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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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zen land, Saybrook court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어두운 집 주변이 비교적 환하게 느껴진다. 잠결 속에서도 어제부터 예보된 대로 집 주변이 모두 눈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기예보의 timing은 거의 정확한 듯 보인다. 늦은 저녁에 차가운 비로 시작된 것이 시간이 가면서 눈으로 변했지만 그것이 진짜 news는 아니었다. 바로 wind chill 화씨 제로.. 기온이 수십 도 가 떨어지면서 불어오는 바람..

아침에 Tobey 를 밖으로 잠깐 내 보냈더니 pee pee 만 잠깐하고 곧바로 들어온다.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는, 햇빛은 찬란한.. 땅을 보니 이것이 바로 어떤 시인이 말했던, 凍土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정도면 오늘은 100% hunker-down day 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덕 길이 완전히 빙판이기 때문에 drive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이 빙판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일 아침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결국 오늘은.. 올 겨울 들어 2nd snow day가 된 셈이다.  비교적 따뜻하게 무장한 나의 보금자리에서 coffee를 마시며 relax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직업상, 사정상 꼭 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relax할 것 만은 아닐지 모른다.

 

라면, ramen, 삼양라면1.. 갑자기 그렇게 흔하고 익숙한 단어 ‘라면’이란 말을 생각한다. 라면이란 무엇인가? 내가, 우리가 알고 있는 라면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일본아이들의 ‘발명품’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렇게 라면이란 말과 역사를 생각하게 된 것은, 오늘 도라빌 순교자 성당 화요일 routine (Legion of Mary & Tuesday mass)을 마치고 들렀던 Super Hmart 에서 놀랍게도 잊고 살았던 라면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수십 년 전인가.. 거의 잊고 살았던 그 ‘눈익은’ 포장 design, 아마도 그 옛날의 그것과 같은 package의 모습이었다. Sapporo Ichiban! 삿포로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이라는 뜻인가.

 

 

이 추억의 라면을 며칠 전부터 생각했던 것은 연숙의 입맛 문제가 아니었을까? 요새 부쩍 피곤, 어지러움, 불면 등으로 stress를 받는 듯 하더니 불현듯 ‘맑고 simple한  맛의 라면’ 을 운운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조금은 구미가 당기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가끔 찾는 라면은 거의 ‘너구리‘ 라는 해괴한 이름의 라면인데 이것의 특이한 장점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 맛과 질이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경이적’인 사실이다. 그러니까… 가끔 ‘특이한 이름’의 라면 [종류가 수십 개가 되는..] 을 찾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너구리 fan’이었던 것이다. 이 라면은 특유한 해물 맛은 좋은데, 너무나 heavy한 느낌의 맛..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 너구리 라면에 대한 뒷얘기는 언젠가 youtube에서 보았던 ‘미역, 다시마’에 의한 너구리 라면의 비밀을 기억하기에 더욱 그 brand 를 믿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운 좋게 찾은2 삿포로 이치반(一番), 집에 와서 부리나케 2 cup의 물에, 3분 동안 끓여서 먹어보니.. 와~~ 그 특유의 simple, clear한 맛이 추억에 남은 100% 그대로였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라면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추억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40여 년, 연숙에게는 35년 전부터 시작된 이 맛의 추억인데.. 그 당시 미국에는 ‘국산’ 라면을 찾을 수도 없었지만 그것을 구한다 해도 그것과 이 삿포로 이찌방의 맛은 하늘과 땅의 차이, 흡사 양담배와 국산담배 질의 차이라고나 할까.

총각시절, 특히 학교, 특히 Ohio State 에 다닐 때 나는 Panasonic rice cooker에 이것을 끓여서3 먹는 것이 일용식일 때가 많았다. 양식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매일 그것을 먹거나 McDonalds‘ 같은 fast food를 먹던 시절 이 simple, clear한 맛은 글자 그대로 ‘천국’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다가 결혼 후에도 우리는 이 라면을 ‘별식’으로 참 자주 즐겼다. 그 당시만 해도 ‘국산라면’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이 라면은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역사가 되었지만, homemade 음식에 길들여져서 라면과는 거리가 생겼고, 근래에는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국산 라면’들, 어쩌면 그렇게도 specialized가 되었는지, 솔직히 말해서 자신을 갖고 고를 수가 없게 되었다. 요새는 아주 가~끔 너구리 라면을 ‘별식’으로 즐기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 classic of classic ramen이 우리에게 다가왔는지.. nostalgia가 깊게 배어 나오는 이 맛…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1. 1962~3년 경 고국에서 처음 먹었던
  2. small package만 있고 box 포장은 없다. Hmart website에도 이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운 좋게 잠깐 동안만 파는 듯 하다.
  3. rick cooker가 perfect ramen cooker라는 사실, 아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을 듯..

“… we are called to announce the Good News to everyone, but not everyone will listen. Once we’ve done our work, we should move on and not obsess about those who won’t listen. Why do some respond and some don’t? We don’t know, but that’s ultimately up to God.”Bishop Barron

 

오늘의 복음말씀에 대한 Bishop Barron의 짧은 강론 중에 나오는 ‘결론’이다. 복음, 기쁜 소식, 즉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 라는 이 소식은 물론 부활 예수님의 message지만, 결국 이런 ‘말’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복’을 하는가? 결국 이것은 개개인의 선택과 운명에 달린 것이고 너무 이 안타까운 사실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요지.. 참 간단한 결론이지만 어떤 시점에서 이들에 대한 ‘설복, 전교’을 중단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나 자신이 ‘저쪽에 속했던’ 부류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불과 몇 년)  그 당시의 나 자신을 생각해도 이 어려운 ‘선교’문제는 너무나 실감나게 느껴진다. 왜 그들이 그렇게 ‘초월적 이성 transcendental reasoning’을 무시하는 것 (stuffed self) 일까?  하지만 Barron 주교의 ‘not obsess’란 말씀, 결국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느님만이 알 수 있는 영역임을 인정하고, 너무 완고한 부류에 실망, 집착하지 말고, 다음 목표로 향하는 것이 현명할 듯 하다.

 

¶  성탄 12일: 성탄을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포근함과 설렘의 느낌들이 막상 성탄 season 을 맞으면 약간 피곤함이 느껴지는 바쁨을 느끼는 우리 집 yearly routine을 맞이한다. 오랜 만에 모이는 4명의 가족들이 ‘너무나 자주 만나게 되는 stress’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들이 클 대로 커버린 2딸들과 debating, arguing (even fighting) 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저 늘어지고 편해야만 할 듯한 때,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집을 들락 날락 하는 것, seventy years의 여파인지 귀찮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나의 천국인 ‘connected desk’ 에 앉아, 편히 쉬고 싶다라는 ‘Screwtape Letters (Screwtape & Wormwood)’ 의 대화만 나의 귀에 속삭인다. 하지만, 하지만 나도 smarter해 져서 절대로 그런 유혹에 질 수가 없다. 오늘 할 것은 오늘, 지금, 아니 더 빨리 하고.. ‘나에게 내일 아침이 없을 수도 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진리가 있다’ 라는 근래 나의 좌우명을 잊지 말자.

2017년 성탄절 12일은 새로니 생일인 1월 5일까지이며 (이 사실은 절대로 안 변함), 교회 전례력으로 성탄 시기는 1월 8일 ‘주님 세례축일”에 (이것은 매년 조금씩 변함) 끝난다. 그러니까 1월 9일부터 Ordinary Time 연중시기가 시작된다. 휴~~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지만 2월이 되면 전례력의 절정인 부활절을 향한 long march, lent 사순절이 시작되고..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 역정이었다. 이렇게 일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런 전례 시기, 지금 생각해보면 흥미롭기도 하고, 오랜 세월 이 전례력의 의미조차 잊고 살았다. 지금이라도 깨닫고, 의미를 두며 살게 된 것은 한마디로 은총이다.

 

올해의 성탄12일 전후를 나는 어떻게 보냈는가.. good, bad & ugly 골고루 있었겠지만 그래도 GOOD 부터 시작하고 싶다…

 

GOOD #1: Mother Nature!

성탄, 연말, 연시.. 이런 때의 날씨는 나의 psyche 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 다른 말로, 이 때는 cold & nasty한 것이 ‘정상’이라고 믿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season이 바로 right on! Average보다 밑도는 추운 날씨의 연속..  하지만 nasty하지는 않아서 drive하는 데는 no problem! 자주 볼 수 없었던 coat, overcoat, sweater, muffler가 모조리 선을 보인 perfect season이 되었다.

 

GOOD #2: Family Mass, 3-2-1 Happy New Year!

최근 들어서 ‘가족’이 함께하는 곳에는 ‘절대로’ 빠지지 말자.. 라는 결심에 알맞게 노력을 한 것, 조금은 결실이 보이는지.. 만족스러운 표정들을 느낀다. 나도 좋고 그들도 좋고.. 이것이야 말로 perfect win-win이 아닐까? Organized religion이 귀찮다는 아이들, 이것도 ‘유행’이 되었나..  이번에도 without fail.. 둘이서 Champaign toasting Time Square 3-2-1로 New Year를 맞이 했다. 나는 밤 10시면 꼭 잠을 들기에.. 이렇게 밤 늦게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 있지만 가끔 이런 예외도 알고 보면 보람 있는 것이었다.

 

GOOD #3(or BAD?): 새로니가 35번째 생일을 맞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사실 축복이요 은총이다. 외식을 즐기던 ‘아이’가 언젠가 부터는 우리 집에서 ‘미역국’ 포함한 한식으로 생일을 맞고 있고 엄마도 기꺼이 수고를 한다. 35년이란 세월은.. 사실 미혼임을 알면 ‘우아~ ‘ 할만 하지만 다른 쪽을 생각하면 변한 세상, post-modern culture 의 trend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이런 변화를 바로 우리 집 식구에서 보게 된 것.. 한마디로 mixed feeling일 수 밖에. 35살이면 새로니가 태어날 때 나의 나이가 아닌가? Natural Law란 것을 생각하면…

 

BAD #1: Freak Accident! 새해 들어서 반갑지 않은 손님, (small) freak accident는 예기치 않는 것 (하기야 accident란 것은 그런 것이지만) 하도 기가 막혀서 생각하기도, 쓰기도 싫지만 분명히 꿈이 아닌 현실이기에 기록에 남길 수밖에 없다. Handyman 기술 영역에 속하는 fixing garage door, 약해진 spring을 replace하려다가 나는 과히 높지 않은 step ladder에서 떨어지고 door와 wall사이에 pin-down (actually hung) 되어서 최악의 사태는..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사고를 당한 새해 벽두.. 100% 나의 실수로 생긴 것이니 100% 반성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UGLY #1: Limping Group: 내 시간과 노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 활동임을 부인할 수 없고 나는 이것이 제일 ‘자랑스러운’ 나의 일부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그것이 2017년 일 년 동안 ‘치명적, 비극적’인 상처를 연속으로 받았고 아직도 나는 ‘anger, rage‘의 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 인간들 (2명의 출발해서 지금은 4명으로 증가)’을 ‘죽이고 싶다’는 상상을 그렇게 오래, 심하게 했던 기억이 없었다. 그것이 ‘아직도’ 성탄과 새해를 넘어서면서도 조금도 차이가 없다. 이것은 정말 perfectly ugly, uglier, ugliest 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small) group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이 2018년 내가 생각해야 할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  Christmas Hallmark Movies: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도 예외 없이 ‘건강하고 건전한’, ‘가급적 의미와 message가 있는’ 영화를 ‘집에서’ 보게 되었다. Merry Christmas란 말조차 ‘인정없이 내 쫓는 인간들’도 이런 영화는 큰 무리, 생각 없이 즐기는 모양인지 Youtube에 가보면 Hallmark moves들이 적지 않게 모습을 보인다. 누가 이런 것들을 upload하는 것인지, 고맙기만 하다. 분명히 이들은 집에서 TV (cable, streaming)로 record를 해서 upload하는 수고를 하는 것인데.. 나에게는 그야말로 ‘God bless them all!’.  올해는 본 것 중에 두 가지를 기억에 남기기로 했다. 최소한 3번 이상 보았던 것, Christmas Solo,  Sound of Christmas 가 그것이다.

 

Christmas Solo: 어느 작은 고장에 사는 single dad, single mom과 그들의 두 teenager딸들이 그 지역 크리스마스 festival의 singing solo 에 뽑히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십대 특유의 갈등, 특히 ‘이혼한 가정’의 십대가 겪는 고민을 크리스마스 spirit으로 승화시키는 그야말로 멋진 classic, common sense finale 의 영화였다. 이 십대들의 고민과 우정이 그녀들 보호자들의 사랑과 이해에 융합이 되는 모습들은 한마디로 성탄절의 의미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Sound of Christmas: 작년 이맘때 보았던 Hallmark 다른 영화, The Twelve Trees of Christmas에 출연했던 2명의 main actor들이 다른 역할로 나온 이 영화는 작년 것과 거의 비슷한 plot과 background를 가지고 있다. 비슷한 plot: 작년 것은 New York city의 전통적인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을 ‘영웅적’인 여성의 노력으로 save한 것, 올해의 것은 역시 유서 깊은 음악학원을, 역시 용감한 여성의 노력으로 부동산 업자로 부터 구하는 내용이다. community의 전통적인 유산을 급변하는 상업적이거나 이기적인 단체로부터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탄의 정신이었다. 여기 출연한 두 main character들, 연기도 좋았고, 아주 깨끗한 인상의 배우들이었다. 내년에도 이 두 사람이 출연하는 Hallmark Christmas movie가 미리 기다려진다.

 

이제 2017년도 4시간이 채 남지 않았고, 밖에서는 은은히 firework소리가 들려온다. 올해 3-2-1 Happy New Year! 는 연숙과 둘이서 하게 되었다. 새로니는 New York의 친구 baby의 baptism에서 ‘대모’을 맡게 되어서 없고 나라니는 아마도 boy friend와 함께 보낼 듯하다. 대부분 서울에 사시는 친척들, 지금쯤은 그곳은 벌써 2018년의 아침이 밝았으리라… 근래에 들어서 연락도 잘 못하고 사는 것, 항상 나의 어깨를 누르는 듯 죄스러운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연숙아, 애들아, 새해가 되면 더 부지런히 연락을 하며 살면 어떨까..

TV에서 New York city, Time Square의 ‘apple‘ countdown을 보려고 부지런히 TV setup을 했다. 이것, TV를 안 보고 산 지 몇 년이 되었는지.. 분명히 Internet에서 볼 수 있겠지만 큰 화면에서 보는,  수많은 인파가 지켜보는 ‘진짜’ countdown의 느낌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며칠 전부터 북쪽 (Northeast, Midwest) 서서히 ‘남하’하는 cold wave의 여파로 이곳 아틀란타 지역도 오늘 밤부터 기온이 계속 내려가서 New Year’s Day인 내일은 낮의 최고가 32도 (섭씨 0도)라고…  우아… 춥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귀찮아서’ 피해오던 3-2-1, boom!, happy new year! Champaign!  Auld Lang Sygnmidnight routine 을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부활을 시킨 것, 너무나 잘한 것 같다. 이런 것… 솔직히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하겠는가.. 새해가 되면 70으로 진입하는 내 나이를 생각해보니 더욱 그렇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2017년, 되돌아 보니 아주 힘들었던 때가 우선 떠오른다. 그것은 정말 잊고 싶은 기억들… 하지만, 그 어렵던 순간들을 나는 blog에 모두 역사로 남겨 두었다. 그 추악한 인간들을 죽기까지 다시 보기 싫지만 역사는 역사인 것이다. 그 추악한 기억들을 남은 삶의 교훈으로 삼으며 앞을 보고 나아 가면 된다.

 

** 저를 직접이나 간접으로 아시는 분들께 새해의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만사형통 萬事亨通 하시고 건강하세요! **

 

Herman’s HermitsI Understand – 1965  

 

 

test, electrical first..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은 GE (laundry) washer: G154 에 문제가 생겼다. 예상치 않은 이 사고의 시작은 11월 초에 시작이 되었다. 한마디로 overfill 로 인한 아주 작은 flooding, 홍수사고인데, 물이 washing machine 밑에 조금 샌 것이 아니고 세탁기 주변의 방들 (부엌, dining room) 온통 ‘얕은’ 물로 뒤 덥힌 것이다.

다른 집에서 ‘대형’ 물 사고 사건들은 심심치 않게 들어왔지만 우리가 경험한 것은 사실 처음이었다. 다행히 빨리 발견을 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아마도 아래층이 홍수로 laminate floor를 모조리 갈아야 했을 뻔 했다. 

Washer를 자세히 살펴보니, 물이 밑에서 샌 것이 아니고 아예 washing bucket 위로 넘친 것이었다. 이런 사고는 내 눈으로 처음 보고 경험해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washing cycle중에 첫 단계인 ‘물을 채우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 되어서 water(supply) valve가 닫히지 않아서 물이 위로 넘친 것이다.

lower left: water level sensor with hose

아이들이 다 떠나고 우리 둘만 사는 집에서 세탁기에 문제가 생긴 것은 그저 조금 불편할 정도다. 빨래거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 내가 머리를 굴려야 할 성가신 일거리, 마음이 바빠오는 연말, 연시에 시간낭비는 아닌가? Appliance를 고친 경험도 적지 않고 사실은 마음만 편하게 먹으면 이런 일들은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 특히 electric, electronic, mechanical한 것들은 취미로 고치는 사람들도 많기에 나에게는 사실 ‘치매방지용’의 소일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놈’의 세탁기는 내가 잘 모르는 기계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평소에 이것, 세탁은 연숙의 영역으로 나는 거의 사용한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것 고치는 것을 배우는 제일 빠른 길은 관련된 Youtube video를 보는 것이다.  재수가 좋으면 바로 해답을 찾을 수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믿을 수 없는 불완전 한, 심지어는 가짜 해답들도 수두룩하다. 문제의 washer는 ‘서민용’ GE  model로 우리 경제수준에 100% 맞는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 좀 초라할지도 모르는..) 하지만 그렇다고 5년 만에 ‘small flooding 작은 홍수’를 선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Washing cycle의 첫 번째인, 물을 채우는 과정에서 water-level sensor의 기능이 fail한 것을 99.999% 확신했다. Youtube에서 본 repair video도 거의 모두 sensor를 replace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level sensor 를 급히 order해서 교체를 했지만  it didn’t work! 물은 예전대로 그칠 줄 모르고 세탁기로 쏟아졌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YouTube는 다음으로, timer를 replace하라고 나온다. 이것은 좀 비싼 것 ($60+) 이었지만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나로써는.. out of option! 너무나 실망한 끝에 나는 일단은 포기하고 말았다. 새 washer를 사던가.. 아니면 repair guy를 부르던가… 둘 다 매력적인 option이 전혀 아니다. 일단 포기하고 잊고, 추운 날씨로 별로 없었던 ‘빨래거리’ 를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그것이 거의 한 달이 넘어가고.. 이제는 나, ‘공돌이’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 이런 상태로 크리스마스를 맞이 할 것인가? hell NO! 이제부터는 engineer의 자세로 기본적인 것 부터 ‘조직적’으로 test해 보기 시작했다. 우선, washer의 기본 원리를 익히고, water-level sensor를 집중적으로 test해 보니… sensor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실제로 sensor의 기능을 manual mode로 세탁기를 돌려보니 문제 없이 물이 채워지면 다음 cycle로 넘어갔다.

그러면… sensor를 trigger 작동하는 mechanism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물이 채워지면서 가느다란 hose로 공기가 밀려 올라가서 sensor를 trigger하는 것인데 무엇인가 이유로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hose가 문제가 있는가?  그 값싸고 초라해 보이는 가느다란 hose가 무엇이 잘 못 될 수 있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로 그 hose의 중간 부분에 조그만 hole이 생겨 그곳으로 공기가 조금씩 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5년 밖에 안 되는 hose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대강 짐작은 되었다. 전에 한번 심하게 진동을 했던 때가 있었고 그때 그 hose가 hose guide pipe의 날카로운 부분 sharp edge에 찢긴 것이다.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닌가? 한마디로.. 재수가 없었던 case였지만 내 생각으로는 기본적인 hose guide, mechanical design에 문제가 있었다. 왜 보잘 것 없이 보이지만 ‘너무나 중요한’ water-level sensor에 관련 된 그 작은 hose를 guide하는 곳을 날카롭게 만들었을까? 진동이 심할 때 그것은 분명히 칼처럼 hose에 상처를 낼 것을 GE engineer들은 몰랐을까?

이런 실망의 연속, 우여곡절 끝에 무려 한달 반 만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크리스마스 즈음에 밀렸던 ‘작은 양’의 빨래, 주로 underwear,  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상처받았던 나의 ‘공돌이 자존심’도 다시 회복될 수 있었고, 조금은 더 깨끗한 underwear를 입게 되었는데.. 한 해를 보내며 조금은 안도감,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부수입으로는: 앞으로 이 washer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고칠 자신이 있다는 사실도 있다.

 

mother of truly stupid design: $7 hose!

 

 

호룡이와 함께, 서울 명동성당 옆 뜰에서, 1973년 초 봄에..

호랭아, 호랭아!  간밤에 호룡이(친구들이 호랭이라고 불렀던, 김호룡 金鎬龍 )를 꿈에서 보았다. 정말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그 녀석의 자태, 얼굴은 자세히 못 보았지만 아마도 우리의 ‘젊었을 때’의 그 모습이 아니었을까? 일찍 세상을 떠난 그 녀석의 ‘늙은’ 얼굴을 내가 기억할 리가 없으니까.. 왜 나타났을까? 50대 초에 떠난 그 녀석, 어찌도 나를 두고 그렇게 빨리도 갔단 말인가? 불현듯, 갑자기, 너무나도 그 녀석을 만나고 싶고, 보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초조함이 나를 엄습한다. 믿음이 있었던 녀석이니까.. 언젠가는 어느 곳에서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싶지만, 나의 믿음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꿈에서 깨어나며 아하.. 녀석은 이 세상에 없지.. 하는 자괴감보다는 안도감이 더 들었다. 꿈 속에서 이미 녀석이 인간적으로 나를 떠났기 때문에 엄청 슬퍼하고 있었다가 잠을 깨었기 때문이다. 꿈 속에서 그 녀석은 친구로써 나를 떠났던 것 같던데, 그 자세한 배경 상황이 깨끗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꿈 속에서 나를 슬프게 했을까?

녀석을 마지막으로 바로 옆에서 보았던 때가 1992년 여름이었다. 미국에 교환교수로 왔고 Florida로 가족들과 함께 차로 여행을 하다가 이곳 Atlanta를 들렀던 그때였다. 40대 중반의 우리들, 식구를 거느린 한 가장으로 다시 만났던 그때, 인생의 성숙함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던 그때, 우리는 어렸을 때의 꿈과 이상, 환상을 어느 정도로 ‘가감 加減’을 하며 살아왔었을까? 너는 끈질기고 치열한 노력으로 원했던 모교에서  ‘연세대 교수직’을 성취했지 않니? 꿈의 사나이, 목표의 사나이, 그런 네가 나는 항상 부러웠고 질투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우리들의 황금시절, 중앙고, 연세대 시절.. 전자기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진짜 송신기’를 만들었다는 너를 나는 참 부러워했고, 또 너는 혼자서 ‘진짜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지? 그래서 기계공학과에 간 것은 알지만 참 그 꿈은 진짜 꿈이었음을 알고 실망했던 것 나는 잘 안다. 중앙고 시절, 당시의 희망의 상징이고 목표였던 ‘미국과 세계’를 향하여 ‘멋진 영어 구사’를 목표로 영어회화 클럽을 만들고 주도했던 네가 아니었던가? 항상 숨어 지내던 나를 밖으로 끌어낸 것, 너의 영향이 아주 컸었음을 숨길 수가 없구나.

생각이 나이에 비해서 무언가 성숙, 조숙했던 너, 당시에 아마도 신앙적인 경험이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그것이 사실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주위의 친구들은 전혀 알 수가 없었지. 가족들의 영향, 아니면 우리가 모르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 아니면 네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 그 ‘자매님’ 때문이었나.. 당시에 나는 그런 기분과 배경을 알 수도 없었고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경험이었음 만 어렴풋이 짐작할 정도였지.

돌이켜 보던데, 너는 나에 비하면 ‘어른’들의 수준에 가까운 사고방식과 생활의 절제 훈련을 갖고 있었던 듯 하다. ‘좋은 목표’를 향한 치열한 접근, 노력, 투쟁… 아마도 ‘좋은 것’에 대한 너의 인생관은 이미 ‘초자연적’인 것이었음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구나. 나는 그것이 수 십 년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짐작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꿈의 영향인가..) 너의 생각이 나는 것,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다시는 너를 볼 수가 없다는 사실 이제는 모든 것을 ‘초자연적, 신비적’을 기대하는 나, 다시 어디선가 너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절대로 버리고 싶지 않다.

 

Vigil of Christmas,   올해의 성탄절은 작년과 다르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이 우리 집에 모이게 되었다. 우리들 4명과 나라니의 boyfriend까지 모두 다섯 명이 푸짐하게 holiday meal 을 즐기고, 밤 늦게 우리의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성탄 전야 미사엘 갔다. Roman Catholic  미사를 처음 보는 나라니의 boyfriend는 그런대로 인상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성당을 이미 오래 전에 떠난 우리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만은 예외로 이렇게 가족과 함께 하는 것, 현재로써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beautiful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예년과 같이 선물 교환을 하기도 했고 고르느라 애를 쓴 흔적들을 느끼기에 고맙기도 하지만 참.. 그렇게 이곳에서 오래 살았어도 이 ‘선물 thingy’는 아직도 ‘불편하고, 어렵고..’ 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책과 coffee나 tools 같은 것을 좋아하기에 비교적 쉽지만 ‘어떤 책, 어떤 커피,’를 주느냐가 골치 아팠을 것이다.

 

작은 딸, 나라니가 선물한 책 (작년에는 Pope Francis의 책이었다) 은 나에게는 의외의 title이었다. Pope Francis와는 느낌이 멀고, 아니 정 반대인 듯한, former Vice President Joe Biden 이 쓴 최근에 간행된 Promise Me, Dad 이란 책인데, 의외라는 느낌은.. 내가 근래에 들어서 아주 멀어진 사람들 중에 Joe Biden도 포함되었기에 불편함은 떨칠 수 없다. 같은 가톨릭 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위해 영혼을 판’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인상을 주는 인물이 바로 Joe Biden인데..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그 동안 몰랐던 것들로, 조금 다른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언니, 새로니는 나에게 요새 유행하는 듯한 wind jacket 비슷한 옷, 연숙은 나에게 ‘역시’ coffee 내리는데 쓰이는 gooseneck electric kettle을 선물로 주었다. 이제부터는 coffee pour-over할 때마다 조금 더 ‘섬세하게,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부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2006년 경, 내가 냉담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전 가족의 연례행사, Holy Family 본당에서의 ‘Carol sing-along과 자정미사’ (사실은 밤 10시 반)엘 갔으니… 아~ 올해, 작고 외로운 우리 가족 마지막 ‘공식행사’가 끝난 것인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서 이곳 Atlanta Metro 지역의 날씨, 한마디로 1971년 Clint Eastwood의 첫 감독 영화, play misty for me.. 에 뽀얗게 흘러나오던 曲 Misty가 귓가에 흘러나오는 느낌으로 mist, misty & misting의 연속 편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 아침에 drive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날들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늑하고, 멋진’  winter holiday  냄새가 하늘에 가득한 날의 시작으로 느껴진다. 

 

어제 아침 ‘평일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것이 몇 년 만인가.. Sherlock (집 근처의 liquor store)에 들렸다. 물론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으러 왔지만 사실은 나도 오랜만에 whisky같은 hard liquor의 혀끝 맛을 보고 싶던 참이었다. wine, beer같은 것으로 술 맛의 기억의 명맥을 유지하는 근래 들어서 나는 ‘양주’의 맛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 주로 wine아니면 local microbrewery beer면 대 만족이었기 때문에 whisky, vodka같은 ‘쎈 술’ 은 사실 나와는 거리가 먼 술들이 되었다.

하지만 이날 Sherlock 술가게에 들어서면서 나의 눈에는 ‘쎈~술’들만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그 혀끝 맛의 추억이 되돌아오고 오랜만에 한번 맛을 볼까 하는 ‘충동구매’ 의 유혹을 느꼈다. 선물용으로는 본인들이 좋아한다는 bourbon 중에서 조금 비싼 것을 산 것으로 쉽게 해결이 되었는데, 문제는 나의 것이었다. 추억에 남는 것들, Johnnie Walker같은 Scotch whisky 중에서 고를까..하다가 아하 이것들 나의 수준에는 조금 비싼 것이 아닐까 망설였다. 그러다가 나의 눈을 끈 것이 있었다. Canadian Mist, 그러니까 Canada 에서 만든 whisky 였다.

 

 요즘 같은 misty day에 캐나다 mist란 이름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가? 값에 상관없이 그것을 들고 나왔다. 나중에 보니 값도 ‘나의 수준’에 딱 맞았다. 올 추운 겨울 기분이 쳐지거나,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반대로 너무 기분이 좋을 때에 이것을 조금씩 홀짝거리면 맥주나 wine같은 술과 달리 큰 배탈 걱정 없이 멋진 기분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런 종류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1970년대 초의 명동 cocktail house 호무랑 의 추억을 더듬으며, 당시의 가족, 친구, 연인들을 생각할 것이다.

 

Hitchin’ a RideVanity Fare – 1970  

 

¶  Saturday at Monastery: 지난 토요일 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 학생, 교사들과 함께 Conyers, Georgia (east Atlanta suburb) 에 있는 Monastery of the Holy Spirit (간단히 Conyers수도원이라고 부르는) 를 방문하게 되었다. 몇 년째 (아마도 4+  년?)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는 ‘짧은 전통’이 되었다. 전 주임신부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교리반 예비신자들이 세례 받기 전에 꼭 수도원을 방문하도록 권고를 하셨음에 이 짧은 전통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수도원의 역사는 2차대전 무렵으로 올라가는 비교적 긴 것이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과 그 유명한 영성가 Thomas Merton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있다. 이 수도원을 창립한 member들이 Thomas Merton 신부가 있었던 Kentucky 주의 Gethsemane Trappist  수도원 출신들이었던 것이다.

근래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 The Benedict Option 을 염두에 두며 생각하면, 이곳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낯선 곳이 아닌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절과 비슷한 수도원’으로 언제나 포근함과 위안을 주기도 하는 곳, 원하면 세속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2013년 겨울, 나도 교리반의 교사, staff의 일원으로 예비신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고 그 외에도 레지오 피정 당시 며칠 머물렀고,  몇 년 전에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과 ‘자비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현재 주임신부님은 예비신자들의 수도원 방문의 의미를 잘 이해를 못하는 듯 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신부님들마다 수도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왜 그럴까? 하지만, 편한 거리에 있지는 않지만 일단 가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신비스러운 곳’에서 ‘보편적이고 장구한 역사를 가진’ 천주교의 냄새를 맡게 한다는 것은 크나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도자들과 피정 온 평신도가 함께 바치는 ‘낮 기도’ 에 우리 모두 경건하게 앉아서 오랜 만에 ‘평화의 신비’를 경험했고, 나중에 Abbey Store (bookstore, gift shop, small dining)에 모여서 맛있는 Publix sandwich, gourmet coffee (정말 향기 좋은 coffee였다) 를 먹으며 교사들의 ‘수도원 역사’ small talk과 각자 느낀 것을 share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천주교가 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마음 속으로, 이들 예비신자들, 내년 부활 때 모두 세례를 받게 되기를 간구했다. 이번에 나는 100% volunteer로 ‘따라’ 간 것이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가 오면 또 가리라 마음을 먹었던, 진정으로 ‘평화스러운’ 대림 2주, 토요일 이었다.

 

 

¶  마리에타 사랑반: 나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사랑반의 구역모임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꽤 오랜 동안 나는 이곳 참석을 못하며 살았는데 이번은 조금 예외가 되었다. 평상시 처럼 개인 집에서 모인 것이 아니고 바로 성당 내, 조그만 방에서 모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때 거대한 monster처럼 커져버린 ‘전 마리에타 2구역’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공식적으로 breakup이 되어서 ‘자비반, 사랑반’ 등등 같은 이름의 smaller group으로 나뉜 것도 이제는 몇 년째가 되었나? 우리에게는 조금 한 집에서 모이기에 편한 새로운 group으로 되었지만 그래도 무슨 높은, 숨은 뜻이 있었는지, 이곳엘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정도의 느낌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 없이 기다리는 것은 무리, 무리… 우리의 ‘나이’를 잊고 살았는지.. old boy의 수준에서 이제는 ‘명퇴 한 나이’의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나이의 신비가 이런 것인가?

두 곳의 본당[마리에타 Holy Family, 도라빌 순교자 성당]을 가진 우리에게 100% 순교자 성당의 구역 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는 무리인 듯하다. 현재의 사는 방식, 그러니까 status quo의 지혜를 버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런 우리의 자세가 남들에게는 아마도 그렇게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현재로써는 어쩔 수가 없다. 당분간, 어느 정도 이 모임에 참여를 하며, 어떻게 ‘명퇴’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이것은 나에게 결정하기가 참 힘든 문제다.

이날 성당 내에 구역모임은 우리와 자주 만나며 사는  ‘크리스’ 자매가 host를 한 것으로 총무님과 같이 맵시 있게 차려놓은 champaign 이 포함된 snack table 주위에서 담소를 즐겼다. 아마도 자택에서의 모임이 힘든 것을 이렇게 지혜롭게 해결한 것, 아주   지혜로운 idea였고,  현 총무 자매님의 의욕과 사랑으로 임무 수행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  Cumberland Mall: Holiday mall shopping.. 이런 글자만 보아도 머리가 벌써 복잡해지고 피곤해짐은 근래에 들어서 그렇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아니 꽤 오래된 기억에도 사람 많은 곳에서 shopping한다는 것, 즐겁지 않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시간낭비’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더 들어가며 이제는 거의 이런 것들을 잊고 사는 기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일년 동안 두 번씩이나 겪었던 ‘레지오 2명의 미친년 사건들’ 로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싶었다. 아니 그런 kafkaesque 들을 잊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무리해서 그것도 월요일 날, 새로니와 셋이서 비교적 가깝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곳, Cumberland Mall에서 아주 ‘정상적이고 전통적’인 shopping routine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께 이런 곳에 온 것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이런 전통적인 shopping, 이제는 시간문제일까… 그러니까, brick & mortar shopping experience은 Amazon(online) shopping으로  해를 거듭할 수록 약세를 보이고 있으니..  이날 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Cumberland Mall에서 먼 쪽의 중앙에 Sears라는 글자를 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반 세기 전,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 그것 중에는 Sears라는 글자도 있었기에, 세월의 무상함을 안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상전벽해 桑田碧海 라는 말 그대로가 아닐까? 당시 시골사람들처럼 순수하게만 보였던 ‘主流 백인’들만 보이던 미국’,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이날 ‘해야만 했던’ holiday shopping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니 어찌 내가 즐겁기만 하겠는가? Good Ole Day란 말이 이래서 생겨났구나, 하지만 이런 느낌은 세대구분 없이 ‘영원히’ 계속되어 갈 것이고 progressive, conservative의 duality도 영원히 계속되어 나갈 것이다. 이래서, 영원히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아닌, ‘절대로 안 변하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중의 지혜가 아닐까?

 

 

¶  Full House, 자비의 모후:  한 때 ‘레지오 미친년 사건’ 으로 치명타를 입었던 우리의 성모님의 ‘분대’, 자비의 모후가 너무나 오랜만에 full house를 맞았다. 나는 이것을 ‘재를 털고 일어난 불사조’로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다. dirty vermin 들을 St. Michael의 용맹한 도움으로 ‘요사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형제님을 불시에 천국으로 보낸 아가다 자매님이 자식들이 주선한 극진한 효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서 돌아오셔서 합류를 한 것이다.

이제는 그런대로 안정권으로 돌입한 우리 레지오, 절대로 절대로 신 단원을 ‘바보같이 받아들이는’ 실책은 피할 것이다. 단원의 숫자 그 자체가 이렇게 의미가 없게 느껴졌던 적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  연도, 장례미사, 장지동행:  아침에 예상외로 심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리는 천수 90세를 넘기신 젬마 자매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에 참석을 하였다. 장례미사에서 작은 딸의 생생한 조사가 조금 길기는 했지만 의미 깊은 것이었고, 우리는 궂은 날씨지만 마리에타 공원묘지까지 장지 동행을 했다.

며칠 전에 노령과 폐렴으로 선종을 하신 이 할머님,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분이 아니었다. 항상 변함없이 성당 제일 앞줄에 walker에 의지해서 힘겹게 들어오셔서 경건하게 미사를 보시던 분, 전에 거동이 덜 불편하셨을 때는 화요일 정오미사에도 오셔서 우리 바로 앞자리에 앉아 계셨고 인사도 나누었던 자매님이셨다. 그러다가 낮 미사에서는 더 이상 안 보이셨고 주일 미사에서는 꼭 뵈었고 불과 몇 주일 전에도 나오셨었는데… 역시 90세라는 나이에 폐렴은 초현대의 의학도 큰 도움이 안 되었는지.. 그래도.. 그래도.. 90세를 넘기셨으면 ‘천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머님, 80중반 까지 사셨지만 짧은 생은 아니었으니까. 

이 자매님은 연숙과 더 깊은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 할머님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던   African American 자매님이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의 신자여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고 이번 장례식에도 어김없이 와 주었다. 1972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셔서 자식들을 다 키우신 부지런한 젬마 할머님, 각종 ‘사고’를 당하시며 고난을 겪으셨지만 그래도 굳건한 천주교 믿음을 지키시며 말년을 인근 꽃동네에서 천수를 하셨기에 자식들도 우리들도 이 영혼의 천국에서의 복락을 믿는다.

 

 

¶  싸리골 점심 모임:  12월 21일, 바로 동짓날이다. 어느새 겨울의 시작이 되었는가? 이제부터는 밤의 길이가 ‘조금씩 조금씩’ 짧아질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2개월 동안은 ‘각종 일기 뉴스’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동짓날 아는 부부와 같이 따뜻한 김이 나는 듯한 기분의 장소, 바로 마리에타 지역에서는 희귀한 한국식당 ‘싸리골’ (Tofu Village Korean BBQ) 이란 곳이다. 왜 이 집이 싸리골인지는 모르지만 ‘주인의 취향’이 아닐까.. 아마도 옛날 고국의 시골에서 보던 싸리나무, 싸리문, 싸리로 만든 담장.. 등등이 그리워서 그렇게 이름을 진 것은 아닐까.. 이 작지 않은 식당의 주변도 아예 싸리나무로 담장을 꾸며 놓았다.

크고 작은 Korea Town들이 거의 모두 아틀란타 동북쪽 (Gwinnett, Forsyth  counties) 으로 몰리게 되면서 정 반대쪽에 있는 마리에타 지역에는 한국식당이 거의 사라지고 이곳 ‘싸리골’과 ‘일미’라는 두 곳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 두 곳은 business model이 Korea Town의 그것과 다르게, 거의 모든 customer들이 ‘비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아마도 이 두 곳은 큰 실책을 하지 않는 한 계속 ‘성업’을 할 지도 모른다.

이날 우리 둘은 2주일 전에 우리를 집을 초대해서 맛있는 salmon steak요리를 즐기게 해준 ‘마리에타 토박이’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함께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는 마음이 바쁜 이 시점에서 무리일 듯 했기에 이렇게 외식을 한 것이다. 이곳은 몇 개월 전에 심장수술을 했던 구역 가밀로 형제를 문병(봉성체)한 후 이곳에서 구역장님과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 같은 구역의 ‘오 안젤라’ 자매님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관계로 그 자매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기도 했었다.

나이가 엇비슷한 이 교우형제, 자매님 근래에 자주 보게 되고 알게도 되었지만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들의 가슴을 쓸어 내린다. 하도 해괴하고 요상한 ‘교우 인간’들이 주변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살았던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감과 경험, 그리고 높은 곳에서 주는 지혜를 총 동원하면 앞으로 더 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1. 이 당시 단원 중에는 그 유명한 레지오 난동사건의 주범을 포함한 3명의 빠가 온나, three Stooges 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지금은 그때를 영원히 잊고 싶다.

¶  지난 주 금요일, 저녁부터 ‘폭포처럼’ 쏟아진 함박눈으로 이틀 정도의 뜻밖의 snow days,  애들 처럼 즐거운 ‘공짜 휴일’ 이후, 곧바로 다 녹아버릴 것 같은 예상을 뒤엎고, 계속되는 추위로 사실 아직까지 눈이 남아 있는 곳들이 꽤 있다.  그러니까… 요새는 ‘환상적인’ 12월의 느낌 으로 그러니까.. 매일매일 white Christmas의 기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추위로 녹지 않는 ‘잔설 殘雪’

 

¶  등대회 망년회:  12월의 3분의 1일 지나가는 때, surprise heavy snow로 holiday 의 기분과 광경이 온통 머리 속에 가득 찬 시점에서 소위 말하는 ‘망년회’ party같은 것들이 더 돋보이는데, 사실은 꽤 오랜 동안 우리는 이것들을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 한마디로 stress받고 피곤한 경험들도 있고 그저 귀찮기만 했던 너무나 ‘세속적’인 모임들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생각의 각도를 비틀어 보았다. why not..이라는 간단한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올해라는 세월이 너무나 ‘피곤하다’라는 자괴감도 들고, 이런 부정적이고 감상적인 생각에 대응하는 antidote는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절대 조건이 있다.  만에 일이라도, 올해 두 번씩이나 당했던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2명)’처럼 ‘경고 없이 순식간에 괴물 monster 로 돌변할’ 가능성이 거의 zero에 가까운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내가 보아온 성당 60 plus 친목단체인 등대회는 큰 문제가 없이 보였고 지난 가을의 West Bank park 야유회에 이어서 연말 모임, 망년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대학 동창회나 다른 단체의 연말 party 같은 곳에 안 가고 산 세월이 짧지 않았기에 이런 모임이 생소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무슨 정해진 program이 없이 informal한 분위기였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사실 그 사람들이 ‘노는 데’는 주역들이어서 결과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Duluth Korea Town에 있는 ‘초원부페‘라는 곳에서 정말 푸짐히 ‘마시고, 먹고’, 아싸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disco풍의 춤과 노래하는 것을  넋을 잃고 보며 즐겼다. 나는 예의 ‘옛 노래’ 몇 곡을 불렀지만, 그들의 폭넓은 (특히 요새 노래들) 노래실력에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요새 노래들을 배웠는지..

 

 

¶  Film Noir time again:  작년 11월 경,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즐기는 방법으로 film noir가 나에게 다가왔고 아마도 작년의 holiday을 많은 시간을 이것, film noir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기억이다. 아~~~ film noir, glorious ‘black & white’ 느낌들… HitlerTojoevil empire를 ‘하느님의 정의로 무찌른’ victorious America의 전후에 ‘대량생산’ 한 이 film noir 영화들.. 당시에 어떻게 이것들이 대중들에게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70여 년 후에 이렇게 YouTube라는 ‘해괴한 매체’를 통해서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런 것을 즐긴다는 사실이 사실은 surreal한 느낌인 것이다.

작년에 YouTube에서 download한 film noir 영화가 거의 5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이 low-budget class여서 정성스럽게 보는 것은 좀 그렇지만 신경을 써서 자세히 볼 시간이 없기도 했다. 이런 영화는 보는 분위기가 잘 맞아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blustery, chilly, windy afternoon인데… 요새가 바로 그런 날들이었다. 거기다가 달콤한 mini donuts 과 아주 진한 gourmet coffee가 있으면 몇 시간이고 즐길 수가 있다. 힘들었던 올해였지만 이런 짧은 순간들이 그런 괴로운 추억을 지워주는 역할을 하니.. 한마디로 it’s fair라고 할까..

이 특별했던 회색 빛의 오후에 보았던 glorious black & white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내에서 ‘원자탄 비밀’을 찾고 있었던 독일의 스파이 망을 FBI에서 일망타진 하는 내용의 1945년 영화 ‘The House on 92nd Street‘ 였다. FBI의 방대한 수사망의 위력을 ‘선전’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당시에 ‘적국의 스파이’들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활동을 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좋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사실은 연기와 각본 등도 뛰어난 느낌의 좋은 영화였다.

 

film noir afternoon, 2017

 

The House on 92nd Street – 1945

 

 

¶  Earlier Tree: 얼마 전에 Vatican Youtube를 보니 성 베드로 광장에 거대한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음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성탄구유도 설치가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 교회(천주교)는 ‘세속적인 장식’을 가급적 성탄 며칠 전까지 ‘참으라고’ 권고를 하고 있었고 나도 몇 년 전부터 용기를 내어서 그 권고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떠난 이후 이런 ‘장식’들을 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고 나도 그 ‘취지’에 동감을 하기에 큰 문제도 없었다. 나아가서 성탄절 이후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세속, 상업’적 풍습이 그렇게 싫었는데, 12 days of Christmas, Octave of Nativity (of the Lord) 등등을 따르며 신년이 훨씬 지난 후까지 성탄기분을 유지하는 그런 것이 더욱 새롭고 느낌이 달랐다.

 

’tis time again, 2017

 

그런데 올해는 조금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올해 어찌나 무언가 힘이 들었다는 쳐지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불현듯 성 베드로 광장의 성탄 트리를 보며..  what the heck… 이란 느낌으로 garage로 가서 일년 묵은 성탄장식들을 끌고 들어와서 순식간에 lighted treed, wreath 를 세워 놓았다. 며칠 뒤에는 올해 새로 나온 twinkling snow flake light까지 사다가 장식을 해 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carol 을 틀어 놓았다.. 그러니까 예년에 비해서 거의 열흘 정도 이르게 성탄의 기분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규칙, 규정, 법칙’도 중요하지만 어떨 때는 ‘직감, 느낌’도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피곤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런 것으로 위로를 받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느낌은 아주 좋았다.

 

나의 office, study로 바뀐 첫 해의 성탄 wreath

 

 

깜깜한 이른 새벽, 저 멀리 있는 digital clock radio의 clock이 잠결에서도 조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 현재 시각이… 오밤중의 그것이었다. 속으로.. 내가 불면증인가.. 나이 탓인가.. 이 오밤중에 정신이 말짱하니,  다시 자려면 고생하겠구나 하며 창 밖을 훔쳐 보니 아무래도 나의 body clock은 아침 7시 정도는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digital clock을 보니.. 아하, it’s blinking! 언뜻, 밤에 ‘전기가 나갔었구나’, 그러니까 그 radio clock 의 시간이 틀린 것이다.

부리나케 아래 층으로 내려오니, 나의 body clock이 거의 정확했다, 7시 10분이었다. Backyard  mother cat 다롱이가 분명히 배가 고플 것 같아 먹이를 들고 부지런히 나가려고 하니 porch door가 쌓인 눈에 걸릴 정도로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Deck guardrail 에 가지런히 쌓인 눈의 깊이가 족히 5~6 inch가 될 정도로 근래에 드물게 보는 ‘대설 大雪’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내린 눈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우리는 어제를 snow day 로서 푹 쉬었지만 장례미사를 못 갔던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2014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이 마당에 이러한 결정은 현명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Sugarloaf mansion의 최형이 전화로 우리가 혹시 어제 ‘외출’을 했었나 부터 물었다. 3년 전 19시간 동안 I-258 freeway에서 밤을 지샜던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3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집으로 drive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 듯했다.  어떤 사람은 5시간, 우리 작은 딸 나라니는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일찍 시작된 rush hour가 끝나면서 눈은 엄청난 기세로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내리고 오늘 아침에도 내리고… ‘자, ruler’로 재어보니 정확히 6 inch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두 번째 snow day가 된 것이다. 그러면 내일은… 흠…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설마 내일까지도 문제가… 있다면… 성당과 저녁 5시에 있는 성당 60 plus 대 모임, 등대회 연말 파티 모임도.. 설마..

 

sleeting ,dusting Marietta

¶  깜깜한 이른 새벽 침실의 curtain사이로 들어오는 가물거리는 빛들, 먼 곳에 있는 집의 security light는 거의 항상 켜 있으니 익숙한 것이고 땅 쪽에서 올라오는 어두운 빛들은 무엇인가? 우리 집의 security light는 분명히 아니고.. 잠결에 생각이 났다. 아하… 오늘 이곳에 wintry mix advisory가 있었던 것. 그러면 혹시 눈, 하지만 절대로 하얀 색갈이 아니다. 거의 검은 색으로 반짝거린다. 그러면 비.. 그것도 아닌 느낌이다. 그러면… 아하.. sleeting or freezing rain?  다롱이(backyard cat)  아침밥 주러 밖엘 나가니.. 이건 sleet 도 아니고 freezing rain도 아니고 바로 그 중간이었다. 아니.. snow도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바로 올 season 첫 번째 winter storm warning…  2014년의 ‘snowmageddon‘ nightmare가 곧바로 기억이 난다.

The Mother of humanity

오늘은 Holy Day of Obligation (의무 대축일)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의 대 축일이고 미국에서는 ‘의무 대축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것인가? 현재의 상태 같으면 Holy Family Church로 가는 drive는 큰 문제가 없을 듯한데.. 그래도 현재의 날씨 상태로는 100% guarantee는 없다. 어쩔 것인가.. 하지만 곧 결정이 났다. 최악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연숙이 지난 밤도 예외가 아닌 듯해서 내가 결정을 내 버렸다. 성모님… 용서하소서..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오늘 낮에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로 알게 된 데레사 자매님의 시어머니의 장례미사와 연도가 예정되어 있기에 이것도 어쩔 것인가 생각을 하고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TAKE ZERO CHANCE..였다. 2014년 20시간 I-285에 묶여 밤을 새웠던 기억은 아마 앞으로 20년은 더 갈 듯한데 이제 고작 3년도 안 된 fresh한 것이니.. 다시는 이런 날씨에 I-285 drive는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 집에서 연도를 하는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장례미사를 참석 못하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린다.

 

Ave Maria – Composed by Michal Lorenc Performed by Olga Szyrowa, Moscow Symphony Orchestra (1995)  

 

¶  어제는 가까운 곳에 사시는 스테파노 형제님 댁, 점심초대를 받아서 예외적으로 격조 있고 맛있는 점심 회식을 즐겼다. 이 댁의 자매님은 알고 지낸 지 그런대로 되었지만 스테파노 형제님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인생철학’도 크게 유별난 것 아닌 듯해서 ‘안심하고’ 사귀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도 ‘해괴한 인간’들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어서 사람 사귀는 것, 이제는 겁이 나기도 하지만 ‘운과 지혜’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사람들’을 사귀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가 없다. 가 보니 3명의 자매님들도 오셨는데.. 모두 낯이 익은 분들이었고 한 분은 3년 전 세례를 받으신 아녜스 자매님, 우리 둘이 교리반 봉사를 할 때 예비신자 학생이었다. 그 당시 교리반 학생들, 세례 후에 많이 못 보게 되었지만 이 자매님은 그런대로 ‘가끔’ 마주치기도 했다. 멋진 table setup에다가 주로 holiday style meal, gourmet coffee 등등.. 인상적인 모임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좋은 분들’을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  이 posting 은 아침에 시작된 wintry mix, sleet 를 보면서 한 것인데 몇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을 뒤엎고 major snow로 돌변을 하였다. 지상의 온도는 빙점 위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하늘은 영하였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rain, 그리고 저녁부터 눈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 조금 빗나간 것이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교통대란 때도 비슷한 예보를 해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 것도 비슷하다. 이런 종류의 기후는 정말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 오늘 우리는 ‘현명하게도’  아침에 아예 snow day를 선언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했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멋진 함박눈’을 하루 종일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어제 우리 집 Saybrook court driveway로 들어오는 cul-de-sac  에서 집 쪽을 바라보니 눈에 익은 듯한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아~ 올해 우리 집, ‘마지막 잎새 들’이 로구나..  하며 ‘마지막 잎새’란 생각이 들고,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슬픔을 느꼈다. 결국은 다~ 떠나는구나.. 보통 12월 초 이맘때가 되면 이렇게 ‘마지막 추수’ 가 수북이 쌓임을 이제 경험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젊은 앞집의 Josh는 아마도 올 가을에 걸쳐서 수십 번은 power blower로 낙엽들을 치우고 있는데.. 도대체 그 wasted time & energy aching muscle등등은 둘째치고 그는 ‘낙엽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그렇게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비웃음’이 나온다.

세월은 흐르고 올해도 한 달도 채 남지 않고, 깊은 겨울로 들어가며 새해 2018년을 맞는다. 칠십 70이란 숫자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의 처지는 감정을 달랜다… 그래도,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70년의 세월은 나에게 과분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여한이 없다’ 라고 위로를 받는다.

 

pen name O Henry

마지막 잎새,  명작 단편의 제목이었다. 필명 O Henry라는 미국 단편 작가가 20세기 초에 발표한 그야말로 ‘짧은’ 단편 그것이 바로 The Last leaf 였다. 낙엽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에 떨어지는 ‘놈’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마지막 잎.. 그러면 세상은 갈색에서 하얀 색으로 변하고 겨울잠을 자야 하는 때, 이 소설의 주인공 여성, 폐렴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하나 하나 떨어지는 낙엽을 자기의 운명과 연관이 있음을 느낀다. 결국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자기도 ‘따라 떨어진다’ 믿는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잎새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도 안 떨어져다. 대신 그 마지막 잎새를 ‘살려준’ 아름다운 마음씨의 친구 화가 할아버지가 대신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얼마나 아름답고 운명적인 단편이었던가..

 

왜 이 단편이 나의 기억에 그렇게도 남았는가. 1960년 57년 전 서울 중앙중학교 1학년 때 국어 담당 ‘소재영‘ 선생님 때문이었다. 소재영 소재영 선생님… 그 어린 나이의 눈에도 이 선생님의 ‘학자적 겸손, 능력, 품위’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멋진 선생님이셨다. 교실에 들어오실 때는 책을 한 꾸러미를 들고 오셨는데, 그 두꺼운 국어사전으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참고자료들을 가지고 국어시간에 가르치신 것이다. 그 때가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입시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때) 그 선생님은 완전히 우리에게 국어라는 학문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 중에 바로 이 ‘마지막 잎새‘에 관한 공부도 들어있었고 그것이 반세기 뒤에도 뚜렷이 남아 있게 되었다.

 

The Gift of the Magi

크리스마스 ‘사랑의 마음’을 적절히 묘사한 O Henry의 다른 단편 The Gift of the Magi, (한글제목은 생각이 안 난다) 도 기억에 남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젊은 ‘신혼’부부 Jim과 Della의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이야기.. 서로를 위해서 Della는 머리를 팔아서 Jim의 watch chain을 샀고, Jim은 watch를 팔아서 머리 빗을 샀다는 슬프지만 너무나 사랑스런 이야기였다. 이것이 바로 the Magi(동방박사)의 아기예수에게 드리는 선물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서 O Henry라는 이름을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지만 인생의 항해를 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우리 집 앞에 쌓인 마지막 잎새들을 보며 회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이 작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 길이 없었지만 알고 보니 사실은 그렇게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는 조금 실망을 했다. 많은 유명한 단편은 남겼지만, 그의 비교적 짧았던 생(47세)은 각종 색깔의 행적을 남겼다. 그 중에는 우리가 살았던 Columbus, Ohio의 감옥에 죄수로 수감되었던 것도 있다. 물론 폭력적인 범죄는 아니었고 비교적 가벼운 ‘사기 횡령죄’로 복역을 한 것이다.  말년에 마음과 행동을 가다듬고 쓰기 시작한 단편들, 바로 그것이 그에게 커다란 이름을 남겨주게 되었다. 한마디로 ‘역량, 잠재성’이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콜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타계한 것을 보면 말년이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O Henry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나도 그 중에 하나고, 그것은 중학교 1학년 국어, 소재영 선생님의 고귀한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The Last LeafThe Cascades – 1963

 

Monday Monday..   7 일마다 찾아오는 월요일은.. 예전에 그렇게 싫기만 했던 요일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나 만의 전유물은 절대로 아닐 듯 하다. 특히 Monday morning 이란 것, disease라고까지 표현을 했으니 상당히 stressful한 날인 것임은 틀림 없는 모양이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나도 상당히 이 날 아침에 sick call을 남용했던 기억이 남고,  남은 여생 두고 두고 후회를 하고 있다. 그런 dreadful Monday가 인생후반기인 현재에 와서는 golden day로 바뀌어가고 있으니 내가 변한 것인지 환경이 변한 것인지, 나이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것들 모두가 나의 느낌을 바꾸어 놓고 있을 것 같다.  Monday Monday.. 하면 같은 제목의 1966년 Oldie 가 생각나고, 그 곡을 처음 들었던 연세대 앞 신촌 로타리에 있었던 ‘왕자다방‘이 생각나곤 한다. 그 때가 1967년 봄이었으니.. 정확히 50년, 반세기 전이었다. 정말 50년의 세월이란… 그 느낌을 글로는 묘사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The Mamas & the PapasMonday Monday – 1966  

 

Strange but refreshing Monday feeling… ahhha..  it’s over finally!  왜 이렇게 이번 월요일 ‘우리’의 어깨가 가볍게 느껴진 것인가? 2주 만에 처음으로 YMCA gym에 가서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이상한 느낌도 도움이 되었고, 어제 일요일에 일어난 (아니, 안 일어난?) 일들도 무척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제 일요일은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가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무대공연’은 cancel이 되었고 아예 그곳에 가지도 않았다. 6년 동안 빠짐없이 참가했던 이 행사가 우리로부터 떠난 것은 아마도 두고두고 우리의 앞날을 예측해주는 omen 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나 시원한’ 느낌을 받아서.. 솔직히 아직도 머리가 정리되지를 않았다.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이제 레지오가 지겹다…’하는 것은 아닐까? 연총 불참의 직접적인 이유는 한 두 단원이 갑자기 아팠던 것이었지만 행사 자체를 불참한 것은 더 심각한 이유가 있었음을 우리는 다 안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속한 ‘꾸리아 조직’의 암적인 문제인 것이다.

 

¶  2017년 12월 2일:  2017년 달력이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며 12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 흠.. 그렇다면 또 일년이란 ‘장구한 세월’ 이 지나가고 있단 말인가? 1년이란 시간은 아련했던 기억 속에는 ‘장구한, 영원한’ 느낌의 긴 세월이었다. 그것이 언젠가는 거의 한 달 같은 기억으로 남았고.. 지금은 모르겠다. 아마도 한 달보다는 조금 더 짧아진 듯한데 그것을 그저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신비로운 시간, 조금이라도 시계가 늦게 가는 그런 곳, 때, 감정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어찌 나 같은 ‘죄인’에게 그런 은총이 쉽게 올까 보냐.. 그저 열심히 시간의 흐름에 순명 할 뿐이다.

작년에 시작된 Youtube의 Hallmark Holiday movie들을 보며 아늑하고 편했던 때가 생각이 나서 올해도 몇 개를 download해서 보았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는… 아~ 12월이여… 라는 아늑하고 편안함이 나를 즐겁게 한다.

 

Peter Hollens – December Song  

 

¶  연총 연습, 마지막 No 5: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stage performance 를 위한 마지막 연습 session이 주 회합 후에 있었다. 올해로 나는 일곱 번 째 연총연습을 맞지만 올해의 이 행사는 예년들에 비해서 아주 다른 느낌으로 맞게 되었다.  생사의 고비를 간신히 넘긴 후, 군살과 독성물질 (toxin) (왕마귀와 레지오 미친년)이 완전히 빠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대신 전체적인 레지오 내에  ‘사랑이 완전히 빠진 느낌’ 은 역시 떨칠 수가 없어서, 노래와 율동을 하는데 신명이 나지를 않았다.  이런 상황이면 예전 같았으면 ‘포기하자’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래도 성모님 사랑의 눈길을 느끼며 ‘달릴 곳은 끝까지 달리자’ 를 되뇌며 무려 5번의 연습 session을 다 마치게 된 것, 절대로 이것도 우연이 아닌 듯 싶다.

비록 ‘실제 공연’에서 실수를 하거나 hiccup을 해도 이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갈 곳까지 다 갔기 때문이다.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율동을 물론이고 vocal singing도 우리들에게는 small challenge였다. 반주를 Youtube video에서 무단copy해서 karaoke로 쓸까 했지만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아예 karaoke audio를 녹음을 했고 still video로 아예 YouTube video를 만들었다. 이것을 들으며 2017년 너무나 어렵던 시련의 시기에 우리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나’ 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  목요회, 이 목사님 부부:  목요회… 허… 참 내가 멋진 이름을 붙였나? 첫 번째 만남이 우연히도 마지막 목요일이었기에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만나기로 한 것이 벌써 세 번째 모임이 되었다. 소박하게도 1990년 5월에 서로 만났던 것을 기념하는 모임이었지만 달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멋진 진화’를 시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모임 자체의 성격이 어떻게 진화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깊숙이 진행된 나이에 걸 맞는, 뒤를 돌아보고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대화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여자가 없는 모임’의 신선, 솔직함의 진가를 나는 마음껏 즐긴다. 남자들만의 대화, 화제는 사실 너무나 오랜만이라 무엇이던지 즐겁기만 한 것이다. 비록 늦은 밤에 모이는 것이라 만날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지만 이것도 색다른, 아이 같은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이 늦은 나이에, 늦은 저녁에 30마일 떨어진 곳으로 외출을 한다는 사실도 너무나 재미가 있으니..

이 (동수) 목사 부부를 해가 가기 전에 결국은 만나서 도라빌 성당 근처에 있는 ‘upscale’ 한식당 운암정에서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였다.  일년에 평균 2번 정도 만나는 이 오래된 “아틀란타 한국학교” 인연의 인생후배 부부,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이런 오래된 세월의 연륜 하나로 친척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몇 해전에 큰 수술을 받았던 이 목사, 그 동안 몸 관리를 열심히 한 덕에 이제는 많이 건강해진 모습이었고 식사하는 것도 불편한 제한이 없는 듯 보였다. 목회 사업이 사실 아직까지 희망하는 것 같이 열매를 맺은 듯 느껴지지는 않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지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번에 만나서는 오래 전에 흔히 하던 이목사 특유의 농담하던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을 알고 반갑기도 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다음에 만나면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더 심각한 신앙간증’을 기대해 보며,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  이 세상의 異邦人: 요새 나의 머릿속은 온~통 ‘고(종옥) 마태오’ 신부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이 하느님의 종, 진정한 애국자, 사랑의 사제, 성인에 버금가는 행적을 남기신 이 사제가 걸었던 길을 천천히 같이 걷고 있다. 소설형식의 자서전 trilogy: 1편 사랑의 지도, 2편 예수 없는 십자가, 그리고 지금 ‘쓰면서’ 읽고 있는 것이 3편인 ‘이 세상의 이방인’이다. 첫 두 편은 reading by typing덕에 온전한 2권의 soft copy가 나의 blog site에 남아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제의 삶은 한마디로 너무나 dramatic한 epic drama 라고 볼 수 있기에,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시간, 공간적으로도 이 사제는 나에게 큰 관심을 준다. 해방 전후의 삼팔선 부근의 묘사, 원산에서의 첫 사랑, 6.25 사변을 가장 치열한 전투중의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하느님의 인도하심.. 너무나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을 읽으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 이 사제와 같이 울기도 했다. 솔직이.. 나의 ‘빨갱이, 흑백 논리’에 조금은 ‘회색’이 가미되고 있음을 평생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솔직한 분의 고백을 어찌 내가 ‘흑백’의 잣대로 가늠을 할 수 있는가..  책 하나로 난공불락의 ‘이념의 성’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나는 현재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고 마태오 신부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Advent 대림절 시작.. 동창회, 파티, 친지들의 각종 모임들.. 구세주 탄생, another turkey meal, 망년회.. 송년 countdown.. 등등 ‘즐거운 것들만’이 연상되는 12월, 2017년 마지막 달력을 앞에 두고 나는 내 자신이 깊은 시름의 늪으로 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일생일대의 biggest  challenge가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Forgive or Forget?

 

올해 들어서 최소한 나로서는 처음 인생공부를 한 계기들이 2건 있었고 모두 ‘나쁜 것’들이어서 정말 해가 가기 전이라도 잊고 싶은 것들이 되었다. 잊는 것, 나는 그런대로 자신 있다고 했지만 이번의 것은 종류가 아주 다른 모양이다. 잊는 것은 고사하고 꿈속에서도 생각이 날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로 분노의 감정이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노라는 말이 사실은 고상한 것이다. 그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는, ‘치가 떨리는’ 그런 것이다.

 

올해 일어난 왕마귀 사건과  미친년 사건,   모두 레지오와 직접 관계가 되어있고 또한 ‘상상을 초월한 해괴한’ 사건들이며 모두 주범(a.k.a 조폭)들이 ‘여자’ 였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문제는 이것이다. 내가 7년 전에 사실상 냉담을 풀고 교회로 귀향한 직접적인 동기가 레지오 입단에 있었고 나는 성모님께 ‘충성을 맹세’한 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육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러니까 원자탄이 아틀란타에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이곳 ‘자비의 모후’ 에 머물 각오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들이 일어난 후유증은 무엇인가?  이 두 인간들이 바로 내가 속한 레지오 조직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단원들이 떠나게 만들고, 밖에서는 요란하게 방해공작을 하는 등.. 정말 신부님(영적지도자)에게 조차 말하는 것이 창피할 정도의 유치한 짓들을 나는 모두 듣고, 목격을 하였다. 과연 이것들의 나이가 몇 살이며,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인간들인가?

 

예전의 나였으면 거의 100%, ‘더러운 인간들이 보기 싫어서’ 교회를 즉시 떠났을 것이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 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 그 인간들에게 lesson을 주기 위해서도 나는 절대로 떠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또한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다 잊을 각오(teeth to teeth)가 되어있다. 이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나도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는 딴 곳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이글거리는 분노’가 절대로 잠잠해 지지 않는다는 것, 아니 생각만 하면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고 있으니.. 과연 성모님이 이것을 참아 내실까.. 아닐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죄’일 것이다. 우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비롯한 많은 ‘영적 독서’에서 권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용서하거나 잊거나’ 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시간,세월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선, 용서하라는 것은 한마디로 현재로는 HELL NO!에 가깝다. 불가능이다. 잊는 것은 어떤가? 이것이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인간들을 전혀 안 볼 수 있으면 그런대로 잊을 수도 있는데 성당만 가면 이 ‘회벽칠 얼굴’들이 왜 그리 자주도 보이는가?  이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은 길은 오랜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뇌세포의 노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수동적’인 idea다.  좀 더 proactive한 방법은 없을까? 기도? 그들에게는 솔직히 이 시간조차 아깝다.  다가오는 판공성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현재 나의 일생일대의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  그야말로 11월 말, deeper & deeper November를 달리고 있다. 주위의 올 가을의 낙엽들이 무섭게 떨어진 후 이제는 O Henry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키듯 처량하게 남은 잎새들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게 되었다. 11월의 처량함이라고 할까.. 성탄을 기다리는 가톨릭 대림절 Advent, 11월은 또한 바로 그날을 기다리는 나날들이기도 하기에 나는 근래에 11월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Sandy Denny – Late November – 1971

 

 

¶  단출한 가족인데 그것도 한 사람이 빠진 올해의 Thanksgiving Day, 하지만 ‘무사히’ 지나갔다. 작은 딸의 초대로 올해 그들의 1st Home 이 있는 Tucker로 가서 몇 시간을 즐겼다. 오랜 세월 엄마의 전통을 배운 듯 아주 맵시 있게 traditional turkey meal을 준비한 나라니, 정성을 다 한 것이 보여서 고마운 마음으로 배불리 먹고 마셨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사실은 holiday 기분이 좀 덜 나지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좋았으리라. 새로니는 친구들과 Nevada로 rock climbing trip을 갔는데 보내온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climbing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래 전 ‘바위를 타던’, 서울에 있는 도봉산 선인봉의 바위와는 아주 느낌과 종류가 다른 것처럼 보였다.

 

¶  지난 주 부터 약간씩 느껴지던 ‘감기 기운’이 일주일째 가고 있는데, 이제는 기분이 쳐지는 느낌이다. 올해 처음 맞았던 flu shot 덕분인지 모든 감기, 독감의 증상이 아주 mild한 듯한데 문제는 이렇게 질질 시간을 끌며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사실이다. 미열도, 살살 흐르는 콧물 등은 큰 문제가 아닌데 목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지는 잔기침, 이것이 사람을 괴롭히고, 놀리는 것이다. 제발 빨리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  예수 없는 십자가: 밤에 밖을 보니 멀리서 휘황찬란한 빛이 퍼진다. 자세히 보니 ‘크리스마스 light’ 가 아닌가? 아~ 그렇구나… 올해 ‘첫 Holiday’ 기분이 잔잔히 주변에 가라앉는 이즈음 나는 의미 있는 ‘시간,공간’ 여행을 하고 있다. 그것도 ‘책’으로…  고 마태오 신부님의 trilogy중에서 2편 ‘예수 없는 십자가‘, 바로 그것이다. 1편인 ‘사랑의 지도‘를 얼마 전에 ‘필사’로 읽은 후 곧바로 2편의 ‘필사 독서’가 시작되었다. 하도 typing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디어진 듯하다.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서 typing하면서 reading하는 것 전혀 문제가 없다.

고 마태오 신부님을 ‘재발견’하게 된 이번의 ‘책 여행’은 놀랍게도 나에게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를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속도로 typing & reading을 하면 2편 ‘예수 없는 십자가’는 2~3일 내로 끝이 날 듯하고 곧바로 3편 ‘이세상의 이방인‘을 읽기 시작할 예정이다. 12월 중에 이것을 완독하면 나는 2+ 개월 사이에 고 마태오 신부님의 true classic trilogy를 모두 읽게 되는 것이고 부수입으로 soft copy가 남게 된다.

이 책으로 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그가 살아온 민족의 비극을 같이 걷게 된다. 3.8선부터 시작하여 원산, 함흥, 제주도, 최전방 고지 전투를 하느님을 믿는 젊은 눈으로 본 기록영화, 참회록, 사랑의 드라마.. 이 세 권의 기록소설은 한 마디로 대 서사시 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6.25를 전후로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싸웠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니 아직까지도..  한반도에는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가..

 

Thanksgiving Song – Mary Chapin Carpenter

 

Aromatic, cozy, toasty, teary, crispy, loving, reminiscing… 올해 ‘최고의 시즌’이 서서히 시작되는 이 즈음에 이렇게 ‘감사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얼마나 멋진 전통인가.. 태고 적 느꼈던 고국의 추석도 비슷하겠지만 이것과는 무언가 확실히 다르다. 이곳에서 공기를 마신 세월이 저곳의 그것보다 몇 갑절이 되어나는 이 세월의 신비는 아직도 나에게 ‘안 보이는 그 무엇’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나는 역시 이곳, 이때.. ‘공간과 시간’의 피조물인 것이다. 무엇(들)이 올해 나, 우리에게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한 것들인가?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고 재미 없는 표현, ‘우리들 모두 건강하게 살았다’ 라는 것, 과연 피곤한 말일까? 절대로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만끽했던 최대의 은총이었다. 크게 아픈 가족이 없었다. 비록 무섭게 나이가 들고는 있지만 그것과 맞갖은 불편함과 괴로움은 거의 없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들.

건강했다는 것의 corollary는… 덕분에 5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7 seven dayer 의 전통.. 을 계속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멋모르고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뭐 그렇게..’ 할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멋진 선물을 받은 것이다. ‘매일미사의 기적’은 겪어 보고 아는 사람은 충분히 안다. 이것은 우리가 5년 동안 매년 받았던 감사의 은총과 기적 중에 으뜸에 속한다.

 

Year of Cat, 올해 우리는 ‘고양이 해’를 맞았고 감사하고 뜻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보냈다. 우연히 우리 집 뒤 마당을 골라서 태어난 8마리의 갓난 고양이 kitten들, 이것도 인연인가? 분명히 하늘이 주신 생명체이고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듯한 사명감으로 4여 개월을 이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던 세월도 은총의 시간들이었다. 결국은 사람의 아기나 고양이의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우연일지, 운명일지 태어난 생명들과 정을 들였던 그 시간들, 때에 따라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모두 건강하게 adopt를 시켰다. 이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

 

우리들이 ‘복무’하는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 마리애 ‘자비의 모후’ Pr(Praesidium) ,  한때 ‘female’ vermin들의 어이없고 치사한 ‘진주만 폭격’을 당했을 때 거의 coma상태까지 갔던 우리의 전초소대, 역시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불사조’처럼 일어났다. 우리가 한 역할도 자랑스럽지만 역시 보이지 않은 손길의 이끄심을 항상 느낄 수 있었다. 이 쓰라렸던 경험은 아직도 잔잔하게 진동하고 있지만 이제는 역시 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나는 후자 쪽을 선택했고, 그렇다면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내가 배울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 년 말까지 관상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Full Retirement, 우리들의 나이가 말해주듯이 올해로 우리 모두가 full retirement 로 들어갔다. 연숙의 Medicare가 시작되고 SS benefit이 kicked-in, 이제는 완전한 fixed-income age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거의 경제적인 것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한마디로 우리 둘, ‘오래 살았다’ 라는 생각이고 그저 이제는 남에게 (가족, 사회, 국가)에 더 큰 부담을 안 주고 살아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절제 있게, 겸손하게,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자세로 생을 마치는 것을 원하지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올해의 Thanksgiving Day는 어떻게 지내는가? 마지막으로 네 식구 모두 모여 turkey meal을 즐겼던 것이 언제였던가? Halloween처럼 이것도 진화를 거듭하며 변한다. 아이들의 머리가 커가면서 이런 것은 자연히 변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이 ‘작았을 때’가 그렇게 그립다. 왜 그럴까? 올해는 더 흩어진 모습일 뻔 했지만, 큰애는 travel [Rock climbing in Nevada, business trip 등]로 시간을 보낼 것이지만 그래도 작은 애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기쁘고 신나지 않으니..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 나이 때문인가… 그래도 작은 애야 불러주어서 고맙다.

 

¶  Uncle Julio’s: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김 바오로, 데레사 예랑씨 부부의 초대를 받아서 외식을 하게 되었다. 몇 개월 전에는 우리가 그 부부를 초대해서 Duluth 에 있는 Stone Grille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에 대한 응답인 듯 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저녁 때의 rush hour를 헤치고 Sandy Spring에 있는 Uncle Julio’s라는 Mexican restaurant로 갔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감이 있는 Mexican food였지만 비교적 Americanized된 것이라 큰 surprise는 없이 맛있게 즐겼다.

 

 

이 부부와 처음 인사한 것은 사실 몇 년이 되었을 것이지만 인연이 없는지 다시 어울릴 기회가 좀처럼 오질 않다가, ‘악질 여자’들을 몇 번 겪고 나서 ‘보통 형제님’들이 갑자기 그리워짐을 느끼고 부부친교의 기회를 만든 것이다.

우리와 살아온 background가 많이 다르기에 공통 화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부부가 같은 교우에다가 자매님은 레지오, 문인화 등으로 엮인 것이 있어서 큰 걸림돌은 없다. 다만 형제님이 나보다 더 말이 적은 편이고, 대화하는 방식도 아주 달라서 적응하려면 아마도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 기본적인 예의와 ‘정상적인 사고방식’만 있으면 그 이외에 무엇이 문제인가?

 

 

¶  Urge to KILL: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죽이고 싶다’라는 Urge를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 한 해에 연속으로 일어난 ‘왕마귀 사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지난 수개월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 정도로 분노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이 정도까지 간 것에 나는 사실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한 인간이 이렇게 쉽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 참 슬픈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임을 숨길 수가 없다.

Hollywood 영화배우 (Loving You 에서 Elvis Presley와 열연)에서 수녀가 된 Dolores Harts  의 자서전 The Ear of the Heart 에 Urge to kill 이란 표현을 한 것이 보인다. 그녀도 영화배우 시절에 주변의 ‘어떤 나쁜 인간’에 대해 이렇게 솔직한 감정을 느꼈다고 쓴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고 더 솔직하게 urge to kill 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그녀가 Stephen Boyd와 공연했던 영화 Lisa의 한 장면, 꿈 속이라면 몇 번이라도 가능하겠지만, 이것은 사실 큰 죄라고 할 수 있기에, 올해가 가기 전에  나의 제일 심각한 고해성사 주제가 되었다.

 

영화 Lisa, Stephen Boyd와 공연했던 World War II suspense drama의 한 장면

 

 

¶  ‘사랑의 지도’ 필사 완료: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자서전 epic love story 제1편인 ‘사랑의 지도’, ‘필사’가 며칠 전 완전히 끝났다. 9월 초부터 간간히 ‘쓰다가’, 지난 며칠 동안은 ‘미친 듯한’ 속도로 결국 마지막 paragraph에 도달한 것이다.  9월 초부터 간간히 ‘쓰다가’, 지난 며칠 동안은 ‘미친 듯한’ 속도로 결국 마지막 paragraph에 도달한 것이다.  6.25당시 해군으로 원산에 상륙한 이후 중공군 개입 이전까지 머물던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숙’과의 사귐, 결혼약속, 그리고 급작스러운 이별로 끝나는 1편 ‘사랑의 지도’ 다음 2편인 ‘예수 없는 십자가‘의 필사가 곧바로 시작이 되었다. 주로 해병대로 싸운 전투경험일 터이지만 나는 숙과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이 더 관심이 간다.

근래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조금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우선 화장실에 둔 책이 있다. 대강 2~3 권 정도가 toilet 옆에 항상 있는데, 이것들은 ‘장기간, 급하지 않은’ 그런 책이지만 결국은 꼭 완독하고 싶은 책을 이곳에 둔다. 그러니까.. 그 중에 조금 더 관심이 가는 책을 하나 골라 toilet에 앉아 있는 동안만 번갈아 가며 보는 것이다. 이때에 책을 읽는 기분은 상상하기에 따라 우습기도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이것은 책 전체를 확실히 읽게 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 다른 나의 ‘비법’은, ‘필사 독해‘하는 것인데 ‘쓰면서 읽는 것’이다. 여기서 필사, 쓴다는 것은 사실은 typing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이중의 효과가 있다. 난독을 피하게 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게 되고 끝이 나면 멋진 나만의 soft copy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수십 권의 softcopy를 만들어 blog site에 올려 놓기도 했다. copyright문제에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fair use 임을 밝혀둔다.

고 마태오 신부님, 고인이 되셨지만 나는 이 ‘서사시’적인 걸작 사랑의 지도를 읽고 이 신부님을 너무나 그리워하게 되었다. 아니.. 존경하고 싶은 분이 되었다. 불과 20여세까지의 이야기지만 어쩌만 그렇게 성숙, 성실, 용기, 부드러움.. 골고루 갖춘 젊은 남자였을까? 솔직하고 섬세한 필체로 그렸던 ‘숙과의 사귐 과정’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내가 그 주인공, 고 마태오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으니까… 이 독후감은 꼭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이 70에서도 나이 20세 당시의 ‘고백록’을 쓰려면 이와 같은 ‘모범적’인 글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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