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Da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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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강의

하느님을 위한 아름다운 어떤 일

 

하루는 스물다섯 살 정도 된 한 아가씨가 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밤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낮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데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낮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자요.” 낮에 잠을 자면 잠이 안 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낮에 유용한 일을 하면 밤에 잘 잘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기도를 청할 때, 자기가 무엇을 청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를 잘 이해하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고행성사는 주님의 이해를 잘 받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성사라고 부릅니다. 요즈음은 은행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은행들이 도산하는 것을 보십시오. 은행도 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보화가 무엇입니까? 바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천하면 그분께서는 곱절로 여러분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수도원에 20명 정도의 사제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제들의 활동으로 전 세계에서 수만 명, 아니 수십만 명이 혜택을 받습니다. 수도원은 늘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우간다에서 제가 기도하는 중에 어떤 영감을 받았습니다. 환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저는 ‘안토니오야, 고아원을 시작하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기도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왔는데 계속 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상 신부님과 이것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장상 신부님은 저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영감일 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어떤 영감 같은 것을 받으면 장상과 의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실천적 방법입니다.

장상 신부님이 저에게 이 고아원을 시작하는 계획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우간다에는 고아들이 200만 명이나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대개 한 가정이 아이들을 6,7 명 낳는데, 많은 부부들이 에이즈로 죽어서 고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제가 되고자 할 때 고아원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피정지도를 하면서 이렇게 강론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제품을 받던 날, 그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때가 되면 그분이 들어 올려주십니다. 그분께 언제나 신뢰를 두어야 합니다.

고아원을 하려면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고아원을 지을 돈을 누가 줄 것인가? 저는 건축업자를 찾아가서 50, 60명 정도의 아이들이 살 건물을 지으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보았습니다. 50만 유로가 든다고 했습니다. 저는 50만 유로는커녕 50유로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다는 신뢰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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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강의

교회가 우리 영혼의 정비소다

 

우리가 어떻게 맛있는 치킨버거를 만들 수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라면 이것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기 위해 학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마음의 단순함과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습니까? 우리가 잃은 것, 우리가 얻지 못한 것을 목록으로 적으면, 아마 성인호칭기도처럼 호칭기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들, 친구들, 그들과의 관계, 개인생활에서 사랑이 부족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자녀들에게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배려가 부족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다시 다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에사우의 아버지 이사악은 제약을 진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아버지였던 이사악은 에사우에게 축복을 줄 수 없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주셨습니다. 아무 제약 없이 축복을 주실 수 있는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밝은 미래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에게 미래가 열립니다. 미래에 희망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바로 우리를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제가 몇 달 전에 우간다 의 신학교 학생들의 피정을 지도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피정 중에 어느 신학생이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부님, 오늘날 하이테크 사회에서 믿음이 무슨 소용이 됩니까?” 그 신학생들이 제게 그리스도교 영성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오늘날 도대체 누가 하느님을 상관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훗날 영적 지도자들이 될 신학생들이 그런 질문을 제게 던진 것입니다. 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말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입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창조하셨을 때 하느님께서는 사랑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마음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그분의 독점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다른 것으로 우리 배를 채울 수는 있습니다. 여러 소리로 귀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하이테크가 더 좋은 질을 지닌 물건을 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은 그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세상의 것으로 마음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으로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은 더 메말랐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그분께서 우리 마음을 채우시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부정적이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기 마음을 채우시도록 허락했고, 이제 부족함이 없습니다. 제가 그 신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그들이 말했습니다. “신부님, 우리는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지니고 있는 한,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컴퓨터가 우리 마음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이것을 알아듣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정 안에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컴퓨터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이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술이 우리에게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유혹에 대해 분명하게 아니라고 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원천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로,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정비소입니다. 교회가 우리의 구원과 좋은 삶을 위한 연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든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쁜 것도 선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선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생각하십시오. 하느님의 그 능력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십니다. 하느님 사랑의 구현이십니다.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신 구체적 인물입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치유를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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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강의

야곱과 에사우 – 축복

 

하루는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었다. 그때 에사우가 허기진 채 들어서 돌아왔다. 에사우가 야곱에게 “허기지구나. 저 붉은 것, 붉은 것 좀 먹게 해 다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을 에돔 이라 하였다. 그러나 야곱은 “먼저 형의 맏아들 권리를 내게 파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에사우가 대답하였다. “내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맏아들 권리가 내게 무슨 소용이겠느냐?” 그래서 야곱이 “먼저 나에게 맹세부터 하시오.” 하지, 에사우는 맹세를 하고 자기의 맏아들 권리를 야곱에게 팔아 넘겼다. 그러자 야곱이 빵과 불콩죽을 에사우에게 주었다. 그는 먹고 마시고서는 일어나 나갔다. 이렇게 에사우는 맏아들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창세 25,29-34)

성경 구절 한 대목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 성경 대목에서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야곱과 에사우입니다. 여기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구원역사의 배경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천지 창조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에 이르기까지의 구원역사입니다. 아담과 하와에서 시작된 구원역사는 구약에서 판관들과 왕들, 예언자들을 거쳐 예수님에 이르게 되고, 사도들로 이어졌고, 교부들과 많은 성인성녀들이 있었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오늘날에도 구원역사는 우리를 통해 계속됩니다.구약에서 이스라엘을 통한 구원역사를 보면 아들들을 통해 계승되는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과 에사우를 낳았고,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거기 요셉이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모세로 이어지고 모세를 잇는 후계자로 여호수아 가 있습니다. 그 후 판관들이 있고, 사울 과 다윗 등의 왕들이 있고,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이사악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야곱과 에사우입니다. 야곱은 어머니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은 귀염둥이이고 에사우는 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아들입니다. 에사우는 근육질의 남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살갗이 붉고 온몸이 털투성이였습니다. 에사우는 그래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에사우는 자라면서 솜씨 좋은 사냥꾼 곧 들사람이 됩니다. 그는 열심히 일하지만 조금 우둔합니다. 한편 야곱은 머리가 좋습니다. 겉으로 볼 때 온순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교활하기까지 합니다. 늘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야곱을 사랑하고 아버지는 에사우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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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강의

물동이를 버려두고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 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 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겠지요.”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요한 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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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강의

믿는 자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귀담아들으면 성경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성 그레고리오 가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연애편지를 쓰셨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이런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어미가 제 젖먹이를 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어미가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시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이 약속을 듣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를 배어 일곱 달 되었을 때, 길을 빨리 걸으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의사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아기를 포기하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기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일곱 달 까지 어머니 배 속에 있던 저는 아주 활달했답니다. 그래서 나중에 축구선수가 되려나 하는 생각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사고 후에 움직임이 없었고, 의사가 낙태시키라고 권유했답니다. 당시 인도는 의료시설이 그렇게 발당하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아기가 주었거나,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장애아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답니다. 어머니에게 요구된 선택은 하나였습니다. 낙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했답니다. “내 배 속에서 아기가 자라게 해 주십시오. 장애아라도 좋습니다. 아기를 돌보기 위해 제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낙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잊지 않습니다. 그것이 시편저자의 믿음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저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어머니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년 전 저의 어머니는 위암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위의 90퍼센트 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라고 말했지요. 저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머니의 삶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어머니께서 사시든 돌아가시든 오직 당신 뜻대로 해주소서!” 저는 매일 미사에서 어머니를 주님께 봉헌했습니다. 어머니는 수술 후 7일 만에 완전히 치유되셨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아주 건강하게 사십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느님 말씀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아, 네가 위험에서 처했을 때 나는 너를 보호했었다. 이제는 네가 나의 치유자가 되었구나. 처음에는 내가 너의 치유자였다. 그런데 이제 네가 나의 치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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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강의

믿음은 성경에 바탕을 둔다

 

피정의 아름다움은 침묵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세미나라고 하지 않고 피정이라고 합니다. 침묵은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 줍니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잘못된 것을 침묵 안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피정 안에서 들은 많은 것을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침묵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보낸 시간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강론에서 말씀 드리는 모든 것이 여러분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마디로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체성사로도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체조배를 하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삶의 체험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제가 왜 많은 말을 하면서 강론을 합니까? 제가 왜 하느님의 말씀을 강조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에 대해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슬퍼집니다. 침묵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알아야 합니다. 침묵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마음의 침묵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갓난 아기를 보십시오. 대부분의 시간을 요람에서 침묵 중에 보냅니다. 소음이 방해를 하면 아기가 웁니다. 아기는 침묵을 즐기는데 그것을 방해 받으면 싫어합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서서히 이 침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사귀고 말을 많이 하기 시작합니다. 커서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갖게 되면서 책임이 따르고 거기에 따라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다시 침묵으로 돌아가게 되는 날이 옵니다.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사회의 중요한 위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자녀들이 결혼을 한 후 떠나갑니다.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면 홀로 됩니다. 이제는 다시, 거의 침묵 속에서 보내게 됩니다.

침묵 안에서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도록 합시다. 어떻게 침묵 안에서 미래를 바라봅니까? 많은 사람이 침묵에 잠기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침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침묵 중에 보내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묵상을 합니다.

이 피정에서 침묵을 지키며 예수님 안에 잠겼던 분들은 분명 변화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침묵을 지키지 않고 옆 사람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보낸 사람들은 예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옆 사람이 여러분에게 침묵을 방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모두 소중한 시간과 돈을 지불하고 이 피정에 왔습니다. 왜 가른 사람이 방해하도록 허락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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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의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예수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다르십니까? 예수님은 대상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예를 들어 자캐오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는 자캐오를 이름 그대로 자캐오라고 하지 않고 세관장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를 죄인으로 부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캐오를 죄인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자캐오를 세관장으로 부르지 않고, “자캐오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누구든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편견 없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온전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존엄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존중심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심이 있어야 다른 사람한테서도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달라고 보여 주며) 이것이 무엇입니까? 얼마짜리입니까? 천 원짜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종이입니까? 쇠입니까? (사람들이 종이라고 답합니다.) 여러분이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 종이로 작은 묵주 하나를 살 수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실로 엮은 아주 작은 묵주 말입니다. 예, 살 수 있습니다.

(앞에 앉은 자매님이 가진 백지 한 장을 들고) 이것은 무엇입니까? 종이입니다. 이 종이로 묵주를 살 수 있습니까? 이 종이로 묵주를 살 수 없습니다. 무엇이 이 종이와 이 종이를 다르게 만듭니까? 왜 이 종이로는 묵주를 살 수 있고, 이 종이로는 묵주를 살 수 없습니까? (신부님이 천 원짜리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립니다.) 자, 이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이 종이로 묵주를 살 수 없습니까? 살 수 있다고요?  땅이 떨어져서 더러워졌는데도 묵주를 살 수 있다고요? (신부님이 천 원짜리를 구겨서 주먹으로 펑펑 칩니다.) 자, 이제 이 종이가 형편없이 구겨졌습니다. 이제 이 종이로 묵주를 살 수 없습니까? 아닙니다. 이 종이가 불에 타서 없어지지 않는 한 이 종이로 묵주를 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부가 이 종이에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구겨도 대한민국 인장이 찍혀 있는 한 천 원짜리 돈은 항상 천 원의 가치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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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강의

씨앗과 농부, 땅

 

자비로우신 하느님, 온 세상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우리나라와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저희와 저희 가족들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십시오.

피정을 하는 이 한 주를 위해 기도 드립니다. 피정자들이 피정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모든 삶의 위험과 악에서 저희를 지켜주십시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저희를 당신 망토 안에 지켜주십시오.

주님, 저희는 당신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먼저 루시아 자매님과 그의 팀, 스테파노 형제님과 베로니카 자매님, 통역을 맡은 소연 자매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를 소개합니다. 요셉 빌 신부님께서 2008년에 80세의 연세로 작고하셨습니다. 저의 수도회에서는 빌 신부님의 피정 사도직을 이어받도록 저를 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4년 전부터 이 일을 맡아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이 일을 맡은 지 4년 만에 지난주에 일주일간의 휴가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도 태생이고 수도회 사제입니다. 성 빈첸시오 수도회입니다. 저는 안토니오 신부입니다. 2002년에 아프리카로 갔고 거기에서 5년 동안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에서 활동했습니다. 저는 지금 우간다 엔테베에 있는 피정의 집 부원장 직책을 맡고 있고, 주로 피정지도를 하면서 강의를 합니다. 저희 빈첸시오 공동체에는 22명의 사제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살아 계시고 아버지는 55세이고 어머니는 54세입니다. 동생이 둘이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 오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랑으로 가득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 오면 늘 감동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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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에  ‘프카’ 자매님1 과 카톡 대화를 하던 중에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내  ‘영적독서클럽’에 대한 소식을 물었는데 반응이 아주 ‘부정적’인 것이었다. 최근에 느낌도 그랬지만 역시 이 자매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으로 아예 ‘탈회 脫會’를 하였고 성당을 떠난 별도의 클럽을 만들어서 ‘영적독서’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사정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동안 성당내의 영적독서클럽은 아무래도 무언가 ‘구심점’  결여로  ‘흥미’를 유발하는 클럽의 운영상황이 아닌 듯 싶었다.  흔히 말하는 leadership의 부재 不在, 바로 그것은 아니었을까?

근래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면서 나보고도 읽어보지 않겠냐고 해서 ‘물론 ok’라고 해서 그 다음 주에 그 ‘프카’ 자매님2  손수 책을 갖다 주셨다. 이 동갑내기 자매님, 참 볼수록 정이 많은 분임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아주 특별한 순간’ 이었는데, 영성적 번역서로 많은 친근감을 주는 ‘류해욱 요셉’ 신부님이 엮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류신부님의 글이 아니고 ‘안토니오 사지’ 라는 ‘유명한’ 인도출신 신부님이 한국에서 지도한 ‘치유피정’의 강의부분을 아주 매끈하고 유려한 한글로 정리한 것이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2013년에 첫 출판 후 2017년까지 18 쇄의 중판을 거듭한 것을 보면 아마도 ‘베스트셀러’ 급의 ‘좋은 책’이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모두 25회의 강의로 이루어진 이 책을 접하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25번의 피정 강의를 한꺼번에 읽는 대신 하루에 하나의 강의를 편안하게 소화를 하면 어떨까? 더 나아가서 2019년 사순절이 시작되는 3월 6일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까지 모두 (쓰고) 읽으며 올해의 사순절을 더 특별하게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5일까지 25회의 강의를 ‘들으려면’ 2월 9일부터 시작을 하면 될 것이고, 그것을 이곳 개인blog에 시한적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류해욱 요셉 신부님은 물론 오래 전 (거의 20년 전?)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셨던 분이라서 익숙하지만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성당엘 안 나갔기에 개인적인 느낌은 거의 없다. 애기로만 듣던 분이었지만 몇 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 직접 강론을 들었다. 그 후 이분이 저서나 번역서를 읽기도 했는데 그 읽은 경험들이 아주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한때 stroke로 쓰러지셨다고 해서 모두 걱정을 하고 기도를 했는데 그때 직접 보았을 때는 거의 완치가 된 듯 보였다.

이 책의 원저자격인 안토니오 사지 라는 분은 전혀 생소한 이름이지만 강의 내용을 읽고, 약력을 자세히 보니 류신부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충만한’ 분인 듯싶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런 피정을 지도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피정강의를 ‘강의록’ 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성경만 가지고 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이 책의 권두언들, 추천의 글과 옮긴이의 글은 다음과 같다.

 

추천의 글

하느님은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방법으로 말씀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전해진 것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성경이라는 활자로 접하게 되었으며, 그 말씀이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여기 하느님의 말씀을 성령 안에서 뜨겁게, 그리고 생생하게 전해 주는 한 사제의 가르침이 있기에 감히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성모님과 함께하는 6일간의 침묵피정’은 고인이 되신 요셉 빌 신부 (인도 성 빈첸시오 회)에게서 맨 처음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그 후임인 안토니오 신부가 맡아 전 세계적으로 1년 내내 복음의 선포자로, 말씀의 치유자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피정을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그를 이 암울한 시대에 새로운 빛의 예언자적 소명을 주고 계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매번 그 피정에 참여하면서 확신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 그것은 바로 성령과 온전히 일치하는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는 일임을 알기 때문에, 저는 그분이야말로 이 시대에 성령 안에서 활동하는 참 말씀의 치유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해를 맞이한 지금, 그분의 은혜로운 말씀들이 새로이 여기 글자로 담겨 있으니 이 또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은혜로 운 말씀을 류해욱 신부님의 혜안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담아 여기에 펼쳐놓았으니 이 시대에 또 다른 복음화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은 전달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도 참으로 중요하지 않을까요? 신부님이 매년 한국에 오실 때마다 그분의 말씀을 피정 안에서 직접 듣고 체험하며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피정의 중재기도 모임에서 영적 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한 사제로서, 침묵피정 중에 체험한 말씀의 은혜로움을 이 책의 독자들도 함께 맛보고 경험함으로써 생활 속에서 신앙의 열매를 맺어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화식 베드로 신부 (춘천교구 총대리)

 

 

옮긴이의 글

<아주 특별한 순간: 안토니오 신부의 치유피정>의 출간 소식에 저는 마치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귀한 옥동자를 얻은 아기 엄마의 심정처럼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이 책은 인도 빈첸시오회 소속 안토니오 신부의 피정지도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 안토니오 신부에 앞서 요셉 빌 신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안토니오 신부 자신은 요셉 빌 신부의 후계자로서 피정지도를 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요셉 빌 신부는 인도 케랄라와 아프리카의 빈첸시오회 소속 사제로서 아주 헌신적이고 탁월한 피정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치유미사와 대중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빌 신부를 통해 주신 치유의 은사로 수많은 사람이 영적,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요셉 빌 신부는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치유를 직접 체험하고 나서 치유자가 되신 분입니다. 그는 1958년 사제로 서품 된 후, 고향 케랄라 교구에서 오랫동안 교회의 고위 행정직을 맡아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다 48세 때 두 번의 심각한 심근경색을 앓게 되어 두 달 가까이 병상에 누워있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케랄라의 성령쇄신봉사회가 주관하는 사제들을 위한 피정에 초대되었습니다. 피정이 끝날 무렵 한 주교가 빌 신부에게 손을 얹고 치유기도를 했는데, 그때 빌 신부는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치유하신 그 예수님이 자신에게 손을 얹고 계신 것으로 느꼈습니다. 그 순간 내면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의 믿음도 강해졌습니다. 의사들이 여러 가지로 검사를 해본 결과 그의 병은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 후 빌 신부는 장상에게 청하여 행정소임을 그만두고 믿음에 의한 치유를 공부하려고 미국의 피츠버그로 갔습니다. 그가 공부를 마칠 무렵, 어느 성당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던 전신마비 환자가 그의 기도를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는 첫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예수님이 자신을 도구로 쓰고자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인도 전역을 다니며 가르침과 치유은사를 나누었습니다.

빌 신부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6일간의 침묵치유피정과 함께 치유미사와 대중설교를 했습니다. 10년 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6일간의 피정을 지도했습니다. 자신의 피정은 성령쇄신피정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께 마음을 열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 육체를 모두 치유 받도록 도움을 주는 피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토니오 신부는 고 故 요셉 빌 신부의 마지막 몇 주간을 함께 지내며 임종을 지킨 분으로, 요셉 빌 신부의 침묵치유피정 사목을 이어 받을 후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 빌 신부의 소임이던 피정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세계를 돌며 피정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우리나라에서도 4년째 피정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2년 전 우연히 안토니오 신부의 피정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안토니오 신부의 피정 내용은 놀랄 만큼 은총이 넘쳤고, 성령께서 안토니오 신부와 함께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아무런 강의 준비 원고도 없이 성경 하나만을 들고서 강의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무리 명석하고 기억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성령의 영감을 받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피정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분에게서 성령의 은총이 넘치는 것을 체험한다고 증언합니다.

저자 안토니오 신부는 피정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만나는 체험으로 이끌어 주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피정자도 하여금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새롭게 성찰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저는 피정자로서 안토니오 신부를 통해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그의 피정강의 내용을 옮기고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순간: 안토니오 신부의 치유피정>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정통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아주 역동적이며 영감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깊은 묵상과 관상을 통해 나온 내용이기 때문에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 스스로 깊이 성경 안으로 들어가서 묵상이나 관상을 하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이 책은 일상 삶에서 피정을 하기 위한 안내서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마을 사람들을 피해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왔지만 예수님을 만난 그녀는 이제 예수님을 전하러 마을로 달려갑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는 사마리아 여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묵상이나 관상을 통해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아주 특별한 순간: 안토니오 신부의 치유피정>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류해욱 요셉 신부 (예수회, 영혼의 쉼터)

 

 

책에 소개된 website를 가보니 그곳에 궁금했던 ‘모습’들이 나와 있었고 책보다 더 자세한 안토니오 신부님의 배경도 실려 있어서 이곳에 발췌 전재를 해 본다.

 

강단에 선 안토니오 사지 신부님

안토니오 신부와, 옮긴이 류해욱 요셉 신부님

 

Fr. Anthony Vadakkemury, V.C.

안토니오 신부는 1977년 5월1일 2남2녀 중 맏이로 인도에서 출생했다. 양친은 현재 인도의 케랄라에 살며, 그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그의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신학교 과정을 인도와 동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수료했으며, 2006년 12월 29일 인도 케랄라에서 빈첸시오회 수도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6일 첫 미사를 거행하였다.

인도의 방갈로에서 신학교 철학 과정을 마친 뒤, 1년간의 사목 수련을 위해 그는 2002년 케냐의 나이로비로 보내졌다. 이후에 그는 신학 과정을 마치기 위해 아프리카의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탄가자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77개의 서로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지내며, 서로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006년 5월 14일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부제품을 받았고, 이후 케냐의 사목 수련시기 동안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동료 사제들과 함께 중등부 학생들을 위한 3일간의 피정을 (예수선교피정) 지도하였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나이로비의 서로 다른 본당들에서 본당신부를 도와 강론을 하였으며,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많은 본당들에서 청소년 그룹을 지도하였다. 특히 그는 청소년들이 영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에 유의하였다. 또한 부제 생활 중에 수감자들을 위한 피정, 선교 등을 비롯한 많은 피정 프로그램을 지도하였다. 나이로비의 5년간 체류하면서 안토니오 신부는 동 아프리카의 빈첸시오 피정센터 중 하나인 빈첸시오 기도의 집에서도 봉사하였다.

안토니오 신부가 사제 서품 받은 직후, 그의 관구장으로부터 타자니아의 유빈자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그는 두 달 간의 성공적인 사목 임기를 마치고 우간다의 엔테베로 가서 두 가지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엔테베의 빈첸시오 피정의 집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며 재정을 관리하였는데, 故 요셉 빌 신부가 그가 속한 분원의 장상이었다. 또 하나의 임무는 우간다의 마사카에서 새로운 피정센터를 건립하는 것있었다. 그리하여 엔테베에서 180km 떨어진 마사카를 매일같이 오가며 사제들을 위한 피정센터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 건물은 2008년 2월 23일 故 요셉 빌 신부의 80세 생일에 완공식을 거행하였다.

안토니오 신부는 故 요셉 빌 신부의 마지막 몇 주간을 함께하며 임종을 지키신 분으로, 그의 관구장은 故 요셉 빌 신부의 침묵 치유 피정 사업을 이어받을 후임자로 안토니오 신부를 임명하였다.

  1. ‘프란체스카’ 란 세례명을 우리들이 줄여 부르는 말
  2.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지내던 친지의 누님이 되시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매주 레지오 화요일에 보기도 하는 동갑내기 전 음악대학 교수님.  2년 전에는 기타동호회에서 몇 개월 동안 보기도 했던.

2014 Atlanta Snowjam on I-285 North

드디어 올 겨울 첫 white stuffs, snow 가 오늘 낮에 ‘잠깐’ 올 것이라고 어제 ‘경고성’ 예보가 계속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번 겨울 내내 은근히 어린아이처럼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실은 나 자신도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머리가 나이에 비해서 그렇게 삭막하게  무감하게 굳은 것이 아님을 알기도 했다. 사실 이런 나의 심정을 연숙에게 비치기도 했는데. ‘첫눈 올 때 집 근처에 위치한 Starbucks Coffee 에 가서 coffee를 같이 마시자’ 고 몇 번 말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곳은 눈이  조금만 내려도 차를 타고 가는 것이 힘들기에 그럴 경우에는 걸어서 가자고 즐거운 상상의 나래도 한껏 피기도 했다. 그것이 드디어 실현이 되는 가, 가능성이 제로가 아님이 더 확실해지면 올 겨울 들어 첫 snowday dreaming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시기, 날자는 ‘괴로운 추억’이 얽힌 날이기도 하다. 2014년 1월 28일이 그 유명한 아틀란타 교통대란, snow jam이 있었던 날이어서 먼저 ‘악몽’이 떠오른다. Doraville 도라빌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 주회합 등을 마치고 집에 오려고 차가  I-285 로 들어서면서부터 퍼붓기 시작한 freezing rain 그리고 함박눈에 모두 일찍 귀가하려던 차들이 꼼짝 못하고 차 속에서 밤을 지새웠던, 그런 악몽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눈에 대한 피해망상증으로, 이맘때가 되면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기예보를 주시한다.  결국 오늘도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날이었지만 성당이 문을 닫게 되어서 ‘공짜’로 하루 푹 쉬게 되었다.

기다리던 올 겨울 첫 눈의 꿈은 사라지고..

하지만 이번의 ‘눈 예보’는 불발탄으로 끝나고 말았다.  아침에 잠깐 내린 비 뒤에 약간의 눈발이 흩날렸지만 곧바로 하늘은 개었다. 대신 무섭게 기온은 떨어지고 바람이 분다. 이 추위는 북극으로부터 내려 온 것으로 polar vortex라는 이름으로 북미주 전역이 강추위와 바람으로 꽁꽁 얼어붙는다. 이곳도 오늘 밤 10도(섭씨 영하 10도 정도) 대로 떨어진다고.. 집에 사는 사람들이야 난방으로 큰 문제는 없지만 homeless들과 밖에 사는 고양이들이 걱정이 된다.  그 동안 비교적 따뜻한 날씨로 한참 올라오던 뒷마당의 수선화들 위에 비닐 봉지를 덮어 두었는데 1~2월의 추위에 익숙한 이 지역의 수선화들, 이 겨울을 살아 남으리라 믿는다.

 

 

 

오늘 YouTube에서 뜻밖의 email message 받았다.  7년 전쯤에 내가 만들어 ‘올려놓은, upload’ music video 성재희씨가 1965년에 취입한 노래 ‘보슬비 오는 거리‘ 가 1 million hits (백만 번 보았다는 뜻)를 했다는 사실과 함께 ‘축하’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의아했는데, 꽤 오래 전의 일이라 그런 것이다. 한창 youtube 에서 지나간 추억의 노래들을 듣던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에 나도 한번 무언가 남겨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요새는 웬만한 video들,  viral 하다고 불리는 것들 며칠 사이에 백만 번 hit는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되었기에 7년 만에 백만 번이라고 하면 우습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솔직히 놀랍기만 한데 왜 그럴까? 백만이란 숫자에 무슨 magic 이라도 있나 아니면 그저 꽤 많은 중년, 노년의 대한민국 출신의 사람들이 당시를 추억하며 보았다는 사실이 의아한 것인지.. 솔직히 덤덤한 심정이다. 하지만 ‘추억의 마술’을 어쩔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은 분명한 것이다.

이 ‘보슬비 오는 거리’를 내가 개인적으로 왜 그렇게 소중하게 느낄 정도로 좋아하는 지 생각을 해 보면 크게 특기할만한 것이 없다. 그저 그 당시, 1965년 말 서울 남영동에서 살던 때의 순진했던 기억들과 함께 중앙고 3학년으로 막바지 대학 입시공부에 열중하면 들었던 그 추억이 전부다. 그것이 왜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지며, 은은한 저음과 매력적인 자태로 보슬비의 추억을 달랬던 성재희씨의 모습이 반세기가 넘는 지금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나도 모른다.

 

¶  송년, 새해를 지내며:   성탄, 송년, 새해.. 등등을 이렇게 힘들게 맞이 한 적이 있던가 할 정도로 이상한 나날들을 보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도 가족들이 모인 기회가 딴 해에 비해서 많아서 약간의 위로는 있다.  그 중에서도 새로니가 Ozzie와 함께 자기가 자란 집에서 이틀 밤을 잤던 것은 우리에게는 추억을 자극하는 시간이 되었다.

New Year’s Eve, 이번에도 우리 3명이 굳세게 뉴욕의 Time Square TV를 지켜보며 정각에 맞추어 champagne 을 터뜨리며 Happy New Year!를 외쳤다. 예년에 비해서 그렇게 흥분되지는 않았어도 ‘할 것을 했다’라는 자위를 하기도 했다.  차가운 비가 내리는 뉴욕의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무엇이 그렇게들 즐거울까. 하는 의아함을 떨칠 수가 없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된 것이 그렇게 좋을까? 그렇게 해서 2019년을 맞았지만.. 글쎄.. 나는 아직도 어두운 2018년 말 속에서 헤매는 느낌뿐이었다.

 

¶  2019 라는 숫자로 본 올해는 별로 큰 매력이 없어 보인다. 2019라는 숫자부터 그렇다. 어쩌면 이렇게 마구잡이 같은 숫자일까? 거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는 볼품없는 숫자로 일년을 보내라고.. 하지만 그 다음을 보며 견뎌보자… 2020! 와! 얼마나 멋진 숫자인가? Twenty Twenty 20/20 느낌부터 앞이 선명하게 보이는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가, 2018에서 2019로 넘어오는 성탄, 송년휴일이 걸친 몇 주간은 너무도 깜깜한 느낌뿐이었다. 지난 12월 초 ‘대림절’의 시작 무렵에 나는 이런 ‘영혼의 어두운 밤’을 예상해본 적이 전혀 없었는데, 밀쳐낼 겨를도 없이 어이없이 악마의 교란에 쓰러진 듯하여, 이것이야 말로 sudden death (of peace) 라는 가슴이 철렁한 단어를 연상시키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의 한 달 정도의 짧은 앞날도 사실 그렇게 확실한 것이 없다는 쓰라린 교훈을 실감하는 계기도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떻게 그렇게 어이없이 나는 ‘악의 유혹’에 굴복을 한 것 것인가? 무언가 한꺼번에,  오랜 세월 동안 쌓아 놓았던 ‘승리의 금자탑’이 몇 초 사이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을 본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몸과 마음이 내려갈 대로 내려감을 경험한 것이다.

이제는 거의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 나온 듯하고 다시 세상의 땅에 발을 디뎌도 된 듯하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희미한 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이것만도 큰 발전이라고 생각하자.

 

¶ 목요회 S형제: 연숙으로부터 너무도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고 한 동안 말을 잊었다. 작년 대부분 너무도 우울한 세월로 고생을 하던 목요회 S형제가 얼마 전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한때는 위기의식까지 느끼게 했고 비상책을 강구할 정도였다. 기도도 많이 필요했지만 주위에서 걱정해주는 가족 친지들의 고민과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이 현재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2017년 가을부터 꾸준히 만나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은 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사실 거의 희망을 놓기 시작하고 있었다. 앞으로 또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다. 이렇게 다른 가능성이 이번에 보이고 있는 것으로 희망을 갖게 되었으니까..

 

¶ 나와 레지오: 나의 blog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한 Page를 장식하는 것,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한 제목인데 최근에 들어서 이것 역시 나의 중대한 결정을 요구하는 것이 되었다.  본당 구역문제와 레지오 문제가 겹치면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견디기 힘든 위험한 ‘폭약’과 같은 것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결국은 모두가 ‘사람문제’로 귀착이 되는데 나에게는 그것을 뛰어넘어 나 자신의 ‘실존문제’로 비약을 하는 듯 하다. 모두 나를 지켜주는 ‘천상의 발판’인데 그것이 깊은 바닥으로부터 흔들리는 느낌인 것이다.  ‘성의 없고 능력 없고, 볼품 없는 인간들’에 대해서 이렇게 실망을 한 적이 있을까?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현재 무섭게 ‘본당’의 손길에서 도망치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일한 탈출구는 역시 ‘어머님’ 의 손길 밖에 없다.

 

¶ 마지막 소식, 사직서:   이틀 전부터 갑자기 진행된 나의 중대한 새해 행로에 대한 결정의 결과가 이제 조금씩 선을 보이게 되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구역장 직, 완전 사임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해야만 했던 각종 고민들이 그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 중에 하나지만, 그래도 고민과 고통을 이 정도는 견뎌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구역에 보내는 ‘마지막 소식’과 본당에 보내는 ‘사직서’가 작성되어서 제출할 날을 기다리고 있고,  짧지 않은 기간을 ‘기도하며 심사숙고’한 결과이기에 큰 후회는 안 할 것이라 희망하고 있다. 이제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상태인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가뜩이나 기분이 쳐진 나를 더 우울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은 바로 작년 6월에 하늘로 떠난 14살짜리 ‘나의 벗’ Tobey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최근 몇 년간 연말 연시 즈음이면 가족들, 그 중에서도 새로니가 데려오는 6살짜리 개 Ozzie와 같이 동네를 걷고 각종 ‘사고치고 재롱부리는 것’을 즐기곤 했는데 올해는 오직 Ozzie만이 우리와 같이 걷고, 놀곤 했다.

 

작년 정월에는 이렇게 둘이 잘 놀았다, 오른쪽이 Tobey

 

그 녀석 Tobey가 내 손에서 마지막 숨을 쉬며 떠난 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어서 이제는 그 섬뜩한 공허감에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나의 깊은 속 마음은 그것이 아니다. 특히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올 때가 너무나 조용한 침묵의 소리를 느낄 때가 제일 괴로운 순간이고 아직도 변함없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그 세월이 얼마나 지나야 하는가?

긴 세월 동안 ‘깡패 두목’ 역할을 했던 Tobey에게 눌려 살았던 거의 같은 나이의 암 고양이 Izzie가 제 세상을 만난 듯 집안 주인 행세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쌀쌀맞던 그 녀석이 요새는 우리에게 서서히 다가오더니 급기야는 내가 낮잠을 잘 때면 배위로 뛰어 올라와 같이 자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예전의 Tobey처럼 우리에게 정을 붙이고 있으니.. 이 녀석도 수명이 아주 길게 남지 않았는데 또 보내야 한다면…  현재로서는 생각하기도 싫다.

 

Tobey 자리를 대신 해서 나를 즐겁게 하는 암 고양이 Izzie

 

의외로 질긴 동물에 대한 정, 우리도 놀라고 있다. 이별의 괴로움은 사실 안 겪어 본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사람을 떠나 보낸 것과 또 다른 독특한 종류의 고통, 이런 느낌을 나누면서 우리 둘은 ‘앞으로 가능한 한’  pet animal에 정을 주는 기회를 피하자.. 그러니까 adopt 하지 말자..라는 묵계까지 하게 되었다…. Tobey야.. 보고 싶구나!

서기 2018 이천십팔 년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나의 나이 70세의 거의 전부도 저물어 간다. 얼마 안 있으면 71세가 된다. 그렇게 70이란 숫자의 나이를 들먹이던 것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2018의 숫자로 가끔 생각했던 것은 10년 전, 20년 전.. 등등으로 나의 옛 시절의 추억들이다.

제일 멋진 숫자가 50이다. 그러니까 50년, 50년 전, 더 멋지게 ‘반세기 전’..  이제는 완전히 나는 반세기인을 20년이나 덤으로 산 것..  그때가 50년 전, 1968년이었다. 이 해는 나의 뇌리에서 가장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때, 나의 blog 에서도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해로 남는다. 나이 20 이었으니 얼마나 즐거웠던 때였을까?

40년 전, 1978년은 어떠한가?  나이 30,  바로 지나간 20대에 필요이상으로 왕성하던 남성 호르몬도 조용해지고, 본격적으로 인생을 살 채비를 갖추던 시절..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 ‘북극성’은 없었다. 코 앞에 보이는 골목 길만 따라  남들이 하는 대로 걷기만 했다.

이렇게 나이 40, 50, 60을 따라가다가 70에 도달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세월이 나이에 따라 더 빨리 흐르는 듯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위의 변화는 없는 듯했다.  물론 60, 70의 전통적 상징성은 무시 못하겠지만 그것조차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18년을 뒤돌아 보니 다음과 같은 일(나의 10대 뉴스)들이 생각난다.

  1. garage door spring accident
  2. 칠순 생일 맞이
  3. Hyundai Elantra gone
  4. Roswell Nursing Home
  5. Tobey to heaven
  6. furnace, a/c replaced
  7. 구역장 피선, 본격적 본당 활동 시작, 연수회, 본당의 날
  8. 목요회 모임 1년 이후
  9. 레지오 단장 임기시작
  10. Total burnout begins..  totally ruined holidays

 

이런 저런 나의 시대 관을 배경으로, 2018년은 나에게 무엇이며 어떤 때였는가.. 사소한 것부터 지각변동적인 큰 사건들도 있었고, 신변에 아주 위험한 때도 있었다.

  1. 작년 1월 6일, garage door의 ‘위험한’ spring을 교체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그 육중한 문에 깔렸던 사고.  그 당시에 집에 아무도 없어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최악의 경우 나는 그 문에 깔려 질식사할 수도 있었으나 큰 상처 없이 빠져 나왔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상체근육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
  2. 나이 칠십세! 우아… 이거 말이 되나.. 내가 70살이라니..
  3. 나의 ‘통근전용 승용차’ 로 정이 많이 들었던 이 고물차가 드디어 donation형식으로 나를 떠났다.
  4. 집과 비교적 가까운 이 ‘양로원’에서 치매 등으로 고생하는 ‘동포’ 형제 자매들을 돌보게 되었다.
  5. 나의 ‘분신’ Tobey가 비교적 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다. Tobey야, 나중에 다시 보는 거다!
  6. 여름만 되면 조마조마 하던 이 ‘고물’이 드디어 수명을 다하고 최신형 model로 교체되어서 이제부터는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7. 나이 70에 ‘마지막 임무’라 생각하며, 그 동안 진 빚을 갚은 자세로 겸허하게 수락한 이 ‘장’자리, 나에게는 생소한 job이지만 열심히 저돌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 했지만 나의 tactic 은 순진한 것이었다. Marathoner의 자세를 취해야 했지만 바보같이 sprinter 흉내를 낸 탓에 결국은 total burnout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래도 빚을 조금은 갚은 시원한 기분이다.
  8.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이 ‘이상한’ 그룹,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을 했지만 성과는 의문 부호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에 조금 좋은 결과를 목격하며 ‘어머님’의 신비한 손길을 느끼게 되었다.
  9. 비록 레지오 ‘분대장’일 지라도 ‘장’은 ‘장’이다. 문제는 분대의 규모가 너무나 약하다는 것, 심지어는 분대의 운명이 불분명하다는 것, 나는 이런 것을 극복할 경험과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다. 게다가 이 직책을 맡으며 꼭 하고 싶었던 과제 (우리를 괴롭혔던 두 명의 미친 년들의 처벌문제)는 현재 허공에 떠있는 상태다. 아마도 이 문제는 priority가 더 낮아질 듯하다.
  10.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나는 결국 모든 문제들이 일시로 뭉치면서 이런 total burnout의 상태로 치닫게 되었고 결과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두운 성탄,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Max Planck, father of Quantum Physics

 

요새 나는 온통 이 흔해빠진 단어, ‘consciousness,  의식 意識’의 홍수에서 헤매며 사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곳, 저곳, 그곳.. 나의 눈이 가는 곳마다 이 consciousness란 말이 보이는 것일까? 하기야 이것은 우문현답 愚問賢答 식으로 말하면 ‘나의 눈이 가는 곳마다 (대부분 책들) 그것이 보이니까, 아니 내가 그런 것을 내가 의식적으로 읽거나, 보거나 생각하고 있으니까’  정도가 아닐까?

무슨 큰 진리나 발견한 듯한 쾌감이 따라오는 이 최근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 뒤에는 반드시 다시 태양이 떠오르는’ 그런 ‘작은 은총’을 느낀다. 죽으란 법은 없는가.. 요사이 나의 ‘독서 관심’을 이쪽으로 이끌어주는 것, 나의 의식적 의지만은 아님을 어찌 내가 모르랴..

과학과 종교, 인간과 하느님, 보이는 현실과 초자연 세계를 연결해 주는 고리, 그것이 바로 consciousness라는 놀랍지만 생소한 idea가 이제는 ‘말이 된다’라는 경지까지 온 것, 그것이 나는 아직도 놀랍기만 하다.

20세기 초의 Quantum theory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string theory, multiverse등이나 NDE (Near-Death Experiences)를 통해서 지나간 반세기 동안 그 동안 taboo처럼 취급되던 것들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드디어 big convergence (science & religion) 가 시작된 것인지는 몰라도 가히 흥미로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끈질긴 materialistic mindset을 가지고 자란 나에게 종교적 신비적인 경험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영역이었지만 근래에 들어서 ‘가슴을 열고’ 본 ‘새로운 현실’은 아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온 우주가 의식적, 의식으로 가득 찬, 사랑의 시공간이라는 놀라움. 우리의 두뇌에 갇혀있는 포로로 알던 ‘의식’은 그 자체가 자체라는 사실 등등은 아무리 ‘영혼의 밤’ 속에서도 밝은 빛으로 나를 살려준다.

이런 모든 것들은 가히 ‘복음적’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면 죽어서 잊혀져야 하는 존재가 실제로는 ‘영원한 존재’라는 조심스러운 나의 희망적 염원이 서서히 실감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님의 복음 중 제일 큰 복음이 아닐까?

필사1로 읽는 책 중에 노장여류화가 천경자 화백의 ‘사람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란 제목의 수필집이 있다.  소싯적에는 이분의 책은 물론이고,  이분 자체도 잘 몰랐고 관심 밖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림자체는 내가 문외한이니 자신이 없지만 수필체의 글은 정말 마음에 든다. 아마도 내가 지난 10년간 남기고 있는 blog을 통한 ‘글’, 특히 수필체 글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멋있는 표현보다, ‘감정에 솔직함’이 나에게는 거의 전부다. 여사의 글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지..

오늘 필사한 것은 제목이 ‘서울의 엘레지’란 수필인데,  이것을 읽으며 갑자기 ‘나의 서울, 나의 서울 엘레지’란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이 ‘엘레지’는 1980년대까지의 서울의 모습에 얽힌 ‘단상’들인데 나의 것은 그보다 10여 년 전인 1970년대 초까지일 것이다.  그때까지 나의 모든 존재는 그곳, 조선조, 일정시대, 해방과 6.25  직후의 서울 ‘강북’ 이란 ‘좁은 곳’, 그러니까 북악 남쪽 한강 위쪽에 국한 되었다.

이곳에 얽힌 나의 ‘서울 엘레지’를 쓰라면 비록 ‘엘레지’를 논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어도 그 나이에 걸 맞는 ‘유치한 엘리지’는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그 엘레지는 이제는 99.9%  변해버린 ‘토지’위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 다 사라져 버린 그곳은 오로지 꿈 속에만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서울 엘레지’일 듯…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현재의 서울의 모습’은 100% 매력이 없다. 천경자 화백의 수필도 아마 그런 각도로 본 엘레지가 아니었을까? 과거, 옛날을 그리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이상향이 아닐까? 아련한 추억을 모조지 쫓아내버린 ‘메트로 서울’의 모습 속에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의 서울을 꿈 속에서 찾는 것이 이제는 길지 않은 여생의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저 세상’에 가면, 수정처럼 깨끗한 모습의 ‘작고 소박한 그곳’의 모습을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서울 시청, 국회의사당, 시민회관, 반도호텔.. 서울의 1962경, 아담했던 모습들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1962년 경 서울의 모습, ‘중앙청, USOM, 세종로’

 


 

서울의 엘레지 – 천경자

 

거리의 체증을 뚫고 택시가 어렵게 3호 터널을 빠져 나오자 남 서울의 풍경이 환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후유 – 한숨이 터진다. 거대한 라이터가 무수히 치솟은 듯한 고층아파트들의 원경은 흡사 뉴욕의 허드슨 강에서 바라보는 한쪽 도시를 연상시켜 준다. 서울이 이토록 발전한 데에 경탄은 하지만 한편 메마르고 살벌한 시야에서 막연한 불안감마저 느낀다.

창 밖을 스치는 실버들 가로수를 보며 시각을 통해서나마 쩍쩍 금이 간 가슴에다 촉촉한 푸르름을 흡수해 보려고 깊은 호흡을 하는 것도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차가 한강다리를 달릴 때의 기분은 잠시나마 상쾌하다. 그 지점에서 나는 동남쪽 강변에 솟은 반원형의 고층건물을 유심히 바라본다. 우리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정이라는 따스함도 고령의 노모가 살아 계실 동안만 지속된다는 걸 알고 있고 언젠가는 다가올 엄숙한 붕괴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차창에서 보이는 그 아파트는 고대 로마시대에 기공되어 지금은 허물어져 동그랗게 반원형만 남아 있는 콜로세오를 방불케 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생사를 걸고 장절한 검투를 벌였던 검사(劍士)의 모습들마저 상기되어왔다.  한 인간이 두뇌와 붓을 쥐고 오른팔 하나로 살아가는 생(生) 역시 검사와 다를 것 없이 처절하고 또한 스릴과 쾌락이 있다.

띵똥, 초인종 소리에 문 열어 주는 가족이 있고 비로소 아늑한 우리 집의 작은 세계가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 준다. 미완성 화판에 그려진 사람들과 뭇 생물들, 그 친구들이 나를 외롭지 않게 맞아 주고 어머니의 신음에 가까운 숨소리가 쇤 기침소리까지 고소한 누룽지 같은 정감이 되어 나를 살게 해 주는 값진 생명수가 되어 준다. 그러나 우리 모녀는 사소한 일, 전라도 사투리로 꼬막(고막) 껍질로 하나도 못 되는 일들로 잘 다투며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하다.

어쨌든 추운 겨울날 폭풍우 속을 헤매다가 아늑한 찻집을 발견한다거나 밤중에 타기 힘든 빈 택시를 만난듯한 안도감 같은 것이랄까 촛불 같은 광명과 훈훈한 온기가 있다.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나는 태반에서 탯줄을 빨듯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묘한 인생이다. 젊은 시절에 해결할 수 없던 인생의 고통이랄 지 일해도 일을 해도 넉넉지 못했던 살림살이가 지겨워 무척이나 더디게 가는 것 같은 시간을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데 어느새 세월은 흘러, 지금 이 나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어머니가 요안나로 세례를 받던 날의 기념사진을 보면 장미꽃 조화뭉치가 달린 면사포를 두른 어머니의 표정은 어색했던 때문인지 수줍은 표정이었지만 참 아름다웠다. 그분의 회갑이나 또 고희(古稀)조차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한 잔치를 못해 드렸다. 고인이 된 명창 박초월씨를 초청하여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5월의 창경원의 푸르름, 나뭇잎만 보아도 쪼르륵 엽록소가 오관에 흡수되어와 뭇 작품에의 구상이 떠올랐지만 미숙해서 충분히 소화를 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지금 막 자신이 생길 만 하니까 나는 살아온 과거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상아야 하는 소위 인생을 관조하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옛날과 변함이 없는데 남들이 그렇게들 봐 주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인생이란 번개같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볼 때 나의 지나친 생업에의 집념 때문에 역설일는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차라리 평범한 촌부로 태어났으면 싶은 때도 있다. 어중간히 풍부한 감성의 소용돌이가 거추장스럽게 때문이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노틀담의 꼽추> 를 읽고 그의 비극적 운명을 테마로 한 사상에 감명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영혼은 반드시 있고 그 어느 영혼이 누구의 모체엔가 들어가 혈육이 되지 않는가 싶다. 결국 윤회전생설(輪廻轉生說)을 긍정하는 뜻이 되겠지만 한 세상 살다 보면 반드시 악연선연(惡緣善緣)이 있고 설령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연이 없으면 악연이 될 수도 있어 전생래세(前生來世)에까지 어려운 문제로 뻗쳐지게 되지만 살아오다 보니까 인연설에 한해서만은 인생에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환상이 아닌 실감으로 느끼게 될 때가 많았었다.

나는 둘째 딸을 참 아기자기 예쁘게 길렀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사는 그는 어려서부터 나의 그림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가 스무 살이 넘고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나는 공연히 안절부절 불안했고 스물다섯 살이 되자 비로소 마음이 놓이던 이유는 일란성 쌍동녀 같았던 여동생이 그 스물넷에 죽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생전에 다정했던 여동생의 외로운 영혼이 나의 모체에 들려 전생한 것이 아닐까 했던 부질없는 기우 때문이었다.

그 이전 나의 소위 세계일주 스케치 여행 때 나는 마지막으로 이태리의 피렌체에 들려 위지미술관에서 보티첼리의 <뷔너스의 탄생>등 작품을 보고 참 행복했었다.

또 그의 대표작인 <봄의 탄생>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였다. 맨 앞에 현세의 히피같이 꽃에 둘러싸인 모습의 신비로운 미소를 띄운 주인공 같은 여자에게 반했었다. 훗날 책에서 읽고 안 일이지만 그 모델의 주인공은 시모네타라는 이름의 당시 성주의 딸이었다는데 일찍 죽었다고 했다. 나는 또 전생의 여동생 문제가 해결되다 보니까 딸이 시모네타의 전생이 아닌가 하고 막연한 불안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지나친 사랑에서 해방된 그녀는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 딸과 나와의 인연이 끊기다시피 되어 어떤 동화에 나오는 마술사에게 어린 딸을 빼앗긴 것 같아 시모네타의 환상이 현실화 되었음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지금 이 순간 눈을 감지 않는데도 내 방에 있는 뭇 사물과 함께 노오란 기생(妓生) 코스모스라든가 썬세트(노을빛 코스모스), 라이락, 호박잎, 몇 그루의 상록수들 사이로 우리 개 꽃순이가 뛰어 놀던 서교동 집뜰 정경이 오버랩 해와 좁은 시야가 무척 번거롭기만 하다. 우리는 몇 달 전만 해도 그 집에서 살았고 결코 행복했다고 할 수 없는 그 시절이었지만 뜰이 있고 개도 있고 꽃도 피고 가족들도 많았던 그 시절엔 생활의 리듬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사랑의 대상들이 차례차례 나에게서 떨어져나갔고 나는 노모와 함께 이 아파트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둑후둑 맥박이 뛰듯한 희비극이 소용돌이치던 서교동 생활을 청산하고 보니 이곳은 외부의 냉냉하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너무나도 고요하기만 하다. 또 대인 공포증으로 사람이 싫어진 나로서는 안성맞춤의 환경 속에 들어앉아 버려 다행한 일인지 모르나 한편 서글퍼진다.

강변도로를 연해 솟은 도신의 현대식 건물들, 그리고 멀리 엷은 빛으로 펼쳐진 산들은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강변로에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의 행렬이 있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 버스요 승용차들일까. 그 사이에 또 어디서 오고 있는지 하얀 전동차가 평화롭게 지나간다. 유선형으로 된 머리부분과 까만 점 같은 차창들이 꼭 누에같이 생겼다.

윤회 전생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보이지는 않지만 각기 정해진 칸에 수용되어 저런 열차를 타고 언젠가는 종점에 닿아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닌지.

우등열차에 오른 인생, 그리고 정감서린 좋은 동승자들과 어울려 앉은 요행의 인생은 보다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신고(辛苦)끝에 좌절되고 더러는 이겨내서 그 체험 때문에 깊고 완숙된 정신적 승리자가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열차를 탔을까, 가슴에 손을 얹어 생각해본다. 전자도 후자도 아닌 퍽 어정쩡한 완행열차를 타고 있고 어느덧 종점이 다가오는 시간을 달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짧다면 아쉽고 길다면 어차피 지나가 버린 사연들은 다시 붙잡고 싶지도 않는 미련 없는 과거일 뿐 이상하게도 담담한 기분이다.

그러나 ‘나’ 어떡하란 말인가. 무척이나 보고 싶은 얼굴들을 많이 잃었었다. 나는 사람은 죽으면 저승에 머무르는 동안 사랑하는 혈육이나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학자 점술가의 말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에 쓰여 있는 구절인데  저승의 시간대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오백 년이 걸려도 만날까 말까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정말 어떡하란 말인가…

궂은 일, 때로는 좋은 일들로 수다한 사연들을 안고 후려치는 바람막이 하느라 정신 차릴 수 없던 사이에 세월은 흘러갔고 살아 있는 혈육들마저도 뿔뿔이 너무나 먼 곳으로 흩어져 나가 있는 고독을 새삼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저렇게 바라다 보이는 강 건너 수묵화같이 희미하게 보인 곳으로 말이다.

내가 타고 있는 인생열차의 칸에는 낯 설은 타인들로 꽉 차 있는 것만 같다. 그 속에서 내가 먼저 콜라나 담배를 권하며 친해 보려고 말 붙임 해 보려는 외로움…

그런데 어느 간이역에 열차가 잠시 멈췄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누군가 다른 칸에서 뭣을 들고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엄마, 도시락 먹어. 엄마가 이 기차에 탄줄 몰랐네. 나는 쩌어기 앞칸에 타고 있었는데..’

나는 운명적으로 함께 나란히 앉은 든든한 자식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비록 칸은 달라도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자식 하나가 꼭 있다고 믿고 있다.

창 밖 저어 아래서 강변의 버들가지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오늘따라 유난히 친근감이 더 느껴지는 버드나무, 내 친구.

아무튼 종착역까지 가는 시간까지 끈질기게 일하고 먼 후세에까지 평화롭게 누에 같은 자동차가 달리고 있을 수 있는 복된 세상이 무궁하게 지속되길 빈다.

요즈음 와서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금요일 다음엔 토요일이 오기 때문이다.

금요일엔 장에 가서 이것 저것 골라 찬거리를 사온다. 토요일에는 기다려지는 혈육이 오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손자놈을 데리고 오면 나는 그놈을 안고 강 위를 훨훨 나르는 하얀 물세를 보여 준다.

무척 신난다는 표정의 그를 볼 때마다 ‘대부’의 돈 클레오네가 만년에 뜰에서 손자와 놀고 있는 장면이 떠올라 한없이 애수에 잠기기도 한다.

토요일엔 또 군복무가 얼마 남지 않은 막내가 오는 날이다. 그리고 일요일엔 부대로 돌아가 버린다. 워낙 친구들을 좋아해 불려나가 버리니 무정하게도 나와 대화를 나눌 시간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기다린다.

노모는 아침을 들지 않고 나는 저녁을 먹지 않기 때문에 서로 시간대가 뒤틀려 우리 식구들이 함께 식탁에 앉아 보기는 거의 없는 생활이다. 결국 제각기 혼자서 밥상을 받게 된다. 우리 집의 가정적인 고독은 여기에 그 근원이 있는 것 같다.

일각일각, 목각에다 칼집을 하듯 시간은 깎여 내려가는데 나는 커튼을 걷어 창 밖 경치를 바라본다. 휘황찬란한 강북(江北) 불빛 그림자가 물에 비치지 않는 것은 추위에 한강이 꽁꽁 언 탓인가 보다.

멀리 줄이어 달리는 자동차 불빛은 호박넝쿨 위를 나르는 뽀얀 반딧불같이 아름답다. 나는 이곳에서 사는 동안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나름대로 느끼며 답답하면 춘하추동 변하는 강물, 눈 오고 비 오고 때때로 안개 자욱한 강변풍경을 바라보면서 생업에 미쳐 살  길밖에 없다.

칠흙 같은 하늘에서 눈보라가 휘날리기 시작한다.

나는 갑자기 에밀리 브론테처럼 의젓한 자세로  창 밖을 응시한다.

브론테의 시야엔 공동묘지와 멀리 은백색으로 펼쳐진 폭풍의 언덕이 보였을 것이다.

내 시야엔 역시 어둠과 하얀 눈이 엉켜 은회색 하늘과 닿아 버린듯한 강건너 도시의 뿌우연 불빛 띠가 그지없이 묘하게 보인다. 눈 아래 강변로를 끊임없이 달리는 자동차 불빛 띠 역시 희한하다.

이런 상황은 나를 에밀리 브론테로 만들고 어떤 시대가 돼도 상관없는 어느 성주의 미망인으로도 만들어 버린다.

환상은 꼬리를 물어 먼 태고와 미지의 미래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꿈같은 풍물이 보이는 듯해 앞으로의 작품을 위해 찰칵찰칵 가슴 속에 든 사진기 셔터를 눌러재킨다.

하염없는 환상을 깨듯, 어머니 방, 텔레비젼에서 흘러간 가수가 부르는 노래 ‘아, 아, 아 황혼의 엘~레~지…. ‘가 새어 나오고 있다.

 

  1. 나의 필사 筆寫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PC keyboardtyping하는 것을 뜻함.

지나간 주, 주일날 대림특강이란 것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었다. 대림절 the Advent 이면 거의 예외 없이 있는 이 ‘특강’ 에서는 , 몇 년 전까지 이곳의 보좌신부님으로 수고하시고 귀국한  ‘애 같이 해맑은‘ 한민 토마스 신부님이 강론을 하셨는데 역시 ‘예의’ 강론 내용과 스타일은 전혀 전과 변함이 없었다. 일상에서, 특히 가족관계에서 몸소 겪었던 것들에서 어쩌면 그렇게 주옥 같은 영성 소재들을 찾고, 실감나게 전하는지, 이것은 이 신부님만의 ‘특기’인 듯 싶었다.

재미도 있지만 깊이 있는 강론 끝에 ‘예수회 후원회’ 간담회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우리도 참석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책 한 권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 제목이 너무도 평범한 느낌의 ‘하느님 나라 이야기’였다. 특강을 마치며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었는데 물론 ‘저자’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 ‘김우중’ 수사,  이것 또한 너무나 세속적 이름이 아닌가… 큰 관심을 가지기에 역부족인 듯 했지만 저자에 관한 ‘개인적인 사연’을 간단히 들었기에 관심을 갖고 그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대한민국 대학원 출신, 자동차회사 연구원 생활 이후에 길고도 험난한 사제의 길을 택한 수사님이라면 예사롭지 않은 경험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

책, book 이라기 보다는 ‘소책자’, booklet에 가까운 ‘사진과 글’이 적당히 얽힌, 편한 소파 에 누워 읽기에 안성맞춤인 책.. 이 ‘젊은 수사’가 과연 얼마나 오래 살았기에 이런 ‘경험적 영성’을 말할 수 있는지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거의 모두 나에게는 친근한 느낌으로 글과 사진들이 다가옴은, 나와 ‘파장, 화학’이 맞는다 고나 할까..  결국, 대림절과 대림 특강과 잘 어울리는 선물이 되었다.

예수회 한민 토마스 신부님,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우리 성당의 주임신부님으로 오시길 기도합니다.

 

이 소책자의 많은 글 중에서 다음의 사진과 글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김우중

 

빛과 어둠

 

빛이 강하면 어둠 또한 강합니다.

한 여름의 강한 태양빛은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지난 시간 유난히도 짙은 어둠 속에 사셨다면,

그만큼 강한 빛을 받으며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몰랐던 것은

빛을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빛을 향해 돌아서기만 하면 됩니다.

 

고통과 괴로움에 묶여있던 시선이 빛을 향하는 순간,

하느님의 은총이 매우 강렬한 빛처럼

늘 나에게 쏟아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태양은 늘 떠오릅니다.

이제는 빛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빛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욱 강한 빛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 글과 사진을 읽고 보며 생각에 잠긴다.

시각이 정상인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빛’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당연한 것일까? 빛을 물리적으로 보는 것과 그것을 ‘초월한 것’으로 보면 너무나 느낌이 다르다. 빛이 있음과 없음은 시각이 있으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영혼이 느끼는 빛이 없는 것은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다르다. 그야말로 ‘지옥’이 바로 그 빛이 없는 곳이 아닐까?

따라서 빛과 ‘절대적 존재, 하느님’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 인간이 그렇게 자랑하는 ‘물질적 과학주의 materialistic scientism‘에 의하면 빛과 ‘에너지’는 같은 종류이다. 한마디로 에너지가 있으면 ‘존재’이고 에너지가 없으면 ‘허공’ 그 자체인 것이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한때 ‘고립감, 허탈함, 고독,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던 시절에 나는 분명히 ‘빛’을 싫어한 경험을 했다. 보이는 것이 다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옥’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느끼는 것 역시 ‘빛의 존재’ 였다. 나는 분명히 주위를 밝히고 싶었다. 그것이 ‘악으로부터의 탈출’ 의 시작이었다. 밝음, 빛, 그것이 전부였다. 그 빛은 누가 시초에 생기고, 만든 것인가…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빛을 향해 돌아서는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  동지: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이틀 뒤인 21일이 책상 위의 달력에 ‘Winter begins‘라고 쓰여 있다. 아하.. 바로 Winter Solstice, the Longest Night, Midwinter.. 고추장 냄새가 나는 우리 말 ‘동지 冬至’.. 이제는 동지란 말이 왜 그리 생소하고 심지어 우습게까지 들리는지 조금은 슬퍼진다. 그렇다. 나는 ‘동지’란 말을 들으면 내가 본향 本鄕 으로부터 얼마나 오래, 멀리 떨어져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긴 밤 지새우고 나면 ‘진짜’ 겨울이 시작되는 날..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 공식적 겨울이 시작되는 날은 이틀, 성탄은 6일, 2018년의 마지막 날은 열 이틀 정도 앞둔 날..  2018년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의무행사는 등대회 망년회,  구역점심봉사, 본당 구역 송년잔치가 있지만 ‘등대회’를 제외하고는 글자 그대로 ‘의무적’인 것으로, 솔직히 ‘할 것을 해야 하는, It’s now or never의 심정’으로 별로 신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것들은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닌 것들이고 해야 되었어도 나는 ‘안 했을’ 그런 것들이다. 내가 변신을 한 것인지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래도 송년에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면 60~70대 성당친교단체인 ‘어둠을 비추는’ 등대회, 같은 세대를 살았다는 인연은 믿음의 색깔도 초월하는, 생각보다 진하고 포근하다는 나의 ‘지론 至論’ 에는 아직도 변화가 없다.

 

¶  망각의 나날들:  거의 한달 만에 내 마음의 위안처, 쉼터 ‘retro‘ blog posting 을 준비한다. Blog draft들은 그 동안 많이 남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posting할 시간과 에너지가 거의 없었다. 무언가 나를 지독하게 피곤하고 심지어 쳐지게 했던 그런 지나간 한 달..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주로 (Microsoft Office) OneNote에 남겨진 나의 단편적 기억과 사건들을 다시 모으고 엮으며 달 간의 역사를 재구성해는 작업, 쉽지 않지만 해를 보내며 꼭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제는 기억력이 예전과 조금 다른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  Sorry, Holy Family Catholic..  오늘 아침 9시 미사엘 가니 정말 모처럼 Father Dan Ketter 가 오셨다. 도대체 몇 개월만인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 만이다. 재능과 젊은 에너지가 철철 흐르는 이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를 하면 우리도 젊어지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신학’ 강의를 듣는 기분까지 든다. 게다가 ‘목소리’가 알아 듣기에 거의 완벽한 정도의 pitch를 가졌기에 강론이 나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지만 99.99%를 알아듣는 행운까지 얻는다.

이렇게 우리는 차로 15분 거리의 이 ‘동네 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거의 20여 년의 가족적 인연을 맺고, 6년이 넘는 매일미사의 은총을 주고 있다.  문제는 ‘미사의 꽃’인 주일미사를 이곳으로 못 가게 되어서 주일 헌금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나를 구해준 곳’의 은혜를 저버린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이다.

작년부터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로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 것은 나에게 주일날 그곳에 갈 일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급기야는 올 들어서 모든 주일에 무엇인가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안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내가 꼭 이런 것을 바라고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neighborhoods 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나무’가 찬란한 모습으로..

 

이천 십팔 년 (no pun intended) 십일월 이십일일, 2018년 11월 21일 수요일,  깊어가는 11월에 선뜻 할 정도로 시퍼렇게 깊은 가을 하늘에는 찬란한 해가 떠오르고,  급하게 Ozzie 를 데리고 subdivision을 산책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공기가 너무나 싸늘한 것이 문제다.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지 않으니 집 밖에서 나갈 때의 잠깐의 써늘함만 참으면 금세 모든 것이 따뜻하게 느껴질 것, 경험으로 안다.

오늘은 나의 기분 탓으로 별다른 이유 없이 아침미사를 쉬기로 ‘합의’를 보아 하루를  ‘작은 깜짝 휴일’로 만들어 버렸다. 내일은 이곳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고맙고, 감사하는 날’ Thanksgiving Day holiday, 어느새 한 해가 물처럼 흘렀는가? 분명히 지지난 해보다 더 한 해가 빨리 지나 간 것, 겉으로는 ‘괜찮다. 그게 정상적인 거야’ 하며 내숭은 떨지만 속으로는 세월이 역시 조금 더 빨리 흘렀구나 하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다.  종교적, 기독교적 ‘종말론 eschatology‘을 안 생각할 수가 없는 시기가 또 나에게 ‘점점 빨리’  다가옴을 느낀다.

올해의 이 ‘감사절’, 작년보다 더 조용하게 보내게 되었다. 4식구 중에서 막내는 빠지고 큰애는 여행을 갔다가(Northwest region) 저녁 때 집에 온다고 하니 그때 그 애들과(with boyfriend) 같이 조금은 ‘지지고 볶은’ 저녁이나 나눌 듯.  이것은 물론 우리 집의 ‘전통적 감사절의 모습’이 아니다. 아니.. 이 정도의 나이에서는 거의 정상일지도.. 하지만 조금은 왕년의 ‘시끌벅쩍, 지지고 볶고, 떠들고 마시고..’ 하는 모든 것이 지나간 영화처럼 주마등 지나치는 듯 느껴진다. 그래 이것이 인생의 흐림인 거야..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던 싸늘~한 가을비가 오늘 이른 아침부터 조금씩 잔잔해지는 느낌이더니 결국은 멈추었다. 하지만 빗물에 완전히 젖은 낙엽들이 내뿜는 냉기는  온통 나의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작년에 연숙이 Costco 에서 사준 실내용 warm pants 로 하체는 해결이 되었는데 shirt는 고르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올해 첫 winter storm, Avery 의 소식이 나오고 있다. 첫 눈의 소식, 물론 이 지역이 아니고 Midwest, Northeast 쪽이었지만 ‘눈 소식’을 들으니 벌써 ‘Holidays, the best time of year’ 란 숙어가 떠오른다.

작년 가을에 나의 work/study room을 아래층으로 옮긴 후 첫 겨울은 추위를 느끼며 살아야 했다. 위층에 비해서 훨씬 냉기가 대단한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올해 다시 맞는 큰 아래층 공간의  ‘냉기’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여름에 우리를 영원히 떠난 나의 Tobey가 없는 이 큰방, 그 사실이 추위의 냉기보다 나를 더 춥고 쓸쓸하게 만든다. Tobey대신 ‘양양이 Izzie‘ 가 나의 주변을 맴돌지만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인가? 하지만 ‘5개월이란 세월의 약’이 작용을 하며 all shall pass, all shall pass

이른 아침 ritual (stick coffee, today’s scripture, email, New York Times newsletter, blog counts etc)을 끝내고 우연히 (사실은 며칠 전에 잠깐 보았던) 1960년대 말의 미국 TV show였던The Glen Campbell Goodtime Hour (variety show format)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 감미로운 추억이여! 아무리 잇몸이 쑤셔도 이런 60년대 말의 추억은 모든  불편함을 한때나마 잊게 해 준다. 그의 음악에 심취했던 시절, 60년대 말은 나에게 절대로 잊을 수도 놓칠 수도 없는 보물중의 보물로 남아있다. 서울에 있던 ‘미8군 방송국’이었던 AFKN 에서 이 program을 정기적으로 방영을 했고 나도 기회가 되는 때에 보곤 했었다.  연세대 전기과 기타귀재 심재흥의 영향과 도움으로 한창 기타를 배우던 시절, 이 Glen Campbell의 folk, country, rock style은 거의 교과서적인 도전을 나에게 주곤 했다.

 

 

 

한때 Elvis Presley 의 guitarist였던 그가 어떻게 그런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 그의 vocal style은 기타 솜씨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다만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는지 ‘유명세’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으로 그의 말년이 기억되는 것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그 당시에 우리는 그의 노래 A Place in the Sun 을 ‘ 따라 부르며 guitar chord와 rhythm 을 연습했다. 특히 당시 Bobbie Gentry와 duet으로 부른 Let it be me 는 당시의 시내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면 항상 흘러나오던 hit song 이었고, 그 뒤로 듣던 Gentle on My Mind, By the Time I Get to Phoenix, Wichita Lineman, Galveston… 수많은 hit after hit..  훨씬 뒤에 미국에서 TV로 보고 들었던 그의 ‘대작’, big orchestra와 협연으로 부른 MacArthur Park은 정말 그만이 남겨준 영원한 classic이 되었다. 아~ 추억에 젖은 이른 아침이여…

 

 

MacArthur Park – Glen Campbell

 

 

Let it be me – Glen Campbell & Bobbie Gentry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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