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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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5일, [대한민국]광복절,  [가톨릭] 성모승천 대축일…  하지만 근래에는 나에게 광복절보다 더 중요한 날이 되었다. 이날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의 삶이 끝난 후 육신이 하늘[천국]로 부르심을 받은 날로써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의무 대 축일이다. 올해는 [pandemic] 사정상 대성전 참례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워 online 대축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렇게 수동적인 참례라도 큰 걱정 [건강, 경제 등]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할 듯하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  교황의 무류성 [papal infallibility]을 배경으로 교회 교의 敎義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교회가 이렇게 선포한 것으로 우리들은 안심하고 교회 안에서 성모님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1 매일 거의 습관적으로 하는 묵주기도, 그 중에서 오늘을 맞아 영광의 신비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 올리심을 묵상합시다’ 의 의미를 더욱 일깨운다.

We proclaim and define it to be a dogma revealed by God that the immaculate Mother of God, Mary ever virgin, when the course of her earthly life was finished, was taken up body and soul into the glory of heaven.

오늘 live streaming으로 참례한 순교자 성당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참 좋았다. 큰 기대를 안 하면 이렇던가? 우선 이 방문신부님, 콧수염이 안 보이니 훨씬 보기가 좋았다. 미사 강론을 들으며 나는 눈물까지 흘렸다. 성모님의 고난 중의 희망, 코로사 사태를 가는 우리들에게 정말 본받을 귀감 중의 귀감이라는 것, 가슴 속 깊이 그 성모님의 용기가 나를 일깨운다.

 

¶  어젯밤에는 밖에서 무언가 내리는 듯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과연 나가보니 약간의 이슬비가 내린 것이 보인다. 소낙비를 바랐건만 어째 이렇게 가랑비를… 아주 조금… 그래도 땅이 축축한 것은 정말 반갑다. 하늘도 모처럼 구름이 잔뜩 끼어서 비록 기온은 높더라도 시원한 느낌이다. 하루 종일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알고 보니 오늘 기온은 요사이의 그것에 비해서 무려 10도가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늘이 말복 末伏인 것을 감안해서 분명히 최악의 더위는 서서히 우리를 떠날 것이다.

 

¶  S 아오스딩 형제, 참 줄기차고 변함없는 사람, 아침에 카톡 메시지를 보니, 운동하러 Stone Mountain Park에 가니 오늘 무슨 시위가 있다고 문이 닫혔다고 쓰여있었다. 참, 요즈음 들어서 이 친구가 부러울 때가 있다. 자기 하고 싶은 것 주위의 시선에 상관없이 하며 사는 친구…  그래서 요새와 같은 pandemic 하에서는 이 친구가 사는 방식이 나보다 더 심리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닐까, 부러운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삶의 방식을 터득했을까, 이제 어떤 부분은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다.

 

¶  뜻밖에 집 뒤쪽에 사시는 고국동포 B 선생님 부부가  우리 집 앞문까지 와서 커다란 수박을 주고 가셨다. 물론 처음에는 귀찮아서 door bell 을 무시했는데 또 역~쉬 연숙의 기지와 용기로 큰 실례를 피할 수 있었다.  귀찮은 sales person일 것으로 생각을 했기에 그런 것이지만 가끔 이런 예외도 있긴 하다. 참, 앞 뒷집으로 산지 거의 30+ 년이 가까워 오는 이 인연, 하지만 참 멀게 살아온 야릇한 인연인가? 언제나 나는 이분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훨씬 가깝게 인생말년을 보낼 수도 있었다는 후회가 남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하며 생각하지만 당장 눈 앞에 안 보이고 잊게 되는 정말 이상한 관계다. 기회가 되면 한 번 술도 같이 하고 식사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 기다린다.

 

  1. 개신교 형제들, 무조건 반발하기 전에 심각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대화를 하면 어떨지…

 

드디어 8월 첫 화요일이 되었다. 화요일, 화요일, 레지오 화요일… 5개월 이상 잊고 살았던 화요일아침의 성당행 drive.. 하지만 오늘부터는 편하게 집에서 카톡 음성채팅으로 ‘약식 주회합’을 시도했다. 우선 ‘가상 주회합’, 이런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커다란 심리적 도움을 줄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주안점이다. 활동 내역 보다는 모두 음성으로나마 성모님 군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확인하는 데에 큰 의미를 두자. 과연 어떻게 이것이 진행될 것인가.. 사실 나 자신도 궁금하기만 했지만…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우리 자비의 모후, ‘약식’ 주회합, 서로의 음성을 느끼며 실제로 모여서 하는 것에 못지 않은 기쁨으로 무사히 기도를 나누었다. 특히 신 단원 카타리나 자매가 있었고, 안나 자매님이 묵주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반가웠다. 첫 번째가 이 정도로 큰 문제가 없어서 앞으로는 기술적인 문제는 별로 큰 걱정을 안 해도 될 듯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는 가가 제일 큰 관심사다. 이제는 화요일에 이런 중요한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조금 생기가 나고 사는 맛도 느끼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성모님.

이제 불현듯 중지 되었던 것, 레지오, 그것이 일단은 정상 쪽으로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나으면 나았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고 일주일 우리의 생활에도 조금 활력소가 가미 되리라 희망한다.

오늘 평화방송의 매일 online 미사, 누구의 탓인가? 양쪽 모두 문제가 있나? 어쩌면 미사를 그렇게 장례미사를 연상하게 하는, 괴로울 정도로 느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미사해설자는 마치 우리의 폐활량 훈련을 시키는 양 ‘기록적’으로 느리게 느리게,  집전신부님은 그것에 맞추었는지, 아니면 경쟁이라도 하는지 정말 정말 쳐지고 느리고…  정상적이면 25분이면 끝나는 것이 35분이 훨씬… 도대체 미사란 것이 무엇인가? 영어로는 흔히 celebration을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장례식처럼 하는가? 그렇게 엄숙하고, 가라앉는 기분으로 해야 하는 것인가?  매일 매일 각종 모습, 말투, 언동의 집전자를 경계하면서 마음을 졸이지만,  그것을 미리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한마디로 ‘정말 사람들 예의, 배려, 감각이 없다’…

어제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online 주일미사, 이제는 구면인 방문신부가 집전을 한 것은 큰 뉴스가 아닌데, 나는 미사에 집중해야 될 머리 속에서는 갑자기 무엇인가 다르게 보이는 집전자의 ‘얼굴모습’ 으로 차있었다. 원래 이 신부의 hairstyle에 대한 거북함이 일었는데 이번에는 난데 없이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 허~~ 또 다른 잡념이 머리를 흔든다.  함께 머물고 있는 거주신부의 ‘해괴한’ 영향을 받았나…  콧수염이 잘 어울리면 큰 문제가 아닌데… 암만 보아도 이것은 distraction의 모범 case인 것이 문제다.

 

오월 초부터 성경통독 일정표를 online 주보에서 clip & print 를 하던 것도 벌써 4 개월 째? 1월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읽는  아틀란타 순교자 본당의 ‘성경통독’, 이제는 습관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도 생애를 통해서 한번도 읽지 않았던 구약의 구석 구석 부분을 매일 읽는다는 것, 그렇게 싫지도 귀찮지도 않지만 즐겁지도 않다. 그저 덤덤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의미, 그리고 올해 말이면 그래도 배당된 것을 읽었다는 것, 하지만 누가 아랴? 한 문장, 한 글자에 나의 지치고 굳어진 깊은 속에 그 무엇이 던져질지?

8월 1일, 이제부터는, 몇 개월째 주회합을 못하고 있었던 레지오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야겠다. 너무나 방심, 무심, 무관심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게을렀고 귀찮고 그런 것이 더 큰 이유였는지도… 다른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형식적으로나마 계속 주회합을 한다고 어제 연숙이 꾸라아 단장과 전화 후에 알려주었다. 조금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왜 없었으랴? 어떻게 다시 주회합, 활동 등을 재개하는가 하는 것, 우리에게 알맞은 방법이 나오겠지.

 

지난 주말에 ‘선언’했던 우리의 ‘여름휴가’가 어제로 끝나고 오늘부터는 정규 스케줄을 따른다. 그것이라 봐야 평화방송 매일미사, 매일 저녁 가족기도, 동네산책, 그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대단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한결 하루가 쉬었으니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고 ‘무슨 변화’를 느낀 것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변화만 추구하며 살 수는 없다.  할 것은, 중요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해야 한다.

아침 일찍 땀나는 것을 각오하고 앞 뜰의 잔디를 깎았다. 날씨가 덥긴 해도 습기가 조금 가시고 바람이 산들거리고 있어서 일하는 것 자체는 즐거웠고 덜 피로하였다. 무섭게 정글처럼 자란 잡초들을 치우고 보니 집이 조금은 덜 피로해 보인다. 거의 끝 무렵에 결국 string trimmer의 rotor cover가 닳아 떨어졌다. 약간 panic을 했지만 (왜 나는 이렇게 이런 쪼잔한 것에 연연, 걱정을 하는가?) 곧바로 replacement part를 Amazon.com 에서 찾아서 order를 하려 한다.

 

송승환, 한진희, 정윤희, 또 두 명… 와~ 어떻게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지고 알고 있었던 2명의 talent의 이름을 잊었단 말인가? 알았다, 한 명! ‘이일웅’! 또 한 명은? ‘미스터 파지’라는 별명은 기억이 나는데…이들은 나의 기억 시대의 후반부 (이일웅+ 제외하고)의 유명인들이다. 나의 시대는 역시 1966년부터 1973년 까지니까… 그 이후는.. 또 기억이 났다! ‘이낙훈’! 이낙훈이다. 이 두 명은 물론 내 시대의 인물들이다. 송승환은 아역 때, 정윤희, 한진희는 기억의 후반의 유명인이다. 이들이 나오는 KBS 문학관 ‘어떤 여름방학’을 본다. 편하게… 편하게… 시원하게..

오늘, 여덟 개의 꽃 중에 여섯 개가 만개를 하고 있다… 어제 핀 두개는 다시 동면으로…

 

올해도, 기다리던 꽃이 피었다. 일년초가 아닌 바로 올망졸망한 귀여운 선인장 무리의 꽃이. 지나간 2년 동안 간신히 힘겹게 하나의 꽃을 안간힘을 쓰며 피워내던 그 꼬마 선인장이 올해는 무려 여덟 개의 꽃봉오리를 우리에게 선사를 하고 있다. 그 고맙고 귀여운 선인장의 이름이 Echinopsis 과 科 genus의 일종임을 이번에 알게 되어서 더욱 친근감과 정이 흠뻑 간다. 

Wikipedia에 의하면 (믿을만한 source)  이 선인장의 학명이 아닌 속명으로는: hedgehog cactus, sea-urchin cactus, Easter lily cactus임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 집에서 재롱을 부리며 피어난 귀여운 선인장도 이 이름을 가진 것 중에 하나일 듯하다.

나는 아주 흔한 꽃 이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이쪽으로는 무식한 편인데 ‘뜰의 기운’을 너무나 좋아하는 연숙의 영향으로 조금씩 관심도 갖고 알게도 되었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수준 이하라고 자인을 한다.

하지만 이 선인장은 조금 달랐다. 나의 관심이 유별나게 간 것이다. 2년 전에는 사진까지 찍어 놓았고, 작년 것은 나의 website: serony.com 의 summer 용 head art로까지 쓰게까지 되었다. 이렇게 사람은 시대, 세대, 그리고 환경의 동물인 모양이다. 내가 이런 것에 눈이 열린 사실을 보면…

 

작년 8월 중에 유일하게 하나의 꽃이…

 

그러던 차에 COVID-19,  STAY-HOME curse의 철퇴를 맞게 되고,  더욱 주위의 자연환경에 눈이 가게 되던 차에… 다시 그 선인장에 꽃봉오리가 기지개를 피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둘은 ‘복권 추첨’을 바라보는 양, 매일 매일 보게 되었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가 공기 중에서 활개를 친다고 해도, 이 선인장은 반발이라도 하듯이 하나가 아니고 무려 여덟 개나 되는 귀여운 봉오리를 위로 밀고 있어서, 아마도 주문진의 말린 오징어처럼 처져가는 우리들에게 사기를 돋구어주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 선인장의 역사를 연숙에게 알아보니, 역시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나누어주는 정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을 흠뻑 받고 우리 집에 선물로 온 것, 역쉬~~~  우리의 한국본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고참, 바울라 자매님이 개인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시면서 꽃 관리에 정성을 쓰는 연숙에게 선물로 주신 것. 참 새 주인을 잘 골랐다는 느낌이다.

이 선인장을 학명으로 추적을 하면, 이 과에는 무려 128 종류가 있고,  특별하게 꽃이 피는 시기가 따로 없고, 그저 ‘조건만 좋으면’ 수시로 필 수도 있다고 한다. 원산지가 남미 쪽이고 비교적 건조한 조건에서 자라지만 우리 쪽의 환경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고운다습’한 편이라 이렇게 일년에 한 번 정도 애들 태우며 기다리게 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수시로, 쉽게 피면 이렇게까지 귀하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예년의 기억으로 며칠 (아마도 하루?) 정도 잠깐 멋을 부리다가 곧바로 지는 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더 기다리고, 고맙고, 아쉬운 모양이다. 이제는 내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 우리들은 어떤 모습의 세상(COVID-FREE) 에서 살게 될지…

 

올해, 무려 여덟 개의 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

꽃 망울이 거의 피기 직전…

첫 두 송이의 꽃이 선을 보였고…

 

 

Yesteryear…  요새는 가끔 지나간 해의 달력일지를 훔쳐본다. 지난해 이즈음에는 과연 나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이런 것도 요새처럼 시간이 넘칠 때는 time killer로 으뜸가는 것 중에 하나다.

이것들을 보며 예상보다 훨씬 격심한 변화가 있었음을 절감하며 한숨을 쉰다. 올해의 대부분이 너무나도 개인적이나 사회적, 국가적으로 변해버린 것, 물론 어두운 쪽으로 변해버린 것. 비록 현재의 시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조금 더 위에서 바라보니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의 일상을 보니, 비록 거의 고정적인 일상 routine이었지만 엄청 바쁜 세월들을 보냈음을 알게 된다. 일주일을 너무나 짧게, 바쁘게, 보람 있게 살았던 것, 그때가 그리워진다.

주일인 일요일에는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성당에서 ‘진짜 미사’를 보고, 우리들의  성당 친목 모임 ‘등대회’에서 동년배 형제, 자매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가끔 [레지오]특강도 있었고 모든 주일일정이 끝나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성당근처의 단골 집들, ‘동네방네 [한식점]’ 나 운동장처럼 널찍하고 시원한 Mozart Bakery에서 향기로운  coffee로  평화로운 일요일을 마감하기도 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고정된 스케줄이 있었다. 매일 아침 9시 동네성당 Holy Family CC의 아침미사,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은 Sonata CafeYMCA gym workout이 있었고, 화요일은 절대로 예외 없이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30분 드라이브, 레지오 주회합이 있었고 그날 정오에는 그곳에서 정오미사. 그 후에는 자주 채 형제님, 신 자매님댁, 손 형제님댁으로 봉성체 봉사를 했었다.  또한 시간이 나는 대로 Rosewell Nursing Center 방문을 해서 Parkinson 병으로 고생하시는 두 자매님들을 만나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제는 거의 꿈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시계처럼 돌아가는, 거의 정해진 ‘과제’들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 것,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은총의 시간’이다. 보람 있다고 생각되는 ‘봉사, 선교, 친교’의 시간들은 현재 우리 주임, 이영석 신부님이 주장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 인 것이다. 이것도 ‘중독성’이 있는데, 물론 세속적 의미의 중독과는 정 반대쪽의, 사실은 은총이다.

그것들이 지금 거의 5개월간 완전히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처음 3개월 정도는 ‘우리도 이 참에 좀 쉬자’ 라는 자세로, 심지어 즐기는 기분으로 지났지만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신경질이 나기 시작하고, 현재는 약간 우울감까지 느낄 정도가 되었다. 제일 관심사는, 내가 게을러졌다.. 라는 자책감이 과연 정확한 진단인가 하는 것이다. 제일 괴로운 것은, ‘언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하는 불확실성이다.  기도와 묵상, 의도적으로 규칙적인 일상생활, 그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참, 어쩌다가…

 

 

어제 새벽녘에 꾼 긴 꿈,  Ohio State U. 시절의 유근호 형도 보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았다. 그들은 누구들일까? 그곳은 어디였을까? 그 가까이 보았던 여자들을?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그저 ‘그립다’라는 생각만 나는 꿈을 꾼 것이다. 확실히 나는 꿈을 다시 꾸기, 즐기기 시작하고 있다. 좋은 것이다. 이것은 좋은 것이다. 혹시 나를 살려준 성모님도 보게 될지 누가 알랴?

 

요새 하늘을 가득 채운 무서운 습기가 조금 가신 아침, 문제는 바람이 전혀 없다. 공기가 그야말로 ‘정체, 침체’된 것을 본다. 이래서 끈끈하고 습하구나.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이 들어간 Water tank를 흔들어 보니…와~ 드디어 확인한다. 무거운 것이다. 물이 꽤 많이 찬 모양… 그리고 아직 그렇게 많이 새고 있는 흔적이 없다. 이런 상태로 water recycling을 할 수도 있겠다. Pump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ain water와 a/c water를 재사용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현재의 water tank는 사실 조금씩 물이 새던 것이다. 그래서 replace를 한 것이고… 하지만 조금씩 새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어떻게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큰 $$ 쓰지 않고, 나의 시간 적당히 이용하고…

오늘은 아마도 올해 들어서 제일 불쾌지수 heat index가 높았던 날이 아닐까? 기온이 92도가 넘고 상당히 높은 습도는 아마도 100도의 ‘불쾌지수’, 아니 요새는 ‘체감온도’라고 하던가? 아~ 더워도 좋으니 ‘빠삭빠삭 마른’ 느낌을 그립다. 하지만 그쪽으로 너무 가게 되면 ‘땅이 갈라지는’ 모습도 싫다.

요새의 극단적인 습도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는가? 좀 적응은 되었다만, 그래도 나는 신기한 듯 느낀다. 아~ 이것이 그 옛날 고향에서 느끼던 장마성 날씨, 그리고 농가에서 마루에서 잘 때 느끼던 그런 풍경들 을 생각하니 그다지 나쁘지 않다. 특히 1966년 경 여름 인천 앞바다에 있는 영흥도에 피서 갔을 때의 추억도 삼삼하게 살아나오고… 그래 젊음은 그런가, 그 때는 정말 불편함을 몰랐으니까… 다 신났으니까…  아~ 왜 또 나는 이렇게 ‘날씨’에 연연하는 것일까? 아마도 요사이 내가 너무나 육신의 고통이 없는 평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다, 좋아…

 

COVID-19의 봄 여름을 가며 동네는 유난히 조용한 모습이다

Pandemic 동안, 아예 집 앞에다 tomato를 심는 사람들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은 일찍 동네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물론 ‘아침잠’의 연숙이 도깨비처럼 일찍 일어난 덕분이다. 하지만 이 이른 아침 시간은 나에게는 정말 귀중한 시간이어서 그것을 못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David King의 7월 달 Georgia Bulletin column을 읽고 또 읽는다. 이 양반의 세상을 보는 눈이 흥미롭다. 현재의 pandemic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이번에는 두 프랑스 미술 거장, 고흐 Gogh와 고갱 Gauguin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필자는 영화, 문학 외에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역시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에 대한 것이다. 두 미술가의 경우는 ‘비극적’인 것으로 끝이 났지만 현재 필자는 그런 것들을 보며 ‘서로 사랑하는 자세’로 이 시국을 살아간다는 것… 하지만 반드시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빈센트 starry starry night, 를 배경으로 그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하는데, 나에게 결여된 분야인 예술 그것도 미술 쪽에 조금이라고 가까이 하는 기회는 역시 COVID-19 의 ‘덕분’이 아닐까?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Don McLean

 

건주가 정교성 근황 사진을 보내 주었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아주 건장하게 서서 집에서 수확된 채소, 야채들 앞에서 폼을 재고 있는 사진, 그럼 그렇지 그 녀석이 어딜 가겠나?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사연을 알면 다시 카톡이 연결되어 사연을 더 들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습기가 돌아온 나날이 시작된다. 아침의 기온을 보면 알 수 있다. 70도 이상이면 습한 것이다. 따가운 햇볕대신 끈끈한 촉감과 계속되는 a/c 소음… 그것이 한 여름의 모습이다. 괜찮다… 이제는 몸이 잘 적응을 하였으니까…  한 여름의 즐거움, 아~ 이 빗소리.. 아무리 90도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평화의 천사가 있고 시원한 빗소리가 들리는 이런 순간 순간들이 나의 70대 인생을 이끌고 있다. 나의 인생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의외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맡기자, 맡기자 모든 것을 ‘절대’에게 맡기자.

After-Dentist-Visit Effect,  한 달 예정으로 매주 가는 치과, 그 이후 날라가는 새로운 느낌과 심지어 행복함을 맛 볼 수 있는 며칠이 또 계속된다. 이럴 때 밀린 일들을 해 치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나는 대신 1940s 시대의 Charlie Chan movie 나 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부터 해 치워야 하는 것인가? 하도 할 것들이 많은 듯 우려 속에서 헤매는 느낌 뿐이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끝을 내고 다음 것으로 가면 되는데…

요사이 본당 성경통독, 구약성경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당황함을 조금 풀어줄 길이 기적처럼 나타났다. 요사이 읽고 있는 Bishop Robert Barron의 책, 바로 그것이다. 그곳에 나의 궁금증들이 비교적 자세히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어쩌면 timing이 이렇게도… 하기야, 이제는 이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이래서, Barron’s ‘white’ book,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actually mostly by John Allen) 에 점점 빠져들어간다. 나의 독서 전통과 기호를 따라 결론 쪽으로부터 읽기 시작해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나오고 있다. 8장부터 시작해서 7장이 오늘 끝났고, 오늘 6장을 시작한다. 8장, 7장을 읽으며 놀랍게도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이 거의 자연히 풀려나가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우연이지만 놀라움이다. 언제 어디선가 이렇게 해답이 나오니까 말이다.  오늘부터는 prayer & supernatural에 관한 것, Barron의 이 주제에 대한 논평, 의견은 이제까지 조금 짐작은 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배우게 되었다.

이 책에서 Bishop Barron의 Bible 론 을 읽으며 조금 구약에 대한 시각에 변화를 주는 듯 하다. 이 머리 좋은 ‘젊은’1 주교의 말은 내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드릴 수 있다. 거의 언제나, 언제나… 그래서 내가 영성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주교님과 항상 가까이 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Water tank rain barrel, a/c condensate water recovery 등등이 갑자기 나에게 활기를, 기분은 좋게 한다. 이것도 역시 electronics, microcontroller 가 관련이 되어 나의 발은 잡는다. 어젯밤 a/c에서 흘러나온 ‘공기 중의 물’이 무려 full bucket이 된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요새의 날씨가 기온보다는 습도가 유별나게 높은 것을 느꼈는데 이 사실을 완전히 실제로 나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어제 한 ‘바깥일’은 ‘공기중의 물’을 ‘다시 쓰는’  재활용, 그것이 목표였다. 전에 쓰다가 남겨둔 water heater tank에다가 a/c 의 condensate water를 저장하는 일이다.  Water pressure가 걱정이 되었지만 water tank 의 높이까지는 안전한 듯하였고, test를 해서 거의 확인을 하였다. 그 hose를 그대로 water tank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기다리면 되고, water hose를 꽂아서 꽃밭에다 주면… 와~~ 이것 멋진 것이다! 더 나은 idea는 그 옆의 rain gutter의 빗물까지 그곳으로… 저장, 근사한 idea가 아닌가?

 

레지오 월례통보가 왔는데 8월  9일 단장만 참석하는 월례회의를 하고 부단장 선출을 한다고… 와~ 이런 이야기 듣든 것 ‘몇 년’ 만인가? 부단장이라… 그 벌써 3년이 되었단 말인가? 현재로서는 머리가 안 돈다. 레지오 월례회의는 물론이고 주회합 조차… 그 정도로 머리 속에서 멀어졌단 말인가?

 

 

7월 6일에 세상을 떠난 이태리 Spaghetti Western music composer였던 Ennio Morricone 의 이름을 본 후 곧바로 추억이 나를 사로 잡았다. 1968년 가을, 겨울을 가며 담배연기 자욱한 해양다방에 앉아서 듣던 The Good , the Bad, and the Ugly의 주제곡… 그것도 ‘이선화’씨와 같이 들었던 멋진 추억으로 남았던 것…

 

 

 

  1. 사실은 60세가 넘은

 

지난 유월 초에 발행된 아틀란타 대교구의 격주간지 Georgia Bulletin 에서 나의 눈을 끌었던 기사,  정기 column이 하나 있었다. 제목이 조금 길었다. Absurdity and Hemingway’s ‘The Old Man and the Sea’. Absurdity 란 단어는 근래에 나의 눈길과 관심을 끄는 말 중에 하나이고, 그 다음은 물론 너무나 유명한 헤밍웨이의 1952년 단편소설에 관한 것이다.  왜 absurdity와 The Old Man and the Sea 가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일까…

이 기사를 쓴 저자 professor David King, Ph.D,  이 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Kennesaw State University 대학의 English, Film Studies 의 교수인 동시에 같은 지역 Holy Spirit Church에서 가톨릭 교회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반을 책임 담당하는 [director of RCIA] 교우이기도 하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이 column을 읽어 왔는데, 대부분 그의 전공인 문학, 영화를 통한 [가톨릭]영성 추구가 주제여서 내가 즐겨 읽는 기사 중에 하나였다.

왜 absurdity란 말이 나왔는가는 쉽게 알 수 있다. 요사이 코로나 사태와 인종분규, 역기능적인 정치판도 등에 의한, 한마디로 위아래가 완전히 뒤집힌 듯한, ‘말도 안 되는’ 세상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20세기 이후에 세상을 풍미했던 ‘세상은 부조리 투성이’란 한탄의 전형이라는 뜻. 그 유명한 20세기 초 Kafka의 소설,  ‘심판, the trial’ 의 absurdity는 사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지만, 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근래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내, 레지오 마리애 에서1 몇 번 겪고 나서 이것이 fiction의 영역만이 아님을 실감했다.

그런데 왜 ‘노인과 바다’ 소설이 함께 이곳에 언급된 것일까. 이 기사의 저자는 이 단편 소설에서 노인이 겪는 세상의 경험도 역시 absurd ‘말도 안 되는 이 세상’의 그것이 것이라는 뜻. 특히 무려 84일 동안이나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한 것, 구사일생으로 한 마리, 그것도 대어 marlin 를 낚았지만 결국은 돌아오는 도중에 상어에게 잃어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것, 하지만 이 노인은 끝에서 크게 실망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일말의 희망이라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희망은 반드시 있다라는 것이 바로 궁극적인 희망이다.

 

우리에게 이 노인이 겪은 84일은 어떤 것인가? 저자는 코로나 사태가 초래한 사회적 변화부터 시작해서 인종사태, 정치적 기능상실, 경제적 불안감.. 등등 절망적으로 열거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들과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도 예외가 아니다.  직업, 경제난에 대한 불안감, 정치에 대한 절망감,  이제는 무감각해진 엄청난 숫자의 코로나 희생자들의 비극 등, 이런 것들이 ‘부조리의 극치’임을 말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도 그런 것 이외에 다른 것들도 많이 있다.

나의 84일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은 118일이다. 지난 3월 17일부터 오늘까지가 118일인 것이다. 그 3개월 동안 우리는 성체성사를 한 번도 할 수가 없었다. ‘신영성체’라는 궁여지책 대안이 있었지만 그것이 신부님이 축성한 실제의 성체와 같을 수는 없다. 설상 가상 우리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 완전히 중단이 되었다. ‘기도와 봉사’의 둘 날개가 완전히 떨어진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 뿐인가.. 연령행사, 장례미사, 연도 등이 정지 되었다. 이 연령행사는 비록 고인과 가족들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내가 더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끔이나마 죽음의 이별을 통해서 다시 보는 삶의 의미, 세상의 교훈, 공부를 할 기회가 118일 동안이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absurdity중의 absurdity가 아닐까?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곳, 역시 정치적인 영역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완전히 불능상태에 빠진 정치체제에서, 오늘과 장래의 희망을 주어야 할 지도자가 자기 관심을 끄는데 온갖 관심을 두고 있고, 이런 인간을 관망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발견되는 놀라움 역시 absurdity중의 극치다.

그러면 과연 우리의, 아니 우리 후세들에게 어떤 희망은 있는가? 물론 희망이 없을 리가 없다. 그 ‘노인’에게도 꿈이 있었다. 문제는 언제 그 희망이 실현되는가 하는 것이다. 역시 해답은 ‘초월적’인 곳에 있다. 한 단계 위, 안 보이는 그곳을 향하여 보면 의외로 쉬운 문제가 아닐까?

 

 

  1. 무려 세 번을 겪었다.  그 모두가 세 명의 ‘문제 있는’ 여자들에 의한 것, 아직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50년만에 다시 보는 아버지, 평창이씨 이정모. 제일 아랫줄 오른 쪽 끝에서 세 번째의 ‘작은 체구’

 

아버님, 아버지, 아빠 그리고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친구들,   Esperanto Esperanto Esperanto friends..  감사합니다!

아마도 50년도 넘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이 사진, 우리 아버님의 모습을 이 사진에서 보았을  때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보던 ‘조선 에스페란토 학회 단체사진’  한 장이 digital format으로 오늘 나의 Email InBox에 들어와 있었다. 그 한 장의 사진에 분명히,  나의 뇌리 속에서 ‘우리 아버지’라고 알고 살았던,  ‘앞 줄에 앉는 사람 중 제일 작은 남자’ 가 있었다.

이 사진은 연락이 두절된 우리 누님 집에는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세월이 이렇게 깊어지면서 아마도 나는 생전에 다시는 아버지 사진을 못 볼 듯이 살아왔다.  하지만 에스페란토가 인연이 되어서 이렇게 다시 ‘죽기 전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친구들…

올해 2020년은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창립 100주년이 되어서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한다고 작년부터 관계자 분들이 연락을 주셨었다. 6.25 전까지 에스페란토 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아버지, 내가 알고, 기억하고 있는 나의 아버지 ‘이정모’ 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나와 개인적으로 연락이 된 것은 나의 2011년 8월,  ‘회상’ 블로그 ‘아버지와 에스페란토’가 계기가 되었다. 그 블로그는 생전 한 번도 못 보았던 아버님의 그림자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의 사그라져가는 기억력과 싸우며 개인, 가족, 특히 아버지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지만 6.25 발발 후에 홀연히 납북이 되신 아버님은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가상적인 존재였다.

그러다가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들어오던,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그 당시 집에서 보았던 각종 자료 (주로 학회지)등과 어머님의 말씀 등을 시작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해서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을 찾을 수 있었다. 최소한 아버지의 이름이 이기 저기서 보인 것이다. 그곳에서 6.25때 납북 되신 분들의 이름들이 보였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을 나는 에스페란토 역사에 남기고 싶었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가 막막했는데, 하늘이 도와서 나의 블로그 가 인연이 되어서 연락이 되어 이렇게 아버님의 사진을 다시 ‘찾게’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사진에 앉아 계신 아버지, 그 당시는 서울 경기고등학교 영어 교사였을 것이다. 이 사진은 에스페란토 정사에도  있듯이 ‘8월에 KEI 제5회 강습회가 개최되었는데 약 30명이 참가하고 서병택, 석주명, 이정모가 지도하였다‘ 라는 구절의 바로 그 역사적 사진이었다. 1949년 8월이니까 일년 뒤에는 민족반역자 김일성 무리들에게 납북되실 운명을 짐작이나 했을 수가 있을까? 한 개인과 가족의 역사는 이렇게 산산이 조각이 났는데, 아직도 그 반역자 세습무리 들이 북녘에서 설쳐대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부조리의 극치’ 가 아닌가?

100주년 기념을 준비했던 관계자 분들, 역시 다른 ‘부조리’인 코로나바이러스로 실제적 기념대회는 무산이 되고 10월에 Online Conference로 대치하는 모양이다.  세계 전체가 불안하게 보이는 이 때에, 세계 평화를 갈망하던 에스페란토 창시자의 꿈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한가…

The Persistence of Memory – Salvador Dali

 

오늘까지도, 며칠 전에 선종하신 윤 요안나 자매님의 성당 장례미사, 밤에 있는 장의사 연도,  참석할까 말까 하는 것,  계속 우리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교과서적, 안전한 쪽’으로  모두 불참하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10년 차 레지오 단원으로써 계속 찜찜하고, 지난 간 세월들,  ‘코로나 前’ 세월이 그립기도 하다. 이런 연령행사 때, 우리는 ‘두 번 생각’을 안 하고 그들과 함께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이고 생각하고 생각을 해야 하니까, 한마디로 ‘부조리 absurd 不條理적,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어제 도라빌 H-Mart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마리아 자매님, 한국인 집단, 공동체, 단체 등에도 서서히 감염자가 생기고 있다고 경고한다. 당분간은 성당 공적 미사에는 안 나가는 게 좋겠다는 강한 의견을 보이신다. 그래… 7월 말까지 미사참례의무가 없다고 하니까, 그것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이성적인 판단일 듯하다.  ‘싸가지 없는 젊은 애들이 겁 없이 마스크도 안 쓰고 설쳐대는’ 이때다. 너희들은 걸려도 무감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그대로 간다’.  마스크가 정치적 쟁점으로 둔갑한 이 ‘말도 안 되는, 빌어먹을’ 정치판도에서, 역시 우리들에게는 나이가 ‘웬수’인가… 나이가.. [너희들은 나이를 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3월 24일부터 거의 3개월 반 동안 우리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례해 오고 있는  대한민국 CPBC 평화방송의 매일미사, 현재까지도 없으면 난감할 정도로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우리들의 본당 주일미사가 온라인으로 재개 된 후부터는 평일미사만 평화방송에 의지하고 있다. 이 매일미사에 참례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는:  참으로 다양한 신부님들의  언행, 특히’말투’가 있다.  장소가 바뀌고 신부님이 바뀌는 것,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이제는 익숙해 졌지만,  문제는 ‘일상적인 말투’를 벗어난 그런 것들이 분심을 일으키는 그것에 있다. 어떤 때는 정말 괴롭기도 하다. 우리 둘이 똑같이 느끼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나치게 민감한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래서 요새는 과연 오늘은 어떤 ‘이상한 말투’의  신부님을 보게 되는 것인지 은근히 걱정까지 될 정도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면 우리가 그 동안 겪어온 ‘이상하지 않는 말투’의 신부님 복은 과분하게 받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어제 치과 방문에서는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궁금했지만, 치아가 없어도 우려한 만큼  ‘치명적’인 것이 아님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먹을 때 조금 불편한 것과 많은 사람들 대하는 것, 그것 뿐이다. 대신 음식준비의 연숙이 좀 더 신경은 쓰겠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조금 서로 느긋하게 relax를 하며 토니 씨와 신변, 배경, 주위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행히 Ohio State [University] connection 이 그 중에 하나였고,  뜻밖으로 ‘경복고 景福高 connection’으로 그들의 동창회 임 형의 이름까지 나왔다.  하여튼 앞으로 2~3주 더 가면 모든 dental work 일 이 끝나겠지… 이렇게 일주일 일주일의 여름을 징검다리 건너듯 넘어간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 시간 이상 마늘을 까주며 연숙을 도왔다.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에 신경을 써주는 연숙을 보면 흡사 엄마나 누나의 느낌이 든다. 그런 때가 참 많았다. 나를 거의 동생 돌보듯, 아들 보살피듯.. 참 재미있다. 그런 것을 나는 많은 경우에 무시하거나 귀찮아 할 때가 있었다. 오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대로 나를 도와주며 인정해주는 여성이 나에게 가장 가까이서 살고 있다는 사실, 왜 나는 그렇게 잊고 사는 것일까? 미안해… 미안해…  앞으로도 역시 또 귀찮아 하고 무시할 때가 있겠지만 정말 결사적으로 노력을 하게… 정말…

 

7월 들어서 첫 주일, 연중 제14주간 온라인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 봉헌을 하였다.  오늘은 지난 주 보다 더 많은 교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예고된 대로 한달 반 동안 계실 임시로 오신 신부님이 소개되었다.  예수회 신부 서품이 된지 2년 밖에 안 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를 듯한’ 그런 장래를 위한 목자.  

앞으로 2달 반 공석일 주임신부님의 ‘철학’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오늘의 강론에서도 조금씩 드러난다. ‘신학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영성’에 더 치중하는 것을 본다. 특히 개개인 적인 소명, 식별, 파견의식, 행복 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임기 중에 가급적 많은 교우들이 ‘신앙의 기쁨’을 느끼게 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나는 비록 신학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 신부님 강론, ‘파견 론’에 대한 것인데 의외로 나도 느낀 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오늘의 큰 수확이다. 나의 ‘칼국수’는 무엇이었던가?  기어코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그것 (일명, 칼국수)’에 대한 집착,  그것을 버려야 행복하다고… 나의 칼국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젊음,  아련하고 행복했던 지나간 세월,  바꿀 수 없는 지나간 과오,  그런 신기루를  내가 붙잡고 있었다는 깨달음, 그것을 나는 이제 놓아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신 구역장 소개가 있었는데,  우리가 전에 있었던 구역에서는 ‘별로 호감이 안 가는’ 사람이 소개되어서 기분이 엇갈리고 착잡하였다. 나쁜 기억들에 파묻혀서 나는 아직도 지난 날의 정리를 깨끗이 못하고 있지만, 이제 즐겁지 않은 과거는 흘려 보내야 할 듯하다.

미사 중에 신부님으로부터 뜻밖의 발표가 있었다. 진희네 부부의 이름이 나오고, 아프리카 수녀님 후원 장학금으로 거금  $10,000 이상이 진희네로부터 봉헌이 되었다고…  그렇다. 돈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기고 , 쓸 줄 모르는 것이 문제다. 돈을 현명하게 쓰는 것, 돈의 노예가 아니고 돈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우리는 어떤가?  돈도 없지만 현명하게 쓰고는 있는가? 그들이 부럽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병으로 입원했던 윤 요안나 레지오 간부 (부단장) 자매님이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같은 사태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웠고, 그 동안도 계속 기도 요청이 있어왔다. 그러던 것이 그제 갑자기 선종기도 요청이 들어와서 병세가 아주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자세한 병명을 모르지만 암 같은 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선종기도를 한 지 불과 하루 만에 life support system을 떼어낸다는 슬픈 소식이 왔다.  그러니까, 그 동안 coma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오늘 아침에 숨을 거두었다고 레지오에서 연락이 왔다. 그 동안 큰 관심과 우려로 기도를 바쳤던 이 자매님, 애 띠고 밝은 얼굴로 가냘픈 몸으로 레지오 활동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상은 했던 것이지만 어찌도 이렇게 가슴이 저려 오는 것인지? 항상 미소를 머금은 눈과 얼굴이 이렇게도 선 한데…

건강한 모습으로 마지막으로 본 것이 아마도 올해 초 (아니면, 지난해 말) 에 레지오 방문을 갔었을 때, 단장 부재로 대신 주회합을 주재했던 그 모습이었다. 항상 어딘가 아픈 듯, 약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끝까지 레지오의 간부로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무슨 사연으로 그렇게 몸이 아팠던 지는 잘 모르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더욱이 이런 코로나 사태 때에…  우리는 장례미사도 못 갈 듯하고 레지오 장 葬 도 못하고, 이 얼마나 모두가 쓸쓸한가?  코로나 사태의 최악의 결과 중에는, 장례미사에 갈 수가 없다는 기막힌 사실이 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 제대로 고별식을 못하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울지 예전에는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Independence Day, 비록 barbecue와 beer는 못했어도 연숙이 정성 드려서 만들어준 아주 부드러운 갈비찜으로 점심을 포식을 했다. 모든 음식을 부드럽게 해야 하는 것, 얼마나 신경이 쓰일까…. 내가 이런 것에 약하다, 너무나 그런 정성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Barron의 ‘하얀 책’에서 Barron & Trump란 section을 보게 되었다. 흥미가 인다. 나는 이런 사람의 의견이 필요하다. 유명한 신부님을 넘어서 새로 된 주교의 입장으로 쓴 이 글, 어떻게 그는 balance를 찾고 있을까? 신자의 입장에서 이런 각도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엄청 흉하게 자란 앞쪽 yard의 잔디를 깎았다. 이것은 최소한 2시간이 걸리는 지루한 job이지만 오늘은 지루한 것 보다는 무섭게 쏟아지는 UV radiation으로 더욱 피곤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일 뒤에 찾아오는 즐거움, ice cold Yuengling 맥주, 모밀국수, 사라진 입안의 통증,  Tubi movie, Charlie Chan old movie등이 있는 것에 감사.

 

오랜만에 예전에 Tobey와 같이 누웠던 playground엘 갔다

 

2020년 7월 성경통독 일정표

 

달 [月]이 바뀌니 달력도 ‘또’ 넘겨야 하고, 작년과 달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전 全 신자 대상] 성경통독 계획표가 바뀐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보의 인쇄, 배포가 중단되어서, 귀찮지만 Online 주보를 보고 다시 표를 만든다. 이번 달부터는 열왕기 2 뒤에 이어 나오는 역대기로 가지 않고, 난데 없이 뒤쪽으로 가서 ‘아모스’를 읽으라고? 더구나,  이미 ‘통독’ 했던 시편이 다시… 그것은 이미 읽었던 것인데…  불현듯 짜증이 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한마디의 안내 말씀을 덧붙이면 안 되나? 이것은 총책임자인 신부님의 불찰이라고 생각한다. 일년 동안 가톨릭 성경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반복, 제외)  통독한다는 것인지, 어느 부분은 한 번 이상을 읽는다든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있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참,  전 신자가 일년 동안이나 각종 에너지를 총 동원하는 큰 일에, ‘자세한 사항에’ 세심한 성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들뜬 기분이 나의 머리를 감도는 또 다른 아침을 맞는다. 지난 밤에는 예전에 비해서 더 생생하고 다양한 꿈들을 꾸었다. 이것도 입안의 통증과 상관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전에는 모든 정신과 신경이 그 ‘고통’ 으로 몰렸기에 꿈 조차 멀리 사라진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내가 그것의 ‘공포’를 느끼며 살았던 것… 바보다 바보다…나는 바보다..  오랜만에 ‘피부적, 관능적’ 느낌의 꿈을 꾼 것,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 짜릿한 느낌은 역시 본능적, 말초적이지만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싶기도 하다. 그것이 하느님이 주신 ‘본능적 사랑’과 연관시킬 수는 없을까? 참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렇게 느끼는 것을…

이 없으면 잇몸… 참 명언중의 명언인가, 새삼 느낀다. 내가 요새 바로 그 지경이 되었으니까 하루 하루 새로운 경험을 한다. 전처럼 입 안에서 특별한 통증이 없는 상태로 음식을 넘기는 방법은 역시 잇몸이었다. 소시지 [요새 맞춤법은 이런가?] 까지 큰 무리 없이 씹히니 말이다. French toast에다가 달걀, 토마토 등등으로 기분 좋게 아침이 해결 되었다… 감사합니다.

 

Bishop Barron의 책,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중에서 Chapter 8,  ‘Obstacle to the Faith‘ 를 필사하며 흥미를 가지고 천천히, 자세히 읽는다. 한 때 나의 주 主된 관심사이기도 했던 모든 것이 한 章장 Chapter에 고스란히 정리가 되어있다. 이 ‘머리 좋고 젊은’ 주교 신부님의 ‘이성적, 영성적, 신학적, 심지어 과학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은 것이다. 이것의 정독, 필사가 끝나면 주제별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10 여 년간 내가 얼마큼이나 가톨릭 신앙을 체계적으로 이해했는가를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이것을 블로그에 남겨서 모든 교우들과 나누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 감사합니다!

 

冊,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 지라도 (부제: 이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이진섭) 의 필사가 의외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얼마나 이 책에 한때 흥미 있게 몰두했었는지 새삼 놀란다. 모든 구절 구절이 어제 읽은 듯 하니까… 이것이 online archive 로 남는 것도 ‘준재, 벌거숭이 이진섭’ 선생님을 추억하고 기리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이번에 천천히 읽으며 새삼 느끼는 것, 이진섭 선생님은 나의 1 아버지와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되고, 아니 더 비교하고 싶은 충동까지 난다. 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듣고, 읽고, 느낀 바에 의하면 나이가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두 분, 참 어려운 시대, 격동의 시대를 헤쳐나가셨다는 동정심을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두 분이 간 길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니…아버님, 아버지…

이번에는 희한한 상상을 해 본다. 내가 이진섭씨가 되고, 연숙이 박기원씨가 되는 상상이다. 너무나 다른 인생이긴 하지만 같은 연령대를 살아갔으니까 공통점이 없지는 않을 듯. 가끔 읽다 보면 내가 이진섭이 된 착각에 빠지고 박기원 여사가 연숙 으로 대치될 때도… 그러니까.. 인생의 50/60대를 살 때의 모범의 삶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이 책에서 찾으려는 노력이다. 결국은 인생말기를 살아가는 과정을 비교한다고 할까…  그리고 나는 무언가 이 잉꼬부부의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인생철학이랄까…

 

  1. 6.25 발발 직후, 얼굴도 못 보고 납북되신

오늘 우연히 나의 손이 간 곳에 Bishop Robert BarronTo Light a Fire on the Earth  책이 있었다. 한때는 하룻밤에 다 읽을 것 같았던 것이 몇 년이나 되었다. 내용이 Barron의 해박한 지식답지 않게 읽기에도 가볍고 쉬운데 그것은,  John Allen이란 유명한 Vatican 주재, 가톨릭 journalist가 Barron과 인터뷰를 하며 거의 쓴 것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 책을 읽으면 곧 바로 나는 Barron 주교의 ‘지성적, 영성적’ 깊이에 감탄을 연발한다. 어떻게 이런 ‘나보다 어린’ 사람이 이런 때, 세속화가 가속되는 때에 세상에 나왔을까?

나의 주관심사는 물론 그의 독특, 해박한 ‘깊은 지성에 바탕을 둔’  apologetics, 호교론 이다. 또한 어떻게 그렇게 어렵고 깊은 신학적 idea를 ‘호전적’인 무신론적 대중에게 전달하는 가 하는 것, 역시 주관심사다.  그가 Social Media를 종횡무진 오가며 일반대중과 ‘건설적인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이 주교님은 한 세기에 한번이나 나올까 하는 ‘가톨릭계의 거성’ 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이 ‘가볍게 보이는 책’을 다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입 속 ‘느낌의 천지개벽’, 하루도 못 가서 나의 혀는 그것을 익숙하다고 말을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모양새만 문제가 없다면 이렇게 살아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먹는 것,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실감이 가는 것일까? 우선 죽을 먹으니까 배고픈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 맛있는 것? 그런 것 나는 참을 수 있다. 우선 ‘통증’이 사라진 것에 나는 감사하고 감사한다.

어제, ‘치과 월요일’의 여파가 조금씩 지나가려 하고 있다. 머릿속에 이 이날에 일어날 일을 잠재적으로 알기에 조금은 stress로 느껴졌지만 예전에 비하면 ‘양반’이다. 물론 이빨을 뺀다는 사실이 나를 움츠리게 하지만 이것도 나의 생애에서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른다 . 이번에는 드디어 3개의 ‘흔들리고, 쑤시던’ 이를 뽑았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 진 듯 (빼는 과정)..  치과를 나올 때의 날라가는 즐거움, 누구에게 ‘발설’도 못하고 속으로 가벼운 심정을 토로한다. 집에 와서 Tylenol PM을 먹고 2시간 빠져들 듯 잤더니 또 다른 개운함과 편안함이 나를 반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시 새롭게 변한 ‘입안의 지도’로 나의 새로운 경험이 시작된다.  윗니가 없는 감각은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심한 변화는 아닌 듯 싶다. 물론 씹을 때는 다르겠지만 현재까지 100% 유동식을 넘기는 것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 ‘치통’이 거의 사라진 희열감을 또 다시 만끽하고 싶다. 며칠 내에 그것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겠지만.  이렇게 해서 나의 새로운 경험의 세월은 또 흐른다. 다음에 올 경험의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 제발 즐겁고 편한 것이 되기를…

 

이를 거의 모두 뽑은 첫날의 음식은 죽 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박기원 여사의 ‘이진섭 전기’인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 지라도: 이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이진섭’을  필사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속도가 붙었다. 옛날 20년 전쯤에 하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어제 읽은 듯 반갑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이진섭씨의 생각과 말을 내가 꽤 많이 ‘도용’했고 빌렸던 것도 재미있다. 65세 만세론 같은 것… 지금 내가 70세가 훌쩍 넘으니 이 ‘준재’ 님 아깝게도 나이 60에 일찍 가셨다는 생각이고, 이제부터 나는 누구를 ‘따르고, 모방’하며 살아야 할지 난감하다.

 

일주일 만에 순교자 성당 미사에 ‘참여’를 하였다. 오늘은 지난 주에 비해서 교우들 숫자가 확실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100명 한계에 도달했을까? 오늘 신부님의 강론은 예상을 벗어나 아주 훌륭한 것이었다. 지난 주에 조금 실망을 해서 아예 녹음을 하지 않더라니… 하지만 나중에 다시 녹화된 것을 보면서 녹음을 하였다. 중요한 복음중심의 메시지를 비교적 간단한 주제로 깊이, 하지만 쉽게 전달하는 스타일이 바로 이 신부님의 독특한 것이다. 신학적 깊이를 드러나지 않게 일상적 예를 들어 쉽게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 미사 끝에 구역장 임기를 마친 것에 대한 상패 수여가 있었다.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조금은 착잡하고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벌써 2년이 흘렀구나… 나는 도중하차 했지만 하늘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을 한다. 하나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신부님이 7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한국엘 간다고 (예수회 일로), 임시로 사목할 신부님이 이미 오셨다고 했다. 이래저래 우리의 성사,  레지오, 교회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불투명하게 되었다. 오늘 말씀이, 7월 중에도 성당 단체들의 활동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단체들은 ZOOM video 를 통해서 모임을 하라고 한다… 우리 레지오는 이런 가상적 모임은 상상할 수가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난감하다…

 

은비령, 드디어 ‘탈고’를 하고 ‘출판’을 했다. 아주 빨리 끝낸 듯 느끼고 있었지만 사실은 거의 2주 만에 끝난 것이었다. 하기야 그 동안 이것에 매일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느니 2주면 빠른 것이다.

이 소설의 느낌에서 내가 공감, 동감, 빠져드는 것들이 꽤 있었다. 산, 눈, 우주, 여자… 등등… 하지만 끝 부분에 나는 큰 사고를 겪었다. 이 작자의 1992년 소설 ‘압구정동..’ 어쩌구 가 있어서 잠시 훑어보다가 그만 shock를 받고 다시 서가로 쫓아 보냈다. 어쩌면 그렇게 ‘음란성 묘사’를 잘 해 놓았는지… 한마디로 은비령의 인상이 거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으로, 잊기로 했다. 이 작자가 그런 묘사를 했다는 것은 분명히 porno 음란성 매체에 가까이 했거나 심취 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것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잊자, 그저 잊고, 은비령의 ‘정수 精髓’ 만 나의 것으로 남기자.

 

요사이 무척 많은 ‘續, new’ 역사스페셜 video를 download하였다. 유인촌의 classic series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 후의 것은 적응하려면 시간이 조금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현재 까지 HD series ‘고두심’  진행은 별로인 느낌이다. 사회자, 진행자로서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역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실망이었고,  전원일기의 고두심이란 원래의 인상이 흐려지는 느낌으로 남게 되었다. 그 다음 것은 더 보아야 하겠지만, 역시 유인촌 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KBS 역사 스페셜  ‘삼국사기의 역사논쟁‘  video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삼국사기 책을 모두 해체하는  장면을 보고, 나도 나의 ‘古書’ 만화책: 내가 1962년에 그린 만화, ‘민족의 비극을 그렇게 해 보는 것… 그러니까 ‘해체’ 해서 scan하고 복원하는 것…. 이것도 시간이 났을 때 하는 것, 재미있지 않을까?

 

 

 

유월 이십사일, 세례자 성 요한 탄생 축일..   이른 아침에 보낸 카톡,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영명축일… 곧바로 답이 도착, 너무나 반가웠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신부님과 지난 3년 동안 얽혔던 공동체와 연관된 우리의 여러 가지 사연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작은 우리들의 신앙의 역사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신부님과 3년이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오랜만에 평화의 느낌이 온다. 진정한 평화… 갑자기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 듯한 ‘착각’ 인가? 오늘 냉면을 자신 있게 먹을 때 약간의 치통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 그것도 큰 걱정 안 한다. 며칠 있으면 그 나머지 고통도 사라질 테니까.. 그런 것 말고는 몸에 큰 이상을 못 느낀다. 아직도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어젯밤엔 복잡한 꿈까지 나에게 돌아왔다. 이것이 나를 더욱 편안하게 한다. 연숙의 몸도 요새는 그런대로 소강 小康 상태가 아닐까? 요란하게 먹기 시작했던 ‘필수적인 약’들도 이제는 조금 습관이 되어 가는 듯하고, 외손자를 보러 갔다 오면 들뜬 기분으로 되는 것도 보기가 좋고… 그래 당분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보자. 큰 놀람 없이…  물론 코로나바이러스, 레지오, 성당, YMCA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해결이 되면 더욱 좋겠지…

 

이순원 1998년 소설 은비령 필사를 재개한다. 이 소설 이야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본격화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매력적인 ‘상황, 환경’들이 펼쳐진다. 아~~ 총각시절의 느낌, 호기심 등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특히 그 당시의 이성 異性 에 관련이 된 느낌들… 그리고 남자친구들의 느낌들도…  이제는 모두 다 나를 떠난 지 영원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전에 회상한 ‘청옥산의 추억’과 이 은비령의 느낌을 비슷하게 보고 싶었다. 하나는 소설이지만 나의 것은 나의 삶의 개인역사다. 하지만 나의 것도 소설처럼 허구성을 넣어 보고 싶다. 그것이 더 아름다울지 모른다. 이것도 하나의 꿈이다. 저 세상에서나 실현이 가능할 수 있는…

 

오늘 잠깐 나가서 20년도 넘었을 듯한 ‘불쌍하게 방치된’ 우리 뒤뜰 새집 (주로 Southeastern Bluebird )들을 떼어내었다. 어쩔 것인가? Post가 3개니까… 그대로 3×3=9개를 할 것인가? 필요한 Lumber가 있을까? 그것보다는 동그란 작은 문을 만들 tool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hole saw가 현재…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해도 만들 수는 있지… 이것이 새로 설치되어서 그 많은 bluebird 들이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요새는 이 새들아 안 오는지 아침이 조용하게 느껴진다.

 

 

2년 만에 Harbor Freight ‘cheapo’ pressure washer 를 꺼냈다. 2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그때 아니 이제 겨우 2년 밖에 안 되었다고? 믿을 수가 없다. 나의 세월, 시간 감각이 아주 혼란을 겪고 있다. 그 한가지 이유에는 분명히 3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너무나 변했기 때문이다. 2년 전, 구역장을 새로 맡아서 의욕에 찬 고생을 시작하던 때, 이 pressure washer로 집 앞, 옆을 깨끗이 화장을 했었다. 그래…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절대로 잊지 말자.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한 노력이 더 중요하니까… 가끔 괴롭더라도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은 제대로 보내주자. 그때 그때 세월의 의미가 각각 다를 테니까… 고이 고이 보내주자.

 

Ozzie와 같이 있던 것이 벌써 닷새째? 허~ 벌써… 첫날은 조금 어리둥절하던 녀석, 마루 바닥에 오줌까지는 싸놓은 실수까지 했지만 곧바로 다시 적응하며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지냈다. 오늘은 갈 것 같아서 조금은 또 허전한 마음이 될 것이다. 그래, 섭섭해 하지 말고 다시 볼 것을 생각하며 흐뭇해 하자…

어제는 나하고 Ozzie가 둘이서만 걸었다. 어제보다 더 활발하게 생기 있게 걷는 것을 보니 우리 집에 완전히 적응을 한 모양, 하지만 어제 집으로 돌아갔다. 가고 나면 첫날은 무언가 허전하고 멍멍하다.  찾아 오면 조금 귀찮기도 하고, 떠나면 그렇게 섭섭하고… 어쩌란 말인가?

 

 

2009 Hyundai Sonata의 뒷바퀴 tire에서 바람이 아주 천천히 새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줄 알았지만 며칠 후에 완전히 빠진 것을 보고 조금은 우려가 되었다. 급한 것이 아니라서 Amazon으로 tire repair plug을 order 해서 받아보니 완전히 100% 짱깨의 제품이었다. 스펠링 틀린 영어에다가 무식하게만 보이는 ‘신 한자’들… 이들의 제품이 안전이나 한 것인가… 하지만 Amazon의 매력은 customer review에 있기에 우선 그것을 믿는다. 보통의 것들보다  plug의 길이가 거의 두 배에 가까워서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쓰고도 남을 듯해서 새로니, 나라니에게도 나누어 주어도 좋을 정도였다.

Repair의 결과는 좋았다. 비록 바른 쪽 어깨의 근육이 조금 생각보다 더 필요했지만 말이다. 제품도 촌스러운 포장에 비해서 Amazon  review처럼 plug의 volume이 꽤 많았다. 그래서 plugging하는데 힘이 더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당분간, 아니 이 tire를 다 쓸 때까지 끄떡도 없을 듯하다. Tire 바람이 샌 이유는 웃기게도 작지만 날카로운 못, 바로 그것이었다. 그야말로 이건 재수없는 사고였다. 며칠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물론 자신이 있다.

 

 

KBS 역사 스페셜… History Special… 이름도 독특하다. 무엇이 스페셜 하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 보여주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뜻은 아닐까? 물론 여기서 역사 스페셜 이란 거의 20여 년 전에 대한민국 국영방송 KBS 에서 제작, 방영한 인기 다큐멘터리다. 이 프로그램을 나는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Pandemic 사태 중에 다시 많이 보게 되었다. 물론 여유 시간이 거의 무제한으로 나에게 다가온 시기였기에 이것도 그것을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나를 가끔 찾아오던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하는 특별한 역할을 하기도 했기에 지금은 아주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50대가 되기까지 세계적인  ‘정치적, 사회적’ 역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때까지 나이를 살아가는데 필요성이 없어서 그랬을까? 한마디로 나에게 역사란 물리적인 시간이 모두 지나간 때의 ‘실재 實在 사실 事實’, 그림, 글, 사진들에 남은 퇴색된 옛날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50대가 넘어가면서 늦게나마 나에게는 역사의식이란 것이 움트기 시작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연적인 것인가 아니면 나만이 경험한 우연적인 일인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30대 이전에 보편적 역사의식이 생기는 것은 드문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나는 아마도 조금 늦게 이런 의식이 생긴 것이 아닐까.

 KBS 역사 스페셜, Wikipedia에서 자세한 내용을 거의 우연히 찾게 되었다. 알고 보면 내가 가지고 본 것들은 제1차 스페셜 [1998~2003]의 완전한 전부였다. 그 이후 나도 기억하는 ‘고두심’ 진행의 2차 HD 역사 스페셜[2005~2006]이 2006년부터 일년 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3차 스페셜[2009~2012] program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것도 거의 1차의 반 정도가 되는 100회가 넘는 긴 series였던 것을 오늘 알고 깜짝 놀랐다. 물론 진행자는 ‘한상권’이라는 아나운서라고 하는데 물론 나는 전혀 안식이 없는 사람이다. 제1차 시리즈에 매료된 나는 역시 ‘전원일기’ 유인촌의 진행에 모든 가치 기준을 두고 있다. 그가 ‘사실상 표준’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1차 시리즈 전체 150회가 넘는 갓, 이미 오래 전 우연히 download를 해서 언제라도 볼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그 후 시리즈의 것들을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Wikipedia link를 따라가 보니 그곳은 원래 제작자인 KBS site였고 물론 그곳에서 공식적으로 그것을 ‘공짜’로 보여 줄 리는 만무… 작은 희망인 ‘open’ YouTube를 가보니 그곳에서는 몇 편인지는 모르지만 볼 수 있는 희망이 조금 보인다. 일단 ‘낚시 줄에 걸리는 것’ 부터 download를 시작했는데…. 과연 몇 편이나 건질 수 있을지…

새로 찾고 download한 ‘續’ KBS 역사스페셜 후편들…  2006년에 방영된 2차 시리즈, ‘전원일기’ 고두심 진행의 것 중에 ‘수도 한성의 건설이야기’를 본다. 2006년 즈음의 강북 江北 서울이 고스란히 나온다. 어찌 가슴이 저며오지 않으랴…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이제 거의 question mark가 되었고, 이제는 그런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오래 전에는, 100% 고향에 가서 죽으리라 했던 것이 이제는 이렇게 나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어떨까? 나의 원래의 소원이 비현실적이었는가?

 

주일날 아침. 거의 잊고 살았던 2020년 Father’s DayOzzie와 같이 우리들, 시원한 아침에 걸었다. 연숙과 걸음을 맞추는 것, 오늘은 전혀 문제가 없다. Ozzie가 오랜만에 고향에 온 듯이 산책길 곳곳의 냄새를 기억하며 시간을 끌었다. 정말 평화로운 산책이었다. 어찌 평안함과 푸근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무서운 고통, 실망, 우울 등에서 갑자기 해방된 기분을 누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Father’s Day라고 몇 가지 message도 받았고 새로니와 Richard로부터는 TACKLIFE Laser Distance Meter를 선물로 받았다. Tool을 좋아하는 Richard로부터 그 동안 받은 선물은 대부분이 tool종류였고,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맞게 선택을 한 편이었다.

 

TACKLIFE laser distant meter

 

오늘 아침에 배달 된 따끈따끈한 매일 성경묵상글을 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구절이었다. 마태오 복음 10장의, 아하! 이 구절은 그 유명했던 Billy Graham 전도대회에서 끝 무렵에 신앙개종권유의 메시지였다.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그렇게 익숙했던 것. 그 목사님, 정말 한세기에 한번이나 나올 까 말까… 젊었던 시절 나도 그의 집회 중계를 많이 보았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  ‘믿음은 공적, 공개적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Everyone who acknowledges me before others

I will acknowledge before my heavenly Father.

But whoever denies me before others,

I will deny before my heavenly Father.

Mt 10:26-33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지난 주일 미사, 예의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신부님의 강론, 그 ‘독특한’ 스타일은 계속된다. 아마도 이임할 때까지 이런 식의 강론은 안 변할 듯 하다. 비록 의도적으로 깊은 학문적 신학 대신 개인적, 사회적 신학은 풍부하다. 서로를 위한 기도를 잊지 말고, 제발 모두들 행복하게 살라는 신신당부의 강론은 가끔 가슴을 저리게 한다. 감사 합니다. 신부님, 신부님도 행복하세요…

 

 

교구청에서 공식적으로 7월 말까지 주일미사 의무를 면제한다고 공문이 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요새의 코로나 현황을 의식한 듯하다. 안전한 쪽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주임신부님의 희망은 그것이 아닌 듯 들린다.  짐작에 제발 빨리 많이들 나오라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어려운 개인적 판단이 필요한 것,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성당 공동체에서 너무 오래 떨어지는 것, 나는 사실 경계하고 싶다. 현재의 상황이 우선은 편하기도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래 이렇게 사는 것, 개인적으로도 문제다. 옛날에 이미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절대로 신앙공동체에서 멀리, 오래 떨어지면 위험하다.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임을 잊지 말자.

오랜만에 우리 가족 저녁기도를 했다. 거의 5일이나 되어가나… 하지만 나 혼자의 묵주기도는 아직도 못하고 있다. 내일부터는 할 수 있겠지. 문득 생각한다… 나의 신앙심이 혹시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전처럼 영적독서를 안 하고 있는 것이 증거다. 다시 2010년대 초에 내가 심취했던 것들, 특히 과학과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apologetics, 그것들이 그립다. 정말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분명히, 기필코, 결사 코…

 

치통이 사라진 또 하루의 아침이 밝았다. 아직도 나는 경이로운 감정으로 이 ‘무 無 고통’의 일초일초를 만끽하고 있다. 밤잠도 거의 신경이 안 쓰이는 것, 나의 즐거움, ‘엎드려 자는 것’도 완전히 오랜 옛날의 그 기분이 돌아온 것…  감사합니다.

이래서 요새는 무통의 날을 즐기는 그런 날이 되었다. 조금씩 새로운 다른 감각에 적응은 하고 있지만 그 무섭게 아프던 나날이 쉽게 잊혀지는 것도 싫다. 현재를 더 즐기기 위해서…  이제는 앞으로 새로운 입안의 감각에 적응을 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하지만, 현재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 말로 ‘이 없으면 잇몸’라는 말, 너무나 실감이 간다.

꿈들을, 그것도 내가 그렇게 그리던 종류의 꿈들, 그것도 비교적 생생한 것들을 많이 꾸었던 밤, 너무 깊게 꿈에 잠겼는지 눈을 떠보니 7시도 훨씬 넘었다. 이런 꿈이 다시 돌아온 것은 분명히 입 속의 고통과 연관이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머리 속에도, 영육간으로, 잔잔함과 평화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거의 5일째 이런 평화와 편안함을 ‘축하’하며 살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다. 비록 이런 ‘고통의 재난’은 내가 자초한 탓도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더 이상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저, 그저, 현재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장마성 날씨가 시작되었나? 따가운 기운보다는 축축한 기운이 대기를 덮고 당장이라고 보슬비로 시작해서 폭우가 쏟아질 듯한 하늘이다. 100도가 넘는 불타는 대지보다는 이런 날씨가 얼마나 좋은가? 왜 사람들은 비를 그렇게 반가워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무조건 비가 좋은데…

비가 충분히 왔던 덕인지 올해는 작년에 하나도 피지 않았던 수국이 만발을 하였다. 꽃에 조금은 무식했던 나도 이 수국만은 잘 알았고 여름이 가까워오면 아예 기다리기도 했다. 작년에 찾아오지 않았을 때 그렇게 섭섭했는데 올해 다시 우리를 찾아와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어서 올 여름의 기분을 들뜨게 해준다.

 

 

오랜만에 새로니의 강아지, Ozzie가 온단다. 반갑기도 하고 나의 느긋한 일상생활이 조금은 변하겠다는 약간의 귀찮음도 없지는 않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미미하나마 작은 노력과 움직임의 기회가 필요하다. 이것도 나의 작은 ‘친구 동물들에 대한 봉사’라고 보면 지나친 것일까? 사람과 동물이 이렇게 가까이서 ‘무언으로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름다운 계기가 아닌가?

새로니도 방학이고,  Richard는 정상적으로 집에서 일을 하는데 이제 조금은 밖의 세계가 그리운 모양. 기분 전화 겸 해서 며칠 North Carolina mountain 쪽으로 여행한다고…  덕분에 오랜만에 나는 심심치 않게 되었다.

 

계속되는 60도 이하, 싸늘한 아침들,  거의 가을 같은 느낌인가…

며칠 만에 다시 산책길을 걷는다. 싸늘해진 날씨 덕분에 오랜만에 모두 긴 팔/바지로 입고 걸었는데 하나도 덥지를 않았다. 그래 6월 중에 이렇게 가을 같은 날씨가 꼭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된다.

 

주마등 같이 지나가는 Tobey의 모습들…

 

Tobey’s Memorial Day,  6월 19일. 2018년 6월 19일 나의 사랑하는 ‘아들, 개’ Tobey가 나의 손에 안겨서 마지막 숨을 쉬던 그때,  그래 나의 사랑하는 Tobey가 昇天한 날이다.  Tobey야 그립고, 그립고 사랑한다. 너와 같이 살았던 14년, 우리도 즐거웠고, 너도 그 동안 행복하게 살았지?  특히 우리 둘은 너무 가까워서 탈이었던, 명 ‘콤비’  였지?  뒤뜰  우리 집에서 제일 아담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잠드는 너의 안식처에는 요새 한 여름의 각종 꽃들이 시원하고 넉넉한 덕분에 더욱 만발하고 있구나. 그곳에서 너를 매일 지켜 본단다.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Tobey야!

 

Tobey 동산에 핀 올여름의 꽃은…

thermostat controlled ‘box fan’ at hot garage

 

Air Condition이 안 된 곳, 우리 집 two-car garage, 여름에는 무섭게 뜨거워질 때가 있다. 커다란 냉장고 refrigerator 와 냉동고 freezer 는 물론,  유서, 역사 깊은 각종 책들이 무수히 쌓여 있는데, 너무 습하고 더우면 분명히 그들도 stress를 받을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지독히도 싼’ box fan을 창문에 달아서 환기를 시키니까 훨씬 나아졌다. 문제는 이것을 여름 내내 24시간 가동하는 것, 조금은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남아도는’ room thermostat (pre-smart one) 으로 이것을 control하자는 것이었다. 우선은 air conditioner처럼 on/off control로 시작해서 궁극적으로는 speed control까지 겸하는 linear control을 구상하였다.

첫 단계인 on/off control은 기존의 thermostat로 비교적 간단하게 design을 하였다. 하지만 speed control은 microcontroller가 필요한 것이고, 따라서 software가 필요한 것,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하다.

‘Box Fan’ speed control, 의외로 쉬운 곳에 해답이 있었다. 바로 light/heat dimmer였다. 어제 잠깐 soldering iron heat controller 로 시험을 해 보니 큰 문제가 없었다. Triac-based light dimmer도 비슷하지 않을까? 관건은 이 potentiometer를 digital format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것은 이미 product로 Amazon에도 있었다.

 

Agony & Ecstasy, electronics project

 

Rotting Deck, 이것들 에서 이미 썩어 들어간 부분은 띄어내고 비교적 새것으로 갈았다. 훨씬 보기가 좋다. 이제는 pressure wash를 한 후, sanding/grinding을 한 후에 전에 사온 exterior ‘dark’ brown paint를 칠 할까… 쉽지는 않을 듯 한데… 그래도 해야겠지? 한 김에 screened porch도 pressure wash를 하면 더욱 나을 듯…  정말 왜 이렇게 ‘남자’들은 할 일이 많은 것일까?

 

불쌍한 우리집의 neglected deck… I’m so sorry…

 

Marathon Man, 어제 아틀란타 지역에서 유서가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토니 김 치과 Tony Kim Dentistry를 찾았다.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곳, 토니 치과의사는 오래 전, Ohio State [University]를 다닌 인연이 있어서 그렇게 생소한 느낌이 들지 않던 곳이다. 물론 나이도 훨씬 밑이고 학교 다니던 때도 달랐지만 생소한 이곳에서 그곳은 반가운 치과였다. 당시에는 교민인구가 정말 적을 때여서 아마도 치과가 요새처럼 ‘지천으로 늘어진’ 때와는 다른 때여서 ‘모국어가 통하는’  토니 치과는 정감적으로도 편한 곳이었다.

치과를 본능적, 체질적, 역사적, 생애적으로 유별나게 무서워 하던 내가 결국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끌려가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계속 미루어오던 것이지만 가급적 안 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살았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은 ‘나이가 원인일 수 있는’ 탓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아주 대 작업이 필요한 case였고, 나도 이제는 별 수 없이 완전히 백기를 들고 치과를 찾은 셈이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치과와의 악연으로 ‘치과’라는 말만 들으면 몸이 움츠려 들고 가급적 안 가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특히 1976년경의 Dustin Hoffman, Laurence Olivier 주연의 Marathon Man 이란 영화를 본 후에는 나의 생각은 더욱 완고해졌다.  고문 중에 생 이빨을 drilling하는 장면… 하지만 언제나 이런 유별난 치과공포증의 결과는 나의 ‘우둔한 패배’로 끝이 나곤 했었다. 이번에도 나이에 의한 ‘잇몸’의 퇴화는 나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 결국은 100%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Dustin Hoffman, Marathon Man, 1976
Olivier torturing Hoffman, drilling a ‘good’ tooth without anesthesia!

 

거의 15년 만에 ‘돌아온’ 그곳, 토니 치과,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냉소적인 눈길’을 따갑게 느끼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족들에게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만 중얼거릴 수 밖에..  나의 변명은 간단하게 이것도 일종의 불치의 phobia라고 단정을 짓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내가 좀 이상하다고 보는 듯했다.

정말 오랜만에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괴물들이 입 속에서 사라진 후 나는 정말 천상의 자유를 느꼈다. 코 밑에서의 야릇한 고통으로부터 자유… 나는 분명히 그 동안 그런 고통에 ‘편하게’  적응이 되어 살려고 했지만 그것의 부작용은 얼마나 컸나? 나도 고통, 주변도 고통… 하지만 역시 그런 나의 본성은 자진해서 변할 수가 없음도 안다. 이제는 새로운 장이 펼쳐졌고 비록 거의 한달 정도는 이곳을 드나들어야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것이 변한 세상에 이런 변화는  결국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위로를 한다.

 

 

이번 주일은 성체성혈 대축일, 매년 이때를 기해서 아틀란타에서는 20, 000명 이상이 모이는 연례 성체대회가 열리곤 했었다.  그것이 올해는 완전히 취소가 되었다.  정말 세상이 완전히 바뀐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 열기에 찼던 성체대회, 언제나 다시 그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인가?

순교자 성당 주일 온라인 미사, 비록 제한적인 미사였지만 주임신부님의 강론은 성체성사의 깊은 의미를 조명하는 명 강론이었다. 비록 성당에 가서 교우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해도 이렇게 멀리서나마 성당내의 환경을 공유한다는 것, 불행 중 다행이다. 문제는 오늘 같은 성체성혈 대축일에도 성체를 영할 수가 없었다는 것, 그것이다.

 

요새 며칠 밤에 나의 잠은 평상시와 다른 것이 되었다. 내가 ‘자랑하던’  시계처럼 잠에 떨어지는 습관이 변한 것이다. 잠드는 속도가 느려진 것. 나에게도 불면증이 드디어 온 것인가? 분명히 나는 정신이 말짱하게 밤을 보낸 것으로 기억하지만 나중에 일어날 즈음에는 잠깐 꿈을 꾼 것을 또 기억하니… 어찌된 일인가? 이래서 나는 ‘공식적인 잠’이란 말을 쓰게 되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잔 것이니까, 지난 밤도 그렇게 해서 ‘공식적으로  잤다!’ 로 선포한다….

시간이 갈 수록 나는 고통, 치아의 통증에 더 민감해지는지 우울해진다. 하지만 육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고통, 이것도 머리를 다른 곳으로 집중하면 훨씬 나아진다. 이런 사실을 실감한 것도 이제는 꽤 오래 되었다. 나의 모든 정신을 다른 곳으로 쏟으면 말초신경도 둔해지는 모양이지? 그런 신체역학을 나는 지금 조금 위안으로 이용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이것이 통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오래가면 좋겠다.

 

이순원이란 사람이 쓴 ‘은비령‘이란 1997년 경의 수상작품을 ‘읽으며 필사’ 하기로 했다. 계획적인 아닌 아주 우연하게… 며칠 전 청옥산에 대한 회고를 하면서 강원도 생각이 난 것도 이유가 될지… 언젠가 이것을 조금은 읽었을 듯한데… 불현듯 떠난 여행… 그것이 나에게는 청옥산이었기에 공감을 하고 싶었다. 여기도 여성과 얽힌 여행담이 있는 듯 보여서 호기심도 난다. 100여 쪽인 중편소설… 이것으로 조금 ‘납량’의 효과와 추억의 포근함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온 세상이 시끌벅쩍, 요새 주위에 들려오는 소식들, COVID-19 Pandemic 에다가 엎친 데 덮인 격으로 이제는 [흑백] 인종차별 폭동 riot 으로 이어지고….  한마디로 어디에서도 GOOD NEWS가 찾을 수 없는, 정말 암담한 현실이 되었다. 이번 뉴스의 추이를 보며 문득 그 옛날 1968년 경의 미국과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우리 조국은 ‘민족반역자, 萬古 역적 김일성’이 5.16 군사혁명 주체 박정희의 ‘목을 따러’ 김신조 무장공비 31명을 청와대로 보냈고, 곧 이어 미국 첩보선 프에블로 Pueblo를 동해상에서 강제로 원산으로 끌고 가  한때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우리에게 너무나 암담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도 유례없는 사회적 혼란과 위기감 속에 있었다.  국론이 수렴되지 못한 월남전으로 완전히 분열된 국론, 흑백 인종문제의 갈등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또한 당시 젊은 진보세대 희망의 상징이었던 로버트 케네디까지 저격을 당하고, 시카고에선   민주당 전당대회 와중에 벌어진 격렬한 폭동성 데모… 정말 미국이 곧 망할 듯한 느낌을 주던 때였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요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위기감을 느낄 듯하고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위기와 도전은 언제나 상응하는 변화를 초래하고 그것은 거의 언제나 전보다 진보,  향상, 개화된 것이어서 너무 지나친 걱정은 안 한다.

 

이번 주말에 새로니 네Florida beach엘 머리를 식히려 간다고 해서,  9살 짜리 dog, Ozzie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물게 되었다. 아침마다 그 녀석과 걷는 것도 그렇게 2년 전의 Tobey의 추억과 맞물려 6월을 다시 보내게 되었다. 이것도 나에게 기분전환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세월과 나의 생은 흐른다. 이별할 것은 이렇게 하나 둘 씩 나를 떠나고 나도 언젠가는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요새 우리와 친하게 지내려는 늙은 고양이 Izzie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같이 있을 때 잘하자.

 

 

1980년대 대한민국의 대표적 장수 長壽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田園日記, 그 중에서도  ‘응삼이’ 이야기…  코로나 Pandemic이후 특히 요새 너무 자주 보게 되어서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binge watching인가? 몸이 아프거나, 갑자기 옛날이 그립거나, 어머니가 생각날  때, 나를 그런대로 따뜻하고 포근하게 하는 것이 의외로 전원일기의 응삼이 series 였다. 이런 것이라도 있으니 나는 한시름을 잊을 수가 있었다. 내가 서울토박이여서 그런지 농촌의 주는 그 독특한 향수 鄕愁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가 없다.

고향을 떠난 이후에 나온 드라마라서 한번도 실제로 이것을 그 당시에 본적이 없었다. 1980년 대라서 아마도 VHS video tape으로 보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은 들은 적도 있었고, 최불암, 김혜자 같은 heavy급이 나온다는 사실도, 새로운 얼굴로 유인촌이란 사람이 인기라는 등은 귀동냥으로 듣고는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심심한 사람이 이것을 아마도 cable TV로 녹화를 했는지 비록 저질의 영상이지만 많이 Youtube에서 볼 수가 있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download해서 이렇게 보게 된 것이 사연이다.

1980년대의 대한민국 농촌의 실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사회역사 공부를 하는 셈이고, 당시에 유행하던 유행가, 유행어, 옷 fashion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1980년대 거의 10년 간 방영이 되었다고 하니, 이것은 아마도 고국에서는 거의 모두 보았을 듯하다.

 

첫 처가집 나들이, 장인 장모가 따뜻한 안방을 내어주고 냉골에서 잔다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많이, 자주 보게 된 것이 바로 박응삼 청년의 결혼 전후의 이야기이고 특히 ‘처가말뚝’이라는 episode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나의 결론은 이 박응삼 역의 탈렌트가 이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우수한 연기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응삼이가  가까스로 골인을 한 결혼 이후 첫 처가집 나들이를 갔다가 그 집의 구들장에 문제가 있는 것을 고쳐주는 따듯함과, 장인장모에게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꿈이라면 깨지 않게..’라는 말을 계속하는 그의 천진스러운 모습 등등… 그 당시에 이렇게 ‘정겹게, 구수하게, 자연스럽게, 매끈하게’ 연기한 탈렌트, 배우가 없었을 듯 하다.  이 박응삼 역의 탈렌트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이후에 크게 성공을 했는지, 현재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른 역’ 일용이네’ 복길이 엄마로 나온 탈렌트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흘깃 보기도 했는데, 나이가 73세라고… 그러면 나와 비슷했던 동년배? 새로운 놀라움이다. 이제는 이 전원일기, 사실 나와 직접 연관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지만,  하도 계속 보게 되니 지금은 거의 나의 것이 되었다.  혹시 이 드라마 전체가 녹화되어 있는 DVD는 없는지…  1080p 고화질 영상으로 이것을 다시 불 수 있으면… 하지만 이것은 나의 꿈일지도 모른다.

 

망가진 처가집 온돌방을 그날로 다시 돌아와서 고쳐준 후, 정겨운 식사를 하는 응삼이

사위 응삼이의 이 환한 웃음… 정말 명연기였다

 

제1차 산행 때의 유일한 사진… 청옥산 정상 부근

 

지금부터 거의 50년 전 어떤 산행의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물론 다시 보게 된 퇴색되어가는 사진 몇 장 때문이다. 머리에서 거의 사라진 그 당시 대한민국의 산악의 느낌도 느낌이지만 그것에 연관된 두 명의 아가씨들,  끝을 못 맺은 로맨스, 숨가쁘게 악화되어 가던, 유신체제로 치닫는 정치국면을 피하려 도피하고 싶던 때, 이 땅을 떠날 것이냐 말 것이냐 등등의 산적한 문제들.. 그것에 대한 해답이 청옥산으로 가는 것이었다.

 

몇 개월 깊게 사귀던 이문아 씨, 그리고 생각나는 다른 한 명의 아가씨, 그녀의 여고 동창, 엄순옥씨, 너무도 또렷이 생각나는 그녀들의 얼굴과 얽힌 추억들. 나의 20대 초의 개인역사에서 이 두 아가씨들은  빼놓을 수는 없다.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은 미스 엄과 둘이서 갔던,  두 번에 걸친 강원도 영월, 평창, 정선 사이에 위치한 청옥산 靑玉山 (그 때는 청악산으로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다) 등산여행, 바로 그것이다. 이 산은 사실 엄청 높았던 산도 아니고 유별난 산도 아니었다. 나중에 백두대간의 산들 중에 이 산의 이름이 있어서 혹시… 했지만 이름만 같았을 뿐이었다. 백두대간의 것은 그야말로 1,400 미터가 넘는 고산이었다. 3개의 산 이름이 모두 청옥산이었는데 나머지 것은 경상도에 있던 것이었다.

1971년 대학 졸업 무렵 전후로  깊이 사귀었던 문아씨 와 ‘어렵게’ 헤어진 후  그녀의 동창 친구와 그렇게 둘이서 등산 여행을 했다는 사실은 보통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그러니까.  하지만 그 당시에 나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주위의 생각을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나의 의식 수준이 그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나는 그런 것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듯 싶다. 단순하다고나 할까 바보같이 순진하다고나 할까.

그녀와 일방적, 운명적으로 헤어진 후 나는 그 허탈감과 허전함을 그녀의 동창생인 미스 엄과 등산을 하면서 풀려고 한 것이지만 그 이외의 남녀간의 불순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 둘이 다 산이 좋았고 어디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들이 어울렸던 것이다. 사실 나보다도 그녀에게 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20대초의 남자와 둘이서 집을 떠나서 며칠 동안 등산여행을 한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사회적 여건으로 봐서 그렇게 단순치 않았으니까.

 

첫 번 청옥산 등산여행은 1971년 겨울이었고 두 번째는 1972년 봄, 아마도 4월쯤이었다.  청옥산은 강원도 영월, 평창을 지나서 정선 쪽 부근에 있었다. 그곳은 사실 그녀의 집안과 인연이 있고,  (어머니) 다니던 절이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전에 가족들과 이곳을 다녀갔기에 그녀는 안심하고 나와 같이 갔는지도 모른다. 1971년 겨울, 아마도 12월.. 제1차 등산여행, 모든 것을 그녀의 안내에 맡기고 떠났다. 집에는 물론 혼자서 등산을 간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것이 쉽게 통했던 이유는 그 훨씬 전부터 혼자 등산을 갔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 가을 치악산을 혼자서 등산을 며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혼자서 가는 등산의 맛과 멋을 깨닫기도 했다.

당시 강원도 쪽으로는 고속도로가 없었고, 유일하게 경부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때, 중앙선 완행열차를 타고 단양에서 내려,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고 영월을 지나고 평창을 지나고 정선 쪽까지.. 그 당시만 해도  강원도 시골을 ‘모든 것이 낙후된’ 시골이었다. 등산 때마다 시골을 많이 다녀서 대강 그곳의 경제수준을 알고 있었다.  감자바위로 불리던 강원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산세가 험하던 태백산 줄기.. 나의 선조 평창이씨 平昌李氏 본관 本貫 이 있던 평창을 지나면서 감회가 깊었다. 정선은 아리랑 밖에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시외버스에서 오후 늦게 내린 첫날은 산자락으로 들어가기 전에 해가 저물어서 어떤 농가 집에서 민박을 하게 되었다. 암만 누추해도 나는 시골의 구수한 집 분위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불편한 게 거꾸로 더 편하게 느껴지는 듯한 묘한 그런 것이다.

그 초가집, 농가, 우리가 민박한 집의 아주머니는 시골 애기엄마치고 아주 수려하게 생긴 젊은 아줌마였는데,  친절하고도 수줍게 우리 민박을 시켜주었다. 12월 초겨울의 저녁 어둠이 서서히 깔리던 때 갑자기 나타난 남녀 등산객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방을 내어준 준 그 젊은 애기 엄마,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데 조금 불가사의 한 것이.. 미스 엄과 같은 방에서 잤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등산복 차림으로 sleeping bag 속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새우잠을 잔 것이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우리가 조금 외계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서로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이. 그야 말로 아무 생각도 없이 편하게 같은 방에서 남녀를 의식하지 않고, 친구처럼 잔 것이다. 나를 기본적으로 믿어준 그런 미스 엄이 편하고 좋았는지도 모르고 거꾸로 그녀도 그런 내가 편했는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진,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여..

 

그 다음날 가파른 경사의 힘들고 지루한 등반 끝에 청옥산 거의 정상 밑 벼랑 끝에 위치한 사찰에서 배낭을 풀었다. 아쉽게도 그 절의 이름이 전혀 생각이 안 난다. 미스 엄의 집안이 이 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아주 그 절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 당시 이 절에 대한 기억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청옥산의 정상 부근 다른 쪽에 위치한 화전민이 사는 집의 기억은 특별하고 생생하다. 추운 겨울에 대개 화전민들은 아랫마을로 내려가는데 그 집은 예외였고, 그 곳 역시 미스 엄이 개인적[집안끼리] 으로 아는 집이었다. 어떤 관계인지 묻지 않았지만, 지금도 나는 꿈이나 영화에 나올 듯 그런 전설적인 기분으로 그곳을 기억한다.

그 집에는 화전민 중년 부부와 다 큰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그 때는 이미 눈이 허리춤까지 쌓여있던 때여서 아마도 한 겨울을 그곳에서 세 식구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곳을 미스 엄과 둘이서 눈을 헤쳐가며 그곳엘 가서 하룻밤을 거기서 묵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화전민 딸 아가씨가 쓰던 조그만 방에서 셋이 같이 잔 것이다.  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지 않은가? 같은 방에서 처녀 둘과 스스럼없이 친구처럼 잤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깨끗하고 순수한 것이…

눈 雪이 허리춤까지 강산처럼 내린 청옥산의 정상자락의 화전민 집.. 귀를 에이는 듯한 차가운 바람소리, 요란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그 조그만 방에서 서로의 젊은 관심사를 이야기 하며…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너무나 잊지 않고 싶은 추억들이다. 아가씨가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라디오를 유일한 오락기구로 삼으며 남진의 노래도 그렇게 좋아했지만 예외적으로 수준 높은 노래들도 좋아하던 활달하고 귀여운 그 아가씨..  강원도 감자바위 시골의 인심, 그 푸짐한  밥상을 대하는 것이 참 고역이었다. 밥을 그 큰 밥공기의 거의 2배로 담아서 주는데, 흰 쌀밥도 아니고, 반찬은 거의 없고.. 하지만 절대로 남기면 실례이고..  하지만 참 당시 시골의 좋은 인심이 아니었을까? 단 한 장의 흑백사진이 남았던 제1차 청옥산 등반여행은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1972년 이른 봄, 제 2차 청옥산 등반여행은 다행히 흑백 사진이 몇 장 남아있다.  몇 개월 후에 어떻게 다시 미스 엄과 연락이 되었는지 자세한 사연을 잊었지만 사실 헤어진 여자친구의 친구를 이렇게 만난다는 사실이 조금은 이해가 잘 안 되지만, 그 당시에는 큰 문제로 여기지를 않았다. 사진을 보니 나만 보인다. 왜 그랬을까? 분명히 그녀도 사진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아마도 사진 정리 때 없어졌거나, 어머니가 다 버렸을지도…  그때는 화창한 초봄 무렵의 등반이어서 산의 분위기가 전번과 달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산자락 밑 사찰로 올라가는 길에 있던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던 어떤 민가도 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스 엄의 집안과 그곳은 무슨 관계가 있었던 듯 싶다. 그 민가에는 어르신네들이 많이 계셔서 나는 사실 참 불편하였다. 나의 자란 환경과 배경 때문인지 나는 남자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게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신 예의를 갖추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비록 불편하더라도. 

1972년 이름 봄, 제 2차 청옥산 산행에서는 날씨도 비교적 따뜻하고 한번 와 보았던 곳이라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생각이 잘 안 나는 것 중에는, 지난번에 와서 보았던 화전민가족을 또 보았나 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때 그  화전민 집을 우리는 찾아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미스 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추억에 대한 기억력이 비상한 나도 지금의 나이에서는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느껴진다.

2차 등반 때는 전과 달리 정상 부근에 있었던 사찰 생각이 많이 난다. 며칠 간을 거기서 먹고 자고 했으니까. 무슨 시골 여인숙 같은 분위기의 절..  풍경소리도 나고.. 그때 나는 첫 번째 왔을 때처럼 여러 명이 기거하던 사랑방이 아니고, 독방에서 혼자 잔 기억이다. 진흙 벽이 보이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방바닥이었지만, 정말 그렇게 포근하고 아늑한 기분일 수가 없었다. 이 절에서 잤던 느낌은 현재까지도 나를 너무나 포근하게 만들고 죽기 전에 이런 분위기의 절에서 한번만 자 보았으면 하는 평생의 소원이 생겼다. 옆 방에서 계속 들리는 독경, “아바사바 아바..” 로 계속되는 불경, 그때 처음으로 나는 불경 책을 볼 수가 있었다. 그게 아마도 불교 경전일 것이다.

민가들이 있던 산 밑자락에서 조금 올라 온 곳에 거의 움막 같은 집 [거의 움막의 수준]이 있었는데, 듣고 보니 거기서 어떤 ‘서울 여자’가 혼자 사법고시 공부를 했다는데 나중에 붙었다고 들었다. 그것이 거기서는 큰 경사였던 모양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운명적으로 헤어진 문아 씨와 그녀의 친구 미스 엄을 다시 생각한다. 살아 있을까?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그들도 반세기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다. 그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싶으니까…

 

제2차 청옥산 산행, 1972년 초봄

 


Footnote:  50년 후에 회상하는 청옥산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 처음에는 그야말로 piece of cake! 50년 축적된 digital power Google Map을 믿었지만 결론적으로 역부족이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한 듯하다. 땅 위를 걸었던 인간들의 스토리가 필요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찾은 것,  평창과 정선 사이에 있는 ‘미탄면 소재 청옥산’이런 말이었지만 그것이 끝이다. 그때 우리가 묵었던 민가와 사찰의 위치와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밤 자다가 갑자기 끈끈함을 느끼며 서서히 정신이 너무나 말똥거리고 그 ‘덕분’에 주위의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불면증의 괴로운 밤을 보냈다. Ceiling fan의 도움으로 조금 끈끈함은 물리칠 수 있어서 새벽녘에 조금 잠을 잤는데.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결과적, 공식적으로 나는 밤잠을 자긴 잔 것이다. 갑자기 습도가 뛰어오른 것인데, 아마도 shower를 안 하고 잔 것 때문에 더 끈끈하게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런 type의 날씨가 예년에 비해서 일찍 온 것인가… 옛날 고국에서 7월 초부터 느꼈던 ‘장마성’ 기후와 비슷한 것이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코로나-19 Pandemic 이후,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나의 머리 속을 조금 현재와 다른 것으로 청소하고 싶은데, 그 방법이 문제다. 며칠 집을 떠나는 것이 제일 효과적임은 알지만 지금 여행하는 것은 한마디로 stupid한 것이다.  설사 여행이 자유스럽다고 해도 우리는 둘 다 집을 떠나는 것은 고생으로 느끼기 때문에 역시 Home Sweet Home 안에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우리의 머리를 청소할 수 있을 것인가?

 

어제는 순교자 성당의 공개된 주일 미사가 있었지만 우리는 65세 권고를 받아들여 집에서 온라인 미사를 보았다. 작은 놀라움은, 예상을 뒤엎고 교우들의 숫자가 공개미사 첫날보다 적었다는 사실이었다. 신부님도 꽤 실망을 한 듯한 표정. 또한 참석한 대부분이 ‘고정멤버’들인 듯 보였는데 그들의 나이도 만만치 않아서, 도대체 비교적 젊은 층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각자의 사정이 다 있겠지만 아주 젊은 세대가 주로 오는 토요일 특전미사는 아예 당분간 중지한다는 발표까지 있었다.  아마도 모두들 아직까지 조심들 하는 것이겠지만 참 어려운 문제다. 불현듯 모든 권고사항을 무시하고 우리도 평상시처럼 가볼까 하는 충동까지 들었다. 이것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현명한 결과가 안 나올지도…

 

삼위일체 대축일 주일미사 강론 – 이영석 세계자 요한 주임 신부님

 

이날 오후에는 김계환 안토니오 형제님의 가족장례미사가 있었을 것이다. 호스피스로 옮긴지 불과 하루 만에 선종하신 것인데, 이분에 대한 기억도 그렇고 그렇게 열심히 ‘소리없이, 조용히’ 봉사하신 분도 드물어서 애석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연도, 장례미사에 가 본지 도대체 얼마나 되었는지, 정말 그런 연령 행사가 고인과 유족들은 물론이고 함께 한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과 위안을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blog post 가 드디어 1,000을 넘었다. 십 년 전부터 post 했던 ‘원래’ blog에 덧붙여 그 이전 것을 조금 더했기 때문에 1,000의 의미는 조금 퇴색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조그만 이정표 역할을 한다. 1,000… 에다가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은 나도 놀란다.  나는 이렇게 오래 끈기 있게 했던 것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모두 이런 ‘좋은’ 습성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언제까지 이렇게 갈 지는 솔직히 나도 모른다. 우리가 어떻게 변할 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posting하는 작업 자체는 나를 하루하루 ‘제 정신을 가지고’ 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됨은 분명하다.

 

아~ 청옥산…  얼마 전부터 자꾸만 ‘청옥산 靑玉山’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백두대간 중에 청옥산이 있음을 알고부터였다. 나의 추억으로 알았던 ‘청악산’이 사실은 청옥산이었음은 오래 전에 알았다. 왜 이때의 생각이? 아마도 나의 잠재적인 ‘현실도피’의 표현이 아닐까? 눈이 쌓였던 산봉우리, 화전민 집의 아가씨, 풍경소리 은은하던 사찰의 진흙 벽 방… 모든 것이 꿈처럼 아름답고 그립기도 하다. 이것에 대한 ‘회상기’를 한번 블로그로 써보는 것도 기분 전환을 하는데 도움이 될 지도…

청옥산을 googling하면서 새로운 사실은 대한민국에 청옥산이란 이름은 3곳이나 있다는 사실이고, 이중에 두 곳의 청옥산은 모두 강원도에 있고 다른 곳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음도 밝혀졌다. 게다가 백두대간 중의 하나인 1,400m의  청옥산은 내가 갔던 곳이 아님을 알고 조금은 실망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간 곳은 삼척시 부근이 아닌 평창군 (미탄면) 부근의 산이었음도 확인을 하였다. 문제는 그 산이 Google map에 아직까지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Deep Cleaning, 어제 무려 15년 만에 main bathroom tile grout에 깊숙이 스며든 곰팡이 자국들을  모조리 긁어내었다. 15년 만에! 어떻게 이렇게 우리는 게으르게 살았는가? 누구를 탓하지 말자… 유혹은 강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조금 더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 것 뿐이다. 골치를 썩히던 shower door frame 문지방을 최신의 design으로 바꾸는 것, 이것은 그야말로 metal work이었다. $23 을 아끼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내가 하고 싶었다. 결국은 해 내었다. 이것이 이번 일의 보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갈고 닦아 모든 것이 반짝거리지만… 언제까지 그 맑음을 간직하겠는가…

이렇게 해서 일은 모든 끝났지만, 생각을 한다. 이런 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니 10년이 아니라 1년에 한번씩 대청소를 하면 이렇게까지 힘과 시간이 들지는 않을 듯해서 앞으로는 일년에 두 번 정도 간단히 하기로 생각을 맞추었다.

 

거의 완전히 복원 된 main bath tub shower closet

 

새로니의 Vegetable Container, 지난 토요일 첫 손자 Ronan의 백일축하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Sandy Spring에 있는 새로니 집엘 잠시 들려서 백일음식을 전해주었다. 새로니는 완전히 방학이 되어서 stress가 많았던 online class  가르치는 것이 피곤한지 요새는 거의 완전히 gardener, 그것도 vegetable gardening에 심취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영향을 받기도 했겠지만 요새 아이들 모든 것을 science & technology의 시각으로 각종 야채들을 그 좁은 deck에서 잘도 기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Tobey를 보는 듯한 Ozzie를 다시 보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 녀석도 우리를 보고 깡충깡충 뛰며 오줌까지 흘릴 정도였다. 다시 나는 2년 전 6월 19일 날 세상을 떠난 나의 Tobey 모습과 이 녀석의 모습이 함께 어울림을 느낀다.

 

 

우리 집 첫 손자 Ronan [Irish name] 의 백일 ‘잔치’에 다녀왔다. ‘백일잔치’의 전통적 느낌이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국제적 느낌의 ‘백일축하모임’ 이란 표현이 맞을 듯.  첫 돌잔치도 아니고 겨우 백일의 삶을 위해 이렇게 모인 것은 완전히 아기 엄마가 push한 결과인 듯..  이렇게 우리 작은 딸, 애기 엄마가 우리들, 대한민국의 혈통을 강조하는 것이 흐뭇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기 옷까지 online으로 특별주문을 해서 입히고, 잔치상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특별히 아기 아빠 쪽 부모와 우리 둘만 부른 것 등, 이런 일을 성사시킨 작은 딸 나라니 가 이제는 완전한 책임감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된 듯 보였다.

아기가 워낙 건강하고 실實 해서 엄마의 어렸을 적의 모습을 연상시켰지만 그래도 아빠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들이 골고루 있어서, 이 애는 이중적 복합 문화를 다 배워야 하는 운명임을 실감한다. 요새 인종문제로 시끄러운 때에 이렇게 백인 사돈댁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모두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이 아기에게는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다.

사돈 댁 [Chuck & Judy]은 북 독일계 이민의 후손들인데 초기 이민은 대부분 Midwest쪽 Indiana, Ohio 등지 에서 farmer로 살았고, 애 아빠 쪽 집안은 military family로 Georgia로 이주해서 살고 있었다.  이날 조금 더 서로의 ‘조상과 문화’등에 대한 애기를 나누었는데 독일계 이민이 겪은 ‘차별대우’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유럽 쪽 이민도 흑인들과는 정도는 아주 다르지만 문화적, 종교적, 언어적 차이, 나중에는 정치적 차이 [2번에 걸친 세계대전] 로 겪은 다른 의미의 ‘인종차별’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개신교, 공화당에 속한 보수 집안이지만 Trump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할 정도였고, 그 반대쪽인 Biden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의 결론은 역시 제3당,  ‘구세주 인물’의 출현인데… 그것이 쉬울까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혁명’의 발상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과제는 우리 세대가 다 사라진 후에야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괴로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타인의 평화에 관심이 없는 나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아니 막연한 수동적인 관심이 아니라 사랑과 공감에 의한 구체적인 사랑의 결심, 행동이 부족한 나만의 평화”, 그것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 반성, 묵상을 하던 며칠을 보낸다. 5월 말에 있었던, 이제는 거의 무감각해진 비극적인 인종적 사태, 나는 거의 일부러 ‘영상적’인 뉴스를 피하며 살고 싶다. 그것은 2016년부터 시작된 나의 작은 피해망상증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 이후 나의 정신건강 유지에 지대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인간의 얼굴만 보아도 혈압이 뛰는’, 그런 4년 간의 괴로운 시절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지만 이런 도전은 끝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인간이 성경을 들고 성당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정말 할 말을 잃는다. 그것은 위선 중의 위선, 그것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것이 현재 미국의 최악의 문제다.

각자, 각 가정, 각기 공동체 community, 나라마다 역사적인, 고유하고 독특한 난제 難題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아마도 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흑백, 인종문제가 그것이고 우리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아마도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김일성 왕조로 이어지는 빨갱이 문제가 그것인가? 두 곳 다 이 난제로 급기야 동족을 서로 죽이는 전쟁까지 했기에, 진정한 화해는 오랜 세월이 필요한데 사실 이 문제는 나아지기는 하고 있지만 완전히 끝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이런 문제는 피조물의 본성적 결함으로 사실 인간적 두뇌만 가지고는 해결하기가 힘들기에 결국은 아주 높은 차원의 도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Hatred, 사랑과 정반대 쪽에 서있는 인간적 감정, 증오심은 누구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다스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 속에서 머무는 증오가 아닌 행동으로 나온 것, 그것이 진정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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