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최고의 날…

Best Early Moring in Long Times…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빗소리로 깨어나는 새벽 잠’, 바로 오늘 새벽에 또 그런 때가 찾아왔다. 초복이 지나고 중복을 향한 때의 이런 순간은 정말 나에게는 은총으로 느껴진다. 이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집 앞의 노랗게 변하는 불쌍한 잔디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그린다. 얼마나 이런 순간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비록 수도물까지 끌어서 그들에게 억지로 생기를 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Mother Nature의 은총에 의한 것이면 고생을 하며 기다린 보람도 있지 않겠는가?  지난 주일들 몇 차례의 ‘잔잔한 비’로 분명히 앞으로 힘차게 새파란 모습으로 일어날 것을 기다린다.

By popular requests: 지난 주 새로니가 유나를 데리고 놀러 왔을 때 내가 ‘급조 요리’를 한 것이 SPAM sandwich였는데 그때 반응이 의외였다. 모두 ‘정말 맛있다!’ 여서 나도 기분이 좋았는데, 그런 이유인가, 계속 두 번째 이것을 만들게 되었다. 아예 어제 밤에 자기 전에 아침식사 메뉴로 이것을 청한 것이다. 아하~ 이래서… 여자들에게 음식솜씨를 칭찬해주면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혜택이 꽤 있었던 것들이 기억이 난다. 이제는 거꾸로 된 case인가.. 특별한 재료와 솜씨가 필요 없는 이것, 앞으로도 idea가 떨어지면 계속 등장할 지도… 오늘은 SPAM이 너무 짠 것, 그것이 흠이었다. 아마도 classic version SPAM이었던 모양…

올해 여름의 최고의 날, the best day of this Summer! 이유는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고.. 내가 느끼는 평화, 그것이 빗물, 소리와 함께 강물처럼 흐르는 오전, 이 순간들이 조금, 아니 아주 느리게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늦게 흐르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루하게 만들면 될 듯도 하지만 그러면 나의 평화는 물론 그 순간에 깨어질 것이고… 아~ 모르겠다. 미사와 gym workout이 모두 사라진 오늘은 나에게는 100% holiday와 같은 것이지만 연숙은 새로니의 errand를 도우러 쏟아지는 빗속으로 30분 drive를 하는데…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Gulag Archipelago… Aleksandr Solzhenitsyn 솔제니친 솔제니친… 이것도 추억의 유물이 되었나? 문득 1960/70년대 나의 모습이 떠오르니… 이 이름으로 오늘의 몇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역시 추억여행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이런 시간은 항상 들뜨고 즐거운 것이니까.  이것이 어디에서 출발을 했는가, Robert Barron의 최근간 Redeeming The Time에서다. 여기서 저자는 또 다른 ‘한창 뜨고 있는’ Jordan Peterson을 언급한다.

올해 납량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대한민국 [역사물]들, 2006년, 2010년 경의 두 가지 [역사스페셜] series인데.. 이 중에서 충격적인 것도 있다. 신라의 건국에 대한 것, 놀랍게도 경주 김씨 왕조의 시조는 북방유목민, 도래인이라는 것.. 금관을 포함한 각종 문화, 유물들을 보아도 수긍이 가는데.. 그렇다면 조금 그들의 신비적 요소는 사라지는 것인가…

레지오, 레지오…

지난 밤 11시부터 새벽 6시 30분까지 기록적으로 한번도 깨지 않고 잤다. 이것은 아마도 기록이 아닐까? 화장실 행도 없었던 것이 의아하지만 분명히 나는 안 갔던 것이고 잠깐이라도 깬 기억이 전혀 없다. 와~ 예전의 나의 자랑거리 밤잠습관이 돌아오는 것일까? 더욱 이상한 것은 어제 낮잠을 2번씩이나 ‘떨어져서’ 잔 것인데…  이것으로 나의 경험적 진리가 확인되는가… 낮잠을 잔 날은 그날 밤 더 잠을 잘 잔다 라는 나만의 경험적 사실… 왜 그럴까? 연숙의 지론에 의하면 사실은 반대라고 하던데… 아마도 들리는 각종 fake news를 본 것은 아닐지[물론 아니다…]…

오늘도 away-from-news 가 자연스레 성공을 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어렵지 않은 것을 왜 모르랴? 그저 깊이 각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것의 효과는 3일 정도로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머리가 조금은 맑아지는 듯하다. 이제 이 머리의 비어가는 공간에 무엇을 채워 넣을까,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일상화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연숙의 driver’s license renewal을 마치고, 가벼운 기분으로 귀가를 하면서 원래 Wendy’s 가려고 했던 것을 Kroger로 바꾸어 요새 맛들인 그곳의 fresh한 sushi를 사왔다. 이렇게 오늘의 오전일정이 다 끝났지만 오후가 되니… 또 편안하고 싶었고… 게으름인가, 아니면 휴식인가… 아~ 정신 좀 차리자… 경우야~~

어제 저녁 때 위층에서 조금 큰 소리로 연숙이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혹시 누구와 싸우는 것이 아닐까, 우선은 걱정이 되는 것은 예전에 각종 ‘사건’들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 성당’단체’ 활동에서 유발된 부산물이었지만 근래 몇 년은 거의 그런 활동에서 떠났기에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없는데.. 무엇인가? 아하~ 바울라 자매와의 통화였다. 그러면 이해가 간다. 그 자매님 흥분하면 대포 같은 목소리가 나오니까… 그러면 왜 큰 소리가? 레지오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난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셨던 모양, 자세한 이유를 모르시니 우리가 ‘영적’ 게으름이라도 피우는 것으로 잘못 아신 것이다. 결국은 ‘Kafka적 사건, 왕마귀’ 때문이었다는 이유를 들으시고 어렵사리 수긍을 하셨다고…  과연 그 결정은 잘 한 것이었을까, 사실 자신이 없다. 10여 년이 지난 후에는 조금 알 수 있을지…

드디어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머리 속이 벌써 편안해지는 바로 고향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James Martin, Eben Alexander, Robert Barron, Jordan Peterson, Thomas Merton.. 근래에 들어서 특히 Pandemic이 시작된 이후에 심취하고,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고향이 바로 이들의 저서들이었다. 그것을 몇 달 동안이나 책 정리를 한답시며 밀쳐놓아서 나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 어떻게 이런 게으름의 극치를 연출하고 있었던가? 오늘 거의 우연히 발견한 사실이 기적 같고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잊고 살 수가 있었던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었나?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웃기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脫 세속뉴스’ 첫날

어제 오후부터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조금 슬프고 섭섭하다는 것이었는데 아직도 그런 후유증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조금 때가 되었는가 하는 깨달음인가… 일단 아침의 세속 routine을 접기로 했다. 언제까지 갈지는 자신이 없지만 현재의 나의 삶의 지표, 방향이 조금은 ‘세상을 향한’ 것 같은 것이다. 세상이란 것, 세속적 인간세상이란 것, 어느 정도까지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문제는 어제부터 각종 주일 강론에서 느끼고 있는 것, 과연 나의 모든 것의 중심에 누가 있는가… 자신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선 무게 중심, 관심의 중심의 방향부터 조절을 해 보고 싶다.

세상의 소음, 잡음으로부터 조금은 멀어지려는 조그만 첫 걸음은 그런대로 성공을 했기에 앞으로 머리 속이 깨끗해질 수 있는 희망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 소극적인 접근방법이었다. 더욱 적극적으로 잔잔한 평정의 세계로 가는 방법은 ‘조용한 화제’를 찾아 책, 대중 매체를 보고 듣는 것이다. 현재 나의 옆에서 졸고 있는 산더미 같은 ‘좋은 책’들, 바로 그것에 나의 손이 아직도 쉽게 가지 않는 것, 그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커다란 도전인데, 아마도 이번에는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아침미사로 시작을 했기에 일단은 보람 있고 성공한 날로 쳐야 할 것이다. Miguel신부님 주례 미사이기에 강론도 격조가 높은 것이고 미사 자체는 말할 나위도 없이 ‘고전적’인 것이기에 우리는 사실 ‘가톨릭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신심 행위 중에서 미사 참례, 영성체 등의 비중을 잊고 살 때가 많을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아침 2~3시간의 외출은 정말로 값진 것 아닐까? 성모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시도를 해 본 것, 나의 자존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던 shower head modification 의 마지막 희망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나의 실수로 부서진 connector를 복구하려는 노력, 될 듯 말 듯한 것, 화가 나는 것을 어떻게 진정해야 하는 나의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왜 이런 ‘작은 것’에 연연을 하는가 말이다. 식별의 중요성, 어제 구(동욱, 미카엘) 신부님의 ‘더 중요한 것, 더 먼저 해야 하는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포기를 했다. 끝이다…

오늘도 올 여름 나를 살려주고 있는 ‘납량특급’  [한국]역사물 들을 보며 마음껏 더위를 잊는다. 오늘도 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고전적 여름’의 모습이어서 오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시커먼 구름과 함께 비록 짧긴 하지만 비까지 쏟아지는 것이 그렇게 평안함을 줄 수가 없구나. 이것이 역사물을 보는 것과 어울려 초복이 지나가는 한 여름을 서늘하게 해준다.  또한 다른 쪽에서는 1968/9년 무렵 서울의 여름에 한창 즐겨 듣던 Johnny Rivers의 pop oldie Summer Rain의 추억까지 어울리면 결국 이것이 극락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아~ 추억의 60년대 여름들이여~~ 절대로 그것만은 기억세포에 끝까지 남을 수 있게 해주라~~

Our Lady of Mount Carmel

이틀 동안이나 갈 수가 없었던 아침미사엘 갈 수가 있었다. 연숙이 다행히도 제시간이 일어난 것, 알고 보면 이런 문제는 역시 연숙의 불면증에 의한 것인데 나는 알면서도 그렇게 모르는 척, 짜증이 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것인데..
오늘은 달력을 보니 갈멜산의 성모님 기념일이었고 아침미사엘 가보니 그것에 맞추어서 갈멜재속회 소속 회원들의 서원식이 있었다. 이 동네 성당의 아침 묵주기도 팀 멤버들이 많이 보였다. 입회하는 사람과 종신서원 하는 사람들…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나도 저런 것 할 수도 있는데..’ 하는 대담한 생각도 할 듯하지만, 아~ 나는 분명히 그때와 다른 모습의 신심의 소유자가 되었는가… 이제는 모든 것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니,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침 미사의 신비인가, 비교적 머리 속이 평화스럽던 날, 무슨 큰 일을 시작하거나 완수하거나 하는 희망이 가득했지만 지나고 보니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그런 것이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래도’ 오늘은 모든 것이 가볍고 산뜻하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했으니… 요즈음의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인생의 하루에 속할 듯하다. 그래, 계속 이런 날들이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Nikola Tesla…Serbian 이제는 일반인들에게 너무나 필요이상으로 알려진, 이 사람이 Serbia 출신이었던가? 예전의 Yugoslavia의 Medjugorje 성모 마리아 발현으로 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조금 친숙해지기도 했지만 결과는 그들의 ‘잔인성’만 부각하게 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정치 지도자들이 우선 우리의 말로는 잔인한 ‘개XX  빨갱이 축’에 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이 ‘초복’이란다. 그러니까 복더위가 7월 중순에 시작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지 주위가 집 주위가, 아니 세상이 온통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냥 초록이 아니고 초록 중의 초록… 밭농사 고추 첫 수확부터 빗물을 맛본 대지는 온통 각종 잡초와 잔디로 덮이며 초복의 여름을 간다…  하지만 점점 다가오는 다른 계절의 모습이 초록과 겹치는 착각을 느낀다.

‘해괴한 사건’ 때문에 충동적으로 order했던 cheap bodycam이 며칠 만에 도착했다. 싼 것을 찾는 나의 습성이 어디로 가랴~ 하지만 그냥 싼 것이 아니고, 나의 기준에 알맞은 것이기에 문제는 없다. 진짜 문제는 온통 broken English 투성이인 ‘짱깨’영어로 된 설명서… 이것을 어떻게 해독을 할 것인가?

원래 예정에는 혼자서 YMCA엘 가려고 했는데 조금씩 꾀가 나기 시작해서 질질 시간을 끌다가 그래도 결심을 하고 늦게 거의 5시에 가까운 시간에 YMCA엘 가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차가 거의 없는 것이 흡사 문을 조금 있으면 닫는 듯 보였으니… 부리나케 website엘 들어가 보니… 토요일은 5시까지 연다고? 아~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차의 gas만 축내었단 말이냐? 오늘 굳이 YMCA엘 가려고 했던 이유 중에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shower로 머리와 몸을 씻으려는 것도 있었는데… 할 수 없이 물이 신경질 날 정도로 쫄쫄 조금씩 흐르는 나의 샤워로 감기는 했는데… 갑자기 머리가 번뜩했다. 그래… 요새 각종 tool들과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혹시 이 shower head를 변형시킬 수는 없을까… 하고 Youtube를 보니 역시 방법이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잘못하면 못쓰게 될 까봐 그런 것인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것도 또 다른 mickey mouse project가 되었다.

안개 속으로 사라진 꿈 속의…

어제 밤 잠을 청하며 garage에 설치하려는 tool/workbench design을 머리 속으로 열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직전에 websites들에서 본 idea, size등등이 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에 나는 만족했다. 이렇게 되면 큰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만약 main lumber인 2×4 supply (Pandemic 이후)에 문제가 있어도 , 우리처럼 조금 정도, 몇 개 정도는 사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잠을 자면서 꿈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생각지도 않게 난데없이 성당 ‘R 엘리사벳’자매가 나타난 것이다. 이 자매도 나의 ‘지난 십여 년’ 동안 만났던 한 사람이고 은근히 좋은 관계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많은 다른 관계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안개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남는다. 레지오와 구역모임도 그렇고, 그의 남편과의 동문관계 등등, 그 모든 것도 결국은 도움이 되지 않은 듯했다. 요즈음은 이런 많은 ‘실망적인 관계’등등이 거의 ‘내가 꿈을 꾼 듯’한 느낌으로  남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알다가도 모를 듯한 우리가 보는 성당공동체의 변모, 솔직히 조금은 실망적이고 어두운 전망인데.. 세상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무엇을 잘 못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간단하다, 이대로 관망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인 것이라는 사실..

오늘은 새로니 식구가 오는 날, 사실은 꼭 올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오고 싶어하니 어쩌겠나? 할 수 있을 때 하자…  내일은 오랜만에 순교자 성당 평일에 가는 날이 된다. 우리와 조금은 특별한 관계를 가졌던 L 크리스티나 자매의 연도가 정오미사 직후에 있는데.. 우선은 조금 망설인 것도 사실이지만 결론은 ‘안 가는 것은 안 된다’ 로 둘이 동의를 한 셈이다. 어떤 사람들이 오느냐 하는 것에 내가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이 나 자신도 싫었다. 왜 이렇게 서서히 몇 기피인물을 가리며 피하며, 조심해야만 한단 말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머리와 고개를 들어라!

역쉬~~ 손주딸과 같이 집에 있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가급적 같이 놀아주고 보아주고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꾸만 나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있는가? 이런 날은 아예 푹 쉬는 기분으로 갓난 손녀를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번 주에 들어서 3일째 보게 되어서 그런지 유나와 나는 아주 가까워진 듯하다. 유나도 나를 보면 이제는 웃는 것이 보통, 정상으로 되었으니까… 로난 때와는 다른 느낌은 역시 Asian look때문은 아닐지,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여자애라는 것 이유가 더 클 것이다. 언젠가는 유나 식구가 이곳을 떠나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꿈을 꾸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아쉽고 조금은 운명적인 삶을 서로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소설 같은 상상을 해 본다.

Shed와 Garage를 일부러 왔다갔다하면서 보고 또 보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더욱 넓어지는 2 car garage에 멋진 workbench와 book/stuff shelve를 만들 수 있을까? 지금은 이를테면 첫 design 단계인데.. 이 과정이 사실 tool들을 휘두르는 construction 단계보다 더 골치가 아픈 것을 안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져서 남의 design idea를 보고 ‘모방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졌는가? 이미 남들이 고생하며 경험하며 생각하며 고안한 idea들이 website 특히 YouTube에 줄줄이 발견되니.. 관건은 나의 필요, 기호와 가장 가까운 것을 찾는 일이다. 그래도 많이 생각을 굳혀 가고 있으니까… 다행스럽게 lumber를 비롯한 material들은 shed안에 충분히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즉시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는데… 게으름이 문제다, 땀 나는 것을 피하고 싶은 이 날씨와 나의 진보된 나이여~~

오늘도 90도가 넘지 않는 날씨에 감사한다. 관심이 가는 것, 기온이 아니고 습도였다. 다행 중 다행으로 습도가 40% 대에 머물고 있으니 해가 기울면서 예전처럼 목욕탕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래서 여름은 뜻밖의 즐거움도 있는가 보다. 7월도 중순이니 여름도 많이 지나가고 있지 않는가? 가급적 ‘납량’이란 말을 상기하며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나는 편하게 납량의 일환으로 역사물을 보고 또 본다. 오늘 이재영과 카톡을 하며 여름은 ‘정치’보다는 ‘역사’를 보는 것이 시원하다고 했더니, 그 친구 왈 ‘미운 놈들을 씹는 것이 훨씬 시원하다’고…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이고 표현인가… 이 중앙동창 새 친구, 가능하면 두고 두고 제1의 ghost friend로 사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정치 관심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그것을 조금 다른 쪽, 역사, 종교, 과학 등으로 분산을 시킬 수 있으면 되는데… 그의 너무나 해박한 정치적 지식이 걸림돌인 듯… 하니…

Quite Fourth of July 2022..

피부에 익숙한 전형적인 7월 4일 전후의 날씨와 모습들… 아~ 나도 오래 살았다, 특히 이 주변에서… 모든 것이 이렇게도 익숙하니 말이다. 그제와 어제의 ‘작은 사고와 일들’을 뒤로 하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좋은 결말인 것으로 기억에 남기고 싶기도 하고… 그래, 또 또 시간과 세월이 약이고 처방이다. 좋은 과거만 생각하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고 싶다.
아침 식사를 한 후에 마음이 변하기 전에 YMCA엘 다녀왔다. 혼자서 간 것이다. 이제 이렇게 둘이 떨어져 만드는 일들이 조금씩 습관이 되는 것,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기야 우리처럼 외출할 때 같이 행동하는 부부도 많지 않을 것 같고, 그것을 또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들도 있을 수 있는 것도 안다. 오늘도 운동하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 아닌가? R형이 아침 6시에 gym에 간다는 말에 놀라기도 했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이다. 나도 그런 대열에 끼고 싶다. 건강하게 살고 싶고 사람들도 보고 싶고…

예정대로 늦은 점심은 grilled beef streak였다. 오랜만에 맛있고 비싼 것이란다. $10짜리란 소리에 움칠했지만, 그래~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사실 지난 시절의 그 맛은 잊은 지 오래 된 느낌이교… 가끔 먹는 것인데 무엇이 상관이랴~~  조금이라도 더 Holiday Spirit을 찾으려 노력을 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Oath 할 때 받았던 tiny flag을 mailbox post에 얹어 놓은 것으로 이날을 지내며 며칠 전부터 요란하게 듣고 보던 firework 들, 막상 저녁 때의 main event는 폭우로 잠잠해지고… 나의 가슴도 왠지 모르게 이유 없이 쓸쓸해지고.. 왜 그럴까.. 

책상 바로 앞에 놓은 탁상용 교회달력, 7월이 훤하게 하얗게 보이며 완전히 텅 빈 느낌이다. 앞으로 별로 ‘고정 스케줄’이 안 보이고 머리 속에도 없는 것이다. 한가해진 느낌은 편안하게 하지만, 나는 과연 살아 있는 것인가 하는 조바심과 의구심이 그림자처럼 나를 휩싼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그래 내가 쓸 수 있는 시간들이 무한정으로 최소한 한달 동안은… 할 수 있는 일들을 내가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의욕도 조금 느끼고… 아~ 조금은 머리가 혼란스럽다… 어머님들, 성모님, 저를 잊지 마세요~~~

2022년 후반이 시작되는 날…

2022년 7월 1일, 한 해의 딱 절반이 완전히 지나갔구나… 이미 해는 조금씩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고, 미친듯한 더위도 우리 몸을 조금은 나머지 여름에 알맞게 적당히 달구어 놓았다. 자연에 적응하는 우리의 몸은 역시 신비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완전히 열대성 pattern의 날씨, 나쁘지 않다. 오후에 적당히 폭우라도 쏟아지면 그것은 절대로 최고의 날이 된다. 요새의 날씨가 바로 그런 것인데… 안타깝게도 원하는 만큼의 비는 오지를 않으니…
올해의 July Fourth는 조금 우리에게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성조기와 선거투표 등의 의미가 완전해진 것을 축하해야 하지 않겠는가? 250년 민주주의의 전당, 보루가 된 곳, 그 시작과 현재를 생각하며 이곳에서의 우리의 위치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원래 예정된 일, 일과, 일정을 모두 마치긴 했다. Holy Family CC 아침미사, 전보다 5분 정도 일찍 가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것은 묵주기도 팀들과 조금 더 같이 기도에 참여하고 싶은 것이 이유였다. 비록 전부를 같이 하지는 못하긴 하지만… 그 팀에서 우리를 의식해서 매일 미사, 기도문 등을 우리에게도 나누어주어서 우리도 조금 호응을 하고 싶었다. 점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중요한 신앙생활의 커다란 몫을 줄 수 있는 곳, 바로 오랜 역사의 이 가까운 동네성당 Holy Family가 아닐까? 이곳이 없었더라면 최소한 나는 커다란 신앙의 위기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지난번에 시도한 ‘도시락’으로 Sonata Cafe를 채웠다. 솔직히 참 맛이 있었다. 이런 것은 솔직히 나는 자랑스럽다. 하지만 나의 이상한 성격은 그것을 조금도 자랑하기는커녕 거의 무시하는 듯한 ‘내숭’으로 일관을 하고 있다. 연숙이 같았으면 요란하게 자화자찬을 했을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어떤 태도가 더 바람직한 것인지 아직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요새는 나의 태도는 필요이상의 내숭에 속한다는 것을 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내가 잘했다고 확신을 하면 그것을 밝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너무나 그것을 일부러 ‘무시하려는 듯’한 태도임을 안다.

오늘 YMCA workout, 어제에 이어서 나는 연일 계속을 하는 기록경신을 하고 있는데… 큰 무리가 없음을 느껴서 기분이 좋다. 의식적으로 상체의 근육에 신경을 쓰는데, 전처럼 보기도 좋고 실용적인 근육을 바라는데, 현재의 weight scale을 보면 멀긴 멀었다. 예를 들면 chest press, 오래 전 잘 나갈 때는 나의 체중 145파운드를 10 reps 하곤 했는데, 지금은 100파운드 로 간신히 접근하고 있으니… 하지만 이것, 희망적으로, 시간문제가 아닐까?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느낌과 별도로 나의 나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 무리한 근육운동이 우리 나이에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도 있으니… 그래, 정도껏 하자, 정도껏…
YMCA에 들어갈 때부터 오기 시작한 잔잔한 비가 나올 때까지 계속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폭우나 시원하게 내리는 정도는 아니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제법 내렸던 적이 없어서, 우리는 만세를 불렀다. 특히 우리 집의 말라 들어가는 잔디와 각종 화초들의 불쌍한 모습을 생각하니, 얼마나 beneficial rain인가? 
월요일에 왔어야 할 trash truck이 금요일인 오늘 오후에 왔으니… 근래에 완전히 이런 식으로 service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데, 아주 신경이 쓰인다. 동네의 많은 집들이 Green 이란 곳으로 바꾸고 있는데… 특히 Josh까지.. 어찌할 것인지 나도 고민이다. 분명한 것은 바꾸어도 역시 그들도 시간이 지나가면 이런 식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경험적 사실이다.

Fourth of July weekend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별로 움직이는 것은 없지만 대신 집에 있어야 하게 되었다. 새로니 부부가 모처럼 Night Out을 하게 된 것이다. 전에도 한번 이런 적이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물론 유나와 Ozzie를 떠나는 하루 밤, 그것이겠지만 얼마나 그들에게는 달콤하고 필요한 시간이 되겠는지… 내일 아침에 유나와 Ozzie를 우리 집에 맡겨두고 일요일에 데리러 올 것인데… 우리는 유나에게 신경을 쓰면 되겠고… 모처럼 나는 Ozzie와 그 동안 전혀 구경조차 못했던 동네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Independence Day에는 우리 둘이 집에서 barbecue를 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전부다. 또한 그날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곳의 한 시민이라는 것에 연관을 시키는 그런 첫날이 될 것이다… 우리 주님, 성모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감사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뜻, 은총 덕분입니다!

Catholic Justice, Balanced Breakfast, Yoona’s Big Day…

이번 대법원의 낙태법 판결을 보니 대법관 9명 중에 6명의 다수결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6명의 다수가 모두 가톨릭 교인들이었다. 나는 그저 적지 않은 수의 가톨릭 대법관이 있다는 정도만 짐작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조금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미국에 가톨릭이 전체 인구의 20% 정도고 개신교인는 25%나 되는데, 대법관 중 현재 개신교 신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 내가 가톨릭이라서 이런 사실은 물론 반가운 것이지만 그만큼 책임의식도 없지 않다. 이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엉뚱하게 가톨릭 전체가 비난을 받을 것 같은 유치한 우려도 없지 않은 것이다.

헌법 해석범위 한도 내에서 이들 6명은 결국 모두 자기의 신앙의 가르침을 지킨 것이라서 우선 그들은 독실한 신자이리라 짐작을 한다. 또한 그들의 배경이나 성품으로 보아도 일부 개신교, 특히 복음주의 신자들에 비해서 훨씬 더 온건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했을 것이다. 또한 가톨릭 교회의 특성상 그들은 바티칸의 배경도 잊지 않았기에 나는 이번 판결이 궁극적으로 공정하다고 확신을 하고 싶다.

 

오늘은 유난히  ‘내가 만든 아침식사’가 먹음직하게 보인다. 이제는 관록도 붙었고 손쉽게 준비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것, 요리라고 볼 수는 없다. 너무나 간단한 routine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새로운 menu는 없을까? 없을 리가 있나? 내가 도전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연숙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영양학적으로 balanced meal이라고 하니, 큰 문제없이 먹는 것이다.

모처럼 일찍, 시계의 6시를 숫자를 보며 일어났다. Ear plug을 해서 그런지 잔잔하게 빗소리를 상상했지만 역쉬~ 그것이 아니었다. 왜 올해는 그렇게 빗님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망설이는 것일까? 물론 우리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밖에 물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년에 비해서 덥게 느껴지는 날씨 때문이지만 사실은 앞쪽 잔디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왜 그렇게 그쪽에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이유 중에는 우리 curl-de-sac 이웃 집들의 잔디가 너무나 완벽하게 보이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집과 비교해서 그런 것인데… 다른 곳에 가면 그렇게 크게 큰 차이가 없는 곳도 꽤 있던데… 문제는 수도물을 그곳에 쓰는 것, 자원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공식 가뭄은 아니더라도 물이 점점 귀하게 된다는 사실은 항상 우리의 머리를 떠나지 않으니… 이것은 올바른 생각일 것이다.

‘벽 달력’이 [임시로] 사라진 것이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지금 한 달 중에 어디쯤 가고 있는지 시각적인 감각이 없어진 것이 세월의 흐름에 대한 감각을 이렇게 무디게 하는 것인지 몰랐다. Desk 달력도 벽, 수직으로 걸린 것과 차이가 있구나. 제일 손쉬운 방법은 PC 의 desktop screen에 항상 보이게 하는 것이 있으면… 예전에는 그런 widget utilities들이 꽤 많았고 유행을 했었는데. 그 놈의 smartphone 이후 사라진 것은 아닐지… 한번 찾아보면…

오늘은 모처럼 연숙이 밭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기에 나 혼자서 YMCA엘 다녀왔다. 내일 같이 가기로 했기에 오늘은 나의 운동량을 조금 줄여서 했지만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이제 조금씩 근육에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어서 그것으로 나는 대만족이다. 하체보다 상체, 특히 팔뚝/어깨/가슴 부분이 그 동안 많이 힘을 잃은 것처럼 보여서 그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게다가 indoor track에서 최소한 30분 이상을 걸으니까.. 요새 동네 산책을 전혀 못하는 것을 보완해주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아~ 유나 바다, 첫돌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 새로니의 딸, 우리의 외손녀,  이제는 방실방실 웃는 얼굴을 많이 보게 되었다. 새로니 부부가 참 수고를 많이 했다는 칭찬을 하고 싶을 정도다. 요새 애기 낳고 기르는 것이 정말 장난이 아님을 알지만 많은 젊은 부부들이 아기 낳는 것을 가급적 피하는 것을 보면 아쉽기만 하다. 이런 아기 얼굴을 보면 어찌 그렇게 힘든 것만 생각할 수 있을까?

 

Ordinary Times Return…

오늘 영어 성당달력을 보니 10th Week in Ordinary Time 이라고… 허~ 나는 아직도 부활주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부활주일은 도대체 언제까지인가? 하여간 이것은 공식달력이니까 분명히 오늘부터는 연중임은 틀림이 없구나… 부활주일이 뒤고 가고, 대림절 시작까지 연중~~ 그래 연중이여, 저에게 변함없는 부활의 은총을 선사해 주소서…

시원한 아침, 구름까지 낀 모습이 내가 어제 저녁에 그립도록 그리던 그런 모습의 초여름 모습이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려는가? 하루를 열심히, 의도적으로 열심히, 일할 때와 휴식을 구별해 가면서, 너무 감정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지난 밤, 아차~ 하면 잠을 설치겠다~ 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꿈을 동반한 그런대로 quality sleep을 만나게 되었다. 어제의 꿈은 사실 100% 꿈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던 것이 서서히 꿈으로 변해갔던 것, 이것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거의 꿈속의 꿈을 경험한 것인지… 이제는 꿈과 생시의 경계가 전처럼 뚜렷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하나의 ‘늙음의 은총’일까… 솔직히 늙어감은 흥미롭고 재미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은총이 나이와 비례해서 더 느껴지기를 바라는데…

오늘의 조금 다른 계획은: 99% 정상적 daily routine, 아침미사, Sonata Cafe, 그리고 YMCA workout이지만 조금 다른 것은 연숙이는 오늘까지는 운동대신에 그 시간에 Marshall에서 shopping을 하겠다고… 이런 적은 전에 없었는데, why not? 하지만 나는 조금 조심을 하기로 했다. 운동량을 1/2 정돌 이하로 낮추는 것, 오늘은 정말로 조심해서 하기로 결심을 한다. 의외로 후유증이 괴로운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오늘 상쾌한, 시원한 날씨, 방학이 시작되어 school bus의 모습이 사라진 조금 조용한 거리의 모습을 보며 아침미사엘 갔다. 정말 오랜만에 Fr. Ketter와 주임신부가 공동집전 하는 월요일 아침미사, 정말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이 말할 수 없는 평화의 강이 성당주변을 흐르는 착각에 빠지는 것, 이것은 한마디로 은총이다. 오늘 아침 이곳에서 한가지 의문이 풀렸다. 부활초가 꺼진 모습을 연숙이 언급을 한다. 아하~ 그렇구나, 오늘부터 연중시기가 시작되는 구나! 어찌 이 사실을 잊고 살았을까? 그러니까… 부활시기는 성령강림대축일로 끝나고 곧바로 연중시기가… 시작… 이제는 죽었던 깨어나도 이 사실은 잊지 못하게 되었다… 아~ 연중, 연중… 다음은 대림시기… 성탄절, 하얀 눈… 그리고 2023년… 그렇구나, 소까소까~~

오늘 연중시기는 100% 정상 routine으로 시작이 되었다. 아침미사, Sonata Cafe, 그리고 나는 YMCA 연숙은 Marshall… 오늘 workout은 명심을 하고 가볍게 짧게 하려고 노력을 거듭하였다. 분명히 통증완화에 도움을 주리라 희망… 대신 걷는 것을 15분 늘였다. 이 정도로 움직이는 나, 건강하게 사는 것, 자신을 하고 싶지만, 겸손하자, 겸손…

의외로 시원한 하루하루도 그렇고 오후에 비가 올 듯 말 듯한 것도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훨씬 상쾌해진다. 6월 달의 날씨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지… 7월은 거의 완전히 열대성 pattern일 것이고…  이렇게 들뜬 기분의 덕분인가… 책상다리를 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각종 video를 보는 것, 절대로 행복한 시간이 된다. 이런 시간도 가끔은 있어야지… 오늘 pvc pipe work은 쉬기로 했다. 핑계는 물론 pvc pipe cement가 아직도 배달이 될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만… 조금 쉬고 싶기도 했다. 이 물건이 더 늦으면 아예 Home Depot에 가서 pickup을 하고 원래 것이 배달되면 return을 할 생각인데… 어떨지…

 

Outdoor Gym, Sleep Machine, Primary Caveat, Fake Chinese…

YMCA workout, 전보다 조금 익숙하게 거의 모든 weight machine을 사용해 보았다. 나의 관심은 역시 이 ‘진보된 나이’에 앞으로 얼마나 이런 것을 쓸 수 있는가 하는 것과 근육이 전처럼 발달이 될까 하는 것이지만, 솔직히 육체적인 것보다는 심리적, 정신적인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요즈음 서서히, 조금씩 코로나바이러스 case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조금 걱정은 되지만 전처럼 YMCA가 다시 문을 닫는 일은 없지 않을까…

YMCA, 거의 20년 이상 정든 이 건물의 모습, 우리가 parking하는 곳에서 걸어 들어갈 때 보이는 이것, Pandemic  동안은 꿈 속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쉬던 동안에 outdoor gym이 생겼다. 큰 것은 아니어도 이렇게 노력을 하며 사는 우리 community가  대견스럽다. 오늘 부터는 연숙을 현관 정문에서 내려주고 나 혼자 걷는다. 이것도 예전에 하던 대로…

오늘도 이런 것들 덕분에 stress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하루를 보낸 셈이다. 또한 Georgia Primary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찾아보고 배운 것들도 있었다. Primary 에서는 정당을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제한이 있는 것은 조금 실망적이다. Donald ‘개XX’ 떨거지들을 떨어뜨리려면 어쩔 수 없이 Republican ballot을 선택해야 하는데… 조금 머리가 복잡해진다. Primary니까 아주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서 조금 11월의 general election까지 여유는 있기는 하지만…

 

잠, 잠, 밤잠, 수면, 불면, 불면증…  두통과 불면의 고통에 대한 체감이 거의 없이 오래도 잘 살았다, 지금까지… 하지만 이런 ‘불패의 신화’도 시간문제인가? 두통은 아직도 불패라고 할 수 있지만 불면은 나도 역시 ‘늙은이의 대열’로 들어가는 듯하다. 근래에 잠이 드는 것으로 은근히 고민을 시작했는데 점점 심해지는 듯한 것이다. 잠이 일단 들면 큰 문제가 없는데.. 왜 처음에 잠에 떨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육신이 피곤해도 도움이 안 된다. 아직 약의 도움은 거절하고 있고… 결국 매일 밤 뒤척이는 수 밖에…
그러던 중에 아하! 순간이 왔다. 왜 이것을 잊었던가? Sound Machine 종류 장난감들… 전에 이것을 켜놓고 폭포소리 빗소리 파도소리 등을 들으면서 잠을 청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잊고 산다. 그것을 다시 쓰면… 조금 도움이… 하~ 문제가 있구나,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구나. 이 소리에 방해를 받는 배우자가 있으면 어쩔 것이냐? 설득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나의 처지.. 역시 private sound로 가는 수밖에…  전의 sound machine으로는 earphone jack이 없어서 아예 그것이 있는 것을 구해서 쓰기 시작… 과연 이것이 잠드는데 도움을 줄 것인가…

 

‘싼 게 역시 비지떡, 아니다 쓰레기다’ 라는 체험을 근래에 했던 것의 교훈으로 이번에는 ‘비싼 것이 역시 쓸만하다’ 를 경험하는 순간이 되었다. 나의 ‘물건 구매 철학’ 제1조는 ‘우선 싼 것이어야 한다’로 거의 일생을 살았다. 돈도 없지만 대부분 값에 걸맞은 기능의 50% 도 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의 이유다.  또한 값에 비해서 기능이 놀랍게 좋은 보물들을 찾았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도 무시 못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조금 바꾼  ‘사건’이 USB TO SERIAL converter란 작은 device를 살 때 생겼다. 1개의 값으로 3개를 주겠다는 ‘짱깨’들의 선전에 넘어간 것… 그래도 설마 했지만 그 3개나 되는 device가 모조리 불량품이었으니… 1970년대 우리나라 수출전쟁에서 수많은 claim 사건을 본 적이 있는데, 짱깨들은 아직도 이런 모양…  제 값을 주고  산 것은 역쉬~ 제 값을 하고 있으니… 교훈을 얻은 셈이다.

 

‘Bananas & Tomatoes’ Envy

오늘 아침 식사, 비록 soup는 ‘깡통’에서 나온 것이지만 나머지 것은 모두 내가 ‘정성스레’ 손수 조리한 것이다. 아침 식사 담당 10여 년의 결과가 이 정도라면 조금은 부끄럽지 않을까? 하지만 이 정도도 못하는 남자들이 꽤 많을 것이라 추측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숙달조교처럼 이 정도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으니까 아쉬울 것 하나도 없고, 게다가 ‘설거지 서비스’까지 하니, 이 정도면 가정적인 남편이 아닐까?  근래 아침 메뉴는 거의 표준적이지만 아쉽게도 banana, tomato가 빠진 것이 이상하다. 이유는 우리의 칼륨 수치 때문이다. 그것이 꽤 높아서 의사가 이것들을 자제하라고 하니… 이것 수치가 높으면 심장 등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데… 안 먹고 사는 것이 이제는 조금 나아졌지만 가끔 바나나, 도마도 먹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오늘은 심장전문의를  만나서 간단한 진찰과 EKG 심전도 검사의 결과 등을 보았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폐 CT-SCAN 을 할 것인지 고민을 하던 의사, 솔직히 할 필요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한데 우선 찍어 보기로 하긴 했다.  CT가 고장이 났다고 5월 중에 스케줄을 잡기로 했는데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던 것, $200 이 훨씬 넘게 나온 BILL에 놀라기만 했다.

청명,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하늘에 이끌려 밖에 잠깐 나가서 연숙의 일과 garden shed에 손질을 하였다. 지붕에 열린 공간으로 다람쥐가 들어 온다는 사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그 공간을 막기 시작한 것이다. 다람쥐가 들어오는 것보다는 그들의 만의 일이라도 해로운 chemical이라도 먹는 사고가 나에게는 더 신경이 쓰인 것, 이런 사실을 연숙이 알면 혹시 코웃음이라도… 하지만 정말 나는 우주적으로 변했다. 나의 ‘생명경외’의 정도가 슈바이처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어떻게 나는 이렇게 나도 모르게 변한 것일까? 짐작은 한다. 이것은 어머님, 성모님의 손길에 의한 것이다.

Doctor’s Office 방문차, 외출에 힘을 입은 오늘 하루, 비록 매일미사는 못했어도 기분은 유쾌한 편이다. 오후 늦게 desk 앞의 sofa에서 늘어지게 낮잠도 잤다. 이번에도 역시 정든 고양이 Izzie가 잊지도 않고 나의 등에 편안하게 늘어지게 올라와 같이 잔 셈이다. 이렇게 정이 더 드는 것, 나는 언제나 불안하다. 언젠가는 찾아올 그 순간 때문이다.  오늘 낮잠에서 일어날 때는 아주 몸이 가벼워졌고 이어서 평소보다 훨씬 늦은, 저녁에 둘이서 산책을 하였다. 밝은 저녁에 걷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음을 오늘 새삼 느낀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둘이 걸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언제까지…

피하고 싶은 소식들

별로 유쾌하지 못한 뉴스들 때문인가? 밤에 연숙이 구토증으로 ‘911’ 을 부르려고 했다는 말, 어쩌며 그렇게 거침없이 911 을 운운하는 것인지 나는 이해를 못한다. 부를 때 부르면 되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나의 감각이 둔감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아~ 이런 비슷한 경험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고민이다. 정말로 911을 부를 때가 와도 나는 크게 안 놀랄 것 아닌가?

NYT newsletter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 제2의 Trump 노릇을 하고 있는 Putin 푸틴, 또 하나의 ‘만고역적 개XX’, 그가 잘 되는 것은 절대로 참을 수가 없게 되는 나의 모습도 조금은 한심하다. 조금 초연하게 바라보며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느냐? 그 XX들이 큰 도시 하나를 함락했다고… 그것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지 알아보고 우울해지란 말이다!

이 두 가지의 일들로 오늘 아침은 상쾌한 것이 아니고 불쾌한 시간들이 되었다. 빨리 지나가라, 지나가라….

이럴 때는 세속 뉴스의 온도와 흐름을 보는 것이 제일 좋은 처방책이다. 그곳을 보니 역쉬~ 나의 예상은 맞았다. 세상은 아무 큰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평균적 세상의 원칙’인가? 아니면, 정말로 큰 뉴스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한 걸음 뒤로 하며 멀리 보자. 성모님의 희망적인 미소를 잊지 말자…

유나네 집 세 식구 [Ozzie 포함]가 오랜만에 ‘주간 방문’으로 놀러 왔다. 예전처럼 아침식사를 같이 안 하기에 조금 여유는 있지만 그래도 하루가 정해진 것처럼 빠르게도 흐른다. 점심을 꼭 ‘특식’으로 준비하는 연숙이 할머니의 부산함도 그렇고 나는 꼭 Ozzie를 데리고 ‘긴 여정’의 산책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오늘도  전처럼 full course를 시도했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것과 그것 때문인지 녀석이 물을 찾는 듯 했다. 개울물을 조금 마시게 했지만 그것은 조금 안전한 방법이 아닌 듯해서,  Sope Creek Crossing 쪽까지 가지 않고 1시간 반 만에 돌아왔다. 오늘 Ozzie를 가만히, 자세히 가까이서 느껴보니… 개도 역시 사람, 인간이나 다름이 없음을 안다. 말과 두 다리로 서지 못할 뿐이다. 그 속을 우리가 어떻게 과소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도 영혼이 있을 거라는 생각, 아니 바람을 갖는다. 만약 우리들에게 사후 세계가 분명히 있다면 그들에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 바램이라도 좋다. 그들도 반드시 사후의 영역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성모님, 특히 메주고리예 어머님이 이런 것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안 해 주실까?

유나, 유나… 비록 한국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양계의 모습인 것, 로난과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우리와 별 차이가 없음을 안다. 앞으로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서 더 차이가 날지도 모르지만… 오늘 보니 앨러지가 생각보다 더 심한 것을 본다. 이럴 때마다 아쉽기만 하다. 분명히 아빠 쪽의 유전자가 더 강한 것, 이것은 정말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운 것이다. 현재의 정도에서 그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현재 아빠의 문제까지 이어받을까 봐 걱정이 안들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도하자, 기도하자…우리에게는 기도라는 것이 있었지…

백내장 cataract 수술을 했다던 교성이가 소식을 주었는데… 놀란 것은 동창 김원규에 대한 것. 그가 현재 폐암 말기로 요양원에서 항암치료 중이라니…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얼마 전까지 나하고 건주 소식을 이야기 했는데 어떻게 그는 나에게 그런 말을 안 해 주었을까? 섭섭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어찌해야 하나? 정말 우리들 나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과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았단 말인가? 이제 다음의 세계로 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가? 원규야~ 조금은 섭섭하구나… 알려 주었으면 기도를 할 수 있지 않았겠니?

원규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반갑게도 금세 답이 왔다. 모든 정보는 맞긴 한데 치료를 시작한 것이 아주 오래 된 듯하지는 않았다.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을 할까… 신앙이 없는 듯한 그 친구, 내가 기도한다고 한 것에 고맙다고 자기도 노력하겠다고 하는 반응이 너무나 나도 반갑다. 그렇게 고마움을 느끼면 벌써 기도의 효과는 반 정도 보는 것이 아닌가? 이제 나도 크고 작은 초자연적인 기적들, 물리적, 정신적인 것들 얼마든지 있음을 서서히 믿게 되지 않았던가? 그래, Artie Boyle과 같은 기적은 불가능한 것이 절대로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구나. 기도하자, 기도하자… 김원규를 위해서…

小寒과 大寒 사이에서…

소한과 대한 사이에서… 절기가 나와있는 달력이 가까운 곳에 없다.  한겨울과 한여름에 나는 제일 춥고 더운 절기를 확인하며 산다. 겨울에는 소한과 대한, 여름에는 삼복[이것은 절기는 아니지만].. 이것도 전통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소한은 모르겠지만 대한은 추억 중의 추억이다. 나의 생일과 연관이 된 절기이기 때문이다. 어머님, 나의 생일이면 ‘반드시, 반드시’ 언급하던 절기가 바로 ‘대한 추억’… 지금은 소한과 대한 사이를 지나고 있다. 올해는 ‘눈 雪의 반가움’이 있을까, 복권추첨 하는 기분으로 말하던 것이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일요일의 눈 예보가 그것인데… 과연 어떨까? 하지만 기다리는 즐거움을 나는 좋아하니까… 포근한 느낌이다.

싸늘하지만 잔잔한 바람이 부는 오전에 걸었다. 오늘은 ‘등산로’를 택했고 개천보다 훨씬 넓고 깊은 Sope Creek을 따라 걸으며 아마도 일요일에 예보된 ‘겨울의 멋, 얼어붙는 비, 진눈깨비, 아니면 눈, 함박눈’ 등을 마음껏 펼쳐지는 광경에 상상으로 그리며 즐거워했다. 그래, 아무리 노인 같지 느껴지지 않는 노인이지만 이런 동심은 노심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래, 머리가 돌아가는 한 나는 어리게 살다 갈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늙은 욕심, 추한 욕심은 절대로 배격을 하다 갈 것이다.

며칠 만인가? 조심스럽게… NYT morning newsletter를 먼저 보고 나서 TV를 본다. 나를 괴롭히는 뉴스는 없는 듯하다. 아, 그렇구나. 일주일에 한번씩 TV를 보는 것도 괜찮구나… 이곳에서는 피하고 싶은 뉴스가 전부가 아니지 않는가? Ed Sullivan Show가 있구나~ 60년대로 돌아가는 행복이 이곳에 있으니까…

내일 아침에는 Holy Family 성당 9시 미사에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나는 조금 불편한 것, 숨길 수가 없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도망가듯이 미사를 중지했던 그곳,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곳, 2012년부터 매일미사를 갔던 곳, 매일 아침 우리를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하던 곳… 이제는 신비스럽게도 느껴지는 그곳, Pandemic동안 몇 번 찾아갔을 때, 어쩐지 우리를 환영해 주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던 곳… 어떤 것들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 가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가? 

 

Baptism of the Lord, 주님세례축일

아~ 드디어 성탄시즌을 벗어나 사순절을 향하는 연중1주간이 내일 시작되고, 성탄시즌 마지막 날인  ‘주님세례축일’ 일요일을 맞는다[나는 는 어제 시즌이 끝난다고 잘못 생각]. 어제 밤에 조금 마신 vodka때문인지 드물게 머리에 두통기를 느낀다. 요새는 정말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혀끝에서 맛을 보는 정도인데 어제는 그것을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조금 취기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조심할 것이다.

이번 주, 연중의 시작을 맞으며 갑자기 허전한 느낌… 특별하게 계획된 약속 같은 것이 없어서 그런 모양…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아닌가? 사순절까지의 연중기간을 생각한다. 우선 PC screen를 가득 채운 성탄의 모습을  다른 것  chilly morning으로 바꿈.  현재 당면한 과제는 역시 화요일 요한복음 공부를 준비하는 것. 말만 요란히, 생각만 거창하게 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나는 아직도 ‘연필만 깎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나의 노력’으로 나의 머리는 많이 청소가 되고 맑아진 느낌이 든다. 잡스러운 것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야말로 조금 divine milieu 에 가까이 온 것은 아닐까? 나를 24시간 건드리는 ‘악마’의 장난은 물론 느껴지지만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 같다. 노력이란 무엇인가? 불필요한 media exposure를 피하고 가급적 ‘필요한 노출’을 받는 것이다. 계속 생각하며 보는 C.S. Lewis 짧은 전기, Shadowlands, 요한복음 공부 준비, James Martin책들 그런 것들에 더욱 노출이 되어야 한다. 비교적 간단한 처방책이지만 아주 강력한 것임을 이번에 뼈저리기 느낀다. 간단한 선택, 노력…의 효과…

새벽부터 오전 10시까지의 3시간 정도로서 우리는 주일의 행사를 마치고 가벼운 어깨를 느끼며 들어온다. 나의 기쁨의 순간은, 99%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들이다. 왜 그럴까? 8시 10분부터의 성체조배, 8시 반의 주일미사 [영성체 포함], 하얀풍차 [오늘은 들어가지는 않음], 새로니 집에 들려서 빵을 전해주고 연숙은 유나와 Ozzie를 잠깐 보았고, 나는 stress를 덜어주려고 차에서 기다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roasted coffee 맛을 보며, 빵까지 먹으며 들어왔어도 10시가 조금 넘었나? 이렇게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무척 보람찬 시간을 보낸 것, 주일만이 주는 혜택이 아닐까?  10년도 지난 시절 연숙과 Panera Bakery 에서 얘기를 하면서 coffee & bagel 를 즐기던 추억이 떠오른다.. 아~ 세월이여~~

Tech Guy podcast를 듣다가 ‘5G Wireless Internet Service’가 드디어 service를 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오래 전 이런 service의 출현을 공상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기억이 나는데 이제야 현실로 등장하는 모양이다. Magic word는 역시 5G란 것, 결국은 speed인 것이다. 이것들의 Spec이 사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game changer가 아닐지… 더 이상 두더지처럼 ‘땅을 파는’ labor saving이 주는 경제성은 엄청나지 않을까? 이것도 문제는 적지 않을 듯하지만 결국 장점이 훨씬 클 듯하다. 그러면.. 나에게 이것은? 오늘 우연히 availability를 check해 보니, 우리 동네에도 가능하단다. Monthly charge도 현재의 거북이 DSL과 비슷하고….허~ 이것은 거의 유혹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 더 추이를 관망해 보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 If it ain’t broken , don’t fix it… 를 기억하며.

 

39 Years, Scrambled Egg, 5 AM Wonder, Jan 6 SOBs

오늘은 새로니 39살 생일이로구나… 감상에 젖고 싶다. 내년 40살에는 더 그렇겠지만 상관없다. 1983년 1월 5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1983년… 아~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만 머리를 맴도니.. 첫 생명, 새로니 생각보다는 나와 우리부부의 만남부터 grandparents 까지의 인생역정이 더 먼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만남, 결혼은 시작이었지만 아이들의 그것들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완전 미지수였기에, 황혼의 인생도 반드시 밋밋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80년대와 2020년대의 차이는 계량조차 쉽지 않은 엄청나게 다른 세상인데…  새로운 두 가정이 우리로부터 시작 된 우리들의 인생역마차는 이제 서서히 다음의 정거장에서는 완전히 쉬어도 되는 것인가…

 

Leader of the Band – Dan Fogelberg – 1983

 

오늘 로난 모자 母子가 아침에 와서 같이 먹게 될 breakfast에 생각이 미치면서… 아~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든다. 매일 우리가 먹던 것에 신물이 났는가? 침이 나올만한 것은 없는가… 매주 금요일마다 먹는 pancake을 오늘? Pancake은 가급적 금육재 禁肉齋로 meat종류를 피하려는 노력인데, 그것을 수요일에 먹는 것도 괜찮을 듯. 또 다른 것은 없는가?  삶거나 fried한 eggs, 이것도 조금 지겹고… 아하~~ 그렇다, scrambled egg! 그것이 있었지! 재료는 같아도 맛과 기분이 전혀 다른 이것을 오늘 만들면… Googling에서 cooking website, LOVE & LEMONS 라는 곳에서 멋진 모습의 scrambled egg ‘recipe tip’을 찾았는데… 이것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이래도 맛이 있을까? 그것이 scrambled egg 의 매력이라는데.. 흉내를 내 보았지만 pro들이 만든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새벽 5시의 신비, 얼마만인가? 5시에 일어난 것이?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지면 대부분은 다시 자려고 애를 쓰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러기에는 머리가 너무나 맑았다. 사방이 깜깜하고 아주 싸늘한 공기를 헤치며 나오니 elderly cat,  Izzie조차 나 발아래 없다. 얼굴을 보니 자다가 나를 보고 깨어난 듯하다. 그러니 더욱 새벽이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승려들이 사는 절간은 새벽 3시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나는 5시에도 이렇게 죽은 듯하니… 그들이 부럽기조차 하구나… 하지만 부엌의 blind를 열어보니 일찍 일어나시는 B선생댁도 창문의 불빛이 희미하니… 아직 안 일어나셨나… 모처럼 이른 새벽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반갑기만 하다….

며칠 만인가, 다시 ‘독서 삼매경 기분’을 느끼는 것이…역시 좋아하는 주제의 글이나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때가 되었다. 이런 시간에는 로난이 나의 서재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것, 거의 방해나 구애를 안 받는 것도 또한 신기하다. 생각에 집중하는데 그런 잡음이 크게 방해를 못하는 때도 있음은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예외에 불과하고 나머지들의 경우는 대부분 잡념들과 싸울 때가 많다.  또한 나의 독서습관인 ‘잡독, 난독’으로 읽기에 언제 완독을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 또한 나를 편하게, 가볍게, 즐겁게 하는 습관이다. 아마 ‘정독’으로 시작하라면 시작조차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현재 나를 기쁘게 하는 책들: The Hours of the Universe, Life on the Edge, Living in a Mindful Universe, Learning to Pray, JESUS, The Jesuit Guide 등인데..  오늘 한가지가 첨가되었다. 오래 전 출판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신약성서[요한복음]주해집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서가에서 먼지를 털며 꺼냈다. 지난 12월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봉사자를 위한 성서 영적독서’ 에 늦게 참여를 한 바람에 교재 [송봉모 신부님 저 요한복음강해?] 1권을 거의 놓치고 말았기에 이 옛날 책이라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것으로 한번 ‘신비의 요한복음’에 도전을 해 보고 싶다. 게다가 이번 신부님의 독서강해는 예수회의 관점이 많이 도입이 되는 듯해서 나에게 더욱 흥미를 끈다.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론’에 도전하게 되는 것인지… 조금 흥분까지 된다.

예정대로 오늘 로난 일행이 baby-sitting 도움을 받으러 왔다. 다음 주부터는 Daycare Center가 개학을 하니까 애 보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 이제 이 녀석도 조금 컸다고 행동하는 것도 조금은 성숙해 보이고 천상 개구쟁이가 되어간다. 앞으로 우리와 어떠한 관계로 살아갈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bi-culture문제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어쩔 것인가? 그저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필요할 때마다 오늘처럼 도와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입장도 아니고.. 이것도 선택인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두 문화, 두 언어 교육에 개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내일은 그 악몽의 9/11 terror attack 에 버금가는 1/6 사태 1주년을 맞는 날이다. 물론 나는 내일 ‘조용히’ 모든 media에서 눈을 돌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연극’을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건강에도 좋고 평화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나 생생한 살기 殺氣[정말 그 DONALD 개XX  일당들을 ‘라이파이의 살인광선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것…]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다.

 

Happy Tiger New Year, 2022!

올해가 호랑이 해라는 사실을 카톡으로 날라오는 각종 새해인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임인壬寅년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는 어느 정도 흥미와 추억으로 이런 것들을 보았지만 그것조차 희미해지는 듯하니.. 나이인가 지리적 문화적 차이인가… 오래 전의 얼어붙은 흰색의 서울, 새해의 모습조차 가물거린다. 하지만 눈물겹게 그리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제 밤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12시까지 둘이서 ‘청승맞게’ Time Square의 3-2-1 Happy New Year! 를 기다리고 정시에 Champaign 터뜨렸다. 이것에 도대체 몇 년째인가? 아이들이 집에 살 때 나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에 아이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이번에는 병마개를 열기 전에 조금 흔들렸는지 완전히 폭포수, 폭우처럼 나의 머리위로 쏟아져 Happy New Year를 외칠 시간을 잊고 말았다. 이런 것도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습관 탓인지 오늘은 7시가 훨씬 지나서야 묵직한 기분으로 간신히 일어났다. 날씨는 완전히 봄을 연상시키는 희한한 것, 연숙이는 각종 화초들이 모조리 올라온다고 아우성, 그것은 불쌍하다는 뜻일 거다. 조금 있으면 모조리 얼게 될 것이라는 냉혹한 자연의 섭리를 말하는 것. 매년 매년 그렇게 똑같은 자연관찰을 하는 그녀를 나는 계속 비웃어 주는데… 유머러스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거지 상으로~ 조금 웃으며 농담처럼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것이 그렇게도 힘들단 말인가?

뒤끝이 묵직~하고 심지어 괴로운 시간을 어제 저녁부터 새해를 맞이할 때까지 계속 보낸다.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 아하~ 치질기가 발동했구나~ 너무나 오랜만에 겪는 것이라 잊고 살았나? 그제 변비로 인해서 고생 한 것이 그대로~~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그런데 갑자기 왜 변비가 되었을까? 이렇게 냄새 나는 화제는 싫어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피할 것도 아닌 솔직한 인간상이 아닐까?

아~ 새해의 고민, 달력이 없다~ 웃긴다. 어떤 해는 너무나 많아서 귀찮았는데, 어떻게 올해는 하나도? 벽 달력은 장식용에 가까우니 문제가 없는데 탁상용은 문제다. 1월 달 것은 print해 놓은 것을 쓰면 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Holy Family CC에서 주는 ‘간단한 Catholic Calendar’그것이 나는 필요한데… 과연 우리는 그곳으로 불원간 복귀를 할 수 있을까?

치질기를 핑계로 오늘 하루의 요리 전부는 연숙이 하게 되었다. 덕분에 아침을 편하게 푸짐히 먹을 수는 있지만 역시 몸에 고통의 그림자를 느낀다는 것은 괴롭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 아닐까? 하지만 병에도 차이가 엄청 많으니… 나는 사실 그렇게 불평할 처지가 못 된다. 나와 비교도 안 되게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응석 중의 응석인 것이다.

현재부터 소급해서 2000년대 후반[2007년] 까지 되돌아보는 나의 블로그  upgrade 작업[WEB 2.0],  기술적인 문제들은 모두 해결이 되었지만, 작업 자체가 기분이 별로 상쾌하지 않고 오히려 싫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하다~ 왜 그런지… 피하고 싶기도 한 시대와 장소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하~ 그렇다. 사실 잊고 싶은 작은 상처와 고민들이 몰려 있었던  10여 년의 세월 2000년 대… 나는 정리하기가 무서워서 덮어 두었던 때였다. 2000년 대… 9/11부터 어머님들의 타계, 내 자존감의 급작스런 변화, 경제적 압박.. 아이들의 변신과 변모… 냉담적 신앙의 인생무상… 그때를 나는 조금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때를 볼 수가 없을 듯하다. 어쩔 것인가? 그에 비하면 1990년대는 거의 천국에 가까울 정도다…아~ 어쩔 것인가?  나는 크게 오산을 하고 있었다. 과연 ‘엄청난’ 양의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 처음에는 시각적[photo]인 것에 모든 정력을 쏟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내용에 치중하게 되었다. 사진, 그림 등이 서서히 사라지고 ‘고통의 절규’다운 글들, 이것들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고 머리로 생각하고 회고해야 하는 것들이라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결국 일단 끝이 났다. 도대체 며칠이나 걸렸나? 그 동안 각종 독서활동은  완전히 정지가 되고 연말 단상, 묵상, 기도 등에 좋지 않은 상처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한 것, 그것이 아닐까? 앞으로 이런 기회는 자주 없을 것이니까…

 

On Christmas 2021

성탄미사, 간신히 제 시간에 생방송으로 참례를 할 수 있었다. 스크린에는 생각보다 많은 교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Omicron 위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당에 대한 신뢰는 대단한 것으로 보였고, 상대적으로 우리는 너무 조심한 것은 아니었던지… 하지만 위로가 있다면, 작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생방송 미사 참례를 못했던 대신가족들은 모일 수 있었지만 올해는 Thanksgiving부터 시작해서 가족행사는 완전히 못한 셈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덜 피곤하고 덜 신경이 쓰이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그것이 나인 것을 어찌하랴~ 비록 모이지는 못했어도 어제 우리[사실은 연숙]가 극성을 부려 각 가정의 선물들과 연숙이 만든 음식들을 배달해서 간신히 크리스마스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선물, 나는 개인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받기는 했다. 이제 이런 것들 신경 쓰는 것, 솔직히 머리가 제대로 돌지를 않는다. 

10년 전에 망원경 선물을 받은 것 요새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을 알았던 새로니가 두툼한 책, Backyard Astronomer’s Guide를 나에게 주었다. 알고 보니 이 저자의 망원경 입문서는 내가 이미 읽고 있었던 것이고 지금 받은 것은 그것의 후편에 속하는 것이어서 이 선물은 안성맞춤 격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이 책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에게 편하게 맞는 얇은 sweater, 전에 Sherlock에 갔을 때 연숙이 사 주었던 Johnny Walker Black, Shark vacuum cleaner, 올해 World Series Champion Atlanta Braves cap (다 좋은데 색깔이 idiot MAGA를 연상시켜서 별로 쓸 마음이 없지만..) 을 아이들로부터 받았다. 아~ 이렇게 해서 올해의 마지막 가족 행사로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모양…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하고 감사하고 유쾌한 감상이 사그라지기 전에 나는 오수 午睡를 즐기려 2층 침실에 기어들어가 아주 깨끗한 잠을 잤다. 왜 오늘은 의외로 편한 하루를 보낸 것일까?  기분 좋게 오랜만에 포식을 한 스파게티 점심? 아기 예수님의 은총? 머리로는 확실치 않다고 하지만 가슴 속으로는 그럴 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비록 성탄절 당일이었지만 의외로 나는 성스러운 영화나 책을 안 보았다. 그런 것, 내가 내 자신을 기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런 성스러운 표현에 둔감해지는 내가 싫었기 때문일까?  그래, 나는 근래 수 많은 ‘영적독서’를 하고 있지만 성과는 그 노력을 못 따라가는 것을 안다. 왜 그럴까?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노력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왜 가슴이 예전처럼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은 것일까?  오늘 성탄절, 오늘이 성탄8일축제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오늘로서 성탄시즌이 끝난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인지… 역시 Pandemic Omicron으로,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간 것일까?

Pandemic 특히 Omicron을 대하는 새로니와 나라니 두 집은 극과 극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동정심을 금할 수가 없다. 새로니 쪽 사위 건강상 문제도 그렇고 작은 사위의 자유분방한 생활방식도 이런 Pandemic 세상에는 아쉽기만 하다. 최근에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온 이Virus 때문에 사실상 가족모임은 취소되었지만 그래도 선물 교환 등은 마지막 순간에 ‘기적적’으로 실현이 되어서 작으나마 위안을 받는다.

Dementia…  Alzheimer… cancer…high blood pressure, kidney scare,  70대의 화두가 이렇게 바뀔 줄은 미쳐 몰랐다. 희망의 관점도 조금씩 변하는 듯하다. 이제는 완전히 날라오는 화살을 방어하는 자세로 머리가 돌아가고 있다. 특히 신체적인 것, 각종 병들, 사고들… 확률적으로 점점 나에게 불리한 것들 투성이다. 이렇게 여생을 사는 것 예전에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 나이에서 희망이란 것은 무엇이 있을까? 가족들에게 부담을 안 주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 이런 것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사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나는 애써 부정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허무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자주 낱말들, 특히 멋진 표현의 단어들을 잊고, 그것들의 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절감을 한다. 알맞은 표현들[영어건 한글이건]이 생각이 안 나는 것,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이 나이에 새로 사전을 보며 새로 암기를 해야 하는 것, 한마디로 웃기는 세상, 시대, 세대, 나이를 살고 있다.

어제 밤에 온 [마리에타 사랑] 구역카톡을 보며 또 생각에 잠긴다. 이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까?  2019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이곳을 거의 잊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 되었다. 나에게는 가족관계가 공동체 관계보다는 조금은 더 중요한 것,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처지에서 결과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우연히 다시 가상적, 잠정적으로 연결이 되긴 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먼 곳에서라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입김, 숨결’이 전혀 없는 외계, 외계인들처럼…

 

Last Leaf, Leaf Blower, Examen

새벽 4시반 맑은 머리로 시계를 본다. 너무 일찍 깨어서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깨끗하고 맑은 머리 속, 주위는 깜깜하지만 한 쪽 창 밖으로 가로등의 불빛이 새어 들어온다. 화장실 가야 하는 신호도 전혀 없다. 일어나 어둠 속을 서서히 몰래 걸어나오며, 오늘은 몸이 흔들리지도, 어지럽지도 않다. 너무나 산뜻하다. 조금 예외적인 것 아닌가, 물론 좋은 쪽으로… 오늘 하루는 어떤 날이 될까, 미리 좋은 날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한다. 오늘 새벽 덤으로 두어 시간을 벌었다. 감사, 감사…

아~ 드디어 왔다!  기다리던 또 다른 소식[차가 어제 11월 19일에 팔렸다는], car donation의 모든 과정이 끝이 난 결과의 tax deduction information인데, 나에게는 이것이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개월 여 걸친 나의 mild stress의 끝을 맺는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 기쁘게 한다. 보람과 기쁨, 그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어디 있을까? 그래, 조그만 돈이었다고 해도 그것들이 ‘방황하는 많은 버려진 dog, cat들의 생명’들을 구할 수 있다는[North Shore Animal Rescue League America] 생각은 정말 기쁘고 기쁘다. 올해 감사절 감사목록에 이것도 포함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더 소중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과거에 묶여 삽니다.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에 잘못 집착해서 오늘을 인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거를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를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면서 오늘을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약속된 미래가 오늘을 통해서 오기 때문에 미래를 희망하는 만큼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반영억 신부, 오늘 복음말씀에 대한 글[하느님은 산 사람들의 하느님이다..]이다. 오늘따라 이 글에 관심이 더 간다. ‘문 밖에서’ 라는 임동진, 황정아 출연의 드라마와 어울려 나를 생각게 한다. 내가 3개월 시한부 진단이 나왔다면… 흔한 듯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연상케도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만약, 만약… 그래도, 하지만, 설마, 할 수 없지…  올바르게 죽은 방법은 무엇일까? 과거는 자비로, 현재는 최선으로, 미래는 예수님께 맡기고…  나는 이런 적절한 분배가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미래, 나중이 현재…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는 것일까, 나는… 미래에 나는 과연 굳건한 믿음을 두고 있는가, 이것은 현재 내가 더욱 더 공부하며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일부인 것이다. 미래에 대해 공부하면 할 수록 현재를 더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MEN, The Examen pronounced ‘examine’ 발음하는 것 가지고 씨름을 한 후, 생각을 한다. 14년 전통의 rosary, 묵주기도와 병행할 기도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느낀다. 쉽게 말하면 묵주기도는 ‘기본 중의 기본’, 이제는 조금 색깔을 넣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James Martin 신부의 Learning to Pray를 읽으며 아~ 이것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것에 대한 나의 편견, 오해를 넘어서 진짜 의미를 공부하고 실천을 하면 어떨까? 새롭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제일 좋은 방법이 이것이라는 확신도 생긴다. Martin신부의 경험적 설명은 정말 일품인 모양, 정말 감이 잡히는 듯하다.

Examen에는 examination of CONSCIENCE 와 examination of CONSCIOUSNESS 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나는 전자만 알고 있었는데 후자는 뜻밖인 것이고 나에게 더 유용한 것이 아닐까? 나는 하느님의 존재, 현존을 거의 하루 종일 잊고 살 때가 대부분이 아닌가… 알 수가 없다.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Examen of conscience has narrow moralistic overtones. Its prime concern was with the good or bad actions we had done each day. Whereas in discernment the prime concern …  is with the way God is affecting and moving us … deep in our own affective consciousness.

Presence, Gratitude, Review, Sorrow, Grace…

Presence, 하느님이 나를 현재 바로 보고 있음을 느끼며 하루를 돌아본다

 

IS ATHEISM DEAD? 아직도 시작조차도 못하고 있다. 아직도 DONALD 개XX냄새가 나기 때문인가? 조금 감정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다. 그 정도로 나는 DONALD 개XX 냄새의 가능성조차도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와 내용 속에는 그 냄새가 안 날지도 모른다. 읽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으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늘어지게 편한 마음으로 푹~ 쉬고 싶은 날이지만 불행하게도 외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이것은 내가 고쳐야 할 것이다. 오늘 나가는 것은 ‘봉성체 재교육’이란 것 때문이지 않은가? 전 같았으면 ‘다시 생각 안 하는’ 그런 일이 아닌가? 지난  Pandemic의 여파도 있었고 레지오 탈퇴도 가세해서 이것의 중요성을 거의 잊고 산다. 이런 태도가 바람직할 리가 없다. 성당 성사 중에서 이것처럼 ‘잊혀진 중요한 봉사’가 어디 있겠는가? 레지오와의 연관성을 이제는 잊으며 생각하고 싶다.

오늘 외출 계획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 왜 연숙이 혼자 가면 안 되는가… 하는 간단한 것이었다. 문인화로 아침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를 태우고 다시 성당으로 간다는 것, 얼마나 낭비적인가? 어차피 봉성체를 연숙이 혼자 해 왔던 것인데 나에게 재교육은 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 나도 편하게 토요일 오후를 즐기고,  연숙도 편하고, 환경 지구에게도 덜 미안하고… 우리 모두 win win win!

 

Leaf Blower에 대한 NYT 기사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왜 leaf blower로 search를 하는데 내가 찾는 것만 안 나왔던 것인지. 그 기사는 내가 전적으로 동의, 동감을 하는 주장[Margaret Renkl from Nashville, TN]을 담은 것이었다. 소음과 공해를 떠나서 지구 생태과학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이유를 비교적 과학적으로 설명을 했는데, 그것을 나도 알아서 지식적 무장을 하고 싶었다.

 

We constantly pray to God to make order of our chaotic lives, but what if God is the very source of our chaos? What if chaos and disorder are not to be shunned and avoided but attended to and embraced? Nature shows us that life is not meant to be nice, neat, and controlled but lived on the edge between order and disorder. – [The Hours of the Universe, p9]

 

숨어있던 책들, 근래, 최근에 샀던 것들을 가급적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서 하나 둘씩 꺼내어 desk위에 쌓았다. 이것도 읽고 싶은 책들을 가까이 두고 보는 한 방법이다. 가까이, 가까이…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혼자’ 걸었다. 혼자 걸었던 적이 많지 않았기에… 하지만 오늘은 혼자라는 사실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날씨도 예상보다 쌀쌀해서 제일 짧고 빠르게 걸었다. 걸으면 Google Voice 2, 3로 연속으로 voice mail을 남기며 병신 같은 넋두리를 남겨놓았다. 이것도 나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연극처럼 느껴졌다. 오래 오래 전 서울 거리를 수많은 사람 속으로 걸으며 부자연스러운 마음을 달래려 무척 노력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에, 그 당시 mobile phone같은 것이 있었으면 그것은 마의 구세주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동네를 걸으며 차가 오거나 사람이 올 때 어색함을 잊으려 말하지도 않는 cell phone을 들고, 무언가 얘기하는 척 연극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이것은 완전한 희극중의 하나다. 그것이 나는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고…

계속 동네 산책 중에 집 근처에 오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나의 last leaf tree를 본다. 이제는 윗부분은 다 떨어지고 아랫부분만 엉성하게 남았다. 이 나무가 나에게는 마지막 잎새 역을 맡은 늙은 나무다. 이 나무가 병들고 쓰러지기 전에 나도 같이…

 

어제 교성이를 카톡 friend로 다시 넣어 놓았다. 다행히 녀석의 전화 번호로 카톡이 연결이 된 것, 나는 왜 그랬을까? 녀석이 나를 싫다고 연락을 끊자는 일방적 선고의 충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일까? 너무나 의외적인 일이 생기면 나도 이성적인 사고를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지나가고 있으니, 서서히 냉철하게 세상을 보아야 할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기분이 무척 나쁘다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녀석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정도의 충격이지만 이제는 다시 연락이 되어서 더욱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다. 녀석이 빠진 나의 과거의 일부를 원상복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은 몸의 상태가 어느 정도일까? 음성통화라도 하면… 하지만 용기가 없다. 용기가…용기가…

와~  결국은 교성이와 연락이 닿았다. 이것은 기적 같은 놀람이다. 솔직히 솔직히 교성이와 끝났다고 비관적인 결론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비록 기도 중에 그 녀석을 만나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이렇게 우리가 끊어졌을까 생각하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다. 어제 우연히 전화번호로 연결을 시켜놓고 초조히 기다리다가 오늘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인사말을 보냈는데… 기적처럼 금새 답이 왔다. ‘용서해 달라고…’ 나는 울고 싶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때 그 녀석의 ‘단절 선언’은 일시적인 행동임을 알게 되어서 날라갈 듯 기뻤다. 이것이 기쁜 것이다. 그래, 우리는 오래 전 순수할 때 만나고 헤어진 친구가 아니냐… 떨어질 수가 있냐?

 

Dreary Rainy Fall Day, Restoring Range Hood…

지난밤 정말 깨끗이 잤다. 한번도, 한번도 깨지 않고… 귀찮은 pee, 악몽, 밖으로부터의 소음.. 등등이 하나도 없었던,  8시간 이상의 straight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이다. 이것이 또 하루를 살게 하는 ‘밥’인가? 그래, 이 정도면 건강한 모습이다.

예보대로 dreary, gloomy, dark, breezy, wetting… 모두 섞여있는 깜깜한 밖의 모습, 안전하고 아늑한 실내의 고마움을 잊고 싶지 않다. 집, 보금자리, 제2의 장구한 추억이 아롱진 집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예상대로 오늘은 대낮도 거의 초저녁 같이 어둠이 깔리고 소낙비는 아니더라고 꾸준히 비가 내린다. 가끔 바람이 불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런 창 밖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씩 작은 우산을 들고 tool shed로 뛰어가서 몇 가지 필요한 tool들을 가져왔던 그야말로 ‘가을비 우산 속’을 경험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잠시 range hood 위쪽의 duct를 cover하는 작업에 정신을 쏟았다. 일단 보이지 말아야 할, 가려야 할 ducting을 예전처럼 꾸며놓았다. 일단 이 작업은 끝났다고 보아도 되지만, 조금 더 그 주변의 미화작업을 하는 것은 필요할 듯…

 

Thomas Berry reading을 며칠 전에 이어서 읽는다.  오늘 것은 ‘지구 환경, 생태학의 영성’ 에 관한 것. 지구환경이나 생태학 등을 과학적인 눈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한 접근 방법이며 궁극적으로 영성, 영적인 차원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오늘은 잡스러운 소음, 주로 음악들이 없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읽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졌다. 읽을 수 있는 건강한 두 눈과,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기능적인 머리가 살아있는 이 나이가 귀중하게 느껴진다. 과연 언제까지 나는 이런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어제 연숙이 어디서 보았는지, 앉았다가 일어날 때 머리가 아뜩해지는 증상을 느낀 후 평균 10년 정도 더 생존했다는 통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허~ 그런 통계도 있나… 10년 씩이나 더 산다고? 짧지는 않지만 문제는 그렇게 ‘숫자로 정해진 기간’을 보니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누가 감히 죽은 날을, 하느님을 빼고, 알 수 있단 말인가?

날씨의 도움으로 차분해진 가슴과 머리를, 오랜만에 손에 잡히는 책들을 읽고 생각하는 쪽으로 관심을 쏟았다. 지나간 여름의 독서 목록에 있는 것들, 너무나 목표가 높았던지 꾸준히 매일매일 조금씩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중에 오늘 손에 잡힌 책들,  James Martin, SJ 의 저서들 중 (1) Jesus, a pilgrimage, (2) Essential Writings (3) Learning to Pray 세 권은 거의 우연한 선택이었고 책의 내용도 보기와는 달리 아주 가벼운, 경쾌한 것들이었다. 

Skeletal Halloween, Hood Job Done, After Pandemic

작년부터 시작된 Halloween decor trend 중에 전신 해골의 등장, 급기야는 옆집까지 그것을 3개씩이나 밖에 놓았다. 우리는 올해도 깜깜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것도 사실은 scary한 집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변명을 하고 싶지만 물론 게으르고 나이 탓일 거다. Candy를 사오는 것도 귀찮고, 다 커버린 두 아이들도 별로 push를 안 하니… 역시 세월의 횡포다. 집 앞의 cul-de-sac 길 어귀에 있는 늙어버린 나무, 이것이 우리에게는 가을 foliage 의 진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에 유심히 보니, 하루 하루 다르게 노랗게 변하고 있다. 이것이 모조리 떨어지면 아마도 성탄 무렵이 아닐까… 

포근하던 기억이 다시 싸늘한 느낌으로 요동을 치는 10월 말을 간다. 머리 속은 ‘황금빛이 찬란한’ 멋진 각종 holiday의 시작임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지나간 끈끈했던 여름, 곧 다가올 가을을 생각하며 아늑하고 아득한 낮잠 속에서 위안을 삼기도 했지…

오늘은 예상에, 일기예보의 각종 수치에 근거해서, 을씨년스러운 날이 아닐까? 기온이 60도 대에서 바람이 10마일 이상 부는 그런 낮, 바로 그런 날이다. 감기는 이럴 때에 조심해야 하지… 조금은 두터운 layer를 입어야 하는데, 아~ 이 나이에 어떤 옷들을 찾아 입어야 하는가? 지나간 10여 년 동안 나는 많이 숙달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 눈썰미 감각이 지나가는 Pandemic 의 공백으로 서서히.. 서서히.. 아~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을 어떻게 다시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까?

 

어제 저녁부터 나는 일상적 routine을 벗어나서 평소와 다른 늦은 저녁을 지냈다. 이유가 없을 리가 없다. 지겨운 sleeping rage란 이름의 demon이 다시 나를… 문제는 역시 현재 조금씩 일하는 [gas] range hood work…  나도 모른다. 연숙은 왜 그런 ‘작은’ 것 가지고 그렇게 ‘목을 매느냐’ 하는 듯한데, 물론 동감은 한다. 하지만 나의 ‘태어난’ 머리로는 그만 둘 수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성 바오로의 고민과 거의 비슷한 것 아닌가? 머리 속 생각은 아닌데 나의 몸은 다른 쪽으로.  이런 일을 할 때마다 걸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마다하는 나의 성격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만 해 주면 좋을 텐데 그것이 내 마음대로 안되니…조금이라도 더 도와주려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왜 그렇게 마다하고 실어하고… 그것에 나는 다시 불편해지고… 내 탓이요… [나는 분명히 너무 예민해져 있다, 그것만 내 자신이 알면 된다… 하지만 화내는 것 만은 절대로..]

 

Kidney Scare! 혈압이 주범으로 떠오른 연숙의 떨어진 신장 kidney 수치, 겁이 안 날 수가 없다. 일단 기능이 저하되면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경고는 사실 암 cancer 만큼이나 공포다. 그래도 나만큼 놀라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연숙의 모습이 믿음직스럽고 대견하다. 문제의 혈압 조절, 계속 시간마다 혈압을 측정하며 어느때 그것이 높아지는 지를 연구 중이다. 아침에 밭일을 한 후에 높아지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하는 눈치… 불쌍하기도 하다. 텃밭 일을 하며  일반적인 stress를 관리하려는데, 그것마저… 내가 본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힘든 일을 한다는 사실인데, 이유는 분명’그 놈의 모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 때문에 거액을 주고 zap bug killer를 사용해 보았지만, 내가 보기에 큰 효과는 없는 듯하다.

 

Microscopic micro-managing.. 직장 생활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 부류였는데… 내가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임을 느끼는 순간들이 제일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Cosmos, Universe가 어쩌구, Big Bang이 어쩌구…쪼잔한 것을 순간적으로 떠나서 높고, 크고  곳으로 올라가는 체험을 몇 번 하긴 했지만 막상 ‘집안 일’을 접하게 되면, 그것은 완전히 허상이 된다. 기하학적, 물리적인 물건들을 다룰 때, 나는 거의 현미경 수준으로 빠진다. 예를 들면… painting할 때, 눈곱만큼 작은 곳의 결함에 매이고, 조금만 멀리 떨어지면 안중에도 없을 만한 것들을 10배로 확대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등… 실수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걱정, 근심, 심지어 슬픈 생각까지… 이것 너무한 것 아닌가? 어떻게 이런 것을 조금이라도 대범하게 높은 눈으로 보는 습관을 들인 것인가…

 

어제,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인가? 어제는 새로니 family group 오는 것이cancel 되어서 휴일 같은 느낌이 들어 오랜만에 둘이서 동네를 걸었고, 게다가 오늘은 임형제 부부와 둘루스 한인타운에 있는 식당  청담에서 외식까지  하게 되었으니… Pandemic이 한창이던 때에는 이런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오늘을 기회로 앞으로 더 자주 이런 외식을 하면.. 하지만 임형 부부와는 ‘아마도’ Pandemic이후에는 처음일 거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작년 9월 초, 1년이나 지난 후에 다시 만난 것이다.

그와 나, 그들과 우리들 과연 어떤 관계며, 어떠한 관계이고 싶고, 관계여야 하는가? 만남의 감각이 흐려질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전과 다른 것은, 그가 openly Donald SOB supporter라는 놀랍고 실망스런 사실, 이것을 알고 나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것도 우리에게 인내와 사랑의 도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그런 사람의 100%, 전부는 아니니까.

오늘은 모처럼 지나간 ’10년 세월’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정오 순교자 성당 미사엘 가지 않았나, 친지, 임형 부부와 외식을 하지 않았나,  돌아오는 길도 레지오 봉사활동 시절, 추억으로 남아있는 Abernathy Road를 찾아 drive하며 아득한 추억… 아~ 나는 왜 Pandemic 전, 은총이 가득했던 봉사의 삶을 살던 레지오 시절이 그렇게도 그리운 걸까? 

 

결국 range hood home project는 일단 성공을 했다. 수명이 완전히 지나간[17년] 고물을 100% 미화하여 재활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사실 exhaust fan만 문제가 없으면 앞으로 10여 년은 거뜬히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물이  ‘새것’ 으로 변했다. 며칠이나 걸렸나? 웬 궁상을 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진짜 새것이 또 일주일 뒤에 올 것이지만 일단은 재활용된 것을 당분간 사용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