 보니 President Joe Biden의 이마에 검은 십자가 모양이 보였다. 사진 설명에 의하면 Ukraine을 깜짝 방문한 후 Poland의 hotel에서 개인미사를 하며 재의 예식을 받았다고 나온다. 역시 그는 ‘전통적 가톨릭 신자’임을 알 수가 있다. 비록 교리에 벗어난 ‘정치적’ 신념으로 논란은 있지만 역시 그는 교회를 다니는 진정한 신자인 것이다. 그것과 ‘교회 앞에서 징그러운 pose로 사진을 찍는 연극을 하는’ 정말 구제불능의 DONALD 개XX를 모습이 극적으로 비교가 되니…  정말 이것은 하늘과 땅, 아니 지옥의 차이가 아닐지..  오늘 보게 된 Boston based CatholicTV.com의 This is the Day program에 나온 regular personality들의 이마에  Biden보다 더 선명하게  ‘재의 십자가’가 보인다.

매년 재의 수요일 미사 예식에서 쓰이는 ‘재’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두들 안다. 작년 Palm Sunday에서 쓰이던 palm leaves를 신자들로부터 회수를 받아서 그것을 태워 만드는 것인데 오늘 이 Catholic TV program 에서 그 과정을 보여주었다.  거의 순식간에 재로 변한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 종려나무가지들’, 이런 상징적인 것에 예수 수난의 신학적 의미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지…

이렇게 해서 드디어 오늘부터 40일간 ‘사막의 여정’이 시작되는가? 그 첫날인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Lenten regulation 중에는 No Meat 조항밖에 없지만 그래도 Fast 조항은 어떨 것인가? 비록 ‘고기’는 안 먹었어도 절제, 단식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나이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오늘따라 더 배가 고픈 듯이 느껴졌으니… 심지어 다른 때보다 더 맛있게 식사를 한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From Guadalupe with a Miracle..

멕시코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집을 떠난 지 거의 일주일 만에 다시 느끼는 우리의 정든 아틀란타 새벽의 냄새와 촉감, 역시 이곳이 우리가 30년 이상 살아온 제2의 고향이 된 것인가… 싸늘하게 움츠리고 싶은 나의 모습을 다시 보는 연중 5주일 주일 아침… 솔직히 오늘은 주일 미사를 쉬고 싶었던 유혹이 어른거렸지만 역시 며칠 째 지켜 보는 연숙의 놀랍게 건강하고 기운찬 모습을 보며 두말없이 유혹을 접었다.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정말 그녀에게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허~ why, why not? why now, why not now?  그래, 무조건 감사를 드리고 싶은 오늘 주일미사, 가자, 가자, 가자… 나를 유혹하는 작은 악마를 밀쳐내며 나가자!

5일간의 압축된 성지순례 경험을 서서히 풀며, 정리를 해야 한다. 어떤 식, format으로  이번 성지순례를 정리할 것인가? 이 엄청난 의미의 여정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모든 것을 문자화 하지 않으면 큰 의미를 줄 수가 없다. 멋진 글일 필요는 없지만 정확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성공한다면 나는 5일 간의 여정을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역사적 사건으로 남길 수 있다. 어떻게? 역시 역시 과달루페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할 수밖에 없다.

이번 순례의 꽃은 역시 연숙에게 일어난 ‘작은 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과연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렵다.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을까?  나의 믿음이 이렇게 약한 것인지… 아직도 조심스럽게 결과를 더 두고 보는 나 자신이 가련하기만 하다.

성지순례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의 주일미사, 오랜만에 김 라파엘 보좌신부님이 집전을 하셨다. 혹시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이 오셨으면 조금 더 반가웠을 듯 했는데, 미사 후에 역시 구 신부님이 문에 서계셨다.  순례 내내 가까이서 함께한 이유인지, 오늘의 인사는 더 뜻있는 것이 되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또한 순례를 같이 했던 K 형제 부부도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는다. 이런 것들이 오늘은 왜 그렇게 반갑고 행복하던지…

미사 후에 오늘도 C베로니카 자매와 셋이서 Cafe 하얀풍차에서 심각하지만 여유 있는 영성적인 화제의 꽃을 피웠다. 물론 연숙의 ‘작은 기적’이 주제의 꽃이긴 했지만 그 이외에도 일반적인 성지순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화제들을 나누며 나의 머릿속은 내가 해결, 풀어야 할 ‘숙명의 과제’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낀다. 나의 여생에서 아마도 제일 힘든 과제,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것을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성모님에 나를 이끌고 가는 마지막 여정의 마지막 산봉우리라고 나는 느낀다.

올해 우리의 ‘큰 외출’은 이번 멕시코 과달루페 성지순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숙이는 아마도 자기 가족들이 걱정이 되는 모양으로, 한국여행을 갑자기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나는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내가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나 가족을 만나야 하는 것은 알지만, 어쩌면 그의 식구들을 찾는 것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나는 역시 도망, 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여생의 마지막 풀어야 할 과제일지도 모른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성모발현, Spain의 Garabandal 가라반달 성모발현에 대한 video를 두 개나 찾아서 download를 했다. 하나는 실화를 drama로 만든 영화, 다른 것은 documentary film인데 모두 quality가 최상급이어서 모처럼 이 ‘미지의 성모발현 사건’을 더 알 기회가 생겼다.

또 다른 것, Guadalupe documentary video를 발견했는데, 역시 아주 잘 제작한 것이어서 download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이 video를 보니 나오는 장면들 하나하나가 그렇게 가슴으로 다가올 수가 없었다. 그곳에 실제로 가 보아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현재 나의 가슴은 열릴 대로 열린 상태임을 나는 안다.

Family Memories 1988, Another Funeral Mass

우리 집 garage에 아직도 남아있는 새로니의 잡동사니들 거의 대부분 처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은 각종 paper, book 종류들, 대부분 학교시절의 notebook, painting등인데 이것이 제일 골치거리다. 버리기는 쉬운 것들이지만 아차~ 하면 후회가 되는 것들이 이런 ‘개인 기록’ 종류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은 버려야 하는 것임을 알지만 시간을 조금이라도 끌며 방관상태인데 그 중에서 오늘 우연히 찾은 것은 버리기가 아까운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분명히 후회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남겨두었던 각종 기록들이 남아있다면~ 이것은 거의 꿈같은 얘기지만.. 그래서 오늘 보는 새로니의 한글 숙제는 너무나 신기하다. 얘가 아틀란타 한국학교에 다니면서 쓴 것, 우리가족 사진과 자기의 글… 나중에 이것은 picture frame을 해서 새로니 생일선물로 주어도 되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오늘 조금 싸늘해진 날씨에 내가 입고 있는 스웨터가 바로 1988년경 찍은 이 사진 속에서 내가 입은 스웨터라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놀랐다. 아직도 이 스웨터는 ‘건강, 생생’하기 때문이다. 입은 사람의 모습만 변한 것… 아~ 연숙이도 참 환하게 밝은 모습, 그 자체였구나… Columbus, OhioMorse Road에 있었던 Kings Hill 아파트의 뒤쪽 모습, 내가 만들어 놓았던 새집 birdie house도 보이고.. 이것은 새로니의 5살 생일 그러니까 1988년 1월 5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아~ 세월이여, 추억이여~~

 

비가 오락가락 하던 오전 시간,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 적은 김 (소화) 데레사 자매의 연도, 장례미사엘 갔다.  지난 달에 이어 또 하나의 연령행사에 임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 고인의 건강에 문제가 없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선종한 것은 또 하나의 놀람이었다. 유해의 관이 덮여 있었던 것은 조금 아쉬운 것이었다.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끝맺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인이 현 레지오의 단장이어서, 역시 이번 장례식은 예상대로 ‘레지오 장葬’이었다.  우리의 레지오 시절에도  가끔 있었던 것으로 레지오 깃발들이 운구에 도열, 등장하는 것, 그리고 각종 레지오 기도, 단가… 아~ 정말 몇 년 만에 보게 되는 익숙한 광경들인가? 야릇한 향수마저 느껴지지만 그 만큼 갈등과 싸움을 한다. 우리도 저들과 함께… 하는 아쉬움과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찌꺼기처럼 남은 증오심 등등… 그 ‘문제의 인간’이 오늘 설쳐대는 모습은 다행히도 보이지 않고 대신 우리의 레지오 친구 격인 R 자매가 주관을 해서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예상보다 사람이 꽤 많았는데… 연도 때보다 미사 때 더욱 많았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평소 적지 않은 건강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활동이 꽤 활발했던 것. 한국(문인)화, 한인 어머니 회, 개인 business등등 아주 열정적으로 삶을 살던 자매님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남편인 S 형제님, 너무나 충격을 받았는지 힘이 없어 보였고, 조금 더 연로해 보이기도.. 자매님이 운전을 하며 살았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혼자서 사실지….   부부가 모두 레지오를 함께 했기에 우리와도 그 동안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워질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모두 성당 시니어 그룹 등대회에 가입을 해서 피크닉에서도 만나곤 했던 것들이 추억으로 남는다.

아드님이 며칠 전 선종직전에 한국에서 와서 임종을 지켰다고 했는데, 아주 활달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조사에서도 어머님 도움으로 신앙을 찾아 서울 용산 어느 본당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고 하며,어머니는 행복을 찾는 사람이었다고 추억을 하는데, 그의 얼굴에서 아쉬움과 슬픔의 모습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던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 자매님의 이력을 보니 서울 효창국민학교 출신으로 나왔는데, 나는 분명히 재동국민학교 출신으로 알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그러고 보니 전학을 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니까… 그러면 재동에서 효창으로 전학을 한 것인지.. 장례미사 후에 친교실에서 단체로 점심을 나누었는데 의외로 ‘고급 $20’ 일식 도시락이 풍성하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등대회 회원들도 전보다 더 많이 눈에 뜨였다. 이번으로 등대회 회원 장례미사가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임은, 역시 우리들의 나이 때문이 아닐지… 조금 외로워진다.

 

January Winter Blues…

오늘부터 Ozzie와 함께 있게 되었다. 원래는 내일 주일미사 후에 귀가하면서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내일 미사를 결하기로 해서 어쩔까 했는데 새로니가 오늘 우리 동네에 올 일이 있어서 아예 오늘 데리고 온 것이다. 내주 화요일 새로니는 새로 시작한 federal government job 의 연수차 out-of-town을 하기에 조금이라도 Richard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Ozzie를 우리에게 맡기는 것인데 사실 나도 정신이 혼란스러워 조금 부담을 느꼈지만 사실은 그것과 반대의 효과를 볼 듯하지 않을까… 이 녀석이 나를 정신적, 신체적으로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보기와 달리 매섭게 바람이 세차게 불며 40도에도 못 미치는 날씨, 녀석과 오랜 세월 걷던 같은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왜 그렇게 녀석이 그렇게도 반갑던지.. 지난 며칠 너무도 정신적으로 평화를 잃고 살아서 그런가? 구세주를 만난 듯한 기분도 없지 않았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감정은 100% 통하니…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은 희망도 생긴다. 또한 매일 매일 같이 걷게 될 것이니 최소한 나에게 적지 않은 활력소를 줄 것 같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을 보러’ 매섭게 추운 깜깜한 새벽의 backyard로 둘이 뛰어나가는 것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냐?

어제는 정말 하늘조차 암울한 그런 날씨였고, 오늘은 비록 해는 솟겠지만 기온은 전형적 겨울이다. 옷들도 모두 제일 두껍게 끼어 입고, 특히 양말은 두 겹으로 무장을 하고, space heater는 ‘강 强’으로 올리고, 모든 blind들은 깜깜하게 닫히고… 아~ 그렇구나, 이것이 이곳의 정월의 모습이었지…

어제 아침에 다시 ‘돌아온 어지럼증’에 놀란 결과 이제는 약간 이런 일들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그래, 아주 큰 일로 발전만 안 한다면 우선은 침착하게 이 작은 ‘수난의 시간’을 견디면 될 것 아닌가? 이것은 연숙의 말이었다.  문제는, 아무도 아무도 심지어 의료진 조차도 자신 있게 예측할 자신이 없어 보인다는 것, 그러니 모르는 것들은 결국 기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래도 행운이다, 막강한 기도의 신비에 의지할 수 있으니까…

어제 그래서 문득  서울에 사는 조시몬 형제가 생각이 나서 카톡으로 ‘조용한 기도’를 부탁했고 곧바로 답을 얻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픈 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베로니카라고 정정을 해 주었다. 이 친구도 text를 성급하게 읽는 모양…  형님이 얼마 전stroke로 고생을 했지만 현재는 정상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위안과 힘을 얻는다. 고마운 사람이 바로 이런 영혼들이다.

성당에서 선종기도 요청? 허~ 누군가? 아~ 재동 2년 후배,  소화 데레사? 맙소사! 갑자기 새해가 되자마자 이런 일이? 한편으론 크게 놀랄 일만은 아니다. 그 자매님 긴 세월, 몸에 각종 병을 지니고 살았으니까…  그 남편 S 형제님이 옆에서 든든히 보살피며 살았는데… 결국은… 아~ 재동학교 추억의 자매님, 편안한 천국을 향한 여행이 되시길 바라며 선종기도를 바칩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이 자매님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The Epiphany of the Lord, 2023

주님 공현公現 대축일 The Epiphany of the Lord.. 동방박사~ 아~ 이제는 성탄의 기분, 느낌도 다른 해보다 더 빨리 사라진 듯 한데… 아직도 동방박사라고… 오늘을 기해서 성탄장식을 내려 놓자고 했지만 사실 나의 머리 속에 이것들은 이미 멀리 사라진 듯하니.. 어떻게 이런 ‘해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타락’을 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나의 기우, 지나친 걱정이기를 바라고 바라지만… 싫은 느낌 뿐인 주일을 맞는 심정이다…

오늘 보는 성당 제대 밑의 성탄구유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고 찬란하다. 특히 옆에 앉아서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오늘의 ‘주님공현 대축일’ 미사와 잘 어울린다. 아마도 이런 성탄의 모습들도 오늘까지 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11월 말 대림절 시작이 되어야 다시 볼 수 있을 것… 이렇게 가톨릭 전례 절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년이 흐르고, 인생도 나이도 같이 흐르고…

오늘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의 강론, 동방박사가 ‘동쪽’에서 온 사실에 주목하며 묵상한 것, 성경에 등장하는 각종 ‘동쪽’, ‘동방’을 연결한 것이 이채롭다. 

오늘부터 도라빌 순교자 본당에서는 거의 3년 간 사라졌던 ‘구역 점심 봉사’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격주로 시작을 한다고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정든 친교실 table에 편하게 앉아서 ‘콩나물 국밥, 이른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과 마주 앉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니.. 역시 신부님이라서 그런가, 세대 차이가 크게 있어도 역시 신부는 역시 신부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Doraville] H-mart에 잠깐 드렸다. 예의 grocery shopping을 한 후 오늘은 특별히 그곳에 있는 ‘빵집’ [이름이 무엇이더라… French인데… 아하! Tous Les Jours! 이것이 무슨 뜻인가?] 에 들러서 크림빵을 사왔다. 그 동안 ‘bakery 하얀풍차’에 갈 기회가 없어져서 [유럽, 한국식] 빵이 조금 그리운 것을 숨길 수가 없었는지…

이른 시간이라 한산한 food court, 예전 특히 Pandemic이전에는 이곳에서 자주 음식을 사먹기도 했었는데.. 특히 교우 자매가 운영하는 대장금, 그리고 중식점, 그 옆의 ‘한국식 hotdog, 명랑핫도그’ 등이 일요일 손님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기나긴 Pandemic 3년간의 공백을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느낌을 준다.

오늘 이곳에서 ‘가끔 또순이’ 연숙이 stick coffee를 부지런히 찾는다. 알고 보니 물론 ‘세일’ 품목, 그것도 원래 가격이 거의 $25이나 되는 것을 $10 sale로 사게 된 Maxim White Gold란 것, 집에 와서 같이 산 크림빵과 함께 마셔보니 비싼 만큼 맛이 좋았다. 하지만 이 stick coffee는 맛보다는 편리함에 그 point가 있는 것이 아닐지… 이 편리함에 ‘중독’이 될 수가 있는 것, 항상 조심해야 한다.

예정대로 오늘 오후에 집에 있던 각종 성탄 장식들을 retire했다. 올해의 성탄은 예외적으로,  ‘성스럽지 못하게’ 보낸 듯해서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 미안하기만 하다. 올해의 성탄은 조금 다르게 맞이하면 좋을 듯. 그러니까 성탄장식을 예전처럼 아주 가능하면 늦게 하고 검소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전통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이번 성탄은 솔직히 원래 의도와는 거의 반대로 아주 ‘방탕하고, 세속적으로’ 보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뜻밖에 나라니 식구의 이름으로 ‘연하장’이 배달되었다. 전에 언급을 했던가.. Pro service로 가족 card를 만든다는 것. 바로 그것이 온 것이다.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둘째 아기를 임신을 하고 직장의 각종 산더미 같은 일들로 피곤해 보이는 나라니와 사랑하는 가족, Luke, Ronan 그리고 멋진 개 犬公 Senator 의 모습을 보니, 사진처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데…

 

오늘 우연히 마주친 흑백 사진들, 당시 추억의 노래와 함께 동영상화 하고 나니..  아~ 그립다, 그립다, 그때가 그립다… 연세대 시절 1969년의 얼굴들… 아마도 1969년 이른 봄이 아니었을까? 이 ‘괴상한 그룹’이 어떻게 비원 안쪽으로 놀러 갔을까, 아물거리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의 얼굴들은 어제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선명하다. 중앙고 선배 형들: 안낙영, 오성준, 최종인 형들로부터, 중앙고 동창과 친구들: 양건주, 박창희, 김진환(일찍이 고인)… 살아 생전에 볼 수 있거나 소식을 알 수 있을는지…

 

Basilica, Basilica…

어제 우리들에게 온 ‘과달루페 성지순례 자료’를 처음으로 자세히 보게 되었다. 일단 몇 개월 전에 보긴 했지만 이것은 최종 version이라서 조금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끼며 다시 본다. 우선 비행기 좌석을 본다. 이것만으로 나는 머리 속이 아득해짐을 느낀다. 도대체 이것이 몇 년 만인가? 몇 년? 이곳에 쓰는 것조차 꺼려지는 것은 분명히 나에게는 유쾌하지 못한 trauma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리적, 공간적 감각을 느끼고 싶어서 결국 Google Map으로 하늘에서 Mexico City를 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남쪽의 위치, 어찌 이런 것들을 내가 알 수가 있을까, 의도적으로 안 보고 살았던 장구한 세월이 아니었던가? 처음으로 보는 그곳의 모습.. 비교적 낮은 건물들, 공항에서 아주 멀지 않은 곳에 그것이 보였다! 우선 Basilica (of Our Lady of Guadalupe)는 찾았는데… 그 발현지 Tepeyac 언덕이라는 곳은 분명치 않다. 같은 이름이 이곳 저곳에 보여서 어떤 곳이 진짜 Juan Diego의 자리일까… 아니다, 천천히 관상을 하며 시간을 끌며 보기로 하자… 시간이 많으니까… 이것이 올해 첫 우리의 가족 사업이 될 것이다. 천천히 감상을 하고 싶다.

최근에 들어서 조금씩 guitar로 눈과 손가락이 자주 간다. 조금씩 아직도 귀에 익숙했던 곡들을 부르고 치고도 한다. 하지만 2016년의 기타 그룹 시절에 비하면 커다란 차이가 있다. 코드 자체는 생각이 아직도 잘 나지만 각 string의 위치를 아직도 더듬기도 하고, 리듬도 전처럼 유연하지 않고, 제일 불만은 기타의 음향이라고 할까… 그렇게 둔탁할 수가 없으니~~ 하지만 조금씩 치기 시작하면 내가 그린 악보에 있던 곡들 정도는 예전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은 있다. 희망은, 매일 매일 조금씩 ‘회상하며 즐기는’ 그런 수준과 습관으로의 회복이다.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내일부터 해야 할 것이 있다. 앞으로 가급적 세속 뉴스, 그 중에서도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예전의 수준으로 멀어지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물론 가급적인 것이다. 되도록 이제는 정치 쪽은 관심을 안 두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 현재 나는 이 쪽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 있고, 남들처럼 혈압과 열을 올리는 상태가 되어 있음을 알기에 여기서 결단적으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에게 전혀 도움도 되지 않고, 시간적으로 낭비, 필요이상으로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고… 신앙적으로도 이것은 문제가 많은 것이다.

Year of Rabbit, Mary the Holy Mother of God

2023년, 계묘년 (토끼해).. 가 밝았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를 재동 국민학교 시절 회초리 앞에서 달달 외웠던 것이 지금도 100% 기억이 된 덕분에 최소한 매년 동물들의 모습은 예측할 수가 있었다. 작년이 ‘인, 호랑이’였으니 분명 올해는 ‘묘, 토끼’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가 있으니 ‘암기식 교육’도 필요하구나. 호랑이가 토끼로 바뀐 것, 글쎄 분명히 올해가 조금은 덜 사납다면.. (특히 정치적으로)
갈수록 가까워지는 고국, 모국과의 심리적 거리 때문일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의 정취’가 흠뻑 담긴 각종 추억의 환상적 새해인사, 연하장들이 넘쳐나고, 특히 이제는 ‘한국어 권’에서 필수도구가 된 카카오톡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볼 수가 있으니… 50+ 여 년 전 이곳에 살던 우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역사물’에서나 볼 수가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격세지감’의 정수가 아닐까.

새해 첫날, 오늘이 2023년이라는 사실 조차 깜빡 깜빡 잊으며 살고 있었다.  아마도 어제 밤 3-2-1 HAPPY NEW YEAR!의 Time Square 를 통해서 본 세상모습을 눈을 비비며 지켜보지 못했기에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간 세월 동안 우리는 전력을 다해서 이 연말/새해 축제를 구경, 참여를 했지만 이제는 조금 피곤한 것이다. 꼭 해야만 하나~ 아니면 이제 진정으로 우리는 이런 것에서 멀어지고 있는가, 조금은 겁도 들고 슬퍼지기도 한다.

1월의 첫날, 정월 초하루는 ‘양력 설날’이기 전에 우리의 가톨릭 교회에는 다른 뜻 깊은 날이고, 의무 대축일이기도 하다. 개신교에서 ‘진저리 치는’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이 바로 ‘당신들이 그렇게도 믿는’ 예수님을 오로지 ‘순명의 정신으로’ 낳고 기르고 십자가 사건을 몸소 경험한 ‘하느님의 어머님’을 기리는 날인 것이다.

이런 중요한 날, 우리에게는 ‘신앙의 고향’인 도라빌 순교자 성당엘 2주 만에 가는 날이 되었고, 우리들 몸이 감기로부터 ‘완전히’ 회복이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평소보다 성당 아침미사에 많은 교우들이 보였고, 미사 후에는 Pandemic 이후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친교실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또한 맛깔 나는 따끈한 떡국까지 준비를 해 놓아서 오늘은 하얀풍차 cafe에 가는 대신 이곳에서 색다른 전통적 친교를 하게 되었다. 정말 모처럼 오랜만에 보는 교우들… 아~ 옛날 (3년이 지난)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앞으로는 격주로 구역점심식사를 준비한다고 하니 우리의 이제까지의 아침미사 후의 모습도 따라서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작은 변화는 나중에 어떻게 ‘진화’를 하게 될지 흥미롭기도 하다.

이렇게 한 장소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다시 보고 느끼니 조금은 나의 ‘사람에 대한 갈망’이 충족이 되는지 모른다. 확실히 Pandemic ‘치하’의 인간 고립 경험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인간본성 진리를 재확인 해 준 셈이다.
오늘 성당 친교실에 S형제의 모습이 보여서 잠깐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놀란 사실은 그와 S자매의 관계가 눈에 뜨이게 달라진 것이다. 이것은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는 눈빛조차 전과 다르게 보인 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어서, 연숙도 같이 느낀 것이다. 또한 ‘둘이 잘 지낸다’라는 이제까지 듣기 힘들었던 말도 했을 정도니…  그러니까 그 동안 둘 사이의 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실들이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했다면 과언일지…

 

Collage 1968~1970, Penance, Harmony Beckoning…

1968/70 년경의 사진들의 collage, 오늘도 추억의 영상을 담고 싶어서 photo collage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진정한 목표는 YouTube video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utility를 찾는 것이었다.  전에 손쉽게 쓰던 Microsoft Photo Story 3 이외에 오늘은 2012년 마지막으로 나온 그 전통적 classic video editor였던 Microsoft Movie Maker 2012를 찾아서 install을 해 놓았다. 나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들이 이곳으로 모여 남을 수 있으면… 이것은 핵전쟁이 나지 않는 한, 어느 곳에건 남아 있을 것이다.
연호회 혼성그룹친구들이 함께 모였던 관악산, 연세대 과 친구들이 모인 덕수궁, 원서동 삼총사가 함께 등산을 했던 지리산, 남녀 4명이 함께 갔던 소백산 연화봉…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도 이런 ‘흑백 추억의 극치’는 지금은 맛보기 힘들 것 같구나…

온통 나의 머리 속은 모레로 다가온 수요일 오후의 판공성사로 불편하다. 마지막 판공성사를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가 되었으니… 세월이 갈수록 이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심지어 도망가고 싶은 것, 나 자신도 느낌이 좋지 않다. 항상 뒤끝이 묵직~ 한 것이다. 2014년 전후로 내가 이것에 엄청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은 아직도 교훈적인 기억으로 남기에 나는 이번에 다시 그러한 시도를 하고 싶은데.. 과연 이번에는 어떤 사탄이 나를 방해할 것인지 궁금하다.

오늘 시간이 났을 때 성사 준비작업에 들어갔는데… 마지막으로 언제 성사를 보았는지조차 확실치 않으니… 하지만 각종 기록을 거의 다 찾아서, 작년 3월 부활판공을 이영석 요한 신부님께 했던 것이 확인 되었다. 기록을 보니 거의 매년 나는 판공성사를 보았지만 2020년은 Pandemic으로 할 수가 없었다. 다음 일은, 작년 고해 이후 내가 어떤 잘못,  소죄를 지었는지 찾아내서 정리를 해야만 한다. 이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일기와 일지에서 유추할 수 있고,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리하고 글로 써서 고해실에서 고해 신부님과 마주하면~~  2022년은 무사히, 개운하게 넘어가는가? 왜 고해성사를 하는가? 이재욱 신부님 말씀대로 ‘묵은 때를 벗기는’ 것, 그 동안 몸에 때가 많이 낀 것을 목욕하는 기분으로 벗기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다행히 대죄에 해당하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 지독한 때’는 없으니까…

남성 화음의 유혹:  얼마 전인가, 주일 아침미사에 다시 ‘생음악’ 남성 중창단이 등장을 해서 이제야 Pandemic이 지나간 느낌을 보여주며, 덕분에 아주 살아있는 신선한 미사가 되었다. C 베로니카 자매에게 들어보니 그 지난 주에는 4명 남성 이었다는데 2명이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두 명의 형제님을 보니, 둘 다 낯설지 않았는데 한 명은 독서 전례도 하고 하얀풍차 bakery에서도 자주 보았던 부부의 남편이고 다른 분은 조금은 나이가 있는 분이었다. 둘 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화음도 적당해서 듣기가 좋았다.그런데 주보에 성가대원을 모집한다고 난 것을 보았는데, 갑자기 연숙이 나보고 해보라고 뜬금없이 운을 뗀다. 이런 것 잊고 산지가 까마득한 세월[40+년]이었는데, 솔직히 놀란 것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라는 나의 생각이었는데… 급기야는 연숙이 그들에게 나의 얘기를 한 모양으로 나보고 아침 7시 45분 성가대실로 오라는 것이니…  우선 거절을 해야 하는데.. 미사에 집중을 못하는 것도 그렇고, 다시 교우들과 마주보며 노래를 하는  것이 자신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얘기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를 않았으니.. 오묘한 것 아닌가?

오늘 YouTube에서 한국 수원교구의 주교좌 성당에서 연말 프로그램으로 그 지역(대교구) 신부들로 구성된 ’30년 전통 갓등 OB’ 중창/합창단의 공연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으니.. 이것이 우연일지, 아니면 무엇인가? 갑자기 우리 성당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다, 연숙이 말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성당 봉사에 이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으니… 그렇다,  급속도로 공동체 내에서 노년으로 밀려나는 느낌도 줄이고 봉사도 할 수 있으니, 절대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는 여기에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모든 것을 맡길 수 밖에 없다는 결론…

오늘도 책, Those Who Saw HerGuadalupe story를 (쓰며) 읽는다. 이 story는 물론 거의 전체를 이미 읽어서 아는 것이지만 이렇게 다시 읽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다가올 1월 말 Mexico 성지 순례에 서서히 준비를 시키려는 것이다. 천천히 가급적 가벼운 묵상을 곁들이며 계속 계속 이런 과정을 밟고 싶다. 우연히 나의 등 뒤에 ‘숨어 계셨던’ 이 Guadalupe Juan Diego tilma상본, 그것을 아예 나의 desk 앞으로 옮겨 놓았다. 십자고상과 함께 나를 그곳으로 무사히 인도해 주소서~~

<‘시편으로 바치는 기도’  가장 완전한 기도> 토마스 머튼/오수무 옮김, 100 쪽도 되지 않는 성바오로 수도회 수도자들이 홍보수단으로 제작한 소책자, 발 밑에 있는 책 더미 속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그런데 이것을 토마스 머턴으로 음역을 했는데, 사실 이것은 머튼이 더 널리 통용되는 것이 아닌지.. 머턴도 보았고, 머톤도 보았는데 머튼이 제일 익숙한 표현일 듯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책의 제목의 주장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시편이 가장 완전한 기도… 그것도 그 유명한 영성가 토마스 머튼의 의견이고 주장인 것이다. 2006년 성탄 무렵 순교자 성당에서 최성영 보좌신부님 지도로 시편 전체를 공부한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나의 수준으로 ‘시편’이란 말 조차 고귀하고 별처럼 멀게 느껴지는 때였는데, 이제는 수많은 연도 등을 경험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솔직히 이것이 완전한 기도라는 것은 아직도 생소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성탄 무렵에 이 책이 나에게 다가온 것, 읽기 시작하니 거의 모든 머튼의 ‘주장’이 손쉽게 머리에 들어온다. 올 성탄의 선물이라면 어떨까?

지난 2주 이상 나는[할머니 고양이]  Izzie와 ‘냉전’ 중이다. 하지만,  ‘미안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라고 계속 나를 세뇌시키며 견디고 있다. 2주 이전에 이 녀석에게 피가 조금 나올 정도로 손을 물린 이후에 크게 결심을 한 것, 일단 이 녀석과 거리를 두며 살아야겠다, 나를 조금은 무서워하게 해야겠다, 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곧바로 [숙적 개] Ozzie가 집에 와서 자연스레 거리를 두며 살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문제는 Ozzie가 떠나면서부터다. 이제는 우리 둘만의 시간 뿐인데… 하지만 현재까지 나는 굳을 결심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나의 근처에 못 오게 하는’  강 훈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나도 모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가슴 속으로 ‘미안해, 미안해’ 일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 이런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참, 동물친구들과 살기 쉽지 않구나…

기타, 통기타~  guitar, my guitar~~  몇 년, 특히 Pandemic을 포함한 거의 4~5년의 세월 동안 거의 이것을 잊고 살았다. 2016년 성당에서 6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 모임을 하며 몇 개월 본격적으로 가까이 했던 것과 2018년경 구역모임에서 몇 번 가까이 했던 것이 그야말로  마지막이 된 것이다. 당시 손끝에는 굳은 살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현재는 거의 사라진 터 [흔적만 겨우].. 다행히 흔한 chord 를 잡는 것은 그대로인데 각종 노래들의 chord progression은 많이도 잊어버렸다. 나이 탓, 세월 탓일 거다.  그래도 아직 손가락의 힘은 크게 빠지지 않은 것에 진실로 감사를 한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그때’가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Fourth Candle, Early Seventies, Deep Freeze

첫 대림 초가 켜지던 때가 3주 전, 오늘 마지막 초가 ‘귀여운 어린이 복사’에 의해서 점화되는 것을 본다. 아~ 이제 기다리던 때가 일주일 남았구나.  특별히 대림 시기 동안 준비하며 산 듯하지도 않고 특별한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영적으로 게으르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시기에 조금은 이르지만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시작했지 않았던가? 마지막 큰 일은 역시 판공성사, 고백성사인데 이번 수요일에 특별 판공성사가 준비되어서 그때 가서 하면 될 터인데, 근래에 이 ‘어려운 성사’에 거의 신경과 시간을 쓰지 못해서 솔직히 미리부터 겁이 난다.  유혹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C베로니카, 프카 자매까지 4명이 함께 판공성사엘 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은 한마디로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싸움’을 목격하며 간신히 일어났다. 갑자기 얼음장 같은 냉기가 이 지역으로 몰려온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인지, 오늘 아침 주일미사 차 외출하는 것,  갈까 말까, 끝까지 미루며 갖가지 유혹과 치열한 전쟁을 버린 것이다.  99% 포기를 해서 ‘오늘은 가기 싫다’ 로 정하는 순간, 1%의 기적의 은총이 나를 평소보다 30분 늦게나마 일어나게 했다.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왜 이런 유혹이 나에게 온 것일까? 영성적, 교리적으로는 분명히 ‘사탄’의 영향, 아니 아예 그가 나를 정복한 듯한 기세가 아니었을까? 어떤 종류의 유혹인가?  성당 미사엘 가서 보게 될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싫어진’ 듯한 느낌, 이것은 이성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고,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있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이 이런 생각을 부축인 것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1% 기적의 은총으로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일미사의 모든 일정을 가볍고 즐겁게 마친 것인데, 나중에 그 ‘잠재의식’이란 것을 더 깊이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줄줄이’ 생각들이 난다. 특히 최소한 지난 5년 동안 내가 성당공동체에서 겪었던 적지 않은 ‘인간에 의한 고통’들이 깊숙이 숨어있다가 일시에 살아나온 것인데, 그런 것들을 영원히 잠재울 수가 없기에 잊으려 애를 썼지만 오늘처럼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유혹이 올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로 영적상담을 사제들과 하면 분명히 ‘잊거나 용서하라’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나에게는 ‘잊는 것’이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오늘 미사에 뒷자리 고정석 교우 마리안나 자매가 처음에 안 보여서 궁금했는데, 조금 늦게 와서 자리를 뺏긴 것으로 그 옆자리에 모습이 보였다. 먼저 반갑게 와서 손까지 잡고 인사를 한다. 성탄 때는 알라바마 주에 간다고, 미리 인사까지… 그녀의 손은 연숙이처럼 따뜻했지만,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 자매의 조금 어두운 모습은 여전했다.

오늘 유혹을 완전히 누르고  미사참례에 성공한 것에 대한 은총인가, 오늘따라 오랜만에 보는 교우들이 미사 후에 눈에 뜨였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마디로 한 사람 한 사람들로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에너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online이나 virtual한 것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눈과 손이 닿는 이런 관계는 현재 우리와 같은 senior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듯하다. 오늘도 미사 후에 관심은 역시 아가다 자매의 모습이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아주 활달하고 건강했고, 하얀풍차의 모임도 C베로니카 자매의 참석으로 비교적 유쾌한 자리가 되었다.

오늘 오후는 이러한 ‘유혹에 대한 승리’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편히 쉬는 시간들이 되었다. 우연히 듣게 된 녹음된 나의 추억의 옛 노래, 오솔길을 다시 들으며 그 곡이 유행하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마도 1970대 초였을 것이어서 그 당시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옛 사진을 거의 안보고 살 정도로 바쁘게 지냈는데 오늘은 예외가 된 것이다. 대학 4학년 시절부터 미국에 오기 전까지의 ‘주옥 같은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사진들을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 현재 병중에 있는 친구들도 보인다. 가족들, 그리고 한때 깊이 사귀었던 여성들도 있는데, 솔직히 그 모습들을 보니 당황하고 거의 감추고 싶은 유혹까지 드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나의 심정일까… 그런 모든 감정, 느낌들이 당시의 hit folk song인 ‘오솔길’에 스며들어 있다. 이 recording과 나란히 어울리는 추억의 사진 collage 를 급하게 만들어서 ‘블로그’에 남기고 싶다.

이번 주의 특별 관심DEEP FREEZE란 것이 되고 있다. 특히 성탄 전후의 기온이 장난이 아니게 10~20도… 아마도 10여 년 만의 강추위가 아닐까? 기억에 2014년 11월 중에  polar vortex란 이름으로 정말 추웠던 때가 있었다. 그 이후로는 12월은 대충 견딜만한 따뜻한 때였는데…  조금 덜 춥고 대신 눈이라도 오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  이번 주에는 내일, 모레 로난 네가 오고, 수요일은 판공성사, 목요일은 순병원 등등이 있어서 더욱 날씨에 관심이 간다. 아차 하면 했던 성탄 직전의 눈발 예보는 이제 사라진 것이라, 그저 춥기만 한 모양이다. 그래~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Miraculous Tilma, Guadalupe

오늘도 Guadalupe 를 향한 여정의 첫걸음을 천천히 계속 걷고 있다. Youtube에서 보았던 ‘성모님의 눈 속에 보이는 영상물’들이 포함된 것, Wikipedia의 길고 긴 백과사전적인 사실적 고찰 등등, 그리고 이곳에서 tilma에 새겨진 영상도 download해 두었다. 1988년 경,  Madison [Wisconsin] 에 살 때 김희선 방문사제신부님이 Mexico 성지순례에서 사오셔서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신 커다란 두루마리 발현 사진이 있었는데 하도 오래되어서 쓸 수가 없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우리가 순례를 가게 되면 조금 비싸더라도 질이 좋은 상본을 사와서 우리 집과, 가까운 주위에 나누어 주면 어떤가… 이런 것은 생각만 해도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Luisa Piccarreta의 ‘수난의 시간들’,  묵상 기도 벌써 13시, 13일째를 맞는다. 온통 ‘예수의 십자가 수난’의 고통, 고문의 연속인 이 수난의 여정을 매일 아침 꼬박꼬박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물론 괴롭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 묵상기도문의 십자가 고통에 대한 너무나 자세한 묘사는 읽는 것만으로도 가히 고문에 속한다. Mel Gibson의 Passion 이 혹시 이것에서 idea를 얻은 것이 아닌지 궁금할 정도다. 나는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희망의 결여’된 삶과 이 십자가 고통의 여정을 비교하며 예수님의 도움을 강하게, 열렬하게 간구하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 저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입니다…

샤브샤브… 이름도 해괴하게 들리는 이것, 일본아해들이 즐겨먹는 전골 비슷한 것, 우리도 가끔  점심으로 먹게 되었는데, 그것을 끓이는 electric cooker가 문제가 있어서 쓸 때마다 신경을 돋군다. 그것 외에는 먹는 것 자체는 문제도 없고, 육식을 거의 안하고 [고기 값, 장난이 아니다] 살기에 이런 요리는 거의 특별식에 속한다. 이번에는 electric이 아니고 open flame이 보이는 portable gas cooker를 쓰기에 전처럼 ‘끓나 안 끓나’ 하는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이 음식을 자세히 보니 한마디로 건강식에 속한다.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거의 균형식인 것이다. 고기 값만 너무 오르지 않으면 조금 더 자주 즐겨도 될 듯한데… 

 

Those Who Saw Her – Guadalupe

Those Who Saw Her, Catherine M. Odell… 2012년 한창 불타오르기 시작하던 신앙의 르네상스를 맞을 당시에 샀던 책…  그 중에서 현재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이 책은 가톨릭 교회의 공인을 받은 유명한 발현 스토리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 관심사는 물론 Guadalupe 성모님 발현에 대한 것이다. 내년 달력에서 그것도 1월 말을 유심히 보며 예정된 Guadalupe 성지순례의 모습을 예상하며 상상을 한다. 과연 우리가 그곳, 인디언 모습으로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원주민 성 Juan Diego 앞에 나타나신 현장 Tepeyac 언덕엘 가볼 것인가? 예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각종 성모발현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읽고 보았지만 지금부터는 사실 Guadalupe에 관한 것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어떻게 이번 성지 순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지금부터 서서히 흥분이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이 신비중의 신비,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에 대해서 공부하고 묵상을 하며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The Apparitions at Guadalupe, Mexico, 1531

 

Excerpt from Chapter 4,  ‘Those Who Saw Her

 

For fifty-seven years, Juan Diego had lived near the shore of Lake Texcoco in a village hugging Tlateloco, the Aztec capital. As he walked toward that city on a chilly morning in 1531, his thoughts returned to the years of Aztec pagan rites and despicable human sacrifice. Later, the Spanish conquistadors had overwhelmed the Aztec chieftains, who had ruthlessly ruled the Indian tribes. For Juan and fifteen million Indians, a new time and spirit then began in his homeland.

In Juan’s own mind, only the last six of his years had been truly joyful. In 1525, he and his wife, Maria Lucia, had been baptized as Christians Juan, a farm worker and mat maker, had given up his Aztec name – Cuauhtlatoatzin, a word that meant “eagle that talks.” On most days, well before dawn, Juan was somewhere on this road, headed to or from Mass. His village was called Tolpetlac, near Cuauhtitlan. This day, December 9, 1531, was a Saturday, a day on which a special Mass was said in honor of the Virgin Mary.

For some time, his early morning walks had been solitary as he crossed the hill of Tepeyac and the Tepeyac causeway to Tlatelolco, the future Mexico City. Juan’s wife had died. There was only his uncle, Juan Bernardino. Juan Diego thought of his dead Maria Lucia many times as he made his way. There had been no children, and she had been precious to him.

As Juan approached the crest of Tepeyac Hill, he saw a cloud encircled with a rainbow of colors. Then he heard strange music coming from the hill as well. Could it be from some sort of rare bird? He wondered and stared up at the hill with the sun now rising behind it. A woman’s voice was calling above the music. He was fascinated but confused.

“Juanito Juan Dieguito…” the voice came, urging him. Since it seemed to be coming from behind the top of the hill, he ascended to the crest to look. A young woman, strikingly beautiful, stood there, beckoning him. She radiated such light and joy that Juan Diego could think of nothing more to do than drop to his knees and smile at her.

Everything around her seemed to catch the sweet fire she glowed with. The leaves of the plants surrounding her on the hill were aglow; the branches of the trees and bushes shone like polished gold. Around the whole hill, a rainbow of multicolored light seemed to have descended.

“Juanito [Little John], my sweet child, where are you going?” the woman asked him in Nahuatl, his own tongue.

“My Lady and my child,” he replied, in an Indian idiom of endearment, “I am on my way to the church at Tlatelolco to hear Mass.”

Then, with no further introduction, the shining young woman spoke very seriously and yet lovingly to Juan Diego. He listened with intensity born of instant devotion. The woman was so beautiful, so gracious. He could not ignore any request from her:

You must know and be very certain in your heart, my son, that I am truly the perpetual and perfect Virgin Mary, holy Mother of the True God through whom everything lives, the Creator and Master of Heaven and Earth.

I wish and intensely desire that in this place my sanctuary be erected so that in it I may show and make known and give all my love, my compassion, my help, and my protection to the people. I am your merciful Mother, the Mother of all of you who live united in this land, and of all mankind, of all those who love me, of those who cry to me, of those who seek me, of those who have confidence in me. Here I will hear their weeping, and sorrow, and will remedy and alleviate their suffering, necessities, and misfortunes.

And so that my intentions may be made known, you must go to the house of the bishop of Mexico and tell him that I sent you and that it is my desire to have a sanctuary built here.

Immaculate Conception, Warnock Day After

12월 8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다. 올해 미국 가톨릭 교회는 이날을 ‘의무 대축일’로 지내기에 아침 9시 미사에는 평소보다 많은 ‘양심적인 신자’들이 보였다. 한국 본당 신자들은 사실 ‘의무~’ 라는 표현에 두드러기가 돋는지 별로 반응이 없지만 미국에서 자라난 신자들은 ‘의무’라는 것을 알면 기어코 미사 참례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런 것에 강한 인상을 받고 있다.

파란 옷을 입고 프랑스 루르드에서 벨라뎃다 (나중에 성녀) 소녀에게 1858년에 발현하신 이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이란 설명, 호칭이 꼭 붙는다.  그 해 2월11일부터 7월 16일까지 총 18번 발현을 하셨는데, 그 중에서 8월 25일 16번째 발현 당시, 성모님은 자신이 ‘원죄 없는 잉태’라고 말씀을 하신 것인데, 이것으로 이 발현은 교회의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 표현은 1854년에 이미 교황 비오 9세에 의해서 천주교 교의의 하나로 선포된 바가 있었다.

성모 발현 중에서 역사적으로도 제일 큰 중요성을 지닌 이곳 Lourdes 루르드는 지금도 ‘교회의 승인 하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난치병 순례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곳 Lourdes에 못 가보았지만 아마도 내년 1월 말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지순례를 시작으로 이곳도 가까운 시일 내에 가보게 될 것이라는 ‘느껴지는 은총의 예감’을 가진다. 이런 것들은 솔직히 의도나 희망 뿐만 아니라 extra calling이 필요하다고 들었기에, 간절한 기도 없이는 힘들 것 같지 않을까?

 

Thank You Very Much, Mr. Warnock! 나답지 않게 오늘 거의 하루 종일 관심과 초점은 Georgia runoff election 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결과가 아주 좋은 뉴스이기에 그런 것이고,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도 하루 종일 완전히 news로부터 눈과 귀를 막고 지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Warnock의 승리보다는 그 결과로 DONALD ‘개XX’ 가 ‘처참히’ 완패를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개XX’가 ‘개인적으로 뽑고, 후원했던’ 각종 idiots들이 완전히 떨어졌다는 그 사실을 나는 하루 종일 만끽하고 싶었던 셈이다.  이로써 올해 mid-term election은 내가 원하고 바랐던 대로 끝을 맺게 되었다.  다음의 도전은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조금이라도 도전하는 인간들, 아직도 우글우글~ 한 사실, 그것이 최대의 도전인 것이다.

 

Second Sunday of Advent

대림 2주일 시작, 지난 주에 참례를 못했던 주일 아침미사가 다시 재개되었다. 오늘은 집에서 나올 때 우연히 나의 손에 잡힌 책 Robert Lanza의  ‘BIOCENTRISM‘, 그것을 오늘 보게 될 C 베로니카 자매의 남편에게 빌려주려는 순진한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 남편 형제가  원서, 그러니까 ‘영어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동기는 충분했다. 우연히 이 책으로 그의 worldview가 바뀔지 누가 알리오~ 너무나 나의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역쉬~’  그 자매가 오늘 coffee 모임에 참석을 못하게 되어서 간단하게 나의 소박한 시도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나의 동갑내기,  ‘좌충우돌 형’ 프카 자매는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 레지오 연총으로 교중미사에 오게 되어서 못 보고… 이런 것들이 조금씩 나의 하루를 조금 쓸쓸하고 외롭게까지 느끼게 하는 이유인지도…

그래도 밝은 소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랜 ‘레지오친구’ 아가다 자매의 밝은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자매의 상태가 조금 불안정하고 굴곡이 있음은 알지만 대체적으로 우려한 만큼 심각한 것이 아님을 오늘도 ‘아차!’ 하고 깨닫게 되니..  이번에도 역시 안나 자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인 것에 문제가 있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르고 정확하지 않은 것인지…

Ozzie가 건너편 방에서 잔다는 사실을 잠을 자면서도 의식했던 모양, 새벽에 일어나며 녀석의 동정을 살핀다. 전처럼 문을 열 때 크게 뛰는 대신에 조용히 자기의 bed에서 걸어 나온다. 내가 덜 반가운가~ 그것보다는 아마도 우리 집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그럴 것이라 나는 상상한다.

오늘 모처럼 Ozzie와 거의 full course 산책을 하게 되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오늘 돌아본 우리 동네의 모습은 완전히 늦가을의 모습, 금잔디로 완전히 변한 동네… 또 이렇게 가을이 저물고 겨울의 시작… 아~ 올해는 그것, 눈발의 기적을 볼 수 있을지~

수난의 시간들: 무심하게 오기 傲氣 하나로 ‘하겠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언젠가 E 형제의 자매가 연숙에게 권했던 ‘고리기도’의 일종인 ‘수난의 시간들’ 책을 오늘 O 자매로부터 받아왔다. 대강 이 기도가 무엇인지 듣긴 했지만 그저 ‘길고 어렵다’는 말만 연숙으로부터 들었기에 심각하게 내가 할 것은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나라고 못할 것 없다’는 조그만 오기도 생기고, 오래 전 2007년 경,  묵주기도를 처음으로 시작할 때의 ‘오묘한 계기’도 기억에 떠오르는 등, 이번에도 작게 시작을 해서 큰 수확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시작해 보기로 한다… 물론 나는 성모님, 우리 어머님의 ‘도우심’을 믿는다.

French Toast, Advent, Forgetful, Vatican Lighting

오랜만에 아침식사를 연숙이 준비해 준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고 많이 먹는 것, deluxe French Toast다. Pancake처럼 이것도 내가 노력을 했던 아침 menu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아서 현재는 거의 포기한 상태다. 나는 유명한 cooking website에서 본 것을 했지만 역부족. 오늘 연숙의 것을 먹어보니 완전히 다른 것, 비결을 가르쳐 주긴 하지만 다시 이것을 새로 배우는 것은 귀찮다.

허~ 대림 1주일이 지나간다고? 현재 나는 ‘대림’이란 글자를 보는 것이 미안하다. 그 정도로 나는 계속 현재가 대림절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사는 것이다. ‘대림’이라는 것 보다 어떻게 12월의 ‘해야 할 일들’, 대부분 100% 세속적인, 세상적인 ‘잡일’ 에 가까운 것들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balance에 문제가 있음을 계속 인식을 한다.  현재로는 이런 사실만 주지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만족을 하는 나… 예전 지난 10여 년 동안 나의 모습과 계속 비교를 하면, 물론 ‘문제가 있다’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밤 연숙의 혈압이 180까지 치솟았다는 사실로 밤잠의 평화가 물러갔고, 이어서 ‘잊어버린 명사, 특히 고유명사’들과 ‘처절하게’ 싸우던 나의 모습도 싫기만 하다. 서서히 잊은 것들이 돌아오긴 했지만, 역시 우려, 공포는 dementia라는 것이다. 아가다 자매님의 상태를 너무나 생각을 해서 잠깐 나에게도 최면적으로 다가온 것인지… 아니다, 분명히 나의 기억력, 특히 명사, 고유명사 등을 바로 기억해 내는 것을 나는 무서워하고 있다.  어젯밤에 싸우던 것들: Flannery O’Conner, Lorraine [또 잊었다… 나~중에 생각났다~ Murray! ]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한 hint만 떠오르면 문제가 없는데 그 hint들이 꽉 막힌 것이다. 나이에 의한 자연적인 것이라면 물론 OK… 불편한 것만 참으면 되니까…

이미 우리는 2 votes를 Warnock에게 던졌기에 차분하게 결과는 기다린다. 느낌에 Warnock이 재선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허~ 누가 장담을 하랴? 문제는 유권자들의 ‘근본적인 인간성’에 달려있으니. 솔직히 말해서 모든 객관적, 이성적인 관점으로 보아도 Walker란 ‘놈’은 이 contest에 나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뿐이다. 공화당이 정말 알맞은 인간을 못 찾은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도 그 DONALD ‘개XX’의 흙탕물이 튀긴 것인지.  그가 그 개XX와 전혀 연관이 없었다면  우리 선택을 재고 할 수도 있었지만, 좌우지간 이번에는 우리의 판단이 100% 맞는다고 장담을 한다.

거의 선거운동의 끝자락에 그 DONALD 개XX의 징그러운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신 KEMP의 모습이 보이는 것, 착잡하기만 하다. 우리는 분명히 그를 Governor로 뽑았지만, 그의 당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이런 것들은 분명히 그는 2024를 의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고민이 생긴다. 우리, 아니 나는 그에게 호감이 가니까 말이다.

내일부터 열흘간의 San Diego여행을 앞둔 새로니 집에 들러서 Ozzie를 데리고 왔다. 그래서 오늘부터 Ozzie와 거의 열흘을 같이 있게 된다. 반가운 것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만큼 신경을 쓰는 것이 생기니 피장파장이라고 할지. 하지만 pet 특히 dog에 대한 나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뀐 이후로는 거의 우리들, 인간이나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cat도 사실 마찬가지) 그것을 늦게나마 알고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감사하게 된다. 신학적인 ‘피조물’의 관점뿐이 아니고 경험적으로 느낀 것이라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들은 인간의 친구들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언젠가는 이별을 하게 될 Ozzie, 벌써부터 외로워진다.

아~ Ozzie야, 또 왔구나~~ 반갑다~~ 앞으로 최소한 열흘 이상 12월 초를 너와 같이 보내게 되었다. 이 녀석과 함께 했던 시간, 아니 세월이 꽤 많았기에 이제는 식구가 되었는데… 내년에는 이별을 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더욱 이런 시간이 귀중해진다.

우리 집의 Christmas lighting이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우리 Catholic church의 전통에 비해서 이른 것이어서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보니 바티칸 광장에서 lighting ceremony가 열리는 것을 본다. 원래 이즈음에 했던가, 한때 교회는 가급적 축제분위기를 성탄 전 짧은 기간으로 하라고 권고를 한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래서 우리 집도 성탄 일 주일 이전에는 자제하며 살았는데. Pandemic이 시작되면서 다시 ‘의도적 축제분위기’로 바뀐 것을 보인다. 그래~ 12월은 이런 축제분위기를 정도껏 즐기는 것 무엇이 나쁜가?

Bitwarden, Password Hell, Password Manager: 이제는 확실히 기억력이 걱정이 된다. 하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는 것으로 보인다.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하지만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 중에서도 제일 골치 아픈 것이 바로 각종 online password가 아닌가?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있을 수가 없다. Password Manager, 그 중에서 open source (free), Bitwarden 을 찾아서 account를 만들었다. 이제는 각종 site의 password를 ‘진짜 비밀급’의 것으로 하나 둘 씩 바꾸기 시작하면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