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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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던 싸늘~한 가을비가 오늘 이른 아침부터 조금씩 잔잔해지는 느낌이더니 결국은 멈추었다. 하지만 빗물에 완전히 젖은 낙엽들이 내뿜는 냉기는  온통 나의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작년에 연숙이 Costco 에서 사준 실내용 warm pants 로 하체는 해결이 되었는데 shirt는 고르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올해 첫 winter storm, Avery 의 소식이 나오고 있다. 첫 눈의 소식, 물론 이 지역이 아니고 Midwest, Northeast 쪽이었지만 ‘눈 소식’을 들으니 벌써 ‘Holidays, the best time of year’ 란 단어가 떠오른다.

작년 가을에 나의 work/study room을 아래층으로 옮긴 후 첫 겨울은 추위를 느끼며 살아야 했다. 위층에 비해서 훨씬 냉기가 대단한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올해 다시 맞는 큰 아래층 공간의  ‘냉기’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여름에 우리를 영원히 떠난 나의 Tobey가 없는 이 큰방, 그 사실이 추위의 냉기보다 나를 더 춥고 쓸쓸하게 만든다. Tobey대신 ‘양양이 Izzie‘ 가 나의 주변을 맴돌지만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인가? 하지만 ‘5개월이란 세월의 약’이 작용을 하며 all shall pass, all shall pass

이른 아침 ritual (stick coffee, today’s scripture, email, blog counts etc)을 끝내고 우연히 (사실은 며칠 전에 잠깐 보았던) 1960년대 말의 미국 TV show였던The Glen Campbell Goodtime Hour (variety show format)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 감미로운 추억이여! 아무리 잇몸이 쑤셔도 이런 60년대 말의 추억은 모든  불편함을 한때나마 잊게 해 준다. 그의 음악에 심취했던 시절, 60년대 말은 나에게 절대로 잊을 수도 놓칠 수도 없는 보물중의 보물로 남아있다. 서울에 있던 ‘미8군 방송국’이었던 AFKN 에서 이 program을 정기적으로 방영을 했고 나도 기회가 되는 때에 보곤 했었다.  연세대 전기과 기타귀재 심재흥의 영향과 도움으로 한창 기타를 배우던 시절, 이 Glen Campbell의 folk, country, rock style은 거의 교과서적인 도전을 나에게 주곤 했다.

 

 

 

한때 Elvis Presley 의 guitarist였던 그가 어떻게 그런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 그의 vocal style은 기타 솜씨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다만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는지 ‘유명세’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으로 그의 말년이 기억되는 것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그 당시에 우리는 그의 노래 A Place in the Sun 을 ‘ 따라 부르며 guitar chord와 rhythm 을 연습했다. 특히 당시 Bobbie Gentry와 duet으로 부른 Let it be me 는 당시의 시내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면 항상 흘러나오던 hit song 이었고, 그 뒤로 듣던 Gentle on My Mind, By the Time I Get to Phoenix, Wichita Lineman, Galveston… 수많은 hit after hit..  훨씬 뒤에 미국에서 TV로 보고 들었던 그의 ‘대작’, big orchestra와 협연으로 부른 MacArthur Park은 정말 그만이 남겨준 영원한 classic이 되었다. 아~ 추억에 젖은 이른 아침이여…

 

 

MacArthur Park – Glen Campbell

 

 

Let it be me – Glen Campbell & Bobbie Gentry – 1969

 

Tobey가 잠자고 있는 낙엽에 덥힌 뒷마당에 늦가을비가 세차게..

 

¶  비 쏟아지는 월요일:  하루 종일 어두운 하늘에서 싸늘한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물론 반가운 선물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flood warning이 나올 정도가 되면 선물의 정도를 넘은 것이다. 게다가 가끔 물이 새는 2층 지붕도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조금 불편한 것이 있어도 이것은 역시 ‘가을비’가 아닌가? 각가지 감상적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운다. 물론 대부분 추억에 얽힌 생각들이다. 게다가 이런 을씨년스러운 가을비에 나의 영원한 친구 Tobey가 내 옆에 없다는 새로운 사실이 가슴에 걸린다. 이런 때면 나의 무릎에서 편하게, 평화스럽게 코를 골며 자던 그 녀석.. 비록 육신은 뒤뜰 땅속에 묻혔어도 녀석의 느낌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따라다닐 듯하다.

 

Saybrook Court에 아직도 남은 가을 낙엽들, 과연 언제까지 버틸까..

 

월요일에 내리는 비, 70년대 초 (1971년) The Carpenters의 classic oldie, Rainy Days and Mondays가 문득 떠오른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다시 없는  목소리’ Karen Carpenter의 잔잔하지만 깊은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그렇다.. 1970년 초..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을 꾸던 멋진 시절에 들었던 ‘비 오는 월요일’은 큰 의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노래의 가사처럼 ‘모조리 우울한 것’들이었다. 그런 감정이 반세기 뒤에 완전히 뒤바뀌어 이제는 반대로 즐기는 ‘선물’이 된 것이다. 세월의 조화가 아닐까?

 

이렇게 세차게, 힘차게 쏟아지는 비는 나의 혼탁한 머리 속을 씻어주는데..

이런 때면 문지방에 편하게 엎드려 하염 없이 비를 바라보던 Tobey는 이제..

 

요새 갑자기 ‘기분과 몸’이 훨씬 나아진 연숙 덕분에 다시 규칙적인 정상적 생활을 찾기 시작해서 오늘 아침도 예의 daily morning mass, adoration chapel, Sonata cafe, 그리고 YMCA workout의 routine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역시 예외는 예외다. 갑자기 연숙에게 ‘감기 기운’이 덮친 모양, 열이 나고 목이 잠기고 기운이 빠지고.. 나 같으면 그런 것 참거나 숨기거나 하겠지만 사람은 다 다르니까..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이 Bishop Robert Barron이 즐겨 강조하는 prudence 란 것이다. 나도 그의 말에 동감이다. 때와 장소에 따른 각가지 ‘덕목’들이 항상 같지 않고, 지혜롭게 ‘조절’을 해야 한다는 wisdom. 그저 참고 해야 할 것을 다 끝내느냐, 아니면 내일을 생각해서 할 것을 포기하느냐.. 결국은 내일을 생각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일주일에 제일 중요한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화요일 ‘Legio’ Tuesday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날인 것이다.

 

 

Rainy Days and Mondays – The Carpenter – 1971

 

¶  ‘기타귀재’ 심재흥, 50년 전:  어제 중앙고, 연세대, 연호회 친구, 이윤기와 뜻밖으로 KakaoTalk 에 연결이 되어서 감회 깊은 이야기(texting)를 나누었다. 본지가 50년도 넘은 사람과 어제 헤어진 듯한 느낌으로 대화하는 것, 솔직히 이것이 바로 surreal 한 느낌이 아닌지.. surreal, surreal..  한마디로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얼마 전 같은 그룹친구 양건주의 주도로 우리들 4명 (나, 양건주, 이윤기, 윤인송)이 기적적으로 단체 카톡방에서 몇 마디나마 서로의 숨결을 느끼게 되었다. 언제고 이 친구들의 최소한의 안부 정도는 알 수 있겠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모두 친한 친구들이었고 특히 윤기는 헤어진 이후 거의 연락을 못하고 살아서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았지만 ‘거리와 세월의 횡포’ 의 희생자로 일생을 보낸 셈이다.

이 친구가 video하나를 올렸는데.. 1960년대 일본에서 활약했던 그 유명한 The Ventures를 ‘흉내’낸 electric guitar group의 공연이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심재흥‘이란 이름을 떠 올렸다. 50년 전의 그 이름이 이윤기란 친구의 기억과 겹치며 떠오른 것이다. 연세대 전기과 동문들.. 그 중에 ‘기타귀재’라고 불리던 친구, 그가 심재흥이었다. 1969년의 회고담을 쓰려고 하던 참이라서 참 timing이 절묘하다고 할까..

 

그 당시 일제 electric guitar, 심재흥의 도움으로 샀고 역시 그의 도움으로 팔았던 기억..

 

그 당시 나는 이 ‘귀재’로부터 기타(특히 electric guitar)의 매력을 배웠다. 자세한 테크닉을 배운 것은 아니었어도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보며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한 것, 나중에, 아니 지금까지 (통)기타를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했던, 엄청난 영향을 준 것,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심재흥’이란 이름을 언급하니 놀랍게도 이번에 보낸 ‘벤쳐스’ 동영상’이 바로 그 친구가 보낸 것이라는 것이 아닌가? 얼마 후에 연세대 전기과 동문들이 모이는데 그 친구도 만난다는 얘기에 나는 솔직히 꿈을 꾸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다. ‘세월과 거리의 횡포’.. 도 이렇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구나…

 

 

The VenturesWipeout live in Japan 1966

 

¶  사랑의 기다림:  지난 토요일 모처럼 우리는 ‘자매 성당’인 둘루스 Duluth, GA  에 있는 김대건 성당엘 갔다. 이날 그곳에서 ‘추계 일일 침묵피정’이 거의 하루 종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집에서 거의 30마일이나 떨어진 곳을 아침 8시에 집을 떠나야 하는 것 물론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가라, 가라, 무조건 참석해라’ 라는 무언가를 거역할 수 없었다. 가만히 보니 근래 나는 이 ‘가슴 속 깊은 곳의 무엇’을 조금씩 느끼며 사는 듯하다. 그것이 거창하게 ‘성령’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유행하는 과학적 표현으로 아마도 quantum message 정도는 아닐까?

4년 전에 이곳으로 같은 피정에 온 기억이 남아있지만 매번 지도신부가 다르니까 피정의 결과는 매번 다를 것이다. 아침 점심 식사를 포함해서 각각 두 번의 신부님 강의와 침묵 묵상이 번갈아 가며 오후까지 계속되고 마지막에 미사로 끝을 맺는다. 이번의 지도 신부님은 우리의 도라빌 본당 보좌신부인 ‘김형철 시메온’ 신부님으로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비교적 젊은 신부다.  ‘사랑의 기다림’이란 포근한 주제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졸리지 않는’ presentation을 했다.

요사이 신부님들의 강론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분들 ‘과학적인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요새 신학교가 지나간 반세기 동안 급변하고 있는 과학문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갈릴레오 사건’으로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가톨릭 전통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날 김 시메온 신부님의 강론 서두가 이것을 말해준다. ‘거시적 우주론, Cosmology’ 으로 주제를 이끌었던 것이다. 아마도 더 기다리면 아마도 상대성이론, Quantum MechanicsString Theory 까지도 거론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추세를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철학적, 신화적’ 접근을 좋아하는 일반 신자, 대부분 여성들에게 이것이 크게 appeal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  Running ‘C’ wire Smart Home, Smartphone (now one word), Smart TV, 그리고 Smart ‘Stat (thermostat) ..

덧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를 스쳐 지나는 이런 단어들,   이것들 중에서 나와 역사적으로 제일 오래된 것이 smart home일 것이고,  다음이 Smartphone, 그리고 지금 나의 코앞에 다가온 것이 바로 Smart Thermostat 이다. 얼마 전에 두 ‘아이’들이 우리에게 준 2대의  ‘dumb’ 40+” TV는 Roku, ChromeCast gadget 덕분에 곧바로 Internet streaming를 하는 smart tv의 기능을 갖추게 되어서 그런대로 우리 집도 ‘현대화’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큰딸 boyfriend Richard가 최신형으로 upgrade 한다고 2개의 smart thermostat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이 EcoBee 라는 ‘웃기지 않게’ 비싼 사치품 thermostat였다. 집안의 heating & cooling system(HVAC) 을 control 하는 것이 thermostat인데 이것의 내부 구조는 간단한 electrical switch에 불과해서 예전까지 이것은 비쌀 수가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것이 복잡한, 그러니까 smart하게 보이는 기능을 잔뜩 넣어서 멋진 fashion을 만들어 고가로 파는 것, 나에게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추세다. 수백 년 전통의 coffee를 Starbucks로 비싸게 파는 것이나 맹물을 bottle에 넣어서 파는 것과 다를 것 하나도 없다. 하지만 비싼 것은 비싼 이유가 있을 것이다.

2 ‘given’ Ecobee smart thermostats

 

현재 우리 집에 있는 것은 기본적인 programmable thermostat로서 하루에 네 번 정도 시간에 따라 온도를 조절하는 model로서 사실 그렇게 불편한 것은 없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집에서는 더 복잡한 timing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retire한 상태에서는 복잡한 것이 더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이것을 program 하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 않다. 대부분 어두운 복도에 설치된 이것을 서있는 상태에서 그 작은 글씨를 보며 program하는 것 거의 torture에 가깝다. 그래서 한번 program해 놓으면 거의 바꾸지도 않고 그러기도 싫은 것이다.  그런 것이 지금은  Smartphone이나 PC의 보기 좋은 screen을 편한 곳에 누워서 program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나는 족하다.

이것을 나에게 주면서 Richard는 현재 우리 집 thermostat에  ‘C’ wire가 연결되어 있냐고 물어서..  속으로 이것이 무슨 말인가 궁금했지만 우선 ‘있다’고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없는 extra wire, 24V transformer의 ‘common’ (power return) 임을 알게 되었다.

왜 이 ‘놈’이 필요한가 보니, smart ‘stat(thermostat)는 Smartphone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small computer라서 power, 본격적인 전원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다.  작은 computer라고 했지만 기능적으로 보면 웬만한 예전의 desktop PC의 그것이고, 특히 WiFi 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보다 energy를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과 다르게, 오래 전에 쓰던 mechanical ‘stat는 전혀 power가 필요 없었고 요새 많이 쓰고 있는 programmable ‘stat는 거의 모두 battery를 쓰기에 따로 power supply wire가 필요 없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4 wires가 필요한데 (1) 24V hot side, (2) fan on, (3) heat request, (4) cool request 가 그것들이다. 예를 들면 heat가 필요하면 (1)과 (3)을 연결하면 된다.  그러니까 24V hot side가 return되는 ‘common’ 이 사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새로 나오는 smart ‘stat들을 ‘팔아 먹으려면’ 이 extra wire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해결책은 이 wire를 furnace control board로부터  thermostat가 있는 곳까지 끌어내야 한다. 이 작업을 과연 몇 명이나 ‘감히’ 할 수 있을까.. 물론 handy한 공돌이를 제외하고. 

다행히도 우리 집의 in-wall wiring은 home pc networking 시절부터 10base2, 그 후의 CAT5 cabling 까지 모두 내가 설치했기에 사실 이번의 ‘C’ wiring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정도로 쉬운 job이다. 다행히 남아도는 CAT5 cable이 많아서 그것으로 위층은 해결이 되었다. 아래층 것이 끝나면 드디어 EcoBee 를 연결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요새 아이들 자랑스럽게 말하는 ‘Smartphone으로 언제 어디서나 집의 온도를 맞출 수 있다’ 라는 것, 나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토요일을 수도원에서:  싸늘하지만 기가 막히게 화창한 ‘영광스러운’ 가을 하늘아래 일년 만에 다시 한 시간 정도의 drive로 Conyers, GA 의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은 사실 부끄럽지만 ‘자발적’으로 간 적은 없고 무슨 계기가 있으면 가는 그런 곳이다. 위치나 분위기를 보아서 이곳에 갔다 오면 다음에는 반드시 ‘자발적’으로 가보자, 문득 ‘평화로운 곳’ 생각이 들면 그곳을 차를 몰자.. 등등의 상상을 해 보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계기’가 생기만 거의 두 번 생각을 안 하고 OK를 하곤 했다. 올해도 그런 식으로 연숙을 포함한 교사들이 인솔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의 예비신자 교리반 일행을 따라서 가게 되었다.

 

a spectacular view of the pond at the monastery..

 

5~6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렇게 생소하던 곳이 이제는 연륜이 쌓여가는지 아주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 든다. 제일 기억에 남던 때가 레지오 피정을 이곳에서 했을 때가 아닐까? 밤늦게 어두운 대성전에 홀로 앉아서 묵상하던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아주 강렬한 것이었다. 사람은 역시 ‘주위 환경’에 철저히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오감의 피조물이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무엇을 이런 곳에서 느끼고 받을 수 있음을 경험한 곳이기도 하다.

교리반 학생들은 이런 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이날도 방문후의 소감들을 나누는 시간에서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너무나 생소한 것을 보았다는 나눔, 이해가 간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생소함과 더불어 ‘신비적 경건함’도 느꼈다는 나눔은 아주 고무적인 것이 아닌가?  이들의 앞으로의 신앙여정은 어떨까..  과연 얼마나 궁극적으로 ‘절대존재’를 알게 될까… 큰 유혹 없이 세례의 은총을 받게 되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이날 오랜 만에 gift shop에서 책을 한 권 샀다. 몇 년 전에 왔을 때 C. S. LewisThe Joyful Christian이란 책을 산 적이 있었고 그때 이곳은 Amazon.com 같은 discount가 없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list price대로 파는 것이다. 이것으로 수도원을 유지해야 함을 누가 모를까? 이날도 그것을 알고 샀는데, 메주고리예 발현에 관한 Janice T. ConnellThe Vision of the Children 이란 책으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주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비교적 읽기 쉬운 책으로 오자마자 거의 1/3을 읽었는데 ‘뜻밖의 보물’이란 느낌이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

 

¶  2권의 ‘반갑고 고마운’ 책들:  문밖에서 bell 소리가 들린다. 누가 온 것, 귀찮은 sales, 아니면 delivery? 조용히 밖을 보니 벌써 누가 무엇을 문 앞에 놔두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하~ FedEx van이 보이니 무엇이 배달된 것이었다. 익숙한 package이지만 나는 요새 아무것도 산 것이 없는데… 하고 shipping label을 읽으니.. 아니~ 대한민국에서 온 것, 누가?  아하~ ‘도사’ 양건주가 책을 보낸 것이었다.

 

FedEx package from Korea

 

얼마 전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되어서 너무나 반가웠는데, 이상하게 ‘주소’를 물어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책을 보내려고 그랬던 것이다. 다시 눈가가 찡~ 해 짐을 느꼈다. 친구야, 친구야… 고맙다, 친구야.. 어쩌면 너는 그렇게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은가? 나는 아무래도 못 따라가는데.. 이 친구에게 받았던 ‘책 선물’이 꽤 되는데.. 책 값도 그렇지만 이렇게 실제로 행동으로 귀찮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고물 우정’에 어떻게 응답을 한 것인가?  이해인 수녀님의 ‘기다리는 행복’ 이란 수필집과, 얼마 전에 출판된 ‘따끈따끈한’ 책 ‘글배우’라는 독특한 이름의 저자가 쓴 ‘오늘처럼 내가 싫었던 날은 없다’ 라는 제목을 가진 책, 모두 2권이었다. 책 값만큼 우송료가 대단했는데.. 그것도 FedEx로 속달이 된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은 사실 종파를 떠나서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분이지만 연숙이 특히 좋아하는 수녀님이다. 그 책은 연숙이 먼저 보기로 하고 나는 현재 ‘글배우’라는 저자가 쓴 ‘오늘처럼…’ 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잠깐 훑어 보니 대부분이 ‘상식적 수준의 조언’들이지만 어떤 것들은 나의 생각이 맞는다는 재확인을 하게 하는 것들도 보였다. 책의 부제가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줄 글배우의 마음 수업’으로 되어있으니 아마도 대부분 ‘무너진 자존감’에 대한 조언들일 것이다. 나의 자존감은 분명히 예전 보다는 많이 오른 상태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는 ‘벗’이 지구상 어디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하늘로 뜨게’ 만든다. 건주야.. 고맙다, 고마워. 행복하게 살아다오.

 

시월의 마지막 날들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결국은 그 바로 마지막 날 31일도 찬란한 석양을 등지고 나를 떠나려 하고 있다. 서재 work desk위에서 24시간 나를 응시하고 있는 life journal, monthly calendar를 본다. 9월에 못지 않게 무언가 많은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가득 차있다. 시월의 31일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가?

 

 

오늘은 10월 31일, Halloween.. 조금 후 해가 떨어지면 어둠 속에서 동네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올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날은 우리에게도 조금은 의미가 있던 ‘미국의 명절’이었지만 아이들이 머리가 커져서 집을 다 떠난 후 모든 것이 빛을 잃었다. 문 앞에 pumpkin light를 켜 놓고 각종 candy를 준비하는 행사가 사라지고 이제는 불을 다 꺼놓고 ‘숨을 죽이며’ trick or treat 행렬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참, 세월이란 이런 것이지.. 조금은 쓸쓸해지는 감정을 누를 수가 없다. 그것이 요새의 10월 31일이다.

 

¶  건주의 ‘잊혀진 계절’:  며칠 전에 정말 예기치도 않게 ‘그리운 벗’ 양건주에게서 email이 날라왔다. 어떻게 나의 email을 기억했는지.. 마지막으로 연락이 된 것이 아마도 10여 년 이상이 되었을 듯하다. 하지만 다른 ‘사라진 친구들’과 달리 이 친구 건주만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연락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예감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친구의 매력이다. 생일이 불과 나보다 며칠을 앞서고 있지만 건주의 ‘정신연령’은 나의 형 같이 편안하고 성숙하게 느껴진다.

거의 반세기 전 헤어진 이후 아마도 처음으로 ‘음성통화’가 kakaotalk voice call로  너무나 쉽게 해결이 되었다.  글자와 음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건주의 목소리와 아주 다르지 않았다. 목소리의 느낌은 반세기 전의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목소리는 아마도 건주의 기억과 아주 다른 듯한 반응이어서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것이 세월의 횡포가 아니겠는가? online 활동으로 아주 바쁘고 건강하게 사는 듯한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다. Internet의 덕분으로 곧바로 우리 클럽, 연호회의 멤버들 중에 윤기와 인송이 곧바로 kakaotalk  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상상의 나래를 편다. 건주와 달리 ‘표현력’이 떨어지는 그들과 얘기하는 것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계속 알게 된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한다.

어제는 건주가 kakaotalk으로 music video를 하나 보내왔다. 이런 곳으로 날라오는 video를 나는 ‘원칙적으로’ open을 안 한다. 우리 나이에 이런 것들 내용을 짐작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보낸 사람이 ‘도사 양건주’ 였으니까.. 설마 또 ‘극우파 선전’ 같은 것은 아닐 듯 하고.. 의외로 잔잔하고 감미로운 노래였다. 물론 내가 알 수 없는 곡이었지만 곡조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이용’이란 사람이 1980년대에 불렀다는 ‘잊혀진 계절’이란 classic oldie였다.  건주가 이런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며 좋아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설마 우리들 30대에 나온 노래를 나에게 보낸 것, 조금 의아하긴 했다. 그 비밀이 오늘 아침에 풀렸다. 연숙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 노래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 노래는 10월 31일에 부르는 노래라는 ‘웃기는’ 사연이었다. 왜? 가사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었고… 아하! 그래서 10월 말경에 나에게 이런 노래를 보냈구나.. 역시… ‘도사 건주’로구나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건주야 고맙다!

 

 

 

The Exorcist: 아 늦은 나이에도 아직도 무서운 것이 나에게 있다. 특히 Halloween이 다가오면 이것이 나를 더 자극하며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다. 1973년 12월에 미국을 경악하게 했던 것, 영화 The Exorcist… 이 글자만 봐도 나는 아직도 무서운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즈음이며 매년 겪는 이상한 현상이다. 올해는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아야지… 하지만 매번 이 영화를 20분 정도 보다가 포기하는 것이다. 20분의 대부분은 영화의 첫 부분, Iraq의 유적발굴에 관한 것이고 미국의 Washington D.C.의  Georgetown scene 이 시작될 무렵이다. 그러니까 진짜 무서운 것들이 시작되기 훨씬 전이다.

 

 

물론 강제로 나머지 부분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서운 ‘악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옛날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살아나는 바로 그것이다. 그 당시 영화를 보고1 한 동안은 ‘진짜로 무서운’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어두운 곳에서는 괴물로 변한 ‘아이 Regan‘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한마디로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 괴로운 추억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얼마나 그 당시의 충격이 심했던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영화로 부터 ‘가톨릭’ 신앙을 접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음에 감사를 하고 있다.

  1. 나는 이것을 Chicago에서 처음 보았다.

¶  Better Korean Festival?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근래 나의 관심사에서 제일 멀리 있던 것이 나에게 왔다가 갔다. 연숙의 문인화 전시가 올해의 한인축제, Korean Festival와 함께 열린 것이고 이것은 이제 우리 가족의 작은 가을행사도 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가족이 모여서 전시회, 한인축제 공연, 그리고 넓은 주차장에서 각종 booth를 구경하는 것인데, 나는 사실 큰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가족의 일원’이기에 피곤해도 와야 하는 그런 종류의 시간이다.

한인축제는 몇 년 전(2~3년?)에 가족과 왔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의 논평이 ‘재미없고, 촌스럽다’ 라는 것이고 나도 사실 동감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것은 ‘조용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고 ‘아이들’도 동감인 표정들이었다. 우선 ‘아마추어 같은 촌스러움’이 많이 걷힌 것이다. 각종 공연들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자신은 없지만 ‘event pro’ 그러니까 행사를 주관하는데 각종 프로 들이 등장한 듯 했다. 큰딸 새로니는 몇 년 전에 Greek Festival을 보고 우리의 축제와 비교를 하곤 했는데,  아마도 우리도 그런 것을 보고 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논평을 했다.

 

 

각종 공연들, 특히 Big Orchestra가 등장한 것, 비록 한인 오케스트라라고 했지만 많은 연주자들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축제자체가 community에  open된 것이다. 거대한 남성합창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이들과 같이 ‘나의 살던 고향은..’, ‘사랑으로..’ 등을 관객들과 열창한 것도 가슴이 저미는 뭉클한 순간들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 이제는 ‘초 국제화’가 되어서 아마도 바다건너의 대한민국의 재력과 K-POP을 중심의 최첨단 pop culture가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날 한인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동양화, ‘문인화’ 전시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성과 시간을 써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연숙이 이것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꽤 되었지만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그것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동양화, 묵향화, 문인화.. 조금씩 성격이 다른 것 임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어떤 그림이 더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지기도 했다. 우선 시간을 더 써서 자세히 묵상, 기도하는 심정으로 응시를 하였다. 이날 처음 그렇게 비슷하게 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도 알았다. 연숙의 ‘거대한 국화들’도 자세히 보게 되었고 왜 입선이 되었고 관람객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는지 알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대상물’은 ‘생물들’ 그러니까 새들, 다람쥐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느낌들이 좋았는지, 연숙에게도 꽃, 식물 다음에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그려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  레지오 사업보고:  나의 ‘정든’ 레지오 전초분대(Praesidium, Pr.) ‘자비의 모후’의 연례 사업보고가 일요일 꾸리아 월례회의 때 있었다. 단장이 된 이후 처음 하는 것이라 물론 내가 평의원들 앞에서 발표를 했지만 이번 발표에는 ‘고발성’ 글귀가 실려있어서 나는 그것을 가급적 dramatic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이 ‘고발’을 할 때 평의원들의 얼굴은 대부분 blank 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너무나 심각한 어조와 내용’이라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 unmotivated, uninterested 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 꾸리아, 레지오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주 관심사는 ‘고발 당한 2명’이 이런 글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 중 한 인간은 그 회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 알게 된 비밀이 공식화 되었기에 나는 그 두 ‘피고들’ 의 공식징계를 위한 다음 단계로 마침내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의 추이가 너무나 흥미롭게만 하다.  Watch out, you two’s!  Here I’m coming after you!

 

¶  BIG flat-screen TV Envy? 우리 집에는 누구나 모두 ‘자랑’ 하고 싶어하는 monster size flat-screen TV가 없다. 그러니까.. home theater 가 없는 것이다. Desk에서나 쓸 수 있는 아주 작은 digital TV가 있을 뿐이다. 가족들이 family room에 모여서 old tube analog  TV로 주로 VHS video를 보던 때가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커서 모두 집을 떠나면서 그 ‘고물’ TV는 완전히 방에서 물러나고 집에 남은 우리 둘은 거의 broadcast network TV를 안 보고 살게 되었다. Movie같은 Video를 보는 것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거의 각자의 desktop PC로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home theater같은 느낌의 즐거움이 없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도 거의 모든 시간을 desk앞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다른 집에 가보면 우리같이 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경쟁적’으로 엄청난 큰 screen TV가 있었다. 물론 극장 같은 경험을 집에서 즐기는 것, 누가 마다하랴.. 문제는 그만큼 $$$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인데.. 돈도 돈이지만, 우리 둘에게 아직까지도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닌 사치품에 속했다.

 

 

하지만 trickledown 현상이라고나 할까 결국은 caveman처럼 살려고 하던 우리에게 ‘공짜’ big screen TV가 흘러 왔다. 두 딸들이 쓰던 것, 새것을 산다면서 우리보고 가지라는 것.. 크기를 보니 사실 요새 기준으로는 큰 것이 아니지만 우리 집같이 traditional house에는 정말  적당한 size가 아닌가? 하나는 40″, 다른 것은 42″ 정도.. 40″는 kitchen area에 맞고 42″는 아마도 bedroom에 맞을 듯하다. 한가지 연구해야 할 것은 이것들은 1st generation TV로 한마디로 smart TV가 아니다. 그러니까 Internet streaming이 자동적으로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RokuChromeCast를 쓰면 간단히 해결 될 듯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도 HDMI digital TV 시대의 막이 올랐다.

 

어제 이 지역으로 내려온 찬 공기의 영향으로 오늘 아침에는 드디어 얇은 스웨터를 찾아 입을 정도가 되었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이곳까지 쳐들어 온 열대성 폭우 ‘마이클’로 대기는 온통 습기로 가득 차 있었고 가끔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하루 아침에 습기가 완전히 사라진 ‘추운 느낌’의 진짜 가을이 된 것이다. 올해의 환절과정을 보면서 ‘조금은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정상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혹시 이것도.. 그것.. global warming의 영향은 아닐까..

 

Time to ‘test’ fire up central heating..

 

오늘 아침에는 조금 마음을 졸이는 ‘첫 추위와 난방’ switch-over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난방 furnace system ‘점화’ 때문이었다. 올 여름에 모든 heating & air system 을 새것으로 바꾸었을 때, 에어컨은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실 그 더운 여름에 난방 system은 테스트 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기에 항상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드디어 그것을 test할 순간이 온 것이다. 예전에는 위층은 electronic, 아래층은 pilot lamp system이라서 아래 층은 그 ‘어두운 지하’로 들어가서 손으로 점화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래층도 electronic으로 바뀌어서, 예전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문제는 한번도 내 눈으로 test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위층의 furnace는 test에서 문제없이 fire가 되어서 한숨을 놓았고 아래층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Best time to reminisce, rainy autumn with hot coffee

 

며칠 간 계속되는 ‘추운 쪽의 가을’ 을 맞으며 겨울도 아주 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부지런히 가을/겨울 옷들을 찾아야 하는 귀찮음을 느낀다. 비록 황금색의 낙엽과 하얀색 눈의 자연은 나를 즐겁게 하겠지만 머리 속이 예년의 그것과 너무나 다른 ‘처음 경험하는 일’들로 가득 찬 요즈음, 과연 나는 예전처럼 ‘감상적 사치’ 를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기대는 있다. 차가운 가을 비 내리는 바람 부는 한가한 오후에 편한 의자에 기대어 향기로운 coffee를 마시는 기대.. 한번 기대해 보자…

¶  가을비를 보며:  오늘 아침, 10월 중순을 향하는 길목에서 나는 아직도 열대성 공기를 느끼며 깨어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지를 찾는다. 어제부터 처음으로 ‘긴 바지, 긴 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덥다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니.. 아 ‘긴 팔, 긴 바지’의 진정한 가을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습기 없는’ 시퍼런 하늘을 유난히도 올해는 내가 기다렸는데 야속하게도 이제는 지겨운 ‘열대성 대기’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갑자기 나타난 Michael이란  남자 이름을 받은 허리케인 hurricane이 열대성 습기와 강한 바람을 몰고 FloridaPanama City Beach 쪽을 강타하고 무서운 속도로 이 지역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메트로 아틀란타 지역은 ‘반가운 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영향이 없는 듯 하다.

 

아틀란타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tropical storm Michael

 

몇 주간 뜨겁게 마르고 있던 대지들이 오랜만에 단비의 맛을 보았던 어제 밤과 오늘 아침의 주변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는 느낌. 이번의 비와 바람이 올해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진정한 O. HenryThe Last Leaf 의 느낌을 한껏 주는 추위 속의 낙엽과 Halloween의 찬란한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어두운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바로 ‘피해 없이 내려오는’ 잔잔히 빗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last leaf clings to the bough, just one leaf..

 

¶  19차 레지오 사업보고: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업보고 business report’, 일년에 한번씩 지나간 일년간 레지오 단원으로 했던 활동 실적을 총집계해서 꾸리아 월례회의 때 발표를 하는 것으로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며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단원들이나 평의원들에게 별로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관행대로 하는 routine, 그저 해야 되는 것, 심지어는 귀찮은 것 정도로 생각되던 것이다.

이것이 올해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선 내가 발표를 하여야 하는 단장이 되었고, 어떻게 이것을 발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책임 소관’이 되었기에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들’이 ‘뛰었던’ 모습들이 서기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정해진 form’에 주로 ‘숫자’들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단장이 꾸리아 평의회에서 ‘보고 읽는’ 것이다. 읽은 후에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면 끝이 난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과정을 매월 겪는데, 어떨 때는 너무나 형식적으로 들려서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올해의 사업보고서 작성을 끝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전 해의 것과 비교해 보면 단원의 숫자가 반으로 감소했으니까 활동도 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보고에는 글로 쓰게 되어있는 ‘운영 상황’ 난을 통해 지난번 꾸리아 단장과 면담을 했던 ‘자비의 모후 명예회복을 위한 특단 조치’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실명을 쓸 수가 없지만 아마도 당사자 (2명의 미친X들) 들은 아마도 짐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흥미롭기까지 하다.

 

바로 전에 print된 ‘따끈따끈’한 레지오 사업보고서, 일요일에 발표될 예정.

 

이렇게 올해의 사업보고 작성을 매듭지으며 나에게 도대체 레지오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 보았다. 거의 8년 동안 뒤를 안 보고 달려왔던 것, 암만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기에 나는 나에게 매일 놀란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의미다.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오직 그분만이, 성모님만이 아실 것이다.

 

일요일에 제출, 발표할 레지오 연례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며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있는지 googling을 하던 중에 ‘보물’을 찾았다. 얼마 전 자비의 모후 Pr. 단장이 되면서 훈화를 준비하며 도움을 받고 있는 ‘레지오 훈화집’의 저자 ‘레지오 박사’ 최경용 신부님의 글을 발견한 것이다. 비록 2003년도에 발표된 것이지만 현재 나에게는 거의 모두 유효한 기사, 글이었다.

이 최신부가 쓴 ‘레지오 영성’이란 책도 언젠가 잠깐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이분이 로마에서 레지오 마리애 영성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레지오 마리애 박사 신부님인 것이다.

2003년이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가 처음 창설된 50주년을 즈음하여 당시의 대한민국 레지오의 현황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으로 지나친 신학적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설명한 것이 매우 인상적인데 이것을 읽으며 거의 모든 분석이 현재 내가 있는 ‘아틀란타 레지오’에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사업보고서의 특기사항이 거의 비어있다.”

올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 점을 보면 동감이 간다. 별로 ‘특기할 만한’ 활동이 없는 것이다.

 

 **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솔직히 간부는 고사하고 평단원들조차 입단 시키기 어려운 실정, 이것은 레지오 전체의 이미지나 단원들이 보여주는 ‘자질’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특정 지도 신부님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제도적 문제가 아닐까? 너무나 바쁜 사제들에게 레지오에 우선권을 두라고 강요할 사람이 없다. 다만 꾸리아 차원에서 지도사제의 관심을 유도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  “소 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대표적인 소 공동체는 ‘구역 모임’이 있는데 이들과 활동이 중복되는 것이 있을까?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특성을 활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 하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거의 전부인 현재의 우리들의 실정으로는 간부, 단원을 고사하고 신단원이 레지오의 정신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현재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꾸리아 차원에서 ‘시간과 돈’을 지속적, 제도적으로 투자하는 수 밖에 없다.

 

**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이런 ‘군대의 특성’이 무시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나는 일년 전부터 내 눈으로 보았고 그 여파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법에는 항상 예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법이 어겨지면 그 처리 결과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영적지도자, 꾸리아 밖에 없다.

 

**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신 단원 교육에서 제일 강조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레지오의 조직과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수없이 이런 사례를 목격했고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무너지고, 침체될’ 그런 것이었다. 현재도 나는 ‘주 회합 후 외식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을 매주 본다.

 

** “레지오 행동단원이 받는 혜택과 은총”

1. 개인 성화로 자신이 구원을 받고,

2. 주간 활동을 통하여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3.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며,

4.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 지고,

5. 군인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으며,

6. 따라서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되고,

7. 성모, 성령신심을 통해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고,

8. 활동을 통해서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게 되고,

9. 수많은 레지오 장례와 위령미사의 혜택과 은총을 받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위의 거의 모든 것들은 내가 받았던 것들이고 또한 창설자(프랭크 더프)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이하여

최경용 (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신부)

 

 

1. 시작하는 글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5월 31일에 아일랜드로부터 도입되어 올해(2003년) 50주년을 맞았다. 레지오 마리애는 외국에서 도입한 한국의 첫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레지오 마리애가 쌓은 공로와 업적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말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왜냐하면 레지오 마리애의 알맹이인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의 정신은 쇠퇴하고, 껍데기인 친목과 친교에 치중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이 얼마나 해이해졌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정신 회복에 지향을 두고 묵주기도 5억 단 봉헌운동을 펼쳤겠는가? 간부들과 단원들이 얼마나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에서 벗어나 있었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가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 회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까지 개최했겠는가?

지금은 레지오 마리애의 변화와 쇄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곧 창설자의 정신이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들을 짚어보면서 창설자의 정신에 비추어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오늘날 우리나라 레지오 마리애가 당면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크게 열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교육 문제, 규칙과 규율 문제, 지나친 친목,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단원 모집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각각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선교 실적이 낮아지고 있다. 이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주간 활동 의무를 다하지 않는 데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활동은 레지오 마리애의 본질이다. 레지오 마리애 주회합의 핵심은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이다. 주회합에서 묵주기도를 포함한 기도 시간보다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 

주회합의 3대 요소인 기도, 활동, 공부를 감안하여 주회합의 소요시간 기준을 한 시간 반으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쫓기듯이 주회합을 한 시간 이내에 해치우고, 곧바로 평일 미사에 참례하는 쁘레시디움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활동보고 내용과 활동배당이 빈약하다 보니 주회합을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내는 것이다.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연중 사업 보고서의 특기사항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특기사항란이 아예 공백인 쁘레시디움도 있다. 1년 동안 특기할 만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교본은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단원들이 모든 시간을 복무시간으로 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정신으로 복음화에 앞장서는 선교단체이므로 선교와 복음화 활동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본당마다 쉬는 교우와 거주 미상자가 수두룩하여 큰 문제가 되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는 이를 위한 사업을 점차적으로 연중 사업 계획에 넣어 본당과 교구 사목에 획기적인 업적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2)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저 평단원으로서 부담 없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장교가 되기는 싫고 사병으로만 머물겠다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 걸핏하면 레지오 마리애를 잘 모르는 신참 단원이 간부직을 떠맡게 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다. 모름지기 간부직은 성모님께서 직접 맡겼다고 여겨야 하는데도 그걸 모른다. 이를 순명 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잘못하면 쁘레시디움 전체가 잘못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의 운명은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장이 주회합에 자주 결석하거나 활동 계획서를 꼼꼼히 챙기지 않아 활동배당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든지, 단장 자신이 활동을 소홀히 하고 언행도 일치하지 않으면서 단원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든지,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사랑과 열성 없이 타성에 젖어있다면, 그 쁘레시디움은 얼마 안 가 존폐 위기를 맞게 된다. 단원들이 하나 둘씩 퇴단하기 때문이다. 단장의 결정적인 결함은 단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므로 그럴 경우 단장을 교체하여 물갈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땅에 묻지 말고 십분 활용해야 한다. 

 

3)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초창기부터 주회합에 사제를 영적 지도자로 모셨다. 레지오 마리애는 본당 사목의 협력기구이므로 대체로 영적 지도자들은 레지오 마리애를 사목적으로 적극 활용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제도와 규율에 따르면 영적 지도자도 쁘레시디움과 평의회의 당연직 간부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목자들은 자신이 간부임을 잘 모르고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 마리애의 간부라면 당연히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사목자가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따라주면 좋지만 그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의 지단과 평의회를 설립하고 해체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상급 평의회의 지시보다는, 주임신부가 직접적으로 지시한 사항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따라서 주임신부가 레지오의 간부가 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적 지도자는 주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여 묵주기도, 영적 독서, 까떼나, 선서 후 강복, 훈화, 회합의 마침 강복을 주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주임신부는 보좌신부, 수녀 등 대리자에게 영적 지도를 일임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참석한다. 쁘레시디움이 많은 레지오 마리애를 원활하게 관리하고 운영하려면 사목자가 꾸리아 간부 연석 월례회, 쁘레시디움 단장 연석 월례회를 개최하여 레지오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4)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레지오 마리애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활기를 잃고 침체되기 시작한 와중에 소공동체 운동이 일어났다. 물론 그 전부터 교회의 기반 조직인 구역, 반모임이 있었지만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조직이 더욱 강화되었다. 소공동체 교재를 통해 성서에 맛들이게 되고 구성원 간의 친목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본당 공동체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소공동체 운동은 모든 교구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소공동체가 없는 본당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전국 어느 본당이든 레지오 마리애가 존재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소공동체를 선호하는 본당 사목자들이 레지오 마리애가 소공동체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를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교회의 사명은 신자들의 성화와 선교활동이요,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도 개인 성화와 선교활동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마리애를 해체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 수행을 막는 것이며,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사목자는 본당의 소공동체 모임에 적극 참여하지 않거나 창설자의 정신에서 빗나가는 레지오 마리애를 바로잡아주고 본래의 정신을 되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협조를 통한 상생의 관계로 정립되어야 한다.

 

5) 교육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레지오 마리애의 일상적 교육에 해당된다. 교본공부를 위한 「교본 해설집」도 필요하고, 특히 「훈화집」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아무쪼록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의 노력으로 하루빨리 새 훈화집이 발간되어 영적 지도자와 단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주회합에서 하는 훈화와 짧은 교본공부만으로는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레지오의 양적 팽창에 질적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 실정에는 반드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단원들이 단장이나 간부직을 맡게 되는 실정에서 간부 양성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1990년에 접어들어 세나뚜스나 레지아 주관으로 ‘레지오 마리애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교육기간은 대개 매주 2시간씩 8-13주간이다(교구에 따라 명칭이나 기간이 다양함).

앞으로 세나뚜스 협의회에서 전국적인 레지오 마리애 교육 협의회를 결성하여 강사진을 폭넓게 활용한다면 레지오 교육에 획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6) 규칙과 규율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로써 군기를 확립하고 일사불란하게 운영된다.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의 힘으로 지탱하기 때문에 모든 단원은 선서를 할 때 “레지오 규율에 온전히 복종하겠나이다.”라고 서약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과 규칙은 교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각 지역마다 달라서도 안 되고 임의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교본에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규칙과 규율이 많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창설자의 의도와 관례를 감안하여 국가 평의회인 세나뚜스에서 결정을 하면 된다. 

규칙과 규율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법의 정신을 새롭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규율과 규칙에 집착하거나 문자에 얽매이기보다 탄력성, 융통성, 신축성을 갖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시대의 요청과 징표에 적응해야 한다. 마치 인터넷 시대에 인쇄매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레지오의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이고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중요시하셨지만 결코 율법주의자는 아니셨다. 그것이 바로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7) 지나친 친목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친목을 통한 단원들 간의 결속과 일치를 중요시한다. 창설자도 주회합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잠깐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단원들 간의 친목 도모를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끼리끼리’ 사귀지 않고 ‘고루고루’ 사귀기를 바란다. 그것이 창설자의 정신이다. 그런데 오늘날 끼리끼리의 사귐이 지나친 것 같다. 단원들에게 바라는 레지오의 이상은 신심과 활동, 친교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회합은 짧게, 친교는 길게’라는 구호가 생길 정도로 단원들이 회합과 활동을 소홀히 하고 친교를 더 중요시한다. 저녁에 주회(週會)를 마치고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뜻으로 형제들 간에 2차 주회(酒會)라는 말이 성행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자매들 간에도 비밀헌금 외에 친목을 위한 헌금을 별도로 갹출한다. 그리하여 레지오가 계모임처럼 끼리끼리 즐겁게 노는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있다.

단원들 간의 지나치게 끈끈한 정이 오히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을 좀먹고 공적인 일에 차질을 빚게 한다. 지나친 친목은 단원들이 공(公)과 사(私)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순명정신을 약화시킨다. 레지오 마리애는 결코 친교 위주의 오합지졸 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8)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레지오 마리애의 물질적 구제 금지 규정은 1921년 레지오 마리애 창설 주회합에서 결의된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자선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는 취지였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가 비록 빈첸시오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신적 자선활동 단체임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물질적인 자선보다도 영신적인 자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물론 레지오 마리애는 물질적 구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결코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레지오 마리애의 이름으로 비밀헌금을 사용하면서까지 직접적으로 물질 구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활동만 한다는 규정 때문에 단원들이 당장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때를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율법이므로 고쳐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모든 이에게 영신적인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므로 물질적인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며, 단원들이 레지오 안에서 사리사욕을 추구할 수 없다. 단원들끼리 계모임을 하거나 금전관계를 맺거나 다단계 판매 등의 상행위를 하는 것은 레지오의 순수성을 저해하므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레지오 마리애에 필요한 모든 경비와 자금은 오로지 단원들의 의무적인 비밀헌금에만 의존하며, 레지오 마리애의 기금은 성모님의 군자금이므로 레지오의 조직과 관리 운영, 사업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영적 지도자인 사목자는 레지오 마리애의 재정 문제만큼은 원래의 규정과 정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기를 바란다. 

 

9)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행동단원이란 사도직 활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단원을 말한다. 노인으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은 사도직 활동을 하지 못하고 기도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 부대가 아니고 기도 부대, 보급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활동할 수 없는 노인 행동단원은 협조단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목자와 협의하여 레지오 장례를 치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 장례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에서 통일된 규정과 기준을 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청소년에게도 매력이 있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미래 교회의 기둥이다. 그들의 단원생활은 공동체 의식 함양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귀중한 훈련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성인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는 청소년 쁘레시디움 운영과 육성을 조직 체계의 일부로 여겨야 하며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소년 레지오 마리애는 사제와 수도 성소의 못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본에서 창설자가 강조하듯이, 신학교에도 쁘레시디움이 있어야 한다. 한국 세나뚜스 협의회나 신학교가 있는 교구 평의회는 신학교 안에 쁘레시디움을 설립하도록 교섭하고 추진해야 한다. 과거에는 쁘레시디움이 있는 신학교도 있었다. 소년 쁘레시디움 출신 신학생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신학교 안에 레지오 마리애 지단이 있다면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양성소가 될 것이며, 교본공부 등의 학습활동을 통하여 레지오 마리애를 더 잘 알게 되고 기도와 봉사활동으로 성덕을 쌓고 영육의 건강도 유지하게 될 것이다. 

 

10) 단원 모집 문제

해가 갈수록 레지오 마리애 행동단원과 협조단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신자들도 입단을 꺼려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기존 단원들이 기쁨과 긍지를 가지지 못하고 마지못해 단원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단원이 됨으로써 좋은 점이 많고 은혜롭다면 레지오 마리애를 자신 있게 홍보할 수 있고 단원들을 더 많이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행동단원이 되면 과연 어떤 혜택과 은총을 받는지 알아보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개인 성화를 통하여 먼저 자신이 구원받고, 주간활동을 통하여 타인도 구원받게 함으로써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된다. 선교활동으로 한 명이라도 영세시키면 활동 대상자에게는 영신 생명의 은인이 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굳건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진다. 

그리고 투철한 군인 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역경도 극복할 수 있으며,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성모 신심이 깊어지고 성모님의 덕성을 본받게 된다. 또한 성령 신심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도록 인도된다. 단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면 할수록 신체적인 건강도 유지하게 된다. 레지오 마리애 생활을 통하여 선종하는 은혜를 입게 되고 레지오 장례와 수없이 많은 위령미사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며 은총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창설자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3. 맺는 글

지금까지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에 어긋나는 점을 짚어보며 해결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았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 대한 창설자의 소망은 첫째로, 단원들 자신이 먼저 성화하여 구원받는 삶을 사는 것이고 둘째로, 단원들이 성모님의 정신과 덕성을 본받아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는 삶을 살도록 이끎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이 목적과 소망을 달성하려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주회합을 통하여 기도와 공부로써 정신을 무장하고 활동을 배당받아 적극적으로 주간활동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창설자는 행동과 실천이 수반된 개인 성화와 성모 신심을 강조하였다. 그는 레지오 회합의 핵심인 사도직 활동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공부하며 친교를 나누도록 하였다. 따라서 행동단원(Active Member)이란 명칭을 활동단원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활동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런데 활동의 폭을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단원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먹고 즐기는 친교에 치중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창설자의 정신은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는 데 충성을 바치는 투철한 군인 정신이며, 또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성모님의 정신이다. 창설자의 정신은 참된 성모 신심의 정신이고 봉헌의 정신이다. 참된 성모 신심은 봉헌과 사도직 활동을 요구한다. 남미의 레지오 마리애 선교사 알피 램은 ‘레지오에 산다.’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말은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도 지키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은 창설자의 정신대로 사는 것이다. 단원들이 창설자의 정신대로 산다면 레지오 마리애는 다시 활성화되어 꾸준히 발전할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간부들과 단원들 모두가 자성하고 심기일전한다면 전성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75주년, 100주년도 기쁘게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목자료 –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2003년 10월호 (제 297호)

가라오케, Karaoke, ‘가라 오케스트라, 가짜 오케스트라’.. 참 준말의 귀재들, 일본아해들 말도 잘 만들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이라서 작지만 유용한 것들 잘도 만들었다. 밴드나 반주하는 악단 없이 노래와 율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sound system, 누가 마다하겠는가?  지나간 주일에는 이것과 연관된 일들이 두 번이나 겪었다.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었어야 하겠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첫 번째 case가 지난 23일 일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본당의 날과 추석잔치’ 행사 중에 있었던 audio system near-disaster 였다. 이날의 행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이 된 이후 제일 진을 빼고 신경을 썼던 것으로 ‘불참하자고 징징 우는’ mere mortal, member들의 등을 떠밀며 강행했던 ‘노래와 율동’의 공연이었다.

 

 

다른 구역들의 공연내용을 보면 거의 모두 ‘가라오케’ audio 로 100% 율동을 하는 것으로 이날 이들은 목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신나게 춤들을 추었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소수의 그룹은 ‘vocal’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microphone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에 속했다. 문제는 이날 sound system 을 맡은 ‘사목회’ (내가 보기에 ‘시로도’급)는 거창한 mixer를 포함한 wifi-youtube-karaoke 에는 시간을 썼지만 무대에 놓여진 몇 개의 microphone은 모두 ‘먹통’으로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미리 stage rehearsal을 했으면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때는 늦었다. 공연 무대에 올라가 악을 쓰고,  기타는 줄이 끊어질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라는 혹평, 결국 우리도 ‘율동’만 관객에게 전해진 셈이 되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 구역 총책임자인 나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미리 점검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구역조차 같은 문제로 고생을 했으니 결국은 무대 연출 총 책임자가 그야말로 책임을 질 노릇이 아닌가?

두 번째 가라오케 disaster는 3명이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목요회’에서 있었다. 이것은 사실 그 정도로 놀랄 일은 못되었다. 3명 중 한 명이 노래방에 앉아서 침묵으로 일관을 한 것인데..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가? 이날은 목요회가 모이기 시작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라 특별한 event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서 그 정도로 노력을 못 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날 비로소 나는 이 친구가 정말 심각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무슨 ‘파격적인 수’를 써야겠다는 자괴감에 빠진 그런 목요회 1주년을 보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나는 이런 것을 생각해 봤읍니다. 즉 하나의 글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인격과 비슷하다는 것 말입니다. 나는 글의 내용을 글의 생명으로 보았고, 그 내용을 이루고 있는 사건들을 글의 몸에 비교해 보았읍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문장화하는 표현을 한 인간의 옷에 비유했었고, 또 그 표현의 테크닉을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삶의 멋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를 생각해 봤읍니다. 남에게 호감을 주고 또 존경 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격과 좋은 몸매와 단정한 옷차림과 명랑하되 고상한 삶의 멋을 적절하게 가져야만 하듯이, 글이란 것도 그래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2쪽

 

어젯밤 거의 우연히 나의 손에 ‘잡힌’ 책, ‘존경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장편 서사시적 실화소설 ‘영원의 방랑객’ 을 ‘난독’하며 나의 눈에 들어온 ‘글에 대한’ 글이다.

 

“트렁블레 신부가 술잔을 들자 나도 술잔을 들어 축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날 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나는 감격해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학교라고는 왜정 시대 소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내가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그것이 곧 책으로 출판된다니 도무지 꿈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실감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3쪽

 

국민학교 출신, 문학적 수업은 물론 국어교육조차 제대로 못 받았던 이 ‘전설적’인 고 (종옥)마태오 신부님이 한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로 책을 쓰시고 출판1하기 전에 밝힌 ‘글이란 무엇인가?’, 한 문단으로 집약된 신부님의 ‘글의 정수 精粹’ 론 論이다.

‘진짜 글’은 ‘한 인간의 인격’이다. 내용은 생명이고, 내용 중의 사건들은 몸, 문장화 된 표현은 옷, 표현의 기교는 삶의 멋..  이것이 신부님이 생각한 글의 모습이다. 간단히 말해서 글이 글다운 멋을 지니려면 그 저자도 함께 멋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것이 아닐까? ‘못된 인간’이 쓴 글은 어쩔 수 없이 ‘못된 글’이라는 비교적 자명한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데, 이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자세는 그가 쓴 글에도 100% 그대로 남아있어서 가끔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이것을 읽고 생각하며, ‘나의 글’을 되돌아 보게 된다. 지나간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적, 공적인 나의 글 (개인 일기 diary 와 블로그 public blog)을 가끔 읽게 되는데, 어떨 때는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하고 부끄러운 감탄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좀 더 솔직히, 자세히..’ 라는 아쉬움도 많다. 특히 ‘자기 도취, 자기 연민’이 대부분인데, 한마디로 ‘삶의 사연들, 그것도 감동적인..’ 이 절대로 결여되어 있다. 이래서 글의 본질에 내용을 이루는 ‘사건’들을 잘 창조하고 이끌어 나가는 저자의 삶이 절대로 중요함을 느끼고, 위의 고 마태오 신부님은 그런 면에서 거의 신화에 가까운 ‘감동적 삶의 연속’을 경험하셨기에 ‘글의 정수’의 표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

열대성 기후가 아직도 섞여있는 2018년 초가을, 날씨 탓도 있지만 이렇게 나의 머리가 정리되지 못한 혼탁한 상태에서 우연히 다시 손에 ‘걸린’ 이 책 속의 ‘인간애의 표본’ 고 마태오 신부님.. 아직도 살아 계셨으면 당장 비행기라도 타고 가서 뵙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말을 그대로 일생을 통해 실천하신 고 마태오 신부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글로 표현이 되지 못한 생각은 진정한 생각이 아니다’ 라는 명언을 생각하며, 나도 좀 더 솔직하고 꾸밈없고 용기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습기가 사라진 진정한 가을하늘을 기다려본다.

  1. 프랑스어 제목: ‘모든 길을 신에게로’, 후에 출판된 한국어판 제목: ‘예수 없는 십자가

¶  가을은 도대체 언제, 어디에? 올해의 9월 초순은 유별나게 더운 느낌이고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나의 불평은 햇살 따가운 그런 것이 아니라 장마 뒤의 끈끈한 그런 날씨의 연속이라는 사실이다. 거의 매년 날씨의 느낌을 개인 일기로 남긴 탓에 나는 계속 작년 이맘때와 일일이 비교를 하는 ‘함정’에 빠진다. 작년의 9월은 Nine-Eleven (2001년 9월 11일)의 그때와 거의 비슷하게 바짝 마른 시퍼런 하늘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런 9월 초순을 기대하였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가 되었다.

이런 때, 즉 여름 같은 느낌의 9월을 느끼게 되면, 빠지지 않고 잊지 않고 떠오르는 9월의 날씨는 1968년의 9월 서울에 살 때의 기억이다.  연세대 2학년 2학기가 시작 되었던 때, 그렇게 재미있던 학교공부가 갑자기 시시하게 느껴지고 연세대 입구에 즐비한 다방에 앉아서 pop song에 심취되고, 그 당시에 시작된 어떤 학생 클럽(남과 여)에 거의 모든 시간을 ‘낭비’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철없는 듯 하지만 절대로 후회를 할 수 없다. 그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는 가장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때’ 였으니까.. 신촌 로터리에서 이대 쪽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클럽 뉴스’를 등사 service 하는 집에 부탁하고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때, 9월 중순 무렵, 엄청 더웠다. 바로 지금 내가 겪는 그런 날씨였다. 그 이후 나는 ‘더운 9월’을 맞이하면 그때 그 길에 있었던 ‘등사 service’1하던 집을 회상하곤 한다. 아마도 지금 같았으면 집에서 Microsoft Word로 편집을 해서 집에서 print하거나 email로 회원들에게 보냈을 것이지만.. 50년 전에는 이렇게 모든 것이 ‘느리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그런 시절이었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단어 hurricane, 이것도 꽤 기억에서 희미해 진 것이다. Global warming 과 함께 익숙했던 이것, 이것이 올해는 생각보다 가까이 왔다. 바로 옆에 위치한 Carolina (주로 North)로 들이 닥친 것이다. Hurricane Florence.. 여자의 이름, 줄여서 Flo라고 했던가. Carolina 사람들은 무섭고 귀찮겠지만 안전한 거리에 있는 이곳 (Metro Atlanta) 에서는 그저 ‘시원한 북쪽의 공기’를 이곳으로 보내주고 시원하고 잔잔한 비나 좀 많이 뿌려주기를 바랄 정도다.

 

¶  2018년 9월 8일, 끈끈한 구름 속으로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대단한 9월 초, 올해의 9월은 작년의 그것과 이렇게 다른가… 작년의 daily (personal)  journal을 보면 습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파란 초가을의 풍경이 생각이 나는데.. 비까지 그친 날씨 아래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올해의 backyard는 그렇게 예쁜 모습이 아니다.

오늘은 사실 교회력으로 ‘성모님의 탄생축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침미사를 거르게 되었다. 큰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귀중한 아침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싶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 뿐이다. 사실 이런 아주 작은 유혹들에게 넘어가면 결과는 예측불허다. 경험을 통해서 어찌 모르랴… 관건은 이 작은 유혹에서 더 이상 후퇴를 안 하는 것이다.

달력을 앞뒤로 보니 내주 화요일이 9월 11일… 2001년 9월 11일… 나인원원… 갑자기 몸이 움츠려 든다. 기분이 갑자기 나빠지고 쳐진다. 어느 누군가 안 그럴까? ‘그 당시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라는 질문이 나에게 떨어질 듯한 기분을 느낀다. ‘악의 실재’를 처음으로 체험한 날을 어찌 누가 잊겠는가? 기분이 또 쳐진다.

  1. 당시에 print물을 copy하려면 거의 등사란 것을 해야 했다. 복사기(copier) 가 없거나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Peaceful, serene Fort Yargo State Park

 

Workshop at Fort Yargo: 이런 색다른 workshop 에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언제였을까? 암만 머리를 굴려도 이런 모임에 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Workshop이니까 무엇을 배우러 간 것인데, 특색은 하룻밤을  Fort Yargo State Park resort cabin에 20여명 이상의 가톨릭 신자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놀고, 나누고, 배우는’ 그런 것으로 끝나고 난 지금도 사실  아직도 머리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이’구역장 workshop’ 은 2018년도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구역장들이 신부님, 사목회장단 들과 모여서 어떻게 성당을 구역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운영을 하는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좋은 기회인데, 특별히 나 같이 ‘경험이 전혀 없는 구역장’에게는 시기적으로 적절한 모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귀찮다’ 라는 외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 이 칠십의 나이에 전혀 모르는, 그것도 대부분 나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그것도 하루 밤을 자면서.. 그것도 신부님, 자매님들도 같이… 우아~ 싫다, 갑자기 귀찮아진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역시 ‘레지오 성모님에게 등을 떠밀려’ 각오를 단단히 한 자세로 이 모임을 받아들였다.

 

Cabins at Fort Yargo

Fully nicely furnished cabin interior

 

1박 2일 예정의 이 workshop의 첫 날(밤)은 사실 친교(나눔과 여흥)로 거의 밤잠을 설칠 정도였는데, 서로 잘 모르는 구역장들이 친숙해지려면 이 방법도 좋을 듯 했다. 이 친교가 끝나고 난 후에는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날 밤 여흥 순서는 예측대로 노래방에 간 듯한 느낌이었고 가끔 신부님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날 전에 듣던 대로 신부님의 기타 style을 목격할 수 있었다. Strumming이 상당한 수준급이었고 노래의 chord는 거의  암기한 듯 했다. 그러니까 혼자서 기타를 많이 치시는 듯 했다.  모든 사람들, 돌아가며 mic 를 잡고 신들린 듯 가라오케 노래, 춤을 추었다. 나의 차례가 오자 난감한 나에게는 역시 몇 곡의 익숙한 노래와, 통 guitar밖에 없었고, 신부님 기타를 빌려 70년대의  ‘젊은 연인들’을 불렀는데 갑자기 바뀐 70/80 style 노래의 느낌에 모두들 놀란 눈치였지만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칠순의 나이에 ‘젊은 연인들’을 부르는 것, 웃기는 것 아닌가 하는 어색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교회에서 구역의 의미와 운영에 대한 심도 있는 workshop이 진행되었고 나는 이때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많은 조언, 경험담, 해결책 등 을 접할 수 있었다. 나에게 당장 떨어진 우리구역 운영에 대한 것이라 실감나게 곧 써먹을 수 있는 각종 tip을 얻은 셈인데 이것으로 비록 밤잠을 거의 못 잔 피로감은 엄습했지만 참가하길 너무 잘했다는 안도감으로 위로를 받았다.

앞으로 나는 ‘경험이 전혀 없는’ 신 구역장으로 20명 내외의 구역식구들을 이끌고 본당의 날 행사에 참가해야 하는 ‘무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다.

¶  레지오 ‘연 年’ 피정:  안정호 이시도르 예수회 신부님이 지도한 2018년 레지오 연 피정이 “그리스도 내 안에 형성될 때까지 성모님과 함께!” 라는 주제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3일 동안 있었다. 처음 이틀간은 레지오 단원을 위한 것이고 마지막 날 일요일은 전 신자 대상의 강론이었다. 10여 년 전 주임신부로 계셨던 안 신부님, 이날 환영의 열기를 보니 정말 대단한 인기였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지난 달부터 피곤한 나날을 보낸 우리에게 이번 3일 피정 스케줄은 사실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솔직히 말해서 피정의 ‘강론 부분’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랜 전에 경험한 안 신부님의 강론 스타일을 기억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점심식사 후에 듣는 강론은 아무리 흥미가 있어도 졸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우려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예상을 뒤엎는 결과적으로 너무나 만족스런 피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예전의 안 신부님이 아니었다. 그 동안 이 신부님 많은 영적인 경험을 거친 더욱 성숙한 사제가 되어 있었다. 믿음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힘찬 강론에 간간히 ‘이상하지 않은’ 유머러스 한 일화들.. 어찌 일초라도 졸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레지오 단원들을 조준 겨냥한 심도 깊은 ‘경고’는 최근에 힘이 빠지는 듯한 일반적 레지오에 대한 장래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현재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소속 레지오가 겪고 있는 ‘실존위기’를 의식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timing이 아주 정확했다. “레지오 단원들이여, 깊은 잠에서 깨어나라” 는 것을 현대 사회심리학적인 각도로 재 조명한 강론은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명강론이었다.

 

¶  YMCA, YMCA!  오늘 오랜만에 YMCA gym엘 갔다. 무언가 생활이 정상 routine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정확하게 얼마만인지는 전혀 idea가 없다. 달력을 보니 (요새는 달력을 안 보면 전혀 알 수가..) 지난 달 23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2주가 넘게 우리는 운동을 못한 것이다.

보통 일주일에 평균 2~3 번 정도는 가는데 꽤 오래 쉰 것이다. 매년 여름이면 사실 가끔 ‘우리도 쉬자, 방학이다’ 라는 기분으로 쉬기도 하고 YMCA swimming pool을 deep cleaning한다고 해서 쉬기도 했지만 2주 이상 쉰 기억이 없어서 이번은 예외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 (1) 너무나 바빠서, (2) 너무나 피곤해서..  하기야 바쁘니까 피곤한 것이지만 이번은 조금 그 정도가 심했다.

장례식, 레지오 점심봉사 이틀 중노동, car maintenance service trip, 이목사님 부부 외식, 거기다 3일간 레지오피정, 1,000차 레지오 주회합 기념 주회.. 와~~ 이 정도면 우리 나이에서는 피곤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운동을 너무 오래 쉬는 것은 피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 쌓이게 한다는 것도 이번에 깨달았다.

 

¶  자비의 모후 1,000차 주 회합: 이번 주 우리 성모님의 군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가 드디어 1,000차 주 회합을 맞았다. 일주일씩 모이는 주회합 1,000차.. 일년이 52주니까, 거의 20년의 세월이 아닌가? 내가 입단한 것이 8년 전쯤이니까 그 이전에도 12년 여의 역사가 있었다니 참  장구한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다.

이 레지오의 운명은 사실 보장된 것이 없다. 언제고 문제가 있으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 비록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삼고 있지만 일시적 인간의 방해공작으로 깨질 수 있다. 지나간 8년 동안 내가 겪었던 ‘해체 위기’는 3번 있었지만 작년 8월 말의 ‘더러운 사건, 일명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 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자비의 모후가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자비의 모후 가장 빛나는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몰랐다. ‘악’의 치명타를 견뎌내고 일어섰고 감격적인 1,000 차 주 회합을 맞은 것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간단하게 미사예물 정도 봉헌하는 것으로 끝낼까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의도적 과시 誇示‘를 위해서 ‘외부인사’를 초청하고 그들과 함께 기념 주 회합을 하고, 미사가 끝나고 근처 화식집 ‘만천홍’에 가서 푸짐하게 회식하며 기념 주회를 끝냈다.  이날 초청된 ‘인사’는 자비의 모후 창단 간부단원, 내가 입단 할 때의 단장, 부단장님 등이었는데, 이때 창단 시절의 얘기들도 듣기도 했다. 꾸리아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축하 떡도 보내주고 1,000차 기념 banner도 제공하였다. 아마도 ‘너무나 어려운 위기를 넘긴’ 사실을 감안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한다.  하지만 작년에 당한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고, 최소한 나는 절대로 그 사건을 잊지 않을 것이다.

 

¶  Waning Summer, already? 오늘 이른 아침 일년 365일 매일 하는 대로 바로 전에 켜진 전깃불 (6시 30분에 켜진다)을 의식하며 아래층 내 서재로 내려오는데 기억에도 조금 희미한 ‘싸늘함’을 느꼈다. 서재로 가니 써늘함을 더한 듯 느껴지고.. 아마도 올 여름 시작되고 처음 맛보는 싸늘함이었던가? 긴 바지가 어디에 있더라는 생각도 스쳤다.

그리고 달력을 보니 8월 3일.. 어찌된 일인가? 8월 초밖에 안 되었는데. 그리고 생각하니 며칠 전에 노오란 school bus가 아침에 동네를 오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이들이 집에 없어서, 학교들이 개학을 하는 것도 잊었나? 그렇구나.. 올해의 여름도 서서히 물러가는구나.. 한 계절이 서서히 또 물러가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아마도 비가 며칠 동안 계속 내려서 태양의 열기가 땅에서 거의 사라진 결과로 이렇게 싸늘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열기는 돌아오겠지만 며칠 뒤는 입추, 그 뒤로 말복이 가까워오고.. 한마디  올 여름도 서서히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의 그림을 상상하는 것, 이 시점에서 그렇게 조급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다.

 

 

¶  장마 단상 斷想: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가끔은 폭포수 같이 퍼붓는다. 비를 워낙 좋아하는 나지만 어떤 순간에는 조금 겁이 난다. 혹시 우리 집에 홍수가 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우리 집은 우리 동네에서 낮지만 언덕 비슷한 곳에 있기에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런 억수, 장대배가 며칠 째 내린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꽤 내리고 있다. 가끔 보슬비로 변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린다.

반세기전 나를 낳아준 어머니 대한민국에서 경험했던 장마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른다. 요새도 그곳에 장마라는 것이 있을까? 50년이면 기후 system도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들리는 얘기로 예전보다 조금은 더워졌다고 한다. 거의 ‘아열대성 subtropical’ 이라던가… 속으로 ‘설마’ 하는 생각도 든다. 기억에 7월 초부터 시작되었던 기억, 폭우가 쏟아지는 것보다는 그저 ‘구질구질’ ‘오락가락’하는 것만 두뇌 기억세포에 남아있다.

요새 이곳의 ‘장마’, 이것이 진짜 장마가 아닐까? 그 옛날 ‘장마의 기억’에 ‘남태평양의 열대성 저기압’ 어쩌구 했는데 이곳은 ‘멕시코 만의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뀐 것 뿐이다. 그 옛날의 장마는 젊었던 20대 초 혈기에 답답한 나날들이었다. 유일한 ‘밖의 휴식처, 다방’ 이라도 가려고 밖으로 나가려면 ‘구질구질’한 시내버스에 시달려야 하고, 조금 더 신나는 도봉산 등산도 비 속에선 너무나 처량맞은 것이다. 조그만 나의 온돌 방에 누워서 무언가 하려면 없는 것 투성이.. PC, 인터넷, smart-phone, cable TV.. 비슷한 것은 고사하고 cassette recorder도 희귀하던 시절, 그저 유일한 것은 흑백TV와 radio, Stereo recorder player정도로 정말 만사가 simple했던 시절. 하지만 나이 탓에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즐거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렇게 반세기를 뛰어넘는 두 종류의 장마를 비교할 수 있는 것, 역시 반세기를 뚜렷하게 비교할 수 있는 나이와 능력을 가진 사람만의 특권이다. 이렇게 세상은 공평한 것이다.

 

¶  Depression? 며칠간 우울한 느낌의 횟수가 부쩍 늘어간다. 느낌뿐이 아니고 육체적으로도 피곤함의 횟수가 잦아지고.. 결과적으로 매사의 능률은 떨어지고 기쁨도 횟수도 같이 떨어진다. 왜 그럴까?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코앞에 다가온 것들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있었나?

예를 들면 지난 주말 이틀 연속으로 레지오 점심봉사에 매달렸던 것은 피곤했지만 보람을 느꼈지만,  ‘아마도’ 70의 나이에 조금은 무리였을지도 모르고 7월 중에 있었던 구역미사 준비 차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했던 것 등으로 피로가 쌓인 것은 아닐까?  혹시 골머리를 썩힌 것이 있었나? 7월 초부터 맡고 있는 구역장의 임무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닌가?

사실 처음으로 경험하는 group leadership은 보람 반, 고민,실망 반 정도로 진행 중이지만, 어느 정도 self-control에 단련이 된 내가 조그만, 사소한 걱정거리로 휘청거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걱정, 고민거리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있었다.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 나의 친구, 영혼의 짝.. Tobey가 내 옆에서 영원히 떠난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잠재의식 깊은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 이제야 인정을 한다. 충분히 나는 울지도 슬퍼하지도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문득 내 옆에 없다는 것을 의식하면 미칠 듯하지만 곧바로 감정을 덮어버리곤 했으니까.. 결론은 한가지.. 세월과 시간 바로 그것이고 슬픔과 눈물을 감추지 않는 그것이 올바른 처방약이라는 사실.

 

¶  Sushi Yoko: 스시 요꼬, 스시 전문집 이름이 요꼬라는 뜻일까? 알고 보니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본식당이었다. 요새 일본식당은 거의 비일본인들이 경영을 하는데 이런 집은 희귀한 case가 아닐까?  오래 전부터 Peachtree Industrial Blvd를 North로 drive하다 보면 바른 쪽으로 그 간판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동수)목사 부부, 이번에는 목사님의 제안으로 그곳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지난 3월 초 이후 처음이니 거의 5개월 만난 목사님 부부, 무언가 더 밝아진 느낌을 받았다. 이날의 대화는 조금 더 일반적인 신앙적, 사회적이 화제로 소화하기에 큰 무리도 없었다. 비록 개신교와 천주교의 대화지만 전혀 문제가 없다. 이목사님은 이날도 ‘귀향’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였다. 귀향이란 말, 참 매력적이고 감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생각처럼 쉬운 것일까.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좋은 것, 꿈일 수도 있지만 없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날 경험한 스시요꼬의 맛은 만족스런 것이었다. 스시도  ‘진짜’ 스시처럼 느껴지고 내가 처음 먹어본 나가사끼 짬뽕 (Nagasaki Chanpon)은 한마디로 색다른 부드러운 그런 맛으로 중국식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도 맵지 않은 그야말로 일본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과 비교적 가까워서 ‘값이 엄청 오른1‘ 한국식당대신 앞으로 이곳을 찾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 역시 가까운 곳에 있고, 실내가 운동장처럼 넓은 Bakery Mozart에 가서 못다한 이야기와 ‘붕어빵‘ coffee로 이날 즐거운 만남을 끝냈다. 다음 만나는 시기는 언제인가.. 아마도 하얀 눈이 연상되는 대림절 12월 쯤이 아닐까?

 

¶  Car Connex Time: 거의 한 달을 미루어오던 2009 Hyundai Sonata 100,000 mile checkup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 오래 전의 기억에 차가  100,000 mile이 넘으면 수명이 거의 다 되었다고들 했지만 차 만드는 기술이 발전해서 요새는 그것보다 훨씬 오래 탄다고 들었다. ‘멋진 차, 고급 차’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나이에 걸맞고, 안전한 그런 차에는 관심이 있다. 물론 우리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

현재의 차 Hyundai Sonata는 지난 9년 동안 우리 부부에게 별로 고장 없는 거의 완벽한 (transportation) service를 해주었다. 우리는 ‘효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Mr. Won (owner, master mechanic)은 우리 차가 비교적 ‘얌전하게’ 유지되었기에, 앞으로 몇 년간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다. 생각에 2~3년 정도 뒤 쯤에 새 차를 살까 하지만 요새의 새 차 값을 보니 장난이 아니어서 심각한 budgeting을 하여야 할 듯하다.

 

  1. 또라이 트럼프 무역관세 덕분에 엄청 오른 중국산 때문인가..

¶  서서히 길어지는 밤:   7월, 그것도 30일.. 허~~ 벌써 7월이 다 갔다는 말인가? 언제나 세월의 ‘가속도’에 놀라지만 이번은 그 중에서도 제일 빠른 느낌이다. 한 달이 거의 일주일도 안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기야 이번 7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말 제일 바쁜 그런 나날들이었으니까 빠른 느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무언가 머릿속도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채 지나간 느낌,  점점 한가해져야 하는 이 나이에 나도 조금 이해하기가 힘 든다.

이른 아침에 밖을 쳐다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아침이 전보다 조금 어두워졌다. 낮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밤과 낮이 같아지면 또 가을이 시작되는가? 또한, 그림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인데 오랜 만에 보는 시야였던가.. 아하! 날씨가 흐렸구나. 작열하는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서늘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거의 매일 code Orange같은 경고가 나올 정도로 공기가 메말랐던 나날을 보낸 것이다. 한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조금 그리워지는 7월말 중복이 지나가고 말복을 향한 본격적인 늙은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 다시 계절은 바뀔 것이고..

올 여름은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비가 자주 와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새로 설치한’ 2대의 에어컨, 이제는 하루 아침에 고장 나는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두 다리 쭉 뻗고 찬 공기를 만끽하니 더욱 시원한 느낌이다.

 

¶  레지오 점심봉사:  지나간 주말(어제, 그제)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점심봉사로,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이틀을 보냈다. 일년에 한번씩 레지오가 하는 점심식사 봉사팀에 우리가 포함되었는데 3년에 한번씩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 사실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봉사팀의 구성은 인원수가 워낙 적어서 (참가 3 쁘레시디움이 모두 최소한의 적은 단원을 가졌음)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꾸리아에서 ‘전폭 지원‘을 해 주어서 무사히 성공리에 끝을 냈다. 또한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레지오에서 이번의 봉사팀에는 의외로 형제님들이 그런대로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점심은 지난 6월 우리 구역 점심봉사 때 했던 ‘모밀국수’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100% 활용을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모밀국수 menu idea는 연숙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협조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번의 일, 우리는 2일 거의 full-time으로 일을 한 셈인데, 역시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들의 나이도 그렇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Moderation, moderation을 motto로 살아왔던 우리들, 이런 것들이 시험 case인가.. 한마디로 take it to the limit이란 Eagles의 노래가 생각날 정도였다. 이날 모든 일들을 마치고 귀가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아픈 후유증을 달랬지만 역시 나이 탓인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  1년이 가까워 오는 목요회:  7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 8시 반에 어김없이 우리 목요회 멤버들이 ‘궁상맞게’ 모였다. 다 늙은 남자 3명이 목요일 그것도 밤 8시 넘어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암만 그림을 예쁘게 그려보아도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모임은 계절을 몇 번 거듭하면서 조금씩 덜 궁상맞게, 더 예쁘게 탈바꿈을 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 같이 느끼는 것 또한 경이로운 사실이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모였던 것이 시작이었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무언 無言 속의 표정들은 ‘아마도’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명 모두 너무나 다른 사연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도전이 만만치 않다. 이런 모임에서 그런 문제들을 정면으로 풀어나가는 것,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화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로 2시간 정도를 보낸다.

살기가 너무 힘든 때에는 아무 말 못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의 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되어가고 이 모임은 확실히 우리에게 어떤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전부터 오랜 냉담을 풀고 귀향을 한 형제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모였을 때는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그런 모임이 되었고, 1년이 되는 9월에는 모두들 ‘무언가 기념식’이라도 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늦은 밤 헤어졌다. “친구들이여 우리 그날까지 열심히 삽시다!

 

¶  장례 예배:  장례, 연도 같은 연령행사가 뜸했던 요즈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음 訃音 을 듣게 되었다. 연숙의 이대 梨大 선배 김경자씨의 남편이 타계한 것이다. 이분은 1990년대 아틀란타 부동산업계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지신 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식이 뜸해지고 우리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사는 마리에타 우리 집은 1992년 초에 이분의 소개로 사게 되었던 사연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집 구경을 처음 할 때 서로 만났던 McDonald’s,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인데 갈 때마다 가끔 이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이분들은 개신교 배경의 집안이라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장의사 chapel에서 해서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천주교 장례미사와 너무나 차원이 다른 ‘간단한 예식’이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인의 막내 동생이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 전에 교리반 교사로 연숙과 같이 일했었다는 원선시오 형제였다는 사실, 이날 얼굴을 보니 사실 고인과 얼굴이 닮긴 닮았다. 나는 이 형제님을 잘 모르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운’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Take it to the limitThe Eagles

 

¶  Jim Beam & Charlie Chan: 근래에 ‘공적인 활동’이 늘어난 이후 느끼는 것은 바쁘고 보람된 일들 뒤에 ‘꼭’ 찾아오는 선물 같은 ‘심도 깊은 평화, 망중한의 텅 빈 머리’ 이것들 중에도 망중한 忙中閑의 기쁨 중에도 이 두 단어가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 집에서 있었던 구역미사를 위해서 liquor store까지 가서 사온 ‘양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Bourbon의 명품, Jim Beam이었다. 그때 ‘몰래’ 사온  세 가치의 cigar도 나의 기대를 자극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양주는 신부님 접대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로 거의 없어지질 않아서 그 이후 cigar와 함께 망중한의 즐거움으로 쓰였다. 사실 혼자서 즐기는 것이 되었지만 이럴 때 먼 옛날의 친구들과 어울려 마실 때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 지나갔다. 모든 즐거움 들은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것, Charlie Chan..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TV를 보면 그 당시의 nostalgic channel 역할을 하던 channel에서 이런 류의 TV drama가 있었다. 평생에 이런 Charlie Chan이란 말 조차 못 들었는데 그 옛날 (1940년대)에 어떻게 ‘짱께’가 주인공을 나오는 TV program이 있었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그것을 요사이 Youtube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록 범죄추리극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순진한 장면들 투성이.. 그러니까.. 마음 놓고 마음 안 상하고 ‘즐길 수’있는 그런 것, 특히 편히 쉴 때 이것을 보면 마음 속 깊은 평화까지 느끼게 된다.

 

Peace and joy with Jim Beam & cigars..

Peace with Charlie Chan time

 

  ‘사상 史上 첫’ 구역미사, 지나간 2주일에 가까운 동안 나의 머리는 온통 한가지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구역미사… 오랫동안 별 큰 느낌이나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체험했던 구역미사라는 것, 그것이 이번에는 완전히 개인적인, 가족적인 ‘큰’ 행사로 우리 집에서 집전되는 구역미사가 나의 코 앞에 다가 왔던 것이다.

우선 제일 큰 의미는,  우리 집에서 봉헌된 미사라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 집에 ‘사상 처음’으로 사제가 방문을 했다는 것에 있었다. ‘자기 집에서 신부, 사제 모시고 식사를 같이 했다’ 라는 주변의 말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때는 그런 것 솔직히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올바른 생활의 사나이’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가 편히 될까.. 하는 유치한 생각으로 살았던 때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유치한 생각은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사라지고 한번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라는 쪽을 나의 가슴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한번 모시자.. 라는 희망사항으로 바뀌었다. 신부, 사제가 어떤 직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열린 가슴으로 정확히, 올바르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첫 case가 바로 전 주임신부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었다. 결과적으로 모시는 계획은 유산되었지만 그 이후 나는 활짝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세계관’의 소유자로 살수 있게 되었다.

 

구역미사를 기다리는 우리 집의 living room view, 협소한 공간이지만 just right size..

 

이번 우리 집에서 집전된 구역 미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을 7월 초부터 인수하고 난 후 처음의 ‘큰 구역 행사’가 되었는데 이런 사실이 우리 집에는 기쁘긴 하지만, 그만큼 나와 연숙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생소한 우리 구역식구들에게 미사참례를 독려하는 중요한 책임으로, 연숙은 hostess로 신부, 구역식구들의 음식준비로 정신이 거의 없었다. 구역식구의 반 이상이 오면 나는 우선 성공한 것이라 미리 점을 치기도 했다.

어려움은 이런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 뿐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최소한 20여 년) 별로 ‘찾아온 손님’이 거의 없었던 우리 집은 이런 ‘큰 행사’를 치르기에 너무나 피곤하고 깨끗하지 못함을 알기에 생각보다 힘든 ‘육체적 노동’을 피할 수가 없었다. 지난 5월 말에 일단 구역모임을 한 번 경험했고 그 당시에 일단 ‘대강의 청소’는 했지만 이번에는 신부님과 총구역장까지 오게 되어서 가급적 ‘때 빼고, 광 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 이것이 아무래도 나의 나이에 무리였을 것이다. 비록 기쁜 마음으로 노동은 했지만 후유증은 상당했다.

 

  현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은 부임초기부터 병자성사에 동행을 하면서 가깝게 느꼈고, 온화함, 배려심 등으로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본당신부님으로, 이임하기 전에 한번 집에 모시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이날 다른 계기로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고,  우연일까, 아주 우연만은 아닌 듯한 생각도 들었다. 

미사참례 출석률이 예상을 넘는 2/3 정도가 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이번의 우리 집 구역미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집은 이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mainstream parishioner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부차적으로 나의 첫 구역장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사실, 우리 구역식구들과의 mutual chemistry의 ‘냄새’를 조금은 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앞으로 2년간 약속된 나의 구역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그런 것 아닐까…

 

구역미사의 bonus, 찬란한 수국의 향기와 자태.. 어떤 자매님의 선물이었다

 

¶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눈물이 나의 눈가에 다시 서린다. 슬픔인가 안도감인가 평화인가.. 상관없다. 더러운 눈물은 없으니까..  특히 지난 며칠간 나의 귀와 눈을 감싸는 듯한 나와 너의 message 처럼 느껴지는 말.. ‘내 영혼 평안해..’ 이제는 나의 ‘분신 分身’으로 14년을 살고 갔다는 믿음이 서서히 생기는, Tobey가 저 세상으로 떠난 지도 벌써 3주가 훨씬 넘어간다.

‘그까짓 개(새끼)가 죽은 것 가지고’ 라는 매정한 comment는 이미 들었기에 조심하려고 애는 쓰지만 정말 이 세상은 온갖 종류의 생각과 경험이 다른 인간들이 어울리며 산다는 놀라움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정 떨어지는‘ comment를 들으면 놀라움 보다는 실망감과 가벼운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런 ‘당연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

불현듯 ‘내 영혼 평안해’라며 요란하게 짖는 Tobey의 자태를 상상한다. 워낙 요란하게 짖는 그 녀석이 없는 요즈음은 그야말로 “piercing sound of silence”가 우리 집을 압도하고 있다. 이것, 정말 어떨 때는 미치도록 괴롭고 그립다.

 

It is well, Tobey.. you’re immortal in my soul…

 

 

 

Joy of Cigar & Coffee: 새로니가 Florida로 scuba diving 여행을 갔다 오면서 뜻 밖의 선물을 가지고 왔다. 상상도 못했던 것, Miami에서 사온 cigar와 coffee였다. Coffee는 이제까지 그런대로 선물로 많이 받은 기억이 있는데 cigar는 한마디로 놀라움이었다. 담배, 담배.. 담배… 담배란 나에게 무엇이었나? 가끔 얻어서 피우는 담배, 그것은 cigarette이지 cigar는 아니었다. 그렇게 ‘괴물 시’하던 담배를 큰 딸애가 사온 것은 ‘선물용, 그것도 cigarette가 아닌 cigar’는 큰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기억에 옛날에 cigar를 피워 본 적은 있었지만 한마디로 별로.. 라는 느낌만 받았다. 무언가 heavy하고 귀찮은 느낌을 주는 연기..  1990년대에 ‘공식적으로 끊은’ 담배 이후 ‘식구들의 묵인 아래’ 숨지 않고 이 선물로 사온 Romeo & Juliet 이란 Little Havana 산 cigar를 며칠 간 정말 맛있게 피웠다. 이것이야 말로 뜻밖의 ‘행복’이라고 느껴졌다. 곁들여서 사온 La Coladita coffee맛도 일품이었다. 아직도 piercing sound of silence가 감돌고 있는 우리 집이 갑자기 포근하게 느껴진다.

 

2018년의 6개월, 그러니까 정확히 절반을 벗어난 7월의 첫 주가 또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시간과 세월은 그렇게도 정직한 것일까? 어김이 없다. 절대로.. 절대로 시간과 세월을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우는 요즈음, 나는 경미 輕微한 우울감 憂鬱感을 떨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와 비례해서 마음속 깊은 곳 평화의 깊이도 함께 얕아진 것을 느낀다. 주원인은 물론 나의 분신 Tobey1가 거의 ‘갑자기’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간 것, ‘실존적 부재 不在’가 주는 공허, 고통이 어쩌면 그렇게도 괴로운 것인지.. 이렇게 세월은 공평한 것, 사람의 삶의 나날은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다.

그제부터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우리와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물론 새로니가 vacation차2 집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지만, 갑자기 조용해진 우리 집에 다시 개의 소리가 들리게 된 것, timing이 나쁘지 않았다. Tobey와 너무나 personality가 다른 Ozzie, 같이 머무는 것 나의 생각을 한 곳만 머물지 못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오늘도 한여름다운 여름 날씨에 그 녀석을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거의 10여 년간 Tobey와 같이 걷던 이 course를 이 녀석과 둘이 만 걸으니 다시 ‘없는’ Tobey가 그리워진다. 한 여름 날씨를 가슴으로 느끼며 불현듯, 갑자기.. 거의 20년 전 쯤 온 가족이 여름마다 갔었던 Florida Gulf coast,  Panama City Beach의 백사장이 떠오르고 며칠 동안 그곳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역시 ‘귀찮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덮쳐버린다.

 

나의 study에 언제나 앉아 있던 Tobey가 없어진 자리에 Ozzie가 졸고..

Tobey 없는 dog walk, 대신 Ozzie와 같이 걷고 playground에 눕기도..

 

어제는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 holiday.. just another holiday일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과연 미국이란 어떤 나라일까 새삼스러운 것은 무슨 조화일까? 거의 45년 가까운 동안 살면서 별로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이 없지 않다. 그저 하늘아래 그것도 대한민국과 반대편 쪽 바다에 걸친 거대한 대륙에 250년에 가까운 ‘자유 민주주의’ 전통.. 과연 이런 역사 기록을 가진 나라가 다른 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진다. 각종 문제와 싸우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곳은 이들이 금과옥조 金科玉條로 여기는 ‘헌법 constitution’에 목숨을 건, 용맹스러운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날 동네 본당인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에서는 Father Dan (Ketter)은 평상적인 homily대신 Declaration of Independence 전문 全文 을 읽었는데, 250년 전의 그 문장은 그리 옛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특히 첫 부분의 두 번째 문장은 정말 인상적이 아닐 수 없다. truth, equal, endowed, Creator, Rights, Life, Liberty, Happiness… 그 중에서도 Creator란 단어는 그저 장식용으로 쓴 것은 절대로 아닐 듯하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무언가 허전한 기분을 달래려 계획에 없는 barbecue 생각이 났고 거의 일년 만에 charcoal grille의 cover를 꺼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wood charcoal에 불을 부쳐서 barbecue보다 더 맛있는 ‘불고기’를 구웠다. 그래도 이렇게 7월 4일의 오후를 연숙, Ozzie와 같이 맥주, grille 로 보낸 것, 조금은 추억에 남지 않을까..

 

 

 

이날 밤은 다행히 비가 올 chance가 많지 않아서 불꽃놀이의 소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subdivision는 ‘전통적’으로 불꽃놀이 firework이 없었고 먼 곳에서 하는 것들의 소리만 듣곤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 앞집의 비교적 젊은 Josh가 주동해서 우리 집 바로 앞의 cul-de-sac 에서 firework을 했는데 비록 개인적으로 한 것이지만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우리 집의 개와 고양이들이 모두 겁에 질려 숨을 곳을 찾기도 했다. 매년 별 감흥 없이 이런 소리를 듣고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의미가 실린 ‘자유의 외침’ 같은 것으로 들린 것이, 나 역시 나이가 깊이 들었구나 실감을 한다. 앞으로 이런 ‘자유의 소음’을 몇 번이나 듣게 될까..

 지나간 주일(일요일)날은 예전 같았으면 한국성당에 아무 business가 없었기에 조금은 편한 일요일이었지만 이번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7월부터 2년간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을 맡게 되었고 첫 주일날에는 구역장회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직책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맡겨진 직분,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는 변함이 없다. 아마도 내가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내 인생의 후반에 더욱 깨닫는 것 중에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 있는데, 젊었을 때와는 사실 완전히 반대인 것이 재미있다. 2년 뒤 나의 임기가 무사히 끝나게 되면 나는 어떤 구역장으로 기록이나 기억에 남게 될 것이지 궁금하다. 

 

The United Stat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1. 우리와 14년 평생을 살아온 pet dog
  2. 이번에는 Mexico로 deep sea diving이라고… 허.. 듣기만 해도 으스스..

달력을 멍하니 보니 오늘은  6월 30일이다. 그러니까 2018년 6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6월의 나날을 생각하니 무언가 머리가  정리되지 못한 혼란스러움이 떠나질 않는다. Father’s Day가 있는 예년의 6월 추억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작년에는 온 가족이 gourmet hamburger 외식을 했던 기억도 있었다. 올해의 6월 달, 그것도 Father’s Day 전후는 아마도 최악이 아니었을까.. 올해의 이날은 나나 가족들이 거의 잊고 지나간 정도로 정신이 빠진 듯한 그런 것이었다. 물론 큰 이유는 가족같이 14년 가까이 우리와 살아온  Tobey가 거의 갑자기 우리를 영원히 떠났기 때문이다.   6월 달,  그것도 Father’s Day 후 며칠은 정말 잊고 싶기만 하다. 

이런 황량한 6월의 느낌은 오래 오래 나의 머리 속에 남아서 나를 우울하게 할 것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순간순간의 보람과 기쁨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것이 삶의 본질, 기본이 아닐까? 슬픔이 있으면 기쁨도 반드시 찾을 수 있는 것..

드디어 임명장을 받았다. 그것도 성당 미사 중에 받은 것, 형식적인 것이라도 나는 이제 신부님이 임명하는 20명 내외의 마리에타 사랑구역의 구역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도망 다니며 살아오더니 칠순의 나이에  많은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는 이 직무, 어떤 것일까? 그래.. 한번 해 보자.. 못할 것 하나도 없다.

비록 Father’s Day는 망쳤지만 의외로 6월 달 등대회 모임(60~70대 성당 친목회)은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잔잔한 기쁨도 있었다. 새로 사귄 교동학교 동갑내기가 회장으로 뽑혔는데 알고 보니 이곳에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자매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란 그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작은 보람이 있었다면 복잡한 머리를 싸매며 목요회 모임이 우리 집에서 모인 것이다. 전에 약속을 했었던 것이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매달 식당에서 모이던 것을 집에서 모이는 것은 사실 큰 변화를 주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별다른 ‘사고’없이 모임을 마쳤다. 내가 스파케티를 해 준다고 했지만 결국은 연숙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다. 나의 서재에서 편하게 wine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 것,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의 의도는 그들의 집에도 돌아가며 가보는 것인데…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그들의 얼굴을 읽는다. 시간이 걸리면 이것도 다 해결되리라..

미국태생 영국 시인 T. S. Eliot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그의 대표적인 시 詩 ‘황무지 荒蕪地, The Waste Land ‘에서 읊었던가.. 아~ 나에게 4월은 ‘목련꽃 피는.. 항구에서.. 배를 타는’ 너무나 낭만적인 달인데 어쩌다 처참한 심정을 갖게 하는 ‘잔인한 6월’을 맞게 되었는가? 그러니까 나에게는 ‘6월은 잔인한 달’이 된 것이다.

머리가 띵~ 하고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작용, 반작용’을 되풀이하는 단세포 생물이 된 느낌이다. 어쩌다 이런 잔인한 일들이 한꺼번에 나에게 다가 온 것일까? 가슴 속 깊이에서는 계속, ‘이것이 정상적인 인생의 한 단면이다’라고 외치고 싶지만 ‘왜? 왜?’ 라는 반론을 억누를 수가 없다.

 

나와 Tobey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때..  올해 3월 경..

 

나의 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Tobey, 죽기 전 2주일 동안 어쩌면 그렇게 급속히 몸이 노쇠해질 줄은 몰랐다. 속으로 ‘설마 설마’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짧았던 고통의 시간들, 눈이 안 보이고 거의 걷지를 못하고 먹는 것도 힘들고..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몸이 망가져 가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죽음을 예견을 못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빨리 그 순간을 맞았다.

 

Tobey가 죽기 하루 전, 이때는 거의 죽은 듯이 잠만 잘 때였다. 고통이 없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고마워..

나의 손에서 마지막 숨을 쉰 후, 녀석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잘가라.. 잘 가~~또 보자~

 

뒤뜰에 묻으며 정성을 다했지만 그런 것 하나도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쉬던 그 순간, 나는 그 녀석의 귀에 입을 대고 수없이 속삭였다. ‘가가구구, 가가구구, 가가구구, 가가구구…’ 이것은 우리들 만의 ‘암호’였다. 사랑해 Tobey야.. 라는 암호였다. 믿고 싶다.. 녀석의 ‘아버지, 주인’이 너를 그렇게 사랑했으니 이제는 편히 쉬어라.. 하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잡으며 나는 관을 만들었다. 녀석의 덩치에 편히 맞는..

Tobey 야, 이제는 편히 쉬거라.. 창밖으로 너를 매일 볼게…

너의 덩치에 맞는 십자가, 너에게도 우리처럼 영생이란 것이 있기를..

 

땅 속으로 묻힌 후, 나는 무서운 허전함을 달래야 했다. 아무 것도 나를 위로할 수 없었다. 몇 일간 서재의 불을 거의 꺼버리고 어둠을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연숙에게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였다. 딴 일을 하며 그 허전한, 슬픈 순간들을 잊을 수도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나 drama video를 보며 그 순간들 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회용 반창고나 다름이 없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인 것이다. 정식으로 슬픈 시간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애도의 시간을 무한정 갖고 싶었지만 어찌 그것이 가능할까? 근래 들어 갑자기 많아진 ‘공적인’ 일들, 정식으로 신부님으로부터 구역장 임명장까지 받고, 곧 시작될 구역장의 임무들.. 이런 것들이 무섭게 머리 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조금씩 애도의 기간은 짧아지고..

제일 싫고 무서운 때가, 집에 들어올 때의 느낌이다. 녀석이 있었을 때, 우리의 차가 garage로 들어서면 Tobey는 무섭게 짖곤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녀석 미친 듯이 나의 입술과 뺨을 핥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집에 들어설 때 나는 piercing sound of silence 를 견뎌야 했고, 당분간 그럴 것이다. 이때가 제일 괴로운 순간이다. 무언가 없는 것,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설상가상… 와~ 왜 하필 이때에 30년 된 에어컨 system이 망가질 것이 무엇인가? 매년마다 올해는 이 고물이 돌아갈까.. 점을 치곤 했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제일 내가 어려운 바로 그 순간에 ‘죽어버린’ 것이다. 왜.. 왜.. 지금.. Tobey의 죽음과 에어컨의 죽음이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난 것, 우연일까? 결과적으로 우리 집의 아래 위층의 에어컨, heating system이 하루 만에 새것으로 바뀌었다. Carrier  system, $$$$ 은 예상보다 많이 들었지만 이제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시원함을 즐기게 되었다. 힘든 때에 우리를 도와준 2명의 에어컨 월남기술자들, 아직도 감사를 드리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더운 날 거의 ‘순식간’에 아래 위층의 전체 시스템을 교체하는 것, 놀라운 노력과 기술이었다. 젊은 ‘사장’ 기술자는 완전히 ‘장인’에 가까울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보조하는 나이 든 분도 묵묵히 도왔다. Big name contractor가 왔으면 아마도 며칠 걸리며 엄청난 비용을 요구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재수가 좋았던 경험이 되었다. 

 

수십 년만에 최신형 에어컨 Carrier 의 잔잔한 소음소리가 애도하는 느낌으로..

 

2018년의 6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 되었다. 하지만 나와 우리 식구들을 굳게 믿는다. Tobey, 정말로 사랑을 받았고 행복한 생을 우리 집에서 보냈다고.. 죽음을 앞둔 고통을 누가 피할 수 있으랴.. 나는 정말 후회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저 세상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라는 것,  영화 What Dreams May Come에서 Robin Williams 도 사랑하는 pet dog을 저 세상에서 반갑게 만났지 않았는가?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평생을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애도의 조화를 보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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