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마지막 토요일에..

 

거짓말 같이 평화로운 2020년 4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  구름과 해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살살 불더니 해가 떨어지면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눈치를 미리 채고 backyard의 picnic table의 파라솔을 접어 놓았는데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심하게 바람이 분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것이다. 다행히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아서 밖에서 걷거나 일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이런 ‘비상적’인 날씨를 무척 좋아하기에 속으로는 쾌재를 부를 정도다.

4월도 거의 저물어 간다. 벌써 마지막 토요일을 맞은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뉴스가 온통 우리의 머릿속을 맴돈 지도 2달에 가까운 것이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 이것이 new normal이 아니고 그냥 normal인 것처럼 느껴진다.

 

¶  코로나19, COVID-19, 이름도 부자연스러운 이것, 언제까지 우리의 주위에서 맴돌 것인가? 장기적인 여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 가족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모든 (사회) 공동체들, 특히 신앙공동체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지역, 나라 아니 나아가서 NOOSPHERE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우선 과학적으로 알고 싶고 다음은 영적인 눈으로…

 

나를 ‘살려준’ Tech Guy podcast, 과학적인 코로나 뉴스를…

 

이것에 관한, 요새 나의 안도감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은 바로 tech-guy style podcaster들이다. 코로나19 뉴스는 이들의 의견으로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데 이것이 (빠가, 또라이) 트럼프의 웃기는 발언들이나, major news outlet들의 조금은 과장된, dramatic한 style들보다 훨씬 믿음성이 있고 공감이 가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tech news podcast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로 코로나 사태의 모든 것을 가늠할 것이다.

 

Backyard에 있는 open shed를 tool, workshop shed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  어제 밖 backyard에서 일을 하며 라디오로 조지아 주의 코로나19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이발소 같은 곳이 문을 열기시작 했다는 소식이었다. 성급한 느낌은 떨칠 수는 없지만 다른 쪽으로는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평상으로 돌아 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과학적’으로 아직 business 를 열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이것도 이해는 된다. 먹고 사는 것, 그것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문제를 피부로 못 느껴도 머리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  오늘 우리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레지오의 꾸리아에서 한국 서울 세나뚜스 단장의 글을 forward 보내왔다. 레지오 마리애 잡지에 난 기사를 보낸 것인데,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레지오의 시련, 도전, 그리고 희망에 관한 메시지였다. 교회전체가 겪고 있는 시련과 도전에 못지 않게 레지오도 앞으로의 운영과 선교 방향이 미지수인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ing’ 와 레지오의 (대인 선교) 활동방식을 어떻게 지혜롭게 절충하느냐 하는 것인데, ‘쫄짜’ 단장인 나도 요새 이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다. 이것이야 말로 올해 우리들의 풀어나가야 할 제일 큰 도전인 듯하다.

 

¶ 故 최인호 (연세동문선배, 작가) 의 1990년대 말 자전적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 요새 신들린 듯이 필사를 하며 읽고 있고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읽으며 생각하는 것, ‘젊은 날의 약속’ 이 제목인 데.. 이것을 아마 언젠가 한번 읽었고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다. (서울)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던 이야기였다. 당시에 나는 ‘꿈속에서나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리운 동창회 광경이었다. 한마디로 슬프기만 했던 심정이었다.  이 글은 그가 50세가 넘으며 쓴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들 그 당시에 벌써 ‘늙음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돌아온 공동배당 묵주기도

어제는 조금 변칙적인 날인가…  평소에 아침잠을 즐기는 연숙이, ‘새벽’  7시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부리나케 차를 몰고 아침 8시에 문을 연다던 도라빌 Doraville H-Mart로 간 것이다. 무엇을 sale을 하는지 모르지만 집에 있는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가보니 9시로 시간이 바뀌었다고 울상, 결국은 기다리다가 장을 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모든 하루 일과가 조금씩 늦게 진행되는 하루가 되었다. Grocery shopping이 거의 모험이 된 듯한 요즈음, 다시 깨닫는다. 아… 먹는 것이 이렇게도 중요한 의무요 책임이었구나…

 

‘연세대 선배, 인기작가’ 고 故 최인호 님의 ‘필사’ 중인,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를 읽으며 지금은 ‘아버지 상像’에 대한 글을 읽고 있다. 어찌 나의 아버지 상에 대한 의견이 없겠는가… 자상한 아버지의 함정, 단점, 허구성이랄까… 그도 아마 자상한 아빠였을 듯 보이지만 자책적으로 너무 감정적이라고 했다. 그런가, 바로 그것이다. 자상한 것은 감정적이라고…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오히려 엄격한 것이 낫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니 공감이 간다. 우리 아이들도 그 집의 애들과 비슷하게 느꼈을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최인호 님와 비슷하게 나에게도 본받을 만한 아버지상을 배울 여건이 아니었지 않은가? 곧바로 나의 입에서는 자동적으로 ‘김일성 [왕조] 개새끼.. ‘소리가 다시 나온다.

 

어제 저녁부터 ‘레지오 공동배당’ 묵주기도를  5단으로 시작을 하였다. 감개가 무량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과 생각에 잠긴다. 이 공동배당…을 얼마나 오랜 세월 나는 ‘신 들린 듯’ 하였던가…  이것을 거의 한 달 이상 못하며 살았다. 아니 거의 잊었다. 일주일에 거의 90단 이상 씩 하던 것인데… 이것은 안 된다. 안돼…. 무조건 시작하자. 어제는 5단이고 오늘도 5단, 아니면 10단… 이것의 ‘위력’을 나는 잊었단 말인가? 무조건 무조건 하고 보자.

 

 

흘끗 본 일기예보대로 정확하게 오늘 이른 새벽에 꾸릉거리면 잔잔하게 비가 내렸다. 어제 gutter를 청소한 후라서 조금은 기분이 가볍다. 그래 이것은 은혜로운 비라고 할 수 있다. 꽃가루 특히 송학가루 앨러지 의 귀찮음을 덜해주는 것이리라.

 보니, 토요일이다. 하지만 토요일이 무슨 큰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요새는 정확하게 모든 요일이 똑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예외는 일요일 주일 온라인 미사와 쓰레기를 버리는 일, 그것 뿐이 아닐까? 예전의 규칙적인 요일 별 외출, 활동이 제로가 된 상태가 이런 것이구나. 재미있기도 하다.

날짜를 보니… 18일… 그것도 4월 18일. 그렇다 내일은 4.19가 아닌가? 요새 대한민국에서 4.19는 어떻게 기억이 되고 있을까? 물론 googling을 하면 조금은 알 수 있겠지만 그런 overinformation 은 피하고 싶다.  99.9% 불필요한 그야말로 trash급일 것이다.  나는 나만의 4.19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싶다. 역사는 계속 흐르고 보는 관점도 변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남은 4.19의 기억은 절대로 안 변할 것이다.

 

몇 달 만에 내가 우리의 점심을 준비하였다. 아침은 통상적으로 내가 준비하지만 점심은 아직도 우리의 ‘주부’인 연숙이 긴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다. 하루 아침과 늦은 점심 두 끼를 먹기에 이 점심은 사실 다른 집에 비해서 훨씬 양과 질이 높다.

지나간 십여 년을 넘게 내가 만드는 음식 중에, 아침에는 pancake 그리고 점심에는 vegetable/ground beef stir fry, 우리는 그저 간단히 ‘소고기 볶음’이라고 하는,  이 두 가지는 이제 완전히 감이 잡혀서 눈을 감고도 만들 정도가 되었고, 맛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평은 모두 연숙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같이 준비하고 같이, 편하게 먹는 두 끼의 식사는 정말 이런 코로나 사태 같은 비상시국에는 더욱 더 빛을 낸다. 동시에 이렇게 평화스럽고 맛있는 시간에도 걸리는 것은, 역시 현재 고생하고 있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고, 그저 모든 것이 순리대로 하느님의 섭리대로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성 월요일 雜記

비교적 산뜻하고 편한 마음으로 일어난 성주간 월요일 아침.. 오늘은 어떤 날이 될 것인가? 요새 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내가 바보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바로 ‘하루 또 살아보자!’ 다. 그래 하루 하루 현재를 충만하게 사는 것이 나머지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어제 성지주일, 머리에서 많이 떠난 사순절, 성주간의 느낌을 되 찾으려 부리나케 교황님의 쓸쓸하고 피곤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저려온다. 교황님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통 받는 쓸쓸한 목자의 모습이다. 그래도 우리 같은 양들은 조금 그런 모습으로 위안을 받는다. 

Palm Sunday 성지주일 일요일 낮미사, 이영석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어제 3주 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나라니 집, 산이를 보러 간 것이다. 로난, 산, 루크, 모두 조금은 아직도 생소한 느낌이지만 시간과 세월이 약일 것이다. 산이른 안고 보니, 어쩜 그렇게 귀여운지… 하지만 나는 예의 ‘참을성’을 발휘, 그저 지긋이 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나는 무엇이든지 무엇이든지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다오..

운전을 하는 것이 이때처럼 즐거운 순간이 있었을까? 흡사 새벽 3시경에 freeway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그것 빼고는 모든 산천초목이 전혀 다른 것이 없다. 빛나는 태양도 마찬가지, 모든 건물들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혼이 빠진’ 듯 보인다.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그렇고 business들도 비록 일요일이기는 하지만 달랐다.  하지만 이것도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문득, 나의 산성 山城, 나의 보배 레지오 (마리애) 를 떠 올린다. 99% 잊으며 살아간다. 나를 10년 동안 ‘구원의 뚝’ 위 로  올려 놓으신 성모님,  성모님께 선서, 맹세, 약속한 것은 어디로 갔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기쁘게 하는 것 중에 ESP32란 것, 어제 Sparkfun board 를 ‘재빠른’ amazon delivery 로 받았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올 수가 있었을까? 요새 이렇게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 customer를 상대하는 사람들, 거의 영웅처럼 보인다. 그들을 보통, 평소 때에 이렇게 감사하며 살았을까? 그들의 minimum wage, 이곳에서는 아직도 $6 이 안 된다는 사실이 더욱이 놀라게 한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래서 Bernie Sanders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번 코로나 사태를 당하고 보내면서 이런 사회적 문제와 목표가 다시 재조명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럴 때 교회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Corona Beer보다는 Heineken Beer가…

Heineken beer, 부대찌개, 알맞게 따뜻한 화창한 날씨…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우리 집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이상으로 자기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 다는 사실과 우리가 현재 시간 시간 보내는 것을 비교해서 그런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연숙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일까?

 

며칠 전부터 말썽을 부리던 bidet가 설치된 ‘나의’ toilet (stool) 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정말 신경질이 나긴 했지만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일을 벌렸다. 무언가 ‘꽈~악~’ 막혔다는 결론에서 그것을 ‘뚫어야’ 겠다 는 일념으로.. 시작했다. 호기심이 불편함을 이긴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 일을 한 결과는, 역쉬~ 냄새 나는 ‘그것’, 아마도 수십 년 동안 막혀있었던 것들이 하나하나씩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물리적’ 방법보다는 ‘화학적’인 방법이 더 빠르고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나의 bidet toilet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total plumbing & cleaning toilet stool

 

April’s Fools…

 

¶  Psalmy Morning:  4월이 시작되는 이른 아침은 밝지만 겨울처럼 싸늘한 느낌을 준다.  지나간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어온 순교자 성당의 야심에 찬 yearly project, 성경통독,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어둠 속에서 성경을 펼친다.

거침없이 정직하게 흐르는 세월은 결국 우리 모두 신약성경을 모두 읽게 만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조금 신약의 전체 흐름과 느낌을 새롭게 하였다. 매일 복음과 더불어 이것은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너무나 감사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 펼친 시편, 91편… 어쩌면 timing이 이렇게도 맞아 떨어지던가… 어둠과 두려움은 한마디로 악, 악의 표현, 구현이니까… 궁극적인 피난처를 우리는 믿는다.

 

나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 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

네 곁에 천 명이,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너에게는 닥쳐오지 않으리라.

오히려 네 눈으로 바라보리라.

악인들이 벌받음을 너는 보리라.

이는 네가 주님을 너의 피신처로,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너의 안식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고

재앙도 네 천막에는 다가오지 않으리라.

 

<시편 91편 중에서>

 

¶  April’s Fools:  H 자매로부터 S 형제의 소식을 잠깐 들었다. 다시 비관적인 평가를 시작하는 것이, 옛날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  Counselor 상담사를 만나기 시작한 이후 일말의 희망을 건 것이 사실이었는데… 근본적인 변화는 전혀 없었던 것인 듯하다. 그렇다면 그 나름대로 ‘꾀’를 부리며 주변 사람들을 오도 誤導한다는 느낌도 없지 않으니…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단 말인가? 본인이 전혀 문제가 없다는 병적인 집착이 모든 비극의 원인일 듯하다. 나의 말대로 이것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영역’이다. 어쩔 수가, 기도 외에는, 없다.

 

3월을 결산하며 가능한 한 많은 ‘묵상, 단상, 기록, 일기’를 블로그에 남기려고 ‘이를 갈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내가 나 자신을 sabotage 하며 지낸 것이 거의2주가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노력할 것이다. 의미 있는 나의 깊은 생각을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나 자신이나 우리가족에게 어떤 후유증을 남겨놓을 것인가? 내가 걸리면, 우리 가족이 걸리면, 아니 주변사람들이 걸리면, 심지어 죽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는 ‘설마, 설마, 설마’하고 외치지만 자신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나이를 의식하며 걱정해야 될 운명이지만 아직도 큰 걱정은 안 하고 있다. 경제적인 것이 더 관심이 가고 있지만, 더 이상 어떻게 최선을 다 한단 말인가?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끔 그립고,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문제가 없으니까 성당도 가고 하고 싶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제를 한다.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내가 나를 막는 것, 큰 자신은 없지만 이것이 모든 것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 참자.. 연숙이가 손자를 보러 나라니에게 가는 것도 사실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라니가 그렇게 엄마를 찾는다는 것은 흐뭇하기도 하고, 아직도 나이는 들었어도 변함없는 막내라는 느낌도 든다.

 

근래에 우연히 성당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시몬형제, 나이는 10년 아래이지만 ‘교회적, 성사적 신심’은 놀랄 정도로 투철한 형제다. 특히 성사, 미사참례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요즘 주변에서 보기 드문 남자라고 할까. 알 수 없는 면이 더 많은 듯한데 우선 친근감을 주며 우리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느낌에 ‘알 부자’인 듯 하기에 조금은 우리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면도 없지는 않다.

이 형제가 어제 밤에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기대했던 것이라 놀라진 않았다. 하지만 나 같으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부자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한 것, 왜 나는 그런 것들에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않는가?

 

이것과 연관되어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도 곁들여 반성을 하고 싶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South Korea는 과연 현재 나에게 어떤 나라인가 하는 절대적 명제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씨름을 하는 것일까?

오늘 이런 나의 어려움과 씨름하며 문득 깨우치는 것이 있었다. 왜 나는 현재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닐 수가 없지 않은가? 미국의 좋은 점, 조국의 좋은 점 모두 나에게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하며 산 것일까?

이제는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조국과 더 친하게 되어야 하는 것인 아닌가? 어떻게? 연숙의 수준 정도로 조국의 참 실상을 서서히 알아 보면 된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고, 우선 실상을 알아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Spring Forward Sunday

 

¶  Spring Forward!   지나가는 주중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 그친 지 며칠 째이지만 하도 많이 내려서 마르는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오늘로서 완전히 빠삭빠삭한 땅과 하늘의 느낌을 맞게 되었다.

어느새 그 귀찮은 일, 집안의 모든 시계들을 한 시간 앞 forward 으로 돌리는 날이 되었다. 왜 이렇게 귀찮은 법을 만들었지 어떨 때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나의 힘으로 이것을 바꿀 능력은 전혀 없다. 하기야 이 법에도 의도하는 이로운 목적이 있으니까. 갑자기 저녁 시간이 밝아 진 것 daylight saving 은 사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bonus일 것이기도 하니까.  이것을 ‘정상’의 시간으로 바꾸는 fall back,  늦가을.. 이제는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은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까. 다만, 다음 시계를 바꾸는 그날까지 우리는 어떤 ‘모양새’의 세월을 보낼 까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  주일미사, 고해성사 깜:  지난 주일 미사에 이어서 이번 주일미사도 사정상 거르게 되었다. 비록 매일미사 참례를 한다고 해도 주일미사는 미사중의 꽃인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도 한심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이 탓’을 안 할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우리가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다. ‘그 날’까지 마라톤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식에 의거한 현명한 판단을 우리는 매일 아침에 해야 하는 것이다. 요즈음 문제의 주범은 연숙의 불면증이지만 그것 외에도 앞으로 나이에 따른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 이제 우리의 사회생활은 물론, 모든 신심활동이나 신앙생활도 거의 우리의 건강상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비교적 건강함도 무한정 지속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이성적, 상식적으로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보내는 것, 그것이 관건이다.

 

이 사진과 신천지는 무슨 관계?

¶  개신교와 신천지:  요새는 우리 집의 ‘한국소식통’인 연숙을 통해서 그쪽의 소식을 가끔 듣곤 한다. 내가 워낙 그쪽에서 오는 소식을 피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별로 자세한 소식은 모르지만 요새는 조금 예외에 속한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그곳이 뉴스의 가운데에 나온 것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참 기기 막히는 소식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바로 ‘신천지’인지 구천지인지 하는 걸맞지 않은 이름을 가진 ‘개신교’ [가톨릭이 아니면 일단 개신교라고 생각하고] 사교집단에 관한 것이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그 집단 신도들에 의해서 그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니 갑자기 뉴스에 나온 것이다.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이번 한국 바이러스 유포의 일등 ‘공범’이 된 셈이다. 하필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나쁜 뉴스에 연루가 되었는지 한심하기도 하지만, 역시 ‘사필귀정 事必歸正’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신천지, 이름도 촌스러운 이것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2013년 경이 아닐까?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하태수 미카엘 주임신부님 재직시절 예비신자 교리반의 [teaching] staff으로 ‘레지오 활동’을 할 때였다. 부활절을 향한 교리반이 과정의 끝머리 즈음에 하 신부님이 특별강의 시간 하나를 추가해서 강론을 하셨는데 그 주제가 바로 ‘사교집단 신천지의 정체’ 였다.

그러니까 이 집단은 새로 등장한 것이 아니었고 꽤 역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예비신자들에게 이들의 정체를 알게 하고 경계심을 일깨워주려는 것이 신부님의 목적이었다.  이들의 특징 중에는 대부분 ‘잘 나가는, 지식적이고 말쑥한’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흡수가 되며 이들의 포섭공작이 아주 조직적이라는 것도 있었다. 특히 ‘성경공부’ 같이 하자면서 접근하는 젊은이들은 십중팔구 그들이라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우리 같이 ‘한 물 간 부류’는 사실 그들의 안중에도 없기에 걱정이 전혀 없다. 하지만 교리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문제다. 그들의 언변과 성경지식은 절대로 못 따라가니까. 그렇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고민일 것이다. 거의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를 하는 그들, 이제 조금은 자체적으로  ‘교통정리’를 해야 할 때가 안 되었나?  전통과 초대교계를 완전히 버리고 그저 ‘성경유일’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  문제없는 교황님: 오늘 지난 주일에 이어 다시 교황청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일요일에 정오에 있는 교황님 주도의 삼종기도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다. 이곳에서 교황의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고, 그 바티칸 주변에 모인 순례객들의 동정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주일보다 순례자들의 수는 훨씬 줄어들었지만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는 않아 보였다. 아마도 바티칸 주변 로마는 그렇게 바이러스가 심하지 않은 모양인가?

하지만 교황의 동정은 지난 주와 달랐다. 삼종기도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video를 통해서 밖으로 방송을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평상적으로 교황이 군중들을 내려다 보는 것, 바이러스와 큰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모든 메시지 방송이 끝난 후에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창문으로 나와서 군중들을 축복하는 짧은 시간이 있어서 크게 아쉬움은 없었다.

문제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분명히 로마 주변에도 감염자 숫자가 늘어날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바티칸의 모든 ‘성사’는 취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수요일의 교황님 주재 일반군중과의 만남 시간도 취소가 되었으니, 나머지 행사도 축소가 될 듯..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신년 벽두 장례미사有感

 

장례식, 장례미사, 연령회 연도..  이제 나에게는 너무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말들은 모두 죽음에 관련되는 말들이다. 불과 10여 년 이전만 해도 나는 이런 것들을 거의 모두 피해가며 살아왔었다.  ‘죽음의 진리’를 요리조리 피하며, 모래 밑으로 얼굴을 파묻고 살았다는 표현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이 ‘죽음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기리며 보내는 것이 거의 습관화가 될 정도로 많아졌고, 나름대로의 ‘망자 亡者와의 이별’ 하는 방법과 철학까지 생기게 되었다. 물론 기본적인 철학은 가톨릭적인 것이지만 이제는 내 생각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낀다.

각양 각색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보내는 모습도 모두 다르겠지만 그런대로 경건함을 지키는 가톨릭 장례미사는 그 나름대로의 ‘장엄 의식’이 있고 그에 따른 조문객들의 엄숙함이 보인다. 일반 장례식은 물론이고 개신교 의식 조차도 이에 비해서 나의 눈에는 너무도 ‘사회적 모임’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한마디로 고인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 목적, 가는 곳, 등등에 대한 것들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첫 장례미사에 가게 되었다. 작년에는 1월 초에 간 기억인데 올해는 조금 늦은 셈인가. 오늘의 주인공은 40여 년 전, 우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창립멤버로 활약을 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회봉사활동을 해서 이 지역에선 잘 알려진 분이었다.  지병으로 한국의 어떤 요양원에 계시다 며칠 전, 향년 80대 중반에 선종하시고 유골함이 다시 이곳으로 왔는데, 고인의 경력을 감안하셨는지 신임주임신부님, 최대한의 예우로 장례미사를 거행하셨다. 예를 들면 부활초가 켜지고 제대의 초의 숫자 등, 모두 평소의 장례미사와는 달랐던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전의 고인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이런 분의 영결식에 참여하는 것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의무로도 생각되어서 ‘갈까 말까’하다가 온 것이었고 신부님의 고별사도 다시 기억하고 싶은 ‘신학적 깊이’를 더해 주는 그런 것이어서 ‘오길 잘 했다’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성당을 떠날 즈음의 느낌은 그것이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에 있었던 장례미사의 ‘악몽’이 떠올랐고, 그 이전에도 간혹 겪었던 좋지 않던 기억도 되살아 난 경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지나간 두 가지의 비슷한 경험은 모두 ‘너무나 무리하게, 길고 길었던 미사’라는 것, 놀랍게도 그것이 오늘 다시 찾아온 것이다.

장례미사는 일반 장례식과 조금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별식’이란 것, 각종 지인들의 고인에 대한 고별사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짧지 않은 강연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말을 모르는 조문객들이 거의 없는데 모든 말을 영어로 번갈아 가며 하기도 한다.  제일 괴로웠던 경험은 ‘정말 보기 언짢은 태도’로 한 없이 계속되는 ‘우리 사상 최고의 영웅’ 아빠에 대한 추억들.. 정말 끝도 한도 없었다. 내가 죽었을 때 딸들이 그렇게 하는 것, 관속에 들어가 내가 듣게 된다면 아마도 관 뚜껑을 열고 나올 정도가 아닐까..  어제도 큰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번엔 ‘반세기 추억의 영화’까지 가미가 된 것이 이채로웠다. 일반 장례식장에 가면 예식 전후에 뒤 배경으로 계속 보여주던 video를 이번엔 성당 미사 중에, 그것도 ‘끝이 안 느껴질 정도로’ 무수한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앉았던 위치로 보아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나에게 이것은 완전한 show stopper로 느껴진 셈이고 앞으로 ‘장례미사 공포증’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생긴다.

이래서 크건 작건 성당의 연령 행사는 ‘상식을 가진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시작부터 끝까지 행사에 참여한 조문객들의 사정도 조금은 사려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이제까지 이런 것들에 대한 책임자의 존재여부는 정말 불확실한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 장례미사에 올 때는 끝나는 시간을 먼저 확인 받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뿌리칠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Lofty shelf coming down…

몇 달 전부터 생각하던 귀찮은 일을 드디어 해치웠다. 거의 20년 전인 2001년 9.11 테러사건이 난 후에 울적한 심정으로 만들었던 두 개의 giant hanging shelve 중에 하나를 해체한 것이다. 우리 집의 garage ceiling이 유별나게 높기에 이사 오면서부터 항상 그 천정의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거의 2층 deck정도의 높이라서  차고 공간의 절반이 ‘놀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storage용으로 거의 다락방 크기로 선반을 만들어서 천정에 매달아 놓은 것이다.  공간 재활용이 목적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이 방치된 상태로 20년이 지나갔다. 방치된 것은 아니지만 storage용도로는 너무나 높고, 깊어서 한번 쓰려면 차를 빼고 사다리를 써야만 하는 불편함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잡동사니를 하나 하나씩 버려야 하는 나이에 이런 bonus storage은 바람직한 것이 절대로 아님을 알기에 미련 없이 없애 버렸고 나머지 하나도 곧 사라질 것이다. 4시간 노동의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이천 이십 년?

 

이천 이십 년? 허… 지나가는 10년 동안 부지런히 이천 십…을 되뇌며 살아서 그런지 이천 이십 어쩌구… 하는 것이 이렇게 이상할 수가 없다. 십진법의 ‘십’이란 숫자의 마술인가. 이제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천이십을 되풀이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퉈니 퉈니, twenty twenty 2020, 20/20 (2.0 시력) 로 되니까 조금은 익숙한 느낌인가…

아~  이것이 decade적인 세월인가, 10년마다 겪는 이런 것을 돌아보니 사실은 20년 전에 우리는 대사건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 1999에서 2000으로 바뀌던 그 무렵..  이런 것들로 1900년대 중반 이전부터 살아온 덕분에 이런 멋진 ‘세월의 숫자’들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올해의 섣달 그믐날 밤에는 예상을 벗어나 3-2-1, Happy New Year! Countdown 하는 요란한 모습, 그것도 뉴욕에서 생방송 하는 것 보는 것을 지나치기로 하고 자정 몇 시간 전에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원래 계획은 바쁘고 피곤한 아이들이 안 온다기에,  모처럼 우리 둘이서만  ‘멋지게’ Champaign잔을 마주치며 ‘HAPPY NEW YEAR!!’을 외치려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설날 아침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의무대축일 미사가 있기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핑계로  이 몇 년 된 전통을 포기한 것이다.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사실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3-2-1의 뉴욕의 생방송은 꺼졌지만 이번에 집 주변에서 요란하게 터지는 firework소리가 생각보다 요란하였다. 올해는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고 아주 pro들이 즐기는 모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몇 시간 동안은 아예 ‘새해의 기분’ 을 즐기는 셈치고 누워있게 되었다.

2020의 요상한 숫자의 느낌을 떠나서 심각하게 ‘늦은 세월’의 의미를 찾아 보았다. 내 나이 이제는 절대적, 긍정적으로 젊어지지는 않는다. 70대의 나이는 또 따른, 가볍지 않은 짐을 지고 나아가는 느낌, 그것은 육체적인 건강상태다. 수치상으로 나는 현재까지는 큰 issue가 없지만 머리 속으로 느낌은 그것이 아니다. 나의 나이는 나이인 것이고 그것이 정직하고 겸손한 태도가 아닐까. 겸손하게 살자, 겸손하게…

Chilly Morning with Handel

아주 매섭게 싸늘한, 빙점으로 향해 올라가려 애처롭게 안간힘을 쓰는 아침, 무섭게 새파란 하늘이 나를 더욱 움츠려 들게 만든다. 겨울 시작의 선을 긋는 동지를 이틀 앞둔 날 치고는 seasonable한 날씨일 듯하다. 하지만 조금 더 바란다면 조금 ‘덜 싸늘하고’,  조금 ‘더 흐린’ 그런 아침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떨칠 수가 없다. 나의 느낌은 조금 덜 싸늘하고 포근하게 되지 않았을까…

조금 쳐지는 기분을 뜨게 하는 것은 역시 coffee grinding 소리와 곧 이은 아늑하고 감미로운 향기가 있고 조금은 들뜨게 하는 소리, 음악이 있다. Big Screen TV로 kitchen에서 보게 된  YouTube는 2년 전 이맘때에 심취해서 보고 또 보고 듣고 했던 Handel’s Messiah 연주공연이 아닌가.  이 공연은 comment로 알게 되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이 합창단과 orchestra는 동구권인 Czech Republic, Prague였다. 이 공연을 보면서 비로소 conductor의 역할을 실감하게 되었다. 전 공연을 마치 마술에 이끌리듯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HD이 아닌 ‘조잡한’ video였지만 그런 문제는 생동감이 넘치는 audio가 모두 감싸주었다.

 

 

Collegium & Collegium Vocale 1704

Vàclav Luks, Director

Hana Blazikova, Soprano

Delphine Galou, Alt

Markus Brutscher, Tenor

Marián Krejcik, Bass

Recorded at l’Abbatiale Saint-Robert de La Chaise-Dieu, 21 August 2011

 

Classical music에 거의 문외한이었던 나는 뒤 늦게 이런 인류의 보물을 조금이라도 알려고 노력은 했지만 역시 역부족에 미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젊었던 시절의 이 분야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는 것이 치명타였다. 추억의 매력이 전혀 없이 ‘공부’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죽음의 강을 넘어가게 인도하는 길잡이인 가톨릭 신앙의 도움을 전적으로 받고 있고 이 Handel의 걸작품 역시 그런 시각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모두 이 ‘메시아’가 주인공이 아닌가?

 

세 번째 대림초가..

¶  세 번째 대림초가 켜졌다. 대림 제3주를 맞는 것이다. 또한 2010년대 마지막 해 2019년 마지막 달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공식적 겨울인 동지가 일주일 정도 남았고,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시기가 시작되는 25일을 열흘 앞두고 있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예년에 비해서 일찍 성탄장식의 불들 켜지기 시작했는데, 너무 일찍 시작되는 ‘축제분위기’를 자제하라는 교황의 권고 영향인지 몇 년 전부터는 확연히 ‘기다리는 분위기’로 바뀐 것을 느끼고 있다.

나 자신도 그런 것이 싫어서 가급적 성탄 전에 가깝게 조금씩 장식을 시작하려고 했고, 확연히 그것은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 것을 실감한다. 성탄절,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대림절, 그러니까 성탄절 전까지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고 축제 분위기는 성탄부터 시작이 되는 것, 거의 나의 모든 생애에 걸쳐서 나도 ‘세속적’으로 살았음을 알게 된다.

올해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사도 요한 주임신부님의 바람인지 올해는 성당의 장식들이 일찍 준비가 되었고, ‘사상 초유’로 성당건물 밖에 ‘사람이 살만한 크기’의 거대한 구유가 설치 되었다.  성탄의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실감나게 보여주려는 ‘선행 투자’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  ‘새’신자 안내:  12월 한달 동안 내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교중미사  (새)신자안내의 역할을 맡았기에 한달 동안 우리는 ‘의무적’으로 한국성당엘 와야 한다. 따라서 12월 모든 주에 우리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 미국성당의 교중미사는 모두 빠지게 되었다. 평일, 매일미사를 미국성당으로 가기에 큰 ‘심리적’인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허전한 것은 사실이다. 이럴 때 나는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내가 미국에서 사는가, 대한민국의 연장선에서 사는가… 장기간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것에서 나는 편치 않은 그 무언가 항상 느낀다. 그 무언가 확실치 않은 것, 그것이 나는 싫은 것이다.

신자 안내, 사실은 주보를 나누어 주며 인사를 하고, 혹시 새 신자가 소개되면 그들을 미사 후에 ‘접대, 신자등록’ 하는 것인데, 3주를 연속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 것이 되었다. 성당 정문 안에 서서 들어오는 교우에게 주보를 나누어 주며 따뜻한 인사를 하는 것, 이렇게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win-win’중의 극치, 인사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 그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흠… ‘웬수’의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온다면?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택의 여지는: (1) 공손히 인사하며 주보를 건네준다. (2) 얼굴은 안 보고 주보는 건네준다. (3) 얼굴을 똑바로 보며 전혀 모르는 사람취급을 한다. (4) 안 본 척하며 비켜선다. 여기서 나는 아마도 (2) 아니면 (3)을 선택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은근히 그 ‘레지오 미친X’ 의 얼굴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주친 교우들은 100% ‘천사’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3번씩이나 경험한 이 ‘교우신자안내’ 일은 즐거운 일로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 서서 안내하던 연숙은 그런 행운이 없었다. 바로 그쪽으로 ‘웬수’의 ‘가오’가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 ‘웬수’가 그렇게 당당하게 접근했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기에 놀랐던 모양이고, 결과적으로 신부님께 ‘성사’를 보게 되는 사태까지 갔다. 결과적으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겠지만 앞으로는 그 ‘웬수’가 다시는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  Rock-Bottoming Out: 지난 주 레지오 주회합을 기점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완전히 바닥까지 갔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제일 우리가 ‘차세대’을 지향하며 희망을 걸었던 두 자매, 모두 극복하기 힘든 복잡한 가정사정으로 물러나고 실제로 움직이는 단원이 기본적인 요건을 채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에는 단원의 숫자가 그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편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장의 입장이 되고 보니 이것이야 말로 기본적 요건 중의 제일 중요한 것, 왜 몰랐을까?

이렇게까지 된 제일 큰 원인은 2년 전에 그 ‘레지오 미친X’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미친X’은 개인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우리 레지오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  이 사실만은 내가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할 것이고 아니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을 하였다. 우리 둘의 결론은 그 ‘미친X’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뉘우칠 능력이 결여된 불구자’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 자비의 모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새해에 과연 신단원 후보가 나타날까? 신부님의 적극적인 본당차원으로 홍보는 하고 있지만 암만 보아도 요새 교우들,  친교나 노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실망적이다.

 

¶  Tool Time’s Coming! 우리가 이사올 당시에 있었던 garage door opener 가 드디어 마지막 숨을 쉬었다. 몇 달 전부터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garage door가 움직이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늦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motor의 소음소리가 더욱 더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가 이사를 온 때가 1992년 봄이니까 최소한 이 garage door opener는 거의 40년에 가까워 온다. 이 정도면 훨씬 전에 retire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것은 ‘장수 長壽’를 한 셈이다.

새것을 찾아보니 완전히 wifi/internet까지 겸한 hi-tech model 들 투성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힘찬’ powerful motor 로  2개의 문짝을 문제없이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된다. Home Depot website 에서 찾아서 사온 것은 $200 짜리 Chamberlain model B750 , 3/4 hp인데 이것은 지금 것이 screw drive인데 비해 belt drive라서 noise level이 훨씬 낮을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좋겠지만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점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교체하는 ‘쉽지 않을 수 있는’ 일거리가 남았다. 한번도 내 자신이 이것을 설치, 교체해 본적이 없기에 불안한 점은 있지만 ‘만능 교실’ YouTube를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실제로 교체하기 까지는 차가 드나들 때마다 근육으로 문짝을 올리고 내리고 해야 하는데 소낙비가 오지 않는 한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닐 듯 싶다. 다만 절대로 젊어지지 않는 나이가 문제라면 문제다. 절대로 절대로 작년 Hyundai Sonata의 Fuel Pump 교체하던 때의 실수, 악몽을 잊으면 안 된다. 나의 지나간 시절의 기술적 감각에 연연하면 안 된다, 안 된다.

 

¶  스테파노: 정말로 오랜만에 박스테파노 형제님 부부와 마리에타 소재의 ‘싸리골’ 이란 한국음식점에서 주말의 밤 늦게까지 식사를 하며 즐겁고 보람 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이곳은 비록 우리동네인 마리에타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일들이 주로 도라빌에 가는 기회가 더 많아서 가끔은 이곳을 잊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한국사람보다는 이곳 사람(보통 미국사람이라고 칭하는)이 훨씬 더 많은 듯 보였다. 한국의 ‘고기요리’가 이곳에 많이 알려지면서 이곳도 business가 전 보다 더 활발한 것 같았다.

이 스테파노 형제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이 불과 2년이 조금 넘었지만 부부의 나이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고 관심사도 그렇게 서로 멀지 않음을 알았다.  현재 business를 모두 정리하려고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고생하는 것을 알기에 하루 빨리 모든 것이 해결되어 편하게 retire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대출신인 형제님의 관심사는 나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는 ‘양자 물리학 quantum physics’ 의 각도에서 본 신앙체계도 있는데 이 형제는 나보다 더 ‘동양사상’까지 가미가 되어서 요새 읽었던 Fritjof CapraTao of Physics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부부가 서로 다시 만나서 이런 흥미로운 화제로 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헤어졌다.

Off Day Muses..

¶  제일 따뜻한 양말도 별로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겨울느낌의 늦가을이 서서히 계절상의 겨울로 향해 서서히 흘러간다. 더위보다는 추위가 낫다.. 라는 깊숙한 추억으로, 이런 쓸쓸한 싸늘함의 일초 일초를 즐기고 있다. 비교적 유순한 날씨의 차례가 끝나고 매서운 바람에 실려온 시베리아[이곳은 캐나다] 성 냉랭함은 달력의 넘김과 더불어 세월의 움직임을 다시 느낀다.

오늘은 예기치 못한 off day가 되었다. 얼마 전 나를 ‘가볍게 [flu-shot덕분인지..]’  스쳐간 감기가 이번에는 드디어 연숙에게 닥친 것. 이럴 때마다 우리가 공감하는 것 하나가 있다. ‘이른 아침에 (돈 벌러) 나가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다…’ 라는 안도감. 언제까지 우리가 현재의 pace로 뛸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살 날이 그런대로 남았다면 이럴 때는 조금 쉬면서, 천천히 가면 됨을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게 되었다.  그래… 하루 푹~ 쉬면 되는 것 아닌가?

근래에 자주 성당 공동체 주변에서 알게 된 나이가 엇비슷한  ‘친구’들을 통해서 그 동안 익숙지 않았던 ‘다른 삶’들을 알게 되면서, 아직도 꾸준히 매일 매일 일하는 형제, 자매님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최소한 육체적으로는 편안한 것이라는 사실. 특히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도 ‘새벽같이 집을 나간다는’ 사실을 자꾸 잊고, 실없고, 무심한듯한 comment를 하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일년 열두 달, 매주 ‘레지오 마리애 화요일’이 우리에게는 主日과 더불어  laborious week 의 절정이기에 수요일 아침에는 언제나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은 유혹이 오고 ‘감기’와 같은 사유가 생기게 되면 다음날을 ‘반가운’  off-day로 결정을 한다.  그래도 daily morning mass는 우리에게 변함없는 7년 째 전통과  rule 이기에 이것을 거르게 되면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하지만 매일 아침 보는 정다운 regular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것이 우리가 ‘우연히 시작한’ best ever life habit 임을 상기하면 절로 무한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  거의 두 달 만에 Ozzie[새로니 pet dog]가 우리 집으로 ‘휴가’를 와서 열흘 넘게 머물게 되었다. 거의 14년 동안 우리 가족이었던 가족, Tobey가 작년 여름에 영원히 잠을 든 이후로는 다행히 Ozzie가 가끔씩이지만 거의 정기적으로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있다. 가을이 되면서 동네를 개와 천천히 걸으며 단풍, 낙엽 등을 감상할 기회가 그리워지곤 했기에 은근히 Ozzie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집에 pet sitting을 하게 되면서 새로니 는 조금 자유스럽게 되니 얼마서 좋은 일인가?

 

¶  Topless Natalie : 요새 심심할 때면 소일거리로 75+년 전의 LIFE magazine을 본다. 내가 태어나기 전 것이지만 20세기 최대의 사건인 세계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미국의 눈’에 비친 세계상을 화보 중심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신기하기에 즐겁고 보람된 소일거리로 삼게 되었다. 오늘 우연히 본 것 중에는 topless Natalie (Wood)가 있었다. 비록 6살 짜리 아이의 천진스러운 모습이지만 사진의 주인공이 우리시절의 잘 나가던 여배우 Natalie Wood 인 것, 그것도 상체가 모두 드러난 모습… 이런 사진 배경을 전혀 모르고 인터넷으로 이 모습만을 유포를 하면 요사이 태어난 젊은 아이들 아마도 pedophile로 FBI에 고발이라도 하지 않을까.. 웃음이 난다. 그녀의 부모가 Russia출신이라는 것과 그녀가 매력적인 것 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주 우수한’ 여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창 시절에 사고로 익사한 것 등등으로,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난 The CarpentersKaren Carpenter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아~~ 모두 옛 이야기들…

위령의 달, 두 죽음

 

¶  가톨릭의 전례력으로 매년 11월은 ‘위령의 달’, 그 중에서도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써 ‘돌아가신 영혼들’을 기리고 있다. 영어로는 The Commemoration of All the Faithful Departed 라고 부르지만 간단히 All Soul’s Day, Month 로 불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죽은 영혼들’이 이 기념일들의 주인공인 것이다.

내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11월 중에 반드시 위령미사봉헌을 하게 되고, 전례행사에도 ‘죽은 영혼’들이 주제를 이룬다. 미사 중의 성가들도 거의 모두 ‘죽은 영혼들’에 관한 것들이다. 비록 일반인들에게는 11월의 절정이 ‘추수감사절’이고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서서히 내는 때이긴 하지만 가톨릭은 충실하게 죽은 영혼들을 기리는 것, 나는 너무나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보며 나는 마틴 루터가 너무나 성급하게 종교개혁을 했다고 단정하고 있다.

올해의 위령의 날 (11월 2일), 우리는 동네 미국본당에서 미사를 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은 한국 본당(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위령미사엘 갔었다. 이 미사는 마리에타 공원묘지에서 야외미사 형식으로 하기에 그야말로 ‘위령’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 후, 이 미사를 집전하는 사람이 둘루스 한인성당의 주임신부라는 것을 알고는 그야말로 완전히 포기를 하게 되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 연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그 신부가 완전히 아틀란타를 떠나면 생각을 바꾸게 될 듯 하다.

 

 

¶  위령의 달을 지내면서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두 죽음’을 접하게 되었고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놀라움은 위령의 날 미국본당에서 알게 된 어떤 Hispanic 형제님의 죽음이었다. 매일 아침미사에서 보고 알게 된 이 형제님이 갑자기 지난 일년 동안 돌아간 신자들의 명단 사진에 오른 것. 위령의 날에는 지난 일년 간 선종한 신자들의 이름과 사진을 보여주며 신부님이 일일이 이름을 부르고 종을 친다. 이 형제님은 나이는 비록 나와 비슷한 편이겠지만 아주 건강한 편이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것, 우리는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우리의 놀라움은 사실 컸다. 소문에 의하면 ‘갑자기 쓰러진’, 그러니까 아마도 심장마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한다.  선종소식도 못 듣고 장례식도 못 알았기에 우리의 놀람이 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놀람 중의 놀람은 며칠 전에 일어났다.  Roswell Nursing Home에서 우리 부부가 레지오 단원으로 몇 년간 방문하며 알게 된 한국사람 유학남 형제님, 나보다 5 년 위이신 치매성 환자인데 정신질환 을 빼면 이분은 사실 나보다 더 건강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치매병동의 갑갑한 분위기에서도 항상 복도를 배회하며 ‘집에 가야 한다고’ 하던 이 형제님이 언제부터는 확연히 조용해지고 방에만 머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방문하면 방에서 차분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얘기가 잘 풀리면 가끔 ‘이분이 정말 치매환자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거의 정상인처럼 말씀을 하시곤 했다. 서울 아현동 철물점도매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 동양극장 주변의 이야기들, 독립문파 깡패, 부통령 이기붕 집의 추억 등등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나는 그런 옛이야기를 나누면 아마도 서울에서 이분을 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에도 빠지곤 했다. 문제는, 그 옛추억은 100% 논리적이고 실감나는 것들이었지만 지금 현재의 본인의 상태는 거의 모르는 듯 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치매환자는 다 이런 식인가?  나는 이 형제님을 형이라고 불렀는데 얼마 전부터 나는 이 ‘형’이 나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게 되는 이상한 불길한 ‘예감’이 들곤 했는데 나의 우려가 갑자기 극단적인 현실이 되었다.

이 날도 평소의 routine대로 아래층 접근제한이 된 병동엘 내려가서 습관적으로 이 형제님의 방을 노크를 하고 들어가려 하니 옆에 있던 staff들이 와서 ‘무조건, 집에 연락을 하라고 한다. 표정들이 아주 심각하고 불친절한 느낌마저 들었다.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하니 형제님의 사위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고 곧 바로 어제 밤에 돌아가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뒷통수를 꽝… 하고 맞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정신질환이라고 해도 육신은 정말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아무런 불길한 전조 前兆 없이 그렇게 숨을 거두셨을까…나이도 팔십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망각증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곧바로 사위분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고 ‘리 장의사’에서 고별입관예배 공지문을 받았다. 가족이 개신교에 다닌다는 사실은, 한때 병실 벽에 붙어있던 <아틀란타 한인교회> 달력을 보고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가족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idea가 없었다. 장례식에 가보니 역시 개신교회예식으로 준비가 되어있었고 가족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비교적 단란한 대가족이었고 부인이신 권사님을 통해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듣게 되었다. 그야말로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고 곧바로 숨을 거두셨다는 것, 참…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가족들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들이었다.

형제님의 지나간 인생을 보여주는 각종 사진들이 screen으로 비쳐지고, 또 다른 형제님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손주들에게 그렇게 자상하셨다는 고별사를 들을 때는 ‘아현동을 주름잡던 시절’의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느낌의 형제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항상 우리는 궁금했는데 이렇게 비극적인 이유로 다 알게 되어서 허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거의 2년 동안 정기적으로 ‘꿈 같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던 추억들이 우리에게 언제까지 남게 될 것일지…

올 9월의 느낌은..

나의 기억 속, 머리 속의, 아니 바라던 가을의 느낌은 무엇이었지? 지나가는 2주 정도의 뜨거운,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나는 기억이나 기억하고 싶은 것, 아니 바라는 것 등이 쉽게 구별이 안 간다. 기억의 종류가 ‘생각’과 합쳐질 때 이런 현상이 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물질적, 기계적’인 기억은 사실 ‘정신적, 영적인 바람’과 섞이며 나타나는 것일까? 하여튼 ‘은근히 화가 나던’ 그런 시간을 견디어 냈다. 집착, 고집, 심지어 공포감.. 누가 공황장애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도 그런 것인가?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작년 이때를 계속 달력을 뒤지며 생각한다. 그렇다. 그 당시에는 그것도 ‘지옥’ 처럼 느껴지던 것들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기억으로는 그렇게 나쁜 것들이 아니었는데…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도 불과 몇 달 후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 견디자.

지금은 2마리의 ‘충실한 개’가 우리와 함께 있다. 나라니가 여행을 가면서 Senate가 오고 내가 Ozzie도 오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막상 오게 되니까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일단 와서 몇 시간을 지내고 보니 역시 문제가 없다. 이렇게 우리의 무미건조한 하루 일정에 다른 것이 가미되는 것, 나쁘지 않은가?

지난 한달 간 나의 머리는 한가지 ‘사건, 시대의 변화’를 의식하며 살고 있다. 작은 딸, 나라니의 ‘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역시 이렇게 인생을 보내는 인간인가? 나의 생각을 아직도 정리를 못하고 있다. 아니 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저 우리 나라니의 삶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인정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의 도움도 별로 효과가 없는가? 그렇게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아직도 속수무책이다. 어떻게 두 아이가 모두 ‘우리의 족보’에서 완전히 떠나려고 하는가?  우리 집의, 평창이씨의 족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의 정체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왜 내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고, 나의 후손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되는 것인가? 나는 남들이 다 별 문제없이 인정하며 사는데 반하여 이렇게 지지리 늦게,  못나게 보이는 것인가? 모든 ‘도전’을 높은 곳의 뜻을 따르고 이성적으로 받겠다고 그렇게 하늘에 약속을 하며 살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벼랑으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살고 있는가? 

6월과 7월의 흐름은…

요새 나날을 보내면서 나는 놀라기만 한다. 어쩌면 이렇게 세월이 빠를 수가 있을까? 눈과 코 앞에서 나를 놀리는 듯 ‘용용거리며’ 그물을 빠져나가는 고기들을 보는 그런 그림을 그린다. 물론 하루하루가 허망하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지만, 문제는 거의 10+ 년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라고 절규하는 나의 하루하루 삶을,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던 나의 blog의 흐름이 거의 하루아침에 정지를 했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닐까? 가끔 오랜 기간 이 흐름이 정지한 적을 기억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은 없었지 않을까.. 이제는 조금 불안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허무하게 이 몇 개월을 보냈을까? 절대로 아니다. 다만 정기적으로 자주 ‘반성, 성찰의 글’을 남기지 못했을 뿐이다. 바로 그것 뿐이다.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것도 몇 시간 만에 해 치울 수 있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는 나도 부끄럽게 느끼고 당황하는 꿈에서 나와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 바로 ‘W. 마귀’가 나의 꿈에 너무도 너무도 가깝게 나타난 것이다. 아니 나타난 정도가 아니다. 육체적인 냄새와 정을 남기게 된 그런 꿈이다. ‘연애감정, 육체의 느낌’을 준 그 꿈을 어떻게 나는 해석해야 할까?  한 동안, 앞으로 있을 레지오 사업보고 때 ‘한바탕’ 탄핵, 성토하려는 유혹을 즐기고 살았다. ‘값싼 복수’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기도를 하는 나에게 이런 꿈으로 W. 마귀를 생각하게 했을까?… 바로 이제는, 기억이나 교훈의 가치가 거의 없는 이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제는 작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진희네 집엘 가게 되었다. 나의 ‘작은 부탁 사건’ 이후 연락을 하기도, 받기도 조금 서먹한 감정으로 세월을 보냈었지만, 갑자기 연락을 받고 이것도 ‘그런 작은 일들’ 속에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지나친 complex라고 나를 자책하기도 했고, 이렇게 어울려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최형의 70세 생일이라고 해서 그의 두 서울고 동창부부까지 모인 자리는 결과적으로 즐거운 분위기였다. 그 새로운 인물들의 인상이 상당히 좋았던 것이 큰 이유였을까? 또한 우리 집에서 모일 수 없었던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의 ‘어울림’이 안 보이는 우정을 만들었는지..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인생이다.

세월의 짐을..

The day after..라고.. 나 할까?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던 ‘지구 중력의 피해‘ 는 아직도 나를 멍~ 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100% 사고다. 하지만 피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왜 이렇게 서론이 기냐.. 병신아.. 조금은 주의를 하며 살라고!

아차~ 하며 순식간에 돌 같은 차고 garage computer server closet의 바닥에 모서리를 부딪친 것은 바로 2Tera-2 라는 우리 집 file server의 hard-disk였다. 그런 것이 2개가 있는데 모두 떨어뜨린 것이다. 아차! 잘못하면 내가 ‘마구 집어넣은’ 모든 ‘쓰레기’들이? 불행 중 다행인가? 2개 중에 하나가 깨끗하게 ‘비명을 지르며’ 갔다. 그곳에 있는 것… 다행히도 personal 한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folder ‘software’에는 각종 ‘공짜’ software들이 많았고… folder ‘video-2’에는 ’10년도 넘은’ 한국 드라마 (대장금, 겨울연가 같은) … 아차… 어찌하나… 몇 년 전 비슷한 ‘사고 (내가 사고로 지운 것)’ 수 많은 일본 video들이 사라진 것을 기억한다…

어제의 이런 사고를 겪으며 필요이상으로 생각에, 나이와 연관되어 깊은 생각에 잠긴다. 생각해 보고 넘어가는 기회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세월의 짐, 그것이 이제는 너무나 커진 것은 아닐까? 이제는 서서히 하나 둘 씩 잊으며 놓아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현재는 아직도 나에게 필요하기에 너무 서두를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제발 이제 그 지겨운 backup data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신의 영역으로…

어쩌면 이렇게도 날짜가 빠르게도 지나가는 것일까?  놀라운 일도 아닌 것, 새삼 절감한다. 시간이 점점 빨리, 세월이 점점 빨리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하기야 지나간 주가 더 빠르게 간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의 강아지와 지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사실 다른 때보다 괴로울 정도로 ‘미리’ 신경을 쓴 것이 사실이다. Ozzie와 함께 Senate가 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결과적으로 너무나 그 녀석과 정이 들었던 사실은 즐겁기도 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때가 다가오면 그렇게도 stress를 받는 것일까? 왜? 왜? 결과는 언제나 ‘좋은 것, 즐거운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왜 나는 미리 예측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요새 나는 거의 모든 stress를 주는 것으로부터 벗어남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미리 생각했던 것처럼 즐겁지 않은 듯 하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심정, 느낌들… 조금은 나도 혼란스럽다. 이런 것들 걱정하면 살던 내가 아니었는데.. 최소한 지나간 5년 정도는?

그제는 연숙의 big event가 끝나서 서로 축하를 해며, 하나 둘씩 우리를 떠나는 ‘일’들의 ‘부담, 고통’을 기억하며 가벼워지는 어깨를 느끼고 싶은데… 생각보다 그렇게 기쁘지는 않다.

나와 하느님은 어떤 사이인가? 하느님 모르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나는 이제 꽤 깊숙이 이 절대자의 영역에 들어온 듯 한 것이다. 지난 거의 10년 동안 나는 ‘신의 영역’ 으로 한걸음 두 걸음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늦었다. 나는 나는… 이제.. ‘신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영역은 물론 그곳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지만 조금 멀고 높은 느낌도 있다.  감각적으로 나와 가깝게 있는 것들로부터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현재 아마도 나는 이 ‘새로운 것’을 못 찾고 있어서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신의 영역에 맞갖은 삶을 사느냐 말이다. 어떤 것…어떤 것… 어떤 것…

2019년 2월 하루 전에..

1월 31일이 되었다. 자그마치 (자그만치가 아니고 자그마치?) 지난 5년간의 Holy Family Church journal calendar를 쌓아두고 ‘심심하면’ 뒤돌아 본다. 어쩌다 이것으로 하루하루 짧은 기록을 남겨 둔 것이 이렇게 쌓였을까? 왜 나는 지나간 수십 년간의 세월을 이런 것 알지 못하고 살았을까? 나의 모든 ‘보람찬 세월’은 사실 지나간 십 년도 못 되는 기간에 보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ate bloomer까지는 못 되더라도 인생이 익는 보람을 갖게 된 것, 누구에게 감사를 드리랴… 성모님, 어머님, 그리고 천국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엄마.. 감사합니다.

조금 있으면 목요회 멤버 둘이 어둠을 헤치며 우리 집에 도착할 것이다. 연숙이 ‘신나게’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주어서 나도 기분이 좋다. 지난 12월에 와야 할 것이었지만 ‘핏대 아저씨’ 이형,  마지막 순간에 약속을 틀어버렸다. 사실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모임을 해산하게 할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설 형제가 그 동안 크게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서 그대로 ‘굴러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1월을 보내며 조금은 감회에 젖고 싶어서 이렇게 쓰고 있다. 1월을 뒤돌아보니 참 많은 일을 한 듯하다. 우선 제일 크고 중대한 일은 ‘지긋지긋’한 느낌을 주는 ‘마리에타 구역’에서 깨끗이 나온 일이다. 거의 한달 동안 고민을 하던 일이 그런대로 모두 큰 무리 없이 지나간 것, 사실 나는 꿈을 꾸는 듯한 ‘날라갈 듯한 느낌’이다. 사실은 작년 후반부를 잊고 싶을 정도로 괴로움 속에 살았다. 물론 보람도 있고, 재미 있는 것도 없지는 않았지만 ‘한 번’이면 족하다고 결론을 맺고 싶다.

2월이 되면 조금은 냉정하고 차분한 심정으로 한번 ‘계획’을 세우며 보람 있는 일들을 찾아서 연숙과 같이 풀어나가고 싶다. 비록 함박눈을 못 본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2월을 기대해 보고 싶다. 함박눈 내리는 동네 길을 따라 하늘에 있는 Tobey를 생각하며 연숙이와 함께 Starbucks 커피를 마시며 걷고 싶다.

성모님, 미안합니다

성모 마리아, 나의 어머님이시여..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죄를 짓고 있습니다. 나도 이제는 이런 작은 거짓말을 쉽게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쉬고 싶습니다. 나도 연약한 인간중의 인간이 아닙니까? 조금만 더 쉬고 싶고, 심지어는 ‘작은 거짓말의 행복’도 느끼고 싶습니다…

오늘 예정된 성당 추모연도와 양로원 방문을 나는 ‘무자비하게, 일방적으로’ 취소해 버리고 말았다. 우선 레지오 활동을 접은 것이 죄송스럽고 그렇게 반가워하는 양로원의  ‘천’ 자매님의 얼굴이 걸린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런 slump오래 가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즐거운 게으름’은 아마도 지나간 6개월 동안에 나에게는 지나친 사치에 속했던 것이다. 꿈도 못 꾸어본 것들을 나는 즐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나에게 이런 ‘못된 사치’는 당연한 것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틀린 것이라는 외침이 울리고 있다. 어쩔 수가 없다. 나에게 게으름이 주는 평화가 지금 필요한 것이다.

구역이란 말이 주는 괴로움은 이제 나로부터 완전히 떠났다는 사실.. 그것은 다른 말로 평화다. 이제는 후회를 안 하려 애를 쓴다. 지나간 6개월의 우리의 역사는 이제 확실하게 정립이 되었다. 더 잘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선을 다 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나에게는 보람 있는 경험을 준 것, 그것이 결론이다. 이제는 잊고 싶다.

앞으로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조심하며 진정한 우리 남은 인생의 목적을 향해서 기도와 봉사로 일관되는 건강한 여생을 보내는데 노력을 하자!

다시 생각하는 레지오

레지오 마리애, 성모님의 군대, 군단.. 그냥 레지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이 ‘이상한’ 라틴어 레지오.. 는 과연 무엇인가? 아니 나에게 무엇인가?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그 동안 별로 깊게 생각을 안 했던 탓인가, 갑자기 혼란스러운 감정도 인다. 너무나 당연한, 아니 나의 몸과 같게 생각해서 그런가, 왜 이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가? 아니 조금 떨어져서 이것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이다. 조금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는 것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지나가고 있는 일주일은 거의 ‘탈출기’의 느낌으로 살았다. 조금씩 여명의 기운을 받으며 심지어 한동안 잊고 살았던 ‘깊은 평화’가 나에게 돌아옴도 느끼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갈대밭 속으로 나의 손을 잡고 이끄시는 우리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려고 했다. 결국은 잠깐의 고통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주시는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며칠을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제는 다른 도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어제 ‘레지오 단장회의’란 곳에 가서 ‘절감’을 하게 되었다. 끝난 것이 아니구나… 진짜 ‘괴물’이 창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나 할까? 아~ 이것이 올해 내가 해결해야 할 진짜 도전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나의 보금자리 ‘자비의 모후’ 가 완전히 ‘문제의 그룹’이 된 것은 이때 깨닫게 되었다. 그 동안 한마디로 너무나 방만한 태도로 살았던 것인가?  生老病死의 진화를 하고 있는 그룹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이해는 가지만 왜 내가 단장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곳이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솔직히 아직도 당황하고 실망을 하고 있다.

J 자매, 제2의 괴물로 변하고 있고 그렇게 ‘공을 들였던’ 인물 L 자매, 이제는 불쌍한 인간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것들도 안정호 신부님 말씀대로 ‘정상’이란 말인가?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나? 관심을 안 두면 되지만 그래도 나는 실망, 실망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들 생각 없이 살아간단 말인가? 어쩌면 그렇게 ‘기본적 사랑’이 결여된 것일까?

한때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때는 이제 서서히 물러가고 있고 다시 털고 일어나서 힘을 내야 할 것을 새삼 느끼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나는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기도와 기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혼란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런 시간에서 나는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다. 성모님이시여, 저를 어떻게 쓰시고 싶으십니까? 대답해주세요.

며칠 전 ‘도둑처럼’ 사온 cigar와 Canadian Mist가 이런 나의 고민을 조금은 위로해주고 있다. 너무 싼 cigar인지 전처럼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득~ 해지는 느낌은 즐길 수 있다. 2개의 cigar라서 얼마 갈 수는 없겠지만 나는 현재 ‘탈출기’의 느낌으로 살기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다시 다음의 기회를 기다리면 된다.

조심스런 여명의 느낌은

조심스러운 말, 방정맞은 말 미리하고 싶지 않지만 안 할 수가 없다. 희미한 아주 가느다란 ‘여명’의 느낌이 온다. 무슨 열병을 심하게 앓고 난 기분, 아니면 무언가 ‘무죄 판결’을 받은 기분.. 모든 것이 어제부터 나에게 서서히 밀려옴을 느낀다. 그 덕분에 매일 똑같은 ‘천근만근’의 몸이지만 6시 30분에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을 오늘 새벽에 재현하게 된 것이다.

2018년의 ‘쾌거, 혁명’ 처럼 느껴지는 나의 out of box 경험들, 이제는 조금 안심하고 뒤 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성모님의 손에 이끌려 나의 키 두 배를 넘는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갈대숲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나의 모습.. 5년 전 시궁창 또랑길을 따라 더러워진 어머니의 긴 치마를 보며 손에 잡혀 그곳을 빠져 나오고, 결국은 물기가 없는 뚝방길을 따라 먼 곳의 3개 산봉우리를 향해 걷던 그런 모습들.. 지금 그리워진다. 지금은 뚝방길이 앞이 안 보이는 갈대 숲이었다. 그것의 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 어찌 감회에 젖지 않을 수가 있으랴?

2018년의 후반기를 무섭게 차지하고 나의 혼신의 힘을 요구했던 ‘힘겨운 사업’들… 그 중에 하나인 구역사업은 어제로 끝맺음을 한 것으로 나는 간주하고 한숨을 놓았으며 ‘감사하는 글’을 A 자매로부터 받고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한다는’ H 자매의 글도 나를 울리게 했다. 그래.. 사랑의 힘을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었다.

우리 가정, 특히 부부의 건강 그것도 정신적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기에 큰 후회가 없다. 구역은 내가 아니더라도 굴러 가기 마련이 아닌가? 이제는 명예롭게, 부드럽게, 좋은 얼굴로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다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래도 후회를 갖지 않기로 하자. 성모님은 그래도 나를 뒤에서 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