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ng, Pope Emeritus Benedict XVI

Pope Emeritus Benedict XVI,  2022년이 저무는 날에 향년 95세로 선종하신 ‘은퇴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의 바티칸 장례식을 앞두고 viewing, 조문객들의 행렬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길어지고 있음을 본다. 처음 선종뉴스 이후에는 ‘교황직을 자의 自意로 사임한, ‘도중하차’ 한 예외적 교황’이란 제목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그의 생전 교황직에 대한 호의적인 견해들이 지배적인 것을 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교황님은 첫째도 둘째도 ‘깊은 사상적, 철학적 신학자중의 신학자’임을 알고 있다. 그분의 사목사상의 하나가 담긴 책 The Dictatorship of Relativism은 사서 읽기도 했다.
물론 도중하차했을 그 당시에는 강인한 체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교황직 (특히 선교여행)에 역부족이었던 ‘연약한’ 모습들도 보며 걱정과 실망도 했다. 특히 왕성하고 무한한 에너지로 세계를 순방하던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와 비교가 되던 때여서 더욱 대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아가 교황님은 현재 너무나 세속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보수 중의 보수’, ‘고집불통’으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것을 보며… 혼란스럽다.
이분은 제2 바티칸 공의회의 ‘혁신적, 진보적’ 신학적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으니 그는 그 당시 그는 절대적으로 보수가 아니라 진보 중의 진보였는데, 이것은 사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고 세상이 이렇게 한계 없이 탈신앙, 극단세속화 된 것은 아닌가? 참, 이것이 어떤 형태의 진화인가? 아니면?

새로니의 hubby, Richard가 나와 비슷한 직종, 그도 computer engineering에 속해서, 그가 쓰다가 retire시키고 있는 각종 gadgets, computer equipments가 상태에 따라서 나에게 오는 기회가 생긴다. 며칠 전에 ‘물려받는’ 것은 보기에도 육중한 것들 Samsung Dual PC monitors 와 그것을 support하는 monitor arms (mounts)인데 이것을 누가 어떻게 쓸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연숙이 쓰기에 너무나 ‘육중하면’, 나의 lab desk에 올 가능성도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나도 dual monitor를 쓰며, 한쪽에서는 100% movie/video를 보게 되어 시간 낭비가 많아서 다시 single monitor로 돌아오기도 했는데… 역시 주식 stock trade같은 것이 아니면 사실 이것은 ‘한눈 팔기에’ 완전한 setup일 듯하다. 하지만 일단 나에게 왔으니 어떻게 쓰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지 머리를 굴려야 할 듯…

연숙의 이빨이 계속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나처럼 ‘오랜 세월, 무식하게 참는’ 습관이 전혀 되지 않은 연숙이 같은 사람들의 고통을 짐작은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우리도 바쁘고 치과들도 모두 바빠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보험plan이 바뀌어서 그렇게 크게 돈 걱정은 전처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이 놓인다. 또한 이 지역의 치과의 숫자는 실로 엄청나고 그것도 한인 치과의사들도 거의 100군데가 넘으니, 이것은 사실 반가운 사실이다.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 한두 군데가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아졌을까… 생각하니 물론 한인 숫자가 그만큼 많아졌고, 이빨 아픈 것을 참는 사람들이 과연 나 외에 누가 있겠는가? 
몇 십 년 동안 우리 식구들의  주치의도 우리처럼 나이가 들어 retire를 준비하기에 이번에는 ‘새 치과’를 찾아야 할 때가 된 듯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새로니의 ‘원군 요청’에 두말 안하고 애보기를 하러 가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누구에게 질 수가 있으랴~ 나는 아직도 멀었다, 멀었어…
오늘은 새로니가 드디어 federal government [Department of Energy]  job 을 시작하는 첫날이 되었고 내일부터는 그 조그맣고 똘망똘망한 유나가 daycare 에 가게 된단다. 조금 믿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새로니가 참으로 자랑스럽게 느껴지고도 하고, 상대적으로 나라니가 조금 힘들게 보이니… 이렇게 비교가 되는 듯한 삶을 보게 되는 것이 나는 제일 무서운데… 하지만 이것은 기우 중의 기우일 것이다.

새해의 결심 중에 ‘육성 전화 voice call 무조건 받기’가 있었고 이 덕분에 오늘 처음으로 윤형의 전화를 1초도 되지 않아서 받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까, 우선 성공한 것이 아닐까? 다음에는 받는 것과 같이 거는 것에도 용기를 실어보고 싶은데, 제일 먼저 내일 교성이에게 걸어보면 어떨지… 제발 성공적인 습관이 되기를 빌어본다.

새로 시작한 ‘수난의 기도들’을 시기하는가, 연속적인 유혹이 아침부터 나를 시험하는가… 역시 사탄의 장난인가… 이런 ‘거의 미친듯한 이 기도’가 나에게 가당하고 유익한 것인가 하는 유혹이 어제의 깜깜한 시간들의 도움으로 나에게 속삭인다. 분명히 나도 현재 ‘수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믿지만, 이 이탈리아 ‘주님의 종’ 여인의 ‘광적인 수난’과 비교가 될 수 있으랴~~ 아, 이것이 현재 나와 무슨 큰 관계가 있단 말이냐~~ 싫고 지겹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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