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가족

 

 

성 목요일 아침, 무언가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시계를 보니.. 생소한 숫자가 멀리서 희미하게 보인다. 08:30 인가.. 사실 이 숫자는 나에게 생소한 것이다. 익숙한 숫자보다 무려 01:45 가 더해진 시간에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포근한 침실의 공기, 어제부터 갑자기 포근해진 날씨 덕분에 blanket warmer의 도움이 없이 편하게 일어나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역시 오늘도 ‘나이의 피곤함’ 은 그대로 나를 따라온다. 이것이 언제 없어질 것인가, 아니면 이것이 new normal일 것인가? 아니길 바라지만 그야말로 I surrender myself to you, take care of everything

아침에 나를 제일 반겨주는 ‘생명’은 사실 사람이 아니고 우리 집 brave Tabby cat, Izzie 와 bully dog Tobey 다. 고양이 이름이 ‘이지’라고 불리지만 사실 지내는 데 그렇게 easy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에 어쩔 수 없이 ‘잔잔하고 끈끈한 정’을 서로 느끼며 산다. 2006년 6월 비 오는 우리 집 앞 나무 밑에서 배가 고파 울던 baby cat,  개가 있는 집에서 살게 된 운명이었지만 정말 ‘용감하게’ 자기 turf를 고수하며 살았다. 지나치게 defensive한 것이 귀엽게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전혀 큰 사고 없이 나와 같이 함께 늙어가는 것..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

 

Izzie is not easy..

 

지나간 화요일 미사 후에 나는 정말 간신히 판공성사를 보았다. 솔직히 점심 후에 주임신부와 면담을 곁들여서 하려고 했는데 그런 방식의 판공성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음을 알고 ‘정식’으로 고백소에서 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줄을 서서 하는 관계로 timeout의 상황이 될 수가 있어서 꼭 성사를 볼 수 있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이번의 성사는 ‘나의 뜻이 아니고..’ 하는 심정으로 임했고, 역시 timeout 이 되어 포기할 찰나에 새로 부임하신 보좌신부님, 점심도 미루고 남은 영혼들의 고해를 모두 들어주셨다. 이래서.. ‘나의 뜻이 아니고.. ‘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사순 판공, 나의 주제는 딱 두 가지였다. ‘보기 싫은 사제를 혐오하는 죄’, ‘레지오 미친년’에 대한 나의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증오감. 증오는 증오요, 혐오는 혐오다. 이런 것들, 일시적 감정으로 죄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증오, 복수의 칼날을 매일 새로 갈고 있는 것’, 그것은 분명한 죄였다. 고해신부님, 이런 이야기는 흔히 들었던 것이라 ‘자상한’ 영적 도움말씀도 있었고, 보속도 곁들였지만 역시 나는 죄의 ‘완전한’ 사함에 대한 자신이 없다. 하지만 성사는 분명히 성사다. 그것은 확실히 믿는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결국 오늘 밤에 시작되는 파스카 성삼일을 맞게 된다. 오늘 저녁 성목요일 미사는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고 세족례가 있으며 영성체가 끝나면 성체가 수난감실로 옮겨 진다. 그 후부터 수난감실 성체조배가 다음, 성금요일 미사 전까지 계속된다. 우리는 레지오 단원으로 금요일 0시부터 1시까지 수난 감실을 ‘지키게’ 된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이제는 몇 년이나 되나.. 나에게 꽤나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어서 매년 거르지 않게 되었다. 부활주일까지는 흡사 100m 단거리 경주하는 기분이 들곤 하고 사실 피곤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피곤함의 대가는 어떤 것인가.. 일년을 두고두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히 떠나기 직전의 Elantra

 

오늘 갔다, 나의 old friend, Elantra가 오늘 영원히 떠났다. 아마도 곧 ‘죽을’ 지도 모른다. 슬픔과 안도의 마음이 하루 종일 교차하던 오늘이었다.

2000 Hyundai Elantra는 오래 전 2000년 경부터 내가 혼자 쓰던 승용차였다. 그 당시 주로 출퇴근할 때 쓰던 2000년 가을에 샀던 그 차가 오늘 영원히 떠난 것이다.

그 당시에 출퇴근 할 때 쓰던 1999  minivan Plymouth Voyager가 편하고 안전하고 family car로는 적격이었지만 commute하기에는 경제적인 차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small personal car는 아닌 것이다.

매일 직장 (Rockwell Automation, Duluth)으로 60 마일 정도를 drive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gas(gasoline) 도 만만치 않았기에 통근하기에 알맞은 SMALL personal car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나의 눈에 들어온 차가 하나 있었다. ‘조국의 자랑1Hyundai 차 중에 Tiburon이란 ‘SEXY’ sports car였다. 총각시절부터 sports car를 타보고 싶었던 추억이 발동했는지..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 이런 차를 산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긴 했다. 역시, 식구들이 모조리 반대를 하고 나섰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고’, ‘차 사고 accident  나면 큰일난다’.. 등등이 이유였다.

당시(2000년 경)에 우리 집에는 연숙이 애들과 쓰던 1996 Honda Accord EX와 내가 commute용으로 쓰던 1999 Plymouth Voyager ‘minivan’ 이 있어서, 사실 차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름을 무섭게 들이키는’ minivan을 매일 쓴다는 것도 싫었고, 일년 후 대학에 갈 새로니가 곧 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배경으로 마리에타의 Cobb Parkway에 있는 Hyundai dealer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게 Tiburon이 아닌 ‘값이 저렴하지만 아주 sporty한’ Elantra 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본 floor model은 그 중에서도 더 sporty한 것으로 test drive를 해본 후에, 별 생각도 없이 그것을 그 자리에서 사 버렸다.

이것으로 ‘기름값’도 그렇지만 ‘혼자 타는 차’의 기쁨에 온통 빠졌고, 매일 drive를 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차가 가벼운데 비해서 power가 상당해서 정말 기분은 motorway에서 race car를 타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론가 그저 ‘몰고 가는’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그 때는 9/11/2001, Nine-Eleven 전의 일이었지만 그 이후부터 나의 모든 것이 downhill 을 향하는 느낌으로 depressed decade를 맞이 하면서, 사실 Elantra 의 즐거움을 거의 잊고 살게 되었고 나중에는 나라니가 대학엘 가면서 물려주고 말았다.

그 이후 그 차는 ‘차를 전혀 care할 줄 모르던’ 새 주인 탓에 빠르게 ‘고물’로 변해 갔다. 그래도 120,000 마일까지 견디던 그 차는 결국 거의 쓸 수가 없게 되어서 나라니가 새 차를 사자마자 우리 집 driveway에서 운명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어떻게 이 차를 처리할 까 생각하던 차에, nonprofit 단체에서 donation을 하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나보다 먼저 나라니가 NPR (National Public Radio) 에 주기로 하였고 거의 일년이 넘어서 오늘 우리 집 driveway에서 towing truck에 실려 떠났다.

차 하나 이렇게 없어지는 것,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하겠지만, 나에게는 나이도 나이인지 이번에는 그렇게 예사롭지를 않았다. 무언가 나의 baby가 ‘죽으러 팔려가는’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 나의 사랑을 온통 독차지 했던 차, 나중에 거의 abused 정도의 대접을 받았던 것이 그렇게 신경이 쓰였다. 내가 나라니에게 ‘차를 care하는 교육’을 안 시켰던 것이 나의 치명적 실수였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차의 초기 역사를 생각하면 나의 마지막 직장 Rockwell Automation, 그리고 ‘처절했던 Nine Eleven의 악몽‘,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님의 타계 등등의 ‘depression decade’가 줄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제는 그래도 그때를 조금 밝은 생각으로 그것들을 보려고 하지만, 일어난 일들은 바꿀 수 없는 개인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잘 가거라… 나의 baby Elantra 여…  I will miss you…

 

  1. 내 살아 생전에 미국에서 대한민국 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2018년 1월 21일, 오늘은 나의 나이가 정확하게 70세가 되는 날이다. 우리 부모 세대에만 해도 환갑, 60세의 의미가 훨씬 컸겠지만 그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어 칠순이란 말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 세대를 거치며 ‘한국산 남자’의 평균수명이 10년이나 길어졌다는 뜻인지.. 이유나 생명과학 같은 것 상관없다. 그저 오늘로써 나는 현세와 ,이 지구상에서 70년 동안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만 알면 된다.

‘숫자 놀음’을 떠나서, 70년이란 세월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regret, 스치는 생각은 과연 무엇인가.. old..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서 유난하게 anxious 함을 느끼는 것,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사실이다. 비록, anxious하긴 하지만 꼭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니다. 무언가 settle되지 않은 듯한 뒤섞임, 꼬리를 물고 묻고 묻지만 결국은 이것, 내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에 귀착된다.

사람이 (physical) body와 soul 을 모두 가진 존재라면 (which I truly believe), 그 중에 나의 body는 대체로 건강, 건전한 편이다.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나 자신도 70의 나이에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의 soul 은 어떤 상태인가? 그것이 나의 여생에서 더 ‘건강’하게 해야 할 제일 큰 과제라고 나는 믿는다.

 

약간 down된 기분으로 맞을 듯했던 나의 70세 생일은 저녁때부터 조금씩 up up & away.. 로 바뀌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는 작은 가족들이 ‘모두’ 모였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나라니 boy friend (Luke)까지 함께 작년 Father’s Day 에 찾았던 Marietta Square에 있는 Stockyard (BURGERS & BONES) 에서 beer sampler와 함께 나의 favorite인 gourmet burger,  “JANES’ NOT SO PLAIN” 로 ‘포식’을 하였다. 아무리 sampler beer 이지만 그 양도 만만치 않았고 burger 또한 작은 size가 아니어서 정말 오랜만에 배부른 저녁을 먹은 셈이다.

My favorite burger, Janes Not So Plain

Beer Sampler

모두들 집에 다시 모여서 candle blowing, unwrapping etc etc.. 솔직히 오랜 세월 동안 ‘받아온’ 이런 ‘사랑의 표현’들, 조금은 피곤할 때도 많았고 지금도 솔직히 그렇다. 그저 이런 것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그런 것, 남들(이런 상황에 처한)은 그렇게 즐겁기만 한 모양인데 어째서 나는 좀 다른가? 이것은 나에게도, 신비에 속한, 수수께끼다 (나도 모르니까..). 이번에 내가 받은 선물 중에는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 서울 하늘의 하늘, 별자리 picture frame이 그것이다. 누구의 idea인지 참 재미있지 않은가? 지난 1월 5일 새로니 가 받았던 것도 이런 것이었다. 그 때는 Columbus, Ohio 에서 본 별자리였다. 작은 딸 나라니는 이런 재미있는 gifting idea를 가지고 있다.

Night Sky View on January 21st, 1948 over Seoul, Korea

 

올해 들어서 나의 동년배들, 동기들, 띠 동갑들.. 하나 둘씩 모두 70고개를 넘으며 70대를 살아갈 것이고 80을 향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 건국 당시에 태어나 ‘재수 좋게’ 6.25 참상의 기억을 갖지는 못했지만.. 대신 그 여파로 ‘찢어지게 가난한’ 1950~1960년대 시절을 고스란히 겪었고, 이후 우리들은 희망의 등대였던 ‘해외로 해외로’ 하나 둘씩 떠났고, 그곳에 남은 친구들 초인적인 노력으로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가는 초석을 만들어 놓았다. 아직도 ‘빨갱이‘란 말만 들어도 긴장하는 우리 세대들,  이제는 조금 relax하면 어떨까? 우리에게 익숙하던 ‘흑백논리 세계’는 많이 회색논리의 세계로 변하고 있는 것,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것이 높은 곳의 뜻일 것이라 나는 믿는다.

내가 언제까지 살 것인가.. 우리 둘은 심심하면 ‘누가 먼저 죽을까’ 하는 웃기지도 않는 화제를 즐긴다. 남자가 홀로 남는 것, 그것은 한마디로 horror scenario라는 것, 통상적인 상식에 속하지만 솔직히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누가 먼저 죽을지.. 언제 죽을지.. 암만 science어쩌구 저쩌구 해도, 그것만은 모를 것이다. 그런 ‘지식’은 하느님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날’ 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그런 생을 살고 싶다. 문제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70고개가 가까워 오면서 수시로 이런 물음에 대한 묵상, 기도를 하지만 ‘아직도’ 나는 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도 참을성 있게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 back porch에서 하루 두 끼를 먹고 backyard를 playground 삼아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던 feral ‘mother’ cat  다롱이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지 거의 2주 동안 ‘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우리의 직감에 다롱이는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고양이 behavior에 관해서 ‘pro’ 를 자처하는 작은 딸, 나라니 말에 의하면, 나중에 돌아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는 일단 포기한 상태다.

feral ‘backyard’ mother cat, 다롱이

아침 저녁 거의 정확한 시간에 배고프다고 요란하게 야~옹 거리고, 우리가 backyard에 나가 있으면 어디에 있던 간에 달려오던 다롱이가 없어진 뒤뜰은 며칠 동안 우리를 초조하게 했다.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다롱이는 역시 feral cat이기에 한 번도 안아 주거나 쓰다듬어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향해서 달려 와도 역시 wild cat 이기에 사람을 경계하는 자기 방어 본능은 어쩔 수가 없었기에 우리도 아쉽지만 이해하고 지냈다.

지난 해 2017년 우리에게 year of cat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다롱이였다. 1살이 갓 넘었을 때 kitten 8마리를 우리 backyard에 낳은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우리는 그 8 마리를 모두 손으로 키웠고 (우유를 먹이며) 모두 adopt를 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엄마였던 다롱이도 ‘불임수술’까지 시켜 주어서 다시는 ‘불필요한 kitten’을 낳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2017년 거의 반년을 우리에게 kitten story를 선사해 준 ‘다롱이’… 희망은, 우리 집 근처 동네의 어떤 마음 좋은 노부부의 집 마당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서 편안하게 살리라는… 상상 뿐이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월동준비를 갖추었던 다롱이의 backyard shelter, 이제는…

¶  성탄 12일: 성탄을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포근함과 설렘의 느낌들이 막상 성탄 season 을 맞으면 약간 피곤함이 느껴지는 바쁨을 느끼는 우리 집 yearly routine을 맞이한다. 오랜 만에 모이는 4명의 가족들이 ‘너무나 자주 만나게 되는 stress’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들이 클 대로 커버린 2딸들과 debating, arguing (even fighting) 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저 늘어지고 편해야만 할 듯한 때,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집을 들락 날락 하는 것, seventy years의 여파인지 귀찮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나의 천국인 ‘connected desk’ 에 앉아, 편히 쉬고 싶다라는 ‘Screwtape Letters (Screwtape & Wormwood)’ 의 대화만 나의 귀에 속삭인다. 하지만, 하지만 나도 smarter해 져서 절대로 그런 유혹에 질 수가 없다. 오늘 할 것은 오늘, 지금, 아니 더 빨리 하고.. ‘나에게 내일 아침이 없을 수도 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진리가 있다’ 라는 근래 나의 좌우명을 잊지 말자.

2017년 성탄절 12일은 새로니 생일인 1월 5일까지이며 (이 사실은 절대로 안 변함), 교회 전례력으로 성탄 시기는 1월 8일 ‘주님 세례축일”에 (이것은 매년 조금씩 변함) 끝난다. 그러니까 1월 9일부터 Ordinary Time 연중시기가 시작된다. 휴~~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지만 2월이 되면 전례력의 절정인 부활절을 향한 long march, lent 사순절이 시작되고..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 역정이었다. 이렇게 일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런 전례 시기, 지금 생각해보면 흥미롭기도 하고, 오랜 세월 이 전례력의 의미조차 잊고 살았다. 지금이라도 깨닫고, 의미를 두며 살게 된 것은 한마디로 은총이다.

 

올해의 성탄12일 전후를 나는 어떻게 보냈는가.. good, bad & ugly 골고루 있었겠지만 그래도 GOOD 부터 시작하고 싶다…

 

GOOD #1: Mother Nature!

성탄, 연말, 연시.. 이런 때의 날씨는 나의 psyche 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 다른 말로, 이 때는 cold & nasty한 것이 ‘정상’이라고 믿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season이 바로 right on! Average보다 밑도는 추운 날씨의 연속..  하지만 nasty하지는 않아서 drive하는 데는 no problem! 자주 볼 수 없었던 coat, overcoat, sweater, muffler가 모조리 선을 보인 perfect season이 되었다.

 

GOOD #2: Family Mass, 3-2-1 Happy New Year!

최근 들어서 ‘가족’이 함께하는 곳에는 ‘절대로’ 빠지지 말자.. 라는 결심에 알맞게 노력을 한 것, 조금은 결실이 보이는지.. 만족스러운 표정들을 느낀다. 나도 좋고 그들도 좋고.. 이것이야 말로 perfect win-win이 아닐까? Organized religion이 귀찮다는 아이들, 이것도 ‘유행’이 되었나..  이번에도 without fail.. 둘이서 Champaign toasting Time Square 3-2-1로 New Year를 맞이 했다. 나는 밤 10시면 꼭 잠을 들기에.. 이렇게 밤 늦게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 있지만 가끔 이런 예외도 알고 보면 보람 있는 것이었다.

 

GOOD #3(or BAD?): 새로니가 35번째 생일을 맞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사실 축복이요 은총이다. 외식을 즐기던 ‘아이’가 언젠가 부터는 우리 집에서 ‘미역국’ 포함한 한식으로 생일을 맞고 있고 엄마도 기꺼이 수고를 한다. 35년이란 세월은.. 사실 미혼임을 알면 ‘우아~ ‘ 할만 하지만 다른 쪽을 생각하면 변한 세상, post-modern culture 의 trend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이런 변화를 바로 우리 집 식구에서 보게 된 것.. 한마디로 mixed feeling일 수 밖에. 35살이면 새로니가 태어날 때 나의 나이가 아닌가? Natural Law란 것을 생각하면…

 

BAD #1: Freak Accident! 새해 들어서 반갑지 않은 손님, (small) freak accident는 예기치 않는 것 (하기야 accident란 것은 그런 것이지만) 하도 기가 막혀서 생각하기도, 쓰기도 싫지만 분명히 꿈이 아닌 현실이기에 기록에 남길 수밖에 없다. Handyman 기술 영역에 속하는 fixing garage door, 약해진 spring을 replace하려다가 나는 과히 높지 않은 step ladder에서 떨어지고 door와 wall사이에 pin-down (actually hung) 되어서 최악의 사태는..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사고를 당한 새해 벽두.. 100% 나의 실수로 생긴 것이니 100% 반성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UGLY #1: Limping Group: 내 시간과 노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 활동임을 부인할 수 없고 나는 이것이 제일 ‘자랑스러운’ 나의 일부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그것이 2017년 일 년 동안 ‘치명적, 비극적’인 상처를 연속으로 받았고 아직도 나는 ‘anger, rage‘의 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 인간들 (2명의 출발해서 지금은 4명으로 증가)’을 ‘죽이고 싶다’는 상상을 그렇게 오래, 심하게 했던 기억이 없었다. 그것이 ‘아직도’ 성탄과 새해를 넘어서면서도 조금도 차이가 없다. 이것은 정말 perfectly ugly, uglier, ugliest 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small) group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이 2018년 내가 생각해야 할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  Christmas Hallmark Movies: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도 예외 없이 ‘건강하고 건전한’, ‘가급적 의미와 message가 있는’ 영화를 ‘집에서’ 보게 되었다. Merry Christmas란 말조차 ‘인정없이 내 쫓는 인간들’도 이런 영화는 큰 무리, 생각 없이 즐기는 모양인지 Youtube에 가보면 Hallmark moves들이 적지 않게 모습을 보인다. 누가 이런 것들을 upload하는 것인지, 고맙기만 하다. 분명히 이들은 집에서 TV (cable, streaming)로 record를 해서 upload하는 수고를 하는 것인데.. 나에게는 그야말로 ‘God bless them all!’.  올해는 본 것 중에 두 가지를 기억에 남기기로 했다. 최소한 3번 이상 보았던 것, Christmas Solo,  Sound of Christmas 가 그것이다.

 

Christmas Solo: 어느 작은 고장에 사는 single dad, single mom과 그들의 두 teenager딸들이 그 지역 크리스마스 festival의 singing solo 에 뽑히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십대 특유의 갈등, 특히 ‘이혼한 가정’의 십대가 겪는 고민을 크리스마스 spirit으로 승화시키는 그야말로 멋진 classic, common sense finale 의 영화였다. 이 십대들의 고민과 우정이 그녀들 보호자들의 사랑과 이해에 융합이 되는 모습들은 한마디로 성탄절의 의미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Sound of Christmas: 작년 이맘때 보았던 Hallmark 다른 영화, The Twelve Trees of Christmas에 출연했던 2명의 main actor들이 다른 역할로 나온 이 영화는 작년 것과 거의 비슷한 plot과 background를 가지고 있다. 비슷한 plot: 작년 것은 New York city의 전통적인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을 ‘영웅적’인 여성의 노력으로 save한 것, 올해의 것은 역시 유서 깊은 음악학원을, 역시 용감한 여성의 노력으로 부동산 업자로 부터 구하는 내용이다. community의 전통적인 유산을 급변하는 상업적이거나 이기적인 단체로부터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탄의 정신이었다. 여기 출연한 두 main character들, 연기도 좋았고, 아주 깨끗한 인상의 배우들이었다. 내년에도 이 두 사람이 출연하는 Hallmark Christmas movie가 미리 기다려진다.

 

이제 2017년도 4시간이 채 남지 않았고, 밖에서는 은은히 firework소리가 들려온다. 올해 3-2-1 Happy New Year! 는 연숙과 둘이서 하게 되었다. 새로니는 New York의 친구 baby의 baptism에서 ‘대모’을 맡게 되어서 없고 나라니는 아마도 boy friend와 함께 보낼 듯하다. 대부분 서울에 사시는 친척들, 지금쯤은 그곳은 벌써 2018년의 아침이 밝았으리라… 근래에 들어서 연락도 잘 못하고 사는 것, 항상 나의 어깨를 누르는 듯 죄스러운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연숙아, 애들아, 새해가 되면 더 부지런히 연락을 하며 살면 어떨까..

TV에서 New York city, Time Square의 ‘apple‘ countdown을 보려고 부지런히 TV setup을 했다. 이것, TV를 안 보고 산 지 몇 년이 되었는지.. 분명히 Internet에서 볼 수 있겠지만 큰 화면에서 보는,  수많은 인파가 지켜보는 ‘진짜’ countdown의 느낌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며칠 전부터 북쪽 (Northeast, Midwest) 서서히 ‘남하’하는 cold wave의 여파로 이곳 아틀란타 지역도 오늘 밤부터 기온이 계속 내려가서 New Year’s Day인 내일은 낮의 최고가 32도 (섭씨 0도)라고…  우아… 춥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귀찮아서’ 피해오던 3-2-1, boom!, happy new year! Champaign!  Auld Lang Sygnmidnight routine 을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부활을 시킨 것, 너무나 잘한 것 같다. 이런 것… 솔직히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하겠는가.. 새해가 되면 70으로 진입하는 내 나이를 생각해보니 더욱 그렇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2017년, 되돌아 보니 아주 힘들었던 때가 우선 떠오른다. 그것은 정말 잊고 싶은 기억들… 하지만, 그 어렵던 순간들을 나는 blog에 모두 역사로 남겨 두었다. 그 추악한 인간들을 죽기까지 다시 보기 싫지만 역사는 역사인 것이다. 그 추악한 기억들을 남은 삶의 교훈으로 삼으며 앞을 보고 나아 가면 된다.

 

** 저를 직접이나 간접으로 아시는 분들께 새해의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만사형통 萬事亨通 하시고 건강하세요! **

 

Herman’s HermitsI Understand – 1965  

 

Vigil of Christmas,   올해의 성탄절은 작년과 다르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이 우리 집에 모이게 되었다. 우리들 4명과 나라니의 boyfriend까지 모두 다섯 명이 푸짐하게 holiday meal 을 즐기고, 밤 늦게 우리의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성탄 전야 미사엘 갔다. Roman Catholic  미사를 처음 보는 나라니의 boyfriend는 그런대로 인상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성당을 이미 오래 전에 떠난 우리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만은 예외로 이렇게 가족과 함께 하는 것, 현재로써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beautiful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예년과 같이 선물 교환을 하기도 했고 고르느라 애를 쓴 흔적들을 느끼기에 고맙기도 하지만 참.. 그렇게 이곳에서 오래 살았어도 이 ‘선물 thingy’는 아직도 ‘불편하고, 어렵고..’ 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책과 coffee나 tools 같은 것을 좋아하기에 비교적 쉽지만 ‘어떤 책, 어떤 커피,’를 주느냐가 골치 아팠을 것이다.

 

작은 딸, 나라니가 선물한 책 (작년에는 Pope Francis의 책이었다) 은 나에게는 의외의 title이었다. Pope Francis와는 느낌이 멀고, 아니 정 반대인 듯한, former Vice President Joe Biden 이 쓴 최근에 간행된 Promise Me, Dad 이란 책인데, 의외라는 느낌은.. 내가 근래에 들어서 아주 멀어진 사람들 중에 Joe Biden도 포함되었기에 불편함은 떨칠 수 없다. 같은 가톨릭 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위해 영혼을 판’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인상을 주는 인물이 바로 Joe Biden인데..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그 동안 몰랐던 것들로, 조금 다른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언니, 새로니는 나에게 요새 유행하는 듯한 wind jacket 비슷한 옷 packable down jacket, 연숙은 나에게 ‘역시’ coffee 내리는데 쓰이는 gooseneck electric kettle을 선물로 주었다. 이제부터는 coffee pour-over할 때마다 조금 더 ‘섬세하게,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부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2006년 경, 내가 냉담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전 가족의 연례행사, Holy Family 본당에서의 ‘Carol sing-along과 자정미사’ (사실은 밤 10시 반)엘 갔으니… 아~ 올해, 작고 외로운 우리 가족 마지막 ‘공식행사’가 끝난 것인가? 

 

 

¶  Day at Serony’s Condo: 크리스마스 당일은 전날 vigil mass를 했기에 전통적으로 우리는 완전한 휴일로 지낸다. 사실 이날 아침에 가족들이 모여 선물을 교환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것이 성탄 전야로 바뀐 것이다. 애들이 어렸을 적, 이날 하루 종일 TV 로 방영되는 영화 The Christmas Story (little Ralphie story)를 즐기곤 했던 것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이날 우리 둘은 오랜만에 midtown에 있는 새로니 condo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 condo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 우리 새로니, 전공을 personal finance정도 바꾸었으면 Suze Orman1 처럼$$$ 많이 벌었을 것이라는 재미 있는 생각이다. 요새 아이들 $$$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들었지만 새로니는 조금 특별할 정도로 예민하다. 지금 사는 condo, 2010년 전 터진 subprime bubble로 원래 값보다 훨씬 싼 값으로 산 것인데, 지금은 집 값이 엄청 올랐다.

Condo를 구입할 당시, 그 애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그 집을 찾았고 realtor통해서는 서류처리만 한 정도였다. 그 때 realtor였던 에밀리 자매님, 새로니의 ‘정보 찾기’ 실력에 혀를 내 둘렀을 정도다. 이런 것을 보면서 이 애는 우리 둘을 ‘절대로’ 닮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니 항상 우리의 ‘돈 관리 능력’을 한탄하기도 한다. 요새 애들이 다 이런가.. 아니면 새로니가 조금 특별한 것인가.. 모르지만 앞으로 우리는 우리 딸들의 ‘경제 상태, 전망’에 대해 좀 덜 걱정을 해도 될 듯 하다. 그것이 다른 의미에서 ‘효도’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아끼고 모은 $$$들 ‘하느님이 보시기에’.. 하는 깨달음을 언젠가는 갖게 되기만 바라고 있다. 그 동안 꽤 노력을 해서 condo의 내부도 많이 달라졌는데, 이것 조차도 ‘알뜰한 투자’의 차원에서 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가진 요리 솜씨를 다 해서 만들어준 맛있는 점심, 손님용 bourbon 내가 많이 축을 내고 기분 좋게 일찍 집을 향해서 I-75 North 쪽으로 차를 몰았다.

 

Midtown Condo, 이날 편하게 The Longest Day 영화를 즐겼다.

 

  1. 처음으로 이 ‘여자’, lesbian임을 알았고 아예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쩐지.. 한마디로 하느님 맙소사 하는 소리가 나온다.

¶  지난 주 금요일, 저녁부터 ‘폭포처럼’ 쏟아진 함박눈으로 이틀 정도의 뜻밖의 snow days,  애들 처럼 즐거운 ‘공짜 휴일’ 이후, 곧바로 다 녹아버릴 것 같은 예상을 뒤엎고, 계속되는 추위로 사실 아직까지 눈이 남아 있는 곳들이 꽤 있다.  그러니까… 요새는 ‘환상적인’ 12월의 느낌 으로 그러니까.. 매일매일 white Christmas의 기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추위로 녹지 않는 ‘잔설 殘雪’

 

¶  등대회 망년회:  12월의 3분의 1일 지나가는 때, surprise heavy snow로 holiday 의 기분과 광경이 온통 머리 속에 가득 찬 시점에서 소위 말하는 ‘망년회’ party같은 것들이 더 돋보이는데, 사실은 꽤 오랜 동안 우리는 이것들을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 한마디로 stress받고 피곤한 경험들도 있고 그저 귀찮기만 했던 너무나 ‘세속적’인 모임들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생각의 각도를 비틀어 보았다. why not..이라는 간단한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올해라는 세월이 너무나 ‘피곤하다’라는 자괴감도 들고, 이런 부정적이고 감상적인 생각에 대응하는 antidote는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절대 조건이 있다.  만에 일이라도, 올해 두 번씩이나 당했던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2명)’처럼 ‘경고 없이 순식간에 괴물 monster 로 돌변할’ 가능성이 거의 zero에 가까운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내가 보아온 성당 60 plus 친목단체인 등대회는 큰 문제가 없이 보였고 지난 가을의 West Bank park 야유회에 이어서 연말 모임, 망년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대학 동창회나 다른 단체의 연말 party 같은 곳에 안 가고 산 세월이 짧지 않았기에 이런 모임이 생소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무슨 정해진 program이 없이 informal한 분위기였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사실 그 사람들이 ‘노는 데’는 주역들이어서 결과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Duluth Korea Town에 있는 ‘초원부페‘라는 곳에서 정말 푸짐히 ‘마시고, 먹고’, 아싸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disco풍의 춤과 노래하는 것을  넋을 잃고 보며 즐겼다. 나는 예의 ‘옛 노래’ 몇 곡을 불렀지만, 그들의 폭넓은 (특히 요새 노래들) 노래실력에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요새 노래들을 배웠는지..

 

 

¶  Film Noir time again:  작년 11월 경,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즐기는 방법으로 film noir가 나에게 다가왔고 아마도 작년의 holiday을 많은 시간을 이것, film noir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기억이다. 아~~~ film noir, glorious ‘black & white’ 느낌들… HitlerTojoevil empire를 ‘하느님의 정의로 무찌른’ victorious America의 전후에 ‘대량생산’ 한 이 film noir 영화들.. 당시에 어떻게 이것들이 대중들에게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70여 년 후에 이렇게 YouTube라는 ‘해괴한 매체’를 통해서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런 것을 즐긴다는 사실이 사실은 surreal한 느낌인 것이다.

작년에 YouTube에서 download한 film noir 영화가 거의 5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이 low-budget class여서 정성스럽게 보는 것은 좀 그렇지만 신경을 써서 자세히 볼 시간이 없기도 했다. 이런 영화는 보는 분위기가 잘 맞아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blustery, chilly, windy afternoon인데… 요새가 바로 그런 날들이었다. 거기다가 달콤한 mini donuts 과 아주 진한 gourmet coffee가 있으면 몇 시간이고 즐길 수가 있다. 힘들었던 올해였지만 이런 짧은 순간들이 그런 괴로운 추억을 지워주는 역할을 하니.. 한마디로 it’s fair라고 할까..

이 특별했던 회색 빛의 오후에 보았던 glorious black & white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내에서 ‘원자탄 비밀’을 찾고 있었던 독일의 스파이 망을 FBI에서 일망타진 하는 내용의 1945년 영화 ‘The House on 92nd Street‘ 였다. FBI의 방대한 수사망의 위력을 ‘선전’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당시에 ‘적국의 스파이’들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활동을 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좋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사실은 연기와 각본 등도 뛰어난 느낌의 좋은 영화였다.

 

film noir afternoon, 2017

 

The House on 92nd Street – 1945

 

 

¶  Earlier Tree: 얼마 전에 Vatican Youtube를 보니 성 베드로 광장에 거대한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음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성탄구유도 설치가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 교회(천주교)는 ‘세속적인 장식’을 가급적 성탄 며칠 전까지 ‘참으라고’ 권고를 하고 있었고 나도 몇 년 전부터 용기를 내어서 그 권고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떠난 이후 이런 ‘장식’들을 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고 나도 그 ‘취지’에 동감을 하기에 큰 문제도 없었다. 나아가서 성탄절 이후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세속, 상업’적 풍습이 그렇게 싫었는데, 12 days of Christmas, Octave of Nativity (of the Lord) 등등을 따르며 신년이 훨씬 지난 후까지 성탄기분을 유지하는 그런 것이 더욱 새롭고 느낌이 달랐다.

 

’tis time again, 2017

 

그런데 올해는 조금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올해 어찌나 무언가 힘이 들었다는 쳐지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불현듯 성 베드로 광장의 성탄 트리를 보며..  what the heck… 이란 느낌으로 garage로 가서 일년 묵은 성탄장식들을 끌고 들어와서 순식간에 lighted treed, wreath 를 세워 놓았다. 며칠 뒤에는 올해 새로 나온 twinkling snow flake light까지 사다가 장식을 해 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carol 을 틀어 놓았다.. 그러니까 예년에 비해서 거의 열흘 정도 이르게 성탄의 기분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규칙, 규정, 법칙’도 중요하지만 어떨 때는 ‘직감, 느낌’도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피곤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런 것으로 위로를 받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느낌은 아주 좋았다.

 

나의 office, study로 바뀐 첫 해의 성탄 wreath

 

 

¶  그야말로 11월 말, deeper & deeper November를 달리고 있다. 주위의 올 가을의 낙엽들이 무섭게 떨어진 후 이제는 O Henry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키듯 처량하게 남은 잎새들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게 되었다. 11월의 처량함이라고 할까.. 성탄을 기다리는 가톨릭 대림절 Advent, 11월은 또한 바로 그날을 기다리는 나날들이기도 하기에 나는 근래에 11월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Sandy Denny – Late November – 1971

 

 

¶  단출한 가족인데 그것도 한 사람이 빠진 올해의 Thanksgiving Day, 하지만 ‘무사히’ 지나갔다. 작은 딸의 초대로 올해 그들의 1st Home 이 있는 Tucker로 가서 몇 시간을 즐겼다. 오랜 세월 엄마의 전통을 배운 듯 아주 맵시 있게 traditional turkey meal을 준비한 나라니, 정성을 다 한 것이 보여서 고마운 마음으로 배불리 먹고 마셨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사실은 holiday 기분이 좀 덜 나지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좋았으리라. 새로니는 친구들과 Nevada로 rock climbing trip을 갔는데 보내온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climbing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래 전 ‘바위를 타던’, 서울에 있는 도봉산 선인봉의 바위와는 아주 느낌과 종류가 다른 것처럼 보였다.

 

¶  지난 주 부터 약간씩 느껴지던 ‘감기 기운’이 일주일째 가고 있는데, 이제는 기분이 쳐지는 느낌이다. 올해 처음 맞았던 flu shot 덕분인지 모든 감기, 독감의 증상이 아주 mild한 듯한데 문제는 이렇게 질질 시간을 끌며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사실이다. 미열도, 살살 흐르는 콧물 등은 큰 문제가 아닌데 목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지는 잔기침, 이것이 사람을 괴롭히고, 놀리는 것이다. 제발 빨리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  예수 없는 십자가: 밤에 밖을 보니 멀리서 휘황찬란한 빛이 퍼진다. 자세히 보니 ‘크리스마스 light’ 가 아닌가? 아~ 그렇구나… 올해 ‘첫 Holiday’ 기분이 잔잔히 주변에 가라앉는 이즈음 나는 의미 있는 ‘시간,공간’ 여행을 하고 있다. 그것도 ‘책’으로…  고 마태오 신부님의 trilogy중에서 2편 ‘예수 없는 십자가‘, 바로 그것이다. 1편인 ‘사랑의 지도‘를 얼마 전에 ‘필사’로 읽은 후 곧바로 2편의 ‘필사 독서’가 시작되었다. 하도 typing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디어진 듯하다.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서 typing하면서 reading하는 것 전혀 문제가 없다.

고 마태오 신부님을 ‘재발견’하게 된 이번의 ‘책 여행’은 놀랍게도 나에게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를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속도로 typing & reading을 하면 2편 ‘예수 없는 십자가’는 2~3일 내로 끝이 날 듯하고 곧바로 3편 ‘이세상의 이방인‘을 읽기 시작할 예정이다. 12월 중에 이것을 완독하면 나는 2+ 개월 사이에 고 마태오 신부님의 true classic trilogy를 모두 읽게 되는 것이고 부수입으로 soft copy가 남게 된다.

이 책으로 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그가 살아온 민족의 비극을 같이 걷게 된다. 3.8선부터 시작하여 원산, 함흥, 제주도, 최전방 고지 전투를 하느님을 믿는 젊은 눈으로 본 기록영화, 참회록, 사랑의 드라마.. 이 세 권의 기록소설은 한 마디로 대 서사시 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6.25를 전후로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싸웠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니 아직까지도..  한반도에는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가..

 

Thanksgiving Song – Mary Chapin Carpenter

 

Aromatic, cozy, toasty, teary, crispy, loving, reminiscing… 올해 ‘최고의 시즌’이 서서히 시작되는 이 즈음에 이렇게 ‘감사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얼마나 멋진 전통인가.. 태고 적 느꼈던 고국의 추석도 비슷하겠지만 이것과는 무언가 확실히 다르다. 이곳에서 공기를 마신 세월이 저곳의 그것보다 몇 갑절이 되어나는 이 세월의 신비는 아직도 나에게 ‘안 보이는 그 무엇’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나는 역시 이곳, 이때.. ‘공간과 시간’의 피조물인 것이다. 무엇(들)이 올해 나, 우리에게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한 것들인가?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고 재미 없는 표현, ‘우리들 모두 건강하게 살았다’ 라는 것, 과연 피곤한 말일까? 절대로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만끽했던 최대의 은총이었다. 크게 아픈 가족이 없었다. 비록 무섭게 나이가 들고는 있지만 그것과 맞갖은 불편함과 괴로움은 거의 없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들.

건강했다는 것의 corollary는… 덕분에 5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7 seven dayer 의 전통.. 을 계속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멋모르고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뭐 그렇게..’ 할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멋진 선물을 받은 것이다. ‘매일미사의 기적’은 겪어 보고 아는 사람은 충분히 안다. 이것은 우리가 5년 동안 매년 받았던 감사의 은총과 기적 중에 으뜸에 속한다.

 

Year of Cat, 올해 우리는 ‘고양이 해’를 맞았고 감사하고 뜻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보냈다. 우연히 우리 집 뒤 마당을 골라서 태어난 8마리의 갓난 고양이 kitten들, 이것도 인연인가? 분명히 하늘이 주신 생명체이고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듯한 사명감으로 4여 개월을 이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던 세월도 은총의 시간들이었다. 결국은 사람의 아기나 고양이의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우연일지, 운명일지 태어난 생명들과 정을 들였던 그 시간들, 때에 따라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모두 건강하게 adopt를 시켰다. 이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

 

우리들이 ‘복무’하는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 마리애 ‘자비의 모후’ Pr(Praesidium) ,  한때 ‘female’ vermin들의 어이없고 치사한 ‘진주만 폭격’을 당했을 때 거의 coma상태까지 갔던 우리의 전초소대, 역시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불사조’처럼 일어났다. 우리가 한 역할도 자랑스럽지만 역시 보이지 않은 손길의 이끄심을 항상 느낄 수 있었다. 이 쓰라렸던 경험은 아직도 잔잔하게 진동하고 있지만 이제는 역시 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나는 후자 쪽을 선택했고, 그렇다면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내가 배울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 년 말까지 관상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Full Retirement, 우리들의 나이가 말해주듯이 올해로 우리 모두가 full retirement 로 들어갔다. 연숙의 Medicare가 시작되고 SS benefit이 kicked-in, 이제는 완전한 fixed-income age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거의 경제적인 것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한마디로 우리 둘, ‘오래 살았다’ 라는 생각이고 그저 이제는 남에게 (가족, 사회, 국가)에 더 큰 부담을 안 주고 살아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절제 있게, 겸손하게,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자세로 생을 마치는 것을 원하지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올해의 Thanksgiving Day는 어떻게 지내는가? 마지막으로 네 식구 모두 모여 turkey meal을 즐겼던 것이 언제였던가? Halloween처럼 이것도 진화를 거듭하며 변한다. 아이들의 머리가 커가면서 이런 것은 자연히 변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이 ‘작았을 때’가 그렇게 그립다. 왜 그럴까? 올해는 더 흩어진 모습일 뻔 했지만, 큰애는 travel [Rock climbing in Nevada, business trip 등]로 시간을 보낼 것이지만 그래도 작은 애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기쁘고 신나지 않으니..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 나이 때문인가… 그래도 작은 애야 불러주어서 고맙다.

 

 

 

¶  Fall’s falling:  갑자기 ‘다시’ 춥고 을씨년스런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며 back yard를 응시하니.. 와~~~ 파란 색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조리 노랗고 빨간.. 색으로 변했고 땅은 온통 낙엽으로 뒤 덮인 모습들, driveway도  길과 잔디의 경계가 완전히 가려진 ‘낙엽이 뒹구는’ 길로 변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바로 지금이 fall peak가 지나간 것이다. 이제부터는 계속 떨어지기만 하고, 또 떨어질 것이다. 낙엽을 치우는 것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런 때가 되었다. 왜 나, 우리는 이렇게 가을이 ‘갑자기’ 온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인지.. 생각해보니 지난 2개월 동안 주변을 잘 못보고 산 것은 아닌지.. 그럴만한 이유는 자명한 것이지만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변화까지 잊고 산 날들이 그저 쓸데없이 허송한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이제부터 년 말까지의 ‘멋진 나날들’을 조금 더 멋지게 보내면 된다.

 

 

Big Canoe:  며칠 전에 Y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속으로 아하.. 오랜만에 그 집에서 모이는구나 하는 짐작을 했지만 의외로 Big Canoe (North Georgia) 의 주소를 알려주며 그곳에서 ‘전원 全員’이 모인다는 짧은 대화를 했다. 전원 이란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친지’들 그룹을 말한다. 예전보다 조금 뜸하게 모이기는 하지만 2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4쌍의 부부들, 스스럼이 없고 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비교적 중년에 가까운 나이들에 형성이 되었기에 지나친 기대는 물론이고 현실적인 관계,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는 성숙함이 있었기에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나이 또래들의 이상적인 우정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Big Canoe는 North Georgia mountain에 있는 ‘Mountain Community’의 이름이다. Golf Course를 비롯해서 vacation home들이 높고 깊은 산 속에 ‘즐비’한 이곳, ‘자연적인지 인공적인지’는 잘 몰라도 경치가 기가 막힌 곳이다. 특히 가을 이맘때의 ‘단풍의 풍경’은 일품인데 지금은 단풍잎들이 거의 다 떨어진 후였다. 그러니까 peak season이 지난 것이다. 거의 10년 전에 이 그룹이 한번 같이 이곳에 놀러 간 적이 있어서 대강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Y형 부부가 이곳에 주위 경관이 기가 막힌 property를 지난 올해 초에 아예 사버린 것이다.

거의 3000 feet가 넘는 Georgia에서 4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집, 차도가 잘 되어있었지만 급경사, 급커브 등등이 편안하게 drive할 곳은 아니었다. Y형의 건강상 문제로 공기가 좋은 이곳을 ‘준비’했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차갑고 해맑은’  주변 공기는 아마도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가 100% 해결이 된 지금은 vacation home으로 쓰일 듯한 이곳, 혼자 쓰기에는 너무 커서 group이 모여 party같은 것을 하면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지난 주에는 West Bank park엘 갔고 한 주 뒤에는 Big Canoe, 올해는 비록 peak season이 다 지나갔지만 야외로 나갈 기회를 자주 주시는 것을 보니… 그 이유가 어찌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만화, 민족의 비극 표지, 1961

 

‘민족의 비극’, 1962년 1월..  내가 55년 전에 ‘탈고 脫稿’한 50여 페이지의 ‘먹물로 그린’ 만화 漫畵 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시절 1961년에 그렸던 ‘자작 自作 만화’ 인 셈인데 이것이 거의 기적적으로 그것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이것은 나에게는 ‘가보 家寶’에 상당하는, 돈을 주고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개인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지금 이 만화 책의 ‘외형적, 물리적’ 상태는 그렇게 양호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신경을 안 쓰고 조금 험하게 다루면 망가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자주 만지지도 않고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모셔둘 수가 없어서 결단을 내려서 fully digitized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당시에 그렇게 ‘희귀’했던 stapler, 현재 몇 불 弗이면  살 수 있는 그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나는 역시 전통적인 공구였던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동네가게에서 가는 철사를 사다가 이 책을 엮었다. 그것이 현재 그대로 남아있는데.. 문제는 이 homemade staple에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1961년 경 서울 가회동 잡화상(철물도 취급하는)에서 산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true antique value가 있는 것, 돈을 주고 어디에서도 살 수 가 없는 것이니.. 쉽게 바꾸거나 손을 대는 것이 망설여진다.

 

우선 몇 page를 scanner에 책갈피를 강제로 펴서 scan을 해 보았다. 역시 보기가 안 좋다. 하지만 그것이라도 이렇게 55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당시 이 만화를 ‘애독’ 해 주었던 몇몇 원서동 苑西洞 죽마고우 竹馬故友 (안명성, 유지호, 김동만 등등) 이 자신들이 직, 간접적으로 관계가 되었던 역사를 재발견하게 되면 감개가 무량할 것이라 믿는다.

 

이 만화의 그림 technique을 보면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것들은 거의 99%가 당시 만화계의 영웅 ‘산호‘ (선생님)의 bestseller 우리의 영웅 ‘만화 라이파이‘를 비롯한 다른 ‘전쟁, 역사 물’에서 온 것이다. 24시간을 그런 그림을 보며 살았던 당시에 그것을 흉내 내어 그린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랑스런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것을 거의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그렸으니.. ‘공부, 공부, 입시’ 지옥이었던 당시, 우리 집에서는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이고 결국은 이 만화가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내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그렸던 만화가 이 만화 바로 전에 완성이 되었는데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없어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불에 타서’ 없어진 것을 알았다. 어머님의 지나친 간섭이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서 항변을 할  수 없었다. ‘굶어 죽는 만화가’가 될 것으로 염려가 되셨다는 것을 어린 나이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없어진 그 만화, 나에게는 아련한 아쉬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 없어진 만화작품의 그림 기법, story 같은 것이 나의 머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저 어린 나이에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날랐던  그 만화시절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만화책을 완전히 ‘해체’해서 full scanning을 한 후에 pdf book format 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것이 완성 되면 나의 serony.com blog에 ‘영구히’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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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이여 안녕:  거의 70마일로 ‘질주’한다는 내가 느끼는 세월의 속도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다 지나간 10월 달에는 지나간 달들에 비해서 훨씬 느리게 40~50마일 정도로 느껴진다. 왜 그랬을까?  이번 달에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반대로 지루한 나날을 보내면 시간이 늦게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나가는 10월이 나에게 지루한 나날들이었다는 말인가?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그런대로 ‘성과’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이나마 어떤 ‘악’의 불 기습으로 near-death-experience, coma의 위기에 몰렸던 우리의 20년 역사의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서서히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던 한 달이었는데 그것이 나의 세월감각을 100%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St. Augustine, KantTime is subjective, 역시 이 ‘느껴지는 시간’은 알쏭달쏭 한 문제다.

 

 Darkest Halloween: 10월과 작별을 하려면 마지막 날인 Halloween, 그것도 어두운 저녁을 지내야 한다. 몇 년 전부터인가.. 아마도 거의 10년 전 쯤 부터가 아닐까?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완전히 떠난 후 였으니까.. 그 때부터 Halloween은 ‘아련한’ 추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Trick-or-treat 꼬마 손님들을 기다리며 저녁 시간을 보내던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집은 적막이 휩싸이고, 무언가 세월이 엄청 흘러가고 있다는 불안감까지 감돌았다. 우리 집도 이제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새까만 옛날, 1973년 가을 미국에서 맞은 첫 Halloween,  나누어 줄 candy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날이 어떤 날인지도 모르던 그날,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였다.  근래 우리 집의 10월 31일 저녁도 서서히 그렇게 변한 것이다. 올해도 그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작년부터 옆집 David  도 흉가처럼 깜깜해진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예전까지만 해도 우리 neighbor중에서 제일 ‘요란하게’ 이날 저녁을 ‘아이들처럼’ 즐겼던 집인데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역시 깜깜한 집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 동네를 돌며 trick-or-treating을 하던 시절, 이제 생각하니 아름답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는다. 비록 고국의 추석명절과 느낌은 다르겠지만 이것 역시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 당시의 아이들 이제 모두 성인이 되어가고, 우리들은 빠르게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드는.. 인생 윤회의 감상에 젖는다.

올해 Halloween 저녁때는, 물론 집의 불을 완전히 끄고, 무섭기는 하지만 추억의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것을 보고 싶었다. 바로 1973년 영화 The Exorcist다.  이 영화 이후 비슷한 것들이 무척 많이 나왔지만 ‘충격적인 느낌’에는 이것을 따르는 것이 없었다. 내가 느꼈던 ‘공포의 추억’은 사실 ’4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말하는 것도 무서운’ 그 정도다. 당시에 이 영화를 보고 1주일 정도는 밤에 불을 켜고 잔 기억도 난다. 그 이후 두세 번 정도 더 극장에서 보기는 했지만 집에서 혼자 보는 것은 아직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얼마 전 YouTube에서 full-version을 download했지만, 아직도 처음 30분 정도만 보고 더 진전이 없다. 그 정도로 나는 이 영화가 무서운 것이다. 단, 이 영화가 결국은 나에게 ‘가톨릭 신앙’을 주게 했던 사실은 지금 생각하니 전혀 우연만은 아닌 듯해서 불원간 조금 덜 무서운 자세로 끝까지 다 볼 각오를 다지고 있다.

Devils Exist! – The Exorcist, 1973

 

¶ 올 가을 첫 추위: 지난 며칠은 가을이 아니라 초겨울 같은 냉기서린 강풍과 첫 빙점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날이 되었다. 아래 위층 할 것 없이 요란한 central heating fan소음이 낮에도 은은히 들리는 그런 날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날들을 좋아하기에 불평은커녕 all are welcome이다. 결과적으로 엉뚱하게 나는 주일미사를 빼먹게 되었지만 미안한 마음보다는 그저 편하게 쉰다는 편안함만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날도 있는 것, 기나긴 신앙, 인생 여정에서 재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rare exception 인 것만 명심하면 되는 것이다.

올 가을들어 제일 춥고 을씨년스럽던 날, Tobey와 desk는 나의 피난처가 되었다

 

¶ 연총연습 시작: 올해 순교자 성당 레지오 행사를 결산하는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줄여서 ‘연총’이 12월 3일로 다가오고 있다. 한 달이 넘게 남아있지만 우리에게는 급한 준비로 다가왔다.  우선 단원의 숫자가 줄었고 시간이 예년에 비해서 줄어들었다. 이제부터 매주 연습을 한다 해도 5번 정도다. 매주 연습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올해 ‘사정상’ 모두 취소를 하자고 제안도 했지만 결국은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건재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인원이 너무 많은 호조건으로 ‘여유 있게’ 선택을 해서 guitar반주까지 곁들인 춤, 합창을 했지만 그런 호조건은 이제 물 건너 갔다. 결과적으로 선택된 것은, ‘의도적으로 짧은’ 것. YouTube로 알려진 ‘어떤 수녀님의 귀여운 노래와 율동’ ‘앗싸 좋아요!‘ 란 것이다. 나에게 ‘율동’은 안 맞는 것이지만 오늘 첫 연습을 하고 보니 사실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어떤 format으로 할 것인가.. ‘반주, 편곡’ 들의 기술적인 문제만 남았다.

 

 

 

2017년 9월 17일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니, rage의 여운이 잔잔하게 남은, 복잡한 머리 속을 헤치고 ‘오늘은 우리 집의 둘째 딸 나라니의 생일이다’ 하는 그 미안함이 나를 일깨워주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 오늘은 우리 집 막내 둘째, ‘콩콩이’의 생일, 그것도 그 ‘애’의 서른 두 번째 생일이 되었다.  그 옛날,  나는 서른 일곱, 산모는 서른 셋.. 그러니까..  그러니까… 와~ 막내의 나이가 당시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세월이 쉴 새 없이, 끊임 없이  흘러 갔을까? 놀라움, 자괴감, 후회, 섭리, 인생역정, 순리, 선과 악의 실존, 삶의 의미와 목적… 별로 연관이 없는 모든 단어들이 머리를 맴돈다. 아직도 나의 머리 속은 요사이 청명한 초가을 하늘 같이 맑지 못한 것, 그 이유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오늘 창립 40주년을 맞는 날, 대주교 Gregory 께서 친히 방문 미사를 집전 하는 날, 우리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우리의 정든 동네 성당 Holy Family 로 차의 방향을 돌렸고 오랜 만에 온 이곳의 정든 파란 눈의 parishioner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몰라도 우리는 눈물이 날 정도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이유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최소한 이곳에서는 그 ‘난동사건 미친X 의 추악한 얼굴’을 볼 가능성이 zero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복음말씀을 포함한 주제가 하필이면 ‘무조건, 언제나 용서해 주어라’ 였다. 이제까지 깊은 생각 없이 들었던 말씀이었지만 속으로 나는 ‘heaven forbid, NO!’ 란 고함소리를 허공에 쳐대고 있었다. 최소한 현재 나의 느낌은 그러하다. 이것은 앞으로도 나에게 최악의 spiritual challenge 중에서도 으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현재 나는 ‘love to hate’의 격랑 속에서 ‘누군가를 증오하여야만 한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런 생각에서 벗어 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자연적인 도움이 없는 한 나는 내면의 무서운 rage와 함께, 그 ‘난동사건의 미친 X, monster, 악마‘를 증오할 듯하다. 시간, 세월이 유일한 처방이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식구’만 ‘우리 집’에 모여서 생일을 축하하는 음식을 나누었다. 올해의  신청 음식은 미역국은 꼭 있어야 하고, 그 외에 ‘비빔밥과 잡채’ 였다. 그것 때문에 따로 장을 보아야 했지만 예년처럼 ‘거창한’ 느낌이 전혀 없이 조촐하게 즐겼다. 이제 올해 우리 집 ‘생일 행사’는 모두 끝이 났다.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생일이라는 것, 어떤 때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런 내가 나는 싫기도 하다. 그래서 더 부담스러운지도.. 세월의 흐름과 나이 먹음이라는 것, 그렇게 즐겁지 않은 것이다.

 

이런 것 외에.. 나라니가 태어난 해, 1985년이란 때가 나에게는 어떤 때였나 회상하게 되었다. 가물거린다. 1968년이라면 어제 일처럼 거의 모두 기억을 하는, 나는 놀란다. Good Ole Days.. 가 이제는 기억 속에서 가물거린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그 당시가 별로 뚜렷이 기억이 안 나는 것이다. 특별한 것이 없었거나 추억에 남기고 싶은 즐거운 일들이 없었거나..   그래도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조금 기억이 살아날지는 모르지만….  문득 생각한다, 잊혀진 듯한 1980년대를 더 잊기 전에 개인역사로 남기자… 이것이 ‘정상적인 인생’일 것이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는 엄연히 느낌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인생의 굴레바퀴… 서서히 돌아가며 잊혀지는 것, 생의 마감에서는 나의 개인 역사 중에서 어떤 시절이 제일 기억에 남을까 궁금해진다.

 

나라니가 태어났을 때 Ohio State University Hospital 1985년 9월

¶  Late Birthday Present: 며칠 전 연숙의 private room office renovation: 즉 painting & flooring 이 다 끝났다. 이것은 사실 몇 달 전에 65세 생일선물로 그녀의 보금자리인 ‘집무실’ 방을 새로 꾸며 주자는 말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것이 우리 집, This Old House, 2층의 모든 방을 새로 바꾸는 것으로 커져서 올해 우리 집 최대의 변화를 주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모든 labor는 나의 mere body에서 나오는 것이라 돈으로 따지면 사실 ‘재료 비용 expense’만 들면 되지만 70에 가까운 나에게는 사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job이었다. Muscle, tool 과 skill이 필요한 것은 큰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전보다 굳어진 backbone과 minor hemorrhoid 가 걱정거리였다.

Flooring job은 특히 lower body에 가해지는 stress가 보통이 아닌 것이다. 하루 일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대부분 쉬어야 할 정도였다. 이럴 때는 일하는 속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일인 9월 1일이 아닌 지금에야 끝을 낼 수 있었다. 늦어진 또 다른 이유는 위에 말한 ‘레지오 미친X’ 사건으로 조금 신경을 곤두세운 것인데 사실은 그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미친 x’이라고 무시하였기 때문에 금새 정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carpet위에 있는 big furniture들은 사실 위치를 바꾸는 것이 너무나 힘든데 지금의 hardwood(laminate) floor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쉽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매끄럽고 차가운 바닥에서 갈팡질팡하는 Tobey를 위해서도 area rug을 빨리 놓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마도’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갈 때까지는 다시 이런 힘든 일은 다시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High Noon’s Lesson: High Noon, Gary Cooper, Grace Kelly,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 Frankie Lane과 비슷한 목소리, Tex Ritter의 bass theme song 이 귀에 쟁쟁하게 들린다. 그렇게 유명했던 50년대(정확히 1952년경) 미국 서부영화의 ‘정수, essence’,  나는 너무 어려서 서울에서 그것을 못 보고 후에 미국에 와서야 TV에서나 볼 수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글자 그대로, glorious black-and-white, 정말 멋진 흑백영화, Gary CooperGrace Kelly..의 실감나는 연기, 또한 ‘인생에 교훈을 주는’  story line도 멋지고 ‘전통적인 서부영화 backdrop scenery가 거의 없는 영상’도 멋지고 출연 배우들의 모습과 연기들 모조리 기가 막히게 좋았던 그 추억의 영화가 얼마 전 갑자기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이 영화에서 Gary Cooper 의 character는 small town marshal,  Mr. Will Kane 인데 이야기의 요점은 이것이다. ‘나에게 갑자기 다가온 위협, 공갈, 협박으로부터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도망가지 마라!’ 이런 것이 아닐까? ‘평화주의자 pacifist, Quaker교도’ 인 약혼자 Amy (Grace Kelly)는 결사적으로 ‘폭력을 피하고자’ town으로부터 도망가자고 주장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혼자서라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괴물 monster’들과 맞서야 하는 것과, ‘좋은 것이 좋고’, 약혼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도망’을 가야 하는 것.. 이 두 극단의 선택에서 결국 Gary Cooper Will Kane은  목숨을 걸고 monster들과 정면대결하며, 또한 보안관의 의무를 지키고자,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는… 이때에 그는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만 한 사람도 돕지를 않고 숨어버린다.

 

 

Do not forsake me, My Darling. (High Noon)

 

물론 이런 이야기는 비록 fictional 한 것이지만 우리의 기나긴 인생역정, 또한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에서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이런 선택의 순간을 최근 며칠 동안 내 눈과 코앞에서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나는 본래 nonviolence 그리고 영화의 Amy, Grace Kelly처럼 trouble이 있으면 피하는 것이 상책.. trouble에 개입이 되면 시간 낭비.. 라는 생각으로 오래 살아왔고 나중에 그런 나의 runaway, inaction에  따른 값비싼 대가 代價 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도 놀랄 정도로 나는 바뀌어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정면대결을 하고 그것도 수단과 방법을 다 쓰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지면 후에 아무런 내 삶과 신앙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얼마 전 일어난 ‘불상사’ (a.k.a 레지오 미친X 난동사건)는 하나의 wakeup call이 되었고, 내 자신에게 엄청난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 정도로 그 사건은 나의 모든 ‘기본적 믿음’을 뒤 흔들어 놓는 ‘더러운 사건’이 된 것이다. ‘신앙적인 악의 실존’을 절대로 실감하고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 ‘악’과 대결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신앙적으로도 죄와 패배가 됨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그 미친x monster가 범했던 ‘악행’은  accidental, stupid mistake가 아니고 premeditated, intentional 한 것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 했기에 나의 생각은 돌이킬 수 없게, 더욱 굳어진 것이다.

이 ‘더러운 사건’ 이후 모이는 첫 레지오 주회합에는 ‘예상대로’ High Noon처럼 모든 towns’ people (a.k.a 레지오 단원)들은 도망가 버렸고 town marshal인 연숙은 Will Kane처럼 ‘홀로’ 그곳엘 갔고, 즉시 나는 일생일대의 후회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미친x monster의 ‘썩은 가오‘가 보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나의 High Noon moment였구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High Noon 영화의 도망가 숨어버린 towns’ people처럼 비겁한 남자였나..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High Noon을 신앙적인 각도로 극복하게 되었고 이제는 후회가 없다. 진정한 악은 ‘나의 악’으로 무찌를 것이다. 그 미친x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도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 조금 비참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내가 시작 일이 아니고 그 미친x의 악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High Noon같은 위기에 그 동안 주위에 있던 ‘친구’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였나? 예수가 끌려갈 때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 비겁하게 모두 도망 갔던 것처럼, 몇몇 예외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비겁하게 포기하며 사라지는’ 모습들… 흙탕물이 튀길까 봐 하루 아침에 겁쟁이가 된 모습들이었다. 진정한 ‘레지오 soldier’들의 모습은 그들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생 일대의 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다. 자기의 안전과 체면에만 급급 하는 그 모습들.. 성모님이 뒤에서 보고 계신다면…

내가 사랑하는 성모님의 군대, 자비의 모후에서 나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100% 분명한 사탄의 짓이다. 그런 사탄은 overwhelming action으로 철저히 제거되어야 한다. 현재 활발히 진행중인 이 미친x  사탄에 대한 ‘뒷조사  background check‘는 계속되고 있고 불원간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이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만 보고도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버젓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모님, 당신의 사랑하는 자비의 모후를 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My wife’s 65th birthday.. 물론 나보다 ‘언제나, 죽을 때까지’ 5년 뒤에 오는 것이라 65라는 숫자가 이제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옛날의 65라는 숫자였다면.. 우아~~ 오래 살았다.. 꼬부랑 할머니다, 죽을 때가 가까웠다.. 는 말들이 따라 붙었을 것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65세만 살면 ‘많이 살았다… 그러니까, 65세 만세론’에 은근히 공감을 하고 살았다. 이 65세 만세론은 오래 전 대한민국의 다재다능 했던 소설, 수필가로 명성을 날리던 이진섭선생님의 지론 이기도 했다. 그는 65세는 고사하고 60세도 못 채우고 타계를 했기에, 65세는 나에게 magic number로 남게 되었다.

9월 첫날 65세 생일을 맞는, 나와 37년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아내 연숙, 열심히 사느라고 수고가 많았다. 37년을 같이 살아온 것이 도대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실감이 가지를 않지만 그저 오래 같이 산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귀염둥이 막내로 자라 투정부리는 외아들을 만난 것, 큰 후회 없이 잘 살아준 것,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우리 둘 모두 하느님을 전혀 모르고 산 세월도 길었지만 이제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된 것, 남은 석양의 세월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은 찾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65세 생일이 5의 배수이기에 더 특별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것도 있다. 공식적으로 Medicare age가 시작된 것이고 이제는 ‘죽을 때까지’ Medicare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런 entitlement들, 절대로 charity가 아님을 알고 정정당당한 입장으로 혜택을 누리면 된다. 덧붙여서 이번에 Social Security Benefit도 같이 신청을 해서 죽기 전까지 해야 할 paperwork을 다 끝낸 셈이 되었다. 이런 조금은 복잡한 paperwork들을 나는 이미 경험을 했기에 거의 모두를 내가 도와 주었다.

 

올해의 생일날에는 예년과 같이 아이들이 찾아 준 ‘새로운 곳’에서 외식을 하였다. 작년의 Stockyard와 비슷한 느낌의 Eclectic American style인 Camps Kitchen & Bar, East Cobb의 노른자위 Paper Mill area에 올 봄 open 한 곳이다. 군침이 도는 gourmet hamburger와 red wine으로 생일 저녁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another day of life라고 할까..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것이다.

 

PAWS-ATLANTA 입구, Van 이 보인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우리 집(가족)에게 monumental day라고 불릴 수 있는 기억에 남는 날이 되었다. 태양이 작열을 하는 전형적이고 통계적으로 아주 정상적인 뜨거운 복 伏 날씨에, 나와 연숙은 ‘마지막’으로 남아서 우리를 바쁘게 해오던 마지막 3마리의 정든 kitten들을 kitten carrier에 넣어 차의 backseat에 태우고,  ‘침울하지만 차분한’ 심정으로 PAWS ATLANTA (a NO-KILL animal shelter & pet rescue) 가 있는 metro Decatur west-end로 거의 한 시간 drive을 했다. 그리고 지난 성 목요일, 4월 13일부터 시작되었던 8마리와  kitten 들과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괴로웠을 때, 피곤 했을 때, 눈물이 났을 때’등을 서로 회상하였다. 한마디로: Mission Accomplished! 란 말이 저절로 나왔고 우리 둘은 big high Ten으로 자축하면서 눈언저리가 시려옴을 느끼기도 했다.

Cat’s dormitory, 이곳에서 입양을 기다리며 모여서 산다

지난 6월 초에 나 혼자서 2 마리의 feral mommy cats(8마리 kitten들의 mom & grandma)들을 fix (spaying & neutering, 불임수술) 하러 이 지역에 있는 다른 시설 (LifeLine Animal Project) 에 왔던 것 보다 더 먼 곳이었다. 왜 하필 이런 시설들이 우리 집과 정 반대 쪽에 있는 곳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곳들을 찾아 내고 ‘이용’했고 우리에게 소개해 준 것이, 이 작은 딸 나라니 였는데.. 그 애가 Decatur에 있던 Agnes Scott College에 다녔었고 이 지역의 animal shelter들에 익숙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사는 west metro의 Cobb county지역에도 이런 시설들이 있을 듯 한데 그곳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도 해서 이렇게 한 시간 drive를 해야 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던 것은 8마리의 kitten들이 모두 개인가정에 adopt되는 것이었지만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3마리는 주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초조하던 차에 마지막 희망인 이곳 paw-atlanta를 찾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adopt가 될 때까지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맡아서 보호해 주는 곳이고 website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3 마리, 이곳에 안착하자마자 주위를 탐색하고 있다

나머지 3마리, 우리도 놀란 것이 너무나 정이 많이 들었었다는 사실을.. 사람 못지않게 끈끈한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것이 정말 괴로울 지경이었다. Kitten들은 물론 우리와 헤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 이미 있던 다른 친구들과 즉시 어울리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는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루 속히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으로 입양이 되기만을 하루하루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울리게 했던 녀석, 꼬마.. 어디에 가던지 잘 살아다오..

세 마리 중에 우리의 가슴을 쓰리게 했던 ‘놈’이 ‘꼬마’인데, 태어났을 때 너무나 작아서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신경을 쓰던 녀석이었다. 매일 매일 젖과 먹이를 먹일 때마다 그 녀석의 유난히 가느다란 뒷다리를 주시하기도 했는데, 정성을 드린 것이 효과를 보아서 나중에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아주 활발한 kitten으로 자랐다. 그 애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연숙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좋은 곳으로 입양만 되기를 기도하며 기도한다. 

희망적인 news는 이런 어린 kitten들은 비교적 빨리 adopt가 된다고 한다. 모두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원하기에 그런 모양이라고 해서 희망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든 kitten들이 떠난 그들의 보금자리, 몇 개월 동안 이곳에서 뛰어 놀았다

마지막 남은 3 마리의 super cute kitten들과 작별인사를 할 순간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No-Kill Animal Shelter: PAWS-ATLANTA에 일단 가서 입양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실 나도 놀랄 정도로 슬픈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도 놀란 것이, 불원간 이별할 것을 알고 같이 살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온 것이 사실을 그저 잊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그것, 잊고 살았던 끈끈한 ‘정 情’ 이란 것이다. 70평생 살면서 그것도 잊고 살았단 말인가?

8마리 모두가 함께 딩굴며 행복했던 시절..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우리의 손에서 자란 8 마리 (3 마리는 낳아준 엄마 품에서 한 달을 보낸 후에 우리가 길렀다) 각자 모두 특징이 있는 8마리 형제 자매들 중에서 5마리는 이미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모두 ‘좋은 가정’으로 adopt 가 되었다. 8마리에서 5마리가 빠진 3마리, 처음에는 그렇게 쓸쓸하기까지 보이더니 우리도 애들도 잘 적응해서 전에 비해서 훨씬 ‘편하게’ 2층 독방에서 잘 놀며 자라고 있지만.. 사실 언젠가는 이별을 예상은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3마리를 잘 기르는 것은 사실 무리 (이미 1 dog, 1 cat이 우리 집에 있기에) 였고, 애들도 모두 반대를 하곤 했다.

 

요새는 동물, 특히 pet animal 들과 정이 든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제는 그곳에 가서 하루 빨리 좋은 가정에 입양되기만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  마지막으로 (blog) posting을 했던 때가… 와~~ 믿어지지 않는 ‘작년’ 2016년 11월 Thanksgiving Day 때가 아닌가?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있던 12월과 가족적으로 너무나 바쁘기만 한 1월 이 온통 다 posting 없이 지나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지난 2개월 동안 비록 posting을 없었지만 간간이, 틈틈이 남겨 둔 calendar journals, sticky note들이 이곳 저곳에 남아있고 ‘digital traces [emails, voice recording, snap photo 같은]’의 도움으로 지난 2개월의 blog post (retro-blogs)들도  ‘곧’ 채워질 것으로 희망을 하며 이렇게 1월을 보내게 되었다.

 

¶  지난 26일에 2016년도 Federal Income Tax Return을 2시간 만에 끝을 내어 버렸다. 미리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충동적’으로 한 것인데 그것이 나의 습성이기에 크게 놀라진 않는다. 올해의 tax return은 약간 의외적이었는데 tax refund가 아니고 오랜만에 tax를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지난 해 ObamaCare coverage때문이어서 우리 집의 financial fundamental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크게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  올해의 겨울날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던가? 1월의 마지막에 들어서 돌아보니 분명히 heating bill이 작년보다 가벼워진 것 같다. 올해 겨울 long-term forecast는 못 보았지만 분명히 ‘이상난동’에 가까운 것으로 보도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아틀란타 지역의 뚜렷한 4계절이 이제는 ‘아열대성 subtropical’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4계절 보다는 ‘우기와 건기’인 듯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예전의 한 겨울이 ‘차가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런 것으로 변한 것이다. 1월 초 한때 잠깐 강추위와 눈이 조금 뿌렸지만 그 정도는 경미한 것으로 끝나고 앞으로도 ‘큰 뉴스 예보’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그래도 ‘천지개벽’할 정도의 일기뉴스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불편을 겪을 정도만은 피해갈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2014년의 그런 ‘교통대란’은 다시 겪고 싶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솔직히.. 소리 없이 고요히 밤의 적막을 헤치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의 환상은 지울 수가 없다.

 

1월초 섭씨 영하 10도의 강추위와 약간의 눈발이 내렸던 기억..

 

¶  Crash Courses: ROK (South Korea), DPRK (North Korea) 101:  오래 살다 보면 ‘이유 없이, 우연히, 저절로’ 생기는 일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물론 이것이 더 가능했던 것은 ubiquitous Google 의 power일 수도 있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요새는 수시로 일어난다. 좋은 예로, YouTube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들 중에 [탈북자] 가 있었다. 이런 ‘탈북’이란 유행어,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나의 코 앞에 다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KOREA에 대한 관심 전혀 없이 살아온 수십 년 덕택에 완전히 고향감각을 잃어버린 시점에서 이런 것들은 완전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남쪽은 남쪽대로 ‘빨갱이 정치인’들이 득실거리고 (정말 밥맛 떨어지는 종북좌파 정치인 개XX들은 내가 이 우주에서 제일 증오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이다.) 북쪽은 북쪽대로 ‘해괴한 모습의 지도자 동지들’ 치하에서 ‘인민’들을 굶겨 죽이며 ‘장난감’ 무기로 불장난을 하니.. 그래서 제일 피하고 싶던 뉴스는 거의 모두 KOREA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이제는 그 말이 역시 명언 중에 명언임을 실감하는 나날과 앞날을 마주 보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고향, 나의 조국을 ‘심각하게’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Uh oh.. 와~ 오늘이 며칠인가.. 2016년 12월 24일, 사실 이날의 느낌이 12월 25일 보다 훨씬 더 설레고 진하던 시절을 오래 전에 보냈던가? 이제는 그런 설렘은 기억 뿐이지만 그래도 잔잔한 설렘은 어쩔 수가 없다. 요새 비교적 평화로움을 유지하며 여기까지 온 것만도 나에게는 더 큰 성탄 선물일 것이다.

오래 오래 오래 전 우리 둘 모두 교회, 성당을 모르던 시절 신혼 초, 정말 고요한 밤을 보냈다. 아니 너무 고요해서 심심하고 쓸쓸한 밤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Eve 밤 늦게 차를 몰고 downtown (당시는 Columbus, Ohio)을 배회하는 것이었는데.. 왜 그런 해괴한 idea가 우리 둘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아마도 찬란한 holiday decoration, tree light같은 것을 보려고 했을 것이지만 집에 들어오면 이상하게 더 쓸쓸해지는 것을 알았다. 외롭기도 하고..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것이 크리스마스의 진짜 이유를 찾고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그 이후는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최소한 우리 직계가족 전부 (4명)이 모여서 우리 집 근처 Holy Family성당에서 합창단과 더불어 함께 노래를 부른 후, 자정미사를 보는 것이 정상이 되었다. 오늘 밤도 같은 routine을 거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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