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의 고뇌..

이제 조금씩 밝음이 느껴지는 가.. 한 달도 더 지나갔는가.. 예기치 않게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뇌의 늪에 빠진 듯한 성탄휴일을 맞이하였던 것. 일생을 통해서 이렇게 ‘깊고 깊게’ 생각을 하며 살았던 시절이 별로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이제 이 나이에 이런 고통의 경험을 한 것, 나는 이제 크게 후회하지 않고, 나아가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고뇌 중의 고뇌는 사실 간단한 것이었다. 인생의 반려자 연숙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의 고통을 통해서 연숙과 나와의 깊은 심리적인 관계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은 간단하다. 죽을 때까지 이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부터 모든 해결책을 찾기로 한 것이다. 다음의 주안점은 ‘내가 변해야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지고 그녀를 이기게 하는’ 것, 내가 바뀌거나 바꾸어야 그녀도 바뀐다는 것, 그것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유혹은 강하다. 연숙이 이번에 구역문제에서 조금만 나를 도와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넘어서 ‘한’까지 남게 하는 것, 그것이 악마의 유혹임을 나의 머리에 각인을 하거나 수긍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성모님의 선물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 쪼잔한 것에 얽매인 것이 문제다. 조금 더 대범하게 먼 곳에서 이 ‘사태’를 보기만 했었어도 이렇게까지 나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았을 듯하다. 우리 부부의 관계가, 우리 가정이 모든 것의 우선임을 어찌 성모님이 모르실까? 우리는 ‘멋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배울 것은 배우면 된다. 

이제부터는 ‘멋진 퇴진’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이것은 거의 정치적인 영역이다. 그 동안 조금 배웠던 사회적, 정치적 방법의 각도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목적이 무엇인가? 구역을 ‘완전히’ 심리적으로 우리는 떠나면 좋을 것이다. 생각보다 심한 상처를 받은 연숙의 심정을 생각해 주어야 한다. 우선 구역’인간’들을 떠나기로 했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순교자성당으로부터 조금 더 멀어지기로 했다. 구역장을 사임하면 그것이 조금씩 가능해질 것이다. 구역장 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 구역의 경험이 복잡한 것이다.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레지오에 대한 나의 최종 결론이지만 이것은 우선 구역에서 물러나면 조금 더 시간을 버니까 …

발등의 과제는 이것이다. (1) 신부님, 총구역장에게 제출하는 ‘사직서’, (2) 구역에 보내는 ‘사임의사’ 마지막 구역소식 email (3)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일요일 점심봉사. (4)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전례봉사… 이것이 한달 동안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다.

이런 일들이 다 끝나면 우리 부부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목표를 찾아야 한다. 이대로 살기는 싫기 때문이다. 연숙도 주보와 교리반의 무거운 사슬에서 벗어나면 무언가 찾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도와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것의 한계를 내가 어찌 모르랴.. 그저 마음 건강, 몸 건강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성모님이 항상 우리를 이끄신다고 믿고 살면 된다.

성모님이시여..

어머니, 성모 마리아여, 저를 놓치지 말아주세요.. 부탁합니다. 

가볍지만 무서운 위기의식을 느끼며 연말 연시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경험은 아마도 근래에 들어서 처음 하는 것이라 신기롭기까지 한 것이다. 방심하면 나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할 수 도 있겠다는 걱정까지 들 정도다.

내가 ‘은총의 세월’을 지내고 있는 세월을 무의식 중에도 ‘셈하고, 즐긴다. 2010년 가을부터라고 생각하고 8년이 완전히 지나고 있는 장구한 세월이다. 한마디로 은총의 세월이 아닐 수가 없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안팎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신선하고 기적과도 같아서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지를 모른다. 이런 은총의 시기가 무한정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은근히 내가 죽을 때까지 가기를 바라고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커다란 나의 바램이었는가? 아니면 ‘악마’의 교란작전인가..

거대한 변화, 그것도 바람직한 쪽이 아닌 그런 쪽으로 가려는 듯한 기분으로 나는 전전긍긍하며 요새를 보내고 있다.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그것이 그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구역문제, 레지오 문제, 나아가서 나의 성당 공동체 문제… 이것들은 너무도 나에게는 이제까지 ‘두 번 생각 안 하는’ 그런 것들인데 이제는 잘못하면 모두 없어질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내일 레지오 주회가 있어서 모처럼 묵주기도 20단을 바쳤다. 지난 온통 한 주일 동안 이것도 잊고 살았다. 그것도 나를 두렵게 한다. 어떻게 이것까지 잊고 살았는가?

결혼 30주년에..

오늘은 우리부부 결혼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연숙이나 나나 정말 쉽게 믿어지지를 않는다. 30년이란 기간은 조금 상상하기가 힘들었으니까.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참 긴 여정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여정이 될지도 짐작하기가 힘이 든다. 25주년은 필요이상으로 신경을 써서 준비도 하고 했는데 30주년은 50주년이 아니라서 그런지 조금 덜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준비라고 해 봐야 어디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을 하거나 fancy한 restaurant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지만. 극성맞은 아이들도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극성이 조금 잠잠해 진 모양이다. 오늘은 잠정적으로 간단히 아주 편한 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편한 곳이 근처에 있는 Thai restaurant Lemon Grass..

어제는 올해 들어 처음 마리에타2구역 Dinner & Bible모임이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조금은 ‘홀 가분’한 기분으로 참가를 했는데, 이것도 요새 내가 조금씩 의식하고 있는 out of closet같은 감정일까. 의식적으로 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신경을 쓰려는 나의 노력이다.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을 피하려는 나의 노력은 사실 나를 더 상처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덕분인지 1분이라도 그 시간을 보람 있게 ‘즐기려고’ 노력을 한다. 내가 그곳에 있음이 그곳에 모인 형제, 자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대로 사람들이 ‘북적 이는’ 도서관에 앉아서 무언가 써야겠다는 생각에 몇 자 적으려 한다. 월요일 오전이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무언가 커피냄새 진동하는 일터에서 어느 정도 긴장감과 성취감 그리고 기대감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리라. 그들이 부럽다. 나는 그런 것을 못 느끼니까.. 하지만 느껴보려고 내 나름대로 제일 값싼 방법을 찾은 게 이곳이다. 집과의 거리도 알맞고, traffic도 적당하고, 우선 $$가 차의 gas이외는 없고.. 기본조건을 만족한다. 내가 보고 싶은 책들은 많이 없는 곳이지만 우선 책이 있는 곳이고, 그런대로 쾌적한 환경을 주는 곳, 그것뿐이랴.. 많지는 않지만 근래에 출판된 한국에서 온 책들이 200여권이 넘게 있는 곳..현재 나의 ‘직장’이다.

이곳에는 눈에 뜨이게 흑인들이 많이 보인다. 그야말로 out of proportion할 정도라서 처음에는 정말 의아했는데 지금은 나의 눈도 많이 적응이 되었다. 그 많은 백인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 하는 의아심..하지만 조금은 이해가 된다. 많은 흑인도서관 이용자들은 이곳을 거의 job seeking headquarter로 쓰는 모양이고, 그 만큼 그들이 out of proportion으로 out of job이란 뜻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너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Halloween, Cobb Central

11월 들어서 처음의 entry인가…… Halloween eve에 쓰고 처음이다. 올해의 Halloween은 아마도 처음으로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그런 날이었다. 바람도 불고 땅도 완전히 젖어서 아무도 오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조금 틀려서 그런대로 아이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예년 같이 날씨가 협조를 했으면 옆의 Rhodes네 식구들 특히 David같은 친구는 집 앞에 앉아서 treat를 했겠지만.. 올해는 그런 모습조차 보이질 않았다. 조금 쓸쓸한 기분인데.. 이게 사실 우리 집도 몇 년 전부터 느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런 것들이 확실히 느껴져서..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날 밤부터 Summer Time (Daylight Saving Time)이 풀어지면서 standard time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 아침에 버는 것인데, 나에게는 아침에 깜깜한 방을 헤매는 것이 조금 나아졌다. 7시경에 조금은 밝으니까.. 대신 저녁이 무섭게 빨리 깜깜해 졌다. 세월은 어김 없이도 정직하게 흐른다.

10월 19일 월요일부터 시작된 나의 out-of-closet to Cobb Central (library)은 기대보다 더 잘 진행되고 있다. 최소한 일주일에 3번은 그런 식으로 집을 벗어나고 있다. 초점은 우선 집을 나온다는 사실에 있다. Library에서 하는 일은 아직 심각한 것은 별로 없다. 그게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다. 나의 life style을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우선 목적이 있지 않은가?  Laptop을 가지고 ‘나의 차’를 타고 거의 private office같은 곳에서 거의 무한정의 책들을 접하는 몇 시간은 정말로 황홀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더 빨리 간다. 하루 종일 있고 싶은데 그게 아직은 조금 무리일까? Remote Access setup도 많이 진척이 되어서 거의 완벽한 단계에 온듯하다. 덕분에 Hamachi VPN도 다시 찾았고.. 이제는 VoiP 만 연결이 되면 완전하다.

며칠 전에는 속을 끓이던 Sonata windshield crack을 고쳤다. Internet 으로 찾아서 Cobb Galleria근처의 Office Park parking garage에 있는 곳으로 가서 손을 보았는데 그 고친 친구가 참 독특한 친구였다. 중년의 black man이었는데.. 참 stereotyping의 무서움을 다시 느끼고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런 black도 있구나.. 하는 생각.. 나는 정말 이런 것을 반성을 해야 한다.

나라니가 며칠 전에 드디어 Starbucks를 그만 두었다. 아주 지친 듯한 느낌이다. 하기야 비록 part-time이라고는 하나 2 jobs를 뛰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 주변 사람들에게 더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랴…… 나라니야.. 앞으로 그런 일들이 더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handle하느냐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Hitching a Ride…

내가 싫어하는 muggy summer pattern이 며칠째 계속된다. 밤에도 덥게 느껴진다. 물론 추위의 ‘조금 귀찮은 느낌’은 없지만 이건 내가 사실 아주 싫어하는 그런 날씨다.  가끔 이렇게 봄/여름의 맛을 미리 ‘강’하게 보여주는 게 이곳 날씨의 특징임을 이제는 확실히 배워 느낀다. 오래 살게 되면 다들 이렇게 배워 느끼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한가’해서 느끼게 되는 것일까.. 둘 다 조금씩 진실이 있을거다.

지금 내가 무슨 ‘일’ 을 해야 제일 좋을까? 제일 내가 좋아하고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을 활용 해야 한다. 그게 win-win전략이 아닐까. 10+ 여전 전에 시작 된 Internet의 출현은 처음에 나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다. 무슨 secret treasure같은 그런 것… technology자체도 매력의 우선 이었지만.. 그게 나의 senior year를 해방시킬 수도 있다고 정말 정말 믿었다. 나만 그런 것이 물론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대로 그 흐름의 중심에 서서 일을 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 chance가 많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는 1%도 나는 살리질 못했다.  drive를 못한 탓일까.. 아니면 내가 나의 technical skill-set 을 너무 과신 했을까..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를 보며 분석하는 게 그렇게 도움이 될 듯 하지 않다. 지금을 시작점으로 다시 시작하면 어찌 될까.. 과거의 좋은 것만 ‘만끽’하고 실수나 아쉬움은 정말 잊는 것이다. 노력을 하면 힘들지도 않을지도.. 시도도 않해 보았다. 나에게 그런대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 중에..Internet를 빼고는 많지 않다. 항상 머릿속은 그런 idea로 꽉 차있었다…  아하… 또 듣는다… Hitching a Ride  (Vanity Fair)!…. 용현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드디어 ‘더운 밤’을 느낀다. electric fan이 벌써 필요한가. 짜증이 난다. 체질적으로 나는 더운 것은 싫다. 추운 게 더운 것 보다 낫다. 물론 ‘이상’ 기온은 분명하지만 이건 싫다. 지난 여름에 감사하게 썼던 tall tower fan이 다시 등장 했다. 이게 연숙이 Costco에서 사온 것인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연숙의 office에 다시 켜 놓았다. 조금 시원해 진 듯…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정말로 ‘우울증’일까?  요새는 거의 1초라도 반짝 ‘즐거운’ 순간을 느끼질 못한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처지와 상황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까?  정말로 나는 혹시라도 ‘의학적’인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그런 정도가 아닐까?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일초일초는 괴롭기만 하다. 흔히들 말하는 ‘배가 불러서’ 하는 어리광 정도의 유치한 수준은 아닐까? 정말 나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말로 하루 하루가 괴롭다는 것이다.

그런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나의 주변에 한 사람만 있어도.. 하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희망도 있다만 그건 정말 힘들 거야. 나는 정말 잘못 살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현재 그것을 뚫고 나올 힘이 부족하다. 이럴 때 나의 유치한 신세타령을 들어줄 엄마라도 전화 넘어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고 또 눈물이 쏟아진다. 어찌하랴.  모두가 다 나로부터 가버렸다. 나는 정말 몸도 마음도 다 무섭게 늙어가고 있다. 희망과 젊음은 은하계가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듯한 무서운 속도로 나를 떠나고 있다. 유일한 나의 희망은 묵주기도의 성모님이다. 하지만 이게 그야말로 ‘악마’의 농간으로 몇 달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 ‘악’의 공격을 나는 어떻게 물리치고 이길 것인가. 더욱 더 ‘심각한’ 기도 밖에 없겠지.

이번 주 초부터는 마당뒷집에서 무단으로 들어와 자른 나무 사건으로 더욱더 나를 ‘분노’의 괴로움에 남게 하였다.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듯한 용광로 같은 나의 이 ‘분노’와 ‘화’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하느님으로부터 다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의 죄와 거기에 따른 분노가 그대로 남아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느님, 저를 부디 이 분노로부터 해방을 시켜 주시옵소서.

오늘은 백형 부부의 호의로 oldies Rock Vocal Group 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concert에 가게 되었다. 우선은 고맙지만 기쁘지는 않다. 그저 밖에 나가는 게 싫을 뿐이다. 호의는 정말 고맙지만.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 Get a Life!란 말이 나에게 필요하다.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피하고’ 있다. 이건 위험하다. 정말 이런 식으로 살면 오래 못간다. near-term goal을 먼저 성취하고… 나는 조금씩 나올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용현아.. 이 개새끼야.. 너는 어디에 쳐 박혀 숨어 살고 있다는 말이냐.. 우리는 정말 1969년으로 가고 싶지 않니.. CCRWho’ll stop the rain을 어두운 다방에 앉아서 열광하던 그때를 우리가 어찌 잊겠니?

요새 새로 보기 시작한 일본 tv drama가 바로 ‘무리한 연애’라는 것이 있다. 환갑에 된 왕년의 rock group member가 이 환갑 된 나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조금은 코믹하게 그린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그래서 더 유심히 보게 된다. 그것도 그렇지만 거기의 여자 상대가 ‘나쯔가와 유이’라는 배우라서 그런지도.  작년에 본 ‘파랑새’라는 drama에서 그러니까 거의 10년전의 드라마에 나온 여자주인공..’인상적’이었던 인상.. 그 뒤에 ‘87% 생존율’에서 아주 나의 머리에 남았던 그 배우가 환갑이 된 왕년의 rocker와 아마도 ‘연애’를 하는 모양인데.. 글쎄.. 

이것과 더불어 이틀 전에는 드디어 묵주기도 덕분에 거의 사라졌던 sexual fantasy가 꿈에 나타났다.  그런데 거기에 등장한 여자는 바로 ‘히로스에 교코?”.. 라는 아주 어리지만 성숙한 여배우가 나온 것이다. 이 배우는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라는 실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으로 아주 열연을 한 사람이다. 청순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관능적일 수도 있는 그런 타입인데.. 바로 그녀가 꿈에서 나를 ‘시험’한 것이다. … 이게 아마도 우리의 묵주기도를 시기한 ‘악’의 공격일수도 있다는 생각.. 모르지만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나이 60은 정말로 이런 sexual 한 것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까..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건 옳은 생각은 아니겠지.

 

정말 오랜만일세

일기야, 정말 오랜만일세… 미안하이.  정말 쓰고 싶었다. 그러나 무서워서 못쓰고 2달을 보냈다.  그저 두 달이 훌쩍 흘러 버린 것이다.  폭풍과도 같던 마음 속속 깊이 고여있던 모든 나도 모르던 분노의 물길이 용솟음치며 한동안 나를 지배하였다.  1년이 넘게 나를 보호하여 준다고 믿었던 묵주기도도 이것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나 자신도 놀랐다  내가 그렇게 분노를 많이 가지고 살았던가.  한마디로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뿐이다.  그래도 나의 하느님께로 향하는 노력이 헛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것의 덕분에 이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더 논리적이 아닐까.

하지만 많이 자신이 없어진 게 사실이다.  2달을 그런 생각으로 주눅이 늘어 살았다.  하지만 아주 허송세월을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대로 무언가는 했다.  폭발싯점까지 진행되어 오던 여러가지 mini projects들은 즉시 중단 되었지만 그 대신 다른 것들이 시작이 되었다.  나에게는 처음으로 ‘super-pc’가 생겼다. dual-core Intel mobo 를 ‘홧김’에 구입하였다. 이제는 4GB 를 가지고 11개의 virtual machines이 그 안에서 ‘활개’를 치게 되었다.  이것만이 요새 나를 유일하게 기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주 virtual machine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 위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할까.  이것으로 할 수 있는 project는 사실 나의 상상력에 달린 것이다.

작년 봄부터 시작된 일본 드라마 시청은 예상을 뒤엎고 올해도 반을 지내고 결말을 눈에 못보고 있다.  사실 한국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겁이 나게 그곳으로 가기가 싫으니.. 나 자신도 조금은 겁이 난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까.  나이가 들면 다 이렇게 외골수로 빠지게 되나.  그건 아니겠지.  내가 이상한 것이리라.  어떻게 하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First of May, 1970

며칠 동안 Bee Gee의 oldie, First of May 머릿속을 맴 돌았다. 몇 년 전부터 이것을 ‘기록’해둔 덕에 아주 이제는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듯 하다.  왜 아닐까?  거의 신화적인 기억이 되어버린 그 아름다운 시절을 왜 아니 잊으랴. 용현아, 너는 어디에서 이 시절을 보내고 있냐. 창희야,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그 아름다운 시절을 잊은 다른 사람이 되었단 말이냐.  친구야, 지금이 어쨌건 상관이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그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더냐.. 부디 어디에서 살건 잘 행복한 나날이 되어랴, 하느님의 도움이 조금 있다면 언젠가 살아서 다시 만나서 그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 해 볼 수도..있지 않을까. 그래 그것도 조그만 소망중의 하나로 만들자.  그래 1977, 1988, 1999, 2000, 2011, 2022… 그 다음의 수열은?

우리 집의 main home server ‘FS’가 아주 큰 수술을 받았다. 이것보다 더 큰 수술은 없다  아주 MoBo(Mother Board)를 바꾸어 버렸다.  그것도 아주 down-graded쪽으로.  Athlon 2400+ 에서 Intel 600로 강등이 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이게 더 마음이 놓인다는 사실. 그 만큼 경험으로 이 Intel 600가 더 문제가 없었다. 현재의 느낌으로는 비록 느려지긴 해도 훨씬 덜 말썽을 부릴 듯 하다. 문제가 있던 Mobo 는 우선 Ubuntu-server 를 올려 놓았다. 재수가 좋아서 그대로 Linux는 쓰게 해 주실지.  문제는 Intel600가 실제적으로 512MB max라는 사실. 그러니 무제한의 VM을 쓸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대로 2 VMs가 간신히 돌게 해 놓았다. 그래서 또 잠시 ‘몽상’에 빠졌다. 최신의 Mobo/CPU의 값이 얼마나 하는지 eye-shopping을 즐긴 셈이다. 물론 priority game에서 지긴 했지만. 계산에 $250정도면 아주 그런대로 ‘최신’의 것으로 장만할 수는 있는데.. 이게 또 걸린다. 제일 슬픈 현실중의 하나다.

올해는 ‘축복의 봄’을 보내는 느낌이다. 그렇게 적절한 때에 비가 내려준 것이다. 예상 밖이다. 현재까진 그랬다. 이건 정말 정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끈끈한 밤은 지독히도 싫지만 그래도 이런 축복의 날도 곁들이니 이게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도 이렇게 감사할 일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에 너무나 동떨어진 인생을 살고 있어서 나는 감사를 못하는 것이다. 그 비현실적인 기대도 버리기 싫다. 나의 능력의 문제인데, 하느님이 나에게 그만큼은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이 60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내가 잘못 생각을 했는지도.

요새는 자주 송봉모 신부의 강론 테이프를 듣는다. 시작은 모든 home analog media의 digitize의 일환이었지만 아직도 digitize는 시작은 못하고 있지만 사실 기술적인 문제는 거의 해결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조금씩 듣게 되었다. 오래 전에 YS (이게, 영삼이도 YS구나)가 그렇게 좋다고 권했던 게 생각은 나지만 그때는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대로 잘 들린다. 그 중에서 제일 공감이 갔던게… 꿈에 대한 의견이었다. 그는 아주 꿈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강조했다. 나도 언젠가부터 그랬다. 꿈은 아주 random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 성서에도 근거가 있지 않은가. 나도 조금 더 ‘조직적’으로 꿈을 꾸려고 노력을 하고 더 심각하게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저 그리운 사람들이 많이 많이 나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나라니 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가면서 이사를 하는 날이다. 정말 나라니의 대학생활이 나에게는 몇 달 정도처럼 느껴진다. 정말 빨랐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래도 우리 부부 모든 자식에게 의무를 우선 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느님의 도우심일 거다. 나라니도 그런대로 수고를 했다.

 

묵주기도, 재개

묵주기도는 다시 조용히 재개 되었고.. 정말이지 하고 나면 무언가 기분이 다르다. 무언가 있다. 무언가 있다. 나의 하느님으로 향한 마음의 문은 확실히 최고로 열려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사실 언제일지 모른다.  모든 힘을 다하여 한번 하느님께 가보자.  성모님, 예수님, 하느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주신 분들 특히 연숙이.. 어떻게 나의 고마움을 표현을 할까.

진희아빠가 전화를 했는데.. 이것은 완전히 shocker가 아닌가.  이동수목사가 위암에 걸려서 수술을 했다는 것인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닌가.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이번에는 정말 죽음이 나의 근처까지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를 않은데도 그 중에 몇 명이나 벌써 갔던가.  만수아빠는 교통사고, 백명순씨(연숙의 친구), 김예순씨, 박만용씨, 최진착씨(자살), 박창우씨, 그리고 이동수씨는 위암?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이 목사는 고생을 많이 한 편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하느님이 그 목자를 시험을 하시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위암은 그렇게 까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니까.. 완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항상 수술 후 5년까지.. 정말 아찔하다.

 

일찍 온 사순절에..

올해는 최고로 일찍이 사순절이 시작이 되었다.  2월이 가기 전까지  Acts of Apostles, 사도행전을 다 typing을 하였다. 그것도 영어와 한글로 다 같이.  쓰는 것에 비하면 뭐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년 만에 다시 읽는 ‘사도행전’.. 마음을 열고 눈을 뜨는가… 느낌이 그렇게나 달라질까?  정말 놀랐다.  3월부터는 요한복음을 영어로 읽기 시작했다.  정말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항상 공관복음만 들었는데.. 처음으로 읽는 기분이다.  사실 일고 보니.. 그 ‘유명한’ 구절들은 거의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John 3:16같은 것..

3월 3일에는 그렇게 ‘걸리던’ 고백성사를 보았다. 미국성당이라 거의 형식적인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 아니다.  마음의 준비가 거의 99%라고 느끼니까.  그래서 너무나 홀가분 하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매년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나의 하느님으로 향한 ‘마음의 문’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낀다.  이것도 작년부터 시작한 묵주기도의 ‘은사’일까.. 아니면 은총일까.  모른다..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하느님을 향해서 말이다.  그렇게 안 믿어 지던 것들도 이제는 믿어지는 쪽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나도 사실 놀란다.  이 모든 것이 그렇게 듣던 말과 같이 사실이란 말이다.  이게 모두 정말일까.  이게 다 사실이라면 앞으로는 어떨까.  나도 다시 어머니를 볼 수 있을까.  모두가 영생을 누릴 수 있고  육신을 떠난 더 높은 영혼의 세계가 앞으로 있을까.. 모든 게 신비롭게만 느껴 지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의 마음을 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Stephen CoveyFirst Thing First를 읽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성경 다음으로 이게 나의 ‘다음성경’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이 책은 아마도 성경을 배경에 두고 씌어진 기분도 드니까 (이 저자는 사실 유타주 출신의 Mormon교도)  결국은 spiritual direction/goal이 없으면 결국은 ‘허무’하다는 뜻일까.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무한대와 유한공간, 영원과 현세의 찰라.. 영혼과 육신.. 이런 게 이런 게 모두 나의 살에 와서 느껴진다. 아마도 나도 죽음에 대해서 많이 실감을 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사람(Covey)말 대로 이제는 Leave a Legacy가 제일 중요한 관심이 되고 있다. 나의 존재의 의미를 느끼며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게 거의 본능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남겨야 하나.  어떻게 남겨야 하나.  누구에게 남겨야 하나.

 

Bradford Pear Spring…

2월도 중순이 훌쩍 지나고 춘분을 향해 돌진 중이다. 어제 Tobey 토비와 산책을 하면서 우연히 아니 설마 하며 본 것이 그 흔하던 Bradford Pear tree의 꽃망울이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놀랐다. 진짜 초봄이.. 그러고 보니 어제가 ‘우수’ 였던가.  내가 그걸 놓쳤다. 입춘도 훨씬 전에 지났고. 그래서 기온도 거의 50도에서 60도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구나. 그 배꽃이 제일 먼저 필 때가 온 것이다. 봄이.구나.. 장모님의 기일도 곧 이고. 그러면 나의 사랑하는 엄마의 ..  사순절에 하려던 매일 과제는 아주 순조롭게 실행을 하고 있다. 생각 보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오랜만에 읽는 사도행전.. 아주 좋다. 이제 확실히 초대교회의 성인/사도 들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신화’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구약처럼).. 아주 현실감과 사실감이 많이 느껴진다. 그때 사람들도 요새 사람들과 생각 하는 게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롭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어젯밤은 연숙이 나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침묵 피정을 다녀 온 후에 무언가 해 보려는 것 같다. 오늘도 새벽 6시 30분 전에 일어 나게 되었다. Tobey 토비를 보니, 그 net 망같이 생긴 담요를 아주 포옥 덮고 잔다. 그걸 안 덮었으면 추울 텐데.. 하며, 신경을 쓰며 잤는데 그 녀석 본능적으로 그 밑으로 파고 들어가서 덮고 잔다. 역시 걱정한 내가 틀렸다. 가끔 이 녀석과 시간을 보내며 어떨 때는 이 녀석이 사람이 개가 되어서 외로운 나에게 친구로 보내 졌나.. 하는 아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말만 못 할 뿐.. 감정의 교류나 표정하며 알아 듣는 것 하며 정말 사람처럼 느낄 때도…

 

안개 속의 송년은..

짙은 안개와 젖은 땅.. 조금씩 개이는 그런대로 포근할 것 같은 2007년 마지막 날..

결국 2007년도 마지막 날로 접어들 수 밖에 없었다. 

한 해가 슬그머니 가려고 하고 있다.  못 막는다.  이건 신이 주신 법칙이다.  거역할 수 없는 거야.  앗 사리 즐겁게 맞이 하는 게 난 것이다.  웃어라.. 웃으려고 노력이라도 해라.  무언가 티끌만한 것이라도 움직여서 하라.  무언가 먼지만한 것이라도 ‘성취’하라.

올해는 연숙과 둘이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라니가 이화친구들을 만나러 뉴저지로 갔기 때문이다.  사실 둘이서만 보내는 게 편하기는 할것 같다.  무언가 ‘부담’을 덜 느끼게 될 테니까.  휴일/명절마다 나를 짓누르는 이 ‘부담감’때문에 올해는 더 우울하게 보낸 것 같다.  이제는 아주 병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이게 무슨 망발인가 말이다.  이래서 ‘선물’로 치장이 된 휴일들을 더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인지도.  하지만 이건 내가 바뀌어야 할 듯 하다.  노력을 해서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 나는 정말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을 했더라.  분명히 나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생각할 때부터 그랬다. 희망의 부재, 모두 어두움의 자식들이다.  나는 분명히 내리막길로 맹렬히 달리고 있다고 느꼈고.. 지금도 느낀다.  부드럽게 말하면 사는 ‘재미’가 거의 없다는 생각이다.  아니 나는 분명히 거의 다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이런 상태로 산다면 60세도 많이 살았다고 생각을 해도 될지도.  물론 생명과 수명의 하느님의 권한이다.  나는 그저 생각만 할 뿐 행동은 못한다.  이제는 조금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하며 아니 그보다는 느끼고 싶다.  그게 현재 나의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런 것으로 보면 연숙과 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게 죄스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최근 들어서 본격적으로 Linux 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동안은 사실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이번은 최초로 ‘본격적’으로 Linux installation부터 씨름을 해서 hands-on experience를 얻어가고 있다.  우선의 목표는 multibooting from Ubuntu or Fedora인데.. 이것으로 간접적으로 다른 것도 배우게 되겠지.  아주 오래 전에 DOS 시절에 그렇게 많이 command line 을 썼건만 아주 이제는 둔해진 기분이다.  최근 들어 Linux에 관한 책도 그런대로 모았다.  물론 거의가 $10이하로 한정은 했지만 그래도 만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hardware에 관련된 Linux는 나를 ‘살게 하려는 의욕’에 큰 보탬을 주고 있다.  사실 그건 나를 거의 즐겁게 할 정도가 아닌가.  그 다음은 새로 산 Linksys’ SPA3K VoiP Gateway이다.  거의 이상적인 device이건만 아직도 결말을 못보고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과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내가 거의 일년간 미루고 있었던 그야 말로 must-do project인데.. DotNetNuke, Polaway Database등등.. 해야 한다.  해야 한다.. 죽기 전에 해야 한다.. 나는 이것만은 해 놓고 그 다음이다.. 해야 한다.

 

virtual depression

지난 며칠은 “가상적”인 병 속에서 조금 쉰 기분이다.  daily routine을 거의 중단하고 ‘아픈’상태로 살았다.  정말 아프지는 않았지만 사실 아프고 싶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꾀병일까.. 아니다.. 나는 분명히 ‘정상’이 아니다.  마음과 몸으로 아픈 것이다.  그래도 그런 중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나의 ‘작은’ projects일 꺼다.  Linux, X10 controls, VoiP, SPA3102, Ubuntu, Fedora, etc etc..  이런 것들이 유일하게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왜 사람들을 기피하게 되는 것일까.  내가 이 정도는 아니었지 않은가.  어떻게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떻게 ‘큰’ 날들 (명절, 생일, 환갑 등등)을 맞이하며 보내야 하면 어떻게 하면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을까.

지난번 일기에서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느낌이다.  하지만 이틀밖에는.. 놀라운 일이다.  조금은 나도 걱정이 된다.  내가 왜 이럴까.  생각보다 심각한가.  왜 이리 우울한가.  식구가 다 모였건만 별로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무언가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심지어 괴롭게 느껴지기까지.. 왜 이럴까.  조금 있으면 윤형 댁으로 저녁초대를 받아서 간다.  이게 그렇게 신경이 쓰이게 가기가 싫다.  왜 이렇게 이런 것들이 부담이 될까.  분명히 사람을 만나는 게.. 내가 진정으로 우울증으로 이럴까.. 조금 조금 걱정이 된다.  아니면 지금의 특별한 계절의 영향.. 환갑이 다가 오는 것 때문에.. 아니면?  정말 정말 괴롭다.  몇초만 이라도 좋으니 기분이 ‘좋게’, ‘반짝’ 할 수 없을까?

 

성탄 5일 전..

최근에는 home network/system 순조로워져서 그것은 만족이다.  이것이 심리적으로 주는 영향은 사실 나의 생활패턴에선 막중한 것이다.  이게 잘 되면 그런대로 아니 ‘아주’ 기분이 좋으니까.. 이런 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다.  새로운 것.. (주로 역사적, 종교적)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그렇고.. 좌우지간 에 ‘배우는’것은 나를 기쁘게 하고 그 중에서도 책으로 배우는 것.. digital hardware가 관련된 모든 기술적인 것들.. 내가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을 public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 이것들 다 나를 지탱시켜주는 조그만 행복들이다.

성탄도 5일 밖에 안 남았다.  세월과 시간은 잘도 흐른다.  더 길게 시간을 보낸다고 큰소리 치는 내 자신이 우습다.  그럴수록 더 빨리 흐름을 느끼니까.  매일 매일 ‘불안’함과 ‘미안’함.. 그리고 쫓기는 느낌 어쩔 수가 없다.  분명히 나는 우울한 것이다.  간혹 반짝하는 ‘희망’ 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다.  그게 사실은 정상적인 느낌이 아닐까.  그래.. 희망의 부재.. 희망이 거의 없다고 느끼는 것.. 그런 것이다.  크게 기대할 것도 없고 시간이 가면 더 무언가 즐거운 일이 생길 거라는 .. 그게 희망이란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게 없어 진지 꽤 오랜가 된걸까.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성인들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그게 나의 과제이다.  기도 밖에 없는 것일까.  모처럼 몸이 나른한 게 아마도 조금은 열이 나지 않을까.. 아니면 몸살 끼.. 하지만 괴로울 정도는 아니지만 심신이 조금은 쳐진다.  이걸 아프다고 하면 분명히 꾀병이다.  아니 조금 아프고 싶다.  쉬고 싶다.  뭐 매일 쉰다고 하며 할 말은 없지만 나 나름 대로 일과가 정해진 게 있고.. 그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이제야 집에서 ‘논다’는 가정주부의 일들을 생각한다.  그게 노는 것인가.. 더 일이 많지 않은가.  그걸 논다고들 말을 했으니.

나는 더 이 일기에 솔직 해져야 한다.  ‘잔혹할’ 만큼 더 솔직해 져야 한다.  내 자신에 솔직해 져야 한다.  그게 가슴이 아프더라도 나 자신을 거짓으로 위로를 하면 안 된다.    오늘은 저녁에 우리 큰딸 새로니가 워싱턴 DC 에서 오는 날이다.  그렇게 보고 싶어야 하겠지만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다.  매일 전화를 주는 그 애.. 바로 여기서 같이 사는 느낌을 줄 정도다.  그러니까 떨어져서 산 기분이 별로.. 참, 부러울 정도로 밝은 애로 성장을 하였다.  나를 닮을까 봐 그렇게 조금 걱정을 했지만 아마도 엄마를 닮은 듯.. 모든 게 이성적, 객관적, 논리적인 것 좋지..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아무래도 .. 그래서 연애를 못할 거야.. 나는 안다.  그런 것들…

 

외롭고 쓸쓸한 겨울 비..

어제는 거의 일 년 만에 Paek 부부와 밖에서 식사를 했다.  사실 거금을 쓴 셈이다.  연숙이 그것을 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조금 과용을 한 듯, 맛은 좋았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대화는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  무언가 바퀴가 어긋나게 도는 듯 무언가.. 안 어울리는 대화랄까.  이게 분명히 나의 문제일 꺼다.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을 듯.. 분명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것이다.  어찌 하면 더 즐거울수 있을까.

어제는 아주 ‘추운’ 비가 내렸다.  아주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을 보았다.  구질구질한 그런 것들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게.. 가뭄 때문이다.  요새는 사실 가뭄이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심하게 느끼지 않는 게.. 물을 쓰지 않는 계절이라서 그런지도.  하지만 심각한 문제다.

나는 더 솔직해 지고 싶다.  정말이다.  이곳에서도 솔직하지 않으면 나는 가망이 없다.  다른 아무 곳에서도 나는 솔직할 수가 없다.  이곳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이 쉽지를 않다.  머릿속의 생각만 솔직한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밖으로 나오면 ‘색깔’을 입게 된다.    지난 며칠간도 참 바보같이 시간을 보낸듯하다.  해야 할 것만 제외하고는 다른 것만 긁적거린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성탄과 새해로부터 오는 stress도 또한 즐겁지 않다.  솔직히 하나도 즐겁지가 않은 것이다.  이게 바로 요새의 나의 불행인가.  묵주기도가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일까.

정말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추억의 세계로 심하게 빠져든다.  혼수상태 같이 추억의 세계로 빠져들면.. 무슨 환각에 빠지는 듯.. 행복을 느낀다.  그게 유일한 나의 행복이다.  그 시절 그 때를 생각하는 게 나의 행복이다.  다시는 올수도 없고 갈수도 없는 그때를 나는 그리며 사는 것이다.

나에게도 ‘숙명’이라는 게..

나에게도 ‘숙명’이라는 게 있을까.. 아니면 운명이라도..  교향곡 ‘숙명’을 작곡하고 있는 ‘와가 에이료’라는 작곡가,  일본드라마 ‘모래그릇’ 을 보면서 나의 ‘인생’을 회상해 본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을까  모두가 어찌할수 없는 그런 것이 있을 것 같다.  나의 인생은 그런 ‘운명적’ 요소가 남 보다 더 많을지도.  변명일까.   레미제라 (잔발잔)을 연상 게 하는 그런 대하 성 드라마 ‘모래그릇’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60세에 접근하면서 더 나의 ‘인생’을 생각해 보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겠지.

오늘은 7시가 훨씬 지난 뒤에 놀라서 깨었다.  6시면 눈이 떠지곤 했는데.. 어제 밤은 왜 그리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었는지.. 여기서 엄마생각을 해 본다.  화장실이 귀찮아서 누나네 집에서 자기가 싫다고 하시던 그 말씀 그때는 그렇게 실감을 못했지.. 누나 집에서 그렇게 밤에 소리를 내기가 싫었겠지요.  누가 그 심정을 알겠어요.. 이 아들도 몰랐는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항상 저를 누르는 족쇄같이 느끼며.. 속죄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칩니다.  우리의 단란했던 가족이 왜 이렇게 헤어져서 이런 인생들을 살아야만 했는지..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합니다.

최근에는 조금만 진한 커피가 들어가면 (카페인?) 심장이 무거워 짐을 느낀다.  그래서 조금 양을 줄이려고 2잔 이하로 끓이려 한다.  이것이 요새 나를 조금 ‘즐겁게’하는 것 중의 하난데.. 술은 거의 ‘정복’을 했고.. 이것도 양을 극히 조절하는 노력을 해야지.  조금은 서럽다.  그렇게 ‘즐기는’것을 무자비하게 조절을 해야 하는 게.  하지만 하느님과 부모님이 주신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하지.  사실 커피를 제외하고는 우리 (부부)의 식생활은 건강한 듯 하다.  외식만 조심하면.  요새는 가끔 내가 음식을 조금 더 쉽게 잘 만들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우선 연숙을 도울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취미로?)  이것도 다른 여러 가지 ‘아이디어’ 수준에서 머리 속에서만 있는 것들.. 역시 ‘행동’으로 이어지지를 않는다.  왜 이리 머릿속의 것이 실행으로 연결이 안 되는 걸까..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커피를 줄여야겠다.   좋은 방법은 전에 썼던 것.. 쉽게 줄이는 것은 혼자 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의 주로 연숙과 같이 마시면 된다.  밖에서도 마찬가지.. 누구와 같이 마시거나 누가 권하거나 할 때를 제외하곤 절대 혼자 마시지 않는다.  기억에 이렇게 하면 큰 ‘고통’ 없이 많이 줄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제 저녁은 예정대로 우리 한인성당 구역의 구역미사가 있었다.  예견이 되었던 광경들이겠지만 이번은 또 ‘무거운’ 심정으로 일찍 돌아왔다.  그 축복스런 성사들이 왜 이렇게 추한 심정으로 변하는 것일까.. 악마의 소행이라면 간단히 설명이 되겠지만 왜 그런지는 나도 조금 무시할 수가 없다.  나의 영혼이 그렇게나 쉽게 변하고 허물어 진다면 어떻게 앞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지를 못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초라하게만 느껴지고, 안타깝게만 느껴지고.. 화도 나고..왜 그렇게 다 좋게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많고 많은 문제가 나에게 있는 듯 하다.  더욱 더 겸허해지고 나 자신을 더 낮추어야 하나 (준주성범 처럼)

 

바람이 미친 듯이..

어제는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앞뒤로 지붕없이 놓여진 것들 때문에 요새는 비바람에 조금 신경은 쓰이지만 그래도 울창한 나무를 제거한 후로는 그 걱정은 조금 없어졌다.  사람만 안 다치면.. 나머지 것들은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안겠지.  또 미친 듯이 질주하는 날짜들도 벌써 마지막달 4일로 접어든다.  절대로 세월이 남보다 빠르게 느껴지지 않게 신경을 쓴다.  느끼는 시간은 내가 요리하는데 맞추어서 분명히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남들도 알겠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에 대한 ‘보람’을 느끼면 더 즐겁고 길게 느껴지지 않을까.  보람을 느끼려면 무언가 ‘목표’를 하나씩 달성하는 것 일께고.. 이것은 내가 제일 자신이 없는 것이지만..  다음은 무언가 변화가 많으면 시간의 ‘질’이 길어진다.  예를 들어 아무 것도 변함이 없이 흐른 24시간과 무언가 ‘엄청난’ 변화가 있는 24시간은 크나큰 감각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기도의 힘이 있으면 쉬워질 수도..

연숙은 화요일의 일정으로 나갔고 나는 뒤따라 Tobey walk을 시키고 들어왔다.  거의 ‘고정적’인 routine이 되어 버려서 하나도 힘든 것은 없는데 반대로 이런 것들이 더 나를 지루하게 느끼게 만들지나 않나.  아니겠지.  좋은 것들은 고정적으로 하는 게 더 장점이 많지.  하지만 무슨 변화를 줄 수 없을까.  시간을 바꾸거나..아니면 장소를 조금씩 변화를 주거나.  오늘 아침 (새벽)에는 의식적으로 커피를 끓여서 혼자 마시지 않았다 (일상일과).. 대신 연숙이 나갈 때 식사를 하면서 같이 마신다.  이게 변화가 아닐까.. 서로에게도 좋고.  요새는 연숙을 대하는 것이 조심은 스럽지만 그런대로 좋은 편이다.  나를 속으로 괴롭히는 언동이 없어서일까.. 내가 더 노력을 해서 그런 것일까.. 둘 다 이겠지.  생각해보니 우리들의 남아있는 시간이 무한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연숙과 더 보람된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것인데.. 내가 제일 자신이 없고 못하고 있는 것중에 하나.. 왜 그럴까.. 너무 ‘말’에 조심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지 않게) 그렇게 된 것 같다.  내가 말을 잘 못해서 그런지도.. 아니면 내가 너무나 조그만 말에 상처를 받을까 봐 피하려고 해서..

또 하나의 jTVDrama “모래의 그릇” 을 보기 시작했다.  직역이 “모래의 그릇”이고 사실 모래그릇이 아닐까?  그들의 “의”에 대한 사랑(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에서) 으로 모래 “의” 그릇이라고 한 건가.. 모르겠다.  완전히 상징적인 제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대하’성의 드라마라서 우선은 trash class는 아니라 좋다.  추리성도 있고..우선은 모두 download 하기로 했다.  요새 며칠은 새로니까 쓰던 Genki Japanses책을 더 자세히 읽으려고 노력을 했다.  걸림돌은 역시 46+46 히라+가나를 외우는 데 있더라.  이것은 완전히 element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외워야 앞으로 나가겠더라.  어떻게 외우는 게 좋은지 그런 guide/hint/help같은 게 없다.  하기사 새로니도 그냥 외웠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한자를 아니까 그건 완전히 공짜가 아닌가.

이렇게 ‘배우는’ 것.. (특히 언어나 인문/사회/역사 쪽)..이 요새는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 중에 으뜸이다.  조금 사는 보람도 있고.. 나머지 인생이 이런 것들만 있으면 절대로 허무하거나 심심치 않으리라는 자신이 든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미국오기 전에.. 대학졸업 후에 그렇게 보람차게 느껴 진 시절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유학시험을 준비하며.. TOEFL을 준비하며  환상의 세계 미국을 그리면 살던 그 짧은 시절 (그 당시는 절대로 짧게 느끼지 않았지만).. 나는 그 진짜 ‘공부’하는 재미를 느꼈다.  책에 대한 무한한 사랑도 그때 굳어진 듯 하다.  추운 밤거리.. 군고구마 장사 옆에서 팔던 ‘독서신문’이란 것을 정말 애독하였지.. 그 시절은 정말로 그런 ‘기쁨’이 있었다.  그런 것을 어렴풋이 지금 다시 느끼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 ‘일본문화’를 접하면서 말이다.

어제 오후부터는.. 정말 무언가 꼬이는 기분이더니.. 결국 그게 바보 같은 Bellsouth DNS 문제였다.  이것은 나는 처음 의식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인 듯 하다.  domain name을 못찾으니.. Internet에 문제가 있다고들 만 생각했겠지.  하지만 어제는 내손으로 확인을 하였고 나중에 Internet 에서 확인을 하였다.. 고질적인 그들의 문제라고.  해답은 다른 DNS service를 쓰면 된다는데.. 그 중에 OpenDNS를 언급하고 있다.  나중에 문제가 또 생기면 이것을 시도해 보리라.  이 꼬임으로 해서 home-based VoIP server들이 완전히 ‘꼬여’ 버렸다.  결과적으로 또 main webserver FS가 down되고 밤 늦게까지..; repair를 해서 오늘 아침에 거의 정상으로 복구를 하였는데..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른다.  처음에는 system drive가 문제가 있는 했는데.. 지금은 혹시  webserver/DNN에 문제가 있는지 하고 의심도 한다.  지금은 DNN sites가 완전히 down되어 버렸다.  6개가 있던 것이 모조리 down된 것이다.  DotNet framework에 문제인지 DNN native 문제인지..  결국은 다시 DNN site를 build할 수 밖에는 없고 한데 솔직히 이 DNN technology에 회의가 생기기도 한다.

 

간호사 아오이

아주 오랜만에 “일드” 간호사 아오를 본다.  감회가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나의 일드 adventure가 시작되지 않았던가.  이때의 첫인상은 아주 좋게 오래 갈 것 같다.  그 이후 많은 일드에 접해서 제법 그들의 cast들에 친숙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름자체에는 아직도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도 조금씩 익숙해 진다.  연숙은 이러한 나의 일드 취향을 약간 의아한 눈으로 보는 듯 하지만.. 하나도 의아한게 없다.  나는 ‘배운다’라는 의도가 더 많다.  나는 이 ‘배운다’라는 취향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아마도 죽을 때 까지.. 일생을 ‘학생’의 자세로 사는 건가… 어떻게 보면 나도 이상하지만 어쩌랴.. 나는 그런 자세가 가장 ‘보람’있다고 생각하고 즐거우니까.  이 나이에 골프채 걸머지고 거들 먹 거리는 우리 세대들이 나는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그들의 눈에는 이상한 ‘새끼’라고 보일지도.  하여간 일드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배우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다음은 무엇인가.

지날 사흘 동안 무엇을 했나.. 제일 무서운 ‘거의 같은 날’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하루 하루 다르게 살려고 해도 한계가 있나 보다.  그래도 매일 명심하는 것들 중에는: Tobey 토비와 산책, 술 안 마시기, 제일 큰 유혹에 안 빠지기, 밤 10시의 연숙과의 묵주기도.. 이것들은 정말이지 성모님의 도움으로 가능해지고 있다.  산책, 술, 그 유혹, 이 세가지는 정말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이지만 항상 유혹을 걱정하며 묵주기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고, 믿고 싶다.  이것들이 아마도 올해의 나에게 가장 큰 뉴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나는 어떠한 이유이든 간에 연숙에게 화를 낼 입장이 아니다.  나를 아주 피곤하게 대할 때 (이제는 거의가 사소한 말들 때문이지만) 나는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말이다.  나는 연숙에게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모든 가계부의 ‘더러운 면’을 감싸며 사는 그녀에게 나는 매일 매일 기도로도 말로도, 행동으로도 떠 받들며 살아야 한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인간이란 게  그나마 남아있는 자존심과 체면으로  악하게 만든다.  나는 연숙에게 고개를 숙이고 도와주고 감사를 ‘표해야’한다.  피곤한 말을 들어도 그냥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이것이 나의 큰 숙제이고 과제이고 목표이다.

현재의 나의 ‘단기 목표’는: 옷장closet을 수리,  페인트를 해서 연숙이 조금이라도 아늑하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하는 것, 연숙의 새 사무실의 wiring을 끝내고, 차고를 더 정리해서 연숙이 차를 집안에서 탈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polaway.mdb를 더 해서 그것도 편하게 쓰게 .. 이러고 보니 거의 연숙을 염두에 둔 project들이구먼.. 이 정도로 나는 생각하고 있지만 결과는 언제나 그게 아니고..

 

평화스러운 일요일

평화스러운 일요일..오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오랜만에 올 때 Panera Bakery 에 들려 bagel 과 coffee로 연숙과 시간을 보냈다.  나라니는 결국 또 약속과 다르게 일찍 학교로 떠났다.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애도 ‘노력’을 하는 게 보이는 한 문제는 없다.  아직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때 이니까.  그래도 슬슬 결과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하지 않을까.

결국(?)  9월도 다 지나간다.  작년 이맘때 수경이네 식구가 온 게 그렇게 생각날수가 없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영글어 가니까 됐다.  좀더 수경이에게 유익하게, 다정하게 해 줄걸.. 하는 후회가 왜 없겠는가.  현재로써 좋은 것은 그 지긋지긋한 아니 지독한 더위가 고개를 결국 수그렸다는 사실.. 그만큼 내가 이번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피부에 닫는 느낌도 그렇고.. 왜 그렇게 내가 고생을 한 것처럼 느끼게 될까.  사실 내년 여름이 지금부터 걱정이 된다.  어딘가 도망까지 가고 싶은 심정.. 어찌 이렇게 내가 바보 같을까. 나는 더 솔직해 져야 한다.  나는 아직도 나의 마음 깊은 것을 손도 못 대며 주위에서 맴돌고 있다.  그 것을 최소한 이곳에서만은 고백을 하며 친해져야 한다.  그게 언젤까.. 나도 모르지만 조금씩 그곳을 향해서 가고 있지 않을까..희망을 한다.

 

구월의 어느 하루

성당을 쉬기로 ‘선언’을 한 후 식구들 고요히 자고 있는 조용한 일요일 아침.. 이 시간은 나의 시간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조금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바로 이 시간이다.  그래서 더 빨리 가는 듯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이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면 얼마나 좋을까.  연숙은 아직도 허리와 등.. 심지어 발목까지.. 너무나 고생을 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 이런 괴로운 순간들을 현명하게 대처할지 모른다.  그저 기본적으로 짜증만 속으로 느끼지만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다.  정말 나도 무섭게 노력하지만 속속의 기분이 어찌 밖에 나타나지 않으랴.  그저 나와 그녀는 이럴 때 하는 행동이 너무나 다른 것이다.  서로가 조금씩 상대방 쪽으로 적응을 하면 조금 쉽겠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은 듯.

오랜만에 연숙의 Access database에 매달려 보았다.  조금 생각 끝에 결정한 것.. 이것이 그런대로 ‘해결’이 되어야  아니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 같은 그런 생각.. 오랜 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다시 생각했다.  이것을 내 힘으로 다시 쓰기 좋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ASP.NET 으로 바꾸고..  (SQL로 바꾼 후에).. 거의 꿈같은 얘기지만  해보고 싶다.  여력이 되면 DotNetNuke을 병행해서 개발하며.. 아마도 이렇게 하면 올해도 다 가지 않을까.. 이것만 되면 나에게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지도.

일본TV드라마(실화):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를 다시 보고 있다.  너무나 슬픈 얘기지만 참 아름다운 젊은 날의 이야기이기도… 나도 그 나이 때의 감정들을 그곳에 대입시켜서 생각도 해 본다.  그 나이의 ‘유치’함은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그런 것일지도.  다른 편으로는 1960년대 초반의 일본을 볼 수 있어서 아주 흥미롭다.  보면 볼수록 우리 것들 뿐이다.  우리 때와 그렇게 다른 게 별로 없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그들의 것들이 세계에서 우리의 것들과 제일 닮았다는 생각도 한다.  좋던 싫던.. 우리의 근대문화를 그들이 남겨 놓고 갔을지도.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나도 혼동이 온다.  그저 보며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