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덥다, 더워..

올 여름 들어서 첫, ‘강더위’가 시작되었다. ‘강추위’와 비슷한 말 ‘강더위’란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지만 할 수 없이 쓰게 되었다. ‘무더위’ 보다 더 더운 말을 찾기 쉽지 않았다. 지난번 나의 blog에서 요새는 날씨에 대한 뉴스가 조금 주춤 해 졌다고 쓰더라니.. 그새를 못 참고 이렇게 되었다. 지난 4월 달의 날씨에 관한 메가 급 뉴스는 비록 아닐 지라도 이런 찜통더위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바람이 전혀 없이 지독한 습도가 가세한 더위에서 사실 ‘도망’ 갈 곳이 없다. 그늘도 소용이 없으니까.. 유일한 방법은 ‘에너지’를 써서 더위를 ‘뽑아내어야’ 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에너지를 써서라도 편하게 살아야 하는 현대문명이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어찌하랴.. 인간은 이렇게 자꾸만 ‘약해’져 가는 것을..

오래 전 고국에서 살 때, 도망갈 수 없는 더위를 겪었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런대로 ‘즐길만한’ 더위였다. 딱 한번 예외는 있었다. 1972년 여름..서울 세운아파트..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잠을 못 잤다. 밤에 기온이 거의 떨어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나중에 ‘열대야’ 라고 부르게 된 것을 알았지만 그 당시는 처음 겪는 현상이라 적절한 ‘용어’도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무언가 기후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있긴 한 것이다.

그 당시 서울에는 아주 고급 사무실과 건물이 아니면 ‘에어컨’ 이란 것이 없었다. 하물며 일반 주택에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전기선풍기만 있으면 대 만족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보다 훨씬 윤택하게 살았던 일본도 별 차이가 없었다. 그들도 역시 전기선풍기로 견딜 만 했다. 그러다가 이곳 미국에 와 보니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실내 여름이 우리나라 겨울 실외보다 더 추운 듯 느껴졌으니까.. 일단 그것에 적응되고 나니까.. 이제는 전으로 돌아가기가 참 힘들어졌다. 그것이 인간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아닌 게 아니라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분명히 지구는 더워지는 것 같고, 인간은 자꾸 그것을 ‘강제’로 식힌 곳에서 ‘안주’하려고 하고.. 이것도 ‘진화’과정을 통해서 ‘인간 진화가 아닌 퇴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조금은 근거가 약한 걱정 같지만.. 하지만 우선 걱정을 놓자.. 길어야 2개월만 견디면 되니까..

Dan Brown's the Da Vinci Code 2003
Dan Brown’s the Da Vinci Code 2003

THE DA VINCI CODE, 올 여름 들어서 나도 그 ‘흔한’ summer reading을 생각하게 되었다. 왜 여름만 되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것도 혹시 ‘책 장사’들이 꾸며낸 ‘음모’일까? 좌우지간 여름 전부터 요란하게 이번 여름에 읽어야 할 책들이 요란하게 등장한다. 하기야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때 ‘수입’을 잡아야 타산이 맞게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수시로 책을 읽고 있어서 여름의 독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이색적으로 이것 한 권만은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에 나온 책, Dan Brown의 “The Da Vinci Code. 거의 8년이 지나서 읽게 되었다. 이것은 그 후에 Tom Hanks주연의 영화까지 나온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산 것이 아니고 큰 딸 새로니가 책이 처음 나올 당시에 hard-cover로 산 것이고 작은 딸 나라니까지 읽은 후에 나에게 넘어온 것을 아직껏 읽지를 못한 것이다. 사실은 첫 2페이지를 읽고, 그만 손을 놓았다. 너무나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해서 사실 흥미가 조금 떨어진 탓도 있었고.. 역시 흥미 위주로 천주교회, 로마 바티칸을 무슨 ‘비밀과 음모의 집단’처럼 매도한 느낌도 받아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저자의 이러한 식의 사실처럼 느끼게 하려는 ‘소설’의 테크닉이 워낙 정교해서 재미가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천주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비방의 재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읽기를 미루는 나를 아이들은 재미있는 듯이 놀려댔다. 한마디로 내가 게으르다는 식이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영화를 보더니 그런 이야기가 없어졌는데, 이유는 영화가 그 소설을 다 망쳐 놓았다는 말투였다. 이것은 이해가 간다. 소설의 그 깊은 뉴앙스(nuance) 가 영화에서 다시 고스란히 재현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애들은 한결같이 Tom Hanks가 그 주인공인 Robert Langdon의 역할에 잘 맞지 않는다고 우겨댔다. 나는 책도, 영화도 안 보았으니.. 할말이 없었지만 그런대로 짐작은 하겠다. 어떻게 보면 Indiana Jones같은 역할인데.. 그것은 Harrison Ford가 더 적격이 아닐까? 문제는 Ford는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슬픈’ 사실.. 어찌하랴..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또다시 ‘재미없으면’ 아주 이 책에서 손을 놓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른 ‘더 재미있는’ 잡스러운 일도 많은데 이 책을 끝까지 읽으려면 무언가 ‘동기 제공’ 이 중요한 것이다. 재미 없을 때 손을 놓아버리면 이제는 다시 읽게 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해결책이 생각보다 쉽게 찾아졌다. RbT, Reading by Typing.. 내가 만든 조잡한 말이다. “맹송맹송”하게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다. Computer에서 typing을 하면서 읽는 방식이다. 이런 idea는 사실 성당에서 자주 보는 성서필사에서 찾았다. 성서를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펜으로 종이에다 쓰면서 읽는 것이다.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 훨씬 집중이 되고 기억에도 더 남는다고 한다.

그런데 요새 손으로 장문의 글을 종이에 쓰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지 않은가?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RbT 에는 다른 이점도 있다. 끝이 나면 .’나만의 책’이 하나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무슨 연구재료로 쓰거나 할 때 인용하기도 너무 쉽고, 나만의 ‘근사한’ 책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나의 예감은 맞았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 비해서 속도는 떨어졌지만, 중단되는 ‘사고’는 없었고, 앞으로 없을 듯 하다. 한달 만에 거의 책의 반 정도를 읽게 되었다. 여기에 힘을 얻어 다른 ‘끝까지 읽기 고약한’ 책들도 함께 읽기 시작했다. 역시 속도는 늦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계속 읽게 되니까..

현재까지 읽은 이 책, The Da Vinci Code는 비록 가톨릭 신자의 입장에서 염려스럽긴 하지만 소설로써는 최상급이었다. 우선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읽으며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펼 여지와, 절대로 책 읽기를 중단하지 못하게 하는 절묘한 수법을 쓴 저자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그 ‘사실처럼 느끼게 한 거짓말들’를 어떻게 이 저자는 생각해 내었을까? 정말 할 말을 잊는다. 이 책을 읽을 때 성가신 것 중의 하나는 ‘불어’ 사용이었다. 배경이 프랑스에 많이 있기 때문이고 여자 주인공인 Sophie Neveu가 프랑스 사람이라서 더욱 그런데 문제는 나는 불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쓰는 것도 힘들고, 발음에서는 완전히 걸린다. 이것은 거의 나의 complex가 되었다. 우선 제대로 발음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지독히 불편하고 창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라도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동학교 졸업 앨범, 내가 1954년4월부터 1960년 2월까지 다니던 정든 서울 재동국민학교의 졸업 앨범이 드디어 ‘해체,스캔’이 되어 computer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PDF format으로 바뀌어서 ISSUU server에 upload가 되었다. 일반적인 browser의 pdf-reader plugin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느낌이 빠르고, 실제로 ‘책’을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과연 몇 명이나 자기의 얼굴을 이곳에서 보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시리즈, 내가 읽은 책: 박기원씨의 이진섭(3,끝)

이진섭씨와 일본

박기원씨는 조금 그렇다 치더라도 이진섭씨는 시대적으로 보아서는 완전히 일본식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다. 그만큼 그들이 속했던 문화는 조금은 생각해 보아야 할 만큼 복합적일 것이다.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가 바로 그 세대여서 사실 우리도 조금은 친숙하다. 일본..하면 우선 정치적으로 ‘죽일 놈의 나라’에 속했지만 확실히 앞서간 근대문명을 악착같이 따라가던 그들을 보고 다르게 봐야 하는, 말하기 싫은 시각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뒤의 우리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1971년 국제회의 참석차 이들 부부는 쉽지 않았던 해외여행을 하게 되고, 일본을 경유해서 귀국을 하게 된다. 그때 느낀 일본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이렇게 그려진다.

나는 교오토(京都) 등을 관광하고 싶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도쿄 시내는 택시로 한 바퀴 돌아 보았고, 식사할 때만 호텔 근처에 나가 사먹었다. 그래도 긴자(銀座)니 록봉기(六本木)니 하는, 옛날 소녀 때 일본 소설에서 읽었던 귀에 익은 거리 이름을 보니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이나 나나 왠지 일본에 대해서는 마음 깊이 아직도 용서 못할 풀리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이는 공항에서도 절대로 일본 말을 안 쓰고 영어만 쓰는 고집을 부렸다. 우리는 일본에서 아무도 찾지 않고 만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느낌이 좋은 것을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아주 이성적인 감정이라고나 할까. 1968년 이력서에서 ‘요주의 인물’의 딱지가 떨어지고 첫 일본여행 당시 느낌이 대표적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퍽 자유로운 곳이야. 그리고 먼지가 없어. Y셔츠, 신발 닦을 필요가 없으니 잔손이 안 가 참 좋군. 언젠가 가까운 날 당신하고 같이 오고 싶은 곳이야.

위의 글은 1968년 당시니까, 그 당시 서울의 풍경과 비교해 보면 짐작이 간다. 완전히 공해에 찌들었던 서울하늘이 완전히 먼지 범벅이던 그런 시절, 손수건이 없으면 100m도 못 걷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미 올림픽 4년 후였던 그곳과 비교가 될 듯하다.

 

샹송과 이진섭

나의 기억에 이진섭씨는 불란서 풍의 문화를 좋아한 듯 하다. 특히 샹송 풍의 노래에 조예가 깊었고, 한때 샹송가수 <이벳드 지로, Yvette Giraud>가 서울에서 공연을 했을 때 공연무대에서 사회를 보았고 그 기사를 어느 잡지에서 사진과 함께 본 기억도 난다. 그렇다면 이진섭씨는 영어, 일어는 물론이고 불어도 잘 했을까? 그렇다면 과연 그가 팔방미인, 박학다식 하다는 말이 맞는 것이다. 그 당시 어렵게 살던 때 어떻게 세계적인 가수 <이벳드 지로>가 서울에 왔을까.. 생각해보니 이것도 역시 일본 때문이었다. 이 샹송가수는 그 당시 일본에서 활약을 하며 일본어로 샹송을 취입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주 후에 영국가수 Cliff Richard가 왔을 때도 비슷한 경우다. 어떻게 그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음악에 관심이 있었을까..아마도 좋던 싫던 간에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그이는 음악가는 아니었지만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그리고 음악 속에 살다 갔다.

그이는 젊어서 KBS 아나운서를 하던 시절, 한국 최초로 ‘라틴 뮤직’과 ‘샹송’ 음악을 소개하고 해설해서 그 당시 많은 젊은 음악 팬들에게 인기가 대단했었다.

그 후에도 프랑스 샹송 가수 ‘이벳드 지로’가 한국에 와서 공연했을 때 그 사회를 맡아 보기도 했다.

그이는 평상시에 가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소원은 지휘자가 되는 것이었어. 그래서 형님께 일본에 있는 우에노(上野)음악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더니 정신 없는 소리를 한다고 한 마디로 거절 당했지. 어쨌든 나는 그때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꿈이고 소원이었어”

그는 음악을 듣는 귀가 예민하고 정확했다. 음악회에 가서 오케스트라를 들을 때도 어느 파트의 어느 악기가 지금 어떻게 잘못 연주하는지 잡아낼 정도로 그이는 음감(音感)이 예민했다. 악전(樂典)도 혼자 공부했고, 서양 음악사도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Yvette Giraud, 이벳트 지로

 

파리의 연인

유럽에서 만난 연인 부부, 1971
유럽에서 다시 만난 연인 부부, 1971

이진섭씨 부부는 어떻게 보면 정말 행복한 부부였을 것이다. 1971년 그 당시 부부동반 파리여행을 한 다는 것은 이미 평범한 부부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니까. 지극히 낭만적인 이진섭씨는 거의 의도적으로 이런 영화 같은 ‘파리의 연인’의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낭만인 이진섭씨가 세계적인 낭만의 도시에서 부인과 만나게 여행계획을 짰다는 것은 정말로 부러운 일이다. 이런 기회가 일생에서 한번 올까 말까 한다는 사실은 박기원씨가 느낌으로 알아차리고 100만원 짜리 적금을 이 “일생의 여행”에 투자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9월 27일, 1971년

파리 거리의 가운데를 세느 강이 흐르고 있다. 그 세느 강에는 2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다리가 있다.

그 다리에서 파리를 바라보는 경치는 유별난 게 있었다. 세느 강변에는 탐스런 푸른 허리띠 같은 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北回歸線)>이라는 소설 속에 이 경치가 묘사돼 있는데, 이 소설에서 제일 아름다웠던 것이 생각 난다.

우리는 그 세느 강변을 걸었다. 강변에는 화상(畵商), 골동품 가게, 그리고 책 가게가 즐비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자의 강변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치 젊은 연인들 같이 어깨를 감싸고 걸었다.

그이는 49세, 내가 42세! 우리는 좀 늙은 연인들인지도 모른다. 세느 강변의 산책은 아마 영원히 우리를 즐겁게 해주리라.

 

죽음과 재회

거의 영혼의 친구같이 살았던 두 분의 관계를 볼 때, 배우자의 타계는 아주 심각한 것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부부보다 더 고통을 느꼈을까? 일생 문필가로서 서서히 꺼져가는 남편 생명의 촛불을 보며 남긴 일기는 참 감동적이다. 그런 와중에서 글을 쓴 것은 보통사람 같았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이, 깊은 잠에 빠지는 혼수 상태 계속, 산소 호흡, 주사로만 지탱한다. … 가사상태.. 집에서 하던 몸부림도 없어졌다. 거친 숨소리뿐 –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나? 그래도 그의 숨소리가 내 곁에 있고, 눈은 감았지만 살아 있는 몸체가 내 곁에 있는 실재감(實在感)!

….

저토록 잠잠할 수 있을까? 나에게 들려주었던 그 많은 다정했던 말소리. 나를 당황하고 슬프게 했던 그 많은 일들.. 그 모든 것은 모두 어디 두고 저토록 잠잠하단 말인가.

어쩐지 죽음과 같이 있을 이 시간이 점점 두려워진다. 나의 영혼과 육신이 같이 살던 30년. 그 세월이, 그 순간이 순간마다 단절돼 간다.

절대 절명인 이 순간… 도망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이 순간….

 

이 부부는 가까운 분의 감화로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 이진섭씨는 비록 열정적인, 모범적인 크리스천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분명히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갔다. 그래서 남아있게 된 ‘연인’은 저 세상에서의 재회를 믿고 싶고 믿으면 살고 싶은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다 읽고 나서…

처음 읽기 시작 할 때, 이진섭씨가 못 채우시고 가셨던 환갑이 멀게만 느껴졌지만 이제 그것을 넘어서, 이렇게 조금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니 이 책의 느낌이 새롭다. 이것은 분명히 나의 나이 때문일 것이다. 많은 부분에 나와 감정이 일치하는 부분은 내가 마음속에 새기며 흉내를 내 보기도 하곤 했다. 그리고 반대로 ‘술’의 멋에 대한 나의 생각에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멋도 중요하지만 정도껏.. 그러니까 ‘중용’, 알맞은 멋과 건강과의 균형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는 박기원 여사도 많이 연로하셨으리라 짐작이 된다. 이렇게 솔직한 “일기의 진수”를 남겨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행복하고 건강하신 노후를 하느님께 기도하고 싶다. 다시 한번 팔방미인, 다재다능 님의 명복을 빌며…

 

시리즈, 내가 읽은 책: 박기원씨의 이진섭(2)

턱걸이 제네레이션

박기원 씨는 사랑하는 남편 이진섭씨를 통해서 그 당시를 “살아 가야만” 했던 대한민국 남자들, 가장들의 한(恨) 같은 것을 몸으로 느꼈다. 평범하게 매일 매일을 생활하는 엄마, 주부로서만이 아니고 한 지식인, 문인으로서 남보다 더 깊이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입장을 비록 다 이해는 못하더라도, 더 이해하려 노력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진섭씨는 1922년 생이고 박기원씨는 1929년 생, 모두 왜정(주: 그때는 ‘일제강점기’라는 고급스러운 말을 이렇게 불렀다)때 태어나셨다. 특히 이진섭씨는 청년기까지를 모두 왜정에서 교육을 받은 셈이다. 일본식 교육과 충성을 강요 받고 잘못하면 ‘남의 나라’ 전쟁터로 끌려갔을 그런 ‘기가 막힌’ 시대를 사셨던 것이고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도 거의 다 그랬을 것이다.

… 어쩐지 한국 남자의 한(恨)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뒤늦게 얻은 이해심도 아량도 아니다. 술을 마셔야만 살았을 것 같은 그 시대에 살았던 남자들!

그 안에서 제일 다치기 쉽고 멍들기 쉽고 상처 받았을 그이의 외로웠던 가슴을 뒤늦게나마 아내인 나는 조금씩 알 것만 같았다. …………

그이는 생전 이런 말을 가끔 했다.

“우리 시대는 턱걸이 제네레이션이야. 무언가 해 보려고 안간 힘을 썼다가는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

그것은 아마 불안정했던 한국의 역사와 격동기를 겪고 살아야만 했던 고뇌에 찬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이의 진정, 깊은 남자의 마음을 나는 그가 살았을 때보다 그가 간 지금 되새겨 보고 있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진정 그의 아픔이었지 아내인 나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한 남자만의 고독이었다. (본문 97쪽)

그이는 살아 있는 동안 가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가 생겼을 때, 그것을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원인을 타인에게 미루는 것처럼 비겁한 것은 없다. 모든 결과는 먼저 자시에게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 세대만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원인을 시대에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비극을 지니고 있다.

‘턱걸이 제네레이션’이라고 할까? 즉, 철봉 틀에 매달려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오르려 하면 철권으로 내리쳐 주저앉게 만든다. 한 번도 그 푸른 하늘을 못 보고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시대의 생각 있는 남자의 몰골은 마치 주문진 해변가에 널려 있는 오징어의 모습 같다. 축 늘어져 말라 가는 오징어들 그것일 것이다.” (본문 169쪽)

 

“최후의 낭만인 이 진섭”

1983년 3월 이진섭씨의 장례 시, 동창, “많이 통하며 많이 비슷하고, 멀리 있어도 가슴 한구석으로 걱정을 해주며 살던 친구” 한운사(韓雲史)씨의 비문(碑文)이 명필 송지영(宋志英)씨의 글로 세워졌다.

 

비문

무엇인가를 쓰고

예술을 논하고

노래를 짓고, 노래 부르고

인생의 멋과 맛을 찾아 다니며

소유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들에게

욕설을 퍼붓던 우리 세대

최후의 낭만인 이 진섭(李眞燮)이

그 뜻을 다 펴지 못하고

한 잔 술, 두 잔 술로 외로움을

달래다가 마침내 여기 영원히

잠들었다.

새야, 바람아, 교교한 달아

찬란한 태양아

이 사람과 더불어 놀아 주라.

1983년 3월 10일

 

이 글에서 “우리 세대 최후의 낭만인” 이란 말이 이채롭다. 영어로 하면 “last Romanist among our generation“정도나 될까. 이분의 일생을 알고 나면 이 표현은 정말 설득력이 있다. 또한, 멋과 맛을 찾아 다닌다고 했지만 그 정도와 걸 맞는 철저한 책임 있는 한 가장이기도 했다. 문제는 “한 잔 술, 두 잔 술로 외로움을 달래다가” 건강을 해친 사실이다. 나의 기억에 그 당시를 살았던 아버지 세대 중에는 이런 분들이 꽤 있었다. 지나친 자학과 불만을 거의 모두 ‘술’로 달래다가 일찍 운명을 하신 불쌍한 세대였다. 우리 세대도 이런 것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많이 술 문화에 영향을 받긴 했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100% 그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이진섭씨는 아마도 최후의 “자유인” 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 이진섭씨는 비록 말년에 세례 기독교 신자가 되었지만, 흔히 말하는 독실한 신자 처럼 같이는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부인의 눈으로 보아서도 그런 것이다. 종교도 ‘자유’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었을까? 틀에 얽매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을까?

 

그이는 감히 남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했고, 그 속에서 헤엄치듯 살았다.

술잔을 들면서 혼자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고 그랬다. 나는 그런 그이 모습이 우스워,

“여보, 술잔 들고 기도하는 사람이 어디 있우? 그건 하나님에게 대한 모독 예요. 하나님을 접할 때는 몸도 마음도 정결하게 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야죠”

그러면 그이는 너무도 당당하게

“모르는 소리. 술 안 먹은 맑은 정신 속에서도 음모, 살의, 도둑 심보 등 갖은 잡스런 생각을 지닌 채 기도하는 놈들도 있을 거야. 나는 술은 먹어도 마음만은 맑은 거울같이 깨끗해. 성경 말씀에도 있지. 착하고 순진한 어린애 같아야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다고 말야. 나는 술잔을 들고 있지만 그런 뜻에서 하나님은 나를 미워하실 수 없을 거야”

나는 이론이 정연한 그의 말에 말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누구에게 구애 받거나 간섭 안 받고 자기 식대로 자기 마음대로 믿었다.

그러고 보니, 그이같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도 드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본문 110쪽)

 

위의 글을 보면 이진섭씨는 위선자 부류를 아주 싫어한 것 같다. 올바른 소리에 비해 행동이 다른 사람들, 이진섭씨도 올바르고 이론 정연한 이론을 펼쳤어도 행동이 그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고 나면 그의 ‘자유론’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특히 율법에 얽매여서 ‘법의 기본 정신’을 모두 잃어버린 ‘바리사이파’ 같이 예수를 팔아 넘길만한 사람들이 ‘수두룩 닥상’인 이 세상을 살면서 어찌 이런 자유인의 행동을 마다할 수가 있을까?

 

시발택시 위의 해프닝

자유와 멋을 제대로 승화시킨 ‘사건’은 아마도 시발택시 위에서 샹송을 부른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얼마나 이진섭씨가 술과 자유와 샹송을 사랑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 해 겨울이었나 보다. 눈이 많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낮에 나간 그이가 통행금지 시간(필자 주: 어린이 들, 그때는 midnight curfew란 것이 있었음)이 다가오는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애들을 재우고 온 정신이 문 밖에 쏠리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 다급히 울리는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육감적으로 뛰어나갔다. 당시엔 시발택시가 한창인 때였다. 시발택시 지붕은 널찍하고 편편했다.

그이는 흰 눈이 덮인 시발택시 지붕 위에 누워서 늘어지게 샹송을 부르고 있었다.

눈 덮인 길은 달빛이 은색으로 빛나고, 이 진섭씨는 하늘을 향해 황홀경에 젖어 있었다.

“운전 20년에 저런 양반은 처음 예요. 아주머니 빨리 요금 주시고, 같이 끌어 내려요”

어린애 달래듯이 겨우 택시 지붕에서 끌어 내렸다.

그랬더니 이 진섭씨 왈,

“자네는 차만 끌 줄 알았지 이런 멋진 밤을 모르는 불쌍한 놈야. 자 요금”

그이는 호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지폐를 꺼내 한줌 집어 준다.

그 돈이 타고 온 요금의 몇 배가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제서야 운전수는 갑작스런 횡재에 입이 벌어지며,

“아저씨 감사합니다. 어서 들어가 주무십시오”

하며, 깍듯이 정중한 인사를 하고 가버린다. (본문 159쪽)

 

국산차 1호, 시발 승용차
국산차 1호, 시발 승용차

물론 이때 이진섭씨는 한잔을 거나하게 걸친 취중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행동을 보면 이상하기 보다는 멋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누구라도 마음 속 깊이 이렇게 한번 ‘멋지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까.

 

여기 나오는 시발택시가 무엇인지 상상이 전혀 안 가는 “어린애”들이 많을 듯 하다. 이승만 정권 때 나온 ‘국산 차’의 이름이었다. 군용 Jeep을 완전히 승용차로 개조한 것이다. 그러니까 body(차체)만 군용drum통을 사용해서 우리 디자인으로 씌운 것이다. 대강 찝 차와 비슷하게 생겼다. 대부분의 택시들이 이차였다. 이것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일육 군사혁명 뒤부터 일제 차, “blue bird”가 들어오면서 부터 였다.

 

65세 만세론(萬歲論)

내가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때는 30대 중반이었다. 그 뒤로 계속 읽고 읽고 하다가 이 대목에 이르면 넘어가곤 했다. 아직도 나에게 멀었다는 막연한 생각과 죽음이나 수명 같은 화제는 가급적 피하고 싶었던 것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나이나, 세대가 바뀌면서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영어에도 여기의 화제와 비슷한 말이 하나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 “dirty old man” 이란 말이다. 이진섭씨도 이런 ‘어감’을 제일 싫어하지 않았을까?

 

그 이는 가끔 65세 만세론(萬歲論)이란 말을 했다. 즉, 65세까지만 살면 인생은 그만이라는 뜻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 이상은 ‘덤’으로 사는 거지, 그것은 사는 게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연장일 뿐이라고도 했다. 그것은 곧 사실상 죽은 인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이는 가까운 친구분이던 윤 현배 선생님과 몇 분이 서 항상 65세 만세론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그이는 그 소원이던 65세도 채우지 못하고 가 버렸다.

어떤 때 외출을 같이 나갔다가 길에서 나이 많은 노인이 조깅하는 것을 보고,

“늙은이는 늙은이다워야지, 저렇게 무리한 운동을 하면서까지 오래 살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은 좋게 안 보이는군” 하던 말이 기억난다.

더구나 모든 면에서 노욕(老慾) 같이 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늙어갈수록 저물어 가는 낙조(落照)를 보듯 담담해야 된다고도 말했다. 또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누구나 두 주먹을 쥐고 나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누구나 두 손을 편안하게 펴고 죽은 것처럼, 그 동안 두 손 안에 담았던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욕심을 미련 없이 버리고 가야만 된다고도 말했다.

그러니까 자식 덕을 보겠다는, 그러기 위해서 오래 살아야겠다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자기 몸 움직여 60 평생까지 살고, 그 이상 못 움직이게 되니까 ‘이만하면 너희끼리 살 수 있겠지’ 하고,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훨훨 가 버린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몸 져 눕기 두 달에서 이틀 모자라는 날만 채우고…

어떻게 생각하면 매몰차고, 너무나 명확하게 자기 인생 몫을 살고 간 것 같다. (본문 311쪽)

 

이진섭씨 세대에선 분명히 60세, 즉 환갑이란 나이는 커다란 개인적 업적에 속했다. 평균수명을 생각해도 그렇지만 전통적인 유교질서에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개념을 생각해도 그렇다. 나이가 듦은 ‘무조건’ 가치가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요새는 사실상 완전히 거꾸로 되었다. 젊은 것이 ‘무조건’ 좋게 보이는 세상인 것이다. 강제로 늙어감을 늦추는 것.. 정도의 문제다. 지나치면 ‘노욕’이 되는 것이 아닐까? 자연스러운 것보다 더 추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자꾸 들어가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어떨 때는 깜짝 놀랄 때도 있으니까.. 10년 전 보다 더 젊게 보인다면 이건 좀 이상하다. 그런 배경에서 나는 이 책을 오랫동안 읽으면서 가급적 자연스럽게 늙는 것을 바라게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계속)

 

아틀란타 Snow day No. 3, 100th blog etc..

frozen Atlanta
frozen Atlanta

아무리 생각해도 snow day가 3일째 계속된 적은 이번 말고 기억에 없다. 1989년 이곳에 이사온 이후에는 없었다. 1993년 3월 달의 storm of the century때도 3일 이상 계속되지는 않았다. 이번은 내일까지 모든 학교들과 대부분 직장이 쉰다고 한다. 그러니 4일 연속의 snow day인 셈이다. 이번에는 눈이 온 이후로 강추위가 계속되어서 길들이 모두 스케이트장으로 변한 탓이다. 제설트럭이 10대밖에 없으니.. 얼음이 저절로 녹기를 기다리는 형편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것을 가지고 정치화 하거나 불평을 하는 이곳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사실 더 재미있지 않은가? 나도 사실 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뜻밖에 완전한 relax를 하게 되어서 고마울 지경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쌀만 있으면 몇 주라도 끄떡없이 나가지 않고 살 수 있으니 더 그렇다. 이곳 사람들은 조금 다를 것이다. 빵과 우유, 야채가 꼭 있어야 하니..

오늘의 blog이 100번째를 넘었다. 2009년부터 조금씩 쓰던 것이 지난해 7월부터는 거의 정기적으로 쓰게 되고 이제 100번째가 넘은 것이다. 남들에게는 큰 숫자가 아닐지 몰라도 나로서는 milestone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한글로 쓰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었다. 영어로 쓰는 것보다 쉽겠지..한 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영어로 쓰는 것 만큼 힘이 들었다. 나의 생각이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영어로 생각하는 습관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런데다 멋진 한글 수식어들을 참 많이도 잊어버렸다. 아마도 내가 한글로 된 책을 별로 안 보고, 2000년이 넘으면서 한글로 된 website도 거의 피한 결과일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아이들 수준의 단어 밖에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한글표현도 잘 못하고.. 이제는 영어보다는 한글에 더 신경을 쓰며 살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한인성당의 레지오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한국 문화’를 더 접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제발트 저, 이민자 들
제발트 저, 이민자 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Cobb Central Library엘 가게 되었다. 친지가 경영하는 Atlanta downtown에 있는 Kristie란 jewelry store에 computer문제가 생겨서 보아주고 오다가 잠깐 들린 것이다. 작년 여름부터, 집안의 마루를 새로 놓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 때까지 거의 정기적으로 가던 것이 중단되어서 이제까지 온 것이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출판된 책들이 제법 있어서 새로 나온 책이 있나 보았는데.. 거의 없었다. 이곳도 $$$이 경제사정으로 모자란 모양인가? 그래도 몇 권을 빌려왔다.

한번 빌려 보았던 독일작가 제발트(W.G. Sebald) 저 “이민자 들(Die Ausgewanderten)”, 마쓰히사 아쓰시 저 “천국의 책방“, 그리고 이청준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등이다. 이 중에 “이민자 들”은 한번 본 것인데 다시 읽고 싶었다. 왜 그럴까? 독일인으로 영국으로 이민을 가서 다른 이민자들을 보면서 쓴 것인데.. 아주 비극적인 이야기들이다. 한마디로”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소설”인데 아주 그 format이 특이하다. 주제는 이민자들이 겪는 ‘고향상실의 고통’이다. 나는 그들이 겪는 고향상실이 어떤 것이지 잘 알고 있다. 어느 민족, 어느 문화권이던 이런 것은 사실 보편적인 것이 아닐까?

인생 고수

책, 인생고수……참 제목이 좋다. 인생을 통달한 듯 한 저자의 자신 있는 실용화 된,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오래된 인류의 축적된 지혜와 철학.. 이렇게 책 하나에 그것을 모아 놓은 것은 사실 드물게 만나는 작은 기쁨이다. 목차를 보면 저자의 의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고단한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 내 힘든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인 것처럼
  • 건강한 생활을 위한 지혜로운 습관
  •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어른 되기
  •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고민 해결법
  • 왜 사람들은 나를 몰라주는 걸까?
  • 삶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
  • 나이 듦에 대처하는 자세
  •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원하는 것 하며 살아가기

  • 왜 나는 항상 불리한 조건에 있는 걸까?
  • 하고 싶은 일과 안정된 직업 사이에서
  • 터닝 포인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 인정받고 싶은 마음,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 하루하루 힘겨운 일상, 미래는 언제 준비하나?
  • 존경 받는 리더 되기
  • 내가 있는 집단은 언제나 옳은 것일까?
  • 오늘도 나 혼자 모임을 준비하는 이유는

 

너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고 싶다

  • 지금 하는 이 사랑, 진정한 사랑일까?
  • 세상의 반항아들과 대화하기
  • 인간관계가 나를 괴롭힐 때
  • 이기적인 이웃과 평화롭게 살아가기
  • 나를 알아주는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싸우자
  • 서로 다른 믿음이 관계를 악화시킨다면
  • 세상의 폭력에 맞서는 가장 큰 힘

 

큰 제목 밑의 소 항목 들은 사실 서로 많은 연관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소 항목은 차례를 무시하고 읽어도 될 듯하다. 이중에서 나에게 제일 흥미롭거나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들을 열거 해 본다.

  •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인 것처럼
  • 건강한 생활을 위한 지혜로운 습관
  • 왜 사람들은 나를 몰라주는 걸까?
  • 나이 듦에 대처하는 자세
  •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 터닝 포인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 오늘도 나 혼자 모임을 준비하는 이유는
  • 인간관계가 나를 괴롭힐 때
  • 나를 알아주는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싸우자
  • 서로 다른 믿음이 관계를 악화시킨다면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돈다. 혼자서 읽고 생각한 것보다 이런 것들은 누구와 같이 읽고 의견을 교환하거나 토론을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읽은 후의 서로의 생각은 비슷한 것 보다 다른 것이 많을 것처럼 생각이 된다.  바로 그것이다. 그 다른 것을 서로 생각해 보면 책을 혼자서 보는 것보다 효과가 그만큼 증가하게 되지 않을까? 사실 성경공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종교를 떠난 것이라 그만큼 제한조건이 줄어든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1990년 초 내가 마리에타로 이사를 오게 만든 직장: Automated Logic Corporation(ALC) 에서 일을 할 때 그 사장 (별명이 Jaws였다) 이름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Gerry Hull이었다. Gerry는 Jerry로 발음을 하는 게 아니고 Gary로 발음을 하였다. 그 사장이 우리 그룹의 중요 멤버와 같이 공부를 하던 게 있었다. 나는 거기에 참여를 못했지만 (이미 진행 중이었다) 옆에서 보니 참 신선하고 건강한 회사로 느껴졌다. 그때 같이 공부하며 토론을 하던 책이 바로 그 유명한 Stephen Covey의 “7 Habits of Successful People” 이었다. 이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였고 후에 나도 사서 읽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도 기회가 되면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결과는 역시 제로.. 나의 고질병인 timid &passive.. 최근 10년은 연숙의 ‘눈치’를 보게 되어서 아주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싶지 않다. 경제력도 없는 꼴에 사람들을 모으고 만나서 한가하게 인생철학을 토론한다고?  웃기지도 않는 한가한 얘기가 아닐까? 구차하게 그녀에게 구걸하고 싶은 마음 눈곱만치도 없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discussion group이 virtual이건 아니건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virtual한 것은 현재도 작업 중이 아니던가! (정말 웃기는 인간이 바로 이경우, 이경우 병신XX 다) 그래도 시작해 볼만한 resource는 하나 있다. 바로 이 “진희네 그룹” 이다. 이제 보니 10년이 훨씬 넘은 관록도 자랑한다. 요새야 10년 하면 별거 아니라는 기분도 들지만 10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 동안 끊어질 듯 말듯 교제를 해온 나의 유일한 ‘친지’들이 되었다. 친구라고까지는 하지 못하지만 10년 동안 꾸준히 만났다는 것은 그런대로 친지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이 그룹에서 만약에 이런 진지한 토론을 하게 된다면.. 아니 이게 우선 말이나 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도 wife들까지 참여를 한다면.. 말이나 되나.  아.. 조금 이건 힘들지 않을까?  성경공부에선 그게 별로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왜 그럴까? 이게 더 공부를 해야 돼서 그런가? 인원이 너무나 적어서 그런가?

두 권의 책

며칠 조금 포근한 날이 다시 매섭게 추운 날로 돌아왔다. 이곳의 2월 달은 사실 포근한 달이 아니다. 깜짝 놀랄만한 겨울날씨는 이때부터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이번 겨울은 나도 조금은 놀랄 정도로 추운 겨울의 체면을 살렸다. 거의 잊어버렸던 두꺼운 스웨터도 찾아 입게 되었고, 별로 인기가 없던 두꺼운 장갑, 그리고 드디어 생일선물로 ear muff까지 생겼다. 얼마 전에 Tobey 산책을 시킬 때 착용을 했는데 그 ‘위력’은 사실 대단했다. 조금 듣는 것, 특히 ear bud로 음악을 듣는 게 문제가 되지만 산책 내내 아주 편안하게 머리가 따뜻했다.

그렇게 가물고, 따뜻하던 날들이 언제부터인지 싸늘하고 비가 계속 오는 그런 날씨로 변했다. 참, 자연은 공평한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균치’를 이렇게 채워주시니 말이다.  정도의 문제겠지만 가뭄보다는 장마같이 비가 많은 게 좋고 더운 것 보다는 추운 게 더 좋다.

오늘Cobb library 에서 건강에 관한 일본인의 책(“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 “이시하라 유미”저, 김정환 옮김, 2006)을 읽었는데, 체온이 내려가면서 생기는 신체의 각가지 부작용, 그러니까 한마디로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내용의 것이었다. 이것은 동양의학적으로 보면 수긍이 간다.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의 저자는 이것을 그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연구를 한 모양이다. 음식도 찬 것을 피하고, 목욕도 따뜻하게 하고.. 그런 식이다. 나는 어떤가? 우선 먹는 것은 이빨 때문에 찬 것은 피하는 편인데, 예외적인 것은 냉수와 우유 정도일까.. 문제는 겨울에 집안 기온이 낮다는 것이다. 춥게 사는 게 나는 머리를 맑게 하고 경제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것도 문제가 있는 모양 인가.

 또 하나 비슷한 종류의 책 (역시 일본인 저자: “병 안 걸리는 사람들의 3법칙“, “아보 도루” 지음, 박인용 옮김, 2007) 에서는 병 안 걸리는 사람과 잘 걸리는 사람의 특징을 다루었다.  권장하는 건강법은 ‘반신 욕’, ‘호르메시스’, ‘수면’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질병은 면역력의 저하에서 오니까 면역력을 높이면 된다는 뜻일 것이다. 외부적인 사고로 죽거나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이 ‘질병’만 잘 다스리면 ‘장수’를 한다는 그런 것일까? 어쨌건, 죽기 전까지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주변가족에게 부담도 필요이상 주지 않고, 더 나아가서 사회에도 경제적인 부담을 덜 주지 않겠는가?  이 권을 책을 빌려서 집에서 차분하게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행복어 사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삶을 아름답게 하는 100가지” 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행복어 사전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이곳의 bookstore 에서는 아마도 SELF HELP section쯤에 속하는 책일까… 이 책이 왜 금방 눈에 띄었는가 하면 같은 제목의 책이 전에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이 옳다면 아마도 <이병주> 라는 저자의 소설 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제목이 조금 특이해서 읽게 되었음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non-fiction인줄 알고 읽고 보니 그야말로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행복어사전은 글자 그대로 행복어사전 이었다. 진짜 사전은 아니지만 행복으로 가게 하는 저자의 90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경험적 글들의 모음 정도라고 해야 할까. Subtitle에 의하면 100가지라고 분명히 개수까지 밝히고 있다.  오늘 아침 크리스마스 다음날 일찍이 도서관에 나와서 읽게 되었는데 이건 내가 생각해도 나답지 않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사실 그냥 나의 서재에 앉아서 진한 아침 커피를 즐기며 있었을 시간이 아닐까? 이래서 인생은 꼭 예측대로만 진행되지를 않기에 조금은 재미있는 게 아닐까?

최근 거의 3년간 ‘다시 알게 되는 일본‘ 의 나만의 ‘공부’ 덕분에 조금은 일본인 저자가 생소하지 않고 일본의 이름들도 이제는 조금 친숙한 편이다.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사이토 시게타라는 90세의 일본인이다. 90세라는 나이의 느낌도 이제는 나에게는 30세라는 나이보다 덜 생소하다. 나의 나이가 60세를 넘어서 그런가..  30세라는 나이는 이미 내가 살아 본 나이라 덜 흥미롭지만 90세라는 나이는 내가 혹시라도 가보게 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나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이 책에 조금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저자가 60세 이후의 ‘막내 늙은이’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평균적으로 직장생활이 60세 전후에서 끝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경험상 그런 것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책을 더 깊이 읽게 되면 더 알게 되지를 않을까? 현재까지 읽은 것에서 공감이 바로 가는 것 중에는 “고민거리 도 마감날짜를 만들어 두자” 가 있다.  처음에는 조금 우습게도 들렸는데.. 가령 “여보시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된단 말이요?” 하고 곧바로 반문을 하면 뭐라고 저자는 말을 할까? 굳이 따지자면 시간을 질질 끌면서 고민하지 말자는 뜻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저자 자신이 아주 ‘효과’를 본 방법이라고. 아주 구체적인 방법으로 고민의 정도에 따라서 작은 고민은 10분에 고민을 끝내고 그 다음은 30분, 또는 최대 한 시간.. 등등.. 으로 개인에 맞게 시간을 정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너무나 현실적인 게 아닐까 생각을 하지만 이것도 도움이 되는 테크닉이 아닐까.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일’을 끝을 생각하며 일을 하라는 뜻일 듯하다. 나의 style과 아주 정반대라고 생각도 된다. 나는 그 과정을 더 즐기는 타입이라 그런 모양이다.

 

Here and Now

Henri Nouwen의  Here and Now 조금씩 읽고 있다.  이 양반의 문체는 정말 한마디로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One day at a time의 사고방식임에는 틀림 없지만 매우 공감이 가게 쓰고 있다.  이 책은 2006년 연숙으로부터 Father’s Day 선물로 받은 것인데 그 동안 내내 먼지만 쌓이다가.. 이번에 아주 우연한 기회로 재발견하게 되었다.  하느님께 감사.  매일매일의 일상생활과 성서적인 영성 생활을 어떻게 조화 시키는가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인데.. 이게 바로 그것을 집중으로 다룬다.  조금씩 읽고 있지만 그래도 만족이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는 한인천주교회의 구역모임이 있었다.  이번에는 구역 장을 다시 뽑는 문제도 있고 해서 별로 가고 싶지를 않았다.  매번 그랬다.  하지만 갔다 오면 그런대로 좋은 것도 있었다.  이게 아니면 내가 가족 이외에 누굴 본단 말인가.  이렇게 작은 그룹이지만 그것도 쉽지를 않다.  이 나이가 되면 이제 이런 것 다 짐작하고 모든 ‘인간’을 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전 선생님 부부가 미리 ‘경고’한 대로 ‘탈퇴’를 하였다.  이런 것도 이렇게 선언을 하고 나가는 게 이해를 하기 힘들지만.. 그분들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일한 ‘선배’격의 교우여서 유난히 신경을 쓰며 대했는데.. 이제는 그게 끝이다.  전선생의 지독히 직설적인 ‘용공론’이 계속 걸려 왔지만.. 이것도 끝인가.

나는 아직도 나의 머리를 너무 과신하고 있는가.  며칠 동안 연숙의 pola.mdb를 다시 review하면서 느낀다.  생각 같아서는 그저 몇 시간이면 될 듯한 게..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나..  잡상과 분심 등으로 시간이 쪼개 지지만 그래도 거의 나의 시간을 다 쓸 수 있는 이런 형편에.. 이게 무슨 추태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번에는 무슨 ‘결론’을 내려고 한다.  성공 아니면 실패.. 중간은 없다.  원죄 없으신 성모마리아 어머니여.. 저를 조금만 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