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일기

이제 조금씩 밝음이 느껴지는 가.. 한 달도 더 지나갔는가.. 예기치 않게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뇌의 늪에 빠진 듯한 성탄휴일을 맞이하였던 것. 일생을 통해서 이렇게 ‘깊고 깊게’ 생각을 하며 살았던 시절이 별로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이제 이 나이에 이런 고통의 경험을 한 것, 나는 이제 크게 후회하지 않고, 나아가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고뇌 중의 고뇌는 사실 간단한 것이었다. 인생의 반려자 연숙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의 고통을 통해서 연숙과 나와의 깊은 심리적인 관계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은 간단하다. 죽을 때까지 이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부터 모든 해결책을 찾기로 한 것이다. 다음의 주안점은 ‘내가 변해야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지고 그녀를 이기게 하는’ 것, 내가 바뀌거나 바꾸어야 그녀도 바뀐다는 것, 그것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유혹은 강하다. 연숙이 이번에 구역문제에서 조금만 나를 도와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넘어서 ‘한’까지 남게 하는 것, 그것이 악마의 유혹임을 나의 머리에 각인을 하거나 수긍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성모님의 선물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쪼잔한 것에 얽매인 것이 문제다. 조금 더 대범하게 먼 곳에서 이 ‘사태’를 보기만 했었어도 이렇게까지 나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았을 듯하다. 우리 부부의 관계가, 우리 가정이 모든 것의 우선임을 어찌 성모님이 모르실까? 우리는 ‘멋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배울 것은 배우면 된다. 

이제부터는 ‘멋진 퇴진’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이것은 거의 정치적인 영역이다. 그 동안 조금 배웠던 사회적, 정치적 방법의 각도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목적이 무엇인가? 구역을 ‘완전히’ 심리적으로 우리는 떠나면 좋을 것이다. 생각보다 심한 상처를 받은 연숙의 심정을 생각해 주어야 한다. 우선 구역’인간’들을 떠나기로 했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순교자성당으로부터 조금 더 멀어지기로 했다. 구역장을 사임하면 그것이 조금씩 가능해질 것이다. 구역장 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 구역의 경험이 복잡한 것이다.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레지오에 대한 나의 최종 결론이지만 이것은 우선 구역에서 물러나면 조금 더 시간을 버니까 …

발등의 과제는 이것이다. (1) 신부님, 총구역장에게 제출하는 ‘사직서’, (2) 구역에 보내는 ‘사임의사’ 마지막 구역소식 email (3)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일요일 점심봉사. (4)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전례봉사… 이것이 한달 동안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다.

이런 일들이 다 끝나면 우리 부부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목표를 찾아야 한다. 이대로 살기는 싫기 때문이다. 연숙도 주보와 교리반의 무거운 사슬에서 벗어나면 무언가 찾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도와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것의 한계를 내가 어찌 모르랴.. 그저 마음 건강, 몸 건강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성모님이 항상 우리를 이끄신다고 믿고 살면 된다.

어머니, 성모 마리아여, 저를 놓치지 말아주세요.. 부탁합니다. 

가볍지만 무서운 위기의식을 느끼며 연말 연시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경험은 아마도 근래에 들어서 처음 하는 것이라 신기롭기까지 한 것이다. 방심하면 나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할 수 도 있겠다는 걱정까지 들 정도다.

내가 ‘은총의 세월’을 지내고 있는 세월을 무의식 중에도 ‘셈하고, 즐긴다. 2010년 가을부터라고 생각하고 8년이 완전히 지나고 있는 장구한 세월이다. 한마디로 은총의 세월이 아닐 수가 없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안팎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신선하고 기적과도 같아서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지를 모른다. 이런 은총의 시기가 무한정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은근히 내가 죽을 때까지 가기를 바라고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커다란 나의 바램이었는가? 아니면 ‘악마’의 교란작전인가..

거대한 변화, 그것도 바람직한 쪽이 아닌 그런 쪽으로 가려는 듯한 기분으로 나는 전전긍긍하며 요새를 보내고 있다.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그것이 그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구역문제, 레지오 문제, 나아가서 나의 성당 공동체 문제… 이것들은 너무도 나에게는 이제까지 ‘두 번 생각 안 하는’ 그런 것들인데 이제는 잘못하면 모두 없어질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내일 레지오 주회가 있어서 모처럼 묵주기도 20단을 바쳤다. 지난 온통 한 주일 동안 이것도 잊고 살았다. 그것도 나를 두렵게 한다. 어떻게 이것까지 잊고 살았는가?

그런대로 사람들이 ‘북적 이는’ 도서관에 앉아서 무언가 써야겠다는 생각에 몇 자 적으려 한다. 월요일 오전이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무언가 커피냄새 진동하는 일터에서 어느 정도 긴장감과 성취감 그리고 기대감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리라. 그들이 부럽다. 나는 그런 것을 못 느끼니까.. 하지만 느껴보려고 내 나름대로 제일 값싼 방법을 찾은 게 이곳이다. 집과의 거리도 알맞고, traffic도 적당하고, 우선 $$가 차의 gas이외는 없고.. 기본조건을 만족한다. 내가 보고 싶은 책들은 많이 없는 곳이지만 우선 책이 있는 곳이고, 그런대로 쾌적한 환경을 주는 곳, 그것뿐이랴.. 많지는 않지만 근래에 출판된 한국에서 온 책들이 200여권이 넘게 있는 곳..현재 나의 ‘직장’이다.

이곳에는 눈에 뜨이게 흑인들이 많이 보인다. 그야말로 out of proportion할 정도라서 처음에는 정말 의아했는데 지금은 나의 눈도 많이 적응이 되었다. 그 많은 백인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 하는 의아심..하지만 조금은 이해가 된다. 많은 흑인도서관 이용자들은 이곳을 거의 job seeking headquarter로 쓰는 모양이고, 그 만큼 그들이 out of proportion으로 out of job이란 뜻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너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오늘은 우리부부 결혼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연숙이나 나나 정말 쉽게 믿어지지를 않는다. 30년이란 기간은 조금 상상하기가 힘들었으니까.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참 긴 여정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여정이 될지도 짐작하기가 힘이 든다. 25주년은 필요이상으로 신경을 써서 준비도 하고 했는데 30주년은 50주년이 아니라서 그런지 조금 덜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준비라고 해 봐야 어디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을 하거나 fancy한 restaurant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지만. 극성맞은 아이들도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극성이 조금 잠잠해 진 모양이다. 오늘은 잠정적으로 간단히 아주 편한 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편한 곳이 근처에 있는 Thai restaurant Lemon Grass..

어제는 올해 들어 처음 마리에타2구역 Dinner &Bible모임이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조금은 ‘홀 가분’한 기분으로 참가를 했는데, 이것도 요새 내가 조금씩 의식하고 있는 out of closet같은 감정일까. 의식적으로 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신경을 쓰려는 나의 노력이다.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을 피하려는 나의 노력은 사실 나를 더 상처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덕분인지 1분이라도 그 시간을 보람 있게 ‘즐기려고’ 노력을 한다. 내가 그곳에 있음이 그곳에 모인 형제, 자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11월 들어서 처음의 entry인가…… Halloween eve에 쓰고 처음이다. 올해의 Halloween은 아마도 처음으로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그런 날이었다. 바람도 불고 땅도 완전히 젖어서 아무도 오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조금 틀려서 그런대로 아이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예년 같이 날씨가 협조를 했으면 옆의 Rhodes네 식구들 특히 David같은 친구는 집 앞에 앉아서 treat를 했겠지만.. 올해는 그런 모습조차 보이질 않았다. 조금 쓸쓸한 기분인데.. 이게 사실 우리 집도 몇 년 전부터 느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런 것들이 확실히 느껴져서..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날 밤부터 Summer Time (Daylight Saving Time)이 풀어지면서 standard time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 아침에 버는 것인데, 나에게는 아침에 깜깜한 방을 헤매는 것이 조금 나아졌다. 7시경에 조금은 밝으니까.. 대신 저녁이 무섭게 빨리 깜깜해 졌다. 세월은 어김 없이도 정직하게 흐른다.

10월 19일 월요일부터 시작된 나의 out-of-closet to Cobb Central (library)은 기대보다 더 잘 진행되고 있다. 최소한 일주일에 3번은 그런 식으로 집을 벗어나고 있다. 초점은 우선 집을 나온다는 사실에 있다. Library에서 하는 일은 아직 심각한 것은 별로 없다. 그게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다. 나의 life style을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우선 목적이 있지 않은가?

Laptop을 가지고 ‘나의 차’를 타고 거의 private office같은 곳에서 거의 무한정의 책들을 접하는 몇 시간은 정말로 황홀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더 빨리 간다. 하루 종일 있고 싶은데 그게 아직은 조금 무리일까? Remote Access setup도 많이 진척이 되어서 거의 완벽한 단계에 온듯하다. 덕분에 Hamachi VPN도 다시 찾았고.. 이제는 VoiP 만 연결이 되면 완전하다.

며칠 전에는 속을 끓이던 Sonata windshield crack을 고쳤다. Internet 으로 찾아서 Cobb Galleria근처의 Office Park parking garage에 있는 곳으로 가서 손을 보았는데 그 고친 친구가 참 독특한 친구였다. 중년의 black man이었는데.. 참 stereotyping의 무서움을 다시 느끼고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런 black도 있구나.. 하는 생각.. 나는 정말 이런 것을 반성을 해야 한다.

나라니가 며칠 전에 드디어 Starbucks를 그만 두었다. 아주 지친 듯한 느낌이다. 하기야 비록 part-time이라고는 하나 2 jobs를 뛰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 주변 사람들에게 더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랴…… 나라니야.. 앞으로 그런 일들이 더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handle하느냐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매일 한 줄이라도 쓰자.. 라고 얼마 전부터 생각을 했다. 그저 또 ‘실행’을 ‘안’할 뿐이다. 나의 자유라고.. 안 하는 것도 나만의 자유요 특권이라고 생각을 했겠지.  이제 이곳이 나의 세계, 나의 우주에서 정말 유일한 마음의 낙서장, 휴식처, 상담자가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가식이 아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곳, 그게 유일한 위로다.

가을 같지도 않은 ‘엉터리 가을’로 접어든다. 정말 올해 여름으로 시작되는 ‘개 같은’ 이곳 날씨 이렇게 싫어 해본 적이 있을까? 날씨 가지고 불평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지 모르지만 내가 탓할 수 있는 것 몇 가지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일 게다. 한마디로 ‘개 같은’ 날씨다. 나를 괴롭힌다고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짜증이 난다. 요새는 그 발악이 최악에 달해서 간밤에는 70도의 끈끈한 밤 같지 않은 밤이 되었다. 하지만 9월도 중순으로.. 생각에.. 첫 ‘추위’도 며칠 안 남았을지도.

정말 결과를 추적할 수 없는 ‘일’ 같지도 않은 것으로 몇 달을 보냈다. 내가 사랑하고 그런대로 정열이 남아있는 이 ‘일’들.. 나는 또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일주일이라도 잊고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나 무언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Steven Covey의 말 대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하지만 조금 위안을 삼는다면, 지난달에는 거금을 소비 했지 않는가? 이건 암만 생각해도 참 큰일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연숙이 minivan에 낑낑거리며 오르는 것을 보며 괴로워했는데 그게 순간에 없어졌다. 이건 참 기분이 흐뭇하고 좋은 일이다. 그래 이것만은 나의 initiative로 시작된 ‘거사’인 것이다. 나에게 축하를 해 주어야 할 일인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일기야.. 미안하다. 이렇게 또 늦게 너를 찾아왔구나. 찾기는 늦었지만 생각은 거의 매일 하였단다. 찾아 오려고 생각을 할 수록 더 너를 피하게 되는 나의 이 요상한 습관은 또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늦는다고 생각만 하면 포기해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아주 잊으려고 발버둥 치는 나의 이 아주 요상하고 이상한 습관과 생각들… 죽기 전에 다 고치고 싶은 그런  것들이다.

나의 머릿속에 있던 중요한 project들은 비록 요리조기 피하며 꾀는 부렸지만 예상외의 ‘과제’ 를 한 것은 그래도 조금은 흐뭇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새 차를 사게 된 것이다. 8월중의 반 이상은 아마도 이것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해도 될는지.  이상하게도 견디기 싫은 이번 여름을 조금이라도 잊게 하여 주었던 것… 거의 10년만에 있는 ‘새 차 사기’ 행사.. 그 동안 생각만 하면 나의 가슴이 저며오던 새 차 사기.. 왜 그럴까.. 연숙이 해가 갈수록 이제는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suburban style (soccer mom’s) minivan과 싸우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저며 왔고.. 사실 나의 신세가 괴롭게 느껴지기 까지 하였다. 경제적인 사정이 이렇게 사람을 위축시킬 줄이야.. 물론 연숙이 새 차를 사 달라고 조른 적은커녕.. 불평한마디 없이 잘 타 주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런대로 잘 너머가 주었다. 다만 길거리에서 strand가 되었을 때는 정말 panic상태로 괴롭히지만  그것도 그때 뿐..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생기만 다른 차가 있어야 하고.. 그 점점 높게만 느껴지는 차를 타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꿈에서도 나타날 지경이 아닌가..

조금씩 ‘주가’가 오르는 rollover IRA를 보면서 바보스러운 제안을 하게 되고.. 연숙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나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번만은 서로가 무언가 맞았다. 그래서 거의 10년만에 조금은 걱정 없이 탈수 있는 새 차를 사게 되었다. 비록 IRA 의 balance는 떨어 졌어도 사실 그게 큰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필요하게 쓸 자원이 아닌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렇게 쓰는 것은 확실히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해 본다. 더 비싼 차도 조금 아쉽지만 다행히 나와 연숙은 그런 것에는 그렇게 연연하지 않지 않는가? 2009 Hyundai Sonata GLS… leather 가죽시트를 하였고 gas mileage도 거의 32마일이 넘는 4기통 앞으로 유지하기도 무리가 없는 .. 사실 우리에게 과분한 차 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100% 연숙의 차로 하였다. 법적으로도 연숙의 차다. 나는 그저 옆에서 유지하는 것을 도와주면 된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시절에 이렇게 저희에게 ‘사치’를 허락해 주셔서 조금 저의 마음을 위로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지난 두 달은 더위를 핑계로 ‘해야 할 일’에서 거의 손을 떼었다. 조금씩 진척을 보이던 정기적인 blogging도 이제야 처음으로 붓을 들게 되었고.. php/mysql쪽도 그렇게 손을 놓고 말았다. textpattern도 그렇고.. wordpress/joomla도 그렇다. 맥없이 손을 놓고 말았다. 물론 매일 매일 머릿속을 떠난 적은 없었다. 그게 나의 특유한 병신 같은 습관/고질이 아니던가? 나라니 가 새 laptop을 사게 되어서 나에게 ‘고물’ laptop이 굴러 들었다. 생각처럼 active하게 쓰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많은 역할을 기대한다.

같은 날 밤에 다시 쓴다. 역시 Kristie건 다른 곳이건 밖에 나가서 (뒷마당이 아닌) ‘일’을 끝내고 들어 오면 정말 기분이 날라간다. 이래서 그렇게 지겹게도 느껴지던 ‘회사생활’을 했나 보다.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느낀 후에 무슨 결과를 내고 ‘살아있는 진짜 인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왔으니 이런 결과를 보는 것은 사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예측히기 어렵지 않은가? 나는 이것을 진짜 잘 알고 있다.  거의 똑같은 pattern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내일은 슬프게만 느껴지는 9/11 8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과 나의 그 동안의 커다란 생활의 변화, 나의 이러한 좋던 나쁘던 간의 기억과 추억들.. 무엇인가 혼동이 온다.

그렇다, 2000년 이후 나는 정말 커다란 ‘관’의 변화를 겪어 오고 있다. 2001년의 9/11, virtual retirement, 2002년의 장모님 타계, 2003년의 어머님 타계, 2004년의 새로니졸업, 나라니 대학입학, 2005년에 있었던 너무나 많았던 또래들의 장례식, .. 나의 우울증.. 2007년부터 시작된 나의 묵주기도생활.. 고질적이던 악습의 청산.. 정말 나의 인생에서 파란만장한 10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너무나 많은 변화를 보였다… 한마디로 죽음이 두렵지 않다. 너무나 두렵지 않은 사실이 오히려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주위의 친지들의 말을 들으면 너무나 생에 애착을 보여준다. 그게 나는 그렇지 않아서 그들에게 나의 그러한 의견을 보여 주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까 걱정일 뿐이다. 그저 그들은 반 농담으로 들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참 비관적인 인생관을 지금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의 글, 일기가 대부분 어두운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마음이 어두울 때마다 써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기쁠 때 쓰는 것 보다 쳐지거나 외롭거나 고통스러울 때 쓰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옛날 어린시절 그러니까 고등학교 대학교 때 일기를 쓴 것을 엄마가 멀레 보고 그러셨다. 모조리 “죽고 싶다, 슬프다..” 그런 말 밖에 없더라고.  그러니까 엄마는 그런 말 조차 사치스럽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렇게 인생을 보내셨다. 그렇게 생각할 시간도 없었고 그것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나다. 정말 짜증스러운 ‘더러운’ 날씨까지 나의 화를 부축 인다. 그렇다. 예전과 다른 것은 나는 분명히 화가 나 있는 상태이다. 거의 나 자신에게 향한 ‘불평’일 것이다. 이 시라소니 야.. 정신 차려라.. 그런 식으로. 그게.. 참 내가 왜 이렇게 화를 잘 내게 된 것일까. 분명 나는 예전에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화를 내지도 않았고 화를 내는 사람, 신경질을 내는 사람을 내가 제일 싫어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이게 조그만 사소한 일로 비록 시작이 된다고 하지만 진짜 원인이야 다른 게 있겠는가. 그것이 아닌가. 나를 몇십년 동안 의식, 무의식적으로 짓누르고 있는 것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것으로 가족을 다 잃고, 친척도 잃고, 그렇게 친하던 친구들도 잃었다. 이런 것을 가슴에 묻고 하루 하루 늙어가는 내 자신이 어찌 좋게 느껴지겠는가. 그런 생각이 물밀듯이 쳐들어 오면 나는 거의 무방비상태로 그것들에게 처참하게 자존심의 밑바닥까지 모두 유린을 당하는 기분이다.

나의 ‘자랑 거리’이고 자존심의 최후의 보루인 personal projects들도 요새는 모조리 지리멸렬의 상태로만 느껴진다. 무언가 초점이 없고 절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전혀 없다. 나야 말로 ADD (attention deficiency disorder)가 아닐까. 조금이라도 시간적인 계획에 의해서 내가 움직인다면 조금이라도 나으련만.. 그것을 나는 못하고 있다. 철저히 바로 눈앞의 것에 의해서 하루가 초점과 성취감 없이 흐르고 있고.. 자칫 나는 이대로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도 한다.

오늘은 사실 아침에 모조리 늦게 일어나는데 에서 시작이 되었다. Tobey녀석은 누가 자기만 하면 절대로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 녀석과 걷는 것도 거의 습관이 되어서 안 걸으면 무언가 찜찜하다. 그 녀석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니 또 화가 치밀었다. 나는 어찌하여 자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봐야 하는 운명으로 태어났나. 왜 나보다 조금 먼저 가끔 일어나면 무엇이 잘못될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슬퍼지기도 하고.. 운명이라고 자책도 하고.. 사실 그게 무엇이 이상한가 하고 생각도 하고.. 모른다. 그래 대부분 지겹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일본 TV 드라마에 ‘희망이 없는 자’라는 게 있었다. 결국은 computer에서 지워 버리고 만 그런 종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조금은 강렬한 그런 것이었다.  사람이 희망이 없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Financial problem도 있을 것이고, 무슨 불치병도 있을 것이고.. 정말로 많은 이유로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심각하고 무서운 게 별로 위에 말한 물리적인 이유가 없이 희망을 못 찾는 것일 것이다. 나는 내가 무섭다. 바로 내가 바로 그런 종류의 ‘희망이 없는 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실 현재 별로 희망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을 듯 해서 그런 게 아닌가 했지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앞으로 살아야 별로 즐거울 것이 별로 없을 듯 느껴져서 그럴까. 그래 별로 없을 것 같다. 나이는 자꾸 들어서 ‘병신’으로 변할 것이고, 가족관계도 여기서 더 나아 질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닐 것 같다. 삶에 대한 ‘재미’가 없다. 누군가 재미로 인생을 삽니까 하는 개새끼들이 있지만 그래 재미가 있으면 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가?

나는 사랑했던 내가 거의 본의 아니게 떨어져 산 엄마가 현재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것이 아주 큰 ‘희망이 없는’ 이유 중에 있다. 나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도 만날 수도 없고 만난들 알아 보지도 못할 것이다. 이게 무슨 ‘비극은 없다’인가? 나는 정말 비극의 남주인공인 듯 하다.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흘러 왔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모든 게 꼬였고 망가지기 시작 했을까?

누구도 남을 탓을 할 수는 없다. 핑계를 대자 치면 한도 없고 끝도 없겠지만 다 핑계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나에게 책임이 있다. 능력, 용기의 부족과 바보스러운 성숙하지 못한 나의 판단, 선택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돌릴 용기도 없고, 현명한 선택을 다시 하기에 모든 것이 다~~~ 나를 지나쳐 버렸다. 한마디로 늦은 듯 하다.

이런 고통을 덜 느끼려고 그렇게 마약과 자살을 했을까?  절대로 찬성은 못 하겠지만 지금은 지금은 조금 이해는 한다.  결국은 종교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이렇게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희망으로 보고 살아가는 것일까. 교리대로 하느님 나라가 영생이라면 그곳으로 더 빨리 가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도 교리다. 인간의 생명은 나의 것, 개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 다른 말로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 그러니 자살이란 것은 내가 신앙인이라면 상상도 못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새 들어 많이 상상도 하고 심지어는 즐기어 상상을 한다. 이게 참 나쁜 것이 아닐까?  하늘에 먼저가신 엄마가 이런 나를 보시면 무엇이라고 하실까?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 그곳으로 오라고 하실까, 아니면 고통스러워도 그곳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하실까?

이런 꿈도 꾸어본다. 빨리 누나와 엄마와 같이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꿈이다. 하느님 나라를 정말로 믿는 다면 우리는 100% 분명히 다시 만날 것이다. 생전에 보지도 못하던 아버님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분명히 만나게 될 테니 그렇게 빨리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지금 현재 아주 depress된 그런 상태이다. 그러나 위에 있는 글들과 생각은 내 나름 대로 논리적으로 나온 것 들이다. 절대로 망언들은 아닌 것이다.

나의 Life Journal이 이렇게 조그맣게 시작된다. 소리 없이 조용히 죽어 버릴지도 모르고.. 빛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이런 믿음으로 오늘을 기억하자.

사실은 지금 이곳은, 그러니까.. http://vm-xampp/wordpress/는 나의 private life journal이다. 제일 중요한 목적은 나에 관한 모든 life-long data를 이곳에다 옮기고, 매일 매일 필요할 때 마다 참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내가 매일 쓰는 weblink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Daily journal도 좋지만 life-archiver, daily reference로도 쓴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나는 비교적 자주 쓰던 More Icon, Sticky.txt, Journal.rtf, Blog.rtf란 것이 있다. 이것은 역사가 조금은 축적된 편이라서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이것들부터 이 wordpress web으로 옮겨올 것이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이곳에 쓸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하거나 꼭 나의 ‘괴로운’ 마음만 이곳에 늘어 놓는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져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슬픔과 기쁨의 비율이 거의 균형이 맞게 쓰면 더 좋을 듯 하다.

사실 겉보기에 세월이 이렇게 날라가는 듯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도 아니다. 자세히 기억을 해 보면 순간 순간 많은 생각과 내 나름대로 ‘일’을 안하고 무위도식한 기억은 거의 없다. 육체적인 일이 아니면 최소한 생각과 ‘공부’는 계속하고.. ‘배운다’는 자세는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이것만은 자부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무언가 모두에게 유익한 것을 ‘배우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쌍하게 여기거나 심지어는 싫어할 정도로 느낀다. 어떻게 그렇게 살까 하는 의아심 이다. 그래.. 이 나이에는 쉬면서 즐긴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바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쉬거나 즐긴다는 게 정말 뻔하다.. 크루즈..여행..골프..식물 가꾸기..그래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즐거울까. 나는 동조하기가 좀 그렇다. 이해는 가지만 동의는 못한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창조’적이고.. 무언가 ‘인류’에게 유익한 것을 남기고 싶다. 이게 그렇게 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젯밤에도 가끔 보는 서울의 거리로 꿈의 여행을 해 보았다. 이 꿈의 특징은 정말 기억하고 싶은걸 잠에서 깨면서 빠른 속도로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 여운은 잔잔하게 나를 생각게 하고 심지어 즐겁게 한다. 왜 그렇게 나에게 좋은 느낌의 여운을 남기는 것일까.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꿈이라 그렇겠지. 사실을 이제는 내가 그곳에 가게될 처지가 되더라도 겁이 나는 게 사실이다. 즐거움보다 실망이 더 클 거라는 우려 때문일까. 이것은 내가 생각해도 지나친 걱정이다. 이게 나의 문제이다. 너무 미리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하는 나.. 나도 안다. 아… 이 좋은 꿈을 거의 잊어가고 있다. 더 또렷하게 생각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

2009년도 거의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계획적으로 한 것은 또 부끄럽게 거의 없다. 즉흥적인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한 것도 사실이다. Asterisk/PIAF home pbx는 조금은 나의 자랑 꺼리다. 작년에 처참하게 실패했던 기억의 project가 아닌가. 그런대로 거의 실용화 시켰다. 지금 매일 쓰고 있지 않는가. 나의 자랑 꺼리다. 이것이 10년전에만 가능했다면 우리식구에게 최고의 home pbx service가 가능했을 터인데.. 지금은 연숙과 나만 쓰고 있으니 조금 아깝다.  하지만 진짜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professional-grade web-application이다. 이게 나의 장래의 꿈이고 목표다. 이게 나의 말년을 지탱시켜줄 인생의 해답일까. 나의 모든 것을 이곳에 집중을 시키면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해답이 나올 듯 하다. 나는 이곳에서 해답을 찾고 싶다.

가끔 나의 반생을 아니 더 그 이상을 차지해온 결혼/가정생활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왜 이 당연한 ‘생활’을 생각하려는 것일까. 가끔 꿈을 꾸는 듯 하기도 해서 내가 조금 놀란다. 연숙과 아이들로 된 이 가정의 존재가 가끔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결혼전의 인생이 더욱 더 나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으니.. 이게 문제일까..

이제는 이곳의 날씨를 거의 달 별로 짐작할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세월이 지나야 그런 것도 느끼게 되나. 며칠 전부터 또 축 쳐지는 듯한 기분이지만 별로 놀랠 일도 못 된다. 이게 거의 나의 정상적인 ‘기분’이었지 않을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이경우의 최악과 최저를 느끼며 산 게 이제 얼마나 되어가나.  10년이 되어가나. 놀라지 않는다. 10년은 결코 이제 예전과 같이 길지 않으니까.  그리고 죽음을 느끼며 살게 된것도 얼마나 되었나.  아마도 이것도 조금 과장해서 10년이 되어가지 않을까. 만성적인 불안과 초조를 나는 조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가. 그래서 만성인가. 나는 희망이 거의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러면서도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의 허송세월을 아니 죽을 날 만을 기다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하느님과 성모님도 여기서는 나를 못 도와 주신다.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도 알지만 나는 그것을 ‘절대로’ 못하고 있다. 그렇게 거의 사반세기를 살아 온지도 모른다. 절대로 의도와는 반대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절대적 피해를 주어가며 살았는지도.  엄마도 그렇게 잃었다.. 누나도 그렇게 잃어가고 있다.. 친척들도 그렇게 하나씩 잃어가고 아니 잃고.. 친구들도 다 잊어갔다.  이제는 아마도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랑하는 식구들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재미없는 남편이고 재미없는 아빠로 산다.  왜 이렇게 까지 내가 되었을까.. 나는 절대로 이렇게 살아가려고 생각한 적인 순간도 없었다. 나는 재미있는 남편,.. 더 유머러스 한 아빠가 되리라고 절대적으로 장담한 그런 사람이다.  남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며 살기 싫고 그런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중의 하나라고 자부를 해 왔는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니…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싫어하는 muggy summer pattern이 며칠째 계속된다. 밤에도 덥게 느껴진다. 물론 추위의 ‘조금 귀찮은 느낌’은 없지만 이건 내가 사실 아주 싫어하는 그런 날씨다.  가끔 이렇게 봄/여름의 맛을 미리 ‘강’하게 보여주는 게 이곳 날씨의 특징임을 이제는 확실히 배워 느낀다. 오래 살게 되면 다들 이렇게 배워 느끼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한가’해서 느끼게 되는 것일까.. 둘 다 조금씩 진실이 있을거다.

지금 내가 무슨 ‘일’ 을 해야 제일 좋을까? 제일 내가 좋아하고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을 활용 해야 한다. 그게 win-win전략이 아닐까. 10+ 여전 전에 시작 된 Internet의 출현은 처음에 나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다. 무슨 secret treasure같은 그런 것… technology자체도 매력의 우선 이었지만.. 그게 나의 senior year를 해방시킬 수도 있다고 정말 정말 믿었다. 나만 그런 것이 물론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대로 그 흐름의 중심에 서서 일을 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 chance가 많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는 1%도 나는 살리질 못했다.  drive를 못한 탓일까.. 아니면 내가 나의 technical skill-set 을 너무 과신 했을까..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를 보며 분석하는 게 그렇게 도움이 될 듯 하지 않다. 지금을 시작점으로 다시 시작하면 어찌 될까.. 과거의 좋은 것만 ‘만끽’하고 실수나 아쉬움은 정말 잊는 것이다. 노력을 하면 힘들지도 않을지도.. 시도도 않해 보았다. 나에게 그런대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 중에..Internet를 빼고는 많지 않다. 항상 머릿속은 그런 idea로 꽉 차있었다…  아하… 또 듣는다… Hitching a Ride  (Vanity Fair)!…. 용현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드디어 ‘더운 밤’을 느낀다. electric fan이 벌써 필요한가. 짜증이 난다. 체질적으로 나는 더운 것은 싫다. 추운 게 더운 것 보다 낫다. 물론 ‘이상’ 기온은 분명하지만 이건 싫다. 지난 여름에 감사하게 썼던 tall tower fan이 다시 등장 했다. 이게 연숙이 Costco에서 사온 것인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연숙의 office에 다시 켜 놓았다. 조금 시원해 진 듯…

daily journal은 사실 자기 전에 써서 그날을 되돌아 보아야 하는 것인데.. 어쩌자고 꼭 제일 기분이 좋은 아침에 써서 쓰기는 좋은데 어제를 되돌아 보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요새는 잠자는 시간이 거의 11시 전으로 내려오고 그때가 되면 사실 잠 때문에 정신도 없고,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연숙에게 미안하고 면목도 없다. 목표는 12시쯤 자서 6시쯤 일어나는 것 같은데.  다시 노력을 해 볼까.

어제는 드디어 dog fence의  post에 concrete를 붓고 고정을 시켰다. 이런 일이 사실 몇 년만인가. 10년도 넘은 듯.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dog fence가 아니고 ‘바깥 일, yard work’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David 네 쪽으로 24’짜리 privacy fence를 시작 해도 될 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lumber hauling이다. 2년전 (벌써?) 연숙과 같이 lattice board를 차 위에 실고 오다가 길거리 한 가운데서 떨어졌던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찔해서.. 더 그 이후로 그런 비슷한 일을 피하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있을까. 잘 계획을 세워서 privacy fence를 만들어 볼까.  그러니까 8′ post 가 6개와 2×4 10개 정도 그리고 30+ pickets.. 얼마나 들까?

새로 보는, 이미 3번이상을 보고 지금도 보는 jTVDrama “무리한 연애”는 소재도 그렇고 뒤끝 맛도 그렇고 또 하나 나의 best classic이 되지 않을까.. 남자 60세가 뜻하는 것을 ‘연애적’ 감정과 배경에서 아주 코믹하지만 심각하게.. 그리고 중요한 기분 좋게 그려낸 걸작이다. 주인공은 아마도 왕년에 rock band (유명한) 의 member인 듯 하고.. 일본에서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세대를 ‘단까이’ 세대라고 이름을 부친 모양이다. 아마도 여기의 baby boomer정도가 아닐까.  그 짧은 때 태어난 세대에게 무슨 확실한 특징이 있었던 것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그런 처음 세대가 아닌가 .. 여기서도 마찬 가지겠지만.. 그래서 한국은 그런 면에서 어떠한지 모르겠다.  우리세대에 그런 확실한 획기적인 특징이 있을까?  모르겠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예정대로 (갈 마음은 예전대로 별로였지만) 백형 네 부부와 Mable House Amphitheater에서 Creedence ClearwaterRevisited’ concert에 갔었다.  알고 보니 2명이 original member였고 나머지는 다 그런대로 젊은 사람들이었다. 100%가 다 즐겨 듣던 대 히트곡이라 그거 하나는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청중들은 예상대로 거의가 우리 또래의 baby boomer들~~~~~~  CCR concert는 결과적으로 만족했다. 거의 모든 히트곡이 원래가 시끄러운 것이라 더 새로웠다. 하지만 진짜 original에는 못 미친 곡도 많았다. 조금씩 variation (tempo etc)을 주었으면 다 낫지 않았을까. 거의가 같은 시끄러운, 빠른 템포라서 나중에는 조금 지루한 그런 느낌. 

머릿속은 계속 1969/70년도로 돌아가서 용현이와 어울리던 곳에 머물러 있었다. 확실히 생각나는 것은 1970년 4월초 지리산 등산을 마치고 어느 다방 (우리가 좋아하던 곳.. 이름을 잊었다.. 하느님) 어두운 곳에 앉았는데 용현이의 얼굴이 어둠 속에 묻혀 하얀 와이셔츠만 보였다.. 얼굴이 없는 사람? ㅎㅎ 그때 정말 그 녀석 Who’s stop the rain을 좋아했지.. 나도 그 이후부터 .. 그러니까 그 그룹의 시작은 1969년경이 아니었던가.. 까물거린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정말로 ‘우울증’일까?  요새는 거의 1초라도 반짝 ‘즐거운’ 순간을 느끼질 못한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처지와 상황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까?  정말로 나는 혹시라도 ‘의학적’인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그런 정도가 아닐까?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일초일초는 괴롭기만 하다. 흔히들 말하는 ‘배가 불러서’ 하는 어리광 정도의 유치한 수준은 아닐까? 정말 나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말로 하루 하루가 괴롭다는 것이다.

그런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나의 주변에 한 사람만 있어도.. 하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희망도 있다만 그건 정말 힘들 거야. 나는 정말 잘못 살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현재 그것을 뚫고 나올 힘이 부족하다. 이럴 때 나의 유치한 신세타령을 들어줄 엄마라도 전화 넘어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고 또 눈물이 쏟아진다. 어찌하랴.  모두가 다 나로부터 가버렸다. 나는 정말 몸도 마음도 다 무섭게 늙어가고 있다. 희망과 젊음은 은하계가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듯한 무서운 속도로 나를 떠나고 있다. 유일한 나의 희망은 묵주기도의 성모님이다. 하지만 이게 그야말로 ‘악마’의 농간으로 몇 달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 ‘악’의 공격을 나는 어떻게 물리치고 이길 것인가. 더욱 더 ‘심각한’ 기도 밖에 없겠지.

이번 주 초부터는 마당뒷집에서 무단으로 들어와 자른 나무 사건으로 더욱더 나를 ‘분노’의 괴로움에 남게 하였다.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듯한 용광로 같은 나의 이 ‘분노’와 ‘화’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하느님으로부터 다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의 죄와 거기에 따른 분노가 그대로 남아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느님, 저를 부디 이 분노로부터 해방을 시켜 주시옵소서.

오늘은 백형 부부의 호의로 oldies Rock Vocal Group 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concert에 가게 되었다. 우선은 고맙지만 기쁘지는 않다. 그저 밖에 나가는 게 싫을 뿐이다. 호의는 정말 고맙지만.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 Get a Life!란 말이 나에게 필요하다.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피하고’ 있다. 이건 위험하다. 정말 이런 식으로 살면 오래 못간다. near-term goal을 먼저 성취하고… 나는 조금씩 나올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용현아.. 이 개새끼야.. 너는 어디에 쳐 박혀 숨어 살고 있다는 말이냐.. 우리는 정말 1969년으로 가고 싶지 않니.. CCRWho’ll stop the rain을 어두운 다방에 앉아서 열광하던 그때를 우리가 어찌 잊겠니?

요새 새로 보기 시작한 일본 tv drama가 바로 ‘무리한 연애’라는 것이 있다. 환갑에 된 왕년의 rock group member가 이 환갑 된 나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조금은 코믹하게 그린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그래서 더 유심히 보게 된다. 그것도 그렇지만 거기의 여자 상대가 ‘나쯔가와 유이’라는 배우라서 그런지도.  작년에 본 ‘파랑새’라는 drama에서 그러니까 거의 10년전의 드라마에 나온 여자주인공..’인상적’이었던 인상.. 그 뒤에 ‘87% 생존율’에서 아주 나의 머리에 남았던 그 배우가 환갑이 된 왕년의 rocker와 아마도 ‘연애’를 하는 모양인데.. 글쎄..  이것과 더불어 이틀 전에는 드디어 묵주기도 덕분에 거의 사라졌던 sexual fantasy가 꿈에 나타났다.  그런데 거기에 등장한 여자는 바로 ‘히로스에 교코?”.. 라는 아주 어리지만 성숙한 여배우가 나온 것이다. 이 배우는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라는 실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으로 아주 열연을 한 사람이다. 청순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관능적일 수도 있는 그런 타입인데.. 바로 그녀가 꿈에서 나를 ‘시험’한 것이다. … 이게 아마도 우리의 묵주기도를 시기한 ‘악’의 공격일수도 있다는 생각.. 모르지만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나이 60은 정말로 이런 sexual 한 것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까..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건 오른 생각은 아니겠지.

일기야, 정말 오랜만일세… 미안하이.  정말 쓰고 싶었다. 그러나 무서워서 못쓰고 2달을 보냈다.  그저 두 달이 훌쩍 흘러 버린 것이다.  폭풍과도 같던 마음 속속 깊이 고여있던 모든 나도 모르던 분노의 물길이 용솟음치며 한동안 나를 지배하였다.  1년이 넘게 나를 보호하여 준다고 믿었던 묵주기도도 이것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나 자신도 놀랐다  내가 그렇게 분노를 많이 가지고 살았던가.  한마디로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뿐이다.  그래도 나의 하느님께로 향하는 노력이 헛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것의 덕분에 이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더 논리적이 아닐까.

하지만 많이 자신이 없어진 게 사실이다.  2달을 그런 생각으로 주눅이 늘어 살았다.  하지만 아주 허송세월을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대로 무언가는 했다.  폭발싯점까지 진행되어 오던 여러가지 mini projects들은 즉시 중단 되었지만 그 대신 다른 것들이 시작이 되었다.  나에게는 처음으로 ‘super-pc’가 생겼다. dual-core Intel mobo 를 ‘홧김’에 구입하였다. 이제는 4GB 를 가지고 11개의 virtual machines이 그 안에서 ‘활개’를 치게 되었다.  이것만이 요새 나를 유일하게 기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주 virtual machine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 위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할까.  이것으로 할 수 있는 project는 사실 나의 상상력에 달린 것이다.

작년 봄부터 시작된 일본 드라마 시청은 예상을 뒤엎고 올해도 반을 지내고 결말을 눈에 못보고 있다.  사실 한국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겁이 나게 그곳으로 가기가 싫으니.. 나 자신도 조금은 겁이 난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까.  나이가 들면 다 이렇게 외골수로 빠지게 되나.  그건 아니겠지.  내가 이상한 것이리라.  어떻게 하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썰물이 빠져 나가는 느낌의 조용한 아침.. 아이들은 다 늦잠을 즐기고 나는 평상시와 같이 일어나서 아침 ‘일과’ 를 ‘즐기고’ 있다. 언젠가부터 아침 routine 이 자리를 꽉 잡았다. 어두움 속에서 조용히 일어나 부엌의 dishwasher에서 거의 마른 접시들을 제자리에 넣고, 1인분 커피를 끓이고, 어떨 때는 맨손체조도 하고, window blinds를 다 열고, Tobey 밥그릇을 채워주고.. 나의 보금자리 서재로 와서 아침’공상’을 즐긴다. 사순절 때는 거의 ‘성경’에 관련된 일과가 아침 시간을 채웠는데 요새는 그것은 뜸– 해졌다. 그래도 ‘송봉모’ 테이프를 듣기도 하는데.. 이게 정말…

오랜만에 ‘성가신 아침 햇살’ 이 없는 아침을 맞는다. 왜 그렇게 나는 많은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햇살을 성가셔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의 후반부 (언제부터 인지는.. 확실치..않지만 아마도 40대 이후가 아닐까) 리고 비가 오는 그런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였다. 이유를 따지면 사실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나의 ‘세계관’이 그랬을 것이다. 확실히 나는 어둡고 우울한 그런 인생후반을 보내고 있다.  밝음에 노출된 나의 못생긴 모습도 그렇고 아틀란타에 와서 느끼는 한마디로 지겨운 밝음에 의한 피곤도 한몫을 한 걸까. 그래 지겨운 그런 것이다. 반면, 어두움에 깔린 을씨년스러움에서 나는 안락 함을 느낀다. 어릴 때 그 추운 날 따뜻한 이불 속을 연상케 하는 걸까.

어제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몇 주 동안 눈독을 들이던 그런대로 최신판 Mobo/cpu를 mwave.com에 order를 한 ‘사건’이다. 이게 사건이나 될까.. 이 의미는 ‘돈’을 이만큼 지출했다는 뜻에서 사건이다. 변명은 있다. 이것은 ‘오락’적인 것이 결코 아니고 ‘투자’라는 변명 아닌 변명일까…

며칠 동안 Bee Gee의 oldie, First of May 가 머릿속을 맴 돌았다. 몇 년 전부터 이것을 ‘기록’해둔 덕에 아주 이제는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듯 하다.  왜 아닐까?  거의 신화적인 기억이 되어버린 그 아름다운 시절을 왜 아니 잊으랴. 용현아, 너는 어디에서 이 시절을 보내고 있냐. 창희야,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그 아름다운 시절을 잊은 다른 사람이 되었단 말이냐.  친구야, 지금이 어쨌건 상관이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그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더냐.. 부디 어디에서 살건 잘 행복한 나날이 되어랴, 하느님의 도움이 조금 있다면 언젠가 살아서 다시 만나서 그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 해 볼 수도..있지 않을까. 그래 그것도 조그만 소망중의 하나로 만들자.  그래 1977, 1988, 1999, 2000, 2011, 2022… 그 다음의 수열은?

우리 집의 main home server ‘FS’가 아주 큰 수술을 받았다. 이것보다 더 큰 수술은 없다  아주 MoBo(Mother Board)를 바꾸어 버렸다.  그것도 아주 down-graded쪽으로.  Athlon 2400+ 에서 Intel 600로 강등이 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이게 더 마음이 놓인다는 사실. 그 만큼 경험으로 이 Intel 600가 더 문제가 없었다. 현재의 느낌으로는 비록 느려지긴 해도 훨씬 덜 말썽을 부릴 듯 하다. 문제가 있던 Mobo 는 우선 Ubuntu-server 를 올려 놓았다. 재수가 좋아서 그대로 Linux는 쓰게 해 주실지.  문제는 Intel600가 실제적으로 512MB max라는 사실. 그러니 무제한의 VM을 쓸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대로 2 VMs가 간신히 돌게 해 놓았다. 그래서 또 잠시 ‘몽상’에 빠졌다. 최신의 Mobo/CPU의 값이 얼마나 하는지 eye-shopping을 즐긴 셈이다. 물론 priority game에서 지긴 했지만. 계산에 $250정도면 아주 그런대로 ‘최신’의 것으로 장만할 수는 있는데.. 이게 또 걸린다. 제일 슬픈 현실중의 하나다.

올해는 ‘축복의 봄’을 보내는 느낌이다. 그렇게 적절한 때에 비가 내려준 것이다. 예상 밖이다. 현재까진 그랬다. 이건 정말 정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끈끈한 밤은 지독히도 싫지만 그래도 이런 축복의 날도 곁들이니 이게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도 이렇게 감사할 일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에 너무나 동떨어진 인생을 살고 있어서 나는 감사를 못하는 것이다. 그 비현실적인 기대도 버리기 싫다. 나의 능력의 문제인데, 하느님이 나에게 그만큼은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이 60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내가 잘못 생각을 했는지도.

요새는 자주 송봉모 신부의 강론 테이프를 듣는다. 시작은 모든 home analog media의 digitize의 일환이었지만 아직도 digitize는 시작은 못하고 있지만 사실 기술적인 문제는 거의 해결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조금씩 듣게 되었다. 오래 전에 YS (이게, 영삼이도 YS구나)가 그렇게 좋다고 권했던 게 생각은 나지만 그때는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대로 잘 들린다. 그 중에서 제일 공감이 갔던게… 꿈에 대한 의견이었다. 그는 아주 꿈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강조했다. 나도 언젠가부터 그랬다. 꿈은 아주 random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 성서에도 근거가 있지 않은가. 나도 조금 더 ‘조직적’으로 꿈을 꾸려고 노력을 하고 더 심각하게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저 그리운 사람들이 많이 많이 나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나라니 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가면서 이사를 하는 날이다. 정말 나라니의 대학생활이 나에게는 몇 달 정도처럼 느껴진다. 정말 빨랐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래도 우리 부부 모든 자식에게 의무를 우선 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느님의 도우심일 거다. 나라니도 그런대로 수고를 했다.

묵주기도는 다시 조용히 재개 되었고.. 정말이지 하고 나면 무언가 기분이 다르다. 무언가 있다. 무언가 있다. 나의 하느님으로 향한 마음의 문은 확실히 최고로 열려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사실 언제일지 모른다.  모든 힘을 다하여 한번 하느님께 가보자.  성모님, 예수님, 하느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주신 분들 특히 연숙이.. 어떻게 나의 고마움을 표현을 할까.

진희아빠가 전화를 했는데.. 이것은 완전히 shocker가 아닌가.  이동수목사가 위암에 걸려서 수술을 했다는 것인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닌가.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이번에는 정말 죽음이 나의 근처까지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를 않은데도 그 중에 몇 명이나 벌써 갔던가.  만수아빠는 교통사고, 백명순씨(연숙의 친구), 김예순씨, 박만용씨, 최진착씨(자살), 박창우씨, 그리고 이동수씨는 위암?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이동수목사는 고생을 많이 한 편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하나님이 그 목자를 시험을 하시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위암은 그렇게 까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니까.. 완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항상 수술 후 5년까지.. 정말 아찔하다.

올해는 최고로 일찍이 사순절이 시작이 되었다.  2월이 가기 전까지  Acts of Apostles, 사도행전을 다 typing을 하였다. 그것도 영어와 한글로 다 같이.  쓰는 것에 비하면 뭐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년 만에 다시 읽는 ‘사도행전’.. 마음을 열고 눈을 뜨는가… 느낌이 그렇게나 달라질까?  정말 놀랐다.  3월부터는 요한복음을 영어로 읽기 시작했다.  정말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항상 공관복음만 들었는데.. 처음으로 읽는 기분이다.  사실 일고 보니.. 그 ‘유명한’ 구절들은 거의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John 3:16같은 것..

3월 3일에는 그렇게 ‘걸리던’ 고백성사를 보았다. 미국성당이라 거의 형식적인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 아니다.  마음의 준비가 거의 99%라고 느끼니까.  그래서 너무나 홀가분 하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매년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나의 하느님으로 향한 ‘마음의 문’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낀다.  이것도 작년부터 시작한 묵주기도의 ‘은사’일까.. 아니면 은총일까.  모른다..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하느님을 향해서 말이다.  그렇게 안 믿어 지던 것들도 이제는 믿어지는 쪽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나도 사실 놀란다.  이 모든 것이 그렇게 듣던 말과 같이 사실이란 말이다.  이게 모두 정말일까.  이게 다 사실이라면 앞으로는 어떨까.  나도 다시 어머니를 볼 수 있을까.  모두가 영생을 누릴 수 있고  육신을 떠난 더 높은 영혼의 세계가 앞으로 있을까.. 모든 게 신비롭게만 느껴 지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의 마음을 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Stephen CoveyFirst Thing First를 읽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성경 다음으로 이게 나의 ‘다음성경’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이 책은 아마도 성경을 배경에 두고 씌어진 기분도 드니까 (이 저자는 사실 유타주 출신의 Mormon교도)  결국은 spiritual direction/goal이 없으면 결국은 ‘허무’하다는 뜻일까.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무한대와 유한공간, 영원과 현세의 찰라.. 영혼과 육신.. 이런 게 이런 게 모두 나의 살에 와서 느껴진다. 아마도 나도 죽음에 대해서 많이 실감을 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사람(Covey)말 대로 이제는 Leave a Legacy가 제일 중요한 관심이 되고 있다. 나의 존재의 의미를 느끼며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게 거의 본능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남겨야 하나.  어떻게 남겨야 하나.  누구에게 남겨야 하나.

아주 드문 일이지만 어젯밤은 연숙이 나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침묵 피정을 다녀 온 후에 무언가 해 보려는 것 같다. 오늘도 새벽 6시 30분 전에 일어 나게 되었다. Tobey 토비를 보니, 그 net 망같이 생긴 담요를 아주 포옥 덮고 잔다. 그걸 안 덮었으면 추울텐데.. 하며, 신경을 쓰며 잤는데 그 녀석 본능적으로 그 밑으로 파고 들어가서 덮고 잔다. 역시 걱정한 내가 틀렸다. 가끔 이 녀석과 시간을 보내며 어떨 때는 이 녀석이 사람이 개가 되어서 외로운 나에게 친구로 보내 졌나.. 하는 아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말만 못 할 뿐.. 감정의 교류나 표정하며 알아 듣는 것 하며 정말 사람처럼 느낄 때도…

2월도 중순이 훌쩍 지나고 춘분을 향해 돌진 중이다. 어제 Tobey 토비와 산책을 하면서 우연히 아니 설마 하며 본 것이 그 흔하던 Bradford Pear tree의 꽃망울이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놀랐다. 진짜 초봄이.. 그러고 보니 어제가 ‘우수’ 였던가.  내가 그걸 놓쳤다. 입춘도 훨씬 전에 지났고. 그래서 기온도 거의 50도에서 60도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구나. 그 배꽃이 제일 먼저 필 때가 온 것이다. 봄이.구나.. 장모님의 기일도 곧 이고. 그러면 나의 사랑하는 엄마의 ..  사순절에 하려던 매일 과제는 아주 순조롭게 실행을 하고 있다. 생각 보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오랜만에 읽는 사도행전.. 아주 좋다. 이제 확실히 초대교회의 성인/사도 들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신화’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구약처럼).. 아주 현실감과 사실감이 많이 느껴진다. 그때 사람들도 요새 사람들과 생각 하는 게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롭다.

어제의 ‘유서’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제는 때가 온 듯 느낀다. 무언가 ‘심각’한 것을 남겨야 한다고. 더이상 미룰 수가 없다. 며칠 전 김정국씨가 운명한 것을 듣고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그는 거의 나의 ‘동료’적인 사람이 아닌가. 비록 친구는 아니었을 망정 거의 나와 같은 게 많았던 사람이 또 갔다. 그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갔다. 어떻게 이승을 떠나는 게 나에게 바람직 할까, 우선은 더 살고 싶겠지. 하지만 이것도 많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 60을 넘긴 이상 많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삶의 애착이 옛 처럼 많지 않다. 이렇게 외롭게 사는데 앞으로는 더 외로우리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원래가 외롭게 살았지만 지금처럼 외롭게 느껴본 적은 없다.  다 갔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가 없다. 유일한 혈육인 누나가 옆에 없다. 실제적으로 나는 고아다.  이세상에 현재의 ‘만들어진’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친구도 없다. 하나도 없다.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이다. 그저 그리운 과거들만 있다. 그게 현재로써 나의 유일한 기쁨이다.

한 마디로 왜 내가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되었는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운명이란 건가.  물론 나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전혀 ‘사고’같은 뜻밖의 인생을 산 듯한 기분이다. 이건 내가 예정하고 상상했던 나의 인생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 나의 선택이었고 시대의 선택이었고.. 그리고 운명이었다. 이렇게 살게 것이. 하지만 절대로 나 이외의 것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한마디로 ‘치사’한 짓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 행동이었고 선택이었을 테니까. 성격 탓인가. 그것도 원망하지 말자. 그건 나의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이니까.  한 마디로 현재까지 흘러온 나의 인생은 거의 ‘실패’나 ‘낙제’ 점수 일지도 모른다. 남이 볼 때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볼 때 그렇다. 의도적으로 된 게 거의 없으니까. 세파에 아니면 환경에 휩쓸리면 살았어도 그건 나의 책임이다. 패배의식은 분명히 나쁜 것이지만 솔직한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까.  어머니를 그렇게 돌아 가게 한 것으로 나는 99.9% 불효자이고 인생 낙오자다. 암만 생각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불효요, 무관심이요, 불성실이요, 나태요, 패배자요, 용기가 거의 제로인 인간의 행동이었다. 시간과 세월을 가지고 도박을 한 용기가 없는 패배자는 바로 나였던 것이다…

어제 김정국씨가 영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골통을 꽝~하고 치는듯한 느낌, 바보 같은 느낌.. 또 시간을 가지고 놀았다 하는 느낌.. 우리세대도 죽음의 세계로 완전히 돌입한다는 조금 과잉우려 같은 이런 저런 복잡하고 착잡한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김정국씨는 다행히도 하느님을 많이 알고 믿으면 저 세상으로 갔으리라 확신을 한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분명히 같은 분이실 거다.  김형, 먼저 가서 나의 자리 좀 잡아놓고 기다리쇼..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역시 내가 이렇게 시간을 멋대로 해석하며 사는 것에 대한 우려와 실망은 금할 도리가 없다.  아니 나의 인생이 그런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보미 아빠.. 딸 손주도 못보고.. 흔히 하는 세속적인 소리지만 슬프기 그지 없소.  그 예쁜 딸을 두고 먼저 간다는 게 그렇게 슬프구료.. 정말이오..  서로가 생각도 조금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는 더 가까이 지낼 수도 있었던 그런 인연도 있었는데.. 이것도 아마도 서로가 생각만 하며 끝이 난 모양이오.  그런 면에서 김형이나 나나 비슷한 듯 하오.  분명히 더 거의 형제같이 지낼 수도 있었던 인연이 있었는데 참 서로가 무참히 도 무시하며 외면을 했구료.. 아.. 하느님.. 그를 따뜻한 손길로 받아 주시옵소서.. 김형 그곳에서 편안히 잘 지내시구료.. 우리 모두 언젠가는 다 다시 만날 꺼 아니요..

이제는 ‘명실공히’  나는 60세가 넘었다.  앗 싸리 넘어 버리니까 조금 후련한가.. 그러니까 그걸 기다리는 게 더 초조 했던가.  매도 먼저 맞고 주사도 먼저 맞으라는 것과 비교가 될라나.  아마도 남들도 그렇게 느낄지도.  마음 같아서는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보내고 싶은 심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선 우리 ‘극성맞은’식구들이 그렇게 놔둘 리가 없고, 나도 그건 좀 너무한 것 같은 생각도.  그래도 예상보다는 더 차분하게 그리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연숙과 나라니 가 참 정성껏 모든 것에 신경을 쓰며 보아주었다.  이번에는 나도 좀 이 ‘극성맞게’ 일을 하는 모녀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식구’의 본래가 아닌가..

십 년이 넘게 눈에 거의 보이지 않던 ‘통’ 기타를 잡아 보았다.  물론 미끄럽게 이것을 다시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좌우지간 그걸 ‘치게’도 되었다.  한마디로 감개가 무량하고 옛날의 거의 산화가 되어가는 악보를 다시 보니 그런대로 생각도 나는 듯 하였다.  엇그제 같기도 하고 아주 몇 백 년 전 같기도 하고 조금은 혼동도 되는 게.   무슨 소릴하는 건가.  다 생각이 나는데.  그냥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 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10년 그러니까 나의 50대..는 정말 정말 정말 힘든 세월이었다.  거의 한번도 행복이란 걸 느낄 수 없는 세월들.  내가 인생의 어려움을 잘 감당을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때의 상황들이 그렇게도 어려웠던 것일까.  아마도 둘 다 일 거다.  하지만 어렵다는 걸 일초 일초 느끼며 살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뜻도 되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 치는 않지만 최동명씨의 지론에 의하면 그런걸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배가 부르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사람이 배가 부른 게 다 인가 말이다.

하기야 그렇다.  배고픔 정도까지 만약에 경험을 하거나 걱정을 할 정도가 된다면 그렇게 될지도.  다행히 아직(?)  나는 그런 경험은 못했다.  한마디로 어머님의 철저한 도움으로 나는 컸으니까  생각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막연히 ‘누군가’ 나를 도울 거라는 거의 형편없는 ‘망상’을 가지고 사는 지도 모른다.  나도 그게 싫지만 한편으로 ‘즐기는지’ 도 누가 아는가.

November 2020
S M T W T F S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  
Categories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