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giving, no turkey
Thanksgiving Song – Mary Chapin Carpenter
2010년대 마지막 해 2019년의 Thanksgiving season 를 한가하게 보낸다. 오랜 만에 진정한 의미의 휴일 같은 기분이 든다. 거의 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인가… 가족의 진화(아니면 퇴화?) 란 것이 이런 것인가? 자식들이 집을 다 떠나고 둘 만 남은 처지에 하루 종일 아침부터 부엌 근처에서 ‘궁상맞게 지지고 볶고’ 하는 모습이 이제는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거의 ‘의무적, 신앙적’으로 이곳 대다수가 하는 대로 생소하게만 보이는 터키를 굽고 거의 정해진 side dish들을 ‘만들고 먹고, 아이들이 생기면서부터는 그것의 규모도 점점 커지며 조금씩 이곳이 고향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생각으로 이날을 맞곤 했다.
아이들이 다 떠난 후부터는 아이들이 모두 모일 때와 안 모일 때가 아주 다르게 지나치곤 했다. 신앙심이 대거로 나에게 돌아오면서 이 ‘감사의 날’을 나는 조금 더 겸손하게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보며 감사할 것들의 list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그것이 나의 불찰인가…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니 감사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문제였다. 어쩌면 그렇게 큰 것, 작은 것들 고맙다는 생각 없이 살았는가.. 물론 후회거리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고마운 것에 비하면 사실 ‘새 발의 피’ 격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나, 우리의 삶이 그렇게 변한 것인가, 아니다… 생각하는 관점, 눈의 높이, 삶의 의미에 따라서 이렇게 변한 것이다. 그것을 나는 칠십여의 나이에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그리운 친구’ 양건주의 말대로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것은 과연 명언중의 명언이었다. 무엇이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었나? 나의 인생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훨씬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다…
올해의 추수 감사절은 11월의 마지막 날에 ‘거의 다 모인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나누는 것과 새로니가 정식으로 propose를 받은 것으로 나에게는 충분한 감사절이 되었다. 또한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올해의 마지막 날, 내일은 대림절 Advent의 시작으로 4개의 대림초가 성탄까지 주일마다 하나씩 더 켜지는 희망의 시즌을 기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