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일기

April shower brings May…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없는 무지개 계절아..’ 

—  ‘4월의 노래’ 중에서

 

‘사월의 노래’가 서서히 사라지는 2020년 사월의 마지막 날,  시인 詩人은 이렇게 생명, 꿈, 무지개등을 노래하는데..  이천이십 년의 사월은 어찌하여 이렇게 상상도 못했던 상처[코로나바이러스] 의 기억과 추억을 남긴 것일까? 내년의 사월은 ‘사월의 노래’ 속의 모습으로 다시 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듯…

지난 밤에 또 2시간밖에 못 잤다고 실망한 연숙, 그래도 7시 30분에 깨워달라고 한 약속을 지키려 눈을 비비고 일어나 Sam’s Club으로 ‘먹을 것’ shopping을 하러 갔다.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평상시 같았으면 100% 나하고 함께 가야 하는 것이었는데… 고맙고 미안하다… 더구나 요즘에는 엄마,아빠 먹을 것 챙겨주느라 (밖에 나가지 말라고)  큰 딸 새로니가 신경을 너무 써주어 ‘늙어 가는 것’,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예상을 뒤엎고 날씨가 아주 음산하다. 거의 비가 올 듯하지만 안 내리고 센 바람은 아니지만 아주 싸늘하게 느껴지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수그러드는 그런 날씨. 연숙이 Wendy’s Dave Single burger를 먹고 싶다고 해서 혼자서 drive-in 까지 가서 사가지고 왔다. 역쉬~~  이런 fast-food 먹었던 것이 꽤 오래 전인 듯 느껴진다. 최소한 2달을 넘었을 것이다.

 

¶  COVID-19 Pandemic을 치료하는 ‘희망의 백신 vaccine’ 개발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과연 희망은 있을까… 과학과 이성에 덧붙여 자비의 성모님과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기를…  관건은 ‘국가경제 와 개인경제’, 과연 이것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것 우리는 그런대로 단련이 되어있어서 크게 걱정하지는 말자.

 

¶  ‘코로나 여가선용’의 하나로 10여 년간 질질 끌어오던 TOOL SHED가 그 모습을 잡아가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찾고 싶은 tool들을 1분 이내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오랜 만에 1970년, 50년 전의 추억을 더듬으려 LIFE magazine을 portrait mode  (vs. landscape mode) monitor 를 꺼내어 그 위력을 보게 되었다. 책이나 magazine은 portrait format으로 되어 있기에 이것이 있으면 scan을 할 때 너무나 편리하다.

 

LIFE digital copy in full on portrait mode

 

¶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로,  거의 30년 살아온 정든 우리의 subdivision 동네를 걸으면서 느낀 것은 ‘아마도’ 우리가 이 동네에게 몇 번째로 가장 오래 산 고참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이다.  손꼽아 우리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집은 몇이 안 되니까… 나머지는 모두 나중에 이사 온 사람들인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진 젊은 층인 듯했다. 그것은 평소에 school bus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알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로 모든 아이들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볼 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평소에 조용하게만 보였던 집들이, 가족들이 나와서 집 앞을 가꾸는 모습들을 보면서, 다시 바빠지는 세상이 오더라도 그런 모습이 계속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고참 중의 고참, 전 airline pilot이었던 Mr. Johnson 집의 소나무들을 제거하는 tall crane.

 

¶  얼마 전, 요새 자주 보게 되는 Roku TV에 눈에 익은 장면이 나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확히 40년 전의 Steven King 원작 Stanley Kubrick 감독 영화 psychological horror classic, The Shining, 바로 그것이었다. 나올 당시 연숙과 같이 극장에서 본  이후로는 오래 전 VHS format으로 조그만 analog TV로 본 것, 그것을 이제는 극장과 같은 화면으로 보게 된 것이다.

Story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이 영화의 cast들과 감독의 다양한 혁신적인 기법 등의 도움으로 후에 greatest and most influential horror films ever made란 극찬의 평을 얻게 되었다. 

1980년, 우리는 신혼 때 본 영화로서 추억과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이 영화는 사실 graphic한 것 보다는 psychological한 공포로 진정한 terror의 효과를 남겼다. 코로나 사태 중에 이런 영화를 보니, 현재의 virus terror를 일 순간이나마 깨끗이 잊게 되는 장점도 있었다.

 

사람의 핏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악령들린’ Hotel의 로비

호텔 악령의 영향으로 서서히 가족 살인자로 변하는 주인공 Jack Torrance

영를 볼 수 있는, the shining, 능력을 가진 아들 Danny

평화방송 매일미사 성찬례

 

¶  Virtual Holy Communion, Spiritual Communion, 신영성체?   기억을 더듬는다… 마지막으로 성체를 손으로 받아 모셨던 ‘진짜’ 영성체를 했던 것이 언제였더라… 책상 위에 있는 일지/달력을 뒤져본다. 그때는, 지금은 거의 태고, 골동품, 녹슨 느낌이 드는..  3월 14일 토요일, 동네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아침미사 때, Father Junot 로부터 성체를 손을 받아 모셨던 것, 바로 그때.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에서의 마지막 영성체는 그 보다 4일 전, ‘레지오 화요일’ 정오 미사 때, 임기를 모두 마치고 이임준비를 하시는 ‘착한목자’ 김형철 시메온 신부님으로부터였다.  그 이후로 세상은 급변해서, 한번도 성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평소에 성체신심이 그렇게 출중했던 것도 아닌데, 이제는 사실 그리워지기도 한다. 아니 그리워 해야 한다는 조바심도 난다. ‘성체에 현존하는 예수님’ 은 가톨릭 교리의 핵심부분이다. 동물적오감 五感으로 믿기건 안 믿기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 ‘성체성사’를 못하게 되므로, 해괴한 전염병 때문이 이 가톨릭 핵심교의가 치명타를 입는 것인가?

그 대안이 사실은 교의적으로 타당한 방법이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 동안 이렇게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뿐이다. 미국 예수회 Society of Jesus의 월간지 America Magazine 에 비교적 자세히 설명이 된 기사가 있었다. 2020년 3월 31일자의 Colleen Dulle 의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Coronavirus has cancelled public Masses. How can we participate in our own homes? Ms. Dulle 은 본인이 겪는 경험과 더불어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집에서 참례하는 미사를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가를 survey하고 있는데 그 중에 미사의 정점, 절정인 성찬례와 영성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신령성체(신영성체) spiritual communion 은 성찬례를 갈망하며 드리는 기도의 형식으로 중세로부터 내려온 가톨릭 전통이며, 이 가르침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 St. Thomas Aquinas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영적 spiritually‘인 것과 ‘물질적 physically ‘인 것 두 가지가 있음은, 지나간 몇 세기 동안에 대부분 신자들은 일년에 몇 번 정도 실제적 영성체를 했고, 나머지 주일에는 신부가 성체거양 聖體擧揚을 할 때에  ‘영적’인 영성체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전통에 근거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영상에 의한 성체거양 시에 ‘합법적’인 영성체를 할 수 있음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회전통이 있음을 알고 매일미사에 참여를 하는 것,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미사 ‘시청’시 마음의 자세가 전혀 다른 것이다. 수수방관하는 입장에서, 시청자의 입장이 아닌 실제 미사와 깊숙이 연대관계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들은 사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없었으면 죽을 때까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조국 대한민국의 가톨릭 계, 문화, 흐름, 맥박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매일 바뀌는 평화방송 미사 주재 신부님들, 대부분 어쩌면 그렇게도 ‘애 띤 얼굴’들일까.. 감탄을 한다. 대부분 노인사제들인 이곳의 환경과 너무나 대조적이 아닌가? 거의 손자들 같이 느껴지는 이 사제들, 참 대한민국의 수많은 순교성인들이 뿌린 씨앗일까… 복 받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 요새 집의 뒤쪽, yard에서 간간히 목공 일을 하며 라디오 뉴스로 조지아의 코로나 사태에 관련된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이발소 같은 곳이 문을 열기시작 했다는 소식이었다. 성급한 느낌은 떨칠 수는 없지만 다른 쪽으로는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평상으로 돌아 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과학적’으로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이것도 이해는 된다. 먹고 사는 것, 그것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문제를 피부로 못 느껴도 머리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 내친 김에 서둘러, 최인호의 1990년대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필사를 바로 전에 끝냈다. 지난 9일부터 시작한 것, 하루 평균 20 쪽 이상을 필사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거의 매일 했으니까, 이 평균은 정확할 것이다. 신 神 들리듯 한 기분으로…   읽으며 제일 공감이 안 갔던 것 중에는 그 놈의 ‘초등학교’라는 어휘였다. 시대적, 상황적으로 어쩌면 그렇게 둔감한 표현을 썼을까… 하지만 혹시 이것 편집자들의 횡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추억은 역사다. 역사를 소급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수정하는 버릇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한마디로 그 단어, ‘초등학교’는 나의 기분을 크게 상하게 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수필집에서 그녀는 추억의 창경 ‘국민학교’임을 분명히 회고하고 있다. 이제 이 책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과 추억을 정리하고 싶다. 어떻게?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배경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라서, 소재는 얼마든지 널려있는 것이다.

 

¶ 날씨도 꾸물거리는 아침 무렵에 ‘걷기는 뒤로 미루고…’, 하다가 오늘은 못 걸을 가능성이 있다. 정말 비가 쉬지 않고 나리던 날 빼고는 99.99% 우리는 동네 trail을 걸었다. 정말 이것은 최고의 기분전환, 운동 까지 되는 완벽한 우리의 일과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을 까? 또 부른다, 백년설의 나그네 길,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 일요일 아침이 빨리 지나갔다. 하지만 벌써 1. french toast아침 먹고, 2. 온라인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를 10:30분에 봉헌했고, 3. 곧바로 걸으러 나갔다.  이 정도면 일요일의 start가 꽤 좋았던 셈이다. 할렐루야!

미사 후 공지사항에서 ‘아틀란타 대교구의 공식적 미사는 5월 말까지 계속 중단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각보다 좀 긴 느낌도 들었다. 사업체들이 조금씩 open을 하는 마당에 한 달은 긴 것이다. 하지만 이유는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성사생활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그것을 가늠하여야 할 듯, 특히 레지오는 특히 우리에게 큰 관심사이지만 현재로서는 조금 먼 곳에 있는 듯 느껴지기만 하니… 이러다가 레지오 마리애의 위상이 크게 떨어지지나 않을지 그것이 우려가 된다.

 

¶ 레지오 꾸리아에서 개인연도 공지가 왔다. 주일 온라인 미사 중에 연미사 명단에서 들었던 인천교구의 어떤 몬시뇰 monsignor 이었는데, 알고 보니 하필이면, 2017년 가을에 우리 레지오를 엉망으로 짓밟아 놓고 사라진 어떤 ‘미친x  단원’의 작은 시아버지라고… 허~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개인적인 상처도 그렇지만 어떻게 충성을 맹세한 성모님의 군단을 그렇게 짓밟을 수 있는지, 또 일거리가 생겼구나… 어찌할 것인가? 오늘 미사 강론에서 그렇게 또 ‘용서 용서, 화해’를 강조하던데…  하지만 그 미친x은 ‘공적인 용서’는 가능할지는 몰라도,  사적인 진정한 용서는 99.9999% 불가능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가급적 잊고 살기로 했다.

 

Ubuntu Linux ecosystem으로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 6년 이상 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 ESP32의 매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고, command line의 위력도 다시 찾게 되었다. 이것으로 나의 여가시간이 100% 활용되면 얼마나 좋을까?

꽤 긴 시간이 걸렸다. Ubuntu upgrading (18.04 LTS에서 20.04 LTS로) 하는 것.. 왜 내가 이것을 하고 있을까? 꼭 필요해서였을까? 물론 아니다. 시간을 죽이려고?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그저 신나고, 좋고, 흥미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머리를 쓰는 것이 그 흔한 치매방지 하려고 하는  웃기는 퀴즈 같은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지난 밤에는 어깨가 쑤시고, 꿈까지 그것도 생생한 것들을 많이 꾸었다. 하지만 일어나면 급속도로 사라지는 그런 것, 아쉽다. 예전에는 기억에 꽤 남기도 했는데… 이것도 나이 탓인가? 하기야 요새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 익숙한 단어들이 생각이 안 나는 것, 조금은 나를 무섭게 하지만, 아닌 척 하며 살기로 했다. 어쩔 것인가? 도밍고 형제처럼 그 웃기는 ‘퀴즈’를 풀며 시간을 보내라고? 나는 절대로 그렇게 머리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에게 머리를 쓰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Ubuntu Desktop LTS 20.04 on VirtualBox

결과적으로 Ubuntu 20.04 desktop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모든 것들이 더욱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이 정도면 매일 매일 쓸 수 있는 main desktop pc로서 큰 문제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killer apps, 나에게는 역시 Microsoft Office, OneNote인데 이것을 대체할 만한 open source app은 없는 듯 보인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VirtualBox에 의존하며 관망을 하는 입장이다.

이번에 upgrade를 하면서 골치를 썩은 것, 시간을 낭비한 것은 의외로 ‘한글 system’에 관한 것이었다. 한글의 위력인지 이제는 한글 쓰는 것 거의 문제가 없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글입력 system에 아직도 작은 glitch가 있는지,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야 겨우 한글입력이 가능해 졌다. 이것이 바로 시간낭비의 좋은 예가 아닐까? 해결책은 역쉬~~~ 겨우 2 lines의 command-line solution 이었다.

ANNOYING!!! IBUS-HANGUL NOT SHOWING!

UBUNTU IBUS-HANGUL SETUP: -> it works now! on Ubuntu 20.04

sudo apt-get update -y

sudo apt-get install -y ibus-hangul

 

 

거짓말 같이 평화로운 2020년 4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  구름과 해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살살 불더니 해가 떨어지면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눈치를 미리 채고 backyard의 picnic table의 파라솔을 접어 놓았는데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심하게 바람이 분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것이다. 다행히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아서 밖에서 걷거나 일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이런 ‘비상적’인 날씨를 무척 좋아하기에 속으로는 쾌재를 부를 정도다.

4월도 거의 저물어 간다. 벌써 마지막 토요일을 맞은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뉴스가 온통 우리의 머릿속을 맴돈 지도 2달에 가까운 것이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 이것이 new normal이 아니고 그냥 normal인 것처럼 느껴진다.

 

¶  코로나19, COVID-19, 이름도 부자연스러운 이것, 언제까지 우리의 주위에서 맴돌 것인가? 장기적인 여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 가족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모든 (사회) 공동체들, 특히 신앙공동체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지역, 나라 아니 나아가서 NOOSPHERE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우선 과학적으로 알고 싶고 다음은 영적인 눈으로…

 

나를 ‘살려준’ Tech Guy podcast, 과학적인 코로나 뉴스를…

 

이것에 관한, 요새 나의 안도감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은 바로 tech-guy style podcaster들이다. 코로나19 뉴스는 이들의 의견으로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데 이것이 (빠가, 또라이) 트럼프의 웃기는 발언들이나, major news outlet들의 조금은 과장된, dramatic한 style들보다 훨씬 믿음성이 있고 공감이 가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tech news podcast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로 코로나 사태의 모든 것을 가늠할 것이다.

 

Backyard에 있는 open shed를 tool, workshop shed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  어제 밖 backyard에서 일을 하며 라디오로 조지아 주의 코로나19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이발소 같은 곳이 문을 열기시작 했다는 소식이었다. 성급한 느낌은 떨칠 수는 없지만 다른 쪽으로는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평상으로 돌아 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과학적’으로 아직 business 를 열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이것도 이해는 된다. 먹고 사는 것, 그것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문제를 피부로 못 느껴도 머리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  오늘 우리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레지오의 꾸리아에서 한국 서울 세나뚜스 단장의 글을 forward 보내왔다. 레지오 마리애 잡지에 난 기사를 보낸 것인데,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레지오의 시련, 도전, 그리고 희망에 관한 메시지였다. 교회전체가 겪고 있는 시련과 도전에 못지 않게 레지오도 앞으로의 운영과 선교 방향이 미지수인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ing’ 와 레지오의 (대인 선교) 활동방식을 어떻게 지혜롭게 절충하느냐 하는 것인데, ‘쫄짜’ 단장인 나도 요새 이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다. 이것이야 말로 올해 우리들의 풀어나가야 할 제일 큰 도전인 듯하다.

 

¶ 故 최인호 (연세동문선배, 작가) 의 1990년대 말 자전적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 요새 신들린 듯이 필사를 하며 읽고 있고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읽으며 생각하는 것, ‘젊은 날의 약속’ 이 제목인 데.. 이것을 아마 언젠가 한번 읽었고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다. (서울)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던 이야기였다. 당시에 나는 ‘꿈속에서나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리운 동창회 광경이었다. 한마디로 슬프기만 했던 심정이었다.  이 글은 그가 50세가 넘으며 쓴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들 그 당시에 벌써 ‘늙음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  어제 일기예보는 거의 정확했다. 아침 9시경에 드디어 꾸르릉거리며 새카만 하늘로부터 빗물이 쏟아질 태세를 잔뜩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열대성 기후 같은 소리지만 밖에 나가보니… 이건 아주 싸늘한 공기였다. 오늘 하루 종일 온다고 하는 비, 내일이면 개일 듯…  갑자기 초록색의 농도가 진해지는 뒷마당을 보니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로 시작되는, 김대붕 선생님의 추억이 어린 ‘4월의 노래‘ 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제 4.19 학생혁명의 추억도 색깔이 바래지고, 모든 것들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Tobey Trail, 2년 전 떠난 나의 분신 dog, Tobey가 묻힌 곳으로..

 

¶  일요일마다 오랜만에 이영석 신부님 얼굴을 ‘화면’으로 ‘제 시간’에 보게 되는 것, 솔직히 즐거운 일이다. 가급적 주일미사 기분을 느끼게 해 주려는 ‘생방송’ 미사, 얼마나 멋있고 효과적인가? 신부님, 정말 정말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편한 곳에서 편하게 미사 봉헌하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국본당 도라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우리에게는 거의 순례자적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곳,  예의 주일 교중 미사 YouTube Live stream 으로 주일미사 참례를 마치며,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우리 신임 주임신부님, 정말 멋진 사제로구나 하는 것. 처음보다 더욱 이곳에 적응하며 잔잔한 빛을 발하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어떻게 그렇게 ‘양떼들, 전 신자들’의 고민과 관심에 공감, 동참하는 것일까… 그렇다. 진정한 목자라는 것은 이래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의 공지사항으로 알게 된 것, 궁금하던 것,  언제 아틀란타 대교구의 미사가 재개 되는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결국은 ‘무기한 미사 중단’이란 답을 듣게 되었다. 우선 당분간 우리의 적당히 적응된 daily routine에 변동이 없는 것은 마다할 것은 없으나, 이것 좀 이 지역의 코로나 사태가 이 정도인가 하는 의구심과 걱정되는 마음은 떨칠 수가 없다.

 

¶  요새 열심히 읽고 있는, 연세대 동문선배, 최인호 님의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흡사 나의 분신, 아니 다른 이상형이 쓰는 듯한 그런 감정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류의식’… 이것이야 말로 지금이라도 찾고 보는 보물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벌써 반 정도 독파를 하는데, 이 수필에 열거되는 각가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나의 추억과 생각을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야무진 생각까지 치솟는다. (또 다른 서울고교 출신) 인호(형), 고맙습니다!

 

¶  어둠 속에서 central heating의 저음 소리를 들으며 침대를 기어 나오면 또 습관적으로 ‘성모님, 하루 또 부탁합니다!’. 생각보다 싸늘한 날로 시작되는 모양, 비가 완전히 그치지 않은 모양으로 그래서 더 춥게 느껴지고 아래층에도 히터가 요란하게 나오고 있다. 그래, 4월에도 이렇게 추운 느낌이 있었어… 하지만, 곧 따뜻해질 거야…

곧이어 월요일 새벽을 알리는 trash truck 요란한 저음의 진동, 또 한 주일이 시작되는구나… 저 청소부 아저씨들, 가랑비를 맞으면서 거의 로봇처럼 일을 하는데,  저들이 요새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시켜주는 ‘천사’들이 아닐까?

 

¶  어제 어떤 자매님이나의 blog에서 성녀 파우스티나 Faustina 의 冊 ‘자비는 나의 사명‘을 smartphone에서 볼 때 글자를 더 크게 볼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이 분야는 나의 약점이다. 나의 브로그 는 사실 작은 화면을 의도적으로 염두에 안 두었다고나 할까… 커다란 screen위로 멋지게 design된 것으로부터 ‘초라하게 작은 창’으로 그것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이게 한단 말인가? 이런 추세가 시작되면서 이렇게 ‘싸가지 없게’ 걸어가며 webpage를 보는 것을 상상하며 ‘치를 떨었다’. 하지만 역쉬~~ 세상은 나의 뜻대로, 나의 마음대로 가만히 있어주지 않는가? 더 많은 사람들, 주로 ‘게으른?’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 어쩔 수가 없다.

부랴 부랴 나의 phone으로 나의 website를 보니, 요지부동, 전혀 글자나 화면의 모든 것들을 크게 작게 할 수가 없다. 다른 site들은 손가락 두 개로 pinch-zoom 자유자재로 크기가 control이 된다. 왜 그럴까? 나의site의 technology가 또 뒤쳐진 것인가? 그렇다. 나의 것도 기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여야 하고 (선교의 차원), 이 문제를 풀어보자.

오늘의 pop project, pinch & zoom function on touchscreen device… 결국은 한가지 방법을 찾았다. 문제는 나의 Artisteer theme 들의 <head> tag에 있는 viewport meta data 에 있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는 이 head meta tag을 바꿀 방법이 한마디로 더럽다는 것이다. 일일이 server에 이미 있는 theme folder에 가서 header.php 를 reedit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바꾸어서 test를 해보니 정말 와~  pinch & zoom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급할 때 글자나 모든 것들을 크게 볼 수 있을 것이다.

Code:

<meta name=”viewport” content=”initial-scale = 1.0, width = device-width” />

 

 

Omega Seamaster, ticking & live again!

 

¶  Omega ‘wrist’ watch: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shelter-in-place 의 결과로 수난을 겪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의 손목시계였다.  Pandemic 전의 ‘정상적인 생활’에서 나는 이 손목시계를 아침에 꼭 끼고 외출을 하였는데 외출이 거의 없어지니까 이것의 ‘죽어버린’ 것이다. 40년 전 결혼선물로 받았던 이 Omega Seamaster, 결혼 초에 쓰다가 값싼 Timex 같은 것 때문에 보석상자 속에 보관을 하였던 것을 몇 년 전부터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계는 automatic이라서 어느 정도 움직여 주지 않으면 서버리는 불편함이 있었기에 사실 실용성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때는 Electric motor를 사용해서 움직여주는 gadget을 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사치다.

요새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아하! 아침에 일과를 시작하면서 그것을 손목에 차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  그래서 집에서도 오전 8시에 꼭 차고 오후 5시에 벗는 습관이 지금의 코로나사태의 선물로 남게 되었다.

 

어제는 조금 변칙적인 날인가…  평소에 아침잠을 즐기는 연숙이, ‘새벽’  7시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부리나케 차를 몰고 아침 8시에 문을 연다던 도라빌 Doraville H-Mart로 간 것이다. 무엇을 sale을 하는지 모르지만 집에 있는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가보니 9시로 시간이 바뀌었다고 울상, 결국은 기다리다가 장을 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모든 하루 일과가 조금씩 늦게 진행되는 하루가 되었다. Grocery shopping이 거의 모험이 된 듯한 요즈음, 다시 깨닫는다. 아… 먹는 것이 이렇게도 중요한 의무요 책임이었구나…

 

‘연세대 선배, 인기작가’ 고 故 최인호 님의 ‘필사’ 중인,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를 읽으며 지금은 ‘아버지 상像’에 대한 글을 읽고 있다. 어찌 나의 아버지 상에 대한 의견이 없겠는가… 자상한 아버지의 함정, 단점, 허구성이랄까… 그도 아마 자상한 아빠였을 듯 보이지만 자책적으로 너무 감정적이라고 했다. 그런가, 바로 그것이다. 자상한 것은 감정적이라고…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오히려 엄격한 것이 낫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니 공감이 간다. 우리 아이들도 그 집의 애들과 비슷하게 느꼈을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최인호 님와 비슷하게 나에게도 본받을 만한 아버지상을 배울 여건이 아니었지 않은가? 곧바로 나의 입에서는 자동적으로 ‘김일성 [왕조] 개새끼.. ‘소리가 다시 나온다.

 

어제 저녁부터 ‘레지오 공동배당’ 묵주기도를  5단으로 시작을 하였다. 감개가 무량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과 생각에 잠긴다. 이 공동배당…을 얼마나 오랜 세월 나는 ‘신 들린 듯’ 하였던가…  이것을 거의 한 달 이상 못하며 살았다. 아니 거의 잊었다. 일주일에 거의 90단 이상 씩 하던 것인데… 이것은 안 된다. 안돼…. 무조건 시작하자. 어제는 5단이고 오늘도 5단, 아니면 10단… 이것의 ‘위력’을 나는 잊었단 말인가? 무조건 무조건 하고 보자.

 

 

흘끗 본 일기예보대로 정확하게 오늘 이른 새벽에 꾸릉거리면 잔잔하게 비가 내렸다. 어제 gutter를 청소한 후라서 조금은 기분이 가볍다. 그래 이것은 은혜로운 비라고 할 수 있다. 꽃가루 특히 송학가루 앨러지 의 귀찮음을 덜해주는 것이리라.

 보니, 토요일이다. 하지만 토요일이 무슨 큰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요새는 정확하게 모든 요일이 똑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예외는 일요일 주일 온라인 미사와 쓰레기를 버리는 일, 그것 뿐이 아닐까? 예전의 규칙적인 요일 별 외출, 활동이 제로가 된 상태가 이런 것이구나. 재미있기도 하다.

날짜를 보니… 18일… 그것도 4월 18일. 그렇다 내일은 4.19가 아닌가? 요새 대한민국에서 4.19는 어떻게 기억이 되고 있을까? 물론 googling을 하면 조금은 알 수 있겠지만 그런 overinformation 은 피하고 싶다.  99.9% 불필요한 그야말로 trash급일 것이다.  나는 나만의 4.19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싶다. 역사는 계속 흐르고 보는 관점도 변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남은 4.19의 기억은 절대로 안 변할 것이다.

 

몇 달 만에 내가 우리의 점심을 준비하였다. 아침은 통상적으로 내가 준비하지만 점심은 아직도 우리의 ‘주부’인 연숙이 긴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다. 하루 아침과 늦은 점심 두 끼를 먹기에 이 점심은 사실 다른 집에 비해서 훨씬 양과 질이 높다.

지나간 십여 년을 넘게 내가 만드는 음식 중에, 아침에는 pancake 그리고 점심에는 vegetable/ground beef stir fry, 우리는 그저 간단히 ‘소고기 볶음’이라고 하는,  이 두 가지는 이제 완전히 감이 잡혀서 눈을 감고도 만들 정도가 되었고, 맛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평은 모두 연숙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같이 준비하고 같이, 편하게 먹는 두 끼의 식사는 정말 이런 코로나 사태 같은 비상시국에는 더욱 더 빛을 낸다. 동시에 이렇게 평화스럽고 맛있는 시간에도 걸리는 것은, 역시 현재 고생하고 있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고, 그저 모든 것이 순리대로 하느님의 섭리대로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코로나 사태의 희생제물, 동네 성당의 sanctuary가 굳게 문을 닫았다

코로나 사태의 선물: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보이게 늘어났다

 

¶  그제의 열대성 stormy day 이후에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 바람이 그렇게 싸늘할 수가 없다.  이른봄에  흔히 보는  바람이 싸늘한, 하지만 찬란한 태양이 작열하는 날, 무엇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달래기 위해서 거의 한달 여 만에 동네본당 Holy Family성당으로 차를 몰았다. 차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 거의 10년 가깝게 정든 이 차길, traffic은 한산하였지만 계절의 신호는 현 사태와 전혀 상관없이 뚜렷하였다.

 

8여 년 동안 거의 매일 drive하면 다니던 Robinson Road, 한 달만에 주위의 초록색이 더욱 진해졌다

 

비록 공개적 모임은 없지만 그래도 성전 내부 자체는 open한 것으로 안 우리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신부님 차가 보이길래 반가웠지만 성당 입구는 굳게 닫혀있었다.  한 달에 한번씩 봉사단체에 food donation하려고 가지고 간 것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데 누가 나오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물건을 전해 주고 대성전 sanctuary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으니, 모두 close되었다고 알려준다.

 

14처, 십자가의 길로 들어가는 입구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은 성전의 문은 열어놓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곳은 닫았을까… 아쉽기만 하다.  대신 성당 뒤쪽의 수풀 속에 마련된 14처, 십자가의 길 station of cross 을 오랜만에 걷고 나왔다.  돌아오면서 다시 느낀다… 이런 상태로 더 오래가는 것, social distancing 은 흔히 아는 것같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사람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에 틀림이 없다는 엄숙한 사실을.

 

Thanks, Uncle Benjamin!

 

¶  Stimulus Gift: 평상시 오늘은 일년의 Tax Return을 하는 마감날이었는데, 그것이 코로나 사태로 7월 15일로 연기가 되었다.  IRS (Internal Revenue Service)에 세금보고를 하는 대신에, 오늘 Bank account를 보니 IRS에서, 예상하던 대로 deposit한 돈이 얌전히 들어와 있었다. 결국 지난 몇 주 동안 congress에서 그렇게 토론하던 것이 현실화 된 것이다. 완전히 정지된 경제활동으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Stimulus Package, 이것은 한글로 어떻게 표현하나… 요새는 이런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고등학교 수준의 한글단어가 머리에 맴돌고 있는데 이런 전문용어는 무리다. 좌우지간 ‘경제활동 촉진을 위한’ 그런 정부지원책이 하나다. 2 Trillion Dollars, 이것은 그러니까… 2000, 000,000,000 dollars! 20조 달러인가… 이번에 완전히 all stop된 경제활동을 그야말로 구원하기 위한 단기 대응책이다. 이것이 모자라면 같은 규모의 2차 지원을 할 모양이다. Dollar는 미국 돈이니까, 하기야 찍어내는 것은 우선 큰 문제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 모두 자가적 빚이 아닌가? 누가 갚을 것인가? 아마도 우리 딸들의 세대가 아닐까…

 

¶  Plateau, 코로나19의  최악 사태를 지나가며:  비록 어제부터 코로나에 대한 ‘난잡한 뉴스, 선동적인 것들’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지만 아주 믿을 만한 단편 소식은 접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블로그 source가 하나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retire한 대학교수 출신, computer scientist, engineer  Michael Covington 박사, 그의 블로그 로부터 나는 간접적으로 이 미국과 이 조지아 지역의 코로나 확산뉴스를 접하는데, 이번의 post 에서 그는 현재의 코로나 pandemic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었다.

 

1.  What is vital is to stay in touch with reality. Coronavirus is not a piece of political ideology that somebody made up. It is a real, physical enemy. Those deaths in hospital corridors are real. Dr. Fauci really does know more about viruses than you do. And so on.

Our enemy is speculation — people who can’t distinguish “it might be” from “it certainly is,” and who promote unconfirmed possibilities as if they were confirmed truth. See also (9) and (10) below.

현실을 직시하는 것,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상적, 정치적이 아니고 물리적인 적이다. 병원에서 수없이 죽어가는 것도 사실, Dr. Fauci (NIH 전염병, 바이러스 책임자) 가 우리보다 이 병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음도 사실이다. 우리의 적은 근거 없이 추측하는 것, 실증되지 않은 사실을 부추기는 것들이다.

2.  Ignoring the virus was never an option. We’ve had 22,000 deaths. Would you rather have had half a million? You could easily have had that, if there had been no restrictions.

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시하는 것, 언어도단이다. 22,000 명이 벌써 죽었다. 50만 명이 죽는 것, 사회적 제한 조처가 없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3.  Our restrictions have paid off. Quite possibly, hundreds of thousands of lives have been saved. The national new-case rate peaked a few days ago. State by state, some states are going to have much later and lower peaks, which is a good thing.

[Afterthought: Models may have been inaccurate, but there’s no denying that the virus spread a lot less with our lockdowns than it would have without them.]

이런 사회적 제한조치는 성과가 있었고 수십만의 생명을 보호했다. 확진자의 수가 이제 고비를 지나고, 각 주에 따라서 늦게 완만한 고비가 올 것인데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바이러스 확산 정도는 확실히 사회적 제한, 봉쇄조처와 비례하고 있다.

4. The virus would have damaged our economy no matter what we did (even if we had ignored it and just let a lot of people die). The reason you didn’t hear economists objecting to those stimulus payments is that knowledgable people recognized that a rise in the national debt would be better than sudden mass poverty.

어떤 조처를 취했든 간에 경제적 타격의 정도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감염자, 사망자의 숫자는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모든 시민들에게 보조금을 준 것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알만한 사람이면 모두 동의하듯이 ‘빚을 지는 것이 갑자기 모두가 가난해 지는 것보다 낫다’ 라는 논리 때문이다.

5.  Our economy can’t sustain forever what it sustained for a month. Damage to the economy itself causes deaths, not only here but (perhaps even more so) in poorer nations that rely on us for trade.

현재 몇 개월 지속되는 경제적 타격은 무기한 오래갈 수는 없다. 이런 피해는 다른 사망자를 유발하기 때문이고,  무역에 유지하는 빈곤국은 더욱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6.  We are going to have to do some kind of gradual, careful reopening of the economy, starting with businesses that don’t involve crowds of strangers.

이런 상태의 경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시 가동시켜야 한다. 특히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그런 사업, 가게 부터 제한을 풀어야 한다.

7.  With the wider availability of coronavirus tests, some experts are recommending a shift to a strategy of restricting only people who are known to be infected and their immediate contacts. I hope this proves feasible.

바이러스 테스트가 광범위하게 실시될 때, 관계자들은 감염자나 그와 접촉한 사람들만 골라서 거주제한을 하여야 한다고 권하고 있고, 이런 방법의 실행이 어렵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8.  The virus will linger. For a couple of years, we are going to have to behave as if we were in a bad flu season, continuing to take some precautions.

코로나 바이러스는 질질 끌며 계속될 것이다. 몇 년 후에는 이것도 보통 독감 같이 취급을 하며 살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 조심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9. I know you’ve heard that some people say the virus escaped from a lab in China. Please be assured that many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are looking at this, and that they know more about it than you do, and are going to pay attention. In the meantime, it doesn’t affect what we need to do going forward.

[Afterthought: The lab thing is a red herring. Even if it was just bad sanitation, it was an international hazard that came from China. Flu epidemics have been coming from China with some regularity. This can’t go on.

사람들은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의 어떤 연구소에서 새어 나온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보다는 이미 세계의 많은 정부기관들이 이것을 조사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들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알려질 때가지 우리들은 현재 하고 있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비록 이 중국 연구소 이야기는 확실한 것은 아니더라도, 중국으로 부터 출발한 많은 위험들, 특히 독감 역병 같은 것은 거의 정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는 것이다.

10. There is research on hydroxychloroquine and other drugs that might kill the virus. Please let medical research proceed, and don’t spend your time trumpeting one success story without knowing whether others have gotten the same results.

[빠가 또라이] 트럼프가 ‘자기의 직감으로’ 코로나 특효약처럼 볼 때마다 언급하던 이것 [읽기도 힘든 화학용어]은 그야말로 먹을 때 기도를 잘 하면 낫게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인데… ‘과학적’으로 확인이나 증명이 되기 전에는 선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 먹고 5년 후에 ‘확실히’ 사망에 이르면…  [이것은 나의 철저한 상상적 의역에 불과함]

 

비교적 산뜻하고 편한 마음으로 일어난 성주간 월요일 아침.. 오늘은 어떤 날이 될 것인가? 요새 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내가 바보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바로 ‘하루 또 살아보자!’ 다. 그래 하루 하루 현재를 충만하게 사는 것이 나머지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어제 성지주일, 머리에서 많이 떠난 사순절, 성주간의 느낌을 되 찾으려 부리나케 교황님의 쓸쓸하고 피곤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저려온다. 교황님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통 받는 쓸쓸한 목자의 모습이다. 그래도 우리 같은 양들은 조금 그런 모습으로 위안을 받는다. 

Palm Sunday 성지주일 일요일 낮미사, 이영석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어제 3주 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나라니 집, 산이를 보러 간 것이다. 로난, 산, 루크, 모두 조금은 아직도 생소한 느낌이지만 시간과 세월이 약일 것이다. 산이른 안고 보니, 어쩜 그렇게 귀여운지… 하지만 나는 예의 ‘참을성’을 발휘, 그저 지긋이 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나는 무엇이든지 무엇이든지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다오..

운전을 하는 것이 이때처럼 즐거운 순간이 있었을까? 흡사 새벽 3시경에 freeway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그것 빼고는 모든 산천초목이 전혀 다른 것이 없다. 빛나는 태양도 마찬가지, 모든 건물들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혼이 빠진’ 듯 보인다.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그렇고 business들도 비록 일요일이기는 하지만 달랐다.  하지만 이것도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문득, 나의 산성 山城, 나의 보배 레지오 (마리애) 를 떠 올린다. 99% 잊으며 살아간다. 나를 10년 동안 ‘구원의 뚝’ 위 로  올려 놓으신 성모님,  성모님께 선서, 맹세, 약속한 것은 어디로 갔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기쁘게 하는 것 중에 ESP32란 것, 어제 Sparkfun board 를 ‘재빠른’ amazon delivery 로 받았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올 수가 있었을까? 요새 이렇게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 customer를 상대하는 사람들, 거의 영웅처럼 보인다. 그들을 보통, 평소 때에 이렇게 감사하며 살았을까? 그들의 minimum wage, 이곳에서는 아직도 $6 이 안 된다는 사실이 더욱이 놀라게 한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래서 Bernie Sanders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번 코로나 사태를 당하고 보내면서 이런 사회적 문제와 목표가 다시 재조명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럴 때 교회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Corona Beer보다는 Heineken Beer가…

Heineken beer, 부대찌개, 알맞게 따뜻한 화창한 날씨…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우리 집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이상으로 자기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 다는 사실과 우리가 현재 시간 시간 보내는 것을 비교해서 그런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연숙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일까?

 

며칠 전부터 말썽을 부리던 bidet가 설치된 ‘나의’ toilet (stool) 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정말 신경질이 나긴 했지만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일을 벌렸다. 무언가 ‘꽈~악~’ 막혔다는 결론에서 그것을 ‘뚫어야’ 겠다 는 일념으로.. 시작했다. 호기심이 불편함을 이긴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 일을 한 결과는, 역쉬~ 냄새 나는 ‘그것’, 아마도 수십 년 동안 막혀있었던 것들이 하나하나씩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물리적’ 방법보다는 ‘화학적’인 방법이 더 빠르고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나의 bidet toilet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total plumbing & cleaning toilet stool

 

 

¶  이른 아침에 놀랍게도 wild turkey가 우리 집 정문 앞에 서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야생칠면조를 보는 것은 물론 처음이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얘가 어디서 살다가 길을 잃었나..’ 하는 지나친 연민을 떨치려고 애를 쓴다.  나중에 창문 틈 사이로 살펴보니 이미 떠난 후였다. 어디로 갔을까? 얘들은 이 동네의 어느 곳에서 사는 것일까? 왜 내가 이렇게 ‘animal, bird lover’가 된 것일까? 나는 이것도 분명히 성모님이 나를 ‘질책’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약한 것에 대한 무관심, 학대’에 대한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성모님,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나는 이미 그들을 나의 몸이라고 믿으니까요… 앞 집에 사는 Josh가 전화와 text로 친절히 알려 준 덕분이었다.

 

¶  이 조지아 지역도 드디어 어제부터 general lockdown 이 선포되었다. 우리에게는 물론 큰 차이는 없지만, 글쎄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조심조심 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일부러’ 밖에 나가는 것을 조심하라는 의도라고 생각하자. 아직도 직장이나 가게에 꾸준히 나가는 사람들, 꽤 주변이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너무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면 조금은 고개가 수그러지기도 한다. 이럴 때 재미로 나갈 사람은 없지 않을까? 설 형제와 이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Scientist correcting & teaching… whom, Stupid!

 

¶  March Madness:    3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지나간 한 달을 뒤돌아 본다. 이상하게도 빨리 지난 듯 하면서도 사실은 근래에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것은, 3월 달 이전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한가지 밖에 없다.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pandemic 그리고 pandemic …  한마디로 이것이 바로 March Madness가 된 것이다.

오늘 저녁 major network TV 로 pandemic news를 마지막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인재 人災 인가, 천재 天災 인가.. 그 중간인가.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나 처참할 정도로 심한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몸을 추스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대비할 시간이 그런대로 충분히 있었는데, ‘빠가’, ‘또라이’ 트럼프,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red button’을 누른 결과가 되었다. 부활절 이후 경제활동을 풀겠다고? 재선 再選의 유혹이 그렇게도 달콤했던가, 아니면 자기도취의 역병 疫病에서 아직도 못 깨어난 것인가?  결과론은 둘째치고,  몇 일전의 생각과 발언을 거의 발뺌으로 넘어가며,  비위에 거슬리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거의 깡패 수준의 발언을 서슴지 않으니.. 정말 우리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남미 나… 하나 같이 지도자 부재현상의 홍역을 겪고 있다.

결국 이 ‘또라이’는 4월 말까지 ‘금족령’을 발표한 모양인데, 어떻게 며칠 새에 마음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모든 과학적 자료를 듣거나 읽을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우니 아마도 밤에 자기 전에 ‘뺑뺑이’를 돌리는 것은 아닌지 우습기도 하다. 문제는 이제 정면으로 대처하기는 늦은 것 같고, 이 거대한 파도를 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인재에 가깝다. 240,000 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는 놀라운 예보는 이제 거의 실제로 다가오는 사실로 느껴진다.

 

 

 

¶  성경통독:     3월의 마지막 날,  이번 달 성경통독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올 들어서 아틀란타 순교자 본당 신자 전체가 일년에 걸쳐서 성경을 전부 읽는 것을 목표로  ‘성경통독’ 계획표를 배부하여 현재 우리도 매일 읽고 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읽는 것이 이제 거의 습관이 되었다.

오늘까지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기상 시간에 맞추어 이렇게 신약성경 전체를 읽고 있는 것이 나는 은근히 자랑스럽다. 조그만 습관이나마 내가 이렇게 습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특히 더 가슴이 뿌듯한 것이다.

‘매일 성경, 묵상글’에 꽤 오랜 동안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번에 ‘통째로’ 읽는 경험은 아주 새롭고 놀라운 것이었다. 매일 말씀, 묵상의 단편 단편의 말씀들이 앞뒤로 연결되어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살아나는 것,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점들이 하루 하루 연결이 되어서 새로운 뜻들이 너무나 편하게 이해가 되어온다.

또한 그렇게 한없이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지던 ‘성경’, 특히 신약이 어쩌면 이렇게도 짧을까 하는 오만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인류의 정신적인 역사를 만들어 왔던 ‘예수부활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짧았단 말인가 할 정도였다.

오늘로서 신약성경 마지막 ‘요한묵시록 the Apocalypse’, 그것도 마지막 부분을 끝으로 신약을 다 읽게 되었다. 묵시록에 등장하는 상징적이고 종말론 적인 이야기 중에서도  four horsemen, 그 중에서도 첫 번째의 white horse는 아마도 역병 plague 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오늘의 코로나바이러스 Pandemic 과 연관되어서 아주 실감나게 느껴진다.

내일부터는 그러니까 구약 성경을 읽게 되는 모양인데… 매일 밤 우리집의 저녁기도에서 이미 구약을 읽기 시작한 것이 꽤 되어서 조금은 덜 생소할 것이지만 미리부터 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같이 잔인하고, 반복적으로 지루한 부분들이 많을까… 아직도 의아해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뿐이다. 하지만 내일부터 다시 그것을 반복하며 읽게 되니, 이번에는 또 다른 깨달음을 기대해 본다.

 

 

¶   3월도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 3월, 특히 중순을 넘으면서 ‘전통적 기억의 단절감’을 절실히 실감했다. 흔하게 생각나던 나와 친숙하던 어휘, 단어 등등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기억력 감퇴일까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것들을 모두 가리는 또 다른 것들이 머리 속에 가득했기 때문일 것, 이라고 나는 희망적인 추측을 한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기억 상실증이라고 할까. 물론 이유는 한꺼번에 물결치듯 나를 덮친 정보의 홍수, 그것도 오랫동안 (또라이 트럼프 등장 이후) 피해오던 세속적 주류 미디어 mainstream media 로부터, 바로 그것의 위력이었다. 물론 ‘그 놈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것들이다.

 

 

작년 3, 4월의 일지 日誌달력을 본다. 올해의 것의 밑에 놓고 수시로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는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물론 1년 전의 일들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그 당시 만나거나 연락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 때 만났던 장소, 날자 등을 참고로 다시 연락하는 등 편리한 것,  탁상달력의 조그마한 일지, 메모는 이제 꽤 나의 개인전통이 되어 간다.

지금 이것을 다시 보며, 작년 3,4월의 일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건강하고, 그리운 것으로 느껴진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렇게 세상이 뒤숭숭한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Beatles의 Yesterday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작년 이 맘 때의 ‘보통, 정상, 지루한 하루하루’ 가 지금은 거의 천국처럼 느껴진다. ‘새 정상 new normal’이란 것이 작년에 비하면 거의 비상사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바로 눈 앞에서 ‘적군이 쳐들어 오는’, 실제적인 전쟁이 난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어렸을 적에는 당장 쳐들어올 것 같던 김일성 빨갱이들의 제2의 6.25의  공포에 떨었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에서도 거의 20년 전 9/11 사태도 등골이 오싹한 공포를 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먼 곳의 불’ 이라고 위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  Pandemic은 game의 scale이 완전히 바뀌어서 그렇게  간단하게 숨을 곳이 별로 없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공포다. 이렇게 ‘숨을 곳이 없다는’ 공포는 사실 아주 젊었을 때 한번 잠깐 느낀 적이 있었다. 1973년의 classic psychic horror movie였던 The Exorcist,  그 심령 귀신영화를 본 후 거의 일주일간 밤에 불을 끄지 못하고 잤다. 그때의 공포도 지금과 비슷하게… 숨을 곳이 없었던 그런 공포였다.

이번에 경험하게 된 이 ‘폐렴’ 류의 전염병, 나이와 크게 상관이 있다고 했고, 나의 나이는 이제 아주 위험한 쪽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심각하게 간주하게 되어서, ‘일부러, 자진해서’ 관심을 두고 걱정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와 모두를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급적 밖에 안 나가는 것, 그것이 알고 보면 최선의 방법이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YouTube 주일 미사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  오늘의 사순 5주 주일미사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Youtube Channel 을 통하여 ‘참례’를 하였다.  아틀란타 대교구 내의 모든 공적인 미사전례가 정지가 된 이후 대부분의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인터넷 비디오를 보며 하게 되었는데 우리 본당도 지난 주부터 시작을 해서 오늘이 두 번째가 되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 같으면 아주 힘들었을 것들이 가능해지고 교회의 전례까지 이렇게 혜택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문제는, 개신교와 비교해서, 전례의식의 중요성이다. 쉽게 말하면 개신교는 ‘강론’만 들으면 거의 다 끝이 나지만, 가톨릭에서는 ‘전례 의식’ 자체 특히 성체성사가 절정 絶頂이기에 이런 ‘virtual mass’는 교의적 사목적으로 결함이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몸을 ‘먹는’, 영성체가 문제다.  예수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  그것을 물리적으로 ‘영’하는 것이 빠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을 ‘신영성체’, Spiritual Communion이라는 기도를 통해서 보완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정식 미사라고 하기에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인가? 신부님을 big screen으로 보는 것만 해도 사실 성당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감지덕지가 아닌가?

또한 이렇게 YouTube Live로 주일미사를 가능하게 한 성당의 ‘전산팀’이 있었을 듯 한데 그들에게 뜨거운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도 현재 진행중인 코로나 사태에서 발견하게 되는 많은 ‘착한 영혼’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  결국은 올 것이 왔다. 예상했던 공식적인 발표, 아틀란타 대교구의 모든 공식적, 공적, 사목적인 미사, 성사 활동이 일단 3주간 중단된 것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일년 중 제일 중요한 사순절, 부활절을 기다리며 보내는 시기에 이것이 중단됨은 역시 (Inter) national emergency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하루 하루가 조금씩 늦게 흐르는 기분은 왜 그럴까? 쉽게 말해서 요새 내가 보고 듣는 경험들이 전혀 일상적인,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흡사 기상변화에 따른 비상사태, 그러니까 worst snow days 같은 사태를 겪을 때의 심정이다. 걱정, 불안은 물론이고 심지어 조마조마한 suspense, thrill,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조용했던 머리 속을 맴돈다. 무섭고 흥미로운 소설을 읽은 듯한 기분도 없지 않다.

우리가 이 ‘사태’를 잘 대처하고 있는지가 우리의 큰 관심사인데, 정말 이것은 자신이 없다. 지나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조심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은 자신이 없지 않다.

 

¶  Pray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My Jesus, I believe that You are present in the Most Holy Sacrament. I love You above all things, and I desire to receive You

Into my soul. Since I cannot at this moment receive You sacramentally, come at least spiritually into my heart. I embrace You as if You were already there and unite myself wholly to You. Never permit me to be separated from You. Amen.

 

Let nothing disturb you,

Let nothing frighten you,

All things are passing away:

God never changes.

Patience obtains all things

Whoever has God lacks nothing;

God alone suffices.

 

St. Teresa of Ávila

 

I know that it too shall pass—and in its wake shall rise the vastness of God’s love, mercy, and recovery.  – Tod Worner

 

본격적으로 시작된 ‘온라인 미사’, 이것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실행할 것인가? 현재 우리의 영적생활에서 미사의 의미는 중차대한 것이어서 조금 생각을 한다. 주일의 미사는 ‘생방송’이니까 성당에 가는 것처럼 준비를 하고 참례하면 되는데, 평일 미사는 recording 된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라 우리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면 된다. 평소의 평일미사 시간이 아침 9시이기에 가급적 그 시간에 고정적으로 하면 좋을 듯하다.

제일 큰 관심사는 역시 가톨릭 미사의 절정인 ‘성체성사, 영성체’인데 spiritual communion이라는 traditional 한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화방송의 매일미사에서는 이미 ‘신령성체’ 라는 기도문을 보여 주고 있다. 물질적인 예수님의 몸 대신 마음으로 받아 모시는 것이다.

 

¶  머릿속에 완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가득 찬 하루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불안, 공포는 물론이고 나의 신앙을 시험하는 불행한 기회임을 느끼게 되는 등, 각종 혼잡한 생각이 나의 머리를 때린다.

특히 미사가 완전히 정지되는 것, 그에 따라서 레지오 주회합 ‘출근’이 없어진 첫날은 조금 감상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10월 처음 ‘출근’하기 시작한 것, 이제까지 ‘신 神 들린 듯이’  앞만 보고 달린 것, 나는 성바오로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래 경우야, 성모님, 열심히 뛰었습니다. 앞으로는요? 결과적으로 큰 변화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특별한 날, 레지오 주회합과 그에 따른 활동[봉성체, 양로원]이 없어진 첫날 밤, 무슨 휴가라도 온 기분으로 밤 늦게까지 앉아서 online delight를 만끽하는 나, 나로서는 거의 taboo였던 10시 지난 밤 늦은 때의  2개의 doughnut과 stick coffee.. 와~~, 정말 이것은 희귀한 즐거움이다. 이런 때도 가끔은 있어야지.. 그래..

 

¶  정말 오랜만에 the TV를 본다. 테레비, 테레비.. good ole (analog) TV: ABC, NBC, CBS 바로 그것이 진짜 나에게는 미국의 믿을만한 fake news가 없는 테레비 뉴스였다. 그것만 보면 나에게 필요한 세상의 뉴스는 거의 다 보는 것이다. 믿을 만 했던, 아니 그것은 거의 다 정성을 다한 진실된 뉴스란 것을 의심치 않던 그런 시절들이었다.

세상이 그 동안, 최소한 5~10년 정도의 긴 세월, 얼마나 변했나? 오랜만에 시끄럽게 느껴지던 광고들을 다시 보니 조금은 반가움도 느낀다. 살아있는 사람들.. 시끄러운 사람들, 피곤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두 보인다. 그래 이것이 세상이었지, 잊고 참 오래 살았다.

우리의 일상 생활 일과  daily routine이 ‘공식적’으로 바뀐 이후, 현실을 실감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며 지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사실 큰 변화로 느껴진다. 혹시 이것을 계기로 내가 찾았고, 매달리는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를 하기도 한다. 나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옛날처럼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

앞으로 이 시련의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집에 머무는 것, 나에게는 사실 통상적인 것이라, 웃기지만 특별하게 변하는 것은 없다. 매일 평일 미사, 레지오 활동하는 것, gym에서 운동하는 것, 그것을 대신하는 더 유익, 중요한 것을 더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짧지 않은 동네 산책길을 걷는 것, 또한 몇 가지 완독하려던 책들이 있으니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 동안 한눈 팔던 것들, garage, hardware tools,  yard work, sparky-fun (electronics) 같은 것을 하면 더욱 좋을 듯하다.

 

Where else? from CHINA, stupid!

 

Pandemic!!!!   먼데서 난 불구경을 하듯이 몇 주일이 지나면서 오늘은 드디어 한 나라, 바티칸이 있는 이태리, 가 완전히 비상사태에 들어갔음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감염률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폐렴의 일종이기에, 우리들 senior 부류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 특히 YouTube를 통해서 피할 수 없게 들어오는 ‘가짜, 과장 뉴스’들은 심리적으로 더욱 몸을 도사리게 한다. 설상가상, ‘비과학적 또라이’ 트럼프는 연상, 걱정 없는 표정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pandemic의 양상이 아닐까…

대도시의 밀집구역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도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우리의 ‘직업’인 레지오 활동에 지장이 오는 것, 또한 밖으로 나가며 사회적인 접촉을 못하게 되는 우려, 이유가 너무나 사치스러운가 미안하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큰딸 새로니는 학교 근무를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아픈 아이들’이 생길까 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인데, 아직도 휴교의 뉴스가 없는 모양이다. 나라니와 Luke는 다행히 장기 출산휴가 덕분에 집에 있으니 큰 문제는 없는 듯.  어쩌다 세상이 이러게 돌아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할 수록 ‘중국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을 누를 길이 없다. 내가 이제까지 생각해온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적나라 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갑자기 오래 오래 전, 1665년 영국 런던을 휩쓸던 Great Plague를 피해서 시골로 도망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Isaac Newton의 얼굴이 떠오르니…

 

현재 진행중인 정말 ‘거짓말’ 같은 소설, 연극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거의 피부로 조금씩 느끼면서,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잠재의식 속에 쌓이고 쌓였던 숨은, 부정적 감정들과 나의 숨은 치부 恥部가 잠재의식의 보호벽을 뚫고 나온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나의 부정적인 중국관 中國觀 에 관한 것이고, 특히 ‘공산당 중국’을 너무나 혐오하기에 감정적 bigotry trap 함정에 쉽게 빠지곤 한다. 한마디로 이 중공의  ‘해괴한 공산당 체제’는 인류사의 관점에서 보아도 ‘필요 없는, 아니 해로운’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20세기 세계적 골치거리, 우리에게는 영구분단, 자기 ‘인민’ 수백만을 굶어 죽이는 정권욕의 괴수, 이런 ‘해로운 존재’의 문제를 크게 못 느끼고 살았지만 문제는 이들에게 ‘돈’이라는 무기를 가지게 되면서다. 그들의 무신론적 유물론과 인류보편 도덕성이 결여된 비인간적 집단에서 이런 이상한 병균이 이제까지 안 나온 것도 기적이다. 시간문제였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사태에 책임을 질 것인가?  한가지 생각나는 것, 이들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느낄 ‘도덕의식’ 이 있다면 이 ‘인재, 人災’에 대한 구체적인 국제적 보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안 되면 피해에 대한 법적 소송은 어떤가? 아마도 ‘법의 정신’이 전혀 없는 그들에겐 ‘소牛 귀耳에 경經 읽기’ 정도밖에는 안 될 것이다.

줄기차게 며칠 째 밤낮으로 쏟아지는 ‘사랑하는’ 비…

 

Relentless Rain:  올 들어 늦겨울을 통해서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아니 엄청 쏟아진다. 홍수경보는 이제 눈에 너무나 익은 듯하다. 지난 오랜 기간 겨울은 사실 통계적으로 가뭄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그야말로 끝임 없이 비가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비, 비,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그 옛날 서울 재동 국민학교 시절에 귀따갑게 들었던 가수 남해 씨의 히트 가요의 제목. 그 당시 특히 비가 올 때 그 노래를 들으면, 참 싫은 노래라고 느꼈다. 그 어린 시절에 누가 비를 좋아하겠는가? 요새라면 아이들, 집 밖보다 집안에서 시간 보내는 것 문제가 없지만 그 옛날에는 집안에서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 이외에는 할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까지도 비는 귀찮은 것, 담배연기 가득 찬 시내버스 속으로 우산을 접고 들어가는 꾀죄죄함, 특히 등산 같은 것을 할 때는 더욱 싫기만 했다. 그것이 나이가 훨씬 들어가면서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것’으로 변해 버렸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비가 ‘내려’ 오는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때는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남달리 비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애석하게도 확실히 그것이 아리송한 것이다. ‘그저, 그저’ 좋은 것이다. 굳이 찾으라면, 아마도 비를 맞지 않고 사는, 그러니까 실내 생활을 더 즐기게 되었다는 것, 그런 것은 아닐까?

 

I don’t like rain! Ozzie의 모습이 바로 그런 표정일 듯…

 

그런 것에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두 딸애들의 ‘강아지’ 두 마리를 잠시 맡고 있을 때, 비가오면 산책을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한 것, 그 두마리들을 비를 맞으며 ‘bathroom‘ backyard 로 내보내야 하는 일, 근래에 와서 자주 조금씩 새는 지붕 등등.. 하지만 그래도 나는 비를 너무나 사랑한다. 나의 장례식 때에도 비를 맞으며 운구를 하는 모습까지…

 

¶ 우리들의 삼일절:  올해도 어김없이 3월 1일을 맞이했다. 하지만 평상의 3.1절이 아닌 우리들만의 3.1 을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유관순 누나의 삼일절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3월 1일에 연관되는 우리가족, 특히 부부에게 너무나 뜻 깊은 날이 되었기에 몇 년 전부터 이날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것 보다 더 의미를 두며 지내게 되었다. 얽힌 사연들이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아직도 나는 극히 ‘사적’인 것으로 생각하기에 얽힌 뒤 배경 스토리를 밝히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가지고 밝히고 싶은 것 중에는 현재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사온 날,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미사’ 의 역사가 이날로 올해 9년째로 접어 든다는 사실, 이것은 당당하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2012년 사순절 3.1일에 첫 매일미사를 시작하게 된 것인데, 솔직히 이 ‘과업’은 우리 둘 다 생각할 수록 놀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들이 ‘운전’을 할 수 있는 한 계속될 듯하다. 100% 장담은 물론 못하지만 의지는 있다.  이 비교적 ‘사고적’으로 시작된 결정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특히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것도 ‘선택’이라면 선택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결론은 못 내린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을 이제야 믿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들의 삼일절’은 집 근처에 있는 Thai restaurant, Lemon Grass 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반드시 곁들여져야 하는데, 문제는 이 식당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이 식당은 거의 20여 년의 역사로 지역 사람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정말 주인부부 꾸준히 성실하게 service를 하는 것, 우리에게도 참으로 인상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천 이십 년? 허… 지나가는 10년 동안 부지런히 이천 십…을 되뇌며 살아서 그런지 이천 이십 어쩌구… 하는 것이 이렇게 이상할 수가 없다. 십진법의 ‘십’이란 숫자의 마술인가. 이제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천이십을 되풀이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퉈니 퉈니, twenty twenty 2020, 20/20 (2.0 시력) 로 되니까 조금은 익숙한 느낌인가…

아~  이것이 decade적인 세월인가, 10년마다 겪는 이런 것을 돌아보니 사실은 20년 전에 우리는 대사건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 1999에서 2000으로 바뀌던 그 무렵..  이런 것들로 1900년대 중반 이전부터 살아온 덕분에 이런 멋진 ‘세월의 숫자’들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올해의 섣달 그믐날 밤에는 예상을 벗어나 3-2-1, Happy New Year! Countdown 하는 요란한 모습, 그것도 뉴욕에서 생방송 하는 것 보는 것을 지나치기로 하고 자정 몇 시간 전에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원래 계획은 바쁘고 피곤한 아이들이 안 온다기에,  모처럼 우리 둘이서만  ‘멋지게’ Champaign잔을 마주치며 ‘HAPPY NEW YEAR!!’을 외치려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설날 아침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의무대축일 미사가 있기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핑계로  이 몇 년 된 전통을 포기한 것이다.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사실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3-2-1의 뉴욕의 생방송은 꺼졌지만 이번에 집 주변에서 요란하게 터지는 firework소리가 생각보다 요란하였다. 올해는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고 아주 pro들이 즐기는 모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몇 시간 동안은 아예 ‘새해의 기분’ 을 즐기는 셈치고 누워있게 되었다.

2020의 요상한 숫자의 느낌을 떠나서 심각하게 ‘늦은 세월’의 의미를 찾아 보았다. 내 나이 이제는 절대적, 긍정적으로 젊어지지는 않는다. 70대의 나이는 또 따른, 가볍지 않은 짐을 지고 나아가는 느낌, 그것은 육체적인 건강상태다. 수치상으로 나는 현재까지는 큰 issue가 없지만 머리 속으로 느낌은 그것이 아니다. 나의 나이는 나이인 것이고 그것이 정직하고 겸손한 태도가 아닐까. 겸손하게 살자, 겸손하게…

 

¶  가톨릭의 전례력으로 매년 11월은 ‘위령의 달’, 그 중에서도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써 ‘돌아가신 영혼들’을 기리고 있다. 영어로는 The Commemoration of All the Faithful Departed 라고 부르지만 간단히 All Soul’s Day, Month 로 불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죽은 영혼들’이 이 기념일들의 주인공인 것이다.

내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11월 중에 반드시 위령미사봉헌을 하게 되고, 전례행사에도 ‘죽은 영혼’들이 주제를 이룬다. 미사 중의 성가들도 거의 모두 ‘죽은 영혼들’에 관한 것들이다. 비록 일반인들에게는 11월의 절정이 ‘추수감사절’이고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서서히 내는 때이긴 하지만 가톨릭은 충실하게 죽은 영혼들을 기리는 것, 나는 너무나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보며 나는 마틴 루터가 너무나 성급하게 종교개혁을 했다고 단정하고 있다.

올해의 위령의 날 (11월 2일), 우리는 동네 미국본당에서 미사를 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은 한국 본당(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위령미사엘 갔었다. 이 미사는 마리에타 공원묘지에서 야외미사 형식으로 하기에 그야말로 ‘위령’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 후, 이 미사를 집전하는 사람이 둘루스 한인성당의 주임신부라는 것을 알고는 그야말로 완전히 포기를 하게 되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 연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그 신부가 완전히 아틀란타를 떠나면 생각을 바꾸게 될 듯 하다.

 

 

¶  위령의 달을 지내면서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두 죽음’을 접하게 되었고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놀라움은 위령의 날 미국본당에서 알게 된 어떤 Hispanic 형제님의 죽음이었다. 매일 아침미사에서 보고 알게 된 이 형제님이 갑자기 지난 일년 동안 돌아간 신자들의 명단 사진에 오른 것. 위령의 날에는 지난 일년 간 선종한 신자들의 이름과 사진을 보여주며 신부님이 일일이 이름을 부르고 종을 친다. 이 형제님은 나이는 비록 나와 비슷한 편이겠지만 아주 건강한 편이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것, 우리는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우리의 놀라움은 사실 컸다. 소문에 의하면 ‘갑자기 쓰러진’, 그러니까 아마도 심장마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한다.  선종소식도 못 듣고 장례식도 못 알았기에 우리의 놀람이 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놀람 중의 놀람은 며칠 전에 일어났다.  Roswell Nursing Home에서 우리 부부가 레지오 단원으로 몇 년간 방문하며 알게 된 한국사람 유학남 형제님, 나보다 5 년 위이신 치매성 환자인데 정신질환 을 빼면 이분은 사실 나보다 더 건강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치매병동의 갑갑한 분위기에서도 항상 복도를 배회하며 ‘집에 가야 한다고’ 하던 이 형제님이 언제부터는 확연히 조용해지고 방에만 머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방문하면 방에서 차분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얘기가 잘 풀리면 가끔 ‘이분이 정말 치매환자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거의 정상인처럼 말씀을 하시곤 했다. 서울 아현동 철물점도매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 동양극장 주변의 이야기들, 독립문파 깡패, 부통령 이기붕 집의 추억 등등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나는 그런 옛이야기를 나누면 아마도 서울에서 이분을 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에도 빠지곤 했다. 문제는, 그 옛추억은 100% 논리적이고 실감나는 것들이었지만 지금 현재의 본인의 상태는 거의 모르는 듯 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치매환자는 다 이런 식인가?  나는 이 형제님을 형이라고 불렀는데 얼마 전부터 나는 이 ‘형’이 나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게 되는 이상한 불길한 ‘예감’이 들곤 했는데 나의 우려가 갑자기 극단적인 현실이 되었다.

이 날도 평소의 routine대로 아래층 접근제한이 된 병동엘 내려가서 습관적으로 이 형제님의 방을 노크를 하고 들어가려 하니 옆에 있던 staff들이 와서 ‘무조건, 집에 연락을 하라고 한다. 표정들이 아주 심각하고 불친절한 느낌마저 들었다.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하니 형제님의 사위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고 곧 바로 어제 밤에 돌아가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뒷통수를 꽝… 하고 맞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정신질환이라고 해도 육신은 정말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아무런 불길한 전조 前兆 없이 그렇게 숨을 거두셨을까…나이도 팔십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망각증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곧바로 사위분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고 ‘리 장의사’에서 고별입관예배 공지문을 받았다. 가족이 개신교에 다닌다는 사실은, 한때 병실 벽에 붙어있던 <아틀란타 한인교회> 달력을 보고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가족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idea가 없었다. 장례식에 가보니 역시 개신교회예식으로 준비가 되어있었고 가족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비교적 단란한 대가족이었고 부인이신 권사님을 통해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듣게 되었다. 그야말로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고 곧바로 숨을 거두셨다는 것, 참…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가족들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들이었다.

형제님의 지나간 인생을 보여주는 각종 사진들이 screen으로 비쳐지고, 또 다른 형제님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손주들에게 그렇게 자상하셨다는 고별사를 들을 때는 ‘아현동을 주름잡던 시절’의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느낌의 형제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항상 우리는 궁금했는데 이렇게 비극적인 이유로 다 알게 되어서 허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거의 2년 동안 정기적으로 ‘꿈 같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던 추억들이 우리에게 언제까지 남게 될 것일지…

나의 기억 속, 머리 속의, 아니 바라던 가을의 느낌은 무엇이었지? 지나가는 2주 정도의 뜨거운,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나는 기억이나 기억하고 싶은 것, 아니 바라는 것 등이 쉽게 구별이 안 간다. 기억의 종류가 ‘생각’과 합쳐질 때 이런 현상이 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물질적, 기계적’인 기억은 사실 ‘정신적, 영적인 바람’과 섞이며 나타나는 것일까? 하여튼 ‘은근히 화가 나던’ 그런 시간을 견디어 냈다. 집착, 고집, 심지어 공포감.. 누가 공황장애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도 그런 것인가?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작년 이때를 계속 달력을 뒤지며 생각한다. 그렇다. 그 당시에는 그것도 ‘지옥’ 처럼 느껴지던 것들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기억으로는 그렇게 나쁜 것들이 아니었는데…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도 불과 몇 달 후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 견디자.

지금은 2마리의 ‘충실한 개’가 우리와 함께 있다. 나라니가 여행을 가면서 Senate가 오고 내가 Ozzie도 오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막상 오게 되니까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일단 와서 몇 시간을 지내고 보니 역시 문제가 없다. 이렇게 우리의 무미건조한 하루 일정에 다른 것이 가미되는 것, 나쁘지 않은가?

지난 한달 간 나의 머리는 한가지 ‘사건, 시대의 변화’를 의식하며 살고 있다. 작은 딸, 나라니의 ‘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역시 이렇게 인생을 보내는 인간인가? 나의 생각을 아직도 정리를 못하고 있다. 아니 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저 우리 나라니의 삶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인정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의 도움도 별로 효과가 없는가? 그렇게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아직도 속수무책이다. 어떻게 두 아이가 모두 ‘우리의 족보’에서 완전히 떠나려고 하는가?  우리 집의, 평창이씨의 족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의 정체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왜 내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고, 나의 후손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되는 것인가? 나는 남들이 다 별 문제없이 인정하며 사는데 반하여 이렇게 지지리 늦게,  못나게 보이는 것인가? 모든 ‘도전’을 높은 곳의 뜻을 따르고 이성적으로 받겠다고 그렇게 하늘에 약속을 하며 살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벼랑으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살고 있는가? 

요새 나날을 보내면서 나는 놀라기만 한다. 어쩌면 이렇게 세월이 빠를 수가 있을까? 눈과 코 앞에서 나를 놀리는 듯 ‘용용거리며’ 그물을 빠져나가는 고기들을 보는 그런 그림을 그린다. 물론 하루하루가 허망하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지만, 문제는 거의 10+ 년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라고 절규하는 나의 하루하루 삶을,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던 나의 blog의 흐름이 거의 하루아침에 정지를 했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닐까? 가끔 오랜 기간 이 흐름이 정지한 적을 기억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은 없었지 않을까.. 이제는 조금 불안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허무하게 이 몇 개월을 보냈을까? 절대로 아니다. 다만 정기적으로 자주 ‘반성, 성찰의 글’을 남기지 못했을 뿐이다. 바로 그것 뿐이다.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것도 몇 시간 만에 해 치울 수 있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는 나도 부끄럽게 느끼고 당황하는 꿈에서 나와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 바로 ‘W. 마귀’가 나의 꿈에 너무도 너무도 가깝게 나타난 것이다. 아니 나타난 정도가 아니다. 육체적인 냄새와 정을 남기게 된 그런 꿈이다. ‘연애감정, 육체의 느낌’을 준 그 꿈을 어떻게 나는 해석해야 할까?  한 동안, 앞으로 있을 레지오 사업보고 때 ‘한바탕’ 탄핵, 성토하려는 유혹을 즐기고 살았다. ‘값싼 복수’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기도를 하는 나에게 이런 꿈으로 W. 마귀를 생각하게 했을까?… 바로 이제는, 기억이나 교훈의 가치가 거의 없는 이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제는 작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진희네 집엘 가게 되었다. 나의 ‘작은 부탁 사건’ 이후 연락을 하기도, 받기도 조금 서먹한 감정으로 세월을 보냈었지만, 갑자기 연락을 받고 이것도 ‘그런 작은 일들’ 속에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지나친 complex라고 나를 자책하기도 했고, 이렇게 어울려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최형의 70세 생일이라고 해서 그의 두 서울고 동창부부까지 모인 자리는 결과적으로 즐거운 분위기였다. 그 새로운 인물들의 인상이 상당히 좋았던 것이 큰 이유였을까? 또한 우리 집에서 모일 수 없었던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의 ‘어울림’이 안 보이는 우정을 만들었는지..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인생이다.

2019년 4월 21일… 결국은 이날을 맞는다. 4.19 이틀 뒤가 바로 올해의 부활절이 되는 날.. 어제부터 겨울로 돌변한 날씨가 아직도 요란한 heating noise로 가득하고 완전 군장 겨울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나의 모습..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는 ‘슬프기’까지 한 것은 왜…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인가? 왜 내가 이런 좋은 날에 쳐진 기분으로 고생을 한단 말이냐? 요사이 조금씩 자주 겪고 있는 이런 ‘큰 이유가 없는’ 때에 겪는 우울감, 불편한 느낌들… 오늘 아침에 일어나며.. 새삼 느낀다. 이것은 분명히 나, 우리를 시기질투하는 ‘악마’의 농간일 것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었다.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물론 확실한 것이 있는가?

왜 가장 기뻐야 할 부활절이 빨리 지나가기만 학수고대한단 말이냐? 혹시 나의 과거에 겪었던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생활태도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제일 나를 두렵고 무섭게 하는 ‘사태’일 것이다. 하지만 설마.. 나는 거의 10년 전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은 나는 다시 성모님의 무릎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성모님… 저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나를 두렵고 불편하게 하는 모든 생각들과, 그의 원인들을 치료해 주세요… 저는 그것을 현재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며 휘둘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진정한 기쁨으로 느끼게 도와주십시오… 우리 어머니, 성모님!

지난 몇 주일, blog을 안 쓰며 사는 것, 그렇게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긴 하지만 나도 이렇게 ‘변화’를 체험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의미 있는 변화가 요새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진화가 아닌 퇴화가 되고 있는 나의 ‘잇몸’들, 며칠 전에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놈’이 없어지고 나는 오랜 만에 엎드려서 잘 수 있는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의 입 속의 ‘마지막’을 향해서 계속 퇴화할 것이다. 어쩔 것인가? 어쩔 것인가? 이것은 나에게 작은 공포에 속한다. 구역모임에 의한 쓰라린 기억들도 역시 시간의 도움으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고 심지어는 현재의 홀가분함을 우리는 만끽하고 있다. 그들에게 미안한 심정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인 것이다.

몇 주일에 걸쳐서 나의 머리 속, 나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 ‘아마도 우리의, 나의 마지막 total computer upgrade’.. 나의 tech era의 석양을 장식할 수도 있는 우리의 computing, computer들,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이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나의 머리가 도는 한 이것은 나의 몫이다. 앞으로 몇 년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computer system, 물론 제일 ‘저렴하고, 알 맞는’ 그런 magic을 나는 찾고 있고 거의 마무리 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도 날짜가 빠르게도 지나가는 것일까?  놀라운 일도 아닌 것, 새삼 절감한다. 시간이 점점 빨리, 세월이 점점 빨리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하기야 지나간 주가 더 빠르게 간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의 강아지와 지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사실 다른 때보다 괴로울 정도로 ‘미리’ 신경을 쓴 것이 사실이다. Ozzie와 함께 Senate가 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결과적으로 너무나 그 녀석과 정이 들었던 사실은 즐겁기도 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때가 다가오면 그렇게도 stress를 받는 것일까? 왜? 왜? 결과는 언제나 ‘좋은 것, 즐거운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왜 나는 미리 예측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요새 나는 거의 모든 stress를 주는 것으로부터 벗어남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미리 생각했던 것처럼 즐겁지 않은 듯 하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심정, 느낌들… 조금은 나도 혼란스럽다. 이런 것들 걱정하면 살던 내가 아니었는데.. 최소한 지나간 5년 정도는?

그제는 연숙의 big event가 끝나서 서로 축하를 해며, 하나 둘씩 우리를 떠나는 ‘일’들의 ‘부담, 고통’을 기억하며 가벼워지는 어깨를 느끼고 싶은데… 생각보다 그렇게 기쁘지는 않다.

나와 하느님은 어떤 사이인가? 하느님 모르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나는 이제 꽤 깊숙이 이 절대자의 영역에 들어온 듯 한 것이다. 지난 거의 10년 동안 나는 ‘신의 영역’ 으로 한걸음 두 걸음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늦었다. 나는 나는… 이제.. ‘신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영역은 물론 그곳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지만 조금 멀고 높은 느낌도 있다.  감각적으로 나와 가깝게 있는 것들로부터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현재 아마도 나는 이 ‘새로운 것’을 못 찾고 있어서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신의 영역에 맞갖은 삶을 사느냐 말이다. 어떤 것…어떤 것… 어떤 것…

Tubi 라는 새롭고 괴상한 streaming TV에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foreign language’ 영화를 본다. 제목이 바로 illegal..  이 영화는 Belgium 에 사는 어떤 Russian ‘불법체류자’ 여자의 슬픈 이야기다.어쩌면 나는 이것을 보면서, 이렇게도 복잡한 심정이 되는가? 우선 생각나는 것, 역시 역시 나의 우리의 성모님 성모님 밖에 없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가족도 이집트에서 illegal 의 신세가 아니었던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지하에서 떨며 살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 잔발잔의 시대를 연상시키는가? 나는 그들을 위한 기도를 전혀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법의 정신이 무엇인가? 자비는 어디로 갔는가? 어떻게 ‘서류의 잘못’으로 감옥엘 가는가?

이 영화 거의 기록영화 같이 보이지만.. 하지만 fiction drama 일지도..  밤 새 ‘일어나면 다시 보아야 한다’ 라고 되뇌며, 일어나 다시 본다. 왜 그럴까? 그렇다. 이 illegal은 common criminal이 아닌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사람이야… 기본적 인간의 존중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느낌은 도망가고 싶은 그런 것이지만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극과 극, 천국과 지옥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내가 즐기는 것인가? 좋은 쪽으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자비, 사랑과 법, 정의 의 중간 단계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잔발잔과 자비에르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그 ‘신부님’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1월 31일이 되었다. 자그마치 (자그만치가 아니고 자그마치?) 지난 5년간의 Holy Family Church journal calendar를 쌓아두고 ‘심심하면’ 뒤돌아 본다. 어쩌다 이것으로 하루하루 짧은 기록을 남겨 둔 것이 이렇게 쌓였을까? 왜 나는 지나간 수십 년간의 세월을 이런 것 알지 못하고 살았을까? 나의 모든 ‘보람찬 세월’은 사실 지나간 십 년도 못 되는 기간에 보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ate bloomer까지는 못 되더라도 인생이 익는 보람을 갖게 된 것, 누구에게 감사를 드리랴… 성모님, 어머님, 그리고 천국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엄마.. 감사합니다.

조금 있으면 목요회 멤버 둘이 어둠을 헤치며 우리 집에 도착할 것이다. 연숙이 ‘신나게’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주어서 나도 기분이 좋다. 지난 12월에 와야 할 것이었지만 ‘핏대 아저씨’ 이형,  마지막 순간에 약속을 틀어버렸다. 사실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모임을 해산하게 할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설 형제가 그 동안 크게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서 그대로 ‘굴러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1월을 보내며 조금은 감회에 젖고 싶어서 이렇게 쓰고 있다. 1월을 뒤돌아보니 참 많은 일을 한 듯하다. 우선 제일 크고 중대한 일은 ‘지긋지긋’한 느낌을 주는 ‘마리에타 구역’에서 깨끗이 나온 일이다. 거의 한달 동안 고민을 하던 일이 그런대로 모두 큰 무리 없이 지나간 것, 사실 나는 꿈을 꾸는 듯한 ‘날라갈 듯한 느낌’이다. 사실은 작년 후반부를 잊고 싶을 정도로 괴로움 속에 살았다. 물론 보람도 있고, 재미 있는 것도 없지는 않았지만 ‘한 번’이면 족하다고 결론을 맺고 싶다.

2월이 되면 조금은 냉정하고 차분한 심정으로 한번 ‘계획’을 세우며 보람 있는 일들을 찾아서 연숙과 같이 풀어나가고 싶다. 비록 함박눈을 못 본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2월을 기대해 보고 싶다. 함박눈 내리는 동네 길을 따라 하늘에 있는 Tobey를 생각하며 연숙이와 함께 Starbucks 커피를 마시며 걷고 싶다.

성모 마리아, 나의 어머님이시여..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죄를 짓고 있습니다. 나도 이제는 이런 작은 거짓말을 쉽게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쉬고 싶습니다. 나도 연약한 인간중의 인간이 아닙니까? 조금만 더 쉬고 싶고, 심지어는 ‘작은 거짓말의 행복’도 느끼고 싶습니다…

오늘 예정된 성당 추모연도와 양로원 방문을 나는 ‘무자비하게, 일방적으로’ 취소해 버리고 말았다. 우선 레지오 활동을 접은 것이 죄송스럽고 그렇게 반가워하는 양로원의  ‘천’ 자매님의 얼굴이 걸린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런 slump오래 가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즐거운 게으름’은 아마도 지나간 6개월 동안에 나에게는 지나친 사치에 속했던 것이다. 꿈도 못 꾸어본 것들을 나는 즐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나에게 이런 ‘못된 사치’는 당연한 것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틀린 것이라는 외침이 울리고 있다. 어쩔 수가 없다. 나에게 게으름이 주는 평화가 지금 필요한 것이다.

구역이란 말이 주는 괴로움은 이제 나로부터 완전히 떠났다는 사실.. 그것은 다른 말로 평화다. 이제는 후회를 안 하려 애를 쓴다. 지나간 6개월의 우리의 역사는 이제 확실하게 정립이 되었다. 더 잘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선을 다 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나에게는 보람 있는 경험을 준 것, 그것이 결론이다. 이제는 잊고 싶다.

앞으로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조심하며 진정한 우리 남은 인생의 목적을 향해서 기도와 봉사로 일관되는 건강한 여생을 보내는데 노력을 하자!

레지오 마리애, 성모님의 군대, 군단.. 그냥 레지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이 ‘이상한’ 라틴어 레지오.. 는 과연 무엇인가? 아니 나에게 무엇인가?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그 동안 별로 깊게 생각을 안 했던 탓인가, 갑자기 혼란스러운 감정도 인다. 너무나 당연한, 아니 나의 몸과 같게 생각해서 그런가, 왜 이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가? 아니 조금 떨어져서 이것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이다. 조금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는 것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지나가고 있는 일주일은 거의 ‘탈출기’의 느낌으로 살았다. 조금씩 여명의 기운을 받으며 심지어 한동안 잊고 살았던 ‘깊은 평화’가 나에게 돌아옴도 느끼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갈대밭 속으로 나의 손을 잡고 이끄시는 우리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려고 했다. 결국은 잠깐의 고통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주시는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며칠을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제는 다른 도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어제 ‘레지오 단장회의’란 곳에 가서 ‘절감’을 하게 되었다. 끝난 것이 아니구나… 진짜 ‘괴물’이 창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나 할까? 아~ 이것이 올해 내가 해결해야 할 진짜 도전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나의 보금자리 ‘자비의 모후’ 가 완전히 ‘문제의 그룹’이 된 것은 이때 깨닫게 되었다. 그 동안 한마디로 너무나 방만한 태도로 살았던 것인가?  生老病死의 진화를 하고 있는 그룹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이해는 가지만 왜 내가 단장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곳이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솔직히 아직도 당황하고 실망을 하고 있다.

J 자매, 제2의 괴물로 변하고 있고 그렇게 ‘공을 들였던’ 인물 L 자매, 이제는 불쌍한 인간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것들도 안정호 신부님 말씀대로 ‘정상’이란 말인가?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나? 관심을 안 두면 되지만 그래도 나는 실망, 실망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들 생각 없이 살아간단 말인가? 어쩌면 그렇게 ‘기본적 사랑’이 결여된 것일까?

한때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때는 이제 서서히 물러가고 있고 다시 털고 일어나서 힘을 내야 할 것을 새삼 느끼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나는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기도와 기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혼란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런 시간에서 나는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다. 성모님이시여, 저를 어떻게 쓰시고 싶으십니까? 대답해주세요.

며칠 전 ‘도둑처럼’ 사온 cigar와 Canadian Mist가 이런 나의 고민을 조금은 위로해주고 있다. 너무 싼 cigar인지 전처럼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득~ 해지는 느낌은 즐길 수 있다. 2개의 cigar라서 얼마 갈 수는 없겠지만 나는 현재 ‘탈출기’의 느낌으로 살기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다시 다음의 기회를 기다리면 된다.

조심스러운 말, 방정맞은 말 미리하고 싶지 않지만 안 할 수가 없다. 희미한 아주 가느다란 ‘여명’의 느낌이 온다. 무슨 열병을 심하게 앓고 난 기분, 아니면 무언가 ‘무죄 판결’을 받은 기분.. 모든 것이 어제부터 나에게 서서히 밀려옴을 느낀다. 그 덕분에 매일 똑같은 ‘천근만근’의 몸이지만 6시 30분에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을 오늘 새벽에 재현하게 된 것이다.

2018년의 ‘쾌거, 혁명’ 처럼 느껴지는 나의 out of box 경험들, 이제는 조금 안심하고 뒤 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성모님의 손에 이끌려 나의 키 두 배를 넘는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갈대숲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나의 모습.. 5년 전 시궁창 또랑길을 따라 더러워진 어머니의 긴 치마를 보며 손에 잡혀 그곳을 빠져 나오고, 결국은 물기가 없는 뚝방길을 따라 먼 곳의 3개 산봉우리를 향해 걷던 그런 모습들.. 지금 그리워진다. 지금은 뚝방길이 앞이 안 보이는 갈대 숲이었다. 그것의 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 어찌 감회에 젖지 않을 수가 있으랴?

2018년의 후반기를 무섭게 차지하고 나의 혼신의 힘을 요구했던 ‘힘겨운 사업’들… 그 중에 하나인 구역사업은 어제로 끝맺음을 한 것으로 나는 간주하고 한숨을 놓았으며 ‘감사하는 글’을 A 자매로부터 받고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한다는’ H 자매의 글도 나를 울리게 했다. 그래.. 사랑의 힘을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었다.

우리 가정, 특히 부부의 건강 그것도 정신적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기에 큰 후회가 없다. 구역은 내가 아니더라도 굴러 가기 마련이 아닌가? 이제는 명예롭게, 부드럽게, 좋은 얼굴로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다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래도 후회를 갖지 않기로 하자. 성모님은 그래도 나를 뒤에서 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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