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  (나의 어린 시절)

 

Alphonse Daudet 1840~1897

 

지은이:알퐁스 도데

옮긴이:이재형

 

차례

1. 랑그도끄에서의 어린 시절

2. 꼬마 철학자 다니엘

3. 저주스런 전보

4. 빨간 수첩

5.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6. 까치머리 방방

7. 사랑하는 사람들

8. 괴롭고 긴 나날

9. 끔찍한 풍문의 계절

10. 신비 속의 쎄실리아

11. 어린 돈 주앙의 눈물

12. 눈 덮힌 궁륭 속의 환멸

13. 싸르랑드여, 안녕!

14. 운명의 첫걸음

15. 꿈의 도시 파리로

16. 슬픈 당나귀 자끄

17. 쌩 제르멩의 종소리

18. 그립고 먼 추억의 겨울 밤

19. 고미다락방 속의 시인

20. 엄마의 소꿉동무

21. 붉은 장미와 검은 눈동자

22. 푸른색 나비의 죽음

23. 흔들리는 시인의 꿈

24. 환상의 여인 이르마 보렐

25. 회한으로 얼룩진 편지

26. 몽빠르나스의 어릿광대

27. 납치극

28. 돌아온 탕아

29. 겨울 비 내리는 죽음의 길

30. 환상의 끝

 

 

 

1. 랑그도끄에서의 어린시절

 

  18xx 년 5월 13일, 나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랑그도끄 지방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남부지방의 여느 도시들처럼 그 마을도 햇빛이 쨍쨍 비치는 화창한 날이 많았고, 공기는 뿌연 먼지가 떠다니는 게 보일 만큼 혼탁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까르멜 수녀원과 그 옛날 로마시대 유적지도 몇 군데 있었다.

  그 당시 비단장사를 하던 우리 아버지 에세뜨 씨는 도시의 성문 곁에 커다란 공장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장 담의 한쪽을 허물어 넓은 뜰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으로 우리가 살 집을 지었다. 집 옆에 있던 무성한 플라타너스가 짙은 그늘을 드리워 주어 그 집은 아주 살기가 좋았다.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났으며 내 생애에 있어서 유일하게 즐거웠던 어린 시절도 그곳에서 보냈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 뜰과 공장, 플라타너스에 얽힌 어린 시절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의 파산으로 인해 그곳을 떠나야만 했을 때 나는 마치 다정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만큼이나 무척 슬펐었다.

  나의 출생이 우리 집안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선 얘기 해야겠다. 자질구레한 집안 일을 맡아 하던 안누 할머니는 종종 내가 태어나던 때의 일을 회상하며 넋두리처럼 내게 사설을 늘어놓곤 했다. 그 당시 멀리 여행 중이던 아버지는 셋째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과 마르세이유의 고객이 4만 프랑이 넘는 거액의 돈을 가지고 오던 도중에 행방불명 되었다는 소식을 동시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쁘기도 하고 비탄에 잠기기도 한 아버지는 마르세이유의 고객이 거액의 돈과 함께 사라져 버린 소식에 울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심정 속에서 한참을 망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버지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소리 내어 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솔직이 말해서 나의 운명 역시 우리 부모님들의 나쁜 사주팔자를 그대로 타고난 셈이었다. 내가 태어난 날부터 두 분에겐 마치 도둑처럼 숨어 있던 끔찍한 불행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와 덮쳐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선 마르세이유의 고객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던 사건에 뒤이어, 두 번씩이나 연거푸 불이 났으며, 방적기에 날을 거는 공장직원들이 갑작스럽게 파업을 시작했고 바티스트 삼촌과 사이가 틀어졌으며, 우리가 거래하는 상인들과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여 재판을 벌이기도 했다. 마침내 18xx년에 혁명이 온 나라를 휩쓸게 되자 몰락해가던 우리 집안은 설상가상으로 타격을 받아 휘청거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날이 갈수록 공장의 모습은 황량하게 변해 갔다. 작업장은 차츰 썰물이 빠져나간 뒤마냥 텅텅 비게 되었으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방적기가 한 대씩 부숴져 나뒹굴었고, 한 달이 지난 뒤에는 날염판이 하나씩 사라져 버렸다. 마치 병든 육체에서 서서히 생명이 빠져나가듯 집안이 기울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삼층에 있는 방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었으며, 다음에는 안뜰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런 일이 2년 동안 계속됐다. 그 2년 동안에 공장은 폭삭 무너져 내리듯 망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뎅그렁거리며 사방으로 퍼지던 공장의 종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게 되었고,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던 우물의 도르래조차도 멈춰 버리고, 염색한 옷감을 헹구어 낸 갖가지 색의 물이 흘러 내리던 도랑은 바닥이 바싹 말라 붙게 되었다. 나날이 황폐해 가던 공장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안누 할머니, 자끄 형과 나만이 오롯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문지기 꼴롱브와 그의 아들 루제만이 폐허가 된 공장을 지키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집안은 완전히 거덜난 채 망해 버렸다.

  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되던 해였다. 나는 유난히 허약한 체질이어서 잦은 병치레를 해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날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허약하고 내성적인 나를 안쓰러워하여 틈나는 대로 읽기와 쓰기, 짤막한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었으며 기타 반주에 맞추어 두세 곡의 아름다운 노래를 가르쳐 주곤 했다. 그 덕분에 난 일가친척 사이에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며 자상한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난 집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 보지 못했다. 바깥 세상에 나가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우리 집의 최후를 낱낱이 목격할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집안의 불행한 일들을 지켜보면서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이젠 온 공장 안을 독차지해서 내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은근히 기분이 들떠 있었다. 공장이 문을 닫기 전에는 일을 하지 않는 일요일에만 공장 안에 들어가 놀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루제에게 한껏 목에 힘을 주며 점잖게 말하곤 했다.

  “이제 이 공장은 전부 내꺼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여기서 놀려면 내 허락을 받아야 해.”

  그러면 순진하게도 맹하게 쳐다 만 보던 루제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댔다. 얼간이 같은 그 애는 내 말이라면 뭐든지 곧이곧대로 믿었다. 어쨌든 나만 빼놓고 집안식구들은 모두 우리 집의 파산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갑자기 무서운 사람으로 변했다. 원래부터 허풍이 심하고 다혈질인 아버지는 일단 화가 나면 고래고래 욕설이 뒤섞인 고함을 지르며 무엇이던 닥치는 대로 집어 던져서 깨뜨리는 난폭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걸핏하면 큰소리를 지르며 싸움질을 하거나, 마치 포악한 군주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 성질만 빼놓으면 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었다. 삽시간에 몰아쳐 온 불행의 회오리 속에서도 그는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끓어오르는 분노로 더욱 거칠어질 뿐이었다. 다들 잠든 고요한 밤에도 그는 미친 듯이 화를 내며 그저 닥치는 대로 화풀이를 해댔다. 태양, 북서풍, 자끄 형, 안누 할머니, 혁명, 그렇다! 아버지의 입에서 끊임없이 저주의 빛을 띠고 뱉아지던 혁명!… 옆에서 아버지가 퍼부어 대는 말만을 귀담아 듣고 있으면 그 18xx년의 혁명이야말로 유독 우리 집에만 들이닥쳐 우리를 불행의 골짜기로 떨어뜨렸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에서 오갔던 혁명가들에 대한 평판이 좋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당시 우리 식구들이 혁명은 일으켰던 신사양반들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는지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죽지 않고 살아 꼬부랑 할아버지가 다 된 아버지는 신경통이 도질 때면 기다란 의자를 늘 독차지하고 드러누워서는 이렇게 투덜대곤 한다.

  “아! 그 빌어먹을 혁명가놈들!”

  그당시만 해도 아버지는 신경통 같은 잔병을 치른 적이 없었는데, 몰락의 길로 치닫는 자신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무서운 인물로 변해 갔다. 화를 삭이지 못하고 혈압만 높아져 가자 그는 보름에 두 번씩 피를 뽑아내야만 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는 식탁에서도 소곤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빵을 건네달라고 말했으며, 아버지 앞에서는 슬프다는 기색조차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지내야 했다. 어머니, 안누 할머니, 자끄 형, 그리고 신부인 큰형과 내가 한데 어울려 조금씩 슬픔을 전염시키면서 울기 시작하면 어느새 울음바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머니가 불쌍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러나 큰형과 안누 할머니는 서럽게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울었다. 나보다 두 살 위였던 자끄 형은 우리 집안에 몰아닥친 불행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소변을 누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습관적으로 울었다.

  자끄 형은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타고난 울보였다. 지금도 자끄 형을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퉁퉁 부어오른 충혈된 두 눈과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던 뺨이 눈앞에 떠오른다. 형은 해가 뜨는 걸 보고 울기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울었으며,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온종일 눈물짓고 있었다. 심지어는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뿌려 댔다. 누군가 “도대체 무슨 일이니?”하고 물으면 그는 더욱 목청을 돋우어 엉엉 소리내 울면서 “아무것도 아녜요”라고 짤막하게 대꾸해 버리고는 또다시 울음 속에 빠졌다. 아무 이유도 없이 형이 그토록 울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마치 감기에 걸려 코가 줄줄 흘러나오듯 형의 두 눈에선 언제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이따금씩 화가 난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불만스럽게 말했다.

  “저 아인 정말 우습군. 저앨 좀 봐요. 눈물이 마치 강물처럼 흐르잖아.”

  그러면 어머니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전들 어떡하겠어요? 커 가면서 나아지겠지요. 저 나이 땐 저도 그랬어요.”

  자끄 형은 하루하루 성숙한 모습으로 자랐지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버릇은 여전했다. 오히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을 펑펑 쏟아 낼 수 있는 기묘한 습관은 갈수록 더욱 심해져 갔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걱정과 슬픔은 나날이 더욱 커져 가게 되었다. 드디어 형은 하루 종일 내킬 때마다 마음껏 울어 댔다. 이젠 “도대체 무슨 일이니?”하고 묻는 사람조차 없어졌다.

  우리 집의 몰락은 나와 자끄 형에게 재미있는 일들을 가져다 주었다. 나로 말하자면 무척 즐거웠다. 일일이 간섭하며 귀찮게 구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종일 루제와 함께 마치 교회당에서처럼 발을 구르면 쾅쾅 발자국소리가 울려퍼지는 텅 빈 썰렁한 공장과 벌써 잡초가 듬성듬성 돋아나는 버려진 허허로운 커다란 뜰을 온통 휩쓸고 다니며 놀곤 했다. 문지기 꼴롱브의 아들 루제는 열두어 살쯤 된 짜리몽땅하고 똥똥한 아이였는데, 황소처럼 힘이 셌고, 개처럼 헌신적이었으며, 거위만큼이나 멍청했다. 그는 특히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머리칼 때문에 눈에 금방 띄었다. 그가 ‘불그스럼한’이란 뜻의 루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도 그의 붉은 머리색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제는 내게 있어서만큼은 루제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명령만 내리면 로빈슨 크루소의 하인이었던 방드르디처럼 충실한 내 부하 노릇도 서슴지 않았고, 원시인이나 반란군이 되어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의 흉내를 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니엘 에세뜨가 아니었다. 나는 짐승 가죽으로 너덜너덜한 옷을 해입은 기괴한 모습으로 이제 막 모험을 시작하려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었다. 난 괴성을 질러 대며 즐거운 기분으로 그 모험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쳐 있었다. 땅거미가 지고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저녁밥을 급하게 먹어 치우고 곧바로 “로빈슨 크루소”에 매달려 눈을 감고도 그 책을 술술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수십 번 읽고 잔 뒤 잠을 잤다. 그리고 동이 트자마자 나는 전날보다 더 훌륭한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아주 열심히 모험을 즐겼다. 내 주변에 널린 모든 것들은 모험의 무대로 변했다. 공장은 폐허가 된 채 내팽개쳐진 공장이 아니고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무인도가 되었다. 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살지 않는 무인도! 물이 고여 있는 분수대는 대서양으로 변했으며, 정원은 울창한 원시림이 되었다. 무성한 플라타너스 속에 숨어서 시끄럽게 울어 대는 매미떼들도 나의 모험에서 한몫을 했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매미들은 그저 맴맴거릴 뿐이었다.

  루제 역시 매미들만큼이나 자기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누가 그에게 로빈슨이 누구냐고 물었다면 그는 매우 당황해서 허둥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은 각오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으며, 특히 원시인들이 흥분해서 요란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흉내내는 데는 그를 따라갈 만한 아이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나는 고백해야겠다. 어디서 그걸 배웠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그가 까치집처럼 헝크러진 머리칼을 마구 흔들어 대면서 목구멍에서 토해 내는 우렁차고 난폭한 포효는 제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로빈슨 역을 맡은 나까지도 가슴이 떨려 그애한테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으니까.

  “너무 크게 소리치지마, 루제. 무섭단 말이야.”

  유감스럽게도 루제는 원시인의 고함소리보다 말끝마다 쌍소리를 내뱉는 부랑아들의 흉내를 더 잘 냈으며 더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일도 서슴없이 했댔다. 언제나 함께 살다시피 어울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욕지거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온 식구들이 모여 식사하고 있는 도중에 나는 참아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소리를 무심코 내뱉고야 말았다. 갑자기 튀어나온 내 쌍소리에 온 식구들은 입을 쩍 벌리고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너 그런 욕 어디서 배웠니, 응? 어디서 들었느냔 말이야?”

  그건 일대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저 녀석을 당장 소년원에 집어넣어야 한다며 노발대발했다. 신부인 큰형은 내가 아직 철이 덜 나서 그러니 우선 고해를 시키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결국 난 고해실로 끌려 가게 되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7년 전부터 내 양심의 구석구석에 굴러다니던 쓰레기 같은 옛 허물들을 긁어 모아야 했다. 난 이틀 밤을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꼬박 새웠다. 그동안 저질렀던 못된 죄가 한 바구니를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많았던 것이다. 더이상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바구니를 꽉꽉 채웠다. 하지만 아무리 바구니를 채워도 또다른 허물들이 자꾸 그 모습을 슬금슬금 드러내는 것이었다. 떡갈나무로 만든 자그마한 옷장 같은 고해실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레꼴레 주임 신부에게 그 모근 것을 낱낱이 털어놓아야 했을 때, 난 두려움과 수치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어 버리고 싶었다.

  고해와 더불어 모든 게 끝났다. 난 더이상 루제와 놀고 싶지 않았다. 악마가 사자처럼 어슬렁대며 우리 주위를 영원히 맴돈다는 성 바울의 말을 레꼴레 주임신부가 내게 했을 때, 난 그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사탄이 우릴 유혹하기 위하여 갖가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사실도 생생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사탄이 루제의 살갗 밑에 숨어서는 내게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의 충실한 방드르디에게 앞으로는 절대로 집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다짐을 받아 냈다. 불쌍한 방드르디! 가엾은 루제는 가슴이 메어질 만큼 괴로와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나의 명령에 따랐다. 이따금씩 공장 옆에 있는 자기집 문간에 기대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띄곤 했다. 그럴 때 그의 모습은 슬픔으로 가득 찬 채 외로움으로 얼어붙은 듯했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 불쌍한 아이는 갑자기 생기가 돌아 붉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원시인의 무시무시한 고함을 질러 대서 어느결에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그가 더욱더 크게 목청껏 소리를 지를수록 나는 점점더 그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불현듯 그가 고해소에서 신부님들께 들은 ‘악마가 변신한 사자’를 닮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외쳤다.

  “꺼져! 난 네가 무섭단 말이야!”

  루제는 그날 이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 고집스럽게 괴성을 질러 댔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그가 문간에 서서 계속 괴성을 지르는 데 질려 버린 그의 아버지가 남들 귀찮게 고함을 치고 싶어 미치겠거든 도제 노릇이나 하면서 네 맘대로 소리를 지르라고 그를 멀리 보내 버렸다. 나의 방드르디가 그렇게 훌쩍 떠나 버린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났다고 해서 로빈슨 크루소 놀이에 대한 나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즈음에 바티스트 삼촌이 갑자기 자신의 앵무새에 싫증이 났다고 하면서 그걸 내게 주었다. 그 앵무새가 나의 충실한 방드르디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나는 앵무새를 예쁜 새장에 넣어 겨울이면 거처하는 오두막의 한 귀퉁이에 매달아 두었다.

  나는 그 흥미로운 새와 온종일 머리를 맞댄 채 ‘로빈슨, 나의 불쌍한 로빈슨!’이라고 그 새가 말할 수 있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다. 끝도 없이 지겹게 수다를 떨어 대는 게 지겨워서 바티스트 삼촌이 내게 주셨던 그 앵무새는 내게 온 뒤로부터 한사코 말을 하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불쌍한 로빈슨’이란 말은 입도 벙긋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사람처럼 말을 한다는 그 새에게서 단 한마디도 들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앵무새를 무척 사랑했고 온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다.

  나와 앵무새는 눈물이 날 만큼 지독한 고독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참으로 묘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완전 무장을 하고 일찌감치 오두막을 나온 내가 내 무인도를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멀리서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이 요란한 손짓과 함께 큰 소리로 떠들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섬에 사람들이 있었다니! 나는 재빠르게 협죽도나무 뒤에 배를 납작하게 깔고 몸을 숨겼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내 옆을 지나쳐 갔다.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는 무리 속에서 문지기 꼴롱브의 목소리도 섞여 들려 왔다. 귀에 익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방망이질하듯 두근거리던 내 가슴은 조금쯤 진정되었다. 그들이 차츰 멀어지자 나는 협죽도나무 뒤에서 나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아 보고 싶은 호기심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심스레 뒤따라갔다.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사람들은 내 무인도에 도착해 오랫동안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들은 내 동굴 속까지 침입해 들어갔고, 지팡이로 대서양의 깊이를 재어 보기도 하는 등 분주하게 몰려다녔다. 간혹 가다가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했다. 그러자 그들이 혹시 내 거처를 찾으러 온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 왔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삼십여 분이 지나자 그들은 그 무인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는지 떠나가 버렸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고꾸라지듯 오두막으로 달려가 꼼짝 않고 웅크려 앉은 채,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곳에 몰려 왔는지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그날 하루를 고스란히 다 보내고 말았다.

  그날 저녁, 온종일 품고 있던 의문들이 모두 풀렸다.

  저녁식사 때였다. 아버지는 오늘 낮에 드디어 공장이 팔렸기 때문에 한 달 안으로 서운하고 괴롭지만 이 정든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며 이제는 리용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할거라고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무서우리만큼 큰 충격이었다. 하늘이 다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공장이 팔리다니! 아! 나의 무인도와 동굴과 오두막을 아버지가 모두 팔아 버렸다니! 그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만 하다니!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한 달 동안 내내 집안식구들이 거울과 식기류 등 이삿짐을 분주하게 꾸리는 동안 나는 줄곧 슬픔에 잠겨 공장 구석구석을 홀로 거닐어 보았다. 이제 더이상 놀고 싶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 결코 그렇지는 않아… 나는 공장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돌아다니다가 플라타너스나 분수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들을 보며 사람에게 하듯이 말을 걸었다.

  “안녕, 사랑하는 친구야!”

  “마지막이구나, 이제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을 거야!”

  나는 목이 메어 울먹였다. 뜰 한구석에 서 있는 석류나무에 따뜻한 햇살을 받아 활짝 피어난 빨간 꽃송이들이 짙은 향기를 그윽하게 풍겼다. 나는 석류나무 곁에 기대서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읊조렸다.

  “석류나무야! 네 꽃송이를 하나만 주겠니?”

  석류나무는 내게 꽃 한 송이를 주었다. 나는 그 나무에 얽힌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그 꽃을 가슴에 달았다. 나는 정말 불행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토록 심한 고통속에서도 나의 마음을 부풀어오르게 해주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리용으로 이사갈 때 배를 타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기슴이 뜁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이 앵무새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던 것이다. 로빈슨 역시 지금의 나처럼 쓸쓸하고 외롭게 무인도를 떠났던 것을 생각해 냈다. 그런 생각해 하니 조금은 용기를 가질 수가 있었다.

  마침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아버지는 일주일 전에 부피가 크고 무거운 가구들을 가지고 리용에 먼저 가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나와 자끄 형, 어머니, 안누 할머니가 자잘한 세간살이를 꾸려서 리용으로 출발했다. 신부인 큰형은 보께르 합승마차 역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고, 문지기 꼴롱브도 저만큼 앞장서서 트렁크를 실은 커다란 손수레를 끌면서 보께르까지 따라왔다.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는 큰형이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걸었다.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불쌍한 큰형!

  커다란 푸른색 우산을 든 안누 할머니가 다리를 질질 끌며 쫓아왔고 리용에 가는 게 아주 좋으면서도 계속 울고만 있는 자끄 형이 할머니와 나란히 걸었다. 나는 그 초라한 행렬 맨 뒤에서 온통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앵무새 새장을 들고 그렇게 좋아했던 공장 쪽을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힘겹게 걸음을 떼었다.

  행렬이 점점더 멀어져 가자 석류나무는 좀더 오랫동안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려고 애쓰며 뜰을 두르고 있는 담장 위로 한층 발돋움을 하는 듯싶었다. 플라타너스가 무성한 나뭇잎을 단 가지들을 마구 흔들어 대며 작별인사를 했다. 헤어짐의 슬픔과 고통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나는 그들 모두에게 손으로 입맞춤을 보내며 떠나왔다.

  18xx년 9월 30일, 나는 내 어린시절을 묻어 두듯 정든 무인도를 떠났다.

 

 

2. 꼬마 철학자 다니엘

 

  아! 아름다왔던 나의 어린 시절이여!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은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론 강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여행하던 그 사흘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지금도 그때 탔던 배의 모습과 승객과 선원들의 생김새와 몸짓들이 눈앞에 생생하다. 타륜이 돌아가는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호루라기를 불어 대듯 호르륵호르륵하는 증기기관 소리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그 배의 선장은 제니에라는 멋진 사람이었고 주방장은 몽떼리마르였다. 나는 아직도 그 두 사람을 내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지 않고 있다.

  사흘 동안 계속 론 강을 항해하면서 나는 먹고 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갑판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커다란 닻과 입항할 때 울리는 큼지막한 경적이 달려 있었으며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밧줄더미가 널려 있었다.

  나는 내내 앵무새와 함께 그 밧줄더미 위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는 순간 론 강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곤 했다. 그러다가 벅차오르는 가슴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면 앵무새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높푸른 하늘은 웃음을 머금은 듯 활짝 개어 있었으며, 강물은 푸르디푸르렀다. 커다란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떠내려갔다. 노새 등에 올라탄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태운 배가 우리 배 옆으로 지나쳐갔는데 그들이 불러 대던 노래는 몹시 흥겨웠다. 내가 탄 배는 가끔씩 등심초와 버드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찬 섬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낮게 신음소리처럼 “오! 무인도!”라고 중얼댔다. 그러고는 한시도 눈을 때지 않고 그 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어스럼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무서운 돌풍을 만날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 한떼의 먹구름이 몰려 와 삽시간에 하늘을 뒤덮어 버렸다. 때마침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강 위로 몰려 오더니 춤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칸델라 하나가 갑판 위를 환히 비춰 주었다. 나는 갑작스런 변화에 전율을 느꼈고 놀라움과 무서움으로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 곁에 서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리용이다!”

  바로 그때 거대한 경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리용에 도착한 것이었다.

  두터운 안개 저편으로 강변에서 새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론 강의 지류에 들어선 것이었다. 우리 배는 두 개의 다리 밑을 지나갔는데, 다리 밑을 지날 때마다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 높은 굴뚝의 윗부분이 분리되고, 그러면 짧아진 굴뚝에서는 마치 급류가 기침을 해대는 것처럼 검은 연기가 뿔룩뿔룩 뿜어나왔다.

갑판 위는 온통 시끌벅적 북새통이었다. 승객들은 저마다 트렁크를 찾느라 수선을 피웠고, 선원들은 어둠 속에서 무슨 통인지 시끄럽게 굴리면서 알아듣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 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갑판 한쪽 구석에서 서성이던 어머니와 자끄 형 그리고 안누 할머니에게로 급히 달려갔다. 배가 부두의 도선장을 찾아 정박을 하고 하선이 시작될 때까지 우리 가족은 모두 안누 할머니가 들고 있는 커다란 우산 밑에 서로 꼭 붙어 서 있었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우리를 마중나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이 노한 듯 퍼부어 대는 비 속에서 한 발자국도 옮겨 놓지 못하고 마냥 서 있어야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끄! 다니엘!”하고 우리 형제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리저리 허둥지둥 뛰어다니다 드디어 우리를 찾아 냈다. 귀에 익은 “자끄!”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는 너무나 기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들은 한꺼번에 “여기예요!”하고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 아버지는 재빨리 달려와 우리를 포옹하더니 양손으로 형과 나의 손을 붙잡고 어머니와 안누 할머니에게 말했다.

  “날 따라와요!”

  그러고는 앞장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남자답게 보였는지,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란 존재의 소중함을 느꼈다. 어느새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고, 부두에 연결된 다리는 몹시 미끄러워 우리는 한발씩 조심조심 옮겨 놓으며 걸어야 했다.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흔들거리는 트렁크에 몸이 부딪쳐 몹시 아팠다. 그때였다. 갑자기 배 저편 끝에서 비 속을 뚫고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로빈슨! 로빈슨!”

  “아니, 이럴 수가!”

  나는 몸부림을 치면서 아버지에게 꼭 잡혀 있는 손을 빼내려고 애썼다. 그러자 아버지는 더욱 세게 내 손을 잡고 놓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더욱 구슬프고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다시 내 귀를 파고들었다.

  “로빈슨! 내 불쌍한 로빈슨!”

  “내 앵무새! 내 앵무새!”

  나는 울부짖으며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지금 앵무새가 말하는 거니?”

  자끄 형이 물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앵무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 소란스러워서 깜박 잊고 갑판에 있는 닻 옆에다 앵무새를 두고 왔던 것이다. 거기에 홀로 남겨진 앵무새가 있는 힘을 다해서 “로빈슨! 로빈슨! 내 불쌍한 로빈슨!”하고 울부짖으며 나를 찾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때 나는 앵무새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제니에 선장은 “서두릅시다, 여러분. 서둘러 주십시요”라고 외쳐 대며 승객들을 재촉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기는 무척 어려웠다.

  “내일 앵무새를 찾으러 다시 오면 돼. 배 안에서는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아.”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울고 있는 나를 끌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다음날 앵무새를 찾아 오라고 사람을 보냈으나 그는 그냥 빈 손으로 돌아왔다. 이젠 방드르디도, 앵무새도 모두 내 곁을 떠나 버렸다! 나는 더이상 로빈슨이 될 수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되돌아갈 수 없는  나의 무인도와 앵무새를 그리워하며 비탄과 실의에 빠져 하루종일 허공만을 바라보는 것뿐이란 말인가! 그것도 삭막한 랑떼른느 거리에 있는 지저분하고 습기찬 건물의 오층 방에 틀어박혀서….

  그 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 집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층계는 오물로 끈적거렸고, 마당은 너무 좁아서 마당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인 데다가 문지기와 가난한 구두장이가 마당 한구석에 있는 펌프 옆에다 집을 지어 마당은 더욱더 좁았다.

  리용에 도착하던 날 저녁, 안누 할머니가 부엌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악! 바퀴벌레다! 바퀴벌레야!”

  비명소리를 듣고 우리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부엌은 온통 그 흉칙한 벌레로 가득 차 있었다. 사방의 벽뿐만 아니라 벽난로나 찬장서랍 등 어디를 둘러봐도 그 고약한 녀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득실대고 있었다. 우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연자실해서 서 있다가 동시에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듯 이 벌레들을 마구 짓이겨 죽이기 시작했다. 이미 안누 할머니가 죽여버린 바퀴벌레도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죽여도 죽여도 바퀴벌레들이 줄어들기는커녕 원군이 지원을 하듯 수채구멍에서 계속 기어나왔다. 우린 아예 수채구멍을 틀어막아 버렸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이 되자 바퀴벌레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지 끝없이 튀어나와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퀴벌레들을 잡기 위해서 일부러 고양이를 사다가 키웠지만 헛수고였다. 저녁마다 부엌은 끔찍한 바퀴벌레의 도살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극성스러운 바퀴벌레들 때문에 나는 첫날 저녁부터 그곳 리용을 증오하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바퀴벌레들의 극성은 심해만 갔고 그 이전의 생활습관은 모조리 버려야만 했다. 심지어는 식사시간까지 바꿔야만 했다. 빵은 랑그도끄에 있던 집에서 먹던 것과는 모양부터 달라졌는데 식구들은 그것을 ‘왕관빵’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름인지! 한번은 안누 할머니가 푸줏간에 가서 ‘불고기감 쇠고기’를 달라고 했더니 푸줏간 주인이 코웃음치면서 대놓고 비웃었다고 할머니는 펄펄 뛰면서 분개했다. 미개인 같은 이 리용 사람들은 도대체 불고기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른단 말인가? 랑떼른느 거리며,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집이며, 좁아터진 마당이며, 미개인처럼 멍청한 리용 사람들!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아주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우리 식구들은 지긋지긋한 그곳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모두들 양산을 받쳐 들고 론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옛날 집 방향인 쁘라슈 쪽을 향해 걸어갔다.

  “이렇게 그쪽을 보고 걷노라면 우리가 살던 곳에 가까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져.”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보다 더 괴로와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다. 모처럼 기분을 전환하기 위한 산책이었는데 어머니의 말에 오히려 모두들 우울해졌다. 아버지는 투덜거렸고, 자끄 형은 계속 눈물을 짜 댔으며, 나는 뒤에 처져 힘없이 걸었다. 그러나 아마 어머니의 말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제 가난해졌기 때문에 거리에 나가는 것조차 창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리용에서의 생활도 어언 한 달이 흘러갔을 즈음에 안누 할머니가 병에 걸렸다. 항구 도시인 리용을 휩싸고 있는 지독한 안개 때문에 할머니는 숨쉬기조차 매우 힘들어 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다시 해가 하루종일 내리쬐는 남부로 보내야만 했다. 어머니를 끔찍이도 사랑하던 안누 할머니는 우리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슬퍼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이곳에 계속 머물러도 결코 죽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함께 살도록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선 남부로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우리 부모님은 안 가려고 발버둥치는 안누 할머니를 강제로 배에 태워 남부로 가게 했다.

  안누 할머니가 우리 집을 떠난 후 새로운 하녀를 구하지 않았다. 하녀를 구하지 않고 어머니가 손수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 집의 가난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했다.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땐 문지기의 부인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그토록 입맞추기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부드럽고 하얀 손은 화덕불에 그을려 점점 검고 거칠어져 갔다. 시장에 가는 일은 자끄 형의 차지가 되었다.

  “자끄, 가게에 가서 비누하고 소금을 좀 사와라. 그리고 햄도.”

  어머니가 커다란 바구니를 들려 주며 이렇게 일러 주면 자끄 형은 계속 눈물을 흘려 대면서도 사오라는 물건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잘 사왔다.

  불쌍한 자끄 형! 자끄 형은 점점 불행해져 갔다. 점점더 어려워져 가기만 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게 된 아버지는 자끄 형이 항상 울고만 다니는 걸 이제는 더이상 못 참아 했다. 아버지는 마침내 자끄 형을 미워하고 때리기까지 했다.

  “자끄! 이 멍청한 놈아! 이 덜 떨어진 얼간이야!”

  아버지가 형을 구박하는 소리를 식구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들어야만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무섭게 돌변해 버리자, 불쌍한 자끄 형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그의 얼굴은 몹시도 흉하게 일그러지곤 했다. 자끄 형은 날이 갈수록 완전히 불행해졌고 정신적인 안정도 잃게 되었다.

  어느날 저녁이었다. 식사를 하려고 모두들 식탁에 둘러앉고 나서야 집안에 물이 한 방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바라는 모양인데 제가 물을 떠오겠어요.”

  마음씨 착한 자끄 형이 이렇게 말하며 일어나서 커다란 사기 단지를 들었다.

  아버지는 의외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떠오겠다고? 그런데 네가 간다면 틀림없이 그 단지를 깨뜨릴게다.”

  “자끄야! 단지를 깨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한다.”

  어머니께서 차분하게 타일렀다.

  “당신이 그 아이한테 단지를 깨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고 해서 그 아이가 단지를 안 깰 것 같소? 아마 틀림없이 단지를 깨뜨리고야 말 거요.”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자끄 형은 울먹이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마치 제가 단지를 깨뜨리기를 원하시는 것 같네요.”

  “아니다. 난 네가 단지를 깨는 걸 바라지 않아. 다만 네가 반드시 단지를 깨고야 말 것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말대꾸하는 것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자끄 형은 더이상 대꾸를 하진 않았으나, ‘흥! 내가 단지를 깰 거라구요? 좋아요, 어디 두고 봅시다’라고 속으로 삭이는 듯이 보였다. 그러고는 기분이 몹시 상해서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듯이 단지를 들고는 휭하니 나가 버렸다.

  그런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형이 들어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몹시 걱정이 되는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제발 그 아이에게 아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아무렴, 당신은 그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겠지. 하지만 그애는 분명히 단지를 깨뜨렸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을 거야.”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의자를 뒤로 탁 차버리고 일어나서는 자끄 형이 왜 돌아오지 않고 있는지를 밖에 나가 직접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현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때 나는 우리 아버지를 따라갈 만큼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현관문을 확 열어  젖히자 문 앞 계단 위에 양손을 축 늘어뜨린 채 입을 꼭 다물고 화석처럼 굳어진 모습으로 서 있는 자끄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형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서는 다 죽어가는 비통한 목소리로 덜덜 떨면서 들릴 듯 말듯 머뭇머뭇 말했다.

  “…단지를… 깨뜨리고… 말았어요.”

  불쌍한 형은 단지를 깨뜨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을 대하자 갑자기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쓰는 형의 표정을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우리는 그 이후 자끄 형이 단지를 깨버린 그 일을 두고 ‘단지 사건’이라 불렀다.

  리용으로 이사온 지 두 달 가량 지났을 때야 비로소 부모님들은 우리의 학교 문제에 대해 거론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려면 많은 돈이 있어야 했다.

  “저애들을 성가대 양성소에 보내서 공부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 제안에 동조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쌩 니지에 성당이 우리 집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와 자끄 형은 쌩 니지에 성가대 양성소에 가게 되었다.

  그 성가대 양성소에서의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애들처럼 써먹을 데도 없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머리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는 대신에 우리는 예배하는 법과 찬송가 부르기, 무릎을 얌전히 꿇는 법, 품위 있게 향을 피우는 법 등을 배웠는데, 그런 학습은 몹시 까다롭고 어려웠다. 간혹 하루에 한두

시간 문법과 역사 수업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고 중요한 수업을 하기 위한 곁다리씩의 보충수업처럼 생각되었다. 그곳에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종교의식을 가르치기 위한 수업을 중시했다.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 미꾸 신부님과 함께 장례식이나 결혼식,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영세를 주는 의식에 참석하여 성가를 불러야만 했는데 그런 날은 수업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의식에 참석하여 지체 높은 양반들을 보거나 임종의 순간을 맞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량을 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다. 성량!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성량을 준다는 것에 뿌듯한 보람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성체할 때 쓸 빵과 성유를 양손에 드신 미꾸 신부님이 우산 같이 생긴 사제용 빨간 빌로드 닫집 아래에 서면 두 명의 성가대원이 그 닫집을 양쪽에서 받치고 걸었다. 나머지 단원들은  커다란 금빛 등불을 들고 신부님을 수행했는데 행렬의 맨 앞에서 다섯번째에 서게 되는 아이는 따르라기를 흔들게 되어 있었다. 따르라기 흔드는 일은 주로 내 임무였다. 성량의 행렬이 지나가면 그 연변에 서 있던 남자들은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모자를 벗어 들고 고개를 숙였으며, 여자들은 성호를 그었다. 행렬이 군인들의 초소 앞을 지나가게 되면 흩어져 있던 군인들도 보초병의 “총을 들엇”하는 고함소리에 따라 기겁을 하고 달려와서는 총을 어깨에 메고 열을 맞추곤 했다. 장교가 구령을 내질렀다.

  “받들어… 총!”

  “무릎 꿇어!”

  철그럭대는 총소리가 진동하고 북소리가 저멀리 들판에까지 울려퍼져 나갔다. 나는 삼성창을 부를 때처럼 들고 있던 따르라기를 힘차게 세 번씩 연거퍼 흔들었다. 행렬은 주위에 몰려 선 사람들을 압도하고 군대마저도 감히 어쩔 수 없는 엄숙함을 자아내며 마을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이 모든 엄숙함과 경건함과 권위를 가진 성가대 양성소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었다.

  우리들 모두는 자기의 작은 사물함 속에 성직자들이 지녀야 할 장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다. 긴 검은색 법의, 사제가 입는 장백의, 빳빳하게 풀을 먹인 커다란 소매가 달린 법의 겉에 입는 중백의와 명주로 만들어진 검은색의 긴 양말, 순모와 빌로드로 만들어진 빵모자 두 개, 가장자리에 조그맣게 하얀 진주무늬가 예쁘게 수놓아진 가슴 장식 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성가대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이었다.

  내게는 그런 복장들이 아주 잘 어울렸고 날 한층 돋보이게 해주었다.

  “다니엘, 넌 정말 멋져 보여. 정말 잘 어울려. 아주 귀여워.”

  어머니는 곧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내게는 몹시도 속상하고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해질 정도로 실망스런 점이 하나 있었다. 키가 너무 작았던 것이다. 조금만이라도 커지고 싶어서 아무리 발돋움하며 안간힘을 써봐도 우리 성당의 예장 순경인 까뒤프 씨의 길다란 흰 양말보다도 작았다. 게다가 또 얼마나 허약했는지! 언젠가 미사를 드릴 때였다. 복음서를 옮겨 놓아야 했는데 그 복음서란 것이 너무나 두껍고 무거워서 내가 책을 드는지 책이 나를 드는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나는 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뒹굴듯이 널브러졌다. 책상은 넘어지고, 미사는 중단되었다. 더군다나 그날은 바로 ‘성신강림첨례일’이었다. 그 얼마나 꼴불견의 추태였겠는가? 나는 너무나 수치스럽고 창피해서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감히 신부님을 쳐다볼 염두조차 나지 않았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작고 허약해서 저지른 그 치욕적인 실수를 제외하면 난 비교적 성실하고 훌륭하게 내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밤이 되면 난 옆 침대에 누운 자끄 형에게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자끄 형, 이곳은 정말이지 훌륭한 곳이야. 난 여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 정말 행복해! 형도 그렇지?”

  그러나 아버지와 절친하기 그지없는 친구분의 제안으로 우린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던 성스러운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분은 남부지방에 있는 어떤 대학교의 총장이었는데 만일 아들 중에 한 명만이라도 정규교육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면  리용 중학교에서 실시하는 통학생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여 그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야! 이건 바로 다니엘을 두고 한 말이군.”

  아버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자끄는요?”

  어머니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자끄 말인가? 그애는 내가 데리고 있겠어. 그애는 아주 쓸모가 많거든. 난 그애가 장사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우린 그애를 상인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 방면으로는 남다른 눈썰미를 가진 아버지가 자끄 형이 장사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눈치챈 것일까? 그때 어머니와 내겐 불쌍한 형이 예의 그 우는 것말고는 어떠한 소질도 없는 듯이 보였는데 아버지는 어떻게 그걸 잘 안다고 하시는 것일까? 만일 아버지와 우리가 자끄 형에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 보았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러나 자끄 형에게는 물론이고 내게도 그 문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묻지 않고 아버지는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며 리용 중학교로 나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맨 처음 리용 중학교에 등교하던 날 나는 셔츠를 입은 아이와 오로지 나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놀랐으며 셔츠를 입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아주 형편없이 불량스러운 애로 취급되었다. 리용의 부잣집 아이들은 결코 셔츠를 입지 않았고 ‘곤느’라고 불리우는 거리의 불량아들만이 셔츠를 입었다. 나는 허름한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에게는 내가 마치 ‘곤느’처럼 보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히죽히죽 비웃어 대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야, 저애 좀 봐! 셔츠를 입고 있잖아!”

  “아니, 불결해.”

  “쟤 혹시 곤느 아니야?”

  선생님마저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를 마치 징그러운 벌레 대하듯 했다. 선생님이 처음 나를 봤을 때부터 그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교실 안이 웅성거림으로 소란해지자 그때부터 선생님의 태도는 아주 부자연스럽고 거북스럽게 변하며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선생님이 나를 부를 땐 경멸감과 혐오감을 나타내지 않으면 못배기겠다는 듯이 “헤이, 너!” “거기, 꼬마!”라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주 침착하고 단정하게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다.

  “제 이름은 다니엘 에 세 뜨입니다.”

  아마 스무 번도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열한 선생님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 반 급우들도 나를 ‘꼬마’라고 불렀고, 어느새 “꼬마”가 내 별명이 되고 말았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쉽게 구별되었던 것은 항상 셔츠를 입고 다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노란색의 예쁜 가죽 책가방,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회양목 잉크병, 두꺼운 판지로 장정이 된 값비싼 노트, 밑에 많은 주석이 달린 잉크 냄새가 펄펄 풍기는 새책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죽 책가방이나 회양목 잉크병은 커녕 책마저도 제대로 된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내 책들은 강둑을 따라 줄지어 있는 헌책방에서 산 너무나 오래되어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낡고, 찢어진 헌책들뿐이었다. 겉표지는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 버렸고 주석은커녕 군데군데 페이지가 찢겨져 읽기에도 아주 힘들 정도였다. 보다 못한 착한 자끄 형은 두꺼운 판지와 풀로 제본을 해주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다. 하지만 자끄 형은 안 그래도 될 텐데 풀을 너무 많이 덕지덕지 발라서 책에서는 고약한 풀 냄새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고 책을 볼 때면 항상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자끄 형은 또 내게 주머니가 많이 달려서 쓰기에 아주 편리한 책가방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 가방 역시 풀을 너무 많이 발라서 고약한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그래서 내게서는 항상 풀 냄새가 진동하여 우리 반 아이들이 내 곁을 지날 때면 항상 코를 싸쥐고 다니거나 내 옆으로는 지나치지 않고 빙 둘러서 돌아가곤 했다.

  어쨌든 자끄 형은 비상한 재주인 우는 일만큼이나 풀을 바르고 파지로 장정하는 일에 열중해 있었다. 자끄 형은 자기가 일하는 가게에서 빠져나오면 항상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풀단지를 앞에 놓고 열심히 풀을 바르면서 제본을 하거나 판지로 장정을 해대는 것이었다. 정말 너무 열심이었다. 그가 그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옆에서 감히 얘기도 붙이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에 나는 항상 풀이 지나치게 덕지덕지 발라진 그 책을 울며 겨자 먹기로 가지고 다녀야만 했다. 그즈음 자끄 형은 낮에 시내에서 짐을 나르고,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쓰는 등의 일을 하면서 장사꾼이 되는 데 필요한 예비지식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점점 장사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장학생이었기 때문에 한푼도 들이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조롱섞인 놀림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셔츠를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으며 아무리 ‘다니엘 에세뜨’라고 강조해도 그들 모두는 아마 별종동물인지 ‘꼬마’라고 불러 댔는데, 난 그 경멸섞인 야유를 그저 속으로 참아 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동등해지기 위해서, 아니 그들보다 내가 훨씬 더 똑똑하고 우수한 학생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열성을 다해 공부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불기도 없는 방에서 다리에 이불만 겨우 덮고 책상 앞에 오도마니 앉아 밤을 낮삼아 공부에 파고들던 어린시절의 내가 대견스러워진다. 그 방은 성에가 유리창에 아름다운 별무늬를 만들어 놓을 정도로 추웠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거실에서 아버지가 소리를 죽여 자끄 형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소리가 나즈막하게 들려오곤 했다.

  “저는 이 달 8일부로 귀하가 보내 주신 서한을 잘 받아보았습니다.”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을 자끄 형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저는 이 달 8일부로 귀하가 보내 주신 서한을 잘 받아보았습니다.”

  이따금 어머니가 들어와서 내게 다가와 내 뺨에 입을 맞춰 주었다.

  “다니엘, 공부하고 있니?”

  “네, 엄마.”

  “춥지 않아?”

  “아… 아니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렇지 않은데… 나는 몹시 추웠다. 어머니는 내 곁에 앉아 뜨개질을 하면서 낮은 소리로 그물코를 세어 나갔다. 그렇게 어머니가 내 옆에 있으면 난 정말 포근함과 따사로움으로 추위를 잊곤 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책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어머니는 때때로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불쌍한 어머니, 어머니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을 그 아름답고 정든  마을에서의 즐거웠던 날들 에 대한 향수에 늘상 젖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우리에게 몰아닥친 또 하나의 불행, 우리의 뇌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 불행 때문에 곧 그 정든 마을로 가야만 했다.

 

 

3. 저주스런 전보

 

  7월의 어느 월요일이었다.

  그날 나는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보통때보다 훨씬 늦게 되었다. 나는 책가방을 허리에 단단히 차고 모자를 입에 문 채 떼로 광장에서부터 랑떼른느 가까지 쉬지 않고 단숨에 달렸다. 집에 도착해서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층계참에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서 있었다. 평소에 아버지를 몹시 무서워하고 어려워했기 때문에 늦은 데 대한 핑계거리를 찾아 내려고 낑낑대다 이윽고 용감하게 벨을 눌렀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너무 늦었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무의식중에 거짓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를 품안으로 끌어안더니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아버지의 넓고 푸근한 가슴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나는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했졌다. 분명히 호된 꾸중을 들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근심에 싸여 있던 나는 문득 쌩 니지에 성당의 신부님이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와 계신 게 아닌가 생각했다. 신부님을 초대한 날이면 아버지는 절대로 우리들을 야단치지 않았다.

그런데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식탁 위에는 아버지와 내 접시만 뎅그마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 엄마는 어디 계세요? 또 자끄 형은 어딜 간 거예요?”

  나는 아버지를 올려보며 얼떨결에 큰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평상시와 달리 낮게 가라앉은 다정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와 자끄는 형에게 갔단다, 다니엘. 큰형이 몹시 아프다는구나. 그래서….”

  내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본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더니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쾌활하게 덧붙였다.

  “내가 몹시 아프다고 말했나? 다니엘,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구나. 실은 오늘 형이 병석에 누워 있다는 편지가 왔거든. 너도 엄마가 요사이 어떤지 잘 알지? 엄마는 그곳에 가고 싶어 했잖니. 그래서 말이다, 자끄를 딸려 보낸 거야. 그렇게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야! 자, 이제 앉아서 식사를 하자꾸나. 난 널 기다리느라고 배가 고파 혼났단다.”

  나는 말없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러나 머리속은 온통 신부인 큰형이 몹시 아프다는 생각으로 꽉 차고 가슴은 터질 듯 메어 왔다.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느라 무던히 애를 쓰며 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아서 조용히 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정말 배고픈 사람처럼 급하게 음식을 입 안에 넣고 씹는 둥 마는 둥 먹고 물도 꿀꺽꿀꺽 소리나게 마셔 댔다. 그렇게 급하게 먹다가 갑자기 손을 멈추고는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아 멍청해진 나는 식탁 끝에 꼼짝 않고 멀거니 앉아서 큰형이 공장에 와서 들려 주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고인 도랑을 건널 때면 치렁치렁한 신부복을 서슴지 않고 걷어 올리던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온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큰형이 처음으로 미사를 주재하던 때도 생각났다. 부드럽고 정감어린 목소리로 성경귀절을 읽어내리며 미사를 드리는 도중에 큰형이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향해 돌아섰을 때 그 멋진 모습에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었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홀로 병에 걸린 채 고통 속에 누워 있을 형을 그려 보았다. ‘아! 너무 아파!’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로 인해 나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속에 잠겨들었다.

  ‘하나님이 너를 벌하신 거야. 이건 순전히 네 잘못이다! 정직한 행동을 해야 해! 거짓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해!’

  하나님이 거짓말한 나를 벌하기 위해서 큰형을 죽게 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고통과 절망으로 중얼댔다.

  “이젠 거짓말은 절대로 않겠어요, 앞으로 다시는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술래잡기 따위는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식사를 끝내고 램프에 불을 붙여 식당을 밝힌 뒤 일할 준비를 했다. 아버지는 먹다 남은 디저트 접시를 한쪽으로 밀치고 식탁 위에 커다란 장부를 올려놓고는 소리내어 중얼대며 계산하기 시작했다. 바퀴벌레를 잡으라고 사들인 고양이 피네가 식탁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 슬픈 듯이 울어 댔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창턱에 팔꿈치를 괴고서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창 밖에는 목을 조르려는 듯 안개가 몰려들고 있었다.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집 문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멀리 로야쓰 요새에서부터 북소리가 은은히 들려 오고 있었다. 큰형에 대한 생각에 잠겨 망연히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문에서 몸을 뗐다.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든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방금 나를 사로잡았던 불안과 두려움의 전율이 아버지의 얼굴에도 스치고 지나간 것 같았다. 아버지도 몹시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왔구나!”

  “그냥 앉아 계세요, 아버지. 제가 나가 보겠어요.”

  나는 문 쪽으로 뛰어나갔다.

  어떤 사람이 문턱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이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전봅니다.”

  “전보라고요? 무슨 일이죠?”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보를 받아 쥐고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발로 문을 못 닫게 힘을 주면서 쌀쌀맞게 말했다.

  “서명을 해야지.”

  서명을 해야 한다고? 나는 전보를 처음 받아 봤기 때문에 서명해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누구냐, 다니엘?”

  아버지가 식당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버지! 거지에요.”

  나는 여전히 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그 남자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손짓하고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내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나는 급히 펜을 찾아내 대충 잉크를 찍어서 그 남자에게 돌아갔다.

  “여기다 서명을 해라.”

  그 남자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는 층계를 밝히고 있는 희미한 램프 불빛을 받으며 떨리는 손으로 서명했다. 그러고는 문을 닫고 전보를 셔츠 속에 감추고 다시 돌아왔다.

  아! 그렇다, 불행을 알리는 전보를 셔츠 속에 감춰 버려야만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보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그 전보가 무섭고 끔찍한 일을 우리에게 전해 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보는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려고 하는 것일까? 무엇이 적혀 있을까? 내 짐작이 사실이라면….

  “거지라고?”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예, 거지였어요.”

  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이상히 여길까 봐 다시 창가로 가서 어두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두려움과 종잡을 수 없는 슬픔에 싸여 전보를 셔츠 속에 묻어둔 채 아무 말 없이 꼼짝 않고 창가에 얼마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게 아닐 거라고 단정하면서 용기를 가지려고 애썼다.

  ‘네가 뭘 안다고 이 야단이야? 좋은 소식일지도 모르잖아. 아마도 큰형이 다 나았다는 반가운 소식인지도….’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이상하게 상상의 나래는 자꾸 불길한 쪽으로만 펼쳐졌다.

  이제는 우리에게 닥친 이 불운이 과연 사실일까를 정면으로 부딪쳐 알아 보기 위해 용기를 내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무표정하게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며 식당을 빠져나왔다. 내 방에 들어섰을 때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고는 흥분되어 손을 덜덜 떨면서 서둘러 램프에 불을 켰다. 전보를 꺼내 확 펼쳐 본 순간 아무리 불길한 쪽으로만 상상했다고 할지라도 너무나 엄청난 사실 앞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니야, 이건 진정 사실이 아니야, 단지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야’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전보를 읽고 또 읽어 보았다. 하지만 그건 한치의 착오도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읽고 또 읽고, 심지어 뒤집어 읽어 보아도 소용없었다. 전보에 쓰여진 그 말은 도저히 다른 말로 바꿔지지 않았다.

 

  첫째 애 사망. 깊은 애도를.

 

  전보를 손에 든 채 별짓을 다해 보고 나서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고 앉아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큰형….”

  나는 갑자기 복받쳐오르는 슬픔을 억제할 수 없어 엉엉 울었다. 너무나 울어 눈이 금방 부어오르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계속 울었다.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려야만 한다고 생각한 나는 방에서 나와 얼굴을 씻고 그 저주스런 전보를 든 채 식당으로 갔다. 나로서는 그 엄청난 사실을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그 끔찍한 소식을 알려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무슨 악마가 씌워서 아버지에겐 전보가 왔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으려고 했을까? 어차피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게 될 텐데! 어리석고 좁은 소견 덕분에 내가 직접 아버지에게 이 슬픈 사실을 알려야만 하게 되었으니, 나는 참 멍청하기 이를 데가 없는 놈이야. 차라리 전보가 왔을 때 직접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다면 함께 전보를 읽었을 것이고 지금은 아버지도 이미 알고 계실 텐데.’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슬픈 심경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식탁에 가까이 다가가 주저하며 아버지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정리하던 장부를 덮고는 펜의 깃털 끝으로 피네의 흰 주둥이를 간지르며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거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보자 내 가슴은 더욱 메어졌다. 아버지는 얼굴에 생기를 띠며 간간히 웃었다. 램프에 비친 아버지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잘생겨 보였다. 나는 ‘아버지, 지금은 즐거워할 때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슬픈 표정을 지은 채 손에 전보를 들고 아버지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아버지가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아버지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버지가 내 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모른다. 다만 나는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아버지 가슴에서 느닷없이 터져나오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신음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마치 가슴이 터져나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이 죽었구나, 그렇지?”

  내 손에 들려진 전보가 미끄러져 발치에 떨어졌고, 엉엉 울면서 난 아버지 가슴에 쓰러졌다. 우리는 함께 얼싸안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피네는 발치에서 그 저주스러운 전보를 앞발로 툭툭 치면서 놀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큰형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도 퍽 오래되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까지도 전보를 받을 때면 언제나 두려움에 떨지 않고는 펴볼 수가 없었다. ‘첫째 애 사망. 깊은 애도를’이라는 말을 다시 또 읽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4. 빨간수첩

 

  언젠가 오래된 미사경본을 들추다가 일곱 가지 고통으로 인해 양볼에 골이 깊고 굵은 주름이 패여진 성모마리아 채색 삽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성모마리아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는지를 보여 주려고 의도적으로 강조해서 그 신성한 주름살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큰형의 장례식을 치르고 리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머니의 야윈 얼굴에서 바로 그 성모마리아의 볼에 패여 있던 주름을 보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가엾은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그날 이후로 웃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머니의 옷은 언제나 변함없이 검은색이었고, 늘 비탄에 잠긴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어머니의 가슴속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슬픔이 깊숙이 자리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슬픔은 어머니에게서 영원히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에세뜨 집안은 형편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침울하고 비통한 분위기가 집안 전체를 암울하게 뒤덮었다. 미꾸 신부님이 큰형의 영혼에 안식을 주기 위한 미사를 올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낡은 검정 웃도리를 뜯어 자끄 형과 내 상복을 만들어 주었다. 우울한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큰형이 죽은 후 얼마가 지난 어느날 저녁이었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자끄 형이 방문을 단단히 잠그고 문틈까지도 세심히 막은 후 다시 한번 일일이 확인을 해보더니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나는 자끄 형의 엄숙한 표정과 이상스런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큰형의 장례식을 치르고 랑그도끄에서 돌아온 이후 자끄 형의 행동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긴 했었다. 우선, 정말 신기하게도 자끄 형은 더이상 울지 않았다. 자끄 형으로부터 눈물이 사라졌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렇게도 열광적으로 제본을 하고 풀칠해 대던 그의 모습도 차츰 사라졌고, 간혹 불가에 놓여 있는 풀단지가 눈에 띄긴 했지만 전 같은 열의는 없어 보였다. 이제는 골판지로 만든 손가방을 하나 얻으려면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해야 될 판이었다. 그것은 정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커다란 변화였다. 어머니가 모자상자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지 여드레가 지나도록 작업대 위엔 골판지 몇 장만이 눈에 띌 뿐 모자상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자끄 형의 변화를 벌써부터 주시해 왔다. 가게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이상한 몸짓을 하고 있는 자끄 형을 본 적도 몇 번 있고, 한밤중에도 자지 않고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침대에서 튕겨져 나가듯 일어나서 방안을 어슬렁 걸어다니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상인의 자연스런 행동이 아니어서 그러한 형을 볼 때면 나는 무서움증이 확 들곤 했다. 자끄 형이 점점 미쳐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나를 안절부절하게 했다.

  그날 저녁, 자끄 형이 갑자기 이상한 눈빛을 띠면서 조심조심 문을 잠그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을 때 내 머리속에는 형이 미쳤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면서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 불쌍한 자끄 형.’

  형은 지금 내가 어떤 심경인지도 모르고 힘을 주어 내 손을 꼭 잡았다.

  “다니엘, 너한테만 할 얘기가 있어.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비밀이야. 맹세할 수 있지?”

  자끄 형이 분명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을 때 나는 형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면서 서슴지 않고 자신있게 말했다.

  “결단코 맹세하겠어, 자끄 형!”

  “그런데 넌 여짓껏 모르고 있었니?… 쉿!… 나는 그동안 시를 쓰고 있었다. 아주 위대한 시를!”

  “시를? 형이 시를 쓰다니….”

  자끄 형은 대답 대신에 웃저고리에서 자신이 제본을 한 빨간수첩을 한 권 꺼냈다. 표지에는 예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믿음이여! 믿음이여!

  12편 장시

  자끄 에세뜨 지음

 

  제목부터가 너무 거창해서 현기증이 날 뻔했다.

  항상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양손엔 온통 풀을 덕지덕지 묻히고 있는 모습만이 전부인 줄 알았던 열세 살짜리 자끄 형이 시를 쓰다니! ‘믿음이여! 믿음이여!’란 12편의 장시를 쓰다니, 상상도 못한 엄청난 일이었다.

  자끄 형의 그런 숨은 일면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식구들은 계속 그의 손에 바구니를 들려 야채가게로 심부름을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에게 ‘멍청한 놈, 얼간이 같은 놈’이라고 소리를 질러 댔던 것이다.

  아! 불쌍한 자끄 에세뜨! 그럴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자끄 형의 목을 끌어 안았으련만 나는 감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겉장을 넘겨 첫 페이지를 펼쳐 본 순간 ‘믿음이여! 믿음이여!’란 12편의 장시는 단 4행만이 쓰여진 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제 1편의 4행도 채 맺지 못하고 있었다.

  “다니엘, 어때? ‘믿음이여! 믿음이여! 숭고한 믿음이여, 신비함이여! 쓸쓸하고 감동에 젖어 외치도다. 연민이여! 연민이여!’ 아름답지 않아?”

  그는 자기가 지은 시구를 감격에 차 나직이 읊조리면서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아직은 4행밖에 못 썼지만 나머지도 쉽게 쓸 수 있어. 식은 죽 먹기지, 시간문제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자끄 형이 말한 대로 이런 일이란 흔히 시작이 가장 어렵고 힘든 법이다. 그러나 자끄 형은 결국 12편의 장시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시인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 보아도 시란 원래부터 자기의 운명을 안고 태어나는 모양인지 ‘믿음이여! 믿음이여!’란 시는 결국 빛을 못 보고 조용히 사그라들고 말았다. 시인의 자질보다도 시가 원래부터 갖고 있는 운명 때문에 결국 그 시는 참을성이 모자란 가엾은 자끄 형을 굴복시켜 그에게서 시적 영감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렇게 되자 그는 또다시 눈물을 짜기 시작했고, 불 앞에 풀단지를 끼고 앉아 열심히 풀칠을 하며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옛날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빨간수첩 역시 자기 운명을 지니고 있었는지 자끄 형은 그 수첩도 내게 주어 버리고 말았다.

  “네게 이걸 줄 테니 네 마음대로 해.”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내게 빨간수첩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 수첩과 함께 자끄 형의 고심과 고통도 고스란히 내게 넘어왔다. 그 이후로 빨간수첩에는 나와 우리 에세뜨 집안에 몰아닥친 온갖 불운과 불행했던 나날들이 비통한 노래가락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어쩌다 그 수첩을 들춰보면 나와 우리 에세뜨 집안의 자취가 담긴 편린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그 시절의 아픔이 내 가슴에 되살아나곤 한다. 언제까지나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18xx년의 어느 봄날이나, 항상 침묵 속에서 우울하게 생활하던 나날들이나, 부진한 사업, 밀려만 가는 집세, 싸울 듯이 덤벼들고 고래고래 외쳐 대던 빚장이들, 팔아 버린 어머니의 다이아몬드, 전당포에 잡혀 버린 은그릇, 여기저기 구멍난 시트, 천조각을 대고 기운 누더기 바지, 궁핍함과 모욕감, 죽을 때까지 되풀이될 것 같던 “내일은 어떻게 하지?”하는 한탄 소리, 집달리가 무례하게 울려 대던 초인종 소리, 경멸과 비아냥거림으로 가득 찬 문지기의 경멸어린 미소, 빚과 부도난 어음 등… 늘 반복되는 눈물과 비참함으로 얼룩진 구슬픈 노래들이 빨간수첩의 페이지마다 빽빽히 채워져 갔다.

  내가 철학반을 끝마치던 18xx년, 난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비록 여전히 키가 작고 턱수염 한 올 나지 않아 어린애 티를 벗지는 못했으나, 철학자나 시인처럼 아주 진지하고 점잖은 소년이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위대한 꼬마 철학자였던 내가 막 학교에 가려고 나서는데 아버지가 나를 가게로 불렀다. 내가 의아해 가면서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아버지는 아주 화난 듯이 목청을 돋구어 냅다 소리를 질렀다.

  “다니엘, 이제 책이고 뭐고 다 집어치워. 넌 이제 학교 같은 덴 다닐 수 없어.”

  이렇게 말하고 나서 아버지는 화난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말없이 뒷짐을 지고 가게 안을 왔다갔다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몹시 격앙되어 있는 것 같았고 나도 역시 갑작스런 일에 깜짝 놀라 몹시 흥분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흥분이 좀 가라앉은 듯 침묵을 깨고 아버지는 다시 불쑥 말을 꺼냈다.

  “얘야, 너한테 좋지 못한 소식을 알려야겠구나. 아주 나쁜 소식을 말이야… 우리 가족들 모두가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를테면 말이야….”

  그순간 갑자기 반쯤 열린 문틈으로 귀청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자끄! 어휴, 저 멍청한 놈 같으니라구!”

  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고함을 쳤다. 그러고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 그 빌어먹을 혁명분자들 때문에 망해 버려 어쩔 수 없이 리용으로 이사온 이후 6년 동안 나는 열심히 일하여 다시 잃어버린 재산을 모아서 옛날의 안락하고 풍요로운 생활로 되돌아가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악마는 리용에서도 우리를 가만두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양이다. 난 식구들을 빚과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야 말았어… 이젠 모든 게 끝장이야. 우린 더이상 헤어나올 수 없는 진흙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어… 우리는 갈 데까지 다 갔고 이제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이상 까먹기 전에 아직 우리한테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가재도구들을 몽땅 팔아서 각자 삶을 찾아야겠다. 이제 너희들도 클 만큼 컸으니까….”

  문틈으로 스며드는 자끄 형의 울음소리가 아버지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아버지는 화조차 내지 않고 내게 문을 닫아 버리라고 손짓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 다른 일이 생기기 전까지 네 어머닌 남부지방에 있는 바티스트 삼촌 댁에 가 계실 게다. 자끄는 그대로 리용에 남게 될 거고… 자끄는 전당포에 조그만 일자리를 얻었지. 나는 포도주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갈 꺼야… 그리고 얘야, 안됐지만 너도 역시 네 생활비만큼은 직접 벌어야겠구나. 마침 내 처지를 잘 알고 있는 교육장으로부터 자습감독 교사 자리를 하나 얻어 주겠다는 편지가 왔더구나. 자, 읽어 봐라!”

  나는 아버지가 건네주는 편지를 받아서는 급하게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 망설이거나 신중하게 생각해 볼 시간조차 없을 것 같아요. 아주 급한 모양이에요. 갈 채비를 서둘러야겠어요.”

  “내일 떠나야 할 거다.”

  “좋아요. 떠날께요. 떠나겠어요.”

  나는 편지를 다시 접어서 아버지에게 돌려 주었다. 아버지 말대로 난 클 만큼 컸고, 그리고 이제 내 나름으론 아주 심오한 철학자였기 때문에 내 앞에 펼쳐질 어떤 운명도 헤쳐 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자 우리의 얘기를 다 듣고 있었던 듯 어머니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으며, 자끄 형도 어머니 뒤를 따라 쭈뼛쭈뼛 들어왔다. 두 사람은 내게 다가오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껴안았다. 나만 빼놓고 모두가 어제 저녁부터 이 일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애 짐을 잘 꾸려 주구려! 내일 아침 배로 떠나야 될 거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고, 자끄 형은 소리를 죽이며 흐느꼈다. 이제 모든 것은 결정되었고 실행만이 남았다.

  그동안 겪어온 숱한 일들로 인해 우리 가족들은 차차 불행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내가 가족들과 헤어지던 그날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날 아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끄 형은 헤어짐의 아픔을 속으로 삼킨 채 나를 부두까지 배웅해 주었다. 우연하게도 나는 6년 전 우리 가족을 리용까지 태우고 왔던 바로 그 배를 타게 되었다. 제니에 선장과 몽떼리마르 주방장도 만났다. 우리 가족들에겐 무의식적으로 안누 할머니의 큰 우산, 갑자기 내린 비로 더욱 소란해진 갑판 위의 사람들, 그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배를 내리던 일, 그런 여러가지 일들이 떠오른 것 같았다. 그런 추억들은 우리 가족의 슬픔을 조금은 덜어 주었으며, 어머니의 입가엔 과거를 회상하는 서글픈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

  경적이 뿌 뿌 하고 울렸다. 드디어 떠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가족들의 품에서 빠져나와 부교를 건너 갑판으로 올라갔다.

  “조심해라!”

  아버지가 소리쳤다.

  “조심해야 한다. 건강하고….”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자끄 형은 이별의 인사를 하려고 입을 달싹거렸으나 너무 울어서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전혀 울지 않았다. 나는 위대한 꼬마 철학자였으며, 철학자는 눈물 따위나 흘려 대는 연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슬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희뿌연 안개 속에 남아 슬픔에 싸여 있는 저 다정하고 착한 사람들을 내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을 위한 일이라면 아무리 위험한 일일지라도 내 몸을 송두리째 바쳐 가면서까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다. 다만 나는 위대한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리용을 떠나는 기쁨, 여행한다는 즐거움 등이 뒤섞여 나를 미묘한 흥분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론 강의 부두 위에 서서 울고 있는 세 명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슬픔도 잊은 채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세 사람은 철학자도 아니었으며 나와는 달리 야릇한 흥분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그들은 불안해 하면서도 애정어린 표정으로 마치 천식을 앓듯 뿌뿌거리며 떠나가는 배를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배의 굴뚝에서 솟아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수평선을 날으는 제비만큼이나 작게 보일 정도로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그들은 “안녕! 안녕!”하면서 슬픈 목소리를 토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그들과는 달리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나부끼면서 휘파람을 불거나, 침을 길게 내뱉거나, 뱃머리 쪽에 있는 여자들을 바라보거나, 어깨를 으쓱거리는 등 어른 흉내를 내며 천천히 갑판 위를 거닐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무척 멋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엔느에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에 몽떼리마르 주방장과 주방에서 일을 거들어 주는 다른 두 사람에게 내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 쓰기 위해서 학교에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중이라고 떠벌려 댔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내가 아주 대견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칭찬을 듣자 나는 더욱 으쓱해지며 나 스스로도 내가 아주 대견스럽게 여겨졌다.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며 갑판 위를 거닐고 있을 때였다. 무심코 걷다가 나는 그만 실수로 뱃머리 쪽의 경적 옆에 엉켜 있는 밧줄더미에 발부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6년 전에 무릎 위에 앵무새가 든 새장을 올려놓고 앉아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넋을 잃고 론 강을 바라보았던 바로 그 밧줄더미였다. 그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찌나 웃어 댔던지 얼굴이 다 붉어질 정도였다. 커다란 파란색 새장에 기이하게 생긴 앵무새를 넣고 어딜 가나 들고 다녔으니 그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그때만 해도 불쌍한 꼬마 철학자는 환상의 색깔인 파란색 새장과 희망의 색깔인 초록색 앵무새를 평생 동안 끌고 다녀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어린시절의 환상과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커다란 파란색 새장을 가지고 다닌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장의 파란색은 벗겨져 퇴색되고, 앵무새의 초록빛 털은 거의 다 빠져 점점 보기 흉하게 되었을 뿐이다.

  아름다운 어린시절을 보낸 랑그도끄가 있는 비엔느에 도착하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육장을 찾아 보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교육장은 야위긴 했지만 훤칠한 키에 얼굴도 훤해서 첫눈에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민첩하게 행동했지만 학자의 분위기는 전혀 풍기지 않았다. 그는 나를 친구의 아들로서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나 내가 교육장실에 들어섰을 때 그 친절한 교육장은 무척 놀라는 것 같았다.

  “아! 이걸 어쩐다지! 이렇게 작을 줄은 미처 몰랐는데!”

  사실이지 난 작은 체구인 데다가 어른스럽게 듬직한 인상이기는커녕 허약하기 그지없는 인상을 풍겼던 것이다.

  면전에다 대놓고 내뱉는 교육장의 한탄소리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두려워졌다.

  ‘이분은 내가 이토록 작은 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야. 안 된다고 하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더니 두려움으로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교육장은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챈 듯 말을 이었다.

  “이리 와 보렴, 얘야!… 그래서 우린 말이야, 너한테 자습감독 교사 일을 맡기려고 하는데… 이렇게 작고, 허약한 인상으로는 자습감독 교사를 한다는 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어렵고 힘들 게다… 하지만 지금 너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만 할 형편이니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널 돕겠다… 그러나 처음부터 널 큰 학교에 보낼 수는 없지… 여기서 수십 리 떨어진 산으로 둘러싸인 싸르랑드란 마을에 공립중학교가 하나 있다. 우선은 너를 거기에 보내야겠구나. 그곳에 근무하면서 교사로서의 수련도 쌓고 교사라는 직업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 보아라. 그러다 보면 키도 크고, 수염도 자라 남자다운 풍모를 갖추게 되겠지. 큰 학교에 가는 문제는 그때 가서 얘기해 보자꾸나.”

  교육장의 말을 듣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말을 끝내고 난 교육장은 싸르랑드 중학교 교장선생님에게 보낼 나에 대한 소개장을 써서 내게 건네주면서 그날로 싸르랑드로 떠나라고 말했다. 교육장은 다시금 몇 마디 충고의 말을 하고 내 뺨을 다정스럽게 어루만지더니 어서 가보라며 일어나서 문을 열어 주었다.

  교육장실을 나오면서 안심도 되고 희망에 벅찬 나는 오래되어 무척 낡은 계단을 나는 듯이 단숨에 뛰어내려와서는 싸르랑드로 가는 합승마차를 예약하려고 서둘러 달려갔다.

  오후에 출발하는 합승마차를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는데 출발하기까지는 아직도 네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랑그도끄 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우쭐한 기분으로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꼭 만나 보아야 할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으로 오게 된 첫번째 목적을 완수한 나는 허기를 느끼며 우선 배를 채우기 위해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는 광장 한쪽에 있는 비교적 깨끗한 음식점을 찾아냈다. 그 음식점에는 ‘프랑스를 여행하는 친구를 위한 집’이라는 간판이 산뜻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곳이 내 형편에 가장 적당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밀치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허연 석회가 깨끗하게 칠해져 있었고 홀에는 참나무 식탁이 몇 개 놓여 있었을 뿐 음식점 안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는 장식용으로 세워 놓은 듯 구리 손잡이에 알록달록한 리본을 매단 긴 지팡이가 눈길을 끌었다. 카운터에는 주인인 듯한 디룩디룩 살이 찐 뚱뚱한 남자가 신문지 위에다 코를 박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아 대며 자고 있었다.

  “이봐요! 주인 양반!”

  나는 선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달들처럼 주먹으로 식탁을 탕탕 두드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뚱보 양반은 여전히 코를 골며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뒷방에 있던 여주인이 놀라서 급히 달려나왔다. 행운의 천사가 자기 식당으로 인도한 손님을 보자 그녀는 얼떨결에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 맙소사! 넌, 다니엘 아니냐!”

  “아… 안누 할머니!”

  아! 하나님! 뜻밖에도 안누 할머니였다! 우리 집안 일을 도맡아 하던 성실한 안누 할머니가 카운터에서 세상 모르고 골아떨어진 뚱보장 뻬롤씨와 결혼하여 이제는 음식점의 어엿한 여주인이 되어 있었다.

  항상 다정하기만 한 안누 할머니는 자기네 식당에서 나를 만났다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뜻밖이어서 얼마나 나를 힘껏 껴안았는지 나는 하마터면 숨이 막힐 뻔했다.

  그때 잠꾸러기 장 뻬롤씨가 부시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마누라인 안누 할머니가 웬 낯선 젊은이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을 보고는 무척 놀란 듯했다. 안누 할머니가 늘 얘기하던 다니엘이라고 나를 소개하자 그는 얘기로만 듣던 나를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된 것이 기뻤는지 아주 귀한 손님을 대하듯 갖은 친절을 다 베풀었다.

  “다니엘 군, 점심식사는 어떻게 했나?”

  “아직 하지 못했읍니다. 뻬롤 씨… 실은 점심식사를 하려고 음식점을 찾던 중에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어 이 식당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안누 할머니의….”

  “맙소사! 다니엘, 여지껏 식사를 안했다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니.”

  안누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갔고, 뻬롤 씨도 벌떡 일어나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지하실로 무엇인가를 가지러 내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식탁 위에는 멋진 식사가 차려졌는데 먹음직스럽고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이것저것 풍성하여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많은 음식을 보자 순간 더욱더 허기를 느끼며 식탁에 앉았다. 안누 할머니는 왼쪽에 앉아 크림이 많이 들어 저절로 구미가 당기는 계란 반숙을 먹기 좋도록 잘라 주었고, 뻬롤 씨도 오른쪽에 앉아서 잔에다 홍옥 빛깔의 포도주를 따라 주는 등 그렇게 극진할 수가 없었다. 낮은 소리로 그동안의 얘기를 하면서 난 수도사처럼 단정하고 얌전하게 식사를 했다. 내가 방금 교육구청을 다녀왔으며, 이제는 자습감독 교사 일을 해서 생활비도 직접 벌게 되었다고 얘기하자 안누 할머니는 내가 무척 대견스러운 듯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도 뻬롤 씨는 덜 놀라는 눈치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다니엘보다 더 어린 너댓 살 되던 때부터 이 험난한 세상에 발을 들여 놓고 온갖 풍상을 겪어 고생쯤은 이미 몸에 배어 있는 노련한 사람이어서, 다니엘이 직접 생활비를 벌겠다는 것이 별로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의젓한  뚱뚱보 뻬롤 씨는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할 뿐 결코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찌 감히 뻬롤 씨가 자신을 에세뜨 집안의 아들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뻬롤 씨가 그런 기미라도 보였다면 안누 할머니는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보! 다니엘과 함께 우리 모두 건배합시다.”

  뻬롤 씨는 잔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그리고 모두들 축배를 들었다. 우선 에세뜨 부인을 위해서 그리고 에세뜨를, 자끄를, 다니엘을, 안누를, 장 뻬롤을, 교육장을 위해서 건배! 그리고 또… 위해서….

  우리는 옛날의 슬펐던 기억들과 장미빛 아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옛날의 추억이 어린 공장과 리용, 랑떼른느 거리, 가난하고 우울에 찌든 생활들, 불쌍한 큰형의 죽음 등을 얘기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다. 그렇게 웃고 건배하며 떠들다 보니 벌써 두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벌써 가려고?”

  안누 할머니가 섭섭하다는 듯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싸르랑드로 떠나기 전에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는데 아주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부득이 일어서야만 하겠다고 얘기하며 나는 안누 할머니와 뻬롤 씨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직도 나눌 얘기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헤어져야만 했다. 결국 안누 할머니와 뻬롤 씨는 그렇게 중대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더이상 나를 붙잡지 않았고 우리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여행 잘 해라. 다니엘!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하나님께서 항상 보살펴 주시고 인도하시며, 네게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자나 깨나 빌고 있겠다. 건강에도 유의하고….”

  안누 할머니와 뻬롤 씨를 뒤에 남겨 둔 채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그들과 헤어진다는 아픔도 있었지만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만난다는 희망에 벅차 발걸음은 경쾌하고 가벼웠다. 그렇다, 나는 곡 만나봐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시절의 즐거움으로 가득 찬 들이며 작업장이며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우람한 플라타너스와 협죽도, 그리고 석류나무와 돌멩이 하나하나까지도 만나서 반가운 재회의 인사를 나누어야만 했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나간 로빈슨 크루소도 훗날 자기가 살던 무인도를 찾아 보기 위해 수천리가 넘는 바닷길을 항해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한때 향유했던 즐거움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어 하는 본능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공장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머리에 깃털 장식을 달고 흥미로운 듯 담 너머로 멀리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키다리 플라타너스들이 정겨운 옛 친구가 재빠른 걸음걸이로 자기들을 향해 오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 반가운 듯 깃털 장식을 흔들어 대며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러고 나서 서로 몸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저기 다니엘 에세뜨가 온다! 다니엘 에세뜨가 돌아오고 있어!’

  나는 더욱 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공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나는 전율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고는 석고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협죽도도, 삐죽 솟은 석류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도 없어져 버렸고, 작업장도, 예배당도 사라져 버렸다. 대문 위쪽으로 라틴어가 몇 마디 쓰인 커다란 십자가만이 보일 뿐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공장은 이제 더이상 공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남자들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까르멜 수녀원이 되어 있었다.

 

 

5.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크고 작은 산봉우리 사이의 좁다란 골짜기에 자리잡은 세벤느 산악지방에 싸르랑드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곳의 날씨는 변덕이 심해 해가 중천으로 높이 떠올라 산골짜기를 내리비칠 때면 푹푹 쪄대는 무더위로 숨통이 막힐 듯했고, 북서풍이 휘몰아치면 매서운 추위가 살을 에이는 듯했다.

  계절은 이미 봄으로 접어들었지만 내가 도착한 날 저녁에는 아침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북서풍이 미친 듯이 마을 안을 휘젓고 있었다. 합승마차 윗 좌석에 앉은 나는 싸르랑드로 들어서면서 냉기가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인적이 끊어진 채 거리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썰렁한 광장 한켠에 윤곽만 어스름히 보이는 사무실 앞쪽에서 몇 사람이 추위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는 광장에서 그다지 멀지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정적만이 감도는 거리를 두세 번 꺾어들자 트렁크를 들고 앞서 가던 짐꾼은 오래 전에 내버려진 듯한 황폐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 왔읍니다. 여기에요.”

  그는 문에 달린 묵직해 보이는 쇠로 된 커다란 문고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육중한 문고리가 밑으로 젖혀지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나는 짐꾼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둠에 잠긴 거물 현관에 서서 짐꾼이 트렁크를 땅바닥에 내려 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어둠 속에서 그가 내민 손바닥에 수고비를 쥐어 주었다. 뒤돌아 선 짐꾼은 깜깜한 어둠 속으로 유령처럼 사라져 갔다. 곧이어 쿵하며 문 닫히는 소리가 무섭게 들려 왔다. 잠시 후 수위 졸린 표정을 지으며 큼직한 램프를 들고 내게로 다가 왔다.

  “새로 온 학생인가요?”

  “저는 학생이 아니고 자습감독 교사로 여기 온 겁니다. 교장실까지 안내해 주시겠어요?”

  수위는 내 말에 놀라는 눈치였다. 잠이 확 달아나는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잠시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금은 교장선생님이 학생들과 15분 동안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저녁예배가 끝나는 대로 교장실로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다.

  수위실 안은 방금 막 저녁식사가 끝났는지 음식 냄새가 배어 있었다.

  다부진 체격에 덥수룩한 금발 수염을 기른 잘생긴 남자가  브랜디를 마시고 있었다. 그 곁에는 마르멜로 열매처럼 노란색 피부에 비쩍 마른 야윈 여자가 빛바랜 허름한 쇼올을 귀까지 덮어 쓰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누굽니까, 까싸뉴 씨?”

  덥수룩한 수염이 난 남자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수위에게 물었다.

  “새로 오신 자습감독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 너무 작아서 전 처음에 학생인 줄 알았답니다.”

  수위가 웃음기어린 낯빛으로 대답했다.

  “사실 이 학교에는 선생님보다 키가 크거나 나이가 훨씬 많은 학생들도 더러 있어요. 음, 누구더라? 그렇지 베이옹이라든지….”

  수염난 남자가 브랜디 남자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끄루자도 그렇지요.”

  수위가 덧붙였다.

  “수베롤도 있잖아요.”

  이번에는 잠자코 앉아 있던 야윈 여자가 거들었다.

  그렇게 한마디씩하고 난 그들은 브랜디 잔에 코를 박고 나를 곁눈질하며 자기들끼리 낮은 소리로 무어라고 지껄여 댔다. 밖에서는 매서운 북서풍이 몰아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 오고 성당으로부터 목청껏 기도문을 외우는 학생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건너왔다.

  갑자기 어둠과 지루함을 깨버리려는 듯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현관 쪽에선 삽시간에 여러 발자국소리가 뒤섞여 시끄럽게 울렸다.

  “예배시간이 끝난 모양입니다. 교장실로 올라가시죠.”

  까싸뉴 씨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는 램프를 집어 들고 앞장서서 수위실 밖으로 나갔다.

  학교는 굉장히 넓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복도, 높다란 현관, 정교한 철난간이 달린 널따란 계단… 그 모든 것이 오래되어 검게 그을려 있었다. 1789년까지만 해도 그 건물은 귀족계급 출신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해군학교였으며, 한창때는 8백 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수용했다는 학교 역사를 수위는 낮은 목소리로 들려 주었다.

  수위의 얘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우리는 교장실 앞에 다다랐다. 까싸뉴 씨는 묵중한 이중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가더니 또 하나의 안쪽 문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무게 있는 점잖은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수위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교장실은 사방 벽이 온통 초록색 벽지로 도배된 넓직한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커다란 책상 앞에 앉은 교장선생님은 밑으로 늘어진 램프갓 밑으로 비치는 희미한 불빛을 받으며 무언가를 쓰느라고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교장선생님! 셀리에르 씨의 후임 선생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수위가 내 등을 앞으로 지그시 떠밀면서 말했다.

  “아! 그래요?”

  교장선생님은 여전히 글쓰는 데 몰두한 채 말했다.

  수위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총총걸음으로 교장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모자를 두 손으로 모아 쥐고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교장실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쓰던 일을 끝마친 듯 교장선생님이 내게로 몸을 돌렸다. 나도 교장선생님을 마주 바라보았다. 교장선생님은 창백해 보이는 얼굴색과 깡마른 체격이었다. 하지만 두 눈은 날카롭고 차가운 광채를 발했다. 교장선생님은 나를 좀더 자세히 보려고 밑으로 처져 있는 램프갓을 위로 끌어 올려 주위를 밝게 한 다음 흘러내린 코안경을 바짝 치켜 올렸다.

  “아니, 어린애 아냐!”

  교장선생님이 의자 뒤로 몸을 젖히며 소리쳤다.

  “어린애를 데리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실망과 불만에 가득 찬 교장선생님의 푸념을 들으니 나는 몹시 두려워졌다. 순간 먹을 것도 없이 길거리로 내몰린 초라한 모습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간신히 두세 마디 더듬거리고 난 나는 교육장이 써 준 소개장을 교장선생님에게 머뭇거리며 건네주었다.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을 지은 채 교장선생님은 편지를 받아 들더니 읽고 다시 읽고 편지를 접었다가는 다시 펴서 또 읽었다. 마침내 그는 교육장의 특별한 추천도 있고 아울러 가족들의 명예도 있고 하니 비록 어리고 작은 게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자습감독 교사로 채용하겠노라고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는 이어 내가 해야 할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의 말이 한마디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더욱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내 가슴은 터질 듯 기뻤고 어떠한 말도 그냥 흘러가 버렸다. 그가 아무리 많은 손을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 손 위에다가 일일이 다 입을 맞췄을 것이다.

  너무 기뻐 한동안 얼이 빠져 서 있던 나는 뒤쪽에서 들리는 쨍그렁대는 요란한 쇳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라서 눈을 휘둥그래 뜨고 돌아보니 그곳에는 붉은 구레나룻을 기른 껑충하게 키가 큰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머리가 옆으로 약간 기울어진 그 남자는 검지손가락에 크고 작은 열쇠들을 꿴 열쇠꾸러미를 들고 흔들어 대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 미소를 대하자 방망이질하던 내 마음이 약간 진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신경을 거슬리는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하고 울려 대는 끔찍한 열쇠꾸러미 부딪히는 소리가 나를 두렵게 했다.

  “비오 씨, 이분이 셀리에르 씨 후임으로 오신 분입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에 비오 씨는 고개를 숙이면서 내게 예의 그 다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열쇠는 ‘이 꼬마가 셀리에르 씨 후임이란 말이지? 꺼져라, 꺼져! 웃기지 말고!’라고 빈정거리듯 더욱 세차게 흔들거렸다.

  교장선생님도 열쇠들의 쨍그렁거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아차린 듯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덧붙였다.

  “셀리에르 씨가 떠남으로 해서 우리는 여러가지 크나큰 손실을, 아니 회복할 수 없을 만큼의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비오 씨가 새로 오신 선생님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감싸주시면서 자습감독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할 사항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고 준수해야 할 질서와 규율을 가르쳐 주신다면 엄숙한 학교 질서나 규율은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서는군요.”

  비오 씨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성심껏 조언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열쇠들은 여전히 불친절하게 쨍그렁거렸다. 마치 ‘난장이 꼬마야, 조심하라구’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에세뜨 씨,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은 불편하시더라도 호텔에 가서 주무십시오. 그리고 내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하셔야 합니다. 그럼….”

  교장선생님이 내게 점잖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비오 씨는 조금 전보다 더욱 다정한 미소를 얼굴에 담고서 나를 현관까지 배웅해 주었다. 내가 돌아서려고 하는데 비오 씨가 내 손에 조그만 수첩을 쥐어 주었다.

  “학교 규칙이 써 있소. 읽어 보시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가지 잘 생각해 보시오.”

  내가 문을 열고 나가자 그는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소리가 나도록 열쇠를 일부러 더 힘껏 흔들며 현관문을 닫아 버리곤 유유히 사라져 갔다.

  그 사람은 불을 켜 주는 것을 잊어버린 듯했고 나는 그 어두운 복도에 길을 찾기 위해 벽을 더듬거리며 한동안을 헤매야만 했다. 어스름한 달빛이 높은 창문의 창살을 통해 비춰 들어왔기 때문에 그나마 나는 간신히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힘겹게 복도 안을 허우적대며 나오는데 저쪽 켠에서 어슴푸레한 불빛이 흔들거리며 내게로 재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불빛을 향해 몇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갔다. 불빛은 점점 커지더니 내게로 바짝 다가와서는 내 옆을 그대로 지나쳐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환영을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빛이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나는 그 불빛에 언뜻 어떤 환영을 보았다.

  두 여자 아니 두 그림자가 바로 그 환영의 실체였다. 쭈글쭈글한 주름투성이의 얼굴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허리가 완전히 구부러진 노파와 날씬한 몸매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젊은 여자가 마치 유령처럼 날렵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걸 분명히 보았다. 노파의 손에는 조그만 구리 램프가 들려 있었고 검은 눈동자의 여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두 그림자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 재빠르게 발자국소리를 죽이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 한동안 나는 흘린 듯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그 자리에 굳어진 채 우뚝 서 있었다.

  놀라움에 가슴이 마구 띠었고, 그 안경잡이 마귀할멈이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에 떨면서도 나는 다시 더듬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어쨌든 그 밤을 지낼 숙소를 찾아야 했고 마음은 조급했다. 낯선 곳에서 더구나 야밤에 잠잘 곳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수위실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고 나서 보니, 덥수룩하게 수염난 남자가 여전히 그곳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뻐끔대고 있었다. 내가 사정 얘기를 천천히 늘어놓자 그는 선뜻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귀족처럼 극진한 대우에 그다지 비싸지 않은 작은 여관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정중히 제의해 왔다. 나는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구레나룻 남자는 아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함께 걸어가면서 그는 자기 이름은 로제이고, 싸르랑드 중학교에서 댄스와 마술, 펜싱 등을 가르치는 펜싱 교사이며, 아프리카 엽기병으로 오랫동안 근무했었다는 것을 내게 들려 주었다. 나는 그가 아프리카 엽기병으로 근무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어린애들은 용감한 군인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로제가 안내해 준 여관 앞에서 우리는 힘차게 악수를 하면서 이제부터 절친한 친구가 되고자 굳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지금부터 나는 숨겨 놓고 싶은 얘기를 고백하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낯선 마을의 누추한 여관 침대에 홀로 걸터앉아 위대한 꼬마 철학자라는 자부심도 팽개친 채 메어지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날 밤 나는 마치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삶이 무섭게 느껴졌던 것이다. 삶이라는 문제 앞에서 나는 자신이 무기력하고 허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복받치는 눈물을 참으려고 하지도 않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없이 흐르는 눈물 속으로 가족들의 얼굴이 어른거리며 떠올랐다. 가난으로 찌들어 버린 어머니는 바티스트 삼촌 댁으로, 아버지는 그 불운으로 가득 찬 리용에… 뿔뿔이 흩어져 버린 불쌍하고 초라한 가족들이 보였다. 지금 내겐 의지할 만한 가족도 없었고, 집도 없었다. 이젠 가난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나약하게 하는 슬픔 따위는 떨쳐 버리자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나는 거창하고 아름다운 결심을 했다. 거덜난 에세뜨 가문을 다 시 일으켜 세우고 혼자 힘으로 옛날처럼  부유한 집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리고 나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비오 씨가 건네준 학교 규율이 적힌 수첩을 펼쳤다.

  비오 씨가 손수 정성들여 베낀 그 규율은 조약문처럼 체계적이었으며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째, 상급자에 대한 자습감독 교사의 의무

   둘째, 동료들에 대한 자습감독 교사의 의무

   셋째, 학생들에 대한 자습감독 교사의 의무

  거기에는 교사가 지켜야 할 규칙들이 총망라되어 일일이 설명되어 있었다. 창문 유리가 깨졌을 경우에서부터 두 학생이 동시에 손을 들었을 경우, 또한 교사들의 봉급 액수나 심지어 식사 때 얼마만큼의 포도주를 마셔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규율집은 규율의 효율성을 찬양하는 한 편의 감동적인 연설로 끝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끝 부분에 나오는 연설문의 가장 감동적인 구절까지 읽을 여력이 없었다.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치며 악몽에 시달렸다. 이상야릇한 수많은 환영들이 꿈 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어떤 때는 쨍그렁! 쨍그렁! 끔찍한 소리를 내는 열쇠꾸러미를 든 비오 씨가 나타나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안경잡이 마귀할멈이 내 머리맡에 다가와 앉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뜨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매혹적인 그 검은 눈동자 아가씨가 침대 발치에 앉아서는 이상하게도 나를 뚫어질 듯 응시하고 있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8시에, 나는 학교에 도착했다. 열쇠꾸러미를 손에 든 비오 씨가 정문에 버티고 선 채 등교하는 학생들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감시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한껏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았다.

  “현관에서 기다리세요. 학생들이 다 등교하고 나면 다른 선생님들께 소개시켜 드리지요.”

   그의 말대로 현관 밑에서 기다리던 나는 이리저리 거닐다가 선생님인 듯싶은 사람이 다가오면 고개를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본체 만체 숨을 헐떡거리며 그냥 달려가 버렸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내 인사를 받아 주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신부이자 철학 교사라고 소개했다. “괴짭니다.”라고 비오 씨가 내게 귀띔해 주듯 넌지시 말했다. 왠지 모르게 나는 그 괴짜라는 사람이 금세 좋아졌다.

  그때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교무실 안은 시끌벅적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렇고 그런 평범한 얼굴에 볼품없는 남루한 옷을 걸친 스물 일곱 살 안팎의 키큰 청년 너댓 명이 촐랑거리며 뛰어들어오다가 비오 씨와 마주치자, 흠칫 놀라서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비오 씨가 나를 가리키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새로 온 동료인 다니엘 에세뜨 씨를 소개합니다.”

  그는 한마디 입을 내뱉고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숙이고 잠자코 서 있다가 미소띤 얼굴로 사라져 갔다. 여전히 위협하듯 쨍그렁대는 열쇠꾸러미를 흔들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몹시 우스꽝스러웠다. 머리통이 어깨 위에 기우뚱하게 올라 앉아 있는 그는 목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참 동안 나는 아무 말 없이 눈치를 살피며 동료들을 슬금슬금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뚱뚱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내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게 될 셀리에르, 그 유명한 셀리에르 씨였다.

  그가 장난기어린 소리로 말했다.

  “아무렴! 선생들이 계속 뒤를 잇긴 하지만 서로 닮지는 않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로군.”

  그 말은 자신의 장대 같은 키와 짜리몽땅한 내 키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 분명했다. 모두들 못 참겠다는 듯 한꺼번에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가장 큰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그순간 내 기분은 단 몇 인치라도 더 커질 수 있다면 내 영혼까지도 기꺼이 팔아넘기고 싶을 만큼 처절했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그 뚱보 셀리에르 씨가 내 손을 잡으며 덧붙였다.

  “신경 쓰지 말아요. 키가 서로 차이난다고 해서 술 한 잔 같이 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 우리랑 함께 갑시다, 친구. 수업 시작하기 전에 바르베뜨 까페에서 이별주를 가볍게 사기로 약속했소. 당신도 참석해 주었으면 해요… 모름지기 술을 한 잔씩 나누고 나면 원수지간도 친해지는 법이라오.”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내 팔을 끼더니 나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동료들이 날 데려간 바르베뜨 까페는 광장의 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마을에 주둔한 부대의 하사관들이 그곳의 단골손님인 모양이었다. 까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모자걸이에 걸려 있는 수많은 보병용 군모와 혁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학교를 떠나는 날이라고 셀리에르 씨가 이별주를 한잔 사기로 해서였는지 까페에는 단골 손님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까페에 들어서자 셀리에르 씨는 멍청해진 나를 끌고 다니며 모두에게 소개시켰고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나의 출연은 그다지 큰 신선함을 준 것 같지 않았으며 그들은 금세 내 존재를 잊고 각자의 기분에 빠져들었다. 나는 까페 한구석에 시큰둥하니 앉아 있었다. 술잔이 채워지는 동안 뚱뚱보 셀리에르 씨가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코트를 벗어 붙인 채 그는 자기 이름이 새겨진 기다란 도자기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었다. 바르베뜨 까페에서 열심히 떠벌리고 있는 다른 자습감독 교사들도 모두들 그런 파이프를 하나씩 물고 있었다.

  뚱뚱보 셀리에르 씨가 내게 말했다.

  “음 친구, 보시다시피 자습감독 선생을 하다 보면 이렇게 즐거운 시간도 갖게 되지요. 말하자면 싸르랑드는 당신의 초임지로는 안성맞춤이라는 얘기요. 우선 바르베뜨 까페의 압셍뜨 술맛은 아주 일품이거든. 게다가 저 감옥도 과히 나쁘진 않을 거요.”

  교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로 감옥이란 학교를 이르는 말인가 보았다.

  “당신은 하급반을 맡게 될 것입니다. 엄하게 다뤄야 해요. 내가 그놈들을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는지 보셨어야 하는 건데! 교장은 나쁜 사람은 아니오. 다른 동료 교사들도 다들 좋은 사람들이고, 다만 그 노파와 비오 영감만은….”

  “노파라니요?”

  내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 곧 다 알게 될 거요. 큼지막한 안경을 걸친 그 노파는 밤이고 낮이고 간에 상관하지 않고 학교를 어슬렁거리고 다니지. 교장선생네 아주머닌데 학교의 회계일을 도맡아 일하고 있소. 아! 하여간 지독하게 고약한 할멈이야!”

  셀리에르 씨가 인상 착의를 설명해 주자 전날 밤 복도에서 만난 마귀할멈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열두 번도 넘게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 ‘그럼 그 검은 눈동자의 아가씨는요?’하고 물을 뻔했다. 하지만 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바르베뜨 까페에서 검은 눈동자의 매혹적인 아가씨를 들먹인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술이 몇 순배 돌았고, 다시 잔들이 찰랑찰랑 채워졌으며, 건배를 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오! 하고 감탄을 연발하거나 아! 하는 소리를 질러 댔다. 당구 큐대를 공중으로 던지고 서로 떠밀고, 잡아당기고, 웃고, 욕설을 퍼붓고, 귓속말을 하고… 온통 난장판이었다. 술을 몇 잔 들이킨 나도 차츰차츰 대담해져 갔다. 까페 구석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술잔을 손에 든 채 그들에게 질세라 큰소리로 떠벌리며 여기저기 망아지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쯤 되자 하사관들은 나의 친구가 돼 있었다. 뻔뻔스럽게도 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우리 집은 대단히 부자인데 젊은 혈기에 그만 철없는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났다고 떠벌려 댔다. 그래서 먹고 살려고 원하지도 않는 자습감독 교사가 됐지만 학교에 오래 남을 생각은 전연 없다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지껄였다. 술기운에 취해서 나는 내가 굉장한 부자집 아들이라고 거짓말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아! 그순간 리용에 있는 가족들이 그 황당한 거짓말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하지만 인간이란 가련한 존재여서 바르베뜨 까페에 있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듯 내가 가난해서 선생질을 하는 게 아니라 방탕한 기질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괴짜 청년이라고 생각하고는 모두 나를 호감어린 눈길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하사관들까지도 감히 나한테 말을 걸려 하지 않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술자리가 끝날 시간이 되자 전날 밤에 친구가 되었던 펜싱 교사 로제가 일어나더니 다니엘 에세뜨를 위해 건배를 하자고 모두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우쭐했었는지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를 위해 건배하고 나서 우린 술좌석을 털고 일어났다. 그때 시계는 9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제 곧 수업이 시작되며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야만 했다.

  비오 씨가 정문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별주에 취해 비틀거리는 뚱보 셀리에르 씨에게 그가 말했다.

  “셀리에르 씨,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자습실로 들어가도록 하세요. 학생들이 교실에 다 들어가면 교장선생님과 내가 새로 오신 선생님을 학생들에게 소개하지요.”

  잠시 후에 나는 교장선생님과 비오 씨의 뒤를 따라 엄숙한 표정으로 자습실로 들어갔다.

  모두들 의자를 덜컹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선생님이 약간 길고 지루하기는 하지만 위엄 있게 나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그러고 나서 교장선생님은 교실을 나갔고, 이별주에 취해서 고주망태가 된 뚱보 셀리에르 씨도 그 뒤를 따라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비오 씨만은 마지막까지 남아 교단에 서 있었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하고 울리는 열쇠꾸러미야말로 그 어떤 말보다 가장 무섭고 위협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모두들 책상 뚜껑 밑에다 머리를 처박았고,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떨며 서 있었다.

  드디어 그 무서운 열쇠소리가 사라져 버리자 장난기어린 수많은 얼굴들이 책상 뚜껑밑에서 하나씩 고개를 들며 나타났다. 어떤 아이들은 펜 끝에 달린 깃털을 입술에 갖다 대고 빈정거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어떤 아이들은 무척 놀란 듯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그마한 눈들을 반짝이며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후 교실 안은 앞, 뒤, 옆 책상으로 계속 쑥덕거림이 이어지며 술렁대기 시작했다.

  약간 당황한 나는 천천히 교단 위로 올라섰다. 매서운 눈초리로 교실을 한번 쭉 휘들러보고는 위엄을 갖추려고 애쓰면서 힘껏 목청을 돋우고 책상 위를 세게 두 번 내려쳤다.

  “공부합시다, 여러분! 공부합시다.!”

  나의 자습감독 교사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 까치머리 방방

 

  내가 맡고 있던 하급반 아이들은 모두가 착했다. 그애들은 다른 반 아이들과는 달리 말썽을 부려 내 속을 썩이거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없었다. 나 또한 그러한 그들을 몹시 좋아하여 모든 애정을 다 쏟았다. 그들은 아직 중학생 티가 배지 않아 앳된 개구장이들처럼 보였다. 장난기어린 그들의 눈은 그들의 깨끗한 영혼을 송두리째 읽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맑았다.

  내가 그들에게 벌을 준 적은 없었다. 벌을 줘서 뭐 하나? 새들을 벌 주는 법도 있나? 그들이 너무 시끄럽게 짹짹거리면 난 그냥 이렇게 소리치기만 하면 되었다.

  “조용히 해!”

  그러면 나의 새장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비록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또다시 시끌벅적댄다 해도 말이다.

  하급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열한 살이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열 살도 안 된 올망졸망한 꼬마들이었다. 그런데 그 뚱뚱보 셀리에르 씨는 어린애들이란 호되게 다그치며 엄하게 다뤄야만 말을 듣는다고 으시대며 충고하듯 말했었다.

  나는 그들을 엄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늘 친절하게 대해 주려고 애썼을 뿐이었다.

  이따금씩 그들이 얌전하게 굴면 그 대가로 난 얘기를 해주곤 했다. 이야기… 라는 말만 해도 그들은 열광했다. 잽싸게 노트와 책을 덮어 버리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는데 그러면 교실 안은 대번에 소란스러워졌다. 잉크병과 자, 펜대 등 온갖 잡동사니들은 책상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런 다음 책상 위에 팔짱을 끼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이야기를 대여섯 가지나 지어 냈다. ‘매미의 데뷔’ ‘토끼 장의 불행’등.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라 퐁텐느 영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가였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 준 이야기는 그의 우화를 약간 바꿔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했다. 나는 기분내키는 대로 내 자신의 얘기를 가미시켜 말해 주곤 했는데 나처럼 밥벌이를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불쌍한 귀뚜라미나 자끄 형처럼 늘 훌쩍거리며 딱지치기하는 무당벌레들이 등장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이들은 얘기에 푹 빠져 울고 웃고 하며 즐거워했다. 나 또한 얘기에 취해서 그들과 함께 감동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큰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비오 씨가 우리들이 이야기에 재미들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러한 즐거움을 더이상 지속시킬 수 없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쨍그렁거리는 무거운 열쇠꾸러미를 든 비오 씨가 수업이 정상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학교 안을 한 바퀴씩 돌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 토끼 장에 대한 이야기가 바야흐로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는데 비오 씨가 우리 자습실을 지나치다 무심코 발걸음을 멈췄다. 그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자 아이들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 흥분해서 말하던 나도 순간 말을 그쳤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장도 당황하여 두려움에 떨쳐 큰 귀를 쫑끗 세우고 앞발을 공중에 쳐들고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능글능글 웃음기를 머금고 교단 위로 올라서던 비오 씨는 아이들의 책상 위에 종이 한 장 놓여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휘둥그래진 눈으로 오랫동안 교실 안을 휘둘러보았다. 할 말을 잃은 듯 그는 잠자코 있었지만 손에 든 열쇠는 심하게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잠시 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고함을 쳤다.

  “정말 놀라운 일이야. 이제 여기선 더이상 공부를 안하는군!”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열쇠꾸러미가 맞부딪치며 내는 끔찍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이들은 요즘 들어 공부를 열심히 했읍니다… 그래서 그 상으로 짤막한 얘기를 하나 해주고 싶었어요.”

  비오 씨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희미한 미소를 띠며 몸을 숙여 한동안 자기 발끝을 내려다보던 그는 마지막으로 열쇠꾸러미를 몇 번 흔들더니 교실에서 휑하니 나가 버렸다.

  드디어 오후 4시에 휴식시간이 되자 내게로 다가온 비오 씨는 여전히 능글거리는 웃음을 흘리면서 아무 말 없이 규율집의 12페이지를 펼쳐서 눈앞에 들이밀었다.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의무’라는 큰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더이상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이야기란 단어조차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며칠 동안 풀죽은 아이들을 위로할 길이 없어 나는 무척이나 고심했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토끼 장을 그리워했으며, 장을 그들에게 돌려 줄 수 없었던 까닭에 내 마음도 몹시 아팠다.

  나는 그 장난꾸러기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우린 결코 서로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다. 학교는 상급반, 중급반, 하급반의 세 반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각 반은 운동장과 기숙사, 자습실 등을 따로 사용했다. 하급반 아이들은 당연히 나의 소유였다. 마치 내가 서른 다섯 명의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는 아버지 같았다.

  그 아이들을 제외하면 내겐 말을 걸 만한 친구라곤 한 명도 없었다. 비오 씨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휴식시간마다 다정하게 내 팔을 잡고는 규칙에 관해 충고를 해 주었지만 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도저히 그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열쇠꾸러미만 보면 겁부터 났다. 교장선생님을 만나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동료 교사들은 별종동물을 대하듯 나를 경멸했으며 얕잡아보았다.  열쇠꾸러미를 든 비오 씨가 내게 호감을 보이는 듯하자 동료들은 비오 씨만큼이나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첫 출근하던 날 하사관들을 만나본 이후로는 내가 바르베뜨 까페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날 싸가지없는 놈이라 여기며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수위인 까싸뉴씨와 펜싱 교사인 로제까지도 날 따돌리는 듯하더니 이윽고 등을 돌려 버렸다. 특히 로제는 내게 깊은 악의를 품고 있는 듯했다. 어쩌다 곁을 지나갈 때면 그는 커다란 눈을 부라리고 자기 콧수염을 비비 꼬아대며 노려보았다. 마치 백 명도 넘는 아랍인들의 목을 시퍼렇게 날이 선 칼로 내려치려는 것처럼 무지막지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한 번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들으라는 듯이 자기는 염탐꾼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까싸뉴 씨에게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까싸뉴 씨의 표정에도 자기 역시 염탐꾼 같은 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염탐꾼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염탐꾼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비오 씨가 내게 다정하게 굴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쨌든 모든 사람들의 적의에 대해 대담하게 무시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사층 꼭대기에 있는 고미다락방을 중급반 교사와 함께 썼다. 아이들이 정규수업을 받고 있는 시간중에는 그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같은 방 동료 교사는 바르베뜨 까페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 방은 내 독방이나 다름없었고 지구상의 유일한 내 안식처였다.

  나는 항상 그 방에 들어가면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온통 잉크 자국이며,  깊게 파놓은 칼자국투성이인 낡은 책상 앞에다 의자 대신 트렁크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앉아 공부하곤 했다.

  때는 완연한 봄이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면 물이 올라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들과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밖은 조용했다. 어느 학생이 책을 읽은 단조로운 가락과 선생의 화난 목소리, 나뭇가지에 앉아 말다툼을 벌이는 참새들의 짹짹소리만 이따금씩 들려 올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어느결에 모든 소리들이 침묵 속에 잠겨들고 나면 학교는 마치 깊은 잠 속에 빠진 듯 적막에 싸였다.

  나는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꿈을 꾸지 않았는데, 그것이야말로 잠을 푹 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쉴새없이 공부만 했다.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득 집어넣었다.

  내가 그 무미건조한 공부에 한참 열중해 있을 때면 이따금씩 빨간수첩의 뮤즈여신이 찾아와 날 유혹하곤 했다.

  ‘꼬마 철학자님! 당신의 빨간수첩에 있는 뮤즈여신이랍니다. 빨리 문을 열고 저를 맞아 주세요.’

  나는 문을 열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빨간수첩의 여신이여, 내 눈앞에서 멀리멀리 사라져다오! 지금은 무엇보다 열심히 그리스어를 공부해서 무난하게 학사 학위를 받아 정식교사로 임명되어야 해. 그래서 하루빨리 뿔뿔이 흩어진 우리 가족이 모여살 만한 멋진 집을 다시 지어야 한단 말이야.’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각박한 생활속에서도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누추하기만 한 방도 더욱 아늑하게 보였다. 아! 나는 그 골방에서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거기서는 아무리 암기하기 힘든 것도 좔좔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공부가 잘 되었다. 그곳에 처박혀 지내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내 자신을 격려하고 채찍질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운 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일요일과 목요일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야 했는데 그 야외수업은 내게는 형벌처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하급반 아이들을 인솔해서 싸르랑드에 2킬로쯤 떨어진 나즈막한 산봉우리의 발치에 푹신한 양탄자처럼 잔디가 펼쳐 있는 드넓은 곳으로 야외수업을 하러 갔다. 몇 그루의 아름드리 밤나무, 서너 채의 자그마한 노란색 별장, 짙푸른 녹음 속을 흘러가는 개울… 그곳은 마치 천국처럼 즐겁고 유쾌한 곳이었다. 세 반은 따로 떨어져 야외수업을 하게 되어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세 반의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적이 있었는데, 선생라곤 나 혼자뿐이었다. 다른 두 동료 교사는 상급반 학생들이 한턱낸다고 해서 근처 별장에 가버리고 없었다. 나는 한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었고 남아서 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보살펴야만 했다. 그 아름다운 곳에서 힘겨운 일을 해야만 하다니, 생각만 해도 처량한 노릇이었다.

  푸르른 풀밭 위나 밤나무 그늘 속에 드러누운 채 졸졸 흐르는 시냇물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꽃향기에 취한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지만 감시하고, 소리지르고, 벌주는 짜증나는 일만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했으니, 학생들이 귀찮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정말 끔찍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일은 잔디밭에서 학생들을 감시하는 일이 아니라 하급반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안을 통과해 가는 일이었다. 중급반이나 상급반 학생들은 발을 썩 잘 맞추면서 마치 노련한 병사들처럼 구둣굽소리를 저벅저벅 내며 걸어갔다. 북소리에 발을 맞추며 훈련받는 병사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하급반 학생들은 그런 폼나는 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그들은 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제멋대로 서로 손을 맞잡고 종알거리면서 큰길을 따라 걸었다. 내가 아무리 목청껏 소리를 질러 대도 소용없었다.

  “앞사람과 거리를 유지해서 걸어!”

  하지만 그 아이들은 내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딴청을 부리며 제멋대로 걸어갈 뿐이었다.

  그래도 맨 앞에 앞장서 걸어가는 아이들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맨 앞에는 학생복 웃도리를 입은 얌전하고 키큰 아이들을 세워서 걷게 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해지다가 끝줄에 가서는 아예 엉망진창이 되었다. 머리는 까치집처럼 헝클어지고, 손은 때국이 흐르듯 더러우며, 넝마 같은 반바지 차림의 조무라기들은 정말 미치광이 같은 모습이었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가끔씩 재치를 부릴 줄도 아는 비오 씨는 여전히 능글능글거리면서 그 모습을 보고 “거지떼들 같군”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끝줄은 한심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싸르랑드의 큰길에 나설 때의 내 절망스러운 기분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일요일에는 교회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거리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그래서 우리가 행길을 들어설 때쯤이면 예배에 참석하러 가는 여자 기숙생들이나 장미빛 모자를 쓴 여성복 재봉사들, 진주빛 바지차림의 멋장이 남자들을 만나게 마련이었다. 나는 누더기처럼 옷을 걸친 우스꽝스런 몰골을 한 학생들을 데리고 그들을 헤집고 지나가야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나와 함께 일주일에 두 번씩 야외수업을 하러 가야 했던 까치집 같은 머리의 개구장이들 중에 특히 지지리도 못생긴 데다가 보잘것없는 옷차림으로 날 항상 절망감에 빠뜨렸던 반 기숙사생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는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우스꽝스런 모습의 난장이였다.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머리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몸에선 더러운 시궁창 냄새를 풀풀 풍기며, 게다가 끔찍할 정도로 완전하게 다리가 휘어진 아이였다.

  물론 그 아이도 학생이라고 불리긴 했지만 그의 이름은 그 지방 교육청의 학생명부에 실리지 못했다. 학교에서 마지못해 그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학교의 명예를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학생명부에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를 미워했다. 야외수업 때마다 그애가 마치 미운 오리 새끼모양 끝줄에서 뒤뚱거리며 쫓아오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는 하급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 아이를 구두발로 힘껏 차서 내쫓아 버리고 싶은 난폭한 충동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그 아이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절름발이라는 뜻의 방방이라는 별명으로 그를 부르곤 했다. 방방은 물론 부유한 집 자식은 아니었다. 그의 태도와 어투에서부터 그가 빈민가 출신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했는데 특히 싸르랑드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미루어 짐작해 보면 어렵잖게 그 점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싸르랑드에서 사는 동네 꼬마들이 모두 방방의 친구였다.

  우리가 야외수업하러 가는 날이면 구름처럼 떼거리로 모인 장난꾸러기들이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땅재주를 넘고, 너나 할 것 없이 이름을 불러 대며 손가락질하거나 그에게 먹다 버린 밤껍질을 집어 던지는 등 아우성을 치고 놀려 대면서 법석을 떨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 하급반 아이들은 몹시 즐거워했지만 나는 도무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매주일마다 방방 때문에 발생하는 말썽들을 상세하게 적은 보고서를 교장선생님에게 올려 보았지만 불행히도 그 보고서는 매번 대답없는 메아리처럼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결국 날이 갈수록 더욱 꼴사납게 다리를 절름거리는 방방을 데리고 여전히 거리를 지나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온 마을은 축제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화장을 한 방방이 야외수업을 가겠다고 나타났다. 행여 꿈속에서라도 보게 될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두 손은 새까맣고, 끈이 덜어져 나간 너덜대는 구두를 질질 끌면서 머리와 반바지에 온통 덕지덕지 진흙투성이를 해가지고 나타났다. 괴물 같았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그날 방방을 학교로 보내기 전에 분명히 누군가가 그를 예쁘게 치장해 주었다는 것이 몸 구석구석에서 풍겨 나왔다.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짓이겨 발라서 빗질을 하였는지 머리카락들이 꼿꼿하게 서 있었으며, 목에 정성껏 맨 타이엔 어머니의 손길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개울을 건너야 했다. 방방은 그 많은 개울을 엎어지고 뒹굴며 건너왔던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그가 다른 아이들 틈에 끼어 드는 걸 본 나는 두려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왈칵 치밀어올랐다.

  “꺼져 버려!”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한 방방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날 그는 자신이 아주 멋지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꺼져 버려! 꺼져 버리란 말이야!”

  그러자 방방은 내 기세에 눌려 체념한 듯한 슬픈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그의 눈길은 애원하듯 끈질기게 내 눈초리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가차없이 그를 무시하고 하급반 아이들을 재촉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방은 길 한가운데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나는 오늘만큼은 그를 떨쳐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의 하늘은 날아오를 듯한 즐거운 웃음소리와 속삭임을 들으니 흥이 났다. 그런데 큰길을 빠져나오는 순간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의 행렬 맨 뒤에서 너댓걸음 떨어져서 방방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맨 앞에 앞장서 가는 두 아이에게 말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절름발이 방방을 놀려먹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이들은 힘껏 질주하기 시작했다.

  방방이 따라오는지 보려고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달려가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 주먹만큼이나 작아 보이는 방방의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깔깔댔다. 방방은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큰길에서 과자와 레몬수 장사치들 사이를 헤집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잔뜩 화가 난 방방은 어찌나 열심히 뛰어왔던지 우리와 거의 같은 시간에 잔디밭에 도착했다. 방방은 한꺼번에 몰려드는 피로 때문에 얼굴색이 백지창처럼 창백해져 있었으며, 가엾게도 다리를 몹시 끌며 걷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느닷없이 밀려오는 감동과 애처로움을 느꼈다. 잔인한 내 행동을 부끄러워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방방을 내 곁으로 불렀다.

  방방은 터질 듯이 꽉 조이는 붉은색 체크 무늬가 현란하게 그려진 빛바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리용 중학교 시절에 입었던 셔츠였다. 나는 그 셔츠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불쌍한 자식, 넌 부끄럽지도 않아? 네가 이렇게 즐기면서 학대하고 있는 아이는 바로 너, 꼬마란 말이야.’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일 듯이 가슴이 저며옴을 느끼며 나는 그 불우한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방방은 다리가 몹시 아픈지 내 곁에 와서는 땅 위에 주저앉았다. 난 그 아이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 보았다. 오렌지도 한 개 사주었다. 발이라도 씻겨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방방은 내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 아이의 눈물겨운 사연도 알게 되었다.

  방방은 자식을 교육시켜 보겠다는 일념 하에 온갖 희생을 마다 않는 한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하지만 슬프게도 방방은 학교 생활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아무리 학교를 다녀도 그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가 처음 학교에 등교하던 날 한 선생이 그에게 글씨본을 주면서 “이걸 보고 한 획씩 그으면서 글씨 연습을 하거라.”하고 말했었다. 그래서 방방은 일 년 전부터 글씨 연습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맙소사! 방방의 글씨는 마구 엉킨 철조망처럼 괴발개발로 휘갈겨 놓은 것이었다. 도저히 글씨라고 할 수 없는 난해한 상형문자 같았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쏟질 않았다. 그는 특별히 어느 학급에 속하지도 않아 학교에 와서는 대개 문이 열려 있는 교실로 그냥 들어가곤 했다. 언젠가는 철학수업 시간중에 글씨 연습을 하고 있는 그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방방은 참 이상한 아이였다.

  나는 이따금씩 자습실에서 공책 위로 몸을 구부린 채 힘이 드는지 진땀을 흘리며 애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곤 했다. 혀를 내민 채 펜대를 꽉 움켜쥐고서는 마치 책상을 뚫어 버리겠다는 듯이 잇는 힘을 다해서 눌러 댔다.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그는 잉크를 새로 찍었으며, 한 줄이 끝나고 나면 혀를 집어넣고는 손을 비비며 한숨을 내몰아 쉬었다.

  방방은 나와 친구가 된 이후로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한 페이지를 끝내고 나면 부랴부랴 교탁으로 기듯이 올라와서는 히죽 웃어 보일 뿐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걸작품을 내 앞에 올려놓았다.

  나는 그 아이를 다정하게 살짝 토닥거려 주며 말했다.

  “참 잘 썼구나!”

  사실 그건 끔찍히도 못 쓴 글씨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았다.

  차츰 방방의 글씨는 나아져 갔으며 펜에서는 잉크가 덜 튕겼고 공책에도 잉크가 덜 묻기 시작했다. 이젠 그 아이에게 뭔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운명이 우릴 갈라 놓고 말았다. 중급을 맡았던 교사가 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교장선생님은 새로운 교사를 맞으려 하지 않았다. 턱수염이 난 수사학급 학생 하나가 하급반을 맡았고, 그 대신 나는 중급반을 맡게 되었다.

  나는 그 일을 크나큰 불행으로 생각했다.

  야외수업을 갈 때마다 나는 그들의 행동을 먼 발치에서나마 보아 왔는데 그들이랑 함께 계속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히면서 답답해 왔다.

  더군다나 나는 내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하급반 아이들과 헤어져야만 했다. 턱수염인 난 그 수사학급 학생이 그들을 어떻게 다룰지 눈에 보이듯 선했다. 방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난 정말 불행을 타고난 인간이었다.

  하급반 학생들도 나란 헤어지는 것을 나만큼이나 슬퍼했다. 마지막 수업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을 때 난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아이들은 충혈된 눈으로 내 주위를 어정대며 나를 한번 껴안고 싶어했고 어떤 아이들은 울먹이며 날 위로해 주기도 했다.

  좀 떨어져 있던 방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줄곤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교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는 얼굴이 홍당무같이 빨개져서는 내게 다가오더니 으젓한 몸짓으로 온 정성을 다해 쓴 멋진 글씨본을 내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날 위해 쓴 글씨본을 말이다.

  불쌍한 방방!

 

 

7. 사랑하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나는 중급반의 자습갑독 교사가 되었다.

  중급반 학생들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 시작한 열두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산골 출신의 악동들로 약 오십 명쯤 되었다. 그들은 부모들은 대개 자식들이 자기들보다는 좀더 나은 경제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교육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다. 수업료도 석 달에 백이십 프랑에 불과했다.

  그들은 몹시 무례하게 행동했으며 교만하고 건방지기 이를 데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거친 세벤느 지방 사투리로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는 것도 그랬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변성기를 거치고 있어서 옆에서 듣고 있기란 정말 괴로운 노릇이었다. 동상에 걸려서 시퍼렇게 언 커다란 손, 병든 수탉 같은 목소리, 항상 흐리멍텅하기만 한 시선 등 그맘때의 중학생들의 모습 꼭 그대로였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나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습감독 교사인 나에게 적대감을 갖고 대했다. 내가 교단에 선 첫날부터 우리 사이엔 불꽃 튀는 전쟁이 벌어졌다. 그것은 휴전도 없고 끝도 없는 격렬한 전투였다.

  매정하고 쌀쌀맞은 중급반 아이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지금 나는 그들에게 어떤 앙심도 품고 있지 않다. 단지 그들과 보내야 했던 괴로운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뿐이다. 슬픔과 괴로움으로 뒤범벅된 그 시간들은 멀리멀리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손은 흥분과 감동으로 떨리고 있다. 마치 내가 아직도 그때 그곳에 있는 듯 한 생각이 든다.

  어리고 말썽만 피우던 제자들도 이제 점잖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수베롤은 세벤느 지방 어디에선가 공증인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며, 그의 동생인 베이옹은 재판소 서기가 돼 있을 것이다. 그리고 루피는 약사가, 부장께는 수의사가 되었겠지.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 기반을 닦은 그들은 기름기가 끼어 불룩하게 배가 나오고 사랑하는 아내와 한두 명의 자식도 거느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내가 자습감독 교사였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더욱 근엄하게 보이려고 걸치고 다녔던 멋진 코안경도 그들은 더이상 기억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아무 걱정 없이 일상생활 속에 파묻혀 살다가 이따금씩 클럽이나 교회 또는 광장 같은 데서 자기들끼리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그 즐거웠던 중학시절을 회상하며 떠듬떠듬 얘기를 꺼내게 될 것이고 어쩌면 내 얘기를 한두 마디 내뱉게 될지도 모르겠다.

  “야, 베이옹, 너 그 에세뜨라는 꼬마선생 생각나냐? 우리가 싸르랑드 중학교 다닐 때 자습감독하던 그치 말이야. 머리가 길고 머리가 파리하던 친구 생각나? 우리가 실컷 골려먹었지!”

  이제는 신사가 된 그들이 아직도 낄낄거리며 오가는 말들엔 사실 옛날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잔뜩 배어 있으리라. 그들은 나를 실컷 골려 먹었던 학창시절을 아마도 잊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옛날 자습감독 교사였던 나 역시 그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자습감독 교사 참 불쌍했어. 우리는 그치 때문에 정말 실컷 웃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선생은 얼마나 또 얼마나 울었니. 그래, 많이도 울렸어! 하지만 울리면 왜 그리 재미있었는지 장난을 도저히 그치지 못하겠더라니깐.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참 안 됐어.”

  수난의 하루가 지나고 나면,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그들이 행여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까 담요를 깨문 채 울곤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린 악동들에게 둘러싸여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려워하면서 잠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사람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공평한 짓을 하기 마련이다. 그 당시 나는 그들을 공연히 의심하고 벌을 주곤 했지만 그럴수록 도처에 더욱 많은 함정을 파놓고 그들은 여유를 부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조용히 마음놓고 식사 한번 제대로 할 수가 없었으며 잠도 잘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휴식시간중에도 ‘오! 하나님! 저 자식들은 날 골리려고 무슨 꿍꿍이짓을 하는 걸까?’하고 생각하며 전전긍긍해야 했으니 정말 끔찍한 나날이었다.

  그렇다. 앞으로 백 년을 더 살고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기억이 희미해진다 해도 자습감독 교사 다니엘 에세뜨는 중급반 자습시간에 처음 들어갔던 그 음산한 날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고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하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옮겨 감으로써 내 인생에 새롭고 벅찬 또다른 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가슴 깊이 묻어둔 그 검은 눈동자의 아가씨를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휴식시간 때마다 중급반 운동장 구석에 있는 이층 건물의 창문을 통해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 아가씨를 멀리서나마 바라 볼 수 있었다. 흑진주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은 더욱 커진 듯했다. 그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무릎 위에 바느질감을 올려놓고는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손을 늘려 댔다. 그녀는 온종일 오로지 바느질만을 해대면서도 조금도 싫증이 나지 않는 듯 그녀의 손놀림과 표정은 언제나 경쾌해 보였다. 잠망경 같은 안경을 쓴 섬뜩하게 생긴 마귀할멈은 고아원에서 그녀를 돈을 주고 데려와 잠시도 놀리지 않고 오직 바느질만 시켰다. 그녀는 일년 내내 쉴새없이 바느질만 했다. 그 옆에는 안경잡이 마귀할멈이 물레에서 연신 실을 뽑아 내면서 날카롭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감시하며 앉아 있었다.

  휴식시간만 되면 나는 이층 창문을 우두커니 올려다보며 슬픈 검은 눈동자 아가씨에 대한 애틋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매번 휴식시간은 너무도 짧게 느껴졌고 아가씨가 바느질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그 축복받은 이층창문 아래서 일생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살아도 부족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언제나 그곳에 와서 자기를 올려다보고 있는 내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이따금씩 그녀는 바느질감에서 눈길을 들어 내 쪽으로 애절한 시선을 보내곤 했다. 그녀는 한번도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많은 사연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당신은 정말 불쌍하시군요., 에세뜨 씨.’

  ‘당신은 너무 애처로와 보여요, 검은 눈동자 아가씨.’

  ‘저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세요.’

  ‘우리 가족들도 뿔뿔이 헤어져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사시는지도 모릅니다.’

  ‘당신도 보셨겠지만, 안경잡이 마귀할멈은 정말 무서워요.’

  ‘학생들은 날 몹시 괴롭힌답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에세뜨 씨.’

  ‘그래요, 당신의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만 보면 새로운 힘이 솟는 것 같아요.’

  휴식시간은 너무도 짧아 우린 더이상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나는 비오 씨가 열쇠꾸러미를 흔들어 대면서 나타날까 봐 늘 두려웠고, 그녀 역시 자신을 감시하는 마귀할멈이 두려워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 서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던 행복한 순간은 잠시였다. 그녀는 그 순간들을 떨쳐 버리고 재빨리 고개를 숙여 커다란 강철테 안경을 걸친 마귀할멈의 매서운 눈총을 받으며 다시 바느질을 시작해야 했다.

  나의 소중한 검은 눈동자 아가씨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 만나 얘기해 보지는 못했다. 다만 서로의 시선 속에서 마음을 읽어 내며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 가엾은 아가씨….

  그곳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제르만느 신부님, 바로 그분이다.

  제르만느 신부님은 철학 교사였다. 그는 괴짜로 통했는데, 학교 안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는 교장선생님이나 비오 씨까지도 그를 두려워했다. 그는 늘 단호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하는 과묵한 인물로서 누구에게나 반말을 했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신부복 자락을 펄럭거리며 바람이 일 정도로 성큼성큼 걸어다녔다. 그러면 그의 구두 뒤축에 달린 박차는 마치 수많은 용기병들이 대열을 따라 씩씩하게 행군하는 것처럼 쩡쩡 울리는 것이었다. 그는 키도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진 듬직한 체구였으며 나는 한동안 그가 굉장히 남자답게 잘생겼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가까이에서 그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자와도 같이 기세등등한 위엄 있는 그의 얼굴엔 온통 천연두자국이 끔찍하게 박혀 있었고, 더군다나 온통 찢기우거나 칼에 긁혀 꿰맨 자국이 얼굴 전체를 일그려뜨려 아주 흉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영원히 저주받게 될 혁명가놈들의 우두머리인 미라보가 신부복을 입고 있는 듯했다.

  옛날에는 교실로 사용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 낡고 음침해 보이는 건물이 운동장 한쪽에 서 있었는데 신부님은 그 건물 끝에 있는 자그마한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우리 중급반의 못돼먹은 말썽꾸러기 망나니 두 녀석들이 바로 그의 동생들이었는데 그 둘을 제외하고는 신부님의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밤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다 쓰러져 가는 그 음침한 건물에서 가느다랗고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바로 제르만느 신부님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램프 불빛이었다.

그리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아침 6시의 자습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노라면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램프의 불빛이 어스름한 여명의 희뿌연 안개 속을 뚫고 흘러나오는 것이 보이곤 했다. 제르만느 신부님은 그때까지도 자지 않고 밤새도록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일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방대한 철학서를 집필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 이상한 신부님과 친분을 맺기 이전부터 나는 그에 대해 일종의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칼자국과 곰보가 끔찍하긴 했지만 윤곽이 뚜렷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용모에서 난 아주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 다만 보통사람과 다른 그의 괴벽과 거친 성격에 관한 소문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감히 그에게 접근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일단 몰두하기만 하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열중하는 성격 때문에 나는 어느날 그의 방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철학사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는데 아직 어린 나로서는 그 철학사 공부란 것이 힘겹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꽁디악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사실 꽁디악의 철학세계는 아주 천박하여 값어치없는 보석반지의 작은 알에도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협소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꼭 읽어 봐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의 철학사상은 보잘것없는 것으로서 사람들은 그를 사이비 철학자라고까지 불렀다. 하지만,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한번쯤 객기를 부려 보기 마련이고, 모든 인간사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삐딱한 생각을 가지며, 무엇이든 자기가 직접 뛰어들어 경험해 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 또한 꽁디악의 철학세계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난 기어이 꽁디악의 작품을 구해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학교 도서관에는 그의 책이란 단 한 권도 없었고 싸르랑드 시립 도서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책을 구하지 못해 고심하던 중 나는 언젠가 그의 동생들로부터 제르만느 신부님의 방에는 2천 권도 넘는 장서가 구비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생각나다. 그래서 나는 제르만느 신부님에게 부탁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가진 2천 권도 넘는 장서 중에서 분명히 꽁디악의 책도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책을 읽고 싶어도 괴팍한 성격을 지닌 그 사람이 너무도 무서웠기 때문에 그를 찾아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꽁디악의 작품을 그렇게 열렬히 원하지 않았더라면 감히 그 음침한 구석진 방에 올라갈 마음조차 먹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도 몇 번을 망설인 끝에야 그 음침한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고 드디어 문 앞에까지 도착했는데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잠시 망설이며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 나는 조심스럽게 살짝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그 무시무시한 제르만느 신부님은 다리를 떡 벌린 채 낮은 의자 위에 말타듯이 걸터앉아 책을 복 있었다. 칭칭 걷어 올린 신부복과 검정색 비단 양말 사이로 굵은 다리 근육이 툭 불러져 나와 있었고 그는 의자 등받이에 팔꿈치를 기댄 채 무슨 책인지 붉은 장정이 된 이절판 크기의 책을 읽으면서 조그마한 갈색 도자기 파이프를 피워대고 있었다.

  그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보더니 의외라는 듯 물었다.

  “아, 아니 자네가!… 그래 잘 지내고 있나? 그런데 왠 일로 여기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목소리, 책으로 꽉 들어 차 학구적인 검소한 분위기가 배어 있는 방안, 말타듯 앉아 있는 그의 위엄있는 모습. 연신 연기를 뿜어 내고 있는 그 짧은 파이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겨우 용기를 내서 찾아온 이유를 말하고는 꽁디악의 책을 빌려 줄 수 있겠느냐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부탁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꽁디악이라! 꽁디악의 책을 읽고 싶단 말이지? 참 이상한 데 관심을 갖고 있군 그래. 그렇지 않은가? 적에 벽에 걸려 있는 저 멋진 파이프로 한번 피워 보게… 이 세상의 어떤 꽁디악보다도 그게 훨씬 더 낫다는 걸 금세 알게 될 걸세.”

  나는 얼굴을 붉히며 사양한다는 몸짓을 했다.

  “싫은가?… 그렇다면 맘대로 하게나, 그건 자네 자유니까… 자네가 찾는 꽁디악은 왼쪽 세번째 책장에 있다네. 가져 가도 좋아. 빌려 주지. 찢거나 낙서는 하지 말게. 그런다면 내가 자네 귀를 잘라 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왼쪽 세번째 책장에서 꽁디악의 책을 집어들고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깨끗이 보고 갖다 드리겠다고 말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신부님이 나를 잡았다. 그러더니 그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가 철학에 몰두해 있단 말이지?… 자넨 우연히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겠지?… 그 빌어먹을 철학, 순수한 체하는 그 철학이 나를 철학 선생으로 만들려 했었단 말이야. 하지만 뭘 가르친단 말인가? 완전한 무를… 그놈의 철학은 날 운명의 총무감독관이나 파이프 담배 연기 심사관으로 임명할 수도 있었어. 내가 비록 그놈에게 심취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야. 아! 정말 불쌍한 신세지! 밥벌이를 하려면 이따금씩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하는 게지… 자네도 그런 건 좀 알 텐데, 안 그런가?… 아, 얼굴을 붉힐 것까진 없네. 우리 불쌍한 꼬마 자습감독 선생, 난 자네가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아이들이 자넬 몹시도 괴롭히고 못살게 군다는 것을 말이네.”

  여기까지 말하더니 제르만느 신부님은 갑자기 말을 중단했다. 그는 무엇엔가 매우 화난 듯 보였으며, 손톱에다 파이프를 대고는 사납게 탁탁 털어 내고 있었다. 그토록 존경했던 사람이 나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나는 목이 메일 정도로 감격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솟아나오는 닭똥 같은 눈물을 감추느라 꽁디악의 책으로 얼른 눈을 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부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한테 물어 볼 게 있었는데… 자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나? 자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네, 알겠나? 여보게,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게. 그렇지 않으면 자넨 곤경에서 절대로 헤어날 수가 없어… 난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덜기 위해선 오로지 세 가지 치료 방법밖엔 없다고 믿고 있지. 일과 기도와 그리고 파이프… 흙으로 빚어 구운 작은 파이프 말일세. 자네도 잘 기억해 두게… 철학자들은 믿지 않는 게 좋아. 그들은 자네를 절대로 위로해 주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난 그 정도는 아니니까 자넨 날 믿어도 좋을 걸세.”

  “전 당신을 믿고 있읍니다. 신부님!”

  “그럼 됐네. 이젠 나가 주게. 피곤하군… 책이 필요하면 그냥 와서 가져가도 좋네. 방 열쇠는 문턱 위에 있고, 철학책은 왼쪽 세번째 책장에 꽂혀 있다네. 더이상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게… 그럼 잘 가게!”

  그러고 나서 다시 아까처럼 책에 빠져들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나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모든 철학자들을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제르만느 신부님의 방을 마치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으며 숱한 철학자들이 잠들어 있는 그 세번째 책장 앞에 서서 무아지경에 빠지곤 했었다. 내가 그 방에 갈 때는 대부분 신부님이 수업을 하실 시간이었기 때문에 방은 비어 있는 적이 많았다. 그 자그마한 파이프는 책상 위에 잔뜩 널려 잇는 책과 서류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읽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작은 글씨가 빽빽히 적힌 수많은 서류들과 옆이 붉은색으로 칠해진 이절판 크기의 많은 책들 사이에서 그 파이프는 신부님의 손에서 오랜만에 벗어나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이따금씩 제르만느 신부님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는 성큼성큼 걸어다니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신부님과 마주치면 나는 수줍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인사를 하곤 했다.

  “안녕하셨어요, 신부님!”

  그는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왼쪽 세번째 책장에서 철학책을 집어들고는 살그머니 발자국소리를 죽이며 방을 나왔다. 한 해가 다 지나가도록 우리는 스무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내 가슴 속 깊숙이에는 우리가 이미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기쁨과 믿음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대화를 나누건 안 나누건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음악반 학생들이 데생실에서 방학식 때 부를 폴카곡과 행진곡을 연습하는 소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 왔다. 아이들은 그 폴카곡을 들으며 즐거운 방학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면서 재잘거렸고 자습시간이 되면 책상에서 미니 달력을 꺼내서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가며 손을 꼽아 보기도 했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학교 운동장에는 연단을 만들 판자들이 널려 있었고, 아이들은 대청소를 하느라 의자를 들어 내고 양탄자를 터는 등 온 학교가 들썩거리며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들떠서 공부도 집어치우고 자습감독 교사를 놀려 대는 장난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드디어 방학날이 되었다. 방학이 조금이라도 더 늦게 시작되었더라면 나는 아마 더이상은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다.

  방학식은 중급반 학생들이 사용하는 운동장에서 거행되었다. 해를 가리기 위해 쳐놓은 알록달록한 천막, 벽에 둘러 쳐진 눈이 부시도록 하얀 휘장, 녹음으로 짙푸른 거목들에 꽂힌 갖가지 깃발들, 그리고 기수모, 경관모, 보병용 군모, 투구, 꽃으로 장식된 헝겊 모자, 예쁘게 수놓아진 오페라 모자, 옷이나 모자에 장식되어 있는 깃털, 리본, 술장식 등 그것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학교의 지체 높은 양반들은 운동장 정면에 설치된 연단 위에 있는 다홍색 소파에 위엄을 갖추고 앉아 있었다.

  아! 그 연단 앞에 서 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왜소하게 느껴지던지!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연단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우쭐해져서 연단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양반들은 평상시와는 다른 아주 점잖은 모습을 하고 근엄하게 보이려고 무척 애쓰는 것 같았다.

  제르만느 신부님도 연단 위에 앉아 있었으나 그들과는 달랐다. 그는 안락의자에 눕듯이 앉아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옆사람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짙푸른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뻐끔뻐끔 번져 가는 파이프 담배 연기를 상상하고 있으리라.

  연단의 하단에는 트롬본과 오피클레이드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세 반 학생들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교사들은 줄 끝에 서 있었다. 학생과 교사 뒤편으로 학부형들이 붐볐는데, 중급반 교사 한 명이 부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잠깐 실례합니다. 지나가도 될까요? 잠깐 지나가겠읍니다!”

  그때 비오 씨가 운동장 한쪽 끝에서 끝으로 서둘러 달려갔는데, 인파 속으로 사라져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열쇠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왔다.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식이 시작되었다. 날씨가 무더웠고, 천막 밑은 바람 한점 통하지 않아 마치 찜통 같았다. 천막 밑에 앉아 있는 뚱뚱한 부인들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대머리 신사들은 진홍색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 내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 양탄자, 깃발, 의자 등 방학식이 거행되는 운동장 안은 온통 붉은색으로 가득 찼다. 세 사람이 차례로 연설을 했고 운동장을 꽉 메운 사람들은 아주 열심히 박수를 쳐 댔다. 하지만 나는 연설을 듣지 않았다. 이층 창문 뒷편에 앉아 언제나처럼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 아가씨를 바라보며 정신은 온통 그쪽으로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 기분 나쁜 안경잡이 마귀할멈은 불쌍한 검은 눈동자 아가씨를 오늘 같은 날도 놔두지 않고 부려먹고 있다니! 분노가 치밀며 가슴이 메어지듯 연민의 정을 느꼈다.

  상급반과 중급반이 끝나고 하급반의 차례가 되어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을 학생의 이름이 호명되고 나자 악대가 개선행진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모인 사람들은 제각기 일어나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운동장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선생들은 연단에서 내려오고, 학생들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가족들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발견하고는 서로 불러 대며 달려가서 껴안고 기뻐했다.

  “여기다. 여기. 이리로 오렴!”

  상을 받은 아이들의 여동생들은 오빠의 월계관을 쓰고서 보란 듯이 뽐내며 걸어다녔다. 비단옷이 의자를 스치면서 살랑살랑소리를 냈다. 나는 나무 뒤에 꼼짝 않고 서서 예쁜 부인네들이 지나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낡아 빠진 옷들이 그들 앞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했으며, 나 자신이 부끄럽고 왜소하다고 생각되어 아무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운동장을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교장선생님과 비오 씨는 교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쓰다듬거나 머리를 깊이 숙이며 학부형들에게 인사를 했다.

  교장선생님은 간사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즐겁고 알찬 방학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머니께서 수고 좀 하셔야겠네요. 잘 부탁합니다.”

  비오 씨도 열쇠를 흔들어 대며 맞장구를 쳤다.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자, 다음 학기에 보자꾸나. 잘 지내거라!”

  아이들은 건성으로 포옹을 하고 단숨에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들은 자기 가문의 문장이 박힌 멎진 자동차에 올라탔고, 부인네들과 여동생들은 갈아입을 옷이 든 트렁크를 차 안에 챙겨 넣었다.

  그들은 이제 제각기 별장으로 갈 것이다. 드넓은 동산과 잔디밭, 아카시아 나무에 매달아 놓은 그네, 그리고 예쁜 새들이 지지배배거리며 사이좋게 살고 있는 새장이며, 백조가 노니는 연못, 저녁때면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곤하던 테라스를 생각하며 그들은 서둘러 떠나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부인네들의 얼굴에서 즐거운 방학을 보낸다는 설레임들이 가득 풍겨 나왔다.

  어떤 아이들은 가족석이 있는 이륜마차로 기어 올라 가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는 흰 모자를 쓴 예쁜 소녀들 옆에 앉았다. 목에 금목걸이를 두른 중유 가정의 한 여인네가 마차를 몰았다.

  “전속력을 내, 마뛰린느! 우린 이제 농장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들은 그곳에서 버터빵을 만들어 먹고, 사향포도주를 마시고 종일 새 사냥을 다니거나, 구수한 내음의 건초더미 속에서 뒹굴며 휴가를 보낼 것이다.

  행복한 아이들! 그들은 가버렸다. 그들은 모두들 떠나갔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방학을 보내기 위해….

  아! 나도 떠날 수만 있다면….

 

 

 8. 괴롭고 긴 나날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고 이제 학교는 텅 비었다. 모두들 떠나 버렸다. 고양이만큼 큰 쥐떼들이 마치 기병대가 행군을 하는 것처럼 밤이건 낮이건 온 기숙사 안을 설치고 돌아다녔다. 아이들의 잉크병은 잉크가 말라 붙은 채 책상 속에 처박혀 있었다. 운동장의 나뭇가지에선 참새떼들이 짹짹거리며 축제를 벌였다. 참새들은 학교의 주인이나 된 듯 주교와 군수의 대저택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모조리 초대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짹짹거렸다.

  나는 지붕 밑에 있는 다락방에서 그 짹짹거림을 참아가며 공부했다. 참새떼와 나만이 남아 그 큰 학교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방학 동안 그 방을 써도 된다고 허락하며 대단한 자비를 베푼다는 듯이 교만을 떨었었다. 어쨌든 나는 홀로 남아 그 방에서 그리스 철학을 죽어라 파고 있었다. 하지만 천정이 너무 낮은 그 다락방은 내리쬐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 숨이 막힐 정도로 푹푹 쪘고 덧문도 없는 창문으론 횃불을 들이대듯 햇빛이 들어와서는 방안 구석구석에 불을 질렀다. 대들보에 발라 놓은 석회가 와지끈소리를 내며 깨지더니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더위에 지쳐 기력을 잃은 커다란 왕파리들이 창문에 착 달라붙어서 꼼짝 않고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숨이 막혀 헉헉거리며 잠을 쫓느라 갖은 애를 다 썼다. 머리는 천근이나 되는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눈꺼풀은 바들바들 떨렸다.

  ‘공부를 해라, 다니엘 에세뜨! 다시 집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아무리 다짐하고 애를 써 보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책 속의 글씨들이 눈앞에서 춤을 추더니만 책이, 책상이, 방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참으려고 애써도 자꾸만 밀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 나는 일어나서 몇 걸음 걸어 보았다. 문 앞까지 갔을 때 다리가 휘청휘청하더니 중심을 잃고 바위덩어리모양 방바닥에 쿵 쓰러졌다. 조수같이 졸음이 밀려 왔다. 견딜 수가 없었다.

  참새들의 짹짹거림과 매미들의 노래소리가 아련히 들려 왔다.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플라타너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비늘처럼 부숴져 내렸다. 대기는 들끓고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다니엘! 다니엘!”

  그 목소리는 옛날엔 매일 들을 수 있었던 정다운 목소리, “자끄, 이 당나귀같이 멍청한 놈아!”라고 소리치던 그 목소리였다.

  그는 더욱 세게 문을 두드렸다.

  “다니엘, 니 애비다. 빨리 문 열어라.”

  나는 반가움에 겨워 얼른 대답을 하고 빨리 문을 열고 싶었다. 하지만 일어서려고 아무리 팔꿈치를 딛고 안간힘을 써도 머리가 너무나 무거워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고는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얼마나 잤을까? 깨어 보니 주위는 온통 그늘을 드리우는 푸른색 커튼이 둘러쳐져 있었고 나는 순백색 침대에 몸을 쭉 뻗은 채 길게 누워 있었다. 커튼 사이로 한 줄기의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방안은 정적에 감싸여 무척 조용했다. 어디선가 벽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와 수저가 그릇에 부딪쳐 쨍그렁하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 왔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머리도 무겁지 않고 마음은 착 가라앉아 아주 평온했다.

  한쪽 커튼을 살짝 들치며 누군가 들어왔다.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입에는 미소를 띠고, 손에 잔 하나를 든 그분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다가와서 내게 몸을 숙이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했다.

  “아… 아버지세요? 정말 아버지시죠? 맞죠?”

  “그래, 그렇단다, 다니엘. 맞아, 우리 귀여운 아가, 바로 나란다.”

  “아니, 어떻게… 그리고 여긴 어디죠?”

  “의무실이야. 벌써 여드레나 됐다… 이젠 다 나았어. 그동안 다니엘, 넌 무척 아팠단다. 한번도 깨어나지 않고 고열에 시달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아니, 꿈을 꾼 것 같아요. 전 전혀 기억이 없는데요? 그런데 아버지, 아버진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아! 아버지 저를 안아 주세요! 아버지를 보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아버지는 나를 껴안아 주었다.

  “자! 이젠 그만 얘기하려무나! 자, 착하지? 의사선생님이 네가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

  내가 말하지 못하도록 이르고서, 아버지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를 자세히 말해 주었다.

  “여드레 전에 지금 다니고 있는 포도주 회사에서 세벤느 지방으로 출장을 가라고 하더구나.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넌 알 수 있을 거다. 사랑하는 너를 만나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얼마나 기쁘던지. 그래서 세벤느에 도착하자 말자 널 보려고 학교로 달려왔어… 네 이름을 마구 부르며 찾았지만 너는 보이지 않더구나. 그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네 방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어. 그런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은 없고 방문은 안으로 잠긴 채 열쇠도 안에 있는지 도저히 문을 열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네 방문을 발로 걷어찼단다. 들어가 보니 너는 방바닥에 쓰러져 있고 머리가 펄펄 끓으며 열이 대단히 심하더구나!… 얼마나 애처롭던지, 차마 볼 수가 없었어… 넌 닷새 동안이나 헛소리를 해댔어. 난 단 일 분도 네 곁을 떠나지 않고 너를 지켜보았는데 무슨 집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던가, 집을 다시 짓겠다던가 하는 소리를 계속하더구나. 도대체 무슨 집 말이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헛소리까지 하는 거냐, 응? 그리고 또 말이야. ‘열쇠 없어요? 자물쇠에 열쇠를 빼내요!’라고도 소리치더라. 비오 씨란 그 사람 때문이냐? 비오 씨, 맞지? 미오 씨? 그치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그 사람은 날 학교에서  못 자게 하더라! 규정을 들먹여 가면서 말이야… 그래 그 규정이란 거 말이야. 내가 그 사람이 말하는 그 규정을 다 알아야 되냐? 그 몰상식한 유식쟁이는 내 코 밑에다 열쇠를 흔들어 대면 내가 겁을 먹으리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나는 그 인간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 줬단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아주 정중하게 말이야!”

  나는 아버지의 대담한 행동이 고소하면서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몸서리나는 비오 씨의 열쇠를 금방 잊어버렸다.

  나는 마치 곁에 있는 어머니를 껴안으려는 듯 팔을 내밀며 물었다.

  “어머니는요?”

  “그렇게 이불을 차내고 그러면 아무 말도 안해 줄 테다! 자, 얌전하게 이불을 잘 덮어야지… 네 어머닌 잘 계셔. 지금도 바티스트 삼촌댁에 있어.”

  “자끄 형은요?”

  “자끄? 자끄는 당나귀같이 멍청한 놈이야! 아니,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내가 자끄를 당나귀라고 불러 대는 건 순전히 내 습관일 뿐이다… 자끄는 아주 착한 아이지… 그렇게 이불을 끌어 내지 말라니까, 고얀 녀석 같으니라구… 하지만 자끄의 그 버릇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어딜 가나 질질 짜는 그 빌어먹을 버릇 말이야. 그러면서도 그앤 늘 자기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 그저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되는 거야… 썩 괜찮은 일자리야.”

  “그 불쌍한 자끄 형은 평생 동안 불러 주는 걸 받아쓰기만 해야 하는 무거운 벌을 받았군요!”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거리낌없이 웃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나를 따라서 껄껄 웃었다. 내게 제발 이불을 차내고 흐트리지 말라고 계속 투덜대면서 껄껄 웃었다.

  아픈 것이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른다. 그 지긋지긋한 찜통 같은 방을 벗어나 의무실에서 난 정말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는 한시도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살펴 주었고 이것저것 여러가지 얘기를 해주면서 꼬박 내 머리맡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 아버지가 영원히 가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는 속으로 자꾸만 되뇌였다. 그러나 그러한 열망이 짙고 강할수록 더욱더 슬퍼졌다. 아버지는 여기에 회사일로 출장을 오신 것이며 그래서 세벤느 지방을 순회해야만 했고 내 곁을 떠나야만 했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자 나는 적막한 의무실에 홀로 남게 되었다. 나는 의무실 창가에 있는 커다란 둥근 소파에 몸을 파묻고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아침과 저녁에는 노란 빛이 감도는 얼굴의 까싸뉴 부인이 직접 식사를 날라다 주었다.

나는 오목한 접시에 든 스프를 마신 다음 닭 날개 뼈에서 고기를 발라먹고는 “고맙습니다, 부인!”이라고 간단히 뚝 잘라 말했다. 그뿐이었다. 노란빛이 감도는 얼굴로 보아 그 부인은 황달을 앓고 있다고 생각되었고 그래서 나는 그 부인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 부인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나는 그 부인이 맘에 걸렸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었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는 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평소처럼 아주 냉랭한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부인!”이라고 막 말하고 난 나는 “오늘은 좀 어떠세요. 다니엘 씨?”라고 묻는 다정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의 아가씨였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까싸뉴 부인이 아프기 때문에 자기가 부인의 일을 대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침착한 목소리로 내가 건강을 회복하고 또 직접 마주 대할 수 있게 돼서 무척 기쁘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저녁때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공손하게 방을 나갔다. 그날 저녁 그녀는 진짜로 다시 왔으며, 그 다음날 아침도,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녁에도 식사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내가 마치 이 세상을 모두 차지한 듯이 무척 기뻤다. 나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까싸뉴 부인이 황달로 무척 아프다는 것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각종 질병을 다 축복하고 싶었다. 만일 애당초 이 세상에 병이란 게 없었다면 나는 결코 그녀와 이렇게 단 둘이서만 있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아! 그 축복받은 의무실 창가의 둥그런 소파에 파묻혀 나는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가! 아침이 되면 마치 햇살을 받고 반짝이는 금가루처럼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였으며, 밤이 되면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선 어둠을 은은하게 밝혀 주는 달빛이나 초롱초롱한 별빛이 비춰나왔다. 나는 밤마다 그녀의 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동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기 시작하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내 비밀이야기를 머리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호감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그녀를 맞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곤 했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의무실에 들어오면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의 그런 침묵을 기이하게 생각하며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고 의무실 안을 서성거리면서 내 곁에 좀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법들이 없을까 고민하는 듯이 보였다. 그녀는 내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어 주기를 무척 바라는 듯했지만 소심한 나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여전히 입을 곡 다물고 있었다.

  이따금씩 나는 잔뜩 용기를 내서는 그녀에게 말을 붙이기도 했다.

  “아가씨!”

  금세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와 미소를 보면 불행히도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져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상투적인 인삿말만을 할 수 있었을 뿐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그 숱한 얘기들은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저에게 이렇게 친절히 대해 주셔서 대단히 고마와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 스프는 정말 맛있군요.”

  그러면 그녀는 실망한 듯 그녀의 검은 눈은 빛을 잃고 자그맣고 예쁘게 변하면서 불만의 빛을 나타냈다.

  ‘아니, 겨우 그 말뿐이에요?’

  그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나면 나는 내 자신이 정말 한심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아! 내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을 해야지, 하고 말 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굳게 결심을 해도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여전히 똑같은 일만 되풀이되었다.

  우리가 함께 마주 보고 서로에 대한 얘기를 속시원히 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먼저 말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그런 용기를 낼만한 위인이 아님을 자각한 나는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쓰기로 작정했다. 어느날 저녁, 나는 그녀에게 잉크와 종이를 가져다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이때까지 내가 쓴 어떤 편지보다도 중요한 편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틀림없이 내가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그녀는 영리하고 또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순수한 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잽싸게 잉크와 종이를 찾아서는 나에게 건네주고 웃음을 지으면서 서둘러 방을 나갔다.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쓰고 또 썼다. 그러나 온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었을 땐 내 소파 옆에는 꾸겨진 종이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을 뿐 그렇게도 쓰고 또 쓴 장문의 편지에는 겨우 세 마디밖에 쓰여 있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말들을 쓰고 또 써 보았지만 이 세 마디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이라 생각되었으며 그녀에게도 분명히 그러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드디어 그녀가 올 시간이 되었다. 나는 무척 흥분이 되었다. 나는 그녀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즉시 떨지도 않고 침착하게 이 편지를 건네주리라 다짐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오고 나서 이 방에서 벌어질 광경을 머리속에 한번 그려 보았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방에 들어와서는 탁자 위에 스프와 닭 요리를 내려놓고 ‘안녕하세요, 다니엘 씨!…’하고 말하며 나를 쳐다보겠지. 그러면 나는 즉시 용감한 기사처럼 ‘친절하신 아가씨, 여기 이 정성이 담긴 편지를 당신에게 바칩니다.’라고 말하며 공손하게 그녀에게 편지를 건네주는 거야. 그러면 그녀는….

  누군가가 복도를 사뿐사뿐 걸어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들었다. 방망이질하듯 가슴이 마구 뛰었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러나 들어온 사람은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의 아가씨 대신에 그 안경잡이 마귀할멈이었다.

  나는 감히 웬일이냐고 물어 볼 수조차도 없었다. 그저 맥이 탁 빠져 넋이 나간 채 아연실색해질 뿐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녀는 오지 않을까? 아니면 올 수가 없는 것일까? 궁금함으로 터질 듯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밤이 도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밤에도 그녀는 오지 않았으며,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다음날도, 영원히 그녀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나를 위해 설탕을 훔쳤고 그 때문에 여기에서 쫓겨나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 보내졌다. 그녀는 어른이 될 때까지 4년 동안 고아원에 갇혀 있어야만 하게 되었다. 불쌍한 아가씨….

  의무실의 아름다운 나날들과도 이제 안녕을 고해야만 했다.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의 아가씨는 떠나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그 말썽꾸러기 망나니들이 꾸역꾸역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게는 두 가지 불행이 한꺼번에 몰아닥친 것이었다.

  나는 6주일 만에 처음으로 운동장에 내려갔다. 핼쓱하고 야위어 전 보다 더 작아진 모습으로….

  학교는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양탄자를 털고, 의자를 들어 올리고 걸레질을 하는 등 대청소를 하느라 복도는 흥건히 젖어 있었고 학교 전체가 술렁거렸다. 그리고 옛날처럼 똑같이 비오 씨의 열쇠가 사납게 설쳐 대기 시작했다. 아니 더 큰소리로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울려 댔다. 비오 씨는 방학 동안에도 쉬지 않고 자기가 만든 규칙에다 몇 개의 조항을 덧붙이는 한편 열쇠꾸러미에다가도 열쇠를 몇 개 더 달아 놓았다. 다만 나만이 그 꿈틀대는 학교의 술렁거림 속에서도 그저 얌전하고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학생들이 속속 도착했다. 부르릉! 부르릉! 달그락! 딸그락! 덜커덕! 방학식 때 봤던 이륜마차와 문장 달린 차들이 교문 앞에 다시 그 모습을 나타냈다. 출석을 불러 보니 안 나온 아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 자리는 새로 온 아이들로 메꿔졌다. 학급도 새로 편성되었다. 나는 다시 중급반을 맡게 되었는데 벌써부터 바짝 주눅이 들어 떨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나는 이번 아이들은 저번 아이들보다 덜 심술궂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개학날, 예배당에서는 성가대의 합창소리가 드높이 울려퍼졌다. 성신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단추구멍에 자그마한 은빛 훈장이 달린 예복을 입고 있었고 그 뒤로는 교수 예복으로 단장한 교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공과목을 맡은 교사들은 흰색 담비 교수복을 입고 있었다. 다만 중급반 담임만이 색다르게 생긴 챙 없는 모자에 연한 색깔의 장갑까지 끼었다. 그걸 보고 비오 씨의 얼굴은 몹시 불만스러운 듯이 붉으락푸르락 경련을 일으켰다. 예배당 한구석에 학생들 사이에 끼어 앉은 나는 그 멋진 예복과 은빛 훈장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난 언제 정식 교사가 되나? 언제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사는 우리 집을 다시 짓게 될까?’

  나는 무척 서글퍼졌다. 우울하고 찌들리고 자신이 왜소하게만 느껴질 불행한 나날들이 얼마 동안이나 계속되어야 할까… 내 자신이 무척 불쌍한 놈이라고 생각되었다. 오르간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슬픔이 복받쳐오며 엉엉 울고 싶어졌다. 그 순간 나는 저쪽 성가대 한모퉁이에서 나를 보며 미소짓고 있는 초췌한 차림의 잘생긴 얼굴을 발견했다. 제르만느 신부님의 미소 띤 온화한 얼굴을 보자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오래간만에 제르만느 신부님을 다시 만나 보게 되니 생기가 돌면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성신미사가 있고 난 이틀 뒤 다시 새로운 의식이 거행되었다. 영세명 성인을 기념하는 본명첨례일이었다. 이날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래 왔듯이 모든 학생들은 냉동육과 리모산 포도주가 잔득 쌓인 풀밭에서 쌩 테오필 축제를 거행했다. 여느때처럼 이번에도 교장선생님은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조촐한 축제가 흡족한 결과를 낳도록 하기 위해 뭐하나 아끼지 않았다.

  학교에는 전혀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 성심성의껏 준비했는데 그럴 때의 그는 무척 자비로운 사람처럼 보였으며 그 자신도 아주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동틀 무렵이 되자 시를 상징하는 깃발로 장식된 대형 합승마차들이 학생과 선생들을 가득 태우고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포도주 광주리와 음식 바구니를 가득 실은 두 대의 운송차가 그 뒤를 이었으며 맨 앞에 가고 있는 꽃마차에는 지체 높은 양반과 악대가 타고 있었다. 악사들이 오피클레이드를 힘차게 연주하기 시작하자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채찍소리, 방울소리, 접시들이 양철 반합에 부딪는 소리 사이로 광장에 울려퍼졌다. 아직도 나이트캡을 쓰고 있는 싸르랑드 사람들이 모두들 창가로 몰려들어 축제행렬을 구경했다.

  축제는 풀밭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학생들과 야외수업을 나가곤 하던 그 풀밭에 도착하자마자 풀밭 위에는 식탁보가 펼쳐졌고, 마치 애들처럼 그늘을 찾다가 제비꽃 위에 앉은 선생들을 보고는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 댔다. 파이 조각을 담은 접시가 돌려졌고, 병마개가 튀어올랐다. 흥분과 기쁨으로 눈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웅성거리며 들뜬 분위기였다. 모두들 즐거워하는데 오직 나만은 불안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여러분, 나는 방금 누군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느 무명 시인의 시를 받았습니다. 핀다로스같이 훌륭한 서정시인인 비오 씨가 금년에는 호적수를 만난 것  같소. 나는 이 시를 재미있게 읽었읍니다만,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려야 할지….”

  “좋아요, 좋아요… 읽으세요! 읽으세요!”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을 찬양하는 아주 훌륭한 시였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꽃을 바치듯 찬사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시인은 안경잡이 마귀할멈도 빼놓지 않고 그녀에게 ‘식당에서 일하는 천사’라고 찬사를 보냈는데, 그 표현은 아주 썩 잘 된 표현 같았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그 씨를 쓴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아우성을 쳐 댔다. 나는 마치 석류열매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마지못해 머뭇머뭇 일어나서는 겸손하게 절을 했다. 모두들 감탄을 연발하며 환호를 했다. 나는 그날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나를 껴안으려고 했으며 나이 든 선생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내 손을 꼭 잡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급반 담임 교사는 내 시를 신문에 실어야 한다고 하며 꼭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교장선생님에게 부탁했다. 불안감이 가시고 대단히 기분이 흡족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르만느 신부님과 비오 씨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신부님이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는 듯했고, 이 방면에 있어서만큼은 대등한 위치가 된 비오 씨의 열쇠도 사납게 쨍그렁거리는 것 같았다.

  온통 시끌벅적거리며 흥분되어 있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교장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조용히 하라고 한 다음 말했다.

  “자, 자, 여러분. 이제 비오 씨 차례입니다. 익살스런 뮤즈여신의 차례가 끝났으니 이제 근엄한 뮤주여신의 시를 들어 봅시다.”

  약속어음책처럼 두툼하게 제본되어 있는 수첩을 호주머니에서 꺼낸 비오 씨는 나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비오 씨의 작품은 학교 규율에 경의를 표하는 내용으로 로마시인 버질 풍의 목가적인 전원시였다. 학생인 메날크와 도릴라가 한 귀절이 끝날 때마다 다시 거기에 답하는 시를 읊었다. 메날크는 규정이 아주 잘 지켜지는 학교의 학생역을 했고, 도릴라는 규정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학교의 학생역을 했다. 메날크는 엄격한 규율을 지킬 때 느껴지는 책임감 있는 자유에 대해, 도릴라는 어리석은 자유의 보잘것없는 즐거움에 대해 읊었다.

  결국 각본대로 도릴라가 졌고, 자기를 정복한 자의 손에 싸움의 성과물을 갖다바치면서 메날크와 함께 목소리를 합쳐 규율의 영광스러움을 찬양하는 환희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시를 끝맺고 있었다.

  시낭송은 모두 끝났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만이 흘렀다. 아이들은 시를 읊는 동안 접시를 들고 풀밭 끝으로 가서는 메날크와 도릴라가 뭐라고 떠들어 대건 상관없다는 듯 파이를 먹어 댔다. 비오 씨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교사들은 비록 잘 참아 내긴 했지만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은 전혀 아닌지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비오 씨는 완전히 패배했다. 교장선생님이 그에게 위로를 하노라고 한마디했다.

  “주제가 너무 딱딱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 딱딱한 주제도 아주 아름답게 표현했군요.”

  “저도 아주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지못해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했다. 나는 비오 씨의 참패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승리했다는 것에 대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비겁한 패배자인 비오 씨는 위로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계속 쓰디쓴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는 그날 하루종일, 박자도 안 맞는 악대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학생들의 노래소리에 어우러져 잠든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합승마차의 바퀴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질 때까지 내내 그러고만 있었다. 나는 내 라이벌의 열쇠뭉치가 쨍그렁거리며 투덜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시인 선생, 언젠가는 꼭 복수하고 말겠어!’

 

 

 9. 끔찍한 풍문의 계절

 

  쌩 테오필 축제와 함께 방학은 끝나 버렸다.

  그 이후로는 우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사육제가 끝나는 ‘참회의 화요일’ 다음날 같은 쓸쓸하고 허전한 분위기였다. 마지 못해 학교로 끌려 온 듯한 선생이나 학생들의 모습 속에 모든 의욕을 상실한 권태로운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두 달씩이나 푹 쉬고 났으니 그동안 몸에 배어 버린 나태한 습관을 떨쳐 버리고 이전과 같이 팽팽한 생활리듬을 되찾기란 몹시 힘든 일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태엽을 감지 않아 녹슬기 시작하는 벽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모든 일이 삐걱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비오 씨가 설치고 다니며 게으름을 피우는 그들을 다그치는 바람에 학교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듯 질서를 잡아 가기 시작했다. 등교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운동장의 곁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나와선 병정개미떼처럼 어색한 걸음걸이로 둘씩 짝을 지어 나무 밑을 줄줄이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수업을 끝내는 종소리가 땡! 땡! 울리면 아이들은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기상 종소리와 취침 종소리가 일정한 시각에 어김없이 울리면 모두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아이들이나 선생들의 몸 구석구석엔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고치기 힘든 습관처럼 규칙이 배어들었다.

  모범적인 싸르랑드 중학교에서 메날크 같은 학생들이 비오 씨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규칙대로 그날그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보기에도 썩 훌륭했다. 다만 비오 씨의 그 그림에 오직 나만이 오점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중급반 아이들은 도무지 그런 규칙에 쉽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산악지방에 있는 자기 집에서 뒹굴다가 방학 전보다 더 보기 흉한 몰골로 더욱 악랄하고 사나와져서 내게로 돌아왔다. 나 또한 긴 방학 동안 더욱 까다로운 성격의 인물로 변해 있었다. 병을 앓고 난 뒤로는 모든 게 짜증스러웠고 툭하면 성을 내는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고통스런 삶에 지쳐 버린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견뎌 낼 수 없었다. 방학 전만 해도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온순하기만 했었는데 새학기가 시작된 후에는 모든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엄격하게 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심술궂은 악동들을 굴복시켜 보고 싶은 충동을 강렬하게 느끼곤 했다. 아이들이 조금만 엉뚱한 짓을 하거나 삐딱하게 나가는 듯싶으면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내주거나 쉬는 시간에 교실에 남아 반성문을 쓰는 벌을 주곤 했다.

  그러나 벌을 주어 그들이 내게 복종하도록 하려는 방법은 성공하지 못했다. 매번 그런 벌을 계속 남발하다 보니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었고 마침내는 1797년의 아씨냐 지페만큼이나 가치가 떨어졌다. 그렇게 서로 무감각하게 지내던 어느날이었다. 교실 안에선 마치 내가 아이들에게 포위당한 듯한 낌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중급반 아이들은 내게 정면으로 들고 일어나 반란을 일으켰고 나는 그 폭동을 진압할 만한 무기를 더이상 갖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질러 대는 야유와 불평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교단 위에 서서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저 꼬마 선생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이자!… 다들 일어서라!… 이제 폭군은 물러나야 한다!… 이런 부당한 벌을 받으며 더이상 공부할순 없다!”

  그러자 교단 위로 잉크병과 책들이 비오듯 쏟아졌고, 꼬깃꼬깃 구겨진 딱딱한 마분지 뭉치들이 교실 안을 온통 휩쓸었다. 그 녀석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마치 장글 속의 원숭이들처럼 괴성을 지르며 떼거리로 내게 달려들어 몸에 매달렸다. 부당하게 내려지는 벌에 대한 항의라고 고래고래 외치며 나를 마구잡이로 몰아붙였다.

  이따금씩 생각다 못해 나는 무기력한 자신을 저주하며 비오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쌩 테오필 축제 때의 그 쓰라린 패배 이후로 그 인간은 독한 앙심을 품고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가 곤경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보며 은근히 기뻐한다는 걸 나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가 손에 열쇠꾸러미를 든 채 부랴부랴 교실로 들어서면 교실은 마치 개구리가 들끓는 연못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들은 순식간에 제자리에 돌아가서는 책에다 코를 처박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면 교실 안은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날아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비오 씨는 열쇠꾸러미를 흔들어 대면서 그 고요한 침묵 속을 잠시 여유 있게 이리저리 거닐며 아이들의 뒤통수를 하나씩 노려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빈정거리듯 경멸어린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싸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휑하니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다 내게 주어진 듯싶었다. 동료 교사들까지도 대놓고 나를 비웃었으며 교장선생님도 나와 우연히 마주칠 때면 말을 건네려고 쭈뼛대는 나를 냉담한 표정으로 잠시 쏘아볼 뿐 아무 대꾸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내게 유감이 많은 비오 씨가 그들에게 농간을 부렸음이 분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끄와랑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자습감독 교사로서의 권위와 자격마저 위태롭게 휘청댔다.

  부끄와랑 사건은 틀림없이 그해의 가장 큰 사건으로 그 학교의 연감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싸르랑드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 그 사건을 들먹일지도 모른다. 더욱 흥미있게 윤색되고 과장이 덧붙여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을 게다. 그들처럼 즐거운 기분은 아닐지라도 나 역시 가슴에 응어리처럼 남은 그 끔찍한 사건의 내막을 모조리 털어놓아 홀가분해지고 싶다.

  넓적하고 뭉툭한 발에 개구리처럼 툭 불거진 눈과 솥뚜껑 같은 손을 지닌 열다섯 살 된 부끄와랑은 뻔뻔스럽고 싸가지없는 녀석으로 중급반 운동장을 자기 집 정원마냥 휩쓸고 다니는 깡패였다. 그는 싸르랑드 중학교에 다니는 유일한 세벤느 지방 귀족이었다. 교장선생님은 그 아이가 다님으로 해서 그 학교가 귀족적인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하고는 그 아이를 깍듯이 대하며 무척 아꼈다. 학교에서는 그 아이를 ‘후작’이라고 불렀다. 모두들 그를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했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런 전체적인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그 아이한테 말을 할 때는 될수록 신중을 기하며 조심했다. 나의 그러한 노력으로 얼마동안 우리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후작 녀석은 이따금씩 오만불손한 태도로 나를 쳐다보거나 말대꾸를 서슴지 않았다. 마치 귀족계급에서 온갖 권리를 부여하던 혁명 이전의 봉건시대로 되돌아간 것처럼 귀족계급이란 점을 내세워 거들먹거렸다. 나는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자식의 태도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척했지만 내심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수업시간중에 그 깡패 같은 후작 녀석이 불손한 말로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속이 끓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냉정해지려고 애쓰면서 그 녀석에게 말했다.

  “부끄와랑 군, 책을 챙겨서 지금 당장 나가시오.”

  그것은 그 녀석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권위 있는 행동이었다. 그 녀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멍청하게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간 그 녀석의 태도가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는 것을 알아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가시오, 부끄와랑 군!”

  나는 다시 한 번 명령했다.

  삽시간에 교실 안에 불안감이 감돌았고 아이들은 근심스런 표정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침묵시킨 것이었다.

  나의 두번째 명령에 정신을 차린 후작 녀석은 느긋한 표정을 되찾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안 나가겠어요!”

  감탄스런 수근거림이 온 교실 안에 퍼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교단에서 일어섰다.

  “안 나가겠다는 거요?… 어디 두고 봅시다.”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나는 교단을 내려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폭력을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저 내 단호한 태도를 보여 줌으로써 그 녀석에게 겁을 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교단에서 내려서는 걸 본 그 녀석이 가소롭다는 듯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계속 이죽거렸기 때문에 나는 그 녀석을 의자에서 끌어내려고 와락 멱살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 야비한 녀석은 웃도리 속에다 커다란 쇠자를 감추고 있었다. 내가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그 녀석이 내 팔을 쇠자로 힘껏 후려쳤다. 예기치 못한 일격에 고함을 내지르며 나는 아픈 팔을 움켜쥐고는 몸을 비틀어 댔다.

  학생들은 교실이 떠나가도록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후작, 잘한다!”

  아이들의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다가 순간적으로 나는 머리가 홱 돌아 버렸다. 단숨에 책상 위로 뛰어오른 나는 후작 녀석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목덜미를 틀어 쥐고 발과 주먹, 이빨 등 하여튼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 녀석을 자리에서 끌어 낸 다음 교실 밖 운동장 한가운데로 밀쳐 내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내 힘이 이렇게 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사태가 너무 갑작스럽게 돌변해 버리자 아이들의 얼굴에선 핏기가 싹 가시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잔뜩 겁을 집어 먹고는 오들오들 떨었다. 학교에서 가장 강력한 위치에 있는 부끄와랑이 난장이같이 생긴 자습감독 교사한테 꼼짝 못하다니 이건 놀랍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실추된 권위를 되찾았고, 후작 녀석은 위신을 잃어 우리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된 것이었다.

  내가 여전히 흥분되어 온몸을 떨면서 창백한 얼굴로 교단으로 올라가자 모든 학생들이 얼굴을 책상 위로 푹 숙였다. 완전히 기가 죽어 있는 꼴을 보니 아이들은 이제 나에게 한풀 꺾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과 비오 씨는 이 사건을 어찌 생각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결국 학생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으니! 쫓겨나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이런 행동을…!’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얄미운 후작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 준 통쾌함과 아울러 공포와 초조감이 겹쳐 점점 불안해졌다. 이번에는 내가 두려워진 것이었다. 후작 녀석이 지금쯤 분명히 어디다 하소연하러 갔을 거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랗게 질린 교장 선생님이 교실 문을 박차고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자습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내내 마음을 졸이며 이제나 저제나 교장선생님이 들이닥칠까 조바심했지만 끝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어 부끄와랑이 다른 아이들이랑 어울려서 웃고 뛰노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걸 보니 약간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자 나는 그 녀석이 그 일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낼 필요가 없을 성싶어 그날 일은 잊어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은 불행히도 외출이 허용된 목요일이었다. 후작 녀석은 이슥한 밤이 되어도 끝내 기숙사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며 그 긴 밤을 꼬박 새우고야 말았다.

  다음날 첫번째 자습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부끄와랑의 빈 자리를 바라보면서 수근대기 시작했다. 나는 함부로 내색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불안하고 초조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아침 7시가 되어 막 자습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교실문이 느닷없이 드르륵 열렸다.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이 확 달아났다.

  맨 앞에 교장선생님을 위시해서 비오 씨가 따라 들어오더니 곧이어 턱까지 단추를 채운 투박해 보이는 긴 외투에 20센티 정도의 말총 깃 넥타이를 늘어뜨린 키큰 노인이 차례로 들어왔다. 맨 뒤에 들어선 노인네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나는 부끄와랑의 아버지 드 부끄와랑 후작이라는 걸 즉각 알아차렸다. 그는 긴 콧수염을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 양반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교단에서 내려설 용기조차 내게는 없었다. 그들 역시 내게 인사하지 않았다. 교실 한가운데 버티고 선 세 사람은 나갈 때까지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시종 아이들만 휘둘러보며 더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 떠벌여 댔다.

  교장선생님이 자기 임무에 충실해야겠다는 열의로 먼저 포문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는 괴로운 , 아주 괴로운 임무를 수행하려고 여기 왔읍니다. 여러분의 선생님 한 분이 꽤 무거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일단 입을 열어 비난을 쏟아붓기 시작한 그는 15분 동안이나 쉬지 않고 계속 나를 매도했다. 그러나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온 모든 말들은 왜곡된 거짓말이었다. 후작 녀석은 항상 품행이 단정한 모범생인데,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트집을 잡아서 학대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자습감독 교사로서의 의무를 망각해 버리고 애매한 학생만 다그치는 같잖은 선생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듣고만 있을 수 없어서 이따금씩 나는 변명을 하려고 애썼다.

  “천만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장선생님!”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들은 체도 않고 끝까지 날 공개 비난하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 부끄와랑 후작이 뒤를 이었다. 그 노인네는 마치 검사가 논고를 하는 것처럼 지껄여 댔다. 그의 모습은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불쌍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자기 아들을 내가 살해하기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아무런 방어태세도 갖추지 못한 불쌍한 나를 향해 그들은 마치… 마치 물소떼처럼 마구 덤벼들었다. 더이상은 도저히 형용할 수도 없이… 정말 치떨리는 일이었다. 후작 녀석은 아예 병석에 드러누웠으며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멈추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간호하고 있다고 했다.

  ‘아! 만일 내가 어른이라면 그런 자식은 가만 두지 않을 텐데… 아직 내가 어리기 때문에 오히려 난폭한 선생에게 동정을 베풀어 용서해야만 하다니 서글퍼요.’

  후작 녀석은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며 헛소리를 해대는 모양이었다. 드 부끄와랑 후작은 그런 아들이 몹시 애처로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며 앞으론 누가 됐건 자기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 녀석의 두 귀를 싹뚝 잘라 버리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외쳐 댔다.

  귀를 틀어막고 싶은 그들의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학생들은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비오 씨의 열쇠꾸러미는 기쁨으로 쨍그렁거렸다. 분노로 얼굴이 창백해진 나는 교단에 선 채 그 모든 욕설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들이 결코 끝내 줄 것 같지 않은 모든 모욕을 감수해 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이를 악물고 대꾸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칫 잘못하다가 한마디라도 대꾸하게 되면 이 학교에서 쫓겨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렇게 한 시간 동안을 떠벌리고 나더니 이야기거리가 떨어졌는지 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다가 그들은 나가 버렸다. 그들이 나가자 교실은 온통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맞대놓고 비웃었다. 부끄와랑 사건은 간당간당 지탱해 왔던 나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것은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싸르랑드의 모든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크고 작은 모임이나 까페 등 어딜가나 그 사건에 대한 얘기가 난무했다. 누구보다도 그 사건에 관해 자기가 가장 정확하게 안다고 자부하면서 사람들은 머리칼이 곤두설 만큼 황당하게 풍선처럼 부풀려 낱낱이 묘사했다.

  ‘그 자습감독 교사는 유령이나 식인귀임에 틀림없어. 우린 상상도 못할 교묘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어린아이를 고문한다지 뭐야….’

  그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퍼져 갔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할 땐 나를 그저 ‘냉혈한’이라고 불렀다. 온통 부풀려지고 과장되어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무서운 인간으로 비춰졌다.

  부끄와랑 녀석은 하루종일 침대에만 있는 게 지겨워지자 자기네 집 응접실의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침대 의자를 옮겨 놓으라고 시켜서는 거기서 내내 빈둥댔다. 그 응접실에는 여드레 동안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흥미로운 희생자야말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문턱이 닳아 빠지도록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찾아와 그 사건을 직접 듣고 싶어했으며, 그 비열한 녀석은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서 흥미진진하게 떠벌렸다. 그 녀석이 꾸며대는 거짓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부인네들은 부르르 치를 떨었고, 노처녀들은 그 녀석을 ‘불쌍한 천사!’라고 혀를 차며 슬그머니 사탕을 쥐어 주기도 했다. 큰 사건이 터지기만을 기다려 온 신문이 때마침 이 사건을 특종으로 다루어 인근의 종교학교와 비교해서 싸르랑드 중학교의 비인간적인 교육을 맹렬히 비난하는 기사를 실어 그 사건은 더욱 크게 확대되어 온 마을을 휩쓸었다.

  신문과 거리거리에서 싸르랑드 중학교를 비난하는 소리가 드높아지자 교장선생님은 노발대발했다. 그가 나를 해고하지 않은 것은 오직 교육장이 보호해준 덕분이었다. 난 차라리 해고를 당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지도 몰랐다. 이젠 자습감독 교사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더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쩌다 입만 벙긋해도 그들은 자기도 부끄와랑처럼 아버지한테 일러바치겠다고 을러 대는 것이었다. 난 결국 그들을 포기하고 말았다.

  내겐 부끄와랑 집안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그 늙은 후작이 불손한 태도로 나를 윽박지르던 당시의 광경을 떠올리면 분노로 귀까지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당한 모욕을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야외수업일이 되어 에베쉐 까페 앞을 지나갈 때마다 드 부끄와랑 후작은 모자를 벗은 채 손에 당구 큐대를 든 몇 명의 주둔군 장교들에 둘러싸여 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야유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목소리가 들릴 만큼 학생들이 가까와지면 후작은 도전적인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며 큰소리로 외쳐 댔다.

  “오늘은 괜찮냐, 부끄와랑?”

  “네, 아버지!”

  그 고약한 어린 녀석은 열 가운데서 태연하게 소리쳤다. 그러면 장교들과 학생들, 까페의 급사들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웃는 것이었다.

  ‘오늘은 괜찮냐, 부끄와랑?’이라는 그 말은 내게는 너무나 끔찍한 형벌이었지만 그걸 피할 방법이 없었다. 풀밭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에베쉐 까페 앞을 지나쳐야 했으며 그 늙은 후작은 단 한번도 야외수업 가는 날을 걸러 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씩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서 도전을 해보고 싶은 무모한 충동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내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그 충동을 억누르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은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후작이 차고 다니는 파랗게 날이 선 긴 칼 때문이었다. 밑쪽이 굵고 끝이 뾰족한 괴상한 모양의 그 칼은 그가 경비대에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베어 버린 무시무시한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더이상 그들의 수모를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펜싱 교사인 로제를 찾아갔다. 나는 후작에게 결투를 신청해서 한번 겨뤄보겠다는 결심을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털어놓고 말았다. 오랫동안 서로 얘기를 나눠 보지 못했던 로제는 처음으로 아주 신중하게 내 말을 듣는 듯했다. 그렇게 내 말을 모두 듣고 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에 침을 튀기면서 내 두 손을 맞잡아 힘껏 쥐었다.

  “다니엘 씨, 정말 훌륭한 결심을 하셨소. 당신 같은 사람은 결코 염탐꾼 노릇을 못하리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읍니다. 당신은 왜 비오 씨한테 늘 쩔쩔맸읍니까? 앞으로 두고 보십시오. 모든 일은 잊혀 질 거요. 당신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겁니다. 이렇게 당신과 직접 상대해 보니 참 의젓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려. 이젠 당신이 복수할 차례요. 모욕을 당했다구요? 좋아요! 사죄를 받고 싶지요? 좋아요! 당신은 펜싱의 초보도 모르지요? 아뭏든 좋아요, 좋아! 그래도 좋다구요! 그 늙은 바보 녀석의 칼에 찔리지 않도록 내가 도와 주기를 당신이 바라는 거죠? 잘 됐어요! 연습장으로 갑시다. 여섯 달 만 연습하면 당신은 그 늙은이를 이길 수 있을 거요.”

  그 뛰어난 인물 로제가 열을 내가며 마치 내 결투를 떠맡으려는 듯한 기세에 나는 기쁨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일주일에 세 시간씩 그에게서 펜싱을 배우기로 합의를 보는 한편, 교습비는 특별히 따로 정했다. 사실 어이없게도 엄청난 교습비를 지불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게서 사람들보다 두 배나 많은 교습비를 받았던 것이다. 펜싱을 배우는 데 필요한 모든 계약에 관해 얘기를 끝내고 로제는 정답게 내 팔짱을 꼈다.

  “다니엘 씨, 오늘은 첫 수업을 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하지만 바르베뜨 까페에 가서 계약을 조인할 수는 있어요. 갑시다! 자, 이제 어린애 같은 짓은 하지 마세요. 혹시 바르베뜨 까페에 가기가 겁나는 건 아닌가요?… 그러니까 가야 되는 겁니다. 제기랄! 유식한 체 그만하시고… 거기 가면 호탕하고 점잖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들이랑 함께 있으면 당신은 그 여자 같은 티를 벗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방탕의 늪 속으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바르베뜨 까페에 갔다. 그곳은 여전히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고함소리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 찬 담배 연기, 새빨간 바지를 입은 하사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똑같은 모양의 보병 군모와 혁대가 모자걸이에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로제의 친구들은 열렬히 나를 환영했다. 로제의 말대로 그들은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나와 후작 사이에 있었던 일과 내가 내린 결정을 로제에게 듣고 나서는 그들은 한 명씩 내 손을 굳게 잡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훌륭해. 아주 훌륭한 결심이오.”

  나는 그들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해서 한턱 사겠다고 호기롭게 내뱉고는 펀치술을 한 병 시켜서 서로 돌려가며 내 승리를 위한 축배를 들었다. 술기가 오를수록 나는 학년 말쯤에는 드 부끄와랑 후작을 한 칼에 쓰러뜨려서 지금껏 참아 왔던 모든 수모와 모욕들을 깡그리 되돌려 줄 거라는 확신으로 들뜨고 있었다.

 

** 지금도 ‘필사 筆寫’ 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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