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화초들의 피난, GARABANDAL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완전히 긴팔, 긴바지로 무장을 한 날씨도 감사한데 게다가 ‘가을비’까지 촉촉히 내리는 주말, 그 동안 힘들었던 여름의 끈끈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위안까지 받는다. 촉촉한 비를 너무나 오랜만에 구경하게 되었는지 우리 집 양양이까지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날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어제 9시에 잠자리에 들었기에 너무나 일찍 깨어날 것을 염려했지만… 나의 밤 잠의 건강은 아직도 건재한 듯… 제 시간을 다 채우고 6시 반에 일어났다.  떨어지는 기온을 보며 어제 저녁 ‘처음으로’ 긴팔, 긴바지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처음에는 물론 조금 더운 감도 없지 않았지만 아하~ 나의 예측은 맞았다. 일어날 무렵에는 너무나 편하고 따뜻한 촉감… 아~ 정말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아침이 되었다. 드디어 환절기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제 날씨 때문에 올해 우리 집 화초들의 ‘피난 스케줄’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지나간 일지를 보니 작년에는 10월 중순이 넘자마자 거의 빙점까지 떨어진 것과 화초도 집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으니… 올해는 어쩔 것인가? 일주일마다 집을 봐주기로 한 새로니가 그 일을 할 리도 없고.. 결국은 10월 초 우리가 집을 떠나기 전에 모든 화분들을 실내로 옮기기로 결정을 했다.

하지만 이것에 비하면 한달 동안 양양이 먹이가 최대의 관심사, 우려, 걱정을 하던 것인데 조금씩 조금씩 서광이 비치는 것도 느낀다. 지난 몇 주일 시도를 했던 dry food, wet food와 함께 먹는 것, 확실히 구토의 횟수도 그렇고, 점점 dry food의 양이 늘어나는 등… 나는 아직도 속으로 기쁘긴 하지만 지켜보는 자세이지만 희망적으로 보여서, 특히 연숙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이 보기가 좋구나…

이것에 힘을 입어 어제는 dry food feeder를 ‘중간 것’으로 order를 했다. 일주일마다 새로니가 오니까… 이것으로 일 주일 동안 현재 먹는 것처럼 ‘조금씩’ 먹게 되면 구토의 횟수도 control이 가능할 것 아닐지…  비록 wet food는 일주일 한번 조금 먹게 되겠지만 ‘굶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아~ 이것이 예상대로 성공하면 올해 10월 대장정은 큰 문제가 하나 줄어드는 것이고.. 아~ 성모님, 어머님, 도와주소서…

며칠 전부터 자주 보기 시작한 OTA[over-the-air]  local TV channel ‘KBS AMERICA’, 예전에는 이 channel의 상태가 불안정해서 편하게 볼 수가 없었는데 근래에 다시 보니 매일 매일 잘 나온다. 물론 HD는 아닌 듯 싶지만.. 이 channel의 이름으로 KBS AMERICA라고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source가 대한민국의 KBS란 말인가, 아니면 이곳에서 다시 수정해서 재방송을 하는 것인가… 알 수가 없는데… 아마도 ‘해외 동포’를 겨냥한 program이라는 것은 짐작을 할 수는 있다.

최근에 대한민국의 근래, 현재를 서서히 복습, 공부할 겸해서 이곳을 찾아오는데… 오기만, 보기만 하면 나오는 모습들… 아~ ‘먹는 것, 먹는 것, 먹는 것’에 관한 것 투성이인데.. 현재 한국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먹는 것’이란 말인가? 물론 내가 몇 십 년 잊고 살았던 그 동안의 문화의 변천을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번 10월의 대장정이 이런 모든 수십 년간의 공백을 조금은 채울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할 지경인데..

몇 달 전에 download하고 보았던 GARABANDAL (영화, Documentary) 성모발현에 관한 것, 오늘 다시 ‘우연히’ 보게 되었다. 몇 년 전에 보았을 때만 해도 이 ‘발현사건’은 거의 인정은커녕 무시되기도 했던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지금 것은 이후에 나온 것으로 사정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발현이 그렇듯이 시간 세월이 지나며 결과가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 ‘가라반달’ [스페인의 지명]은 50년이 지난 이제서야 조금씩 인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새로 나온 documentary는 내가 보아도 더 자세하고 객관성 있게 발현사건을 다루고 있다. 특히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시대와 맞물리는 시대성에 큰 초점을 맞춘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각도로 보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발현에서 성모님의 메시지는 항상 비슷한 것이지만 그래도 ‘경고성’의 느낌이 많기에 다른 발현과는 조금 비교가 되는 듯하다.

Forgetfulness, Red Ball Express

NYT ‘Wellness section’에서 forgetfulness 에 대한 글이 보인다. 나에게 forgetfulness는 물론 dementia와 관련된 것이니 유쾌한 내용일 수가 없지만 오늘은 조금 안심을 하며 본다. 글의 논조는 너무 성급히 지나치게 걱정 염려하지 말라는 것,  하지만 이런 논조는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어서 조금은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이 전문가들의 말은 맞을 것이다. 나이에 의한 ‘자주 까먹는 현상’ 사실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직접 경험을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조금은 걱정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부터 그렇게 익숙한 ‘것’들의 이름 글자가 멀쩡하게 기억이 안 되는 사실에 처음엔 너무 놀랐었지 않았던가? 그때의 조바심은 과연 이 잊었던 것을 완전히 잊은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서서히 떠올랐다. 연숙이나 주위에 물어보니 거의 이들 거의 모두가 이미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은 안심을 하기도 했다.

오늘 나를 괴롭혔던 단어는: 영화제목 Red Ball Express란 1952년 ‘2차 대전’ 흑백영화… 작년에도 몇 번 YouTube에서 본 것인데 주인공들의 이름  [Jeff Chandler주연]도 기억을 하는데 제목을 잊다니… 하지만 마지막 글자 Express는 이미 기억이 되긴 했다.  얼마 안 되어서 떠오른 말은 Ball…의 단어가 떠올랐다.  그런데 혹시 Fire Ball은 아닐까..  하지만 조금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다, 아니다 이것이 아니었다. 몇 시간 후에 결국은 떠오른 정확한 말 Red Ball 이었다..  NYT Wellness 기사의 말이 거의 맞았다. 기억세포를 찾아내는 시간이 전보다 느려진 것이다. 완전히 잊은 것보다는 기억을 끌어내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전문가의 분석..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결국은 이 ‘시간’이 문제가 아닌가? 길어질 뿐만 아니라 그것이 너무 길어지면 완전히 잊은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기억력에 도움이 되는 것들도 열거했는데, 이것 역시 조금은 상식적인 것들: multitasking을 피하라… 일할 때 한가지에만 몰두하라.. 요새 세상이 너무나 이것에 문제가 있긴 하다. 잠을 잘 자라.. 두뇌세포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 특히 심장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들.. 먹는 것도 중요하다.. 모두들 특별한 것들은 아니다.

위험한 정도의 망각증상으로는: 가족, 친지의 이름을 잊는 것, 길을 잊는 것 등등 이것도  짐작이 되는 것들인데.. 나의 현재 상태는 어떤가? 걱정이 될 정도로 ‘갑자기’ 흔하던 각종 단어, 이름들이 멀쩡하게 생각이 안 나는 것을 너무나 자주 경험을 한다. 이런 경험에 이제는 익숙해지고 있으니 크게 놀라거나 걱정하는 것도 줄어들고 있는지.. 기억, 회상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각종 ‘연상 기술’이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듯한데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나이 탓, 나이 탓, 모든 것이 퇴화되는데 두뇌라고 예외일 수가 있는가, 자연적 노화 현상인데…

오늘 새벽도 6시 직전, 깨어날 무렵부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을 손으로부터 꼭 잡으며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2014년 9월의 성모님을 잊지 않으려 기를 쓴다. 9년 만에 거의 같은 수준의 스트레스와 마주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나의 모습, 한마디로 내가 보아도 불쌍하고 가엽지만 그 뒤에는 엄청난 은총의 광채가 있음도 잊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사흘… 나는 아마도 그런 정신상태로 그날을 향할 것이다.

이른 아침 ‘작은 산책’을 back yard에서 하며 멀리서 본 main shed 근처의 모습, 정말 놀랍게 변했고 깨끗해졌다. 한 가운데 떡 버티고 있었던 tool shed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없어진 자리엔 파란 잡초들까지 돋아난다. 나는 나를 칭찬해야 한다. 이번 여름 얼마나 열심히 이곳에 정성을 들였던가, 땀과 수고 시간… 더위와 싸우며 기를 쓰던 나는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어제 ‘갑자기’ 시작된 연숙이의 오랜 숙원, pantry 정리 정돈.. 사실 숙원이었던 이유를 알만 하다. 그 좁디 좁은 곳에서는 사실 엄청난 양의 각종 식품류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곳을 같이 정리하며 나는 계속 ‘연숙아, 미안해~’ 라는 생각뿐이었다. 아~ 남들처럼 넓고 쾌적하고 초 현대적인 부엌이었다면… 내 탓이요… 그래도 조금 정리가 된 후에는 훨씬 쓰기가 쉬울 것을 생각하니 보람을 느낀다.

본격적인 Jacuzzi ceiling repair job이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그렇게 간단한 일처럼 보이던 것이.. .아니다, 생각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나의 carpentry skill에 자신이 없다. 분명히 또 큰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등등..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 인간인가?  이럴 때는 무조건 시작을 하고 보는데..  하루가 지나며 보니 조금씩 idea가 생기기 시작한다. 미리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일을 하는 방식이니까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괜찮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경험적 진리를 믿어보자…

2023년 9월 1일은 나에게 어떤…

9월 1일, 올해 느끼는 9월이란 글자, ‘반갑지 않은 10월’이 불과 한달 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 이것은 70여 년 전 1960년 4.19 혁명이 났던 그 당시, 서울 중앙중학교 1학년 시절 ‘주번週番1‘이란 글자가 아침에 등교하는 나를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는 stressful한 느낌이 주던 그 당시를 연상케 하는 착각에 빠진다.  요즈음 나는 그야말로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아동 심리적 상태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내가 만든 감정의 늪으로 하루 하루 빠져드는 연극 같은 한 달이 예상이 되는 것, 조금은 스트레스와 불편함인가… 

일어나자마자 먼저 신경이 쓰인 것이… ‘녀석’이 어제 dry food를 먹은 후의 뒷모습이다. 혹시 ‘토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제 한때 잘 먹는 모습이 너무나 신나서 wet & dry 모두 주었더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역시 섞어서 주는 것은 절대 금물, 많이 주는 것도 마찬가지… 오늘은 다시 wet으로 조금만 주어서 큰 문제없이 먹는다. 아~ 이렇게 신경을 써서야 어찌 pet의 즐거움이겠는가, 정도껏 해야지… 정도껏… 그저 그저 희망은… dry 를 완강히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10월 한달 food dispenser를 사용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기에… 그저 희망 사항이지만…

아~ Labor Day weekend, 우리에게도 labor는 아직도 따라다닌다. 아이들 손주들 돌보아 주는 것,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하고, 즐겁기도, 괴롭기도… 모두 엉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특권인가.. 우리 엄마 옛날 새로니를 뒤에서 덥석 안고 ‘아이고, 내 새끼’를 하시던 심정이 그렇게도 그리운데, 나도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사니.. 이 정도나마 고마워하고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머님, 미안해요, 증손주들 증손주들이 이렇게 세상에 나왔는데 엄마는 그곳에서나 볼 수 있으니.. 나중에 결국은 모두 모두 그곳에서 재회할 거니까 그것으로 조금 위안을 삼습니다.

생일날 새로니 식구가 ‘몰려’왔다.  나의 생일이 아니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gourmet doughnut 도 잊지 않고… 새로니 부부가 며칠 동안 식구들을 우리 집에 맡기고 여행을 간다고.. 참, 부럽다, 부러워… Ozzie는 그렇다 치고 유나를 재우며 보아주는 것은 한마디로 아직도 도전이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흐뭇하고 즐거운 것이었기에 은근히 기대도 한다.

비록 연숙의 생일이었지만 우리의 모든 에너지는 유나와 보내는 시간에 할애가 된 날이 되었다. 연숙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도 없지 않지만 timing이 절대로 생일에 관심을 쓸 수가 없게 되었으니,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다행히 날씨가 놀랍게도 초가을의 맛을 보여주는 날이어서 그런대로 ‘행복한 시간’을 유나와 보낼 수 있어서 그것이 커다란 수확이 아닐지.. 특히 나와 유나가 예상을 뒤엎고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으니, 다른 것들은 크게 상관치 않기로 하고 싶다. 이제야 진정한 ‘손주’의 기쁨을 맛보는 듯 하기도 하다.

또한 화창한 날씨의 덕으로 Ozzie와 편안하게 오랜만에 녀석의 trail을 따라서 짧지 않은 산책을 할 수 있었다. 도대체 마지막으로 녀석과 산책을 했던 때가 언제인지 전혀 짐작을 할 수가 없으니.. 오래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우려하는 기억력 감퇴 때문인지..  [찾아보니… 녀석과 마지막 우리 동네 산책이 7월 14일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USCCB [미국주교회의]의 daily gospel email service로 ‘매일복음말씀’을 받아보았다. 연숙이 지난 10년 동안 매일 보내주던 ‘한글 매일복음말씀과 신부님 묵상글’에서 완전히 영어권으로 돌아온 것으로 읽으니 감회도 감회지만 지난 10년 동안 한글 문화권에서 긴 세월 동안 무섭게 잊혀져 가던 ‘한글의 체취’를 복음과 묵상글을 통해서 남들 못지않게 한글권으로 접근할 수 있었으니 나에게는 아주 유익한 10년이었다. 그것이, 이제 다시 영어권으로 돌아오니 오히려 그것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며 참 사람의 언언 감각은 이리도 쉽게 변하는 것이구나, 은근히 놀라기도…  덕분에 지난 세월 잊혀지기 시작했던 가톨릭 영어 표현들이 조금씩 살아나오리라 믿는다.

이 복음 말씀은 Lectionary에서 그대로 copy한 것이지만 이것과 연관되어서 받아보는 Bishop Barron의 강론, 묵상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주로 ‘신학적 측면’이 많이 보이지만 그분 말씀대로 강론, 묵상도 오래 전처럼 dumb down된 것에서 벗어나 ‘지식적, 학문적’인 더 강조하는 신세대를 겨냥한 듯한 것이라서 주일본당의 분위기와 알맞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서 나에게는 너무나 잘 된 ‘변화’가 되었다.

SparkFun에서 받아본 email newsletter, 주로 신제품 선전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남다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지난 15년 동안 거의 주 관심 밖으로 밀려난 나의 전공분야 [computer, network, embedded systems etc]가 어떤 때는 그리워지기도 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런 광고성 newsletter service도 계속 받아본다. 어떤 때, 이곳에서 그야말로 Spark Fun! 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오늘 관심을 끈 것은 weather station system kit의 그림이었다. 아직도 아직도 나의 피를 끓게 하는 것 중에 electronics kit는 변함없는 것이다. 국민학교 4~5학년 때부터 시작된 이런 ‘조립의 기쁨’의 잔영은 아직도 인생의 황혼에도 큰 변함없이 느끼는 것이다.  Local 중의 local 인 우리 집 주변의 실시간 기상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보는 것보다 흥미로운 ‘소일거리’가 아닐까?  이 SparkFun kit는 아이들 장난감의 수준을 훨씬 벗어난 hobbyist 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 그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다음 문제는 ‘살 것이냐, 말 것이냐… 말해보거라~’ 의 단계, 아~ $125 라면 나의 budget 에는 조금 무리가 아닐까, 아니 무리를 할 수도 있는 것인가… 이 순간에서 머뭇거리면 이것이 바로 impulse buying으로 후회가 되기도 하니…

드디어 9월의 시작, 이 한 달을 조금이라도 늦게, 천천히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의 모습을 본다. 어찌 시간을 늦추랴마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10월로의 행군은 천천히 천천히 가고 싶은 나의 심정, 누가 도대체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10월이 완전히 지나면 나는 어떻게 지금 겪고 있는 경험들을 다시 재해석을 하게 될 수 있는지, 사실 궁금한 정도를 넘어서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10월 이후의 나의 심경, 생각의 변화.. .과연 어떤 것일까? 40 여년 동안 고였던 거센 감정의 격류를 어떻게 나는 소화, 처리, 해석, 남길 수 있을까? 하루 속히 이 피하고 싶은 시간들이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이후의  남은 11월, 12월을 생각만 해도 빨리 그곳에 도착하고 싶구나….

  1. 당시 중고교생들은 일주일 6일 동안 학급봉사를 담당하는 의무, 주번제도가 있었다.

Izzie, I Love You…

반짝하는 가벼운 몸과 기분, 마음, 느낌.. 이것이 얼마만일까… 왜 이렇게 기분이 상쾌한 것일까? 보이는 가까운 이유는 몇 가지 있지만 사실은 그 이전, 그 밑에 흐르고 있는 나의 정신적, 영적 건강이 무언가에 의해서 나아졌다는 것은 아닐까?

어제부터 ‘무섭게, 맛있게’ 먹어대는 Izzie의 모습이 놀랍고 행복한 것일 것은 거의 분명한 것, 게다가 녀석이 아직까지 음식을 소화시키고 있는 듯 한 것은 더욱 기쁜 사실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라도 녀석의 몸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만들어야 10월의 ‘충격적인 공백’을 견디어 내지 않을까 말이다.

아~ Izzie야~ 며칠 째 네가 좋아하는 beef pate meal을 놀라울 정도로 맛있게 먹어 치우는 모습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구나. 이제까지 나의 생각이 틀린 탓에 거의 굶기도 한 듯 하니.. 이제는 확실히 네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알았으니 부지런히 맛있는 것만 먹고 체중 좀 늘리고 구토하는 것도 줄이고, 10월 한달 혼자 보낼 수 있도록 …

어제 ‘Youtube 남대문시장’ 사건의 여운은 물론 아직 나에게 커다란 화두, 사건, 생각거리 등으로 남아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나는 더 생각하며 현재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것, 그 ‘남대문 시장’의 모습이 왜 그렇게 나에게 우스울 정도로 심각하지만 행복하게 보였을까? 10월에 그것을 다시 보게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다른 엄청난 의미 속에 나는 반세기 살아온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못 말리게 ‘생각하는 병신’임은 분명하구나..

어제 저녁부터 세차게 내리던 비, 엄청난 양이 분명했다. 이것으로 그 동안 한동안의 가뭄은 해소가 되었음은 분명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날씨가 살만한 정도로 시원해졌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행복이다. 지난 한 주는 솔직히 말해서 ‘이글거리는 분노’ 같은 것과 싸움을 버리며 살았던 착각, 왜 이렇게 덥단 말인가.. 왜.. 이런 나의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 어찌 하겠는가, 나도 피부 감각이 살아있는 인간의 한 존재인데…  그저 이런 것들, 다 지나가리라 의 한 가지에 불과한 것인데..

30년 역사의 고물 wheel barrow에 고인 물, 어제 저녁부터 내린 폭우의 결과다. 그 동안의 비교적 짧은 지독한 더위, 가뭄의 고통을 완전히 잊게 해 준 자연의 힘이다. 아무리 지구 환경이 각종 문제로 신음을 해도 이런 ‘초자연’적인 날씨의 변동은 살맛이 나게 하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폭우가 쏟아진 후 우리 집 backyard은 거의 거의 원시림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trimming 정도의 작업으로는 어림이 없게 되는가… 아마도 낙엽이 떨어지는 자연의 힘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가…

이즈음 나는 main ‘desk’ study보다 이곳 new family room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computer가 있는 desk에서 휴식을 포함한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방을 옮긴 후 점점 이곳이 진정한 휴식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도 역시 나는 인터넷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다. 모든 것들이 아직도 그곳에서 나오는 것,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던가? 이곳의 매력은 편히 누워서 백일몽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역시 올 여름, 최고의 휴식이 되고 있다.

9월이 되기 전에 이 new main shed의 내부를 능률적인 것으로 개조하고 정리를 한다고 속으로 큰소리를 쳤지만, 아직도 끝이 나기는커녕 본격적인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나는 어떤 아메바인가…

한달 전에 H 미카엘 신부님이 우리 본당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추수나누기’ 강론집 편집 그룹과 함께 화요일 미사 후 점심을 하게 될 것도 들었다. 그날이 오늘, 오랜만에 화요일 정오미사엘 가서 H 신부님을 보게 되었다.’  오늘 본 신부님의 모습은 유난히도 ‘연약하고, 마른 체구’의 그것이었다. 예전의 느낌도 조금 다른 것이었다. 물론 예전의 기억은 그대로지만 오늘 목소리나 표정에는 예전의 추억이 거의 느껴지질 않은 것이 아쉽기만 했다.

미사 후 운암정에서 ‘추수..그룹’ 점심이 있었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모인 듯 한 것도 그렇고, 나에게는 아직도 어색한 C베로니카의 참석 등등.. 조금 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모임이 되었다. 왜 나는 이 자매를 보면 그렇게 마음의 평정을 잃는 것인지, 나도 이제는 이해를 못할 지경이다. 반가운 것은 분명한데 앞으로 다시 안 보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나의 묘한 심정, 이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왜 내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래, 잊자… 잊자… 여기까지가 전부다.

저녁이 되면서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는 광경, 그것도 서쪽에서부터.. 이것은 현재 Florida로 오고 있는 hurricane Idalia  와는 전혀 다른 system이지만 상관없다, 쏟아져라, 내려라, 울려라, 큰 피해만 없을 정도로 마음껏 소리치며 으르렁 거리며, 대지를 적시고 나의 그리움도 달래주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진정으로~~~

Nikki Haley, Great Indian Hope?

NYT 어제 저녁에 보았던 David Brooks의 column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politic 에 대한 것, 그것도 2024년을 향한 그의 일가견, ‘갑자기’ 그의 글에 관심이 쏠리는데, 이때가 중요한 순간이다. 이것에 잘못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혈압관리’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관심은 오히려 혈압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임을 확인하는 때가 되었다.

NIKKI HALEY, NIKKI, NIKKI.. 그녀는 누구인가? 그야말로 2024년 11월 이후 미국의 GREAT ‘COMMON SENSE LADY’ HOPE 가 될 것인가?  Brooks의 일반적인 가치관과 그의 ‘이유 있는 Trump 혐오’를 잘 알기에 나도 그의 관점과 분석에 동감이고, 나아가 혹시 President Haley라는 가정, 상상이 맞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도 해 본다. 상식적인 온건 보수우파, 게다가 Non-White 여성… 허~ 이 ‘후보’  문제 없지 않을까?

WIKIPEDIA로 시작된 그녀에 대한 조사, 연구, 공부는 거의 모두 나에게는 새롭기만 한 것인데, 그 동안은 그녀가 ‘DONALD 개XX’ 밑의 졸개 정도로 비하를 하고 살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Nikki는 몰라도 Haley는 대통령 이름으로서 문제가 없고, 여성임은 이제는 플러스가 될 것 같다. 100% 인도인 배경과 개신교로 개종을 한 것은 family value를 강조할 수 있고, 유엔대사 경력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개XX 밑에서 일을 했던 경력이 나에게는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다.  이 정도면 안전한 선택이 아닐지..

아~ 이것이야말로 꿈인가, 생시인가… 드디어 family room의 작은 기적을 맞는 늦은 오후가 되었다. ‘살인적’ 더위에 쫓겨 들어와 sofa에 누워서 요새 내가 즐기는 ‘선 잠 속에 들려오는 video 음성’, 비디오는 내가 좋아하는 C.S. Lewis에 관한 것, Abolition of Man의 해설이었다. 그런데 깜빡 잠든 속에 ‘후두두두두두둑’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잠 속에서도 ‘설마, 설마..’를 계속 되뇌는데, 그래도 계속… 되고 결국은 눈을 뜨고 밖을 보니… 지겹게도 밝기만 했던 하늘이 조금 어두워진 듯, 그리고 조금은 시원해진 듯… 이것이 웬 기적인가? 비가 잠깐 뿌린 것이다! 2003년 한여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 따라서 부수입으로 기온은 거의 10도나 뚝~~~  아~ 이 맛에 사는 거다, 사는 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모님 Mother Nature여!

지난 밤은 다행히도 a/c humming noise를 듣지 못했다. 조금 실내 기온이 내려간 것일 것이다. 비록 도토리 키 재기 격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조그만 것도 기분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준다.
평상보다 1시간이나 이른 시간 5시반 경에 눈이 떠졌는데… 이건 완전히 깬 듯,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모처럼 캄캄한 속을 헤집고 잠옷을 입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양양이가 조금 놀라는 몸짓, 이 녀석도 잠을 자고 있었는지.. 하지만 곧바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배고파’ 인 것을 어찌 모르랴.. 일부러 조금씩 밥을 주는 것이 아니고 네가 자주 토하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인데..  관건은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 주는 것이기에 너도 나도 모두 고생을 하니… 그래, 우리 둘 모두 남은 생이 길지 않으니 도와가며 살자꾸나.

Kafka’s Dream, 마지막 약속들…

지난 밤, 생생한 꿈을 꾼 것은 좋은데, 꿈의 내용이 절대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추억, 신앙적, 가족적인 것은 하나도 없는 난데 없는 ‘바퀴벌레’의 출현, 공격, 쓰나미처럼 쏟아지는 그들의 모습으로 꿈에서 깨어났으니~~ 이것 말이 되는가? 의미? 깊이? 허~ 이것에도 무슨 고상함이 있단 말인가?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오늘 나갈 일 때문인가.. 오늘은 강남일식으로 푸짐이 외식을 하고 심장내과로 가는 날인데… 혹시 그곳에서 무엇이라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이제 꼭 해야 할 것들을 챙길 때가 되는데… 우선 Sonata tag을 받는 일, 이것을 하려면 작년처럼 올해도 Grease Monkey에 가서 제일 비싼 oil change를 하고 emission test를 하면 해결될 것이고…  하지만 이제 나는 더 도망갈 수 없는 ‘그 시간’영역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9월 초부터 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심정으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형님께 전화도 드리고… 누나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동창들과도 연락을 하고… 정치, 외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경우야, 도망가지 말고 침착하게 할 일들을 챙기며 다가가자, 성모님의 마지막 산봉우리 약속한 곳을 향해서, 성모님의 손을 꼬옥~~ 잡고, 우리 엄마의 손도 함께 잡고… 어머니의 영정을 향해서, 향해서…

어제 순교자 성당 ‘어르신 친목단체’ D회 인수인계의 하나로 R 전회장으로부터 받아온 ‘서류’들을 조금은 더 자세히, 심각하게 읽어본다. 의외나 놀라움 같은 것은 없지만 생각보다 회원들의 명단에서 느껴지는 모임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으니..

2017년 봄과 가을,  레지오 (마리애)에서 겪었던 2가지 어처구니 없는 ‘미친X’ 사건들로   피곤해질 대로 피곤한 마음을 달려서 찾아 흘러 들어온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다른 단체와 달리 나이가 지긋하고 비슷한 동년배 형제, 자매들의 모임은 각 개인의 독특함과 상관없이 우선 마음이 놓이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것 하나만으로 나는 행복한 것이다. 비록 Pandemic 동안 동면기간은 있었지만 다시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문제는 앞으로 이 동년배 그룹이 갈 길이다. 대부분 회원들, 길지 않은 나머지 인생이기에 이런 모임을 최선으로 활성화 시켜야 하지 않을까…

lumbers lumbers & lumbers…

3일 전 아침의 싸늘함이 이후 조금씩 기온은 오르고 있지만 그래도 70도 이하~ kitchen door를 여니 조금 익숙해진 씨원~ 한 공기가 밀어닥친다. 아마도 다시 평년기온을 향해서 오를 것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다가오는 계절의 느낌을 주시는 Mother (Nature) 의 손길이 반갑고 고맙다. 자주 겪는 ‘새벽의 슬픔’에서 희망과 위로를 나는 요즈음 전적으로 ‘어머님들’로부터 찾는다. 효과나 성과를 떠나서 그것이 나에게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운 ‘성사聖事’가 되어가고 있다.

뒷마당에 조금은 보기 싫게 뎅그러니 놓여있던 tool/open shed가 완전히 철거된 지도 2주가 훨씬 넘어간다. 덕분에 뒷마당이 점점 훤~ 해지는  맛에 지칠 줄도 모르고 노구老軀를 마구 부리고 있지만 솔직히 피곤하다. 저녁 때만 되면 반드시 찾아오는 근육통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오늘도 잡스러운 lumber 조각들을 dump에 버리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조금이라도 ‘없애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즐거운 일이 되었는가?

계속된 lumber rack 만드는 일이 오늘 거의 끝이 나서 드디어 2×4 lumber 부터 하나 둘 씩 쌓이기 시작한다… 아~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제 목재들만 제대로 정리되면 나머지, 마지막 것들로 도전하게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이것에 매달려 일을 했던가… 그래도, 감사합니다, 성모님… 이런 아직도 쓸만한 체력을 유지시켜 주셔서…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파장 罷場’을 선언하고 들어와 버렸다. 날씨는 의외로 뜨겁지 않았기에 마음만 먹으면 lumber scrap들을 모두 정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lumber rack design이 마음에 들게 설치가 된 것을 보니 가볍고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특유의 버릇이니 별도리가 없구나. 며칠 내로 lumber에 관한 일은 100% 끝낼 자신이 생긴다.

드디어 P 형제로부터 소식이 왔다. 100% 예상한 대로…  등대회 부회장직 ‘수행능력’, ‘책임을 지는 일’.. 등의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책임만 없다면’ 얼마든지 돕겠다는 것…  이즈음은 이런 사람들 투성이, 책임이 없는 세상… 이제까지 보아온 이 형제님 [부부]의 인상이 다시 원점으로 제자리를 잡는 느낌이다. 왜 조금 다르게 살 수는 없는지.. 안타깝지만 더 이상 push할 의욕이 안 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은 깨끗이 잊는 것이 좋을 듯하다.

Devil’s Masterpiece Redux…

조심스럽기만 한 ‘세상의 소식’, 오늘은 나에게 안전한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기분까지 산뜻하고 유쾌하기까지… 무엇 때문인가? 물론 제일 큰 요인은 GEORGIA INDICTMENTS  [숫제 공개적으로 나에게 몇 표만 만들어 주라고 협박 전화질하는 현직 대통령, 세계사적 코믹의 극치] 에 관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상상만 하던 AL CAPONE, ATLANTA JAIL,  ALCATRAZ 등등의 그림들이 깊은 속의 체증까지 가볍게 해 주는 듯.. 

NYT 에서 보는 이 코믹의 극치, 이 개XX, ‘목의 힘줄,을 보라. Devil’s Masterpiece, 나에게 이XX의 가치는 minus Infinite지만 이XX를 따르는 XX들에게는 무한한 동정과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왜 또 나는 이런 함정에 빠졌는가, 잊자, 잊어… 성모님 도대체 2016년 이후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어제 먹다 남은 하아얀 쌀밥, 분량도 딱 2인분… 갑자기 시원한 물에 말아먹는 쌀밥, 감칠맛 나는 ‘먹다 남은’ 생선전, 달걀 후라이, 마늘 조림, 그리고 사과 쪽… 더운 여름의 아침 식단으로, 노력도 거의 없는 편안함과 함께 오늘 아침을 때운다.  지속되는 육체적인 근육의 스트레스로 드물게 밥맛이 저하되는 올해 여름에 바로 이것이 나를 살려주는 보물이 되었다.

유난히 산뜻한 몸과 마음을 느끼며 일어난 6시 30분,  ‘아침등불’을 향해서 걷는 복도에서 느끼는 공기는… 아하~  어제와 비슷한 것, 시원한 정도를 넘어서 싸늘함까지.. 광복절, 성모승천, 말복 등이 살짝 지나간 이 즈음의 모습들, 비록 매년 반복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계절의 행군은 매일 똑같은 세월의 느낌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은근히 반갑다…

 

오늘 드디어 1987년 경 콜럼버스 Ohio State 시절 중앙고 ‘새카만’ 후배 김종수가 만들어준 어린이  ‘2단 침대’의 마지막 유물을 찾아서 무슨 골동품, 유물을 다루듯이 사진까지 찍어 두었다. 이 부분은 침대의 옆 부분 판자인데, 다른 부분은 이미 사라진 후.. 이것으로 추억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증거물’을 기회가 되었다. Morse Road  Kings Hill apartment 지하실에서 둘이서 만들었던 이것, 이곳으로 이사올 때도 가져와서 아이들이 한동안 쓰던 것인데…  참 세월은 많이 흘렀구나~~

이것과 연관된 그 당시의 추억은 비교적 생생하다. 목공 carpentry에 지대한 관심과 재능이 있었던 후배 김종수의 ‘권유, 아니 거의 pushing’ 로 난데없이 집 근처에 새로 생긴 home center [아마도 Hechinger 현재의 Home Depot가 나오기 훨씬 전] 로 나를 ‘끌고 가서’ 필수 power tool과 lumber를 사다가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빨리 2단계 침대를 만든 것이다. 이 손끝 좋은 후배, 정말 그는 목공의 신, 귀재라고나 할까… 그의 Buckeye Village dorm에 가보니 그곳에는 거의 완전한 침대와 각종 가구들이 모두 그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 이 ‘사건’의 덕분에 이후 나도 power tool를 가지고 아주 초보적인 일들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후 살고 있는 집을 고치며 사는데 지대한 자신감까지 주었으니… 종수야~ 고맙다! 그 당시 샀던 power tool [주로 Black & Decker]들 중에 2개는 아직도 ‘생생하게’ 동작을 하고 있어서 사실 더욱 그 당시의 추억을 잊을 도리가 없구나…

처리 곤란했던 particle board들이 빠져나간 덕분에 우리 집 뒷마당의 모습은 서서히 옛모습을 찾기 시작하고 있다. 갑자기 넓어진 ‘그곳’은 이제 연숙의 화단이 옛모습으로 돌아올 것인데, 이제 남은 문제는 engine oil을 폐기하는 것, 목재 이외의 잡동사니들이 갈 곳을 찾는 것 등등…

물기에 젖은 후 더 무거워진 듯한 각종 particle board들이 드디어 우리 집 전 용 private dump로 하나 둘씩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작업은 도끼로 각종 크기의 board들을 작게 부수고 wheel barrow로 일일이 나르는 중노동, 그것도 작열하는 햇볕을 무차별로 받아가면서… 아~ 이 불쌍한 칠십 대 노인에게 아직도 이런 힘이 남아있었던가…

연숙이 나라니 집에 ‘산모’ 음식을 해서 배달하러 가는 바람에 나는 오랜만에 혼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이제는 이런 점심 준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내가 평소에 먹을 수 없었던 것을 맛볼 수 있으니까… 그 중에서 내 방식의 ‘너구리 라면’은 이럴 때 적격이다.

Generation Alpha, KNOX LUCAS LEE BERTRAM…

오늘은 8월 초순답지 않게 동이 트기 전부터 상당한 기세로 비가 내린다. 지나가는 열대성 여름 오후의 비가 아니다. 흡사 ‘가을비 우산 속~’ 격에 맞는 그런 느낌을 주는 것, 나쁘지 않구나…  새로운 손자가 태어나는 날과 어떤 관계는 없을 듯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두운 모습’이 없이 밝게 자라기를…  [나처럼 이상할 정도로 어두운 비를 좋아하지 않으면..]

언제부터인가.. 나의 꿈, 특히 새벽녘의 꿈은 분명한 ‘느린듯한 악몽’임을 알게 되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충격적이고 기억에 남는 그런 흔한 것이 아니다. 잔잔하게 느리게 나를 조여오는, 기분 나쁜 것이다. 나는 우울하다, 불안하다, 절대로 행복하지 않다고 나를 세뇌시키는 듯한 ‘반 의식적 꿈’인 것이다. 원인은 분명히 찾을 수 있지만 이 정도로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이 나를 실망시킨다.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 멋진 꿈들과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경험이 요즈음에는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이것도, 이것도 영적으로 분석을 해야 한단 말인가, 피곤하다.

T-0! 결국 8월 10일이 빗소리와 함께 젖어 든다.  산모 나라니는 새벽같이  Piedmont Hospital  분만실  에서 둘째 아들 분만 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들 조금은 긴장하며 text message를 기다리고…  ‘수술’이라지만 한번 경험한 것이어서 조금은 안심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끝까지 기도하는 자세를 놓을 수는 없고, 일단 기다림은 시작된 거니까, 기다리고 지나가기만 기도하자…

현재 시각, 아침 8시 37분에 ‘baby’s born!’ 소식이 왔다… 우리는 마침내 2020년 이후 크게 기대하지도 못하던 후세, 그것도 총 3명의 손주를 갖게 된 것인데, 참 세상은 이래서 덜 지루한 것일까.  여자 동생을 기대했는데, 둘째 남자아기라서 조금은 덜 반갑지만…  로난 Ronan과 낙스 Knox.. 두 개구쟁이 형제들이 ‘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하기야 그것이 더 재미 있는 combo일 듯 하다. 이들은 모두 Generation Alpha [2010년 이후]의 후반 세대들, 과연 이들이 살게 되는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이제 나라니의 [우리들의 무언의 push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 그리고 초조와 고통은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산모, 아기가 모두 [아무런 희귀한 surprise없이] 건강하도록,  ‘기도, 기도, 기도..’ 잊지 말자.

원래 아기 이름을 Leo로 정해놓았었는데.. 갑자기 Knox 로 바뀌어서 이유를 물어보니 참, Millennials [Gen-Y]  세대의 장난기인가.. 분만병동에 들어가서 갑자기 생각들이 바뀌었다고.. 시부모 댁은 Leo에 맞추어서 선물 등에 lettering을 해 놓았는데.. 참 버릇이 이렇게 없으니… 나라니 왈, 남편과 의견이 통했다며 둘 다 좋아하는 영화 DEAD POETS SOCIETY 에서 ‘너무나 다정다감한’  Knox Overstreet란 character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다. 30여 년 전[1989년] 에 Mr. Keating character, Robin Williams 열연의 크게 hit한 영화,  VHS tape으로 당시 자주 같이 보던 것, 비교적 기억이 생생해서 그 Knox의 얼굴을 연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특히 ‘부잣집 깡패’ 축구선수와 사귀는 여자 아이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다가 ‘무섭게’ 얻어맞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또한 그녀가 있는 학교 교실까지 쳐들어 가서 모두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시 낭송을 하던 그런 그의 행동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던가…

나라니, 그 동안 수고 많았다! 고맙고 미안하구나… 오늘 baby와 나라니를 보러 Piedmont Hospital로 가려는 계획은 무산이 되었다. ‘이상한 원인’으로 기침을 심하게 하는 연숙과 통화를 했던 나라니가 오늘 오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솔직히 그것이 모두에게 편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Judy, 친할머니가 그곳에 갔다고 하니까 우선 가족 방문은 된 것이다. 무언가 무겁게 느껴지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70을 훌쩍 뛰어 넘어 80으로 가는 ‘할배와 할매’가 아니냐 말이다. 왜 이렇게 늦은 석양 무렵에 이런 ‘힘든’ 경사들이 한꺼번에 우리를 찾아온 것인가… [10년, 아니 5년만 ‘젊었어도’…]

오늘 병원 산모병동 방문 예정이 사라진 뒤에 남는 여유시간, 그 동안 초조하게 쫓기는 듯한 스트레스가 천천히 사라지고 편안하게 비디오나 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나머지는 갑자기 시원해진 날씨에 이끌려 main shed 바른 쪽의 ‘어둡고 습한 곳’에 관심을 썼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커다란 나무 가지들이 그곳을 더욱 습하게 하고 있었다. 전에 연숙이 쓰도록 샀던 ‘cute, but powerful as‘ mini-chainsaw가 적격이어서 몇 가지 나무 가지를 쳤더니 처음으로 하늘이 넓게 보기고, 훨씬 밝아졌다. 시간이 나면 나머지 것들도 자르면 좋을 듯…

다음 달 9월 일 개월이란 ‘길다면 긴’ 시간은 나의 big bumper, buffer, cushion… 하지만 그것 조차 무서운 속도로 나를 향해서 정면 돌파를 하려는 듯 쳐들어, 아니 하루 하루 목을 조이듯이 다가온다. 내가 바로 당장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 잊고 살았던 고향 땅, 한반도, 대한민국, 한국의 ‘각종 연락처’와 연락, 연결이 되어야 하지 않을지… 누구와? 어떻게… 아~ 이것은 생각을 시작조차 피하며 사는 나의 게으른 모습.. 어떻게 이 ‘도전, 산, 난관’을 극복, 정복, 넘어갈 수 있을까? Just Do It… just do it, just do it… stupid!

Morning, Mr. Keating’s Class …

갑자기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나, 아니면 더위를 조금은 먹었나.. Dead Poets Society 의 Mr. Keating 생각이 났는가… 다른 세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으면 그 선생의 시범대로 조금 눈의 위치를 올리면 된다. 변함없이 나의 시야에 고정된 piano위에서, 나의 desk위에서 본 모습들로 나의 노후 된 머리는 조금 청소가 되기를 바라며, 아침의 ‘곡예’는 끝났다.

오늘은 예기치 않던 휴일이 되고 있다. 나라니 네가 안 오기로 계획을 변경을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도 오늘은 외출을 하지 않게 되어서 솔직히 말하면,  편안하고 잔잔한 기쁨의 아침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Independence Day 이후 이곳 open deck에 처음으로 앉아본다. 이른 아침이라 모기도 없고, 조금 덜 습하고 시원한 날씨의 유혹이었나, 앉고 보니 무언가 허전하다. 아~ 올 여름은 이런 자리에서 맥주를 즐길 수가 없구나, 맥주 없는 여름, 전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내가 ‘금주 선언’을 한 탓에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좋은데,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시원한 맥주는 그립기만 하구나. 

오늘 비록 보너스처럼 생긴 여유시간, 벌려놓은 일 때문에 게으름을 즐길 수가 없었다. 마지막 10%의 일이 아마도 90%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50% 시간이 걸릴 듯 보인다. 웬 놈의 자질구레한 hardware [鐵物店처럼]들이 그렇게도 많이 쌓였는지… 귀찮은 것들은 아예 버리고 싶은 유혹과 싸우고 어떤 것은 쓸만한 것이었는데 홧김에 쓰레기 통에 버리기도 한다. 그래, 이런 많은 것들 언제 다시 쓰게 되겠는가? 버리자, 버리자, 홀가분하게 살자…

WYD 2023, World Youth Day 세계청년대회… 우리의 본당, 도라빌 순교자성당에서도 올 들어 계속 예고를 했던 이 행사, 드디어 개막이 되는 모양이다. 한창 더운 8월에 맞추어 시작을 하는 것, 조금은 덥겠지만 이들은 모두 청년들이 아닌가… 아마도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것이 더 젊게 느껴질 것 같다. 교황님의 개막식 도착 장면을 거의 우연히 YouTube에서 보게 되었다. Lisbon, Portugal.. 근처에 Fatima, 얼마나 멋진 곳일까… 우리는 언제나 가볼 수 있을까…  우리 본당에서도 17명이나 ‘대거’ 참가한다고 했는데, 그들의 동정이 궁금하구나.. 부럽고…

오늘도 ‘지겨운 shed ‘stuffs’ work’ 후에 이곳 새로 정리된 new family room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제는’할배’ 들, 나 자신과  Izzie까지 이곳에서 쉬시고…. 로난이 그제 왔을 때 이곳에서 놀았는데 장난감 같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구나..

16th Ordinary Sunday, Joy & Surprise

거의 ‘악몽’수준의 밤,  왜 이렇게 불안, 초조, 심지어 두려움까지 나를 엄습하는가? 크고 작은 것들이 무섭게 나를 흔들고 괴롭히고 도망가고 싶어 하게 하는 듯한 이런 꿈같지 않은 것들… 이것이 바로 나의 십자가였구나~  오늘 아침 ‘수난의 시간들’을 보내며 나를 달랜다. 그래, 고통 없는 십자가와 이후의 평화, 영광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불시의 경험’, 또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하지만 그 ‘원인들’은 지나가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은 명심해야~~ 연중16 주일, 주님의 날, 미사의 날 아침이 이렇게 ‘덜 평화스러워’서야 되겠는가?  어떻게 이 고약한 일요일 아침의 해괴한 스트레스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오늘 아침까지 느꼈던 ‘이상한 걱정, 우울, 심지어 공포’ 등은 나중에 보니 이유가 있었다.

오늘의 2가지 big news, 첫 번 것은 비교적 유쾌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아가다 자매님 모녀가 8시 30분 미사엘 나타난 것이다. 몇 개월 만인가? 이것은 연숙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지.. 설득을 어떻게 했기에 나왔을까? 오늘 보니 역시 아가다 자매는 점점 깊은 치매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성당엘 나와서 사람들과 만나고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성당에 나올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정말 오랜만에 이들과 미사 후에 ‘Coffee & Bakery 하얀풍차’엘 가게 된 것도 오늘의 큰 소식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big news는 두 번째 것, 등대회[성당 60/70대 친목단체]  모임일 것이다. 등대회 회장선거에 의외로 나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당선이 된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갔다. 며칠 전 R형부부와 만났을 때 내가 충고를 한 것이 실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모임에서 새 회장을 성공적으로 뽑으려면 미리 ‘물밑 작업’을 해야 한다는 충고… 오늘 결과를 보니 분명히 그는 몇몇 사람들에게 나를 뽑으라고 했을 것이 분명한 것이다.  입회 이후 처음으로 보는 회장선거 풍경은 한마디로 해괴한 것, 입후보자를 세우지도 않고 한번에 ‘아무나 뽑을 수 있는’ 비밀투표를 하는 것이다. 회원 명단에서 이름을 보고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것, 조금 희귀한 system이 아닌가? 사실 부담이 되는 이 의외의 사건, 이미 수락을 한 셈이 되었으니 돌이킬 수는 없고,  2년 동안의 임기를 채워야 하는 등, 나의 머리는 사실 2018년의 마리에타 구역장 시절의 ‘악몽’으로 돌아가는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임무는 수행을 해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구역장 때와 성격이 다른 자리라는 것에 조금 부담감이 덜 할 것이라는 위안은 없지 않다. 정기 모임의 회수에 따라서 신경 쓸 것이 조절이 될 터이니 서서히 생각을 해도 되지 않을지… 쉬고 싶은 인생의 늦은 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 돌이킬 수 없는 것, 겸손하게 받아드리자, 성모님의 도우심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 골치가 복잡하구나, 우선 당장은 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Picnic Table Torched, Hawk Sighted, 할배 Blues

늦은 오후 ‘열대성’ 비가 지나간 직후 backyard 먼 곳에 있는 birdie apartment (3 rooms) 위쪽에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사진을 찍긴 했지만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이 손님은… 그렇구나… hawk (red tailed) 그러니까, ‘매’ 인가? 아마도 요새 급증한 토끼 냄새를 맡았는지… 노루나 사슴도 가끔 보이는 이 동네의 뒷마당들, 그렇게 나무를 자르고 잘라도 역시 아직도 다른 곳에 비하면 거의 원시림 수준인데, 솔직히 나는 이 지역의 이런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구나…

지난 4월초부터 out-of-service 되었던 mini picnic table의 수리가 일단 끝났다. 15+ 년 동안 rotting으로 상傷한 부분을 새로운 lumber로 교체를 하고 paint를 하려는 순간, ‘burning wood’ technique ‘그을음’ 생각이 났다. 이렇게 torching 화염으로 그을린 나무목재의 모습이 멋지기도 하고 습기나 해충으로부터 썩는 것도 지연시키지 않던가? 과연 겉모습은 예상대로 은은한 자연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natural elements에 의한 피해 상태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가봐야 알 것이고, 결국은 paint job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목재에 이런 torching, burning technique으로 수명이나 예술성을 더해주는 것, 이미 일본에서 오래 전부터 쓰이던 것이고 이름도 아예 Shou Sugi Ban [이것의 漢字는 무엇인가] 이라고 있는데 과연 그 역사적 사실이 사실일까? 일본 아해들의 옛 것들은 일단 대륙, 반도에서 건너갔을 것이 거의 분명한데, 아쉽게도 서양 아해들과 먼저 접촉이 된 것은 거의 이런 일본용어와 결부가 되어있으니 더 할말은 없다. 대원군 할배여~  서세동점 西勢東漸 위기의 시대에 어이하여 며느리와 싸우시느라~~ 그 사이 일본아해들은 명치유신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근대화를 이루었는데…

‘할배’ 라고 자조 自嘲하는 우리 또래들, 특히 한국의 동창들, 나는 이런 자조적인 ‘꼰대, 할배’라는 말 크게 생각을 하지 않고 듣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없지 않다. 정말 우리가 할배, 꼰대들이 되었단 말인가? 그렇게 볼품없을 거라고 상상하며 살던 시절들이 다 지나갔단 말인가? 꿈이라면 깨고 싶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확실히 우리들은 심리적으로 ‘젊었던 시절과 할배 시절의 모습들’이 엄연히 동시에 현존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최근에 갑자기 늘어난 ‘육체적 일들’, 일이 끝나고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비록 일반적인 건강상태가 아주 좋은 것은 사실이라도 작업 이후의 피로감이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슬픈 사실… 전에는 실감을 못하던 현상이 아닌가? 어떤 때는 Tylenol이 그리워질 정도의 피로통증까지 몇 시간 지속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이 탓인 거다. 쉬면서 relax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현상, 그래 나쁘지 않다. 쉬라는 ‘몸의 충고’가 아닌가.

덕분에 두어 시간 쉬는 동안 새로 단장된 ‘new’ family room의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TV (주로 YouTube classic movies 주로 film noir)를 보는 재미를 새로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거의 없었던 나의 모습이라고 할까… 이전까지는 거의 예외 없이 desk에 앉아서 (computer) screen앞서 시간을 보내고 쉬고 했는데…  일단 computer screen에서 떠난 것만 해도 커다란 변화요, 새 세상의 발견처럼 느껴진다. 전혀 나쁘지 않다.

오늘 늘어지게 다리를 뻗고 졸듯 말듯 ‘그래도 전부를’ 본 영화는 1965년 경 James Stewart주연의 The Flight of the Phoenix란 것, 오래 전에 (old tube) TV 에서 보았던 것으로 거의 모든 이야기 줄거리는 기억을 하는 것인데 지금은 YouTube로 ‘거의’ HD 로 보는 것이니 느낌이 정말 다르구나..  사막에 고장으로 불시착한 석유회사 운송기를 필사적으로 수리를 해서 다시 나르게[짧은 거리지만] 하는 ‘믿을 수 없이 기막힌’ 과정을 그린 것이다.  수리를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수리라기 보다는 아예 기존 ‘철물’을 뜯어서 거의 새로 비행기를 만드는 처절한 노력이 코믹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1주일 만에 아침미사, gym엘 가는 날..  잠깐씩 ‘쉬고 싶다’라는 무서운 유혹이 넘실거린다. 안 나가는 것 자체가 편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이 유혹이요 공포다. 이것에 잘못 걸려들면 나는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모님이시여, 저의 손을 놓지 마세요~~
7월도 20일이라고? 웃긴다 웃겨… 어떻게 벌써 7월의 2/3가 가고 있단 말이냐? 어떻게? 웃기는 건 바로 나다, 그것이 그렇게 새롭고, 놀랍냐, 병신아! 그래도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열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면 어디가 덧나냐?
Sonata Cafe까지 곁들인 오늘의 아침미사와 YMCA gym 외출은 비록 오전 전부가 필요한 외출이었지만 분명히 정신적으로 큰 에너지를 재충전 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집에 오는 길에 느낌이 ‘오늘은 외식이나 Kroger에서 무엇이라도 사다 먹자’ 라는 의견을 서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그것은 오산이었다. 대신 집에서 가정주부가 만든 볶음밥 의 멋진 점심 식사가 되었다.

Ozzie Trail, Four Miler…

오늘은 다른 때와 조금 다른 route을 골라 걸었다. 동네 tennis court에서 Ozzie Trail (Azalea Spring Apt.로 가는 길), 그리고 그곳에서 Fall Apt (East Side) 로 가서 거의 떨어져가는 poop bag을 3장 얻어서, 그곳에서 거꾸로 Ozzie Trail을 거쳐 집으로 오늘 길… 이렇게 해서 오늘은 YMCA indoor track과 함께 거의 4 mile을 걷게 되었다. 나의 하체는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노력이 아닐지…  lower body, 하체, 하체… 이 나이에 넘어지면 큰일, 아니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무섭게 습하고 더운 날씨, 다행히 구름으로 대부분 덮인 덕분에 산책을 하는데 오히려 편했다. 더욱이 가끔 빗방울도 뿌렸으니… 얼마나 멋진 7월 중순을 살고 있는가?  언제나 목이 빠지게 동네 산책을 기다리는 Ozzie, 우리와 정이 들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인데… 아~ 언젠가는 이별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Low 70s 와 low 90s 에 머무는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대표적, 전형적 7월 여름의 모습이 계속.. 습한 새벽은 까마득한 옛날 1960년대  서해 앞바다  영흥도 여름피서 민가 초가집 마룻바닥의 그때를 연상하게 한다. 모기에 밤새 뜯기며 옹기종기 모여서 새벽 잠을 자던 그 여름,, 한 여름… 아~ 이제 서서히 ‘복 날’이 시작되는 때가 되지 않았는지, 초복이 언제이던가?

새벽 6시 정각에 일어나 두 pet friends (Ozzie, Izzie)를 돌보고,  도리도리(목운동), 수난의 시간 매일기도가 끝나고, 며칠 째 고생하는 팔뚝의 가려움을 달래려 Pain Zero를 바르고… 오늘 연숙이 제대로 일어나면 ‘또 오랜만에’  우리 정든 동네성당과 운동을 하러 외출… 정말 우리 이런 하루 하루 삶, 보람이 있고 신나는 것은 아는 듯하지만, 사실은 남들도 거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상한 비교를 하는 것은 유혹에 불과하다. 모든 사람들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외로운 것도, 신나는 것도, 지루한 것도, 희망과 우울이 교차하는 것도… 아마도 거의 마찬가지 현상일 것, 어찌 또 잊으려 하는가?

지나간 해의 7월 일지를 보니.. 하나도 별로 달라진 삶의 모습이 아니다. 가족들과 가끔 어울리는 것, 특히 Ozzie와 함께 산책을 하는 기록이 예외 없이 매달 보이는 것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그야말로 현재 ‘정상적 삶’인 것이다.  이상한 기대를 상상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자!

불면의 후유증을 뒤로하고 오늘은 거의 일주일 만에 아침 매일 미사엘 갈 수 있었다. 일주일 3회 정도 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참 이것이 옛날처럼 되지 않으니… 무엇인 문제인지.. 아침미사가 주는 활력소는 사실 대단한 것임을 아는데… 옛날, 그러니까 레지오 시절, 아침미사는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저 좋은 것, 성스러운 것, 은총인 것…

 오늘은 Sonata Cafe대신 McDonald’s 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모처럼 먹는 No. 2 menu는 아직도 맛이 있었으니… 우리의 입맛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가… 다행이 아닌가, 우리의 입맛이 이 정도인 것이… YMCA도 그런대로 할 만큼 했고, 돌아오는 길에 Kroger에서 나의 콜레스테롤 약 refill을 받았고, sushi, 과일, croissant  등등을 샀다. Izzie의 wet can food를 다른 것을 시도하려고 2통을 사왔다. 이것은 현재의 것보다 양이 많은 큰 can이라서 값이 싼 셈인데… 이것을 어떻게 먹을지 궁금하다.

Green Independence Day

새벽의 이 분꽃 ‘웅덩이’는 정말 초록 중의 초록의 향연이 아닌지… 올해는 어떻게 이렇게 분꽃들이 대성황을 이룬 것일까? 대신 수국 류는 전혀 꽃을 피우질 못해서 이것이 자연의 평형, 균형, 중용 원리인지도…

아~ the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 (esp. for me & us!)  나에게 미국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과연 이곳은 나의 나라, 땅,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 되었는가? 고마워해야 할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고 선물인가? 이곳에 나의 뼈(가루)를 묻을 준비가 되어가는가? 250년 ‘평등자유민주’의 실험대 속에서 우리와 후손들도 한 몫을 하고 있는가? 반대편에 있는 나의 고향은 이제 어떤 곳이 되어가는가? 만감이 교차하는 7월 4일… 성모님, 모든 존재들을 축복하소서… 그 모습들과 상관없이, 은총을 전구해주소서…

매년 이날은 대부분 둘이서 charcoal barbecue를 deck에서 굽고 먹으며 보냈는데, 올해는 조금 다른 것이..  ‘불고기’를 charcoal grill로 구워서 먹는다는 것인데.. 솔직히 불고기를 잊고 산 세월이 꽤 길어서 맛도 잊을 지경이 되었기에 올해는 조금 그 맛을 되찾고 싶었다. 예전의 불고기 맛에 대한 기억이 나는 대부분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런데, 이번에 다시 먹어본 것은 확실히 그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기회가 되었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연숙의 불고기 양념 솜씨, 잊고 살았지만 이번에 보니 아주 맛있는 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잠깐 내린 비, 이후의 모습은 역시 7월의 그것… 감사합니다…

알맞게 흐리고 비가 내린 집 주위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록 중의 초록의 정수 精髓처럼 보인다. 이제 진정한 2023년 초여름이 시작된 것인가? 평화로운 것과 하루하루 그 무엇을 향해 다가가는 짜릿하고 두려운 압박감이 함께 섞여서 매일 매일 나를 일깨운다. 그날, 그날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하지만 나는 ‘승리’할 것이다, 이길 것이다, 축복을 받을 것이다!

어제는 비록 뜻밖의 나라니 식구 방문에 당황을 했지만 그런대로 오랜만에 바깥에서 공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의 덕분에 그 동안 원했던 일, garage side door repair, paint를 눈깜짝할 사이에 끝내고 나니 후유증으로 하체에 잔잔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즐거운 고통’중의 하나였다. Tylenol 을 먹었으면 간단히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혈압, 혈압… 요새 우리 둘 모두 이 수치에서 힘을 얻는다. 어찌된 일인가, 우리 둘 모두 정상혈압치가 매일 혈압계에서 보이는 것이다. 특히 나의 것은 완전한 숫자 120/80 에서 머물고 있는데, 연숙이도 거의 마찬가지다. 우리들 크게 바꾼 생활습관도 없고 약을 바꾼 것도 없지 않은가?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역시 life style 이외에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물론 안 보이는 손길은 100% 가능하긴 하지만, 또 그런 은총이란 말인가? 이건 과분한 것 아닐까? 이제 혈압이란 것, 많이 익숙해졌기에 이런 흐름도 알고, 느끼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발전인가?

하지만 역시 며칠 전의 ‘lab test 검사’ 결과에 신경이 더 쓰인다.  내일 중에는 분명히 report가 올 것인데… 과연 전에 보았던 ‘정상수치’들 이번에는 어떤 놀람이 있을까… 특히 연숙의 것… 성모님의 손길이 아직도 함께 할 것인지…

어제 손을 보았던 garage side door, 몇 십 년 만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겨우 kickboard와 paint를 한 것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느낌이 다를까? 이것이 지난 이틀간 노동의 보답이구나… 고맙다… 하지만 이 작업이 끝나지는 않았다….  바로 문 밑에 보이는 오랜 세월의 게으름의 결과, 이 문 앞에 수십 년간 떨어진 빗물로 썩어 문드러진 문지방.. 이제 나의 눈에 조금씩 관심을 이끈다. 이번 기회에 어떤 수를 쓰더라도 ‘고치고’ 말 것이다.

오늘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이리도 하체가 피곤한지… family room sofa에 편하게 누웠는데… 일어나 앉을 기분이 없었다.  집 근처인 듯한 곳에서 요란한 불꽃놀이, 어찌나 요란하던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잠을 청하게 되었으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드디어 유난히도 나의 머리 속을 맴돌던 6.25 바로 그날, 그것도 일요일, 오늘은 유난히 더 생각하며 보내면 어떨지… ‘오늘의 성인’ 말씀은 우연히도 ‘기억보다는 망각, 용서’의 주제가 나오고… 그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침착하게 반성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여름철 같은 날씨로 돌아온 연중 12주 일요일이 공교롭게도 1950년 그때와 같은 일요일이 되었다. 73주년이고, 7월 27일의 정전 기념일은 70주년…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한국 예수회의 관할 하에 있어서 그런지 (공식적으로 이곳은 아틀란타 대교구의 한 본당이지만) 전례는 대한민국의 그것을 따르기에 오늘은 6.25 동란과 직접 연관이 된 ‘민족화해’가 주제다. 6.25에 대한 느낌이 우리세대보다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젊은 사제들’, 가끔 색다른 각도의 조국, 이념, 역사관을 만난다. 이런 부분이 사상 이념 차이 하나로 동족을 잔인하게 죽였던 6.25 , 그것의 끝 자락을 경험한 우리들에게는 항상 예기치 못한 ‘지뢰밭’ 같은 위험한 실망과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올해 6.25 동란과 나의 Landing 50년이 거의 같은 시기에 맞물려 좀 더 이성적, 아니 심지어 영성적으로 느끼려고 했지만 역부족인가, 큰 깨달음은 나에게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다. 각종 이산가족들, 특히 전쟁고아들의 삶을 다시 보며 그런대로 나는 비교적 덜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 울분, 안타까움, 절망감 등과 싸우던 내 생애의 늦은 한때도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의 앙금이 아닐까 추측도 한다.

비록 Landing 50년의 짧지 않은 diaspora의 삶, 만약 6.25라는 세 숫자가 없었다면 과연 현재의 나의 이런 ‘방랑’ 인생이 과연 있었을까?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쟁이 안 일어났다면 개인 역사를 제쳐두고라도 과연 대한민국, 남한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역사학자들은 이런 what if scenario에 대해서 연구해 보았을까?

오늘 아침 성당 가는 길은 예외적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제시간에 출발했지만 성당에 도착한 시간은 미사가 시작되어 독서가 시작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에 미사에 안 갔던 날은 있었지만 늦게 도착한 적은 근래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도 늦게 도착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나에게 오늘과 같은 이런 때는 괴로운 순간들이다. 차 사고, 차 사고, 어찌 I-258 N는 그렇게 사고가 많은 것인지… 그것도 traffic이 한산한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분명히 ‘병신XX’들의 speeding 탓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옛날 옛적 고국에서 시내 버스를 타면 운전사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그림글씨카드에 천사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 옆에 ‘오늘도 무사히’라고 쓰여있었던 기억, 그 모습이 요즈음 이런 교통 사고 현장을 지날 때마다 생각이 나곤 한다. 이런 차 사고는 우리와 그렇게 먼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우울해지곤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타고난 운명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지…

푸틴과 프리고진의 대결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는 모양인가… 역시 러시아는 알 수 없는 나라인가, 현재 그들은 어떤 이념으로 살아가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삶의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재 그들에게 종교 자유는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만 제외하고 다른 권리들은 다 보장되어 있는가?  모든 것이 법치, 합법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됨은 나치 히틀러 독일을 보면 알 수가 있으니… 결국 그런 파국이 다시 세계를 못살게 굴기 전에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좋으나 싫으나 현대인의 삶의 기준은 dollar나 마찬가지로 Pax Americana에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드디어 이재욱 전 주임신부님이 이곳에 오신다는 ‘예보’가 주보 공지가 되었다. 나는 물론 전에 신부님의 카톡으로 알고 있었지만 조금 더 자세한 소식인지… 7월 초에 오셔서 7월 중에 성당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신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닐 듯하다. 우리와 이재욱 신부는 우리 성당생활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던 case여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이 간다. 앞으로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과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울지…

오늘 아가다 자매님이 팔 골절 수술을 받으시고 따님 댁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매기가 심해지는 것 같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직접 찾아보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불만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자녀들의 고충, 그것은 거의 고문과 같은 것일진대.. 장래 우리가 주위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며, 우리들의 부모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우리들의 과오, 처지는 어떻게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떨 때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기도, 기도밖에 해결책이 없는 것일까?

오늘 아침 식사 메뉴는 결국 Sam’s Club의 pizza로 해결이 되었다. 내가 돌아본 곳은 역시 cat wet can food를 파는 곳, 그곳에서 big can, big box 그것도 60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가격도 현재 먹는 것보다 저렴하기에 앞으로는 이것도 섞어서 주면 어떨까…

밭에서 따온 고추, 오이가 곁들인 미역국 ‘동네방네’ 점심을 감사히 받는다. 유난히 많이 재잘거리는 연숙이, 무엇이 그렇게도 신나는가, 모든 생각을 다 말로 표현을 하는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섭게 작열하는 태양과 더불어 치솟던 90도 이상의 더위가 한 순간에 고개를 숙였으니, 바로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곳의 ‘여름 비’가 아닌가? 깜짝하고 내리 쏟아지는 이곳 특유의 여름 비, ‘천문학적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계절의 선을 보이니.. 하지만 앞으로 ‘무서운 더위’가 올 것 같은 예보와 느낌은 체질적으로 나를 긴장시키기는 하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이런 stress와 맞서서 싸우련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무섭고 듣고 싶지 않단 말인가? 네가 무엇이길래…

Duck Donuts Father’s Day 2023

아침 일찍 주일미사엘 갈 때 연숙의 ‘Happy Father’s Day!’ 언급이 없었으면 나는 거의 오늘이 그런 날이란 사실조차 잊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손주들이 있기에, 할아버지 입장에서,  Father란 말부터 퇴색된 느낌도 들고, 예전에 귀찮을 정도로 신경을 써 주던 ‘꼬마시절’ 딸들의 관심도 삶의 세파에 밀려서 이제는 조용하기만 하다. 우리 동네 성당에서는 Mother/Father Day 가 되면 신경을 써서 해당자 (엄마, 아빠들)을 기립시키고 Father’s Day때는 ‘신부님까지’ 대상에 포함을 해서 많은 교우들이 박수를 쳐주었던  생생한 기억도 있었다.

성당에서는 Father란 말이 자식들을 가진 아빠도 있지만 ‘영적인 아버지’ 바로 신부님도 함께 이날을 맞는데, 한국문화권에서는 아버지 날이 따로 없는 전통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 문화권에서 파견된  임시거주 신부님들은 이날들에 대한 느낌 정서와 배려가 거의 없는 편이어서 이곳에 오래 산 우리들로써는 역시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내가 강론 신부였다면 아마도 성경의 근거한 Father 의 모범상을 찾아 언급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그런 바램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현지에 맞게]정해진 듯한’  신자들의 기도[문] 속에 ‘아버지들을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어서 가느다란 안도감을 되찾기는 했다. 다시 드는 생각, 우리보다 월등 [현지화에] 앞서가는 베트남 순교자 성당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잡념…

약간 쓸쓸하기도 했던 기분이 그래도 Father’s Day라고 새로니 부부가 유나와 함께 우리 동네 근처 Johnson Ferry Road에 있는 specialty (gourmet) donut shop에서  ‘DUCK DONUTS‘을 사들고 찾아 왔다. 내가 도넛을 좋아하는 사실을 알기에 이런 것을 고르기가 쉬웠을 듯하다. 특별 order를 한 것이라서 속으로 ‘무척 으리으리’ 할 줄 알았는데,  군침 도는 Dunkin‘, Kristy 의 그것에 비해서 오히려 맛이 없게 생겨서 미루고 있다가 ‘혹시나 해서’ 나중에 먹어보니… 와~~ 이것이야말로 special donut 임을 알게 되었다.

6.25 발발 직후 ‘빨갱이XX’들에게 납치가 되어 생사도 알 수 없이 험한 세상에서  일생을 살아온 나로써는 솔직히 닮고 싶은 ‘아버지 상’이 없다. 그저 ‘소설 같은’ 상상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본능적으로 알 수도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며 쩔쩔매기도 했다.  세월의 덕분에 어려운 시기는 지났지만 역시 후회, 후회는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모습을 보면서도 아빠, dad, daddy, appa, abba 라고 부르는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해야지…

오늘은 평범한 주일일 뻔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아침 미사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기대 했던 뒷자리 마리안나 자매님은 안 보이고 뜻밖으로 언젠가 보았던 부부의 뒷모습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우선 놀라기는 했지만 생각 없이 다가가서 아는 척하고  싶은 생각이 느껴지지를 않았으니.. 이제는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생각을 조금은 바꾸는 것이 연로한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은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어제 시작한 track lighting, 오늘 test run을 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극적인 도움’은 느껴지질 않았다. 각도, 강도, 배치 등으로 멋지게 환하게 도움이 되는 조명이 될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으니까, 여유를 두고 연구를 해 보자. 이것이 만족스러우면 아마도 이 ‘옮겨온 office’는 ‘죽을 때’ 까지 나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오늘도 deep relax를 하기 위하여 daydreaming ‘screen’ time으로 ‘맥랑시대’를 본다. 몇 편이고 random하게 골라서 보고 또 본다. 이 드라마 스토리 시대는 1990년대 초, 배경은 대한민국 고등학교 [서울이 아닌 듯]..  물론 나의 생각은 우리 때, 그러니까 1960년대 초의 모습, 배경과 회상, 비교를 하는 것으로 머무른다. 30년 세월의 차이는 과연 어떤 것이고, 그 이후 2020년대로 앞서 가면 60년의 차이는 과연 어떤 것인지, 사실 조금 아찔해진다.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세월을 살아왔던가?

아~ 고등학교, 고교시절… 교복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머리 스타일도 따라서 완전 자유형,  완전한 남녀합반 공학, 또한 각종 학교 시설, 주변 환경 등이 경제발전에 걸맞게 깨끗하고 자유롭게 보인다. 그 아이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무엇이 그 고교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들인가? 정치적인 것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십대 때에 흔히 겪는 문학, 철학 소년소녀 형의 모습은 우리 때와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핵심 드라마 주제는 ‘어른과 나라’가 요구하는 것들, (일류) 대학입시를 위한 극한적인 공부, 공부, 공부… 바로 그것이었다. 아~ 우리 때에도 ‘공부’는 지나치다고 생각할 만큼 강조되었지만, 이 드라마를 보니 이 공부, 공부, 공부라는 것은 아이들이 불행을 초래할 만큼 주눅이 들 정도로 압박을 주고 있었다. 우리 시절의 모습은 이것에 비하면 장난 수준으로까지 보이니… 한마디로 자기에 대한 생각 별로 할 기회가 거의 없이 사회로 진출한 것, 시험문제 풀듯 한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나갈 자세가 되어 있었을지…  한가지 부러운 것은 역시 ‘자연스러운 남녀공학’, 어쩌면 그렇게도 진정한 친구들처럼 큰 문제없이 잘 어울릴 수 있었는지, 우리 세대로서는 조금 부럽다 못해서 상상이 잘 되지를 않는다.

오늘 나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준 것이 있다면 이 짧은 blog quote가 아닐까?  과학적, 지성적 그리고 지극히 이성적인 UGA [University of Georgia, Athens]   retired professor [AI, Computer, Linguistics]  Dr. M. Covington의 이 짧은 comment,  ‘역시’ 100%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구체적으로,  ‘잠시 귀신에 홀린 크리스천’ 들, 정신차리라는 권고, 그는 비록 나이는 우리 보다 밑이지만 진정으로 생각하는, 존경을 할 만한 지성인이 아닌지… 선거, 투표할 때마다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How Trump voters should feel

If you voted for Trump, you should be disappointed and angry at him now. You didn’t vote for documents to be mishandled, lied about, and shown to unauthorized people. You voted for a conservative platform that had nothing to do with all that. Trump has betrayed you and given conservatism a bad name.

If you are unable to feel angry at Trump — if you still feel that you owe him “loyalty” — then I beseech you to look into your soul and ask what kind of spell you are under. Is it really true that he could stand in Times Square and shoot people and get away with it? That sounds like something only the devil would say.

 

Sacred Heart of Jesus, Fish Friday

The Most Sacred Heart of Jesus, Solemnity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 금요일, 이날은 요일이 정해져 있던가, 궁금하구나. 맞다, 유월의 금요일이지만 몇째 주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예수님의 불타는 심장과 그 상징, 의미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역사적 이유도 있었는데… 이제는 희미해지는구나, 아 불쌍한 나의 ‘노화되는 신심’이여~~  예수회 발행 DVD 제목도 있었고, 한번 다시 Wikipedia로 찾아서 기억력에 활력을 줘야 할 때가 되었나~~ 오늘 아침 미사엘 가서 조금 도움을 받으려나~~

성심, 聖心, sacred heart.. 특히 catholic devotion으로써의 성심은 확실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시발점은 무엇일까? 요사이 예수 ‘수난의 시간들’을 매일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예수수난 사건을 통해서 보인 예수님의 고통은 십자가에 의한 것보다 인간에 대한 ‘초월적, 절대적,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한 것,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심장, 가슴에 가해지는 고통의 상징이었던 것, 이제야 조금 알 듯하다. 인간역사적으로도 프랑스의 알라콕 성녀에게 발현한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이런 사실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것은 교회에서도 인정하는 ‘신심 행위’가 되었다.

대축일 아침미사, 교우들의 평소보다 꽤 많이 모였다. 이들은 확실히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평범한, 착한 교우’ 들일 것이다. 모든 전례를 교과서적으로 충실히 집전하는 (오래) 전 주임신부님 (Father Thein?)도 큰 도움이 되었고 Irish 거꾸리 자매의 주도로 미사 직후에 ‘예수성심 성인 호칭기도’를 함께 전 교우들이 참여한 것도 그렇게 인상적이고 감명을 주기도 했으니… 아~ 오늘 가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Pate 파테 빠떼.. paste..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Izzie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wet food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녀석의 입맛 때문인가, 아니면 소화기능에 관계가 된 것인가 정말 궁금하지만… stop 거기까지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는 minced된 것들을 조금씩 섞어서 주고 그것을 먹으면 dry food grind와 pate를 계속 알맞게 섞어서 주면 된다.  현재 녀석의 나이가 18살에 가까워오기에 신경이 쓰인다. 제발 제발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주기를 빌고 빈다, 양양아~~~

오늘 오전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들렀던 Kroger에서 최근 관심사였던 cat wet food section을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Amazon으로 보는 것과 이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더 확실한 각종 제품들의 종류와 그것들에 대한 느낌들, 이런 brick & mortar shopping의 혜택이 우리에게 항상,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언제까지 ‘걸어서, 차를 타고’ 와서 ‘둘이서’ shopping할 수 있을까? 현재는 조금 먼 장래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그럴까? 아~ 하느님, 성모님, 저희를 인도해 주소서, 그날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며칠 전 특별한 신경을 써서 Mega Mart까지 drive를 해서 사왔던 조기, 오늘 금육재 fish Friday 금요일에 그것이 ‘동네방네1 스타일’ 점심 식사에 등장했다. 잡곡 밥, 시금치 콩나물 국, 계란 찜, 마늘 절임, 열무 김치 그리고 특별히 맛있는 조기구이… 이것이 거의 완벽한 금요일 균형식 점심 식탁의 모습, 감사합니다, 고마워…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근처에 있는 ‘주로 점심 한식점’, 이곳의 점심 메뉴 중에 각종 생선구이는 일품이었다

Vine Trellis 포도 가지 10년 Woes and…

이 ‘vine trellis, 포도가지 격자구조물1‘를 급조해서 만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아마도 10년도 전에 새로니가 Mother’s Day선물로 사다 주었던 muscadine 종류 포도를 심기 위해서 이 ‘격자구조물’를 급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급조의 정도를 넘어선 ‘날림공사’ 급이었는데 용케도 몇 년을 버티고 있는가? 이것으로 햇수를 거듭한 후에 ‘진짜’ 포도 종류들이 자리를 잡아가서 이제는 ‘구조물’의 제 역할을 한 셈이지만 이제는 이것도 날림공사의 제 수명을 다 해가는지… 불쌍한 모습이다. 얼마 전에 거의 쓰러지려는 것을 응급 처치해서 세워놓았는데~ 문제는 이것을 완전히 없애고 새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응급 처치[현재 나의 방법]으로 몇 년을 버티어 볼 것인가~ 요새는 이런 짜증스럽게 좀스러운 일들이 나를 괴롭히니…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관심권 밖에 있었지만, 그 ‘구조물’ 을 아래 위로 엉키며 뒤덮고 있는 탐스러운 포도가지, 열매들의 그 동안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커가고 있는 모습이 있기에…  1992년 이사올 당시 이곳은 울창한 송림언덕이었는데 30여 년 동안 완전히 flower, vegetable garden과 이런 초소형 vineyard까지… 참 세월 많이 흘렀구나~~

어제 밤에 잠깐 보았던 weather radar, 밤중에 Alabama로 부터  ‘새카만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습, 예보 그대로 지난 밤은 ‘한때’ 정말 요란한 것이었다. 전깃불은 물론이고 빗소리도 대단했지만 천둥소리는 근래에 경험한 것 중에서 제일 굉장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고마운 비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은근히 걱정까지 되기도 했으니까.. 결국 나중에는 Ozzie녀석도 불안했는지 우리 침대로 함께 모여서 자게 되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땅만 진하게 젖었지 바람이 거의 안 불었는지 사방이 깨끗했으니~ 아,  이것이야말로 바로 ‘은혜롭고, 고마운 폭우’였구나…

어제 Amazon Prime으로 배달된 ‘고양이 밥,  17살 고양이 Izzie의 senior pate-type2 wet can food 덕분에 녀석[사실은 female]이 부지런히 dining table위를 뛰어 오르락 거리며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 동안 ‘맛 없는’ dry food를 먹었지만 최근부터 나이 탓인지 잘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잘 못하는 것을 보고 wet food로 바꾸었는데, 이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도 식성이 까다로워서 며칠 씩 안 먹기도 했다. 결국은 먹기 시작했는데, 고양이 wet food에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모른 탓에 minced type은 피하고 pate type 만  남김 없이 깨끗하게 먹어 치우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100% pate type만 order하게 되었고 그것을 오늘부터 다시 먹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양양이 먹이, 식사의 puzzle은 거의 해결이 되는 듯하다. 그러니까… 녀석이 앞으로 먹는 food formula 가 ‘밝혀진’ 것이다. 이것으로 올해 10월 한달 동안 집을 떠날 있을 때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누가 집까지 와서 ‘매일’ 먹이느냐~~이것이 ‘세기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으니…  아~ 싫다, 싫어~~ 왜 이런 문제들까지 나를 괴롭히는가?

오늘은 이미 ‘개척했던’ 코스이긴 하지만 다른 곳으로 길을 찾아 걸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방향과 장소들, 이것으로 walk distance로 2.5 마일을 기록할 수 있었으니 이것도 새로운 Ozzie Trail course가 되었다. 오늘은 우리 동네만 빼고 옆의 Azalea Spring apartment complex course를 모두 섭렵한 셈인데, 느낌이 좋았다.

지난 밤의 폭우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과연 오늘 Sope Creek의 모습이 그 결과가 아닌가? 폭우로 더 맑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반대였다. 급류로 시냇물의 밑바닥이 혼란하게 파헤쳐져서 흙탕물의 색깔로 흐르는 시냇물의 모습~ 아무리 해도 이곳에서 1954년 경 비원의 담장 밑 수로입구에서 흘러나오던 원서동 개천시냇물의 느낌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아직도 찾고 있는 것이다.

Sope Creek jungle을 나오며 옆을 보니 낯익은 모습의 정글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모습의 식물을 본다. 이것이 무엇이더라.. 물론 이름이 생각날 리가 없다. 사진에 담긴 것으로 찾아보니, 나의 짐작이 맞았다. ‘미모사’라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잎파리~  1964년 경 서울 남영동 집 옥상에 있었던 나의 ‘식물원’ 시절 이런 것들에 심취를 했었지… 같은 종류 미모사 중에 손을 접촉을 하면 움직이며 움츠린다는 것도 있었는데, 오늘 본 것도 그런 종류였을까? 나중에 알아보니 이것은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1. 이 한글용어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아마도 처음 듣고 보는 한글 원예용어가 아닐까, 하지만 격자는 lattice, 구조는 structure라는 것은 짐작으로 안다. 이제는 한글도 영어도 문제가 있으니… 사실 일반적으로 trellis에는 우리 집처럼 lattice, 격자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2. 이것이 불어인지도 모르고 ‘페이트’라고 읽은 후에 자세히 보니 이것은 ‘파테이’라고 읽고 paste란 뜻의 French  정도가 아닌지…

HOLY TRINITY SUNDAY 2023

오늘은 THE MOST HOLY TRINITY SUNDAY.. 지난 주에 이어 ‘3주 연속 대축일 Solemnity’ 중, 두 번째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는다. 다음 주의 ‘성체성혈 대축일’ 을 기점으로 ‘연중 ORDINARY TIME’이 시작되고… 이후의 긴 시기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대림시기 ADVENT까지 긴 ‘연중 방학’으로 이어지고… ‘사철과 책력’을 연상하게 하는 세속의 달력과 나란히 가톨릭의 전례력을 따르다 보면 손쉽게 한 해는 지나간다.

삼위일체… 삼위일체… 고등학교 시절의 영어참고서 ‘영어 삼위일체’가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보니 역시 나는 세속적 인간인 모양이다.  이것을 흉내 내려는 듯 숫제 ‘오력일체’라는 것도 있었지. 이곳의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 아니고 ‘문법, 해석, 작문’이니…  어떻게 이 참고서의 저자는 감히 2000년에 가까운 심오한 천주교  근본교리의 용어를 그렇게도 잘 ‘베꼈는가’…

오늘 구 미카엘 주임신부님의 ‘삼위일체교리’ 해설 강론은 역시 보통 수준을 넘는 것이어서 나의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혹시  지난주 강론처럼 ‘신학생 답안지 수준’이었으면 나는 분명히 필요이상으로 혈압을 올렸을 것이 분명하기에, 너무나 나의 신앙적 건강에는 다행인 일이 되었다.

성경에 근거했지만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이 ‘삼위일체 교리’와 큰 갈등은 나에게 전혀 없었다. 다만 이해하는 것이 ‘답안지 정답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것들은 속된 표현으로 ‘무조건 믿어라’ 수준에 속하는 것으로 큰 문제를 삼지 않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이 ‘기본 교리’에 대해서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다가 뜻밖의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사도시대의 사도, 교부, 신학적 성인’들이 ‘동의하고 결정했다는’교리들, 그것들은 ‘협상이 불필요,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전부인가? 그것을 ‘무조건이라도 믿어야’ 착실하고 올바른 모범적인 천주교일 터인데,  한치라도 이런 ‘협상 불가능한’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가 바로 오늘의 주제인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것이다.

근래 Emanuel Swedenborg의 NEW HEAVEN, NEW CHURCH 에 대한 ‘새로운 교리’ 에 접하고 난 후에 다시 한번 ‘변하지 않는 교리’의 무류성 無謬性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상징적, 관념적, 추상적으로 보이는 전통적, 주류 교회, 성경, 교리와는 달리 17세기 스웨덴 출신 과학, 철학, 신학, 신비가였던 Emanuel Swedenborg는 mystic의 입장으로,  전통적 성경에 철저히 근거는 했지만 본인의 체험의 도움으로 모든 교리들이 ‘구체적인 체험적 묘사’로 일관되어 있기에 쉽게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그가 이 삼위일체 교리가 가톨릭 교회의 오류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간단히 말해서 ‘성부, 성령’의 ‘각 위 person’가 예수 자체에 모두 포함이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하느님은  ‘삼 위’가 아니고 ‘예수 자체’인 셈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그가 몸소 ‘천국에 가서 보았다는’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 문제의 모든 관건은 이러한 그의 ‘천국 체험’을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받아드려야 하는데 있다. 그는 이런 ‘파격적인 체험’을 공개함으로써 이단에 가까운 취급까지 받았지만, 그의 탁월한 이성적, 학문적 배경은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결국은 역시 이것도 또 다른  ‘믿음의 문제’로 귀착이 되는 것 아닐까?

성당 미사 이후 pandemic으로 사라졌던 모든 활동들이 재개가 된 것이 제일 큰 여건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친교실에 남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따라서 예전의 ‘비싼 cafe coffee & bakery’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어울리던 사람들도 사라지거나 바뀌며 조금 허전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미사와 친교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야 바람직하기에 아무리 경건하고 성스러운 미사를 했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교류가 부족한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으니…

오늘도 미사 후 한가한 친교실에서 모처럼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따리 아가다 자매의 모습은 예외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지속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기에 기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온몸이 쑤신다. 하지만 못 참을 정도는 물론 아니다. 나는 육체적 고통을 참는 데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예측하는 고통은 잘 관리를 못하는 편이다. 왜 그럴까? 예전에는 이것도 자신이 있었는데( 특히 2010년 대에) 그것들이 점점 약화, 악화되고 있음이 분명하고, 그런 사실이 나를 근래에 많이 슬프고 괴롭게 한다. 내 딴에는 기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왜 결실과 결과가 이 모양일까, 왜?

‘집 밖으로 나가기 싫다’는 유혹, 거의 매주 일요일 새벽마다 끊임없이 받지만 그래도 가상하게 이것을 이기고 나, 우리는 ‘나아간다’. 아마도 혼자 살았으면 이런 것들,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둘이 함께 여정을 간다는 사실에 그저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자!  오늘 조금 도움을 받았다면, 어제 저녁에 가까스로 끝을 낸 ‘지겨운 일’, 그것이었을 거라고 나는 충분히 짐작한다. 나는 이렇게 요사이 ‘의지력의 약화’를 절감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지력, 희망’을 어떻게 나는 다시 전의 수준으로 회복시킬 것인가, 그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성모님이시여~ 저를 잊지 마소서, 아직도 어머님의 손길이 필요한 한심한 자식입니다~~~

주일미사를 다녀온 지금, 나는 예상한 만큼 머리도, 마음도, 몸도 가볍다. 날씨의 은총인가, 아~ 은총이다, 은총.. 어쩌면 이렇게 시원한 6월 초를 가는가? 어제의 뜨겁게 작열을 하던 태양은 어디로 숨었나. 이렇게 짙은 구름이 고맙게 보이는 ‘삼위일체 주일’의 낮, 온몸이 쑤시고, 피곤하고,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가볍게 들뜨게 하는 ‘주일의 은총’을 맛보고 있다. 물론 이런 기분이 몇 시간이나 지속될지는 물론 자신이 없지만,  후에 오는 일을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이니까…

오늘 점심 식사는 날씨에 걸맞은 먹음직스러운 ‘나마우동’… 그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곱배기’로 먹게 되었다.  감사, 감사…

이것이 웬 떡이냐? 감사합니다. 점점 더워지는 오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니… 그 동안 잔뜩 마르기 시작했던 대지와 초목들이 갑자기 힘을 얻는 것이 보인다. 감사합니다, 감사…

Last of May, Billy Graham 1973

오늘, 아니 요새 나에게 제일 중요한, 필요한 ‘성인의 오늘 말씀’, 바로  Padre Pio 성인의 말씀이 아닐지…

“Pray, hope, and don’t worry. Worry is useless. God is merciful and will hear your prayers.”  – St. Padre Pio

내가 제일 갈망하는 것은 이 중에서도 바로 hope일 것이다. 이것의 결여, 사라진 듯한 우려, 그것이 나를 제일 괴롭히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 내일, 모레 이후에 대한 희망… 왜 그것이 나에게서 부족, 아니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우려’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2010년 대를 살 무렵 나는 바로 이 희망에 의지하며 의미 있게, 힘차게, 기쁘게 살지 않았던가? 왜 바로 그것이 사라진 것,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절망을 하는 것일까?

아~ 어찌 이렇게 자주 잊는단 말인가? 1973년 6월 1일, 아니면 6월초..  정든 대한민국의 땅과 하늘을 난생 처음으로 떠나던 날… 1973년 6월 초, 어떻게 이 날짜를 잊고 살았을까? 괴로운 추억이 되지는 않았을까? 나에게는 ‘Landing 반세기’라는 이름으로 몇 년 전부터 나를 기억과 추억의 세계로 이끌 던 날, 그날이 ‘중앙학교 개교기념일’과 맞물려서 나의 기억을 자극하곤 했는데.. 결국 이날을 맞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마무리 하는 첫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또 너무나 감상적, 관념적,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지.. 정말 이제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  어떻게 이 시기, 즈음을 기억하고 넘어갈 것인가? 1973년, 1973년 6월 김포공항… 분에 넘치게 많이 환송을 해 주었던 가족, 친지들 어떻게 그들을 기리며 감사하며 추억을 해야 마땅할 것인지 정말 감이 잡히질 않는구나~ 어머니, 어머니, 엄마, 누나, 누나~~ 만 외칠 것인지…

1973년 6월 1일 금요일 전후의 고국 신문을 훑어본다. 나의 기억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시작한 머나먼 추억여행인가… 우선 Billy Graham 여의도 집회에 대한 것, 그것은 5월 31일 목요일에 시작이 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떠난 후였던 것으로 잘못 기억을 한 것이니.. 얼마나 많은 기억의 착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요일에 의한 추적에 희망을 걸었지만 역시 난감하기만 하구나… 출국하던 날 아침에 연세대를 찾았는데 혹시 그날이 6월 2일 토요일일 가능성은 없을까? 토요일에 학교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거의 확실히 가능성도…

출국하던 날 연세대 campus에서 찍은 사진 등을 살펴보며 내린 결론은 6월 2일 토요일 오후에 출국을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100% 확신은 없지만 가능성은 아주 높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1973년 빌리그레함 전도대회가 한창이던 때에 고국을 떠난 셈인데… 왜 그렇게 그 대집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을 해보니 역시 나는 그 당시에 무신론을 넘어서 아주 종교에 부정적인 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참 50년, 반세기의 세월이 나의 종교세계관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 줄이야~~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은 역시 1973년 6월 초 전후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의 신문들을 유심히 읽기도 했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시의 삶과 주변 모습들을 그려보고 상상도 하며 time machine을 탄 시간을 보냈다. 당시의 사진들도 보며, 모두들 어떻게 살았을까~ 거의 한숨을 쉬는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과연 이것이 인생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결론은: 모른다,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나의 고향? 이곳의 제2의 고향은 무엇인가?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한 삶인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지금이 아닌 옛날의 것들이고, 지금의 집과 삶은 아무리 해도 뿌리를 내릴 자신이 없는 곳이면,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느냐 말이다~~ 성모님, 모두들 어디에 갔습니까? 나를 빼놓고 모두들 어디로 갔느냐 말입니다~~~

어제 중앙고 졸업앨범을 보다가 우연히 이상한 사실을 보았다. ‘윤석원’의 사진이 다른 반에 실려있는 것 아닌가? 분명히 우리 반 3학년 8반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살펴보니 역시 윤석원은 8반의 그룹사진에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라서 곰곰이 생각하니 아~ 이 친구, 나와 같은 재동국민학교 6학년 1반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동창과 나는 개인적으로 얽힌 추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얼굴만 익숙한 정도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 궁금한 동창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는데, 역시 궁금하다, 이 친구는 어떤 삶과 인생을 살아왔을지~~

오늘이 5월의 마지막 날, 한 일도 많았지만 아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것이 왜 없으랴? 아~ 성모님의 달, 5월 성모성월~~ 이것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거의 소홀하게, 아니 거의 실패작으로 끝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올해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지내려 했는데… 결과는 엉뚱하게 흘러간 것이다. 특히 성모의 밤에 못 간 것, 아니 안 간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어쩌면 날씨가 이렇게도 나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일까? 한마디로 나를 행복하게, 기쁘게까지 하는 그런 자연환경조건의 나날이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여름’은 아직도 3주 이상 남았지만 여름의 맛을 이미 보았기에 다시 봄이나 가을이 된 착각에 빠지는 지난 나날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방을 옮기는 작업을 쉽게 만들어준 것이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또 그것을 보았다. 그것, 우리 집이 손을 잘 못보고 방치하며 살아서 이곳 저곳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고 빗물이 들어오고… 이런 종류의 꿈의 역사는 꽤 깊고도 긴 것이다. 어젯밤의 광경들은 더욱 구체적인 것으로 아예 그 ‘공포’에 잠에서 깨어나고, 결과적으로 나는 ‘만세!’를 부르는 혜택을 만끽하기도 했으니.. 왜 집이 처참하게 주저앉는 광경, 그 공포가 나에게 왔을까? 우리 집에 그런 일들이 생긴 일도, 경험도 없는데… 영화에서나 본 광경들이 왜 나에게…  집을 제대로 관리, 청소, 유지, 재투자를 잊고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이런 꿈과 무슨 연관은 없는 것일까?

비록 나의 office/study는 완전하게 ‘이사’를 했지만 그 이사 짐들, 특히 책과 서류의 진정한 처리는 아직도 나의 등 뒤에서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왜 이럴까? 하기야 제일 골치 아픈 일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책들이 분류가 되었고 garage로 물러나거나 쫓겨나가는 일을 단행하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분류’는 아직도 나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한 책과 서류를 나의 옆에 항상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남은 인생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일까? 완전한 digitizing, clouding은 실용적이 아닌 것일까? 조금 더 아니 많이 많이 간소화하게 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추억이 얽힌 많은 stuff들, 얼마큼이나 나의 주변에 놓아두고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80대, 90대를 사시는 ‘선배님들’의 경험론적 고견은 없는 것일까?

방을 바꾸는 작업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에 다시 tool time을 되찾아야겠다는 은근한 압박감을 피할 수가 없다. 우선 dining room의 dish cabinet의 배치를 원상태로 돌려 놓았다. 의외로 그것들은 laminate floor에서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거의 반년 이상 중지된 작업, kitchen under sink repair 작업인데 이것이 은근히 ‘목공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보니 자신이 별로 없어서 방치된 상태였다. 일단 시작을 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