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ne Dyer, John’s Gospel, Little Flower

  • Post published:

다시 삼한사온의 흐름을 따라 영하의 밤과 아주 싸늘하지만 조용하고 밝은 낮을 맞는다. 어쩌면 요새의 날씨는 조금 재미가 없다고나 할까, 놀람과 흥분이 완전히 빠져버린 기후, 날씨 나의 정신건강에는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나의 관심이 이렇게 세세한 것, 쪼잔한 것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싫어진다. 좀 더 큰 것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사는 것이 나의 바램인데… 며칠 간 ‘뜻밖의 방학’을 선택한 것은 분명히 조그만 나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OK, OK…
아침부터 귀를 사수하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듣는 것을 지키고 조심하고 방어하라!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에게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하는 것, 그것이 그렇게 힘든 것을 미처 몰랐다. 어제 아침에 경험했던 완전 침묵 속의 독서, 필사의 경험, 새로운 것이었음을 알기에 다시 시도를 해 본다. 무엇을 읽으며 공부하고 생각을 할까… 너무나 많은 선택의 여지… 그래 요한복음산책 제2권 ‘비참과 자비의 만남’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보자..

3부 예수님의 초막절 가르침과 유다 지도자들과의 마찰 (7,1-52)

    1. 초막절 이전과 시작에 예수님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 (7,1-13)
    2. 초막절 중반에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과 유다인들의 불신앙(7,14-36)
    3. 예수님이 공적 계시와 유다인들의 불신앙(7,37-52)

 

Wayne Dyer Ph.D.. 또 이 이름이 이책에서 인용된다. 누군지 알지만 근래에는 많이 머리에서 희석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상담심리학저자, 하지만 그는 일반인을 향한 상업적인 측면이 강해서 과연 이 인용이 적당한 것일지…  기억을 되살리려 이름을 찾는다. 아~ 몰랐다. 2015년에 하와이에서 타계한 사실을… 이것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것.. 잊고 살았구나.

Critical, Skeptical… 나는 과연.. 이 두 가지를 좋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요한복음산책’을 읽으며 나는 이 두 가지 부류의 성향과 싸우고 있다. 왜 그럴까? 나의 현재의 심리적 상황 때문인가? 아니면.. 
강한 반발까지 동반된 이 두 가지 ‘부정적’인 판단은 건강한 것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비교적 오래 전에 이 저자의 책들에 접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연숙의 권유로… 동기와 자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얼마 안 가서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 이유만은 뚜렷이 기억한다. 책에서 풍기는 ‘겸손함의 결여’, 바로 그것이었다. 심지어 ‘교만함과 자기자랑’까지 곁들인 것들, 뜻밖이었다. 그 이후로 그 저자의 이름만 보고 피하게 되었다. 왜 남들은 그렇게 권하는 책들인데 나는 그랬던 것일까? 이번에 다시 접한 책들에서도, 아직도 그의 인상은 저자의 표현대로 그는 “성적 成績도 당연히 좋아 졸업 때 성적이 4.3 만점에 4.3이었다” 수준에 머물고 있다.
거의 모든 page에 달려있는 Notes 각주, 원전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note는 본문의 흐름을 끊고 페이지를 넘는 것도 있다. 지나친 note들이 연결된 본문에서 과연 저자 자신의 것은 어느 정도인가? 이 책이 논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편한 의자에 앉아 읽는 ‘산책, 수필’인가? 도무지 혼동을 피할 도리가 없다.

두 권의 책을 책상에 놓고 생각에 잠긴다. 하나는 요새 읽게 된 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2권 ‘비참과 자비의 만남’에서 힌트를 얻은 Wayne W. Dyer라는 상담심리학자의 1970년대 베스트셀러 번역판 <자기의 시대>라는 책이고 다른 것은 소화 데레사에 대한 역시 번역서다. 소화 Little Flower 데레사 성녀에 대한 책은 오래 전 연숙이 한국성당에서 빌려온 것인데 반납이 안 된 책이라서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양심에 상처를 안 받지 않을까?  두 책 모두 ‘필독서’의 대상이긴 하지만 조금 생각을 해야 할 듯하다. 두 책의 주제가 극과 극이니 말이다. 하나는 자기중심의 세계관을 가지라는 것이고 다른 것은 타인 중심의 가치관, 사랑이 주제니 말이다.
하지만 Wayne Dyer의 책은 1980년 결혼할 당시에 내가 사온 것이라 추억적인 가치가 있고, 송신부의 책에 꽤 많이 인용이 되고 있어서 관심이 간다. 소화데레사의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녀의 자서전은 책을 잘 못 골랐는지, 도저히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가 없기에 중도에서 포기를 했기에 더욱 다른 책이 필요했던 터였다.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바깥 모습의 유혹에 이끌려 오랜만에 둘이서 산책을 나섰다. 하지만 역시 예보에 나온 것들을 모두 맞았다. 싸늘한 기온에 보이지 않던 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번쩍 나는 정도가 아니라 불편할 정도였다. 그래도 밝음의 도움으로 걸었는데 연숙은 기본 코스만 돌고, 나는 Sope Creek 전체를 모두 걸었다. 예상외로 개울물은 불어나지 않았다. 며칠 전 밤에 내린 비의 양이 별로 많지 않았던 듯… 하지만 나의 머리 속은 역시 이곳을 함박눈이 흩날리는 날 걷는 우리 둘만의 모습이었다. 꿈은 꿈이겠지만 계절적으로 아직은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Groundhog Day, Farewell Hemingway…

  • Post published:

Groundhog Day, 2022… 올해는 잊지 않고 언급을 한다. 오늘 이 유명한 두더지가 자기 그림자를 보았을까? 작년에는 그의 기후예보가 거의 정확히 맞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이것 거의 ‘복권’추첨을 보는 듯 해서 이제는 재미도 있고.  Bill Murray 주연의 영화 The Groundhog Day가 암시하는 메시지,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듯한 우리의 ‘지겨운 매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극을 받는 위안도 받는다.  1993년 이 midwinter classic film은 이제 아련~ 한 추억거리로 남게 되어, 내가 살아 있는 한 이날은 재미있는 날로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오늘 이 유명한 두더지는 과연 보았을까?  아~  보았다, 자기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앞으로 6주 간은 겨울이 계속된다… 허~ 올해도 이것이 맞을 듯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구나.

거의 10도 정도가 올라간 비교적 포근한 날씨일 것이지만 역시 그 뒤에는 빗방울의 그림자가 없을 리가 없다. 구름이 있어야 포근함의 가능성이 있음을 안다. 거의 3한 4온, 그리고 정확한 주기로 찾아오는 비를 동반한 구름들… 그래, 최소한 이 지역 U.S. Southeast 는  Global Warming의 느낌이 없는, 거의 정상적 기후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감사, 감사… 하지만 한가지,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발을 다시 보는 행운은 있을까, 언제일까, 꿈은 버리고 싶지 않다.

TV news front…  나의 favorite & trustworthy channel은 전통적으로 NBC 인데 이유는 나에게 그들의morning show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음이 들고 news 보도도 비교적 이성적,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요새는 난항을 겪고 있는데 두 가지 ‘사건’ 때문이다. 하나는 최근에 들어,  “입만 열면 거짓말이 나오는“, ‘개XX DONALD’에 대한 보도를 지나치게 자세히 하고 있는 것[왜 그XX의 새빨간 거짓말을 cover하는지…]이고 다른 것은 ‘중공, 빨갱이 짱깨‘ 들의 다른 fake show, Olympic을 [상업적이 이유지만] 전면 cover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한 유일한 선택은… 그것들을 아예 ‘꺼버리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오늘 이른 아침 TV에서 우연히 잠깐 본 영화에 낯익은 얼굴이 나온다. Rock Hudson, 1957년 개봉된 이 Hollywood 영화, 한글 제목은  ‘무기여 잘 있거라‘, 귀에 익숙한 이 구절.  헤밍웨이의 유명한 소설과 영화의 제목 A Farewell To Arms..
이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61년 때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보게 된 영화[Rock Hudson, Jennifer Jones] 때문이었다. 중학교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생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그 나이 코흘리개들이 과연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인가? 물론 전쟁의 모습들은 흥미 있게 보았겠지만, 당시 우리의 화제는 한가지였다. 주인공Rock Hudson[ Frederic Henry역] 과 그의 연인 Jennifer Jones[Catherine Barkley역] 가 과연 ‘그것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고 아직도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원래 소설에는 그렇다고 나오지만 아마도 검열에서 삭제가 되었을 것이다. 좌우지간, 그 나이에 벌써 우리들의 hormone level은 왕성했던 것인가.

나중에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잠재의식, 기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 나왔다. 눈이 덮인 높은 알프스 산등성이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하는 군인들, 폭탄이 떨어지는 병원에 누워서 ‘마지막’ 기도를 합창하는 부상병들, 후퇴하는 민간인들의 처참한 모습들.. 길가에서 군법 즉결재판 후 총살 당하는 군인들,  그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에 맞서서 연합군 측에 가담한 이태리 군인들의 알프스 작전을 포함한  1차대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배우게 되었고 요새는 그것, 전쟁의 실제 모습’ 을 직접 경험했던 Hemingway의 생각과 기억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헤밍웨이의 행적을 묘사한 다른 책[실화]과 영화[실화에 근거한]가 있었던 것은 오늘에서야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가19살에 혈기왕성한 미국청년으로서 이태리 군대의 위생병, ambulance driver로 참전한 경험은 나중에 그가 쓴 각종  베스트셀러 걸작 소설의 배경이 되는데, 특히 그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까지 하기로 했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또 다른 미국출신 7년 연상의 간호원 Agnes는 위에 말한 영화의 여자 주인공의 model이 된다. ‘무기여 잘 있거라’ 같은 소설과는 달리 실제의 이 연애 스토리는 전쟁이 끝난 후 서로 헤어지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그가 나중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세계적 문인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전쟁중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한 것은 고사하고 진부하고 흔한 이야기 중의 하나였을 것인데, 헤밍웨이와 Agnes의 운명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평범한’ 사랑이야기는 1960년 이후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해서 1990년대에는 책과, Chris O’Donnell, Sandra Bullock 주연의 영화, “In Love and War“로 알려지기도 했다.

헤밍웨이의 운명, 아니 행운은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연합군 측으로 참전한 이태리에 외인부대 위생장교로 참전한 것으로, 그것은 그의 일생을 좌우하는 사건이었다.  위에 말한 Agnes라는 연상의 여인과 흠뻑 사랑에 빠진 것, 그 젊은 나이의 열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탁월한 문필가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이태리 무대가 모든 베스트셀러, 노벨상 등으로 이어지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을까? 그 이후에도 그는 각종 분쟁, 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아마도’ 이태리 때의 사랑의 경험을 다시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1차대전 말 이태리의 Alps campaign의 시작..

Frederic과 Catherine의 우연한 첫 만남

알프스 산맥 정상으로 쳐들어오는 독일군을 향해 올라가는 이태리 군인들

독일군 spy로 오인되어 총살 위기에 몰린 Frederic 

구사일생으로 위기모면 후 중립 스위스로 탈출하는…

스위스 동네 경찰이 이민관 역할을.. 여권은 검사하지만 속 뜻은…

Catherine은 출산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결국 그는 전쟁과 사랑의 비극을 몸소 안은 채…

Ernest Hemingway

 

Trace of Snow Overnight…

  • Post published:

어두운 밖을 보니 하얀 색깔이 보인다. 아~ 어제 잠깐 들었던 snow flurry가 오긴 왔구나. 지붕과 lawn deck rail등도 거의 얼어붙은 흰색의 모습들, 아주 조금 내린 듯하지만 그렇게 을씨년스럽고 냉혹하게 느껴질 수가 없구나. 어제는 2014년의 기록적인 대설 기념일이었으니, 더욱 싸늘하고 춥게 느껴진다. TV를 보니 미국 동부전체는 모조리 WIND CHILL란 글자로 덮여있고, NYC는 현재 눈이 ‘펄펄’ 내리고 온통 하얗게 보인다. 이곳은 오늘이 아마도 이번 겨울 들어서 제일 춥고 싸늘한 날이 될 것이다. 그러면.. 2월… 아~ 참 어떻게 세월은 이렇게도 끊임없이 흐르는 것일까, 좀 쉬었다 가면 안 될까?
유난히도 쓸쓸한 아침을 달래려 TV도 보며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하나도 나아지질 않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쓸쓸, 황량, 을씨년스러움, 고독하게 느끼게 하는 것일까? 감정의 계곡을 가는 것인지, 왜 나는 이런 변화에 완전히 무력감을 느끼는 것일까? 깊은 한겨울의 고독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고독, 외로움, 쓸쓸함, 싸늘함, 심지어 삶의 귀찮음… 싫지만 할 수가 없는 것들, 아니 필요한 삶의 여정의 모습일지도…

나라니 부부가 Historic Roswell 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로난을 돌보았다. 돌본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데리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고 나니 생각보다 안도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딸 부부들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은 아닐까, 아직도 나는 그들을 지척에서 몇 시간을 편하게 보내는 것이 힘든 것일까? 둘 다 맞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라니와는 아직도 서먹서먹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고 Luke와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라는 나의 선입견 때문은 아닐지… 참 이것은 어려운 문제지만 세월이 자연히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들 가족이 건강한 삶을 계속해서 산다면…

본격적으로 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2권 비참과 자비의 만남’을 읽고 있다. 다음 주에 공부할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놀라는 것, 꽤 많다. 아니~ 계속 놀란다. 어떻게 이런 배경들이 복음의 글귀 뒤에 숨어있었단 말인가? 본문 자체도 그렇지만 이 한 신부의 해석까지 얼마나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신빙성 문제인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을 내 것으로 건강하게 소화하려면 100% benefit of doubt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건강한 의심은 분명히 있어야 하지만 이 공부에는 가능한 한 자제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게 이 책을 소화하면… 희망이 보인다. 나도 복음을 제대로 믿고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그 멀게만 느껴지던 ‘복음의 신비성’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리라는… 희망… 오소서 성령님, 저에게 빛을 보는 은총을 주소서…

 

Siberian Day, All Day…

  • Post published:

대한 大寒 추위와 나의 생일 등의 모습이 느껴지며 어제 시작된 겨울추위는 역시 겨울다운 겨울의 기쁨일 수도 있다. 오늘은 숫제 하루 종일 기온이 빙점에서 맴돌고, 설상가상으로 매서운 시베리아 바람까지… 그래, 좋다… 로난이 오면 산책을 할 수가 없을지는 몰라도 나는 Ozzie와 또 둘이서 Sope Creek의 ‘설경 잔해’를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제 우리는 연숙과 셋이서, 나+연숙+Ozzie, 눈을 맞으며 눈을 발 아래 보고 느끼며 걸었지 않았던가? 기막힌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1시간 45분 정도의 산책, 오늘은 시베리아 급 싸늘한 바람이 부는 날이라서 목도리와 장갑으로 무장을 하며 걸었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아무리 춥더라도 견딜 만 하지만 얼굴과 귀만은 조금 문제다. 하루 종일 40도에도 못 미치는 기온에다 햇살이 전혀 없고 바람이 부는 오늘은 사실 따뜻한 집에서 늘어지면 좋겠지만 오늘은 그런 사치를 부릴 수가 없구나. 나라니가 집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기에 어는 정도 로난은 봐 주어야 하니… 

며칠 동안 독서삼매경을 잊고 살았다. 어제 눈보라를 뚫고 배달된 또 하나의 ‘필독서’ Philosophy, Science and Religion, <요한복음산책>과 더불어 나의 눈과 머리를 즐겁게 한다. 비록 깊이 읽지는 못해도 그것이 큰 문제인가, 손끝으로 느껴지는 책장의 느낌과 박학다식한 저자들의 학식, 진리를 보기만 해도…  하지만 우선은 내일로 돌아온 요한복음산책 강해, 그것이 우선이다. 내일 공부할 것 예습독서를 못했다. 그것을 오늘 로난을 보아주면서 읽을 수 있을지…

 

Fear of Silence, Old Friends Reunited…

  • Post published:

오랜만에 아무런 ‘소리, 잡음’이 없는 시간을 보낸다. 무의식 중에 생각도 없이 무슨 소리를 듣거나[대부분 음악] screen 영상을 보거나[대부분 영화 video] 하는 나쁜 버릇이 사실 거슬리던 차에 용감하게 몇 시간 소리의 침묵 시간을 만든 것이다. 이런 때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는 것,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을 절감한다. 평소에 왜 이렇게 못하고 사는 것일까? 불안하기 때문인 것인가? 외로워서 그런 것일까? 차분히 눈, 귀, 머리에 간섭을 안 받는 사실이 불안하고 외로운 것, 바로 그것이다. 요새 돌아가는 사회생활이 그런 식이다. 간섭을 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에 그것이 일순간에 사라지면 불안한 것이다. 나도 그것의 피해자의 한 사람인 것, 왜 몰랐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주위가 너무 조용한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어떻게 이것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읽는 James Martin 책들: 그 중에서 JESUS, PRAY, JESUIT GUIDE 모두 모두 좋았다. 내용도 그렇지만 이 신부님의 engaging하는 친근한 서술방식은 가히 일품중의 일품이다. 해박한 지식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point가 아니다. 그것을 완전히 소화한 후 친구와 말하듯 유머러스 하고 겸손한 자세로 쓴 글, 어떻게 나도?

 

오늘은 backyard쪽이 보이는 부엌창문 위쪽에 소박하지만 밝디밝은 포도송이 light 3개를 달았다. 물론 연숙의 작업이었다. 우리 ‘골목, cul-de-sac’이 올해는 왜 이렇게 조용할까? 한 사람도 ‘번쩍이는 장식’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해서 우리가 제일 빠르게, 비록 밖에서 보이는 실내 장식이지만… 오늘 중에 밖의 장식도 할 생각인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제일 빠르게 하는 것인가? 앞집 Josh집은 숫제 껌껌한 모습, 아마도 vacation을 간 듯하고, 옆집 Dave도 너무나 인기척이 없고, Mrs. Day 아줌마 집도 밖으로 비치는 불빛이 안 보이고… 왜 이렇게 올해는 작년과 다른가…

요란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아~ 비가 왔구나, 어제의 일기예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꿈꾸듯 들었기에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어나 밖을 보니 모두 젖어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빠르게 지나간 폭우였다. 조금 더 지연되었으면 남아있는 나무 잎들이 모조리 떨어질 듯… 아니~ 이미 다 떨어졌는지도… 밖의 모습이 황량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오늘은 조금 색다른 날이 될까? 깜깜한 저녁 8시에 혼자 차를 타고30분간  freeway를 달려 Buford Hwy 한식당에서, 식사까지.. Pandemic은 물론이고 지난 주 자가격리에서 나온 직후라 이런 외출이 익숙지를 않아서 심적으로 불편하기까지 하다. 밤에 운전을 하는 것,  이제는 익숙지 않다. 언제부터 그렇게 이상하고 겁을 내는 나를 보는가?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는 없다. 같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앞으로 나아가는 나이’, 가끔 생각한다. 언제까지 나는 혼자서 밤에 마음대로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을까?

하지만 2년 이상이나 못 보고 살았던, 모르게 정이 들었던  ‘목요회 친구’들과 모이는 것은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처음 재상봉 再相逢을 했던 2017년 9월의 추억이 이제는 역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들과의 인연은 잊지 않는다. 다만 Pandemic으로 생각만큼 그들과 더 가까워지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문제는 앞으로 앞으로 어떻게 사귀거나, 친교를 할 것이고 이들은 남은 인생에서 나에게 어떤 사람들로 남게 될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오늘의 모임은 정말 놀랍게도, 기대 이상으로 반갑고 즐거운 느낌으로 끝이 났다…  우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이 모든 의미를 둔다. S형제의 놀라운 변신은 나를 놀라게 했고,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2년 동안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제일 큰 것들을 가까이 앉아서 나누는 그 자체가 오늘 모임의 모든 것이었다. 오늘의 재회를 기념하며 다음 달부터는 정기적으로 모일 것을 기약하며…  비교적 조용해진 I-285의 깜깜한 밤을 가로지르는 느낌, 절대로 나쁘지 않았다.

Self-Quarantine, Day 3

  • Post published:

자가 격리 3일 째, 갑자기 집에 있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 사실에 조금 들뜨고 심지어 신선하게도 느껴졌지만 그것이 그렇게 오래 갈까… 어제 저녁부터 조금씩 심란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지난 10년 간 가까이 놓고 읽고, 품고 살았던 각종 책들 대부분을 desk위에 차곡차곡 쌓아놓아 제목이 눈에 보이게 하고 추억과 명상에 잠기는 사치까지 맛보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갈팡질팡하는 나의 모습이 싫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자연적으로 저절로 풀려나갈 것이다.

 

초가을 같이 포근한 날씨의 유혹을 오늘, 내일 어떻게 자제할 것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사람과 거리를 두며 둘이서 산책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안다. 아마도 오늘 우리 둘은 걷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현명한 생각이다. Sope Creek에서 힘찬 냇물을 소리와 모습을 가까이 하는 것이 더 건강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일단 내일 COVID test를 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모레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면 하루 연기하는 것도…

오늘의 기쁜 소식들 중에는 나라니와 로난이 COVID test에서 negative가 나왔다는 것과 COVID positive 인 Luke가 훨씬 나아지고 있다는 것, 이제 우리의 test만 신경을 쓰면 될 듯하다. 문제는 내가 점점 감기증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침이 심해지고 콧물까지… 이것은 분명히 연숙으로부터 온 것 같다. 이제 나도 감기, 독감 등에 자신이 없어진다. 예전에는 정말 이런 것들 모르고 살았는데… 왜 그럴까?

Reminiscing Happy Days with Tobey…

  • Post published:

오늘도 2시간 산책을 했다. 이 제일 긴 코스는 보통 걸음으로 1시간 45분 정도 걸리고 천천히, Ozzie에게 끌려가면 2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2시간 짜리는 나도 천천히 걷는 것이라서 운동량은 떨어지지만 대신 더 밖의 맑은 공기를 마시게 되는 이점이 있다. 특히 요즈음 같은 멋진 가을 날씨에서는 이것이 최상의 운동 일 듯하다.

오늘 산책에서는 모처럼, 3년 전까지 Tobey과 같이 누워서 하늘을 보던 그 playground 의 놀이터에 올라가 Ozzie와 둘이서 누워보았다. 어찌 Tobey생각이 안 날 수가 있는가. 그 녀석 생각을 하면 필요이상으로 울적해져서 가급적 이곳에 올라가는 것을 피하곤 했는데, 오늘은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마음껏 추억하자는 뜻이다. Tobey도 정말 나와 같이 행복한 삶을 살고 천수했다고 나를 위로하기 바쁘다.

집 어귀에 있는 나무의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위쪽은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었고 아래 쪽에 조금 남아서 아마도 며칠 안에 다 떨어질 모양…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일찍 떨어진 것은 아닐지…

 

오늘도 다행히 제시간 6시 30분에 일어났다. 휴~ 이런 것도 이제는 조그만 은총으로 생각된다. 어제 이제는 귀국한 조시몬 형제의 카톡에 ‘건강 검진 잘 받고 건강 하라’는 충고가 이제는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진정한 도움말로 들린다. 어떻게 살면 건강하게 사는 것일까? 우리는 어느 정도 열심히 사는 것일까? 과학을 너무 신봉하는 것도 그렇게만 그것을 불신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과학은 믿음과 상관이 없는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을 믿고 따르자.

어제 송 아오스딩 형제가 카톡 초대를 보내왔다. 지난번 젊은이 장례미사에서 만났을 때 구역모임을 언급한 것 때문이 모양이다. 솔직히 아직도 무언가 ‘앙금’이 남은 듯하지만 이렇게 살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몇 사람과의 일시적 ‘사건’이었지 않은가? 그것도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마음을 열고 사는 것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 보고 싶지 않은 사람[그곳에는 우리가 레지오 탈단 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 한 사람도 있으니…]이 그곳에 있는 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이것도 맡기자, 맡기자… 상식적이고 평범하게 살자.

책, The Hours of the Universe 지금 필사, 독서하는 책이다. 이 책도 나의 주관심사인 과학과 종교의 핵심을 찌르는 지적 심도와 명상, 묵상이 멋지게 어울린 보기에 가벼운 책이다. 저자는 나에게 익숙한 과학자, 교수 수녀 Illa Delio.. 얼마나 멋진가? 그녀는 나의 다른 선생님 Teilhard Chardin 석학이기에 간접적으로 나는 Teilhard에 관한 공부도 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들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것을 분석하는 것도 큰 일이 되었다. 왜, 나는… 이런 주제에 매료가…

COVID Booster Shot Fatigue

  • Post published:

우려한대로 연숙에게 shot side effect가 왔다. [큰 사위] Richard가 경험했다는, 비정상적인 피로감, 바로 그것인 모양이다. 열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저 피로하다고.. 허~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이 같은 심리인가?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시간만 지나면 되는 것이니, 이것도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대신 ‘죽을 병’에서 조금 더 멀어진 것이니까… 이것으로 아침의 정상 routine이 바뀐다. 매일미사, 그리고 오늘 가려던 Sam’s Club shopping도 내일로 미룬다. 덕분에 조용한 아침시간은 나에게 거의 bonus와 같은 것이니까, 절대로 불평할 수가 없다. 아니 심지어 감사한다고 나 할까… 이것도 아동심리인가?

결과적으로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sick day가 된 것인가? 연숙은 완전히 반나절을 완전히 잠을 자고, 나는 별 증상이 없어서 허리가 조금 아픈 것을 낫게 한답시고 동네를 혼자서 걸었다[짧게]. 그러다가 오후에 들어서 나도 조금 그야말로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해서 연숙이 빠져 나온 침대로 들어가 2시간 이상을 자게 되었다. 이것으로 booster shot 후유증 행사가 끝나는 것인지…

 

어제로 끝난 daily typing, 그것이 없어지니까 조금 허전하다. 어제 끝난 것은 James Martin의 Between Heaven and Mirth, ‘성자처럼 즐겨라‘ 인데, 다음 것은 무엇을 할까…. 이번에 새로 산 ‘따끈따끈’한 Ilia Delio의 신간 The Hours of the Universe로 정했다. 책의 두께는 비록 얄팍하게 보이지만 내용은 그 반대다… 아주 무겁고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Ilia Delio ‘수재 과학자, Teilhard expert’ 수녀의 글은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21세기 과학, 신앙’ 접목을 위한 걸작임을 알고 있기에 이것도 soft copy를 남겨두고 싶다.

Booster Shots at Publix, Finally…

  • Post published:

오늘 저녁 늦게 Corona booster shot 예약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고 있었다. Pandemic이후 오랜 동안 근처에도 못 가보았던 YMCA,  그 바로 앞에 있는 이곳 Publix Supermarket에서 이것을 맞게 되었다. 3주를 기다릴 줄 알았다가 새로니의 예약 덕분에 일찍 맞게 되었지만 사실은 주변의 아는 사람들 거의 다 맞은 것을 알면 이것은 너무나 늦은 것이 아닌가?  최근에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 다시 감염률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정말 골치 아픈 세상을 살고 있다.

결국은 우리도 이렇게 해서 COVID booster shot 접종을 받았다. 이것으로 ‘당분간’ COVID 로 죽는 chance는 아주 낮아진다고 한다. 이것을 맞는 것,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인데 왜들 그렇게 앙앙거리는 것인가? 이번 Pandemic을 겪으며 새삼 깨달은 것, 이 세상에 정말 바보, 병신, 아니 거의 criminal급 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불쾌한 사실, 어쩌면 그렇게 무식하고 남을 배려 못하는 병신, 무지랭이들이 득실거리는 걸까… 솔직히 미안한 소리지만 그런 부류 인간들, 이 병에 감염되어서 죽지는 말고, 죽기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1+1=3 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은 인간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오늘 접종은 의외로 밤시간에 차를 drive해서 가는 기회가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접종의 느낌 대신에 밤시간에 drive해서 나갔다 온 느낌을 나누었다. 정말 오랜만인 것이다. 밤시간의 밖은 우리에게 조금은 불편한 모습들, 확실히 이것으로 우리는 활동적인 세대에서 이미 멀어지고 있음을 절감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착잡한 심정이다. 옛날 옛적, 오밤중에 장시간 drive하며 돌아다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딴 나라 세상 같기도 하고… 조금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요즈음 나를 매료시키는 Thomas Berry의 거시우주적 자연관이나 어제 읽었던 Avery Dulles [추기경]의 ‘자연’ 체험담 등이 나의 보는 눈을 더욱 활짝 열어주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Dulles 신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롭다. Dulles 집안은 미국에서 유명한 명문가문이다. 나도 어렸을 적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인 John Foster Dulles를 기억할 정도니까.. 그의 아들이 바로 Avery Dulles라는 것인데 집안의 후광과는 상관없이 이 추기경님은 미국 제일가는 가톨릭 신학의 거두인 것이다. 이분이 대학시절까지 무신론자에 가까운 agnostic였는데 한 순간에 하느님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내가 요사이 유달리 깊은 가을의 모습에 감동하는 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이 추기경도 어느 날 나무의 모습을 보다가 깊은 영감을 느끼고 곧바로 가톨릭에 입교를 했다고 한다. 비슷한  case로는 유명한 당대의 석학 Narnia Trilogy로 알려진 C.S. Lewis 의 천주교 개종 일화도 있다.

 

I walk therefore I am…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 도 Ozzie와 둘이서 정처 없이 2시간을 걸었다. 그야말로 spectacular, gorgeous day, 깊어가는 가을의 모습, 이곳에 산 이후 제일 멋진 가을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니면 내가 자연을 보는 눈의 차원이 올라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눈으로 들어오는 물리적(광학적) 그림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뇌 능력이 발달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 이상의 형이상학, 초월적인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오늘 드디어James Martin신부의 걸작,  ‘성자처럼 즐겨라!’ 의 ‘필독서’ [필사, 독서의 약어]가 일단 완료되었다. 재독을 하며 교정을 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 책의 요점은 대강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즐겁고 명랑한 신자가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하는  마틴 신부의 경험적 논문 급의 정말 탁월한 솜씨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책의 주제를 나와 어떻게 연관을 지을까 하는 과제는 남는다.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긴 했다. 우선 나와는 거리가 먼 어려운 요구라는 것, 나는 어쩌면 너무 심각한 자세로 살고 있다는 것, 그런 나와 함께하는 나의 주변 가족, 지인들… 미안하기도 하다.

Fall Back Day, Kafka’s Shadow..

  • Post published:

반갑지 않은 연례행사, 지난 밤에 이미 벽, 손목시계를 모조리 한 시간씩 늦추는 [새벽 2시가 1시로]  고역을 치렀지만 덕분에 아침잠 한 시간을 벌었다. 큰 생각 없이 맞이한 연중32주간 시작 본당 주일미사, 가보니 매년 이즈음 ‘평신도’ 주일이란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2010년대 초,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 재임시 연숙이 평신도 대표의 한 사람으로 강론대에 올랐던 추억까지는 좋았는데.. 글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뜻밖에  ‘W 마귀’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허~ 미리 알았더라면 거의 십중팔구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피했을 터였다. 이 Kafkaesque, hypocritical, lying, attacking 하는 인간과 우리는 왜, 무슨 악연으로 엮였는가? 듣기 싫은  narcissistic mumbo jumbo, 귀를 막는 용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들어야 하는 괴로운 자리였지만, 궁여지책으로 완전히 눈을 감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나의 모습,  죽도록 싫었다. 

오늘은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멋진 가을날’, 시간이 한 시간 늦추어진 것과 더불어 더욱 계절의 신비를 느낄 수 있은 날이 되었다. 오늘은 이전과 다르게 모처럼 Buford Highway의 전통적 명소, Farmer’s Market에 들려서 떨어진 쌀도 사고 식사용 스시, 비빔밥을 그곳의 food court에서 사왔다. H-Mart에 비해서 조금 낡은 내부였지만 이곳의 물건들, 특히 produce 류들은 이곳이 훨씬 싱싱한 듯 보였다. 하도 인상적이어서 다음 주부터는 이곳도 정기적으로 오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환하고 깨끗한 것은 H-Mart로 가고 싱싱한 것, 푸짐한 것을 찾으려면 이곳 Farmer’s Market… 허~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1989년경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와 비교하면 이건 완전히 천지개벽, 아니 천지창조 된 느낌까지 든다.

 

아침의 얼어붙는 듯한 스산함에서 갑자기 찬란한 태양에 힘입어 부드러워진 대기 속을 걷고자 새로 개발된 neighborhood trail을 45분 동안 걸었다. 걷는 것과 혈압조절의 관계를 의식한 것이 제일 큰 동기가 되었나, 연숙이 나보다 더 열심히 산책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 나도 싫지는 않다. 그렇게 오랜 세월 걷자고 했지만 이제야 정신이 나는 모양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년 봄까지는 모기 문제가 없으니 걷는 것 큰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이것으로 신체의 각종 의학적 수치들을 조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요새 계속되는 kitchen area paint, range hood쪽의 faux door 로 그곳이 한결 보기가 좋은 것에 힘을 입어 sink area의 paint job에 도전했다. 크게 힘든 일은 아니지만 귀찮게 자주 움직이는 것, 이제는 예전 같지 않고 지나친 결과에 대한 집착, 실수할 까봐 걱정하는 나의 모습이 싫다. 이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조금 실수해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다시 하면 되는데… 시간은 넘치는데…

 

며칠 전에 거의 충동구매에 가까운 2권의 책이 빠르게 도착했다. 두 권 모두 나를 흥분시킬 만한 제목과 review를 자랑하는 책들이다. 과연 어떤 내용들일지… 기대가 크다.  Ilia Delio, 그녀의 책은 이미 사서 본 적이 있는 수준 높은 scholarship을 지닌 저서들이어서 아마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책, 보기에도 웅장하게 보이는 hardback 멋진 장정으로 심각한 인상을 준다. 과연 Is God Dead? 에 걸맞은 Is Atheism Dead? 제목답게 21세기의 classic으로 남을 것인가? 

하느님 맙소사! 오늘은 정말 극과 극의 극단적 날로 끝이 나는가? 왕마귀에서부터 ‘IS ATHEISM DEAD?’의 저자 Eric Metaxas란 새로운 이름의 저자까지.. 정말 이상하고 싫은 날이 되었다. 왕마귀는 그렇다 치고, Metaxas 라는 발음하기도 괴로운 이름의 인간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의 최근 간행된 책의 저자가 바로 ‘DONALD 개XX’ 신봉자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쓴 저자의 배경에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 예를 들어서 ‘하느님의 존재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의 배경에 그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정치인을 전폭적으로 지지 한다는 것이 포함이 된다면? 이것 정말 예상치 못한 대형사고다. 앞으로는 책을 살 때 그 자자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인가? 책을 return하고 싶기도 하지만, 우선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고, 또한 책에다가 재빨리 나의 sign을 한 것, 등으로 return을 하는 것은 옳지 않는 듯 싶다. 아~ 괴롭다, 괴로워…

Amazon의 book review를 읽으면 이 책의 내용에는 저자의 ‘비이성적’인 정치관은 거의 없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니까 책의 저자를 의식하지 말고 책의 내용에 집착을 하면 이 책을 버리거나 돌려보낼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래도, 찜찜한 것은 역시 나의 ‘과민한 상태’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 냉정하게 판단하고, 읽자, 이 책을…

Dreary Rainy Fall Day, Restoring Range Hood…

  • Post published:

지난밤 정말 깨끗이 잤다. 한번도, 한번도 깨지 않고… 귀찮은 pee, 악몽, 밖으로부터의 소음.. 등등이 하나도 없었던,  8시간 이상의 straight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이다. 이것이 또 하루를 살게 하는 ‘밥’인가? 그래, 이 정도면 건강한 모습이다.

예보대로 dreary, gloomy, dark, breezy, wetting… 모두 섞여있는 깜깜한 밖의 모습, 안전하고 아늑한 실내의 고마움을 잊고 싶지 않다. 집, 보금자리, 제2의 장구한 추억이 아롱진 집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예상대로 오늘은 대낮도 거의 초저녁 같이 어둠이 깔리고 소낙비는 아니더라고 꾸준히 비가 내린다. 가끔 바람이 불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런 창 밖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씩 작은 우산을 들고 tool shed로 뛰어가서 몇 가지 필요한 tool들을 가져왔던 그야말로 ‘가을비 우산 속’을 경험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잠시 range hood 위쪽의 duct를 cover하는 작업에 정신을 쏟았다. 일단 보이지 말아야 할, 가려야 할 ducting을 예전처럼 꾸며놓았다. 일단 이 작업은 끝났다고 보아도 되지만, 조금 더 그 주변의 미화작업을 하는 것은 필요할 듯…

 

Thomas Berry reading을 며칠 전에 이어서 읽는다.  오늘 것은 ‘지구 환경, 생태학의 영성’ 에 관한 것. 지구환경이나 생태학 등을 과학적인 눈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한 접근 방법이며 궁극적으로 영성, 영적인 차원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오늘은 잡스러운 소음, 주로 음악들이 없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읽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졌다. 읽을 수 있는 건강한 두 눈과,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기능적인 머리가 살아있는 이 나이가 귀중하게 느껴진다. 과연 언제까지 나는 이런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어제 연숙이 어디서 보았는지, 앉았다가 일어날 때 머리가 아뜩해지는 증상을 느낀 후 평균 10년 정도 더 생존했다는 통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허~ 그런 통계도 있나… 10년 씩이나 더 산다고? 짧지는 않지만 문제는 그렇게 ‘숫자로 정해진 기간’을 보니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누가 감히 죽은 날을, 하느님을 빼고, 알 수 있단 말인가?

날씨의 도움으로 차분해진 가슴과 머리를, 오랜만에 손에 잡히는 책들을 읽고 생각하는 쪽으로 관심을 쏟았다. 지나간 여름의 독서 목록에 있는 것들, 너무나 목표가 높았던지 꾸준히 매일매일 조금씩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중에 오늘 손에 잡힌 책들,  James Martin, SJ 의 저서들 중 (1) Jesus, a pilgrimage, (2) Essential Writings (3) Learning to Pray 세 권은 거의 우연한 선택이었고 책의 내용도 보기와는 달리 아주 가벼운, 경쾌한 것들이었다. 

Came September…

  • Post published:

확실히 기온이 떨어짐을 느낀다. 그렇게 습도가 높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게 잠을 잔 것이다. 6시 반에 일어났지만 잡스러운 꿈을 기억하느라 누워있었다. 7시를 전후해서 아침 routine을 시작한 날, 오늘은 어떤 하루를 창조할 수 있을까?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덤덤하게 이끌려 가지 말고 내가 만드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오늘은 9월의 첫날, ‘명색이 가을’의 느낌을 주는 단어가 9월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기분학상으로도 써늘한 피부의 느낌과 thermostat에 보이는 70도라는 숫자, porch door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 등등이 가을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래 나는 올 가을의 ‘갈색’을 그렇게 기다렸지…

완전히 개인 날씨일 뿐 아니라 바람까지 산들산들 부는 여름 들어서 제일 시원한 느낌을 주는 날이 아니었을까?  85도 정도에 비교적 건조한 대기는 상쾌한 것이었다. 9월의 시작을 시원하게 맞는다.

 

A Coursera course:  Journey of Universe specialization No 2, conversation을 힘차게 시작하였다. 첫 번째 것의 반복도 포함 되어서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것으로 나는 ‘과학+종교’의 대화가 시작되는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테이야르 샤르댕의 공헌이 지대했을 것이다. 진화론을 그리스도교에 완전히 이론적으로 접목하는 그의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학식이 나왔을까?

늦게 손에 잡힌 책이 작년 3월 Pandemic이 선포되던 때 산 Capra (with Luisi)의 The Systems View of Life, a unifying vision.. 왜 이 책이 눈에 띄었을까? 물론 현재 ‘청강’하고 있는 Journey of the Universe 코스의 영향이다. 오늘 이 코스에서 새로 찾은 석학 Thomas Berry의 유명한 저서 The Dream of Earth 중에서 New Story 란 부분을 필사를 하면서 이미 인문학, 과학, 종교 등이 서서히 대화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실감을 못한 것이다. 특히 진화론에 대한 나의 얄팍한 편견, 가톨릭 교리의 영향, 정말 편견, 편협한 생각이란 것 등… 눈을 떠간다, 나는 점점, 거대한 그 무엇을 향하여..

그 다음에 나의 눈은 2014년2월에 사서 읽을 책, The Language of God,  그 유명한 BioLogos 창시자 Francis S. Collins를 알게 해준 시발점이 되었다. 그의 해박한 과학철학종교 론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이 나는 너무나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처럼 살 수 있는가?

Hurricane Ida, Bye August, Big Fish

  • Post published:

지난 밤에도 꿈을 많이 꾼 듯한데 아~ 왜 하나도 분명하게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까? 기억하고 다시 그 꿈을 살고 싶은데…

잠 속에서도 비가 오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조용하다. 아하~ 이것 또 내가 상상을 심하게 했구나~ 혹시 hurricane Ida 가 완전히 이곳을 피해서 올라간 것일까? 조금은 섭섭하기도 한데… 알고 보니 지나가기 전의 상태인 모양… 하루 종일 폭우와 tornado 가능성이 높다고… 그럼 그렇지. 덕분에 조금 시원해질 것을 기대도 하고 세월의 변화도 신선하게 느낄 수 있고… 하지만 NOLA (New Orleans) 는 완전히 power 가 끊어졌다고… 전에는 flooding을 걱정했는데 그것은 OK인데 결국 power system이 이번의 victim이 되었나? Flooding보다는 몇 배 낫지만 power가 없으면… 이것은 사람을 말려 죽이는 것 아닌가? West의 wild fire, 그리고 끈질긴 Pandemic Delta variant까지 nature는 신음을 한다. 아~ 테이야르 샤르댕 Teilhard de Chardin 신부님이시여, 저희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여름의 끝자락, 초록의 향연은 서서히…

 

8월 말, 9월 초가 되면 떠오르는 추억들, 별로 좋지 못한 것들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역사물들로 화석화가 되어가는 것들… 잊혀지지 못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2017년 8월 말,  ‘레지오 미친년’ 사건은 추억중의 악몽, 악몽중의 악몽에 속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파로 나는 개인역사의 다음 장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악몽만은 아닌 것이다. 용서와 망각의 두 가지 중에서 망각을 택한 case일지도 모르지만 망각이 그리 쉽지도 않다. 아직까지 그 당시의 생생함과 놀라움이 느껴지니 말이다. 불쌍한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용서의 명분을 찾고 살지만 역시 망각이 먼저 올 것이다.

깜깜한 날씨에 알맞게 시원한 대기를 뚫고 가랑비, 세찬 비가 교대로 오기 시작한다. 이런 날이 바로 나의 날이다. 차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잔잔하고 편한 느낌, 이것이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기분이고 즐거움이다. 물론 ‘피해’가 없는 한…  유난히 우는 모습의 유나, 쩔쩔매며 돌보는 새로니 부부의 모습이 엇갈린다. 모두 겪는 것이지만 이 둘의 모습은 왜 그렇게 안쓰럽게 느껴지는지… 바로 이것 때문에 연숙이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죽을 때까지 이런 것들은 멀었다, 배우고 공감하려면… 하지만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Second Cup:  dark & rainy [hurricane] IDA day를 조금 더 가슴으로 느끼려 정말 오랜만에 2nd cup of coffee (freshly brewed Starbucks brand)를 둘이서 즐겼다. 연숙도 모처럼 문인화를 그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나는 두 번째로 보게 되는 ‘월척 越尺’ 이란 화석화 되어가는 KBS 드라마[게임] episode를 마주하며 아련~히 고향생각에 빠지는 사치함을 맛보고 있다. 그래, 이것이 우리의 IDA day가 된 것, 피해보며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너무나 응석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월척이란 드라마 게임 episode는 아버지의 숨은 교훈을 가르치는 멋진 이야기였다. 낚시로 거의 모든 주말을 보내는 정년퇴직을 앞둔 아버지[이신재 분]는 사실은 시골 산중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며 땅을 개간해서 조상 묘를 모시고 퇴직 후에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고 퇴직 후에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이야기, 낚시의 월척이 아니고 후손을 위한 월척을 한 것…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있었던 그 가족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버지가 없었던 나에게는 조금 실감이 안 가지만, 부러운 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란 것만 빼고.   

80년대 KBS 드라마게임 episode ‘월척’

 

Joe Biden 바이든, no more nice guy, 평소 그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거의 싸울 듯한 모습으로 자기의 아프간 철수결정의 정당성을 변호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인간성과 정치 철학을 지지하지만 그 결정의 시기와 눈에 보이던 결과가 문제가 아닌가? ‘개XX’ 졸개들에게 정치적인 허점을 너무나 많이 보이며 ‘정치자산’을 소비한 것, 어떻게 그것을 회복할 것인가? 산더미처럼 쌓인 big agenda들을 먼저 처리를 한 후에 했어도 그렇게 늦은 것이 아닐 텐데… 코앞에 다가오는 Nine-Eleven 9/11에 맞추려는 symbolism에 집착한 것이라면 그도 큰 실책을 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national address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최소한 그는 자신을 가지고 모든 책임을 지는 용기와 더불어 이번 결정과 결과 모두 역사가 공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조금은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YALE University  Coursera

Journey of the Universe: A Story for Our Times Specialization

Course 1: Journey of the Universe: The Unfolding of Life

Course 2: Journey Conversations: Weaving Knowledge and Action

Course 3: The Worldview of Thomas Berry: The Flourishing of the Earth Community

얼마 전에 Course 1의 audit가 일단 끝났다. ‘청강’을 한 셈인데 그런대로 많은 것, 특히 초거시적인 과학과 인문학의 접목을 목격한 셈이다. 알고 보면 이런 우주, 세계관은 Teilhard de Chardin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번에 새로 알게 된 Thomas Berry로 이어지는 종교, 인문, 과학철학으로 보인다. 지금은 제2 코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나는 한동안 멀리하며 살았던 테이야르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끈끈한 여름에 거의 우연히 얻게 된 큰 수확 중에 하나가 되었다.

 

Stay Home & Work Saturday

  • Post published:

5시경에 눈이 떠지고 5시 반이 지나서 일어났다. 아침 routine은 혈압약, Izzie treat & food, 바깥의 공기를 냄새, 자고 있던 나의 pc 를 깨우고, instant coffee를 타가지고, ‘도리도리 100회’, 이것도 족히 시간이 걸린다. 그러고 나서 아침의 첫 음성을 찾는다. 그러면 6시가 넘는구나.  이때 나는 어두운 새벽의 신비함을 느끼며 더욱 강하게 느끼고 싶은 열망을 갖는다. 1965년 경, 고3때 입시전문지 진학 잡지에 실린 ‘김기창’ 화백의 ‘새벽 예찬론’을 희미하게 기억하며, 그때를 추억하고 싶기도 하고… 새벽은 신비함의 시작이다. 감사합니다, 우리 어머님…성모님…

오늘 눈이 떠지고 일어날 때까지 골돌이 생각한 것, 그것 때문에 잠을 완전히 깼지만, 그것은 quantum wave equation의 collapse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double slit experiment의 ‘진상’이 나에게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모양이다. 결론은 알겠지만 그 자세한 과정은 자신이 없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Observer의 해괴하고 신비한 역할까지는 알겠는데, 왜 그런지는 자세하게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오늘 그것에 대해서 공부하거나, 읽으면 좋겠다.

 New York Times를 보니, Texas에 사는 어떤 ‘병신XX’ anti-mask organizer, 코로나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이런 뉴스에 나는 고민 중의 고민에 빠지는 불쾌감 그 자체다. 하지만 첫 반응은 이것이다… ‘쌤통이다, 이 병신아!’ 하지만 그런 나의 자세가 자랑스럽지는 못하다. 생명이 우선이라면 그러면 곤란하지. 하지만 나도 피가 끓는 이성적인 인간 임도 잘 알기에 더욱 혼란함 속으로 빠진다. 하지만 내가 분노하는 것은 이것이다. ‘죽으려면 너나 죽지 왜 남까지..’ 이런 논리가 무엇일 틀렸는가?

JESUS: A PILGRIMAGE [J. MARTIN] 어제 desk위로 옮겨놓은 summer reading, 오늘 첫 읽음의 상대가 되었다. 이 James Martin 신부의 글은 정말 경쾌하고 유머러스 그 자체다. 아무리 심각한 화제도 물에 녹듯이 부드럽고 유연하다. 심각한 신학 자체도 이 신부님에게 ‘걸리면’ 어김없이 웃음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심각한 배경은 있을지 몰라도 이스라엘 성지 순례의 자세한 여정을 이렇게 재미있고 심각하게 묘사하는 필체가 부럽다. 언젠가 우리도 이 holy land로 갈 수 있으면 이 책은 필수적일 듯하다. 그때가 과연 언제일까?

 

아침 7시… 깜짝 놀란다. 밖에 칠흑 그 자체인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어두워졌는가? 분명히 가을은 성큼성큼 우리에게 다가 옴을 알게 되어 기쁜 것이다. 예전에 암흑을 사랑했던 아득한 시절을 돌아보지만 이제는 밝음을 더 사랑한다. 하지만 암흑도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음도 안다. ‘더러움이 사라지게 하는’ 암흑,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더러움을 없앨 수 있으면 암흑은 사실 필요가 없다. 나는 그런 밝음 속의 인생을 살다 가고 싶다.

Hurricane IDA coming to NOLA on August 29th? 귀에 익은 뉴스가 아닌가? 그래 8월 29일, 2005년 Hurricane KATRINA!  그러니까 벌써 16년 전이 되었구나~~ 2005년은 교황 성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한 해, 나에게도 신앙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해였었다. 이제는 거의 ‘성인’처럼 느껴지는 George W. Bush가 비행기 속에서 수해현장을 돌아보던 모습, 그것이 그에게는 big mistake로 남게 되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의 ‘통치’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지난번 Donald ‘개XX’가 모든 나의 시각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개XX’같지만 않으면 거의 나에게는 안심이고 OK다.  이번의 IDA, 얼마 전에 왔던 ‘열대성 어쩌구’ 와는 질적으로 다른 hurricane인 모양이고, 아마도 이곳 서쪽 근방으로 북상을 할 모양이어서, 이곳은 비가 예상된다. 그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닌가? 올해는 참 기후적으로 우리 지역은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서가의 먼지를 털면서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던 책: Quantum Enigma [Rosenblum & Kuttner, 2011, Oxford U. Press] 을 꺼내어 Chapter 7을 펼쳐 놓았다. 오늘 아침에 나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The Two-Slit Experiment, The Observer Problem.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설명을 아직도 잘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자세히 읽어도 아직까지는 수긍이 안 가는 것이다. 다른 책으로 가끔 ‘아하!’ 하기도 하지만… 어쩔 것인가? 더 정독을 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다른 source를 찾아야 하는 것인가?

다시 뜨거운 태양을 의식하며 조금 일찍 밖으로 나가서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우선 tool shed 뒤에 lumber들을 저장해둘 wood frame을 nail gun을 오랜만에 사용해서 두 개를 우선 만들어 놓았다. 완성을 하기 전에 연숙의 요청으로 vegetable garden의 땅을 뒤집는 작업을 하였다. 역쉬~~ 땅을 다루는 일, 장난이 아님을 또 실감한다. 손바닥만한 크기를 삽으로 뒤엎는 일, 어렵다. 옛날에 누가 말했던가… “땅을 하루 종일 파봐라… 땡전 하나 나오나… ” 노동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이 말이 왜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던가? 하지만 요새 사람들 모든 것을 기계로 해 치우는데 나는 그런대로 근육을 써서 결과를 얻는 것, 나쁘지 않은가? 이것도 운동인 것이다.

조시몬 형제, 서울 도착 소식을 보내주었다. 공항에서 마지막까지 ‘고양이 보내는 것’ 의 문제가 있었음은 정말 재수가 없는 case가 아닐까? USDA의 어떤 ‘저급 공무원’의 불성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case였다. 이런 문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한국의 다른 상황과 비교를 하는 이 조형제의 생각은 조금 성급한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서 ‘공부, 독서’를 별로 못했다. 기대를 가지고 quantum mechanics double-slit experiment 책을 보았지만 전에 비해서 더 알쏭달쏭 이해가 가지를 않음을 느낀 것, 나를 조금 당황시킨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책 하나를 뒤져서 같은 부분을 읽으려 하니, 이것은 더 가관이다. 완전히 sci-fi 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지나친 과장된 책들을 정말 조심해서 피해야겠다는 후회감도 들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 낭비도 그렇게 요새 말하는 misinformation 까지 의심이 되는 것이다. [eg. physics of god]. 이제는 테이야르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조금은 진보적인 종교과학, 생태학, 인류학 등 거시적인 안목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찾으면 좋겠다.

제임스 마틴 신부의 ‘성자처럼 즐겨라’ 라는 번역서를 연숙이 읽은 후에 넘겨 받았다. 이 책은 마틴 신부의 번역 서문까지 있어서 아주 이 저자 신부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다. 원제는 BETWEEN HEAVE AND MYRTH Why joy, Humor and Laughter are at the Heart of the Spiritual Life, 2011년 원서 출판, 2013년 번역서 출판으로 적혀있어서 비교적 일찍 한국판이 나온 셈이다. 그러면 한국에서도 이 신부가 꽤 알려진 듯하다. 그냥 읽느냐, 아니면 예의 필사를 겸할 것인가 조금 생각을 해보고 싶다. 만약을 위해서 softcopy가 있는 것이 편하기는 한데… ‘바오로딸’ 사건 이후 나는 움츠리게 되어서… ‘빌어먹을!’

하지만 결국은 필사의 시작을 준비하고 말았다. 앞으로 이것은 읽고 나면 완전한 soft copy가 남게 될 것이다.

Perfect late evening snack!  SPAM with a cup of wine!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대구탕, 오징어 젓 (연숙이 만든), 등 맛깔 난 것이었지만 역시 기본적인 ‘양’이 부족했는지 저녁 8시가 넘으면서 공복감을 느낀다. 이미 dent는 out이 되었고, 라면을 끓이면 연숙이 분명히 눈치를 챌 것이고… 기발 난 생각이 났다. 조용히 desk에서 먹을 것, 지지고 볶고 할 것도 없는 것… 바로 SPAM이 아닌가? 하지만 그냥 먹기에는 너무나 건조하고… 아하~ box wine이 남았나… 보니 조금 남았구나…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조합이었다!  나는 체중의 여유도 있지 않은가?

조금씩 내일에 펼쳐질 일들이 그려지고, 조금씩 최면을 거는 듯한 긴장감이 들어온다. 채 아오스딩 형제가 거의 2년 만에 성당에 와서 미사, 영성체를 하는 날이다. 게다가 2019년 가을 처음으로 부임한 이영석 신부님이 이 형제의 집을 방문해서 병자성사를 주었던 이후, 이제는 이임하는 신부님의 마지막 미사에 참례를 하게 된 조금은 의미 있는 주일이 되지 않을까…

Slowly Out of Dark Nights

  • Post published:

새벽 5시에 일어나 화장실엘 갔다 왔고, 6시에 일어났다. 요사이 새벽에 아래가 조금 축축함을 느껴 만져보면 생각보다는 덜 젖은 상태임을 알고 조금 안심은 하지만, 역시 이것이 바로 ‘그것, 요실금’ 이란 것 아닐까? 이것과 전립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역시 본격적으로 노인이 되고 있다는 증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일어나며, 방금 전에 꾸었던 꿈을 ‘즐겁게 음미’하기도 하고 역시 때가 온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 지난 일주일간의 “영혼의 어두운 밤”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임시로 넣어 두었던 물건들을 다시 꺼내고 이 Daily Note를 이렇게 펼치고 쓰기 시작을 한다. 이제 탁상용 달력도 꺼내어 펴놓아야 한다. 그 전에 십자고상을 먼저 내 눈앞에 모셔놓았다. 묵주와 기적의 메달, 필기도구 등등, 일주일 만에 보니 너무나 생소하고 반갑다. 정상화의 시작이 이렇게 시작된 것, 그래 ‘치워버린 성모상’의 어머님께 감사를 드린다. 어머님, 제가, 탕자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온통 모든 ‘성사, 기도, 영성, 독서’ 등이 정지 되었지만 그 시간을 메우려 온통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신경을 기울여서 대상 세상의 맥박을 잡게 되었다. 이제는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조바심이 사라지고 있음은 바람직하지만, 대신 세상의 고통을 조금 더 나누어지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중에 제일 실망스런 것은, 그렇게 잘되기를 바랐던 ‘바이든’의 어처구니 없는 바보 같은 행동, 정책[‘갑작스런’ 아프가니스탄 철군]이었다. 너무나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비 정치적’인 일이 경험이 너무 많은 그에게서 나온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완전한 인간은 없다. 하지만 너무 실망스럽다. 그는 이제 치욕적인 부담을 역사 속으로 안고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어제 이영석 신부의 이임이 공식적이지만 아주 간단하게 발표되었다. 나는 이번의 의외적으로 이른 이임소식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고 실망까지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 실망을 할지도 모를 정도로 ‘이상한 느낌’도 들었기에 기대가 큰 만큼 이 신부님에 대한 추억에도 상처를 받을까 걱정까지 들 정도다. 내가 너무나 기대를 한 것이 문제였을까? 이제는 나도 지쳤다. 신부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공동체, 교회 생활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은근히 나도 걱정을 하고 있다. 정말 이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어제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 예상보다 맥과 김이 빠진듯한 이영석신부님의 강론, 조금 실망적이었다. 이제는 떠날 때 정을 떼려는 것인가? 왜 이런 결과가 나와야만 하는가? 왜? 왜? 이제 나의 교회생활도 서서히 맥이 더 빠지고 결국에는… 아~ 싫다 싫어… 성모님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며칠 전부터 보이던 tropical depression Fred, 예상 진로가 이곳을 정확하게 조준한 것처럼 보였다. 결국은 내일 새벽부터 이곳을 지나가게 된 모양, 태풍이 아니고 폭우가 예상되는 것, 큰 피해 걱정은 없지만 만약 폭우가 심하게 되면… 지붕과 siding은 문제가 없겠지만 밖에 널려 놓은 잡동사니들이 조금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시원하게 된 것은 물론 반갑다.

며칠 전에 도착한 기대했던 책, Finding God in Science 을 읽기 시작한다.  심각한 논문급의 책으로 기대했던 것이 틀렸지만 대신자전적 수필로 시도하는 이 apologetic은 다른 의미에서 더 호소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기대하고 싶다.

Reflecting Anger, Envy, Proud…

  • Post published:

거의 제시간에 일어나면서 ‘아~ 어제는 조금은 이상한 날이었지.. 나의 몸이 조금 아프지..’ 하는 순간적 생각을 했다. 그 이상한 기분이 오늘 아침은 조금 다른 듯하고, 어제 저녁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오른쪽 어깨쪽지[나는 쭉지로 읽는다] 의 묘한 아픔도 조금 완화가 된 듯해서 조금 가볍게 일어났다

Ozzie도 기분 좋게 나를 반기고 온통 물기로 가득한 뒤뜰로 둘이서 걸었다.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드는 토요일 아침, 이런 기분이 계속되기를 빌면서… 오늘은 맑고 덥다고 했지..했던 일기예보를 상기한다. 그래, 중복이 지났어… 중복다운 더위는 그대로 감상을 해야지, 불평하지 말고…

 

 Anger, Envy, Proud… 이 구절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이것이 나에게는 어떤 것인지… anger… 밖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을 잘 다스린다고 자부하던 나도 이제는 자신이 없다. 비록 물리적인, 눈에 뜨이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숨길 수가 없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아지고 있다. 그것도 ‘야비하게’… 싫다 싫어. 나의 문제는 ‘언어, 말’로 자신 있게 표현을 못하는, 안 하는 데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화’ 그 자체를 없애거나 줄이는 수밖에 없다.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왜 화가 났는지, 화를 안 낼 수 있는 길을 결사적으로 찾는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나의 본성이요 성격인 것이다.

Envy…  좋은 것, 나쁜 것… 어떤 것인가? 진정으로 내가 되고 싶은 것,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재물이나 세속적인 것들이면 나도 예외일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 탓인지 많이 포기한 것들 투성이여서 큰 문제는 아닐지도. 살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아야 했던 사실에서 보기에 모든 것을 성취하면서 산 사람들을 지나치게 부러워 함은 지극히 정상일지도..

Proud…  나에게 자랑스러운 것들… 사회적으로 법을 따르며 사는 양순한 시민으로 살려는,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 하느님 공동체의 일원으로 할 일을 하는, 봉사단체를 통해 주위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려 사는 삶.. 이런 것들은 물론 자랑스럽다.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도를 지나친 proud가 나에게 있을까, 잘 모르겠다.

 

Ozzie와의 일상, 나에게도 삶의 활력을 주는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산책, 이것을 해야 나도 마음이 놓이고 그 녀석도 마음 놓고 푹 쉴 수가 있다.  이제는 보름이 훌쩍 넘어간 동안 아주 편한 여름휴가를 그 녀석은 즐긴다. 다음 주까지 하면 25일 이상을 우리 집에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 중의 하나다. 새로니 3식구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오늘도 어제의 큰 화두가 이어진다. 연숙이 C, S 자매들과 긴 통화를 한 결과로 우리가 조금 더 자세히 크리스티나 자매의 임종전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랄만한 소식은 없었지만 우리의 의문은 조금 풀린 셈이다. 우리에게 그다지 큰 ‘[나쁜, 서운한] 감정’은 없었던 듯 보이는 것인데, 사실 그럴만한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시 한번 이 자매의 독특한 자존심, 아니면 ‘anger, envy, pride’ 중에서 envy 쪽의 결함을 보는 듯했다. 아픈 사람에게 무슨 큰 고매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신앙인’이 아니던가? 그런 신심의 혜택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간 듯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자아집착 의식이 끝까지 높은 곳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것을 보면 나는 거꾸로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인데…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몸이 아파 죽겠는데 그것이 쉬울까, 모르겠다.

우연히 보게 된 어떤 신문인의 이야기, 나이는 분명히 나보다 많을 듯한데… 갑자기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후에 쓴 깊이 있는 수필이었다. Boston Globe 신문에 게재된 것, 생각보다 자신의 신상을 솔직히, 자세히 밝히는 필자의 용기가 나는 정말 부러워진다. 그런 솔직함, 그것을 나는 부러워하고 나의 최대의 결함이라고 고백한다. 솔직함, 그것을 나는 나의 ‘개인적 일기’에서 문자화 할 수가 없고, 그렇게 현재까지 살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없는 사실을 나는 내 자신에게 조차 고백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조차 숨기는 사실들을 모조리 밝히려고 기를 쓸 것이다. 언제? 모른다, 오늘은 자신이 없고, 내일도.. 모레도… 하지만 올해 안에… 노력해 보고 싶다. 내 자신의 모습을 내 자신에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진짜 모습을 모두에게.. 모두에게…

 

비가 매일 한차례씩 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부수적을 모든 초록색 식물들이 무섭게 자라는 것은 크게 반갑지 않다. 먹을 것이나 꽃나무들은 문제가 없지만 소위 말하는 ‘잡초’들이 문제다.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잘 자랄까? 이것을 가만히 놔두면 미관상 집의 ‘가치’가 떨어지니 정기적으로 깎아야 하는데 이렇게 더운 여름, 특히 햇볕이 쨍쨍한 오늘 같은 날은 정말 힘이 드니.. 남들처럼 gas power, self-propelled 가 아니고 electric cord를 일일이 끌고 다니는 것, 솔직히 주위에서 보면 내가 불쌍해 보일 것 같다. 하지만 air, sound pollution으로 주위를 괴롭히는 그들이 나는 더 불쌍한 것이다. 문제는 나이다, 나이… 언제까지 이런 육체적인 ‘노동’을 할 수 있을까? 아~ 10년만 젊었으면~ … 죽음이 화제인 요새 며칠, 나는 어떻게 임종을 맞이할 것인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의 멘토..’ 교정, 재독을 보면서 ‘이냐시오’ 편에서 다음의 글에 관심이 간다. 이냐시오 영성의 출발점이라고 할까..

병상에 갇힌 이니고는 한 친척에게 책을 부탁했다. 그가 건네준 책은 신심 서적뿐이었고,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성인들의 삶에 매력을 느끼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도미니코 성인이 할 수 있었다면 나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느님을 위해 큰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평화로운 느낌이 밀려들었다. 그는 여기에 ‘위안’이라는 낱말을 썼다. 반면에 군인으로서 성공하거나 어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상상을 하며, 전에는 뜨거운 열정이 북받쳤는데 이제는 ‘씁쓸한’ 느낌만 들 뿐이었다.

그는 이 씁쓸한 느낌과 위안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봉사의 길로 이끄시는 손길임을 점차 알아차린다. 이 평화로운 느낌이 하느님이 자신을 당신께로 가까이 끌어들이시는 손길로 감지한 것이다. 이 깨달음은 그가 영성 생활에서 ‘식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길로, 이냐시오 영성에 핵심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올해 이냐시오 500주년을 맞이하는데, 이런 글을 읽으면 그 긴 멋진 역사도 이렇게 놀랍게도 간단한 계기가 원류가 되었다는 사실, 그것도 ‘책’에 의한 것, 등등은 아주 친근한 이야기다. 그래 책에 의한 것, 물론 요새는 영화나 인터넷 등등도 이런 것을 가능케 할 수도 있겠지만 제일 확실한 것이 책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책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런 세계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그렇게 자주 올까? 그것도 나에게?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그런 번쩍하는 영감을 주는 글귀를 나는 찾고, 기다린다.

위의 글에서, 이냐시오 영성의 핵심이 나온다. ‘식별’, 바로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의 손길을 감지하는 것, 와~ 하지만 이 이냐시오 영성이 그것을 도와 준단다. 그것을 나도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예수회, 그것도 James Martin신부의 책을 몇 권씩이나 사서 읽는다. 이런 노력이 ‘탈 레지오, 후 레지오’ 시기에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도록 할 것이다.

 

처음으로 근육통의 귀찮음, 괴로움 같은 것을 경험한다. 이것도 나이 탓인가? 아무리 근육을 많이 썼어도 이렇게 아픈 것을 보면 단순히 근육이 피곤한 것이 아니고 어디에 근육이 뭉치거나 뒤틀렸는지도 모른다. 남들로부터 수없이 들어온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절로 낫는 것인가? 특별한 약이 있나? 현재 바른 쪽 어깨 죽지가 제일 아픈 것을 보면 그곳이 문제점인가? 게다가 오늘 그쪽의 근육을 많이 또 썼으니, 그것이 더 나쁠 것일까?  현재 감기기운으로 심란한데다가 이것까지… Tylenol이냐 Theraflu냐 망설이다가 후자로 택했다.

Martin on Merton

  • Post published:

2021년 summer reading 목록 중에서 제일 빨리 독서/필사가 끝난 책이 예수회 America magazine 편집장 James Martin신부의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원제: My Life with the Saints, 2006)’ 이다. 이 책이 최근에 나의 손에 들어온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닌 듯 싶다. 몇 개월 전에 Martin fever로 이름한 나의 초 超관심 기간 중에 이 신부의 책 4권을 거의 한꺼번에 산 적이 있었다. 그것들을 천천히 이것 저것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그의 문체와 지적 철학에 조금 적응하려는 의도였다. 이 예수회 신부는 news media상에서 가끔 ‘지나친 진보적 신부’라는 비판을 받는 것 외에는 별로 큰 관심을 끈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속단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고, 결국은 Bishop Robert Barron에 못지않은, 아니 버금가는 미국 가톨릭 [거의] 차세대 최고 지성의 거목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연숙과도 나누었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벌써 그분의 책 몇 권을 이미 읽었던 과, 이 책이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교리반 시절 선물로 받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모두 한국어 번역본이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이었다.

이제까지 성인전 종류의 책은 나에게 별로 손이 가지 않은 것들이었다. 기억 속에서도 그런 책들은 우선 오래된 낡은 책들, 하나같이 고통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들, 감히 다다르지도 못할 인간의 능력을 넘은 초인간들, 난해한 고유명사 투성이의 조잡한 번역… 등등으로 나는 가급적 그런 책들을 피하며 살았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책도 별로 선뜻 손이 안 가는 책이었는데, 이번에는 ‘이제는 친근한 모습의’ Martin 신부가 쓴 책이라는 것에서 느낌이 아주 달랐다. 조금은 ‘초현대적, 초이성적, 심지어 과학적’인 접근을 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전통적인 고리타분 하고 녹 냄새가 풍기는 그런 성인전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바로 나를 위해서 쓴 책이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이 책의 원제는 ‘성인과 함께한 나의 삶, My Life with the Saints‘ , 하지만 성찬성[역자] 번역본은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왜 멘토란 말을 넣었을까?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성인’이란 말은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성인은 물론 그 외에도 성인 같은 삶을 산 사람들[토마스 머튼, 도로시 데이 같은]도 포함되었기 때문이고, 그런 이유로 그 ‘성인과 비슷함’을 멘토 mentor 란 단어로 표현을 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16명의 성인, ‘예비, 준’성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들의 특징,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 모두 Martin신부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으뜸으로 다루어진 ‘성인’이 바로 토마스 머튼 트라피스트 수사신부님인데, 솔직히 나는 그런 사실에 아직도 동감을 못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화장실에서’ 몇 년간 읽었던 그의 대표작 Seven Storey Mountain 이란 자서전이 왜 그렇게 수많은 예비신부들의 ‘고전적’ 필독서가 되었는지 쉽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이유는 이 책은 솔직한 고백록일지는 모르지만 요점을 제외한 ‘군살’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웬 고유명사들이 그리도 많은지, 본인에게는 익숙한 표현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난감한 것들인데 알고 보면 그런 것들이 모두 불필요한 표현들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머튼은 절대로 겸손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망까지… 그래도,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99% 틀렸을 것이라는 것 [사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Bishop Barron과 Father Martin 모두가 그 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마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이렇게 토마스 머튼과 그 칠층산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마틴 신부의 글은 다른 각도로 그 책을 재조명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아마도 다시 그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더 겸손한 자세로 읽게 될 지도 모른다.

 


참된 자아

 

나에게 있어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성화와 구원의 문제는 사실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문제와 같다.

 – 토마스 머튼, <새 명상의 씨>

 

대학에서 미시 美詩 American Poetry 강의를 들을 때, 월트 휘트먼을 처음 소개받았다. 우리 젊은 교수는 휘트먼 예찬자이자 연구가였다. 그녀는 시인의 전기를 써서 호평을 받았다. 어느 날 그녀는 만일 우리가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다는 비난을 받거든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 에서 다음 구절을 인용하라고 말했다.

 

내가 나 자신과 모순되는가?

그래, 참 좋다. 나는 나 자신과 모순된다.

(나는 크고, 내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앉아 있나니.)

 

휘트먼은 이 시구로 또 다른 시인이자 신비가요, 수도승이요, 예술인이요, 평화 운동가요, 사제요, 영성 대가요, 교회 일치 주창자요, 선사 禪師 요, 성인인 토마스 머튼을 어렵지 않게 변호할 수 있었다.

머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모순이다. 자신의 주변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 봉쇄 수도회 수도승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데, 그가 바로 트라피스트 수도승 머튼 루이스 OCSO the Order of Cistercians of the Strict Observance (엄률 시토 수도회) 신부다. 떠돌이요 타고난 여행가이면서 정주 서원을 하고 미국 켄터키 주 외딴 산중에 터를 잡은 겟세마니 성모 대수도원에 정착하기로 작정한 사람. 자진하여 순명 서원을 하고도 수도 생활 상당 기간을 자기 수도회의 장상들과 부딪히며 보낸 사람. 자신의 소명에 반하지만 [필사주: 反인가, 반대로 魅惑인가? 정말 성의 없는 번역] 끊임없이 의문을 갖는 사람. 동양 종교들에 매혹당한 신심 깊은 가톨릭 회심자. 명예직과 훈장을 싫어하는 (아니면 싫어한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려 노력하는) 저명한 문필가. 하루는 결코 한 줄도 더 쓰지 않겠다는 결단을 글로 쓰는가 하면, 며칠 후에는 출간된 자신의 또 다른 저서를 보고 느낀 기쁨을 글로 쓸 수 있는 사람. (그는 주목할 만한 한 일기의 도입부에서, 새로 나온 자신의 책 표지를 싸고 있는 올이 굵은 삼베가 당시 맨해튼의 현대식 나이트클럽에 사용된 천과 똑같았다는 점에 은근히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역설들, 이런 휘트먼풍의 다중성은 머튼을 20세기 가톨릭 교회의 변화무쌍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이르는 여정을 소상하게 기록한 1948년도에 출간한 회고록 <칠층산>은 사리를 아는 머튼조차도 예견하지 못한 출판계의 기현상이 되었다. 이 책은 수백만의 독자에게 관상 기도를 소개했고, 전후 미국 수도 생활의 쇄신을 예고했다. 평화에 관한 그의 글들은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의 전조가 되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자극은 지쳐 있던 한 미국인이 그리스도 신앙을 재정립하도록 도와주었다.

그의 책은 나를 재정리하는 데도 보탬이 되었다.

<칠층산>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알려면, 내가 머튼을 만나기 이전의 삶을 얼마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나는 열일곱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영 대학 와튼 스쿨에서 수강했다. 내가 경영학을 공부하기로 한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거니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는 이해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영어, 프랑스어, 미술처럼 신나게 공부한 과목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직업으로는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보았다. 일례로 나는 프랑스어를 무척 좋아했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도리가 없었다.

Green July, Grapes, C. S. Lewis

  • Post published:

신록의 계절 7월, 그것도 첫날… 그래 칠월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아니 떠올라야 할 것, 독립운동가, 시인 이육사 李陸史 님의 대표작 시, ‘청포도’다. 그래, 이 청포도의 멋과 맛이 바로 칠월인 것이다. 아마도 그 옛날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이 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으로 느낄 듯하다. 공해에 찌들었던 옛날 60년대 서울의 추억에서 이 청포도는 한번도 맛을 볼 수 없었던 그림의 떡이었지만 이곳 우리 집에는 그런대로 볼 수도 있고 맛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초록색이 천지를 덮기 시작하는 칠월 달에…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오늘 아침에는 극히 드문 예로 연숙이 먼저 일어나서 침실을 나갔다. 거의 1시간이나 일찍이… 웬일일까? 혹시 또 불면 현상? 아니었다. 잠을 너무 잘 잤다고… 휴~~ 감사합니다. 습기로 가득 찬 대기권, 비록 끈끈한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관없다. 기온이 알맞게 낮아서 시원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dream weather가 계속되는 것일까? 감사합니다.

이번 일요일이 Independence Day, 그래서 월요일은 휴일이다. 우리에게 휴일이 따로 있나, 매일이 그런데…  교성이 말대로 휴일의 즐거움이 사라진 지 수십 년… 그 기분을 살리려 기를 쓰지만 쉽지는 않다. 그래도 어제 오늘부터는 나도 같이 놀고 싶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점점 다가오는 새로니 아기 출산 때문인지 조금씩 나도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그것이 정상이고 자연적인 것이다. 고생, 놀람이 없는 출산을 하기를 기도하지만… 그래도… 기도밖에 없다, 이런 때에는…

내일 서 아녜스 부부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분명히 취소가 되었기에 이번 휴일 주말은 주일미사를 빼놓고는 완전히schedule- free가 되었지만, 그래도 크게 다를 것이 없을까? 왜 이렇게 갑자기 심심한 느낌이 드는 것이고, 심지어 외로움이 엄습하는 것일까?  또한 ‘young senior’의 친목단체 등대회 사람들도 그립고, 무언가 그립지만 쉽게 수시로 손에 닿는 친구가 없으니… 이것이 외로움일 것이고, 우울한 감정일 것이다. 오르락, 내리락, 참 조화로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인생은 항상 이런 것인가?

 

 

Lewis’s Baaaak!  C. S. Lewis가 돌아오고 있다.  전에 마지막으로 내가 심취했던 Lewis는 언제였는가? 그것은… 찾아보자… 내가 사서 보았던  Lewis 저서들의 표지 뒤에 기록된 나의 친필기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The Joyful Christian (127 Readings) – 11/9/2013 (순교자 성당 예비자교리반, at the Conyers Monstery)

Mere Christianity – 4/9/2015 (Lewis Fever!)

C. S. Lewis & Mere Christianity (Paul McCusker) – 4/9/2015 (Lewis Fever!)

그러니까… 2013년에 첫 번째로 읽기 시작한 셈이지만, 본격적으로 심취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4월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6년 만에 다시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그에 대한 기록영화 등은 가끔 YouTube에서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 구입한 것은 정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신간 중의 신간인데다가 그의 저서 중 The Abolition of Man이란 거의 논문 급의 책을 주해한 것이고 bonus로 이 원서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또한 소위 ‘읽기 어렵다는 책’에 도전하는 것, 해 볼만한 것이 아닐까, 더 머리가 굳어져가기 전에… 이번 여름에 이것에 한번 도전해 보자….

 

만 이틀이 걸려서 ‘나의 멘토…’ 중에서 ‘마더 데레사’편의 독서, 필사가 끝났다. 데레사 편을 읽으면서 Martin신부의 견해, 느낌은 내가 100% 동감하는 것들이었다. ‘사랑으로 남을 돕는 일’이 주는 진정한 기쁨에 관한 것이다. 내가 어찌 이것을 모르랴? 지나간 10년 동안 내가 경험했던 갖가지 봉사활동이 나에게 주었던 것은 진정한 ‘중독성 있는’ 기쁨이었다. 그것을 지나간 몇 년 동안 나는 서서히 잃고 사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큰 아픔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접적인 이유는 사회적 여건, 그러니까 Pandemic에 의한 것과, 그것에 따른 신심단체 활동 정지.. 그것이 치명타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신심단체가 ‘개인적 불화’로 우리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간 것… 정말 나에게는 가슴 아픈 상실의 연속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이런 상실에서 나 자신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오늘은 유난히 지나간 10여 년 동안 타계한 수많은 영혼들이 생각이 났다. 나에게 죽음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가르쳐준 그들…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을까…

일생을 통해서 특히 근래에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바로 이런 ‘레지오 활동’을 하던 때였다. 그래서 연령행사나 양로원봉사 들이 완전히 사라진 요새는 정말 앞이 안 보이는 막막한 심정이다. 성모님께 길을 보여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확실한 것은 거의 없으니… 성모님, 성모님… 도와 주소서… 이제 제가 할 봉사활동은 없습니까? 이제는 성지순례나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까?

 

새로니부부가 저녁때 iPhone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온 목적은 나의 account를 setup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사실 그렇게 반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세월, 세대의 흐름은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특별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래 이것은 그저 tool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내가 간접적으로 greedy Apple의 customer가 되는 사실은 못내 찜찜하기만 하다.

이제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새로니가 엄마가 되는 날이… 오늘 둘이 와서 보인 모습들은 젊은 부부의 그것이었다. 활달하고 긍정적, 이성적이었다. 걱정이 사라진다. 불필요한 걱정을 말고 그저 기도만 하며 기다리자.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늘 불현듯 일을 시작했다. 10년 역사의 workshop, tool shed 왼쪽 잡동사니를 치우기 시작하고 바른쪽에 오랜 세월 쌓여 있던 lumber들을 하나씩 치울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피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시작을 못하는 병 때문이었다. 그래, 오늘 같은 날 계획도 없이 시작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일단 시작했으니까 tool shed 주변의 정리와 미화작업은 이번에 꼭 끝나게 될 것이다. 다른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제발, 제발…

 

After Humanity, Art of Ignoring, VHS drama, James Martin

  • Post published:

어젯밤에 일기예보를 못 본 탓에 침실 ceiling fan 을 켜고 잔 탓에 밤새 추위에 떨었던 불편한 기억이었다. 왜 이렇게 춥지… 하며 몸을 온통 오그리고 잔 것이다. 급기야 긴 팔, 긴 바지, 양말까지 신고 내려오는 나의 꼴이…. 죄값을 받은 셈인가? 어제 저녁 잠깐 office에서 눈을 붙인 것이 기도도 팽개치고 그대로 밤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은 정말 오랜만에 저지른 나의 ‘작은 쾌감’ 같은 것, 아주 후회는 안 한다. 하고 싶었기에…  덕분에 싸늘한 6월 말 아침의 ‘습격’을 받은 셈이다. 연숙에게 조금 미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어제는 저녁기도를 했어야 했는데….

 

AFTER HUMANITY: A Guide to C.S. Lewis’s  The Abolition of Man,  $30 well spent? I hope so!

아침에 온 WOF (Word on Fire, a catholic ministry) email, Bishop Barron의 promotional video를 보고 ‘그대로’ order를 해 버렸다. 이 책은 사실 Lewis의 ‘어렵게 보이는’ 책, The Abolition of Man의 깊고 자세한 주해서 격에 해당하는 듯 보인다. 보너스로 원저 The Abolition of Man도 포함되었다니… 너무나 매력적인 deal이 아닌가? 나의 Lewis에 대한 늦은 관심과 사랑을 떠나서 이 책의 외형적인 조건들이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현재의 Post-Truth 현실과, 미학적 관점을 가미한 Barron의 영향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이 책을 내가 깊이 이해하게 되리라는 막연하지만 멋진 희망도 빼놓을 수 없다. 희망을 걸어보자!

 

Art of Ignoring: 내가 필요한 ‘사회적 기술’이 바로 이것임을 왜 이렇게 인생의 후반부에 깨달아야만 했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안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 큰 것, 작은 것, 개인적인 것, 세계, 사회, 정치 상황 모두에 해당하는 ‘기술, 예술’이다. 무시하는 지혜,…  집에서부터 무한한 우주영역에까지… 해당이 안 되는 곳이 없다. 연숙의 ‘앙앙거리는’ 의미 없는 듯 들리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까지… 어떤 것들은 거의 무시하는 것이 안전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촉감을 초월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불교의 냄새를 풍겨야 할 것인가? 요새를 사는 나의 화두 중에 하나가 되었다.

 

80년대 VHS era, KBS [청소년 문학관] 시리즈: 비록 10편도 안 되는 것이지만 더운 초여름에 나를 너무나 아련~하고, 편하게 하는 영상과 이야기들이다.  어떤 것들은 아련한 사랑의 감정을 추억하게 해 주는 것이어서 정말 오랜만에 10대 당시 나의 모습을 그린다.  겁 많고 지나치게 수줍어 했지만 나만의 낭만적인 상상도 적지 않았던 시절들.  이 드라마들 중에는 ‘입시지옥’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꽤 있는데, 우리 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심각한 것들이라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해는 하고도 남는다.  지금은 ‘산사에서’ 라는 것을 보는데… 아늑한 산사, 절의 풍경과 입시지옥을 겪는 고교생, 재수생들의 이야기…  대학입시의 중요성이 극한으로 치솟은 고국의 10대들이 불쌍하기도 하다. 이것이 거의 반세기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요새 80년대의 여러 가지 종류의 고국의 TV 프로, 주로 드라마, 이것들을 보며 간혹 나는 고민에 빠진다. 좋아하는 것보다 거슬리는 것, 특히 연기자들과 그의 역할, 성품 등에 연관된 것이다.  역할이 악역이거나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역할은 물론 연기에 따라서 싫고 혐오하기까지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문제는 그 연기자 자신에 관한 것이다. ‘악역’을 너무나 실감나게 연기해서 그런 것이지만 그 사람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그 연기자의 ‘화학적’ 성품이다. 최근의 예로, 미안하지만 남자 연기자 둘 ‘주X’과 ‘백일X’ case다. 이들의 사생활을 알기 전부터도 별로 호감이 안 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싫은 것이다. 연기 속의 그들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보일 듯한 그들의 모습이다. 특히 주X이라는 사람, 정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정도로 그 ‘느글, 느물거리는 자태’는 물론이고, 그가 실제로 그런 인물일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백일X, 그도 역시 ‘기름기가 밴 폭력성’이 나를 도망가게 만든다. 그의 사생활도 나중에 연숙을 통해서 들었기에 나의 유감은 맞은 셈이다. 이 두 사람의 ‘냄새’ 를 나는 정말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우문[현답]인가?

고국의 VHS급의 영상물을 보다가 서서히 90년대 혹은 2000년대로 옮아오며 나는 주저하고 주저한다. 우선 배경 scene들이 너무나 나에게 생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거북한데… 사실 웃기는 것 아닌가? 나는 그 당시에 가끔 그런 것들에 이미 익숙해졌던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구나, 내가 우리 고향의 변화, 변천하던 모습을 거의 고의적으로 잊으며 살았던 것에 대한 죗값이라고 할까? 내가 너무나 이런 것에 민감한 것일까? 왜 남들처럼 무덤덤하게 못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노력할 것이다. 서서히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올라오며 공부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Reese’s,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나를 유혹하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에 이것은 예외가 아닐지? 어제 이것을 무려 6개나 입에 넣고 나서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낀다. 나이의 신호인 ‘당뇨병’이란 말이 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의 원인이 Reese’s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양적인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당 적당한 개수는 몇 개일까? 웃기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요즈음은 솔직히 말해서 사치적인 순간들이다. 즐기고 감사하면 된다. 아~ Reese’s야, 지금도 거의 손이 그곳으로 가며 2개를 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중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라고 쓰인 벨라뎃다 편을 신들리듯 읽고 쓴다. 내용은 거의 이미 아는 것들이지만 이 신부님의 묘사, 글은 정말 engaging한 것이어서 실감이 100 % 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그가 했던 성지순례일기였다. 아~ 이제 우리도 이곳을 가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실감은 아직 가지를 않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한다. 건강할 때, 걸을 수 있을 때,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신명 들린 듯, 마술에 빠진 듯 읽으며 필사를 ‘즐긴다’. James Martin신부의 문장, 글의 스타일 때문일까, 아니면 내용에 무엇이 있는가? 지금 루르드의 벨라뎃따, 순례기를 읽고 있는데, 생각한다. 이곳을 가게 되면서 혹시 우리들… 앞으로 꼭 봐야 할 유명한 곳 보다는 세계에 널려 있는 성지를 가급적 많이 가보고 싶다는 어린애 같은 소망이 떠오른다. 나답지 않은 것이, 예전에 나는 그렇게 성지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Martin신부의 글을 읽으며 서서히 그런 생각이,  ‘꼭 가보고 싶다’ 라는 희망적인 염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목표가 서서히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듯 느껴지는 날이 되었다.

기록적인 속도로 베르나데트 성녀 편을 끝냈다. 그러니까 하루 만에 거의 30 페이지를 질주한 것이다. 역시 내용이 큰 관건이다. 너무나 몰입하며 즐겁게 읽게 되니까 이렇게 빠르게 독파한 것이다. 다음 편은 여러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를 택했다. 이것은 Word on Fire Bishop Barron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신학대전 Summa…’, 신학의 정수를 정리한 분이니… 이것으로 나는  apologetic의 한 곳을 또 건드린다.

 

이슬비도 안 되는 물기가 가득 찬 하늘을 보며 로난을 데리고 걸었다. 햇살은 없지만 대신 습기가 땀을 배게 한다. 아직도 나는 로난과 가는 것이 힘들지 않다. 숨도 고르고 다리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연숙은 요새 걷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듯 보인다. 나와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야 할 텐데…  Toddler, 아이를 보는 것 baby-sitting, 힘든 것인가 아니면 할만한 것인가? 지금은 새로 찾은 Dave&Ava [3D animation, 최근의 video technology의 위력을 보여주는 예] 라는 아이들 video를 Youtube에서 보게 하는 것이 무척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그것 이외는 diaper 갈아주는 것, 많을 때는 3번씩이나 하고 나면 정말 나도 늘어진다. 책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정도가 되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힘은 들어도 이러면서 서로 skinship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경험이 아닐까. 아직도 손주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일들’, 그래 기왕 하게 된 것 편하고 즐겁게 하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노년에 최선을 다해 사는  한 방법이다.

 

하지가 지났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안 간다. 날씨 때문에 해의 동향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관심이 덜 했던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나의 방에 있는 wifi light controller에 문제가 생겨서 ‘일년 중 제일 늦게 저녁불이 들어오는’ 것을 목격을 못 했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이제부터는… 저녁때의 불이 조금씩 빨리 들어올 것만 알면 되고… 아~ 진짜 여름의 시작이고… 4개월만 지나면 ‘황금색’의 세상이 올 것을 기대하며…

6월의 하순, 24일의 요한세례자 ‘영명축일’과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 머리에 떠오른다. 6월 25일은 나의 아버님이 빨갱이들에 의해서 끌려가신 모습이 떠오르고… 이렇게 하면 6월도 저문다. 그리고… 그리고… 기다리는 것, 계속 기다리는 것…

요사이 너무나 시원한 초여름의 날씨, 특히 뒤뜰의 초록색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온다. 연숙이 참으로 애를 쓰며 만들고 있는 이것, 아마도 우리 집의 보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 열심히 사는 날까지 가꾸고 보살피고 사랑하자.

 

 President Biden의 사랑하는 pet dog Champ가 집에서 편하게 영원한 잠을 자게 되었다는 소식. 날짜가 6월 19일, 우리Tobey가 3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간  같은 날? 아~ 우연인가? 게다가 나이가 13살? 이것도 거의 비슷한가?  그렇구나… 비슷하다. 그래 우리 Tobey도 집에서 나의 손에 안겨서 떠났으니까…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이 뉴스가 national news에 날 정도니까, 얼마나 미국인들의 pet dog, cat 에 대한 사랑이 깊은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런지.. 바이든이 더 좋아진다 [모르긴 몰라도 Donald 개XX 는 pet dog이 있어다면 수시로 발로 걷어차며 열을 내고, 화를 풀었을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손에 들어온 고국의 시사 월간지들, 특히 신동아, 월간 조선, 중앙 등… 이제는 추억의 잡지로 곰팡이가 쓸고 있지만, 나에게는 기나긴 고향을 잊고 살았던 기간을 회복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유물이 될 수도 있다. 1970년대 2권, 1980년대 21권, 1990년대 7권, 2000년대 1권… 이것으로 얼마나 나는 과거의 대한민국을 공부할 수 있을까? 노력을 한번 해 보자!

 

올해 Father’s Day, 받는 것만큼  나도 협조를 한 셈인가?  조그만 가족들이 모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으로 이날의 의미는 살렸으니까… 하지만 조금은 피곤하기도 하다. 나는 사실 이런 날, 기념일, 방학, 휴가, 명절, 휴일 등등,  혼자 있고 싶은 때도 있지만 나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고, 나의 속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마도 나의 볼래야 볼 수도 없는 어머님밖에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인간이 아닌가?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나는 속으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존재가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Father’s Day 모임 자체는 솔직히 말하면 모이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행사이기도 했다. 나는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가 거의 전부일 수도 있지만 별 수가 없었다. 별로 즐겁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 그런 때도 있는 거지…

Father’s Day grill out by Father

 

이영석 신부와의 카톡 대화로 8월 경에 이임, 귀국을 하신다는 것은 짐작했다. 6월 말까지 떠난다는 소문으로 아마도 새로 오시는 주임신부님이 그날까지 못 오시는 듯하고 아마도 8월 경쯤 visa가 된 것은 아닐까? 좌우지간, 8월 전까지는 새로운 신부가? 와~ 아찔해진다. 물론 좋은 사제가 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윗동네’ 주임신부 같은 ‘피하고 싶은’ 사제가 오는 날이면? 와~ 이것도 조금은 도전이고 시련일 수도 있다. 이임 소식을 아직도 생각하고 정리를 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 성당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내년까지는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살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부담을 주는 것인지? 어떤 목자가 출현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생의 마지막 순례길을 크게 결정, 좌우할 듯하기 때문이다. 나의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신부님,  ‘몸이 아프신가..’ 하는 추측 성 말들을 하게 되었다. 아니면 가족 사정, 특히 그들의 건강상태.. 등으로 관심이 넘어가면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 듯 보인다. 그러면 나쁜 것 아닌가?  문제는 timing이다. 왜 지금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려질 터이지만 궁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더 좋은 신부님이 오신다는 hint를 주셨지만 그것이 전부다.

Juneteenth, Tobey’s Memorial

  • Post published:

오늘 6월 19일이 바로 이틀 전 Biden 대통령이 federal holiday로 선포한 Juneteenth Day인가?  Black Independence Day 로도 알려진 날,  나도 이번에는 미국의 노예제도, 남북전쟁, 민권운동 등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또한 오늘은 조금 숙연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3년 전 오늘  [pet dog] Tobey와의 영원한 이별을 하던 날, 나는 솔직히 이것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얼마나 지나야 아름답기만 한 느낌으로 다가올까? 아직은 생각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다. 이후 나는 이런 이별의 가능성을 피하고 싶게 되었다. 다시는 이런 끈끈한 인연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pet cat] Izzie는 어쩔 것인가? 나를 괴롭히려고 이 녀석 요새 나를 어찌나 따라다니는지… 정이 더 들면 이별도 괴롭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찌던 지난 며칠 후에 어쩌면 이런 날씨의 변화가 왔을까? 너무나 고맙게도 촉촉하게 계속 비가 내리는 주말 오후는 너무나 평화스럽다. 비록 Tobey가 그립고 Izzie와의 이별은 나를 미리 슬프게도 하지만 그래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오르고 내리고 웃고 울고 편하고 불편하고… 그래 복음말씀대로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해도 충분하다.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이런 오후에 낮잠은 기막힐 듯해서 침대까지 올라가 누웠지만 역시 잠은 깊이 들지 않았다. 요새 왜 이럴까? 기막힌 나의 낮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날씨가 거짓말처럼 구름의 혜택에 힘입어 최고 low 80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런 날에 무엇을 하며 지날지 조금은 마음이 들뜨지만 실제로 크게 변한 하루는 아니다. 어제 끝낸 plant shelving, 이것에 힘입어 다른 carpentry work은 없을까? Porch 내부의 painting, 아직도 시작을 못한다. Pressure washing으로 시작해서 모든 잡동사니를 꺼내야 하는 것 등등 힘든 것만 머리에 떠오르니…

예보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비가 바람과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 예의 ‘사진기’를 준비, 뒷문, 앞문을 모두 열고 찍는다. 하필이면 오늘 Tobey가 비를 바라보며 편하게 앉아있던 모습이 그곳에 어리는 것일까? Tobey야, 행복했지? 나도 행복했단다. 서로 고생도 많이 시켰지? 하지만 너는 모두가 인정하듯이 나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 그것으로 나도 너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너희들의 저승이 있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서 비 오는 모습을 기다려 보자…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저서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이제는 이냐시오 성인 편으로 들어간다. 올해가 성인의 예수회 500주년 기념해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과 김대건 신부 해까지 겹치니 생각하고 살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 환영한다. 성인, 성인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나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들을 왜 잊고 살았을까? 이런 ‘성인들’을 모조리 찾아서 그들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고 싶고, 알고 싶다.

필사를 계속하며 문득 생각이 떠오른다. 이냐시오 성인, 예수회는 과연 나에게 무엇이며 무엇일 될까… 웃기는 질문이지만 누가 알랴? 어떻게 전개가 될 지를… 학문적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기에 자신은 없지만 이영석 신부님께 운을 띄웠지만 답은 교과서적인 것이라서 조금은 실망을 했다. 나를 이끌어주실지도 모른다는 수동적인 희망이 문제였다. 역시 내가 주도를 해서 이끌어야 할 듯하다.

Wikipedia에서 이냐시오 영성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우연히 online retreat program의 link를 찾았다. 하나는 Creighton University (a Jesuit  University in Omaha, Nebraska)에서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곳은 완전히 영성수련 전문 site였고 online뿐 아니고 hard copy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아무런 제한조건이 없지 않은가? 요새 같으면 피정도 있을 리가 없고 어차피 zoom 시대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간이 긴 것도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번 심각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다. 레지오 영성에서 이냐시오 영성으로 옮아가는 것이다. 호기심 반, 실제적인 기대 반이 섞인 이것, 그래 기도를 하며 숙고를 해 보자!

 비속에 우산을 쓰고 mailbox 로 나가보니 Amazon에 order했던 James Martin신부의 2권의 보물 같은 책, The Jesuit Guide (to almost everything)와 newly published JESUS, A PILGRIMAGE 가 들어있었다. 기왕 이렇게 이냐시오 영성에 발을 조금 들여놓았으니 아마도 이것이 성모님, 하느님이 나에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닌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 두 권을 다 읽게 되면 올해 여름도 다 가고 붉은 낙엽이 우수수 쏟아지는 가을이 되겠지…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