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이번 주일은 성체성혈 대축일, 매년 이때를 기해서 아틀란타에서는 20, 000명 이상이 모이는 연례 성체대회가 열리곤 했었다.  그것이 올해는 완전히 취소가 되었다.  정말 세상이 완전히 바뀐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 열기에 찼던 성체대회, 언제나 다시 그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인가?

순교자 성당 주일 온라인 미사, 비록 제한적인 미사였지만 주임신부님의 강론은 성체성사의 깊은 의미를 조명하는 명 강론이었다. 비록 성당에 가서 교우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해도 이렇게 멀리서나마 성당내의 환경을 공유한다는 것, 불행 중 다행이다. 문제는 오늘 같은 성체성혈 대축일에도 성체를 영할 수가 없었다는 것, 그것이다.

 

요새 며칠 밤에 나의 잠은 평상시와 다른 것이 되었다. 내가 ‘자랑하던’  시계처럼 잠에 떨어지는 습관이 변한 것이다. 잠드는 속도가 느려진 것. 나에게도 불면증이 드디어 온 것인가? 분명히 나는 정신이 말짱하게 밤을 보낸 것으로 기억하지만 나중에 일어날 즈음에는 잠깐 꿈을 꾼 것을 또 기억하니… 어찌된 일인가? 이래서 나는 ‘공식적인 잠’이란 말을 쓰게 되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잔 것이니까, 지난 밤도 그렇게 해서 ‘공식적으로  잤다!’ 로 선포한다….

시간이 갈 수록 나는 고통, 치아의 통증에 더 민감해지는지 우울해진다. 하지만 육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고통, 이것도 머리를 다른 곳으로 집중하면 훨씬 나아진다. 이런 사실을 실감한 것도 이제는 꽤 오래 되었다. 나의 모든 정신을 다른 곳으로 쏟으면 말초신경도 둔해지는 모양이지? 그런 신체역학을 나는 지금 조금 위안으로 이용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이것이 통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오래가면 좋겠다.

 

이순원이란 사람이 쓴 ‘은비령‘이란 1997년 경의 수상작품을 ‘읽으며 필사’ 하기로 했다. 계획적인 아닌 아주 우연하게… 며칠 전 청옥산에 대한 회고를 하면서 강원도 생각이 난 것도 이유가 될지… 언젠가 이것을 조금은 읽었을 듯한데… 불현듯 떠난 여행… 그것이 나에게는 청옥산이었기에 공감을 하고 싶었다. 여기도 여성과 얽힌 여행담이 있는 듯 보여서 호기심도 난다. 100여 쪽인 중편소설… 이것으로 조금 ‘납량’의 효과와 추억의 포근함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온 세상이 시끌벅쩍, 요새 주위에 들려오는 소식들, COVID-19 Pandemic 에다가 엎친 데 덮인 격으로 이제는 [흑백] 인종차별 폭동 riot 으로 이어지고….  한마디로 어디에서도 GOOD NEWS가 찾을 수 없는, 정말 암담한 현실이 되었다. 이번 뉴스의 추이를 보며 문득 그 옛날 1968년 경의 미국과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우리 조국은 ‘민족반역자, 萬古 역적 김일성’이 5.16 군사혁명 주체 박정희의 ‘목을 따러’ 김신조 무장공비 31명을 청와대로 보냈고, 곧 이어 미국 첩보선 프에블로 Pueblo를 동해상에서 강제로 원산으로 끌고 가  한때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우리에게 너무나 암담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도 유례없는 사회적 혼란과 위기감 속에 있었다.  국론이 수렴되지 못한 월남전으로 완전히 분열된 국론, 흑백 인종문제의 갈등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또한 당시 젊은 진보세대 희망의 상징이었던 로버트 케네디까지 저격을 당하고, 시카고에선   민주당 전당대회 와중에 벌어진 격렬한 폭동성 데모… 정말 미국이 곧 망할 듯한 느낌을 주던 때였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요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위기감을 느낄 듯하고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위기와 도전은 언제나 상응하는 변화를 초래하고 그것은 거의 언제나 전보다 진보,  향상, 개화된 것이어서 너무 지나친 걱정은 안 한다.

 

이번 주말에 새로니 네Florida beach엘 머리를 식히려 간다고 해서,  9살 짜리 dog, Ozzie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물게 되었다. 아침마다 그 녀석과 걷는 것도 그렇게 2년 전의 Tobey의 추억과 맞물려 6월을 다시 보내게 되었다. 이것도 나에게 기분전환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세월과 나의 생은 흐른다. 이별할 것은 이렇게 하나 둘 씩 나를 떠나고 나도 언젠가는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요새 우리와 친하게 지내려는 늙은 고양이 Izzie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같이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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