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책

며칠 조금 포근한 날이 다시 매섭게 추운 날로 돌아왔다. 이곳의 2월 달은 사실 포근한 달이 아니다. 깜짝 놀랄만한 겨울날씨는 이때부터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이번 겨울은 나도 조금은 놀랄 정도로 추운 겨울의 체면을 살렸다. 거의 잊어버렸던 두꺼운 스웨터도 찾아 입게 되었고, 별로 인기가 없던 두꺼운 장갑, 그리고 드디어 생일선물로 ear muff까지 생겼다. 얼마 전에 Tobey 산책을 시킬 때 착용을 했는데 그 ‘위력’은 사실 대단했다. 조금 듣는 것, 특히 ear bud로 음악을 듣는 게 문제가 되지만 산책 내내 아주 편안하게 머리가 따뜻했다.

그렇게 가물고, 따뜻하던 날들이 언제부터인지 싸늘하고 비가 계속 오는 그런 날씨로 변했다. 참, 자연은 공평한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균치’를 이렇게 채워주시니 말이다.  정도의 문제겠지만 가뭄보다는 장마같이 비가 많은 게 좋고 더운 것 보다는 추운 게 더 좋다.

오늘Cobb library 에서 건강에 관한 일본인의 책(“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 “이시하라 유미”저, 김정환 옮김, 2006)을 읽었는데, 체온이 내려가면서 생기는 신체의 각가지 부작용, 그러니까 한마디로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내용의 것이었다. 이것은 동양의학적으로 보면 수긍이 간다.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의 저자는 이것을 그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연구를 한 모양이다. 음식도 찬 것을 피하고, 목욕도 따뜻하게 하고.. 그런 식이다. 나는 어떤가? 우선 먹는 것은 이빨 때문에 찬 것은 피하는 편인데, 예외적인 것은 냉수와 우유 정도일까.. 문제는 겨울에 집안 기온이 낮다는 것이다. 춥게 사는 게 나는 머리를 맑게 하고 경제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것도 문제가 있는 모양 인가.

 또 하나 비슷한 종류의 책 (역시 일본인 저자: “병 안 걸리는 사람들의 3법칙“, “아보 도루” 지음, 박인용 옮김, 2007) 에서는 병 안 걸리는 사람과 잘 걸리는 사람의 특징을 다루었다.  권장하는 건강법은 ‘반신 욕’, ‘호르메시스’, ‘수면’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질병은 면역력의 저하에서 오니까 면역력을 높이면 된다는 뜻일 것이다. 외부적인 사고로 죽거나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이 ‘질병’만 잘 다스리면 ‘장수’를 한다는 그런 것일까? 어쨌건, 죽기 전까지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주변가족에게 부담도 필요이상 주지 않고, 더 나아가서 사회에도 경제적인 부담을 덜 주지 않겠는가?  이 권을 책을 빌려서 집에서 차분하게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행복어 사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삶을 아름답게 하는 100가지” 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행복어 사전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이곳의 bookstore 에서는 아마도 SELF HELP section쯤에 속하는 책일까… 이 책이 왜 금방 눈에 띄었는가 하면 같은 제목의 책이 전에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이 옳다면 아마도 <이병주> 라는 저자의 소설 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제목이 조금 특이해서 읽게 되었음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non-fiction인줄 알고 읽고 보니 그야말로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행복어사전은 글자 그대로 행복어사전 이었다. 진짜 사전은 아니지만 행복으로 가게 하는 저자의 90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경험적 글들의 모음 정도라고 해야 할까. Subtitle에 의하면 100가지라고 분명히 개수까지 밝히고 있다.  오늘 아침 크리스마스 다음날 일찍이 도서관에 나와서 읽게 되었는데 이건 내가 생각해도 나답지 않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사실 그냥 나의 서재에 앉아서 진한 아침 커피를 즐기며 있었을 시간이 아닐까? 이래서 인생은 꼭 예측대로만 진행되지를 않기에 조금은 재미있는 게 아닐까?

최근 거의 3년간 ‘다시 알게 되는 일본‘ 의 나만의 ‘공부’ 덕분에 조금은 일본인 저자가 생소하지 않고 일본의 이름들도 이제는 조금 친숙한 편이다.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사이토 시게타라는 90세의 일본인이다. 90세라는 나이의 느낌도 이제는 나에게는 30세라는 나이보다 덜 생소하다. 나의 나이가 60세를 넘어서 그런가..  30세라는 나이는 이미 내가 살아 본 나이라 덜 흥미롭지만 90세라는 나이는 내가 혹시라도 가보게 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나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이 책에 조금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저자가 60세 이후의 ‘막내 늙은이’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평균적으로 직장생활이 60세 전후에서 끝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경험상 그런 것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책을 더 깊이 읽게 되면 더 알게 되지를 않을까? 현재까지 읽은 것에서 공감이 바로 가는 것 중에는 “고민거리 도 마감날짜를 만들어 두자” 가 있다.  처음에는 조금 우습게도 들렸는데.. 가령 “여보시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된단 말이요?” 하고 곧바로 반문을 하면 뭐라고 저자는 말을 할까? 굳이 따지자면 시간을 질질 끌면서 고민하지 말자는 뜻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저자 자신이 아주 ‘효과’를 본 방법이라고. 아주 구체적인 방법으로 고민의 정도에 따라서 작은 고민은 10분에 고민을 끝내고 그 다음은 30분, 또는 최대 한 시간.. 등등.. 으로 개인에 맞게 시간을 정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너무나 현실적인 게 아닐까 생각을 하지만 이것도 도움이 되는 테크닉이 아닐까.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일’을 끝을 생각하며 일을 하라는 뜻일 듯하다. 나의 style과 아주 정반대라고 생각도 된다. 나는 그 과정을 더 즐기는 타입이라 그런 모양이다.

 

Here and Now

Henri Nouwen의  Here and Now 조금씩 읽고 있다.  이 양반의 문체는 정말 한마디로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One day at a time의 사고방식임에는 틀림 없지만 매우 공감이 가게 쓰고 있다.  이 책은 2006년 연숙으로부터 Father’s Day 선물로 받은 것인데 그 동안 내내 먼지만 쌓이다가.. 이번에 아주 우연한 기회로 재발견하게 되었다.  하느님께 감사.  매일매일의 일상생활과 성서적인 영성 생활을 어떻게 조화 시키는가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인데.. 이게 바로 그것을 집중으로 다룬다.  조금씩 읽고 있지만 그래도 만족이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는 한인천주교회의 구역모임이 있었다.  이번에는 구역 장을 다시 뽑는 문제도 있고 해서 별로 가고 싶지를 않았다.  매번 그랬다.  하지만 갔다 오면 그런대로 좋은 것도 있었다.  이게 아니면 내가 가족 이외에 누굴 본단 말인가.  이렇게 작은 그룹이지만 그것도 쉽지를 않다.  이 나이가 되면 이제 이런 것 다 짐작하고 모든 ‘인간’을 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전 선생님 부부가 미리 ‘경고’한 대로 ‘탈퇴’를 하였다.  이런 것도 이렇게 선언을 하고 나가는 게 이해를 하기 힘들지만.. 그분들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일한 ‘선배’격의 교우여서 유난히 신경을 쓰며 대했는데.. 이제는 그게 끝이다.  전선생의 지독히 직설적인 ‘용공론’이 계속 걸려 왔지만.. 이것도 끝인가.

나는 아직도 나의 머리를 너무 과신하고 있는가.  며칠 동안 연숙의 pola.mdb를 다시 review하면서 느낀다.  생각 같아서는 그저 몇 시간이면 될 듯한 게..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나..  잡상과 분심 등으로 시간이 쪼개 지지만 그래도 거의 나의 시간을 다 쓸 수 있는 이런 형편에.. 이게 무슨 추태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번에는 무슨 ‘결론’을 내려고 한다.  성공 아니면 실패.. 중간은 없다.  원죄 없으신 성모마리아 어머니여.. 저를 조금만 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